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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종단 수장, “대북 인도적 지원 나설 것” 천명

종교인평화회의 성명, 통신연락선 즉각 복구 촉구(전문)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8.13 14:36
  •  
  •  수정 2021.08.1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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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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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교인들은 누구보다 앞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이며, 나아가 시민사회의 적극적 동참을 기대한다.”

남북 관계가 통신선연락 복원에 이어 한미연합군사연습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는 가운데 7대 종단 지도자들이 남북 당국에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7대 종단 수장들이 4.27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아 지난 4월 27일 분단의 현장 판문점을 찾았다. 7대 종단 수장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제공 - 한국종교인평화회의]
7대 종단 수장들이 4.27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아 지난 4월 27일 분단의 현장 판문점을 찾았다. 7대 종단 수장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제공 -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7대 종단 수장들이 2019년 2월 18일 청와대를 찾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7대 종단 수장들이 2019년 2월 18일 청와대를 찾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7대 종단 수장들 연명으로 13일 광복 76주년을 맞으며 “남북당국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에 나서길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KCRP 대표회장인 원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공동회장인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오우성 원불교 교정원장, 손진우 유교 성균관장, 송범두 천도교 교령, 김희중 천주교 교회와일치종교간대화위원회장, 이범창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서명했다.

7대 종단 수장들은 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의 일차적 책임과 권리는 남북 당국에 있다”며 “한미군사훈련은 우리의 방위를 위해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통신선 재개통이 더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고 진단하고 남북통신연락선 즉각 복구를 촉구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 우선 정책, 북한은 적극적인 개혁 개방 정책, 남한은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시행하기를 촉구한다”며 “북핵 문제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오히려 반인도적 결과로 나타났다”고 평가하고 “우리는 대북 지원과 협력이 오히려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교류와 협력은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 구조를 위한 추동력”이라며 종교인들이 앞장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KCRP 관계자는 “대북제제와 코로나19, 지난해 수해 등으로 북한 내부도 어려움이 심할 것”이라며 “식량지원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에 7대 종단이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7대종단 수장들은 “한반도 비핵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제 남북정상은 하루빨리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반도 비핵·평화 공동선언과 함께 남북한평화협정 체결을 조속히 매듭짓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남북종교인들이 2015년 11월 9,10일 금강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북종교인들이 2015년 11월 9,10일 금강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성명서(전문)

남북당국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에 나서길 촉구한다.
-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7월 27일, 남북 당국 간 소통의 상징인 남북통신 연락선이 오랜 단절 후 재개통 되었지만,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반발로 불과 보름 만에 다시 불통 상태가 되었다. 우리 종교인은 남북통신연락선의 재개가 변화의 시작이기를 바랐으나, 통신선 재 불통 소식으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더 이상 기대가 절망으로 변하는 일이 거듭되지 않기를 바란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남북 그리고 미국의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 우선 정책, 북한은 적극적인 개혁 개방 정책, 남한은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시행하기를 촉구한다.

한반도 평화의 일차적 책임과 권리는 남북 당국에 있다. 한미군사훈련은 우리의 방위를 위해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통신선 재개통이 더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온 세상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지금이, 해방 이후 지속된 분단을 평화로 전환할 절호의 기회이다. 우리 종교인들은 남북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아래와 같이 촉구한다.

- 남북통신연락선 재개통은 곧, 남북교류협력의 재개를 의미하므로 즉각 복구되어야 한다. 혈맥을 이음은 물론, 공존공영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상징적 조치이다. 또한, 남북 당국은 하루라도 빨리 인적 물적 교류를 재개하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 북핵 문제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오히려 반인도적 결과로 나타났다. 우리는 대북 지원과 협력이 오히려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이라 생각한다. 교류와 협력은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 구조를 위한 추동력이다. 우리 종교인들은 누구보다 앞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이며, 나아가 시민사회의 적극적 동참을 기대한다.

- 한반도 비핵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남북정상은 이에 관한 실천적 의지를 누차 천명해 왔다. 이제 남북정상은 하루빨리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반도 비핵·평화 공동선언과 함께 남북한평화협정 체결을 조속히 매듭짓기 바란다.

2021. 8. 13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불 교원 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공동회장 개신교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공동회장 원불교오우성 (원불교 교정원장)
공동회장 유 교손진우 (유교 성균관장)
공동회장 천도교송범두 (천도교 교령)
공동회장 천주교김희중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공동회장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이범창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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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이름 앞에 붙는 ‘미녀’ 또는 ‘마녀’

등록 :2021-08-13 21:54수정 :2021-08-13 22:28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여성선수 향해 공공연한 외모 평가
좋은 기량 보이면 “남편 사랑의 힘”

국가대표조차도 마녀사냥·사이버테러
성차별 뛰어넘어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한 장면. 화면 갈무리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한 장면. 화면 갈무리
“시드니올림픽 여자 공기소총 은메달리스트인 강초현 선수의 인기가 폭발적입니다. 예쁘기도 하고….”“양궁 2관왕의 주인공입니다. ‘얼짱 궁사’ 기보배 선수 모셨습니다.”“연재가 그렇다. 이제는 사랑받는 국민 여동생이 됐다.”“하늘 높이 치솟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녀 배구 군단!”


지난 12일 방영된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이하 <국가대표>)의 한 장면이다. <국가대표> 제작진은 자사의 아카이브를 뒤져, 방송이 여자 운동선수들을 다룰 때 실력보다 외모를 먼저 부각시키곤 했던 과거를 끄집어 올렸다. 여자 선수가 실력보다 외모나 성별로 먼저 평가되었던 오랜 차별의 역사에, 자신들 또한 공범으로 일조했다는 고백이자 반성일 것이다. 기록 영상이 나간 직후, ‘배구의 신’ 김연경 선수는 화면을 향해 헛헛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맨날 ‘미녀’를 항상 붙입니다. ‘미녀군단’을 항상 붙여요. ‘미남군단’이라고는 안 하잖아요. 그렇죠? 저는 그런 게 별로였던 게 뭐냐면, 여자 스포츠 선수들은 외모적인 부분들이 항상 먼저 나오는 거 같아요. 실력을 먼저 얘기를 해야 하는데….”

‘선수’보다 ‘성별’ 보는 시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번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여자 선수들의 비율은 49%다. 여자가 단 한명도 참여하지 못했던 제1회 근대올림픽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오는 데 125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도자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수는 남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국가대표>는 2020년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체육 지도자 성별을 인용한다. 남자 2만2213명, 여자 4386명. “여자 핸드볼이 메달을 더 많이 땄는데, 여자 지도자는 없나요?”라는 질문에 핸드볼 국가대표 김온아 선수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래도 남자가 훨씬 더 많고요. 지금 핸드볼 실업팀에서는 남자 선생님들이 대부분이고, 여성 지도자의 길이 좁고요. 어릴 때는 솔직히 생각을 못 했었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왜 메달리스트 언니들이 지도를 안 할까? 자리가 없는 걸까?’ 하고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차이가 나는 건 지도자 수만이 아니다. 같은 종목에서 똑같이 활약을 해도, 대부분의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보다 더 적은 연봉과 상금, 지원을 받는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여성 슈퍼리그 첼시 위민에서 뛰고 있는 지소연 선수는, 첼시의 홈구장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경기를 할 줄 알았는데 정작 동네 공터 같은 곳에서 공을 차야 했던 현실에 기가 막혀 구단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던 기억을 들려줬다. 한국 골프를 상징하는 박세리 국가대표팀 감독은 여자골프투어와 남자골프투어 사이의 상금 차이를 납득하지 못했던 과거를 이야기했고, 김연경 선수는 남자 선수들에겐 꾸준히 인상되었던 샐러리캡(팀 연봉 총액 상한선)이 여자 선수들에겐 동결이 되었다는 소식에 분노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뒤 김치찌개로 회식을 하는 여자배구 대표팀 모습.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뒤 김치찌개로 회식을 하는 여자배구 대표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구조적인 차별의 뿌리에는 ‘선수’ 이전에 ‘여자’라는 조건을 먼저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국가대표>는 2016년 리우올림픽 중계 영상을 인용한다. 결혼과 비슷한 시기에 성적이 향상된 수영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해설진은 “(코치인) 남편과의 사랑의 힘”이 아니겠냐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선수의 피나는 노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게 남성 조력자가 도운 결과라고 해설하는 것이다. 5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옆 방송사인 에스비에스 여자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해설을 맡은 배성재와 이수근은, 명서현이 저돌적으로 수비를 돌파하며 공격에 가담하면 “남편(정대세)에게 배웠나 보다”라고 말하고, 심하은이 킥을 잘하면 “남편(이천수)에게 배웠나 보다”라고 말한다. 남성 조력자의 도움을 선수 개인의 노력이나 기량 향상에 대한 평가보다 앞세워버리니, 여자 선수가 흘린 땀과 기울인 노력의 시간은 자연스레 그 값어치를 잃는다.

 

스포츠는 원래 세간의 시선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은 오직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더 많은 편견과 제약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국가대표>는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해온 여자 운동선수들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하는 동시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스포츠 성 평등이라는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한 작품이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국가대표 박봉식 선수의 기록영상에서 시작해서, 양궁 3관왕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거뒀음에도 머리 스타일이나 세월호 배지 등을 근거로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를 놓고 사상을 넘겨짚어 공격하려는 사람들이 벌인 온라인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안산 선수에 이르는 몽타주 영상은 <국가대표>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검증 사이트 생기기도

 

한국방송이 <국가대표>를 방영했던 날, 공교롭게도 온라인에서는 웹사이트 하나를 놓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유명인들의 언행이나 옷차림, 헤어스타일, 독서 패턴 등을 이유로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입장을 밝히라고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일은 불행히도 온라인에선 일상적인 일이지만, 오로지 그 목적으로 웹사이트가 만들어진 건 또 처음이었다. 자신을 20대 남성이라 밝힌 한 네티즌이 만든 이 조악한 웹사이트는, 가수, 배우, 아나운서, 정치인, 작가 등 다양한 직종의 유명 인사들에게 자의적인 판단으로 ‘확정’, ‘의심’, ‘선봉’ 따위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나는 그 웹사이트의 이름을 적지 않겠다. 사이트 개설자에게 관심을 받았다는 만족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한 국가대표조차도 외모 평가와 사상검증, 사이버테러를 피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는 ‘페미니스트’ 감별사를 자처하며 멋대로 타인의 사상에 등급을 매기고 온라인 마녀사냥과 사이버테러를 부추긴다. 어쩌면 2021년 8월12일 있었던 이 두 장면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의 노력과 성취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기 위하여.

이승한 작가.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7679.html?_fr=mt1#csidxb3384e85b1ae467a00a36f55da540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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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죽음에 이른 성추행 피해 사건, 늑장 대응 도마 위에 오른 해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8/14 08:48
  • 수정일
    2021/08/14 08: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피해자가 사건 외부 노출 우려했다”며 후속 조처 하지 않은 해군, 문 대통령 ‘격노’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하태경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해군 중사의 성추행 신고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1.08.13ⓒ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부대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해군 A중사(여·32)가 부모에게 2차 가해를 당한 사실을 털어놨던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A중사와 가족이 주고받았던 문자 내용을 공개했다.

