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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일본에 면죄부" 11시 30분, 외교부 앞 터져 나온 함성

[현장] 시민사회 반발 "피해자 거부한 내용, 외교부 해법으로 제시... 굴종외교"23.03.06 12:36l최종 업데이트 23.03.06 16:21l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이 박진 외교부장관 발표에 맞춰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이 박진 외교부장관 발표에 맞춰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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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정부가 6일 일본 정부의 사죄 없이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금 지급을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포스코 등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하도록 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일제 강점기 피해자 지원 단체 등 시민사회의 분노가 쏟아졌다(관련 기사 : 일본 사과·배상 빠진 한국 주도 '제3변제' 공식화... 피해자들 반발 https://omn.kr/22yqd)

"보수 지지자들도 굴욕적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무릎 꿇는 모습, 상상할 수 없다."

임지영 정의기억연대 국내연대 팀장은 6일 오전 11시께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진행한 '반인권∙반헌법∙반역사적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기자회견'에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강행한 한일 '위안부' 관련 합의와 이날 외교부의 발표안을 함께 언급했다. 

임 팀장은 "윤석열 정부는 2015년 합의정신을 언급하며 일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굴종외교를 하고 있다"면서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책임을 이행해야할 정부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윤석열은 친일 굴욕외교 중단하라", "왜 대통령이 일본에 면죄부를 줍니까" 등의 손팻말을 들고 섰다.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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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오부치 계승? 일본 정부 요구 들어주려 대통령 됐나"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오는 7일 상경,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리는 비상시국 선언에 참여할 예정이다. 신미연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사죄 없이는 안 된다고 박찼던 그 안을 어떻게 우리나라 외교부가 해법이라고 들고 오나"라면서 "일본 전범 기업 대신 우리나라 기업들을 친일 기업으로 전락하도록 만드는 게 윤석열 정부다"라고 비판했다.

박진 외교부장관이 정부안의 명분으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한 사실에도 반론을 내놨다. 신 위원장은 "(공동선언) 그 이후는 어땠나. 일본 아베 정부는 고노담화부터 검증하겠다며 번번이 (공동선언 정신을) 부정했고, 지금 이 지경이다"라면서 "이쯤되면 윤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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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안이 '국익'을 위한 해법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104년 전 이완용과 을사오적이 한 경술국치와 다를 바 없는 친일 매국 선언이다"라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내어놓을 것 같나. 역사적으로도,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외교부 청사 앞에선 이를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이 정부안 발표 시각인 오전 11시 30분이 되자마자 부부젤라를 불고 함성을 지르며 항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이날 정부안에 대한 규탄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오는 11일 토요일 오후 4시에는 범국민 대회를 통해 정부안 무효화를 위한 행진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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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빠진 강제동원 ‘변제안’, 경향 “발표 접고 방향 다시 잡아라”

  •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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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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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발표 예정, ‘피해 배상금액, 한국기업이 행안부 통해 지급’

국제법 위반 비판, 피해자 “위안부 합의보다 못한 참사”

경향 “정부, 발표 접고 방향 다시 잡아야”

정부가 오늘(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한다. 대법원이 2018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강제징용 배상 의무를 확정했지만, 이들에 배상 책임을 묻지 않고 한국기업들이 낸 기부금으로 대신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이 주요 내용이다.

아침신문들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이날 ‘제3자 방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1면에 보도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5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는 길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강제동원 배상 협상’ 해법과 관련해 “한일 외교 당국 간 협의가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제3변제 방안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포스코 등 1953년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를 받은 한국기업으로부터 출연금을 받아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6일 경향신문 1면

▲6일 아침신문

일본 정부는 박 장관의 발표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한다는 선언적 담화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일보는 이를 두고 “피해자들이 강제동원이란 개별 사안에 관해 구체적 사과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포괄적·원론적 입장 표명”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담화 계승’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며 “일본 역대 정권마다 ‘담화 계승’ 뜻을 밝혀왔기에, 이번 문제를 위한 추가적 조처로 보기도 힘들다”고 했다.

강제동원 배상을 위한 기금과 별도로 한·일은 우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를 통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공동 조성해 운영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금은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등에 쓰인다.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일본의 ‘호응 조치’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이뤄지는 셈이어서 일제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적시하고 배상하도록 한 한국 대법원 판결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6일 경향신문

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과가 모두 빠지는 데 반발한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서울과 광주에서 동시 기자회견 개최를 예고했다. 국민일보는 이날 1면에서 “피해자 측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일본의 직접 사죄를 요구하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신문들은 1면 기사에서 정부의 ‘해법’을 비판 보도했다. 한겨레는 “‘과거 직시’는 소홀히 한 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한·미·일 협력 강화’를 외치며 직진해온 윤석열 정부 일방외교의 결정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본 피고 기업들의 배상 참여는 물론 이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직접적 사과도 빠져 있어, 피해자 단체는 물론 국내 여론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6일 세계일보 1면

▲6일 한겨레

세계일보는 1면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의식한 정부가 향후 외교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협상을 마무리지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판결 후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3년 넘게 악화일로를 걸은 한·일관계가 정상화하려면 일본의 호응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라고 했다.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1면 기사 제목과 본문에서 일본기업의 배상 책임이 빠진 점을 비판적으로 비췄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배상 책임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미래청년기금’을 제목에 올렸다. 이 중 동아일보는 1면에 법적 배상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매일경제 보도 제목 <국익·미래 초점…한일 경제안보 새판>은 이번 ‘해법’을 미래지향적인 안으로 긍정 평가했다.

▲6일 경향신문

▲6일 경향신문

신문들은 3면 등 이어지는 기사에서 피해자와 지원단체, 민주당 등의 강한 반발 입장을 전하고 정부의 발표 과정과 내용을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한국 외교부) 실무자급에서는 피고기업의 배상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강제동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재단에 일본 기업이 기부할 수 없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에 강제동원 합의를 짜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며 “미국이 원하는 한일협력 복원을 위해 발표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3월 일본, 4월 미국을 방문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고 했다.

▲6일 한국일보

한겨레는 3면 해설 기사에서 이번 ‘해법’을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며 완강히 거부해온 일본 정부의 ‘완승’”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 윤석열 정부의 해법이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국제 인권법의 대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불법적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구제”를 시도한 이같은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일본과 “불법”이라는 대한민국의 이견에서 일본 정부 손을 들어준 외교·행정 행위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6일 한겨레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의 합의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해소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겨레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피해자(4건 15명)는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21만8639명)의 0.0069%에 불과하다”며 “이미 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만 66건에 1124명이다. 대법원이 2018년 판결을 번복하지 않는 한 대부분 승소 가능성이 높은 소송들”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 2018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배상책임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과 이후 문재인 정부의 외교 방침을 두고 한일관계의 걸림돌로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제를 회피하고 ‘죽창가’ 선동만” 했다며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해석을 내리면서 강제징용은 한일관계의 폭탄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6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정부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면 일본도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과 관계를 고려해 ‘성의 있는 호응’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세계일보는 협상 이후 일본이 어떤 구체적 조치를 취할지도 불투명하다고 짚었다. 세계일보는 “일본 교도통신은 전날 ‘한국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공식발표하면 일본 정부는 뜻이 있는 일본기업의 기부를 용인할 것’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며 “현재로선 어떤 일본 기업이 기금조성에 참여할지, 일본 정부가 ‘용인’ 이상의 어떤 구체적 독려책을 제시할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6일 세계일보

피해자 쪽은 “2015년 ‘위안부 합의’보다 못한 외교 참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강제동원 소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소셜미디어에서 “한국 기업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 채권이 소멸되는 꼴”이라며 “강제동원 문제에는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완승”이라고 평했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이국언 이사장은 일본 쪽의 ‘성의있는 호응’으로 제시될 것으로 보이는 한·일 ‘미래청년기금’(가칭)이 과거 피해자와 피고 기업 간 협상 과정에서 이미 나왔고 피해자들이 한 차례 거절한 방안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6일 한겨레

경향신문은 “정부의 이번 발표로 한·일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판결 문제로 인한 국가 간 외교적 갈등은 일단락될 전망”이라고 했다. 신문들은 양국이 일본 수출규제 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복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그러면서도 “제3자 변제로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충족되는 것인지, 정부의 대리 변제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채권을 합법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등의 법적 문제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며 “해결하지 못하면 강제징용 문제는 ‘해결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현안으로 남아 다시 한·일관계에 계속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5일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일본 기업 참여 없는 ‘제3자 변제안’과 일본 정부의 간접 사과를 강제징용 해법으로 공식 발표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외교사에 최악의 굴욕 외교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 ‘간접배상이나 마찬가지’…“유학지원이 무슨 관련? 논점 이탈”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정부가 이번 안을 발표하지 않고 새로운 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며 “정부는 발표하지 말고 방향부터 새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6일 경향신문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양국의 ‘미래청년기금’을 두고 “일종의 ‘간접 배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의 대법원 판결이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판결을 삼간다는 ‘사법 자제’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났”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이 안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새로운 발판이 될지는 이제 일본의 후속 조치에 달렸다”고 했다.

▲6일 조선일보 사설

▲6일 한겨레

반면 한겨레는 사설에서 “전경련-경단련(게이단렌)의 ‘미래청년기금’ 조성 방안은 논점 이탈”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와 한·일 기업 장학금 받아 일본 유학 가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번 ‘해법’은 행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전면 부인하는 셈이다. 또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우리 헌법 질서를 정부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역사는 일개 정부의 독점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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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 예고하는 가슴 떨리는 현상들

[개벽예감 530] 전면전 예고하는 가슴 떨리는 현상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03/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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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2단계 전쟁전략 폐기하고 북진공격만 연습한다

2. 평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 연습

3. 조선인민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안정화작전 연습

4. ‘남조선해방전쟁’ 불시핵타격 연습하는 조선인민군

 

 

1. 2단계 전쟁전략 폐기하고 북진공격만 연습한다

 

전면전을 예고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세를 오판한 미국이 ‘뇌관’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대폭발이 일어날 매우 위태로운 형세다. 최근에 나타난 가슴 떨리는 현상들을 살펴보자. 

 

2023년 3월 2일 주한미국군사령부 웹싸이트에 공보가 실렸다. 공보에 의하면, 한미련합사령부는 ‘자유의 방패 23(Freedom Shield 23)’이라고 부르는 군사훈련을 2023년 3월 13일에 시작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보에 의하면, 2023년 3월 13일부터 23일까지 11일 동안 진행될 ‘자유의 방패 23’에서 20여 개에 이르는 각종 대규모 군사훈련이 진행되는데, 그 중에서 중심적인 것은 ‘전사의 방패(Warrior Shield)’라고 부르는 야전훈련(field training exercises)이라고 한다. 미국군은 ‘방패’라는 말을 꽤 즐겨 쓴다. 자기들의 침략전쟁을 방어전쟁으로 위장해보려고 그런 유치한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공보에 의하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을 실시하는 목적은 “공중작전, 지상작전, 해상작전, 우주작전, 싸이버작전, 특수작전에서 전술, 기술, 절차를 숙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에서 공중전, 지상전, 해상전, 우주전, 싸이버전, 특수전을 포괄하는 전면전 연습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련합군이 전면전을 상정한 북침 전쟁연습을 2023년 3월 13일부터 11일 동안 벌일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은 정세를 긴장시켰다. 미국 군대가 제 나라 땅에서 진행하는 전쟁연습에 대해 누구도 시비할 수 없지만,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이 땅에서 그리고 우리들이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이 땅에서 전면전 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전면전을 상정한 북침 전쟁연습이 3월 13일부터 11일 동안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미련합군이 ‘자유의 방패 23’이라는 간판 뒤에서 북침 전쟁연습을 어떻게 감행하는지 알아야 한다. 정세동향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파국에 빠지는 길이다. 

 

2023년 3월 4일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한미련합군은 ‘자유의 방패 23’에서 방어연습과 격퇴연습을 생략하고, 곧바로 공격연습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미련합군은 이전에 북침 전쟁연습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실시했었는데, 전반부에서는 조선인민군의 공격에 맞서다가 격퇴하는 방어연습을 했고 후반부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반격연습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2단계 전쟁전략이 폐기되었다. 처음부터 북진공격만 연습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인디아양-태평양사령부 작전국이 기존 북침 전쟁전략을 선제공격에 기초한 새로운 북침 전쟁전략으로 대폭 수정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유의 방패 23’은 한미련합군이 수정된 북침 전쟁전략을 처음 연습하는 기회다.

 

한미련합군의 북침 전쟁전략이 선제공격에 기초한 북침 전쟁전략으로 수정된 것은 한미련합군이 자기의 대규모 군사행동에 ‘자유의 방패’라는 간판을 달아놓았다고 해도 그것이 전쟁연습으로 위장한 북침 전쟁이 아니라고 단정할 만한 보증은 없다. 이런 현실은 한미련합군이 ‘자유의 방패’라는 북침 전쟁연습을 시작한다고 발표해놓고, 선제공격으로 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은 이처럼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북침전쟁이 임박한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인민군 전군에 최후 결전을 명령할 것이다. 2023년 3월 11일에 시작될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위험천만한 도발 행동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23년 3월 2일 주한미국군사령부 공보에 의하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은 한반도 주변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한반도에서(in the Korean Peninsula) 진행된다고 하지 않고 왜 한반도 주변(around the Korean Peninsula)에서 진행된다는 색다른 표현을 썼을까? 한미련합군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을 한반도 주변에서 진행하는 까닭은, 북침 전쟁연습을 한·미·일 3자 범위로 확장하기 위해 일본자위대를 북침 전쟁연습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본해상자위대가 참가한 한·미·일 3자 미사일 방어훈련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 중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한·미·일 3자는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을 앞두고 미사일 방어 예행연습을 실시했다. 2023년 2월 22일 한국군 합참본부 발표에 의하면, 당일 오전 9시부터 5시간 동안 독도에서 동쪽으로 약 185km 떨어진 해상 작전구역에서 미국 이지스 구축함, 한국 이지스 구축함, 일본 이지스 구축함이 참가한 3자 미사일 방어훈련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을 앞두고 진행된 미사일 방어 예행연습이었다.

 

미국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 중에 한·미·일 3자 미사일 방어훈련을 실시하려는 목적은 동해 해상 작전구역에 출동한 미국 항모타격단을 조선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데 있다. 전시에 동해 해상 작전구역에 출동한 미국 항공모함과 구축함들은 조선인민군의 집중적인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될 것이므로, 미국은 3자 미사일방어체계를 가동하여 미국 항모타격단을 방어하려는 것이다.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위험천만한 도발 행동으로 보는 까닭은, 미국이 전면전을 상정한 사상 최대 규모의 북침 전쟁연습에 일본자위대까지 끌어들여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2. 평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 연습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핵추진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항모타격단의 북침 공격연습이다. 동해 해상 작전구역에 출동한 미국 항모타격단은 선제 공중타격으로 조선인민군의 반항공체계와 공군력을 무력화시키는 북침 공격연습을 실시할 것이다. 미국 항모타격단이 조선인민군의 반항공체계와 공군력을 무력화해야 한미련합군 전투부대들이 북으로 진격하여 조선을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하는데, 한·미·일 3자 미사일방어체계의 엄호가 없으면 미국 항모타격단의 북침 공격연습은 무의미해진다.

