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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 긴장하라” 진보정치 선명성 강조한 정의당 새 대표 김종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0/10 09:54
  • 수정일
    2020/10/10 09: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민에게 정의당 지지 호소 “보내주는 사랑에 ‘복지 국가’ 선물로 화답하겠다”

김도희 기자 doit@vop.co.kr
발행 2020-10-09 19:40:51
수정 2020-10-09 20: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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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6기 당 대표 선출 선거 결과 발표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6기 당 대표 선출 선거 결과 발표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뉴시스/공동취재사진  
 
정의당 신임 대표에 김종철 전 선임대변인이 9일 선출됐다. 김 신임 대표는 당선 일성에서 “거대양당이 정의당이 내놓는 의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김종철, 배진교 후보를 대상으로 진행한 6기 당 대표 결선투표 결과 김 후보가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총 선거권자 2만 6,578명 중 1만 3,588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김 후보는 7,389표(55.57%)를 획득해 승리했다. 배 후보는 5,908표(44.43%)를 얻었다. 투표는 지난 5~8일 온라인 방식과 이날 낮까지 진행한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이뤄졌다.

심상정 전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 대표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사회, 폐지를 줍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노인이 사라지는 사회, 실질적 성 평등이 구현되고 청년의 자립이 보장되는 사회,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정의당은 기본자산제, 소득세 인상을 통한 강력한 재분배, 지방행정 구역 개편과 과감한 농촌투자를 통한 국토 균형 발전 등 국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의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관철시켜 낼 것”이라며 국민에게 “진보정당 정의당이라는 보험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김 대표는 “따뜻한 사랑과 지지라는 보험료를 내주시면 정의당은 복지국가라는 선물로 화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또 “지금까지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양당이 만들어놓은 의제에 대해 평가하는 정당처럼 인식됐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갈 것”이라며 여러 가지 정책, 의제들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 대표는 “제가 그것을 꼭 해낼 것이다. 양당은 긴장하길 바란다”고 예고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김 대표는 지난 1999년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표 비서로 진보정당 활동을 시작해 진보정치 외길을 걸었다.

김 대표는 2002년 민주노동당 공천을 받아 서울 용산구청장에 출마했고, 2006년에는 36살 당시 최연소의 나이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뒤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으로 나선 김 대표는 당에서 대변인, 부대표 등으로 활동하다 2015년 정의당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고(故) 노희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일했고 윤소하 전 원내대표 비서실장도 역임했다. 최근까지는 당 선임대변직을 맡아 당내에서 두터운 소통 관계를 맺고 있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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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토부, ‘KTX·SRT 경쟁에 매년 559억 낭비’ 보고 받고도 용역 중단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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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진전 없는 ‘코레일·SR 통합’…‘철도 공공성 강화’ 빈말 되나
ㆍ박상혁 의원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 중간보고서 분석
ㆍ“통합 논의 3년 용두사미 우려…‘대선공약’ 포기 의구심”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고속철도 경쟁운영체제 때문에 연간 수백억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2018년 10월 이 같은 결과를 보고받았지만, 곧바로 해당 연구용역을 중단시켰다.

용역 중단 형식을 빌려 사실상 최종 보고서 공개를 막은 것이어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철도 공공성 강화 정책의 핵심 과제를 뒤집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 중간보고서를 보면 고속철인 KTX(한국고속철도)와 SRT(수서고속철도)가 별도로 운영되면서 매년 559억원의 거래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TX와 SRT를 각각 운영하고 있는 코레일과 SR의 지배구조와 계약 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비용으로, 보고서는 현재의 경쟁구조로는 정부의 재정 투입 확대나 운임 현실화 없이 철도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 철도산업 규모가 경쟁을 할 만큼 크지 않고, 고속철에서 발생한 이윤이 철도산업의 부채 상환으로 이어지지 않고 SR의 배당금 등 외부로 빠져나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한 코레일·SR 경쟁체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근거로 두 기관의 통합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해당 보고서는 정책 반영은 물론 국회의원들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공개조차 되지 못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연구팀은 2018년 10월31일 국토부를 방문해 이 같은 내용을 중간보고했고, 곧바로 11월 초 용역을 일시 중단해달라는 지시가 구두로 국토부에서 내려왔다. 이는 2018년 12월 강릉 열차 탈선사고로 철도 안전 부문을 추가 고려한 종합적 연구가 필요해 해당 용역을 중단시켰다는 정부의 해명과도 배치된다. 정부는 이어 약 1년 뒤인 2019년 10월 예고 없이 용역사업 재개를 요청했다가, 불과 2개월 만에 다시 용역계약을 일방해지한 뒤 사업을 완전 종료했다.

연구용역이 중단되고 후속 연구도 발주되지 않으면서 코레일·SR 통합 사업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첫발을 내딛기도 어려워졌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는 ‘철도 공공성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면서 코레일·SR 통합에 불을 지핀 바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2017년 6월 인사청문회에서 SRT 통합과 철도 공공성 강화 입장을 표명했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일단 내년에 완성되는 ‘제4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2021~2025)’에서 해당 문제를 종합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본계획 확정 후 불과 반년 뒤에 차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추진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게 철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상혁 의원은 “코레일과 SR의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났고, 통합 연구용역이 진행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연구용역이 해지된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철도 공공성 강화가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결국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정부가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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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WTO사무총장 최종후보 막전막후, 문 대통령 있었다

20분간 전화 "강점 살려 성공하길,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달라"... 전방위 지원외교

20.10.08 17:40l최종 업데이트 20.10.08 19:16l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1차 라운드를 통과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27일 오전 2차 라운드 선거운동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유럽으로 출국하고 있다. 유 본부장은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와 스웨덴을 방문해 WTO 회원국을 대상으로 지지교섭 활동을 벌였다.
▲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1차 라운드를 통과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27일 오전 2차 라운드 선거운동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유럽으로 출국하고 있다. 유 본부장은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와 스웨덴을 방문해 WTO 회원국을 대상으로 지지교섭 활동을 벌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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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결선)에 진출한 유명희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전화 통화하고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오후 3시부터 3시 20분까지 유 본부장과 통화하면서 "어려운 여건에서 선전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그의 최종 라운드 진출을 축하했다.

앞서 AFP,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WTO 사무국의 공식 발표(현지 시각 8일 오전)를 앞두고 유 본부장과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WTO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다고 보도했다. 최종 후보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25년의 WTO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무총장의 탄생을 앞두게 됐다. 최종 라운드 결과는 오는 11월 7일께 나올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후보의 경력이 훌륭하지만 유 본부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으니 상대적 강점을 살려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며 "대통령이나 우리 정부나 어떤 부분에서 지원 노력을 해야 할지 의견이 있으면 달라"라고 요청했다.


이에 유 본부장은 "대통령이 앞장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격리기간이 끝나면 찾아뵙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라고 화답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다리를 놓은 후보 내세운 게 주효"

이에 앞서 이날 아침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제일 큰 고비가 남아 있다"라며 "여기까지 온 이상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어 "다자무역체제 발전과 자유무역질서 확대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총력을 기울여 지원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했다.

강민석 대변인은 "사실 대통령 말씀대로 여기까지 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며 "유 본부장이 출마를 선언한 것이 지난 6월 24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망이 불투명했다"라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하지만 유 본부장은 물론 정부는 판세를 낙관하지도 않고, 비관적으로 판단하지도 않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라고 전했다. 

지난 1995년과 2013년 각각 김철수 전 상공부 장관과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에 도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출신으로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사람은 유 본부장이 처음이다.

유 본부장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원동력과 관련, 강 대변인은 "1차적으로 후보인 유 본부장의 분투가 있었음은 물론이다"라며 "유 본부장은 세 차례의 유럽 방문과 미국 방문을 통해 현지에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유일한 현직 장관급 후보라는 강점을 살려 화상 등을 통해 각국 장관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라고 유 본부장의 노력을 소개했다.

강 대변인은 "한 외신보도에 의하면 유 본부장은 미국과 중국,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분열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본인을 다리를 놓는 후보로 내세웠다고 한다"라고 "이런 점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WTO 사무총장 입후보, 문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사회서비스원 돌봄종사자들과 영상 간담회를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사회서비스원 돌봄종사자들과 영상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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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유명희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에 도전한 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고, 도전을 공식 선언한 이후에는 문 대통령의 친서·정상통화 등의 전방위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민석 대변인은 "사실 WTO에 우리나라가 후보를 내기로 한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다"라며 "입후보 얘기를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처음으로 제안했고, 유 본부장이 출마를 결심하고 공식 출마선언을 한 이후에는 지원과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유 본부장이 1라운드(9월 24일)를 통과하기 전인 지난 9월 19일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김상조 정책실장이 "전략적 움직임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주요국의 의사결정 전에 조속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건의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친서뿐이 아니라 필요한 나라와는 통화도 하겠다"라며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말라"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 35개국 친서-5개국 정상통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35개 나라에 친서를 보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5개국 정상과 통화했다.

친서와 정상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자유무역질서 속에서 성장해 왔고, 다자무역체제의 발전이 WTO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라며 "유 본부장이야말로 WTO의 기능을 더 강화하고 회복력과 대응력을 갖춘 기구로 만들기 위한 적임자다"라고 역설했다고 강 대변인이 전했다.

강 대변인은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 통화를 한 지 며칠 뒤 EU(유럽연합)가 유 후보자와 나이지리아 후보를 밀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뿐 아니라 박병석 국회의장,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최고위급 지원 외교에 나섰고, 결국 유 본부장이 최후의 2인으로 진입하는 결과가 나왔다"라고 정부의 총력전을 전했다. 

강 대변인은 "하지만 대통령 말씀대로 제일 큰 고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판세를 낙관하거나 결과를 예단 또는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정부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자세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겸허히 결과를 기다리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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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분노 "임신 14주 이내 낙태 허용은 기만이다"

여성계, 정부 입법예고안에 강력 반발...1인 시위 예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는 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입법예고안은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라"고 촉구했다.

 

허용요건 신설은 '처벌'을 전제하는 것...여성의 권리는 '조건부'가 아니다

 

이들은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조항을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으로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형법 제269조 1항은 임신중지한 여성을, 제270조 1항은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료인을 처벌한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형법 제270조의2에 '허용 요건'을 신설해 "임신 14주 이내에 의사에 의해 의학적으로 이루어진" 임신중지는 처벌하지 않는다.


