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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길 발걸음 ‘꽁꽁’ 묶은 한파···제주공항서 최소 162편 결항

윤기은 기자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공항사진기자단사진 크게보기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공항사진기자단

설연휴 마지막날인 24일 한파와 강풍으로 인해 일부 항공편과 배편이 결항 조치되면서 귀경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묶이게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제주공항을 떠날 예정인 비행기 234편 중 162편이 사전 결항 조치됐다.

대한항공은 이날 제주에서 김포, 부산, 청주, 광주를 각각 잇는 출발·도착 항공편 총 44편 운항을 모두 멈춘다. 제주항공도 오후 3시 이전 출발·도착 항공편 40편을 결항하기로 했다.

제주지방항공청과 공항공사는 제주공항 대설과 강풍에 따른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항공편 변경을 위해 공항에 방문하는 승객을 위한 안내요원을 추가 투입했다.

이날 기상 악화로 인천과 섬을 잇는 14개 항로 중 9개 항로의 여객선 운항도 통제됐다. 이에 따라 인천∼백령도와 인천∼연평도, 인천∼덕적도 등 9개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 11척의 운항이 중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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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삼목∼장봉 등 항로의 여객선 3척은 이날 휴항하며, 강화도 하리∼서검 등 3개 항로의 여객선 4척은 기상 상황에 따라 운항 여부가 결정된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당초 24일 하루 동안 3500명이 여객선과 도선을 이용해 인천과 섬 지역을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인천운항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35분 기준 풍랑특보가 내려진 인천 앞바다와 먼바다에는 3∼5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초속 12∼18m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와 목포, 진도, 완도, 여수 등을 잇는 8개 노선의 여객선 또한 사전 결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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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524] 미국 항공모함은 왜 긴급 대응 작전 포기했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1/23 09:42
  • 수정일
    2023/01/23 09: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01/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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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간첩선에 비공식적으로 승선한 승조원 7명

2. 저인망 어선들이 간첩선을 감시하였다

3. 조선의 무서운 징벌이 시작되었다

4. 나무막대기보다 못한 미국의 핵우산

 

1. 간첩선에 비공식적으로 승선한 승조원 7명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이 미국의 최신형 신호 정보수집 간첩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였던 때로부터 어언 55년 세월이 흘렀다.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전투원 31명이 박정희를 제거하려고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던 1.21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불과 이틀 뒤에 일어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두 사건이 이틀 간격으로 연속 일어나는 바람에 정세는 극단적으로 험악해졌다. 1968년 당시 서울에서 살고 있었던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 철부지였는데, 전쟁이 곧 터질 것 같다고 수군거리던 동네 어른들의 근심 어린 표정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조선인민군의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에 관한 자료들이 지난 55년 동안 남과 북, 미국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산만하게 보도된 자료들을 가지고 심층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에 얽혀있는 깊은 사연을 정밀하게 추적해보자.

 

푸에블로호

취역일 -1945년 4월 7일

재취역일 - 1967년 5월 13일 일반환경조사보조선 2호(Auxiliary General Environmental Research-2)로 위장하고, 신호정보수집 간첩선으로 재취역되었음.

배수량 - 895t

선체 길이 - 54m

선체 폭 - 9.8m

항행 속도 - 시속 23.5km

승조인원 - 장교 6명, 사병 70명

해상 정탐 장비 - 미국의 최신형 신호 정보수집 장비와 무선통신 장비가 탑재되었음. 

무장 - 12.7mm M2 중기관총 2정 

 

1967년 12월부터 미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과 해군은 조선인민군의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해상 정탐작전을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국가안보국-해군 합동 해상 정탐작전에 신호정 보수집 간첩선들인 푸에블로호와 배너호(USS Banner)가 동원되었다. 

 

미국 국가안보국과 해군이 푸에블로호에 내린 비밀지령은 조선 동해안에 접근해 조선인민군이 발신하는 레이더 전파를 감시하고, 무선 교신을 도청하고, 조선인민군 잠수함 엔진이 돌아갈 때 발생하는 기계 동음 음파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잠수함 엔진이 돌아갈 때 발생하는 기계 동음 음파는 잠수함마다 서로 다르므로, 미국군이 음파 정보를 확보하면, 바닷속에서 잠항하는 잠수함이 조선인민군 잠수함인지 미국군 잠수함인지를 식별하고 공격 여부를 신속히 결정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의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해상 정탐 지령을 받은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5일 일본 요꼬스까(橫須賀) 미해군 기지에서 출항하여 1월 11일 일본 사세보(佐世保) 미해군 기지에 잠시 들렀다가 동해로 들어갔다. 

 

푸에블로호의 공식 승조인원은 76명인데, 당시 푸에블로호에 승선한 총인원은 83명이었다. 7명이 비공식적으로 승선한 것이다. 7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푸에블로호에 탑재된 최신형 해상 정탐 장비들을 다루는 특수요원들이었다. 그들은 푸에블로호 갑판 위에 설치된, 지름이 5m나 되는 커다란 포물면 안테나(parabolic antenna)를 사용하여 자기들이 확보한 감시자료와 도청자료를 미국 본토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가안보국에 주기적으로 송신하였다. 

 

1968년 1월 2일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이었던 러쎌 스미스(Russel J. Smith)가 1급 비밀문서를 작성했다. 1968년 1월 3일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장 리처드 헬름스(Richard M. Helms)는 이 비밀문서를 결재했다. 이 비밀문서는 39년이 지난 2007년 12월 기밀해제 조치에 따라 세상에 알려졌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미국 해군 함선 배너호(USS Banner)의 자매 함선인 푸에블로호가 신호 정보수집 함대에 추가로 포함된다. 이 두 함선은 신호 정보수집 함선들의 새로운 활동 영역인 북조선 영해에서 각각 다른 시간에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비무장지대에서 북조선이 취하는 적대적 태도를 보거나, 북조선 영해에 침입한 남한 선박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면, 북조선이 이 두 함선에 대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비밀문서를 보면, 미국은 푸에블로호를 조선 영해로 진입시켜 조선인민군의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해상정탐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고, 푸에블로호와 배너호를 해상정탐작전에 차례로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조선 영해로 들어가 은밀히 해상 정탐을 감행하다가 조선인민군에 발각되어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예상하였다. 그러나 미국 국가안보국과 해군은 그런 위험 예상을 무시하고 푸에블로호를 해상 정탐 작전에 내몰았다. 

 

▲ 북한의 전리품이 된 푸에블로호.     

 

2. 저인망 어선들이 간첩선을 감시하였다

 

1968년 1월 20일 오후, 푸에블로호는 함경남도 신포 마양도 앞바다에 도착해 해상 정탐을 개시했다. 마양도에는 조선인민군 해군 제167잠수함대가 주둔하는데, 조선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안 동굴식 잠수함기지가 그 섬에 있고, 해군 조선소도 그 섬에 있다. 매우 중요한 군사 전략거점들이다. 

 

1968년 1월 20일 해 질 무렵, 조선인민군 구잠정(sub chaser) 1척이 나타나더니 푸에블로호로부터 3.7km 떨어진 해상을 지나갔다. 구잠정은 바닷속에서 잠항하는 적 잠수함을 찾아내어 폭뢰로 격침하는 전투함선이다. 푸에블로호 함장 로이드 부커(Lloyd M. Bucher, 1927~2004)는 조선인민군 구잠정이 자기들 곁을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으로 여기고 안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양도 군사 전략거점에 대한 해상 정탐을 이튿날까지 계속 감행했다. 

 

마양도 앞바다에서 해상 정탐을 마치고 거기를 떠난 푸에블로호는 남쪽으로 내려가 1968년 1월 22일 아침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원산은 조선인민군 해군기지와 잠수함기지가 있는 중요한 군사전략 거점이다. 푸에블로호는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려도의 해안선에서 12.2km 떨어진 영해 안으로 들어가 원산 군사전략 거점에 대한 해상 정탐을 감행했다.  

 

그런데 그날 정오경 뜻밖의 정황이 생겼다. 이에 관한 사연은 당시 푸에블로호 부함장이었던 에드워드 머피(Edward R. Murphy, Jr.)가 최근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회고담에 들어있다. 2023년 1월 20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그의 회고담이 실렸다. 회고담에 의하면, 1968년 1월 22일 정오경 조선의 저인망 어선(trawler) 2척이 나타나더니 푸에블로호로부터 약 30m 떨어진 곳까지 바짝 접근하였다가 사라졌고, 얼마 후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 다시 나타난 저인망 어선 갑판에서 사람들이 푸에블로호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쌍안경으로 살펴보기도 하고 사진 촬영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감시활동이었다. 푸에블로호를 감시한 조선의 저인망 어선은 논1호와 논2호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푸에블로호 함장 부커는 수로측량 활동을 표시한 위장 깃발을 돛대에 올려 걸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육안 관측과 사진 촬영을 계속하면서 푸에블로호를 근접 감시하던 논1호와 논2호는 오후 4시경 어디론가 사라졌다. 푸에블로호는 일본 요꼬하마(橫浜) 인근 가미세야(上瀨谷)에 있는 미국 해군기지 지휘관 해군 소장 프랭크 존슨(Frank L. Johnson)에게 조선의 저인망 어선 2척이 접근하여 자기들을 감시했다는 사실을 무선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는 푸에블로호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상징후에 관한 보고를 받고서도 아무런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그날 밤, 푸에블로호는 자기 주변에서 18척의 선박들이 움직이는 정황을 감시레이더를 통해 포착했다. 오전 1시 45분경 푸에블로호 주변 수역에 있는 조선 선박에서 신호탄이 발사되었으나 조선인민군 전투함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운명의 날이 밝았다. 1968년 1월 23일 아침, 푸에블로호 함장 부커는 푸에블로호가 지난밤에 조선의 해안선으로부터 약 40km 떨어진 먼바다까지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해안선으로부터 21km 떨어진 수역으로 다시 접근해 해상 정탐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국가 주권이 미치는 해역을 영해라고 한다. 원산 앞바다에서 해상 정탐을 감행하던 푸에블로호가 조선의 해안선으로부터 21km 떨어진 수역으로 들어갔던 1968년 당시 조선의 영해 범위는 해안선으로부터 22km에 이르는 해역으로 정해져 있었다. 해안선으로부터 5.5km에 이르는 해역을 영해로 인정한 미국이 자기의 낡은 영해법을 폐기하고, 해안선으로부터 22km에 이르는 해역을 영해로 인정하는 새로운 영해법을 채택한 때는 1977년이었다. 이런 사정은 1968년 당시 조선과 미국이 서로 다른 영해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67년 12월 미국 해군 제7함대 사령부는 푸에블로호를 조선에 대한 해상 정탐작전에 동원하면서, 조선 영해의 외측 한계선은 해안선으로부터 22km에 그어졌으므로, 해안에 접근하되 해안선으로부터 24km 안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 지시를 받은 푸에블로호는 강원도 원산 해안으로부터 21km 떨어진 해역에 들어갔으면서도 자기들이 조선 영해를 침범하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푸에블로호는 조선 영해를 1km 침범한 것이었다. 만일 다른 나라의 선박이나 항공기가 조선 영해 안으로 들어오면, 조선은 그것을 침범으로 간주하고, 격추 또는 격침하거나 나포한다. 자주권을 생명처럼 중시하는 조선은 미국군이 자기 영토, 영해, 영공을 0.001mm만 침범해도 그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조선에서 “미제의 무장간첩선”이라고 부르는 푸에블로호가 조선 영해 안으로 1km나 침범해 적대적인 해상 정탐까지 감행하였으므로, 미국은 격노한 조선의 징벌을 피할 수 없었다.  

 

3. 조선의 무서운 징벌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조선의 무서운 징벌이 시작되었다. 20세기 세계사에 수록된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는 조선이 미국에 내린 무서운 징벌이었다. 

 

1968년 1월 23일은 화요일이었다. 동해의 대기 온도는 영하로 떨어져 날씨는 매우 추웠다. 그날 오후 12시 15분경 동해 수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난 조선인민군 전투함선 1척이 푸에블로호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전투함선은 조선인민군 해군 제155군부대 관하 전투함대에 소속된 구잠정 35호였다.  

