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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고 또 소중하다

 
백찬홍 2015. 04. 19
조회수 91 추천수 0
 

 

 

가장 경이로운 사진 한 장

 

 

영국의 역사학자 이언 모티머는 지난해 말 출간된 저서 <세기의 변화>를 통해 인류의 사고를 바꾼 것 중에 하나로 우주 비행사가 달의 궤도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들었다. 인간의 달 착륙이 가지는 의미가 크긴 하지만 깜깜한 우주 공간에서 푸르고 흰 빛을 띠는 지구의 모습이야말로 경이 그 자체라는 것이다. 모티머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진일 것”이라며 “이 사진만큼 지구에 사는 우리들에게 지구가 얼마나 작고,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위대한가라는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한 사진은 없었다”고 했다.

 

gravity1.jpg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도 우주선 보이저호가 태양계 바깥에서 찍은 희미하고 작디작은 지구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독트린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세이건이 말한 대로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일부를 차지하려고 피의 역사를 써왔다. 거기에는 종교도 한몫을 했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공인 이후 계몽주의가 그 뿌리를 흔들 때까지 천년 이상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간주해 박멸했고, 심지어는 같은 신을 섬기는 세력끼리 30년간 전쟁을 벌여 전 유럽을 초토화하기도 했다.

 

이슬람도 예외는 아니다. 중동과 서남아시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같은 전통을 공유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관용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신교에 대해서는 엄격했고, 최근에도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조직은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우주의 작은 점 한 모서리에 살면서,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모서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신론자였던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죽음 앞에서도 저의 신념엔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소멸합니다. 저의 육체와 저의 영혼 모두 태어나기 전의 무로 돌아갑니다. 묘비에서 저를 기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문득 기억날 땐 하늘을 바라보세요.” 과학저술가였던 부인 앤 드리앤도 생전에 그와 생각을 같이했다. 남편과 사별하면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더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사랑이 종교의 본체라고 할 때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더 종교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렇듯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사진은 인간이 이 우주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는 유일한 존재라는 환상이 얼마나 헛되며, 우리가 이생에서 맺은 가까운 인연들과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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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차벽'이 적법했다고? 외신기자 "외국이었다면 박살났다"

 

2011년 위헌 판결 불구...경찰 "급박한 위험으로 판단" 논란

15.04.19 21:57l최종 업데이트 15.04.19 21:57l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 또 다시 '불통'의 상징이 등장했다. 바로 차벽이다. 지난 18일 경찰은 경찰차와 플라스틱 차단 벽 등으로 주요 도로를 모두 막아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참가자 및 시민들의 발을 묶었다.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은 정부의 민낯이다.

그러나 경찰의 차벽 설치는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이미 '위헌' 결정을 내린 사안이다. 경찰의 대응을 두고 적법성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 차벽, 2011년에 이미 '위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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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겹이 설치된 '근혜산성'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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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청장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싸 시민들의 통행을 제지한 행위는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경찰청장은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한 시민들이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 버스로 서울 광장을 빙 둘러싸 차벽을 만든 바 있다. 이에 대해 헌재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또한 "(차벽 설치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집회방지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서울광장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는 경우 일반시민들의 통행 등 이용까지 제한되므로 서울 광장의 몇 군데라도 통로를 개설해 통제 하에 출입하게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경찰은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여지없이 차벽을 설치했다. 특히 지난 18일 집회에서는 '차벽 설치 요건'과 '차벽 설치 정도'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이어진 세월호 관련 집회에 모두 참가한 박주민 변호사(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의 법률대리인)는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차벽은 16일 밤부터 있었고 18일 오후 1시께부터 차벽 사이 구멍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라며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고 그 이후부터 차벽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18일 세월호 범국민 대회는 오후 3시께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설사 차벽 설치 요건이 마련됐다 치더라도 차벽 설치 '정도'를 보면 그 일대를 완전히 밀봉시켜 고립시켰다"라며 "결과적으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즉,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감지된 후 차벽을 설치한 게 아니라 집회 시작 전부터 이미 차벽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 차벽이 광화문 일대 길목마다 설치됐고 이는 일반 시민의 '통행권' 마저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경찰 "시위대가 도로로 뛰어나와 급박한 위험으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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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시내에서 세월호특조위 정부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청와대 인간띠잇기가 예정된 가운데, 광화문앞 경찰차벽위에 올라가서 피켓을 들고 있던 유가족들을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렸다. 유가족 김영오씨를 경찰이 버스 위에서 에어매트위로 밀어서 떨어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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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분향소 접근 막은 차벽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 합동분향소로 향하자 경찰이 차벽을 설치해 광장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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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박재진 경찰청 대변인은 19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집회 참석자들이 태평로 길을 먼저 점거하고 달려 나와 그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차벽을 설치했다"라며 "갑작스레 도로로 뛰어나와서 청와대 쪽으로 진출하기 때문에 급박한 위험으로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차벽이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으로 이동하기 전부터 설치된 것에 대해서는 "설치는 아니고 준비를 했다"라며 "오후 4시 30분 이후 시위대가 차도로 집단 진출을 시도했을 때 설치했다"라고 해명했다. 오후 1시 쯤, 유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던 광화문 광장 인근에 차벽을 설치한 데 대해서는 "광화문 광장에서 미리 시위대의 움직임이 있어서 3대만 설치했다"라고 말했다. 위헌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광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벽 설치한 경찰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맞나?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안 지킬 리가 있겠나"라며 "오늘 광화문에 차벽 세우는데 관여한 모든 경찰 나으리들, 형법과 경찰법상 직권남용의 형사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 각오하라"라고 일갈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차벽으로 꽁꽁막는 저 치밀함으로 구조를 했더라면 다 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1년이나 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대통령이 피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위터 이용자 '@kty****'는 "안국 로터리 차벽, 경복궁 차벽, 조계사 차벽, 광화문 북단 차벽, 광화문 5~6층 차벽, 세종로 차벽, 이런 공권력이 7분이면 충분했다는 세월호 아이들 구조를 못 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이용자'@kim****'는 "차벽 안쪽의 유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이 불법시위를 하고있다, 이게 더 맞는 말 같다"라고 일갈했다. '@eps****'는 "차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아님 땅에서 올라오드냐? 차벽이 어디서 나와라 뚝딱하면 나온담서요?"라고 꼬집었다. 

로이터 통신 한국특파원 제임스 피어슨은 자신의 트위터 '@pearswick'를 통해 "만일 다른 나라에서 시위대를 가두려고 경찰버스를 이용했다가는 박살났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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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비집고 주말 세월호 집회…유가족도 무차별 연행돼

등록 :2015-04-18 23:22수정 :2015-04-19 00:26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시민 3만여명 서울광장 등 곳곳에서 대규모 추모행사
경찰, 차벽 470여대에 1만4천명 동원해 ‘인의 장막’
광화문 앞 농성 유가족 강제연행…최루액·물대포 난사

수원월드컵경기장선 경기 앞서 추모행사…남경필 지사 참석
세월호 참사 1년 뒤 첫 주말을 맞은 18일, 유가족을 포함한 시민 3만여명(경찰 추산 8000명)이 서울광장에서 희생자와 실종자 304명에 대한 대규모 추모 행사를 열었다. 참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 시민 100여명이 연행됐다.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가 이날 주최한 ‘세월호 1주년 범국민대회’는 오후 3시 예정된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거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오후 1시40분께 경찰이 광화문 일대에 차벽을 설치하자, 광화문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던 유가족 80명과 시민 10여명이 이를 막으러 나섰다. 유가족 등 시민 100여명은 경찰 버스 위에 올라 “세월호 특별법을 무참히 짓밟는 위법 시행령 원천 무효! 정부 시행령을 폐기하라”, “세월호에 있는 9명의 실종자를 꺼내주세요” 등의 플래카드와 실종자 9명의 얼굴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강력히 항의했다. 경찰은 곧바로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을 포함한 16명을 연행해 금천경찰서와 노원경찰서 등으로 분산 이송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 한 명이 부상을 당해 오후 3시께 병원으로 이송됐고, 시위 진압에 나선 의경 1명도 다쳐 현장에서 응급조처를 받은 뒤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차벽 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세종로 네거리 등에 겹겹이 저지선을 쳤다. 경찰 병력도 172개 부대, 1만3700여명을 배치했다.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추모 행사는 시민 3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오후 3시40분께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실종자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아버지 허흥환씨는 “세월호 안에 9명의 실종자가 있다. 그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또 희생자 박혜선 학생의 어머니 임선미씨는 “유가족을 왜 연행해갔느냐, 내 새끼가 죽었는데, 내 새끼 얼굴도 못보고 보냈는데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어 서울광장의 시민들이 경찰 폴리스라인을 허물고,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큰 충돌을 빚었다. 참가자들은 세월호 피해 가족 일부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남은 가족들이 모인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했다. 일부 시민들이 경찰 차벽을 뚫고 광화문광장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는가 하면, 세월호 피해 가족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를 포함한 시민 일부를 추가로 연행했다. 범국민대회 주최 쪽은 “경찰이 차벽을 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서도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거나 무작위로 연행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밤 10시 현재 경찰 쪽은 “세월호 피해 가족 21명을 포함해 90여명이 연행됐다”고 밝혔다. 밤 10시가 넘어서면서 대회 주최 쪽이 “시민들이 광화문 앞에서 유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집회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찰이 대응 수위를 낮추지 않으면서 양쪽의 충돌은 이날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주최 쪽이 계획했던 ‘청와대 인간띠 잇기’도 무산됐다.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차벽을 헤치고 광장으로 진입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저지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날 행사에 앞서 오전 11시께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세월호 진실 규명에 뜻을 같이하는 21개 단체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이 서울역광장에서 진실규명 촉구 대회를 열었다. 500여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이들은 “세상 모든 아이들을 위해 행동하는 엄마들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과 꽃 등을 들고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오후 1시께 광화문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이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인양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으며, 민주주의서울행동은 오후 2시께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며 명동성당을 출발해 서울광장 인근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행진을 벌였다.

 

한편 이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수원과 서울의 경기에 앞서 선수단과 관중들이 추모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함께했다. 또 두 팀 서포터스들은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를 추모하는 뜻에서 경기 시작 뒤 304초간 일체의 응원을 펼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경찰이 트럭과 버스 등을 이용해 광화문 일대 차벽을 설치했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제공

 

허승,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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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화의 침투와 한국문화의 종속성

일그러진 한국 문화: 미국문화의 침투와 한국문화의 종속성<기고> 통일을 지향하며 4월혁명 55주년에 돌아보는 남북의 문화
이재봉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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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8  12: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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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1960년 4월혁명은 부정선거에 대한 반대와 항의에서 일어났지만, 그 영향으로 민족주의를 불러왔고, 이는 반외세 자주운동으로 이어졌다. 4월혁명 1주년에 맞춰 나온 <4.19 시국선언>이 지적했듯, “반혁명적 보수 야당”이 “외세와 결탁하여” 4월 혁명을 중도에서 정지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이승만이 물러나는 바람에 1960년 4월엔 주한미국대사를 포함한 미국인들이 환영 받았지만, 7개월 후인 11월엔 “달러가 가져오는 노예근성”부터 막아야 한다는 다짐이 나오고, 1년이 흐른 1961년 4월엔 “외세는 물러가라”는 구호까지 거침없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2015년,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민족자주를 이루자던 4월혁명이 일어난 지 55년이 지났지만 미국에 대한 의존은 더 강해지고 자주는 그만큼 멀어져간다. 분단이 굳어지며 남북 사이엔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커지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추종하는 가운데 민족이나 자주라는 말만 꺼내도 ‘종북’으로 매도당하기 쉬운 현실이다. 이 가운데서도 남북 사이에 이질성을 키우며 가장 자발적으로 미국을 닮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분야가 바로 문화 아닐까.

4월혁명에 따른 민족문화 되찾기 운동

4월혁명의 영향으로 1960년대부터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미국의 문화 침투를 거부했다. 미군들이 가져온 이른바 ‘GI 문화’나 ‘PX 문화’가 한국에 유행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식민적 미국주의’에 맞서 전통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배금주의와 물질주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폭력성과 잔인성, 문란한 섹스와 쾌락주의, 인종차별주의와 자기민족 중심주의 등에 의해 한국의 전통적 사회윤리와 관습이 파괴된다고 분노했다.

