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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떼자마자 한글 떼기? 이게 왜 문제냐면

무분별한 인지학습교육 부추기는 유아사교육시장... 과장광고로 상품 구매 유도

21.08.30 13:57l최종 업데이트 21.08.30 13:57l


'5세가 한글 떼기 골든 타임''수학을 5살부터 시작해 7살에 초등4학년 수준까지 마스터''6세에 3개월만에 한글을 떼고 진학'

영유아를 상대로 하는 사교육 광고 문구들이다. 무엇보다 교육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과장 광고들이 심각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5년 국가 교육과정 개정 작업 시, 한글 수업 시간을 27시간에서 2배 이상 늘리도록 촉구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해 2017년부터 68시간으로 늘어났다.

교육부에서는 입학 전 '한글 떼기' 선행교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학년 1학기부터 알림장 쓰기, 받아쓰기, 일기쓰기를 하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아 사교육업체들은 입학 전부터 한글을 떼야 한다고 부추기며 각종 교재를 홍보하고 있다.

웅진스마트올은 '초등 입학 전 한글 떼고 가서 다행' '예비초 7세 한글 떼셨나요?'라는 문구로 현재 초등 1학년부터 2학년 초반까지 배우도록 돼있는 현 교육과정에 역행하고 있다. 윙크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수학을 5살부터 시작해 7살에 초등 4학년 수준인 분수끼리의 계산까지 마스터'했다고 광고하며, 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아이들이 최소 4년 이상 선행학습한 사례를 성공담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와이즈캠프도 마찬가지다. '예비 초등 필수과정' 등의 문구로 초등 입학 이전에 학교생활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한글 떼기 선행학습 유도하는 사교육 상품광고 .
▲ 한글 떼기 선행학습 유도하는 사교육 상품광고 .
ⓒ 웅진스마트올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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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학원, 교습소 또는 개인과외 교습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이에 대해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법을 실제 이행하는 강력한 태도가 필요하다.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원빨간펜은 '두뇌 발달의 골든타임'처럼 과학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문구로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며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학습효과에 대한 허위 과장 광고도 문제다. 상품의 효과가 100%(리틀홈런) 있다거나, 모든 학습이 하나로 다 해결(웅진스마트올, 와이즈캠프)된다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과도한 학습량, 교육방식을 자랑하는 상품들이다.
  

 7세에 초4 수학까지 선행했다는 사교육상품 후기
▲  7세에 초4 수학까지 선행했다는 사교육상품 후기
ⓒ 윙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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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스마트올과 윙크는 영유아에게 매일 일정량의 공부습관을 요구하며 주 단위, 월 단위의 시간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리틀홈런의 경우 세세한 학습 목표로 나눠 수행률, 영역별 성취도, 평가 리포트 등을 제공하는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아동을 교육하고 있다.

현재 유보육기관에 적용되고 있는 '아동중심, 놀이중심' 누리과정의 취지를 왜곡시켜 놀이를 배워야 할 '학습'으로 변질시키는 상품도 있다. 학습을 의도한 놀이는 진짜 놀이가 아님에도 천재밀크티, 리틀홈런은 '공부도 놀이처럼', '놀이하듯 즐겁게 익히는 학습'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영유아 대상 사교육시장의 홍보전략이 비교육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리하고 제재하는 정부 단위 기구는 전무하다. 사교육비 통계 작성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 및 시도교육청 산하기관인 유아교육진흥원에서 영유아 교재·교구 검증 기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교육부에서는 이 기준에 따른 조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영유아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한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영유아의 놀권리를 보장하고, 과도한 인지학습교육을 규제하는 법률 개정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태그:#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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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처리 신중론에 조중동·한겨레경향 온도차 뚜렷

[아침신문 솎아보기] ‘신중론’ 주목하며 숙의 요구한 한겨레 경향... 언론개혁 피해구제 키워드 찾아볼 수 없는 보수신문

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이 예고된 가운데 다수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1면, 사설 등에 관련 기사를 싣는 등 주목했다. 민주당은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30일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통해 최종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여당 내 ‘신중론 확산’에 주목한 한겨레 경향신문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민주당이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내부에 신중론이 확산되는 등 기류 변화에 주목했다. 여당에서는 이상민, 노웅래 의원 등이 ‘반대’ 입장을 연달아 내는 등 견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겨레는 1면 “언론법, 강행- 숨고르기 갈림길” 기사를 통해 민주당의 강행 의지를 전하면서도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 안에서는 본회의 강행 처리에 대한 당안팎의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30일 본회의에서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어차피 9월 정기국회로 미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대한 비판 의견을 듣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명분을 쥐는 게 낫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 30일 한겨레, 경향신문 기사

경향신문도 1면 “여당 내부 ‘언론중재법 신중론’ 확산” 기사를 통해 민주당 내 변화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추가협의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당내 의견이 선회하고 있다”는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조선·중앙 민주당 지도부·지지자 비판 초점

같은 상황을 전하는 보수언론의 논조는 달랐다. 진보성향 신문사들이 여당 내 기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보수성향 언론사들은 기류 변화에도 ‘폭주’하는 민주당 지도부와 지지자들을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조선일보는 4면 “송영길 ‘청에 얽매이지 않아’... 강성 지지층은 ‘언론10적 문자폭탄’” 기사를 통해 지도부와 강성 지지층을 정조준했다. 조선일보는 “(송영길 대표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며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이상민, 노웅래, 조응천, 이용우, 오기형 등 여당 의원 10명을 언론10적이라고 부르며 문자폭탄을 보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관련 기사를 다룬 면의 이름을 ‘여 언론징벌법 폭주’라고 지었다.

▲ 30일 조선일보 기사

중앙일보 역시 1면 기사 “여당 내 반대 커지는데 지도부가 언론법 폭주”를 통해 “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내 강경론을 주도하는 이는 송 대표 본인이라고 한다”며 지도부 책임론에 방점을 찍었다. 

사설서도 “신중론” “폐기” 온도 차

이날 다수 주요 종합일간지가 사설을 내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온도차가 있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폐기’보다는 ‘숙고’에 방점을 찍었다. 경향신문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언론중재법 재숙고 선언하라”사설을 통해 “민주당 의원들이 솔직하고 충실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숙의를 이어나가는 쪽으로 결론을 내기를 기대한다”며 “언론단체들이 제안하고 시민사회도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앞서 언론단체들은 언론 보도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 구제가 가능하면서도 악용 가능성이 없는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

▲ 30일 조선일보 기사

한겨레 역시 사설을 내고 “언론에 대한 규제는 누구도 악용할 수 없어야 취지도, 효과도 살릴 수 있다. 아무리 신중하게 접근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언론에 의한 피해를 막으면서도 모두를 위한 언론자유도 신장하기 위해 지금은 밑그림부터 그려야 할 때”라고 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여 언론중재법 숙의론 확산, 속도 조절 아닌 폐기가 맞다” 사설을 내고 여당 일각의 ‘숙의론’에 대해 “비판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문제의 본질을 덮고 가자는 면피용일 뿐”이라며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강행 처리를 중단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면서 진보성향 단체들도 이 법안에 반대하는 점 등을 언급하며 이 법안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공통적으로 밝혔다. 보수언론에서는 언론개혁의 필요성과 피해 구제의 필요성은 언급되지 않았다. 

윤희숙 논란 누구 책임?

부동산 의혹에 국회의원직 사퇴 입장을 밝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사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국회의원 사퇴는 표결이 필요한데, 다수당인 민주당이 사퇴에 앞서 조사에 임한 후 책임 질 것을 요구한 상황이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이 2016년 세종 스마트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의 세종시 인근 땅을 사들였지만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 인근에 거주하지도 않았다며 농지법과 주민등록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윤희숙 의원은 의혹을 부인하며 사퇴를 발표했으나 이후 윤 의원 부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투기 가능성을 시인하고, 추가 의혹이 나오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 30일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퇴 결정을 한 윤희숙 의원과 사퇴 입장을 내지 않은 여당 의원들과 비교한 뒤 표결을 막는 ‘여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무소불위 여, 윤희숙 사퇴도 못하게 막는다니” 사설을 내고 “본인이 사퇴를 하겠다는데 상대 당이 안 된다며 표결을 거부하며 어깃장을 놓은 경우는 처음본다”며 “여당 의원 대부분은 쇼는커녕 사퇴하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퇴안이 가결될 경우 이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같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서로 눈치만 보다 정쟁에 휘말린 정치권 행태가 한심하다”며 여야 모두를 비판한 뒤 “의원직 사퇴라는 윤 의원의 무리수로 논란이 커졌지만 애초 국민의힘이 면죄부를 주면서 화를 키운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 결과 12명의의원들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지만 국민의힘은 절반에 대해서만 탈당 권유 및 제명 처분을 내렸다.

한국일보는 “윤 의원의 특공 시세차익 등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의원 측에서 해명해야 할 사안’이라며 오락가락한 행보마저 보였다”며 “이제 와서 발을 뺄 것이 아니라 셀프 면죄부에 대한 실책을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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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蠶食)’과 ‘걸식(乞食)’

‘잠식(蠶食)’과 ‘걸식(乞食)’ 기보기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누에를 치면 따뜻한 방은 잠실로 변한다. 지금 강남에 있는 ‘잠실’도 아마 누에를 많이 치던 곳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그곳은 텅 빈 땅에 땅콩농사 짓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누에 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누에는 하루 종일 먹기만 한다. 여러 마리가 사각사각 먹는 소리가 옆에서 들으면 우레소리(?) 만큼 커서 잠도 자기 힘들다. 하루 종일 먹으니 빨리 성장하고 빨리 고치를 만든다. 잠식(蠶食)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야금야금 먹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돌아보면 나뭇가지가 줄기만 달랑 남아 있다. 그러면 다시 싱싱한 뽕잎으로 갈아 주곤했다. 누에가 갈아먹듯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금방 다 먹어 치운 것이 ‘잠식(蠶食)’이다. 이것이 변해서 지금은 “눈치 못채게 조금씩 침범해서 어떤 이익이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어린 시절의 추억을 돌아보면 슬펐던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라 그럴 수도 있지만 멱감고 참외 서리하던 즐거운 추억은 그리 많지 않고, 뽕잎 따고 목화 따던 힘들었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그중 아주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가 뽕밭을 없애고 일반 밭으로 만들었던 기억이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몹시도 추운 겨울에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뽕밭을 없애게 되었다. 뽕나무는 뿌리가 강해서 쟁기가 잘 부러지기 때문에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4형제였지만 막내는 너무 어려서 필자까지만 동원됐던 것 같다. 나무를 톱으로 베고, 삽으로 판 다음 뿌리를 제거하는데, 언 땅이라 하나 제거하는데 하루 종일 걸릴 정도였다. 할아버지께서는 “그까짓게 뭐가 힘들어! 쓱쓱 잘라서 툭툭 치면 되는 것을……” 하고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서러웠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돼서 형님과 그 시절 그 노래를 되새기면서 쓴웃음만 짓는다.

예문으로는

①에어컨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선풍기가 차지하고 있던 가정 냉방 용품 영역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가고 있다.(<다음 어학사전>에서 인용)

②외국 자본은 국내 시장을 잠식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상동)

등이 있다.

