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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

재일 조선학교 관련단체들, 1만인 국제선언 발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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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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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10.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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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등 관련단체들은 16일 정오 서울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에서 ‘1만인 국제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등 관련단체들은 16일 정오 서울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에서 ‘1만인 국제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왜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아야 합니까?!

왜 가장 어린 아이들이 교육의 시작부터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해야 합니까?!”

‘2020년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절규’를 담은 ‘일본정부는 조선학교 차별을 당장 멈춰라!’ 제목의 국제선언에 16일 현재 총 939개 단체, 개인 11,531명이 연명했다.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등 관련단체들은 16일 정오 서울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에서 ‘1만인 국제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문부과학성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손미희 시민모임 공동대표가 1만인 국제선언이 발표되기까지의 경과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손미희 시민모임 공동대표가 1만인 국제선언이 발표되기까지의 경과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손미희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2020년 4월 3일부터 국제캠페인을 선포하고 국제선언을 시작을 했다”며 “오늘 현재 총 939개 단체, 개인 11,531명이 연명하였다. 단체가 939개지만 예를 들면, 한국노총,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전교조 이런 모든 전국적인 단위들도 하나로 들어가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국제선언이다 보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멕시코, 하와이, 포르투갈, 짐바브웨, 아일랜드, 그리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얀마, 칠레,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스페인, 말레이시아 등 각국에서 우리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이 선언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국제선언 참가단체와 개인 명단 별첨]

이 국제선언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에서 공동으로 제안했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여는말을 하고 이다.  왼쪽은 기자회견문을 공동 낭독한 전국여성농민총연합 김옥임 회장과 김미경 부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여는말을 하고 이다.  왼쪽은 기자회견문을 공동 낭독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김옥임 회장과 김미경 부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여는말을 통해 “교과서 문제를 비롯해서 역사왜곡 문제,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소녀상 문제 등 모든 것에서 일본은 사죄하지 않고 추태를 벌이고 있다”며 최근 독일 소녀상 문제에 대해 “일본이 취하고 있는 행동은 너무 추잡하고 비겁하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진정한 반성 없이는 그 어떠한 명분도 어떠한 미사여구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창복 의장은 “우리는 일본에 있는 우리 조선학교 학생들이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제기하면서 분노하고 있다. 빠른 시간내에, 가까운 시간 내에 차별 철폐를 요청한다”고 밝히고 “조선학교 학생들과 교직원 여러분들께 끝까지 끝까지 힘을 내시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격려했다.

김경민 한국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금요시위 참가 경험을 전하며 “지나가는 일본인들이 정말 혐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고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면서 “우리 조선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저렇게 차별과 혐오의 눈빛 아래서 일본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김경민 한국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오른쪽은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경민 한국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오른쪽은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경민 사무총장은 “국제시민사회의 연대, 한국사회의 항의와 연대가 넓어지고 강해진다면 우리가 조선학교의 차별과 조선인학생들에 대한 혐오의 시선들을 거둬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6월에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는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이라는 연대체를 발족했다. 그 연대체와 함께 조선인학교 차별에 대한 투쟁을 계속 확대해 나가고 국제적인 연대를 확대해 나가면서 우리 조선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긴급지원금을 학생들에게 배부하는 과정에서 외국 국적 학생들이 제외된 적이 있다며 “전교조와 일부 뜻있는 교사들이 나서서 그 방침을 철회하고 그리고 모든 외국인 학생에 대해서도 지원금을 지급하도록 관철시킨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하고 “모든 차별이 철폐되고 조선학교 학생들의 평등한 교육권이 보장되는 그날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스가총리가 아베 정권이 자행해 온 조선학교 차별을 이제는 끝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스가총리가 아베 정권이 자행해 온 조선학교 차별을 이제는 끝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참가자들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김옥임 회장 김미경 부회장이 함께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은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를 지우기 위해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와 현재를 부정하려는 데서 비롯한 치졸한 행위이며,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노골적인 탄압”이라고 규탄했다. 나아가 “우리는 스가총리가 아베 정권이 자행해 온 조선학교 차별을 이제는 끝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외국인학교 유치원에도 <유아교육,보육의 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서명>에 적극 동참해 더 큰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손미희 공동대표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일본 정부에 외국인 학교.유치원에도 유아교육.보육의 무상화를 요구하는 (서명) 50만건을 벌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면서 “올 연말까지 일본에서는 백만 서명으로 해서 문부과학성과 스가 정권에 이것을 전달하고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 전 세계의 각지 동포들에게 호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창복 의장과 정태효 시민모임 공동대표(오른쪽)가 1만인 국제선언을 일본 문부과학성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내는 ‘우체통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의장과 정태효 시민모임 공동대표(오른쪽)가 1만인 국제선언을 일본 문부과학성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내는 ‘우체통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 말미에 이창복 의장과 정태효 시민모임 공동대표가 1만인 국제선언을 일본 문부과학성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내는 ‘우체통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는 “마침 오늘이 히로시마재판 결심일이다. 오늘 2시 히로시마재판 결과를 재일동포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 결과를 저녁 6시에 총화하면서 집회를 연결해 가지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전하고 “우리도 힘찬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히로시마 재판’은 고교무상화에서 제외된 학교법인 히로시마조선학원과 히로시마조선고급학교의 재학생 109명이 2013년 8월 1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으로 2017년 7월 19일 청구를 기각당해 1심에서 패소했지만 즉각 항소해 오늘 2심 결과가 나온다.
 

[기자회견문(전문)]

스가총리는 아베정권이 자행해 온 조선학교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얼마 전 일본의 한 신문에 ‘스가정권에 묻는다. 어린이를 괴롭히는 국가권력으로 계속 이어질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해당 기사는 스가총리가 북·일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재일조선인 차별문제부터 시정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수시로, 또 노골적으로 수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2010년 아베총리 재임시절 일본정부는 ‘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 제도에서 유일하게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기관인 조선학교만을 배제했다. 아베의 정치적 동반자이며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총리 역시도 “정부 전체 방침이기 때문에 총리 지시를 바탕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었다.

2019년 ‘유아교육·보육 무상화’ 정책에서 일본정부는 또 다시 조선학교 유치원 아이들을 제외시켰다. 이 정책의 재원이 일본 사회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내고 있는 세금이라는 점에서 조선학교 유치원에 대한 제외는 기본적인 형평성에서부터 어긋나는 조치이다.

더불어 ‘모든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규정한 <아동육아지원법>과 ‘어떤 차별도 없이 권리를 존중하고 확보하는’ UN 어린이권리조약, 사회권규약, 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조약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매우 불공평한 조치이다.

왜 우리 동포들과 아이들이 일본사회로부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왜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아야 하며, 가장 어린 아이들이 교육의 시작부터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해야 하는가!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살게 된 역사적 경위를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차별과 탄압을 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은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를 지우기 위해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와 현재를 부정하려는 데서 비롯한 치졸한 행위이며,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노골적인 탄압이다. 또한 국가가 앞장서서 재일조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위는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명백한 ‘국가폭력’이다.

이에 1만여 명의 해,내외 동포들, 양심적인 국제인사들, 평화를 사랑하는 제 단체들이 ‘일본정부는 조선학교 차별을 멈춰라! 국제선언’에 뜻을 모았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외국인학교 유치원에도 <유아교육,보육의 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서명>에 적극 동참해 더 큰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우리는 스가총리가 아베 정권이 자행해 온 조선학교 차별을 이제는 끝낼 것을 요구한다.

- 일본정부와 지자체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당장 멈춰라!

- 유아교육·보육의 무상화 제도를 재일조선학교 유치원에도 공평하게 실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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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해도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 기자명 김성진 공공운수 노동자
  •  
  •  승인 2020.10.15 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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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을 신설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전문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함입니다.
많은 기고를 기대합니다.
 
한국에서도 올해 1월 20일 첫 확진자를 시작으로 악성 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브리핑과 뉴스는 매일 방송과 지면을 장식한다.

10월 15일 현재 코로나19 사망자는 439명으로 하루 평균 사망자는 대략 1.6명이다. 방역 당국의 노력과 전 국민적 협조로 다른 나라에서 방역체계가 무너져 다수 사망자가 나온 것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사망하신 분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하며 그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는 국가적 재앙이다. 하루빨리 악성 바이러스의 확산을 종식해 더는 코로나19로 희생되는 분들이 없어야 하겠다.

한편, 한국에서 하루 평균 7명의 사망자를 내는 무서운 재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산업재해다. 2001년~2018년 사이에 42,632명, 매년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 평균 7명이다. 이 숫자도 특수고용노동자, 공무원, 사학연금 대상 노동자는 통계에서 제외된다. (※ 참고 : 민주노총 자료)

산업재해로 인해 오늘도 7명의 노동자가 출근 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코로나19와 대비조차 할 수 없는 사망자를 내고 있는데 언론은 조용하기만 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 고(故) 김용균노동자 1주기 추모대회가 열린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고(故) 김용균노동자 1주기 추모대회가 열린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18년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 하청노동자 김용균(24세) 씨가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국민의 삶을 밝히는 전기를 만들면서도 정작 김용균 씨는 일터에서 발밑을 밝힐 최소한의 전기도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어두운 곳에서 홀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전 사회적인 추모 분위기가 일어났고 언론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러나 구의역 김 군의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와 마찬가지로 김용균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곧 언론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2020년 8월 3일 검찰이 태안화력의 원하청 법인, 원하청 대표이사를 포함한 16명을 산업안전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했다. 사고 후 2년 가까이 지나서야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2020년 9월 10일 김용균 씨가 변을 당했던 태안화력에서 또 하청업체와 계약하고 일을 하던 특수고용 화물노동자가 2톤짜리 스크류에 깔려 사망했다. 

표1. [코로나19와 산업재해 비교]

위 표는 코로나19와 산업재해의 양상과 관심도를 비교해보기 위해 필자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다.

코로나19와 산업재해가 일상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산업재해가 일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에 국한되는 사안이며 처벌 수위나 관심도가 훨씬 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코로나19는 전 국민적인 위협으로 관심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 수위나 관심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 사회는 노동에 대한 홀시, 노동문제에 대한 무관심,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만연하다. 산업재해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그 어떤 이해관계에도 흔들릴 수 없는 가장 존중해야 할 가치다. 그런데도 노동 존중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제대로 된 산업재해 대책을 내오지 않고, 정치인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놓고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며 옥신각신하고 있다. 사회의 아픈 곳을 드러내고 치유하며 정론을 펼쳐야 하는 언론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인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산업재해 해결을 정부와 정치인, 언론의 역할에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문제는 당사자인 노동자의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과 진보 진영이 주도한 국민동의 청원으로 전태일 3법 중 하나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상임위에 회부됐다. 30일간이라는 제한이 있고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야 청원이 가능한 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동의 청원 달성의 의미는 민주노총과 진보 진영의 조직력이 살아있고 지도부의 호소에 따라 언제든지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스스로 나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국회에 상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가능하게 하도록 진보민중진영과 함께 대중적인 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더는 조용한 재앙이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과 진보민중진영의 대중적 투쟁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국회 통과를 넘어 참다운 노동 중심, 노동 존중의 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적 의식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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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반대 여론에도 “일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 방침”

등록 :2020-10-16 10:51수정 :2020-10-16 11:46

 

<마이니치신문> 정부 관계자 확인 보도
빠르면 이번달 결정, 실제 방류는 2년 뒤
전국어업인단체, 경제산업상·환경상 만나 “절대 반대” 전달
7차례 공청회 반대 여론 압도적 우세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6일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후쿠시마/교도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6일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후쿠시마/교도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에 대해 자국 내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도 바다에 방류하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정부 안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사성 물질의 농도를 낮춘 뒤 바다로 방류해 처분한다는 방침을 굳혔다”며 “정부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고 16일 보도했다. 빠르면 이달 중이라도 각료 회의를 열어 결정할 방침이다. 이번엔 오염수 처리 방침만 결정하고 실제 바다 방류는 2년 뒤 이뤄질 예정이다.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설비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심사나 정비에 2년 정도 걸린다.

