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소녀 로봇팀’ 아프간 탈출…“우리 이야기 슬프게 끝나지 않을 것”

등록 :2021-08-26 07:50수정 :2021-08-26 10:15

 
10대 여학생 5명 멕시코 도착 인터뷰
다른 10명도 지난주 카타르로 탈출
 
아프가니스탄 소녀 로봇팀원들이 24일 멕시코 외교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소녀 로봇팀원들이 24일 멕시코 외교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탈레반의 복귀 이후 아프가니스탄 주민 수만여 명이 아프간을 떠나는 가운데, 여학생들로 이뤄진 로봇 공학팀의 팀원 5명이 멕시코로 탈출했다. 앞서 10명의 팀원도 미국의 도움으로 아프간을 탈출한 바 있다.

 

25일(현지시각) 미 <시엔엔>(CNN) 등은 아프간 소녀 로봇공학팀 팀원 5명이 민간 항공기 편으로 전날 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자원봉사자 그룹의 국제적인 노력과 협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르타 델가도 멕시코 외무부 차관은 공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멕시코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기를 집으로 여기라고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팀원 5명은 이날 아프간에 남은 가족들에게 보복이 가해질 것을 우려해 신원을 숨긴 채 기자회견에 나섰다. 한 팀원은 “(멕시코가) 우리 목숨만 지켜준 것이 아니라 꿈도 지켜줬다”며 “탈레반 때문에 우리 이야기가 슬프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멕시코 정부는 이들에게 180일의 인도주의 비자를 내줬다. 180일 후엔 갱신이나 비자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안전상 이유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기관이 이들에게 숙식 등을 무료로 제공해 주기로 했다.

 

‘아프간 드리머스’로 불리는 로봇공학팀은 20여 명의 10대 여학생들로 이뤄졌다. 지난 2017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 로봇 경진대회에 두 번이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참가가 무산될 뻔하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서 문제를 해결해줘 미국행이 이뤄졌다. 이들은 당시 대회를 포함해 여러 국제 대회에서 입상했고, 지난해에는 자동차 부품을 활용해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저가 인공호흡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소녀 로봇팀원들이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 하고 있다. 도하/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소녀 로봇팀원들이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 하고 있다. 도하/로이터 연합뉴스
 

여성 차별이 심한 이슬람 국가에서 10대 여학생들이 로봇공학팀을 꾸렸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프간의 미래이자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여성의 권리가 개선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포브스>는 이들을 아시아의 30살 이하 30대 과학자 및 발명가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앞서 10명의 팀원이 이달 중순 미국 여성의 도움으로 아프간을 탈출했다. 2019년 미국에서 열린 우주 과학 콘퍼런스에서 아프간 10대 소녀들을 만났던 앨리스 르노는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앞두고 직접 카타르로 가, 카타르 주재 미 대사관과 함께 소녀들을 카타르로 탈출시켰다.

 

한편, 25일엔 아프간 언론 종사자들과 가족 124명도 멕시코에 도착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던 아프간인들도 포함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긴박하게 이뤄졌던 자사 기자들의 멕시코행 경위를 소개하며 “미국 정부와 다르게 멕시코는 이민 제도의 형식적 절차를 생략해 아프간인들이 즉시 카불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09167.html?_fr=mt1#csidx3e2c0a141f38a51b12c728efb28fe5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르포] "대출 막힐까봐 마통에 신용대출까지 '영끌'했다"…은행 창구 '북새통'

기사등록 :2021-08-26 07:02

"시중은행 5곳서 퇴짜 맞아…사채라도 끌어 와야 할 판"
발 디딜 곳 틈도 없는 대출 창구…세대별 희비 엇갈려
"대출 규제 앞서 무주택자 규제 완화가 우선"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대출 문의 전화로 정신이 없어요. 이사철도 아닌데 갑자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마이너스 한도를 묻는 고개들로 인해 다른 업무를 진행할 수가 없어요. 지난주까지 드문드문 있었는데 정부가 대출 규제를 시행할 것이란 보도가 나온 뒤에 젊은분들이 몰려와 자신의 대출 한도가 얼마인지 확인하려는 고객들로 인해 업무가 마비됐어요."(서울 노원구 G은행 대출담당자 이모 씨)

"시중은행에서 대출금액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대출 규제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1금융권을 돌아 다녔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대출 불가라는 말 뿐이에요. 4년 전만해도 지금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전셋값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금액인데 이제는 전셋집도 마련하기 힘든 금액이에요. 저축은행과 캐피탈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당장 사채라도 끌어 써야할 판이에요."(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거주자 이모 씨)

 25일 찾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일대 은행 창구는 대출 한도 문의와 신규 대출 문의 전화로 기존 입‧출금 및 계좌이체 등 부수적인 업무가 사실상 중단됐다. 이날 만난 한 은행 직원은 "며칠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리지 않았다"며 업무 가중을 토로했다.