한편 걸식(乞食)이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유래하였다. 요즘은 걸인(乞人)들이 별로 없지만 40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많았다. 깡통에 밥을 얻으러 다니던 아이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요즘은 그나마 노숙자(露宿者)만 보일 뿐이다. 노숙자들은 거지와는 다르다. 이들은 돈만 구하지 밥을 구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구걸하여 술을 사 먹는 경우는 있지만 밥을 달라고 깡통을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걸식은 불교의 걸사남(乞士男), 걸사녀(乞士女)에서 근원을 둔 말이다. 스님들은 걸식(乞食)하는 것을 수행의 하나로 여겼다. 지금도 태국에 가면 아침마다 걸식하기 위해 도로를 누비는 스님들을 볼 수 있다. <좌전>에 의하면 “乞食于野人(야인에게 밥을 빌다)”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걸인(乞人)이 ‘거지’로 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 번역할 때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옮기고, 중국어(한자)를 다시 우리말로 옮길 때 ‘보시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도 걸식이라고 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걸식하는 수행승인 비구, 비구니에서 걸식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걸사남, 걸사녀가 자신의 색신(色身: 육체)을 구하기 위해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비는 것도 청정한 생활이라고 한다. 우리 옛 속담에 “가을 중 쏘다니듯 한다.”는 말이 있다. 가을에 열심히 탁발해야 겨울을 편안하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여 인터넷이나 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아프카니스탄처럼 탈레반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하고, 걸식하게 되기 전에 정신차리고 나라 사랑하는 정신을 길러야겠다. 수행으로 걸식하는 것은 좋지만 나라 잃고 걸식하게 되면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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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에 '탈레반' 비난까지... 언론중재법 여론전 총공세 나선 국민의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8/30 02:51
  • 수정일
    2021/08/30 02: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당 "'시간끌기', '발목잡기'에 연연하지 않을 것... 국민만 바라보며 책임을 완수하겠다"

21.08.29 17:57l최종 업데이트 21.08.29 18:03l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둔 29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상정할 경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서겠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표 대결로는 민주당에 밀리는만큼 반대 여론을 모아 여당을 압박하려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9월 초에라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날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 했으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회의가 끝난 후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일(30일) 양당 의총 후 회동해서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며 "4시 예정이었던 본회의는 5시로 미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언론중재법이 아니라 언론재갈법이다, (내일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더이상 논의 길이 막힌다, 논의할 시간 필요하다는 게 우리 당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입장 재확인... 언론중재법 8월 처리 무산 김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을 통해 "무제한 토론에 나설 사람을 모두 정해놨다"며 '필리버스터' 추진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언론중재법 8월 처리는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경우 8월 임시회 회기가 끝나는 이달 31일까지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로 언론중재법 개정안 8월 처리를 무산시켜도, 9월에 열릴 본회의에서는 표결이 진행되기 때문에 국민의힘은 여당을 막을 묘안이 없는 상태다. 이에 국민의힘 대변인과 의원들은 '탈레반'까지 언급하며 정부 여당을 총공격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강민국 원내대변인은 이날 "언론중재법이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보장법'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면서 "임기 말 정권 비리 보도가 두려운 문 정부가 퇴임 후 관리 목적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큰사진보기 국민의힘 대권주자 홍준표 의원이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을 규탄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1.8.29
▲  국민의힘 대권주자 홍준표 의원이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을 규탄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1.8.2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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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의원은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벌을 서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인데 거꾸로 내가 벌을 서고 있는 느낌"이라며 "민주당이나 문 대통령이 양심을 갖췄다면 아마 (30일 본회의에 상정하는) 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홍 의원은 "180석의 여권 의석을 가진 사람들이 무슨 법인들 못 만들겠나"라며 "이 구도를 깰 방안은 대선에서 이기고 정권을 탈환해서 우리가 여당이 돼 민주당을 상대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석기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을 민주당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민의도, 법치도, 협치도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탈레반과 다를 게 무엇인가"라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인 언론마저도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 출신인 김은혜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외신기자들에 창피를 당하고도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인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을 희생해서라도 내년에 전직 공무원이 될 문 대통령을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이라는 전등불마저 꺼지면 대한민국은 암흑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30일 처리 어려우면 9월 초에라도 처리"

일단 민주당도 9월 처리를 내다보고 있는 상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30일 처리가 어려우면 9월 초에라도 처리할 것"이라며 강행 처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큰사진보기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왼쪽)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왼쪽)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8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자료사진)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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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내일 본회의가 열린다, 가짜뉴스피해구제법인 '언론중재법' 등 민생개혁 법안이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는 민생개혁 입법의 '발목잡기' 이상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언론재갈법' 프레임이 전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한 원내대변인은 "민생개혁입법은 국민이 주신 책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시간끌기', '발목잡기'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반드시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8월 국회 처리가 무산된 만큼 여론 역풍 등을 감안해 냉각기를 갖자는 의견이 나온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대화를 통한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노력은 불가피하다, 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된다"며 "시민사회와 충분히 대화하며 이 문제를 함께 추진해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30일 최고위원회 및 의원총회를 거쳐 언론중재법 처리 관련 방침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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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 구글·애플 ‘폭리 방지법’ 국회 통과 초읽기

매년 급증하는 거대 앱 플랫폼 수수료…올해 2조원 돌파할듯
결제 수단 독점 금지…미국서도 오픈앱마켓법 발의

홍민철 기자 
발행2021-08-29 17:18:06 수정2021-08-29 17:18:06
 

‘구글·애플 폭리 방지법’ 통과가 목전에 다가왔다. 30일 관련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을 독점하고 과도한 자릿세를 받던 독점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다. 구글·애플 등 글로벌 플랫폼 독점 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한국이 세계 최초다.

구글과 애플은 스마트폰 앱을 다운 받을 수 있는 플랫폼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 운영 독점 사업자다. 올해초,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주요 모바일 기업 246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이용해 앱을 유통하는 회사는 94.7%, 애플 앱스토어를 이용하는 기업은 71.5%에 달했다. 앱을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판매 혹은 유통하려면 구글과 앱의 독점 플랫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반영된 조사 결과다.

구글과 애플은 독점 상황을 이용해 모바일 기업에 30%의 수수료를 받았다. 소비자가 두 회사의 유통 채널에서 다운 받은 앱을 통해 컨텐츠를 구매하면 구매액의 30%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낸 것이다.

지난해 모바일 산업 전체 매출액은 9조3천억원 규모였다. 이중 구글과 애플을 통한 매출 비중은 전체의 88%, 매출액은 6조6천억원으로 압도적이었다. 매출에 따라 구글과 애플이 떼간 수수료는 1조6,358억원에 달한다. 모바일 사업이 매년 성장하면서 수수료 규모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9년 대비 2020년 수수료 합계액은 29.8% 늘었고, 2021년에는 30.8% 증가해 수수료 규모는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구글 애플ⓒ기타
 

안전·안정 논리 빈약
소비자 10명중 7명은 10%가 적당

거대 앱 플랫폼인 구글과 애플은 소비자 결제 서비스를 장악해 수수료를 징수한다. 앱에서 사용하는 결제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이른바 ‘인앱결제(In-App Purchases, IAP)’ 방식이다. 이들은 “사용자가 플랫폼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결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인앱결제 시스템 강제를 정당화 하고 있다. 소비자 결제가 실제 컨텐츠 구매와 연결될 수 있도록 구글과 애플이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 시장에서 이들의 역할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소비자가 유료 결제를 했는데 게임사가 그에 상응하는 아이템을 지급하지 않는다거나, 음원 스트리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거나, 웹툰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구글과 애플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사법·금융시스템은 피해를 구제하거나 예방할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다. 이들이 “안정적이고 안전한 결제 시스템”을 유지한다며 매출의 30%, 연 2조원의 수수료를 챙겨갈 명분이 없는 것이다.

소비자 인식도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소비자권익포럼 조사결과에 따르면 거대 플랫폼 기업이 거둬가는 수수료 30%가 과도하다고 답한 소비자는 84%에 달했다. 적절하다는 응답은 16.0%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수수료율이 10% 이하여야 한다’고 답했고, 이중 ‘5% 미만으로 거둬야 한다’고 답한 사람도 26%로 높은 수준이었다. 소비자 대다수는 수수료율을 지금의 1/3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수수료는 소비자의 컨텐츠 구매 가격과 직결된다. 어디서 구매하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카카오웹툰의 경우, 웹에서 캐시를 충전하면 1천원에 1천 캐시가 충전되지만, 아이폰에서 결제할 경우 1,200원을 내고도 900캐시가 충전된다. 아이폰 캐시 충전이 웹에 비해 25% 더 비싼 셈이다. 충전 금액이 커질수록 차이는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카카오웹툰 뿐 아니라 네이버웹툰, 웨이브뮤직, 멜론 무제한 듣기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웹과 앱의 가격 차이는 수수료 때문이다. 컨텐츠 제공 사업자가 플랫폼 사업자인 애플에 내야할 수수료를 소비자들에게 상당부분 전가하기 때문이다.

한국 폭리 방지법 세계 최초 제정 할 듯
미국서도 법안 발의…애플은 정책 변경 발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폭리 방지법’ 정식 명칭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법안은 구글과 애플이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모바일콘텐츠 제공 사업자로 하여금 특정한 결제방식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구글과 애플이 자신들의 결제 방식을 택하지 않은 사업자 심사 통과를 지연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도 법안에 담겨 있다. 법안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방송통신위원회는 앱 마켓 운영 실태 조사를 의무화해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춘다.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구글과 애플의 폭리를 방지하는 법을 제정한 국가가 된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도 관련 법 제정이 추진중이다. 미국에서는 상원에서 앱마켓의 강제 결제를 금지하는 ‘오픈 앱마켓 법안(The Open App Markets Act)’이 발의 됐다. 법안에 따르면 앱마켓 사업자는 앱 개발사가 자사의 인앱결제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앱마켓 이용을 제한하면 안 된다.
개발사가 다른 시스템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 자체 앱 마켓을 통해서만 앱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여기에 더해 앱 개발자들이 구글이나 애플 같은 거대 사업자의 앱스토어 외에 다른 곳에서 좀 더 저렴하게 자사 앱을 다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홍보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에선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집단 소송전도 벌어진 바 있다. 지난 2019년 소규모 개발자 그룹은 애플이 최대 30%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관행적으로 독점 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같은 이유로 반발했던 대형 게임사 에픽게임즈를 앱스토에서 퇴출 시키는 등 자사 정책을 완강하게 고수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한국 등에서 관련 법이 추진되면서 애플은 지난 27일 한 발 물러섰다. 애플은 연 매출 100만달러(11억원) 미만 사업자 15% 수수료 감면 혜택 3년간 유지, 사용자 평가 등 객관적 지표에 기반한 앱스토어 검색 결과 반영, 앱 외부 결제 방식 정보 이용자 제공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정책 변경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 개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애플이 합의한 내용이다. 하지만 문제의 결제 시스템 독점은 양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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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

재일 한통련,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여권발급 긴급요청 행동

  • 기자명 도쿄=박명철 통신원 
  •  
  •  입력 2021.08.29 22:56
  •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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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모임의 요청단.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출발모임의 요청단.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통련, 의장 손형근) 회원에게 일반 여권을 발급하도록 외교부장관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재일 한통련 간부 4명이 6월 22일 주일한국영사관에 일반여권 신청을 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두 달이 지나도록 여권은 발급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통련 회원들과 일본 연대단체 대표들은 29일 도쿄 미나토구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여권발급을 요청하는 긴급행동을 전개했다.