예를 들어, 국악인들은 미국 음악을 비롯한 서양 음악에 압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학교 음악교육 커리큘럼을 개선해 한국의 전통 민요를 포함한 국악 교육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부 미술학도들은 외국의 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서구적 미학 개념을 벗어나 우리 미술에서 민족미학의 근원을 찾자고 주장했다. 젊은 연극인들은 한국 연극계에서 유행하던 번역극 공연을 거부하고 한국 작가들이 쓴 창작극을 공연할 것을 주창했다. 대학생들은 1960년대부터 탈춤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1970년대엔 탈춤이나 민속극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와 관련하여, 1970년대 중반 한 대학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물질적이고 퇴폐적인 문화에 의해 한국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엔 중반엔 진보적 작가, 예술인, 교수, 언론인, 출판인들이 결성한 <민중문화협의회>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문화적 식민지화의 압도적 중압에 눌려 정상적 자기 발현을 억제당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의 문화가 아니라 신식민주의의 문화이며, 민중의 절절한 자기표현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내외의 지배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관제문화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노예화의 문화, 신식민주의 문화, 관제문화, 분단고착의 문화는 결단코 종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은 1980년대 말 이른바 ‘생활문화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상생활에서부터 미국문화에서 벗어나 한국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키자고 했다. 영어 사용을 될수록 자제하거나 거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팝송을 부르지 말자고 주장했다. 코카콜라를 마시지 말고, 커피 대신 숭늉을 마시자고 호소했다. 미국 담배 불매운동을 전개하며 청바지를 입지 말자는 주장도 폈다.

1960년 4월혁명부터 약 20-30년 동안 전개되었던 민족문화 되찾기 운동의 모습을 대충 그려보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다시 20-30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우리 문화의 모습은 어떠할까.

나는 우리의 전통과 민족문화만 고집하며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문화를 배척하는 이른바 ‘국수주의’는 반대한다. ‘국제화’나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 국경이 낮아지며 ‘지구촌’이라는 말이 귀에 익은 터에 그것은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외국문화를 분별없이 선호하며 특히 잘못 받아들이는 것은 해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 사이의 민족 동질성을 바탕으로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두 가지만 얘기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개인주의와 병적인 이기주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너무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흐른다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남을 의식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풍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해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비슷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 둘은 크게 다르다. 개인주의는 말 그대로 ‘개인’을 중시하는 것이고 이기주의는 ‘이기’ 즉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다. ‘개인’은 집단이나 단체와 반대되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요, ‘자기’는 다른 사람과 반대되는 ‘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집단이나 단체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중시하거나 앞세우는 것으로, 이에 반대되는 말은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다. 그리고 이기주의는 남이야 어떻든 나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태도나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에 반대되는 말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생각이나 행위를 의미하는 이타주의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 또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혼동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크지만, 개인주의엔 매우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앞에서 개인주의를 ‘개인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중시하거나 앞세우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개인은 ‘나’뿐만 아니라 ‘너’와 ‘그’도 포함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점이다. 즉 나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먼저 추구하더라도, 남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러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되 남을 배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에 대한 배려와 관련하여 다수결제도의 논리도 비슷하다. 다수결제도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칙 또는 필수요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에 대한 철학은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고 잘 지켜지고 있지도 않다. 건전한 다수결의 철학은 ‘다수의 통치 (majority rule)’와 ‘소수의 권리 (minority right)’가 공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수가 통치하되 소수의 권리를 배려한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이 다수의 횡포만 보일 뿐이다. 특히 국회에서 그렇다.

우리는 서양 특히 미국의 개인주의와 다수결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이나 소수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만을 내세우는 이기주의만 키워오고 다수의 횡포만 부려온 셈이다. 세계화를 지향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탕이나 알맹이를 모른 채 껍데기만을 따라하는 짓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주의를 모욕하지 말아야 하고, 다수결제도를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미국을 들 수 있다. 개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국에서는 건물을 출입할 때 저만큼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일행이나 아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가 올 때까지 출입문을 잡고 서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차를 몰고 가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도 차를 멈추고 보행자가 먼저 가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에서는 바로 뒤에 사람이 따라와도 그를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뒷사람이 다치기 쉬운데도. 횡단보도에서조차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보이면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기는커녕 자신이 먼저 지나가겠다며 저 뒤에서부터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번쩍거리기 일쑤다. 보행자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이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지정된 주차공간이 많이 있는데도, 몇 분을 걷기 싫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건물입구에 차를 세워놓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주차 금지’라는 표지판이 서있는데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주위 사람들이 책을 보든 잠을 자든 큰소리로 통화하거나 떠드는 게 승객으로서의 자유와 권리일까. 이렇게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남에게 손해나 불편을 끼치는 행위는 개인주의가 전혀 아니다. 무례요 병적인 이기주의일 뿐이다. 공공영역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인 것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강한 집단주의 특성을 지닌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이루면서 점차 개인주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경제적으로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회문화적으로 개인주의 특성이 매우 강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니 당연한 변화다. 또한 가족규모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고 주거형태가 방이 많은 아파트로 변하면서, 아이들도 방 한 칸씩 독차지하며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됨으로써 개인주의가 발달한 측면도 있다.

참고로,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집단주의 특성이 가장 잘 남아있는 분야가 언어일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우리’보다 ‘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예를 들어,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선생님’, ‘나의 학교’라고 부른다. 심지어 ‘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훨씬 즐겨 쓴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도 ‘우리 집’이라고 말하고, 소속이 다른 사람에게도 ‘우리 학교’라고 부른다. 사람을 가리킬 때는 더욱 심하다. 형제가 없는 사람조차 남에게 ‘우리 부모’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씨가 다르거나 배가 다른 형제가 되지만 이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우리 남편’이나 ‘우리 마누라’라는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도 함께 관계를 가져서는 안되는 배우자에게조차 ‘우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다. 내가 다른 여자에게 말만 걸어도 못마땅해 하는 ‘내 아내’도 남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우리 남편’이라고 말하니 얼마나 큰 모순인가. 냉정하게 따져보면 일부일처제 (一夫一妻制) 사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고 도저히 쓸 수 없는 말이지만,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문화가 얼마나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하는 과정에서, 앞에서 얘기했듯 병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가치의 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남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개인주의를 확산시켜온 반면, 북한에서는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사회의 획일성을 강조하고 집단주의를 강화해왔다.

북한에서는 집단주의를 유별나게 강조한다. 집단주의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채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전체주의에 가까울 정도의 강한 집단주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로동당규약 및 헌법에 집단주의를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조선로동당 규약을 보면, “당원은 고상한 공산주의적 도덕성을 소유하고 조직과 집단을 사랑하며 조직과 집단의 리익을 위하여 개인의 리익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고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한다는 집단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당규약에 못박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자신보다 먼저 사회와 집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것을 고상한 도덕과 참된 사랑으로” 여긴다.

헌법에는 집단주의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명시해놓았다. “국가는 사상혁명을 강화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며 온 사회를 동지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집단으로 만든다”고 했다. 모든 인민은 결속력이 강한 하나의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에 나오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말은 북한 집단주의의 특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구호다. 이 구호에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앞부분만 있으면 집단의 이익만 내세우는 전체주의를 상징하겠지만,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뒷부분은 개인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의 집단주의는 전체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전체주의는 집단의 이익만 강조하고 개인의 이익이나 자율성을 무시하지만, 집단주의는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조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아무튼 왜곡된 개인주의와 병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한 남한 사회와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을 정도로 집단주의적 특성이 강한 북한 사회가 통합을 추구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외국어의 남용과 오용

요즘 우리 사회 지식인들 가운데 영어단어 몇 개 사용하지 않고 말 한 마디 제대로 끝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신문 잡지엔 외국어나 외래어투성이다. 유치원생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가운데 아예 영어를 공용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듯하다. 나야 미국생활 10여년 했으니 큰 불편 없이 영어를 말하고 들을 수 있지만, 쉽고 아름다우며 훌륭한 우리말을 놔두고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더욱 심각하고 한심한 문제는 이들이 영어단어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거나 국적 불명의 잡탕말을 영어로 착각하고 쓰면서 순수한 우리말을 촌스럽다고 비웃고 있다는 점이다. 기막힐 노릇이다. 몇 가지 사례만 아래에 소개한다.

첫째, 2014년 여름 익산시내에 걸린 현수막들과 팸플릿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보았다. “The 2th OOO 걷기대회.” 쉽고 편하게 ‘제 2회’ 또는 ‘제 2차’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영어로 쓰면서 무식을 자랑한 것이다. 꼭 영어로 써야겠다면 1회는 1st (first), 2회는 2nd (second), 3회는 3rd (third)로 줄여 쓰고 4회를 4th (fourth)로 줄여 쓸 수 있다. 모든 숫자 뒤에 ‘th’를 붙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 무슨 행사의 시간을 알리면서 ‘오전 9시’나 ‘오후 3시’ 등을 표기할 때 ‘A.M. 9:00’나 ‘P.M. 3:00’으로 쓰는 경우를 아주 흔히 보게 되는데 꼭 영어로 써야겠다면 순서를 바꿔야 한다. ‘9:00 A.M.’이나 ‘3:00 P.M.’으로 말이다. 반대로 ‘500 $’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 500’이라 쓰고 ‘500 달러’로 읽는 게 옳다. 책이나 서류 쪽수를 가리킬 때도 ‘7 p.’가 아니라 ‘p. 7’로 써야 옳다. 쉽고 편한 우리말을 놔두고 영어를 잘못 쓰며 무식을 드러내는 이유가 무얼까. 될수록 우리말을 쓰되 꼭 영어를 쓰고 싶다면 제대로 쓰기 바란다.

셋째, 명함 등에 성명을 영어로 쓸 때 성과 이름 순서로 써도 된다. "Lee Jae-Bong"이라고. 한국인들은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쓴다는 게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성과 이름을 혼동할까봐 걱정스럽다면 성 뒤에 커머 (,)를 붙이면 확실하다. 이름이 아니라 성 뒤에. 예를 들면 “Lee, Jae-Bong”이라고. 그런데 “Jae Bong, Lee"라고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재봉’이 성이고 ‘리’가 이름이란 뜻이다. 굳이 영문으로 성명을 밝혀야 한다면 이런 무지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넷째,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서 몇 해 전부터 부쩍 널리 쓰이고 있는 ‘로컬 푸드’라는 말에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대개 농민들이 관여되기 마련인데 ‘지역 음식’이나 ‘토속 음식’ 등 그들이 쉽게 알아듣고 쓸 수 있는 정겨운 우리말로 바꿀 수 없을까. 영어 ‘local food’은 발음하기도 까다롭다. 앞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려면 혀를 입천장에 대야 하고, 뒤 단어를 올바로 소리 내려면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다시피 해야 한다. 그러나 ‘로컬 푸드’라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의 발음을 영어로 옮기면 대충 ‘rocal pood’가 될 것 같다. 누구나 쉽고 정겹게 쓸 수 있는 우리말을 제쳐놓고,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해 미국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할 영어단어를 고집하는 이른바 먹물들의 속내가 어떤 지 궁금할 뿐이다.

다섯째,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외국어는 당연히 ‘외래어’로 만들어 써야겠지만 그게 너무 엉터리인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현수막을 많이 쓰는 나라를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현수막’이라는 말이 촌스러워 영어로 쓰고 싶다면 ‘플래카드 (placard)’로 쓰는 게 좋다. 왜 ‘프랑카드’나 ‘플랑’ 같은 국적 불명의 잡탕말을 만들어 쓰는가. 자동차 운전대 위에 걸린 거울을 대개 ‘빽밀러’라고 부르는데 ‘후사경’이란 한자어가 어렵다면 ‘rear-view mirror’라는 올바른 영어는 어떨까. ‘back mirror’라는 영어는 없지만, 이런 영어가 있더라도 뒤 단어가 ‘밀러’로 발음되지 않는다.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미뤄’ 비슷하게 소리 난다.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돈까스’는 ‘얇게 저민 돼지고기로 구운 요리’라는 뜻의 ‘pork cutlet’에서 ‘pork’는 돼지 돈 (豚)자로 바꾸고 ‘cutlet’은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옮겨 섞어놓은 것이니 도대체 이것도 말인가.