 

구잠정 35호 

배수량 - 215t

선체 길이 - 42m

선체 폭 - 6m

항행 속도 - 시속 52km

승조인원 - 30명

무장 - 57mm 함포 1문, 25mm 쌍렬 중기관총 1정, 폭뢰발사기 4문, 폭뢰 12발 

 

푸에블로호로부터 약 900m까지 바짝 다가온 조선인민군 구잠정 35호는 “2분 내로 국적을 밝히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공포에 질린 푸에블로호 해군 병사들은 돛대에 성조기를 올려 걸었다. 바로 그때 조선인민군 P-4 고속어뢰정 3척이 나타나 구잠정 35호와 함께 푸에블로호를 포위했고, 조선인민군 미그-21 전투기 2대가 나타나 푸에블로호 선체 위에서 낮은 고도로 선회하며 위협 비행을 하였다. 잠시 후에는 P-4 고속어뢰정이 1척 더 현장에 나타나 가세했다. 푸에블로호는 독 안에 든 쥐처럼 조선인민군 전투함선 5척의 포위망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푸에블로호는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려고 단말마적인 몸부림을 쳤다. 바로 그 순간,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의 함성과 함께 57mm 함포와 기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57mm 포탄 한 발이 푸에블로호 갑판 위에 높이 달린 포물선 안테나에 정확히 명중했다. 명중탄 한 방으로 5m 지름의 원형 표적을 날려버리는 놀라운 포격술이었다. 포물선 안테나 파편 조각들이 푸에블로호 갑판에 우박처럼 우두둑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구잠정 35호가 57mm 함포를 푸에블로호 흘수선으로 발사하지 않고 포물선 안테나로 발사한 것이나, P-4 고속어뢰정 4척이 어뢰를 발사하지 않고 기관포를 발사한 것은 그들이 격침 전투가 아니라 나포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푸에블로호 선실에서는 미국 해군 병사들이 조선인민군에게 기밀문서를 압수당하지 않으려고 약 1,000kg이나 되는 문서 더미를 쌓아놓고 허겁지겁 불을 질렀고, 도끼와 망치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선실 내부의 전자 장비들을 파괴하는 소동을 피우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전투함선 5척은 죽음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푸에블로호를 향해 기관포를 사격했다. 긴급구조를 요청하라는 함장의 명령을 받은 무전병 돈 베일리(Don Bailey)는 일본 가미세야에 있는 미국 해군 제7함대 기지에 긴급구조요청신호를 날렸다. 

 

푸에블로호가 항복하지 않자 조선인민군 전투함선들은 또 다시 두 차례 사격을 퍼부었다. 미국 해군 병사 3명이 비명을 지르며 선실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기관총수 두웨인 하지스(Duane Hodges)는 직격탄을 맞고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포위망에 걸려든 푸에블로호는 격침당하거나 아니면 항복해야 하는 절망적 상황에 빠졌다.

    

구잠정 35호가 푸에블로호 선미에 달라붙었다. 조선인민군 전투원 4명은 번개처럼 푸에블로호로 옮겨 타고 습격전을 벌였다. 전투원들은 조타실에 들이닥쳤다. 조타실에서는 함장 부커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서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누가 함장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손가락으로 부커를 가리키면서 서툰 로씨야 말로 “까삐딴?”이라고 물었다.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부커는 공포에 질린 두 눈을 껌벅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조타실 작전 탁자 위에 놓인 종이와 연필을 가져가 해군 장교 모자를 쓴 사람 얼굴을 쓱쓱 그리더니 그것을 부커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제야 부커는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자기를 찾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체념한 듯 손짓으로 자기가 함장이라고 알렸다.  

 

푸에블로호를 습격한 조선인민군 전투원 4명은 함장 부커를 비롯하여 해군 장병 82명을 전원 포로로 생포했다. 조선과 미국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후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했으므로, 푸에블로호 해군 장병들은 전쟁포로로 생포된 것이다.

 

미국 해군 전쟁포로 82명은 푸에블로호 갑판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푸에블로호 취침실에 있는 침대보를 찢어 전쟁포로들에게 나누어주고 뒷사람이 앞사람의 두 눈을 가리고 두 손목을 차례로 묶으라고 명령했다. 두 눈이 가려지고 두 손목이 뒤로 묶인 미국 해군 전쟁포로 82명은 항복의 표시로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이 극적인 장면은 세계 최강이라고 떠들어대는 아메리카제국이 사회주의조선과의 대결에서 완패를 당하고 무릎을 꿇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갑판에 쪼그리고 앉은 미국 해군 전쟁포로 82명은 살을 도려내는 동해의 겨울바람을 온몸에 맞으며 원산항으로 끌려갔다. 푸에블로호가 원산항에 입항한 시각은 당일 오후 7시경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두 손이 꽁꽁 묶인 그들은 바지를 입은 채 오줌을 싸는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강이라고 떠들어대는 미국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 푸에블로호 미군 수병들이 나포되어 북에 끌려가는 모습과 영해를 침범하여 간첩행위를 했음을 인정한 미군들의 자필 진술서.    

 

4. 나무막대기보다 못한 미국의 핵우산

 

조선인민군이 오후 12시 15분경에 개시한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는 오후 3시 45분경에 조선인민군의 완승으로 결속되었다. 미국 해군 함선이 총 한 방 쏴보지 못한 채 적국 해군에 나포된 사건은 미국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가장 충격적인 치욕 사건이었다. 조선인민군이 미국 해군 간첩선을 나포해 원산항으로 끌어갔다는 엄청난 소식은 전파를 타고 널리 퍼졌다. 조선에서 승리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워싱턴은 경악과 충격으로 발칵 뒤집혔다. 전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인류 공동의 적인 미제의 면상을 보기 좋게 후려친” 조선의 강용한 모습을 찬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관련하여 워싱턴에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것은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끌려가는 위급한 정황에서 미국 해군 제7함대는 긴급구조요청을 받았는데도 왜 아무런 대응 작전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의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인민군 해군에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끌려가던 바로 그 시각,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32,000t급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USS Enterprise)가 원산에서 남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해상에 있었고, 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F-4 전폭기 2대가 항공모함 주변 공역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었고, F-4 전폭기 4대가 항공모함 비행 갑판 위에서 무장을 갖추고 즉시 출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초계비행 중이던 F-4 전폭기 편대가 원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면, 30분 만에 사건 현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위급한 정황에 빠진 푸에블로호가 긴급구조요청을 무선통신으로 보낸 시각은 당일 오후 12시 30분경이었고, 조선인민군 해군에 나포된 시각은 당일 오후 3시 15분경이었다. 그러므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에서 긴급발진한 F-4 전폭기 편대가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약 2시간 45분이었다. 그러나 30분 만에 사건 현장에 도달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면서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는 푸에블로호 구출작전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사실상 포기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왜 푸에블로호 구출작전을 포기한 것일까?

 

미국의 해군사 연구가 케네디 힉크먼(Kennedy Hickman)은 ‘냉전: 푸에블로호 사건(Cold War: USS Pueblo Incident)'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케네디 힉크먼의 논문에 의하면, 당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에 함재기로 배치된 F-4 전폭기들은 공대공미사일만 장착했고, 공대함미사일은 장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F-4 전폭기들에 장착된 공대공미사일을 공대함미사일로 바꿔 달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군사력사 연구가 세바스티엔 로빈(Sebastien Robin)은 ‘북조선의 위기: 1968년에 평양은 미국인 82명을 생포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공격하지 않았다(North Korea Crisis: Back in 1968, Pyongyang Captured 82 Americans (But Washington Did Not Attack)"는 제목의 논문에서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세바스티엔 로빈의 논문에 의하면, 사건 당일 푸에블로호가 보내온 다급한 구조요청을 받은 미국 해군 제7함대는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긴급히 연락하여 미국 공군에 구출 작전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미국 공군은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F-105 전폭기 12대를 긴급출격시켰으나, 그들은 원산 앞바다를 향해 비행하다가 한(조선)반도 남측 상공에서 기수를 돌려 가데나 공군기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서술내용들은 이치에 닿지 않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당시 오산 미공군지지과 군산 미공군기지에 F-4 전폭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전폭기들을 긴급출격시켰다면,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얼마든지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은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적국에 나포된 해군 함선을 구출하는 작전을 포기하는 엄청난 정치적 결정을 내릴 권한은 최고 권력기관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만 행사할 수 있다. 1968년 1월 24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은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백안관 국가안보회의를 긴급히 소집했는데, 그 회의에서 푸에블로호 구출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포기 결정에 관한 백악관의 비밀문서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날 백악관의 포기 결정에 참가한 당시 국무부 장관 딘 러스크(David Dean Rusk, 1909~1994)의 발언을 들어보면 전후 맥락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1968년 1월 24일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를 논의, 결정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했던 딘 러스크는 1월 26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했다. 극도로 민감한 푸에블로호 구출문제를 다루는 비공개 청문회였으므로, 회의록은 당연히 비밀문서로 분류되었다. 회의록은 42년이 지난 2010년 7월 14일에 기밀 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회의록에 의하면, 당시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한 국무부 장관 딘 러스크는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조선에 군사 보복을 감행하는 경우, 조선이 대미전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의록에 의하면, 비공개 청문회에 참석한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 셔먼 쿠퍼(John Sherman Cooper, 1901~1991)는 미국이 윁남전쟁을 하고 있는 판에 조선전쟁도 일어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므로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의록에 의하면, 그 자리에 참석한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 칼 문트(Karl E. Mundt, 1900~1974)도 미국은 윁남전쟁이 끝날 때까지 또 다른 전쟁을 벌이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1968년 당시 미국은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능력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은 자기들이 중시하는 최신형 신호 정보수집 간첩선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료에 의하면, 1968년 당시 주한미군기지의 핵무기 저장고에는 전술핵무기가 무려 950발이나 비축되어 있었고, 그것을 탑재할 F-4 전폭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1968년 당시 조선은 핵무기를 한 발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잔뜩 쌓아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전술핵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결정 능력과 군사적 작전 능력을 갖지 못했으면, 전술핵무기는 수류탄보다도 못한 것이다. 

 

55년 전 조선인민군의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 승리는 미국의 핵우산이 굉장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지금 조선은 전략핵무력과 전술핵무력을 완비한 핵강국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변화된 정세에서 미국의 핵우산은 말이 핵우산이지 나무막대기만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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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인근 음력 설 행사서 총격사건··· 최소 10명 사망

김태훈 기자
 

미국 로스엔젤레스 인근 몬트레이 파크에서 21일(현지시간)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현지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로스엔젤레스 인근 몬트레이 파크에서 21일(현지시간)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현지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도시에서 음력 설 행사 직후 최소 10명이 숨지는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AP통신, LA타임스 등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오후 10시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몬터레이 파크 시내 가비 애비뉴에 있는 한 댄스클럽에서 한 남성이 반자동 총기를 난사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이날 사건으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으며 “용의자가 현장에서 달아나 처리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밝혔다. 부상자들은 가까운 의료시설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까지 용의자가 검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신원도 발표되지 않았다.

몬터레이 파크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약 16㎞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6만명의 도시로, 아시아계 주민이 약 65%에 달해 인구비중이 높은 곳이다. 이날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열린 2일간의 음력 설 축제 기간 중 첫 날이어서 사건 발생 직전 근처의 축제 현장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모였다.

미국에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급증한 바 있다. 때문에 중국,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계 인구가 밀집한 이 지역에서 열린 음력 설 축제 기간에 맞춰 또다시 혐오범죄 성격을 띤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지 경찰은 아직까지 용의자의 신원과 행방, 범행동기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사건 현장인 댄스 클럽에 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주민 웡웨이는 그가 화장실에 있을 때 총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실에서 나온 뒤 총격을 가하는 용의자 주변에 시신 3구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바깥으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가 본 시신 중에는 해당 댄스클럽의 주인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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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사건이 발생한 길 건너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씨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명이 자신의 영업장에 뛰어들어와 ‘문을 잠그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총격을 피해 최씨의 식당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또한 최씨에게 “범인이 여러 발의 탄약을 소지하고 재장전이 가능한 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가비 애비뉴 주변에 출동한 경찰관과 구조대원들이 피해자들을 이송하는 영상과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을 총기난사로 규정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사결과를 계속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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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송출중단에 통일TV “외부 압력받은 것 아니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1/23 08:45
  • 수정일
    2023/01/23 08: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KT “북한 이념 체제 우월성 선전해 계약해지 통보”…여권에서도 통일TV에 부정적

통일TV “KT 시대착오적 태도, 제재 납득할 수 있어야” 행정소송 검토

KT가 지난 18일 통일TV의 송출을 중단해 논란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 국가정보원이 간첩 수사 상황을 보수매체를 통해 흘리며 공안정국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경찰도 건설노조 등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서는 분위기에서 북의 상황을 알리는 방송의 송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통일TV 측은 “북 관련 정보만 통제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비정상적 상황이 분명하다”며 이번 결정에 대해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진천규 통일TV 대표의 지난해 11월 국회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통일TV는 지난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방송채널사용사업 등록증을 받고 지난해 8월17일부터 IPTV 채널 올레tv(현 지니TV)에서 24시간 방송을 송출했다. 진 대표가 2017년 10월 개인 자격으로 방북 취재를 시작해 18차례 방북 취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측의 저작권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저작권사무국과 10개월 동안 평양에서 협의해 2018년 8월 통일TV와 협력하겠다는 북측 공식문건을 발급받았다.

 

이후 진 대표는 2019년 1월과 7월 과기부에 북한 관련 콘텐츠를 24시간 전문편성하는 통일TV 등록을 2회 신청했지만 과기부는 방송법 제6조 ‘방송의 공익성을 심히 저해할 우려’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진 대표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등록 요건을 모두 갖췄음에도 추상적인 방송법 조항을 과도하게 적용해 발생하지도 않은 과도한 우려를 이유로 PP등록을 불허한 것이 위법·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외교부, 국정원, 통일부 등 여러 부처에서 통일TV 등록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고 특히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통일TV 준비위원회 상임고문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종찬 전 국정원장, 권영길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행정심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일TV는 지난 2020년 11월 세 번째로 과기부에 등록신청서를 접수했고 지난 2021년 5월 등록증을 받았다. 진 대표는 “지난해 10월7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북한방송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며 권 장관이 이러한 내용을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한 사실을 함께 거론했다.