창구 안과 밖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몰려온 이들도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썸네일 이미지
[서울=뉴스핌] 2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 NH농협은행 대출 창구에서 직원과 고객 사이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유명환 기자] 2021.08.25 ymh7536@newspim.com

◆ "1‧2금융권서도 퇴짜…전셋값은 어디서 마련하나"

대출 상담을 마치고 나온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제1금융권에서는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리겠다고 통보 받았는데 대출이 막혀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남은 건 제2금융인데 1금융에서도 막힌 상황에서 2금융에서 대출이 안 될 경우 사채라도 써야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60대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담으로 마쳤다.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모 씨는 "4년 전에 마련한 집이 이렇게 도움이 될지 몰랐다"며 "4년 전에 5억원였던 84㎡ 아파트가격이 지금 10억원으로 올랐다. 당시는 대출 이자를 갚다가 은퇴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밤잠도 설쳤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 잘한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쉈다.

이어 "시중은행 대출이 막힐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대출 잔고를 확인했다"며 "지금 대출 자금을 끌어 모아 추가로 아파트를 매입해야 할지 아님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에 대한 규제를 시행할 것이란 공포감이 젊은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중단선언에 나선 NH농협은행에서 SC제일은행과 우리은행도 일부 부동산 관련 대출을 중단하는 수순을 밞고 있다.

시중은행의 주담대·전세대출 전면 중단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앞선 부동산 대책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주택 가격에 따라 낮춘 적은 있었지만 일괄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통제한 적은 없었다.

부동산 대출 중단 소식에 해당 은행에서 대출을 활용하려했던 실수요층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기존에 계약을 맺은 집의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대출이 중단될 것이란 불안감이 가수요자도 목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유지민(39)는 "월요일 점심시간에 주거래 은행을 찾아 대출 잔고를 확인하고 마이너스통장과 직장인 신용대출을 받았다"며 "언제 대출이 끊길지 모르는 상황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썸네일 이미지
시중은행의 대출 창고의 모습. /이형석 기자 leehs@

◆ 마통‧신용대출까지 끌어 모은 가수요자…주택 시장 혼란 가속화

전문가들은 부동산 대출 규제가 전세→월세 전환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최근 수년간 전세금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그나마 넉넉했던 전세대출까지 막힌다면 임차인의 최종 선택지는 월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부동산 관련 대출을 막게 되면 무주택자와 실수요자가 예상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어서 가장 큰 타격이 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규제를 하더라도 실수요자나 무주택자에게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임대차 거래 중 월세를 포함한 거래는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상태다. 2019년 8월~2020년 7월까지 월세 거래 비율은 28.1% 수준이었으나,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최근 1년은 월세 비율이 34.9%를 차지했다. 만약 전세 대출 중단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거래는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줄어들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총량 대출 규제 확대 시 무주택자들의 주거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신도시 확대와 주거 공급 확대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선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 총량 규제를 통해 규제를 이어간다면 실수요자들의 구매 여력을 뺏는 것과 다름없어 시중은행의 위험성은 연체율 관리를 통해 모니터링 해야한다"며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주택공급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실수요자를 지원할만한 대출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mh7536@newspim.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프간전쟁 후 군수업체 주가 1200% 상승...美정부의 20년 국민 기망사 공개

<아프가니스탄 페이퍼> 곧 공개..."부시는 아프간 주둔 美 사령관 이름조차 몰라"

우리는 며칠 뒤 장례를 치렀다. 끝나자마자 '빨리 움직여라, 순찰을 돌아야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땅에 쓰러진 동료를 묻었다. 동시에 우리의 인간성도 같이 묻었다.

고작 10대나 20대밖에 안된 우리는 이해했다. 이 전쟁은 이길 수가 없다. 나는 그때 지금과 마찬가지로 의문을 가졌다. '내 친구들이 헛되이 죽었을까? 우리의 피값이 그렇게 싼가?'


 

지난 2006년 아프간 전쟁에 참전해 2007년 동료를 잃었던 스티븐 컨스 변호사가 지난 22일 <USA투데이>에 기고한 처절한 경험담이다. 이 가슴 아픈 글을 통해 그는 "미국은 쓸모 없는 '영웅-숭배' 때를 제외하곤 전쟁과 군인을 무시한다"고 주장하며 지난 20년간의 아프간 전쟁이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묻고 있다.


 

"3명의 대통령과 펜타곤은 20년 동안 미국 국민들을 속여왔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세 명의 미국 대통령과 미국 고위 장성들은 지난 20년 동안 미국 국민들을 속여 왔다." 

컨스 변호사가 아프간전에 참전한 군인 입장에서 아프간전에 대해 조망하고 있다면, <워싱턴포스트>(WP) 크렉 위트럭 기자는 4년 넘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탐사보도를 한 뒤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아프간 전쟁과 관련된 수백명 이상의 인터뷰, 정부 관련 문서 등을 통해 찾아낸 아프간 전쟁의 숨겨진 진실을 담은 책 <아프가니스탄 문서(Afghanistan papers) : 전쟁의 숨겨진 역사>를 오는 31일 낸다. 공교롭게도 아프간 전쟁을 수행한 네 번째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이날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앞서 2019년 <WP>에 심층취재 기사를 연재했고, 관련 취재를 계속해 이번에 책을 내게 됐다.


