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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엘리엇 소송' 패소가 말해주는 두 가지 교훈

  •  김장호 기자
  •  
  •  승인 2023.06.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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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가 종자기업을 키우는 과정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발생한 3가지 사건

재벌의 천민 자본주의 행태

국제투기자본의 약탈 행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해 약 140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엘리엇이 분쟁해결절차를 신청한 지 5년 만이다.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해 합병이 성사됐는데, 당시 합병비율은 1 대 0.35로 삼성물산 주주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근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었다.

이 사건은 국제분쟁소송이라는 신자유주의 제도가 가지는 약탈적 성격과 함께 국정농단까지 자행하며 사익을 편취한 한국 재벌의 천민적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왼쪽부터)박근혜 전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시스

재벌 3세의 종자돈, 종자기업을 키우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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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재용은 1996년 이건희 회장에게 61억 원을 증여받는다. 물론 상속세 16억 원은 냈다. 그리고 삼성 에스원 주식 12만 주(23억 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 주(19억 원)를 매입한다.

두 회사는 비상장 삼성 계열사였다. 곧이어 상장을 하게 되고, 이재용은 주식매각대금으로 605억 원을 번다. 상장차익은 562억 원이었다. 에스원에서 291억원, 삼성엔지니어링에서 256억 원 시세차익을 챙긴 셈이다.

당시는 상장회사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법령이 없었기 때문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삼성 이재용이 개척한 편법, 즉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먼저 취득하고 상장 후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은 이후 모든 재벌 3, 4세에게 확산된다.

그 방법은 더 진화하여 필요에 따라 계열사 간 합병 또는 분리 후 상장하는 방식까지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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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돈을 키운 이재용은 종자기업을 만들어 계속 부풀린다.

1996년 이재용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62만 주를 48억 원에 배정받는다. 전환사채(CB)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회사채를 말한다. 이재용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삼성에버랜드 31.9%의 주식을 획득해서 최대 주주가 된다. 에버랜드가 이재용의 종자기업이 된 것이다.

에버랜드는 1998년 삼성생명 주식 345만 주를 주당 9천 원이라는 싼 가격에 매입한다. 삼성생명 주식은 당시 낮을 때도 5만 원, 높을 때는 15만 원까지 하는 주식이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이재용은 에버랜드의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꾼다. 그리고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계획을 발표하고, 5개월 만에 합병에 성공하는데, 여기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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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발생한 3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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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분을 늘리려는 조치였다. 이재용은 2015년 제일모직 지분을 23.23% 가지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1%도 없었다. 당시 삼성전자 지분구조를 보면 삼성생명이 7.21%로 1대 주주. 삼성물산이 4.96%로 2대 주주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을 통해서 삼성생명을 19.34%로 지배하고, 다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7.21%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삼성전자를 완벽하게 지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1%에 대한 지배력까지 확장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 주가조작, 분식회계와 증거인멸, 뇌물수수와 국정농단이라는 3가지 대형 범죄가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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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1 대 0.35로 산정한다. 누가 보아도 삼성물산 주식이 비쌀 것 같은데 거꾸로 된 것이다. 제일모직은 에버랜드 정도이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이병철 회장이 수출종합상사로 창립한 회사이고, 국내에서 레미안 등 건설공사, 해외에서 각종 대형 토목공사를 수행하는 알짜회사이다. 자산을 비교해 보아도 제일모직은 8조1,833억 원으로 삼성물산 26조1,556억 원보다 훨씬 적었다.

2022년 4월 14일 대법원은 합병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5년 합병 직전에 동종업계인 현대건설 주가가 17%, GS건설 33% 등 다른 대형건설사들 주가는 계속 올랐다. 그런데 삼성물산 주식만 –8.9%로 곤두박질쳤다.

삼성물산은 수주를 하지 않고, 수주물량을 모두 합병 이후로 미뤘다. 그리고 삼성물산 해외 수주가 2조 원이었는데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에 넘겨 버렸다. 국민연금도 한몫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팔아야 할 때 사고, 사야 할 때 파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다. 결국 삼성물산 주식은 계속 떨어졌다.

반면에 제일모직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9월 1일 합병 직전에 제일모직 주식은 17만 원대까지 수직상승 했다. 합병비율 산출하기 직전에는 삼성 계열사 사장급 임원 9명이 제일모직 주식을 집중 매입한 정황이 포착되어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7.12% 가지고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이 저평가된 점을 문제 제기하며 합병에 반대하였는데, 국민연금이 찬성해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제일모직 주가를 올리는 과정에서 분식회계 문제가 발생했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지분을 46%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삼바는 장부금액 평가 기준을 바꾸는 방법을 이용해 분식회계를 함으로써 삼바 가치를 엄청나게 부풀렸다. 삼바 자산가치를 2천9백억 원대에서 4조 8천억 원대로 재평가한 것이다. 삼바 가치가 부풀려지니 제일모직 가치 역시 부풀려졌다. 이 분식회계 장부를 은닉했다가 수사 과정에서 들통나는 바람에 삼바 임직원 다수가 분식회계 증거인멸죄로 구속됐다.

분식회계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미국 엘론이라는 회사는 분식회계를 했다가 회장단이 180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1명은 자살했다. 중국의 경우 사형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 심각한 경제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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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어졌다.

2022년 대법원은 삼성물산의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결의에 찬성한 것과 관련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업무상 배임죄를 유죄로 확정했다. 두 사람은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한데도 문 장관과 홍 본부장이 의결에 개입해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게 함으로써 합병이 성사되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2015년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11.21%, 제일모직 4.84%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총회에서 합병에 반대하면 합병이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리서치팀은 양사 적정 합병비율을 1 대 0.46으로 보았다. 삼성 안대로 하면 국민연금 지분이 0.44% 감소하여 1,388억 원을 손해 본다. 당연히 합병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곧 입장이 바뀐다. 심지어 국민연금은 전문위원회에서 의결하면 반대할 것 같으니 투자위원회를 통해 찬성을 의결하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참여연대는 적정 합병비율은 1 대 1~1.36으로 보았고, 국민연금이 5천억 원에서 6천억 원 정도를 손해 봤고, 이재용 부회장은 1조 원 정도 사익을 챙겼다고 추산했다.

국민연금 태도 변화과정과 관련해 박근혜는 2015년 7월 25일 이재용과 단독으로 면담했고, 이전 6월에는 고용복지수석에게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합병 당시에도 “삼성이 걱정이다”라고 언급한 사실이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서 전모가 드러났다.

2021년 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86억 원의 뇌물죄로 이재용 부회장은 징역 2년 6월, 박근혜는 다른 국정농단까지 포함 징역 25년, 최순실은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근거로 엘리엇이 투자자-국가 소송을 제기해서 5년 동안 끌다가 이번에 승소한 것이다. 엘리엇은 1조원 가량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했지만, 중재재판부는 7%에 해당하는 605억 원과 지연이자 등을 포함해 1400억 원가량의 손해액만을 인정하였다.

 

재벌의 천민 자본주의 행태

엘리엇 소송 패소사건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순히 국민연금 손해 문제가 아니라 국정농단까지 빚은 사태를 국민 세금으로 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익의 사유화와 손해의 사회화”라는 한국 재벌의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절름발이 한국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이 때문에 상식적인 국민은 박근혜, 이재용, 최순실, 문형표, 홍완선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중동과 보수 경제신문은 구상권 청구가 아니라 정부가 국제 취하소송을 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한미FTA에서 규정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엘리엇이 ISD 중재지를 영국 런던으로 정했는데, 영국 중재법 67조에는 ‘실체적 관할 위반’이 발생하면 중재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관할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자는 것이다. 친재벌세력은 법무부가 외국 기업사냥꾼들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식으로 광분하고 있다.

정부가 취하소송을 제기한다고 해서 승소할 가능성은 없다. 소송비용만 더 들고 지연이자만 늘어날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취하소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국정농단 주범의 범죄적 행태로 국민 혈세가 들게 생겼다는 반감을 물타기 하려는 수작이다. 여기에 교활하게도 국민의 애국심을 악용한다. 그들은 국가경제보다는 언제나 사익추구를 앞세우는 세력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고, 국제금융자본, 투기자본을 끌어들이는 세력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외국자본과 싸우는 애국자인양 행세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여기에 속아넘어가는 국민들도 일부 있다. 경계해야 한다.

 

국제투기자본의 약탈 행태

엘리엇에게 손해를 물어준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메이슨 캐피탈이라는 외국계 자본이 엘리엇과 똑같은 사안으로 국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메이슨은 삼성물산 지분을 2.18% 소유했는데, 이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다. 결과는 엘리엇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국 정부는 배상금을 국민 혈세로 물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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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자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소송이 줄줄이 남아 있다. 현재 총 10건이 제기되어 있고, 5건이 재판 진행 중이며, 7000억 원의 배상금이 걸려 있다.

메이슨 캐피탈을 포함하여 쉰들러 홀딩아게라는 투자회사(본사 : 스위스)는 2447억 원짜리 소송을 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상 목적이 아니라 사주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정부가 감독을 게을리해서 손해를 봤다는 식의 주장이다.

지난해 8월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4조 5천억 원을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가 패소했다. 3000억 원 정도를 물어줘야 할 판이다.

투자자-국가 분쟁소송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산물이며, 주권국가의 경제정책을 침해하는 심각한 약탈정책이다.

정부가 국내경제 사정을 감안해 특정 정책을 취하면 외국계 투자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하게끔 제도화한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외국계 곡물자본과 농약, 종자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농민에게 보조금을 줄 수 없도록 하는 강제장치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이다.

국가적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시도할 수 없게 강요하고, 국제분업체계의 일부 역할만 하라며 종속경제를 강제하는 장치가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이다.

국제 금융투기자본, 초국적 자본에 의한 투자자-국가 소송은 2018년 경우 아르헨티나가 60건, 베네수엘라가 44건으로 최다였고, 한국 역시 피소송액이 6조 6천억 원이 넘은 적이 있었다.

2013년 세계 투자자-국가 소송은 한 해 동안만 62건이었고, 누적하면 518건이 넘었다. 모든 FTA에는 이 조항이 다 들어가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국제투기자본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강권으로 나라별 경제발전권을 제약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외국자본이 메기 역할(미꾸라지는 자신의 적인 메기가 옆에 있어야 긴장해서 잘 큰다)을 해서 한국 재벌의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극복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행동주의 펀드가 금융시장 경쟁력 강화에 유리한 제도라면서 찬양하는 유투버도 상당수 있다.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재벌을 개혁하자는 소리와 똑같은 주장이다.

외국계 자본 역시 자신들의 행동주의적 투자행태나 투자자-국가 소송이 천민자본주의 행태, 아시아 자본주의의 폐쇄적 행태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강도가 집안 보안 강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업그레이드한 현대 금융침략 버전에 불과하다.

외국계 자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내 재벌들의 막가파식 사익추구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견해도 문제이며,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여 한국 재벌과 금융시장을 개혁하자는 주장도 망상이다.

국민은 외국계 투기자본과 국내 재벌의 천민적 행태 모두와 싸워야 한다.

이번 엘리엇 소송 패소 사건은 한국경제가 국제금융자본의 먹이감으로 전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의 천민자본주의적 행태가 외국계 자본의 수탈을 끌어들이는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금융투기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수탈, 경제주권에 대한 제약, 재벌들이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해는 국민이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지금 해외금융투기자본과 국내 재벌로부터 이중적으로 수탈당하고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엘리엇 사태의 의미이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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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압박 속 라면값 인하에 뿔난 경제신문 “과도한 시장 간섭”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6/28 08:34
  • 수정일
    2023/06/28 08: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3.06.28 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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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여당 먹방·야당 단식에 세계일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김남국, 코인 거래 내역 미제출에 조선 “민주당이 막아주니 안하무인”

27일 농심이 다음 달 1일 신라면 봉지면과 새우깡 출고가를 각각 4.5%, 5.9% 내린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매점 기준 1000원에 판매되던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은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이 낮아져 각각 950원, 1400원에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심이 신라면 가격을 인하한 것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2010년 안성탕면, 신라면 등의 가격을 2.7~7.1% 내린 바 있다.

이날 삼양식품도 삼양라면과 짜짜로니 등 12개 제품 가격을 다음 달 1일부터 평균 4.7% 순차적으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제품인 불닭볶음면은 인하하지 않기로 했다. 오뚜기도 다음 달부터 진라면 등의 가격 인하를, 팔도도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중앙일보 1면.

▲28일 아침신문들 1면.

식품업계의 가격 인하는 윤석열 정부가 공개적으로 식품 기업을 압박한 이후 9일 만에 이뤄진 조치다.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을 더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부 압박 속 라면과 과자 등 이례적 가격 인하에 28일 자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한국경제는 1면에 이 소식을 다뤘다. 한국경제와 매일경제는 정부가 과도한 시장 간섭을 하고 있다며 사설로 비판했다.

 

신라면·새우깡 인하에 한경 “정부지출도 줄여라” 매경 “시장 간섭”

28일 한국경제는 <신라면 50원·새우깡 100원 가격 내린다> 기사에서 “라면 업체가가격을 내리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이후 13년 만”이라며 “라면업체의 이번 조치는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본격화한 지 9일 만에 취해졌다. 라면값 인하 압박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기업들이 적정하게 (라면) 가격을 내려줬으면 한다’고 밝히면서 불을 붙였다. 21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담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기업을 강하게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28일 한국경제 1면.

▲28일 한국경제 2면.

한국경제는 “라면업계의 결정을 계기로 식품업계에서는 다음 가격 인하 ‘타깃’이 누가될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라면 다음은 과자, 빵, 혹은 유제품이 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파리바게뜨와 던킨, 쉐이크쉑 버거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SPC도 긴급 임원 회의를 열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국내 제과제빵 1위 업체인 SPC는 이날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가격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SPC는 조만간 빵 가격 인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총리가 나서 담합 가능성까지 언급한 만큼 식품업계에선 ‘정부가 찍으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폭염 등 하반기 원재료 비용을 자극할 변수가 많아 식품업체로선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란 점이다. 올여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슈퍼 엘니뇨’도 그중 하나다. 소맥, 원당 등 주요 식품 원재료의 수급 차질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했다.

정부 압박 속 라면 가격 인하 결정은 국내 제분 회사가 다음 달부터 밀가루 출하가를 내리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정부 ‘매운’ 압박에 신라면 가격 내린다> 기사에서 “농심의 결정에는 국내 제분회사가 다음 달부터 밀가루 출하가를 내리기로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며 “다음 달부터 농심이 제분회사에서 공급받는 밀가루 가격이 5% 싸지면서 80억 원을 아낄 것으로 보인다. 농심은 이번 가격 인하로 소비자들이 연간 200억 원 이상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28일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는 “제빵·제과업체들은 당장은 가격 인하 계획이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한 제빵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은 원·부자잿값뿐 아니라 가공비, 물류비 등 여러 비용을 고려해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원재료 한 품목의 값이 내려갔다고 제품 가격에 곧바로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라면값 때리는 기재부... 물가 잡으려면 정부 지출도 줄여라> 사설에서 “국제결제은행 BIS가 연례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고금리 통화 대책을 펴지만 충분하지 않으니 재정 긴축에 무게를 두라는 지적”을 했다며 “BIS의 정공법에 비춰볼 때 정부의 라면과 밀가루 가격 인하 압박은 거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제는 이어 “‘완장’을 내세우며 업계에 공포감을 주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며 “사재기 단속, 원활한 유통망 유지·점검, 가격담합 예방 등으로 수급 상황을 보면서 효율적 경쟁을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할당관세 혜택을 받았으니 이익을 내놓으라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세제 지원할 때마다 보답하라면 그게 정부인가. 굳이 라면의 원가 구성을 봐도 밀가루 외 급등한 인건비와 물류비까지 복합적이다. 라면만 오른 것도 아닌 판에 가격 급등 품목마다 통제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28일 한국경제 사설.

▲28일 매일경제 사설.

매일경제는 <정부 라면 이어 밀가루값도 인하 압박, 과도한 시장 간섭이다> 사설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18일 라면 값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지 여드레 만인 26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분업체 7곳을 불러놓고 가격을 낮추라고 했다.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부터 낮추고 이를 명분으로 라면은 물론이고 빵, 과자까지 가격 인하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도일 것”이라며 “정부가 가격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과도한 시장 개입이다. 당장은 가격을 낮출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가격을 되레 올리고 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독이 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기업이 이익이 줄어드는 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정부가 자꾸 가격에 개입하면 대응책을 만들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정부 개입을 예상해 가격을 책정할 것”이라며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10%만큼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일단은 가격을 20% 올려버리는 것이다. 정부 압박이 들어오면 가격을 소폭 낮추면서 생색을 내는 식으로 대응하면 그만이다. 결국 정부가 가격을 시장에 맡겼을 때보다 가격이 더 오르는 꼴이 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더욱이 기업은 고급 제품 출시라는 명분으로 가격을 올린 신제품을 내놓거나 상품 정량을 줄여 팔 수도 있다. 기업의 대응을 ‘꼼수’라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꼼수를 만든 원흉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며 “정부가 할 일은 담합이나 독과점 같은 경쟁 제한적인 방식으로 가격을 올리는 일이 없도록 막는 것이지 직접적인 가격 개입이 아니다”고 했다.

