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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허락된 특별한 사진전...

피란, 폭격, 학살을 담은 ‘허락되지 않은 기억’ 사진전

  • 기자명 임재근 객원기자 
  •  
  •  입력 2020.11.03 15:59
  •  
  •  수정 2020.11.03 19:58
  •  
  •  댓글 1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과 5층 전시실에 10월 2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과 5층 전시실에 10월 2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에 마련된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 전시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에 마련된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 전시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특별한 기억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과 5층 전시실에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 진행중에 있다. 사진전 ‘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은 피란, 폭격, 학살이라는 주제를 통해 전쟁 지도부가 허락하지 않았던 전쟁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신재욱 상임활동가가 4층 전시실에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전시 해설은 평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주말에는 오전 11시와 2시에 진행된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신재욱 상임활동가가 4층 전시실에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전시 해설은 평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주말에는 오전 11시와 2시에 진행된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 4층 전시실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 4층 전시실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층 전시실은 크게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어떤 피란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살기 위해 떠난 사람들에게 국가가 ‘자유 피란민’이라 불렀던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들이 만난 ‘자유’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를 물음 속에 길 위에서 만난 것은 생존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또 다른 전쟁의 현장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피란의 종착지는 죽음이었다며 피란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섹션은 ‘폭격’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폭격, 마을과 사람을 겨누다’는 제목으로,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죽음은 ‘부수적 피해’가 아닌 ‘학살’임을 들어낸다. 전후방 가리지 않고 한반도 곳곳에 떨어진 폭격지도를 통해 왜 폭격이 ‘학살’이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세 번째 섹션은 ‘국민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민간인 학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전시가 주목한 민간인 학살은 대전지역에서 발생했던 두 개의 학살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대전에서는 군인과 경찰들이 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을 ‘산내 골령골’로 끌고 가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대전을 점령했던 인민군들은 퇴각을 하면서 대전형무소와 그 인근에서 보복학살을 하기도 했다.

5층 전시실은 대공분실 조사실로 사용되었던 방 중 10개를 ‘어떤 무덤’, ‘남겨진 사람들’, ‘부역자’, ‘위안부’, ‘어떤 폭격’, ‘고지전’, ‘노무자’, ‘반란자’, ‘불러보는 이름’ 등의 제목으로 전시실로 만들어 ‘전쟁을 통하는 10개의 방’을 만들었다.

이중 ‘어떤 무덤’은 유해발굴과 관련된 진시를 담고 있고, ‘불러보는 이름’에는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2만명 가까운 희생자 명단을 지역별, 시간별로 나눠 정리해 출력해 벽면에 붙였다. ‘불러보는 이름’ 방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녹음해보는 특별한 전시실이다.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의 5층 전시실은 대공분실 조사실로 사용되었던 방 중 10개를 ‘어떤 무덤’, ‘남겨진 사람들’, ‘부역자’, ‘위안부’, ‘어떤 폭격’, ‘고지전’, ‘노무자’, ‘반란자’, ‘불러보는 이름’ 등의 제목으로 전시실로 만들어 ‘전쟁을 통하는 10개의 방’을 만들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의 5층 전시실은 대공분실 조사실로 사용되었던 방 중 10개를 ‘어떤 무덤’, ‘남겨진 사람들’, ‘부역자’, ‘위안부’, ‘어떤 폭격’, ‘고지전’, ‘노무자’, ‘반란자’, ‘불러보는 이름’ 등의 제목으로 전시실로 만들어 ‘전쟁을 통하는 10개의 방’을 만들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5층의 13번 조사실은 ‘어떤 무덤’이란 제목의 전시실이 되었다. 전시실 ‘어떤 무덤’은 유해발굴과 관련된 진시를 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5층의 13번 조사실은 ‘어떤 무덤’이란 제목의 전시실이 되었다. 전시실 ‘어떤 무덤’은 유해발굴과 관련된 진시를 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5층의 2번 조사실에 마련된 ‘불러보는 이름’ 전시실에는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2만명 가까운 희생자 명단을 지역별, 시간별로 나눠 정리해 출력해 벽면에 붙여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5층의 2번 조사실에 마련된 ‘불러보는 이름’ 전시실에는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2만명 가까운 희생자 명단을 지역별, 시간별로 나눠 정리해 출력해 벽면에 붙여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전시를 기획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는 어떤 평화를 만들어 낼 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국가의 공식 전쟁 기억이 구현된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군인, 영웅, 승리, 군인 중심의 기억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번 전시는 전쟁 피해자의 관점에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진행되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고, 전시 해설은 평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주말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진행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이번 전시는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국역사교사모임,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고,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주관했다. 강성현(성공회대학교), 고진아(전국역사교사모임), 김득중(국사편찬위원회), 김민환(한신대학교), 박찬희(박찬희박물관연구소), 이임하(성공회대학교), 전갑생(성공회대학교) 등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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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검찰의 비공개 예규 4개 전문 공개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훈령 포함 총 66개 ‘검증 불허’

본지, 자문 거쳐 일부 공개키로
‘자의적 검찰권’ 견제 논의돼야


검찰은 수사의 밀행성을 중시한다. 한 검사는 “우리 DNA에는 비공개 신념이 박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밀행성의 원칙을 일반 행정 업무까지 확대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업무 성과라며 “30여개 비공개 내규를 공개 전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검과 법무부를 합친 검찰 관련 조직 전체의 비공개 내규는 총 66개(대검 48개, 법무부 18개)에 달한다. 안보를 담당하는 국방부(62개)보다 많다.

예규와 훈령을 통칭하는 내규는 국가기관의 비밀주의를 잘 보여준다. 국가기관에는 비밀이 있을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누설될 경우 안보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보를 기밀로 취급한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범죄 예방, 공소 제기·유지, 형 집행 등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하는 사안이나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가 침해될 만한 정보를 비공개한다. 그 외 모든 사안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극적 공개”가 원칙이다. 국민의 알권리, 국정에 대한 국민 참여,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위해서다.

검찰은 비공개 방식도 철저하다. 어떤 내규들을 비공개로 하는지 목록도 공개하지 않는다. 비공개 사유는 물론 존재 자체도 외부에서 검증할 수가 없다. 그간 검찰은 수사 밀행성과 로비 방지라는 명목으로 내규를 비공개했다. 그러나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최근 “자의적 기준에 따른 비공개”라며 “다른 국가기관에 의한 견제마저 받지 않는다면 내부 규정을 통한 자의적 검찰권 행사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법률 자문과 검토를 거쳐 검찰 비공개 예규 4개의 전문을 공개하기로 했다. ‘사건배당지침’(대검 예규 제848호),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대검 예규 제960호),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기록에 관한 지침’(대검 예규 제977호), ‘검사 평가자료 수집·관리에 관한 지침’(대검 예규 제990호)이다. 사건배당지침은 전관예우의 원인으로 꼽혀 수년째 문제가 지적됐지만 배당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활발한 개혁 논의를 위해 해당 지침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체 개혁안으로 내놓았던 인권수사자문관 지침과 의사결정 기록에 관한 지침은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점 등 보완할 부분에 대한 외부 판단을 받기 위해 공개를 결정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뒤로 2일 오후 어둠이 깔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30여개의 비공개 내규를 공개로 전환한 것을 업무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조직 전체의 비공개 내규가 66개에 달해 비밀주의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준헌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뒤로 2일 오후 어둠이 깔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30여개의 비공개 내규를 공개로 전환한 것을 업무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조직 전체의 비공개 내규가 66개에 달해 비밀주의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준헌 기자

 

‘윗선 입맛대로’ 길 터놓은 사건배당지침
‘인권수사자문관’ 검증 길 없는 검찰개혁안
감춘 채로 두고 싶은 그들만의 예규

대검 비공개 주요 예규의 문제점
사건배당지침 - “만병의 근원 전관예우, 배당에서 시작한다”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 - “수사 결론의 정당성을 주기 위해 만든 면죄부 장치 될 소지”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등 기록에 관한 지침 - “정말 실행되는지 밖에서도 알 수 있어야”

대검찰청은 지난달 7일 비공개 내규 29개를 일괄 공개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비공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직 비공개로 남아 있는 대검 내규는 모두 48개인데, 이 중에는 1순위 개혁 대상으로 꼽힌 ‘사건배당지침’ 예규가 있다. 검찰이 스스로 만든 개혁안도 다수 비공개된 상태다. 검찰 수사의 오류를 스스로 점검하기 위해 만든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 예규와 검사동일체 문화를 깨기 위해 만든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기록에 관한 지침’ 예규 등이다.

우리끼리만 알자…전관 ‘인센티브’ 된 예규

사건 배당, 법령에 구체적 기준 없고
검찰청의 장에 무제한 재배당 권한
개혁위 “기준위 설치” 권고 이행 안 돼

사건배당지침은 검찰의 사건 배당 기준 및 절차를 정한 내규다. 지난해 10월 경향신문은 사건배당지침 내용을 보도하면서 각 검찰청의 장에게 지나친 배당 재량권을 부여한 일부 조항의 문제점을 전했다(2019년 10월24일자 4면). 그 무렵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불투명한 사건 배당 방식을 해결하는 ‘사건 배당 기준위원회’ 설치를 권고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사건배당지침은 2016년 마지막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개혁위 권고도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사건 배당은 법령에 구체적 기준이 없고 오직 대검 예규에 따라 운영된다. 그 내용이 비공개라 자의적 사건 배당이 있는지에 대해 외부 감시가 불가능하다. 권영빈 변호사는 “오랜 문제로 지적됐는데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지침을 공개해 외부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은 사건배당지침이 비공개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공개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와 전관예우 등 다양한 문제가 현 사건 배당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실제 배당지침에도 검찰청의 장에게 자의적인 배당을 보장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4조 ‘배당의 기본원리와 배당 준비’는 각 검찰청의 장들이 사건 배당을 할 때 준수해야 할 4개의 추상적 기준을 나열했다.

이에 따르면 검찰청의 장은 사건을 배당할 때 수사 검사의 전담·전문성, 수사지휘 관할 지역의 지휘·관련성, 검사별 사건 부담 균형을 맞추는 합리·형평성, 시기별 각 검사의 부담량과 능력을 고려하는 시의·상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과 별개로 5조는 검찰청의 장이 모든 유형의 사건을 자신이 원하는 특정 검사에게 직접 배당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검찰청의 장이 직접 배당할 수 있는 사건의 종류를 나열하면서 맨 마지막에 ‘그 밖에 검찰청의 장 등이 직접 검사에게 배당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포함하는 식이다.

검찰청의 장은 사실상 무제한의 사건 재배당 권한을 갖고 있다. 8조에는 ‘검찰청의 장은 직접 배당한 사건에 대해 재배당이 필요한 경우 재배당한다’고 적혀 있다. 재배당은 사건 처리를 놓고 주임검사와 지휘부 간 의견이 다를 때 윗선의 입맛대로 사건의 결론을 이끌 수 있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중간간부급 A검사는 “위에서 원하는 대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더니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된 경험을 겪었다”며 “이런 일은 검찰에서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검찰청의 장은 배당 기준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9조는 “검찰청의 장은 청별 사정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지침 본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사건 배당 기준 및 절차, 배당 현황의 보고 등에 관한 자체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지침은 마지막으로 개정된 2016년 7월1일 기준으로 매 3년이 되는 시점마다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되어 있지만 내규는 3년 전과 비교해 개선되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임의로 사건 배당이 가능해 전관예우가 우려된다’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배당 방식은) 전관 특혜의 하나의 원인”이라며 “특혜를 폐지하기 위해 검찰청법과 직무 이전·승계 권한과의 조화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7일 대검이 공개로 전환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도 비공개 과정에서 전관 변호사에게 특혜로 작용했다. 이 지침은 수사팀과 지휘부가 사건 처리를 놓고 의견이 갈릴 때 검찰 내·외부의 형사법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해 사건 심의를 맡긴다는 내용이다. 지난 6월 ‘검·언 유착’ 의혹을 받은 채널A 이동재 전 기자 측이 자문단 소집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대검에 제출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화제가 됐다. 일반 변호인들은 자문단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규정상 사건 당사자는 자문단 소집 권한이 없었음에도 진정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 전 기자 측 변호인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맡았다. 유승익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사건 당사자가 자문단을 소집할 수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절차는 피의자 방어권과 관련이 있었음에도 검사 출신만 알고 활용했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일반인은 모르고 검사 출신은 모두 안다면 전관 인센티브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단독]검찰의 비공개 예규 4개 전문 공개

개혁안 만들어놓고 비공개, 이행 ‘검증 불가’

검 내부서도 ‘인권수사자문관’ 두고
“특수부 결론 정당성 위한 면죄부”
‘지휘 내용 기록’ 지침도 활용 의문

검찰은 검찰개혁안으로 만든 내규도 비공개했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도입한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등 기록에 관한 지침’과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이 대표적이다. 인권수사자문관은 검찰 내에서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맡는 대검 소속 검사들이다. 수사팀의 확증편향, 수사 과정상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 등을 내부에서 검토해 걸러내고 기소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명칭에 ‘인권’이 들어가긴 하지만 수사 과정의 인권 침해 행위를 감독하는 각 검찰청 소속 인권감독관과는 역할이 다르다.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전국의 모든 특별수사부(현 대검 반부패부 산하) 수사 사건은 원칙적으로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이 지침의 5조와 7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방검찰청의 특수부 사건은 신병 및 기소 여부에 대해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형사부·공안부 사건도 “특별수사에 준하는 객관적 자문이 필요한 사건”은 인권수사자문관 자문 대상이 될 수 있고 특수부 사건과 관련된 진정, 탄원 사건도 자문 대상이 될 수 있다(6조). 이를 감안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차장검사 등 다양한 사건이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받았어야 한다.

인권수사자문관들이 모든 반부패부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문 활동을 했는지는 미지수다. 인권수사자문관은 도입 후 1년7개월여 동안 30여개 사건을 심리한 것으로만 알려졌다. 법무부는 지난 8월 대검 인권부를 대검 차장 산하 인권정책관 체제로 개편하면서 “인권수사자문관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수사자문관 운영에 관한 지침’ 5조 5항은 ‘대검 반부패부가 자문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검찰총장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인권수사자문관의 자문을 거치지 아니한다’며 예외 조건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침에 규정된 인권수사자문관의 사건 검토 방식에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8조는 ‘자문관은 검토 과정에서 사건 담당 검사, 수사관, 사건 관계인, 변호인과 접촉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수사기록만 보고 검증한다는 것인데 인권수사자문관의 모델인 일본 총괄심사관이 수사 검사와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을 도출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검찰 내에서도 인권수사자문관은 특수부 결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면죄부 장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상세 지침을 봐야 검찰이 만든 자체 개혁안에 과연 개혁적 요소가 있는지, 실제로 제대로 운영되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수사 점검 과정의 설계 내용 등이 공개되면 수사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개혁을 위해 도입했지만 자랑 삼아 공개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지휘·지시 내용 기록에 관한 지침’도 문무일 검찰총장 당시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도입됐다. 검사동일체 문화를 깨기 위한 개혁안으로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활용되는지 밖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간간부급 B검사는 “초반에는 팀 밖에서 의사 기록을 볼 것을 우려해 기록에 소극적이다 최근 나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기록 대상은 ‘상급자와 주임검사 혹은 각 검찰청과 대검 간의 이견이 발생할 때’이다. 상급자가 상신된 결재를 반려하거나, 상급자 또는 대검이 구체적 지휘·지시를 해서 결재 절차 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기록 대상이다.

검사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인사와 별개”

총장에 보고되는 개별 검사 평가 자료
법무부 요청 땐 전달할 수 있지만
그 예규도 비공개라 ‘묻지마 인사’가능

 비공개 대검 예규 ‘검사평가자료 수집 관리 등에 관한 지침’은 검찰총장에게 보고되는 개별 검사에 대한 평가 자료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를 담고 있다. 2조에 따르면 각 부서의 각종 포상, 격려 내역, 분야별 우수업무 사례, 미담·선행 사례, 감찰 조사 및 징계처분 결과, 감찰 세평, 사건평정, 사무감사 결과 및 각급 청의 장이 제시하는 의견 등 일체 자료가 검사 평가자료에 해당한다.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이러한 자료를 종합해 정리한 내용을 매 분기 1회 또는 필요한 경우에 수시로 검찰총장에게 보고할 수 있다. 법무부 요청에 따라 이 자료를 법무부에 전달할 수도 있다. 법무부 예규인 ‘검사 석순 기준’도 비공개라 구체적으로 검사 순위를 어떻게 매기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간 객관적 평가 자료와 별개로 검찰 인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공판에서는 음주운전, 변호사 소개 등으로 징계 감찰을 받은 검사들이 희망지로 인사 배치되는 사례가 제시됐다. 복무평정 순위가 좋아도 희망지 반영이 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030600015&code=940301#csidx55b41133264d7228f5d98bb9b628d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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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박근혜에게 왜 “불쌍한 대통령”이라 했을까