A중사는 지난 3일 부모에게 보낸 문자에서 "일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나를)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우선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며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가해자가 업무를 지시하는 직속 상관이었고, 같은 사무실에 있었다고 한다"며 "성추행 사건이 지난 5월 27일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있었는데 (피해자는) 업무상 따돌림을 당하고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계속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폭력 가해자는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사과하겠다며 피해 여중사를 불러 술을 따르게 했는데, 피해자가 '업무 시간'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며 악담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 의원은 "주임상사가 없던 일로 하려고 회유하려고 한 것으로 유족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유가족은) 자랑스러운 해군으로서 11년간 국가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성추행과 은폐였냐며 분통을 터뜨렸다"며 "이 사건을 크게 공론화해 다시는 딸과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외부 노출 우려" 피해자 핑계로 후속 조처 미온적이었던 해군

이러한 2차 가해 의혹은 이날 해군이 발표한 내용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날 국방부와 해군에 따르면 지난 5월 24일 섬에 있는 해군기지에 부임한 A중사는 3일 뒤인 5월 27일 오후 같은 부대 B상사와 부대 인근에 있는 민간 식당에서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당시 B상사는 "손금을 봐주겠다"며 1~2분간 A중사의 손을 만졌다. 또한 부대 복귀 과정에서도 A중사가 거듭 거부하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신체 접촉 시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직후 A중사는 예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부대 주임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리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 과정에서 A중사가 "사건이 일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주임상사는 가해자 B상사를 불러 성추행 사실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한 차례 주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외부 노출'을 우려하는 A중사의 뜻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해자 분리 등 사실상 아무런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그로 인한 불이익까지 걱정해야 하는 A중사의 곤란한 처지를 사건 '사건 은폐'의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은 것이지 피해자가 방치되는 상황을 원했던 건 아니다. 두 달 반 정도 지속적인 2차 가해가 매일매일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신고하기까지 기간이 가해의 연속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A중사가 사건이 발생한 지 70여 일만인 이달 7일 피해 사실을 지휘부에 결국 알려 공론화하기로 결심한 것도 2차 피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와 해군은 기자들에게 설명할 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해군 자료사진ⓒ해군

국방부와 해군에 따르면 A중사는 당시 1차 지휘관인 감시대장(대위)과 면담에서 피해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일 정식 신고했다.

그러면서 A중사는 도서 지역에서 육상으로 전출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소속 부대장은 지침에 따라서 A중사를 평택에 자리한 2함대 육상 근무부대로 파견조치했다. 그제야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처가 이뤄진 셈이다.

신고 다음 날인 10일 2함대 안 독신자숙소를 배정받은 A중사는 화장실 전등이 나갔다며 "전구를 교체해달라"고 부대에 요청했다. 그는 11일부터 18일까지 청원 휴가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A중사는 심적 고통이 상당했는지 신고일인 9일부터 숨진 12일까지 성고충 상담관과 전화로 무려 8번을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A씨는 숨진 채로 12일 전등을 교체하려고 들어간 이들에 의해 발견됐다. 해군은 "남긴 유서는 없다"며 "휴대전화 등을 포렌식해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은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본부 군사경찰단 등 수사를 통해 엄정 조치하겠다"며 "과거 유사 성추행 여부, 추가 피해 호소 여부, 2차 가해 등을 수사할 것"이라고 향후 수사 방침을 설명했다.

유족은 해군에 "가해자에게 엄정하게 강력하게 처벌 조치를 해 달라"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가 되도록 재발 방지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앞서 부대장의 지시에 따라 수사에 돌입한 함대 수사대는 지난 10일 가해자 B상사를 함대로 불러 조사했고, 11일 B상사를 입건했다.

A중사 사망 후 2함대 사령관이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에게 보고했고 참모총장은 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과 참모총장은 2차 가해 여부 등을 철저히 수사하고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B상사를 상대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영장실질심사는 13일 열린다.

공군에 이어 해군에서 또...군 당국 안이한 대처 도마 위

한편 지난 5월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하면서 군 당국의 안이한 대처는 더욱 논란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사건을 보고받은 뒤 격노하면서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배경 탓으로 보인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족과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이와 관련해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에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만들어 한 치 의혹 없는 수사를 진행해 유족과 언론에 소상히 밝히겠다"고 밝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방부가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 이후 이렇다할 방책을 뚜렷하게 내놓지 못한 채 다시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일선에서 근무 중인 여군들은 또 한번 깊은 무력감, 조직이 더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2013년 육군 여군 대위 성추행 사망사건, 2017년 해군 여군 대위 성추행 사망사건, 2021년 공군 여군 중사 사망사건, 그리고 2021년 8월 해군까지 도대체 얼마나 세상을 떠나야 '할 만큼의 조치를 다 했으니 소임은 다했다' 식의 문제 인식을 벗어날 것인가"라며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성폭력 사건 지원 체계 개선은 지금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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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다됐네"... 악의 없더라도 차별의 언어, 모아봤습니다

[지역차별언어바꾸기프로젝트 '어디사람'] 시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는?

21.08.13 07:30l최종 업데이트 21.08.13 07:30l
 어디 사람
▲  어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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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차별언어는 무엇일까?"

지역차별언어바꾸기 프로젝트 '어디사람'의 시작점이다. 주변에서 지역차별언어는 이미 사라진 개념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선행연구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인터넷상에는 기사 댓글마다 '지역혐오'가 가득했지만 설전을 벌일 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응하지 않았다. 멀고도 가까운 지역차별언어의 민낯은 시민 인터뷰(지역차별언어바꾸기프로젝트 어디 사람)와 설문조사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희망제작소는 시민에게 지역차별언어와 관련된 경험을 묻는 작업을 두 갈래로 진행했다. 지난 6월 4일부터 30일까지 약 한 달간 온라인 설문을 통해 시민 307명의 의견을 들었고, 사전 설문 기획을 위해 희망제작소 후원회원 121명의 응답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맥락을 읽기 위한 사전 개별 인터뷰를 22명 진행해 총 450명의 응답을 받았다. 해당 설문조사 결과 및 지역차별언어 사례를 추려서 전한다.

넓은 스펙트럼의 지역차별

인터뷰 및 설문 결과를 봤을 때 첫인상은 지역차별언어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는 점이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지역을 낮춰보는 서울 중심주의 언어부터 시작해 해묵은 지역 고정관념, 인터넷 내 혐오 표현까지. 딱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지역차별언어는 누군가에겐 일상 속 먼지 같은 차별이고 인터넷에서 날카로운 칼처럼 휘둘러지기도 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400여 명의 답변이 우리 사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마치 케익의 작은 한 조각처럼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라 확인하는 정도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이 모은 지역차별언어를 발화의 맥락을 고려해 유형화하되, 언어를 유형화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생활 속 실천방안 측면으로 지역차별언어 설문 결과를 살펴본다. 
 

 차별경험정도
▲  차별경험정도
ⓒ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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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역차별언어는 보편적인 경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차별을 경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설문조사 참여자의 92%(403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경험 정도의 경우 '가끔 경험'(2점)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는데(35%), 이는 상대적으로 지역차별이슈가 주목받지 못하는 현 상황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지 추측할 수 있다.
 

 연령대 구성
▲  연령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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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참여자의 연령을 보면 20~30대가 40%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이들의 응답은 전체 참여자와 비교했을 때 다른 성향을 보였다. '차별 경험 정도'를 묻는 질문에 전체적인 경험 정도는 평균 3점으로 큰 차이가 없어도 '자주 경험'(4점)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는 앞서 '가끔 경험'(2점)의 응답이 가장 많았던 내용과 대비되는 것이다. 
  

 지역차별언어 유형비교 및 차별경험빈도
▲  지역차별언어 유형비교 및 차별경험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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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는 차별 종류 역시 전체 참여자와 다른 경향을 보였다. '지역에 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낮게 나타난 것과 다르게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섞인 '중복차별' 언어를 꼽은 게 두드러진 차이다. 단정 지을 수 없으나 세대에 따라 지역차별언어는 변화했으며, 좀 더 복합적 형태로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지역차별언어의 유형화

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지역차별언어를 유형화했다. 우리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지역차별의 단면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지역차별언어를 유형화할 때 고민이 많았다. 지역 '차이'를 '차별'로 치환한 게 아닌지, 차별 혐오 표현으로서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지 여전히 마음속 묵직함이 남아있다. 더욱이 일상에서 묻어나는 차별 중 지역차별과 관련한 내용이 따로 다뤄진 적이 없어 고심했다.

그럼에도 최근 차별금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고 있고, 시민이 지역차별언어에 관해 의견을 표현했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소개한다. 지역차별언어의 유형화는 여전히 좀 더 면밀한 검토가 과제로 남아있으나 지역차별언어의 맥락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역차별언어의 유형화는 맥락과 어휘에 따라 4개 분류로 나눴다. ⓛ지역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②사투리 ③서울중심주의 ④중복차별이다. 설문 답변이 명확하게 1~3번 분류에 포함하기 애매한 경우 차별이 중첩된 ④중복차별로 분류했다. 유형별로 설문 중 일부 답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소개한다. 

1) 지역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충청도는 답답하지 않아? 충청도 화법 엄청 속 터지던데 너는 말 좀 빠르네?"
"춘천에 살게 됐는데 강원도 감자는 잘 먹고 있냐며…. 춘천이라는 지역명이 있는데 굳이 강원도라 칭하며 멀어서 어떡하냐며"
"전라도를 비하하는 표현이 고정된 다양한 말로 댓글에 여전히 올라와요. 타지역은 볼 수가 없는데."


지역에 대한 차이가 실재하며 이는 차별이 아니라는 반론이 많았다. 실제로 고정관념이란 틀을 활용해 우리 뇌는 세상을 효율적으로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설문조사 응답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역 고정관념'의 표현을 문제 언어로 지적하였다. 우리는 왜 이 언어를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차별 언어>를 쓴 이정복 교수는 차별언어를 "사람들의 다양한 차이를 바탕으로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편을 나누고, 다른 편에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거나 다른 편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언어 표현"이라고 말했다. 

2) 사투리 
 

"'말을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어요. 서울말로 친절히 얘기하려고 노력했었던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부산 사람인데 사투리 안 쓰네? 부산 애들은 사투리 못 고쳐. 블루베리스무디 해봐. 2의 e승 해봐."
"최근에 일 관련으로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우연히 동향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회사 동료가 이제부터 둘이서 고향 사투리 좀 이야기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일 관련으로 만난 분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억양으로 인해 출신이 노출된다. 그래서 쉽게 타인에게 사투리와 관련한 말을 듣는다. 사투리가 매력적이라거나 서울말로 고치지 말아 달라는 등 친근하고 호의적인 태도부터 공적인 곳에서는 자제해달라거나 고쳐 달라는 등의 노골적 표현도 듣는다. 

기저를 살펴보면, '서울말=표준어'라는 관계에서 서울이 가진 힘은 언어에도 같은 힘을 준다. 서울이기에 서울말을 써야 한다거나, 못 알아듣겠으니 고치라는 것은 그 대상을 부산이나 다른 지역으로만 바꿔도 부당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3) 서울중심주의
 

"'여기는 이것도 없네'. '아직도 그대로네', '갈 데도 없고 심심해', '심심해서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
"'경상도 사람인데, 서울사람 다 됐네요'를 칭찬 뉘앙스로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단 제가 사는 지역에 없는 인프라가 많아서 불편한 점도 많고(거기엔 그것도 없니?라는 말도 여러 번 들어 봤음) 서울에 가지 않고 시골에 사는 것에 대해 불쌍하다고 여겨지는 경험도 자주 있어요. 시골에 있으니 넓은 세상을 접하지 못해 딱하다는 시선들...? 서울에 살면서도 편협된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물론 서울에 가면 더 쉽고 편하게 여러 컨텐츠들과 소위 말하는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겠지만, 시골에 산다고 그 컨텐츠들에 접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정보화의 시대에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산다고 멍청해지거나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는 우리나라 인구 절반 이상이 산다. 경제·사회·문화적 자본도 집중돼 있다. 우리가 서울을 지리적으로 인지하기 전부터 수도이자 중앙의 역할을 해왔다. 의료, 교통, 다양한 문화적 혜택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경우 자연스레 지닌 특권을 깨닫기 어렵다. 