 

위트럭 기자는 이 책의 발단이 된 인물이 트럼프 정권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마이클 플린이었다고 2019년 <데모크라시 나우>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보장교 출신이기도 한 플린은 2016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상대로 "그녀를 감옥으로(Lock her up!)"라는 구호를 외치며 누구보다 열심히 트럼프 대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플린이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찰관실'(SIGAR, The Special Inspector General for Afghanistan Reconstruction)과 인터뷰에서 아프간 전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위트럭 기자는 플린의 인터뷰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아 보였던 취재가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기고 플린이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것이라고 알려지자 관련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결국 <WP>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처음에는 대선 상황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던 인물인 플린의 발언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취재가 정보공개 청구소송으로 SIGAR에서 진행한 수백건의 인터뷰 자료를 받아보게 되면서 아프간 전쟁 자체에 대한 취재로 확장됐다. SIGAR에서 인터뷰한 백악관과 국방부 인사들, 직접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과 구호요원들은 그때까지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부시 대통령은 또다른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정신이 팔려 아프간 전쟁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부시는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그를 만날 시간을 내지도 않았다고 위트록 기자는 밝혔다. 또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악당들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다"고 시인했으며, 그의 후임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우리는 알카에다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한 관리는 2001년 이후 아프간에 대한 미국 지원금의 40%가 부패한 관리, 군벌, 범죄자, 반란군들의 주머니로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아프간 전쟁과 관련해선 오바마 정부의 책임이 부시 정부 못지 않게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바마는 집권 직후 군 장성들의 아프간 병력 증파 권고를 수용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은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군 장성들의 입장이 관철됐고, 2010년 8월경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은 10만여 명에 이르렀다. 특히 오바마 정부 당시 감행한 '드론 폭격'으로 아프간 민가와 민간인들의 피해가 급증하면서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다. 이는 미군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젊은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탈레반 등 무장조직에 가세하면서 역설적으로 테러리스트 세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을 파키스탄에서 사살하는데 성공했고 2014년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국 다음 대통령에게 아프간 전쟁을 물려주고 말았다.


 

이미 군 고위장성들과 행정관료들은 아프간 전쟁에서 이길 수 없으며, 아프간 재건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의회 청문회 등에서는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면서 '폭탄 돌리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7일 발간된 SIGAR의 아프간 재건 사업 평가 보고서의 결론과도 유사하다. SIGAR는 "미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의 일부는 성공적이었지만 너무 많은 실패로 점철됐다"고 밝혔다.


 

미국 브라운대 전쟁비용프로젝트(Costs of War Project)에서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미국의 아프간 전쟁 비용을 총 2조2610억 달러(2653조 원)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20년간 아프간 전쟁에서 2600여 명의 미군이 사망했고, 2만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전쟁으로 사망한 아프간 군인들과 민간인의 숫자는 17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아프간인 사망자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글에서 컨스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 <인터셉트>의 분석에 따르면, 2001년 9월 11일 이후 지난 20년간 미국의 상위 5개 방위산업체들의 주가는 급등했다. 보잉 주가는 974.97% 올랐다. 록히드 마틴은? 1235.6% 올랐다. 2001년 이후 방산주는 전체 주식시장 상승률 보다 58% 더 많이 올랐다. 미국의 방위산업은 우리의 세금을 따냈고, 일부 납세자들은 우리가 9.11의 복수를 했다고 느꼈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얻어냈다. 이게 미국이 내 친구들에게 죽음을 요구한 결과인가?"


 

▲<WP> 기자가 5년 넘게 집중 취재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숨겨진 진실을 담은 책이 오는 31일 출간된다. ⓒ<아프가니스탄 문서> 표지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250541391738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미군 점령은 무도한 탈레반만큼 끔찍했다

순찰중인 미군과 맞닥뜨린 아프가니스탄 여성과 아이.ⓒ사진=뉴시스/AP

편집자주: 미군 철수 이후에 공산당이 베트남을 장악하는 데에 2년이 걸렸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의 철수 후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잡는 데에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아프가니스탄 전국을 장악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미군과 그들이 세웠던 정부의 만행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자코뱅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For Many Afghans, the US Occupation Was Just as Bad as the Taliban

 탈레반이 급속하게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하면서 우리 머릿속에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계속 떠오르고 있다. 숨어있는 공무원과 언론인을 찾아내기 위해 집을 수색하는 탈레반 전사들, 탈레반이 겨누는 총구에 밀려 몸을 더 가리기 위해 거리에서 내몰리는 여성들, 탈출하기 위해 카불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수천 명의 절망적인 군중,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는 사람들, 또 그러다 떨어져 죽는 사람들.

탈레반의 빠른 권력 탈환으로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절반을 훌쩍 넘었던 군대 철수에 대한 미국 국민의 지지율도 49%로 떨어졌다.