 

이런 가운데 KT가 “IPTV 채널 평가 과정에서 통일TV(채널번호 262)가 김정은 찬양, 북한 이념·체제의 우월성 선전 등에 관한 내용을 지속 방송해왔음을 확인했다”며 “이는 당사와 채널 공급 계약서상 법적·국가적·사회적 공익을 중대하게 저해하는 행위로 방송사업자로서 공적 책임 수행과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해 18일자로 통일TV와 계약해지·송출을 긴급히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지니TV는 이후 262번 채널을 통해 “지니TV에서 제공 중인 통일TV는 방송 프로그램 내용상 문제 등으로 인해 고객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방송 프로그램 제공이 중단됐음을 안내한다”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이어 “관계 법령을 준수하고 방송사업자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고객님께 더 좋은 방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고 KT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 지난 19일 SBS 보도화면 갈무리

 

SBS 19일자 보도를 보면 조선중앙TV 영상을 소개하면서 방송 진행자가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한 지 10년, 가장 앞세운 화두는 인민대중 제일주의였다”라거나 “자력갱생의 의지에서 비롯된 ‘주체철’의 탄생,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도 눈여겨봐야 할 역사인 것 같다” 등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TV 승인 과정에 대해 “어떻게 정상 채널로 편성되어 반영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통일TV 채널 (사업자) 등록을 허락한 것에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따져봐야 되겠다고 보고 있다”고 한 발언도 함께 리포트에 담았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통일TV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것이다.

▲ 진천규 통일TV 대표(오른쪽). 통일TV 홈페이지 첫 화면 갈무리

 

이에 통일TV 측은 20일 “KT는 그 어떤 주의나 경고 단 한 번 없이 방송송출 폐쇄조치를 단행했다”며 “그야말로 30년 케이블 방송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거를 자행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통일TV는 “(프로그램) ‘북녘의 하루’는 북의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방송한 내용을 정리 분석해 편견과 선입견 없이 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시청자 여러분께 알리는 프로그램”이라며 “우리로 치면 KBS인데 최근 북 방송의 가장 큰 변화로는 다양한 생활정보 및 여러 형태의 공익광고, 뮤직비디오 형식의 음악방송도 등장하고 코믹 드라마도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북 사회의 기본 언론관으로 북은 혁명운동의 선전선동 도구로 언론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체제우월성 선전과 지도자의 연설 혹은 현지지도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져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중앙TV를 전하는 것에 대한 특수성을 설명한 대목이다.

 

통일TV는 “제작팀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은 북의 방송 자체가 찬양과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바 아무리 공들여 편집을 해도 북의 생생한 방송이 전파를 타는 순간 언제든 민원이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라며 “설립당시부터 늘 염두에 두었던 원칙은 북의 실상을 생생히 전달하되 이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긴다는 것”이라고 했다.

 

“함부로 비난의 칼날을 대지 않고 그렇다고 미화해서도 안 되는” 이유에 대해 통일TV는 “아직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조건도 감안해 통일TV 제작팀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는 보람으로 성실하게 방송해 왔고 북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KT 측에 “도대체 어느 부분이 어떤 법률을 위반했는지, 무엇이 공익을 해쳤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무조건 체제선전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송출중단을 시켰는데 그렇다면 북 방송을 아예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통일TV는 지난해 7월22일 정부가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텔레비죤’ 등 북 언론에 대한 국내 공개 허용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것을 거론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의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있는 국민들에게 북 관련 정보만 통제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비정상적 상황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KT의 결정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태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며 “어떤 방송국에 대한 제재를 할 때는 그 절차가 투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출석요구, 소명의 기회조차 한번 없이 송출부터 중단한 것은 그 어떤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임직원 생존권 문제도 언급했다. 통일TV는 “방송은 각종 기자재 설비를 갖추는데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기획, 촬영, 편집 등 다수의 제작종사자를 필요로 한다”며 “임직원 일동은 KT의 일방적 방송 송출 중단조치는 통일TV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정으로 규탄하며 하루빨리 다시 송출 정상화시킬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통일TV는 “평와와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변호사들과 연대해 방송송출 중단의 부당성을 알리고 함께 투쟁하겠다”고 했다. 통일TV 측은 이번 중단 조치에 대해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다.

 

※ 미디어오늘은 여러분의 제보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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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세대'가 '산업역군' 기업에 보내는 충고

[현장] 출범 이후 1년 지난 한국의 '그레이 그린' 운동 60+기후행동

이상현 기자  |  기사입력 2023.01.22. 08:32:59 

 

"저희는 산업화와 그 다음에 성장체제를 만들어온 세대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돌아보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장의 엄청난 그늘에 대해서, 그리고 그 그늘 안에서 살아갈 많은 약자들과 청년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어요."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

 

책임에서 비롯된 마음일까. 추운 날씨였지만 초록색 목도리를 두른 60대 나승인 씨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종이 한 장을 나눠주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에 위치한 포스코타워 앞이다. 19일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들에게 나 씨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종이를 건넸다. 포스코그룹 계열사인 삼척블루파워가 강원도 삼척에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이다. 

 

양복을 입고 사원증을 두른 이들은 슥슥 몸을 피해가며 나 씨의 손을 그대로 지나쳐 갔다. 오히려 초록색 목도리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노인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쁘다. 

 

속상할 법도 하지만 나 씨는 "날씨가 추우니까 주머니에서 손을 안 빼는 거지"라며 되려 웃었다. 뽑아온 종이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지만 "두고두고 나눠주면 된다"며 차곡차곡 모아 다시 챙겨갔다. 

 

나 씨는 이날 전라북도 무주에서 올라왔다. 원래 교직에 종사하던 나 씨는 지역 마을교육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가 퇴직 무렵, 기후위기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를 실감했다. 어느 정도 마을교육 기반을 닦았다고 생각한 그는 노년의 새로운 목표로 '기후운동'을 선택한 채 '60+기후행동'에 가입했다.

 

 

 

 

 

 

기후위기 대응하는 할아버지·할머니...탑골공원에서 포스코타워로 오기까지

작년 1월19일, 탑골공원에서 모인 실버세대가 "기후위기 대응 노인이 함께 하겠습니다" 외친 일은 한국의 그레이 그린(Grey Green) 운동의 상징이 됐다.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된 60+ 기후행동은 '노인 보호구역'이라고 불리는 탑골공원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겨내는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 노인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 이후 1년 뒤인 2023년 1월19일, 여전히 지구가 불타고 있는 시급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119' 역할을 하겠다는 노인들이 119(1월19일)에 다시 모였다. 이번엔 포스코타워 앞이다. 본인들이 경험했고, 만들어온 '산업문명'의 두 얼굴을 다시 한 번 직시하겠다는 위치 선정이었다. 

 

초록색 목도리와 모자를 쓴 60+기후행동 회원 20여명은 철강 산업으로 산업화를 함께 이끌어온 포스코에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산업화 세대가 '산업역군' 기업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충고였다. 

 

"우리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이끌고 친환경·저탄소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포스코의 노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는 온실가스 위에 쌓아올린 성이며, 지금도 그 성을 높여가고 있다. 

 

포스코의 탄소 중립 노력을 수포로 돌려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삼척 석탄 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하고 대신 진정한 시민기업으로서 지구와 미래, 그리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탄소중립의 실현에 앞장서 주길 요청한다."

 

산업화 세대로서 충고를 보낸 회원들은 느린 걸음으로 피켓을 들고 건물 앞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60+기후행동만의 특별한 움직임인 '어슬렁 시위'다. 각을 맞춰 행진하고, 구호를 외치는 보통의 행진과 달리 이들은 손수 적어온 피켓을 들고 건물 앞을 그냥 돌아다닌다. 

 

삼삼오오 짝을 맞춰 돌아다니는 이들은 별다른 구호를 외치지도 않고 그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어슬렁 어슬렁 건물 주변을 돌아다닌다. 가끔씩 신명나는 소리의 꽹가리를 치기도 하지만, 배회하는 걸음은 차분했다.

 

▲2022년 1월19일 탑골공원에서 발대식을 가진 60+기후행동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23년 1월19일, 서울강남구 포스코타워 앞에 섰다. ⓒ녹색연합

 

노인들이 만들어가는 누구보다 젊은 기후운동 

 

"어떻게 보면 제일 '꼰대'스러운 집단인데 그 반대로 운동 방식이 제일 젊고 재밌다고 하시더라구요."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가 어슬렁 돌아다니며 말했다. 윤 대표는 "Only one earth(하나뿐인 지구) 너희도 지구도 행복한 세상을!"이라고 파란색,초록색으로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젊은 기후운동'이라 말하는 건 본인의 평가가 아니라 주변의 평가라고, 연말과 새해에 소위 말하는 '386' 운동권 출신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그렇게 연락이 왔다고 덧붙였다. 한 활동가는 "2022년 가장 '핫'한 시민운동"으로 60+기후행동을 꼽았다고도 말했다. 

 

윤 대표는 60+기후행동이 얼마나 재밌게 활동하는지, 얼마나 '핫'한지에 대해 웃으며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60+기후행동 회원들로 구성된 밴드 '방탄노년단'이다. 

 

단체 창설 이후 전체 모임을 기획했더니 120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처음 회원들을 만나는 자리니까 재밌는걸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회원들이 밴드를 꾸렸다. '광야에서' 등 3곡을 부르며 밴드는 '대박'이 났고, 회원이었던 한 시인이은 '방탄노년단'(BTN)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윤 대표는 회원들과의 만남을 설명하며 "너무 재밌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Only one earth(하나뿐인 지구) 너희도 지구도 행복한 세상을!"이라고 파란색,초록색으로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프레시안(이상현)

 

누구보다 젋게 활동하는 60+기후행동을 이끄는 대표 중 한 명이 윤정숙 공동대표다. 현재도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한국에는 없던 새로운 운동방식"이라고 지난 1년 간의 60+기후행동을 평가했다.

 

지금까지는 없던 노년들의 젊은 기후행동에 60세 이상의 그레이 세대가 반응했다. 활동을 기획했을 때부터 "하루에도 수 십명씩" 가입 문의가 쏟아졌다. 현재는 200명이 넘는 회원이 함께한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주마다 '줌'(화상회의)을 통해 만났고, 올해에는 지역 지부 설립도 앞두고 있다. 

 

회원들은 1년 동안 '기후현장'을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산호초가 죽어가는 제주 해변, 구상나무가 쓰러져 가는 지리산 정상, 석탄발전소가 들어서는 삼척 해변 등지"에서 60+기후행동 회원들은 어슬렁거렸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불러주셨어요. 안 간 곳이 없어요. 부산도 가고, 충남도 가고 그랬죠. 그리고 청년들이 그렇게 많이 불러줘요. 저번에는 청년기후기후긴급행동과 두산중공업의 재판 현장에도 회원들과 찾아가기도 했죠. 피켓에 뭐라고 적을까 생각하다가 '너희들이 옳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렇게 적어서 찾아갔죠." 

 

윤 대표는 청년들과의 연결점을 강조했다. "기후위기는 미래세대의 일"만은 아니라며 기후위기 앞에서 '세대갈등'은 없다는 게 60+기후행동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10대~50대로 구성된 자문위원을 두고 활동을 공유하고, 조언을 받기도 한다. 노년층만의 운동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문제'인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늘 세상에서 세대갈등이 어쩌고, 제로섬(Zero-sum) 게임처럼 말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잖아요.  이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 (노년과 청년이) 손잡을 수 있고, 손 잡자고 우리가 얘기를 하고 있어요. 기후위기에서 세대 갈등만 얘기하지 말고 세대 연결, 연대, 협력 이런 거 만들고 싶어요." 

 

▲2021년 60+ 기후행동 출범선언에 참여한 오지혁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다른 세대와의 연결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환경정의

 

기후운동의 '뒷배'이자 노인들과의 동행 

 

60+기후행동 회원들은 함께 어떻게 청년들의 '뒷배' 역할을 해주면서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작년 회의에서 '전체 재산의 10%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상속하자'라는 논의가 나온 이후 올해는 '청년 기후활동가 기본소득'도 구상 중이다. 모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기후운동을 하다보니까 기본적인 생활의 안정이라는 게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것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 때와는 다르게 지금 세대는 학생운동하고 감옥갔다 오고 그런 세대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활동가들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기후운동을 하는데 다시 생계 문제에 봉착해서 다니고 싶지 않은 회사로 돌아가야 하고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 운동권 친구 중에 돈 많이 번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자'라고 생각했어요. 이 일은 개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면서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유형·무형의 상속을 앞으로 계속해나갈 겁니다." 

 

은퇴하는 동년배들을 위한 교육도 기획 중이다. "성인이 된 이래 30~40년간 자신을 지탱해온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할 수 있는 교육이다. 이른바 60+인생전환 아카데미다.

