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25주년 메이데이 5만노동자 〈끝내자 박근혜!〉 ... 민주국제포럼 참가 국제민주인사들 선두행진

 
  • [사회] 125주년 메이데이 5만노동자 〈끝내자 박근혜!〉 ... 민주국제포럼 참가 국제민주인사들 선두행진
  •  
    민주노총은 125주년 메이데이를 맞아 <최저임금1만원 쟁취! 노동시장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세월호 진상규명!> 2015세계노동절대회를 1일 오후3시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했다. 
     
    민주노총조합원 등 5만여명의 노동자가 모여 성사한 이날 대회에서 민주노총은 <4.24총파업으로 노동시장구조개악과 공무원연금 개악 등 노동자·서민의 삶을 후퇴시키는 정책에 대한 강력한 뜻을 밝혔음에도 <정부>는 정책강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총파업에 대한 탄압(사법처리)수순을 밟고 있다.>며 <이에 맞서 전국에서 전개된 총파업의 기세를 서울로 결집해, 전국 2900여곳 사업장 5만명이상이 참가한다.>고 전했다.  
     
    이어 <노동절대회는 노동시장구조개악, 공무원연금개악, 공공기관가짜정상화, 대학구조조정, 비정규직착취, 의료·철도·물민영화 등 이 모든 공세에 대한 포괄적인 투쟁과 연대를 결의하는 장>이라며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파탄내는 원인의 정점에는 박근혜<정권>이 있다. 민주노총은 <끝내자 박근혜>라는 슬로건아래  △최저임금1만원 인상 △노동시장구조개악 폐기 △공무원연금개악 중단, 공적연금 강화 △<세월>호대통령령 폐기, 진상규명 4대요구를 천명하며 수용되지 않는다면 하반기 강력한 대정권투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4.24총파업의 기세를 오늘 다시 확인하고 5~6월투쟁으로 더욱 몰아쳐 가야 한다.>며 <하반기에는 기어이 민중총궐기투쟁으로 박<정권>을 끝장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2015년 노동자의 이름으로 박<정권>의 노동탄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20년은 노동자로 살아가기 정말 힘들 것>이라며 <정권의 모든 공격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각오로 연대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박근혜와 그 뒤에 숨어있는 자본을 이길 수 없다. 노동자의 깡다구로 반드시 승리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농민회청연맹 김영호의장, 전국빈민연합 심호섭공동의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상임공동대표가 연대선언문을 통해 <국가폭력과 불법, 무법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죽은 듯이 살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짓밟히고, 약한자를 향한 증오와 멸시가 판치는 사회에서 살수는 없다.>며 <거짓과 부정, 부패비리의 몸통,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쳤다.
     
    한국노총 이병균사무총장은 연대사를 통해 <노동시장구조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양대노총은 총파업투쟁으로 이를 저지할 것>이라며 <그로 인한 혼란과 파국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월>호유가족들도 대회에 함께 했다. 
     
    유경근집행위원장은 <1년간 유가족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분노하며 함께 해준 민주노총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우리가족들은 시행령이 통과되든 말든, 정부가 진상규명을 방해하든 말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아빠로 살기 위해, 안전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산별연맹대표자들은 산별연맹깃발과 함께 무대에 올라 박<정권>에 맞서 앞장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대회를 마친 5만여노동자들은 서울시청광장을 출발해 서울시내곳곳을 누비며 <박근혜 퇴진!> <끝내자 박근혜!>, <더쉬운 해고 멈춰!, 더낮은 임금 멈춰!. 더많은 비정규직 멈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경찰은 청와대주변을 비롯해 광화문, 종로 일대에 차벽을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해 행진대오가 가는 곳마다 봉쇄하고 방패와 최루액, 물대포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의 노동자들이 불법적으로 연행됐다. 
     
    지난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민주국제포럼에 참가한 인 베흐나흐 까센(Bernard Cassen)세계사회포럼창립자, 빅토르 우고 히혼((Víctor Hugo Jijón)에콰도르공공정책대학교수, 뎀바 무싸 뎀벨레(Demba Moussa Dembélé) 2011다카리세계사회포럼조직위원장, 잉에 회거(Inge Höger)독일연방의회하원의원, 클라우디아 하이트(Claudia Haydt)독일좌파당국제담당,  졍 살렘(Jean Salem)소르본대철학교수 등 외국인참가자들과 민주국제포럼명예대표 권오헌민가협양심수후원회명예회장, 공동대표 송무호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이사장, 이채언전남대교수 등이 대회에 참가하고 가두행진에도 동참했다.
     
    이들은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연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대열선두에서 행진했으며 <박<정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는 <박근혜정권 퇴진!>촛불신문 97혁신호 3만여부를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신문은 코리아연대의 <경찰벽 무너뜨리고 청와대를 향해 앞으로!>시국선언과, 4.16연대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통첩>, <<이명박근혜정권>의 <노동자죽이기> 10대죄악>, <박근혜<정권>이 퇴진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노동자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신문을 받아가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다. 
     
    또 <부정선거 부패비리 박근혜정권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이 서울시내곳곳에 뿌려졌고 <민생파탄 책임지고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부정부패 썩은 정권 박근혜새누리당정권 퇴진하라>·<세월호참사 성완종게이트 민생파탄 박근혜는 퇴진하라>가 적힌 포스터와 <박근혜도 수사하라>는 내용의 <그네공주와 일곱난장이>패러디포스터도 행진로 곳곳에 나붙어 참가자와 시민들이 <참신하다>며 환호하고 관심을 표했다.
     
    행진대오는 오후7시20분경 종각역사거리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해산했으며 일부는 <<세월>호특별법시행령 폐기> 범국민철야행동에 계속 참여했다.
     
    0501 메이데이사진54.jpg
     
    0501 메이데이사진56.jpg
     
    0501 메이데이사진57.jpg
     
    0501 메이데이사진58.jpg
     
    0501 메이데이사진22.jpg
     
    0501 메이데이사진01.jpg
     
    0501 메이데이사진03.jpg
     
    0501 메이데이사진05.jpg
     
    0501 메이데이사진06.jpg
     
    0501 메이데이사진02.jpg
     
    0501 메이데이사진04.jpg
     
    0501 메이데이사진11.jpg
     
    0501 메이데이사진25.jpg
     
    0501 메이데이사진23.jpg
     
    0501 메이데이사진78.jpg
     
    0501 메이데이사진64.jpg
     
    0501 메이데이사진43.jpg
     
    0501 메이데이사진07.jpg
     
    0501 메이데이사진15.jpg
     
    0501 메이데이사진08.jpg
     
    0501 메이데이사진09.jpg
     
    0501 메이데이사진10.jpg
     
    0501 메이데이사진13.jpg
     
    0501 메이데이사진18.jpg
     
    0501 메이데이사진28.jpg
     
    0501 메이데이사진30.jpg
     
    0501 메이데이사진32.jpg
     
     
    0501 메이데이사진34.jpg
     
    0501 메이데이사진72.jpg
     
    0501 메이데이사진73.jpg
     
    0501 메이데이사진20.jpg
     
    0501 메이데이사진21.jpg
     
    0501 메이데이사진26.jpg
     
    0501 메이데이사진45.jpg
     
    0501 메이데이사진33.jpg
     
    0501 메이데이사진39.jpg
     
    0501 메이데이사진48.jpg
     
    0501 메이데이사진49.jpg
     
    0501 메이데이사진50.jpg
     
    임진영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언제든지 찾아오라고요? 그건 박 대통령의 거짓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5/03 10:45
  • 수정일
    2015/05/03 10: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세월호 범국민 철야행동] 유족 및 시민, 경찰 과잉 대응 질타

15.05.01 16:43l최종 업데이트 15.05.02 19:34l

 

 

[최종신 : 2일 오후 4시 50분] 

"캡사이신·물대포에 우리는 두 번 죽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 입 속에 캡사이신 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캡사이신을 입에 맞은 한 유가족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 눈과 입에 캡사이신 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눈과 입속에 캡사이신을 맞은 유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이 시행령 폐기 촉구를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과잉 대응에 결국 두 손을 들어야 했다. '미신고 불법집회', '시민 교통 불편'이라는 전가의 보도와 물대포·캡사이신의 물리력은 유족과 시민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경찰의 공권력은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해줬다. 

유족과 시민들 200여 명은 2일 오후 2시 40분경,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3시부터 서울 광장에 집결해 종로 일대를 거쳐 안국 사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꼬박 24시간 만에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유족과 시민들은 경찰의 과잉 대응을 질타했다. 마이크를 잡은 '성호 아빠' 최경덕씨는 "1년 전이나 후나 대한민국의 변함 없음에 절망했다"면서 "유족들을 토끼 몰이로 가두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면서 "정말 저희들은 청와대에 가고 싶었다, 가서 쓰레기 시행령 폐기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주 엄마 유병화씨는 "이미 세월호 사고로 새끼 잃은 부모로서 한 번 죽었고, 어제 오늘 캡사이신과 물대포는 유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경찰의 횡포는 나날이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국민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경찰이 저희를 짓누르고 짓밟았다"면서 "저희가 총을 들었나, 칼을 들었나, 제대로 된 시행령 만들자는데 무슨 잘못이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 침해 감시 변호사단에서 활동한 송아람 변호사는 경찰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유족과 시민들을 정권의 적으로 보지 않고서는 이렇게 상대할 수가 없다"면서 "경찰의 물리력은 상상 이상으로 유족과 시민을 겁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신고 집회라도 명백한 위험이 없다면 해산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저희는 인도를 통해 청와대에 가려고 했다, 시민 피해가 없는데도 마구잡이식으로 행진을 봉쇄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향후 물대포에 함유된 캡사이신 양을 조사해 경찰 과잉 대응을 판단할 계획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유가족에 캡사이신 조준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캡사이신을 맞은 삭발한 어머니가 물로 눈을 씻고난 뒤에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유가족에 캡사이신 조준난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이틀째인 2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방향 행진을 시도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경찰이 캡사이신을 눈과 입을 향해 발사했다. 캡사이신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시민의 눈을 물로 씻겨주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마구잡이 체포, 경찰 42명 연행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1박 2일간 함께 해준 시민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전 위원장은 "지금까지 함께 해주시고 항상 저희 곁에 계시는 시민들 감사하다"면서 "캡사이신, 물대포 맞으신 시민들, 저에게 오시면 따뜻한 밥 한끼 사드리겠다, 너무나 수고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정부의 시행령안은 죽어서 자식 볼 면목을 없게 한다"면서 "시행령이 국무회의에 상정되더라도 시행령 받아들일 생각 없다, 저희 손으로 진상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유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농성장 내 분향소에서 참배하며 1박 2일 철야 행동을 마무리했다. 

한편, 경찰은 1박 2일 철야 행동에서 유족 1명을 포함해 시민 42여 명을 연행했다. 서울 지역 경찰서로 이송한 경찰은 이들에게 공무집행방해, 도로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조사 중이다. 

[13신 : 2일 오후 2시 10분 ] 

경찰, 유족 행진 시도에 다시 캡사이신 

세월호 유족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은 캡사이신으로 응수했다. 또 다시 경찰은 해산명령을 내리고 체포하겠다고 유족들을 겁박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경복궁역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유족 50여 명은 2일 오후 1시 50분부터 경복궁 돌담 인도로 행진을 시도했다. 

유족들이 방패를 든 경찰과 몸싸움을 시도하자 경찰은 유족들에게 캡사이신을 쐈다. 얼굴에 맞은 유족은 고통을 호소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물로 얼굴을 씻었다. 

유족들은 계속 길을 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경복궁 정문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행진을 원하고 있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다. 

경찰에 의해 행진이 막히자 유족들은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조계사를  거쳐 광화문으로 행진하고 있다. 

[12신 : 2일 낮 12시 30분] 

"밤새워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물대포·캡사이신" 

경찰과 유족 대치 속에서 먼저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한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 행진 보장과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 인사동쪽에 갇혀 있던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아래 4.16연대) 소속 회원과 시민 200여 명은 2일 오전 11시경,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쓰레기 시행령 폐기를 위해 밤을 새워 대답을 기다렸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경찰의 대답은 차벽과 캡사이신, 물대포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자식 잃은 부모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나"면서 "어제 경찰은 차벽과 캡사이신, 물대포를 세월호 유족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쏘아댔다"고 비판했다. 또 "유족들은 농도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최루액 물대포에 맞아야 했고 고통스러워 했다, 눈물이 모자라 수포가 발생하기도 했다"며 "참으로 잔인하고 잔인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또 "정부의 탄압은 진실을 향한 세월호 유족과 국민들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유족 행진 보장을 요구했다. 

한편, 유족 50여 명은 서울 안국동사거리 경복궁 방향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다. 유족들은 청와대행 대신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경찰의 비협조로 발이 묶여 있다. 경찰은 이동경로로 서울 조계사-광화문광장을 주장한 반면, 유족은 경복궁 정문으로 직진해 광장에 진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11신 : 2일 오전 8시 57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 청와대 가자" 

경찰의 방패 벽에 세월호 유족들의 발은 한 시간 넘게 묶여 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경복궁 방향 도로에서 유족들은 거리에 주저 앉았다. 목줄을 푼 유족들은 "으싸, 으쌰"하며 힘을 썼지만 방패는 꿈적도 않고 있다. 

유가족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창현아빠 이창석씨는 "택시 타고 가자, 택시 좀 불러 달라"며 "5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한 아버지는 "작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이라며 "내가 오늘 청와대 가고 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욱엄마 홍영미씨는 경찰 대원들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홍씨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전세계에 채증되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낼 거다, 여러분들의 잘못 똑똑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채증하는 경찰을 향해 홍씨는 "채증맨 잘 보이시나, 필름 아깝다, 배터리도 세금"이라며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스피커에서는 사법처리하겠다는 말만 흘러나왔다. 경찰은 "종로경찰서 경비과장 입니다, 유족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정밀 채증을 통해 사후에 사법처리하겠습니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8시 50분 현재 4차 해산 명령을 내렸다. 
 

기사 관련 사진
▲  1박 2일 철야 행동. 계속되는 대치 상황에 지친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10신: 2일 오전 7시 43분] 
'청와대로' 한줄로 이어진 아빠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다시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단원고 학생들 아버지 19명은 현재 목에 줄을 걸어 연결한 채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다시 경찰에 막혀 한 시간 정도 대치하고 있던 유족들은 오전 7시 20분경 자신들을 묶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줄을 목에 걸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나까지 오겠다", "엄마들은 맨날 앞에 나섰으니까 아빠들만 해"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던 유족들은 연결을 마친 뒤 결연해졌다. 아버지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박자를 맞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 이들은 경찰의 방패에 막혔다. 유족들은 경찰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계속 항의 중이다. 몇몇 어머니들은 목줄을 건 채 "나 갈거라고!"라며 울부짖는 아버지들을 보고 서럽게 통곡하고 있다.

한편 시민들은 여전히 유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인사동 쪽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기사 관련 사진
▲  1박 2일 철야 행동, 유가족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9신: 2일 오전 6시 44분] 
또 다시 길바닥에서 잠 청한 유족들 

길바닥에서 밤을 보낸 유족들은 아침부터 다시 한 번 시끌벅적한 상황에 놓였다. 2일 오전 6시 20분 청와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유족들은 현재 경찰과 대치 중이다. 

한 운전자와 붙은 실랑이가 문제였다. 경찰은 오전 5시반경부터 차량 통행을 위해 차선 두 개를 확보했다. 안국동 사거리는 4차선인 탓에 평소보다 통행 속도가 느려지자 몇몇 운전자들이 유족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한 트럭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유족들에게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 말에 흥분한 유족들이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유족들은 "차라리 (차벽으로 전면 통제했던 1일처럼) 다 막아버려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몇몇 유족은 경복궁역 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하니 청와대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곧바로 움직였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버렸다. 

한편 지난밤 인사동 쪽으로 밀려났던 시민 200여 명이 거리에서 밤을 지샜다. 이들은 여전히 경찰에 저지당해 유족들과 떨어져 있다. 시민들은 오전 6시 37분 현재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행진 보장하라"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8신: 2일 오전 5시 42분] 
유가족과 시민들, 인사동 입구에서 연좌농성 중 

2일 오전 5시 현재 경찰의 밀어내기에 집회 참가자들은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밀려난 상태다. 다만 40여 명의 세월호 유족은 인사동쪽 시민들과 나뉜 채 도로 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유족 방향으로 일반차량을 통행시키려다가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인도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캡사이신을 발포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이 저항했지만 참가자들은 인사동 차없는 거리 등으로 밀려났다. 또 이날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러 나온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 관계자도 얼굴에 캡사이신을 맞았다. 

한편, 경찰은 아침이 다가오자 차량 통행을 위해 망가진 경찰버스 타이어 교체 작업을 하고 있으며 물대포와 살수차도 철수한 상태다.

[7신: 2일 오전 2시 53분] 
경찰 검거작전 시작... 유족들 맨 앞에서 몸싸움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시작하자, 유가족들이 맨 앞에 서서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경찰이 유가족을 방패로 때리며 "맞아도 싸다"라고 하자 분노한 유가족들이 경찰을 붙잡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펼치며 참가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약 세 시간 동안 평화로웠던 안국동 사거리에 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오전 2시 23분 "6차 해산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으니 검거작전을 하겠다"는 종로서 경비과장의 방송과 동시에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몸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유족들이 미리 대열 맨 앞에 모였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유족들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유족들과 뒤엉켜 계속 밀려났다. 2시 53분 현재 경찰은 시민들과 유족들을 분리시켰다. 경찰벽에 둘러싸인 유족들은 또 다시 고립됐다. 이들은 시민들과 만나려고 이동했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족 김 아무개씨가 경찰의 방패에 맞았다. 그러자 경찰은 "맞아도 싸다"는 말을 던져 유족을 자극했다. 유족들은 그를 붙잡고 거듭 사과를 요구했으나 해당 경찰은 끝내 입을 다문 채 동료 경찰들 쪽으로 피했다. 한 어머니는 "니들이 자식을 보낸 우리 심정을 아느냐"며 울부짖었고, 한 아버지는 분을 참기 어려운 듯 경찰버스를 향해 생수통을 던졌다.

[6신: 2일 0시 40분]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 일시 중단... "이게 무슨 세상이냐"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에게 캡사이신 넣은 물대포 난사하는 경찰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로 유가족을 향해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는 잠시 멈췄지만 대치 상황은 여전하다. 2일 자정 현재 안국동 사거리는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경찰은 전날 10시 40분~11시 20분경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집중 살포했다. 물대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 가루가 고여있었다. 물대포를 맞은 화단의 꽃들도 처참하게 쓰려져 버렸다. 