이에 미국의 호전적인 매파는 재빨리 이런 점을 지적하며 미군이 철수할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블룸버그의 이라이 레이크는 “2주 전의 상태가 앞으로 올 상황에 비해 훨씬 나았다. 미국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만행을 막기 위해 몇 천 명의 군인은 아프가니스탄에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썼고,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은 여성들과 여학생들과 탈레반으로부터 보복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전의 상태가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대안보다 훨씬 나았다”며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달성할 수 있을까보다는 무엇을 피할 수 있을까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의 진 란게빈 하원의원은 자신이 왜 미군 철수를 반대했는지를 설명하며 미군이 “탈레반의 억압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침해됐던 인권을 위해 싸웠고, 인도주의적인 재앙을 막았다. 아프가니스탄을 버리기로 한 우리의 결정이 가져온 결과가 지금 완전히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 시위대가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무덤이 될 것이다"라는 플랭카드를 들고 미국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2001년 9월)ⓒ사진=인터넷 캡쳐

하지만 (첫 시도가 20년이라는 긴 기간 후에 망신스러운 실패로 끝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재수립할 이유로 인권을 꼽으려 한다면, 우리가 지적으로 조금이라도 솔직하려면 미국과 연합 세력이 철수하기 훨씬 이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인권 침해가 만연했고 주범은 바로 그들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위에서도 죽이고 아래에서도 죽이고

미국이 현재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검찰 측은 미국의 군과 중앙정보국(CIA)가 아프가니스탄 수감자들에게 “고문과 가혹행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만행, 강간 및 성폭력”을 가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얘기는 이미 미국의 관타나모만 수용소에서도 많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수감자들의 고환을 구타하고, 너무 심할 정도로 단식투쟁자들에게 ‘직장 급식’을 자행해 한 구금자가 만성치질, 항문 균열 및 직장탈출증을 보이고 있다.

인권운동계 내에서 미국 정계와 너무 친밀하게 지낸다는 비판을 주로 받아온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 의하면 이런 식의 만행은 침공 초기부터 미군과 그들의 아프가니스탄 동맹 세력에 의해 저질러졌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04년에 연합군이 아무 죄 없는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거칠게 끌고 가는 과정에서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때리고, 욕하고, 죽이기까지 했고 도둑질을 하면서 그들의 집을 파손시켰으며, 이들을 끌고 가서는 관타나모만 수용소식의 대우를 하면서 수일이나 수주 동안 가족에게 그들의 행방조차 알리지 않았다고 자세하게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가정집의 불가침성이 중시됐던 사회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집에 들이닥쳤다는 것은, 거기에 (이슬람에서 혐오 대상인) 개까지 끌고 와서 수색을 하거나 여성들이 보는 앞에서 집에 들이닥쳤다는 것은 특히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됐다.

2017년 7월3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이라크 대사관 부근에서 이슬람국가(IS)에 충성하는 탈레반 분파의 자살폭탄 공격 후 미군 병사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사진=뉴시스/AP

의도적으로 축소 발표되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위키리크스가 2010년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록’을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록이 공개됐는데, 이에 따르면 연합군이 수백 명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 이 기록에는 충격적일 정도로 무모한 사건들이 여럿 부각됐다. 일명 ‘스마트 폭탄’이 오작동으로 한 마을에 떨어져 19명이 사망한 일, 미국의 지휘를 받는 폴란드군이 지침을 어기고 군용 차량이 공격을 받은 곳 인근 마을에 박격포를 쏟아부어 임산부와 3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일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마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무기를 들고 다니는 곳에 들어가면서 미국 소대장이 “무기를 들고 있는 빌어먹을 놈들을 보면 총알을 들이 부어!”라고 부하들에게 말했다고 한 폴란드 군인이 회상하기도 했다.)

전쟁이 계속 되는 동안 이런 일은 우울할 정도로 흔했다. 미국 공습으로 45명이 죽었다, 30명이 죽었다, 마약을 제조하는 탈레반을 목표로 했던 공습으로 또 45명이 죽었다, 결혼식을 공습해 47명이 죽었다. 이런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각각의 사건 모두 탈레반을 목표로 이뤄졌다면서 정당화됐고, 죄없는 남성과 여성 외에도 각각의 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의 숫자는 경악할 정도였다.

그들이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를 포함한 여러 반군이 죽인 사람들의 총합보다 많지는 않지만, 미국과 그 동맹세력,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죽인 민간인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평균 582명이었다가,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1100명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2016년 이후에는 공습 사망자의 40%가 아이들이었다.

악명 높은 한 사건에서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을 공격해 본관을 파괴하고 42명의 환자와 직원을 죽였다. 사전에 병원의 GPS 좌표를 받았고 병원 직원들이 공격 도중에 미군에게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누가 봐도 전쟁범죄 중의 전쟁범죄였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한 모든 독립적인 조사를 막았고, 자꾸 다른 해명, 심지어는 서로 모순된 해명을 해댔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결국 합의한 결론은 탈레반이 병원 난간과 베란다 등에서 자기네를 공격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미군이 29일(현지시간) 42명의 사망자를 낸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병원 오폭 사건에 대한 수사보고서를 발표한 가운데 "이번 사건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작전 실수 '종합 세트'이며 고의에 따른 전쟁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미 국방부에서 수사보고서를 발표한 조셉 보텔 미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사령관은 "해당 공격 진행 당시 수행인원과 프로세스의 실수, 장비의 고장 등 상황이 벌어졌고 작전 수행 인원 누구도 민간인 병원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16.04.30ⓒ사진=뉴시스/AP

탈레반을 막으면서 치렀던 또 다른 대가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드론 공습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됐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포함한 각종 심리적 문제에 시달렸고 아이들은 무서워서 밖에서 놀지도 못하게 됐다. 언제고 간에 죽음의 폭탄이 하늘에서 떨어져 본인이 죽거나 사랑하는 이들이 죽는 것을 봐야 한다는 실질적인 가능성 때문이었다.

