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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쪽배로 분단을 건너 온 수학자, 안재구 선생

신념의 쪽배로 분단을 건너 온 수학자, 안재구 선생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10/20 [13:5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안재구 선생     © 김영란 기자

 

▲ 남민전 사건과 구국전위 사건으로 두 번이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며 한 생을 민족의 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안재구 선생의 쾌유를 빌며 87세 생신을 축하하는 모임이 19일 12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렸다     © 김영란 기자

 

▲ 안재구 선생 생신축하 모임에서 함께 한 사람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 김영란 기자

 

▲ 안재구 선생이 참가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신념의 쪽배로 분단을 건너 온 수학자민족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

 

남민전 사건과 구국전위 사건으로 두 번이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며 한 생을 민족의 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안재구 선생의 쾌유를 빌며 87세 생신을 축하하는 모임이 19일 12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렸다.

 

안재구 선생은 1933년생으로 2020년에 미수 축하모임을 하려 했으나 안재구 선생이 몸이 안 좋은 관계로 올해 87세 생신축하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생신축하 모임에는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와 당원들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회원들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과 회원들권오헌 양심수후원회 이사장 및 회원들권낙기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와 회원들, 615 학술본부 회원들사월혁명회 회원들 그리고 남민전구국전위에서 함께 활동한 동지들과 안재구 선생의 가족들을 비롯해 150여 명의 사람이 참가했다.

 

생신축하 모임에는 안재구 선생의 약력 소개와 삶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었다.

 

이어 각계의 축사가 이어졌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이사장은 안재구 선생의 끝나지 않은 길은 지금도 계속될 것이며 이어질 것이다안재구 선생이 지금 건강이 완벽하지 않지만반드시 극복될 것이라 믿는다선생의 온 생애는 자주통일 운동의 역사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꿈꾸었고 이것이 선생의 유일한 삶의 목표였고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의 과정이다앞으로도 이 정신이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안재구 선생이 반드시 지병을 털고 일어나 통일된 그 날을 함께 맞이하는 날을 기다리겠다라며 축사를 했다.

 

눈앞이 캄캄하지만 용기가 일어나고

온몸이 힘이 빠져도 노력을 했고

많은 것을 포기했기에

당당하게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는 그런 사람을 꽃이라 합니다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는 3년 전 촛불 집회 때 초등학생이 쓴 시가 안재구 선생을 떠오르게 한다며 시를 낭송한 뒤에 축사를 했다.

 

권낙기 대표는 안재구 박사는 평생을 정직하고 계산하지 않고 우직하게 살아 온 사람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다또한 안재구 박사는 여리고 인간미가 있다자녀들과 손자들의 작은 행동에도 큰 기쁨을 찾고 표현했다안재구 박사는 늘 책을 보고 공부를 하면서 녹슬지 않는 의식을 갖도록 평생 노력했다이는 우리 모두 배워야 한다안재구 박사는 유명인사가 되기 위한 언행을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안 박사가 유명인사는 아닐지라도 역사의 거목이라고 강조했다.

  

▲ 축사를 하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이사장     © 김영란 기자

 

▲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가 안재구 선생에게 "그동안 사준 술과 밥을 이자까지 해서 갚아야 한다고 약속해달라"라고 말하자 약속을 지키겠다고 안 선생이 답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김한성 615학술본보 대표가 안재구 선생을 위한 한시를 써와 낭독했다.“밀양의 정기가 현인을 낳으니/수학의 명성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네/민족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셨으니/후배는 충심으로 선생님께 한잔을 올립니다”     © 김영란 기자

  

조순덕 민가협 상의의장은 민가협 어머니들은 집회기자회견 어떤 행사장에서도 안재구 선생과 함께 했다안재구 선생은 사람은 늘 공부를 해야 한다며 책을 주었다장수향(안재구 선생의 부인별세선생은 언제나 민가협의 어머니들과 함께 하며 어머니를 위로해주었다안재구 선생이 끝까지 사랑하는 가족들귀한 동지들 마음에서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축사를 했다.

 

김한성 615 학술본부 대표는 “615 학술본부는 학자나 교수들이 지행합일즉 배웠으면 실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배움은 실천에서 완성되는데 이를 못 하는 학자교수들이 많다그런데 안재구 선생은 지행합일의 표본이다또한 안재구 선생은 학문만 한 것이 아니라 민족 통일운동에 헌신해왔다안재구 선생은 학식과 인품을 두루 갖춘 사람이다옛말에 글을 가르치는 선생은 쉽게 구하지만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선생은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안재구 선생은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선생이다라고 말을 했다.

 

또한 김한성 대표는 안재구 선생을 위한 한시를 써와 낭독했다.

 

밀양의 정기가 현인을 낳으니

수학의 명성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네

민족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셨으니

후배는 충심으로 선생님께 한잔을 올립니다

 

이날 생신축하 모임에서 민중 가수 우위영 씨와 경기지역 청년들의 문예 공연이 있었다.

 

우위영 씨는 노래 철창 속의 봄’. ‘통일의 길’ ‘굽이치는 임진강을 불렀는데특히 노래 철창 속의 봄과 통일의 길은 안재구 선생이 교도소에 있을 때 직접 만든 노래이다경기지역 청년들은 통일 노래 연곡에 맞춰 율동했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참가자 전체를 대표해 안재구 선생에게 축하 꽃다발을 드렸다.

 

안재구 선생 생신축하 모임은 전체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끝이 났다. 

 

▲ 우위영 씨가 안재구 선생이 감옥 속에 있을 때 만든 노래 '철창 속의 봄'을 부르자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안재구 선생     © 김영란 기자

 

▲ 우위영 씨는 노래 ‘철창 속의 봄’. ‘통일의 길’ ‘굽이치는 임진강’을 불렀는데, 특히 노래 ‘철창 속의 봄’과 ‘통일의 길’은 안재구 선생이 교도소에 있을 때 직접 만든 노래이다.     © 김영란 기자

 

▲ 경기지역 청년들은 통일 노래 연곡에 맞춰 율동했다.율동을 끝내고 "생신 축하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안재구 선생 생신축하 모임에는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와 당원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회원들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과 회원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이사장 및 회원들, 권낙기,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와 회원들, 615 학술본부 회원들, 사월혁명회 회원들 그리고 남민전, 구국전위에서 함께 활동한 동지들과 안재구 선생의 가족들을 비롯해 150여 명의 사람이 참가했다.     © 김영란 기자

 

▲ 안재구 선생 생신축하 모임이 시작하기 전, 민가협 어머니들이 "생신 축하드립니다"라며 인사를 전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안재구 선생 약력>

 

1933년 10월 24대구에서 출생.

1947년 5노동절 집회 참가로 중학교 퇴학. (밀양중학교 1학년)

1948년 2. 2.7 구국투쟁에 참가 후 남로당 밀양군당 조직 연락원과 농민위원회 조직지도원으로 활동.

1949년 6초등교원 채용 준교사 시험에 합격.

1949~51대구 달성군 구지초등학교 교사.

1952년 3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 입학.

1958년 3경북대학교 문리대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1970경북대에서 이학박사 학위 취득 후 경북대 문리대 수학과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 역임

1976년 2경북대에서 국가관 미확립이라는 이유와 학생운동에 동정적이라는 구실로 재임용 탈락.

1979년 10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으로 체포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세계 수학자들의 항의와 진정으로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1988년 12가석방.

1991경희대학교 교양학부 강사로 재직하면서 현대사회와 과학’ 강의

1994년 6월 14구국전위 사건으로 체포무기징역 선고

1999년 8월 15형 집행정지로 석방

 

저서로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광야, 1989)』 『철학의 세계 과학의 세계(죽산, 1990)수학문화사(일월서각,1990)할배왜놈 소는 조선 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돌베개, 1996)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 사람들, 2003)끝나지 않은길 1, 2 (내일을 여는 책,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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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순식간에 미대사관저 담장 넘어간 대학생들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항의하며 17명 월담... 미 대사 "억지로 집에 들어오려 해"

19.10.19 15:01l최종 업데이트 19.10.19 15:01l
글·영상: 권우성(kws21)

 

[오마이TV] 순식간에 미대사관저 담장 넘어간 대학생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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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 항의하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미대사관저 담장을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며 '월담'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관을 직접 만나 사과를 받고 분담금 요구를 철회시키겠다며 대사관저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다 투입된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이날 시위로 대사관저에 들어간 17명을 포함해 총 19명이 강제연행됐다.

해리스 미 대사 "경비대와 경찰청에 감사"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19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19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 트위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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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미 대사는 19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대사관저에 무단침입한 시위대 관련 대처를 잘 해준 대사관 경비대와 서울지방경찰청에 감사 인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해리스 미 대사는 "서울 중심부에서 13개월 만에 2번째 일어난 사건으로 이번에는 시위대가 억지로 제 집에 들어오려 했다"라며 "19명이 체포됐고 고양이들은 무사하다"라고 전했다. 또한 대한민국 경찰청 트위터 계정(@polinlove)을 언급하며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방위비 분담금 항의, 미대사관저 '월담' 기습시위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과도한 주한미군 방위금 분담금(6조) 요구에 항의하며 18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뒤편 미대사관저 담장에 사다리를 놓고 넘어들어가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 방위비 분담금 항의, 미대사관저 "월담" 기습시위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과도한 주한미군 방위금 분담금(6조) 요구에 항의하며 18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뒤편 미대사관저 담장에 사다리를 놓고 넘어들어가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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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금 인상 강요, 혈세 강탈 미국 규탄"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강요, 혈세 강탈 미국 규탄"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10/19 [20: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중공동행동, 반전평화 국민행동은 19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강요, 지소미아 연장 강요 미국규탄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대회를 마치고 남인사마당을 출발해 종로를 지나 미 대사관까지 행진했다.     ©박한균 기자

 

▲ 청년민중당의 '가자 통일로' 율동 공연모습.     © 박한균 기자

 

▲ 남인사마당에서 미국규탄대회가 열렸다.     © 박한균 기자

 

▲ 참가자들이 남인사마당을 출발해 종로를 지나 미 대사관까지 행진했다.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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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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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이 미 대사관을 향해 "주한미군은 이 땅을 떠나라!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라고 외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김선경 청년민중당 공동대표.     ©박한균 기자

 

▲ 윤태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 박한균 기자

 

▲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 박한균 기자

 

“방위비 분담금 혈세 강탈하는 미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저지하여 우리 주권을 지키자!” 

 

민중공동행동, 반전평화 국민행동은 19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강요, 지소미아 연장 강요 미국규탄대회’를 열었다. 

 

사회자는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6조 인상하는 협상을 올해 안에 끝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혈세 강탈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요하는 미국을 규탄한다”라며 이번 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청년민중당의 ‘가자 통일로’ 율동 공연을 시작으로 김선경 민중당 공동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선경 공동대표는 “알고 보니 미국은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폭격기 사용에 필요한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항목으로 책정해 놓았다. 평화를 위협하기 위한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예산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 청년민중당도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한 푼도 올릴 수 없도록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저지, 재정주권 지켜내자!” “지소미아 확실하게 소멸시키자!” “미국은 6.12 싱가포르 합의 성실히 이행하라!” “F-35A 전투기 도입을 규탄한다!” 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남인사마당을 출발해 행진을 시작했다. 

 

종각 사거리에 이른 참가자들은 시민들을 향해 발언을 진행했다. 

 

홍미라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민대협) 회원은 시민들을 향해 “지난 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위한 1차 회의 후 미국은 주한미군 가족 지원과 준비태세라는 명목을 새롭게 제시하면서 30억 달러 증액을 요구했다”라며 “지난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 양국은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약속했고 남과 북 또한 9.19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을 통해 육해공 어디에서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바 있음에도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비용과 한미연합 군사비용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미국은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평화의 걸림돌 주한미군을 지금 당장 철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미 대사관에서 행진을 마치고 희망새 공연을 시작으로 마무리대회를 이어나갔다. 