 

문제는 오염수 바다 방류에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전국 단위 어업단체인 ‘전국 어업협동조합연합회’는 바다 방류 결정이 다가오자, 지난 15일 경제 산업상과 환경상을 만나 “해양방류에 절대 반대한다. 어업인 전체의 뜻”이라며 의견을 전달했다. 이들은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할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불가피해 일본 어업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앞서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지난 4월부터 후쿠시마 관계자, 관련 단체 등을 상대로 7차례 공청회를 했지만 대부분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정화시킨 오염수에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고, 후쿠시마가 ‘방사성 물질 오염 지역’이라는 인식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본 정부는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일반 국민 의견을 듣는 ‘퍼블릭 코멘트’ 절차를 거치는데 지난 7월말 일정이 끝났으면서도 지금까지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바다 방류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일본 정부는 바다 방류 등 처리 방침을 조속히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1원전은 가동이 중단된 채 9년 넘게 폐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핵연료 냉각수와 원전 건물에 스며든 지하수‧빗물 등 오염수가 계속 늘고 있어 2022년 여름이 되면 지상에서 오염수를 보관하던 탱크가 부족하다는 것이 일본 쪽 설명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취임 뒤 첫 지방 출장지로 지난달 26일 후쿠시마를 방문해 오염수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정부가 책임지고 처분 방침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일본 정부는 현재 탱크에 보관된 오염수의 80%에서 세슘과 스트론튬, 요오드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상 포함된 것과 관련해 다시 정화를 한 뒤 바다에 방류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약 123만톤 가운데 1000톤을 정화시설인 ‘다핵종 제거 설비’(ALPS·알프스)로 2차 처리를 해보니, 기술적으로 제거하기 힘든 삼중수소를 제외한 주요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15일 발표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66049.html?_fr=mt1#csidx627b8db0c47d5f885b71ce592e56e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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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죽기 10일 전, 김재규가 본 충격적인 광경

[김종성의 히,스토리] 10·16이 있어 10·26도 있었다

본문듣기 등록 2020.10.16 08:06 수정 2020.10.16 08:06
 
 

▲ 부마항쟁 ⓒ 진실화해위원회 자료사진

 
10·16이 있어 10·26도 있었다. 10·16이 있었기에 10·26이 유신체제의 마침표가 될 수 있었다. 김재규가 총을 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정보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날 밤 그의 옷 속에 권총이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인들은 평화적 권력이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며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같은 사람들이 그를 고무시켰기 때문만도 아니다.
 
근원적인 요인은 김재규가 1979년 10월 16일 이후의 부마민주항쟁(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화운동, 아래 부마항쟁)에서 민중의 에너지를 확인한 데서 찾을 수 있다. 10·16이 그의 가슴을 자극했던 것이다. 박정희를 죽이고 투옥된 뒤인 1980년 1월 28일 작성한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김재규는 이렇게 술회했다.
 
가혹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국민, 특히 학생들의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은 더욱 거세어졌고, 급기야 부산·마산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던 것입니다. 부마사태는 그 진상이 일반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부산에는 본인이 직접 내려가서 상세하게 조사하여 본 바 있습니다만, 민란의 형태였습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 <br style="box-sizing: border-box;" />본인이 확인한 바로는 불순세력이나 정치세력의 배후 조종이나 사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일반 시민에 의한 민중봉기로서 시민이 데모대원에게 음료수와 맥주를 날라다주고 피신처를 제공하여 주는 등 데모하는 사람과 시민이 완전히 의기투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고, 수십 대의 경찰차와 수십 개소의 파출소를 파괴하였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부마항쟁을 목격한 김재규는 10·16의 전도사가 되어 박정희에 대한 설득에 나섰다. 그는 현실을 직시할 것을 박정희에게 촉구했다. 위 보충서는 이렇게 말한다.
 
본인이 부산사태 직후 부산을 다녀오면서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린 일이 있습니다. 김계원 실장과 차지철 실장과 동석하여 저녁식사를 막 끝낸 식당에서였습니다. 부산 사태는 체제 반항과 정책 불신 및 물가고에 대한 반항에 조세 저항까지 겹친 민란이라는 것과 전국 5대 도시로 확산될 것이라는 것 및 따라서 정부로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다는 것 등 본인이 직접 시찰하고 판단한 대로 솔직하게 보고를 드렸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귀는 막혀 있었다. 박정희는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었다. 이것은 김재규가 유신체제에 대한 기대감을 거두고 몸 안에 총을 감추도록 만드는 원인이 됐다. 박정희의 반응에 관해 보충서는 이렇게 말한다.
 
박 대통령은 버럭 화를 내면서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명령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지만,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고 역정을 내셨고, 같은 자리에 있던 차지철은 이 말 끝에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가 데모대원 100~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함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왕국 기둥에 도끼를

부마항쟁은 경남 거제에서 출생하고 부산에서 여섯 번 당선된 1979년 당시의 김영삼 의원(총 7선)을 상대로 박 정권이 신민당 총재직과 의원직을 박탈한 일로 인해 촉발된 측면이 컸다. 박 정권의 김영삼 박해가 경남·부산 민심을 자극하고 이로 인해 박 정권의 부조리가 부각되면서 민중항쟁이 폭발했다.
 
그러나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국회를 무력화시키며 1인 영구집권을 도모하는 1972년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한국 민중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왕국'을 유지하고자 헌법이 아닌 긴급조치로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했다. 부마항쟁은 긴급조치라는 사상누각에 세워진 박정희 왕국을 허물고자 그 누각의 기둥에 도끼를 들이대는 사건이었다.
 
2018년에 <한국과 국제사회> 제2권 제1호에 실린 정주신 한국정치사회연구소장의 논문 '10월 부마항쟁의 진실과 역사적 성찰'은 "부마항쟁은 대학생을 비롯해서 소시민, 영세상인, 도시빈민, 접객업 종업원, 자영업자, 노동자, 재수생, 고등학생 등 하층 도시민과 학생들의 주 참여 계층이 가세한 민중항쟁이었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부마항쟁이 즉자적인 반유신 민중봉기가 아니라 야당의 선동으로 발생한 '불순분자들'의 행동이나 '식당 보이'나 '똘마니' 그리고 '깡패' 등에 의한 단순한 소요로 본 행태는 통치자로서의 애민의 입장이기보다는 영구집권을 꾀하기 위해 민중을 천민으로 본 발상이었다"고 말한다.
 
박 정권이 '불순분자, 식당 보이, 똘마니, 깡패'들로 비하한 서민 계층이 궐기했다는 것은, 2016년 연말 이래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기까지 흔들며 이승만·박정희·박근혜를 연호하는 극우세력에게 '당신들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박정희 시대의 서민 상당수는 데모는 위험한 일이며 가방끈 긴 빨갱이들이나 하는 일로 치부했다. 그랬던 그들이 데모대에 음료수나 맥주를 날라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시위에 참여했다. 극우세력의 주장처럼 박정희 시대가 살기 좋은 시대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마항쟁은 박정희 시대를 살아본 서민대중이 박 정권에게 매기는 성적표와 같은 것이었다. 박정희 체제가 인간을 못살게 구는 악의 체제였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불순분자, 식당 보이, 똘마니, 깡패' 등이 1960년 4·19 혁명으로부터 19년 만에 정치무대에 대거 등장했다는 것은 박 정권 18년 동안에 정치체제 못지않게 경제체제의 모순도 심화됐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저항에 나선 것은 박정희 체제가 정치적 자유나 민주주의뿐 아니라 경제적 분배에서마저 이들을 박대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민란
 

▲ 부마항쟁 ⓒ 진실위 자료사진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같은 노동자 착취에 기초했다. 휴일이 한 달에 두 번만 있어도 감지덕지해 하면서 선반 기계 옆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쪽잠을 자며 철야로 노동하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은 노예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국가와 경찰이 재벌과 대기업을 비호하는 속에 노동자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그 시대의 노동에는 노예노동의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고도성장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기업가나 국가뿐 아니라 노동자도 적정한 분배를 받아야 한다. 노동력이 사실상 공짜로 착취되는 구조에서는 고도성장이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노동자를 인간답게 대우하는 가운데서 고도성장을 이룩했다면 박정희 경제정책은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리는 가운데서 이룩한 것이므로, 그것은 재벌 및 대기업 혹은 국가의 고도성장이지 대한민국 전체의 고도성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마항쟁은 박 정권의 고도성장이 알맹이 없는 허위에 불과했음을 폭로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는다.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가 금년에 <사회경제평론> 제62호에 기고한 '박정희 공업화 발전모델의 위기와 부마항쟁'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가 주도 공업화 과정에 동원된 민중 블록은 성장의 과실 분배 과정에서는 배제되거나 희생되었다. 이는 만성 인플레이션 하에서의 물가 급등, 노동 착취 강화와 노동운동 탄압, 민중의 조세 부담 가중, 도시 하층민의 증가와 방치, 불로소득의 집중과 빈부격차 확대 등으로 나타났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 <br style="box-sizing: border-box;" />민중 블록은 이러한 모순이 누적될수록 불만도 커져갔지만, '잘살아 보세'와 '선 선장, 후 분배'라는 성장 이데올로기 약속의 실행을 기다렸다. 그러나 1976~1977년의 대호황에도 불구하고 이 약속은 지켜지기는커녕 방위세와 부가가치세로 조세 부담만 급증하고, 1979년 4월의 경제안정화 조치로 불황의 부담이 전가되자 민중들의 불만은 분노로 바뀌었다.
 
열심히 노동하는 대다수가 고도성장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정권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소수만 혜택을 누리는 모순 구조는 '불순분자, 식당 보이, 똘마니, 깡패' 등이 저항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민중의 경제적 불만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부마항쟁은 고전적인 민란의 성격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적이기는 하지만 부마항쟁의 발생 시점도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박정희는 3선 개헌을 1969년 10월 17일에 통과시키고 유신체제를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했다. 10월 17일은 박정희 왕국의 초석을 다진 날이었다. 부마항쟁은 10월 16일 시작해서 10월 17일에도 거세게 번져나갔다. 박정희 왕국의 생일에 초를 뿌리는 항쟁이었던 것이다.
 
