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50년 전과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오늘...한 해고 택배기사의 외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1/13 08:38
  • 수정일
    2020/11/13 08: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은 오늘날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 목소리로 이어진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11-13 06:52:56
수정 2020-11-13 06:52:56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 영정.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 영정.ⓒ양지웅 기자  개발과 성장이 최우선 가치였던 1970년. 전태일은 햇볕조차 들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10~15살 어린 여공들이 하루 16시간가량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뒤늦게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전태일은 동료들과 바보회·삼동친목회 등을 결성해 평화시장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등 어린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1970년 10월 경향신문에 “나이어린 여공이 좁은 방에서 하루 16시간이나 고된 일을 하며 보잘 것 없는 보수에 직업병까지 앓고 있어 근로기준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는 짤막한 기사가 났다. 전태일과 동료들은 이 짧은 기사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시장에서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일자리를 잃었다. 그나마 노동청으로부터 근로감독을 약속받고 희망을 품었으나, 이 또한 국정감사 기간이 지나자 노동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나 평화시장에선 누구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직시한 그는, 그해 11월 13일 동료들과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 시위를 벌였다. 시위도 경찰의 제지로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그는 휘발유를 자신의 몸에 붓고 불을 붙였다.

그때 전태일은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의 외침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절실하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런다. “그래도 50년 전이랑 지금은 다르지”라고. 맞다. 많이 달라지긴 했다. 광복 후 선진국의 노동법을 그대로 번역만 하다시피 들여올 때만 해도 사용자들은 “너무 선진화된 법”이라며 반대했지만, 오늘날 사용자들은 아예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직군을 만들어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고용형태의 변화다. 오히려 특수고용직 등 새로운 직군의 종사자가 많아지면서 근로기준법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의 결과로 나타나는 잇따른 노동자의 죽음은 ‘50년 전 상황으로 회귀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준다. 대표적인 게 특수고용직이 제도화된 택배다.

새벽에 일어나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버텨내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지만, ‘주 40시간’ 규정이 명시된 근로기준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노조를 만들어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려고 했더니 계약을 해지해 버린다. 누가 봐도 부당해고다. 그런데도 ‘개인사업자에 가까운 특수고용직’이기에 근로기준법에 접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게 아니니, 부당해고가 아니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가고 있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연대노조)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택배연대노조는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올해 전태일 재단의 ‘전태일 노동상 단체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散華)한 지 50주년인 오는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전태일 재단은 이 상을 택배연대노조에 수여할 예정이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자료사진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자료사진ⓒ임화영 기자

수많은 태일이가 세운 노동조합
“전태일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택배연대노조는 2017년 1월 8일 ‘또 다른 전태일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노동조합이다.

2016년 중순경 택배기사들은 ‘택배기사 권리찾기’라는 모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장시간 노동 문제와 택배사·대리점의 갑질 등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처우개선을 위해선 회사와 교섭을 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선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본 택배기사들은 그해 말부터 노조설립을 준비하고 다음해 1월 8일 지금의 택배연대노조를 창립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노조설립을 준비하는 택배기사가 모여 있는 대리점이 갑자기 폐업을 하거나, 부당한 계약 해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특수고용직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허점을 이용한 부당해고였으며, 노조와해였다.

김태완 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또한 노조를 만들다가 일자리를 잃은 해고자다. 당시 CJ대한통운은 김 위원장이 있는 대리점에서 노조가 세워질 기미가 보이자 대리점을 통째로 폐점시켰다고 한다. 이날로 김 위원장과 10여명의 동료 택배기사들은 모두 해고자가 됐다.

지난 11월 10일,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의 해고투쟁 집회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해고 당시를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 “노조하기 전 ‘고용안정’이라는 말은 책에서만 접한 단어였다. 이게 왜 중요한지 잘 몰랐다. 그런데 막상 당하고 보니, 해고는 파괴였다. 2016년 12월에 노조를 만들다가 해고가 됐는데, 그해 12월 2일에 둘째가 태어났다. 우리 집에 수입은 저밖에 없었고, 형제들도 다 어려워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날을 일주일 앞두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대학교 친구들에게 연락 돌리며 돈을 빌리고. 이 생활을 한 3개월 했다. 내가 노조를 하는 건지 돈 빌리러 다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해고는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그는 “지금도 아내와 첫째는 내 눈치를 살핀다. 매일 저를 위로한다”며 “해고는 한 사람을, 그리고 그 가정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이 국가로부터 인정돼 택배연대노조가 합법노조가 된 지금도, 김 위원장의 복직 문제는 풀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그 또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를 CJ대한통운과 교섭할 수 있게 되는 날 반드시 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그를 만난 현장도 사실 특수고용직 해고 문제를 다루는 집회였다.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인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은 노조 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던 올해 3월 18일 홈플러스 운송사로부터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했다. 그는 다행히 “이 사건 근로자와의 운송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을 받고 복직의 기회를 얻었으나, 최근 복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시장이 만들어낸 특수고용직이란 신분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3조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 징벌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사용자는 해고나 마찬가지인 계약해지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계약해지 부당” 지노위 결정 후 복직 준비 중 또 계약해지된 홈플러스 배송기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처한 상황 탓인지, 김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여전히 절실하다고 말했다. 집회가 끝나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노동자들이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무권리 상태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권리를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불법행위로 치부되고 해고된다”며 전태일의 구호가 오늘날에도 절실한 까닭을 설명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에서 택배노동자 김모씨가 과로사로 사망 전 동료에게 남긴 문자 메세지 앞에  택배 노동자가 앉아 있다. 2020.10.24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에서 택배노동자 김모씨가 과로사로 사망 전 동료에게 남긴 문자 메세지 앞에 택배 노동자가 앉아 있다. 2020.10.24ⓒ정의철 기자

특수고용노동자 노조의 탄생

전태일의 산화가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노동문제에 큰 관심을 불러오고 수많은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것처럼, 택배연대노조의 투쟁 또한 다른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거름이 됐다.

택배연대노조가 2017년 11월 3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은 이래,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배달노동자들의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이 노조설립필증을 받았고, 회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던 특수고용노동자인 코웨이 방문판매노동자들 또한 올해 5월 13일 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았다. 마사회 경마기수들과 경륜 선수들도 올해 노조신고필증을 받았다.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는 활발한 노조 활동을 통해 처우개선과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촉구하는 기자회을 마친 뒤 택배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이 있는 9월 물량이 평소보다 50% 이상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택배 분류작업 인력 확충 등 택배물량 증가에 대한 택배사와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2020.09.07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촉구하는 기자회을 마친 뒤 택배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이 있는 9월 물량이 평소보다 50% 이상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택배 분류작업 인력 확충 등 택배물량 증가에 대한 택배사와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2020.09.07ⓒ김철수 기자

“뭉치면 주인 되고 흩어지면 노예 된다”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992년 택배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택배물량은 연평균 12.1%씩(2014년 16억개→2016년 20억개→2018년 25억개) 증가했다. 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사태로 수요가 폭증했다. 택배물량 폭증은 안 그래도 과로노동이 심각한 택배기사의 고강도·장시간 노동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문제는 잇따른 택배기사의 과로사로 나타났다. 올해 사망한 택배기사 10명 중 9명은 모두 심혈관질환으로 쓰러져 숨졌으나, 대부분 산재보험 적용에서도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가 국민 보편서비스로 자리매김 하는 양적 성장 이면에 ‘택배기사의 과로사’라는 그늘이 짙어지고 있던 것이다.

택배연대노조는 이 같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고, 시민들도 이런 택배노동자들의 아픔에 ‘늦어도 괜찮아 해시태그 달기’ 등 다양한 운동으로 공감을 표했다.

덕분에 택배기사들의 처우개선 대책이 나오고 있다. 12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도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의 장시간·고강도 노동, 불공정 계약 관행, 산재보험 적용제외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속적인 처우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택배사의 외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단체교섭 등이 그것이다. 택배를 비롯해 특수고용직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고 있는 업계 대부분은 이들을 본인들이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교섭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택배연대노조가 출범하고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지 3년이 넘었건만, 택배사들은 여전히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택배기사들과 대면하는 교섭 자리를 회피하고 있다.

2020년 기준 5만4천여 명의 택배기사 중 노조에 가입한 인원이 4천여 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궁극적으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상시 해고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문제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과제가 많긴 해도, 택배연대노조는 그래도 희망적이다. 비록 위원장의 해고 문제는 아직 풀지 못했지만, 수많은 해고 문제를 해결해 왔고,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며 잃어버린 권리를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료를 지키는 일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며, 사업장 밖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임을 자각하고 행동한 덕택이다. 집회에서 김 위원장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선 내 동료의 권리가 중요하다. 동료의 권리를 찾아낸다면 내 권리도 찾을 수 있다. 동료가 해고된다면 그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뭉쳐야 한다. 뭉치면 주인 되고 흩어지면 노예 된다. 우리가 수많은 해고 투쟁을 겪으면서 얻은 진리는 이것이다.”

 

이승훈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안재구 선생님을 기리며 2

[연재] 주미경의 ‘살구나무를 찾습니다’ (28)

 

 

  • 기자명 주미경 
  • <span> </span>
  •  입력 2020.11.12 09:54
  • <span> </span>
  •  댓글 0
 
 

 

 

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출판기념회에서. [사진-통일뉴스]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출판기념회에서. [사진-통일뉴스]

어떤 현대사

안재구 선생님의 두 번째 이야기는 당신의 나이 팔순이 다 되어가는 때에 이르러 이어진다. 첫 번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 후 14년이라는 세월이 또 흐른 후의 일이다. 사람의 나이 팔순이면 모든 일을 다 놓아버리기에 족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다시 펜을 들고 투쟁의 전선에 서있었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팔순을 바라보는 선생을 집필이라는 힘들고 고된 일로 떠밀었던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지금 세상에 대한 절망이고, 어쩌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자책이며, 또 어쩌면 그 속에서도 기어이 버릴 수 없는 후대들에 대한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선생은 이렇게 쓰고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커다란 바위처럼 억눌린 일제 식민지 억압의 굴레가 풀리고 누구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평등한 새나라가 건설되리라고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나랏일에 참여하고, 누구나 식・의・주의 걱정이 없고,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고, 누구나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리라고 바랬는데, 오늘날의 세상으로까지 되고 보니 우리들은 모두 다 헛살았다고만 생각되어, 차마 후대들에게 머리조차 들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 모양으로 되고 말았는가?」

이것은 선생이 지금 나라의 모습에서 떠올린 질문이며, 또한 역사와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선생의 고된 집필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 떠안은 책무였을 것이다. 팔순이라는 나이를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되감아 펼치기라도 한 듯, 원고지 2,000여매에 달하는 두툼한 이야기 「어떤 현대사」는 여기서 출발한다.

책으로 출간된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제1권 표지.
책으로 출간된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제1권 표지.

뒤집어진 해방

이야기는 재판정에서 시작된다. 재판의 피고인은 당신의 할아버지, 해방의 날 북을 울리는 청년들에 둘러싸여, 만면에 웃음을 가득 채우고 서문다리를 건너오던, 볕에 그을린 붉은 얼굴의 ‘할배’다. 그 얼굴은 간데없고, 피고인이 되어 서있는 법정은 일제 때의 그것과 다름없다.

해방이 되자 맞아죽지 않으려 도망쳤던 일제 때 검찰청 서기가 검사자리에 앉아 할아버지를 윽박지른다.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밀양군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병든 몸으로도 고단함을 기쁨으로 알고 불철주야 일하시던 할아버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해방의 기쁨도 해방된 그해의 연말이 가까워오자 조선의 남반부에 진주한 미군이 군정청을 설치하여 점령군으로 행세하고, 일제 통치의 주구들을 다시 불러 군정 통치의 하수인으로 고용했다. 일제 때 하부 관공서의 관리쯤 했던 자들은 면장도 되고 군수도 되었고, 경찰서의 순사하던 자들은 간부로 올랐으며 부장쯤 했던 자들은 서장이나 도 경찰부의 높은 자리에 올라 다시 해방된 조선 사람을 일제의 대신 미제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선생은 이와 같이 쓴다.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남 땅 방방곡곡에서 예외없이 한결같이 일어났던 일이다. 해방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던 일제와 친일파들이 쫓겨가고, 잡혀가고 떠나갔던 진짜 주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도적인 반일 애국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제 손으로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써 일하던 때였다.

미군점령은 그 세상을 다시 뒤집는 것이었다. 그들이 소환한 친일파 주구들이 되돌아오고, 믿을 수 없게도 일제 때와 방불한 세상이 먹구름처럼 덮쳐온다. 사람들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세상이 두 번 뒤집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열세 살 아이의 해방

선생은 그것을 ‘석 달 동안의 해방’이었다고 쓴다. 선생은 열세 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해방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다. 새 나라를 세우려는 열띤 마음을 갖고 거리에 모여드는 사람들, 조선독립을 축하하는 벽보와 급조된 태극기의 물결, 고향 하늘에 울려퍼지는 농악소리와 거리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 조선왜놈들에 대한 농민들의 하늘을 찌르는 분노의 분출, 누구나 보았던 이러한 것들 외에 선생만의 특별한 기억도 있다.

「조선어철자법통일안」을 읽으며 한글 맞춤법을 익히던 기억, 아침밥만 후딱 먹고 거리에 나가 어른들의 모임에 기웃거리던 기억, 동무들과 함께 독립과 새 나라에 대해 주고받던 이야기들, 거기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 그리고 사회주의의 뜻을 익혀나가던 기억, 동무들과 쏘다니다가 아무 집에 가도 모두 반가워하고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던 기억, 어디를 가도 할아버지 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기억들이다.

달라진 학교의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다. 교문 오른편에 왜놈 천황의 조상을 모셨다는 ‘호안덴’도 없어지고, 전시물자생산으로 아이들을 내몰던 실습장도 없어졌다. 날마다 절하기를 강요했던 왜놈 천황이 산다는 ‘니쥬바시’ 사진도 없고, ‘그놈의 일장기’도 없고 날마다 외우게 했던 ‘고고꾸신민노 찌까이(황국신민의 다짐)’도 없다.

조선말을 하다가 죽도록 얻어맞았던 교실에는 조선말이 가득하고, 소년 안재구의 눈에서는 끝내 눈물을 나고야 만다. 날마다 새로 전학을 오는 동무들, 나라 안 먼 곳에서, 일본에서, 만주에서, 북해도 탄광에서, 사하린 얼음판 삼림에서, 대만에서, 남양에서, 해방된 조국을 찾아온 동포들의 아이들, 거기서 태어나 조선말에 서툴어도 아이들은 놀리면서 어울리며 하나가 된다.