 

윤태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지난 18일 우리 대학생들은 우리가 낸 방위비 분담금을 주일미군에게 쓰거나, 이자 놀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다섯 배(6조)나 증액을 요구한 것에 분노해 미 대사관 저로 대학생들이 들어갔다”라면서 “우리 대진연은 국민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전달하기 위해 계속해서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나라의 주권과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 19명의 대학생이 하루 빨리 석방될 수 있게 석방탄원에 함께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로 가자는 약속을 지키면 어찌 저들이 난동을 부릴 수 있겠는가. 평화로 가는 데 무기구입이 무슨 소용이고 한미군사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늘부터 19명의 애국 학생들과 함께 방위비 분담금 요구와 지소미아 연장 압박이 사라지고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되찾는 그날까지 투쟁하자”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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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여의도와 서초를 에워싼 분노의 촛불바다

<화보> 여의도와 서초를 에워싼 분노의 촛불바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10/20 [03:25]
 

 

▲     © 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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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지지율 1위 이낙연, 총리 끝내고도 유지할까

차기 지지율 1위 이낙연, 총리 끝내고도 유지할까

등록 :2019-10-18 19:31수정 :2019-10-19 09:35

 

[토요판] 특집
최장수 국무총리 이낙연

전례 없는 실세 총리로 고공행진
내부적으로 차기 대선 준비 들어가
‘연말 당 복귀 후 총선 역할론’ 솔솔

중도 확장성과 높은 지지율이 강점
“포용과 통합이 다음 시대정신이면
보수적 성향 이 총리가 적임” 주장

세 약하고 정치 철학 약한 건 약점
“오랜 정치생활에도 자기 사람 없어”
“퇴임 후 지지율 유지가 관건”
이낙연 국무총리는 오는 28일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인 그는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8월12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 총리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낙연 국무총리는 오는 28일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인 그는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8월12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 총리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오는 28일이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의 기록(현 기록보유자 김황식)을 새로 쓴다. 2년4개월이 넘는 긴 재임 기간을 가진 총리가 모처럼 탄생하는데다 현직 총리가 공공연한 차기 대선주자의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낙연 총리가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탐색해본다.

 

국무총리 이낙연(이하 호칭 생략)은 한국 정치사에서 독특하다. 총리로서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부터 사상 처음이다. 이회창·고건·이수성 등 역대로 총리 출신의 유력 대선 주자가 많았지만, 모두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의 일이다. 황교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낙연은 대선에 대한 꿈을 숨기기는커녕 때때로 은근슬쩍 내비친다.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견제받기 쉽지만, 청와대나 여당에서는 그를 멀리하기보다는 보호하는 분위기다. ‘현재’도 탄탄하고 ‘미래’의 가능성도 품고 있는 현직 총리다.
 


2017년 5월 전남도지사 이낙연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가 됐을 때만 해도 그의 정치적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4선 의원에 도지사 출신이긴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나 여권 내부의 위상이 높지 않았다. 차기 주자군에서도 박원순·안희정·이재명·김부겸보다 밀렸다.

 

“총리 때문에 장관들 늘 긴장해”

 

이낙연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총리 업무를 하면서부터다. 야당 의원들의 놀이터였던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는 이낙연의 내공을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그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품격 있는 언어와 날카로운 논리, 엄정한 팩트로 맞받아치는 이른바 ‘사이다 답변’으로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각 운영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인수위(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거치지 못하고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관은 “회의 때 총리가 날카롭고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국무회의나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때 장관들이 정말로 긴장한다. 장관이 자기 부처의 현안을 대충 알고 회의에 임할 수가 없다. 부처 수장들이 늘 긴장감을 갖고 있기에 이 정부 들어서 큰 사고나 사건이 적고, 발생하더라도 빨리 수습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낙연표 행정의 한 사례로 지난겨울 조류독감(AI)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을 들었다.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총리 주재로 조류독감 예방을 위해 미리 대책을 논의했으며, 농민 출신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야생 오리가 지나가는 지역에서는 오리 사육을 금지하는 선제적 조처를 했다는 것이다. 해마다 생기던 조류독감이 그해 없었던 원인인지는 더 분석해야 하지만, 현장 중심으로 꼼꼼하게 국정을 챙기는 이낙연 정치 리더십의 한 면을 보여준다.

 

이낙연의 일솜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깊은 신뢰를 얻었다. 4년 연임제 개헌안이 대통령 발의로 지난해 상반기에 국회에 제출됐을 때였다. 개헌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에서 뒤늦게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만들었다. 당시 청와대 아침 참모회의 때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안은 대통령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국회가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게 되면 이낙연 총리처럼 좋은 분을 우리가 모실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이낙연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는 월요일마다 총리와 오찬 회동을 하고, 개발도상국과 하는 정상외교 일부를 총리에게 위임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과 총리로 만나기 전,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나 친분은 전혀 없었다.

 

“2012년 대선 패배 직후에 제 딴에는 당내의 어떤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제 홈페이지에 우리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태도는 신중히 하는 ‘태도 보수’를 하자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막말 파동 등이 있어서 그랬다. 어느 날 당시 문재인 의원님이 전화를 해서 책을 쓰는데 저의 글 중에 그 부분을 인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그게 개인적 인연으로는 처음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활동을 2년간 함께했지만, 제가 도지사 경선을 준비하느라고 바쁘고 해서 깊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이낙연, 8월12일 <한겨레> 인터뷰)

 

문 대통령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도 이낙연의 총리 기용과 관련해 “지난 대선 때 고전했던 호남에서 이낙연 당시 전남지사 쪽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나 총리 발탁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영남이어서 초대 총리는 호남으로 하고, 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분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이 총리가 가장 적임이었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때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대해 품격있는 언어와 정확한 팩트로 ‘사이다 답변’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총리가 지난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낙연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때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대해 품격있는 언어와 정확한 팩트로 ‘사이다 답변’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총리가 지난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인생 바꾼 기자 생활은 우연의 산물

 

이낙연은 <동아일보> 국제부장을 하다가 2000년 총선거(16대 국회)에서 당시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으로 고향인 전남 함평·영광에서 당선돼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낙연은 정치 초년생인 2001년, 여당 대변인으로 발탁될 정도로 정치의 무기인 말을 다루는 데 뛰어났다. 절제된 표현에 정확한 단어와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는 그는 모두 다섯번의 대변인을 지냈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는 대변인 논평(2002년 10월)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대선 후보 교체를 요구하면서 잇따라 탈당하는 소속 의원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우리 민주당에서 탈당자가 연속해서 나오던 때였다. 당에서는 특히 노무현 후보 진영에서는 탈당자들을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기류가 많았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기도 지쳤고 생각도 달랐다. 국민들이 우리 당을 어떻게 볼까 걱정됐다. 게다가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되면 다시 합쳐야 할 정치인들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 2003년)

 

노무현은 이런 이낙연을 좋아해, 그를 후보 대변인과 당선인 대변인으로 늘 측근에 뒀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이낙연에게 청와대로 같이 들어가자고 요청한 데 이어 그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 때는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 합류를 권했다. 그러나 이낙연은 둘 다 거절했다. 17대 국회 때 민주당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옛 동지였던 노무현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낙연은 2017년 10월19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나라다운 나라로 사람 사는 세상, 이루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못난 이낙연”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세번이나 사람을 보내 열린우리당 합류를 종용했는데, 그걸 도와드리지 못한 것은 미안하다는 의미”(이낙연, 8월12일 <한겨레> 인터뷰)라고 말했다.

 

이낙연은 1952년 전남 영광의 농가에서 7남매 중 둘째(장남)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어머니(2018년 작고)가 직접 기른 채소를 새벽마다 광주리에 이고 법성포 장에 가서 내다팔아 생계에 보탰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부모는 명석했던 장남을 가난한 살림에도 광주(북성중)로 조기 유학 보냈다. 대신 형제들 다수는 고향에서 중·고교만 마쳤다. 이낙연은 광주제일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1970년)했다. 고교와 대학 친구인 조순용(한국TV홈쇼핑협회장)은 “고교 때 시험을 보면 성적순으로 게시판에 이름이 나붙는데, 이낙연 총리가 항상 1등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국어를 특히 잘했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때는 유신 쿠데타(1972년)로 박정희의 독재정치가 심한 시기였다. “야당 대선 후보 김대중의 유세장(1971년)을 쫓아다니고, 학생 시위가 벌어지면 뒷줄에서 구호도 따라불렀”(이낙연, 8월12일 <한겨레> 인터뷰)지만, 학생운동권은 아니었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한차례 도전했던, 가난한 집안의 평범한 법대생이었다.

 

“당시 하숙비가 없어서 선배네 하숙집과 친구네 자취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2, 3년 했고, 1년은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는 등 몸이 망가져 있었는데 영장이 나오길래 연기하지 않고 졸업식 1주일 전에 입대(카투사)했다. 제대 후에 한 친구가 자신의 월급 절반을 주면서 7개월 동안 고시 공부를 하도록 후원해줬지만, 동생들은 점점 크는데 나만 공부한다는 게 양심에 용납이 되지 않아 그만두고 취직했다.”(이낙연, 8월12일 <한겨레> 인터뷰)

 

정치부 기자·4선 의원·도지사 지내
대변인 5번…‘품격 언어’ 탁월해
디테일 강하고 꼼꼼한 완벽주의자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총애받아
“엘리트주의·아랫사람 힘들어” 평도

 

이낙연은 투자신탁회사에 잠시 적을 뒀다가 1979년 우연한 계기로 당시 야당지로 알려진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투자신탁이라는 금융업 자체가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던 때여서 친구들도 제 회사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만날 때마다 뭐하는 데냐고 물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중에 어느 날 선배네 집의 신문에서 우연히 기자 모집 광고를 봤다. 그게 언론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였다.”(이낙연, 8월12일 <한겨레> 인터뷰)

 

그의 인생 항로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글을 잘 쓰는 그는 신문사에서 정치부 기자와 도쿄 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지내며 필명을 날렸다. 민주화 직후였던 1980년대 말 평화민주당(현 민주당의 전신)의 김대중 총재가 바이라인이 없어도 출입기자 이낙연이 쓴 기사를 알아보고, 자신의 차량에 동승할 수 있는 ‘특권’을 줄 정도였다. 김대중은 1990년 함평·영광 보궐선거 때를 비롯해 일찍부터 이낙연에게 정치권 입문을 권유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8월12일 정부종합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8월12일 정부종합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보수적 진보 아닌 진보적 보수”

 

정치인 이낙연의 원형인 기자 이낙연에 대한 평은 엇갈린다. 한쪽은 그의 성실함과 자기 일에 대한 완벽주의 등을 높게 평가한다. 임채청(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이낙연의 책(<이낙연의 낮은 목소리>, 2003년) 추천 글에서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청국장은 아무렇지 않게 먹어도, 군더더기가 들어 있는 글은 결코 용납하지 못했다. … 조사 하나, 접속사 하나의 적합성까지도 음미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걸어다니는 교과서’로 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너그러움이 부족한 엘리트주의자라는 평도 많다. 함께 일했던 한 전직 후배 기자는 “그는 늘 완벽하게 일을 하려고 하기에 윗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아랫사람들은 정말 힘들어했다. 마음에 들게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심하게 꾸짖는다. 대신 서울 법대 후배 등을 특별히 챙겼다”고 말했다.

 

전남도지사 시절이나 총리실 업무에 대한 증언도 비슷하다. 전남도청의 한 출입기자는 “대충주의를 용납하지 않고, 만기친람(모든 일 샅샅이 보살핌)에 빨간펜 선생처럼 문서를 꼼꼼하게 봤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정말 힘들어했다. 그러나 도의 기강이 잡히고 일이 잘 돌아갔다. 도민 입장에서는 좋은 지사였다”고 말했다.