등록 :2020-11-03 08:21수정 :2020-1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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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미국 대통령
며칠 뒤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된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거나 재선에 성공하면, 우리나라 외교부가 가장 먼저 공을 들이는 게 한-미 정상회담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과 대북 정책을 비롯한 현안에서 입장을 조율하는 건 한-미 관계에 중요할 뿐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특히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은 훨씬 커진다. 첫번째 정상회담, 이 회담이 한-미 관계와 대북정책, 국내 정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사례는 적지 않다. 미국 대통령과 한국의 인연,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끼친 영향을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돌아봤다. /해설 박찬수케네디 앞에서 긴장했던 박정희
죽기 전 카터 만났을 때도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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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김대중에게 화를 냈다
노무현은 부시와 만나 직설적 논쟁
거의 자리 박차고 나올 분위기
첫손에 꼽을 수 있는 한-미 정상회담은 2001년 3월7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렸던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을 계기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는 날아가고 결국 북한은 몇년 뒤 핵실험 강행으로 나아가게 된다. 아쉽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관계 정상화 직전까지 갔던 북-미 관계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2001년 3월7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그 분기점이었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웃었지만, 정상회담 뒤 김대중 대통령 표정은 굳어져버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관계 정상화 직전까지 갔던 북-미 관계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2001년 3월7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그 분기점이었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웃었지만, 정상회담 뒤 김대중 대통령 표정은 굳어져버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사상 초유의 플로리다 재검표로 얼룩진 2000년 11월7일의 미국 대선. 이 선거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는 급진전을 이뤘을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선언한 뒤에도 클린턴은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당선자 진영이 반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게든 북-미 대화의 기류를 이어가려 했다. 2001년 2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그렇게 급하게 이뤄진 게 3월7일의 워싱턴 회담이었다.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을 ‘아시아의 만델라’로 대했다. 1980년대 초반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가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을 때, 그를 감형하는 조건으로 전두환의 워싱턴 방문을 받아들인 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1981년 2월3일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유혈 쿠데타 주역의 워싱턴행에 반대가 많았지만, 전두환은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총재를 감형하는 조건으로 백악관 방문 티켓을 따냈다. 당시 공보처 제공 사진으로 추정된다
1981년 2월3일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유혈 쿠데타 주역의 워싱턴행에 반대가 많았지만, 전두환은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총재를 감형하는 조건으로 백악관 방문 티켓을 따냈다. 당시 공보처 제공 사진으로 추정된다
전두환 방미 열흘 전인 1981년 1월22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에게 보낸 2급 비밀 전문엔 “전두환 대통령은 상당 부분 이번 방문이 김대중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결정(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런 민주주의 정치인이 한국 대통령이 돼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김 대통령을 대하는 워싱턴의 분위기는 호의적이었다.그러나 텍사스 주지사 출신의 조지 부시는 ‘카우보이’였다. 김 대통령 방미에 앞서 <뉴욕 타임스>가 김대중 인터뷰를 싣고 ‘햇볕정책’을 소개하자, 조지 부시의 백악관은 몹시 못마땅해했다. 부시의 카우보이 기질은 정상회담장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당시 정상회담 상황을 잘 아는 전직 고위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회담을 시작하자마자 부시는 ‘(양쪽이 조율한) 공동선언문은 그대로 언론에 발표하고 우리는 좀 더 솔직하게 얘기를 하자’고 말했다. 직설적인 그의 말에 우리 대표단은 얼어붙었다. 회담 도중 김 대통령 발언이 좀 길어지면 부시는 가차 없이 통역을 끊고 들어와 자기 말을 했다. 급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부시의 성격은 오찬을 겸한 확대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2001년 3월7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오찬을 겸한 확대정상회의는 분위기가 싸늘했다. 서빙하는 직원이 수프 국물을 부시 대통령 바지에 약간 떨어뜨리자 부시는 큰소리로 화를 내며 불평을 했다. 진천규 기자가 찍었다.
2001년 3월7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오찬을 겸한 확대정상회의는 분위기가 싸늘했다. 서빙하는 직원이 수프 국물을 부시 대통령 바지에 약간 떨어뜨리자 부시는 큰소리로 화를 내며 불평을 했다. 진천규 기자가 찍었다.
서빙하던 직원이 부시 그릇에 수프를 퍼주다가 실수로 국물을 약간 양복에 흘렸다. 그러자 부시가 큰소리로 직원을 나무라면서 손수건에 물을 적셔 양복을 닦았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자기 양복이 더러워졌다고 불평하며 투덜댔다. 정상회담에선 참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좋게 보면 솔직하고, 나쁘게 보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김 대통령은 노련했다. 얼굴은 흙빛이 됐지만 한번도 부시를 맞받아치지 않고 꾹 참았다. 그렇게 참았기에 2002년 2월 부시 방한 때 김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방문해서 한국이 원하는 말(‘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을 해줬다고 본다.”이 점에선 문재인 대통령도 김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있다. 거칠고 무례하기로 따지면 부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게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다. 정상회담이나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는 자기가 원하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선 외교적 예의를 벗어던지고 상대국 정상을 강하게 몰아붙인다. 문 대통령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대표적이었다고 한다. 정상 통화에선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론하진 않는 게 외교 관례인데, 트럼프는 ‘얼마를 올려 달라’는 식으로 마치 장사꾼 흥정하듯 했다고 한다. 트럼프와의 통화가 끝난 뒤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정상 간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취지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면전에선 꾹 참고 맞대응을 하지 않았다. 특히 대북 문제에서 트럼프의 적극적인 태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몹시 애를 썼다. 트럼프도 문 대통령의 제안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지만, 회담에 배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트럼프의 이런 즉흥적 행동에 제동을 걸곤 했다고 한다.
2018년 9월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서명한 뒤 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있다. 무역협정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 현안에서 트럼프는 오로지 경제적 실리만 챙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효 기자가 찍었다.
2018년 9월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서명한 뒤 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있다. 무역협정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 현안에서 트럼프는 오로지 경제적 실리만 챙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효 기자가 찍었다.
2019년 6월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쪽 지역에서 인사한 뒤 남쪽으로 같이 걸어 내려오고 있다. 북한과 미국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난 건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만남에도 불구하고 북-미 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2019년 6월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쪽 지역에서 인사한 뒤 남쪽으로 같이 걸어 내려오고 있다. 북한과 미국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난 건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만남에도 불구하고 북-미 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은 전화 통화도 많이 했다. 정상 통화를 하기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선 거의 대화록 수준의 수십쪽짜리 상세한 참고자료를 대통령에게 올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무슨 말을 건넬지 직접 A4 용지에 따로 적어서 정서적으로 접근하려 애썼다.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로 북핵 문제는 다시 수렁에 빠졌지만,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건 이런 방식으로 문 대통령이 트럼프의 마음을 산 측면이 컸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을 끝내고 본국 귀환을 위해 에어포스원에 오르자마자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마치 만점을 받은 아이처럼 회담 성과를 자랑했고, 문 대통령은 “세계 평화의 큰 토대를 놓았다”고 극찬했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두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광경이었다.1961년 11월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사진은 유명하다.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케네디와 선글라스를 쓴 무표정의 박정희 의장 모습은 대조적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제3세계 군 장교가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니 얼마나 긴장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기 몇달 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도 박 대통령은 몹시 긴장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 정부의 야당·재야인사 탄압을 놓고 한-미 간에 긴장이 높을 때였다.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철회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고, 카터는 “내 개인적인 바람은 당신이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양심수)를 가능한 한 많이 석방하는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2018년 한미클럽이 공개한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10월18일(한국시각)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오찬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인 이스트룸으로 향하고 있다. 2014년 공동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박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중국 전승절 참석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청와대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10월18일(한국시각)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오찬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인 이스트룸으로 향하고 있다. 2014년 공동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박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중국 전승절 참석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청와대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청와대 공동기자회견에서 유난히 긴장해서 실수를 많이 했다. 오바마가 답변을 하라고 눈길을 주는데도 박 대통령은 마이크만 만지작거리면서 제대로 말을 하질 못했다. 오바마가 “불쌍한 대통령이 질문이 뭔지 기억하지 못하나 보네요”라는 조크를 던질 정도였는데, 이 부분은 백악관 영상에선 묵음으로 처리됐다.미국 대통령은 한-미 관계와 대북 정책에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물결을 일으켜 국내 정치·사회적으로도 커다란 흔적을 남긴다. 2008년 4월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데이비드 방문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는 동안 한-미 쇠고기 협상이 전격 타결된 게 ‘광우병 파동’을 불러일으키며 대규모 촛불시위를 불러온 것이다.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환대 속에 이뤄졌다. 정상회담은 백악관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렸다. 한국 대통령으론 첫 캠프데이비드 방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가장 친한 외국 정상을 개인 별장인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했다.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나 중국 장쩌민 주석,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크로퍼드 초청을 받았다.
2008년 4월18일 방미한 이명박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우고 골프 카트를 운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숙박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방미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김종수 기자가 찍었다.
2008년 4월18일 방미한 이명박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우고 골프 카트를 운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숙박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방미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김종수 기자가 찍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한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크로퍼드로 초대하질 않았다. 부시와 노무현, 두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수차례 설전을 벌인 게 영향을 끼쳤다.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의 얘기. “대개 정상회담은 의전적이고 외교적인 성격이 강하다. 양쪽 모두 윈윈하는 모양새를 좋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정상회담에서 현안을 담판 지으려 했다. 처음엔 주변에서 말려서 의전에 따라 했는데, ‘이러니 너무 답답하다. 솔직하게 토론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그런 논쟁의 장이었다. 부시와 노 대통령은 대북 금융제재 등을 놓고 직설적인 말들을 주고받았다. 거의 자리를 박차고 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이듬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정상회담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2005년 11월17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공동기자회견 모습과는 달리 두 대통령이 격한 논쟁을 벌인 회담이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경주 회담을 “두 정상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며 ‘최악’이라고 평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2005년 11월17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공동기자회견 모습과는 달리 두 대통령이 격한 논쟁을 벌인 회담이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경주 회담을 “두 정상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며 ‘최악’이라고 평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2019년 5월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손녀 서은양과 팔짱을 끼고 이동하고 있다. 정상회담 때는 두 사람이 격하게 다툰 적도 있는데, 추도식에 참석한 걸 보면 부시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공동사진취재단이 찍었다.
2019년 5월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손녀 서은양과 팔짱을 끼고 이동하고 있다. 정상회담 때는 두 사람이 격하게 다툰 적도 있는데, 추도식에 참석한 걸 보면 부시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공동사진취재단이 찍었다.
2008년 4월18일 오후 6시(한국시각),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에 도착하기 11시간 전에 한-미 간에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이 타결됐다. 한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 방침을 철회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쇠고기 협상과 대통령 방미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공개된 미 국무부 문서엔 한국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 방미 전에 쇠고기 수입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적혀 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전문을 보면, 인수위 시절인 2008년 1월17일 최시중·현인택 두 측근 인사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이 대통령 방미를 논의했다. 현인택씨가 “4월이 적기이며 캠프데이비드를 방문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라고 제안했고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이후 4월에 방미한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현씨는 “이 대통령 방문에 앞서 한국 시장이 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8월5일 대학생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부시와 이명박 가면을 쓰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2008년 8월5일 대학생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부시와 이명박 가면을 쓰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발표로 전국에선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졌고, 임기 초반의 대통령 지지율은 한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고 쇠고기 재협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하룻밤 묵은 값으로는 너무 커다란 정치적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1966년 10월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서울 방문은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존슨 방한은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에 전투병력을 파병(1965년 10월)한 데 대한 답례 성격이 짙었다. 한국은 존슨의 7개국 순방 중 마지막 방문국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베트남전 반대시위가 불이 붙던 때였다. 존슨은 순방국들에서 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뉴질랜드에선 의사당 앞에서 반전 시위대와 마주치기도 했다. 한국은 달랐다.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는데, 180만명(언론 보도)의 시민들이 연도에 쏟아져나와 열렬히 존슨을 환영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370만명이었으니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됐고 또 대다수는 동원 군중이었지만, 어쨌든 베트남전에 짓눌려 있던 존슨 대통령은 기뻐했을 것이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 카퍼레이드 사진이다. 당시 공보처가 생산한 사진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았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 카퍼레이드 사진이다. 당시 공보처가 생산한 사진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았다.
그런데 존슨의 카퍼레이드 도중 소공동 지역의 너저분한 중국인촌과 남산 기슭 판잣집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면서 나라 안팎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 대통령은 도시 미관을 위해 용산역 등 철도 부근 판잣집부터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무허가 건물 철거와 대대적인 도시계획의 출발이었다. 도심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의 허허벌판 대단지(지금의 성남)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경기동부>, 임미리, 2014) 서울 도심 재개발이 꼭 존슨 대통령의 방한 때문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1971년 한국 사회운동에 한 획을 그은 광주대단지 사건은 그렇게 미국 대통령과 실낱같은 연결점을 지니고 있다.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만남이 꼭 껄끄러운 건 아니다. 재미있는 장면도 적지 않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이 방한했을 때는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 녹지원에서 조깅을 같이 했다. 매일 아침 달리기를 했던 김 대통령이 클린턴 쪽에 먼저 제안을 했고 클린턴도 흔쾌히 수락해서 이뤄진 행사였다. 행사 이름은 ‘민주주의를 위한 조깅’(Jogging for Democracy)이라 붙였다. 300m 우레탄 트랙을 10바퀴 뛰었는데, 나이가 많은 김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지지 않으려 처음부터 속도를 올렸다. 클린턴은 여유 있게 맞춰주었지만, 미국 쪽 통역은 따라가질 못해 중간에 통역을 포기하고 트랙 밖으로 나와버렸다. 클린턴은 조깅을 마친 뒤 김 대통령에게 “나이도 많으신데 젊은 사람처럼 잘 뛰신다”고 덕담을 건넸다. 흡족한 김 대통령은 그날 저녁 만찬에서도 조깅을 화제에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딱딱한 시멘트에서 뛰면 무릎이 상하니 우레탄을 깔아야 한다”고 조언했고, 힐러리는 백악관에 돌아가서 조깅 트랙에 우레탄을 깔았다.
1993년 7월10일 아침, 빌 클린턴 대통령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조깅을 함께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 전에 참모들에게 “내가 지지 않을 끼다”라며 특유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김 대통령은 처음부터 조깅 속도를 높였는데 클린턴이 잘 맞춰주었다고 한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1993년 7월10일 아침, 빌 클린턴 대통령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조깅을 함께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 전에 참모들에게 “내가 지지 않을 끼다”라며 특유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김 대통령은 처음부터 조깅 속도를 높였는데 클린턴이 잘 맞춰주었다고 한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찍었다.
11월3일(현지시각) 미국의 새 대통령이 뽑히면 한-미 정상회담이 언제 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것이다. 역대 정상회담을 보면, 빨리 여는 것보다 치밀하게 회담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동북아 정세와 한국 사회에 어떤 파장을 던질까. 20년 전과 달리, 한반도에 따뜻한 바람을 몰고 오는 회담이 되었으면 한다.
▶ 제21화 해설자는 박찬수 <한겨레> 선임논설위원입니다. 박찬수 논설위원은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습니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 민족해방(NL) 사조의 흐름을 다룬 <엔엘(NL)현대사>를 썼습니다. 요즘 오피니언면에 격주로 ‘진보를 찾아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와 관련한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968279.html?_fr=mt1#csidxf3844a48e016fb7a95e3836c565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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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와 시민들 “일본 사죄배상 끝까지 요구할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1/03 10:22
  • 수정일
    2020/11/03 10: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정은주 통신원 
  •  
  •  입력 2020.11.02 2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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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일본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지 2년이 지났다.

일본은 그동안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일본까지 찾아간 피해자를 문전박대하고 국제법까지 위반하며 서류송달을 거부하는 등 배상절차를 지연시켜왔다. 2018년 10월 30일로부터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대응 해당 일본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매각을 추진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이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판결을 뒤엎을 것을 요구하며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등 한국 정부를 협박하고 있다.

그동안 피해자 및 대리인, 시민들은 연대하며 일본에 꾸준히 사죄배상을 요구해왔다. 특히 이번 10월 30일, 판결 2년을 맞아 서울 곳곳에서는 다양한 행동들이 진행되었다.

시민 1,063명, ‘우리가 기억한다’ 인증샷 광고 게재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강제동원 공동행동‘)’은 10월 15일부터 30일까지 시민 인증샷 캠페인을 벌였다. 시민 1,063명의 인증샷과 후원으로 신문광고가 게재되었다.

▲10월30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시민들의 인증샷 광고.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10월30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시민들의 인증샷 광고.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판결 2년을 맞는 10월 30일 당일에는 피해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는 “일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잘못된 역사는 묻힐 수 없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주어서 힘이 난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10월30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피해자와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10월30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피해자와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피해자들과 함께 사죄배상 꼭 받아내겠다는 청년들

청년, 대학생들도 판결 2년을 맞아 피해자단체와 함께 항의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매주 목요일 청년들을 중심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는 항의행동인 ‘서울겨레하나 목요행동’은 10월 29일 판결 2년을 맞아 피해자 유족과 함께 했다.

▲10월29일 판결2년 ‘서울겨레하나 목요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10월29일 판결2년 ‘서울겨레하나 목요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이날 87차 행동의 사회자를 맡은 전지예 청년은 “피해자분들의 투쟁 덕분에 우리가 지금 더 당당하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하며 “이 판결을 받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사셨을지 생각하면 일본에 대한 분노가 올라온다”고 목요행동을 진행한 소감을 밝혔다.

▲‘서울겨레하나 목요행동’ 중 한 청년이 일본 스가 총리의 입에 X자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서울겨레하나 목요행동’ 중 한 청년이 일본 스가 총리의 입에 X자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대학생들, 시민들에게 강제동원 문제 알려

30~31일 용산역 강제징용 노동자상 옆에서는 대학생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일제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고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활동이 진행되었다.

활동에 참가한 이수민 대학생은 “활동을 준비하며 가슴 아픈 역사를 자세히 알게 되었고,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이 용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시민들에게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대학생들이 용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시민들에게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특히 31일에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낭독하고 ‘우리가 증인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와 함께 계속 활동해나갈 것임을 보여주었다.

▲대학생들이 용산역 계단에서 ‘우리가 증인이다. 역사왜곡 멈춰라’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대학생들이 용산역 계단에서 ‘우리가 증인이다. 역사왜곡 멈춰라’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시민들의 행동은 이어질 것

판결 2년이 지났지만, 많은 시민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일본에 사죄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청년들의 ‘서울겨레하나 목요행동’은 매주 목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다. 강제동원 공동행동은 시민 인증샷 캠페인을 신문 광고에 이어 연말 지하철 광고로도 추진할 계획이며, 국제캠페인으로 확대해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시민들의 항의행동은 계속 될 뿐 아니라 일본이 판결을 거부하면 할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 인증샷 캠페인 참가하기 https://www.JapanApologize.com

▲인증샷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홈페이지 캡쳐 화면.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인증샷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홈페이지 캡쳐 화면. [사진-통일뉴스 정은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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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죽음, 이건희의 죽음

[청죽통한사 ③] 전태일

20.11.03 09:24l최종 업데이트 20.11.03 09:24l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 생존과 꿈의 경계에 섰다. 같은 경계선을 무난히 혹은 우여곡절을 거쳐 넘은, 같은 시대에 던져진 다른 많은 이들과 달리 그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세계의 폭력에 의해서든,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지 못한 불운에 의해서든 그의 죽음은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의 고발이다. 

해방을 앞두고 이역에서 숨을 거둔 윤동주부터 2020년의 어느 청년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바람 저널리스트들은 청죽통한사(청년의 죽음으로 통찰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청년의 죽음을 취재했다. 청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작성한 '청년의 죽음'은, 그 죽음의 애도이자 더 나은 세상의 모색이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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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분신 장면.
ⓒ 영화 전태일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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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한 청년이 죽었다.

그날 서울 평화시장이 자리한 수표교 인근엔 노동자 500여 명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고 곳곳에 경찰관들이 배치돼 긴장이 감돌았다. 이미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평화시장 의류공장의 사업주들은 "깡패 같은 놈들이 주동이 되어 나쁜 짓을 하니 점심시간에 나가지 말라"고 노동자의 바깥출입을 막았다. 평화시장 건물마다 경비원들이 출입구를 봉쇄했다. 사람은 막았지만 말은 막지 못했다.

오후 1시 20분에 일군의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그곳 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바로 경찰이 막아서는 바람에 플래카드는 망가져 버렸고, 전에 그랬듯 이번에도 시위가 무위로 돌아갈 듯하였다. 시위대가 주춤하는 사이로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 책자를 가슴에 품고 나타났다. 준비한 일을 결행하며 그는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침은 곧 불꽃이 되었다. 휘발유를 뒤집어쓴 그의 몸이 근로기준법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 속에서 또 다른 외침이 타올랐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전신을 휘감은 불길이 3분가량 몸을 태웠고, 22년 짧은 생애를 평화시장에 남긴 채 쓰러진 그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은 한국 노동운동의 착화제가 되었다. 50년 전에 청계천에서 분신한 그는 전태일이다.

평화시장

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매우 가난했다. 소년 시절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가출을 반복했다. 구걸, 삼발이 장사, 신문팔이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 동생을 배곯게 하지 않으려고 보호시설에 버려야 했다. 그렇게 엄혹한 시간을 보내며 그는 어떤 질문을 품었다. 자신을 억압하는 부유한 자들의 세상, 강자가 지배하는 질서, 가난한 자를 가난으로 밀어내는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태일은 그 세상을 '부한 환경'이라 부르기로 했다.

1964년 봄. 16세 태일은 평화시장 의류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평화시장 의류공장의 체계는 말단부터 시다, 미싱 보조, 미싱사, 재단 보조, 재단사, 공장주로 올라가는 피라미드 형태를 취했다. 태일은 시다에서 시작해 미싱 보조를 거쳐 1966년에는 미싱사가 되었다.

