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25)씨가 지난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공동취재단](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792/536/imgdb/original/2020/1126/20201126501216.jpg)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26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배포등)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씨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하며 10년간의 신상정보 고지와 전자발찌 부착 30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 10년 등을 명령했다.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초유의 직무 정지 사태를 이해하는 세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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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검찰총장이 24일 저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브리핑이 끝난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0.11.24 | |
ⓒ 연합뉴스 |
자업자득이었다. 지난해 8월 이후 "조직에 충성한다"던 '검찰주의자' 윤석열 총장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으로 출발한 조국 일가족 수사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처음엔 손쉽게 끝나리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를 자임하던,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여권의 향후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조 전 장관이 사퇴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이 팔순 노모부터 아내와 자녀들은 물론 동생의 부인까지 탈탈 털었지만 조 전 장관은 끝끝내 버텼다.
자업자득 그러자 인사청문회 당일 정 전 교수를 소환 조사 없이 기소했고 이후 구속까지 일사천리였다.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가 이어졌고, 검찰의 칼끝은 이듬해 총선을 의식한 듯 민정수석 조국을 고리로 청와대를 겨냥했다. 검찰 기자단과 보수 언론, 보수 야당을 등에 업은 윤석열 검찰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권력보다 무서운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공공병원 의존 취약계층, 코로나19로 사각지대에 내몰렸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 공공병원이 문는 닫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병원에 의존하고 있던 사회적 취약계층의 건강권은 코로나19 위기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등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은 2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보고회를 열고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공공의료자원 확보를 촉구했다.
공공병원에 의존하고 있던 취약계층...코로나19로 갈 곳 없어져
실태조사단이 발표한 심층 인터뷰에서 쪽방촌 주민, 장애인, 이주민 등은 하나같이 "평소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이용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쪽방 주민, 노숙인, 이주노동자 그리고 HIV 감염인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은 적은 수의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에게 민간병원은 부담이 된다. 부담을 감수하고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 해도 수급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하곤 한다. 취약계층에게는 사실 공공병원 이외에 선택권이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연한 사회적 취약계층 진료거부...코로나19로 심화
빈곤층은 의료급여를 통해 의료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정부는 빈곤층의 기초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수급권을 적극 보장하기보다는 "수급의 악용 가능성을 막는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시행해왔다.
민간병원에서도 의료급여수급자는 환대받는 존재가 아니다. 조사단은 "민간의료기관에서는 관행적으로 보호자 없는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입원을 거부한다"며 "상당수가 1인가구로 살아가는 의료급여수급자들은 입원보증인이나 간병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보호자를 찾기 어려워 민간병원으로부터 사실상의 진료거부를 당하는 셈"이라고 짚었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일상적인 진료거부는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심화됐다. 조사단은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취약계층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민간병원을 찾는 수밖에 없으나, 코로나19라는 이유로 되레 진료거부와 차별적 조치가 정당화됐다"고 지적했다.
진료거부는 HIV 환자나 이주민 및 난민, 장애인들이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겪어왔다. HIV 환자들은 감염을 이유로 응급수술을 거부당해 영구 장애를 입기도 한다. 이주민과 난민은 코로나19 상황에 기본적인 정보도 공유되지 않았다. 마스크 등 기본적인 방역 비품은 물론 재난지원금, 의료에서의 진료·치료거부를 겪었다.
장애인들도 진료거부를 빈번하게 겪는다. 의료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거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민간 병·의원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가벼운 진료조차 거부한다. 공공연하고 만성화된 진료거부는 코로나19 상황에 더욱 심각해진다.
의료자원이 아닌 '공공의료자원'이 부족하다
조사단은 "한국은 의료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 자원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인구 당 병상 수를 비교했을 때 OECD 국가가 평균적으로 인구 1000명당 3.0개의 공공병상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1.3개로 멕시코 1.3개 다음으로 가장 낮다.
조사단은 지난 2~3월 대구·경북에서의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언급하며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인구 240만, 제4의 도시 대구·경북에서 1분기(3월 31일 24시 기준) 8006명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전국의 감염률 중 80%를 차지했다. 심지어 당시 사망자는 154명으로 전국 사망자의 93%를 차지했다.
대구·경북에서 경증환자를 제외한 감염된 환자의 약 4분의 3이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3월초 대구에서 4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을 때 2300여 명은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해야했다.
대구·경북은 병상 수 자체만 보면 결코 취약한 지역이 아니다. 2018년도 기준 지역인구 대비 병상 수를 보면 1000 명당 대구 15, 경북 16.6으로 전국평균 13.6보다 높다.
그러나 대다수가 민간병원 병상이었다. 2017년 기준 대구의 지역 인구 대비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48, 경북은 1.71로 전체 병상 수의 10분의 1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이러한 공공병원·병상 부족이라는 구조적인 의료공백으로 인해 3월 중순까지 발생한 전체 사망자 75명 중 17명이 입원도 못한 채 사망했다.
공공성에서 이탈한 의료자원 쏠림현상...의료의 공공성 확보해야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과대안 팀장은 "한국 보건의료와 체계는 민간 중심에 맡겨져 있다"며 "때문에 감염병 확산과 같은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재난 상황에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공공성에서 이탈한 의료자원의 문제는 병상 수에서 드러난다. 한국 병원의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2.6배다. 고가의 검사 장비인 CT는 OECD 평균보다 1.4배 많고 MRI는 1.7배나 많다.
최 팀장은 "OECD 보고서에서도 한국에 과잉 공급된 병상과 각종 고가의 검사 장비를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을 정도"라며 "반면 감염병 확산을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공병상과 음악 격리병상,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즉, 의료자원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공공성을 가진 의료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최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도만 보더라도 총 65개의 병원이 있으며 2만5000개가 넘는 병상이 있다. 그러나 이중 현재 코로나19 전담병원은 7개의 지역 공공병원, 다 합쳐봐야 1614개의 병상이 전부다. 시설을 비롯해 의료인력 등 모든 면에서 더 나은 94%의 병원을 두고 6%의 공공병원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쏠림현상은 평소 그 6%의 공공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취약계층을 다시 '의료공백'에 처하게 만든다.