 

이낙연은 대선 얘기가 나올 때마다 “총리 일도 벅찬데 과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오래전부터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격주로 경제 분야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를 돕는 외곽 그룹도 형성되고 있다. ‘이낙연 대통령 만들기’에 발 벗고 나선 정치 원로 그룹도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인사는 “이 총리는 다음 대선에 나갈 결심을 한 것으로 안다. 이 총리 쪽에서 연말까지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런 차원이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총리를 관둬야 한다는 판단인 것이다”고 말했다.

 

이낙연의 ‘가능성’은 어떨까. 변수가 많이 남아 있지만, 높은 지지율과 중도 확장성은 가장 큰 강점이다. 이달 초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은 10명 가운데 전체 1위(22%)를 기록했으며, 특히 민주당의 다른 경쟁자들(이재명 7%, 조국 5%, 박원순 3%)보다 크게 앞서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최근의 대선 후보 경쟁에서 어느 정당이든 대중 지지도가 핵심적 요소가 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낙연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큰 자산이다. 더구나 안희정, 이재명, 김경수, 조국 등 여권 내 잠재적 경쟁자들이 잇따라 악재에 휘말려 탈락하거나 고전하고 있어서 이낙연은 상대적으로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합리적이고 중도 보수적인 성향이 도움이 될 거라는 분석도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조순용은 “이 총리는 보수적 진보가 아니라 진보적 보수”라며 “진보 정권에 국민이 실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낙연과 가까웠던 김효석(대한석유협회 회장)도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포용과 통합이 될 것이다. 거기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이낙연이다. 사회적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높아지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낙연을 지지하는 정대철(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총리나 국회의장은 정치에서 보면 착실히 실력을 키운 정규군이다. 그동안은 한번도 이들이 대통령이 된 적이 없지만, 안정된 사회에서는 가능하다. 우리도 이제 시대적으로 그럴 때가 됐다고 본다. 더구나 이 총리는 임명직만 맡았던 황교안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는 품격 있는 언어와 신사적인 매너로 유명하다. 지난 8월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이낙연 국무총리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집무실 밖에까지 나와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낙연 총리는 품격 있는 언어와 신사적인 매너로 유명하다. 지난 8월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이낙연 국무총리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집무실 밖에까지 나와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호남은 약점 아니나 시대정신이 핵심”

 

하지만 세력이 약하고, 정치 지도자로서 시대적 철학이나 비전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약점이라는 평이 나온다. 그는 4선 의원까지 지냈지만, 자기 계보나 이낙연 사람으로 알려진 의원이 없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꼴찌를 했을 정도로 동료들에게 인기가 별로다. 야당의 한 다선 의원은 “이 총리는 남에 대한 배려나 칭찬에 인색하다. 그러다 보니 따르는 사람이 없는데, 정치 지도자로서는 약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도 “정치 지도자는 합리적이고 훌륭한 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꿈과 비전, 시대정신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 총리는 그런 게 아직 잘 안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은 “모처럼 등장한 호남 대표 주자라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이다. 품격과 안정감도 플러스 요인이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지지율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가까이 있음으로 해서 얻은 점수가 많아서 한계가 있다. 퇴임 후 지지율이 꺼지면 다시 오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약점을 극복하고 잠재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는 본인의 정치력과 시대적 흐름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전략가이기도 한 이철희(민주당 의원)는 “이 총리가 열심히 일한다는 것 말고 자신의 어젠다가 없기는 하지만, 자기가 하기에 따라 후보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음 시대가 어떤 지도자를 원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13782.html?_fr=mt1#csidx990b1ce6aa15e65b894c68b4deb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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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 사가꼬 묻어주면 소원이 없어”

[여순사건과 여성] 여순사건 유족 홍순례의 삶
 
정미경  | 등록:2019-10-19 08:33:47 | 최종:2019-10-19 08:46: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올해로 ‘여수·순천10.19사건’71주년을 맞습니다. ‘여순사건’은 ‘제주4.3’과 함께 해방 후 우리 민족사의 슬픈 역사입니다. 오랜 세월 군부독재세력이 덧씌워놓았던 이념과 진영의 논리를 한 꺼풀 벗겨 내면 ‘동족살상에 대한 거부’와 ‘국가폭력에 대한 민중의 항거’라는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제주4.3이 특별법제정과 함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의 과정을 이루어나가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주4.3’과 맞닿아 있는 ‘여순사건’은 아직도 특별법 논의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의길은 ‘여순사건’은 ‘여순항쟁’이 되어야 한다는 제언과 ‘여순10.19특별법’제정을 적극 지지하며 71주년을 맞아 집중 조명합니다. 관련 기사와 자료공유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순천광장신문, 여수신문, 여수인터넷신문 편집장님과 임직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진실의길-

“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 사가꼬 묻어주면 소원이 없어”
[여순사건과 여성] 여순사건 유족 홍순례의 삶
(순천광장신문 / 정미경 소설가 / 2019-09-26)


1948년 가을. 당시 남편은 그지없이 의가 좋은 형님과 함께 형님 집의 지붕을 새로 엮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나 남편을 불렀다. ‘마을에서 누구네 아버지를 데려다가 고문을 하면서, 니그 동네 누구누구가 어쩌냐 긍께로, 우리 시숙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남편 이름을 불러버렸어.’ 남편은 그 길로 상사 지서로 끌려갔다가 그날 밤 순천경찰서로 이송된 후 소식이 끊겼다. [유족증언]

홍순례 씨는 현재 96세로 1924년 부모님 사이에서 2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상사면 서정리에 살면서 처녀 때 ‘일 년 배우고 졸업 탄 학교’에서 재를 넘어 다니며 공부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상사면 오곡리 오산 마을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열두 살 위로 신부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양가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다. 결혼 후 남편은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1년 후 신부도 따라갔다.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고향으로 가야 아이가 생긴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귀향, 곧 아들을 낳았다.

1948년 가을. 당시 남편은 그지없이 의가 좋은 형님과 함께 형님 집의 지붕을 새로 엮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나 남편을 불렀다. ‘마을에서 누구네 아버지를 데려다가 고문을 하면서, 니그 동네 누구누구가 어쩌냐 긍께로, 우리 시숙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남편 이름을 불러버렸어.’ 남편은 그 길로 상사 지서로 끌려갔다가 그날 밤 순천경찰서로 이송된 후 소식이 끊겼다.

홍순례 씨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 부모형제조차 끌려간 사람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3살이던 아기를 업고 무작정 길을 나서 목포교도소로 갔다. 밤을 새며 명단을 확인했으나 남편의 이름은 없었다. 다시 ‘죄인들이 많이 갔다는 소리만 듣고’ 대전형무소로 갔다. 거기에 남편과 같이 끌려갔던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 홍순례 씨로부터 용기를 얻은 마을 사람들도 면회를 갔다. 다달이 면회를 갔으나 6·25 이후 남편을 보지 못했다. 같이 끌려간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홍순례 씨는 25살 때 남편이 끌려간 이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았다. 마을 여인들은 모두  개가하였으나 96살이 된 지금까지 ‘남편만 보고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그 ‘남편의 흔적’인 아들은 엄마가 시집갈까봐 학교를 못 다니고 엄마를 지키다 3년 전에 세상을 떴다. 홍순례 씨는 현재 며느리와 함께 상사면 오곡리 오산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1948년 가을, 그날 남편이 지그 성 대신 끌려갔어.
남편이 지그 성(형) 허고 둘이 참, 그냥 어떻게 산지도 모르게 좋게 살아. 근디 그 날, 옛날 지붕 이(덮)지요, 짚으로. 경찰이 와서 부르더라고. 그 길로 그냥 데리고 가불어. 나도 졸졸졸 따라갔지. 상사 지서로 끌고 갔다가 또 구루마로 순천으로 끌고 가. 그러고는 행방불명이 돼불었어. 그 길로 영 안 와불어.

그때는 죄인 하나를 찾으려고 해도 누가 쏴 죽일까 싶어서 밖에도 못 나가
인자 통간에,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그해 겨울을 지냈어. 그 때 애기가 세 살 묵었응갑다. 그때는 죄인 하나를 찾으려고 해도 누가 쏴 죽일까 싶어서 밖에도 못 나가. 부모도 소용없고. 그래서 아무도 안 찾아. 이래 놔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가 애기를, 그 쬐깐 간난이를 업고, 무조건, 목포형무소로 갔어. 거기서 하루 저녁을 자면서 서류 뭉치를 떠들러보고 찾아봐도 없어. 그 뒤에도 갔제. 또 가도 없어. 또 이래 놔둬서는 안 되겄다 싶어서 대전형무소로 갔어.

나 혼자 그냥,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대전형무소에 죄인들이 많이 갔다는 소리만 듣고. 형무소에 가서 그 소리를 안 해야 헐 껀디, 여수반란사건에서 왔다고 그랬드니 없다고 딱 덮어불어. 그 안에 분명 있는디. 그래서 한 달 뒤에 가서 찾아봉께, 그 때는 인자 있어. 우리 동네 사람들, 항꾸네 간 사람들도 다 있고. 아리께 온지를 알았는데 못 봤다고 글드라고. 죄인이, 남편이.

누가 때려 죽일까봐, 통 암도 부모도 형제간도 안 가니까 다 소용없고, 그래도 마누라밖에 없다고 하등마. 달마다 면회를 갔는디, 아무도 안 가. 나 혼자. 나 혼자만 댕겨. 총 맞아 죽을까봐 통 찾아보지도 않아. 안 무섭더냐고? 뭘 무서워. 남편이 형무소에가 있는디.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처음에 애기를 업고 갔는디 아들을 보듬어보지도 않아. 그 뒤로는 놔두고 다녔어. 한 해 지나고 6·25사변 난 그 달에, 애기를 데리고 갔는디, 애기 머리를 살살 쓰다듬고 들여다보면서 눈물을 참, 흘리드라고. 막 눈물을…… 지달리지 말고 애기 학교랑 보내라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무조건 죄가 없어도 있다, 그래.
6·25사변 나고 면회가니까 대전형무소에 있던 죄인들 다 죽었다 그래. 그래서 남편이 죽은 걸 알았제. 어느 골짜기에다 무더기로 그냥 죽였다고 하대. 시신은 못 찾았제. 기일은 형무소에서 고무신 때우던 사람이, 죄인들이 들어온 거 나간 거, 죽은 거를 아주 정확허니 알등마. 우리 시어른이 알아봤지. 그래 남편이 죽은 날짜를 알았어.

따악 아들 하나가 목에 탁 걸쳐가꼬, 모래밭에다 혀를 박아도 시집갈란 생각은 없어.
남편 돌아가고 어찌 살기는. 그작저작 살제, 어쩔 거여. 농사짓고 사는 대로 사는 거지. 솔직허게 말허자면 사는 게 사는 거여? 넘이 사니께 사는 거제.

시집을 가? 애기가 있는디 어찌 시집을 간다요. 따악 아들 하나가 목에 탁 걸쳐가꼬, 그걸 보고 어찌.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나 가고나면, 니가 엄마 엄마 부를 건디, 누구를 보고 엄마라 헐 거냐, 그걸 생각하면 시집갈란 생각을 못해. 모래밭에다 혀를 박아도 시집갈란 생각은 없어. 친정 엄마도 시집가라고는 안 했어. 나가 엄벙덤벙 살고, 남자 생각이나 하고 그러면 모를까 나가 야무지게 하고 사니까 누구도 시집가란 소리는 못 했어. 갈 맘도 없어.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디, 니가 누구를 부를 거냐, 그걸 생각허면 요로콤 주먹 쥐고 시집 갈 맘이 없어.

졸졸 따라다니느라 학교를 못 가. 나가 시집갈까봐 학교를 못 가네, 애기가. 용케 학교를 보내놓으면 끝나고 저 아래서부터 엄마 엄마 허고 부르면서 오요. 하믄, 효도하고말고. 지그 엄마뿐이 몰라. 엄마를 한 번도 안 떨어졌제.