처음 시다 일을 할 때 하루 14시간을 근무하고 일당으로 50원을 받았다. 당시 차 한 잔 값을 일당으로 받았으니 터무니없는 저임금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험한 꼴 쓴맛을 다 본 태일은 그나마 안정된 직장이라는 생각에 그래도 신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안정'에 안도한 것도 잠깐,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눈에 들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새벽에는 구두닦이, 낮에는 시다, 밤에는 껌팔이를 하던 시절의 전태일
▲  새벽에는 구두닦이, 낮에는 시다, 밤에는 껌팔이를 하던 시절의 전태일
ⓒ 전태일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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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은 농촌과 노동자의 수탈을 특징으로 한다. 농촌 소외라는 정책 방향에 따라 도농 간 격차가 확대되어 대대적인 이농이 이어졌다. 이촌향도한 많은 인구는 공장의 노동자가 되거나 노동자가 되기 위한 산업예비군이 되어 도시의 외곽 슬럼 등지에 집단거주했다.

박정희 정권은 수출 주도 경제 노선을 택했다. 미국의 원조나 외국의 차관에 기대 기술 수준은 낮고 노동이 많이 투여되는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기술경쟁력이 없으므로 유일한 경쟁력은 가격경쟁력이었다.

한국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수출목표를 정하고 수출보국(輸出報國)이란 명목으로 기업체를 다그치는 한편 금융과 세제 혜택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한국의 유일한 수출경쟁력인 상품의 가격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의 노동자 수탈과 탄압을 때로 방관하고 때로 협력했다. 때로는 공권력을 동원해 해결사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수탈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로는, 이농현상으로 인한 노동의 만성적 공급 과잉과 남북 분단이란 특수상황에 기인한 한국 노동운동의 침체가 거론된다. 생계비에 못 미치는 저임금이라 하여도 일할 사람이 줄을 섰기에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또 노동운동에 빨갱이 낙인을 찍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워낙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였기에 노동자는 불이익을 당하고도 자본가에 맞서 단합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무력한 개인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일제에서 물려받은 권위주의 통치시스템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비대해진 국가의 폭력역량은 노동운동의 씨를 말려 버렸다.

태일이 일하던 50년 전 평화시장은 이러한 시대 상황이 압축된 노동 현장이었다. 작업량이 비교적 많은 가을부터 봄까지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14~15시간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내내 일한 뒤 낮 1시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잠시 점심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즉시 업무에 복귀하여 밤 10시에서 11시에 퇴근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도 쉽지 않은 노동환경이었다.

일거리가 많은 시기엔 잠 안 오는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가며 사흘 연속 야간작업을 하기도 했다. 평화시장이나 구로공단엔 잠 안 오는 약인 '타이밍'을 비타민처럼 수북이 쌓아놓고 먹게 했다고 전한다. 명목상의 휴일이 있긴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전태일기념관에 있는 다락 작업장
▲  전태일기념관에 있는 다락 작업장
ⓒ 전태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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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의 밀집도가 심각했다. 고용주들은 작업장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다락방'을 고안했다. 각종 작업 설비, 비품 등이 가득한 이 다락의 위아래 층에서, 평당 약 4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다. 기지개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는 비좁은 환경이었다.

당연히 위생 상태가 나빴다. 원단의 약품 냄새와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가 노동자 건강을 위협했음에도 작업장에는 환기장치가 없었다. 외부로 향하는 창문은 없거나, 있다 해도 여닫을 수 없는 구조였기에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건물도 사정이 같았다. 창문 수가 적은 탓에 환기가 잘 안 된 것은 물론 실내 공간이 어두웠다. 노동자들은 바로 눈앞에 전등을 둔 채 작업했다. 장시간 직접 조명에 노출되어 많은 노동자가 눈병을 앓았다. 화장실은 남녀 공용으로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근로기준법 발견과 바보회 창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br />- 전태일 일기 중에서

태일은 억압받는 노동자들에게 특히 마음을 썼다. 자신과 그들 모두 '부한 환경'이 밀어낸 자들이었다는 동질감. 태일은 업주와 재단사의 유착관계로 여공 대부분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음을 파악하고는 "어서 빨리 재단사가 되어서 공임 타협을 할 때에는 약한 직공들 편에 서서 정당한 타협을 하리라고 결심"한다.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곧바로 한미사 재단 보조로 취업하여 1967년 1월엔 원하던 재단사가 된다.

하지만 재단사가 되었다고 하여도 노동자의 편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재단사가 다른 노동자에 비해 높은 직위라 하더라도 결국 고용주 밑에서 일하는 처지이기에 고용주의 횡포를 막는 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미싱사가 일하던 도중 각혈을 했다. 폐병 3기였다. 그 미싱사는 그대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산재라는 개념이 없던 때여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태일은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로 작정하였다. 과거 대구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마침내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렇게 좋은 법을 두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고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니. 태일은 노동자가 단결하여 고용주에게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재단사 노동운동 모임인 '바보회'를 결성했다.
 
 바보회 창립 즈음에 평화시장 옥상에서
▲  바보회 창립 즈음에 평화시장 옥상에서
ⓒ 전태일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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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회는 평화시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렸다. 고용주들에게 들켜 설문지는 대부분 빼앗기거나 찢기고 말았다. 태일은 그나마 거둬들인 설문지를 가지고 근로감독관실로 향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태일이 전한 참혹한 노동 현실에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태일은 이번엔 노동청을 찾아갔다. 하지만 노동청 역시 무늬뿐인 실태조사를 한 번 나왔을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태일은 평화시장 어느 공장에서도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바보회 회원들 역시 해고될 위험에 직면하자 노동운동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바보회는 이후 사실상 해체된다. 평화시장에서 일자리를 잃은 태일은 공사판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떠난 지 1년 후 평화시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바보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뜻 맞는 동지들과 '투쟁' 목적의 재단사 모임인 '삼동회'를 만들었다.

삼동회는 바보회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노동실태 설문조사를 성공적으로 재실시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서명을 받아 노동청에 근로환경 개선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진정서를 여러 신문사에 보내 1970년 10월 경향신문에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근로조건 영점 … 평화시장 피복공장 소녀 등 만여 명 혹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평화시장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주목받자 고용주와 근로감독관은 태일을 회유했고 일주일 내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1970년대 평화시장 실태조사
▲  1970년대 평화시장 실태조사
ⓒ 전태일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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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연하게도 노동청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태일은 더 적극적인 투쟁방식으로 의사표시를 하기로 한다. 진정을 통한 권리획득 방식에서 벗어나서 데모하고 투쟁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 투쟁이 쉬울 리가 없었다. 10월 20일 노동청 앞 시위, 24일 국민은행 앞 시위가 모두 무산되었다. 노동 당국의 압박과 회유도 계속되었다. 이제 태일은 그들이 맞서 싸우는 대상이 고용주뿐 아니라, 노동자를 억압하는 악과 긴밀히 유착한 경찰, 노동 당국, '부한 세상'으로부터 가난한 자들을 밀어내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우친다. 그리고 당시에 그 거악에 맞설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 또한 태일은 잘 알았다.

평생을 건 긴 투쟁의 길을 시작하거나, 다른 많은 이의 투쟁의 길을 밝힐 빛이 되거나, 두 가지 선택을 두고 22살의 아름다운 청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번민을 밤을 지새웠다.

죽음들

태일이 분신하기 7년 전 베트남 사이공에선 역사를 뒤흔든 다른 분신 사건이 있었다. 당시 외세와 결탁한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정권은 지주들을 권력 기반으로 하였으며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이들은 가톨릭을 믿었다. 가톨릭을 비호한 응오딘지엠 정권은 특정 종교를 비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거의 전 국민이 믿는 종교인 불교를 탄압하였다.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정책에 항의하여 1963년 6월 11일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베트남의 존경받는 승려인 틱꽝득(釋廣德)이 소신공양한다. 이날의 소신공양 광경은 각국에 보도되었는데, 화염 속에서도 표정의 일그러짐이나 고통의 신음 없이 정좌 자세로 조용히 죽음에 이른 고승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틱꽝득의 소신공양이 이후 베트남 역사의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1970년 11월에 분신한 태일은 기독교인으로 틱꽝득과 종교가 달랐지만, 태일의 분신에도 소신공양이란 의의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태일과 틱꽝득은 역사를 바꿨다. 물론 아직 태일이 꿈꾼 세상은 오지 않았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일터와 생활 현장에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는 작은 실천을 하자는 취지의 '내가 전태일!' 전태일 정신 계승 1실천 운동 제안 기자회견이 아름다운청년 전태일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일터와 생활 현장에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는 작은 실천을 하자는 취지의 "내가 전태일!" 전태일 정신 계승 1실천 운동 제안 기자회견이 아름다운청년 전태일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2020.6.24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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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선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운송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지는 등 노동 현장의 비극은 다양한 형태로 바뀌며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영면한 태일이 남긴 정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영원한 자양이 돼 노동운동의 침로가 되고 있다. 시대에 자신을 소신공양한 20대 초반의 젊디젊은 청년 태일의 일기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된다. 분신 직전에 남긴 별도 유서가 있지만, 일기의 이 내용은 미리 쓴 유서처럼 느껴진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br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br />(...)<br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br />(...)<br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건희 삼성회장이 2020년 10월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한국 자본가를 대표하는 이 회장이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앞두고 숨진 풍경이 공교롭다. 애도와 추모가 교차하는 가운데 전해진 택배노동자의 잇단 과로사는 두 죽음 중에서 2020년의 죽음보다는 50년 전의 죽음에 더 유념해야 할 절박감을 느끼게 한다.

그가 떠나고 50년이 지나는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본은 노동자를 강압적으로 착취하는 대신 자발적인 순응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고도화하였으며 아날로그 통제가 디지털 통제로 바뀌면서 통제가 더 교묘하고 강력해졌다. 반면 드러나는 통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노동의 외주화와 유연화에 이어 긱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노동 형태가 등장하여 노동계급 내의 분화와 균열이 확대되고 있다. 반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노동현장은 긍휼과 자비를 절실하게 요구한다. 그것이 분신일 이유는 없지만, 우리에겐 더 많은 전태일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그의 50주기에 더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 김유라: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졸업 예정). 침대에 누워있기를 즐기지만 열심히 살고도 싶다.
-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이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죽통한사를 함께 진행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1. 민종덕,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평전』, 돌베개, (2016.09.13.)
2. 민종덕, 「잃어버린 진실 : 1977년 9월 9일 청계피복노조 결사투쟁 사건」, 『기억과 전망』 7, 2004.
3. 윤정원, 「대한방직 대구공장 노동쟁의(1955-1960)」, 국내석사학위논문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8.
4. 이원보,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5)
5. 임송자, 「전태일 분신과 1970년대 노동 · 학생운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0.
6. 장미현. 「1950년대 후반 대구 대한방직 노동쟁의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국내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7.
7. 조영래, 『전태일평전』, 전태일재단, (2009.04.15.)
8. 한철희, 『청계, 내 청춘』, 돌베개, (2007.11.06.)
9. Tsatsralt, Altanbagana, 「박정희 정권과 농민의 연계성: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중심으로」, 국내석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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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의 세계가 오고 있다

  • 기자명 김장호 기자
  •  
  •  승인 2020.11.02 15:27
  •  
  •  댓글 0
 
 

자주의 세계가 오고 있다(1)

기획분석기사 

아래와 같은 주제로 2차 대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1. 2차 대전후의 세계질서
2. 반제자주역량의 반격과 결집
3. 미국우선주의의 반격과 역풍(1)
4. 미국우선주의의 반격과 역풍(2)
5. 북미대결과 동북아의 지정학

1. 역사적 개관 : 2차대전 이후의 세계질서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냉전 시대,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거쳐 자주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1) 냉전의 시작과 해체

2차대전 직후 제국주의 진영은 미국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냉전을 시작했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모순의 산물인 세계대공황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폭발해 혁명의 시대를 열었다. 사회주의가 진영으로 발전하고,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이 더욱 강화되어 비동맹운동으로 이어짐으로써 제국주의의 위기는 전반적으로 심화되었다. 이에 미제국주의와 그 연합세력은 내적으로는 국가독점자본주의에 기초한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외적으로는 그리스 내전과 한국전쟁을 시발점으로 대사회주의 냉전체제를 구축했다.

▲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 [사진 : 뉴시스]
▲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 [사진 : 뉴시스]

냉전을 시작으로 미국은 패권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즉, 군산복합체에 기반한 군사적 케인즈주의 국가로 전환했다. 미국은 냉전을 확대하며 한편으로는 유럽과 일본을 종속적 동맹체계로 편입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한국 등 제3세계를 신식민지로 재구성하여 민족해방혁명에 대한 압살정책을 강화했다.

그러나 미제국주의는 코리아전쟁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여 베트남전쟁패배를 거치며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다.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유로달러의 유동성 과잉으로 닉슨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고 페트로달러에 기반한 불태환 달러기축시대와 금융축적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전후체제의 근본위기로 이어졌다. 금태환 정지로 달러가치의 하락은 유가하락으로 이어져 산유국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오일쇼크로 이어졌다. 유효수요창출을 통한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는 과잉생산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유가상승과 결합하며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한편 상호확증파괴에 기초한 공포의 균형위에서 유지된 냉전의 평화 시기 소련동구사회주의에서 수정주의가 자라났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미 제국은 데탕트를 추진함과 동시에 중소분쟁을 이용하여 중국과 손잡고 대소고립전략을 선택했다. 데탕트 시기 더욱더 수정주의로 변질된 소련동구사회주의는 제국주의가 신자유주의로 이동하며 스타워즈전략 등 신냉전 공세를 강화하자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몰락, 붕괴하고 말았다. 냉전은 이렇게 해체되었다.

소련동구사회주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로 생산력중심주의에 빠져 사회주의민중을 사상적으로 준비시키지 못했다. 특히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고 수정주의로 변질되어 전체 인민이 사상적으로 와해되었다.
둘째로 당을 혁명적으로 강화하지 못하여 관료주의가 스며들었으며, 군대를 장악하지 못함으로서 사회주의 사수의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
셋째로 사회주의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지 못했다. 때문에 소련이 망하니 동구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망하는 길로 들어섰다.
넷째로 유가상승과 하락, 과학기술발전문제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고유가 시대의 관성과 저유가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사회주의경제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좀비화되었으며, 과학기술혁명에 기초한 사회주의 경제발전건설 전략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다섯째로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체르노빌 사고로 국력이 소모되고 사회주의 영상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 

사회주의 몰락으로 인한 냉전의 해체는 사회주의운동선상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했다.
첫째는 선군시대로 전환되었다. 사회주의국가와 반제자주국가는 반제군사전선을 핵심으로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체절명의 대결선상에 서게 되었고, 혁명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으로 등장하였다.
둘째는 국제사회와 인류의 중심 지향와 요구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라는 제도 선택문제가 아니라 매개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 번영과 발전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2)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일시적 팍스아메리카나의 형성과 붕괴

소련동구사회주의 몰락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구적 수준에서 확대되고, 일시적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구가했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빠진 전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자유주의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했으나 철저하게 국가개입에 의해 국가의 힘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주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군,산,금,정(군수, 산업, 금융, 정보) 대독점체의 성장과 융합, 무한경쟁과 결합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의 생산의 국제화가 촉진되고, 금태환 정지, 투자은행 허용 이후 금융자본의 무제한적 확대와 함께 정보통신혁명 등 과학기술혁명에 기초하여 전개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현대제국주의 내부의 불균등발전의 산물로서 제조업경쟁력을 상실한 미제국의 경제패권과 경쟁력회복을 위한 미국화 전략으로 강행되었다. 
미 제국주의는 제국주의 본국에서 국관영부문의 초과이윤 확보를 위한 민영화에 돌입하고, 신식민지를 상대로 개혁개방을 강제하는 무한착취체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자원약탈과 달러패권유지를 위한 침략전쟁을 병행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9.11테러 이후 반테러전에 돌입하며 정점에 달하였다. 미 제국은 북, 이란, 쿠바 등 반제자주국가를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전을 도발하였으나 아직도 여기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색깔혁명으로 이어졌다. 리비아가 무너졌고, 우크라이나와 시리아가 내전에 휩싸였다.
이렇게 25년간을 풍미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쟁의 세계화, 공황의 세계화, 예속의 세계화, 빈곤의 세계화, 재난의 세계화’를 가져왔으며, 2008년 금융공황 이후 파국을 맞게 되고, 코로나 19위기로 결정적 붕괴의 길을 걷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일시적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는 내부로부터 붕괴의 요인들이 성장했다. 미국 일극 패권을 지탱해왔던 핵독점과 달러패권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사일경쟁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했고, 북은 전략국가로 등장했으며, 이란은 본격적 핵무장의 길로 들어섰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글로벌 불균형체제를 기반으로 오히려 중국이 급성장했고, 금융공황 이후 세계는 장기침체에 빠져들었다. 낡은 체제는 무너지고 있으나 새것이 완전하게 대체하지 못하여 다극화로 가는 긴 대결과 갈등의 이행기, 격변기로 접어들고 있다. 
그 와중에 발생한 코로나19 위기는 미국 일극패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표출하며 국제사회를 자주화 길로 더욱 다그치고 있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자주화의 길로  진전하려는 세력 간의 치열한 대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주의세계 #국제정세 #세계질서 #냉전 #데탕트 #팍스아메리카나 #달러패권 #자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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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시계, 거꾸로 가고 있다

  • 기자명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  
  •  승인 2020.10.31 23:48
  •  
  •  댓글 0
 
 

문 대통령, 왜 이러시나?

이 정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핵문제를 정말 자신의 정책 기조에 맞게 풀려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정말 확인이 안 된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다. 준비가 안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참고 또 참으며 인내했다. 하지만, 쌓이는 반복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게 했고, 이후부터는 실수가 아닌 의도이거나, 본심으로 되었다. 

평화를 얘기하면서도 절대 통일을 얘기하지 않은 것이라든지, 남북 간 합의문을 내왔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만 댄다든지, 한반도 문제와 남북관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한 것이라든지,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문 대통령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연설문)”를 얘기하면서도 ‘가난한 북’으로 매도하는 것이라든지,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다. 

▲ 서욱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지난 10월 14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해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서욱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지난 10월 14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해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게 뒤죽박죽이던 이 정부의 대북인식, 남북관계, 비핵화 문제에 대해 최근 돌이킬 수 없는 큰 시그널이 하나 발생했다.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남·북·미 3국의 정상 간 합의를 종잇장으로 만들고. 또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재추진을 무색케 했으며, 나아가 이 정부의 정책기조인 한반도 평화와 번영 프로세스를 완전 소각했다.

서욱 장관은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강조, 필자)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폐기(강조, 필자)를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공약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원칙기조를 완전 뒤집어 버렸다. 

설명하면 이렇다. 

남·북·미 3국 간 정상이 합의한 대원칙은 1990년대부터 논의돼왔던 ‘북핵 비핵화’프레임을 ‘한반도 비핵화’프레임으로 대전환 시켜낸 것이었다.  

4.27판문점 공동선언문 제3조 4항은 다음과 같다.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북미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문 제 3항은 다음과 같다. “3.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어마어마한 의제 대전환이었고, 그래서 기간 남북미 대결사가 남북미 평화사로 전환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버린 것이다. 20년 전 프레임 ‘북한 비핵화’로 되돌이표 한 것이다.

더해서 이제까지 남·북·미 3국 정상 간에 단 한 번도 합의된 바 없는 ‘미사일 프로그램 폐기’까지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다뤄냄으로써 자신의 이 발언-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외교적 레토릭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정치적 인식임을 뒷받침해냈다. 

하여 북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 강화를 용인하고, 북이 (핵)무기를 사용하기 이전이라 하더라도 북을 타격할 수도 있는 군사력을 구비하겠다는 정책이 고스란히 그 양국합의에 드러났다. 