 

모낙폐는 이 조항에 대해서도 "처벌이 전제됐다"며 비판했다. 이들은 "여성의 건강권과 평등권, 자기결정권을 온전한 헌법상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입법예고안대로라면 여서의 권리는 국가의 허락에 의한 '조건부' 권리가 된다"라며 "합법과 불법을 임의적인 주수 기준으로, 여성의 성과재생산의 권리를 위계화하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권리가 아닌 의무에 불과한 상담 절차로 가르고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임신 주수에 따른 구분에도 "실효성 없는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여성계는 줄곧 "임신 주수에 따른 허용 시기의 구분이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임신 당사자의 진술과 초음파상의 크기 등을 참고해 '유추'되는 것일 뿐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해왔다.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도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한 판단은 개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간과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모낙폐는 "14주, 24주 등의 주수에 따른 제한 요건은 단지 처벌 조항을 유지하기 위한 억지 기준"이라며 "주수에 따른 허용 조항을 삭제하고 임신 기간에 따라 안전한 임신중지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보건의료 인프라 마련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의무 상담·숙려기간은 국제사회에서 폐지하는 추세


 

이들은 입법예고안의 '상담과 숙려기간'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임신중지가 허용되는 14주를 지난 뒤, 14주에서 24주 사이로 추정되는 시기에 임신중지를 하려면 특정한 사유를 충족해야 하고 그 사실을 사담기관을 통해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24시간의 '숙려기간' 후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다.

 

여성계는 이와 같은 상담과 숙려기간 의무 조항에 대해서도 "임신중지 결정을 돌이키거나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도 같은 이유로 2015년 숙려기간 규정을 폐지했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의무적인 숙려기간 없이, 사담은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받도록 하고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페위원회, 유엔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학회 등에서도 "이는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는 규제"라며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모낙폐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고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상담의 의무화가 아니라 내용과 기준이 중요하다"며 "명확한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정보, 상담가 개인의 종교적 입장을 강요하는 태도, 임신당사자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상담 등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하며 이러한 내용이 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의 '진료거부권'은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


 

모낙폐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예외적으로 인정한 '의사의 진료거부권'도 비판했다. 모낙폐는 "이는 사실상 안전한 보건의료 환경에 대한 여성의 접근권을 크게 제약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상담과 숙려기간을 거쳐서야 의료기관을 찾아가게 되는데 여기서 의료인이 거부할 경우 다시 상담기관으로 연계된다. 모낙폐는 "현재 산부인과의 지역별 격차도 매우 큰 상태에서 여성들은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며 "임신한 여성이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다른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경우, 상담기관과 의료 기관의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 관련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경우에는 이와 같은 제약은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건강권을 크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도 의료인의 거부권을 인정한 곳에서는 임신중지를 시행하는 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의 인력난과 재정난에 더 큰 부담이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행해 왔다"며 "이에 2018년 10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일반논평 36호를 통해 '의료제공자의 거부 행위를 포함하여 안전한 임신중지 접근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장벽을 철폐하라'고 권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의료진 교육과 보험 적용, 보건의료 체계 및 인프라의 전면적인 재정비 등과 같은 실질적인 조치"라며 "새로운 낙인과 허용의 기준이 아닌 임신중지와 유지, 출산과 양육 전반의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지원 사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고 주장했다.


 

모낙폐는 이날부터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081658125555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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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조폭’에 비유, 노동자 탄압하지 않아 ‘정치경찰’이라는 김용판

김용판의 황당한 요구 “경찰청장은 민노총을 척결하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10-08 19:44:03
수정 2020-10-08 19:44:0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
2020년 국정감사에서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기타  
 
8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 출신의 한 야당 의원이 지난 5·7월의 상황과 8월 15일 광화문 집회 이후 상황의 차이점도 고려하지도 않고 일부 노동시민사회단체에 대한 혐오만 앞세워 경찰의 집회관리를 비난했다.

경찰공무원 출신의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병)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본 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조폭’을 척결하면서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던 ‘공권력이 무너지면 법질서가 무너지고, 법질서가 무너지면 사회적 약자 순으로 피해를 보며, 나쁜 자 순으로 덕을 본다’는 말을 기억하나”라고 물었다.

이어 극단적인 영상 하나를 보여주며 “누가 공권력을 무너뜨리고 있나. (10월 3일 개천절 날) 드라이브 스루에 참여했던 일반 국민인가, 아니면 시위 중 경찰폭행을 다반사로 일삼는 ‘문재인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라 자처하는 민노총인가. 민노총이라는 게 명약관화(明若觀火,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함)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참고로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를 창출한 일등공신이라고 자처한 적이 없다.

또 김 의원은 “경찰에 수사권이 주어지면 정치경찰이 되기 쉽다고, 위험해진다고 비판해 왔다”며 “그런데 김 청장은 이번 광화문 집회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수많은 국민들에게 그 비판이 옳다는 믿음을 줬다는 걸 아나”라고 물었다.

전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집회·시위에 나섰던 노동단체를 과거 일부 상황만을 예로 조폭과 동일하게 규정하며, 김 청장이 정치경찰의 행태를 보인다는 비난을 일삼은 셈이다. 최근 민주노총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부터 조합원과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회·시위 계획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고 있다. 김 의원이 보여준 극단적인 영상은 민주노총을 비판하기엔 적절하지도 않은 자료인 것이다.

 

김 청장이 침묵하자, 김 의원은 “지난 7월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차량시위와 지난 5월 광주민주화운동단체 주도의 차량행진은 길을 터주는 등 관대하게 다뤘다”라며 “이런 친정부 측 집회엔 한없이 관대한 행태를 보인 경찰이 10월 3일 집회엔 호랑이처럼 대처하는 것을 보고 수많은 국민은 실망하면서 분노하고 신뢰를 거두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김 의원의 주장은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대응 원칙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극우단체의 무리한 광화문 집회(8월 15일)가 열리기 한참 이전인 5월과 7월엔 경찰이 집회·시위를 금지통고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이번과 다르게 광화문 일대에 대한 방역당국의 집회·시위 일체 금지 행정명령도 없었다. 심각함의 분위기도 다르고 방역당국의 행정명령도 없는 상황에선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게 경찰의 역할인데,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은 5·7월 있었던 차량시위의 성격조차 반대로 왜곡해서 자신의 주장에 끼워 맞췄다. 김 의원 주장과는 반대로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시위는 친정부적 시위가 아니라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08
김창룡 경찰청장이 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08ⓒ김철수 기자

김용판 의원은 김 청장에게 민주노총을 탄압하라는 황당한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는 “10월 3일 드라이브 스루 봉쇄는 참 잘했다. 입체적으로 잘했다. 그렇게 봉쇄한 의지를 적폐 중 적폐라 할 수 있는 민노총의 불법행태 척결에 기울여 줄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며 “그렇게 할 수 있겠나. 어떻게 하면 강력히 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방안을 말해보라”고 했다.

김 청장은 “우선 저는 청문회 때부터 법과 질서를 공정하게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전국 경찰과 함께 각별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광화문에서 집회 차단·제지는 일차적으로 불법집회이고, 집회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을 때 8·15 집회에서 확인했듯이 전국적으로 코로나가 다시 확산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위험을 제공하기에 국민의 안전·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주변 상인·주민들의 불편이 있었다는 점, 검문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점이 있었다면 그 부분을 충분히 개선하여 한글날 집회를 대비하겠다”고 했다.

또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차량시위는 7월 25일이었고, 그 당시엔 방역당국에서도 집회금지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금지통고하지 않은 것”이라며 “지금은 서울 시내에서 10인 이상의 집회는 금지돼 있고, 종로·중구·노원 등은 일체의 집회·시위가 금지돼 있기에 사정이 다르다”라고 김 의원이 왜곡하는 부분을 애써 반복해서 설명했다.

김 청장은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집회의 대상 법 집행의 대상이 누구인지 등을 구분하지 말고 동일한 기준에서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그게 경찰이 인정받는 기준이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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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서울병원, 삼성 계열사에 2년새 2600억 일감 몰아줬다

등록 :2020-10-08 04:59수정 :2020-10-08 09:26

 

전산시스템·보안 물론 급식까지
전체 외주의 78% 계열사 맡겨
정부 보고 않는 ‘기타용역’ 분류
장부상 적자 4년간 법인세 ‘0원’
면세·계열사 지원 일석이조 효과
고영인 의원 “회계감사·수사 필요”
병원쪽 “필수 분야만 계열사 거래”
삼성서울병원이 외주용역비 명목으로 2019년도에만 계열사에 1400여억원의 일감을 수의계약 등의 형태로 몰아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삼성서울병원이 외주용역비 명목으로 2019년도에만 계열사에 1400여억원의 일감을 수의계약 등의 형태로 몰아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삼성서울병원이 최근 2년 동안 전산시스템 관리, 시설 운영 및 보안, 급식 등의 용역을 삼성그룹 계열사에 몰아줘 2천억원대의 비용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이사장 이재용)이 운영하는 삼성서울병원은 2018~2019년 삼성생명보험과 식음 브랜드인 삼성웰스토리, 에스원, 삼성에스디에스 등 24개 계열사에 모두 2666억원을 외주용역비로 지출했다. 2019년은 전체 외주용역비 1789억원 가운데 계열사에 1412억원, 2018년은 1737억원 중에 1254억원이 계열사에 지급됐다. 이 병원이 2019년 계열사에 지급한 외주용역비는 병상 수가 400여개 더 많은 신촌세브란스의 전체 외주용역비 827억원보다 585억원 더 많다. 고영인 의원은 “삼성서울병원은 계열사에 지불한 외주용역비를 보건복지부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기타 항목으로 분류해 회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 것을 감추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또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4년 동안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이익을 축소해 법인세를 적게 납부한 의혹 등으로 2017년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다. 전필건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은 “다른 대학병원들은 이익을 전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설정한 뒤 장부상 순손실로 처리해 면세 혜택을 받고 있는 데 반해, 삼성서울병원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면세와 계열사 지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병원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건강보험재정으로 유지하는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특히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2170억, 지분율1.05%), 삼성생명(3248억, 지분율 2.18%) 등 5천억원대의 삼성 관련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7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 단원갑)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인 의원실 제공
7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 단원갑)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인 의원실 제공
 