 

여당 먹방·야당 단식에 세계일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임박해지면서 여야가 먹방과 단식으로 대치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 계획을 검증해 온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다음 달 4일 최종 보고서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IAEA 최종 보고서 공개를 오염수 방류 이전에 거쳐야 할 마지막 단계로 보고 있다. 보고서에서 별다른 문제점이 나오지 않으면 올여름 오염수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27일 중앙일보 3면.

최근 환경부와 국방부가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간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라고 발표했으나, 성주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27일 자 중앙일보 3면 기사를 보면 지난 26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지도부는 경북 성주군 농산물공판장을 방문해 성주참외를 직접 깎아 시식했다. 김기현 대표는 농민에게 “참외 400박스를 사가겠다. 전국민에게 성주참외의 우수성을 알리고 성주군이 결코 그것 때문에 피해 입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3일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의원들과 함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같은 날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회로 저녁 식사했다.

반면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우원식 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6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28일 세계일보 사설.

이에 세계일보는 <오염수 방류 임박... 먹방·단식으로 갈등 증폭시킬 때인가> 사설에서 “여야가 ‘먹방’ 대 ‘단식’으로 대치하며 국민 갈등과 불신만 증폭시키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먹거리 불안에 빠진 국민은 여야의 이런 행태를 보며 누구 말이 옳은지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다. 여야가 진정 국민 건강을 걱정하고 불안을 해소하려면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인 기준에 의거해 합리적 대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여야가 얼마 전 검토했던 대표 회담을 다시 추진해 머리를 맞대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 봄직하다”고 지적했다.

 

김남국, 코인 거래 내역 미제출에 조선 “민주당이 막아줘 안하무인”

지난 26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거액의 가상자산 거래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 징계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유재풍 자문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들에게 “오늘 결론을 내려 했지만, (김 의원이) 거래 내역을 내지 않았다. 김 의원에게 추가로 내라는 공문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징계 사유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 관련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8일 조선일보 사설.

이에 조선일보는 <국회 윤리심사도 무시하는 김남국, 민주당 믿고 이러나> 사설에서 “코인 거래 내역은 징계할지 말지를 결정할 기초 자료다. 본인이 떳떳하다면 적극적으로 제출해 징계감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한다. 또 징계 관련성과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심사를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심사받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게다가 김 의원 때문에 법이 바뀌어 모든 국회의원은 이달 말까지 가상 자산 보유 현황 및 변동 내역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어차피 곧 공개할 자료를 왜 윤리심사 자문위에는 내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징계를 회피하고 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수사를 받겠다는 의도 아닌가”라며 “무슨 일을 해도 민주당이 막아주니 김 의원도 안하무인으로 버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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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민주노총·전농 등 37개 단체,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발족·7.15범국민대회 선포(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6.27 16:51
  •  
  •  댓글 0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주축이 되고 청년, 여성, 대학생 등이 결합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27일 발족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주축이 되고 청년, 여성, 대학생 등이 결합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27일 발족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주축이 되고 청년, 여성, 대학생 등이 결합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27일 발족했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빈민해방실천연대를 비롯한 37개 단체 대표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12층 회의실에서 '윤석열정권퇴진투쟁운동본부 준비위원회 대표자회의'를 갖고 뒤이어 '윤석열정권퇴진투쟁운동본부(준)'(퇴진운동본부(준)) 발족과 '윤석열정권퇴진 7.15범국민대회'를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퇴진운동본부(준)는 26일 현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양경수)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 하원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회장 양옥희), 빈민해방실천연대(빈해련, 공동대표 이경민) 등 전국 규모의 기층 대중조직과 전국여성연대, 한국청년연대, 전국민중행동, 진보대학생넷을 비롯한 37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퇴진촛불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촛불연대, 촛불전진, 민생경제연구소, 윤석열퇴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도 참가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사월혁명회, 조중동폐간시민실천단, 평화통일교육센터, 예수살기, 독도수호봉사대 등 다양한 단체들이 퇴진운동본부(주)에 함께 나섰다. 

한국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행동하는 자영업자 연합'이 퇴진운동본부(준)에 참가한 것도 눈길을 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아래서 더 이상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를 결성했다"며, "오는 7월 15일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마지막 날 범국민대회를 통해 온 나라와 온 국민이 함께나서는 퇴진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당면해서는 일본 핵 오염수 문제를 중심으로 공동 투쟁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분들이 퇴진운동에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연대하는 활동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오늘 퇴진운동본부가 구성되기 전부터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많은 퇴진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하면서 "전농은 더 이상 돌아볼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윤석열정부는 퇴진이 답이라고 보고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퇴진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민 빈해련 대표도 "여기 동지들을 믿고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도시빈민들도 퇴진운동본부와 함께 윤석열 정권 퇴진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퇴진운동본부(준)은 더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달 하순부터 7월까지 모든 단체와 진보정당, 지역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고, 각 단체들은 각계각층의 퇴진투쟁 선포 선언과 후쿠시마 핵오염수 저지를 위한 전국 동시다발 캠페인을 벌이면서 7월 15일 범국민대회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범국민대회는 6가지 당면 현안을 중심으로 윤석열정권 퇴진투쟁을 대중적으로 선포하고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퇴진투쟁을 벌여나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정권퇴진 7,15 범국민대회 6대 실천행동

①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투쟁 총력집중
②노동탄압 저지, 노조법 2, 3조 거부권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연대지지
③공안탄압, 집회시위 금지 등 민주주의 파괴책동 저지 투쟁
④굴욕외교 중단, 반전평화 투쟁 전개
⑤친재벌, 사회공공성 파괴(공공요금 인산 포함 등) 저지 투쟁
⑥민중생존권 쟁취(농민-빈민-자영업 생존권 파괴 저지, 전세사기 국가책임 촉구) 투쟁

참가단체 대표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반민중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정권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며, 7월 15일 범국민대회를 선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참가단체 대표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반민중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정권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며, 7월 15일 범국민대회를 선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들은 '반민중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에서 "윤석열 정권, 1년은 민중들에게 커다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민생 파탄과 생명안전의 위협, 한반도 전쟁위기, 민주주의 훼손 등 퇴진 사유를 조목조목 열거하고는 "국민의 절대다수이자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 농민, 빈민, 자영업자, 서민들은 윤석열 정권 퇴진에 모든 것을 걸고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7월 3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서울과 각 지역에서 '노동·민생·민주·평화 파괴 윤석열정권 퇴진 총파업'을 벌이기로 하고 120만 조합원에게 총파업 참가 지침을 공지했다. 또 7월 4일, 7일, 11일, 14일에는 퇴근 후 전국 시도별 촛불집회에 동료, 가족과 함께 참가하도록 독려했다. 

한편, 퇴진운동본부(준)는 지난해 말부터 윤석열정권의 반민중정책에 대한 투쟁기조와 방향을 논의하던 중 지난 5월 1일 양해동 열사 분신 사망 이후 열사의 유언을 반드시 실현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6월 5일 노농빈 대표자들이 윤석열정권퇴진을 위한 공동기구 결성제안, 14일 집답회 개최, 16일 퇴진운동본부 참가신청 단체 집행책임자회의 등을 거쳐 이날 발족을 선언에 이르게 됐다.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준비위원회 발족 및 윤석열정권퇴진 7.15 범국민대회 선포 기자회견문(전문)

‘반민중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윤석열 정권, 참1년은 민중들에게 커다란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은 정권의 폭력과 탄압에 무참히 짓밟혀왔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빠른 속도로 한국사회를 부자천국 서민지옥의 세상으로 만들려는 정책의 결과 입니다.

정부는 재벌과 부자들에게는 법인세, 상속세, 종부세 등 감세정책의 선물보따리를 안겨주는 반면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예산은 대폭 축소했습니다. 또한 전기, 가스, 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민생은 파탄나고 있습니다.

정권의 노조혐오와 탄압은 결국 양회동 열사를 끝내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전면부정하고, 노조법2.3조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들먹이더니 주69시간 노동시간 개악과 더불어 거대한 반노동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쌀값이 45년만의 최대 폭락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양곡관리법을 ‘포퓰리즘’ 정책으로 매도하며 결국에는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게다가 물가폭등으로 인건비, 자제비 등 생산 원가는 모두 폭등했음에도 “물가안정”을 들먹이며 수입농산물을 반입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농업소득 연 1200만 원에서 940만 원으로 큰 폭으로 하락한 것입니다. 이처럼 윤석열 정권은 농업 농민 말살정책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반민중적 폭거는 도시빈민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대표적 빈민 조직인 빈민해방실천연대 위원장과 수석 부위원장을 비롯한 간부 6명을 전격 구속시키는가 하면 도시빈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노점도 삼진 아웃제 등을 도입하는 등 노점 말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겨우 버텨낸 자영업자는 어떠합니까!!

자영업자의 부채는 1,020조 원에 이르고 있으며 가구당 부채로 환산하면 4억 2천만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확대되었습니다.

금리는 꾸준히 올랐고, 경기침체로 매출은 급감하는데,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상환 유예조치를 올 9월이면 종료한다고 윤석열 정부가 발표했습니다. 중소 영세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국가는 없습니다.

전세사기피해로 청년들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지만 정부는 근본적 해결 없이 집값을 떠받치는 방식의 대출만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거품이 커지면서 집 없는 서민들은 더 큰 위험 속으로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없습니다.

한편,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국가가 없었으며 그 결과 159명의 소중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습니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가리고 책임자 처벌을 회피하며 또 다른 재난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반도 전쟁위기는 끝없이 고조 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파탄으로 한반도 평화가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이때 우크라이나 전쟁무기 지원, 대만문제 개입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하고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국제분쟁과 군사적 충돌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윤석열 정권의 친일, 친미행각과 한반도 전쟁책동은 우려를 넘어, 민중생존을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일본에 고개 숙이고 굴욕적인 3자 변제 방안을 스스로 제출하며 일제 강제동원 역사를 왜곡 했을 뿐 아니라,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까지 묵인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가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며 일본과 도쿄전략의 하수인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불안해하며, 생존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훼손되고, 위협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민중들의 비판과 저항에 제갈을 물리고 있습니다. 일선 경찰에 공안수사팀을 구성하고, 노동자 민중 탄압에 특진과 면책을 내걸면서 무차별적 탄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훼손하고 물대포와 캡사이신까지 사용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또 다른 이한열과 백남기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과 민간인 사찰, 조작된 간첩단 사건 등을 남발하며 공안통치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도 도를 넘어섰으며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면직하고 언론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선진화를 운운하며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를 표적으로 마녀사냥을 자행하고 있고 함께 살자는 장애인들과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도 가로막고 존재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10년 전, 40년 전으로 퇴행시키고 있다는 국민들의 한탄과 우려는 이제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퇴진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종교계, 학계, 사회원로 등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으며 정권 퇴진을 위한 실천과 행동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윤석열 검찰독재 정치, 노동자를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의 뜻을 새기고 한 발 나서려 합니다. 독재정권과 불의의 권력에 맞서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등 선배동지들이 갔던 그길을 우리가 가려 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검찰독재정권, 반노동 반민중 정권, 반민주주의 반평화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발족하는 ‘윤석열 정권퇴진 운동본부’ 준비위를 통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심판하려는 모든 국민을 모아 윤석열 퇴진의 깃발을 추켜세워 높이 휘날릴 것입니다.

나아가 불평등한 한국사회를 바꾸고 근본적으로 대개혁하는 뱡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것입니다. 또한 이 대장정의 시작으로 ‘7월15일 윤석열 정권퇴진 시국대회(1차)’를 범국민적으로 개최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되돌아갈 길도 없습니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습니다. ‘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리를 실현하고자 국민의 절대다수이자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 농민, 빈민, 자영업자, 서민들은 윤석열 정권 퇴진에 모든 것을 걸고 투쟁에 나설 것입니다.

 

2023년 6월 27일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본부 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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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래,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춤짓

대전민예총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 개최

  • 기자명 대전=임재근 객원기자 
  •  
  •  입력 2023.06.2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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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주기 대전 산내 학살 사건 피학살자 합동 위령제’를 하루 앞두고 전야제 성격의 ‘골령골평화예술제’가 개최됐다.

(사)대전민예총(이사장 이찬현)은 6월 26일(월) 저녁 7시 30분, 작은극장 ‘다함’(대전 동구 가오동)에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를 열고,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지난해에는 위령제가 있던 날 저녁 골령골 현장에서 개최됐지만, 올해에는 전야제 성격으로 하루 앞서 진행했다. 또한 장소도 당초 골령골 현장으로 예정했으나, 전국적으로 장마권에 접어들면서 우천으로 인해 급히 장소를 실내로 옮기게 됐다. 급히 장소가 변경되었지만, 평화예술제를 찾은 시민들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골령골 평화예술제는 대전민예총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의 각계 문화예술인들이 각자의 재능으로 만들어갔다.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가 6월 26일 저녁 7시 30분 작은 극장 ‘다함’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가 6월 26일 저녁 7시 30분 작은 극장 ‘다함’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평화예술제 예술 감독을 맡은 대전민예총 연극위원회 김황식 감독은 “우리의 역사는 민간인 수천명을 억울한 주검으로 골령골에 파묻고 가족들의 삶고 함께 묻어 짓밟아 온 세월”이며, “학살자들은 영웅이 되어 떵떵거리며 활개 친 세상, 그 억울함을 그 한을 그 사실을 골령골에 묻어 놓고 우리에게 망각을 강요한 미친 세월의 역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2회 산내 골령골 평화예술제는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한 자리”라며,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래이며,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춤짓”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루 빨리 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외침”이라고 덧붙였다.

 

한기복 명인의 대북 소리에 맞춰 한항선 작가가 붓으로 무대 배경대를 완성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기복 명인의 대북 소리에 맞춰 한항선 작가가 붓으로 무대 배경대를 완성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맨 처음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음악위원회 한기복 명인과 미술위원회 한항선 작가였다. 한기복 명인의 대북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한항선 작가는 붓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한 작가는 ‘골령골 평화예술제’라는 글씨가 쓰여 있던 무대 배경에 북소리에 맞춰 붓질을 하기 시작했고, 골령골 산능선 아래 노란 달맞이꽃과 파란 나비 등이 그려지면서 어느 순간 멋진 배경대가 완성됐다.

이어진 무대는 가운데 긴 봉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천이 펼쳐진 상태에서 천을 서로 엇갈려 돌면서 엮어 가는 단심줄 감기였다. 대전민예총 교육위원회 소속 구성원들이 소리를 하는 동안 대전평화합창단 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단심봉과 천을 잡고 노래 소리에 맞춰 천을 천천히 감아갔다. 단심봉을 중심으로 단단히 묵인 천들은 무대의 기둥이 되어 무대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살아살아 괴롭구나’라는 제목의 탈극이 공연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살아살아 괴롭구나’라는 제목의 탈극이 공연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정진채 가수는 ‘골령골 산허리’와 ‘서시’를 노래했고, 김희정 시인은 ‘여기에’를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정진채 가수는 ‘골령골 산허리’와 ‘서시’를 노래했고, 김희정 시인은 ‘여기에’를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어 연극위원회 성원들은 ‘살아살아 괴롭구나’라는 제목으로 탈극을 선보였고, 정진채 가수는 ‘골령골 산허리’와 ‘서시’를 노래했다. 특히 ‘골령골 산허리’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신순란 유족의 사연을 담은 가사에 정진채 가수가 작곡한 곡이다. 이어 김희정 시인은 자신의 시 ‘여기에’를 낭송했다. 김희정 시인이 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정진채 가수는 기타로 배경음악을 연주해주었다.

대전민예총 외 단체들도 무대에 오르면서 골령골 사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래와 그 사건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춤짓에 동참했다. 노래모임 ‘놀’과 대전평화합창단은 노래 공연을 했고, 대전댄스보컬학원 랩퍼 최진리와 빅버스트는 산내 골령골 사건의 내용을 담은 랩과 함께 춤 공연을 펼쳤다.

 

 

 

노래모임 ‘놀’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노래모임 ‘놀’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평화합창단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평화합창단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댄스보컬학원 랩퍼 최진리와 빅버스트는 산내 골령골 사건의 내용을 담은 랩과 함께 춤 공연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댄스보컬학원 랩퍼 최진리와 빅버스트는 산내 골령골 사건의 내용을 담은 랩과 함께 춤 공연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평화예술제의 마지막은 앞서 묵었던 단심줄을 풀어내면서 넋푸리로 마무리했다.

평화예술제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무대로 올라 장단과 소리에 맞춰 하나씩 줄을 풀어냈고, 단심줄이 모두 풀리자, 천을 잡았던 손은 옆 사람의 손을 잡으며 강강술래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대의 힘으로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넋을 위로할 평화공원이 하루빨리 조성되기를 기원하며 예술제는 막을 내렸다.