최 팀장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혹은 감염이 의심되는 2000여 명이 입원을 못한 것에 더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그곳에 있던 환자들은 치료를 받다가 쫓겨난다"며 "대구·경북 지역의 1분기 초과사망자수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을 제외하고서도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은 이러한 의료공백의 결과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조사에 참여한 김동현 대한역학회 회장은 이에 대해 "코로나19로 전체 의료기관이 방역 대응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질환자들의 사망이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도 "코로나19로 희생된 사람보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컸다"며 "초창기에 대구·경북 중심로 많은 환자가 입원을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현장에선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251452237703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차 대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기획기사 마지막회
1. 2차 대전후의 세계질서
2. 반제자주역량의 반격과 결집
3. 미국우선주의의 반격과 역풍(1)
4. 미국우선주의의 반격과 역풍(2)
5. 북미대결과 동북아의 지정학
미국우선주의의 반격과 역풍
1) 무기현대화를 위한 군사비 증강
2) 인도-태평양 전략과 미국우선주의의 충돌
3) 중미무역전쟁과 글로벌 불균형의 거대한 조정
4) 동맹의 균열과 세계적 범위에서 미국 패권의 약화
5) 코로나19위기와 미국내 분열의 가속화
에 이어
5. 북미대결과 동북아의 지정학
1) 한반도 : 자주화와 세계화의 최전선
한반도는 냉전 시기에는 사실상 3차대전이 진행된 열전지역이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에는 전쟁과 공황, 예속과 빈곤, 재난의 세계화 모순의 집결처였다. 한반도는 세계화와 자주화 세력이 핵대결과 항쟁으로 맞붙은 최접전지역이다.
북이 핵무력을 완성하고 전략적 핵무장력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 정세에서 중대한 변화를 야기했다. 특히 지난 조선노동당 창건 75돌 기념 열병식을 통하여 신형 전략무기들을 대거 선보임으로써 북 단독으로 미 본토와 괌, 주일미군, 주한미군기지를 포함하여 미국의 대북전쟁도발을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억제력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그 갱신목표들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있다.
이로써 정전협정 이후 장기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북미전쟁은 최후의 전략적 대결국면으로 다가서고 있다.
남측에서 발생한 촛불항쟁과 연이은 각 선거에서 친미수구세력이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남측민중역량이 반미자주화역량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 발전속도에 따라 우리 민족과 미국과의 최후 승부의 시기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2) 북중러와 한미일의 신냉전
북의 핵무장과 북중러의 전략적 단결과 남한 민중의 투쟁은 동북아에서 오랫동안 작동해 왔던 53년 정전체제와 51년 샌프란시스코체제, 65년 한일체제에 파열구를 내고 있다.
2018년과 2019년에 이루어진 북미핵담판은 북 핵보유의 합법화, 즉 부분적 비핵화와 제재해제를 통해 정전체제, 샌프란시스코체제, 한일체제라는 3대 냉전질서를 허물어뜨리는 중대한 계기였으며, 새로운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로 이동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한미일동맹세력의 반동과 저항으로 이러한 구상은 일정하게 지연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과 담판이 아니라 힘을 통해서만 구질서의 붕괴가 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을 북은 “정면돌파전”이라고 불렀고, 남한 민중은 자주화투쟁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3)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더욱더 딜레마적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핵심요인은 친미자주노선에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관계에서 한미동맹 하에서 친미자주노선을 기조로 전작권 환수를 당면목표로 하고 있다. 전작권 환수를 통해 장기집권의 토대를 강화하고, 더 많은 것들을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한미연합훈련강화, 막대한 전략자산 구입, 사드추가배치, 한미동맹의 침략적 재구성과 맞물리면서 남북공동선언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북간 군사적 대결상태를 악화시키는 새로운 모순을 낳고 있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전략은 선북비핵화 후남북관계, 분리주의적 평화공존노선이라는 기조와 맞물리면서 사실상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미국은 전작권을 돌려줄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유엔사 강화등을 통해 작전권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나아가 방위비 분담금 등의 요구를 통해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고 비용분담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한미동맹을 미국의 패권정책 실현의 도구로 재편하겠다는 압박을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대선 이후에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확대함으로써 미사일방어체계를 확장하자는 오랜 계획을 완성단계에서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남북공동선언이행을 촉구하는 북의 전략과 충돌하면서 남측이 분쟁지역화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또한 한일관계에서도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함으로써 일본에게 65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고 나아가 일본군국주의를 허용하고 한반도의 재침략 음모, 미국의 대중전략을 위한 미국의 기지국가 역할을 강화시켜주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수용하여 사드배치 확대, 중거리 미사일배치 수용 등과 맞물리면 동북아 신냉전의 분쟁공간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주관적 의지로 친미자주기조 아래 자주국방노선을 추진하나 상호 모순된 기조와 환상적 태도로 인하여 결과적으로는 재래식 국지적 분쟁을 격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종국에는 제2의 6.25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대외정책이 신북방정책, 신남방정책,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역시 딜레마적 요소에 갇혀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일대일로 참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해야 하는 딜레마적 상황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일대일로에 참가하는 것을 기본으로 인도-태평양전략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다가 신남방정책 수행과정에서 결국 인도-태평양 전략에 올라타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한국이 인도-태평양전략에 동참한다는 것은 결국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맞부딪치는 대만과의 양안관계 갈등, 남중국해 갈등에서 미국의 전략에 정치군사적으로 동참하라는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경제적 실익은 없고 군사정치적 부담만 키우는 딜레마적 상황이 또다시 전개되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알셉)이 타결됨으로써 세계경제는 유로권, 아메리카권, 아시아권으로 크게 묶이게 되었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 및 한·중·일·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여, 역내 무역규모(5조4천억달러), 역내 총생산(GDP·26조3천억달러), 역내 인구(22억6천만명) 면에서 각각 전세계의 약 30% 비중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이다. RCEP은 국내총생산(GDP)의 30%에 해당하는 26조20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이 열린다는 기대를 한껏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 주도의 RCEP 가입으로 미국의 견제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나오고 있고, TPP가 재논의되면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경제적 딜레마 상황이 다시 펼쳐지게 되어있다.
경제적 딜레마는 미국이 한국에 반중경제블럭인 ‘경제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에 참여를 강요함으로써 더욱 심화되는 형국이다. 지난 6월부터 미국은 한국정부에 중국을 뺀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경제블록’으로 세계 경제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의 경제연합체를 만들자는 EPN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등을 참여시킨다는 계획이다. 한국 정부로선 ‘반중국 전선’의 성격이 명확한 이 기구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TPP가 되었든, EPN이 되었든 미국으로부터 한국은 반중경제블럭에 참여하라는 강요에서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신북방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중러 동맹이 공고해지고 한반도에서 신냉전구도가 고착화되는 조건에서 한국이 북을 패스하고 중국, 러시아와 독자적인 협력의 길을 마련하는 방법은 없다.
결국 한국은 코로나 이후 세계체제의 위기 속에서 경제협력의 전략적 공간과 방향을 마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기간에 중요 성공요인 중의 하나였던 지정학적 이익을 모두 상실하고 심각한 경제침체에 처하게 될 것이며, 더욱더 대미대일종속의 길로 빠져들게 됨으로써 민중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역사적 경험을 놓고 볼 때, 명청교체기에는 숭명사대매국노들이 광해군의 균형외교전략을 인조반정으로 파탄시킴으로써 삼전도의 비극으로 끝났고, 구한말에는 강대국의존형 균세정책를 거듭하다가 일제식민지로 굴러떨어졌다. 오히려 북은 중소분쟁의 시기에 자주노선으로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이런 점에서 북에게도 참고할 것은 참고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한국정부가 나아갈 길은 ‘자주’밖에 없다.
