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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은 미군점령 70년의 역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8/14 12:28
  • 수정일
    2015/08/14 12:2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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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기] 광복 70년,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4일차
강경태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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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4  11: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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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8.15 반전평화 시국행동’은 통일원로 선생들이 함께한 가운데 4일째 농성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지난 4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의 지뢰폭발사고에 대해 10일 합참이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는 대북 경고성명을 발표하고 당일 오후부터 군 당국이 대북 확성기를 이용한 방송을 재개하며 더 넓은 전선으로 확대할 것을 예고한 가운데 한반도에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여기에 한·미 최신 첨단무기를 동원한 이른바 ‘2015 통합화력 격멸훈련’이 벌어지고, 오는 17일부터 한미합동연합 군사연습까지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북은 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위험천만한 합동군사연습들을 즉시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자리를 지키는 통일원로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외세에 기대어 분단과 대결을 고수한다면 끝내는 전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다시금 떠올리며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에서 진행하는 ‘광복 70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8.15 반전평화 시국행동’이 13일, 4일째를 맞이했다.

   
▲ 범민련 서울연합 김규철 명예의장은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치면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범민련 서울연합 김규철 명예의장은 “제국주의 일본이 쫓겨 나가고 광복을 맞이했지만 다시금 민족에게 고통을 준 분단의 원흉은 미국”임을 강조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아직 실현되지 않는 것은 미국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개인의 이익을 누리면서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고자질하고 붙잡아가고 고문하던 족속들이 친일파”이며 “광복 이후 민족을 갈라놓은 것은 미국놈”이며 “미국놈이 갈라놓은 것을 지지하는 것은 친미파”라며 “우리 사회의 요소요소에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하여 기생하는 매국노들”을 비판했다.

또 “항상 통합하고 어울리고 협동하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는 것을 전제로 “어떤 동물도 식물도 곤충도 어울리지 않고 사는 법은 없다”며 “저 혼자 살겠다고 한 것들은 결국에는 멸망하거나 전멸하고 말았다”면서, 패권으로 멸망해 가는 미국과 그에 기생한 친미파들을 비판하면서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치면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광복 70년이고 분단 70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미군점령 70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피력하는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 송무호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 송무호 공동대표는 “현재 해외 주둔 미군의 숫자를 보니 제일 많은 곳이 독일이고 다음이 일본이며 우리나라가 세 번째”라며 “미군주둔의 근거를 위해 독일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있다는 개뿔 같은 이유를 댄다면 어느 면에서는 이해는 하겠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선량한 국가를 남북을 갈라놓고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광복 70년이고 분단 70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미군점령 70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미군이 점령한 이 상태를 벗어나야 진정한 광복이 되고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겠나”고 반문하고 “미군은 이 땅 악행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그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만이 겨레의 소원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 한다”고 말했다.

만약 미 대사관 앞 일인시위를 하게 된다면 어떤 구호를 가지고 할지 정리한 메모를 소개하며 ‘남북분단의 기획자이자 주범인 미국은 속죄하라’, ‘70년 동안 전쟁위험 고조를 통해 자신의 패권과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는 미국을 규탄 한다’ 등의 주장을 구호로 소개했다.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반북대결정책을 비판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광복이 되었다는 의미는 ‘일제 강점으로부터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이룬 것’을 말하지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어떤 조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자주통일을 이루어낼 때만이 진정한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농성 중에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는 통일원로 선생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분단 70년을 극복하고 자주통일을 이루기 위해 민간부문에서 ‘남·북·해외가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6.15민족공동행사는 서울에서 8.15민족공동행사는 평양에서 개최할 것을 합의’했지만 ‘6.15민족공동행사가 분산개최 되고 8.15민족공동행사가 사실상 무산된 것은 한마디로 말해 박근혜 정부의 반북대결정책에 의한 방해책동’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반북대결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이른바 ‘지뢰사건’을 계기로 8.15 광복의 분위기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 일촉즉발의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국면이 전개되고 있으며 광복절을 계기로 삼아 민족자주통일로 이어가야 할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전쟁국면으로 대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성참가자들이 일본의 재무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광복 70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8.15 반전평화 시국행동’은 ‘광복 70돌, 8.15 민족통일대회’가 열리기 전날인 14일까지 진행되며 미대사관에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하여 기자회견을 가진 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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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 땅 한복판에서 조-미 대결 총 결산"

 
 
조평통 "UFG는 선전 포고 어떤 방식 전쟁도 상대" 경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13 [07: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조선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핵전쟁 도화선에 불을 다는 행위라며 백악관과 청와대가 조준경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하한다고 경고해 남북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주요언론들은 13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 12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조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선군조선의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을지프리덤 가디언 군사연습은 북침핵전쟁의 도화선에 기어이 불을 달기 위한 극히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이라며  "조국해방 70돌을 계기로 내외에서 조선반도의 정세안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가고있는 때에 
대규모의 북침전쟁연습소동을 벌려놓으려는 미국과 괴뢰패당의 무모한 도발책동은 지금 북과 남, 해외 온 겨레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고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 담화는 "우발적인 군사적충돌도 전면전쟁으로 번져질수 있는 조선반도에서 '을지 프리덤 가디언'과 같은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을 벌리는 것은 곧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나 같다"고 강조했다.

 

대변인 담화는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이 감히 불질한다면 미국땅 한복판에서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을 총결산하고 괴뢰매국역적들을 씨도 없이 죽탕쳐버릴 것이라는 것을 이미 선포하였다"면서  "그 어떤 전쟁방식에도 다 상대해줄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으며 미국의 핵전쟁도발을 억제할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담화는 "백악관과 청와대를 포함한 침략과 도발의 본거지들이 우리 혁명무력의 강위력한 
최첨단 초정밀화력타격수단들의 조준경 안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특히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괴뢰역적패당은 역사의 교훈과 현실을 똑바로 보고 분별없이 날뛰지 말아야 한다"면서 "만일 미국과 괴뢰패당이 기어이 선불질을 한다면 빈말을 모르는 백두산혁명강군은 무자비한 불소나기로 도발자, 침략자들에게 선군조선의 본때를 단호히 보여줄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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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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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8/13 08:12
  • 수정일
    2015/08/1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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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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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2015. 08. 12
조회수 141 추천수 0
 

 

 암살-.jpg 

영화 <암살>

 

 

 김원봉-.jpg 약산과 김구-.jpg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척결에 나선 안옥윤 속사포 황덕삼(위 왼쪽), 

고량주를 따라 죽은 지사들을 추모하는 약산 김원봉(위 오른쪽), 약산 김원봉과 백범 김구(아래)

 

영화 <암살>에서 일제가 항복한 날, 약산 김원봉은 백범 김구 앞에서 고량주에 불을 붙여 동지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너무 많이 죽었다’면서 “잊혀지겠지요. 미안합니다”라며 비탄한다.

 

 그러나 미안한 것은 조국 동포를 위해 헌신한 그들이 아니다. 영화 속 염석진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했던 노덕술 같은 친일파에게 약산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고초를 당하게 한 이 나라다. 이 나라는 해방 후에도 이강국과 염석진과 노덕술의 나라였다.

 

 외세에 기생해 영화를 누린 게 그 개인들만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소외됐던 불교는 일제 때를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백용성, 한용운 같은 지사들도 있었지만, 불교 중흥을 명분으로 전투기까지 헌납하며 친일한 이들이 많았다. 3·1운동의 주축이었다가 일제 말 주요 교단들이 신사참배로 생존을 꾀한 개신교는 미군정 이후 미국을 등에 업고 이 땅을 개신교 국가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제에 가장 협조적이던 가톨릭도 미군정의 수혜로 교세 확장에 열중했다.

 

그들은 민족이나 나라보다 더 보편적인 진리를 앞세웠다. 그러나 민족 동포와 나라를 버린 채 진리만을 내세운 종교가 있던가. 2천년 전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보면, 알렉산더가 북인도에 침략했을 때 세속을 버리고 나체로 살아가던 고행승마저 격렬하게 저항한다. 로마가 가톨릭을 공인한 것도 국가 지배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고, 루터가 교황에 맞서 개신교를 열 수 있었던 것도 독일 민족주의의 호응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선 단재 신채호가 “왜 조선의 공자, 조선의 석가, 조선의 예수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 석가의 조선, 예수의 조선이 되느냐”고 비판한 ‘식민 종교’가 주류였다. 민족 동포의 해방을 외면한 이기적 종교들이 득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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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 백범김구와 함께 한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김수환 심산-.jpg 

심산 김창숙 유택에 큰절을 올리는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사진 심산사상연구회 제공

 

  

 2000년 김수환 추기경이 유학자인 심산 김창숙의 묘소를 찾아 큰절 6번을 올렸다. 일제의 고문으로 하반신 불구가 됐던 심산은 백범 암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이승만에게 서릿발 같은 하야 경고문을 발표했던 선비다. 추기경의 절은 종교 간 금기를 깬 행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건 친일 천주교의 참회의 절이 아니었을까. 김 추기경은 나중에 심산연구회의 살림이 어렵자 상금 700만원에 300만원을 더 보태 기부했다.