 

 

평화예술제 초반에 묵어두었던 단심줄을 다시 풀어내면서 단심죽 넋푸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평화예술제 초반에 묵어두었던 단심줄을 다시 풀어내면서 단심죽 넋푸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단심줄을 모두 풀고 난 후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평화예술제를 마무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단심줄을 모두 풀고 난 후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평화예술제를 마무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편,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는 27일 오전 11시 30분에 골령골 현장에서 예정되어 있다. 오전 10시 30분부터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4대 종단이 진행하는 종교제례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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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언론개입' 문건 '이동관 홍보수석실' 가리키고 있다

  • 박재령 기자 
  •  
  •  입력 2023.06.27 08:51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신문 1, 3, 4면 털어 이동관 특보 집중 보도

KBS 내 좌편향 인사 파악 지시, 이 특보 있던 홍보수석실 요청

국정원 직원 “당시 정부 정책 비판 성향 KBS 인사를 솎아내겠다는 의도”

경향 “이동관 특보 방통위원장 임명하는 건 윤 대통령의 자기 부정”

경향신문이 ‘2010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불법사찰 문건’ 등을 들어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자격이 없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이동관 특보가 수석으로 있던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국정원에 KBS 내 ‘좌편향’ 인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경향신문은 “공무원 적격성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직권남용”이라며 “방통위 수장 자격이 없다”고 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앞서 미디어오늘은 국정원 직원 진술을 통해 이동관 특보가 언론장악 문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2017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서 국정원 직원이 직접 보고자료의 요청 주체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재임 당시 홍보수석실을 구체적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해당 문건을 1면에 배치하며 “선명하게 찍힌 ‘홍보수석실 요청사항’ 문구”라고 했다. 홍보수석실은 통한 KBS 내 ‘좌편향’ 인사 파악 이후 KBS 일부 간부의 보직이 변경됐다.

[관련 기사 : 국정원 직원도 언론개입 문건 요청 주체로 MB 청와대 홍보수석실 지목]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정원은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 등 세 가지 기준을 세워 인사 대상자를 선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해당 문건에 “좌편향 간부 → 반드시 퇴출, 좌파세력의 재기 음모 분쇄”라고 적시하며 정부에 비판 보도를 해온 인사를 나열했다. 특히 일부 인사들에겐 “정연주 전 KBS 사장(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추종 인물”이라 규정하며 “무관용 원칙 고수”라고 했다. 정연주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해임됐고, 지금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도 방심위원장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경향신문은 “시사 프로그램 ‘취재파일 4321’ 부장 B씨와 ‘추적 60분’ 책임PD C씨는 2010년 6월 보직이 변경됐다”며 “국정원이 문건을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보고한 뒤 문건 내용이 일부 실행된 것”이라고 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이동관 특보는 문건 지시 의혹을 부인했다. 특보실에 따르면 “이 특보는 과거부터 해당 문건에 대해 요청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본 적도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보면, 국정원 국익전략실 여론팀에서 근무한 A씨는 해당 문서를 놓고 “2010년 5월28일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요청해 작성된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이 보고서를 요청한 이유는 당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성향의 KBS 내부 인사를 솎아내겠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A씨는 2010년 6월3일자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문건의 중간 결재자였다.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작성된 언론 관련 문건은 KBS 건 말고도 많다. 경향신문은 “이 특보가 홍보수석으로 재직한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 사이 ‘홍보수석 요청’ 또는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작성된 문건이 다수 확인된다. 대표적인 문건이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등”이라며 “홍보수석실이 문건 작성을 요청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으나 이 특보가 홍보수석일 때 홍보수석실이 국정원으로부터 문건을 보고받은 사례도 수십 건에 이른다.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MBC 좌편향 출연자 추가 퇴출 확행> <좌편향 방송인에 대한 온정주의 확산조짐 엄단> 등”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불법사찰에 대해선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홍보수석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윗선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며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과거 이명박 정부 홍보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공영방송 운영에 부당 개입한 정황은 당시 사건 증거기록에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4면 기사.

4면 기사 <“다른 정파 탄압은 범죄”라던 윤 대통령, 이동관 임명으로 “지금은 아니다”할까>에서 경향신문은 이 특보의 법적 처벌 가능성까지 짚었다. 박근혜 정부 때의 ‘블랙리스트’ 사건 때도 지금처럼 반대편을 규정하고 배제하려 했던 움직임이 위법이라는 수사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의 직권남용이 처벌받은 대표적 사례는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 벌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며 “당시 특검의 수사팀장이 윤석열 대통령이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특검에 파견돼 일했다”고 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당시 특검팀의 이런 입장에 비춰보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고 공영방송을 ‘좌편향’으로 낙인찍고 공영방송 인사에도 관여한 정황이 보이는 이동관 특보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하는 건 윤 대통령의 자기 부정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 특보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지난 2019년 7월 채널A 시사방송에 출연해 윤 대통령을 향해 ‘이런 패거리 문화에 물든 검사가 이전 수사는 제대로 했을지 의심스럽다’고 발언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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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 왜일까?

[프레시안 books] <WAKE>, '니그로 계집'의 이야기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3.06.27. 06:23:59 최종수정 2023.06.27. 06:32:43

 

"배 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1700년대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특수한 상품을 가지고 무역을 했다. 흑인. 노예무역 산업에서 흑인은 배에 싣는 '짐짝'이었다. 빼곡하게 쌓아 최대한 많이 운송할까, 아니면 적재량을 낮추더라도 상품이 최대한 죽지 않도록 여유 공간을 내줄까. 백인들은 수백 명 흑인의 효과적인 적재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다만 어떤 백인들은 바로 그 짐짝에 의해 바다 위에서 최후를 맞았다. 노예들의 선상반란. 계량사학자들은 400년여 동안 쌓인 3만 6000건 이상의 노예무역선 항해자료를 분석해 "항해 열 건당 최소 한 번은 반란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대서양의 망망대해에서, 구속된 노예들이, 대체 어떻게 반란을 일으켰을까? 

 

역사학자 리베카 홀은 노예반란에 대한 수많은 기록 속에서 포착된 특이한 경향성에 주목한다. "배 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재차 강조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노예무역선에 탄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놀란 듯이 되묻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노예제를 연구해온 사학자들은 모두가 이 사실을 "직관에 어긋나는", "통계적인 우연"으로 치부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록에서 반란의 주동자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노예의 후예이자 현 시대의 흑인 여성 학자인 리베카는 달랐다. 그는 학자란 이들의 '직관'이 "여자를 향한 편견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적 편견을 버리고, 왜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더 많이 일어나느냐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면 어떻게 될까?"

 

기록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1789년 영국 추밀원 고문관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인 남성 노예는 족쇄를 채워 주갑판에 둔다. 여자나 여자아이는 족쇄 없이 선미 갑판에 둔다." 노예상들은 여자들은 싸울 수 없다고 믿어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 그리고 긴 항해 기간 동안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손닿는 곳'에 뒀다.

 

싸울 수 없는 약자, 강간과 성폭력의 대상, 그래서 선원들의 '특전'으로 취급된 여성노예들은 그렇게 족쇄 없이 무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경계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가장 낮은 위치, 그곳에서 여자들은 무기에 접근하고 반란을 계획하고 폭동을 추동했다. 바다 한 가운데 반란의 결과는 죽음뿐이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역사가들은 이 같은 반란 덕에 '팔려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노예가 최소 백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웨이크(WAKE)>는 "노예무역으로 세워진 도시, 뉴욕"에서 억눌려온 조상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흑인 여성 역사학자 리베카 홀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노예의 후예인 그가 조상들의 흔적을, 특히 '반란을 추동한 여성 전사'들을 집요하리만큼 쫓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8년의 변호사 생활 동안 그가 목격한 '흑인여성을 향한 차별', 즉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정의를 뒤트는 모습" 때문이었다.

"무엇이 세상을 왜곡하는지 뿌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서구사회 인종·성 차별주의적 폭력의 근원적 당사자들을 추적해야 했다. 노예제 당시의 흑인 여성들, 그들의 동료 남성과는 달리 투쟁의 역사조차 역사서에서 삭제된 "이름없는 노예"들. 리베카는 그들을 "반란의 주인공"으로 다시 주목하고자 했다. 

 

"정의를 위해 싸운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물 밖으로 가지고 나와야만 한다." 

 

흑인이고 여성이라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현시대에 되살리는 일은, 즉 흑인 여성의 피해 자체를 전복하는 과정이다. 다만 리베카는 자신의 결심을 두고 이렇게 회고한다.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 자체가 싸움이 되리라는 것도 모르고..." 

 

실제로 노예제에 맞서 싸운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것을 복원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또 다른 고통과 피해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백인 남성들이 기록한 '승자의 역사'에선 아무도 흑인의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의 이야기는 철저히 말살 당했다. 

 

"두 겹으로 지워져 도무지 보이지 않는"(홍한별) 역사를 찾아나서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여기에 승자의 역사 위에 세워진 현대의 서구사회에선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춰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문제까지 겹친다. 

 

리베카는 찾아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이름과 행적, 그들의 투쟁과 최후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흑인 여성에겐 어떤 기록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이 세계에 여전히 만연한 "노예제의 여파"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처형당한 노예의 재판 기록을 보기 위해 찾아간 형사법원 서기실에선 흑인 여성의 입장을 거부한다. 노예라는 '자산'을 피보험 상품으로 거래했던 영국의 보험회사들은 그 기록을 굳이 들춰내려는 리베카의 연구에 대해 그 어떤 협조도 거부한다. 그의 좌절이 책에 실린다.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세라인지 에비게일인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여자는 니그로 악마, 니그로 계집이라고만 언급되었다." 

 

리베카의 고군분투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가령 리베카는 1707년 퀸스 카운티 뉴타운의 지주 윌리엄 핼릿 2세의 노예들이 일으킨 봉기를 추적하면서 당시 여성 노예들의 사회적 처지와 그 구조성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파악한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백인 일곱 명이 살해 당하고 노예 네 명이 처형된 이 사건은 이후 '노예들의 음모를 방지하기 위한 법령', 즉 구체적인 노예'제'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는 주요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이 일은 노예 반란의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왜일까? 이유를 알기 위해 리베카는 사건을 더 자세하게 뒤쫓는다.

 

사건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은 남자 주동자 인디언 샘이었으며 여자는 '니그로 계집', '니그로 악마'라고만 언급됐다. 사건을 보고하는 정부 내 서신 속에서 샘과 니그로 악마 등 이들의 최후를 알 수 있었는데, 4명의 남자들은 교수형을 당했고, 여자인 니그로 악마는 화형대에서 화형 당했다. 질문이 꼬리를 문다. "왜일까? 왜 여자는 화형을 당했을까?" 리베카는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답을 찾는다. 

 

"1352년 에드워드 3세가 여자가 남편이나 주인을 살해하면 그 살해는 반역이며, 그에 따른 처벌은 화형이라는 법령을 만들었다. 이런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된다. 여자의 남편이나 주인은 자연 군주로 간주하므로, 남편이나 주인을 죽이는 것은 국왕을 죽이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와 '반란'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한다. 니그로 악마는 몇 백년 전의 법을 통해 반란죄로 화형을 당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사건은 어떤 역사서에서도 "반란으로 분류되지 않"았고, 어떤 주목도 받지 못했다. "주동한 사람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여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여자가 감정이 상해 울컥해서 주인을 살해할 수는 있지만, 그건 반란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반란을 획책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역사가들은 여자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을 보았더라도 그냥 사적인 가정폭력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저항은 오직 남자들만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노예를 배에 싣고 대륙으로 운송한 상인들도, 노예를 공급 받아 노예로 부린 지주들도, 노예의 반란을 본국에 보고한 주지사들도, 그 보고를 받은 정부 인사들도 "대체로 여자 노예들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몰랐다." 그 일련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들은 여성의 이야기를 "직관에 어긋난다"며 기록에서 배제했다. 그렇게 생긴 역사의 공백을 이제와 찾으려 하자, 백인 남성 중심의 서구사회는 그조차 가로막았다. 

 

흑인 여성으로서 리베카는 결국 자신 또한 '두 겹으로' 지워진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인식한다. 과거를 추적하던 그를 과거가 오히려 추적해온다. '니그로 악마'의 기록을 찾으려 찾아간 퀸스 카운티 형사법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리베카는 미셸 롤프 트루요의 격언을 되뇌인다. 

 

"권력의 극치는 불가시성일지도 모른다. 궁극적 과제는 그 뿌리를 밝히는 것이다." 

 

탁월한 능력과 투철한 의지를 갖춘 역사학자에게조차, 과거와 현재의 장벽을 넘어 흑인 여성의 온전한 뿌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노예의 후예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WAKE>는 그 고민의 과정이자 하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리베카는 당대의 주변 기록들을 최대한 뒤지고 뒤져, 그림 작가 휴고 마르티네스의 손을 빌려, 거기에 본인의 상상과 추정을 더해 공백의 역사를 채워 넣었다. 세라와 아비게일과, 니그로 악마와, 선상의 여자 반란자들이 반란을 결심하고 계획하고 추동하며 마침내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들이 책에는 빼곡히 담겼다. 결국 이 책은 그들 본인은 물론 그들 후손의 "미래를 위해" 싸운 여자들의 이야기이며, 가까스로 그 미래를 살아내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단한 노력 끝에 과거와 미래의 여자들이 만나는 일은,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공고한 구조에도 균열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책의 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과거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에 민감한 한국 독자들에겐 더욱 특별한 감회를 주기도 한다. 옮긴이 홍한별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EO, 아픈 역사를 마주할 때, 모순을 인지할 때에만 가능한 인식이 있다. 지워져서, 감추어져서, 억눌려서, 혹은 몰라서 아직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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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노인들의 마지막 소망

[2023 글로벌 리포트 - 다가올 미래 '老월드'] 행복 국가 핀란드의 노인들

23.06.27 07:06최종 업데이트 23.06.27 07:0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계 각국의 노년층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노년의 삶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각국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노인의 경험을 사회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오마이뉴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전 세계 노년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 2017년 7월 29일,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한 핀란드 쇄빙선 MSV 노르딕카에 핀란드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2018 세계 행복 보고서'가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부패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156개국의 행복도 순위를 매긴 결과 핀란드가 살기 좋은 나라 순위 1위에 올랐다. ⓒ 연합뉴스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계 최고의 사회보장과 복지 시스템이 작동하는 북유럽, 그중에서도 핀란드는 국제연합(UN)이 발표하는 세계 행복지수 1위를 6년 연속 차지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서 노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떠할까. 고령화 추세는 핀란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21년 핀란드 인구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전체의 22.89%였고 2050년에는 28%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핀란드에서 은퇴하기 전 큰 가게 종업원으로 일했던 부인 세이야(82)씨와 조그만 사업을 했던 남편 타우노(85)씨의 노후생활을 들여다봤다.

타우노씨는 20년 넘게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할머니의 간호를 받으며 함께 살던 할아버지의 상태가 5년 전부터 많이 악화되면서 할머니가 집에서 손수 돌보기가 어려워졌다. 2년 전 타우노씨는 사회복지사의 상담과 담당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공립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현재는 세이야씨만 홀로 집에서 살고 있다.
남편이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부인이 직접 돌봤기 때문에 핀란드 정부로부터 매월 가족 돌봄 보상금으로 세전 1700유로(238만 원), 세후 1450유로(203만 원)와 여러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물론 환자나 장애인의 증상 정도에 따라 돌봄 보상금이 달라진다. 타우노씨는 파킨슨병을 오래 앓은 중증 환자인 데다 늘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등 정도가 심해 지원 한도 최대치를 받았다. 시마다 다르지만 가족 돌봄 최저 보상금은 2023년 기준 월 439.70유로(62만 원)다.

타우노씨가 공립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세이야씨가 받던 가정 돌봄 정부 지원금이 끊겼다. 그리고 현재 타우노씨 연금의 85%가 공립요양원 생활비로 들어간다. 남편을 집에서 돌보던 기간에 세이야씨는 일반 직장인처럼 1년에 최장 한 달씩 휴가를 내 가정 돌봄에서 벗어나 쉴 수 있었고 남편은 시에서 정해준 임시 거주 요양소에 머물렀다.

핀란드 노인 대부분은 가능하면 오랫동안 집에서 노후를 보내길 희망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 권장하고 지원한다. 그러나 돌봐줄 가족이 없거나 홀로 자립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공립요양원 입주를 신청할 수 있다.

핀란드의 의료 보건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할 책임을 진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세금과 지방세로 재원을 충당한다. 공립요양원 입소자는 소득과 관계 없이 본인 연금의 85%를 요양원 거주비로 매달 지급해야 한다. 세이야씨는 남편 타오노씨의 연금 중 85%를 요양원에 지급하고 남은 15%로 세이야씨의 의복과 약품, 기타 위생 물품 등을 구입한다.

공립요양원은 사립요양원 비용의 절반 정도
 

▲ 부인 세이야씨(왼쪽)와 남편 타우노씨. ⓒ 권보미


정부 요양 시설에서는 개인이 내는 비용과 상관없이 동등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따라서 평소 받는 연금이 적은 사람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금액이 커지는 셈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요양원과 별도로 사립요양원이 있다. 전액 자부담으로 한 달에 3000유로(420만 원)에서 많게는 6000유로(840만 원)까지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24시간 집중 케어가 필요한 경우 한 달 평균 5000유로(700만 원) 이상 청구된다.

핀란드에는 현재 공립요양원 955개와 사립요양원 1034개가 운영 중이다. 공립요양원은 사립요양원 비용의 절반 정도다. 비용이 낮은 대신 공립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의사 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보호자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요양원에 가려면 길게는 1년씩 기다리기도 한다. 

또한 핀란드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편의를 돕는 '서비스 바우처'(빨벨루 세뗄리)도 있다. 의료 보건기관에서 사용하거나 외부 인력의 가정 방문 도움을 받을 때 쓸 수 있는 무료 바우처를 제공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지원한다. 