한편 남쪽만의 눈, 즉 한미동맹이라는 틀안에서는 중미대결사이의 딜레마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남과북을 하나로 묶는 통일국가적 사고속에서만 중미대결사이에서 자주의 길, 제3의 길을 개척하는 전망이 열린다.
이런 점에서 ‘자주’와 ‘통일’이라는 전략적 전망을 결단력있게 밀고 나갈 정치세력만이 민중과 민족에게 희망의 세기를 열어줄 수 있다.
기성 정치세력이 이것을 가로막거나 우왕좌왕하다가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한다면 결국 민이 나설 수 밖에 없다.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고 탈미자주전략으로 문재인 정부를 강제하고 견인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대안정치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한화가 제기한 행정소송서 패소
서울고법 “처분시효 넘겨 무효”
8월 ‘징벌적 손배’ 민사소송서도
“동종 업계 알려진 기술” 한화 손
검찰, 하도급법 위반 등에 무혐의
법원이 한화의 하도급업체 ‘기술 탈취’ 혐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법적 시한을 넘겨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하도급업체가 “100억원을 징벌적 배상하라”며 낸 민사소송에서도 한화 손을 들어줬고, 검찰은 한화 관련 형사 고소·고발을 무혐의 처분했다. 법원과 검찰이 기술유용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서울고법 행정6부는 한화가 “제재를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 18일 공정위 패소 판결했다. 지난해 10월 공정위는 한화가 태양광 전지 제조공정에 필요한 ‘태양광 스크린프린터’ 기술자료를 하도급업체 A사에서 부당하게 넘겨받아 자체 제품 개발에 활용했다며 과징금 3억8200만원을 부과했다. 하도급업체 기술을 빼돌려 제품 개발·생산에 활용하는 식의 기술유용에 대한 첫 제재였다.
서울고법은 공정위가 법적 제재 가능 기간인 ‘처분시효’를 넘겼다며 제재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신고 사건의 처분시효는 ‘신고일로부터 3년’이다. 이 사건 제재가 신고일(2016년 7월)로부터 3년3개월 뒤에 이뤄졌다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공정위는 조사 관행에 따라 ‘분쟁조정절차 종료 접수일’(2016년 10월)을 신고일로 보고 제재 시 처분시효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은 “신고일은 신고인이 신고한 날로 보는 것이 법에 충실한 해석”이라며 “공정위가 신고 접수한 날을 신고일로 본다면 신고일을 임의로 정하는 셈이라 (조사 대상) 사업자의 지위가 불안정해진다”고 밝혔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분쟁조정절차 기간이 공정위 조사 가능 기간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경우, 신속한 피해구제를 추구하는 분쟁조정 활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A사가 한화에 100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에서도 법원은 지난 8월 한화 손을 들어줬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62부는 A사가 제공한 자료들에 대해 “일부는 비밀로 관리됐다 볼 수 없고, 비밀로 관리된 자료들에 담긴 기술은 이미 동종 업계에도 알려져 있었다”며 법이 보호하는 ‘기술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술유용도 인정하지 않았다. A사는 항소해 현재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A사와 공정위가 형사처벌을 요구하며 고소·고발한 사건에서도 한화는 무혐의 처분됐다. 지난 8월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민사소송 판결 내용과 유사한 취지로 한화 법인과 임직원들을 불기소했다. A사와 공정위는 대구고검에 항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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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오은주 씨 "더이상 억울한 죽음이 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원래 많은 사람과 함께 하려 했던 추모제는 유족과 추모제를 주관한 조계종 노동사회위원회의 스님들을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거리두기 2단계 방역 지침 때문이었다.
6명의 스님이 문 기수의 영정 앞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를 했다. 부인 오은주 씨, 아버지 문군옥 씨, 어머니 김혜숙 씨가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문 기수 싸움을 함께 했던 활동가 몇몇이 얼마간 거리를 두고 근처에 섰다.
발원 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유족은 문 기수의 영정에 잔을 올릴 때 오열했다.
유족들은 문 기수 죽음의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싸움을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부인 오 씨는 "아버님 어머님께서 자식을 먼저 앞세우고 앞에서 절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이렇게 한 사람의 생명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아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버지 문 씨는 "우리 중원이가 마사회 갑질과 비리를 폭로하고 잘못된 구조와 제도가 고쳐져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은 행복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며 목숨을 끊은지 1년이 된 오늘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죽는 날까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문 기수 싸움을 함께한 공공운수노조와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문 기수가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하며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마사회를 더는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발언이 끝난 뒤에는 가수 박준 씨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박 씨는 <전태일 다리에 서서>와 <힘들지요>를 불렀다.
추모제의 마지막 순서는 추모제가 열린 세종로 공원에서 정부 서울청사 옆 문 기수의 운구차가 대져있던 곳까지 갔다 돌아오는 것이었다. 문 기수의 영정이 맨 앞에 섰고, 그 뒤를 스님들과 부인 오 씨, 어머니 김 씨가 따랐다.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도라전망대 현장집무실 설치가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반대로 무산되자 민간단체들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이하 국제캠페인)은 24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앞에서 “가짜 ‘유엔사’의 주권침해 규탄 기자회견”를 열고 유엔사 깃발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류경완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의 사회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SOFA개정국민행동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이장희 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유엔사는 유엔의 하부기구도 아니고 유엔과 아무 관계가 없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이름으로 이 땅에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를 가로막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금 침해하고 있다”고 법적 근거를 문제삼았다.
권영길 평화철도 이사장은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남북간의 개성공단 재개를 호소하고 실제적인 경기도 평화부지사 업무를 보기 위해서 집무실을 저 뒤에 도라산전망대에 설치하려고 했더니 유엔사라는 단체가 그것을 가로막았다고 한다”며 “유엔사가 우리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선도하는 그런 유엔사인줄 알았더니 그 유엔사가 오히려 평화를 염원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우리 한국 국민들과 이재강 평화 부지사의 그 걸어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유엔사가 실질적으로 유엔의 법적 권한이 없이 이러한 행위를 해왔음을 고발한다”면서 “우리 함께 진정한 평화를 만들고 우리들 염원하는 현안의 문제인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금강산관광이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원호 통일의길 공동대표는 “우리들은 ‘미국은 들어라 시민행동’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미국 대사관 앞에서 현재 24차까지 시민행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의 우리 한국에 대한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미국의 행태를 비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미대사관 앞 시민행동에서 유엔사 문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 문제, △환경오염 문제, △남북관계를 방해하는 문제, △북한정권을 위협하는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리미일 이사, ‘Action OneKorea 한국’ 정연진 상임대표가 공동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오늘 파주 임진각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집무실을 지지 방문하였다”면서 “주권자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경기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 교류, 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해 힘을 합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소위 ‘유엔사령부’라는 것은 미국이 70년 간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고 유엔의 외피를 씌워 국제기구 행세를 시킨 미국의 군사기구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유엔사’를 가짜라고 규정하였으며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나아가 “미국은 더 이상 ‘유엔사’의 가면을 쓰고 벌이는 비겁한 남북 이간질을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국제기구로 포장된 가짜 ‘유엔사’의 허세를 이용해 한국정부와 군대를 협박하는 사기행각도 중단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결정과 계획을 방해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며 우리가 그것을 승인받아야 할 대상도 이유도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들은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냉전의 유물, 가짜 ‘유엔사’는 하루속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문 낭독을 마치고 유엔사 해체를 주장해온 이시우 사진가 등은 유엔사 깃발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기자회견문(전문)]
가짜 ‘유엔사령부’의 주권침해를 규탄한다
우리는 오늘 파주 임진각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집무실을 지지 방문하였습니다.