선생은 해방을 일러, ‘새 세상에 새로 태어난 듯하다’고 적는다. ‘이때만큼 살맛나는 때는 없었다’고, ‘정말 신나는 세상이었다’고도 적는다. 추석을 앞두고 벌어진 고향동네의 해방잔치는 그 짧았던 세상의 절정을 묘사한다. 돼지를 잡고 떡과 묵을 치고 막걸리를 빚어 마련한 잔치였다. 글을 써나가는 선생의 눈에는 해방의 기쁨으로 활짝 펴진 할배, 아재들의 얼굴과 어깨를 우쭐거리며 신명이 난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마련한 국밥과 술로 점심을 걸판지게 먹고 온 동네가 떨쳐일어나 「농자천하지대본」 서낭기를 앞세우고, 북소리 장구소리를 둑닥거리며 농로를 따라 간다. 「인민공화국」 선포기념과 「인민위원회 결성대회」가 열리는 면소재지 초동학교를 향해 가는 것이다.

절정은 파국을 내포하는 것일까? 미군 비행기가, ‘조선독립 만세’와 ‘조선인민공화국 만세’와 ‘3.7제 소작료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 머리 위를 가로지르며 하얗게 전단을 뿌린다. 전단은 점령군의 포고문이다. 전단에는 ‘조선은 당장에 독립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은 북위 38도선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진주한다.’ ‘38선 이남의 조선인민은 미군 통치에 절대 복종하라’는 포고령 1호, 연합군의 재산 생명 보호령으로 위반자는 사형까지 한다는 포고령 2호가 적혀 있다.

“왜놈들은 전쟁에 져서 조선 땅에서 쫓겨가지만 ‘호랑이 피하자 단범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미국놈이 들어오면 그 놈들이 이 나라에서 잘 물러날까. 총칼 들고 들어온 놈은 꼭 총칼 든 놈 행세를 하는 법이거든.” 구한말 무관학교를 나와 참위를 지낸 윗집 큰할배가 선생에게 했던 염려이다. 전단은 그 염려가 현실이 되어간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활짝 펴졌던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새 세상은 무엇이었나?

짧았을지언정, 해방의 세상을 살았던 사람은 과거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해방이 무엇이고, 새 세상이란 어떤 것이며, 우리가 세워야 할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명료하게 알았던 사람들, 그들은 결코 그 세상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수 없다. 책은 선생의 평생을 관통하는 새 세상을 향한 열망과 투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써내려 간다.

새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당시 온 나라에 자주적으로 조직된 「인민위원회」를 기초로 수립했던 국호 속에 압축되어 있다. 「조선인민공화국」이다. 또 그것은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 속에 그려져 있다. 그것은 제일 먼저 ‘조선사람이 주인인 나라’이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평등한 나라’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라를 세우자면 ‘미국놈들과 싸워 2차 해방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새 세상은, 설을 앞둔 큰 장날에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환영 밀양군 인민대회」에 나와 햇볕드는 뚝 밑에 앉아 두런두런 나누는 할배들의 대화 속에 들어있다. 그것은 농민이 해방되는 세상이다. 농민의 해방은 땅에 있다. 할배들은 땅이 생겨야 농군들이 정말로 나라백성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새 세상은 농민들이 들고 행진하는 깃발 속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농민들의 수백 년 염원이 담긴 구호다 “정권은 인민에게로, 공장은 노동자에게로, 토지는 농민에게로”,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 실시하라!”, “미소공위 성공시켜 임시정부 수립하자!” 이제 막 도착했다고 여겼던 새 세상, 억눌리고 핍박당하며 자나깨나 그려보던 새 세상, 그것은 ‘내 나라’였다.

세상 속으로

가난과 시련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하는 법이다. 당시의 조선 아이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어른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선생의 정신적 성장은 놀라운 것이다. 할아버지 슬하라는 환경과, 타고난 발군의 영리함과, 많은 양의 독서를 통해 도달한 높은 지적 수준과, 거기에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과 사람에 대한 사려깊고 섬세한 감수성이 더해져 선생은 너무나 일찍 격랑의 세상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일제말기의 혹독한 삶을 날려버린 해방의 기쁨이 미군정 하에서 다시 식민지로, 가난으로, 억압으로 전락하는 것을 온 몸으로 목격하며 선생은 성장한다.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3·7제 소작료를 관철하려던 종조부 유천할배가 테러를 당하고, 「인민위원회」가 강제 해산되고 치안유지법이 재등장하면서 할아버지가 예비검속으로 잡혀간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세월이 다시 시작되고, 점점 험악해 가는 세월 속에서 선생은 중학교에 진학한다.

1946년

1946년이었다. 불과 한 해도 못되는 사이에 해방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미군정의 신한공사가 일제가 강탈했던 조선사람의 땅을 차지하고 농민들에게 소작료를 받아갔다. 모리배들을 동원해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 식량사정이 극도로 나빠지고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온 나라에 ‘쌀을 달라’는 아우성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강제적 식량공출은 도처에서 농민들과의 충돌을 일으키면서 농민들의 원한을 쌓아갔다.

사람들이 기대를 버리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미·소공위」가 공전되는 가운데, 미군정의 폭압적인 재식민지화는 멈추지 않는 기관차처럼 온 나라를 깔아뭉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민주진영 언론들의 강제 폐간과 대대적인 검거선풍, 미군정의 지원을 받는 우익폭력집단들의 무자비한 테러와 폭력, 식민지교육정책을 위해 고안된 「국대안」이 사람들의 분노를 쌓아갔다.

온 나라를 뒤덮은 가난과 분노는 미군정이 일제 하수인들을 소환해 조직한 군정관리들과 군정경찰의 폭력적 탄압 속에서 봉기로 터져오른다. 「9월 총파업」과 대구 「10월인민항쟁」의 깃발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946년은, 조국의 38도선 남반부를 강점한 미제가 「모스크바 3상회의결정」을 파탄내고 남조선을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미제의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로 재편하려는 기초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던 해였다.

미제는 남조선을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 즉 신식민지의 경제적 기초를 형성하기 위하여 일제가 조선민족으로부터 강탈한 토지를 다시 점령군 군정청의 이름으로 강탈했고, 일제가 조선민족의 경제를 파탄내고 착취와 수탈로써 차지한 각종 동산・부동산을 적산이라는 이름으로 군정청 적산관리청으로 끌어 모아 탈취하여 매판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1946년은 미제가 조국의 남반부를 그들의 신식민지로 재편하려는 강도적 압제의 해였고, 이에 대한 남조선 민중의 새로운 저항을 고하는 새로운 민족해방의 시작의 해였던 것이다.」

선생은 1946년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선생은 중학생이 되어 험한 세상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디딘다. 그것은 2학년 선배의 권유로 6명의 1학년생들이 모인 작은 독서회 모임이다. 당시의 중학교는 졸업하면 초급교사의 자격이 생기는 상급 교육기관이었다. 학생들의 연령도 다양해서 동급생의 모임이었지만 모두 선생보다 두어살 위의 학생들이었다. 모임은 학습과 함께 첫 벽보투쟁을 출발로 새 세상을 향한 노를 저어가기 시작한다.

체포와 고문을 견디고

한 주에 두 차례 하는 학습과, 거리에 구호를 써붙이는 벽보투쟁과, 장날 읍사무소 앞에서 시도하는 가두연설이 다음 해에 「밀양중학교 학생자치회」를 결성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자치회의 활동으로 전교생이 「메이데이 기념식」에 참가한 사건을 빌미로 선생은 퇴학을 당하고, ‘교장배척운동’의 투쟁수위를 올려 학교 밖으로 확장시키는 벽보투쟁 함화투쟁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밀양경찰서 유치장에 갇힌다. 첫 번째 수감이다.

무지막지한 구타와 비행기 고문, 물고문이 뒤따랐다. 14살 아이에게 말이다. 「일제헌병경찰」이 조선사람에게 가했던 악랄한 고문을, 그 앞잡이들이 이번에는 「미제군정경찰」이 되어 14살 아이에게까지 악착하게 들이댄다. 하지만 선생은 18일 간의 그 고문을 모두 견디고 함께 일한 동료들을 끝까지 보호한 채 석방된다.

이 경험은 선생의 삶에 있어 중요한 결절점이었으리라. 고문은 인간을 육체적으로는 물론, 더욱 혹심하게는 정신을 파괴하는 악행이다. 그래서 고문을 견딘다는 것은 고통과 함께 공포와 싸우는 일이 된다. 사람은 흔히 고통보다도 공포에 굴복한다.

공포란 고통에 대한 예상과, 더 크게는 고립감으로부터 온다. 자신이 세상과, 또 사람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은 공포를 무력화시키고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된다.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의 힘이고 사상의 힘이다. 그래서 고문을 견디는 것은 바로 파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선생은 그것을 견뎠다. 고문을 견디는 일에 대한 보상은 떳떳함이다. 사람의 내면에 있어 떳떳함보다 강한 힘은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은 당사자에게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자긍심을 갖게한다. 혹독한 고문을 견디고 나온 열네살 소년에게, 잡혀가고 쫓겨다니면서도 굴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삶을 일상으로 보며 자란 소년에게, 좌절이란 없다. 선생은 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았지만, 이후 선생의 행로는 이러한 정황을 넉넉하게 짐작하도록 한다.

소년 선전대 일꾼으로

석방되어 나온 선생을 할매와 식구들이 모두 눈물로 맞아주지만, 함께 퇴학당한 동무들은 거의 다 부산, 마산으로 전학가고 할 일도 없어졌다. 짧은 공백의 시간이다. 하지만 선생에게는 공포도 좌절도 갈등도 없다. 처음으로 찾아간 대구의 그림같은 외갓집에서 딴 세상처럼 보낸 한 달도 도피가 아닌 재충전의 시간이다.

신문을 통해 임시정부수립을 놓고 결사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곧장 머리에 떠오른 것은 동지들과 할배다. 한가하게 보낸 시간을 자책하며 바쁜 마음으로 밀양에 돌아온 선생은 곧장 소년선전대 일꾼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7월27일, 「미・소공동위원회속개축하와 민주주의임시정부촉구를 위한 밀양군인민대회」에 운집한 십만에 달하는 밀양군민은, 당시 인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지지하는가를 선명하게 알려준다. 그것은 ‘자주독립’과 ‘토지개혁’과 ‘민주개혁’이다. 선생은 선전대원으로 대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운동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검거와 테러와 대탄압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의 음모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미군정은 한 손으론 미.소공위를 파탄내고 조선문제를 무도하게 유엔으로 끌고가면서, 또 한 손으론 애국세력에 대한 가일층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한다. 놈들이 잡으려고 혈안이 된 할아버지의 행방은 오리무중인 채, 필시 선생과 아버지에게 미칠 검거를 피해 온 식구가 대구 구지의 외가로 피신한다. 검거와 테러를 피해 달아나고 지하에 숨어든 애국세력의 겨울은 혹독했지만, 그 모든 탄압과 난관을 무릅쓰고 다음 싸움은 준비되고 있었다.

1948년

1948년이었다. 반만년을 두고 하나로 살아온 민족을 둘로 갈라버린 해, 이후 70년을 넘어 지속되는 나라의 정체성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지어버린 해, 애국과 매국, 분단과 반분단의 판가리 혈전이 궤도에 오른 엄중한 해였다.

섣달 그믐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없는 가운데 식구들이 모여든다. 여러 할매와 할배, 아재와 아지매들이 신년제사를 준비하느라 왁작 웃음꽃이 피어난다. 연계소집에서의 마지막 제사였다. 도동할배는 조직이 무장할 시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독서회에서부터 동지가 되었던 강성호는 반분단의 문제가 민족지상의 과제로 대두되었음을 정리하고 연락방법을 약속한다.

“입학결정 31일 속래” 구지에서 강성호의 연락을 받은 선생은 밀양으로의 떠남을 준비한다. 구지가 피신의 장소이고 휴식의 장소라면, 밀양은 투쟁의 현장이고 조직원으로서의 임무가 기다리는 곳이다. 밀양으로 가는 길은 할배 할매에게로 가는 길이며 투쟁으로의 복귀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설득하고,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집안일을 거들고 동생들을 돌보며 선생은 가슴이 메어진다.

16세 소년 안재구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2년 전 중학교 때의 활동이 어마지두에 벌어진 일이었다면 이제부터 가는 길은 결단과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가족과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별이 될지도 모르는 길이라는 것을, 이미 주변에 널려있는 숱한 죽음들 속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선생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새 세상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 나라를 세우는 길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 가족과 내 고향,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그것이 할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비무장에서 무장으로

「2·7구국투쟁」의 신호가 올랐다. ‘단선단정 반대’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2·7구국투쟁」은 남로당과 민전이 주도한 준비된 투쟁이다. 「전평」 산하 30만 노동자가 전국적으로 일제히 총파업에 돌입하고, 지서습격과 무기탈취, 가두시위와 봉기,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것은 민족분단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판가리 싸움의 시작이었고, 비무장에서 무장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었으며, 야산대에서 장기적인 지구전으로 발전해 「제주4·3항쟁」으로 폭발하면서 조직되는 「남조선인민유격대」 빨치산의 출발점이었다.

밀양에서의 투쟁은, 본서경찰의 지원차단을 위해 도로에 함정을 설치하고, 초동면 오방동과 청도면 오산 경찰지서를 습격 무장해제 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선생은 이 봉기의 한 복판에서 다시금 체포되지만, 시위현장에서 검거된 수백명의 군중들 속에 섞여 기지를 발휘하여 빠져나온다. 삶과 죽음이 갈린 첫 번째 순간이다.