부마항쟁의 직접적 결과로 박 정권이 무너진 것은 아니므로 10·16이 박 정권의 마침표가 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10·26이 단독으로 마침표가 됐다고도 보기 힘들다. 10·16이 정권을 흔들어대지 않았다면 10·26은 일어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10.16과 10·26의 복합 작용에 의해 박 정권이 몰락했다고 보는 게 균형 잡힌 시각일 것이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기로에서 발생한 사건이므로 부마항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평가를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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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안보실장 "종전선언, 한미간 이견 없다"

폼페이오 등과 면담..."종전선언, 비핵화와 따로 놀 수 없는 건 상식"

서훈 실장은 지난 14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서 전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데 이어, 이날 오후 국무부 청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서 실장은 이날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방미 기간 동안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종전선언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항상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던 문제였다"며 "문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또는 비핵화와의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 뿐이지, 종전선언이 (비핵화와) 따로 놀 수 없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유엔총회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서 실장은 한미 양국간에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 협상과 관련해 "이번에 깊이 있게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논의를 해나갈 것"이라며 "우리 입장도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방위비 문제가 합리적이고 상호 수용 가능한 선에서 타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사전에 방문 일정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채 방문한 것과 관련해 그는 "특별히 대선을 염두에 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한미 관계는 정권 여부와 관계 없이 지속돼야 하는 문제"라고 답했다.

 

▲15일 미 국무부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을 끝나고 나오는 서훈 안보실장 ⓒ워싱턴특파원단

전홍기혜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160709417583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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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분석] 11월 3일 개표는 초유의 혼란 개막? 무슨 일이 벌어질까

차기 미국 대통령을 확정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 가능성... 미국의 역량 시험대에 올라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0-10-15 19:26:34
수정 2020-10-15 19: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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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29일(현지 시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첫 TV토론에 펼치고 있다.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29일(현지 시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첫 TV토론에 펼치고 있다.ⓒ뉴시스/AP  
 
“우편투표는 사기이고 재앙이며 부정선거(rigged election)일 뿐이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는 자신을 반대하는 민주당만 유리하게 할 뿐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올해 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자 미국의 우편투표 제도를 물고 늘어졌다. 왜 그랬을까? 미 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23.6%가 ‘우편투표(mail-in vote)’로 한 표를 행사했다. 이 중 부재자 투표가 17.7%였고, 미국 내 우편투표가 5.9%였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아직도 확산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상황이 돌변했다. 유권자들이 감염을 막기 위해 투표소에 직접 가서 투표하는 대신 우편투표를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주 등 7개 주가 모든 유권자에게 자동으로 투표용지를 발송한다.

이 밖의 주들은 우편투표를 하려면 질병이나 장애 등의 이유를 제시해야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29개 주에서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신청만 하면 우편투표를 가능하게 했다. 이론적으로는 전체 유권자의 77%에 해당하는 약 1억8천만 명이 원하면 우편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대부분 우편투표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직접 가기를 싫어하는 젊은 유권자들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NBC뉴스의 여론조사에서 우편투표 의사 비율이 트럼프 지지층은 11%였지만 바이든 지지층은 47%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핏발을 세우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의 우편투표가 확정적으로 민주당이 기획하는 부정선거라는 증거는 아직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미 많은 유권자가 우편투표를 통해 한 표를 행사했고, 예년과는 다른 엄청난 양의 우편투표를 처리해야 하는 까닭에 개표 과정에서 대혼란이 생길 가능성은 농후하다.

지난달 24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우편투표 7장이 폐기된 채 발견되기도 했고, 30일에는 뉴욕시 선관위가 무려 10만 장의 투표용지에 유권자 이름 등을 잘못 인쇄해 발송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밖에도 미 전역에서 벌써 우편투표의 부정이나 불법을 고소·고발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미 트럼프 캠프 측이 1월 3일 열리는 대선의 다음 날 부정선거 소송을 제기할 예정으로 수천 명의 변호사를 전국 각 투·개표소에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선이 우편투표가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사전 준비에 나선 셈이다.

12월 14일까지 선거인단 확정 못하면 대혼란 불가피
결국, 법원행?

그렇다면, 미 대선 개표가 시작되는 현지 시간 11월 3일 밤 이후부터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나 트럼프 대통령 중 어느 한쪽이 거의 일방적으로 앞서 나가고 모든 주의 개표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당선 확정자는 이튿날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런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미 주류 언론을 포함해 선거분석 기관들은 이번 대선 개표가 초기에는 주로 직접 투표가 개봉되는 관계로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우편투표가 개봉될 시점에는 바이든이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미국 대선은 각주의 최대 득표자가 그 주의 모든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간선제 형태의 ‘승자 독식’ 방식이다. 현재 전체 선거인단이 538명인 관계로 과반을 넘는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있다면, 사실 미국 대선은 당선자가 결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편투표가 급증한 관계로 특히, 이른바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경합주(swing-state)’에서 개표 결과가 쉽게 나올 가능성이 낮아진다. 네바다주 등 일부 주에서는 대선 당일인 11월 3일자 소인이 찍혀 있으면 일주일 뒤인 11월 10일에 도착하는 우편물까지 유효 투표로 인정하기로 했다.

현재 선거인단 과반(270명)은 모든 주가 정상적으로 투표해서 538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정상적으로 선출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특히 경합주에서 우편투표에 따른 무효 소송이 잇따른다면, 최종적으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하는 여러 주가 나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수천 명의 변호사와 투표 감시원들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이 점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그는 13일에도 트윗을 통해 우편투표는 미 전역에 자행되고 있는 부정선거라며 “변호사들이여, 시작하라!”고 노골적인 지시를 남겼다.

그런데 미국 대선은 133년 전에 제정된 ‘선거인계수법(Electoral College Act)’에 의해 각 주가 오는 12월 14일까지 워싱턴DC 연방의회로 확정된 선거인단 명단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소송 등으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한 주에서는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각 주의회에서 다수당을 자치하고 있는 당이 자신들의 정당에 유리한 선거인단을 연방의회로 보내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1960년 미 대선에서 하와이주는 치열한 소송전 와중에 당시 공화당 소속 주지사와 민주당 소속 주의원들은 각기 다른 선거인단 선출 명부를 승인했다.

하지만 당시 공화당 소속 현직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대선후보는 “혼란의 선례를 만들기 싫다”며 존 F. 케네디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외쳐온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이 결정할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끝까지 소송전을 불사할 태세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한 우체국 직원이 2020년 대선 우편투표 기표 용지가 담긴 박스를 옮기고 있다. (2020.10.1 자료 사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한 우체국 직원이 2020년 대선 우편투표 기표 용지가 담긴 박스를 옮기고 있다. (2020.10.1 자료 사진)ⓒ뉴시스/AP

실타래처럼 꼬인 美대선 경우의 수
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시대 올지도

이렇게 특히 경합주 등에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하고 소송전이 치열하게 진행된다면, 미국 대선은 더욱 복잡하게 꼬인다. 미국 헌법은 선거인단의 ‘과반을 확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만약 후보 중 누구도 선거인단의 ‘과반을 얻지 못하면’ 연방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미국 대통령을 연방 하원이 선출하는 쪽으로 간다면, 오히려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전체 연방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이때는 각주가 오직 한표씩 갖기 때문이다. 즉 주별로 연방하원 의석수가 더 많은 정당이 그 주의 한 표를 독차지하게 된다.

현재 50개 주 중에서 26개 주는 공화당이, 23개 주는 민주당이 연방하원 의석수가 더 많다. 나머지 한 주는 동석(同席)이다. 따라서 만일 이 상태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투표가 진행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은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또 과연 ‘과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도 없다. 현재는 선거인단 과반(270명)의 기준은 모든 주가 정상적으로 투표해 538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정상적으로 선출했을 때의 기준이다. 만약 소송전으로 여러 주를 합해 수십 명의 선거인단이 선출되지 않았을 경우 이를 빼고 과반을 새로 정해야 할지, 아니면 기존 270명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야 할지 등 규정이 없다.

전례가 없는 만큼 ‘과반’에 대한 규정이나 최종 선거인단 확정은 물론 대통령 결정 방식을 놓고 이 또한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차기 대통령을 연방대법원이 결정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기를 쓰고 공석 중인 연방대법원 판사에 자기편을 지명한 이유이다.

일부 여론조사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바이든 대선후보에게 약 17%포인트 이상 밀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미국 대선은 거의 끝난 셈이다. 즉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바이든 후보가 월등히 앞서간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심술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대선에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선후보는 당선을 거머쥐었다. 이번에 특히 경합주에서 일부 개표마저 소송 등으로 지연된다면, 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야 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도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웃지 못할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내년 봄까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기가 막힌 불확실성 시대에 살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전대미문의 대통령을 만난 미국민들의 역량이 전 세계 시민들 앞에서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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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상자 분류만 내리 7시간…“제일 힘든 게 까대기”

등록 :2020-10-15 04:59수정 :2020-10-15 08:06 
 
 
  • <span style="color: rgb(39, 143, 142); font-weight: bold; font-size: 16px;">택배노동자 일일 동행르포</span>
아침 6시35분부터 밤 12시25분까지
짜장면 점심 20분이 휴식의 전부

두 팔에 상자 6개…계단 두 칸씩
발목 삐끗했지만 병원 엄두도 못내
벨 누르고 다음집까지 10초 안 걸려
“1분 지체되면 퇴근 몇 시간 늦어져”

한 건 700원…비용 빼면 600원 남짓
“한 달 300만원 벌기도 쉽지 않아”
아프다고 쉬면 기사·소장 벌점 부과
“빨간 날 빼곤 힘들어도 쉴 수 없어”

자정 즈음 “언제 오냐” 노모의 전화
“걱정 안 끼쳐드리려 힘든 티 안내요”
[편집자주]지난 8일 배송 업무를 하던 씨제이(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원종(48)씨가 거리에서 숨졌다. 코로나19 확산 뒤 택배노동자들이 걸머진 짐의 무게는 가혹할 만치 무거워지고 있다. 올해만 8명의 택배노동자가 거리에서 스러졌다. 그 가운데 5명은 씨제이대한통운 소속이었다. 죽음을 부르는 택배노동의 무게를 확인하려 <한겨레>는 택배노동자와 동행하고 한 택배회사의 물류센터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장을 취재했다. 그 내용을 2회에 걸쳐 싣는다.
13일 동행한 씨제이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의 노모는 새벽에 일하러 나간 아들의 귀가가 늦어지자 “언제 오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숨진 김원종씨와 같은 나이에 같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됐던 탓이다. 14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김원종씨의 아버지와 서울 중구 씨제이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응당한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일터에서 죽지 않고 퇴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택배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절박한 호소에 이제 기업과 사회가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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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두 팔엔 택배상자 6개가 탑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였다. “한 곳에서 1분만 늦어도 연쇄작용 때문에 퇴근이 몇 시간씩 늦어져요.” 13일 낮 3시 서울 노원구의 한 빌라 계단에서 씨제이대한통운의 택배노동자 김도균씨가 이마 사이로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말했다. 김씨는 승강기가 없는 빌라였지만 5층까지 한달음에 도착한 뒤 능숙하게 501호 문 앞에 택배상자를 내려놨다. 벨을 누르자마자 도망치듯 다시 두 칸씩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감사합니다!” 고객의 인사에 화답할 겨를도 없었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자꾸 배송이 늦어지네요.” 이른 아침부터 맡았던 택배 분류업무가 고됐다는 김씨는 피곤한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 발목을 삐끗했다.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그는 발목을 들여다보다 다시 택배상자를 어깨에 짊어진 채 절룩거리며 길을 나섰다.김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난다. 이날 새벽 5시30분에 잠에서 깨어난 김씨는 아침밥은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노모(78)가 챙겨준 물병만 간신히 들고 새벽 5시55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집을 나섰다. 
 