즉, 북은 이 합의에 따라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지만, 한·미 군사 당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적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일방주의(군사대결주의)가 채택되어 졌고, 이것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인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가 실현되어질 수 없음을 만천하에 고한 것이다.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1항과 5항의 합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강구해 나가기로 하였다.”

9.19 군사분야 합의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던가? 남과 북 ‘일체의 적대적인 행위 전면 중지’와 ‘신뢰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뤄줘야 하는데, 서욱 장관의 발언은 계속 북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으로 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북은 당연히 반발하게 되어 있다. 우리 정부 스스로 약속위반을 먼저 했다는 멍에와 낙인도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과오이다.

곤궁한 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연히 문책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책기조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이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표명이나, 청와대의 입장은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서의 장이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이 정부의 정책기조에 정면 반기를 드는데, 그것도 세 정상 간 합의정신을 완전히 뒤집어버려 상황에 따라서는 한반도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군사적 긴장을 불러올 수도 있는 그런 엄청난 발언을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해가 갈 수 없다. 

마침, 모 신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제목이 생각났다. “文,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無 레임덕' 대통령 될까”(<쿠키뉴스>, 2020.10.30.)

청와대와 대통령은 여기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큰일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이 정부의 정책기조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정책이 기저에서부터 뿌리채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장관 하나 경질하지 못하고 5년 뒤를 생각한다? 참으로 ‘웃고프고’ 무책임한 기대이다.

해서 누가뭐래도 당장 이 불미스러운 사달(‘일어난 사건이나 사고’를 일컫는 옛말, 事端)을 해소해내어야만 한다.

어떻게 권력내부 레임덕 하나 못 해결하면서 앞으로 남은 민심과 관련된 레임덕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단 말인가? 성립할 수 없다. 

그렇게 성립할 수 없다면, 과거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내가 왜 대통령이 되려 했는지’를 반드시 기억해내어야 한다. 

거기에 대통령 되시기 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에서 ‘운명’까지 거론했던 자신의 철학과 정책 기조가 보일 것이다. 

민주당만을 위한 정파적 이해관계, 좁은 인재풀(중종은 당시 사림을 대표하며 가장 급진적인 이념을 가졌던 조광조 같은 인물도 중용했다.)에서 좀 과감히 벗어나 좀 더 광폭적으로 인재를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손발이 돼줘야 할 인물 하나 못 찾아 바로 코밑에서 보란 듯이 반기를 들이대는 그런 반북 대결주의자가 발탁되는 이 사달이 멈춰져야 한다. 

'정책-인물' 부조화 문제를 그렇게 풀어 5년 뒤를 생각해내어야 한다. 

않으면, 역사는, 민심은 “뭐하러 대통령 됐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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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모든 '샐러리맨'에게 남긴 교훈

회사를, 나라를, '내 것처럼' 여기지 않고 '내 것'으로 여긴 샐러리맨의 최후

20.11.01 17:45l최종 업데이트 20.11.01 17:50l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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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대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다스는 당신 것이며, 당신은 대통령이 된 뒤에 기업인 뇌물과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수수하는 등의 범법을 저질렀다'고 선고했다(관련 기사: 대법원, MB 징역 17년 확정... 횡령과 뇌물수수 등 인정돼).

사기업 직원과 마찬가지로 공직자도 '남의 일'을 해주고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다. 국회의원도 그렇고 서울시장도 그렇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민주국가의 공직자는 국민의 일을 해주고 봉급을 받는다. 나랏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랏일이 '내 일'은 아니다. 공직자는 나랏일을 하고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다.

고용주들은 맡은 바 직무를 '내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직원(A)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직원(B)을 좋아한다. 하지만 고용주들이 A보다 더 경계할 수도 있는 유형이 있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이 아니라 진짜 '내 일'로 생각하는 직원(C)이다. C 유형은 횡령이나 배임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회사를 자기 뜻대로 끌고 가려 할 수도 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용주 입장에서는 C보다 A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옛날 왕들도 그랬다. 고려 공민왕이 신돈을 전격 기용해 국정을 맡겼다가 갑자기 죽인 것과, 조선 중종이 조광조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다가 갑자기 죽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신돈과 조광조가 B 단계를 지나 C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되자 고용주들은 위험성을 느끼고 칼을 뽑아들었다.

남들은 모르고 본인만 알던 '샐러리맨 신화'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유권자 상당수는 회사원 출신인 이명박 후보에게 기대를 걸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하는 느낌이 상당수 유권자를 지배했다. 대중이 그런 기대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 될 만했다.

그런데 대중이 아는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와 이명박만 아는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는 같은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대중은 겉으로 드러난 이명박의 인생 궤적이 그의 커다란 성취로 이어진 면에 주목했지만, 이명박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공 비결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명박이 '대한민국 고용사장'일 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이명박의 인생철학에 중대 결함이 있음을 암시한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에 24세 청년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7월 1일 처음 출근한 그는 12월에 태국 빠따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현장사무소에 파견됐다.

태국 현장에서 그는 노동자로 위장 취업한 한국인 폭력배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회사 금고를 꼭 끌어안은 채로 구타를 견뎠다. 2015년 발행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그는 "경찰과 함께 들어온 직원들이 금고를 껴안고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 뒤 "이 일은 현대건설에 내 이름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왜 그랬을까?'하고 자문한다"면서 그는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기질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 뒤 "혹독한 가난 속에서도 항상 꼿꼿하셨던 어머니"라고 회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정직성을 강조했다. 정주영 사장이 입사 2년도 안 된 자기를 현장 책임자로 임명한 것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나의 정직함을 높이 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정직은 내 삶의 큰 자산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말에 따르면, 정직성이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의 주요 동력 중 하나가 된다.

그때 그 진술들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선서
▲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선서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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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현대그룹 샐러리맨 이명박의 전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진술이 있다. 이명박과 함께 일했을 뿐 아니라 이명박이 가까이 한 에리카 김의 남동생인 김경준이 BBK 소송과 관련해 2007년 9월 6일 LA 카운티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안치용 전 YTN 기자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는 이 서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김경준은 이 서류에서 MB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현대건설에 입사해 최고경영자가 된 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현대의 자산을 그의 형과 처남 명의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가 자체적으로 차량 시트를 생산할 수 있었음에도 MB가 현대의 기술을 빼돌려 회사를 세웠고, 현대건설에 지시해 차량시트 생산공장인 다스를 짓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현대자동차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 회사로부터 차량시트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듯이 다스는 이명박의 것이다. 이명박이 현대그룹에 재직할 때 세워진 다스가 이명박의 재산 증식에 기여했다는 진술은 "정직은 내 삶의 큰 자산이었다"는 그의 자평을 음미해보도록 만든다. 대중이 아는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와 이명박만 아는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가 과연 같을까?

위 책은 "김경준은 해당 서류 2페이지에서 MB가 사기·뇌물·돈세탁·착취 등을 통해 6억 달러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모았고 그의 재산은 형제와 처남 그리고 여러 법인들을 통해 은닉되었다고 밝혔다"고 말한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쓴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에 "내가 이명박의 재산이 30조 정도 될 거라고 말했더니, 이명박의 한 친척은 '지금까지 말한 사람 중에 가장 근사치를 말한 것 같다'라고 했다"고 한 뒤 "이명박 형제의 한 수행비서는 '다스의 재산 가치가 10조가 훨씬 넘으니 (이명박 재산은) 상당히 큰 액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있다.

김경준이 말한 6억 달러는 현재 기준으로 약 6800억 원이다. '30조에 가깝다', '다스가 10조 원짜리이니 이명박 재산은 상당할 것이다'라는 진술에 비해서는 금액이 적지만, 6억 달러도 상당한 거액이다. 30조이든 10조이든 6억 달러든, 재벌이 아니고는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금액이다. 아무리 연봉이 많다 해도 샐러리맨이 모을 수 있는 돈은 분명 아니다.

1992년에 51세 된 이명박이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가지 않고 노태우·김영삼의 민주자유당에 들어가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것도 그의 비밀 재산과 무관치 않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명박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이었던 김유찬 SIBC 대표는 2018년 4월 13일자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 "김유찬, '이명박 차명재산 지키기 위해 30년 은인 정주영 배신'"에서 정주영 가문의 정아무개 박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렇게 증언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1992년 초 이미 이 전 대통령의 가·차명 재산의 상당부분을 파악하고 있던 당시 노태우 정권이 정 회장의 (국민당) 황색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는 차명재산을 뺏기고 감옥 갈래, 아니면 우리에게 협조하고 전국구 국회의원 감투 받을래'라고 이 전 대통령을 압박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에 후자를 선택했다."
 
기왕에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면 통일국민당에 들어가야 했지만, 정주영의 수족을 끊으려는 민자당 정권의 압력에 굴해 정주영과 결별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권이 상당부분을 파악하며 협박·회유를 할 만큼 은닉 재산이 일정 규모에 달해 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현대그룹 고용사장인 그가 기업 오너를 성심으로 대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고용주를 대하는 태도는 '대한민국 고용사장'일 때도 잘 드러났다. 29일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17년, 벌금 130억, 추징금 57억8천여만 원을 선고하면서,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삼성그룹을 포함한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대법원 선고로 확정된 2심 판결 당시의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으로서 본인은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감시·감독하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집행해 국가기관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 같은 의무를 저버리고 사인·공무원·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부정한 처사를 했다"고 선고했다.

나랏일을 '내 일'로 생각한 결과
 
재수감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분위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상고심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된 가운데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앞에 한 시민이 이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재수감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분위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상고심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된 가운데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앞에 한 시민이 이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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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대통령직을 국민과 나라를 위해 수행하지 않고 개인적 치부의 수단으로 악용했다. 나랏일을 '내 일처럼' 하지 않고 '내 일'로 생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으로 혈세 22조원을 낭비한 것도 나라 돈을 '내 돈처럼' 귀중히 여기지 않고 '내 돈'으로 생각해 함부로 다룬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석 샐러리맨인 대통령이 된 뒤 그는 공직을 이용해 비자금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행태가 그의 곳간을 늘려주었으니, 세상은 모르고 이명박만 아는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는 현대그룹 퇴사로 끝나지 않고 청와대에 들어간 2008년 2월 25일 이후로도 계속됐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장 시절인 2006년에 이명박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 개정판의 서문에서 "거듭 말하거니와 신화는 없다"며 "다만 꿈과 용기를 가지고 바른 길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의 성실한 노력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신화는 없고 성실한 노력이 있을 뿐이라고 했지만, 세상이 모르는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런 면모가 한층 더 명백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29일 이명박은 대법원 선고 뒤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명박의 실체는 이번 판결로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볼 수 있다.

[관련 기사] 
'징역 17년 확정' 이명박 전 대통령, 11월 2일 수감 http://omn.kr/1q586
'징역 17년 확정' 이명박, 6가지 예우 박탈된다 http://omn.kr/1q6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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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의 ‘내부망 집단행동’, 이전 ‘검란’과 다른 점은

등록 :2020-11-02 04:59수정 :2020-11-02 08:44
 


원문보기:과거엔 ‘검찰권 축소’ 불만
이번엔 ‘검사 개인 저격’에 집단반발

2003년 ‘검사와의 대화’로 본격화
노 대통령-평검사 초유의 공개토론
2005·2011년엔 수사권 조정 ‘검란’
2012년 중수부 폐지 두고 “총장 퇴진”

‘추-윤 갈등’ 반응 않던 검사들 왜
추 장관 인사·지휘권 불만 속에
비판 검사 ‘개혁 대상’ 몰자 동참
‘평검사 회의’ 대신 댓글 릴레이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검사들이 내부 통신망에 댓글 달기 형태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검란’으로 불렸던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검찰개혁 과정에서 검찰의 기득권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번엔 법무부 장관이 자신을 비판한 평검사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인 것이 검찰개혁에 대한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쳐 검사들의 반발이 잇따른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
 
■ ‘검사와의 대화’부터 시작된 집단행동
 

2003년 ‘검사와의 대화’는 검사들의 집단반발이 처음으로 공식화한 사건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법시험 11년 후배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며 “지금의 검찰 수뇌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인적청산을 공언했다. 검사들은 “검찰의 조직 문화를 존중해달라”며 반발했고 10명의 ‘평검사 대표’가 그해 3월9일 노무현 대통령과 공개토론을 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결과는 검사들의 부정적 이미지만 증폭됐다. 무례하고 억지 주장을 되풀이한다는 뜻으로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검사와의 대화’를 계기로 상설화한 ‘평검사 회의’는 2005년과 2011년 검경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소집되며 검찰의 수사권 축소에 반발했다. 2012년 11월에는 한상대 검찰총장이 뇌물 수사를 받던 부장검사에게 언론 대응 방법을 조언했다는 이유로 최재경 대검 중앙수사부장에 대한 공개감찰을 지시하면서 검사들이 한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검사 뇌물 사건과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봐주기 구형 지시로 궁지에 몰린 한 총장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중수부 폐지 문제로 자신과 갈등을 겪은 최 중수부장을 무리하게 감찰하자 검사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말할 자유를…”
 

검사 집단반발의 상징이자 구심이었던 ‘평검사 회의’는 이제 검찰 내부게시판의 댓글 릴레이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검사들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방식이 “괜히 집단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검찰 간부)에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반발은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측근 좌천 인사와 수사지휘권 발동을 통한 윤 총장 견제,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확정된 검경수사권 조정에도 검사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추 장관의 인사권 행사가 ‘윤석열 사단’ 독식을 정상화한 측면이 있고 △윤 총장이 검·언 유착 의혹 수사지휘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 ‘일선 검사들이 장관-총장 갈등 상황에서 한쪽을 지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검찰 내부의 여론이었다.

 

그러나 추 장관이 검찰 내부게시판에서 자신을 비판한 검사를 에스엔에스에서 ‘공개 저격’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추 장관과 다른 생각을 드러내면 언제든지 ‘개혁 대상’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그간의 ‘추-윤 갈등’에서 응축됐던 불만과 맞물려 폭발한 것이다. 검사들의 반발 댓글 중 “검찰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거나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는 인용이 내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 검찰 고위간부는 “장관과 총장이 대립할 때도 매일 사건 처리에 허덕이던 형사부 검사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장관이 자신을 비판한 검사 개인에게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서 이제는 본인들도 저렇게 탄압받을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8118.html?_fr=mt1#csidx8c0d498d1cf97058628a601b7b2ae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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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 후 매우 나쁜 일 발생할 수도”... 총기 판매 급증, 일부 ‘폭동·내전’ 언급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1/02 09:47
  • 수정일
    2020/11/02 09: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우편투표 급증으로 개표 결과 지연 가능성 증대... 양측 지지자 ‘유세 차량 점거’ 등 충돌 사태 지속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0-11-02 07:04:29
수정 2020-11-02 07: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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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대선 개표가 장기화할 경우 “매우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대선 개표가 장기화할 경우 “매우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뉴시스/AP  
 
11월 3일(현지 시간) 실시되는 미국 대선이 임박한 가운데 개표 결과 승자가 조기에 확정되지 않는다면 미국 사회가 폭동 수준의 대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현재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편투표로 인한 개표가 장기화할 경우 “매우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러한 우려에 불을 붙이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여러분은 11월 3일을 주시할 것”이라며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주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그날) 결정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11월 3일이 와도 (대선 결과를) 알지 못하면, 우리나라에 대혼란(bedlam)이 벌어질 것”이라며 “몇 주간 기다려야 할 것이고 그사이에 매우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연방대법원이 펜실베이니아주가 11월 3일 소인이 찍힌 우편투표를 6일까지 받을 수 있도록 결정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그는 “연방대법원이 우리나라에 한 끔찍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올해 대선에선 3일 이전 소인만 찍혀 있으면 대선 후 도착하는 우편투표도 인정하는 주가 50개 주 중 22개 주에 달한다. 특히 ‘경합주’로 분류되는 펜실베이니아주 등 접전이 예상되는 7개 주는 짧게는 대선 하루 뒤, 길게는 대선 10일 뒤 도착한 우편투표도 인정한다.

우편투표는 31일 기준으로 이미 5천8백만 표를 넘어 2016년 대선 때 총 투표수의 40%에 달해 이번 대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우편투표 참여자 가운데 민주당 조 바이든 대선후보 지지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특히, 대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경합주’가 접전 상황에서 뒤늦게 도착한 우편투표로 승패가 뒤바뀌면 선거 불복 소송 등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대선 불복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미국 대선 후 폭동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워싱턴DC에 있는 한 상점이 지난 30일(현지 시간) 나무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자료 사진)
미국 대선 후 폭동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워싱턴DC에 있는 한 상점이 지난 30일(현지 시간) 나무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자료 사진)ⓒ뉴시스/AP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미국 전역에 긴장이 흐르는 경고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라면서 “특히, 개표 결과가 확실한 승자가 없이 며칠씩 질질 끈다면 더욱더 그렇다”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과격 집단들을 주시하고 있는 법 집행기관부터 분석가에 이르기까지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총기 판매가 급증하고 일부 극우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전’까지 언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30일 텍사스주에서는 총기로 무장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고속도로를 달리던 민주당 유세 버스를 강제로 세우고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동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링크하며 “나는 텍사스가 좋다!”라고 부추겨 논란을 일으켰다.

또 25일에는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트럼프 지지파가 반(反)트럼프 시위대를 습격하면서 양측이 난투극을 벌이는 등 미 전역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민주당은 과격 극우파가 긴장을 야기한다고 주장하고 공화당은 급진 좌파가 갈등을 부추긴다며 비난 성명전도 벌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개표 결과가 조기에 확정되지 않고 우편투표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극우파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폭동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소송전이 장기화할 경우 미 전역이 혼란과 폭동 사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로스앤젤레스 경찰 당국은 야간 폭력 시위에 대비해 상가에 가림막 설치를 권고했고 시카고시는 선거 관련 폭력 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등 실제 긴장 상황이 커지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대선 이후 폭력 사태 확산에 대비해 전국 주요 도시에 지휘 사무소를 설치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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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6형,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다

[개벽예감 417] 화성-16형,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11/0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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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10년 만에 다시 ‘번개’가 나타났다 

2. 번개-6은 얼마나 위력적인 반항공미사일인가? 

3. 열병식 광장에 나타난 거대한 ‘북극성’ 

4. 교전상대를 전률케 할 최첨단 전술유도무기들

5. 군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은 화성-12형과 화성-15형

6. 화성-15형보다 더 강력한 화성-16형 만든 이유

 

 

1. 10년 만에 다시 ‘번개’가 나타났다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각종 무장장비들 가운데서 13번째로 등장한 것은 신형 반항공레이더와 신형 반항공미사일이다. 신형 반항공레이더는 차체길이가 긴 5축10륜 레이더차량에 탑재되었고, 신형 반항공미사일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은 차체길이가 긴 5축10륜 발사대차에 탑재되었다. 그 발사대차에는 원통형 발사관 4문이 탑재되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반항공레이더와 반항공미사일은 짝을 이루는 군사장비다. 반항공레이더가 없으면 반항공미사일을 쏠 수 없다. 반항공레이더와 반항공미사일로 구성된 군사장비를 요격미사일종합체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조선은 자력으로 만든 요격미사일종합체를 처음 공개했다.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 행진 맨 마지막 순서에 요격미사일종합체가 등장했다. 그 요격미사일종합체가 바로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다. 조선은 반항공미사일에 번개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방측 군사전문가들이 인정한 것처럼, 10년 전, 열병식에 등장했던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는 로씨야에서 생산된 S-300 요격미사일종합체와 같은 급이다. (미국은 이 나라를 러시아라고 부르고, 미국을 추종하는 나라들도 미국이 정해준 러시아라는 나라이름을 그대로 쓴다. 하지만 그 나라의 국호는 로씨야다. 우리가 부르는 다른 나라의 국호에도 미국식 사고방식이 들어박혀 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제멋대로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국호를 제멋대로 부르고 있으니, 망발도 그런 망발이 없다.) 

