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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중에 '핵마피아'가 숨어있다

대선후보 중에 '핵마피아'가 숨어있다

[분석] 연이은 한파에 '블랙아웃' 위험, 朴-文의 해법은?

허환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13 오전 8:33:14

 

서울 최저기온이 나흘 연속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연이은 한파에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고 있다. 12일 올겨울 들어 네 번째 전력 수급 경보 '관심'이 발령됐다. 이틀 연속 경보 발령이다. 전력 당국은 '관심'에 이어 전력 사용량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전력 수급 경보 '주의' 발령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전력 대란은 예상된 일이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잦은 고장과 비리 문제로 5분의 1가량 운행이 중단된 게 주요 원인이다. 총 23기의 원전 중 5기 원전이 정지됐다. 영광원전 3,5,6호기, 울진원전 4호기, 월성원전 1호기 등이다. 이유도 제각각이다. 영광 3호기는 제어봉 안전관 파열로, 영광 5,6호기는 위조부품 사용으로 현재 운영이 중단됐다. 부품 교체작업이 길어지면서 재가동은 올해를 넘기게 됐다.

울진 4호기는 전열관 결합으로 내년 6월에나 재가동될 예정이다. 지난 11월 20일 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는 10년 연장할 것인가를 두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사를 받느라 정지상태다. 이들 모두 합하면 약 460만kw 정도 발전을 못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겨울철 난방 수요가 몰리는 1~2월 사이 평균 전력 예비력은 230만㎾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이마저도 영광원전 5,6호기가 연말 안에 모든 부품을 교체하고 재가동 된다는 가정하에 나온 것이다. 만약 영광원전 5,6호기 가동이 지연될 경우, 1~2월 예비전력은 30만㎾에 불과하다. 예비전력이 100만㎾ 이하로 내려가면 지난해 9월 15일처럼 전국적인 순환 정전에 들어간다.

추가로 원자력 발전소 1기가 정지하게 될 경우는 '블랙아웃'을 선언해야 할 판이다. 지경부 등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가능성은 높다. 원전에서는 끊임없이 고장과 비리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12일 오전 전력수급 경보 `관심(예비전력 300만㎾ 이상 400만㎾ 미만)'이 발령됐다. 지하철 시청역에 설치된 전력수급 현황판이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끊이지 않고 밝혀지는 '짝퉁 부품'

대표적인 게 지난 11월 5일 언론에 공개된 일명 '짝퉁 부품' 사건이다. 당시 지식경제부는 울진3호기와 영광3~6호기에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136개 품목 5233개 부품이 설치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품질검증 위조 부품 대부분(98.4%)이 사용된 영광원전 5·6호기의 부품 교체를 위해 가동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속조치로 만들어진 원전부품 민관합동조사단은 지속해서 '짝퉁 부품'을 찾아냈다. △11월 15일 영광 5호기에 납품한 1개 업체 추가 적발, 4개 품목 총 154개 '짝퉁 부품' 적발 △11월 27일 울진 3,4호기, 영광 3,4,5,6호기에 납품하는 기존업체 추가 적발, 53개 품목 총 919개의 '짝퉁 부품'을 적발했다.

'짝퉁 부품'은 기존 원전만이 아니라 현재 건설 중인 신규 원전에서도 발견됐다. 원전부품 민관 합동조사단은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에 내진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소화수펌프용 제어패널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짝퉁 부품'은 발견됐다. 감사원은 지난 5일, 고리원전 3,4호기에도 '짝퉁 부품'이 공급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민관 합동조사단과 감사원이 적발한 '짝퉁 부품'은 대부분 원전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짝퉁 부품'으로 확인된 바닷물 취수용 펌프는 원자로 이외의 원전 기기의 과열을 막기 위해 사용한 냉각수가 뜨거워졌을 때, 바닷물을 끌어와 식히는 역할을 한다. 냉각수를 바닷물로 다시 냉각하는 장치다.

만약 이 펌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각종 계측기 등 원전 내 기기들이 과열돼 오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원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이 펌프가 고장 나면 비상 상황 때 작동하는 비상 발전기가 과열로 정지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때 원전 전체의 전원 공급이 끊길 수도 있다.

외국의 품질검증서를 위조한 계전기·퓨즈·스위치는 전원 계통의 안전과 직결된다. 계전기는 이상 전류가 흐르면 감지해 전원 차단기에 신호를 보내 작동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상 전원 감시 장치인 셈이다. 계전기가 불량품이면 이상 전류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전원을 차단해야 할 때 차단하지 못한다. 전원을 차단하지 말아야 할 때 차단하는 등 오작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전원 계통에 이상이 생기면 원전이 불시에 정지되는 등의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소화수펌프용 제어패널은 비안전등급 설비로, 소화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이를 감지하는 기능을 한다. 원전 보조건물에 설치되기 때문에 핵심부품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원전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2012년 동안 발생한 원전 고장 일지.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

부품에 문제 있지만 운영 중단 안 하는 원전, 왜?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추가로 원전을 정지시키지 않았다. 규모나 중요도가 작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는 가동 중지 없이 부품 교체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설치된 원전은 영광 3~6호기, 울진 3,4호기 등 총 6기다. 고리원전 등의 경우, 납품은 됐으나 설치되지는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30여개의 보증서 위조 부품이 사용된 울진 3호기는 발전을 멈추지 않고 부품을 교체하기로 했다. 2600여 개가 사용된 영광 5·6호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짝퉁 부품'을 사용하는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를 두고 '전력난'을 지목한다. 5기 원전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추가로 원전이 멈춘다면 올겨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로 원전 가동이 중단되지 않아도 블랙아웃이 발생한 여지는 충분하다. 일시적인 원전 가동정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2년 원전 일시 가동정지 사례는 11월 초까지 총 9건이었고 원전 가동정지 일수는 총 58일이나 됐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민간조사단이 활동하는 동안 중요 부품 관련, 추가로 '짝퉁 부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현재 확인된 '짝퉁 부품'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언제 '블랙아웃'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원전관리 문제도 있지만 환경단체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현재 전력난은 정부가 전기를 값싸게 제공하면서, 그에 따라 방만하게 전기를 이용하는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발생했다는 것.

핵심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로부터 사는 가격은 원전이 ㎾h당 39.2원(2011년 기준), 화력발전이 67.22원이다. 원전이 화력보다 절반 수준인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핵폐기장 선정 비용, 원전 폐쇄 비용 등이 포함된다면 화력발전과 비슷하거나 높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현재는 이런 비용을 원전 단가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값싼 전기 정책을 지속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무턱대고 확대했고, 그 결과 일반시민은 원가보다 싼 전기를 사용하게 됐다.

실제 한국 전기요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전기요금은 우리의 2.8배, 필리핀은 2.4배, 중국도 1.4배다. 지난해 기준 원가보상률이 87.4%로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로부터 100원에 전기를 사서 고객인 국민에게 87원에 파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전기 수요는 더 늘어났고 전력난은 더욱 심화했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및 1인당 전력소비량은 전 세계적으로 상위수준에 있다.

결국, '전기값이 싸야 한다→원전은 화전에 비해 단가가 싸다→원전을 늘린다→전기값이 싸진다→전기 수요가 늘어난다→원전을 더 짓는다' 이런 도식이 성립된다. 악순환인 셈이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대선 후보들의 원전 공약은?

환경단체는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전환, 즉 탈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원전 건설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싸다'는 이유로 에너지 소비왜곡을 불러일으키고 낭비하는 현재의 악습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핵에 필요한 대책도 제시했다. 강력한 수요관리 정책이 그것. 특히 전체 전기소비의 53%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소비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에 강력한 수요억제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시민들에게 절전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대선 후보들은 이런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기본적으로 탈핵에 찬성한다. 대통령이 되면 신규원전 건설 금지, 설계수명 종료한 노후원전 가동중단 및 폐로, 안전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원전 조기 폐로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사용하는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부터 현실에 맞게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핵발전에 찬성한다. 지난 10일 발표한 원자력발전 정책공약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박 후보는 △노후 원전의 연장운전 허가를 엄격히 제한하고 고리1호기, 월성1호기 원전의 폐기도 EU방식의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거쳐 결정 △여론을 수렴, 앞으로 20년간의 전원믹스(Mix)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는 걸 내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은 그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취해오던 일방적인 원자력발전확대 정책에서 '재검토'를 하겠다고 말한 점 외에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우선 노후원전의 경우, 유럽연합 수준의 스트레스 테스트 같은 강도 높은 조사를 한다고 해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격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더라도 관련 규제기준을 완화한다면 안전성 보장과 상관없이 가동을 강행할 수 있다.

환경단체는 박근혜 후보의 이 같은 공약은 수명 다한 노후원전을 계속 가동하기 위한 명분 확보로 해석한다. 박근혜 후보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한 민병주 국회의원이 원자력계에 종사해 온 전문가로서 고리1호기 수명연장에 관여한 바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또한, 신규 원전의 경우,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는 건, 사실상 신규 원전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에너지원, 즉 대안에너지는 1~2년 안에 뚝딱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값이 싸다는 오해를 받는 원전에 의존해 전력 수요를 늘려나가는 기존 정책을 고수할지, 아니면 새로운 전환을 시도할지는 유권자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원전의 속살

<1> "부품 빼돌려 지은 원전, 공사자가 무섭다며 이사가기도…"
<2> '천년고도' 경주, '핵폭탄 타이머' 재깍재깍
<3>이명박 찍었던 할배할매들 "때려 죽여도 박근혜 안 찍어"
<4>한번 켜진 '빨간 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5>원전 팔아 먹고살자는 MB, 수주 실적을 보니…
-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방사능 오염 생태가 시장에, 그런데도 정부는…
체르노빌·후쿠시마, 그리고 MB의 '악연'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
'에너지 된장 국가' 한국, 대기업만 배불려
"시민이 만드는 재생에너지, 일자리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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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쏘아올린 것, '물체'일까 '위성'일까

북한이 쏘아올린 것, '물체'일까 '위성'일까

[해설] 지구궤도 한바퀴 돌아 신호 보내와야 완전 성공... 며칠 지켜봐야

12.12.12 22:27l최종 업데이트 12.12.13 08:29l
이주빈(clubnip)

 

 

북한이 쏘아 올린 우주 발사체가 한국 시각으로 12일 오후 6시 무렵 아프리카 대륙을 지나 남대서양 위 궤도를 돌고 있다.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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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2일 오전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운반로케트 '은하 3호'를 통한 '광명성 3호' 2호기 위성의 발사가 성공했으며 위성은 예정된 궤도에 진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와 관련 미국 북미항공우주 방위사령부(NORAD)는 12일 "북한이 쏘아 올린 '물체'가 미사일경보시스템으로 감지해 추적한 결과,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고 확인했다. 미 뉴스전문 채널인 CNN도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빌러 "북한이 로켓의 모든 단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통상적으로 '로켓의 모든 단계를 마쳤다'는 것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능력과 인공위성 발사 능력을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위성 발사 성공"이라고 말했고, 미국은 "북한이 쏘아올린 물체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우주로 쏘아올려 궤도 진입에 성공시킨 것은 '물체'일까, '위성'일까.

만약 북한의 주장대로 위성이라면 북한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우주클럽(Space Club)'에 이름을 올린 나라가 된다. 우주클럽은 제나라 영토에서, 제나라 기술로 인공위성 및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2012년 11월 현재 우주클럽에는 러시아·미국·프랑스·일본·중국·영국·인도·이스라엘·이란 등 모두 9개 나라가 포함돼 있다.

북 "실용 목적 관측위성 발사"... 남 "사실상 ICBM 발사 시험"

북한이 12일 오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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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과 북한, 브라질이 열 번째 우주클럽 나라가 되기 위해서 피 말리는 경쟁을 해왔다. 한국이 나로호 발사 성공에 전력을 기울인 것도 보이지 않는 이 '우주전쟁'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우주기술 수준은 인공위성 및 우주선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위성체 기술과 이들을 쏘아올릴 수 있는 발사체(로켓) 기술로 평가한다. 이를 기준으로 A·B·C·D 네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A그룹이 우주클럽에 속한다. 인공위성 개발과 로켓 발사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캐나다·독일·이탈리아 등과 B그룹에 속한다. 로켓 발사 기술은 부족하지만 인공위성 개발 기술은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이 나로호 발사에 러시아 로켓 추진체에 의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C그룹은 부분적으로 인공위성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일부 로켓 발사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이 속해 있다. 브라질·오스트리아·덴마크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 D그룹은 인도네시아나 호주·대만처럼 우주개발에 착수한 나라들이 속해 있다.

북한은 12일 쏘아올린 것이 "실용을 목적으로 한 관측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은 이를 "사실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이라고 규정했다. '탄도 미사일'이라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된다. 이미 한국은 미국과 공조해 유엔 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장대로 12일 쏘아올린 것이 '위성'이라면, 또 그 발사체가 '위성 발사를 위한 로켓'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든 나라는 평화적으로 우주를 이용할 권리가 있고 북한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12일 열린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국정원이 "사실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북한이 쏘아 올린 것이) 통신위성인지, 첩보위성 또는 관측위성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해줄 수 없다"며 "그렇지만 북한의 발표대로 관측위성일 가능성도 있다는 게 국정원의 입장"이라고 밝힌 점은 심상치 않다. 만약 위성으로 국제사회가 공인했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서 신호 보내와야 '궤도 진입 성공'

그렇다면 북한이 쏘아올린 것이 '물체'인지 '위성'인지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인공위성이 궤도에 정상적으로 진입했는지 여부는 인공위성에서 지상으로 신호를 보내올 때다. 특히 위성이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돌아와 신호를 보내오면 위성이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신중한 전문가들은 약 3일 정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인공위성 발사 성공 여부를 확인해주는 유일한 기관은 미국 합동우주관제센터(JSpOC)다. 거의 모든 우주물체를 추적하고 있는 합동우주관제센터는 발견된 물체에 대해 일련 번호를 매긴다. 인공위성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합동우주관제센터로부터 일련 번호를 받아야 한다.

"북한이 쏘아 올린 물체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미국 북미항공우주 방위사령부(NORAD)는 2005년 이 업무를 합동우주관제센터에 넘겨줬다.

북한이 쏘아올려 궤도 진입에 성공시킨 것이 '물체'든 '위성'이든 간에 국제적 논란이 되는 이유는 언제든 가공할 무기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57년 가장 먼저 우주로 날아간 러시아(구 소련)의 'R-7' 로켓은 핵폭탄 발사를 위한 장거리 미사일이었다. 1958년 두 번째로 우주로 날아간 미국의 '주피터 C'도, 1970년 중국이 발사한 '창정-1'도 미사일을 로켓으로 변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사일과 로켓을 '성격이 전혀 다른 쌍둥이'이라고 부른다.

12일 북한이 쏘아올려 궤도 진입에 성공한 것이 '물체'인지 '미사일'인지 '위성'인지를 두고 한국·북한·미국 간 논란이 뜨겁다. 어쩌면 이 논란은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남북 관계의 현재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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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229억 버는 '재벌면세점',수수료는 고작 '90만원'


 

 

 


12월 10일 열린 대선 2차 TV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재벌 해체'라는 용어를 공중파 방송에서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그녀는 거침없이 "박정희 대통령과 정경유착으로 사카린 밀수를 한 재벌이 삼성이다. 정경유착과 부패 뒤에는 재벌이 1%의 지분으로 100% 권한을 행사하고 제왕으로 군림한다"며 삼성을 비판했습니다.

이정희 후보의 이런 모습을 본 일부 국민은 그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거센 어법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재벌이 얼마나 많은 특혜를 누리며 대한민국을 불합리한 사회로 만들고 있는지 안다면, 이정희 후보의 말에 수긍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재벌이 도대체 왜 문제인지, 그들이 얼마나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는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재벌의 문제점을 하나씩 점검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재벌 면세점들의 엄청난 특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4조 4천억 매출 재벌면세점, 허가 수수료는 고작 1천2백만 원'

해외여행을 잘 나가지 못하던 시절부터 해외 면세점에서 사온 향수와 화장품, 양주는 부와 특권층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은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고 있고, 국내 여행보다 오히려 해외 여행을 선호해서 언제나 공항은 붐빕니다. 이런 공항에서 유독 많은 사람들이 들리는 곳이 바로 '공항면세점'입니다.

 

 

▲인천공항 면세점 앞 모습, 출처:오마이뉴스

 


단지 면세라는 이유만으로 해외여행을 갖다 오는 사람이라면 으례 양주 한 병, 담배 한 상자, 화장품에 향수까지 저마다 면세점 봉투 하나씩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특히 예전에는 여행지에서 그 나라 특산품을 사오는 것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굳이 지역에서 쇼핑하기보다 공항에 있는 면세점이나, 출국하기 전 시내 면세점에서 손쉽게 쇼핑을 합니다.

이러다 보니 국내 경기는 불황이라고 해도, 공항면세점이나 시내면세점의 매출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벌면세점들이 2008년 벌어들인 연간 매출액은 2조 1,555억 원 이었습니다. 2009년의 경우 2조 7,478억 원, 2010년의 경우 3조 4760억 원, 2011년의 경우 4조 4,007억 원을 기록하여. 2008년 대비 3년 만에 매출액이 2조 원 가까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렇게 재벌면세점들이 수천억 원씩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데는 면세라는 상표를 달고 영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면세 사업자로 영업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특허보세구역허가사업장' 이용에 대한 수수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재벌면세점들은 연간 특허수수료로 얼마나 낼까요?

 

 

 

 


롯데면세점 본점의 경우 매출액은 1조 229억 원인데 연간 국가에 내는 특허수수료는 고작 90만 원입니다. 저는 이 자료를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실로부터 받고 숫자가 잘못 나온 줄 알았습니다. 1억도 아닌 1조가 넘는 매출액을 내는 기업이 면세점 특권을 누리는 데 국가에 내는 수수료가 고작 90만 원이라니...

사업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특정 업종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인,허가세를 내야 합니다. 건강보조식품 하나 팔려고 해도 매출이 백만 원이 넘지 않아도 몇만 원의 수수료를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데, 면세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1조가 넘는 매출액을 올리는 면세점이 일 년에 (한 달이 아닙니다.) 90만 원을 냅니다.

특히 '롯데디에프 인천공항 출국장면세점'은 1년에 43만 원을 냅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재벌면세점이 특허수수료를 거의 내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특허보세구역허가사업장' 의 이용에 대한 수수료 책정에 대한 관세법 시행규칙 제 68조 때문입니다.