경기도는 그동안 남북이 합의한 평화번영의 협력사업을 하루속히 재개하여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충심 어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당면해서는 개성공단 재개를 염원하는 각계각층의 요구를 대변하여 도라전망대에 평화부지사 사무실을 설치하고자 했으나 소위 ‘유엔사’의 불허라는 해괴망측한 조치에 가로막혔습니다.
우리의 땅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정체불명의 외부세력에 의해 제지당하는 대형사건이 너무도 버젓이 벌어진 것입니다.
70년 간 이어져왔으며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더욱 노골화된 소위 ‘유엔사’의 남북협력 차단, 주권침해 행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비정상적인 범죄행위를 수수방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위 ‘유엔사령부’라는 것은 미국이 70년 간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고 유엔의 외피를 씌워 국제기구 행세를 시킨 미국의 군사기구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유엔사’라는 간판 뒤에 숨어서 남북관계를 훼방하고 한국정부와 군대를 농락해온 것이 소위 ‘유엔사’ 70년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엔사’를 가짜라고 규정하였으며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더 이상 ‘유엔사’의 가면을 쓰고 벌이는 비겁한 남북 이간질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또한 국제기구로 포장된 가짜 ‘유엔사’의 허세를 이용해 한국정부와 군대를 협박하는 사기행각도 중단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이미 한반도에 영원히 전쟁이 없을 것이며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결정과 계획을 방해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며 우리가 그것을 승인받아야 할 대상도 이유도 없습니다.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냉전의 유물, 가짜 ‘유엔사’는 하루속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것입니다. 또한 주권자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경기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 교류, 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해 힘을 합쳐나갈 것입니다.
2020년 11월 24일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 사단법인 평화철도
“‘왜 이 시점에?’ 라고 묻지 말고 왜 이 시점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진행하며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가 돌아보기 바란다.”
민주노총이 예고했던 총파업·총력투쟁을 선포했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정치권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동개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25일 서울지역 더불어민주당 의원사무소 곳곳에서 총파업 서울대회를 연다. 각 지역에서도 총파업 대회가 벌어질 예정이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한 방역지침이 격상된 ‘이 시점’에 총파업 대회를 열 수밖에 없는 입장을 민주노총은 여러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목소리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던 보수언론들이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는 ‘이 시점’에 무슨 총파업이냐고 떠들고 있다. 코로나19의 대대적인 확산에 일조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기사를 써내고 있다. “이 와중에 모여야 하나”, “지금 꼭 모여야 하나” 등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민주노총 입장은 큰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명분없는 집회’라고 여론몰이를 한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등은 앞다퉈 “철저히 단속하라”는 주문을 내뱉고 있다.
오는 30일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노동법 개정안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가 열린다. 12월3일 환노위 전체회의와 9일 국회 본회의도 예정돼 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총력투쟁 결심을 꺾을 수 없는 이유, 항의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명분과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주노총은 23일, 노조법 개악 저지 총파업·총력투쟁 돌입에 앞서 입장문을 내고 ‘총파업 총력투쟁에 나서는 상황과 입장’에 대해 밝혔다. “100만 조합원과 2500만 노동자 그리고 모든 국민의 삶을 지탱할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노동조합 밖에 있는 미조직, 비정규,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강제무급휴직도 모자라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서 잘려나간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는 사이 결과적으로 재벌 대기업과 가진 자들의 곳간은 가득 차다 못해 넘쳐났다.”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쳐 임금과 고용, 삶의 근간을 지켜냈고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가장 커다란 힘은 노동조합으로 뭉쳐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런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아니 아예 노동조합을 하지 말라고 한다.”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노조활동에 제약을 두고, 산별노동조합 활동에도 제약을 두는 것뿐만 아니라, 소수노조의 노조할 권리와 교섭할 권리 등 단체교섭권 무력화, 파업 시 직장점거 금지 등으로 단체행동권 무력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겠다며 내놓은 노조법 개정안임에도 ILO가 권고하지도 않는 내용으로 개정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제노총(ITUC)도 17일 박병석 국회의장, 송옥주 환노위원장, 송영길 외통위원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결사의 자유 원칙에 반하는 정부 제출 노조법 개정안 폐기돼야 한다”고 경고하며 “ILO 협약 87호, 98호, 29호의 비준이 더 이상 지체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정부와 정치권이 개악하려는 노조법 개정안은 민주노총이 10만 국민의 동의를 얻어 발의한 전태일 3법(근로기준법 11조·노조법 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담고 있는 ‘노조할 권리’에도 반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은 노동법 개악엔 힘을 쏟으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엔 좌고우면 하고 있다. 취임 이후 줄곧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강조해오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당과 함께 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다.
“왜 이 시점에 노동자들의 저항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가?”, “왜 이 시점에 정부는 고용노동부를 앞세워 거짓말을 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가?”는가 되레 민주노총이 따져 물어야 할 형국이다.
민주노총은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날 총파업·총력투쟁을 선포하면서 “코로나19를 핑계삼아 일방적 비난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민주노총과 노동자를 공격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요구”를 밝혔다.
코로나19의 재창궐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정부와 국회의 노동개악 기도 중단 등’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요구를 내놨다. “▲정부와 정치권은 추진 중인 노동개악 국회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10만의 발의로 상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을 조속히 온전하게 입법하라 ▲코로나19 재창궐에 맞게 필수노동자의 범위를 넓히고 인원 및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라. 필수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하라 ▲성공적 방역을 위해 모든 일터에 시차제 출퇴근 전면 시행, 나아가 출근인원 조정, 이로 인해 발생하는 휴무인력에 대해 유급휴가 진행하라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시행가능한 업종에 대해 유급재택근무 시행하라”는 게 민주노총의 요구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25일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다수가 모이는 집회 대신 더불어민주당 지역구의원 사무실 앞을 찾아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행동을 하는 총파업 대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종료 시까지 국회, 민주당사, 환노위 소속 의원 사무실 등에서 농성, 선전전, 항의행동, 문화제 등도 이어갈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코로나 확산 저지의 결심도, 총파업·총력투쟁의 결심도 이미 마쳤다. 정치권은 코로나 확산 시기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만, 누가 누굴 우려할 때가 아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자와 국민의 우려에 대답할 차례다.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 기자 lkh@kyunghyang.com
입력 : 2020.11.24 06:00 수정 : 2020.11.24 09:49
어떤 이들은 조선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쇄국정책으로 근대화가 늦어진 나머지 망국을 초래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유독 한 분야에 관한 한 중국 및 일본보다 앞서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예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전깃불입니다. 그 유명한 토마스 에디슨(1847~1931)이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은 1879년 10월이었습니다.