 

 그런데 일제와 미국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종교들이 미안해야 할 종교는 따로 있다. 무려 10만여명이 일제에 의해 순교당해 아예 뿌리가 잘린 대종교다. 대종교를 연 홍암 나철은 구한말 장원급제를 한 당대의 사상가였다. 일제가 이 땅을 삼키려는 을사조약을 맺자 가장 먼저 을사 5적의 ‘암살’을 꾀한 이가 그다.

 

홍암 나철-.jpg 

1909년 대종교를 연 홍암 나철. 구한말 과거에 장원급제한 그는 1905년 일제와

친일 대신들이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을사5적의 암살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자

대종교를 중광(다시 열다)시켰다.

 

서일등-.jpg 

청산리대첩을 이끈 대종교인들의 북로군정서. 왼쪽부터 총재 서일, 총사령관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북로군정서-.jpg 

청산리대첩을 이끈 북로군정서. 앉아있는 이가 대종교인 백야 김좌진

 

대종교 3인묘 참배-.jpg 대종교묘지 절-.jpg 대종교묘지에 대중절-.jpg 대종교묘지에서 합장-.jpg 

21년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순례를 하면서 연변 회룡시 들판에 방치된 홍암 나철, 서일, 김교헌 대종교 세지도자의

묘지를 찾아 벌초를 하고, 참배를 하는 정토회 법륜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

 

김동삼-.jpg 김좌진-.jpg 신채호-.jpg 우덕순-.jpg 이동녕-.jpg 이병기-.jpg 이상설-.jpg 이시영-.jpg 이회영-.jpg 장지연-.jpg 정인보-.jpg 주시경-.jpg 지청천-.jpg 최현배-.jpg 홍명희-.jpg 홍범도등-.jpg 

대종교의 항일 지사들. 위 왼쪽부터 김동삼, 김좌진, 신채호, 우덕순, 이동녕, 이병기, 

이상설, 이시영, 이회영,장지연, 정인보, 주시경, 지청천, 최현배, 홍명희, 홍범도.

 

그는 국가 패망의 원인을 기득권의 사대주의로 보았다. 강한 외세가 밀려오면 민족과 국가를 수호하기보다는 힘센 외세에 붙어 자신의 영화와 출세만을 추구하고, 세력을 확장해가는 데만 급급한 기회주의가 멸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가 민족정신을 되찾기 위해 1909년 대종교를 열자, 5년 만에 30여만명이 몰렸다. 대종교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자 일제의 탄압이 집중됐다. 나철이 1916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절로써 항거하자 지사들이 더욱더 대종교로 모여들었다.

 

 나철의 뒤를 규장각 부제학을 지낸 석학인 김교헌이 이었다. 그는 동만주에 군관학교를 열어 독립군을 양성했다. 3·1운동에 불을 지핀 1918년 무오독립선언에 서명한 39인의 대부분이 대종교인이었다. 이어 1920년 백포 서일과 김좌진, 이범석 등 대종교인들의 북로군정서는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참혹한 보복을 당했다. 독립운동사는 대종교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해방 뒤 이승만은 대종교 독립지사들 대부분의 단물만 빼먹고 버렸다.

 

친일·친미의 종교들이 해방 조국의 안방을 차지한 사이 나철과 서일, 김교헌은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민족 동포를 위해 살신성인한 3인의 무덤은 중국 연변 화룡시의 야산에 여전히 방치돼 해방을 기다리고 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종교다움의 첫걸음이다. 참회 없는, 참된 종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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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판사의 죽음에 법관들 "또 누가 이런 일 당할지"

 

[간추려서 단 번에! 한 주간 법조계 소식 1]15.08.12 19:01l최종 업데이트 15.08.12 19:01l김용국(jundorapa)매일 쏟아지는 판결 기사, 법조계 소식. 하지만 흥미 위주의 기사로는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법조계 소식을 쉽게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법률, 법원·검찰 관련 소식 등 누구나 알아야 할 법률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간추려서 단번에 한주간 법조계 소식>, 줄여서 <간단한 법>이 법을 보는 올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기자 말

① 대법관 후보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② 한국 사법신뢰도 27%, 그래도 할 말은 있다?
③ 30대 여성 판사의 안타까운 죽음 
④ 채팅남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여성, 법원 판결은? 

대법관 후보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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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택(56·14기) 대법관 후보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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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나온 50대 남자 판사. 

법조계 주변에선 대법관이 되려면 적어도 이런 조건은 되어야 명함을 내민다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민일영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기택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을 임명 제청(임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했다. 헌법(104조 2항)을 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현행 대법관 선발은 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자 3인 추천 ② 대법원장의 임명제청 ③ 국회 인사 청문회 ④ 대통령 임명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후보자는 민법 분야 이론가이며 지적재산권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법원이 그동안 약점으로 끊임없이 지적받아 온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충족 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과 변호사 성공보수금 사건 등에서 대법관 13명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다. 두 가지 사건 모두 일도양단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인데도 모든 대법관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현 대법원의 '성향'을 가늠케 한다. 이 후보자가 기존 대법관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소신있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법관이 또 다시 대법관이 된다면 대법원이 시대 변화나 치열한 논쟁보다는 안정을 선호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에 대법원이 담당했던 상고심(3심) 재판을 별도의 법원을 만들어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대신 대법원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건만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다양한 가치관 반영, 충분한 심리,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민권리 보호에 충실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법원 구성으로는 사회갈등 해소도 다양한 가치관 반영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수와 다수가 조화를 이루고, 보수와 진보(또는 개혁)가 공존하는 대법원 구성이 먼저다.

한국 사법신뢰도 27%, 그래도 할 말은 있다?

당신은 이 나라의 사법제도와 법원을 신뢰합니까?

지금 누군가 이렇게 당신에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대체로 부정적인 답변이 예상된다. 한국과 다른 나라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 마디로 '처참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한눈에 보는 정부 보고서'가 단적인 근거다. 2년마다 내놓는 이 보고서에는 사법제도와 관련된 평가가 포함돼 있다. OECD는 갤럽을 통해 42개 나라에서 일반인 1천 명에게 '사법제도와 법원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한국에선 27%만이 "예"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42개 나라 중에서 39등이다.    

덴마크(83%), 노르웨이(83%), 스위스(81%)와 같은 선두권과는 비교할 엄두도 못낼 뿐 아니라, OECD 평균(54%)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역으로 보면 시민 10명 중 7명은 사법제도나 법원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10일 공식자료를 통해 이번 조사에 대해 "단순히 국민의 주관적 인식을 조사한 것으로 재판의 객관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또한 "사법제도는 재판, 검찰·경찰 등의 수사, 협의 집행 등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임에도 사법제도와 법원을 분리하지 않고 묶어서 질문하였다"며 법원으로서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과연 억울한 일일까. 같은 조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34%로 26위)도 OECD 평균(42%)보다 낮게 나왔지만 바닥에 떨어진 사법 불신보다는 오히려 나은 수준이었다. 10명 중 7명이 믿지 못한다니 반성과 성찰부터 하는 게 어떨지.  

30대 여성 판사의 안타까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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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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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판사가 자택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판사는 과도한 업무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 소속인 이아무개 판사(37)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 판사는 3주 전에도 안면마비 증세가 나타났지만 업무량이 많아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판사는 재판업무 외에도 협의이혼, 각종 위원회 활동과 멘토링, 강의 준비 등도 맡아 격무에 시달려왔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는 고인을 추모하고, 법관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게시물이 이어졌다. 이 판사의 부고글에는 8백여 개의 댓글이, 추모글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중에는 판사들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도 적지 않다. 

40대 초반의 C판사는 "(이 판사가) 어린 아들과 딸을 두고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가슴이 아프다"면서 이 판사를 추모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C 판사는 "장시간의 고강도 근로, 불규칙한 퇴근, 주말근무, 야근의 만성화 등이 당연시되는 현재의 업무환경에서는 언제 누구에게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며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직원 D씨도 "법원 수뇌부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병들고 힘들어하면서도 자신들의 권리주장조차 못하는 법관들이 다수인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며 "더 이상 법관들의 근로조건과 처우개선을 외면한 채 폭주하는 사건 해결에만 판사들을 내모는 현실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권리구제 기관인 법원은 정작 내부 구성원들의 권리를 잠재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채팅남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여성, 법원 판결은? 

