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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건폭 1484명 검거’ 발표 뒤에 있는 진실은

  • 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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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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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한겨레, 구속영장발부율 주목… 보수·경제지는 받아쓰기

경향 “토끼몰이식 수사… 노동 홀대·탄압하는 단속 멈춰야”

KBS 수신료 분리징수 속도전에 “매듭, 자르기보다는 천천히 풀어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발표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 결과를 두고 언론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동아일보·매일경제 등 보수·경제지들은 1484명이 검찰에 송치되고 132명이 구속됐다는 사실 자체를 중심으로 기사를 썼다. 하지만 경향·한겨레는 숫자 이면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경찰의 영장 신청이 남발되고 있으며, 법원이 건설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구속영장의 절반가량을 기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5일 지난해 12월8일부터 200일간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 단속’을 실시해 1484명을 검거해 검찰에 넘겼다고 발표했다.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긴 피의자는 총 132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은 지난 6월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폭력경찰 규탄 및 불법행위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경찰 발표 받아쓴 보수·경제지… 경향·한겨레 발표 이면 주목

보수·경제지들은 26일 지면을 통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이들은 입건된 피의자들을 ‘건폭’으로 규정하고 경찰이 발표한 소식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매일경제는 23면 <돈 뜯고 협박…경찰 ‘건폭’ 1484명 입건> 보도를 통해 “이른바 ‘건폭(건설현장 폭력)’과 전쟁을 벌여온 경찰이 1484명을 붙잡아 검찰에 송치하고 이 가운데 132명을 구속했다”며 “이번 특별단속에서 유령 환경단체나 사이비 언론인 등이 적발되는 등 건설현장을 이권 창출의 대상으로 삼는 폭력행위가 무더기로 드러났다”고 했다.

▲6월26일 매일경제 23면 기사 갈무리.

▲6월26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갈무리.

동아일보는 12면 <‘건폭’ 단속 200일새 1484명 붙잡아 132명 구속> 보도에서 “검거된 이들 중 933명(62.9%)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소속이었다. 유형별로는 노조 전임비나 월례비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한 이들이 979명(66%)으로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외 서울신문(9면 <사이비 언론·유령 환경단체까지… ‘건폭’ 132명 구속>), 국민일보(12면 <‘건폭’ 200일 단속, 1484명 송치>) 등이 관련 보도를 냈다.

▲6월26일 경향신문 1면 기사 갈무리.

경찰이 발표한 숫자는 사실이지만, 모든 맥락을 담고 있다곤 할 수 없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경찰 발표의 이면에 집중했다. 경향신문은 1면과 8면 <‘건폭’ 단속 200일, 1484명 검찰 송치…경찰 특진경쟁 수단이 된 ‘특별단속’> 보도를 통해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반년 넘게 진행된 특별단속은 그러나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안전한 작업환경과 고용안정을 위해 노조활동을 해왔던 건설노동자들에겐 ‘건폭’이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노동자가 몸에 불을 지르고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6월26일 경향신문 8면 기사 갈무리.

경향신문은 이번 단속이 ‘매머드급’으로 진행된 점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특별단속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발표한 특진 배당 인원은 50명에 달했고, 지난달 90명으로 대폭 늘렸다.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 수사(52명)와 ‘마약류 범죄단속’ 수사(50명)에 할당된 특진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치”라고 했다. 건설노조 측은 경향신문에 조합원 대상 구속영장발부율이 낮다면서 “경찰이 특진과 실적 경쟁을 위해 ‘아무나 걸려라’ 식의 전형적인 투망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6월26일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또 경향신문은 사설 <200일 건설현장 수사가 남긴 것, ‘건폭 혐오’다>에서 “경찰은 이번 단속 결과 전임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한 불법 사례가 3분의 2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월 중간발표 때보다 송치 인원은 14배, 구속 인원은 4배 늘었다는 실적도 덧붙였다”며 “단속 종료를 앞두고 검거된 사람이 급증한 것은 경찰에서 대대적인 실적·특진 경쟁이 벌어졌음을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200일간의 ‘특별단속’에서, 경찰은 ‘건폭’으로 지칭한 대통령 말에 따라 건설현장의 구조적 불법행위를 폭력행위로 간주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며 “나아가 정당한 활동을 하는 노조마저 불법·폭력배·범죄 집단화하며 혐오를 키웠다.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토끼몰이식 수사로 혐의를 덧씌우고 꿰맞추기식 수사를 하는 것은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일과 상관없다”며 “안전하고 상식적인 건설현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노동을 홀대·탄압하는 단속은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6월26일 한겨레 1면 기사 갈무리.

한겨레 역시 1면 <‘건폭몰이’ 경찰 영장신청 남발… 법원, 절반 기각> 기사를 내고 “경찰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4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무더기’ 신청했지만, 실제 2명 가운데 1명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건폭몰이’에 앞장서 구속영장 신청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건설노조가 25일 작성한 ‘강요 및 공갈 혐의 구속영장 청구 현황’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건설노조 조합원에게 신청한 구속영장은 총 47건이다. 이 중 52.3%에 해당하는 23명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지난해 평균 구속영장 발부율은 81.3%다.

▲ TV수신료.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수신료 분리징수 속도전… “방통위, 대통령 친위대 행태”

정부가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분리징수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통상적인 기간(40일)보다 짧은 10일로 정했다. 현재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2명이 공석인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6월26일 한겨레 8면 기사 갈무리.

이에 대해 한겨레는 8면 <수신료 분리, 법제처 검토도 형식적 방통위의 입법예고 단축 주장 ‘복붙’> 기사에서 법제처가 방통위에 회신한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 내용을 공개했다. 법제처는 방통위가 보낸 입법예고 기간 단축 협의 요청 사유와 유사한 내용의 확인서를 보냈다. 한겨레는 “법제처가 하루 만에 방통위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옮긴 한 문장짜리 ‘검토 의견’을 낸 것”이라고 했다.

▲6월26일 한겨레 사설 갈무리.

또한 한겨레는 <졸속으로 점철된 ‘수신료 분리’ 속도전, 무책임하다> 사설을 통해 “‘졸속 추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논의를 거쳐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일을 대통령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상명하달식으로 추진한 탓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독립성이 보장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대통령의 친위대’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입법예고는) 대통령실이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티브이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지 11일만”이라며 “시행령 개정안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보고되고 단 이틀 뒤에 이뤄진 일이니 검토나 논의가 제대로 됐을 리가 만무하다”고 했다. 또 한겨레는 입법예고 기간이 10일로 단축된 것에 대해 “행정절차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입법예고 기간을 40일 이상 두도록 하고 있다. 방통위는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를 고려한 조처’라고 설명하지만, 현행 수신료 제도가 30년 가까이 유지돼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6월26일 경향신문 칼럼 갈무리.

홍진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은 칼럼 <매듭은 풀어야 한다>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숙고 없는 일방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부장은 이를 ‘고르디우스 매듭’에 비유했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던 ‘고르디우스 매듭’을 칼로 잘라버렸고, 이후 정복전쟁을 벌였다.

홍진수 부장은 “수신료 분리징수를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방송 환경이 바뀌고 KBS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분리징수가 아니라 아예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밀어붙일 일도 아니다. 수많은 논란 속에 수신료 ‘통합징수’가 30년이나 유지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수신료 분리징수를 논의하는 과정에선 그 이유였던 공영방송 재정 안정의 중요성, 공익 콘텐츠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진수 부장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알렉산드로스의 결단은 요즘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며 “‘복잡한 일을 간단하게 해결하면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의미다.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한 대제국은 그의 사후 바로 해체됐다.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렸기에 예언이 실현되다가 말았다는 설명이 따라온다. 매듭은 자르기보다는 천천히 푸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

▲인천광역시교육청 블로그 갈무리.

2800억 들인 ‘4세대 나이스’ 먹통 “교육당국 책임 물어야”

교육 행정정보시스템 ‘4세대 나이스’가 개통되자마자 접속 오류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에서 일선 학교들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4세대 나이스는 28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4세대 나이스’ 오류 속출… 공공 SW 대기업 참여 막은 예고된 참사>에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무리하게 시스템 교체를 진행한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을 방학이 아닌 학기 말에 급하게 개통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개발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개통 전 사전 점검이 부실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6월26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동아일보는 중소·중견 기업이 사업에 참여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근본적으론 지난 10년 동안 대형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막아 빚어진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중견·중소기업들이 개발한 대형 공공 SW 시스템이 시작부터 먹통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온라인 개학 때 시스템 과부하로 접속 오류가 이어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기업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6월28일 한국일보 8면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는 8면 <4세대 나이스 ‘부적격 판정 전력’ 업체에 맡겨… 교육당국 책임론> 보도를 통해 교육당국이 제대로 된 업체를 선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4세대 나이스 컨소시엄은 입찰 당시부터 적격 여부 논란이 일었다. 컨소시엄 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A업체는 다른 정부 사업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A사 컨소시엄이 4세대 나이스 개발 사업을 따낸 데에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가 유리하게 작용했다”며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시스템 구축을 대기업에 비해 개발 역량이 뒤처지는 중소기업에 맡긴 것이 이번 사태의 화근이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고 밝혔다.

▲6월26일 세계일보 사설 갈무리.

세계일보는 사설 <‘4세대 나이스’ 졸속 개통, 교육 현장 혼란… 대체 왜 이러나>를 내고 “교사들이 학기 중간에 시스템을 바꿀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시했는데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개편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예견된 참사나 다름없다”며 “교육 당국은 시스템을 조속히 안정시켜 교육 현장의 불안과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오류 원인 규명과 함께 그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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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최저임금인상, 윤석열정권퇴진” 결의

전국노동자대회서 “월급 빼고 다 올랐다. 너무 힘들다”

  • 기자명 김래곤 통신원 
  •  
  •  입력 2023.06.25 09:29
  •  
  •  댓글 4
 
민주노총이 24일 대학로에서 “월급빼고 다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철폐하라 비정규직!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정권퇴진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민주노총이 24일 대학로에서 “월급빼고 다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철폐하라 비정규직!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정권퇴진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민주노총은 24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월급빼고 다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철폐하라 비정규직!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정권퇴진”을 결의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하여 “월급 빼고 다 올랐다. 너무 힘들다. 노동자 서민의 시름과 고통이 가득한 시기”라면서 전기⸱가스를 비롯한 공공요금의 가파른 인상, 가계부채 2,000조, 소상공인 부채 급증, 재벌 사내보유금(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로 얻은 영업이익) 1,000조 돌파 등을 지적하면서 “물가폭등의 원인은 윤석열 정권이고, 그 수혜자는 재벌대기업”이라고 폭로, 규탄하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참가자들이 다양한 피켓들을 만들어 와서 대회 내용을 알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참가자들이 다양한 피켓들을 만들어 와서 대회 내용을 알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위원장은 계속해서 “비혼단신 가구의 생계비가 최저임금을 훌쩍 넘어서는데 노동자, 서민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항변하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이라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해소, 파견법 폐지, 간접고용 금지, 재벌 대기업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복지 강화, 노조권리 보장 등을 주장하였다.

끝으로 “졸속적인 최저임금 결정은 윤석열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면서 “윤석열 정권 퇴진이 최저임금 인상의 지름길”이며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자들을 투쟁으로 박살내자”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연대사를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연대사를 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연대사를 통하여 “노동조합법 2,3조 개정과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국민의 다수를 정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서 “최저임금 인상하고 윤석열정권 퇴진에 함께하겠다”고 연대의사를 전하였다.

왼쪽부터 정용재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김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왼쪽부터 정용재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김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위원회의 파행적 경과를 설명하면서 정부가 지명한 권순원(숙명여대 교수) 대표간사는 69시간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이끌었다면서 공익위원을 규탄하였다.

김수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최저임금 투쟁은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정책을 분쇄하는 전체 노동자의 투쟁”이라면서 “최저임금 12,000원 인상 쟁취하고, 비정규직 차별없는 세상,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고 결의를 다졌다.

하신아 웹툰노조,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정민정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위원장, 박동수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 노원구 아파트분회 조합원, 김영성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테스크테크지회 지회장 등이 현장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하신아 웹툰노조,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정민정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위원장, 박동수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 노원구 아파트분회 조합원, 김영성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테스크테크지회 지회장 등이 현장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표들이 산입범위 개악, 성별임금격차, 저임금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업종별 구분적용등 얼음조형물을 박살내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표들이 산입범위 개악, 성별임금격차, 저임금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업종별 구분적용등 얼음조형물을 박살내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날 대회는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현정희 위원장,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 서울본부 이현미 수석부본부장, 세종충남본부 문용민 본부장 등이 산입범위 개악, 성별임금격차, 저임금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업종별 구분적용등 얼음조형물을 박살내는 상징의식으로 끝마쳤다.

대표단과 참가자들이 대학로에서 을지로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표단과 참가자들이 대학로에서 을지로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대회를 마친 대표들과 참가자들은 대학로에서 을지로를 거쳐 시청앞까지 행진하여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3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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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544] 헤인즈가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

[개벽예감 544] 헤인즈가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06/2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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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국가정보판단서는 어떻게 작성되는가?

2. 분석 기간을 왜 8년 단위로 끊었을까? 

3. 미 제국의 초췌한 몰골 드러난 국가정보판단서 

 

 

1. 국가정보판단서는 어떻게 작성되는가?

 

2023년 6월 15일 미 제국 제7대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에이브릴 헤인즈(Avril D. Haines)가 매우 중요한 국가정보문서를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했다.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문서는 국가정보판단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다. 

 

국가정보판단서는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최종적인 정보판단을 내린 최고 권위의 전략정보문서다. 국가정보판단서 이외에 국가정보평가서(National Intelligence Assessment)도 있는데, 후자의 중요도는 전자보다 한 급 낮다. 국가정보평가서보다 중요도가 더 낮은 국가정보문서들은 보고서(Report)와 비망록(Memorandum)인데, 이런 문서들은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전문이 외부에 공개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가 미 제국에 제기되었을 때 국가정보판단서가 작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는 국가정보판단서(NIE)에 의거하여 국가안보 문제를 결정한다. 미 제국이 침략전쟁을 도발할 것인가 아니면 침략전쟁을 자제하고 군사 지원에만 그칠 것인가 하는 엄청난 정치·군사 문제도 국가정보판단서에 의거하여 결정된다. 

 

이를테면, 2022년 7월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한 국가정보평가서(NIA)를 내부적으로 회람하였고, 그 국가정보평가서 중에서 극히 일부 내용만 2023년 6월 5일에 뒤늦게 기밀 해제하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하여 국가정보판단서보다 중요도가 한 급 낮은 국가정보평가서를 작성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전쟁을 미 제국이 직면한 최대의 국가안보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 미 제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무력 개입을 감행하지 않고, 젤렌스끼 종미우익 정권에 군사 지원만 계속하는 것이다.  