 

윤 대표는 이 교육을 통해 “다른 세대랑 어떠게 손잡을 것인가, 사회적 불평등이나 자기 삶의 방식을 어떻게 전환해볼까” 고민할 수 있는 ‘신바람’ 나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이상현)

 

"우리 세대가 다급함, 책임감, 연대감 가져야죠" 

 

인자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동과 회의를 계속해나가는 60+기후행동이지만 현재 상황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점은 회원들이 공유하는 의식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이유도 "열정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돌아가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급하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에너지 계획보니까 너무 좌절스럽더라고요. 재생에너지 줄이고, 석탄 유지하고, 원전 올리고 이런 거는 너무 좌절스럽더라고요. 그런 거에 대한 다급함을 느껴요. 세계적으로는 청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막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 것에 비해 지금 우리 기존 세대, 시니어 세대들은 그것에 대한 다급함, 책임감, 연대감 이런게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도 하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거죠." 

 

뭐라도 해야겠는 60+기후행동은 올해도 다급하게, 그러나 재미있는 활동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적게는 5000원부터 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이, 회비를 내면서 시인,언론인,교수,활동가,예술인 출신의 노인들이 기후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 시대를 돌파해오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던 저력이 있어요. 올해도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봐야죠."

이상현

사라지는 것과 잊혀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과 기후변화를 공부했다. 들리지 않았던 말까지, 끝까지 듣는 기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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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의 직격] 못 살겠다, 갈아보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에 반발하며 퇴장하고 있다. 2022.12.11. ⓒ뉴스1

 
설 연휴를 맞는 마음이 편치 않은 시민이 많을 것같다. 고금리, 고물가, 난방비 폭등, 일자리 불안, 쌀값 하락, 남북관계 악화 등등.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생활비는 늘어나는데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도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서 말로 사고를 치고,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국회의원들은 사탕발림같은 문자나 보내고 현수막이나 걸고 있다. ‘정치의 부재’ 또는 ‘정치의 실종’ 상황이다.

이런 상황인데 명절에 가족들과 친인척들이 모이면 정치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평소에는 관계가 좋다가도, 정치 얘기만 나오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얘기의 주제가 어느 정당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다른 정당은 또 다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긍정적인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는 어떤 잘못을 했고, 어느 당은 이래서 안 되고’ 하는 부정적인 얘기가 명절 밥상 위를 뒤덮고 있다.

무능, 독선, 부패의 원인인 승자독식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을 가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정당도 존재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좀더 나아가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표도 공정하게 인정되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정당의 표도 공정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권력도 득표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 그게 공정한 시스템이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22.06.01 ⓒ민중의소리

지금의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만 키우는 역할을 하는 배경에는 승자독식의 정치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만약 51%의 지지를 받으면 51%에 해당하는 권력만 가지는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소수파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불만이 적을 것이다. 소수파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들도 그만큼의 권력을 나눠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51% 또는 그 이하의 지지를 받았는데, 100%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시스템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불만이 생긴다. 소수파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않는 것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100% 권력을 가지게 된 쪽에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권력에 취해 독선을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권력을 가진 쪽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상당수도 실망해서 돌아서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딱 그렇다. 50%도 안 되는 득표율로 집권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마음대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는가 하면, 민생 대신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여당 대표 선거까지 개입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것은 여당인 ‘국민의 힘’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통령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대부분도 1표라도 더 많이 받는 쪽이 당선되는 시스템이다. 2등, 3등 후보를 찍은 표는 사표가 된다. 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생각과 마음은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선거에서 진 쪽도 더 잘해서 다음번 선거에서 이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권력을 쥔 쪽이 잘못하는 것만 비판ㆍ비난하려고 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정책으로 경쟁할 이유가 없다. 정책을 연구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무능ㆍ독선ㆍ부패를 지적하면서 심판하자고 하는 편이 훨씬 쉽다.

비수도권 지역의 어려움도 승자독식 때문

이것은 국가 단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도 일어난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승자독식의 구조에 지역주의까지 작용하면서, 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수십 년 이상 집권하는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이렇게 되면 지역에서 100% 권력을 가진 쪽은 나태하고 게으르기 쉽다. 어차피 자신들이 선거에서 이길 것이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까지 장악하고 있다.

정치세력 간의 ‘의미있는 경쟁’이 없다 보니, 정책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지배정당의 공천을 누가 받느냐만이 중요하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낙하산 공천, 줄서기 공천이 등장한다. 그래서 지역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선출직들이 권력을 잡는다.

이런 지역일당 지배체제가 흔히 ‘지방소멸’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낳았다. 지역정치에서 경쟁이 상실되다 보니,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한 사업들만 펼쳐진다. 예산은 낭비되고 대안은 논의되지 않는다. 지역에서는 사람이 빠져나가고 지역 자체가 침체하고 정체되어도, 선출직들은 오로지 차기 선거에서 ‘한번 더 해 먹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이다.

중앙에서 예산이나 개발사업을 따 온다고 해도, 생색내기에 그치거나 근시안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지역에 사람이 모이고 지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특정정당이 지역을 일당 지배하고 있지만, 100% 유권자들이 이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은 아니다. 대구ㆍ경북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가 20-30% 정도 있고, 호남에도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표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표가 상당수 있다. 그러나 그 표들은 대부분 사표가 되니,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

이처럼 ‘의미있는 경쟁’이 사라진 지역정치는 비수도권 지역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1950년대 선거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등장했었다. 그 당시의 구호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 정권을 바꿔보자는 구호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사람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는 희망을 주지 못해 왔다.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국회 사무처에서 21대 국회의원 뱃지를 공개하고 있다. 2020.04.13 ⓒ민중의소리
지금의 집권세력이 너무나 싫어서 ‘일단 바꿔보자’는 얘기에 공감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집권세력을 바꾼다고 해서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가 해결될까?’ 라는 질문에 과연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사람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지금 가장 먼저 갈아치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승자독식과 지역일당 지배체제를 낳은 선거제도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표심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의 일당 지배체제를 타파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 방안으로 거론되는 여러 제도들이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접점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통령도 최소한 결선투표제로 뽑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강화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시민혁명은 이런 시스템의 개혁으로 이어져 왔다. 4.19. 혁명은 헌법개정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헌법개정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군사쿠데타로 퇴보를 했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계를 맞았든, 그래도 당시에는 제도 개혁의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2017년의 촛불은 제도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것이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최대 실책이다. 충분히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의 윤석열 정권을 낳은 원인이기도 하다.

만약 탄핵에 참여했던 ‘탄핵연합’을 선거제도 개혁과 헌법개정의 ‘정치시스템 개혁연합’으로 이어갔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맞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선거제도부터!!
 
“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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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지만 도전하는 거죠,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와 시니어 배우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한국사회는 오는 6월이면 전 국민이 1년에서 2년까지 나이가 어려진다. 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이른바 ‘만 나이’로 바뀌며 발생하는 전 국민의 연소화다. ‘외국과 계산법이 달라 불편하다’는 표면상 이유와 별개로 한국인의 나이는 사회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특히 나이를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진 노인세대의 등장은 과거의 ‘상식’을 현재의 ‘편견’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노인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이들은 과거 한국사회의 문화, 가치, 소비 등의 변화를 이끌었던 베이비붐 세대와 이른바 X세대다. 한국 인구 구조상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흔히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이중 맏이인 1955년생 77만명은 이미 2020년 65세로 법정 노인인구 대열에 합류했다. 막내인 1963년생 역시 올해 60대에 진입한다. 이들에 뒤이어 X세대가 노인세대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중위연령인 44.3세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다. 연령대에 대한 정의에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4050세대가 X세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대 스스로 본인이 ‘노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2년에 한 번씩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를 발표한다. 지난해 12월 제9차(2021년도) 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조사기간은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였고, 조사대상은 4024가구다. 개인 기준으로 따지면 6329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노후생활에 대한 조사다. 이때 노후시작 연령은 ‘노인이 됐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응답자들은 평균 69.4세를 노후시작 연령으로 인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0대 미만은 67.9세를 노후시작 연령으로 삼은 반면, 50대는 68.8세, 60대는 69.1세, 70대는 70.1세 등으로 점차 노후시작 연령을 높게 잡았다. 쉽게 말해, 한국사회의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등은 앞으로 최소 10여년은 자신을 노인으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60대지만 도전하는 거죠,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법적 정의와 사회적 인식 사이에서 발생한 괴리는 ‘젊은 노인(YOLD·욜드)’이라는 모순적 단어를 만들었다. 이를 굳이 ‘뉴 그레이’, ‘액티브 시니어’ 같은 영어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노인을 두고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건 아니지만 기업들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Grey is The New Pink)’라는 표제 아래 다양한 시도를 쏟아내고 있다. 나잇대별로 공략 가능하던 목표 상품(for aged)들이 이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상품(ageless)로 대체되고 있다. 2040세대가 즐겨찾는 스타벅스, 애플, 테슬라 등의 상품을 5060세대 역시 똑같이 선호하는 현상이 시장에선 이미 나타나고 있다.

패션업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엄마와 딸이 옷장을 공유하는 콘셉트의 화보가 등장한다. 대중이 쉽게 찾는 스파(SPA) 브랜드의 경우 애초에 나이 구분 없이 의류를 판매한다. 취미·여가 활동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에 ‘중년 부부 캠핑’만 검색해봐도 5060세대가 떠난 캠핑 동영상이 쏟아진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기던 활동적인 취미 분야에까지 젊은 노인들이 큰 손으로 등장했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일시적 취미생활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인생 2막을 여는 경우다. 이는 평생 매달렸던 직업과 ‘결별’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나이’로 인한 신체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중문화, 예술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른바 ‘시니어 배우, 모델’의 등장이다. 주간경향은 단순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변화를 보기 위해 시니어 배우 지망생들을 찾아나섰다. 60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꿈을 찾은 ‘어르신’들의 찐한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곧 설 연휴다. 부모님을 만나뵙고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한번 여쭤봐도 의미 있는 일이 될 듯하다.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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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훤칠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녀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간에 속속 모여들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아니면 생김새만으론 나잇대를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동그랗게 배치된 의자에 앉아 파란 표지의 책에 각자 열중해 있는 이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누군가 공부하는 중년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딱 그 모습이었다.

오후 2시가 되자, 손에 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든다. “연습 시작하죠”라는 소리에 맞춰 다소 느슨해져 있던 분위기가 이내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모두 12명이 정확한 순서에 맞춰 미리 준비한 말들을 딱딱 내뱉었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TV 드라마나 연극을 보는 듯했다. 사실 이들이 맞춰보고 있는 것은 실제 연극의 한 부분이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를 제외하면 이 공간에 모인 사람 모두 평생 배우활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살아왔다는 점이다.

연극의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은 로렌조박(활동명)은 올해로 예순다섯 살이 됐다. 평생 패션·광고대행사에서 일했다. 2021년 연기를 시작했다. ‘왜 60이 넘어 연기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상 마흔다섯 살 정도면 정년인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했다”며 “평생을 남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해왔는데 한 번쯤은 ‘내가 주인공이 돼서 해보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 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 “나이를 이유로 망설이며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살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시니어 배우 로렌조박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시니어 배우 로렌조박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시대가 변했다. 이미 외모만으로는 한 사람의 나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해진’ 사회적 상황 역시 나이에서의 해방을 재촉한다. 특히 고도경제 성장 시대를 이끌고 향유한 베이비붐 세대와 개인주의, 합리성, 창의력을 무기로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과 혁신을 선도해온 X세대가 어느덧 각각 노인과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젊다. 애플워치를 손목에 차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즐겨 마신다. ‘뉴 그레이’의 물결이다. 이들의 등장은 “과연 늙음과 젊음의 물리적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김 대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동시에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년배’들을 재촉하는 인물이다. 최근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시니어 배우들을 발굴하고 자신이 만든 무대에 데뷔시키는 일이다. 열아홉 살에 연극배우로 데뷔해 한복 모델, 뮤지컬 배우, 극작가, 작사가, 연출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본인 스스로 “해보고 싶은 일들을 다 해봤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의 열정은 각종 제약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저 60대예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시니어 배우들이 좀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김 감독과 얘기를 나눠봤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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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어떤 연습을 하고 있나.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를 준비 중이다. 정식 무대에 서기 전 출연진들과 함께 대사를 맞춰보고 있다. 배우들은 모두 ‘케이 드림웍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니어 배우들이다. 대본 역시 이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썼다. 연극계 최고 스타로 50년을 군림한 주인공이 치매에 걸리며 생기는 일들을 다룬 감성 코믹극이다.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당사자인 아들, 딸, 며느리 등이 겪는 속내를 보여주고자 했다. 시니어들은 한 번쯤 겪어봤거나,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보니 연습 중에 눈물을 흘리는 배우도 있었다.”

-시니어 배우라는 용어가 낯설다.

“12~13년 전쯤 한국에 ‘시니어 모델’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정규 프로그램이 있어서 등장한 개념은 아니고, 평소에 ‘잘 생겼다. 예쁘다. 모델해도 되겠다’라는 이야기를 듣던 중·장년층 중 ‘실제 무대에 설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생긴 변화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몇몇 에이전시에서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실제 데뷔를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이로 인해 시니어 모델에 대한 꿈과 열망, 호기심이 폭발했다. 이들의 활동 영역이 모델에서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리적 나이로 구분할 수도 있나.