삼성서울병원의 외주용역 관련 행태가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삼성 계열사들은 경쟁사업자의 진입 우려 없는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를 통해 사업 기반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재무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강화하게 되므로 경쟁사업자에 비해 경쟁조건이 유리하게 된다”며 “공정거래법상 부당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도 “같은 대기업 소유 대형병원과 비교해도 200배가 넘는 외주용역비를 계열사에 지급한 것 자체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짙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서울병원의 수상한 회계에 대한 감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또한 “삼성에스디에스와 삼성서울병원은 국민 1천만명 이상의 의료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의 원격진료까지 넘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삼성이 보유한 공익재단은 사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쪼개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회적 의심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서울병원을 부당 계열사 불공정거래, 헬스케어사업 전초기지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운영의 특성상 효율성과 보안성이 요구되는 일부 분야에서 삼성 계열사와 거래하고 있으나, 계열사와의 거래에 있어서도 정상가격으로 거래를 하고 있으므로 공정거래법 위반은 아니다”라며 “지출 내용 면에서도 삼성생명은 건물 임차료, 웰스토리는 직원 및 환자식, 에스원은 시설 운영 및 보안, 에스디에스는 병원 정보시스템 개발 및 관리료 등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4881.html?_fr=mt1#csidx313babbb2f81e36b08e31ec3c6bf8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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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불가능한 당일치기 등산,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사진작가 호맹의 한국 풍경 촬영기] 관악산 문원폭포

20.10.07 20:22l최종 업데이트 20.10.07 20:22l
파리 근교 출신이지만,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프랑스인 사진작가 호맹(boulesteixromain)이 한국 풍경 촬영기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풍경 사진은 물론, 이에 담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기자말]
파리 근교 일드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지만 전체 일생의 3분의 1 이상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는 나는 멋진 자연 풍경을 렌즈에 담아내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사진작가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인테리어나 제품 사진을 찍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동시에 높은 산이나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일출과 일몰이 자연이나 도시와 함께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포착하기도 한다. 나는 이 일을 10년 넘게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해 오고 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이 나라와 도시 자체도 낯설었지만, 개인적으론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제 막 시작하던 중이었다. 모든 풍경이 새로웠으며 빨리 이 멋진 자연 풍광, 그리고 일출과 일몰을 아름답게 찍어야겠다는 욕심이 넘쳤다. 풍경 촬영 전에는 높은 건물의 옥상이나 산, 대교 등에 올라가 보는 답사가 꼭 필요하다.

열정이 넘치던 나는 어떻게든 빨리 어떤 사진사도 가보지 못했을 법한 뷰 포인트를 찾고, 비슷한 풍경을 찍더라도 누구보다도 새로운 시각으로 이를 보여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정말 여기저기 올라다녔다. 특히 서울 시내 및 근교에 위치한 산은 물론 봉까지 전망이 좋아 보이는 곳은 꼭 올라야만 했다. 

한국은 도시 근처에 작은 산이 많아 매력적이다. 가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알프스 산맥의 스키 슬로프, 2주간의 피레네 산맥 하이킹과 호텔에서의 꿀맛 같았던 식사를 생각하면 유럽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특히 서울의 비교적 낮은 산은 큰 부담없이 오를 수 있어 좋은 데다,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고, 산 입구까지도 지하철만으로 아주 편하게 닿을 수 있으니 등산을 좋아하는 사진작가로서는 정말 행운이다.

파리를 기준으로 당일치기 몇 시간 만에 등산을 다녀온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다. 물론 차로 네 시간 정도 이동하면 천 미터도 채 안 되는 산에 닿을 수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등산을 즐기려면 이미 몇 달 전부터 기차표는 물론 차 렌트, 숙소 등등 모두를 큰돈 들여 예약해놔야 한다!  
 
 나의 개인 홈페이지에 업로드한 풍경사진 스크린샷. 한국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지만 고향에 갈 때마다 찍은 프랑스의 풍경 사진도 꽤 있고, 확실히 각기 대조되는 매력을 풍긴다. 시계방향으로 DDP, 여의도 불꽃축제, 성산 일출봉, 경복궁 경회루, 동대문, 경상북도 보은, 에즈(프랑스 남부지방 마을), 건국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 Blanc).
▲ 나의 개인 홈페이지에 업로드한 풍경사진 스크린샷. 한국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지만 고향에 갈 때마다 찍은 프랑스의 풍경 사진도 꽤 있고, 확실히 각기 대조되는 매력을 풍긴다. 시계방향으로 DDP, 여의도 불꽃축제, 성산 일출봉, 경복궁 경회루, 동대문, 경상북도 보은, 에즈(프랑스 남부지방 마을), 건국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 Blanc). ⓒ boulesteixromainfrederic

10년 넘게 이렇게 한국의 풍경을 찍다 보니 해볼 만큼 해봐서일까, 아니면 반복되는 작업에 좀 지쳐서일까? 불현듯 이제 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 풍경사진을 찍는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진은 풍경만을 보여주는 과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는 작업임을 오랜 기간에 걸쳐 깨닫기도 한 터다. 남들보다 좋은, 남들과 다른 풍경을 담아내겠다는 욕심에서 급하게 뛰어다닌 모든 발걸음에는 나의 불안함이 스며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엄청 신나긴 했지만!

올해부터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 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촬영의 모든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또 배우고자 하고 있다. 정상에서 최종적으로 찍게 될 사진의 프레임에만 나를 가두지 않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에 가능성을 열어두며 좀 더 천천히, 더 풍부하게 즐겨보고자 하는 것이다.

현명하며, 인내심 있고, 결과만큼 작업 과정에도 충실한 사진작가가 되기! 이를 목표로 나의 촬영 여정을 당신과 함께 나누며 나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고자 한다. 처음 소개하고자 하는 풍경은 지난 8월, 정말이지 싱그러웠던 여름날 찾았던 관악산 문원폭포다. 

거칠지만 우아한, 문원폭포의 다채로운 얼굴 

나는 매년 여름 산을 이곳저곳 찾아 폭포 촬영을 한다. 생각보다 폭포 물이 말라 있어 좋은 촬영이 되지 못했던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올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왔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가까이서 접한 홍수는 2011년 우면산 산사태뿐이었는데, 올해에도 크고 작은 비 피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비가 살짝 잦아들었을 때 문원폭포를 찾았다. 자연이란 '연악한 괴물'이 태연히 거센 물줄기를 콸콸 내뿜는 동안, 계곡은 물길 따라 찰랑찰랑 흐르고 있었다. 

관악산에 위치한 문원폭포는 지하철 과천정부청사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시작되는 등산 코스를 따라 20분 정도만 더 가면 만날 수 있다. 사실 등산로는 두 개가 있는데 그중 더 낮은 1등산로를 선택한다면 편안한 하이킹을 즐길 수 있긴 하나 사진 찍는 사람 입장에서 특별히 매력적이진 않다. 대신 좀 더 높은 2등산로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준다, 그야말로 장엄하다!
 
 이 아름다운 장관을 보라, 벌써부터 달려가고 싶지 않은가?
▲ 이 아름다운 장관을 보라, 벌써부터 달려가고 싶지 않은가? ⓒ boulesteixromainfrederic

사실 전에도 이 폭포에 와 본 적이 꽤 있다. 나름 자주 왔던 이유는, 폭포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주변 환경이 아주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포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꼭대기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간 사이즈의 폭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아래로 눈을 살짝 돌려보자. 폭포가 바위의 등을 타고 지그재그 춤추며 일련의 곡선을 만들어가는 이 모습은 특히 우아하다.

폭포 자체가 온전히 포효하는 에너지와 이런 우아함을 동시에 목격하다 보면 그야말로 자연의 기적적인 '수완' 같다. 물줄기가 수많은 표면에 부딪치며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를 내뿜는 순간, 이 곡선은 올여름 그 화나 있던 '장맛비 괴물'보다는 왈츠를 추는 발레리나의 모습에 가깝다.
   
 나무와 바위가 폭포를 담아내고있는 모습이 맘에 든다. 이 구도의 촬영 중 단연 맘에 들었던 사진.
▲ 나무와 바위가 폭포를 담아내고있는 모습이 맘에 든다. 이 구도의 촬영 중 단연 맘에 들었던 사진. ⓒ boulesteixromainfrederic
 올해 우기가 아닌 날 찍었던 이 폭포의 사진. 평범한 여름날엔 건조하고 안개가 끼어 ‘노쇠한’ 모습이다.
▲ 올해 우기가 아닌 날 찍었던 이 폭포의 사진. 평범한 여름날엔 건조하고 안개가 끼어 ‘노쇠한’ 모습이다. ⓒ boulesteixromainfrederic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우아한 곡선을 좀 더 가까이서 보여주는 사진.
▲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우아한 곡선을 좀 더 가까이서 보여주는 사진. ⓒ boulesteixromainfrederic

한국에 오기 전, 나는 한국의 폭포를 떠올리며 막연히 높고, 물줄기가 곧고 세차게 퍼부어지는 절벽과 깊고 푸르른 웅덩이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 폭포의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의 폭포는 숲속에 숨어 있으며, 대부분 아주 높지도 않고, 물줄기는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경사진 바윗면이 적당한 각도를 만들어냄으로써 폭포 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좀 더 부드럽게 흐르게끔 한다. 이는 마치 거친 바윗면이 이를 타고 흐르는 물과 함께 만들어낸 혈관 같기도 하다. 
 