 

2023년 6월 15일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이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기밀문서다. 그 문서의 제목은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North Korea: Scenarios for Leveraging Nuclear Weapons Through 2030)이다. 2023년 1월 중에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은 이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했다. 제출된 날짜가 2023년 1월 며칠인지는 문서에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은 이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뒤에 부분적으로 공개하였다. 

 

헤인즈 국가정보국장이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것은, 지금 미 제국이 조선의 핵무력을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로 여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으로 고도화된 조선의 핵무력을 미 제국이 직면한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전략적 정보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에 어떤 전략적 정보판단이 담겼는가에 따라 미 제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중대한 문제를 고찰하기 전에, 국가정보판단서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작성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정보판단서는 1979년에 창설된 국가정보협의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에 의해 작성된다. 국가정보협의회(NIC)는 18개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보고서를 종합, 정리하여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제출한다. 그러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가정보판단서에 의거하여 국가안보전략과 대내외 정책을 결정한다.  

 

▲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  © DNI

 

미 제국이 전 세계를 지배, 통제하기 위해 운영하는 18개 국가정보기관은 다음과 같다.  

 

1) 국가안보부문 정보사업을 담당한 7개 기관 - 중앙정보국, 국무부 정보조사국, 연방수사국 정보실, 법무부 국가안보정보실, 국토안보부 정보분석실, 에너지부 정보 및 반정보실, 재무부 정보분석실  

 

2) 군사 부문 정보사업을 담당한 11개 기관 - 국방정보국, 국가안보국, 중앙안보국, 국가정찰실, 국가지리공간정보국, 육군 군사정보단, 해군 정보국, 해병대 정보국, 해안경비대 정보국, 공군 제16군, 우주군 국가우주정보쎈터

 

위에 열거한 18개 국가정보기관은 1,930여 개의 사설정보 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정보사업을 벌이는데, 국가정보조직들과 사설정보 회사들에서 근무하는 총인원은 854,000명에 이른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 제국이야말로 핵무기와 금융자본과 정보조직을 틀어쥐고 전 세계를 지배, 통제하는 거대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정보협의회 책임자는 국가정보국장(DNI)이다. 국가정보국장은 국가정보계(intelligence community)를 대표하며, 다종다양한 국가정보사업(National Intelligence Program)을 감독하고 총괄한다.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국가정보기관들이 국가정보국장에게 각자 정보보고서를 제출하면, 국가정보국장은 그것을 종합, 정리한 대통령 일일 보고서(President's Daily Brief)를 작성하여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대면으로 보고한다. 국가정보국장은 대통령 보좌관으로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보고한다. 

 

2023년 6월 15일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는 국가정보협의회에서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의 도움을 받아(under the auspices of National Intelligence Officer for North Korea)” 작성되었다.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다는 말은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협의회에서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의 정보판단이 국가정보판단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가정보협의회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NIO)은 씨드니 싸일러 (Sydney Seiler)다. 그는 미 제국 국방언어연구소에서 우리말을 배웠고,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유학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그는 서울에서 10년 이상 살았다.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독보적인 정보분석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미 제국 국가안보국(NSA) 정보분석관, 중앙정보국(CIA) 총괄분석조정관, 국가정보협의회(NIC) 북조선 담당 정보분석관을 거치면서 40년 동안 북조선 정보를 전문적으로 분석해왔다. 그는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1년 5월부터 3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 근무했고, 2014년 9월부터 1년 동안 6자회담 미 제국 특사로 근무했고, 2016년 4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주한미국 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총괄분석관으로 근무했고, 지금은 국가정보협의회 북조선 담당 국가정보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국가정보판단서가 작성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국가정보협의회 국가정보실장이 기초문서(terms of reference)를 작성한다. 기초문서에는 정보판단에 요구되는 핵심 문제들, 초안 작성자의 책임 한계, 초안을 완성하기까지의 일정 등이 명시된다. (씨드니 싸일러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기초문서를 작성하였다.) 

 

2) 여러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정보협의회 국가정보실장이 작성한 기초문서를 회람하면서 각자 의견을 제출한다. 

 

3) 국가정보협의회 국가정보실장은 국가정보기관들이 제기한 의견을 반영한 국가정보판단서 초안을 작성한다. (씨드니 싸일러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 초안을 작성했다.) 

 

4) 국가정보기관 대표자들이 모여 국가정보판단서 초안을 정밀하게 심의한다. 그들은 정보자료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고, 정보판단의 신뢰성을 검토하고, 오류를 수정하여 국가정보판단서를 완성한다. 이 심의과정에서 국가정보기관들의 의견이 상충되어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을 계속해도 합의점을 끝내 찾지 못하면, 모호한 절충적 표현을 사용하여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한다. 

 

5) 위에 열거한 절차에 따라 국가정보판단서를 완성하기까지 여러 달이 걸리는데, 어떤 경우에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6) 국가정보국장은 완성된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다.   

 

2. 분석 기간을 왜 8년 단위로 끊었을까? 

 

씨드니 싸일러의 정보판단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국가정보판단서는 제목부터 난해하다.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 정보분석문서를 작성할 때, 5년 단위가 아니면 10년 단위로 분석 기간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 분석 기간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8년 단위로 정해졌다. 분석 기간을 10년 단위로 정하는 것이 상례인데, 왜 유별나게 8년 단위로 끊었을까? 2023년부터 10년이 되는 해는 2032년인데, 2032년보다 2030년으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에 분석 기간을 2030년까지 끊은 것으로 보인다.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10년을 단위로 하여 2030년까지 전망하려면, 2021년 1월에 국가정보평가서를 내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2023년 1월에 가서야 부랴부랴 국가정보평가서를 내놓은 것이다. 이런 사정은 국가정보협의회가 조선의 핵무력에 대한 절박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2022년에 가서야 절박감을 느끼고 국가정보평가서를 부랴부랴 작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2022년에 이르러 조선의 핵무력은 미 제국이 절박감을 느낄 만큼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조선의 핵무력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되면서 미 제국에 절박감을 안겨준 놀라운 사연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의 핵무력을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시킨 2022년의 정치적 결정

 

1-1) 4월 26일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핵무력의 제2사명을 천명하였다. 핵무력의 제2사명은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1-2)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법령이 채택되었다. 이 법령에서는 조선의 핵무력이 “국가주권, 영토완정, 인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방위의 기본역량”이라고 명시되었고,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다섯 가지 조건이 열거되었다.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세 가지 조건은 적대세력의 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가지 조건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2) 조선의 핵무력을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시킨 2022년의 군사행동  

 

2-1) 화산-31 전술핵탄두 실물 공개

3월 28일 언론보도를 통해 핵무기연구소에 전시된 화산-31 전술핵탄두 실물 공개

 

2-2)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변칙비행 미사일, 소형 전술핵미사일 출현

1월 5일과 11일 화성포-8형 원뿔첨두형 극초음속 전술핵미사일 시험발사

1월 14일 철도기동 전술핵미사일 검열사격훈련

1월 17일 에이태큼스(ATACMS)형 변칙비행 전술핵미사일 검수사격시험

1월 27일 근거리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4월 16일 이스칸데르(Iskander)형 변칙비행 전술핵미사일을 소형화한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5월 25일과 6월 5일 각종 전술핵미사일을 배합한 연발사격연습

 

2-3)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1월 25일과 27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8월 17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10월 12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 시험발사

11월 2일 장거리 순항 전술핵미사일 2발을 부산에 인접한 울산 앞바다로 발사

 

2-4)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600mm 방사포

5월 12일 600mm 전술핵방사포 3발 시험발사

9월 29일 600mm 전술핵방사포 2발 시험발사

10월 6일과 8일 장거리 포병부대들과 공군비행대의 합동타격훈련 

10월 9일 600mm 전술핵방사포 2발 시험발사

 

2-5) 화산-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핵추진잠수함

5월 7일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1발을 3,000톤급 잠수함에서 수중시험발사  

9월 25일 저수지 수중발사장에서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훈련 

9월 말 핵추진잠수함 건조 

 

2-6) 군사 장비 현대화, 군사훈련, 검열

1월~5월 전자전 부대들의 전자무기체계, 정찰통신체계, 전자시설방호체계 현대화 

3월~5월 4중 협동지휘훈련 실시 (4중 협동지휘훈련은 최고사령부가 작전명령을 내리면 육군, 해군, 공군, 전략군 4개 군종 지휘부가 각자 화력타격 부대들을 총동원하여 동시에 전선 전역에서 타격 대상들을 한꺼번에 소멸하는 전시협동작전능력을 점검하는 군사훈련) 

6월 초 해군과 공군의 무장장비 현대화 실태 불시점검 

7월 4일 전군의 전투예비물자 보유 및 관리실태 검열 

11월 6일 각급 전투부대들의 무기 및 전투기술기재 검열 

 

2-7) 전술핵전투부대 배치, 판정, 훈련 

6월 21~2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3차 확대회의에서 각종 전술핵미사일을 지상과 해상에 배치하기로 결정. (이 결정에 따라 조선인민군 육군, 해군, 공군, 전략군에서 전술핵 전투부대를 새로 배치하기 위한 직제 개편, 인원 조동, 부대 신설, 부대 통폐합이 진행됨. 그와 함께, 전술핵 전투부대를 새로 배치하는 전략에 의거하여 작전계획, 전투조직표, 정치사업계획이 각각 수정, 보완됨) 

8월 29일 새로 편제된 핵전투 부대들에 불시 명령을 하달해 새로운 작전계획에 따른 전투준비태세를 평가하는 판정 실시. (최고사령부나 총참모부가 명령을 하달하면 해당 전투부대는 즉시 비상작전회의를 소립하고, 전투원들은 갱도에 진입함) 

9월 25일~10월 19일 전술핵타격연습 및 대남 공격연습 연속적으로 실시 (이로써 전술핵 전투부대의 존재, 전략핵 전투부대의 존재, 미싸일총국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짐) 

10월 7일 전군에 특별경계근무명령 하달 

10월 18일 전군에 전투동원태세 발령

10월 31일 최전방 전투부대들에 준전시태세 발령

11월 3일 전투지휘부 갱도훈련 실시

11월 4일 각종 전투기 500대를 동원한 총전투출동작전 실시

 

2-8) 무인정찰기 대남 정찰

12월 26일 무인정찰기 12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하여 정찰비행을 하고 복귀 (한미연합군은 전혀 대응하지 못함)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사실은 2022년 한 해 동안 조선이 각종 전술핵무기를 생산하여 전술핵전투 부대들에 실전배치하였고, 전술핵전투 부대들은 전술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핵전투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사실은 2022년 한 해 동안 조선인민군의 대남 전술핵 타격 능력이 대폭 강화되었고, 임의의 시각에 선제적인 전술핵 타격으로 한미연합군을 제압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미 제국의 초췌한 몰골 드러난 국가정보판단서  

 

2023년 6월 15일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된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는 위에 서술한 2022년 조선의 군사 상황, 다시 말해서 조선의 핵무력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된 상황을 보고 절박감을 느끼고 부랴부랴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 국가정보판단서에는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제압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하였다는 정보판단이 서술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국가정보판단서에는 그런 현실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정보판단이 서술되었다. 국가정보판단서에 서술된 “핵심적인 판단(key judgement)"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이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여 영토를 차지하고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실현하는 공격전략(offensive strategy)을 사용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2) 조선이 핵무력을 과시하는 강압 행동과 공격 행동을 보류하고 방어전략(defensive strategy)을 사용할 가능성도 매우 적다. 

 

3) 조선이 군사력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여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압 전략(strategy of coercion)을 사용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강압 전략은 상대를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압박하여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고, 국내적으로는 정권의 군사적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정보판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는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사용될 실전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게서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 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서술된 것이다. 이러한 정보판단은 조선이 실전에서 전술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정세분석가들의 정보판단과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2022년 6월 30일 한국국방연구원이 서울에서 개최한 군사전략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조선인민군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 한국군이 전략적 대비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였다. 2023년 6월 22일 서울에 있는 육군회관에서 개최된 국방정책 토론회에서도 조선인민군의 타격목표는 한반도 전구에 전개되는 미 제국 항공모함, 항만과 공항, 공군비행장 등이 될 것이고,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의 항공무력과 미 제국의 증원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것은 합리적인 정보판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는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에서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게서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 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정보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적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정세분석가들도 다 아는 명백한 정보를 오판한 것일까?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의 정보분석 능력이 정세분석가들의 정보분석 능력보다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여기서 제기되는 심중한 문제는,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정치적 의도가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협의회의 정보판단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이 심중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1) 2002년 10월 1일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는 이라크군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했다고 기술한 국가정보판단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였다. 당시 부쉬 행정부는 그런 국가정보판단서에 의거하여 사담 후쎄인(Saddam Hussein, 1937~2006)의 대량파괴무기 사용을 저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바에 의하면, 이라크군은 대량파괴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상황을 오판한 것이 아니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려고 광분하는 부쉬 행정부의 의도에 맞춰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할 명분이 필요했고, 국가정보협의회는 그 명분에 맞춰 정보판단을 내린 것이다. 당시 이라크군은 대량파괴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미 제국은 자기 군대가 대량파괴무기로 공격당할 위험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라크 침략전쟁을 마음 놓고 도발할 수 있었다. 

 

2) 지금 미 제국이 직면한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는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가능성과 그에 대한 미 제국의 대처능력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국가정보협의회는 그처럼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국가정보판단서를 단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와 민간 연구기관들은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을 예상한 모의전쟁 시험(war game)을 수시로 진행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정작 그 문제에 대한 정보활동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국가정보협의회는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이런 직무유기 현상은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작용해 발생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협의회는 미 제국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 무력 개입을 감행하여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 패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에서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게서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 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정보판단을 내린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일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조선이 전술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남조선해방전쟁’을 예상한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런 급박한 상황에 반드시 대처해야 한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미 제국의 대처는 이른바 ‘전략자산(strategic assets)’을 한반도 작전구역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대만해방전쟁을 벼르고 있는 중국에 무조건 전력으로 대처해야 하는 미 제국은 자기의 전략자산을 중국 근해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미 제국은 중국 근해와 한반도 근해에 동시적으로 배치할 만큼 충분한 전략자산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대만해방전쟁에 대처할 수 있을 뿐이며, ‘남조선해방전쟁’에 대처할 여력은 갖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미 제국이 대만해방전쟁에 대처하여 중국과 전쟁을 하더라도 그 전쟁에서 승리할 가망은 전혀 없다. 따라서 미 제국은 ‘남조선해방전쟁’에 대처하여 조선과 전쟁을 하는 경우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미 제국 국가정보협의회가 ‘남조선해방전쟁’을 예상한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였으며, 조선의 전술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니라 미 제국과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에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강압전략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 국가정보판단서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북조선: 2030년까지 핵무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몇 가지 씨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판단서는 두 전쟁이 임박한 시기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미 제국의 초췌한 몰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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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3.06.24. 16:04:08 최종수정 2023.06.24. 16:42:52

 

지난 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를 비판한 글을 보고 독자 두 분이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주셨다. 요지는 '일본인뿐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오해하고 잘못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 물음들이 나오는 배경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한국에 나온 여러 후쿠자와 관련 책들이 후쿠자와의 '맨얼굴'보다는 '분칠을 한 얼굴'의 후쿠자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가 '분칠'을 했는지는 이 글 밑에 살펴볼 참이다.