나 열여덟 살에 결혼을 했는디 남편이 나보다는 몇 배나 잘 생겨도 안 이쁘게 보여.
나 열여덟 살에 결혼을 했는디 어려서 해농께 어떻게 했는지도 몰라. 열두 살 차이가 나. 맘에 들지도 않았는데 부모가 시켜서 억지로 했어. 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시집오기 전에 그런 사람 없었어. 글을 잘 써, 나가? 처녀 때 일 년 만에 졸업시켜 주는 학교가 있어서 재를 넘어 댕기며 그 때 공부 조금 했어. 결혼을 해서 남편이 일본을 갔어. 1년 있다가 나도 갔는디 애기가 안 생겨서 다시 나왔어, 점쟁이가 고향에 가야 애기가 생긴다고 해서. 그때 생긴 게 내 아들이여.

나가 이제 뭔 헐 일이 있어. 죽을 연구나 허제.
여순사건 원망허제. 그걸 생각하면 막, 그냥, 뭣도, 아무것도 안 보여. 근디 누구한테 원망을 헐 거여. 이왕 돌아가신 거 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 사가꼬 묻어주면 더는 소원이 없어. 남편만 보고 오늘날까지 살았는디, 남편 묘나 그렇게 좋게 써가꼬 남편 보듯이 글면 얼마나 좋아. 나도 이제 거기서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싶냐고? 많이 보고 싶지는 안 허고, 이상한 마음만 들지. 불쌍한 마음만 들지. 남편 이름이 뱅뱅 돌구만. ㅇㅇ,ㅇㅇ, 오ㅇㅇ여, 오ㅇㅇ. 아들 이름? 우리 아들 이름을 잊어불었네. 이때깔로 그 애기 하나만 보고 살아. 남편 흔적이지, 그거 애기 하나가. 애기 하나만 보고 그렇게 살았응께. 아들 이름 오ㅇㅇ. 아들이 먼저 갔어. 무답시.

나 사진 찍어준다고? 머리 빗고 옷 갈아입고 올게. 나 저기 갈 때 놓을 그 사진 찍어줘. 이 옷으로 입었네. 이것이 나여? 아이고 요상도 허네.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있네. 뽑아서 가져다 준다고? 언제 올 거여.                                              

정미경 소설가

출처: http://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096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873&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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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끄세요!"... 피우진 '증언 거부'에 들썩인 정무위

[국감-정무위] "무혐의 처분 받았지만 한국당 항고... 증언감정법 따라 증언 거부"

19.10.18 17:45l최종 업데이트 19.10.18 18:09l

 

피우진 "증인선서와 증언 거부합니다"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와 증언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다.
▲ 피우진 "증인선서와 증언 거부합니다"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와 증언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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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정감사의 증인으로서 선서를 거부하며 일체의 증언 역시 거부합니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이 증인으로서의 선서와 증언을 거부했다. 증인 선서 전 민병두 위원장에게 "마이크를 주시면 안 되겠나, 선서 전에 해야 돼서 그렇다"라며 급히 발언권을 얻은 뒤 내뱉은 말이었다. 피 전 처장의 증언 거부로 국감은 관련 법 해석을 둘러싼 여야 공방 끝에 잠시 중지되기도 했다.

피 전 처장은 자유한국당의 고발과 항고로 인한 검찰 수사 상황을 언급하며 "증인이 형사 소추 또는 공소 제기를 당할 수 있는 경우 증언뿐 아니라 선서까지 거부할 수 있다"는 법률에 따라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피 전 처장은 손혜원 무소속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포상 과정의 특혜 의혹과 산하기관장 사퇴 종용 의혹에 대한 심문을 위해 증인으로 채택된 바 있다.

 

피 전 처장은 이 자리에서 "이 두 가지 (심문 내용) 모두 한국당이 검찰에 저를 고발한 내용이다, 손 의원 부친에 대한 것은 남부지검이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을 했지만, 고발인인 한국당이 항고해 현재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라며 "산하기관 사퇴 종용 의혹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각 재판별 사건번호까지 열거했다.

피 전 처장은 또한 한국당의 항고 직전 검찰 수사 상황을 언급하며 자신에 대한 무혐의 처분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한국당이 고발한 손혜원 부친의 건은 검찰이 몇 달 동안 보훈처 직원을 수시로 불러 조사했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10번도 넘게 소환 했다, 검찰은 여러 직원들을 자정 넘어 새벽까지 조사하기도 했다"라면서 "이렇게 강도 높은 수사를 했으나 결국 부정 청탁이 없었고 (손혜원 부친에 대한) 서훈 확정은 심사 기준에 따른 것이라 위법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도 고발인인 한국당이 항고해 서울고등검찰청이 다시 수사하고 있는 상태다"라면서 "국회에서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증인이 형사소추 또는 공소 제기를 당할 수 있는 경우 증언뿐 아니라 선서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이 자리에서 선서 및 일체의 증언을 거부한다"라고 밝혔다.

김진태 "국회모욕죄로 고발해야"... 이학영 "고발한 걸 질의하는 게 말이 되냐"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의 증언 선서 거부 사태에 대해 "증언 거부죄"와 "국회 모욕죄"를 적용해 정무위 차원에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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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 이거 마이크 끄세요. (중략) 저 이야기를 국감 시간 뺏겨 가면서까지 들으라는 거예요?"

한국당 위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피 전 처장은 마이크가 꺼진 가운데에서도 "단지 제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저와 함께 근무하던 보훈처 직원 한 명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고 다른 직원도 추가 기소될 여지가 있다"라며 재차 증언 거부 입장을 피력했다.
    
민병두 위원장은 이어 의사진행발언을 통한 여야 토론을 시작했다. 한국당 위원들은 "국회 우롱"이라며 피 전 처장의 증언 거부를 맹비난했다. 김진태 의원은 특히 '증언 거부죄'와 '국회 모욕죄'를 적용해 정무위 차원에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검찰에 가서 불기소 처분을 받아 놓고 여기서 이야기하다가 잘 못 이야기해서 다시 고발되거나 수사받을 수 있으니 나는 못하겠다는 건데, 그냥 본인의 생존 본능만 중요하지, 1년 여 동안 보훈처를 이끌어온 사람이다, 묵과할 수 없는 사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소속 위원들은 법적 해석을 들어 피 전 처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학영 의원은 "증인이 법에 의해 증언을 거부했을 때 우리가 강요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국회에서도 김용판 청장이 증언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한국당이 고발했는데 고발한 사실을 다시 질의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나"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경우, 2013년 8월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지상규명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당시 증언 선서를 거부하고 소명서를 대신 낭독한 바 있다. 김 전 청장도 당시 '재판 중'인 사안임을 강조하며 증언을 거부했다.

민병두 위원장은 이에 "증언 선서 거부 사태에 대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라면서 감사 중지를 선언했다. 국정감사는 30분여 뒤 재개됐으나, 한 차례 공방이 더 이어졌다. 그러나 피 전 처장은 이어진 야당의 증언 재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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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단신> ‘가을철전국신발전시회-2019’ 개막 등

<북 단신> ‘가을철전국신발전시회-2019’ 개막 등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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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9  07: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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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철전국신발전시회-2019’ 18일 개막

‘가을철전국신발전시회-2019’ 개막식이 18일 평양역전백화점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제품전시회와 과학기술발표회 형식으로 24일까지 진행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8일 “전시회에는 원산구두공장,류원신발공장,신발공업관리국 신발연구소,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을 비롯한 50여개 단위에서 1,300여종에 18만 2,500여점의 제품이 출품되고 신발공업부문에서 이룩된 수십건의 연구성과자료가 제출되였다”며 “제품전시회는 자기 단위를 상징하고 대표할수 있는 다종다양한 신발들과 자재 등을 전시하고 판매를 통하여 인민들의 평가를 받는 방법으로 진행된다”고 보도했다.

내각부총리 임철웅, 경공업상 최일룡을 비롯해 “관계부문, 출품단위 일군들, 연구사, 기술자, 박사원생, 3대혁명소조원, 로동자들”이 참가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 수성천종합식료공장 강냉이가공분공장, 청진김치공장 준공식

함경북도 지역에 새로 건설된 수성천종합식료공장, 강냉이가공분공장과 청진김치공장이 18일 준공식을 가졌다.

<노동신문>은 19일 “현대적인 설비들을 그쯘히 갖춘 공장들이 건설됨으로써 갖가지 강냉이가공품과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인 김치를 공업적으로 생산하여 도내인민들의 식생활향상에 이바지할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리용히 함경북도 당위원장은 준공사를 통해 “련관단위들에서 필요한 설비, 자재들을 제때에 보장하였으며 도안의 근로자들도 로력적으로, 물질적으로 적극 지원하여 완공을 앞당기는데 기여”한데 대해 언급하고 “공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이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생산공정의 무인화, 무균화를 더욱 완비하고 강냉이가공품의 질을 철저히 보장하는것과 함께 김치의 가지수를 늘여나가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방의 원료원천을 적극 탐구동원하고 설비 및 기술관리를 짜고들어 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며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에 계속 힘을 넣을”데 대해 언급했다.

□ 신흥혁명전적지관리소, 영광혁명전적지관리소 창립 30돌 기념보고회

신흥혁명전적지관리소, 영광혁명전적지관리소 창립 30돌 기념보고회가 18일 각각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보고자들은 신흥혁명전적지관리소와 영광혁명전적지관리소가 주체78(1989)년 10월 19일에 창립된 후 지난 30년간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이며 당원들과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데 적극 이바지해온데 대하여 언급하였다”고 보도했다.

“신흥혁명전적지와 영광혁명전적지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여러 차례 이곳에 진출하시여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들과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고 인민들을 전민항쟁에로 불러일으키신 불멸의 사적이 깃들어있다”는 것.

통신은 “신흥혁명전적지와 영광혁명전적지에 관리소가 조직된 때로부터 신흥지구의 드넓은 지역에서 혁명사적발굴고증사업이 더욱 줄기차게 벌어지고 구호문헌들과 혁명유적유물들에 대한 보존관리사업에서 성과가 이룩되였다고 그들은 말하였다”고 전하고 “그들은 참관조직사업을 짜고들어 당원들과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는데 적극 이바지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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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75.1% 방위비 인상 반대해.. 대학생들 즉각 석방하라!!!

[3신] 국민 75.1% 방위비 인상 반대해.. 대학생들 즉각 석방하라!!!
 
 
 
대학생통신원 
기사입력: 2019/10/19 [08: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대진연인 18일 저녁 6시 30분 ‘미군 지원금 5배 인상요구 해리스 대사 규탄과 연행자 석방’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학생통신원

 

18일 주한미국대사 관저에 미군 지원금 5배 인상 규탄해리 해리스 미 대사 규탄!’을 외치며 항의 투쟁을 진행한 대학생 19명이 모두 연행됐다.

 

이에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은 긴급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오후 6시 30분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미군 지원금 5배 인상요구 해리스 대사 규탄과 연행자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재이 대학생은 미국이 요구하는 6조 원은 60만 명 국민에게 1천만 원 씩 나눠줄 수 있고, 300만 명 대학생에게 장학금 200만 원 씩 나눠줄 수 있는 금액이라며 지난달 미군 지원금의 일부를 멕시코 국경 장벽을 건설하는데 전용했던 사례를 들며 국민들의 75.1%가 미군 지원금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주 미군 지원금 2차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며 현재 한국이 전체 비용의 5분의 1만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연내 타결을 주장하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발언에 대한 항의 투쟁을 진행한 대학생들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의로운 행동이었음 밝히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대진연은 앞서 17일 청와대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를 발표하여 미국이 6조 원 인상 요구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운영유지비 1조 3천억 원 추산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고현재도 지원금 예산 미집행 금액이 상당하게 쌓여있는 것을 짚으며 무리한 인상 요구 배경에 미국의 국경 장벽 건설로 전용하려는 목적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후에는 밤샘 릴레이 항의 1인 시위를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진행했다동시에 온라인에서 석방 촉구 국민탄원서를 받고 있다.

