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거대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응답하라, 희망이여!"

거대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응답하라, 희망이여!"

[사회학을 전복한 사회학자]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심보선 시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21 오후 6:42:20

 

대학 시절에 읽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기억하는 구절은 당연히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이다. 그런데 "모든 단단한 것들이 허공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는, 다소 시적이고 음울한 구절이 <공산당 선언>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 구절을 가져와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의 근거로 사용할 때까지 말이다. 바우만에 의해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를 선포하는 와중에 은근슬쩍 유동하는 근대라는 디스토피아를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로 탈바꿈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이제 세계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돌입했다. 소비 사회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하면서 조직, 경제, 문화, 인간관계 등 여러 사회적 영역에서 그것들을 지탱해주던 '단단한' 규범, 자원, 이해관계, 감정들의 토대는 허물어졌다. 사랑이건, 공동체건, 세계관이건, 소유물이건, 직업이건 간에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until further notice)"만 유효할 뿐이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개인은 온갖 구속과 한계로부터 해방되어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우만은 이런 선택의 자유란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고 말한다. 집단과 전통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삶 전체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홀로 나아가는 개인의 발아래서 유동하는 세계는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바우만은 선택의 자유를 다음과 같은 처지에 비유한다. "얇은 빙판 위의 스케이터가 얼음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는 스케이트를 더 빠른 속도로 지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스케이터의 스케이팅을 자유 의지의 발현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현재와 무엇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난한 노력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표면적인 것, 더 즉각적인 것에 몰두한다. 그것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부담 없는 임시 정박지와 같다. 예를 들어 살아갈수록 정작 속내를 털어 놓을 만한 친구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트위터의 팔로워와 페이스북의 친구가 늘어가는 것에 우리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이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리트윗'과 '좋아요' 버튼을 클릭할 때, 우리는 수백, 수천 명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때의 소통이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의 연쇄에 하나의 고리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유사 소통'의 폐쇄 회로에 갇힌 상태에서 불만족으로의 급락을 다시 만족으로 끌어올리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예전보다 더, 더, 더 많은 클릭을 주고받는 일 뿐이다(주식 시장에서 개미들이 보이는 기민함처럼). 그리고 이런 클릭질의 교환이 결코 끝을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결책은 언제나 임시적일 뿐 본질적으로 무용하고 심지어 더 해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상실한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31쪽)

 

▲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펴냄) ⓒ동녘
btn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다양한 테마를 통해 변주하면서 현대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불확실성의 문제를 꾸준히 분석해왔다. 지금까지 나온 그의 책들이 다분히 학술적이었다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펴냄)은 그가 <여성들을 위한 라 레푸블리카>라는 주간지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두 주마다 써서 보낸 서간체 형식의 에세이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원래 책 제목은 "유동하는 근대 세계로부터 온 44통의 편지"이다. 말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내는 44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지금까지 나온 바우만의 책들을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간추리고 요약하여 소개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많은 주장들이 기존의 책들에서 이미 개진된 것들이라 내용이 그리 새롭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번 책은 "사회학적 글쓰기"라는 견지에서 몇 가지 흥미를 끄는 부분들이 있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인터넷, 테크놀로지, 청년 세대, 소비 문화, 실업, 인종, 도시, 이주 등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그 폭넓은 쟁점들을 해석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유동하는 근대 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곤경이다. 공동체로부터 뿌리 뽑혀 네트워크 사회에 내던져진 개인이 직면하는 불확실성,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임시적 해결책들이 야기하는 부작용을 바우만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집요하게, 일관되게 파고들고 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바우만의 능력이다. 정말이지 그는 '르네상스 맨'이라 불릴 만하다. 책에는 사회과학을 비롯해 다양한 인접 학문의 연구들뿐만 아니라, 문학, 동화, 영화, 신문과 잡지의 기사, 하다못해 시중에 나도는 농담까지 등장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바우만 같은 '문화 잡식/포식가' 사회학자를 보지 못했다. 또한 바우만처럼 자신이 섭취한 비학술적 텍스트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학술적 주장을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사회학자는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바우만은 '행복을 홀로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비판할 때나, 버락 오바마의 성공 신화를 비판할 때, 동일하게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에 나오는 일화를 원용한다. 그는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사회 구조가 야기한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려는 일체의 노력은 "자신의 가발을 길게 늘어뜨려 잡아당겨서 스스로 습지에서 빠져 나오는 바론 뮌하우젠의 허풍스럽고 황당한 솜씨를 되풀이하는"(186쪽)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 일화는 사회적 질병을 개인만의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무용할 뿐만 아니라 더 해악적이라는 그의 주장에 매우 적절한 비유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집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바우만은 집단적 해결책의 구체적인 조건과 전략을 밝히지 않는다.

바우만은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정부의 통제를 넘어서는 자본의 전횡으로부터 혜택을 입은 소수의 글로벌 엘리트만이 자유와 안전을 확보하고 나머지 대다수 인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 회복 불가능한 궁핍, 치유 불가능한 불안에 치명적으로 노출됐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바우만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지극히 원론적이다. 그는 위기에 처한 인류의 연대를 강조하며, 또한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인 법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개체화되고 파편화된 삶에 결박된 개인들 사이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하며, 전 지구적인 사법 제도는 어떻게 설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정치적 조직화나 중범위 수준에서의 집합 행동에 대해서도 바우만은 일관되게 입을 다물어 왔고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 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바우만은 편지라는 형식을 취한 이 책에서 사회학자가 내놓은 일반적 해결책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가능성, 즉 '우리'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탄생할 수 있는 실존적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에세이는 마지막 두 편의 편지, '운명과 성격'과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이다. 이 두 에세이에서 바우만은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유동하는 근대 세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독자들에게 시사한다.

흔히 사회학자가 무비판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어 '국론'이라는 말이 그렇다. 국가 전체에 통일된 의견이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에 대해 사회학자라면 반드시 비판적 거리를 둬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사회학자가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인 내면의 수수께끼 같은 자질과 속성이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학의 주요 전제, 즉 사회 구조가 허락하는 가능성의 한계 안에서 행위자의 동기나 행태가 결정된다는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우만은 '영혼'이란 말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성격'이란 용어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성격으로 인한 선택은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일반적인 선택과는 사뭇 다르다.

바우만은 '운명과 성격'에서 네차마 텍의 <빛이 어둠을 가를 때>라는 책을 소개한다. 텍은 홀로코스트의 와중에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남을 도우려 했던 사람들에게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어떤 공통적 요인도 찾을 수 없었다. 사회적 환경, 계급, 교육 수준, 재산, 종교적 신념, 정치적인 조직체, 모든 변수들이 그들의 도덕적 선택과 상관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설명은 단 하나다. 그들의 성격이 "통계적인 확률"을 거스르면서, 모종의 자연스러운 속성의 발현으로 도덕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 성격은 "체념하는 듯 수용하는 태도와 상황이라는 그 전능한 힘을 거역하겠다는 대담한 결단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고 바우만은 주장한다(380쪽).

 

ⓒ프레시안(손문상)


여기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원문에서 성격은 '캐릭터(character)'이다. 바우만은 캐릭터라는 용어를 "인간은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라고 말하는 맥락에서 꺼내든다. 이때 캐릭터란 용어는 인생이라는 작품의 창작자이자 등장인물인 인간 행위자 자신을 고유한 개성과 품성을 지닌 인격체로 바라보자는 제안을 내포한다. 성격은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캐릭터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없기에 성격이라는 번역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바우만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성격이 좋은 사람이 도덕적 선택을 한다"는 식의 주장이 아닌 것이다.

나는 행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바우만의 캐릭터 개념을 '자리'라는 개념으로 보완하고 싶다. 달리 말하면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표현과 변화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용소의 간수들, 혹은 농성 중인 노동자와 철거민을 퇴거시키라고 명령 받은 용역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대부분은 인간적 존엄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이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라도 수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에 '자리를 바꿔서' 피수용자들이나 노동자나 철거민과 '함께' 대화, 식사, 생활을 나누는 경험을 가진다면 그 다음부터 그들은 상부로부터 내려온 진압 명령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그동안 마지못해서 소극적으로 명령을 따랐던 이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더 자신의 양심과 인격에 부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캐릭터, 영웅적 결단과 체념적 수용 사이에 자리를 잡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는 성격이라는 개념은 내가 최근에 친구에게서 들은 또 다른 책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그 책은 에바 포겔만이라는 학자가 쓴 <양심과 용기>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텍의 경우와 유사하게 나치 시대에 위험을 감수하며 타인들을 도왔던 사람들이 소개돼 있다. 포겔만은 이들의 행동을 '선의 평범성'(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표현하는데 쓴 '악의 평범성'과 대조되는)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그들은 어떤 영웅적 희생의식과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저 자기 본성에 맞는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그들에게 선행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필연적인 행동이었다.

텍과 포겔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수용소 이야기와 만난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는 나치 치하의 수용소에서 상반되는 두 사람을 만나서 혼란에 빠진다. 한 사람은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영웅적 인간인 슈타인라우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용소에 너무나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결함투성이의 인간 엘리아스이다. 그 둘을 보며 프리모 레비는 질문한다.

"이 복잡한 암흑 세계와 대면한 나의 생각들은 혼란스럽다. (슈타인라우프처럼) 정말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할까? 아니면 (엘리아스처럼) 체계가 없는 것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나을까?" (<이것이 인간인가>(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58쪽, 괄호 안은 필자)

바우만은 이 책의 마지막 편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에서 카뮈의 시시포스 이야기를 빌려와 레비의 질문에 답을 한다. 슈타인라우프와 엘리아스의 중간에 있는 어떤 성격의 사람들은, 즉 어떤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자기 실존의 그 철저한 부조리에 직면해 있었던 시시포스의 곤경일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아무리 지독히도 아주 작은 공간일지라도) 프로메테우스가 발을 들여놓아도 될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는 법"(387쪽)임을, "수용하는 저 행위 자체가 반항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388쪽)할 수 있음을, 그렇게 '나'의 반항이 '우리'의 존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입증해 왔다.

사실 바우만은 마지막 편지에서 사회학적 규약을 어기고 있다. 그는 카뮈에 기대어 "반란과 혁명, 자유를 향한 노력들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에 필연적인 측면들이라고"(389쪽)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일종의 '인간 본성론'을 역설할 때 바우만이 행하는 사회학에 대한 약속 위반이야말로 현대의 사회학자가 처한 곤경을 넘어서는 하나의 경로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우만의 글이 수용소와 반항하는 인간으로 끝을 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용소화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수용소의 구조 분석이 어떤 효용과 가치를 갖는가? 인간들이 겉으로는 가볍고 유연해 보이는 사회 구조에 옴짝달싹 못하게 예속되어 있으며, 그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이란 기껏해야 폐쇄 회로 안에서 맴돌고 있는 사회적 원자의 적응 능력에서 기인한다는 빤한 사실을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여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질책하며 일군의 현실주의 사회학자들은 수용소의 통치 영역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능력 있는 전문가임을 자처하며 수용소의 정책을 개선하고 수용소에 갇힌 인간들을 비참으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이 약속은 통치 영역으로 떠났던 사회학자들이 패잔병처럼 처진 어깨로 수용소의 숙소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않는다면 유능한 테크노크라트가 되어 통치자 못지않은 통치 기술을 과거에 함께 했던 동료들과 피지배자들을 향해 휘두르는 순간 산산이 깨지게 된다.

이때 바우만과 같은 어떤 사회학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암묵적인 약속 하에 외면했던 것들, 평범한 인간들과 사물들, 그것들의 희미한 신호와 움직임, 혹은 갑작스런 분출과 반항에 주목한다. 소위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아웃라이어'로 불렸던 것들, 평균값을 왜곡하는 값으로 도표 상에서 강제로 지워지고 추방됐던 것들, 이제 그것들로부터 은밀히 건네진 편지들을 읽고 그것에 일일이 장문의 답장을 쓰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사회학적 상상력은 출발하게 될지 모른다.

 
 
 


 

/심보선 시인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해직 이야기①] 김재철 사장이 만든 'MBC 디아스포라'

'얼짱 앵커' 왕종명, 누가 망가뜨렸나

[해직 이야기①] 김재철 사장이 만든 'MBC 디아스포라'

12.09.21 17:27l최종 업데이트 12.09.22 09:34l
 
MBC 노동조합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총력투쟁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위해 1천만명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투쟁 수위를 점차 고조시켜 나갈 것이다"며 김 사장의 퇴진과 MBC 공정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나는 MBC에 입사는 한 번 했지만, 해고는 두 번 당했다. 그것도 2012년 한 해에만. <오마이뉴스>가 '해직기자 일기' 류의 원고를 청탁한 배경에는 이런 진기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고 이후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되짚어 봤더니 우선 국가가 내게 보내준, 돈 내라는 고지서와 똑같이 생긴 세 장의 통지서가 떠올랐다.

해고 후 15일이 되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귀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친절한 문구와 함께 직장에서 지역 건강보험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줬다. 해고 80일에 고용노동부는 '사유: [14]징계해고'라는 분류코드와 함께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을 상실했다고 용건만 간단히 알려줬다. 해고 109일엔 국민연금공단이 "2015년 ○월까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납부예외를 '취득'했다고 가르쳐 줬는데, 희소식을 전하는 어투였지만 실은 앞으로 3년간의 무직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가히 '해고 알리미' 3부작의 완결편격이었다.

해고 뒤 날아온 통지서 세 장

그런데 딱 거기서 생각이 멈췄다. 고생담이랄 것도 없고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없는 나의 해직기자 생활을 '썰' 풀기에 앞서 너무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우선 파업 참여 이유로 정직 3개월을 당한 최일구, 김세용 두 부국장은 잘 계시는지. 최 선배는 방송 안 하고 그 끼를 어떻게 주체하실지, 집안 일 자주 하시면서 주부 습진 생긴 김 선배는 주부 우울증이 왜 생기는지 알 것 같다고 하셨는데....

MBC아카데미에 교육생으로 보내진 이들은 또 어떤가? 대기 발령 3개월이라는 '실형'을 다 살고도 또다시 3개월 교육 발령을 받았으니, 이건 '보호감호'라고 해야 맞겠다. MBC 보도 다큐의 거장이자 이제 곧 정년을 앞둔 이우호 국장, '얼짱 간판 앵커'인 의리의 남자 왕종명, 탁월한 방송 능력만큼이나 뛰어난 취재력으로 국회에서 일당백이었던 김수진, 정권을 긴장시키는 굵은 특종은 물론이고 정갈한 글 솜씨가 늘 존경스러웠던 임명현 등 22명의 기자가 '삼청'이 아닌 '신천교육대'(잠실 옆 신천에 위치했기 때문)에서 브런치 만들기, 국악의 이해, 사진의 세계 등등의 수업을 꼼짝없이 듣고 있으니 말이다.