 

하급무사 아들, 칼 대신에 문필로 이름 떨쳐

 

오늘날 후쿠자와의 이미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일본의 고액권인 1만 엔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는 '19세기 일본의 계몽사상가' 쯤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후쿠자와는 일찍이 개항과 개화를 외치며 게이오(慶應)대학의 기틀을 다진 교육사상가였고, 오늘날 <산케이신문>으로 명맥이 이어진 <시사신보>(時事新報)를 창간해 주필로 일하면서 문필가로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후쿠자와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다. 후쿠자와 자신이 '탈아입구'라는 용어를 직접 쓰진 않았지만, 그가 내걸었던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문명체계를 받아들이자'는 개항·개화의 주장과 부국강병론은 19세기 후반 일왕 중심의 근대화에 나름의 사상적 기여를 한 것으로 꼽힌다. 그는 19세기 말 개화파의 중심이었던 비운의 인물 김옥균(1851-1894)과 가까이 지내며 조선의 권력투쟁과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후쿠자와가 어느 정도 무게감을 지녔는가는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일화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춘원은 '조선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되기를 바랐다. 존경하는 마음에 일본에 있는 그의 묘지를 다녀와서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여 내린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 담긴 글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춘원은 그의 친일 행적으로 말미암아 (후쿠자와와는 달리) 사람들이 그가 남긴 글을 찾지 않는 존재가 됐다. 

 

인터넷 검색창에 후쿠자와의 사진을 찾아보면, 학자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있지만 허리에 칼을 찬 모습들도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도쿠가와 막부(幕府) 시절 오사카 부근의 나카쓰번(中津藩)에 소속돼 창고 물자를 관리하는 하급 무사였다(야마다 요지 감독이 잘 만들었다고 호평을 받은 2002년도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의 주인공 하급 무사와 똑 같다). 후쿠자와는 사무라이의 칼 대신 문필로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서양 사정>(초편 1866, 외편 1868, 2편 1870), <학문의 권유>(1872), <문명론의 개략>(1875) 등이 후쿠자와의 이름을 당대에 널리 알린 저작들이다.

 

한국 업신여기며 망언 일삼은 일본인 원조(元祖) 

 

후쿠자와의 언행을 좀 더 들여다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매우 적대적이고 위험한 인물'임을 알아채게 된다.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아주 심했다는 게 드러난다. 21세기 이 땅의 '신친일파'들이 <반일 종족주의>에서 펼치는 터무니없는 한국인 비하론을 딱 빼닮았다. 

 

후쿠자와는 자신의 '경험에 따르면...'이란 전제 아래 조선인들을 마구 깎아내렸다(그가 겪은 '경험'이란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배신과 위약(違約)은 조선인들의 타고난 성질'이기 때문에 '조선인은 배신과 위약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못 박았다. 따라서 '조선인을 상대로 한 약속은 처음부터 무효라고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문명 맹신자이기 때문일까, 그는 조선인이 그렇게 된 원인을 엉뚱하게도 '오래된 유교의 중독성' 탓이라 돌렸다(다카시로 코이치, <후쿠자와 유키치의 조선경략론 연구> 선인, 2013, 154쪽 참조).

 

지난주 글에서 후쿠자와가 조선을 '일개 작은 야만국'으로 못 박고 '(조선의) 학문은 보잘 것 없고 병력은 겁낼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면서, 무력으로 조선을 정벌(후쿠자와의 용어로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썼다. 또한 후쿠자와는 동학농민전쟁(1894) 당시 일본군에 맞섰던 조선의 농민군을 능멸하면서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다"고 비난했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따라서 한국을 업신여기며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의 원조(元祖)는 후쿠자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일본군을 '동양의 악귀'로 만들다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은 미개인'이란 후쿠자와의 망언이 19세기 말 한반도에 파견된 일본 군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그가 창간하고 주필을 맡았던 언론사인 <시사신보>(時事新報)에 그런 거칠고 매몰찬 논설을 써댔으니, 일본군 지휘관들이 사병들의 정훈교육 때 활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분명한 것은 실제 전투현장에서 일본군이 동학농민군 포로들에게 저질렀던 잔혹 행위로 미뤄, 그 무렵 일본인들은 후쿠자와와 마찬가지로 조선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을 상대로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의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 교토에 남아있는 거대한 귀무덤(실제로는 조선인 12만 명쯤의 코가 묻혀 있는 코무덤)이 말해주듯, 임진왜란(1992) 때에 엄청난 규모의 전쟁범죄가 저질러졌다. 일본군이 개입했기에 후쿠자와가 더욱 관심을 기울였던 동학농민전쟁 때도 잔혹한 전쟁범죄가 저질러지긴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두 역사학자가 발굴해낸 어느 일본병사의 <진중일지>를 줄여 옮겨본다. 

 

△1895년 1월8-10일 전라도 장흥전투 뒤: "우리 부대가 서남 방면으로 추격해서 타살한 농민군이 48명, 부상한 생포자는 10명이었다. 숙사에 돌아와 생포자는 고문한 다음 불태워 죽였다" 

△1895년 1월31일 전라도 해남전투 뒤: "오늘은 남은 동학당 7명을 잡아와 성 밖의 밭 가운데 일렬로 세우고 총에 검을 장착하여 모리타 일등군조의 호령에 따라 일제히 동작해서 그들을 찔러 죽였다"(1895년 1월31일 해남전투 뒤).

△나주전투 뒤(일자 불상): "나주성에 도착하니 성 남문에 가까운 작은 산에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붙잡아 고문한 뒤에 죽인 숫자가 매일 12명 이상을 넘었다. 그곳에 시체로 버려진 농민군이 680명에 이르렀으며, 근방은 악취가 진동했다. 땅위에는 죽은 사람의 기름이 얼어붙어 마치 흰 눈이 쌓여있는 것과 같았다"(나카츠카 아키라 외,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모시는사람들, 2014, 118-119쪽). 

 

'한국을 업신여기며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의 원조(元祖)'라 부를 만한 후쿠자와는 중국 사람들에 대해서도 멸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시사신보>에는 그런 거칠고 매몰찬 그의 논설들이 곳곳에 기록돼 있다. 중국인을 '창창 되놈' '짱꼴라'로 낮춰 불렀고, 중국인의 변발을 '돼지 꼬랑지 머리'로 조롱했다. 생포한 청나라 노(老)장군을 일본 아사쿠사 공원으로 끌어내, 나무문을 달아 입장료를 받고 구경시키자는 섬뜩한 유머를 내놓기도 했다. 적의 장군을 노리갯감으로 삼자는 얘기인데,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한 인물이 지금 일본 1만 엔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는 후쿠자와다.

 

후쿠자와의 교육사상을 연구해온 야스카와 주노스케(나고야대학 명예교수, 사회사상사)는 난징 학살(1937)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마구잡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배경을 거슬러 보면, 이웃 아시아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후쿠자와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일본군 병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태연하게 중국인을 죽일 수 있는 '동양의 악귀(惡鬼)'가 된 것은 '소학교 시절부터 중국인을 짱꼴라, 돼지새끼 이하'로 여기고 '중국인은 자신의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열등민족'이라 여기게 만든-후쿠자와 유키치가 숙성시킨-아시아 멸시관 때문이라 증언하는 시각도 놓칠 수 없다"(야스카와 주노스케,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역사비평사, 2011, 17쪽). 

 

 

 

"천황이 직접 도요토미 이래의 외전(外戰) 펼쳐야"

19세기 말 조선이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으로 몸살을 앓을 무렵부터 후쿠자와는 강력한 군사개입론을 폈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인 1885년 신년 논설에서 '갑신정변의 피해자는 일본이고 가해자는 중국(청)과 조선이며, 일본은 원고이고 중국과 조선은 피고'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이를 기회 삼아 대외 전쟁을 통해 일본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쿠자와는 '일국의 인심을 흥기시켜 전체를 감동시킬 수 있는 방편은 외국과의 전쟁만한 게 없다'는 위험한 신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선에 무력 개입하고 내친 김에 중국 청나라 수도 북경까지 진격해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일본이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중국)이기 때문에 일본군을 파견해 경성(서울)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시키고, 바다와 육지로 중국을 침략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키자는 것이었다. 

 

"일본이 중국을 정벌하면, 중국과 조선과 동양 전체에 대해 대일본제국의 권력이 이전보다 몇 배나 성장되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고, 구미 열강으로 하여금 우리 일본의 힘이 강대한 것을 감탄시키어 조약 개정과 치외법권의 철폐 등도 용이하게 될 것이다"(다카시로 코이치, 154쪽에서 재인용). 

 

놀랍게도, 후쿠자와는 중국과의 전쟁(청일전쟁)이 벌어질 경우 그 전쟁의 승패가 국가 존망을 가르는 중대한 전쟁이니만큼, 일왕이 직접 나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이래의 외전(外戰)'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 이유로는 "태고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의) 삼한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왕(神功皇后)이 스스로가 병사를 데리고 친정함으로써 군대의 사기가 높아졌다"는 믿기 어려운 근거(?)를 꼽았다(다카시로 코이치, 155쪽). 

 

그러면서 후쿠자와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군비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급하는 것은 일본 국민의 의무이기에, 지금부터 지출을 줄이고 헌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헌금론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도 많이 들리던 얘기다. 한반도의 친일파들은 너도나도 헌금을 하며 '대동아 성전(大東亞聖戰)의 승리'를 기원했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인 500만을 전라·충청·경상 3도로 보내자" 

 

후쿠자와는 알고 보면 매우 공격적인 식민주의자였다. 그가 쓴 논설 가운데는 '일본인 500만 명을 조선으로 이주시키자'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의 정치개혁이 어렵다면, 일본인을 조선 땅으로 대량 이주시켜 조선인과 잡거(雜居)하면서 일본인의 행동을 보고 차차 자기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나의 소견에서도 현재의 조선국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인구가 희박한 것은 사실이다. 근년에 와서 우리나라(일본)의 인구 번식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그 처리문제에 당혹하고 있는 바로 이때에 500만 명의 이주민을 보내는 것은 아주 용이한 일이다. 우선 50만 명이라도, 60만 명이라도 보내는 것은 지장이 없다. 우리 정부에서는 신속히 이주의 일을 계획하고 조선 정부와 담판하여 현행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다카시로 코이치, 330쪽에서 재인용).

 

후쿠자와가 얼마나 조선인을 업신여겼는지, 그리고 조선 정부를 만만하게 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1892년 그가 '일본인 500만 조선 이주론'을 펼치며 처음에 꼽았던 지역은 상대적으로 불모지가 많다고 알려진 함경도였다. 그러나 뒤에 다시 꼽은 이주지역은 전라·충청·경상 3도였다. 

 

척박한 땅이 많다는 함경도를 이주지로 꼽았던 후쿠자와의 초기 논설엔 그나마 '배려'의 흔적이나마 보였다. 하지만 얼마 뒤에 쓰인 논설에는 인구밀집도가 높고 비옥한 한반도 남쪽 지역으로 이주 목표지가 바뀌었다. 그곳이 조선의 곡창지대인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일본 농민들이 한반도 농업의 노른자위를 차지하도록 만들겠다는 심보였다. 이민(移民)이 아니라 식민(植民)을 뜻하는 침략 주장을 폈던 셈이다. 

 

▲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오른편에 칼을 찬 20대 모습의 사진은 1862년 유럽에 사절단으로 갔을 때 베를린에서 찍었다.

 

'허풍이라면 후쿠자와, 거짓말이라면 유키치' 

 

이렇듯 후쿠자와는 일본을 대외 팽창과 침략전쟁 쪽으로 몰아가려는 주장을 <시사신보>에 논설 형식으로 자주 써댔다. 그런 주장 속에 한결같이 담긴 것은 조선과 중국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었다. 후쿠자와뿐 아니다.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과 중국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러했다. 

 

이를 두고 생각이 깊었던 일부 지식인들은 '일본의 보잘 것 없는 개화에 대한 자만심'을 경계했다. "우리 일본인이 구미인에게 배운 것이 하루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조선과 중국을) 깔보는 교만심이 생겨났다"는 지적이었다(<東京横浜每日新聞> 1877년 11월10일자, 야스카와 주노스케, 218쪽). 야스카와 교수에 따르면, 당대의 일부 지식인들은 물론 정부 관리들조차 후쿠자와의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다. 

 

"당시의 후쿠자와는 동시대인들로부터 '허풍이라면 후쿠자와, 거짓말이라면 유키치'란 조소를 받았다. (특히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로부터는) 후쿠자와의 아시아 침략의 길은 '장래에 구제받을 수 없는 재앙'을 남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엄중하고도 적절한-마치 1945년 패전을 예견한 듯한-비판을 받았다"(야스카와 주노스케, 7쪽).

 

'장래에 구제받을 수 없는 재앙'을 겪을 것이란 염려는 20세기 중반에 현실로 나타났다. 일본의 잇단 침략전쟁으로 일본 국민 310만을 포함한 2천만 명쯤이 죽었다. 그 과정에서 난징 학살(1937)과 '위안부' 성노예를 비롯한 전쟁범죄가 저질러졌고, 그 범죄의 희생자와 유족들은 지금도 진정성 담긴 사과와 그에 걸맞는 배상을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학계의 천황' 마루야마가 만든 신화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후쿠자와가 '시민적 자유주의 정치관을 지닌 지혜로운 계몽사상가' 쯤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글 앞에서 거듭 살펴본 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의 저자 야스카와 교수는 후쿠자와의 맨얼굴에 분칠을 한 주요인물로 '일본정치사상사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전 도쿄대 교수, 1914-1996년)를 꼽는다. 

 

마루야마는 도쿄대를 중심으로 '마루야마 학파'를 이룰 정도로 영향력을 지녔다. 그에게 따라다닌 별명이 '학계의 덴노(天皇)' 또는 '가미사마'(神様)였으니, 일본학계에서 지닌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일본의 사상> 등 그의 책이 여러 권 번역돼 있다. 