간호조무사나 복지사의 방문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들이 이를 많이 이용한다. 서비스 바우처는 신청인의 소득과 연금, 매달 지출경비 등을 계산해 받는 것으로 개인마다 금액에 차이가 있다.

간호조무사의 가정 방문은 하루 최대 4차례 가능한데 주로 10~20분씩 방문해 약 지급이나 식사, 화장실 가는 것 등을 돕는다. 생활이 어려운 연금 수령자는 시에서 무료로 식사도 배달해 준다.

세이야씨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요양원에 있는 타오노씨를 거의 매일 방문한다. 보통 두 명의 간호조무사가 와서 휠체어에 의존하는 남편을 돌본다.

남편 타우노씨의 하루는 침대에서 아침 식사인 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후 세수, 면도, 화장실 가기, TV 시청, 점심 식사, 산책, 낮잠, 간식, 저녁 식사로 이어진다. 여러 약을 복용한뒤 잠시 TV를 보다가 잠드는 것이 일상이다. 필요하면 수시로 간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치매나 중증 환자의 경우 24시간 간호사와 의사가 상주하는 특수 요양원이나 병원에 배정되어 집중 관리를 받기도 한다.

휠체어에 앉은 타오노씨와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음식을 떠먹이는 일은 주로 세이야씨 몫이다. 그녀가 매일 요양원을 찾는 이유가 있다. 요양원 직원 숫자가 적은데 할 일은 많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남편 산책이나 밥 먹이기 등을 돕는다고 한다.

공립 요양원 시설이나 서비스에 불만이 없는지 묻자 세이야씨는 "전반적으로는 만족하고 불만이 없다"면서도 "물리치료사가 와서 그룹 재활치료는 해주지만 개인 치료 시간이 없어 아쉽다"면서 "한 달에 최소 6번 정도 남편에게 개인 재활치료 시간이 제공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자부담으로 물리치료사를 이용하면 시간당 100유로(14만 원)를 내야 하기에 부담이 크다. 사립에 비해 공립 요양원은 필수적인 사항만 제공되고 서비스 선택과 폭이 제한적이다. 지난 4월 1일 개정된 핀란드 사회보건법에 따르면 요양 보건 시설의 노인 1인당 최소 직원은 0.65명, 오는 12월부터는 0.7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세이야씨 인생에 있어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나 자신의 건강과 가족 손주들이다. 매일 매일 의미 있게 잘 살아가는 것, 죽기 전까지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게 꿈이다. 그 이유는 남편 타우노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가지 않기를, 그를 끝까지 잘 돌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공립병원과 사립병원의 의료 수준 차이는 크지 않아
 

▲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는 시니까씨 ⓒ 권보미


두 번째로 만난 시니까(74)씨는 슈퍼마켓에서 은퇴하고 남편과 살았으나 16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집에서 살고 있다. 노인성 간질로 오래 고생한 남편은 처음엔 시니까씨의 돌봄으로 집에서 지내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 집중 관리를 받았다.

남편과 사별 후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 중심가 아파트에서 현재의 변두리 원룸 아파트로 옮겨 살고 있다. 연금 수령액은 월 세전 1750유로(245만 원)로 은퇴 직전 소득의 약 70% 수준이다.

핀란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노인 평균 연금 수령액은 월 1845유로(259만 원)다. 시마다 가족 구성원 수마다 다르지만 성인 기준 1인 월급이나 연금이 2119유로(297만 원)를 넘지 않으면 누구나 거주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

시니까씨는 건강하기 때문에 연금과 거주지원금 외 다른 지원금이나 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필요시엔 병원이나 사회복지 관청에 가서 상담 후 사회복지사나 간호사의 가정 방문 돌봄이나 무료 서비스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은퇴 후 받는 연금이나 가정방문 돌봄 서비스 등 사회보장이 잘 되어있는 핀란드에서도 젊어서 노후 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지 묻자 시니까씨의 대답은 "물론 준비해야 한다"였다.

핀란드에선 대부분의 의료 보건 서비스를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공립병원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 고관절이나 무릎 정형수술 등을 공립병원에서 받으려면 경우에 따라 1년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사립병원을 찾는 경우가 생긴다. 사립병원 이용비가 10배 이상 월등히 높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있어야 이용이 가능하다. 일반적 수준의 공립병원과 사립병원의 의료 수준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니까씨에게 핀란드에서 은퇴 후 노년기를 살아가는 노인으로서의 삶은 어떠한지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핀란드에서는 본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집에서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살고 싶지만, 나중에 요양원에 들어갈 것을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는다. 만나서 교류할 친구들이 아직 많고 현재 건강해 좋아하는 예술, 스포츠 취미 활동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홀로 사는 고립된 노인들의 외로움은 종종 들어봐서 안타깝다."

사회 전체가 노인을 돌본다
 

▲ 핀란드는 꿀뚜리 꿈미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픽사베이


사회적 문제인 노인들의 외로움과 소득 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화생활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핀란드에서는 '꿀뚜리 꿈미'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꿀뚜리 꿈미'는 문화생활을 함께 하는 친구, 후원자라는 뜻이다.

먼저 이 프로그램이 후원하는 전시나 영화, 연극, 공연, 스포츠 경기 등 문화생활을 같이 할 친구의 나이와 성별을 정해 신청한다. 이후 맺어진 '꿀뚜리 꿈미'와 함께 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고 함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꿀뚜리 꿈미'는 혼자사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사회적 교류와 상호작용을 촉진시킬 수 있는 문화체험 공유 프로그램이다.

2013년 지방의 문화단체에서 고안한 아이디어로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현재는 많은 지역 지자체에서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노인뿐 아니라 이제는 남녀노소는 물론 핀란드 사회가 익숙지 않은 이민자들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알루에 할린또 비라스토(지역 행정감시 기관)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띠나 스트란트씨와 선임 책임자 빠이비 바이니오씨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알루에 할린또 비라스토는 핀란드의 8개 정부 부처를 대표하는 지역 행정 기관으로 정부를 대신해 여러 공공 및 민간기관이 적법한 운영을 하는지 현장조사와 감시, 감독을 한다. 평소 시민들의 불만도 접수한다. 조사 결과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시정조치, 개선명령 심지어는 즉각 운영 중단 명령도 내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시 경찰과 함께 사태를 조사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시민 불만 사항은 요양원 직원 숫자 부족으로 인한 돌봄 서비스의 양과 질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사립 요양원의 직원 부족 등으로 인한 불만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공립 요양원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들이 접수되고 있다. 이 분야의 낮은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한 구직 기피, 요양원 서비스의 양과 질의 저하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세계 최고의 행복 국가'라는 핀란드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화와 질병, 사별로 인해 겪는 노년기의 고독과 요양원 노동력 부족 문제는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핀란드에서는 병든 노인을 가족이 홀로 짊어지지 않고 사회보장 시스템 안에서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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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부지 경계 이미 “기준치보다 9배 오염”...그런데 기준치 이하로 방류?

전문가가 일본 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해 “사기극”이라 말한 이유

정의당 TF는 지난 23일 도미오카 호텔에서 나가사와 히로유키 오사카부립대학 명예교수 등을 만나 일본 오염수 방류의 5가지 중대 위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정의당
일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사능 농도를 국내·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기준 이하로 희석해 방출하면 문제없다는 입장인데, 이미 후쿠시마 원전 부지경계에서 측정된 선량이 일본 국내법 등에서 허용하는 기준보다 3~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기준치를 한참 넘어섰는데, 일본과 IAEA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는 기준치 이하로 방류하면 된다는 선전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26일 정의당 후쿠시마오염수무단투기저지TF(이하 TF)에 따르면, 방사능 연구 전문가인 나가사와 히로유키 오사카부립대학 명예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법령 위반”이라고 밝혔다.

 

 

 

부지경계에서 측정 선량 2.9~8.9mSv
방류 기준치 1mSv보다 3~9배 오염
전문가가 “사기극”이라고 말한 이유


앞서 정의당 TF(단장, 강은미 의원)는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 23일에는 일본 내 방사능 연구 전문가인 나가사와 히로유키 오사카부립대학 명예교수와 후리츠 카츠미 일본방사능영양학회 의사 등과 만나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출의 ‘5가지 중대한 위반’에 대해 청취했다.

5가지 중대한 위반 중 하나가 일본의 선량고시였다.
일본은 일반인의 연간 피폭선량한도를 1밀리시버트(mSv)로 정하고 있다. 이 실효선량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것은 자연방사선과 X-ray 촬영 등에 따른 의료피폭뿐이다. 하지만 올해 6월 1일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경계 모니터링에서 측정된 연간 피폭선량은 이미 최소 2.9밀리시버트에서 최대 8.9밀리시버트라고 나가사와 히로유키 교수는 밝혔다.

이미 기준치보다 3배에서 9배가량 높게 오염됐기 때문에, 추가로 방사성물질을 배출하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과 IAEA는 마치 이번에 추가로 방류하는 오염수만 고려하면 된다는 것처럼, 방류 오염수의 농도만 기준치 이하로 낮추면 된다는 식의 선전전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정부·여당이 자국민을 상대로 이 선전전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중의소리는 이 같은 문제를 지난 6월 9일 자 기사에서 다룬 바 있다. (▶ 기사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짜 문제, 10년째 방사성 물질 새고 있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원자로 주변에 오염수를 보관하는 원통형의 탱크 자료사진 ⓒ뉴시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평가해야 하는 대상은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영향”이라며 “기존에 (방출된 방사능이) 1000이고 이번에 1이 방출된다고 하면 1001의 결과가 안전 하느냐를 봐야 하는 것이지, 이번에 방출하는 1만 보고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IAEA가 이 같은 문제점을 가리고 이번에 일본이 방출하겠다는 오염수에 관해서만 평가하고 있는 점과 관련해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한 소장은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라는 게 (오염수가) 인류사회나 환경에 영향이 없기 때문에 방류해도 된다는 게 기본 전제이지 않나”라며 “말은 이런데, (실제 평가를 한 것은) 환경영향평가가 아니라 방류성능평가만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이 같은 문제는 정부가 일본 측에 요구해서 공개해야 할 정보인데 정부가 하지 않고 야당에서 정보를 확보해서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한 소장은 지적했다. 한 소장은 “이것을 (정부가)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일본 측에 요구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의당은 이날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한 일본 원정투쟁단 보고회에서 이미 선량이 기준치를 넘어 법령위반이라는 것 외에도 일본의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이 △ 런던조약 등 국제법 위반 △ 2015년 경제산업성 대신 대리 및 도쿄전력 사장의 문서확약 위반 △ 서브드레인 및 지하수드레인의 운용방침 위반 △ 후쿠시마 제1원전 특정 원자력시설과 관련된 실시 계획 위반 등을 짚으면서 오염수 해양투기를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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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단수 외교와 한국의 하수정치(1)

  •  이정훈 편집기획위원
  •  
  •  승인 2023.06.26 09:38
  •  
  •  댓글 0



 

1. 전환시대, 거대 위기의 징후

2. 신냉전, 미국 정치외교의 다급함과 무리수

3. 시진핑 등장과 미국의 반세기 중국전략의 실패

 

1. 전환시대, 거대 위기의 징후

나라의 위기에도 종류와 수준이 있다. 윤석열 정부의 내외정책 실책위기는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가히 망국적이다. 그 무모함도 문제지만 검찰독재의 후안무치와 적반하장의 뻔뻔함은 기시감이 있다. 애써 잊으려던 전두환, 노태우 시절의 기억마저 새삼 돋아난다.

지금 세계는 일대 전환기이다. 소련붕괴에 버금가는 새로운 전환기의 입구에 서있다. 미국이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빠르다. 소련도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니다. 요즘 미국은 자기부터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무너지는 미국 패권 유지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새로운 적을 만들어 갈라치고, 동맹부터 등쳐먹는 것이 요즘 미국의 행태이다.

유럽과 나토 회원국들조차 앞으로 동맹을 외치고, 뒤로는 중국에 줄 서며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낡은 공식을 과감히 버리고 각자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현 국제정세의 뚜렷한 모습이다. 이러한 국제정치 흐름에 역행하는 유일한 정부가 한국의 윤석열 정부다. 가히 ‘맹동주의’ 외교노선이라 볼 수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치에 구태의연한 숭미 의존적인 자세로 임하며, 외교마저 국내용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

국민들은 일찌감치 윤 대통령에게 공정이나 거창한 국정은 기대치 않은지 오래다. 그 인간성의 저열함과 무지함도 이미 헤아리고 있다. 국민들은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경우 발생하는 국가위기와 민생고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권이 미국에 아무리 충성해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미국의 윤 정권에 대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은 반복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기대와 다르게 미국은 스스로 만든 신냉전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더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미국의 허세와 관계없이 시간이 갈수록 미국 대외정책의 일관성은 떨어지고 변덕과 가변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차후 몇 차례 칼럼에서 중국과 북한(조선),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가 미국이 추동하는 현 신냉전 국제정세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대비하고 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망국적 맹동주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한국을 실제 망국의 위기로 몰고 가는 지를 추적해본다. 신냉전 시대 북한(조선)이 위기가 아니라 한국이 정말 위기다.

한국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만만한(?) 상대인 중국의 대미 전략이 얼마나 장기적이고 치밀한지부터 먼저 살펴보자.

 

2. 신냉전, 미국 정치외교의 다급함과 무리수

최근 ‘다극화’와 ‘신냉전’은 국제정치의 유행어로 되었다. ‘다극화’와 ‘신냉전’이란 무엇이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에 대한 해석은 물론 다양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미국이 초래하고 추동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일극체제가 몰락하는 현 국제질서를 흔히 ‘다극화(多極化)시대’라고 표현한다. 일극체제(Unipolar system)의 상대개념이 다극체제(Multipolar system) 또는 다극화이다. 다극화란 개념은 진보만의 용어가 아니라 이미 십수 년 전부터 골드만삭스 같은 민간 경제연구소, OECD, 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기관 보고서에서도 공개적으로 쓰고 있다. 미국몰락과 다극화 현상은 이미 보수, 진보와 관계없이 공유하고 있는 개념이다. 단지 미국의 몰락방식과 속도가 현재 전환기 국제정세의 쟁점일 뿐이란 이야기이다.

다극화와 함께 근래 국제정치의 또 다른 이슈는 ‘신냉전’이란 개념이다. 미소냉전도 소련붕괴로 끝나고 유일패권 미국도 저무는데 왜 신냉전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하는 것일까? 신냉전은 지는 해 미국이 순리적 후퇴를 거부하며, 이 추세를 뒤집으려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는 무리수 때문에 발생한 국제정치현상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이러한 전략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이는 제국의 말기적 현상이며 제국은 스스로 후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증명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신냉전 전략은 기존 반미국가 북한(조선), 이란,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적대 정책에 더해, 대만을 자극하며 중국을 노골적으로 포위 봉쇄하고 나토(NATO)의 동진(東進)으로 러시아를 자극하며 적대전선의 세계체제(신냉전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특히 핵 강국인 중국, 러시아, 북한(조선)에 대한 적대전선을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시대처럼 포위 구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위기, 한반도 전쟁위기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추구로 현실화되었다.

미국은 이미 자신의 힘만으로는 미국 패권전략이 더는 유지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토, 일본, 호주 등 하위 동맹을 부추겨 오히려 새로운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편 가르기 신냉전 국제체제가 미국과 대서양 기득권 체제에 유리하다는 이기적 계산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절대 미국 혼자 무너질 수 없다는 ‘물귀신 전략’이다. 미국 국내적으로 미국경제와 제조업을 살기기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칩4(Chip4)와 같은 노골적 반중 보호무역 조치를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미국 재부흥전략으로 포장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 국내외적으로 무너지는 미국을 막기 위한 전략이다.