보도국이 아닌 타 부문으로 축출된 기자들의 '유배 생활'을 떠올리면, 내 해직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정치부의 대표 민완기자였던 J는 상암동 신사옥의 사무 환경 조성을 담당하게 돼 가구업체를 접촉하고 다른 회사의 사옥 견학을 섭외하느라 바쁘다. <시사매거진 2580>의 간판 기자였던 S는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타당성 조사 보고에 몇 주를 매달렸다. 탐사기획 취재에 열심이었던 H는 견학 오는 어린이들 안내 업무를 맡았는데, 방학 때는 일이 줄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는 현재 김재철 사장 구속수사 촉구 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C는 지자체가 기획중인 사업들을 파악하면서 협찬 딸 궁리를 해야 하고, K는 드라마 세트장 관리로 발령 나 출퇴근 버스 안에서 하루 3시간을 보낸다. A는 그나마 아무 일감도 없이 하루를 보내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상념에 자주 빠지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이렇게 부당전보 조치된 기자가 24명인데 그들 모두 만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일산, 용인, 수원, 성남, 인천으로 근무지가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해고, 정직, 교육, 전보 등등의 형태로 보도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흩어진 기자가 총 53명이다. MBC를 소중히 여겼고, 일에 미쳤던 기자들이 취재와 보도라는 자기 '직(職)'에서 배제돼 떠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이 전부 해직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MBC는 현재 '감시와 처벌'의 결정체

혹자는 죗값을 달게 받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도 아닌 평조합원을 그것도 징계가 끝난 이들까지 추가로 교육으로 몰아내는 행태를 보복이 아니라고 볼 근거가 있을까? 보도국 기자의 3분의1을 몰아내놓고 경쟁력 제고에 최선을 다하자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뉴스데스크> 앵커이자 MBC 보도본부장 권재홍에게는 가능한 것 같다. '53명의 해직기자'에 대해 그가 한 말이다.

"머리가 뜨거운 상태이므로 연착륙을 위해서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현재 MBC기자들의 상황을 보면 자꾸 '디아스포라(diaspora)'를 떠올리게 된다. 타의에 의해, 명령에 의해 고국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대인, 식민지 민중, 노예들의 이산(離散). 그 이산의 아픔이 오늘날 신사옥 건설단으로, 사회공헌실로, 미래전략실로, 경인지사로 흩어져 이산가족이 된 우리들의 처지로 옮겨오는 것 같다.

한편으론 김재철 체제의 MBC야말로 '감시와 처벌'의 완벽한 구현이 아닐까 싶다. 보도국 천장에 설치된 HD급 CCTV는 그 탁월한 줌인 기능으로 기자들이 어떤 문서를 읽고 있는지까지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 사내 인터넷망에 접속된 모든 데스크톱 컴퓨터와 개인용 노트북에는 기자들도 모르는 사이 스파이웨어가 깔려 메신저 대화록과 이메일 첨부파일까지 모조리 회사 서버로 전송됐다.

이러니 나는 나의 해직기자 일기를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MBC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기자회장으로서 위로나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싸움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혁명가 체(Che)를 들먹이는 것도 마땅치 않고, "당장의 고초는 보내고 나면 꿈이 될 것"이라는 소설 속 구절도 허약하다. 지금 이 순간은 기형도 시인의 외침만이 가슴에 닿으리라.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해직된 박성호 MBC 기자협회장.
ⓒ MBC노동조합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박성호 기자는 MBC 기자협회장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개혁개방에 대중 의존 높아질 것"

 

"북, 개혁개방에 대중 의존 높아질 것"
이영훈 "기회를 포착해 남북관계 개선해야"
 
 
2012년 09월 21일 (금) 18:55:07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 21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박병석 국회부의장, 국회입법조사처 공동 주관으로 '북한 경책 변화와 북.중 경협의 현황 및 문제점'의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북한의 경제개혁이 초미의 관심인 가운데,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북한이 개방 확대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남북경색 국면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제기됐다.

21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박병석 국회부의장, 국회입법조사처 공동 주관으로 '북한 경책 변화와 북.중 경협의 현황 및 문제점'의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영훈 SK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경협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어 왔다"며 "북한은 기존의 북중경협 확대 외에도 개혁의 한계 및 개혁에 따른 개방 확대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대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조사에 따르면, 북.중 무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해 2011년 56.3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과거 단순교역과 광산개발 중심에서 임가공무역, 접경지역 개발 및 산업투자로 확대 등 중국의 대북투자가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2년 황금평 및 나선지역 개발이 계약단계에서 실행단계로 접어들어 중국의 대북투자가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영훈 연구원은 중국 개발업자의 말은 인용, 황금평 개발 상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2012년 9월 하순부터 기반시설 공사가 시작되는데, 총 12.5㎢(총 면적 16㎢, 개발가용면적 12.5㎢) 가운데 1.6㎢에 관리위원회 청사 건축, 기반시설 중 도로, 전기, 상하수도, 인터넷 관련 시설이 착공될 예정이다.

이러한 토대로,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심화, 이영훈 연구원은 "북한의 개혁추진에 따라 불안정성이 더욱 커질 수 있으며, 이러한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중국의 지원이 보다 절실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심지어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와 개혁추진에 따른 중국의 대북한 지원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북한의 개혁 속도나 성패는 북.중 경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북한의 대중 의존도 심화를 우려했다.

 

   
▲ 토론회에는 박병석 국회부의장, 유인태, 문대성 국회의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하지만 이영훈 연구원은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에 따라, 중국은 북한의 무역을 독점, 중국을 가격설정자로 하는 불평등한 경협이 심화된다"며 "이는 북한 경제에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은 이를 위해 러시아, 미국, 일보 등과 관계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여 남북관계를 재정립하지 못하고 지금의 북.중 관계와 남북관계가 장기화된다면, 통일의 가능성은 크게 축소될 것"이라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주문했다.

이날 토론회는 박병석 국회부의장, 유인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문대성 무소속 의원 등이 30여명이 참석했으며, 김영수 서강대 부총장의 사회로,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동북아연구실장 등이 발제를 맡았다.

그리고 임강택 통일연구원 박사,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정철 숭실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조정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로운 대중공양운동 제안

새로운 대중공양운동 제안

 
법인 스님 2012. 09. 21
조회수 62추천수 0
 

 

김장 담그기-.jpg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김장을 담그고 있는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지금 조계종은 겹겹이 괴로움에 쌓여있다. 몇 달 전에 바깥세상에까지 크게 알려진 도박 문제·일부 본사 주지 선출과정에서 불거진 돈 봉투 사건 등등으로 종단과 불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중진 승려가 사찰 소유 토지를 몰래 팔아 해외로 도피하는 사건이 터지고, 선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일부 총림에서 혼란과 분규가 끊어지지 않고 있어 괴로움이 늘어만 가고 세속인들이 불교 집안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럴 때 일부에서는 모든 책임을 종단 집행부에 돌리고 자신은 이런 상황과 관계가 없다고 우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 혼란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양쪽이 아주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나는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거나 방관자가 되어 자기위안에 머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사성제의 가르침대로 ‘우리 종단이 혼돈상황에 놓여있음(苦)’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원인(集)을 찾아 잘못을 없애는(滅) 대안(道)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대안이 전체 승가구성원 대표가 모인 쇄신운동이다.

 

스스로를 살펴보고 잘못을 바꾸겠다는 의지에서 여러 의제를 대중공사에 붙이고 사부대중의 여론을 들어 쇄신안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자성과 쇄신 운동에는, 이름을 달리하고는 있지만 승속이 망라된 종단 집행부 바깥의 대중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승려들의 ‘범계(犯戒)’를 거론하며 범계행위자에 대한 공양과 청법 거부 운동을 주장한다.

 

스님 헌혈-.jpg

승려와 불자들이 헌혈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승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에 이를 바로잡는 마지막 방법이 ‘공양과 청법 거부’임은, 붓다께서도 제어할 수 없었던 승가의 분열을 재가 대중들이 바로잡았던 코삼비 사건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승가 내의 모든 절차를 거치고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확인될 때에 쓰는 마지막 방법이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쓰는 비상(砒霜)과 같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과연 거부가 승가를 쇄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까. 거부 운동에 “승가를 바로 세워서 불교를 발전시키고 세상에 안락과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정의감과 애정이 넘쳐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각에 불신·원망·방관·무관심·책임전가 그리고 승단에 대한 대립과 적개심은 없는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위에 나오는 부정적인 낱말로 드러나는 일체의 행위를 극복하자는 것이 불교가 아닌가. 부처님께서는 “원한과 증오는 원한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숱하게 전해주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붓다의 정법을 세우겠다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어기면 되겠는가.

 

요즘 나는 여래십호 중에서 ‘세간해’와 ‘응공’에 관심을 갖고 그 의미를 되새긴다. ‘세간을 바르게 살피고 이를 해결해주는 세간해’인 붓다는 ‘마땅히 중생들의 신뢰와 존경·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춘 응공’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응공’이신 붓다에게는 일체 대중들이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붓다가 함께 하지 않는 오늘날 누구에게 공양해야 하는가, 누가 세상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을 자격이 있는가.

 

“비법을 행하는 승가에는 공양과 청법을 거부하고 정법을 행하는 승가에만 공양을 올리고 법을 청하자”는 내 말은 ‘거부하자’는 말만 강조되어 번번이 오해를 받고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내 뜻은 대승의 정신에 충실하려면 그름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옳음에 대한 청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면목을 찾고 청빈과 치열한 구도심으로 정진하는 선원,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며 포교에 정진하는 스님과 사찰, 더 나아가 불교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재가불자단체에도 후원을 하고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청법 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승적 공양운동이다. 보살행을 실천하는 승가와 재가는 얼마나 참다운 부처님의 진리 대행자인가. ‘그름에 대한 거부와 옳음에 대한 청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면, 정법에 힘이 모아지고 그 힘이 커져서 서로 상생하게 된다. 화합은 선언과 구호가 아니라 ‘부정과 긍정’의 동시 지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련글

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을 지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승가 교육 진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최신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기 위해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

박근혜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기 위해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
(서프라이즈 / 꺾은 붓 / 2012-09-21)


결자해지 [結者解之]!

뜻을 대충은 이해하고 있지만, 보다 그 뜻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해 사전풀이를 고대로 옮겨 싣는다.

발음 : [-짜--] 형태분석 : [結者解之] 검색결과【명사】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말.

성어(成語)의 뜻은 위와 같고 읽을 때는 ‘결짜해지’로 읽는다는 풀이다.

우리 역사에 친일매국 청산의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친일매국에 덧붙여 ‘군사독재’라는 것이 추가되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범 민족적인 대 청소작업의 명칭이 <친일매국과 군사독재 청산>으로 정의된다.

이완용 을사오적 일제부역자 이승만 등의 죄상은 친일매국 죄이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받은 박정희는 친일매국과 군사독재의 겹(중(重)죄인으로서 죄가 겹친다. 그러니 이완용 을사오적 일제부역자들은 5.000년 역사 이래 최대의 역적 죄인이고, 박정희는 거기에 군사반란과 유신반란과 군사독재라는 죄목까지 추가되니 과시 5,000년 역사에 그와 죄를 견줄 상대조차 없는 민족최대의 죄인이자 <범죄 금메달감>이다. 모든 죄를 용서할 수는 있어도 민족과 국가를 배반한 죄는 용서할 수도 없으려니와, 그런 죄를 용서하여 주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고, 하늘도 용서치를 않는다.

반면에 우리와 똑같은 경우를 물려받은 북한은 북한정권 수립과 동시에 친일매국은 100% 완벽하게 청산을 하였다. 김일성, 김정일에게는 해방이후 독재로 북한주민을 들볶은 독재 죄만 있을 뿐이고, 남한에는 저들과 비슷한 죄인으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이 있다. 김정은은 아직은 평가하기에 이르고, 더 두고 보아야 된다.


1. 반민족행위 처벌법 제정

 

이승만 치하에서 1948. 9. 22 <반민족 행위 처벌법 : 약칭 반민특위>법이 제정되어 일제36년을 청산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제식민지에서 벗어난 한반도의 반쪽 남한을 자신들의 식민지삼아 동아시아 교두보를 확보하여 세계제패를 꿈꾸는 미국의 계산과, 그런 미국을 등에 업고 영구집권을 꿈꾸는 이승만의 여우와 같은 속셈과 친일매국청산작업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죄 값을 치러야 했던 친일부역매국노들의 구명도생을 위한 몸부림이 맞아 떨어져 이들 3세력이 야합하여 반민특위 위원들에 대하여 공공연한 공갈·협박과 방해로 반민특위는 그 활동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3번에 걸쳐 법을 개정해 누더기 법을 만들고서도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자 1949년 10월에 아예 반민특위를 해체함과 동시에 법을 폐기시켜 버렸다. 그래서 반드시 친일부역 범죄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했던 첫 번째 기회는 날아갔다.


2. 1961. 5, 10군사반란

 

박정희나 그 딸 박근혜의 말대로 당시는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혼란은 자유당 12년 독재를 벗어난 민중들의 환호였으며, 민주당정권으로 하여금 빨리 친일을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절규이자 주문이었다.

박근혜 말대로 박정희가 나서지 않았으면 나라가 무너질 그런 혼란이 아니었다. 저들의 주장대로 우리에게는 하느님과도 같은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박정희와 같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군인들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민주화를 바라는 학생들의 소요로 무너질 나라가 아니었다. 거기서 민주당정권이 안정되면 자유당 정권에서 한 번 실패한 반민특위를 재가동할 그런 상황이었다.

목숨에 위기감을 느끼고, 권력욕에 눈이 뒤집힌 박정희를 비롯한 친일매국노들을 중심으로 짜여 진 군 상층부가 그런 혼란을 핑계 삼아 군사반란을 일으켜 합법적으로 탄생한 민주정부를 들러 엎고 불법적인 군사정권을 수립했던 것이다. 여기서 2차로 친일매국을 청산할 기회가 또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박정희 독재가 18년 지속되고 이어서 전두환과 노태우군사독재가 12년 동안 펼쳐짐으로써, 친일매국노들은 거의 다 사멸을 하여 인적청산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3. 1998, 2. 25 최초의 정권교체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탄생

 

인적청산의 기회는 영원히 날아갔지만 그렇다고 역사와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친일청산을 미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친일매국의 후예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김대중은 부도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에도 바쁜데 친일청산을 서둘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또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뒤바꾸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였다.

거기에 더해 해방이후 50년 동안 이 나라를 좌지우지 했던 친일매국노들이 국회, 언론, 재벌을 비롯 사회 모든 분야에 골고루 침투해 곳곳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허약한 민주정부로서는 친일청산을 할 힘도 여력도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겨우 친일매국 청산을 한 것이라고는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정도였다. 그 사전의 편찬조차도 매국노들의 집요한 방해책동으로 제대로 완결을 짓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국민들은 50년 이상 지속된 친일매국세력의 정권하에서 <행복한 돼지>로 사는 것에 길이 들여져 친일매국노가 아니라 100%왜놈인 이명박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이제는 ‘친일매국청산’ 의미자체가 희미해지고 말았다.


4. 참으로 어이없고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광복 60년이었다.

 

역사의 법정에 세워져 추상같은 단죄를 받아 매국노 본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매국으로 축적한 장물재산은 국가가 환수하고, 그 자손들은 역적의 자손으로서 공민권의 제약을 받고 숨어서 숨을 죽이고 살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매국노들이 전면에 나서서, 가족과 재산을 다 버리고 일신을 독립투쟁에 바쳤던 애국지사와 그 후손들을 탄압하고 핍박하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눈이 뒤집힐 60년 세월이었다.