 

마루야먀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1875년에 써낸 <문명론의 개략>을 해설한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이와나미, 1986)라는 두툼한 책을 통해 후쿠자와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했다(한국 번역본은 2007년 문학동네에서 펴냄). 서양과 일본의 문명을 비교하면서 '나라의 독립이 곧 문명이다. 문명이 아니면 독립을 보전할 수 없다'는 후쿠자와의 주장을 담은 <문명론의 개략>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일본의 볼테르'로 칭송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후쿠자와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것은 '학계의 덴노(天皇)'란 권위를 지녔던 마루야마의 분칠 덕이 크다. 이른바 '후쿠자와 신화'다. 하지만 분칠을 걷어내고 후쿠자와의 맨얼굴을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재일동포 출신의 인권평화운동가 서승(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이 야스카와 교수의 책에 쓴 추천사를 참고로 읽어보자.

 

"후쿠자와는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관련 책도 여러 권 나와 있다. 그러나 그 책들은 대부분 후쿠자와를 메이지 유신을 이끈 위대한 사상가이자, 일본과 동아시아 근대문명의 선각자, 민주주의자로 미화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학의 신'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세계적 석학으로 이름을 날린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론(論)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자와는 서슴없이 권모술수와 폭력을 조장하고 무자비한 권력정치를 주창하면서 천황제 군국주의의 길을 텄던 인물이다. 그는 동아시아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고, 일본에게도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의 패망이라는 비극의 원인을 제공했다"(야스카와 주노스케, 339쪽). 

 

'후쿠자와의 맨얼굴'과 '후쿠자와 신화' 

 

1998년 나고야대학을 퇴임할 때까지 사회사상사 관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에 집중해온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2000년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한국어 번역본은 2011년)를 써낸 데 이어, 2003년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한국어 번역본은 2015년)를 냈다. 후쿠자와의 아시아인 멸시와 침략전쟁 선동을 비판한다는 점에선 같은 맥락에 있다. 두 번째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맨얼굴'이란 소제목이 달린 대목을 일부 옮겨본다. 

 

"일본의 전후 사회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학문·교육·정치 등을 통해 과도하게 미화되어 왔다. 자민당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일본총리)는 정치연설에서 후쿠자와의 많은 말들을 인용하여 메이지(明治) 당시의 일본인들이 '얼마나 강한 국가의식'을 지녔는지 몇 번이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더구나 마루야마 마사오를 필두로 전후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수많은 '후쿠자와 신화'를 만들어내 그를 미화했기에,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만큼 바람직한 '대표적 일본인'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1984년 쇼토쿠(聖德) 태자의 뒤를 이어 최고액권 지폐의 초상인물이 됐다"(야스카와 주노스케,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 역사비평사, 2015, 346-347쪽). 

 

후쿠자와의 어록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 하나를 꼽자면, <학문의 권유>(1872)에 나오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과서에도 실렸기에 일본 대학 신입생의 9할 이상이 후쿠자와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쿠자와의 맨얼굴은 이런 말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일본 천황제를 목숨처럼 받든 황국주의자였고, 아시아인을 멸시하며 침략전쟁을 부추겼던 선동가였다. 따라서 '하늘은 사람 위에...'는 그저 듣기에 좋은 언어의 희롱이나 다름없다. 마루야마가 비판을 받는 대목도 바로 이런 후쿠자와의 글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골라 짜깁기로 미화했다는 점이다.

 

전쟁책임 지고 화해하려면 후쿠자와 재평가해야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1986)와는 달리, 비판적인 시각에서 후쿠자와를 다룬 책이 고야스 노부쿠니(오사카대 명예교수, 일본사상사)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2005)이다. 마루야마의 책은 2007년 4월에 번역본(문학동네)이 나왔고, 고야스의 책은 같은 해 10월에 번역본(역사비평사)이 나왔다. 고야스 교수는 자신의 책 결론부분에서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는 후쿠자와를 위한 변명의 책이란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고 비판했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이 19세기의 일본인인 후쿠자와의 문제점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의 저자인 야스카와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일본이 전쟁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아시아와 화해를 꾀하기 위해선 후쿠자와를 냉정하게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동안 일본 주류학계에서 '계몽사상가'로 미화된 후쿠자와를 놓고 학문적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후쿠자와 비판은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 화해를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인다. 

 

한반도 침탈자의 얼굴 들어간 엔화 

 

같은 맥락에서, 일본 1만 엔 지폐에 후쿠자와의 얼굴 초상이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위의 야스카와 교수도 이를 불편하게 여긴다. 후쿠자와 얼굴이 들어간 것은 1984년부터였다. 2024년부터는 후쿠자와는 빠지고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1840-1931)의 얼굴이 새로 들어간다. 시부사와도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관련이 깊다. 이번엔 후쿠자와처럼 독설과 칼로 무장한 침략이 아니라 경제침략이다. 

 

금융전문가인 시부사와의 삶은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궤를 같이 한다. 1878년 부산에 제일국립은행(현재 일본의 3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미즈호은행) 지점을 설립한 뒤, 금융·화폐 분야에서 일제의 침략 대리인 몫을 해냈다. 1905년 조선국고금 취급과 화폐 정리사업을 맡으면서, 제일국립은행은 한반도의 중앙은행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일본 엔화와 등가로 유통된 조선 제일은행권에 시부사와의 얼굴이 들어간 것은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도 일본 화폐에 얼굴을 보인 적이 있다. 1963년부터 1986년까지 사용된 1천 엔 지폐에서였다. 후쿠자와 유키치, 시부사와 에이이치, 이토 히로부미 3인 모두 일본인들이 존경해 마지않기에 화폐에 얼굴이 들어갔을 걸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아시아의 공존과 평화와는 거리가 멀고, 더구나 한반도 침략과 관련이 깊다. 그런 사실이 이웃 나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데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처럼 신사임당이나 율곡 같은 문화예술가나 학자 가운데 화폐에 얼굴을 넣을 만한 인물이 일본엔 드물기 때문일까.

 

▲ 984년부터 일본 1만 엔 지폐에 들어가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 1984년엔 다른 얼굴로 바뀐다.

 

"왜 강연장이 하필이면 게이오 대학인가" 

 

이 글 앞에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게이오대학의 전신인 게이오의숙의 설립자라 했다. 지난 3월17일 윤석렬 대통령이 게이오에서 강연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왜 하필이면 (조선과 중국 침략을 선동했던 후쿠자와가 세운) 게이오대학이냐"는 논란이 나왔다.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일본인 후배가 그 무렵 이메일로 이런 걱정을 전해왔다. "게이오대학이 어떤 곳인지 윤대통령이 잘 모르고 간 것 아닌가요? 게이오는 일본 극우의 소굴 같은 곳인데, 분명히 뒷말이 나올 것 같아요." 

 

실제로 뒷말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내다보지 못한 엉뚱한 대목에서였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용기'라는 제목을 단 윤대통령 강연에서 인용문의 출처가 논란이 됐다. '한일 두 나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용기'라는 말을 하려고 '용기가 생명의 열쇠'라는 문학적인 표현을 옮겼다. 문제는 옮겨온 구절이 하필이면 후쿠자와에 못지않은 조선 멸시론자이자 침략론자였던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1862~1913)이 했던 말이다. 

 

오카쿠라 "조선을 식민지화해도 침략이 아니다" 

 

오카쿠라는 "조선을 식민지화해도 침략이 아니다"란 궤변을 펼쳤던 극우 사상가다. 일제 강점기의 어용학자들이 날조한 '유사 역사학'과 맥락을 같이하는 그의 궤변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러일전쟁(1904) 직전에 그가 미국에서 낸 <일본의 각성>(The Awakening of Japan)이란 책에 담긴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조선의 시조 단군이 일본의 시조 아마테라스의 아우 스사노오의 아들이며, △3세기에서 8세기까지 500년 동안 삼한 땅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따라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식민지로 다시 지배한다 해도 그것은 '침략'이 아니라 '역사적인 원상회복'이라는 궤변이 담겼다(오카쿠라의 책은 1905년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맺었던 '카스라-테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했던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나름의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다). 

 

게이오대학 강연장에서 오카쿠라의 말을 윤대통령이 옮긴 것을 두고 국내에선 비판이 따랐다. 하종문(한신대, 일본근현대사)교수는 "대통령과 보좌진의 역사인식과 일본 시각의 문제점을 뚜렷이 보여준 사례"라 지적했다(하교수는 일본군 진중일지로 '위안부' 성노예의 강제동원 실체를 드러냈다. 본 연재 13 참조). 보좌진의 실수로 여기며 넘어가기엔 찜찜하다. 몰라서 실수를 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고도 그랬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오카쿠라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아는 일본 극우들은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이번 주엔 글 맨 앞에 썼듯이, 독자 두 분의 이메일 질문에 답을 하느라 후쿠자와 유키치에 집중했다. 다음 주 토요일엔 주요 일본 정치인들의 뒤틀린 역사인식과 그에 따른 망언의 문제점을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계속

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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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본인 ‘아바타 김광동’ 앞세워 정의 회복 무력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6/25 08:41
  • 수정일
    2023/06/25 08: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겨레S] 인터뷰 _ 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장

“대통령 임명한 진실화해위원장
민간인 학살 피해 모욕적 발언”
“진화위, 독립적 민간기구화…
조사 연장·배보상위 신설해야”
윤호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윤호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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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3주년,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종전’이 아닌 ‘정전’, 정확히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교전 쌍방이)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정전협정문)에 합의한 상태다. 한반도에서 치열한 교전은 멈췄지만 온전한 평화가 깃들지도 않았다. 언제든 국지적 무력충돌이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과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인명 피해는 엄청났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한국군 62만여명을 포함해 교전국 군인만 약 281만명이 전사했다. 민간인 사망자도 남한에서만 99만명이 넘는다. 대다수는 대한민국 군경과 적대세력(북한군과 동조세력)의 학살로 숨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제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5~2010년, 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민간인 희생자 유족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비극의 고통을 삭여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에서 제2기 위원회가 꾸려져 진실 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이하 유족회)의 윤호상(76) 상임대표의장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윤 대표는 만 세살이던 1950년 7월에,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뒤에는 좌우합작 운동을 하던 선친(윤윤기·당시 50)이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처참하게 살해됐다고 했다.

 

 

“윤 대통령 ‘유족 상처 보듬겠다’더니”

 

―유족회 회원은 어떤 분들인가?

 

“첫째, 한국전쟁 당시 부모·조부모·친형제를 잃은 직계 유가족, 둘째는 인권과 평화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고 유족회 회칙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이 중 하나만 해당하면 회원 자격이 있다. 1961년 제4대 국회에 양민학살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15일간의 조사 신청 기간에 113만6천명가량이 신청했다. 그런데 60년이 흐른 지금은 채 2만명이 안 된다. 대부분 80~90대 고령이다. 진실 규명이 지연되면서 연로하신 분들이 계속 돌아가신다. 유족회원은 약 3천명(가구를 대표해 1명씩 가입) 정도다. 한국 군경에 의한 희생자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보다 훨씬 많지만, 유족회는 양쪽 다 아우른다. 모두 국가 공권력에 희생되신 분들이다.”

 

 

―정전 70주년이 됐지만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 해원 상생의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유족들은 2022년 정권이 바뀐 뒤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불과 1년 새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고, 특히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학살이나 인권 침해 문제에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유족들의 수명이 다하기만 바라는 것 같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보다 더 심한 상태로 가고 있다.”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보다 더 열악하다는 뜻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 4·3과 광주 5·18 기념식에서 ‘상처받은 유족을 보듬겠다’고 한 것은 라이브 쇼였다. 그 뒤에 자기의 아바타인 김광동을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후반기 위원장 자리에 앉혀놓고, 제주 4·3, 광주 5·18, 한국전쟁 피해자들의 정의 회복을 완전히 무력화해버렸다. 김광동 위원장(국민의힘 추천)은 앞서 1기 위원회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들마저 부인하고 모욕적 발언을 일삼는다. 최근(6월9일)엔 군경의 학살 희생자 유족들을 두고 ‘군인과 경찰이 침략자에 맞서다가 초래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 그것도 극우 테러집단 서북청년단의 온상이던 영락교회 조찬 기도회에서. 지난 20일엔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관 출신을 (조사국장) 최종 합격자로 발표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한국 군경-적대세력 학살 규명 불균형”

 

―2023년 6월7일 현재, 진실화해위 제1소위에 배당된 조사 신청은 1만6769건. 이 중 ‘한국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경에 의한)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9946건(59.3%)과 ‘적대세력에 의한 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3986건(23.8%)이 10건 중 8건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진실 규명이 된 사건은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중 522건(13.1%), 한국 군경이 가해자인 사건 중 338건(3.4%)에 그쳐 불균형이 크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전임 정근식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추천)에 이어 취임하기 전까지 진실화해위 제1소위원회 위원장이었다. 1소위는 항일 독립운동, 한국전쟁 전후 군경의 민간인 학살, 해방 직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 적대세력의 테러·폭력·학살 등을 조사한다. 그런데 김광동 1소위원장은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 조사를 갖은 구실로 지연시켰다. 조사 개시 사건도 보고서에 꼬투리를 잡고 퇴짜를 놨다. 그가 진실화해위원장에 취임한 뒤인 지난 4월27일 유족 간담회에서 따졌더니 ‘속도를 내서 순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진전이 없더라. 6월15일에 이옥남 1소위원장을 다시 만났는데, ‘부역 혐의자’와 ‘부역자’를 구분하고 있다는 거다. 그게 말이 되나. 결국 진실 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날부터 유족회는 그동안 국회 앞에서 1105일째 해오던 ‘과거사법 개정 요구’ 1인시위를 잠정 중단하고, 진실화해위 앞에서 ‘김광동 퇴진’ 1인시위를 시작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화해위의 근본 문제는 국가 범죄를 국가 기구가 조사한다는 거다. 국회 집권당과 야당이 위원 추천을 독점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방식에선 누가 위원장을 하든 정권의 향방에 따라 과거사가 바뀌어버린다. 조사위원들도 국방부·국정원 등 정부 부처의 파견 공무원이 30%다. 진실화해위는 명실상부한 독립성과 강력한 조사권을 보장받는 민간 기구로 꾸리고 국내외 전문가들을 모셔야 한다. 전례도 있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혐의자 체포권을 포함해 조사권이 강력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금 유족회원들은 체념과 포기 상태다. 오죽하면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고 외치겠나. 유족회가 요구하는 과거사법 개정안의 핵심은 조사 기간(현행법으로는 내년 5월에 끝나고 필요한 경우 1년 연장 가능) 연장과 배·보상 심의위원회 구성이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개정안만 11개나 되는데, 입법 절차가 하세월이다. 이것만 돼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유족들에게 한국전쟁은 묻고 넘어갈 과거사가 아니라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일어난 현대사,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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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국위서 ‘노동·녹색·제3의 정치세력과 신당 추진’ 의결

24일 열린 정의당 전국위원회 현장. ⓒ민중의소리
정의당의 혁신 재창당 방향이 확정됐다. 정의당은 2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전국위원회에서 노동·녹색 등 정치세력 및 제3의 정치세력과 신당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혁신 재창당 추진방안을 의결했다.