 

대진연은 19(오늘낮 12시 30분 대학생 석방 촉구 기자회견을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진행할 계획을 밝혔다또한 오후 3시 한국진보연대민주노총 통일위원회 등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연합 기자회견을 같은 장소에서 진행할 것을 밝혔다.

 

아래는 대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이다.

https://forms.gle/dKqHbSVsHanHrLfB6

 

 

▲ 연행된 학생들 석방을 요구하며 대학생들이 경찰서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대학생통신원

 

 

▲ 대진연은 대학생들이 연행되어 있는 남대문 경찰서, 종암 경찰서, 노원 경찰서 앞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대학생 통신원

 

 

▲ 노원 경찰서 앞에서 연행된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1인시위 하는 대진연 회원     © 대학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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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국감에서 ‘MB 때 가장 쿨했다’는 윤석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10/18 11:19
  • 수정일
    2019/10/18 11: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MB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윤석열
 
임병도 | 2019-10-18 09:47: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명박 정부 때 중수부 과장으로 특수부장으로 한 3년간 특별수사를 했는데 대통령 측근과 형 뭐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던 것으로,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사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MB정부로 꼽았습니다. 윤 총장은 1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검사 오래 하셨는데 검찰에 대한 중립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 중 어느 정부가 그나마 중립적인가. 그나마 중립을 보장하고 있나”라고 묻자 ‘MB 때 쿨했다’라고 답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 발언을 보면 마치 MB정권 시기 검찰이 굉장히 중립적으로 일을 했다는 착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MB의 통치 도구로 이용됐고, 검사들도 기꺼이 권력에 빌붙어 살았습니다.


MB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윤석열 

 

MB정권 초기였던 2008년에는 윤 총장은 대전지검 논산지청 지청장에 불과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2009년 대구지검 특수부 부장검사로 갔다가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근무합니다. 이후 2010년 대검 중수2과장으로 다음해에는 중수1과장으로 고속 승진합니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까지 올라갔던 윤석열 총장은 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됩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상득 전 의원 사건 때문에 검찰 중립성이 쿨했다고 보기보다는 그 시절에 가장 승승장구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MB정권에서 벌어졌던 사건들 

1.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참가 시민에게 폭력 등을 행사한 경찰에 대한 수사
2.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효성 그룹 총수 일가 비자금 사건 수사
3. 김옥희 씨(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사촌)의 공천 로비 금품 수수 수사
4. 유한열 한나라당 고문의 국방부 납품 불법로비 수사
5. 서울시 의회 김귀환 의장 뇌불제공 및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
6. 한상률 전 국세청장 인사 청탁 및 태광실업 세무조사
7. 용산 지역 철거 반대 농성장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과 불법 행위 방조 사건 수사
8. 한나라당 공성진 헌경병 의원 등의 스테이트월셔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수사
9. 청와대와 국무 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증거인의 대우 조선 해양 관련 수사
10. 대통령 측근 천신일 회장의 대우조선해양 관련 수사
11. 음성직 도시 철도 공사 사장 뇌물 수수 및 특혜 제공 수사
12.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
13.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사건 수사
14. 양재동 복합 유통 센터 (파이 시티) 개발사업 관련 비리 수사
15.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뇌물수수 의혹(함바비리 수사)
16. CNK 주가 조작 의혹수사
17. 서울 시장 선거 투표 방해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사건 수사
18.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BBK 연루 및 차명 재산의혹 수사
19. 김경준 기획 입국 설 가짜 편지 사건 수사
20. 정봉주 전 의원의 BBK 관련 의혹제기 명예훼손 수사
21.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물 집회 참 가자 집시법위반 수사
22. 광우병 위험 보도 PD 수첩 명예 훼손 혐의 수사
23. 조선, 중앙,동아 3개 신문 광고불매 소비자운동 업무방해 수사
24. 언론 독립 쟁취 YTN 노조 업무 방해 수사
25. 정연주 KBS 사장 배임 혐의 수사
26. 최열 환경단체대표 공금 횡령 혐의 수사
27.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허위 사실 유포 죄 수사
28.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시국 선언 발표 관련 수사
29. 공무원 노조 시국 대회 참가 관련 수사
30, 시국 선언 전교조 교사 징계 보류 김상곤 교육감 직무 유기 혐의 수사
31. 전교조 교사 및 공무원의 민주 노동당 가입과 후원금 수사
32. 한상률 전 국 세 청장 비판 한 나주 세무서 김동일 계장에 대한 수사
33. 김상곤 교육감의 장학금 수여에 대한 불법기부행위 적용 수사
34. 정상문 참여 정부 비서관에 대한 신성 해운 불법 로비 수사
35.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 뇌물 수수 혐의 수사
36.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혐의 수사
37. 한명숙 전 국무 불법 정치자금 혐의 수사
38. 노 전대통령 영결식 관련 백원우 의원 장례식 방해 혐의 수사
39. 2009년 철도 노조 파업에 대한 업무 방해 수사
40. 4 대강 사업,무상 급식 관련 선거법 위반 수사
41. G20 정상 회의 홍보 포스터 풍자 쥐 그림 수사
42. 고공 농성 김진숙과 희망 버스 수사
43. 곽노현 교육감 후보단일화 관련금품수수 수사
44. 민주당 전당대회 동봉투 살포 의혹수사
45.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관련 금품수수 수사
46.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의 비리 혐의 수사
47. 노 전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세종증권 인수청탁 사건 수사
48. 박연차 회장 정 관계 불법 자금제공 수사
49. 신한금융지주 라웅찬 회장 차명계좌 등 비리수사 계열사 수사
50.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은 2천2백억원 되돌려준 삼성그룹 계열사 수사사 부당 지원 수사
51.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명소유회사 계열사 부당지원 수사
52.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등 횡령 및 배임 등 수사
53. 오리온 담철권 회장 횡령 혐의 수사
54. 금호화학석유 박찬구 회장 횡령배임 혐의 수사
55. 회사자금을 개인적 투자에 이용한 최태원 SK 그룹 회장 수사
56. SLS 그룹 수사무마 및 워크아웃 불법로비 수사
57. 저축은행 불법로비 정치인 수사
58. 사회주의 노동자연합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혐의 수사
59. 간디 학교 교사 수업교재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혐의 수사
60. 남북 공동 선언 실천연대 이적 단체 혐의 수사
61. 반 국가 단체 왕재산 결성 혐의 수사
62. 주한 미군 철수 등 주장한 평통사 사무국장 국가보안법 수사
63. GPS 간첩사건 수사
64. 박기준, 한승철 검사 등 금품 항응 수수와 부패 행위 묵살 사건 감찰
65. 정인균 검사(그랜저 검사)의 사건청탁 뇌물수사 및 재수사
66. 이소연 검사 (벤츠 여검사)의 수수와 사건 청탁 수 검사 비리 사건
67. 김광준 서울 고검 부장 검사 비리 사건
68.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주요 후보를 선거법 위반 후원금 제공 전교조 수사
69. 사학분쟁 조정위원회의 상지대관련 속기록 폐기구발사건 수사
70. 청목회 입법로비 불법 후원금 수수 국회의원 수사
71. 경산시청 공무원 수사 중 검찰의 가혹행위 수사
72. 현직검사 정당 가입 혐의 수사
73. 박경신 교수 음란물 유포죄 수사
74.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대화 내용 보도 한겨레 기자 수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간한 ‘MB정부 5년 검찰보고서’에 언급됐던 당시 검찰 사건 목록입니다. 사건 리스트만 봐도 당시 검찰이 얼마나 권력의 도구로 이용됐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검찰은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광우병 보도 PD수첩, 정연주 KBS 사장,논객 미네르바) 무리하게 기소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권력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입니다.

MB정권은 검찰 권력을 악용해 전 정권을 수사함으로(한명숙 전 총리, 노무현 대통령 일가 수사) 참여정부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습니다. 노무현 죽이기에 동원된 검찰은 피의사실을 마음대로 공표하고, 공권력을 남용했습니다.

집권 세력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칼날을 휘둘렀던 검찰은 정황과 증거가 고스란히 드러난 MB정권 사건(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사건) 은 봐주거나 기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입니다. 단순한 검사가 아닙니다. 검찰총장의 입에서 MB정권 시절 정치 검찰의 문제는 보지 못하고, 그저 ‘쿨했다’는 말이 나온 사실은 가히 충격입니다.


윤석열은 검찰개혁 적임자가 아니었다 

 

MB가 윤석열 관용차 K9 타고 구치소 이동한 이유

중앙일보 중앙일보
 

2012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유진그룹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으로부터 10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내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언론이 수사 내용을 보도했고, 검찰은 특임검사를 임명하면서 검찰과 경찰이 충돌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이었던 윤석열은 김광준 부장검사의 실명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이 신청한 계좌추적영장을 기각했습니다. 경찰은 특임검사팀 수사결과에 포함되지 않은 특수부 동료 3명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윤석열 부장검사는 “이미 특임검사팀에서 기소했고, 수사내용이 같아 공소권 없음 처분하고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힙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때 다양한 경로로 그를 바라봤어야 합니다. 하지만 ‘검찰개혁’이라는 명제에 빠져 소홀했습니다. 그 속에는 제대로 기사를 쓰지 못했던 아이엠피터도 있기에 반성합니다.

깊이 파고들수록 개혁보다는 검찰 조직을 지키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속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 총장은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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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한미군사령관, 한국과 미국서 전혀 다른 ‘유엔사 역할’ 발언 드러나

에이브럼스 사령관 미 의회선 “유엔사, 태평양 전략의 핵심” 강조...한국서는 “전혀 관련 없다” 발뺌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9-10-18 07:54:36
수정 2019-10-18 07: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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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미래 다차원 전장에서 육군의 역할과 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제5회 미래 지상군 발전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19.10.17.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미래 다차원 전장에서 육군의 역할과 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제5회 미래 지상군 발전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19.10.17.ⓒ뉴시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논란이 되는 유엔군사령부의 역할에 관해 한국과 미국에서 전혀 다른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로 인해 ‘말 바꾸기’ 논란도 예상된다.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17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회 미래 지상군 발전 국제심포지엄 기조강연에서 최근 유엔군사령부(유엔사) 권한 확대 우려에 관해 “가짜 뉴스(fake-news)”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사 재활성화 움직임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력과 직접 연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오해 여지를 남기지 않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고 강조한 뒤 “유엔사를 어떤 작전사령부로 탈바꿈하려는 비밀계획 따위는 없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특히 “유엔사 권한의 근거는 1950년 7월 7일 안보리 결의안 84호를 근거로 하고 있다”면서 “유엔사는 1978년부터 정전협정 집행 및 유사시 전력 제공국들의 전력지원 협력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엔사 재활성화(revitalization)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보다는 제대로 갖춰야 할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노력은 전임 사령관인 커티스 스카파로티 장군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유엔사에 근무하는 (각국) 참모는 21명이다. 21명으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전장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며 “유사시 유엔사가 이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아주 적은 수의 증원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작전사령부로 탈바꿈하려는 비밀계획 따위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이날 말을 종합하면, 유엔사는 단순히 정전협정 유지 기능만 하는 조직이며 유사시에도 작전사령부 역할을 하지 않아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한 셈이다. 또 유엔사 권한 확대 우려에 관해서도 이례적으로 ‘가짜 뉴스’라며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유엔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관한 국제적인 약속의 중심” 강조
주한미군도 “유엔사는 한미 동맹의 역량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전략적 다국적군”