트럭을 몰고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씨제이대한통운 노원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35분이다.
 

김씨는 도착하자마자 택배상자가 쏟아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선다. 전날 ‘까대기’(간선 차량이 내려놓는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하고 트럭에 실어 정리하는 업무) 아르바이트 직원 한 명이 그만두는 바람에 이날 분류 업무는 더 힘들었다. 분류작업은 배송을 맡는 택배기사들의 일이 아니다. 가욋일로 업체가 떠맡긴 것이다. 김씨는 줄줄이 내려오는 상자를 받아 쌓고 자신의 담당구역인 노원구 ‘하계1동’ 택배를 따로 분류해 동선에 따라 트럭 위에 착착 실었다. 점심을 거르고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일했지만 까대기가 끝난 시각은 오후 1시47분이다. “택배 일 중에 가장 힘든 게 까대기예요.” 김씨가 말했다.지난달 노동시민단체 ‘일과건강’이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벌인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업무 중에서 까대기 업무에 해당되는 ‘분류작업’과 ‘집화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2.8%, 11.1%에 이르렀다. 전체 업무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한 푼도 없다.

 

까대기를 마친 뒤 택배상자를 1톤 트럭 가득 실은 김씨는 오후 1시53분 하계동의 한 중국집에 도착했다. 하루 첫 끼를 먹기 위해서다. “곱빼기, 양 많이.” 그의 주문에 족히 3인분은 돼 보이는 짜장면이 나왔지만 8분 만에 김씨는 한 그릇을 마시듯 해치웠다. 김씨가 밥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 시간은 20여분에 지나지 않았다.

 

13일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의 트럭 안에 탄산음료, 쓰레기, 반송 배송장 등 갖가지 서류가 뒤엉켜 있다. 배송할 택배 짐은 수시로 정리해도 운전석을 정리할 시간은 없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13일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의 트럭 안에 탄산음료, 쓰레기, 반송 배송장 등 갖가지 서류가 뒤엉켜 있다. 배송할 택배 짐은 수시로 정리해도 운전석을 정리할 시간은 없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허리를 굽혀 상자를 쌓고 정리하는 일은 까대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첫 행선지인 노원구 ㅋ아파트 주차장에 트럭을 세운 뒤 김씨는 화물칸에 올라타 좁은 상자 사이에서 10여분을 씨름하며 다시 상자를 정리했다. 동선에 맞게 초벌 정리를 해뒀지만 배송지에서 다시 동과 층, 호수에 따라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아파트 단지일 경우에 여기 소요되는 시간만 어림잡아 한번에 40~50분이다.택배노동자들은 큰 아파트 단지를 선호한다.

 

김씨가 맡은 하계1동엔 3~5층 정도의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 연립주택, 원룸텔이 많다. 대부분 승강기가 없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팔 위에 택배상자 탑을 쌓고서도 김씨는 5~6층까지 잽싸게 뛰어 올라가고 내려왔다. 주소를 확인해 뛰어올라가 상자를 문 앞에 내려놓고 바코드를 찍은 뒤 벨을 누르고 다시 다음 집으로 향하는 데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뒤따르는 기자는 맨몸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날 김씨를 따라다니며 스마트워치로 측정한 걸음수는 1만7000보다. 이날 오전 까대기 업무를 하면서 김씨가 측정한 1만보를 더하면 그가 업무 중 걸은 걸음은 모두 2만7000보다. 1만보의 거리를 10㎞라고 추정하면 그는 상자를 들고 계단 위에서 하루 평균 20~30㎞를 뛰어다니는 셈이다. 그가 오르내린 층수는 건물 81층 왕복 높이에 이른다고 스마트워치는 기록했다.저녁 8시43분이 돼서야 도착한 마지막 행선지인 ㅅ아파트는 6동 규모의 396가구 아파트다. 

 

김씨의 담당 구역에서 가장 큰 규모다. 6개 동을 모두 돌고 나니 이날 할당된 택배 430개의 배송이 끝났다. 시계는 자정을 지나 14일 0시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18시간가량 일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다. 특히 업무가 많은 화~금요일엔 하루 평균 12.7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택배노동자들은 특수고용에 해당돼 주 5일,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13일 아침 근무를 시작한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가 자정을 넘긴 밤 12시30분께 퇴근을 앞두고 방전된 차량 배터리 점검을 받고 있다. 다행히 15분만에 차량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출동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13일 아침 근무를 시작한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가 자정을 넘긴 밤 12시30분께 퇴근을 앞두고 방전된 차량 배터리 점검을 받고 있다. 다행히 15분만에 차량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출동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어떤 이들은 택배노동자들을 향해 “일한 만큼 많이 버니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냐”고도 한다. 사정을 모르는 말이다. 택배노동자들은 기본급 없이 택배 한 건당 700원가량의 수수료를 받는데, 여기서 10%의 대리점 수수료, 세금, 택배 트럭 자동차 보험료, 한달에 30만원에 이르는 기름값 등을 떼고 나면 건당 남는 수익은 580~600원이다. “소문만큼 그렇게 많이 버는 일이면 다들 택배기사 하겠지요.

 

한달에 500만~600만원씩 버는 분들은 아주 소수고, 이것저것 떼고 나면 월 300만원 정도 받는 것도 쉽지 않아요.” 김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일요일과 공휴일 등 ‘빨간 날’에만 쉴 수 있고, 하루 배송량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아프다고 쉬면 자신이 맡은 구역의 배송이 늦어져 택배회사에서 담당 기사와 대리점 소장에게 ‘벌점’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도 민폐다. 이 때문에 동료 기사들이 배송을 도와주면 그만큼 돈으로 물어내는 관행도 있다.

 

배송이 끝나가던 자정 즈음 김씨의 노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언제 오냐, 시간이 많이 늦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오늘 다 못 하면 내일 해야 돼요. 다 끝나가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어 김씨가 답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김원종씨 사고 소식을 뉴스에서 보신 모양이다. 걱정은 많이 하시지만, 걱정을 안 끼쳐드리려고 힘든 티를 안 낸다”고 말했다.자정을 넘긴 시각 김씨는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의 배터리는 김씨처럼 방전돼 있었다. 방전된 배터리는 금세 출동한 본사 직원이 갈아주었지만 김씨를 대신할 이는 없다. 그는 내일도 모레도 새벽 5시30분이면 일어나 트럭을 몰고 나올 것이다.

 

글·사진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5824.html?_fr=mt1#csidx8dff762a2896b9cb256b391ecebb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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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해운대 난동’과 미군문제 대처할 부산시 조례 제정 추진

[기고] 박석분 부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

 

 

  • 기자명 박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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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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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10.1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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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부산 해운대에서 미군 등 외국인이 폭죽 수십 발을 터트리며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해운대구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요구했지만 묵살하여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산시민들의 방역 노력을 비웃었다. 이는 국난극복 수준으로 코로나 19에 맞서고 있는 한국민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들은 해수욕장 내 금지행위인 폭죽을 몇 시간이나 계속 쏘아댔으며 심지어 시민들과 상가건물을 향해 폭죽을 발사하여 인명피해와 화재와 같은 큰 불상사가 일어날 뻔 했다. 실제로 폭죽이 한 상가의 간판에 맞아 터지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 경찰의 제지를 무시했으며 여경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는 명백한 공무집행방해이며 한국을 자신들의 놀이터로 여기는 후안무치한 행태로서 한국민들의 생명과 인권을 묵살한 폭력적 행위이다.

나아가 미군들은 음주운전을 감행하고 퀵보드를 타던 어린이를 다치게 했다. 미군들에 의해 해운대는 삽시간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주민들과 상인들, 피서를 나온 우리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날 시민들의 신고와 항의가 100건에 이르렀다는 것은 시민들의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부산 시민들은 “주한미군이든 뭐든 법을 어긴 건 벌을 해야 한다”, “경범죄라고 하더라도 관련 인물들은 징계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경찰은 도주하다 잡힌 미군 한 명에게만 5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시민들의 분개에 비하면 경찰의 대응은 한심하다 못해 부끄러운 지경이다. 해운대 경찰서는 음주운전으로 입건된 미군들 근황을 묻는 기자의 요청에 “한미소파 규정 때문에 사실 관계를 말해줄 수 없다”고 하여 한미소파(SOFA, 주둔군지위협정)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으며 이 상황에서도 미군의 눈치를 보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였다.

한미소파 7조는 주한미군은 한국 법령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형사재판권을 규정한 22조는 주한미군이 저지른 비공무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이 체포, 수사, 재판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해운대 난동 미군 공동 고발인단이 9월 28일 부산 미영사관을 항의방문해 난동 미군의 처벌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 박석분]
해운대 난동 미군 공동 고발인단이 9월 28일 부산 미영사관을 항의방문해 난동 미군의 처벌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 박석분]

경찰의 처분이 미온적이며 부족하다고 판단한 부산평통사 등 부산의 시민단체들은 공동고발인단을 구성하여 ‘성명미상’의 미군들을 공무방해와 감염병 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해운대 경찰에 7월 8일 고발했다. 불법을 저지른 미군들이 처벌을 받음으로써 미군이 한국민의 주권과 사법권을 존중하도록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사건 직후 유감을 표명하고 장병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한국 사법 당국과 협조해 “사건의 책임자를 가려내고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 사건 수사를 담당한 해운대경찰서는 고발인 조사만 했을 뿐 정작 피고발인인 미군에 대한 수사는 첫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경찰 측은 여섯 건의 혐의를 잡고 관련 미군들의 신상자료를 미군 측에 요구했지만 주한미군사령부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찰의 수사에 불응함으로써 미군은 또다시 한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했다.

이에 공동고발인단은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지난 9월 28일 부산 미 영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후에는 미군 당국의 처사에 항의하는 서한을 미 영사관 측에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산 미 영사관 측은 서한접수를 거부했다.

미 대사관에서 서한을 절대 접수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는 것이 거부의 이유였다. 항의서한 봉투를 전달받을 경우 감염과 테러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해운대에서의 폭죽 난동이야말로 한국민을 감염 위협에 빠뜨리고 한국민에 대한 테러에 다름없는 행위인데도 말이다. 미 당국의 적반하장의 어이없는 행태는 한국민을 무시하고 능멸하는 것이다.