2014년 5월 인천 남동공단 근처 한적한 골목길에서 가방이 발견됐다. 그런데 무심코 그 가방을 열어 본 이는 경악했다. 사람의 상반신 사체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파주시 농수로에서는 하반신 사체가 발견됐는데, 두 사람은 동일인으로 밝혀졌다. 그는 50대 남성 B씨로, 가족들은 가출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누가 왜 그랬을까. 경찰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30대 여성 A씨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1년여간의 재판도 "A씨가 B씨를 살해했다"고 결론이 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와 B씨는 채팅사이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반가워요. 비도 오고 일요일인데 뭐 하시나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던 A씨는 B씨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우리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애인하기로 해요."

당일 두 사람은 파주에서 만났다. 검정색 투피스와 자켓, 모자를 착용한 A씨는 B씨와 함께  모텔로 향했다. 그런데 그 후 B씨가 모텔에서 나오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B씨의 카드 사용내역이 확인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탐문 수사 결과, 경찰은 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검정색 투피스에 모자를 착용한 여성"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A씨의 인상착의와 동일했다.

A씨는 B씨의 카드로 액세서리 구입을 시도하고 모텔비, 주유비 등을 결제했다. 그뿐 아니었다. A씨가 고양시 일산에서 여행가방과 전기톱을 구입한 사실이 CCTV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A씨의 차량이 집을 나와 사체가 발견된 장소 주변에서 배회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영상이 잡혔다. 그 무렵 A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인천과 파주 등지를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A씨는 모텔에서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칼로 B씨를 41회 찔러 살해하였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전기톱을 이용하여 사체를 절단하고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여 상반신은 인천에, 하반신은 파주에 유기하였다.' 

살인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초기 수사 때 범행을 시인하던 A씨가 입장을 바꿔서 "나는 B씨를 알지 못하고 살해한 적도 없으며, 휴대전화나 채팅 사이트의 명의는 도용되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범행을 모두 부인하였고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피해자 B씨는 참혹한 고통 속에서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고 피해자의 유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며 "그럼에도 아무런 피해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대법원도 "징역 30년이 부당하지 않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법원의 정신 감정결과 A씨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스트레스를 당하면 신체증상이 나타나고 부인, 투사(자신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려 자신을 보호하는 경향), 정서의 과장된 표현, 합리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중심적이고 불안정감이 많다는 것이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임이 틀림없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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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평양의 모습

[영상으로 보는 최신북한5] 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평양의 모습
 
 
 
김혜민 기자 
기사입력: 2015/08/13 [00: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근 백두산마라톤 등의 다양한 북한 관광 상품들이 등장하여 화제를 모우고 있습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객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요,

외국인들이 북한에 가서 찍은 영상, 사진들이 인터넷 공간에 많이 올라와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상은 바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평양의 모습입니다. 

HD화질로도 볼 수 있는 영상(영상 아래쪽 설정 버튼을 통해 조정 가능합니다.) 은 개선문부터 시작하여, 주체사상탑, 차가 늘어난 평양 시내, 탑에서 바라본 평양의 해질녘의 모습, 호텔에서 식사하는 모습, 웨딩촬영하는 모습, 김일성광장, 만수대 언덕, 대동문, 옥류관, 인민대학습당, 놀이동산, 판문점 등의 다양한 장소와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면을 소개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그 순간의 장면을 보여드립니다.

 

<북한 주민들이 춤을 추면서 노는 모습>

02

 

<개선문과 김일성광장 등 평양시내>

개선문은 광복을 기념하여 제작되었으며, 김일성 주석의 독립운동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북한 안내원이 영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외 김일성 광장, 인민대학습당, 정부 건물, 주체사상탑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평양시내의 사람들>

평양 시내의 모습. 버스, 북한 주민들, 교통경찰, 노동신문사 등의 건물이 보입니다.

세번째

 

<탑에서 내려다본 평양의 모습>

영상에서 2차례에 걸쳐 나옵니다.

네번째

 

<웨딩촬영하는 모습>

결혼하는 남녀가 웨딩촬영을 하는데 주변에서 웃으라고 난리입니다.

다섯번째

 

<북한 주민들>

가수들이 한복을 입고 남문에서 공연하는 모습, 공연에 맞춰 사람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 놀이동산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할머니들의 모습, 외국인 관광객들도 함께 춤을 추는 모습, 바베큐 먹는 모습 등이 담겨 있습니다.

여섯번쨰

 

 <판문점>

 일곱번째

 

<개성의 모습>

여덟번째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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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선언 계기로 만남을 제안하고 싶다”

 이창복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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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2  17: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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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된 11일 오후, 이창복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평양 등에서 열리는 8.15민족공동행사에 참가할 남측 대표단 선발대를 11일 정오까지 초청해달라는 제안에 북측이 호응하지 않자 이창복 상임대표는 “우리 민족의 하나됨의 길이 정말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창복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광복70돌 준비위) 상임대표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 사무실에서 8.15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된 직후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창복 상임대표는 “어제(10일) 우리는 운영위원과 상임공동대표 연석회의를 해서 8.15민족공동행사에 대한 마지막 방침을 결정했다”며 “마지막 선발대 파견 제의를 오늘 12시까지 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실무회담을 통해 협의하려 했는데 성사되지 않으니까 ‘우리라도 직접 평양에 가서 행사를 논의하겠다’고 의논하고 있는 터에 ‘시간이 더 없다. 마지막 한 번 더 북에 제안 해봐서 이뤄지지 않으면 그냥 서울 통일민족대회를 충실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한다’ 이렇게 결정했다”는 것.

그는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는 북의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된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대표단 선발대가 가서 협의해서 이뤄지는 행사라야 민족공동행사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서 수정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에 대해 “퍽 잘한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내부 이견도 있고 그래서 조율한 결과”라고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결국 이날 정오까지 북측의 답은 오지 않았고 8.15민족공동행사는 무산돼 분산개최가 기정사실화 됐다. 그는 “상당히 자괴감도 없지 않아 있고, 속상하다”며 “이렇게 진행이 안 되는 게 우리의 정성 부족도 있겠지만 ‘양쪽 당국의 소통이 풍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낀다”고 첫 소회를 밝혔다.

또한 “정부 당국자 간에는 서로 충돌도 있고 티격태격 하더라도 민간의 교류는 터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민간차원의 활동은 더 과감하게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민족통일대회는 비록 서울에서만 개최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남과 북이 함께하는 바탕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애써 자위하며 “이번 민족공동행사는 종단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민중세력들이 함께 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도 힘을 상당히 실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15일 오후 3시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할 8.15민족통일행사에서는 △정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보유 추진 반대, △미국의 한반도 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반대 등의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남북 간의 확고한 기본이념으로 자리잡고 활동의 기준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민족자주’에 방점을 찍었다.

아울러 북측 파트너인 김완수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 위원장에게 “김완수 위원장도 얼마나 고심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10.4선언을 계기로 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만남을 제안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참 안타까운 것은 통일운동에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던 젊은이들이 남북공동행사를 위해서 열심히 뛰다가 ‘공동행사가 안 된단다’, ‘분산개최 된단다’ 이러니까 그 동력이 뚝뚝 떨어진 거다”며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우리의 행보는 멈출 수 없다”고 격려했다.
 

   
▲ 광복70돌 준비위는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8.15민족공동행사 무산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광복 70돌, 평화와 통일선언'을 발표했다. 이창복 상임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상임대표는 12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8.15민족공동행사 무산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광복 70돌, 평화와 통일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며, 인터뷰는 기자회견 이후에 보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11일 오후 3시 40분부터 광복70돌 준비위 사무실에서 이창복 상임대표아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마지막 제안, “답이 없었다”

□ 8.15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광복 70주년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해온 것으로 아는데, 경과와 결과를 알려달라.

■ 우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금년이 분단 70년, 광복 70년이 되는 해이고, 또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이고, 6.15공동위원회 조직을 만든 것이 10년 된 해이니까 금년을 특별한 해로 설정해서 6.15민족공동행사라든지 8.15민족공동행사를 성대하게 치르자고 남북 간에 합의해서 추진해왔다.

