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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지낸 부산... 장년층은 박근혜, 젊은층은 야권후보 지지 뚜렷

막대기만 꽂아도 새누리당? 부산이 요동친다

추석 지낸 부산... 장년층은 박근혜, 젊은층은 야권후보 지지 뚜렷

12.10.03 15:59l최종 업데이트 12.10.03 15:59l
정민규(hello21)

 

 

이번 대선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부산의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2일 자갈치시장 친수공간에 모여있는 시민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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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내가 웃기다 안 하요."

3년차 택시기사 이은호(49)씨는 최근 부산경남의 대선 판도를 "웃긴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부산이 이토록 흔들리고 있는 것이 놀랍다는 말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손님들과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는 그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대선 판도의 1차 승부처로 평가받던 추석을 보낸 부산 민심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이 씨를 비롯해 2일 하룻동안 부산을 누비며 만나본 시민들은 저마다 지지 후보가 달랐다. 하지만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이제 막대기만 꽂아도 새누리당이라는 공식은 없어졌다."

이런 말은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입에서 더 자주 튀어나왔다. 부산역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60대 택시기사는 자신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추석에 만난 자녀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변화를 실감했다. 30대라는 그의 세 자녀들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고 그는 이런 자녀들이 못내 섭섭한 눈치였다.

"선택? 박근혜 후보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번 대선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부산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2일 부산역 택시승강장 모습.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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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바라는 젊은층의 요구는 부산의 대표적 번화가인 남포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남포동 거리는 연인과 가족 단위 20~30대 젊은층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남포동에 나온 박지우(29)씨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신선함"이라고 꼽았다.

박씨의 여자친구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 후보는 고려대상이 아니다"는 말로 야권 후보를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3살 아들과 나들이를 나온 이승종(35)씨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뚝뚝하지만 강인하고 잔정이 많은 경상도 아버지들의 모습이 문 후보에게 담겨있는 것 같다"며 "현 정부의 보육정책 등에 불만이 많아 새누리당 정권이 연장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잘라 말했다.

연휴를 맞아 인근 경남 김해에서 왔다는 최태욱(31)씨는 지지후보를 "야권단일후보"라고 답했다. 그는 "사과를 했다지만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며 "설사 박 후보가 진정한 사과를 했다더라도 그 측근들도 그런 생각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씨는 "야권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를 박 후보에게 주는 것 아니겠냐"며 "무조건 야권 단일화를 해야 하고 그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젊은층 야권 지지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

이번 대선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부산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2일 부산 자갈치시장 전경.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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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의 야권 지지성향과 달리 시장에서 만난 장년층은 여전히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신동아시장에서 30년째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변상도(59)씨는 "박근혜 후보는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갈 것"이라며 젊은층의 야권 지지를 "이유없는 반항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에 퍼주기만 했던 나약한 정부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는 "반공 교육을 받았던 우리는 다르다"며 "젊은사람들이 야권을 지지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역시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김수재(50)씨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추석 때 만나 본 가족 중에서는 야당을 지지하고 바꿔보자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당이 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안철수 후보는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고 문재인 후보는 친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거슬린다"고 말했다.

자갈치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안성호(47)씨는 "아직 부산에서는 인물보다는 민주당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며 "사상과 사하·강서와 같은 서쪽보다는 중·동구·해운대·동래 같은 동쪽이 여권 지지성향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50대 이상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가 탄탄한 편"이라며 "20~40대가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쥐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바짝 추격해온 야권 후보 지지율에 박근혜 후보 '고전'

이같은 전반적인 지역의 민심은 여론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9월 25일 <국제신문>이 리얼미터에 야권단일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의 양자 대결을 가정해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신뢰수준 ±2.2%)에서는 문 후보가 처음으로 박 후보의 지지를 넘어섰다. 문재인 후보는 50.8%로 과반을 넘은 반면 박 후보는 46.6%로 3.8%포인트 가량 문 후보에 뒤졌다. 박근혜 후보(47.2%)는 안철수 후보(45.5%)와의 대결에서도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였다.

박근혜 후보의 전반적인 지지율 감소는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월 22일 60%를 넘어서며 부산·울산·경남에서 절대강자의 모습을 보이던 박 후보의 지지율은 그동안 하강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동안 문 후보와 안 후보는 40%에 근접하는 지지율로 박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혀 나가고 있다.

이번 대선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부산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2일 부산 BIFF 광장.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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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29.4%의 부산경남 득표율을 올렸던 점에 비춰 본다면 야권의 성장세는 더욱 돋보인다. 거기에 야권 후보가 상황에 따라 박 후보의 지지율을 넘어선다는 것은 새누리당에 큰 위기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부산경남은 수도권에 이은 최대 유권자(600만 명)가 거주하는 곳이다. 부산경남을 잃고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텃밭인 부산경남에서 밀리게 되면 대선 가도에 먹구름이 끼게된다. 반면 박근혜 후보가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고 야권 지지세를 잘 틀어막는다면 선거의 양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새누리당이 절대 강자의 입지가 크게 좁아진 가운데 야권 후보들의 지지세가 오르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는 부산경남이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s 선거의 판세를 결정짓는 지역)가 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에서 대선의 향배를 가를 키를 움켜쥔 변수로 부상한 부산경남의 표심이 오는 12월 누구에게로 향할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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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온다

힐링의 대가들이 온다

 
조현 2012. 10. 03
조회수 255추천수 0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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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리카르가 찍은 사진. 히말라야에서 명상하는 티베트불교 수행자

 

 

‘서구의 치유자’들 내달 줄지어 방한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를…‘힐링의 대가’들이 온다

 

힐링, 곧 치유의 시대다. 그만큼 나라와 사회의 병뿐 아니라 개인의 병도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상처와 고통, 스트레스가 심해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세상의 아우성이 그만큼 큰 것이다.

 

애초 치유의 필요성은 경쟁과 과속으로 인한 고통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서구인들이 먼저 절감했다. 그들은 ‘동양’의 전통적인 명상·수행들을 탐욕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 활용했다. 서구인들은 ‘동양’의 노하우들을 ‘원조’인 동양인들보다 훨씬 더 현실에 잘 응용해 도움을 얻었다. 전통 명상법들을 삶에 활용하기보다는 종교적 도그마로 삼은 동양 종교인들과 달리 합리적·논리적 사고방식을 지닌 서양인 수행자들이 실용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뒤늦은 서구화로 서구 사회보다 더 심각한 자살률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가 이제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힐링을 절실히 요청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서구의 치유자들이 11월 줄지어 방한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승려와 철학자>의 저자인 프랑스의 마티외 리카르(66) 스님과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BSR)의 창시자 존 카밧진(68) 박사, 미국 담마수카명상센터를 이끄는 위말라람시(66) 스님 등이다. 내년 5월1~15일엔 베트남 출신인 세계적인 치유자 틱낫한(86) 스님도 방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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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리카르가 찍은 사진

 

 

 

 

마티외 리카르
세포유전공학 박사 딴뒤
27살에 티베트 불교 귀의
‘승려와 철학자’ 등 출간
11월 봉은사 등서 명상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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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리카르
리카르 스님 프랑스에서 태어난 세포유전공학 박사로 27살 때 돌연 히말라야로 날아가 티베트 불교에 출가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제일의 지성인들의 모임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장프랑수아 르벨이다. 그의 어머니 얀 르 투멜린은 화가였다. 어린 시절 파리 지성계, 예술계 인사들에 둘러싸여 지내던 리카르 스님의 친구로는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이 꼽힌다.

 

20년 동안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수행에 전념하던 그가 네팔 산속의 외딴 산장에서 아버지 르벨과 만나 불교와 서양 철학, 행복과 고통, 삶과 죽음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책이 <승려와 철학자>다.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23개 언어로 출간됐다.

 

리카르 스님은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자란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트린 주안 투안과 함께한 대화록인 <손바닥 안의 우주>를 통해서 ‘불교와 과학’의 소통을 꾀하기도 했다.

 

그는 또 <티베트의 정신>, <티베트의 승무>, <불자들의 히말라야> 등의 사진집을 통해 티베트인들의 정신 세계를 독특한 이미지로 세계에 전한 사진작가다. 그의 사진은 이달 30일부터 2주일 동안 서울 종로구 사간동 경복궁 옆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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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닉네임이 붙은 마티유 리카르 스님

 

 

리카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마음과 삶 연구소’가 그의 머리에 256개의 센서를 부착하고 기능성자기공명장치로 촬영해 검사한 결과 긍정적 감정과 관련된 영역인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이제껏 조사한 사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그의 이번 방한엔 티베트 불교의 한 유파인 닝마파의 법왕이자 달라이라마의 스승이었던 딜고켄체 린포체의 후계자로 셰첸사원 주지인 랍잠 린포체가 함께한다.

 

리카르 스님은 11월2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마음을 훈련시켜 두뇌를 변화시키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고 3~4일엔 경기도 남양주 진건면 봉인사에서 명상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티외 리카르와 랍잠 린포체 초청준비위원회’ 010-9588-5182.

cafe.naver.com/shechenkorea, shechen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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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완화 프로그램의 창시자 존 카밧진

 

 

존 카밧진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 창시
숭산 선사에게 참선 배워
한국과 남다른 인연 맺기도
세종대서 11월5~7일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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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밧진

 

 

존 카밧진 실질적인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받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프로그램을 창시한 인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의과대 명예교수인 그는 이 대학 부설 ‘의료·건강 돌봄·사회에서 마음챙김을 위한 센터’(CFM·미국MBSR본부) 창립 대표다.

 

1979년부터 이 대학에서 시작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마음챙김’(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은 만성 통증이나 만성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도 2006년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마음>과 지난해 대장경 천년 특집 다큐 <다르마> 2부 ‘치유’ 편에서 소개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임상연구가 많고, 정평 있는 심신의학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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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밧진이 이끄는 명상 프로그램

 

 

존 카밧진은 1971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자생물학자 출신이다. 그는 이번이 첫 방한이지만,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카밧진은 한국의 선(禪)을 미국에 전한 숭산 선사를 1974년 만나 참선을 배워 보스턴 근교의 케임브리지선원에서 수석법사로 참선을 지도한 바 있다. 숭산 선사의 주례로 결혼을 했던 카밧진은 “현존감, 장난스러움, 집착 없음을 체현하고 있던 숭산 선사는 ‘다르마 싸움’(선문답)이라는 거친 대화형식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줄도 전혀 몰랐던 ‘마음의 습관’을 깨고 나오도록 도와주었다”며 수행 여정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국내에선 서울불교명상대학원대학교 안희영 교수가 ‘엠비에스아르’(MBSR) 공인지도자로서 국내에 보급중이다.

 

존 카밧진은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11월5~6일 이틀짜리 워크숍을 여는 데 이어 7일에도 하루 워크숍을 한다. 참가비는 이틀 코스가 60만원, 하루 코스가 25만원, 사흘 전체는 80만원이며 학생과 성직자는 10%가량 할인된다. 한국엠비에스아르연구소 (02)525-1588. cafe.daum.net/mbsr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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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 위파사나 수행자 위말라람시 스님

 

위말라람시
1974년 위파사나 명상 시작
팔리경전 원전 그대로 가르쳐
미국서 국제불교대학 등 건립중
내달 법륜사서 두차례 특별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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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말라람시
위말라람시 주석서를 배제하고 팔리 경전 원전 그대로 가르치는 명상으로 유명하다. 그는 1974년 미얀마식 위파사나 명상을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스리랑카 스님에게 1년 반 동안 명상을 처음 배우고 난 다음 미국 명상계에 최고 스타인 조지프 골드스타인의 조언자인 미국 원주민계 위파사나 수행자 무닌드라 아래서 9년 동안 수행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의 에스컨디도에서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환자들에게 명상하는 법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1년 동안 가르친 그는 건축업계에서 사업을 해 성공했다. 그 뒤 1986년 타이로 가서 승려가 되었고 미얀마 양곤(랑군)의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본격적인 수행을 했다.

 

위말라람시 스님은 말레이시아로 옮겨 자비관을 가르친 데 이어 1998년엔 미국으로 돌아가 현재 담마수카 상가에서 수행을 지도하면서 명상센터와 국제불교대학을 건립중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 문수산 법륜사에서 11월3~12일과 17~26일 두차례에 걸쳐 9박10일씩 특별 수행을 실시한다. 수행비는 50만원이며, 선착순 30명이다. 위말라람시 고요한 지혜통찰 명상(TWIM_KOREA) 모임 010-7310-0910. cafe.daum.net/twimkorea.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각 수행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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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부둣가에서 '동대문 패션'을 보다

 

[압록·두만에서 바라본 북한의 오늘]<2>

황재옥 (사)평화협력원 인권·평화센터 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04 오전 7:59:41

 

지난 8월 초순 한국의 북한전문가들이 8박9일 동안 압록강 서쪽 끝 단동(丹東)에서 두만강 동쪽 끝 방천(防川)까지 북·중 국경 1376.5㎞, 3000리가 넘는 거리를 답사하면서 강 건너 북한 땅의 사정을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답사는 북한 전문가들이 그 동안 문헌자료와 현장경험을 통해서 축적해온 지식과 눈앞의 현실을 대조하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답사단의
분석평가는 정보와 자료로서 가치가 적지 않습니다. <프레시안>은 답사단의 일원이었던 황재옥 박사가 이번 현장답사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들을 정리한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첫째날 2] 단동과 압록강단교, 그리고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

중국의 동대문, 단둥

단둥(丹東)의 원래 지명은 안둥(安東)이었다. 과거 안둥 부근은 중국의 동쪽을 관리하는 변방의 요새로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기에 안둥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에 점령됐고, 1907년 개항 후 1910년부터는 일본의 대륙진출 교두보로 활용됐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1910)한 후 지금의 동북3성에 세운 괴뢰국가였던 만주국(1932-1945)은 14개성을 두었는데, 안둥 부근 압록강 이북에 안둥성(安東省)을 설치하고 안둥을 그 성도(省都)로 삼았다. 안둥은 한반도를 관리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국대륙의 동대문같은 관문도시였다.

1965년 초, 안둥이라는 지명이 북중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지시에 따라 단둥으로 개명됐다. 안둥이 제국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지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단둥도 '홍색 동방지성(紅色 東方之城)'의 줄임말이라는 점에서 안둥과 의미상 별반 차이 없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 혈맹으로 붉게(丹) 물든 동방(東)의 도시, 즉 중국이 북한을 도와준 관문 도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단둥 외에도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국경지역을 관리하면서 그 지명에 '평정'과 '관리'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중국의 국경이 하도 길다 보니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서 관리들의 역할과 사명을 일깨워 주기 위해 지명에서라도 역할을 분명히 표시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과 중국 국경에 있던 관문인 진남관(鎭南關)이었다. 그 뜻은 중국 남쪽의 베트남을 진압하는 관문이라는 뜻이었다. 안둥을 단둥으로 바꿀 때 진남관은 목남관(睦南關)으로 바뀌었다. 베트남과 화목하게 지내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가 자진해서 안동을 단동으로, 진남관을 목남관으로 바꾼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중국외교사에 조예가 있는 한 분이 그에 대해 설명했다. "1950년대 중반, 스탈린 사후 시작된 중·소 이념분쟁이 1960년대 중반으로 넘어 오면서 국경분쟁으로까지 번질 정도로 치열했다. 그런 정치·군사적 상황에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 중 소련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을 중국이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선심을 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역시 그랬구나! 대학시절 외교사 강의시간에 "국가끼리 외교를 하는데 있어 순수한 선의나 공짜는 없다"고 했던 교수님의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어쨌건 오늘날 단둥은 중국의 한반도 진출의 교두보, '중국의 동대문' 역할을 하는 도시가 되어 있다. 우리가 단둥을 주목하는 것은 단둥을 통한 북중교역 때문이다. 북중교역이 2008년 20억 달러에서 2011년 63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고, 북중교역의 80%가 단둥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이 2008년 10만 명에서 2011년 15만 명으로 늘었다.