유족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경찰에게 거듭 항의했다. 한 어머니는 "이게 무슨 세상이냐"라며 경찰 방패를 붙잡고 오열했다. 한 시민은 경찰들을 향해 "너희들이 무엇을 막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잘 봐두라"고 소리쳤고,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들에게 "청와대 못 가서 죄송합니다 어머님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 대부분은 캡사이신 냄새에 콜록대고 추위와 씨우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당초 416연대가 계획한 문화제 진행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5신 보강: 1일 오후 10시 58분] 
또 다시 등장한 물대포... 캡사이신 섞어 살수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물대포가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등장했다. 

경찰은 10시 47분 현재 시민들을 향해 수차례 살수했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이 섞인 탓에 온몸이 젖은 시민들은 거듭 콜록거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자신들이 대열 앞에서 물대포를 맞겠다며 나섰다. 

행진을 시도한 지 두 시간이 넘었지만 시민들은 아직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폴리스라인에 막힌 이들은 거듭 돌파를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반면 경찰의 대응 수위는 더욱 강경해졌다. 물대포 살수뿐 아니라 캡사이신 발포도 잦아졌다. 일부 시민은 우산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안국동 사거리 곳곳에서는 "물! 물!" "물 좀 전달해주세요!"라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있다. 몇몇 취재진도 시민들과 뒤엉킨 채 캡사이신을 맞기도 했다. 

[4신 : 1일 오후 10시 1분]
시민-유가족, 청와대 행진 시도... 경찰, 캡사이신 무차별 난사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일 오후 9시 35분 현재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 모인 세월호 참사 유족과 시민 등 3000명(416연대 추산)은 경복궁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대치 중이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시행령을 폐기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평화행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파도타기를하며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행진 시작 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그는 "아무리 차벽으로 둘러쳐도, 아무리 많은 경찰이 막아도 진실과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들의 뜨거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며 "뜨겁게 함성을 지르며 나아가자"고 했다. 

시민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곧바로 막혀버렸다. 이들은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에워싸인 통로를 뚫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또 다시 캡사이신을 맞으며 물러났다. 경찰은 현재 거듭 "지금 즉시 해산하라"며 살수차 사용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힌 뒤, 경찰의 해산경고방송에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차벽과 물대포로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3신 : 1일 오후 7시 30분]
차벽에 고립된 섬...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싫다"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차벽에 막힌 채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또한 도로와 경찰버스에 정부파산 등의 문구를 적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유가족이 가장 못 참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차벽에 에워싸인 안국역은 섬이 됐다. 오후 7시 30분 현재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모여 있다. 응급 차량마저 차벽에 막혀 돌아갈 정도로 경찰은 이곳을 철통방어하고 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저희 유족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며 "기다리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싫다"며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마무리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세월호가 민주노총이고, 민주노총이 세월호이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유족들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조합원들도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던 중 경찰이 뿌린 캡사이신을 물로 씻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편 416연대는 이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1박 2일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그에 앞서 유족들은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하려 했지만 아직 안국역 인근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민주노총은 곧 보신각 집회 현장을 정리한 뒤 세월호 유족들이 경찰과 대치 중인 안국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경찰은 조합원의 행진을 막을 예정이어서 또 다시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2신: 1일 오후 5시 50분]
차벽에 막힌 유가족... 도심서 물리적충돌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5시 45분 현재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경찰과 대치 중이다. 이들은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버스에 밧줄을 연결, 잡아당기고 있지만 캡사이신에 계속 저지당하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은 오후 4시 반쯤 노동절 대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에서 출발, 을지로 2가를 거쳐 종로 2가에 도착한 대열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안국동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경복궁 방향으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미리 쳐둔 폴리스라인에 막혀버렸다.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경찰의 캡사이신 대량 발포에 막혀버렸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 100여 명이 경찰 차벽 앞에서 주저 앉아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차벽에 가로막힌 유가족들이 도로에 앉아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을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를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오후 5시 25분쯤 관훈동 쪽으로 이동한 조합원들은 다시 한 번 경찰버스 2대에 막혔다. 이들은 수차례 버스를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이 캡사이신 등으로 대응하자 다시 인사동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조계사 방향에서도 경찰과 대치 중이지만 대부분 막힌 상태다. 삼청동으로 가려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 역시 안국역 출구 근처에서 경찰에 막혔다. 

[1신 : 1일 오후 4시 43분] 
광장 메운 노동자들의 함성 "썩은 세상 우리가 갈아엎자"
 

기사 관련 사진
▲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메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쳤다.

"재벌경제, 썩은 세상 노동자가 갈아엎자, 투쟁!"

이날 전국민주노동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은 서울광장 앞에서 2015년 세계노동절대회를 열었다. 지난 4월 24일 총파업에 이어 다시 한 번 결집한 노동자들은 강경한 대정부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1일 대회 행사명도 '끝내자 박근혜'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싸우지 않고 무엇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입을 뗐다. 그는 "2015년 올해, 민생은 파탄났고 서민들과 노동자들은 못 살겠다고 한다"며 "지금 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부패한 정권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중의 총 결의로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자"며 "침몰하는 한국사회를 구하기 위한 역할을 민주노총이 기꺼이 맡겠다"고 덧붙였다.
 

기사 관련 사진
▲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문을 연 것도 "이 돈으로 살아봐"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몸짓패 공연이었다. 한상균 위원장 역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시민들도 박수를 보낸다"며 "앞으로 20년은 노동자로 살아가기 참 힘들 텐데, 가뜩이나 힘든 우리 아들딸에게 못난 아버지가 되지 말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동총연맹(아래 한국노총·)도 주요 의제로 강조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날 한국노총을 대표로 참석한 이병균 사무총장은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양대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차별이 없어지고, 경제민주화로 재벌이 개혁되고 원·하청 노동자가 공생할 수 있을 때까지 (두 노총이) 함께 두 손 잡고 투쟁해야 한다"며 거듭 연대를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1일 노동절 대회에 약 5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4시 14분 현재도 서울광장에는 노동절 대회에 참여하려는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제125주년 세계노동절, 서울광장 가득 메운 노동자들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홍현진 조혜지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천정배 발 야권개편 태풍은 막을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에 패배한 이유와 퇴출 될 이유
 
임두만 | 2015-05-02 08:56: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정치연합은 왜 선거에 실패했을까? 다른 말들이 많지만 아주 간단하다. 문재인과 이너서클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내놓은 공천개혁이란 허구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공천이란 겉으로는 시민중심 개혁공천이지만 실상은 곧 자기들 집단 지키기 공천이다. 이는 다른 말로는 계파 패권주의 공천이다. 즉 실패한 공천이다.

▲보궐선거 당선 발표 후 승리를 환호하는 천정배 의원  © TV캡쳐 임두만

문재인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때 대회 한 달도 남기지 않고 경선의 여론조사 삽입방법을 달리하는 룰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측이 반발했으나 당은 무리를 범했다. 물론 이렇게 룰을 개정하지 않았으면 당 대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개표 후 그것은 더욱 명백했다. 따라서 문재인 측으로선 그런 무리는 당권획득을 위해 꼭 필요한 편법이었다.

그래서 문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계파청산을 내걸었으며 탕평인사라는 말로 당직인선을 했다. 하지만 임명직 최고위원, 사무부총장 등 꼭 필요한 핵심 자리에는 자신의 계보를 심느라 당내 잡음을 일으켜 당직인선이 꼬여버렸다. 심지어 선임 최고위원이 사퇴를 말하고 당무를 거부하는데까지 나갈 정도로 격랑이 심했다.

시작부터 문대표의 계파청산 약속은 흔들린 것이다. 때문에 당 안팎에서 계파 패권주의, 친노 패권주의, 영남 패권주의라는 말은 없어지지 않았다. 즉 문 대표의 시작이 틀린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천정배 정동영은 더 이상 당의 진로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탈당을 감행했다. 특히 천정배 의원은 지난 해 당이 문희상 비대위로 움직일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론 루트를 통해 당에 경고했다. ‘당 운영을 그리하면 안 된다’고, ‘틀림없이 미래가 불투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비대위도 당권을 잡은 문 대표도 ‘이미 구 정치인이 된 변방의 호남출신의 불만’ 정도로 치부했다. 말로는 ‘만나서 설득하겠다. 협조를 요청하겠다’ 등이었으나 실제의 만남은 통과의례 정도였다. 이들을 핵심으로 불러들일 의사가 전혀 없었다. 결국 이들은 탈당했고 당은 지금 이 모양이다.

그리고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패배가 보이는 진용을 짰다. 현지 여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명분’에 집착한 고집을 부린 결과를 내놨다. 여기서 ‘명분’이란 당내 반대세력의 ‘트집잡기’를 사전에 막는 것을 말한다. 정당한 경선으로 후보를 뽑는다는데, 그렇게 뽑힌 후보가 필패의 후보라도 당내 비주류로선 비판할 명분이 없다. 문재인과 친노 당권파는 그것을 노린 것이다. 따라서 명분에 집착하다 선거에 지는 후보를 내놨다.

사실 관악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상 김희철 전 의원이 가장 적임자였다. 새누리당이 이미 지역선거로 치를 것을 천명하고 지역밀착형 후보를 선정한 것은 이 지역 보궐선거에서 승산을 점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항마는 김희철 외에는 없었다. 직선 관악구청장을 역임하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당선을 했던 김희철은 또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야권연대라는 이름의 편법경선 피해자이기도 하다.

당시의 경선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측의 편법과 탈법이었다는 것은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다. 그 때문에 이정희 당시 대표는 후보직을 내놓고 대신 이상규 후보를 내보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당이 김희철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고 해도 된다. 그러므로 이번에야 말로 당이 김희철에게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되려 정태호 공천을 위해 여론조사 경선이란 룰을 당론으로 하는 우를 범했다.

권리당원 직접투표 50%에 여론조사 50%를 가미하는 경선이란 곧 친노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김희철 당사자도 지적했지만 구청장을 지내고 직전 국회의원도 지내고 19대 경선의 피해자인 것을 지역이 모두 아는데 이해찬 보좌관에 잠시의 청와대 대변인만 했던 정태호가 인지도에서 앞선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두 개의 조사기관이 조사하여 평균치를 냈다는데 양쪽의 편차가 무려 15% 이상이었다면 이 여론조사는 둘 다 폐기해야 정당하다.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조사기관 각각 패널을 선정, 같은 문항으로 조사했는데 특정기관은 김희철이, 특정기관은 정태호가 월등하게 앞서는 조사가 나왔다. 그래도 당은 이를 합산 평균하여 ‘정태호가 2.6%이겼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권리당원 직접투표에서 2%이긴 김희철이 여론조사에서 2.6%졌으므로 다시 합산하면 정태호가 김희철에게 0.6%이겼다’고 발표했다. 발품팔아 직접 투표한 권리당원의 투표권과 집에서 조작도 가능한 여론조사, 그 때문에 신뢰수준을 밝히고 오차범위를 밝히면서 발표하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같은 표로 계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의 공천이었으니 패한 김희철 측히 승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2.6%승리란 모든 여론조사의 오차범위 안이다. 정태호가 그 수치로 이겼으나 실제는 반대로 김희철이 이길 수도 있는 수치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경선에 포함시키려면 오차범위 밖에 있는 수치만 계산한다는 룰도 필요하다. 그런데도 새정연은 기계적으로 같은 표로 계산했다. 패한 측이 도저히 승복할 수 없게 만든 결과다.

그래서 선거가 접전으로 진행될 때 당에서 김희철에게 우호적이었던 신림동 호남향우회 등에게 구원요청을 하자 “경상도 사람이 왜 호남향우회 도움을 요청하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김희철 향수가 강하게 나타났다. 이런 지역적 특성도 도외시하고 문 대표의 측근을 편법 경선으로 공천한 것은 패배를 미리 자인한 것이다.

성남도 마찬가지다. 정환석 후보나 은수미 의원이 팽팽하게 공천경쟁을 했는데 두 후보 모두 이미 지역에서 지역밀착형으로 활동한 신상진 전 의원에게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신상진 전 의원은 지역밀착형임에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을 지내고 의사협회장도 지낸 데다 2선 국회의원 경력까지 가진 상당한 거물이다.

이런 후보에게 비례 초선, 또는 당선 경력이 없는 지역위원장을 붙인 것 자체가 관악의 정태호 공천에 대한 명분쌓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천정배 의원이 지적한 무조건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하는 지역구 선거를 망친 공천실패에는 이런 내면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선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모든 실착을 덮고 자기세력 굳히기에 들어갔다.

천정배와 정동영은 탈당했으나 따라가는 사람이 없으므로 당 장악은 쉬웠다. 전당대회 컨벤션효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데다 당내 반대파도 당분간은 지켜보는 모드를 취했다. 언론은, 특히 문재인이 스파링 파트너로 가장 좋은 새누리당 우호적 언론들은 야권 유일 지도자로 문재인 띄우기를 가속했다.

당연히 여론조사 지지율이란 신기루가 보였다. 실제는 부산의 자기 지역구에서 다시 출마하더라도 당선을 자신할 수 없는 지지기반인데 전국적 스타로 만들어갔다. 여기에 취한 주변 딸랑이들이 더 문재인 대망론에 취했다. 그럴수록 국민들 여론, 특히 호남여론은 나빠가는데 문재인과 그 이너서클만 몰랐다. 그러니 광주에 물량공세를 퍼부으면 천정배 정도는 잡을 수 있다는 오만까지 나왔다. 새정연이 4.29 재보선에 참패한 이유다.

만약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런 그림이 가능했다. 이를 되돌려 보자.

문 대표가 바깥에서 계속 신호를 보내는 천정배 의원에게 ‘당 개혁특위 위원장’ 정도의 자리를 만들어서 앉히면서 “4월 보궐선거는 당 대표나 사무총장의 주관이 아니라 계파청산의 본보기로 당 개혁특위가 할 것” 정도로 언급, 천 의원에게 일임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천정배는 성격으로 보나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보로 보거나 탈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정배에게 당의 중책이 맡겼으면 정동영의 선도탈당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관악과 성남에는 천정배가 그린 그림대로 필승카드로 나섰을 것이다.

당연히 관악은 정동영 출마라는 악재도 없었고 이상규가 완주했겠으나 새정연 후보 당선에 걸림돌은 없었을 것이다. 성남은 차라리 정동영이나 김상곤 같은 거물을 전략적으로 공천하므로 야권의 결집을 시도했을 것이다.

안철수 김한길이 수원에 손학규를 공천하던 그런 배짱으로 문재인이 나섰더라면 이 선거는 최소한 3승1패, 잘 하면 야당 바람이 불어 4전 전승도 가능했던 선거였다. 이런 선거를 패하게 만든 것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 이너서클의 기득권 수호 욕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야권의 여론을 움직인다는 언론부터 입진보로 치부되는 오피니언 리더들까지 ‘야권분열’ 때문에 선거에 졌으므로 문재인은 책임이 없다 식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다시 단합하여 위기를 돌파하자는 조리돌림만 있다.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이는 지레 죽는 길이다. 결국 천정배의 ‘호남발 야권개편 작전’은 태풍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0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분단 70주년에 생각해보는 통일

분단 70주년에 생각해보는 통일<기고> 이재봉 원광대 교수
이재봉  |  pbpm@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5.03  00:07:59
트위터 페이스북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분단이 왜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올해 2015년,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반도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위정자들이나 국민들이나 진보 쪽에서나 보수 쪽에서나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통일에 대한 다짐도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다. 그러나 분단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 “김일성이나 북한이 분단의 원흉”이라는 억지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인식으로 바람직한 통일을 추구할 수 있을까.

분단의 원인이나 배경 또는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통일에 대한 올바른 대책이나 해법을 모색하고 제시할 수 있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란 말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남북으로의 분단이 1945년 8월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분단은 외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이의 연장선에서 “강요된 분단”이란 말도 많이 한다. 분단은 1945년 8월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 때는 남한도 없었고 북한도 없었다. 분단의 원흉은 김일성과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란 말이다.

이른바 ‘6.25전쟁’은 김일성의 남침에 의해 일어났다. 이 전쟁으로 한반도 분단이 굳어졌다. 전쟁은 분단의 시작이 아니라 분단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1945년 8월 미국이 제안한 38선을 따라 국토가 분단되고 1948년 8-9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에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의 정부가 세워지자, 1950년 6월 김일성이 이를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6.25남침 전쟁’이든 ‘적화통일 전쟁’이든 그 전에 이미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 아닌가. 김일성과 북한을 ‘전쟁의 원흉’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일성과 북한에 대해 원한이나 적개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왜곡된 인식을 갖는 것은 곤란하다.

왜 침략자 일본이 아니라 피해자 조선이 분단되었는가?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분단되었다. 1945년 이후엔 미국이 전쟁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그 이전엔 독일이 그랬다. 다른 나라들이 견제하기 어려울 만큼 군사력이 강하니까 호전적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힘을 약화하기 위해 분단시킨 것이니, 독일은 전쟁이란 범죄에 분단이란 처벌을 받은 셈이다. 그러면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를 침략하고 미국까지 폭격한 전범 국가 일본이 분단이란 처벌을 받았어야지, 힘이 약해 항상 침략만 받아온 피해자 조선이 오히려 분단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분통터질 일인가. 더구나 일본은 땅덩어리가 길어서 두 토막으로 자르기도 쉬운데 말이다.

어느 나라든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챙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이기자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전리품으로 차지했다. 쿠바는 1959년 카스트로와 게바라 등이 혁명에 성공해 지금은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인 국가가 되었고, 푸에르토리코는 머지않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자치령이 되었으며, 괌은 미국의 주와 마찬가지지만 아직 정식으로 편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기지로 잘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통치를 받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침략과 점령을 당했지만 1946년 7월 독립했다.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은 당연히 미국이 차지했어야 할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1945년 8월 소련이 자청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끈질긴 요구를 받고 한반도로 내려오던 참이었으니, 미국이 전리품 조선을 소련과 38선으로 나누어 점령하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패전국 일본은 미국이 통째로 차지했다 물러가는 바람에 온전한 모양으로 남았고, 전리품 조선은 소련과 나눠 점령하는 바람에 분단의 상처를 입은 것이다.

조선이 분단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동안이나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힘이 부족했기에 우리 스스로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국력이 부족해 외세에 의해 분단된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 어떻게 국력을 길러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뜻대로 평화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분단 70년이 흐르도록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는 배경은?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는데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엔 남북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커지면서 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왔지만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 외세의 영향력 또는 주변 정세가 남북 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분단이 우리민족의 뜻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이루어졌듯, 통일 역시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대외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한반도 통일이 그들의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 한 반대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남한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으로 한반도 분단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을 ‘악마’로 남겨놓아야 남한에 미군을 유지하며 무기를 팔 수 있고 중국을 쉽게 견제하거나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한 정부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에 회원국으로 참가하는 것을 미적거렸던 이유가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듯, 러시아가 구상해온 5월 9일 전승절 전후의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도 미국의 압력 때문 아닌가.