   

돌이켜보면,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전투기들이 북측 영공을 침범해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들을 폭살하고, 도시와 마을을 파괴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이후 오늘까지 70년 동안 미국은 조선에 침공위협을 가할 때마다 미국 항공모함을 동해에 출동시켰다. 이런 만행과 폭거는 조선에서 미국 항공모함이라는 말만 들어도 분노에 치를 떨게 만들었다.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위험한 도발 행동으로 보는 까닭은 미국 항모타격단이 동해에 출동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이 분노에 치를 떨면서 그에 상응한 보복 행동을 반드시 단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아양-태평양사령부 작전국이 수립한 북침 전쟁계획에 의하면, 전시에 미국 항모타격단이 조선인민군의 반항공망과 공군력을 무력화한 직후 미국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로 혼합편성된 대규모 연합상륙부대가 원산 침공 상륙전에 나서게 된다. 그에 따라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에서는 사단급 규모로 대폭 증강된 ‘쌍룡’이라는 명칭의 원산 침공 상륙전 연습이 예정되었다. 원산은 예로부터 붉은 해당화와 울창한 솔숲이 어우러진 송도원의 눈부신 모래벌로 유명한 항구도시지만, 한미련합군 해병대의 핏발 선 시야에 원산은 동해안에 상륙해 평양으로 향하는 가장 짧은 진격로의 출발지로만 보인다. 한미련합군이 원산 침공 상륙전 연습을 감행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미련합군 해병대는 원산 침공 상륙전 연습을 앞두고 예행연습도 벌였다. 2023년 2월 28일 미국 육군 공보에 의하면, 2023년 2월 28일부터 3월 10일까지 타이 남부 해안에서 미국군 해병대가 주도하는 ‘코브라 골드(Cobra Gold)’라는 명칭의 다국적 상륙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다국적 상륙훈련에 해병대 병력은 물론 상륙함 5척, 상륙돌격장갑차, 수직리착륙기 오스프리, F-35 스텔스 전투기, F-16 전투기를 참가시켰고, 한국은 해병대 병력 220명, 상륙돌격장갑차, K55 자주포, K808 장갑차를 참가시켰다. 이것은 한미련합군 상륙부대가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 중에 원산 침공 상륙전을 연습하기 전에 실시한 예행연습이었다.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위험한 도발 행동으로 보는 까닭은 한미련합군이 원산 침공 상륙전 연습을 감행함으로써 조선을 극도로 자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디아양-태평양사령부 작전국이 수립한 북침 전쟁계획에 의하면, 전시에 미국 항모타격단이 조선인민군의 반항공망과 공군력을 무력화하면,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가 전략폭격기의 엄호를 받으며 공중 침투로를 타고 평양을 침공, 점령하는 이른바 참수작전에 나서게 된다. 참수작전은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가 야간 공중 침투전으로 평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종심 공격작전을 의미한다. 종심 공격작전에는 조선의 핵무기고를 점령하고 핵탄두를 탈취하여 미국으로 수송하는 비핵화 작전도 포함된다. 이런 사정을 보면, 한미련합군에 있어서 참수작전과 비핵화 작전은 전쟁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전투 행동이므로 그들은 오늘도 참수작전 연습과 비핵화 작전 연습에 광분하고 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 일정을 예고하였던 2023년 3월 3일, B-1B 전략폭격기와 MQ-9 리퍼 무인공격기가 돌연히 남측 상공에 나타났다. 전략폭격기와 무인공격기는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가 참수작전을 감행할 때 그들의 야간 공중 침투전을 엄호해줄 무기 체계들이다. 

 

한미련합군은 ‘자유의 방패 23’에서 참수작전을 연습하기 전에 참수작전 예행연습을 벌였다. 2023년 2월 28일 주한미국군 특수전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는 2023년 2월 초부터 ‘티크 나이프(Teak Knife)’라는 명칭의 참수작전 예행연습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참수작전 예행연습에는 주한미국군 특수전사령부와 특수전술부대가 참가했고, 한국 공군 공중기동정찰부대, 해군 특수전부대, 육군 특수전부대가 참가했다. 주한미국군 특수전사령부가 참가한 것은, 참수작전 예행연습이 미국군 특수전사령부의 지휘통제 밑에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산 공군기지와 군산 공군기지에 있는 주한미공군 전투기들이 참수작전 예행연습에 참가했을 뿐 아니라,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헐버트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공중화력지원기 AC-130J 1대도 태평양을 건너가 참수작전 예행연습에 참가했다. 한 달 동안 계속된 ‘티그 나이프’ 참수작전 연습은 ‘전사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 중에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가 실시할 참수작전 연습을 앞두고 진행된 예행연습이었다. 

 

참수작전 예행연습에는 미국군 특수전술부대가 참가했지만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이 시작되면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800명 병력으로 편제된 미국 공군 제353특수작전단이 주력부대로 참가하게 된다.

 

2023년 2월 27일 김승겸 합참의장은 참수작전 예행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경기도 평택 미국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에 가서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 전투원들에게 “적 핵심 시설을 오차 없이 타격하라”라고 지시했다. 북침 전쟁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도발행동이다.

 

▲ 지난 2월 27일 김승겸 합참의장은 참수작전 예행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경기도 평택 미국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했다. [사진출처-합동참모본부]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매우 위험한 도발 행동으로 보는 까닭은 한미련합군이 평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대규모 참수작전 연습을 감행하여 조선이 더 이상 참지 못할 만큼 극도로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조선인민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안정화작전 연습

 

2023년 3월 4일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전사의 방패’ 야전훈련은 이른바 ‘안정화작전’으로 결속된다고 한다. 한미련합군 북침전쟁계획에 의하면, ‘안정화작전’은 한미련합군 특수작전부대가 야간 공중 침투전으로 평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완료한 뒤에 한국군 11개 보병사단이 북측 각지로 진격하여 조선인민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점령지에서의 저항을 진압하고, 점령통치기구를 세우고, 북측 주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배급하는 결속작전이다. 북침 전쟁계획에 의하면, 평양은 2개 사단이 점령하게 되는데, 대동강을 중심으로 서평양과 동평양에 각각 1개 사단씩 배치되고, 북의 9개 도마다 각각 1개 사단씩 배치된다고 한다. 

 

2023년 3월 3일 김승겸 합참의장은 육군 제3군단을 방문해 결전 태세를 점검하면서 “적이 도발하면 현장에서 과감하게 응징하라”라고 지시했다.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합참의장이 그런 지시를 내리면,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는 무모한 도발 망언에 첨언하는 부정적인 결과 밖에 나올 게 없다.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매우 위험한 도발 행동으로 보는 까닭은 한미련합군이 조선인민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점령지에서의 저항을 진압하고, 점령통치기구를 세우고, 북측 주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배급하는 결속작전 연습을 감행하여 조선이 더 이상 참지 못할 만큼 극도로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련합군이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감행하면 조선은 더 이상 참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아도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023년 2월 19일 담화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끝으로 경고한다”라고 하면서 “적의 행동 건건사사(사사건건)를 주시할 것이며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상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이튿날에도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를 또다시 발표하고, “정세를 격화시키는 특등 광신자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언한다”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경고 담화를 이틀 사이에 두 차례나 연속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한미련합군의 북침 전쟁연습에 대응해 ‘남조선해방전쟁’을 사상 최대 규모로 연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려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전쟁연습’을 앞두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자. 이 글이 발표되는 2023년 3월 6일 현재, 조선인민군은 1기 전투정치훈련을 한창 진행하는 중이다. 올해 1기 전투정치훈련은 조선인민군 편제가 전면적으로 개편되고, 편제 개편에 따라 무장 장비들이 새로 배치된 후 처음으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남조선해방전쟁연습’은 1기 전투정치훈련 중에 실전과 유사한 작전환경에서 실탄을 발사하면서 불시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3월 2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새로 전력화, 편제화된 전략 순항미사일, 전술핵미사일, 600mm 핵방사포를 운용하는 조선인민군 핵전투 부대들과 인접한 전투 부대들이 협동작전을 연습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핵전투 작전을 중심으로 전면전 연습을 진행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준다.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자유의 방패’ 북침 전쟁연습을 곧 감행하게 되었으므로, 그에 상응하여 조선도 핵전투 작전을 중심으로 ‘남조선해방전쟁’을 연습하는 것이다. 2023년 2월 19일 경고 담화에서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상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한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 그대로다. 

 

4. ‘남조선해방전쟁’ 불시핵타격 연습하는 조선인민군

 

2023년 3월 2일 <데일리 NK> 보도기사에 조선인민군의 전면전 연습상황이 좀 더 구체적으로 수록되었는데, 그 내용을 정리,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1기 전투정치훈련 중 불시에 협동작전훈련을 실시할 데 대한 긴급명령을 하달한다. 

 

해설 - 위의 인용문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인민군이 불시타격 실전훈련을 실시한다는 사실이다. ‘불시’라는 말은 조선인민군이 어느 평범한 날 갑자기 선제타격으로 ‘남조선해방전쟁’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는 것이다. 한미련합군의 대북 선제타격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징후를 포착했을 때 시작되지만, 조선인민군의 대남 불시타격은 한미련합군의 공격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김정은 총비서의 결심만 서면 불시에 시작되는 것이다. 한미련합군은 징후를 포착한 뒤에 선제타격을 하는 것이고, 조선인민군은 징후포착과 무관하게 불시타격을 하는 것이다. 불시타격을 선택한 쪽이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2) 조선인민군 협동작전훈련은 서부지구, 중부지구, 동부지구를 포함하는 전 전선에 걸쳐 실시된다. 

 

해설 -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국지전 연습이 아니라 전면전 연습을 실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련합군이 전면전 연습을 실시할 것이므로, 그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군도 당연히 전면전 연습을 실시하는 것이다. 2023년 3월 2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1기 전투정치훈련을 판정하기 위한 강평요강을 지난 2월 27일에 각급 부대 참모부에 하달했는데, 강평요강의 핵심은 “전면전을 가상한 작전 및 전투정치훈련 명령지휘체계에 대한 판정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3) 조선인민군 협동작전훈련은 지상, 공중, 해상, 수중에서 실탄을 발사하여 미리 정해진 많은 가상 목표물들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설 - 위의 인용문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인민군 실탄사격훈련이 지상, 공중, 해상에서는 물론이고 수중에서도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면전 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들이 동해 바다 속에서 모의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과 모의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순항미사일을 연속적으로 수중 발사하는 선제핵타격 연습이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3년 3월 2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번 협동작전훈련에서 공격 시간을 측정하고 정확히 소멸하는지를 평가하게 된다고 한다. 공격 시간을 측정한다는 말은 선제타격 연습이 매우 짧은 시간에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뜻이고, 정확히 소멸하는지를 평가한다는 말은 선제타격 연습에서 타격정밀도를 요구한다는 뜻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인명 살상과 민간시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타격전과 정밀타격전을 유기적으로 배합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4) 조선인민군 협동작전훈련은 육군, 해군, 공군과 전략군 전략핵운용 부대들과 전술핵운용 부대들이 서로 연계하여 실시된다. 

 

해설 - 이런 사정을 보면, 이번에 조선인민군은 불시핵타격과 불시비핵타격을 유기적으로 배합한 전면전을 연습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인민군 협동작전훈련에 두 부류의 핵전투 부대들이 참가한다는 사실이다. 전략핵전투 부대들은 워싱턴을 조준한 강력한 핵억제력으로 미국을 위협하여 미국의 ‘남조선해방전쟁’ 무력개입을 원천봉쇄하게 된다. 전술핵전투 부대들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극초음속미사일, 변칙비행미사일, 순항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600mm 초대형 방사포를 정밀타격체계로 일제히 기습 발사하여 한미련합군의 전투력을 순식간에 제거하게 된다. 미국은 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 조선 정권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지만, 그런 협박이 조선에 통할 것으로 예상했다면 오판 중의 오판이다. 지금 조선인민군은 저위력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다종다양한 미사일들과 핵방사포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핵전투작전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전술핵무력을 반드시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준다. 

 

5) 조선인민군 각급 부대 정치부는 이번 협동작전훈련에서 “우리 국가의 종말을 운운하는 적대 세력들에게 지구의 종말로 답할 것이라는 철의 신념을 만장약하고 훈련강평에서 높은 정치적 열의를 발휘하라”라는 내용으로 사상 교양을 진행하고 있다. 

 

해설 - 조선인민군은 사상전을 전쟁승리의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 때문에 사상교양을 중시한다. 2023년 2월 8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각급 부대 정치부는 정치상학을 매일 1시간씩 진행할 뿐 아니라, 정치부 간부들이 훈련장에 나가 전투원들을 위한 사상교양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집중적인 사상 교양으로 전투력을 강화하는 것은 조선인민군만이 가지는 최대 강점이다. 조선인민군의 사상 교양은 그들이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군’이라고 부르는 한미련합군에 대한 적개심과 격멸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그와 대조적으로, 한미련합군은 사상 교양이라는 말조차 모른다. 우수한 무기를 가졌어도 사상정신적으로 허약한 군대가 오합지졸로 전락하는 것은 세계 전쟁사에서 입증된 객관적 사실이다.

 

조선은 전략핵무력과 전술핵무력을 모두 보유한 핵강국이며, 탄탄하게 훈련되고 잘 무장된 120만 대군을 보유한 군사강국이며, 사상정신적으로 단결된 2,500만 인민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민간무력으로 조직된 군사대국이다. 그에 비해,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졌다고 줄곧 허세를 부리지만, 원시무기밖에 갖지 못한 탈레반과 싸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참패해 황망히 도망쳐 나왔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한 미국이 이제는 핵강국이며 군사강국이며 군사대국인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해보겠다고 덤벼들고 있다. 이것은 백악관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패퇴한 2021년 8월 15일의 치욕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쇠한 팔순 노인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는 백악관은 패전 기억을 금방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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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협력 강조한 윤석열, 한반도에 자위대 끌어들이나"

[인터뷰] <정세현의 통찰> 펴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3.03.06. 05:57:00 최종수정 2023.03.06. 06:40:18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며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의지를 보였다. 취임 이후 미국과 일본, 서방 주요 국가들에 기울어진 모습을 보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도 이를 확인하듯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협력만을 강조했다.