이처럼 서울과 지역의 평등하지 않은 관계를 인지할 때, 우리는 그간 보이지 않던 차별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서울 사람 다 됐네요"라거나 "너네 지역에 이거 없으니, 잘 보고 가!"라는 등 선의의 말이 누군가에게 차별의 언어로 들릴 수 있다.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을 낮게 보는 무의식적인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4) 중복차별 
 

"전라도 출신이라구요? 지방대 출신이잖아요. 시골 사람이라서 등등"
"부산 살면서 먹고 살게 있나? 지방에서 일하면 월급(액수)은 제대로 받나? 지방대 나와서 먹고 살겠나? 부산사람은 무조건 ○○당 아닌가?(정치적으로...)"
"전주사람이면 비빔밥 맨날 먹겠네. 사투리 안 쓰셔서 서울사람인 줄 알았어요. 제가 사투리를 쓰니 서울분께서 제 입을 막으시며 너무 거칠다고 그런 말 쓰지 말라고 했어요."
"서울이 아닌 지역은 '지방'이라고 퉁 치는 것, 미디어에 노출되는 지역의 특징으로 개인의 성격을 구분 짓는 것(충청도는 느려~ 와 같은 것?) '청주에도 ○○○ 있나?' '사투리 안 쓰네.'"
"횡성 출신임을 얘기하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며 어떻게 고쳤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네요. 횡성, 원주의 억양은 수도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전설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강원도에선 감자가 화폐라며?'라고 말 붙이는 사람이 있었어요."


차별언어는 차별적 현실을 반영하기에 존재하는 언어다. 중복차별로 구분한 언어가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차별이 중첩되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무 자르듯이 나누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방대 출신을 무시하는 언어는 학력과 지역차별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여자는 예쁜 서울말을 써야 한다는 표현은 성과 지역차별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 사람으로서 겪는 다양한 차별에 우리 사회는 경각심을 갖고 언어가 가진 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차별언어바꾸기 프로젝트 '어디사람' 반환점을 돌며 

'어디사람'은 그간 진행한 시민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모아 <어디사람 워크북>(가칭)을 오는 9월 출간할 예정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를 '먼지 차별'과 '혐오표현' 등 크게 분류해 좀 더 쉽고, 실천적인 방안 중심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또 시민이 모은 사례를 바탕으로 미디어와 우리 현실에서 지역차별언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무엇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지역평등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대응언어를 직접 적어보거나,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스스로 고민과 실천할 수 있는 워크숍 형태로 구성된다. 

'어디사람'이 반환점을 돌았다. 지역차별언어에 관한 시민의 목소리는 기대 이상으로 높았고, 지역차별이라고 느끼는 발화의 시작점도 다양했다. '어디사람'이 지역차별을 덜어내는 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향후 미디어, 공공기관, 교육기관 등에 지역차별금지강령이나 규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방안도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유다인 연구원이며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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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2년···버티고 버티던 사장님들 마지막에 고물상 문 두드린다

조해람·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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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낮 12시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고 주방업체에 있는 음식점 간판이 뒤집어져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각종 언론에 소개된 OOOO죽!” 호쾌한 필체의 간판이 거꾸로 뒤집힌 채 경기 고양시의 한 중고 주방기기 업체 마당에 놓여 있다. 이 업체에서 일하는 김정훈씨(50)가 지난해 코로나19로 폐업한 한 가게에서 가져와 작업대로 쓰는 간판이다. 12일 찾은 이 업체에는 코로나19로 폐업한 가게들에서 매입한 냉장고 50여대와 의자 70여대가 가득 들어찼다. 고깃집에서 주로 쓰는 원통형 양철 의자가 창고 구석을 채웠다. 마당에 주차된 트럭 짐칸에도 나무 의자가 한 무더기다.

이렇게 물건은 들어오는데 사가는 이가 없다. 자영업 창업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창고에는 계속 물건이 쌓인다. 자리가 모자라 마당에 내놓은 냉장고도 있다. 김씨는 “비 오면 전자제품은 고장나는데 볼 때마다 걱정”이라며 “모두가 힘든 상태다. 우리도 (매입 문의가 오면) 인건비만 나오면 다 구매해주려 하는데, 자영업자들도 자포자기하고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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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낮 12시3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고 주방업체 물류 창고 마당에 쌓여있는 주방용품들. 코로나19로 판매량이 줄며 창고 공간이 부족해진 것이 원인이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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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img.khan.co.kr/news/2021/08/13/l_2021081201001667600141895.jpg" class="__se_object" s_type="attachment" s_subtype="image" style="display: block; border: 0px none;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width="700" jsonvalue="%7B%7D" alt="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중고 주방업체에 12일 업소용 주방용품들이 쌓여 있다. |권도현 기자" /></picture>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중고 주방업체에 12일 업소용 주방용품들이 쌓여 있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중고 주방기기 매입 업체나 고물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자영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2763만7000명)의 20.2%인 558만명으로 통계 작성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사를 접은 상인들은 한 푼이라도 손실을 메꾸려고 집기류를 판다. 먼저 폐업철거업체와 협상을 해 물건을 판다. 팔리지 않은 집기류는 중고가전 매입 업체로 간다. 도·소매상에서도 거절당한 물건들이 최후에 모이는 곳이 고물상이다.

크게 보면 코로나19 이후 중고기기 매입업체·고물상에 오는 물량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폐업에 따르는 권리금·대출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어서다. 그러나 한계가 오면 매입업체나 고물상 문을 두드린다.

김씨는 그 폐업들을 “눈물의 폐업”이라고 불렀다. 올해 2월 울산에 식당을 오픈하며 김씨에게 물건을 사 간 어떤 부부는 지난 7월에 김씨에게 다시 연락해 “물건을 다시 매입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물건을 매입해도 재판매할 곳이 없지만 여기저기서 오는 매입 문의 전화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폐업하는 분들은 그냥 만사 포기하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단돈 만원이라도 건져낼 수 있는 물건들은 다 파세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김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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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img.khan.co.kr/news/2021/08/13/l_2021081201001667600141892.jpg" class="__se_object" s_type="attachment" s_subtype="image" style="display: block; border: 0px none;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width="700" jsonvalue="%7B%7D" alt="12일 서울 영등포구 한 냉장기구 도·소매점. 오른쪽에 보이는 냉장고와 왼쪽에 올려져 있는 싱크대는 세상을 떠난 곰탕집 사장이 지난해 11월 팔고 간 물건이다. |조해람 기자" /></picture>

12일 서울 영등포구 한 냉장기구 도·소매점. 오른쪽에 보이는 냉장고와 왼쪽에 올려져 있는 싱크대는 세상을 떠난 곰탕집 사장이 지난해 11월 팔고 간 물건이다. |조해람 기자

“버티고 버티다가, 견디고 견디다가 마지막에 오는 곳이 여기예요.” 이날 만난 서울 영등포구 중고 냉장기기 업체 사장 이대영씨(61)가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렬로 늘어선 주방기기들 끝에 놓인 한 냉장고엔 식재료 대신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 지난해 11월 폐업한 곰탕집 사장이 이씨에게 판 냉장고다. 코로나19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사장은 스트레스와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35년째 장사하며 골목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줏대감 이씨지만 장사를 접고 떠난 사장님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여기 오는 사장님들 모두 억울하다고, 쫄딱 망했다고 해요. 죽고 싶다고, 시골 간다고…. 이젠 묻지도 않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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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중고 주방업체 창고 앞에 12일 미처 창고에 들어가지 못한 업소용 주방기구들이 쌓여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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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img.khan.co.kr/news/2021/08/13/l_2021081201001667600141894.jpg" class="__se_object" s_type="attachment" s_subtype="image" style="display: block; border: 0px none;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width="700" jsonvalue="%7B%7D" alt="12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한 고물상에서 분류작업이 한창이다. 고물로 가져온 ‘광동제약’ 온장고가 눈에 띈다. |한수빈 기자." /></picture>

12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한 고물상에서 분류작업이 한창이다. 고물로 가져온 ‘광동제약’ 온장고가 눈에 띈다. |한수빈 기자.

“경기를 알려면 통계청이 아니라 고물상에 와야 한다”고 자신하는 서울 영등포구 고물상 주인 김모씨도 얼어붙은 경기를 실감한다. 폐업한 가게 물건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덜 들어온다. 그러나 김씨는 고물상에 가게 간판이 안 들어오는 것은 경기가 심각하게 안 좋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자영업 시장이 꽁꽁 얼었다는 증거예요. 시장이 활성화되면 창업도 늘고 업종도 자주 바뀌기 때문에 고물상에도 간판이나 집기류가 많이 오거든요. 지금은 폐업하면 돈은 없는데 권리금도 내야 하고 대출도 갚아야 하니까. 다들 버티는 거예요. 다들….” 18년간 영업했지만 주변 상인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김씨도 최근 매출 감소로 직원 1명을 줄였다. 한 칸짜리 사무실. 언제 켰는지도 모를 고장난 에어컨 아래로 선풍기 세 대가 더운 바람을 실어 날랐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8130600011#csidx24b176d28b973f5bdaa779ff9ceaa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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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직장여성 5년간 유산 26만건…산재 인정은 단 3건뿐이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8/13 08:16
  • 수정일
    2021/08/13 08: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1-08-13 05:00수정 :2021-08-13 07:39

정춘숙 의원실·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유산 여성 10명 중 6명 직장인이지만 ‘노동 인과성’ 인정은 소홀
노동시간 길수록 유산 위험 높아…주당 61~70시간 땐 56% ↑
업무 연관성 입증 쉽지 않고 ‘유산 = 여성 개인 문제’ 인식도 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ㄱ씨는 올해 유산을 겪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회사에 알리고 단축근무를 신청했지만 회사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은 임신 초기(12주 이내) 또는 만삭(36주 이후)인 여성 노동자가 하루 두 시간 단축근무를 신청할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도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간호사는 보통 병원 안에서만 하루 1만보를 넘게 걷는다고 한다. 온 종일 바삐 병동을 오가며 서서 일해야 했던 ㄱ씨는 결국 임신 8주차에 유산했다. ㄱ씨는 유산휴가를 신청했으나 회사는 이 역시 반려했다. 근로기준법은 유산한 노동자가 신청하면 유산휴가를 주도록 하고 있으나 고용주는 이마저 거부한 것이다. ㄱ씨는 “임신 초기에도, 유산한 뒤에도 출혈이 있는데도 병원을 돌아다녔다. 임신 했을 때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더니, 유산도 오롯이 내 탓이었다. 최소한의 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2016~20년 5년 간 유산을 겪은 여성은 45만8417명이다. 저출생 기조로 임신이 줄면서 유산 인원 자체는 과거보다 감소했으나, 임신한 여성 가운데 유산을 겪은 비율인 유산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취업 여부에 따라 유산율 차이가 났다. 같은 기간 직장 여성 연간 유산율은 미취업 여성 유산율보다 7%포인트 높게 유지됐다. 노동 환경이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노동 조건과 연관된 유산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같은 기간 산업재해(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유산은 단 3건에 불과했다. 정부가 저출생 대책에 한 해 46조원(2021년 기준)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임신한 여성 노동자 보호, 유산의 노동 인과성 인정에는 소홀한 것이다.