그게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역사의 굽이마다 옷을 갈아입고 문패를 바꿔달며 악의 축을 이어오고 있는 작금의 정부여당이다.
5. 결자해지하러 박근혜가 나섰다.

박근혜 자신이 생각해도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기가 막힐 것이다. 해방과 동시에 북한과 같은 완벽한 친일청산이 이루어졌다면 박근혜 자신과 3남매는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했을 그런 생명체다.

우리 속담에 “미친 년 널뛴다.”는 말이 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추대된 뒤의 박근혜를 일컫는 말 같다. 수첩보고 읽어댄 후보수락 연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봉하의 노무현 묘소로, 노무현 생가로, 동작동으로, 동교동 이희호 여사 댁으로, 전태일 열사 동상으로, 시장바닥으로, 눈총 따가운 대학 강단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수재민마을로. 꼭 미친 년 널뛰듯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며 악수하고 손 흔들고 사진 찍기에 바쁘더니 ‘과거사’라는 날벼락을 맞고 널뛰기를 잠시 멈췄다.

그 광폭행보 더 활발하게 전개해라! 박정희가 뒈진 궁정동 안가 터로, 육영수가 뒈진 장충단 구 국립극장 터로, 다까끼 마사오 중위가 일장기 휘날리며 용맹을 떨치던 만주벌판으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으로, 박정희가 순결을 빼앗은 어린동생 같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작은어머님과 이복동생들 댁으로, 장준하선생의 묘소로, 피눈물이 마를 순간이 없는 인혁당사건 희생자 유족의 집으로, 박정희의 죄가 깃들어 있는 삼천리방방곡곡 모든 곳을 쏴 돌아 다녀라! 박근혜의 발길이 닫는 곳 마다 숨겨지고 잊혀 졌든 박정희의 죄상이 하나하나 들춰져 밝은 햇살아래 드러나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고 히로히또에게 써 바쳤던 활달한 필치의 혈서, 만주벌판에서 떨쳤던 맹위, 남로당에 가입하였던 화려한 전력, 구국의 결단이었던 5.16, 불가피했던 선택인 유신(維新), 무릇 여인들에게 성은(聖恩)은 베풀고자 벌였던 안가의 만찬, 하나하나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오리발을 내 밀어 봐라! 그럴수록 그 실상이 샅샅이 파헤쳐져 밝은 햇살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박근혜가 그것을 하기위해 대선 마당에 뛰어든 것이다.
그게 바로 결자해지(結者解之)다.
아니, 이미 뒈진 결자(結者) 딸의 손에 의한 해지(解之)다.

친일과 군사독재 청산!
이제는 덮어 둘려야 덮어 둘 수없는 현실의 문제로 떠올랐다.
모든 국민이 뼈저리게 그것을 깨달았다.

아-! 하늘의 오묘(奧妙)한 섭리(攝理)는 이렇게도 섬뜩하도록 무섭고도 현묘(玄妙)하구나! 어리석은 백성들이 더러운 역사를 청산치 못하고, 60년이 넘게 끓어 안고 안절부절 애걸복통을 하는 것을 보고 하늘이 그 역사의 더러운 매듭을 지은 놈의 딸로 하여금 그것을 풀게 하려고 그를 어림도 없는 대선 판으로 끌어내었구나!

대선이라는 멍석은 이미 깔렸다.
어디, 박근혜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꺾은 붓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쌍용차 청문회 이후... 회계 조작 여부부터 밝혀내야

"정리해고 됐다고 22명 죽는 곳은 세상에 없다"

[분석] 쌍용차 청문회 이후... 회계 조작 여부부터 밝혀내야

12.09.21 09:08l최종 업데이트 12.09.21 09:20l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청문회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 한상균 전 지부장, 이유일 쌍용차 대표이사, 류재완 쌍용차 상무 등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쌍용자동차(아래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3년이란 시간 끝에 22명이 세상을 등진 후에야 국회가 그들에게 귀를 열고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청문회 참석자들은 모두 '쌍용차 사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야는 '쌍용차 해법의 출발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서부터 시각차를 드러냈다. 야당은 정리해고의 근거였던 회계보고서가 애초에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김경협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2009년 사측과 회계법인 삼정KPMG이 쌍용차 정상화계획보고서에 인용했던 <하버리포트>에 쌍용차의 생산성지수(HPV)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구조조정의 근거 중 하나가 '낮은 HPV'였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2646명이란 숫자가 나온 근거가 뭐냐(이종훈 의원)"고 의심하면서도 법원과 금융당국이 '정리해고는 적법했다'고 판단한 것에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서영교 새누리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최진영 금융감독원 회계감독국장이 '불법이 아니다'라는데 공식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말했다.

회계 조작 여부는 쌍용차 해법의 출발점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사측과 삼정KPMG가 회계장부를 조작한 게 사실이라면 정리해고 자체가 무효다. 정반대의 경우 '안타깝지만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었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진다. 전자의 경우 복직은 '부당하게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후자는 '회사 등의 배려로 가능한 일'이 된다.

해결책의 출발점은 '회계 조작' 여부... 국정조사 필요성 두고 여야 엇갈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지난 2009년 7월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노사협상 타결이 임박한 것을 알고도 경찰력을 투입해 강제진압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것은 거짓말"이라며 부인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맨 오른쪽)이 답변하는 조 전 청장을 쳐다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따라서 회계 조작논란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뿐 아니라 야당과 시민사회계에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이유다. 야당 간사인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은 "오늘 청문회로 (정리해고를 위한) 회계 조작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간사 김성태 의원은 "노사가 문제 해결의 주체"라며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서영교 의원은 "(국정감사 등으로 압박하면) 마힌드라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까 봐 우려된다"며 "그럼 남아 있는 직원 600명은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국정조사가 어렵다면, 오는 10월에 열리는 국정감사는 또 다른 선택지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감 때에도 쌍용차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의지를 여러 번 밝혔다.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불참한 박영태 전 쌍용차 인력지원본부장을 "국정감사 때 반드시 부르겠다"고 했다. 박 전 본부장은 2009년 당시 법정관리인으로, 사측을 대표해 노사 교섭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쌍용차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지난 7월 19대 국회 상임위가 처음 열린 후부터 야당은 줄곧 '쌍용차 소위원회를 만들자'고 주장해왔다. 20일 청문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은 반복됐다. 여당이 '노사문제는 당사자간 협의가 원칙'이라는 반대의견을 되풀이하긴 마찬가지였다.

"한진중, 정치적 해결 추구했지만 좋아지지 않아... 노사 간 노력해야"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청문회에서 홍일표 민주통합당 의원이 정리해고 후 부모가 모두 사망한 조합원의 자녀들 사연을 소개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한상균 전 지부장.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같은 원칙을 고수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이채필 장관은 "한진중공업도 정치적 해결을 추구했지만 경영사정이 좋아지지 않았다"며 "노사 간 노력으로 경영을 정상화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해고를 "침몰 위기의 배를 구하려는 불가피한 방법"에 비유하며 "제 차는 다음에 쌍용차로 할테니 의원님들도 동참해달라"고도 했다.

이 장관에게 시급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던 신계륜 환노위원장은 "제가 부탁한 건 그런 게 아니다"라며 "정리해고됐다고 22명이 죽는 사업장은 세상에 없다. 더 억울한 요인을 풀려고 노력해야 할 노동부가 못하니까 제3지대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라는 뜻"이라고 질타했다. 신 위원장은 오는 26일까지 여야 간사가 협의해 쌍용차 국정조사 여부를 결정하라고 당부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21일 0시에 가까워질 무렵 청문회가 끝날 분위기가 되자 신상발언을 요청했다. 한 전 지부장은 "도와달라, 노동자는 일터로 가야 한다"며 "그 길이 그렇게 어렵냐"고 물었다. "진실 규명 전에는 그 답(쌍용차 사태 해법)을 명쾌히 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국정조사의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쌍용차 사태 이후 금속노조틀에서 벗어나자며 새로 만든 쌍용차 노조의 김규한 전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쌍용차 사태가 "오늘 청문회에서 충분히 논의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모자란 부분은 좀더 고민하자"며 "(금속노조와 사측, 새 노조가) 평행선을 긋는 것보다 서로 양보하면서 접점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송영선 관련 25억 주인공은 '박근혜 선대위 출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09/21 08:49
  • 수정일
    2012/09/21 08: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기업인에게 억대의 대선자금을 요구한 녹취록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송연선 전 의원을 제명했습니다. 그런데 송영선 전 의원이 돈을 요구한 기업인이, 이전에 박근혜측 인사에게 25억 원이라는 돈을 건넸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송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 관리 및 대선 자금을 위해 돈을 요구받았던 강모씨는 박근혜측 인물에게 25억 원을 줬다고 하는데, 강모씨는 빌려준 돈이고, 송영선 전 의원은 정치 자금일 수도 있다고 하고, 돈을 받았던 홍씨는 '자신이 아는 투자회사에 돈을 맡겼다가 손해를 본 적이 있는데, 이를 갖고 나를 고소했었다'라는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특성상 돈의 액수는 드러나지만, 도대체 누가 받았는지, 어떤 경로로 돈이 오간는지는 검찰 수사에서도 밝혀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래서 진짜 돈이 오갔는지, 그리고 그 돈이 대선 자금으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송영선 전 의원 사건을 보면, 박근혜 후보쪽 인물들이 어떤 정치를 하는지 알 수 있기에, 오늘은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25억 관련 주인공은 박근혜 선대위 출신'

25억이라는 엄청난 돈과 연관된 인물을 그간 언론에서는 H씨나 홍씨로 표기됐는데, 실명은 홍윤식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대외협력위원회 전문가 네트워크 위원장을 맡았던 인물로, 2007년 6월4일 발표된 박근혜 선대위 인선과정에서 이 직책을 임명받았습니다.

홍윤식은 일명 '한강포럼'이라고 불리는 박근혜 후보 외곽조직의 부회장도 역임했었는데 ,한강포럼은 지난 2007년 당시 정·관계, 재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등의 인사 3200여 명이 참여한 거대 조직입니다.

 

 

▲박근혜 지지모임에 참석했던 박근혜 후보와 홍윤식,출처:서울의 소리,민중의 소리

 


2007년 대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홍윤식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명박 후보 주민등록등초본 유출 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박근혜와 이명박은 대립하고 있었고, 이때 이 후보 '위장전입'과 '부동산'의혹이 터졌습니다. 이때 나온 증거중의 하나가 주민등록등초본이었는데, 이 주민등록등초본을 박근혜 캠프 인사가 전직 경찰 권모씨에게 지시해 부정 발급받아서 문제가 된 사건입니다.

여기서 말한 박근혜 캠프 인사가 바로 홍윤식 '한강포럼' 부회장이었는데, 그때 이명박은 박근혜 캠프의 정치공작이라고 몰아세웠고, 박근혜쪽은 그저 외곽 서포터즈 조직의 한 명이었고, 이런 사람을 아예 알지도 못한다고 부인했었습니다.

결국, 2007년 대선을 전후로 홍윤식은 박근혜 캠프와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송영선 전 의원 사건과 연루된 강모씨는 친박 인물이었던 홍윤식을 믿고 25억 원을 거래했다고 보입니다.

'외곽조직들의 살벌한 권력 다툼과 아부 '

선거를 치르다 보면 각종 OO팀,XX팀 등의 비선 조직이 음지와 양지에서 출몰합니다. 또한 각종 지지모임도 많이 생기는데, 이때 제일 많은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곳이 회원수가 많은 지지모임과 연예인들입니다.
 

 

 

▲박근혜지지하는 연예인 모임에 참석한 연예인들과 서청원 전 고문

 


연예인들이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순수한 단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외곽조직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시작될 즈음에 여의도 한 호텔에서 일명 연예인 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는데, 말로는 순수한 단체라고 했지만, 대놓고 '박지모 (박근혜를 지지하는 모임)'라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박지모에 참석한 연예인들의 인터뷰 내용,출처 노컷뉴스


박지모(박근혜를 지지하는 모임)에 참석한 연예인들은 '박근혜 후보가 도덕적으로 완벽','제2의 선덕여왕','후덕한 정치' 등 앞다퉈 박근혜 후보를 찬양했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서청원 고문과 홍윤식이 참석했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순수하게 지지하고 그의 앞길을 축하해주면 좋겠지만, 선거가 끝나면 항상 말썽이 발생합니다. 대부분 그런 말썽은 자신들이 얼마나 선거를 위해 열심히 뛰었는지 큰소리를 치기도 하면서, 이제 그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더욱 불거집니다.

 



2008년 4월9일 친박연대는 박근혜라는 이름만으로 18대 총선에서 14석을 차지합니다. 총선 다음 날인 10일,박사모는 친박연대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 과정에서 친박연대 당직자들과 논공행상(?)을 놓고 욕설과 폭력까지 동반한 싸움을 벌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 송영선 의원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박근혜 후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던 인물들의 실체가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정치] - 괜히 '박근혜 지지단체' 따라갔다가, 벌금만 69만원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명목으로 벌이는 행사와 그 중심에 있는 선대위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분명히 문제가 될 소지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박근혜 지지모임은 우후죽순 늘어만가고, 친박을 내세운 정치인들의 행보 또한 가관입니다.

 

 

▲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4.11 총선 때 올린 트윗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을 '박근혜 아바타'로 부르며 박근혜를 찬양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들이 새누리당에만 수백 명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박근혜라는 이름을 빌려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는 녹취록에 벌써 다 나와 있습니다.

추잡함이 담긴 이런 정치판이 새누리당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 박근혜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하고,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 박근혜'

안대희 전 대법관이자 현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의 금품요구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던 한겨레 신문과 언론 보도를 두고 "항상 비리나 부정이 발생할 수는 있다.그런데 그걸 녹취해 보도하는 모습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정치쇄신특위 4차회의에 참석, 안대희 위원장과 귀엣말을 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지금 대한민국 언론을 언론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언론은 보도에 관한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명예훼손과 같은 소송에 늘 노출된 미국 언론들은 자사 내에 변호사를 두고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내부 기사 검열을 합니다. 보통 크게 두 가지인데, 명예훼손을 제기할 당사자가 누구이고, 해당 기사가 보호받을 정당성이 있는가라는 부분입니다.

안대희 위원장은 언론 공개 전에 검찰 수사 등의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수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대한민국 검찰이 언론에 흘리고 이것을 냉큼 주워 먹는 언론사들의 무분별한 보도가 더욱 문제이지,이번과 같이 보호받을 정당성이 있는 언론 기사를 놓고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짜 대법관 출신이 맞는가 의심스럽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 당정치쇄신특위 발언 내용. 출처:SBS

 



박근혜 후보는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 사건을 가리켜 "우리 당 식구들이 많다 보니까 여러 가지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바람 잘 날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에 딸린 식구들이 많아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폭처럼 불순한 범죄자들이 많은 조직이 문제가 아닐까요?