 물살이 돌에 부딪쳐 만들어내는 패턴도 멋지지만, 이 구도에서는 폭포 위의 또 다른 폭포처럼 보이지 않는가? ?
▲ 물살이 돌에 부딪쳐 만들어내는 패턴도 멋지지만, 이 구도에서는 폭포 위의 또 다른 폭포처럼 보이지 않는가? ? ⓒ boulesteixromainfrederic

거센 물줄기와 단단한 바위가 만들어내는 풍경만이 전부가 아니다. 폭포 주변을 에워싸고있는 식물은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이 사진은 사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사진에 보이는 끈적끈적한 바윗면을 지나 다른 식물과 곁들여 이 노란 꽃을 담아보려 했지만 카메라와 함께 이동시 미끄러질 위험이 컸기에 이 꽃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었다.
▲ 이 사진은 사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사진에 보이는 끈적끈적한 바윗면을 지나 다른 식물과 곁들여 이 노란 꽃을 담아보려 했지만 카메라와 함께 이동시 미끄러질 위험이 컸기에 이 꽃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었다. ⓒ boulesteixromainfrederic
또, 식물만 있는 건 아니다. 올여름 한국에 쏟아진 어마어마한 양의 비로,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는 버섯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산에서 발견한 이 버섯은 어떤 종류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떤 종류인지 아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 산에서 발견한 이 버섯은 어떤 종류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떤 종류인지 아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 boulesteixromainfrederic
▲ 이 사진은 생기넘치던 계곡을 떠나, 관악산 등산로에 숨어있던 한 우물을 포착한 것이다. ⓒ boulesteixromainfrederic

이번 폭포 촬영에서 나는 꽤 직선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기 쉽게 담아봤다. 하지만 마지막 사진에서는 살짝 예술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흑백사진 촬영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사진을 통해 좀 더 다른 미학을 추구해보고, 나의 스타일을 좀 더 넓혀보고자 했다.

흑백 사진을 통해 연출할 특별한 질감, 그림자 등 친근한 아이템을 찾아 헤맸고 그 결과가 사진 속의 바위다. 깊이 패인 물줄기가 아무리 바위를 때려부수려 한들, 지금도 아주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바위는 오랜 기간 이 곳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장마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계곡물을 반으로 가르며. '회복력(resilience)'에 대한 시를 읊으며.

*문원폭포에 방문하고 싶다면 등산로 영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원고 번역 및 편집 : 김혜민

덧붙이는 글 | 사진작가 호맹의 홈페이지 호맹포토(http://www.romainphoto.com)의 Blog에 문원폭포는 물론, 다양한 풍경사진 촬영기가 영어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romainphoto_outside)에는 하이킹 사진 외에 더 많은 한국의 풍경 사진이 담겨있으니 많이 많이 들러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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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유지·예외적 허용’ 정부 개정안에 시민사회 “처벌도 허락도 필요 없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0/08 09:11
  • 수정일
    2020/10/08 09: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0-10-07 19:23:32
수정 2020-10-07 19:39:30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정부가 7일 낙태죄를 유지한 채 임신 주 수 등에 따라 예외적 허용한다는 취지의 형법 등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여성계와 법조계는 “정부가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켰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라고 촉구했다.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 중단에 허락은 필요 없다,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9.24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 중단에 허락은 필요 없다,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9.24ⓒ김철수 기자  
 
법무부·보건복지부가 이날 입법 예고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 낙태죄 처벌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임신 주 수에 따라 예외적 허용 조건을 신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까지는 여성 요청이 있으면 임신중지를 허용한다. 이후 24주까지는 ▲성범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친족간 임신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여성의 건강을 심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일부 허용한다. 이때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여성은 상담을 받고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임신 주 수 따라 처벌?
“과학적·법적 근거도 없다”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남겨두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이다. 여성계·의료계·노동계 등이 모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처벌이 전제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과 평등권, 자기결정권은 온전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는 요건이 구성됐다”라며 “여성의 권리는 국가의 허락에 의한 ‘조건부’의 권리가 된다. 처벌을 끝내 유지하며 권리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태도에 강한 분노를 표한다”라고 질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역시 이날 성명서를 통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립하지 않는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언급하며 “이는 임신·출산으로 인한 모든 불이익은 여성이 감당하게 하고, 낙태한 여성을 형사처벌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생명을 보호한다고 자위했던 위선의 시대를 끝내라는 언명”이라고 말했다.

임신 주 수에 따라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조항은 과학적,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신 주 수는 ‘추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낙폐는 “임신 주 수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월경일을 기준으로 하는지, 착상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임신당사자의 진술과 초음파상의 크기 등을 참고해 ‘유추’되는 것일 뿐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라며 “주 수에 따른 제한 요건을 둔 것은 단지 처벌 조항을 유지하기 위한 억지 기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민변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형사 처벌의 기준으로 삼으려면 임신 주 수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초음파 검사를 해도 태아 크기 등에 비춰 임신 주 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임부가 과연 임신 23주 5일째인지 24주 1일째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라고 짚었다.

여성의 현실과도 괴리된 지점이 있다. 보통 임신 시작일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하는데, 생리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거나 임신증상이 특별히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 14주 차까지 임신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인공임신중절 이른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임신 14주 차~24주 차에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지를 원할 경우 상담과 숙려기간을 의무로 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의 임신중지 시기를 늦출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여성은 이미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대한 숙고를 거쳐 임신중지를 결정하며, 이 조건들은 대부분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라고 했다. 모낙폐는 “프랑스에서도 2015년 숙려기간 규정을 폐지했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의무 숙려기간 없이 상담은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받도록 한다”라며 “이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위원회 등에서도 거듭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임신 24주 차 이후 임신중지를 무조건 처벌하는 데 대해서 민변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 원칙인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강간 피해자가 장애, 나이 등으로 인해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24주 이후 임신중지를 하면 처벌받는다.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24주를 넘긴 여성도 마찬가지”라며 “여성은 임신을 지속해 건강을 해치거나 임신중지를 하고 처벌받아야 한다. 여성을 기본권 주체로 보지 않는 태도가 극명하다”라고 비판했다.

임신 주 수를 고려하는 데서 중요한 방향은 ‘언제부터,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르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을 보장할 것이냐’가 돼야 한다고 모낙폐는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지 경험 여성 중 95.3%가 12주 이내에 수술을 받았다. 주 수 제한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지적과 함께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도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들의 삶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낙태죄 폐지 위해 모인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낙태죄 폐지 위해 모인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임신중지 시술에 대한 의사의 진료 거부권을 명시한 점, 미성년자의 경우 동의 요건을 규정한 점도 여성의 건강권을 해치는 조항으로 지목됐다. 개정안에는 의사가 시술을 거부할 경우 관련 상담기관에 안내토록 할 뿐, 의료기관 연계 의무는 규정하지 않았다.

모낙폐는 “현재 산부인과의 지역별 격차도 매우 큰 상태에서 여성들은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건강권을 크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아르헨티나에서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11세 소녀가 임신 초기 임신중지를 요청했으나, 동의 요건 제한과 의사의 거부로 인해 시술이 지연됐고, 3주에 이르러 태아가 생존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제왕절개수술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하면 ‘낙태 남용’한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들이 낙태를 ‘남용’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지난 6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라는 불분명한 기준이 들어있다. 너무 포괄적이고 낙태를 남용할 소지가 굉장히 농후해진다”라고 말했다.

이에 여성 누리꾼들은 “자신의 몸을 해치는 낙태 수술을 어떻게 남용할 수 있냐”라며 “낙태를 남용한 건 과거 국가가 정책적으로 낙태를 권장하고 여아 낙태가 성행하던 시기 가능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서지현 검사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간통죄 폐지가 간통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듯, 낙태죄 폐지가 낙태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가 두려워 낙태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불법화된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안과 달리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이날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모낙폐는 “새로운 낙인과 허용의 기준이 아닌 임신중지를 필수의료행위로서 공공의료 영역에서 보장하는 법과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위기 임신에 대한 예방 사업이 아닌 임신중지와 유지, 출산과 양육 전반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지원 사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더는 여성을 기만하지 말라. 우리는 처벌도 허락도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시작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은 3일 만에 3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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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통일담론이어야 하는가?

<연재> 평화를 넘어, 통일로!!!(상)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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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07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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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최근 일련의 흐름에 이 정부 및 민주당은 물론, 일부 진보세력 내에서도 ‘자주·민주·통일’ 노선에 부합하지 않는 수정주의 노선을 들고 나오는 경향이 발견된다.

해서 이 글은 <평화를 넘어, 통일로!!!>라는 주제 하에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는 방식으로 ‘자주·민주·통일’ 노선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왜 통일담론이 계속 유효해야 되는지를 시론(時論)해본다. (필자 주)

글 싣는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왜, 통일담론이어야 하는가?
2.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가?
3. 시대와 노선: ‘자·민·통’ 노선의 불변성

 

1. 들어가기에 앞서: 연평도 실종 공무원 사건발생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

연평도 실종 공무원 사건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 만큼, 사건발생이 여러 날 지났지만, 지금도 대한민국은 논란으로 뜨겁다.

보수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친북성을 부각하기 위해, 보수야권은 정권재탈환을 위한 정쟁의 도구로, 문재인 정부 지지 세력들은 파산직전의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나가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자 난리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러한 1차적 시각을 좀 뛰어넘으려 한다.

왜냐하면 현상은 ‘피격’이라는 불행으로 와 닿았지만, 본질은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불상사는 언제든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 그렇다.

2. 분단체제가 갖는 함의: 분단극복 없는, 평화는 없다

그래놓고 이번 연평도 공무원 실종사건을 접해보면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이 얼마든지 북미, 남북 관계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음이 가장 적나라하게 실증된다.

먼저, 미국의 움직임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은 공무원 실종 4시간 만인 22일 일본 가데나 공군기지에 있는 전략정찰기 코브라볼(RC-135S)을 오후 7시 16분께 서해 주변 상공에 띄웠고, 군용기 추적 전문 트위터 계정인 <노 콜사인>(No Callsigns)에 따르면 한국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 아이'일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체가 오후 9시 48분엔 미상의 비행체가 인천에서 약 100km 떨어진 서해 상공에서 서쪽 방향으로 비행했음이 확인됐다. 또한 그 시각 주한미군은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탱크 킬러'라 불리는 A-10(선더볼트-Ⅱ) 대전차 공격기 3대를 인천과 서해 일대에 전개했다. (<뉴스1>, 9월 25일자 보도)

다음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갈등들이다. 군사적으로는 ‘불필요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충돌의 위험도 배가된다.(실제 NLL를 둘러싼 갈등은 첨예화 되었다.)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쟁으로 하세월이다. 국민들은 정권지지 성향에 따라 이념갈등으로 네편, 내편으로 나눠진다. 거기다가 북에 대한 인식은 ‘무찔러야’ 하는 적대국가로 돌변된다.

위 두 진단으로부터 공무원이 피격될 무렵 북미군사 상황이 얼마나 긴장됐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음을, 또 가장 적나라하게 분단비용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 전제하에 한반도의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과 북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휴전상태이다.