몰래 연계소집에 숨어들어 급하게 짐을 챙기는 선생에게 할매는 “무슨 세월이 이리도 모질꼬.” 한탄하며 주먹밥을 뭉쳐준다. 강성호가 남긴 쪽지에 따라 다시금 합류한 동지들 속에는 초동면 면책인 계음아재와 죽서할배, 월산할배도 있다. 그 동지들과 함께 수행한 종남산 정상에서의 봉화투쟁을 끝으로 하나의 싸움은 일단락되지만, 그것은 선생에게 있어 보다 깊이 조직적인 투쟁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무릉동에서

봉화투쟁을 마무리하고 동지들이 이제 헤어진다. 군당 방침에 따라 일부는 귀가하고, 일부는 야산대로 들어가고, 오랜 친구이자 둘도 없는 첫 동지였던 강성호는 「강동정치학원」으로 갔다. 선생은 새로운 동지들과 만나면서 조직이 부여하는 ‘신덕생’이라는 이름을 받아안는다. ‘하는 일마다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는 일을 하자’는 뜻을 담은 그 이름을 받으면서 선생은 “이름값을 하도록 인민을 위해 살겠다”고 말한다. 선생은 그 다짐을 지켰다. 열여섯살의 어느 날, 스스로 했던 다짐을 평생 지켜왔던 사람, 선생이시다.

「무릉동 이야기」라는 전설을 품은 무릉동에서 선생은 산사람의 삶을 시작한다. 조선의용군에서 일제와 싸웠던 지도원 동지, 박철환 선생을 만나고 함께 훈련할 4명의 동료들이 도착했다. 무장투쟁의 간부가 되기 위한 훈련이다. 산길 34킬로미터를 6시간대로 달리기 위한 훈련과 유격대 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술적 방법들을 배워나간다. 실탄없는 사격훈련으로 총기 다루는 법을 익히고, 사상이론학습과 함께 조직생활의 원칙과 의무들을 익혀나간다.

시간에 밀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마어마한 부피를 압축한 시간이었으리라. 두 달 반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바깥 세상은 「3·1절 봉기투쟁」으로 시작된 투쟁의 불씨가 제주 「4·3항쟁」의 불길로 타오르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고, 해발 800미터, 하늘에 닿은 무릉동 산골짝에서는 능히 한 시대를 떠메고 나갈 새 사람이 태어나고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필자 약력

서울에서 성장하고 학교 다님.
몇 가지 자영업을 전전하고,
산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시작함.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2015년 입농(入農)하여 농부가 됨.

2005년 암벽등반 수필집으로 등단
2005년 제13회 한국산악문학상 수상 (월간 「사람과 산」 주관)
2006년 중앙일보 산악칼럼 연재
2007년 월간 「사람과 산」 등반기 연재      
2013년 계간 「삶창」 밥 이야기 연재
2015년 (사)겨레하나 주관 ‘개성공단 사람들’ 독후감 공모전 대상 수상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목숨줄 달렸습니다, 꼭 국방예산에 써야합니까

[폭증하는 국방비 이대로 좋은가 ③] 국방예산과 해고 위기 노동자

20.11.12 08:06l최종 업데이트 20.11.12 08:06l
국회의 정부 예산안 심의가 본격 시작됐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쓸 것인가가 정하는 일이 어느 해보다 중요한 때다. 그런데 전체 예산의 10%에 달하는 국방예산은 올해 처음 50조 원을 돌파한데 이어 내년 예산으로 52.9조 원이 편성됐다. 이에 국방예산 증액의 문제점과 대안을 네 차례 걸쳐 연재한다.[편집자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코로나피해 실태 및 정부 정책 평가 기자간담회'에서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위원이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코로나피해 실태 및 정부 정책 평가 기자간담회"에서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위원이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코로나와 해고 위기

지난 11월 10일 민주노총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을 통해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임금이 약 40만 원 감소하는 등 노동조건이 심각하게 나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회사폐업, 장기무급휴업, 해고 등 고용불안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이스타항공은 전체 직원 1700여 명 중 600여 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코로나19로 인해 강제휴직 상태였던 한 승무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하나하나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실업을 겪고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해고위기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노동자 또한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을 정부 관계자들은 알까.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2021년 국방예산은 지난해 대비 5.5% 인상해 52조9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코로나19도 없었고 남북군사합의도 없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비보다 1.5배나 많은 액수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국방비로 301조를 투입할 계획이라 밝혔다.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아시아 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축소하고 민생예산을 확충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코로나 민생지원에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반면, 국방예산 대폭 인상은 당연하다는 태도다. 과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묻고 싶다.

지난해 대비 국방예산 인상액은 2조7647억 원이다. 기존의 국방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상된 예산만큼이라도 줄여서 코로나 위기 속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민중을 위한 예산으로 더 확보할 수는 없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도중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2021년 국방비 인상액 = 2020년 고용유지지원금

정부가 다양한 고용유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지난 10일 민주노총의 조사결과를 보면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8명 중 1명은 '코로나 실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재직자 고용유지 대책'과 관련해 작은사업장 노동자 10명 중 약 7∼8명(72.9∼83.5%)은 해당 대책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제 혜택을 받은 작은사업장 노동자는 100명 중 대략 3∼8명(3.5∼8.3%)에 그쳤다.

2020년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총 2조6800억 원이다. 국방비 인상액과 비슷한 금액이다. 기간 기업 지원 중심의 코로나19 대응에서 재직자 고용유지, 실직자 소득지원 대응 중심으로 전환하고 그 대상을 더욱 확대하는 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 한순간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로 노동강도가 높아진 노동자를 위해

배달노동자, 돌봄노동자, 보건의료 종사자와 환경미화원 등 비대면 일상을 지키기 위해 대면 노동의 위험을 감수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노동자들의 임금, 근무여건 등은 누구보다 취약하다.

택배노동자의 잇단 과로사는 민간업체에게만 내맡겨져 있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보건노동자들에게는 예산이 없다며 정당한 수당조차 제때 주지 못했다. 감염병이 일상화되는 시대인 만큼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대책이 시급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들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한 예로 캐나다는 의료·돌봄·청소·물류 등 필수 직군 종사자들의 임금 인상에 40억 달러(약 3조5000억 원)를 지원한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저임금과 낮은 처우,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을 위한 예산은 반드시 늘려야 한다. 

급하지 않고 불필요한 국방예산만 줄여도
 
 지난 4일 저녁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연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철회 촛불 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차가워진 날씨에 언 손을 녹이고 있다.
▲  지난 4일 저녁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연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철회 촛불 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차가워진 날씨에 언 손을 녹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세상 유례없는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이 사회를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이들이 있는 곳. 이야말로 지금 당장 예산을 늘려야 할 절실한 곳이다.

자주국방은 미국산 첨단무기를 수입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코로나시대,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생존권이 위기에 놓여있음을 심각히 생각하고 노동자민중의 민생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예산부터 확충하자. 

당장 급하지 않고 불필요한 국방예산을 줄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혜영씨는 민주노총에서 통일부장을 맡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독]법무부, 군대식 줄세우기 ‘검사 석순’ 8년 만에 없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입력 : 2020.11.12 06:00 수정 : 2020.11.12 06:01

 

인사 때 ‘사법연수원 기수의 우선 적용’ 등 담은 비공개 예규
검사 출신 변호사 “검찰 조직의 상명하복 위계질서 보여줘”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법무부가 최근 비공개 예규 ‘검사의 석순 기준’을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예규는 검찰의 ‘군대식 줄세우기 서열 문화’를 보여주는 내부 규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1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법무부는 2012년 3월 만든 ‘검사의 석순 기준(예규 992호)’을 지난 3일 8년 만에 폐지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각 행정부처의 훈령·예규가 일관된 기준 없이 비공개되고 있다는 취지의 국회 지적이 있었고, 해당 예규의 존치 필요성을 재검토한 결과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폐지했다”고 밝혔다.

‘검사의 석순 기준’은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가 인사관리를 위해 내부적으로 정한 지침으로 검사들의 서열 기준을 자세하게 정한 것이다. 사법연수원 기수의 우선 적용, 동기일 경우 연장자 우대, 군법무관 출신이나 경력 임용 검사의 기수 인정 방식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군복무, 학업 등을 이유로 사법연수원 입소가 늦어져 기수가 밀린 경우 사법시험 기수를 놓고 계산하는 기준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청법상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두 가지로만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검찰총장·고검장·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부부장검사 등의 직급이 운영되고 있다. 검사의 승진·전보 인사에서는 같은 직급이라도 석순을 고려한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선배 검사를 후배 검사보다 선순위 보직에 발령하는 식이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권영빈 변호사는 “검찰 내부적으로 석순 규정까지 만든 것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통하는 조직으로 운영해왔다는 의미”라며 “인사관리 방식은 물론 서열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는 ‘검사의 석순 기준’ 폐지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중간간부급 A검사는 “요즘에는 검찰청 배치표에 이름을 올릴 때 말고는 석순이 특별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며 “예규는 폐지했지만 인사 실무상으로는 어느 정도 적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B검사는 “비공개 내규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많으니 굳이 내규로 둘 필요가 없으면 없애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2007년 1월 만들어진 ‘검사복무상황표 작성지침(예규 763호)’도 지난 3일 13년 만에 폐지했다. 복무상황표는 상급자가 후배 검사에 대해 탁월·우수·보통·미흡 단계로 평가한다. 다만 지침만 폐지했고 복무상황표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다. 법무부 검찰국은 복무상황표 등 여러 평가자료를 종합해 부부장급 이상 검사에 대해서는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겨 인사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20600015&code=940301#csidx1177b2d87d607e1968152ee25d236e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바이든의 미국, 트럼프의 미국과 다르지 않을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1/12 10:01
  • 수정일
    2020/11/12 10: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①

도널드 트럼프의 몰락과 바이든의 집권이 확실해 보이는 이 때 그 다음을 걱정하는 이들은 몇 가지 의문을 꺼내든다. 코로나로 미국이 겪은 어려움은 온전히 트럼프의 탓이었을까.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은 다를까.

 

미 대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출간한 책 <아메리칸 엔드 게임>(현암사 펴냄)의 저자인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도 그 중 한 명이다.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김 교수의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답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가 방역에 실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코로나로 겪은 어려움의 기저에는 민간 중심 의료체계와 불평등을 켜켜이 누적시켜온 대기업, 월가, 사모펀드 중심 경제체계가 있다.


 

2주간 격리된 환자에게 병원비 7300만 원을 청구하는 나라에 제대로 된 팬데믹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상공인을 위한 코로나 구제금융마저 대기업이 채가는 나라에서 서민을 위한 경제위기 대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치가 미국 의료나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제한 없는 슈퍼팩(Super Pack)을 통해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낼 수 있는 부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억만장자를 공격하는 버니 샌더스가 미 민주당 경선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이든도 대기업, 월가, 사모펀드와 같은 기득권 세력의 낙점을 받은 후보일 뿐이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고 바이든이 부통령이던 2012년 미 연방주택기업감독청은 사모펀드의 압류 단독주택 대량매집을 허용하며 부동산이 돈 놓고 돈 먹기의 장이 되는 길을 열었다.


 

따라서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바이든 당선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 대선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6일, <프레시안>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나라 미국에서 '아메리칸 나이트메어(American Nightmare)'가 펼쳐져 있다고 탄식하며 미국 사회에 필요한 건 표면적 정권 교체가 아닌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김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미국사회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전망,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향을 물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했다.


 

☞바로가기 : 김광기 교수 인터뷰 2편 "돈을 숭상하고 돈이 지배하는 미국, 언제까지 따라할 건가"

 

프레시안 책 제목이 '아메리칸 엔드 게임'이다. 미국 정치에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광기 끝났다기보다는 '막장'이라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나와서 붙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도 공화당도 금권 엘리트 위해 일하긴 마찬가지"


 

프레시안 책에서 '트럼프냐 바이든이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적었다.


 

김광기 의미가 없다. '예측 가능한 막장이냐 예측 불가능한 막장이냐'의 차이다. 국민이 아닌 미국 기득권이 볼 때 바이든은 예측가능하고 트럼프는 예측불가능하다.


 

미국 기득권인 대기업과 월가, 위성(危星) 월가인 사모펀드는 바이든을 원한다.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자기들한테 콩고물을 주지만 독자적인 사익도 추구한다. 트럼프는 그들로서는 예측가능하지 않다. 바이든은 전적으로 꼭두각시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다. 한 마디로 기득권 세력이 주체가 되겠다는 거다. 그러니 미국 기득권세력(월가, IT기업 등이)과 대중매체가 전폭적으로 바이든 편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선 전에 주류 언론이 얘기하는 대로 바이든이 큰 표차로 압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근소한 차로 트럼프가 이길 거라고 봤다. 첫째,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엄청 크다. 둘째,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두 쪽으로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는데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기존 대중매체를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정도로 큰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언론에서 떠들어 대던 '샤이 트럼프', '트럼프의 뒷심' 이런 말 듣고 실소했다. 왜냐하면 미국엔 애초에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거대기업이나 월가와 한통속이고 공생관계이다 보니 바이든 쪽으로 기울어진 보도와 조사가 나왔다고 본다. 억만장자를 공격했던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에서 일찌감치 떨어졌다.


 

프레시안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려면 '샌더스 대 누군가'가 되는 게 맞는데 샌더스는 기득권 세력의 뜻에 따라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졌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압승이라는 조사가 나온 건 학자들이나 기득권의 소망이 발현된 결과였다는 해석이다.


 

김광기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보적 학자로 알려진 폴 크루그먼도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 때 보면 샌더스를 완전히 깔아뭉갰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에 코로나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유일하게 이익을 본 사람이 샌더스라고 썼다.

 

코로나로 이익 본 사람은 따로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해서 돈 풀고 초저금리 정책 써서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 보통 사람은 가격이 올라서 집을 못 사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 같은 걸 이용해 이익을 봤다.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안 좋아지면 그걸로 이익을 본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책임을 전가할 호재다.


 

경제에 거품이 끼게 하고 이익을 본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진보적인 학자로 알려진 사람(폴 크루그먼)도 샌더스를 공격한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이 정말 막장이라고 느낀다.


 

프레시안 미국 언론은 바이든이 압승하고 민주당이 양원 선거도 이길 거라고 봤다. 결과를 보면, 바이든은 이겼는데 민주당은 양원 선거를 못 이겼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떨어졌지만 트럼피즘(Trumpism)은 남아있을 거다'라거나 '하원에서 민주당 의석이 많지만 상원에서 공화당 의석이 많아 비토크라시(Vetocracy,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두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는 계속될 거다'라는 예측도 나온다. 바이든이 당선돼도 미국의 분열은 오래 갈까?

 

김광기 오래 갈 것 같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분열한다는 건 아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금권 엘리트에 의해 구워삶아져 있다. 겉으로는 싸우는 척 하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기득권 세력을 위해 규제를 풀고 봉사하는 거다.