부산의 8부두에는 주한미군 생화학실험실이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장비와 병력, 물자가 드나든다. 8부두는 미군의 순환배치가 시작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백운포 해군작전사령부 내에는 주한미해군사령부가 있어 각종 첨단 무기를 장착한 미군의 군함들이 드나들고 있다. 이는 부산이 미국의 대중국 패권을 위한 기지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한반도나 동북아 유사시 북한이나 중국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부산시민의 안전이 늘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미군들의 난동은 주한미군의 존재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안보가 단지 전쟁을 막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안전, 보건과 건강까지 도모하는 것이기에 이번 난동은 미군이 도리어 우리 국민들의 안보를 위협하고 훼손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부산 미군기지로 인해 부산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 환경이 위협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함께 지자체의 역할이 절실하다. 그러나 그 동안 부산시는 무능하고 무력하며 무책임한 모습만 보였다. 미군이나 국방부의 입장을 대변하기만 한 것이다.

이에 부산평통사는 지난해부터 부산의 미군기지로 인한 문제를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나가도록 하기 위해 조례 제정에 나섰다. 지자체가 미군 문제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법, 제도적 근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10월 15일, 부산시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부산 미군 주둔 지역에서 발생하는 안전 및 환경 사고에 대한 예방과 대응, 후속조치에 관한 조례안이 부산시의회에 상정된다. 도용회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하여 상정하는 본 조례안은 “부산광역시 내 미군기지를 비롯한 공여구역 및 공여구역 주변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하는 안전사고 및 환경사고의 예방과 신속한 대응 및 후속 조치로 시민의 생명·안전·재산과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산광역시와 주한미군 간의 협력체계구축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자 마련되었다.

이번 조례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며 이 조례가 향후 부산의 미군기지로 인한 문제를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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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남자' 만들어준다는 '가짜사나이'의 범죄

[김형남의 갑을, 병정] <가짜사나이> 시리즈가 불러낸 트라우마

20.10.15 07:34l최종 업데이트 20.10.15 07:34l
▲  <가짜 사나이>
ⓒ 피지컬갤러리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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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콘텐츠 <가짜사나이>의 인기가 독보적이다. 에피소드마다 수백만 회에 달하는 조회 수로 예능 콘텐츠 생태계를 뒤흔든 시즌1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이근 등 출연진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0월 1일 업로드된 시즌2 역시 더 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출연을 희망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 통에 면접을 통해 이들을 선발하는 과정부터 시끌벅적하다. 유튜브 콘텐츠로는 드물게 OTT 서비스에까지 진출했으니 2020년의 예능 원톱은 <가짜사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D저널>에 따르면, <가짜사나이> 시즌1 7편에 달린 댓글 총 27만 9560개를 웹크롤링 방식으로 취합해 자주 언급된 단어를 뽑았더니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진짜'(2만 6963회)였다고 한다. 실제 댓글을 살펴보면 MBC <진짜 사나이>와 비교하는 내용도 많다.

<가짜사나이>에서 '진짜'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

여기서 '진짜'는 여러 함의를 갖는다. 기존 매체가 전달하던 군대의 모습은 가짜이고, <가짜사나이>가 진짜라는 뜻도 담고 있을 것이고, 남자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진짜 사나이'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담고 있을 것이며, <가짜사나이>가 전하는 군대의 모습이야말로 '진짜 군대'라는 뜻도 담고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가짜'를 헤드라인에 건 콘텐츠에서 '진짜'를 읽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가짜사나이>는 인간 갱생 프로젝트다. 군사훈련으로 출연자를 환골탈태시키는 것이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한국 사람에겐 아주 익숙한 문법이다. 정신 못차리고 살던 사람이 머리 깎고 입대해 자기 극복을 이뤄내는 서사. 콘텐츠와 시청자의 교감 포인트는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한국 사회의 금과옥조에 있다. 징병제 국가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나라를 지키러 가는 곳이지만, 한편으로 '진짜 사람',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시즌2"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가짜 사나이> 시즌2
ⓒ 왓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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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병사의 병영 내 휴대전화 사용이 일부 부대에서 시범 운영되던 시기에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병사휴대전화 사용에 관해 국민 여론을 조사하면 가장 많이 반대하는 집단이 30대 남성이고, 그 다음이 40대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0대 남성은 전역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았을 터이고, 그렇다면 군 복무 시절 병영 내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싶기로는 지금 복무 중인 병사들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간부는 휴대전화를 쓰는데 병사는 왜 안 되냐는 불만을 한 번씩은 가져 보았을 터인데 무슨 까닭으로 반대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뒤, <조선일보>의 [조선일보를 읽고](2019.01.04.)라는 코너를 보고 나니 어렴풋이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한 독자는 <文 대통령 "장병도 평일 외출·외식" 신병들 "와~">(2018.12.29.) 제하의 기사를 읽고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남겼다. 

"(전략)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한 데다 고생스러운 일은 외면하고, 쉽게 좌절하고 패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 엄격한 규율을 몸에 익혀 강인한 젊은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많다. 군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병사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 자유로이 지내던 어린 시절을 청산하고 엄격한 통제 속에 군기 잡힌 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나야 하는데,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쓰고 외출을 나가면 '인간 갱생'이 가능하겠냐는 반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진짜 사람'이 되려면 조직의 통제에 따라 하고 싶은 일과 말을 참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30,40대 예비역들의 속마음이 병사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표출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짜사나이>가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얻은 것 역시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한국인의 자기 극복 서사를 완벽히 내면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군대가 빚어내고, <가짜사나이>가 그려내는 '진짜 사람'은 어떤 모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가짜 사나이
▲  가짜 사나이
ⓒ 피지컬갤러리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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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사나이>의 훈련방식, 현실에선 범죄

<가짜사나이>의 소재가 UDT/SEAL 훈련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콘텐츠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매우 폭력적이다. 시즌1 에피소드5에는 시작부터 훈련 참가자들이 얼차려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한 명의 참가자가 저지른 과오로 참가자 전원이 얼차려를 받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관은 정작 과오를 저지른 참가자는 가만히 세워두고, 나머지 참가자들에게만 '물속에 머리박기' 등의 가혹한 얼차려를 부과한다. 말이 좋아 '물속에 머리박기'지,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자행되던 물고문과 메커니즘 상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동료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보던 열외자에게 교관은 폭언과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려고 온 것 아니냐?"고 다그치는 교관의 고함 앞에 참가자는 눈물을 흘렸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리적 압박감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방식은 전형적으로 폭력적인 교육 방식이다. 잘못한 사람의 반성기제가 자아성찰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공포에 있기 때문이다. 숱한 군대 내 사건 사고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이런 식의 교육은 끈끈한 전우애나 과오 경정이 아니라 집단 따돌림이나 2차적 폭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가짜사나이>가 표상하는 소위 '군기 잡는 모습'이란 한국 군대의 고질적인 악·폐습 그 자체다.

2019년 육군사관학교는 한 생도의 과오를 이유로 전 생도에게 1주일간의 야간 구보를 지시했다가 군인권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연좌제란 지적을 받고 시정한 바 있다. 육군 모 군단에서는 환자들에게 구보를 강요하며 열외 시 이름과 병명이 적힌 환자 명패를 걸고 걸어다니게 하다 여론의 공분을 샀다.

2020년에는 육군 모 부대 대대장이 얼차려를 준다고 새벽에 병사 300명을 불러내 체력 단련을 시키고, 이튿날에는 한 병사에게 앰뷸런스와 제세동기가 있으니 쓰러질 때까지 달리라는 엽기적인 지시를 내렸다가 보직해임을 당했다. <가짜사나이>로 연상되는 군대 악·폐습이란 실상 현실에 닿으면 범죄가 된다.

2014년 육군 제28사단에서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와 가혹행위로 고 윤 일병이 유명을 달리한 '윤 일병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처음부터 윤 일병을 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타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들도 맞아봤고, 폭력이 당연시되는 가운데 별 죄의식 없이 윤 일병을 때렸던 것이다. 
 
 2014년 8월 6일 국방부 앞에서 개최된 윤 일병 사망사고 관련 군 유족 항의집회
▲  2014년 8월 6일 국방부 앞에서 개최된 윤 일병 사망사고 관련 군 유족 항의집회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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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 대 맞아서 아픈 것에 있지 않다. 폭력은 학습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때리고 괴롭히는 일이 죄의식의 영역에서 해방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 사회가 폭력적인 군대 문화에 노출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군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 사건이 언론에 보도 될 때마다 군인권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들이 있다. 10년 전에, 20년 전에, 심지어는 1960년대에 군대에서 누구에게 맞았거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대부분 법적으로 구제 받을 방법이 없어서 차근차근 설명을 전하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전화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들이 <가짜사나이>를 본다면 무엇을 느낄까. 수백만이 열광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며 누군가가 끄집어 낼 두려움의 깊이, 이것이 군대가 만들어 낸 '진짜 사람'의 씁쓸한 현 주소다. 폭력의 경험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군대를 가야 완성되는 '진짜 사람'이란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 왜곡된 군대 문화가 빚어내는 사람은 <가짜사나이>가 묘사하듯 인간 갱생을 경험한 번듯한 사회인이 아니다. 그저 망가지고 다친 사람일 뿐이다. 군대에서 맞아 죽은 사람이 현충원에 묻힌 것이 20년 전도, 10년 전도 아닌, 불과 6년 전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가족이, 친구가 경험한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지금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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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베를린시의 소녀상 철거는 한국인에 커다란 상처"

"이용수 소신으로 베를린 소녀상 철거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이 할머니는 14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친필 성명문을 공개했다.

 

할머니는 특히 "독일은 일본과 같이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지만 일본과는 다르게 과거 역사를 반성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에 앞장선 나라"라며 "세계 양심의 수도라고 부를 수 있는 베를린의 소녀상은 철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이용수 할머니가 직접 쓴 성명문 전문.(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공)

이재명 "베를린 소녀상 철거는 한국인에게 커다란 상처"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독일 베를린시장과 미테구청장 앞으로 평화의 소녀상 철거 입장 철회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 지사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서한문에서 "베를린시가 최근 한-독 양국 시민들의 노력으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철거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저는 대한민국의 경기도민을 대표하는 경기도지사로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일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된다면, 전쟁범죄와 성폭력의 야만적 역사를 교훈으로 남겨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염원하는 한국인과 전 세계의 양심적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며 "당국의 (철거) 허가가, 일본의 노골적인 외교적 압력이 있은 뒤에 번복되는 것은 독일과 오랜 친선우호 관계를 맺어온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소녀상의 머리칼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끊긴 인연을, 어깨 위의 작은 새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 영혼을, 소녀상 옆의 빈자리는 미래세대에 대한 약속을 나타낸다"면서 "일본은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이 반일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도구라고 주장하지만 소녀상의 어떤 면을 반일주의나 국수주의라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지사는 "저는 과거사를 진정으로 사죄하고 그 책임을 철저하고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독일 정부와 국민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많은 한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책임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임을 보여주었다"면서 "하물며 사죄하지도 않는 과거를 청산할 길은 없다.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인권과 소녀상의 역사적 무게를 숙고하여 귀 당국의 철거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서한문 전문.