둘째, 한반도는 현재까지도 분단을 종식시키지 못한 미(未)통일 상태이다.

그럼으로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평화체제 수립은 분단극복과, 종전을 거쳐 항구적 평화체제구축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해서 이번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도 진정한 교훈이 국민의 생명안전이라는 ‘실체적’ 진실과 함께,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단체제 극복없는 평화없다’는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이해이다.

즉, 분단체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숙명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달리는, 이 분단체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2의, 제3의 일촉즉발의 위기정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분단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 체제가 구축되지 않음도 분명하다.

그러니 그 어찌 분단체제 하에서 평화가 관리될 수 있다는 말인가? 허구이다. 가능하지 않는 가설일 뿐이다.

결과,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사실은 제가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추구는 허구이다’가 증명된다. 연장하면 분단체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민주당과 일부 개혁진보세력들의 평화공존론도 허상임이 분명하다.

3. 우리는 분단체제에서 왜 평화가 아닌, 통일담론에 눈을 돌려야만 하는가?

동시에 위 인식으로부터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분단극복정책은 반드시 평화·통일정책이라는 수fp의 두 바퀴로 접근되어져야 함도 알 수 있다. ‘평화’라는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없음이 분명하게 증명된다는 말이다.

복잡하지도 않다. 아주 간단명료한 인과적 결론이 이를 중명한다.

다름 아닌,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숙명이 존재한다. 이를 국운 도약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민족(국가)의 힘에 달려있다.

같은 논리로 분단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갖는다. 분단으로 인해 불완전한 국가주권이 형성되어 있고, 국가구성원인 민족이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이 엄청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분단국가는 필연적으로 통일을 지향하게 되어있고, 분단극복과 연동되지 않는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즉, '통일의 진전 없는 평화 없고, 평화진전 없는 통일진전도 없다'와,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만이 평화도 앞당겨 질 수 있다'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그렇게 성립하는 것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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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의 소녀'여, 잘 가시길...묵직한 물음 하나를 놓고

[장석준 칼럼] 로산다가 남긴 물음 ,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시대에 변화의 주체는?

 

 

연휴 중이던 지난 4일, 원로 사회학자 이이효재 선생이 돌아가셨다. 이이효재 선생은 대한민국의 1세대 사회학자일 뿐만 아니라 여성운동의 거목이기도 하다. 더구나 1924년생이라 향년 96세다. 삶의 행적만 찬란하고 풍성한 게 아니라 한 세기를 거의 채운 그 시간의 무게 역시 압도적이다. 그래서 누구든 선생의 부고 앞에서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 역사라는 차원을 실감하며 새삼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20여 일 전에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밝기로 우리를 비추던 별 하나가 떨어졌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이효재 선생과 동갑이다. 20세기 이탈리아 좌파정치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오늘날은 무엇보다 위대한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로사나 로산다(Rossana Rossanda)가 그 사람이다.

 

9월 25일에 로마에서 거행된 로산다의 추도식에는 이탈리아에 유독 큰 상처를 입힌 코로나19 탓에 많은 이들이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7만 명 넘는 이들이 온라인 중계 사이트에 접속해 추모의 마음을 나누었다. 백 년도 훨씬 넘게 좌파의 아성이던 토스카나에서 극우파가 주지사 선거에 거의 승리할 뻔할 정도로(로산다가 사망한 다음날, 결선투표에서 중도좌파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이념 지형이 오른쪽으로 잔뜩 기운 요즘 이탈리아에서 이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숫자다.


 

그만큼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서 로사나 로산다라는 이름은 한 개인을 넘어 역사를 상징한다. 영광의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상처를 남긴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잃은 남은 자들이 손에 쥔 유일한 지도인 역사. 그리고 이 역사는 이탈리아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얼마간 빛을 던져주는 이야기보따리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좌파 일간지 '일마니페스토'가 자사의 설립자이기도 한 로산나 로산다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를 냈다. ⓒ일마니페스토 누리집 갈무리
 
▲일마니페스토 페이스북 계정에 로사나 로산다 추모 기사가 올랐다. 사진은 로산다의 자서전 '지난 세기의 소녀'에 표지에 사용된 사진이다. ⓒ일마니페스토 페이스북 갈무리
 

10대 소녀 빨치산에서 68세대의 믿음직한 선배로


 

한반도의 비슷한 세대와 마찬가지로 로산다 세대는 세계사의 가장 거대한 혼란 속에서 성년을 맞이했다. 이탈리아는 본래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지만, 1943년 연합군이 남부 이탈리아에 상륙하자 내전에 휩싸였다. 겁먹은 파시스트 고위층이 무솔리니를 축출하고 항복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독일군이 개입해 무솔리니를 구출하고는 북부 이탈리아에 그를 수반으로 한 괴뢰정부를 세웠다. 졸지에 사실상 독일군 점령지가 된 북부 각지에서는 민중의 무장 항쟁이 시작됐다. 공산당, 사회당, 행동당 같은 좌파뿐만 아니라 기독교민주당, 자유당까지 투쟁에 함께 했다.


 

슬픈 역사와 함께 한국어에 편입된 단어 '빨치산'이 이때 북부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험 같은 것이 되었다. 이 세대에 속한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초기작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이현경 옮김, 민음사, 2014)에서 당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바로 이런 젊은이들 가운데에 막 대학에 입학한 19세의 로사나 로산다도 있었다. 로산다는 '미란다'라는 조직명으로 밀라노 시내에서 지하 저항 세력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며 정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10대 소녀 빨치산 '미란다'가 택한 정치조직은 공산당이었다. 그 또래의 다른 많은 이들도 비슷했다. 반파시즘 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펼친 조직은 공산당과 행동당이었고, 그 중에서도 공산당에게는 러시아 10월 혁명의 후광이 따랐다.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해방 이후 쭉 좌파 정당들 편에 선 이 세대 덕분에 이탈리아는 이후 반백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에서 급진좌파 세가 가장 강한 나라가 됐다. 로산다 역시 공산당 밀라노 지부에서 상근자로 일하며 이런 시대 분위기를 이끌었다.

 

당 활동 초기부터 로산다는 잡지 지면을 통한 문필 활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50년대에 한때 200만 당원을 보유하며 곳곳에 민중의 집을 건설하고 당원 수보다 훨씬 더 많은 발행 부수로 일간 <루니타>('단결')를 내던 공산당은 이탈리아 문화계에서는 여당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문화 투쟁의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주간지 <리나쉬타>('재생')였는데, 로산다는 이 잡지의 편집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명성으로 당의 문화 담당 책임자가 됐다가 1963년에는 하원의원에까지 당선된다.


 

로산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이 시절을 보노라면, 참으로 서글픈 감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 로산다가 속했던 세대의 동년배들이 한반도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던가? 이탈리아에서는 반파시스트 내전이 좌우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게 어쨌든 막았고, 이후 반세기 가량 이어진 제1공화국에서는 “이탈리아는 노동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1항처럼 좌파가 적어도 제1야당으로서 민주공화국의 한 축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내전을 피하지 못했고, 냉전의 양 진영이 이 땅에서 맞붙었으며, '미란다'처럼 이상과 그 실천에 투신했던 한 세대가 파괴되고 말았다. 회한과 우울 없이는 마주할 수 없는 역사의 갈림길이다.


 

이렇듯 냉전 시기에 두 반도의 운명은 극명히 대비됐다. 하지만 영광의 시절이 마냥 지속될 수만은 없었다. 좌파의 양적 성장이 내부 모순에 대한 영구 처방이 될 수도 없었다. 1960년대에 학생운동이 폭발하고 노동운동이 급진화하자 이탈리아 공산당 안에는 조르조 아멘돌라를 중심으로 한 우파와 피에트로 잉그라오를 중심으로 한 좌파가 등장해 격렬히 논쟁했다. 로산다는 잉그라오 좌파의 이론가였고, 학생운동에 연대를 표한 몇 안 되는 공산당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급진적 사회운동들보다도 공산당에 더 심각한 충격을 준 것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었다. 이때 이탈리아 공산당 안에서 소련의 행태를 준열히 비판하고 나선 이들은 잉그라오 좌파의 차세대 지도자들인 루치오 마그리와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그리고 로사나 로산다 같은 이들이었다. 당 집행부는 처음에 이들의 비판을 묵인하는 듯 보였지만, 로산다 등이 <일 마니페스토>('선언')라는 독자 저널을 발행하고 나서자 더는 가만있지 않았다. <일 마니페스토> 그룹은 출당 당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한 시기의 종말에 그치지만은 않았다. 뜻밖에도, 새로운 시기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1971년 <일 마니페스토>는 일간지로 변신해 60년대에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경험한 수많은 이들, 즉 이탈리아의 68세대와 만났다. 로사나 로산다는 이 신문의 편집을 맡아 68세대가 가장 신임하는 언론인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평생의 동지인 마그리나 카스텔리나가 좌파 정당 활동에 계속 개입하는 와중에도 로산다만은 <일 마니페스토>를 무대로 좌파 문화 전반의 방향을 모색하고 개척하는 데 집중했다.


 

이 시기에 <일 마니페스토>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 사회주의 체제와 제3세계 해방운동이었다. 이 무렵 한국 사회에서도 리영희, 박현채 등을 통해 비슷한 관심이 젊은 세대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또한 <일 마니페스토> 지면은 신좌파 여성 활동가들이 새로운 페미니즘 사상과 운동을 태동시키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역시 같은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이이효재와 그 제자들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중적인 여성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로산다가 후반생을 바친 신문 <일 마니페스토>는 좌파의 다음 세대를 위한 자기 혁신 운동의 핵심 기관이었고, 20세기 말의 이 혁신 시도는 1980년대부터 남한에서 부활한 좌파 문화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공산당 신문 <루니타>가 폐간된 지금도 일간 <일 마니페스토>는 계속 발간 중이다.


 

▲일마니페스토가 페이스북에 올린 로산다의 과거 사진 ⓒ일마니페스토
 

로산다가 남긴 물음 –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시대에 변화의 주체는?


 

안타깝게도 로산다는 행복하기에는 너무 오래 살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강성했던 이탈리아의 급진좌파는, 아니 좌파 전체는 1990년대 이후 계속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며 좌파민주당으로 변신했다. 로산다와 동지들은 한사코 반대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문제는 이탈리아판 '민주대연합' 노선의 대두였다.