답사단 중 한 분이 작년 겨울, 중국에 들어 와서 돈벌이를 하는 북한 거주 화교에게 들었다며 전한 바로는 단둥에서 평양까지의 차비는 중국 돈 300위안(55달러 정도)인데 단둥에서 평양까지의 왕복 티켓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평양에서 단둥까지의 차비를 84달러로 책정해 놓고 직접 표를 파는 평양 측의 방침 때문이라고 한다. 단둥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차비보다 평양에서 단둥으로 나오는 차비가 1.6배 가까이 비싼 셈이다. 같은 거리를 오가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평양에서 표를 살 때는 반드시 달러로 결제해야 한다고 한다. 북한이 달러를 많이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북한에서 달러와 위안화가 통용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북한 내에서 달러의 효용가치가 위안화보다 훨씬 더 큰 모양이다.

북한 거주 화교는 중국공민권자인 동시에 북한영주권자로서 1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북한을 방문한다고 했다. 화교 3대인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때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으로 참전했고, 전후복구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북한에 남게 됐다고 했다. 당시 이들에게는 많은 혜택이 주어졌고, 현재에도 북한에 있는 중국화교는 북한주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산다고 했다.

단둥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중국인과 조선족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가게 간판이 한자와 한글로 적혀 있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모델들의 사진이 상점 입구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러한 가게가 혹시 우리 조선족이 경영하는 가게는 아닌지 생각하면서 이왕이면 그들의 가게에서 물 한 병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초행길이라 단둥의 도심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압록강단교 근처에 이르자 자동차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압록강단교 주변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도로 양 옆에는 번듯하고 규모가 큰 식당과 호텔같아 보이는 건물들이 깨끗하게 늘어 서 있었다. 지방도시에서 자동차가 겹겹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도 새로웠다. 그만큼 자동차가 많아지고 경제형편이 좋아졌다는 얘긴데, 강 건너 신의주의 형편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 압록강단교 근처 시가지 모습. ⓒ황재옥

현재 단둥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통하는 다리는 하나다. 일제 말인 1943년에 완공돼 쓰이다가 지금은 중조우의교(中朝友谊桥)로 불리게 된 이 다리의 길이는 944m, 기찻길과 차도가 함께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에도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건너오는 파란색 트럭 여러 대가 다리 위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를 실어다 놓고 나오거나 실어가기 위해서 단둥 쪽으로 건너오는 빈차들인 것 같았다.

▲ 압록강철교 위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트럭들. ⓒ황재옥

단둥 쪽에서 봤을 때 중조우의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1911년 일본이 세운 다리가 또 하나 있는데, 이 다리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됐다. 다리가 끊어졌다 해서 압록강단교(斷橋)라고 불리고 있는데, 단둥 쪽에서 보면 중조우의교와 압록강단교가 쌍둥이 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단교는 부산의 옛날 영도다리처럼 도개교(跳開橋) 형식으로,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오르락내리락 하는 다리였다고 한다. 현재는 중국 쪽 300∼400m만 복원돼 있다. 반면 북한 쪽 구간은 교각만 남아있는 상태다.


▲ 중조우의교와 압록강 단교. ⓒ황재옥
▲ 끊어진 압록강 단교. ⓒ황재옥

단교 위 양쪽 난간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국제상황을 알려주는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눈에 익은 처칠, 이승만, 마오쩌둥, 맥아더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사진과 설명들을 볼 수 있었다. 다리 중간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지면서 구부러진 철로의 모습도 보였다. 압록강단교를 걸어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국인들에게 압록강단교는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원조하여 국가를 보위한다) 정신을 상기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애국주의'를 가슴에 새기고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압록강단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좀 더 바다 쪽으로 신압록강대교가 건설되고 있었다. 2009년 10월 4일 북한과 중국은 경제기술합작협정서에 따라 압록강 위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였다. 2014년 완공을 앞두고 건설 중인데, 현수교(懸垂橋)의 교두보가 모습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다. 이 다리가 완성되면 단둥에서 신의주로, 그리고 평양까지 고속도로로 연결될 것이라 한다. 신압록강대교가 완공되면 황금평과 위화도에서 만들어진 중국 제품과 북한의 물자들이 이 다리를 통해 북한과 중국을 오갈 것이다.

▲ 건설 중인 신 압록강대교. ⓒ황재옥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황금평·위화도개발이 바로 중국의 일교양도(一橋兩島) 개발계획이다. 도로 확장이 산업 발전과 연결되고 물류 증가가 도시 발전과 인구 유입을 유발한다고 볼 때, 아마도 몇 년 내에 단둥은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될 것인데, 신의주도 그 덕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압록강단교 위에서의 단상(斷想)

압록강단교 입구 가까운 곳에 항미원조기념관이 있었다. 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인 펑더화이(彭德懷)가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을 구원해 준 일을 기념하는 곳이다. 중국의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온 사건은 임오군란(1882년) 이후 그 때가 두 번째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참전 초기, 1950년 10월 19일 부터 10여 일 사이에 중국인민지원군은 유엔군에 들키지 않으려고 야음(夜陰)을 이용하여 북한 쪽으로 건너갔다. 중국인민지원군 12개 사단이 북한 지역에 투입되었는데, 6개 사단은 신의주를 통해서, 다른 6개 사단은 집안(輯安) 건너 만포를 통해서 북한지역으로 들어갔다.

참전 초기 60만 명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60만 명씩 3차례에 나누어 교대하면서 총 180만 명이 참전하였다. '전투조-순환조-대기조'의 3교대 순환제 채택은 장기전에 대비한 중국의 전략이었다. 수나라-당나라 때부터 중국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오면 으레 '백만대군' 운운하면서 약간 과장을 해 왔는데, 한국전쟁 때는 실제로 백만이 넘는 대군이 인해전술을 편 것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중국인민지원군의 손실은 전체병력의 40%였다고 한다.

항미원조기념관 밖에는 펑더화이와 왼손으로 강 건너 신의주를 가리키는 군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펑더화이 발밑에 새겨진 '포 피스'(FOR PEACE)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는 말인가 본데 그 평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인지, 그리고 무엇이 평화인지 헛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펑더화이의 발밑 'FOR PEACE'라는 문구가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기나라가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생각하여 항미원조기념관을 방문하게 하고, 압록강단교를 찾아오게 하는 것인가? 중국 정부는 그렇게 해서 '사회주의 애국주의' 정서를 중국인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끊어진 압록강 다리 위를 걷는 내내 우리 부모님이 겪었을 고통과 당시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 오는 것 같았다. 이 압록강단교를 거니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감정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위의 희뿌연 날씨가 내 기분인 양 다리 위를 걷는 내내 우울하고 착잡했다.

▲ 항미원조기념관 앞 조형물. ⓒ황재옥

북중 접경지역은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감상을 느끼게 하는 곳인가 보다. 우리 민족과 중국과의 얽혀 있는 역사, 북한-중국-한국과 국제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사건들을 생각하면 특별한 장소인 것은 확실하다.

압록강단교의 펑더화이 조형물 발밑에 새겨진 'FOR PEACE' 문구는, 워싱턴DC에 세워진 한국전쟁 참전 미군 조각을 떠올리게 하였다. 펑더화이 조각이 진격명령을 내리는 모습인 데 비해 미군 조각은 전투복과 전투모에 판쵸 우의(雨衣)까지 걸친 미군 병사들이 두 손으로 총을 들고 진격하는 모습이다. 역시 평화를 위하여 미군이 고생했다는 취지의 조형물이고, 그것도 미국 국민들에게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을 고취하는 일종의 정치사상 교육용 자료인 셈이다.

우리에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 참전국가에서는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애국주의를 교육하는 소재가 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저러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중조우의는 오늘날 북중경제협력의 원동력으로 작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신의주 부두의 '선군조선의 태양…만세!' 구호와 아벡크(avec) 남녀

압록강단교와 항미원조기념관을 나와서 우리는 압록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갔다. 해가 거의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나, 유람선을 타기 위한 줄은 제법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북한 마을을 바라보고 압록강을 유람하는 관광 상품을 개발해 놓은 것이었다.

신의주 부두 맨 서쪽 끝, 유람선 관광객들 눈에 잘 띌 만한 위치에 붉은 글씨로 쓴 '선군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 김정일은 '21세기의 태양'이라고 했었는데 김정은은 '선군조선의 태양'이 된 것이다. 선대에는 '민족,' '21세기'와 같은 거창한 호칭을 썼기에 김정은에게는 또 무슨 거창한 호칭을 부칠까 약간은 궁금했었는데, 의외였다. '선군조선'은 '민족'이나 '21세기'보다 다소 범위도 좁고 기간(time-span)도 짧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북한의 새 지도부가 허세를 부리기보다 현실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도 이런 판단에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바탕에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신의주 부두 가까이에는 잔뜩 녹이 쓴 북한의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부두에는 트럭에서 화물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좀 떨어진 곳에는 할 일 없이 멍 하니 앉아서 오가는 유람선을 응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떨어진 거리이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북한사람들의 모습과 표정까지도 살필 수 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살기가 나아진 것 같았다. 옷차림도 좋아진 것 같고 영양상태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신의주 부두를 산책하는 젊은 남녀 한 쌍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거의 밀착하다시피 가까이 손을 잡고 부두를 거닐고 있는 남자의 복장은 북한 남자들이 흔히 입는 진회색의 반소매 남방과 같은 색의 바지였지만, 젊은 여성의 복장은 예전에 내가 봤던 그런 옷이 아니었다. 패션을 생각하고 입은 차림이었다. 이른바 '백(白) 바지'에 분홍색 반팔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남자와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평양에서도 젊은 남녀가 손잡고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는 하지만, 신의주 부두의 젊은 여성의 패션은 중국의 유행을 따르는 것 같았다. 듣자하니 중국패션을 리드하는 것은 옌볜이고, 옌볜은 동대문 두타-밀리오레 패션의 중국내 전파기지라고 한다. 동대문 패션이 돌고 돌아 신의주에까지 들어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 신의주 부두에서 본 북한의 연인. ⓒ황재옥


대북사업가들의 어려움과 걱정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신의주를 아주 가까이서 본 뒤 우리는 선착장에서 10분 거리의 호텔로 이동하였다. 지나고 보니, 단둥에서 묵었던 호텔이 전 일정 중 가장 현대화되어 있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단둥에 그런 호텔들이 계속 건립된다는 것은 그만큼 방문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건 상당 부분 북한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는 운 좋게도 단둥에 거주하면서 북한과 교역을 하는 사업가 몇 분과 함께 하게 되었다. 요즘도 북한을 드나들기 때문에 북한의 실정을 실시간으로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듣는 것은 북한 연구자로서 당연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동안 북한에서 의류 임가공 사업을 했던 사업가들이 2012년 현재 많이 북한을 떠나 베트남이나 버마(미얀마)로 옮겨 갔다고 한다. 북한지역으로 원자재를 가지고 들어가서 가공해 나오는데, 남북관계가 막히면서 승인이 잘 나지 않고 해서 남한출신의 사업가가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한편 한국에서 생산된 물자를 중국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북한에다 파는 사업가는 북한주민들이 한국 상품을 선호하고, 북한주민들의 의식주(衣食住)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북한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용품 500~600여 가지를 팔아 왔는데, 숟가락에서 냉면 뽑는 기계에 이르기까지 물품의 종류가 다양하다고 했다. 자신는 냉면국수 뽑는 기계를 평양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냉면가게와 식당에 팔았다고 하였다.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약 500대 정도라는 숫자까지 들어 말했다.

사업가들이 북한사람들을 직접 만날 때는, 한 번에 보통 4~5명이 나온다고 한다. 사장, 부사장, 관리지도원, 생산담당 등이다. 상호감시인지, 역할분담이 확실해서 그런지 물었지만 시원한 답은 안 나왔다. 필자 스스로는 아마도 두 가지 다 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튼 대북사업가들은 자신의 경제활동이 남북관계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이러저러한 고충들을 토로하였다.

분위기를 바꿔 답사단은 현재 북한주민들의 현실상을 듣고 싶었다. 사업가들은 우리에게 전달하기를, 북한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주민들도 요즘은 자유롭게 말을 할 정도라고 했다. 식량사정과 관련해 평양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식량배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1990년대 중반보다 나아지기는 했으나 아직 모든 주민들이 먹고 살 만큼은 아닌 듯하다는 것이었다.

남북관계가 막힌 동안 북중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화하면서 중국 사람들의 대북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 사람들이 북한에서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곡마단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X이 받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지난 13년간 한국 정부와 기업이 닦아 놓은 기반을 이용해 중국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했다. 북한과 중국의 교역이 빠른 속도로 증대하고 있으며, 햇볕정책의 후과를 중국이 챙기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도 최고의 장사꾼으로 꼽히는 '저장(折江)상인'들이 북한 최고의 백화점을 접수했다고 하면서, 북한 경제가 점점 중국에 예속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또한 이같은 북중 경제관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자유로운 북중간 송금이라고 했다. 이는 금융거래가 자유롭다는 말인데, 교역이 곧바로 송금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북중간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공산품이 들어가고, 북한은 중국에 석탄을 비롯한 자원을 팔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11년에도 북한 석탄 2000만 톤이 중국에 들어 왔는데, 광물에는 관세가 없어 북한의 자원이 중국에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단둥에 거주하는 남한 사람은 3000명, 북한 사람은 2만 명이라고 지적하면서, 북중간 교역과 남북간 교역 활성화 정도를 이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를 근거로 설명했다. 앞으로 북한의 김정은은 10만 명의 북한 주민을 단둥에 보낼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사업가들은 북한 사람들을 만나서 절대 정치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는 말도 해 주었다.

이들 사업가와의 만남을 통해 대북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사업과 기업적인 측면에서 대북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대북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내색을 다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고충을 읽을 수 있었다. 남북관계가 복원되면 이들의 사업도 보다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리에 중국 상인들이 들어서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제품이 북한주민의 손에까지 이르러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필자가 직접 준 것은 아니라 해도 마음 한켠이 그나마 뿌듯하였다. 북한주민들도 중국제품이 아닌 한국제품을 받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그들의 느낌과 생각이 궁금했다.

 

 
 
 

 

/황재옥 (사)평화협력원 인권·평화센터 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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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내곡동 사저 특검 재논의' 요구한 진짜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0/04 06:54
  • 수정일
    2012/10/04 06:5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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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 사저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이명박 대통령은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자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민주당의 특검 추천이 여야 간 합의에 따르기로 한 특검법 정신을 위배했다고 분개하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여야 협의 없이 이들 두 후보자를 추천했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검법에 따르면 민주당이 특검 후보자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은 3일 안에 이 중 한 명을 임명해야 합니다. 임명이 완료되면 10일간의 준비 기간을 두고 시작해 30일 이내 (1회 연장 가능 최장 45일) 수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틀 안에 결정해야 하는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특검 후보자 재논의'를 들고 나와, 과연 내곡동 사저 특검이 잘 이루어질지 의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특검을 수용할 때도 과연 잘 이루어질까 우려했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특검이 진행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해놓고, 왜 특검 후보자 재논의를 언급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의 VS 합의, 말꼬리를 잡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연합뉴스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특검법을 수용키로 한 배경에는 여야가 특검 추천에 합의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면서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특검법에는 2명의 특검후보자 추천권을 이미 민주당에서 갖기로 했으며, 법안 협상 과정에서 구두로 새누리당과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즉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가지고 합의를 어겼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공통으로 추천한 특검 후보자가 본인의 사의 표명으로 무산됐다는 점입니다.