여섯째, 요즘 아파트 이름에 무슨 영어단어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부르기도 어렵고 주소 쓰기도 복잡하다.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그런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데 미국에서 10여년 살았던 나에게도 불편하니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의아하다.

이와 관련해 인사도 영어식 말투로 바뀌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예를 들어, “좋은 아침 되세요” 또는 “좋은 시간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말은 어색하다. 사람이 어떻게 아침이 되고 시간이나 하루가 될 수 있겠는가. “부자 되세요”는 어법에 맞지만. 영어의 “Good morning”이나 “Have a good time (nice day)”을 옮긴 것 같은데, ‘좋은 아침’이나 ‘좋은 시간’을 ‘되세요’가 아니라 ‘보내세요’라고 해야 옳다.

한편, 영어만 잘 못 쓰는 게 아니다. 한자어로 된 우리말을 오용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에서 왔다니 순수 우리말과 한자어의 구별조차 하기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쉬운 우리말을 쓰면 될 텐데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쓰다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몇 가지만 꼽는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마다 졸업식을 전후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다. ‘학위수여식’이라는 말 때문이다. ‘수여 (授與)’는 증서나 상장 또는 훈장 따위를 ‘주는 것’이다. 증서나 상장 또는 훈장을 ‘주는’ 사람보다는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졸업하는 사람들이지 졸업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위수여식’이라는 말이 관례가 되어버렸지만 이를 고쳐 쓰는 것을 고려해보자. ‘주고받다’는 뜻의 ‘수수 (授受)’라는 말에서 보듯 ‘수’로 발음되는 한자어엔 ‘준다 (授)’는 글자도 있고 ‘받는다 (受)’는 글자도 있지만 ‘수여’라는 말엔 ‘줄 수 (授)’자만 붙을 뿐이다.

따라서 이보다 더 언짢게 하는 게 있다. 졸업식 안내문이나 신문 등에 ‘학위수여자’라는 말을 거꾸로 쓰는 것이다. 수여자는 ‘주는’ 사람이니 총장이나 학장일 텐데, ‘학위수여자’ 명단에 학위를 ‘받는’ 졸업생들 이름을 나열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그것도 최고의 학부라는 대학에서. ‘학위 받는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쓰기 싫거나 한자어를 써야 대학의 권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면 ‘수여자’라는 말이 아니라 ‘수득자’나 ‘취득자’라는 단어를 쓰는 게 어떨까. 쉬운 말을 쓴다고 권위가 깎이는 게 아니라 말을 잘못 쓰면 권위가 훼손될 수 있다.

졸업식을 비롯한 무슨 행사를 치를 때 사회자가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되는데, 이 역시 유식함을 뽐내려다 무식함을 드러내는 꼴이다. ‘착석 (着席)’이란 말이 ‘자리에 앉다’라는 뜻이니 소박하게 우리말로 “자리에 앉아주십시오”라고 하든지 굳이 한자어를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다면 ‘자리에’라는 말을 빼고 그냥 “착석해주십시오”라고 해야 옳다. 대통령 취임식장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회의나 선거를 할 때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나 “과반수 이상 득표”라는 말을 쓰는 것도 잘못이다. ‘과반 (過半)’이 ‘절반 이상’이라는 뜻이므로 ‘이상’이란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아니면 ‘반수 이상’이라고 해야 옳다. 국회에서도 자주 나오고 언론에도 흔히 등장하는 말이니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이 언어 오용에 앞장서는 셈이다.

몇 년 전부터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과 관련해 “잔반을 남기지 말자”는 표어를 붙여놓은 식당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냥 “밥을 남기지 말자”고 누구든지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맞는데, ‘먹고 남은 밥’을 가리키는 ‘잔반 (殘飯)’이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굳이 쓰느라 틀리게 된다.

이렇듯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나 외래어는 틀리더라도 못 써서 안달을 부리는 한편 우리말을 애용하면 ‘종북’으로 매도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는 ‘동무’라는 순수하고 정겨운 우리말을 쓰기 어렵다. 북한에서 즐겨 쓰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친구’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해방 이전부터 널리 써왔고 영어의 ‘people’을 가장 정확하게 옮긴 ‘인민’이라는 말 역시 쓰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일제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국민’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1996년부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꿔 쓰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랄까.

우리는 또한 ‘노동’이란 쉽고 일반적인 말 대신 좀 어렵고 애매한 ‘근로’라는 말로 바꿔 쓰는 경향이 있다. ‘노동’이란 말을 사회주의의 ‘노동계급’ 또는 마르크스의 ‘노동착취’ 등과 연계시켜 반공의 대상으로 삼아 금기시하는 것이다. 5월 1일 ‘labor day’를 ‘노동절’이라 하지 않고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하기야 ‘근로 (勤勞)’라는 말은 ‘힘써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니 자본가 쪽에서는 ‘근로자’ 즉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 진짜 노동자로 삼고 싶을지 모르겠다.

2001년엔가 한완상 교육부총리가 ‘창발성’이란 말을 썼다가 생뚱맞은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총)는 “북한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라며 “교육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비판했다. 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 정도였다.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은 “친북.좌파적 편향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며 부총리직 사퇴를 요구하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했던가. 보수 신문 역시 가만있을 리 없었다. “속 들여다보이는 일”이라며 비판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남한의 보수 극우적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민족의 언어마저 ‘종미 반북’으로 몰아가고 있다. 천벌을 받을 사람들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당찮은 ‘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리는데, 나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언어생활에서야말로 남한 사람들 모두 ‘종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진정 통일을 바란다면.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겪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가 외래어투성이의 우리말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은가.

이에 북한의 언어정책을 소개한다. 1998년 평양 방문을 준비하며 있었던 일이다. 중국의 한 조선족 교수에게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며 그곳 관계자에게 쓴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남북지역 사이에 자매결연을 추진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싶으니 초청장을 보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남한에서는 영어를 많이 쓰듯, 중국과 가까이 지내온 북한에서는 한자를 많이 사용하리라 생각하고 한자로 편지를 썼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유학 (遊學)하느라 부모님께 가끔 편지를 보냈는데, 한글보다 한자에 익숙한 아버지에게 효도한답시고 옥편을 찾아가며 한자로 편지지를 메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토씨 (조사) 빼고는 거의 모든 단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중계자가 내 편지를 조선글 (한글)로 바꾸어 평양에 전달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해방 이후 조선글과 한자를 같이 쓰다가 1947년부터 문맹퇴치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한자폐지 및 조선글전용 정책을 실시해왔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한 마디로 말해 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잘 지키며 인민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다듬는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에까지 반영되어 있다. “국가는 우리말을 온갖 형태의 민족어 말살 정책으로부터 지켜내며 그것을 현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킨다”고 명시해놓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1964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해방 직후부터 힘든 말을 쓰지 말고 쉬운 말을 쓸 것을 주장하여 왔으나 아직도 대중이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남이 모르는 한자어를 많이 쓰는 것을 유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런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쉬운 말을 하고 쉬운 글을 쓰는 것이 더 유식하고 고상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리론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책에서 문구를 따기 좋아하며 힘든 말을 늘어놓아 남이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나아가 남한에서 쓰는 말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1964년 교시에서 “지금 남조선 멋쟁이들은 영어와 일본말을 망탕 섞어 쓰면서 우리말을 못 쓰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1966년 교시에서는 다음과 같이 비판의 강도를 훨씬 높였다.

“문제는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 있습니다. 지금 남조선 신문 같은 것을 보면 영어나 일본말을 섞어 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한자말은 중국 사람들도 쓰지 않는 것까지 망탕 쓰고 있습니다. 사실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는 한자말과 일본말, 영어를 빼버리면 우리말은 ‘을’, ‘를’과 같은 토만 남는 형편입니다. 언어는 민족의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데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이 이렇게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다 보니 우리말 같지 않으며 우리말의 민족적 특성이 점차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두다가는 우리 민족어가 없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평양에서 1988년 출판된 <조선개관>에서는 “오늘 남조선에서는 우리말과 글이 엄중한 위기를 겪고 있다. 남조선에서는 우리말의 순수성이 점차 사라지고 잡탕말로 변하여가고 있으며 우리글은 한자와 외래어에 뒤섞이여 알아볼 수 없게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1999년 4월 <로동신문>은 그 무렵 남한에서 외래어와 한자어의 남용으로 순수한 민족어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남북 언어의 단일성마저 상실되어가고 있다며 남한의 언어실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 민족어가 외래어에 질식되어 없어질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특히 거리의 간판과 광고 그리고 상표 등이 온통 외래어투성이라고 지적하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문법에 맞지 않고 뜻도 모호한 잡탕말을 많이 쓰다 보니 도무지 어느 나라 글인지 분간 못할 정도라는 혹평이었다.

그러나 북녘 사람들의 언어 사용엔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말투가 거칠고 전투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혁명의 수도 평양말’을 강조하면서 혁명을 추구하는 가운데, 언어를 혁명의 무기, 선전 교양의 수단, 투쟁의 도구 등으로 삼으면서, 바람직한 언어법으로 ‘문체의 간결성, 정확성, 명료성’을 통한 ‘말과 글의 전투성 및 호소성’을 들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남한의 말과 글에 대한 북한의 비판이나 혹평에 대해 우리는 상투적 비난이라고만 치부할 게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며 민족의 이질성을 키우지 않기 위해, 외래어의 남용과 오용에 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사월혁명회가 2015년 4월 17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국사회의 외세 예속성”을 주제로 주최한 <4월혁명 55주년 특별토론회>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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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근혜장벽'... 시민들 "우리가 이겼어요"

 

[현장] 4시간 격렬 대치 끝 시민 유가족 만나... 100명 연행

15.04.18 15:31l최종 업데이트 15.04.19 00:55l

 

 

[특별취재팀]
취재 : 선대식 손지은 기자
사진 : 권우성 남소연 기자
동영상 : 강신우 곽승희 송규호 기자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8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힘내시라"고 외치며 손으로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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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신 : 19일 오전 0시 41분]
무너진 '근혜장벽'... 4시간 격렬 대치 끝 시민 유가족 만나

결국 '근혜장벽'이 무너졌다. 시민들은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4시간 가까이 격렬한 대치를 이어갔다. 그리고 길 건너편 광화문 누각 아래에서 고립된 채 3일 간 농성을 벌인 유가족과 어렵게 만났다. 경찰이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살포하며 앞길을 막아섰지만 물러서지 않은 결과였다. 

18일 오후 10시 28분께 유가족과 시민 200여 명이 서울정부청사 앞길을 통해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서자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 5천여 명의 시민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유가족도 있었다.

이들이 지나는 길목 양 옆에 서 있던 시민들은 박수와 함께 "우리가 이겼어요",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유가족들은 일일이 목례를 하거나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며 답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열린 마무리 집회에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크게 고무된 모습이었다. 무릎 높이의 화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그는 먼저 "너무 감사하다"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철옹성 같은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두 번째로 넘은 날"이라며 "오늘 희망을 보았다, 진실규명을 위해 청와대의 문을 계속 두드리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가를 상대로 싸워본 적도 없는 제가 지난 1년 동안 투쟁할 수 있었던 건 여러분 덕분"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이 최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동안의 노숙 농성 탓에 턱밑에 수염이 거뭇하게 자라는 등 다소 야윈 모습이었지만 목소리만큼은 견고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또한 상기된 얼굴이었다. 유 집행위원장은 "오늘이 경찰 차벽을 두 번째로 넘은 역사적인 날인데 우리에겐 아직 역사상 첫 번째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 임무가 있다"며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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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8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힘내시라"고 외치며 박수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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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유가족과 함께 했다. 이날 오후 경찰버스 위에서 시위를 벌이던 유가족 김영오씨가 경찰에 저지당하는 모습을 보고 찾아왔다는 정 의원은 "무지막지한 공권력이 시민 몇 명을 잡아갈 순 있어도 이 땅의 정의를 연행해갈 수는 없다"며 "세월호 참사를 절대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밝혀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약 20여 분 동안 마무리 집회를 가진 유가족과 시민들은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르며 오후 11시께 해산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유가족들은 시민들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배웅했다. 

한편 경찰은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 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광화문 누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 등에 저지선을 쳤다. 또한 172개 부대, 경찰병력 1만3700여 명을 동원했다. 