 

 

▲출처:노컷뉴스 수타만평

 


새누리당은 송영선 전 의원 사건이 터지자 단 4시간 만에 송영선 제명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정준길,홍사덕,김형태,문대성,현영희,현기완 등 새누리당에서 문제가 되는 인물들은 모두 제명이나 탈당을 했습니다. 이들이 하나같이 내세우는 것은 새누리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인데, 그 정당을 바라보는 국민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꼬리 자르기도 이렇게 매번 하다가는 몸통까지 자르는 사태까지 나오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민간인 사찰 김종익씨 변호를 맡았던 최강욱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박근혜 타령'입니다. 박근혜 대선 후보를 조사하면 너무 쓸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을 매번 쓰지만 기존 언론이나 나이 드신 분들은 눈도 깜짝 안 하고 그녀만은 깨끗하다고 믿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아마 정부 부처 공무원이 많아서, 청와대 직원이었지만 잘 몰라서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조속히 직위해제,사임,사퇴 등의 단어가 자주 나올 것 같습니다.

자기 사람을 관리하는 일과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까지도 책임지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민평화포럼 등, 국회서 남북러 가스관 토론회 개최

 

이정철 "남북러 가스관, 북한 비핵화 입구에 있어야"
시민평화포럼 등, 국회서 남북러 가스관 토론회 개최
 
 
2012년 09월 20일 (목) 18:31:35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시민평화포럼 등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일 블라디보스톡에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 추진에 협력하기로 한 가운데 국회에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20일 개최됐다.

국회 의원회관 신관 524호실에서 오후 2시부터 국회한반도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 한국가스공사노조 등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가스관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입구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정철 숭실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북한이 비핵화 안 하면, 가스관 건설하면 안 되느냐”는 질문을 던진 이정철 교수는 “에너지 문제가 풀리면 북한 핵문제는 풀린다는 것이 순서상 맞다”며 “에너지 문제를 북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역으로 “북한 핵문제를 풀려고 에너지 문제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수단으로서 에너지 문제가 북핵문제에 접근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풀리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며 참여정부 시기 200만kw 전력제공을 제안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실패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지난 시기의 이같은 접근을 “안보 대 보상의 틀”로 파악하고 “안보 대 안보의 틀”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즉, 북한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는 에너지 제공이나 경제적 보상으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접근법 보다는 평화협정 등을 통해 안보를 제공함으로써 북핵 포기를 유도하고 경제협력은 비핵화 과정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가스관은 우리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북한이 연결되고 지역 관념이 형성되는 총체적 과정에서 안보의 불신이 해결되는 프로세스로 가야 풀린다”고 말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동북아연구실장은 “지난 17일 북-러 간에 외채문제가 해결됐다”며 “향후 남-북-러 간 합의돼 왔던 PNG(파이프 라인 천연가스) 사업, 철도망 사업, 전력망 사업이 앞으로는 커다란 장애물이 제거됐다”고 변화된 상황에 눈길을 돌렸다.

안병민 실장은 그러나 파이프 라인 건설시 “폭 40m 이상 용지를 800km 확보해야 하는데 갈 수 있는 지역은 철도와 도로 부지 밖에 없다”며 “북한의 철도법과 도로법에 의하면 철도나 도로 부지에는 아무 것도 깔 수 없다”고 예시하고 러시아의 협상 방식 등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심층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의 효율성이나 경제성 측면에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남북러 간 철도, 전력, 건설, 농업협력사업과 결합된 패키지 형태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 안성규 기자, 안병민 실장 등이 토론에 임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안성규 <중앙일보> CIS 순회특파원은 2011년 8월 김정일-메드베데프의 울란우데 회담을 비롯해 한러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최근 가스관 사업에 대한 흐름은 좋다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남북 간에 잘 되고 있느냐면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성규 특파원은 “북한체제와 핵문제,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낸 남북관계 경색”을 3가지 장애요인으로 꼽고 “일단 가스관 두 개를 만들더라도 먼저 중국을 통해서 들여 오면서 장기적으로 남-북 가스관을 하고, 혹시 아니면 중국을 통해서라도 북한에 제공된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고 제시했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김동철 국회한반도평화포럼 대표의원과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송주명 한신대교 교수와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정현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 국장이 발표와 토론에 나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폭력·도청·불법채증…‘강정마을’ 인권침해 심각

 

폭력·도청·불법채증…‘강정마을’ 인권침해 심각
 
강정인권침해조사단 “2년간 265명 연행, 군사독재시절 있을법한 폭력 난무”
 
편집부 | 등록:2012-09-20 10:32:14 | 최종:2012-09-20 10:50: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2년간 265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폭력과 무법행위가 난무하는 등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정인권침해조사단을 비롯해 강정마을회와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인권단체연석회의,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은 19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 앞에서 강정인권침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강정인권침해조사단을 비롯한 해군기지 반대단체들이 19일 오후 경찰청 앞에서 강정인권침해사례 조사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9월부터 강정마을에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조사해 온 인권침해조사단은 "강정에서는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폭력과 무법행위가 난무하고 있다"면서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조사결과 강정에서 △경찰의 감시와 통제 △집회시위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 침해 △이동의 자유 제한 및 강제 구금 △연행.수사과정 인권 침해 △채증으로 인한 인권침해 △여성에 대한 폭력 △법에 대한 권리 침해 △무작위 전화 도청 △인권옹호자에 대한 탄압 △언론의 자유 침해 △국제평화활동가와 인권옹호자 강제추방 △건설회사-용역 폭력 채증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침해조사단은 "법에 근거하지 않은 연행, 강정에서 생활하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경찰 감시와 폭력은 너무나 흔해빠진 일이 됐다. 가끔 대한민국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는 강정에서 찾을 수 없다. 왜 평화롭게 살겠다라는 최소한의 요구가 모든 권리까지 빼앗기며 무참하게 짓밟혀야 하느냐"고 비난했다.

특히 조사단은 "얼마 전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열리던 날 강정의 평화를 알리기 위해 케이슨에 오른 활동가들을 어떠한 안전장치 없이 인부들이 끌어내리는 끔직한 장면이 생생하다"며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행동에 대해 폭력과 위법으로 맞서는 정부와 건설업체의 폭력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평화는 군사기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대다수 주민들의 반대를 무릎 쓴 군사기지 강행,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경찰과 해군의 폭력에 맞선 평화적 직접행동만이 정답이라는 것은 전세계가 알고 있다"며 "이제라도 경찰과 해군, 한국정부는 인권과 평화의 입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기억하기도 싫은 인권침해의 사실을 쓰리지만 더 이상 이러한 폭력이 재현되지 않기를, 당장 공권력의 폭력을 중단시키지 못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은폐하거나 호도시키지 못하도록 기록으로 남길 것"이라면서 "전쟁터에서도 없는 연행자에 대한 치료권 박탈,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 전화도청, 무작위 업무방해 적용으로 인한 사실상의 자유박탈, 자기 밭을 짓밟는 경찰에 항의해도 오히려 채증당하고 폭행당하는 기막힌 현실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경찰과 해군의 인권침해 행위 중단,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책 수립,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중단 등을 요구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인권침해조사단을 비롯한 해군기지 반대단체들은 경찰청에 이들의 요구를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헤드라인제주>

 

   
인권침해조사단과 해군기지 반대단체 관계자들이 경찰청에 강정인권침해사례에 대한 의견을 담은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기사제휴-헤드라인제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일 쌍용차 정리해고 청문회... 회계조작 진실 밝혀야

안철수에게 쏠린 시선, 단 하루만 국회로

[取중眞담] 20일 쌍용차 정리해고 청문회... 회계조작 진실 밝혀야

12.09.19 22:05l최종 업데이트 12.09.19 22:05l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쌍용자동차범국대책위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 회원들이 5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23번째 죽음을 막고, 용산철거민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박근혜 대선후보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가 열린다. 지난 2009년 7월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옥쇄 파업 이후 구조조정이 시행된 지 3년 만이다. 정리해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경찰의 폭력적인 강제진압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노동자와 그의 가족 22명이 자살과 돌연사로 목숨을 잃고 나서야 이 문제가 국회에 왔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지만, 쌍용차 사태는 여야 모두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은 구조조정과 경찰의 폭력진압의 책임이 있고, 야당도 이 문제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권 당시 '먹튀' 우려가 높았던 상하이자동차에 쌍용차를 매각하면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야 모두 대선후보가 결정된 상황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등 노동 문제가 사회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쌍용차 사태는 우리사회가 문제해결을 위해 풀어야 할 첫 번째 매듭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22명이나 되는 희생자가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고는 곧 살인'이라는 것이 증명됐고, 죽음이 이어질 때마다 그 다음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어렵게 성사된 이번 청문회에서 사건의 본질이 정확히 밝혀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야당은 구조조정 당시 회계조작 의혹과 경찰 공권력의 국가폭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겠지만, 여당은 상하이차 매각문제와 옥쇄파업 당시 노조의 불법점거와 폭력 문제를 제기 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양쪽이 상대 진영의 책임을 부각하고 자기 진영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갈 공산이 있다. 그것이 2600여 명의 해고자와 그의 가족들,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먹튀' 논란을 일으킨 상하이차로 매각 문제, 구조조정의 근거가 됐던 회계조작 의혹, 대테러용 테이저건까지 사용한 경찰의 폭력진압 등의 사안이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또한 쌍용차 구조조정으로 이익을 본 사람 또는 집단이 누구인지, 이 때문에 피해를 보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린 노동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안전망을 갖추고 있는 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쌍용차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의 증인 출석과 청문위원들의 핵심적인 질의가 있어야 한다. 청문회에는 전 법정관리인 이유일 쌍용차 대표이사와 법정관리를 신청한 최형탁 전 대표이사, 매각을 결정한 산업은행의 민유성 전 은행장, 회계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 상무이사 등이 증인으로 신청돼 출석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의 파완 고엔카 사장도 요청을 했지만 출석하지 않는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오후 청문회에 출석한다.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제 충분하다
청문회에서 다뤄져야 할 여러 가지 사안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먹튀 논란을 일으킨 상하이차 매각 논란과 정리해고의 빌미가 된 회계조작이다.

우선 상하이차는 2008년 11월께 코란도C 디젤엔진 개발이 끝나자 쌍용차를 부도냈다. 그리고 2009년 1월9일 1월 말 만기 920억 원의 어음과 4월 말 만기 1천500억 원의 회사채를 상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당시 쌍용차는 중국에 2400억 원 상당의 대출계약이 있었고 상하이차에서 받을 600억 원의 기술료와 260억 원의 미수금이 있었다. 3300억 원 가까운 현금동원력이 부도를 냈다는 것에서 기획부도 의혹이 제기됐다.

회계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은 그 다음 이어진다. 당시 외부감사였던 안진회계법인과 쌍용차는 회사의 자산이 과대평가됐다며 재평가를 실사한다. 건물과 기계 공구 등 유형자산을 재평가했다. 그 결과 쌍용차의 자산은 급감한다. 자산의 급감은 재무제표 상에 부채비율을 급격히 높이는 것으로 작용했다. 당기순손실도 급증한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쌍용차는 부채비율이 168%에서 561%로 높아졌고, 당기순손실은 282억 원에서 7097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 후 구조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정리해고 안을 만든 회계법인 삼정KPMG는 회사와 함께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출하는데 그것이 생산부분의 2300여 명 해고 안이다. 쌍용차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잘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쌍용차 구조조정의 시작과 마무리를 맡은 이 두 회계법인이 여전히 쌍용차로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안진회계법인은 현재 쌍용차의 외부감사를 맡고 있고 삼정KPMG는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에 매각주간사로 참여해 수익을 얻었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했지만 여전히 회계부분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를 단순화 시키면 충분히 유지가 가능했던 업체가 고의적으로 부실을 만들고 그것을 핑계로 회사를 매각하며 특정인들이 이익을 봤다는 의혹으로 정리된다. 그것은 본래 2600여 명의 해고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다음 이뤄져야 할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제 충분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치판 돈이란 건 70%는 갈라주고 30%는 자기가 쓰는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09/20 09:53
  • 수정일
    2012/09/20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치판 돈이란 건 70%는 갈라주고 30%는 자기가 쓰는 것”
(한겨레 / 조혜정 기자 / 2012-09-20)

 

▲ 2011년 2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경제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와 송영선 이야기. 김경호 기자

송영선 녹취록으로 본 불법 정치자금의 세계
“조직 수두룩한데 돈 써야지
그 사람들이 자원봉사 하겠나”
친박 인사에 2억 빌려준 ㄱ씨에게
“돌려받으려는 건 잘못된 생각
그 돈은 이미 공중분해 됐다”

사업가 ㄱ씨에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용’이라며 금품을 요구한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과 ㄱ씨의 대화 녹취록에는 ‘정치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송 전 의원의 자세한 설명이 들어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송 전 의원과 ㄱ씨의 대화 녹취록에서 송 전 의원은 “정치판 돈이라는 건, 대금을 받으면 70(%)은 이리저리 다 갈라주고, 30(%)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곳에 쓴다. 조직이 수두룩하니까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친박계 ㅎ씨에게 2억여원을 빌려줬다가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고 송 전 의원에게 말했다. 송 전 의원은 이 돈과 관련해 “(그 돈은) 이미 공중분해가 다 된 돈”이라며 “(ㄱ씨가) 돈을 돌려받으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람은 돈 받아서 부정축재 하려는 게 아니고, 박근혜 후보한테 잘 보이려고 모든 걸 다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에서 돈(정치자금) 받으려는 사람이 그걸로 부정축재 하고 집 사는 사람은 없다. 그 돈을 받아서 정치 돈으로 안 쓰고, 커피샵을 냈거나 아파트를 빌렸으면 원금 받은 것의 몇십%라도 (돌려)주지만, 이건 이미 공중분해가 다 된 돈”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바닥에서 ㅎ씨 같은 사람은 바람잡이”라며 “아무리 짜봐도 그 돈은 안 나온다. (정치자금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다 갈라줬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ㄱ씨가 ‘돈을 어디에 나눠주냐’고 묻자, 송 전 의원은 “그 밑에 조직이 수두룩하니까 돈을 써야 한다. 박근혜 이름을 갖고 움직이는 조직이 한두개냐”고 답했다. “그 사람들이 다 무슨 자원봉사를 하겠냐. 자기 포켓에서 돈 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되는(없는) 데는 (ㅎ씨 같은 사람이) 돈을 보태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ㅎ씨가 그 돈을 (대선이 끝난) 12월에 돌려주겠다고 한다면, 그건 다른 데서 받아서 주겠다는 거니까 ‘사고’가 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주변 지인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조달하는 정치자금이 아니라 제3의 ‘자금줄’이나 이권개입 등을 통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비교한 것이다.

ㅎ씨는 2006년 8월 박 후보의 외곽 지지조직인 ‘한강포럼’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 비선조직으로 알려진 ‘마포팀’ 운영도 주도한 인물이다. 이명박 당시 경선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을 캐려고 이 후보와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을 부정 발급받은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ㅎ씨는 2007년 ㄱ씨가 아닌, 또다른 재력가에게 박 후보의 “경선자금을 빌려달라”고 요구해 돈을 받았다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4900만원을 선고받았다.

송영선 금품요구 녹취파일 공개 "박근혜 대통령 만들려면..."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2541.html

 


 

송영선 녹취록 보니 “6만표면 내가 국방장관…”
(한겨레 / 조혜정 기자 / 2012-09-19 )


18일 <한겨레>가 입수한 친박근혜계인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과 서울 강남의 사업가 ㄱ씨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에는 송 전 의원의 노골적인 금품 요구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송 전 의원의 주요 발언 일부를 공개한다.