여하간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성공하고 있을까? 미국의 의도와 다르게 신냉전 전략은 미국을 더 빨리 몰락시키고 있다. 오판과 무리수는 항상 실패를 초래하는 법이다.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쟁인 우크라이나전쟁에서 CNN, 뉴욕타임즈 보도를 숭상하는 한국 언론은 젤렌스키가 승리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현실은 우크라이나의 패전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배후 미국이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거부하며 우크라이나는 더 많은 희생과 망국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패색이 짙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전화, 즉 분단 한국과 같은 휴전상태’를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전쟁종결이 아닌 휴전상태를 원치 않으며, 미국이 패전과 평화협정을 거부한다면 일단 시작한 전쟁(특수군사작전)을 완전한 승전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시리아에서도 미국은 결국 졌다. 프랑스, 독일 등 EU 주요국 정상들이 중국과 협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며 나토는 내부로부터 분열되고 있다, 독일은 최근 이례적으로 국가안보전략을 공개하며 중국이 독일의 경쟁자이자 파트너라고 발표했다. 프랑스는 브릭스 가입을 타진 중이라는 보도가 들린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앙숙 관계인 이란,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전격 정상화했다. 전통적 종미국가 이스라엘, 사우디아리비아, 튀르키예(터키)도 미국의 중동정책에 반기를 들고 따르지 않는 기이한 풍경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한정된 지면상 미국 달러패권의 몰락은 따로 다루지 않으나, 올 8월 브릭스 회의(BRICS)를 통해 대안 기축통화 준비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면서 달러패권의 붕괴도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3. 시진핑 등장과 미국의 반세기 중국전략의 실패

미국의 신냉전 전략이 심화될수록, 그 중심 전선인 중, 러, 북(조선)의 대응도 격렬하며 전략적이며 장기적 대응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먼저 중국은 신냉전 정세를 어떻게 보고 대응하는지를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중국의 외교정책 변화를 크게 보면 모택동 노선(1949~1977), 등소평 노선(1978~2021), 20차 중국공산당 대회 이후의 시진핑 노선(2022~)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시대는 1기(18차당대회), 2기(19차 당대회), 3기(20차 당대회)의 각 정책 기조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시진핑 집권 3기는 바이든 정부의 신냉전 강화전략과 맞물려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진행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 연설을 인용해보자. 그는 “외부 세력이 중국을 괴롭히면 14억의 강철 만리장성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올해(2021년) 빈곤의 완전한 퇴치를 통해 공산당의 첫 번째 100년 목표인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두가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실현을 달성했고, 2049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의 두 번째 100년 목표를 앞두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신냉전시대 중국의 외교노선도 변하고 있다. 등소평이래 중국의 외교 전략은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로 요약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미국에 도전하지 않고 와신상담하며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중국의 태도는 후진타오 시기 평화적으로 우뚝 서겠다는 ‘화평굴기‘(和平崛起)로 조금 변했지만, 중국의 대미 외교노선은 본질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국이 시진핑 집권 3기부터는 질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만의 무력통일 가능성 언급과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고 이를 방해한다면 미국과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공식표명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전쟁은 벌인다면 그것은 미 본토와의 전쟁이 아니라 대만통일전쟁이다. 중국이 원자탄(1964년)과 수소탄(1967년)을 보유한 이후, 미국은 중국대륙과 전면 핵전쟁으로 승리한다는 가능성을 접었다. 이어 1971년 핑퐁외교가 시작되었고 1979년 중국과 미국은 수교했다.

미국은 모택동 주석 사망 이후 등소평(1978년) 개혁개방노선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시장 편입을 용인하고 본격 중-미경제협력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동조화(커플링) 전략이다. 쉽게 말해 ‘적과의 동침’이다. 이는 미국이 중소분쟁을 이용하며 소련과 중국을 분리시키기 위함도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도 소련처럼 내부로부터 자본주의 돈 바람으로 붕괴시키는 방도를 기대한 측면이 있었다.

미국의 예상대로 자본주의를 활용하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선부론’(先富論)은 빈부격차와 적지 않은 사회적 부패와 혼돈을 유발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2012년 당시 떠들썩했던 보시라이 충칭 당서기 사건은 상징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미국은 중국의 등소평 노선을 주시하면서 중국의 홍콩 문제, 신장 위구르 분리 독립, 대만의 분리 독립 문제 등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내세워 외부로부터 간섭하고 자극하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았다. 미국이 새로이 열린 중국의 글로벌 교류 협력의 공간에서 공산당 권력 내부에 친미 정치세력을 육성하는데 공을 들이려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던 중국이 시진핑이 등장 이후, 미국의 기대와 다르게 중국공산당 내부의 구심과 지도력을 확보하며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있다. 시진핑은 과거 거의 모택동 반열의 지도력을 형성하며 공동부유( (共同富裕=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와 당성, 사회주의 사상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2기(2017~2022)를 거치며 중국의 대외관계도 변했다.

특히 북중관계가 한반도 핵문제로 껄그러웠던 과거 북중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전통적 혈맹관계로 복원되었다. 특히 북한(조선)이 2017년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회담 전후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과 5차례 연쇄 회담을 진행한 후 북-중관계는 획기적으로 변했다. 이후 중국은 ‘6자 회담’과 같은 미국의 북한(조선) 포위 전략에 편승하는 외교형태를 중지하게 되었다. 미국이 더 이상 북핵문제를 UN안보리에 끌어들일 수 없게 되었다.

표면상 중국은 ‘쌍중단 쌍궤병행’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중국은 북의 핵 전략국가 지위를 인정하고 역으로 미국의 신냉전 기도에 북-중이 연대하며 맞서는 입장으로 극적으로 변했다. 중국은 지금 대 한반도 정책에서도 지난 등소평 식 남북 실리주의 외교를 뒤로하고, 전통적 조-중관계를 중시하며 북(조선) 중심의 외교로 선회하고 있다.

2022년 중국 공산당 20차 대회(전국대표회의)에서 시진핑은 지난 5년 및 10년을 “이례적이고 순탄하지 않으며 세계적으로도 백 년에 있을까 말까 한 대변화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현 국제정세를 ‘100년만의 대변혁기’(百年未有之大变局) 로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이 주도하는 ‘대서양동맹 시대’가 붕괴하며 일대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인식이다. 이 전환기를 적극적으로 대처해 미국의 일방주의를 극복하고 다극화를 추동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주동적으로 다자주의를 실현하여 새로운 21세기의 중심국가로 중국몽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100년만의 대변혁기에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위협’으로 정의하였다. 중국은 미국이 후퇴하는데 왜 국제불안은 가중되며 중국의 안보가 위협받게 된다고 보는 것일까? 중국은 ‘조화’와 ‘평화’를 강조하던 18차 당 대회나 ‘총체적 안보관’을 제시했던 19차 당 대회에 비해 더욱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과 군의 현대화를 역설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신냉전 시기 대만통일을 둘러싼 미-중 격돌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신냉전 추구와 그 구현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오커스(AUKUS)등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Belt and Road Initiative)과 남중국해, 동중국해 영유권과 대만통일전략에 대한 미국 중심의 전쟁준비 전략이며 대중 적대전략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20차 중국공산당 대회(2022년)는 중국 내정문제인 대만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임을 다시 분명히 했다. 이는 동북아에서 조선노동당 8차 당 대회(2021년)의 조국통일노선과 정확히 같은 기조이다. 북중이 대만과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수십 년 만에 같은 정세인식과 같은 기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이 자본으로 또 무력으로도 중국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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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찍던 15세 팔레스타인 소녀 조준 사살한 이스라엘군

2023년 6월 19일 이스라엘군이 조준 사살한 15세 팔레스타인 소녀. ⓒ사진=미들이스트아이

편집자주

1967년 이스라엘이 침공해 합병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가자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영토이지만 아직도 이스라엘군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불법이라고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이 곳에 이주시켜 이 땅을 완전히 차지하려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초강경 우파 정부가 정착촌 확장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지난 18일 정착촌 건설 승인을 국내 일반적인 개발 허가와 동일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더 빈번해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하루가 멀다하고 목숨을 잃고 있다. 미들이스트아이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Palestinian girl killed by Israeli sniper mourned by family who witnessed shooting

이스라엘군이 15살 사촌을 살해한 곳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제닌 난민 캠프의 집. 같은 나이의 말라크 나그니예는 거실에 앉아 사델 나그니예가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얘기하며 울먹였다. “사델은 내 여동생 같았다. 우리는 어디든 함께 다녔다. 사델은 마음이 곱고 인내심 있는 아이였다”.

사델은 말라크를 만나러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저격수가 집 앞 진입로에 있는 사델의 머리에 총을 쐈다. 사델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고, 군용 지프차 영상을 말라크에게 보낸 직후였다. 팔레스타인의 두 소녀는 19일 이스라엘군이 불법 점령지 서안지구의 제닌을 공격하는 동안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지프차 영상을 마지막으로 메시지가 끊겼다. 비명소리가 밖에서 들리자 말라크는 사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받아 사델이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말라크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사델은 아이였다. 이건 너무 잘못된 일이다. 남을 돕고 싶다던 사델은 구급대원 교육을 앞두고 있었다”. 말라크 옆에 앉아 있는 사델의 9세 남동생 모하메드는 창 너머로 누나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모하메드는 이스라엘군이 바로 앞에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고 한다. 모하메드는 “그들이 누나를 쏠 때 내 눈으로 직접 봤다. 나는 그 장면을 봤다. 누나는 내 유일한 형제였는데 그들이 누나를 죽였다”고 했다. 모하메드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서안지구 북쪽에 위치한 도시 제닌은 팔레스타인 저항의 중심지가 돼버렸다. 그리하여 제닌은 이스라엘 군대와 보안군의 주요 표적이 됐고, 이스라엘은 정기적으로 제닌을 공격했다. 이스라엘 군대와 보안군에게 제닌 주민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지난 19일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3시쯤에 침공을 시작한 이스라엘군은 10시간 동안 제닌을 공격했다. 수감 중인 하마스 지도자 자말 아부 알하이자의 36세 아들인 아셈 아부 알하이자를 체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습격이 한창이던 오전 8시 경에 모하메드는 아버지를 부르며 누나가 쓰러졌다고 외쳤다. 달려 나간 아버지는 절망에 빠졌다. 이마에 총알이 박힌 채 사델이 양팔을 벌리고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즉각 알았다. 사델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사델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고, 이틀 후에 끝내 숨졌다.

아버지는 목소리 높여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사델을 쐈을 때 그 애는 기도복을 입고 있었고, 누가 봐도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저격수가 사델을 조준했다. 사델은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에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델뿐만 아니라 모든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조차 없다”.

제닌의 모든 집에서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끊임없이 한다. ‘조심해, 조심해. 거리, 학교 심지어 집 안까지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사델은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자기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어린 아이를 죽이는 것도 봤고, 친구도 잃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사델은 늘 핸드폰으로 뉴스를 체크했다. 제닌의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말레크는 말했다. “이스라엘이 우리 땅에 와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어른을 죽여도 그런데 이스라엘은 심지어 아이들까지 죽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저항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19일의 공격에 투입된 이스라엘군은 약 200명이었다. 저격수가 옥상에 배치됐고, 군인들은 실탄과 수류탄, 최루탄을 쏘아댔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서안지구 공격에 아파치 헬리콥터도 동원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군이 죽인 제닌의 팔레스타인인은 7명이었다. 92명은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군은 8명이 부상을 당했다). 대부분의 희생자와 부상자는 머리, 목, 흉부와 배에 총을 맞았다. 이스라엘군은 사살을 목표로 총을 쏜 것이다.

파타 혁명위원회의 자말 후웨일(52세) 위원은 말했다. “이것은 학살이다. 세계 다른 어떤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도 사람들이 비난을 퍼붓고 항의했을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쳐들어오면 의사도, 아이들도, 언론인도 안전하지 않다. 옥상에 서 있으면 총 맞고 유리창으로 내다봐도 총 맞는다. 자기 집 안에 앉아 있어도 총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군은 테러리스트이자 잔인한 살인자다”

아이, 청년, 여성이 공격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보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이웃이자 자매, 형제다. 사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버지는 국제사회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전 세계가 사람들이 점령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그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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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건폭 1484명 검거’ 발표 뒤에 있는 진실은

  • 윤수현 기자 
  •  
  •  입력 2023.06.26 07:46
  •  
  •  댓글 1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한겨레, 구속영장발부율 주목… 보수·경제지는 받아쓰기

경향 “토끼몰이식 수사… 노동 홀대·탄압하는 단속 멈춰야”

KBS 수신료 분리징수 속도전에 “매듭, 자르기보다는 천천히 풀어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발표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 결과를 두고 언론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동아일보·매일경제 등 보수·경제지들은 1484명이 검찰에 송치되고 132명이 구속됐다는 사실 자체를 중심으로 기사를 썼다. 하지만 경향·한겨레는 숫자 이면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경찰의 영장 신청이 남발되고 있으며, 법원이 건설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구속영장의 절반가량을 기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5일 지난해 12월8일부터 200일간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 단속’을 실시해 1484명을 검거해 검찰에 넘겼다고 발표했다.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긴 피의자는 총 132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은 지난 6월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폭력경찰 규탄 및 불법행위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경찰 발표 받아쓴 보수·경제지… 경향·한겨레 발표 이면 주목

보수·경제지들은 26일 지면을 통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이들은 입건된 피의자들을 ‘건폭’으로 규정하고 경찰이 발표한 소식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매일경제는 23면 <돈 뜯고 협박…경찰 ‘건폭’ 1484명 입건> 보도를 통해 “이른바 ‘건폭(건설현장 폭력)’과 전쟁을 벌여온 경찰이 1484명을 붙잡아 검찰에 송치하고 이 가운데 132명을 구속했다”며 “이번 특별단속에서 유령 환경단체나 사이비 언론인 등이 적발되는 등 건설현장을 이권 창출의 대상으로 삼는 폭력행위가 무더기로 드러났다”고 했다.

▲6월26일 매일경제 23면 기사 갈무리.

▲6월26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갈무리.

동아일보는 12면 <‘건폭’ 단속 200일새 1484명 붙잡아 132명 구속> 보도에서 “검거된 이들 중 933명(62.9%)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소속이었다. 유형별로는 노조 전임비나 월례비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한 이들이 979명(66%)으로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외 서울신문(9면 <사이비 언론·유령 환경단체까지… ‘건폭’ 132명 구속>), 국민일보(12면 <‘건폭’ 200일 단속, 1484명 송치>) 등이 관련 보도를 냈다.

▲6월26일 경향신문 1면 기사 갈무리.

경찰이 발표한 숫자는 사실이지만, 모든 맥락을 담고 있다곤 할 수 없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경찰 발표의 이면에 집중했다. 경향신문은 1면과 8면 <‘건폭’ 단속 200일, 1484명 검찰 송치…경찰 특진경쟁 수단이 된 ‘특별단속’> 보도를 통해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반년 넘게 진행된 특별단속은 그러나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안전한 작업환경과 고용안정을 위해 노조활동을 해왔던 건설노동자들에겐 ‘건폭’이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노동자가 몸에 불을 지르고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6월26일 경향신문 8면 기사 갈무리.

경향신문은 이번 단속이 ‘매머드급’으로 진행된 점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특별단속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발표한 특진 배당 인원은 50명에 달했고, 지난달 90명으로 대폭 늘렸다.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 수사(52명)와 ‘마약류 범죄단속’ 수사(50명)에 할당된 특진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치”라고 했다. 건설노조 측은 경향신문에 조합원 대상 구속영장발부율이 낮다면서 “경찰이 특진과 실적 경쟁을 위해 ‘아무나 걸려라’ 식의 전형적인 투망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6월26일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또 경향신문은 사설 <200일 건설현장 수사가 남긴 것, ‘건폭 혐오’다>에서 “경찰은 이번 단속 결과 전임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한 불법 사례가 3분의 2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월 중간발표 때보다 송치 인원은 14배, 구속 인원은 4배 늘었다는 실적도 덧붙였다”며 “단속 종료를 앞두고 검거된 사람이 급증한 것은 경찰에서 대대적인 실적·특진 경쟁이 벌어졌음을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200일간의 ‘특별단속’에서, 경찰은 ‘건폭’으로 지칭한 대통령 말에 따라 건설현장의 구조적 불법행위를 폭력행위로 간주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며 “나아가 정당한 활동을 하는 노조마저 불법·폭력배·범죄 집단화하며 혐오를 키웠다.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토끼몰이식 수사로 혐의를 덧씌우고 꿰맞추기식 수사를 하는 것은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일과 상관없다”며 “안전하고 상식적인 건설현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노동을 홀대·탄압하는 단속은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6월26일 한겨레 1면 기사 갈무리.

한겨레 역시 1면 <‘건폭몰이’ 경찰 영장신청 남발… 법원, 절반 기각> 기사를 내고 “경찰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4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무더기’ 신청했지만, 실제 2명 가운데 1명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건폭몰이’에 앞장서 구속영장 신청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건설노조가 25일 작성한 ‘강요 및 공갈 혐의 구속영장 청구 현황’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건설노조 조합원에게 신청한 구속영장은 총 47건이다. 이 중 52.3%에 해당하는 23명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지난해 평균 구속영장 발부율은 81.3%다.

▲ TV수신료.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수신료 분리징수 속도전… “방통위, 대통령 친위대 행태”

정부가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분리징수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통상적인 기간(40일)보다 짧은 10일로 정했다. 현재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2명이 공석인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6월26일 한겨레 8면 기사 갈무리.

이에 대해 한겨레는 8면 <수신료 분리, 법제처 검토도 형식적 방통위의 입법예고 단축 주장 ‘복붙’> 기사에서 법제처가 방통위에 회신한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 내용을 공개했다. 법제처는 방통위가 보낸 입법예고 기간 단축 협의 요청 사유와 유사한 내용의 확인서를 보냈다. 한겨레는 “법제처가 하루 만에 방통위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옮긴 한 문장짜리 ‘검토 의견’을 낸 것”이라고 했다.

▲6월26일 한겨레 사설 갈무리.

또한 한겨레는 <졸속으로 점철된 ‘수신료 분리’ 속도전, 무책임하다> 사설을 통해 “‘졸속 추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논의를 거쳐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일을 대통령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상명하달식으로 추진한 탓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독립성이 보장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대통령의 친위대’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입법예고는) 대통령실이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티브이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지 11일만”이라며 “시행령 개정안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보고되고 단 이틀 뒤에 이뤄진 일이니 검토나 논의가 제대로 됐을 리가 만무하다”고 했다. 또 한겨레는 입법예고 기간이 10일로 단축된 것에 대해 “행정절차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입법예고 기간을 40일 이상 두도록 하고 있다. 방통위는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를 고려한 조처’라고 설명하지만, 현행 수신료 제도가 30년 가까이 유지돼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6월26일 경향신문 칼럼 갈무리.