드론 조종사들이 실수로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죽이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정밀성과는 거리가 먼 공격이 이뤄지고, 민간인을 반군으로 오인하는 실수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싸울 수 있는 연령대의 남성 모두를 반군으로 치면서 이를 덮어버렸다. 가족 여럿을 드론 공격으로 잃은 한 남자는 “우리는 그들에게 개미 같은 존재”라며 통탄했다.

아프가니스탄의 공군 기지에 주둔했던 다니엘 헤일이 자신을 감옥에 넣은 판사에게 설명했듯, 그는 미군이 죄 없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드론으로 무차별 살해하는 것을 직접 본 후 내부 고발자가 됐다. 탈레반 회원 한 명과 함께 있었다는 죄로 차를 마시던 무장한 농부들이 폭탄을 맞아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흩어졌고, 용의자의 아주 어린 딸이 그의 도주를 막기 위해 드론이 떨어뜨린 폭탄의 파편에 몸이 절단됐으며, 미군과 계약을 맺은 민간 보안요원들이 둘러 앉아 드론 공격 영상들을 보고 죽은 사람들을 비웃으며 친해지는 모습을 그가 직접 본 것이다.

헤일은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르는 군중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스나이퍼를 죽이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드론을 사용함으로써 테러리스트의 사악한 음모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군중은 하늘을 떠다니는 드론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사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이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은 나였음을 깨달았다”고 진술했다.

한밤 중의 살인

위키리크스의 2010년 폭로에는 또 다른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미국의 특수부대 중 하나가 한밤 중에 목표 대상에 접근해 그를 ‘죽이거나 포획’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면서 실수로 민간인, 어린 아이,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 경찰까지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나토군 최고 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과 그의 후임자 데이비드 퍼트리우스의 지도 아래 이런 특수부대 작전들의 규모가 한층 커졌다. 그리하여 계속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실종과 신원 오인으로 인한 살해가 미군의 주둔을 규정하는 주요 특징이 됐다.

이들이 죽인 민간인의 수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군과 나토군이 하룻밤에 20건의 임무를 수행하던 2011년 당시의 한 분석에 따르면 그때 이미 그 수가 1500여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미국 인권운동가들이 6일(현지시간) 존 캠벨 아프가니스탄 주둔 사령관이 워싱턴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증언하는 동안 미군의 아프간 병원 오폭을 사과하라며 피를 상징하는 붉은 페인트를 묻힌 손을 들고 있다 2015.10.07ⓒ사진=뉴시스/AP

게다가 이런 사건 모두가 실수로 이뤄진 사고는 아니었다. 민간인을 죽인 전범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사면이 이어질 때마다 우리에게 상기됐듯,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군인 중에는 진정한 사디스트들이 있어 재미로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고문하고 죽였다.

혼란스러운 철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보도들이 이뤄지면서 최근 들어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얘기 중 하나는 그간 가려져 있던 호주 특수부대의 극악무도한 전쟁 범죄들이다. 미국 정부 보고서에서 ‘그들의 왜곡된 문화’ 때문에 일어난 전쟁 범죄들 말이다.

호주 특수부대원들은 가디언에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했든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미군과 영국군이 훨씬 심했다.” 그리고 미군의 가학적인 문화를 배웠다고 변명했다. 엘리트 특수부대의 만행은 미 해군 특수부대를 이끄는 장교가 “문제가 있다”고 대놓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미 국방부 감찰관이 조사에 착수할 수 밖에 없는 정도였다.

점령군만 만행을 저지른 게 아니다. 이들에게 협조했던 현지인들도 만행을 저질렀다. 미국은 전쟁 내내 폭력적이고 극도로 보수적일 때가 많은 군벌을 지원하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을 하나로 묶고 탈레반만 배척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지만 인권, 특히 여성의 권리를 강조하는 미국 정부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지탱하기 위해 미군이 훈련시켰던 (최근에 모두 무너진) 아프가니스탄 경찰과 군대, 특수부대도 자기 국민을 상대로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기 일쑤였고, 유엔은 해마다 무력충돌 지역의 민간인 보호 보고서를 발표할 때 이를 누락시키면서 묵인했다.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에 대한 성폭력도 만연했는데 미국은 이런 일을 눈감아주라고 군인들에게 명령했다.

이런 성폭력에 대해 알게 된 한 특수부대 대위는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탈레반이 국민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기에,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다기에 이 곳에 왔는데, 우리는 탈레반이 했던 짓보다 더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기름으로 불끄기

널리 알려진 이런 역사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지금 갑자기 잊혀지는 건 아이러니다. 이런 역사가 탈레반의 부활에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많은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외국 점령군이 세운 부패하고 독재적인 정권을, 그리고 정권이 자행한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살인과 학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미군이 특허를 낸, 공습을 통한 ‘실수’로 이뤄진 민간인 학살이 이뤄진 후 화난 시위대가 폭력을 휘두르고 ‘미국에게 죽음을’을 외치며 항의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미국이 야간 침입 중에 사람을 죽인 후에도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특히 오바마 정권 때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사촌이 죽임을 당한 후 양국 정부 간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사람들이 한밤 중에 온다. 집에 침입하는데 개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집에서 여자들을 끌어낸다. 이는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다. 탈레반이 내 집에 숨어 있었다면 나는 당신네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탈레반은 우리 아녀자들에게 불명예를 안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신네 친구들은 그렇다.” 한 아프가니스탄 남성이 2011년 미국 공영방송 PBS에게 한 얘기다.