 

"트럼프도, 오바마도 금권 정치의 포로였다"


 

프레시안 먼저 과거를 짚어보자.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해서 중산층 이하 보통 사람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조 5천억 달러 감세 같이 기득권 세력을 위한 일을 했다. 사실 중산층을 위해 한 일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는 뭔가?


 

김광기 트럼프는 상인이다. 그도 기득권 세력이다. 비록 주류에서 비껴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또한 넓게 보면 기득권에 속한다. 중산층을 위한다고 해놓고 결국 사익 추구를 위해 일했다. 자기와 자기 동맹을 위한 정치를 했다. 트럼프는 양당 모두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기존 정치의 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을 기득권 세력만 잘 사는 불평등한 사회가 아닌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로 바꾸려는 생각이 일말이나마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자기 욕심이 앞섰다.
 

 

또 하나는 인사 정책이다. 미국 정부 인사가 회전문 인사다. 한 사람이 사기업 갔다 고위직 공무원 갔다 한다. 그런 사람들은 공직에 있을 때 사기업을 위해 일한다. 그런 인사 안 한다고 했는데 했다. 사람을 그렇게 쓰면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펴게 된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 치료제 램데시비르의 희귀약품 지정이다. 희귀약품 지정은 환자 수 20만 명 미만인 희귀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투자비용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런데 미국에만 확진자가 1000만 명이 넘는 코로나의 치료제를 희귀약품으로 지정했다. 이때 백악관 보건 정책 고문인 조 그로건이 램데시비르를 개발한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로비스트였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인 알렉스 아자르도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의 로비스트였다.

 

이 둘의 영향이 또 있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 때 약값 인하를 공약했다. 2019년 민주당이 약값 인하 법안을 발의하자 트윗으로 지지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약값 인하 법안이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로건과 아자르가 그 때도 고문이고 장관이었는데 약값 인하에 반대했다. 이런 사람들을 쓰면 개혁은 할 수 없다.

 

프레시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당선된 버락 오바마도 1조 달러대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문제 일으킨 기업을 살려놓고 피해자는 안 살렸다. 금융제도 개혁도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뭔가?


 

김광기 오바마도 바이든처럼 금권 엘리트에 의해 발탁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 잘 하고 잘 생겼고 흑인이라는 것도 이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이 망하는 상황에 가 있었으니까 구세주(Savior)를 떠올리게 하며 오바마가 당선됐지만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한 게 없다.


 

오바마케어도 대단한 개혁이 아니다. 한국처럼 공공보험을 만든 게 아니다. 전 국민을 민간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킨 거다. 민간의료보험의 보장 수준과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모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케어에 가입한 환자를 안 받는 병원도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병에 걸리거나 병원을 잘못 가면 국민 입장에서는 보험료만 나가는 거다. 일종의 세금인 셈이다.


 

프레시안 위기가 왔으니 금융 시스템을 살리는 건 좋은데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피해 본 보통 사람을 살리는 데는 그만큼 돈이 안 든다. 왜 못했나.


 

김광기 피해를 본 서민에게는 신경 안 썼다. 금융위기 주범은 월가 대형 금융회사를 위시한 금권 엘리트였는데,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티머시 가이트너가 월가와 결탁해 혈세를 떼려넣어 금융위기에 책임 있는 기업은 다 살려줬다.

 

물론 금권 엘리트들이 비난받기는 했다. 그러니 이들이 위성 월가인 사모펀드를 만들었다. 월가 대형 금융회사에는 겉치레로나마 규제가 있다. 사모펀드는 그 정도 규제도 없다. 그러니 돈 버는 일이라면 아무거나 마음대로 다 한다.

▲ 급격히 오르는 미국의 약값을 잡겠다던 트럼프의 공약은 거대 제약회사의 로비스트로 일했던 이들을 보건복지부 장관과 백악관 고문에 앉히며 허언이 됐다. ⓒ현암사

사모펀드에 먹힌 미국 경제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 사모펀드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김광기 사모펀드가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나. 2008년 금융위기 때 빚을 못 갚은 사람들 집에 차압이 들어오니 집값이 폭락했다. 사모펀드는 돈이 있으니 그 집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임대 사업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 사모펀드는 부동산에 손 안 댔다. 큰 상업용 건물은 샀어도 단독주택은 안 샀다. 그런데 2011년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더니 2012년 7월까지 86억 달러를 들여서 미국 14개 지역에 주택 4만 4000채를 샀다. 2019년 6월 통계를 보면, 미국 17개 지역에서 8만 채를 보유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제1의 부동산 재벌이 된 거다.


 

정치권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오바마 정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가 길을 터줬다. 2012년 연방주택기업감독청이 압류된 단독주택을 대량 매집해 임대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시험용 프로그램을 사모펀드에 허용했다.


 

블랙스톤 사장인 스티브 슈워츠먼은 트럼프 친구이기도 하다. 정치 후원금을 엄청나게 많이 냈다. 자기 생일 파티를 한다면서 트럼프가 소유한 리조트에서 2000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 사모펀드는 파생금융상품도 많이 판다. 트럼프는 오바마 때 이미 유명무실화된 파생금융상품 관련 규제를 더 많이 풀어줬다.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 사모 펀드가 헐값에 몇 백만 채의 집을 샀다는 걸 보며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재난 자본주의'가 떠올랐다. 경제적 위기라는 재난이 와서 서민들은 고생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을 싸게 사서 이득을 봤다.


 

김광기 금권 엘리트가 금융위기를 불러와 놓고 위기로 탈탈 털린 시민을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 사모펀드가 단독주택을 사서 임대시장에 내놓으니 금융위기 때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그 집에 임차인으로 들어갔다.

 

사모펀드가 집을 대량으로 사들이니 집값도 터무니없이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12년 이래 집값 중간값이 두 배 올랐다. 또 사모펀드가 집을 사서 살짝 고친 다음에 임대료도 전보다 올려 받았다. 월가의 사모펀드가 집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악덕 집주인으로 등극한 거다.


 

2018년에 <포츈>이 방 2개 월세 임대아파트를 얻으려면 최저시급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 계상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32달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0달러였다. 그때 미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시급이 7.25달러였다. 이러면 집에서 살 수가 없다. 임차인이 노숙자가 된다. 월가가 집을 다 거머쥔 결과다.


 

이런 일을 해도 규제가 없다. 정부가 해야 하는데 안 한다. 트럼프도 그랬고 바이든도 그럴 거다.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는 '기업 장의사'라는 표현을 쓰며 사모펀드가 기업에 준 악영향도 다뤘다.

 

김광기 사모펀드가 원래 기업을 사서 구조조정 한 다음에 팔아버리고 이익을 챙기는 일을 많이 한다. 주식 배당을 왕창 뜯어가기도 한다.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도 사모펀드에 넘어가더니 3억 2200만 달러 이익 보는 동안 3억 5200만 달러를 주주에게 배당했다.


 

이런 식이면 정상적인 기업은 살 수가 없다. 돈이 몰려 사모펀드는 이익을 보는데 정작 기업은 망한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돈이 몰려 사모펀드는 이익을 보는데 집값이 올라서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살지를 못한다.

 

앞에서 욕하긴 했지만 폴 크루그먼이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Stock market is not economy)"라고 했다. 그 말이 정말 맞다. 특히 사모펀드가 활개 치면 금융과 실물 간 비동조화(Decoupling)가 너무 심해진다. 미국 최대 렌터카회사 허츠(Hertz)가 파산했는데 주식은 오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허츠도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사모펀드 때문이었다. 사모펀드가 회사 지분을 많이 확보한 뒤부터 맥을 못 추는 좀비 기업이 되었다.

▲ 미국에서는 사모펀드가 2008년 금융위기 때 헐값이 된 주택을 대량으로 구입해 임대사업을 시작한 뒤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현암사

"코로나, 미국 경제의 진상을 드러냈다"


 

프레시안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오바마 때부터 미국 경제는 호황이다. 유럽보다는 낫다'고 한다.

 

김광기 주식시장 보고 이야기하는 거다. 돈 있는 사람들은 주식이 오르니 좋다. 집 가진 사람들도 집값이 오르니 좋다.

 

트럼프는 일자리가 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안 좋은 일자리다. 미국 상황이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오고 2020년 5월에 실업률이 14.7%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늘었다던 일자리가 다 없어졌다. 튼실한 일자리는 위기가 와도 일정 기간 버틸 여유가 있다. 그게 안 되는 일자리가 많았던 거다.


 

책에도 썼지만, 코로나라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오면서 미국 경제가 나 홀로 잘 나갔다는 건 허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문제는 트럼프 지지자든 오바마 지지자든 보통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졌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상대 진영 탓이라고만 한다는 거다.


 

프레시안 문제는 금권 엘리트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인데 서로 싸운다는 이야기다.


 

김광기 맞다. 그러니 기득권 세력은 위에서 보고 씨익 웃을 거다.


 

민주당이 이야기하는 대로 트럼프가 코로나 방어 못한 거 맞다. 그런데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켜켜이 쌓여온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 그런데도 코로나 탓만 하는 건 코로나를 자기 진영의 승리를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거다.


 

"미국 코로나 소상공인 구제금융, 대기업이 가져갔다"


 

프레시안 출구조사만 보면 투표할 때 제일 중요한 게 경제였다고 하더라. 그런데 기득권 세력은 지금 경제가 안 좋은 이유를 코로나 때문인 걸로 몰아버렸다.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의 활동 등으로 인한 자신들의 책임은 지워버렸다.

 

김광기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똑같다. 위기의 원인인 거품을 만들며 열매를 따먹고 거품이 빠지면 구제금융으로 열매를 또 따먹는다.


 

코로나 구제금융 때도 그랬다. 코로나가 오니 정부가 대기업에 구제금융 줬다. 세금도 감면했다. 그랬는데 정부가 소상공인을 돕겠다며 내놓은 6600억 달러 규모의 PPP(급여 보호 프로그램, Paycheck Protection Program) 대출금도 대기업이 다 가져갔다. 1차 PPP 때 5% 대기업이 전체의 절반을 빌렸다. 15만 달러 이하 대출은 15%였다. 2차 때는 좀 나아졌다는데도 1% 대기업이 1/4을 빌렸다. 15만 달러 이하 대출은 37%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보니 일단 트럼프 정부 인사와 기업 간 연줄이 작용했다. <가디언> 추산으로 트럼프 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가 2800만 달러다. 또 PPP 분배를 대행한 은행이 선착순 원칙을 세웠다. 대기업은 정보 습득이 빠르고 언제든 대출 신청 서류를 꾸밀 준비가 돼 있다. 구제금융을 선착순으로 분배하면 소상공인은 대기업과 게임이 안 된다.


 

정부가 코로나에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작은 기업이 많이 도산할 거다.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 현금을 들고 있는 사모펀드가 들어가서 또 장난친다. 헐값에 사들여 열매 따먹고 팔아치우거나 버리는 거다.

 

프레시안 2001년 9·11 테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 때도 돈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될 거란 이야기다. 

김광기 극심한 불평등 뒤에는 파국이 왔다. 1928년에 상위 1%가 국가 소득의 24%를 차지했다. 1920년대 말에 공황이 왔다. 2007년에도 상위 1%가 국가 소득의 24%를 차지했다. 그 다음 금융위기가 왔다.


 

지금은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이 더 커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트럼프가 코로나 터지고 재선이 안 될 거 같으니 돈을 퍼부어서 막아놨을 뿐이다.


 

한국도 돈 퍼붓는 걸 흉내 내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곳이니 돈 퍼붓는 게 가능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하기 어렵다. 그렇게 돈 써서 서민을 살리면 모르겠는데 대기업만 살리고 문제다.


 

▲ 미국이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한 구제금융책인 급여 보호 프로그램(PPP)의 상당 비율은 대기업에 돌아갔다. ⓒ현암사

"트럼프와 바이든의 페이퍼컴퍼니는 같은 동네에 있다"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게임> 마지막 장을 보면, 바이든 지역구인 델라웨어주에 조세회피처가 있다고 했다. 인구가 97만여 명인 주에 회사가 140여만 개 등록돼 있고, '델라웨어주 윌밍턴시 노스 오렌지 스트리트 1209번지'에는 월마트, 코카콜라 등 30여만 개가 회사가 등록돼 있다고 썼다.


 

김광기 그 주소에 힐러리 클린턴 회사와 빌 클린턴 회사, 트럼프 회사도 등록돼있다. 바이든이 만든 회사도 같은 블록에 있는 다른 집에 등록돼있다. 앞 주소는 다 같고 번지만 1201번지다. 다 탈세하려고 만든 페이퍼 컴퍼니다. 전세계 독재자들도 델라웨어주 같은 데 돈을 갖다 놓는다. 한국도 누가 갔다 놨을지 모른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일단 미국 법 자체가 회사 수익 소유자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델라웨어주는 회사가 주 안에서 사업하지 않으면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쉽다. 수수료 조금만 내면 조건 없이 뚝딱 만들어준다. 델라웨어주 법을 이렇게 만드는데 오바마와 바이든도 역할을 했다.


 

재산이 많지 않아 '중산층 조'로 불리던 바이든이 부통령 임기 끝나고 부자가 됐다.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재산이 1560만 달러 늘었다. 고액 강연과 저서 수입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델라웨어주에 세금을 안 냈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붙을 때 이런 이야기 안 한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붙을 때도 안 한다. 둘이 똑같으니까.

 

프레시안 퇴임 후 바이든이 돈을 벌었다는 말인데 많은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정치자금을 모은다.

 

김광기 2010년 미 연방대법원이 정치후원금도 '표현의 자유'라며 정치후원금인 슈퍼팩(Super Pack) 한도를 없앴다. 오바마도 2012년에 친(親)오바마 슈퍼팩 모금을 지지했다.


 

델라웨어주에 있는 페이컴퍼니 같은 곳을 통해 정치후원금을 내면 누가 냈는지도 모른다. 받는 사람은 세금 안 내도 된다. 

희망이 없다.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안 본다.


 

프레시안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부자들의 정치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 미국이고, 미국 정치인은 조세 회피처와 한도 없는 슈퍼팩이라는 제도로 정치 후원금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하면 유력 정치인이 금권 엘리트의 포로라는 건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김광기 예전에도 정경유착이 있었는데 갑이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권력관계가 역전됐다. 기업이 갑이 되고 정치인이 을이 됐다. 금권 엘리트가 지지하지 않으면 정치인이 뭘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러니 정치인이 가진 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이른바 금권정치(plutocracy)다.