둘째, 남북의 위정자들이 분단을 정권 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 왔다. 상대방을 적으로 삼음으로써 권력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이른바 ‘적대적 공존’을 이루어온 것이다. 특히 독재 정권들은 분단, 반공, 안보 등을 구실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분단은 그들의 집권 및 통치에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통일이 이루어지면 국가정보원이나 군대 같은 기구의 조직, 인원, 예산 등이 줄어들 게 뻔한 데 그 지도자들이 통일을 원하겠는가.

셋째, 양쪽 위정자들이 통일을 원하더라도 자신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 남쪽에서는 “체제 경쟁은 끝났다”며 자본주의만을 고집하고 북쪽에서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라며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체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남한은 북한이 경제난으로 붕괴되기를 기대하고 북한은 남한이 사회혼란으로 무너지기를 원하겠지만 어느 쪽도 머지않아 붕괴될 것 같지 않다.

넷째,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남북 사이에 원한과 적대감이 커졌다. 주로 해방 이전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파, 북쪽의 토지개혁에 남쪽으로 쫓겨온 지주들, 북쪽의 종교탄압에 남쪽으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반북 세력들은 북한을 증오하고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거부하며 ‘북한 타도’를 주장한다. 특히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 척결되기는커녕 미군정의 도움으로 오히려 정권을 잡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 및 일본과 손잡고 반공과 반북을 악용해왔다.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

통일을 이루어야 할 가장 큰 이유나 필요성은 한 마디로 분단에 따르는 폐해가 너무 크고 통일을 이루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몹시 크기 때문이다. 통일 경비가 천문학적으로 들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분단 경비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더구나 통일 경비는 남북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자는 건설적 투자비용이지만, 분단 경비는 서로 적대시하며 죽이자는 파괴적 소모비용이다. 통일 경비는 천금이라도 아깝지 않지만 분단 경비는 한 푼이라도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피해와 고통 등 돈으로 계산하기조차 어려운 대표적 분단 폐해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분단 때문에 정치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북한을 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것인데, 그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현실이 참 역설적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자유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 자유는 사상과 양심, 언론과 출판, 결사와 집회 등의 자유다. 그런데 분단을 핑계로 유지되는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기본적 자유조차 심각하게 제한하며 인권을 탄압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분단 때문에 군사 외교적으로 자주권을 침해받고 있다. 군대의 작전통제권까지 미군에게 맡기는 등 미국에 너무 종속적이라 “남한은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국제적 조롱을 받는 것은 분단 때문이다.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미국과의 무역액수보다 두 배 이상 크지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며 망언을 해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 일본과 공조를 진전시켜야 하는 것도 분단 때문 아닌가.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진정한 자주 독립국이 될 수 있다.

셋째, 분단 때문에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붓고 있다. 대략 정부 예산의 15-20%다. 국방비 말고도 남북이 체제 경쟁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쓸데없이 지출하는 비용이 얼마나 많은가.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국방비를 비롯해 막대한 경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 만큼 사회복지비를 늘릴 수 있어, 요즘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무상 급식’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이산가족들의 한과 고통이 몹시 크다. 남북 사이에 일가친척끼리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소식을 알아도 제대로 연락도 하지 못하며, 평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길은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분단 때문에 여행의 자유도 제한 받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남한은 ‘완도 (完島)’다. 육지와 연결된 ‘반쪽 섬’이 아니라 바다로만 나갈 수 있는 ‘완전한 섬’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해외여행을 하려면 편안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돈이 많이 드는 비행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여섯째, 분단 때문에 주한미군이 유지되고 이를 통해 퇴폐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범죄까지 늘고 있다. 미군들이 온갖 폭행과 만행을 일삼아도 처벌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분단 때문이다.

일곱째, 분단 때문에 한반도가 동아시아 긴장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사이에도 남북한이 끼어 있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

여덟째, 분단 때문에 징병제가 고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남자들이라면 거의 모두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20대에 공부하거나 일하다 말고 가장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인 군대에 불려가 2-3년 ‘썩어야’ 하는 현실이 왜 지속되는가. 군대에 가기 싫어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리기도 하고, ‘빽’을 쓰기도 하며, 해외로 도피하기도 하는 등 온갖 병역 비리가 저질러지는 이유도 징병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해교전이나 천안함 침몰 또는 연평도 포격 등 남북 사이의 갈등이나 무력충돌 때문에 희생된 젊은이들보다 군대 안에서 자살과 사고로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많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 직업으로 군인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 군생활이 적성에 맞겠다는 젊은이,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 등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단결심과 충성심이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홉째, 분단 때문에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만에 하나 서해교전 같은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이어진다면 남북 모두 막강한 병력과 최첨단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터에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멀쩡하게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요즘 전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보듯, 군인들만 죽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는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끔찍한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 아닌가.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통일’을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하나로 되는 상태’로 정의한다면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 70년이나 떨어져 지내온 터에 이념과 체제를 금세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주주의나 평화도 목표는 끝이 없기에 ‘민주화’나 ‘평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민주주의나 평화로 간주하듯,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 역시 통일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실질적 통일’ 또는 내가 말하는 ‘21세기형 통일’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남북이 적대 관계를 풀고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게 연락하고 오갈 수 있는 상태에만 도달하면 되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확대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기적으로 실현하기만 해도 통일의 절반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2000년 6월 1차 남북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른바 ‘6·15합의’와 ‘10·4선언’만 제대로 이행해도 통일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나아가 활발하게 교류하며 자유롭게 오가다 보면 통일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체제 통일엔 신경 쓸 필요 없다. 통일 한반도의 체제로 남한의 천박한 자본주의도 적합하지 않고 북한의 배고픈 사회주의도 어울리지 않는다. 남북연합이나 연방제를 지향하면서, 남한은 자본주의를 지키되 사회주의 장점인 평등을 조금씩 추구하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 장점인 자유를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 남쪽에선 빨갱이 짓이라는 논란 일으킬 것 없이 복지정책을 조금씩 확대하면 충분하고, 북쪽에선 개혁개방을 조심스럽게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적어도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 체제의 완전 통일까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2015년 5월 1일 <새날 희망연대> 초청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필자 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가 망해야 민주가 산다

 
 
제1편 - 민주당이 망가진 5가지 이유 | 민주당이 사는 법
 
신상철 | 2015-05-01 10:48: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민주가 망해야 민주가 산다
제1편 - 민주당이 망가진 5가지 이유 | 민주당이 사는 법


4.29 재보선 결과를 두고 많은 분들이“새정연의 참패”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3:0’혹은 ‘4:0’이라며 한숨들을 내 쉽니다.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고된 결과일까요 아니면 이길 수 있는 걸 놓친 걸까요? 4.29 재보선 참패의 결과가 야권에 ‘독(毒)’일까요, 아니면 ‘약(藥)’이 될까요?

갑자기 이런 얘기들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2001년부터 정치분석과 함께 정치칼럼을 써왔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인물검색 직업란에 ‘칼럼니스트’로 올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재판이 5년간 이어지고 그에 관한 글만 주로 다루다 보니 정치분석 관련 글을 쓰는 것이 스스로도 ‘생뚱맞은 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만 그와 병행해서 정치분석글을 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언제부턴가 이러쿵 저러쿵 정치얘기 하는 것이 마치 ‘주제넘은 일’처럼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고,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아 몇 편의 글로 나누어 올릴까 합니다.

이번 재보선 그리고 앞으로의 정치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기에 앞서, 작년 초‘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당명을 벗어 던지기 이전 제가 올렸던 칼럼 두 편을 먼저 보시는 것이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 전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우선 소개드리고 글을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 1 ] 2014. 1. 22 - 민주당이 망가진 다섯가지 이유

 

 

민주당이 망가진 다섯가지 이유
(신상철 / 2014-01-23)

오늘 날 민주당이 저 모양으로 망가진 데에는 적지 않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지난 18대 대선이후 잘못된 판단과 선택 그리고 민주당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포함, 상징적으로 다섯가지만 추려보았습니다.

 

1. 부정선거 대응실패 - 부정개표가 핵심이라는 사실 외면

지난 18대 대선이 총체적인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국방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 드러났고, 행안부와 보훈처 뿐만아니라 선거업무를 관장하는 주체인 중앙선관위까지 개표조작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의 대응은 어땠나요? 당에서는 내몰라라 하고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는 이의제기할 수 있는 시한을 속수무책으로 넘겨버렸습니다. 그나마 한 달이라는 시한이전에 시민들이 소송을 제기하여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지만, 현재 재판도 열리지 못하고 계류중에 있음에도 민주당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20만명의 시민이 부정선거를 외치며 서명을 했음에도 꿈쩍도 않던 민주당은 국정원 직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사건이라는 빼도박도 못하는 실체가 드러나자 겨우 무거운 엉뎅이를 움직이는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나마 청년비례대표인 김광진 의원 한 사람 고군분투하여 싸운 결과이지요.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저질러진 부정선거의 모습들

 

부정선거의 핵심은 ‘부정개표’에 있습니다. 초기부터 대응에 실패했던 원죄를 안은 민주당은 ‘부정개표’문제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중앙선관위가 개표조작의 주범’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대응하고 처벌과 대책을 마련해야 앞으로의 부정선거를 원초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개표부정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중앙선관위가 부랴부랴 기존의 전자투표기를 모두 교체 폐기하려 하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속수무책입니다. 범죄자가 범죄수단과 도구를 모두 없애고 있는데 말이지요. ‘중앙선관위의 개표부정’에 눈감고 있으니 그 문제 또한 방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한심한 민주당입니다.    


2. 패기없는 초선들 -  소총부대 어디갔나

민주당에는 모두 중진 이상만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초선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요? 선거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가 저질러졌고, 민주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 패악질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우리 야당의 초선의원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걸까요?

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선 직후 ‘대선 패배에 대해 국민들께 사죄하겠다’며 투어에 나섰다지요.

 

 

그 뉴스를 보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참으로 착잡하더군요.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들 수십만명이 서명하고 있는 마당에 소총부대인 초선들이 앞장서 싸우기는 커녕 패배했다며 사과하러 다니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걸까요?

박근혜 정권의 삽질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소총들고 싸워야 할 신참들이 후방에서 미사일 쏘아주길 기대하고 있으니 난감합니다. 민주당의 초선의원들은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야당, 중진들의 총체적인 부실 속에 초선들 조차 제대로 키워내질 못하나 봅니다.

당시 국회앞에서 천배를 올리며 “지은 죄를 씻기 위해 당과 정치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변화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했지요. 그나마 김광진, 김현, 장하나 의원 조차 없었다면 민주당의 존재감 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겁니다.


3. 종북 프레임에 갇힌 민주당 - 이석기 의원 구속 동의안 사건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사건이 터지자 민주당은 속전속결로 구속에 동의해 버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 민주당 집권 포기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합진보당의 세력이 막강해서 그 분들의 도움없이는 민주당이 집권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허긴 민주당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정치도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의리’로 나타납니다. 민주당은 도리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맏형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지요. 가장의 역할을 포기한 것입니다. ‘야권연대’가 무엇입니까. ‘한 이불 덮고 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게 ‘손만 잡고 잤어요’ 한다고 될 일입니까? 누가 그 말 믿어줍니까? 책임감도 없고 정의롭지 못한 처신입니다.

민주당은 이랬어야 합니다. “통합진보당 이리와봐라. 쟈들 주장이 사실이라면 골때리는 사안인데 우리 골싸매고 의논하자. 일단 자체조사를 해라. 시간 얼마나 필요한가. 한 달? 좋다. 한 달동안 철저히 자체 조사를 하고 다시 논의하자. 이 참이 진보정의당 당신들도 함께 고민하자. 이 문제는 야권 모두가 고민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오케이?” 

국민께는 “국민여러분, 일단 자체조사와 야권의 논의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여당의 체포동의안은 거부하겠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본 후 결정할 문제입니다.”라고 선을 긋고, 돌아서서 새누리에게는 “니들은 입 다물어라. 국정원 사건만 해도 니들은 정당해산해야 할 당이야!”라고 일갈했어야지요.

그게 야권의 맏형이 했어야 할 일입니다. 얼마나 든든한 형입니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후보시절 하셨던 말씀 “내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대통령 포기하겠다” 얼마나 든든한 남편입니까? 이석기 사건, 공소장 조차도 숱하게 조작이 되고 왜곡이 된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가슴졸이며 유죄받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지나 않은지 민주당은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4. 친노와 비노 프레임 - 끝없는 분쟁의 쳇바퀴

많은 식자들이 그럽디다. ‘친노와 비노 프레임’은 조중동이 만든 덫이라고.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 분들 스스로 그 안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자신들의 경계선을 긋고 스스로들 유폐시키고 있으니 그 말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망령처럼 휘감고 도는 것입니다.

안그런가요? 입에 바른 말로 “우리 그런 것 없다” 손사래 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요? 그래서 대선 때 당과 후보가 따로 놀고, 지금의 지도부 온갖 패착을 두고 있어도 팔짱끼고 뒤에서 쳐다만 보고 있는 건가요? 보는 사람들이 볼 때 경계가 확연하게 그어져 있는데, 아니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인가요?

 

 

친노와 비노의 경계선을 없애는 것은 레토릭의 향연이나 악수만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녹아들어 가야지요. 잘한 건 잘한다 격려하고, 못하는 것은 박터지게 싸우면서 대들기도 해야지요. 서로가 마치 ‘소 닭보듯’ 외면하고, 함께 힘을 합해야 할 일도 ‘처 외삼촌 벌초하듯’ 건성이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하니, 우리 눈이 잘못된 건가요?

‘친노와 비노 프레임’- 이 지긋지긋하고 백해무익한 개념을 사라지게 할 장본인들 역시 당사자들입니다. 서로 섞여들고 비빔밥이 되어 초장을 치든, 지지고 볶든, 함께 깔깔대든, 뭔가 통일성이 있고 의기투합이 되어야 보기도 좋고 통트면 연장 챙겨 나가 싸울 전투력도 생기는 것인데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사람들은 밖에서 구분지으며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겁니다.

‘친노와 비노 프레임’ 그 끝없는 논쟁과 멈추지 않는 쳇바퀴, 그것을 종결지을 사람들은 바로 당사자들입니다. 스스로 친노인지 물어보고 스스로 비노인지 물어봐서 본인이 해당된다 싶으면 가슴을 후벼파 도려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레토릭도 설 곳을 잃게 되겠지요. 새해가 밝을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 앞에 어떤 얼굴로 서시렵니까?


5. 중진들의 삽질 - 어줍잖은 동서화합

저는 작금의 민주당이 존재가치를 잃어버릴 정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김한길 대표는 깜이 아니니 최대한 빨리 물러나고 차라리 능구렁이 박지원씨가 대표가 되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우고 산전.수전.공중전.수중전까지 다 치러낸 베테랑이니 뭔가 다른 구석이 있지 않겠나 싶기도 했구요.

그런데 엊그제 새누리 사람들 떼거지로 데리고 신안의 김대중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뚜껑이 열리더군요. 그걸 ‘동서화합’이랍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새누리 족속들이 ‘화합’의 대상입니까? ‘응징’의 대상입니까? 그 원초적인 질문 앞에 어떤 대답을 내놓으시겠습니까?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만행을 백주대낮에 저지른 집단의 후예들인데 그들이 진정한 사과를 했습니까? 그들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졌습니까? 응징이 되었습니까?

그러니 친일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친일행위가 ‘민족의 발전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노라 왜곡질을 해대고 그것도 모자라 교과서에 못을 박겠다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응징해야 할 사람들이 주제도 모르고 응징해야 할 대상들에게 어줍잖은 화합의 굿판을 함께 벌이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겁니다.

따뜻한 봄이오면 박정희 생가로 여행을 함께 떠난다구요? 인혁당사건으로 피멍 든 가족들 함께 손잡고 갈 자신 있습니까? 고문치사로 분신으로 가장을 잃은 가족들에게 화합의 여행 함께 가자 할 자신 있습니까? 동서화합은 세월이 지나 민초들이 알아서 합니다. 때가 되면.. 아시겠습니까? 총 들고 싸워야 할 당신들, 총 놓고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신상철


덧글 : 민주당이 이땅의 민주본산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여 다음에는 '민주당이 사는 법'에 대한 글을 준비하겠습니다.

 


[ 2 ] 2014. 1. 30 - 민주당이 사는 법

 

민주당이 사는 법
(신상철 / 2014-01-31)

 

제목이 “민주당이 사는 법”인 것은, 현재 민주당이 죽은 정당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의석수 127석 씩이나 갖고 있는 정당이 저토록 존재감도 없이 따뜻한 아랫목 축 처진 할배 거시기처럼 맥아리 없는 것도 ‘정치학적으로 연구대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드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민주당 소속 의원들 대부분 누구한테 약점을 단단히 잡혀 찍소리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도대체 새누리가 버린 파란색은 누가 줏어왔을까?… 퍼포먼스만 하면 언제 싸우려고…

 

저는 지난 번 글에서 <민주당이 망가진 5가지 이유> 를 나열한 바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현재의 민주당은 분석력도, 판단력도, 조직력도, 리더십도, 투쟁력도 없는, 한마디로 생명력을 상실한 정당이라는 얘깁니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 또는 정치생명 연장만이 유일한 관심거리인 집단인 거지요. 