홍진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은 칼럼 <매듭은 풀어야 한다>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숙고 없는 일방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부장은 이를 ‘고르디우스 매듭’에 비유했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던 ‘고르디우스 매듭’을 칼로 잘라버렸고, 이후 정복전쟁을 벌였다.

홍진수 부장은 “수신료 분리징수를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방송 환경이 바뀌고 KBS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분리징수가 아니라 아예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밀어붙일 일도 아니다. 수많은 논란 속에 수신료 ‘통합징수’가 30년이나 유지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수신료 분리징수를 논의하는 과정에선 그 이유였던 공영방송 재정 안정의 중요성, 공익 콘텐츠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진수 부장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알렉산드로스의 결단은 요즘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며 “‘복잡한 일을 간단하게 해결하면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의미다.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한 대제국은 그의 사후 바로 해체됐다.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렸기에 예언이 실현되다가 말았다는 설명이 따라온다. 매듭은 자르기보다는 천천히 푸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

▲인천광역시교육청 블로그 갈무리.

2800억 들인 ‘4세대 나이스’ 먹통 “교육당국 책임 물어야”

교육 행정정보시스템 ‘4세대 나이스’가 개통되자마자 접속 오류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에서 일선 학교들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4세대 나이스는 28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4세대 나이스’ 오류 속출… 공공 SW 대기업 참여 막은 예고된 참사>에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무리하게 시스템 교체를 진행한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을 방학이 아닌 학기 말에 급하게 개통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개발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개통 전 사전 점검이 부실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6월26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동아일보는 중소·중견 기업이 사업에 참여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근본적으론 지난 10년 동안 대형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막아 빚어진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중견·중소기업들이 개발한 대형 공공 SW 시스템이 시작부터 먹통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온라인 개학 때 시스템 과부하로 접속 오류가 이어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기업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6월28일 한국일보 8면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는 8면 <4세대 나이스 ‘부적격 판정 전력’ 업체에 맡겨… 교육당국 책임론> 보도를 통해 교육당국이 제대로 된 업체를 선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4세대 나이스 컨소시엄은 입찰 당시부터 적격 여부 논란이 일었다. 컨소시엄 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A업체는 다른 정부 사업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A사 컨소시엄이 4세대 나이스 개발 사업을 따낸 데에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가 유리하게 작용했다”며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시스템 구축을 대기업에 비해 개발 역량이 뒤처지는 중소기업에 맡긴 것이 이번 사태의 화근이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고 밝혔다.

▲6월26일 세계일보 사설 갈무리.

세계일보는 사설 <‘4세대 나이스’ 졸속 개통, 교육 현장 혼란… 대체 왜 이러나>를 내고 “교사들이 학기 중간에 시스템을 바꿀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시했는데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개편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예견된 참사나 다름없다”며 “교육 당국은 시스템을 조속히 안정시켜 교육 현장의 불안과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오류 원인 규명과 함께 그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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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최저임금인상, 윤석열정권퇴진” 결의

전국노동자대회서 “월급 빼고 다 올랐다. 너무 힘들다”

  • 기자명 김래곤 통신원 
  •  
  •  입력 2023.06.25 09:29
  •  
  •  댓글 4
 
민주노총이 24일 대학로에서 “월급빼고 다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철폐하라 비정규직!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정권퇴진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민주노총이 24일 대학로에서 “월급빼고 다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철폐하라 비정규직!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정권퇴진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민주노총은 24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월급빼고 다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철폐하라 비정규직!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정권퇴진”을 결의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하여 “월급 빼고 다 올랐다. 너무 힘들다. 노동자 서민의 시름과 고통이 가득한 시기”라면서 전기⸱가스를 비롯한 공공요금의 가파른 인상, 가계부채 2,000조, 소상공인 부채 급증, 재벌 사내보유금(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로 얻은 영업이익) 1,000조 돌파 등을 지적하면서 “물가폭등의 원인은 윤석열 정권이고, 그 수혜자는 재벌대기업”이라고 폭로, 규탄하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참가자들이 다양한 피켓들을 만들어 와서 대회 내용을 알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참가자들이 다양한 피켓들을 만들어 와서 대회 내용을 알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위원장은 계속해서 “비혼단신 가구의 생계비가 최저임금을 훌쩍 넘어서는데 노동자, 서민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항변하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이라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해소, 파견법 폐지, 간접고용 금지, 재벌 대기업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복지 강화, 노조권리 보장 등을 주장하였다.

끝으로 “졸속적인 최저임금 결정은 윤석열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면서 “윤석열 정권 퇴진이 최저임금 인상의 지름길”이며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자들을 투쟁으로 박살내자”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연대사를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연대사를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연대사를 통하여 “노동조합법 2,3조 개정과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국민의 다수를 정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서 “최저임금 인상하고 윤석열정권 퇴진에 함께하겠다”고 연대의사를 전하였다.

왼쪽부터 정용재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김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왼쪽부터 정용재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김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위원회의 파행적 경과를 설명하면서 정부가 지명한 권순원(숙명여대 교수) 대표간사는 69시간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이끌었다면서 공익위원을 규탄하였다.

김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최저임금 투쟁은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정책을 분쇄하는 전체 노동자의 투쟁”이라면서 “최저임금 12,000원 인상 쟁취하고, 비정규직 차별없는 세상,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고 결의를 다졌다.

하신아 웹툰노조,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정민정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위원장, 박동수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 노원구 아파트분회 조합원, 김영성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테스크테크지회 지회장 등이 현장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하신아 웹툰노조,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정민정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위원장, 박동수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 노원구 아파트분회 조합원, 김영성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테스크테크지회 지회장 등이 현장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표들이 산입범위 개악, 성별임금격차, 저임금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업종별 구분적용등 얼음조형물을 박살내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표들이 산입범위 개악, 성별임금격차, 저임금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업종별 구분적용등 얼음조형물을 박살내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날 대회는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현정희 위원장,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 서울본부 이현미 수석부본부장, 세종충남본부 문용민 본부장 등이 산입범위 개악, 성별임금격차, 저임금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업종별 구분적용등 얼음조형물을 박살내는 상징의식으로 끝마쳤다.

대표단과 참가자들이 대학로에서 을지로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표단과 참가자들이 대학로에서 을지로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회를 마친 대표들과 참가자들은 대학로에서 을지로를 거쳐 시청앞까지 행진하여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3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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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544] 헤인즈가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

[개벽예감 544] 헤인즈가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06/2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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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국가정보판단서는 어떻게 작성되는가?

2. 분석 기간을 왜 8년 단위로 끊었을까? 

3. 미 제국의 초췌한 몰골 드러난 국가정보판단서 

 

 

1. 국가정보판단서는 어떻게 작성되는가?

 

2023년 6월 15일 미 제국 제7대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에이브릴 헤인즈(Avril D. Haines)가 매우 중요한 국가정보문서를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했다.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문서는 국가정보판단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다. 

 

국가정보판단서는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최종적인 정보판단을 내린 최고 권위의 전략정보문서다. 국가정보판단서 이외에 국가정보평가서(National Intelligence Assessment)도 있는데, 후자의 중요도는 전자보다 한 급 낮다. 국가정보평가서보다 중요도가 더 낮은 국가정보문서들은 보고서(Report)와 비망록(Memorandum)인데, 이런 문서들은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전문이 외부에 공개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가 미 제국에 제기되었을 때 국가정보판단서가 작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는 국가정보판단서(NIE)에 의거하여 국가안보 문제를 결정한다. 미 제국이 침략전쟁을 도발할 것인가 아니면 침략전쟁을 자제하고 군사 지원에만 그칠 것인가 하는 엄청난 정치·군사 문제도 국가정보판단서에 의거하여 결정된다. 

 

이를테면, 2022년 7월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한 국가정보평가서(NIA)를 내부적으로 회람하였고, 그 국가정보평가서 중에서 극히 일부 내용만 2023년 6월 5일에 뒤늦게 기밀 해제하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하여 국가정보판단서보다 중요도가 한 급 낮은 국가정보평가서를 작성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전쟁을 미 제국이 직면한 최대의 국가안보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 미 제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무력 개입을 감행하지 않고, 젤렌스끼 종미우익 정권에 군사 지원만 계속하는 것이다.  

 

2023년 6월 15일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이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기밀문서다. 그 문서의 제목은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North Korea: Scenarios for Leveraging Nuclear Weapons Through 2030)이다. 2023년 1월 중에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은 이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했다. 제출된 날짜가 2023년 1월 며칠인지는 문서에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은 이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뒤에 부분적으로 공개하였다.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이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것은, 지금 미 제국이 조선의 핵무력을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로 여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으로 고도화된 조선의 핵무력을 미 제국이 직면한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전략적 정보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에 어떤 전략적 정보판단이 담겼는가에 따라 미 제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중대한 문제를 고찰하기 전에, 국가정보판단서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작성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정보판단서는 1979년에 창설된 국가정보협의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에 의해 작성된다. 국가정보협의회(NIC)는 18개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보고서를 종합, 정리하여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제출한다. 그러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가정보판단서에 의거하여 국가안보전략과 대내외 정책을 결정한다.  

 

▲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  © DNI

 

미 제국이 전 세계를 지배, 통제하기 위해 운영하는 18개 국가정보기관은 다음과 같다.  

 

1) 국가안보부문 정보사업을 담당한 7개 기관 - 중앙정보국, 국무부 정보조사국, 연방수사국 정보실, 법무부 국가안보정보실, 국토안보부 정보분석실, 에너지부 정보 및 반정보실, 재무부 정보분석실  

 

2) 군사 부문 정보사업을 담당한 11개 기관 - 국방정보국, 국가안보국, 중앙안보국, 국가정찰실, 국가지리공간정보국, 육군 군사정보단, 해군 정보국, 해병대 정보국, 해안경비대 정보국, 공군 제16군, 우주군 국가우주정보쎈터

 

위에 열거한 18개 국가정보기관은 1,930여 개의 사설정보 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정보사업을 벌이는데, 국가정보조직들과 사설정보 회사들에서 근무하는 총인원은 854,000명에 이른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 제국이야말로 핵무기와 금융자본과 정보조직을 틀어쥐고 전 세계를 지배, 통제하는 거대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정보협의회 책임자는 국가정보국장(DNI)이다. 국가정보국장은 국가정보계(intelligence community)를 대표하며, 다종다양한 국가정보사업(National Intelligence Program)을 감독하고 총괄한다.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국가정보기관들이 국가정보국장에게 각자 정보보고서를 제출하면, 국가정보국장은 그것을 종합, 정리한 대통령 일일 보고서(President's Daily Brief)를 작성하여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대면으로 보고한다. 국가정보국장은 대통령 보좌관으로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보고한다. 

 

2023년 6월 15일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는 국가정보협의회에서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의 도움을 받아(under the auspices of National Intelligence Officer for North Korea)” 작성되었다.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다는 말은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협의회에서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의 정보판단이 국가정보판단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가정보협의회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NIO)은 씨드니 싸일러 (Sydney Seiler)다. 그는 미 제국 국방언어연구소에서 우리말을 배웠고,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유학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그는 서울에서 10년 이상 살았다.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독보적인 정보분석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미 제국 국가안보국(NSA) 정보분석관, 중앙정보국(CIA) 총괄분석조정관, 국가정보협의회(NIC) 북조선 담당 정보분석관을 거치면서 40년 동안 북조선 정보를 전문적으로 분석해왔다. 그는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1년 5월부터 3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 근무했고, 2014년 9월부터 1년 동안 6자회담 미 제국 특사로 근무했고, 2016년 4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주한미국 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총괄분석관으로 근무했고, 지금은 국가정보협의회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국가정보판단서가 작성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국가정보협의회 국가정보실장이 기초문서(terms of reference)를 작성한다. 기초문서에는 정보판단에 요구되는 핵심 문제들, 초안 작성자의 책임 한계, 초안을 완성하기까지의 일정 등이 명시된다. (씨드니 싸일러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기초문서를 작성하였다.) 

 

2) 여러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정보협의회 국가정보실장이 작성한 기초문서를 회람하면서 각자 의견을 제출한다. 

 

3) 국가정보협의회 국가정보실장은 국가정보기관들이 제기한 의견을 반영한 국가정보판단서 초안을 작성한다. (씨드니 싸일러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 초안을 작성했다.) 

 

4) 국가정보기관 대표자들이 모여 국가정보판단서 초안을 정밀하게 심의한다. 그들은 정보자료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고, 정보판단의 신뢰성을 검토하고, 오류를 수정하여 국가정보판단서를 완성한다. 이 심의과정에서 국가정보기관들의 의견이 상충되어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을 계속해도 합의점을 끝내 찾지 못하면, 모호한 절충적 표현을 사용하여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한다. 

 

5) 위에 열거한 절차에 따라 국가정보판단서를 완성하기까지 여러 달이 걸리는데, 어떤 경우에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6) 국가정보국장은 완성된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다.   

 

2. 분석 기간을 왜 8년 단위로 끊었을까? 

 

씨드니 싸일러의 정보판단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국가정보판단서는 제목부터 난해하다.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 정보분석문서를 작성할 때, 5년 단위가 아니면 10년 단위로 분석 기간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 분석 기간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8년 단위로 정해졌다. 분석 기간을 10년 단위로 정하는 것이 상례인데, 왜 유별나게 8년 단위로 끊었을까? 2023년부터 10년이 되는 해는 2032년인데, 2032년보다 2030년으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에 분석 기간을 2030년까지 끊은 것으로 보인다.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10년을 단위로 하여 2030년까지 전망하려면, 2021년 1월에 국가정보평가서를 내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2023년 1월에 가서야 부랴부랴 국가정보평가서를 내놓은 것이다. 이런 사정은 국가정보협의회가 조선의 핵무력에 대한 절박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2022년에 가서야 절박감을 느끼고 국가정보평가서를 부랴부랴 작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2022년에 이르러 조선의 핵무력은 미 제국이 절박감을 느낄 만큼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조선의 핵무력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되면서 미 제국에 절박감을 안겨준 놀라운 사연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의 핵무력을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시킨 2022년의 정치적 결정

 

1-1) 4월 26일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핵무력의 제2사명을 천명하였다. 핵무력의 제2사명은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1-2)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법령이 채택되었다. 이 법령에서는 조선의 핵무력이 “국가주권, 영토완정, 인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방위의 기본역량”이라고 명시되었고,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다섯 가지 조건이 열거되었다.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세 가지 조건은 적대세력의 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가지 조건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2) 조선의 핵무력을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시킨 2022년의 군사행동  

 

2-1) 화산-31 전술핵탄두 실물 공개

3월 28일 언론보도를 통해 핵무기연구소에 전시된 화산-31 전술핵탄두 실물 공개

 

2-2)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변칙비행 미사일, 소형 전술핵미사일 출현

1월 5일과 11일 화성포-8형 원뿔첨두형 극초음속 전술핵미사일 시험발사

1월 14일 철도기동 전술핵미사일 검열사격훈련

1월 17일 에이태큼스(ATACMS)형 변칙비행 전술핵미사일 검수사격시험

1월 27일 근거리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4월 16일 이스칸데르(Iskander)형 변칙비행 전술핵미사일을 소형화한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5월 25일과 6월 5일 각종 전술핵미사일을 배합한 연발사격연습

 

2-3)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1월 25일과 27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8월 17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10월 12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11월 2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을 부산에 인접한 울산 앞바다로 발사

 

2-4)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600mm 방사포

5월 12일 600mm 전술핵방사포 3발 시험발사

9월 29일 600mm 전술핵방사포 2발 시험발사

10월 6일과 8일 장거리 포병부대들과 공군비행대의 합동타격훈련 

10월 9일 600mm 전술핵방사포 2발 시험발사

 

2-5)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핵추진잠수함

5월 7일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1발을 3,000톤급 잠수함에서 수중시험발사  

9월 25일 저수지 수중발사장에서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훈련 

9월 말 핵추진잠수함 건조 

 

2-6) 군사 장비 현대화, 군사훈련, 검열

1월~5월 전자전 부대들의 전자무기체계, 정찰통신체계, 전자시설방호체계 현대화 

3월~5월 4중 협동지휘훈련 실시 (4중 협동지휘훈련은 최고사령부가 작전명령을 내리면 육군, 해군, 공군, 전략군 4개 군종 지휘부가 각자 화력타격 부대들을 총동원하여 동시에 전선 전역에서 타격 대상들을 한꺼번에 소멸하는 전시협동작전능력을 점검하는 군사훈련) 

6월 초 해군과 공군의 무장장비 현대화 실태 불시점검 

7월 4일 전군의 전투예비물자 보유 및 관리실태 검열 

11월 6일 각급 전투부대들의 무기 및 전투기술기재 검열 

 

2-7) 전술핵전투부대 배치, 판정, 훈련 

6월 21~2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3차 확대회의에서 각종 전술핵미사일을 지상과 해상에 배치하기로 결정. (이 결정에 따라 조선인민군 육군, 해군, 공군, 전략군에서 전술핵 전투부대를 새로 배치하기 위한 직제 개편, 인원 조동, 부대 신설, 부대 통폐합이 진행됨. 그와 함께, 전술핵 전투부대를 새로 배치하는 전략에 의거하여 작전계획, 전투조직표, 정치사업계획이 각각 수정, 보완됨) 

8월 29일 새로 편제된 핵전투 부대들에 불시 명령을 하달해 새로운 작전계획에 따른 전투준비태세를 평가하는 판정 실시. (최고사령부나 총참모부가 명령을 하달하면 해당 전투부대는 즉시 비상작전회의를 소립하고, 전투원들은 갱도에 진입함) 

9월 25일~10월 19일 전술핵타격연습 및 대남 공격연습 연속적으로 실시 (이로써 전술핵 전투부대의 존재, 전략핵 전투부대의 존재, 미싸일총국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짐) 

10월 7일 전군에 특별경계근무명령 하달 

10월 18일 전군에 전투동원태세 발령

10월 31일 최전방 전투부대들에 준전시태세 발령

11월 3일 전투지휘부 갱도훈련 실시

11월 4일 각종 전투기 500대를 동원한 총전투출동작전 실시

 

2-8) 무인정찰기 대남 정찰

12월 26일 무인정찰기 12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하여 정찰비행을 하고 복귀 (한미연합군은 전혀 대응하지 못함)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사실은 2022년 한 해 동안 조선이 각종 전술핵무기를 생산하여 전술핵전투 부대들에 실전배치하였고, 전술핵전투 부대들은 전술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핵전투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사실은 2022년 한 해 동안 조선인민군의 대남 전술핵 타격 능력이 대폭 강화되었고, 임의의 시각에 선제적인 전술핵 타격으로 한미연합군을 제압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미 제국의 초췌한 몰골 드러난 국가정보판단서  

 

2023년 6월 15일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는 위에 서술한 2022년 조선의 군사 상황, 다시 말해서 조선의 핵무력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된 상황을 보고 절박감을 느끼고 부랴부랴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 국가정보판단서에는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제압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하였다는 정보판단이 서술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국가정보판단서에는 그런 현실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정보판단이 서술되었다. 국가정보판단서에 서술된 “핵심적인 판단(key judgement)"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이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여 영토를 차지하고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실현하는 공격전략(offensive strategy)을 사용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2) 조선이 핵무력을 과시하는 강압 행동과 공격 행동을 보류하고 방어전략(defensive strategy)을 사용할 가능성도 매우 적다. 