 

 

▲관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특허 수수료율 산정방식, 출처: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

 


면세점을 운영하기 위해 처음 특허신청 수수료 45,000원을 내고 매분기당 연면적당 72,000원부터 최대 51만 원까지만 내는 특허수수료는 지난 1993년 7월20일 개정된 이후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출은 늘어나도 국가는 이런 재벌면세점들에게 특허수수료를 인상하여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벌만 면세점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그렇다면 혹자는 아니 재벌 욕만 하지 말고, 중소기업도 진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을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업이 있으면 서비스와 품질,좋은 제품을 가진 중소기업도 면세점 사업을 하면 좋겠죠. 그러나 현행법상 재벌 이외에는 면세점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 제3-2조는 면세점의 신규특허를 내어 줄 수 있는 경우를, 전년도의 전체 시내면세점 이용자 수 및 매출액 실적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50%를 넘는 경우로 한정해 놓았습니다.

즉 현행 시내면세점의 이용객 중 외국인이 이용하는 비율이 50%가 넘을 경우만 신규특허를 내어 주는데 현행 면세점 이용객을 분석해봤을 때 거의 불가능합니다.


 

 

▲ 면세점 이용 내외국인 매출액과 비중, 출처: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

 


2003년도부터 2007년도까지 내외국인의 면세점 이용을 보면 점차 외국인 이용 비중이 떨어집니다. 현행 재벌면세점조차 외국인 이용자 비중이 35%를 넘지 못하고 매출액도 50%를 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특허를 내줄 수 없는 법규가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면세점 신규사업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12월 5일 한국관광공사 인천공항 면세점 자리에 대한 입찰공고가 발표됐습니다. 이제 중소기업도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입찰공고를 보면 공고에서 마감까지 단 7일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2007년 56일과 비교하면 얼마나 짧은 기간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입찰 준비기간이 짧으면 그동안 사업경험이 없는 중소기업은 진출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이번 입찰에는 자산규모 5조원 미만이라고 공시됐는데, 사실 자산이 5천억 원이 넘으면 중소기업이 아닙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면세점은 취금품폭에서 향수,화장품,주류,담배를 제외했습니다. 앞에 자료에서 밝혔듯이 향수,화장품,주류.담배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을 신규사업자는 판매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기존에 없던 국산품 배치 의무가 있습니다. 국산품 판매가 겨우 9%에 불과한 면세점 시장 상황에서 국산품 배치를 유독 신규 사업자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중소기업은 면세점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동시에, 기존 재벌면세점인 신라와 롯데만 특혜를 주겠다는 조치입니다.

'재벌만을 위한 특혜의 상징 면세점'

중소기업의 면세점 신규사업진출을 막아 놓았지만, 재벌면세점을 위한 특혜는 어떻게 주고 있을까요? 현재 부산롯데호텔은 2013년에 호텔신라본점과 제주는 2014년,호텔롯데본점과 호텔롯제 제주,롯데월드 면세점은 2015년에 시내면세점 특허갱신 시기가 돌아옵니다.

앞서 말했듯이 외국인 이용객 비중이 35%와 매출액이 50%가 넘는 규정이 있는 상황에서 특허갱신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재벌면세점들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세청이 이들 면세점들에게 특혜성 혜택을 주기 시작합니다. 즉 의도적으로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줘서 갱신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고시를 한 것입니다.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 관세청 고시 제2008-5호, 2008. 1. 15. 일부개정>
부칙 제3조(시내면세매점 특허기간 갱신에 관한 경과규정) ① 현행 시내면세매점의 특허만료일이 2010년 이내에 도래하는 경우에는 당해 시내면세매점의 특허기간 갱신은 특허만료일부터 5년(임차인 경우에는 임차기간으로 하되 5년 이내)의 범위내로 한다.
② 현행 시내면세매점의 특허만료일이 2014년 이후에 도래하는 경우에는 당해 시내면세매점의 특허기간 갱신은 신청일 기준 최근 5년(임차인 경우에는 임차기간으로 하되 5년 이내)내 특허기간동안(신청일이 속하는 달은 제외)의 실적이 갱신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③ 현행 시내면세매점의 특허기간 갱신에 대하여는 최근 5년의 특허기간 동안의 실적을 적용하는 기준에도 불구하고 2010년도 이후의 실적부터 적용한다.
④ 제3항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 현행 시내면세점에 적용되는 특허기간 갱신 요건은 다음 각호 중 어느 하나에 의한다.
1. 2013년에 특허만료되는 시내면세매점의 경우 2010년부터 2013년(신청일이 속하는 달은 제외)까지 3년동안의 실적으로 2013년에 특허기간 갱신여부를 결정한다.
2. 2014년에 특허만료되는 시내면세매점의 경우 2010년부터 2014년(신청일이 속하는 달은 제외)까지 4년동안의 실적으로 2014년에 특허기간 갱신여부를 결정한다


중소기업은 아예 신규특허를 주지 못하도록 규정해놓고는 재벌면세점은 기존의 특허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주는 것입니다. 매출액 4조짜리 사업을 오로지 재벌들만 운영하게 하여 놓은 재벌만을 위한 특혜입니다.

더 웃긴 것은 이런 외국인 이용자 기준이나 매출액 기준이 공항 면세점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호텔신라가 진출한 인천공항면세점 소식, 출처:삼성 홈페이지 캡쳐 이미지

 


재벌 면세점이 90% 이상의 매출액을 장악하고 있는 공항 면세점의 경우는 특허사업에 대하여 시내면세점과 같은 갱신요건조차도 없습니다. 그래서 공항에 진출한 재벌 면세점은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연간 특허수수료는 고작 90만 원만 내고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재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재벌개혁을 외치면 마치 경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과격한 사람들의 논리와 말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대기업이 있으니 이 정도 경제발전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넘어갑니다.

 

 

 


특혜사업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사업은 국가가 허가하거나 통제하고 있습니다. 복권,경마,카지노와 같은 사업을 말합니다. 국가가 이런 특혜 사업에 허가를 내주는 조건으로 이들 사업이 번 돈은 국가가 다른 사업보다 많은 징수권을 행사합니다.

복권 사업은 이익금 전액을 국민복지 증진에 사용하기도 하고, 경마사업은 매출액의 16%를 레저세로 거둬들입니다. 또한, 카지노 사업은 매출액의 10%를 관광진흥기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2007년 롯데와 신라의 면세점 점유율이 53.13% 수준이었지만 2011년에는 롯데와 신라 점유율이 79.13%로 증가해 독점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한국관광공사 노조

 


2011년 롯데와 신라가 면세점 사업 7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롯데호텔과 호텔신라의 서울과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액만 합쳐도 2조 9천515억 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출액이나 수익금 중 일부를 공적기금으로 출연하는 법이 없어 돈만 벌고 아무런 공익을 담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용창출을 했다고요? 면세점에 일하는 직원 대부분은 비정규직,계약직,아르바이트생들입니다.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제품을 외국인에게 팔았다고요? 전체 면세시장에서 국산품 판매비율은 9%(담배를 포함하면 18%)이고 나머지 91%는 몽땅 외국제품이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롯데쇼핑 신영자 사장은 지난해 국산제품을 팔기 위한 경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고작 인천공항 면세점에 '루이비통'을 유치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는 재벌면세점은 고용창출도 안 하고, 오로지 외국제품 팔기에만 혈안이 되고 있으면서도 고작 90만 원의 수수료를 냅니다. 과연 재벌이 왜 국민이 낸 세금으로 특혜를 받아야만 마땅한지 '아이엠피터'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됩니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재벌을 '한국에서의 대기업체로 전형적인 가족 소유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개 국민의 불과한 가족의 사업체를 마치 국가 기업처럼 떠받들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이라고 그들을 부르기보다는 '재벌'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재벌과의 사랑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서민을 그린 TV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재벌을 동경하고, 그들을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여기지만, 현실은 재벌의 특혜로 중소기업과 서민만 고통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를 당신의 자식 세대까지 물려주고, 그들이 재벌로부터 또다시 버림받게 하고 싶습니까?

재벌면세점 관련 자료는 이미 지난 9월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이 배포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광고'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재벌과 권언유착이 있는 한 재벌들의 문제는 묻힐 것입니다. 부족한 글이라 RT와 추천을 부탁하지 않지만, 오늘 글은 꼭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18대 국회 1호 법안은 종부세 감세법안이었고, 19대 국회 1호 법안 역시 '재벌보호법'이었습니다. 이 두 법안 모두 재벌만을 위한 특혜법안으로 새누리당이 통과시켰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벌 특혜 법안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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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공대위, 영남대대책위 12일 공동 기자회견

 

“박근혜가 ‘장물과 뇌물’ 결자해지해야”
정수장학회공대위, 영남대대책위 12일 공동 기자회견
 
[0호] 2012년 12월 12일 (수) 19:51:51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bumcom@daum.net
 
 

정수장학회 공대위와 영남대재단 정상화 대책위는 12일 오전 11시 30분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결자해지를 촉구했다.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 모두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 및 이사를 장기간 맡아오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자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계속해 지배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한홍구 정수장학회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장물과 뇌물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며 “박정희 정권은 정수장학회는 강탈했고,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대구대(현 영남대)를 박정희에게 뇌물로 바쳤다”고 밝혔다.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씨의 장손자인 최염(경주최씨 중앙종친회 회장)씨는 이날 박정희 정권의 영남학원 재산 강탈을 규탄했다.

   
 

최 회장은 “박근혜 후보는 24년 전에 이사에서 물러났던 영남대를 2009년부터 실질적으로 재장악하고 있다”며 “박근혜의 추천으로 11명의 이사(사외 이사 포함) 중 8명의 이사가 선임됐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어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만든 대구대와 청구대가 친일파 박정희를 교주로 한 대학이 되고 말았다”고 규탄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양심이 없고 함량 미달인 인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다카키마사오가 물려준 유신의 유산과 언론장악 때문이 아닌가”라며 “정수장학회를 중심으로 한 장학생들과 영남학원, 정수재단, 한국문화재단, 육영재단 등 장물 계열사들이 뒤를 받쳐준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강택 위원장은 이어 “장물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을 경우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자회견 후 영남대와 정수장학회를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로 과자를 나눠주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영남대 강탈 사건 =1967년 대구대와 청구대를 합병해 영남대가 설립됐다.

대구대는 경주 최부잣집 후손으로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했던 최준 등 대구 지역 유지들의 기부로 설립됐다. 1964년 최준씨는 대구대를 발전시키겠다는 삼성 이병철의 말을 믿고 운영을 위탁하게 됐고, 이후 65년 한국비료의 사카린사건이 발생하자 이병철은 대구대와 한국비료를 박정희에게 헌납하게 된다.

1980년 당시 29살이었던 박근혜 후보는 영남학원 이사장이 됐고, 학생들의 반대로 평이사로 재직해 왔다. 81년 영남대 정관 1조가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개정됐다.

88년 학내 부정입학 등 의 문제가 발생했고,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박근혜 이사는 영남대를 떠나게 된다.

언론보도(1988.11.3 조선일보)를 보면 “영남대의 사실상 교주인 박근혜 이사는 상당히 비감어린 송별사를 남기고 영남대를 떠났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영남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추종자들의 은퇴후 일자리 마련을 위해 설립 배경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영남대 설립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한푼도 내지 않았는데, 정관에 교주로 명시하고 그의 딸이 지금도 교주행세하는 것이 무슨 근거냐”라는 비판과 함께 “신입생 모집에서 후보합격자 순위 조작으로 1인당 1억원씩 받고 부정입학시킨 사실을 밝히라”는 질의까지 나오는 등 영남대 강탈 사건이 불거지게 된다.

1988년 11월 2일 박근혜 이사가 이사직 사퇴하면서 “차제에 학교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밝혔다.

이후 영남대는 임시 이사가 파견되어 학교가 운영되다 2009년 이사 선임에 설립자 유족이라는 명목으로 박근혜의 의견을 물어 7명의 이사 중 4명을 추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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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 열려

 

‘조용수, 반세기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다’
진주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 열려
 
 
2012년 12월 12일 (수) 19:00:14 이계환 기자 khlee@tongilnews.com
 

 

   
▲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1주기를 맞아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가 11일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남강의 푸른 물보다 더 푸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조용수가 반세기만에 고향 진주에 돌아왔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1주기를 맞아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및 민족문제연구소 주최와 민족문제연구소진주지회 및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주유족회 주관으로 11일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열렸다.

원희복,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 제기

 

   
▲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18대 대통령 선거와 민족일보 사건의 의미’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 학술회의는 오길석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18대 대통령 선거와 민족일보 사건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원 기자는 민족일보 사건의 의미를 언론사적 의미와 정치·사회적 의미로 나눠 분석을 했는데, 전자의 경우 “박정희가 5.16쿠데타의 첫 희생양으로 언론인 조용수 사장을 선택했다”면서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 이후 지금까지 우리 언론사에서 일제시대 때 필화를 겪거나 정간 폐간은 됐을망정 또한 해방공간에서 신문사 관계자를 체포해 징역을 살게 했어도 발행인이 사망한 경우가 없다”고 상기시켰다.

후자와 관련 “박정희가 왜 조용수를 겨냥했을까”하고 묻고는 “바로 자신의 사상적 문제를 증명하고, 미국으로부터 쿠데타의 정당성을 입증받기 위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원 기자는 민족일보 사건과 12월 대선과의 관계에서는 “이번 대선에는 민족일보 사건을 조작하고 조용수 사장을 죽인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나왔다”면서 “이는 참 공교로운 운명”이라고 지적했다.

원 기자는 “박근혜 씨를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집권 여당 대권 주자의 상식과 역사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의 민주화에 대한 역사인식, 가족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강정구 “조용수의 뜻은 평화통일 대통령만들기”

이어, 토론자들의 토론이 진행됐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조용수 선생과 새 시대 과제 : 평화통일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어떤 분을 기린다는 것은 그분의 뜻과 얼을 기리는 것”이라면서 “조용수 사장이 오늘 이 자리에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질문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갔다.

강 전 교수는 현시대를 “미국이 망하고 중국이 흥하는 시대인데, 미국이 망하지 않기 위해 중국을 대상으로 한 신냉전을 만드는 시대”로 규정하고는, 동시에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힘을 합치면 통일의 새로운 적기를 마련할 수 있는 시대”로도 규정했다.

이 같은 시대규정 인식 하에 강 전 교수는 조 사장이 살아 있어 이 자리에 와 실천을 한다면 “첫째 이번 대선에서 평화통일 대통령만들기, 둘째 정전협정 60주년인 2013년을 평화협정 원년으로 만들 것, 셋째 한일군사협정과 군사동맹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대화 “4월혁명 통해 진보와 혁신 성향 발산돼”

또 다른 토론자인 정대화 상지대학교 교수는 ‘민족일보 조용수 선생의 삶’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조용수의 삶을 변화와 혁신의 관점에서 짚었다.

정 교수는 “조 사장이 처음부터 진보적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보수적이었다”면서 “그런데 당면한 분단, 독재 등 모순과 접하면서 생각이 변화 발전하지 않았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론했다.

정 교수는 “조 사장은 우익적 성향과 민단 활동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었는데 4월혁명을 치면서 혁신운동과 통일운동에 몸담았다”면서 “이는 그가 현실의 모순 속에서 삶을 진보와 혁신으로 이끈 것이다. 사회모순에 부닥친 실천적 지식인의 삶과 부합된다”고 평했다.

조용수의 경우, 인간이 갖고 있는 복잡한 생각 중에서 하나가 4월혁명을 통해 발산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재일동포 이춘웅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일본지회장은 1951년부터 1960년까지 10년간에 걸친 조용수의 일본에서의 운동적 삶을 △조봉암 사형반대 구명운동 △재일동포 북송반대운동 △주일대표부 유태하 공사 추방운동 등으로 나눠 설명한 뒤 “조 사장은 생각만이 아니라 솔선수범해서 행동하고 운동한 분”이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토론자로 나선 최상한 경상대학교 교수는 ‘조용수와 민족일보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은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보는 후배기자의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진주 소재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개최된 행사에는 참가자들이 개최지인 진주를 필두로 멀리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서 참여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주요 인사로는 학술회의와 추모제 발표자들 외에도 박종철 열사 부친인 박정기 선생, 김병태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 김수업 대구가톨릭대학교 전 총장, 한기명 전민련 전 의장, 장두석 광주민족학교 이사장 등이 참여했으며, 특히 고 양수정 민족일보 편집국장의 아들인 양세양 부산대학교 교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학술회의 폐회 후 주요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송기인 신부 “진실화해위에서 첫 번째 망치를 두드린 사건이 바로 조용수 사건”
 

 

   
▲ 학술회의에 앞서 조용수 51주기 추모제가 거행됐다. 추모제 개제 선언 이후 헌작 장면이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 학술회의에 앞서 조용수 51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진주에 왔다.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엘 왔다. 그런데 옛날 친구들이 있나 찾아봤는데 못 찾겠다. 그게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느낀다”면서도 “고인의 출생지인 고향에서 추모제를 하는 게 이뤄져 뜻깊다. 게다가 제가 인사하게 된 것도 감사하다”고 세월의 무상함과 추모제의 고마움을 함께 전했다.
 

 

   
▲ 송기인 신부는 격려사를 통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첫 번째 망치를 두드린 사건이 바로 이 조용수 사건”임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송기인 신부는 격려사를 통해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보도연맹 건으로 일찍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얘기를 하며 “조용수처럼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이 이 나라에 100만 명은 된다”면서 “과거사 해결을 완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신부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가 첫 번째 망치를 두드린 사건이 바로 이 조용수 사건”이라면서 “당시 심사위원 모두가 찬성했다”며 2006년 11월 28일 진실화해위원회가 민족일보 사건에 대해 재심 권고 결정을 내린 것을 상기시켰다.

이어진 추모사에서 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우리가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당했을 때 사회당 소속인 나는 7년 징역을 받았고 민족일보 사장인 당신은 사형을 선고받았다”면서 “하지만 수감된 우리는 당신이 그렇게 유명을 달리 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형무소 생활을 회고했다.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4.19혁명 공간에서 민자통 활동을 하면서 조용수와 자주 만났다”고 회고하면서 “억울한 죽음이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나서 원을 풀었지만 아직 일부분일 뿐”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철 전 의원은 “소위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의 한 주역으로써 죽음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서대문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았던 애송이 청년이었던 이철이가 이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고 위엄을 이어받고자, 선생의 고향이자 이 못난 젊은이의 고향인 이곳 진주에서 결의를 다지고자 모였다”고 추모했다.