“민주당이 망해야 민주가 산다”는 의미는, 민주가 승리하려면 민주당이 바로 서야 하고, 민주당이 바로 서려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보아하니) 반드시 망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뜻이고, 현재의 민주당 내에는 알곡보다 쭉정이가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민주당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어 민주당은 항상 존재했고,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썩어 문드러지면 그 악취에 시달리고 청소하는 것 또한 민초들의 몫이기 때문에 설거지를 하든, 분류수거를 하든 성질 급한 사람들이라도 먼저 손 걷고 나서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지요. 그래서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선동하고 폄프질해서라도 말이지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잊어버린 민주당

저는 원래 복잡하게 말하는 것 싫어합니다. 실은 머리에 든 것도 별로 없구요. 그래서 글도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중2 수준에서 이해가 될 수 있는 글, 그 수준이 저의 목표이며 한계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길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차분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복잡하게 나열할 것 없이, 한 문장으로 줄여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 “행동하는 양심”, 그 철학이 지금 민주당에는 있는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몇몇 의원들, 예를 들어 김광진 의원은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장하나 의원 역시 초선이지만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싸울 수 있는 의원들이 현재의 민주당 내에 열 명만 있어도 지금의 한심한 모습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야당, 싸움을 두려워하는 야당, 자리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야당, 그 모습은 직장인이지 야당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역사상 유례없이 부정하고, 부패하고, 교활하고, 패악한 독재정권에 맞선 야당의 모습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을 잇지 못하는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철학은 “사즉생의 정치”입니다. 나를 버리고 희생하는 것, 나의 소리(小利)를 포기하고 대의(大義)를 따르는 것. 당장은 자신에게 손해인 것 같지만 긴 안목과 호흡으로 가시밭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 그러한 정신과 정치철학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느꼈던 사람들조차도 마치 먼 옛날의 추억인양 깡그리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정책이 옳고 그르고, 어떤 정책은 성공이고 어떤 것은 실패였다.. 그런 것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그 두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 그리고 정치적 철학이 녹아들고 어우러져 공유된 상태에서만 존립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필연입니다. 그런데 그 두 분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부자연스러운 침묵 속에 반목과 대립 그리고 무관심과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 심각성은 이제는 어떠한 해법으로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제갈공명이 온다해도 풀기 어려워 보입니다. 화합, 화목, 단합 그리고 전투력 결집.. 불가능합니다. 불신의 늪과 골만 더 깊에 패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모두가 마음을 비우고 중대한 결심들을 하셔야 할 시기에 이르렀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야 본인도 살고, 민주당도 살고, 민초들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개혁이지요. 개혁은 개혁인데, 어떤 개혁일까요?  


‘뼈를 깍는’개혁? 아닙니다.‘뼈를 갈아치우는’개혁!

무언가 큰 변화가 요구될 때, 흔히들 ‘뼈를 깍는 개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만, 현재의 민주당은 뼈를 깍는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봤자 뼈대만 약해질 뿐이지요. 뼈를 갈아치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뼈대를 새 뼈로 교체해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도로 정립한 후 대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저 버스타고 세배다닌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민주당에 소속된 의원들가운데 최소한 절반 이상은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차기 불출마 선언하고, 남은 여생 후진양성에 매진하겠노라 선언을 하고, 민주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한 알의 밀알 역할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민주당 내에서 절반 이상은 나와줘야 비로서 ‘뼈를 갈아치우는 개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민주당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지키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을 잇는 길입니다. 이제는 고향에 내려가서 아니면 전국을 돌면서 그 철학과 가치와 정신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일깨우는 일에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밑에서 정치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말이지요. 정치권 언저리에서 계속 권력을 바라는 탐욕을 버려야 할 때이고, 그것을 요구받는 때라는 얘깁니다. 

그게 “행동하는 양심”이고,“사즉생의 정치”아닌가요? 그것을 배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도 그 시기를 알지 못해 눈치만 보고 있는 모습, 스스로 거울에 비추어 보아도 추하지 않은가요? 탐욕과 권력에 눈먼 자신의 모습이 새누리 족속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요?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거부할만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가요?

갈아치우는 것만이 능사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것도 하지 못하면 민초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드릴 겁니다. 반드시. 분노한 민초들은 별 역할도 없이 방만 크게 차지하고 있는 소위 원로급 이상의 의원들과 뒷 방 늙은이 같은 중진들, 초선이면서 이미 고물차가 되어 버린 의원들까지 분류하고 찍어내어 퇴출되도록 만들고야 말 겁니다.


민주진영 승리의 전제조건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밑도 끝도 없이 ‘야권이 연대하고 단일화하지 않으면 전멸한다’류의 주장을 펼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를 관통하며 유형별로 다양한 경험들을 겪으셨던 분들이 아직도 그런 순진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연대하고 단일화만 되면 이기나요? 누구 맘대로? 새누리와 중앙선관위의 양보와 허락을 받으셨나요? 부정선거, 개표부정 저지르지 않겠다는 보증서 받았나요?

선거의 귀재, 조작과 왜곡의 달인, 부정과 부패의 지존, 그들이 “패배는 곧 죽음”이라는 각오로 목숨걸고 악랄하게 발악을 하며, 그들이 쓸 수 있는 모든 동력과 자원을 거지 깡통까지 뒤져가며 쓰고 있는데, 야권에서 신사협정만 맺으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면 수긍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조차도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조건의 우선 순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첫째, 부정선거와 개표부정에 대한 인식과 처벌, 그리고 확고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에 시행된 선거관리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그것이 야권승리가 가능한 무조건적 첫째 조건이다. 새누리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둘째, 민주당이 뼈를 갈아치우는 개혁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민초들의 지지를 얻고, 흩어진 동력을 다시 모을 수 있다. 이것이 야권 승리가 가능한 무조건적 둘째 조건이다. 그 바탕이 있어야 다른 정당과의 연대든 단일화든 나설 수 있는 명분과 지위가 생긴다.

셋째, 위의 첫째와 둘째의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승산이 높고 연대와 단일화까지 이룰 수 있다면 무조건 대승이다.

넷째, 만약 연대와 단일화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 첫째와 둘째만 이루어 진다면 반 새누리당 진영은 무조건 이긴다. 국민들은 바보 아니다. 이미 새누리는 민심을 잃었고 부정과 부패와 조작없이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는 정당이다.  

다섯째, 위의 첫째와 둘째를 이루지 못하면 무조건 진다. 백약이 무효하다. 연대아니라 단일화 할아버지를 이룬다 해도 절대 승리하지 못한다. 선거애 이기고 개표에 지는 바보짓만 무한 반복될 뿐이다.

   
지방선거 - 총선.대선과는 다르다

앞에서 제가 말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어야 할 당사자는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이 뼈를 갈아치우는 개혁을 이루면, 새정치신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모두 민주당이 변화하는 만큼 함께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죽지 않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지요. 민주당의 변화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승리도 그리 멀지 않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민주당이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는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주장을 하느냐구요? 민주당, 그들은 ‘뼈를 갈아치우는 개혁’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생각이 틀리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에 대한 민초들의 대응전략을 말씀드리기 위해 지금까지의 긴 설명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지방선거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민주당이나 새신당 입장에서야 중요할지도 모르죠.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보십니까? 지방선거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는 것이, 민주당이 스스로 변화하는 일, 개혁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도지사 한 둘 더 얻는다고 세상 달라지던가요? 시장 한 둘 잃는다고 세상 무너지던가요? 2010년 이후로 오늘 현재까지, 서울시 25개구 가운데 민주당 구청장이 21곳이나 싹쓸이 해서 차지하고 있는데,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관통하며 세상 달라지고 있던가요? 만약 그거 다 잃는다고 민주당, 더 잃을 게 있을까요? 지방선거, 그리 중요한가요?

하지만 총선과 대선은 다릅니다. 국회의원 숫자와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 여부는 정치적 환경과 우리 민초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극히 중대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지방선거는 다르다는 겁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민초들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징징거리며 도와달라고 소리에 개혁이고 뭐고 만사제쳐놓고 또 한 번 속아주는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면 이번 참에 완전히 민주당을 두들겨 패서 초죽음을 만들어 놓는 것이 향후의 총선과 대선이라는 거사를 위해 바람직하냐, 그 고민을 심각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개혁을 이루라, 그러면 반드시 손을 잡아 준다 !

결론은 간단합니다. 채찍과 당근입니다. “개혁해라 도와줄께. 개혁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 그겁니다.

우리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선거, 민주당이 스스로 환골탈태하는 수단으로 삼고 압박과 협박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야 총선과 대선을 이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번에 어리버리하면서 지금 저 꼴 저대로 가면 지방선거 망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총선과 대선 모두 말아 먹을 것이 불 보듯이 뻔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번에 민주당 스스로 낡은 옷을 확 벗고,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압박과 협박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설사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음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1. 부정선거와 개표부정에 대해 적극 개입하고 선거제도를 정비하라.
2. 전투력을 상실한 민주당 중진과 의원들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물러나라.

만약 민주당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그것은 “죽어봐야 죽는지 알겠다”는 것이니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차라리 새 토양에 새 싹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누가 답답할까요. 답답한 것은 이번 선거 떨어지면 권력을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권력바라기'들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민주당의 ‘뼈를 갈아치우는 개혁’을 촉구합니다.

 

다음 글은 “제2편 - 4.29 재보선 새정연의 참패라구요?”로 이어가겠습니다.

신상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9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보수 안보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양태 보여

 
2015. 05. 01
조회수 91 추천수 0
 

  야당은 새누리당을 대체할 수 있는 수권 정당인가? 그러려면 국민에게 믿을 수 있는 안보의 확신을 주어야 한다. 재보선 참패에 빠진 야당의 환골탈태는 대북 안보정책에서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이 얼마전 온라인 매체 <프레시안>과의 직격 인터뷰에서 제기한 핵심 내용을 담았다.

 문재인.jpg                                                              

 

야당에 안보 ‘정책’이 있긴 한건가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야당의 안보 정책과 지향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전반적으로 야당의 안보정책을 진단해 본다면?

  김종대 : 안보담론에 대한 야당의 대처 방식과 인식, 행동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에서 실패한 이후 안보 정책에 대한 트라우마가 차곡차곡 쌓여 왔는데, 그걸 벗어나려는 욕망이 안보에 대한 지향으로 표출된 것 같다. 현재 야당에서는 당 대표의 안보 행보, 안보 연구소 및 특위 조직 창설 등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로 예비역 장성들과 안보 전문가가 영입되고 있다. 안보 정당의 이미지를 보이면서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외부 공격을 차단하면서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물론 지금까지 야당 형편을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이 이해는 된다. 얼마나 지긋지긋했겠나. 제가 야당 지도부를 만날 때마다 들은 질문이 “천안함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야당 정치인 거의 대부분이 천안함 때문에 공격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제적으로 보수와 동일한 목소리를 낸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보수 안보의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답습이 된 것이다. 
 이것이 천안함 이라는 한 가지 의제를 돌파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다른 의제가 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년 총선 이전에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구체화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이 제주 해군기지로 야당을 밀어붙인 것처럼 사드를 통해 야당을 무책임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나오지 않겠는가. 얼마 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 대표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야당”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가”라고 거꾸로 야당에 질문을 했다. 이건 뭘 말하나? 사드가 제2의 강정마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TV 조선>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출현하였는데 진행자가 “사드 배치에 찬성하냐?”고 묻고 심 대표는 “반대한다”고 했다. 배치되지도 않을 사드 갖고 벌써 편 가르기가 나오고 야당은 말려들고 있지 않나? 그러면 그 때가서 야당은 또 종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나올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것은 지금 야당의 준비 정도와 실력을 봤을 때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가 짜놓은 프레임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안보 문제가 불거지면 야권 내부에서 분열이 생긴다. 분명히 야당 강경파들은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고, 이러다 보면 보수 세력은 강경파 의원들이 있는 소위 ‘종북 숙주 정당’의 이미지를 새정치연합에 뒤집어 씌울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언어로 한반도 안보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문재인 대표의 안보 행보는 보수층의 언어를 그대로 빌려서 이야기하는 흉내 내기로 간다는 것이고, 여기서 일부 야당 의원들은 이탈한다. 한번 가 보라. 또 다른 의제가 야권 전체의 목을 조를 것이다. 

 

  프레시안 : 문 대표의 천안함 발언이 나왔을 때 이런 행태가 여당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많이 나왔다. 이후 상황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김종대 : 말려든다는 프레임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로 역할 변경에 있다. 안보가 무너지고 국민을 불안하게 해 실패한 안보에 대한 책임을 추궁 당해야 할 당사자는 사실 정부와 여당이다. 그런데 실패한 안보의 책임을 여당이 야당에게 추궁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원래 야당이 안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가장 정상적 현상인데 거꾸로 된 것이다. 천안함, 제주 해군기지, 사드 배치 등이 바로 그렇지 않나? 이것이 정부 여당이 선호하는 프레임이다. 
 마침 유승민 원내대표가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사드에 반대하는 야당”이라는 표현을 쓰며 야당에 입장을 추궁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한번도 사드 배치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정작 입장을 밝힌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요청도, 협의도 없었고 할 계획도 없다는 것이다. 또 전임 이명박 정부 때 천영우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미국 MD에 우리가 왜 참여하느냐고 했었다. 그렇다면 사드를 반대하는 쪽에 가까운 것은 야당보다는 박근혜 대통령, 또는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질문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잘못된 거다.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이 질문을 받지 않으니까 안보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해 진다. 왜 이렇게 되었나? 야당이 자신의 언어로 정부여당에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당이 집요하게 묻고 추궁하면서 물고 늘어지지 못하니까 이제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야당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게 바로 강정마을의 교훈이다. 사드 배치? 그것이 유승민 대표의 개인 의견인가, 정부의 입장인가, 왜 추궁하지 못할까? 게다가 정부여당이 그동안 안보에서 실패한 그 무수한 사례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추궁했더라면 야당의 위신은 얼마든지 설 수 있었다. 보수정권의 전략적 실패와 방산비리와 같은 부패사건까지 안보를 무너뜨린 건 보수정권인데, 이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한다. 그러니 야당 책임만 남은 것이다.   
  이건 안보 분야에서 추궁하는 검사가 여당, 답변하는 피의자가 야당으로 관계가 설정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다보니까 안보에 대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정부 여당은 면책되고 야당은 자기의 입장을 검증받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의 효과다. 여기서 야당은 일종의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해야 한다. 엄한 아버지 앞에서는 말을 못하는 청소년과 같이 자기 언어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정신적 장애다. 사도 세자가 영조 임금 앞에선 오금이 저리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결국 뒤주에서 죽었다. 그렇게 야당은 안보세력 앞에서, 군복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뒤주에 들어가는 사도 세자와 꼭 닮은 것이다. 이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장수가 다 망쳤다? 팩트 몰랐던 문재인 후보

 

  프레시안 :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야당에게는 외교안보정책이 중요한 자산인데 별로 공부도 안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당시 NLL 문제가 논쟁이 됐을 때 야당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김종대 : 우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3가지를 몰랐다.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 대화록 작성 경위, 대화록의 소재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캠프 내 일각의 분위기는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서해평화협력지대와 NLL 등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대화록이 공개되고 나니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NLL이야기를 들고 나오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평화와 경제 지도로 덮자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NLL에 대한 일종의 우회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마치 북한이 우리가 설정한 NLL을 인정한 것이라는 오인내지 기대,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NLL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뜻을 같이 했으니 사실 관계도 밝혀지리라는 기대가 퍼졌다. 하지만 공개된 대화록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때도 NLL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고 정상회담 이후 11월에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때도 21개 항에 합의문을 내 왔지만 서해 문제는 합의 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서해 문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2007년 8월 통일부-국방부-청와대가 모여서 NLL에 대한 최종적 입장을 정했다. 그런데 이날 하필이면 김장수 장관이 눈병이 났다. 그래서 김관진 합참의장이 대신 참석했다. 회의 이후 김 의장은 돌아와서 김장수 장관에게 NLL 수호에 대한 대통령 지침이 정해졌으며 군이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중요한 것은 통일부가 여기에 반발하긴 했지만 NLL 문제와 관련해 주도권은 이미 국방부로 넘어간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북이 합의했던 서해평화협력지대와 주요 갈등 사안인 NLL 문제는 이후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 맡기자는 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1월에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다.
 11월 회담에서 수석대표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 그리고 실무 책임자는 정승조였으며, 합참의장은 김관진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박근혜 정부 들어 국방 분야의 주요 직위를 맡았다. 김장수는 국가안보실장, 김관진은 국방부 장관, 정승조는 합참의장이 되어 있었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핵심 멤버가 박근혜 정부에 모두 입각해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했다고 단 한 번도 밝힌 적 없다. 실제 포기하지도 않았고 만약 포기했다는 누명을 쓰면 본인들도 같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NLL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7년에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실현될 수 없었던 거다. 그런데 2년 전인가. 정승조 합참의장 시절에 합참의 간부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에 대한 인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군의 입장이 정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런데 문 후보가 엉뚱한 발언을 했다. 대선이 있던 2012년, 10.4 남북공동성명 5주년 기념식에서 문정인 교수와 대담을 하는 과정에서 문 후보는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장수 장관이 경직된 태도를 보여서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다 깨뜨리고 내려왔다고 이야기했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김장수 장관은 앞서 밝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실제 노 대통령은 국방장관회담을 가기 전 찾아온 김장수 장관에게 “국방장관의 뜻대로 하라”고 했다. 이후 김장수 장관도 본인이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NLL을 지켰다고 밝힌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 장관급 회담 당시 거론됐던 NLL 문제에 대해 문 후보가 팩트 자체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기화점으로 해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10월 9일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4일 문 후보의 발언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새누리당은 “김장수 장관은 NLL을 지키려고 했다는데, 그랬던 김장수 장관이 일을 모두 망친 것이라면, 그렇다면 저 사람들은 NLL을 포기하려고 한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NLL 포기론으로 문 후보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새누리당이 NLL 문제를 제기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다. 
  그런데 이 때만 해도 박근혜 후보가 이 문제를 꺼내지 말자고 했다. 북풍이 불면 역풍이 분다는, 2010년 6.2 지방선거의 학습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새누리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지금 시절이 어느 시절인데 북한 문제로 걸고넘어지느냐는 입장을 보였고. 그래서 NLL 문제가 다시 나온다고 해도 이게 대선 쟁점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도 노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과 같은 것이었다. 여야가 같은 선거 공약을 냈다. 
  그런데 제가 유심히 본 것은 그해 10월경에 육군 3군사령관 출신인 이홍기 예비역 대장이 새누리당에 출입한다는 소식이었다. 이건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이었다. NLL 문제가 남북 간 제일 첨예한 대립으로 불거졌던 때는 2007년 5, 6, 7차 남북 장성급회담이다. 이 때 회담 대표가 이홍기 소장(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이었고, 당시 이 회담들은 남북한의 NLL에 대한 이견 때문에 제대로 된 합의를 내지 못했다. 만일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NLL에 대해 합의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그건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11월부터 새누리당은 NLL에 대한 총공세에 돌입했다. 박근혜 대표는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직접 이 문제를 따져 물었고, 새누리당 안보세력이 총동원되었으며 극우 논객들이 이 문제를 일제히 들고 나왔다. NLL을 둘러싸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됐다는 것을 당시 정부 인사들이 뻔히 아는데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착각했다.

 

  프레시안 : 그럼 당시라도 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수습을 해야 했던 것 아닌가?