 

<한겨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유산·분만 관련 진료인 인원 현황’(2016∼2020) 자료를 받았다. 지난 5년 해마다 평균 9만1600여명이 유산했다. 같은 기간 분만 여성은 평균 26만2700명이었다. 임신 여성 4명 중 1명이 유산을 겪은 것이다.

 

저출생으로 임신 자체가 줄면서 유산 인원 역시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취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취업)와 피부양자(미취업)로 나눠 보면 감소폭은 달라진다.

 

미취업 여성 유산은 2016년 4만5515명에서 2020년 3만3877명으로 1만1638명(25.6%) 줄었다. 반면 유산으로 진료 받은 여성 취업자는 2016년 5만2101명, 2020년 5만893명으로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전체 유산 인원 가운데 직장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53.4%에서 60%까지 증가했다. 유산을 겪은 여성 10명 중 6명은 직장인이라는 얘기다.

 

만혼 경향으로 임신 연령이 높아지면서 유산율이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유산율은 취업(27.2%→31.3%), 미취업(20.3%→24.5%) 여성에게서 거의 동일하게 증가했다. 취업 여성 유산율 증가에 만혼 외 다른 원인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취업 여성 유산율, 미취업자보다 7%포인트 높다
 

눈여겨 볼 대목은 취업자와 미취업자 유산율 격차다. 지난 5년 간 취업자 유산율은 미취업 여성 유산율보다 꾸준히 7%포인트가량 높았다. 연도별 유산율 차이를 보면 2016년 6.9%포인트(27.2%, 20.3%), 2017년 7.1%포인트(28.4%, 21.3%), 2018년 7.1%포인트(30.2%, 23.1%), 2019년 7.1%포인트(30.8%, 23.7%), 2020년 6.8%포인트(31.3%, 24.5%)였다.

 

이런 격차는 이전에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6~15년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유산율을 분석했는데, 그때도 모든 연령대에서 직장가입자 유산율이 피부양자보다 높았다. 당시 연구팀은 “직장가입자의 근로 환경이 임신 및 출산 시 건강상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유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취업 여성 유산율이 미취업 여성보다 7%포인트 높게 유지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노동 시간과 업무 종류, 태아에 영향을 주는 생식독성물질 사용 여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지만, 업무 연관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장은 “과중한 업무, 일터 경쟁 심화가 직장가입자 여성의 유산율이 피부양자 여성보다 높게 유지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는 “일반적으로 과로, 교대·야간 노동 등이 임신 유지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인 파악을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이 유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통념은 이미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2019년 이준희 순천향대 서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이완형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국민건강영양조사(2010~12년)에 참여한 19살 이상 여성 노동자 4078명의 유산 경험을 조사했다. 주당 50시간 미만 일한 여성과 비교했을 때, 61∼70시간 일한 여성은 자연유산 위험이 56% 높았다. 주당 노동 시간이 70시간을 초과하면 자연유산 위험이 66%까지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유산 위험이 높다는 인식이 학술적으로 증명됐다. 일하는 여성의 모성 보호를 위한 정책 근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노동 시간 뿐 아니라 ‘노동의 종속성’도 유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현주 우송대 간호학과 교수는 “피부양자 여성도 가사·돌봄 등 상당한 육체 노동을 한다. 그러나 고용주의 지휘·감독 등 통제를 받으며 경쟁적으로 성과를 내야하는 직장 여성과는 노동 양상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 양상도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간 7%포인트 격차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동 자체뿐 아니라 이같은 노동 종속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재 인정 단 3건…‘유산=여성 개인 문제’라는 장벽
 

유산과 노동의 인과성을 드러내는 연구와 통계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유산은 여전히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다. 2016~20년 유산한 직장 여성 25만8646명 가운데 산재(업무상 질병)가 인정된 유산은 단 3건이었다. 애초 산재 신청 자체도 8건으로 적었다. 전문가들은 유산을 겪은 당사자와 판정 주체 모두 ‘유산=여성 개인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는 근로복지공단이 정춘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 받지 못한 유산 사례를 들여다봤다. 불승인 사례와 그 이유가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불승인 사례 5건 중 2건은 임신 초기 자연유산이었다. 신청자는 음식점 종사자와 고객 상담원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 환경, 고객 폭언으로 인한 유산을 주장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임신 초기 자연유산은 흔하고 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많으며 업무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다른 2건은 조기양막파열이었는데 “조기양막파열은 현재까지 원인이 불투명하며, 업무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불승인했다. 나머지 1건은 자궁경부무력증이었다. 질병판정위는 “(신청자가) 과로나 장시간 근무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불승인 사례 5건 가운데 4건이 자연유산과 조기양막파열이었다. 발생 원인이 의학적으로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다. 원인이 모호하기 때문에 노동과의 연관성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 어려운 입증 책임이 모두 여성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질병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태아 염색체 검사, 염증 검사, 감염 검사 등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없고 직업 스트레스 외에는 산모가 건강하다는 걸 본인이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노동과 유산 연관 입증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 사건 보상 문제 등을 처리하기 위한 중재판정을 통해 2018년 11월 독립기구인 ‘삼성전자 반도체·엘시디(LCD)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과 별도로 삼성전자 작업장 노동자 질병보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2020년 6월까지 유산 173건, 사산 10건 등 모두 400건의 보상이 완료됐다. 지원보상위원회는 최소 기준(삼성전자 및 협력사 여성 재직·퇴직자 가운데 임신 3개월 전부터 출산(유산)까지 반도체 및 엘시디 라인 1개월 이상 근무 또는 출입한 자)만 충족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랬더니 한 사업장에서만 183건의 유산 관련 질병보상이 인정된 것이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지금 시스템에서는 유산을 산재로 인정 받으려면 근로자 개인이 까다로운 입증 절차를 거쳐 판정을 받아야한다. 입증 책임을 덜어주고, 보상 문턱을 낮추면 많은 여성이 유산을 업무상 질병으로 신청한다는 걸 삼성전자 지원보상위원회 사례가 보여준다. 판정을 거쳐야만 하는 산재보험 제도 자체의 전환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제도는 유산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여성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격이다. 유산 산재 인정 절차 완화 등 관련 법 개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에게만 해당된다’는 규정으로 인해 유산, 태아의 건강손상 등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회 환노위에서 논의 중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통해 유산이나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보험급여 사항을 새로 규정하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산의 산재 인정 만큼이나 중요한게 일터에서의 최소한의 모성 보호다. <한겨레>가 유산을 겪은 반도체 노동자 2명, 보건의료 노동자 3명을 인터뷰했더니 교대 근무, 야간 근무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은 임산부 야간 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야간근무 동의서를 제출하면 가능하다. 이현주 교수는 “만혼으로 30∼40대에 첫 임신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더더욱 직장 내 모성 보호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된 유산 방지 대책은 임신 중 육아휴직 분할 사용 횟수 제외, 임신 중 유연·재택근무 활용 권고가 전부다. 임신 노동자가 자신과 태아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직장 내 위험으로부터 피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07561.html?_fr=mt1#csidx32812e881f39b3383fbdc305a1f8f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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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6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주독립과 평화의 꿈”

8.15대회 추진위, 청와대앞 릴레이 1인 기자회견 일주일째

  • 기자명 박정윤 통신원 
  •  
  •  입력 2021.08.12 14:24
  •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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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대회추진위원회는 8월 4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대표단 릴레이 1인 기자회견을 일주일째 개최하고 있다. 12일 흥사단 박만규 이사장이 첫 릴레이 1인 기자회견 주자로 나섰다.  [사진제공 - 8.15대회 추진위]
8,15대회추진위원회는 8월 4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대표단 릴레이 1인 기자회견을 일주일째 개최하고 있다. 12일 흥사단 박만규 이사장이 첫 릴레이 1인 기자회견 주자로 나섰다.  [사진제공 - 8.15대회 추진위]

‘광복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 추진위원회’(이하 8.15대회추진위, www.815action.net)는 8월 4일부터 시작한 청와대 앞 대표단 릴레이 1인 기자회견을 일주일째 계속하고 있다.

한미 당국은 10일부터 위기관리참모훈련을 시작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시작했다. 8.15대회추진위 대표단은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보였던 남북관계가 다시 위기에 처한 것에 우려를 표명하며 16일부터 시작하는 본 훈련인 연합지휘소훈련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사단 박만규 이사장은 다가오는 76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1945년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자유로운 나라, 평등의 나라, 자주독립의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애국투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단 76년 속에 아직 그 꿈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만규 이사장은 “정전 68년이 되는 7월 27일 연결된 남북통신연락선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실시로 다시 메아리 없는 불통선이 되었다”며 “남북관계 정상화의 작은 불씨를 잃어버릴 어려운 시점”이라 개탄했다.

또한 “지금은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을 살릴 것인가, 남북관계의 단절을 감수할 것인가”의 기로에 다시 섰다며, 다시 한 번 문재인 대통령의 훈련중단 결단을 호소했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김종선 사무총장이 1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8.15대회 추진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김종선 사무총장이 1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8.15대회 추진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김종선 사무총장은 “10일 시작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은 5015작전계획에 기반한 훈련으로 북에 대한 선제공격, 북 수뇌부에 대한 참수작전, 점령 후 안정화 조치까지에서 볼 수 있듯 일상적, 방어적 훈련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미중갈등이 경제를 넘어 군사 갈등으로 갈 우려를 낳고 있는 지금, 군사훈련의 중단은 한반도의 평화를 넘어 전 지구적 평화로 가는 필수 조건”이라 말했다.

또한 민예총의 많은 예술인들은 “예술 작품으로 전쟁의 아픔을 노래하고 평화를 촉구”해왔다며, “연합군사훈련은 전쟁의 연장이며, 전쟁의 목표인 ‘적의 섬멸’을 기준”으로 할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패권연장에 남한이 협력자가 되는 것은 스스로 분쟁의 공범이 되는 것으로 전쟁연습의 동조자가 평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의 연장이 아니라 종전평화협정의 체결”이라 일갈했다.

김종선 총장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고, 날로 재앙으로 다가오는 기후위기의 사건들 역시 일상화 되고 있다”며 세계가 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분쟁은 중단되어야 하며, 68년 지속해온 한국전쟁의 연장전도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북은 기후위기로 인한 흉작으로 현재 86만 톤의 식량이 부족하며, 특히 곡물 중 쌀의 부족분이 53만 5천 톤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연습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식량 지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예총 김종선 사무총장, 2021평화통일시민회의 조원호 공동대표, 6.15청학본부 정종성 상임대표, 겨레하나 이연희 사무총장 [사진제공 - 8.15대회 추진위]
우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예총 김종선 사무총장, 2021평화통일시민회의 조원호 공동대표, 6.15청학본부 정종성 상임대표, 겨레하나 이연희 사무총장 [사진제공 - 8.15대회 추진위]

지난 8월 6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1인 기자회견에는 2021평화통일시민회의 조원호 공동대표, 6.15청학본부 정종성 상임대표, 겨레하나 이연희 사무총장이 참여했다.