 

번개-5가 열병식에 등장한 때로부터 6년이 지난 2016년 4월 1일 조선국방과학원은 함경남도 선덕에서 신형 반항공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3발을 쏘았는데, 한국군은 그 중에서 1발만 포착했고, 나머지 2발은 발사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위성사진자료를 정밀분석한 미국이 1발이 아니라 3발을 쏘았다는 사실을 알려준 덕분에 한국군은 조선국방과학원이 신형 반항공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는 정정발표를 3일 뒤에 내놓았으나, 미사일탐지능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다시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7년 5월 27일 조선국방과학원은 함경남도 선덕에서 또 다시 신형 반항공미사일 여러 발을 시험발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군은 그날 조선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 반항공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들이 조용히 넘어간 까닭은, 그날 조선국방과학원이 신형 반항공미사일을 몇 발 발사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또 다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이 2010년 10월 10일 열병식에 처음 등장시킨 반항공미사일이 번개-5이므로, 조선국방과학원이 2016년 4월 1일과 2017년 5월 27일에 각각 시험발사한 반항공미사일은 당연히 번개-6이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5월 27일 번개-6 시험발사를 참관하면서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1) “목표발견능력이 크게 향상되였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번개-6 반항공레이더의 요격대상탐지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평가한 것이다. 

2) “추반능력이 크게 향상되였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번개-6 반항공레이더의 요격대상추적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평가한 것이다. 

3) “명중정확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번개-6 반항공미사일의 요격명중률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평가한 것이다.

4) “지난해에 나타났던 일련의 결함들이 완벽하게 극복되였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의 전반적 작전능력이 고도화되었음을 평가한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번개-6 반항공레이더가 등장했다. 이 반항공레이더는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의 구성부분이다. 사진에 보이는 레이더차량에는 레이더통제실 출입문 2개가 나있다. 이것은 2종의 레이더가 설치되었음을 말해준다. 앞쪽에 높이 솟은 레이더는 탐지기능, 추적기능, 식별기능, 유도기능을 지닌 다기능레이더인데, 뒤쪽에 설치된수수께끼 같은 레이더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2017년 5월 신형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를 개발한 조선은 이전에 생산한 기존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를 해외수출용으로 내놓았다. 2019년 8월 중국 광둥성 주하이(珠海)에 있는 조선의 수출입회사 조광무역은 자체 웹싸이트에 무기수출품목을 열거했는데, 그 목록에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도 들어있었다. 조광무역이 웹싸이트에서 제시한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의 수출가격은 5,100만 달러다. 조광무역 웹싸이트에 실린 목록에 따르면, 번개-5 반항공미사일의 사거리는 150km 이상이다. 그에 비해, 로씨야가 국제무기시장에 출시한 S-300PMU 반항공미사일의 최장사거리는 195km다. S-300PMU는 S-300 계렬 반항공미사일 중에서 수출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사거리를 비교해보면, 번개-5는 S-300PMU와 급이 같은 반항공미사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씨야가 수출용으로 내놓은 S-300PMU 요격미사일종합체를 가장 먼저 수입한 나라는 중국이다. S-300PMU 요격미사일종합체는 초음속 전투기를 요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거리탄도미사일과 중거리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다. 중국은 수도권 상공을 방어하기 위해 베이징 주위에 S-300PMU를 조밀하게 배치하였고, 나중에 면허생산에 들어가 S-300 요격미사일종합체와 동급인 훙치(紅旗)-15 요격미사일종합체를 만들었다.  

 

중국은 로씨야에서 S-300PMU 요격미사일종합체를 수입했지만, 조선은 자력으로 그와 동급인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를 만들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반항공미사일제조부문에서 조선의 기술력이 중국을 앞질러 세계 최고 수준에 이렀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5월 27일 번개-6 반항공미사일 시험사격을 진행한 조선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서 그 실물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열병식에 등장한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는 레이더차량과 발사대차로 구성되었다. 지휘통제차량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레이더차량과 발사대차다. 번개-5 레이더차량은 위성배렬레이더를 탑재한 3축6륜 차량이고, 번개-5 발사대차는 원통형 발사관 3문을 탑재한 3축6륜 차량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도 번개-5와 마찬가지로 레이더차량과 발사대차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는 번개-5 요격미사일종합체보다 크기가 훨씬 더 커졌다. 이를테면, 번개-6 레이더차량은 기존 3축6륜 차량에서 신형 5축10륜 차량으로 대형화되었고, 번개-6 발사대차도 기존 3축6륜 차량에서 신형 5축10륜 차량으로 대형화되었다. 크기가 커진 번개-6 발사대차에는 원통형 발사관 4문이 탑재되었다. 요격미사일종합체가 대형화된 것은 작전성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번개-6 레이더차량에는 운전석 출입문 이외에 레이더통제실 출입문이 2개 더 있고, 그에 따라 레이더도 2개가 실렸다. 왜 레이더 2개를 탑재했을까? 누가 보더라도, 번개-6 레이더차량 앞쪽에 높이 세운 레이더는 다기능레이더(multi-function radar)가 분명하다. 번개-6 다기능레이더는 번개-5 위상배렬레이더보다 크기가 약간 작은 사각판이다. 레이더차량은 대형화된 반면, 레이더는 소형화된 것이다. 다른 레이더선진국들이 만든 최신형 다기능레이더도 번개-6 다기능레이더처럼 기존 위상배렬레이더보다 작은 사각판 모양을 하고 있다. 

 

번개-6 다기능레이더는 탐지기능, 추적기능, 식별기능, 유도기능을 지녔다. 또한 번개-6 다기능레이더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소형 비행체,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고속비행체, 낮은 고도로 날아가는 저고도비행체를 모두 포착할 수 있고, 포착한 비행체가 순항미사일인지, 전투기인지, 헬기인지를 정확히 식별함으로써 요격대상에 맞는 반항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하는 뛰어난 작전성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번개-6 레이더차량 뒤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레이더가 하나 더 실렸다. 영상화면에서 측면만 살짝 드러내 보이고 지나갔으니, 무슨 레이더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미국, 로씨야, 중국에서 그와 비슷한 모양을 한 레이더를 만든 적이 없으므로, 다른 레이더와 비교할 수도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야간열병식 중에 번개-6 발사대차들이 행진한 뒤에 또 다른 반항공미사일을 탑재한 발사대차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반항공미사일 발사관을 탑재한 발사대차들이 왜 간격을 띄워 행진했을까? 나중에 등장한 발사대차도 먼저 등장한 번개-6 발사대차와 마찬가지로 원통형 발사관 4문을 탑재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먼저 등장한 발사대차와 나중에 등장한 발사대차를 서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영상화면을 자세히 보면, 원통형 발사관의 밑부분이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것과 발사대차 외형이 부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개-6 반항공미사일 뒤에 나타난 또 다른 반항공미사일은 번개-6 개량형인가 아니면 번개-7인가?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이 번개-6보다 기술적으로 더 진전된 또 다른 신형 반항공미사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사진 2>

 

 

▲ <사진 2>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번개-6 반항공미사일이 등장했다. 이 반항공미사일은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의 구성부분이다.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는 로씨야가 자랑하는 S-400 요격미사일종합체와 같은 급이다. 번개-6이나 S-400은 스텔스기종도 격추할 수 있는 최강의 요격무기체계들이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번개-6 반항공미사일 발사관 4문을 탑재한 발사대차이고, 아래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반항공미사일 발사관 4문을 탑재한 발사대차다. 발사관 모양도 서로 다르고, 발사대차 모양도 서로 다르다. 미확인 반항공미사일의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2. 번개-6은 얼마나 위력적인 반항공미사일인가? 

 

이번 야간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와 작전성능이 같은 요격미사일종합체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로씨야의 S-400이다. S-400은 전 세계에 현존하는 요격미사일종합체들 가운데서 최고의 작전성능을 가진 것으로 공인된 요격미사일종합체다. 그런 S-400과 번개-6이 동급이라면, 조선은 전 세계에 현존하는 요격미사일종합체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요격미사일종합체를 보유한 것이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S-400의 엄청난 위력을 살펴보면, 번개-6이 얼마나 위력적인 요격미사일종합체인지 알 수 있다. 지난 시기 로씨야에서 S-300PMU 요격미사일종합체를 수입한 중국은 2018년 1월 S-400 요격미사일종합체 6개 대대를 수입했다. S-400 1개 대대는 레이더차량 1대와 발사대차 8대로 구성된다. 

 

중국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S-400을 수입한 나라는 뛰르끼예다. (미국은 이 나라를 터키라는 나라이름으로 부르고, 미국을 추종하는 나라들도 미국이 정해준 터키라는 나라이름을 그대로 쓴다. 하지만 그 나라의 구호 뛰르끼예다. 다른 나라의 국호를 제멋대로 부르는 미국의 오만을 배격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뛰르끼예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주적인 로씨야에서 S-400을 수입하려고 하자, 깜짝 놀란 미국은 뛰르끼예에 판매하려던 F-35 스텔스전투기 수출계획을 황급히 중단하였을 뿐 아니라, S-400 수입을 중지하지 않으면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뛰르끼예는 F-35 스텔스전투기 수입을 포기하고 S-400 요격미사일종합체를 수입했다. 미국의 반대와 협박을 물리친 뛰르끼예는 2020년 10월 16일 S-400을 시험발사했다. 이런 사실만 봐도, S-400 요격미사일종합체가 F-35 스텔스전투기와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군사장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400의 위력은 다음과 같은 성능지표에서 입증된다.

 

탐지거리 - 600km

사거리 - 400km

전투기 요격고도 - 185km

탄도미사일 요격고도 - 60km

동시요격대상 - 80개

 

주목되는 것은, 세계 최강의 공중무력이라는 미국의 작전기종이 모조리 S-400의 요격대상목록에 올라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S-400의 요격대상은 다음과 같다.  

 

각종 전략폭격기 =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B-2 스텔스장거리전략폭격기 

각종 전투기 = F-15 전투기, F-16 전투기, F-35 스텔스전투기, F-22 스텔스전투기

각종 전자전기 = EF-11 전자전기, EA-6 전자전기

각종 조기경보기 = E-3 조기경보기, E-2 조기경보기

고고도정찰기 = U-2 고고도정찰기

 

S-400 반항공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이 자랑하는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를 격추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이 지금 개발하고 있는, 사거리가 3,500km에 이르는 중거리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고, 미국이 침략전쟁에서 선제타격무기로 사용해온 토마호크순항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다. S-400이 이처럼 엄청난 위력을 가졌으니, 뛰르끼예가 F-35 스텔스전투기 수입을 포기하고 S-400을 수입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뛰르끼예는 현명한 선택을 했지만, 미국, 일본, 한국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조선의 번개-6 요격미사일종합체가 스텔스기종을 요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천문학적인 비용과 노력을 기울여 F-35 스텔스전투기를 전진배치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2021년 말까지 알래스카에 F-35 스텔스전투기 54대를 배치하는 중이고, 일본은 F-35 스텔스전투기 105대를 수입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13대를 들여왔다. 한국은 2021년 말까지 F-35 스텔스전투기 40대를 수입하기로 결정하고, 2020년 10월 말 현재 24대를 들여왔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반항공미사일부대가 번개-6을 한 번 쏘면, F-35 스텔스전투기들은 찬바람 맞은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3. 열병식 광장에 나타난 거대한 ‘북극성’ 

 

이번 야간열병식에 10종의 미사일이 등장했는데, 그것을 대별하면 고체연료 미사일과 액체연료 미사일로 나뉜다. 7종의 고체연료 미사일이 먼저 행진했고, 3종의 액체연료 미사일이 마지막에 행진했다.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고체연료 미사일 7종은 금성-5 반함선순항미사일, 북극성-4ㅅ 수중전략탄도미사일, 번개-6 반항공미사일, 북극성-2형 탄도미사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확인 반항공미사일, 3세대 전술유도무기, 4세대 전술유도무기다.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액체연료 미사일 3종은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6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2017년 4월 15일에 진행된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는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종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8축16륜 발사대차와 7축1륜 발사대차에 각각 탑재되어 등장했었는데, 그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은 이번 야간열병식에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번개-6 반항공미사일의 뒤를 이어 북극성-2형 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북극성-2형은 중거리탄도미사일이며, 지대지미사일이다. 북극성-2형은 지탱바퀴 8개가 달린 무한궤도차량에 탑재된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 1문 안에 들어있다. 북극성-2형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 추진체로 설계되었다. 북극성-2형을 탑재한 무한궤도차량에는 승조원 4명이 탑승한다. 북극성-2형 시험발사는 2017년 2월 12일, 4월 5일, 4월 16일, 4월 29일, 5월 21일에 연속 진행되었고,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105주년 열병식에 처음 등장했다. 2017년 2월 12일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호화로운 휴양시설 마러라고에서 미일정상회담 만찬이 진행되는 시각에 맞춰 조선은 북극성-2형 제1차 시험발사를 진행했는데, 시험발사소식이 긴급히 전해지자 만찬장은 엉망진창으로 변했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북극성-2형의 사거리는 5,500km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북극성-2형을 개성 인근에서 쏘면, 3,300km 밖에 있는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또한 북극성-2형을 함경북도 북부지역에서 쏘면, 5,500km 밖에 있는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먼도프-리처드슨합동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북극성-2형은 하와이를 제외한 서태평양작전구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북극성-2형에는 핵탄두가 장착된다. 조선은 2017년 4월 29일 시험발사에서 연습용 탄두를 저고도에서 터뜨리는 공중기폭시험을 진행했는데, 이것은 핵탄두를 공격대상 상공에서 기폭시켜 그 일대를 마비시키는 전자기파공격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북극성-2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이등장했다. 지탱바퀴 8개가 달린 무한궤도차량에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 1문이 탑재되었다. 북극성-2형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 추진체 탄도미사일이다. 북극성-2형의 사거리는 5,500km로추정된다. 북극성-2형에는 핵탄두가 장착된다.  

 

 

4. 교전상대를 전률케 할 최첨단 전술유도무기들

 

북극성-2형의 뒤를 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확인 반항공미사일이 등장했고, 그 뒤에 2종의 전술유도무기가 등장했다. 전술유도무기는 단거리탄도미사일과 겉모습이 비슷하지만, 탄도비행을 하지 않고 변칙유도비행을 하기 때문에 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전술유도무기라고 부른다. 

 

조선은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전술유도무기를 처음 공개했다. 그날 공개한 전술유도무기는 3축6륜 발사대차에 1발씩 탑재되었고, 탄체 크기도 좀 작았다. 이 전술유도무기가 1세대 전술유도무기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4년 8월 14일 조선은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사격을 진행했는데, 이 전술유도무기가 2세대 전술유도무기다. 2세대 전술유도무기는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했는데, 4축8륜 발사대차에 2발씩 탑재된 전술유도무기였다. 2세대 전술유도무기의 탄체지름이 1세대 전술유도무기보다 더 길어졌으니, 사거리가 크게 늘어난 것이 분명하다. 

 

2019년 5월 4일과 5월 9일 조선인민군 화력타격부대들은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하는 화력타격훈련을 진행했고, 2019년 7월 25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하에 그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사격을 진행했다. 이 전술유도무기가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3세대 전술유도무기다.

 

2018년 2월 8일 열병식에 등장한 2세대 전술유도무기는 4축8륜 발사대차에 2발씩 탑재되었는데,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3세대 전술유도무기는 2종의 발사대차에 각각 2발씩 탑재되었다. 3세대 전술유도무기는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달라진 4축8륜 발사대차에 2발씩 탑재된 것도 있고, 지탱바퀴 8개가 달린 무한궤도차량에 2발씩 탑재된 것도 있다. 4축8륜 발사대차에 탑재된 3세대 전술유도무기와 무한궤도차량에 탑재된 3세대 전술유도무기는 모두 원통형 발사관 안에 들어있지 않고, 좌우로 갈라져 열리는 덮개 안에 들어있었다. 발사할 때는 좌우로 갈라지는 덮개를 열고 탄체를 수직으로 세워 발사하는 것이다. 

 

3세대 전술유도무기가 지닌 구조적 특징은 사거리가 길고, 비행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며, 초정밀타격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의 3세대 전술유도무기는 사거리가 500km인데, 미국의 전술유도무기(ATACMS)는 사거리가 300km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의 3세대 전술유도무기는 비행속도가 마하 6인데, 미국의 전술유도무기는 비행속도가 마하 3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의 3세대 전술유도무기는 위성항법유도장치로 날아가 500km 밖에 있는 작은 표적에 명중할 수 있다. 이런 초정밀타격능력은 2019년 8월 16일에 진행된 시험발사에서 입증되었다. 개성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390km이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부대가 개성 인근에서 3세대 전술유도무기를 쏘면, 부산 해군기지에 정박한 이지스구축함의 함교에 나있는 작은 창문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3세대 전술유도무기가 그처럼 위력적이므로, 4세대 전술유도무기가 그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세대 전술유도무기 시험사격은 2019년 7월 31일, 8월 6일, 8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각각 진행되었다. 2020년 3월 21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4세대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이 진행되었다. 이번 야간열병식에 바로 그 4세대 전술유도무기가 등장했다. 지탱바퀴 6개가 달린 무한궤도차량에 직사각통형 발사관 2문이 탑재되었는데, 그 안에 4세대 전술유도무기가 들어있었다. 4세대 전술유도무기 전투부는 검은색 줄무니로 칠해졌다. 

 

4세대 전술유도무기는 3세대 전술유도무기보다 사거리가 더 늘어났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미사일 위협(Missile Threat)>은 조선의 4세대 전술유도무기의 사거리가 690km에 이른다고 했다. 한화그룹이 미국산 핵심부품을 수입하여 만든 한국군 전술유도무기(KTSSM)는 2021년부터 실전배치될 예정인데, 사거리가 120km밖에 되지 않는다.  