 

3) 조선이 군사력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여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압 전략(strategy of coercion)을 사용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강압 전략은 상대를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압박하여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고, 국내적으로는 정권의 군사적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정보판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는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사용될 실전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게서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 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서술된 것이다. 이러한 정보판단은 조선이 실전에서 전술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정세분석가들의 정보판단과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2022년 6월 30일 한국국방연구원이 서울에서 개최한 군사전략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조선인민군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 한국군이 전략적 대비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였다. 2023년 6월 22일 서울에 있는 육군회관에서 개최된 국방정책 토론회에서도 조선인민군의 타격목표는 한반도 전구에 전개되는 미 제국 항공모함, 항만과 공항, 공군비행장 등이 될 것이고,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의 항공무력과 미 제국의 증원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것은 합리적인 정보판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에서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게서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 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정보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적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정세분석가들도 다 아는 명백한 정보를 오판한 것일까?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의 정보분석 능력이 정세분석가들의 정보분석 능력보다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여기서 제기되는 심중한 문제는,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정치적 의도가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협의회의 정보판단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이 심중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1) 2002년 10월 1일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는 이라크군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했다고 기술한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였다. 당시 부쉬 행정부는 그런 국가정보판단서에 의거하여 사담 후쎄인(Saddam Hussein, 1937~2006)의 대량파괴무기 사용을 저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바에 의하면, 이라크군은 대량파괴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상황을 오판한 것이 아니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려고 광분하는 부쉬 행정부의 의도에 맞춰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할 명분이 필요했고, 국가정보협의회는 그 명분에 맞춰 정보판단을 내린 것이다. 당시 이라크군은 대량파괴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미 제국은 자기 군대가 대량파괴무기로 공격당할 위험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라크 침략전쟁을 마음 놓고 도발할 수 있었다. 

 

2) 지금 미 제국이 직면한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는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가능성과 그에 대한 미 제국의 대처능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국가정보협의회는 그처럼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를 단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와 민간 연구기관들은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을 예상한 모의전쟁 시험(war game)을 수시로 진행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정작 그 문제에 대한 정보활동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국가정보협의회는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이런 직무유기 현상은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작용해 발생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협의회는 미 제국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 무력 개입을 감행하여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 패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에서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게서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 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정보판단을 내린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일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조선이 전술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남조선해방전쟁’을 예상한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런 급박한 상황에 반드시 대처해야 한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미 제국의 대처는 이른바 ‘전략자산(strategic assets)’을 한반도 작전구역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대만해방전쟁을 벼르고 있는 중국에 무조건 전력으로 대처해야 하는 미 제국은 자기의 전략자산을 중국 근해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미 제국은 중국 근해와 한반도 근해에 동시적으로 배치할 만큼 충분한 전략자산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대만해방전쟁에 대처할 수 있을 뿐이며, ‘남조선해방전쟁’에 대처할 여력은 갖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미 제국이 대만해방전쟁에 대처하여 중국과 전쟁을 하더라도 그 전쟁에서 승리할 가망은 전혀 없다. 따라서 미 제국은 ‘남조선해방전쟁’에 대처하여 조선과 전쟁을 하는 경우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남조선해방전쟁’을 예상한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였으며,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는 두 전쟁이 임박한 시기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미 제국의 초췌한 몰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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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500만 이주시키자? 하급무사 아들 망언이 일본 패망 불렀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5]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④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3.06.24. 16:04:08 최종수정 2023.06.24. 16:42:52

 

지난 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를 비판한 글을 보고 독자 두 분이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주셨다. 요지는 '일본인뿐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오해하고 잘못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 물음들이 나오는 배경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한국에 나온 여러 후쿠자와 관련 책들이 후쿠자와의 '맨얼굴'보다는 '분칠을 한 얼굴'의 후쿠자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가 '분칠'을 했는지는 이 글 밑에 살펴볼 참이다.

 

하급무사 아들, 칼 대신에 문필로 이름 떨쳐

 

오늘날 후쿠자와의 이미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일본의 고액권인 1만 엔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는 '19세기 일본의 계몽사상가' 쯤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후쿠자와는 일찍이 개항과 개화를 외치며 게이오(慶應)대학의 기틀을 다진 교육사상가였고, 오늘날 <산케이신문>으로 명맥이 이어진 <시사신보>(時事新報)를 창간해 주필로 일하면서 문필가로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후쿠자와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다. 후쿠자와 자신이 '탈아입구'라는 용어를 직접 쓰진 않았지만, 그가 내걸었던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문명체계를 받아들이자'는 개항·개화의 주장과 부국강병론은 19세기 후반 일왕 중심의 근대화에 나름의 사상적 기여를 한 것으로 꼽힌다. 그는 19세기 말 개화파의 중심이었던 비운의 인물 김옥균(1851-1894)과 가까이 지내며 조선의 권력투쟁과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후쿠자와가 어느 정도 무게감을 지녔는가는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일화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춘원은 '조선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되기를 바랐다. 존경하는 마음에 일본에 있는 그의 묘지를 다녀와서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여 내린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 담긴 글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춘원은 그의 친일 행적으로 말미암아 (후쿠자와와는 달리) 사람들이 그가 남긴 글을 찾지 않는 존재가 됐다. 

 

인터넷 검색창에 후쿠자와의 사진을 찾아보면, 학자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있지만 허리에 칼을 찬 모습들도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도쿠가와 막부(幕府) 시절 오사카 부근의 나카쓰번(中津藩)에 소속돼 창고 물자를 관리하는 하급 무사였다(야마다 요지 감독이 잘 만들었다고 호평을 받은 2002년도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의 주인공 하급 무사와 똑 같다). 후쿠자와는 사무라이의 칼 대신 문필로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서양 사정>(초편 1866, 외편 1868, 2편 1870), <학문의 권유>(1872), <문명론의 개략>(1875) 등이 후쿠자와의 이름을 당대에 널리 알린 저작들이다.

 

한국 업신여기며 망언 일삼은 일본인 원조(元祖) 

 

후쿠자와의 언행을 좀 더 들여다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매우 적대적이고 위험한 인물'임을 알아채게 된다.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아주 심했다는 게 드러난다. 21세기 이 땅의 '신친일파'들이 <반일 종족주의>에서 펼치는 터무니없는 한국인 비하론을 딱 빼닮았다. 

 

후쿠자와는 자신의 '경험에 따르면...'이란 전제 아래 조선인들을 마구 깎아내렸다(그가 겪은 '경험'이란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배신과 위약(違約)은 조선인들의 타고난 성질'이기 때문에 '조선인은 배신과 위약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못 박았다. 따라서 '조선인을 상대로 한 약속은 처음부터 무효라고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문명 맹신자이기 때문일까, 그는 조선인이 그렇게 된 원인을 엉뚱하게도 '오래된 유교의 중독성' 탓이라 돌렸다(다카시로 코이치, <후쿠자와 유키치의 조선경략론 연구> 선인, 2013, 154쪽 참조).

 

지난주 글에서 후쿠자와가 조선을 '일개 작은 야만국'으로 못 박고 '(조선의) 학문은 보잘 것 없고 병력은 겁낼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면서, 무력으로 조선을 정벌(후쿠자와의 용어로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썼다. 또한 후쿠자와는 동학농민전쟁(1894) 당시 일본군에 맞섰던 조선의 농민군을 능멸하면서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다"고 비난했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따라서 한국을 업신여기며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의 원조(元祖)는 후쿠자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일본군을 '동양의 악귀'로 만들다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은 미개인'이란 후쿠자와의 망언이 19세기 말 한반도에 파견된 일본 군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그가 창간하고 주필을 맡았던 언론사인 <시사신보>(時事新報)에 그런 거칠고 매몰찬 논설을 써댔으니, 일본군 지휘관들이 사병들의 정훈교육 때 활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분명한 것은 실제 전투현장에서 일본군이 동학농민군 포로들에게 저질렀던 잔혹 행위로 미뤄, 그 무렵 일본인들은 후쿠자와와 마찬가지로 조선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을 상대로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의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 교토에 남아있는 거대한 귀무덤(실제로는 조선인 12만 명쯤의 코가 묻혀 있는 코무덤)이 말해주듯, 임진왜란(1992) 때에 엄청난 규모의 전쟁범죄가 저질러졌다. 일본군이 개입했기에 후쿠자와가 더욱 관심을 기울였던 동학농민전쟁 때도 잔혹한 전쟁범죄가 저질러지긴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두 역사학자가 발굴해낸 어느 일본병사의 <진중일지>를 줄여 옮겨본다. 

 

△1895년 1월8-10일 전라도 장흥전투 뒤: "우리 부대가 서남 방면으로 추격해서 타살한 농민군이 48명, 부상한 생포자는 10명이었다. 숙사에 돌아와 생포자는 고문한 다음 불태워 죽였다" 

△1895년 1월31일 전라도 해남전투 뒤: "오늘은 남은 동학당 7명을 잡아와 성 밖의 밭 가운데 일렬로 세우고 총에 검을 장착하여 모리타 일등군조의 호령에 따라 일제히 동작해서 그들을 찔러 죽였다"(1895년 1월31일 해남전투 뒤).

△나주전투 뒤(일자 불상): "나주성에 도착하니 성 남문에 가까운 작은 산에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붙잡아 고문한 뒤에 죽인 숫자가 매일 12명 이상을 넘었다. 그곳에 시체로 버려진 농민군이 680명에 이르렀으며, 근방은 악취가 진동했다. 땅위에는 죽은 사람의 기름이 얼어붙어 마치 흰 눈이 쌓여있는 것과 같았다"(나카츠카 아키라 외,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모시는사람들, 2014, 118-119쪽). 

 

'한국을 업신여기며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의 원조(元祖)'라 부를 만한 후쿠자와는 중국 사람들에 대해서도 멸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시사신보>에는 그런 거칠고 매몰찬 그의 논설들이 곳곳에 기록돼 있다. 중국인을 '창창 되놈' '짱꼴라'로 낮춰 불렀고, 중국인의 변발을 '돼지 꼬랑지 머리'로 조롱했다. 생포한 청나라 노(老)장군을 일본 아사쿠사 공원으로 끌어내, 나무문을 달아 입장료를 받고 구경시키자는 섬뜩한 유머를 내놓기도 했다. 적의 장군을 노리갯감으로 삼자는 얘기인데,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한 인물이 지금 일본 1만 엔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는 후쿠자와다.

 

후쿠자와의 교육사상을 연구해온 야스카와 주노스케(나고야대학 명예교수, 사회사상사)는 난징 학살(1937)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마구잡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배경을 거슬러 보면, 이웃 아시아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후쿠자와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일본군 병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태연하게 중국인을 죽일 수 있는 '동양의 악귀(惡鬼)'가 된 것은 '소학교 시절부터 중국인을 짱꼴라, 돼지새끼 이하'로 여기고 '중국인은 자신의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열등민족'이라 여기게 만든-후쿠자와 유키치가 숙성시킨-아시아 멸시관 때문이라 증언하는 시각도 놓칠 수 없다"(야스카와 주노스케,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역사비평사, 2011, 17쪽). 

 

 

 

"천황이 직접 도요토미 이래의 외전(外戰) 펼쳐야"

19세기 말 조선이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으로 몸살을 앓을 무렵부터 후쿠자와는 강력한 군사개입론을 폈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인 1885년 신년 논설에서 '갑신정변의 피해자는 일본이고 가해자는 중국(청)과 조선이며, 일본은 원고이고 중국과 조선은 피고'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이를 기회 삼아 대외 전쟁을 통해 일본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쿠자와는 '일국의 인심을 흥기시켜 전체를 감동시킬 수 있는 방편은 외국과의 전쟁만한 게 없다'는 위험한 신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선에 무력 개입하고 내친 김에 중국 청나라 수도 북경까지 진격해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일본이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중국)이기 때문에 일본군을 파견해 경성(서울)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시키고, 바다와 육지로 중국을 침략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키자는 것이었다. 

 

"일본이 중국을 정벌하면, 중국과 조선과 동양 전체에 대해 대일본제국의 권력이 이전보다 몇 배나 성장되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고, 구미 열강으로 하여금 우리 일본의 힘이 강대한 것을 감탄시키어 조약 개정과 치외법권의 철폐 등도 용이하게 될 것이다"(다카시로 코이치, 154쪽에서 재인용). 

 

놀랍게도, 후쿠자와는 중국과의 전쟁(청일전쟁)이 벌어질 경우 그 전쟁의 승패가 국가 존망을 가르는 중대한 전쟁이니만큼, 일왕이 직접 나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이래의 외전(外戰)'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 이유로는 "태고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의) 삼한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왕(神功皇后)이 스스로가 병사를 데리고 친정함으로써 군대의 사기가 높아졌다"는 믿기 어려운 근거(?)를 꼽았다(다카시로 코이치, 155쪽). 

 

그러면서 후쿠자와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군비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급하는 것은 일본 국민의 의무이기에, 지금부터 지출을 줄이고 헌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헌금론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도 많이 들리던 얘기다. 한반도의 친일파들은 너도나도 헌금을 하며 '대동아 성전(大東亞聖戰)의 승리'를 기원했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인 500만을 전라·충청·경상 3도로 보내자" 

 

후쿠자와는 알고 보면 매우 공격적인 식민주의자였다. 그가 쓴 논설 가운데는 '일본인 500만 명을 조선으로 이주시키자'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의 정치개혁이 어렵다면, 일본인을 조선 땅으로 대량 이주시켜 조선인과 잡거(雜居)하면서 일본인의 행동을 보고 차차 자기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나의 소견에서도 현재의 조선국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인구가 희박한 것은 사실이다. 근년에 와서 우리나라(일본)의 인구 번식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그 처리문제에 당혹하고 있는 바로 이때에 500만 명의 이주민을 보내는 것은 아주 용이한 일이다. 우선 50만 명이라도, 60만 명이라도 보내는 것은 지장이 없다. 우리 정부에서는 신속히 이주의 일을 계획하고 조선 정부와 담판하여 현행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다카시로 코이치, 330쪽에서 재인용).

 

후쿠자와가 얼마나 조선인을 업신여겼는지, 그리고 조선 정부를 만만하게 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1892년 그가 '일본인 500만 조선 이주론'을 펼치며 처음에 꼽았던 지역은 상대적으로 불모지가 많다고 알려진 함경도였다. 그러나 뒤에 다시 꼽은 이주지역은 전라·충청·경상 3도였다. 

 

척박한 땅이 많다는 함경도를 이주지로 꼽았던 후쿠자와의 초기 논설엔 그나마 '배려'의 흔적이나마 보였다. 하지만 얼마 뒤에 쓰인 논설에는 인구밀집도가 높고 비옥한 한반도 남쪽 지역으로 이주 목표지가 바뀌었다. 그곳이 조선의 곡창지대인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일본 농민들이 한반도 농업의 노른자위를 차지하도록 만들겠다는 심보였다. 이민(移民)이 아니라 식민(植民)을 뜻하는 침략 주장을 폈던 셈이다. 

 

▲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오른편에 칼을 찬 20대 모습의 사진은 1862년 유럽에 사절단으로 갔을 때 베를린에서 찍었다.