한편, 베를린 미테구청은 현지시간으로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지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며 "내일인 철거 시한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코리아협의회의 이익과 일본 측 간의 이익이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말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제막식 직후부터 일본 측의 반발에 시달렸다. 이에 구청은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코리아협의회에 오는 14일까지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142003336443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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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회장 된 정의선과 문재인 공정경제 상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0/15 08:19
  • 수정일
    2020/10/15 08: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그룹 계열사 이사회, 선임 근거는 있을까...‘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과 재벌들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0-10-14 19:28:17
수정 2020-10-14 20:00:1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정의선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2년 전 부회장에서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던 때처럼 새삼스럽다. 부회장인 총수 일가 직함 앞에, 수석을 붙인다고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인지, 수석부회장 명패를 회장으로 바꿔 달면 없던 권한이 생기는지 궁금하다.

20년 만에 회장이 바뀐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수년 전부터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실질적 회장이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언제 회장으로 승진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아닌지 검증했냐가 중요하다. 매출액 180조원(현대차 105조, 기아차 58조, 현대건설 17조원_2019년) 규모의 글로벌 완성차 그룹 최고경영자를 합리적으로 결정했느냐는 것이다.

현대차 발표문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는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회장 선임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적혀있다. 주식회사 주인이 주주고, 주주가 선임한 이사들이 이사회를 통해 회사의 중요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상법을 충실히 지켰다는 점을 강조 하는듯 하다.

이사회가 정말 합리적 검증을 거쳤을까. 날고 기는 세계적 경영자를 객관적 기준으로 선정하고 옥석을 가려 ‘회장 선발 최다 득점자는 정의선’이라고 결론 내린 것인지, ‘총수 일가 결정이니 우리는 그 뜻을 따른다’라고 선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지난 2018년,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제공 : 뉴시스

이사회 결정 감시할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
현대차 전근대적 지배구조 순환출자 극복 단초 될까

주주 대신 총수 일가 편을 종종 들었던 재벌 이사회를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여론은 총수 거수기로 보는 쪽이 우세하다. 상법은 이사회 활동을 감시하는 감사를 두도록 하지만, 감사 조차 총수 영향력 아래에 있어 견제 효과는 유명무실했다.

정부와 여당은 감사 역할을 복원하는 ‘공정경제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법은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원인 이사를 한꺼번에 선출하고, 이사 중 일부가 감사를 맡게 돼 있다. 대주주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사를 선출했고, 그들 중에서 감시자가 선정되니 칼끝이 무뎌지는 구조였다.

‘공정경제 상법’은 이사회를 견제할 감사는 따로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감사 분리선출제다. 이사를 한꺼번에 선출하고 이들 중에서 감사를 뽑지 말고, 이사는 이사대로 감사는 감사대로 각각 선출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이사와 감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출하는데, 감사를 따로 선출할 때는 총수 일가 등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해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반대로 소액주주의 참여 방법은 넓혀 감시 기능을 회복하자는 방안도 담겼다. 총수 일가가 좌지우지하는 이사회가 아닌 주주 뜻이 반영되는 이사회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현대차 그룹은 총수 일가 입김이 유독 강하다. 낮은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은 큰 구조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가진 현대자동차 지분을 합하면 7.9%에 불과하지만, 그룹 계열사 현대모비스의 현대차 지분이 21.4%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현대차를 지배할 수 있다.

현대차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 역시 정몽구 명예회장이나 정의선 회장이 아니다. 현대모비스 총수 일가 지분율은 7.4%로 현대차(7.9%)보다 낮지만 최대주주가 그룹사인 기아자동차(17.2%)기 때문에 현대모비스를 지배할 수 있다.

기아차 최대주주마저도 총수 일가가 아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기아차 지분이 아예 없고, 정의선 회장 지분은 고작 1.7%다. 기아차 최대주주가 현대차(33.88%)기 때문에 총수 일가는 기아차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다. 현대차 그룹엔 이런 순환출자 고리가 3개 더 있다. 한국 10대 재벌 중, 순환출자 구조를 띤 재벌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아주 낮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2020년 5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작성한 현대차그룹 소유지분도. 화살표가 복잡해 알아보기 힘들다.
2020년 5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작성한 현대차그룹 소유지분도. 화살표가 복잡해 알아보기 힘들다.ⓒ출처 : 공정거래위원회

현대차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가 ‘회장은 정의선이 아닌 홍길동으로 한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현대모비스 감사가 이사회에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그룹 회장으로 선임돼야 할 객관적 근거를 달라(상법 412조)’고 요구하면 어떨까. 순환출자 해소를 총수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한 합병을 두고 감사가 반대 소송을 제기(상법 328조)하면 어떨까. 법은 전횡을 막는 권한을 감사에게 보장했지만, 현실에선 있으나 마나 한 법 조항에 불과했다.

현대차그룹 이사회의 이번 결정을 무턱대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게 최선이었는지는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정의선 회장을 CEO로 결정한 현대차 그룹 이사회가 공정경제 상법 개정안이 무색할 정도로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를, 부질없지만 바라본다.

자동차는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화석연료에서 전기·수소로의 동력 전환, 자율주행 기술력은 향후 반세기 완성차 회사 존폐를 좌우한다. 분명한 것은, 공정경제 상법 개정안이 현대차 이사회 투명성을 높이고 총수일가 전횡을 일부나마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CEO 리스크는 낮추고 경쟁력을 올려야 한다는 과제는 현대차그룹 뿐 아니라 한국 재벌 모두의 숙제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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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고시원 탐사기]②나혼자 살다, 남몰래 죽다

고희진·오경민 기자 gojin@kyunghyang.com

 

입력 : 2020.10.14 06:00 수정 : 2020.10.14 10:05

 

 

고독사의 기록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고시원에서 전화가 왔다. 사람이 죽었으니 청소를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서울의 한 고시원이었다. 일반적인 주택이었다면 입구부터 방호복을 챙겨 입었겠지만, 이번엔 방호복이 보이지 않도록 가방 구석에 넣었다. 고시원 주인들은 고독사 청소업체가 자기 사업장에 방문하는 것을 비밀로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었다. 30대 남성이 혼자 살던 방이라고 했다. 정리되지 않은 이불과 약병들 사이로 핏자국이 조금 보였다. 약 4.5㎡(약 1평)인 방 안에 생활용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피자박스가 책상에 덩그러니 남았다. 선반 위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운동화가 보였다. 흙이 약간 묻어 있기에 ‘건설노동을 했던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센트에 충전 중인 태블릿PC의 코드를 뽑았다. 화면이 켜졌다. 만화 <데스 스위퍼(Death Sweeper)>의 한 장면이 보였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만화였다. 펼쳐진 만화책에 나열된 대사는 이랬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애당초 이 학력사회에 형처럼 공부도 잘하는 인간이 왜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업체 하드웍스를 운영하는 김완씨(47)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고시원 고독사 사례로 지난 3월 초 경험했던 30대 사망자의 방을 떠올렸다. 김씨는 “사망자는 아마도 자신이 죽은 뒤에 어떤 식으로 처리될지 만화를 보면서 미리 알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고시원 천국’ 서울, 혼자 사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고시원에서 연고 없이 사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경향신문이 서울 공영장례 지원단체 ‘나눔과나눔’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서울의 무연고 사망자 중 거주지가 고시원인 곳에서 사망한 ‘고립사(고독사)’ 사례는 총 23건이었다. 전원 남성이었고, 60대 이상이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고독사 현장을 지켜본 특수청소업체, 고시원 장기거주자, 고시원 운영자, 빈곤지원단체 활동가 등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혼자 살던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그들은 죽은 이에 대해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른다. 그저 담배 피우던 남자.’


 

고독사는 고시원의 40년 역사를 따라다닌 그림자 중 하나다. 고시원이 늘어나기 시작한 1980~1990년대는 장래를 비관한 고시생의 사망이 눈에 띄었다면, 최근에는 노년층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노인층 고독사가 많아졌다. 서울 공영장례 지원단체 ‘나눔과나눔’의 서울 고시원 고독사 사망 사례 23건 중 5060세대의 사망은 20건으로 전체의 86.9%였다.

고시원 같은 비적정주거 형태에서 일어나는 무연고 사망은 주로 쪽방 등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지가 몰려 있는 서울에서 발생한다. 올해로 13년째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며 300여건의 고시원 고독사 청소를 해온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는 “지방에는 고시원 고독사가 거의 없다. 서울은 월세가 비싸니까, 서울만 유독 고시원 고독사가 많다”고 말했다.

나눔과나눔의 자료는 단체가 자체적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서울 고시원 고독사 사례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올해 9개월 동안 고시원에서 연고 없이 사망한 이들은 23명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서울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 장소 등 현황은 각 구청에서 관리한다. 서울시는 이 중 고시원 사망자만 따로 정리해 관리하는 자료는 없다고 했다.

■ ‘칸막이룸’에 쌓였던 공부 스트레스 

고시원 발달한 1980~1990년대는
장래 비관 고시생 사망 많았지만
최근엔 중장년 이상 죽음이 많아
 

고시원의 탄생은 명확하지 않다. 1970년대부터 조금씩 생겨나 80년대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시원 광고로 본 고시원의 등장과 분포의 변화’(2020년 대한건축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수록)에 따르면, 각종 고시정보가 수록된 ‘월간 고시계’ 1972년 9월호에 명칭을 ‘고시원’으로 기재한 지방의 고시원 광고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논문에 따르면 월간 고시계에 등장한 고시원 광고 총수는 1994년 1104건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고시원 시설보수 일을 하며 업계에 들어온 박성재씨(57)도 80년대를 방을 가진 고시원이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처음부터 네모난 모양의 방은 아니었다. 박씨는 “폭 90㎝, 길이 2m짜리 독서실 책상들 사이에 나무로 된 경량 칸막이를 설치해 일명 ‘칸막이룸’을 만들었다. 천장은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며 “학생들이 낮에는 공부하다 밤이면 앉던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잠들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에는 고시원에서 학생들의 죽음이 종종 눈에 띄었다. 1990년대 초 서울 노량진에서 90여명이 생활하던 칸막이룸을 운영했던 A씨는 당시 공부하던 학생이 스트레스 때문에 숨을 거뒀던 일을 떠올렸다. A씨는 “고시원에서 데리고 있던 학생이 집에 가서 자살했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러 학생이 머물던 방을 둘러보기 위해 왔는데, 그 방에서 유서가 나왔다. ‘스트레스 받는다. 죽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많이 놀랐다. 고시원을 하며 가장 두려운 일은 학생들이 그렇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과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대학 진학이나 사법시험 등 각종 시험 준비를 위해 길게는 7~8년 이상 고시원에 머무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이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칸막이룸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는 상상하기 어렵다.

1990년대 초중반이 되자 방 윗부분까지 완전히 막힌 온전한 ‘방’ 형태의 고시원이 속속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1990년대는 고시원의 융성기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일거리를 찾아 서울에 온 도시 노동자들의 수도 급속도로 늘었다. 집은 부족했고 몸을 누일 작은 방, 고시원의 인기는 치솟았다. 박씨는 “당시 서울에는 원룸이랑 기숙사도 많지 않아 대학가 근처에서 고시원 수요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방뿐이었다. 이때까지는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없는 ‘미니룸’이 주를 이뤘다.