  김종대 : 문 캠프의 사실관계 파악과 대응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문 후보 본인은 NLL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150번 정도 했다. 하지만 이미 NLL은 대선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되어있었고, NLL 포기냐 아니냐는 논쟁이 붙기 시작했다. 당시 캠프의 중요한 인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이 남북정상회담, 청와대 모두 있어봐서 아는데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NLL을 다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북한에 대한 감상적 낭만주의, 희망적 사고에 젖어있다 보니 팩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10년 간 집권한 정당이 오히려 정보가 없고 당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이 더 정확히 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문 캠프는 해명하기에 바빴고 우물쭈물 거렸다. 그러다보니 뭔가 숨기는 것 아니냐, 이상하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됐다. 의제 관리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만약 DJ 였다면 후보 입을 통해 그런 식의 엄청난 발언들이 나오기 직전에 반드시 크로스 체킹을 했을 것이다. 정보를 취사선택하려면 관점과 생각이 다른 보고서를 여기저기서 많이 올려보라고 해서 리더가 공통되는 부분을 찾고 비교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 캠프에서는 한 명이 가서 소설을 써버리면 나머지 전체가 다 바보가 되는 형국이었다. 대선 끝나고 당시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과 대북관계를 좀 알만한 의원, 국정원 간부 등에 물어보니 정확히 팩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보고해봤자 중간에서 끊기거나 엉뚱한 사람이 소설을 써버리니까 팩트를 교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스스로 버린 햇볕정책, 누가 대신 지켜주길 바라나

 

  프레시안 :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한 사후 점검은 없는 것인가? 

  김종대 : 그렇다. 야당의 가장 큰 문제가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자기들이 뭘 몰랐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당에 안보 전문가가 없었을까? 새누리당에도 없는, 연평해전 당시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2명이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NLL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을 때 “NLL 내가 지켰다. 앞으로 문 후보와 지키겠다”라고 기자회견 한 번 하는 걸 보지 못했다. 또 NLL 문제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극우 논객들을 단 한 명도 고소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중에 TV토론 때 새누리당에서 질문이 나오더라. 당신들 극우논객이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하는데, 왜 고소하지 않느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부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에 노무현은 전자개표기로 대통령을 도적질한 사람이고 김대중은 민족반역자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런 허위사실을 야당은 고발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당시 문 캠프는 거의 무장 해제 상태였다.  
 여태까지 뭘 실수했는지도 모르고, 사실 관계도 헷갈렸던 당시 캠프의 관성이 대선 이후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동안 전시작전권, 윤 일병 사망,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등 대형 안보 이슈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당론을 낸 적이 없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사드만 해도 그렇다. 입장이 없다. 그냥 퉁 치고 지나가자, 모르겠다, 떠들면 불리하다 등등의 기류만 있다. 당 내에 북한 전문가와 안보 전문가가 그렇게 많은데도 사건 터져도 회의 한번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MB 회고록,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다 나와 있는데 완전 허위와 기만의 기록물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야당이 이런 문제에 대해 당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끼리 단 한 번도 대책회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은 자신이 망친 안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얼마나 행복한 대통령인가? 새정치연합은 외교 안보 관련 내부 소통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정당이다. 일할 만한 능력이 있는 정치인은 일을 못하게 다 묶어놓았다. 예를 들면 통일부 정책보좌관을 지냈던 홍익표 의원은 ‘귀태’ 발언으로 2년 째 대정부 질문을 못하고 있다. 또 야당에 예비역 장성과 해군 참모총장이 와있으면 이들을 써먹어야 하는데 다 남의 일이 돼버렸다. 
새정치연합이 고질적으로 당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2002년 서해교전 때 햇볕정책 때문에 장병들이 죽었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매년 6월만 되면 이런 식의 담론을 계속 꺼내고 있다. 오죽하면 2함대 소속 병사들까지도 야당이 집권하면 자기들은 다 죽은 목숨이라고 알고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면 야당에서는 이 문제를 설명할 전문성이 없었을까? 연평해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 그날은 청와대 점심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박지원 비서실장 이하 전 직원 점심 식사였다. 그날 오전 합참에 처음 올라온 보고 내용은 ‘적함이 불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측 피해는 보고가 안되니까 승전한 줄 알고 합참은 박수치고 다 밥 먹으러 가버렸다. 그런데 청와대에 있는 몇몇 장교들이 조사를 해보니 사건 발생 이후 2시간이나 더 지나서 아군의 피해가 있다는 것이 파악됐다. 이건 김대중 정부의 치명적인 위기관리 실패였다. 그런데 정부가 서해에 일부러 우리 병사들 죽으라고 내몰았겠나? 군에는 교전 수칙과 작전 계획이 있다. 또 우수한 함정과 자동화된 사격 장비도 있다. 이렇게 깨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이 아닌 해군의 기강 문란 때문이었다. 
   당시 아군 고속정 2척은 적이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속 6노트로 기동하고 있었다. 적과 대치하면 시속 30노트에 육박하는 돌격 기동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불과 150미터 거리에서 함정이 적이 쏜 포에 명중되고 승조원 28명 중에 6명 사망자를 포함, 24명이 사상됐으며 배는 가라앉았다. 이 사실이 보고가 안 된 것이다. 이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통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군의 작전 기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 드러났다. 당시 합참의 작전본부장이 훗날 MB 정권에서 장관이 된 이상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남재준이었다.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한 국정상황실 장교에게 “해군이 까불다가 다친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황이 자세히 드러난 보고서는 이후 국정상황실장에게 전달됐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새정치연합 전병헌 의원이었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에게 갔다. 보고서에는 해군의 실수가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해군 출신들이 당시 정권이 자신들을 죽였다는 식으로 황당하게 사실을 바꿔치기 해버린 것이다. 당시 이 보고서를 받았던 박지원, 전병헌 의원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이에 대한 방어나 해명을 한 적이 없다. 팩트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명도,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싸움을 포기하고 투항해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보 이슈를 어설프게 제기하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싸움도 피하다가 진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에 등을 돌린 것은 민주당-새정치연합 자신들이다. 자기 스스로가 지키지 않는 가치를 남이 지켜주길 바라고, 이걸 국민보고 지지해달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나?

 

 프레시안 : 대선 당시 NLL 문제와 관련, 문 후보가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도 몰랐고 협상 과정도 몰랐던 것은 캠프 내에 전문가가 없었다기보다는 이 논쟁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가 없었다는 것 아닌가?

  김종대 : 한 번도 TF 같은 것을 만들어서 새누리당의 의도와 방향을 분석해본 적이 없다. 경험자들의 팩트를 누군가가 정리해 준 적이 없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선거에서 참으로 상대하기 딱 좋은 당이다. 사실 문 후보한테 이 책임을 다 물을 수도 없는 것이 그는 2007년 정상회담에 들어가질 않았다. 막상 정상회담에 들어간 것은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 대화록 작성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 대화록이 어디 있는지 밝혀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 기록관장, 홍보수석 등 기록물 책임자들이다. 이런 책임자들과 더불어 팩트를 잘 알고 있는 서훈 국정원 3차장도 당시 대선 캠프에 있었다. 팩트를 아는 사람은 넘쳐났다. 단지 문 후보에게까지 팩트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프레시안 : 팩트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도 지키지 못하면서, 단순히 안보적인 측면에서 여당과 비슷해지려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김종대 : 그러면서 대선 캠프 당시에는 자리싸움은 아주 치열했다. 누가 외교 안보를 주도하느냐, 자문단은 누가 이끄느냐, 차기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은 누구고, 장관은 누가 가느냐 등등 경쟁과 다툼이 심했고, 목소리 큰 특정한 사람들이 주도했다. 좋은 정보를 나 혼자 독점해서 후보한테 줘야 그걸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다는 사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햇볕정책이나 빌리 블란트의 긴장 완화 정책을 보면 지도자가 장기적인 일관성을 갖고 불굴의 신념과 용기를 발휘하는 주도세력이라는 것이 있을 때 그 정책도 역사 속에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새정치연합에는 그게 없다.

 

 변화된 남북관계 읽지 못하면 야당에 미래 없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금 야당에는 김대중-노무현이 추구했던 노선을 안고갈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김종대 : 그렇기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와 지금의 남북 상황이 달라진 측면도 있다. 일례로 서해 같은 경우는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서해에 저렇게 많은 공격무기가 들어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은 서해 NLL을 중심으로 무기가 매우 많이 들어갔고 분쟁 잠재 요인들이 전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제 분쟁이 구조로서 정착돼있다. 이런 와중에 서해가 남북간 정치적 급소가 됐는데, 과거 서해 평화협력지대라는 도그마를 지금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사드와 노동 미사일이 오르내리는 것도 남북간 군비 경쟁의 단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우선 현재 이 상황에서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해 NLL과 관련된 입장을 그대로 고수할 것인지,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대안을 가져갈 것인지 고려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성찰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하면 진보 진영의 적이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북한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백령도, 연평도에 공격 무기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의 심장부 앞에 공격무기를 겨누고 있고 서해의 북한 항구는 사실상 NLL로 봉쇄되어 있는데 숨이 막혀 어떻게 사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G20 정상회의나 인천 아시안게임이 벌어질 때 서해가 얼마나 신경이 쓰였나? 이젠 서해의 안보로 인한 국가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남북관계가 조금만 틀어져도 서해부터 신경이 쓰인다. 이래서야 어떻게 서해안 시대를 말할 수 있겠나? 지금 서해는 과거와 같은 꽃게잡이의 문제를 이미 초월했다. 완전히 새로 검토해야 한다. 지금 야당이 해야 될 일은 국가의 외교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진단하면서, 미래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고의 전략가들을 결집하여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대국적(大局的) 관점에서 국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야당이 여당 따라가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지만, 여당이 안보 문제에 대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됐던 사드의 한반도 내 배치 문제에서 여당이 대처한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 바 있다. 

  김종대 : 무지의 소치다. 작전계획 5027에 의하면 한반도 유사 시 미국 증원군의 전투기가 3000대다. 물론 정말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일단 공식문서에 나와 있는 수치가 이렇다. 그리고 남한 전투기 400대, 일본 전투기 300대, 북한 전투기는 600대 정도가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좁은 한반도 상공에 작전하는 항공기가 5000대 정도가 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조기경보기, 폭격기, 각종 항공자산이 또 투입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는 어떻게 발사해야 하나? 이 항공기들은 다 비켜줘야 하나? 작전 영역이 중첩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드를 발사하겠다고 초기 항공 작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전쟁이 지구전,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이 발생한다. 단기에 전쟁을 종결하려면 항공 작전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그 중요한 시기에 사드라는 무기체계 하나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항공작전 골든타임을 상실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작전계획 전체를 다시 조정해야 하고, 공역관리, 지휘통제의 복잡성을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 사드 도입 논의가 군사 작전 전체를 생각해서 짜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우리 군 내부에서는 사드에 대한 논의가 없었나?

  김종대 : 지난 5년 간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협의체가 한미 확장 억제 위원회라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단 한 번도 사드 문제가 의제에 오른 적이 없다. 확장 억제력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우산과 미사일 하층방어인데 사드 배치는 고층 방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미국 MD에 들어간다는 것은 고층 방어를 같이 한다는 것이고 이는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사드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드 문제가 불거지게 된 데에는 사실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이 컸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지난해 10월부터 본인이 공개 강연에서 사드를 요청했다고 밝혔고 최근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5개 지역의 부지 조사를 했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미국에 요청한 적도, 미국과 협의한 적도, 계획도 없다던 한국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행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하나의 독자적인 정부처럼 움직인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 대통령의 부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양국 정책에 반대되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 한국의 국군 통수권이 처참하게 우롱당한 것이다.

 

  프레시안 :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렇게 내키는대로 발언하도록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

  김종대 : 그게 과거 정부와 지금 정부의 다른 점인데, 예전에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에서 돌출 발언을 하면 정부는 바로 미국에 항의했다. 어떤 때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리온 라포테 연합사령관이나 그 뒤에 부임한 비비 벨 사령관은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았다. 심지어 비비 벨 사령관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주 강도가 센 항의 서한을 작성했다. 이를 워싱턴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 전달해서 미국 국방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강해서 주한 미 대사가 전달을 못하고 대신 말로 했다고 할 정도였다. 나중에 그 편지 내용이 비비 벨 사령관 귀에 들어갔는데, 그가 군 생활 30년 만에 이런 수모는 처음 당해본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비비 벨 사령관은 당시 한국 정부가 펜타곤에 ‘주한미군사령관을 교체해 달라’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렇게 나서다 보니, 그 뒤에 주한미군사령관의 돌출 발언이 싹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는 그걸 못한다.


2015년 한국에 필요한 안보는?

 

  프레시안 : 여야를 막론하고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현실적이면서도 힘있는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어지지 않았나

  김종대 : 심리학자인 셀리그먼이 한 실험 중에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론이 있다. 개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것인데 개를 묶어놓고 전기충격을 준 뒤 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24시간 뒤에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이 개는 담을 넘지 않고 전기 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 학습된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외교․안보의 무능력은 보수정권 7년 동안 학습된 결과다.  
  야당이 무기력하니까 안보를 망치는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못한다. 새누리당 안보의 문제점은 우선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항상 안보 정책에 실패했지만 왜 실패했는지 질문을 받는 것은 새누리당이 아닌 야당이었다. 두번째 문제점은 안보는 자기들만 해야 한다는 ‘독점의식’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안보에 여야가 없다고 하지만, 독점화, 특권화, 성역화가 진행됐다. 그래서 세 번째 문제점으로는 혁신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전쟁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혁신해서는 안 돼. 지금 기득권을 건드리면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안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안보는 준비되지 않은 전투원을 최전방으로 밀어내서 기어이 피를 흘리고 오는 안보 실패에 직면한다. 이것이 새누리당 식의 안보다. 그러면 새정치연합은 어떻게 안보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할까? 우선 안보 행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딨나? 새정치연합이 해나가야 할 안보는 정상화 차원의 안보,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안보다. 안보의 주주이자 고객인 시민들, 안보 주권자인 시민에게로 안보를 되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보의 원형과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게 바로 야당이 해야 할 안보고 그것이 합리적인 이미지와 논리와 대안으로 구축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당에서는 진보적 안보주의, 개혁적 안보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국가 불안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객관적 현실을 야당이 인정할 때가 왔다. 더불어 갈등과 불안을 창조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주의, 이는 적정 군사력과 예방외교를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이다. 이게 바로 야당의 핵심가치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중견국가로서 평화와 번영의 교량이 되느냐, 아니면 냉전식 대결구조에 함몰되어 강대국 정치의 희생물이 되느냐를 가늠하는 국가의 중차대한 전략적 상황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 우리가 도모해야 할 국가이익이 무엇이냐를 분명하게 밝히고 작금의 논쟁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밝히는 힘찬 정치인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신념과 확신, 불굴의 의지, 합리적이고 전문성 있는 대안이 준비되어야 한다.

 

   디펜스21+ 편집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목에 줄 묶고 행진 보장 요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5/02 10:34
  • 수정일
    2015/05/02 10: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옥기원·김민혜·오민애·허수영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5-02 08:54:35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세월호 범국민철야행동 참가자가 2일 새벽 서울 종로 북인사마당 앞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고 있다.
세월호 범국민철야행동 참가자가 2일 새벽 서울 종로 북인사마당 앞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고 있다.ⓒ양지웅 기자
2일 오전 8시30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목에 줄 묶고 행진 보장 요구

밤새 청와대로 가겠다며 경찰과 대치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목에 줄을 묶고 행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새벽 4시경 경찰은 안국동로터리에서 문화제를 하던 시민들과 유가족 800여명을 북인사마당 인도로 밀어올렸다. 이 와중에 일부 유가족들은 길 건너편 풍문여고 입구 인근에 모여있었고 일부 유가족들은 북인사마당으로 함께 밀려들어갔다.

이후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가 몇 시간째 유지됐다. 통행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가족들은 풍문여고 입구에 모였고, 오전 6시30분께 청와대로 가겠다고 행진에 나섰다.

애초 가족들은 전날인 1일 낮 경찰에 연행된 유가족을 풀어주면 광화문농성장으로 이동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경찰의 강압적 태도에 항의하며 청와대로의 행진에 나선 것. 경찰과 대치한 가족들의 목에는 노끈이 묶여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5월 2일 새벽, 광화문 광장으로 가게 해달라며 서로의 목에 줄을 걸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5월 2일 새벽, 광화문 광장으로 가게 해달라며 서로의 목에 줄을 걸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경찰이 가로막자 1시간여 앉아서 연좌농성을 벌였던 유가족들은 오전 8시30분 현재 행진 보장을 요구하며 다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한편, 전날 노동절 집회에서부터 세월호 범국민철야행동까지 연행된 인원은 40여명에 이르며, 세월호 유가족 1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오전 4시

세월호 희생자 가족·시민들, 인사동에 고립돼...경찰, 캡사이신 쏘며 밀어붙여

세월호 범국민 철야 행동' 문화제를 진행하던 유가족과 시민 800여명이 수천명의 경찰에 또다시 고립됐다. 경찰이 참가자들을 도로 한쪽 구석으로 모는 과정에서 유가족과 경찰 간 강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 2시30분께 경찰은 안국역로타리 차벽 앞에서 문화제를 진행하던 철야 행동 참가자들을 방패로 밀어붙였다. 유가족이 나서서 막았지만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리며 참가자들을 인사동 방향 인도로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이어졌고 전명선 가족협의회 위원장 등 유가족들은 얼굴을 겨냥해 캡사이신을 뿌린 경찰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강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오전 3시 50분 현재 유가족들과 시민 800여명은 경찰에 둘러싸여 고립된 상태다.

2일 오전 2시 20분

세월호 희생자 가족·시민들, 밤샘 행사 진행중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에도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철야 행동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안국역로타리 경찰 차벽에 고립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 800여명은 범국민 철야 행동을 하며 시행령 폐기를 거듭 촉구했다.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은 2일 오전 12시를 넘어서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철야 행동 참가자들은 경찰 차벽 앞에 앉아 자유발언, 율동 등의 철야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전날 오후 11시 50분께 경찰이 발사한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맞은 40대 초반 남성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실신해 응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오후 11시 00분

경찰, 세월호 가족들에 캡사이신 섞은 물대포 무차별 난사

경찰이 오후 11시께 안국로타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며 대치하던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무차별 난사했다.

안국로타리에 모인 세월호 가족들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 등 1천300여명은 오후 9시 25분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가로막혀 1시간 30여분 간 대치를 벌였다.

경찰이 지속적으로 캡사이신을 뿌리며 강경하게 대응해 피해가 속출하자 세월호 가족들이 행진 대오 앞으로 이동했다. 한 유가족은 “경찰이 시민들에게 캡사이신 뿌리는 모습을 우리 가족들이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우리가 이제 맨 앞에서 행동하자”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가족들이 앞장선 대오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물대포를 맞은 가족들과 시민들은 얼굴을 움켜쥔 채 고통을 호소했다. 물대포를 뒤집어쓴 취재.촬영기자들도 속출했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도 연신 고개를 숙이고 기침을 하는 등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우리는 물러서지 않겠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물대포에 캡사이신을 섞은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지휘관 판단으로 캡사이신을 물대포에 섞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30분

세월호 가족-민주노총, ‘시행령 폐기’ 청와대 행진 시도

안국로타리에 모인 세월호 가족들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 등 1천300여명이 오후 9시 25분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가로막혀 대치 중이다.