1887년 1~3월 사이 조선의 정궁 경복궁에서도 가장 깊숙한 건청궁에 전등을 설치하고 불을 밝혔다. 전등 설치에 관한한 중국과 일본보다 2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한국전력 전기박물관 홈페이지
■1887년 1~3월 경복궁을 환하게 밝힌 전등불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7년 여가 지난 1887년(고종 24년) 1~3월 사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건청궁(고중 부처의 생활공간)에 전등불을 환하게 밝혔답니다. 이것은 중국 베이징(北京)의 자금성은 물론, 일본의 궁성보다 약 2년 앞지른 선구적인 사업이었습니다. 조선의 고종은 ‘전깃불에 관한 한 얼리어댑터’였던 셈이죠. 사상 처음으로 전등불이 켜지는 모습을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어느 상궁(안상궁·1936년)의 회고담이 재미있습니다.
“건청궁 앞 연못에 설치된 쇳덩이(기계)를 서양인이 움직였는데 연못의 물을 빨아올려 물끓는 소리와 우레와 같은 굉음이 났다. 얼마 뒤 궁전 내의 가지 모양의 유리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대낮같이 점화됐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건청궁 내에 설치된 발전설비는 16촉광의 전구 750개를 켤 수 있는 시설이었다니 대단하죠.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니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부모가 물려주신 것이라며 자르기를 거부했던 조선 땅에서 왜 전깃불은 그토록 빨리 도입했을까요. 그것도 중국·일본보다 더 빨리….
전등불로 대낮같이 밝아진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궁궐 안에는 고종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궁궐 주변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전기박물관 제공
■조선사절단이 뉴욕거리에서 겪은 신기한 경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882년(고종 19년) 5월 서구열강 가운데는 처음으로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이듬해(1883년) 9월 보빙사라는 이름의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합니다. 민영익(1860~1914)을 전권대사로 한 사절단 11명은 당시 미국의 체스터 아서 대통령(1829~1886·재임 1881~1885)에게 국서를 전달했습니다. 당시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조선 보빙사가 큰 절을 올렸다는 사실이 화제를 뿌렸죠. 그런데 보빙사는 미국 체류 기간 중 아주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에디슨이 전등불을 발명한 지 불과 4년 만인데요. 진깃불이 뉴욕과 보스턴의 밤거리를 비추는 희한한 장면을 목격한 겁니다.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문물을 눈 앞에서 보게 된 겁니다.
초창기 건청궁 옥호루 앞마당에 설치된 가로등. 당시 발전규모는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설비였다.|전기박물관 제공
1883년(고종 20년) 9월24일 뉴욕의 에퀴타블 빌딩을 방문해서 발전기에서부터 전기불이 켜지는 과정을 지켜본 유길준(1856~1914)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악마의 힘으로 불이 켜진다고 생각했다”고 경악했습니다. 유길준은 “편리할 뿐 아니라 안전하게 조작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면서 “더이상 검증할 필요도 없으니 조선에서 이 전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열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서유견문>)
고종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보빙사의 강력한 추천에 전기 도입을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에디슨 측도 조선을 동양진출의 교두로 삼았답니다.
당시 에디슨램프사의 총지배인(프란시스 업튼)이 1887년 4월18일자로 사장(에디슨)에게 보낸 업무연락서는 “경복궁의 전등시설은 에디슨 제품의 동양 판촉을 위해 시범케이스로 시공됐다”면서 “향후 일본 궁성에 설비될 시설과 함께 동양에서는 유일한 시설”(미국 국립에디슨유적지 기념관 자료)이라고 했습니다. ‘윈윈’이었던게지요.
경복궁 건청궁에 전등을 도입한 후 궁중에 설치된 등갓.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선명하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외국인을 호위대장으로 임명한 고종
고종이 전기도입을 더욱 서두르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입니다.
우국지사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 1888년조를 보면 심상치않은 언급이 있습니다.
“고종은 임오군란·갑신정변 이래 가까이서 변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여 미리 피란하려고 가마꾼 20명에게 후한 월급을 주고 궁성 북문에 대기시켜 반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또 밤에 변란이 많이 일어나니 궁궐 내에 전등을 많이 켜서 새벽까지 훤하게 밝히도록 명했다.”
보빙사의 일원이던 유길준(오른쪽)은 미국의 각 도시에 켜진 전등불(왼쪽)을 보고 ‘악마의 힘으로 켜진 불’이라고 경악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고종이 야밤에 일어나는 변란이 두려워 전전긍긍했고, 또 그 때문에 불을 훤히 밝히려 했다는 말 아닙니까. 고종의 불안은 1894년(고종 31년) 7월23일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 사건’까지 일어나자 더욱 격심해졌다고 합니다. 일본군의 감시 속에 언제 화를 입을 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고종은 아예 외국인들은 시위대장과 부대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들이 미국인 예비역 대령인 윌리엄 맥엔트리 다이(1831~1899)와 러시아 건축가인 아파나시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이었습니다.
