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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칼럼] 침몰한 헌법, 또 한 번의 제헌절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행시간 2014-07-17 07:47:02 최종수정 2014-07-17 07:47:02

 

또 제헌절이다. 그 이름마저도 버거운데 그것도 벌써 66번째에 이른다. 우리에게서 헌법이 최고법이었던 적은 없다. 그것은 고작 공무원시험이나 변호사시험 준비생들의 암기대상으로만 전락해 있다. 혹은 66년에 걸친 적폐들이 헌법이라는 폐가(廢家)의 곳곳에 자리잡고 세상을 호령한다. 그래서 87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헌법현실은 여전히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정부수립 당시 비록 남한만의 반쪽짜리 선거였지만 그 당선인들은 새로운 국가를 향한 열정으로 분주하였다. 한편에서는 3·1혁명에 이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독립정신을 피력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광활한 영토에 떨쳤던 고구려의 영광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민족적·사회적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의인도와 동포애”를 외쳤던 제헌헌법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약속하며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민주공화국으로 우뚝 서기를 원했다. 그러기에 제헌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다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미래약속은 권력욕에 눈 먼 위정자들에 의해 이리저리 난도질되었다. 내각제로 구상되었던 애초의 구상이 이승만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제로 급변하면서, 헌법기초위원회가 작성한 헌법안을 조헌영의원이 연필로 가감·삭제하였던 1948년 6월 21일 저녁 김성수의 집에서의 장면은 이를 상징한다. 누구나 연필 정도의 하찮은 권력이라도 쥐기만 하면 헌법에 두 줄 죽죽 그으며 엉뚱한 내용으로 덧칠하고, 그 하찮은 권력이라도 제 손에 쥐기 위해 원칙이나 대의는 저버린 채 권력의 주구가 되어 헌법을 유린하던 그 아픈 헌정사의 단면들이 이 장면에 겹쳐지는 것이다.

제헌의회 의원 사진
제헌의회 의원 사진ⓒ독립기념관

권력에 유린당한 ‘제헌’의 열정

이 지점에서 87년의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절차적·선거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엘리트 정치인-혹은 정치꾼-들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6월항쟁에서 분출하였던 민중들의 외침은 헌법의 내용을 채우는 주권자의 명령으로 자리잡기도 전에 3김과 신군부의 타협에 의해 규율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반공이라는 허위의식은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치며 공안세력의 먹거리를 마련하며 가장 중요한 정치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오히려 공익이라는 허울이라도 내세우며 정부가 나름의 통제권을 행사했던 정경유착의 틀은 이제는 민영화니 탈규제니 하는 통로를 거치면서 재벌이나 대기업이 정부와 법을 우롱하는 역전된 정경유착으로 국면전환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든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조문을 외치며 저 도심 곳곳을 가득 채웠던 촛불의 행진조차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제껴버릴 수 있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내세우면서도 신자유주의의 침탈을 쌍수로 환영하였던 저 이율배반의 정부를 우리는 경험하여야 했다. 그리고 그 질곡의 헌정사 끝자락에서 우리는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며 집단자위권으로 포장한 일본의 군사주의를 목도한다. 제헌헌법이 그토록 강조하였던 “민주독립국가”의 모습은 시나브로 스러져 버린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으로 구현되어야 할 민주성은 세월호참사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성과 몰염치성으로 난도질 되어 버렸고, 동북아를 비롯한 “항국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독립성은 일본 아베정권을 향한 정부의 대책없는 침묵 속에 그 실체를 상실해 버렸다. 어쩌면 이 땅에는 정부만 있고 국가는 사라지고 없을 것 같기도 하다. 66번의 제헌절 기념식 끝에 민주도 독립도 국가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제헌헌법은 제5조에서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는 국가의무조항을 두었다. 입헌주의를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한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조차 제헌헌법은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분명한 어조로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향후 구성되는 정부는 국민을 위하여 이러한 국가의무를 대행할 것이 예정되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박정희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1963년의 헌법 개정으로 우리의 헌법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국가의 의무는 곧 정부의 의무이겠지만,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아 지배하고자 하는 군사정권은 이 정도의 립 서비스조차도 거부하고자 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정권 그 자체를 국가와 동일시하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무한한 권력을 행사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기만 욕망하였다.

헌법 없는 나라의 마지막 희망

이러한 체제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법질서니 법치니 하면서 정작 법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정부 그 자체는 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 아니 필요할 때만 법을 내세우며 법을 유린한다. 세월호특별법만 해도 그렇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두고 권력분립이 어떻고 검찰권이 어떻고 하면서 정부와 여당은 구구절절이 법의 세목만을 지적하며 법안의 통과를 가로막고 있을 뿐, 정작 헌법이 요구하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구히 보장”하여야 할 국가의무는 안중에도 없다. 그들의 눈에는 주권자인 국민들로 구성되는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정부가 곧 국가이며 국민들은 이 국가의 이름으로 휘둘러지는 숱한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무지한 백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에까지 이어진다. 심판청구서에서부터 각종의 준비서면들, 혹은 세계의 헌법재판사에서 유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으로 제출된 ‘증거’자료들을 아무리 훑어보아도 이 사건에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운운하면서 반국가적 활동 혹은 주장을 심판청구의 이유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정권이나 지배세력들의 생각과 이념과 이익에 반하는 생각과 이념과 주장들을 통제하겠다는 권력욕망만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각인의 자유와 평등과 창의”는 무의미하다. 그 “각인”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어서는 아니 되는, 오로지 통치의 대상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든 정치활동의 자유든 혹은 정당 활동의 자유든 헌법을 보장되어 있는 그 어떠한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저 일제 식민지체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정권의 통치술-불량선민이라는 낙인찍기-만이 횡행한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세력이나 사회부분들을 빨갱이 혹은 종북 또는 좌파로 낙인찍고 이들을 아예 사회로부터 추방해 버리는 통치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추방당할까 두려움에 떠는 힘없는 국민들을 ‘선민’으로 순치시키며 그들 모두를 ‘생각하지 않은 죄’의 공범으로 내모는 통치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국가가 없다. 어디를 보아도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정권을 통제하여야 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의체제가 말하는 관념적·이념적 통일체라는 개념의 국민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소불위의 정권만이 존재할 따름이고, 청와대와 국정원과 행정각부 등을 휘잡는 이런 저런 정치꾼들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의 전횡 속에 헌법은 한낱 종이문서에 불과한 허상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혹은 이런 정치꾼들의 욕망을 ‘법’의 언어로 재가공하여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법률가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4.16 특별법 제정 촉구 가족대책위 입장 발표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가 국회 본청 앞에서 여야 세월호 특별법 TF팀에 가족대책위를 포함하는 여야 3자 협의체 구성 조원진 새누리당 간사 배제 등을 요구하며 침묵, 연좌 농성 이틀째인 13일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4.16 참사 특별법 관련 가족대책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제 공휴일의 지위조차 박탈당한 제헌절을 기념하는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리고 TV카메라를 쫓아 행사장에까지 나온 정치꾼들은 서둘러 제헌절 기념식을 머릿속에서 지워나갈 것이다. 마치 세월호 참사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자 애쓰듯... 그리고 또 이렇게 한 번의 제헌절이 지나간다.

 

 

 

하지만 이 암울한 기억 속에서도 한 가지 빛을 본다.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1박2일에 걸친 대장정속에 국회에 도착한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걸음걸이에서 헌법이 헌법다울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찾게 된다. 이들은 보기 드물게 다른 학생을, 다른 이들을, 그리고 사회를 ‘생각’한다. 이번 제헌절은 그래서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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