후배 언론인으로 추모사를 한 남두용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진주지부 위원장은 “남이든 북이든 민족의 분열을 방치하고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모든 권력에게 쓴 소리를 마다 지 않았던 선배님의 기개를 기억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 추모제에서 해원무를 하고 있는 장순향 한양대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 추모제는 이기동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의 사회로 시작됐으며, 서금성 전 부산.경남와이티엔 회장의 약력보고와 권영란 시인의 추모시 낭독 그리고 장순향 한양대 교수의 해원무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장 입구 로비에는 인혁당 열사들의 사진전시회를 열어 추모 분위기를 돋웠으며, 추모제는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 추모제 후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행사장 입구 로비에는 인혁당 열사들의 사진전시회를 열어 추모 분위기를 돋웠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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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PK) 지인들에게 이 글을 부칩니다

이명박-박근혜-김영삼의 삼각관계 분석
내 고향(PK) 지인들에게 이 글을 부칩니다

(서프라이즈 / 폴라리스 / 2012-12-12)

 

(내 고향은 부산이고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으니 고향을 떠난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하지만 노모와 형제들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고 명절이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내려간다. 다가오는 설에 기쁜 마음으로 고향을 다녀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우선 고향의 친지와 친구들을 향한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선거 이야기를 하면 언성이 높아지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차분하게 글로 먼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내 고향 사람들께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린다).


1.혁명의 종결자 PK지역

나는 역사공부를 수십 년 동안 업으로 해왔다. 그런데 공부 과정에서 부산과 마산이 디비질 때마다 독재정권이 끝장났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발견했다.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 조종을 울린 것은 1960년 4월혁명, 1979년 10월 부마항쟁, 1987년 6월항쟁이다. 이들 혁명 과정에서 부산 울산 경남(편의상 PK로 칭함) 지역은 터미네이터 역할을 감당했다.

가)마산시위와 이승만독재의 종말

4월혁명의 계기는 1960년 3.15 대선이다. 자유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부통령후보는 이기붕이었다. 이승만은 1875년생으로 당시 86세의 고령이었다(이런 노인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겠다니). 마침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조병옥이 미국 육군병원에 치료 받으러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야당 후보가 사망함에 따라 자유당으로서는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이 절실했다. 당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는 런닝메이트 제도가 아니었다. 대통령 유고시에 부통령은 승계 1순위였다.

그 이전 선거인 1956년 대선에서 부통령에 이기붕이 낙선하고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되었다. 당시 이기붕은 죽을 병에 걸려 거동조차 불편했고 유세조차 못했다. 이런 지경에서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시도되었다. 이것이 소위 3.15 부정선거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선거에 대구의 2.28데모 등 고등학생을 중심한 산발적 저항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선거 당일 드디어 마산에서 부정선거 반대 시위가 터져나왔다. 마산은 선거 당일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다.

 

 

김주열 시신이 인양되는 이 사진이 1960년 4월 12일 동아일보 등 도하 신문에 실렸다.

 

경찰 발포로 여러 명이 사망했고 시위는 격렬했다. 이에 부정선거 주범격인 내무장관 최인규가 교체되고(법무장관이던 홍진기-홍석현 아버지-가 내무장관이 되었다. 4.19 경찰 발포의 최종 책임자로 이후 재판을 받게 되었다), 국회 조사단이 파견되는 등 수습책이 모색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4월 11일 시위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다시 마산 시민들은 격렬하게 시위했다. 한편 시신의 처참한 모습은 부산일보의 사진 제공을 통해 중앙지에도 대대적으로 그대로 보도되었다(김지태의 부산일보에서 현재 박근혜의 부산일보로 바뀌었다). 부산일보가 탄압을 피하기 위해 그런 편법을 취했다.

마산의 3.15시위와 4.11시위가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마산의 3.15시위는 물론 4.11시위가 없었다면 4.19는 없었을 것이다. 부산일보 등의 현지 언론이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 이와 같이 마산과 부산 사람들은 유달리 정의감이 강했고 용감했다.

나)부마항쟁과 박정희 독재의 종말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격으로 죽었다. 김재규의 주장을 빌려 말하자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던 것은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 결국 10.26사건의 직접적 계기는 부마항쟁이었던 셈이다.

유신체제하에서 특히 긴급조치(현재는 위헌 판정을 받았지만)하에서 탄압은 극단적이었고 저항은 어려웠다. 민청학련 관련 학생들이 군법회의를 받아야 했고 사형 언도를 받던 시절이었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대법원 판결 바로 다음날 사형이 전격 집행되었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는데는 대학생으로서의 기득권 포기는 물론 구속 나아가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샌님 같은 외모의 문재인에게서 의외의 헌신과 결기를 엿보게 된다. 인혁당 관계자들이 전격 사형당한 바로 다음날인 1975년 4월 10일에 문재인은 데모를 주동하다 제적 구속되었다. 나는 감히 유신체제에 앞장서 저항할 용기가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가에서 그나마 저항이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서울대학에서도 한 해에 한번 정도의 학내 시위가 있을 정도였다. 부산대학은 몇 년 동안 유신 반대 시위가 없었고 유신대학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였다. 이화여대생이 남성 성기를 자르는 그림을 부산대학교에 보내어 그 비겁함을 조롱했다는 설이 나돌 정도였다. 그런 부산대학생들이 드디어 10월 16일 분연히 일어났다. 부산의 시위는 곧 마산 경남대학생들의 주도하에 마산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부산 마산의 대학생들은 학내시위를 넘어 가두로 진출했다. 시민들이 가세하며 격렬하게 그리고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부산 마산 시위는 긴급조치 이래 그 양상이나 규모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경찰력으로 시위를 막을 수 없게 되자 부산에 계엄령,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했다. 이 비상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유신체제는 끝장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신대학이라는 오명을 듣던 부산대학에서 그리고 박정희의 경호실장을 지냈던 박종규(일명 피스톨 박) 소유의 경남대학 학생들로부터 시위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의 주동에 시민들이 적극 동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은 내가 PK 지역의 보수성과 무기력에 번번히 절망하면서도, 그들의 DNA속에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혁명적 에네르기에 기대를 걸어보게 하다.

부마항쟁에 참여했고 또 그날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부마항쟁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다. 이점은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평가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해당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유신체제를 피흘리며 붕괴시키는 위업을 이루었는데, 이제 와서 그 딸의 인질이 되는 역설이라니. 이보다 더한 빙신이 따로 없다.

다)6월항쟁과 전두환 독재의 종말

1987년 6월항쟁은 전두환 독재정권을 끝장냈다. 항쟁의 지도부는 ‘국민운동본부’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국민운동본부의 건설이 논의 단계인 5월 20일, 부산에서는 ‘호헌반대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 부산본부’가 결성되었다. 본부가 결성되기도 전에 부산지부가 먼저 결성되는 기이한 양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부산본부에서 노무현은 유일한 상임집행위원장이었고 문재인은 16명 상임집행위원 중 일원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김무성은 9월 23일, 노무현이 6월항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거리낌없이 지껄였다.

 

 

6월 27일 이태춘의 장례미사 후의 거리 행진. 영정을 든 노무현. 그 옆에 선 문재인

 

서울에서 시위가 주춤할 즈음, 부산의 명동성당 격인 카톨릭센터 농성(16-23일)은 부산지역을 넘어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6월항쟁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된 시위였다. 지방 중에서도 부산 마산 지역 시위가 유달리 격렬했고 다수의 시위 참가를 기록했다. 그리고 6월항쟁에 이은 7-8월의 노동대투쟁 과정에서도 PK지역은 돋보였다. 대규모사업장과 중공업이 밀집한 울산 창원 등지에서 거대한 중기를 앞세운 노동자시위는 섬뜩할 정도였다(그즈음 문재인은 노동 인권변호사로 복무했다. 그 부분에서 문재인은 독보적 존재였다).


2. 김영삼의 일탈과 그의 딜레마

이러한 PK지역의 혁명적 전통은 김영삼의 일탈로 단절되었다. 부마항쟁과 부산의 6월항쟁 배후에는 김영삼이란 걸출한 민주화 지도자가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1990년 1월에 3당합당을 감행했다. 그는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하여 자유당 탈당을 감행했다. 5.16쿠데타 직후에도 공화당 참여 유혹을 뿌리쳤다. 60년대 말에 40대기수론을 주창하여 야당 지도력을 혁신했다, 70년대에는 야당 당수로서 유신체제에 대한 강경 투쟁을 주도하다가, 야당당수직은 물론 국회의원직마저 잃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여 단식투쟁하며 반독재투쟁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 일관되게 저항하던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기수 김영삼은 독재권력에 결국 투항하고 말았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던 민주투사 김영삼으로부터의 일탈이었다. 명분없는 3당합당에 노무현이 ‘이의가 있다’며 정치적 은인인 김영삼의 일탈에 외롭게 저항했을 뿐, PK지역은 김영삼의 일탈과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김영삼의 일탈은 그에게 대통령이 되는 개인적 영광을 안겨주었다. 하나회를 과감히 척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기반인 PK를 TK의 식민지로 전락시켰으며 보수 절대 우위의 기형적 정치지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여태껏 김영삼과 PK에게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는 ‘남이 아니다’. 김영삼과 PK는 이명박에게 이용당했고 이제는 박근혜에게 이용당할 지경에 처했다. 그런데 이제 내부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박근혜와 경쟁 대립하던 이명박은 김영삼과 PK지역을 활용하여 박근혜를 고립시키려 했다. 그리고 민주투사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김영삼도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보다는 이명박으로 기울었다. 최근 박근혜가 주도한 4.11 총선에서 김현철의 공천마저 무산되자, 김영삼은 박근혜를 ‘칠푼이’라 악평하고 ‘박근혜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김영삼은 박근혜지지로 기우는 듯했다. 그의 화끈한 성격과 달리 미지근하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박근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측근이던 김덕룡 등이 이례적으로 문재인지지를 표명하고, 양자 박빙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그의 딜렘마는 더해지고 있다. 그 딜렘마의 근원은 민주투사로서의 김영삼과 보수권력 창출의 공로자(공범자?)라는 양면성 때문이다. 대체로 후자가 우세한 가운데, 이율 배반적인 양 측면이 공존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그 딜렘마의 정도가 예전과 다르다. 물론 그의 아들의 정치적 진출 문제도 게재되어 있을 것이다.

남민전 사건으로 박정희에게 죽을 뻔 했던 이재오가 박근혜에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결국에는 박근혜 당선을 위해 나섰다. 김덕룡과 이재오는 결국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그 딜렘마의 근원은 김영삼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3. 김무성의 발탁과 보수대연합 전략

 

 

영포회 수첩 캡쳐

 

주지하듯이 김무성은 친박의 2인자였다. 그는 친박이라는 이유로 총선 공천도 받지 못할 정도로 친이계의 보복을 당했다. 전형적 경상도 마초 스타일이나 김영삼과의 밀접한 관계로 미루어 보건데 박근혜와 궁합이 맞지 않다. 그가 친박 진영에 가담한 것은 의외였다. 역시나 김무성은 박근혜에게 차이고 친이계로 변신했다. 그의 아버지(김용주, 박정희와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음)가 포항에서 학교와 사업체를 운영했고 어려서 포항에 살았고 또 포항에서 사업체를 운영했던 적이 있다. 이런 사정으로 김무성은 ‘영포회’의 명예회원이었다. 그리고 앞서 살펴 보았듯이 이명박과 김영삼의 우호적 관계 등을 고려하면 김무성이 친이계로 변신한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김무성은 박근혜가 주도한 4.11 총선에서 다시 물먹었다. 친박이라는 이유로 또 친이(혹은 배신자)라는 이유로 총선에서 연거푸 공천을 받지 못하는 기이한 경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김무성의 거취가 ‘친이연대’(‘친박연대’의 복사판) 형성 가능성의 시금석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무성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거취는 총선은 물론 박근혜의 대선 전략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캠프 진용이 위기에 처하자, 김무성을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그 직함에 관계없이 김무성은 대선을 총괄하는 야전사령관직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김무성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은 오래 전부터 ‘종북좌파 집권 저지’ ‘백의종군’ 등의 큼지막한 글씨로 도배되었다(지금까지도). 그의 이러한 처신과 발언은 지난 날의 수모들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게 다시 충성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였다.

박근혜는 그녀의 아버지를 배신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런 뼈아픈 경험들 때문에 배신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편이다. 따라서 배신자 김무성을 재발탁한 것은 정말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파격적 발탁의 이유를 살펴보면 박근혜 진영 대선전략의 대충을 가늠할 수 있다.

 

 

김무성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쳐

 

1)산토끼보다는 집토끼 잡기를 중심한 보수대연합 전략으로 기울었다. 이러한 전략에 입각하여 올드 보이들이 대거 결집하고 있다. 친박 친이를 넘나들었던 김무성이 총괄본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실제로 친이계도 대거 전면에 포진되었다.

임기말 레임덕이라지만 이명박은 유력한 수단들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은 KBS와 MBC 사장에 고대 후배인 길환영과 김재철을 배치했다. 박근혜는 ‘이명박근혜’식의 정권심판론이 제기될 위험을 감수했다.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취했던 이회창과 정동영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을 절대 거부했던 이명박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것 같다. TV화면에서 그의 얼굴을 본지 오래다.

2)김무성이 PK출신이라는 점이다. PK지역은 박근혜에게 집토끼이고 텃밭이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모두 부산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PK 지역의 득표율은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이다. 김무성을 통해 김영삼의 미지근한 지지라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김영삼이 ‘박근혜의 숨겨진 자식’을 공공연하게 말했지만, 박근혜측은 그 민감한 발언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대응했다는 소식을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3)네가티브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서 투표율을 낮추어 고정표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무성은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김무성의 막말 수준은 김영삼의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 같다.

4)김무성이 민추협 등 민주화운동 경력자이다. 김무성은 자기들이 민주화운동의 적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이 6월항쟁과 관련이 없다는 허무맹랑한 발언을 했었다. 잊혀진 존재이던 김중태와 김대중의 측근(한화갑, 한광옥)등을 끌여 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김대중의 측근들을 끌여들인 것은 호남의 이탈표를 부수적으로 노린 것이다.

5)김무성의 장악력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높이 샀다. 실제로 그는 총괄본부장에 임명되자마자 사무실에 야전 침대를 가져다 두고 야전사령관으로서 호령했다. 이외에도 김무성 집안의 재력과 화려한 인맥관계도 발탁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미디어오늘’ 기사 참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507

 

 

(보론)

김중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측이 그를 구태여 끌여들이는 것을 보며 참으로 궁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한일회담 반대운동(6.3운동)에서 상징적 존재였다.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속칭 ‘민비연’)의 3인방(김중태 현승일 김도현) 중 한사람이었다. 이들은 민비연사건으로 수차례 고초를 겪었는데 그 배후에 인혁당(1차)이 있다는 식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혁당(2차)이 존재하는 각본의 전사였다.

김중태는 그 지명도를 근거로 정치권 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당했다. 6.3운동 이후 민주화운동과 거의 관련이 없었으며 또 총명이 흐려진 이후의 김지하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들을 한다는 소문만 들었다. 그는 이미 잊혀진 존재였다. 며칠전 박근혜의 광화문 집회 연사로 나선 김중태는 문재인이 “'부엉이 귀신'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갈까 걱정”이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문재인이 “북한에 가선 김일성 무덤에 헌화·참배”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07년 10.4 선언 당시 문재인은 비서실장으로서 청와대를 지켰는데.

내친 김에 한마디만 더하자면, TK지역이 한 때 진보 인사의 메카였다. 민비연의 3인방은 모두 TK출신이다. 4.19직전의 대구에서 2.28시위가 있었고 또 4월혁명 당시 서울대 민통련 핵심 인사들 상당수가 TK출신이었다.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TK는 저항운동과 진보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인혁당 통혁당 남민전 등 지하조직운동에서는 여전히 TK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4. PK지역 혁명 전통의 부활을 기대하며 -9회말 역전-

PK지역의 혁명 전통은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단절되었다. ‘우리가 남이가’ 식의 지역투표만 존재했다. 노무현은 한 명의 청중도 없는 텅빈 곳에서 유세해야 했고(그 황량한 곳이 바로, 농사지은 채소를 어머니가 리어카에 싣고 팔러갈 적에 자주 따라갔던 시장터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에게 거듭 낙선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노무현이 부산 사람이었지만 노무현정권을 자기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4.11총선에서 민주당의 지역색이 대폭 탈색되었지만 정도는 덜했지만 여전했다. 지역투표는 본인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보수 집권을 영속하게 했다. 정치는 물론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다.

박근혜측이 보수대연대, 낮은 투표율, 고정표로 승부하겠다는 시대착오적 전략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PK지역의 충성도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PK지역은 전체유권자의 15.8%(부산 7.2% + 울산 2.2% + 경남 6.4%)로 수도권을 제외하면 가장 다수이다. 물론 박근혜 전략이 적중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그런데 만약 PK지역 충성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이변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또 하나의 혁명이다. 대선에 영향을 미칠 3대 변수는 지역 계급 세대이다. 이중에서도 핵심 변수는 ‘PK지역 득표율’과 ‘젊은 층 투표율’이다. 바로 이 두 가지가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이고 2대혁명 요소일 것이다.

PK 싸나이의 혁명적 반항적 기질과 전통은 현재 야구장에서만 변형된 형태로 잔존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야구 흥행은 롯데 자이언트의 성적에 좌우된다고 한다. SK팬으로 야구광인 지인의 말에 의하면 특히 마산에서 경기하면 이기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PK의 반항아적 기질은 야구장의 ‘부산갈매기’ 노래 가락과 주황색 봉다리로 잔존하고 있을 뿐이다.

 

 

Times 12월 17일자 표지 사진

 

외신들마저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17일자 미시사주간지 Times지의 표지는 ‘The Strongman's Daughter’ 였다. 이 기사를 두고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은 "강력한 지도자의 딸"로 번역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자, Times지는 인터넷판에서 ‘Dictator’s daughter'라고 구태여 수정했다. 참으로 가관이고 국제적 망신이다.