 

최근 <정세현의 통찰>을 통해 한국 외교가 자국중심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기념사와 관련 "지금 정부가 올해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회의에 초청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해 일본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북한의 핵과 국제정세를 구실로 일본과 협력을 강조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향후 '한반도 유사(有事)'시 자위대의 북한 지역 출병, 평택이나 인천 등에 상륙 또는 정박, 동해상에서의 항해 등에도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 전 장관은 과거 조선이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다 죽어가던 조선을 명나라가 원병을 보내 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이 사실상 통치이념이었고, 이후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정묘호란-병자호란 등의 굴욕을 당하게 됐다면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도 상대만 다를 뿐 '재조지은'의 개념이 우리나라 외교철학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6.25 전쟁 때 나라가 없어질 뻔 했는데 미국이 도와줘서 지금 우리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논리"라며 "자국 중심성을 챙기라는 게 한미동맹을 깨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동맹은 그대로 가되 우리가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는 어떤 여지를 주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8년 동교동 사저에서 "정 장관. 시골에서 보면 도랑 속에 든 소가 이쪽 둑의 풀도 뜯어먹고 저쪽 둑의 풀도 뜯어먹으면서 유유히 걸어가지 않소? 앞으로 우리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도랑 속을 걸어가는 소처럼 외교를 해나가야 할 거요"라고 전했던 일화를 떠올리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국중심성'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정부뿐만 아니라 야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이 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는 종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야당이 대안 또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전 장관은 "민주당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책적 혼수상태'에 빠진 거 아닌가 싶다"라며 "한미동맹을 강화하더라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험난한 국제질서 속에서 불이익을 적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책 대안을 제시해 가면서 대안정당의 면모를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1년밖에 안 남은 총선에서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발돋움 하고 싶다면, 야당이 지금처럼 몽롱한 눈동자를 힘없이 굴리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희망은 없다. 방향을 잡고 어젠다 세팅을 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당 내 주도권 싸움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당 지도부가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나갈 수 있도록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그래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사실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한국 외교가 책에서 강조한 '자국중심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대외적으로도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간 경제 전쟁 등으로 한국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일본을 협력 파트너라고 부르며 과거사 문제를 접어두는 모양새를 보였다. 본격적인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단히 노골적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정세현 :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3.1절이 무슨 날이었는지를 모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3.1절은 일본 식민통치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던 날이지 한일 협력 선언을 했던 날이 아니다. 일본에게 국권을 뺏긴지 만 10년이 돼가는 해에 다시 국권을 찾고 독립해야겠다고 선언한 건데 이와는 정반대로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국제정세의 흐름에 맞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북핵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건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3.1절 기념사에서만큼은 그런 말을 피했어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외쳤던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어떻게 한일 협력정신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나? 논리성도 없고 이론적이지도 않고 일종의 역사 왜곡인 측면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한국 정부가 북핵 위협을 구실로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한다면서 한일 간 군사협력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사전작업 아닌가? 

 

정세현 :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자신의 힘이 모자라는데도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 자국의 말을 잘 들으면서도 자국을 대신해 중국을 압박해 들어갈 나라를 찾는 것이다. 이 중 미국의 눈에 제일 먼저 포착된 곳이 일본이다. 

 

일본은 미국이 자신들을 이른바 '오른팔'로 뽑아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면서 이 기회를 이용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이를 실현해보려는 것이 지난 2014~2015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인도-태평양 구상이다. 

 

이게 좋게 말하면 일본의 야망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흉계인데, 미국은 일본의 야망을 적당히 밀어주면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북핵문제 때문에 미국에 긴밀하게 협조하고 확장억제를 끌어내야 하는 필요성이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 미국 중심의 아시아 국제질서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어떤 위치가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대충 해결됐다고 퉁치고 한일 양국 간 본격적인 관계 개선을 통해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 보호 협정)를 복원한 후 일본에게 한국을 맡기고 자신은 유럽 또는 중동 관리에 나서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렇듯 일본의 흉계를 역이용하려는 미국의 속셈을 잘 알아채고 미국과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그대로 챙겨야 한다. 한미, 미일 관계를 별개로 한 채로 미국과 협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일본과 군사적으로 손잡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우리도 미국과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확장억제를 끌어내서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더 이상 군사적 위협을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 목적은 일본과 협력 없이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다. 굳이 일본까지 끌어들여서 동해에서, 독도 근해에서까지, 한미일 연합훈련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일본이 호주 필리핀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원활화 협정'을 체결했는데 일본 자위대가 호주까지도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본 자위대의 해외 출병을 헌법 개정 없이 양자협정으로 가능하게 한 셈이다. 

 

물론 해외 출병 양해는 이미 2014년 아베 총리가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 허용되기도 했다. 미국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일본 자위대의 해외 출병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호주 필리핀과도 유사한 방식으로 협정을 체결하면서 아시아에서 일본 자위대가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길을 열러 나가는 중이다. 

 

일본은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원활하게 하려고 한일 간에 협정을 체결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일본이 주요 7개국(G7) 회의에 한국을 초청하는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하고 원활화 협정 체결하자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일본에서 열리는 G7에 초청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일본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有事)'시 자위대가 북한 지역에 출병할 수 있다고 했고, 그럴 때 한국 동의가 필요한지에 대해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국가니까 한국의 동의는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즉 대한민국 헌법 3조 때문에 일본이 한국 정부와 자위대의 북한 출병 문제를 협의할 하등의 이유 없다는 주장이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태도로 보면 한일 간 이 부분을 사실상 문서로 합의하고 기정사실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더 나가면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자위대가 평택이나 인천 쪽에 상륙 또는 정박하거나 동해상에서 항해하는 등의 행위도 할 수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국제정세 흐름으로 보아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허용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도 국제정세를 명분으로 들었다. 북한 문제, 중국-대만문제 등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안보를 강화해야 하는데 한미 동맹만으로는 안 되겠으니 일본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과 군사 협력을 정당화시키는 논리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중이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의 관계도 미국과의 관계처럼 확장억제 식으로 발전시키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되면 외교권을 일본에 넘겼던 1905년 을사늑약이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안보를 일본에 의존하면 외교도 자동적으로 넘어가게 돼 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이명선)

 

비료지원으로 북한과 대화 유도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사실상 멈춰있는 상황인데, 지금 이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정세현 : 이런 상황이 처음부터 생긴 건 아니다.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의 대북관에서부터 시작된 건데 북한은 달래서는 안 되고 힘으로 눌러야 한다는 적대적 생각이 있었고, 여기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를 막기 위해 남한은 미국에 확장억제를 요청하는 등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템포만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연합 훈련이 한미 간 이미 합의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북한에게 더 위협이 되는 방식의 훈련을 하지 않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미 훈련을 방어라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무기들이 두렵고 겁나는 일이다. 북한 사람들이 그동안 남북회담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미 훈련을 두고 "오금이 저리는 일"이라고 하더라.

 

북한이 원유를 100만 톤 수입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우리는 1억 톤 이상 들여오던 때 였다. 북한은 도입한 100만 톤 중 기본적으로 40만 톤 정도를 군에 배정해주는데 한미훈련이 세게 진행되면 40만 톤 보다 훨씬 더 많이 기름을 끌어다 써야하기 때문에 허리가 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100만 톤에서 남은 60만 톤 중에 상당 부분을 군 쪽으로 돌려써야 하다 보니 인민경제에 쓸 수 있는 분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훈련 규모를 조금만 줄여줘도 남한에 대해 욕할 일이 없다고 속내를 털어 놓는 것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게 꼭 이득이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확장억제를 끌어내는 것이 성과라고 하지만 이게 절대로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확장억제가 되려면 우리가 미국 무기를 그만큼 많이 사줘야 하고, 안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다 보면 경제 쪽에서도 미국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대기업들더러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하는 게 요즘 미국 대통령의 일인데 우리가 꼼짝 못하고 끌려가고 있지 않나? 그 앞에서 우리 대기업들의 국내 고용창출 같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있지 않나?

 

미국은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 말고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무역 적자도 커지게 된다. 미국은 한국이 6.25전쟁 직후와는 달리 지금은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미국에 굽히고 들어오니까 이걸 이용해서 경제적으로 더 이득을 가져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 한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북핵 문제 때문에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 경제가 골병들고 있다. 

 

프레시안 : 저서인 <정세현의 통찰>에서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자국 중심성' 외교를 발휘해서 우리가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에 식량 지원이나 비료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제안을 할 경우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을까?

 

정세현 :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북한이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4일 동안 노동당 중안위원회 8기 7차 전원회의를 진행했는데, 거기서 결정된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공개된 것으로 보면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려야 한다는 건데, 이게 가능하려면 논밭의 지력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비료와 농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1998년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북한에 비료 20만 톤을 줄 테니 이산가족 상봉하자고 했다. 그 때 북한이 김대중 정권 초기라서 비료를 줄 수 있다는 데도 남한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정치사회적인 이슈를 통해 남한 정부가 지지율을 높이려고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인도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때 나는 우리 측 회담 수석대표로서 북한의 농업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좀 했었다. 북한의 총 경지면적으로 볼 때 당시 비료 수요량은 150만 톤 정도였다. 그런데 북한이 생산하는 비료는 30만 톤이었기 때문에 120만 톤이 부족했다. 게다가 우리의 비료 농도가 북한보다 1.8배 강했다. 그래서 북한은 쌀도 고맙지만 비료 20만 톤을 주면 그 이듬해 생산량이 60만 톤 늘어나는 효과가 있으니 쌀보다 비료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이명선)

 

2020년 5월 북한은 순천 인비료공장을 준공했다. 비료의 3요소가 질소, 인산, 칼리인데 흥남에 질소 비료 공장이 하나 있고 이번에 인비료공장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 비료는 질소 인 칼리가 다 복합된 것이다. 북한은 아직 복합비료 공장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다가 인비료공장 설립 이후에도 생산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 생산량이 늘어났다면 노동신문에 대서특필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북한이 농업문제를 의제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4일이나 했다는 것은 식량 사정이 급박하고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봄 농사철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북한이 비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이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를 활용하든 적십자 통로를 활용하든 비료 지원에 대한 운을 띠우면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물론 미국이 이런 지원을 막을 수도 있다. 북한이 상황을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구실을 대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문제는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다. 이런 명분으로 우리가 비료를 줄 수 있다는 제스처만 취해도 북한의 대남 공격적 언사와 군사적 위협은 줄어들 수 있다. 

 

북한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걷어찼지만, 북한이 이걸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다면 북한의 정치-군사적 불안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 북한이 미국한테 언제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우려(중국은 이걸 '합리적 우려'라고 부른다)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훈련을 그야말로 '쎄게' 하면서 선문답하듯이 '담대한 구상'을 읊조리기만 하면 북한이 그 구상에 응하겠나.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대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쉽진 않지만 인도적 지원 등을 부활시켜서 적어도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400km∼600km 단거리 미사일을 쏠 것처럼 위협을 하지 않을 상황은 만들 수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우리가 따라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 아닌가? 

 

"너희는 조선의 신하냐, 명나라의 신하냐" 

 

프레시안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1년이 넘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놓고 우리에게 무기를 달라고 하고 있다. 정부 입장이 난처한 상황인데. 

 

정세현 : 우리가 미국에 판매한 탄약이 우크라이나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언젠가는 끝난다. 나중에 한러 관계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이것 역시 자국 중심성을 가지고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은 한반도 정세에도 도움이 안 된다. 6.25의 경우 전쟁 1년 정도 지난 뒤에 휴전협상이 시작된 바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나 G7 중 누군가가 나서서 우-러 휴전 협상을 리드해 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 책에서 우리 사회의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종속성을 인정하고 되돌아 봐야 한다면서, 그래야 한국이 보다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했다.

 

정세현 : 문제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가 대미종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배우 한석규 씨가 주연으로 나오는 <천문>이라는 영화를 보면 세종은 계절 변화를 독자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해시계를 만들려고 한다. 그 동안에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농력(農曆)'을 받아 써왔다.

 

이 농력에는 우수, 경칩, 춘분 등 주요 절기가 언제인지 적혀있는데 문제는 중국의 시간대와 기후를 표준으로 삼다 보니 우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없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 한양 중심의 해시계를 만들려고 했더니만 대신들이 명나라가 알면 큰일 난다, 명나라에 물어봐야 된다고 한다. 그러자 세종이 "너희는 조선의 신하냐, 명나라의 신하냐"라고 꾸짖는다.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종속성이 있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게 살길이고 도리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에는 다 죽어가던 조선을 명나라가 원병을 보내 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이 통치이념이 되다시피 했다. 

 

이순신 장군의 혁혁한 전략전술과 역할 때문에 왜군이 결정타를 맞았고, 때마침 조선침략을 시작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었기 때문에 왜군도 전쟁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지 명나라 원군 때문에 조선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재조지은 타령을 한다는 말인가. 참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명나라는 이미 기울어 가는 반면 새롭게 청나라가 일어서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재조지은 타령이나 하다가 10년 동안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은 뒤 삼전도의 치욕적인 굴욕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상대만 다를 뿐 '재조지은'의 개념이 우리나라 외교철학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 대해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에 대한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6.25 전쟁 때 나라가 없어질 뻔 했는데 미국이 도와줘서 지금 우리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이런 개념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 더 강화된 것 같다.

 

프레시안 : 책에서 역대 정부 중 자국 중심성이 있는 외교를 펼친 사례로 노무현 정부를 꼽았다.

 

정세현 : 군사 정부의 경우 국내적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외교에서 자국 중심성을 찾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 전에 이승만 대통령도 당시 상황에서는 미국의 지지와 지원이 중요했다. 즉 이들 정부는 태생적으로 모두 대미종속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이기 때문에 태생적 한계가 없었고 그래서 대미 종속성에서 좀 벗어나보려고 했다. 실제 대통령은 의지가 있었지만 참모들이 받쳐주질 못한 측면이 있다. 

 

▲ <정세현의 통찰>, 정세현 지음, 푸른숲 펴냄. ⓒ푸른숲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이 대외적인 문제에 대해 굉장히 해박하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클린턴과 부시 등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나가면서 한국 중심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를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당시 이라크 파병과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거래한 일 때문이었다. 이는 미국과 협조하되 그 밑으로 들어가진 않겠다는 것으로,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종석 당시 NSC 사무처장이라는 참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도 자국 중심성을 가지려고 했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서전에서 "미국에 대해서 NO라고 말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에 많은 것을 합의하고도 그 해 11월 20일 한미 워킹그룹이 생기면서 사실상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게 됐다. 

 

한미 워킹그룹이 족쇄가 된 것인데 그걸 뿌리치고 나갈 용기가 없었고,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줄 참모도 없었던 것이다. 참모들이 미국이 싫어하는 일을 해서 남는 게 뭐가 있겠냐는 식으로 나오더라도 문 대통령이 치고 나갔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같았으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크다. 

 

대통령 참모들이 국제정세를 이야기하면서 한국 외교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빈틈없는 한미동맹과 미국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가 자진해서 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자기 생각이 있어도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참모의 소위 '쿵짝'이 맞지 않으면 자국 중심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대통령의 자국 중심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참모를 끌고 갈 때는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지만. 

 

프레시안 :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미중 경제전쟁 심화 등으로 국제 질서가 달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립 구도가 커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남북한이 어떻게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이나 청사진 등을 정부가 제시할 수 없다면 다른 정치세력인 야당이 대안을 제시하고 여론을 선도하며 정부가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국중심성'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세현 :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이 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는 종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야당이라도 나서서 자국 중심성을 담론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여론을 선도해 나가야 하야 하는 데 민주당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책적 혼수상태'에 빠진 거 아닌가 싶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더라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험난한 국제질서 속에서 불이익을 적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책 대안을 제시해 가면서 대안정당의 면모를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1년밖에 안 남은 총선에서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발돋움 하고 싶다면, 야당이 지금처럼 몽롱한 눈동자를 힘없이 굴리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희망은 없다.

 

민주당 정신 차려야 한다. 방향을 잡고 어젠다 세팅을 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해법이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총선도 어렵다. 당 내 주도권 싸움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당 지도부가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나갈 수 있도록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한다. 

 

자국 중심성을 챙기라는 게 한미동맹을 깨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동맹은 그대로 가되 우리가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는 어떤 여지를 주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국과 관계도 이렇게 놔둬서는 안 된다. 중국과의 관계도 앞으로 복원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키워나가고 미국의 요구도 우리 손해가 크지 않은 범위 내에서 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기시기 1년 전인 2008년 동교동 사저에서 뵈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정 장관. 시골에서 보면 도랑 속에 든 소가 이쪽 둑의 풀도 뜯어먹고 저쪽 둑의 풀도 뜯어먹으면서 유유히 걸어가지 않소? 앞으로 우리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도랑 속을 걸어가는 소처럼 외교를 해나가야 할 거요"

 

선견지명이 있는 말씀이었다. 중국이 G2가 된 건 2010년이다. 그리고 그 때 미국과 중국의 GDP 비율은 100 대 40이었지만, 2022년에는 100 대 74로까지 좁혀졌다. 이 격차는 시간에 비례해서 더 좁혀질 것이다.