출발모임 인사에 나선 손형근 의장은 “최근 MBC방송의 국정원 불법 해외공작 실태 보도를 계기로 국정원의 암약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며 “여권문제의 근본 해결은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일민중연대운동에 나서고 있는 도마츠 카츠노리 씨는 “오늘의 긴급행동은 국가보안법 철폐 연대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일한국대사관을 뒤로 한 요청단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주일한국대사관을 뒤로 한 요청단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모임 후 참가자들은 대사관 앞으로 가서 대사관을 향해 “한통련에 일반여권 발급하라”, “국정원 해외공작 진상규명”, “국가보안법 폐지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일제히 구호를 외쳤다.

손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에 보내는 요청문을 낭독했다. 일본어 요청문은 곽수호 고문이 낭독했다.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손형근 의장 등.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손형근 의장 등.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요청서에서는 “한국정부는 언제까지 우리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것인가”하고 반문하고,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즉각 여권을 발급하라고 촉구했다.

또 최근 보도된 국정원의 재외국민 투표 개입과 일본 극우단체와의 부당거래와 관련하여 “민족차별정책 속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국정원이 한국 시민단체 탄압에 나서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경악했다”며 일본을 무대로 한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규탄했다.

요청서는 또 지금까지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정원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1971년 민단중앙단장 선거 개입, 같은 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배동호 한통련 의장에 대한 소환장 송부,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이 일어났다고 적시했다.

계속하여 국정원이 여권발급을 무기로 재일동포를 압박하며 “반북 냉전사고 논리를 끄집어내어 재일동포의 민족적인 삶이나 민주화 통일운동 참여를 방해하고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은 재일동포 탄압의 무기였다”고 지적하고 “재일동포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요청서는 마지막에 “국정원의 재일동포에 대한 불법공작 실태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안에 국정원의 불법 해외공작 등 적폐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일본경찰관들과 대치하는 요청단.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일본경찰관들과 대치하는 요청단. [사진-통일뉴스 박명철 통신원]

이날 긴급행동은 일본경찰 50여명이 몰려와 대사관 접근을 가로막아 선 가운데 약 1시간에 걸쳐 힘찬 시위가 전개됐다. 문재인 대통령 앞 요청서는 대사관 우편함에 넣었다.

한편, ‘한통련의 완전한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임종인 집행위원장은 8월 19일 견해를 발표, “정부가 우리 민주화를 함께 한 한통련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회하고 대한민국 국민 한통련 분들에게 여권을 발급”할 것을 촉구했다.

 

[요청서] 문재인 대통령 귀하

 

국가인권위원회는 외교부에 대해 지난 5월 한통련 회원에 대한 여권 발급거부·제한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일반여권 발급을 권고했다.

이 권고에 따라 손형근 의장을 비롯하여 한통련 간부 4명이 6월 22일 주일대사관에 여권신청을 했다. 그러나 신청 후 2개월이 지났으나 여태까지 여권이 발급되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는 언제까지 우리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는 외교부가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즉각 4명에게 일반여권을 발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MBC방송은 6월 1일 국정원이 재일동포 등 재외국민들을 대상으로 여권발급 제한 등으로 ‘2012년 대선 재외국민 투표 개입 공작’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8월10일 ‘PD수첩’ ‘국정원-일본 극우단체 부당거래’에서는 국정원과 일본우익의 유착 실태에 대해 보도했다. 일본정부의 차별정책 속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우리는 국정원이 일본우익단체와 함께 한국시민단체 탄압에 나서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경악했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지금까지 국정원은 일본을 무대로 불법 사찰과 정치개입을 해왔다. 1971년 민단중앙단장선거 개입, 같은 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배동호 한통련의장에 대한 소환장 송부,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일 수교 후 여권발급을 무기로 한 국정원의 탄압이 빈번히 일어났다. 정보부원은 대사관이나 영사관 직원 신분을 자처하며 사찰대상인 재일동포를 영사관 등에 불러내 여권발급 거부를 넌지시 내비치며 압박을 가했다. 그들은 반북 냉전사고 논리를 끄집어내어 재일동포의 민족적인 삶이나 민주화 통일운동 참여를 방해하고 막으려했다. 국정원은 남북분단 유지와 군사정권, 보수정권 수호를 위해서라면 일본우익과 결탁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재일동포 탄압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국가보안법이었다.

재일동포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의장을 비롯해 한통련 회원의 여권문제도 근저에 국정원의 불법 해외공작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정원의 재일동포에 대한 불법공작 실태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또 국정원이 한통련 회원에 대한 여권 발급 거부, 기한 제한 조치와 관련하여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안에 국정원의 불법 해외공작 등 적폐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요청사항

1 문재인 정부는 즉각 한통련 회원에게 일반여권을 발급하라.
1 국정원의 불법 해외공작 진상을 규명하라.
1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2021년 8월 29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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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의원 부친의 농지는 강제 매각 대상이다

[주장] LH 사태 당시 강제 매각 명령 공언했던 정부... 법과 원칙 따른 강력한 처벌 필요

21.08.28 17:50l최종 업데이트 21.08.28 17:50l
큰사진보기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친의 세종시 논 구입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친의 세종시 논 구입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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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윤 의원은 "내가 부모님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자괴감을 느꼈다면서 아버지의 친필편지를 통해 "이번에 문제가 된 농지는 매각이 되는 대로 그 이익은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부모님을 몰랐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법'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윤 의원 부친이 매입한 농지는 매각 명령 대상일 뿐입니다. 2016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신청할 때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할 것이라며 허위의 취득 목적을 기재하고 역시 허위의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농지법 제6조(농지 소유 제한) ①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윤 의원의 부친은 2016년에 세종시 전의면 면장으로부터 고발당했을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한 임대차 계약과 2021년 1월 3일 자로 맺은 개인 간의 임대차 계약 역시 모두 불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농지취득자격증명발급심사요령(농림축산식품부예규 제39호)
제8조(자격증명 발급요건) ①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를 접수한 시·구·읍·면장은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 및 농업경영계획서의 기재사항과 주민등록 및 농지원부 등에 따라 신청인이 다음 각 호의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확인·심사한 후 적합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지체 없이 자격증명을 발급하여야 한다. 이 경우 신청인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경우로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현지 확인 등을 하여야 한다.
1. 제4조에 따른 자격증명발급대상자 일 것
2. 농지를 취득하는 목적이 다음 각 목의 규정에 적합할 것
가.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제4조제1호 각 목에 해당하는 자에 한정한다)

제11조(부정한 방법 등으로 자격증명을 발급받은 자에 대한 조치) 시·구·읍·면장은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 및 농업경영계획서의 허위사실 기재 등으로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의하여 농지취득자격증명이 발급된 경우에는 즉시 신청인을 고발하여야 한다.


부정한 방법에 의하여 농지취득자격증명이 발급됐음에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농지임대수위탁계약서를 작성한 한국농어촌공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농지법 제10조(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하는 농지 등의 처분) ②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은 제1항에 따라 농지의 처분의무가 생긴 농지의 소유자에게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처분 대상 농지, 처분의무 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 그 농지를 처분하여야 함을 알려야 한다.


또한, "이번에 문제가 된 농지는 매각이 되는 대로 그 이익은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농지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가 매수하는 경우 매수가격은 최대치가 공시지가이기 때문입니다.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 등의 처분관련 업무처리요령(농림수산식품부예규 제24호)
Ⅲ. 처분대상농지의 결정 및 통지
1. 처분대상 농지의 요건
가. 법 제10조제1항제1호 및 같은 법 시행령(이하 "영"이라 한다) 제9조에 따른 정당한 사유 없이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하였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인정하는 농지

Ⅴ. 농지의 매수 및 처분
1. 농지의 매수
나. 매수가격의 산정
○ 한국농어촌공사가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소유자의 청구에 의하여 농지를 매수하는 경우 매수가격은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시지가(해당 농지의 공시지가가 없는 경우에는 같은 법 제9조에 따라 산정한 개별토지가격을 말한다)에 의하여 산정한다.
○ 이 경우 인근지역의 실제거래가격이 공시지가보다 낮은 때에는 실제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큰사진보기 26일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일대 모습.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이 2016년 이 일대 논 1만871㎡를 사들였던 것과 관련해 농지법과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  26일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일대 모습.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이 2016년 이 일대 논 1만871㎡를 사들였던 것과 관련해 농지법과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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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제가 된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의 농지는 5필지 1만 871㎡입니다. 공시지가를 적용해 각 필지의 가격을 계산해 모두 더하면 해당 농지의 한국농어촌공사 매수가는 5억 6707만 8400원입니다. 윤 의원 부친이 8억 2000만 원에 매입했다고 했으니 공시지가로 매각할 경우 사회에 환원할 이익은커녕 2억 5292만 1600원의 손실이 발생할 뿐입니다.
  
논에 들어가 피 한번 뽑아보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이익을 바라는 것은 농사꾼의 마음이 아니라 투기꾼의 욕심입니다.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는 LH 직원들이 매입한 농지에서 한 푼의 이익도 보지 못하게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농지를 투기한 LH 직원들에 대한 강력한 징계나 강제 매각 집행 결과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용두사미로 그친 LH 사태의 전철을 밟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른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농업경영체 전수조사를 통해 부재지주와 가짜 농사꾼을 가려내 처벌하고, 경자유전의 헌법 정신과 농지에 관한 기본 이념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가 나서 감사원 감사 청구를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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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 사망 배달노동자 추모공간 마무리 “플랫폼 기업에 안전보장 촉구”

배달의민족, 뒤늦게 장례식 비용 모두 지급하기로 결정

 
28~29일 선릉역 오토바이 배달기사 사망사고 현장을 찾아 조문하는 배달기사들과 시민들의 모습.ⓒ서비스일반노동조합

서울 강남구 선릉역 대로에서 화물차에 치여 숨진 40대 오토바이 배달노동자의 현장 추모공간이 29일 마무리된다. 고인의 발인이 이뤄지면서다. 사고를 당한 배달노동자와 위탁계약을 맺은 (주)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도 뒤늦게 모든 장례식 비용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노조)는 고인의 발인과 같은 시간인 29일 오전 9시 선릉역 추모공간을 마무리한다고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전날 저녁 노조의 중재 하에 배달의민족 사측이 유가족에게 장례식 비용을 모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사측은 장례비용을 지급하겠다고 한 뒤 조의금 형태로 일부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해 노조의 반발을 산 바 있다. 노조는 “장례비용 일체와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비판했다. 이에 사측이 장례식 비용 일체를 지급하기로 뒤늦게 결정한 셈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노조는 “라이더(배달노동자)는 플랫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산재보험을 제외한 모든 사회보험에서 제외된다”며 “앞으로 노동자로서 가져야 할 권리를 하나하나 찾아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앞서 26일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노조는 사고 현장에 고인이 타던 오토바이를 두고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추모공간에는 배달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그만큼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노조는 “라이더들(배달노동자들)은 십시일반 부조금을 모아서 노조에 보내줬다”며 “노조는 이를 유족에게 보낼 예정이다. 함께 해주신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28~29일 선릉역 오토바이 배달기사 사망사고 현장을 찾아 조문하는 배달기사들과 시민들의 모습.ⓒ서비스일반노동조합