 

4세대 전술유도무기의 구조적 특징은 비행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이다. 3세대 전술유도무기의 비행속도는 마하 6인데, 4세대 전술유도무기의 비행속도는 마하 7이다. 4세대 전술유도무기는 비행속도만 엄청나게 빠른 것이 아니라, 변칙유도비행도 한다. 변칙유도비행이란 30~40km 고도에서 저공비행을 하다가, 50km 정점고도에서 낙하비행을 시작하고, 낙하비행구간 10~20km에서 로켓엔진이 정지되어 활강비행을 하다가 로켓엔진이 다시 작동하면 갑자기 수직상승하여 수평비행을 하고, 타격대상 상공에 이르러 80~90도 각도로 타격대상을 향해 돌진락하하는 것이다. 이처럼 매우 복잡한 경로로 변칙유도비행을 하기 때문에 최첨단 반항공요격망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또한 4세대 전술유도무기는 3세대 전술유도무기처럼 초정밀타격능력을 지녔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미국 해군과 해병대가 북침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동해작전구역에 들어서기 직전에 집결하는 해군기지가 일본 사세보에 있는데, 개성에서 일본 사세보까지 거리는 610km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부대가 개성 인근에서 사세보를 향해 사거리가 690km인 4세대 전술유도무기를 쏘면, 사세보에 있는 탄약고 출입문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는 미국의 반항공요격망이 배치되었다지만, 매우 복잡한 경로로 변칙유도비행을 하는 조선의 4세대 전술유도무기에게 그들의 반항공유격망은 무용지물이다. 조선인민군 화력타격부대가 사세보에 집결한 미국 해군과 해병대를 초정밀타격으로 기습하여 완전히 작살내면, 미국은 북침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고 퇴각하는 수밖에 없다. <사진 4>

 

 

▲ <사진 4>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2종의 전술유도무기가 등장했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3세대 전술유도무기이고, 아래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4세대 전술유도무기다. 3세대 전술유도무기의 사거리는 500km이고, 4세대 전술유도무기의 사거리는 690km다. 이2종의 전술유도무기는 비행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초정밀타격능력을 지녔으며, 변칙유도비행을 하는 구조적 특징을 지녔다. 이 2종의 전술유도무기는 전 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반항공요격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5. 군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은 화성-12형과 화성-15형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화성 계렬 전략미사일들은 화성-12형, 화성-15형, 화성-16형 순으로 행진했다. 6축12륜 발사대차에 탑재되어 기동력을 한층 높인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이 19번째 무장장비로 등장했다. 이 미사일의 첨두와 전투부 하단에는 각각 노란색이 칠해졌다. 노란색은 방사능을 뜻하는 색이므로, 화성-12형에 핵탄두가 장착되는 것이 분명하다. 2017년 5월 14일 조선국방과학원이 화성-12형 시험발사를 진행했을 때,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화성-12형이 “최대정점고도 2,111.5km까지 상승비행하였다가 787km 떨어진 동해의 목표수역을 정확히 타격하였다”고 하면서, “핵탄두폭발체계의 동작정확성을 확증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화성-12형은 “표준화된 핵탄두 뿐 아니라 대형 중량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는 중장거리탄도로케트”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표준화된 핵탄두는 전술핵탄두인데, 핵탄두가 표준화되었다는 말은 조선에서 전술핵탄두가 다량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조선의 핵무력에 관해서 매우 제한적인 정보밖에 알지 못하는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의 핵탄두보유량을 60발 정도로 추정하지만, 조선이 핵탄두를 장착해 실전배치한 각종 미사일만 해도 족히 100발이 넘을 뿐 아니라, 핵무기고에 저장한 예비핵탄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의 추정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다.  

 

2017년 8월 29일은 일본제국이 1910년에 봉건국가 조선의 주권을 강탈하여 식민지로 만든 국치일이었는데, 사회주의조선은 그날 화성-12형을 일본렬도 상공을 넘어 북태평양으로 날려보내는 위력시위발사를 단행했다. 그 놀라운 소식을 들은 일본은 간담이 서늘해졌고, 조선은 통쾌함을 느꼈다. 그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화성-12형 위력시위발사를 지도하면서 화성-12형 위력시위발사가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으로 된다”고 말했다. 2017년 8월 10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관은 화성-12형 4발을 발사하여 괌에서 30~40km 떨어진 동서남북 해상에 동시에 떨어뜨리는 포위사격방안을 발표하여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2017년식 백두산로켓엔진이 화성-12형에 장착되었는데, 사거리는 8,400km로 추정된다. 사거리가 그처럼 길면, 괌포위사격은 물론이고 하와이포위사격도 할 수 있다. 괌, 하와이,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국의 태평양 영토 전체가 화성-12형의 사거리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조선은 자기에게 핵위협을 가하는 숙적과는 언젠가 한 번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일념을 갖고 있는데, 그런 조선이 화성-12형을 실전배치한 것은 미국이 첨단무기를 늘어놓은 인도-태평양작전구역 전역을 타격할 준비를 끝냈음을 의미한다.   

 

화성-12형의 뒤를 이어 20번째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9축18륜 발사대차가 열병식 광장에 들어섰다. 그 순간, 광장을 가득 메운 수 만 명 군중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환호성을 올렸다.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 방송원은 현장해설 중에 화성-15형을 “세계 최강 절대병기”라고 불렀다. 군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열병식 광장에 들어선 화성-15형을 자세히 보니, 첨두는 흰색으로 칠해졌고, 분사구 부분은 붉은색으로 칠해졌다. 화성-15형은 사거리가 14,000km로 추정되는 중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기억도 새로운 2017년 11월 29일 시험발사에서 최고정점고도 4,475km의 우주공간으로 솟구쳐 올랐던 화성-15형이다. 조선의 핵과학자들과 미사일기술자들이 자력갱생투쟁으로 만들어낸 화성-15형이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중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갈망해온 조선의 핵무력건설염원을 풀어준 화성-15형이다. <사진 5> 

 

 

▲ <사진 5>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화성-12형이고, 아래쪽 사진에보이는 것은 화성-15형이다. 6축12륜 발사대차에 탑재된 화성-12형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고8,400km를 날아간다. 사거리가 그처럼 길면, 괌포위사격은 물론이고 하와이포위사격도 할 수 있다. 9축18륜 발사대차에 탑재된 화성-15형은 열핵탄두를 장착하고 14,000km를 날아간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화성-15형을 쏘면 지구를 반바퀴 돌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  


 

6. 화성-15형보다 더 강력한 화성-16형 만든 이유

 

이번 야간열병식에서 맨 마지막 순서를 장식한 것은 전 세계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11축22륜 발사대차 4대에 각각 탑재된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위용을 과시하며 열병식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군중들이 올리는 경탄의 함성이 평양의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5형 다음에 등장했으므로, 화성-16형으로 부른다. 

 

조선문제를 보도하는 미국의 온라인매체 <38노스(North)> 2020년 10월 10일 분석기사에 실린, 조선의 미사일능력을 되도록 축소하는 미국의 미사일전문가들이 분석한 내용에 의거하면, 화성-16형은 탄체길이가 약 26m이고, 탄체지름이 약 3m이며, 탄체중량은 약 150t이다. 이것은 화성-16형이 전 세계에 현존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들 가운데서 가장 큰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지난 시기에 존재했었던 전 세계 대륙간탄도미사일들 중에서 가장 큰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화성-16형의 사거리는 16,000km로 추정된다. 화성-16형은 지구 땅끝까지 타격할 수 있는 초강력한 전략무기다. 조선의 화성-16형과 다른 나라의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을 비교한 아래의 도표를 보면, 화성-16형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힘을 가진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니트맨

(미국)

둥펑-41

(중국)

RT-23

(로씨야)

화성-16

(조선)

 

탄체길이

 

18.3m

21.0m

23.4m

26.0m (추정)

 

탄체지름

 

1.68m

2.25m

2.40m

3.0m (추정)

 

탄체중량

 

36t

80t

104t

150t (추정)

 

사거리

 

11,000km

15,000km

11,000km

16,000km (추정)

 

발사대

 

수직갱

발사대차

열차

발사대차

  

 

중국이 2017년에 실전배치한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투부에는 열핵탄두(thermonuclear warhead) 12발이 장착되었고, 로씨야가 2005년까지 실전배치하고 퇴역시킨 RT-23 대륙간탄도미사일에는 열핵탄두 10발이 장착되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둥펑-41이나 RT-23보다 탄체지름이 더 긴 화성-16형에 열핵탄두가 최소 10발 장착된 것이 확실하다. 만일 조선이 열핵탄두 10발이 장착된 화성-16형을 1발만 쏴도, 미국 본토 전역은 말 그대로 초토화될 것이다. 미국의 국가운명이 화성-16형 1발에 달려있는 것이다. <사진 6> 

 

▲ <사진 6>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맨마지막 행진순서에 화성-16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11축22륜 발사대차에 탑재된 화성-16형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화성-16형은 각개발사식 열핵탄두 10발을 장착하고16,000km를 날아간다. 상상을 초월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화성-16형의 출현은 조선이 임의의장소에서, 임의의 시각에 미국 워싱턴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는 완전무결한 핵타격능력을 보유하였음을 의미한다. 화성-16형을 보유한 것으로 하여 조선은 외세침략위험이 종식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미국의 위성감시를 피하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지하기지에 보관하는데, 화성-16형을 탑재한 11축22륜 발사대차의 차체길이가 약 30m로 추정되므로, 조선에는 그처럼 큰 발사대차가 여러 대 드나드는 거대한 지하기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수직갱에 보관하지 않고, 반드시 발사대차에 탑재하여 지하기지에 들여놓는다. 수직갱은 미국의 위성감시망에 탐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이번 야간열병식에 등장한 11축22륜 발사대차는 화성-16형을 싣고 미국의 위성감시망을 따돌리기 위해 지하기지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거리가 14,000km인 화성-15형만 있어도 미국 워싱턴을 사정권 안에 둘 수 있는데, 조선은 왜 그보다 사거리가 더 긴 화성-16형을 만들었을까? 평양에서 워싱턴까지 거리는 14,560km이므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사거리가 14,000km 화성-15형을 워싱턴으로 쏘려면, 화성-15형을 탑재한 9축18륜 발사대차를 함경북도로 이동시켜야 한다. 만일 화성-15형 지하기지가 함경북도에 있다면,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지만, 다른 지역 지하기지에 배치된 화성-15형은 발사대차에 실려 함경북도로 멀리 이동해야 한다. 화성-15형을 탑재한 9축18륜 발사대차가 지하기지에서 나와 함경북도로 이동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미국의 위성감시망에 노출될 위험도 생긴다. 또한 험준한 산악이 들어찬 함경북도의 산길은 폭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9축18륜 발사대차가 들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조선은 함경북도로 가지 않고,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각에 워싱턴으로 쏠 수 있는, 사거리가 15,000km 이상인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구해왔다. 2020년 10월 10일 화성-16형의 출현은 그런 전략적 요구가 해결되었음을 실물로 입증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각에 워싱턴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는 완전무결한 핵타격능력을 보유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침략적 핵위협은 정의의 핵억제력으로 종식시킬 수 있다. 다른 방도는 없다. 시선을 돌리면, 자기를 지켜줄 정의의 핵억제력을 갖지 못한 꾸바, 이란, 수리아 같은 나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의 침략적 핵위협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0년 동안 조선을 핵위협으로 끊임없이 괴롭혀온 아메리카핵제국을 열핵화염으로 징벌할 화성-16형이 마침내 출현했다. 화성-16형의 출현은 조선이 최강의 핵억제력으로 미국의 침략적 핵위협을 종식시켰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 거대한 사변이다. 화성-16형의 출현으로 조선은 외세침략위험이 영원히 종식된 안전지대로 전변되었다. 5,000년에 이르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던 고구려도 주변대국의 침략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늘 조선은 외세침략위험이 종식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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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에워싼 함성 “국민의 목숨 짓밟는 외세의 그림자 이제 걷어내자”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11/01 [01:00]  

▲ 집회 참가자들이 성조기를 찢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녹사평역에서 열린 국민대회에서 대진연 학생들이 율동공연을 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미군장갑차 사건 진상을 규명하라!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국민대회  © 김영란 기자

 

▲ 녹사평역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이 용산 미군기지 6번 게이트로 행진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그 날까지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우리 국민이 미군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파렴치한 주한미군을 일벌백계할 것이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민주노총 통일위원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국민주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위원회 등 시민단체가 31일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10.31 국민대회(이하 국민대회)’를 열었다. 

 

대진연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하 진상규명단)이 농성을 마무리하면서 시민단체들과 함께 집회를 연 것이다.

 

국민대회는 결의문에서 “주한미군이 군홧발로 이 땅에 들어온 지 어느덧 7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여 우리 국민의 목숨을 짓밟는 외세의 그림자를 이제는 반드시 걷어내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대회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전쟁기념관 앞과 녹사평역 두 군데로 나눠 진행했으며,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용산 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풍물패와 만장을 들고 행진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조기를 찢는 상징의식을 했다. 

 

▲ 국민대회는 장갑차 사건으로 사망한 분들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박한균 기자

 

◆ 전쟁기념관 앞에서 한미연합사까지

 

  © 김영란 기자

 

▲ 대학생들의 노래공연  © 김영란 기자

 

▲ 결의문 낭독  © 김영란 기자

 

김수형 진상규명단 단장은 두 달 가까이 진행한 농성 투쟁 보고를 했다.

 

김 단장은 “진상규명단은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난 9월 8일부터 지금까지 진행했다. 동두천과 포천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국민을 직접 만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함께 외쳤다. 더불어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대학생 단체들과 함께 연대하며 기자회견을 비롯한 투쟁을 해왔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단장은 이번 미군 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5,000여 명이 넘는 국민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도 미군에 의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겠다”라며 투쟁 결의도 밝혔다.

 

▲ 김수형 진상규명단 단장(위),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아래)  © 김영란 기자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은 “의로운 대학생들의 투쟁에 격려를 보낸다.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라며 대학생들을 격려했다. 

 

이 의장은 “주한미군이 우리 민족에게 해를 끼친 것을 강의한다면 대학교 4년 내내 해도 모자랄 것이다. 주한미군을 철거시키고 통일의 그 날까지 더 크게 투쟁하자”라고 강조했다. 

 

양희원 강원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이번 사건 원인이 2003년 합의한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주한미군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양희원 회원은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될 때까지, 우리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 때까지 투쟁하자”라고 호소했다. 

 

이진아 경인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미2사단 폐쇄하라는 내용으로 발언을 했다.   

 

이진아 회원은 “매년 수백 건의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한다. 올해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가 440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하루의 한 건 이상인 꼴이다. 주한미군기지는 범죄 집합소와 같다. 이런 미군이 우리 땅을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게 가만히 놔둬서 되겠는가”라며 주한미군 범죄의 심각성을 짚었다

 

이어 이진아 회원은 “모두가 입을 모아 이번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은 이미 예견된 사고라고 말한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될 때까지 사고를 일으킨 미2사단, 당연히 폐쇄해야 한다. 제대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못 한다면 또 다른 장갑차 추돌사건,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할 것이다.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미 2사단 당장 폐쇄하라”라고 주장했다.

 

 

▲ 전쟁기념관에서 한미연합사까지 행진, 풍물패가 앞장섰다.   © 김영란 기자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은 한미연합사 입구까지 풍물패를 앞세우고 “포쳔장갑차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하라”, “진상규명될 때까지 미2사단 폐쇄하라”, “주한미군은 훈련안전조치 합의서 이행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 녹사평역에서 용산 미군기지 6번 게이트까지    

 

▲ 국민대회 참가자들  © 김나현 통신원

 

▲ 김은주 진보당 강북구위원회 위원장  © 박한균 기자

 

▲ 대학생들의 노래공연  © 김나현 통신원

 

김은주 진보당 강북구위원회 위원장은 “1992년 윤금이 씨 살인사건, 2002년 효순이 미선이 미군장갑차 압사사건, 2005년 김명자 씨 트럭 압사사건, 2014년 택시기사 폭행, 술 취해 캐리비언 여직원 성추행 2020년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바로 미 2사단이 저지른 만행이다”라며 미 2사단의 범죄행위를 짚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더 이상 우리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될 때까지 미2사단을 폐쇄해야 한다. 주한미군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라고 투쟁 의지를 피력했다. 

 

장미란 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내용으로 발언했다. 

 

장미란 회원은 “주한미군은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를 합의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한미군은 장갑차 등 전술 차량이 이동할 때 한 번도 호송 차량을 요청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이 사건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주한미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맞고, 죽어갔던 우리 사회 악순환을 끊어내자”라고 호소했다. 

 

이상미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미 2사단은 그동안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우리가 입에도 담기 힘든 잔인한 범죄 모두 미 2사단이 저질렀다. 미군이, 미 2사단이 우리 땅에 있는 한 우리 국민은 계속 죽어 나갈 것이다. 이번 장갑차 사건을 계기로 미 2사단을 폐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라며 미 2사단 폐쇄를 요구했다. 

 

▲ 결의문 낭독  © 박한균 기자

 

▲ 녹사평역에서 용산 미군기지 6번게이트까지 행진하는 참가자들  © 박한균 기자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녹사평역에서 용산 미군기지 6번 게이트까지 거리연설과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아래는 이날 집회에서 낭독한 결의문이다.

 

-------------아래----------------------

 

지난 8월 30일, 미2사단의 안전조치 미이행이 소중한 우리 국민 네 분의 목숨을 앗아갔다. 어두운 밤 국방색으로 칠해진 미군 장갑차가 호위 차량도 동원하지 않은 채로 일반국도를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2003년 한미 당국이 공식적으로 체결한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의 내용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미2사단은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변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번 사건 이후, 가해자인 미2사단은 수사 당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조사 하나 받지 않았고 오히려 주민들의 반대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지 못하다며 적반하장 식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우리 국민의 생명을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여기고 있는 자들이 바로 주한미군이다. 두 여중생이 장갑차에 무참히 짓밟혀 죽어도, 본인들의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우리 국민 네 분이 돌아가셔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파렴치한 이들이 바로 주한미군이다. 

 

이 같은 주한미군의 막무가내식 만행이 계속되어도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외교부와 국방부 등 우리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의 범죄 사실을 묵인하고 방조할 뿐이었다. 미2사단이 약속을 어겼지만 처벌할 수 없다는 포천경찰서의 말은 어불성설이며 절대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모순된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이토록 허탈하게 죽어야 하나. 미군은 우리 국민을 죽여놓고도 왜 처벌 하나 제대로 받지 않아야 하나. 언제든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이토록 허탈하게 미군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참변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사건을 결코 모른 체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손바닥으로 결코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수십 년간 불평등한 SOFA협정의 그늘에서 자행됐던 수많은 주한미군의 죄행들을 우리는 더 이상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이 군홧발로 이 땅에 들어온 지 어느덧 7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여 우리 국민의 목숨을 짓밟는 외세의 그림자를 이제는 반드시 걷어내야만 한다. 

 

국민이 평화의 품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주한미군 범죄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행동하며 목소리 낼 것이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그 날까지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우리 국민이 미군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파렴치한 주한미군을 일벌백계할 것이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라!

진상규명 · 책임자처벌 이뤄질 때까지 미2사단 폐쇄하라!

책임자처벌 및 재발방지책 마련 시까지 모든 장갑차 기동 금지하라! 

 

2020년 10월 31일

국민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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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검찰개혁을 알리바이로?…양심적 검사들 등돌린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 인터뷰] "文정부 개혁 흐지부지…불평등 바로잡겠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긴 이야기는 이렇게 요약된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는 것'으로는 검찰개혁, 노동, 성평등 문제 등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검찰개혁이 집권세력의 개혁성을 증명하는 알리바이냐"며 "검찰개혁이 '검찰 길들이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검찰개혁은 공수처가 핵심이고, 정의당은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고 싸울 것"이라면서도 "정권 연루 사안을 수사하면 '적폐'라는 식의 얘기는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수사는 성역 없이 해야 한다. 검찰개혁의 목표가 '여당은 건드리지 말라'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감찰 지시 등에 대해서도 "추 장관이 진중하지 않다"며 "검찰개혁을 '추미애-윤석열 파워게임'으로 전락시키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서 역시 "국정감사에 작심하고 싸우러 나왔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노동·부동산 등 의제에 대해서는 "개혁이 흐지부지되고 있는 문제가 가장 크다"며 플랫폼 노동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침묵, 주 52시간제 도입 1년 6개월 유예 등을 매섭게 비판했다. '부동산 문제에 정부는 손을 떼라'는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정면 반박하면서도, 오히려 종부세 축소 주장이 여권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도 비판했다.

 

성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부산시장 선거 원인이 된 성 비위 사건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고, 정의당이 낙태죄 폐지 이슈에 당력을 집중해 싸울 것임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정의당의 전략적 목표가 "진보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를 널리 알리는 것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특히 '조국 사태' 이후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가 공정으로 축소 제기되고 있는 데 대해 "공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는 불평등을 바로잡는 게 주된 의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30일 국회 정의당 당 대표실에서 가진 김 대표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김종철 정의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정부, 문제는 '개혁 흐지부지'…검찰개혁이 '개혁성 알리바이'냐"


 

프레시안 : 취임을 축하드린다. 김 대표는 취임 후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할 것은 하겠다'는 자세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가운데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보나?