경찰과 시민들이 격렬한 대치를 이어가면서 연행자도 속출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하루 동안 연행된 사람은 총 100명(유가족 20명, 시민80명)이다. 이들은 성동경찰서, 마포경찰서, 노원경찰서 등 서울시내 10개 경찰서로 이송됐다. 

[4신 보강 : 18일 오후 10시 07분] 
'근혜장벽'에 막힌 8천여 시민... 경찰, 캡사이신·물대포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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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8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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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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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8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자, 얼굴에 맞은 한 참가자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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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시민의 격렬한 대치가 4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추가 연행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범국민대회를 주최한 416연대는 오후 10시 현재 모두 79명(남자 66명, 여자 13명)이 연행됐고 그 중에 유가족은 21명이라고 밝혔다. 연행자 중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도 포함돼 있다. 

경찰 측은 "경찰의 검거 행위를 방해한다면 기자도 검거 하겠다"고 여러 차례 엄포를 놓기도 했다. 현재 8000여 명의 시민이 광화문 광장과 광화문 현판 사이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앞서 시민 수천여 명은 오후 6시 22분께 경찰 저지선을 뚫고 유가족이 농성 중인 광화문 현판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경찰 버스에 호스를 연결해 당기면서 견고했던 경찰 차벽이 뚫리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 버스 외벽에 '정권퇴진', '정부파산', '폭력경찰' 등의 낙서를 썼다. 경찰 버스의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시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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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18일 오후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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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청와대 부근인 정부서울청사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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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찰은 버스 위에 올라 시위 중인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며 대응하고 있다. 경찰의 물대포가 포물선을 그리며 버스 위에 있는 시민의 몸에 닿자 이를 지켜보던 8천여 명의 시위대 사이에서 비명 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버스 위 시민이 약 1분 동안 몸을 웅크린 채로 물대포를 맞으며 위태롭게 버티자 시민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현장에 있는 경찰이 5차례 이상 해산을 명령하고, "현행범으로 검거하겠다"고 여러 차례 엄포를 놓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는 분위기다. 경찰의 엄포에도 일부 시민들은 경찰 버스를 넘어뜨리기 위해 외벽을 밀며 저항 중이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버스가 크게 기울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시민들이 물러서지 않자 경찰은 물대포를 살포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물병 등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하자, 종로서 경비과장은 부하 직원들을 향해 "지금 시위대는 경찰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며 캡사이신으로 강경 대응을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재 시민들은 경찰의 물대포 속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연달아 외치며 맞서고 있다. 

[3신 : 18일 오후 7시 26분] 
유가족·시민 22명 연행... 경찰, 캡사이신·물대포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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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18일 오후 광화문 현판 앞 유가족 농성장 쪽으로도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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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길목은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3만여 명의 시민들은 채 5분도 걷지 못한 채 '근혜장벽'에 가로막혔다. 경찰은 광화문 광장 앞 왕복 10차선 도로에 약 4미터 높이의 가림막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청계천을 따라 종각역 인근까지 경찰버스를 일렬로 밀착시켜 주차했다. 그야말로 원천봉쇄다. 

때문에 광화문 곳곳에서는 경찰을 향한 시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오후 6시 20분께 광화문 일대를 돌아 세종문화회관까지 진출한 시민들은 앞길을 가로막은 경찰버스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정부가 다 죽였다' 등의 낙서를 하며 항의했다. 일부는 경찰버스 타이어의 바람을 빼거나 버스를 흔들며 저항했다. 경찰은 저지선을 뚫고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 진출한 이들에게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살포하며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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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18일 오후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농성중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리고 살수차로 물대포를 쏴 해산을 시도했지만 시민들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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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18일 오후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농성중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리고 살수차로 물대포를 쏴 해산을 시도했지만 시민들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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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오후 5시 30분께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길을 내주지 않는 것에 항의하며 시민 한 명이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이 시민은 버스 위에서 경찰 여러 명과 약 20분 정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같은 자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300여 명의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길 터줘", "길 터줘"를 연달아 외쳤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은 경찰의 방패를 거칠게 빼앗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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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18일 오후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농성중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리고 살수차로 물대포를 쏴 해산을 시도했지만 시민들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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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을 석방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경찰을 따돌린 수천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으로 몰려들었다. 일부 성난 시민들은 차벽을 위해 동원된 경찰 버스에 락카를 뿌렸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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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된 경찰버스 사이의 좁은 틈새를 옆걸음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시민도 있었다. 청계천 광장 인근에서 한 중년 여성은 틈새를 파고들었지만 경찰병력이 앞을 막으면서 좁은 틈에서 고립되기도 했다. 이를 본 시민 30여 명이 달라붙어 경찰버스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대치하기도 했다. 

견고한 경찰 차벽을 보는 시민들은 황당한 얼굴이었다. 종로 보신각 앞에서 만난 여중생 서윤지(16)양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싶어서 친구와 찾아왔는데 경찰이 과도하게 앞을 막아 황당하며"며 "이 많은 공권력을 왜 이런 데 쓰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아침 엄마와 버스를 타고 전라북도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고등학생 이민영(18)양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경찰 차벽을 바라봤다. 

경찰이 집으로 가는 시민들의 앞길도 막아서면서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만난 50대 중년 여성은 "시청역에서 집이 있는 효자동까지 걸어가는 중인데 경찰이 길을 다 막아 놨다"며 "이게 이북이지, 경찰이 시민에게 이래도 되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찬가지로 집으로 향하던 또 다른 효자동 주민도 "주민에게는 길을 열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분노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시민들은 여러 우회로를 이용해 광화문 광장 안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모이고 있다. 현재 약 1만여 명들의 시민이 광화문 현판 앞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과 만나겠다며 경찰과 대치 중이다. 경찰은 "여러분은 폭행, 도로 점거 등 명백한 불법 시위를 하고 있다"며 "물대포를 사용하겠다"며 경고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연행자도 속출하고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연행된 시민은 유가족 15명과 시민 7명을 포함해 총 2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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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18일 오후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농성중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리고 살수차로 물대포를 쏴 해산을 시도했지만 시민들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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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18일 오후 5시]
유가족 추가 연행... 시민 3만 명 범국민대회 중단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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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에 모인 시민 3만여 명이 유가족 연행 소식에 행사를 중단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 중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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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은 다시 한 번 시민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경찰이 유가족을 계속 연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집회는 시작한 지 40여분 만에 중단됐다. 

오후 4시 30분 현재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에 모인 시민 3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유가족이 농성 중인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 중이다. 앞서 오후 3시 54분께 시작된 범국민대회에서 무대에 오른 고 박혜선양의 어머니 임성미씨는 "현재 유가족이 연행되었다, 자식을 잃은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며 "광화문으로 와 달라"고 발을 구르며 호소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1주기 날 해외순방을 떠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는 "똑똑히 들으라, 절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것"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무대에서 "예쁜 우리 혜선이의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며 울부짖던 임씨는 결국 마이크를 내던지며 발언을 중단했다. 끝내는 주저앉아 통곡했다. 

임씨의 발언 뒤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과 민중가수 박준의 공연 등이 예정돼 있었으나 주최 측은 농성 중인 유가족과 연대하기 위해 행사를 급히 중단했다. 

경찰은 지난 16일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경찰버스와 가림막으로 완전히 차단했다. 시민들이 청계광장으로 우회해 행진하면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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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에는 3만 명(주최 쪽 추산, 경찰은 현재 파악 중)의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시행령 철회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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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인근 광화문 광장 등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경찰에 무차별 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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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18일 오후 3시 31분]
경찰, 3일째 노숙 농성 중인 유가족 다수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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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현판 앞에서 농성중이던 세월호 유가족 일부가 경찰이 차벽으로 완전히 자신들을 가로막자 경찰 버스 위에 올라 지나가는 시민을 향해 피켓을 내보이며 시위 중이다. 피켓에는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 '세월호에 있는 9명의 실종자를 꺼내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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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를 앞두고 유가족 여러 명을 연행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현재 연행된 인원은 10명이다. 또한 유가족 1명이 경찰병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구급차로 호송되기도 했다. 

18일 연행된 유가족들은 지난 16일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범국민추모제를 마친 뒤 분향을 위해 인근 광화문 광장 안 분향소로 이동하려 했으나, 경찰병력에 가로막혀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1시 40분께부터 노숙 농성 중인 유가족 40여 명 중 일부를 연행했다. 연행된 유가족들은 서울 동부서 등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현판 앞은 현재 경찰 차벽으로 완전히 가로막힌 상태다.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 버스 위에 올라 지나가는 시민을 향해 피켓을 내보이며 시위 중이다. 피켓에는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 '세월호에 있는 9명의 실종자를 꺼내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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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시내에서 세월호특조위 정부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청와대 인간띠잇기가 예정된 가운데, 광화문앞 경찰차벽위에 올라가서 피켓을 들고 있던 유가족들을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렸다. 유가족 김영오씨를 경찰이 버스 위에서 에어매트위로 밀어서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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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서울시내에서 세월호특조위 정부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청와대 인간띠잇기가 예정된 가운데, 광화문앞 경찰차벽위에 올라가서 피켓을 들고 있던 유가족들을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렸다. 유가족 김영오씨를 경찰이 버스 위에서 에어매트위로 밀어서 떨어뜨린 뒤 사지를 들어 경찰버스로 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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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날 오후 2시 23분께에는 광화문 현판 건너편에서는 단원고 2-5 고 서동진군의 어머니가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구급차에 실려 후송됐다. 경찰이 광화문 광장 주변을 차벽으로 포위하면서 구급차가 광장 안으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시민들이 경찰에 크게 항의하기도 했다. 

오후 3시 14분 현재 약 200여 명의 경찰병력이 경찰 버스 위에서 피켓 시위 중이던 유가족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김영오씨 등을 진압했다. 왕복 10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시민 수백 명이 이를 지켜보며 거세게 항의했다.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는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시작됐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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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훔친물’ 고발했더니..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연행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4/19 08:34
  • 수정일
    2015/04/19 08: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종로소방서 “경찰에 소화전 사용 사전허가 한 적 없다”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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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8  23:14:20
수정 2015.04.19  01: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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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대회를 취재 중이던 고발뉴스 이상호 대표기자가 18일 저녁 10시 11분경 경찰에 연행됐다.

이상호 기자는 앞서 경찰이 소화전을 불법 사용하는 현장을 적발해 이를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이 기자는 이날 경찰이 소화전의 물을 살수차에 불법 주입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불났을 때 쓰는 소화전 물을 살수차에 주입하면 어떡하느냐. 불 나면 어떡할거냐”고 물었고 이에 해당 경찰은 오히려 경력지원을 요청 했다.

* 인터뷰 바로 듣기 (소방수 불법 주입 해당 경찰관)

   
▲ ⓒ go발뉴스

이상호 기자는 이 같은 현장을 적발하고 종로소방서를 통해 경찰이 소화전 물을 살수차에 주입하도록 “사전 허가한 적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인터뷰 바로 듣기 (종로소방서 소방관)

해당 사실을 확인한 이상호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살수차 물도둑 현장을 고발한다”면서 “소방 당국 확인 결과, 현재 경찰은 사전신고도 없이 긴급 소방수를 절도하고 있는 것. 경찰이 안전의식을 갖도록 국민들의 준엄한 계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알렸다.

18일 밤 11시 현재 이상호 기자는 서울 중부서로 이송됐다.

이상호 기자는 "기자로서 경찰이 불법으로 긴급 소방수를 사용하는 현장을 정당하게 고발했는데 이를 경찰이 위법부당하게 체포했으므로 조사에 응할 수 없다"며 묵비권을 행사중인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상호 기자의 법률대리인 조광희 변호사(법무법인 원)에 따르면, 현재 이상호 기자는 체포과정에서 두 차례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허리와 어깨 등의 통증과 지병인 뇌경색 후유증 악화로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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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티븐 호킹과 빌 게이츠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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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큐멘타리 작가이자 책 '우리의 마지막 발명품: 인공지능과 인류의 종말'(Author, Our Final Inventi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End of the Human Era)의 저자인 제임스 바랏의 블로그 Why Stephen Hawking and Bill Gates Are Terrified of Artificial Intelligence를 번역, 가공한 글입니다.