그러나 그는 주한미군사령관에 지명된 직후인 지난해 9월 25일 열린 미 의회 상원 군사위 인준청문회에서 증인 선서 후 진술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지역 전략적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면서 특히, 유엔사가 담당하는 전력 제공국의 역할을 우선순위로 내세운 바 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당시 “(미국의)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증대해 왔다”면서 “동북아시아 성공의 토대는 주로 우리가 오랜 시간 이룩한 유엔 전력 제공국(United Nations sending states)과의 특별한 관계와 우리의 인도·태평양 이웃 국가들 특히, 일본과 한국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B.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부 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열린 '66주년 정전협정 조인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9.7.27
로버트 B.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부 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열린 '66주년 정전협정 조인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9.7.27ⓒ뉴스1

유엔사는 현재는 정전협정 유지·관리 기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전임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도 강조했듯이 유사시에는 한반도에 전력을 제공하는 다국적군의 지휘를 맡는다. 따라서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미 의회 의원들 앞에서 이러한 유엔사의 역할을 설명하며 미국의 태평양 지역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당시 청문회 사전 서면진술에서도 “유엔사(UNC)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관한 국제적인 약속의 중심(home)”이라며 유엔사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군사령관은 미 합참의장의 위임약정(TOR)에 근거해 작전을 수행한다”며 유엔사가 미국의 지휘를 받는 군사기구임을 분명히 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특히, 미군 장성이 유엔군사령관, 연합사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을 모두 겸임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 개의 사령관 중 하나만으로는 한반도의 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전체적인 임무가 성공할 수 없다”면서 “점점 세 사령관직 모두가 전체 임무에서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도 2018년에 발간한 전략문서(‘전략 다이제스트’)에서 유엔사에 관해 “세계 각국의 군대와 작전을 유엔사와 연계 및 통합하는 것은 바로 다국적 협조 센터의 역할로, 이곳은 국제 헌신의 중심이자 동맹국과 파트너의 1차 대화 채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엔사는 한미 동맹의 역량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전략적 다국적군”이라며 “정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유사시 한국을 방어할 유엔군을 추가로 수용하고 통합하기 위해 유기적인 다국적인 체제(framework)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 군 관계자는 이날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한국에서 한 유엔사 관련 발언이 미 의회 청문회의 진술 내용과는 상반된다’는 기자의 지적에 “동맹인 관계로 미국이 우리 측에 공식적으로 발언하는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우리도 유엔사 논란과 관련해 미 측이 어떠한 의도가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한미 당국 간에 안보협의회의(SCM) 등을 통해 긴밀하게 논의해 불필요한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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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한 달, '공장식 사육'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창비 주간 논평] 가축, 사람 할 것 없이 죽어 나간다
2019.10.18 00:06:50
 

 

 

 

살처분의 추억: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한국에서는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약 700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비롯한 가금류가 매몰처분되었다. 그중에서도 2016년 11월부터 2017년에 1월 사이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만 약 30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혔는데, AI가 산란계에 주로 발생하면서 그 충격이 더했다. 치킨이야 좀 안 먹고 지낼 수 있다지만 계란만큼은 그럴 수가 없는 식품이다. 당시 사람들은 속절없이 매몰처리되는 닭과 병아리를 보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한판에 4000원 내외로 밥상을 수호하던 계란이 졸지에 1만 원까지 치솟으면서 받은 충격도 컸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구제역으로 매몰된 대가축은 387만여 두수에 이른다. 구제역이 창궐한 2010년 겨울부터 2011년 초봄까지 한 계절에만 347만 마리가 죽어 나갔다. 대가축인 돼지와 소의 살풍경은 가금류보다 압도적인 스펙터클이었다. 냉혹한 말이지만 이렇게 많이 '죽여보았기' 때문에 현장에는 경험이 쌓이고 매뉴얼이라는 것이 생긴다. 가축전염병에 따른 '긴급행동지침'의 규준은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지침에 준한다. 한국보다 먼저 대량생산 체제의 축산업에 나서고 가축질병에 대응해본 국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매뉴얼이기도 하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한 대응도 결국 이전의 AI와 구제역의 매몰처분 경험에 빚지고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표상되는 축산업에 대해 환경운동 진영, 특히 동물권 운동 진영의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AI와 구제역 발생 때였다. 병에 걸리지 않은 가축까지 매몰하는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었고, 인도적 살처분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가축들의 의식이 완전히 소실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땅에 묻히는 장면들이 SNS를 타고 공유되면서 동물권 문제를 공론화했다. 막상 매몰처분 현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가축을 매몰하다 보니, '인도적 살처분' 지침은 지켜지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축산업이란 가축을 기르는 일인 동시에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AI나 구제역만큼은 아니어도 다양한 가축 질병으로 인한 살처분은 늘 있어왔다. 

예방 백신도 치료법도 없어 돼지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북한 지역에 발생한 때가 지난 늦봄이다. 이는 한반도에 ASF바이러스가 들어왔다는 뜻이므로 양돈생산자들은 차단방역에 힘써 달라는 요청을 공격적으로 줄기차게 해왔다. 공격적 방역에는 야생 멧돼지 살처분도 포함된다.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지만 멧돼지에게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휴전선이 멧돼지 유입을 막아준다는 공허한 대답뿐이었다. 결국 폐사된 멧돼지에서 ASF바이러스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이제야 멧돼지 포획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가축의 주무부처는 농식품부지만 야생동물의 소관은 환경부다.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할 환경부가 '죽이는 일'에 나서기는 퍽 난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분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농민보다 멧돼지가 중요하냐는 것이다.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원흉'이기도 하지만, 꼭 그뿐 아니라도 멧돼지로 인한 고통은 그동안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는 단신 뉴스거리지만 농촌에서는 일상적인 고통이다. 여성 농민들이 혼자 밭을 맬 때 가장 무서운 존재가 멧돼지다. 성인 남성보다 몸집이 훨씬 큰 성돈 멧돼지는 공포 그 자체다. 무엇보다 농작물 피해의 주범이기도 하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는 물론 과수의 최대 포식자인데, 과일만 따 먹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몸을 부딪쳐가며 가지를 부러뜨려 과일을 실컷 먹고 사라지곤 한다. 작은 새끼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어미 노릇을 하는 것이다. 논도 멧돼지의 주요 놀이터다. 본능적으로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돼지들에게 여름에 물 찬 논은 최적의 목욕탕이다. 벼가 태풍에 눌리면 세우기라도 하지만 멧돼지에 짓이겨지면 구제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하소연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어 야생동물들은 그저 식량을 구하러 내려올 뿐이라는, '생태적으로 매우 옳은 분석'도 농촌에서는 한갓진 말로 들릴 뿐이다. 멧돼지가 먹거리를 찾아 내려오는 민가가 주로 농가이고 생계를 짓밟히는 이들도 농민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멧돼지 보호구역을 지정해야 한다는 대안 등이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죽여보지 않았다 

가축전염병의 근본 문제를 공장식 밀집사육으로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기도 하다. 고령화와 경제적인 문제로 농민들은 해마다 줄어든다. 그런데 전체 가축의 사육 두수는 지난 5년간 축산통계를 보면 크게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다. 축산 농가 수가 줄어드는 대신 농장의 대형화 추세가 뚜렷하다. 아예 축산기업이 진출해 기존의 농가와 계약을 맺고 축산업에 간접 진출하기도 한다. 자급률이 낮은 탓에 사료 곡물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인건비 상승으로 가축 생산비는 점점 더 올라가지만 고깃값은 제자리에 멈춰 있다. 결국 단가를 맞추는 방법은 사육 두수를 늘리는 것뿐이다. 이에 더해 도시인들도 거기에 매달리는 삶을 산다. 즐비한 삼겹살집과 치킨집은 누군가의 최후의 직장이고 한 가족의 생계다. 가급적 싼값에 고기를 사들여 많이 팔아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지 이제 한 달여가 지났다. 좁은 국토에서 다닥다닥 기르다 보니 지역밀집도가 높아 예방적 살처분 반경에 많은 가축들이 포함되어 더 많이 죽는다. 오히려 축사 내 밀집도보다 지역 밀집도가 문제의 핵심이다. 양돈은 경기와 충청에, 양계는 호남에 집중되어 있다. 사료공장과 도축장과의 거리, 그리고 소비지 배후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로 되어 있는 한국의 축산업은 농촌 주민들의 고통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분뇨 냄새를 맡는 사람들도, 가축들이 죽어 나가면 살풍경을 봐야만 하는 이들도 농촌 주민이다. 기르는 곳에서 가축이 죽어 나가고 그 자리에 묻고 무덤을 매일 마주하는 이들도 농촌 주민이다. 축주는 기르는 자이기도 하고 죽이는 자이기도 하다. 가축을 돌보는 노동자 다수는 낯빛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농장의 가축들이 살처분되어 일자리를 잃으면 그대로 살처분 업체의 노동자가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장례 행렬에서 죽여보지 않은 이들의 곡소리가 상주들의 곡소리보다 더 높은 상황이 썩 흔쾌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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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검침원 물고문-살해 협박한 수사관... 한술 더 뜬 검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10/18 09:58
  • 수정일
    2019/10/18 09: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한민국 검찰실록 3] 간첩조작 사건, 검찰은 '공범'이었다

19.10.18 07:42l최종 업데이트 19.10.18 07:42l

 

해방 이후 70년 넘게 곪아온 검찰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국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검찰 부조리의 민낯을 '대한민국 검찰실록'에서 하나씩 파헤쳐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19.9.6
▲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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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단 한 번도 검찰청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도 검찰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청은 무서울 뿐 아니라 결코 정의롭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이 상당수 국민들을 지배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들이 검사라는 직업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그런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검찰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국민 정서가 이번 서초동 촛불집회로 집약됐다고 할 수 있다.

일요일인 1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민이 검찰개혁을 요구하시게 된 직접적 이유는 검찰의 제도와 조직보다 행동과 문화에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이 말처럼 검찰이 신망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간 검찰이 보여준 모습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인권침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검사들이 기소권·수사권·구형권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숱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인권침해 중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간첩 조작 사건이다. '간첩 조작' 하면 흔히 과거의 국정원이나 기무사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는 검찰의 협조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검찰의 협조 아래 만들어진 '간첩 조작' 사건

간첩 조작 사건이 완성되려면, 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검사가 그에 맞게 수사하고 기소하고 구형해야 한다. 이처럼 검찰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한데도, 그동안 간첩 조작 사건들과 관련해서는 검찰의 역할이 크게 주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가 내놓은 보고서들을 보면, 검찰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0년의 김기삼 사건을 들 수 있다.

1929년생인 김기삼은 해방 직후 육군 14연대에서 복무했다. 그러던 중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됐다. 여순사건(여순반란)은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압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의 반란을 말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발행한 <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순사건 뒤 풀려난 김기삼은 한국전쟁(6·25전쟁) 중인 1952년 국군에 입대했고 1965년부터는 한국전력 인천지점에서 전기 검침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980년 12월 8일 간첩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연행된 뒤 1983년 11월 8일 대법원 판결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김기삼 등이 체포된 간첩사건을 보도하는 1981년 4월 9일자 <경향신문>.
▲  김기삼 등이 체포된 간첩사건을 보도하는 1981년 4월 9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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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기삼 사진.
▲  1981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기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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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삼은 남파간첩인 사촌 형의 지령에 따라 주요 시설을 검침하고 그 결과를 보고했다는 죄목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실제로는 그냥 검침을 하러 다녔을 뿐인데도 간첩으로 몰려 중형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그는 52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물고문·전기고문에 몽둥이 구타까지 당했다. 심지어 권총으로 살해 협박도 받았다. 제3자가 보기에는 수사관이 진짜 죽일 생각이 없더라도, 그런 상황에 처한 당사자는 총이 진짜 발사될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고문 실태를 보면 안기부 수사관들이 얼마나 비열했는지 느낄 수 있다. 백열등 2개를 5일간 눈앞에 비춰놓고 잠을 못 자게 만들었다. 또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겨자 탄 물을 넣고 그것을 얼굴에 붓기도 했다. 자백을 안 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안기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곳은 광주지방검찰청이다. 검찰로 넘겨진 김기삼은 검사 앞에서 간첩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검사는 묵살해 버렸다. 검사는 안기부 수사관들이 입회한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내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했다. 또 안기부 수사관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기삼을 불러내는데도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불법 수사를 죄다 묵인했던 것이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피고인 대기실까지 찾아가 "검사 앞에서 조서 내용 그대로 자백해야 하며, 착오가 없어야 한다"고 협박했다. 또 교도소까지 찾아가 김기삼을 안기부 광주분실로 끌고간 뒤 "검찰 조사를 잘 받으라"며 구타했다.