복수의 추천 후보 중에서 새누리당이 선호했던 사람이 싫다고 한다면 당연히 민주당의 책임이 아니고, 그런 부분 때문에 합의가 되지 않은 후보자이기에 재논의를 요구하는 것은 19대 개원합의를 어기면서까지 자신들에게 닥쳐올 법의 심판을 어떻게 하든 막아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정의를 추구하는 특별검사가 무서워서?'

이번에 민주당이 추천한 김형태 변호사와 이광범 변호사를 우리는 눈여겨 볼만한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특히 김형태 변호사는 보기 드문 올바른 법조인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할 요소가 많습니다.
 

 

 

 


김형태 변호사는 사시 23회 출신으로 1986년 변호사 개업 이후 1988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변)의창립멤버였습니다.

김 변호사가 유명해진 이유는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이라는, 모두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을 무죄로 이끌어 냈던 재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범인이 아니라는 식으로 처자식을 잃은 남편을 두 번 세 번 죽인 사회에서 남편을 살려냈었습니다.


그는 울산보도연맹,인혁당 재건위 유족들의 변호를 맡아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던 변호사였고. 이뿐만 아니라 리영희,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PD수첩 광우병 사건 등을 맡기도 했습니다.

 

 

▲용산철거민 참사 선거 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김형태 변호사. 출처:오마이뉴

 


김형태 변호사의 특징은 재판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사건을 도맡아서 변호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처럼 철저하게 법리적인 해석과 법적인 객관성 있는 증거자료를 기준으로 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우리가 검찰을 정치검찰이라 부르며 그들을 불신하는 이유는 그들이 증거와 상황을 판단하여 충분히 상식적인 판결을 낼 수 있음에도, 법적으로 무죄인데 정치적 고려를 해서 유죄가 되는 경우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법으로부터 보호하고, 법을 통해 잘못된 정의를 부르짖었던 김형태 변호사를 보면, 청와대가 김형태 변호사와 같은 사람을 선택하기도 어렵거니와 이와 같은 사람이 임명된다면 아마 내곡동 특검의 결과를 국민들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 내곡동이 문제가 아니라 MB 재산이 더 큰 일'

내곡동 사저 특검은 사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동산실명제 위반 등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부동산 실명제 위반 같은 경우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하면서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도 그 정도 수준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곡동 사저 특검을 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게 될 것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의 재산입니다. 이시형은 공직자 재산 공개 차원에서 재산공개를 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도 2009년부터 한 번도 재산 공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혼자 사는 총각이 어떤 큰 재산이 있기에 재산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번에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정치] - 노무현 아들은 재산공개,왜 MB 아들은 거부?

내곡동 사저 특검을 하는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 본인 이름으로 부지를 매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관련 법률을 위반한 행위뿐만 아니라, 어떻게 재산을 만들었는지, 이시형의 진짜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를 이번 기회에 국민은 알 수도 있다고 봅니다.

총재산 3,656만 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6억 원을 은행에서 빌릴 수 있었고, 매월 이자만 250만 원씩 냈다는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거짓이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다스, 넌 도대체 누구냐?'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 검색어에 등극한 단어 중의 하나가 '주식회사 다스'입니다. 17대 대선 때부터 실소유주 논란이 있었고, 이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이 대표로 재직 중이기 때문입니다.

 

 

▲ 다스 채용공고, 이시형은 경력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스에 입사했다.

 


또한, 다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이 재직하고 있는데, 그가 입사했을 때 고작 1년에 불과한 회사 경력을 인정해 해외영업팀 과장으로 채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혹 덩어리입니다. 유학 경험 때문이라는 다스의 변명을 듣자니, 지금도 유학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회사가 있느냐는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이시형의 다스 입사는 BBK처럼 MB의 숨겨둔 재산이라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스의 실소유주 여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관련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시형입니다. 이런 정황을 짐작하게 된 배경에는 해외영업팀장에서 경영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출장이 잦았던 이시형의 행보 때문이었습니다.

 

 

▲미주 선데이 저널이 입수한 다스 관련 미 연방법원 판결문

 


미국 연방검찰은 BBK 사건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구속되기 전 미 법원의 ‘인출 금지 명령’을 어기고 지난 2월 (주)다스에 자신의 스위스 계좌의 돈 140억 원을 송금한 과정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스는 지난 2000년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다가 김경준이 140억 원을 횡령했다며 BBK 재산 몰수 소송을 했으나 2011년 4월 돌연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정치] - 안철수 1500억 사회 환원과 청계재단 3대 의혹 (다스의 주식이 청계재단에 넘어간 사연)

이런 BBK와 다스의 관계, 그리고 이시형의 다스 입사와 잦은 중국 출장의 정황을 통해 우리는 BBK와 다스의 문제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내곡동 사저가 특검이 아닌 청문회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법으로 수사하면 내곡동 사저에 국한되겠지만, 청문회 형식으로 했다면 앞서 말한 이시형의 재산과 BBK와 다스의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김형태 변호사가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에 임명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것은 오늘 포스팅에서 일개 블로거가 의심할 수 있는 수사 대상을 김 변호사도 충분히 특검에서 수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명박 대통령이 그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곡동 사저 특검 재논의'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법은 지금까지 빵, 명예, 권력을 다 줬다. 앞으로도 로스쿨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빵, 명예, 권력을 다 손에 쥘 수도 있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나도 그런 성향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입으로는 정의, 약자를 이야기 하지만, 조금 지나면 법치주의의 진정한 법이 아니라 기득권을 보장하는 법질서만 쫓아가게 된다. 대부분이 초심을 잃고 약자를 짓밟게 된다. 내 동창 중에도 전설적으로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과 권력자의 부속품, 하수인 노릇을 하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지만, 대개는 그렇게 간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위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김형태 변호사


내곡동 사저 특검이 되었든 BBK 재수사, MB정권 비리 수사 등 무엇을 하든 그것을 수사하고 판결을 하는 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법은 올바른 수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김형태 변호사의 말처럼 기득권을 보장하는 법질서만 쫓아가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원하는 특별 검사는 딱 정해져 있습니다. 법치주의의 진정한 법을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하수인만을 원하고 있을 뿐입니다.

법치는 대통령이든 검찰총장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MB정권이 만들어 놓은 자본과 권력에 봉사하는 법을 이제는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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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물꼬를 터놓아야 한다"

 

"통일의 물꼬를 터놓아야 한다"
단기 4345년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열려
 
 
2012년 10월 03일 (수) 13:45:21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단기 4345년 개천절을 맞아 3일 낮 12시 서울광장 앞에서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이 모여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단기 4345년 개천절을 맞아 3일 낮 12시 서울광장 앞에서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이 모여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한양원 '개천절민족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상임대회장은 대회사에서 "통일의 물꼬를 기어코 터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원 대회장은 "우리 민족은 더 이상 분단의 고통을 당할 수 없다. 지금 남북이 어려울수록 하나 되어 통일의 물꼬를 기어코 터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인류는 지금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이 전쟁을 종식시킬 이념이 무엇이냐. 바로 홍익인간 이념"이라며 "누가 이 일을 완수할 수 있느냐. 바로 수천 년 동안 온갖 외침을 극복하고 평화를 지켜온 우리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 한양원 '개천절민족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상임대회장은 "통일의 물꼬를 기어코 터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리고 "우리 한민족에게는 인류구원이라는 세계사적 사명이 천부적으로 주어져 있다. 통일은 그 시발점"이라며 "홍익인간 이념으로 통일을 이루고 세계평화를 이룰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한양원 대회장은 지난 2002년 개천절 평양 단군릉에서 열린 남북민족공동행사를 언급, "해방 후 오랫동안 막혔던 남과 북이 하나의 겨레얼을 가진 민족임을 확인해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올해 개천절 역시 남북이 한자리에 모여 더욱 성대히 봉행하자고 사전에 합의하였으나, 최근의 어려운 정세로 인하여 각기 봉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아쉬워했다.

축하사절로 참석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우리민족은 갈등과 대결을 상징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를 극복하고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조 단군 이래 반만년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온 우리민족은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공존과 상생을 실현하는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덕 성균관 관장도 "이제 21세기는 지난 세기의 잘못된 역사적 오점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웅비를 준비할 때"라며 "남과 북이 새로운 자세로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긴장을 완화하고 교류를 촉진하여 공동번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영진 대종교 총전교는 "개천절은 당면한 통일과제에 있어서 민족사적 정통성을 통한 하나됨의 의미를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인류상생의 보편적 진리가 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 이날 행사에는 2백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개천절을 축하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행사의 화두가 '통일'임에도, 정부.여당 인사들은 영토문제와 과거사에 집중했다.

송석구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이해 주변국의 위협 속에서 거행되는 이번 행사는 더욱 뜻깊다"며 "총칼없는 전쟁이라고 하는 역사왜곡 속에서 우리의 뿌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은 물론, 역사바로세우기에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 평화의 초석이고, 세계평화의 전범임을 굳게 믿는다"면서도 "과거사 등 민족문제 해결의 호기를 위정자들의 독선과 당리당략으로 인해 걷어차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일방주의는 고립과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에서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실무 문제로 북측으로부터 선언문이 도착하지 않아 발표되지 못했다.

대신, '남북공동선언제안문'을 발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을 이룸으로써 우리 민족의 제2의 개천절을 맞이할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개천의 이념으로 동북아시아 모두가 평화와 번영의 한마음으로 대화합해야 한다"며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공동이익과 발전을 위해 단군 민족의 저력을 배가시켜 나가자"고 강조했다.

또한 "민족의 합의로 일구어 낸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실천에 앞장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한겨레로서 동질성을 확인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아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양원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최근덕 성균관 관장, 김성곤, 김장실 국회의원 등 2백여명이 참석했으며, 본행사에 앞서 천제가 봉행됐다.

한편, 다음은 북한 <조선중앙통신> 3일발에 실린 ‘개천절기념 북남공동결의문’ 전문이다.

 

개천절기념 북남공동결의문

오늘 개천절은 영광된 우리 민족의 생일로,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신 단군성왕께서 홍익인간, 리화세계의 리념으로 하늘의 리치를 이 땅과 인류에 열어 교화를 시작하고 나라를 세운 뜻깊은 날이다.

이제 우리는 원시조 단군의 후손이자 하나의 겨레, 하나의 민족, 하나의 피줄로서 대동보본의 마음으로 천제를 올리고 하나가 되여 개천의 새 시대와 평화통일의 앞길을 열어야 한다.

특히 최근 몇년간 악화될대로 악화되였던 북남관계가 원시조 단군께서 나라를 세우신 민족의 생일 개천절을 계기로 원상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자주통일의 정신을 더욱 공고히 하고 개천절의 참뜻을 다시한번 확고히 해나가는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전체의 합의로 이루어낸 정신이며 그 어떤 정세의 변화에도 흔들림없이 지켜나가야 할 통일의 기치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종교와 리념, 계급과 계층을 떠나 모두 하나가 되여야 하며 그렇게 될 때만이 단군민족의 저력을 발휘할수 있다.

우리는 개천절을 맞이하여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조국통일을 이룩함으로써 단군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빛내여나갈 의지를 담아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에게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우리는 단군민족의 자존으로 자주성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력사와 철학과 전통문화가 인류를 홍익인간, 리화세계로 이끌어갈수 있는 뿌리임을 자각해야 한다.

다물의 정신으로 단군민족의 본래 모습을 찾고 단군민족의 저력을 배가시켜나가야 할것이다.

둘째, 우리는 자주, 자강, 자립의 정신과 원칙으로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고 모든 대립과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민족의 합의로 이루어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실천에 앞장서 북과 남의 화해와 협력을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하나의 겨레로서 동질성을 확인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아 나갈것이다.

뜻깊은 개천절을 맞이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우리 선조들이 발휘한 애국정신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경천, 승조, 애인의 미덕을 살려 개천절의 큰 뜻으로 하나가 되여 조국통일의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와야 할것이다.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남측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2012년 10월 3일(끝)

(출처-조선중앙통신 2012. 10. 3)

 

 

   
▲ 기념식에 앞서 천제가 봉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기념식에는 한양원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최근덕 성균관 관장, 김성곤, 김장실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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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해명, 너무도 궁금한 그녀의 논문

너무도 궁금한 그녀의 논문
트위터들이 전한 추석 민심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2-10-03)


 

명절 잘 보내셨나요?...아니시라고요?

대한민국이 여전히 정치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 MBC 등 찌라시의 존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도변 휴게실 들러 잠시 쉬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거티브에 열을 올리고 있더군요. 이른바 안철수 흠집내기 방송이었습니다. 정말 짜증날 수 밖에 없는 방송입니다. 추석민심을 긁어놓은 네거티브질이었지요. 한 트위터가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렇게요.

"박근혜, 흑색선전에 맞서 정책경쟁한다고? 흑색선전은 직접하지 않고 다만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알바를 시켜서 하도록 할 뿐이라는 것인가? '목동녀', "룸사롱 새끼마담', '귀족 군생활', '논문표절' 이 근거없는 안철수에 대한 흑색선전은 뭔가?..."

"..."안철수 같은 언론관을 가진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이정현 새누리당공보단장). 집권하고 곧바로 민족일보 사주 조용수 사형, 경향신문 MBC 강탈, 동아일보 광고해약 배후조종, 기자 해직. 박근혜가 찬양하는 그 아비의 언론관이야말로 전무후무할 터..."

트윗 글 몇 줄이 MBC가 보도한 안철수 네거티브 전부를 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송이 필요없는 시대라고나 할까요. 트윗의 표현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이하 '그녀'라 칭함)의 정책경쟁이 안철수 흠집내기가 전부입니다. 똥 뒤집어 쓴 개 국민 후보 부러워 하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유치함 이하의 저질 수준의 이러한 정치는 그녀의 애비 박정희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거 모르는 사람만 빼고 다 아는 것이지요. 오죽하면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로 부터 총살되었을까요.

아마도 그녀의 애비 박정희는 '그 때 그 사람'을 병풍 뒤에 감춰 놓고 씨바스리갈을 홀짝 거리는 순간 까지 곧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는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걸 시방 그녀가 재탕하고 있는 셈입니다. 맛들인 권력놀음에 눈이 뒤집힌 것이지요. 박정희가 총살 되기 전 까지 그의 주변에서 위험신호를 알린 사람들이 적지않았을 텐데, 이를 테면 충신의 간청을 뿌리친 게 총살을 자처한 것 아니겠어요.

MBC를 통해 안철수 흠집내기에 열을 올린 결과 추석민심이 그녀 한테로 돌아섰으면 좋겠지만 여론조사 결과만 참조해도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와 새누리당을 온통 뒤덮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입니다. 네거티브에 실패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여당 후보의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야권 후보와 20% 포인트 정도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네거티브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인 것이지요. 누군가의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겨야 직성이 풀릴 수꼴들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라고나 할까요.