또한 노조는 “이번 추모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라이더의 안전문제를 제기했고, 우리는 향후 이 문제를 집중해서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며 “라이더의 죽음은 구조적이다. 앞으로 우리는 배달라이더가 산재로 내몰리는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및 의식 개선 사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9월부터 배달의민족 대표교섭노조로서 임금교섭에 나선다. 더불어 쿠팡이츠와는 라이더유니온과 공동교섭단을 꾸려 단체교섭을 앞두고 있다”며 “우리는 이번 플랫폼 기업과의 교섭에서 라이더의 안전문제에 대해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을 묻고, 라이더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특히 쿠팡이츠가 유지하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무보험정책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노조는 정부를 향해서도 “배달오토바이 공제조합 설립 및 라이더 안전을 위해 제도적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올해 7월 27일 생활물류서비스법이 시행됐다. 생활물류서비스법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가에 따라 이륜차 공제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돼있다”며 “그런데 정부는 9월 정기국회 예산 제출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현재까지 배달오토바이 공제조합에 대한 예산안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부가 라이더 안전에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조는 “우리는 라이더 안전 교육 및 정지선 지키기 캠페인 등을 진행하여 스스로 안전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조는 “이번 선릉역 사고로 인해 많은 라이더들이 안전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앞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자성하고 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하나씩 개선하고 안전한 배달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28~29일 선릉역 오토바이 배달기사 사망사고 현장을 찾아 조문하는 배달기사들과 시민들의 모습.ⓒ서비스일반노동조합
28~29일 선릉역 오토바이 배달기사 사망사고 현장을 찾아 조문하는 배달기사들과 시민들의 모습.ⓒ서비스일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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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수행을 해서 성품을 더 깨우쳐야”

[백포 서일 100주기 인터뷰] 최윤수 대종교 전 삼일원장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8.28 22:31
  •  
  •  수정 2021.08.29 10:16
  •  
  •  댓글 0
 

청산리대첩의 총지휘자 백포 서일, 100년 전 잠들다

최윤수 대종교 전 삼일원장과 24일 안양 소재 한 찻집에서 백포 서일 100주기를 돌아보는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윤수 대종교 전 삼일원장과 24일 안양 소재 한 찻집에서 백포 서일 100주기를 돌아보는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으로부터 100년이 지나 반쪽짜리 고국에 안장됐다. 아직 분단의 장벽은 굳건하고 고향 평양은 지척이지만 머나먼 땅으로 남아있다.

김좌진 장군의 명성에 비해 홍범도 장군은 유해 봉환이 이루어지고서야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청산리대첩의 총지휘자는 아직도 건국훈장 3등급에 해당하는 독립장을 받은 채 이국에 묻혀 있다. 서거 100주기를 맞은 백포 서일(白圃 徐一, 1881.2.6~1921.8.27(양력 9.28))이 바로 그다.

백포 100주기를 맞아 24일 오후 경기도 안양 소재 한 찻집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최윤수 대종교 전 삼일원장은 “일찍 돌아가셔서 살아계신, 계속 활동하신 분들의 빛에 가려졌고, 그분들이 서일 종사님에 대해서 그 공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이렇게 서일 종사님이 잊혀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100주기에 대종교(大倧敎), 종사(倧師), 삼일원장(三一院長) 등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만주의 독립운동 지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전반기는 민족주의 세력이 후반기는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했다고 대별해도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 전반기 민족주의 항일무장투쟁의 주력부대가 바로 대종교의 군사조직인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이고 꽃봉오리가 청산리전투이다.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 독립운동세력은 단군민족주의를 주창한 대종교를 일종의 국교(國敎)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백포 서일(왼쪽)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초상화가 대신하고 있다. 백포의 스승 홍암 나철(오른쪽)은 1916년 8월 조천하기 전 사진을 남겼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09년 홍암 나철이 중광(重光)한 대종교의 무장조직인 북로군정서는 총재 서일, 부총재 현천묵, 총사령관 김좌진, 참모장 이장녕, 사단장 김규식으로 이어지는 지휘체제를 갖췄고, 청산리전투에는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도 가세했다. 청산리전투는 김좌진, 홍범도 장군이 그 주역이고 그 총지휘자가 바로 백포 서일이며 그 배후는 바로 대종교였던 것이다.

더구나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패한 일본군이 보복학살에 나선 경신참변을 겪으며 중소 국경지대인 중국 밀산에 결집한 10여개의 항일무장대오 3,500여명은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했고, 총재로 백포 서일을 추대했다. 당시 부총재가 홍범도, 참모부장이 김좌진이었다.

대종교에서 종리원과 선도원, 수도원을 총괄하는 삼일원장을 맡았던 최윤수 원장은 “청산리대첩이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큰 위로랄까 희망을 불어넣은 거다”라며 “일본군과 싸워서 큰 승리”를 거둔 점을 평가했다.

일본군의 “천하무적” 신화를 깨뜨리고

[사진 - 송정미]
홍암의 미소를 닮은 최윤수 전 삼일원장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사진 - 송정미]

백포가 생을 스스로 마감했던 중국 밀산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밀산시인민정부 명의로 건립한 ‘서일 총재 항일투쟁 유적지’ 기념비가 서있다. 기념비에는 “1920년 10월, 서일은 연변지구에서 항일련합부대를 지휘하여 저명한 청산리대첩을 펼쳐 일본침략군 수천명을 섬멸함으로서 일본군의 “천하무적” 신화를 깨뜨리고 동북 항일투쟁사에 빛나는 한페지를 남겼다”고 새겨져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래 청나라와 러시아까지 제압했던 일본 황군의 천하무적 신화를 1920년 만주에서 처음으로 깨뜨린 이가 바로 백포다. 대종교 교인들로 북로군정서를 설립하고 러시아 내전에 사용됐던 체코군의 신식무기를 대거 입수하는 한편, 김좌진 등을 영입해 맹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청산리에 우뚝 선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 [자료사진 - 통일뉴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밀산시인민정부가 건립한 '서일총재 항일투쟁 유적지' 기념비.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만주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과 천수평, 완구루, 어랑촌 등지에서 10여 차례에의 전투 끝에 일본군 1,200여 명을 사살했고, 독립군도 100여 명의 전사자를 낸 ‘청산리 대첩’은 백포 서일과 대종교, 북로군정서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최 원장은 “한 가지 특기할 게 그 당시 대종교 인물들이 다 공화주의였다”며 “「삼일신고」 경전 자체가 남녀와 인종의 차별이 없다”고 짚었다. 당시만 해도 대종교와 연대한 유교계열의 공교도(孔敎徒) 내부에는 보황주의(保皇主義)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으로 이후 남북이 모두 ‘민주공화국’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익인간 이념을 실천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신 분”

그러나 최윤수 전 원장은 백포 서일 ‘종사’에 대해 “한 마디로 하면, 진리탐구를 하셨고 굉장히 정성스럽게 홍익인간 이념을 실천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무장투쟁 보다는 ‘진리탐구’와 ‘홍익인간 실천’에 진력한 수행자로서의 면모에 비중을 뒀다.

최 원장은 “이 분이 회삼경(回三經)도 쓰고 여러 경전을 썼는데, 그런 경전을 쓴 사람은 오직 홍암 나철 대종사와 백포 서일 종사 밖에 없다”며 “조천(朝天)하실 때도 폐식(閉息) 절명하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징후를 보면 성품에 굉장히 많이 통하셨다고 볼 수 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대종교 경전』에 포함된 백포 서일이 저술한 「회삼경」. 대종교 3대 교주 단애 윤세복이 머리말을 썼고 여러 도표를 동원해 삼일사상을 해설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회삼경」 (일부)

한얼님은 한울의 임자시니, 덕은 넓고 슬기는 밝고 힘은 억세시어, 모습 없이 만드시고 말씀 없이 기르시며 함이 없이 다스리시니라.

크시도다 한얼님의 도여!
하나이자 셋이니 주체로는 더없는 위에 사무치며, 쓰임으로는 더없는 끝에까지 다하시니라.
(중략)

오직 사람은 만물 중에서 신령스럽고 빼어나서 위로는 한얼님에 합하고, 아래로는 뭇 별들에 응하므로 그 도가 한울과 땅과 더불어 셋이 되니라.

총명하고 슬기로움은 한얼님과 사람이 다름없으되, 사람에게는 세 가지 가달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혹시 미혹하며 느끼고 움직임은 사람과 만물의 차이가 없으되, 사람은 세참함이 옹근지라 그러므로 능히 깨닫느니라.

뭇 사람도 깨달으면 밝은이요 밝은이가 돌이키면 한얼님이니,
그 비롯은 하나로서 같지 않음이 없고, 그 마지막엔 온갖 다름이 하나로 돌아가느니라.
(하략) 

실제로 백포는 대종교 2대 교주인 무원 김교헌 선생으로부터 교통을 전수받을 것을 권유받았으나 독립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사양했지만, 「회삼경」 「삼일신고강의」「구변도설」 「진리도설」「오대종지강연」「삼문일답」등을 저술했다.

최 원장은 백포가 무장단체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경전을 집필할 정도의 수행자였음을 강조하면서 수전병행(修戰竝行) 사상을 짚었다. “자기가 대종교 총책임자로서 운영은 못하지만 대신에 자기 내부 수행은 충실하게 하면서 우선 급박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것이 수전병행”이라는 것.

1911년 독립운동을 위해 가족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 왕청현 덕원리로 터전을 옮긴 백포는 곧바로 중광단을 조직했고, 그해 7월 홍암 나철이 화룡현 청파호에 도착하자 그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홍암의 당호 일지당(一之堂)에 맞춰 자신의 당호를 삼혜당(三兮堂)으로 삼았다.

최 원장은 “진리 탐구와 교편 생활을 오래하셨고 중광단에서도 정신적인 지도에 치중하셨다”며 “홍암 대종사에 대한 존경이 아주 커서 삼혜당이 됐고, 「삼문일답」서문에 보면 홍암을 일의자(一意子) 선생으로 표시하고 자기는 삼사생(三思生) 학생이라고 썼다”고 말했다.

백포의 대종교 입교는 공식기록상으로는 1912년 10월에 참교(參敎)로 봉교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이미 1911년 대종교의 중광(重光)을 의미하는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했고, 홍암 나철을 만나 큰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을 통해서 모든 우주는 하나이다”

[사진 - 송정미]
최윤수 전 삼일원장은 백포 서일의 항일무장투쟁 못지 않게 경전 저술 등 '수행'에 주목을 돌렸다. [사진 - 송정미]

이후 1921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약 10년 간에 걸친 백포의 수행과 ‘진리 탐구’는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최 원장은 “1914년에 대종교 총본사가 청파호로 이전하고 도 본사를 나누는데 왕청현 소재 동도본사가 서일에게 맡겨졌고, 서일 종사가 구심점이 돼 수 만명의 교우들이 확보돼 그 공적이 인정돼서 1916년 4월 1일 상교(尙敎)로 승질됐다가 다시 이례적으로 4월 13일에 사교(司敎)로 승질됐다”고 짚었다.

백포가 1919년에 연길현 국자가에서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자유공단(自由公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할 때쯤에는 그 단원이 무려 1만 5천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의 감화력과 영향력이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회상경」 등 백포의 저술이 당시부터 ‘경전’에 포함된 점도 이례적이다. 백포가 대종교 동도본사를 이끌던 시절인 1918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책합부(四冊合附)』가 발간됐고, 대종교의 기본경전인「삼일신고」를 비롯해 「신사기」와 홍암 나철이 저술한 「신리대전」, 그리고「회삼경」이 합본됐다.