 
 

스티븐 호킹.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인류의 종말을 야기할 수 있는 뭔가에 대해 경고에 나섰다. 그렇다. 이거 너무 SF처럼 들린다고?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지난 1년 사이에 인공지능에 대한 공격은 과열됐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 두 명과 미래과학 사업가, 그리고 PC 사업 창업자 두 명이 - 그중 하나는 세계 최고의 부자다 - 좀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시기에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서 인공지능에 의해 통제되거나 말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인 불안감 표출은 이전 그 어느 시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새로운 기술은 늘 긴장과 불안을 의미했지만 그렇다고 이토록 첨단 분야의 막강한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위험 신호를 울린 적은 없었다.

그들의 경고가 더 놀라운 이유? 인공지능 출현이 가능하게 만든 지금의 정보 통신 시대를 개막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런 경고를 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또 한 사람은 2014년 5월에 스티브 호킹이 발표한 인공지능 경고문에 함께 서명을 한 스튜어트 러셀이라는 인공지능 전문가다. 그는 인공지능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현대적인 접근법'(Artificial Intelligence: A Modern Approach)의 작가이기도 하다.

stephen hawking

위험하게 여겨질 만한 슈퍼 인공지능의 탄생은 아직도 수십 년 먼 이야기라면 이런 경고를 무시해도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또 기계에게 권리나 인식을 부여해서 기계가 우리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과학계의 명사들과 기업 총수들은 왜 이렇게 큰 목소리로 미래를 걱정하고 있나? 우리도 함께 걱정해야 하는 건가?

"우린 슈퍼 지능을 갖춘 기계를 조절할 줄 모른다."

인공지능을 누가 통제하느냐가 단기적으로는 중요하다고 스티븐 호킹은 적절하게 문제를 설명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이 통제가 가능한지가 관건이다. 단기적인 면을 따지자면 인공지능은 두 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가능케 하는 기술이라고 호킹은 암시했다. 즉,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지녔다는 거다. 예를 들자면 원자력 발전과 핵폭탄 제조를 가능케 하는 핵분열을 생각해보시라.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가장 먼저 예로 들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자동 살상 무기다. 이미 50개국 이상이 전투용 로봇 개발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기가 가장 높을 로봇은 '살상 결정'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즉 인간의 통제 없이 인간을 겨냥하고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로봇이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중국, 인디아, 러시아, 이스라엘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독립형 전투 로봇과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robot soldier

이런 무기들은 국제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만약 그런 제재 방침이 존재한다고 해도 국제 인권법이나 분쟁 조정 차원에서 효력이 있을지 의심된다. 아군과 적군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전투 세력과 민간인은 또 어떻게? 누가 책임을 질 건가? 독립적 살상 무기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무력 팽창이 일어나고 있는 현시점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증명한다.

거의 비슷한 수준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는 미국 국가 안전국이 운영하는 첨단 데이터-마이닝(data-mining) 도구들이다. 예전의 미국에서는 개인 재산 보호를 정의하는 4번 수정조항에 따라 정부가 개인의 전화 기록을 탐지하려면 판사의 사전인가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런데 미국 안전국은 2009년 후부터 구글이나 야후의 해외 망에 직접 연결해 (주로 미국인들의 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빼냄으로 그런 법 조항을 피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스마트한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안전국은 이런 행위는커녕 우리의 연락처나 파일에 숨겨둔 나체사진 같은 것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국가 안전국은 데이터-마이닝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 많은 양의 정보를 추려내고 선별했다. 인간의 두뇌로는 몇백만 년이 다 지나도 못 할 일이다.

"할(HAL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출연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이 자기를 더 스마트하게 만드는 피드백 회로 프로그램을 언제 작동시키지?"

데이터-마이닝과 살상 로봇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기술은 사실 우리의 삶도 편리하게 해준다. 우린 이런 기술을 쇼핑에, 번역에, 길 찾기에, 또 머잖아 운전에 도입하게 될 거다. 퀴즈 프로그램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을 이긴 IBM의 왓슨 컴퓨터는 의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왓슨 컴퓨터는 변호사들처럼 법정 사례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첫해 근무를 시작한 변호사들보다 빠르다고 한다. 또 엑스레이를 보고 폐암을 구별해내는 능력도 인간보다 월등하고 최고 사업 분석가보다도 더 업무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니 생각하는 기계가 인공지능과 관련한 기술 개발에 더 능숙해질 날이 멀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할(HAL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출연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이 자기를 더 스마트하게 만드는 피드백 회로 프로그램을 언제 작동시키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space oddyssey

위 질문은 사실 영국 수학자인 I. J. 굿(Good)이 60년 대 제시한 '지능 폭발'의 전제다. 굿은 지금의 '깊은 지능(deep learning)' 개발의 기본 토대가 된 초기 인공 신경망을 이미 50년 전에 연구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발전하는 기계가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획득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인간을 추월하는 기하급수적인 지능 성장을 이룩할 거라고 예측했다. 기아, 질병 그리고 전쟁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여 인간을 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내 책 '우리의 마지막 발명품(Our Final Invention)'에 썼듯이 그는 죽기 얼마 전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을 바꿨다. 그는 글로벌 경쟁을 걱정하면서 국가들이 보호 장치를 무시한 채 슈퍼 인공지능 개발에 몰입할 거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 스튜어트 러셀,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스티브 워즈니악과 마찬가지로 그런 인공지능이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인공지능은 자체 방어적으로 변하면서 자기의 목표 달성을 위해 자원을 비축한다. 생존하기 위해 인간과 대립할 거다. 꺼지기를 거부할 거다."

맹점은 우린 슈퍼 지능을 조절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슈퍼 지능이 무해한 태도로 인간을 대할 거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 과학자인 스티브 오모훈드로의 중요한 연구에 의하면 기본적인 의지를 인공지능도 갖게 될 것이다. 유성에서 탄광 일을 하거나, 주식을 선별하거나, 에너지와 수자원에 필요한 주요 인프라를 운영하거나, 자체 방어적으로 변하면서 자기의 목표 달성을 위해 자원을 비축하고 생존하기 위해 인간과 대립할 거다. 꺼지기를 거부할 거다. 오모훈드로의 연구에 의하면 슈퍼 지능 기계를 아주 조심스럽게 디자인하지 않을 경우 인공지능의 의지와 인간 의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스티븐 호킹이 질문했듯이 다음 의문을 갖는 것이 우리에겐 합당하다. "인공지능이 불러들일 계산이 불가능한 엄청난 이익과 역시 계산이 불가능한 엄청난 위험을 눈앞에 둔 현시점에서, 어쨌거나 전문가들이 인간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겠지? 그렇지?"

대답은, 아니올시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과 과학자들은 안전과 도덕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제품 생산에만 연연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10년 동안 인공지능을 이용해 생산되는 경제 가치만 조 달러 수준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어마어마한 돈 중 일부만이라도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인간의 생존을 보호하는 데 투자되어야 하지 않을까?

artificial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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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말도 무조건 잘 들으라는 채현국 선생

꼰대 말도 무조건 잘 들으라는 채현국 선생

지역에서 본 세상 2015/04/14 15:43

 

4월 8일 생태·역사기행 2015년 첫 나들이를 마치고 곧장 창원대학교 봉림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는 ‘풍운아 채현국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거기서 저녁 7시부터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뜻밖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채현국 선생은 금방 도착하셨는지 들머리에서 앉지도 않으신 채로 자기 일대기를 다룬 책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기록, 피플파워 발행)에 사인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가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며 요청을 하니까 어깨동무하듯이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향해 웃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단행본 <풍운아 채현국>에 사인을 해주는 모습.

 

책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기념사진을 찍는 채현국 선생(모자 쓴 이)

 

안에서는 어떤 분이 이날 행사를 위해 식전 행사로 톱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사람들이 크게 손뼉을 치면서 “한 곡 더”를 외치니까 못 이기는 척 한 곡 더 연주하고 손을 흔들며 내려갔습니다.

 

톱연주를 마친 뒤 한 손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채현국 선생 말씀은 다들 새겨들을 만했습니다. 가진 바를 많이 비웠고 그 덕분에 현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인 때문인지 많이 공감됐습니다. 일상에 갇혀 사는 우리들이 놓치거나 제대로 못 본 그런 대목도 많아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씀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얘기는 김주완/채현국/김지윤/이인식(왼쪽부터) 네 분이 나눴습니다.

 

김지윤 인제대 3학년 학생이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채현국 선생은 무슨 이야기 끝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언론기관은 언론기관이 아닙니다. 광고업잡니다!” 이렇게 내질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안팎으로 지당하고 또 지당한 지적이라 여기면서 짧으나마 머리와 가슴이 둘 다 시원해지는 느낌도 누렸습니다.

 

그러다 또 무슨 끝인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취재를 거절한 사연도 들려줬습니다. 2014년 1월 4일치 <한겨레>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기사, 그리고 경남도민일보 피플파워 발행 <풍운아 채현국> 단행본으로 새삼 널리 알려지면서 그이 취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겠지요.

 

 

채현국 선생은 이리 말했습니다. “싸움 붙이는 거야, 이게. SBS에서 연락이 왔어. ‘선생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이래 말했지. SBS는 광고 팔아서 잘 먹고 잘 사는 방송국 아니냐? 나는 SBS 광고 팔아먹는 데 들러리는 못 서겠다.

 

기자 양반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SBS가 바뀌기 전에는 그런 거 못한다. 그러니까 기자들하고 방송사하고 싸움 붙이는 거지. 그래 갖고 신나게 한 번 싸워보라고 말이야.” 그러자 자리에서는 감탄하는 소리와 손뼉치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사회를 맡고 있던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국장이 “그런데 <뉴스타파>하고는 찍고 계시잖아요” 하니까 “거기도 전에는 어디서 싸우다 짤렸다고만 알고 무슨 일 하는지는 몰랐는데. 하하” 채현국 선생이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국면에서 망설이기 십상입니다. 모든 보도 내용을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극악한 매체라 해도, 어떻게든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알리려면 아무래도 수락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채현국 선생은 한 마디로 잘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채현국 선생은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버리고 자기 생긴대로 한 평생 살면 그것으로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 할 바를 다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 같았습니다.

 

 

자기가 깨달았고 또 자유를 얻었으면 그 깨달음과 자유가 일러주는 대로 그냥 실천하면서 살면 그만이지 그게 널리 알려지고 다른 사람한테 영향을 주고 말고 하는 것은 내 권한과 의무 바깥에 있다고 여기지 싶었습니다.

 

언젠가 현대 중국의 사상가 노신이 일러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도자라는 것들을 믿지 말라’시는 노신 말씀 요지는 이렇습니다.

 

‘앞에 나서 갖고 이리로 가야 살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고 떠드는 헛소리에 절대 흔들리지 마라.’

‘진리나 살길을 진짜 아는 이들은 저렇게 떠들 시간이 없다.’

‘진리와 살길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벌써 진리와 그 살길을 따라 실천하고 있다.’

 

그러니 자기 생각과 말과 행동을 얘기하고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상업적 목적과 무관하게 마련된다면 모르되, 그악스럽게 그런 돈벌이에 활용되면서까지 다른 사람 앞에 나서 눈을 현혹시킬 일은 없다는 것이 채현국 선생 뜻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와 자리에 있는 한 어른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더불어, 채현국 선생 말씀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하나가 있어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나이가 마흔인데 예전 아버지 시절 같으면 무슨 큰 일이라도 했을 텐데 지금 그러고 있지는 못합니다, 선생님께서 꼰대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꽉 막힌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저보다 어리면 나무라고 때려서라도 할 수 있겠는데 나이 든 어른은 난감합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일단 무조건 잘 들으세요. 사람 하는 말이 다 다릅니다. 겉으로 같아 보여도 속은 저마다 다릅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를 놀리고 화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듣지 않으면 절대 속뜻을 알 수 없습니다.

 

채현국 선생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스꽝스럽게 만드세요. ‘영감님, 영감님은 얼마 안 있으면 염라대왕을 만나게 될 텐데, 그런 말은 염라대왕도 좋아하지 않을걸요.’ 이런 식으로요.”

 

채현국 선생은 이날 이런 화조도도 한 폭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는 이 가운데 ‘잘 새겨들어라’는 말씀이 쏙 들어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 생각하는 식대로 생각해서 상대방이 그런 꼰대 같은 말을 했다고 선불 맞은 짐승처럼 설쳐댄다면 그보다 더한 꼴불견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꼰대 같은 얘기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별 영향력도 없거든요. 그런데 자기 생각이 옳다고, 그 옳다는 자기 생각에 갇혀서 상대방 말까지 마음대로 가두고 자르고 붙이고 열내고 하면 오히려 보는 사람 같잖기만 하지 싶은 것입니다. 