5.16군사쿠데타와 인혁당사건 사과를 얼렁뚱땅 마치고 말춤을 춘 그녀. 정수장학회와 영남대 등 유신정권 당시 빼앗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진정성이 증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사에 발목이 붙들린 채 털어도 털어도 먼지조차 안 나는 안철수 네거티브질이 국민적 짜증을 불러 역풍으로 작용하는 거 모르나 보죠. 한 트위터의 지적 처럼 "...집권하고 곧바로 민족일보 사주 조용수 사형, 경향신문 MBC 강탈, 동아일보 광고해약 배후조종, 기자 해직. 박근혜가 찬양하는 그 아비의 언론관이야말로 전무후무할 터..."라고 말한 과거사 하나만 돌아봐도 그녀는 대통령 후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으로 '뻔뻔녀' 그 자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리가 전혀 없지만 만약 이런 여자를 앞세운 수꼴들이 집권이라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정말 '안 봐도 비됴'입니다. 지난 4년 반 동안 이명박 정권과 운명을 함께 한, 그녀와 새누리당의 샴쌍둥이 같은 숙명이 하루 아침에 바뀔 리 없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 게, MBC의 안철수 후보 네거티브 선동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트위터의 표현을 참조하면 MBC를 병풍 뒤에 감춰놓고 씨바스리갈을 홀짝 거리는 게 그녀와 내시 무리들이랄까요.

그녀 뿐만 아니라 공정함과 정확한 보도를 무시한 찌라시 수준의 MBC를 보니 도무지 참을 수 없게 만든 게 있었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애비 따라 정치에 나선 그녀의 졸업 논문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싶은 거지요. 타인의 논문 표절 운운 하기 전에 먼저 한 번 까 보여야 옳은 게 아닌가요. 추석 민심 잘 읽어야 합니다. 방송으로 물 흐려놓고 지지율 올리고 싶은 그런 작당은 유신정권의 종말 처럼 새머리당의 종말을 재촉할 뿐입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국민 행복과 통합을 외치면서 뒷구녕에서 네거티블질이라니. 거의 갈보 수준아닌가요. 국민 1인의 명절 민심을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추석 민심 하나 더 추가하면 이렇습니다.

"처가에 정치적 대분란이 생길 조짐. 장모님이 우리 부부에 대한 견제구 "내는 박근혜가 좋다. 얼마나 불쌍한데", 곧바로 예상치 못했던 장인어른의 역공 "불쌍해서 대통령 되는거면 서울역 거지 많다" 정적 ㅋㅋ<http://twitter.com/unheim/status/253046291976839168>"

 

내가 꿈꾸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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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관의 '협박' 후, 난 해고됐다

[해직이야기③] YTN서 해고된 지 4년, 두려운 건 없지만

12.10.02 18:18l최종 업데이트 12.10.02 18:18l
우장균(hijk06)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비하한다고 확대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군대 생활이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뜻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방부 시계'는 자연의 법칙과 상식을 군대식 유머로 표현한 것이다.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지나간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국방부 시계처럼 MB정권의 시계도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 5년이면 자동적으로 멈추는 MB정권 시계가 어느덧 4년 반이 지나갔다. MB정권의 시계가 돌아가듯 해직기자의 시계 역시 거꾸로 매달아도 잘 돌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6일은 YTN 기자 6명의 해직시계가 작동한 지 꼬박 4년이 되는 시점이다.

많은 분이 MB정권의 시계가 멈추면 해직기자의 시계도 멈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마 전두환 정권 때 비슷한 일이 있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언론인 수백 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신군부에 의해 해직되고 감옥에 갔던 언론인들은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방송사와 신문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YTN 해직기자들이 지난 2009년 11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해직·징계무효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구본홍 전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인 노조원에 대한 사측의 징계는 부당하므로 해고는 무효"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80년에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7년이 지나 언론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관용 덕분이 아니었다. 1987년 6·10 항쟁이 없었다면 그들은 7년 뒤에도 펜과 마이크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직선제 쟁취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넥타이 부대와 학생들이 없었다면 언론자유의 꽃은 피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 스무 네 살 청년이 마흔 아홉 살 해직기자가 되어있다. 민주주의는 결국 시민의 힘으로 쟁취됐다. 그 후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들도 모두 언론을 길들이려 했다. '당근과 채찍'으로 언론을 우군으로 만들려 했지만 언론의 숨통까지 조이는 대통령은 없었다. 80년대 같은 언론 탄압이 없으니 시민 모두 실체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대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 낙관했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대통령 되다... YTN 비극의 시작

YTN사옥 사장실 앞에서 한 노조원이 머리를 벽에 기대어 생각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유성호

어느 해인가 '부자 되세요'란 광고 카피가 최고의 덕담으로 온 나라를 휩쓸고 갔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는 국민 모두를 747 비행기에 태워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공약했다. 그는 상대 후보를 5백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대통령이 돼 청와대에 입성하던 2008년 2월 25일 나도 청와대로 갔다. 대통령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춘추관이 나의 새로운 출입처였다. 성공한 샐러리맨은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다. 그의 롤 모델은 박정희였다. 그는 가끔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기도 했다. 5·16 쿠데타 때 박정희가 썼던 것과 비슷했다.

박정희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하면서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주의 숨통을 조이지 않고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없는 것일까? 박정희를 닮고 싶었던 그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이란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는 좀 억압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건설회사 경영하듯 나랏일을 하면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아는 사람만 기용했다. 언론은 그의 인사를 '고소영 내각'이라 평가했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만 '고소영 인사'가 아니었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과도 같은 언론사에도 '고소영 인사'를 내려 보냈다. YTN 사장에 낙하산으로 투하된 구본홍씨는 '고소영 인사'의 전형이었다. 구씨는 고대 출신으로 강남에 있는 교회를 다녔고 고향이 영남이었다. 젊은 기자들과 노동조합은 낙하산 고소영 인사가 언론사 사장으로 오는 것을 반대했다. 더구나 구씨는 대통령 후보 특보출신의 정치인이었다.

언론인들의 저항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청와대 비서관을 내세워 언론인들을 겁박했다. 청와대 비서관은 춘추관에 있는 나를 찾아와 그의 뜻을 전했다. "청와대는 구씨를 사퇴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비서관은 징계를 받아 월급을 받지 못하면 생활이 곤란할 것이라고 협박하며 계란으로 바위치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비서관의 경고대로 나는 곧바로 해고됐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4년 전 그 비서관이 대통령을 호가호위해 언론인들을 겁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의 겁박을 그대로 YTN 기자들에게 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MB 정권의 시계와 해직기자의 시계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이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사람은 해직기자의 시계가 1, 2년에 안에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정적도 아닌 언론인을 오랜 기간 해고시켜 봐야 민주주의 헌법하의 정권에 득이 될 것이 없었다.

건설 회사를 그렇게 경영했을까? 그의 주특기는 불리한 일이 발생하면 세상 탓으로 돌리며 시미치를 떼는 것이다. 참모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찰 때도 그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며 근거 없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언론사 파업과 언론인 해직 문제도 개별 사업장의 일로 치부하며 임기 내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MB정권의 시계가 내년 2월 25일 멈춘다고 해직기자의 시계가 멈출 것이라 낙관하지 않는다. 지난 4년의 세월은 낙천주의자인 나에게도 섣부른 낙관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MB정권의 종언과 함께 해직기자의 시계가 멈추지 않는다 해도 두려울 것은 없다. 여기서 더 나빠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두려울 것도 없다.

솔로몬은 부왕인 다윗의 반지에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으며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 글귀를 보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강물이 흘러가듯 시간도 지나간다. 자연의 법칙이며 상식이다. 솔로몬의 글귀를 마음속에 새겨 넣고 지난 4년을 보내지 않았지만 해직시계가 계속 돌아가고 있고 언젠가 멈출 것이란 상식을 믿고 지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멈춘다면 그만한 재앙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MB와 그의 측근들은 혹시 4년 전 시각으로 돌아가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지 않을까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우장균 YTN 해직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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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한반도 통일의 결정적 전환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0/03 09:49
  • 수정일
    2012/10/03 09: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월러스틴의 '논평'] 야권 이긴다면 10년내 실질적 통일 이뤄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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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03 오전 10:01:05

 

한반도: 한 지정학적 요충의 미래
(The Korean Peninsula: The Future of a Geopolitical Nexus)


마침내 한국세계무대에 복귀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세계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결정적인 지정학적 요충의 하나로. 한국은 중국과 일본, 미국의 미래, 그리고 아마도 러시아의 미래에까지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미래는 주로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한국은 정치적·문화적 단일체로서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나라 중 하나다. 물론 단일 왕국으로서 그 통일성의 수준은 다양했다. 현대사에서도 한국은 1905년 일본의 보호국(protectorate)이 되고 1910년 합병당하기 전까지 독립 국가였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한반도를 통치하던 시절도 끝났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미군과 러시아군이 북위 38도를 경계로 한반도에 진입했다. (한반도에는)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섰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혹은 북한)과 대한민국(ROK, 혹은 남한)이다.

1950년 남과 북은 전쟁에 돌입했다. 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오늘날에도 격렬한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이 불참함으로써 미국은 남한에 유엔군을 파병하도록 할 수 있었다. 16개 국가가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했지만 유엔군의 80%는 미군이었다. 이후 곧 중공군이 북한으로 진입해 미국-유엔 연합군에 맞서 북한군을 지원했다. 중요한 것은 이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은 곧 중ㆍ미전쟁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1953년 전쟁이 교착상태에 접어들었고 양측은 북위 38도와 거의 비슷한 휴전선을 설정하는데 합의했다. 간단히 말해 전쟁은 무승부였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평화조약도 없지만 동시에 전쟁도 없다. 비록 (양 진영 간의) 엄청난 적개심이 남아 있고 이따금 소규모 충돌이 빚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1957년 미국은 북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휴전 합의 조항을 어기면서 남한에 핵무기를 들여놓았다.

소련 붕괴의 여파로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고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맺기 위한 양자회담을 모색했다. 미국은 양자대화를 거절했지만 남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6자회담을 제안했다. 2006년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발표했고 2009년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오늘날 몇몇 남한 지식인들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현 상황을 설명한다. 그들은 한반도가 '비평화'(peacelessness) 상태라고 말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한동안 고통을 겪었는데, 부분적으로는 북한 정권이 군 지출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매우 강력하며, 북한과 남한 모두 통일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 바탕한 통일인가? (남북 사이의) 상호 불신은 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한 태도는 남한 국민들을 갈라놓는 중요한 요수 중의 하나다.

1961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79년 암살당할 때까지 독재를 펼쳤다. 박정희는 북한 정권이 전복되어야만 통일이 가능하며 또 바람직하다고 봤다. 1980년 학생들이 미국을 비판하는 시위를 이끌었고 민주화를 요구했다. 이 운동은 가혹하게 진압당했다.

이후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이 이끈 중도좌파 정당이 1997년 선거에서 승리할 때까지 보수 세력이 남한 정치를 지배했다. 김대중은 소위 햇볕정책이라 불리는 정책을 선언했다. 햇볕정책은 누군가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는 거센 바람보다는 햇볕이 내리쬐는 게 더 쉽다는 이솝우화에서 따온 것이다. 햇볕정책은 북한과의 견고한 협력관계를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어떤 시도도 거부했다. 김대중은 2000년 이 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햇볕정책은 후임 대통령으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집권한 노무현에 의해 승계됐다.

2008년 보수 세력이 대권을 되찾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개방정책이 많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부에 영향을 미친 스캔들 때문이었다. 신임 대통령 이명박은 노골적으로 햇볕정책을 거부하고 심지어 미국보다 더 강력한 적대적 대북정책을 주장했다.

오늘날 중국, 미국, 일본, 심지어 러시아마저도 한반도의 통일을 정말로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이들 국가 모두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향후 10년에 걸쳐 통일을 염원하는 세력이 갑자기 강력해질 것 같다.

현재 새롭게 열린 상황에서 두 가지 사안이 있다. 하나는 남한에서 치러질 대선이다. 보수세력은 박정희의 딸로 박정희 정권의 완전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박근혜를 밀고 있다.

중도좌파 세력은 현재 두 명의 후보로 지지가 갈린다. 문재인은 중도좌파 정당의 후보로 북한에 대해 다시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데 찬성한다. 또 다른 후보는 비정치인 출신 대권후보를 표방하는 무소속의 안철수로 양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정책은 문재인과 사실상 동일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중도좌파 후보가 대선을 완주한다면 보수 후보가 확실히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또 (야권의) 두 후보 중 하나가 상대방을 지지하며 사퇴한다면 중도좌파 세력이 아마도 승리할 것이라는 점 역시 보여준다. 한 후보가 사퇴할 가능성은 높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면서 사퇴할 것인지가 문제다.
 

▲ 2012년 대선 후보로 출마한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만약 중도좌파 세력이 승리한다면 북한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이 부친(김정일)의 정책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김정은은 일반 북한 주민의 실제 소득을 올리는데 더 신경을 쏟고 변화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한에서 오는 햇볕을 환영할 것 같다.

만약 중도좌파 세력이 남한에서 집권하고 북한의 새 지도자가 사실상 햇볕에 더 개방적이라면, 세계는 향후 10년 동안 남과 북이 중국·미국의 실질적 공포를 무시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을 구축하는 것을 보게 될 것 같다.

통일 한국은 동북아시아, 그리고 확실히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에 새로운 충격을 가할 것이다. 통일 한국은 아마 중국과 일본 사이에 중재역할을 하면서 3개국의 공동 구조(common structure)가 실현될 수 있게 할 것이다. 또한 이는 남한과 일본, 대만이 모두 핵보유국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통일 한국은 (최근) 입지를 재정립한 이집트, 지정학적 입지가 더 강력해진 브라질 등과 연계해 전 세계 지정학적 세력의 재편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러한 미래는 한국 자신의 손에 달렸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美예일대 석좌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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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단일화'를 막기 위한 새누리당의 협박


 

 

 


추석을 전후로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추석 전과 비교해 올라간 후보도 있고, 내려가거나 유지하는 후보도 있지만, 실제로 대선 후보 지지율은 여론조사 기관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리 신뢰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야권 단일화 후보에 대한 지지도입니다. 12월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정권교체의 시작이자, 대선 승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야권 단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마음을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야권 단일 후보의 방식을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국민의 마음과 다르게 새누리당은 여전히 야권 단일화를 막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떨어지고 있는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야권 단일 후보가 결정되면 위협이 아닌 절망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예전부터 야권 단일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지만, 추석이 끝난 후부터는 아예 법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야권 단일화 저지 움직임을 살펴봤습니다.

' 야권 단일화를 막기 위한 정치자금법 발의'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은 정당 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후보등록을 하지 않거나 등록 후 사퇴한 경우 국가가 해당 정당에는 선거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을 발의했습니다.