 

부패한 기독교민주당이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라 불리는 대대적인 정치 비리 수사 이후에 와해되자 이탈리아에서는 우파가 정치 지도에서 거의 사라질 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언론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선배인 영국의 마거릿 대처처럼 우파 포퓰리즘과 신자유주의를 기묘하게 뒤섞은 신약을 선보이며 우파를 기적적으로 되살렸다. 아니, 단지 되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선거에서 거듭 승리하며 장기 집권했다.


 

좌파민주당을 비롯한 나머지 모든 정치 세력은 “베를루스코니만 아니면 된다”는 깃발 아래 총결집했다. 이탈리아판 '반이명박-반박근혜 민주대연합'이다. 이런 대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좌파민주당은 당명에 붙어 있던 '좌파'마저 떼어 버렸다. 단지 당명만 짧아진 게 아니라, 당의 이념까지 창당 당시에 선언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서 미국식 자유주의로 바꿨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는 급진좌파가 기세를 부리는 나라에서 졸지에 제도 정치 안에 좌파 전체가 사라진 나라로 돌변했다. 한국 진보 세력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밟은 퇴행 과정을 이탈리아인들은 30여 년으로 늘여 경험한 셈이다.

 

로산다는 만년을 이런 못 볼 꼴을 보며 보내야 했다. 그러나 짜증나고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씩씩했다. 한동안 기피하던 정당 정치에도 다시 개입했다. 지금 이탈리아 정계에서 좌파의 전통을 제대로 이었다고 할 수 있는 조직은 '이탈리아 좌파'(이하 좌파당) 정도인데, 이 당의 지지율(2-3% 대)은 정의당만도 못하다. 하지만 로산다는 이 당을 반격의 최후 보루라 여기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증손주뻘 당원들에게 자극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로산다가 2017년 좌파당 당대회에 보낸 서한이다. 이 서한을 낭독하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사뭇 숙연했고, 어쩌면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90세 노인이 무슨 선동문을 전달한 것은 아니었다. 서한의 내용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이었다. 화두였다.


 

지구 자본주의는 지금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로산다의 90 평생에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지겨운 예언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런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역시 90 평생 처음으로 변화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좌파는 오랫동안 노동계급이 그런 주체라 했지만, 이제는 변화의 주체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면, 자본주의가 벽에 부딪히더라도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커다란 위기의 시대에 변화의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3년 전 서한 내용을 압축한 것이지만, 이를 로사나 로산다가 우리에게 남긴 유언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엄중한 물음이다. 극우파의 부상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이탈리아 좌파처럼 나 역시 지금 당장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다. 노동계급에 여전히 주목하되, 기후 재앙이라는 초유의 전면적 위기에 걸맞게 노동하는 시민 전체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답해야 할 절실한 물음을 지닌 삶은 어쨌든 살아볼만하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다음 세대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답은, 역시 늘 그랬듯이, 백지 위에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성취뿐만 아니라 오류와 비극까지 아우르는 인류의 모든 자취들 위에서, 오직 그 위에서 다음 번 한 발자국은 내디뎌질 것이다. 과감하고, 단단하게.

 

끝까지 꿋꿋했던 이의 모습에서 다른 어떤 메시지를 읽기란 불가능하다. 그녀가 살아냈던 것처럼 우리도 살아나갈 것이다. 뒤늦게나마 동지 로사나 로산다에게 진심을 담아 작별의 인사를 드린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071228211957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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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9년 갈등 끝에…정부 “새만금, 바닷물 흘러야 산다”

등록 :2020-10-07 04:59수정 :2020-10-07 08:55

 

[환경부 ‘새만금 수질대책 평가’ 보고서]

10년간 3조 투입에도 수질 오염 심각
정부, 처음으로 ‘바닷물 영향’ 평가
서해보다 1.5m 낮은 수위 유지하며
해수량 6.5배 늘려야 개선 효과 커
올해 안 새만금 기본계획 반영 예정
2010년 4월20일 헬기에서 바라본 새만금방조제 위로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33㎞의 도로가 나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0년 4월20일 헬기에서 바라본 새만금방조제 위로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33㎞의 도로가 나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새만금 유역의 물을 농업·도시 용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수질을 높이려면 해수 유통을 해야 한다는 정부의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새만금 유역 2단계 수질대책에 3조원이 투입됐는데도, 바닷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던 새만금호의 수질이 더 악화된 사실도 확인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409㎢·서울 면적의 약 3분의 2)이자 지난 29년간 한국 사회의 대표적 환경 갈등 사례였던 새만금 사업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6일 <한겨레>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만금 2단계 수질개선 종합대책 종합평가 결과 및 향후 추진계획’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환경부가 연구용역을 의뢰한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환경전문연구기관) 등이 수질대책 추진 상황과 유량 조건, 해수 유통량(갑문 운영)의 조건에 따라 새만금호와 상류지역인 만경·동진강 수역의 미래 수질을 예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서해 평균 해수면보다 새만금호 수면이 1.5m 낮게 유지되는 조건에서 바닷물을 흐르게 했을 때, 수질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유역 2단계 수질대책에 3조원이 투입됐는데도, 바닷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던 새만금호의 수질이 더 악화된 사실도 확인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409㎢·서울 면적의 약 3분의 2)이자 지난 29년간 한국 사회의 대표적 환경 갈등 사례였던 새만금 사업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6일 <한겨레>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만금 2단계 수질개선 종합대책 종합평가 결과 및 향후 추진계획’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환경부가 연구용역을 의뢰한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환경전문연구기관) 등이 수질대책 추진 상황과 유량 조건, 해수 유통량(갑문 운영)의 조건에 따라 새만금호와 상류지역인 만경·동진강 수역의 미래 수질을 예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서해 평균 해수면보다 새만금호 수면이 1.5m 가장 크다는 것이 조사 결과의 핵심 내용이다. 1.5m는 역류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기존에 호수 안에 조성한 토지 이용이 가능하고 해수 유통도 가능한 높이다.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호수와 통하는 바닷물의 양을 현재(한 해 36억800만톤)보다 6.5배(한 해 235억9천만톤) 더 흐르게 했을 때 수질이 가장 안정적인 것으로 예측됐다. 
 
만경·동진 수역의 농업용수는 목표 수질인 4등급이 가능했다. 도시용수가 필요한 동진강 유역에서는 오염기준(COD, T-P)이 목표 수질인 3등급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2단계 수질대책 완료까지 고려하면 목표 수질인 3등급의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다만 농업용수로 이용하려면 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반면 해수 유통이 차단되어 새만금호가 담수화될 경우, 수질대책을 시행하더라도 농업용수와 도시용수 확보가 곤란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현재 수준의 바닷물을 유통하면 농업용수는 확보하지만 일부 도시지역에서는 수질기준에 맞는 물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환경부는 이를 토대로 호수 내 오염원 관리 대책과 배수갑문을 운영하는 시나리오별 후속 대책 등 복수의 안을 마련해, 새달 새만금위원회 전체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평가 결과는 국무총리실 소속 심의위원회인 새만금위원회에 전달돼 연내 새만금 기본계획을 정할 때 반영된다. 장기적으로 담수화를 못박은 새만금 기본계획이 변경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64700.html?_fr=mt1#csidx2c9a1e9701e77379bbc8a7159c9fe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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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처벌을 피하려 출산하지도, 처벌을 안받으니 임신하지도 않는다

[낙태죄, 후퇴가 아닌 진전을 ②] '낙태죄' 완전한 폐지가 국제적 권고가 된 이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1953년 형법 제정 후 66년, 그리고 2012년 헌재의 낙태죄 합헌 판결 후 7년 만의 일이었다.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로부터 해방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올해 말까지 대체 입법이 마련돼야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아직 관련 법안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에야 정부가 관계부처와 논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부가 준비하는 안은 임신 14주 이내에는 허용하고 14주에서 22주 사이에는 사회 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안이다. 22주가 넘어가면 현행 처벌 조항이 그대로 적용된다. 즉,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 처벌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셈이다.

 

이는 지난 8월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권고는 물론, 재생산권을 보장하라는 여성계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안이다. 여성계는 줄곧 "임신 주수에 따른 제한은 개인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해 실효성이 없"으며 "처벌은 임신중지를 음성화할 뿐, 비범죄화 하더라도 임신중지 비율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석 달 남짓 남은 낙태죄의 시효를 두고 <프레시안>은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돼야 하는 이유와 재생산권 보장의 필요성에 대해 네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우리는 충분하고 숙련된 지역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임신중지가 개별 의사의 개인적 재량에 달려 있지 않은 의료 서비스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건강보험조합이 다른 표준화 된 의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임신중지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모든 것은 형법 218조(218 StGB)를 폐지해야만 가능합니다. 즉, 형법에서 낙태를 삭제하여 합법화해야 합니다."


 

위의 내용은 독일 형법 218조의 폐지를 요구하며 얼마 전 국제 서명운동 사이트인 Change.org에 올라온 글의 일부이다. 독일에서도 '낙태죄' 폐지 요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나치 시대 때 만들어진 '낙태죄' 조항이 여전히 형법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독일 형법 218조는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게 벌금 또는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의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 임신 12주 이내에 상담을 받고 3일의 숙려 기간을 거친 경우가 아니면 모두 불법에 해당한다.
 

 

작년 3월까지 219조a 조항에 따라 임신중지를 시행하는 의사와 병원이, 자신의 병원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이 조항은 개정되었지만 여전히 '임신중지 시술을 한다'는 사실 외에는 임신중지에 관한 어떤 정보도 알릴 수가 없다. 이런 현실 때문에 독일의 의료인들은 여전히 의과대학에서 임신중지에 관한 교육 시간은 90분 정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상담과 숙려기간', '주수에 따른 허용'?..."시기만 늦출 뿐"


 

또한 임신중지의 의무조항인 '상담과 숙려기간'은 실질적으로 이른 시기에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12주까지는 허용', '상담과 숙려기간의 제공'과 같은 수사로 마치 이것이 여성들을 위한 제도인 양 알려졌지만, 실상은 형법상의 처벌 조항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임신 주수에 따른 제한이나 의무 상담, 강제 숙려기간 제도는 역설적으로 여성이 임신중지에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제때 적절한 처치를 받는 것을 가로막아 여성들의 건강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과 비슷한 방식으로 법을 개정한 국가들에 나타나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 지난 2018년 비슷한 방식으로 법을 개정했다. 그러자 상담과 숙려기간 의무제 때문에 되레 임신중지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했다.