 

프레시안 사실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됐다. 1992년 미 대선에서 로스 페로가 나오면서 불평등을 이야기했다. 1996년에도 팻 뷰캐넌이 대선에 나오면서 '1950, 60년대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가면 애들 대학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 된다' 는 이야기를 했다. 벌써 30년이 됐다. 그런데도 상황은 나빠진 것 같다.

 

김광기 더 나쁜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이 두터웠는데 지금은 아니다.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 <아메리칸 엔드게임> (김광기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11621160598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드디어 민주당서도 나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번에는 결실 맺을까

정의당에 이어 민주당서도 발의, 박주민 “반드시 이번 국회 내 통과”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20-11-11 16:26:09
수정 2020-11-11 16:31:4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및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11.11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및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11.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오랜 기다림 끝에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정안(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11일 발의됐다. 최근 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대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 약속에서 후퇴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나온 법안이다.

민주당 노동존중실천 의원단 내에서 '산업현장 중대재해 예방 및 기업책임 강화 TF(태스크포스)' 팀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생명안전포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해당 제정안은 노동존중실천 의원단과 생명안전포럼의 '1호 법안'이다.

박 의원은 "산업재해는 노동자 개인의 과실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기업 내 위험 관리 시스템이 부족하고 사회 전체적인 안전불감증이 있기 때문"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경영주와 관련 공무원들을 처벌함으로써 더 확실한 제도적 개선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이번 발의를 준비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준 한국노총위원장에게 감사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다른 시민단체와도 이 법안을 같이 논의해 왔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이번 국회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생명안전포럼 대표를 맡은 우원식 의원도 "그 내용과 효과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를 거쳐왔고 보다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동의할 수 있는 완성도 있는 합의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처벌의 수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최고 책임자, 원청 책임자에 안전관리 의무를 명확히 규정했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의무 위반에 대한 무거운 책임 지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우 의원은 "어제(10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한 만큼 법안의 통과를 위해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정안의 골자는 안전 조치 의무 등을 위반해 인명 피해를 유발한 사업주나 대표 이사를 비롯한 최고 경영진, 공무원 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들의 중대한 과실로 재해가 발생해 해당 법인 또는 기관이 손해 배상하게 될 경우 그 최저금액을 손해액의 5배로 하도록 못 박았으며, 경영 책임자 등이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묵시적으로 지시한 경우에도 해당 법인의 직전 해 연 매출액 또는 수입액의 10분의 1의 범위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한국노총은 물론 민주노총 등이 포함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와의 의견 교환을 거친 뒤 성안된 것이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담긴 내용과 유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박 의원의 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용 유예 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개된 법안 내용을 보면 "본 법의 적용을 받는 개인사업자 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안전 의무 및 보건 조치 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 마련을 전제로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해당 법안을 바로 적용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에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민주당의 당론 법안 될 수 있을까
모처럼 국민의힘도 협조? 국민의힘 의원들의 실제 협조할지가 관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가운데)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및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11.11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가운데)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및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11.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아울러 박주민·우원식 의원은 당내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대신 산안법 개정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의식한 듯 해당 제정안을 민주당 당론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이낙연 대표의 미묘한 태도 변화와도 연관돼 있다. 이낙연 대표는 취임 직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의지를 연일 드러냈지만 지금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7일 공개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두었을 때 기존의 산안법과 중복 처벌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산업안전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법 체계상 중복이나 상충되는 건 옳지 않다. 그런 고민이 있다. 상임위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박 의원은 "저희가 열심히 노력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우리와 정책연대를 하는 한국노총도 그런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당과 충분히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우 의원도 "저희가 이렇게 의지를 모았기 때문에 당하고 협의를 해서 당론으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1대 국회가 시작할 때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왔던 정의당은 민주당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나온 데 환영하면서도, 발의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직접 제정안을 발의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는 "박 의원의 안은 현행 산안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업의 조직문화와 안전관리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으로 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다만, 일부 처벌 수위와 50인 미만 적용 유예는 실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한 부족한 조치라고 본다. 이는 향후 관련 법 병합 심의 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박 의원의 법안이 면피용이 아닌 확고한 당론임을 국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국회는 지금 당장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쟁을 멈추고, 초당적 협력을 통해 더 이상 우리 국민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의당에 이어 민주당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나오면서 21대 국회에서는 실제 법안 처리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한층 커진 상태다.

특히 이전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놓고 반대해 왔던 보수 정당, 국민의힘도 모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라 이번 국회가 '적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국민의힘은 제정안의 핵심 내용인 원청 사업주 처벌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아 세부 각론에서는 이견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최근 들어 부쩍 노동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달리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이 상임위 차원에서 협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관련기사

남소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때릴수록 커지는 윤석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첫 1위

등록 :2020-11-11 09:40수정 :2020-11-11 09:58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발표
윤석열 24.7%로 전체 1위 차지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월29일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으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월29일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으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1일 나왔다.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7~9일 전국 만 18살 이상 102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여야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도’에서 윤 총장이 24.7%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2%,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18.4%로 뒤를 이었다.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워온 윤 총장은 최근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의혹’ 수사로 다시 한번 ‘살아있는 권력’을 겨누고 있다. 이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을 도마에 올려,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바 있다. 정부·여당과의 대립이 도드라질수록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여론이 윤 총장에게 쏠리는 모양새다.

 

실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윤 총장은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차기 대통령 후보군에 처음 포함된 6월에 10.1% 지지율을 받으며 야권 후보 가운데 1위로 등장했다. 추 장관이 민주당 초선의원 혁신포럼에서 “(윤 총장이) 장관의 말을 겸허히 들었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해서 더 꼬이게 했다” “말 안 듣는 검찰총장과는 일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 등 ‘윤 총장 때리기’에 나선 직후 실시된 조사였다. 이후 추 장관과의 공방이 잠시 잦아들었던 8, 9월에는 11.1%, 10.5% 등으로 10%대 초반을 유지했다.지난 10월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이 추 장관에 대한 반격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 총장은 당시 국감장에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비상식적” “(장관의 수사 지휘가) 위법한 것은 확실하다”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등 추 장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이후 여론이 요동치면서 지난 11월2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윤 총장이 17.2% 지지를 얻으며 이낙연 대표, 이재명 지사와 함께 ‘3강 체제’를 구축했다. 상승세를 탄 윤 총장의 지지율이 이제 선두권까지 올라온 셈이다.

 

 

다만 이런 추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의 지지율이 ‘반 문재인 정부’ 정서에 기대고 있을 뿐이라는 견해가 많다. 윤 총장이 기댈 언덕인 야권에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총장이 정부·여당 쪽과 대립하는 모양새여서 야권 후보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보수 야권 입장에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칼 끝을 들이댄 인물”이라며 “그가 보수 진영의 지지율을 흡수하는 현상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은 ‘윤석열 현상’에 대해 “현직 검찰총장을 대선주자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한편, 이날 조사에서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은 여전히 ‘도토리 키재기’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 5.6%,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4.2% 등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3.4%로 뒤를 이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바로가기 : 차기 3강 훌쩍 큰 윤석열…웃을수 만은 없는 국민의힘▶바로가기 : 이낙연·이재명과 천하삼분?…윤석열 대선후보 선호도 17.2%▶바로가기 : 【성한용 막전막후】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하면 안 되는 이유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69456.html?_fr=mt2#csidxac13d8ec1b588eab9871495aab0c53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펜스와 매코널의 대선 역전 노림수?..."트럼프 재집권 시나리오 무시못해"

[해외시각]"최소한 내년 1월6일 의회까지 분쟁 지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2024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직접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아직 "헌법적 승리를 할 길도 남아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2020 대선 결과에 대해 법적 투쟁을 벌여 상원과 하원 등 의회에서 대선 승자를 결정지으려 획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선일 이후 침묵해오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서비스(SNS)를 통해 “끝난 게 아니다”라며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선거인단을 둘러싼 분쟁이 의회로 넘어갈 경우 결정권을 갖고 있는 상원의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들을 말이 아니다.

 

이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도 상원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 법적 시스템을 활용할 권한이 100% 있다"면서 대선 패배를 신속하게 인정하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매코널은 재검표 등 적어도 5개 주의 개표 결과는 법적 분쟁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들은 이번 대선의 승부를 법적 절차로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프레시안>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나리오 '트럼프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비밀통로(Donald Trump's Stealthy Road to Victory)'라는 글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필자는 미국의 저명한 외교안보 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다. 앨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비유로 미국과 중국이 원치 않는 전쟁으로 간다는 <예정된 전쟁>의 저자로 유명하다. 이 글은 지난 6일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더내셔널인터레스트(TNI)>에 게재됐다. 

 

이번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고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렸지만,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길 또다른 은밀한 통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년 1월 6일까지 대선의 승자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이날은 연방 의회 합동회의에서 선거인단 개표 결과를 승인하는 날이지만, 어떤 결정이 나오든 진 쪽에서 대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분쟁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나의 결론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의 다음과 같은 분석을 반영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가 승리를 도모할 비밀통로는 분쟁이 있었던 역대 대선 중 특히 새뮤얼 틸든 민주당 후보와 러더퍼드 헤이스 공화당 후보가 맞붙은 1876년 대선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도 당시처럼 각 주는 1월6일 대선 당선자를 가리기 위해 의회에 보낼 선거인단을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 업무는 주 선관위가 맡아 선거인단 명부를 의회에 보낸다. 하지만 주의회가 투개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별도의 선거인단 명부를 보낼 헌법적 권한이 있다. 선거인단의 자격과 투표에 분쟁이 있을 경우 미국 수정헌법 제12조는 상원의장이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상원의장은 펜스 부통령이다. 펜스가 트럼프를 선택하면, 민주당은 대법원에 상소할 것이다.


 

만일 상원과 하원이 함께 모인 합동회의에서 유효표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거인단들로 인해 선거인단 과반을 뜻하는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후보 자체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하원이 투표로 당선자를 결정한다. 투표는 각 주를 대표하는 1표들로 행사된다. 현재 50개 주 중 26개 주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새 의회가 구성되어도 이 구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하원 투표를 해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면 민주당은 대법원에 상소할 것이다.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결론을 반복해서 말하자면 수정헌법 제12조와 역사적인 선례로 볼 때 트럼프의 승리와 트럼프 재집권으로 갈 수 있는 은밀하고 복잡한 길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분쟁 끝에 트럼프가 승리할 확률은 20%로 본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수정헌법 제12조에 근거한 시나리오는 세간의 인식보다 공화당이 행동에 옮기기 쉽다.


 

-트럼프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끊임없이 우편투표의 합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대선 결과를 분쟁으로 가져가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지난 11월1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등 여러 주에서 대선일 이후에도 개표할 수 있도록 한 대법원 결정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이 끝나는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대선결과에 대해 헌법을 동원해 다툴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보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지난 9월 26일 다른 곳도 아니고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트럼프는 "대법원에서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의회로 이 문제를 가져가면 우리가 유리하지만 의회에서 결정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주 당 한 표로 계산되는데 공화당이 26표, 민주당이 22표 정도 되기 때문에 우리가 유리하다. 기쁜 소식이다"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 결과가 하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과 은밀히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여러 주에서 선거인단 투표가 분쟁대상이 될 수 있지만, 펜실베이니아 주에 걸린 20명의 선거인단이 가장 유력하다. 1876년 대선 때도 선거인단 20명이 문제가 됐었다. 당시는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선거인단 전부, 그리고 오리건 주 한 명 등 4개 주에 걸쳐있었다.


 

-187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하원과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상원은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로 타협했다. 선관위는 하원, 상원, 대법원이 참여하는 초당적으로 구성돼 분쟁이 걸린 선거인단 표를 결정하기로 했다. 선관위의 결정을 두고 의회는 1877년 2월1일에 시작해 다음달까지 15번의 합동회의 끝에 헤이스 후보에게 한 표 차이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의회의 결정은 공화당이 대선승리를 가져가는 대신 미국 남부 흑인투표권을 보장하려는 정책을 중단한다는 이면협상의 결과였다.


 

-2020년 대선에서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민주당 소속)와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가 내년 1월6일 의회 합동회의에 서로 다른 선거인단 명부를 보낼 수 있다. 1876년 대선과 비슷하게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원과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선거인 명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언론 환경에서 1876년처럼 이면협상으로 분쟁을 정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당은 1876년 사태를 피하기 위해 1877년 제정된 '선거인계수법(Electoral Count Act)'이 주지사가 승인한 선거인 명부에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현재 민주당 소속이기에 바이든에게 표를 준 선거인단 명부를 승인할 것이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주의회에 선거인 명부 승인 권한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들어 선거인계수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의회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트럼프에게 표를 준 선거인 명부를 승인할 것이다.

 

-헌법에는 상원과 하원이 선거인 분쟁에 합의를 하지 못하면 해결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다. 헌법에는 대법원을 포함해 사법부에도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은 법과 역사적 선례를 근거로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상원의장이 상원과 하원이 대립할 때 선거인 명부를 확정할 유일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상원의장의 결정으로 선거인단 과반을 차지한 당선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하원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하원의 표는 한 주에 한 표씩이기에 공화당이 현재 26개 주에서 다수당인 현재의 구도를 유지한다면,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된다.


 

-또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1월6일 의회 합동회의에 민주당의 등원을 거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정헌법 제20조에 따라 그리고 의회가 정한 승계 순위에 따라 하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는 '김정은 위원장 답방'?

[이슈분석] 수석·보좌관회의 "남북관계의 새로운 기회와 해법" 발언에 관심 집중

20.11.11 07:37l최종 업데이트 20.11.11 07:37l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해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남북관계의 새로운 기회와 해법."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오후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기회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대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는 2021년 초 '바이든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한반도 정세에서 남북의 독자적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기대와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이 발언에 앞서 단호한 어조로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단호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기대와 바람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위한 남북-북미대화 재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남북경제협력, 민간교류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문 대통령이 '독자적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암시하듯 문 대통령은 "한미간 튼튼한 공조와 함께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기대한다'는 어조지만 문 대통령의 '의지'가 깊게 반영된 발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추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의 출범 이후 진행할 문재인 대통령의 독자적 행동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답방이 포함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018년 9월 19일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9.19 평양공동선언 제6항') 합의한 바 있다.