뭐 예비역 대령인 다이는 그렇다칩시다. 그러나 건축가를 호위대 부대장으로 기용하다니요. 외국인이라면 일본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여겨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건축가에게까지 호위를 맡긴 것이겠죠. 어쨌든 시위부대장을 맡은 사바틴은 고종의 명에 따라 1894년 9월 1일부터 일주일에 나흘씩 저녁 7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김영수의 <명성황후 최후의 날(서양인 사바찐이 목격한 을미사변, 그 하루의 기억>, 말글빛냄, 2014에서)
에디슨램프사의총지배인이 1887년 4월18일자로 사장(에디슨)에게 보낸 업무연락서. “경복궁의 전등시설은 에디슨 제품의 동양 판촉을 위해 시범케이스로 시공됐다”고 밝혔다.(출처:미국 국립에디슨유적지 기념관)
■낮에 자고 새벽까지 일한 고종
그런 탓일까요. 고종은 낮에는 자고 전등을 환하게 켠채 야밤에 정무를 돌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고종의 주치의를 지낸 독일인 리하르트 뷘쉬(1869~1915)는 “황제는 낮에 자고 오후 3시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3~4시까지 일했으며…마당을 가로질러 이 건물 저 건물을 다닌다”고 회고했답니다.(리하르트 분쉬의 <대한제국을 사랑한 독일인 의사 분쉬>, 김종대 옮김, 코람데오, 2014) 윤치호(1866~1945)의 영문일기에도 고종을 알현한 뒤 새벽 2시에 귀가했다느니 대궐내에서 등불놀이를 본 뒤 밤 3시 무렵에 돌아왔다느니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윤치호의 <영문일기>, 박미경 옮김, 국사편찬위, 2015)
고종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점령사건이 일어나자 전전긍긍했으며, 결국 미국인 다이(위의 오른쪽)와 러시아인 사바틴(왼쪽)을 시위대장과 부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복궁의 불을 환하게 밝히는데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었다는 겁니다. 맨처음 설비투자에만 무려 2만4524달러를 썼답니다. 게다가 밤새도록 켜놓았으니 운용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현 같은 이는 “전등 한 개를 하룻밤 밝히는데 엽전 1000꾸러미의 비용이 든다”(<매천야록>)고 꼬집었습니다. 이 뿐이 아니라 훗날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1855~1935)이 사헌부 장령(정4품) 시절 “날이 밝은 시각에도 불필요하게 전등을 켠다”(<고종실록> 1887년 3월29일)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궁궐을 훤히 밝힌 전등불을 둘러싸고 곱지않은 시선이 많았다는 얘기죠. 아닌게 아니라 “고종이 매일 밤 전등을 켜놓고 악공들에게 ‘아리랑타령’을 부르게 했다”느니, “불빛이 낮처럼 환한 가운데 수십명이 음탕하고 비루한 가사를 부르자 명성왕후가 무릎을 치며 ‘그렇지 그렇지’ 했다”(<매천야록>)느니 하는 기록이 보입니다.
최근에 발굴된 건청궁 내 전기발상지인 향원정(연못)을 포함한 전기등소터. 증기기관의 냉각용수가 열탕이 되어 뜨거운 증기수가 역류하는 바람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건달불, 증어망국…
그런 탓일까요. 경복궁을 환하게 밝힌 전등은 여론은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때 설치된 발전기가 증기동력이었기 때문에 증기기관의 냉각용수가 열탕이 되었는데요. 때문에 경복궁 향원정의 연못에 뜨거운 증기수가 역류되어서 연못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증어망국(烝魚亡國)’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또 전기등이 건들거리면서 자주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해서 ‘건달불(乾達火)’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심야의 변란을 우려해서 갖가지 비판여론에서 경복궁 내를 낮처럼 환히 밝혔지만 침략야욕에 눈이 먼 일본의 만행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10월 8월 전등불이 설치되고 외국인들이 호위를 맡은 건청궁을 짓밟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으니 말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의 침전에는 호머 헐버트(1863~1949)와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등 외국인들이 3인 1개조로 불침번을 서야 겨우 안심했다고 합니다.(김동진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참좋은친구, 2010에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경복궁 내의 전등 한 개를 하룻밤 밝히는데 엽전 1000꾸러미의 비용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고보면 경복궁 건청궁에 설치된 전등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고종은 분명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꺼져가는 왕국의 불빛을 되살리려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궁궐의 불을 밝혔을 겁니다. 하지만 경복궁 무단점령사건(1894년)에 이은 천인공노할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 등 거리낌없는 일본의 ‘묻지마!’ 도발과 침략에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동양 3국 중 가장 먼저 전등불을 켠 바로 그 건청궁 내에서…. 그리고 궁궐에 전등불을 단지 불과 23년만에 한일병합이라는 치욕을 겪게 됩니다.
[복수노조 제도 10년 ③] 진짜 노조 잡는 가짜 노조 사용설명서가 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10년 전 이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노동조합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유롭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 내가 맘에 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그 노동조합을 통해 내가 바라는 일터를 만드는 것.
그런데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일터를 노동조합들의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노동조합 할 자유가 아니라 노동조합 간의 경쟁. 단체교섭권을 얻지 못하면 노동조합도, 노동조합을 택한 노동자도 더이상 회사에서 발 붙힐 수 없게 될 수 있다.
부당한 해고로부터, 기간제 계약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로부터, 초과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포괄임금약정에 서명하라는 사용자의 요구로부터, 노동조합이라는 우산은 온전한 노동3권을 가질 때 가능하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행동을 할 자유도 빼앗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 - 노동조합 잡는 어용노조
이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제일 먼저 대비해야 하는 일이 어용노조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도입 이후 노동조합이 없었던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곧장 제2의 노동조합이 생기는 게 다반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교섭을 하기 위해서는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한 사실을 바로 사업장 내에 공고해야 하지만 이를 미루면서 제2의 노동조합을 만든다. 조합원수가 1명이라도 많으면 제1노조의 교섭권을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조심스럽게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교섭요구를 하기 전날 막판 쉬는 시간에도 가입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관리자가 노동조합 설립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상무의 집으로 호출을 받았다. 노동조합을 포기하라는 회유였다. 이미 200명 넘는 동료들에게서 가입원서를 받았다. 안될 말이었다. 싫다고 했다. 앞으로 노사간에 잘 대화를 해보자고 하고 돌아 나왔다. 다음날 회사는 제2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교섭요구를 하고 사흘이 지났을까. 관리직들이 개별면담을 하기 시작했고 어용노조는 조합원이 800명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수노조의 길로 들어섰다(인천의 **타이어휠 제조업체).
수년동안 노동조합이 없던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기자마자 연달아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보통 제2노조가 자주적으로 설립된다는 건 기존 노동조합의 어용화에 대한 비판이나 노조 내부 구성원들 간의 불화 등이 원인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창사 이래 노동조합이 실제 활동했던 적 없던 회사에서 신규노조가 막 설립되었는데,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제2노조가 설립된다는 것은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그동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장에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아직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제대로 보호해줄 단체협약도 없기 때문에 한 노동조합 아래 단결하지 않고 제2노조를 만들어 노동조합 간에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인 행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장 내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활동이나 운영방식이 정해진 게 없으니 노동조합 활동을 자주적으로 원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막 만들어진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노동조합으로 만들어가는데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신규노조가 설립되는 사업장에는 거의 당연한 수순처럼 제2노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용자의 공공연한 비호를 받으면 조합원을 순식간에 만들고 단체협약도 없는데 조합비 일괄공제도 해주고 노조사무실도 내준다.