“내가 1963년생으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할머니, 할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나와 같은 세대가 시니어 세대로 진입했다. 우리 연극의 경우는 60대 이상이 주축이다. 가장 어린 며느리 역할을 40대가 맡고 있다. 대부분 처음 연극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다. 집에서 손주를 보거나 1년에 한두 번 친구들과 모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전부였던 시니어 세대의 일상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성취감도 느끼고 싶어하는 기존과는 다른 욕구를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대부분 물질적·시간적 여유가 있고, 건강한 이들이다. 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름 화려한 직업적 경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배우, 모델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보면 취미로 시작하는 분들과 실제 프로 배우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로 나뉜다. 취미로 시작하시는 분들은 ‘나는 여기까지만 즐길 거야’라는 선이 있다. 아마추어 동호회나 문화센터 등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으로서 이용한다. 반면 프로가 되려는 분들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이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 모델일을 한 경험이 있거나, 아역배우 출신이다. 인플루언서나 개인 라이브 방송 등으로 진출을 꿈꾸는 분들이 있고,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손잡고 연예계 데뷔 과정을 밟는 분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돌고 돌아 자기 인생의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피워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다.”

-직업으로서 시니어 배우, 모델이라면 뚜렷한 이미지가 다가오지는 않는데.

“시니어를 언어적 개념으로 보면,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또 육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시니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들도 시니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정의에 맞춰 그럼 ‘시니어 배우’는 누구일까 생각해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추어 단역배우’, ‘취미로 모델, 배우 활동을 하는 사람들’ 정도로만 구분돼 있다. 모델료를 주지 않고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심지어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 하는 사람들 정도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노인이 직업배우로 데뷔를 하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맞다. 생계형으로 도전하는 분들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젊었을 적 꿈을 늦게라도 실현해보고 싶은 이들이거나 기존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 도전하는 분들이 많다. 어떤 목표로 시작을 했든 시니어 배우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직업적 관점에서 놓고 보면, 실리냐 명분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얘기다. 실리를 택한다면 이들을 프로 배우로서 출연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끔 성장시켜야 한다. 반대로 명분에 중점을 둔다면 이들의 활동이 세상을 좀더 이롭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최선은 나 혼자 즐기고 재밌는 일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쪽이라고 본다.”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준비 중인 자선공연은 기여의 한 형태인가. 이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

“시작은 SNS 등에 공지를 냈다. 이런 자선공연이 있는데 재능기부를 할 시니어 모델, 배우나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은 찾아와 달라고 했다. 이분들에게 출연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함께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열고, 이로 인해 수익이 발생한다면 전부 보육원에서 퇴소해 살길이 막막한 청년들을 돕겠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다행히 오랜 연극배우 생활을 한 나를 믿고 많은 시니어 배우 지원자들이 찾아와 주셨고, 오디션을 통해 최종 스무 명 정도를 선발했다. 나 역시 모든 노하우를 총동원해 이분들을 배우로 거듭나게 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연히 교육은 전부 무료다. 시니어 배우들에게는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이로 인해 기부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중이다.”

-자선공연이 시니어 배우,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배우를 꿈꾸며 돈을 내고 학원은 다닐 수 있겠지만 시니어들이 실제 무대경험을 쌓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모델로 쇼를 한번 나가려고 해도 모델료를 받기는커녕 참가비를 내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언제까지 돈을 들여 막연한 꿈을 좇을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좋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이 경험을 쌓을 무대가 없다면 시니어 배우들은 계속 아마추어로 머물며,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무대를 제공해 이들이 경험을 쌓게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사회에 기부하는 구조로 바꾸려고 한다.”

-많은 공연 무대가 갑자기 생기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한국 뮤지컬계는 주로 기존 외국작품들을 들여와 별도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비싼 라이선스를 지불하고 들여온 작품에 이름도 모르는 배우들을 쓰겠나. 이른바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에게만 배역이 돌아간다. 이런 일이 장기화되면 신인들의 등용문이 막히게 된다. 시니어 배우들도 예외가 아니다. 극작가로서 작품을 쓰게 된 이유 중에는 이러한 상황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창작 뮤지컬도 쓰고 있다고 들었다. 같은 이유인가.

“우선, 창작 뮤지컬이라는 용어는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한국형 뮤지컬’로 바꿔 불러야 한다. 수십년을 뮤지컬과 연극을 하다 보니 관객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겼다. 작품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언제 그런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극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꿈을 가진 시니어 배우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더했다.”

-결국 유료공연이 가능해야 이들이 아마추어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시어머니 시집보내기>는 보육원 퇴소 청년들을 돕기 위한 공연이지만 관람은 유료다. 배우들은 재능기부를 하는 것이고, 기본적인 교통비 정도만 지급한다. 이와 별개로 유료 공연인 만큼 관객들이 그만큼 가치 있는 작품을 봤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시니어 배우들 역시 이 부분에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관객들에게 프로로 대우받으려면 시니어 배우들도 노력해야 한다. 한 해에 예술대학에서 문화계로 배출하는 인원이 엄청나다. 배우는 넘쳐나는데 막상 그들을 소화할 작품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 안 된 시니어 배우들을 3만~4만원짜리 유료 공연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 장벽을 깨부수려면 시니어 배우들 스스로 계속해서 연습해야 한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사진/K드림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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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사진/K드림웍스 제공

 

-왜 시니어들한테 판을 깔아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인가.

“내가 시니어 배우이기 때문이다. 사실 각종 무대에서 활동한 많은 프로가 자신이 시니어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배우라고 나이를 잊고 살 수 있나. 자신의 재능을 나이가 들었다고 감추며 사라지기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지금까지 40여년간 무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앞으로 15~20년 더 활동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이면 더 좋지 않을까.”

-나이나 정보가 부족해 무대의 꿈을 포기하는 분도 많다.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일단은 정확한 자기진단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하려면 전문가에게 교육 및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가족의 동의도 중요하다. 젊은 친구들도 연극, 뮤지컬계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그들보다 더 뒤늦게 시작하는 만큼 그에 못지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무대에서는 모두가 공평해야 한다. 시니어라고 한 수 접어줄 수는 없다. 나이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시니어로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계까지 가보려고 노력하는 데서 예상치 못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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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목베기', '생체실험' 알린 작가 죽음, 일본 극우의 타살이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너무나 잔인하고 엽기적인 난징 대학살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3.01.21. 12:26:19 최종수정 2023.01.21. 21:52:12

 

이즈음 일제의 징용과 노동 착취에 희생됐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새삼 뜨겁다. 일본 쪽에선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그 문제는 끝났다는 오랜 궤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전쟁범죄는 '과거사'란 이름으로 21세기 오늘에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다.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는커녕 부정하는 일본 쪽의 고집스런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본이 부인하는 전쟁범죄 현장 가운데 하나가 중국 난징(南京)이다. 1937년 12월13일부터 6주 동안 난징에서 벌어졌던 대학살은 워낙 끔찍했기에 20세기 전쟁범죄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인구 100만 명이 살던 도시에서 무려 30만 명이란 희생자 규모도 규모려니와, 살해 방식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칼로 잇달아 목을 베 죽이고, 생매장해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강간한 뒤 죽였다. 

 

야만과 엽기라는 잣대로 보면,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질렀던 잔혹행위는 인류 전쟁사에서 그 어느 전쟁보다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일본 각계에 뿌리내린 극우파들이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완전 허구의 소설이다"라며 부인한다는 점이다(그래서 일각에선 이들을 '허구파' 또는 '부정파'라 부른다). 그들은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협박이나 과격행동도 서슴지 않아왔다. 2004년 11월 9일 미 캘리포니아주의 외딴 고속도로 갓길에서 권총 자살한 아이리스 장(Iris Chang)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일본 극우파들의 협박에서 비롯됐다. 

 

누가 아이리스 장을 죽였나 

 

1997년 갓 서른 살의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중국명은 장춘루)은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으로 단박에 화제의 인물이 됐었다. 그때껏 영어로 된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대중적인 책은 드물었기에, 특히 전쟁과 같은 어두운 과거사에 딱히 관심이 없던 서구 사회의 젊은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논란이 일자, 극우파들이 은밀하게 나섰다. 전화, 편지, 이메일 등 여러 수단으로 협박을 했다. 그녀의 차 앞 유리창에 쪽지를 두고 가기도 했다.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남편과 두 살 난 아들을 둔 그녀는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거나 전화 도청을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인들에게조차 그녀가 어디로 오고가는지 말하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약물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끝내는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집을 나와 고속도로 갓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살이 아닌 타살에 가깝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극우파들이 그녀를 죽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주미 일본대사에게 '유감' 말고 '사과' 요구
 
<난징의 강간>이 입소문을 타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미국의 언론들도 관심을 쏟게 됐다. PBS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업광고나 오락성 프로를 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성격을 지닌 PBS는 미국과 유럽에서 특히 지식층이 즐겨보는 채널이다. 책이 나온 1년 뒤인 1998년 12월 난징 학살 61주년을 맞이할 즈음 PBS는 저녁 뉴스 시간대에 아이리스 장과 사이토 쿠니히코 주미 일본대사 사이에 짧은 화상 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사이토는 일본의 직업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 동안 워싱턴에서 주미 대사를 지냈다. 그 무렵 뉴욕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던 필자는 집에서 PBS 뉴스를 듣다가 그 토론을 지켜보게 됐다.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 하나. 사이토는 난징에서의 일본군 만행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진지하게 사과를 하지 않는 교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아이리스 장이 사이토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 무엇보다 먼저 일본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부인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과(apology)와 함께 희생자들에게 배상(reparation)을 해야 하죠. 아울러 (난징 대학살에 관련한 서술을 왜곡 또는 축소하도록 만드는) 일본 교과서 검정을 멈춰야 합니다. 

 

사이토 :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폭력으로 말미암아 불행한 일(unfortunate incidents)이 벌어졌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 그런 말은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아요. ‘사과’라는 단어를 들어보질 못했어요. (PBS 방송 진행자를 향해) 당신은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요. (일본 대사가) ‘일본군이 한 짓에 대해 개인적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진심으로 말했다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유감’(regret)이니 ‘회한’(remorse)이니 ‘불행하게 일어난’(unfortunately happen) 따위의 용어는 사과가 아니지요. 

 

일어 번역본은 없는데 비판서가 베스트셀러 

 

<난징의 강간>은 출간 뒤 단시일 안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동아시아 3국에서 가장 일찍 번역본을 낸 곳은 중국으로, 1998년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에는 이 책의 초판 번역본이 1999년과 2006년에 나왔고, 2014년 제목이 조금 바뀌어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난징 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으로 나왔다. 지금은 미국 출판사와의 계약이 끝나 절판 상태로 일반 서점엔 책이 없다. 

 

문제의 일본에선 번역본 출간을 둘러싸고 엄청 시끄러웠다. 극우파들은 반일위서(反日僞書)라며 출간을 막으려 들었다. 협박을 견디다 못한 출판사가 책의 일부 내용을 고치자고 옥신각신하다 계약이 파기됐다. 2007년에야 일어 번역본이 나왔다. 그 10년 사이에 <난징의 강간>을 비판하고 전쟁범죄의 진실을 왜곡하는 책들이 엉뚱하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괴이한 현상이라고 봐야할까. 

 

▲ 아이리스 장이 죽은 뒤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에 세워진 조각상. ⓒx li

 

100인 목베기, 성폭행, 생체실험...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45일 동안 난징 시민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본군은 포로로 잡은 중국군(당시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을 양쯔강변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했다. 일본군 장교들은 군도로 누가 빨리 더 많은 포로의 목을 베느냐며 ‘100인 목 베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길 가던 민간인들도 붙잡혀 생매장 당했다. 한마디로 온갖 잔혹한 전쟁범죄들이 한꺼번에 난징에서 저질러졌다. 

 

아이리스 장이 고발한 일본군의 전쟁범죄상은 너무 끔찍해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거나, △배를 가르고 사지를 절단하거나 △여러 명씩 묶은 채 구덩이에 넣은 다음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거나 △수백 명을 연못으로 끌고 가 알몸 상태로 살얼음이 언 연못에 빠뜨려 죽이거나 △허리까지 땅에 파묻고 사나운 개를 풀어 물려 죽도록 했다. 이렇듯 일본군의 만행은 잔인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성폭행도 심각했다. 

 

재미로 목 베기 살인 시합을 벌였던 것처럼 일본군은 재미로 강간과 고문을 일삼았다. 난징의 거리 곳곳에서 다리를 벌린 채 죽어있는 여자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일본군은 강간 후 여성의 성기에 병이나 나무막대를 꽂아놓기 일쑤였다. 남자들 역시 일본군의 비웃음 앞에서 온갖 치욕을 겪어야 했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범하라는 일본군의 명령을 거부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한 여성을 윤간한 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중국인 승려를 잡고 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라고 협박했다. 승려가 거절하자 일본군은 그의 성기를 자른 뒤 살해했다. (아이리스 장,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미다스북스, 153-154쪽)

 

위에 옮긴 글처럼, 장의 책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읽기가 힘든 곳은 갖가지 성범죄 실태를 고발하는 대목이다. 저자 자신도 "난징의 강간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집단 강간으로 기록될 것"이라 말한다. 적어도 2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의 난징 여성들이 성범죄에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전반기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도 심각한 성범죄가 벌어졌고, 2만 명쯤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보스니아보다 60년 앞서 난징 여성들은 죽음보다 더한 시련을 겪은 셈이다.