 

가령 상담과 숙려기간 의무제 때문에 3일 전에 상담을 받았던 의사가 3일 후 재방문 했을 때 부재한 상태라면 다시 상담을 받고 3일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사이 임신 12주를 넘기기도 했다. 상담과 숙려기간 의무제 때문에 합법이던 임신중지가 불법이 되어버리는 상황도 발생했다.


 

숙려기간은 임신중지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처벌과 허용'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낙태죄는 실효성이 없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출산을 결심하는 여성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임신을 하는 여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아일랜드의 여성들이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로 임신중지를 하러 가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실패한 규제 조치를 도입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지금 정부가 내놓은 '낙태죄'의 개정 입법안은 이처럼 많은 문제들을 드러내며 보건의료 정책상으로도, 성과 재생산 권리의 보장 측면에서도 완전히 실패한 해외 법제의 종합판이다.


 

상담과 숙려기간의 의무화에 의료인의 거부권까지 더해지면 여성들은 상담을 하기 위한 기관을 찾아야 하고 다시 돌아와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해당 병원이나 의사가 거부하면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서울 외 지역에는 그나마 찾아갈 수 있는 산부인과조차 매우 적다.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다른 자녀를 키우고 있거나 폭력이나 학대 상황에 있다면, 이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 될 것이다. 성폭력이든 다른 사회·경제적 사유든 여성들은 그에 필요한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자신의 상황을 입증해야 하는 조건에 놓인다.


 

또한 독일의 현 상황처럼 보건의료인들도 최신의 의료 정보와 기술에서 뒤쳐지게 되고 다시 그만큼 여성들은 더 나은 의료 환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미 30~40년 전부터 임신중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여러 국가에서 이런 폐해가 확인되었기에 이제 세계보건기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학회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영향을 미치는 법·정책적 규제 조치와 처벌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이런 권고에도 완전히 역행하는 조치인 것이다.


 

처벌이 아닌 권리의 첫 페이지를 쓸 때다


 

독일 형법 218조의 '낙태죄'는 "나치 시대의 형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낙태죄'는 나치 시대의 법, 식민지 시대의 법, 독재 시대의 법으로 남아있다. 주수나 특정 사유를 통한 허용 방식도 마찬가지다. 삶의 조건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의무를 여성과 의사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더욱이 '임신중지가 가능한 사유'는 우생학적 기준으로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 생명'을 선별해 강제 낙태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홀로 감당해야 했던 임신중지의 시간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폭력, 차별과 낙인을 방치하고 여성의 몸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삼아온 국가폭력의 역사이다. 2020년의 우리는 이런 무책임하고 차별적인 역사로부터 단절해야 한다. 처벌이 아니라 공공의료 체계를 통한 안전한 임신중지,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정책이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로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할 때이다. 형법 '낙태죄'의 온전한 폐지로 그 시작을 열어야 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060300321450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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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한 명은 도서관 하나와 맞먹는다

[팔순의 내엄마] 작은 아버지의 부고... 엄마는 누구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았어요

20.10.07 08:19l최종 업데이트 20.10.07 08:19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은아버지의 부고를 급작스럽게 받게 됐다.
▲  작은아버지의 부고를 급작스럽게 받게 됐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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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의 어느날, 느즈막하게 눈을 뜨고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 일어나야지' 하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금일--- 변OO가 운명하셨습니다." 낯익은 이름. 작은 아버지의 성함이었다. 잠시 멍한 채로 있다가 누구한테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한 번 문자를 확인했다. 분명 작은 아버지의 함자 세 글자. 불과 한 달 전에 뵙고 왔는데. 그때 분명 "작은 아버지 또 올게요" 하고, 작은 아버지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채 한 달도 안 돼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조금 정신이 들자 이제 '엄마'가 걱정됐다. 이제 겨우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 중인데... 분명 장례식장에 가려고 하실 텐데... 장례식장에서 밤샘 하시겠다고 하면 어쩌지... 아니나 다를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은 아버지 소식 들었지? 나 좀  데리고 가."

"언제 가실 건데요?"
"얼른 가야지. 그래도 엄마가 집 안에서 제일 어른인데..."
"밤샘 할 건 아니죠?"
"잠은 집에 와서 자야지."

장례식장 가는 차 안에서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지난번 뵙고 올 때 상일에게 집 비우지 말고 옆에서 지켜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정말 몰랐다."

엄마는 어느 정도 작은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너무 빨라 놀라신 듯했다. 엄마는 어떻게 작은 아버지의 상태를 예견하셨을까. 

"지난번 뵀을 때 숨쉬는 게 다르더라고. 사람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는데... 영 그렇더라고."

분명 우리도 엄마랑 같이 작은 아버지를 뵀는데... 이런 게 연륜이고 지혜인가. 

큰엄마를 보자 울음을 터뜨린 상주들 
  
 엄마는 집 안의 크고 작은 행사에 늘 참석해서 중심을 잡아 주었다.
▲  엄마는 집 안의 크고 작은 행사에 늘 참석해서 중심을 잡아 주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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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들은 큰엄마를 보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의 서러움과 애처로움이었다. 이미 중년이 돼도 부모를 잃으면 모두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하고 어쩌지를 못한다. 생전에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어느날 회심곡을 들으시다가 "난 이제 아버지도 엄마도 없는 고아다"라면서 몹시 슬퍼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그렇다. 늘 서럽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렇다.

엄마와 작은 어머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두 분은 그렇게 한동안 아주 서럽게 '곡'을 했다. 두 분의 '곡소리'에는 스무살이 조금 넘은 꽃 다운 나이에 변씨네로 시집 와서 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이상하게도 두 분의 곡소리가 내 귀에는 '대화'처럼 들렸다.

'아이고 형님, 아이고 형님, 아이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네요. 저 사람이. 긴 시간 병상에 누워 고생만 하다가 갔어요. 이제 전 어떻게 살아요.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저 사람 보고 살았는데... 아이고 형님...'
'아이고 자네가 기운을 내야지. 아이고... 자네도 할 만큼 했네... 이제 잘 보내야지. 간 사람은 간 거고... 자네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은가...'
'아이고... 아이고...'

마루바닥에 엎드려서 두 분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는 '곡'을 했다.  피가 섞인 형제는 아니지만 두 분은 누구보다 속속 저간의 사정을 꿰뚫고 있을 것이니 엄마의 눈에는 작은 엄마가 몹시 안스러워보였을 것이고, 작은 엄마에게도 엄마는 그 모진 세월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두 분의 곡소리가 자식들의 폐부를 찔러댔다. 뒤에 선 두 분의 자식들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때 늙은 엄마는 집 안의 '제일 큰 어른'이었다. 작은 엄마와 상주들이 서럽게 쏟아내는 울음을 다 받아주고 다독여 주는 맏어른이었다.

종부의 위엄 
 
 연륜이 만든 지혜와 존재감.
▲  연륜이 만든 지혜와 존재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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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때 좀 거창하게 말을 하면 종부의 '위엄'을 본 것 같았다. 엄마는 학식이 뛰어나지도 않고 따로 종부의 행실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엄마 나름의 종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당신으로 인해 '한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과 가문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신다. 늘 당신이 베풀고 넉넉하게 마음을 썼다. 입과 몸가짐이 가볍지 않았고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이 빨랐다. 당신이 하신 일을 생색 내지도 않았고 불편한 심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도 없었다. 남을 시키기보다는 당신이 먼저 했다.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종부로서의 자신의 삶을 살았다.

큰 일이 있을 때면 늘 엄마와 크고 작은 실랑이가 일었다.

"왜 엄마 혼자서 다 해? 작은 집에서는 아무도 안 오는데?"
"왜 작은 어머니들이 할 일을 왜 우리가 해야 하는데?"
"딸은 오지도 말라면서 왜 일은 우리한테 시켜? 그러니까 이번엔 양도 줄이고 좀 사다 하자."
         
그럴 때도 엄마는 아무 소리 않고 당신의 일을 했다. 미련 맞아 보일만큼 말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종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과 전통을 따르고 잘 유지되도록 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엄마는 1년에 열 번이 넘는 기제사와 종중 제사를 힘들다 소리 한번 안하시고 지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만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챙겼다. 그것이 당신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상님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마음이 편하지 않단다. 엄마는 팔십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고, 시가에 가기 싫어하고, 제사 문제로 다투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평생 맞다고 걸어온 그 길을 가고 싶어할 뿐이다.

"엄마는 그런 게 좋았어. 힘들다거나 귀찮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 명절이면 식구들 다 같이 모여서 얼굴 보고 하면 얼마나 좋아? 옛날에 1년에 열 번이 넘게 제사를 지낼 때도 엄마가 힘들다고 하는 거 봤니?"

엄마 말이 맞다. 단 한번도 엄마에게서 '힘들다, 내가 왜 변씨네 와서 이 고생이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왜 여자만 남자집에 가서 모르는 친척들을 위해 며칠동안 고생을 해야 하느냐? 여자가 그 집 식모냐?'라고 악악대던 나도 지금은 그냥 엄마의 삶을 존중해 드리려고 한다. 전근대적이니 굴종적이니, 부당하다느니, 여권이 어떠니 하는 말들로 엄마의 삶을 상처내고 싶지 않다.

에피소드, 팔순 엄마의 '한 건'

집에 돌아와 엄마와 이런 저련 얘기를 나눴다. 

"발인 전날밤 10시가 넘어 내일 납골당에 모신 다음 마지막 제사 제물을 준비했냐고 물었더니 다들 그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라. 그제서야 제물을 챙긴다고 분주해서는... 으그..."
"맨날 그렇게 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러게 말이다. 아니 맨날 제사를 지내면 뭐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거 하나 못챙기고. □□이가 그러더라. 큰엄마가 말씀해주지 않으셨으면 어쩔 뻔 했냐고.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하더라."

엄마는 그렇게 '한 건' 한 것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집 안의 큰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신 것이 못내 자랑스러우셨나보다. 몇 번이나 '의기양양'하게 그 얘기를 하셨다.