■ “40대, 술 먹던 남자래” 

주변 사람들은 사망자를 잘 몰라
죽는 당시에 혼자라는 것보다는
생애 전반 외로움이 문제일 수도
 

2000년대 들어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는 ‘샤워룸’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최근에는 일부 고급화한 고시원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월 10만~20만원 하는 고시원이 많고 이곳에서는 고독사가 빈번하다. 서울 노원에서 20만원대 저가 고시원을 운영하는 B씨는 “술에 절어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당뇨병 환자였는데도 술을 먹는 사람이었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오라고 했는데, 병원에 다녀와서 신발과 옷을 깨끗하게 빨아놓고 눕더니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신장애가 있는 C씨(84)는 그간 값싼 고시원과 보호시설을 전전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C씨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고시원에 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쯤이다. 현재는 서울역 인근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월 25만원을 내고 산다. 그는 얼마 전 근처 고시원에서 한 남성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C씨는 “40대 정도 되는 남자로 술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술을 많이 먹으니까 문제다. 그 고시원에서만 죽은 사람을 두 명 봤다. 뭐하며 지내던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냥 듣는 건데”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옆방 사람들이 방을 빼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숨진 이를 잘 모른다. 특히 남성일 때 더하다. 특수청소업체 하드웍스를 운영하는 김완씨는 “청소할 때, 고독사한 사람이 여성일 때는 주변 사람들이 오가며 그 사람에 대해 한두 마디씩 얘기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그러나 남성일 때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그냥 ‘담배 피우던 남자였어요’ 정도”라며 “많은 이들이 이미 죽기 전에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죽는 당시에 혼자였다기보다 결국 생애 전반에 걸쳐 겪게 되는 외로움이 정말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빈곤 문제 활동가들은 고시원 거주자의 상당수가 남성이고 고독사도 남성이 많은 이유에는 ‘여성’은 애초에 이런 공간에 머물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여성 홈리스의 경우 거처를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안전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방치된 쓰레기…좁은 공간의 비애 

고독사 예방 정책 실효 거두려면
‘쓰레기집’ 될 수밖에 없는 환경 등
주거·생활의 기초 욕구 해결돼야
 

정확한 이름을 알기 어려운 약병,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 수십개씩 쌓인 술병과 담뱃갑. 고시원 고독사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물건들이다. 김완씨는 “종종 인슐린 주사기가 눈에 띄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새별씨는 “귀한 물건은 거의 없다. 서류나 끄적여놓은 일기장과 메모장이 종종 나온다. 그런 것들을 유품으로 유족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면 유족들은 대개 싫어한다. 버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리되지 않은 고시원 고독사의 현장을 볼 때, 사람들은 흔히 사망자의 생활습관을 탓하기 쉽다. ‘정리 좀 하지’ ‘쓰레기 좀 버리지’ ‘생활습관이 좋지 못하니 주변이 불결해지고 질병에도 취약한 것 아니냐’ 등의 이야기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3월 고시원 고독사가 있었던 방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4.5㎡(약 1평) 되는 방에 1인용 침대 하나, 침대에 걸칠 수 있는 책상 겸 선반 하나가 놓였다. 침대에서 50㎝ 정도 떨어진 곳에 벽을 등지고 냉장만 되는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그 위에 선반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일반적인 고시원이라면 이런 선반도 없었겠지만, 이곳에 살던 사람은 수납을 위해 스스로 선반을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선반 위에 프라이팬, 냄비, 약병, 황도 캔, 가글병 등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사망자는 생전, 나름대로 좁지만 자신만의 집을 정리하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이리저리 수납할 곳을 찾아봤지만, 장소는 부족했고 바닥에, 책상 위에 쌓이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집은 점점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쓰레기집’이 되어간다. 한 사람이 살기에도 방이 너무 좁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노인들은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 쓰레기를 쌓아놓기도 한다. 값싼 고시원은 대개 오래된 상가건물의 4~5층에 입주한 경우가 많다.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려운 노인들은 밖에서 물건을 사오기도 어렵고 쓰레기를 외부로 내다 버리기도 힘들다. 이동현 활동가는 “일부 노인들은 고시원 총무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사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며 “쓰레기가 쌓이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독사 예방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독사 실태조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살아온 환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만 효과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망자들이 살아생전 원했던 주거와 생활 양식의 기초적인 욕구를 파악해야 하며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고독사는 늘 수밖에 없다.

지금도 현장에서 관련자들이 체감하는 고독사 증가율은 가파르다. 김새별씨는 “과거엔 고시원 고독사가 별로 없었다. 최근에 훨씬 많아졌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고독사가 많은 것 같다”며 “지난해보다도 (코로나19가 발생한) 올해에 엄청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140600015&code=940100#csidx99ed0dfee86471e8ab3b4c72198e0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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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신형 ICBM은 트럼프 북핵 외교 실패 증거?

미국 언론들, 일제히 비판적 기사 쏟아내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0.10.14 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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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당 창건 75돌(10.10) 기념 열병식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시선이 초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적 분석에서 점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외교에 대한 평가로 이동하고 있다.

<CNN>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기사에서 기존 ‘화성-15’보다 업데이트된 것으로 보이는 신형 ICBM에 주목했다. 

2017년 11월 시험발사된 ‘화성-15’는 9축 18륜 차량에 탑재되어 최대 13,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액체 연료형인데다 재진입 기술 관련 의문은 있지만,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넣은 이동식 ICBM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10일 공개된 신형 ICBM은 11축 22륜 차량에 탑재된 것으로 보아 21m인 기존 ‘화성-15’보다 더 길어졌다고 할 수 있다. 외관상 직경도 더 크고 탄두부의 모양도 달라져 다탄두 탑재형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어느 곳에든 갈 수 있는 가장 큰 액체 연료 미사일”(안킷 판다), “11축의 거대한 액체연료 다핵탄두 탑재형”(멜리사 한햄), “‘화성-15’보다 훨씬 크고 북한의 어느 무기보다 더 파워풀한 새로운 액체연료 ICBM”(해리 카지아니스)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뉴욕타임스>도 10일자 기사에서 북한이 “역대 최대의 ICBM”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크기로 보아 ‘화성-15’보다 더 멀리 나가고 더 강력한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이 미사일이 시험발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실제 운용 가능한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멜리사 한햄은 북한의 신형 ICBM이 복수의 핵탄두 탑재 능력을 가졌거나, 전문가들이 흔히 “침투 도우미”라고 부르는 요격미사일을 혼란시키는 채프나 반사풍선과 같은 미끼용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인터넷신문 <복스>는 13일 기사에서 “북한의 새롭고 위험스러운 무기 공개가 한 가지를 분명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위협을 어겢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만난 북미 정상들. [사진출처-백악관 트위터]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만난 북미 정상들. [사진출처-백악관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이 3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아첨하는 친서를 보내며 핵.미사일 폐기를 설득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실제로는 어떤 진전도 없고 “문제가 악화되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복스>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퍼레이드에 대해 진짜 화났고 (김정은에게) 정말 실망했다”고 측근에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다만 북한이 신형 ICBM이나 핵장치를 시험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입장을 바꿀 것 같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포스트>는 13일자 사설에서 “북한의 괴물같은 신형 미사일은 그 정권 봉쇄에서 트럼프의 실패를 상기시킨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확실히 그 미사일은 아직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퍼레이드에 나온 것은 단지 외관일 뿐이다. 그것이 작동한다고 해도 선제타격에 취약할 수 있다. 그 미사일이 액체연료에 의존하는데다 그 크기 때문에 쉽게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이동식 ICBM이 북한에 등장했다는 것은 트럼프가 그 정권의 핵 프로그램과 미국에 가하는 위협을 제거는커녕 봉쇄하지 못했다는 생생한 증거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저녁 플로리다주 샌퍼드 유세에서 자신이 전쟁을 막았다고 거듭 대북 외교의 성과를 내세웠다. “우리가 김정은과 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전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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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과 그 아류들의 철옹성 강타한 일대 사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0/14 09:49
  • 수정일
    2020/10/14 09:4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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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 30] 언론개혁의 길을 묻다 (2)

본문듣기 등록 2020.10.14 08:22 수정 2020.10.14 08:22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은 1960년대 이래 권력과의 유착 관계, 일체 관계 속에서 독과점 기업으로 성장한 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무한 경쟁을 통해 소유집중과 세습경영을 구조화했다. 이른바 '황제 경영'이 자리 잡은 것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 <br style="box-sizing: border-box;"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어느덧 권력화한 일부 언론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넘어 적대 관계에까지 나아갔다. 이제 한국의 언론(신문)은 정권 위에서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성향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언론의 권력기구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2002년에 발간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구서 '편집권의 독립, 반세기의 고민' 194쪽에 나오는 글이다.
 
권-언 유착으로 고속 성장... 조·중·동 독과점 굳혀
 

▲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이 연구서가 나온 당시는 신문이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조·중·동의 독과점이 강력하여 여론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으며, '조선일보 없는 세상'을 꿈꾸던 '안티 조선' 운동도 활발했다.
 
조·중·동은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여러 가지 특혜를 바탕으로 고속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후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약탈적 판매전을 치르며 크게 성장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조·중·동은 여론시장을 압도했다.
 
박정희·전두환 군부 정권은 언론 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에게는 해직과 같은 채찍을 휘두르는 반면, 언론사 사주들에게는 커다란 당근을 주었다. 그러잖아도 태생적으로 권력에 굴종해온 사주들은 이런 당근으로 군부 권력에 더욱 밀착하게 되었다.
 
박정희 권력이 신문사 사주들에게 베푼 대표적인 특혜 사례로는 신문사의 외국 차관 도입을 허용한 것이다. 당시 국내 금리는 연 26%였는데 외국 차관은 7~8%에 불과했다. 박정희 권력의 허락 없이는 차관 도입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차관을 허용받는다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특혜였다. 아래 표는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전후한 시기에 이뤄진 주요 신문사들의 차관 도입 현황이다.
                                          

ⓒ 고정미

 
전두환 정권에서 폭발적 성장
 

▲ 중앙일보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겼다. 사진은 중앙일보 상암 사옥. ⓒ 중앙일보


전두환 정권에서 언론사들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은 한편으로 대규모 언론인 숙청과 언론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아 있는 기자들과 언론사에 대해서는 여러 특혜를 베풀었다. 기자들에게는 자녀 학자금 지원, 주택 자금, 생활 안정 기금을 융자해주고 해외 연수, 해외 시찰의 기회도 크게 늘렸다.
 