 

 

“12월에 6만표만 나오면, 내가 박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 데1등 공신이 되니까 내 자리가 확보되는 거죠…제일 급한 거는 변호사비 3천만원…여의도 오피스텔 하나는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월 300만원 정도 주셔야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용’ 금품 요구

12월 대선에서 (내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갑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표) 6만표를 하려면 1억5000(만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면 (나를 도와주면 ㄱ씨가) 투자할 수 있는 게 (경기) 남양주 그린벨트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정도를 얘기한 거예요.

지역구 관리라는 게 딴게 아니에요. (주민들한테) 대선 때 (박 후보를) 좀 찍어달라, 그러려면 그 돈이 한달에 1500만~1800만원이 들어갑니다. 투표 독려라는 게 뻔한 거야. ‘네가 기름칠을 안 하면 어떻게 지역구가 돌아가냐’는 게 지역구예요. 12월에 6만표만 나오면, 내가 박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 데 1등 공신이 되니까 내 자리가 확보되는 거죠. 대통령이 되면 정부에 보낼 수 있는 차관급 이상 자리가 5000개입니다. 내가 원하는 건 국방부 장관, 안 되면 차관이라도 하고 싶고. 대구시장에 출마한다든지, 다른 자리를 갈 수도 있고. 그 사람(박 후보)이 내가 이뻐서가 아니라, 자기가 국정을 끌어가기 위해서 나한테 자리를 주게 돼 있습니다.

여의도 오피스텔 마련 요구

지금 제일 급한 거는 변호사비 3000만원 그겁니다. (그 돈을 주면) 그건 기부예요. 그런데 여의도에 거처가 필요합니다. 왜 필요하냐면, 현실정치에서 떨어지면 저는 끝나거든요. 오피스텔 하나 정도는 있어야 돼요. 1주일에 사흘은 오피스텔에 근무하면서…. 남양주 운영비까지 손을 벌리면 (금액이) 너무 크고, 여의도 오피스텔 하나는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보증금 1000만원에 나 혼자 있으면 관리비 해서 (월) 120만원 정도. 7평 기준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일 도와줄) 아가씨까지 있으려면 한달에 250만원, 관리비 하면 300만원 정도 주셔야죠. 그러면 (여의도의) 연락 사무실은 됩니다. 15평이 제일 좋은데, 밥도 끓여먹고 해야 되니까. 여의도에 15평 아파트도 있어요. 현실적으로 사무실 겸 집으로는 15평이 좋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남한테 손 벌리는 게 정말 싫으니까. (당신은) 한 달에 200만~300만원 주는 그런 쩨쩨한 사람이 아니니까, 후원회장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4월 총선 ‘돈 공천’ 암시?

목표가 있을 때는 어떤 고통도 고통이 아니더라니까. 지금 내가 계속 괴로운 게 목표가 없어서 그래요. 그렇게 돈 몇 억원 때문에…. (내가 대구에서) 공천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ㄴ의원한테 3억만, (아니) 2억만 갖다줬어도 내가 공천을 받았을 텐데. ㄴ의원이 (박 후보의) 최측근이에요. 박 후보 사람 쓰는 거 실망이죠. 나는 돈을 안 줘서 공천을 못 받았어요.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552356.htm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 올케 서향희 씨 사돈의 '수상한' 재판

박근혜 올케 서향희 씨 사돈의 '수상한' 재판

[단독] "'박근혜 정권 잡으면 재기할 수 있다' 하더라" 소문도…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20 오전 10:16:10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올케 서향희 변호사의 사돈이 12억 원 대 사기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가 나온 배경을 두고 의혹이 일고 있다. 사기 정황이 상당한데, 검찰과 법원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향희 변호사는 박 후보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으로 삼화저축은행 고문 변호사를 맡는 등 의심을 살만한 행보를 보여, 새누리당 경선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가 "만사올통"이라는 신조어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지난 5월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9부(천대엽 부장)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1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박윤해 부장)는 2006년 8월부터 미군부대가 들어설 경기도 평택시의 개발 규제가 풀릴 것으로 판단, '평택 테크노폴리스 개발사업'(면적 4.3㎢, 사업비 3조 7000억원) 추진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장남 장 모 씨의 친구 서 모 씨에게 개발 사업이 큰 이익을 낼 것처럼 속여 12억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장수홍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장 전 회장의 차남 장 모 씨는 박지만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의 동생 서 모 씨와 지난해 8월 결혼했다. 즉, 장 전 회장과 서 변호사는 사돈 지간이다.

피해자 서 씨는 "장 전 회장이 엉터리로 사업을 진행시켜왔고, 여러가지 문제될만한 정황들이 있었는데, 1심 무죄가 나온 후 5~6차례 검찰에 증거가 될만한 자료들을 제출했다. 그런데 검사 측이 서둘러 변론을 중지시켜 버렸다. 그래서 같은 자료를 재판부에 내고 공판 재개를 신청했다. 검사 측은 명백한 정황 증거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 전 회장은 '박지만의 사돈'이라는 배경이 있는 인물"이라면서 "석연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민사 소송에서 장 전 회장은 피해자들에게 줄줄이 패소를 했으나 형사 재판에서 사기 혐의가 입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장수홍은 누구?

 

▲ 박지만 씨와 서향희 씨 ⓒ뉴시스

장수홍 전 회장은 73년 청구종합개발을 세워 90년대 말 재계 순위 30위권의 청구그룹을 만들었다. 대구 출신이었던 장 전 회장은 승승장구할 당시 '대구 이건희'로 불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청구그룹이 97년 부도가 난 후 장 전 회장은 1472억 원의 횡령 배임 혐의로 98년 구속됐다. 2심에서 징역 5년이 확정돼 2003년 6월 만기 출소를 했다. 현재까지도 1000억 대 부채를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다.

그런 장 전 회장은 이후 2006년 6월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계기로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 이미 전과자인 그는 자신의 지인을 대표로 내세워 주식회사 에코지구(구 하이베어코프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상설 직원이 장 전 회장을 포함해 4명 정도에 불과한 회사였다. 장 전 회장은 정부가 평택시에 대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줄 것으로 예상하고 2006년 6월 에코지구를 설립한 뒤 그해 8월부터 '평택테크노폴리스 개발사업'을 추진한다. 장 전 회장은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KB국민은행,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삼성물산 등으로부터 '참여의향서'를 발급받고, 2007년 2월 평택시와 "주식회사 에코는 투자회사 금융기관 건설사 등으로 이뤄진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해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조건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2007년 3월 10일, 자신의 장남 친구인 서 모 씨에게 차용증을 써 주고 "엄청난 이익이 예상되는 사업이며, KB국민은행 등으로부터 출자의향서를 받았다.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10억 원을 빌려주면 이자를 월 3부로 산정해 2년 내에 원리금을 상환하겠다"며 10억 원을 빌렸다. 같은 방식으로 2008년 5월 2억 원을 추가로 빌려 총 12억 원을 빌렸다.

그러나 금융기관, 건설사 등은 단 한 곳도 에코지구의 SPC 설립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2007년 10월 평택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게 됐음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자, 평택시는 2011년 업무협약을 해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평택시 측에서 에코지구의 업무협약 이행을 위해 노력했지만 에코지구가 끝내 SPC조차 설립하지 못하자 2011년 1월 업무 협약을 해지했다는 점이다. 당초 장 전 회장이 이 이 사업을 추진할 능력과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지점이다.

서 씨는 "상환 만기일이 지난 후 빌려준 돈을 받으려 하자 장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5월 '한달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한 달 후인 6월에 다시 만나니 '야이 XX야 내가 너에게 돈 갚을 게 뭐 있냐'고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차용증이 존재함에도 장 전 회장은 "당신이 나에게 투자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후 서 씨는 장 전 회장을 민형사상으로 고소했고, 2011년 4월 민사 재판에서 승소를 했다. 장 전 회장이 피고에게 12억 원을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 법원은 '에코지구'의 실질적 주인이 장 전 회장의 지인이 아니라 장 전 회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장 전 회장이 '평택시장이 이 땅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고 떠들어"

장 전 회장이 사업을 엉터리로 추진한 정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적극성을 보였던 평택시 측에서는 사업이 무산된 이후 서 씨에게 "조건이 충족 안 된 상태에서 (장수홍 전 회장이) '(평택)시장이 이 땅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시장이 '내 입장에서는 당신에게 사업권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평택시 측은 서 씨에게 "저희는 그 사람들(장수홍 전 회장 측)이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냥 (사업을)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지구 사업에 용역사로 참여해 놓고 한 푼도 받지 못한 A사의 사정도 기가 막히다. 에코지구는 A사에 용역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5억 원을 차용했다. 그러나 에코지구 측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해 A사는 소송을 걸었다. 당시 에코지구 측은 공식 답변을 통해 "원고가 제출한 5억 원 짜리 차용증은 같은 날 피고회사 임시 직원으로 경리 직원인 박OO이 원고 측으로부터 세무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 2개월 여를 시달리다가 견디다 못해 피고 회사 대표 몰래 만들어 준 위조 서류"라고 주장했다. 경리 직원이 빚 독촉을 받다 못해 대표 몰래 위조 차용증을 써 줬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결국 에코지구는 이 소송에서 패소해 A사에 돈을 갚아야 할 지경에 처했다.

에코지구 측의 답변서에는 "평택시와 MOU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피고 회사(에코지구)는 사업 내용대로 일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11억 원을 피고회사가 원고에게 용역비로 지급한 양 원고에게 송금하고 원고에게는 그 중 10억 원은 송금 받은 다음날 피고 회사에 입금케 하고 나머지 1억 원은 부가가치세로 세무서에 납부하게 했다"는 해명이 나온다. 이는 "평택시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업 추진을 하는 억지 모습을 보였다"는 취지로 해석 가능하다.

건설 대기업 초청해 떠들썩한 MOU…정작 해당 기업은 참여 안해

석연치 않은 정황은 또 있다. 2007년 2월 6일자 <조선일보>는 에코지구가 주관하는 이 사업과 관련해 "산업단지의 도시디자인은 미국의 도시개발회사인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사(De Stefano & Partners)가 담당한다"고 보도했다.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는 세계적인 건설 기업이다. 평택시와 MOU를 체결할 당시에는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 VIP들이 참석했는데, 당시 장 전 회장이 요청을 하고 비용을 대 이들을 포토라인에 세웠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에서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에코지구 측을 100% 신뢰할 수 없어서 선금을 요구했으나, 사업비가 충분히 안 돼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은 "(우리 측이) '사업비가 준비되면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장수홍 전 회장은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나서 연락이 단 한번도 없어서 우리 측은 '이 프로젝트는 안 가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떠들썩한 MOU 조인식을 치러놓고, 후일 정작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에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연락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장 전 회장이 끌어모은 대기업, 금융회사 등이 제출한 '참여 의향서' 역시 사실상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참여 의향서' 자체가 "사업비 등이 마련되고 사업 윤곽이 드러나면 투자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업 추진 초반 투자자를 모으는 데는 전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와 같은 거대 기업의 경우 이같은 '종이 조각'을 보고 투자할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삼성물산, 국민은행을 비롯한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같은 속사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정권 잡으면…" 소문에 장수홍 "터무니 없어"

결국 에코시티는 사업 성사를 위해 적극성을 보이던 평택시에 "일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허위로 의심될만한 행동을 보였다.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라는 거물 기업을 떠들썩하게 끌어들였음에도 이들과 계약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판부는 장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금원 수수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없을 뿐 아니라(…)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경제 여건의 악화로 이 사건 사업 추진이 어렵게 돼 변제하지 못한 것이므로" 장 전 회장이 사기를 치려 한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평택시나,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등이 "장 전 회장은 사업 추진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돈을 만들 능력이 없어 보였다"는 취지로 사업에서 발을 뺐는데, 재판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쩔 수 없이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취지의 피고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서 씨가 "장 전 회장이 추진하는 이 사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금원 대여"가 이뤄졌다고 판결했다. 서 씨가 차용증을 받고 10억 원을 건넨 이후 에코시티 사무실에 1년간 출근했던 점, 건축 기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운 적이 있다는 점 등을 통해 사기였다면 피고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내용도 판결문에 포함됐다.

그러나 서 씨는 "건축 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대형 개발 사업이 어떻게 추진되는지 다 아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장 전 회장은 사업을 추진할 의사가 없었다는 정황들이 많은데, 어떻게 무죄가 나올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단순 형사 사건 수사와 재판이 1년 가까이 진행됐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서 씨는 지적했다. 게다가 장 전 회장은 과거 재계 유명인사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서향희 씨 일가와 사돈을 맺였다. 장 전 회장의 법률 대리인은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다. 또 "최근 장수홍 회장이 지인에게 '박지만이 부모를 잃고 나를 아버지처럼 여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박지만이) 재기하도록 도와줄 거니까, 내 사업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장 전 회장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전면 부인했다. 서 씨는 "수 차례에 걸쳐 추가 정황 자료를 검찰 측에 제출했지만 검찰 측에서 변론 종결을 해 황당했다"고 주장했다. 원고인 서 씨의 '공판 재개' 요청으로 장 전 회장의 사기 사건에 대한 공판은 21일 열릴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장수홍 전 회장의 입장을 들어 보았다. 장 전 회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옛날 같으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장 전 회장과 인터뷰 전문.

사기로 불구속 기소 됐는데, 1심 무죄가 나왔다.

지금은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15년, 20년 전에 여러분들이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지 지금은 자연인이다.

아드님이 서향희 씨 동생 분과 결혼을 하셨다. 박지만 씨 부인 되시는 분과 사돈이 됐다. 그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야기를 그렇게 자꾸 만드시니까, 그런데 이거(재판)는 그거하고는 전혀 별개 문제다. 별개 문제고 그런 관심을 안 가지시면 좋겠다. 남의 사생활 가지고 너무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고소한 측은 억울하다고 한다.

억울하니까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 아니냐. 그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장 전 회장이 박지만 씨 사돈이라 모종의 압력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 그런 의혹도 제기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 친구 걸립니다. 엉뚱한 소리를 그렇게 자꾸 하고, 사람이 피차간에 잘잘못이 다 있는 것 아니냐. 그것을 엉뚱한 쪽(외압 의혹)으로 풀고 나가면 안 된다. 경찰에서도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서도 조사를 받았고, 1차 재판에서 조사를 받았고, 2차 재판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법으로 판단해야지. 법 외적으로 해갖고 누구와 사돈이 되네 뭐 하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장 전 회장이 사석에서 박지만 씨 등과 관계를 과장한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이다.

누가 그래요? OOO이는 (내가 사석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그런 것 모르는 사람이다. 어쨌든 간에 얘기가 나로서는 다 쓸데없는 얘기다. 내 15년 전, 20년 전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이상 내가 (인터뷰에) 응할 수가 없다.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너무 현실하고 동떨어진 얘기다.

고소인은 '검찰에 증거 자료를 제출했는데 일방적으로 변론 종결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서 변론 종결을 하면 검찰에서 얘기를 해야지. 검찰은 검찰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있을 것 아닌가.

장 전 회장의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이고 최근에 법복을 벗었다. (전관 예우 관련) 이런 저런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지법 판사라고 하면, 자기도 변호사를 판사 출신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고소인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건가?