 

김종철 : '흐지부지'가 가장 크다. 노동 문제에서 주 52시간제 문제가 있는데,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오히려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인데 52시간제 적용을 1년6개월 유예시켜 버렸다. 사실상 올 연말이 지나야 50인 이상 사업장에 확대적용되고, 50인 이하는 내년 연말까지 가야 한다. 그나마 계속 유예시키면 할 수가 없다. 차라리 애초에 '52시간'을 못박지 말고, 첫 해에는 58시간으로 하되 대신 예외를 두지 않고 중소기업까지 적용했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56시간, 54시간으로 줄이다가 마지막에 52시간으로 하면 됐지 않나. 처음에는 기세등등하게 '하겠다'고 했다가 유야무야되는 게 너무 많다.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으로 거론되는 생활물류서비스법도 이번에 민주당이 낸 법안은 뭐가 살짝 빠졌더라. 예를 들어 여객운수노동자들은 근무 후 11시간 연속 휴게 시간을 갖게 하는 게 (사용자의) 의무인데, 택배노동자들에게도 그 조항을 준용해서 7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는 등 실질적 과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다만 이 부분은 소득과 연관돼 있어 택배노조 측과 얘기해 봐야 할 것이다. 이스타항공 문제도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본인들 생존 문제가 해결될지 걱정이 많고 그게 단식투쟁의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지원을 해 주면 기업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


 

부동산 문제도 그렇다. 다주택 종부세는 올해 7월에서야 정상화된 것이고, 이어 공시지가 정상화로 가야 하는데 다시 고가주택 기준이 9억이냐 6억이냐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러다 또 흐지부지된다. '우리 정권에서 논란은 없다'는 태도다. 자신들의 개혁성은 검찰개혁만으로 '알리바이'를 삼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보수진영에서는 부동산 문제를 놓고 '시장에서 손을 떼라'고 하고 있다.


 

김종철 : (한숨) 부동산은 아무리 싼 부동산이라 해도 비싼 재화다. 가장 비싼 재화이면서 필수 생활수단이다.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만 맡기라? 더 난리가 난다. 보수진영은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 150만 호 공급하겠다고 하고 (공공주택 확대 방향을 잡았으나) 박근혜 정부 때 사실상 폐기시켰다. 건설사 이윤이 안 남는다고 다 뭉개버리고, 공공주택 공급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주거정책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부동산 문제는 '공정'이라는 화두와도 연결된다. 시민들은 자신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는데 고위공직자나 힘 있는 사람들은 다주택을 보유한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


 

김종철 : 정권 참여 세력들이 사실은 자신들도 기득권 연합에 동참하고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방패막이 삼아서 '우리가 그래도 국민의힘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포장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부동산 문제도 있지만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로 현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하는 집단들이 가장 앞세우고 있는 구호가 '공정'이 됐다.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가 단지 절차적 공정으로 축소 제기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이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은?


 

김종철 : 불공정 이슈는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정하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 남성이냐 여성이냐, 이런 차이가 불공정을 낳는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불평등을 어떻게 결과적으로 공평하게 만드느냐가 정부의 역할이고 정치의 역할이다.


 

불공정 문제는 그 자체로는 쉽게 개선될 수 없다. 어떤 시험 하나가 공정하게 치러지느냐 아니냐, 여기에 포커스가 갇히면 안 된다. 인천공항공사 사례를 보면, 입사 루트 하나하나가 불공정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보다 그 시험을 봐서 공기업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게 중요하다. 0.1%의 쟁점을 가지고 '이것이 해결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은 이른바 2030 세대의 요구를 '결과의 평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시험만이라도 공정하게 보게 해달라'는 것으로 요약 진단해 제시하기도 했다.


 

김종철 : 그런 문제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문제의식은 긍정적이다. 다만 구조적으로 그게 불가능한 사회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험의 공정성을 얘기하지만, 아무리 입시를 공정하게 해도 사교육의 힘, '부모 찬스', 기득권 네트워크의 힘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것을 극복할 수는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나 정치는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는 게 주된 의무여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검찰개혁이 '검찰 길들이기'로 비쳐…추미애 진중하지 못하다"


 

프레시안 : 정부·여당이 과감한 개혁을 주저하면서 자신들의 개혁성을 입증할 '알리바이'로 검찰개혁을 내세우고 있다고 조금 전에 김 대표가 말했는데,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방향 자체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철 : 검찰개혁 핵심은 공수처다. 저희는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고 같이 싸울 것이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이헌 변호사 등이 공수처장 추천을 지연시키거나 한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예를 들어 정권이 조금이라도 연루된 것을 검찰이 조사하려 하면 '(검찰이) 적폐다'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 대표적으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말 한 마디, 편지 한 장으로 우리나라 집권당, 제1야당, 법무장관까지 들썩들썩 하는 게 맞나? 희대의 사기 피의자에 부화뇌동하는 것으로 검찰개혁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 검찰개혁을 알리바이로 정권의 개혁성을 입증하려고 하지 말라. 라임·옵티머스 사건은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지, (이 사건 수사를 두고) '윤석열 물러나라', '이쯤 되면 물러날 때가 됐는데 윤석열이 참 질기다' 이런 뉘앙스를 주는 게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한심한가.


 

프레시안 :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감찰 지시를 놓고는 검찰 안팎에서 '검찰 중립성·독립성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추 장관의 최근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철 : 검찰개혁의 목표가 '여당은 건드리지 말라'는 것으로 비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추 장관 수사지휘권 행사에 문제제기를 하면 다 나쁜 검사냐? 그렇지 않다. 이복현 부장검사를 예로 들면, 이 부장검사는 한때 이명박·박근혜 수사하다가 좌천되기도 했고 박 전 대통령이 감옥을 가게 한 일등공신이다. 또 삼성 문제를 끈질기게 파서 재판에 넘긴 검사다. 이런 검사마저도 '너희들도 검찰이니까 용납할 수 없다', '여당에 대드는 검사는 용납하지 않겠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되겠나?


 

제가 당 대변인일 때 한 번 논평을 하기도 했지만, 추 장관 행동이 진중하지 않다. 검찰개혁 와중이라고 해서 추 장관을 비판하는 것이 마치 검찰 편을 드는 것처럼 봐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추미애-윤석열 파워게임'으로 전락시키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나름 개혁적인 검사들, 나름 양심적으로 해왔던 검사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추 장관의 모습, 정권의 모습이 (자칫) '검찰 길들이기'로 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보이는 게 대단히 우려스럽다.


 

프레시안 : 윤석열 총장의 국정감사 발언을 놓고도 정치와 완전히 선을 긋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있다. 대검 국정감사를 어떻게 봤나?


 

김종철 : 윤 총장이 작심하고 싸우러 나왔더라. 자기가 맺힌 게 있으니까 그랬을 것 같다. 다만 정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자기 자유라고 하지만 권력기관장, 특히 검찰총장이 그렇게 한 데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사실 윤 총장이 정치를 한다고 해도 정치적·정책적으로 보면 잘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저런 식으로 정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윤 총장이 검찰개혁의 주체에서 대상이 된 것은 시기적으로 보면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다. 비단 '추미애-윤석열 갈등'뿐 아니라 그때 이후로 시민사회, 진보진영 내부도 분열·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개적 논쟁을 통한 갈등의 치유도 정치의 역할인데, 해법이 뭘까? 

 

김종철 : 지금도 무슨 '조국이냐 아니냐' 이런 것으로 싸우는 건 아닌 것 같고, 다만 당시 시민들이 조국 사태에 분노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리 공직자이고 정치인이지만 한 사람을 저렇게 털 수도 있구나', '한꺼번에 수십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박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검찰개혁 과제가 있다. 제 주변의 아주 괜찮은 사람들도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며 검찰에 이를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저렇게 한 사람을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생각으로 국가 권력을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데 분노한 것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공수처를 중심으로 검찰개혁이 추진돼야 하고, 그러면서도 '여당을 압박하는 검찰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행태 역시 버려야 한다.


 

프레시안 : 큰 원칙을 지키면 자연스레 문제가 풀리리라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불거진 또 하나의 현상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금태섭 전 의원, 진중권 전 교수 등이 정부·여당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들의 문제 제기는 크게 보면 정치적 자유주의의 범주 안에 있다. 진보진영의 문재인 정부 비판이 흡사 자유주의적 목소리에 독점되고 있는 상황인데,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김종철 : 자유와 인권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게 제일 먼저다. 물론 재산권적 자유주의 같은 주장은 제한돼야 한다고 보지만, (정치적 자유주의의 측면에서) '내로남불은 안 된다' 이런 주장은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다. 다만 자유주의적 문제제기가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금 전 의원의 문제제기는 일정 정도 타당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반성이지 않나? 조국 인사청문회 때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서 '왜 우리 진영에 서지 않느냐'고 하는 건 'O 아니면 X'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는 것 아니냐.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정의당의 존재 이유와도 연결된다고 본다. 'A당 아니면 B당 중에 고르라'고 하면 'C당'인 정의당은 존재 가치가 없지 않나.


 

프레시안 : 금태섭·진중권 등 진보진영 내의 비판적 목소리가 조명되는 배경으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팬덤 정치' 문화가 지적되기도 한다.


 

김종철 : 제가 볼 때 여당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비판이)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이 재집권하는 데 기여하고 그로 인해 '이명박근혜'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건 저희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을 무작정 지지하자'라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비판은) 그래서 앞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지난한 과제다.  


 

ⓒ프레시안(최형락)

"당헌개정하면 끝? 민주당, 성평등 생각 있나"


 

프레시안 : 정부·여당에 대한 시민사회, 특히 진보진영의 비판 지점 가운데 하나는 페미니즘(여성주의)에 대한 소극적 태도다. 특히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고 이후,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 연대 문제를 두고 정의당이 여권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정의당 내에서도 이전 지도부 때 넥슨 성우 문제를 놓고 탈당 등 내홍이 있었다.


 

김종철 : 페미니즘·성평등 사안에서 성평등주의는 우리가 계속 가져가야 할 가치다. 그런데 이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다른 정당들이 그 문제에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말도 안 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 넥슨 사태 때 논평을 낸 원내정당은 정의당이 유일했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고 문제가 있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원인이 (자당 소속 단체장의) 성 비위 사건인데도 '당헌당규 개정하면 끝'이라는 식이다.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낙태죄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연 헌재 결정이 없었으면 민주당이 낙태죄를 건드리기라도 했겠나? 여전히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여성들은 고통받고 있고, 불법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런데도 드러내놓고 싸우기도 힘들다. 당사자들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종교계 눈치만 보면서 아무 얘기를 안 하고 있다가, 헌재 결정이 나니까 하긴 하는데 정부도 여당도 '그래도 여전히 낙태는 죄다'라고 하고 있다. 12월까지 정의당이 세게 싸울 것이다.

 

박원순 시장 조문 때 있었던 일은 죽음에 대한 감정적 문제고, 류호정·장혜영 의원을 비판하는 당원들도 두 의원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거나 피해자 편에서 발언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탈당한 사람들도 피해자 보호를 반대한 게 아니라 '조문은 그냥 안 가면 되지 꼭 안 간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했어야 하느냐' 이런 거였다. 당 내에서는,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평등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부분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당 대표 취임하자마자 일성으로 '보선은 지도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보선 선거전략은?


 

김종철 :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이다. 서울시장 선거 TF를 만들 것이고, 아직 구성이 다 안 됐지만 제 책임 하에 끌고가려고 한다. 정책부터 준비할 것이고 특히 서울의 주거 문제에 대해 강력한 대책을 낼 것이다. 후보로 나설 인물도 많다.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 출신인 권수정 서울시의원, 정재민 서울시당 위원장, 이동영 전 관악구의원 등이 있어 서울시 선거는 자신이 있다.


 

부산은 '기후위기 공동정부'를 만들자고 (민주당·국민의힘이 아닌) 다른 정당들과 함께하려 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출신인 김영진 부산시당위원장이 있고, 박주미 전 부산시의원도 있다. 서울, 부산 모두 단일화 없이 완주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선명한 진보로 세상 바꾸겠다…노동 유연화? 검토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보궐선거에 이어 내후년 대선이 있다.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의당 내 대선주자로 본인도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 대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그리고 '대선주자 김종철'을 상징하는 말이 있다면?

 

김종철 : 목표는 물론 당선이고(웃음), '진보가 세상을 바꾼다'는 게 저의 슬로건이다. 제가 당 대표로 당선된 이유도 '김종철이 되면 뭔가 바뀌겠다'는 것, 제가 상대 후보보다 더 과감하게 선명한 진보를 얘기했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세상을 바꾸기 원한다. 더 진보적인 것이 세상을 더 잘 바꿀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높은 지지율이 나오고 있는 게 그래서 아니겠나.


 

프레시안 : 이낙연 대표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김종철 : (이 대표 개인에 대한 평가보다도) 솔직히 말하면 큰 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할 때가 돼서 힘이 빠졌을 때의 민주당이 걱정이다. 과연 뭘 하려고 할지. 전반적으로 문 대통령이 갖고 있는 개혁적 이미지가 있는데, 거기서 '개혁'이 탈각되면 진중함만 남지 않겠나. 그러면, 진중하기만 하면 세상은 안 바뀌는 것 아니냐.

 

프레시안 : 대표 취임 후 '진보의 금기에 도전하겠다'고 하면서 연금개혁, 노동개혁 등 의제를 제안했다. 노동시장 개편에 대한 구체적 의견은?


 

김종철 : 구체적인 것은 말을 좀 아끼려고 한다. 지금 노동시장에는, 이전 구조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다. 자영업자-노동자가 구분이 안 되고, 사용자가 누구인지 애매한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특수고용직이 늘어났다. 이런 분들을 포괄하기 위한 노동개혁이 필요한 것은 맞다. 기존의 정규직화만으로는 개혁 목표가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의 유연화'라는 것을 검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관철돼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노동이사제가 대표적이다. 또 실업이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실업급여 기간 확대와 액수 상향, 국가의 재취업 교육과 재고용 알선, 산별협약 전국 적용 등도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이런 얘기를 나눌 의사가 있느냐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원장 혼자서 떠드는 느낌이고 그 당 내부에서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예전에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긴 했으나 집권 이후에는 '절대로 논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만 보인다. '우리 정권에서 논란은 검찰개혁뿐'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자칫 우리가 이 얘기를 앞장서 주도하다보면 갑자기 우리가 노동계와 티격태격하는 양상이 된다.

 

프레시안 : 취임 인사차 김종인 위원장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에서 산별교섭 도입 등 북유럽식 노동시장 모델을 언급한 점이 인상깊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플랫폼 노동 등 환경 변화와 1930년대식 산별노조 체계가 잘 조화될지 의문이 있다.

 

김종철 : 그런 부분은 산별노조 협약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소득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택배 노동자 문제도 그렇고, 과로·장시간노동 등이 전제가 돼야 한다. 이것에 대처하려면 전국민 고용보험을 확대해야 한다. 저희는 고용보험도 '전국민 소득보험' 등으로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데, 실업보험 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나아가 자영업자까지 2700만 취업자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보험제도가 들어와야 산별협약(이 메우지 못하는 부분)이나 소득 감소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군인·사학연금의 국민연금 통합 의제도 제기했는데, 고령자 대상 기초연금이나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 도입 문제와 연계된 구상인지?


 

김종철 : 우선 우리 당은 기본소득을 도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정신, 누구에게나 기본적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정신은 공감한다. 전국민에게 일정 수준 소득을 유지하게 하는 '소득보험' 등이 하나의 방편이고, 기초노령연금도 지켜가면서 액수를 상향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국민연금 통합과 함께 국민연금 자체 개혁도 필요하다. 당에 '연금개혁 본부'를 만들어 총체적 안을 내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프레시안 : 총선에서 사상 초유의 '위성 정당'이 등장한 것에 대해 정의당은 민주당·국민의힘 양당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런데 총선 후 나오는 얘기는 '이게 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때문이다. 그걸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철 : 취임하자마자 선거법 개정하겠다고 하면 '정의당은 맨날 선거법 얘기만 하느냐'고 할 것 같아 시간을 좀 두려고 하는데, 큰 틀에서 보면 연동형이 문제가 아니다. 위성정당이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없애버린 게 문제다. 연동형 비례제를 헌법에 못박는 개헌, 의석 수를 늘려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확보하는 것, 아니면 의석 수는 유지하되 위성정당이 발붙일 수 없게 하는 조항을 현행법에 삽입하는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대안이 있고, 이를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 민주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하면 희대의 야합이 되지 않겠나.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301552451257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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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한진택배 유족 “지병으로 사망? 숨지기 전날 검진 이상 없었다”

“사망원인은 심야 노동에 의한 과로사”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0-10-31 18:28:36
수정 2020-10-31 18: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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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택배 ‘운송 노동자’가 지난 27일 심야 노동 중 사망한 데 대해 한진택배 측이 지병을 문제 삼자 유족 측은 “사망 전일 정기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심야 노동에 의한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유족 측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진택배 협력업체인 Y 물류 소속 트레일러 운전사인 김 모(59) 씨는 27일 오후 11시 24분경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구급차가 도착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송되던 중에 사망했다.
한진택배 협력업체인 Y 물류 소속 트레일러 운전사인 김 모(59) 씨는 27일 오후 11시 24분경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구급차가 도착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송되던 중에 사망했다.ⓒ유족

한진택배 협력업체인 Y 물류 소속 트레일러 운전사인 김 모(59) 씨는 27일 오후 11시 24분경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 이송 중 사망했다. 김 씨는 약 3개월 전부터 대전~부산 구간 화물 운송을 했다. 그는 매일 밤 10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10시에나 퇴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한진택배 운송 노동자 심야노동 중 또 사망, 올해 15번째)

한진택배 측은 사망원인으로 김 씨의 지병을 지목하며 과로사라는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김 씨는 7년 전 폐 수술과 2년 전 폐혈관 시술을 받았다.

하지만 김 씨 유족 측은 3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건강했던 김 씨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며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의 사위 박 모 씨는 “아버지는 사망 전날인 10월 26일 대전 을지병원에서 7년 전 폐 수술과 관련된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일부 항목에서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항목은 2주 뒤에 결과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어 “증상이 악화해서 간 것이 아니다. 원래 큰 수술을 하면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29일 경찰의 부검 결과, 김 씨의 사망원인은 심정지였다. 박 씨는 “사망원인인 심장과 수술한 폐는 전혀 상관이 없다”라며 “7년 전 수술은 폐와 연결된 혈관이 터지면서 폐에 피가 고여 썩으면서 폐를 일부 절제했다”라고 말했다. 사망원인을 알 수 있는 조직 채취 결과는 2주 후에 나올 예정이다.

24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 참가자들은 한진택배 본사 건물에 각자 구호가 적힌 피켓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
24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 참가자들은 한진택배 본사 건물에 각자 구호가 적힌 피켓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민중의소리

“원인은 심야 노동에 의한 과로사”

유족 측은 김 씨가 심야 노동으로 축적된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고 있다. 김 씨는 숨지기 3주 전 딸과 사위에게 “너무 힘들다.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고 싶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딸 김 모 씨는 “어머니 걱정할까 봐 아버지가 저희에게만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평생 운전을 직업으로 삼으셨는데 그동안 스트레스받는다거나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3주 전 밤에 장거리를 오가는 것이 힘들다며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생전 시내버스, 고속버스, 탱크로리 등 운송업에 종사했지만, 이번 택배 업무로 밤 고정 운송업무를 처음 맡았다고 박 씨는 말했다.