그래서 남북.해외 3자가 합의해서 열심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 5일 심양에서 3자 위원장단회의를 했다. 거기서 장소 문제 때문에 조금 논란이 있었지만, 내용적으로는 6.15공동행사는 서울에서, 평양에서는 8.15민족공동행사를 하는 걸로 다 합의가 된 상태였다.

다만, 8.15민족공동행사를 평양에서 할 때 남쪽에서 대표단이 가는 것과 동시에 북쪽에서도 몇 사람이라도 대표단을 보내줘서 남쪽에서 개최되는 민족통일대회를 격려하고 참여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그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로 쭉 왔다.

그러다가 61.5공동행사 추진 과정에서 5월 중순에 결국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서로 공격적 언사들을 주고받은 결과 실무회담 개최가 어려워졌고, 또 실무회담을 못함으로 인해서 6.15민족공동행사가 분산개최 됐다.

우리가 6.15민족공동행사를 열심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5월 하순에 민족공동행사가 결국은 분산 개최로 가닥을 잡게 되니까 동력이 뚝 떨어졌다. 메르스라는 전염병 우려도 있었고, 대회가 취소되는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축소해서 수운회관 교당과 앞마당을 빌려서 3천명이 모여서 민족공동행사를 치르게 됐다.

그 이후에 8.15민족공동행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남북 간에 조율을 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무회담을 개최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끌어 온 거다.

어제 우리는 운영위원과 상임공동대표 연석회의를 해서 8.15민족공동행사에 대한 마지막 방침을 결정했다.

그 결정이 퍽 잘한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내부 이견도 있고 그래서 조율한 결과가 마지막 선발대 파견 제의를 오늘 12시까지 해달라고 했다. 만약에 이것이 안 됐을 경우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민족통일대회를 열심히 준비해서 추동해 나간다고 결정했다.

물론, 가능하면 공동호소문을 공동으로 발표했으면 좋겠지만 결국 남쪽 만의 행사가 될 것이다.

북쪽은 해외에서 일부 들어갈 터이니 해외와 함께 행사를 치르게 될 텐데, 우리 내부에서는 북의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된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단 선발대가 가서 협의해서 이뤄지는 행사라야 민족공동행사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서 수정이 된 셈이다.

그렇게 열심히 입만 열면 ‘민족공동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자’고 이야기해 왔는데, 결국 그렇게 안 된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의 하나됨의 길이 정말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길게 보고 가야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일말의 기대도 있었을 것 같다.

■ 수행단장이었던 김성재 전 장관이 광복70돌 준비위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히 주문을 하지 않아도 민족공동행사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오면 좋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 백낙청 명예교수가 6.15남측위원회 초대 상임대표를 역임했기 때문에, 기회만 주어지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 백낙청 명예교수와도 특별히 면담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신전심으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성사되도록 도와줄 분이라고 생각했다.

□ 선발대 파견 시한을 제시한 것은 이희호 여사 방북 결과를 보고 시간이 촉박해서 판단한 것인가?

■ 선발대로 특사를 보낸다는 것은 그전부터 이야기돼 왔던 것인데, 답이 없었다. 마지막 제안이었다.

그러니까 실무회담을 통해 협의하려 했는데 성사되지 않으니까 ‘우리라도 직접 평양에 가서 행사를 논의하겠다’고 의논하고 있는 터에 ‘시간이 더 없다. 마지막 한 번 더 북에 제안 해봐서 이뤄지지 않으면 그냥 서울 통일민족대회를 충실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한다’ 이렇게 결정했다.

□ 아쉬움이 컸겠다.

■ 그래서 상당히 자괴감도 없지 않아 있고, 속상하다. 이렇게 진행이 안 되는 게 우리의 정성 부족도 있겠지만 ‘양쪽 당국의 소통이 풍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낀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기본이념, 활동기준 돼야

 

   
▲ 이창복 상임대표는 '민족자주의 원칙'에 방점을 찍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이제 남측 8.15민족통일대회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인데, 이 대회에 대해 설명해달라.

 

■ 광복70년을 맞이하는 민족통일대회는 비록 서울에서만 개최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남과 북이 함께하는 바탕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여건으로 인해 분산해서 대회를 치르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같은 생각이고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당위성을 찾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민족공동행사는 종단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민중세력들이 함께 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도 힘을 상당히 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율하는 과정이 상당히 시간이 걸렸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남쪽 대회를 두고도 이견이 있나?

■ 스펙트럼이 다양하니까 같은 민족통일대회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다르다. 그것을 조율해 내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 8.15민족통일대회의 구상은?

■ 15일 오후 3시에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하고, 우리사회에서 민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든 세력이 함께하는 대회로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생각한 것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70년 동안 유지돼 온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대치하는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에 분단이 이루어진 것은 일본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최근에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집단적 자위권 보유를 추진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 때 한국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런 것이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군 가는 곳에 일본 자위대가 따라가게 돼 있고, 미국 요청으로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우리 정부가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히 불행한 일이다.

한편으로 미국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간간이 이야기했다. 실제 그 무기체계가 만들어져 있는 건지, 성능이 확인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점이 중국을 긴장시키고 러시아에게 불안한 마음을 줄 수 있다.

물론, 북한 미사일에 대항해서 배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레이더 탐지 거리가 3,700㎞까지 미쳐 중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중국이 긴장하게 될 것이고, 우리 정부에 대해 배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이 문제는 미국.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가 상당히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돼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 간의 자주적 교류와 협력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을 확보해야 하고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나아가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남북 간의 확고한 기본이념으로 자리잡고 활동의 기준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가 이번 8.15를 겪으면서 이 점을 깊이 생각해 가면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통일방안 문제인데, 6.15공동선언의 1항과 2항이 결국은 중요한 원칙이다. 1항은 민족자주의 원칙이고 2항은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점이 많으니 그런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2항을 북의 연방제를 일방적으로 지지해준 것으로 보고, 매도하는 사람들조차 없잖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설득하고 이해시켜 나가야 한다.

□ 6.15공동선언 2항은 양쪽 입장을 절충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북쪽 입장보다는 남쪽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문익환 목사와 허담 조평통 위원장이 합의한 ‘4.2 합의서’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 이야기가 나왔다.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의 담판 속에서 연방제를 점차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고, 이렇게 유연하게 해석한 것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남남갈등은 커지는 시류인 것 같다. 이번 8.15행사를 통해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나?

■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는 있다. 그러나 표출이 어렵다. 남북관계가 좋아질 때는 그런 지향들이 다 분출돼서 열기가 차는데 지금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니까 그런 의견들이 표출 안 되고 침전돼 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족공동행사를 통해 열기를 불러일으키려고 시도를 했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렇지만 남한 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통일 열기를 고양시키는데 좋은 기회로 삼고 대회를 준비하려고 생각했다.

이런 통일에 대한 의지나 열기를 고양시키는 것은 계기적인 것도 있겠지만 지속적 반복적 활동 통해서 쭉 해나가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집중적으로 8.15를 통해서 좀더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다.

□ 8.15통일대회에 참석할 주요인사는?

■ 아직 더 확인해야 할 형편이다. 적어도 광복70돌 준비위원회의 명예대회장, 상임대표, 공동대표들은 다 참석해 주실 것을 요구하고 있고, 많이들 참석하실 거라 기대하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 스님, 김희중 대주교,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런 분들이 참석하실 것이다. 또 민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도 조직적으로 많이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그날까지 “멈출 수 없다”

 

   
▲ 이창복 상임대표는 북측 파트너인 김완수 위원장에게 오는 10.4선언 계기로 만남을 갖자고 제안했다. 사진은 2013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 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발표할 때의 모습. 왼쪽부터 김완수 6.15북측위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곽동의 6.15해외측위 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북측 파트너인 김완수 위원장에게 한말씀 전한다면?

 

■ 김완수 위원장도 얼마나 고심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10.4선언을 계기로 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만남을 제안하고 싶다.

□ 우리 정부나 북측 정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정부 당국자 간에는 서로 충돌도 있고 티격태격 하더라도 민간의 교류는 터줄 수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걸 정권의 정책에 반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것마저 꽉 막고 있다. 이게 얼마나 경직된 정치를 하고 있는 건가.

2000년도인가 서해교전이 발생했지만 동해안에서는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었지 않나. 그게 정치다. 그런 멋이 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꽉 틀어막고 있으니까 참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한다.

꽉 틀어막는다 하더라도 비정치적인 일, 특히 체육교류 이런 것은 조금씩 터놓는 모양인데, 다행은 다행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민간차원의 활동은 더 과감하게 풀어줬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남북 양쪽 다 그렇게 해야 한다.

□ 주무부처인 통일부에 대해 한말씀 한다면?