이 기간 동안 기자들의 월급도 엄청나게 올랐다. 1979년 11월 기자협회에서 조사한 기자들의 임금수준은 대기업의 50%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80년 중반부터는 대기업을 훨씬 웃도는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러한 높은 급료와 여러 가지 사회적 혜택은 기자들의 현실 안주와 보수화를 촉진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 <br style="box-sizing: border-box;" />기자들뿐 아니라 통폐합에서 살아남은 언론사들도 각종 특혜 속에 비대해져 갔다. 경기 호황 국면에 힘입어 광고 물량은 4배나 늘었지만 통폐합으로 언론사가 줄어드는 바람에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br style="box-sizing: border-box;" />- <한국언론 바로보기>(2000, 다섯수레) 524~525쪽
 
전두환 정권 때 3저 현상(낮은 금리, 낮은 유가, 낮은 환율)과 함께 온 경제 호황에 신문사들은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을 하면서 몰려오는 광고를 싣기에 바빴고 이에 맞춰 윤전기 도입도 서둘렀다. 전두환 정권은 신문사의 윤전기 도입 때 관세를 20%에서 4%로 크게 인하해주는 특혜도 잊지 않았다. (위의 책 525쪽)
 
언론 통폐합으로 경쟁 언론사의 숫자는 줄어든데다 특혜와 호황이 함께 오면서 언론사들은 고속 성장의 페달을 밟았다. 특히 조·중·동의 성장은 눈부셨다. 1980~1987년 사이에 조·중·동의 매출액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조선일보의 매출액은 1980년의 161억 원에서 1987년 690억 원으로 428%, 같은 기간 중앙일보는 214억 원에서 830억 원으로 387%, 동아일보는 265억 원에서 710억 원으로 267%의 고도성장을 보였다.
 
과거 언론개혁의 핵심은 조중동 독과점 해체
 

▲ 서울 종로구 서린동 동아일보사. ⓒ 권우성

 
이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이후 신문 시장에서 약탈적인 판매전까지 치르면서 조·중·동은 여론시장에서 막강한 독과점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와 이후 상당 기간 이 땅 언론개혁의 핵심 과제는 어떻게 하면 조·중·동이 장악한 여론의 독과점 카르텔을 해체하고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신문 고시, 정기적인 언론사 세무조사 등이 시도되기도 했다.
 
조·중·동 카르텔의 행적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듯, 철저하게 기득권 중심, 강자 중심, 자본 중심의 논리에 따르며, 민족의 화해·협력보다는 대립과 증오, 냉전의 논리가 압도해왔다. 그래서 기득권과 강자, 자본, 냉전의 논리를 지키려는 군부 독재와 수구 정권에 대해서는 친화적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민주개혁 세력이 집권한 정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그런 행태는 조·중·동의 세습 구조와 세습 사주가 갖는 절대 권력의 생리와 이들 자본의 속성을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조·중·동 셋이 1면 기사와 편집에서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사설과 칼럼 등에서도 같은 논리를 펴온 것도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다. 일란성 세 쌍둥이여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때로는 동아·중앙이 조선의 아류가 되어 열심히 따라가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만약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그래서 인터넷, 유튜브, 팟캐스트, SNS 같은 뉴 미디어 없는 세상이었다면, 거대 자본 없이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그래서 조·중·동과 그 아류들의 철옹성 세계는 마냥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만든 의제와 프레임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우리 공동체 삶의 토양은 지금보다 더 심하게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디지털 혁명도 그 뒤에는 빛과 그림자, 우리 공동체에 선한 작용과 나쁜 작용을 함께 가져왔다. 조·중·동에 집중되어 있는 언론권력을 분산시키면서 조·중·동 카르텔을 무너트리고, 기성 언론의 일방적 권력 행위에 타격은 입혔는데, 가짜뉴스와 악플, 증오와 저주, 절제와 품격 잃은 언어들이 난무하는 터전이 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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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프리패스...우리은행 '청탁명부' 아십니까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프리패스인 금융감독원 임원 카드

 

우리은행 채용에서 '금융감독원 임원 카드'는 거의 '프리패스'였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법에 의해 시중은행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다. 우리은행은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를 위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채용비리를 저질렀다. 이상구의 딸, 조카, 지인 등 총 3명이 3년에 거쳐 우리은행에 부정채용됐다.

 

이들은 서류 혹은 1차 면접 전형에서 탈락자였지만, 합격자로 조작했다. 그 과정에서 합격권에 있던 다른 지원자가 탈락하기도 했다.

 

이 부정채용은 이광구 은행장-인사부장-인사팀장 등의 조직적인 공모로 이뤄졌다.

 

대법원은 우리은행 책임자들의 채용비리 혐의에 대해 올해 3월 유죄를 확정했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의 조카, 지인은 여전히 우리은행에 다니고 있다.


 

우리은행 '합격자 바꿔치기'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 고위 공직자나 주요 고객의 자녀·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의 조카 신OO 씨는 2015년 8월, 우리은행 신입행원 채용에 지원했다.

 

이상구는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금융감독원에서 은행·비은행 검사담당 부원장보를 맡았다. 그는 우리은행을 포함해 시중은행에 대한 검사·감독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해 우리은행 신입 사원 지원자는 약 1만4500여명. 채용과정은 서류전형-1차 면접-2차 면접 총 3단계였다. 지원자의 학력, 전공 및 연령 제한은 없었다. 당시 우리은행은 '탈스펙, 열린 채용'을 내세웠다.


 

이상구는 2015년 9월께, 대학 후배인 우리은행 이OO 부장에게 연락했다.


 

"내 조카 신OO이 우리은행에 지원했네.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해주게나. 잘 부탁하네."

이 부장은 후임 홍OO 인사부장에게 이상구의 말을 전했다.


 

홍 부장은 '청탁명부'를 작성해 이광구 우리은행장에게 보고했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두 가지 버전의 '청탁명부'를 작성-관리했다. 

이광구 은행장이 청탁한 지원자들 명부와, 외부 청탁자-은행 직원 친인척 명부를 별도로 구분해 작성했다. 이광구 은행장과 인사팀은 이 명부를 내밀하게 공유하고, 채용 절차 직후 파기했다.


 

이상구 조카 신OO은 청탁명부에는 들어갔지만, 서류전형에서 점수가 미달돼 불합격 대상으로 분류됐다. 그의 학점은 2.58점. 우리은행 자체 학점 필터링 기준(3.0점)에 미달했다.


 

우리은행은 학점, 나이, 자기소개서 글자 수 등을 기준으로 자체 '필터링'을 설정해 서류전형 단계에서 지원자를 걸러냈다. 

홍 인사부장은 신 씨의 불합격 사실을 이광구 은행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이 행장은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금융감독원이) 감독기관이라서 유대관계에 있는 게 좋습니다. 면접 기회를 줍시다. 합격시키세요."

 

이 행장은 청탁명부상 신OO의 합격안 부분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우리은행 인사팀은 서류전형 중 기존에 합격권 안에 있던 지원자를 탈락시키고, 신 씨를 합격자로 조작했다. '합격자 바꿔치기'였다.


 

인사팀은 2015년 10월 7일께 신OO을 서류전형 합격으로 작성한 '합격자 품의서'를 작성하고 결재를 받았다. 이상구의 조카 신OO 씨는 2015년 신입행원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


 

▲ 금융감독원 ⓒ남궁현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의 딸 이OO도 2017년 우리은행 개인서비스 직군(은행텔러) 채용 과정에서 부정한 혜택을 받았다. 이 씨는 1차 면접 점수 미달로 불합격 대상이었지만, 점수 조작을 거쳐 합격했다.


 

이때도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직접 지시를 했다.


 

"2차 면접 기회를 주고, 합격시킵시다."


 

이 행장은 청탁명부상 지원자 이OO의 합격안 부분을 펜으로 동그라미 쳤다. 이걸로 끝, 이상구의 딸은 우리은행 직원이 됐다. 

2016년 신입행원 채용 지원자 감OO 씨도 이상구 덕을 봤다. 당시 감 씨는 서류전형 점수미달로 불합격 대상이었다.

 

또 이광구 은행장이 나서 감 씨 합격을 지시했다. 감OO 씨는 2016년 신입행원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재판장 이재희)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행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올해 1월 선고했다. 이 전 행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됐지만,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이 전 행장의 채용비리 혐의가 인정된다며, 2심과 똑같은 형을 올해 3월에 확정했다.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피고인들이 저지른 이 사건 범행은 채용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하고 채용절차에 성실히 임한 많은 우리은행 지원자들과 이를 지켜본 많은 취업준비생들에게 크나큰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우리은행 정도의 금융기관은 인사채용 업무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리라고 기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3심 확정 판결 이후 7개월이 지난 현재, 부정입사자들은 어떻게 지낼까? 이상구 조카 신OO과 감OO은 아직 우리은행에 다니고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부정입사 채용 취소' 계획 여부를 우리은행에 물었다. 우리은행은 이렇게 답했다.

 

"부정입사자 본인이 채용 과정에 적극 관여한 경우가 아니면 채용 취소가 어렵습니다.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도 우리은행 채용비리 사건 이후인 2018년 6월 18일에 최초 시행되어 (소급) 적용이 어렵습니다."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 제31조에 따르면, 지원자가 부정한 채용청탁을 통해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은행은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


 

▲ 우리은행 ⓒ셜록
 

우리은행은 피해자 구제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 및 법원 판결에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피해자 구제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부정한 청탁으로 강원랜드에 채용된 사실이 드러난 직원의 해고 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다"면서 "이는 현행법상으로도 충분히 부정입사자를 퇴사시킬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관련 1심 판결문에도 "우리은행은 은행이 부실화되거나 금융위기가 발생할 시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하는 등 국가로부터의 감독과 보호를 동시에 받는 금융기관"이라고 명시하며 우리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 구제에 대해 "우리은행 측이 자료를 폐기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면, 공고를 내서라도 피해자를 알아내 시험 기회를 줘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 구제가 현행법상 배임 등의 문제가 되는 일도 아닌데, 피해자 특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는 건 해결 의지가 없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형을 마치고 나온 이광구 전 은행장은 현재 우리은행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2017년 은행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광구 전 행장은 '윈피앤에스'라는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의 연봉은 2억8000만 원. 회사에서 차량과 운전기사도 제공받는다. '원피앤에스'는 경비 용역, 사무기기 관리 등을 중점으로 하는 회사로, 우리은행 행우회가 지분 100%를 출자한 업체다.

 

채용비리 핵심 청탁자 이상구 금감원 전 부원장보도 여전히 은행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이상구는 '사내 변호사 채용비리'에 연루돼 2016년께 금감원을 퇴사했다.


 

그는 현재 은행 전담 고용알선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신한은행에도 아들의 채용을 청탁한 이력이 있다. 그 아들은 현재 신한은행 직원이다.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8월 13일 이 씨의 근무지를 찾아갔다. 외근을 나간 이 씨를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에게 문자로 "금감원 검사담당 부원장보로서 우리은행에 조카와 딸 등을 채용청탁한 게 정당한 행위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 답장을 보냈다. 

"연락하지 마세요."


 

그의 조카, 부정 입사자 신OO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는 "이상구의 채용 청탁 사실을 알고 우리은행을 입사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이상구를 알지 못하고, 지금은 업무 중이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상구를 배경으로 입사한 감OO에게도 전화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다"면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채용비리로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 부정하게 입사한 사람 모두 우리은행 혹은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2020년 10월 현재, 우리은행은 신입사원 공개 채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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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131623299383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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