북한은 3대 세습, 남한은 2대 세습으로 나아가려 한다. 한국 사정에 밝지 않은 외국인에게 한반도는 세습이 만연한 전근대 야만의 땅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정권은 물론 재벌도 언론도 모두 세습체제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권력과 부가 대물림되는 사회로 역행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PK 지역의 혁명적 기질과 전통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았다. 이전에는 거리 시위로 혁명을 했었다. 매번 PK 지역이 그 혁명의 종결자 역할을 했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제 PK는 ‘종이폭탄’으로 그 종결자 역할을 다시 감당해야 한다.

이회창이 그랬듯이 박근혜도 오랫동안 대세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회창은 두차례 막판 역전패를 당했다. 문재인도 9회말 역전을 노리고 있다. PK가 바로 역전 홈런을 날리는 종결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PK지역 사람들을 향한 글이니 그 지역분들이 볼 수 있도록 널리 뿌려주십시오"

 

폴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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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로켓 발사,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은?

북한 로켓 발사,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은?

[정욱식의 '오, 평화'] 북한 로켓 발사의 의도와 파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12 오후 12:24:55

 

북한이 12일 오전 9시 51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로켓 발사장에서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고 국내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기술적 결함과 강추위로 발사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온 것에 비춰볼 때 뜻밖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 로켓의 1단계 추진체는 변산 반도 서쪽으로 떨어졌고, 2단계 추진체는 필리핀 해상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북한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기구에 통보한 낙하 예상지점과 비슷한 위치이다.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도 오전 11시23분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운반로케트 '은하 3호'를 통한 '광명성 3호' 2호기 위성의 발사가 성공했다"며 "위성은 예정된 궤도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안보리 대응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광명성 3-2호'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강경책을 주도해온 한국과 일본 정부는 즉각 긴급 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곧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4월 광명성 3호 발사 직후 의장성명을 통해 추가 발사시 자동적으로 안보리 회의를 소집한다는 '방아쇠(trigger)' 조항을 명시한 바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응과 관련해 관심의 초점은 그 형식과 수위이다. 우선 2009년과 올해 4월처럼 의장성명 수준의 형식을 채택할지, 아니면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결의안 형태를 채택할지가 주목된다. 또한 제재의 수위도 금융제재와 해운제재를 포함한 고강도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일부 제재 조항을 추가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지도 관심사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열쇠는 북한의 우방국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비판하는 데에는 동의하겠지만 과도한 대응은 상황을 통제불능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냉정과 자제'를 촉구할 전망이다.

내년 1월 출범을 앞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2기도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의 로켓 발사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고 추가 제재가 부과될 것이라고 경고는 했지만, 강경 대응이 야기할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 맞대응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응과 맞대응이 악순환을 형성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통제불능으로 치달을 수 있고, 이는 이란 핵문제와 시리아 사태 대응 등 미국의 우선순위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

▲ 지난 4월 북한이 광명성 3호를 쏘아올리기 위해 서해위성발사장에 설치했던 '은하-3' 로켓의 모습 ⓒAP=연합뉴스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은?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미칠 영향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는 작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가 미칠 영향은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부동층의 향방이다. 보수 언론의 주도 하에 대북 강경 여론이 커지고 이에 편승한 새누리당의 강경 대응론이 득세할 경우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 및 이번에도 확인된 정보 판단 실패론이 제기될 경우 박 후보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또 하나는 투표율에 미칠 영향이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율이 낮을수록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는 소폭이나마 투표율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로켓 이슈가 다른 이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고 이는 대선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킬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섣부른 예단은 피해야하겠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가 박근혜 후보에게는 호재로, 문재인 후보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어제 만난 중국의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은 '남한 대선 개입용'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이명박 정부나 새누리당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박근혜 후보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북한 내 강경파가 박 후보를 돕기 위해 무리하게 로켓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타당성을 떠나 북한의 로켓 발사는 남북한 강경파 사이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 보인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남북한의 지도자들은 독재자의 딸과 아들'이라는 국제사회의 조롱어린 시선도 커질 수 있다.

2012년의 코리아의 이미지가 박정희와 김일성이 남북관계를 악용해 영구 집권을 꿈꿨던 1972년과 오버랩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퇴행과 발전 사이에서 운명적 선택을 해야 할 몫은 우리 국민에게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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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민주당 불법사찰"...경찰은 압수수색 영장 검토

국정원 "민주당 불법사찰"...경찰은 압수수색 영장 검토

[역삼동 현장] 민주 "경찰, 압수영장 신청하겠다고 했다"... 의혹 당사자, 혐의 부인

12.12.11 20:29l최종 업데이트 12.12.12 13:40l
강민수(cominsoo)

 

 

[8신 : 12일 낮 12시 10분]
국정원 대변인 적극 해명... "민주당의 국정원 직원 사찰"

국정원 대변인이 12일 오전 10시 30분, 역삼동 오피스텔 1층에서 브리핑을 갖고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적극 해명했다. 민주통합당이 김씨의 역삼동 오피스텔을 봉쇄한 지 15시간 만이다.

대변인은 "민주당측이 완력을 써서 폭언을 일삼고 가족들의 자택 출입을 막는 등 국가 공무원 감금행위를 저질렀다"며 "개인에 대한 불법 사찰 및 명예훼손이자 국정원을 향한 테러"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해당 직원이 경찰과 기자들에게 자신의 가정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려고 했으나 민주당이 막무가내로 문을 두드리고 IT 전문가까지 들어간다고 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공식적인 법적 조치를 요구한 것"이며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된 것에 대해 해당 직원은 민주당 관계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을 아무런 근거 없는 정치적 목적으로 끌어들여 마타도어를 하고 있는 데 대해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브리핑 후 국정원 대변인과 기자들이 가진 일문일답이다.

- 민주통합당이 미행하고 불법사찰 했다는 근거가 있나?
"민주통합당 관계자가 우리 직원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오피스텔 607호에 나타나 직원을 당황하게 한 것으로 볼 때 사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김씨가 여기서 2년 살았다고 하는데 등기부등본만으로 확인이 부족하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해당 직원의 본가가 서울 성북구여서 직원의 어머니가 딸이 출근하기 너무 멀어서 2년 전 오피스텔 구입해서 매일 출퇴근하게 됐다. 세부적인 근거는 찾아보겠다."

- 국정원 차원의 노트북 조사가 있었나?
"안 했다. 저도 사실은 이 컴퓨터 안에 한 점의 의혹도 없고 민주당이 주장한 내용이 없어서 저와 직원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럴 바에 민주당이 해달라는대로 해주자. 같이 공개해버리자라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은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다. 공인은 합법절차를 받아야지 윽박지르며 강제적으로는 할 수 없다. 영장 청구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해야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완력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공인 입장에서 받아들일 것은 아니다."

국정원 대변인 "우리 직원의 말을 믿는다", 의혹 반박 제시 못해

- 노트북에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에 대해 확인했나?
"본인이 어제 인터뷰에서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 직원 증언 말고 다른 루트로는 확인했나?
"뭐를 더 확인하나.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라 사실관계 확인하고 있다. 만약 사실관계가 나오면 보도자료 배포하겠다."

- 15시간이 지났는데 자신있게 말하는 근거는?
"우리 직원을 믿는다. 지금 우리가 컴퓨터 들여다볼 수 없다. 컴퓨터를 봐야 확인할 수 있지 않나."

-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나?
"그건 수사기관에서 정식으로 조사해서 밝히면 될 것 아닌가."

- 왜 근거없이 민주당이 사찰했다고 비방하는 것인가?
"진실이 왜곡돼 있어서 질문하는 것에 답하는 것이지 비방이 아니다. 팩트를 말하는 것이다."

- 민주당에 대한 형사고발 시점은?
"빠른 시일내에 할 것이다. 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후 대변인은 기자와 민주당 관계자와 함께 김씨의 집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민주당 측은 "경찰의 압수수색 전까지는 열어 줄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이 대변인은 추후 상황을 지켜보자며 오피스텔을 떠났다. 이날 오전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검토 중이다.

한편, 강남구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이 사건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고 "구체적 위법 증거가 발견되거나 국정원 직원 스스로 컴퓨터를 임의 제출하지 않는 이상 행정조사권 행사는 어렵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오피스텔 내부 조사에서 위법으로 볼 만한 증거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고 제보자도 위법이라고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선관위는 전날 오후 민주통합당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제보를 받고 경찰과 함께 김씨의 오피스텔을 방문한 뒤 신원을 확인하고 돌아간 바 있다.

[7신 : 12일 오전 4시 24분]
의혹 당사자 "2년 전부터 거주... 문재인 비방 글 쓴 적 없다"의혹 부인

경찰관이 벨을 누르며 문을 열어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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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원장 원세훈)의 불법 정치개입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김아무개씨가 "불법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12일 오전 3시 10분쯤 국정원 주선에 의해 <연합뉴스>가 취재진 대표로 한 전화 인터뷰에서 "(국정원 안가로 의심받고 있는 곳은) 2년 전부터 실제로 사는 공간"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절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작성한 적이 없고, 정치적 중립을 분명 지키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11일 오후 6시경 집 앞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경찰을 만났을 때 국정원 소속임을 부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정원 직원이라면 당연히 신분을 속이는 게 맞는데 거짓말이라고 하면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당초 '오빠가 오면 사실관계 확인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나중에는 '정보통신기술(IT) 전문가가 들어올 경우 협조할 수 없다'며 번복했냐는 질문에는 "오빠가 오면 (경찰·선관위 등과) 얘기하겠다는 것이었지 들어오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의 소속과 업무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다음은 김씨와 취재진의 일문일답.

- 처음에 왜 국정원 직원 아니라고 거짓말 했나.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면 곤란하다. 부인하는 건 당연하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당연히 신분 속이는 게 맞다."

- 문재인 후보 비방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가.
"절대로 그런 적 없고. 정치적 중립을 분명히 지키고 있다."

- 국정원 3차장 산하 정보심리국 안보팀 소속이라고 들었다.
"구체적인 조직 내용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

- 그럼 현재 소속은 어디고, 부서 업무는 무엇인지 알려달라.
"말할 수 없다."

- 경찰 관계자에게 '오빠가 오면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왜 'IT 전문가 들어오면 협조할 수 없다'고 번복했는가.
"'오빠가 오면 얘기를 하겠다'였지, '선관위 직원이든, 경찰이든, 기자든 집에 들여 얘기하겠다'라는 말은 안 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이 국정원 사무실이라는 기사가 있던데, (경찰 등에게 집안에) 들어와서 필요하면 촬영까지 하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제해가겠다더라. 개인용 컴퓨터고, 사생활이 있는 걸 열고 협조할 사람이 없다. 법적인 절차에 따른다면 응하겠으나 막무가내로 집 앞에서 진을 치고, 문을 두드리고, 벨 누르는데 문을 열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있는가."

- 이 오피스텔이 본인이 실제로 살고 있는 있는 곳 맞나.
"부모님 오셨을 때 등기부등본도 들고 왔다. 서류 보면 알겠지만 2년 전부터 실제로 사는 공간이고, 집안 내부 촬영한 것을 보내드릴 수 있다. (국정원) 사무실 아니다. 사무실을 개인 생활처럼 뚝딱뚝딱 만들 수 없다.

아까 처음에 선관위 직원과 경찰을 만났던 순간은 당황스럽게 이뤄진 상황이었다. 그들이 확인하고 간 뒤 밖에서 큰 소리 나고, 수십 명이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는데 누가 겁 안 나고 당황스럽지 않겠나? 겁이 나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 먼저 언론에 인터뷰를 하자고 한 이유가 있다면.
"상황이 억울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집 앞에서 모여있는 게) 몇 시간째인지…. 저는 여기서 이사가야한다. 어떻게 살겠나? 필요하면 등기부등본도 보낼 수 있다. 너무 억울하고, 솔직히 문 연 것도 그렇지만(김씨는 12일 0시 15분쯤 살짝 문을 열었다가 곧바로 닫았다) 사생활 침해다."

- 오늘 밤 문 열고 조사 응할 생각 있는가?
"(경찰 등이) 집 안에 들어와서 확인은 하되 무조건 PC를 보라고 할 수 없다."

- 경찰이 12일 아침 영장을 받아서 강제수사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법적인 절차는 따르겠다."

- 한 번 더 묻겠다. 이번 대선 관련 글을 인터넷에 남긴 적이 없나.
"아까도 말씀드렸으나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고 관련된 댓글 남겨본 적 없다."

[6신 : 12일 오전 2시 58분]
민주당 "수서경찰서장이 압수수색영장 신청하겠다고 했다"

우원식 민주당 중앙선대위 총무본부장은 "오늘(12일) 아침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예정이고, 그때까지 경찰과 민주당 관계자들이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홍영표·강기정 의원이 관할서인 수서경찰서 서장을 만나서 '컴퓨터를 켰거나 컴퓨터로 작업 중이면 현행범이지만 그렇지 않아서 영장 없인 강제로 컴퓨터를 볼 수 없었다'고 들었다"며 "오늘 아침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 영장을 받은 뒤에 컴퓨터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관위와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며 당 관계자 일부가 남아 압수수색 전까지 현장을 지킬 계획이다.

그는 몇 시간째 대치 상태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을 두고 "맨 처음에 선관위가 김씨의 신원과 범행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수사가 미궁에 빠졌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또 "국정원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 역시 심각하다"며 "이미 증거인멸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히 지난 만큼 선관위와 검찰과 경찰, 국정원이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5신 : 12일 오전 1시 53분]
민주당 "신속한 해결위해 국정원이 조사에 협조해야"... 현장상황 교착국면

현장 상황이 교착국면에 들어간 가운데, 우원식 민주당 중앙선대위 총무본부장은 12일 오전 0시 55분 "저희 신고로 선관위와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가 '자신은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란 김아무개씨 허위답변만 듣고 수사가 미진하게 끝난 것에 유감"이라며 "신속한 해결을 위해선 국정원이 나서서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컴퓨터 데이터는 시간이 갈수록 증거가 인멸될 수 있으므로 검찰과 경찰은 현장을 보존, 빠른 시간 안에 영장을 받아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확보해야 하며 증거 인멸 전에 민주당 입회 하에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우 본부장은 "김씨 본인이 문 열어 협조한다고 한 이후에도 두 시간 가까이 지났고, 그동안 몇 차례 있던 허위 답변과 약속 위반은 명백한 시간 끌기로 은폐조작 의혹이 매우 높다"며 "여기에 협조하는 것으로 보이는 선관위와 검찰, 경찰, 국정원의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전날 김씨가 경찰에게 '가족이 오면 컴퓨터를 포함해 일체의 사실을 확인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 본부장은 같은 당의 박영선 의원이 이번 사안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했다고 밝혔으며, 문용식 온라인 대변인은 김씨의 오피스텔에 있는 노트북은 유선이 아닌 무선와이브로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김씨의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김씨의 오피스텔에 대한 현장조사는 의미가 없다며 이같은 상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대치국면이 길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증거인멸의 시간만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4신 : 12일 오전 0시 26분]
새누리당 "민주당의 국정원 직원 댓글 주장 허위로 드러났다"
이상일 대변인 논평 "정상적으로 대선에 이길 자신 없으니 이런 짓 하는 것"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국정원 직원 댓글 정치개입 활동'주장에 대해 "허위임이 드러났다"며 "민주당은 당사자인 국정원 직원 김모씨와 국정원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의 이상일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11일 오후에 낸 관련 논평에서 "민주당이 쳐들어간 집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사는 곳으로 그는 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포털 사이트 등에 올린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민주당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국정원의 입장 발표를 그 근거로 제시했으나, 현재까지 국정원 직원으로 확인된 김아무개씨의 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 대변인은 또 "민주당이 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대선에서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뒤 "민주당이 정말로 자신 있다면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 김모씨를 당장 검찰에 고발하라"고 요구했다.

[3신 : 11일 오후 11시 30분]
민주당 "매일 아침 '문재인 네거티브' SNS 지침 받아 공작 벌여" 주장

민주통합당 대선 선대위 김부겸 공동선대본부장과 강기정, 문병호, 우원식, 김현 의원 등은 '국정원 인터넷 여론조작' 현장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오피스텔을 방문해 "국정원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며 "국정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병호 의원은 "오래 전에 제보를 받아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을 추적해 이 장소와 사람을 파악하게 됐다"며 "개인이 아닌 국정원의 특정국에서 계획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관련 국에서 매일 아침마다 회의를 하고 SNS와 관련한 문재인 후보 네거티브 지침을 매일 받아 공작을 벌이고 있다"며 "약 70명의 요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제보받았다"고 전했다.

문 의원은 "(문재인 후보, 민주당과 관련한) 악성댓글이나 새누리당을 선전하는 댓글을 추적한 결과 오늘 이 장소와 이 사람을 확인하게 됐다"며 "오늘 현장은 빙산의 일각이고, 다른 현장에서도 똑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원식 의원은 "이 오피스텔 문을 열어 의혹을 해소해야 사건이 빨리 해결된다"며 "본인이 문을 열고 나와서 해결해야지 이렇게 대치하는 것은 의혹만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민주당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사건이어서 이것을 매우 엄중한 사태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에서는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S오피스텔은 김씨의 주거지라고 주장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인터넷 여론조작'을 위한 '안가'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곳이 김씨의 애인집이라거나 모친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수서경찰서의 한 간부는 "오피스텔 안쪽에 있는 컴퓨터를 포함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체의 사실을 확인해준다고 김씨가 약속했다"며 "김씨가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친오빠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간부는 "가족이 온 뒤 마음을 진정시킨 뒤 필요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준다고 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신고됐는데 수사를 할 만한 객관적인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수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신 : 11일 오후 10시 9분]
국정원 "우리 직원 맞지만, 정치활동은 사실무근"
입장 보도자료 "직원 개인거주지... 법적 대응 검토"

민주당이 국가정보원 여직원이 국내정치 현안과 관련해 댓글을 다는 등 정치활동에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데 대해 국정원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국정원은 11일 오후 9시 40분경 보도자료를 내 "민주당 측이 주장하는 역삼동 오피스텔은 국정원 직원의 개인거주지"라며 "명백한 증거도 없이 개인의 사적공간을 무단 진입해 정치적 댓글 활동 운운한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어 "정보기관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은 네거티브 흑색선전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면서 "국정원은 이번 대선 관련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은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직원으로 밝혀진 김씨는 앞서 <오마이뉴스>와 한 문답에서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국정원에 의해 바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 국정원 직원으로 확인됨에 따라 '국정원 인터넷 여론조작 의혹'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됐다.