당시 "가까운 시일 내"는 '연내 답방(2018년)'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18년 12월 4일 김 위원장이 12월 12일~14일 서울을 방문해줄 것을 공식으로 요청하는 초청장을 보냈다. 대통령 경호처와 군·경이 합동으로 김 위원장의 12월 답방에 따른 경호와 의전을 준비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김 위원장의 답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김 위원장이 2018년이 저물기 하루 전인 12월 30일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내년에는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2019년 1월 답방'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년 2월 27일~28일)이 열렸고, 하노이 회담 결과에 따라 김 위원장의 답방 여부나 시기 등이 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김 위원장의 답방도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계속된 노력과 바이든의 승리
 
 11월 7일(미국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체이스센터에서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11월 7일(미국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체이스센터에서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AF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남북-북미대화도 사실상 중단됐다. 게다가 북한의 남북 통신선 차단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6월),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9월), 2019년 7월 조성길 전 이탈리아 북한대사 대리 국내입국 확인(10월) 등의 악재까지 터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호소하고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협력체'를 정식으로 제안하는 등 꾸준히 남북-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우회적 노력을 계속했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없었고, 미국은 대선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가 확정되면서 문 대통령이 남북-북미대화의 재개를 위해서라도 김 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의 등장으로 우리 정부가 금강산과 개성공단 재개, 종전선언, 김 위원장 답방 등 치고 나갈 게 많아졌다"라며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사건이 없었으면 김 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하는 프로세스로 갈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사건을 계기로 오랫동안 중단됐던 남북간 접촉이 이뤄졌다. 김 위원장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지문'을 통해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사건을 남측 국민에게 사과했고, 북측이 피살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며 양해를 구한 것이다(9월 25일).

여전한 남북 정상의 깊은 신뢰, '김정은 답방'의 원동력
 
손잡고 평양시민에게 인사하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후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15만명 평양시민들에게 손을 맞잡아 들어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 손잡고 평양시민에게 인사하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후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15만명 평양시민들에게 손을 맞잡아 들어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무엇보다 남북 두 정상이 네 차례의 정상회담(2018년 4월 27일, 5월 26일, 9월 18~20일, 2019년 6월 30일)을 진행했고, 꾸준히 친서를 주고받으며 깊은 신뢰관계를 쌓아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청와대에서 언론에 공개한 두 정상의 친서만 해도 2018년 12월과 올 3월, 9월 등 여러 통이다. 실제 두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저서 <분노>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고받은 친서만 27통이다.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가운데에서도 김 위원장이 지난 9월 12일에 보낸 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친서에서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들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중단된 북미-남북대화의 재개에 대한 여전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깊은 신뢰관계가 여전하다는 점이 김 위원장의 답장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1년 반 동안에 김 위원장의 답방을 마지막 카드로 쓸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이 "우리는 한반도 생명·안전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9일 수석·보좌관회의)라고 자신감을 보인 이유일지 모른다.

[관련기사]
청와대 "김정은 연내 답방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어"
'김정은 위원장 연내 답방' 날짜까지 제안?
김정은 위원장 13일 답방?... 청와대 "사실 아니다"
북측, '김정은 연내 답방 어렵다'고 연락했다?
'김정은 연내 답방' 안 된 이유 답변 안 한 청와대 
청와대 "김정은 답방 일정 논의? 사실 아니다"
청와대 "북미회담 결과, 김정은 서울 답방과 긴밀하게 연결"
김정은 위원장 깜짝 친서... "내년에 서울 방문하겠다"
친서 받은 문 대통령 "새해에 다시 만나길 기원"
'김정은 친서', 남북-한미-남북미 회담으로 이어질까?
남녘 동포들의 건강을 빈다" 김정은, '코로나 극복 응원' 친서
김정은 친서는 왜 김여정 '비난담화' 직후 전달됐나
문재인 "서로 돕지 못하는 현실 안타깝지만" 김정은 "어려움 지나고 좋은 일들 다가오길"
문 대통령 "김정은 사과, 각별한 의미... 유가족·국민께도 송구" 
[전문] 김정은 위원장 "남녘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줘... 미안하다"
'바이든 당선인'이라고 부른 문 대통령 "기대된다"
바이든 시대 맞는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지지한다더니, ‘기업주 처벌’엔 선 긋는 국민의힘

정의당 “과징금 강화 수준으로는 해결책 될 수 없어, 산재 줄이려면 원청 대표에 책임 물어야”

김도희 기자 doit@vop.co.kr
발행 2020-11-10 18:48:25
수정 2020-11-10 18:48:2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다섯 번째)과 주호영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부터),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10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다섯 번째)과 주호영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부터),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10ⓒ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은 10일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산업재해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장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한 조항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산재의 원청 책임을 명확히 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 하도록 한 조항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의당이 발의한 법안 원안에 대체로 동의한다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법안 원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주호영 원내대표 간 미묘한 시각차도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해 김 위원장, 주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도 초청돼 모습을 보였다.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은 정책간담회를 여는 머리말에서 “고(故) 노회찬 의원이 2014년 위험방지 의무 불이행 시 사업주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우리 당에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 점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어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힘은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고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며 “특히 산업안전 문제는 정파 간 대립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대상으로 “국회에 들어와 있는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을 거론했다.

주 원내대표는 “마음이 좀 많이 무겁다. 너무 늦었다”며 “제도적 허점을 고치지 않고는 (산재 사고) 방지가 안 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자당이 중대재해와 관련한 정책간담회를 연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국민의힘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은미 원내대표에게 “(국민의힘이) 흔쾌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약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11.10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11.10ⓒ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그러나 훈풍은 길게 가지 못했다. 김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구체적으로 짚는 과정에서 엇갈린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주 원내대표는 정책간담회 중간 이석하며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시스템으로는 부족해 처벌과 제재를 강화해 (산재 사고를) 줄여가야 한다”면서도 “정의당이 내놓은 법안을 통째로 다 받을 것인지, 일부 조정할 것인지에는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정의당과 정책연대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법안 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하나 정책연대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이기도 한 중대재해를 ‘기업 범죄’로 인식해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과잉입법이 아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한다”며 “민사든 형사든 훨씬 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형사처벌을 병행할 것인지의 문제는 좀 더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징벌적 손해배상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찬성”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장내를 나서며 취재진과 질의응답 중 “정의당이 발의한 ‘모두가 산재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 법률을 하는 데 있어서 국회가 전폭적으로, 각 당의 입장을 떠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언급했다.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처벌에 대해서는 “산재 방지를 위한 안전시설을 법적으로 규정했는데 사업주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업주를) 처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의당과 정책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 살펴볼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한편, 정의당은 책임자 처벌은 배제하고 일부 요건만 조합해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수준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대신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기업이 더 많은 금전적인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보다 위험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정의당은 과징금 제도만 강화하고 책임자 처벌 등 핵심 조항은 뺀 산안법 개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갈음하려는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의 행보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며 “민주당이 최근 산안법 개정을 언급하며 과징금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산재를 예방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과징금이 없어서 산재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기업과 원청의 대표이사가 책임지고 안전 관련 조치를 하도록 하고, 이를 소홀히 한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만 산재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주 원내대표도 이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라며 “생명의 문제를 두고 돈 문제로 접근하지 않기를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원내대표도 간담회 발언 중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가 개인의 실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가] 각계 202인, “공격적 무기도입 예산 전액 삭감해야”

6.15남측위 등, 국회앞서 국방예산 삭감 공동선언 기자회견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0.11.10 11:51
  •  
  •  수정 2020.11.10 18:25
  •  
  •  댓글 1
 
6.15남측위원회는 각계 대표와 인사 202명 연명으로 ‘무기증강 중단, 국방예산 삭감! 각계 공동선언’을 10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원회는 각계 대표와 인사 202명 연명으로 ‘무기증강 중단, 국방예산 삭감! 각계 공동선언’을 10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평화를 위협하고, 자주국방과도 인연이 없는 공격적 무기도입 예산은 전액 삭감해야 합니다.”

2021년 정부 예산안 국회 심의에 맞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각계 대표와 인사 202명 연명으로 ‘무기증강 중단, 국방예산 삭감! 각계 공동선언’을 10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이번 공동선언에는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을 비롯해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박흥식 전농 의장,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정수 평하여성회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등 주요 단체 대표들이 참여했다.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오른쪽)와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가 공동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오른쪽)와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가 공동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정부가 제출한 2021년 국방예산은 작년 대비 5.5% 인상하여 52조 9천억 원에 이른다”며 “국방비 팽창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러한 추세라면 2023년경이면 일본을 추월해 세계 6위 규모의 국방지출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강한 안보가 평화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정부의 철학”이라며 “국방 투자를 더욱 늘려 국방예산을 52조 9천억 원으로 확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전력 증강에 쓰이는 방위력개선비를 전년 대비 2.4% 증가한 17조 738억원으로 책정했고, 향후 5년간 국방중기계획(2021~2025)에 따라 300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들은 “문제는 이러한 국방예산의 증가가 주로 미국산 무기도입과 대북 적대적 무기체계 구축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짚고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환수는 사실상 어려워진 반면, 오히려 끝없는 무기증강의 덫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경항공모함, 핵추진 잠수함, F-35B 신규 도입 등 한국방위에는 쓸모가 없는 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대중국 봉쇄에 동원될 수 있는 무기체계 관련 비용, △선제공격과 보복응징을 위한 킬 체인 등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사업, △북 요인 암살 및 참수작전 등을 위한 특수전지원함 및 침투정 사업예산 등을 꼽았다.

이들은 “대북 선제공격에 기초한 무기증강과 관련 예산 증액은 군사적 신뢰 구축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한 4.27판문점선언의 합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며, 어려워진 남북관계를 더욱 경색시키고 새로운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 삭감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필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은 무기 증강을 위해 국방예산을 늘릴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위기 속 서민들을 위한 긴급생활지원, 사회안전망 확보,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의장의 인사말에 이어 각계 대표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인사말에서 “무기의 증가나 국방예산의 증가는 이런(판문점·평양) 선언을 무력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행태에 대해서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하고 무기 수입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은 각계 발언에서 “어마어마한 국방예산을 책정했다는 것은 너무 시대적 요구에 맞지 않는 것으로서 참으로 비통하기 짝이 없다”며 “우리가 지금 평화를 위해서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이끌어나가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전쟁 기지화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지금 코로나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는지 아느냐”며 “민주노총은 한반도 평화시대를 더욱 앞당기기 위해 평화군축을 위한 더욱 실천적인 노력과 더불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민생복지예산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종성 6.15청년학생본부 상임부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두고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가 무슨 강한 안보를 이야기하느냐”고 꼬집고 “그 국방예산 대한민국 청년들,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생활에 지원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곽호남 진보대학생넷 대표는 “군비를 증강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무려 17조원이나 된다. 방위력 개선비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공격용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다”라며 “그 17조원으로 아니 그보다 3조원이나 적은 14조원으로 전국 모든 대학의 등록금을 무상화 할 수 있고 일자리가 없는 청년 20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경항공모함과 F-35B 모형에 ‘무기증강 필요없다’는 경고 딱지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경항공모함과 F-35B 모형에 ‘무기증강 필요없다’는 경고 딱지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정의당과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는 국회앞 기자회견과 같은 시간인 10일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국방예산 삭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 김응호 정의당 부대표,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전시작전권 전환 조건 충족’을 위한 전력 증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전작권은 조건을 따질 것이 아니라 즉각 환수해야 하고, 이를 명분으로 한 군비 증강은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한정된 국가 예산은 군비 증강이 아닌 코로나19 위기 대응, 사회 안전망 확충,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며 “국회가 불필요한 무기 획득 사업을 실제로 폐기하고 과도한 국방비를 삭감하여, 시급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무기증강 중단! 국방예산 삭감! 각계 공동선언(전문)]

국회는 2021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심의를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9월 총지출예산으로 555조 8천억 원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번 예산안은 유례없는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다뤄지는 만큼, 국민의 입장에서 적합하게 짜여 졌는지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정부 예산안 중 특히 국방예산과 관련하여, 각계 시민사회는 계속되는 무기 증강과 국방예산 증액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노력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정부가 제출한 2021년 국방예산은 작년 대비 5.5% 인상하여 52조 9천억 원에 이릅니다.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비에 비해서도 1.5배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문재인 정부 첫해 40조로 시작했던 국방예산은 3년 만에 50조를 돌파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국방비로 301조를 투입할 계획이라 밝혔습니다. 이러한 국방비 팽창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러한 추세라면 2023년경이면 일본을 추월해 세계 6위 규모의 국방지출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국방예산의 증가가 주로 미국산 무기도입과 대북 적대적 무기체계 구축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환수는 사실상 어려워진 반면, 오히려 끝없는 무기증강의 덫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부는 경항공모함, 핵추진 잠수함, F-35B 신규 도입 등 한국방위에는 쓸모가 없는 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대중국 봉쇄에 동원될 수 있는 무기체계 관련 비용 또한 예산에 반영하여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였습니다.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동원될 무기를 국민 혈세로 사들여서는 안됩니다.

핵·대량살상무기 위협 대응 능력 강화를 명분으로 선제공격과 보복응징을 위한 킬 체인 등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사업이 이름만 바뀐 채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관련 예산은 3년 사이 2조원이나 늘어났습니다. 북 요인 암살 및 참수작전 등을 위한 특수전지원함 및 침투정 사업예산 등은 대북선제공격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부적절한 예산입니다. 이 사업은 심지어 국회 예결특위 차원에서도 사업계획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바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북 선제공격에 기초한 무기증강과 관련 예산 증액은 군사적 신뢰 구축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한 4.27판문점선언의 합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며, 어려워진 남북관계를 더욱 경색시키고 새로운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 삭감해야 마땅합니다.

폭증하는 무기도입과 군비증강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 주권실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역행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주국방, 전작권 전환의 명분으로 남북관계 파탄과 평화위협의 덫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계속된 경제위기와 민생위기 속에서 불요불급한 무기 증강에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가의 한정된 재원은 우선적으로 필요한 곳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필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은 무기 증강을 위해 국방예산을 늘릴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위기 속 서민들을 위한 긴급생활지원, 사회안전망 확보,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예산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는 촉구합니다.
평화를 위협하고, 자주국방과도 인연이 없는 공격적 무기도입 예산은 전액 삭감해야 합니다.
국방비 삭감으로 마련된 예산을 코로나 민생예산에 긴급히 투입해야 합니다.