2018년 5월 29일 한 병원에서 아프가니스탄군의 밤 중 급습으로 다친 남성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의 급습으로 최소한 9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사진=뉴시스/AP

인권변호사 에리카 가스턴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가장 분개하는 일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그건 밤중에 일어나는 미군의 가정집 급습일 것이다. 한 건의 침입으로 한 사람만 죽어도 지역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격분한다”고 2011년에 말했다.

이런 점은 더 공식적인 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 유엔 보고서에는 “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단은 강탈과 협박, 위협 등을 그냥 넘어가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경찰의 악행으로 탈레반에 대한 지지가 일부 지역에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이 ‘차악’이라고 점차 생각하게 됐다는 지역들이 있다”는 대목이 있다. 한 전직 미국 외교관도 살해된 탈레반 지도자들은 빠르고 쉽게 대체되고 “한밤 중의 급습을 하면 할수록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분노가 커져서 탈레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진다”고 시인했다.

매크리스털 사령관도 야간 급습이 “우리의 둔감함을 악용해 대국민 설득 캠페인을 벌이는 반군에게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이를 줄이려고 노력했으나 그의 후임자 퍼트리우스가 다시 야간 급습을 대폭 강화했다.

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무모함과 권력을 남용한 악행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증오가 널리 퍼졌고, 자신들의 끔찍한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증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군이 14명의 가족을 불태워 죽이고, 임신한 여성을 죽인 다음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집에 침입해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모욕하고 공포에 몰아넣을 때마다 자기네가 그래도 낫다는 탈레반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달리 말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가리키며 미국의 철수를 탓하는 것은 기름을 덜 부어서 불이 걷잡을 수없이 커졌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2019년 7얼 9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바글란 마을 주민들이 공습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시신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숨진 이들의 시신을 들고 이 지역 수도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으나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군을 동원해 수도에 이르는 고속도로를 봉쇄했다. 평화회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도 아프간 북동부 이 마을에서 일어난 공습으로 7명이 숨졌고 그중 6명은 어린이였다고 현지 관계자가 밝혔다.ⓒ사진=뉴시스/AP

자기 편의대로 잊어버린다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또 나타났다. 미국이 다시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그리하여 지난주 이전의 20년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상대적으로 법과 질서가 유지되고 인권, 특히 여성의 인권이 보호됐던 기간이 돼 버렸다. 그럼으로써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반전 활동가들이 미군 철수를 요구한 주된 이유 중 하나, 탈레반과 싸우는 군대의 만연한 불법적인 학대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레반은 끔찍하다. 그들의 통치하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다수는 이미 이에 대한 계산을 하고 탈레반의 패륜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점령과 점령자들이 지탱했던 부패한 정부의 손아귀에서 정기적으로 겪어야 했던 공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에, 차라리 탈레반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 탈레반의 만행만 부각하는 언론 보도가 넘쳐나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주어진 선택 중에는 좋은 게 없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폭정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군이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현재 권력을 잡은 버전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혹시 가능했다 하더라도 지금 결과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쉬운 우리말 쓰기] (4)전자·정보

기획특집
기획
[쉬운 우리말 쓰기] (4)전자·정보
어려운 전자·정보 단어들 이해 쉽게 순화해요
도내 11개 박물관서 94개 단어·예문 순화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입력 : 2021. 08.25. 00: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컴퓨터의 마더보드에는 다양한 입출력 기기들이 연결돼 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유비쿼터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웨어러블 기술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마더보드', '유비쿼터스', '웨어러블'…

컴퓨터나 전자기기 관련 업종에 종사하거나 연관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한 고개를 갸웃할 단어들이 도내 한 박물관 안내문에 적혀 있다. 각각 '주기판', '두루누리', '착용 가능(착용 가능한)'으로 순화할 수 있다.

한라일보와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공동 기획인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네 번째 순서에선 '전자·정보' 관련 의미를 담은 단어와 예문을 다룬다. 이번 기획은 문화체육관광부·(사)국어문화원연합회의 공개 모집 과제인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중 하나로 진행되고 있다.

국어문화원은 도내 박물관·미술관 등 11곳에서 전자·정보 관련 의미영역으로 묶이는 단어, 예문 94개를 추려냈다. 이후 검수를 거쳐 쉬운 우리말, 올바른 공공언어로 순화했다.

전자 또는 정보 관련 단어는 특수 분야의 의미 영역에 속해 애초 이해도 어려울 뿐더러, 대부분 외부로부터 유입된 외래어 또는 외국어인 탓에 순화 작업에도 굉장한 공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상용화 될 수 있는 단어들이기에, 공공성 측면에서 반드시 순화가 필요하다.