 

미중 국력격차가 점점 좁혀지면서 미국이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미중 갈등이 날로 심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셈인데 우리가 땅덩어리를 들고 멀리 이사 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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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국제사회, 여성주의 평화 안보를 구축하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3/06 07:54
  • 수정일
    2023/03/06 07:5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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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성료

  • 기자명 김수희 통신원 
  •  
  •  입력 2023.03.05 11:37
  •  
  •  수정 2023.03.05 11:43
  •  
  •  댓글 0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라는 슬로건으로 4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었다.[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라는 슬로건으로 4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었다.[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한반도와 국제사회, 여성주의 평화 안보를 구축해야 한다!”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라는 슬로건으로 3월 4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모인 참가자들은 ‘3.8 여성선언’을 통해 “(한국 사회 성차별의)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가진 국가는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이같이 ‘한반도와 국제사회, 여성주의 평화 안보 구축’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정책 기조에서 ‘여성’, ‘성평등’을 삭제하지 말고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할 것, △장시간 노동 근절,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안전한 일터를 보장할 것, △젠더 관점으로 구조적 여성폭력에 대응하여 존엄한 일상과 권리를 보장할 것, △함께 나누는 돌봄과 차별 없는 복지를 실현할 것, △정치대표성의 다양성과 성별균형을 보장하는 정치개혁을 실현할 것,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모든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성평등 사회를 실현할 것 등을 요구했다.

특히, 참가자들은 “윤석열 정부는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되는 성차별 존재 자체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성차별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성평등 가치를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부추기는 도구로 왜곡하고 있다”면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를 자신의 정치적인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윤 정부의 반(反)여성 정책 기조는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투쟁으로 일궈온 국가 및 지자체 성평등 추진체계와 정책 전반의 후퇴와 함께, ‘여성’과 ‘성평등’을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시민난장에는 여성, 시민사회, 환경, 종교, 정당 등 다양한 영역의 참여자들이 참여해 각양각색의 캠페인과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이날 시민난장에는 여성, 시민사회, 환경, 종교, 정당 등 다양한 영역의 참여자들이 참여해 각양각색의 캠페인과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이날 오후 12시부터 시작된 시민난장에는 여성, 시민사회, 환경, 종교, 정당 등 다양한 영역의 참여자들이 참여해 각양각색의 캠페인과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전무대로 열린 ‘오픈 스테이지-페미난장’에서는 노래와 춤, 발언, 악기 연주 등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여성운동 발전에 공헌한 ‘올해의 여성운동상’과 ‘특별상’이 발표되었고, ‘성평등 디딤돌’과 ‘성평등 걸림돌’ 명단이 선정되었다.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에는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가, ‘특별상’에는 ‘무수한 타자들의 벗 되어, 모든 존재가 환대받는 사회를 일궈온’ 고(故) 임보라 목사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성평등 디딤돌’에는 △미군 기지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122인 원고와 대리인단’, △단단한 연대로 캐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확장한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록CC분회’, △해군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파기환송심을 이끌어내고 군대 내 여성과 소수자 인권의 향상을 만들어낸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그리고 △지역,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낸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등이 선정되었다.

‘성평등 걸림돌’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처벌받았음에도 사과와 반성없이 여전히 괴롭힘을 지속하고 있는 동남원새마을금고, △‘전화 안 받았다면 스토킹 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인천지법 형사9 단독 재판부, △무책임과 혐오선동 정치의 권성동 국회의원과 책임 방기, 자격 미달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2022 개정 교육 과정에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 표현 삭제한 교육부 등이 명단에 올랐다.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를 지지 격려하는 참가자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연인원 1만 5천 여명의 여성‧시민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를 지지 격려하는 참가자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연인원 1만 5천 여명의 여성‧시민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이어, 대구여성인권센터 ‘춤신춤왕’, 소수자연대 풍물패 장풍, 이소선 합창단의 연대 공연과 합창단 노래에 맞춰 참여자들 모두가 참여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계속해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4개국 대사관과 기후위기, 평화 영역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행사 후 전국에서 모인 연인원 1만 5천 여명의 여성‧시민들은 서울광장, 광화문 사거리, 종각, 을지로 입구로 행진을 이어갔다.

주최 측은 “사회 각 영역 퇴행의 시기에도 성평등 사회로의 여성‧시민들의 연대를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었다”고 평했다.

행사 후 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 광화문 사거리, 종각, 을지로 입구로 행진을 이어갔다. [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행사 후 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 광화문 사거리, 종각, 을지로 입구로 행진을 이어갔다. [사진-통일뉴스 김수희 통신원]

한편, 3.8 세계여성의 날의 역사는 일하는 여성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투쟁, 여성의 권리신장을 위해 다양한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으며, 일제의 탄압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해방 후 부활하기도 했으나, 1948년 이후 사회적 격변 과정에서 맥이 끊기기도 했다.

1985년 여성평우회 등 14개 풀뿌리 여성단체가 공동으로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했으며,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설립 이후부터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관으로 회원단체,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실행하고 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3.8 여성선언' 전문이다. 

 

3.8 여성선언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을 향해 전진합시다!

성평등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백래시와 정부 주도로 ‘여성’과 ‘성평등’이 삭제되는 퇴행의 시대 한 가운데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페미니스트 시민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백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폭력의 경험과 현실을 드러내고, 함께하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더욱 거세게 성평등 사회로의 변화를 촉구하고자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되는 성차별 존재 자체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성차별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성평등 가치를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부추기는 도구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를 자신의 정치적인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윤 정부의 반(反)여성 정책 기조는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투쟁으로 일궈온 국가 및 지자체 성평등 추진체계와 정책 전반의 후퇴와 함께,  ‘여성’과 ‘성평등’을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지금,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2022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146개국 중 99위입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27년 연속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로, OECD 국가 38개국 중 34위, 최하위권입니다. 채용에서부터 업무배치, 승진으로 이어지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은 여성을 더욱 불안정한 위치로 내몰고 있습니다. 사회변화에 따라 점점 더 교묘해지고 심화되는 젠더폭력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져야 할 존엄한 일상의 권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병 시기를 거치며 더욱 무거워진 돌봄의 책임과 역할은 여성에게만 전가되고 있습니다. 여성이자 아동·청소년,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로서 겪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차별은 더욱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성애 ‘정상’가족 중심의 정책은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또 다른 차별을 낳습니다. 

이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가진 국가는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정책 기조에서 ‘여성’, ‘성평등’을 삭제하지 말고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장시간 노동 근절,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안전한 일터를 보장해야 합니다! 젠더 관점으로 구조적 여성폭력에 대응하여 존엄한 일상과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함께 나누는 돌봄과 차별 없는 복지를 실현해야 합니다! 정치대표성의 다양성과 성별균형을 보장하는 정치개혁을 실현해야 합니다! 한반도와 국제사회 여성주의 평화 안보를 구축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모든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성평등 사회를 실현해야 합니다!

퇴행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퇴행이 성평등 실현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전진을 막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3월 8일, 러트거스 광장에서 생존권과 참정권을 외쳤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호주제 폐지’,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가 있기까지 매 순간 싸워온 수많은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성차별·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세상을 바꿔왔습니다. 다시 한 번, 이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 사회를 향해 힘차게 전진합시다!

2023년 3월 4일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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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쟁범죄 면죄부 주는 강제동원 해법, 국민적 저항 거셀 듯

  • 강경훈 기자 qa@vop.co.kr
  •  
  • 발행 2023-03-05 17:28:01

    욱일기를 걸고 순찰 중인 일본 자위대 군함. ⓒ사진=뉴시스

    정부가 오는 6일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이른바 ‘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해법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불복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강제동원 배상 해법은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우리 사법부에서 배상 판결이 확정된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대신 3자 변제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재단의 재원 조성에는 국내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물론 전범기업들의 사과 메시지 여부는 쟁점화되지도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의 해법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명목으로 배상금 조성 과정에 문제의 전범기업들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일본 측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밝혀왔다.

    당초 재단을 통한 3자 변제 방식은 일본의 전쟁범죄는 물론 전범기업들의 책임을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피해자 측과 시민사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강하게 반대해왔다. 또한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비롯해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도외시됐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일본 측은 지속적으로 전범기업들의 참여를 반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통신은 전날 한국 정부가 배상금 상당액을 재단이 대신 지급하도록 하는 해결책을 공식 발표하면 일본 정부는 뜻이 있는 일본 기업의 재단 기부를 용인할 것이라고 전날 보도했다. ‘일부’나 ‘용인’ 등의 표현도 문제가 있지만, 선후 관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정부가 쏘아 올린 3자 변제안과 관련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사실상 양국 협상의 초점이 금전적 문제로 축소된 효과도 발생했다.

    일본 측 태도 변화 이끌어내지 못해

    아무런 진전 없이 ‘3자 변제안’ 그대로 확정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책임 주체가 명확히 특정되지 않는 3자 변제 방식의 기존 안을 확정해 발표하게 되는 셈이 됐다.

    이는 작년 말 정부 안이 대외적으로 알려졌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1월 국회에서 공개토론회를 열어 피해자 측, 시민사회 등과 심도 있는 해법을 논의해보겠다고 했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 측 참석자 정보, 기초적인 발제 내용조차 공유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인 요식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에도 정부는 일본 측에 ‘성의 있는 호응 조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전을 해왔다. 피해자 측과 시민사회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정부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상 피해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한일 외교당국 간 협상이 진행됐고, 그 결과 역시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당초 정부는 피해자 측에 ‘일본 측의 사후적인 기금 출연’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에 전범기업은 배제됐다.

    대신 일본 경제단체가 참여하는 별도의 기금 조성안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양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이 공동으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에 나선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기금의 수혜 대상은 현재까지는 불명확하다.

    만약 최종적으로 이 안이 확정된다면, 정부는 일본경제인단체연합회에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회비 및 기여금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전범기업의 기여가 일부 인정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방식에 일본 측의 사죄나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 성격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그러한 성격이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측이 바라는 온전한 책임 이행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

    피해자 측이 줄곧 요구해온 일본 측 ‘사과’와 관련해서는 ‘한국 정부가 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 일본이 과거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발표한 공동선언을 계승할 것’이라는 내용이 거론되고 있다.

    당시 발표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일본의 침략 행위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 정부의 선제적 발표를 전제로 하기에 선후 관계도 바람직하지 않은 데다, 해당 선언 자체에 강제동원의 불법성 인정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담겨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해온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발표하는 안과 관련해 ”일본 측의 그 어떤 재원적 부담도 이끌어내지 못하고(외교부가 노력한다 이야기했던 '피고 기업을 제외한 다른 일본 기업의 참여'조차 실패한 것으로 보임), 한국 기업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 채권이 소멸되는 꼴이다. 강제동원 문제에는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완승“이라고 지적했다.

    양국 경제단체가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는 안에 대해서는 “강제동원 문제에 일본의 부담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한 한국 정부가 외교적 실패를 감추기 위해 본질과 상관없는 재단에 일본 경단련의 참여로 분식을 하려는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강제동원 피해자 측과 대리인단은 6일 외교부의 3자 변제안 발표 직후 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6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정부 발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또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4) 할머니는 오는 7일 각계 단체와 함께 정부 발표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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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여성 150명 삶 들여다본 이 학자가 내린 결론

[인터뷰]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저자 김성경 교수

23.03.04 19:37l최종 업데이트 23.03.04 19:37l


내 할아버지는 북에서 오셨다. 대학 시절 할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절경이 아니라 사람을 보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가끔 웃기도 하던 그들은 우리가 무찔러야 하는 괴뢰 공산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이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종종 옛날 사진을 보여주며 어릴 때 이야기를 하셨다. 사진 속의 어린 고모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먼 데서 오는 그리움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나는 조금 아팠다. '저 사람이 내 고모구나. 피라는 것은 이토록 분명하구나'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고모와 내 아버지는 묘하게 닮아있었다.

언론을 통해 북에서 미사일을 쏘고 무인기를 보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는 이제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은 공식적으로 우리의 주적이 되었다. 미사일과 무인기와 통일이라는 구호와 주적이라는 선포 사이에 사람은 없다. 아마 살면서 북한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큰 내 아이에게 북은 점점 더 먼 나라가 될 테고, 북한 사람은 더욱 타자화될 것이다. 최근 출간된 김성경 교수의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는 북한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간 정치적, 외교적인 차원을 넘어 마음과 감정의 층위에서 북한을 연구하고 조망했던 김성경은 이번 저작을 통해 북조선 여성을 이야기한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50명 이상의 북조선 여성을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산문, 소설, 편지 등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북조선 여성들의 역동적인 삶을 복원해냈다. 김성경은 이번 책에서 사람을 통해 체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남한 사회의 모순을 비춘다.

그간 북한은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는 온갖 적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한 기존의 시각에 균열을 낸다. 이념과 증오를 거두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남북 관계에 있어 분명한 것 하나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틀과 기존의 방식이 남긴 것이 고작 지금의 긴장과 불안이라면 그건 명백하게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저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리와 그 무리에 휘둘리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겐 이제 새로운 접근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 책은 남북 관계라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지난 2월 22일 김성경 교수를 만났다.

"북조선과 남한의 삶, 생각보다 많은 것이 연결돼 있다"
 
김성경 교수
▲  김성경 교수
ⓒ 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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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군인이셨고, 군부대 안에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북한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일 것 같은데 교수님께선 북한 사회와 문화를 공부하고 연구하죠.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군인이라는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상, 분단에 대해 조금 더 많이 노출된 유년 시절을 보낸 것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집단이든 하나의 모습만으로 존재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보수적인 측면이 있지만, 어떤 면에선 분단 문제에 대해 굉장히 열린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이었어요.

사실 유년 시절에도 그랬고,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도 북에 딱히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도 북을 주제로 삼지도 않았고요. 제가 북한에 관심을 가진 건 우연히 북조선에서 내려오신 분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였어요. 이후에 생각해 보니 내가 예전에 남들보다는 좀 더 가깝게 분단을 경험했구나 하고 회고하게 된 것이죠."

- 최근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를 출간했습니다. 어떤 책인지 작가가 직접 소개한다면요?

"2011년부터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조선 여성들을 만나서 연구해왔어요. 보통은 탈북한 여성들을 통해 소개받는 식인데요. 일본을 비롯해 해외 출장을 갈 때나 조중 접경 지역에서 만나곤 했습니다. 이 작업은 저에게도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북조선 여성들에게 이런 모습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한 사회는 북에 대해 관심이 없고, 통일이나 평화에 대한 인식도 크지 않은데요. 그런 만큼 북조선 사람들의 얼굴을 복원할 수 있다면 어떤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요.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접근 방식은 하나같이 정치, 경제, 이념 중심적이었어요. 저는 이게 과연 얼마나 효용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어요. 이런 이성 중심주의의 접근법이 맞는다면 남북 관계가 진척됐어야 했겠죠.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렇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고리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분단이나 북한에 대해 제대로 된 접근이 불가능한 건 아닐까요?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는 그런 생각들을 온전히 묶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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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여성을 주제로 잡았나요? 만난 분들이 다 여성은 아니었을 텐데요.