2020년 11월 10일
무기증강 중단, 국방예산 삭감 각계 공동선언 참가자 일동


<공동선언 참가자 명단 총202명>

이창복(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홍정(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강보향(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대표), 강은주(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 강주수(인천평화복지연대 상임대표), 고다은(성남청년회 회장), 고진형(6.15전남본부 상임대표), 공정욱(전교조 고양초등지회), 곽지은(놀이하는사람들 전 지회장), 곽호남(진보대학생넷 대표), 권낙기(통일광장 대표), 권선경(국민건강보험공단 과장), 권영길(평화철도 이사장), 권오헌((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김경민(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근래(진보당 일반대표(사무총장)), 김기완(진보당 진보당 노동자대표), 김다은(터사랑청년회 회장), 김도현(경기청년연대 사무처장), 김동명(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동수(사천진보연합 공동대표), 김동한(6.15학술본부 공동대표), 김래곤((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 운영위원), 김미경(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병국((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김보민(안성사랑청년회 회장), 김삼열(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김석원(문화공동체 더나은 대표), 김성남(민주노점상연합충청지역연합회 지역장), 김수형(한국대학생진보연합 대표), 김식(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 김애자(전여농경북연합 회장), 김영국(한국노총인천본부 의장), 김영호(진보당 충남도당위원장), 김옥임(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용복(한국노동조합총연맹대전지역본부 의장), 김용우(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 상임대표), 김원진(대전청년회 대표), 김은진(국민주권연대 상임대표), 김은진(두레방 원장), 김재연(진보당 상임대표), 김재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비상대책위원장), 김재환(고양평화청년회 회장), 김정길(6.15광주본부 상임대표), 김정수(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김주업(진보당 광주시당위원장), 김준기(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의장), 김중태(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전지부 지부장), 김지선(진보당 고양시지역위원회 자주통일위원장), 김진영(통일바루 회장), 김차경(진보당 경북도당위원장), 김찬수, 김태동(성균관대 명예교수), 김태중(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대외협력국장), 김혜순((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 회장), 김환석(진보당 전남도당위원장), 김희윤(분당청년회 회장), 김희철(보훈개혁연대), 남궁석(진보당 강원도당위원장), 남성민(경남도연맹 부의장), 남주성(6.15대경본부 상임대표), 노수희(범민련서울연합 명예의장), 노정현(진보당 부산시당위원장), 류경완(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대표), 문성인(진보당), 문성호(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문영미( 정의당인천시당 위원장), 문예련(경기청년연대 교육위원장), 문창길(창작21작가회 대표), 문홍주(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 민점기(6.15전남본부 상임대표), 박규용((사)대전충남겨레하나 상임대표/ 교육위원회 위원장), 박덕신(기독교대한감리회 수유교회 원로목사), 박범수(경기청년연대 (안산청년회) 의장), 박봉열(진보당 경남도당위원장), 박석운(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박석준(대구통일열차 대표), 박성철(6.15경기본부 집행위원장), 박정원(6.15강원본부 상임대표), 박정원(민족통일애국청년회 회장), 박정호(진주교육사랑방 대표), 박중기(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명예대표), 박태우(부천청년회 회장), 박현아(즐거운 청년 커뮤니티 이끌림 회장), 박흥식(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방석수(진보당 울산시당위원장), 배득현(수원청년회 정치위원장), 백선기(동학민족통일회 운영위원), 백창환(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대표), 서경옥(경기환경운동연합 교육국장), 서종수(한국노총서울본부 의장), 성희영(경기여성연대 사무국장), 손동대(6.15청년학생본부 집행위원장), 손정목(4.27연구원 연구위원), 송명숙(진보당 진보당 청년대표), 송명식(주권자전국회의 조직위원장), 송원석(전교조 고양중등지회 지회장), 송재영(6.15경기중부 상임대표), 송준호(사회적경제연구소 소장), 송해철(보훈개혁연대 상임대표), 신건수(진보당 경기도당위원장), 신금순(통일엔평화), 신미연((사)겨레하나 사무총장 직무대행), 신선희(인천여성회 회장), 신수식(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 신창현(진보당 인천시당위원장), 신창현(진보당인천시당 위원장), 신혜원(사)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심지선(고양여성민우회 대표), 안건수(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안재영(겨레하나 파주지회 대표), 안주용(진보당 진보당 농민대표), 엄미경(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오인환(진보당 서울시당위원장), 용순옥(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본부장), 원영희(한국YWCA연합회 회장), 유영임(경기여성연대 운영위원), 유은옥(수원시남북교류협력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윤기종((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 윤병일(민주노총 성남지역지부 조합원), 윤주형(6.15충북본부 집행위원장), 윤진섭(진보당), 윤희숙(진보당 일반대표), 이강일(6.15인천본부 상임대표), 이경민(진보당 진보당 빈민대표), 이경민(하남청년회 회장), 이광호(6.15인천본부 상임집행위원장), 이규재(조국통일범민족연합 의장), 이길우(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본부장), 이대동(대경진보연대 공동대표), 이대식(민주노동조합총연맹대전지역본부 본부장/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이래경(다른백년 이사장), 이명주(진보당 충북도당위원장), 이미애(동학민족통일회 운영위원), 이병호(남북교육연구소 소장), 이상덕(청주청년회 회장), 이상헌(진보당 사천시위원회 위원장), 이상훈(민중민주당(민중당)), 이성재(노동희망발전소 대표), 이소영(청년다락 대표), 이양수(민주노동자전국회의 의장), 이영범(나라사랑청년회 회장), 이영복((사)대전충남겨레하나 공동대표), 이영진(6.15진주본부 집행위원장), 이요상(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이우원(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이은미(6.15울산본부 공동대표), 이인화(민주노총 인천본부 본부장), 이장희(불평등한 한미소파 개정 국민연대 상임대표), 이재선(천도교청년회 회장), 이정아(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이정이(6.15부산본부 상임대표), 이종철(6.15경기본부 상임대표), 이지범(평화통일불교연대 위원장), 이진호(평화통일시민행동 대표), 이해성(남북연극교류위원회 위원장), 이현옥(금정굴인권평화재단 대표), 이혜진(민들레 대표), 임상호(6.15울산본부 상임대표), 임차진(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 현장사업단장), 장남수(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장수경(인천겨레하나 집행위원장), 장지창(강릉청년센터 대표, 장지철(전교조 경기지부장), 전덕용(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전윤경(진주진보연합 집행위원장), 전지윤(다른세상을향한연대 운영위원), 정선영(사천비정규직센터 센터장), 정일용(6·15남측위 언론본부 상임대표), 정종성(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정종해(평택청년플랫폼 피움 대표), 정지성(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집행위원장), 정한길(가톨릭농민회 회장), 정해랑(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정현우(진보당 대전시당위원장), 정현우(진보당대전광역시당 위원장), 조성우((사)겨레하나 이사장), 조순덕(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장), 조용신(진보당 일반대표), 조원호(미국은 들어라! 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조헌정(예수살기 상임대표), 채수근(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 본부장), 천기창(대구경북주권연대 대표), 최경은(서울청년네트워크 총회준비위원회), 최동성(대한도덕회 회장), 최미정(경기여성연대 회원), 최순영(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 최영민(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최을상(전국빈민연합 의장), 최창훈(전농경북도연맹 의장), 최형권(진보당 전북도당위원장), 하동협(전교조인천지부 지부장), 하연호(새로하나 공동대표), 하재길(6.15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 한미경(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한충목(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허상수(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현지(6.15광주본부 상임대표), 홍동희(전교조 부산지부 지부장), 홍희덕(새로하나 상임대표), 황순규(진보당 대구시당위원장), 황철하(6.15경남본부 상임공동대표)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유일하게 검찰총장만 알고 있는 ‘대검 특활비’… 집행 과정 살펴보니

 
검찰총장 권한 축소를 노린 법무부 특활비 배정
 
임병도 | 2020-11-10 09:13: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위원들은 9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3시간가량 대검찰청에서 법무부와 대검의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집행 현황 및 관련 문서 등을 검증했습니다.

특수활동비 (특활비)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
정부 예산은 반드시 목적과 사용 내역 등에 관한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특활비는 예외로 생략할 수 있다. 보통 사건수사, 정보수집 등 비밀업무에 사용된다.

특활비 검증이 끝난 뒤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여당은 대검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특활비 검증이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대검이 특활비 내역을 충분히 공개했다는 입장입니다.

여야 공방 속에서 대검의 특활비가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유일하게 검찰총장만 알고 있는 ‘대검 특활비’

올해 법무부에 배정된 검찰 관련 특활비 예산은 총 93억6700만원입니다. 이중 대략 10%에 해당하는 10억을 법무부 검찰국이 사용하고, 나머지는 대검에 배정됩니다.

검찰총장은 특활비를 대검 및 일선 검찰청 등에 내려 보내는 데, 금액과 횟수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만, TV조선은 “대검 부서는 매달 1천만원에서 3천만원, 지검은 매달 200만원에서 800만원을 받고, 서울중앙지검은 월 5천만원 이상 받는다”고 보도했습니다.

TV조선은 구체적인 액수를 보도했지만, 정확히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는 검찰총장만 알고 있는 집행구조입니다.

검찰총장이 특활비를 가져오라고 지시하면 대검 운영지원과에서 돈과 잔액이 적힌 쪽지를 비서에게 전달합니다. 검찰총장은 돈을 받고 특활비 잔액이 적힌 쪽지는 파쇄합니다. 검찰총장 비서와 운영지원과 서기관은 특활비 규모와 잔액은 알고 있지만, 실제 어디에 쓰였는지 아는 사람은 유일하게 검찰총장뿐입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대검 특활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특활비 검증 과정에서 “(특활비 관련) 법무부는 상세내역이 있었지만, 대검은 상세내역이 없었다. 청(廳)별 자료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혀 정보로서 가치가 없는 자료였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찰총장 권한 축소를 노린 법무부 특활비 배정

특활비 검증은 지난 5일 국회 법사위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이) 특활비를 주머닛돈처럼 사용한다”고 발언한 다음날인 6일 대검 감찰부에 대검이 500만원 이상 지급한 특활비 내역을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여야의 특활비 검증 과정에서 법무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관 법무·검찰 특활비 문서검증에서 금년 초에 취임한 추 장관은 예년과는 달리 검찰 특활비를 배정받거나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법사위원들의 문서검증 및 질의답변을 통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추 장관은 법무부 특활비 공방에서는 자유롭게 됐습니다.

추 장관은 내년부터 검찰총장을 배제하고 검찰 특활비를 법무부가 직접 대검과 일선 검찰청에 지급하고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검은 ‘정당한 예산 배분 권한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법무부는 ‘원칙적으로 일선 청에 대한 특활비 배분 권한은 법무부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무부의 특활비 직접 배정은 검찰총장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일선 검찰청에서는 검찰총장이 지급한 특활비를 고검장이나 지검장이 다시 검사들에게 격려금처럼 지급되면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만약 특활비가 법무부에서 직접 지급된다면 대검보다는 법무부에 더 힘이 실리게 됩니다.

돈 봉투 만찬 사건
2017년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 검찰 특별수사팀 소속 검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격려금 명목으로 70~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안 국장은 면직 처리됐지만, 이후 불복 소송에서 부적절했지만 면직은 지나치다며는 판결이 나오면서 승소했다. (안태근 전 국장은 서지현 검사 성추행 및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인물)

법무부가 직접 특활비를 준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017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 봉투 만찬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특활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입니다.

특활비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서 있는 돈입니다. 정치 검찰을 만들기 위한 비자금으로 악용되지 않거나 의혹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와 검증은 필요해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16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특활비 논란, 같은 것 보고 다른 얘기하는 이유

김민하 칼럼] '탈원전 수사' 견제 위해 여당이 법무부 장관 등 떠민 셈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20.11.10 08:27
 [미디어스] 잊을만하면 검찰 뉴스다. 이번에는 특수활동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5일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의 특활비 관련 언급을 하고 이튿날 감찰 조사를 지시하고, 국민의힘이 법무부 특활비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받아 치면서 검찰과 법무부 양쪽 특활비 사용을 모두 국회가 검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의혹이 해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논란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의문이다.

9일 여야는 같은 자료를 보고 정반대의 해석을 주장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사용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제출 자료가 부실해 검찰총장 개인의 특활비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없어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검찰의 자료는 비교적 소상했으나 법무부 제출 자료가 부실해 추미애 장관이 검찰 특활비를 받아 쓴 바 없다는 법무부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서울중앙지검에 배분된 특활비 액수에 대해선 민주당은 총액이 줄었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예년과 비슷한 비율이 유지됐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건 어느 한쪽이 완전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각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부각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두 주장을 하나로 합쳐봐야 한다. 가령 서울중앙지검 특활비 문제는 전체 총액은 줄었으나 비율 자체는 유지된 것으로 봐야 한다.