 

강간당한 여성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양쯔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아기들이 태어나자 바로 죽였다. 이들 두고 장은 책에서 “수치심과 자괴감에 시달린 중국 여성들은 사랑할 수 없는 자식을 기르느니 차라리 영아 살해를 선택했다”라고 풀이했다. 중국은 12월 13일을 ‘난징 대학살 국가 추모일’로 정하고 해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층이 참석하는 대규모 추모 행사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일본군의 또 다른 잔혹상은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생체실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양쯔강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을 실험실로 바꿔 유행성 질환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1644부대를 운용했다. 이 부대원들은 중국인 죄수나 포로에게 독극물, 세균, 독가스를 주입하면서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살해됐고, 시신들은 부대 소각장에서 처리됐다. 1644부대는 생체실험을 통해 세균전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731부대(하얼빈 소재)와 판박이다. 

 

▲ 일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매장 당하는 난징 시민들. 

 

난징재판과 도쿄재판 

 

일본이 패한 뒤 난징 학살에 대한 전범재판이 벌어졌다. 범죄 현장인 난징과 일본 심장부인 도쿄에서였다. 난징 재판은 1946년 8월부터 1947년 12월까지 이어졌다. 피고는 몇 명 안됐지만, 1000명이 넘는 중국인 피해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460여건의 살인, 강간, 방화, 약탈에 대해 증언했다. 칼로 목베기 시합을 벌였던 일본군 장교 2명이 피고석에 섰고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두 피고는 구차한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아, 법정을 메운 방청객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난징에서의 전쟁범죄로 처벌 받은 일본군 고위장성은 둘뿐이다. 하나는 일본군 6사단장 타니 히사오 중장으로, 일본에서 강제 송환돼 난징 법정으로 불려나와 총살형을 받았다. 그의 처형 모습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난징 남쪽의 형장으로 몰려갔다. 다른 하나는 일본 중지나방면군 사령관 겸 상해파견군 사령관을 지냈던 마쓰이 이와네 대장이다. 그는 도쿄에서 열렸던 극동국제군사재판 뒤 교수형으로 죽었다. 

 

난징 전쟁범죄로 처벌 받은 고위 책임자가 일본군 장성 2명뿐이라고?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난징의 강간>의 저자 아이리스 장도 “난징 강간의 주요 범죄자들과 그 살육을 막기 위해 권한을 행사했어야 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고 탄식한다.(253쪽) 

 

히로히토는 학살 책임 없다? 

 

법정에 불려가야 마땅할 전범자 가운데 하나가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삼촌뻘인 아사카 야스히토다. 그는 마쓰이 이와네가 폐결핵으로 몸져눕자, '사령관 대리' 직함으로 지휘권을 물려받고 난징 점령을 지휘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전쟁범죄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도쿄재판에 불려가지 않았다. 패전국 일본 통치의 전권을 휘둘렀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 지배층에게 선물해준 '히로히토를 비롯한 황족에 대한 면책권' 덕분이었다.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난징 학살에 책임이 없을까. 아이리스 장도 <난징의 강간> 끝부분에 그런 의혹을 던진다. 난징 대학살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 중국 본토, 진주만과 동남아에서 저질렀던 침략 전쟁에 책임을 지고 도쿄 전범재판의 피고석에 섰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히로히토(1901년 생)는 1989년 사망 때까지 '천황'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음 주 글에서 좀 더 살펴본다). 

 

오히려 히로히토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거론했던 소수의 일본인들은 극우파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아이리스 장이 협박을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나가사키 시장 모토시마 히토시는 히로히토 사망 2주 뒤 바로 등 뒤에서 쏜 총알로 폐를 관통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그 총격 사건은 "난징 학살 따윈 없었다"는 일본 극우파의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 난징 법정에서 총살형이 선고된 타니 히사오 일본 육군중장. 

 

“나는 전범자였다” 참회의 목소리들 

 

난징 학살 자체가 없었다고 우기는 극우파들과는 달리, 자신의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일본인들이 없지는 않다. 1954년 랴오닝 푸순 전범관리소에 수용됐던 전 일본군 소령 오타 하사오는 난징에서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들을 학살한 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밝히는 44쪽 짜리 고백서를 써냈다. 

 

이에 따르면, 1937년 12월15일부터 사흘 동안 양쯔강에 내다버린 시신은 오타의 부대가 1만9000구, 다른 부대가 8만 1000구, 또 다른 부대가 5만 구 등 모두 15만 구였다고 한다. (아이리스 장, 161쪽. 오타가 수용됐던 푸순전범관리소는 점진적인 사상 개조를 통해 일본인 전범 가운데 다수를 반전 평화주의자로 바꾸었다. 푸순에 대해선 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서해문집 참조하기 바람.) 

 

난징 학살 당시 일본군 16사단 20연대 소속 상등병으로 있었던 아즈마 시로는 1987년 <아즈마 시로 일기: 소집병이 체험한 난징 대학살>이란 체험기를 통해 그날의 끔찍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중국 난징에서 열린 대학살 50주년 추도식에 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중국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그의 체험기 내용을 둘러싸고 옛 전우로부터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일본 극우파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난징과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만주 731부대 소속 소년대원(미성년 군속으로 업무 보조역)이었던 시즈오카 요시오도 양심 고백을 한 인물이다. 731부대에서 죽은 쥐와 벼룩을 이용해 세균무기로 쓰일 세균 배양 작업을 거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쟁이 끝나고 푸순전범관리소에 갇혔다가 1956년 풀려나 귀국했다. 그 뒤로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 모임 등을 통해 “일본이 중국에서 저질렀던 죄행은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고 무겁다”며 사죄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김효순, 410-412쪽 참조) 

 

앞서 살펴본 아즈마, 시즈오카 두 사람은 1998년 일본 평화운동가들과 손을 잡고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지난날 일본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범죄자’란 이유로 시카고 공항에서 미국 입국이 거부당했다. 미 법무부 특별수사국의 입국 금지 명단에 오른 이유는 그들 자신이 전쟁범죄를 고백해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 열린 뉴욕 행사장에는 아이리스 장이 나와 인사말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뉴욕 타임스>는 “이들의 전쟁범죄 고백이 일본에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는데도, 미국에서 입국 감시자 명단에 오른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극우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은 사람들이 입국을 거부당하다니...누구를 위한 입국 금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본 극우파들의 영향력은 지금도 미국이나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 

 

끝으로 다시 짚어보는 물음 두 가지. 첫째,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어떻게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지지 않고 ‘천황’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가. 둘째, 그가 전쟁범죄의 책임을 지지 않았기에 전후 일본에 생겨난 심각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다음 주 글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보려 한다.

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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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날 불쑥’, 이태원 분향소 나타나 조문 흉내 내고 돌아간 이상민

코앞 ‘붉은 목도리’ 유가족 몰라보며 수행원에게 “안 계신가?”, 사퇴 요구는 무응답...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분통’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이 장관이 분향소에 머문 시간은 5분이 채 안 된다. 희생자 유가족이 목이 쉬어라 촉구한 ‘사퇴 요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분향소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동행한 수행원에게 연신 유가족의 위치를 물은 이 장관은 오직 ‘분향소에 갔고, 유가족을 만났다’는 형식만 갖춘 뒤 자리를 떠났다.

이태원 참사 발생 85일째인 이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간 이 장관을 보며 유가족은 또 한 번 가슴이 찢겼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수행원들과 대화하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항의에도 유가족 텐트 들추며 막무가내,
눈물 고인 유가족에게 이상민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한번 만나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수행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사전에 어떤 연락도 없던 일방적인 방문이다. 시민대책회의 측은 이 장관이 머문 시간은 “길어봐야 3분 내외”라고 했다.

이 장관은 먼저 희생자 영정에 헌화한 뒤 주변을 기웃거리며 유가족을 찾았다.

이날 분향소에는 조문객을 맞는 유가족 두 명과 소수의 자원봉사자만 있는 상태였다. 유가족들은 전날 오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서울역에서 설 귀향객들을 대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연대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오는 22일에는 분향소에서 설맞이 상차림을 진행한다. 때문에 상차림을 준비하는 이날 유가족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연휴와 맞물려 시민들의 분향소 방문도 평시보다 드물었다.

이 장관의 지시에 수행원들은 ‘유가족 찾기’에 나섰다. 급기야 한 수행원은 분향소 옆에 설치된 유가족들 쉼터 텐트의 문을 동의 없이 열기까지 했다. 현장에 있던 이미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이 “막 열어보지 마시라”며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황당한 행동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 장관은 분향소 앞에서 붉은색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을 코앞에서 보고도 자신의 수행원에게 “유족분들은 안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텐트를 확인하고 나온 수행원도 “지금은 안 계신 거 같다”고 답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피눈물, 상처, 고통을 의미하는 붉은 목도리를 항상 두르고 있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이 실장이 “연락도 없이 이렇게 막 와서 조의 표했다는 걸로 끝내려고 지금 온 건가. 공식적인 사과 입장이라도 가지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발했지만 이 장관은 답이 없었다. “국정조사에서 이 장관 사퇴 요구하는 것 못 보았나. 어떤 면목으로 지금 여기에 온 건가”라는 비판에도 이 장관의 수행원만 “유가족에게 위로 말씀드리려고 한다.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부랴부랴 다른 수행원이 이 장관 곁으로 와 붉은 목도리를 두른 한 유가족의 존재를 알리자 이 장관은 그제야 유가족에게 가 자신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소개하며 “얼마나 마음의 상심이 크시냐”고 말했다.

이 장관을 마주한 이 유가족은 눈에 눈물이 가득 찬 모습으로 울먹이며 “(상심이) 너무 크다. 표현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장관은 “내일이 설인데”라고 했고, 유가족은 희생자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설인데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없다. 가족과 못 지내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이 장관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어쨌든 이런 젊은 청년들을 잘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글쎄요. 무엇을 하실 건가”라며 허탈한 심경을 표출하는 유가족에 이 장관은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유가족 한 명과 55초의 대화를 마친 이 장관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걸어가는 이 장관의 등 뒤로 “사퇴하라”는 외침이 들렸지만, 이 장관은 반응하지 않았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도둑 조문” 규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사퇴 요구는 묵살한 채 불쑥 분향소를 방문한 이 장관의 “도둑 조문”을 강하게 규탄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성명서를 내 “유가족에 대한 배려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장관과 그 보좌진들의 행동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 장관은 의도적으로 유가족과 시민이 가장 없을 것 같은 날에 시민분향소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한 ‘한번 만나자’는 이 장관에게 유가족협의회는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 11월 유가족과의 비공식적 만남만을 요구하면서 유가족협의회의 전체 만남은 거부하기까지 했다”며 “이 장관이 진정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다면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른 책임을 인정해 사퇴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유가족협의회에 직접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한 뒤 조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대책회의도 성명을 통해 “참사 책임자로서 통렬한 반성과 사죄의 말도 없이 도둑 조문을 와 유가족을 위로한다며 뻔뻔한 행태를 보였다”며 “자신의 위치와 책무를 망각하고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아 위로 운운하다니. 이러한 조문은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 측의 합동분향소 기습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해 12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의 반발에 30초 만에 자리를 뜬 바 있다. 당시 한 총리는 분향소에 와 그 주변에서 진을 치던 극우단체 회원과 악수하고, 분향소를 벗어나는 과정에는 무단횡단까지 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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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병원비, 왜 오를까 봤더니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국고 부담 어기고, 보험료는 올리고

윤 정부, 국고지원 일몰도 모자라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아픈 국민이 아닌 “병원·기업·정부가 문제”

2023년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부자와 기업에 맞춰있다. 서민과 노동자의 주머니를 털어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다. 정책방향은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 건강’ 영역조차 그러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케어)’이 단번에 철회되면서 병원비가 무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다주택자 세제와 기업 법인세를 감면한 윤 정부. 반면, 공공임대 주택 예산은 5조 원 넘게 삭감하고, 전기요금 3배 인상, 가스요금 최대 2만 원 인상, 그것도 부족해 대중교통 요금 300원 인상안까지 마련했다.

‘국민건강보험’은 더 심하다. 국가의 책임을 높이기는커녕 사설보험기업들의 이윤만 키울 계획이다.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건강보험에 국고 지원을 일몰시켰다. 윤 정부는 ‘건강보험 정부 지원법’에 있던 한시 지원(일몰제)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국고지원의 법적 근거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13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직접 건강보험 보장성을 공격한 사례는 역사상 최초다. 역대 어떤 정부도 보장성을 강화했지 줄인 적은 없었다.

국민건강보험, 국고부담 줄이고 보험료는 올리고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한 건강보험 재정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건강보험 정부 지원이 종료되면 국민들은 17.6% 인상된 보험료를 부담해야 현재까지 받았던 수준만큼 보장받을 수 있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의 분석이다.