 

상대방을 우스갯거리로 만들라는 얘기는, 저는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있는 듯 없는 듯 여기고 (자기 삶이나) 제대로 살아보아라.’ 이런 우스개는 또 한 순간 짧은 국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무리짓는 손쉬운 방편도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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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기네스북 등재 성공

지구촌 향한 거대한 촛불... 미국인 응답 "한국 정부 잘못"

[현장] 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기네스북 등재 성공15.04.17 23:01l최종 업데이트 15.04.18 00:08l김경년(sadragon)이희훈(leehee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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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들어 올린 4160개 촛불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최종인원은 주최측 공식집계로 4475명이 참가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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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만든 촛불 시민들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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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오후 8시 13분. 전광판의 숫자는 4160명을 넘어섰다. 서울광장에 '4160개의 촛불'을 밝힐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이로써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함께 추진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퍼포먼스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Largest torchlight image formed by people(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기네스북 기록에 등재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이 행사는 두 단체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실종자 수색, 온전한 인양,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들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기획됐다. 즉, 세계적인 기록을 세움으로써 지구촌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실상을 알리자는 것.

현재 이 분야의 세계 기네스북 기록은 지난 2011년 12월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수립된 3777명이다. 

입장을 못하고 행사장 밖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막지 않았다면 훨씬 더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겠지만, 이날 행사는 더 이상의 기록이 필요하지 않았다. '4160'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인 4.16을 기리기 위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촛불로 세월호 침몰과 인양을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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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그린 4160개의 촛불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최종인원은 주최측 공식집계로 4475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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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만든 4160개 촛불 17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4160개의 촛불로 세월호 모양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시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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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서울광장 잔디밭에 세월호 형상과 구호를 그려놓고 그 안에 4160명이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후 7시부터 입장이 시작됐지만 기네스북 기록을 위해 참가자들의 QR코드를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 때문에 8시 13분에야 끝났고, 4160명(주최측 최종집계 4475명)이 채워지자 모두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

이후 주최 측의 깃발을 따라 차례로 촛불을 꺼 세월호의 침몰을 나타냈고, 다시 촛불을 켜서 온전히 인양된 세월호의 모습을 완성하기도 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 부부가 서울광장 잔디밭에 세월호의 밑그림을 그렸으며 임옥상 화백은 참가자들의 초에 글을 썼다.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진도씻김굿으로 희생자 원혼을 달랬다.

단상에 오른 전명선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여러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노숙농성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떳떳한 부모로 남을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온전한 인양과 시행령 폐기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내일 이 자리에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켜보던 미국인 "한국정부 행동 너무 섭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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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잊지않을게'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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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함께 촛불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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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인양을 위해 밝힌 촛불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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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쌀쌀한 날씨 속에 진행된 이 행사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그냥 현장에 오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었으나, 행사장 밖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촛불을 들고 행사에 참여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남편과 새언니, 조카 등 모두 6명의 가족을 이끌고 참가한 임지윤씨(42)는 "정부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실에 너무 화가 난다"며 "내가 유족이라면 그들처럼 참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또 "언론이 이 같은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오마이뉴스> 등 대안매체에 많이 의존한다"고도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참가한 이난형씨(47)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진상규명을 해줘야 한다"며 "남들이 안하면 나라도 해야 한다는 심경으로 매번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당에서 알고 지내던 형이 세월호 사고로 숨졌다는 안산 신길고 2학년 이의현군은 "1년간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나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면서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런 행사에 많이 참여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인 아내를 따라 서울광장에 온 미국인 샘 콜린스씨는 또렷한 한국말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그들과 함께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며 따뜻함을 느낀다"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한국의 보수주의 정권이 너무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언론인 김중배씨(81)는 "이른바 시행령이란 것이 특별법을 위반하는 '위헌적' 상황에 개탄한다"면서도, "멈추지 않겠다는 저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그게 정답이다"라고 일갈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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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묻는 교황의 말에 너무 부끄러웠다"

 
[언론 네트워크] 천주교 강우일 제주교구장, 세월호 1주기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직됐지만, 조사 진행은 한 발자국도 진척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16일,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가 "세월호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며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침묵이 아닌 실천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오후 9시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미사에서 강 주교는 지난 3월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나눈 세월호 관련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강 주교는 "5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주교단은 로마를 방문해 교황을 만난다.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단과 만나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고 전했다.

강 주교는 "그때 나는 '한국 정부가 세월호 진상 조사를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조직했지만, 실제 조사는 한 발자국도 진척되지 못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찾았을 때 세월호 유족들의 비통함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며 "교황의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우리나라 현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비통함을 드러냈다. 
 

▲ 강우일 주교가 제주시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세월호 1주기 추모 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이동건)


그러면서 강 주교는 세월호 비극이 일어난 과정 하나하나가 풀리지 않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세월호는 출항해서는 안되는 배였다. 1년 전 오늘 인천항의 기상은 최악이었다. 가시거리가 800m에 불과했으며, 당시 인천항에서 출항한 배는 세월호 1척 뿐이었다"며 "또 세월호는 규정보다 2배 이상 과적이었고, 인천항 운항관리자는 배 안을 들여다 보지도 않고 '양호'라며 출항을 허가했다"고 1년전 상황을 되짚었다. 

이어 "해경은 미군과 일본의 지원요청 조차 하지 않았으며, 해군이 통영함의 출항을 2번이나 거절했다"며 "어떤 언론에서 지난해 4월 21일 이후부터 선박 안전 관련 전문가들이 언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떤 대학 교수는 정부 부처로부터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압력이 들어온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세월호 진실에 대해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설명했다.  

강 주교는 "왜 정부가 언론을 통제했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또 세월호는 국정원의 지시를 받았다. 국정원이 세월호 선장에게 99가지 상세하게 지시한 문건도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해수부는 특별조사위가 진실(규명)을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관련 시행령을 발의했다. 한국해운조합, 항만청, 선박안전기술공단 등 진실 규명에 꼭 필요한 단체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해수부가 어떤 이유로 시행령을 발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강 주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유족, 생존자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며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들의 행동을 강조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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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국민이 본 건 숨바꼭질 퍼포먼스

 
 
 
간 보고 떠보고 찔러보다 여론 악화되자 팽목항, 그러나…
 
육근성 | 2015-04-17 12:53:5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설마 했다. 박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추모할지 세월호 1주기 며칠 전까지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당일 하루 정도는 애통해 하는 실종자 가족과 유족들, 그리고 슬픔에 잠긴 국민들과 함께할 줄 알았다. 적어도 1주기 이 날 만큼은 대통령답게 행동할 줄 알았다.


간 보고 떠보다 여론 악화되자…

곳곳에서 추모행사 준비가 한창인데도 청와대는 함구하거나 모호한 화법으로 피해갔다. 세월호 1주기 그날 대통령 일정이 무어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여러 방안을 갖고 검토 중이며 많은 건의도 듣고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이렇게 버티다가 지난 10일에야 드디어 입을 열었다. 1주기 당일부터 12일 동안 남미 4개국을 순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놀랐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국가적 참사 1주기 당일 해외순방이라니. 청와대가 ‘추모 못지않게 외교도 중요하다’며 불가피성을 역설했지만 유족들은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여론도 들끓었다. 그러자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1주기 행사 일정 고려하고 있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간보기’를 하다가 여론이 악화되니 슬쩍 말을 바꾼 것이다.

정부가 주관하는 ‘안전다짐대회’에 참석할지도 모른다는 예기도 나왔지만 이에 대한 여론 역시 매우 비판적이었다. 1주기 전날 오전까지도 대통령 일정은 베일에 쌓여있었다. 비판여론에 밀린 청와대가 15일 오후가 돼서야 주요 추모행사에 해당 장관들을 보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비행기에 오르기 전 모종의 추모행사를 가질 거라는 얘기를 흘렸다.


유족은 대통령 찾고, 대통령은 유족 피하고

‘추모 대신 해외순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간보고 떠보고 찔러보던 청와대가 어쩔 수 없이 ‘탑승 전 추모’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때부터 유족들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1,2부로 나뉘어 진행된 ‘숨바꼭질 퍼포먼스’. 첫 번째 숨바꼭질의 술래는 유족들이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을 피했고, 유족들은 대통령을 찾았다. 유족들은 ‘선체 인양과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약속해 달라고 요구하며 안산 합동분향소에 모여 박 대통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유족들을 피해 팽목항으로 향했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언론에 엠바고를 걸고 극비리에 진도행 헬기를 탔다. 팽목항은 안산 못지않게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추모하기에 적절한 장소일 뿐 아니라, 유족들과의 대면도 피할 수도 있어 청와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두 번째 숨바꼭질은 팽목항에서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술래였다.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을 피했고, 대통령은 가족들을 찾았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팽목항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 시행령과 선체 인양 늑장 검토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떠난 상태였다. 분향소 주변에는 ‘대통령령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대형 펼침막과 ‘박근혜는 물러나라’ ‘분향소에는 들어갈 수 없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팽목항에서 벌어진 두 번째 숨바꼭질

청와대의 비밀작전보다 세월호 가족들의 판단이 한수 위였다. 대통령 방문을 예상했던 세월호 가족들은 “진정성 없는 추모에 배경 그림이나 돼 줄 수는 없다”며 박 대통령 당도 직전인 당일 오전 팽목항 임시 철수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특별법 시행령 폐지”를 외치며 항의하는 시민들을 제치고 분향소로 향한 박 대통령은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분향에 실패한 채 방파제 부근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읽었다. 주변에는 미리 와 있던 해수부장관, 함께 내려온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경호를 위해 겹겹이 둘러싼 전경들뿐이었다. 유족도 떠나고, 국민도 떠난 곳에서 홀로 추모사를 읽은 셈이다.

노란 리본조차 달지 않은 차림이었다. 배우 오드리 햅번 등 외국인들도 리본을 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해외 프로구단까지 추모 성명을 내는데도 참사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던 박 대통령의 옷엔 노란 리본이 없었다. 왜 달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들어 있었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시행령 폐기 얘기는 없었다.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곧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진상규명을 막은 시행령을 밀어붙이면서 진상규명이라는 말을 뻔뻔하게 입에 올린다. 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저러는 걸까?


유족도 떠나고 민심도 떠나고… 대통령 맞나?

2002년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1주기 하루 동안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할애했다. 당일 아침엔 추모예배와 국방부 추모행사를 가졌고 이어서 비행기가 추락했던 펜실베니아 생크스빌에서 유족들을 만났다. 오후엔 참사 현장을 방문했으며, 밤 9시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뉴욕에서 대국민 연설을 했다.

1주기 그날 비행기에 오른 박 대통령. 불가피한 일정 때문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첫 행선지인 콜롬비아 정부에 세월호 1주기임을 내세워 양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는 세계인이 함께 애도한 사건이다. 얼마든지 일정 조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에 국민이 본 것은 황당한 숨바꼭질이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세월호 가족들을 홀대하고 적대시한 결과다. 참 못난 정부다. 국민에게 이런 꼴불견이나 감상하라고 강요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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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천안함 사건은 패악한 정권의 무덤 될 것”

신상철 “천안함 사건은 패악한 정권의 무덤 될 것”사월혁명회, 4월혁명 55주년 선언발표..사월혁명상 시상식 개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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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7  23: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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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혁명회는 17일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4월혁명 55주년 행사'를 개최하고 제24회 사월혁명상 시상식을 가졌다. 사진은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평화와 통일이 뒷걸음치고 민중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이제 국민들이 4월혁명 정신으로 직접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사월혁명회는 17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개최한 4.19혁명 55주년 기념행사에서 ‘4월혁명 55주년 선언’을 발표, ‘유신독재 심판’을 내세우는 등 전면 투쟁을 선언했다.

안현수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은 선언문 낭독에 나서 “4월혁명 55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4월혁명 정신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 앞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민생 파탄과 민주파괴를 향해 달리고 있는 유신 독재를 멈추기 위한 전 국민적인 투쟁만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열쇠”라고 밝혔다.