2021평화통일시민회의 조원호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최근 ‘백신주권’을 이야기 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왜 외교와 국방의 자주권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지적하며, “군사훈련이 과연 주권을 지키는 것인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조원호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과거 노무현 정부의 10.4선언을 상기하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한 번 남북정상이 만나 남북협력과 민족의 자주권 실현을 위해 나서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6.15청학본부 정종성 상임대표는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청년들은 전쟁의 최대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분단 역시 청년들의 삶을 옥죄는 문제”라며, “코로나로 청년들은 알바 자리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지만, 이런 청년들의 삶을 위해 쓰여도 모자랄 혈세는 국방비, 미군 주둔비를 비롯한 분단비용에 먼저 쓰이고 있다”고지적했다.

또한 “분단을 극복하면 등록금, 일자리, 복지, 군대 문제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해결될 수 있으며, 전쟁훈련 중단과 남북관계 개선은 청년들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 말했다.

정종성 대표는 얼마 전 남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이 온라인 토론회를 열어 한미군사훈련 중단 투쟁을 결의를 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겨레하나 이연희 사무총장은 “남과 북의 대화와 그 결실인 남북의 공동선언들은 북한을 적이 아니라 화해, 협력 나아가 평화와 통일을 함께 만드는 상대로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되었고, 2018년 평창의 봄도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상기하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미국은 한미동맹과 연합방위태세 구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10만씩 발생하고 있는 미국이나 4단계 우리 방역단계를 보더라도 중단되어야 할 훈련”이라고 지적했다.

8.15대회 추진위의 대표단 릴레이 1인 기자회견은 8월 13일까지 계속되며 매일 11시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된다.

한편 8.15대회 추진위는 8월 15일 오후 2시 8.15대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하고, 6.15남측위원회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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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력 집중” 예고한 언론중재법 전격 ‘수술’…배경은

12일 “언론계 우려 중 합리적이라 인정되는 대목 수정” 
공직자·대기업 임원 등 징벌적 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
언론계 우려 덜고 선제적으로 ‘약점 보완’ 의도로 풀이 
 
 
 

 

여당이 물러섰다.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12일 오후 5시경 국회 소통관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공동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현업 4단체(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의 주장을 수용해 법안을 수정·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중재법을 다루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소속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언론중재법 대안에 대해 언론계와 야당의 반대 등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언론의 책임 강화를 위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허위조작보도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많은 오해와 일부 법 조항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의겸 의원은 “언론노조·방송기자연합회 등과 면담을 하면서 법안소위 통과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며 “언론계는 △징벌적 손배 청구가 의도와 다르게 권력자를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징벌배상 대상이 되는 고의·중과실 추정의 입증 책임이 언론에 전가되어 언론 보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열람차단청구 표시가 언론 보도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낙인효과를 발생시킨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과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왼쪽)이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과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왼쪽)이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문체위 여당 간사인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계의 우려 중 합리적이라 인정되는 대목을 수정하기로 했다”면서 “고위공직자·선출직 공무원·대기업 임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적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원고)가 고의·중과실 주체임을 명확히 해 입증 책임에 대한 모호함을 없애겠다. 우려가 큰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조항도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 “(개정안에 있는) 열람차단 청구 표시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서 허위 조작 보도로 피해를 보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을 일부가 남용할 가능성, 낙인효과에 따른 언론 신뢰도 하락을 함께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당내) 수정안이 마련되는 대로 전면 공개하겠다. 국민의힘도 15일까지 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다음 주에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으로 합의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민주당 결정은 지난달 27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법안소위에서 표결 처리한 뒤 어제(11일)까지의 모습에 비춰볼 때 다소 급작스럽다. 김용민 미디어혁신특별위원장은 11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열람차단 청구 표시 등 개정안을 향한 우려를 하나하나 반박하며 ‘사수’ 의지를 보였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단체가 집단행동에 나설 만큼 우악스러운 법이 아니다. 무엇보다 압도적 다수 국민께서 법 처리를 바라고 계신다”며 “흔들림 없이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윤호중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11시 언론현업 4단체 대표자들과 비공개 면담을 진행한 뒤 반나절도 안 돼 기자회견까지 이어졌다. 언론현업 단체 의견을 전격 수용해 언론계의 강한 우려를 잠재우고, 어떻게든 8월 중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이 15일 자신들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내놓기 전에 선제적으로 법안의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은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론인권센터는 “공인 보도라도 모두 국민의 알 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인이라도 고의·중과실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경우 악의에 대한 입증 책임이 소송을 제기한 측에 있어 언론의 역할이 위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인 관련 보도를 사실상 징벌배상 대상에서 제외해버렸다.

언론현업 4단체는 앞서 징벌배상 도입 시 공인이나 공공영역 인사의 보도는 그들(원고)에게 입증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입증 책임과 상관없이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입증 책임 전환보다는 아예 징벌적 손배 적용을 배제하는 게 실효적이라고 판단해 입장을 바꿨다. 어쨌든 민주당이 개정안을 수정하기로 하면서 추가적으로 여러 조항들이 삭제·수정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하게 요구하는 당내 강성지지층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그럼에도 언론보도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하겠다는 개정안의 애초 취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개정안을 비판해온 언론현업 단체도 위와 같은 취지에 동의해서다. 앞서 언론현업 4단체는 지난 6월14일 ‘언론 등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보도하여 인격권에 중대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해당 보도 언론사에게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공개 제안했다. 

해당 개정안에 의하면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인, 공직자(후보자), 대기업 관련 보도 및 공익신고법상 공익 관련 사안 등에 대한 보도는 배액 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배액 배상 근거가 되는 ‘악의’는 △고의성 △지속성 및 반복성 △보복성 △피해의 내용 및 규모를 고려해 판단하도록 했다. 

악의가 인정된 경우에는 △악의의 정도 △피해자 손해의 정도 △언론사가 해당 행위로 인해 취득한 경제적 이익 △언론사가 해당 행위로 인해 형사 처벌 또는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 △언론사 재산상태 △언론사가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한 정도를 고려해 배상액을 정하도록 했다. 민주당이 언론현업 단체 의견을 대폭 반영한다면 이 같은 내용이 뼈대가 되는 개정안이 최종안으로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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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세계 몇 나라에서 가르칠까?

2021 제19회 재외한국어교육자 국제학술대회21.08.12 08:01l최종 업데이트 21.08.12 08:01l박현국(aoyama6156)

           2021 제 19회 재외한국어교육자 국제학술대회 포스터입니다. 국제한국어교육재단 누리집 화면을 편집했습니다.?
▲   2021 제 19회 재외한국어교육자 국제학술대회 포스터입니다. 국제한국어교육재단 누리집 화면을 편집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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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부터 사흘 동안 국제한국어교육재단과 교육부가 주관하는 '2021 제19회 재외한국어교육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어 교재, 한국어 교육의 미래!'라는 주제로 세계 44개 나라에서 400여 명의 한국어 선생님과 행정직원들이 참가했습니다. 

해마다 여름방학 때 재단법인 국제한국어교육재단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한국교육원이나 대사관, 영사관을 통해서 한국어 선생님과 행정직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학술대회를 열어왔습니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감염증 확산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서 줌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행사 첫날인 9일에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사회로 개회식을 열었습니다. 개회식에서는 임영담 이사장님의 개회사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축하공연으로는 바흐와 베토벤의 곡과 아리랑 환상곡이 연주되었습니다. 점심시간 이후 기조 강연에서는 강승혜 연세대학교 교수님께서 '한국어 교재, 한국어 교육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교재의 중요성, 역할, 한국어 교재 개발의 역사와 현실 들을 소개하셨습니다. 

 

둘째 날인 10일에는 대학, 중고등, 행정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학술 발표를 했습니다. 각 발표에서는 이번 행사의 주제인 '한국어 교재, 한국어 교육의 미래!' 라는 제목으로 각 지역별, 나라별, 전공자별로 자신의 지역에서 가르치는 한국어 교재와 한국어 현실 등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BTS 등 케이팝(K-pop)을 활용한 수업 모델을 발표하시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날에는 김정숙 고려대학교 교수님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베트남 하노이대학, 몽골 울란바토르 대학 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선생님과 미국 LA,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태국 방콕에 있는 한국교육원장님들이 참가하셔서 현지의 한국어 교육과 교재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점심 식사 후에는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님의 역사 문화 특강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BTS의 인기와 영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윤이상의 현대 음악으로 이어지는 우리 전통문화의 뚜렷한 개성과 품격이 되새겨진 것이라면서 백남준의 작품과 윤이상의 '예악' 공연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인왕산 모습을 줌 영상으로 감상하고, 임영담 재단 이사장님의 폐회사, 공로자 시상식이 있었고, 김문희 교육부 기획조정실장님의 감사 말씀을 들었습니다. 끝으로 국악 신동 김태연의 판소리와 엄마아리랑을 감상하면서 사흘 동안의 행사를 마쳤습니다.

최근 한류나 K-pop의 인기와 더불어 나라 밖에서 우리말 한국어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나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우리 기업에 취직하면 현지 회사보다 월급을 다섯 배나 더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말과 글이 한류나 K-pop뿐만 아니라 우리 국력과 더불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줌 프로그램을 통해서 행사를 진행하고, 개별 발표는 유튜브를 활용해서 동영상을 언제든지 듣고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부만 참석해서 발표 현장에서만 공부할 수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더욱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은 비록 줌 프로그램으로 참가했지만 줌 화면에 자신의 이름과 참가 나라를 적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지만 현지 지역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워서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44개 나라에서 한국어 교육자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참가하지 않은 나라 선생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더 많은 나라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글 한글은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1443년 만들었습니다. 비록 578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말을 효율적으로 적어서 쓸 수 있고, 모음과 자음으로 나뉘어진 과학적이고 언어학적인 글자입니다. 그리고 적은 자모 부호로 효율적으로 적을 수 있어서 요즘 인터넷 시대에도 잘 맞습니다. 마치 세종대왕이 인터넷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말과 한국어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 속에서 우리 글 한글이 더 널리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 시민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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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는 실패했다...코로나 방역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

[안종주의 안전 사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파력이 기존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다른 우려 변이형보다도 더 강력한 델타 변이형의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르다. 델타형은 이미 변이형의 왕자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곧 전체 코로나 바이러스 위에 우뚝 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백신 접종 속도는 더디다. 모더나 백신 확보는 대국민 발표한 것과 달리 구멍이 나 8월 중 맞히기로 한 것이 반토막이 났다.

 

접종을 마친 국민의 비율은 15% 남짓하다. 부끄럽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최근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종사자와 입소자 가운데 무려 41명이 집단으로 돌파감염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 국민의 70%가 접종을 마쳐 집단면역만 형성되면 코로나 유행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예측은 사실상 사라졌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4단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확산 기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전문가들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하루 3천명, 4천명의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새로운 방역 전략, 전문가들마다 다른 목소리


 

전문가들 가운데는 더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려 사망자가 더 증가하지 않는 선에서 시민의 자율적 방역에 더 무게를 두는 완화 전략을 펴야 한다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집단면역 목표와 전략을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어떤 정책과 전략을 펼지 정부도 골치 아플 것이다. 시민들도 어디에 손을 들어야 할지 헷갈린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전략과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달성 등 많은 부분은 델타 변이형의 공격이 두드러지지 않았을 때 짜거나 세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한계가 이미 드러났다. 4차 대유행의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바이러스가 확산될 여지가 큰 여름휴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있으면 추석 연휴와 단풍놀이의 계절이 온다. 이 또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위험한 시기다. 그리고 지난 3차 대유행 때 보았듯이 겨울이란 환경은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안성맞춤이다.