이날 통과된 혁신 재창당 추진방안의 핵심 내용은 ‘세력재편 추진방안’으로, 다음과 같다.

①정의당은 당의 사회 비전과 가치에 동의하며 기득권 양당체제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가진 노동 정치세력. 기후·녹색 정치세력, 제3의 정치세력과 합당 및 통합의 방식으로 신당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 기득권은 과감히 내려놓는다 ②신당 추진을 위해 당 대표 산하에 ‘신당 추진 사업단’을 구성한다. 대상 세력들의 지향과 실체가 분명히 확인되면 신당 추진 대중적 참여 운동 등 공동의 실천 사업과 함께 신당 추진 합의안 마련을 위해 참여 세력들과 연석회의를 운영한다 ③합당이나 통합이 어려운 세력과는 사회개혁을 위한 공동의 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진보4당과 민주노총, 사회운동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실천기구를 구성하고, 총선 시기 공동 공천전략 등 다양한 연대연합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안건 내용 중 가장 쟁점이 됐던 건 ‘제3의 정치세력’ 문구였다. 지난 2월 혁신재창당추진위원회 구성 이후 당내 토론 과정에서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이 소속된 의견그룹 ‘세번째권력’에서 금태섭 전 의원 등 중도 세력과의 연합, 당 해체를 통한 신당 창당 주장이 제기되면서 혁신 재창당 논의는 신당 창당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언론에서는 세번째권력과 금 전 의원이 포진한 ‘성찰과모색’의 공동 행보가 부각됨에 따라 ‘제3의 정치세력’의 범위가 금 전 의원을 비롯한 중도 우파 세력까지 아우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 당내에서는 주요 토론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날 전국위 회의에서도 ‘제3의 정치세력’ 문구 해석에 대한 의문 및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김응호 전국위원은 “상반기 논의를 해오면서 ‘누구와 어떻게’라고 확인된 정치세력, 범주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고, 한민정 전국위원도 “제3의 정치세력이 누구인지 가장 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정 전국위원은 “당의 핵심적 정체성과 미래 문제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해서는 안 된다. 해석이 명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회의장에서는 제3의 정치세력 범위와 관련해 금태섭 전 의원 등 중도 우파 세력까지 폭넓게 아우를 경우 진보정당의 전통적 노선과 충돌한다는 등의 문제의식에서 우려 및 불안감이 강하게 표출됐다.

한민정 위원은 “제3의 정치세력이 누구냐고 했을 때 금태섭·양향자 등 이런 세력들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에 신당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정의당 가치를 저버리는 방향이라는 우려와 걱정이 많다”고 했고, 박소정 위원도 “국민들이 알고 있는 제3의 정치세력은 지향과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세력에 불과하다. 지향과 실체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는 세력과 통합 및 합당을 추진하는 건 진보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노동에 기반한 사회연대 정당으로 나아가는 것과 반대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대표는 “지금까지 추진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적인 결정이 없었고, 그래서 전국위원들이 결정하러 모인 것”이라며 “의결구조 안에서 이뤄진 결정에 따라 당이 나아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종현 사무총장은 “우리 당의 사회비전 가치에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달았다고 말씀을 드린다”며 “그런 측면에서 한 위원이 말한 몇몇 분들의 경우,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지금 말하지는 않고 그들의 정치 궤적들을 보면 누구나 그분들과는 우리의 계획과 무관하다고 판단이 들 것”이라고 부연했다.

회의 과정에서 ‘제3의 정치세력’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의 수정동의안이 상정됐으나 부결됐다. 해당 수정동의안에 대한 반대 토론에서 “제3의 정치세력을 단순히 진보적 가치를 동의하지 않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건 배타적이라는 생각”, “제3의 세력의 실체가 잡히지 않고 우려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열어놓고 현명한 판단을 갖고 대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제3의 정치세력에 금태섭 전 의원 등 중도 우파 세력을 포함해야 한다는 류의 구체적인 주장은 공개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밖에 ‘신당’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내용의 수정동의안 발의가 있었으나, 재청 요건 미달로 상정되지 않았다.

3항의 경우 원안은 ‘합당이나 통합이 어려운 세력과는 사회개혁을 향한 공동의 사업의 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한 공동 실천기구 구성 및 총선 시기 등 공동 공천전략 등 다양한 연대연합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상과 실체를 명확하게 해서 윤석열 정부 퇴행에 맞서 진보진영이 함께 강력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해 연대연합 대상을 ‘진보4당과 민주노총, 사회운동 단체’라고 명확히 특정한 내용의 수정동의안이 올라와 통과됐다.

앞서 이정미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서로가 바라보는 곳, 서로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같다면 정의당은 과감히 하나의 당으로 가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진보정치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이날 의결한 것을 기본 방향으로 신당 추진 사업단을 구성한 뒤, 7~8월 당내 토론을 거쳐 오는 9월 말 또는 10월 초 열리는 당 대회에서 구체적인 세력확장 방안, 신당 추진 대상 세력들과의 합의안 등이 포함된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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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투기 반대 전면전 시작, "바다에 왜 버려, 보관하면 되는데"

  • 김준 기자
  •  
  •  승인 2023.06.24 21:57
  •  
  •  댓글 0

'나이, 종교 불문하고 방류 반대'

"일본 노동계와 연대, 공동성명 예정"

"7월 8일, 4차 전국 행동의 날 예고"

'각국의 방류 저지 활동 연대 목소리'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분노한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공동행동이 24일 서울시청 동편 광장에서 일본 국토 내 오염수 보관과 해양 투기 중단을 촉구하며 ‘3차 전국행동의 날’을 개최했다,

자리에 함께한 5,000여 명 중에는 아이와 부모, 스님과 수녀님까지 종교와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한 시민이 참석했다.

공동행동은 오늘(24일) 오후 1시 기준으로 21만 5,215명이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서명에 동참했다고 밝히며,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해줄 것을 호소했다.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페이스 페인팅’ 등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과 부스가 운영됐다. 참가한 시민들은 “김치는 젓갈이 생명인데 앞으로 어떡하냐”, “부모님 좋아하시는 해산물을 앞으로 사드리지 못할 것 같다”는 등 우려 섞인 목소리로 오염수 방류를 걱정했다.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이번 집회에서는 개사한 ‘개똥벌레’ 노래를 아이와 부모가 함께 노래해 눈길을 끌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구성된 ‘고래고래 합창단’은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가사는 ‘하지 마라, 하지 마라, 방류 막아라’로,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은 ‘국민 위해 한 번만 정신 좀 차려라’로 개사해 불렀다.

현장에는 자녀를 걱정하는 학부모의 성토가 이어졌다.

노원지역에 사는 권민경 씨는 “너무 답답하고 분노스럽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반대 목소리를 모아야겠단 생각에 노원구 여성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500여 명으로 시작했던 노원구 여성 선언은 현재 6천여 명까지 모였고 행진도 진행했는데 한 초등학생이 고맙다고 인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는 다른 나라의 연대 발언도 있었다.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일본 시민들의 일본 오염수 투기 반대 행동 및 국회의 활동 소개했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오염수 해양 투기는 30년 이상 지속될 것이며,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구의 벗’ 헤만다 위다나지 의장은 일본에 바다 투기 대신 육상 저장을 촉구했다. 이어 “일본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막고 계속 저항할 수 있도록, 방사능 오염수를 핵폐기물로 간주해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반도와 일본, 지구의 자연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다.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노동계 발언도 이어졌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일본 최대 노조 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와 공동성명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일 노동자들의 공동투쟁도 7월 8일을 예정으로 준비해 가고 있고 노동자들이 나서서 싸워 해양 투기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결의했다.

공동행동은 이어 7월 8일에도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4차 전국행동의 날’을 진행할 것이며 더 많은 시민과 연대해 방류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24일 시청 앞에서 열린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3차 전국 행동의 날 ⓒ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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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털렸다…‘윤석열 특활비’ 1만6천쪽 압수수색 상자로 날라



등록 2023-06-23 17:55

수정 2023-06-24 01:33

전광준 기자 사진

전광준 기자 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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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언론인들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 등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정 들머리로 대검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검찰이 털렸다…?

23일 오후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 시민행동, <뉴스타파> 등 네 곳은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털었’다. 이들 손에는 압수수색의 상징인 ‘파란 박스’가 들려있었다. 박스에 담긴 건 1만6천여 쪽 분량의 문서로,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쓴 특수활동비(특활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등이 적혀 있다.

 

이 시기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있던 때다. 이 기간 대검이 사용한 특활비 등은 461억원에 달한다. 중앙지검은 해당 기간 사용 금액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2019년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 등이 특활비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이 지난 4월 하 변호사 쪽 손을 들어준 데 따른 것이다.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는 “검찰 또한 감시와 검증을 받는 보통 행정기관이라는 게 증명됐다”며 “검찰도 국민 세금을 어떻게 썼는지 설명하고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자료가 제공되지는 않았다. 대검은 특정업무경비 관련 자료를 2017년 6월까지 6개월치만, 중앙지검은 2017년 3월까지 3개월치만 공개했다. 하 변호사는 “특정업무경비 관련 서류 양이 많아 검토에 어려움도 있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검찰은 ‘인력이 부족하다’고만 한다. 국민 관심이 많으니 인력을 더 투입해 더 빨리 복사 작업을 마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과 중앙지검 쪽은 ‘자료량이 방대해 복사에 시간이 걸린다. 준비되는 대로 공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자료는 최대한 빠르게 일반에 공개된다. 하 변호사는 “오늘부터 바로 스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대한 빨리 작업해 자료를 공개할 것”이라며 “언론과 시민단체 등 국민이 함께 검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 등에 쓰이는 특활비는 사용처 증빙을 하지 않아도 돼 ‘깜깜이 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집행 일자나 액수 등은 공개되지만, 집행 내용 및 사용자 이름과 참석자 숫자 등은 이번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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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수사로 대입 전문성 키워온 尹대통령이 걱정스러운 이유

[박세열 칼럼] 스스로 '킬러문항'이란 좁은 프레임에 걸어 들어간 대통령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3.06.24. 06:46:38 최종수정 2023.06.24. 07:17:43

 

역시 수사를 통해 입시 전문성을 쌓아온 검찰 출신 대통령(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답다. 교육 정책을 검찰 수사하듯 한다. '킬러 문항'의 '핀셋 제거'라는 말도 나왔다. 벌써 교육부 대학입시 담당 국장과 교육과정평가원장을 날리고 시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무총리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교과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지시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교육부에 대한 복무 감사에 돌입했다. 대통령이 지난 3월부터 수능 모의고사에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6월 모의고사에서 킬러 문항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어떤 복무 행태를 감사하는 것인가. 직권남용인가, 복지부동인가? 그림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보안을 요하는 수사처럼, '6월 모의고사'에서 킬러문항이 어떤 형태로 등장했는지부터, 모든 게 베일에 가려있다. 킬러 문항이 6월 모의고사에서 실제 등장했는지 여부조차 아직 정부가 '분석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킬러 문항' 혐의는 있다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이 킬러 문항에 격노한지 일주일도 넘은 오는 26일에 그걸 공개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전광석화같은 '깨알 지시'에 대한 반응 치고 너무 오래 걸린다. 대체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소통이란 걸 하고 있는 것인가. 

 

공개된 후에도 문제다. 과연 공개될 문제는 '킬러 문항'인가 아닌가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킬러 문항'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어렵다' 느끼면 킬러 문항인가? 여론조사라도 할 것인가? 나아가 공개된 킬러 문항 수준의 난이도 문제가 9월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제거되면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발생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킬러 문항이 제거됐는데 사교육비 통계 수치상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것인가? 변화가 없다면 대통령이 직접 챙긴 정책은 실패했다고 평가될 것인가? 대통령은 지금 스스로에 대한 평가 기준을 '킬러 문항'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처럼, 킬러 문항을 잡아 넣고 철창문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 이 스토리가 끝나면 다행이다. 그러나 정책은 수사가 아니다. 킬러 문항을 잡았을 때, 그것이 실제 국민의 생활에 어떤 이익으로 돌아가는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킬러 문항, 문제다. 중요하다. 그런데 무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모의고사 수능 문제 출제까지 꼼꼼히 챙기는 '만기친람' 방식은 우려스럽다. 검찰 수사하듯 '킬러 문항'과 그와 연계된 '잇권 카르텔'의 환부를 도려내면 마치 사교육이 줄어들 것처럼 프레임을 만들고 스스로를 가뒀다. 실제로 수술하듯 교육 정책을 만지고 있다. 깡패를 많이 잡는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벌 총수를 구속한다고 재벌 개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교육 '잇권 카르텔', 이게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본보기로 '카르텔 패밀리' 몇명 잡아들인다고 사교육 시장이 축소될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그게 유의미한 저출생 대책으로 이어질 것 같지도 않다. 지나친 비약 같나? 하지만 이 비약의 모델은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 제시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킬러 문항 타령'도 뜬금없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지시했다고 반박했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3월 28일 '저출산 정책 추진방향 및 과제'을 마련하면서 내놓은 '저출산 5대 핵심 분야'에서 사교육 문제는 달랑 한 줄 언급돼 있다. 그 내용도 (사교육비 경감) 빈틈없는 돌봄과 수준 높은 방과후 프로그램제공 등 사교육비 경감대책 마련" 수준이다. 대입 수능시험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었다. 

 

지금 교육 정책을 다루는 윤석열 정부의 방식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다룬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다양한 방식을 강구했지만, 정작 시장 구성원들에게는 마치 '부동산 세금만 올리면', 마치 '공직자의 주택 보유 수만 줄이면', 마치 '다주택자만 단속하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처럼 받아들여진 면이 있다. 정부의 나이브함과 보수 언론의 집요한 공격, 부동산 수요·공급 주체의 심리 예측 실패가 뒤섞인 것이다. 모든 걸 고려해 법과 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했어야 하는 일인데, 정부 스스로 '공직자 2주택'과 같은 특정 사례를 제거하는 대증요법에 매몰되며 좁은 프레임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부동산이 심리라면, 교육도 심리다. 교육 정책 역시 부동산 정책 못지 않게 복잡하다. 대통령이 직접 눈에 보이는 '킬러 문항'(실제 존재하는지 아직 알 수 없는)을 때려잡겠다고 검찰 수사하듯 달려들면 여론의 이목은 킬러 문항에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대통령과 교육당국이 움직일 공간은 좁아진다. 대통령 스스로 '킬러 문항' 프레임을 만들고 자신을 가둔 셈이다.  