이들은 △관권부정선거 책임자 이명박 구속 수사와 박근혜 퇴진, △6.15, 10.4공동선언 이행과 5.24조치 해제,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사드 배치 반대 △세월호 진상규명 가로막는 청와대 규탄, △종북몰이 공안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즉각 폐기, △민주노총 총파업 적극 지지 등을 선언했다.
 

   
▲ 정동익(왼쪽)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인사말을, 함세웅(가운데) 신부와 한충목 한국진보여대 상임대표(오른쪽)가 연대사를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인사말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관권.부정선거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유죄를 선고받았음을 지적하고 “우리 모두 4월혁명 정신으로 떨쳐 일어나 관권.부정선거 책임자인 이명박을 구속시키고 부정으로 집권한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익 상임의장은 “부정선거로 등장한 박근혜 정권은 물러나기는커녕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종북몰이, 공안탄압으로 우리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가 의례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4월혁명 정신으로 제2의 유신독재 정권을 사퇴시키는 결의를 다짐하기 위한 뜻깊은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연대사에서 “아들딸, 며느리, 손자손녀들에게 4.19정신을 계승시키는 것, 이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각자 결심해야 할 내용”이라면서 “4.19 민주혁명 정신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기 위해서는 우리가 두배, 세배, 10배 또 100배 노력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우리 진보연대 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여성, 우리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서 제 2의 6월항쟁, 제 2의 6.15시대를 반드시 이룩하도록 투쟁하고 투쟁하겠다”면서 “2017년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룩”하겠다고 다짐했다.

청년과 학생을 대표해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와 김한성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이 “이승만 독재 정권에 목숨과 피를 바쳤던 4월혁명 선배들의 뜻과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 제24회 사월혁명상을 수상한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가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시헌 이사장, 신상철 대표, 정동익 이사장, 양재혁 전 공동의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어진 제24회 사월혁명상 시상식에서 김시헌 사월혁명회 이사장은 “위 사람은 항해 및 조선 전문가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세월호 참사, 그리고 18대 대통령 부정선거 진실규명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월혁명 정신을 실천하였기에 사월혁명상을 드린다”며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에게 상장과 상금을 전달했고, 정동익 상임의장이 상패를 전달했다.

양재혁 사월혁명회 전 공동의장은 사월혁명상 선정 결과 보고에 나서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공판 활동과 각종 강연 그리고 수십 편의 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실체를 파헤치며 널리 알리는 데에 주력하는 것은 물론 사회 개혁과 평화를 위한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은 매우 광범하고 값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신상철 대표의 투철한 시대정신과 진실을 찾기 위한 헌신적 활동을 일관되게 이어온 것이 가장 크게 고려되어 제24회 사월혁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양재혁 전 공동의장은 “상(賞)의 8,90%가 다 시키는 대로 잘 하는, 순종 잘 했다는 상을 주는 것”이라며 “오늘 우리가 시상하는 이 상은 독특하게 거부하는 상, 깨버리는 상, 거짓말을 파헤치는 상, 혁명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사월혁명상을 수상한 신상철 대표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신상철 대표는 “선배들의 사월혁명 정신을 우리 후배들이 온전히 이어받지 못해서 오늘날까지도 이 암울한 시대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상의 의미는 더욱 더 정진하고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고 인사했다.

또한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과정들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부패, 조작과 왜곡에 너무나 쓰임이 되고 있다는 것이 나도 참 놀랍다”면서 “나와 고통을 함께했던 우리 동료들이나 가족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신 대표는 특히 5년째 1심이 진행 중인 천안함 사건 재판에 대해 “고소고발을 당한 피고인은 재판을 하고 싶어 안달이고 고발한 사람들은 도망다니는 희한한 재판”이라며 “사법적인 결론이나 사회적인 최종적인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인데도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천안함 사건은 분명히 패악한 정권과 조작과 왜곡을 한 집단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 이날 4월혁명 기념행상는 150여명이 참석해 준비된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병호 사월혁명회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기념행사는 이창복 6.15공동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의 만세삼창으로 마무리됐으며, 특별토론회가 이어졌다.

‘한국사회의 외세 예속성’을 주제로 전기호 사월혁명호 감사가 사회를 진행한 특별론회는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와 재만수 전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이재봉 원광대 교수가 정치, 경제, 문화 분야로 나누어 발제했다.

사월혁명회는 오는 19일 정오 수유리 4.19묘소에서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 참배식’을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와 함께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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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대한민국의 현주소

 
 
풍경소리로 다독거린 아이들의 마음
 
장유근 | 2015-04-16 19:04: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참사 1주기 대한민국의 현주소
-풍경소리로 다독거린 아이들의 마음-

“2014. 4. 16…
이날의 하루 전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들을 꼭안고 
절대로 아무데도 
보내지 않을거야 
정말 미안해…!!”

-엄마의 노란 손수건

2015년 2월 13일 오후 2시 51분, 진도 팽목항의 방파제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風磬) 소리를 들으며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바람이 흔들어댄 풍경 소리가 하늘에서 보내온 아이들의 안부처럼 들린 것이다. 그 곁에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 방파제에 내 걸어둔 절절한 바람이 풍경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

그로부터 두 달 하고 사흘이 더 흘렀고, 아이들이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난 지 정확히 1주기를 맞이했지만 대한민국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는동안 진도 앞 바다에는 여전히 실종자 아홉명이 수장된 채 가족을 그리워 하고 있고, 세월호 실종자 및 유가족들은 거리를 헤매며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한민국의 어지러운 현주소

주지하다시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 대한민국의 정부는 7시간동안 어디론가 사라진 채 행방이 묘연했다. 조선일보와 일본의 산케이 신문 등은 사라진 7시간을 '정부(情夫)와 함께한 시간' 등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론이 가능했던 건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의 증언으로 박근혜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 이후 김기춘의 말바꾸기로 박근혜에게 보고했다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게 ‘정윤회 문건’ 등으로 알려진 권력의 암투 소식의 일면이었다. 박근혜는 취임 후 끊임없이 제기된 '부정선거 수혜자'로 알려지면서 새누리당과 함께 한시도 바람잘 날이 없었던 것.

대한민국은 이때부터 사실상 실종된 채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명박 정권이 남긴 4대강비리와 자원외교비리 등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박근혜가 부정선거 수혜자로 지목되는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세탁하고, 4대강비리와 자원외교비리를 덮어주는 대신 국정원 등이 동원된 부정선거로 박근혜를 청와대로 보내 보험(?)을 드는 것이랄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러한 눈속임을 가로 막고 나선 통합진보당과 진보적 인사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것. 결국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대표 등은 헌재의 결정으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국민이 선택한 결정을 단 몇 명의 재판관들이 뒤집어 버린 것. 사정이 이러하면 이제 국민들이 더 이상 투표를 통해 자기들의 권리를 위탁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게 된 것. 권력의 눈에 벗어나면 언제라도 국민이 선택한 권력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故성완종 육성 파일이 남긴 정부의 모습

그게 세월호 참사 전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추악한 모습이자, 유신독재자 박정희와 그의 딸 박근혜 등이 남긴 암울한 그림자였다. 그리고 2015년 4월 16일 오늘, 박근혜는 이명박의 자취를 따라 다시 남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겉으로는 경제사절단을 대동한 세일즈 외교라지만, 국내의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떠난 세계여행일 뿐이었다. 이번에는 경남기업의 故성완종 회장의 녹음파일 전부가 공개된 직후이자, 새누리당 내의 권력 다툼으로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인 것.

어제(15일) 저녁 JTBC로부터 공개된 성완종 회장의 육성 파일을 참조하면, 그동안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특정 회사를 통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을 적절히 이용해 정치자금을 마음껏 사용해 온 것이랄까. 성 전 회장의 육성 파일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국무총리 이완구 포함 8명의 친박계 정치인 등은 비리의 한가운데 있었고 박근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랬다.

“(상략) 사실 첫째는 개혁하고 사정한다고 그러는데 사정 대상이 누군지를 모르겠어요. 사정 대상이. 사정을 해야 될 사람이, 당해야 될 사람이 거기 가서 사정한다고 소리지르고 있는 우리 이완구 총리 같은 사람, 사정 대상 사실 1호입니다. 1호인 사람이 가서 엉뚱한 사람. 성완종이 살아온 거하고 이완구 살아온 거하고 쭉 보시면. 비교를 한번 해보십시오. 청문회 자료하고 성완종이 자료하고 조사한 거 다 해서. 이게 말이 되는 거냐. 국민들이 다 알고 있잖습니까. 저는 아주 적절치 않다고 보고요. 뭐 제가 볼 때는 이게 당에서도 성완종이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지배적입니다. 뭐 그거는 알아보시면 알 텐데, 어쨌든 지금 인제 청와대하고 하여튼 총리실하고 주도를 해서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전혀 뭐 그게 말발이 안 먹히고. 아니 내가 나쁜 일을 했으면 괜찮겠는데 그렇지가 않거든요.(하략)”
<출처: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50415214722245>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완구를 총리에 앉히면서 다시 불거진 박근혜와 새누리당 내부의 파열음은 성 전 회장이 방점을 찍고 있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당사자들이 사정 대상인 지 조차 모르거나 모른채 하는 사람들. 이들로 인해 진도 앞 바다의 차가운 바닷속에는 1년의 세월동안 실종자들과 하늘로 떠난 아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줄 모르는 것.

사정이 대략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국민 300여 명의 참사 원인 규명을 미루고, 실종자 9명을 여전히 바닷속에 남겨둔 채 지구반대편으로 도망치듯 떠나본들 마음이 편할까. 또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뻔뻔스러운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은 더 썩을 곳도 없을 만큼 다 썩어 자빠진 곳. 세월호 1주기를 앞 두고 불거진 성완종 리스트와 육성 파일 공개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등은 치부를 다 드러내고 국민들 앞에서 홀딱쇼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럴까… 어쩌면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풍경소리를 통해, 이렇듯 비정상적인 나라에 살고있는 엄마 아빠와 친구 등을 다독 거리고 있는 지 모르겠다.

“2014. 4. 16…
이날의 하루 전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들을 꼭안고 
절대로 아무데도 
보내지 않을거야 
정말 미안해…!!”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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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미일 외교차관협의 초점, 북한인가 중국인가?

첫 한미일 외교차관협의 초점, 북한인가 중국인가?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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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6  12: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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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첫 한.미.일 외교차관협의의 초점에 대해 한.미가 다른 목소리를 내 주목된다.

제프 래스키 미 국무부 부대변인 직무대행은 15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일본 및 한국과 폭넓은 관계이고 이번 협의에서도 우리 관계의 모든 분야를 다룰 것”이라며 “북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의제가 무엇인가’는 질문에도, 래스키 대행은 “우리는 다양한 지역 및 글로벌 우선순위가 있다”고 거듭 밝혔다.

이는 “북핵과 북한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초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지난 15일 출국 전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의 발언과는 강조점이 다른 것이다.