 

'허풍이라면 후쿠자와, 거짓말이라면 유키치' 

 

이렇듯 후쿠자와는 일본을 대외 팽창과 침략전쟁 쪽으로 몰아가려는 주장을 <시사신보>에 논설 형식으로 자주 써댔다. 그런 주장 속에 한결같이 담긴 것은 조선과 중국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었다. 후쿠자와뿐 아니다.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과 중국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러했다. 

 

이를 두고 생각이 깊었던 일부 지식인들은 '일본의 보잘 것 없는 개화에 대한 자만심'을 경계했다. "우리 일본인이 구미인에게 배운 것이 하루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조선과 중국을) 깔보는 교만심이 생겨났다"는 지적이었다(<東京横浜每日新聞> 1877년 11월10일자, 야스카와 주노스케, 218쪽). 야스카와 교수에 따르면, 당대의 일부 지식인들은 물론 정부 관리들조차 후쿠자와의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다. 

 

"당시의 후쿠자와는 동시대인들로부터 '허풍이라면 후쿠자와, 거짓말이라면 유키치'란 조소를 받았다. (특히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로부터는) 후쿠자와의 아시아 침략의 길은 '장래에 구제받을 수 없는 재앙'을 남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엄중하고도 적절한-마치 1945년 패전을 예견한 듯한-비판을 받았다"(야스카와 주노스케, 7쪽).

 

'장래에 구제받을 수 없는 재앙'을 겪을 것이란 염려는 20세기 중반에 현실로 나타났다. 일본의 잇단 침략전쟁으로 일본 국민 310만을 포함한 2천만 명쯤이 죽었다. 그 과정에서 난징 학살(1937)과 '위안부' 성노예를 비롯한 전쟁범죄가 저질러졌고, 그 범죄의 희생자와 유족들은 지금도 진정성 담긴 사과와 그에 걸맞는 배상을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학계의 천황' 마루야마가 만든 신화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후쿠자와가 '시민적 자유주의 정치관을 지닌 지혜로운 계몽사상가' 쯤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글 앞에서 거듭 살펴본 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의 저자 야스카와 교수는 후쿠자와의 맨얼굴에 분칠을 한 주요인물로 '일본정치사상사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전 도쿄대 교수, 1914-1996년)를 꼽는다. 

 

마루야마는 도쿄대를 중심으로 '마루야마 학파'를 이룰 정도로 영향력을 지녔다. 그에게 따라다닌 별명이 '학계의 덴노(天皇)' 또는 '가미사마'(神様)였으니, 일본학계에서 지닌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일본의 사상> 등 그의 책이 여러 권 번역돼 있다. 

 

마루야먀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1875년에 써낸 <문명론의 개략>을 해설한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이와나미, 1986)라는 두툼한 책을 통해 후쿠자와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했다(한국 번역본은 2007년 문학동네에서 펴냄). 서양과 일본의 문명을 비교하면서 '나라의 독립이 곧 문명이다. 문명이 아니면 독립을 보전할 수 없다'는 후쿠자와의 주장을 담은 <문명론의 개략>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일본의 볼테르'로 칭송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후쿠자와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것은 '학계의 덴노(天皇)'란 권위를 지녔던 마루야마의 분칠 덕이 크다. 이른바 '후쿠자와 신화'다. 하지만 분칠을 걷어내고 후쿠자와의 맨얼굴을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재일동포 출신의 인권평화운동가 서승(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이 야스카와 교수의 책에 쓴 추천사를 참고로 읽어보자.

 

"후쿠자와는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관련 책도 여러 권 나와 있다. 그러나 그 책들은 대부분 후쿠자와를 메이지 유신을 이끈 위대한 사상가이자, 일본과 동아시아 근대문명의 선각자, 민주주의자로 미화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학의 신'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세계적 석학으로 이름을 날린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론(論)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자와는 서슴없이 권모술수와 폭력을 조장하고 무자비한 권력정치를 주창하면서 천황제 군국주의의 길을 텄던 인물이다. 그는 동아시아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고, 일본에게도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의 패망이라는 비극의 원인을 제공했다"(야스카와 주노스케, 339쪽). 

 

'후쿠자와의 맨얼굴'과 '후쿠자와 신화' 

 

1998년 나고야대학을 퇴임할 때까지 사회사상사 관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에 집중해온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2000년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한국어 번역본은 2011년)를 써낸 데 이어, 2003년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한국어 번역본은 2015년)를 냈다. 후쿠자와의 아시아인 멸시와 침략전쟁 선동을 비판한다는 점에선 같은 맥락에 있다. 두 번째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맨얼굴'이란 소제목이 달린 대목을 일부 옮겨본다. 

 

"일본의 전후 사회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학문·교육·정치 등을 통해 과도하게 미화되어 왔다. 자민당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일본총리)는 정치연설에서 후쿠자와의 많은 말들을 인용하여 메이지(明治) 당시의 일본인들이 '얼마나 강한 국가의식'을 지녔는지 몇 번이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더구나 마루야마 마사오를 필두로 전후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수많은 '후쿠자와 신화'를 만들어내 그를 미화했기에,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만큼 바람직한 '대표적 일본인'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1984년 쇼토쿠(聖德) 태자의 뒤를 이어 최고액권 지폐의 초상인물이 됐다"(야스카와 주노스케,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 역사비평사, 2015, 346-347쪽). 

 

후쿠자와의 어록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 하나를 꼽자면, <학문의 권유>(1872)에 나오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과서에도 실렸기에 일본 대학 신입생의 9할 이상이 후쿠자와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쿠자와의 맨얼굴은 이런 말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일본 천황제를 목숨처럼 받든 황국주의자였고, 아시아인을 멸시하며 침략전쟁을 부추겼던 선동가였다. 따라서 '하늘은 사람 위에...'는 그저 듣기에 좋은 언어의 희롱이나 다름없다. 마루야마가 비판을 받는 대목도 바로 이런 후쿠자와의 글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골라 짜깁기로 미화했다는 점이다.

 

전쟁책임 지고 화해하려면 후쿠자와 재평가해야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1986)와는 달리, 비판적인 시각에서 후쿠자와를 다룬 책이 고야스 노부쿠니(오사카대 명예교수, 일본사상사)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2005)이다. 마루야마의 책은 2007년 4월에 번역본(문학동네)이 나왔고, 고야스의 책은 같은 해 10월에 번역본(역사비평사)이 나왔다. 고야스 교수는 자신의 책 결론부분에서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는 후쿠자와를 위한 변명의 책이란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고 비판했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이 19세기의 일본인인 후쿠자와의 문제점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의 저자인 야스카와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일본이 전쟁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아시아와 화해를 꾀하기 위해선 후쿠자와를 냉정하게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동안 일본 주류학계에서 '계몽사상가'로 미화된 후쿠자와를 놓고 학문적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후쿠자와 비판은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 화해를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인다. 

 

한반도 침탈자의 얼굴 들어간 엔화 

 

같은 맥락에서, 일본 1만 엔 지폐에 후쿠자와의 얼굴 초상이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위의 야스카와 교수도 이를 불편하게 여긴다. 후쿠자와 얼굴이 들어간 것은 1984년부터였다. 2024년부터는 후쿠자와는 빠지고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1840-1931)의 얼굴이 새로 들어간다. 시부사와도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관련이 깊다. 이번엔 후쿠자와처럼 독설과 칼로 무장한 침략이 아니라 경제침략이다. 

 

금융전문가인 시부사와의 삶은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궤를 같이 한다. 1878년 부산에 제일국립은행(현재 일본의 3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미즈호은행) 지점을 설립한 뒤, 금융·화폐 분야에서 일제의 침략 대리인 몫을 해냈다. 1905년 조선국고금 취급과 화폐 정리사업을 맡으면서, 제일국립은행은 한반도의 중앙은행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일본 엔화와 등가로 유통된 조선 제일은행권에 시부사와의 얼굴이 들어간 것은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도 일본 화폐에 얼굴을 보인 적이 있다. 1963년부터 1986년까지 사용된 1천 엔 지폐에서였다. 후쿠자와 유키치, 시부사와 에이이치, 이토 히로부미 3인 모두 일본인들이 존경해 마지않기에 화폐에 얼굴이 들어갔을 걸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아시아의 공존과 평화와는 거리가 멀고, 더구나 한반도 침략과 관련이 깊다. 그런 사실이 이웃 나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데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처럼 신사임당이나 율곡 같은 문화예술가나 학자 가운데 화폐에 얼굴을 넣을 만한 인물이 일본엔 드물기 때문일까.

 

▲ 984년부터 일본 1만 엔 지폐에 들어가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 1984년엔 다른 얼굴로 바뀐다.

 

"왜 강연장이 하필이면 게이오 대학인가" 

 

이 글 앞에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게이오대학의 전신인 게이오의숙의 설립자라 했다. 지난 3월17일 윤석렬 대통령이 게이오에서 강연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왜 하필이면 (조선과 중국 침략을 선동했던 후쿠자와가 세운) 게이오대학이냐"는 논란이 나왔다.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일본인 후배가 그 무렵 이메일로 이런 걱정을 전해왔다. "게이오대학이 어떤 곳인지 윤대통령이 잘 모르고 간 것 아닌가요? 게이오는 일본 극우의 소굴 같은 곳인데, 분명히 뒷말이 나올 것 같아요." 

 

실제로 뒷말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내다보지 못한 엉뚱한 대목에서였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용기'라는 제목을 단 윤대통령 강연에서 인용문의 출처가 논란이 됐다. '한일 두 나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용기'라는 말을 하려고 '용기가 생명의 열쇠'라는 문학적인 표현을 옮겼다. 문제는 옮겨온 구절이 하필이면 후쿠자와에 못지않은 조선 멸시론자이자 침략론자였던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1862~1913)이 했던 말이다. 

 

오카쿠라 "조선을 식민지화해도 침략이 아니다" 

 

오카쿠라는 "조선을 식민지화해도 침략이 아니다"란 궤변을 펼쳤던 극우 사상가다. 일제 강점기의 어용학자들이 날조한 '유사 역사학'과 맥락을 같이하는 그의 궤변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러일전쟁(1904) 직전에 그가 미국에서 낸 <일본의 각성>(The Awakening of Japan)이란 책에 담긴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조선의 시조 단군이 일본의 시조 아마테라스의 아우 스사노오의 아들이며, △3세기에서 8세기까지 500년 동안 삼한 땅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따라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식민지로 다시 지배한다 해도 그것은 '침략'이 아니라 '역사적인 원상회복'이라는 궤변이 담겼다(오카쿠라의 책은 1905년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맺었던 '카스라-테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했던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나름의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다). 

 

게이오대학 강연장에서 오카쿠라의 말을 윤대통령이 옮긴 것을 두고 국내에선 비판이 따랐다. 하종문(한신대, 일본근현대사)교수는 "대통령과 보좌진의 역사인식과 일본 시각의 문제점을 뚜렷이 보여준 사례"라 지적했다(하교수는 일본군 진중일지로 '위안부' 성노예의 강제동원 실체를 드러냈다. 본 연재 13 참조). 보좌진의 실수로 여기며 넘어가기엔 찜찜하다. 몰라서 실수를 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고도 그랬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오카쿠라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아는 일본 극우들은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이번 주엔 글 맨 앞에 썼듯이, 독자 두 분의 이메일 질문에 답을 하느라 후쿠자와 유키치에 집중했다. 다음 주 토요일엔 주요 일본 정치인들의 뒤틀린 역사인식과 그에 따른 망언의 문제점을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계속

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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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본인 ‘아바타 김광동’ 앞세워 정의 회복 무력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6/25 08:41
  • 수정일
    2023/06/25 08: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겨레S] 인터뷰 _ 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장

“대통령 임명한 진실화해위원장
민간인 학살 피해 모욕적 발언”
“진화위, 독립적 민간기구화…
조사 연장·배보상위 신설해야”
윤호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윤호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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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3주년,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종전’이 아닌 ‘정전’, 정확히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교전 쌍방이)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정전협정문)에 합의한 상태다. 한반도에서 치열한 교전은 멈췄지만 온전한 평화가 깃들지도 않았다. 언제든 국지적 무력충돌이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과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인명 피해는 엄청났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한국군 62만여명을 포함해 교전국 군인만 약 281만명이 전사했다. 민간인 사망자도 남한에서만 99만명이 넘는다. 대다수는 대한민국 군경과 적대세력(북한군과 동조세력)의 학살로 숨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제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5~2010년, 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민간인 희생자 유족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비극의 고통을 삭여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에서 제2기 위원회가 꾸려져 진실 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이하 유족회)의 윤호상(76) 상임대표의장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윤 대표는 만 세살이던 1950년 7월에,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뒤에는 좌우합작 운동을 하던 선친(윤윤기·당시 50)이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처참하게 살해됐다고 했다.

 

 

“윤 대통령 ‘유족 상처 보듬겠다’더니”

 

―유족회 회원은 어떤 분들인가?

 

“첫째, 한국전쟁 당시 부모·조부모·친형제를 잃은 직계 유가족, 둘째는 인권과 평화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고 유족회 회칙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이 중 하나만 해당하면 회원 자격이 있다. 1961년 제4대 국회에 양민학살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15일간의 조사 신청 기간에 113만6천명가량이 신청했다. 그런데 60년이 흐른 지금은 채 2만명이 안 된다. 대부분 80~90대 고령이다. 진실 규명이 지연되면서 연로하신 분들이 계속 돌아가신다. 유족회원은 약 3천명(가구를 대표해 1명씩 가입) 정도다. 한국 군경에 의한 희생자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보다 훨씬 많지만, 유족회는 양쪽 다 아우른다. 모두 국가 공권력에 희생되신 분들이다.”

 

 

―정전 70주년이 됐지만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 해원 상생의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유족들은 2022년 정권이 바뀐 뒤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불과 1년 새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고, 특히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학살이나 인권 침해 문제에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유족들의 수명이 다하기만 바라는 것 같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보다 더 심한 상태로 가고 있다.”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보다 더 열악하다는 뜻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 4·3과 광주 5·18 기념식에서 ‘상처받은 유족을 보듬겠다’고 한 것은 라이브 쇼였다. 그 뒤에 자기의 아바타인 김광동을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후반기 위원장 자리에 앉혀놓고, 제주 4·3, 광주 5·18, 한국전쟁 피해자들의 정의 회복을 완전히 무력화해버렸다. 김광동 위원장(국민의힘 추천)은 앞서 1기 위원회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들마저 부인하고 모욕적 발언을 일삼는다. 최근(6월9일)엔 군경의 학살 희생자 유족들을 두고 ‘군인과 경찰이 침략자에 맞서다가 초래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 그것도 극우 테러집단 서북청년단의 온상이던 영락교회 조찬 기도회에서. 지난 20일엔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관 출신을 (조사국장) 최종 합격자로 발표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한국 군경-적대세력 학살 규명 불균형”

 

―2023년 6월7일 현재, 진실화해위 제1소위에 배당된 조사 신청은 1만6769건. 이 중 ‘한국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경에 의한)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9946건(59.3%)과 ‘적대세력에 의한 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3986건(23.8%)이 10건 중 8건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진실 규명이 된 사건은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중 522건(13.1%), 한국 군경이 가해자인 사건 중 338건(3.4%)에 그쳐 불균형이 크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전임 정근식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추천)에 이어 취임하기 전까지 진실화해위 제1소위원회 위원장이었다. 1소위는 항일 독립운동, 한국전쟁 전후 군경의 민간인 학살, 해방 직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 적대세력의 테러·폭력·학살 등을 조사한다. 그런데 김광동 1소위원장은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 조사를 갖은 구실로 지연시켰다. 조사 개시 사건도 보고서에 꼬투리를 잡고 퇴짜를 놨다. 그가 진실화해위원장에 취임한 뒤인 지난 4월27일 유족 간담회에서 따졌더니 ‘속도를 내서 순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진전이 없더라. 6월15일에 이옥남 1소위원장을 다시 만났는데, ‘부역 혐의자’와 ‘부역자’를 구분하고 있다는 거다. 그게 말이 되나. 결국 진실 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날부터 유족회는 그동안 국회 앞에서 1105일째 해오던 ‘과거사법 개정 요구’ 1인시위를 잠정 중단하고, 진실화해위 앞에서 ‘김광동 퇴진’ 1인시위를 시작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화해위의 근본 문제는 국가 범죄를 국가 기구가 조사한다는 거다. 국회 집권당과 야당이 위원 추천을 독점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방식에선 누가 위원장을 하든 정권의 향방에 따라 과거사가 바뀌어버린다. 조사위원들도 국방부·국정원 등 정부 부처의 파견 공무원이 30%다. 진실화해위는 명실상부한 독립성과 강력한 조사권을 보장받는 민간 기구로 꾸리고 국내외 전문가들을 모셔야 한다. 전례도 있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혐의자 체포권을 포함해 조사권이 강력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금 유족회원들은 체념과 포기 상태다. 오죽하면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고 외치겠나. 유족회가 요구하는 과거사법 개정안의 핵심은 조사 기간(현행법으로는 내년 5월에 끝나고 필요한 경우 1년 연장 가능) 연장과 배·보상 심의위원회 구성이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개정안만 11개나 되는데, 입법 절차가 하세월이다. 이것만 돼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유족들에게 한국전쟁은 묻고 넘어갈 과거사가 아니라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일어난 현대사,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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