 

 

▲ 중앙일보의 10월3일자 '정치자금법' 개정안 기사

 


새누리당이 발의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중앙일보는 "선거 보조금 '먹튀' 못하게"라는 제목을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내는 야권 단일화가 이루어졌을 경우 아예 선거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존 정치자금법에는 후보 등록 이후 사퇴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지만, 새로운 개정안에는 후보로 등록했더라도 중간에 사퇴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후보 등록 후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화를 해서 한 명의 후보가 사퇴하면 아예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가 이러고도 야권 단일화 명목으로 후보 사퇴를 할 수 있겠느냐고 대놓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개정안이 발의되면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 지지자들에게 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야권 후보화를 위한 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문재인 후보가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려고 해도, 이런 정치 공학적인 가시덤불이 있다면 그로서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안철수 후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이 이런 이유로 민주당 입당을 요구할 수 있고, 정치 개혁을 외치는 그에게는 구태의연한 정당 정치의 걸림돌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에게 자신들의 뜻과 다르게 야권 단일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 대선을 위해 급조된 한나라당'

새누리당은 이상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서병수 사무총장이 대표방의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이질적인 정파간의 정략적이고 야합적인 후보 단일화의 폐해를 막고, 정당의 책임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새누리당의 과거는 숨기고 국민을 기만하는 엉터리 주장입니다.

 

 

 


새누리당의 뿌리는 민주정의당입니다. 민주정의당은 군사정권이 세운 허수아비 정당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정당 정치의 철학이 있었겠습니까? 그다음에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3당 합당이라는 대한민국 정치 역사 최고의 야합 정치의 산물인 '민주자유당'을 만들었습니다.

신한국당까지 이어지는 정당의 역사만 봐도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정당 정치','책임 정치'라는 문구는 전혀 그 말의 뜻과 다른 야합을 포장하는 단어일 뿐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새누리당은 당명을 바꿨다고 벌써 잊었는가 봅니다.

 

 

▲ 민주당 조순 총재와 함께 당 대 당 통합으로 창당된 한나라당.

 


 

15대 대선이 있던 1997년, 신한국당은 이회창 후보를 대선 후보로 결정합니다.그런데 경선 대회에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이에 경기지사였던 이인제는 명목상으로는 당의 개혁을 내부적으로는 이회창 대세론이 무너졌다는 판단하에 그해 9월 14일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독자적인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이회창은 당내 계파 간의 분열과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순 총재와 당 대 당 통합을 논의하여, 이회창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하고, 조순이 당 총재가 되는 것으로 합의한 후 11월 21일 한나라당을 공식 출범합니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전혀 색깔이 다른 정당이 만나 대선을 위해 만든 정당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새누리당이 지금 '야합적인 후보 단일화의 폐해를 막고'를 운운하며, '정당의 책임 정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을 보면 돈을 주고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무식한 사람이, 자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고 그저 고사성어만 남발하면 유식해보일 것이라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0월3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조선일보는 오늘 신문 1면에 "이희호 단일화 요청에 안철수는 묵묵부답"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제목을 보면 이희호 여사가 단일화를 요청했지만, 안철수는 단일화하지 않으려는 속셈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랬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안철수 후보가 찾아와서 만난 자리에서 “야권이 통일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나와서 여당과 싸워야 한다","꼭 이겨야 한다"고 말했으며, “당선이 되시면 우리나라를 철저한 민주주의 사회로 만드시는 데 수고해달라”는 등의 덕담과 충고, 조언을 함께 말했습니다.

여기서 이희호 여사가 안철수 후보에게 단일화 요청을 했던 적은 없습니다. 그저 야권이 통일되어야 하고, 여당과 싸워 꼭 이겨야 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그런데 조선일보는 마치 이희호 여사가 안철수 후보에게 단일화를 요청했고, 이를 안철수 후보가 거부했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야권 단일화는 통합이나 대선을 위한 합체가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범죄자에 대항하기 위해 힘없는 일반 시민들이 힘을 합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안철수, 문재인 두 후보는 단순한 정당이나 후보의 통합이 아닌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고, 조중동이 그 법안이 올바른 법안인 듯 포장하는 기술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사기꾼들이 손발을 맞춰 선량한 서민을 등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이런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살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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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종식시켜야"

 

北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종식시켜야"
박길연 외무성 부상, 제 67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서
 
 
2012년 10월 02일 (화) 12:00:12 이광길 기자 gklee68@tongilnews.com
 

 

   
▲ 박길연 부상 유엔총회 연설 캡쳐.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은 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67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지난 8월말 방대한 무력을 동원한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을 벌여놓고 조선(한)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아넣은 것"을 비난하면서, 이같이 촉구했다.

그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은 조선반도를 세계 최대의 열점지역으로 만든 화근이며 공고한 평화와 안전의 주되는 장애물"이라고 강조했다.

박 부상은 "조선반도 핵문제도 다름아닌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산물"이라며 "사상과 제도를 달리하는 우리 공화국을 적의의 대상으로 삼고 끝끝내 압살하려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청산되지 않는 한 조선반도 핵문제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미국과의 대화과정의 총화이며 우리가 실지체험을 통하여 찾은 교훈"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가증되는 대조선적대시정책 때문에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며 미국측에 '선 적대시정책 포기'를 요구한 지난 8월31일자 외무성 '비망록'의 기조를 고수한 것이다.

그는 21세기 들어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채택됐으나 "현 남조선 당국은 집권하자마자 전체 조선민족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은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비롯한 모든 북남합의서들을 백지화하고 동족대결과 체제대결로 북남관계를 최악의 상태에 몰아넣었다"고 비난했다.

박 부상은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우리 인민의 아픈 가슴에 칼질을 하고 우리의 최고 존엄에 대한 중상모독과 정치테러행위까지 감행하면서 북남관계를 총파산시킨 남조선의 현 집권세력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강조했다.

그는 동시에 "우리 공화국 정부는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화해와 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오는 12월 대선을 통해 탄생할 남측 차기 정권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와 관련,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2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측의 금번 발언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반발했다.

조 대변인은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주민생활 개선을 위한 정책들을 실시하고, 핵개발 계획을 중단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면서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와의 대화를 통하여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2보, 15:02)

 

<박길연 북 외무성 부상, 제67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전문)>

의장선생

나는 유엔총회 제67차 회의 의장으로 선거된 부크 예레미치 선생을 축하하며 당신의 능숙한 사회 밑에 본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리라는 기대를 표명합니다.

의장선생

나는 먼저 위임에 따라 지난해 12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 서거하신 것과 관련하여 유엔 성원국 국가 및 정부 수반들과 인민들, 유엔 사무총장 선생과 유엔 총회 제66차 회의 의장선생, 그리고 유엔기구들과 유엔주재 각국대표들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준데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시고 나라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세계의 자주화의 필연과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노고를 바치시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영도자로 높이 모시고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선군정치를 그대로 계승하시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시고 세계적인 안목으로 우리식의 발전전략과 혁신적 방도를 밝혀주시면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총진군을 현명하게 영도하고 계십니다.

만난시련을 이겨낸 우리 인민이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에서 행복한 삶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펼쳐나가시며 우리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관계발전에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고 계십니다.

우리 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르고 있으며 그이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미래에 대한 신심과 낙관에 넘쳐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의장선생

지난 세기 유엔의 창립은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주권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국가들 사이의 협조를 발전시켜 공동의 번영을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새 세기의 첫 십년대가 지난 오늘에도 인류의 염원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관계에서 강권과 전횡이 갈수록 노골화되는 속에서 전파방지, 인도주의적 간섭 등의 미명 하에 주권침해와 내정간섭, 제도전복을 노린 무력사용과 국가테러행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극소수 열강들이 힘의 만능주의에 의거하여 세계를 지배하던 20세기 전반기의 국제관계가 재현되고 있으며 이것으로 하여 세계평화와 안전보장을 기본사명으로 하는 유엔의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본총회의 일반연설 주제로 '평화적 수단에 의한 국제분쟁과 사태의 해결 및 조정' 문제가 설정된 것은 현 국제정세의 심각성을 실증하여 주고 있습니다.

현 시기 국제무대에서 제기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주권 존중과 주권 평등의 원칙이 무참히 유린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정 국가들의 강권과 전횡을 철저히 없애지 않고서는 유엔이 헌장에 명기된대로 주권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국가들 사이의 협력관계를 조정하는 중심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리아의 자주권과 영토완정, 팔레스타인의 자결권과 생존권을 유린하는 것과 같은 부당한 간섭과 압력, 무력행사는 배격되어야 합니다.

국제관계에서 유엔의 중심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엔의 민주화를 실현하며, 특히 총회의 권능을 강화하는 문제가 절박하게 제기됩니다.

유엔총회에서 오래 전에 채택된 '남조선 주둔 유엔군사령부를 해체시킬데 대한 결의'와 매해 채택되고 있는 '미국의 반쿠바공세 종식에 관한 결의'가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총회의 권능 강화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로 됩니다.

성원국들의 총의를 대변하는 총회가 유엔의 활동 전반을 주관하는 것은 온당하며 특히 제재와 무력사용과 같은 평화와 안전에 관한 안보이사회의 결의들도 최종 검토할 수 있는 권능을 가져야 합니다.

안보이사회가 극소수 나라들의 전략적 이해관계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4월 미국이 안보이사회에서 보편적인 국제법에 따른 합법적이며 평화적인 우리의 위성발사를 걸고 들면서 부당한 성명을 강압 채택한 것은 안보이사회가 어떤 마당으로 도용되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엔 개혁의 핵심사항인 안보이사회의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로서, 활동에서 책임성과 투명성, 공정성과 객관성을 철저히 보장하며, 구성에서 발전도상나라들의 대표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원칙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엔에서 힘의 논리와 이중기준이 우심하게 표현되고 있는 또하나의 무대는 유엔총회 3위원회와 유엔인권이사회입니다.

인권 논의에서 정치화와 선택성, 이중기준이 종식되어야 하며, 서방의 정치적 목적과 이해관계, 그리고 서방식 가치기준에 따라 선택된 나라들의 인권상황이 문제시되거나 불문에 붙여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습니다.

현 시기 유엔이 내세운 3대 목표의 하나인 지속개발분야에서는 지난 6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진행된 지속개발에 관한 유엔대회에서 합의된 대로 공정한 국제경제무역관계 수립, 공식개발원조 공약이행, 발전도상나라들에로의 환경상 깨끗한 기술이전과 재정지원강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인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장선생

오늘 조선반도 정세는 미국의 구태의연한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말미암아 대결과 긴장격화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한점의 불꽃이 곧 열핵전쟁으로 번져질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열점지역으로 되고 있습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근저에는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를 말살하고 전 조선반도를 타고 앉아 아시아지배전략 실현의 발판으로 삼자는 목적이 깔려있습니다.

미국은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 첫날부터 애당초 우리나라를 적으로 규정하고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반세기 이상 공화국을 반대하는 각종 제재와 압력, 군사적 도발을 집요하게 추구하였습니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군사분야에 가장 역력히 뿌리박혀 있습니다.

조미처럼 전쟁을 치르고나서도 60년이 돼오는 장구한 기간 교전관계에 남아있는 것은 근대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기 위하여 일단 유사시 무력침공에 이어 군정을 실시할 데 대한 내용의 조선전쟁계획들을 유형별로 완성하여 놓고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군사작전계획들에 따라 미국은 수십년째 해마다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각종 합동전쟁연습들을 이름만 바꾸어가면서 그칠 새 없이 벌여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지난 8월말 방대한 무력을 동원한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을 벌여놓고 조선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아넣은 것입니다.

조선반도에서 지금까지 미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도발이 전면전쟁으로 번져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인내성과 자위적인 전쟁억제력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내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강성국가 건설을 총적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평화와 안정은 귀중합니다. 그러나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은 더 귀중합니다.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을 지켜 침략자들의 무분별한 도발에 즉시적인 대응타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맞받아나가는 것이 우리의 원칙적 입장입니다.

조선반도의 현실은 우리가 선군의 길, 자주의 길을 따라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위적 전쟁억제력을 마련한 것이 천만번 옳았다는 것을 실증하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억제력은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는 만능의 보검이고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위력한 수단이며 우리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담보로 됩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적대시정책은 조선반도를 세계 최대의 열점지역으로 만든 화근이며 공고한 평화와 안전의 주되는 장애물입니다.

조선반도 핵문제도 다름아닌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산물입니다. 사상과 제도를 달리하는 우리 공화국을 적의의 대상으로 삼고 끝끝내 압살하려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청산되지 않는 한 조선반도 핵문제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미국과의 대화과정의 총화이며 우리가 실지체험을 통하여 찾은 교훈입니다.

의장선생

새 세기에 들어와 조선반도에서는 온 겨레의 기쁨과 환희 속에 두 차례에 걸쳐 북남수뇌상봉이 마련되고 그에 따라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채택됨으로써 북과 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지향한 분위기가 전례없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현 남조선 당국은 집권하자마자 전체 조선민족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은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비롯한 모든 북남합의서들을 백지화하고 동족대결과 체제대결로 북남관계를 최악의 상태에 몰아넣었습니다.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우리 인민의 아픈 가슴에 칼질을 하고 우리의 최고 존엄에 대한 중상모독과 정치테러행위까지 감행하면서 북남관계를 총파산시킨 남조선의 현 집권세력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 공화국 정부는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화해와 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외세의 간섭과 반통일세력의 영구분열책동을 짓부시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적이고 인내성 있는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의장선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앞으로도 자주, 평화, 친선의 대외정책적 이념에 따라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더욱 강화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세계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지속개발을 실현하기 위한 유엔성원국들의 노력에 적극 합세해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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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용 흉기가 되어버린 한국 언론

'전과 25범' 최갑복 vs. '29만원' 전두환…누가 장발장인가?

[박동천 칼럼] 고문용 흉기가 되어버린 한국 언론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02 오전 11:54:15

 

중세 유럽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천하고 악하게 취급하라고 가르쳤다. 영원한 신의 나라에 비해 현재의 속세는 더럽고 추하고 죄악으로 가득하다는 식이었다. 신앙이라 불리는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육체와 욕망이라는 나쁜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들은 평신도들에게 설교했다. 추악한 성욕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일부일처제를 도덕률로 강제하고, 심지어 동정의 삶을 이상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부자와 권력자들은 육욕, 물욕, 지배욕, 소유욕, 탐욕의 화신처럼 살았다.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연애와 정사가 일상적으로 성행했다. 배우자를 두고 다른 상대를 사귀는 경우, 교회의 허락을 받아 이혼하고 재혼하는 경우, 교회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배우자를 살해하고 재혼하는 경우 등도 빈번했다. 왕족과 귀족은 또한 재물과 권력과 지위를 획득하고 확장하기 위해 음모와 배신과 폭행을 일삼았다. 교회는 이들과 친하게 지냈을 뿐만 아니라, 사제나 신학자들 자신이 대개 왕족 또는 귀족 집안의 후예였다.

문란한 성생활과 그악스러운 탐욕은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교황이 공공연히 정부를 거느리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에게 권력과 지위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공작을 꾸미는 것도 모자라, 전쟁까지 일으키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을 저지르는 와중에서도 이들은 평신도들에게는 순결한 도덕률을 설교하면서, 티끌만큼이라도 위반이 있다면 가혹하게 처벌했다. 권력자가 누구를 처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상대가 도덕을 위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 죄나 뒤집어씌우고 고문으로 자백을 받든지, 조작된 증인을 세우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이 이런 짓을 못하게 막으려고 여러 가지 장치들이 생겼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원리에 토대를 둔 사법제도, 인민 주권의 원리에 토대를 둔 대의 정치와 선거 제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마련되기만 하면 권력의 몹쓸 버릇이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중세 유럽에도 사법부나 대의 제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사법부나 대의제가 있어봤자 법관과 의원들이 권력과 이권에 휘둘리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은폐할 수 있는 권력이 얼마나 허용되느냐에 있다. 강자가 가진 권력이란 단순히 약자를 괴롭힐 수 있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중요하게는 자신의 소행을 은폐할 권력까지 가진다. 그러므로 약자의 처지 역시 단순히 강자에게 육체적·재산적 괴롭힘을 당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소행이 낱낱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법 앞에 만인 평등이라는 원리 위에 공동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혐의를 받는 경우, 소행이 낱낱이 공론의 도마 위에 노출되어야 하는 평등이 관건이 된다.