"북조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전쟁, 식민, 분단, 냉전과 탈냉전, 세계화 등 한반도가 겪어온 역사적 경로에서 여성들의 위치가 남성들과는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건 남한도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한반도의 역사적 궤적을 저희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여성들이 어떻게 경험했는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삶, 특히 여성을 통해 체제의 모순과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는 북조선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남한에 사는 우리의 삶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드러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이걸 거울 상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북조선과 남한의 사람들의 삶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북조선 여성인 길건실이 딸에게 쓴 편지에 이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죽도록 일을 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네가 의무만을 잔뜩 짊어진 채 살기보다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단다', '어찌 당과 국가, 수령님이 나보다, 내 가족보다 중요할 수 있겠니' 예시로 든 문장들은 당이나 수령님 같은 워딩만 조금 바꾸면 남한 사회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실제로 북조선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런 내용들이 많습니다. 사회주의를 믿어서 열심히 일했는데 내 자식들은 밥도 못 먹더라,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결국 남한에 내려와 있다는 얘기들이죠.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고, 치열하게 일했지만 정작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본인은 어쩔 수 없지만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길, 좀 편한 삶을 살길 바라는 면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 노동하지만 가난은 계속되고 가진 사람들은 계속 잘 먹고 잘 사는 공고한 구조 속에 있다는 건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서 북조선 여성 중에선 자식에게 과외를 시켰다는 분도 있고, 예전에는 중국어를 시켰지만 영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 영어를 시킨다는 분도 있었어요. 저는 책을 통해서 그런 여성들의 의식변화, 어떤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서도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런 각자의 자리에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우리 세대의 여성들이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남한이든 북한이든 말이죠."

- 현재 남한의 일반 대중들이 북한에 대해 갖는 생각은 대략 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무찔러야 하는 우리의 적 아니면 헐벗고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 하지만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의지와 좌절 같은 복합적인 감정과 다양한 삶의 궤적이 가지런히 담겨 있습니다. 여기엔 저자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책은 일반적인 사회과학 도서와는 다르게 소설이나 에세이 형식을 차용하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을 기반으로 재구성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바탕은 인터뷰나 증언입니다. 그들에겐 흑백으로 보여지지 않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말이에요."

- 이 질문 자체가 저의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동시에 저의 편견이기도 했습니다. (웃음) 어쩌면 우리 모두의 편견이기도 하죠.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저는 필드 노트에 못 먹고, 못 살고, 교육을 못 받았을 거라고 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전반적으로 힘들게 사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한 부분도 있고, 아주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기도 해요.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있는데 우리가 보는 건 정해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첫 출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북조선 여성들은 이렇다는 어떤 고정관념을 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의도했냐고 물어본다면, 의도하지 않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제가 만난 분들이 그랬으니까요."

"다른 방식의 사유가 '분단 패러다임' 깰 수 있다"
 
김성경 교수가 찍은 연길서역
▲  김성경 교수가 찍은 연길서역
ⓒ 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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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에 순영, 정희, 그리고 저희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요. 세 분이 연세도 비슷하시고, 다 중국에서 태어나셨어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상황에서 태어난 세 명의 여성들이죠. 하지만 누구는 자신의 삶을 '내가 예전엔 자랑스러운 노동당원이었어, 북에서 어깨 펴고 살았었지' 하고 회상합니다.

어떤 분은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을 놓지 못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끝끝내 희생하는 삶을 살았어요. 또 어떤 분은 일생 동안 과거의 상처를 숨기고 살아야만 했고요. 결국 비슷한 태생을 가진 세 분의 삶이 해방과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면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북한을 우리의 주적이라고 하고, 저 나라의 통치자는 우리를 향해 무인기를 보내고 미사일을 쏩니다. 이런 걸 보면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관한 옳고 그름을 떠나 북한과의 관계는 결국 정치적, 외교적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만이 가진 분명한 가치와 의미가 있지만, 교수님의 연구나 작업 방식이 남북 관계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보면 결국 '사소한 각주' 같은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주의적이고 탈 식민지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남북 관계를 정치나 구조적인 부분 혹은 국가 단위로만 접근하는 것이 남성 중심적이고, 주류적인 시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국가, 국제 관계, 전쟁 같은 것만 존재하지요.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이제 전부인지 묻고 싶어요. 어쩌면 여기엔 정치와 국가와 전쟁과 이념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을 사소하게 생각하게 하는 힘이나 권력이 작동하는 건 아닐까요? 만약 이런 주류 담론이 정말로 유용했다면 지금 남북 관계가 훨씬 좋아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상은 어때요? 지금까지도 분단은 너무도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했던 방식으로 접근하고 주류적인 시각을 해체해야만 가능한 건 아닐까요?

저는 북조선 여성들의 삶을 살펴보는 작업을 비롯해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적인 역량을 키워내고 분단 패러다임을 깨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분단과 통일에 관심이 없어요. 이런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는 계속 분단된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국가의 문제라고 여기고 국가가 알아서 하는 방식만을 계속 고집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분단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은이), 창비(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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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한국 정부가 징용 배상하면…일 총리 ‘식민지배 반성 계승’ 표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2022.11.13. ⓒ뉴시스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소송 문제 해결책을 마련하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과거 담화 계승을 표명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4일 한국 정부는 지난 2018년 대법원판결로 배상 의무가 확정된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 상당액을 원고에게 지급하는 해결책을 조만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담화나 공동선언에 담긴 입장을 계승하는 정도의 입장 표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언급된다. 오부치 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명했고, 김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신문은 “한국이 국내 법적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본이 자발적으로 호응하는 것”이라며 “강제 징용 문제 해결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경제계에서는 한일관계에 이바지하는 사업을 검토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서 한일 협력 사업 창설을 위한 자금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요미우리는 협력 사업이 징용 배상과 별개로 한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 지급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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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매국노 윤석열을 몰아내자!”…29차 촛불대행진 열려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3/03/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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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3·1정신 계승 29차 촛불대행진’이 4일 오후 5시 숭례문과 서울시청 사이 대로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 4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사회를 맡은 김지선 강남촛불행동 대표는 촛불대행진을 시작하는 구호를 외쳤다. 

 

“친일 매국노 윤석열을 몰아내자!”

“제2의 이완용 윤석열을 몰아내자!”

“친일 잔당 국힘당을 해체하라!”

 

첫 발언자로 무대에 오른 윤미향 국회의원(무소속)은 “우리는 지금 평화롭지 못하다. 잊을 만하면 하늘에서 온갖 전쟁 무기가 날아다닌다. 또 잊을 만하면 동해에서 군함들이 전쟁 훈련을 하고 있다. 또 잊을 만 하면 일본에서 망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 윤미향 의원.     © 이인선 객원기자

 

윤 의원은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가 있었다. 피해자들도 절규하고 국민들도 절규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사령관, 미 국무부 차관보가 환영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상기시키며 “윤석열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우리가 일제 식민지 침략을 받은 것이 바로 우리 때문이라고 한다. 삼일절 윤석열의 메시지에 가장 환영으로 화답한 사람들은 일본과 미국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202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정치검찰과 친일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민주당에서 출당되고 재판까지 받는 수모를 당했으나 거의 대부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언론과 대부분 정치인들은 윤 의원을 매도했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거리를 두고 있다. 

 

윤 의원이 촛불대행진 무대에 올라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촛불국민이 윤 의원의 복권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의원의 연설을 들은 한 시민은 “왜 윤미향 의원을 일본과 검찰, 조·중·동이 그렇게 마녀로 몰았는지 느낄 수밖에 없는 연설”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인기 연속극 ‘더 글로리’의 문동은 기자를 흉내 내 촛불대행진 참가자의 인기 순서가 된 ‘이주의 퇴진 뉴스’를 시작했다. 

 

▲ 문동은 기자.     © 이인선 기자

 

문 기자는 윤석열 삼일절 기념사를 언급하며 “친일파들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논란을 거론하며 “이 광장에서 부모의 직업, 부모의 재력, 부모의 인맥 세 가지는 아무 힘도 없으니까 도망가지 말고 벌 받아. 그렇지 않으면 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라고 꼬집었다. 

 

다음으로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구본기 소장의 현장 인터뷰에서 강원도 양구가 고향이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박근혜 탄핵 촛불 당시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라고 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건 착각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촛불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조중동 폐간 실천단 이득우 부단장이 무대에 올라 “정순신 아들의 고백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조선일보를 보아왔단다”라며 조선일보를 보면 학폭 가해자 같은 사람이 된다고 외쳤다. 

 

▲ 이득우 부단장.     © 이인선 객원기자

 

이어 공연예술창작터 ‘수다’와 뮤지컬동아리 ‘리라’가 함께 준비한 마당극 ‘신 뱃노래’ 공연이 있었다. 

 

▲ 마당극 공연.     © 이인선 객원기자

 

다음으로 김은진 촛불행동 상임대표의 연설이 있었다. 

 

김 상임대표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까지 장악해서 검찰 독재 체제를 완성하겠다는 것이 윤석열의 야욕이다. 그러나 우리 촛불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의 헛된 꿈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과정을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윤석열 독재 정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촛불 국민들의 싸움”이었다고 분석하며 “그 싸움에서 우리 국민들이 이긴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사회자는 “한미일 전쟁동맹 반대한다!”, “자위대에 길 터주는 윤석열을 반대한다!”, “주가조작 뇌물수수 김건희를 특검하라!”, “정치검찰 행동대장 한동훈을 파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다음으로 유튜버 백동현 씨가 무대에 올라 “친일 청산을 다 하지 못하여 이 땅에는 친일 매국노들이 사법부와 검찰에 넘쳐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제2의 민주화 운동, 제2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자”라고 호소했다. 

 

또 암투병 중에도 매주 촛불 자원봉사단을 하는 조일권 씨가 자작시 낭송을 하며 “이제는 보내주마 / 가거라 너의 감옥으로 / 가거라 너희들의 무덤 속으로”라고 외쳤다. 

 

이어 강한수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연설을 하였다. 

 

▲ 강한수 수석부위원장.     © 이인선 객원기자

 

강 수석부위원장은 먼저 지난주 촛불대행진에서 건설노조를 응원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온갖 부정적 단어와 이미지로 넘쳐나는 건설 현장을 바꾸기 위해 건설노조를 만들었다. 30여 년의 시간이 걸려 임금 체불 없는 현장, 하루 8시간 노동, 화장실 남녀 구분, 국공휴일 유급 휴식 등 조금은 살맛 나는 건설 현장을 만들었다”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필두로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건폭 다시 말해서 건설업 조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건설 노동조합의 씨를 말리겠다고 한다”라면서 “온 정부 조직과 여당 대통령까지 총동원되어서 8만 건설노조 조직을 때려잡겠다고 했다. 그런데 건설노조를 없애지 못하면 이 윤석열 정권 쪽팔려서 어디 정권 유지하겠는가. 윤석열 정권은 우리 건설 노조를 없애지 못하기에 이제 개점휴업하고 정권을 내려놓는 그날만이 남았다”라고 주장했다. 

 

연설이 끝나자 사회자는 “촛불국민, 노동자가 단결하여 윤석열을 퇴진시키자!”라고 외쳤다. 

 

끝으로 가수 지민주 씨가 무대에 올라 「세상에 지지 말아요」, 「길 그 끝에 서서」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어 행진을 시작했다. 

 

© 이인선 객원기자

 

© 이인선 객원기자

 

© 이인선 객원기자

 

© 이인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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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을] ‘탈당 사유’ 공방 중…“이번엔 진보당이 민주당이여”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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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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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국민의힘 정운천 불출마 선언 이후 요동치는 전주을

김호서, “임정엽, 민주당 무공천 때문에 탈당한 것 아냐”

임정엽, “정운천, 불출마 높이 평가…전북연고 모든 국회의원과 연대”

강성희, “정권 심판 이어 새정치 주역으로”

▲오는 4월 5일 치러지는 전주을 재선거에 출마한 (왼쪽부터) 진보당 강성희 후보, 무소속 김호서 후보, 무소속 임정엽 후보.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이 3일 전주을 재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선거 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민주당 지지도 60%가 넘는 전주을에 민주당이 당헌‧당규를 지켜 무공천하는 용단을 내리고,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까지 불출마함에 따라 선거결과는 누구도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어졌다.

민플러스는 현지를 찾아 직전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유력 후보와 선거 관계자를 만나 선거 판세를 들어봤다.

김호서, “임정엽, 민주당 무공천 때문에 탈당한 것 아냐”

무소속 김호서 후보는 정 의원 불출마로 ‘후보 단일화’ 의미가 사라졌다며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신을 선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후보는 최근까지 정 의원을 상대하기 위해 무소속 임정엽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해왔다.

김 후보는 민주당을 탈당한 임 후보와의 지지층이 겹친다는 것을 의식한 듯 임 후보에 비해 청념하며 도덕성에서 앞선다고 자신의 강점을 피력했다.

김 후보의 설명에 따르면 임 후보는 민주당의 무공천 방침 때문에 불가피하게 탈당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임 후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주시장 출마예정자 시절 지지율 1위였지만,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아 컷오프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전북도당은 임 출마예정자가 아태재단 근무 당시 건설업자로부터 1억5천만 원을 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과 등을 문제 삼아 부적격 판정을 내렸으며 중앙당도 이를 최종확정했다.(☞관련 기사 보기 )

이 때문에 민주당이 이번 전주을 재선거에 설사 공천했어도 임 후보는 컷오프 대상이었다는 것이 김 후보의 주장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래도 임 후보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김 후보는 “그거야 이 지역에서 5번이나 출마했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아서”라고 딱 잘라 말하곤, “정 의원 불출마로 국민의힘이 당선될 가능성은 사라졌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이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 후보와의 양강 구도를 전망한 김 후보는 “임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와도 같은 당을 한 바 있고, 선거를 앞두고 걸핏하면 민주당을 탈당한 전력이 있다”라며, “호불호가 명확한 임 후보는 30% 벽을 넘지 못하고 하락세에 접어들겠지만, 자신은 40% 벽을 뚫고 반드시 당선하겠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임정엽, “정운천, 불출마 높이 평가…전북연고 모든 국회의원과 연대”

보도자료를 통해 “정운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높이 평가”한 임정엽 후보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정 의원을 비롯한 전북연고 국회의원 37명의 끈끈한 연대”를 강조했다.

임 후보 선거 관계자는 여론조사 1위 후보답게 구도에 신경 쓰지 않고, 공약 홍보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된 ‘정치 철새’ 논란에 대해선 “당선 되면 민주당에 복당하겠다”며 일축했다.

한편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전주을 재선거에 무소속이 당선돼도 민주당 복당은 불가” 입장을 밝힌 한병도 전북도당 위원장과 전화통화를 연결했다.

한 위원장은 임 후보의 ‘당선 후 복당’ 의사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선거와 무관하게 복당 불가는 민주당의 원칙적 입장”이라면서, “이미 탈당한 후보들의 복당 의사와 관련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소속 지방의원들 중에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다는 소문에 대해선 “소문만으로 어떤 입장을 표명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민주당은 이번 재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만큼 선거 중립 원칙을 지켜갈 것이고, 민주당 소속 지방의원들도 이에 따를 것”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강성희, “정권 심판 이어 새정치 주역으로”

지난달 정운천 의원이 선거전에 뛰어들면서 전주을 재선거는 ‘윤석열 정권 심판’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진보당은 전 당적 역량을 동원해 반윤석열 투쟁을 전개했고, 야권 성향의 무소속 후보들까지 ‘반윤석열’ 기치를 들게 만들었다. 덩달아 정치신인 강성희 후보의 지지율도 수직 상승했다.