도내 박물관에서 발견한 전자·정보 관련 단어와 그것을 순화한 공공언어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RC카→무선 조종 자동차 ▷개발 키트 →개발 용품 모음, 꾸러미 ▷네트워크→통신망 ▷디스크 드라이브→저장판 기억 장치 ▷멀티미디어→다중매체·복합매체 ▷모션 디자인→동작 설계 ▷모터→전동기 ▷소켓→꽂개, 전원꽂개 ▷슬롯→홈 구멍 ▷안티 앨리어싱→위신호 제거 ▷알고리즘→풀이법 ▷이스터에그→숨은 메시지, 숨은 기능 ▷포털→들머리 ▷하이테크→첨단기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로나 백신, 국내서 감염예방효과 82.6%, 사망예방효과 97.3%"

중증예방효과 85.4%, 사망예방효과 97.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울 '범죄지도' 첫 공개···강서·구로 '살인·폭력', 강남·서초 '강도·마약' 많다

김기범 기자
<picture>범죄지도</picture>

범죄지도

서울에서 살인·폭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은 서남권의 강서·영등포·구로구 등이며 강도·마약·도박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은 강남·서초구라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 시내 행정동 424개 가운데 절반가량은 상대적으로 범죄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범죄학과 등 연구진은 지난 4월 대한범죄학회 학술지 ‘한국범죄학’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서울의 행정동별 범죄 수준을 분석한 ‘서울시 행정동 수준의 범죄 분포에 대한 탐색적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주로 광역지자체별, 또는 서울 자치구별 강력범죄 빈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행정동 단위에서 살인, 강도 등 주요 범죄 8가지의 발생 수준이 공개된 것은 이 논문이 처음이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에서도 광역 지자체별 범죄 현황만을 공개하고 있다.
 

■ 행정동 단위 주요 범죄 분석은 이번 연구가 처음

연구진은 행정안전부의 생활안전지도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치안사고 통계를 가공해 행정동별로 범죄 수준을 각각 1~5등급으로 구분한 지도를 만들고, 지역별로 어떤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서울시의 범죄 분포를 시군구보다 작은 단위인 행정동 수준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논문에 따르면 2016~2019년 사이 서울의 행정동 가운데 분석 대상이 된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폭력, 절도, 마약, 도박 등 8개 범죄 전체의 발생등급이 1등급인, 즉 범죄가 가장 적게 일어나는 지역으로 분류된 곳의 비율은 5.9%이었다. 2등급인 지역은 18.4%, 3등급은 26.2%, 4등급은 25.5%, 5등급은 24.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행정동 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49.6%가량이 상대적으로 범죄로부터 위험한 지역인 4, 5등급에 해당하는 것이다.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폭력 등 강력범죄 가운데 발생등급이 4~5등급, 즉 범죄로부터 위험한 지역의 비율이 가장 높은 범죄는 성폭력(53.3%)이었다. 서울 전체 행정동의 절반 이상이 성폭력이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어 방화(39.9%), 강도(31.6%), 살인(24.1%), 폭력(16.0%) 등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범죄에 해당하는 절도의 경우 1등급이 31.1%, 2등급이 30.9%로 전체 행정동의 3분의 2 가까운 지역이 상대적으로 절도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논문에 따르면 강력범죄 중 살인의 경우 서울 중심부보다는 서울 서남권을 포함한 외곽에 4~5등급에 해당하는 지역이 집중적으로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의 발생 수준이 4~5등급인 행정동의 비율은 서남권에서 가장 높았고, 특히 강서구와 영등포구 일부, 구로구 일부에 5등급에 해당하는 행정동이 밀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도범죄의 경우 4~5등급인 행정동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동남권으로 이 권역 내 행정동의 43.6%가량에서 상대적으로 강도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도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곳은 동북권의 노원·중랑구 일부, 동남권의 강남·서초·송파구 일부, 서남권의 관악·구로구 일부에 집중적으로 밀집돼 있었다.

성폭력의 경우 다른 강력범죄에 비해 서울 전반에 걸쳐 4~5등급에 해당하는 지역이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범죄의 경우 4~5등급에 해당하는 행정동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남권(27.4%)이었다.

논문에는 또 살인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강서·영등포·동작구 일부에 집중돼 있었고, 강도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강남·서초·강동·관악·구로구 일부에 집중돼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마약과 도박은 강남·서초구 일부에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 집중돼 있었다.

방화범죄는 서남권의 강서·구로·관악구 일부와 동남권의 송파구 일부에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다른 강력범죄와는 달리 도심권의 종로구와 동북권의 성북구 일부에 밀집되어 있었다. 절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의 경우 도심권의 종로구 일부와 강서·양천·관악구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서초·강남구 일부와 강북·성북구 북부에도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유흥업소·주류판매업소 밀도도 범죄 발생에 영향”

연구진은 서울 서남권 아래쪽의 양재2동, 내곡동, 일원본동, 수서동, 세곡동의 경우 마약범죄와 도박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가 적게 발생하는 지역으로 나타난 반면 서남권 위쪽의 서초4동, 반포1동, 반포3동, 반포4동, 논현1동, 논현2동, 역삼1동은 살인과 방화를 제외한 모든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범죄 분포에 대해 연구진은 범죄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유흥업소의 수, 주류판매업소의 밀도의 분포와 상당히 유사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생활안전지도 사이트를 통해 재난과 치안 등 6가지 분야의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데 이 사이트에선 원하는 경찰 지구대 주변의 범죄수준을 볼 수 있지만 이 논문에서처럼 행정동에 따른 범죄수준을 한눈에 볼 수는 없다.