하지만 누구든지 공론의 도마 위에 불려 나와 발가벗김을 당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특정인에게 범죄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에는 엄격한 제약이 첨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범죄로 처단해야 할 행위와 그럴 필요가 없는 행위를 구분하는 엄정한 분별이 이뤄져야 한다. 처벌할 필요가 없는 행위 중에는 조금이라도 잘못이기는 하지만 경미해서 처벌하기보다는 훈방하는 편이 사회적으로 나은 경우, 그리고 애당초 아무 잘못이 아닌 때가 있다.

무고한 사람을 범죄라고 걸어서 고발하는 행위는 자체로 범죄 행위이다. 명예 훼손 또는 무고라는 죄목은 이래서 정해졌다. 무고까지는 아니지만 경미한 사안일 때에는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길동이가 책상 위에 1000원짜리 한 장을 놓고 점심 먹으러 나간 사이에 직장 동료 매향이가 그 돈을 슬쩍 주머니에 담았다고 할 때, 이를 알게 된 길동이가 고발해야 하는가? 이런 절도가 단지 한 번에 그쳤다면 처벌할 가치는 별로 없다. 그러므로 한 번에 그친 일을 가지고 고발하는 행위는 장려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1000원짜리 좀도둑이라도 지속해서 이뤄진다면 처벌해야 맞다. 법의 자비를 악용하여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갉아먹는 짓이기 때문이다.

한편, 매향이가 1000원을 슬쩍 집어넣은 행위를 길동이가 고발한 경우는 어떨까? 조금만 연장해서 생각해보자. 경찰이든 회사 내부의 감사 기관이든 또는 부서 구성원들이 모인 회의에서든, 이 일은 경미한 일이므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은 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고 쳐보자. 그런데 길동이가 계속해서 그 일을 문제 삼는다면? 1000원짜리를 한 번 슬쩍한 불미스러운 전력이 있는 매향이와 불문에 부치기로 한 공동체의 결정에도 그 일을 가지고 계속 매향이를 공격해대는 길동이 중에서 어느 편이 공동체에 더 해로운 짓을 하고 있는가?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길동이의 그악스러운 행위가 해롭다는 결론을 당연히 내릴 것이다.

권력이 부패하게 되면 1000억 원을 훔친 자들이 팔팔하게 행세하면서 도리어 1000원을 훔친 사람에게 법과 정의를 내세우며 주먹을 휘두르게 된다. 기실, 단위가 요즘은 천문학적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수십조 원을 훔친 도둑이 100만 원 훔친 도둑을 때려잡겠다고 설치는 셈이라 말해야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흉악범의 경우에도, 수백 명을 살해하고도 떵떵거리는 자에 관해서는 포기하고 지내던 사람들이 어디서 살인 사건이나 아동 성폭행범이 하나 나오면 마치 그 때문에 말세라도 되었다는 양 "사형 집행"이니 "물리적 거세" 따위를 부르짖는다.

주류 언론의 이와 같은 행태는 중세 유럽에서 행해지던 고문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중세 유럽에서 큰 도둑놈들이 자신의 범죄 행각에 대한 공론의 관심을 따돌리기 위해 좀도둑 하나 잡아서 공개적으로 고문했던 수법을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이 수법이 좀도둑이나 흉악범에 대해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 '안철수 불출마 협박 사건'을 폭로한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 회견 장면. ⓒ연합뉴스

노무현과 곽노현이 마치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다는 듯 떠들어댄 마녀 사냥이 바로 이와 같은 수법이었다. 공론 자체에 대해 고문이 행해졌던 것이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양심적인 시민에 대한 매카시즘도 공론에 대한 고문의 한 형태이다. 박원순에 대해 강용석이 떠벌인 헛소리를 마치 합당한 의혹인 양 대서특필했던 언론의 행태 역시 공론에 대한 고문이었다. 그리고 안철수에 대하여 지금 다시 사악하기 짝이 없는 고문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고문에 시달리는 한국의 공론장에서, 금태섭에 대한 정준길의 '협박'은 흐지부지 묻혀버리고 도리어 금태섭의 폭로가 '네거티브'로 둔갑한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잡는다는 말이 이렇게 맞을 수가 없다. 표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복사해서 편집한 것을 논문이랍시고 제출해서 학위와 지위를 차지한 인종을 비호하는 자들이, 멀쩡한 안철수의 논문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강용석을 용서한 박원순의 행위는 한 개인의 포용력으로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강용석을 명예 훼손으로 걸어서 법정에 세웠더라도 무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강용석이 작년과 같은 행위를 또다시 저지른다면 박원순이 아니라 그보다 마음이 만 배쯤 넓은 사람이라도 개인적으로 용서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살인자를 보고도 고발하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면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일들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공론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랄한 행위들을 앞으로도 용서만 하고 넘어간다면, 이 사회에 법과 정의는 영원히 자리 잡을 수 없다.

문재인은 검찰 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개혁된 검찰의 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단계를 밟아나갈지 등의 구체적인 구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법원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경찰, 선거관리위원회, 인권위원회, 감사원, 저작권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기타 등등 검찰 이외의 사법 기관들은 어떻게 개혁할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 안철수는 이 방면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특히 최근 자신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언론의 공격을 선거판에서 으레 있기 마련인 공세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면, 마음이 넓은 것이 아니라 순진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큰 도둑이 권력과 지위를 차지하고서 작은 도둑을 때려잡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큰 도둑은 작은 도둑을 때려잡으면서 자신의 치부를 은폐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도둑이 아닌 사람도 큰 도둑의 필요에 따라 쉽게 도둑으로 둔갑해 버린다. 이렇게 도착(倒錯)된 구조를 정상화해내지 못한다면, 경제민주화도 복지 국가도 민주주의도 평화 체제도 모두 헛꿈으로 그친다.

궁극적으로 공론장의 건강을 회복하고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자들일수록 공론에 엄중하게 감시받고 조사받는 체제를 이룩해내야 한다. 정치인과 재벌은 물론이고, 법조계, 관료, 군대와 경찰, 기타 각종 공식 위원회에서 공적 판단을 내리는 자들의 직무 행위에 대해 해명을 받아내서 따질 수 있는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언론 종사자들이 공론을 빙자하면서 벌이는 영업 행위에 대해서도 공동체 차원의 규제가 있어야 한다.

빵 한 조각을 훔쳐 먹은 장발장은 그 때문에 결국 전과 19범이 되고 말았다. 지난 9월 28일 자 <한겨레> 기사 "'배식구 탈출' 최갑복, 집주인에게 맞기만 했다"를 보면, 최갑복의 전과가 25개나 된 데에도 장발장처럼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곁에서 전두환은 "29만 원밖에 없다"고 능청을 떨면서 양주 파티를 벌인다. 증거가 없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인격을 보전하기 위해서, 차마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는다만, 이 나라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몽둥이를 잡는 자가 전두환뿐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깊게 생각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관해 "사과" 두 글자를 모처럼 입에 담은 박근혜도 이 문제를 생각할 수 있기를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바란다. 아울러 은근히 차기나 차차기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 모두의 주변에서 한 자리 해먹고 싶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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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율도국, 심청전의 인당수…수많은 전설 어린 섬 위도

바다목장으로 거듭나는 '고슴도치 섬' 위도

 
황선도 2012. 10. 02
조회수 97추천수 0
 

홍길동의 율도국, 심청전의 인당수…수많은 전설 어린 섬 위도

수산자원 보전과 생태관광으로 새로운 파시 열리려나

 

물고기를 따라다녀야 할 팔자인 수산 전문가에게 현장 조사하러 들렀던 해안 포구와 섬,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은 단순 여행자의 그것과는 다른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불규칙하긴 하지만 여러 해를 사귄 주민들은 느닷없는 연락에도 어제 본 친구인 양 반갑게 맞이해 주고, 서로 뜻밖의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장소에 관한 사연이 묵어 이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간다. 그래서 물고기 이야기에 다 담아낼 수 없었던 포구와 섬 이야기를 한차례 풀어놓으려 한다.

 

자연과학에서는 그곳 자연을 알지 못하고는 조사를 할 수 없기에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 것조차 통합연구의 연장이라는 변명을 가져다 붙인다. 이글의 일부는 홍민표 님의 도움을 받았다.


설레임의 섬, 위도(蝟島)

섬 여행은 육지의 어디를 갈 때와는 다른 설렘을 느끼게 한다.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여행이 일상의 일시적 단절을 의미한다면 섬으로 떠나는 여행자는 아스팔트로 이어진 길에서 물길로 물리적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연안 섬들 중에 이런 완벽한 단절의 경험을 주는 곳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편리성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리가 놓여진 곳이 적지않고, 특히 서해 연안에는 새만금 개발과 맞물려 몇 해 안에 ‘연륙교’란 말 그대로 육지가 될 운명인 섬들도 줄지어 있다. 단절감을 주는 설렘이 사라진 섬은 자동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 풍경으로 남고, 여행자는 여전히 배를 타러 나선다.

 

wi1.jpg » 바다와 섬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이 주는 설레임이다.

 

위도 파장금 항은 부안 격포 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다. 뱃전 오른쪽으로는 고군산군도의 섬들을 꼬치 꿰듯 잇는 새만금 방조제가 서서히 물러나고 이내 위도(蝟島)에 딸린 식도(食島)가 나타난다. 위도는 30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유인도는 6개뿐이다.

 

wi2.jpg » 위도 지도

40∼50년 전 칠산 앞바다에 몰려온 조기 파시로 유명했던 이 섬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명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2003년 방사능폐기장 유치에 나서야 할 만큼 섬 사람들의 상처는 깊었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 유치 실패가 다행이었다고 여기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는 위도는 이제 청정 해역을 거느린 애초의 모습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wi2-1.jpg » 과거 핵 폐기장이 들어설 예정이던 곳. 지금은 주민들이 유치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분위기이다.


고슴도치를 닮은 위도

파장금 항은 위도에 들어가는 들머리로 걸맞은 곳이다. 위도(蝟島)의 위(蝟)는 고슴도치를 뜻한다. 지도를 펴면 섬은 고슴도치가 편안히 누운 모양새다. 파장금(波長金 물결이 길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파도가 길게 치면 어선들이 대피하여 금, 즉 돈이 몰려온다는 뜻일 게다)은 고슴도치 주둥이에 해당하여 위도를 찾는 여행자들은 배에서 내려 곧장 고슴도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항구에서 시작하는 일주도로는 떡시루를 닮은 시루금(시름)을 지나 면 소재지인 진말(진마을, 진리)를 만난다. 앞다리인 정금(鼎金→井金)과 소금벌이 있었다는 벌금을 돌아서면 배 부위에 해당하는 도장금에 다다르는데 그곳에 위도 해수욕장과 식수원인 저수지가 있다.

 

갑자기 나타난 가파른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이곳이 서해 바다가 맞아?’라고 생각할 만큼 절벽 해안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 아래에 고슴도치 배 부위인 깊은금(지푼금, 심구미)과 이어 달그림자가 아름답다는 미영금이다.

 

엉덩이와 꼬리에 해당하는 논금(논구미, 답구미)은 위도에서 유일하게 벼를 경작하는 곳이었고, 조석에 따라 살을 쳐서 고기를 잡았다는 널은 갯벌을 가진 살막금(전막리箭幕里)에 다다른다. 논금에서 살막금으로 넘어 오는 중간에 차바퀴를 닮았다는 거륜도가 있고 주변에 토끼섬과 외조도, 중조도, 내조도가 둘러싸 있는 안락한 바다낚시터가 있다.

 

살막금을 지나 위도 띠뱃놀이전수관이 있는 대리(대돌목, 대저목, 큰돼지의 목 형상이라 해서 대저항, 대장마을, 大里)와 소리(작은돼지목)를 지나 한참을 가면 치도(꿩雉 모양 마을)를 거쳐 다시 파장금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슴도치의 등에 해당한다.

 

치도 앞에 따로 떨어져 있는 형제 섬이 있는데,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가 그것이다. 이곳은 얼마전까지 공군의 폭격 목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로 마을 코 앞인데. 위도에 딸린 섬으로는 멀리 상왕등도와 하왕등도가 있고, 파장금 앞에 식도가 있다.

 

위도와 식도…. 식도(食島)와 이어지는 위도(胃島)가 아니고 고슴도치 위도(蝟島)란다. 항간에는 조기 파시로 휘청망청했던 파장금 항이 주변 돌산을 개발하면서 쇄락했고, 고슴도치가 주둥이를 못쓰게 되니 음식에 해당하는 식도가 먹히지 않아 흥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자연 섬기는 마음일 게다.

고슴도치가 방어에 능한 동물인 것처럼 위도는 조선시대에는 위로는 고군산(군산)과 아래로 법성포(영광)까지 관할하는 수군 진영을 둔 군사적 요충지였고, 지금도 진리에 위도 관아가 남아 있다.

 

wi2-2.jpg » 대리 앞바다의 너른 갯벌

 

마을 이름 ‘금’ 자의 비밀
위도는 지명에 순수한 우리말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파장금, 정금, 벌금, 도장금 깊은금, 미영금, 논금, 살막금처럼 ‘금’으로 끝나는 지명은 모두 깊숙이 들어온 내만(內灣)이며 배가 피항할 수 있는 천연의 항구다.

 

‘금’은 ‘구미’의 축약이나 ‘끝’의 변형으로 ‘파장구미’ ‘깊은구미’로 불리기도 한다. 비숫한 지형을 가진 다른 섬이나 포구에서도 ‘구미’ 또는 ‘끝’으로 끝나는 지명을 찾아볼 수 있지만 위도의 ‘금’은 다른 곳과는 달리 한자(金)를 쓴 것이 눈길을 끈다.

 

위도에는 현재 14개 금이 남아 있는데, 이 금들은 섬이 과거에 군사적 요충지였던 내력과 관련이 깊다. 이곳은 지금도 주민들에게 유용한 항구지만, 외적들이 배를 대고 침입하기에도 좋은 곳이어서 수군은 이들 금에 자급할 수 있는 경작지가 딸린 초소를 두었고, 지금도 그중 상당수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위도 사람들은 이 ‘금’들을 우리말 그대로 두지 않고 ‘金’ 자로 표기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대로라면 지명에 ‘金’이 붙은 이유는 사금이 났다거나 육지와 바다에서 난 산물이 풍족해 금처럼 소중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다.

 

조선 숙종 때 위도에 최초로 진 설치 임무를 띠고 이곳 위도에 부임했던 광산 김씨 김복남 장군의 9대손인 김영석 선장의 증언을 들으면, 김복남 장군과 그 아들 김한윤은 2대에 걸쳐 위도진을 관할하는 절충장군(첨사, 종3품)을 지냈다. 김복남 장군 부자는 위도 관아 건립과 더불어 14개의 초소를 설치했고 직접 이름을 지었는데, 이때 절충장군이었던 부자의 성을 따 ‘금(金)’ 자를 붙였다는 이야기다. 뒷받침할 사료를 찾는 것이 과제로 남지만, 오랫동안 한 집안에서 내려온 사연이니 위도만의 특별한 지명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하나의 열쇠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wi4.jpg » 광산 김씨 김복남 장군의 9대손인 김영석 선장(왼쪽).