이들이 밀착하자 경찰은 차벽으로 길을 차단한 채 캡사이신을 난사하며 행진을 저지했다. 또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난사하며 행진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캡사이신을 맞고, 물대포를 맞아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행진 대오는 “시행령을 폐기하라”, “불법 차벽 제거하라”,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행위를 채증하고 있다.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사법 처리하겠다”며 경고 방송을 수차례 내보냈다.

한 시민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제대로된 진상조사를 하자고 말했는데, 정부는 독립성을 방해하는 특별법 시행령으로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기필코 청와대를 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행령 폐기에 대한 답을 듣겠다”고 말했다.

행진에 앞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길게 말씀드릴 것 없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와 사회를 향해 외쳐야 할 소리가 있다”며 “아무리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도 물리칠 수 있다. 함성을 지르고 나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7시 50분

세월호 유가족·민주노총 조합원, 안국로타리 집결

서울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7시 50분 현재 속속 세월호 가족들이 있는 안국로타리로 집결하고 있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낙원상가 인근, 현대건설 빌딩 앞에서 가로막혔던 조합원 4천500여명은 종각역 인근에 모여 6시 30분께 정리집회를 진행했다.

정리집회를 마친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며 7시 10분께부터 전철과 도보 등으로 안국로타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도보로 이동하다가 경찰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막힌 곳마다 격렬하게 항의했으며 우회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로타리로 향했다.

안국로타리에는 세월호 유가족 100여명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000여명이 운집했으며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범국민 철야 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유가족들의 요구에 귀를 닫는 것고 모자라 정부 시행령을 통해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다"며 "정부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능 유일한 것은 국민들의 힘이다. 오늘 철야행동을 통해 진상규명을 이루기 위한 뜻을 모으자"고 말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대표는 오후 7시 30분께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1인시위에 돌입했다. 전 대표는 “시민들과 다 같이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지만 오늘 밤 더 힘을 내서 박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와 물음에 답을 해달라고 요청하자”고 말했다.

한편, 이날 노동절 집회 후 거리행진 과정에서 12명이 연행됐다.

오후 5시 40분

세월호 가족-민주노총 조합원, 안국역 사거리 진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오후 5시 40분께 안국역 사거리로 진출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안국역으로 이동해 각 출구를 통해 거리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이 안국역 전 출구를 가로막고 있었으나, 4번 출구 방향으로 진출을 시도한 조합원이 대치 끝에 경찰 병력을 뚫고 거리로 나왔다. 현재 각 출구에서 조합원들이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고, 속속 안국역 사거리로 진입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안국역 사거리로 집결 중이다.

현대건설 빌딩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종로3가역으로 위치를 옮겼다. 이들 중 일부 인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안국역으로 이동했다.

인사동 입구에서 잠시 경찰과 충돌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공평동 인근에서 또다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후 5시 10분

민주노총 조합원,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캡사이신 난사

서울광장에서 행진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5시 10분께 종로구 인사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선두에서 출발한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종로3가와 창덕궁을 거쳐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려다 안국역 인근 현대건설 빌딩 앞에서 경찰에 막혔다.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종로2가를 거쳐 인사동길을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으나 종로경찰서 인근 인사동길 입구에서 저지당해 대치를 벌였다. 대치가 격해지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난사했다.

한 조합원은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고 노동자 다 죽이는 구조개편을 반대하는 것이 무엇이 무섭길래 최루액을 뿌려대는냐"며 "우리는 박근혜 정권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낙원상가를 거쳐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미리 설치해놓은 차벽에 가로혔다.

오후 4시 25분

민주노총 5만여명, ‘세월호 시행령 폐기하라’ 가두행진 나서

1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세계 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 5만여명이 오후 4시 25분께부터 가두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전국건설노동조합을 선두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하라’,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을지로 방향 행진을 시작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절, 해직 언론인들의 잃어버린 시간

 
[카드뉴스] 이명박근혜 정권의 부끄러운 유산… "자유 언론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입력 : 2015-05-01  17:10:38   노출 : 2015.05.01  17:47:21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기자‧PD란 이름의 언론인들도 노동자입니다.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는 보도공정성이 포함됩니다. 어떤 외압도 거부하며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언론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입니다. 언론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위해 싸우다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들이 있습니다. 언론현장에 함께 있어야 할 우리의 선‧후배입니다.

미디어오늘이 노동절을 맞아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해고당한 언론노동자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빠들 목에 줄 묶고 통곡 "제발 앞으로 가게 해달라"

 

[세월호 범국민 철야행동] 안국동 사거리에서 유족-경찰 대치15.05.01 16:43l최종 업데이트 15.05.02 09:17l유성호(hoyah35)박소희(sost)강민수(cominsoo) 

[11신 : 2일 오전 8시 57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 청와대 가자" 

경찰의 방패 벽에 세월호 유족들의 발은 한 시간 넘게 묶여 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경복궁 방향 도로에서 유족들은 거리에 주저 앉았다. 목줄을 푼 유족들은 "으싸, 으쌰"하며 힘을 썼지만 방패는 꿈적도 않고 있다. 

유가족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창현아빠 이창석씨는 "택시 타고 가자, 택시 좀 불러 달라"며 "5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한 아버지는 "작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이라며 "내가 오늘 청와대 가고 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욱엄마 홍영미씨는 경찰 대원들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홍씨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전세계에 채증되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낼 거다, 여러분들의 잘못 똑똑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채증하는 경찰을 향해 홍씨는 "채증맨 잘 보이시나, 필름 아깝다, 배터리도 세금"이라며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스피커에서는 사법처리하겠다는 말만 흘러나왔다. 경찰은 "종로경찰서 경비과장 입니다, 유족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정밀 채증을 통해 사후에 사법처리하겠습니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8시 50분 현재 4차 해산 명령을 내렸다. 
 
기사 관련 사진
▲  1박 2일 철야 행동, 유가족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10신: 2일 오전 7시 43분] 
'청와대로' 한줄로 이어진 아빠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다시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단원고 학생들 아버지 19명은 현재 목에 줄을 걸어 연결한 채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다시 경찰에 막혀 한 시간 정도 대치하고 있던 유족들은 오전 7시 20분경 자신들을 묶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줄을 목에 걸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나까지 오겠다", "엄마들은 맨날 앞에 나섰으니까 아빠들만 해"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던 유족들은 연결을 마친 뒤 결연해졌다. 아버지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박자를 맞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 이들은 경찰의 방패에 막혔다. 유족들은 경찰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계속 항의 중이다. 몇몇 어머니들은 목줄을 건 채 "나 갈거라고!"라며 울부짖는 아버지들을 보고 서럽게 통곡하고 있다.

한편 시민들은 여전히 유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인사동 쪽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9신: 2일 오전 6시 44분] 
또 다시 길바닥에서 잠 청한 유족들 

길바닥에서 밤을 보낸 유족들은 아침부터 다시 한 번 시끌벅적한 상황에 놓였다. 2일 오전 6시 20분 청와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유족들은 현재 경찰과 대치 중이다. 

한 운전자와 붙은 실랑이가 문제였다. 경찰은 오전 5시반경부터 차량 통행을 위해 차선 두 개를 확보했다. 안국동 사거리는 4차선인 탓에 평소보다 통행 속도가 느려지자 몇몇 운전자들이 유족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한 트럭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유족들에게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 말에 흥분한 유족들이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유족들은 "차라리 (차벽으로 전면 통제했던 1일처럼) 다 막아버려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몇몇 유족은 경복궁역 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하니 청와대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곧바로 움직였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버렸다. 

한편 지난밤 인사동 쪽으로 밀려났던 시민 200여 명이 거리에서 밤을 지샜다. 이들은 여전히 경찰에 저지당해 유족들과 떨어져 있다. 시민들은 오전 6시 37분 현재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행진 보장하라"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8신: 2일 오전 5시 42분] 
유가족과 시민들, 인사동 입구에서 연좌농성 중 

2일 오전 5시 현재 경찰의 밀어내기에 집회 참가자들은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밀려난 상태다. 다만 40여 명의 세월호 유족은 인사동쪽 시민들과 나뉜 채 도로 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유족 방향으로 일반차량을 통행시키려다가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인도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캡사이신을 발포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이 저항했지만 참가자들은 인사동 차없는 거리 등으로 밀려났다. 또 이날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러 나온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 관계자도 얼굴에 캡사이신을 맞았다. 

한편, 경찰은 아침이 다가오자 차량 통행을 위해 망가진 경찰버스 타이어 교체 작업을 하고 있으며 물대포와 살수차도 철수한 상태다.

[7신: 2일 오전 2시 53분] 
경찰 검거작전 시작... 유족들 맨 앞에서 몸싸움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시작하자, 유가족들이 맨 앞에 서서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경찰이 유가족을 방패로 때리며 "맞아도 싸다"라고 하자 분노한 유가족들이 경찰을 붙잡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펼치며 참가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약 세 시간 동안 평화로웠던 안국동 사거리에 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오전 2시 23분 "6차 해산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으니 검거작전을 하겠다"는 종로서 경비과장의 방송과 동시에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몸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유족들이 미리 대열 맨 앞에 모였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유족들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유족들과 뒤엉켜 계속 밀려났다. 2시 53분 현재 경찰은 시민들과 유족들을 분리시켰다. 경찰벽에 둘러싸인 유족들은 또 다시 고립됐다. 이들은 시민들과 만나려고 이동했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족 김 아무개씨가 경찰의 방패에 맞았다. 그러자 경찰은 "맞아도 싸다"는 말을 던져 유족을 자극했다. 유족들은 그를 붙잡고 거듭 사과를 요구했으나 해당 경찰은 끝내 입을 다문 채 동료 경찰들 쪽으로 피했다. 한 어머니는 "니들이 자식을 보낸 우리 심정을 아느냐"며 울부짖었고, 한 아버지는 분을 참기 어려운 듯 경찰버스를 향해 생수통을 던졌다.

[6신: 2일 0시 40분]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 일시 중단... "이게 무슨 세상이냐"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에게 캡사이신 넣은 물대포 난사하는 경찰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로 유가족을 향해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는 잠시 멈췄지만 대치 상황은 여전하다. 2일 자정 현재 안국동 사거리는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경찰은 전날 10시 40분~11시 20분경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집중 살포했다. 물대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 가루가 고여있었다. 물대포를 맞은 화단의 꽃들도 처참하게 쓰려져 버렸다. 

유족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경찰에게 거듭 항의했다. 한 어머니는 "이게 무슨 세상이냐"라며 경찰 방패를 붙잡고 오열했다. 한 시민은 경찰들을 향해 "너희들이 무엇을 막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잘 봐두라"고 소리쳤고,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들에게 "청와대 못 가서 죄송합니다 어머님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 대부분은 캡사이신 냄새에 콜록대고 추위와 씨우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당초 416연대가 계획한 문화제 진행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5신 보강: 1일 오후 10시 58분] 
또 다시 등장한 물대포... 캡사이신 섞어 살수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물대포가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등장했다. 

경찰은 10시 47분 현재 시민들을 향해 수차례 살수했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이 섞인 탓에 온몸이 젖은 시민들은 거듭 콜록거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자신들이 대열 앞에서 물대포를 맞겠다며 나섰다. 

행진을 시도한 지 두 시간이 넘었지만 시민들은 아직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폴리스라인에 막힌 이들은 거듭 돌파를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반면 경찰의 대응 수위는 더욱 강경해졌다. 물대포 살수뿐 아니라 캡사이신 발포도 잦아졌다. 일부 시민은 우산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안국동 사거리 곳곳에서는 "물! 물!" "물 좀 전달해주세요!"라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있다. 몇몇 취재진도 시민들과 뒤엉킨 채 캡사이신을 맞기도 했다. 

[4신 : 1일 오후 10시 1분]
시민-유가족, 청와대 행진 시도... 경찰, 캡사이신 무차별 난사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일 오후 9시 35분 현재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 모인 세월호 참사 유족과 시민 등 3000명(416연대 추산)은 경복궁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대치 중이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시행령을 폐기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평화행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파도타기를하며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행진 시작 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그는 "아무리 차벽으로 둘러쳐도, 아무리 많은 경찰이 막아도 진실과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들의 뜨거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며 "뜨겁게 함성을 지르며 나아가자"고 했다. 

시민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곧바로 막혀버렸다. 이들은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에워싸인 통로를 뚫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또 다시 캡사이신을 맞으며 물러났다. 경찰은 현재 거듭 "지금 즉시 해산하라"며 살수차 사용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힌 뒤, 경찰의 해산경고방송에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차벽과 물대포로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3신 : 1일 오후 7시 30분]
차벽에 고립된 섬...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싫다"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차벽에 막힌 채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또한 도로와 경찰버스에 정부파산 등의 문구를 적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유가족이 가장 못 참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차벽에 에워싸인 안국역은 섬이 됐다. 오후 7시 30분 현재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모여 있다. 응급 차량마저 차벽에 막혀 돌아갈 정도로 경찰은 이곳을 철통방어하고 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저희 유족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며 "기다리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싫다"며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마무리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세월호가 민주노총이고, 민주노총이 세월호이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유족들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조합원들도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던 중 경찰이 뿌린 캡사이신을 물로 씻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편 416연대는 이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1박 2일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그에 앞서 유족들은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하려 했지만 아직 안국역 인근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민주노총은 곧 보신각 집회 현장을 정리한 뒤 세월호 유족들이 경찰과 대치 중인 안국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경찰은 조합원의 행진을 막을 예정이어서 또 다시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2신: 1일 오후 5시 50분]
차벽에 막힌 유가족... 도심서 물리적충돌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5시 45분 현재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경찰과 대치 중이다. 이들은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버스에 밧줄을 연결, 잡아당기고 있지만 캡사이신에 계속 저지당하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은 오후 4시 반쯤 노동절 대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에서 출발, 을지로 2가를 거쳐 종로 2가에 도착한 대열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안국동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경복궁 방향으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미리 쳐둔 폴리스라인에 막혀버렸다.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경찰의 캡사이신 대량 발포에 막혀버렸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 100여 명이 경찰 차벽 앞에서 주저 앉아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차벽에 가로막힌 유가족들이 도로에 앉아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을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를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오후 5시 25분쯤 관훈동 쪽으로 이동한 조합원들은 다시 한 번 경찰버스 2대에 막혔다. 이들은 수차례 버스를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이 캡사이신 등으로 대응하자 다시 인사동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조계사 방향에서도 경찰과 대치 중이지만 대부분 막힌 상태다. 삼청동으로 가려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 역시 안국역 출구 근처에서 경찰에 막혔다. 

[1신 : 1일 오후 4시 43분] 
광장 메운 노동자들의 함성 "썩은 세상 우리가 갈아엎자"
 
기사 관련 사진
▲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메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쳤다.

"재벌경제, 썩은 세상 노동자가 갈아엎자, 투쟁!"

이날 전국민주노동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은 서울광장 앞에서 2015년 세계노동절대회를 열었다. 지난 4월 24일 총파업에 이어 다시 한 번 결집한 노동자들은 강경한 대정부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1일 대회 행사명도 '끝내자 박근혜'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싸우지 않고 무엇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입을 뗐다. 그는 "2015년 올해, 민생은 파탄났고 서민들과 노동자들은 못 살겠다고 한다"며 "지금 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부패한 정권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중의 총 결의로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자"며 "침몰하는 한국사회를 구하기 위한 역할을 민주노총이 기꺼이 맡겠다"고 덧붙였다.
 
기사 관련 사진
▲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문을 연 것도 "이 돈으로 살아봐"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몸짓패 공연이었다. 한상균 위원장 역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시민들도 박수를 보낸다"며 "앞으로 20년은 노동자로 살아가기 참 힘들 텐데, 가뜩이나 힘든 우리 아들딸에게 못난 아버지가 되지 말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동총연맹(아래 한국노총·)도 주요 의제로 강조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날 한국노총을 대표로 참석한 이병균 사무총장은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양대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차별이 없어지고, 경제민주화로 재벌이 개혁되고 원·하청 노동자가 공생할 수 있을 때까지 (두 노총이) 함께 두 손 잡고 투쟁해야 한다"며 거듭 연대를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1일 노동절 대회에 약 5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4시 14분 현재도 서울광장에는 노동절 대회에 참여하려는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제125주년 세계노동절, 서울광장 가득 메운 노동자들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홍현진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억지쓰는 정부, 시행령 강행??

정부, 유가족·특조위 무시 ‘시행령 강행’ 드라이브

‘문구만 찔끔’ 수정안 발표 뒤 차관회의서 신속처리…5.4 국무회의 앞두고 전운 고조

4.16가족협의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세월호 정부 시행령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가족들은 피해자가족의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세월호 정부 시행령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가족들은 피해자가족의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정부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무시한 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을 강행하는 막바지 수순에 들어갔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특조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핵심 요소는 그대로 둔 채 문구만 '찔끔' 바꾼 시행령 수정안을 발표한 뒤 차관회의 심의 절차까지 신속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시행령 철회'를 촉구해 온 유가족들과 특조위, 시민사회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5월 4일 예정된 국무회의를 앞두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제정까지는 박근혜 대통령 재가와 공포 절차만 남게 된다.


정부, '문구만 찔끔' 수정안 발표 뒤 차관회의 심의까지 신속 마무리
유가족 의견서도, 특조위원장 대통령 면담 요구도 모두 거부
특조위에 '가만히 있으라' 압박까지…"수정은 없다", 5.4 국무회의 처리 강행 태세

정부는 30일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10분까지 정부서울청사와 세종청사에서 화상으로 차관회의를 열고 해양수산부(장관 유기준)가 전날 발표한 시행령 수정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해수부는 수정안에 특조위 의견을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독립기구인 특조위를 공무원들로 장악해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기존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이었다.

대표적으로 고위공무원단(고공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이 맡는 '기획조정실장'은 '행정지원실장'으로 명칭만 바뀌었다. 당초 정부안의 '기획조정실장'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혀 왔다. 행정지원에만 그쳐야 할 사무처 공무원에게 진상규명 등 '업무'에 대한 권한까지 부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조정실장이 운영하는 특조위"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점 때문었다.