터무니없다. 그래서 상대방이 터무니 있고 없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재판 아닌가. 저 쪽에서 자꾸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공정한가. 돈을 써도 자기가 썼고, 힘이 있어도 자기가 힘이 더 있는데 어떻게 불공정한 게 되나. 불공정하면 경찰에도 불공정하고 검찰 1차 조사도 불공정이고 검사 기소되서 판사가 1심에도 불공정이고 2심에도 불공정인가?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민사에서는 장 전 회장이 패소를 했던데?

내가 차용증을 써 줬기 때문에 그게 의미가 돼서 패소가 된 것이다. 민사 소송에서 (져서) 언제까지 갚아라 하면 갚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민사 소송에서 이겨놓고 형사에서 사기로 걸면, 옛날 같으면 무고죄로...나도 역량이 있고 힘이 있는 거 같으면 무고죄로 나도 대응을 할 수 있는 그런 소지가 있다. 덮어놓고 남을 흔들면 되는 게 아니다. 그래놓고 쓸데없이 옆에 누구하고 어떻게 되니, 뭐가 어떻게 되니, 그거는, 법 외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 어리석은 친구다.

오는 21일에 공판이 재개된다. 과거 사업을 추진할 때 의도적으로 사기를 염두하지 않고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을 했고, 상황이 안 좋아져서 사업이 끝나면서 발생한 사안이기 때문에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입장인가?

그렇다. 나도 평택 프로젝트 때문에 일이 이렇게 엮여진 것이다. 나도 평택 프로젝트에 십 수억원을 집어 넣고 손해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려면 돈을 벌수도 있는 것이고 털어먹을 수도 있지 않나. 평택시에 대해서는 내가 피해자다.

평택시에 법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에 담긴 충격적인 사실

 


안철수 원장이 어제 공식적인 대선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어제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그가 대선 출마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했지만, 안철수 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저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국민의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말함으로 대통령 출마에 관한 공식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 안철수 원장도 이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아닌 안철수 후보로 불리게 됐습니다. 그의 대선 출마는 예견됐던 일이지만, 아이엠피터는 어제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그것은 그가 했던 기자회견의 내용과 출마 선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을 정치공학적인 접근으로 해석해서 앞으로 그의 행보를 예상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했던 대선 출마 선언문을 말 그대로 분석하여 그의 생각을 바라보느냐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치공학적인 접근 방법보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정치를 시작했는지를 알아봄으로 그의 대선 출마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 정권교체? NO 정치 교체'

어제 안철수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은 그의 대통령 출마 선언문에는 '정권교체'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라는 말은 있었지만, 정권교체에 대한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안철수 원장이 그간 보여줬던 정권교체의 의지가 18대 대통령 선거에 반영될 것이라 믿으며,정권교체를 갈망했던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왜 그는 정권교체를 통해 저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정치의 해결법으로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현 정권의 문제보다 본질적인 '정치'의 문제점을 고민했고,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서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이 말들은 모두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위해 비공개로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입니다. 안철수라는 인물은 이런 말들 때문에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즉 안 후보는 현 정권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바뀌어야 이런 문제가 풀어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정권교체를 위해서가 아닌 '정치 교체'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아이엠피터는 정치개혁보다 정치 교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썩은 것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시대라는 의미로 '정치교체'가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권 단일화, 어떻게 될 것인가?'

정권교체를 갈망했던 국민이 바라볼 때에 안철수 후보는 어제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장에서 명확하게 야권 단일화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①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필요
② 국민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원칙

안 후보는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고 이것이 충족됐다는 국민의 동의가 있다면 야권단일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참 애매모호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의 발언을 앞서 말한 '정권교체'라는 전제를 대입시키면 불분명하지만, '정치교체'를 대입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는 야권단일화를 통해 정권이 교체돼도,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대선이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된다면, 선거에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하며,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정치를 바뀌고, 이것이 대선 이후에 통합과 덧셈의 정치로 이루어져,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런 그의 구상에 대해 아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의 삼자 회동(?)을 제의했습니다. 대선 주자 세 사람이 만나서 아예 이런 논의를 함께하자는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적과 만나자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각 계층의 세력으로 봤고, 이 세력들이 가진 문제점을 각자가 해결하면서, 18대 대통령이 누가 되든 위기를 극복하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입니다.

그의 말이 쉽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야권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는 어려워졌을까요? 아이엠피터는 아니라고 봅니다. 앞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벽으로 저 또한 민주당의 개혁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모르겠지만,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을 개혁하고, 안철수 후보와 18대 대통령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여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떤 부분에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합께 논의한다면, 그 과정에서 야권단일화 내지는 공동정부의 구성까지 나아가갈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안철수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의 키는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과 민주당, 그리고 야권지지세력이 가진 셈입니다.

' 정치인 안철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안철수 원장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안랩 이사직과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정치인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답변에 "제가 지금까지 몇 번 직업을 바꿨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둔 적 없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로 한 이상, 열심히 이 분야에서 일해서 조금이라도 우리나라 긍정적 발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겠다'며 앞으로 안철수 원장이 아닌 정치인 안철수로 살아가겠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이제 안철수 원장은 '정치인 안철수'로 변했습니다. 그의 변화에 대해 그가 가려고 하는 정치의 방법에 관한 의문과 검증,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가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그가 무엇을 목표로 정치하려고 하는지만 봐도 충분합니다.



 


아이엠피터가 볼 때에 정치인 안철수는 하나의 시민 세력을 구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민세력은 기존 정치의 틀을 깨고,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상식적인 정치를 실현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기성 정치세력이 보면 우숩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새로운 정치 개혁의 한 세력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 봅니다.

 

 

안철수 후보의 이런 주장을 왜 아이엠피터는 높이 평가할까요? 그것은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며 썼던 기존의 생각과 그의 정치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나 야당이 정권교체를 한다고 대한민국이 100% 잘 살거나 올바르게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올바른 인물이라고 해도, 그들 주위에 있는 정치세력들이 변하지 않으면, 암적인 세력들이 정치세력과 손잡고 그들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엠피터는 그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양당 정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세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를 통해서 정치가 바뀔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해주는 역할로, 그동안 얘기했던 동반자적인 존재로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좋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힘을 보태 그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고, 잘못된 정책을 통과시키려는 세력을 막거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문제점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로 서로 상호 보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특정 정치 세력의 준동을 정치 개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등장하니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불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를 통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더욱 변하고, 정치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안철수,문재인 두 사람만이 대한민국의 구원자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문재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기성 정치인과 똑같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안철수의 대선 출마를 대선 주자의 등장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개혁 세력의 등장으로 보고, 정치가 바뀌는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이제는 기성 정치세력이 권력쟁취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데 골조 하나만으로 안됩니다. 그 골조 사이에 어떤 단열재를 넣느냐에 따라 집이 보기에는 번듯해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울 수가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문재인이라는 골조에 안철수라는 단열재를 넣고 싶고, 어떤 사람은 안철수라는 골조에 문재인이라는 단열재를 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골조 하나만으로 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조와 단열재 그 둘, 모두를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어떤 자재를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남은 대선 기간에 그 두 사람이 보여줄 정책과 비전에 따라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선택의 기쁨을 집권세력은 폐자재로 전락하는 위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2012년 12월 여러분은 어떤 집을 짓겠습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누가? 왜?… “장준하 타살의혹 밝히자”

 

누가? 왜?… “장준하 타살의혹 밝히자”
 
19일 국민대책위 선포식, 무기한 100만인 서명운동 나선다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9-19 14:05:55 | 최종:2012-09-19 14:38: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암살 의혹규명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이 열렸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맞서 싸우다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실족사’로 생을 마감한 고 장준하 선생의 타살의혹 규명을 위한 국민대책위가 발족했다.

 

 

‘고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준비위)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암살 의혹 규명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을 갖고 장 선생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날 선포식에서 준비위측은 “1975년 사망 당시 실족사라는 당국의 발표를 유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며 “이장 과정에서 드러난 장 선생의 유골은 암살을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준비위는 “암살 의혹 규명을 유일한 목표로 오로지 국민의 힘에 의존해 활동하겠다”며 “특정 정파나 정략적 이용은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준비위원으로는 장 선생의 장남 호권 씨, 유광언 장준하 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여했다.

준비위 이준영 상임위원은 “10월 초 대책위 정식 발족식을 겸한 문화제 성격의 국민대회를 열 것”이라며 “100만인 서명운동과 별도로 정부에 장 선생의 유골에 대한 민관 합동감식을 요구할 계획이며, 정부가 이를 거부할 경우 민간 차원에서라도 법의학팀을 꾸려 유골 정밀감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올 대선을 앞둔 시점인 만큼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상임위원은 “정밀감식은 통상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대선을 노린 정쟁이 아니다”고 밝히고는 “일부의 주장처럼 대선에 영향을 미칠 생각이었다면 8월부터 감식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지로 이번 장 선생의 타살의혹 논쟁은 지난 8월 파주 ‘장준하 기념공원’ 개장을 맞아 선생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장남 호권씨가 “유골을 감식한 결과 두개골에 난 5~6cm 크기의 구멍이 ‘인위적 상처’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재점화됐다.
 

 

한편, 준비위측은 이날 서명운동 시작과 함께 준비위 공식 홈페이지(www.who-how.or.kr)도 문을 열 예정이다. 홈페이지 주소인 ‘who(누가)-how(어떻게)’는 누가, 어떻게 장 선생을 암살했는지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준비위는 트위터 계정(@whohow1)을 통해 서명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 씨,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파워 트위터리안의 소개로 개설 이틀만에 6000명 이상이 준비위 계정을 팔로우했다.

서명운동은 전국 각지의 오프라인 서명운동에 이어 진실규명 활동을 함께할 국민대책위원도 모집할 계획이다. 준비위는 서대문구 한국기독장로회 총회교육원 내 생명의집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혼탁한 세상에 불 지르러 온 ‘길 위의 예수’

혼탁한 세상에 불 지르러 온 ‘길 위의 예수’

 
2012. 09. 19
조회수 1821추천수 0
 

문정현 신부와의 대화
 
문정현 / 길 위의 신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칠십 평생을 낮은 곳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은 평화로운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정마을로 이사해 ‘강정상단’ 대행수로 일하고 있다.
 
김덕진 /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인권 지킴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 활동가이다.

 

20120919_1.JPG » 문정현 신부“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가복음 12장 49절
 
생명이 위태로운 곳에, 평화가 깨어지는 곳에, 억울하게 쫓겨나고, 빼앗긴 이웃들이 눈물 흘리는 곳이면 흰 수염의 노 사제를 만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길 위의 신부’라는 칭하며 편안한 성전을 떠나 세상 한가운데 교회를 세우며 살아 온 문정현 신부. 지긋지긋했던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1987년 서울의 봄이 지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에도 그는 경찰의 방패에 밀려 나뒹굴었고 검찰의 조사를 받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연히 이명박 정권 4년 내내 그는 길 위에 있었다.
험하고 먼 길을 돌아 제주 강정마을의 주민이 된 문정현 신부를 만났다. 뜨거운 햇살과 바닷바람으로 검게 그을린 노 사제는 제주 강정이 자신의 마지막 싸움터가 될 것이라며 태풍이 휩쓸고 간 구럼비해변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 무이파가 제주를 포위하여 모든 항공편과 배편이 결항되어 아무도 제주 밖으로 나가지 못한 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구럼비해변과 서귀포시의 한 식당에서 문정현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덕진(이하 김): 신부님, 이제 강정 내려오신지 얼마나 되셨죠?
문정현(이하 문): 7월 6일에 완전히 이사 왔으니까 한 달이 훨씬 넘었네.
 
김: 신부님께서 강정에서 사시겠다는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사시는 집이 무척 좋던데요. 어떻게 구하셨어요?
문: 이사 오기 일주일 전에 평화바람 식구들 오두희, 딸기 등과 같이 강정에 왔었어. 5박 6일 동안 오동나무집이라는 민박집에 공짜로 머물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매일 구럼비해변을 나갔어. 그때 결심했지. 여기 와야겠구나, 강정이 내가 살 곳이구나 하고 말이야.
 
김: 이른바 “오동나무집 구상”이군요.
문: 그 집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평화상단도 생각한 거야. 그래서 마을회장님한테 부탁을 했지. 강정에 와서 살려고 하니 집 좀 구해달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강동균 회장이 강정에서 제일 좋은 집을 구해주셨어. 1층에는 주인이 살고 우리가 2층에서 살아. 그런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집세도 안 받으시고 너무 잘해주셔. 직장일과 아픈 식구가 있어서 열심히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시다면서 말이야.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집을 내어 주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어. 우리가 월세 비슷하게 봉투를 드렸더니 질색을 하시면서 일절 안 받으시겠다는 거야, 하하. 어디에서나 난 늘 좋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아, 참 감사한 일이야.
 
김: 평화상단 시작하시기 전에 제주 갈치랑 고등어랑 파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때가 재작년인가요?
문: 2008년은 평화바람 식구들과 평화유랑을 다닐 때인데, 그때 제주에 왔었고 제주 해군기지백지화대책위 사람들을 만났지. 제주 해군기지가 화순에서 위미, 위미에서 강정으로 왔잖아. 그때 갈치랑 고등어 장사를 시작했지. 많이 팔았어. 천삼백 만원인가 벌어서 대책위에 드렸지.
 
김: 와! 대단하시네요. 이번 평화상단의 젓갈, 멸치 장사 목표는 얼마세요?
문: 돈이 있어야 싸움을 하지. 주민들이 투쟁하다가 벌금선고도 받고 손해배상 소송도 걸려 있어. 각종 법률 대응하는데도 돈이 들고, 버티고 지키는 데도 돈은 필요해. 그래서 한 오천 만원은 벌어서 전달해야지 싶은데 벌써 천만 원은 전달했어. 이번 평화상단은 반응이 좋아. 주문량이 많아서 물량대기에 바빠. 또 우리가 가끔 실수도 해서 ‘소라젓갈’ 주문한 집에 ‘참조기젓갈’이 배달되기도 하고, 여름에 포장이 터지기도 했는데 소비자들이 웃으시면서 다 양해를 해주셔. 이건 이 사업이 된다는 뜻이거든. 게다가 광주대교구 옥현진 주교님도 지난주에 구럼비해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시면서 평화상단을 적극지지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이제 별로 걱정 안 해.
 
김: 갈치 장사하시던 2008년하고 평화상단을 꾸리신 지금하고 강정마을 분위기는 어때요? 그때랑 많이 다른가요? 아니면 비슷한가요?
문: 오랫동안 싸움을 하면 당연히 지치게 되어 있어. 그리고 제주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이 문제가 전국적인 사안으로 부상하지 못했던 것도 분명히 있어. 그런데 주민들이 대단해.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서 상처도 아픔도 있었는데 흔들림 없이 버텨 온 거지. 물론 도법 스님이 이끄시던 생명평화탁발순례, 개척자들, 또 평화활동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 거기에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나,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주민대책위 고원일 위원장 등이 구속되고 단식하면서 투쟁이 불이 붙었어. 특히 지금 구속되어 있는 최성희라는 여성이 대단한 활동을 했어. 나도 놀랬고, 주민들도 많이 자극을 받은 것 같아.
 