정부는 법으로 명시된 건강보험 재정 국고 부담 20% 규정을 매년 어겨왔다. 지난해엔 20%는커녕 14%대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프랑스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율은 52.2%, 일본은 38.8%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율은 이미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가 지출은 아끼면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지속가능성’ 운운해가며 국민 보험료 부담은 올리겠다고 한다.

2023년 건강보험료율 결정 과정에 정부는 국고 부담은 14~15%로 낮추고 보험료 인상안을 제시했다. 국민이 내는 보험료는 매년 인상하고, 보험료를 체납하면 보험 자격을 빼앗아 의료권을 박탈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법을 무시하는 꼴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2023년도 건강보험료율을 1.49% 인상했다. 직장가입자 보험료율은 현행 6.99%에서 내년 7.09%로 인상된다. 보험료율이 7%를 넘긴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부터 국고지원은 사라지고 건보 인상율 법정 상한(8%)는 높인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정부가 건강보험료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주요국 보험료율이 프랑스 13.0%, 일본 9.21% 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보험료율은 비록 13%지만 전액 사용자가 낸다. 우리와 달리 많은 나라들은 보험료를 기업과 부자들이 더 많이 낸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이라 쓰고 “보장성축소” 드러내

역사상 최초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낮추겠다고 선언한 윤석열 정부. 정부가 지켜야 할 법도 무시하고, 국고 부담 줄이기에만 급급해 본인부담은 높이려 한다. “낮은 본인부담이 환자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켜 과잉진료를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월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을 발표했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라고 포장한 “보장성축소” 방안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문재인 정권 지우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는 질병으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5년간 30조6천억원을 투자해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 목표를 세우고, 환자가 100% 비용을 부담하던 3800여개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한 건보 적용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일명 ‘문재인 케어(문케어)’다.

윤 정부는 “문케어가 건보 재정을 파탄내고 국가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지난달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대책을 발표했다. 보장성을 강화해도 모자랄 상황에 ‘비급여의 급여화가 과잉진료를 유발한다’며 보장 수준을 낮추고 있다.

암은 비급여 부담이 높고, 뇌·심장질환은 특례기간이 짧아 치료와 재활을 다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임에도 오히려 ‘산정특례보장’ 혜택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급여화된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진단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은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또, 외래의료 이용량을 기반으로 본인부담률을 차등적용하는 제도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혜택도 줄인다.

▲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문재인케어) 시행 이후 환자 3600만명이 의료비 부담 2조2000억원을 덜었다는 중간결과가 나왔다. [그래픽 : 뉴시스]

“건강보다 이윤”, “국민보다 돈”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 국민이 있다면 그 국가는 제 역할을 못 한 것이다.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역대 정부들이 부족하나마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한국의 보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OECD 국가들은 대부분 입원 보장성이 90% 이상이고 많은 나라들이 100% 가까이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생명과 건강에 필수인 입원 진료도 단 67%만 보장한다. 그래서 가계 지출 중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정부의 주장대로 과잉진료의 원인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때문이라면 무상의료에 가까운 유럽 국가들은 과잉진료 천국이어야 한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민영화저지 운동본부’는 과잉진료 원인에 대해 “민간의료기관이 95%인 현실을 정부가 조장하고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픈 국민이 문제가 아니라 이윤을 남겨야 하는 민간병원을 확산하고, 민간병원은 의료행위별로 수가를 매겨 이윤을 남기는 등 병원과 병원을 운영하는 기업, 그리고 공공의료 대신 민간의료 강화하는 정부가 문제라는 것이다.

운동본부는 “병원의 수가 인상은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과도 연결되며, 건보 보장성을 후퇴시키는 것은 환자들에게 앞으로도 더욱 실손보험에 의존하라는 신호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결국 보험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방향이다.

이태원 참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완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등에서 확인되듯, 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엔 무관심하다.

윤석열 정부 8개월, 병원비가 대폭 오를 조짐이다. 병원비가 무서워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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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죽은 장애인을 생각하며, 박경석은 휠체어에서 내렸다

[현장]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운다" 전장연, 장애인 참사 22주기 '지하철 행동' 돌입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3.01.20. 18:56:14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이내 열차 입구를 막아선 보안관의 다리 밑으로 기어갔다. 열차 내부에 진입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직전 기자회견에서 그가 말한 소희가 이를 위한 결의 같아 보였다.

 

"22년 전 장애인의 죽음, 그 비극에 대한 무감각보다는 차라리 고통이 견딜만합디다."

 

22년 전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역내에서 두 명의 장애인이 죽었다. 경기도 시흥시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설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러 '이동'하던 장애인 노부부였다. 둘은 엘리베이터가 없던 역내에서 추락 위험이 높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대로 추락해 사망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20일, 지난 11일간의 냉각기가 끝나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행동이 재개됐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조건으로 지난 8일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했지만, 전장연 측 단독면담 요구에 오 시장이 합동면담 방식을 고수하면서 지난 19일 면담 협의가 최종 결렬됐다. 당일 이들은 면담 결렬에 따라 20일부터 지하철 행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오이도 추락참사 22주기를 이틀 앞둔 이날 전장연은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8시), 서울역(9시), 삼각지역(오후 2시) 등지에서 '오이도역리프트추락참사 22주기 지하철행동'을 게시했다. 각 현장에서 이들은 장애인 권리예산의 실질 반영을 막아온 기획재정부를 두고 "22년을 외쳐도 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사람을 위한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의 '무정차' 및 탑승거부 조치로 활동가들의 지하철 탑승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전 8시 오이도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전장연 활동가들이 서울역으로 가는 상행선 열차에 탑승을 시도했지만, 한국철도공사는 이를 "불법 시위"라며 철도경찰 50여명을 동원해 이들의 탑승을 저지했다. 

 

탑승저지는 서울시내 지하철역에서도 계속됐다. 전장연과 이에 연대하는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날 오후 2시 삼각지역에서 추락참사 22주기 결의대회를 진행, 3시께 회견을 마치고 지하철 탑승을 시도했지만 서울교통공사 측 지하철보안관들이 이를 막아섰다. 이에 활동가들과 공사 사이 대치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전날 19일 전장연과의 면담이 결렬되자 "전장연 시위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4450억 원"이라며 앞으로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도 '무관용·무정차' 대응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전장연으로 손실 4450억" 발생했다는 서울시, 교통약자의 '손실'은?) 

 

이날 활동가들은 지하철 열차가 역내로 진입할 때마다 "장애인도 지하철 타고 싶다", "헌법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연호했다. 공사 측은 "즉시 퇴거하라", "열차 탑승을 거부한다"라며 응수했다. 박경석 대표 등 일부 활동가들은 보안관의 다리 밑을 기어가며 열차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삼각지역 승강장에는 곧 경찰 수십여 명이 투입됐다.

 

▲20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 승강장에서 전장연 활동가들과 경찰이 열차 탑승을 두고 대치 중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다수결이죠. 다수결의 원칙이란, 결국 좀 더 많은 사람이 뜻을 모으면 그 뜻에 따라 소수는 뭔가 할 수 없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그럼 배제되는 사람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 아무런 의견을 낼 수 없는 걸까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민주국가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말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의무를 다 하라는 것입니다." - 김재왕 희망법 변호사의 현장 발언 일부 

 

이날 각 현장에서 전장연은 오이도추락참사로부터 '22년간 유예'돼온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에 대해 강조했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 이후에도 지하철에서 죽음을 맞는 장애인은 계속 있었다. 2002년엔 발산역에서, 2006년엔 신연수역에서, 2008년엔 화서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죽었다.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5년 전 2017년엔 신길역에서도 리프트 추락참사로 장애인이 죽었다. 

 

전장연을 비롯해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각 이동 현장에 '안전한' 시설을 확보하고 '추가적인' 동선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프트 추락참사는 물론, 지난해 4월 일어난 양천향교역 에스컬레이터 장애인 추락사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재임 당시와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 각각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2023년 기준 서울시 내엔 아직 21곳의 역사가 엘리베이터 미설치 지역으로 남아있다. 전장연이 서울시와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지난 2021년 12월엔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저상버스 및 광역이동지원센터 등 이동권 확보를 위한 국비지원이 법률에 명시됐지만, 기재부가 운영비 지원을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남겨두면서 이동권을 위한 실질적 예산 반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2022년 12월 국회 예결위에서 통과된 장애인 권리예산은 요구안의 0.8%에 불과했다. 전장연이 기재부와의 면담을 촉구하는 핵심 이유다. 

 

▲20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결의대회를 진행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및 연대단체 회원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이날 전장연은 오 시장에게 "시민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가기 위해 공개적인 토론과 대화를 통해 '장애인의 시민권 보장'과 '지하철 출근길에서 시민 불편 해소'를 위한 길을 함께 만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앞서 오 시장은 전장연과의 면담 협의 과정에서 비공개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기재부와 관련해서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장연은 "22년을 외쳐도 듣지 않고, 듣지 않으려는 기획재정부와 추경호 장관에게 SNS를 통해서라도 한마디 전달을 부탁드린다"라며 22년의 이동권 투쟁을 "함께 풀어주시길"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전장연은 무정차, 무관용, 욕설, 혐오, 폭력이 난무하고, 그 무덤 속에 들어갈지라도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외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라고 결의했다. 박경석 대표는 "22년을 견딜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견뎠다. 인간의 존엄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희는 22년을 외치며 지금도 이 자리에 있다"라고 이날 지하철행동의 취지를 밝혔다. 

 

2023년 1월 20일 오후 5시께, 현장에서 장애인들은 여전히 대치 중이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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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칼럼] 절망하고 절망하면서도 기어코 진실을 향해 가야 한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끝났지만, 진상규명의 길은 멈출 수 없다

 

 ‘왜’는 사건의 발생 원인과 구조를 알게 해주는 물음이자,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비판이자 탄식의 말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왜’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게 하는 대형참사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당혹하게 하고 참담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길 가던 시민이 한 자리에서 158명이나 숨질 수 있는가. 기본적인 사회 안전시스템, 국가 기구만 굴러갔어도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재난안전시스템이 돌아가고 관련 지휘자가 문제 본질에 대해 인식하며 책임을 지려 했더라면, 아니  공식 사과라도 했더라면, 희생자의 유족들과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 생존자 1명이 더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서 유가족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2022.12.14 ⓒ민중의소리

이태원참사가 발생한지 84일이 지났다. 여전히 정부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도 공식 사과를 하지도 않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인도든 차도든, 안전의 최종 책임은 지자체와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닌가.

국회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방해로 이렇다 할 사실들을 밝혀낸 게 많지 않다. 그나마 유족의 노력이 있어, 몇 가지 진실은 밝혀 냈다. 대규모 군중이 몰릴 것을 인지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상황 관리 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점, 압사 사고 후 구조 등 대응 과정에서 상황 전파 및 보고가 단절·지연됨 점이 확인됐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라 경찰 병력이 용산 대통령실과 서초동 대통령 사저 인근에 집중 배치되어 사고 당일 축제 현장에 배치되지 못했다는 점, 경찰이 집회·시위 대응 업무와 대통령 출퇴근 관련 경비 업무로 격무에 시달려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야3당만 동의한 상태로 채택됐다.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은 결과보고서가 야당의 입장만 담은 것이라 채택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회의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 결과보고서에는 진상규명과 관련한 조치 의견으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을 비롯한 관련 기관장들이 참사의 정무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대통령은 책임자에 대한 인사 조치(기관장 해임 등)을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2022.12.27. ⓒ뉴스1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위증과 잘못은 수차례 드러났다. 행안부는 유가족 명단을 확보하고, 그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이상민 장관은 ‘유가족 명단이 없다’고 위증했다. 게다가 자신이 재난 상황의 콘트롤타워임에도, 모든 책임을 일선 소방서장에게 돌렸다. 그러니 사퇴, 혹은 해임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정도가 국회 국정조사 결과다. 탄식이 나오지만, 여기서부터 다시 진실의 길을 내야 한다.

정부는 답해야 한다. 10만 명이 모일 것을 예상했음에도 왜 대비를 하지 않았는지, 과거에는 경찰을 배치하고 도로를 통제했는데 왜 2022년엔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왜 신속하게 재난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밝혀야 한다. 사고 발생 4시간 전에 112 신고가 갔을 땐 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사고 이후 희생자 158명의 유족들에게 왜 최소한의 정보 제공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할 것이다.

159명의 목숨을 잃은 현장에서 확인된 국가의 부재는 진실 은폐와 책임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어느 국가기관 책임자도 지휘자도,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가족들과 피해자들, 시민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망하면서도 나아갈 것이다.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멈출 수가 없다. 여전히 밝혀야 할 진실이 많기 때문이다.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으면 비슷한 참사가 다시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족들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물 수 없기 때문이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9차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 보고서 내용에 반발하며 퇴장하고 있다. 2023.1.17. ⓒ뉴스1

그러하기에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독립적 진상조사기구에는 피해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 유족과 피해 생존자가 겪은 참사 전후의 진실, 피해지원이 부재했던 모든 사실 관계들이 향후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것이 국가에 대한 실망과 국정조사 결과에 대한 실망, 정부에 대한 절망이 우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희생된 159명의 우주, 그리고 생존자 피해를 기억하며 진실을 위해 계속 애쓰자. 2022년 10월 29일에 머물러 있는 동료 시민인 참사 유족을 뒤에 남겨두지 말자. 오늘도 유족들은 비통함을 안고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서명에 나섰다. 서명도 좋고 선전전도 좋다. 작은 힘이라도 진실규명의 길에 보태자.