법무부와 검찰의 자료 제출 미비 문제는 좀 더 구체적인 평가를 봐야 한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법무부는 개인 영수증이 있는 서류도 많았다. 반면 대검은 검찰청별로 예산이 들어간 서류라 훨씬 부실했다”고 했고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법무부는 어느 국에 얼마를 줬다고 출력한 자료만 있었다. 반면 대검은 올해 상반기 특활비가 얼마 정도고 몇년 동안 총액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등 자료를 충실히 제출했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법무부는 ‘증빙’에 초점을 맞췄고 검찰은 과거와 비교한 지출 흐름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둔 게 아닌가 추측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간사가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진행된 국회 법사위의 검찰과 법무부 특수활동비 집행내역 현장검증을 위해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튼 이날 검증 내용을 종합하면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사용에 대해선 딱히 문제삼을 만한 결정적 내용이 발견됐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부터 그랬거나 법무부 또는 검찰이 문제를 은폐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야당은 특활비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른 기관에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쟁을 떠나 통제불가능한 예산의 비율을 줄이고 사후적으로라도 집행을 검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그나마 생산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특활비 이슈는 결국 그 특성상 정권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추미애 장관이 검증을 밀어 붙인 셈이 됐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추미애 장관의 ‘자살골’이란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의 등을 떠민 것은 여당이라는 사실에 중점을 둘 필요도 있다. 5일 국회 법사위 논의 내용을 보면 여당 의원들이 먼저 특활비 관련 질의를 했고 추미애 장관이 이에 화답하면서 “검찰 안팎에서 얘기가 나온다”, “그런 얘기가 있다”라는 식의 다소 엉성한 형태의 의혹제기로 검증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정치 참여 관련 발언을 한 이후 검찰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검찰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 강경해지고 있다. 여당이 특활비 관련 문제를 꺼낸 것도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 역시 나오고 있다. 정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둔 검찰총장이 해당 지검이나 팀을 특별히 더 독려한 정황을 잡는다면 의도를 문제 삼을 수 있고 수사의 정당성에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당은 사실상 대선에 출마하려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권에 상처를 입히기 위한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정책적 판단은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핵심 정책을 펼 때마다 검찰에 확인서라도 받아야 하느냐는 비아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상식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탈원전정책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과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불법 여부를 밝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감사원이 검찰에 넘긴 수사참고자료 내용에 대한 보도를 보면 여당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조선일보는 감사원이 검찰에 보낸 자료는 7천쪽에 이를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며 판결문과 같은 형식으로 관련자들에 적용 가능한 법조항까지 정리돼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통상 감사원이 수사의뢰를 하지 않고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보낼 때는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경우는 ‘하라’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얘기다. 그간 언론은 감사원 자료에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계획 이행 여부를 청와대 직원에게 확인하면서 ‘무리수’가 시작됐다는 내용도 있다고 보도해왔다. 결국 여당으로선 검찰이 ‘특수부 스타일’대로 수사를 진행할 경우 청와대 핵심까지 수사의 손이 미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국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울산사건’의 재현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의 우려는 일부 이해도 되지만 정치는 결국 명분이라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무게를 실은 정책의 정당성을 지키고 싶다면 탈원전정책과 월성 1호기 조기폐쇄의 불가피성에 대해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또 공무원들이 자료를 무단으로 삭제하는 등 사실상 감사 방해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이유불문 잘못을 인정하는 게 순리다. 검찰이 과잉된 방식으로 잘못된 수사를 진행한다면 그 자체에 대해 지적을 하는 것이 옳지 의도만을 추정해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여당의 지금과 같은 방식은 결국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한 ‘찍어 누르기’에 가깝다는 점에서 명분도 없고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뿐이다. 특활비 논란은 이걸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정치 참여 발언 등에 대해 적절한 해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검찰 수사의 신뢰성을 스스로 해하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바이든 정부에서 북미관계, 문재인 정부 하기에 달렸다"

김동석 KAGC 대표 "워싱턴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게 의원 외교 아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7일(현지시간)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바이든 후보(이하 직함 생략)는 이날 오후 델러웨어주 월밍턴에서 승리 선언 연설을 했다. 바이든은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이들의 실망을 이해한다. 진전을 위해 상대방을 적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 다시 세계로부터 다시 존경받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은 내년 1월 20일 오후 12시 제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앞선 트럼프 정부와는 한미관계, 북미관계에 있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예상되므로 이에 대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 2001년 한국 찾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은 바이든 당선인이 미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인 2001년 8월 방한,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끝)
 

국무장관, 수전 라이스-토니 블링큰 등 물망에


 

7일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국무장관으로는 부통령 후보로도 물망에 올랐던 수전 라이스 전 유엔대사, 토니 블링큰 전 국무부 부장관, 크리스 쿤 상원의원(델러웨어),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네티컷), 윌리엄 번스 전 국무부 정무차관 등이 떠오른다고 한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로 상원 다수당을 공화당이 유지할 것이 유력하기 때문에 공화당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인물은 임명이 어렵다. 라이스 전 대사의 경우, 지난 2013년 있었던 리비아 뱅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에 대한 처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공화당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누가 바이든 정부에서 외교-안보라인의 실세가 될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바이든은 이 분야 대한 이해와 관심이 누구보다 깊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은 동맹 중시...오바마 때 '전략적 인내'는 이명박-박근혜의 선택이었다"


 

한국 입장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바이든은 동맹국과의 연대와 협력을 중시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동맹국을 압박하던 트럼프 정부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대화와 협상 파트너라는 얘기다. 무역, 통상문제에 있어서 불확실성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 "세계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줄면서 우리나라의 무역 여건도 다소 나아질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세 차례 정상간의 만남이 있었던 북미관계는 악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바이든이 부통령을 지낸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정책 기조는 '전략적 인내'였다. 오바마 정부는 외교적 인내와 압력을 통해 북한이 전략적 선택을 하도록 한다는 기조였지만, 오히려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됐다. 바이든 정부가 이런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리처드 홀부룩 전 아프간 특사의 작품이다. 부통령인 바이든은 당시 외교정책에 관여하지 않았다. 또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큰 틀에서 보면 당사국 존중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가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입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유권자운동을 해온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7일 오전 '섀도우캐비닛'의 온라인 강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섀도우캐비닛'(대표 김경미)은 선출직 공직자(혹은 임명직 공직자)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의 강연(한국의 정치 키즈들이 워싱턴 정치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은 이날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에 4주 동안 진행된다.


 

"바이든 대북정책 방향, 클린턴 정부 때를 봐야...문재인 정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바이든은 미국의 전설적인 상원 외교위원장인 리처드 루거 전 의원(공화당)의 민주당 파트너로 함께 하면서 동서냉전 문제를 풀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방향을 전망하려면 오바마 정부 때가 아니라 오히려 클린턴 정부 말기를 보는 게 낫고 생각합니다. 클린턴 정부 당시 상원에서 연착륙 정책을 만든 의원 중 한 명이 바이든입니다. 그때 바이든을 보좌하던 보좌관(프랭크 자누지) 등이 이번 대선캠프에도 관여했습니다."


 

클린턴 정부 때인 1994년 미국과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미수교, 평화협정, 경수로 발전소 건설, 중유 공급 등을 합의한 제네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당시 의회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경수로 발전소 건설 지원비 통과를 거부하면서 이행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3년 부시 정부 때 폐기됐다.


 

프랭크 자누지는 바이든 보좌관 시절 북한을 2번이나 방문했고 민주당 내 대표적인 대북 대화론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6년 한 토론회에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대해 "실패했다"면서 "외교의 초점을 북한 핵에서 북한 주민들로 옮겨와야 한다"고 평가했다. 과거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방식으로 다면적 관여정책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미국 민주당도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해소됐다고 평가한다"며 바이든 정부에서도트럼프 정부때와 다르지 않게 북핵문제와 북미관계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한국정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을 만났을 때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성과는 다들 인정했습니다. 트럼프 정부 때의 정상 외교로 풀었던 방식이 합당하고 한국 입장에서 유리하면, 저는 문재인 정부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관련해서 미국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기 전에 주장을 먼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모범은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를 향해 구체적인 주장을 해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관철시킨 성과가 북미 정상회담이었습니다."


 

▲ 사진은 2013년 12월 7일 손녀 피너건양과 함께 판문점 인근 올렛초소(GP)를 방문해 JSA경비대대 소대장으로부터 비무장지대(DMZ) 경계태세에 대해 브리핑을 받는 조 바이든(당시 부통령). ⓒ연합뉴스
 

"바이든, 중국 압박 정책은 이어갈 듯...'러시아 스캔들' 여파로 외국정부 로비에 민감"


 

김 대표는 다만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솔직히 미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정책은 중국이 중심입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압박 정책은 이어갈 것입니다. 바이든은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큽니다. 워싱턴 정치권에는 반중국, 친일본이 중심이지 한국 이슈는 별로 없습니다. 반중국과 한미일 삼각공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미국을 상대할 때 한국이 어떤 포지션에서 어떻게 접근할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많이 하는 실수가 '친한파' 의원이라고 알려져서 접근하면 알고 보면 '친일파' 의원이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접촉하기 보다는 그 의원과 다른 쪽에 있는 의원이나 보좌관을 접촉해서 정확히 알고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2016년 대선 이후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후과로 미국 정치권이 외국 정부의 개입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졌습니다. 선거에 다른 나라 정부 영향력 차단하는 것부터 해라, 그래서 연방수사국(FBI)에서 이번 선거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문제였습니다. 바이든 캠프에서는 캠프 관계자들은 일절 외국 인사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와서 바이든 정부에서 외교라인 핵심이 될 인사를 만나야겠다', 이런 접근은 힘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들, '워싱턴 와서 누구 만났다'는 기사 그만 써야"


 

김 대표는 "워싱턴의 중심은 백악관이지만 미국을 연속성을 갖고 운영, 관리하는 중심은 의회"라면서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국 의회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외교와 관련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또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한 외교에서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게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충분히 사전에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정확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워싱턴 정가는 외국 정부의 영향력에 대해 매우 민감해져 있습니다. 누가 정책에 있어 핵심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고 만나야 합니다.


 

둘째, 의원들이 워싱턴에 오려면 초당적으로 와야 합니다. 한국은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정파적입니다. 트럼프 정부 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북미 정상회담과 문재인 정부의 평화체제 구축 노력과 관련해 두 가지 메시지가 전부 전달됐습니다.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사실 워싱턴에 더 네트워크가 잘 돼 있으니까 이런 분들이 와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의견을 전달하고 이런 입장이 한국 국민 다수의 입장인 것처럼 얘기하고 갔습니다.


 

의원 외교를 위해 워싱턴에 오시려는 분들이 이런 점을 사전에 좀 잘 알고 오셔야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언론에서 '00 의원이 워싱턴에 와서 미국 00 의원을 만났다' 이런 기사는 그만 다뤄줬으면 합니다. 언론들이 자꾸 써주니까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정치인들이 와서 자신이 편한 의원들 만나고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한국에서 외교,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분들은 요구 수준이 낮아질 지라도 초당적인 수준에서 합의할 수 있는 의견을 갖고 와서 미국 의원들을 만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 이슈는 어떻게든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바이든은 최근 <연합뉴스> 기고문에서 한미동맹을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고 표현하면서 "한국 국민과, 한국이 전쟁 이후 성취한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관계에 대해서는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에 관여하고 비핵화한 북한과 통일된 한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프레시안(전홍기혜)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090522500915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인영, "정세 전환기를 남북의 시간으로 만들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1/10 08:50
  • 수정일
    2020/11/10 08: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미관계 촉진' 프로세스...더 좋은 정세 흐름 기대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0.11.09 17:40
  •  
  •  수정 2020.11.09 21:06
  •  
  •  댓글 1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9일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세의 전환기를 남북의 시간으로 만들어나가자"고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 7월 말 북민협 대표자들과 면담하는 이인영 장관.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9일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세의 전환기를 남북의 시간으로 만들어나가자"고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 7월 말 북민협 대표자들과 면담하는 이인영 장관. [통일뉴스 자료사진]

"정세의 전환기를 남북의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자."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9일 최근 미국의 대선결과에 언급하면서 동북아 정세에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남북사이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더 크게 열릴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장관은 취임 100일을 넘겨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남북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신뢰를 만든다면 계속해서 이어질 더 좋은 정세의 흐름을 남과 북, 우리가 함께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2000년 북미 코뮤니케와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선례를 들어 "남북의 대화와 협력이 있었기에 북미관계의 진전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거듭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진전을 이루자는 선순환론을 언급했다.

이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북측이 남북, 북미간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고 비핵화에 전향적 의지를 보여준다면 한반도가 평화를 위해 나아갈 뿐만 남북간 평화협력의 공간이 확대되는 성과를 우리가 다시 함께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를 통해 남·북·미가 하노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평화의 결실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북측에는 "신중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이 유연하게 전환의 시기에 대처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미국을 향해서는 "미국 차기정부와 공조하여 더 나은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한미동맹간의 새로운 동행의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며, "한미동맹 또한 평화질서를 주도하는 보다 새로운 단계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미 정책공조 등을 위해 최소한 수개월은 불가피하게 소요될 수 있지만 이 기간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국 조야와 소통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한미간 협조와 지지의  토대를 보다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께 확인하고 남북미의 협력 필요성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했다.

취임 후 100일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또 이제 와서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삼겠다는 건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걸까.

이 장관은 "그동안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또 평화를 향해서 묵묵히 한 방향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결재를 해 나가면서 큰 정세 변화를 시야에 넣고 전략적 행보를 모색해 왔다"며,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후회는 대체로 없다"고 말했다.

또 교착이 장기화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대화와 협력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며 "코로나 방역에서 시작해 삶의 문제와 밀접한 보건의료, 재해 재난, 기후환경 분야에서 대통령이 말한 생명안전 공동체를 향한 협력을 본격화하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남·북·미 신뢰를 기반으로 그동안 이루어진 '모든 합의의 전면적 이행'이라는 더 큰 접근으로 전환하기 위한 모든 준비와 여건을 갖추어놓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전환기 정세에서 남북관계를 잘 풀어 북미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라고 설명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전환기 정세에서 남북관계를 잘 풀어 북미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라고 설명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북미관계 선순환론에 대한 질의가 이어지자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북미관계가 교착되어 있는데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기존 정책을 리뷰하고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데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 시기에 남북관계를 잘 풀어서 북미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정부가 기존 하향식 접근이 아니라 실무적 접근을 통한 의사결정을 선호하는데 대해서는 개인 캐릭터에 의해 움직이는 것보다 시스템이 작동된다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경쟁 와중에 바이든 정부가 미국의 이익이나 목표와 관련해서는 다르지 않겠지만 상황에 더 합리적으로 접근한다는 전제하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데 그렇게 나쁜 환경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충분히 의견을 조율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측의 태도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세에 북측이 신중하고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합리적인 결과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가 미국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이고, 우리 스스로 남북 협력과 대화의 폭을 얼마나 만들어내고 작동시켜 나갈 수 있는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남북관계에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건 북측의 의지가 아닐까.

이 당국자는 뒤늦게 공개된 지난 9월 남북 정상간의 친서, 서해 피격때 보여주었던 북측의 이례적인 사과,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의 대남메시지 등을 거론하면서 북측이 최소한 남북관계를 파국적으로 몰고 가려는 것은 아니며 더 적극적으로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서해 피격사건 등으로 국내에 강한 비판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활동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올해 연말과 내년초를 지나면서 더 나은 상황은 만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대화와 협력을 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 요인이 증대될 것이라고 본다"고 하면서 "조금 더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된다면 보건의료협력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에서도 그 전과 후가 많이 다르지 않겠느냐"는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

이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때도, 4.27판문점합의때도 제재가 작동하는 가운데 큰 정세의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상기시키고는 "내년 도쿄 올림픽도 있고 남북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제재가 작동하는 가운데에서도 남북관계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매머드급 뉴스가 꽤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