최 원장은 “회삼경을 직접적으로 경전으로 공포는 안 했지만 회삼경을 인쇄했다는 말이 교보에 나온다”며 1923년 대종교 교보에 「회삼경」 한글번역본을 인쇄한다는 기록을 제시하고 “같은 해 상해에서 발간된 『사부합편』에 회삼경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회삼경」을 “하느님을 통해서 모든 우주는 하나이다. 그 하느님은 조화, 교화, 치화 삼으로 작용을 한다. 그 삼일(三一) 원리가 모든 만물의 원리로 돼서 만물은 삼으로 해석이 된다. 사람은 사람이 받은 삼을 모아서 수행을 해서 하나로 귀일을 해야 된다”고 축약했다.

백포의 「회삼경」은 「삼일신고」‘진리훈’ 중 “하나로부터 셋이 됨이여, 참과 가달이 나누어지도다. 셋이 모여 하나가 되니 헤맴과 깨침 길이 갈리네”라는 구절을 유불선을 아우르며 전개해 체계화한 글이다. 특히 삼일사상을 여러 도표로 정리한 점이 특징이다.

최 원장은 “한학자이자 불교, 도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서일 종사가 1911년 홍암 대종사를 만나고 나서 완전히 대종교 교리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회삼경」을 1917년에 완성했으니 짧은 기간에 경전 저술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셈이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백포 서일이 스스로 폐기 절식한 곳으로 알려진 밀산 당벽진 야산.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백포의 생애 마지막은 씁쓸한 우리 현대사의 한 토막이자 대종교의 몰락과 맥이 닿아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패한 일본은 엄청난 무력으로 독립군 대토벌에 나섰고 이를 피해 밀산에 집결한 독립군대오는 대한독립군단으로 재편한 뒤 주력이 소련 국경을 넘었지만 ‘자유시 참변’을 겪으며 극심한 타격을 받았고, 밀산에 남아서 둔전제(屯田制)를 모색하고 있던 백포 마저 토비의 습격으로 부하들을 잃고 자결한다.

백포는 홍암의 유서 중 한 구절인 “굿것이 수파람하고 도깨비 뛰노니 하늘·땅 정기빛이 어두우며 배암이 먹고 도야지 뛰어 가니 사람·겨레의 피·고기가 번지르하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를 읊조리며 1921년 8월 27일(양력 9월 28일) 스승 홍암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숨을 끊는 폐기 절식으로 조천한 뒤 며칠 후에야 주검이 발견됐다.

최 원장은 “당시 백포 아버님이 오셔서 확인했는데 아무 외상이 없이 죽었다고 해서 폐기 절식이다”며 “폐기 절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관 신규식 대종교 도형(道兄)은 25일간 절식(絶食) 끝에 절명하기도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대종교 3종사가 잠들어 있는 중국 화룡현 청파호 소재 3종사 묘역. 왼쪽부터 백포 서일, 홍암 나철, 무원 김교헌이 안장돼 있고, 남쪽 멀리 백두산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은 한 발표글에서 “서일은 41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대종교의 한 단계 도약을 도모하고 흩어진 독립진영에 대한 재기의 강성을 심어주고자하는 수전병행의 가치를 최후까지 보여준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최 원장은 “백포 서일 종사님에 대해서 서훈을 높이려고 여러 차례 보훈처에 편지를 썼는데 새로운 공적이 발굴돼서 추가돼야 서훈이 올라간다는 답신만 받아서 아직 진행 중에 있다”며 사견임을 전제로 “묘역은 관리만 잘 되면 그냥 그 자리에 계셔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백포 서일은 홍암 나철과 무원 김교헌과 나란히 백두산이 보이는 중국 화룡현 청파호 인근 야산 ‘대종교 삼종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청파호에 안장하라는 삼종사의 유훈이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성통공완을 지향하는 “내부적으로 돌아보는 수행”

물리학도인 최윤수 전 삼일원장은 성품을 깨우치는 수행을 강조했다. [사진 - 송정미]
물리학도인 최윤수 전 삼일원장은 성품을 깨우치는 수행을 강조했다. [사진 - 송정미]

최윤수 대종교 전 삼일원장은 백포 서일 100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묻자 “현대사회가 과학적인, 외면적인 이치를 궁구해서 성품을 많이 깨우치고 있는데, 그게 반절이고 나머지 반절은 내부 수행을 해서 성품을 더 깨우칠 수 있는 면이 있는데 그것은 안 하고 있다. 그걸 더 알려야 된다”고 수행과 포교에 방점을 찍었지만 정작 ‘수전병행’ 정신에 대해서는 “당장 통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힘이 약하니까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과거 고 안호상 총전교가 1995년 개천절에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방북하는 등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고 이영재 총전교가 2002년 방북해 평양 단군릉에서 개최된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에서 제천의식인 선의식을 거행하기도 했지만 대종교의 사회참여는 사실상 맥이 끊긴 상태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와 포항공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뒤 관련 연구기관에서 일해온 전형적인 이학도인 최윤수 전 삼일원장은 “학문이 고도로 발달하고 과학도 발달해서 AI 시대, 모든 게 자동화된 미증유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돌아보는 수행”을 강조했다. 홍암 대종사와 백포 종사가 근접했을 대종교가 지향하는 성통공완(性通功完)한 자가 되자는 것이다.

홍암을 닮은 듯한 최윤수 전 삼일원장이 차분히 수행의 필요성을 들려주니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의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법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서일 발자취(연보)

1881년 (1세)
2월 26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금희동에서 출생. 본명은 서기학(徐夔学)이고 초명은 서정학(徐正学), 호는 백포(白圃), 당호(堂号)는 삼혜당(三兮堂), 본관은 이천(利川)이다.

소년시절
어린 시절에 고향의 서당 김노규 스승의 문하에서 여러 해 한학(漢學)을 배우며 지식과 민족적 의식을 키우다가 경성함일사범학교 전신인 "유지의숙"에 입학했다. 유지의숙은 함경북도 근대화운동의 선구자 이운협 선생이 창설한 의숙으로 몇 해 후에 경성함일사범학교로 개칭되었다.

1902년 (22세)
1902년에 경성함일사범학교의 전신인 유지의숙을 졸업하고 이해 봄부터 1911년 봄까지 10년간 고향에서 계몽운동가 교육사업에 종사하다.

1910년 (30세)
1910년 8월 22일 일본은 이완용 따위들과 조선강점의 조약—"한일 합방" 조약을 맺고 8월 29일에 반포하니 허수아비 뿐이던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분노한 서일은 고향에서의 근 10년 계몽교육을 접고 행동으로 반일독립운동에 나서기로 결의한다.

1911년 (31세)
1911년 봄에 서일은 반일독립을 결의하고 일가족들인 부친 서재운, 부인 채씨, 맏딸 서××(출가후 병고로 이름조차 알 수 없음, 당시 10세), 둘째딸 서죽청(6세), 아들 서윤제(4세) 등 다섯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두만강이북 왕청현 덕원리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왕청현 덕원리는 천교령 부근에 발원지를 둔 가야하와 십리평, 소왕청쪽에서 흘러 나오는 대왕청하와 합수되는 부근 동북쪽 산기슭, 지금의 왕청역에서 북으로 약 7-8리 되는 곳에 자리잡은아담한 조선이주민 마을이다. 관련 자료연구에 따르면 덕원리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개척됨을 보인다.

1911년 이해 3월, 서일은 재기를 도모하는 반일의병들과 훗날의 대종교인들이며 동지들인 현천묵, 계화, 백순(白純) 등과 손잡고 항일독립단체인 중광단(重光團, 중광이란 대종교의 중광을 환호하고 단군을 숭상하며 민족의 혼이 의연히 살아 있다는 뜻)을 조직하고 그 본영을 덕원리에 두었다. 서일이 중광단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1909년 음력 정월 15일에 애국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나철 선생이 동지들과 더불어 서울에서 전래 단군신앙인 단군교를 부활시키고 이듬해 7월 30일에 교명을 대종교(大倧敎)로 바꾸었다. 그리곤 활동지역을 두만강 너머로 넓히고자 1911년 7월에 화룡현 청파호에 이르렀다. 왕청현 덕원리에서 이 소식에 접한 서일은 화룡현 청파호에 가서 나철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서일은 스승의 당호 일지당(一之堂)에 따라 자기의 당호를 삼혜당(三兮堂)으로 하였다.

1912년(32세)
1912년 음력 8월, 서일은 수명의 동지와 협의하여 청파호에 동원당을 조직하였다. 나철 선생의 지도를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동원당은 독립운동을 완수하기 위한 체계적 활동을 결정하고 이를 지도하기 위한 비밀조직으로 추정된다. 이해 10월에 서일은 대종교에 정식 입교하며 대종교 포교활동을 맹렬히 벌였다.

1913년(33세)
대종교에 입교한 후 서일은 1913년 10월에 대종교의 영계 및 참교(参教)로 받고 시교사로 임명되었다. 그 후부터 서일은 방향을 돌려 교리를 찬술하는 저술사업에 정력을 쏟았다. 서일은 짧은 기간에 한국 근대 철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삼일신고도해강연』, 『회삼경』, 『구변도설』, 『진리도설』, 『오대종지강연』, 『삼문일답』 등을 저술하였다.

서일은 왕청현 덕원리에 이주한 후 중광단을 조직하고, 나철을 만나면서 대종교 포교에 전력하는 한편,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1913년 4월 1일에 덕원리에 명동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시초의 학생 수는 32명이고 교원은 2명이며 학제는 5년이었다. 교장은 서일이고 서일도 직접 교수에 나섰다.

1914년 (34세)
1914년 5월 13일, 대종교총본사는 서울에서 대종교 동도본사 1사가 자리잡은 화룡현 청파호로 이전하였다. 나철 선생은 대종교총본사를 화룡현 청파호에 두고 총본사 산하에 동도본사(왕청현), 서도본사(상해), 북도본사(노령 소학령), 남도본사(조선 경성) 등 4개도본사를 설치하고 아울러 각 교구 책임자에, 서일(동도본사), 신규식·이동녕(서도본사), 이상설(북도본사), 강우(남도본사)등을 임명하였다.

1914년 11월, 용정 간도일본총영사관의 명령을 받은 두도(頭道)구 영사 분관에서는 화룡현 지사를 핍박하여 대종교를 즉각 해산하라고 경고했다. 후일 두도구 영사 분관의 일경들이 청파호에 들이닥쳐 대종교 중심인물들을 체포하자, 대종교총본사는 동도본사 제 2사가 자리 잡은 왕청현 십리평 쪽으로 옮겨 갔다.

1915년(35세)
대종교총본사의 화룡현 청파호 이전과 대종교의 비약적 발전은 일제의 경계심을 한층 고조시켰다.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통제안을 공포하고 대종교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나철 선생은 당국을 찾아 여러 차례 교섭을 벌렸으나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1916년(36세)
나철 선생은 대종교 정상 활동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는 1916년 음력 8월 백연(白淵) 김두봉(金抖奉)을 비롯한 수행자 6명과 함께 단군신앙의 성지인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들어가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하였다.

이해 음력 8월 15일 자시(子时)정각에 나철 선생은 수행자들과 함께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수행인원들에게 "앞으로 며칠 간 방문을 열지 말라"고 말하고는 3일 동안의 수도에 들어갔다. 그 뒤 인기척이 없어 제자들이 16일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나철 선생은 순명삼조(殉命三條) 등 유서를 남기고 조식(调息)의 의 방법인 폐기법(闭气法)으로 운명하였다.