 

이제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 12월 수능에서의 최대 관심은 '킬러 문항'이 됐다. '킬러 문항'이 타나났느냐, 안나타났느냐가 논쟁이 될 수밖에 없고, '불수능'이든 '물수능' 그에 따른 혼란도 대통령이 오롯히 책임지게 되어버렸다. 만약 '킬러 문항'이 제거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교육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평가마저 대통령이 안아야 한다. 킬러문항을 제거했는데 사교육비가 줄지 않았다는 통계가 나오면 이제 뭐라고 할 것인가.  

 

사교육 문제가 문제 출제 '기술'의 문제였다면 진작 해결됐을 일일 것이다. 한심스럽게도 보수 언론은 대통령의 '킬러 문항 죽이기' 장단에 맞춰 사교육 시장 몇몇 기술자(일타강사)들의 초호화 생활을 캐내고, 이미 수십년 지난 야당 정치인의 '학원 운영' 경력을 보도하고 있다. 이런 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청와대 대변인의 흑석동 땅 구매를 추적하는 것만큼이나 허탈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학원 강사 세무조사 하고, '카르텔'로 지목된 전직 교육부 간부 몇 명 잡아들이면 사교육비가 줄어들까?  

 

검찰은 사회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나쁜 놈'을 포착해 잡아들이고 벌해 '나쁜 짓 하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검찰 수사는 보직을 날릴 수 있고 때론 사람을 처벌할 수 있고 '잇권 카르텔'을 일시적으로 와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교육 정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근본적으로 '조국 사태'에 올라타 정시 모집 확대 여론을 받아들여 공약에 반영한 윤석열 정부가, 정시의 근간인 수능의 변별력을 손대겠다는 것도 모순이다. '모순'은 이 정부의 주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로 대학 입시의 전문성을 키운 윤 대통령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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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사유를 개척한 역사학자 강만길 명예교수 별세

  • 이계환 기자 
  •  
  •  입력 2023.06.24 00:21
  •  
  •  수정 2023.06.24 00:27
  •  
  •  댓글 0
 
2010년 8월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강제병합 100년 즈음한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2010년 8월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강제병합 100년 즈음한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역사학자로서 통일에 대한 사유를 개척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오후 1시경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강 명예교수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1967년 모교 교수로 임용됐다. 1980년에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됐다가 4년 만에 복직했다. 이후 근현대사 연구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면서, 월간 '사회평론' 발행인,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발행인을 맡았다.

상지대 총장, 국가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장, 청명문화재단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는 23일 부고를 통해 “고인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한국민족운동사론』 등 180여 권에 이르는 선구적인 업적을 남겨 한국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서는 등 역사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였다”고 기렸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30분이며, 장지는 고양시 청아공원이다.

 

〈강만길 선생 연보〉

1933년 10월 25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강재갑(姜在甲)씨와 진야묘치(陳也妙致)씨 사이의 2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1937년 부모님의 열성으로 세는 나이 다섯 살부터 독접장(獨接長)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 등을 배움.
1940년 마산의 완월(玩月)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에 입학.
1941년 소학교 2학년 때 제국주의 일본이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태평양전쟁 도발.
1945년 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 8・15 해방을 맞음.
1946년 미군정시기 변경된 학기제에 따라 9월에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에 입학. ‘해방공간’의 극심한 좌우대립 상황을 여러가지 형태로 겪으며 역사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됨.
1950년 중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을 겪음. 8월경 마산이 최전선지역이 되면서 마산 학도의용대에 편입됨. 8월말~9월초 학도의용대 해산 이후 숙부가 살던 부산으로 감. 약 9개월에 걸쳐 부산부두 하역 노동자, 포탄 운반 노동자 생활, 미군부대 ‘체커’ 생활을 하고 1951년 5월 하순 마산으로 돌아감.
1952년 학제 변경으로 마산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졸업함. 마산 근처 한 농촌의 초등학교 임시교사로 취직할 예정이었으나 담임교사가 구해준 대학입학원서를 받아 응시해 합격함으로써 피난지 대구에서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함.
1953년 7월에 휴전이 조인되고 9월에 대학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서 군입대 전까지 서울생활을 시작함. 이 시기부터 식민사학 극복론에 관심을 가지고 백남운, 이청원, 김한주 등 사회경제사학 계통의 연구들을 접하기도 함. 한편 1954년 학부 3학년 때 홍이섭 교수의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민족주의사학의 신채호를 알게 됨. 은사 신석호 선생의 도움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도서정리 아르바이트를 함.
1956년 현역병으로 군입대. 논산훈련소 교육 이후 광주포병학교에서 측량병 교육을 받음. 동두천 근처의 1군 산하 독립포병부대에서 군생활. 늑막염을 앓게 되어 병원생활 끝에 의병제대함.
1958년 신석호 선생의 부름으로 상경하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조교로 근무하게 됨.
1959년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국사편찬위원회 촉탁으로 취직. 식민사학에 의해 잘못 해석된 문제들을 골라 바로잡는 논문집 『국사상의 제문제』 발간 업무를 맡음. 『조선왕조실록』 색인 작업에도 참여함.
1960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무원으로 있으며 4・19‘혁명’을 목격함. 1961년 1월 장성애(張聖愛)와 결혼. 1남2녀를 둠. 5・16 군사쿠데타 발발 이후 ‘국편’ 내의 군 기피 직원들이 사표를 내고 모두 국토개발단에 끌려가게 되어, 촉탁직원으로 취직한 지 2년여 만에 편사주사와 편사 관보를 거쳐 서기관급인 부편사관으로 승진함. 같은 해 고려대학교대학원에서 「조선왕조 전기의 공장(工匠)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석사학위를 받음. 한국사학회 연구지 『사학연구』(제12호)에 「조선전기 공장고(工匠考)」라는 석사논문을 발표함. 이후 『사학연구』에는 ‘사회경제사적’ 논문이 다수 실리는데, 이들 연구자 중심으로 자본주의맹아론 연구가 본격화됨.
1967년 성균관대학교 학장으로 자리를 옮긴 신석호 교수의 후임으로 고려대학교 사학과 전임교원(조교수)이 됨. 같은 해 한국사연구회 창립에 참여함. 이 시기 식민사학 극복의 일환으로 조선후기 상업자본 발달과 그것의 수공업경영, 즉 ‘상인 매뉴팩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한국근대사를 강의함.
1970년 반년간 교환교수로 일본을 방문. 『역사과학』 등을 통해서 처음으로 북녘의 역사학 연구현황을 접하게 됨. 한편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 일본어 번역본을 읽고, 김산 즉 장지락(張志樂)의 삶에 크게 감명받음.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1930년대 후반기 이후 좌우익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주목하게 됨.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10월유신’을 겪으면서, 역사학이 현실문제를 외면해도 되는가 하는 물음에 부딪힘. 「이조후기 상업구조의 변화」를 『창작과비평』 1972년 여름호에 실으면서 ‘창비’와 인연을 맺음.
1973년 고려대학교 학술총서 제1권으로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발간. 이 책이 박사학위논문이 되어 1975년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함.
1974년 창비로부터 천관우의 『한국사의 재발견』 서평을 청탁받음. 이 글에서 처음으로 ‘분단시대 사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함.
1975~76년 『이조의 상인』(한국일보사), 『한국 상공업의 역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출간. 성균관대학교 이우성(李佑成) 교수 등과 함께 ‘다산연구회’를 만들어 『목민심서』 번역을 시작함.
1978년 ‘유신’ 이후에 쓴 논설문과 전국역사학대회 기조발표논문 등을 모아 창비에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간행. 이해 여름 해직교수협의회가 계획한 국민교육헌장 반대운동 대학교수 성명 관계로 중앙정보부 남산분실에서 취조 받음. 개항 후 상공업문제 연구를 위한 자료수집의 목적으로 8월부터 1년간 일본 와세다대학교 파견교수로 생활함. 이 시기 하따다 타까시(旗田포), 카지무라 히데끼(梶村秀樹) 등 일본의 한국사학자들과 만남을 가졌고, 1970년 일본 방문 당시 ‘조총련’계라 만날 수 없던 박경식(朴慶植), 강재언(姜在彦), 이진희(李進熙), 박종근(朴宗根), 강덕상(姜德相) 등 재일 한국역사학자들과도 교류함.
1979년 귀국 후 고려대학교 박물관장을 맡음.
1980년 ‘10・26 박정희살해사건’과 ‘서울의 봄’ 이후 학생회와 교수협의회등이 조직됨. 지식인 130여명 선언과 주요 대학 교수 대표들의 ‘교육민주화 성명’에 참가함. ‘광주민중항쟁’ 이후 성북경찰서로 연행되어, 서울에서의 광주학살 항의집회 때 읽을 성명서 작성과 학생선동강연 등을 계획했으며 김대중으로부터 선동자금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취조를 받음. 한달 동안의 유치장 생활 후 석방됨. 7월, 이문영(李文永) 김윤환(金潤煥) 조용범(趙容範) 김용준(金容駿) 이상신(李相信) 교수 등과 함께 고려대학교에서 해직됨. 다산연구회 소속 교수 거의 절반이 해직됨. 창비로부터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집필을 의뢰받고 생활비를 보조받음. ‘해직교수협의회’ 결성에 참여함.
1982년 학문 연구의 대상이 우리 근현대사 쪽으로 기울면서 좌우익 통일전선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감. 「독립운동과정의 민족국가건설론」 「좌우합작운동의 경위와 그 성격」(1983) 등을 씀.
1983년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한길사) 출간. 일본 토오꾜오여자대학의 초청으로 3개월간 일본 체류. 이해 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민족분단과 통일과정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던 내용이 문제가 되어 12월말 치안국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된 후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됨.
1984년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 출간. 2학기 개강과 함께 만 4년 만에 복직, 강단으로 돌아옴.
1985년 해직교수 시절 분단 극복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쓴 글을 『한국민족운동사론』(한길사)으로 묶어 출간. 2008년 증보판(서해문집)을 냄.
1987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장을 1989년까지 맡음. 민족해방운동의 경제적 기초가 되는 식민지시대 민중의 삶을 규명하기 위해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를 창작사(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
1990년 1980년대 후반 시점에서 식민지시대 민족해방운동과 해방 직후 민족통일운동의 역사성을 살펴보고 민족운동으로서의 통일운동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쓴 글을 묶어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청사) 출간. 2008년 증보판(서해문집)을 냄.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당시 고문으로 참여하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을 맡음. 월간 『사회평론』 발행인 취임.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화평사) 출간. 2003년 증보판(역사비평사)을 냄.
1994년 지난 10년간의 역사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특히 1930년대 이후 민족해방운동사와 좌익세력의 활동을 대폭 보충해 『고쳐 쓴 한국근대사』 『고쳐 쓴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를 출간함.
1996년 민족해방운동 좌익전선의 활동을 규명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성대경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을 엮음. 역사에쎄이 『역사를 위하여』(한길사)를 출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이사장을 2000년까지, 동아시아 평화・인권국제회의 한국위원회 대표를 2001년까지 맡음.
1998년 청명 임창순 선생이 설립한 청명문화재단 이사로 활동. 임창순 선생 작고 후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그리고 2007년부터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음. 청명문화재단에서 평화통일 진전을 위해 발행한 계간 『통일시론』 편집인 겸 발행인(1999~2001)을 역임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을 2000년까지, 정부의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을 2008년까지,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을 2003년까지 맡음.
1999년 2월말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제자들과 공동집필한 『통일지향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역사비평사 2000) 『한국자본주의의 역사』(역사비평사 2000), 조선후기 전공 제자들이 공동집필한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창작과비평사 2000) 등이 함께 간행됨. 인터넷강의를 묶어 『20세기 우리 역사』(창작과비평사)를 출간함. 2009년 김대중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담은 증보판(창비)을 펴냄. 역사기행 『회상의 열차를 타고 — 고려인 강제이주 그 통한의 길을 가다』(한길사) 출간. 2003년까지 한일문화교류회 위원을 맡음.
2000년 역사학의 현재성과 대중성 확립을 위해 역사학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창간하고, 편집인 겸 발행인을 2007년까지 맡음. 6월 13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북녘땅을 밟음. 이후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등의 업무로 20여차례 남북분계선을 넘나듦. 제주4・3사건위원회 위원을 지냄.
2001년 ‘분규학원’ 상지대학교 총장을 맡아 2005년까지 학교운영 정상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함. 청명문화재단의 『통일시론』 발행이 필진 구성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상황에서 일부 예산을 월간 『민족21』 간행비로 지원하기로 하고 2005년까지 그 발행인을 맡음.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을 2005년까지 맡음.
2002년 사론집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창작과비평사) 출간.
2003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국내외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풀어 정리한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당대)와 사론집 『역사는 변하고 만다』(당대)를 출간.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2004년 까지 맡음.
2004년 2001년부터 시작된 네차례의 남북역사학자대회를 통해 북측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결성에 합의하고, 북측 허종호 박사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결성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함.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2007년까지 맡음. 7월, 평생 모은 장서 1만권 중 정부에 의해 허가된 8200여권을 북녘에 기증함. MBC 통일방송정책자문위원을 2005년까지, 국가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을 2007년까지 맡았고, 독립기념관 이사를 2007년까지 맡음.
2005년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과거사 진상규명의 일환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2007년까지 2년 동안 맡음. ‘6・15공동선언 발표 다섯돐 기념 민족통일대축전’(평양)에 남쪽 준비위원회 상임고문 자격으로 참가. 광복60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2006년까지 맡음.
2007년 재단법인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설립하여, 계간 『내일을 여는역사』를 간행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북돋우기 위해 매년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 중 선별하여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음.
2010년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 출간. 『역사가의 시간』으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함.
2013년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선인) 출간.
2016년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창비) 출간.
2018년 『강만길 저작집』(전18권, 창비) 간행.

|저서목록|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
『이조의 상인』, 한국일보사 1975
『한국상업의 역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창작과비평사 1978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 한길사 1983
『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1984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1984
『分斷時代の歷史認識』, 宮嶋博史 譯, 旗田巍 監修, 東京: 學生社 1984
『한국민족운동사론』, 한길사 1985
『韓國民族運動史論』, 水野直樹 譯, 東京: 御茶の水書房 1985
『韓國近代史』, 小川晴久 譯, 東京: 高麗書林 1985
『韓國現代史』, 高崎宗司 譯, 京東京: 高麗書林 1985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창작사 1987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청사 1990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 화평사 1991
『韓國近代史』, 賀釗城.周四川.楊永..劉渤 共譯, 北京: 東方出版社 1993
『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1994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1994
『역사를 위하여』, 한길사 1996
『韓國現代史』, 陳文壽.金英姬.金學賢 共譯, 北京: 社會科學文獻出版社 1997
『20세기 우리 역사』, 창비 1999
『회상의 열차를 타고 . 고려인 강제이주 그 통한의 길을 가다』, 한길사 1999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삼인1 999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 창작과비평사 2002
『역사는 변하고 만다』, 당대 2003
『증보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 역사비평사 2003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 당대 2003
A History of Contemporary Korea, John B. Duncan trans., Global Oriental 2005
『한국민족운동사론』(증보판), 서해문집 2008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증보판), 서해문집 2008
『20세기 우리 역사』(증보판), 창비 2009
『역사가의 시간』(자서전), 창비 2010

|상훈경력|
1988년 제3회 심산학술상
1992년 제18회 중앙문화대상 학술상
1999년 제13회 단재상
2000년 제2회 한겨레통일문화상
2002년 제6회 만해학술상
2005년 제3회 민족화해상 개인부문
2007년 청조근정훈장

(자료출처-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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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 수는 있는’ 월급 216만원…‘평균적 삶’ 포기했다

 
저임 노동자 5명의 ‘불안과 걱정’
도서관 경비 노동자 김재원씨가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를 살펴보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도서관 경비 노동자 김재원씨가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를 살펴보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다만 재원씨가 한국 사회 평균, “먹고 관계 맺는 데 걱정 없는 삶”을 말하며 힘준 단어는 ‘걱정’이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 인상은 더딘 탓에 재원씨는 최근 걱정하는 횟수가 늘었다. 재원씨의 잣대에 따르면 ‘평균의 삶’에서 한 발짝 멀어진 셈이다. 사소해 보이나, 돌아보면 심각한 대목도 있다.