"엄마 맞아. 엄마는 우리 집안의 큰 버팀목이야."

노인 한 명은 도서관 하나와 맞먹는다고 한다. 살아온 인생만큼의 지혜가 가득하다는 말일 게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변씨 가문이지만, 한 가문의 종부로서의 엄마의 삶... '당신은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라고 말씀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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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숙제는 현 정부, 언론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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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10/07 08:45
  • 수정일
    2020/10/07 08:4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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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천안함 사건 명예훼손’ 신상철 무죄 선고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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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06  23: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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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철 전 조사위원이 6일 2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1심재판 당시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10년째 재판을 받아온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이 6일 2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학문의 자유’와 ‘중요한 공익적 관심사’라는 이유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원심(1심) 재판부는 2016년 1월 25일 검찰의 공소사실 34건 중 32건을 무죄로 선고했지만 ‘고의 구조 지연’과 ‘고의 증거 인멸’을 주장한 두 건의 게시글에 대해 비방목적이 인정된다며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장 “중요한 공익적 관심사에 대한 논쟁 봉쇄할 우려”

<미디어오늘>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윤강열 재판장은 판결요지에서 “피고가 좌초후 충돌 주장하면서 사실여부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포함되고 다소 과격하고 공격적 표현은 비난할 부분이 있고, 내용과 표현의 부적절성의 경우 비판의 여지가 크다”면서도 “그렇다고 형사처벌해서는 안 되고 학문의 자유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가 게시한 글의 전체적 내용에 비춰볼 때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침몰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고, 사고원인에 관한 합조단 발표를 분석 비판해, 사고원인에 대한 본인 나름의 분석을 제시해 공익 목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을 확대해석해,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 처벌할 경우 중요한 공익적 관심사에 대한 논쟁을 봉쇄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우선 고려된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분명히 했다.

   
▲ 2심재판부도 1심재판부와 같이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그대로 인정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천안함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안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절단, 침몰해 40명의 군장병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사건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이같은 조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좌초후 잠수함 충돌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과 윤종성 당시 민군합조단장, 현역 장교 등으로부터 개인 명의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당했다.

신상철 “사고원인에 대한 진실규명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이 사건이 제 인생에서 50대의 10년을 완전히 가져가 버렸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1년 11월 인터뷰 당시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6일 승소 후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재판부가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1심판결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는 부분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면서 “저에 대한 명예훼손이 무죄판결이 났다고 해서 그 사고원인에 대한 진실규명이 종료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노력은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 숙제는 사실상 현 정부, 그리고 언론에게 과제가 넘어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 전 위원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이었음을 상기시키고 “결과적으로 현 민주당도 사실 민주당의 추천 조사위원인 저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짚고 “진실규명의 과제 역시 여당인 민주당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폭침의 '물증'으로 제시한 '1번 어뢰'. [자료사진 - 통일뉴스]

특히 “남북 간의 관계개선을 갈망하고 있는 현 정부 입장으로 봤을 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나 명쾌한 정리 없이 서로 대화를 한다거나 관계개선, 또는 평화모색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겠느냐”며 “북한의 수중 공격에 의한 소행이라면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이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받아야 할 것이고, 만약에 남쪽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북쪽에 누명 씌운 것에 대해서 사죄하고 또 유엔까지 가서 거짓 발표를 한 것에 대해 전 세계에 사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사실 이 사건이 제 인생에서 50대의 10년을 완전히 가져가 버렸다”며 “이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밝혀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더욱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현재의 판결이 반쪽짜리 판결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고 개인적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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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에 재건축 손 놓은 삼성물산, 이재용 승계 위해 인력 감축도 불사했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하던 2015년 입찰 참여 ‘1’건…건설 직원 900명 이상 감축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20-10-06 20:03:51
수정 2020-10-06 20: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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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8일 오전 9시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경찰이 18일 오전 9시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추진되던 시기, ‘래미안’을 짓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 직원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삼성물산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4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삼성물산 건설부문 직원 660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직원의 8.32%가 승계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구조조정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물산은 2010년대 들어 직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1년 6,100명이던 직원은 3년 뒤인 2014년 1분기 7,930명으로 30%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다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이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진 2014년 들어 갑작스럽게 인원이 줄어든다. 2014년 매 분기 평균 100명 가까이 회사를 떠났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직전인 2015년 1분기에는 373명의 직원이 정든 회사를 떠났다. 당시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하급 직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비슷한 시기 경쟁사인 대우건설은 직원이 오히려 늘었고, 규모가 비등한 현대건설과 GS건설은 100명 안팎의 변동이 있을 뿐이었다.

경쟁사 수주전 치열한데 삼성물산 뒷짐…수익성 위주 사업 선별 주장도 근거 미약

 

삼성물산 직원들이 줄어든 이유는 삼성물산의 재건축·재개발 수주 상황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직원들이 줄어든 2014년과 2015년 서울 강남 등지의 노른자 땅에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에서 사실상 모습을 감췄다.

삼성물산은 2014년 강남구 상아3차, 서초구 방배3구역, 양천구 목제1구역 등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 시공사 선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래미안 브랜드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삼성물산이 빠지면서 강남구는 현대산업개발이, 서초구는 GS건설이, 목동은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있었던 2015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2015년 사업비 각각 2천억원(행당6구역), 3천800억원(고덕주공6단지) 재건축 사업에 삼성물산은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GS건설이 두 사업 모두를 싹쓸이했다. 같은해 최대규모 재개발 사업인 동대문구 재개발 사업에도 삼성물산은 참전하지 않았다. 당시 재개발 사업은 1조2천억원·4043세대 규모였는데 결국 GS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컨소시엄을 꾸려 사업을 수주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신규 물량을 받지 않고, 기존 현장이 완공되면 담당자들을 내보내면서 직원이 줄어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9월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지난 2018년 9월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김슬찬 기자

재건축 규제 완화로 호황기 맞았는데 입찰 참여 1건

2015년 삼성물산의 수주 기피는 비정상적인 경영 전략으로 비쳤다. 무엇보다 시장 여건이 긍정적이었다. 정부가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푼 것이다. 2014년 9월 재건축 연한을 기존 준공 후 4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한 데 이어 이듬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적용을 유예했다.

삼성물산도 2015년을 주택 시장 호황기로 평가했다. 해당연도 사업보고서에서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저금리 정책에 따른 주택·부동산 시장 호조로 국내 건설 시장이 사상 최대인 158조원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래미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삼성물산이 2000년 론칭한 래미안은 국내 1세대 아파트 브랜드로 줄곧 업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삼성물산은 래미안이 국가고객만족도(NCSI) 한국산업브랜드파워(K-BPI)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 등에서 10년 이상 연속 1위를 기록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건설 업계에서 주택 사업을 중심으로 한 국내 시장을 세계 건설 시장 침체 국면에서 실적을 만회할 돌파구로 여겨졌다. 2015년 세계 건설 시장은 중국 경제성장 둔화, 유럽 경기침체, 저유가 영향으로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삼성물산은 해외 사업 부실 수주로 실적 악화도 겪고 있었다. 2015년 건설 부문에서 약 774억원의 적자를 냈다. 호주 로이힐 광산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탓이다. 채굴한 철광석을 처리하기 위한 항만·철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었는데, 기상이변으로 공기를 맞추지 못해 매달 수 백억원의 보상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삼성물산은 향후 발생할 잠재손실을 미리 회계에 반영했다. 게다가 해당 사업은 2013년 수주 당시부터 일각에서 저가 수주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국내 주택 시장 호황·해외 시장 악화·사업성 악화 등 입찰에 적극 나서야 할 유인이 여럿 상존했으나 삼성물산은 재건축·재개발 수주를 구태여 외면했다.

래미안 아트리치
래미안 아트리치ⓒ기타

삼성물산 주가 낮춰야 했던 이재용…시너지 효과는 공염불이었다

삼성물산이 수주를 기피한 건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함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평가돼야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은 23.2%였고, 삼성물산 주식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합병이 성사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에 대해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26일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주식 3주와 제일모직 주식 1주를 맞바꾸는 0.35:1로 결정됐다. 합병 비율은 이사회 직전 1개월 주가를 기준으로 한다. 이 부회장은 2015년 5월까지 주가를 낮춰야 할 유인이 있었던 셈이다. 삼성물산 매출액은 제일모직보다 5.5배, 총자산은 3배 많았으나, 현저히 저평가된 채로 합병이 이뤄졌다.

실제 삼성물산 주가는 2015년 상반기 건설 경기가 호황인 가운데 유독 하락세를 보였다. 2015년 1월 2일 6만700원이던 삼성물산 주가는 같은해 5월 22일 5만5,300원으로 8.9%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건설업 주가지수는 28.7% 상승했다. 주요 경쟁사인 GS건설(33.0%)·대우건설(31.5%)·대림산업(29.6%)·현대건설(17%) 모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업계는 상승장을 누리는데 삼성물산만 곤두박질쳤다. 이 부회장 등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내리눌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시공사 입찰은 건설사에게 봄철 모내기와 같다. 시공사로 선정이 되면 이후 조합과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해 분양·공사에 들어간다. 시공사 선정은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어, 기업 가치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증권가에서도 건설사 주가 상승을 시공사 선정 영향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가도 삼성물산 주가 부진 원인으로 주택 정비 사업 수주 기피를 꼽았다. 현대차증권은 2015년 4월 보고서에서 “삼성물산 주가는 대형 타 건설사에 비해 주가 상승률이 높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주택공급 계획과 매출액 감소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KDB대우증권은 “부동산 업황 개선에도 분양물량 증가 폭이 경쟁사 대비 크지 않아 주택 매출 증가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KTB투자증권도 5월 삼성물산 주가 부진 원인으로 소극적인 주택사업 전개를 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이 시너지를 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렇다 할 합병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너지로 기업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합병 전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이후에도 합병법인 건설 부문 직원은 매년 감축을 거듭해 올해 상반기 기준 5,5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업 실적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주주에게 합병 찬성을 호소하면서, ‘2020년 매출 60조원’을 목표로 제시했다. 지난해 합병법인 매출액은 31조원에서 못 미쳤다.

고용은 줄고 사업 시너지도 없다. 합병이 사업적 판단보다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1일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 11명을 자본시장법(부정거래·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오는 22일에는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0.06.08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0.06.08ⓒ김철수 기자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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