■ 통일부는 주관부서로서 보다 소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검토하고 고민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대안도 제시해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이번 같은 케이스에 북의 초청장을 받지 않아도 우린 보내겠다’ 이렇게 선명하게 나오면 북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왜 생각하지 않는지.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통일정책에서 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책으로 전환되기 바란다.

□ 오랜 기간 재야활동을 하면서 늘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이번 과정을 겪은 소회는?

■ 왜 이렇게 민족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이것도 운명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결국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겠다. 특히 통일지향적인 지도자를 만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입만 열면 통일문제, 남북문제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 많이 하는데 하나도 실천되는 게 없다. 그래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없잖아 있다.

참 안타까운 것은 통일운동에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던 젊은이들이 남북공동행사를 위해서 열심히 뛰다가 ‘공동행사가 안 된단다’, ‘분산개최 된단다’ 이러니까 그 동력이 뚝뚝 떨어진 거다. 그때 느끼는 그런 참담함은 참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을 다시 추슬러서 ‘열심히 하자’고 내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뜀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면 그게 우리가 오늘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70년 동안 안 됐던 것이 몇 달 동안에 된다면 그건 기적 같은 이야기다.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우리의 행보는 멈출 수 없다. 그것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이고, 민족의 번영을 보장 하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8.15 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젊은 동지들, 특히 활동가들이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열망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투신해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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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가요?

 
[포토뉴스]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가요?
 
 
 
임병도 | 2015-08-12 10:02: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광복 70주년’을 기념한다고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태극기 제작업체가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호황을 맞고 있을 정도랍니다. 관공서 건물은 물론이고 관용차에도 태극기가 부착됐습니다. 지하철 손잡이에도 태극기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태극기 달기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부대와 지자체는 태극기 조형물이나 태극기 동산을 조성했습니다.

기업들의 사옥마다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한화그룹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를 내세웠고, 기업 이미지가 하락된 롯데그룹은 ‘광복 70주년이라 국내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 70층에 태극기를 내걸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극기 마케팅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려 몽둥이로 맞아 죽거나 총살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태극기는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공포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애국심은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극기를 달았다고 모두가 애국자가 아니며 태극기를 안 달았다고 모두가 애국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비상식적인 세상에서라면 한국전쟁 당시처럼 ‘너는 태극기를 달지 않았느니 애국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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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로 맹독 주입 신종 개구리 발견

박치기로 맹독 주입 신종 개구리 발견

조홍섭 2015. 08. 11
조회수 5407 추천수 0
 

머리뼈에 밤송이처럼 돋은 가시로 살모사 25배 강력 독물 주입

나무구멍에 숨을 때 독가시 무장한 머리만 내놓고 천적 방어

 

fr2_CARLOS JARED_BUTANTAN INSTITUTE.jpg» 살모사보다 25배 강력한 독물을 주입할 수 있는 신종 개구리(학명 Aparasphenodon). 납작한 머리와 길고 유연한 목으로 피부 밑에 숨긴 독가시로 상대를 찌른다.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열대숲에는 독개구리가 많다.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피부에서 역겹거나 치명적인 독을 분비한다. 

이런 개구리가 포식자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기겠지만 독사나 전갈처럼 독물을 상대에게 주입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존 독개구리와 달리 능동적으로 독을 상대에게 주입하는 개구리가 발견됐다.
 
카를루스 자리드 브라질 부탄탕연구소 생물학자는 대서양 연안인 브라질 동북부의 건조한 숲에서 양서류를 조사하다가 손을 무언가에 물렸다. 팔까지 번진 극심한 통증은 5시간이나 지속됐다.

 

fr1_Corythomantis greeningi_Carlos Jared_Butantan Institute.jpg» 자리드가 발견한 또 다른 독물 주입 개구리(학명 Corythomantis greeningi). 다행히 자리드는 독성이 덜한 이 개구리에 찔렸다.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채집하던 개구리에게 찔렸으리라고는 당시에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 자세히 조사했더니 이 개구리는 개구리 가운데 처음으로 독물을 적극적으로 상대에 주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연구진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7일치에 실린 논문을 통해 맹독성 독물을 주입하는 신종 개구리 2종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나무에 서식하는 청개구리의 일종인 이 개구리를 손으로 쥐자 끈끈한 분비물을 내면서 동시에 유난히 긴 머리를 전후좌우로 휘두르며 가시로 찌르고 비비려는 행동을 했다.

 

fr4.jpg» 독물 주입 개구리 2종의 성체, 두개골, 가시 부위 모습. A가 독성이 더 강한 A. brunoi, B는 C. greeningi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두개골 가장자리에는 뼈가 밤송이처럼 뾰족하게 피부 밖으로 돌출돼 있었고 이들은 독샘과 연결돼 있어 독을 주입하게 되어 있었다.
 
발견한 2종의 개구리가 모두 맹독성 독물을 주입하는 구조를 보유했는데, 한 종은 그 지역에 서식하는 살모사보다 25배나 강한 독물을 분비했다. 자리드를 찌른 개구리는 독성이 덜했지만 역시 살모사의 2배 독성이었다.

 

fr5.jpg» A. greening의 피부 확대 모습. 별표한 부분이 피부를 뚥고 가시처럼 돌출한 뼈 돌기이다.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fr6.jpg» A. brunoi(B와 C), C. greening(D와 E)의 피부 독물분비샘과 가시 모양의 돌기(별 모양) 주사전자현미경 모습. 사진=카를루스 자리드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이들 개구리가 맹독을 분비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건조한 서식지에 적응하기 위해서일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건기 동안 이 개구리들은 구멍 속에 틀어박히는데, 머리를 마개처럼 이용한다. 
 
두개골의 윗부분은 뼈들이 뭉쳐 병뚜껑처럼 납작한 형태다. 천적이 구멍에 숨은 이 개구리를 공격하려고 머리에 입을 들이대다간 끔찍한 독물 세례를 받도록 돼 있다. 특별히 길고 유연한 목으로 휘두르는 이 개구리의 머리는 치명적인 무기다. 
 
연구자들은 “독물을 주입하는 개구리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독성이 강하고 더 흔할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ared, Mailho-Fontana, Antoniazzi, Mendes, Barbaro, Rodrigues & Brodie. 2015. Venomous Frogs Use Heads as Weapons. Current Biology http://dx.doi.org/10.1016/j.cub.2015.06.06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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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일파의 후손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제 때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정운현 | 2015-08-11 19:45: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람이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둘 있다. 조국과 조상이다. 자신이 태어날 땅을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으며, 부모를 가려서 태어날 수도 없다. 한날한시에 태어나도 한국 땅에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반대편 남미 땅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또 부잣집 맏이로 태어나기도 하고 찌들게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기도 한다. 누구도 그 연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불가의 인연법을 수긍할 따름이다.

친일파 후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해서 친일파의 아들딸로 태어났다고 볼 순 없다. 태어나고 보니 그들의 부모가 친일파였을 뿐이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친일파 후예들은 그들의 조상과 함께 비난의 대상이 돼 왔다. 그 이유는 후손들의 태도 또한 조상들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부끄러운 반민족 행각을 비호, 왜곡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인호 현 KBS 이사장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다.

최근 <뉴스타파>에서 해방 70년 특별기획물로 ‘친일과 망각’ 4부작을 야심차게 내놨다. 지난 6일 1부 ‘친일후손 1177’을 선보였는데 8개월 동안의 작업성과라고 한다. (2부는 10일 공개)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확정 발표한 친일인사 1,006명의 후손들이다. ‘국가공인 친일파’ 1,006명은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귀족,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 군수급 이상의 고위 관료, 친일단체 주요간부, 저명 언론인·예술인 등 일제 강점기 최고 엘리트들이다.

▲<뉴스타파> 화면 캡쳐

그간 친일파에 대한 조사 및 연구 작업은 더러 있어 왔다. 일생을 친일파 연구에 몸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을 필두로 그 후학들이 거둔 성과가 그것이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에 대해서는 그간 이렇다 할 만 한 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그 주된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후손을 거론할 경우 자칫 연좌제로 오해받을 수 있는데다 첫머리에서 언급한 ‘조상선택 불가론’도 한 몫을 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친일파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인, 고위관료, 대학교수, 기업인, 언론사주 등 우리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일 뿐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부와 권세를 거머쥔 부모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심지어 해외유학까지도) 다시 사회에 나와서는 앞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밀어주니 쑥쑥 크는 것은 당연지사다. 친일기업인들의 재산은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대물림됐으며, 이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지금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10여 년 전 필자는 대표적인 친일문인 파인 김동환의 3남 김영식 씨(2008년 작고)와 교류한 적이 있다. 총경 출신의 김 씨는 은퇴 후 십 여 년에 걸쳐 전국을 돌며 부친과 관련한 자료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파인 김동환 전집>(전5권), <삼천리 영인본>(전 32권), <파인 김동환 문학연구>(전 30권), <언론인 파인 김동환 연구-신문기자. 잡지인>(전 15권) 등을 펴냈다. 2001년 파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는 음악회, 전시회 등 무려 7회의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는 한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일들이었다.