한편, 현장에 출두한 수서경찰서의 한 간부는 "제보자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을 경찰에서 진술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고, 그분도 진술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가장 중요한 선거법 위반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신 수정 : 11일 오후 9시 39분]
민주당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서 여론조작"

민주당 당직자 등이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 앞에서 대치중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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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역삼초등학교 앞 S오피스텔 6층. 이곳에 경찰과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민주통합당에서 제보받아 넘긴 '불법선거 의혹'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민주통합당은 이 오피스텔에서 국정원의 한 여성직원이 국내정치 현안과 관련해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거나 트위터 등에 글을 올리는 등 불법선거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해 국정원의 '정치 관여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자 "국정원 직원인가?"-김씨 "아니다"... 민주당 "국정원 직원 맞다"

경찰과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기다린 지 10분 정도 지나 의혹의 당사자인 20대 후반의 김아무개씨가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 나타났다. 김씨는 몰려든 사람들에 놀랍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나눈 짧은 문답에서 '국정원 직원 의혹'을 부인했다.

- 오늘 오전에 내곡동에 있는 국정원에 갔다오지 않았나.
"그런 적 없다."

- 그럼 국정원 직원은 맞나.
"아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김씨의 주소지는 서울 성북구 숭인동의 한 아파트였다. 그런데도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70~80만 원(15평평 기준)을 내야 하는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씨가 국정원이 위치한 내곡동을 드나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을 들어 민주통합당은 그가 국정원 직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그가 국가정보원 3차장 산하에 만들어진 심리정보국의 안보팀 소속이라는 것이 민주통합당의 주장이다.

김씨의 동의 아래 경찰과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그의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오피스텔 안에는 침대와 작은 거울, 옷걸이에 걸린 옷들만 단촐하게 있었다. 경찰과 중앙선관위는 김씨의 신분을 확인하는 등 간단한 조사를 벌인 뒤 오피스텔을 나왔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김씨는 국정원 직원이 분명하다"며 "그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증거로 확보해야 한다"고 경찰에 요구했다. 이에 경찰이 다시 오피스텔에 진입하려 했지만 김씨는 1시간이 넘도록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국정원 3차장 산하 정보심리국 소속 직원들의 활동을 추적해온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3차장 산하의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개편해 이곳에 76명이 소속됐고, 이들이 인터넷 정치현안에 댓글을 다는 등 국내정치에 개입해왔다"며 "주로 서울 강남과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미사리) 일대 카페에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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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12,12사태'와 직무유기 '선관위'


 

 

 


12월11일 저녁 7시, 민주당 강기정,우원식,조성식 본부장과 김현 대변인이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소재한 성우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를 방문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정보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정보단이라는 조직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되었고, 거기에 소속된 요원들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여 문재인 후보의 낙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제보 때문입니다.

민주당 의원과 관계자들이 말한 바로는 국정원 심리정보국이 아침마다 모여 지침을 받고, 이들이 SNS상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이나 글을 올리는 조직적이면서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했다고 합니다.

민주당은 지난 10월부터 관련 제보를 받고 조사를 하던 중 관련자가 강남구 역삼동 성우스타우스 오피스텔에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12월 11일 저녁 오피스텔에 도착했습니다.

 

 

▲2012년 12월12일 오전 3시 현재 상황,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모씨를 만나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국정원 직원이 맞느냐'고 물었지만 김모씨는 '(국정원 직원)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1분 만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추후 국정원은 김모씨가 국정원 직원이고, 오피스텔은 직원 개인의 사적인 주거공간이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김모씨에게 문을 열고 관련 자료 제출 협조를 부탁했지만, 김모씨는 사람이 많아 친오빠가 오면 문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친오빠가(?)가 왔지만, 하드디스크는 제공할 수 없다고 하면서 12월12일 새벽 3시까지 문을 열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문을 열지 않고 있어 민주당 관계자와 기자가 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12월12일 새벽 3시 현재

 


만약 김모씨가 아무런 혐의도 없거니와 의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개인공개 노출 금지를 전제로 선관위와 민주당 관계자들에게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밤새 계속 문을 잠그고 버티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의혹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만약 국정원 직원이 온라인상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굉장히 충격적이면서 대선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국정원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정원법>

제9조(정치 관여 금지)

① 원장·차장과 그 밖의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제1항에서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1.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결성 또는 가입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행위
2.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3.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위하여 기부금 모집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행위 또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의 자금을 이용하거나 이용하게 하는 행위
4.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관련 대책회의에 관여하는 행위
5. 소속 직원이나 다른 공무원에 대하여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그 행위와 관련한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거나 이를 약속 또는 고지(告知)하는 행위 [전문개정 2011.11.22]

제18조(정치 관여죄) ① 제9조를 위반하여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 제1항에 규정된 죄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전문개정 2011.11.22]


국정원법 제9조에 따르면 국정원 원장과 차장은 물론 그 밖의 직원 모두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특정 정당이자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이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을 유포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이는 국정원 직원 개인의 독단적인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현역 군인이 이명박 대통령 관련한 욕설을 SNS상에 올려 기소됐고, 이후 징역 6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사례를 경험했습니다. 국정원은 과거 정치에 개입한 역사가 있기에 이번 사태는 더욱 엄중하고 철저히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현역 대위에 이어 특전사 중사도 'MB모욕죄' 오마이뉴스>


문제는 선관위입니다. 선관위는 민주당이 의혹을 제기할 당시에 오피스텔의 각종 자료를 증거 수집 차원에서 가져올 수 있고, 김모씨에게 수사를 위해 동행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공직선거법 [일부개정 2012.10.02 법률 제11485호] 제272조의2(선거범죄의 조사등)

① 각급선거관리위원회(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를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위원·직원은 선거범죄에 관하여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후보자(경선후보자를 포함한다)·예비후보자·선거사무장·선거연락소장 또는 선거사무원이 제기한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는 소명이 이유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또는 현행범의 신고를 받은 경우에는 그 장소에 출입하여 관계인에 대하여 질문·조사를 하거나 관련서류 기타 조사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개정 2004.3.12, 2005.8.4>
② 각급선거관리위원회 위원·직원은 선거범죄 현장에서 선거범죄에 사용된 증거물품으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조사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현장에서 이를 수거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 선거관리위원회위원·직원은 수거한 증거물품을 그 관련된 선거범죄에 대하여 고발 또는 수사의뢰한 때에는 관계수사기관에 송부하고, 그러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점유·관리하는 자에게 지체없이 반환하여야 한다.
③ 누구든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장소의 출입을 방해하여서는 아니되며 질문·조사를 받거나 자료의 제출을 요구받은 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
④ 각급선거관리위원회위원·직원은 선거범죄 조사와 관련하여 관계자에게 질문·조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동행 또는 출석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선거기간중 후보자에 대하여는 동행 또는 출석을 요구할 수 없다.

⑤ 각급선거관리위원회위원·직원은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이 법에 위반되는 행위가 눈앞에 행하여지고 있거나, 행하여질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현장에서 행위의 중단 또는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⑥ 각급선거관리위원회위원·직원이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장소에 출입하거나 질문·조사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관계인에게 그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고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한다.
⑦ 제1항 내지 제6항의 규정에 의한 소명절차·방법,증거자료의 수거, 증표의 규격 기타 필요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개정 2000.2.16, 2002.3.7>


선관위는 현행범의 신고를 받으면 그 장소에 출입하여 관련 서류나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고, 자료의 제출을 요구받은 자는 이에 응하여야 합니다. 또한, 그 장소를 출입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분명히 공직선거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번 '국정원 12,12 사태'의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국정원 직원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국정원 직원 김모씨는 오피스텔에 온 선관위와 경찰,민주당 관계자에게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후 김모씨는 국정원 직원임이 밝혀졌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합니다.

○ 무엇이 두려워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까?

만약 국정원 김모씨가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과 다르게 아무런 불법 선거 운동이나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왜 문을 열고, 컴퓨터 하드와 관련 자료를 보여주지 못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법으로 명시된 기록물 보존 절차조차 공개하라고 하는 세상인데, 일개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를 볼 수 없다는 점이 굉장히 의아할 뿐입니다.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가 기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반박

국정원 직원이 모두 대단한 수사관이고 기밀을 다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의 국정원 직원은 정보관 (Intellingence Officer)입니다. 이들은 취재기자처럼 첩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자료와 정보를 수집합니다. 이런 정보를 모아 분석해 중요한 정보만 뽑아 분석하는 사람을 분석관(Analyst)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런 분석관의 자료가 기밀 자료에 속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 국정원 국내파트 (일명 대통령부나 섀도 캐비넷) 정보관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모은 자료를 분석관에게 주면, 분석관이 현재 상황의 문제점과 대응책 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이 문서가 실제적인 기밀문서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문서의 작성에서 가장 많이 참고하는 자료가 경찰청의 정보인데, 이런 경찰청 정보는 단순히 국정원 개인 직원의 컴퓨터로 발송하지 않습니다.

보안을 생명으로 사는 국정원이 직원 개인 노트북에 기밀문서를 담게 한다는 자체가 보안절차를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결국, 국정원 김모씨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국정원 기밀문서가 들어 있을 확률은 별로 없습니다. 보안화된 USB에 있으면 몰라도...



○ 경찰은 왜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을까?

관할 수서경찰서는 초기 김모씨의 방에 들어갔을 때, 김모씨가 컴퓨터를 켜서 작업하고 있었다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지만, 컴퓨터로 작업하지 않고 있었기에 체포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 초동수사에 소홀했던 선관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초기 선관위 직원이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는 말만 믿고 현장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관련 법규에 따라 현장을 보존하고, 관련 하드 디스크와 같은 증거를 확보했다면 벌써 초기에 사태가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선관위가 대선의 가장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사태를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업데이트>
1) 12월12일 새벽 3시 30분
국정원 직원 김모씨는 오후 3시 10분쯤 국정원 주선에 의해 취재진 대표와 전화를 통해 자신은 "절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작성한 적이 없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친오빠가 오면 사실 관계 확인을 해주겠다고 했던 발언에 대해서는 '오빠가 오면 경찰과 선관위와 얘기하겠다는 것이었지, 들어오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현재 영장을 청구한 상태이고, 영장이 발부되면 경찰과 선관위가 김모씨 오피스텔에 들어가 조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2) 12월12일 오전 10시

강남구선관위는 12월12일 오전 민주당의 선관위가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을 방조했다는 주장에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강남구선관위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관련 보도자료. 출처:중앙선관위


선관위는 오피스텔내 컴퓨터를 확인하지 않고 나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3. 오피스텔내 컴퓨터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퇴거한 사유
○ 지도계장 등은 여성에 대한 신원 및 오피스텔 내부 상황을 확인한 결과, 유사기관 등 불법선거운동을 하였다고 단정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되어 따라 들어온 제보자에게 “다 끝났죠”라고 조사가 종료되었음을 고지하였음에도 추가 조사요구 등의 이의제기가 없어 19:34분경 오피스텔에서 퇴거함. ○ 오피스텔에서 퇴거한 후 민주통합당 문병호 국회의원이 지도계장에게 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대하여 항의하였으나, “제보자와 함께 여성의 신원과 오피스텔 내부 등을 확인하였다”는 지도계장의 답변을 듣고 이내 수긍하였음.
○ 우리위원회로서는 최초 제보 접수시부터 오피스텔내에서 조사를 마칠때까지 제보자를 비롯한 어떤 이로부터도 국정원 직원이 연루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었고, 또한, 조사과정 중 위법의 혐의가 있다고 볼만한 사소한 혐의조차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여성이 혼자 주거하는 가정집으로서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많아 더 이상의 조사가 불가능 했으므로 오피스텔에서 퇴거한 것임.


선관위 주장은 오피스텔에 갔지만, 어떤 선거법 위반 혐의가 없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는 컴퓨터입니다.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에 조사를 요청했는데, 컴퓨터를 조사했지만 관련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말은 없고, 오로지 컴퓨터를 제외한 방을 봤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선관위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위해 방을 봤지만, 방에는 그런 흔적이 없기에 컴퓨터를 보지 못했기에 나왔다는 말은 해커 집에 갔는데, 해커의 방에 해킹 흔적이 없어서 컴퓨터는 놔두고 왔다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저만일까요?

3) 12월12일 12시 30분

민주당은 12월12일 오전 10시20분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관련 브리핑을 했습니다.

민주당에 접수된 제보로는 국정원은 작년 11월부터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 담당부서를 (국정원은 1차장은 해외,대북 분석, 2차장은 국내 정보 수집과 분석,대공수사, 3차장은 통신감청,위성,항공사진 판독 등 과학정보 업무)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키고 그 안에 안보 1,2,3팀으로 명명된 세 개의 팀을 신설했다고 합니다. 그 안에 70여 명이 배치되 개인별 노트북을 지급하고 매일 주요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게재할 댓글 내용을 하달했왔다고 합니다.

국정원은 청사 내부에서 요원 다수가 정치현안이나 야당인사들에 대한 댓글을 달 경우 아이피 주소 추적 등에 의해 발각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국가 정보원 청사 외부로 나가서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으로 대치 상태에 있던 김모씨는 12월7일부터 오전 11시 출근 오후 2시에 퇴근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것은 민주당이 제보받았던 심리정보국 직원들의 근무행태와 일치한다고 민주당 진성준 대변인은 밝혔습니다.

' 오히려 역풍을 맞았던 초원복집 사건'

우리가 이번 사태를 보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92년 일어난 '초원복집' 사건입니다.

 

▲ 초원복집 관련 동아일보 기사.

 


14대 대선을 사흘 앞둔 1992년 12월11일 부산의 '초원복집' 식당에는 김기춘 전 법무무장관, 정경식 부산지검장,박일룡 부산경찰청장,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등 8명의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해대며,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선거지원을 모의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다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 되면 부산·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당시 민주당 김대중 후보와 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이런 민자당의 관권선거와 부정선거를 규탄했지만, 오히려 상황은 거꾸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호재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보수 언론의 'YS 편들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초원복집' 사건의 본질인 불법 선거는 뒤로 숨겨놓고, 오로지 이날 대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불법 도청'만을 문제 삼아, 대선판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 초원복집 관련 동아일보의 바뀌어진 논조 기사

 


이번 국정원 12,12사태도 이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벌써 흑색선전이라고 하고, 일부 언론은 오히려 민주당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이제는 달라졌다고 봅니다. 그것은 2012년 지금은 단순히 언론이 진실이라고 믿고 살던 어리석은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SNS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진실을 밝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에, 사건의 본질과 무엇이 문제인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과 신군부가 성공한 뒤 찍은 기념사진.

 


1979년 12월12일 전두환과 노태우는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등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살았습니다. 이들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오로지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2012년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왜 문을 잠그고 사태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지 현재 시각으로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불법과 비상식적인 일이라면 국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정원 일개 직원의 사생활이라는 논평이나 국정원장의 사표로 일이 마무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증거가 없다는 발표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일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번 사건을 제대로 파헤쳐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한 점의 의혹이라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선관위와 국가기관에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지 않거나, 그저 의혹이니 신경 쓰지 않는 무관심이 자꾸 국민들 속에 퍼진다면, 또다시 1979년 12,12 군사 반란처럼 특정세력에 의한 쿠데타나 불법이 자행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밤새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흐를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 글을 올립니다. 사건 내용에 따라 계속해서 글을 업데이트하거나 수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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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받은 6억 원이 바로 지하경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2/12 08:33
  • 수정일
    2012/12/12 08:3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가 충청권 방문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충북이었다. 이정희 후보는 한라스텍폴 노조 지도부와 간담회를 갖고 현장을 돌며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어 청주 육거리 종합시장을 찾아 유세를 펼쳤다. 이 후보는 박 후보의 “지하경제 활성화” 발언을 꼬집으며 “박 후보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받은 6억 원, 이게 바로 지하경제”라고 비판한 뒤 “유신 부활을 막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노동자들 “박근혜 후보를 꼭 떨어뜨려 달라”
 
충북 방문에서 이 후보가 제일 처음 찾은 곳은 ‘한라스택폴’이었다. 한라스택폴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전체 직원이 300여 명이고 노조원은 206명이다. 현장을 방문한 이 후보를 알아보고 먼저 달려와 반갑게 맞아 기념사진을 찍자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특히 이곳은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이다. 임병수 사무국장에 따르면 사원 공채를 할 때 일정비율을 여성노동자로 뽑는다고 한다. 여성 노동자인 김소라 씨와 윤은진 씨는 이 후보를 만나 “기분이 좋다”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씨는 “여성들의 일자리를 넓히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유청산 씨는 “이번에는 안 되더라도 다음에는 꼭 대통령이 돼 좋은 정책을 많이 펴달라”며 “3차 토론에선 더 강하게 발언해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임재홍 씨는 이 후보와 인사를 나눈 뒤 “화이팅!”이라고 응원했다. 임 씨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봉식 씨는 “박근혜 후보를 꼭 떨어뜨려 달라”며 이 후보의 손을 굳게 잡았다. 정 씨는 “박근혜 후보는 절대 안 된다. 박 후보가 당선되면 옛날 정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마지막에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했다. 남덕희 씨는 “TV 토론 잘 봤다”며 “3차 토론에선 정책적으로 와 닿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라스택폴노조 송채섭 부위원장과 오병수 사무국장 등 노동자 20여 명과 함께 한 간담회에선 원청의 하청 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제도 개선, 주간연속 2교대 확산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후보 “진보적 정권교체 위해서 노동자가 힘 키워야”
 
이 후보는 “대선 판이 좀 흔들리는 것 같다. 열심히 살지만 자기 목소리 못내는 노동자, 농어민, 청년들 얘기 전하려고 했다”며 “한국 사회 금기에 계속 돌을 던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노동자들의 힘을 모으고 얘기를 전달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교육, 언론 얘기 남아있다. 생각하시는 것 있으면 전할 수 있게 얘기해 달라”며 “진보적 정권교체의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 더 낮은 자세로 함께 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아 후보는 이어진 노동자들의 질문을 경청하며 성실하게 답변했다. 오 사무국장이 “원청의 하청 생산단가 후려치기 심각하다. 이것이 노조의 압력으로 오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진보당의 의견을 말해 달라”고 묻자, 이 후보는 “2008년 이슈가 돼 원자재 안정제법을 발의했다. 임금인상분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를 대기업과 하청기업에 맡겨놔선 안된다. 전체적인 틀도 마련하고 개별사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임금에 대한 가격연동제, 최저입찰가 문제를 출수 있는 대안을 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법 개정안을 낼 것”이라며 “중요한 건 이 의제를 부여잡고 끈질기게 밀고 가는 한 노조, 집단이 있어야 한다. 중소상인 문제도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곳이 있어 풀렸다”고 강조했다.
 