김: 저도 인터넷 언론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대단했는지는 잘 몰랐어요. 그분들이 신부님의 강정 행을 재촉했나 봐요.
문: 진작 강정에 오려고 했었어. 2008년에 평화유랑이 끝나면 강정에 오려고 했지. 그런데 2009년 초에 용산참사가 터졌잖아. 공권력 때문에 철거민 5명, 경찰 1명, 여섯 명이나 죽은 처참한 사건인데, 용산에서 장례 치를 때 까지 매일 미사하면서 유족들과 철거민들과 1년을 살았어. 그래서 강정에 오는 게 늦어 진거지. 그런데 2010년에는 또 4대강 공사 저지 운동이 확대되면서 명동성당에서 사제들이 단식기도를 했잖아. 그런데 그 단식기도 중에 명동성당이 우리 사제들을 박해했잖아. 그래서 명동성당에서 6개월이 넘게 나 혼자 기도를 시작했어. 그래서 또 강정에 오는 게 늦어졌지. 용산과 명동에서 기도 안 했으면 진작 강정에 왔을 거야.
 
김: 용산이나 명동에 계실 때도 강정이야기 종종 하셨잖아요. 연락도 계속 하셨고요.
문: 그럼, 양윤모 선생은 명동까지 직접 오시기도 했고, 고유기 집행위원장,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 등하고는 연결이 되어 있었지. 연락이 오고 가고 했어.
 
김: 강정에 이사 오시면서 편지를 쓰셔서 전국에 보내셨다면서요?
문: 응, 신문이랑 인터넷언론에도 실린 글인데 그 글이 사실 호소문이고 편지거든. 그래서 전국 성당들, 사제단 신부님들에게 다 보냈어. 그때 한 자매가 내가 명동성당에서 사순절기도회를 하면서 했던 강론을 모아서 소책자로 만들어왔어. ‘참사람 되어’라는 책자를 혼자 발행하시는 분인데 원래 조용히 숨어서 일하시는 분이야. 독자들에게 읽게 하고 싶어서 만드셨다고 하시더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자비로 천 권을 만들어 오신거야. 그래서 그 강론집과 편지를 같이 보냈지. 곧 응답들이 있으실 거라고 믿어. 그 편지 보내고 여기 들어왔는데 주민들이 “신부님이 오셔서 든든해요”라고 하니까 나도 책임감이 생기고 그래.
 
김 : 신부님이 강정에 오고 나서 큰 싸움이 한 번 있었지요?
문 : 그렇지. 7월 24일 날. 7월 21일에 조현오 경찰청장이 제주를 순시했어. 헬기를 타고 강정마을을 돌아보고는 불법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갔어. 그때부터 여긴 비상이었어. 24일은 일요일이어서 주일미사도 함께 드리고 음식도 마련해서 주민들하고 나누어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오후에 강정마을에서 구럼비해변으로 진입하는 도로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으로 삼성과 해군이 보낸 용역들하고, 경찰 수백 명이 몰려온 거야. 주민들이 막아서니까 막 욕을 하고 폭행하고 난리가 났지. 주민들하고 활동가들이 온몸으로 싸워서 쫓아냈어. 그날부터 밤새서 지키고 그런다니까.
 
김: 마을회장님이 잡혀가신 날이 그날이신가요?
문: 아니, 그날은 15일이야. 마을회장님이 집에 있는데 경찰 수십 명이 와서 다짜고짜 연행해갔어. 출석요구서도 한 번 밖에 안 보냈고 나중에 출두하겠다고 경찰에 연락도 했다는데 말이야. 조현오 경찰청장이 왔다가 가고 나니 제주 경찰들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 연락받고 마을회장님 집에 간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과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까지 연행해 갔어. 마을에 난리가 났지.
 
김: 그래서 그날 어떻게 되었어요?
문: 당장 서귀포 경찰서로 쫓아갔지. 그런데 서귀포 경찰서가 아주 빡빡하더라고. 면회도 안 시켜주더니 세 사람을 제주 동부 경찰서로 빼돌렸어.
 
김: 저런, 웃기는 경찰들이네요. 뭐가 무섭다고 빼돌려요?
문: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동부경찰서로 바로 쫓아갔지. 그랬더니 여기서는 또 우습지도 않게 경찰서장이 나와서는 서장실로 안내를 하는 거야. 서귀포경찰서는 문부터 걸어 잠그더니만 면회도 순순히 시켜주는 거야.
 
김: 왜 그랬죠? 동부경찰서장이 혹시 천주교 신자 아니에요?
문: 아니야. 그건 아닌데 굳이 심하게 할 이유가 없었겠지. 자기 관할서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있는데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마을회장님을 면회 온 거야. 난 얼굴도 모르니까 몰랐는데 사람들이 도지사라고 하더라고, 마을회장이 경찰서에 체포되어서 왔다고 도지사가 면회를 온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도지사의 면회를 마을회장님이 거부해서 도지사가 못 만나고 돌아갔어. 강동균 회장, 대단한 사람이야.
 
김: 그분이 이장도 겸하고 계시다면요. 체포영장에 의해 경찰이 연행해 간 마을이장을 도지사가 면회 오고, 그 도지사의 면회를 마을이장이 거부한다니 아무리 제주도가 작다고 하고, 도지사가 무소속이라도는 하지만 제주도가 좀 특별한 고장이긴 한 것 같네요.
 
김: 신부님은 천주교 사제로 따지면 전주교구 신부님이시잖아요. 그런데 다른 지역에 많이 이주해 다니셨어요. 신부님의 이주 역사가 남한사회 투쟁의 역사인 것 같습니다.
문: 응, 그렇게 이주하면서 살게 되었네.
 
김: 은퇴하시고 평화바람 식구들과 자리 잡은 신 곳이 군산이시죠? 군산이 고향이신가요?
문: 익산이야 내 고향은 익산이지.
 
김: 맞아요. 익산이시죠. 익산이 고향이시고 전주에서 오랫동안 사목을 하셨고, 평택 대추리에 사셨고, 용산 4구역에 가서 사셨죠?
문: 매향리에도 가서 살았었지.
 
김: 익산, 전주, 화성 매향리, 평택 대추리, 군산, 서울 용산, 명동, 이제 제주시네요. 섬에 사시는 것은 처음이시지요?
문: 그러네, 섬은 처음이네.
 
김: 섬이라서 조금 다른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뭍하고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
문: 많이 다른 것 같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서도 다른 것 같고, 시민단체들도 좀 다른 것 같아. 아직 내가 평택 대추리 살 때처럼 마을 주민들과 한 덩어리가 못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김: 신부님께서는 현지 주민들과 금방 한 식구 되시잖아요. 이번에도 대추리나 용산처럼 싸움이 끝날 때까지 강정을 안 떠나실 것이지요?
문: 응, 그렇지. 비행기 값도 비싸서 왔다 갔다 할 수도 없어.
 
김: 제가 지난 10년 동안 신부님 투쟁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곁에서 지켜보며 살았는데, 이번 제주도 싸움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여중생 사망사건 때나, 매향리, 대추리, 용산참사 때도 항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신부님들은 함께 하셨지만, 주교님들이나 천주교회의 주류에서 신부님을 지지하거나 응원하신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번에 강정에 오셔서는 제주교구의 환대를 받으셨어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으신데요.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님께서 스쿠터도 선물로 주셨다면서요. 강 주교님은 또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시기도 하시잖아요.
문: 그래, 처음 있는 일이지. 돌아가신 전주교구장 김재덕 주교는 이해해주셨지만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시거나 하시진 않았지. 현장에서 생활하는데 그 지역의 교구장과 뜻을 같이 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지.
 
김: 지금까지 강우일 주교와 광주대교구 옥현진 주교께서 구럼비에 오셔서 미사를 하셨고, 앞으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께서도 구럼비에 오신다니 사실 신기해요. 저도 이런데 신부님께는 더 특별하시겠어요.
문: 4대강 공사 저지에도 주교님들이 나서주셨고, 이제 강정 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해서도 주교님들이 마음을 모아 주시니 여러 생각이 들어. 왜 주교님들이 그동안 사제단과 거리를 두었는가? 왜 사제단 신부들과 사목적 대화를 하지 않고 애써 모른척하고 외면해 왔던가 말이야, 참 알 수가 없어.
 
김: 언론이나 세상에서 주교님들 이야기는 다루지 않아도 사제단 신부님들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으니까요.
문: 사제단 소속의 사제들은 불이익을 많이 당했어. 강제로 안식년을 주고, 정기인사에서 제외하고, 본인의 뜻은 묻지도 않고 해외선교로 쫓아 보내고 말이야. 단지 사제단이라는 이유 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어디에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할 때에 항상 대화하자, 토론하자 했지. 토론을 해서 우리 사제단이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납득된다면 무조건 주교님들을 따를 것이라고까지 했어. 그런데 한 번도 그럴 기회가 없었지.
 
김: 신부님이나 사제단 신부님들이나 모두 교구장 주교님들을 따르셔야하는 순명이 있으시지 않아요? 사제서품 때 그런 약속을 하시잖아요?
문: 물론이지, 내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45년이야. 평생을 싸우면서 살아왔지만 교구의 한 사제로서 주교님을 모시는 일과 교회의 위계를 거부하면서 살지 않았어. 내가 하는 일이 사목적으로 위배된다면 언제든지 순종할거야. 이런 우리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배척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 대화도 해보지 않고 사제단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교구 사제들에게 말하는 주교가 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가지. 나도 그런 대화 한 번 못하고 내 갈 길을 지금껏 살아온 거야.
 
김: 그런데 제주교구 오셔서는 교구장 주교님께 스쿠터 선물도 받으시고, 나란히 미사도 집전하시고…
문: 처음 있는 일이지. 선물이 얼마냐의 문제가 아니야. 주교님들이 그렇게 하셨을 때, 우리 사제들이 얼마나 떳떳해지고 용기를 가지게 되겠어.
 
김: 용산참사 때도 늦기는 했지만 당시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님과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최기산 주교님께서 용산에 오셨었지요?
문 오셨지. 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오셨지. 조심스럽게 말이야, 조건도 많았고.
 
김: 사제단 신부님들도 용산참사 때, 참 대단하셨지요.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많은 신부님들이 다녀가셨어요.
문: 용산참사 현장에서 이어간 생명평화미사는 우리 사제단의 꽃이었다고 봐야지. 우리 사제단 신부들도 누가 너의 이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은 거지. 남일당이 사제들의 훈련소였어.
 
김: 저도 용산에서 신부님들 진짜 많이 만났어요. 특히 사제단활동을 하지 않으시던 신부님들도 미사에 많이 오셨어요. 수녀님들도, 신자들도 그렇고. 용산참사 기도는 정말 천주교의 힘이 참으로 대단함을 보여주었지요.
문: 다들 사제로서 당연한 걸음들을 하셨던 거지. 억울하고 아픈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제도 교회 안에서 냉대를 받았지. 하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못했어.
 
김: 이번 제주의 평화를 지키는 싸움이 천주교 내의 새로운 바람이 될까요?
문: 내가 사제단 신부님들한테 “평생에 천주교의 교구장이 나와 뜻을 함께해서 자리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다. 이런 교구장의 뜻이 좌절 될까 걱정된다. 교구장의 뜻이 승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어. 사제단이든 사제단이 아니든 교회의 구성원들이 여기에 의기투합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바른 길인가를 좀 뚜렷하게 보여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번 일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범 교구 차원에서 사제단과 제도 교회가 함께해서 해낸 일이 되는 거야. 나는 이걸 중요하게 보고 있는데, 모르겠어. 우리 사제단 신부님들도 여기까지 생각하시는지는…  
 
김: 지금 이 구럼비해변에서 함께 미사하시는 제주교구 신부님들도 사제단이신 분들과 아니신 분들이 계실 것 아니에요?
문: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지. 내가 타 교구 신부지만 같은 사제니까, 그리고 다들 생각과 기준이 뚜렷하니까. 우리 다 중덕사에서 어울리며 잘 살고 있잖아. 여러 가지로 좋은 사례야.
 
김 작년에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논란이 있었잖아요. 보수적인 신자들이 단체도 만들면서 신부님들이나 종교가 사회문제에 왜 개입 하느냐 공격하기도 하고 강우일 주교께서 경향잡지에서 일갈해버리셨잖아요. 주교회의 의장 명의로요. 신부님 생각은 어떠셔요? 사회문제에 교회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문: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사회적인 일이잖아. 그것을 딱 갈라놓고 이야기 할 이유가 없는 거야. 전통적으로, 성서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너무 간단한 일이야. 누가 억압받는 사람이고, 누가 가난한 사람이야? 누가 빼앗기는 사람이고, 누가 탄압받는 사람이야? 그런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회참여야?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거야? 그렇게 표현할 필요가 없지. 누구든, 어떤 민족이든, 어떤 지역이든 거기에 빼앗기고 쫓겨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겠다, 이게 복음적인거야. 이 복음적인 삶에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는 것은 그냥 하기 싫다는 말하고 똑같은 거야. “나는 하기 싫은 일인데 너는 왜 하느냐? 네가 가면 나도 안 갈 수 없지 않느냐?, 나는 가기 싫다” 이런 명확한 말을 돌려서 다르게 표현하는 것뿐이야. 용산참사를 봐. ‘6명이 불에 타 죽었다. 공권력이 무리하게 진압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잖아. 그렇게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 무슨 조건이 필요해. 예수님께서 즉시 물으시잖아. “누가 너의 이웃이냐?”고 말이야.
 
김: 그러네요. 사회 참여니, 개입이니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억지군요. 너무나 당연한 일을 가지고 말이지요.
문: 그렇지. 배고픈 사람에게 쌀을 주는 것이 죄야? 북한 동포들 상황이 이리도 힘든데 남아도는 쌀 보내주자는 것도 좌익이래. 공안당국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제들이, 신자들이 그런 소리를 해. 이런 모습들이 교회를 망치는 일이지, 교회의 원래 소임을 저버리는 일이란 말이야. 이런 이야기 가슴 터놓고 말 할 수 있어야 해.
 
김: 신부님 말씀 들으니까 정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 또는 종교가 세상일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하는 사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이시죠?
문: 그것이 복음적으로 사는 것이야.
 
김: 그렇죠.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여기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복음적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 1975년 인혁당 사건, 그 억울한 여덟 명의 사형집행 앞에서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나섰어. 그랬더니 정치활동이라는 거야. 억울하게 남편 죽고, 아버지 빼앗기고, 고통당하고, 고문당하고, 가족들까지 끌려가고 고문 받았잖아. 내가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까지 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정치적인 색깔을 덧씌워서 나보고 그 사람들 곁에 가지 못하게 했어. 그건 악마나 하는 짓이잖아.
 
김: 신부님 말씀대로라면 그런 일을 하실 때 위축될 이유가 없으시겠어요. 신부님의 명동성당 기도도 그런 맥락에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0년 명동에서 사제단 신부님들이 4대강사업 반대 생명평화기도회를 하실 때, 명동성당 사목회 일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신부님들의 기도를 방해하고 행패를 부렸던 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명동기도를 시작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보수화되고, 권력화 되어 가는 우리 교회의 반성과 회개를 바라신 기도였잖아요. 그 기도로 신부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하셨고요. 신부님의 삶을 천주교 안에만 국한지어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신부님은 기본적으로 종교인, 신앙인이시잖아요. 또 원래 가톨릭 집안이셨죠?
문: 신앙심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게 심어주신 거지, 아주 독실하셨어. 나도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만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당연히 하느님을 찾게 되고, 사제가 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지.
 