 

섬 속의 도솔천, 내원암
고슴도치의 자궁 자리인 깊은금 산속에는 아담한 절, 내원암이 있다. 절의 이름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의 내원과 외원에서 따 왔다고 한다. 도솔천은 외원궁과 내원궁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외원궁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고,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올 때를 기다리며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곳이다.

 

페리호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던 섬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위도 사람들은 내원암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마음을 모아 용왕각을 지어 치성을 드린다.

내원암은 여느 산중 사찰의 위용과는 거리가 멀다. 대웅전은 1873년에 중수된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작은 규모이다. 대웅전 옆에 심겨진 배롱나무 고목이 건물보다 더 커 보일 정도다. 건물보다 더 큰 나무라니….

 

이런 풍경은 내원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만, 곧 대웅전 신축공사가 시작된다니 아쉽게도 사라질 풍경이다. 유인갑 면장이 군 유지 일부를 대웅전을 증축하는데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함으로써 배롱나무를 옮기거나 제거하지 않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내원암이 소장하고 있는 탱화도 눈 여겨 봐야 한다. 후불탱화인 관음후불탱은 바다에 나가 생명을 담보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바다를 관장하는 해수관음의 영험함이 그려져 있다.

 

wi5.jpg » 내원암과 집보다 큰 배롱나무.


격포 항과 위도 파장금 항을 운행하는 카페리 선실에는 위도를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말 이곳 위도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미륵이 오길 기다리며 도솔천의 내원을 속세에 재현한 율도국은 아니었을까? 흥미롭기만 하다.

 

심청전 인당수와 문인석

홍길동전의 이상향인 율도국과 대리 마을의 대룡샘, 형제섬에 얽힌 전설 등, 위도는 전설의 섬이다. 그중 가장 특별한 이야기는 심청전과 얽혀 있다.


진리 어촌계장을 맡고 있는 서봉신씨는 1984년경 위도 앞 임수도 근처에서 특이한 돌을 건져 올려 지금도 집 대문가에 세워 놓았다. 보통 묘 앞에 세우는 문인석이었는데, 이 돌이 우리나라에 흔한 재질이 아니고 땅속에 묻히는 기반이 없어 관심을 끌만하다.

 

소설은 소설일 뿐 사실이 아니기에 거기서 근거를 찾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지만, 최근 각 지자체들은 홍보를 위해서 자기 지역이 여러 설화의 근거지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간은 백령도 근처 물살이 세고 중국과의 교역 루트로 이용됐던 해역이 인당수일 것이라고 지목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심청전의 배경인 인당수가 어디냐는 논란에 불을 지피는 게 아니가 싶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제물로 팔린 것처럼, 옛날 뱃사람들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용왕께 인신공양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 사람을 수장하는 것이 악습으로 지목되자 뱃사람들은 대신 사람의 모습을 닮은 문인석을 제물로 바쳤지만, 어쨌거나 잔혹한 인신공양의 증거는 거센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확고하게 남았다. 현재 서 씨의 대문 앞에 보관되어 있는 것 외에도 이후 몇 개의 문인석이 더 건져 올려져 치도 노인회관 담장 아래에 2기가 보존되어 있다.

 

wi6.jpg » 위도 앞바다 임수도에서 건져올린 문인석. 인신 공양의 흔적일까.


사라진 조기떼를 부르는 띠뱃놀이

1970년대까지도 위도는 칠산 앞바다의 풍요로운 어장에서 잡아 올린 조기 파시로 명성을 날렸다. 사실 조기로 유명한 곳은 영광군 법성포구이다. 바로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를 잡아와 굴비로 가공을 하기 때문이다.

 

영광군은 전남, 위도는 전북에 위치하지만,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곳의 거리는 지척이다. 과거 언젠가는 위도가 영광군에 속했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정리해 보건데, 영광 앞바다에서 위도 주변 해역을 통틀어 칠산바다라 했을 것이다. 날씨가 사납거나 법성포로 갈 수 없을 만큼 조업이 한창일 때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위도에다가 잡은 조기를 부렸을 것이다. 이곳이 조기 파시가 열렸다는 파장금이고…. 파장금은 이제 위도에 들어가는 항구 구실만 하고 있지만, 파시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30여 곳의 주막과 이동 술집, 어부, 장사꾼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wi7.jpg » 영광 법성 포구와 굴비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대리 마을에서 띠뱃놀이라는 풍어제가 벌어진다. 원래 명칭은 대리 원당제이나 1985년 위도 띠뱃놀이라는 명칭으로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띠뱃놀이를 보존하기 위해 전수관과 전시관이 지어졌고 전시관 한켠에는 띠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애초에 풍어제는 용왕굿과 당굿이 중심이었고,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할 때 이 띠배를 띄워 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운 집인 원당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원당제라고도 한다.

띠배는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m, 폭 2m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데 안에는 각종 제물과 함께 7개의 허수아비, 돗대, 닻을 만들어 달아 배 형태를 갖춘다. 놀이는 수호신을 모신 원당에 올라가 제물을 차리고 굿을 한 후 마을로 내려와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함으로써, 굿의 공간이 산과 마을, 바다로 이어진다. 띠뱃놀이는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으니 언젠가 칠산 앞바다에 조기떼가 다시 몰려올 날이 있을 게다.

위도는 서해안의 여느 섬 같지 않은 절경을 자랑한다. 예부터 위도 8경이 시로 읊어져 왔는데, 위도의 절경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외에도 부안 채석강은 저리가라 할 만큼 아름다운 용멀(용머리)이라 부르는 해안 절벽을 비롯해 곳곳에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방사능폐기장 예정지와 가까운 깊은금 해안에 깔린 납작한 콩돌은 파도가 쓸고 지나갈 때마다 시원한 소리를 낸다.

 

wi12.jpg » 용멀 해안의 대규모 퇴적층. 격포해안 퇴적층의 연장으로서 공룡시대 호수 바닥에 쌓은 퇴적물이 돌로 굳은 흔적이다.

 

wi13.jpg

필자가 위도의 풍광과 사연이 새삼스런 이유는 최근 위도 앞바다에 수산자원을 조성하는 사업과 맞물려 자주 방문하며 섬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바다는 수산자원이 고갈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수산물 소비가 늘고 바다를 휴식과 레저의 공간으로 찾는 이들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는 자원 보존적 관리에서 적극적 자원조성으로 개념의 이동이 일어났다. 2012년부터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서해지사(지사장 조강현)와 부안군(담당 김호중, 이호성)이 함께 하는 위도 연안 바다목장 조성사업은 그 첫걸음이다.

 

wi8.jpg » 위도 연안 바다목장 해역

 

대리 강대식 선장과 함께 수산생물 모니터링을 한 결과, 쥐노래미, 조피볼락, 붕장어, 양태, 보구치, 꽃게, 홍어, 참돔, 박대, 농어 등 유영생물과, 홍합, 피뿔고둥, 해삼 등의 저서생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는 곳으로 나타났다.


wi9.jpg » 대리 강대식 선장의 자망 그물질

 

위도는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 세워졌던 곳, 1993년 10월 10일 서해페리호 침몰사건이 난 곳, 2003년 위도 방폐장 반대 시위 등 과거와 현대사에 시련이 많았던 곳이다. 이제 이곳에 수산자원을 조성하고 생태관광을 발굴하여 다시금 파시가 형성되고 율도국과 같은 이상향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wi10.jpg » 바다목장 해역 자망(왼쪽 위)과 통발(오른쪽 위) 조업에 의한 자망 어획물(왼쪽 아래)과 통발 어획물(오른쪽 아래)


wi11.jpg » 바다목장 해역 잠수 조사(위)와 저서생물(아래)

 

글·사진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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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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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2500만 원에 팔아넘기는 '현대판 고려장'"

돌봄노동 연속기고·③]요양보호사들이 말하는 돌봄 노동과 요양원 이야기

요양보호사 무명씨들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02 오전 7:48:40

 

올해는 사회서비스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5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간병노동자,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등 돌봄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돌봄노동자들은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오는 10월 20일 보신각에서 '제3회 돌봄노동자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사회서비스 영역의 현재를 진단하고 제도개선안을 제안하는 기고를 <프레시안>에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돌봄노동 연속기고
아이는 '20만원짜리', 노인은 '100만원짜리'?
"60만원 주고 100만원어치 서비스를 기대한다?"

요양보호사들이 모여 현장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언제나 뜨겁다. 교육자리 건 다른 활동 자리건, 모였다 하면 언제나 현장 이야기로 빠지고 만다. 기관장이나 어르신 보호자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 그들에게는 해봤자 소용없는 이야기, 자식이나 친구들에게도 자존심 때문에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지만, 협회 회원인 동료 요양보호사들 앞에서라면 얼마든지 털어놓을 수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끝이 없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털어놓으랴? 이 자리마저 없다면 요양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어디 가서 풀 수 있겠는가? 그녀들의 끝없는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엮어 보았다.

요양보호사에게 김장, 마늘까기, 밭일 시키기가 다반사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요.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의 좋은 복지 일자리"라는 정부의 말에 우린 모두 속았어요. 그냥 노인만 돌보는 일이라면 괜찮겠어요. 그런데 온갖 일들을 다 시켜요.

재가 요양보호사들에게 김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아 자식들에게 택배를 부치라고 하거나, 마늘 까기 같은 그 집의 부업꺼리, 심지어 밭일까지 시키기도 해요. 시설은요. 10년 넘게 일해 웬만한 간호사 신출내기보다도 우리가 더 전문성이 있어도 "아줌마, 이거 해, 저거 해"라고 부려먹으려고만 하죠. 그러니 우리를 "요양보호사"라고 제대로 부를 리가 없습니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방문 요양보호사는 가사도우미나 파출부로 소개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런 부당노동 요구에 대해 센터장에게 불만을 이야기 해봤자 더 화만 나요. 대상자(등급 받은 노인)를 놓칠까봐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반응입니다. 이런 일을 거부하려면 당일 해고를 각오해야 합니다.

노인 수면제 먹기기부터 근무일지 조작까지…사설요양시설의 꼼수

사설 요양시설에서는 꼼수가 난무합니다. "본인부담금(전체 서비스 비용의 15~20%를 본인이나 가족이 부담)을 면제해주며 대상 노인이나 가족을 유인하는 불법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센터장은 한 달에 90시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어르신을 70시간만 돌보고, 실제로는 90시간 근무일지를 쓰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20시간의 부정 수가로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죠. 국민이 내는 사회보험금을 떼어먹는 짓이자, 내 노동시간을 줄여 내 임금을 깎아 먹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환자에게 더 잘하고 싶은데 사설 요양기관에서는 돈을 아끼기 위해 기저귀도 하루에 세 번만 갈라 쓰라고 하질 않나, 반으로 잘라 쓰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 퇴직금을 주기 싫어 가족이랑 센터장이랑 짜고 11개월 만에 문자로 해고 통보하는 건 다수예요. 내가 지금까지 환자를 열심히 돌본 건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요.

▲ 요양보호사(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센터장은 요양보호 대상자로 등급 받은 노인들 어디 없나 찾아보라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급 노인 한 명당 요양보호사에게 10만 원, 가족에게 10만 원을 주는 곳도 있어요.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공단 심사원이 집에 오는 날에는 노인에게 수면제 등 약을 먹이는 가족들도 있고, 일부러 치매나 인지능력 장애로 보이게 하려는 온갖 속임수를 센터장이 가족이나 노인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기도 합니다. 시설도 마찬가지에요. 시설장은 시설을 넘기면서 노인 한 명당 2500만원에 팔아넘기기도 해요. 요양 서비스의 질이나 노인들의 돌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하루종일 일하다 보니 그 분들을 돌보는 요양서비스의 질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혼자 30~40명 노인들을 다 상대하다보면 진이 빠지거든요.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인"이라는 규정은 서류상의 지침일 뿐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다 보면, "아 나는 늙기 전에 빨리 죽어야지."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정말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노인들이 딱하고 안타깝죠.

정부에서 관리한다하지만 미리 알려주고 오는 그런 정기 평가는 하나 마나예요. 게다가 방문 요양보호사 분들은 정부에서 관리한답시고 RFID라는 전자 시스템으로 출퇴근 감시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게 아무 효과가 없어요. 멀쩡한 어르신들에게 수면제 먹여가며 요양 서비스 등급을 받으려 하거나, 70일 근무했는데 90일 근무했다고 근무일지를 조작해서 돈 떼먹는 센터장을 제대로 잡아내느냔 말이죠. 게다가 RFID 시설의 교체비용도 우리가 다 내야 합니다. 우리 감시하자고 만든 제도의 기기를 우리가 내면서 효과는 없는 셈이죠.

길게 일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하루 12시간 혹은 하루종일 일해야만 12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답니다. 시설에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는 월 2회 정도 외출만 허용하고, 재가 요양보호사 분들에게는 24시간 입주 근무를 시킵니다. 그래야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은 모두 단절됩니다. 이게 사람이 할 일인지 한숨만 나옵니다.

추석 명절에는 온 가족이 다모여 쉬는데, 그럴 수가 없어요. 무조건 일해야 하죠. 수당도 꿈도 못 꾸죠. 쓸쓸하게 자식들도 없이 요양원에서 홀로 있는 노인들 옆에서 지켜드리자는 마음으로 일하는 거죠. 이제 명절에 못 쉬는 건 괜찮아요. 제발 딸 결혼식이나 가까운 친척이 상을 당했을 때 대체인력이 없으니 동료 요양보호사들 눈치 봐야 하는 것만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 미안하니까 제 돈으로 대체인력 넣고 나서 쉬었어요.

8시간 노동이요? 길게 일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12시간, 24시간 맞교대를 해야 겨우 120만 원을 버는데, 8시간 노동을 하면 월급이 얼마나 줄어들까요? 8시간 노동이 아니라 8시간으로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합니다.

▲ 지난 9월 24일 국회 앞에서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과 노인장기요양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여는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원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전면 개정 공동대책위원회

열심히 일하는데 사람대접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12시간, 24시간씩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우리는 1년 정도 일을 하고나면 모두 골병이 들어요. 그런데 전혀 산재 인정이 안 됩니다. 규정대로 한다면 둘이서 같이 노인 한명을 씻겨야 하는데 그런 걸 지키겠어요?

그렇게 혼자서 열심히 돌보는데도 치매도 아닌 멀쩡한 노인들이나 가족들이 대놓고 무시하고 도둑 취급하면 정말 속이 상해요. 노골적으로 성희롱할 때는 정말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죠. 그래서 이야기하면 "싫으면 관두라"는 식이에요.

우리가 노인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돌보는 노동자로서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는 환자를 돌보는 돌봄 노동자이자, 요양보호사에요. 우리와 마주치는 센터장, 시설장, 환자, 환자 가족들 그리고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봐주길 바랍니다.

 

 
 
 

 

/요양보호사 무명씨들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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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수상한 안철수 논문 표절 보도

 


추석 연휴 기간 민심을 잡기 위해 고심하는 대선 후보들에게 추석 연휴 기간에 보도되는 뉴스는 민심과 여론을 움직일 수 있기에 민감합니다. 어제(10월1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독 보도'라는 타이틀로 안철수 후보의 박사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MBC 뉴스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의학박사 학위 논문이 다른 교수의 논문을 상당 부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면서, 안철수 후보의 1990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과 서울대 서 모 교수의 박사 논문을 비교하는 자료 화면까지 내보냈습니다.