이상영 씨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대기업에서 소기업으로 짧은 시간에 전파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후보는 “야근이 필요한 응급실 아니면 낮에 일하고 밤에 자도록 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내년 3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하는데 빨리 퍼지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정권교체를 이루고 노동자가 힘을 갖도록 해 노동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이를 국민이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완주할 거냐”는 노동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 후보는 “기본은 완주다. 어떡해든 정권교체도 하고 진보적 지지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심이 없으면 어떻게 선거 치룰 수 있겠냐. 판은 흔들었으니 남은 기간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 현장의 얘기 들으면서 판단할 생각”이라며 “정권교체는 꼭 한다. 진보적 내용으로 할 것이다. 잘못되거나 그릇된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끝으로 “진보적 의제 술술 풀릴 것이라 생각 안한다. 여전히 참여정부 실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시대의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힘을 많이 쌓아야 한다”며 노조 조직률 50% 공약을 소개하며 노조가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어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그 정부를 민주정부로 만드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를 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있는 노조는 탄탄하고 활발해야 하고, 그 노조들이 해 나가는 걸 통합진보당이 뒷받침하고 여론화시켜야 한다. 미조직비정규직을 노조 묶어내서 튼튼히 해나가지 않으면 참여정부로 돌아가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 청주 유세… “대통령이 세금 안내고 부자들 안내니 서민들은 서럽기만”
 
간담회를 마친 뒤 이 후보는 청주 육거리 시장으로 이동해 유세를 펼쳤다. 시장 상인 들을 포함한 시장 상인들은 이 후보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 후보가 연설을 시작하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세를 경청했다. 기자에 둘러싸인 이 후보와 인사를 나누겠다며 인파 속을 헤치고 손을 내미는 시민도 있었고, 이 후보의 손을 꼭 잡으며 지지를 다짐하는 시민도 있었다. 육거리시장 상인인 남옥선 씨는 “유일한 바람은 서민이 잘 살게 되는 것”이라며 이 후보에게 “재래시장이 장사가 안 된다. 재래시장을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연설에 나선 이 후보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얘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 후보는 “이곳 육거리 시장에 오니 어린 시절 명절 전날이면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두부공장에서 명절 대목으로 만든 두부를 팔고, 이곳 충북 청원 남일면에 있는 큰집에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 충북 청주시민 만나면 시골 큰집 간 것처럼 따듯하다”면서 “모두가 서럽지 않고 아프지 않고 억울하지 않은 세상 만들고 싶다. 서민과 함께 살아온 사람, 서민의 마음 이해하는 사람, 서민의 눈물 닦으며 걸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 함께 책임지고 나가는 미래를 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어 “두 번의 티비토론을 봤을 것다. 그동안 못 들었던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첫 토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뿌리 확인했다. 한국근현대사에서 단 한 번도 거론된 적 없던 그 이름을 확인했다”고 충성혈서를 쓰고 일본군이 된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후보는 또 “시장 상인들 얼마나 힘드냐. 새벽 일찍 밤늦게 쉴 시간도 없이 얼마나 애쓰고 살았나. 박 후보 어떻게 살았나. 청와대 살다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그때 돈 6억 원, 당시 은마아파트 30채. 현재 300억”을 언급하고 “유신독재의 장물 영남대, 정수장학회 이사장했고, 그 기반에서 청와대 가려한다. 그분의 뿌리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대통령, 고위공직자 할 수 있는 도덕성 갖고 있는지 묻는다”면서 박 후보를 비판했다.
 
이 후보는 10일 토론에서 언급한 세금 문제를 언급하며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받은 6억원, 이게 지하경제다. 재벌들 서러 오고가며 받은 뇌물 이게 지하경제다. 서민들 열심히 일하면 단 하나도 숨기지 않고 세금 낸다. 대통령이 안내고 부자들 안내니 서민들은 서럽기만 하다”며 “대통령 될 사람 지하경제 없앨 생각 확실히 해야 한다. 부정환급 더러운 돈 거기에 대해서 세금 왜 안내는지 세금 물어낼 생각있는 지 확답해야 한다. 박근혜 답하지 않는다. 역사적 책임 다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 “3차토론서도 서민들 절실한 목소리 답답한 마음 다 전할 것”
 
이 후보는 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재집권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 생계 걱정하고 집 걱정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걱정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 에서 딱 한 사람. 그분이 바로 박근혜 후보다, 대한민국의 딱 한 사람인 그가 대통령이 되려한다. 월세 전세 살아봤나. 성북동 고급주택가에 잔디밭 깔린 고급주택 헌납 받아 살았다”며 “여러분 지금 우리에 필요한 사람 누군가. 서민 눈물 닦아줄 서민 대통령인가. 여왕이 필요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꼼짝없이 전통시장은 대형유통마트에 밟히고 밀려났다. 그래서 진보당은 유통법을 발의했고 중소상인들이 나서서 2008년 만들어냈다. 그런데 첫걸음 땠지만 구멍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가려고 한 달에 이틀 대형마트 쉬게 하는 것 한 달에 3일 쉬게 하자는 것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니 새누리당이 반대한다. 민주당도 그냥 지켜봤다”며 “박 후보는 대선 전에 통과시키겠단 말 않고 있다. 민주당도 방관하고 있다. 전통시장 살아나게 만드는 대형유통마트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하루라도 빨리 대선전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런 정권교체를 만들고 싶다. 서민에 꼭 필요한 것이면 나 몰라라 하지 않는 정권교체 만들고 싶다. 서민에 변명안하고 힘 있게, 의지있게 이명박 4대강 밀어붙인 결기 를 넘어서는 신명나는 정치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는 또 농민들의 문제도 언급했다. 이 후보는 “어제 토론에서 농민들 상황을 질문드렸다. 그런데 어떤 반응 나왔나. 농민 인구 20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청년들 가지 않으면 농업이 어렵다. 농업 생산비 보장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보수언론 사회자 뭐라고 했나. 일자리는 농촌과 상관없다고 하고, 문재인후보도 거론해선 안 되는 문제처럼 말했다. 답답했다.”며 “농업이 살아야 국민이 살고 농민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끝으로 “오는 16일 세 번째 토론이 있다. 서민들 절실한 목소리 답답한 마음 다 전할 것”이라며 “정권교체 반드시 만들어내고 서민들 속상한 것들 다 풀릴 수 있도록 진보적 정권교체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충북 유세를 마친 이 후보는 대전과 천안으로 이동해 유세를 이어갈 예정이다.
 





































 
글= 진보정치 황경의·권종술 기자
사진=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박 후보가 받은 6억 원이 바로 지하경제”
 
 
 
황경의 권종술 기자
기사입력: 2012/12/11 [15:44]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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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사회적 발언의 이유

강우일 주교, 사회적 발언의 이유

 
조현 2012. 12. 10
조회수 2700추천수 0
 

 

강우일주교3-.jpg

10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책 출간 간담회에서 강우일 주교. 사진 조현

 

 

 

한국 사회에 현안이 발생할 때 ‘예수님이 온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연스런 질문이다. 어느새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질문을 하며 바라보는 얼굴이 있다. 강우일(67)주교다.

 

그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회의 의장인 때문만은 아니다. 2010년 구제역이 발생할 때부터 “인간들이 잘못 살고 있다”는 판단 아래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핵원전에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이래 ‘침묵’이 대세인 교회지도층의 대사회적 목소리에 목말라온 교인들에게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목마른 대지의 단비였다.

 

 그런 단비들을 모아 바오로딸출판사가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는 세상>을 펴냈다. 50년 전 가톨릭 2천년 역사상 최대의 혁명을 꾀해 성당안의 교회를 세상으로 활짝 열어젖힌 제2차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와 생명 윤리 등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명쾌한 논리를 담은 책이다.

 

 10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연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사회적 발언에 대해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이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번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항의한 분 탓이라기보다는 교회가 충분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지 못한 성직자의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이 모델로 삼는 이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어느 한군데 정주해있기보다는 늘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예수님이 당시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달랐던 점은 그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소외 되고, 밀려 나고, 저주 받던 밑바닥 계층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어울렸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메타노이아(회심)란 내부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다면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을 찾아가는 게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데 왜 교회 지도자들의 그렇지 못하냐”는 질문에 “주교들은 최종 행정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분들이어서 태생적으로 쉽게 움직이기 어려렵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주교들만의 교회가 아니다.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혁명은 ‘하느님의 백성’이 곧 교회라는 것이므로 백성이 움직이면 곧 교회가 움직이는 것”고 말했다. 따라서 백성의 아픔이 있는 곳이 바로 성직자가 가야할 곳이라는 얘기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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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슴이 아파 소주 한 병만 올려달라고 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파 소주 한 병만 올려달라고 했어요"

[고공농성 현장③- 유성기업] 굴다리 난간에서 만난 홍정인 지회장

12.12.10 16:49l최종 업데이트 12.12.10 18:30l
심규상(djsim)

 

 

굴다위 난간 농성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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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울고 네가 웃는 절망 공장, 이겨서 다시 함께 웃자."

유성기업 정문 앞에 내걸린 현수막 글귀가 눈에 쏙 들어왔다. 9일 오후, 정문 안 공장 풍경은 평온해 보였다. 경비실 쪽에서 간간히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선을 정문 앞 도로 쪽으로 돌렸다.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공장을 되찾자..." "투쟁..." 길게 늘어선 현수막이 붉은 깃발과 함께 어지럽게 휘날렸다. 정문을 사이로 풍경은 그렇게 갈렸다.

바람결이 칼칼하다. 깃발을 따라 가던 시선이 마지막 머문 곳은 굴다리 위 난간이다. 농사용 폐비닐과 폐자재를 쌓아놓은 듯 흉흉해 보이는, 그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이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정인 유성기업 지회장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밝은 표정과는 달리 덥수룩한 수염, 초췌한 얼굴... 목에는 굵은 밧줄이 무겁게 걸려 있다.

김순석 유성기업 아산부지회장이 밧줄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설명했다.

"용역회사들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여기저기에서 민주노조가 깨졌나갔습니다. 홍 위원장이 목에 건 밧줄은 민주노조를 지키는 마지막 남은 끈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목에 매고 있어요."

가장 하고 싶은 일 "걷고 싶다"

7m 굴다리 난간 농성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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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m 위에서 홍 지회장의 몸을 떠받들고 있는 것은 한 팔 길이 철재 몇 개에 얹어 있는 나무합판이다. 그 위에 비닐과 하우스용 거적을 덮어 비바람을 피하고 있다. 건물 난간에 얼기설기 지어 놓은 까치집이 연상됐다. 언뜻 보아도 초등학생 한 명이 눕기도 벅찬 공간이다. 다리나 펼 수 있을까?

"구부리고 살아요. 누워서 허공에 다리를 들어 올릴 때만 다리를 펼 수 있어요. 허공에 다리 뻗고, 윗몸 일으키기 하는 게 여기서 할 수 있는 운동이죠."

그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도 거침없이 "걷고 싶다"고 말했다. 움직이라고 있는 발로 허공만을 딛고 있다. 프랑스 모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몸은 좀 어때요?
"처음에는 변비로 고생했는데 지금은 설사를 좀 하고, 소화가 잘 안되네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인지 무릎 관절하고 허리가 안 좋아요."

굴다리 난간, 소음-진동-먼지에 비행기까지

연결 상태가 좋지 않은 휴대폰처럼 대화가 중간 중간 끊겼다. 소음 때문이었다. 인근 군비행장으로 헬기와 군수송기가 쉴 새 없이 오갔다. 굴다리 위, 아래를 오가는 대형트럭의 엔진음과 진동도 대화흐름을 끊어 놓았다.

"소음과 진동이 장난 아녜요. 그나마 오늘은 휴일이라 덜한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먼지도 많아요. 날씨 좋은 날은 먼지 터는 게 일이에요."

그 사이 적십자 마크를 새긴 군 헬기 한 대가 다시 요동을 치며 지나갔다.

50일 전인 지난 10월 21일. 그는 아내(윤현미·42)에게 긴급 회의가 소집됐다며 집을 나섰다. 그 길로 곧장 굴다리 난간 위에 올라갔다. 물론 계획된 일이었다. "붙들고 놔주지 않을 것 같아", "걱정할 까봐"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목에 밧줄을 걸고 50일 째(9일) 굴다위 난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정인 유성기업지회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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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밤에 잠 좀 자게해 달라며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을 요구했다. 사측은 노사합의를 깨고 공격적 직장폐쇄, 용역을 동원한 폭력, 노조원 구속, 27명의 노동자 해고, 어용노조 설립으로 대응했다.

지난 10월 국회청문회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이 사측과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용역업체와 노조파괴를 위한 사전 시나리오에 따른 것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용역업체에게 가해진 제재는 설립인가 취소와 벌금 몇십만 원이 전부였다.

조합원 17명이 구속돼 그 중 2명은 여전히 투옥 중이다. 반면 사용자 측은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과 중앙노동위원회가 최근 각각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복직되지 않고 있다.

현장방문 안 한 박근혜-문재인 후보... "찾아와서 현장 목소리 들어야"

농성장을 지키던 한 유성기업 노조원은 "지회장이 유성기업 문제가 대선국면에 파묻히는 걸 막으려 올라갔는데 여전히 언론에는 대선 후보들 얘기만 나오고 후보들도 우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농성현장을 찾은 대선 후보는 이정희, 김순자, 김소연 후보와 심상정 전 예비후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한 번도 현장에 오지 않았다. 문 후보 측은 그나마 캠프 관계자가 한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다시 홍 지회장에게 물었다.

- 오늘이 꼭 50일째인데 난간 농성을 하기 전과 달라진 게 있나요?
"회사 측, 경찰과 검찰, 고용노동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검찰은 불법노동행위가 명백히 밝혀졌는 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요. 고용노동부는 11월 말까지 사측에 대한 행정제재 등 방안을 밝히겠다고 하더니 눈치만 보고 있어요. 반면 현장 조합원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 유성기업 문제가 왜 이렇게 악화됐다고 생각하는지요?
"MB 정부의 친 자본주의, 친 재벌 정책 때문입니다. MB 정부 성향을 믿고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여기에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 유관기관이 죄다 움직인 겁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단 얘기죠. 지금도 고용노동부가 대선결과를 놓고 움직이려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봅니다."

- 대선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말로만 떠드는 정치공약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해결' 하겠다고 하는데 막연한 얘기는 지금 힘들어 하는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해결책이 안 됩니다. 찾아와서 현장의 고민을 들어야 하고 현장의 요구를 정책으로 담아 발표해야죠. 현안 파악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 새해 소망은요?
"싸움에서 승리해서 굴다리 아래에서 모두 모여 막걸리 건배를 하고 싶습니다."

농성장 옆으로 쉴새없이 대형트럭이 지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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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전 후 달라진 것은? "현장 조합원... 고용노동부, 검-경은 그대로"

농성기간 홍 위원장이 가장 힘들었던 일은 조합원의 자살소식이었다. 지난 5일 유성기업에서 일해오던 50대 노동자가 1년 넘게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노동자의 현장일기를 보면 업무 복귀 이후 사측이 쇠파이프를 들게 하는 등 구사대 역할을 하도록 강요했다. 노조 관계자들은 '동료들과 맞서야 했던 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 처음으로 소주 한 병만 올려달라고 했어요. 많이 마시면 안 된다며 반병만 올려주더군요. 힘들었어요. 지금도..."

목소리가 젖어드는가 싶더니 잦아들었다. 그는 "사측 책임자 처벌이 가시화되고 해고자 복직, 어용노조 해산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인은 기다려온 휴일을 맞아 남편을 위해 손수 음식을 장만해왔다.

"옷가지를 싸달라고 할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마음은 아프지만 워낙 의지가 강한 분이니까 큰 걱정은 안 해요."

굴다리 아래 마련된 농성장에서 남편에게 올려줄 간식꺼리를 챙기며 부인 윤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남편보다는 아들 녀석(13살, 초등학교 6학년) 때문에 짠해요. '아빠를 만나면 울기만 할 것 같다' '그러면 아빠가 약해지지 않겠냐'며 아직까지 보고 싶은 걸 꾹 참고 농성장에 한 번도 안 왔어요."

'아빠가 약해질까봐..' 속 깊은 13살 아들

굴다리 아래 천막 농성장은 조합원 가족 아이들의 놀이터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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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다리 아래 천막에는 조합원들이 교대로 대기 중이다. 폭압적인 사측의 탄압과 회유에도 50% 가까운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현장과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조합원들의 마음은 충청권 노동자들의 마음까지 하나로 모았다. 충청권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오는 14일 일제히 유성기업 농성노동자를 위한 연대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30년 동안 유성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조합원은 "예전에는 생산직과 사무직이 유니폼은 물론 먹는 음식까지 다를 만큼 차별과 모욕이 심했다"며 "하나씩 문제를 풀어오는 동안 조합원들이 단결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선배 노동자들의 희생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4일 검찰과 노동부는 사건 발생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유성기업 사측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압수수색한 자료 속에는 창조컨설팅 관계자와 사측이 인근 염작리 OOO-O 번지에서 수시로 만나 모의를 해왔음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가 들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창조컨설팅 관계자와 사측이 수시로 만나 노조파괴 모의를 해왔던 것으로 밝혀진 염작리 OOO-O 번지에서 본 풍경. 멀이 유성기업이 내려다 보인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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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을 이용해 찾은 모의현장은 과수원 인근 작은 언덕이었다. 먼발치로 유성기업이 내려다 보였다. 그들은 유성기업 현장을 내려다보며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을까.

홍 지회장은 굴다리 위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장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가 시민들과 조합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결같다.