서일은 스승의 순국 정신을 마음에 아로 새기었다. 그만큼 나철 선생의 순국이 서일한테는 너무도 타격이 컸고 너무도 느끼는 바가 컸다. 스승의 죽음은, 서일이 무장항쟁의 의지를 굳게 다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17년 (37세)
1917년 경에 이르러 명동학교에 중학부를 설치하였다. 학교 학생들은 모두가 대종교 들이거나 그 자제들이었다.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후일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에 입소하여 본격적인 독립군 훈련을 받았다.

1918년(38세)
음력 1918년 11월, 민족자결이라는 가치가 국제정세 속에서 고무되자, 이에 힘을 얻은 대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39명의 명의로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국내 기미독립선언서(3.1독립선언서)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는 이 선언은, 무장혈전주의를 내세운 것으로, 후일 만주 무장항일운동의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서일은 이 선언을 적극 지원하면서 많은 동지들을 참여시켰다.

1919년 (39세)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에서 전민족적인 반일운동이 폭발하였다. 3월 13일, 용정에서도 "3.13" 반일운동이 폭발하고 독립 만세소리가 화룡현과 연길현, 왕청현, 훈춘현 각지에서 맹렬히 터져 올랐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남만 등 지구를 제외한 연변지구에서 1919년 3월 13일부터 5월 1일까지 도합 30여 개 곳에서 반일집회와 시위가 53차 열리고 8만여 명의 조선인들이 동원되였다. 왕청현에서는 서일의 지도하에 덕원리 중학부의 중학생들을 중심으로 각지 사립학교 학생들과 많은 대종교인들이 만세운동에 떨쳐 나섰는데, 덕원리 중학부의 중학생들은 일제히 칼을 차고 보무당당히 나섰다.

이 무렵 나철 선생의 유언으로 제 2세 교주로 등극한 무원 김교헌이, 서일에게 대종교 교통을 넘기려고 하였다. 서일은 제 2세 교주의 간곡한 권유를 5년간 보류키로 하고 무장투쟁준비에 심신을 쏟아 부었다. 서일은 시위나 만세운동 등의 소극적 저항으로서는 조국광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해 1919년 4월에 서일은 중광단의 토대 위에서 대종교 교인들을 핵으로 하고 반일의병들과 공교회(孔教会) 회원들을 더 규합하여 대한정의단을 발족하고 단장으로 취임하였다. 서일은 정의단 내에 순수 우리 글 신문 일민보(一民报)와 신국보(新国报)를 발간하고 무장항쟁을 고취하면서 결사대원을 모집하였는데, 응모하여 등록한 결사대원이 1,037명에 이르렀다.

서일은 이해 8월에 대한정의단 산하에 순 무장조직인 대한군정회를 조직하고 신민회 출신들로서 남만주의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인 김좌진, 조성환, 이장녕, 양림, 박성태 등을 초빙하여 군정회를 맡아 보도록 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대한정의단은 덕원리와 그 일대를 떠나 본영을 왕청현 서대파구 십리평에 두고, 연변 각지에 5개 분단, 70여 지단을 설치하였으며, 단지결사대(断指決死隊) 1,000여명을 두었다.

1919년 4월에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서일은 이 임시정부의 지도를 받기로 하고 1919년 12월 국무원 제 205호 정신에 따라 중광단으로부터 발족된 대한정의단과 대한군정회를 통합하여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로 개편하였다. 대한군정부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에 의해 그 명칭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로 즉각 개칭하고, 서간도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대비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서일은 북로군정서 총재로 추대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임시정부 최고 군사책임자인 군무총장(軍務總長)이라는 대우를 받게 되었다.

북로군정서는 중앙조직 체계를 총재부와 사령부로 나누었다. 총재부가 주로 대한정의단의 중심인물들로 구성되었다면, 사령부는 주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사령부는 총재부의 절대적 지도를 받았으며 총재부와 사령부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대종교 교도들이었다.

북로군정서는 왕청현 십리평 마을 뒤 잣덕의 펑퍼짐한 산기슭 밭 가운데 자리잡았다. 본부와 병영은 5~6헥타르에 달하는 산허리를 평지로 만들어 건설했는데, 나무를 찍어 만든 중국식 6칸집 5개와 5칸집 2개 등으로 이루어졌다. 본부와 조금 떨어진 남쪽의 광활한 평지에 사방 100미터 좌우의 연병장 두 개도 건설되었다.

1920년(40세)
북로군정서 산하 사관연성소는1920년 3월 1일에 정식으로 개학하였다. 사관연성소 예비훈련반은 북로군정서 본부와 약 300미터 떨어진 남쪽의 조금 경사진 잣덕 평지에 교사 6채를 만들어 자리 잡고, 사관연성소 본부는 동북쪽 계곡을 따라 약 15리 쯤 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사관연성소 소장은 신흥무관학교 출신 김좌진이 맡았다. 그외 박녕희가 학도단장을, 이장녕, 이범석, 김규식, 양림, 김홍국, 최상운 등이 교관을 맡았다. 사관생은 300여명이었으며, 주로 대종교 산하의 청년들과 덕원리 명동중학교의 학생들로 이루어졌다. 나이는 보통 20~40살 사이였다.

한편 서일은 병력 확대, 무기 장만, 정예군사 양성이란 세 가지 과업을 목표로 삼았다. 우선 군정서 산하에 모금대 8개대를 두고 전력을 다하여, 1920년 초에 이르러 20여만 원의 군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서일은 재무를 맡은 계화와 함께 전문 병력 확대와 무기구입에 전력을 기울였다. 1920년 6월, 총재 서일은 직접 계화와 함께 무장경비대를 이끌고 무기운반대 200여명을 무장보호하면서, 러시아 연해주에서 많은 무기를 많이 운반하여 왔다.

1920년7월과 9월 사이에도 수차 러시아 연해주를 드나들며 무기를 많이 사들여 사관생들 전부가 무장을 지니게 되었다. 북로군정서는 처음 병력 500여명에, 보총 500자루, 권총 40자루, 기관총 3정으로 나타났으나, 일제 측의 자료에 의하면 1920년 8월 현재로, 북로군정서의 병력은 독립군 약 1,600여명, 군총 1,300자루, 기관총 7정이라고 밝혔다.

1920년 8월 일본군은 정식으로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을 확정하고 9월에는 출병대기중인 각 부대에 전투태세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였다. 중국 지방당국은 일본의 압력에 연길 주둔 중국 육군의 맹부덕(孟富德)을 본지 토벌장관으로 내세웠다. 육군 제1 보병단장(步兵團長) 맹부덕은 토벌을 앞두고1920년 9월 5일에 산하의 중국군 160여명을 십리평 잣덕에 보내 북로군정서 부총재 현천묵, 사령관 김좌진 등을 만나 독립군부대들이 일본군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빨리 퇴각할 것을 간청하였다.

1920년 9월 7일 마지막으로 러시아 연해주 무기구입에서 돌아 온 서일은 바로 부총재 현천묵과 수하 사령관 김좌진 등의 보고를 받고 전략적 변화를 도모하였다. 그리고 9월 9일 오전 10시에 십리평 잣덕의 본부에서 산하 사관연성소 제1회 사관생졸업식을 앞당겨 거행하고 298명을 졸업시켰다.

서일은 북로군정서 지도부와 함께 전문회의를 가지고 북로군정서 부대를 동부와 서부 2개 전선으로 나누기로 결정하였다. 서부전선에 소속된 1,000여명 주력부대는 선발대와 본대로 나누어 총과 탄약 등 군수품을 4대의 소수레에 싣고 9월 17일부터 십리평 잣덕 본부를 떠나 화룡현 삼도구 백두산 삼림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서일은 동부전선에 속하여 직접 북로군정서 기관과 가속 그리고 후방부대를 이끌고 동으로 움직이며 기회를 보아 새 근거지 창설에 전력하기로 하였다.

1920년 9월 17일과 18일에 김좌진은 서일의 명령을 받고 북로군정서 부대를 이끌고 서부전선 서쪽으로 진군하여 10월 12일과 13일에 화룡현 삼도구 일대로 이동하였다.

10월 21일 아침 8시경에 북로군정서 주력부대는 청산리 백운평 직소에서 나남주둔 제19사단 73연대 야스가와(安川)소좌가 인솔한 야마다(山田)연대의 전위부대를 매복 습격하였다. 적들은 별반 반격도 못하고 약 200명이 전사했했다. 야마다연대의 주력부대도 기관총, 산포 등 중무기를 앞세우고 발악적으로 달려들다가 역시 200~300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하고 말았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청산리전역 첫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얻었다. 이것을 백운평 전투라고 한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의 6일 간에 김좌진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 부대와 홍범도가 이끄는 연합부대는 선후로 백운평 부근 전투, 천수동 전투, 왈리구(曰日沟)전투, 어랑촌 전투, 고동하 전투 등 대소 10여차의 전투를 치러 일제침략군 1,000여명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것이 서부전선의 전투였다. 동부전선은 일본군이 획분한 토벌지대로서 훈춘 동북부와 왕청‧동녕의 서쪽지역을 가리킨다. 일본군은 이 지구에 나남주둔 제19사단 제 38여단의 주력과 시베리아 파견군 제11, 13, 14사단의 부분 병력 도합 1만여 명을 풀었다. 우리 반일무장부대의 병력은 서일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유수(留守)부대와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 부대, 신민단, 의군부 등 800여명이었다. 이들 동부전선의 독립군들은 서일 등의 지휘 하에서 10월 23일의 왕청현 십리평 전투를 서막으로 왕청현 나자구, 노무주하(老母猪河), 장가점, 하마탕, 훈춘현의 삼도구, 우두산(牛头山), 소수분하(小水芬河), 팔가자 등 수차의 전투를 치르며 많은 적들을 소탕하였다.

1920년 10월을 계기로 이 지역 독립군 단체들은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으로 나뉘어 청산리전투 등을 치르며, 이른바 대토벌에 나선 일본군을 대패시킨 후 여러 갈래로 무사히 밀산현으로 이동하였다. 서일의 북로군정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과 신민단, 도독부, 의군부, 혈성단, 야단, 대한정의군정사 등 9개 독립군 부대 3,500여명이 밀산현 당벽진에 모여 겨레 항일운동사상 전례가 없는 대단결을 이루었다. 독립군사상 처음으로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서일을 대한독립군단의 총재로 받들었다. 서일이 명실공히 대한민국 독립군의 총수가 된 것이다.

1921년(41세)
대한독립군단은 1921년 1월에 국경을 넘어 노령 자유시로 이동했다. 당시 서일은 보다 큰 승전과 장래를 위해 일부 소부대를 거느리고 이 장정에 오르지 않고 당벽진에 남아 후방기지 건설을 도모하였다. 독립군부대의 둔병제(屯兵制)를 실시하려는 것이 후방기지 건설의 주요한 내용이었다.

1921년 6월 28일 노령 자유시로 간 대한독립군단은 뜻하지 않게 러시아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서로의 무력충돌에서 많은 독립군 사람들이 쓰러지고 체포되었다. 러시아령 자유시사변으로 하여 서일을 총재로 하는 대한독립군단은 치명적 타격을 입고 풍비박산이 났다.