기획조정실에 주어진 '업무'에 대한 '기획·조정' 권한은 수정안에서는 '협의·조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표현만 수정하고 '업무'에 대한 권한은 그대로 존치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안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특조위 측은 즉각 '수정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시행령 제정 강행을 막기 위해 30일 차관회의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로 향해 의견서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접수를 거부했다. 장관급 인사로서는 사상 유례없는 광화문 농성에 들어간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도 청와대로 향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경찰의 벽에 막혀 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그 사이 정부는 화상으로 차관회의를 개최해 시행령 수정안을 40여분 만에 통과시켰다. 이어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앞으로 시행령안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5월 4일 국무회의에서도 수정 없이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수부는 특조위를 향해 "무분별한 비판 대신 본연의 활동에 전념하라"며 '가만히 있으라'는 압박까지 가했다.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이 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인도를 이용해 청와대로 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자 그 자리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이 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인도를 이용해 청와대로 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자 그 자리에서 농성을 이어갔다.ⓒ정의철 기자


"응답 없는 대통령의 의지는 진실 피하고 감추고 짓밟는 것"

이 같은 정부의 행태에 대해 4.16 가족협의회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가족들이나 특조위를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이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받지 않았다"며 "가족들과 특조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4.16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으로 구성된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 연대) 역시 규탄 성명을 내고 "응답하지 않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인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진실을 피하고 감추고 짓밟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5월 1일이 마지막 기회라는 통첩을 이미 보냈다"며 "우리는 모여서 움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4.16 연대는 5월 1일부터 2일까지 시행령 폐기를 위한 '범국민 철야행동'을 예고해 둔 상태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남북 노동자, 대표자회의 불허 규탄 공동결의문 발표

“올해 노동자통일축구대회 반드시 개최하겠다”남북 노동자, 대표자회의 불허 규탄 공동결의문 발표 (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4.30  19:17:11
트위터 페이스북

125주년 노동절을 맞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추진해 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은 1일자로 3단체 공동결의문을 발표, 이날 평양에서 성대히 개최되어야 할 5.1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끝내 실현되지 못했지만 올해 안에 반드시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노동자 3단체는 공동결의문에서 “오늘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5.1 노동절 125돌을 맞으며 추진해 온 통일축구대회는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올해 안에 평양에서 반드시 개최하여 남북 사이의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의 길을 넓혀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한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적극 협력해 나섬으로써 단절된 남북관계도 열고 평화와 통일의 넓은 길을 열어나가는 데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와 별도로 공동성명을 발표, 30일 개성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3단체 대표자회의를 불허한 당국의 조치를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지난해 12월 1일 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지난 19일 남측결승전과 통일한마당 행사까지 마무리하면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황에서 당초 5월 1일을 전후해 개최하기로 합의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협의를 위해 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를 추진했다.

양대노총은 “대표자회의는 온 겨레에 선포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있는 조치였다”고 말했다.

또한 통일부는 ‘순수 사회문화 교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불허 조치했다’며 옹색한 답변을 내놓는가 하면 “노동자의 체육교류는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축구 이외의 것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억측을 들먹여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를 불허”했다며,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통일부의 이번 불허 조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근거와 이유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개최 일정을 자체적으로 협의, 조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결국 통일부 스스로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비록 5월 1일을 전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어렵게 되었지만, 양대노총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고 남북 노동자 3단체의 연대성도 더욱 강화되었다”며, 3단체 공동결의문에서 언급한대로 “향후 양대노총은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함께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실천과 투쟁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양대노총 공동성명]
당국의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 불허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전문)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을 맞는 올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민족 모두의 사활적 과제다.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없이 통일대박, 통일시대를 말함으로써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으며, 남북관계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그 이전보다 더욱 긴장과 대결 상태가 심화되었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대국들의 군사적 대결과 패권 다툼은 우려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동북아의 평화는 한반도 평화 실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 남북 관계개선과 화해와 협력 시대를 여는 것은 어느 때보다 절박한 과제다.

이미 양대노총은 긴장된 남북관계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2014년 10월부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추진해왔다.
2014년 12월 1일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전국 16개 광역 시도에서 150여개 팀 3,000여명의 선수들이 통일축구 예선에 참가, 4월 19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남측 결승전 및 통일한마당>을 끝으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황이다.
그러나 끝내 통일부는 5.24조치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성사에 대한 양대노총의 성의있는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에 남북노동자 3단체는 당초 5월 1일을 전후하여 개최하기로 합의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협의를 위해 4월 30일 개성에서 대표자회의를 추진키로 했다. 이번 대표자회의는 온 겨레에 선포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4월 29일, 이마저도 통일부는 ‘순수 사회문화 교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불허 조치했다’는 옹색한 답변을 내놓았다.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올해 처음 개최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1999년과 2007년 평양과 창원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노동자의 체육교류라는 계기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사회적 여론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을 통해 통일부 스스로도 이미 사회문화교류 및 스포츠교류는 승인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체육교류는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축구 이외의 것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억측을 들먹여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를 불허한 조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오죽하면 통일부 스스로도 기자 브리핑에서 ‘순수’의 기준이 ‘애매하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금 선언컨대, 양대노총은 이번 통일부의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 불허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 통일부의 이번 불허 조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근거와 이유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개최 일정을 자체적으로 협의, 조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한 행위이다.


앞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있는 척 하면서, 뒤로는 제멋대로의 잣대와 억측을 내세워 민간 부문의 대표체라 할 수 있는 노동자의 체육 교류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 통일부의 민낯이다. 결국 통일부 스스로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을 맞는 올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당국과 민간을 포함한 모두의 바램이자 의무이다.
비록 5월 1일을 전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어렵게 되었지만, 양대노총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고 남북 노동자 3단체의 연대성도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5.1 125주년 세계노동절을 맞는 올해 남북 노동자 3단체의 공동결의문을 아래와 같이 발표하며, 향후 양대노총은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함께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실천과 투쟁에 더욱 매진할 것임을 밝힌다.

이와 함께 통일부를 비롯한 당국에 촉구한다.
광복 70년을 맞아 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키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이루고자 한다면,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에 대한 전향적 자세와 입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도 남북관계에 있어서, 당국이 민간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을 것임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015년 5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남북노동자가 힘을 합쳐 제2의 6.15 통일시대를 앞장서서 열어나가자
- 5.1 125주년 세계노동절 남북노동자 3단체 공동결의문 -(전문)



오늘 남과 북의 전체 노동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적 명절인 5.1 노동절 125돌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시각 우리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광복 70돌이 되는 올해에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대결 상태를 끝장내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새 국면을 열어나갈 드높은 결의에 넘쳐있다.


돌이켜보면 분단된 그 날부터 세기를 넘어오면서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길에 공고한 평화가 있고 민족의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통일애국의 길을 앞장서서 달려왔다.


우리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가장 먼저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연대기구를 구성하고서울과 평양, 금강산과 창원을 비롯하여 남북 삼천리를 오가며 다채로운 통일행사와 적극적인 연대활동으로 겨레의 통일운동을 선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파국에 처하고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이루어놓은 6.15의 소중한 결실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만남의 길은 모두 막히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과 체제 대결이 고취되는 속에 전쟁위험이 날로 짙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바로 오늘 평양에서 성대히 개최되어야 할 5.1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끝내 실현되지 못하여 커다란 관심과 기대를 안고 지켜보던 온 겨레에게 실망은 안겨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에 책임 있는 자들은 마땅히 민족의 준엄한 규탄을 받아야 한다.


민족과 자주통일의 당사자인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오늘의 난관 앞에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시대와 민족 앞에 지닌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더욱 깊이 자각하고 올해에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갈 비상한 각오와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남북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굳게 연대단합하여 반드시 제2의 6.15통일시대를 앞장서서 열어나갈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겨레의 지향과 요구가 집대성 되어있고, 이미 현실에서 그 정당성과 거대한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된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다.
남북 선언들이 존중되고 실천으로 옮겨진다면 동족대결이 끝장나고 악화된 남북관계도 개선되며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가 열려지게 된다는 것이 온 겨레의 일관된 입장이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그 이행을 위한 실천과 투쟁에 언제나 앞장설 것이다.
남북노동자 단체들 사이의 다방면적인 접촉과 왕래, 만남을 재개하고 활성화함으로써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이바지할 것이다.

2. 온 겨레 앞에 선언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기어이 성사시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적극 도모해 나갈 것이다.

온 겨레의 커다란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기어이 성사시키자는 것은 우리 남북 노동자들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이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1999년 평양 양각도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여러 차례 진행해온 통일축구대회를 통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해온 좋은 전례와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전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5.1 노동절 125돌을 맞으며 추진해온 통일축구대회는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올해 안에 평양에서 반드시 개최하여 남북 사이의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의 길을 넓혀 나갈 것이다.

3. 해내외의 온 겨레와 힘을 합쳐 6.15공동선언 발표 15돌과 광복 70돌 기념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를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지금 해내외의 온 겨레는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15돌과 광복 70돌을 전민족적인 대경사로 기념하며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새 역사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적극 협력해 나섬으로써 단절된 남북관계도 열고 평화와 통일의 넓은 길을 열어나가는 데 기여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거족적인 애국운동에 떨쳐나섬으로써 뜻깊은 올해를 남북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오는 해로 열어나가자는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


2015년 5월 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자와 근로자는 어떻게 다른가?

오늘은 125회째 맞는 노동자의 날입니다
 
김용택 | 2015-05-01 09:29:0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125회째 맞는 노동자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절은 참 이상합니다. 노동자는 쉬고 근로자는 일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노동절입니다. 노동절이 어떤 의미 인지 학생들에게 한 번 물어볼까요?

다음 중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회사택시기사, 종합병원의사, 교사, 교수, PC방 아르바이트, 건설일용직, 환경미화원, 농구선수, 공무원, 철도기관사, 아나운서, 소방관, 현장실습생,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경찰…

만약 시험문제를 내주고 이 중에서 노동자가 아닌 사람을 찾으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틀림없이 열이면 열 모두가 ‘종합병원 의사나 교수, 혹은 교사, 공무원, 아나운서, 경찰’과 같은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노동자에 대한 개념은 ‘노동자란 사무직이 아닌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화이트칼라가 아닌 블루칼라가 노동자라는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머리 속에는 노동이란 ‘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위와 같은 답을 한 학생들은 다 틀린 답입니다. 위의 제시한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 의사나 대학교수가 어떻게 노동자입니까?”라고 항의 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는 물론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 하는 노동, 즉 정신노동자인가 육체노동자 인가의 여부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작업의 형식이 상용이든 일용이든, 임시직이든 촉탁직이든 시간제… 와는 상관없이 또 근무형태나 직종, 직급 등과는 관계없이 ‘노동을 제공해 주고 댓가로 임금을 받는 모든 사람’을 노동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사실상 근로를 제공하는 취업근로자’를 노동자라고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선생님 그렇다면 노동자는 뭐고 근로자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이 쏟아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를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노동자는 천하고 불쌍하고 근로자는 고상하고 귀한 것입니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이라는 말에는 그런 이미지가 풍기도록 사회화되어 있는듯합니다. 아니 자본의 목소리지요. 실제로 몇 년 전만 하더라고 교실 흑판 한쪽에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이런 급훈이 버젓이 붙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어떻게 다른 지 국어사전을 한 번 찾아 볼까요?

 

☞ 노동자 (勞動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 근로자 (勤勞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이 정도면 헷갈릴 만도 하지요? ‘노동력으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과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지요? 영어로 한번 볼까요? 영어로 노동자는 ‘Labour’라고 하지요. 우리말로 해석하면 ‘노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근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Labour’ 란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노동’이란 말로 번역했을 것입니다.

분단의 비극은 언어를 비롯해 대부분의 우리 생활양식이나 문화에서조차 분단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은 좌익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북한에서 쓰는 ‘노동’이라는 말대신 ‘근로’라는 말로 바꾼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하라는 뜻도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에~ 설마요…?”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인민’이라는 말도 북한에서 사용하니까 우리는 ‘국민’이 되고 ‘동무’라는 말도 북한에서 사용하니까 ‘친구’로 바뀐 게 아닐까요?
 
저는 노동자와 근로자의 뜻을 달리 해석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 즉 ‘노동은 천하고 부끄럽지만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시키면 기계처럼 일하고 운명론적으로 사는 사람이지요. 대신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나의 노동으로 내 가족과 국민들이 보다 행복하고 보다 질높은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권리와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당당한 노동자가 아닐까요?

오늘은 제 125회 노동절을 맞아 생각해 본 노동자의 뜻을 풀이해 보았습니다. 노동절의 유래와 노동에 대한 개념은 제가 지난해 썼던 글을 참고로 소개하면서 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명절, 노동절을 축하합니다. 행복한 노동절을 보내십시오.” 인사를 하고 보니 미안하네요. 택시기사, PC방 아르바이트, 건설일용직, 환경미화원, 현장실습생,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이런 분들,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이 행복한 노동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분들이 ‘자신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이 되는 날’이 진정한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사회가 아닐까요?

관련 글 : 아직도 근로자는 귀하고 노동자는 천한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1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국 포위하는 미-일, 그 '꼬붕'이 된 한국

 
[주간 프레시안 뷰] 미일 군사 동맹과 한국
박인규 편집인2015.04.30 17:34:52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70주년 만에 군사 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지난 26일부터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총리는 미일 방위 협력 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일본 총리 최초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등을 통해 패권 국가 미국의 핵심 군사 파트너라는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습니다. 1854년 미국에 의해 서방 세계에 편입됐고, 이후 미국의 지원과 묵인 아래 한반도를 병탄하고 중국을 유린했던 일본이 왕년의 위상을 되찾은 것입니다.

당연히 중국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때까지 영국,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에게 침탈당해온 '치욕의 역사, 100년'을 너무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중국은 '동양의 병자'로 불렸던 과거의 중국이 아닙니다.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함께 군사력도 키워가고 있습니다. 중국 포위를 겨냥한 미일 군사 동맹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미일 대 중국의 군사 대결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와중에 한국은 미일 군사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가고 있습니다. 미일 공모에 의한 일제의 35년 식민 지배, 400만 명이 희생된 한국 전쟁, 전쟁에 의한 분단 고착화와 남북 대결이라는 고난을 겪어온 한민족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남북의 위정자들은 미일 대 중국의 대결로 요약되는 동아시아의 갈등 구조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미일, 글로벌 군사 동맹으로 

지난해 7월 내각 각의 결정에 의한 이른바 해석 개헌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 일본은 이번 아베 총리의 방미를 통해 미국과의 글로벌 군사 동맹을 위한 제도적 틀을 완비했습니다.

우선 27일 뉴욕에서 열린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이른바 2+2 회담, 양국 외교·국방 장관 참가)를 통해 미일 방위 협력 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했습니다. 양국은 공동 성명에서 "새 가이드라인은 미일 동맹이 평화 유지 활동과 해상 안보, 병참 지원 등 일본법과 규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절한 '(세계) 어느 곳에서나' 국제 안보에 더 큰 기여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제까지 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한정됐던, 미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 지원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소련의 침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처음 작성되고 나서 1차 북핵 위기 이후인 1997년 1차 개정됐고, 이번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18년 만에 미일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자국의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주변 사태'의 경우에만 미군을 후방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변 사태라는 지역적 제약이 사라지고 '중요 영향 사태'라는 이름 아래 세계 어디에서든 미군과 타국 군을 후방 지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양국은 평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동맹 조정 메커니즘'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양국은 "일본 방위성 중앙 지휘소에 미군이, 미군 요코타 기지에 자위대가 각각 연락원을 파견해 '미일 공동 조정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일 동맹이 한미 연합사령부를 유지하고 있는 한미 동맹만큼이나 일체화된 동맹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을 뗀 셈입니다. 

양국은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의 목적이 "동맹의 억지력과 일본과 아시아·태평양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며 구체적으로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미사일 방어(MD)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의) 원유 수송로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댜오위다오(센가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의 영토 분쟁에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커진 만큼 중국과의 군사 대결 위험성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 일본 자위대 날개 달아준 미일 새 방위 협력 지침미-일 정상 '중국 견제 공동 성명')

일본의 전쟁 책임을 용서한 미국 

28일의 미일 정상 회담과 29일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일본의 태평양 전쟁 책임을 사실상 용서했다는 점입니다. 미일의 완벽한 군사 동맹을 방해하는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셈입니다. 

정상 회담 하루 전인 27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링컨기념관으로 안내해 단 둘이 20분간 대화를 나눴습니다. 구체적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악관은 "이 달은 남북 전쟁 종식과 링컨 대통령 서거 150주년을 맞는 때"라며 "내일 공식 행사 전에 두 정상이 미국 역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에서 일대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기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에는 화해와 치유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진의는 다음 날 정상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대규모 충돌 뒤에는 화해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믿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양국 간의 대규모 충돌이었던 태평양 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을 이젠 잊자는 것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을 잊자는 것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링컨은 남과 북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했던 미국을 전쟁을 무릅쓰면서 하나로 통합시킨 인물입니다. 태평양 전쟁과 미일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이죠. 

다음 날(29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아베가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 70년간 한국 대통령이 6번이나 했던 상·하원 합동 연설을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미 의회 관계자는 "1970년대까지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미국의 반감이 컸고, 1980~90년대는 일본과의 무역 분쟁으로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으며, 최근 10년간은 일본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미 의회가 아베의 상·하원 합동 연설을 받아들인 것은 태평양 전쟁, 그리고 일본과의 경제 분쟁 등을 과거로 돌리고 미래를 위해 일본과 하나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 일본 해상 자위대. ⓒ연합뉴스


아베 방미에서 드러나 미일의 역사 인식 

28일 정상 회담에서 미일은 다음 세 가지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첫째 (중국의) 힘에 의한 기존 질서 변경 시도를 반대한다, 둘째 미일 동맹은 국제 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두 정상은 "힘 또는 강압에 의지해 일방적으로 기존 질서를 바꾸려 시도함으로써 주권과 영토의 일체성을 훼손하는 국가의 행동이 국제 질서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및 동남아 국가들과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죠.

또 "이번 정상 회담은 미일 협력 관계를 전환시키는 역사적인 전진"이라고 평가한 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을 통해 양국은 아시아 및 국제 사회의 평화적이고 번영된 미래를 위해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미국은 일본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포함시키는 안보리 개혁을 고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팽창하는 중국이 동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미일 동맹이 이를 막을 수 있고, 이를 위해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한편, 아베는 29일 미 의회 연설에서 "전후 우리는 지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을 담고 우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사과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만 사과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한 겁니다. 오히려 "1980년대부터 한국, 대만, 아세안 국가들이 발전하고 이후 중국이 발전할 때 일본은 헌신적으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고 강변했습니다. 이런 걸 보고 적반하장(賊反荷杖 : 도둑놈이 매를 든다)이라고 하는 겁니다. 19세기 중반 이래 한반도와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착취는 나 몰라라 하고 20세기 후반 이후의 경제 협력만 부각시킨 것이죠. 