택배 운송 노동자 대다수가 심야 노동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고 이복규 택배노조 조직국장은 강조했다. 고객에게 직접 물품을 배송하는 택배 노동자에 비해, 택배 업체의 허브 터미널과 서브 터미널 사이를 오가며 물류를 운송하는 운송 노동자의 심야 노동 실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조직국장은 “운송업무는 야간작업이 주다. 김 씨처럼 시작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밤낮이 바뀌어) 가장 힘들다. 아침 9~10시에 집에 들어가도 잠이 안 온다. 김 씨도 설 잠을 자다가 출근해서 운전하며 피로와 과로가 계속 쌓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유족이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고 김 모씨의 죽음과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9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유족이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고 김 모씨의 죽음과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9ⓒ김철수 기자

심야 노동의 원인으로 ‘총알 배송’ 문화가 지목됐다. 이 조직국장은 “24시간 안에 배송한다는 한국의 ‘빨리빨리’ 택배 문화 때문에 운송 노동자들이 야간에 일할 수밖에 없다. 24시간 배송이 아니면 낮에 운송하고 다음 날 분류 작업하면 된다. ‘빨리빨리’가 사람 잡는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Y 물류를 통해 한진택배 일을 받는 ‘개인사업자’라서 산업재해 대상이 아니다. 한진택배 측은 “물류를 Y 물류에 맡겼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했고, Y 물류 측은 “김 씨가 4대 보험을 안 들어서 산재가 어렵다”라고 했다고 유족 측은 말했다.

딸 김 씨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 믿기지 않는다”라며 갑작스러운 김 씨의 죽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사위 박 씨는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과 주말마다 아버지를 찾아뵀는데,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셨다”라며 김 씨를 그리워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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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좁고 가파른 언덕 동네…“마을버스 없으면? 안 돼, 안 된다니까”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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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통의 ‘모세혈관’ 적자 파산, 막다른 골목 

“시민의 발 마을버스는 더 이상 운행이 어렵습니다.” 지난 9월 말부터 서울의 마을버스 전면에 현수막이 붙었다. 코로나19로 이용객이 크게 줄었다. 서울시가 지급하던 보조금도 감소했다.

“손쓸 방법 없이 적자 업체가 늘어난다”며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이 현수막을 설치했다. 마을버스 업체들은 노선 변경도, 요금 조정도 할 수 없다며 하소연한다.

마을버스 업체들의 위기는 지역 주민들의 ‘이동 위기’로 이어진다. 마을버스는 민영이되 공공성이 강하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마을버스는 고지대 또는 외지마을, 산업단지·학교·종교시설 소재지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과 노선버스 정류소 사이를 운행한다. 마을버스 취지는 지역민들이 교통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마을버스를 꼭 타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을버스 주 승객들은 산동네에 사는 이들이다. 서울시도 공공성 때문에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코로나19가 이어지면서 시 재정도 줄었다. 서울시는 자치구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지만, 구의 재정도 넉넉지는 않다. 업계에선 도산, 파업 이야기도 나온다. 손실을 메우려면 ‘배차 간격 조정’을 해야 한다. 이 말에 담긴 핵심은 ‘운행 축소’다.

배차 횟수가 줄면 서울시 마을버스는 ‘농어촌 버스’가 될지도 모른다. 언제든 정류장에 가면 금방 탈 수 있는 마을버스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 금천구 시흥동의 금천02번이 미래 마을버스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동네 여러 가게엔 버스 시간표가 붙었다. 지난 20일 시흥동의 한 정류장에서 만난 여성이 말했다.

“미용실에 있다가 버스 시간표 보고 나왔어요. 무작정 나와서 기다리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시간표는 꼭 봐야 해요.” 1시간에 2~3회 운행한다.

코로나19는 마을버스 제도의 한계를 드러냈다. ‘마을버스 지원’ 조례를 갖춘 지자체는 드물다. 마을버스 재정 지원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마을버스 기사의 열악한 노동 문제도 여전하다. 노선 조정과 요금 인상에다 장애인 이동권과 환경 문제가 ‘마을버스’에 걸쳐 있다. 공공성을 어떻게 확립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북악산 자락 따라 비탈길…버스 한대 겨우 지나가는 골목 지난 22일 종로08번 마을버스가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명륜길을 오르고 있다. 버스 종점과 연결된 이 길은 북악산 자락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북악산 자락 따라 비탈길…버스 한대 겨우 지나가는 골목 지난 22일 종로08번 마을버스가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명륜길을 오르고 있다. 버스 종점과 연결된 이 길은 북악산 자락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서울 ‘교통 사각지대’ 다니는 마을버스 따라가보니 

용산02번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의 ‘해방촌’은 실향민과 농촌을 떠나 서울로 온 이들이 모여 살며 생긴 마을이다. 남산 능선에 든 해방촌 언덕길은 가파르다. 용산02번 마을버스에는 “급경사 구간이오니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늘 나온다. 운전석 부근엔 ‘앞쪽으로 넘어지면 위험하오니 앞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쓰여 있다. 용산02번은 해방촌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지난 21일 해방촌 한 골목길에서 A씨(87)를 만났다. 한 손에 종이포장지를 들고 언덕길을 조심히 내려갔다. 외출했다가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50년을 넘게 살았다.

해방촌에서 가장 높은 ‘해방촌오거리’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해방촌성당 방향으로 골목을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가야 A씨 집이 나온다. 언덕길을 오르고 내려야 한다. 그는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집 앞으로 마을버스가 다니면 좋지 않겠냐”는 말에 “조금만 걸으면 마을버스가 나와서 괜찮다”고 답했다.

“버스가 다녀도 번잡해서…”라며 좁은 골목을 가리켰다.

해방촌을 가로지르는 신흥로는 좁고 인도가 없다. 서울 곳곳으로 길이 통해 오가는 택시나 승용차도 많다. 자전거로 해방촌을 오가긴 더 힘들다. 비좁은 주택가라 주차 공간도 마땅치 않다. 마을버스가 이곳 사람들에겐 자가용인 셈이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따라가는 마을버스가 없이는 해방촌을 벗어나기도, 찾아오기도 쉽지 않다. 마을버스 종점은 값비싼 부동산의 필수조건인 ‘역세권’과 동떨어진 곳이 많다. 이곳이 그렇다.

종로08번 

‘더 이상 운행이 어렵습니다’ 이승재 와룡운수 대표(왼쪽)가 서울 종로구 명륜3가의 차고지에서 정비사와 함께 차량 정비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더 이상 운행이 어렵습니다’ 이승재 와룡운수 대표(왼쪽)가 서울 종로구 명륜3가의 차고지에서 정비사와 함께 차량 정비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서울 종로구 명륜3가의 명륜길을 오가는 종로08번 마을버스 기사들은 “농담 조금 보태면 뒤로 누워서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북악산 밑자락에 자리한 종점에서 150m 남짓 이어진 언덕을 오를 땐 엔진을 쥐어짜는 소리가 난다. 그래도 2~3분이면 충분히 내려가는 짧은 길이다. 이금례씨(88)는 이곳을 2~3차례 길가에 앉아 쉬며 천천히 내려가야 했다. 약국에 가는 길이다.

“시방 집에 있기 답답해서 운동 삼아 살살 걸어가고 있어.” 지난 22일 만난 이씨는 이 동네에 산 지 40년째라고 했다. 먼저 10년은 세 들어 살았고, 집을 산 뒤 30년을 더 살고 있다. 언덕길을 따라 오르고 내린 시간도 이와 같다. 종점 옆이 집이다. 이 언덕길은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 “올라갈 때는 마을버스 타고 가야 해. 안 그러면 집에 못 가.”

이씨는 최근 심장 수술을 해 유독 숨이 차다고 했다. 병원에 다니고 약국을 드나든다. 종로5가 시장에 갈 때도 있다. 마을버스를 안 타면 까마득한 거리다. 그는 마을버스를 “자가용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900원만 내면 갈 수 있으니까 좋지.” 다행히 마을버스가 늦지 않고 자주 와 편히 타고 다닌다고 했다. 이씨의 ‘자가용’인 마을버스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날 이승재 와룡운수 대표는 종로08번 종점 옆 차고지에서 차량을 정비했다. 낡은 작업화를 신고 기름 묻은 검은 토시를 찬 채 일했다. 1992년 정비사로 일을 시작해 1999년부터 마을버스 업체를 운영한다. 그는 정비사로, 업체 대표로 여러 이름이 붙은 경제위기를 겪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예측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수입이 35~40%는 줄었다. 마을버스는 적자가 나면 운송원가를 기준으로 서울시에서 환승손실 보조금 명목으로 지원금을 준다. 올해 정해진 운송원가는 45만7040원. 지난해보다 10% 줄었다. 서울시는 코로나19를 이유로 고통 분담을 요청했다. 여름이 지나면서 예산이 떨어져 추경 예산이 편성됐다.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 재정 일부를 부담하라고 했다. 자치구마다 마을버스를 지원할 명확한 근거 조례가 없는 곳도 있고, 재정이 부족한 곳도 있다. 지원금은 크게 줄었다.

이 대표는 “8월에 신청한 지원금이 980만원이었는데, 510만원이 입금됐다”고 했다. “IMF 때도 힘든 걸 못 느꼈어요. 경제위기라고 사람들이 마을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코로나19 이후엔 사람들이 아예 움직이질 않으니까 더 어렵습니다.” 이 대표는 빚이 3억5000만원쯤 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5년 된 차량을 조기폐차하고 새로 바꾸면서 1억5000만원을 빌렸다. 깨끗한 새 차로 운행을 하려던 것인데 코로나19를 예상하지 못했다. “어제(21일) 가서 1억원을 더 대출받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12월이면 모두 바닥납니다.”

그는 차량 운행을 줄이지 않았다. 배차 간격이 늘어나면 승객들이 불편해진다. 승객들은 매일 얼굴을 맞대는 ‘동네 주민’들이다. “시내버스는 뒤에서 뛰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출발해버리는데, 마을버스는 그렇게 안 태워주면 택시 타고 종점까지 따라와서 항의해요. 동네에서 하는 거니까요.”

사장인 그가 직접 운전하며 차량 수리도 하는 게 거의 유일한 비용절감 방법이다. 업체 마음대로 요금을 올리거나 노선을 임의로 바꿀 수 없다. 그는 “함께 운영하는 다른 노선(종로07번)은 수익이 안 나오는데, 이용하는 주민들이 전혀 없지 않으니 폐선할 수도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급 인상에 맞춰서 기사 급여도 더 주려고 하고 운행도 자주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빠듯해지고 있어요. 우리 회사는 그래도 수입이 적은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죠.”

은행권 대출도 받기 어려워졌다. 사업조합에 따르면 일부 업체들은 은행권 대출이 어려워 연 8% 이상의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카드 대출을 이용한다.

금천02번 

배차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금천02번 버스가 지나는 금천구 탑골로는 완만한 언덕길이다. 이 길에 요양병원과 아동복지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관악산 자락 끄트머리에 있는 탓에 언덕을 올라야 종점에 다다른다. 종점까지 가는 길은 조금씩 험해진다.

여러 노인들이 보행기를 짚거나 등산용 스틱을 들고 언덕길을 올랐다. 마을버스 노선이 존재하지만 운행대수가 많지 않다. 금천02번 마을버스에 관해 물으면 주민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한마디씩 거든다. “시골 같아요.”

종점 부근의 한 슈퍼마켓 담배 진열장에 버스시간표가 붙어 있다. 이곳에선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가 버스를 놓치면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서울에서도 배차 간격이 길기로 꼽히는 지역이다. 10.4㎞ 구간의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는 2~3대가 전부다. 배차 간격도 20분 이상 걸린다. 미용실 등 상점은 마을버스 시간표를 붙여 놓는다.

문모씨(64)는 배차간격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기다리다가 걸어서 내려가고 올라가기 일쑤야. 버스가 잘 안 다니니까 불편해서 다들 이사 간다고 해.” 하소연하던 중 지나가던 주민들을 붙잡고 “기자 양반한테 이야기 좀 해봐”라고 했다. 문씨가 불러세운 주민들도 함께 거들었다. “내 나이가 74세인데, 버스 기다리다가 안 와서 걸어오고 있어. 늙었는데 다리 아파 죽겠어. 저기 은행사거리에서 오는 데 40분은 걸린 것 같아.” 마침 마을버스가 지나쳤다. “다 오니까 오고 있네.”

이곳에 버스 운행이 드문 건 이용객이 적기 때문이다. 탑골로 인근의 금하로는 도로가 넓고 아파트 단지가 많아 1~2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10분 정도 골목과 언덕을 걸어 나가야 한다. 이곳까지 가서 다른 버스를 타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집 앞을 오가는 버스는 이용객이 적으니 버스 운행이 줄었다. 버스가 오지 않으니 이용률도 감소한다. 이곳 마을버스도 간신히 유지되는 셈이다.

종로03번 

마을버스도 닿지 않는 동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봉제공장 밀집 지역은 높고 험한 언덕길로 유명하다. 전현진 기자

마을버스도 닿지 않는 동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봉제공장 밀집 지역은 높고 험한 언덕길로 유명하다. 전현진 기자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김지훈군(12)은 ‘아랫동네’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낙산공원 종점 부근 집에서 종로03번을 타면 학원까지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걸어가면 20분은 가야 한다. 낙산은 해발 124.3m. 등산길로 치면 완만하다. 일상생활 터전으로는 거칠다. 김군은 집에 올 땐 늘 버스를 탄다.

버스종점에서 언덕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자리한 슈퍼. 이곳 주인은 “마을버스가 없어지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안 돼”라고 단호히 말했다. “다른 교통수단이 있냐”는 물음에도 “그냥 안 된다니까”라고 답했다.

창신동은 서울의 대표적 ‘산동네’다. 골목을 따라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쉼 없이 오간다. 언덕 능선을 따라 빼곡하게 주택과 봉제공장이 자리 잡았다. 종로03번은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서 숭인동을 돌아 창신동 바깥쪽을 낙산 언덕길을 따라 오른다. 종로03번은 ‘창신동 주민들의 발’이라고 불린다. 창신동 모든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신동 중심부에는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마을버스는 최후의 대중교통이다. 차가 없으면 걸어야 한다. 언덕을 오르면 쌀쌀해진 날씨에도 땀에 흠뻑 젖는다.

창신동에서는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내려오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손에 커피상자를 든 노인이 교회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숨을 골랐다. 머리에 과일상자를 인 노인은 엉금엉금 언덕을 올랐다.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요?” 숨을 헐떡이는 노인은 말없이 손사래만 쳤다. “이제 다 왔어.”

이곳에 사무실을 둔 어느 시민단체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버스가 없으니 그냥 걸어서 올라온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리면 힘들지만 10분만 걸어오면 된다. 버스를 타면 오히려 멀리 돌아와야 해서 더 오래 걸린다. 택시도 여기까지는 안 올라오려고 한다”고 했다. 예컨대 동대문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창신역을 돌아 낙산 정상 부근의 버스 종점에서 내린다. 다시 언덕길을 걸어 내려와야 사무실에 도착한다. 시간이 두배 걸린다. 무릎에 자신이 있는 주민은 걷는 쪽을 택한다.

“음료수도 주고 떡도 주면서 (버스기사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마을버스는 주민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종로03번을 운영하는 전정일 종로운수 대표는 창신동 내부로 노선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다고 했다. 길이 좁고 험해 버스 운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버스가 다니면 보행자가 줄어든다. 시장 상인이나 상점 주인은 손님이 줄어들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낸다. 선거철만 되면 버스 노선을 늘리겠다는 공약이 쏟아지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 효과적인 교통 대책이 나온 적은 없다.

서울에는 245개의 마을버스 노선(6월 말 기준)이 있다. 사업조합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마을버스의 대중교통 기여도는 11.4%다. 1일 승객수를 마을버스(118만명) 지하철(512만명) 시내버스(408만명)로 나눠 계산한 수치다. 마을버스 요금은 청소년(교통카드 기준 550원)이 2007년, 일반(900원)이 2015년에 인상된 뒤 동결된 상태다. 조합 관계자는 “대중교통 요금이 오르면 사람들이 반발한다.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지금 어려운 현실이 외면당하고 있다”며 “계속 힘들어지면 파업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이어지면 서울시에서는 지원을 줄이고 자구책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요금을 올릴 수도 없고 노선 변경도 마음대로 못하니 결국 배차를 줄이라는 얘기”라고 했다. “일반 시내버스는 준공영제라고 적자를 모두 보전해주는 걸 보면 코로나19의 고통 분담은 마을버스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버스 이용이 불편하면, 다른 대중교통도 불편해져…시 직영이나 준공영제 고려할 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마을버스 문제


서울 마을버스는 민영제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환승제도 시행에 따라 2004년부터 마을버스를 지원했다. 대중교통 환승 할인으로 생긴 손해를 보조해주는 개념이다. 운송원가를 책정하고 적자가 난 부분을 메워준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마을버스에 대한 지원 방식에 큰 문제가 없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지원이 줄어들었다. 마을버스 업체들은 지원 축소에 항의하고 요금 인상을 요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입금과 승객이 모두 줄어 추경 예산을 편성해 지급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 추세가) 이어질지 몰라 자치구에 재정 지원과 함께 배차 간격 조정 등에 나서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낮은 수준의 운송 요금과 재정난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란 점은 서울시도 공감한다. 서울시는 국회와 시의회 등을 통해 수렴된 요금 인상 요구도 논의하기로 했다.

서울시와 일부 자치구 중에는 ‘마을버스를 지원할 수 있다’는 조례가 있는 곳도 있지만 법적 의무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선 마을버스 지원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교통 전문가들은 마을버스 제도를 개편하고, 공공성을 살리며, 버스기사 처우도 개선하는 여러 방면의 노력을 병행할 때라고 말한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시민 편의를 높이는 방향의 마을버스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승객이 적지만 필수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노선들이 있고 승객이 몰리지만 한두 개 업체가 독점하는 노선도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마을버스 업체들마다 수익이 크게 다르다. 민영제와 준공영제라는 양자택일만 있는 게 아니다. 민간 사업자에게 적자를 감내하라고 강요해도 안 된다. 공공성이 중요한 곳은 시에서 직접 운영하고 민영제와 준공영제를 섞는 복합형태로 운영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버스기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도 업체들을 무조건 지원하는 방안이 능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흑자를 내는 업체라고 해서 마을버스 기사 처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통해 수익을 내는 몇몇 업체의 방식이 오히려 이익을 내기 위한 기준이 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다면 이런 문제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조합이 각종 노동문제가 불거진 업체를 규제하는지도 봐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행정 측면에선 마을버스가 덜 중요해 보일 수 있다. 실제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마을버스 이용이 불편하면 다른 대중교통 이용도 불편해진다. 결국 개인교통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에도 마을버스 체계를 발전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마을버스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선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단 주문도 나온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20~30분 거리를 그냥 가는 수밖에 없다. 장애인 전용 콜택시는 이용자가 많아 대기시간이 길다. 시각·청각 장애인도 마을버스를 자유롭고 편하게 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 대표는 “서울시가 무장애 버스정류장을 보급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을버스가 공공성이 더 높은데 시내버스가 먼저 준공영제로 운영된 건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모 위원은 “서울시에서는 일반 시내버스를 준공영제로 운영하니 마을버스에 더 많은 수요를 가져가도록 하면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버스 요금을 쉽게 올릴 수도 없고, 경전철 등 대체 교통수단이 생겨나면서 마을버스 문제 해결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마을버스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경영합리화와 중복노선 문제, 시내버스와의 관계 등 여러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연말 용역 결과를 반영할 게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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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310600055&code=940100#csidxe85e432a6616442ad48181180cbd0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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