 

 

 
긴축: 점심 한끼와 과일

 

서비스연맹이 저임금 사업장 노동자 1156명에게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가장 먼저 줄였거나 줄이고자 하는 항목”을 물어 1, 2, 3순위에 가중치를 부여해 점수를 매겨보니 1위가 외식비, 2위가 식료품비였다. 재원씨의 ‘식사 비용’도 소박하다. 4월 한달 딱 25만원을 썼다. 주로 점심인 외식비로 15만원, 식료품비로 10만원을 지출했다. 노력의 결과다. “줄일 수 있는 게 뻔하잖아요. 주변에 1만원 이하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을 쭉 찾아놨습니다. 별 약속 없을 때는 건너뛰기도 하고요.” 재원씨는 일터 주변 5천원짜리 세무서 구내식당을 즐겨 찾는다.

 

밥 한끼는 대수롭지 않고 흔한 긴축의 대상이다. 다만 재원씨한테는 ‘불규칙한 식사’가 남긴 질병이 있다. 2016년 ‘크론병'(소화기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소화물 택배 일을 할 때 식사를 자주 걸렀죠. 그 전까지도 계속 비정규직이었으니까, 택배 일 할 때 돈을 가장 잘 벌기는 했는데.” 의사는 병에 걸린 이유로 불규칙한 식사를 들었다. 재원씨의 4월 카드 지출 내용에는 4일과 5일 점심 지출 기록이 없다. 10일엔 2천원짜리 커피 한잔을 사 먹은 기록뿐이다. “수술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부담스러우니까요.” 지난해 기준 외식비 물가는 한해 전보다 7.7% 올랐다. 재원씨 임금은 한해 전보다 2% 올랐다. 그 격차만큼 걱정이 커졌다.

 

초등학교 청소노동자 김양자(53)씨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 ‘평균적 삶’은 “과일을 마음 편히 사 먹을 수 있는 삶”이다. “우리 가족이 다 과일을 좋아해요. 마트에서 조금씩 사면 더 비싸니까 박스째 사 먹었는데…. 우리만 먹는 건 아니고 여기 선생님들 나눠 드리고 그러는 건데.” 양자씨는 한달 194만7740원을 번다. 지난 4월 그 가운데 11만7천원을 ‘과일 구매’에 쓰고 말았던 배경을 길게 설명했다. 끝내 양자씨도 평균 포기를 선언한다. “아무래도 줄여야 한다면 과일을 가장 먼저 줄여야겠죠.”

 

 

 

포기: 고양이와 제사상

 

서비스연맹은 설문조사 응답에 주관식 문항을 담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삶으로, 포기한 것”을 적도록 했다. 가족이 31회, 자녀가 14회, 부모가 10회, 지인이 5회 적혔다. ‘관계’에 드는 비용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재원씨는 애초 2인 가구였다. 3년 전 함께 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포기한 것의 목록에서 재원씨도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줄였어요.”

 

현재도 둘이 산다. 어머니를 보내고 2년 뒤 고양이 ‘꾸미’를 만났다. 4월29일 고양이 사료에 5만4천원을 썼다. “처음에 키울 때는 좋은 사료를 줬는데 점점 그러지 못하게 돼요. 괜히 내가 키워서….” 꾸미와의 관계가 무겁다. “더 좋은 것 많이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안쓰러움이 있죠. 내 아이였다고 생각하면 아빠로서 정말로 많이 마음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힘든 마음을 울산의 한 화학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강유형(37·가명)씨가 말했다. 아이가 네살이다. “제 옷은 전혀 사지 않고 아낀다고 아끼는데도 아들 옷을 많이 못 사 줍니다. 그래도 아들이 먹는 것만큼은 끝까지 포기 안 하려고 해요.” 유형씨는 한 주 52시간을 꽉 채워 일할 때 수당 등을 합쳐 281만원을 번다. 그나마 6년 근속을 한 덕에 최저임금 시급보단 많은 시간당 1만900원을 받아 가능한 임금이다. 저임금을 극복하려 주 52시간을 꽉 채워 긴 시간 노동하는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 또한 “미안하다”고 했다.

 

 

미래: 빚과 치과

 

서비스연맹이 “최저임금이 250만원으로 올랐을 때 가장 희망하는 지출처나 하고 싶은 일”을 묻자 49.6%가 ‘부채 상환’이라고 답했다. 저축이 18.3%로 뒤를 이었다. 최저임금 결정 때 생계비 반영의 기준이 되는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는 부채와 저축 같은 금융 비용과 미래 대비는 담지 않는다.

 

재원씨 한달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 또한 주택담보대출 이자다. 2018년 어머니를 좀더 좋은 곳에 모시려 집 사느라 생긴 빚으로, 변동금리다. 재원씨는 “4년 전에는 한달 이자 49만원을 냈는데, 한때 74만원까지 나오다가 지금은 69만원”이라고 했다. 고금리는 고물가보다 더 큰 부담이다. 민주노총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저임금 노동자 17명의 가계부채 평균은 8225만원이었다.

 

5천원짜리 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가끔 밥을 걸렀으며, 고양이 사료를 덜 좋은 것으로 바꾸고, 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음식 가짓수를 줄인 재원씨 한달 살이 결과 14만5천원이 남았다. 그의 목표 저축액은 한달 30만원이다. “이가 많이 썩었는데 견적이 230만원 나왔어요. 모아둔 돈이 없어 치료는 그냥 포기했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저축을 30만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예기치 못한 일상의 사건과 겹쳐보자, “딱 먹고사는 만큼은 버는 것” 같았던 재원씨 한달 월급이 돌연 초라해졌다.

 

장현은 방준호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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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노출옷' 때문에 일어난다?…'강간문화'가 통계로 드러났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6/23 09:08
  • 수정일
    2023/06/23 09: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해설] 왜곡된 '강간통념' 드러낸 성폭력안전실태조사, 어떻게 봐야하나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3.06.23. 05:27:36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성폭력이 만연하고, 또 만연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경향성을 가리켜 '강간문화'라고 한다.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 여성의 옷차림에서 찾는 등의 피해자 비난 문화가 그 대표적인 요소다. 이러한 강간문화가 한국사회에 여전히 공고함을 보여주는 통계가 나왔다.

 

21일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만 19~64세 남녀 1만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를 발표했다. 통계에선 성폭력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등의 왜곡된 성폭력 통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령 성폭력 관련 인식과 통념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46.1%는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답했다.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대답도 32.1%에 달했다.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음주사실 등 행실을 성폭력의 원인으로 설정하여 행해지는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는 피해자로 하여금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규정하는 전형적인 '2차 피해' 행위로 꼽힌다. 

 

다수의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법원은 "성폭력을 피해자의 평소 행실 탓으로 돌리는 주장"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유로 삼을 수 없는"(청주지법 2021노94) "상당한 2차 피해"(서울중앙지법 2019고정215)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도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상근 변호사는 <프레시안>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행실 등을 비난하며) 피해자의 주변인을 포섭, 회유하는 등의 2차 피해 양상은 성폭력 재판 현장에서 흔한 일"이라며 "오히려 현행 제도 상으론 법원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어하거나 이를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른) 가중 양형요소로 고려하는 데에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조사에서 드러난 '강간통념'은 제도와 법률 현장 내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실제 피해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난 2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통념을 형법체계 내에서 제거하기 위해" 비동의강간죄의 도입 등 강간죄 형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옷차림이 가해자의 '성욕'을 자극해 성폭력이 벌어진다는 식의 인식은 성폭력의 우발성 내지 기습성을 전제로 하는 인식이기도 한데, 이는 성폭력 사건의 대다수가 아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관계 내 폭력'이라는 실제 통계와도 배치되는 인식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2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접수 건의 82.0%는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 

 

 

 

국민 10명 중 5명은 '피해자다움' 통념 가져  근거 없는 '무고죄 공포'도

이번 여가부 조사에선 성폭력 피해자의 사건 대응방식을 '정형적인 형태'로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는 피해자는 '진정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보는 통념도 확인됐다. 응답자의 52.6%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피해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라고 답했고, 39.7%는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고 답했다. 

 

이 같은 통계 결과는 "실태조사 상의 신고율이 여전히 10%대로 집계"(김혜정 소장)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몰이해와 '성폭력 무고' 사례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은 범죄 직후 '바로 신고하거나' '바로 장소를 벗어나거나' '바로 가해자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등' 정형화된 대응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9년 안희정 성폭력 사건 당시 대법원은 "특정하게 정형화한 성범죄 피해자의 반응만을 정상적인 태도라 보는" 것은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관점"이라는 2심 법원의 판단을 인용한 바 있다. 

 

또한 강간 등 성폭력 사건은 전체 흉악범죄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기소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이 법적대응을 포기하게 만드는 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신고 대응을 '피해자의 정형적 모습'으로 바라보아선 안 되는 이유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0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술·약물·수면상태 등을 활용한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피해 사례에서 법적대응을 선택한 피해자들은 38%(전체 65건 중 25건)에 불과했다. 법적 대응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처벌에 대한 불확실(30.8%) 때문이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검찰에 송치된 전체 성폭력 피의자 3만1991명 중 기소된 이들은 1만3740명으로 42.9%에 불과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3월 발간한 2022년 성폭력 상담 통계에서 검찰의 불기소뿐 아니라 경찰의 불송치 또한 성범죄 피해자가 "넘어야 할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 기관의 2022년 한해 불송치 대상자 조사에 따르면 불송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소가 바로 수사기관 등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 작용"(32.4%)이다.

 

개별 사건을 들여다보면 △명확하게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점 △바로 피해 장소를 벗어나거나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은 점 △피해 전후로 가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점 등의 모습이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통계로 드러난 '통념'은 실제 수사과정에까지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통계에서 나타난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근거 없이 부풀려진 '통념'이 실제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사회·문화·법률 지형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폭력무고죄 검찰 통계 분석'(2017~2018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성범죄로 처분된 인원은 8만 677명인 반면 성폭력 무고로 유죄를 받은 인원수는 341명에 불과했다.

 

당시 연구원은 "성폭력 피해를 주장했다가 무고 혐의를 받거나 나아가 무고죄 유죄까지 선고받는 사례는 그 수가 적더라도 성폭력 피해자 전반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며 "무고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위협은 성폭력 피해자를 더욱 침묵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률현장에서 성폭력 무고죄는 가해자들이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피해자를 압박하기 위해 활용하는 대표적인 '방어 전략'으로 꼽힌다. 김정혜 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무고죄·강간죄 관련 이슈토크쇼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존재하고, 그러한 의심과 비난 때문에 피해자는 침묵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다시 성폭력 근절이 방해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있다"며 "가해자는 무고 역고소를 통해 이러한 순환구조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강간통념', 남성의 경우가 압도적 … "정부 반페미 정치엔 책임 없나" 

 

이 같은 강간통념은 어떻게 생성되고 강화되고 있을까. 성폭력을 여성의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하고 있던 형법 제32장이 지난 1995년까지 유지되어온 만큼 한국사회의 강간통념·강간문화는 길고 견고한 역사를 지닌다. 통념의 극복을 위해서도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여성계에선 지난 대선 국면부터 지속되어온 현 정부여당의 반 여성주의 기조가 이 같은 통념의 강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무고죄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강간죄 개정 반대 등 안티 페미니즘 정책을 통해 소위 '이대남(20대 남성) 공략' 전략을 국면전환 카드로 삼아온 현 정부의 기조가 강간통념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통계에선 연령대보다 성별에 따른 성폭력 인식 격차가 두드러졌다. 대부분의 문항에서 여성보다 남성의 성폭력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고죄 이슈와 관련한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는 항목은 30대 남성(43.5%)에서 가장 높은 응답률이 나왔고, '피해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제로 성관계(강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항목의 경우 20대 남성(27.7%)에서 응답률이 높았다.

 

▲지난 5월 17일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광장에서 개최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집회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현장 모습. ⓒ프레시안(한예섭)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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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기지 환경영향평가에 "괴담 벗어났다" vs "누가 믿겠느냐"

  • 기자명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3.06.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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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신문 솎아보기] 사라진 영·유아 2236명, 동아 “출산율 걱정했다니 부끄럽다”

    노동계 내년 최저임금 1만2210원 요구에 동아 “제발 최저임금 좀 그만 올리라”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국내에서 태어난 영·유아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가 2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22일 “감사원이 발견한 미신고 아동 2236명을 포함해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시 신생아 번호’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 기록은 없는 영·유아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유아 출생 미신고에 대해 전수 조사 자체가 그간 없었으며, 출생 신고하지 않아도 ‘과태료 5만원’이 전부고 형사처벌 대상도 아니다. 23일 아침 신문들은 1면에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하고, 사설로도 다뤘다.

    ▲23일 아침신문들 1면.

    21일 국방부가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6년 만에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는데, 지난 22일부터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은 반대되는 논조의 기사와 사설을 보도하고 있다.