 

이 모든 지표와 상황은 방역 패러다임을 새롭게 잘 전환기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아니 이미 늦었다. 방역 당국은 물론이고 전문가 등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공동체에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역 전략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굵고 짧게’ 끝내겠다는 전략은 완전한 실패로 판명됐다.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가 필요하다.

 

▲11일 저녁 서울광장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방역당국과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이날 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신규 확진자는 총 1천608명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휴지조각 된 4단계 거리두기, 새 버전 만들어야


 

코로나 유행 이후 고치고 고친 끝에 지금의 4단계로 나눈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7월 초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형해화(形骸化) 됐다. 기준에 맞춘 거리두기 단계 발령은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1단계와 2단계 기준에 속하는 지역인데도 3단계, 4단계 발령을 내린다. 3단계 요건인데도 4단계를 선제적으로 발령하는 곳도 많다. 2단계와 3단계, 3단계와 4단계를 마구 뒤섞어 정체불명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곳도 있다.

 

원칙이 사라진 곳에서는 불만만 넘쳐나고 효과는 반감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마찰할 소지만 키운다.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계별로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외우고 있지 못하다. 실제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자체마다 그때그때 다르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헷갈린다. 사회적 거리두기 안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두 번째로 집단면역 목표와 달성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영국의 백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백신을 맞아도 집단면역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도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해 정부가 집단면역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을 권고했다. 1차 접종을 확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50대 또는 60대 이상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 완료(2차 접종)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델타변이 대유행, 집단면역 전략 수정 불가피
 

 

인구 70%에 대해 접종을 마치면 감염병의 유행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이른바 집단면역 전략은 코로나 유행 초기인 지난해 봄에 나온 것이다. 이 전략은 변이형, 특히 텔타 변이형의 등장과 더불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돌파감염이 접종 백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그 선봉장을 델타변이형이 맡고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가 인정하는 백신 접종 모범국이다. 전체 인구의 약 60%가 두 차례 백신 접종을 끝냈다. 하지만 최근 델타 변이형이 크게 유행하면서 지난 9일 집계된 신규 확진자 수는 인구규모가 우리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음에도 6,275명이었다. 지난 2월 8일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감염자 증가에 따라 중증 환자 수와 사망자 수도 덩달아 늘었다. 집단면역이 최종 목표나 구세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초기 충분한 백신 확보에 실패하는 바람에 한두 가지 백신을 접종하는 이스라엘, 일본, 세 가지를 접종하는 미국 등과 달리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얀센 등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맞고 있다. 이들 백신은 종류에 따라 항체 형성률과 델타 변이형 대응 능력이 크게 차이난다. 우리는 연령별로도 접종하는 백신이 서로 차이가 난다.

 

백신별 접종 후 항체 지속성, 변이 대응력 등 조사해야


 

따라서 접종 완료 후 일정 기간 지난 뒤 중화항체 형성률과 지속 정도, 델타형 등 변이형에 대한 효과 등을 연령별, 백신별로 조사해야 한다. 그 결과를 근거로 해 맞춤형 3차 추가접종(부스터샷)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맞춤형 방역 메시지 소통을 해야 한다.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에 근거한 전략과 메시지 개발, 그리고 소통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중간 결과가 어떻다는 정부 발표는 없었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비변이형이든, 변이형이든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경우 돌파감염이 생기더라도 위중증으로 가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물론 델타형에 이어 람다형 등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는 유행이 지속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들 바이러스 가운데 돌파감염과 함께 독력(毒力)이 강한 종류가 생기는 것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끝으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몇 달 뒤, 특히 대부분의 접종대상자에게 백신을 2차까지 맞힌 뒤, 그리고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추가접종까지 한 뒤에는 또 한 번의 방역 전략 전환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기초 위에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등 방역 완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전환에는 반드시 전문가 의견뿐만 아니라 시민의 여론을 충분히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120717513793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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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피해 숱하게 봐놓고 ‘간첩 몰기’ 보도 여전”

국정원·경찰 합동 수사 사건들 연이어 혐의 공표, 언론도 간첩 단정 “반헌법적 국보법 거리두기 못해, 체제에 길들여져” 우려

‘청주간첩단’으로 알려진 사건이 최근 사례였다.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고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 등의 활동을 했다’며 지난 2일 3명이 구속된 사건이다.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 수사자료 내용이 매일 단독 기사로 보도됐다. “F-35 반대 일당 USB엔 北지령문·충성맹세 혈서 사진”, “충북간첩단, 국정원 요원들 실명도 알아냈다” “‘간첩 혐의’ 청주 활동가들 ‘북한 지령 받고 반보수 투쟁·정당·여성노동자에 접근’“ 등의 헤드라인이다.

지난 5월엔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의 구속과 ‘세기와 더불어’ 출판사 압수수색 사건도 있었다. 이 연구원은 반국가단체 표현물 소지 및 회합·통신 등 혐의로 구속됐다. 세기와 더불어 출판사는 ‘이적표현물’을 제작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세 사건 모두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 중인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합동 수사 사건이다.

진천규 대표는 이 사건들을 보도한 언론에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것을,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듣지도 않고 어찌 그리 단정적으로 보도하느냐. 대한민국 공권력이 지고지선의, 최고의 판단을 내리는 결정권자냐”라면서 “수십년 전의 인혁당이나 통혁당 사건 모두 재심에서 무죄판결 받았지만 그 시절엔 사형이 선고됐다. 사법살인이었다. 40년 징역 살고 나와 아직 고통속에 사는 이들도 있다. 40년 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뭐하느냐”고 물었다.

▲11일 오후 서울 615남측위원회 사무실에서 ‘언론보도와 국가보안법’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11일 오후 서울 615남측위원회 사무실에서 ‘언론보도와 국가보안법’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진 대표는 자신도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을 향해 “최근에 가장 많이 방북 취재를 다녀온 사람으로서, 어느 날 갑자기 (정보·수사기관이) 들이닥쳐 나를 가둬 놓고 2~3달 동안 아무것도 없이 ‘진천규 간첩’이라고 했을 때, 여러분 어떻게 보도하실 거냐”고 물으며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모든 분들이 나의 일이란 생각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색깔론·검열·편견·무지 모두 벗어나야” 제안

토론회 발제를 맡은 원희복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전 경향신문 기자)도 언론이 국가보안법에 길들여졌다고 진단했다. 원 이사장은 그 결과를 ‘3맹 9혹’으로 설명했다. 3개의 무지(3맹)는 북한과 미·중·일 등 주변국과 한반도 정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9혹은 “북한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거나 “한미 동맹은 지고 지선”이라거나 “반공이 정치적 효과가 있다”는 등의 “편견과 환상”을 말한다.

원 이사장은 한국 언론이 자국의 국가보안법에 거리를 두지 못하지만 타국의 국가보안법은 비판한다고도 꼬집었다. 2020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통과될 당시 한국 언론엔 비판 보도가 지배적이었다는 것. 반면 지난 6월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정원이 유관기관과 공조해 간첩을 잡지 않는다면 국민이 과연 용인하겠는가”라며 국보법 존치 주장을 했을 때 이 발언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다.

맹찬형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 부소장은 언론인의 자기검열 문제를 지적했다. “언론 보도에 대놓고 국보법을 적용하진 않지만 아이템 선정부터 코멘테이터(취재원) 선정, 기사 내용 작성이나 제목, 데스킹 등에서 검열이 작용한다”며 “‘편향되고 친북적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닌가’라고 문제제기할까봐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며 현 상황을 꼬집었다.

맹찬형 부소장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보도를 예로 들었다. 당시 제네바의 UN 유럽본부는 각 국가의 국기를 모두 내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기를 게양했다. 이를 본 맹 부소장이 ‘UN 유럽본부 조기 게양’이라고 기사를 썼으나 기사 제목은 ‘조기 게양 논란’으로 수정돼 보도됐다.

대다수 매체가 국가명을 객관적으로 쓰고 있지 않는 점도 예다. 1991년 양국이 UN 동시가입을 했음에도 북한의 공식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살려 쓰는 매체는 드물다. 맹 부소장은 “공식 명칭이 너무 길면 조선으로, 북은 우리를 남조선이 아닌 한국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옳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4월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4월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원희복 이사장은 “기자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급 취재원에 의존하거나 북에 대한 편견, 사회전반의 보수화 등의 문제를 기자 스스로 타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 이사장은 “기자들이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신념을 가지면서, 한반도 정치와 관련해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는” 평화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병호 내일신문 외교통일팀장도 한반도 정치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기자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장 팀장은 보도가 편향된 이유로 200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국에서 열렸던 ‘코리아 전범 재판’을 예로 들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굉장한 의미를 가진 사건을 연합뉴스만 짧게 단신 처리했다. 국보법과 무관하게 한국 언론 풍토가 한미관계에 대해 성역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보여준다”며 “차분히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많아져야 한다. 국민이 알면 바뀌니, 우리부터 공부하고 알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 교수는 “젊은 세대 경우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통일의 당위성보다 경제주의적 접근에 따라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오랜 반공 교육과 국보법이 요인이라 할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비롯된 변화기도 하다”며 “평화저널리즘의 내용도 한국의 고유 맥락을 반영해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제훈 한겨레 선임기자는 언론·출판물 개방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선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측 매체 홈페이지조차 접속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정부가 접속을 차단해서다. 이 기자는 “민주주의에서 정보개방은 매우 중요하다. 매체, 출판물에 대한 개방은 한국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북한이 ‘괴물’이라거나 접근하면 안 된다는 오래된 인식을 고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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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버스는 출발도 안 했는데…곳곳에서 충돌하는 국민의힘

경선 방식 두고 갈등 심화, 윤석열 “토론회 참석 적극 검토하겠다”지만 여지 남겨

이준석 대표가 지난 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간담회에서 경선 후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준표, 유승민, 박진, 김태호, 원희룡, 이 대표, 최재형, 안상수, 윤희숙, 하태경, 장기표, 황교안 후보. 2021.07.29. 자료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이 대선 경선을 시작하기 전부터 난타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초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신경전으로 시작된 갈등의 불씨는 경선 논의와 맞물리면서 다른 대선주자들과 당 지도부에게까지 옮겨붙은 양상이다.

최대 쟁점은 '경선 방식'이다.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는 지난 10일 회의를 통해 2차례의 컷오프를 거친 뒤 10월 8일 본 경선에 나설 후보 4명을 압축하기로 결정했다.

8명의 후보를 압축할 1차 예비경선은 봉사활동과 비전 스토리텔링 프레젠테이션(PT), 압박 면접, '올데이 라방(라이브 방송)' 방식으로 이뤄지며, 2차 예비경선은 압박 면접 형식의 청문 토론회와 방송사 토론회 등을 진행한다. 최종 4명의 후보가 경쟁하게 될 본 경선은 1대1 맞수토론회 등 총 10회의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예비경선이 시작되기 전인 오는 18일과 25일에는 각각 경제 분야와 사회 분야를 주제로 한 정책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경준위가 준비한 경선 밑그림이 발표되자, 윤 전 총장 측과 이 대표 사이 '페북 설전'이 벌어졌다. 윤 전 총장 측은 당 대선 후보로 공식 등록하기도 전에 토론회를 여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으로 전해진다.