"올라와서 느낀 것은 고마움뿐입니다.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찾아와주시고, 문자를 보내주시고, 전화해주시는 응원이야말로 힘입니다.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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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하경제 활성화' 공짜 7억 성북동집 때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2/11 06:44
  • 수정일
    2012/12/11 06: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8대 대선 2차 TV토론이 어제 열렸습니다. 어제 TV토론은 이정희 후보의 강력한 '재벌 해체'와 공중파의 삼성 비판이 나왔으면서, 한편으로는 박근혜 후보 검증에 대한 새로운 논제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1차 토론 때는 '청와대 6억 원'이었는데, 2차 토론에서는 무상으로 받은 성북동 집에 대한 '세금 납부'와 '지하경제 활성화' 였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향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18년 동안 청와대라고 불리는 집에 사시다가, 81년에 성북동 주택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집은 신기수 당시 경남기업 회장이 무상으로 지어준 저택이었습니다. 잔디 깔린 마당이 있는 300평이 넘는 이 집을 거저 넘겨받으셨는데, 박 후보는 증여세 취득세 등록세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야말로 그냥 받으신 것이지요."(이정희 후보)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의 세금을 납부했느냐는 질문에 '단일화 사퇴 여부'를 거론하며 성북동 집에 대한 세금 납부 여부를 피해 갔지만, 사실 이 부분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라면 반드시 그 해명 여부와 경위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전혀 여기에 대한 처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지 않았지만, 꼭 검증해야 할 박근혜 후보의 성북동 집과 세금 납부 여부를 조사해봤습니다.

'박근혜 성북동 집, 대지 400평, 건평 300평, 시가 7억'

1979년 박근혜 후보는 10.26 이후 신당동 사저로 이사합니다. 그 후 1982년 성북동으로 이사하는데, 이때 성북동 집으로 이사한 이유를 박 후보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유품을 정돈도 하고 그럴 필요성이 생겼는데 신당동 집이 좁아서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2007년 경선 청문회 박근혜 후보 발언)

앞서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신당동 집도(대지 99평, 건평 39평,방 5개) 일반 서민이 살기에는 전혀 좁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신독재 기간의 유품이 얼마나 많았는지 박근혜 후보는 좁다며 결국 신당동 집을 떠나 성북동으로 갑니다.

[정치] - 소녀 가장(?) '박근혜'가 받은 6억 원의 실체

 

 

 


청와대 넓은 곳에 살던 박근혜 후보에게 대지 99평,건평 39평, 방 5개 신당동 집은 좁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옮긴 성북동 집은 커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대지 400평에 건평 300평으로 당시 시가로 7억 원짜리 집이었습니다.

저택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얼마나 컸냐하면, 1982년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근영 (당세 28세)이 풍산금속 회장 유찬우씨의 장남 유청씨와의 결혼식을 성북동 저택에서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1970년대부터 성북동에는 삼성,현대,LG 등 굴지의 재벌가 사람들이 줄지어 살았고, 주한 외국대사의 관저들도 많을 정도로 부자동네로 유명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소유했던 대지 400평에 건평 300평짜리 성북동 집은 한마디로 재벌들이 몰려 사는 동네에서도 보기 드물게 아주 커다란 저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신기수는 왜 성북동 집을 박근혜에게 무상으로 줬을까?'

성북동 집은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지어준 집입니다. 박근혜 후보는 신기수 회장이 성북동 집을 지어준 배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분이니, 좀 도와주겠다는 생각으로 성북동에 집을 마련했으니까, 거기에 유품도 다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이사를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있어서 받아들인 것” (2007년 경선 청문회 박근혜 후보 발언)

먼저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누군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는 듯한데, 1983년 45살의 나이로 26살의 여배우 장미희 씨와 약혼을 했던 인물입니다.

 

 

▲1983년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과 장미희씨의 약혼소식을 보도한 경향신문.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성북동 집을 지어준 배경을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와 인연'이라고 주장하고, 신기수 회장은 전두환의 지시로 지어줬다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신기수 회장은 박정희,전두환보다는 오히려 박근혜 후보와 더 인연이 깊은 사람입니다. 먼저 신동아에 나왔던 안기부 보고서의 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안기부는 신기수 당시 경남기업 회장을 소환조사했다. 조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면서 박근혜 관련 문제도 나왔다. 신기수는 1979년 박근혜 측근 최태민이 운영하던 구국봉사단의 운영위원이 되어 거액의 운영비를 냈고 10·26 이후엔 박근혜에게 성북동 자택을 지어줬다. 박근혜는 1980년 영남대 재단이사장이 된 뒤 신기수를 영남대 이사로 임명하는 한편 경남기업이 영남대 발주 공사를 맡도록 했다. 신기수는 공사 수주는 성북동 집을 지어준 것과 연관이 있다고 자백했다. 신기수는 인기 여배우 A양과의 관계, 박근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다.” (신동아 2007년 7월1일 574호 발췌)


 

 

 



박근혜 후보와 신기수 회장 사이에는 박정희가 아니라 최태민 목사가 있었습니다. 최태민 목사가 주도한 구국봉사단에서 박근혜, 신기수 회장은 처음 만났고, 최태민 목사의 부정부패로 박근혜가 구국봉사단 총재로 취임할 때에도 신기수 회장은 구국봉사단 운영위원이었습니다.

구국봉사단을 시작으로 박근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신기수 회장이 있었습니다.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에는 신기수 회장도 육영재단 이사로, 박근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었을 때는 정수장학회 이사로 등재됐습니다.

두 사람의 성북동 집에 관한 의혹이 생긴 배경에는 박근혜가 영남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신기수 회장이 영남대학 이사로 있으면서 영남대학병원 본과 건물을 수주했던 점입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980년 29세의 젊은 나이에 단지 대통령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합니다. 당시 이사진은 10.26세대의 주역들이었는데, 박근혜의 이사장 취임으로 대거 이사진이 교체되는데, 이때 신기수 회장도 영남대 이사로 취임합니다.

영남대는 1979년 지하 3층,지상13층,연건평 1만2,793평 규모로 의과대학과 병원을 짓는데, 이때 시공업체는 '한국건업주식회사'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980년 영남대 재단 이사진 개편 등의 이유로 병원 공사는 중단됐고, 이후 경남기업으로 변경돼 다시 공사를 재개합니다.

1981년 건설사가 경남기업으로 변경될 당시 박근혜와 신기수 회장은 영남대 재단 이사였습니다. 객관적으로 성북동 저택을 지어준 신기수 회장이 공사를 시작한 1978년부터 박근혜 후보와 신기수 회장은 여러모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1980년 성북동 집으로 이사할 당시에는 영남대 이사장과 이사로 끈끈한(?) 인맥을 잇고 있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박근혜 후보가 단지 '아버지와의 인연'을 강조하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공짜로 받은 7억원이 19억짜리 집으로'

박근혜 후보의 재산 신고에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삼성동 주택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삼성동 주택은 대지 1백 47평에 2층 벽돌주택(연면적 96평)으로 총 재산신고액 21억8,104만 원 중 19억4,000만 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삼성동 주택을 구입하게 된 배경이 석연치가 않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에게 무상으로 받은 시가 7억짜리 집을 1984년에 팔고 옥수동 26평 아파트를 4천6백 만 원에 구입합니다. 당시 박근혜는 동새 지만씨에게도 용산구 한남동에 아파트를 따로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면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을 지출합니다.

그 후 장충동 집을 산 뒤 1990년 삼성동 현재의 자택으로 이사하는 데, 이 당시 장충동 집은 6억이고, 삼성동 자택은 시가 10억 짜리 집입니다. 차액 4억 원이 더 필요한 시기였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1982년 신기수 회장으로 받은 시가 7억 짜리 집을 무상으로 증여받으면서 증여세는 물론이고, 취등록세를 내지 않았다고 본인의 입으로 밝혔습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청문회에서 박근혜 후보는 성북동 집에 관련한 세금 납부를 묻는 질문에 "그때 법적으로 세금 관계나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신 회장에게) 그냥 믿고 맡겼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서류상 '매매'로 해놓고 증여받은 것이 확실하지만,세금은 내지 않은 것이 됩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지난 1982년 신기수 회장으로부터 받은 성북동 집에 대한 세금을 낸다면 얼마나 내야 하나 대략 계산해봤습니다.
 

 


 

▲ 단순히 시가 7억짜리 집을 증여받은 것으로 대략 계산한 것임.

 


시가 7억짜리 부동산을 취득할 때 내야 하는 돈은 2천5백만 원 가량인데, 납부지연일수가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상으로 집을 받았기 때문에 증여에 해당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대략 1억3천3백만 원 정도입니다.

이 두 개를 합치면 1억5천만 원 정도 되는데, 세무 전문가의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8대 대선 후보들의 재산 밀 납세액 현황. 출처:민중의 소리

 


박근혜,문재인,이정희 후보의 재산신고와 납부 세액을 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제일 재산이 많지만, 세금은 가장 적게 냈습니다. 세금은 무조건 내는 것이 아니라 가구별 공제와 가구 수입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부인이 일하지 않기에 공제를 받고, 이정희 후보는 남편도 변호사이기에 세금 공제가 적어 제일 많이 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는 배우자나 자식이 없는 박근혜 후보가 왜 이리 세금을 적게 냈을까요? 왜 이런 이상한 현상을 대한민국 언론은 파헤치지 않을까요?
 


 



박근혜 후보는 어제 열린 대선 2차 토론에서 5조 8천억을 '오쩜 팔조'라고 하기도 하고, 비자금,사채,마약,범죄 자금으로 불리는 '지하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 후보의 이런 실수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4라는 부분도 우선 세금을 걷는다고 달려들기 전 비과세 감면(축소) 등이 있고, ‘지하경제활성화’로 투명하게 세원을 해서 10이라는 재원을 마련하겠다” (8월22일 기자 간담회, 박근혜 후보 발언)

'아이엠피터'는 작년 원고료가 늘면서 연소득 500만 원이 겨우 넘었습니다. 그런데 연소득 500만 원 이상이라고 기존에 5만 원 내던 건강보험료를 이제 8만 원씩 냅니다. 소득은 100만 원 늘었는데, 그중에 보험료만 40만 원을 더 내야 합니다. 원고료는 무조건 세금 공제를 해서 '아이엠피터'는 세금 탈루를 하려고 해도 절대 못합니다.

 

 

 



지하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금을 탈루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자꾸 '지하경제 활성화'를 말하는 이유가 자신이 성북동 집을 무상으로 취득하면서 억대에 가까운 세금을 탈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제 열린 토론 주제는 '경제민주화'였습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소득대비 정당하게 세금을 내자는 마음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정책을 실천하려면, 정책을 펼치는 사람 본인부터 세금을 법에 따라 납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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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미사일을 초고속으로 만들어낸 비결

 

 

 

북이 미사일을 초고속으로 만들어낸 비결
 
[한호석의 개벽예감](40) “북의 미사일개발사는 미국 굴복의 역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12/10 [22:2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위성운반로켓이 백두산 계열에서 은하 계열로 바뀐 사연

2012년 12월 6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 나타난 태평양사령관이며 해군제독인 새뮤얼 락클리어 3세(Samuel J. Locklear III)는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북이 현재 준비 중인 위성 발사에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측 지도부의 현재 행동이 한반도와 아시아의 전반적인 안보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고려해주기 권고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지역만이 아니라 국제안보환경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이 발언은 북의 위성 발사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동일시하는 미국의 견해를 되풀이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요한 사실을 고의로 은폐하면서 북의 위성 발사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라고 우기고 있다. 미국이 고의로 은폐한 것은, 북이 이미 오래 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고, 지금은 대륙간탄도미사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위성운반로켓을 개발하여 본격적인 우주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북이 위성운반로켓을 백두산 계열에서 은하 계열로 교체하였다는 데 있다. 북은 백두산 1호라는 이름의 위성운반로켓에 시험위성 광명성 1호를 실어 1998년 8월 31일에 쏘아올렸다. 위성운반로켓 백두산 1호는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설계기술로 만든 것이었다.

위성운반로켓을 독자적으로 만드는 모든 나라들이 장거리 미사일 설계기술로 위성운반로켓을 만드는 초기개발단계를 거치는 법이다. 북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런 초기개발단계를 거쳤다. 그런데 만일 북이 15년이 지난 오늘에도 백두산 계열의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린다면, 북의 위성 발사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라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북이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은 백두산 계열의 위성운반로켓과는 전혀 다른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리고 있다. 백두산 계열의 위성운반로켓은 외형부터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북이 2009년 4월 5일에 두 번째로 쏘아올린 위성운반로켓에 백두산 2호가 아니라 은하 2호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인 것은, 단순히 명칭을 바꾼 것만이 아니라, 그 두 번째 위성운반로켓이 8년 전에 쏘아올린 첫 번째 위성운반로켓과는 전혀 다른 계열에 속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리고 올해 북이 두 차례나 은하 3호를 쏘아올리면서 이전에 있었던 시험위성이 아니라 지구관측위성을 탑재한 것은 우주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티를 아직 벗지 못한 백두산 1호를 개발하였던 때로부터 그 티를 완전히 벗은 은하 계열의 신형 위성운반로켓을 개발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북에서 그 10년은 위성운반로켓 제작기술의 비군사화를 실현한 기간이었던 것이다.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을 가리켜 위성운반로켓으로 위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우겨대는 미국의 생억지를 반박하려면, 북의 미사일 개발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필요하다. 북의 미사일 개발사는 북이 이미 오래 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그것을 실전배치하였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위성운반로켓으로 위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중국이 북의 미사일 공동개발 제안을 받아들인 사연

1975년 4월 18일부터 26일까지 김일성 주석은 오진우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을 대동하고 중국을 공식방문하였다. 14년 만의 중국 방문이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부설 국제안보 및 군비통제 센터(CISAC)가 발간하는 <국제안보> 1992년 가을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당시 중국 방문 중에 탄도미사일 공동개발을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그 제안에 즉각 응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중국은 북의 미사일 기술수준을 자기들보다 한 수 낮게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과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으로서는 북의 제안을 냉정히 거절할 수도 없었으므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1970년대 북과 중국의 미사일 기술수준은 실제로 어떠하였을까? 북은 1973년에 소련에서 미사일 SSC-2B 여섯 기를 도입하였는데, 이 미사일은 탄두무게가 600kg, 사거리가 90km이며, 전파유도항법장치로 날아간다. 북은 이 소련제 미사일을 분해하고 역설계하는 방법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여 1974년에 마침내 미사일 생산국이 되었다.

<뉴욕 타임스> 1970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분석가들은 중국이 핵탄두를 탑재하고 1,600km를 날아가는 준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마쳤고, 1970년 말 현재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였다. <뉴욕 타임스> 1971년 8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사거리 2,400km의 준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마쳤다고 한다. 또한 1975년 4월 14일에 발간된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가정보기관은 중국이 사거리 2,400km의 준중거리 미사일을 도로이동식 발사차량에 실어놓은 것을 항공정찰을 통해 포착하였다고 한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당시 북은 사거리 90km의 단거리 미사일을 생산하는 수준이었는데 비해, 중국은 사거리 2,400km의 준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북과 중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기술을 산술적으로 비교하면, 당시 중국은 북보다 무려 26배나 앞서 있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중국이 북의 미사일 공동개발 제안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1년 반이나 시간을 끌며 응답을 하지 않던 중국이 1976년 말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북의 미사일 공동개발 제안을 받아들였다. 1년 반이나 시간을 끌던 중국은 왜 1976년 말에 북의 미사일 공동개발 제안에 응하였을까? 너무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라서, 관련정보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주의 깊게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내막을 엿볼 수 있다.

1970년 대 중반부터 중국은 자기의 미사일 개발사업에 제기된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 1973년 7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및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소속 관리들은 중국이 핵무기 개발사업에서는 급속한 진전을 보고 있지만,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개발하는 사업에서는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미국의 항공우주전문지 <주간 항공과 우주공학(Aviation Weekly and Space Technology)> 1975년 10월 12일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2단형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데서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주간 항공과 우주공학> 1976년 10월 18일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미사일 개발사업은 미국 정보기관이 이전에 예측한 것처럼 그렇게 급속히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의 경제적 한계와 기술적 제한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1977년 8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할 만큼 미사일 개발의 진척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은 중국의 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당시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험악한 갈등을 빚고 있었으므로 중국은 미사일 기술수준에서 자기들보다 훨씬 앞선 소련으로부터 관련기술을 도입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중국은 소련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발전된 미사일 설계기술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국에게 정치군사적으로 그처럼 중요한 미사일 설계기술을 넘겨줄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1976년 어느 날, 중국은 정신이 번쩍 들 만한 놀라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북이 신형 미사일 설계기술을 확보하였다는 정보였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였다.

중동전쟁에서 참패하여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이집트와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시리아는 영토수복전쟁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이집트와 시리아는 소련 군사지원단으로부터 배운 엉성한 소련식 전법을 가지고서는 강적 이스라엘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영토수복전쟁을 준비하면서도 고심해오던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실로 고맙기 그지없는 동방의 어느 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이집트의 나쎄르 대통령과 시리아의 아싸드 대통령으로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고 그 두 나라에 인민군 정예요원들로 구성된 군사지원단을 파견해주었다. 파견된 인민군 군사지원단은 강적 이스라엘을 제압할 기상천외한 ‘주체전법’을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에 전수해주었을 뿐 아니라, 영토수복전쟁이 개시되자 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기습편대를 편성하여 직접 미그 전투기를 몰고 초저공 기습침투비행으로 이스라엘 공군기지를 급습하였고 최전방에 출격하여 이스라엘 공군기들과 공중전을 벌였다. 그 전쟁에서 기상천외한 초저공 기습침투비행과 놀라운 공중전 기술로 이스라엘 공군을 격파한 인민군 기습편대를 이끈 전쟁영웅이 바로 젊은 시절의 전투비행사 조명록 차수다.

전쟁 직후, 북의 전폭적인 지원에 감동한 나쎄르 대통령은 소련이 이집트에 제공해주면서 제3국에 절대로 넘겨주지 말라고 당부하였던 소련제 탄도미사일 스커드-B 두 기와 그 미사일을 탑재하는 4축8륜 발사차량 MAZ 543 두 대를 소련 몰래 북에 보냈다. 북은 그 소련제 미사일 두 기를 분해하고, 역설계하는 방법으로 신형 미사일 설계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북의 미사일 능력을 왜곡하고 깎아내리는 데 앞장선 자칭 미사일 전문가 로벗 쉬무커(Robert H. Schmucker)는 1999년 6월 스코틀란드 에딘버러에서 열린 제12차 미사일 방어 다국적 회의에 제출한 글 ‘제3세계 미사일 개발: 유엔특별위 경험과 자료평가에 기초한 새로운 평가’에서 북의 미사일 개발경험과 소련, 중국, 이라크의 미사일 개발경험을 비교하면서, 북의 미사일 개발기간이 매우 짧고 미사일 시험발사도 매우 적게 실시하였다는 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대북혐오감에 사로잡힌 그의 두뇌로 북의 미사일 개발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쉬무커의 지적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는 기간은 7년에서 10년이 걸리고, 실전배치하기 전에 세 차례에서 일곱 차례 시험발사를 실시한다. 또한 다른 나라의 미사일을 도입하여 분해하고 역설계하는 방법으로 미사일을 모방생산하는 경우에도, 미사일 생산국으로부터 전폭적인 기술지원을 받으며 20기에서 50기에 이르는 견본 미사일을 도입하여 분해-역설계하고, 여러 차례 시험발사를 실시한다.