만약 안기부의 위세만으로 검찰을 압박해 유죄 구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안기부 수사관들이 굳이 "검찰 수사 잘 받으라"며 계속 협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김기삼을 간첩으로 만들려면 검찰의 협조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처럼 안기부 수사에 제동을 걸 여지가 있었는데도, 검찰은 김기삼의 혐의 부인을 무시하고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일조했다.

민청학련 사건과 검찰 
 
 1974년 4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민청학련 사건.
▲  1974년 4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민청학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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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유신 시절인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제2차 인혁당 사건) 때도 검찰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인혁당의 조종을 받은 이 단체가 국가전복을 꾀한 것으로 발표된 이 사건에서도 검찰은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전신)와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이 사건의 수사 과정은 고문과 허위자백으로 점철됐다. 정상적인 수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소개한 이유정 인하대 교수의 논문 '과거사 진상 보고서를 통해 본 검찰의 인권침해 실태'에 아래와 같은 대목들이 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주도적으로 고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문 수사관들의 입회 하에 형식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면서 피의자들이 범죄 혐의를 부인하면 중정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하는 등 허위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불법수사를 하였다."

"피고인들이 제출한 항소·상고이유서에도 검찰 수사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검사(의) 조서 작성 시 4월 20일~25일까지 철야 조사를 받고 4~5일에 걸쳐 고문당함(도예종 항소이유서) ······"


"검찰서기였던 이○○도 의문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들 모두가 풀이 죽어 있었고 문 검사가 질문을 하면 부인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으며, 아마 고문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하여 검찰에서도 피의자들에 대한 고문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 2009년 발행한 <내일을 여는 역사> 제36호.
 
검찰은 이미 벌어진 고문수사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검찰 조사 중에 벌어지는 고문도 방조했다. 또 피의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중앙정보부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중앙정보부에서 벌어질 고문수사를 은근히 예고하는 방법으로 검사가 피고인을 협박한 것이다.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검찰도 간첩 조작의 공범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312조 1항과 2항이 다른 이유
 
“검찰아 칼잡이는 우리야“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전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검찰아 칼잡이는 검찰 썩은 환부 도려내는 우리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검찰아 칼잡이는 우리야“ 지난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전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검찰아 칼잡이는 검찰 썩은 환부 도려내는 우리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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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2조 제3항은 법원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권을 검사에게만 인정한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2는 경찰이 영장을 신청할 때는 반드시 검사를 거치도록 규정한다. 형사소송법 제196조는 검사에게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인정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검찰이 경찰을 견제하고 국민 인권을 보호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형사소송법 제312조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와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차별하는 것도 경찰보다 검찰의 인권보호를 좀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제312조는 검찰(제1항)과 경찰(제3항)이 각각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법적 효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차별적으로 규정한다.

제1항: 검사가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공판 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제3항: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제1항에 따르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려면, 피의자가 판사 앞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진술해야 한다. 제2항에 따르면, 경찰이 작성한 조서가 증거로 쓰이려면, 피의자나 변호인이 판사 앞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진술해야 할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 '진술한 내용이 사실입니다'라고 인정해야 한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보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가 훨씬 수월하게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객관적 진실과 다를 가능성이 있고, 검찰이 작성한 조서는 객관적 진실과 다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전제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법률 체계가 경찰보다 검찰을 더 신뢰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자료 중 하나다.

이렇게 상당한 신뢰를 받는데도 검찰은 국민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사례들도 적지 않다. 정보기관과 협조해 국민들을 간첩으로 내몬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제7차~제9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때 엄청난 숫자의 촛불이 서초역 일대에 등장한 것은 그간 검찰이 쌓아온 자업자득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검찰개혁을 요구하시게 된 직접적 이유는 검찰의 제도와 조직보다 행동과 문화에 있습니다"라는 쓴소리를 들을 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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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미실무협상 앞두고 미국에 최후 통첩

 백두산 오른 백두혈통, ‘웅대한 작전’은 무엇?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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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7  14: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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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고 16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 천지에 오르고,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현지도했다고 16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구체적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첫눈’을 맞았다는 것으로 보아 최근으로 보이며, 보도시점으로 보면 통상 15일일 가능성이 높다.

통신은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백두의 첫눈을 맞으시며 몸소 백마를 타시고 백두산정에 오르시였다”며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이번에 걸으신 군마행군길은 우리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된다”고 보도했다.

“동행한 일군들 모두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백두령봉에서 보내신 위대한 사색의 순간들을 목격하며 또다시 세상이 놀라고 우리 혁명이 한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받아안으며 끓어오르는 감격과 환희를 누르지 못하였다”는 것.

통신은 다른 기사에서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2단계 공사를 성과적으로 마감하고있는 들끓는 삼지연군안의 건설장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적들이 아무리 집요하게 발악해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잘 살아갈수 있고 우리 식으로 발전과 번영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다는 것이 시련과 곤난을 디디고 기적과 위훈으로 더 높이 비약한 2019년의 총화이라고 신심에 넘쳐 말씀하시였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행과 삼지연군 현지지도는 여러 장의 사진이 공개됐고, 2단계 건설공사를 마친 삼지연군은 현대적으로 탈바꿈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혜산-삼지연철길 개통식이 15일 위연청년역에서 진행되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백마 타고 백두산 오른 ‘백두 혈통’

김정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은 중대한 결심을 앞둔 의례적 행동으로 읽힌다. 과거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대한 결심을 앞두고 백두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통신은 백두산을 “우리 혁명의 걸음걸음이 총화되고 새로운 웅략들이 결심되는 조선혁명의 책원지”라고 묘사했다.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성산일 뿐만 아니라 북측으로서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의 근거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탄생지로 ‘백두 혈통’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성소이기도 하다.

   
▲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왼쪽)이 특별한 말 장식을 통해 '백두 혈통'임을 드러냈다. [캡쳐사진 - 조선중앙통신]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특별한 장식을 단 백마를 타고 등장해 주목된다. 외형적 당 서열보다 ‘백두 혈통’이 더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여정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조직지도부를 맡았다는 전언도 있다.

더군다나 이번 백두산행은 ‘백마’를 타고 ‘첫눈’을 맞는 모습까지 더해져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비화가 더욱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사실관계를 보도하는 <조선중앙통신>조차 “백두산은 천리준마의 발굽소리 우렁차게 눈갈기를 헤치며 찾아오신 천출위인을 맞이한 환희에 넘쳐 신비경의 장관을 펼치였으며”라거나 “새로운 ‘백두산룡마’신화가 태여나는 뜻깊은 시각을 맞이한 격정으로 하여 성산의 하늘도 백두령장의 어깨우에 삼가 백포자락을 얹어드리듯 하얀 눈발을 날려 산정을 덮으면서 신묘한 정기에 넘쳐있었다”고 이례적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북미 대결전 앞둔 샅바싸움

통신은 동행한 일군들이 “또다시 세상이 놀라고 우리 혁명이 한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받아안”았다고 전했고, 다음날인 17일 <노동신문>은 사설을 통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백두산에 오르실 때마다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는 새로운 전략적로선들이 제시되고 세상을 놀래우는 사변들이 일어났으며 우리 조국은 비약의 큰걸음을 내짚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웅대한 작전’이나 ‘전략적 노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드러나지 않았고, ‘사회주의 강대국’이라는 추상적 목표만 제시됐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행은 북미협상을 중심에 둔 전반적 구상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회주의 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미(북미) 대결전’을 승리적으로 결속지어야 하는 숙제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 구상과 북중, 북일 정상회담 일정 등도 포함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지연군 현지지도는 대북제재 속에서도 자력갱생의 기치를 앞세운 ‘경제강국’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사전 실무회담의 필요성을 확인해줬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올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4월 시정연설을 통해 “명백한것은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해결의 전망은 어두울것이며 매우 위험할것”이라면서도 “올해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협상시한을 제시한 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6월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곧 개최하기로 합의했던 북미 실무협상이 10월 5일 가까스로 스톡홀름에서 열렸지만 성과없이 끝난 상태다.

김명길 북측 실무단장은 “이번 협상이 아무런 결과물도 도출해내지 못하고 결렬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 데 있다”며 “미국이 빈손으로 협상에 나온 것은 결국 문제를 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힌 바 있다.

북미 간에 1차 스톡홀름 실무협상이 결렬되자 연내 북미 관계의 진전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형국이며, 연말까지 진전이 없을 경우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2차 북미 실무협상과 한미 군사훈련

물론, 아직은 2차 실무협상이나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 민간 소식통은 “2차 북미 실무협상이 오는 25일 열릴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북미 모두 후속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달 말이나 11월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서 11월 말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그러나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양측의 시각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올해초부터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전면 중단과 첨단무기 반입 중단을 요구했지만 실행이 안 되면서 북한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역시 “북한은 한미합동군사연습에 대해 확답을 하면, 협상을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짚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결정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재 완화’를 제기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딜’(no deal)로 낭패를 본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한미합동군사연습 전면 중단과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 중지,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투사 금지 등을 본격 요구해 나서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조성렬 위원은 “북한은 비핵화와 상응조치 협의 이전에 미국이 신뢰조치를 취하라는 얘긴데, 북한도 셈법을 바꿔야 한다”며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일종의 점검연습이 필요하고 주변국들의 첨단무기 증강에 남북도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렬 위원은 지난 9월 5일 <통일뉴스>가 주최한 통일방안 기획강좌에서 남측의 한미군사연습과 무기도입 과정, 북측의 단거리미사일이나 대구경방사포 시험발사 등에서 남북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 협상이 아니라 그냥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온갖 상대방의 고민들, 나의 고민들을 이야기하면서 타협점을 계속 찾자”고 제안한 바 있다.

SLBM 시험발사가 예고탄?

정창현 소장은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평양-워싱턴을 오가며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북미관계를 결정적으로 대화국면으로 진전시킬 지,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미국과 대치점을 명확히 보여줄지, 미국의 선택을 묻고 있는 국면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본다”며 “‘웅대한 작전’을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인공위성이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연말까지 북미관계의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기존 외교적 해법에서 벗어나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 지난 2일 북미 실무협상 일정이 발표된 가운데 북한은 SLBM '북극성-3'형을 시험발사했다. 잠수함에서 수중 발사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동해 작전배치를 앞둔 새로 건조된 잠수함을 둘러봤다. 신형 잠수함에서 SLBM 시험발사가 실시될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정성장 본부장은 “신형 잠수함을 공개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과 동행했던 유진 당 부부장이 삼지연군 현지지도에 함께 한 것으로 보도됐다”며 “1차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바지선에서 쏘아올렸던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신형 잠수함에서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압박 강도는 높이되 북미관계 개선의 흐름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셈이다. 그러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은 핵탄두를 장착할 경우 미국 본토 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무기에 해당돼 판을 깨는 꼬투리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 소식통은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서 북측은 ‘현금’을 손에 쥐어주든지 아니면 ‘탑 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고 들었다”며 “미국이 계산법을 바꿔 현찰에 해당되는 다른 계산법을 실무협상에서 제시할 수 없다면 북미 정상회담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미 하노이에서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북한이 실무협상에서 내용을 확정짓지 않고 곧바로 정상회담으로 직행할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성장 본부장은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미국에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국무장관과 국방장관과도 회담했다”며 “핵문제가 안보문제이면서 외교문제고 경제문제인 만큼 외무성 관료들이 다루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급을 높여서 협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리수용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대동해 미국과 실무담판을 벌여야 한다는 것.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협상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의 거취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결단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재선에 실패할 경우, 즉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기 때문.