필자가 그를 주목한 것은 부친에 대한 효성만이 아니었다. 그는 94년 부친의 일대기를 펴내면서 그 서문에서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해 부친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후 김 씨처럼 조상의 친일 행각을 사죄하는 후손이 더러 나타나긴 했지만 그 시작은 김 씨였다. 비단 사죄의 글만이 아니었다. 친일파 관련 토론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 증언을 하는 등 사죄의 마음을 행동으로도 보여주었다.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 보자. 조상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이상 후손들에게 조상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이 친일의 대가로 형성한 기득권을 그 후손이 향유하고 있다면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김영식 씨와 같은 처신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정부를 상대로 조상 땅찾기 소송을 하는 것까지를 봐줄 순 없는 노릇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제 때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일 따름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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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간 매월 보상금 수령 '가짜' 독립운동가 유족이 사는 법

 

'대전 김태원' 후손들의 이해 못할 행적

15.08.12 08:05l최종 업데이트 15.08.12 08: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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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공동대표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이하 공동조사단)가 지난 6월 24일 오후 2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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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립운동가 유족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대전 김태원'의 후손은 수십 년간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을 받은 것 외에도 생가터와 어록비, 묘지 등 각종 시설물을 남겨 놓았다. 여기에는 여러 허위기록까지 담겨 있다(관련기사: '대전 김태원' 후손, 독립운동가 유족 아니었다).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최근 심사를 통해 대전 출신 김태원(金泰源, 1900~1951)의 유족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한 인물은 평안북도 출신 김태원 선생(金泰源, 1902~1926)인데 동명이인인 대전 출신 김태원의 후손이 유족으로 등록됐다는 것이다.

50년 가까이 매월 유족 보상금... 환수는 5년 치만 가능

결국 '대전 김태원'의 후손들은 남의 독립운동 행적을 이용해 수십 년 동안 보훈혜택을 받아온 것이다. 후손들은 약 50년 가까이 매월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을 받아왔다. 유족 보상금은 올 8월 기준 월 181만 8000원이다. 하지만 관련법에는 허위인 경우에도 지난 5년간 받은 보상금(1억여 원 상당)에 대해서만 환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에게는 중학교 학습보조비 지급, 고등학교 입학금-수업료 전액 면제, 대학 독립유공자 특별전형 응시 수혜와 입학금-등록금 면제 혜택을 준다.  또 취업지원과 교사나 기업체, 공무원 채용시험 시 가산점 혜택도 부여한다. '대전 김태원'의 유족으로 등록된 아들 김아무개(80)씨의 경우 8명의 자녀를 두었다.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김씨 자녀들이 모두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고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김태원 묘지가 국가지정문화재? 문화재청 "그런 사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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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동구 상소동에는 김태원의 묘지와 묘지 앞 표지석. 묘지 표지석에는 지난 1977년 12월 1일 자로 당시 문화재 관리청(지금의 문화재청)이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없다고 11일 밝혔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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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 상소동에는 김태원의 묘지가 있다. 보훈처는 묘소 단장비 등 일부를 지원한다. 그런데 묘지 표지석에는 지난 1977년 12월 1일 자로 당시 문화재 관리청(지금의 문화재청)이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관리번호까지 쓰여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김태원의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없다고 11일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김태원의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없고, 1977년은 조직명칭도 '문화재관리청'이 아닌 '문화재관리국'이었다"며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표지석 기록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후손들이 묘소를 단장하면서 임의로 표지석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재청은 애국지사 등 독립유공자의 묘지를 문화재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

생가터 문화재 자료 지정한 대전시, 인근 주민들 "이곳에서 산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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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가 1997년 문화재자료로 지정한 대전 김태원 생가터와 설명문.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김태원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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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는 홍도동에 있는 김태원의 생가 유허(터)를 문화재자료 제41호로 지정해(1997) 관리중이다. 대전시는 "김태원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설명한다. 안내문에도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김태원이 사망한 지 수년 뒤에 그의 아들이 지은 집"이라며 "김태원이 생전에는 이곳에서 단 하루도 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생가터가 아닌 곳을 엉터리 고증으로 문화재자료로 지정했다는 얘기다.

대전시 관계자는 "유족들이 생가터라며 문화재자료로 신청해 지정한 것으로 안다"며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이 아니라는 관련 서류가 넘어오면 사실 확인 후 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지정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보훈처 어록비 현충시설 지정... 안내문에는 허위사실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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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10월, 대전지방보훈청이 대전 대덕구 쌍청공원 내에 소재한 김태원 선생 어록비에서 정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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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대전 대덕구 쌍청당(조선 시대 학자 송유선생의 별당) 앞에 있는 김태원의 어록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중이다. 이 시설물은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1997년 설치했다. 

이 시설물 안내판에는 '김태원이 1918년 김용원 선생과 중국에 망명하여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임시정부 내무부 국내 특파 충청도 책임자로 임정의 자금조달을 담당하였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대전 김태원'은 황포군관학교를 다닌 사실이 없다. 임시정부 충청도 책임자를 역임한 인물은 '대전 김태원'이 아닌 '안성 김태원 선생'이다. 보훈처가 가짜 독립운동가의 어록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한 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공훈록에 허위사실이 기록돼 있는 데도 전혀 수정하지 않은 것이다. 

'대전 김태원'의 유족은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이의 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문화재 지정 취소와 시설물 철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훈장'까지 받은 독립운동가, 행적이 의심스럽다).

한편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의혹 진실규명 시민공동조사단'(단장 이순옥)은 12일 오전 10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김태원 유족 허위등록 보고 및 김정필 유족 양심선언에 따른 사실 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관련기사: "제 증조부 김정필은 독립유공자가 아닙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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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몸 아파도 쉴 수 없게 만드는 광복 70년’


[참가기] 광복 70년,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2일차 농성장을 다녀와서
홍휘은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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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1  18: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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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에도 계속된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2일차 농성장.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고도 갈증이 나는 8월의 광화문 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과 근처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간혹 서서 농성장의 발언과 피켓의 문구를 지켜보았지만, 많은 관심은 두지 않는 듯 무심히 지나쳐 갔다.

버스마다 붙여진 광복 70주년 기념광고판, 가로등마다 휘날리는 태극기, 빌딩마다 대형 태극기가 광복 70년을 홍보하지만 정작 8.15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 2일차 농성장엔 민가협 어머니들이 함께 자리를 해 주셔서 더욱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2일차 농성장. 11일, 오늘은 민가협 어머니들이 함께 자리를 해 주셔서 더욱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민주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늘 앞장서서 투쟁의 현장을 지키는 어머니들은 이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이 정권은 ‘나이 들어 몸이 아파도 쉴 수도 없게 만든다’고 하신다.

민가협 조순덕 회장께서는 “올해 8.15는 더 암울하다”며 “박근혜 정권은 군사 정권 때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세력을 탄압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 유선근 사월혁명회 공동대표(여성).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사월혁명회 유선근 공동대표도 “올해 8.15 공동행사를 치르지 못하게 된 점이 안타깝고, 더구나 진보민주진영이 더 단단하게 뭉치고 단결하게 하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역할”이라고 말씀하셨다. 통일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될 때만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시는 고언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발언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 몸 자보를 부착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선전하시는 장기수 김영식 선생님.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지하철에서 몸 자보를 부착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선전하시는 장기수 김영식 선생께서는 전철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일제 36년 끝내고, 다시 외세가 들어 왔는데 그게 어떻게 광복이고 그게 좋다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만세 부르고 난리야~~?”라고 했다고 전하시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합시다” 하셨다.

가장 쉽고 간단한 구호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 말이 오늘은 가슴에 큰 울림이 되어 남는 것은 왜일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께서는 “해방 70돌, 분단 70돌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외세에 의해 통한의 70년이 되었으며, 아직도 미군이 70년간 이 땅을 강점하는 현실에서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미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이 모든 상황의 극복은 우리 끼리 통일하는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시며 “자주적으로 통일 세상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하셨다.