그런데 북은 스커드-B 생산국인 소련으로부터 기술지원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이집트가 소련 몰래 넘겨준 단 두 기의 견본 미사일을 자력으로 분해하고 역설계하고, 불과 몇 해만에 초고속으로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중국이 개발을 포기한 둥펑 61, 북이 개발에 성공한 화성 7호

북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스커드-B 설계도를 들고 중국에 가서 중국의 미사일 기술자들과 함께 신형 미사일 개발에 달라붙었다. 1976년 말부터 북과 중국이 공동개발을 추진하였던 그 미사일은 길이 11m, 탄두무게 1t, 사거리 600km이며, 도로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하는 단거리 미사일이었다.

북중 미사일 공동개발사업은 약 2년 간 지속되다가 당시 중국 내부에 복잡하게 조성된 정치상황 때문에 1978년 말에 중단되었다. 2년 동안 북과 중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신형 미사일의 완성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북과 중국이 적극 협력하면서 밀고나갔으므로 상당한 진척을 보았을 것이다.

중국이 자기 내부 정치사정으로 북과 추진해오던 미사일 공동개발을 중지하였지만, 북과 중국은 공동개발사업을 중단한 이후에도 각자 단독으로 미사일 개발을 계속 추진하였다. <뉴욕 타임스> 1979년 7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에서 송출되는 중국 라디오 방송은 중국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실시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나온 자료들에 따르면, 당시 북과 중국이 미완으로 끝낸 공동개발에서 설계된 신형 미사일 명칭은 ‘둥펑(東風) 61’이다. 공동개발이었으므로, 중국이 중국식 명칭을 붙인 것에 상응해서 북도 당연히 조선식 명칭을 붙였을 것인데, 북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미국 전문가들은 조선식 미사일 명칭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981년에 북이 개발한 미사일의 명칭이 태양을 중심으로 우주를 도는 붉은 별의 이름을 따서 화성(火星)으로 붙여졌다는 사실이 북측 외부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퍽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는데, 오만하고 무식한 미국 전문가들은 화성이라는 고유명칭이 알려진 뒤에도 여전히 ‘스커드’라는 소련식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고집으로만 볼 게 아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이 미사일 기술을 자체로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덮어버리고, 소련의 미사일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미련한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북이 1981년에 개발한 화성 미사일은 1976년 말부터 약 2년 동안 북이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었던 탄도미사일의 탄두무게를 1,000kg에서 800kg으로 줄이는 대신, 사거리를 600km에서 800km로 늘인 것이다. 이 신형 미사일이 바로 화성 7호다.

북의 미사일 능력을 축소하기 좋아하는 미국 전문가들은 화성 7호를 화성 5호 또는 화성 6호와 헷갈렸다. 어떤 전문가는 북이 소련제 미사일 스커드-B를 개량하여 1985년에 화성 5호를 만들었는데, 사거리가 320km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나, 그런 주장은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면 착오다.

북이 화성 7호를 만들었다는 정보를 들은 나라들이 평양에 대표단을 보내 구입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1983년 4월 5일 당시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는 북을 공식방문하여 화성 7호를 구입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고, 같은 해 9월 6일에는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이집트 군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또한 1983년 10월 23일 이란 국무총리 루홀라 무사비(Ruhollah Musavi)와 국방장관 모하메드 할리미(Mohammed Salimi)도 이집트에 이어 북을 공식방문하고 화성 7호 구입계약을 체결하였다. 북은 이란에 화성 7호 120기와 발사차량 20대를 수출하였고, 나중에는 화성 7호 생산시설을 수출하고 기술진을 파견하여 현지에 생산공장까지 세워주었다. 북에서 건설해준 이란의 화성 7호 생산시설에서 만들어낸 미사일이 샤합(Shahab) 2호인데, 화성 7호에 비교하여 탄두무게를 800kg에서 990kg으로 늘인 대신, 사거리는 800km에서 750km로 줄였다.

이처럼 북은 화성 7호를 이집트와 이란에 대량 수출하였을 뿐 아니라, 쿠바, 민주콩고,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베트남, 예맨, 에디오피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에도 수출하였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이 화성 7호 1,000기를 생산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북이 1981년부터 1991년까지 12년 동안 생산한 화성 7호가 1,000기에 이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북, 마침내 화성 미사일을 발사하다

<서울신문> 1991년 12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그 해 가을 북과 중국이 공동개발한 미사일을 중국 닝샤후이 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에서 시험발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북과 중국은 미사일 공동개발을 1978년 말에 중단한 이후 미사일 공동개발을 재개한 적이 없으므로, 1991년에 중국에서 시험발사된 미사일을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발하였다고 보도한 것은 오보였다. 명백하게도, 그 미사일은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인데, 북은 자기의 미사일 개발에 관한 정보가 미국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국의 동의를 얻어 중국에서 시험발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신형 미사일이 어떤 미사일이었는지는 그로부터 1년 9개월 정도가 지난 1993년 5월 말에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 언론인 데이빗 생어(David E. Sanger)가 1993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에 쓴 보도기사에 매우 흥미로운 정보가 들어있다. 그 기사는 1993년 5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북이 발사한 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데이빗 생어가 일본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북의 미사일 발사지점을 강원도 원산 부근 미사일 기지라고 쓴 것은 착오였고, 실제는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 해안에서 도로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한 미사일을 동해 쪽으로 쏜 것이었다.

데이빗 생어는 그 기사에서 북이 일본 열도의 동해 쪽에 있는 노토반도(能登半島) 쪽으로 미사일을 쏘았다고만 하였으나, 실상은 노토반도 쪽으로 날아간 그 미사일이 바다에 띄워놓은 부표표적에 명중하였던 것이다. 북이 발사한 미사일이 부표표적에 명중하였다는 사실은, 1991년 10월 4일 <연합뉴스>에 보도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서동권의 발언에서도 확인되었다. 북은 미사일 탄착상황을 관측하기 위해 노토반도에서 서북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해 해상에 라진급 프리깃함 한 척과 소해정 한 척을 서로 30km 거리를 두고 배치하였다.

데이빗 생어는 그 기사에서 북이 노토반도 쪽으로 발사한 미사일의 사거리를 1,000km로 추정하면서, 실제는 500km밖에 날아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가 보도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이 무수단 해안에서 쏜 미사일이 500km를 날아갔다면, 그 미사일은 노토반도를 넘어가서 도야마만(富山灣) 한 복판에 떨어졌을 것이지만, 북의 프리깃함이 일본 영해 안으로 들어가 부표표적을 설치할 리는 없으므로 실제 탄착점은 노토반도에서 서북쪽으로 떨어진 해상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해의 폭이 좁으므로, 북은 미사일 사거리를 일부러 500km로 줄여 쏘았다.

바다에 띄워놓은 부표표적이 크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는데, 북이 쏜 미사일이 500km밖에 있는 작은 표적을 맞춘 것은 명중률이 매우 높은 미사일을 쏘았음을 말해준다. 특히 그 미사일은 탄도비행 마지막 단계에서 탄두가 동체에서 분리되어 초고속으로 낙하하였는데, 탄두와 동체의 상호분리가 미사일 항법기능을 더욱 높여주어 명중률을 끌어올린 요인으로 되었다.

데이빗 생어의 지적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미사일은 무게 1t짜리 육중한 탄두를 싣고 1,300km를 날아갈 수 있다. 탄두무게가 1t이라는 것은 고폭탄두나 화학탄두는 물론이고 더 중요하게는 핵탄두까지 실을 수 있음을 뜻한다. 북이 1993년 5월 29일에 발사한 명중률이 매우 높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그 준중거리 미사일이 바로 화성 7호다. 미국은 화성 7호를 로동 1호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북이 화성 7호 미사일을 발사하여 500km밖에 있는 작은 표적을 명중시키자,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왜냐하면 사거리가 1,300km인 화성 7호는 일본 열도를 타격권 안에 넣고 있을 뿐 아니라, 저 멀리 북으로는 호카이도에서 남으로는 오키나와까지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이 일본 전역을 타격할 미사일 공격력을 가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 인용한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북의 화성 7호 발사를 보고 일본 방위청(당시 명칭)은 “매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화성 7호의 충격에 휩싸인 일본은 자기의 보호자인 미국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93년 8월 2일 일본 방위청 사무차관 하타케야마 시게루(畑山蕃)는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부장관 프랭크 와이즈너(Frank Wisner)와 회담을 갖고 화성 7호에 대처하기 위한 미일 공동위원회를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1993년 10월 일본 방위청은 북의 미사일 발사를 감시할 정찰위성을 개발하는 비공개 연구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북의 화성 7호 발사는 새로 개발한 미사일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미사일을 수입하려는 나라들에게 실제 성능을 보여주기 위한 발사였다. 이에 대해서는 1993년 8월 15일 <워싱턴 타임스>가 보도한 주한미국군사령관 출신 로벗 리스카시(Robert RisCassi)의 발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물론 북이 화성 7호 미사일을 발사한 목적이 미사일 수입국들에게 성능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고,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 양자회담에 끌어내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정치적 목적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발사 당일 현장에서는 이란의 미사일 전문가들과 파키스탄의 미사일 전문가들이 화성 7호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였다. 1993년 7월 14일 일본 언론은 이란 정부 대표단이 이미 1993년 4월에 방북하여 화성 7호 미사일 150기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고 보도하였다. 다른 한 편, 1993년 12월에는 당시 파키스탄 총리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가 북을 공식방문하였다. 그녀의 방북 역시 화성 7호를 구입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2010년 3월 29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이상한 핵실험과 핵확산 재개’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이란이 북으로부터 화성 7호를 구입하려 한다는 정보를 파악한 이스라엘은 발칵 뒤집혔다. 왜냐하면 이란이 화성 7호로 무장하는 날, 이스라엘은 심각한 미사일 피격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의 화성 7호가 이란에 들어가는 것을 차단해야 할 절박한 요구를 느낀 이스라엘은 1993년 6월 14일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 쉬몬 페레스(Shimon Peres)의 방북의사를 밝혔고, 6월 25일 당시 이스라엘 외무부 부총국장 에이탄 벤트수르(Eitan Bentsur)는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관리를 만나 이란에 화성 7호를 수출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중동문제에 관해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그처럼 민감한 협상현안이 해결될 리 만무하였다. 1993년 8월 16일 이스라엘 총리 이작 라빈(Yitzhak Rabin)은 중동지역에 미사일을 수출하려는 북과의 협상을 미국의 요청에 따라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화성 7호는 이란으로 가서 샤합(Shahab) 3호가 되었고, 파키스탄으로 가서 가우리(Ghauri) 2호가 되었고, 시리아에서도 면허생산되었다.

두 종류의 화성 미사일을 더 쏘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력적인 지도로 추진된 북의 국방공업 강화사업을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실무적으로 집행하였던 김광진 차수(당시 직책은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는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이 북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1990년 10월에 남긴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12년 9월 17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위의 정보에 따르면, 북의 화성 7호가 일본 노토반도 앞바다에 떠있는 부표표적을 맞춘 놀라운 미사일 정밀도를 과시하였던 1993년 5월 말 현재 북은 사거리 1,300km의 준중거리 미사일 화성 7호 이외에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도 생산하고 있었다.

미국 언론의 관련보도에 따르면, 북이 1993년 5월 29일 화성 7호 한 기를 발사한 뒤, 이튿날에는 다른 종류의 미사일 두 기를 더 쏘았는데, 이튿날에 쏜 미사일 두 기는 100km 정도 날아간 단거리 미사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추측보도는 사실과 다른 엉터리 보도다. 1993년 5월 30일 북이 두 번째로 쏜 미사일 두 기는 화성 8호와 화성 9호였다. 화성 8호는 사거리 2,000km의 준중거리 미사일이고, 화성 9호는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 미사일이다.

북은 화성 8호를 남쪽으로, 화성 9호를 동쪽으로 각각 쏘았다. 화성 8호는 무수단에서 동중국해를 넘어 서태평양의 미국 영토인 괌(Guam)으로 날아가, 괌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서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다시 말해서, 무수단에서 괌까지 거리가 2,100km이므로, 화성 8호는 괌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서태평양에 탄착한 것이다.

화성 9호는 무수단에서 동해를 건너, 일본 쓰가루 해협(津輕海峽)을 넘어, 북태평양의 미국 영토 미드웨이제도(Midway Islands)를 넘어, 하와이 쪽으로 날아가다가 하와이 진주항(Pearl Harbor)에서 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해상에 탄착하였다. 다시 말하면, 무수단에서 하와이 진주항까지 거리가 4,400km이므로, 화성 9호는 하와이 가까이 날아간 것이다.

일본은 화성 8호와 화성 9호가 자기들 머리 위로 넘어가 서태평양과 북태평양 한 복판에 각각 떨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노토반도 쪽으로 날아간 화성 7호만 보고 깜짝 놀라 소동을 피우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성 8호와 화성 9호를 보고 경악과 충격을 겪은 쪽은 미국이었다. 북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기들의 태평양 전략거점들인 괌과 하와이가 화성 8호와 화성 9호의 타격권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성 8호와 화성 9호의 충격을 겪은 미국은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양자회담에 끌려 나갔으며, 그 회담에서 미국이 북의 주권을 존중하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내용으로 된 북미 공동성명을 사상 처음으로 채택하였다.

이처럼 미국이 적국의 무력압박을 견디지 못해 적국이 요구한 양자회담에 끌려 나가 적국이 요구하는 내용으로 외교문서를 작성해준 것은 미국이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였음을 말해준다. 1993년의 북미관계가 잘 말해주는 것처럼, 북의 미사일 개발사는 미국과의 격렬한 무력대결에서 이긴 북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 역사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북은 미국으로부터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마지막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려는 반미대결전 준비를 완료한 것이다.(2012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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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유족회, 새누리당사 앞 박근혜 후보 규탄회견

 

"130만 유족에 박정희 못지 않은 가해 주었다"
한국전쟁유족회, 새누리당사 앞 박근혜 후보 규탄회견
 
 
2012년 12월 10일 (월) 14:56:09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전국유족회가 10일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근혜 후보는 우리민족 최대의 불행인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 한 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전쟁전후 민긴인 희생으로 인한 130만 유족의 마음에 또다시 아버지 박정희 못지 않은 가해를 주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는 1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규탄했다.

윤호상 상임대표는 “우리가 2012년 4월부터 금년 12월 4일까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선후보에게 우리 한국전쟁 피학살자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책제안을 했다”며 “그러나 우리 한국전쟁 유족들과 어느 것 하나 공식적이나 비공식적인 대화를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4월 9일을 시작으로 6월 27일 8월 22일, 그리고 11월 28일 삭발모 전달 등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10,11월 매일 1인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특히 11월 28일 기자회견 당시 12월 5일까지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고, 새누리당 당직자는 이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를 대신하여 요구 내용을 전달받아 갔지만 지금까지 응답이 없었다.
 

   
▲ 참가자들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윤호상 상임대표는 “이것은 명백히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고 오로지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 미봉책으로 과거사 운운하는 그릇된 망상임을 우리는 알게 됐다”며 “새누리당은 국민대통합을 외칠 자격이 없다. 오로지 대통령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거짓구호와 거짓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은 “당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백골이 길거리에서 나뒹굴고 있다면 당신들은 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겠느냐”며 “바로 그것 때문에 중단된 과거사(위원회)를 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명운 의장은 “마지막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중단된 과거사(위원회) 다시 시작하라고 촉구한다”며 “지금은 청원하고 부탁하지만 당신(박근혜 후보)이 끝내 외면할 때, 새누리당이 끝까지 외면할 때 우리의 바람은 분노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양용해 상임대표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결국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은폐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과거청산을 위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법 제정에 언급조차 없는 것은 박근혜 후보가 내세우는 국민대통합이 대선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한 한낮 구호에 불과한 정치적 술수였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냈다”며 “정치적 술수나 부리며 국민대통합을 외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국민통합에 적합하지 않은 후보라 규정한다”고 못박았다.
 

   
▲ 매일 점심시간에 새누리당사 앞에서 1인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들은 “130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표나 얻고자 형식적으로 국민대통합을 외치는 박근혜 후보의 기만적이고 진정성 없는 행동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며 “더이상 기만적인 행동을 못하도록 모든 유족들과 함께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와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단체협의회’ 등은 오는 12일 오후 1시에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사건 등 과거사진상규명 명예회복 기본법 입법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새누리당 당사 앞 1인시위도 지속할 계획이다.

한편 기자회견 도중 양용해 상임대표의장은 새누리당사 민원실로 찾아가 박근혜 후보에게 과거청산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문을 전달했다.

기자회견문을 전달받은 새누리당 민원실 담당자는 “지금 새누리당을 찾아오는 집단민원, 집단시위가 많아 통상적으로 똑같이 처리한다. 일단 접수받고 접수받은 내용을 보고드린다”며 “하나같이 몇 일까지 답 내놓으라고 다들 말씀하시는데 그때까지 답변을 드릴 수 없다. 법제정은 쉬운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 양용해 상임대표의장이 새누리당 민원실로 향하자 새누리당 관계자가 나와 현장에서 접수하겠다고 설득했지만 양 의장은 끝까지 민원실에서 공식접수하겠다고 버텨 민원실에서 접수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에 대해 양 의장은 “우리가 금년 4월 9일부터 5번에 걸쳐 정책제안서를 냈고, 그때마다 기다려달라는 답을 받았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한 번의 답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한 번도 답이 안 왔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말하는 국민대통합은 허구와 기만이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민원실 관계자는 기자회견문을 현장에서 접수하겠다며 양 의장의 민원실 진입을 제지했지만 끝까지 민원실 내 공식접수를 요구하자 민원실로 안내했으며, 기자의 녹음취재에 대해서도 “이건 하지 말라”고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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