김: 그런데 인혁당사건 때부터 오늘까지 억울하게 당하고 말도 못하게 처참하고 참혹한 현실들을 마주하면서 사셨잖아요. 그런 순간에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이렇게 무심하셔도 되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세요. 신앙인으로서의 갈등 같은 것들이 있으시지는 않으셨나요?
문: 왜 없었겠어? 젊은 시절에는 고민 많이 했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는데 세상은 무관심 한 거야. 혼자 눈물 흘리며 호소하는데 다 못들은 척하고, 심지어는 동료 사제들까지도 말이야. 선배 신부님들이 묻혀있는 성직자 묘지에 가서 술 마시고 혼자 펑펑 울기도 많이 했어.
 
김: 언제요? 신부님 젊으셨을 때요?
문: 응. 젊었을 때는 갈등도 많았어. 뭘 하려고 하면 혼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것을 여럿이 함께 가려 하지 않고 너무 혼자 앞서간다고 비판하는 거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지 말자는 것과 같은 말이야. 무슨 성명서 한 장을 발표하려고 해도 단어가 어떻고, 표현이 어떻고. 무슨 기념비적인 글을 남기겠다고 말이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문장력 없는 사람들은 성명서도 못 쓰는 거야? 그런 꼴을 보면 속이 상해서 확 뒤집어 버리곤 했지. 그러면 나는 또 혼자가 되고 말이야. 지금 당장 시급한 일들이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뒤로만 물러서는 사람들을 볼 때면 하느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따지고 보면 뭐 내가 하느님을 만나보기를 했어, 음성을 직접 들어보기를 했어. 어떤 때는 ‘아 이것이 그 분의 뜻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가도, 어떤 때는 ‘하느님은 지금 저 위에서 뭐 하시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 사실 내가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뭐 가보면 알겠지.
 
김: 어딜 가보면 알아요?
문: 죽어봐야 안다고. 죽어보면 알겠지.
 
김: 그래도 사제로서 삼위일체나 예수님의 부활 같은 기본적인 교리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계신 것이지요?
문: 그건 몸에 배어있는 거야. 하나의 씨앗이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부활 신앙이야.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죽으면 다 똑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김: 신부님께서는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요?
문: 아니, 요즘에는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세게 살지 못한 것이 후회 돼.
 
김: 지금까지 하신 일이 모자라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에요?
문: 그렇지.
 
김: 고상하게 말해서 ‘길 위의 신부’지, ‘깡패 신부’, ‘좌파 신부’란 이야기를 들으시며 사셨는데도 모자라다고 생각하셔요?
문: 우리 사제들은 미사하다 죽으면 순직이라고 하잖아. 그렇게 죽는 순간까지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는 건데, 아마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모자라다고 생각되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후회 없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때는 주저하기도 하고, 힘을 아끼려고 할 때도 있었지. 그러고 나면 꼭 후유증이 생겨. 끝까지 다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이 들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야.
 
김: 그러면 지금까지 활동하시면서 가장 아쉬운 일,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머뭇거렸다거나 부족했다고 생각하시는 일이 하나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문: 대추리…
 
김: 역시 그러셨군요. 신부님께는 정말 대추리 싸움이 크게 남으셨나 봐요.
문 대추리 행정대집행 때, ‘여명의 황새울 작전’ 말이야. 그것이 집행이 되고 나서 내가 대추분교 지붕위에서 내 발로 걸어 내려온 것이 가장 아쉬워. 그때 어찌어찌해서 내려가자는 분위기에 밀려 내려왔는데. 내려오면서도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닌데’ 했어. 행정대집행이 끝난 다음에 주민들이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거든. 그 이후로 주민대표들이 몇 번씩이나 우리집에 왔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는 거야.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오두희한테 주민대표들을 불러서 마을 밖으로 가자고 해서 대추리 지나서 있는 둔포 시내로 나갔어. 그날 술 정말 많이 마셨어. 주민대표들도 울고, 나도 울고. 마을주민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면서 말이야. 그렇게 대추리를 떠나고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어.
 
김: 다 끝난 후에 돌아오는 그런 상념들은 모두 온전히 신부님의 몫이잖아요. 누가 덜어주거나 대신 해 줄 수 없는 신부님 몫이요. 많이 힘 드셨겠어요?
문: 그러게 대추리 떠나고 나서는 참 힘들었어.
 
김: 지난 40여 년 동안 참 많은 일을 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잖아요. 피해자들, 유족들, 가난한 사람들, 또 동지들까지요. 그 분들 중 누가 가장 소중한 인연이세요?
문: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문규현 신부지. 문규현 신부가 없었으면 이렇게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몰라.
 
김: 용산참사 때 단식기도하시다가 문규현 신부님 쓰러지셨을 때 정말 깜짝 놀라셨겠어요?
문: 단식기도를 하면서도 문규현 신부가 지방으로 강연을 다니고, 무리하게 일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막 화를 냈었거든. 한 가지만 하라고 말이야. 그러다가 일이 생긴 거지. 새벽에 전종훈 신부에게 전화가 왔는데 말을 이어가질 못하더라고. ‘아 내 동생이 죽는구나’ 했어, 그때.
 
김: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드셨겠어요.
문: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 통곡을 하면서 올라갔지. ‘내가 문규현 신부 장례를 치러야하는 건가?’하면서 말이야. 병원에 가서 의사들을 보니 표정이 심상치가 않은 거야.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그때는 깨어나더라도 어딘가 크게 고장이 나겠구나 싶었어. 며칠 지나서 문규현 신분가 눈을 처음 뜰 때, 내가 옆에 있었거든. 그때 정말 기뻤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 문규현 신부가 날 보고는 깜짝 놀라더라고.
 
김: 그때는 저도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제가 용산참사 관련해서 어디 기고를 했는데 ‘문규현 신부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걸고 이명박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썼더라고요. 저도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두 분이 나이차이가 좀 나시잖아요. 유년 시절에도 그렇게 가까우셨어요?
문: 어렸을 때는 오히려 가깝게 있었던 적이 얼마 없지. 나는 일찌감치 소신학교에 들어갔고 문규현 신부는 신학교에 조금 늦게 들어왔어. 그러니까 같이 학교생활을 해 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문규현 신부의 성장 과정은 솔직히 잘 모르지. 내가 그 친구 사제서품날에도 못 갔어. 감옥에 있었잖아.
 
김: 아! 문규현 신부님 사제 서품식을 못 보셨어요?
문: 서품식을 못 봤어. 문규현 신부가 5월에 신부가 되었고 내 여동생은 6월말에 수도회에서 종신서원을 했어. 그런데 두 곳에 다 못 갔어. 성직자로서, 형으로서, 오빠로서 동생의 사제서품식에 못 간다는 것, 누이의 종신 서원식에 못 간다는 것이 그때는 너무 서럽고 힘들었어. 내가 감옥에 가고 아무도 면회를 못하게 했었는데 문규현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바로 다음날 날 찾아 면회를 왔어. 첫 가족면회였지. 사제로서의 첫 강복을 내게 주려고 왔지. 정말 감격이었어. 이제 동지구나, 신앙의 동지.
 
김: 그런데 두 분이 동지신건 확실한데, 두 분이 또 많이 다르시죠?
문: 어, 많이 다르지.
 
김: 두 분 다 아는 사람들은 너무너무 서로 아끼시고 그러는 거 알지만, 예를 들면 운동하시는 방식이나 성격도 다르신 것 같고, 물론 똑같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두 분 모두 욱하시면 비슷하시잖아요.
문: 닮은 점이 더 많아. 목소리도 많이 닮았고. 문규현 신부 집에서 내가 전화 받으면 100% 문규현 신부인 줄 알아.
 
김: 하하, 앞으로도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걸어가시길 바라시죠?
문: 이제 문규현 신부도 원로사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있는데. 그 친구가 끝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지. 그 사람이랑 나는 말없이 통 하는 일이 많아. 이신전심이지.
 
김: 그럼 평화바람과 오두희씨는 신부님께 어떤 존재에요?
문: 난 평화바람 식구들이 모일 때 참석을 잘 안 해. 식구들이 회의하고 토론한 결과를 듣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 좋아. 여기 오는 것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냐. 내가 밥상에 앉아서 강정이야기 하면서, 혼자 ‘끙끙’대고 그러니까. 오두희가 “신부님 한 번 다녀오세요.” 그러는 거야. 바로 강정에 다녀왔지. 다녀와서 또 내가 ‘궁시렁궁시렁’ 하니까 “신부님, 강정에 들어가 사실래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고 싶다고 했어. 당장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그렇게 강정에 오게 된 거야. 식구들끼리 많이 싸우기도 하고 내가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서로 믿음이 있으니까 괜찮아. 평화바람 대표를 문정현으로 알고들 있겠지만 사실은 오두희가 내 배후야. 허허허
 
김: 오두희씨와 평화바람을 신뢰하세요?
문: 그럼. 신뢰하지. 물론 잘못될 수도 있겠지만, 신뢰하니까. 이제는 내가 앞서서 일을 저지르고 치고 나가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오두희와 평화바람 식구들이 하자고 하는 일, 만들어 주는 일에 충실하고 싶어. 평화바람 식구들이 하고 싶은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김:1974년에 사제단이 만들어지고 35년이 넘었잖아요. 그동안 사제단이 천주교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셨는데요. 그만큼 우리 사회 안에서 사제단은 존중과 신뢰를 받고 있죠. 그런데 사제단의 운동 방향이나 신부님들의 활동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잖아요.
문: 사제단은 사제들의 모임이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사제들의 생각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사제단도 상처가 많아. 사제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인 척하고 사제단을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고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변절하는 것을 목격한 적도 많고 말이야. 박정희 때부터 이름한번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한 길만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제단이 독보적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 예를 들면 용산에서 내가 처음 미사를 시작한 게 3월 28일인데 처음에 시작할 때 허허벌판이었고 아무도 없었어. 그때 달려와 준 사람들은 오랫동안 함께했던 천주교 사회단체 사람들이었지. 신부님들은 그 후에 왔지. 그 신자들이 할 수 있게 해 준거야. 나야 그 사람들하고 다 통하고 마음을 아니까 존중하고 감사하지. 그런 걸 아직 모르는 사제들도 있을 수 있잖아, 사제들이라고 다 똑같을 수만은 없으니까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있을 거야.
 
김: 다시 강정 얘기인데요, 신부님은 여기, 강정을 지키셔야하고, 이기셔야 하잖아요. 싸움이 계속 되는 한, 신부님 스스로 강정을 떠나시진 않으실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 싸움이 또 짧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문: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이 강정싸움과 비슷한 경험들이 있지 않아?
 
김: 대추리랑 비슷하죠? 다른 점도 있겠지만…
문: 그렇지. 사람들도 다르고. 또 육지하고 섬이라는 것도 다르고. 그런데 여기서는 이긴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대추리에서 살 때의 마음가짐이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주민들을 보면 그런 확신이 들어.
 
김: 저희 모두 마음 아픈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부안 핵 폐기장 막아낼 때, 두 문 신부님을 필두로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열심히 힘을 합쳐서 이겨냈잖아요. 어렵게 이겨본 경험이라 참 기억에 남는 싸움인데요. 결국은 핵 폐기장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고 핵 폐기장 자체가 백지화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분명히 있죠. 부안에는 핵 폐기장이 건립하면 안 되고 경주는 괜찮고 그런 건 절대 아니잖아요. 지금 제주에서도 화순, 위미를 거쳐서 강정에 해군기지가 왔어요. 우리가 열심히 싸워서 강정에 해군기지 들어서는 것을 막았다고 쳐요. 그런데 제주도 반대편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하면 어쩌죠? 제주가 아니라 다른 해변에 건설하겠다고 할 때는 어쩌고요? 강정에서 막는다고 해군기지 자체를 백지화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문: 해군기지 사업도 새만금처럼 국책사업이라잖아. 해군기지가 백지화 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거야. 그러니까 더욱 여기를 막아야 해. 일단 강정을 막고, 그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지. 부안에서 경주 가는 꼴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이놈의 전쟁기지 만드는 일은 막아야지. 이거는 어디에 만들어도 문제가 되는 거니까. 군사기지를 거부하는 것은 아까 말한 것처럼 성서적인 이유, 복음적인 이유니까.
 
김: 신부님 마지막으로요. 많은 분들이 강정에 올 마음은 있는데, 시간과 용기가 없어서 못 오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하루하루 사느라고 여유가 없는 분들은 강정싸움에 어떻게 마음을 보탤 수 있을까요?
문: 아 그런 분들을 위해서 평화상단을 꾸렸잖아. 투쟁 기금을 버는 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하면 내가 주말에라도 뭍에 있는 본당에 가서 강론이라도 하면서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이런 것들을 팝니다. 그러면 좀 팔리지 않겠어?
 
김: 그럼, 젓갈 열심히 사서 먹고 선물하고 그러면 되는 거죠?
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잣대로 잴 수 있겠어. 다 자기 나름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 다만 여유가 되면 강정마을 구럼비 해변에 한 번씩만 다녀가면 좋겠어. 여길 다녀가면 왜 해군기지는 안 되는지, 여기를 왜 지켜야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김: 참, 이번에 ‘길위의 신부 문정현-다시 길을 떠나다’라는 책은 직접 쓰신 책이에요?
문: 아니,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란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김중미라고 있어. 그 이가 작년에 한겨레에 내 구술을 받아서 ‘길 위의 신부’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었는데, 그걸 토대로 책을 다시 써서 출간했어. 오래된 일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오두희가 구술하는 걸 많이 도와줬지. 딸기가 녹취도 풀어주고.
 
김: 공동선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문: 사회의 시선과 관심은 항상 가장 아픈 곳에 쏠려야 된다고 생각해. 우리 몸도 그렇잖아. 나도 지금 발가락 하나가 많이 아파, 그러니까 가만히 있을 때는 온 신경이 여기로 몰리거든. 참여와 연대. 이렇게 아픈 곳에 함께 하는 것, 아픈 곳이 치유 되었을 때 또 함께 기뻐하는 것이 정말 필요해.
 
김: 알겠습니다. 희망상단 젓갈 좀 맛있게 잘 만들어주십시오.
문: 서울 가거든 평화비행기랑 구럼비 축제 준비 좀 잘 해줘. 제주에서도 한판 크게 벌여봐.
 
문정현 신부와 대담을 마친 일주일 후인, 해방 66주년 광복절에 서울과 경기에서 500여명의 경찰병력과 물대포, 방송차, 진압장비 등이 배를 타고 제주항에 입도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강정마을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국회와 도의회 등에서 반발하자, 일단은 큰 물리적 충돌 없이 공권력 투입은 잠정 미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경찰과 용역들이 달려들지 모르는 상황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올레길 7코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강정마을 구럼비 해변에서는 9월 3일(토) 올레길 7코스 걷기 행사와 평화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함께 하기 위해 서울에서는 평화의 비행기가 뜬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정마을 구럼비 해변으로 향하는 순례행렬은 점점 길어지고, 혼탁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온 ‘길 위의 예수’ 문정현 신부의 얼굴은 점점 검게 그을리고 있다.
 
공동선 편집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