그렇다면 정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강성희 선본도 기조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민생위기 검찰독재 윤석열 정권 심판 기조에 변함은 없다”라고 답한 강성희 선본 관계자는 “다만 정권 심판에 더해 새정치를 갈망하는 전주시민의 마음에 들게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출마하지 않은 선거지만, 작년 10월만 해도 강성희 후보는 물론 진보당도 존재감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틀어놓는다.

“처음 윤석열 심판 구호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지역주민들이 어디서 나왔냐고 하길래, ‘진보당’이라고 했더니, '빵집'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하냐는 분들도 있고, 어느 '금은방'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라고 회상한 강 후보 관계자는 “지금 지지율이 15%대까지 오른 것도 기쁘지만, ‘이번엔 진보당이 민주당이여’라고 강성희 후보를 지지해 주는 분들 덕분에 힘이 난다”라고 했다. 그만큼 전주시민에게 진보당이 대안정당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주전 여론조사에서 강성희 후보가 9%대에 진입했을 때, 전통적인 진보 지지층 결집을 확인했다.”라고 분석한 강 후보 측은 “며칠 전 15%대의 지지율이 나온 것은 범야권으로 강성희 후보의 지지가 확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강성희 후보의 상승세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관련기사 보기)

“정운천 의원 불출마에 따른 선거 구도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냐?”는 질문에, 강 후보 관계자는 “국민의힘 당선을 막기 위해 당선 가능한 차악을 선택해야 했다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이제 최선의 후보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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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학습형 정치인'의 치명적 결함

[박세열 칼럼] '챗윤석열'이 맥락 제거하고 만든 기호의 나열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3.03.04. 07:28:22

 

챗지피티(다른 사람들이 AI라고 부르는)는 네모난 화면 안에 문자를 기입할 수 있는 '뉴챗' 검색창으로 이뤄져 있다. 이 네모난 화면은 전 세계의 회선이 모이는 거대한 서버로 통하고 있으며 인간은 제각각의 할당된 창 앞에 앉아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며 이 우주를 헤메고 있다. 챗지피티는 마치 유행처럼 돌고 있는 것 같다.

 

챗지피티는 대부분 그럴듯한 글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식(인지 아닌지 모를 것들을 포함해)을 쏟아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답변들로 세상이 혼돈에 빠질 것처럼 말한다. 이런 평가를 읽으며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떠올렸다. 그는 문학 속에서 다양한 위작을 즐겨 창조했는데, 이는 독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려 한 목적보다는 인간의 삶이 허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특히 각주를 달아 상상으로 만들어낸 책을 마치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며내는데, 보르헤스가 달아 놓은 각주엔 실제로 존재하는 책과 거짓으로 꾸며낸 책을 뒤섞어 놓아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챗지피티는 21세기의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물건이다. 

 

챗지피티는 잘못된 답변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책을 존재하는 것처럼 인용해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사용자가 반복된 질문을 통해 챗지피티의 거짓말을 유도했을지 몰라도, AI가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이 현실이 사람들을 경악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건 인간들이 수없이 해 왔던 일이다. 보르헤스와 같은 뛰어난 작가들은 이미 이런 실험을 해 왔다. 20세기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기존 형식을 파괴하려 시도했던 수많은 예술적 노력들의 후예가 어쩌면 챗지피티일 수도 있겠다. 기계복제 시대에, 이들은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대중을 모욕하고 현혹시켰으며, 동시에 인간 사고의 지평을 열어제쳤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는 세상의 모든 문자로 된 가능한 모든 조합으로 만들어낸 지식이 담겨 있는 도서관이 등장한다. 이 도서관의 책을 설명하는 공리 중 하나는 24글자의 알파벳으로 거의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책은 M, C, V로만 410페이지를 채웠다.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알파벳 세 개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안 갖는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도서관 이용자 중 누군가는 그 책을 읽고 인류와 우주의 새로운 비밀을 해제할 것이라 믿을 수도 있다. 언어는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므로. 그 도서관에는 세상과 역사 속에 존재한 모든 방언을 포함한 언어의 책이 있고, 그 책에 대한 해설서와 그 해설서에 대한 해설서, 그리고 그 해설서에 대한 해설서에다 더해, 누군가 쓰려고 했으나 쓰지 않은 책들까지도 담겨 있다. 인간은 이 도서관에서 '불완전한 사서'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해 말 할 줄 아는 기계, 그리고 '불완전한 오퍼레이터' 인간. 챗지피티와 바벨의 도서관은 닮아 있다. 사실 새로울 건 없다. 이미 지나간 20세기 예술 실험들이 21세기의 기술을 입고 대중화된 세상이 도래했을 뿐. 모두가 보르헤스고, 모두가 뒤샹이고, 모두가 앤디워홀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일 뿐일 수 있다.

 

100여년 전 예술가들처럼 챗지피티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환상과, 실제, 거짓과 사실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진짜 맥락과 가짜 맥락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챗지피티와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사실 이 글의 주제는 윤석열 대통령에 관한 것이다. 챗지피티가 대화를 오래 나눠온 발화자의 특성과 맥락을 이해한다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그건 한 개인, 또는 어떤 목적을 같이 하는 집단이 챗지피티와 심화된 대화를 통해 이끌어낸 맥락들이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집단적으로 맥락을 공유하는 것들이 있다. '역사'다.

 

챗지피티가 대화 속 맥락을 이해했다는 호들갑은 거대한 착각일 수 있다. 이를테면 3.1절에 한국의 역사를 회고하며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라고 말하는 것은 발화자와 생각, 그리고 맥락을 같이 하는 그룹이 반복학습을 통해 만들어낸 텍스트다. 그러나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그룹들이 보면, '저 사람은 사실이 아닌 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80억 인류에게 열린 무한대의 '바벨의 도서관', 챗지피티는 80억 개의 맥락을 생산해 낼 수 있을 뿐이다. 

 

챗지피티는 인간 개개인의 지엽적 맥락을 구현해내는 대신, 종종 역사의 거대한 맥락을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 독방에서 챗지피티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그럴듯한 허구적 맥락을 창조해 놓고, 방을 나서서 이웃 사람에게 그 허구적 맥락을 강요하는 건 인간 사회에서 그리 권장되지 않는 일이다. 인간 사고의 지평을 넓히려 개발한 AI가 편협한 사고에 빠져들고 그 편협한 사고를 더욱 강화해 나 가는 현상은, AI 개발 초기 시절인 1960~70년대부터 학습형AI의 치명적 한계로 지적돼 온 것을 생각하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읽었다. 

 

"제가 이쪽을 잘 아는 지인한테 2023년도 대통령 신년사를 '챗지피티'가 한번 써보게 해서 받아봤다. 정말 훌륭하더라."

 

신년사 연설에 써보게 할 정도라니, 내친김에 챗지피티에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연설 속 역사 인식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다.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하길래,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챗지피티에게 영어로 번역한 질문을 던져봤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상황에 대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라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What do you think about explaining the situation of Jos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s 'our past, when we lost our national sovereignty and suffered because we were not properly prepared for the changes in world history'?) 

 

다음은 챗지피티의 답변이다. 

 

AI 언어 모델로서 개인적인 믿음이나 의견은 없지만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시한 진술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상황을 다소 단순화한 표현입니다. 이 시기에 한국은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 치하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단순히 세계사의 변화에 대비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습니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는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팽창과 침략의 오랜 역사의 결과였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성장하는 경제와 군사력을 위해 자원과 영토를 확보하려는 열망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 노동, 문화 동화 정책, 정치적 탄압 등 다양한 전술을 동원하여 우리 민족을 통제하고 탄압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일본의 식민 침략을 이끌어낸 세계사 역사의 변화들에 대해 완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국은 일본 병합 이전 수십 년 동안 상당한 근대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종종 내부의 정치적 분열과 다른 제국 세력의 외부 압력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한국이 일제강점기에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사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복잡한 역사적 요인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꽤나 훌륭한 답변이 나온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1000자 남짓(공백 제외)한 연설문 전문을 눈을 씻고 읽어봐도 '가해자'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지 않다. 식민지배는 '피해자'인 우리가 '준비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건이 돼 있었다. 그러나 챗지피티는 '가해자'가 원인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이 '우리'의 태도에 관한 말들로 점철돼 있는 것과 달리 말이다. 

 

특히 연설문에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전제가 될 '과거 가해자'의 태도가 지금 어떤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평가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가해자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해왔는지도 단 한마디 들어있지 않다. 심지어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며 마치 '개과천선한 침략자'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라는 말과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는 말 사이에 뭔가 핵심적인 게 빠져 있다고 느끼는 건 필자 뿐일까? 모든 게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이건 역사를 공유해 온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해 온 '대문자 역사'의 맥락을 거세해버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학습해 내 놓은 이 연설문은 윤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학습한 부류들(그들은 이런 사람들을 '반일', '죽창가 부르는 사람' 쯤으로 프레임화 한다.)이 가진 생각의 맥락을 부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3.1절의 의미'에 대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는 날 나온 '챗윤석열'의 답변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보면서, 한 엘리트주의자가 역사의 거대한 맥락을 거세하고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극우적 생각을 물리적 기호로 변환해 나열해 두었는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누군가에게 윤석열의 3.1절 기념사는 '챗윤석열'이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제거하고 만든 기호의 나열일 뿐이고, 챗지피티가 쓴 것의 오류를 잡아내듯이 그 말이 거짓이거나 위험한 말이라고 지적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정치와 역사의 맥락에서 서툰 모습들을 자주 보여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학습형 정치인'의 치명적 결함일 수도 있다. 

 

▲대선때 선보인 AI 윤석열 ⓒ국민의힘 홈페이지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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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조 악마화’의 현장, 강북노동자복지관 통유리는 유난히 투명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사비 털어 운영하는 강북노동자복지관…‘노조 회계 불투명’ 정부 인식과 거리 멀어

강북노동자복지관 외관 ⓒ민중의소리

  • 조한무 기자 chm@
    •  
    • 발행 2023-03-03 19:35:53
    •  
    • 수정 2023-03-03 19:35:11 
    •  

  • 일부 언론에서 악마화된 그곳. 강북노동자복지관을 지난 2일 찾아갔다. 두꺼운 철문에 쇠사슬이 감겨 있고,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한 거구의 사내들이 문 앞에서 “칼로 쑤셔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것 같이 묘사된 바로 그곳이다.

    현실은 달랐다. 건물 2층까지 뻥 뚫린 통유리가 유난히 투명했다. 통유리 안쪽 1층엔 도서관이 있다. 이름은 노동정보도서관이지만, 문학·역사·철학 코너가 눈에 띈다. 여느 동네 도서관과 다를 바 없다. 이름과 연락처를 기재하면 누구나 대출이 가능하다.

    도서관 맞은편엔 체육관이 있다. 탁구대와 운동기구가 나란히 자리 잡았다. 탁구는 지역주민이 특히 좋아한다. 다른 한켠에선 복지관이 운영하는 ‘몸펴기’ 강좌가 열린다. 매주 수요일 저녁 10여 명의 중장년 주민이 모여 건강을 관리한다. 2층 강의실에선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

    “폐쇄적 운영”이라 비난하지만 정반대다. 신축 대관 시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대강당과 시청각실 올해 1~2월 이용자는 1천명을 넘었다. 계획 중인 홈페이지 구축이 완료되면 홍보 활성화로 더 많은 지역주민과 단체가 이용하게 될 전망이다. 공익 사단법인 ‘희망씨’는 지난달 복지관 대강당에서 회원 총회를 열었다. 약 80명의 회원이 모였다. 희망씨 관계자는 “시설 운영이 폐쇄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공공기관 시설 운영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건 아닌지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복지관이 민주노총 전용 공간으로 사용된다는 일부 보수신문 주장이 무색했다. 서울시로부터 복지관 운영을 수탁받은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건물 3·4층 일부를 사무실로 쓰고 있다. 건물 전체 연면적 2,773㎡ 중 413㎡다. 규정에 따르면 노조 지역대표기구는 복지관 연면적의 15%(415㎡)까지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다. 나머지 75%(2,360㎡)는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
     
    지난해 12월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몸펴기 강좌가 진행되는 모습. ⓒ강북노동자복지관
     
    강북노동자복지관 노동정보도서관 ⓒ강북노동자복지관
     
    지난해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진행된 인문학강좌 ⓒ강북노동자복지관

     
    물 샐 틈 없는 서울시의 회계 감독

    강북노동자복지관 회계 담당자는 회계가 불투명하다는 정부 지적에 억울해했다. 그는 서울시 민간위탁 회계관리시스템을 열어 보였다. 시스템 창에는 신한은행 통장 계좌의 거래내역이 모두 기재돼있었다. ‘모든오피스(서대문점)’에서 구입한 사무용품비 4만 700원부터 직원들 퇴직연금납입액 1,350만 5,901원까지 빠짐없이 보였다. 복지관 회계 담당자는 “입출금 내역이 공개돼 임의대로 처리할 여지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복지관 예산 입출금은 서울시가 지정한 보조금 전용 통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분기 단위로 서울시 예산이 입금된다. 출금 내역은 회계관리시스템에 연동돼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고, 복지관 행정 담당자가 건별로 지출결의서를 등록한다. 서울시가 복지관 예산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구조다. 

    사후 점검도 진행된다. 혹여나 거짓 지출 내역이 있는지 서울시가 정기 점검 한다. 서울시가 지정한 회계사와 노무사, 서울시 사무관 등이 복지관을 방문해, 협약내용 이행 여부와 예산집행, 재산관리, 근로환경 등 업무 전반을 살펴본다. 회계 자료뿐 아니라 프로그램 강사나 자재업체, 보안업체 등 거래처와 맺은 계약서도 들여다본다. 

    지도 점검은 연 2회(7·12월) 진행된다. 복지관 회계 담당자는 지난해 지도 점검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그는 “야근수당 지출 내역을 보고는 ‘왜 야근을 했냐’며 당시 작성한 시간외근무 신청서까지 가져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 반나절 동안 이어지는데, 제가 계속 붙어서 요청해오는 서류를 가져다주고 질문에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지도 점검과 별도로 매년 통합 회계 감사도 한다. 서울시가 복지관을 담당하는 외부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지정한다.

    복지관 운영 예산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예산은 분리된다. 복지관 운영 계좌에 있는 돈을 민주노총 서울본부로 옮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산 관리 주체도 다르다. 복지관 행정 담당자는 수탁 기관인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채용하기는 했지만, 노조와는 무관하다. 복지관 행정 담당자는 “노조 쪽 일은 안 해봤고, 공공기관에서 회계 업무를 본 경력을 좋게 봐줘서 뽑아준 것 같다”며 “복지관 소속 정직원이기 때문에 수탁기관이 바뀌어도 계속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3년 단위의 계약이 만료되는 오는 9월부터 복지관 운영 위탁을 공개모집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2002년부터 수의계약으로 복지관 운영을 맡아왔다.
     