'독도.과거사 도발'을 일삼는 일본이 포함된 상태에서의 ‘3국 안보협력’의 범위를 북핵.북한 문제로 제한하고자 하는 한국과,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역 안보 협력으로까지 확대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 차이가 가감없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은 ‘과거보다는 미래를’이라는 슬로건으로 3국 지역 안보 협력의 토대인 한일관계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사.독도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되, 안보나 경제 등 상호 호혜적 분야에서는 교류협력을 추구한다는 투트랙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해 피해자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일본 정부의 조치 없이는 한.일정상회담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한.미.일 외교차관협의도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 계기에 한.미는 물론 한.일 양자 외교차관협의도 예정돼 있다. '부상하는 중국'에 맞서는 미일동맹 강화의 주요 이벤트인 26일 아베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의 한일관계 개선 독려 움직임이 한층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부응하듯, 법무부는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던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일본 정부가 한.일 간 주요 현안으로 부각시켰던 사안이다. 같은 날 5년여 만에 서울에서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열렸다. 지난 6~7일 아베 정권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와 외교청서 발표 등 잇따른 도발의 여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한국이 먼저 화해조치를 취한 셈이어서 ‘저자세 외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한미일 외교차관협의에서는 △한반도 차원, △아태지역 차원, △글로벌 차원의 3국 협력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아태지역 차원 관련해서는 “중국과의 관계”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아울러 “한일 양자 협의에서는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가 거론될 것이고 3자협의에서는 일단 3자 간 협력에 중점을 두면서 필요한 계기에 분명히 제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9일 아베 총리의 첫 미 상하양원 합동연설 관련해서도 “역사 문제의 엄중성과 민감성이 잘 고려되고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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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서보현 중령이 보여주는 ‘창조 국방’

 
2015. 04. 16
조회수 28 추천수 0
 

  생물장비 ‘개’로 군을 창조적으로 바꿔야 한다. 고가의 첨단장비가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 친근한 ‘개’가 창조국방에 기여할 수 있다. 제1군견교육대 대장 서보현 중령은 ‘개’를 창조국방의 일환으로 활용하고자 한 참신한 아이디어의 주인공이다 .그는  수의병과 소속의 군인이다. 야전에서 묵묵히 부하를 이끄는 지휘관이다. 
 서보현 중령은 비전투병과인 수의병과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제1군견교육대의 지휘관인 서보현 중령은 큰 키에 강직한 전투적 사고가 충만한 군인이었다. 그가 어떤 계기로 ‘개’를 이용한 과학화경계를 생각하게 된 것인지, 창조적 발상과 연구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이러한 창조적 발상이 향후 어떻게 적용될지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3월10일 그를 만났다.그리고 생물장비 ‘개’를 이용한 경계과학화와 ‘개’에 대한 편견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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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군견 교육대 대장 서보현 중령

 

  첨단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찾은 창조 국방

 

  -어떤 계기로 ‘개’를 ‘과학화 경계’에 활용하려고 했나?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수의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쌓아온 전문지식을 군대에 공헌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병영문화를 혁신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의 연구는 그러한 맥락과 같이 합니다. 전 수의병과이기에 GOP와 GP근무경험은 없지만 오랜 군생활 동안 전방부대, 위생 및 방역업무와 지도방문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최전방 장병들의 전투피로와 고충을 간접적으로 통감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병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군의 과학화경계 시스템의 도입에 작지만 힘을 보태고 싶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의 착상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착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마을에 어른들은 바쁜 농사일로 집을 많이 비워두어 마당에 펼쳐놓은 농작물들이 도난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애써 키운 농작물이 잘 지켜지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그런 농가들은 대부분 집에 개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는 걸까요? 그것은 개의 본능, 자기영역에 대한 강한 집착과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의 본능을 경계에 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연구를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본능에 충실한 경계보조견

 

 -과학화 경계에는 뛰어난 품종의 군견만 가능한 것인지

 =물론, 독일산 세퍼드 같은 뛰어난 품종의 견이면 좋겠지만, 굳이 우수품종의 견이나 엄격한 훈련을 통과한 군견이 아니라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합니다. 시골 농가나 주택에서 기르는 개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대부분 잡종이지만 주인 가족에게 절대복종하며 자기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영역에 들어오는 타인에게 강력하게 경계하는 개의 본능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군견은 사역견입니다. 사역견은 인간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길들여진 개체로 용도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받아 자기 스스로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우수한 개입니다. 하지만, 과학화 경계에 활용될 개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아도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개의 본능만 갖춰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본능을 극대화 시켜 경계에 이용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본능을 활용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개의 시각으로 개를 이해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개의 본능과 개의 시각에서 이해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

  =개는 생존본능으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움츠리게 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한 개체에 대해 심한 경계심을 드러냅니다. 이로 인해 본능적으로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형성됩니다. 또한, 개는 육식동물이므로 생존을 위해 강한 사냥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감각들이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개의 후각은 인간의 1만 배 이상이고 청각은 인간이 2만Hz까지 감지하는 반면에 개는 7만~12만Hz까지 감지합니다. 개의 시각은 사냥에 용이하게 근거리에서는 사람보다 다소 떨어지지만 원거리의 시각은 사람보다 뛰어나며 야간의 경우 사람보다 10배 이상 뛰어난 시각능력을 보여줍니다.
 개를 낮선 지역인 최전방 철책에 놓아두면 처음에는 움츠려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조금씩 움직이면서 영역표시를 하는 행동을 한 후 영역에 대한 장악이 끝난 이후에는 영역보존의 본능에 의해 자신의 영역일대를 경계합니다. TV를 통해 늑대나 이리와 같은 개과동물들이 영역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개도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자기 영역을 지켜내려는 본능이 강해 접근하는 개체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과학화 경계에 활용할 개(경계 보조견)는 이런 본능을 극대화 시켜 경계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의 본능을 이용한 경계보조견으로 활용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의 본능에 대한 사람의 이해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개의 본능과 능력을 이해해야만 개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고 정확히 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종종 개의 충성심을 두고 사람보다 낫다고 이야기 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사람은 고도의 사고가 가능한 고등동물로서 경쟁관계에서 자신이 돋보이게 하거나 살아남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이 아니기에 고도의 사고가 불가능 합니다. 단지 본능에 충실할 뿐입니다. 개과동물은 동족간의 사회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무리를 이루고 그 속에서 서열을 정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습성은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 대한 복종과 충성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복종과 충성이 무너지면, 개는 살아나기 힘듭니다. 즉, 개의 충성은 사람의 사고에 의한 충성이 아닌 본능에 의한 충성인 것이고 개는 충성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충성심과는 근본이 다른 것이죠.

 -개의 충성심은 절대적인 것인가

 =개가 주인을 향한 충성심이 강하고 잘 바뀌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에 대해 잘 못 이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한 주인만 따른다고 알고 있는 진도견을 예를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술에 취해 사방에 불이 붙은 상황에 자신의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구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진도견은 한 주인만 따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군견과 같은 사역견으로 활용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이지만 실제로는 이와 다릅니다. 진도견의 경우 다른 견종과 달리 어미견과 자견의 유대관계가 강합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독립성이 강해, 주인이 바뀌면 주인에 대한 복종이 잘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타 견종에 비해 주인과의 친밀해지는 시간 다시 말해,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회화 기간이 길게 걸리는 것이지, 한 주인만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개를 길들이는 것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약간의 노력만으로 개가 주인을 따르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거나 윽박지릅니다. 
  개는 동물입니다. 본능에 의해 판단하고 움직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난 후에는 충성의 대상에 대한 인식도 바뀝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도견 또한 그렇습니다. 즉 개의 충성심이 절대적이란 것은 잘못된 편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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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군견교육대에서 군견으로 활용연구가 진행 중인 진도견. 서 중령은 일반의 생각과 달리 인내와 노력으로 군견으로 활용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과의 친밀도는 경계 보조견의 자질

 

  -사람을 잘따르고 애정을 드러내는 개는 경계보조견을 포함한 군견으로 부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또한 잘못된 편견입니다. 개와 개를 다루는 사람(군인)과의 친밀도, 애정이 높을수록 임무수행의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개에게 있어 서열에 따른 충성은 본능입니다. 개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주인이 바뀌면 서열관계의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습니다. 개는 고등동물이 아니기에 우리가 말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주인의 표정과 음색의 파장을 통해 주인의 요구사항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 바뀌면 주인에게서 나는 냄새가 다르므로 불안해합니다. 자신에게 먹이를 주고 돌봐주고 보호해주었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주인의 행위를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계를 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선 바뀐 주인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지시하는 말의 톤이나 표정이 바뀌어 무슨 요구를 하는지 알 수 없음으로 인한 고통이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주인은 강한 인내심으로 개와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개는 자신에게 호의적인지, 아니면 적대적인지를 알며 칭찬과 꾸중을 구별합니다. 새로운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꾸준한 노력을 해야만 개가 주인을 따르기 때문에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의사소통의 정확도가 높아져 임무의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애정과 개가 생각하는 애정은 다릅니다. 사람은 개가 자신을 따르고 좋아하는 행동을 해주기 때문에 감성적 측면으로 이해하지만, 개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고 돌보아주는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과 복종의 표현입니다. 어떤 행동을 하면 주인이 좋아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친밀도를 과학화 경계에 투입되는 경계보조견에게 어떻게 활용하는가

 =개의 본능과 대비되는 것이 인간과 교감하는 사회성입니다. 본능 즉 야생성이 강하면, 사회성은 떨어지고 사회성이 강하면 야생성이 떨어집니다. 일반적인 군견은 사람을 보고 짖거나 하지 않습니다. 작전에 같이 투입되는 군견은 군경병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본능을 통제합니다. 하지만 개의 본능을 활용하는 경계보조견에게는 인간과의 친밀도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잘 따릅니다. 야생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난폭한 개라도 천천히 시간을 두고 먹이를 주면 결국 사람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는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계보조견은 낮선 사람을 보면 짖는 것이 당연합니다. 
 과거에 일부 군인들은 지휘관도 못 알아보고 짖느냐고  개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경계근무에 투입되는 장병과 그렇지 않은 순찰자가 구별된 친밀관계를 가져야만 경계보조견의 경계능력이 향상되고 유지 됩니다. 경계근무 투입자들이 경계보조견에 밥을 줄때 같이 노출되어 친밀도를 높이고, 그렇지 않은 순찰자(지휘관 등)는 노출을 줄여야 합니다. 개와 친밀도가 거의 없는 순찰자를 만나 짖게 될 때 마치 겁을 먹은 사람처럼 신속히 이탈해 주면 경계보조견은 자신의 영역을 지켜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경계보조견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더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비록 과학화경계를 위한 보조수단인 개이지만 때대로 병영생활을 하는 장병들에게는 심리적 위안의 대상이 되어줄 수 있는 것도 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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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군견교육대에서 경계보조견으로 활용하는  셰퍼드

 

개를 면회오는 전역 군인들

 

  - 최근 러시아군은 입대장병에게 기르던 애완동물의 동반입대를 허용했다고 하는데 병사들에 대한 심리적인 안정 효과는 어느 수준인가

  =수의장교로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동물과 교감하는 장병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반대로 군견이나 경계보조견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장병들도 있지만, 최근 은퇴한 군견에 대한 민간분양에 대한 문의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군견병 출신의 예비역들이 군견의 분양을 희망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병과 군견을 일일이 열거하긴 힘들지만, 군견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이색적인 풍경은 개에게 면회를 오는 것이었습니다. 군견병으로 근무했던 전역자가 같이 동고동락 했던 군견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일본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앞으론 볼 수 없다”며, 자신과 함께했던 군견을 마지막으로 보러온 군견교육대 출신 전역자가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군견 또한 그 전역자를 알아보고 반가워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개는 장병들의 심리 안정에도 공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연구과제와 전망

  -개를 이용한 과학화경계 연구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게 있는가

  =수의장교로서 개를 자주 접하고 이해해 왔기 때문에 연구자체에 대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인접한 강원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의 협조도 원활했습니다. 개를 이용한 과학화 경계의 보완에 대한 의견을 전방부대 지도방문에서 만나게 된 1군사령부 지역 고급장교들에게 설명하면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좋은 평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이행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딘 편입니다.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군의 내외부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가 과학화경계 시스템의 완벽성을 더해줄 좋은 보완수단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군견교육대의 전장병들은 좋은 군견의 생산과 양성, 수준유지와 즉각 투입가능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지형에 최적화 된 진도견을 군견으로 활용하여 브랜드화 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군견대장으로서 바램은 무엇인가

 =군견은 인간에게 가깝고 인간에게 없는 뛰어난 동물적 감각을 지닌 ‘생물탐지장비’입니다. 특히 후각은 현재과학으로도 개코를 능가할 장비를 만들어 내기 힘듭니다. 하지만 군견이 아무리 뛰어난 생물탐지장비라 하더라도 절대 만능은 아닙니다. 모든 장비는 장·단점, 제한사항 등을 가지고 있으며 장점을 최대화하고 단점과 제한사항을 극복하여 장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군견도 마찬가지입니다. 군견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조건하에서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이는 군견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작전환경이 조성되지 못한다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군견이라는 생물탐지장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없이는 군견운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한다면 우리군의 목적에 따라 본능을 제어하여 지시된 명령만 수행하는 작전견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본능에 충실한 경계보조견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지휘관과 참모들이 생물탐지장비로서의 군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야전에서 군견을 활용한 작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합동참모대학 과정에서 개와 군견에 대한 교육을 조금이라도 반영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는 첨단과학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화 경계는 치밀하고 정확한 경계와 장병들의 전투피로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사업입니다. 적은 예산으로 높은 효능을 기대할 수 있는 ‘생물탐지장비’인 개가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완벽성을 가해줄 좋은 보완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연구의 결과가 군에서 쓸모 있게 활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글/사진 문형철 기자:captin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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