     

    사드 전자파 평가 결과에 조선 “사람 튀겨진다 괴담 민주당 사과 안 해”

    21일 국방부가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THAAD·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2017년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미사일 방어를 위해 사드를 국내에 들여온 지 6년 만이다. 환경부는 “측정 최댓값이 인체보호기준의 0.2% 수준으로 인체 및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에 22일 경향신문은 “사드 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노곡리에서 암환자가 12명 발생했고 7명이 사망했다. 불과 100여 명이 사는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휴대전화 기지국보다 전자파가 덜 나온다는 측정 결과를 누가 믿겠느냐”는 주민의 발언을 보도한 반면, 조선일보는 민주당 인사들이 “사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 “몇백 킬로를 들여다보는 레이더를 쏘는데 안전하겠냐” 등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22일 경향신문 1면.

    ▲22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은 23일 사설에서도 사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의 사설을 냈다.

     

     

    조선일보는 <괴담 정당이 돼 버린 민주당, 양심의 문제 아닌가> 사설에서 “6년에 걸친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 전자파는 인체 보건 기준 53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사드 전자파에 사람이 튀겨진다는 괴담을 주장해온 민주당은 사과하지 않았다”며 “그 대신 22일부터 이틀간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동해안에서 ‘후쿠시마 괴담’ 여론몰이에 나섰다. 태평양으로 방류되는 일본 오염수는 한국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또다시 괴담 마케팅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민주당 괴담의 시작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는 가짜 뉴스에 올라타면서였다. ‘한국인 유전자 구조가 취약해 95%가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식의 괴담을 유포하며 국민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황당한 슬로건을 내건 광우병 집회를 전국에서 주도하다시피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는 민주당 발 괴담 중 사실 비슷한 것으로도 판명 난 것이 없다. 그때그때 국민들의 불안 심리, 특히 먹거리나 건강과 관련된 심리를 자극해 괴담의 효과를 키워왔다. 이 때문에 국가가 치러야 했던 비용은 심각하다. 민주당에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원들이 많이 있다”며 “이들은 이 괴담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민주당의 행태는 단순한 정쟁이 아니라 양심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23일 경향신문 사설.

    ▲23일 조선일보 사설.

    반면 경향신문은 <‘6년의 논쟁’ 사드, 졸속 환경평가로 일사천리 갈 건가> 사설에서 이번 조사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주민들의 반발이 전자파 때문만은 아니다. 유류 유출로 인한 토양·상수원 오염, 미군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등 많은 우려가 있다”며 “2022년 11월~2023년 1월 실시한 조사로는 사계절에 걸친 영향을 알기 어렵다. 아울러 정부는 협의에 참여한 ‘주민대표’도 공개하지 않았다. ‘졸속’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백번 양보해 다수 시민이 사드 덕에 안전해졌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다수의 안전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연로하고 힘없는 농민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납득할 투명한 절차·설명도 없이, 그냥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했다.

     

    사라진 영·유아 2236명, 동아 “출산율 걱정했다니 부끄럽고 미안”

    22일 조선일보는 1면 <사라진 신생아 2000명, 시신 2구 발견> 기사에서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 감사를 진행하면서 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체계에 허점이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은 2015~2022년 8년간 병원에서 출산이 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가 2000여 명에 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기간 태어난 것으로 신고된 영·유아는 261만3000여 명”이라고 보도했다.

    SBS ‘8뉴스’는 22일 <[단독] ‘결핵 접종’ 신생아, 출생신고보다 1만 명 많았다> 기사에서 “ 감사원은 병원에서 예방 접종받은 아이 가운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때 감사원이 참고했던 자료는 B형 간염 예방 접종”이라며 “그런데 실제 신생아 접종률이 가장 높은 건 결핵 백신입니다. 그래서 저희 취재진이 결핵 접종받은 신생아 숫자와 실제 출생신고 건수를 비교해 봤는데 최근 2년 동안 1만 명 넘게 차이가 났다”고 보도했다. 실제 출생신고 되지 않은 영·유아가 2000명의 최대 5배 정도일 수 있다는 의미다.

    ▲22일 SBS '8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23일 조선일보 1면.

    23일 조선일보는 <나라가 버린 (출생 미신고) 2236명의 천사들> 기사에서 “이번 ‘영아 살해’ 등 비극의 근본 원인이 국가 제도 미비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정부 발표는 ‘뒷북’이란 지적이다. 정부와 병원은 영아의 출생신고를 확인하지 않고, 출생신고를 안 해도 ‘과태료 5만 원’이 전부인 현 제도를 정부가 방치한 것이 영아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미국·영국·독일 등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수일 내에 의료기관이 당국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병원에서 부모에게 ‘주민등록법상 1개월 이내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전부”라며 “부모가 안 하면 정부는 확인할 방법도, 의무도 없다. ‘영아 보호’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 방기”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면 <샘플 조사 23명 중 생존 확인된 아기는 1명뿐> 제목의 기사에서 “23명 가운데 22일까지 생사가 확인된 아이는 4명이다. 3명은 숨졌고, 1명은 친모가 유기했으나 다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나머지 19명의 생사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23일 조선일보 2면.

    ▲23일 조선일보 3면.

    출생통보제 도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3면 기사에서 “출생통보제에 대해 의사들이 반발하면서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지부진하다. 산부인과와 의사 단체들은 ‘정부가 출생 신고에 드는 비용과 인력을 의료 기관에 떠밀고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또 드러난 ‘미등록 아동’ 살해, 출생통보제 서둘러라> 사설에서 “허술한 출생시고제 탓이 크다”며 “현행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 한정한다. 부모가 신고를 안 하면 국가가 아이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사회안전망 보호를 받기도 어렵다. 사실상 제도권 밖의 ‘미등록 아동’인 셈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출생 사실이 지자체에 통보되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로 추진이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까지 떨어졌다. 저출생을 걱정하면서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조차 돌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출생신고는 ‘존엄한 존재’의 출발점이다. 기록도 없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국회는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23일 경향신문 사설.

    ▲23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8년간 태어난지도 몰랐던 ‘유령아이들’ 2236명> 사설에서 “그동안 대대적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 작업을 벌였다면서도 8년간 유령아이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귀한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출산율 걱정을 하고 있었다니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노동계 내년 최저임금 1만2210원 요구에 동아 “제발 최저임금 좀 그만 올리라”

    22일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검의 최초 요구안으로 시간당 1만2210원을 제시했다.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월 노동시간 209시간)은 255만 1890원이다. 2023년 최저임금은 9620원(월 201만580원)으로 이보다 26.9% 많은 금액이다.

    동아일보는 <“제발 최저임금 좀 그만 올리라”> 사설에서 “전국의 자영업자·소상공인 1000여 명이 그제 비를 맞으며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내년도 최저임금 법정 심의기한을 1주일 앞두고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1년 전 같은 집회 때에 비해 3배 넘게 참석해 ‘제발 최저임금 좀 그만 올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23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이어 “자영업자들이 하루 가게 문까지 닫고 집단행동에 나선 건 지나치게 빠르게 오르는 최저임금을 더는 감당할 수 없어서”라며 “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최저임금은 41.6% 올랐다. 같은 5년간 주요 7개국(G7) 중 최저임금이 제일 많이 오른 캐나다의 32.1%에 비해서도 훨씬 높았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미 일본, 대만, 홍콩을 뛰어넘어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자영업자들의 빚은 폭증했고, 연체율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10명 중 한 명은 세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간신히 사업을 유지한다”며 “게다가 급등한 전기·가스요금과 식재료값 때문에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는 건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에서 떠미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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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염원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결의

영원한 건설 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 엄수

  • 기자명 김래곤 통신원 
  •  
  •  입력 2023.06.22 10:10
  •  
  •  댓글 1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장옥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이 호상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윤석열의 검찰독재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꼭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 주세요. 동지여러분 사랑합니다. 투쟁!” -양회동 열사의 유서 중에서-

영원한 건설 노동자 양회동열사의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장례식장에서 발인미사를 시작으로 오전 9시 발인,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노제, 오후 1시 광화문 세종대로 앞 영결식, 오후 4시 마석모란공원 하관식으로 엄숙히 진행되었다.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들이 양회동 열사의 영정을 앞세운 영구 행렬이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들이 양회동 열사의 영정을 앞세운 영구 행렬이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가 걸어온 길

1973년 강원도 고성에서 2남 4녀중 막내로 출생
(속초에 거주하면서 가족으로는 아내와 자녀 2명)
2015년 건설현장 철근노동자로 근무
2019년 11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가입
(일반팀 철근팀장으로 일하다 임금중간착취, 임금체불, 고용불안 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입)
2022년 1월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역임
2023년 5월 1일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
유서 3부(가족, 노동조합, 원내 야4당) 작성
2023년 5월 2일 13시 운명

열사의 영구 행렬이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한때 이곳에서 경찰들이 영구행렬을 가로막아 나서기도 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영구 행렬이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한때 이곳에서 경찰들이 영구행렬을 가로막아 나서기도 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회동 열사의 장례행렬이 서대문경찰청 앞 사거리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회동 열사의 장례행렬이 서대문경찰청 앞 사거리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영구행렬은 서대문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지내면서 추모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영구행렬은 서대문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지내면서 추모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경찰청 앞에서 (왼쪽부터) 김정배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부장, 양태조 건설노조 경기도지부 지부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의 추모사가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경찰청 앞에서 (왼쪽부터) 김정배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부장, 양태조 건설노조 경기도지부 지부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의 추모사가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영원한 건설 노동자 양회동 열사의 노동시민사회장 영결식이 광화문 세종대로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영원한 건설 노동자 양회동 열사의 노동시민사회장 영결식이 광화문 세종대로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이 지속되는 한 노동자 민중은 더 많은 피를 더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면서 “양희동 동지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것”이라면서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건설노조답게, 동지의 자랑이 부끄럽지 않게 투쟁하겠다”고 결연한 투쟁의지를 표명하였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조사를 통하여 “이 억울한 죽음은 건설자본의 앞잡이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부장관, 조중동 등 수구적폐언론, 경찰, 검찰 등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탄하면서 “남은 우리들이 동지의 간절한 염원을 기필코 실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열사의 영면을 기원하였다.

꽃다지의 추모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꽃다지의 추모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공동장례위원장 6개 정당 대표들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공동장례위원장 6개 정당 대표들이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계속해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나도원 노동당 공동대표, 김찬휘 녹색당 대표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함세웅 신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함세웅 신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함세웅 신부는 조사를 통하여 “양회동 동지는 노동자의 아름다운 삶과 강령을 제시하였다”면서 “특히 야당 6개 대표들과 정치인들이 양회동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꼭 하나가 되어, 무리한 정치인을 몰아낼 수 있도록 하라”고 열사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열사의 딸과 아들의 ‘아빠에게 드리는 추모의 글’이 영상을 통하여 전해지는 동안  열사의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딸과 아들의 ‘아빠에게 드리는 추모의 글’이 영상을 통하여 전해지는 동안  열사의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삼헌 한국민족춤협회의 추모춤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삼헌 한국민족춤협회의 추모춤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큰형 양회선 씨가 유족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큰형 양회선 씨가 유족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열사의 큰형 양회선씨는 유족을 대표해서 “내 동생으로 태어나 함께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노동·시민·사회·정당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표시를 하였다.

계속해서 민주노총 120만 조합원들에게 “우리의 생존권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함께 나가야 하는 이 현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동생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열사에 대한 뜨거운 그리움과 애정으로 끝맺었다. 

장옥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이 호상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장옥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이 호상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장옥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은 호상인사를 통하여 “자신의 손으로 국민들의 살 집과 모든 사회기반시설을 창조하면서 늘 노가다라 천대받던 건설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었던 노동운동가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영결의 뜻을 전하였다.

또한 “전국의 노동, 시민, 사회, 정당에서 양회동 열사의 유언을 받들어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결의를 하고 있다”면서 “양회동 열사를 기억하고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참가자들이 열사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참가자들이 열사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날 영결식은 안지중 상임집행위원장(전국민중행동)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끝으로 참가자들이 유족부터 사회각계 인사들이 열사에게 헌화를 하고, 열사는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되어 민족민주열사들과 함께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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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건'이라던 알프스 고장횟수, ‘사실 더 많아’

  • 김준 기자
  •  
  •  승인 2023.06.22 16:45
  •  
  •  댓글 0



 

정의당, 일본원정투쟁 출정

알프스 고장, 훨씬 더 많아

‘24일 공동행동 참여 호소’

IAEA, 본래 원전 진흥 기관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촉구

 

서울겨레하나 회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 기자회견을 마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뉴시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애초 정부가 8건이라고 발표했던 알프스 고장횟수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인한 우려가 공포로 변했다. 그만큼 방류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된다.

정의당은 오늘(22일)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에 항의하기 위해 2박 3일간 후쿠시마를 방문한다. 진보당도 정부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또한 24일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3차 전국행동’을 선포하며 많은 시민의 참여를 호소했고, 겨레하나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오염수 방류를 규탄했다.

정부는 22일 일일브리핑에서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의 긴급 방사능조사를 벌였다며 그 결과 안전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자리에 참석한 한필수 전 IAEA 국장은 “IAEA의 최종 보고서는 IAEA의 위상과 직결된다”며 IAEA의 조사보고서의 신뢰성을 강조했다. 야당이 계속해서 IAEA의 신뢰도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대한 대응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IAEA의 검증을 믿어야 한다고 연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걱정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직 일부 지역은 방사능 장비가 부족하고 IAEA는 본래 원전을 진흥시키기 위한 취지로 설립된 기구이기 때문이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란 지적이 계속되는 이유다.

또, 최근에는 알프스(다핵종제거설비)의 고장 발생 건수가 기존 정부 설명보다 더 많은 것이 확인됐다. JTBC는 20일 저녁 '8건이라던 알프스 고장, 4건 더 있었다, 정부 부실검증 논란'이란 단독 보도를 냈다. 정부는 이에 곧바로 해명을 내놓았다.

임승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은 21일 일일브리핑에서 “우리는 건수가 아닌 사례로 말한다”며 “동일한 이유로 15개 호기(원자로)를 바꾸는 경우 15건 고장이 아니라, 고장 1건, 대상 15호기라고 표기한다”고 말했다.

임 사무처장의 해명대로라면 애초 정부가 발표했던 ‘8건의 고장’은 ‘8건의 사례’가 된다. 실제 개개별 호기가 고장 난 횟수는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거다.

환경운동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10만인 서명운동과 24일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3차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 밝히며 “촛불 모아 큰 횃불을 만들 것”이라 강조했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방사성 오염수 방류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촉구 기자회견' ⓒ 김준 기자

윤희숙 진보당 대표는 2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982년 채택한 유엔해양법협약 194조는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 하의 활동이 다른 국가와 자국의 환경에 대해 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끼치지 않게 수행되도록 보장해야 하고 자국에서 발생한 오염이 밖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보장 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최소한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라도 해야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오는 24일 3차 공동행동의 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10만 범국민 서명을 벌일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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