    서울시 민간위탁 회계관리시스템에 등록된 강북노동자복지관 지출 내역.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서울시로부터 수탁받아 복지관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올해 복지관 관리·운영 예산은 총 4억원이다.

    예산은 인건비·운영비·사업비로 구성된다. 인건비가 2억 6천만원으로 가장 크다. 시설·미화·행정 직원 6명이 일한다. 운영비는 1억 1,700만원이 들어간다.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과 제세공과금이 5,400만원정도다. 여기에 각종 소모품비와 인터넷 통신비, 보안경비 시스템 사용료 등이 붙는다. 사업비는 2,500만원으로 잡았다. 현재 노동상담 법률지원과 생활체육 체형교정운동(몸펴기) 강좌, 지하 1층 상설전시관 운영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템플스테이와 댄스 강좌도 열 계획이다. 사업비 대부분은 법률지원 노무사 자문료와 프로그램 강사비다.

    법률지원은 복지관의 대표 사업이다. 복지관 2층에 노동법률지원센터가 있다. 지난해 지원 건수는 4,800건 수준으로, 8,500여 명이 도움을 받았다. 내방·전화·인터넷을 통한 상담뿐 아니라, 법원 사건 소송 지원과 법률검토의견서 작성, 고용노동부 진정·고소 사건 대리·대행 등 적극적인 법률지원도 수행한다. 지난해 120회 이상 진행된 노동법·인권 교육에는 4천명가량이 참여했다.

    올해 서울시가 지원하는 복지관 예산은 2억 4천만원이다. 서울시 예산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비용은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부담한다.

    보조금 받으니 자체 예산 공개하라는 정부의 무리수

    정부와 여당은 노조가 정부 지자체로부터 1천억원대 보조금을 받고 있다며,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5년간 국민 혈세로 투입된 1,500억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노조는 회계 장부를 제출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노동부와 광역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자료를 근거로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받은 보조금을 정리한 자료다. 노조가 받은 보조금은 강북노동자복지관 운영과 같은 위수탁 사업에 대한 예산이 대부분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자체 예산까지 들여가며 복지관을 운영하는 현실과 ‘혈세 1,500억원’을 내세우는 윤 대통령 인식은 괴리가 크다.

    노동부가 첨병으로 나서 노조에 회계 자료 제출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노조 334곳에 회계 투명성 자율점검 안내문이 발송됐다. 문제는 정부 지자체의 보조금뿐 아니라 조합비로 마련한 노조 자체 예산 관련 자료도 요구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한 해 예산은 4억 4천만원 수준이다. 복지관 운영비로 지원되는 서울시 보조금과는 무관한 돈이다. 서울시 예산 2억 5천만원 받았으니 노조 자체 예산 자료까지 내놓으라는 건 지나친 요구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노조 회계와 위탁사업 회계는 전혀 다른 회계다. 지금도 위탁사업 회계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며 “정부의 노조 회계 공개 요구는 고장난 변기를 고쳐달라고 요청해 고쳐줬더니 ‘내가 수리비를 냈으니 당신 사업의 모든 회계 서류를 나에게 주시오’라고 말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를 상대로 오는 15일부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조는 이미 법적으로 요구되는 수준 이상의 자료를 제출했으며, 다만 과도한 개입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법상 노조가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할 자료와 정부의 제출 요구에 응해야 할 자료는 따로 규정된다. 노조는 엄연히 민간단체인 만큼, 제삼자인 정부에 모든 자료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 조합원은 신청 절차를 통해 상당한 범위의 중요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노동부는 조합원에 한해 제공되는 자료의 증빙을 요구했다. 예·결산서, 총수입·지출원장 등 회계 자료를 비롯해 조합원 명부, 임원 주소록, 회의록 등이 포함된다. 증빙 수단으로는 각 자료의 내지 1쪽을 내라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조 회계 관련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2023.02.20. ⓒ뉴시스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는 노조 탄압의 전초라고 노조 측은 설명한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내지 1쪽을 내면 행정적으로 선례가 되고, 선례가 쌓이면 관행이 된다”며 “과거 정부는 노조에 대한 조사권으로 회계 자료를 확보해 노조 탄압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설명했다. 1997년 노조법 개정 전에는 정부가 노조 운영에 대한 조사를 빌미로 회계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노조가 후원한 단체의 성격을 이유로 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등 회계 자료는 노조 탄압을 위한 소재가 됐다.

    정부는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도 추진 중이다. 노동부가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이다. 하물며 상장기업도 중요 자료는 제한적으로 제공한다. 가령 주주명부 열람 청구권은 주주에 한해 부여된다. 제삼자는 권한이 없다. 또한 주주는 이사회 회의록 열람도 청구할 수 있으나, 회사가 거절할 수 있다. 재무제표가 공시되지는 하지만, 거래 내역을 건별로 확인할 수 있는 수입·지출결의서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없다.

    정부에 들어간 자료가 국회와 언론 등을 통해 외부로 공개될 우려도 있다. 박 정책국장은 “정부가 자료를 가진다는 건 어떤 경로로든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며 “보수진영에서 노조 운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회계 자료를 뜯어보며 미주알고주알 지적하고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조합원도 자료를 열람할 수는 있지만, 복사해 외부로 가져갈 수는 없다. 지난 2017년 대법원은 자료 유출 시 노조의 자주적인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등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결 내렸다.

    박 정책국장은 “노조 자료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해 투쟁으로 노조법은 개정했다”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정부 시도에 노조가 자료를 제출하면서 응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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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학자' 윤석민이 말하는 언론 '규범'의 위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3/04 10:10
  • 수정일
    2023/03/04 10: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윤수현, 박재령 기자 
  •  
  •  입력 2023.03.04 06:30
  •  
  •  댓글 0



 

[인터뷰] 디지털화로 인해 시작된 ‘언론의 위기’… “언론계, 무너지고 있다”

해결책으로 제시된 저널리즘스쿨… “언론·미디어 R&D, 체질 바꿀 수 있어”

‘언론의 위기’ 새삼스럽지도 않은 말이다. 해마다 ‘언론 위기’라는 진단과 함께 언론이 변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그러나 언론 지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위기라곤 하지만 폐업하거나 인수·합병된 언론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 위기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보수 언론학자로 알려진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의 위기’를 단순히 앓는 소리로 생각해선 곤란하다고 단언했다. 디지털화로 인해 저널리즘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으며, 저널리즘 윤리와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 규범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섭외 전화를 할 때부터 ‘언론 위기’를 강조한 윤 교수는 인터뷰 내내 언론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진심 어린 토로를 전했다.

윤석민 교수가 내놓은 해답은 정부 지원이 투입된 저널리즘스쿨이다. 문제 해결을 언론계에만 맡겨서는 곤란하며, 대학의 저널리즘스쿨을 중심으로 ‘언론 위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언론 위기와 저널리즘스쿨.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어 보이지만, 윤 교수는 단호했다. 미디어오늘은 윤 교수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24일 오전 서울대에서 진행됐다. 아래는 일문일답.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 인터뷰 섭외 전화를 했을 때부터 ‘언론의 위기’라는 말을 강조했다. 사실 언론이 위기에 닥쳤다는 건 이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어떤 점을 보고 위기라고 진단한 것인가.

“산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뉴스 산업 자체는 분명 성장세다.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의 미디어 영향력 조사 결과를 보면 신문과 뉴스전문채널의 영향력은 높아지고 있다. 명백하게 상향세다.

문제는 언론 규범의 위기다. 디지털화 이후 지상파, 종이신문 등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언론은 위기를 겪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 대신 인터넷 신문, 유튜버 등이 흥행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저널리즘 활동을 하면서 신종 유형의 언론이 나타난 모양새인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저널리즘이라는 가치가 생략되고 있고, 뉴스를 산업으로만 접근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인터넷 언론, 유튜브 등 말이다.

물론 레거시 미디어에도 많은 문제가 있고, 이를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들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그들이 저널리즘 가치를 앞세운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레거시 미디어는 사실성, 공정성, 규범성 등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차이가 있다.”

- 언론의 위기가 디지털화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근에는 레거시 미디어 역시 디지털화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 유통 흐름이 유튜브 등 디지털로 전환되는 것, 자연스럽게만 보이진 않는다. 레거시 미디어가 중심에 두고 있는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가 유튜브 등 온라인 영역에선 옅어지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가 레거시 미디어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 논리에는 진영논리도 포함된다. 시장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진영논리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정치적으로 진영화된 언론에 의해 대체된다면 규범성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레거시 미디어는 규범성을 바탕으로 언론의 소명을 완수해왔다. 이들에게 규범성은 곧 상품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장에선 규범성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선정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 레거시 미디어가 지켜온 규범성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

“종이신문·지상파 등 기존의 유통 방식에 대한 영향력은 떨어지고 있다. 집토끼라 불리는 충성 독자를 지키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진 상황이다. 진영화 된 콘텐츠를 생산해 독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를 제공하는 최후의 보루까지 갔다. 그렇게 되면 온건한 성향의 독자들은 진영화된 언론을 보기 싫어 뉴스를 회피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같은 언론의 위기는 사회적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에 언론의 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위기 중 언론의 위기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해도 다름이 아니다. 언론의 위기는 다른 문제를 증폭시키는 파급력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회를 연결하는 소통의 중심인데 언론이 병든다면 여론형성 과정, 정책 결정·집행 과정이 모두 병들게 된다.”

- 언론의 진영 양극화를 생존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

“생존이라는 문제가 너무 컸다. 새롭게 등장한 언론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이 등장했고, 경쟁도 비례해서 커졌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규범성을 지켜주는 장치가 없었다. 언론의 무대가 디지털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규범성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위기가 온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를 편들자는 것이 아니다. 레거시 미디어도 마찬가지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같이 무너지는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다. 때마침 포털이 등장하지 않았나.”

- 디지털 뉴스 생태계가 포털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포털이 뉴스 소비의 중심이 됐다.

“대부분 이용자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다. 읽고 있는 기사가 조선일보인지, 한겨레인지 구분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알고리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뉴스 서비스 페이지 내 기사 배열과 ‘관련도’ 배열에서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알고리즘이 정해준 뉴스의 순서는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 소비하는 뉴스로 직결될 만큼 굉장히 중요한 결정인데, 우린 알고리즘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네이버는 기본적으로 사기업이고, 움직임의 동기는 이윤이다. 네이버가 언론 산업의 발전, 언론 규범성 회복, 저널리즘을 1순위로 추구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한 사기업이 모든 언론을 합친 것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뉴스 전송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는 건 기형적인 현상이다. 뉴스 플랫폼은 공적 가치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데, 사기업이 만든 플랫폼이라고 해서 방치해야 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식품도 사기업이 만드는데 규제의 주체는 정부다. ‘식품과 포털을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라는 반박이 들어올 수도 있는데, 포털도 식품 못지않게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언론사가 포털에 대응하려는 시도는 수차례 있었지만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특정 시점을 단정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일각에선 언론사에 ‘왜 디지털 전환을 못 했는가’라고 따져 묻기도 하지만, 언론사가 힘을 합쳐서 네이버에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조선일보, 한겨레라고 할지라도 산업적인 규모만 따지고 본다면 영세하다. 영향력은 클지 몰라도 매출액만 놓고 보면 대기업과 비교할 수도 없다. 구성원들은 하루하루 신문 만들고 기사 쓰기에도 벅차다.

디지털화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언론사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편집국을 바꿔나가고 있다. CMS를 만들기도 하고, 온라인 뉴스 전담팀을 꾸리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같은 노력은 기존 신문을 만드는 방식을 디지털로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신문사가 내놓은 디지털 혁신 중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AI, 빅데이터 등 당대 떠오르는 기술과 저널리즘을 결합해 시대에 부합하는 기사를 쓰는 언론이 얼마나 있을까.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사가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언론사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있지만 적은 예산을 여러 언론사에 나눠줘야 하는 상황이니 성과는 뻔하다. 일부 언론사가 디지털화를 위해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네이버에 비할 수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 언론수용자조사 결과. 사진=언론수용자조사 보고서 갈무리.

- 디지털화는 언론사의 당면 과제다. 언론이 디지털화에 실패한다면 포털 종속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의 디지털화에 대한 비관론을 내놓았다. 해답은 없는 걸까.

“개별 언론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 지원이 해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지원하느냐다. 언론재단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지만, 언론재단은 사실상 국가기관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결정자가 바뀌게 된다. 사업을 연속성 있게 이끌어가기 쉽지 않다. 정부 기관이 언론에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론 성공할 수 없다. 정부광고 배분을 통한 간접지원 역시 효용이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이 같은 푼돈 나눠주기가 아니라 뉴스 혁신을 연구하고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뉴스 혁신 R&D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특정 언론사만 지원하는 센터가 아니라, 모든 언론에 도움을 주는 그런 센터 말이다.”

- 언론재단 외 별도의 언론 R&D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R&D센터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돼야 하는가. 또 누가 운영을 맡아야 하나.

“대학이다. 대학의 저널리즘스쿨이 언론 R&D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MIT대학의 미디어랩이나 미국 USC의 필름스쿨처럼 미디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저널리즘스쿨을 만드는 것이다. 연구 및 교육의 핵심은 실천이다. 단순히 연구 예산을 할당받아서 몇 명이나 읽을지 모르는 보고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강의실 중심의 수업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진짜 미래를 이끌 저널리즘과 미디어를 구현하는 것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뉴스의 혁신을 연구하고 상호 토론하며 실험하는 자유롭고 활기찬 연구 및 교육 공간, 즉 뉴스 랩이 중심이다. 언론재단이 그런 공간을 만들기란 한계가 있다. 구상하고 있는 센터는 언론재단과 출발점이 다르다.”

- 미국의 저널리즘스쿨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인데, 저널리즘스쿨이 언론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우수한 인력이 이전만큼 언론에 모여들지 않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급여도 적고, 사명감만 가지고 일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언론사 공채 제도가 붕괴됐다는 건 언론이 직면한 위기의 가장 심각한 징후다. 수습기자가 뽑힌다고 해도 교육 방식은 이전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교육만으로 신입 기자가 디지털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도제식 교육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까.

저널리즘스쿨이 신입 기자들 교육을 전담할 수 있다. 현재 언론재단 수습기자 교육은 그리 심층적이지 않다. 교육 기간도 짧다. 저널리즘스쿨에서 수습기자를 받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코딩·데이터·AI 교육을 하고, 보건이며 환경 등 전문영역 교육, 언론규범 교육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법률전문가를 위해 사법연수원이 있고 행정전문가를 위해 공무원 연수원이 있지 않은가. 체계적인 언론인 연수원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Pixabay.

- 그렇다면 정부가 저널리즘스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초기 비용 지원이다. 우선 서울대에 저널리즘스쿨을 만들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공간 및 설비 등 초기자금으로 1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줬으면 한다. 지원을 통해 최소한의 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기업들에게 지원받아 교수 인력 확보, 학생 장학금, 프로젝트 수행경비 등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500억 원을 모아보려 한다.”

- 언론을 위해 거액의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가. 언론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타당성은 당연히 있다. 양질의 언론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재다. 또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언론학계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도 사회적 가치인 언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저널리즘스쿨은 그 일환이다.”