 

'친윤석열(친윤)계'인 정진석 의원은 11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글을 인용해 "남을 내리누르는 게 아니라 떠받쳐 올림으로써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현실 민주주의"라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여름휴가 중인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돌고래를 누르는 게 아니라 고등어와 멸치에게도 공정하게 정책과 정견을 국민과 당원에게 알릴 기회를 드리는 것"이라며 "돌고래 팀은 그게 불편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앞서 정 의원은 "체급이 다른 후보들을 한데 모아 식상한 그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윤 전 총장을 포함한 당 대선주자들을 멸치·고등어·돌고래로 표현했는데, 이 비유를 그대로 따와 반박한 것이다. 여기서 돌고래는 윤 전 총장을 의미한다.

여기에 다른 대선 주자들도 가세하면서 당내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같은 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경준위는 경선 일정과 방식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사안에 대한 우리 당의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최고위원회다. 최고위는 후보 토론회를 포함해 경선의 일정과 방식, 프로그램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결정해주길 바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유승민 전 의원 측에서는 이 대표에게 힘을 실으며, 토론회 참석에 소극적인 윤 전 총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승민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은 오신환 전 의원은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 "당에서 정해진 공식적인 일정이나 경준위가 마련하고 있는 토론을 후보가 굳이 거부하면서 보이콧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것을 기피하고 거부하는 후보는 스스로 준비가 안 돼 있고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지도부 내에서도 의견 조율이 되지 않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tbs라디오 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우리 당의 당헌당규에 대통령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안은 최고위에서 의결하게 돼 있다"며 "합동 토론회를 하는 것은 (곧 출범할) 선거관리위원회의 업무"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경준위 본래 취지와 전혀 맞지 않고 권한 밖의 행위인데 그것을 끝까지 강행하려는 의도도 이해가 안 된다"며 "전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공격하는 마당인데 (당장 토론회를 열면) 던져놓고 구경하려는 것 아닌가. 굳이 경준위가 왜 이러느냐"라고 발끈했다.

논란이 커지자 윤 전 총장은 토론회 참석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윤 전 총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캠프 관계자로부터 아직 얘기를 못 들었다. 아마 당에서도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얘기가 있으면 제가 한번 (토론회 참석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다만, 윤 전 총장은 '경준위가 발표한 경선 방식이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저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캠프 측에서 같이 논의할 문제지만, 어떤 이슈나 방식의 검증에 대해 당당하게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정치 관행이라든지 여러 가지 고려할 사안이 있으니 구체화되면 캠프 관계자들과 논의해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일단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전 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공식적으로 통지받지는 못했지만 통지가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아직 공식적으로 통지 받지 못해서 캠프 내에서 의견 수렴이 안 된 상태다. 공식적인 통지를 받은 후에 더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 큰 국민의힘 재선의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1.08.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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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광 바이든 = 히틀러” 미국 규탄 상징의식 열려

평화수호농성단 | 기사입력 2021/08/1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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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한 바이든은 전쟁광이다. 마치 히틀러 같다”라고 주장한 평화수호농성단원.  © 평화수호농성단

 

▲ “한반도 전쟁 위기를 불러온 원흉은 미국”이라고 규탄 발언을 하는 평화수호농성단원.  © 평화수호농성단

 

‘한미전쟁훈련 반대, 대북적대정책 철회를 위한 평화수호 국민농성단(이하 평화수호농성단)’은 11일 미 대사관 맞은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연합훈련 강행 미국 규탄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이인선 평화수호농성단 단원은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한 바이든은 전쟁광이다. 마치 히틀러 같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 인형에 히틀러를 상징하는 콧수염을 그리고 ‘나는 히틀러’라고 적어넣었다.

 

이혜진 단원은 “한미연합훈련으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이 바로 그 원흉”이라며 주걱으로 바이든을 때리는 상징의식을 벌였다.

 

장규진 단원은 “바이든은 정세를 바라보는 눈이 잘못됐다. 대화하고 싶다면 전쟁훈련을 하면 안 된다”라며 바이든의 눈을 공격하는 상징의식을 벌였다.

 

유승우 단원과 현치우 단원은 ‘미군은 박멸해야 할 해충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바이든 인형에 살충제를 뿌렸다.

 

평화수호농성단은 오는 14일까지 활동한다. 

 

  © 평화수호농성단

 

  © 평화수호농성단

 

  © 평화수호농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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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언어가 갖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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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11   |  발행일 2021-08-11 제18면   |  수정 2021-08-1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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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극단 나무의자 대표〉
 

1920년대 어느 날,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는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I am blind)"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지만, 행인들은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그저 지나칠 뿐이었다.

그때 행인 한 명이 다가와 그가 들고 있는 팻말에 글귀를 "봄은 오는데, 나는 봄을 볼 수가 없답니다(Spring is coming but I can't see it)"로 바꾸어 놓고 사라진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냉담했던 행인들의 적선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이 두 개의 문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어서 냉담했던 행인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나는 시각장애인입니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이 문장은 걸인에 대한 정보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정작 걸인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겪는 삶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에 대해 그가 느끼는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봄은 곧 오는데 나는 봄을 볼 수 없답니다"라는 문장에서는 핵심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도 걸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또 그가 시각장애인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정서를 좀 더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가령 '봄'이라는 계절이 선사하는 다양한 체험을 떠올리면 만물이 소생하여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며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처지는 대조적이며, 팻말을 든 걸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안타까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바로 시의 언어가 가지는 힘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직접적인 정보 전달과 사실을 나열하는 것보다 감각적인 경험 내지는 정서를 구체적으로 환기하고 짧은 압축으로 행인들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시각장애인의 예화는 1920년대 뉴욕 거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그 장애인이 든 팻말의 문구를 바꿔 준 사람은 앙드레 불톤이라는 프랑스 시인이라고 한다.
김민선〈극단 나무의자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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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38]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모의전쟁, 톈진, 홍콩으로 본 미중대결 양상

이형구 | 기사입력 2021/08/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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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 존 하이튼 미 합동참모본부 차장이 7월 26일 신흥기술연구소 개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1. 미국, 중국과의 모의전쟁에서 완패

 

7월 26일 미국 공군 대장인 존 하이튼 미국 합동참모차장이 신흥기술연구소 개원식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미국이 작년 10월 대만해협에서 중국과 전쟁을 하는 시나리오를 돌려봤는데 “침소봉대 없이 비참하게 실패”했고 “중국이 미국을 쉽게 무찔렀다”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하이튼 합참차장은 미국의 군함과 전투기 등 미군 전력이 ‘앉은 오리(sitting duck)’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앉은 오리란 손쉬운 사냥감, 독 안에 든 쥐라는 의미다. 

 

하이튼 합참차장은 미국이 지는 이유로 중국은 미국이 어디에 집결해 있고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부터 알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하이튼 합참차장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네트워크가 끊겼다고도 말했다. 이는 중국이 EMP 공격 또는 해킹으로 미국의 전산망을 무력화했다는 의미이다. 

 

미군을 통솔하는 합참차장이 스스로 중국에 패배한다고 시인한 건 자못 충격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이튼 합참차장의 발표는 국방비 인상 명분을 쌓으려는 엄살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 있지만 중국에 진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먼저 대만해협 미중 모의전쟁에서 미국이 진다는 결과가 나온 건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다.

 

3월 27일 고위 국방 당국자 출신인 데이비드 오크매넥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남중국해를 배경으로 미국과 중국이 모의전쟁을 하면 미국이 진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오크매넥 연구원은 모의전쟁 결과 대만 공군이 몇 분 만에 파괴되고 태평양 지역 미 공군기지들이 일제히 공격을 받으며 미국의 전함과 전투기가 중국의 미사일로 무력화된다고 밝혔다. 오크매넥 연구원은 모의전쟁을 하면 미국이 중국에 ‘자주’ 진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중국에 진다는 모의전쟁 결과가 여러 번 나오는 걸 보면 미 합참차장이 국방비나 좀 올려보자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중국과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8월 3일 미국 싱크탱크가 주관한 아스펜안보포럼에서 미국의 대중국 강경론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리셴룽 총리는 “미국은 중국을 적으로 간주할 때 얼마나 무서운 적국이 될지 잘 모르는 것 같다”라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매우 위험하다”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중국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군사력이 고평가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최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황급히 군대를 철수시킨 일이 있었다. 미군이 얼마나 다급히 철수했는지 장갑차 같은 무기까지 그대로 놓고 야반도주했다고 한다. 굳이 장갑차까지 내팽개치고 서둘러 도망가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미군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전쟁시 중국에 참패한다는 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인 듯하다.

 

2. 톈진 회담

 

미국과 중국은 7월 26일 중국 톈진에서 고위급 회담을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톈진회담에서도 중국이 미국에 매우 고압적으로 공세를 폈으며 미국은 수세적인 태도로 체면을 구겼다.

 

중국은 회담 전부터 공세의 도수를 높여갔다. 왕이 외교부장은 미중 회담 이틀 전 “미국이 아직도 동등한 입장에서 다른 나라와 지내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면 중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미국에 가르쳐줄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을 단단히 혼내주겠다고 벼른 것이다. 

 

회담이 시작되자 중국은 미국에 공세를 퍼부었다. 중국은 미국에 3가지 마지노선을 통보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도전하거나 전복을 시도하지 말 것 ▲중국의 발전 과정을 방해하거나 중단하려 시도하지 말 것 ▲신장·티벳·홍콩·대만 등은 주권 문제이니 침범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톈진회담은 미중대결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었다. 과거 미중대결은 미국이 공격하면 중국이 대응하는 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국이 관세폭탄을 던지면 중국이 보복관세를 매기는 식이다. 그런데 이번엔 중국이 미국에 마지노선을 제시하면서 먼저 공세를 폈다.

 

한편 미국은 중국에 ▲홍콩, 신장, 대만, 남·동중국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중국이 코로나19 관련 조사를 거부한 데 대해 우려를 표했으며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역내 문제에 대해 협력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중국에 우려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맥빠진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미국은 공격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북한과 이란, 아프간, 미안마 등 문제에서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한판 대결을 펴야 할 시점에 중국에 손을 내밀고 도움을 구걸하다 보니 대결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중국은 부탁해오는 미국에 청구서를 내밀었다. 16개 개선사항과 10개의 우려 사항을 제시한 것이다. 16개 개선사항에는 공산당원과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비자 제한 해제, 중국 기업 등에 대한 제재 해제 등이 있었다. 10개 우려사항엔 미국 내 중국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 중국 대사관 직원에 대한 괴롭힘, 중국인에 대한 폭력 등이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도움을 받으려면 중국의 요구사항을 먼저 이행해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체면만 구겼다.

 

사실 북중관계를 보면 미국의 바람처럼 중국이 말한다고 해서 북한이 순순히 들어주리란 보장이 없다. 북한은 자신의 자주권을 침해하면 중국이나 소련과도 맞섰다. 미국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아무 소용이 없을 걸 알면서도 중국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북한과의 군사긴장을 늦추기 위해 북한에 꾸준히 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번번이 거절하고, 미국 누군가가 한반도까지 날아가도 문전박대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를 통해서 북미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북한은 한국의 대화제의도 거절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과 관계가 좋다. 북중 정상은 친서를 교환하기도 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중국에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미국에 북한과 소통가능한 창구는 중국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중국으로선 오늘날 공고한 북중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덕을 톡톡히 봤다. 북중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중국의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중관계가 좋으니 미국이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염치 불고하고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로써 중국이 회담에서 미국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톈진회담에서 중국이 미국을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대하고 있으며 미국이 맥을 추지 못하고 수세에 빠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지난 3월에 알래스카에서 열렸던 미중고위급회담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당시 회담에서도 미중 사이에 거친 설전이 오갔고 회담은 아무 결론도 도출하지 못하고 끝났다.