아울러 박근혜 정권의 방해 책동으로 8.15 공동행사를 치르지 못하게 된 점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 시국행동 2일차 농성에 앞서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준) 주최로 ‘박근혜폭압정권퇴진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홍휘은 통신원]

시국행동 2일차 농성에 앞서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준) 주최로 ‘박근혜폭압정권퇴진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하늘도 찌뿌둥하게 흐린 8월 둘째 주 화요일,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자주적인 통일을 염원하는 외침이 광화문에 울려 퍼지길 바라며 떠 오른 노래 가사.

“...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이 노래를 이 꿈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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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함지뢰 폭발사고, 왜 ‘북한 소행’을 숨겼는가?

 
 
MBC,SBS.JTBC 등 대부분의 언론은 ‘목함지뢰 폭발 사고’를 보도하지 않았다
 
임병도 | 2015-08-11 10:07:2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8월 4일 오전 7시 40분 경기도 파주 육군 1시단  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해 놓은 목함 지뢰가 폭발했습니다. 이 사고로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직후 김모 하사 등 부사관 2명은 헬기로 군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부사관 2명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다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당시 김모 하사 등 10여 명은 군사분계선 이남 440m 지점의 우리 군 수색정찰로 상에 있는 통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우리 병력이 통문을 지나는 순간 지뢰가 폭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군이 한국군 통문 지역에 목함지뢰를 설치해 아군 2명이 부상한 것은 북한의 고의적인 살상 행위이자 침투작전으로 봐야합니다. 북한군의 군사도발,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건을 돌이켜 볼 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 8월 4일 사고가 지금에서야 공개됐느냐는 부분입니다.


‘유실된 지뢰 vs 북한군 소행’

북한소행 목함지뢰 폭발 사고가 났던 8월 4일,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KBS뉴스, 그것도 경인방송의 지역 소식에서만 보도됐습니다.

8월 4일 KBS9 경인에서는 ‘서부전선 DMZ 지뢰 추정 폭발… 부사관 2명 부상’이라는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뉴스9 경인방송’에서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폭발 사고’가 일어났으며 ‘폭우 등으로 유실된 대인지뢰나 부비트랩을 밟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KBS9 경인방송은 군 당국이 폭발에 북한이 연루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MBC,SBS.JTBC 등 방송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언론은 ‘목함지뢰 폭발 사고’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매체에서도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제 지뢰’는 아니며 ‘폭우로 유실된 지뢰’라고 보도했습니다.

모든 언론이 침묵하거나 ‘폭우로 유실된 지뢰’라고 보도한 상황에서 김광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폭발된 지뢰는 북측의 목함지뢰이며, 유실이 아닌 매설’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주장한 ‘유실이 아닌 매설’의 파문은 컸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다니는 통문과 수색로에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사실은 고의적인 도발행위이자 군사도발이기 때문입니다. 김광진 의원의 주장을 오마이뉴스가 8월 9일 오후 5시 2분 ‘DMZ 또 뚫렸나..터진 지뢰는 북한제’라며 보도했습니다.

조선닷컴도 8월 9일 오후 5시 30분 “野 김광진 ‘DMZ 지뢰 폭발 사고, 北이 매설한 목함지뢰’ 주장”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가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김광진 의원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국방부는 북한군 소행임을 알았다’

‘유실된 지뢰’이거나 ‘북한군 소행 가능성은 낮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국방부는 이미 8월 5일부터 북한군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8월 6일 출입기자단에 ‘북한제 목함지뢰가 폭발한 것 같다’고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8월 10일 오전 10시 30분까지 이 사실을 보도하지 말라는 ‘엠바고’를 걸었습니다. (엠바고는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일정 기간 미루기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방부는 이미 사고 지점이 통문이자 북한 쪽 지형보다 높아 유실된 지뢰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나, 수거된 지뢰 잔해가 녹슬지 않았던 점 등을 통해 북한군 소행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소행 목함지뢰 폭발사고, 엠바고를 걸어야 했나?’

국방부는 정밀 조사가 끝나면 공개하라는 엠바고를 걸었지만, 과연 엠바고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사 이후의 공백입니다.

8월 6일부터 7일까지 ‘국방부 전비태세 검열단’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특별조사팀’은 합동으로 폭발사고 현장조사를 했습니다. 정밀조사를 통해 합동참모본부는 유실지뢰일 가능성은 희박하고, 오히려 북한군이 의도적, 불법적으로 군사분계선을 침범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8월 7일 조사가 끝났는데, 왜 국방부는 8월 8일이 아닌 8월 9일 오후 2시에 기자를 상대로 브리핑하고 현장 방문을 했을까요? 또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8월 9일이 아닌 8월 10일에 보도했을까요?

①  작전도 아닌 조사에 엠바고를?

엠바고는 필요합니다. 군사 작전이 시작될 시간과 규모 등이 사전에 공개한다면 당연히 안 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작전이 아닌 조사입니다. 벌어질 사건이 아닌 벌어진 사건, 충분히 북한소행임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사전에 나왔는데도 엠바고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② 주말이라 엠바고를?

국방부는 8월 10일 월요일 브리핑을 했고, 모든 언론이 일제히 ‘목함지뢰 북한 소행’이라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금요일에는 국민이 쉬어야 하니 엠바고를 걸고 월요일에 보도하는 친절함을 보였을까요? 과거 국방부나 검찰 등의 정치적 사건의 민망한 중대발표가 금요일에 있던 적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③ 전쟁에는 주말이 중요치 않다.

아이엠피터가 이번 사건에 왜 엠바고가 필요했냐고 반문하는 이유는 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이 어떻게 대응했느냐 때문입니다. 북한이 아군 지역까지 침투하여 지뢰를 매설했다면 DMZ 전 지역의 통문이나 수색로에 대대적인 지뢰 수색 작업을 벌었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에는 ‘DMZ 경계 작전 태세를 재점검하겠다’라는 보도자료 뿐이지 전군의 수색 작업 결과는 없었습니다.

북한군이 침투해 아군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군사도발에 대한민국 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남남갈등 조장 의도’라는 분석뿐입니다. 아이엠피터는 군당국이 ‘목함지뢰’를 매설한 북한군의 도발 원인이 왜 ‘남남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아군 통문 지역과 수색로까지 와서 지뢰를 매설했는데도 몰랐다는 ‘경계 부실’과 전군 DMZ에 얼마나 지뢰 매설과 같은 군사도발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수색하고 조사’하는 일입니다. 또한 군사도발에 대한 대한민국의 ‘군사적 대응’입니다.

고작 대북 확성기 방송뿐인 국군이 어떻게 ‘단호한 대처’를 할지 자못 궁금해지면서, 오히려 국방부가 북한군의 군사도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에 실망감이 듭니다. 안보만큼은 ‘새누리당 박근혜’라고 주장했던 대통령에게 어떤 강력한 군사대응 작전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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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만의 귀환…15살 인민군 포로의 기구한 운명


등록 :2015-08-11 09:54수정 :2015-08-11 10:04


 

‘소설 같은 인생’ 김명복씨 귀국
북한 못가고 한국에 온 김명복씨. 사진 이정용 기자
북한 못가고 한국에 온 김명복씨. 사진 이정용 기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지나해의 공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은 한국전쟁 이후 인천항을 떠나 중립국 인도로 가는 배에서 시작한다. 배에는 주인공 이명준 등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제3국행’을 택한 한국전쟁 포로들이 타고 있다.

 

 

15살 때 인민군 징집됐다 
한달 만에 포로로 붙잡혀
남도 북도 아닌 인도 거쳐 브라질로

 

 

고향 찾는 과정 그린 ‘리턴 홈’
주인공으로 지난달 한국 입국해
“고향 평북 땅 생전에 밟아봤으면”

 

 

1954년 2월의 현실은 소설과 같았다. 한국전 당시 제3국행을 택한 전쟁 포로 77명(중국인 포함 88명)이 인천항에서 ‘아스투리아스호’를 타고 실제 인도로 떠났다. 이 가운데 55명이 다시 브라질로, 9명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김명복(80·사진) 할아버지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 김명복 할아버지. 영화사 아침해놀이 제공
젊은 시절 김명복 할아버지. 영화사 아침해놀이 제공
김 할아버지는 최근 고향인 평안북도 룡천을 떠난 지 65년, 인도를 거쳐 브라질로 떠난 지 61년 만에 남한 땅을 다시 밟았다. “15살 여름에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쳐 무작정 다들 트럭에 타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인민군 쫄병’으로 징집이 됐지. 돌아오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나?”