- 언론의 위기 국면에서 교육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갑자기 저널리즘스쿨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널리즘스쿨은 미디어를 연구하고 교육해온 나의 마지막 소명이다. 서울대에서 저널리즘스쿨 모델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대학도 따라올 수 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대학교도 참여해 지역언론 활성화를 끌어낼 수 있다. 저널리즘스쿨이 만들어진다면 언론계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수습기자들은 코딩 및 비주얼라이제이션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배울 수 있다. 행정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보건대학원·국제대학원 등 전문대학원들이 협동해 고도화된 전문영역 교육도 실시할 수 있다. 언론인들에게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해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언론의 책임, 공정성, 투명성 등 언론을 언론답게 하는 규범적 가치를 제대로 전수할 수 있다. 저널리즘스쿨의 교육 내용이 언론 현장으로 간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

- 정말 교육으로 언론계를 바꿀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이 많을 것 같다.

“교육은 언론의 변화를 촉진하는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 저널리즘스쿨에서 나온 아이디어 100개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을 선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교육으론 저널리즘의 기반과 혁신을 끌어내기 부족했다. 기존 언론학과들은 이론적인 측면을 교육하기 바빴다. 이론만으론 언론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진짜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저널리즘스쿨을 만들려는 사업은 윤석민이라는 개인의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명해지려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충분히 유명하다. (웃음)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언론계에 대한 바람이다.”

▲지난해 8월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언론 전반에 대해 묻고 싶다. 언론에 대해 비판을 넘어 비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론이 아무리 미워도 소중한 존재는 보듬고 가야 한다. 언론은 자식 같은 존재다. 자식이 말 안 들어서 굉장히 밉다고 해도 팽개칠 수는 없다. 키우고 교육시키고 잘하게끔 하고 하면 그 애들이 나중에 당당한 사회적 주역 역할을 하는 거다. 언론도 같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인터뷰를 우리 언론을 되살릴 수 있는 진짜 아젠다, 제대로 된 아젠다를 제시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이 상태로 가면 정말 몇 년 안에 우리 언론이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런 얘기도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

- 평소 전문직주의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최근 ‘김만배 돈거래’ 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로 언론이 신뢰를 잃고 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언론이 규범성을 상실하다 보니까 생겨나는 문제다. 언론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제까지 언론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비난해 왔다고 생각한다.

2021년에 가을 연구 학기에 조선일보 가서 5개월 정도 있었다. 현장을 가게 된 것은 현장에 희망이 정말 더 이상 없나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언론, 저널리즘을 아무리 얘기해도 현장이 끝났으면 쓸모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을 갔더니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었다. 조선일보에서조차 젊은 기자들이 언론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며 떠나려 하고 있었다.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희망이 오래가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조급해진 것이다. 한겨레도 현장 관찰을 같이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도 과정을 조선이랑 한겨레랑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2021년 11월17일 조선일보 1면과 2022년 2월10일 조선일보 2면 기사.

-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본 희망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2022년 초 동계 올림픽 당시 여자 2천 미터 쇼트트랙 스케이팅 계주 기사에서 ‘최민정 마지막 질주’라고 썼다가 거의 11시쯤 53판에서 ‘최민정 마지막 스퍼트’라고 제목을 바꿨다. 왜 바꿨을까 찾아보니 질주(빠르게 달림)보다 스퍼트(일정 시점부터 최고 속력을 냄)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안 바꿨어도 크게 문제가 됐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지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례는 2021년 11월 미중 정상회담 끝나고 바이든이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한다고 얘기했다. 대만의 입장에선 파급력이 큰 얘기다. 그래서 그 발언을 일단 탑으로 51판에서 뽑았다. 하지만 52판 회의하는데 국제부장과 부국장이 제목을 놓고 격렬하게 맞붙었다. 결국 최종 제목은 ‘바이든,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 대만은 현상유지’로 결정되었다.

이것이 내가 느낀 감동이다. 이 사회 어디에도 이 이상 소중한 노력은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이처럼 끝까지 집요하게 사실에 매달리는 게 언론이다.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언론이 사회를 지켜왔듯, 이제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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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13일부터 23일까지 연합군사연습

“연합상륙훈련 등 대규모 야외기동훈련 집중 시행”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3.03.03 10:35
  •  
  •  수정 2023.03.03 17:57
  •  
  •  댓글 0
 
3일 국방부 청사에서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과 아이작 테일러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이 13~23일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사진 갈무리-e브리핑]
3일 국방부 청사에서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과 아이작 테일러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이 13~23일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사진 갈무리-e브리핑]

한미가 오는 13일부터 23일까지 연합군사연습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를 시행한다고 3일 발표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합참) 공보실장과 아이작 테일러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연합방위 태세 확립을 위해(서)”라며, 이같이 밝혔다. 

두 사람은 “이번 연합연습은 북한의 핵 ·미사일 고도화와 최근에 일어난 전쟁 및 분쟁 교훈 등 변화하는 위협과 변화된 안보 환경이 반영된 연습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맞춤형 연습을 실시하여 동맹의 대응능력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프리덤실드 연습 기간에는 연합상륙훈련 등 과거 ‘독수리연습’(Foal Eagle) 수준으로 확대된 대규모 연합 야외기동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행(한다)"고 알렸다. 연합야외기동훈련의 명칭은 ‘전사의 방패’(Warrier Shield)다.

모두발언을 마친 두 사람은 “We go together. 같이 갑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테일러 공보실장은 “유엔사, 연합사, 주한미군사령관 라카메라 미국군 대장을 대변하여 이 자리를 빌려 본 연습 참가 부대인 대한민국 국군, 주한미군사령부, 유엔사령부, 한미연합사 및 지원병력, 민간인원과 유엔 전력 제공국 대표단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연합군사연습에 맞서 물리적 대응을 경고한데 대해, 이성준 공보실장은 “우리 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 동맹의 압도적 능력으로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테일러 공보실장은 “정례적인 군사훈련, 또 일반적인 군사훈련”이라고 규정하면서 “방어적 성격을 띤 이번 훈련을 통해 철통같은 한미 동맹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능력과 준비태세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피해갔다.

이성준 공보실장은 “미 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사항은 작전 보안상 공개가 제한된다”고 말을 아꼈다. 동시에 “한미일은 앞으로 안보 협력을 진전시키고 강화하기 위한 활동들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2일 한미일 탄도미사일 방어훈련의 장소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과 관련, 테일러 공보실장은 “연례 훈련을 통해 준비태세를 강화시키고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방어하는 최선을 다하며 이 지역에서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빠져나갔다.

한국 측이 ‘일본해’ 표기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으나, 미국 측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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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보조금, ‘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 기자명 김장호 기자
  •  
  •  승인 2023.03.03 17:44
  •  
  •  댓글 0

미국 반도체 보조금은 한국 반도체 산업 약탈을 위한 미끼

윤석열 정부의 식민지노예정책으로는 해결 못해

사우디, 인도에서 배워야 국익을 지켜

1. 미국의 한국 반도체 산업 약탈작전이 시작되었다.

2. 식민지 노예근성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3. 사우디, 인도에서 배울 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 9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칩스 플러스'(반도체 칩과 과학법) 법안에 서명하기 전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1. 미국의 한국 반도체 산업 약탈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국 반도체 보조금 때문에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 바이든은 작년 8월 ‘반도체과학법’에 서명하였다. 미국 내 반도체 산업육성을 위해 약 365조 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이 중 제조시설에 약 75조 원의 보조금이 지원된다. 이어 미 상무부는 지난 달 28일 반도체 보조금 지급조건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보조금 지급조건이 한국 반도체 업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 내용인즉, 첫째로 미국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업체는 중국에 추가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다. 삼성은 낸드플래시 40%, SK하이닉스는 D램 4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다. 지금까지 투자 비용만도 50조 원이 넘는다.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전체 수출물량 중 중국본토로 40%, 홍콩을 통해 20%가 들어간다. 그런데 미국은 이 중국 시장을 포기하라고 한다. 한국 반도체 업체에게는 죽으라는 소리이다.

둘째로 보조금을 받는 업체가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 초과이윤 75%를 도로 환수하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돈 벌어 상납하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게 보조금인지 대출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밥상 차려놓고 숟가락 뺏는 짓이다.

셋째로 국가안보를 최우선기준으로 하겠다는 조건이다. 즉 군사분야반도체를 납품할 경우 투자업체의 기술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하는 문제, 기술유출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현금흐름, 수익률을 들여다 보겠다고 하니, 회계장부도 공개해야 한다. 이 정보의 수혜자는 미국 반도체 업체가 될 것이고, 얼마 안 가 한국 반도체업체는 경쟁력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미국 보조금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미 삼성은 미 텍사스주에 2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기 때문에 보조금 신청대상이다. 과연 삼성은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수용하고 보조금을 신청해야 할까?

미국의 전략은 명백하다. 반도체산업이 미중 군사 경쟁에서 첨단무기개발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미래먹거리에서도 지난 시기 석유에 버금가는 전략산업으로 부상하였기 때문에 미국 내에 반도체 생산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중국을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일본, 대만, 한국을 끌어들여 칩4동맹이니 어쩌니 하면서 미국내 생산기지건설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내 투자는 인건비나 각종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막대한 보조금 지급이 불가피하다. 보조금이라도 주어야 아시아생산기지 가격차의 40%라도 만회할 수 있기 때뮨이다. 그런데 미국은 미 보조금 정책을 철저하게 미국 중심, 대중 봉쇄, 동맹 수탈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못 가겠다면 하면 미국은 어떨까? 불편은 하겠지만 일본과 대만을 중심으로 짤 것이다. 대만도 못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일본하고 할 것이다. 사실 미국으로서는 일본 말고는 대만과 한국을 장기적으로 믿을 수 없다. 대만은 중국과, 한국은 북한과 겹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만, 한국이 구축한 반도체 생산역량을 가장 빠른 시일 안에 빼먹자는 계산이다. 여기에 일정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역할을 높이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미 한국과 대만이 미국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있지 않은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앞길이 어떨지 명백한데도 현실은 미일의 반도체 탈환전략, 하위동맹 약탈정책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식으로 계속 말려들어 가고 있다.

2. 식민지 노예근성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미국 보조금 문제는 이미 전기자동차 보조금 관련해서 바이든에게 ’인플레 감축법‘으로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다. 당시 주미한국대사와 국정원이 사전에 그 위험성에 대해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가 넋 놓고 당했다. 그런데 반도체 보조금과 관련하여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이 우연일까?

여기에는 윤석열 정부의 극단적인 대미 종속 일변도 정책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신냉전 전쟁돌격대, 종미 나팔수, 대미 조공투자의 안내자 역할을 자처하는 윤석열의 식민지 노예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미국은 중미대결을 한다면서도 중국의 대미수출은 작년에 25%나 늘어나 471조 원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머저리 같은 윤석열은 쓸데없이 탈중이니, 혐중이니 하면서 대중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미 작년 무역적자가 472억 달러에 이르고, 올해 들어 1월에 126억 달러로 사상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2월에는 53억 달러 무역적자로 이미 두 달 만에 작년 무역적자의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중 핵심이 반도체로서 수출이 –42.5%로 반토막 났는데, 다 대중국 무역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은 97년 IMF도 중국 덕분에 빨리 극복했고, 2008년 세계 대공황 때도 중국에 올라타 경제위기를 넘겼다. 사정이 이러한데 지금 같은 경제재난 상황에서 윤석열 눈에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가? 미국이 회초리를 들라 하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윤석열식 식민지 노예근성이 한국 경제, 한국 무역, 한국 반도체 산업을 망치고 있다.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놈이 바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속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미국의 자국중심의 반도체전략을 맹종하는 형국이니 다른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반도체 대책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빨리 미국에 로비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을 고도화해야 한다’. ‘생산기지를 다변화해야 한다’, ‘한국판 반도체지원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등등 온갖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별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보다 근원적인 성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 등 반도체 업체와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와 나서서 미국과 뭘 해봤으면 좋겠다고 성토하지만,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눈치이다.

미국판 보조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도 미국처럼 한국판 반도체 지원법을 만들어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고 국내투자를 유인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었던 세력들이 있다. 재벌, 전경련, 경총, 주요 경제신문들이 그들인데, 자신들이 미국 못지않은 국내 민중에 대한 약탈공범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 국내재벌들이 돈이 없어서 국내에 투자 못 한 것인가. 돈이 있어도 값싼 노동력 찾아 중국으로, 동남아로 나가고 이제는 미국으로 가려다가 된통 당한 것 아닌가. 그동안 국민들이 얼마나 재벌들에게 몰아주었나. 상황이 이 정도 되었으면, 오히려 재벌들이 미국의 매판자본이 아니라 국내경제와 국민고용과 복지에 복무하는 변화된 자세를 보여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윤석열 정부와 짜고 미국에 털린 것을 국내 노동자 민중의 고혈을 짜서 봉창하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지금 국내재벌의 행태이다. 지금 벌이는 공안탄압, 노동 탄압, 요금인상, 공공기관 민영화, 금산분리 시도들이 다 그런 것들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이래 빼앗기든 저래 빼앗기든 뜯기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무슨 상관을 하겠나.

전기차, 반도체산업의 대미투자를 놓고 한국에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식으로 부화뇌동하고 떠들었던 언론과 전문가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누르니 중국이 추격하는 시간을 벌 수 있어서 좋고, 미국 설계능력과 일본 소재부품 장비 기술, 한국업체의 제조기술을 결합하면 반도체 고도화전략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보라. 미국이 보조금이라는 독이 든 미끼로 한국반도체 산업을 집어삼킬 계략을 준비해 왔다는 것을 절절하게 경고한 지식인이 몇이나 되는가. 여전히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경제와 정세를 분석하고 미국과 손잡아야만 살길이 열린다는 식이었다. 이 미국식 자본주의 전파자들은 사실상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약탈을 친미적 전문지식발로 은폐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사우디, 인도에서 배울 점

지정학적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단순히 자본, 토지, 노동력의 투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주권 문제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지금 한국은 자본은 남아도나 투자할 곳이 없고, 토지는 비좁고, 노동력을 저출산 고령화로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성장잠재력이 제로(0)에 접근하고 있다. 올해 IMF가 유난하게 낮은 성장률을 전망한 것도 한국이다.

심각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 문제는 단순한 성장요소투입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제주권의 문제이다. 유럽은 주권을 포기하고 미국 추종 정책을 쓰다가 경제가 개발도상국화되어 가고 있다. 반면 인도나 사우디는 이러한 지정학적 전환기에 능동적인 경제 주권을 행사하며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 모두 이익을 취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대결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의 한 축을 이루는 국가인데, 값싼 러시아 석유룰 수입하는 정책을 구사하고, 오히려 중국과 경쟁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친미 중의 친미국가였던 사우디는 지정학적 격변기를 극적으로 활용하며 탈미 다극화 전략으로 변경하여 중국에 접근하고 브릭스에 합류하려고 하고 있다. 중미 대결 속에서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양측 모두에서 국익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반도체만 놓고 보아도 미국이 자국 내 생산기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못한 지금이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적기이다. 중국시장도 포기하기 하지 않고 미국도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 시기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때를 놓치고 나중에 하면 늦는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한국민의 불행은 이같은 심각한 전략적 격변기, 지정학적 대전환기에 극단적인 종미 친일분자를 대통령으로 세웠다는 데 있다. 그것도 검찰이라는 칼을 휘두르며 밀어붙이는 자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는데 있다. 그러니 반도체산업 하나만 놓고 보아도 상황은 시급한데 별로 뚜렷한 대책이 나올 수가 없고 오히려 상황만 더욱 나빠질 뿐이다.

김장호 기자jangkim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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