그러던 1921년 8월 26일, 마적들이 서일이 머무르는 마을을 야습하여 살인방화하고 약탈하며 무법천지로 돌아간다. 서일장군의 부하 열두 의사(义士)가 이에 대항하여 분전하다가 중과부적이 되어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밀산에서 둔병제를 통한 독립군 후방기지를 건설하고저 서일과 함께 남았던 마지막 한 부분의 병력들이 모두 전사한 것이다.

서일의 절망감은 컸다. 러시아 자유시사변, 밀산 당벽진의 참화는 대한민국 독립군 총수로서의 서일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서일로서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밀어 버릴 수 없는 책임으로 느껴진 것이다. 서일은 그해 1921년 8월 27일 오전, 밀산현 당벽진 마을 뒷산의 산림 속에서 곧게 앉은 모습으로 자결 순국했다. 서일은 그의 스승인 나철 선생이 순교 당시 남긴 다음의 유서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순국했다.

굿것이 수파람하고 도깨비 뛰노니
하늘, 땅의 정기 빛이 어두우며
배암이 먹고 도야지 뛰어 가니
사람, 겨레의 피고기가 번지르하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

정부에는 서일의 우국 항일의 뜻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하였던 김좌진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또한 부하의 부하였던 이범석이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서훈한 것에 비해 격에 맞지 않는 대우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총장이며, 대한민국 독립군의 총수에 대한 예우가 너무도 초라한 것이다.

(자료제공 - 국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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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이제 마을회관에서 한글 배우세요

세종시 연동면 내판3리서 글꽃서당 현판식 개최

 

박은철 기자

2021-08-27 07:26:31
  •  
 


세종특별자치시청

[세종타임즈]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이 27일 연동면 내판3리 마을회관에서 노인들을 위한 문해교육인 ‘글꽃서당’ 현판식을 개최한다.

글꽃서당은 세종시인재육성평생교육진흥원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한글을 포함한 사회·문화적으로 요청되는 기초생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글꽃서당은 앞서 운영된 바 있는 ‘새싹서당’에 이은 두 번째 노인 서당으로 연동면과 마을이장이 협의해 5명의 노인들의 참여로 문을 열게 됐다.

연동면의 첫 노인 서당인 새싹서당은 한평생 글을 몰라 답답하게 살아왔다던 한 할머니의 전화로 시작됐다.

황미라 연동면장은 “늦게나마 어르신을 대상으로 새싹·글꽃서당이 시작되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원하시는 어르신이 있으면 글꽃서당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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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카불에서 추가 테러 가능성...바이든, 지구상에서 IS 사라지길 원해"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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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폭탄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폭탄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폭탄 테러로 미군을 비롯해 상당수 희생자가 발생한 카불에서 추가 테러 가능성이 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으로부터 “카불에서 또 다른 테러 공격 가능성이 있으며, 미군은 카불 공항에서 최대치의 보호 조처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안보팀은 “이번 임무에서 앞으로 며칠간이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미군은 몇 시간마다 수천명을 공수하고 있다. 떠날 의향이 있는 남아 있는 미국 시민 대피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들을 공항으로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사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주둔이 종료한 이후에도 제3국적자와 비자 소지 아프간인 대피를 위해 국제 파트너들과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라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군 지휘관들에게 우리 군을 보호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권한에 대한 승인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카불 공항 입구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졌다. 일부 외신은 미군을 포함해 최소 17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사키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IS-K를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한 말을 부연해달라는 요청에 “그들이 지구상에 더는 살길 원치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또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테러 세력에 대한 군사적 보복 조치와 관련해 의회의 추가 승인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복 조치가 미군의 전면적인 임무가 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우리는 지속해서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고 있다. 이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군 지휘부에 사임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여전히 블링컨 국무장관을 신임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그를 탄핵하겠다는 공화당에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8280857001&code=920100#csidxadacaba31726d8abc203ff32f3981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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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들의 쏟아진 의심... "언론중재법, 왜 지금인가"

민주당 미디어특위, 언론중재법 관련 간담회... 통·번역 문제 지적하며 "보여주기식" 비판도

21.08.27 19:26l최종 업데이트 21.08.27 19:54l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2021.8.27
▲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2021.8.2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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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사실 1인 미디어로부터 훨씬 더 많이 발생하지 않나."
"왜 1인 미디어는 빼고 (기성 언론사가 대상인) 언론중재법만 하는가."
"가짜뉴스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서 훨씬 많이 나오고, 그로 인한 피해도 훨씬 심각하다."


27일 오후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수차례 반복된 질문이다. 외신기자들은 '1인 미디어 등을 포함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의 지연작전으로 인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민주당 쪽 설명에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비슷한 물음을 되풀이했다. 

최근 국제기자연맹(IFJ), 세계신문협회(WAN-IFRA), 국제언론인협회(IPI),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은 민주당이 '8월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연이어 냈다. 미디어특위는 허위조작보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사열람 차단 등은 언론의 자유 침해가 아니라 가짜뉴스 피해 구제와 언론 책임 강화임을 제대로 설명하겠다며 이날 행사를 긴급히 추진했다.

"최순실은?" "1인 미디어는?" "언론 자체 개혁은?"

하지만 외신기자들은 '허위조작보도라는 개념부터 불분명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대만의 기자는 2016년 국정농단이 '비선실세' 최서원씨(최순실씨 개명 후 이름) 의혹 보도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최씨는 일반인이라 지금 법안대로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악용할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같은 맥락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외신은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민주당은 '애초에 언론중재법상 언론에 외신은 포함된다'라고 말하는 상황을 두고 "그렇게 정리도 잘 안 되는 상황인데, 왜 이걸 월요일(8월 30일 오후 4시 본회의 예정)에 통과시켜야 하냐"고 질문했다. 그는 "(여야 합의에 따라 문체위 등 7개) 상임위원장이 바뀌는 것 빼고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는 잘 안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 ABC뉴스 기자는 "국민의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해서 언론 자체적으로 개혁하고, 정화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굳이 정치권에서 제재해야 할 정도로 한국 상황이 나쁜가"라며 조속한 법안 처리 필요성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보수적인 언론사를 겨냥하고 만든 법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2021.8.27
▲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2021.8.2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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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취지나 내용, 속도가 적절한지 '의심'하는 외신기자들에게 민주당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특위 위원장 김용민 의원은 "언론중재법은 '증거에 의해서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라는 사실보도 정의 규정을 두고 있다"며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허위보도라고 입증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라는 불분명한 개념으로 보도 전반을 제약하진 않는다는 해명이었다.

김 의원은 또 '최순실 보도'의 경우 "결론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진실이라고 믿었다면, 나중에 설사 허위로 판명돼도 일반 손해배상도 할 수 없다"며 "현재 법이 그렇다"고 했다. 또 "공익제보사건도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는데 최순실 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며 "전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 자체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준호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은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1인 미디어 등은 (해당 법안이) 국회 과방위 제2법안소위원회에서 다뤄진다"며 "법안이 제출된 지 오래됐으나 소위원장인 국민의힘 박성중 간사가 상당기간 법안을 (회의 안건으로) 올리지 않아서 (심사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언론중재법은 "숙의과정이 길었다"고 덧붙였다.

김승원 의원은 '언론 스스로의 개혁은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희가 지난해 고발해서 언론의 자정노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올해도 <조선일보>가 유가율(발행부수 대비 유료보수 비율)을 90%로 신고했다(<조선일보>의 ABC협회 공시 유가율은 90%를 넘겼지만, 문화부 조사 결과 실제 유가율은 55%였다. - 기자 주)"며 "저는 '언론들이 너무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좀 더 속도를 가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보여주기식 아냐... 법안 수정 가능성도 열어놨다"

좀처럼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현장 통역이 원활하지 못하고 영문 번역자료도 없자 한 기자는 "이게 제대로 준비하고 외신기자들을 초청한 것인가"라며 "아무 준비 없이 내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간담회를 한 것인지 정확한 취지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김용민 의원은 "사전에 참석하는 기자 대부분이 한국어를 사용한다고 확인했다"면서도 "그래도 준비해야 했던 거 아니냐면 그 부분은 죄송스럽다"고 자세를 낮췄다. 

다만 "저희가 보여주기식이라면 이렇게 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며 "그 부분에 대한 오해는 거둬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그는 "법안 수정 가능성도 열어놓고 저희가 간담회도 하고 다양한 의견을 만들고 있다"며 "찬성, 반대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사실 더 강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그런 입장을 고려해서 완성도 높은 법을 만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수용해야 하지 않겠냐"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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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오토바이, 하얀 국화꽃...동료 배달기사들은 발을 떼지 못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8/28 10:02
  • 수정일
    2021/08/28 10:0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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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 오토바이 배달기사 사망사고’에 멈춰선 동료들 “마지막 모습 자꾸 떠올라”

추모하는 배달노동자ⓒ민중의소리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본 뒤로 일을 못 하겠더라. 고인이 하늘에서만큼은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선릉역 대로에서 40대 배달노동자가 화물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사고 현장에서는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긁히고 찌그러진 고인의 오토바이는 선릉역 8·9번 출구 사이에 세워졌다. 사고 소식을 온라인 커뮤니티 ‘배달세상’ 등을 통해 접한 배달노동자들은 사고 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고인의 오토바이 앞에는 수십 병의 소주·막걸리, 그리고 꽃이 쌓였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겐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라고 적힌 쪽지도 붙었다.

27일 이곳을 찾은 배달노동자들은 모두 크고 작은 사고 경험담을 들려주며 “남 일 같지 않다”라고 입을 모았다. 가장 수수료도 높고 건수도 많은 시간 때였음에도, 배달노동자들은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선릉역 배달기사 사망사고 현장ⓒ민중의소리

수많은 술병 사이에 콜라 한 캔
자리 뜨지 못하는 배달노동자들
잠 못 드는 배달기사 “내 사고였을 수도”

 

이날 오전 10시30분경, 청색 옷을 입은 한 청년이 고인의 오토바이 앞에 콜라 한 캔을 놓고 묵념했다. 동대문구에서 킥보드를 타고 배달 일을 한다는 배달노동자 이 모(26) 씨는 “강남역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시 들렀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배달 일을 해보니까, 알겠더라. 배달기사들이 늦는 데는 다 사정이 있다. 앞에 안 좋은 손님이 걸렸다던가, 가게와 갈등이 있었다던가”라며, 그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술을 안 먹기도 하고, 평소 배달할 때 늦는다고 전화가 오면 콜라를 하나씩 드렸다”라며, 콜라를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10시40분쯤에는 정장을 입은 30대 회사원이 향을 꽂고 그 앞에서 묵념했다. 바로 옆 건물에서 일한다는 회사원 박 모(30) 씨는 “어제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다가 사고가 났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저도 배달 일을 1년 정도 했다. 당시 사고를 겪었던 게 생각나기도 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회사에서 나온 김에 (추모를) 했다”라고 말했다.

추모 행렬ⓒ민중의소리

서울 서부지역에서 배달 일을 한다는 이도영(37) 씨도 “강남에 볼일이 있어서 온 김에 볼일 보고 이곳을 찾았다”라고 했다. 그도 강남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배달세상’에 올린 글을 보고 사고 소식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운전 중에도 ‘콜’이 계속 들어오고, 그걸 보면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때그때 세워서 확인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또 항상 길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휴대전화와 교통신호를 번갈아 볼 수밖에 없다”라며, 항상 위험에 노출된 배달노동자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예전보다는 훨씬 개선되긴 했는데, 여전히 위험하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11시쯤에는 주황색 옷을 입은 배달노동자가 오토바이를 근처에 세워두고 고인의 오토바이에 꽃다발을 놓았다. 그런 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한동안 고개 숙인 채 고인을 추모했다. 그의 추모가 끝날 때쯤, 또 다른 형광 옷 배달노동자가 꽃다발을 들고 와서 고인의 오토바이 앞에 놨다. “가시는 길 좋은 술 드시고 가시오. 다음 생에 좋게 태어나시고 명복을 빕니다.”라는 쪽지가 붙은 와인 한 병을 놓고, 술 한 잔 따른 뒤, 곧바로 배달 일을 하러 가는 요기요 배달노동자도 보였다.