그렇게 절망을 딛고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자. 아마도 그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고 숱한 절망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물론 절망 중에도 동료 이웃과 유족의 따뜻함을 느낄  것임을 믿는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20일 오전 서울역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를 촉구하는 홍보물을 설 귀향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23.01.20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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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치 않은 ‘통일TV’ 방송 중단 사태

최초의 평화통일 전문 방송인 ‘통일TV’가 5개월 만에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 17일 방송을 시작한 통일TV는 2023년 1월 18일 오후 7시 방송 송출이 중단됐다.

 

진천규 통일TV 대표와 20일 만났다. 

 

▲ 진천규 통일TV 대표  © 김영란 기자

 

일련의 구도 속에 진행된 계약 해지 통보, 송출 중단

 

진 대표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KT 관계자가 사무실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온 뒤에 오후 5시경 KT 관계자들 세 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인터넷 계약 해지 및 송출 중단’이라는 공문을 들고 왔는데 공문에는 통일TV 방송 내용에 북한 이념 및 체제의 우월성 선전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등 법적 국가적 사회적 공익을 저해했기에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 송출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에 관해 진 대표는 “만약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면 5개월 동안 KT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에서 경고나 주의 조치 등이 있어야 했는데 전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라면서 “송출 중단 통지, 계약 해지하는 과정이 너무 상식적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진 대표는 “KT 등에서는 문제가 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내용을 특정하지 못한 채 두루뭉술하게 방송 내용을 문제 삼았다. 계약 중단과 송출 중단은 KT 입장이 아닌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

 

왜 그런 추정을 했는지 물었더니 진 대표는 KT 관계자들이 18일 했던 말을 전했다. 

 

“저희(KT)가 30년 케이블TV 역사상 최초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방송사가 망하거나 그래서 스스로 원해 계약이 중단되었는데 이렇게 해지하는 것은 처음이다.” 

 

계속해 진 대표는 “18일 24시부터 방송이 중단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KT 관계자들도 확실히 모르겠다. 빨리 될 수도 있다고 답하더라. 그렇더니 오후 7시경 방송이 중단됐다”라면서 “참 어이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방송 중단, 계약 해지 통보로부터 방송 중단까지 딱 두 시간이 걸렸다. 

 

5개월 동안 방송 내용 관련한 시민들의 항의가 있었는지 물어봤다. 일부 언론이 방송 내용에 고객들의 불만이 있다는 보도를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진 대표는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온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것도 1월 16일이었다. 그에 앞서 방심위가 시민이 방송 내용에 대해 항의를 했다는 전화는 1월 12일 한 번 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2일 방심위 전화, 1월 16일 시민의 전화, 1월 18일 계약 해지와 방송 중단까지 일련의 구도 하에 움직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진 대표가 방송이 중단된 후 파악해 본 바에 의하면 통일TV 방송 중단과 관련해 일부 언론은 1~2주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 지니TV에는 "지니TV에서 제공 중인 통일TV는 방송 프로그램 내용 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고객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하여 부득이하게 방송 프로그램 제공이 중단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만 나오고 있다. [지니TV 갈무리]  

 

재계약 18일 만에 계약 해지?

 

통일TV 방송 중단이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계약 기간은 2022년 1월 1일부터(계약 체결일로부터 소급하여) 2022년 12월 31일까지 한다. 본 계약 기간은 계약 기간 만료일로부터 30일 전까지 양 당사자의 서면에 의한 별도의 해지 의사 표시가 없는 한 동일한 조건으로 1년씩 자동 연장된다.”

 

이는 통일TV와 KT 계약서 내용이다.

 

계약서 내용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된 것이다. 

 

KT가 밝힌 대로 고객들의 항의가 많았다면 지난해 말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재계약하고 18일 만에 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18일 동안 고객들의 집중적인 항의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압력이 있었던 것일까?

 

진 대표는 “방송 중단이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이 있던 날”이라면서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방송 중단이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정말 어렵고 힘들게 여러분들의 꿈과 희망을 모아서 소중한 방송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통지서 하나 내밀고 두 시간 만에 방송 송출을 끊었다는 것은 정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변호사와 상의하는 진천규 대표.  © 김영란 기자

 

통일TV는 유튜브 등을 통해서 방송을 계속 내보내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통일TV는 2018년 9월 출범식을 갖고 개국을 준비해 왔으며, 2021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인가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7월 20일 당시 KT 올레TV와 멀티미디어 방송 콘텐츠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8월 17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 통일TV 방송 프로그램. [통일TV 누리집 갈무리]  

 

한편 통일TV는 20일 「<통일TV> 방송 송출 폐쇄조치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통일TV는 글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출석요구, 소명의 기회조차 단 한 번 없이 송출부터 중단한 것은 그 어떤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합니다”라면서 “<통일TV>는 이 땅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 및 변호사들과 연대하여 방송 송출 중단의 부당성을 알리고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통일TV 글 전문이다.

 

<통일TV> 방송 송출 폐쇄조치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통일TV>는 지난해 8월부터 KT올레tv (현 지니TV) 채널 262번에서 평화통일문화정보 전문방송으로 24시간 송출해왔습니다. 

지난 1월 18일 KT는 그 어떤 주의나 경고 단 한 번 없이 느닷없이 <통일TV>에 대한 방송 송출 폐쇄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30년 케이블 방송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거를 자행한 것입니다.

 

KT는 공문을 통해 “통일TV를 운영함에 있어 김정은 찬양의 내용과 북한 체제 우월성 선전 등 법적, 사회적, 국가적 공익을 저해하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송출”한 것이 계약 해지 및 송출 중단의 사유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통일TV>는 오랜 분단으로 인한 민족 공동체성 상실과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남과 북의 평화와 화해 협력에 기여함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통일TV>는 ‘북녘의 하루’, ‘생생북녘’, ‘지혜의 샘터’ 등을 제작해왔는데 그 중 ‘북녘의 하루’는 북의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방송한 내용을 정리 분석해 편견과 선입견 없이 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시청자 여러분께 알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조선중앙텔레비죤’은 우리로 치면 KB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북 방송의 가장 큰 변화로는 다양한 생활 정보 및 여러 형태의 공익광고, 뮤직비디오 형식의 음악방송도 등장하고 코믹 드라마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북 사회의 기본 언론관입니다. 북은 혁명운동의 선전 선동 도구로 언론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의 방송은 거의 대부분이 체제 우월성 선전과 지도자의 연설 혹은 현지지도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통일TV> 제작팀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은 북의 방송 자체가 찬양과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바 아무리 공들여 편집을 해도 북의 생생한 방송이 전파를 타는 순간 언제든 민원이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TV>는 설립 당시부터 늘 염두에 두었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북의 실상을 생생히 전달하되 이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함부로 비난의 칼날을 대지 않고 그렇다고 미화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조건도 감안하여 <통일TV> 제작팀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는 보람으로 성실하게 방송해 왔고 북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T는 도대체 어느 부분이 어떤 법률을 위반했는지, 무엇이 공익을 해쳤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무조건 체제 선전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송출 중단을 시켰는데 그렇다면 북 방송을 아예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2년 7월 22일 우리 정부는 ‘로동신문’ 및 ‘조선중앙텔레비죤’ 등 북 언론에 대한 국내 공개 허용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의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북 관련 정보만 통제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비정상적 상황이 분명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일반 국민의 북 사이트 및 방송 접속을 허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분명합니다. 

 

사실 인터넷 시대 정보통제는 불가능한 법입니다.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하고 가공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입니다. 

 

이런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감안할 때 KT의 결정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태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방송국에 대한 제재를 할 때는 그 절차가 투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출석요구, 소명의 기회조차 단 한 번 없이 송출부터 중단한 것은 그 어떤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합니다. 

 

방송을 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각종 기자재 설비를 갖추는데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기획, 촬영, 편집 등 다수의 제작 종사자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통일TV> 임직원 일동은 KT의 일방적 방송 송출 중단조치는 <통일TV>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결정으로 규탄하며 하루빨리 다시 송출 정상화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더불어 우리 <통일TV>는 이 땅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 및 변호사들과 연대하여 방송 송출 중단의 부당성을 알리고 함께 투쟁할 것임을 밝힙니다.

 

국민여러분의 큰 관심과 애정어린 동참을 호소드립니다.

 

2023년 1월 20일

<통일TV> 임직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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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마스크 해제’ 이달 말 유력…설 앞두고 경기도 코로나 방역 총력

중대본, 20일 오전 회의 열고 해제 시점 발표 예정
민족 대이동 앞두고 정부·道 등 코로나 방역 총력

(사진=연합뉴스 제공)
▲ (사진=연합뉴스 제공)

 

코로나19 유행이 안정세를 보이는 가운데 정부는 20일 실내 마스크 해제 시점을 발표한다. 

 

방역당국이 제시한 마스크 해제 요건이 충족한 상황에서 해제 시점은 설 연휴 이후인 이달 말쯤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0일 오전 회의를 열고 종합적인 상황을 검토해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 범위와 시기 등을 최종 발표한다.

 

이날은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3년이 되는 날인데 지난 2020년 10월 13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도입된 지 2년 3개월 만에 권고로 완화되는 것이다.

 

중대본은 환자가 몰리는 의료 기관과 약국, 복지시설, 대중교통 등을 제외한 실내에 한해서 권고 조정할 예정이다. 

 

전문가들도 실내 마스크 의무를 권고로 전환할 수 있는 요건은 갖췄다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중국발 감염 등 외부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기석 감염병 자문위원장은 지난 17일 열린 회의에서 “최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조정 시 참고할 수 있는 평가 지표 4가지 중 3가지가 충족됐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내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국내 유입 증가 우려와 신종 변이 발생 가능성, 그리고 설 연휴 인구이동에 따른 영향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내 마스크 해제 시점은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오는 25일과 연휴 다음 주 월요일인 30일로 후보가 좁혀진다. 

 

그동안 대부분 방역 조치가 월요일을 기점으로 시행된 점을 고려하면 30일이 유력해 보인다.

 

앞서 정부와 방역당국은 지난해 5월과 9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두 단계에 걸쳐 해제할 당시도 금요일에 발표 후 실제 적용 시점은 주말 이틀 간 여유를 뒀다.

 

한편 정부는 인파가 모이는 설 연휴를 고비로 보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설 연휴 고속도로 휴게소 내에 방역 인력 9650명을 배치하고, 휴게소 혼잡 정보를 사전 제공한다. 

 

경기도는 설 연휴 기간 내내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해 응급환자 발생 시 도민이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상시 진료체계를 유지한다. 선별진료소와 임시선별검사소는 일별 80~99개소 운영한다. 

 

또 동절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코로나19 설 특별 대응반’을 가동한다. 대응반은 민간 대응기관 등 관계기관과 공조체계를 통해 코로나19 확산에 신속 대응할 방침이다. 

 

서해안선 화성휴게소(서울방향)·경부선 안성휴게소(서울방향)·중부선 이천휴게소(하남방향) 등 도내 3개 고속도로휴게소에서도 임시선별검사소를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운영한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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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구룡마을 큰 불 발생…주민 500명 대피

김보미 기자

오전 8시50분 현재 40가구가 소실 추정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 주택에서 큰 화재가 발생,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당국은 오전 450∼500명을 대피시켰다. 연합뉴스사진 크게보기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 주택에서 큰 화재가 발생,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당국은 오전 450∼500명을 대피시켰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 주택에서 20일 오전 6시27분쯤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 중이다. 이날 오전 6시39분 발령된 대응 1단계는 오전 7시26분 대응 2단계로 상향됐다.

소방청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발화로 불이나 구룡마을(서울 강남구 양재대로 478 일대) 4~6지구 거주자 450~500명이 대피중이라고 밝혔다. 구룡마을에는 약 666가구가 살고 있다.

현재까지 2지구와 4지구, 6지구에서 40가구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인원 170명, 장비 53대, 소방 헬기 7대를 투입해 불길을 잡고 있다.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도 오전 8시쯤 화재 현장으로 출발했다.

소방청은 “가용 헬기와 소방력을 최대 투입해 연소 확대 방지에 총력 중”이라며 “이재민 구호 등 관계 기관가 협력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 주택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청 제공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 주택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청 제공

서울시는 ‘인근 주민은 신속히 대피하고 차량을 이동해 달라’는 긴급문자를 발송했다. 불이 난 구역 주변에는 2차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한 소방당국이 2지구와 4지구, 6지구에 연소 확대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재 발생과 관련해 “서울시와 강남구 등 지방자치단체와 소방·경찰 등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총력을 다하고 소방대원의 안전 확보에도 만전을 기할 것”을 긴급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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