이 뉴스 보도를 보면 안철수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인 양 비쳤는데, 어제 MBC 뉴스에는 수상한 모습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논문의 표절 진위를(물론 철저히 검증이 요구되지만) 떠나 MBC의 안철수 후보 관련 보도를 어떻게 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해봤습니다.

' 언론의 원칙이 무시된 보도'

'언론은 철저하게 중립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보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중립적인 원칙을 지키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객관적인 증거, 사실에 대한 반론권 등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증거라 함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학술적이거나 검증된 증거 자료를 의미합니다.

반론권은 방송과 언론에 의해 공표된 사실에 의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의 주장을 포함하여 언론 보도가 양쪽 당사자의 주장을 모두 담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원칙에 따르면 어제 MBC 보도는 정확한 보도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객관적인 증거의 부족

논문 표절 의혹의 검증은 사실 정확한 학술관련 단체에서 판명되기 전까지는 오해 내지는 시시비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 표절 판정이 나오기 전에 보통 언론에서는 학술단체나 관련 분야 교수의 의견을 포함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어제 MBC 보도에서는 기자가 논문 표절 의혹을 서술했을 뿐, 전문가 내지는 교수들의 인터뷰 내용이 빠져 있었습니다.

 

 

▲안철수 후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논문의혹 관련 해명 게시글.

 


MBC 보도의 안철수 후보 논문 표절 의혹 보도 이전에 안철수 후보 공식 페이스북은 서울대 의대 생리학 교실 이호석 주임 교수와 호원경 교수의 의견을 게재했습니다.

 

"MBC측에서 문제삼는 볼츠만곡선은 19세기 통계물리학자인 Ludwig Boltzmann이 정립한 물리학적 원칙으로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견되는 물리학적 법칙임. 자연현상의 해석에 뉴튼의 원리를 적용할때마다 그의 저서인 Principia를 인용하지 않듯이 볼츠만의 원리를 적용할때 인용문을 달지 않는것이 관례임. 두 논문은 심장세포에 존재하는 세포막을 통한 전혀 다른 종류의 이온흐름에 같은 통계물리학적 원리를 적용한 것임. 서로 다른 생물학적 현상에 같은 물리학적 원리를 적용한 것을 표절이라고 볼 수 없음."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주임교수 이석호


이 의견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충분히 관련 보도 내용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다른 전문가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 볼 필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MBC는 기자의 말 이외에는 어떤 전문가의 주장이나 의견이 없었습니다.

 

 

▲SBS뉴스의 새누리당 신경림 비례대표 논문표절 의혹 단독 보도 관련 전문가 인터뷰 장면

 


SBS 뉴스는 4월초 새누리당 비례대표 신경림씨의 논문표절 의혹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SBS는 이 논문 표절 의혹 보도를 하면서 한상권 한국 학술단체 협의회 교수의 주장과 인터뷰 내용을 삽입해서 보도했습니다. 기자가 논문표절 의혹을 보도하면서 자신만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언론 보도 방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SBS처럼 '논문 표절 의혹'이 있다면 과연 이 논문이 표절인지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함께 보여줘야 합니다.

오로지 MBC 뉴스데스크에서만은 이런 객관적인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라진 반론권

앞서 언론은 어떤 사건의 당사자 양쪽의 말과 주장을 모두 실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엠피터'가 글을 쓰는 방식에서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을 무조건 쓰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의 제기한 의혹을 새누리당은 어떻게 해명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글을 씁니다.

보통 기자라면 민주당과 새누리당에 가서 취재하겠지만, 일개 블로거인 저에게 취재를 응할 새누리당이 아니기에 새누리당의 보도자료를 많이 인용하거나 사용합니다. 이처럼 양쪽의 주장을 모두 담는 것이 원칙이지만, MBC는 안철수 후보의 해명과 반박 자료를 보도에 넣지 않았습니다.

 

 

▲안철수 후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

 


안철수 후보 캠프의 정연순 대변인은 "MBC의 새누리당 출입 기자가 오늘 오후 8시께 다른 기자를 통해 유민영 대변인에게 보도 내용을 취재했고, 유 대변인은 8시 45분께 서울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주임교수 이석호 교수의 의견을 전달한 후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만약 보도할 경우 MBC는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했습니다.

만약 정연순 대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MBC 기자는 안철수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하면서 방송 1시간 전에야 취재 전화를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은 모두 잘라 버리고, 단순히 '안 후보와 논의 후 답변하겠다'는 언급되지 않은 거짓말을 공식 답변처럼 왜곡 보도한 것입니다.

 

 

▲SBS뉴스의 새누리당 신경림 비례대표 논문표절 의혹 단독 보도 관련 신경림측 주장 보도 내용

 


SBS는 새누리당 신경림 비례대표의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하면서, 앞서 한상권 학술단체 협의회 교수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 '연구 대상자와 연구 기간을 늘린 것으로 일종의 반복 확대 연구'라는 해명은 물론이고, '2005년 논문과 2009년 논문은 연구 대상과 방법이 완전히 다른 별개의 논문들'이라는 신경림측 주장을 논문 표절 의혹 주장과 비슷한 분량으로 보도했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검증 학술 단체에 의해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청자가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언론은 양쪽 당사자의 주장과 반반,해명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러나 MBC 뉴스는 안철수 후보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하면서 기자로서 최소한 갖춰야 할 취재의 원칙이나 방법 모두 지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정확한 취재를 하지 못한 언론이 나중에 잘못된 보도를 정정하는 일에는 얼마나 소극적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 강조한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는 논문 표절 의혹 자체를 떠나 데스크에서 어떻게 승인이 났는지 이상할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단독 보도였습니다.

' 새누리당 출입 기자의 안철수 단독 보도'

안철수 후보 캠프 대변인의 말을 보자면, 이번 MBC 뉴스를 보도한 기자는 새누리당 출입 기자입니다. 출입처 기자가 왜 중요하냐면, 만약 민주당 출입기자가 새누리당 뉴스를 쓸 동안 새누리당 출입기자가 그 소스를 모르고 있었다면 데스크에서 자격 미달,능력 부족으로 찍히기 때문입니다.

 

 

▲현원섭 기자의 새누리당 보도 기사 리스트

 


이번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을 단독 보도한 현원섭 기자는 새누리당 출입 기자입니다.(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만약 안철수 후보 담당 MBC 기자였다면 안 캠프에 다른 기자를 통해 취재할 리가 없었다고 봅니다.) 왜 이런 출입처가 중요하냐면 과연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소스가 새누리당에서 흘러나왔을 수 있다는 의혹도 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새누리당은 이미 안철후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이전부터 안철수 관련 팀을 운영했다고 소문이 떠돌았고, 그런 사실을 증명하듯 하나씩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안철수 후보 '다운계약서'가 새누리당에서 나왔던 점으로 미루어, 이번 사건도 새누리당과 MBC의 합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안철수에 관한 편파적인 MBC'

MBC 뉴스를 보면 거의 안철수 후보를 왜곡하려고 작정한 듯 보이는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로 나오기 전부터 MBC는 안철수 후보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를 계속 쏟아냈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힐링캠프에 출연할 당시의 MBC 뉴스데스크 화면

 


보통 시청자들은 뉴스 꼭지의 첫 화면에 나오는 문장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거나, 그 문장 그대로 이미지를 굳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뉴스 방식을 본다면 MBC의 안철수 원장 힐링캠프 출연은 '정치 아마추어'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MBC는 유독 안철수 원장의 부정적인 이야기는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작 중요한 그의 정책이나 행보의 의미를 생략하는 행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민언련의 방송모니터 결과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9월19일부터 23일까지의 MBC 뉴스를 보면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와 갈등을 빚을 것이며,민주당이 안 후보를 견제했다는 식의 논리를 앞세운 내용을 타 방송보다 현저히 많게 보도했습니다.

'안은 호객꾼,,다급해 허둥'
'단일화 논의 부적절 독자행보'
'시민 캠프로 안 'SNS'캠프에 맞불'

MBC 보도를 보면 안철수 후보가 나와서 정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오로지 구태의연한 정치인을 등장처럼 만들어, 치열하게 싸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은 반드시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표절 의혹에 관한 국민의 궁금증과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언론이 할 수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언론의 모습은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하는 언론의 기능이 아니라, 특정 후보와 영합한 '정치 주체'가 되어 앞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정치 공작으로 비칠 뿐입니다.

 

“우리의 언론은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다가 그로부터 해방된 다음에는 이 권력, 저 권력과 제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중동입니다. (중략) 그들이 정치주체가 된 것입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모든 언론이 성격을 달리해서 게임을 관리하고 심판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2007년 11월 11일, KTV 특집인터뷰 다큐멘터리 ‘대통령 참여정부를 말하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라고 했습니다. 대안언론으로 나오는 미디어를 살릴 수 있는 원동력도 시민이고, 잘못된 언론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의무와 권리가 있는 존재도 시민뿐입니다. 여러분의 수준이 높아졌다면, 이제 저질 왜곡 언론은 퇴출시켜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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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 저축은행 점거의 세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0/02 07:35
  • 수정일
    2012/10/02 07: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은행에 돈 맡긴 죄로 거리에서 1년 6개월

[이들의 추석②]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 저축은행 점거의 세월

12.10.01 16:30l최종 업데이트 12.10.01 22:17l
정민규(hello21)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500일 넘게 점거하고있는 동구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건물. 27일 찾은 은행에는 영업정지 당시 붙었던 공고문이 아직도 입구에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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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숙(가명·66)씨의 시간은 2011년 2월 17일에 멈춰있다. 600여 일 전 부산저축은행은 영업정지를 당했다. 처음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했을 때 민씨는 영업정지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도 그는 왜 은행이 자신의 돈을 주지 않는지 모른다.

은행이 문 닫기 두어달 전 은행직원은 그에게 후순위 채권이란 걸 권유했다. 스스로를 '까막눈'이라고 말하는 그는 은행 직원의 말이 고마웠다. 자신같이 못 배운 노인에게 이렇게 좋은 상품을 권해주는 은행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이자를 많이 주는 좋은 상품"에 가입했다.

그렇게 그와 그의 남편이 평생 동안 안 쓰고 안 먹고 모은 돈 1억 원을 은행에 맡겼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남편은 타이어 공장에서 젊은 시절을 쏟아 부었다. 몸이 아프면 죽을 먹어가며 일했다.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와 19살 때 사고로 몸을 다쳐 돈벌이를 못하는 아들을 위해서 두 부부는 죽어라 일을 했다. 그래도 가난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도 부부는 산동네 무허가 주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이 문 닫은 이후로도 그는 간판만 남은 동구 초량동의 부산저축은행을 매일같이 찾는다.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껍데기뿐인 은행 건물 앞에 선 지도 500일이 넘었다. 추석을 사흘 앞둔 27일에도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은행 건물을 지켰다.

주야 돌아가면서 텅 빈 은행건물 지킨지 1년 6개월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남 아무개(65)씨가 27일 부산저축은행 본점에 앉아 뉴스를 보고있다. 매일 70여명의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혹시나하는 기대에 이곳을 찾는다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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휑하게 빈 은행 건물로 매일같이 7~80여 명의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텅 빈 마음을 채우러 찾아온다. 남들은 명절 준비에 바쁘다는데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피해자들은 야간에도 돌아가며 은행에서 밤을 지새운다. 사무실 바닥의 냉기를 막기 위에 깐 스티로폼과 그 위에 덮은 전기장판이 이들의 잠자리다. 지금은 견딜만 하지만 다시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버텨야할지 걱정이다.

그래도 추위는 참아낼 만하다. 추위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한창 자신들을 찾던 정치인과 언론은 이제 더 이상 이들의 일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회에서도, 검찰에서도, 법원에서도 이들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만나고 싶은 '높은 사람' 대신에 경비와 경찰이 이들을 상대한다. 그는 양팔에 시퍼렇게 멍든 팔을 기자에게 내보였다. 며칠전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만나겠다고 했다가 경찰에 끌려나오며 생긴 멍자국이다.

선거철만 되면 찾아와 두 손 꼬옥 잡아주던 국회의원들은 이젠 두 팔에 멍이 들어도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됐다. 서러워서 길바닥에 앉아 펑펑 울었다. 무슨 죄가 그렇게 많아서 손자뻘인 경찰들과 드잡이를 하고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져야 하는지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에 돈을 맡긴 죄 밖에 없는데...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금융당국의 수수방관이 키운 저축은행 부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주간조와 야간조를 나눠 은행 건물을 지킨다. 스트로폼을 깔고 전기장판을 덮은 잠자리에서 잠을 자는 피해자들은 다가올 겨울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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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벌면 2~3만 원을 번다는 구포시장 채소 노점상 아주머니도, 평생 부두에서 하역일을 하며 번 돈을 맡긴 남씨 할아버지의 사정도 비슷하다. 민씨 할머니 부부가 평생 모은 1억 원, 노점상 아주머니가 하루하루 벌어 모은 3500만 원을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은 제 집 곳간 쌀 퍼 쓰듯 썼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은 9조 원에 이르는 금융비리로 항소심에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회장뿐만 아니다. 스스로에게 362억 원을 대출해준 은행 대표, 차명으로 관리하던 비자금을 다시 빼돌린 영업이사도 있었다. 곳곳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줄줄 세고 있는데도 감시를 해야 할 정부와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2008년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의 불법대출을 적발하고 이를 금융감독원에 통보했을 때도 금감원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객들이 은행에 맡긴 돈 200여억 원이 임직원 명의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에 부당하게 지급됐지만 감시와 감독은 허술하기만 했다.

지난해 10월 27일에야 대법원은 박연호 회장 등이 불법대출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인정된다며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미리 정부가 손을 썼다면 은행의 부실은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2009년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살펴보면 당시 검찰은 "(경영진이) 자신들의 돈이라면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투자사업을 하였겠느냐"며 부산저축은행의 방만한 경영을 질책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 금융당국은 법까지 뜯어고쳐가며 부산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워갔다. 지난해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에서는 2008년 금융위원회가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부산저축은행이 대전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금융관계법상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개정전 법 시행령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다른 금융기관을 인수 할 수 없었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2004년 증권거래법과 외감법을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어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후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대전저축은행 출자현황을 살펴보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455억 원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결국 이것이 부산저축은행의 몰락에 결정적 영향을 제공했다.

"정부의 관리부실을 피해를 서민에게 전가"

지난 총선에서 저축은행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던 정치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목소리에 둔감해졌다. 한 정당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경찰과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한 국회의원의 자동차 앞에 저축은행 피해자가 들어눕자 경찰이 이들을 끌어냈고 차에 앉아있던 관계자들은 이들을 빤히 보고도 지나쳤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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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자인한 저축은행의 부실을 예금자들이 떠 안아야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되던 저축은행 특별법도 원금의 55%만을 구제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이 법안마저도 정치권의 관심 부족으로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참다못한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490억 원의 국가배상신청을 제기했지만 이 역시도 난항이 예상된다. 서울고검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가배상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무부 배상심의위원회에서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국가를 상대로 정식 소송을 걸어야 한다. 노령의 피해자들이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한 정식 소송을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옥주 전국저축은행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명백한 관리 부실이 드러났음에도 피해를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강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설사 국가 배상 판결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70~80대가 많은 피해자들에게 소송은 너무 긴 시간이 된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권이 서민들을 위한 구제에 노력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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