 

이 회담을 두고 중국의 환구시보는 중국 외교사에 기록될 회담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반면 미국은 차라리 팩스회담이 낫겠다며 우는소리를 했다. 미중 사이에 평가가 갈리는 건 알래스카 회담에서 중국이 성과를 거두었고 미국은 손해를 봤다는 걸 보여주었다.

 

중국은 알래스카 회담에서 미국에 당당히 맞서며 자신의 위상이 미국과 완전히 동급임을 보여주었다. 환구시보는 “몰락하는 미국이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강한 척하려 했던 회담”이라며 “중국을 막겠다는 것은 환상이고,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것은 몽상”임이 드러나는 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공격을 방어는 게 힘에 부쳤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직접 만나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팩스로 대화를 나누는 게 차라리 수월하겠다고 한탄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고위급회담을 마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자랑스럽다”라고 칭찬했다. 미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서 있다면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었을 때나 ‘자랑스럽다’라는 평가를 받을 법하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국의 공세에 굴하지 않고 맞섰다는 이유로 블링컨 국무장관을 칭찬했다. 바이든 대통령 자신도 이제 미국은 중국의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나는 표현이었다.

 

중국이 미국에 공세를 펴고 미국이 중국에 수세를 보이는 건 이제 대세가 된 듯하다.

 

3. 정치적 영역

 

미국과 중국 사이엔 다방면적인 대결이 펼쳐지고 있지만, 사실 중국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건 없었다.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 하거나 연방국가인 미국을 주별로 분리독립시키려고 이간질을 하거나 선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사회주의 체제·공산당 체제를 허물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중국에선 공산당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은 부정부패 현상과 강하게 투쟁하며 뿌리 뽑는 시책 등을 펴 중국 내 지지를 얻고 중국 체제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2019년 홍콩 시위에서도 미국은 중국을 분열시키고 혼란을 조장하려 했지만 중국은 홍콩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전보다 체제를 공고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 시위를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당시 홍콩 시위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민주화운동이라기보다는 중국을 반대해 영토를 떼내겠다는 내란에 가깝다.

 

홍콩 시위대의 주요 구호였던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란 구호 자체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다. 이 구호를 만든 에드워드 렁은 2016년에 분리독립 운동을 하다 구속된 사람이다. 렁은 2016년 당시 “(중국 당국이 우리를) 과격하다고 부르고 분리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분리독립을 추구한다는 걸 인정한 바 있다.

 

홍콩 시위의 배후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일 단체를 지원하고 배후조종한다. 한국에서 반북 탈북자단체들도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북전단을 살포한다. 최근엔 쿠바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 배후에도 역시 미국이 있다고 추정된다. 

 

홍콩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홍콩의 반중국단체 중 하나인 홍콩직공회총연맹은 2014년 “지난 7년간 미국민주주의기금(NED)의 핵심 기구 중 하나인 연대센터(Solidarity Center)로부터 54만 달러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20년 NED는 홍콩에 있는 반중국 단체에 204만 달러, 우리 돈으로 23억 원가량을 지원했다고 한다.

 

홍콩 시위 주도자들은 2019년 시위가 한창일 때 수시로 미국을 만나 시위에 대해 협의했다. 3월엔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홍콩 전 정무사장(총리 격)인 안손 찬을 만나 회담을 했다. 홍콩 민주당의 마틴 리는 2019년 5월 NED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났다. 데모시스토당의 조슈아 웡과 네이선 로는 같은 해 8월 홍콩 주재 미 영사와 몰래 회담했다. 그해 홍콩의 언론재벌 지미 라이가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펜스 부통령 등을 만났다. 지미 라이는 네오콘 싱크탱크인 민주주의방어재단을 방문해 “홍콩 시위대는 미국이 우리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왜냐하면 우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미국의 가치를 공유하고 당신이 중국과 치르는 동일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 안의 작은 섬이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통해 미국이 반중국 단체·인사들과 매우 밀접히 접촉하며 이들을 지원했고 반중국 인사들은 홍콩 시위를 중국과의 전쟁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반중국단체들은 행동에서도 민주화운동 단체라기보단 극우폭력 단체에 가까웠다.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를 만든 에드워드 렁은 중국 본토인이 홍콩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식으로 중국인 혐오를 조장했다. 에드워드 렁은 여성혐오도 이용했다. 홍콩 공원에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중년 여성들이 있었는데 에드워드 렁이 속한 단체는 이 여성들을 성매매 여성들로 매도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등 여성혐오 시위를 주도했다.

 

이들은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2019년 11월 11일에는 반중국 시위대가 친중국 홍콩 주민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죽이는 충격적인 행동까지 벌였다. 

 

반중국단체가 이렇게 극렬히 시위를 벌이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19년 10월 21일, 상당수 홍콩 시민이 극렬 시위에 반감을 지니고 있지만 시위대의 폭력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당시 홍콩 상황은 한국에서 적폐세력이 난동을 부리는 상황과 유사하다. 한국에서도 2019년 전광훈을 비롯한 태극기부대가 광화문-청와대 일대를 장악하고 난동을 피웠다. 이들은 심지어 순국결사대까지 모집해 청와대로 진격하려 했으며 실제로 경찰에게 각목을 휘두르고 행인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하는 등 폭력을 저질렀다. 때맞춰 윤석열 검찰도 청와대를 공격하고 언론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며 태극기부대에 합세했다. 

 

미국이 홍콩에서 벌인 일도 이와 비슷한 공작이다.

 

홍콩에서도 시위대가 난동을 피웠고 사법부는 홍콩 시위대를 감쌌다. 2019년 6월부터 9월까지 홍콩 경찰은 1,300명을 체포하고 그중 191명을 경찰관 공격과 폭동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그중 164명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마치 전광훈을 풀어주면 또다시 광화문에서 태극기집회를 열게 뻔한데도 사법부가 전광훈을 석방해주었듯, 보석으로 풀어주면 또다시 홍콩에서 폭동을 일으킬 게 뻔한데도 보석으로 풀어준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경찰이 검거하면 판사가 풀어주는 식”이라고 홍콩 사법부를 비판했고 친중 단체 ‘디펜드 홍콩 캠페인’은 사법부의 잇따른 보석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홍콩 언론도 반중 행보를 보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범죄자 중국 송환이나 홍콩보안법에 찬성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750만 홍콩 주민 중 300만 명이 홍콩보안법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고 홍콩보안법을 지지하는 집회도 동시에 열렸다. 하지만 홍콩 언론들은 이런 소식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시위대의 소식만 대서특필했다.

 

일례로 홍콩 시위 당시 홍콩 경찰관이 발포해 시위대가 총에 맞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언론은 경찰이 발포했다는 점만 부각해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홍콩 시위대 여럿이 경찰을 에워싸고 총을 빼앗으려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경찰이 시위대에게 총을 빼앗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경찰이 저항하고 경고를 했음에도 시위대는 경찰의 총을 빼앗으려 했고 그 결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홍콩 언론들은 이런 사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또한 홍콩보안법 1호 기소자가 나왔을 때도 언론들은 홍콩 시민이 구호를 외쳤을 뿐인데도 처벌받았다는 식으로 중국 당국이 표현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는 듯 보도했다. 하지만 홍콩보안법 1호 기소자는 단지 구호만 외쳤던 게 아니다. 구호가 적힌 깃발을 단 오토바이를 끌고 돌진해 경찰의 저지선을 3개나 돌파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 3명이 크게 다쳤다. 이건 테러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공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홍콩보안법이 실행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홍콩은 시위도 잦아들고 안정세로 들어서는 듯 보인다. 이제는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도 홍콩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홍콩 시위 당시엔 홍콩이 아시아 금융 허브 기능을 상실할 거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우려했던 대규모 자금 유출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미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홍콩의 금융시장은 안정을 유지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홍콩에 친미세력을 공들여 키워놨는데, 2019년 이후 이들의 입지는 줄어들어 더 이상 기를 쓰지 못하고 청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중국 입장에서는 홍콩 정세가 안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분열시킬 거점을 잃었다.

 

4. 결론

 

이렇게 군사, 외교, 정치 관계를 들여다보면 미국이 중국의 우위에 선 상황은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중국이 대만해협에서의 대중군사전략을 무력화시키고 압도한다. 외교에서는 아직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는 건 아니지만 중국이 고압적인 태도로 미국에 공세를 펴고 미국이 수세로 전환된 형세임이 분명해졌다. 미중관계에선 이미 역전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뜨거운 감자는 대만이다. 대만에서의 충돌 가능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모의전쟁을 해보았다는 것 자체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이 커졌음을 반증한다.

 

최근 일본이 대만 문제에 끼어들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중국이 일본에 일침을 놓은 일이 있었다. 글로벌타임스는 8월 6일 “일본 자위대가 감히 더 도박을 한다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자위대를 제거할 것이다. … 일본에 시대가 바뀌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일본의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거리에는 일본제 자동차가 많이 있고, 많은 일본 제품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거래하는 데 주력하고 14억 중국인과 맞서겠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일본을 혼내기도 하고 어르기도 한 것이다. 대단히 여유만만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다. 

 

일본으로선 고민이 들만하다. 일본이 아무리 친미국가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얻는 것도 별로 없다. 오히려 미국은 자기 살자고 일본을 약탈했다. 미국은 1980년대에 심각한 무역적자에 빠지자 무역적자를 매우기 위해 1985년 플라자합의를 맺어 엔화 가격을 강제로 폭등시켰다. 엔화가 폭등하자 일본 상품 가격이 오르고 수출 경쟁력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 결과 일본은 30년 동안이나 불황을 겪었다. 트럼프 미 행정부 때에도 일본은 트럼프의 강요에 못 이겨 필요도 없는 미국 옥수수 275만 톤을 강매당하는 등 미국에 약탈당했다. 

 

경제이득은 미국보다 중국과 함께 했을 때 더 전망성이 있다. 이런 마당에 일본이 미국을 따라 대만해협에서 중국과 전쟁을 꼭 해야 하겠는가. 이러니 중국이 때론 고압적인 태도로 일본을 압박하고 때로는 아주 여유 있는 태도로 일본을 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만약 일본이 중국 편으로 넘어가면 큰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친미국가들이 중국이나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터키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 무기를 사고 독일은 미국이 반대에도 러시아와의 가스관 연결을 강행했다. 미국은 중국 화웨이를 제재했지만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IT시장에서는 여전히 성능이 우수하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충실한 심복 노릇을 했던 일본이 중국에 넘어가면 미국의 위상은 그야말로 폭삭 무너질 수 있다. 

 

대만에서의 미중대결은 더 지켜보긴 해야겠으나 대체로 중국의 우세가 점쳐진다. 일단 군사적으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고 있으니 정치나 외교에서도 중국이 승기를 잡게 되어 있다. 국가 간 대결의 핵심은 군사대결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중대결의 추세는 중국의 우세 미국의 열세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판을 바꿀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추세를 뒤집긴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관계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에 선다면 이는 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사회주의·반미국가는 더욱 기세를 올리고 미국이 패퇴하는 세계질서의 정세의 흐름을 굳히는 커다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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