아베 방미와 관련해 한국 언론은 위안부 문제 사과와 일본 군대의 한반도 상륙 등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1840년 영국이 일으킨 아편 전쟁으로부터 현재까지 175년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오바마와 아베가 말하는 '힘에 의한 기존 질서 변경 시도'는 이미 그때,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국의 부상은 그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으로 봐야 합니다. 또 미국은 한반도 해방의 은인이기 이전에 한반도 식민지화의 공범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의 탁월한 저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한길사 펴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해방의 은인'이기 이전에 '식민 지배'의 공범 

아편 전쟁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까지(1840~1945년) 동아시아 질서의 본질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과 갈등의 질서였고 미국은 예외적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해 제국주의적 야욕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삼성 교수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착취하기 위해 협력한 측면이 더 강했다는 얘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대한 중국에 대한 통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제국주의 국가들 전체가 연합하거나, 또는 일부를 배제하기 위하여 다른 다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연합하는 질서, 즉 '제국주의 카르텔'이었다. (…) 미국도 이 카르텔의 일부였다." 

러일 전쟁의 경우가 바로 "일부를 배제하기 위하여 다른 다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연합"한 경우입니다. 중국 및 한반도 침략에서 러시아를 배제하기 위해 영국, 미국, 일본이 연합했던 것입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1898년) 한 것은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에게도 제국주의적 야욕이 있었던 것이죠. 물론 미국은 이른바 '문호 개방(Open Door)' 정책이란 것을 통해 타국 영토에 대한 독점적 지배가 아닌 경제적 지배만을 추구했지만 말입니다. 

러일 전쟁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지배의 결정적 계기였다는 점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일 전쟁은 1904년 2월 8일 일본 함대가 뤼순 군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됐고, 1905년 5월 27일 일본이 대한해협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후 미국 중재에 의해 그 해 9월 5일에 포츠머스 강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지배를 공동 모의합니다.

강화 조약 협상이 진행되던 1905년 7월 27일,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 육군 장관이 도쿄에서 만납니다. 이들은 이틀 후인 7월 29일 합의 각서를 마련했고, 7월 31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내용을 승인합니다. 당시 필리핀 마닐라에 머물고 있던 태프트 장관은 8월 7일 가쓰라 총리에게 루스벨트 대통령의 승인 사실을 알렸고, 가쓰라는 다음 날 러시아와의 강화 협상 전권 대표로 미국 포츠머스(Portsmouth)로 가 있던 고무라 주타로 외상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이로써 일본과 미국의 합의 과정이 완료됐고, 9월 5일 일본과 러시아 간에 강화조약이 체결됩니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태어난 과정입니다. 밀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합의 각서의 내용이 20년 가까이 지난 1924년에야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 관계를 확보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한 것입니다. 나아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사실상 식민 지배에 들어갑니다. 미국은 일제 식민 통치의 공범이었던 셈입니다.

사실 1854년 매튜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을 시작으로 일본이 근대 국가가 되고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미국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지적대로 만일 미국의 남북 전쟁(1861~1865년)이 없었다면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 전쟁에 따른 국내 혼란으로 미국이 정신이 없는 사이, 일본은 근대 국가로 발돋움했고 이후 일본은 한반도 및 중국 침략에서 미국과 공동 보조를 취합니다. 

1908년 11월 30일의 루트-다카히라 밀약, 1917년 11월 2일 랜싱-이시이 밀약 등은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공동으로 경영하기 위한(즉 착취하기 위한) 합의였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등 서구 열강의 영향력이 퇴조한 1920년대 이후 미국과 일본은 중국 경영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전선에 균열이 생긴 것은 대공황 때문입니다. 대공황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은 만주 침략(1931년), 중국 본토 침략(1937년)을 단행했고 중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추구합니다. 즉 미국은 중국을 (일본과 함께) 공동으로 나눠 먹자는 입장인 반면,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중국을 혼자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바로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 그리고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죠. 

중요한 것은 1930년대 중국 경영에 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견제하지 않았으며, 중국 침략을 위한 전략 물자의 최대 공급국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삼성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1938년 중반까지 항공기와 항공폭탄을 비롯해 석유, 폭탄 제조 원료인 폐철을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1940년 1월 26일에야 대일본 경제 조치(석유 폐철 기계 설비 및 여타 전쟁 물자 수출 제한)를 시작했고, 1940년 7월 강철 및 항공유의 수출을 중단했으며, 1941년 7월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넉 달 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합니다. 

결국 100여 년에 이르는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 기간 중 미국과 일본이 공개적으로 대립, 충돌한 것은 단 5년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다 해도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이 받아줄 가능성은 없습니다. 미국은 식민 지배의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 군부의 폭주에 의한 만주 및 중국 침략이 잘못됐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한반도 식민 지배는 그 당시 (제국주의적 경쟁의) 상황에서는 불가피했다는 게 대세라고 합니다. 최근 반둥 정상 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사과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미일 군사 동맹의 하위 파트너가 된 한국 

2011년 11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이후 한국은 급속하게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말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3자) 정보 공유 약정'이 체결돼 한미일 간의 3자 군사 정보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이제 남은 것은 한일 상호 군수 지원 협정(ACSA)뿐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군수 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한일 상호 군수 지원 협정이 체결되면 3국 간 군사 물자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고 이로써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이 완성되는 셈입니다.

오는 5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다고 합니다. 최근 나카다니 겐 일본 방위상이 3국 국방 장관 회담을 제안했고 애슈턴 카터 미 국방 장관이 받아들였다고 하는군요. 정보 공유 약정의 전례로 보아 타결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자위대 한반도의 상륙 요청 주체가 한국 대통령이 아닌 주한 미군 사령관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한국에 주둔해온 미군이 중국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바뀌는 것이죠. 미일 군사 동맹으로 일본이 미국의 중국 포위를 위한 사냥개가 됐다면 우리는 그 부하가 되는 셈입니다. 

중국은 대응은? 

최근 중국을 다녀온 군사 평론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에 따르면 중국의 대응도 심상치 않습니다. 29일자 <한겨레> 칼럼의 일부입니다. 

"중국 정부의 핵심 지식인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은 "앞으로 3년간 중국의 국방비에서 매년 증액되는 규모가 한국의 국방비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한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기존 국방비에다가 매년 400억 달러, 3년간 1200억 달러를 더 늘린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3년 후 중국의 국방비는 250% 성장한다." 

김 편집장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이 개발 중인(즉 아직 실전 배치도 되지 않은) 신무기와의 가상 충돌을 TV로 보도하는 등 "갖은 허풍으로 임박한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결정적 계기였다고 전합니다. 

"다른 중국 관리를 통해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국가안전위원회가 올해 2월부터 미국의 사드 요격 체계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정치·군사적 대응 매뉴얼을 구상하는 데 착수하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확인했다. 

(…)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증폭된 계기는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였다. 중국은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영토 분쟁으로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막후 접촉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 몇 가지 양보 조처를 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추진함으로써 자신들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본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이 사드 문제에 직접 개입한 배경이다. 화가 난 중국은 이제 분쟁의 눈으로 미국을 바라보려고 하고, 미국은 그걸 또 이용하는 그야말로 확실히 망가진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

(☞관련 기사 : 비정상이 정상이 된 동아시아) 

한 쪽의 군비 증강이 다른 쪽의 군비 증강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이 된 것입니다. 미일 대 중국의 군사 갈등을 풀 해법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바로 남북 관계 개선입니다. 나아가 남북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한 북핵 문제 해결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과 일본이 붙으면 한국은 불행해진다

 

[게릴라 칼럼] 미일동맹과 한민족의 운명, 그 지난한 역사

15.04.30 17:23l최종 업데이트 15.04.30 17:23l

 

 

기사 관련 사진
▲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미일동맹이 한층 더 격상됐다. 27일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에 대한 제한이 풀린 데 이어, 28일 아베 신조 총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미국과 함께 대(對)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후원하게 됐다. 

미국이 '전과자' 일본에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강력한 경찰권을 쥐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최강 미국은 자국의 세계 패권을 연장하겠다는 의도로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로서는 미일동맹의 격상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미국이 국교를 맺은 1854년 이후의 160년 역사를 살펴보면, 두 나라의 관계가 단순히 두 나라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제3자인 우리 한민족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두 나라의 관계가 유별나게 좋아질 때마다 우리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나라의 동맹 격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미일동맹 강화, 한민족에 부정적 영향 

1854년에 일본은 동아시아 기지를 모색하는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다. 이 해에 일본과 미국의 화친조약이 체결됐다. 이를 발판으로 미국은 조선을 개방 시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외면했다. 이런 상태에서 1866년에 미국 선박 제너럴 셔먼호가 상선을 가장해서 평양 대동강에 침투했다. 그리고 훗날 개화파 선각자로 유명해질 평양감사 박규수가 관내 백성들과 함께 이 침략선을 격침시켜 버렸다. 

그러자 1871년 미국은 보복 차원에서 '신미양요'라는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이때 미국 아시아함대는 일본 나가사키에 있다가 조선을 향해 출정했다. 미국이 일본 항구를 이용해서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미일화친조약이 미국의 조선 침공에까지 도움이 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제휴가 조선에 부정적 작용을 미쳤다. 

유사한 현상은 1900년을 전후한 시점에도 일어났다. 미국은 1865년 남북전쟁 종결을 계기로 국민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1886년에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사실상 마무리함으로써 미국 땅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자 미국은 1890년대에 대대적인 태평양 공략에 나섰다. 미국 땅에 이어 태평양 섬들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1898년에는 하와이·필리핀·괌을 강점하고 1899년에는 사모아·웨이크섬을 강점했다. 이로써 태평양 곳곳의 주요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미국 땅보다 훨씬 더 넓은 태평양 바다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00년 전후의 미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새로 확보한 태평양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혼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누군가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런 미국의 머리에 떠오른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의 조선시대 해안기지인 광성보에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1904년, 조선과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였다(러일전쟁). 이 전쟁은 1905년 들어 일본의 승리로 굳어졌다. 그러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26대 미국 대통령(재임 1901~1909)은 이것을 기회로 봤다.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기회에 일본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태평양 지배에 대한 일본의 협조를 얻어내고자 했다. 

이렇게 미일이 유착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 그 유명한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장관이 도쿄에서 체결한 이 밀약의 핵심은,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에 협조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에 협조한다는 것이었다. 

이 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 대한 자국의 권익을 안정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강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은 1905년 연말에 을사늑약(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 강점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미일의 협력 강화가 을사늑약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듬해인 1906년 12월 10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비(非)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러일전쟁의 종결에 기여했다는 게 수상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러일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그의 중재를 수용했기 때문이고, 일본이 그의 중재를 수용한 것은 그가 일본의 조선 강점에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최초의 노벨평화상은 미국이 일본의 조선 강점에 찬성했기 때문에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1900년대 초반의 미일동맹 강화는 이처럼 우리 한민족의 운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일이 가까워지면 한국이 불행해진다는 사실이 한층 더 분명해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 조선에서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거족적인 3·1운동이 발생했다. 일본이 이 운동을 진압한 뒤인 1921년, 미국은 일본에 한층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일본·영국·프랑스와 함께 이른바 워싱턴체제를 구축하여 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한층 더 공고히 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일본은 미국·영국·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주요 강대국의 위상을 얻게 되었다. 이러는 동안에 한민족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착취는 한층 더 심해졌다. 

일본에 떨어진 미제 핵폭탄, 한민족의 해방으로
 
기사 관련 사진
▲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 지금은 덕수궁과 따로 떨어져 있다.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미일이 가까워지면 한민족이 불리하다는 것은, 거꾸로 하면 미일이 멀어지면 한민족이 유리하다는 뜻이 된다. 미일이 멀어지면 한민족이 유리해진다는 사실은 1931~1945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났다. 

1931년에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과 만주를 독점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로 인해 1941년에는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어제의 친구였던 두 나라의 전쟁은 미제 핵폭탄 두 방의 투하로 끝이 났다. 그러고 나서 한민족은 해방됐다. 이 해방은 한민족의 독립투쟁 덕분이기도 했지만, 미제 핵폭탄 두 방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미일관계가 험악해진 게 원동력 중 하나가 되어 한민족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됐다.

그런데 핵폭탄 투하 후 미국과 일본은 금방 다시 가까워졌다. 미국은 금세 일본과 손잡고 소련·중국 견제에 나섰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민족의 분단이 고착되고 남한에서의 친일 청산도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사과 및 배상을 요구할 기회를 얻기는커녕 일본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미일이 다시 가까워지면서 한민족이 불이익을 입은 것이다. 

이런 몇몇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160년간의 중간 중간에 있었던 미일동맹 강화는 두 나라한테는 일미(一味)의 경험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한민족한테는 쓰디 쓴 악몽이었을 뿐이다.

미일이 가까워지면 한민족이 불행해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본은 한국을 억누르는 데서 자국의 활로를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세계 최강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한국은 더욱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도 안 된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새정치

 

[분석] 권력 실세 부패스캔들에도 선거 전패... 야권분열 가시화

15.04.30 02:06l최종 업데이트 15.04.30 10:07l

 

 

기사 관련 사진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일인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전략홍보본부장은 28일, 4.29 재보궐선거 판세를 묻는 기자들에게 "전승할 수도 있고, 전패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전패였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세월호 1주기 등 정부 여당에 악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은 무기력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취임 3개월여 만에 무너지는 당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애초 이번 선거를 대하는 새정치연합의 태도는, "한 곳만 이겨도 선전"이라는 말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4석밖에 안 되는 미니선거에 전력을 쏟았다가 크게 패하기보다는 무난하게 선거 국면을 넘기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천정배, 정동영 등 당의 유력인사들이 탈당해 야권 심판론을 제기하며 출마하면서 판이 커졌다. 문재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제1야당 입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선거 중반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면서 제1야당 입지를 지키는 수준을 넘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선거'가 됐다. 패배할 경우, 유례 없는 정권 핵심인사들의 부패 의혹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 대표 경선에서 내건 '2016년 총선 승리', '2017년 대선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선전' 이상의 결과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처참한 선거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광주 민심, 사실상 친노와 결별 선언
 

기사 관련 사진


우선 야권분열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호남에서부터 흔들릴 전망이다. 광주 서구을 선거에서 천정배 무소속 후보는 과반인 52.3%를 득표했다.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는 29.8%에 그쳤다. 새누리당과 정의당 후보까지 합치면 비(非)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70%를 득표했다. 더 이상 광주가 '새정치연합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 아니라는 현실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29일 투표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광주에서 선전을 기대했다. 양승조 사무총장은 오전에 CBS 라디오에 출연해 "광주는 국민들께서 잘 아시다시피 새정치연합의 심장 부분 역할을 한다"라며 "그런 광주에서 천 후보가 당선된다면, 야권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달리 말씀드리면 정권교체의 길이 험난해지고 멀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판단도 하기 때문에 광주에서의 승리는 아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야권의 분열을 우려해 광주시민들이 새정치연합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20%포인트가 넘는 차이의 패배였다. 투표율은 41%를 넘어 이번 재보궐선거 지역 중 가장 높았고, 이전 다른 지역의 재보궐선거와 비교해도 확연하게 높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당 조직과 민심 등 모든 요소에서 밀린 완벽한 패배다. 양 사무총장이 말한 "야권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광주에서 당한 패배는 문재인 대표에게 가장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문 대표는 이번 선거기간 광주를 6번이나 방문하며 가장 공을 쏟았다. 선거 마지막 주말 집중 유세도 광주에서 치렀다. 그래서 광주 선거는 '문재인 대 천정배'의 대결로 여겨졌다. 때문에 천정배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선거 결과는 광주가 '부산·영남 친노(친노무현)'과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광주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27년 만의 첫 패배, 불명예만 얻었다
 

기사 관련 사진
▲ 새누리당 재보선 압승, 기뻐하는 김무성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이군현 사무총장 등 지도부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선거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중, 3곳에서 후보들이 1위를 달리고 있자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번 선거의 최대 접전 지역으로 예상된 서울 관악을 선거도 비슷하다. 광주와 달리 관악은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 정태호 새정치연합 후보, 정동영 무소속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광주가 '야권심판론'을 결정하는 곳이었다면 관악은 '정권심판론'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정동영 후보의 바람을 정권심판론으로 잠재우고 야권의 표를 결집하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당초 오 후보와 접전을 벌여 신승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두 후보의 격차는 10%포인트 가까이 벌어졌고, 표 차이는 7441표가 넘었다. 정동영 후보는 20.1%를 얻었다. 야권 후보의 표를 합산하면 오 후보의 표를 훌쩍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패배의 책임을 정 후보에게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정동영 후보가 20% 이상 득표한 것은 유권자들이 정권을 심판하는 데 새정치연합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태호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 또 관악이 지난 27년 동안 보수정당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도 뼈아픈 지점이다. 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정무비서관, 정책비서관, 대변인 등 참여정부 내내 문 대표와 함께 청와대를 지켰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 유세를 벌인 곳도 관악이었고, 문 대표도 이를 강조하며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상징성을 잃고, '첫 패배'라는 불명를 얻었다. 

정동영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나름의 존재감을 보였다. 정 후보 때문에 야권이 패했다는 비난 여론도 있지만 그가 주창한 '야권 심판'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음은 확인했다. 그가 속한 국민모임과 정의당, 노동당 등이 추진하는 진보정당의 재결집 노력도 당분간은 유효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정 후보는 낙선인사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진보통합이라는 국민모임의 꿈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사퇴? "지금 맷집 키워야"

사실상 야권분열이 더욱 가시화한 상황에서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낼 것인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재보선 전패로 당이 입은 충격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선거 결과가 드러날 때쯤 새정치연합은 사실상 마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핵심 당직자들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입을 닫았다. 유은혜 대변인이 "국민이 바라는 바를 깊이 성찰하겠다"라는 논평으로 갈음한 게 전부다. 

새정치연합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이번 선거가 4석짜리 미니선거라는 것뿐이다. 때문에 15개 의석이 걸리고 전략공천 논란까지 있었던 지난해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지도부가 사퇴한 것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 지지율도 상승세였고, 문 대표는 직전까지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면 더 큰 혼란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문 대표는 이날 자택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통로를 통해 문 대표의 반응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핵심 당직자들은 문 대표가 30일 오전 10시에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만 전했다. 현재로서는 문 대표가 정면승부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한 측근은 "매를 일찍 맞았다, 지금 맷집을 키우지 않고 포기한다면 광주도 되찾을 수 없고, 야권통합도 정권교체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문 대표 정치력의 시험대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