추모하는 배달노동자ⓒ민중의소리
고인을 추모하는 배달노동자들ⓒ민중의소리

전날 사고가 발생한 시각인 11시30분쯤에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 소속 배달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국화를 준비해 온 그들은 저마다 꽃 한 송이를 오토바이 앞 임시 분향소에 올리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조 소속 배달노동자 김 모(45) 씨는 관련 기사나 영상에 달린 댓글에 가슴 아파했다. 그는 “(댓글을 보다 보니) 잘 죽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더라”라며 “그게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선릉역 사거리에서 횡단보도에 줄지어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는 배달노동자들을 보며 “교통법규 어기면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아마 오토바이 배달하셨던 분들은 웬만하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하는 배달노동자ⓒ민중의소리

10년 넘게 배달 일을 해왔다는 김 씨는 큰 사고를 한 번 겪은 적이 있어서 1년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 뒤로 한 3년 동안 쉬었는데, 결국에는 다시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에 살면서도 서울 강남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는 이창훈(32) 씨는 전날 벌어진 사고가 더욱 남 일 같지 않다. 그는 “어제 오전 11시 20분쯤 첫 콜을 잡고 이 앞을 지나다가 사고 직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됐다”라며 “불과 2~3분 차이로 현장을 지나고 있었기에, 어쩌면 내게 벌어졌을 수도 있는 사고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살아남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고인에게 죄스러운 듯 “고인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장을 보고 난 뒤로 잠도 잘 안 오고 일도 못 하겠더라”라며 고인의 오토바이 앞을 떠나지 못해 했다.

임시 분향소에 놓인 와인병ⓒ민중의소리

앞서 지난 26일 오전 11시30분쯤 선릉역 교차로에서 40대 배달노동자가 23톤 화물차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 조사에서 화물차 운전자는 정차 당시 운전석이 높아 화물차 바로 앞에 있던 배달노동자를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배달서비스지부는 27일 ‘선릉역 오토바이 라이더는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부는 “평범한 가장이 왜 자기 생명을 갉아 먹으며 급하게 달리는지, 자동차 사이를 뚫고 횡단보도 앞에 서는지, 신호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는지 알아야 한다”라며 ‘플랫폼 회사 사이의 속도 경쟁’을 지적했다. 이어 “100% 개인의 잘못인 사고가 어디 있나”라며 “우리도 안전하게 달리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또 부족한 안전교육, 보험가입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도로 위로 내보내는 배달 플랫폼 회사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배달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륜차 사고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이 경찰·보험사·공제조합의 교통사고 자료를 수집·통합·분석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11년 1만170건이었던 이륜차 운전 교통사고는 매해 꾸준히 늘어 2020년에는 1만8280건에 이르렀다. 특히 2017년 1만3730건이었던 이륜차 사고는 2018년 1만5032건, 2019년 1만8467건 등으로 급격히 늘었다. 2011년 1만2102건이었던 부상자 수도 꾸준히 늘어 2020년에는 2만3673건이 됐다. 서울에서 발생한 이륜차 교통사고의 3분의 1은 배달노동자 사고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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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통일국가 설계도 만들 ‘개성 통일평화대학’ 제안

박한식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 출판기념회 열려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8.27 18:11
  •  
  •  수정 2021.08.28 06:20
  •  
  •  댓글 0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의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 출판기념회가 27일 오전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렸다. 박 교수는 화상으로 특강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의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 출판기념회가 27일 오전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렸다. 박 교수는 화상으로 특강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통일국가를 만들려면 영토가 있어야 하고, 인구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이념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 통일평화대학에서 이걸 만들어야 한다.”

<한겨레>에 연재한 글을 모아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삼인)를 출간한 박한식(82)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는 27일 오전 10시 30분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우곡국제회의장과 화상으로 연결해 진행된 출판기념회에서 특강에 나서 ‘남과 북이 함께 만드는 통일평화대학’을 주창했다.

박한식 명예교수는 “남과 북은 지금 냉전시대를 통해 수십년 동안 체제경쟁을 해왔다”며 “체제경쟁해 가지고는 통일의 길이 없다”고 진단하고 “이제는 체제경쟁이 아니고 체제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서울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됐지만,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소수의 인원만 참석하고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출판기념회는 서울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됐지만,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소수의 인원만 참석하고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어 “통일된 정부를 만들자고 하면, 집이 갈라졌다가 같이 들어와 사는 집을 하나 지어야 한다. 통일된 나라의 집을 짓는데 설계도 없이 집을 어떻게 짓느냐”며 통일국가의 ‘설계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하버드 대학은 미국의 국가건설 설계도를 만들려고 만들어진 대학”이라며 “1636년 신학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기서 배출된 인재들이 국가건설을 하는데 옛날부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하버드가 없었으면 오늘날 미국처럼 미국은 발전되지 못했을 거다. 미국의 연방제도는 하버드 출신들이 다 고안했다”고 예시했다.

또한 “고려의 초창기 서기 992년에 국자감을 만들었다”며 “조선의 하버드가 지금 미국의 하버드보다 거의 7백년 전에 만들어졌다. 국자감이라는 것이 고려 후기에는 이름을 바꿔서 성균관이 됐다”고 제시했다.

박 교수는 독일과 달리 “우리는 흡수통일이 불가능하다”며 “북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남의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이렇게 큰 차이 있는 것도 우리가 감수하고 우리가 받아들여서 통일하자”는 남북 정상 간의 합의 정신을 상기시키고 “우리는 경험이 많다”는 점에 주목을 돌렸다.

나아가 “지구촌을, 새로운 집을 지어야 되는데, 이 집을 짓는 데는 설계가 필요한데, 그 설계도를 우리 민족이 지어야 한다”며 “우리 민족만큼 경험이 깊고 다양한 민족은 없다”고 ‘우리식 정치이념’, ‘우리식 설계도’를 제안했다.

이재봉 원광대 융합교양대학 명예교수(오른쪽 아래)가 저자와 영상으로 내용에 관해 대담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재봉 원광대 융합교양대학 명예교수(오른쪽 아래)가 저자와 영상으로 내용에 관해 대담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출판기념회는 온라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출판기념회는 온라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 교수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개성에다가 통일대학을 만들어야겠다”며 구체적으로 6개의 단과대학을 예시했다. 

첫째는 건강대학으로 북의 고려의학과 서양의학을 조화시키고 부속병원을 둬 불치병을 치료하자는 것. 둘째는 농생대학으로 농과대학에 생태과학까지 결합해 좋은 종자와 음식재료를 제공하자는 것, 셋째는 정경대학으로 정치에서도 사회에서도 정의로운 분배를 연구하자는 것, 넷째는 인문대학으로 통일국가의 이념을 만들고 이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제시하자는 것, 다섯째는 예술대학으로 동양과 서양을 조화시키는 종합적인 문화예술로 세계인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자는 것, 여섯째는 환경대학으로 기후변화 속에서 환경을 살리는 연구와 실천을 하자는 것.

박 교수는 이번 출판기념회에 힘을 모은 21개 단체·언론사들을 토대로 “통일평화대학의 건설추진위원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제안하고 “이 위원회에는 기필코 북 사람, 남 사람, 해외 사람이 포함돼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6.15남측위원회와 6.15해외측위원회를 비롯해 민화협, 겨레하나 등 단체들과 건국대통일인문학연구단, 세종연구소 등 연구기관, 통일뉴스, 한겨레신문사 등 언론사들이 참여했다.

박 교수는 이 외에도 “노벨평화상이 정치도구화 돼 버렸다”며 새로운 ‘평화상’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박 교수의 출판기념 특강에 앞서 진행된 1부 출판기념회는 권오혁 촛불전진준비위원회 정책위원장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성민 건국대통일인문학연구단 단장과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축사를,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영상 축사를 했다.

또한 이재봉 원광대 융합교양대학 명예교수가 대담자로 나서 저자 박한식 명예교수와  『평화에 미치다』 내용을 두고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영상 축사를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영상 축사를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성민 견국대[통일인문학단장이 첫 축사를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성민 견국대[통일인문학단장이 첫 축사를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동원 전 장관은 영상축사에서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박 교수님의 이 저서는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상찬하고 “<평화에 미치다>는 박 교수님의 역사 체험과 이해가 담겨있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고심어린 연구와 문제해결 노력이 담겨있다”며 “평화와 통일정책을 담당하는 관계자와 정치인들은 물론이려니와 한반도와 민족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헌사했다.

임 전 장관은 “1980년대 초부터 평양을 50여 차례나 방문하며 북한을 심층 연구해 오셨다. 박 교수님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북한문제 최고전문가”라며 “특히나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카터와 윌리암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주선하는 등 문제해결사요, 평화중재자로서 누구도 대신하기 어려운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해오셨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을 마련해 준 김성민 건국대통일인문학연구단 단장은 “선생께서는 실천적 차원에서 개성에, 제3지대에 DMZ까지 아우르는 세계에서 처음 건축하는 통일평화대학을 건립하자라고 하는 제안을 하셨다”며 “이 통일평화대학은 아마도 우리 후배들에게 주는 숙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개성에 통일평화대학이 건립된다면 이것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동북아 평화,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출발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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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김치는 김치다

입력 2021.08.27 04:30

©게티이미지뱅크

 

몇 달 동안 중국이 원조라는 중국 네티즌들의 황당한 주장에 ‘파오차이(泡菜)’와 엮인 ‘김치’ 파동이 한국 사회를 들썩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우리 김치 문화의 전통성을 공고히 하고, 외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고 표기할 수 있도록 ‘김치’를 중국어로 나타낼 때는 ‘辛奇(신기)’(중국어 발음: 신치)로 적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중국인 일부는 부당한 간섭이라고도 하고, 국내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김치’가 ‘신치’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의 언어문화에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며, ‘김치를 대신하는’ 새로운 말로 ‘辛奇’를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김치를 중국어로 소개할 때 쓰자는 것이며, ‘김치에 대응되는’ 중국어 표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어로 [김치]로 소리 나게 적을 수는 없을까. 아쉽게도 중국어에는 [김]이란 소리와 같거나 비슷한 음절이 없다. 따라서 중국은 외국 문화의 용어를 정착시킬 때, 원어에 최대한 가깝게 음역하거나 의역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음역할 때는 이왕이면 뜻도 어느 정도 통할 수 있는 표기를 만들어 낸다.

그동안 중국어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한 ‘(한궈)파오차이’는 소리나 의미에서 김치의 속성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 정부는 ‘辛奇’가 ‘김치’와 소리도 유사하며 외국인이 생각하는 ‘빨갛고 매운’ 김치 특성을 ‘辛(매울 신)’이 잘 담도록 하였다. 당연히 ‘김치’는 ‘김치’다. 외국어 표기로서 ‘기무치(キムチ)’와 ‘킴치(Kimchi)’처럼 ‘신치(辛奇)’일 뿐이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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