 

10일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할아버지의 눈은 허공을 향했다. 그렇게 참전한 한국전쟁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참전 한 달도 안 돼 포로가 된 그는 이후 부산에서 거제, 영천, 마산, 중립지대(판문점) 수용소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3년을 보냈다. 그리고 휴전이 됐다.

 

그가 평생 들어왔을, 그리고 스스로도 자문했을 질문을 던졌다.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남한에 남을 수 있지 않았냐고. 한참 뜸들이던 할아버지는 판문점 수용소에서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한 텐트에서 지냈던 동료가 ‘고향에 가고 싶다’는 잠꼬대를 했다가 맞아 죽었어. 한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포로가 되는 것 자체를 죄로 여기던 북한도, 고향 가고 싶단 말에 맞아 죽는 남한도 선택할 수 없었지.”

 

그는 자신을 받아줄 나라를 기다리며 인도에서 2년을 머문 뒤 1956년 브라질로 갔고,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서 1000㎞ 넘게 떨어진 ‘오지’ 마투그로수주 쿠이아바에 정착했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신산한 삶이었지만, 착한 브라질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 둘, 딸 둘을 낳았다. 농사를 지어 자식들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먹고사느라 고향을 마음으로 그리워만 했어. 호랑이도 죽을 땐 고향을 찾는다는데…. 부모님은 돌아가셨겠지. 5살 터울 누이와 2살 터울 남동생은 혹시 살아 있을까? 일요일마다 다녔던 부평교회는 남아 있을까? 그냥 고향 땅만 밟아도 좋겠어.” 이내 김 할아버지는 눈물을 쏟았다. 흐느낌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5년 전 뎅기열에 걸려 삽관 치료를 받다 기도를 다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미안해. 다 늙어서 무슨 꼴이람. 미안해.”

 

브라질 농장에서 일하는 젊은 시절의 김명복 할아버지. 0078도 인도에서 찍은 젊은 시절의 김명복 할아버지. 영화사 아침해놀이 제공
브라질 농장에서 일하는 젊은 시절의 김명복 할아버지. 0078도 인도에서 찍은 젊은 시절의 김명복 할아버지. 영화사 아침해놀이 제공
그는 이번 방문길에 브라질에서 죽은 동료 김서국, 김창언의 유골을 안고 왔다.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고 싶다던 염원을 이뤄달라는 가족들의 부탁을 받은 터다. 하지만 고향에 갈 길은 아직 막연하다. 브라질 주재 북한 대사관과 북한 주재 브라질 대사관은 물론 한국 정부에까지 호소하고는 있지만, 다들 미온적이다. “이젠 시간이 없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이번에 꼭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수밖에….”

 

자신과 동료 생존 포로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조경덕 감독이 찍고 있는 다큐영화 <리턴 홈>(귀향)이다. 조 감독은 2009년 중증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섹스 볼란티어>가 상파울루 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시상식을 위해 찾은 브라질에서 생존 포로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뒤 6년째 이 영화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조 감독과 함께 지난 5월 브라질을 출발해 인도, 아르헨티나 등을 거쳐 7월말 한국에 입국했고, 이 여정은 영화에 담길 예정이다. “포로생활을 하던 부산·거제·양평 등을 다니니 많이 잊었던 한국말도 기억나고, 고향 생각도 더 간절해. 13일에 판문점에 가는데 멀리서나마 고향 땅을 볼 수 있을까?”

 

글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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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해킹 '역사와 진실 난도질'-민주국민행동 함세웅 신부

국정원해킹 '역사와 진실 난도질'-민주국민행동 함세웅 신부
 
 
 
주권방송 
기사입력: 2015/08/10 [19: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해킹의 원래 뜻은 ‘난도질하다’는 것.
국정원 해킹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불법권력이 역사와 진실, 국민을 난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 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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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바란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8/11 10:13
  • 수정일
    2015/08/11 10: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칼럼> 김종수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전문위원
김종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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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10  11: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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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반도 신뢰 독트린’ 밝히라

광복 70주년·분단 70주년의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북주민들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신과 대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당국자들의 몰역사적 인식과 무책임성에 유감을 표한다.

이번 달 중하순부터 한미 양국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훈련을 시작한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한당국의 극렬한 대결적 반응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북한당국은 우리정부와 미국정부를 향해 ‘북침핵전쟁연습’을 한다면서 거친 비난을 매일 쏟아 낼 것이고 우리정부는 물론 민간차원의 대화도 거부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조선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일을 즈음하여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 행위는 한반도 정세를 더욱 혼란하게 만들 것이 뻔하다. 국내 정치 일정을 보더라도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고,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어 올해 내 남북관계의 정상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현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요원해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중요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노력 방안 등이 제안되어 왔기에 광복 70주년을 맞는 광복절의 대통령 경축사는 더욱 주목받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기회는 광복 70주년 광복절의 대통령 경축사이다.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2014년 3월 28일에 있었던 ‘드레스덴 연설’처럼 우리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내고 북에게 수용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내용을 진정성 있게 제안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정부는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다시 한 번 천명하여 북의 호응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당국에게 연설 전에 경축사 내용을 전달하여 충분히 검토하고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통일의 비전을 담은 ‘박근혜 한반도 신뢰 독트린’이라 불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이다.

먼저, 남북 당국 상호 비방·중상 중단 이행을 통한 신뢰 구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정부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실천적 차원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인 ‘남북당국 상호 비방·중상 중단 이행 촉구 결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북한당국에게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당국자에 대한 비난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정상화의 상징적·현실적 장애물인 5·24조치에 대한 철회를 선제적으로 밝혀야 한다. 우리국민의 방북 불허, 신규 투자 불허, 남북교역 전면 중단과 같은 조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정부가 먼저 남북관계 정상화의 걸림돌인 5·24조치를 과감히 해제하여 남북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정상화 걸림돌을 제거한 후 북한당국에게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촉구한다면 북한이 거부하기에는 궁색한 입장이 될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남북 공동번영을 위해 북한의 경제특구에 우리정부와 기업들의 투자 의향을 적극 표명하고 특구공동 개발을 위한 남북 당국 회담 개최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한이 특구 개발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현실과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정체하고 있는 한국경제에게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북한 경제특구에 대한 남북 경제협력사업은 유무상통 정신이 발휘되어 공동번영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한 달 좀 넘게 남아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이념을 뛰어 넘는 인륜의 문제이다. 이산가족의 평생 소원인 북녘의 가족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산가족의 상봉 장소는 이산가족면회소가 있는 금강산이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장기 중단 상태이다. 남북이 서로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패키지 묶어 해결하는 ‘남북 당국 이산가족상봉·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제안하자.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생사확인, 서신왕래, 화상 상봉, 상봉 정례화를 합의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한다면 남북 간의 인도주의 문제는 큰 진전을 가져올 것이다. 북한당국도 장기 억류 중인 김정욱, 최춘길, 김국기, 주원문, 임현수씨 등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남북 간의 신뢰는 더욱 증진될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조건 없는 대북인도적 지원을 전면 재개한다는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발휘하여 북한주민의 마음을 얻어 통일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 대북 인도적 지원은 꼭 필요한 사업이다.

대통령이 ‘드레스덴 구상’에서 민생통로 등을 제안하고 인도적 지원을 밝혔지만 북한당국은 ‘드레스덴 구상’ 자체를 ‘체제전복’ 음모라고 하면서 여기서 언급한 인도적 지원 사업은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정부는 북한당국이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굳이 ‘드레스덴 구상’을 내세우지 않고 보편적인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명분으로 한다면 정상적인 인도적 지원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핵심 우려 사항들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 남북 간의 논의도 진척시켜 나가야 한다. 2008년 12월 이후 장기 중단된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동시 병행하는 6자회담을 재개할 것을 관련국들에게 촉구할 필요가 있다.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사항을 협상하도록 되어 있다.

진정한 해방과 광복은 분단의 극복을 이룰 때까지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광복절은 통일한국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오늘의 분단 모순을 극복하는 시대적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안이 제시되길 기대하고 촉구한다.

 

김종수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전문위원)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KYC(한국청년연합회) 평화통일센터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통일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통일준비위원회 정치·법제도 분과위원회 전문위원, 인제대학교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도산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동국대학교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쓴 글로는 “대학통일교육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2015), “독일 ‘통일정책’의 한국적용 방안과 의미”(2015), “북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출범과 남북 국회회담 전망”(2014), “강원도 도지사 후보자 남북관계 공약 비교와 당선자 공약이행 전략연구”(2014), “북한 김정은시대 청년동맹 연구”(2013), 『북한 청년동맹 연구』(한울,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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