조성렬 위원은 “미국이 신고는 나중에 하는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여 ‘트럼프 리스크’는 이미 반영됐다”며 “택핵은 상원 3분의 2가 찬성해 통과돼야 하는데 현실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경제강국 건설과 자력갱생의 모순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단계 건설 공사가 마감 단계에 들어선 삼지연군을 현지지도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 심지연읍 일대는 도로와 건물들이 새롭게 건설돼 면모가 일신됐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에 오른 시점과 맞물려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자력갱생’ 원칙을 재강조했다. 공개된 사진들 속의 삼지연읍은 도로와 건물들이 잘 정비돼 지방 관광거점으로서 손색 없게 탈바꿈됐다.

또한 15일 북중 접경지역인 혜산시에서 삼지연군에 이르는 철도도 완공돼 김재룡 내각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을 가졌다. 중국을 비롯한 외부 관광객들이 철길로 언제든지 북한쪽 백두산을 관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것이다.

통신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누구도 우리가 이처럼 곤난한 속에서 세상이 다 부러워할 이러한 리상향을 일떠세우리라고는 생각지 못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삼지연군꾸리기과정은 자기 힘을 믿고 하나로 굳게 뭉쳐 일떠설 때 못해낼 일이 없다는 우리 식 자력갱생의 생활력이 또 한번 뚜렷이 확증된 경이적인 행로”라고 보도했다.

정성장 본부장은 “경제적으로는 지금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자력갱생에 의존하고 중국과의 대외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관광은 대북제재 예외분야로 남아 중국 관광객이 늘고 있고, 혜산-삼지연 철로가 개통되면 중국의 이도백하가 발전된 관광도시로 변모됐듯이 삼지연군도 북한식 이도백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적 제재 속에서도 자력갱생을 통해 얼마든지 경제강국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위한 셈이지만 여전히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북제재를 완화 내지는 해제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원산 갈마 해안 관광지구를 해수욕 계절이 끝난 올해 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까지 바삐 그 무엇에 쫓기듯 속도전으로 건설하지 말고 공사기간을 6개월간 더 연장해 내년 태양절(4월 15일)까지 완벽하게 내놓자”고 했다. 건물 외관들은 세워졌지만 대북 제재로 인해 내장재 등의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미국 <복스뉴스>는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을 사흘 앞둔 지난 2일(현지 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영변 플러스 알파’를 대가로 북한의 석탄, 섬유 수출 제재를 36개월간 보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평양 월드컵 남북경기와 청와대의 고민

조성렬 위원은 “연말까지 일정을 보면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빠른 면이 있다”며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 모습은 국내용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 외에도 “가능성은 낮지만 북미관계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남북간 대화 재개를 검토시키겠다 정도의 메시지도 나올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통미봉남(通美封南)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통남(通南)’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15일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남북예서전은 무중계‧무관중으로 치러져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진출처 - 대한축구협회]

그러나 15일 평양에서 치러진 월드컵 남북예선전은 무중계‧무관중으로 치러져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줬고,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에 대해 김연철 통일부장관을 질타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책을 추궁했지만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남북 축구경기가 보여줬듯이 우리 정부가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있다”며 “누군가 총대를 메고 사고를 쳐서라도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만들어나가야 하지만 안보실장이나 통일부장관을 비롯해 누구도 나서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무중계‧무관중 남북 축구경기에 대해 “저희도 굉장히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당장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공동대응 제안에 북측이 응하지 않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1월말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여러 경로로 북측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린 것이다. 북측은 남측 국가정보원에 대해서도 신뢰를 갖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대북라인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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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막는 황교안 보면서 '노회찬 에프킬라'가 떠올랐다"

[인터뷰] '언제나, 노회찬 어록' 펴낸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19.10.17 07:43l최종 업데이트 19.10.17 07:52l
 
국감 질의하는 노회찬 의원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고 노회찬 의원. 사진은 2017년 10월 19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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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떠났지만 그를 소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사퇴를 두고서는 유독 그랬다. 누군가는 '노회찬이 생각나는 밤'이라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명되면서 터진 온갖 말들,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을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잰걸음, 몇백만을 운운하며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인파들, 그리고 조국의 장관직 사퇴 후 한국당의 기세등등한 반응을 보면서 더욱 고 노회찬 의원을 떠올렸다.

최근 '노회찬이라면?'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아래 <노회찬 어록>)이 바로 그것.

<노회찬 어록>은 노회찬과 진보정치의 길을 함께 걸었던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이 모은 '정치 언어의 기록'이다. 2003년부터 민주노동당에 몸담은 강 전 원장은 노회찬 의원이 2010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선거캠프에서 일했다. 노 의원이 진보신당 공동대표일 때는 당 기획실장을 맡았다. 정의당에서 중앙당 당직을 맡아왔던 그는 지난 4월 노 의원의 지역구였던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뛰었다. 내년 총선 출마 준비에 한창인 그를 지난 15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노회찬은 조국 사태에 뭐라 했을까
 
 책 '언제나, 노회찬 어록' 표지.
▲  책 "언제나, 노회찬 어록" 표지.
ⓒ 루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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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전 원장은 "노회찬의 말은 한국 정치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정의한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노회찬의 말을 모아놓고 보니 중심을 관통하는 시대사적 의미와 맥락이 있었다고 한다.

"요새 한국 정치는 우리가 예전에 세웠던 기준이나 가치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고 봐요. <노회찬 어록>은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 힌트를 담은 책이에요. 막말, 무턱대고 비난하기, 무작정 공격하기, 이런 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선명한 사상을 대중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 노회찬이었기 때문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약 노회찬이 일명 '조국 사태'를 봤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노 의원의 현실적인 위치 때문에 굉장히 곤란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특권이 만연한 사회이고, 불공정·불평등의 문제가 촛불정국 이후에도 여전히 심각하다는 면에 대해서는 매우 깊이 있게 고심하셨을 거예요. 노 의원 필생의 과제가 불공정 특권을 없애는 것이었어요. 이번 국면에서도 가슴은 아프지만 정치개혁·사법개혁을 분명히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이 사회의 소외 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애쓰시지 않았을까요. 감히 추측해 봅니다."

노회찬이 정치의 목표로 삼았던 '6411번 버스 투명인간'들을 위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로 정의당은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국 데스노트 등재 여부' 때문이었다. 한쪽에서는 '민주당 2중대'라고, 다른 한 쪽에서는 '진보 맞냐'고 날을 세웠다.

"조국 장관을 둘러싼 정의당의 선택, 뼈 아프다"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펴냄)이란 이름의 책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을 집대성한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펴냄)이란 이름의 책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을 집대성한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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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의당이 '청문회가 끝나고 나서 데스노트에 올릴지 말지 판단하겠다'고 했을 때 실기(失期)했다고 생각해요. 정의당이 언제나 청문회 결과를 보고 판단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판단 보류는 신중한 선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때를 놓친 거죠."

실기가 낳은 결과는 혹독했다.

"결국 지지율이 내려갔죠. 무엇보다 노회찬이 이야기했던 '투명인간'들, 그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습니다. 게다가 당 안팎 청년들의 실망이 상당했죠."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보여준 정의당의 입장이 모호했다는 말이다. 강상구 전 원장은 "뼈아프다"라는 말과 함께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의당 내 합의 부재가 문제였다고 봐요. 정체성, 그러니까 노선의 문제죠. 그런 합의가 없으면, 당장 지지율 하락이나 당원 감소 같은 것에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촛불과 대선을 거치며 '노동이 당당한 나라' '얼굴 있는 민주주의' 등의 구호를 통해 정의당의 길이 정리되는 것으로 보여졌지만 아무래도 미흡했던 것 같아요. 이게 (조국 청문회 전) 빠른 입장 결정이 어려웠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결국 조국 정국 당시 정의당이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거죠. 누가 퀴즈를 내면 O인지 X인지 단순히 적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도 정의당의 의제로 '정의당의 정치'를 했어야 했다고 봐요. 가령 조국 후보자에게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든가,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결국 이어진 삼성X파일의 미공개 테이프 280여 개 공개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든가."


"모기가 거의 죽을 뻔했는데, 살아날 기회를 잡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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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는 장관에 임명됐고, 업무를 수행했고, 전격 사퇴했다. 조 전 장관은 스스로를 검찰개혁의 불쏘시개였다고 평가했지만, '조국 사태'는 정치권에도 큰 불씨를 남겼다.  조국 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다음 국회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말이 좋아 '미루자'이지, 정확히 말하면 '20대 국회 때 공수처법을 폐기하자'는 것이다. 임기가 끝나면 국회에 발의된 계류법안은 모두 폐기되니까.

"노회찬 의원은 20대 국회 들어 가장 먼저 공수처를 만들자면서 2016년에 법안 발의를 한 사람이었어요. 그때 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하자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에요. 사실, 촛불정국과 패스트트랙 정국을 지나면서 '모기'들이 거의 죽을 뻔했거든요? 근데 지금 살아날 기회를 잡은 거예요. '살아야겠다' 하는 거죠. 그러니 당연히 '에프킬라' 좀 치우자고 하는 거고요.

희한하죠. 원래 공수처는 야당이 좋아할 만한 기구예요.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여당 출신이니까,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잖아요. 그런데 한국당은 반대하죠. 황교안 대표나 한국당이 공수처법 처리를 미루자고 하는 건 자기고백이라고 봐요. 이번에 조국 장관 주변이 어떻게 수사받는지 봤잖아요. '우리가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미루자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강상구 전 원장은 한국당 주장을 '액면가' 그대로 보지 말라고 첨언했다. 이면엔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

"올해 4월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합의한 게 있어요. '본회의에 올릴 때는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순으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국당이 '공수처법 하지 말자'고 하는 건 사실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최대의 개혁을 좌초시키겠다는 겁니다. 패스트트랙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는 거예요. 그럼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어져요."

그는 "양당제로 귀결됐던 한국 정치 질서를 바꾸자는 국민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이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신있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0년 총선을 기점으로 해서.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한국당, 기반 흔들린 민주당... 정의당은?"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펴냄)이란 이름의 책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을 집대성한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펴냄)이란 이름의 책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을 집대성한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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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과 대선 이후로 과거 70여 년 동안 굳건했던 한국당 계열의 보수 지지층이 붕괴됐었어요. 그 뒤 정치 지형은 ▲ 보수세력의 지리멸렬 ▲ 민주당 정당지지율 1위 고착 ▲ 정의당(진보정치)의 약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향이 조국 이후로 다시 바뀌었어요. '보수 재결집' '민주당 지위 약화' '정의당 부진', 이 흐름이 총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물론 '다이내믹 코리아'라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강 전 원장은 최근 정당지지율 분포가 과거 20대 총선 전 양당 독주 체제 때와 비슷하다고 봤다.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과 한국당은 각각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확인했다. 바른미래당도 분당 위기를 겪고 있지만, 지지율 측면에서는 나름 반사이익을 취했다. 그 사이 정의당 지지율은 조국 사태 전과 비교해 봤을 때 답보 혹은 소폭 하락 국면에 처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 한 번 '정의당의 정치'를 강조했다.

"'조국 사태' 이후, 한국당의 부활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정의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의제를 던져야 합니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하겠다' 해놓고선 탄력근로제를 하겠다고 해요. 최저임금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요샌 재벌 개혁 이야기도 거의 안 나오죠. 개혁이 명백히 후퇴하고 있다는 건 촛불의 약속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9월 중순에 출범한 정의당 '그린뉴딜경제위원회'는 정의당만의 '새로운 의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분야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닙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녹색'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을 만든다는 취지예요. 이 위원회의 목표 중엔 '불평등을 해소하고 서민 노동자, 중산층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것도 있어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수 있게 공공펀드나 금융기관을 설치할 수 있다는 계획까지 넣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로 드러났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가 명백하게 답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어요. 정의당은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절대 안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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