어용노조는 설립 직후 노조사무실을 받았다. 어용노조 위원장까지 3명은 노조사무실에 상주하고 있고 이제 현장일도 아예 안한다. 아직 단체교섭도 시작하기 전이고 단체협약도 없는데도 말이다. 어용노조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그냥 회사가 새로 만든 한 부서처럼 그렇게 생겼다.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의 차별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와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인정받다. 어용노조가 생긴지 이미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사용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결정이 유지되었다. 사용자는 마치못해 우리와 노조사무실 제공과 근로시간면제시간에 대해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용자는 절대 회사 내에는 사무실을 줄 수 없다고 했다(인천의 **타이어휠제조업체).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인사관리부서의 과장이 제2노조를 만들었다. 감쪽같이 조합원수를 불렸고 우리 조합원들에게도 노조가입원서에 서명을 강요받았다. 몇몇은 견디지 못하고 서명을 했다. 어용노조를 이용해 조합원들의 탈퇴를 종용하는데 사용자의 개입을 밝히기 쉽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과반수노조를 판단하면서 어용노조의 조합비를 사용자의 돈으로 일괄공제를 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과반수노조 지위를 되찾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조합원을 잃고 난 뒤였다(제주의 **대학교).
당연히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을 받아도 이미 그때는 수개월 뒤, 조합원을 빼앗기고 교섭권과 쟁의권도 모두 잃은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규노조의 설립 이후 제2노조가 만들어지면 이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고 적극적인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한 제2노조의 설립은 단결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된다.
잠자고 있던 유령노조의 부활
분명 노동조합이 없었는데 노동조합만 만들면 고대 유물처럼 숨어있던 유령노조가 기지개를 편다. 본 적도 없는 단체협약도 체결되어 있어서 교섭요구조차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 유령노조가 실제 노동조합을 활동하지 않는 서류상 조직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노조법에는 휴면노조 해산절차를 두고 있지만 이는 이러한 유령노조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복수노조가 금지되었던 시절,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나 활동을 하지 않는 휴면노조를 정리해주지 않으면 다른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 없고 1년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아 노동조합 스스로 해산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 서류상 해산처리를 하는 제도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막기 위해 서류상만들어져 있는 페이퍼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외관은 다 갖춰두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 없는 경우는 없다. 이른바 바지 노조위원장이 있다. 페이퍼노조를 휴면노조 해산을 통해 없애려면 외관상의 노조 임원이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선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전 1년 가까이 노동조합 설립 후 발생될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대응을 준비했다. 그런데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다. 유령노조로부터 노동조합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회사 내 생산직 노동자들을 거의 95% 이상 조직하고 노동조합을 출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심지어 페이퍼노조와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시청에 단체협약 신고도 해두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우리에게는 보여줄 수 없단다. 정보공개신청을 해두고 페이퍼노조의 위원장을 찾아가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단체협약 체결과정을 추궁해서 사용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노동지청의 부당노동행위 근로감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단체협약상 위원장이 될 수 없는 직책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시청에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노조위원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져서 유령노조를 해산시킬 수 있었지만 정보공개를 통해 단체협약을 받는데 2개월이 넘게 걸렸다. 조합원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했다면 정보공개신청으로 단체협약을 받기도 전에 조합원을 다 잃을 수도 있다(경기의 **기계부품 제조업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이후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기 위해 보다 진화된 형태의 유령노조가 생겨났다. 서류상 임원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바로 대항하여 노조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일정수의 조합원을 조직해둔다. 그래서 노동조합 설립 사실이 알려지면 곧장 노동조합 총회를 개최하고 실제 노동조합 활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열을 정비하기 때문에 휴면노조 해산도 불가능해진다.
조합원 뺏어가는 위성노조의 페이크(fake) 전략
유령노조를 만들어두는 것만으로도 불안했을까. 노동조합 활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봐도 유령노조는 어용노조다. 사용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조합원수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신규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방해하기 위한 위성노조를 만드는 경우도 생겨났다. 주로 전국단위로 다수의 사업장이 존재하거나 직종별 특성에 따라 조직화가 용이하지 않는 경우에 위성노조, 즉 복수의 어용노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페이퍼노조(제1노조)가 노조 총회를 했다. 우리노조(제2노조)의 주력인 지역 지점 영업소에서 조합원 가입이 쉽지 않자, 제3노조는 우리노조가 민주노총이라 강성이라고 절대 회사가 우리노조와는 교섭 안할꺼라고 공포를 조장하고 다녔다. 3개 노조 중 과반수노조가 없었고 페이퍼노조는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결정기간 14일동안 교섭대표노조 협의를 하자고 하면서, 노조를 없애고 제1노조로 들어오면 노조 임원도 시켜주고 실제 노동조합 활동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민주노총만 아니면 된다고. 거부했더니 제1노조와 제3노조가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결정기간에 조합원수를 계속 늘리더니, 우리노조를 제외하고 연합을 통한 과반수노조 통지를 했다. 확정공고일 이후의 조합원수는 산정하면 안되도록 정해져 있지만 조합원 가입시점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눈뜬 채 교섭권을 빼앗겼다. 곧바로 제3노조는 제1노조로 통합되었다(전국단위 **엘리베이터 제조판매업체).
가짜 노동조합, 그건 그냥 범죄잖아요.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노동조합들, 이들은 엄밀히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범죄행위에 이용된 도구에 불과하다. 사용자가 아니라도 사실상 사용자가 어용노동조합의 설립·운영에 관여·주도·지배개입하였다면 어용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행위 자체도 부당노동행위이고, 어용노동조합 조직에 관여한 노조 임원도 공동정범으로 부당노동행위의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용노조의 임원뿐 아니라 어용노조를 주도한 사용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노동조합으로서 실질성이 인정되지 않아 설립필증을 취소해도 이름만 바꿔 제3, 제4의 어용노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교섭권과 쟁의권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도록 하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하에서는 노동조합을 이용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는 부당노동행위는 근절될 수 없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자체가 복수노조 상황을 악용하여 배타적으로 노동조합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도록 부당노동행위 안내서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죽통한사 ⑥] 김주열20.11.24 08:29최종 업데이트 20.11.24 08:43신다임 안치용(sustainability)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 생존과 꿈의 경계에 섰다. 같은 경계선을 무난히 혹은 우여곡절을 거쳐 넘은, 같은 시대에 던져진 다른 많은 이들과 달리 그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세계의 폭력에 의해서든,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지 못한 불운에 의해서든 그의 죽음은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의 고발이다. 해방을 앞두고 이역에서 숨을 거둔 윤동주부터 2020년의 어느 청년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바람 저널리스트들은 청죽통한사(청년의 죽음으로 통찰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청년의 죽음을 취재했다. 청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작성한 '청년의 죽음'은, 그 죽음의 애도이자 더 나은 세상의 모색이다.[편집자말] |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타지로 간 아들이 하루아침에 연락이 끊겼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한달음에 경상남도 마산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 소식은 언론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한 달 가까이 찾아다녔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귀향하던 그 시간에 아들이 나타났다. 죽은 채로.
어머니가 애타게 찾아 헤맨 아들은 1960년 4월 11일 경상남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실종된 지 27일 만이었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한 달 동안 어머니가 마산을 떠돌며 아들을 찾아다녔기에 많은 마산 시민이 아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주열이었다.
합격자 발표 하루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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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열 의사의 가족 | |
ⓒ 3.15의거기념사업회 |
주열은 1944년 10월 7일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서 태어났다. 성격이 온순하여 공부와 일밖에 몰랐고 친구들이 싸움해도 참견할 줄 모르는 무던한 아이였다. 아버지 김재계는 천석꾼의 부농이었지만 병환이 깊어져 가세가 기울었다. 주열은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은행원이 되기 위해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지원했다.
마산상업고등학교의 합격자 발표일은 원래 1960년 3월 14일이었다. 주열은 형과 함께 마산으로 향했고 공고한 발표일인 14일엔 이미 마산에 도착해 이모할머니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중이 모이는 것을 염려한 교육청에서 합격자 발표의 연기를 종용하자 발표일이 16일로 연기되었다. 계획대로 합격자를 발표했다면 주열은 아마 15일 새벽에 마산에서 출발해 고향 남원으로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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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동파출소 앞에서 가두 시위하는 시민들 | |
ⓒ 3.15의거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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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의거에 참여했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사진을 특종 보도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지면 | |
ⓒ 부산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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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중앙부두 앞에 떠오른 처참한 김주열 의사의 시신 | |
ⓒ 3.15의거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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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대와 경찰 간 투석전으로 어지럽혀진 마산시청 앞 | |
ⓒ 3.15의거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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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앞바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4월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는 글이 이곳에 새겨져 있다. | |
ⓒ 백창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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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열 시신 인양지. "4월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고 써있다. | |
ⓒ 창원시 |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1. 조운찬, "1960년 5월8일 김주열 어머니의 편지", 『경향신문』, 2014년 4월 17일자.
2. 김수자,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지배와 저항담론의 불협화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4,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0.
3. 유명철, 「2·28민주운동, 3·15 1차 마산의거와 4·11-13 2차 마산의거, 4·19혁명 : 그 '연관성'에 대한 내용 지도의 필요성」, 『사회과교육』 57,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2018.
4. 배규성, 「대구 2․28민주운동: 지역적 의미와 계승」, 『영남국제정치학회보』 14,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2011.
5. 정주신, 「마산의 민주화운동 비교 분석: 1960년 3·15의거와 1979년 10·18부마항쟁」, 『한국과 국제사회』 3, 한국정치사회연구소, 2019.
6. 이완범, 「4·19 전조(前兆)로서의 1960년 초봄 지역 시민운동 : '4·19'의 '대학생-서울' 중심사관을 넘어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4,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13.
7. 홍석률, 「4월혁명의 다양성」, 『지식의 지평』 28, 대우재단, 2020.
8. 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김영현, "3.15부정선거 - 마산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2016년 01월 21일자.
"새로운 남북관계의 변화는 바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 재개로부터 시작될 것"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기구 발전적 재개방안 국회토론회' 축사를 통해 "남북의 상시적 연락선의 복구는 '평화의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남북연락사무소 재개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서울·평양 대표부를 비롯해 개성, 신의주, 나진, 선봉 지역에 연락소와 무역대표부 설치도 소망"한다며, "남북관계에 있어 더욱 지속가능하고 국민이 공감하며, 북측도 호응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 것이 우리 앞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북측과 합의한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지켜나가겠다. 우리가 먼저 약속을 지켜 북도 반드시 약속과 협력의 장으로 나오는 길을 먼저 열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권택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실장은 발제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평양·서울 상주대표부 설치를 목표로 하되, 우선 판문점선언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재개 및 기능회복을 당면목표로 삼아 성사에 주력"해야하며, "남북관계가 정체된 국면에서 연락사무소만 재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먼저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식적 연락기능의 복원·발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 연락사무소 기능을 대폭 확대해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신설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상주대표부의 기본방향과 구성·운영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 신임장 제정 및 운영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는 점이 현실적 제약으로 지적되었다.
토론자로 나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도 현재 남북간 모든 통신선이 두절된 상황이기 때문에 우선 연락기능 재가동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앞으로 협의기구를 다시 재가동시킨다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가 아니라 한차례 격상된 서울과 평양의 상주대표부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 정상간 합의사항이었으므로 이의 재개 역시 남북 정상이 합의해야 한다"며,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이후 내년 중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정상간 합의를 넘어 남북기본협정을 추진하고 1순위로 상주대표부 설치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상의 핵심조항으로 각기 수도에 상주대표부 설치를 명문화했다고 한다.
권 실장과 양 부총장 모두 서울·평양 상주대표부를 최선의 모델로 생각했지만 단계적인 접근이 불가피할 경우, 개성공단 내 재가동, 판문점 또는 비무장지대(DMZ) 내 설치 방안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영식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은 "남북간 연락·협의기구는 개성연락사무소와 같이 당국간 공식통로를 기본으로 하지만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다양한 교류협력 주체들의 연락채널과 분야별 협력기구 운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통한 '남북교류협력재단(혹은 공단)', '남북경협공사' 등 민관협력의 공적 기관 설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단기적으로 이뤄질 코로나19 방역·진단·치료에 대한 전반적 지원협력은 그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감염병 관리기구' 공동 설립으로 발전시켜 남북 보건의료 협력의 제도화를 추진하는 등의 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식량과 영양안보, 사회개발, 재해 및 기후변화 등 남북이 협력해야 할 주요영역별 남북 공동협력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안정적인 경제협력 추진 위해 북측의 단일화된 '민경련' 창구와 대응할 수 있는 남측 기구를 개성 또는 중국 단둥 등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와 민간단체의 연락사무소 기능은 남북 당국간 연락사무소의 별도, 또는 독립적인 파트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교류협력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제3국 현지에 별도의 사무소를 설치,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수득 코트라 경제통상협력본부장은 과거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와 먼저 양국간 무역사무소를 상호개설하고 수교로 이어진 프로세스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 대북제재 해제 이전에는 연락·협의기구 운영이 불가피하게 인도주의적 지원업무를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국제적 여건이 성숙되는데 북측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프라구축 지원 등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북측 주민을 대상으로 창업과 경영에 필요한 브랜딩 전략, 마케팅 전략, 회계 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육성교육, 해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관련 국제기준의 회계, 법률, 협상 등 외자유치 전문가 양성교육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과거 북한과 미국의 평화 기류가 연출됐던 상황을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우리 정부의 끊임없는 설득과정이 있었다”며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에 출구를 마련해 주고 대화의 장으로 이끈다면 남북관계의 개선뿐 아니라 북미 관계의 진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까지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연락협의기구의 발전적 재개를 위한 길에 정부와 21대 국회의원 모두가 발벗고 나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을 좌장으로 진행됐으며, 박진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634일에 대한 보고를, 전 동독주재 서독 상주대표부 에카르트 슈렘(Eckart Schlemm)국장이 동서독 상주대표부의 설치·운영 경험을 영상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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