행안부에 따르면 생활안전지도상의 범죄 등급 산정에는 행정동의 인구 데이터는 적용되지 않았으며 지도상에 특정 수치의 등급을 표현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내츄럴브레이크(natural break) 방식이 사용됐다. 행안부는 경찰청 요청에 따라 생활안전지도에 범죄 발생정보의 원데이터가 아니라 가공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가 다발하는 곳은 비공개 대상인 정보이기 때문에 원데이터가 아닌 도로를 기준으로 가공된 색깔별 밀도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대 연구진의 논문 내용은 이 데이터를 행정동별로 재가공한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행안부 정보를 가공해 파출소.지구대 단위로 제공되어 있는 것을 행정동 수준의 자료로 변환하고,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서울에서 발생한 8가지 범죄의 공간적 패턴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범죄통계를 수집, 관리하는 경찰과 검찰은 지역별 범죄 수준을 공개할 때 광역시도 수준에서 공개하거나 제한적인 범위의 시군구에 대한 범죄 자료만 공개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지역별 범죄 분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는 어려우며, 광역 단위의 범죄 자료를 분석해 범죄 원인을 파악하거나 정책적 제안을 도출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local/Seoul/article/202108250601001#csidxad50e820cc92d17b26aa02e62316f1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언론중재법 끝내 법사위 단독처리…고의중과실 요건 하나 삭제

국민의힘 퇴장 차수변경해 새벽 3시54분 가결 ‘야당없이 반쪽짜리 논의’ … 본회의 통과가능성
회복하게 어려운 피해가 고의중과실의 요건? 조항 삭제, 독조조항 ‘고의중과실 추정은 그대로 남아’

이에 따라 25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오후부터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안건 해결을 못한채 자정이 다가오자 차수를 변경해 논의를 이어갔다. 박 위원장 직무대리는 25일 새벽 3시54분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위원장)’의 일부 자구를 삭제 또는 변경하고 나머지는 원안대로 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애초 국회 법사위는 24일 오후 3시22분경부터 41개항의 안건을 논의했는데, 이 중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41번째 안건이었다. 24일 밤 11시30분경 19개 안건을 남긴채 박주민 위원장이 차수를 변경해 다시 논의하겠다고 선언한 뒤 25일 0시40분경 전체회의를 다시 시작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방적인 회의진행이라고 비판하면서 전원 퇴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차수변경하려면 간사와 협의해야 하는데, 우리는 동의하지 못하다고 했다”며 “정식으로 물어봐야 하는데, 혼자서 일방적으로 방망이를 두드리고 나갔다. 불법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간사도 “논란과 갈등이 많은 쟁점 법안이 많은데, 충분히 논의안하면 어디서 하느냐”며 “여기서 기립 표결만 하려는 것이냐. 그건 아니다. 더 이상 협조할 수 없다”고 밝히고 회의장을 나갔다.

이에 따라 국회 법사위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을 제외하고 야당없이 안건처리를 진행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곳곳 수정 왜? ‘명백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삭제

국회 법사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법안 중 4군데를 수정했다.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리는 △30조 2항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보도로 인한 피해정도, 언론사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한다는 부분을 30조의2의 1항으로 이동하고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인 30조의2의 2항 중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삭제 △30조의2의 2항의 1호 중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라는 표현 삭제 △같은 조항의 2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라는 표현 삭제를 하기로 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중 4가지 사례에 해당되면 명백한 고의중과실이 있는 경우로 추정된다고 돼 있는데, 이 중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뺐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명백한’ 이라는 표현이 문제될 것 같다”며 “고의 또는 중과실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김남국 의원도 “일반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데,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넣으면 더 구제되기 어렵다. 빼는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중 수정한 대목 표시. 사진=국회 의안정보 시스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중 수정한 대목 표시. 사진=국회 의안정보 시스템

 

또 고의중과실 추정을 하는 요건(제30조의2 2항 1호) 첫째 항목인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에서도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를 뺐다. 소병철 의원이 “보복적 반복적 허위조작보도 자체가 고의 중과실이라고 봐야 한다”고 제안하자 결국 위원회는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중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을 경우’라는 항목은 아예 삭제됐다. 피해를 입은 사실만으로 고의중과실 추정이 근거(고의의 행위)가 될 수 없다는 판단 탓이다.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실제로 결과가 중하다고 고의 중과실 추정하는 경우는 법적으로 없다”며 “사람이 죽었다고 고의중과실로 보지 않는다. 과실치사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기상 의원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했는데, 그런 사례는 무엇이고, 반대로 회복할 수 있는 손해는 어떤 경우를 말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결국 이 항목 자체를 빼기로 했다.

이밖에 김용민 김남국 김승원 의원은 30조의2 4항인 징벌적 손해배상 예외 보도사례 일부를 삭제하자고 주장했으나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받지 않는 보도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조제1호의 공익침해행위와 관한 보도(1호) △‘청탁금지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보도(2호) △위에 준하는 공적 관심사와 관련한 사항으로 제4조제3항에 따른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언론보도(3호) 등이다.

이에 김남국 의원은 “공적 관심사에 관련된 사안과 같이 일반론으로 넣으면 대부분 보도가 이렇다”며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구제받을 게 없어질 수 있다. 이는 삭제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승원 의원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총괄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는 조항(5조2항)으로 충분하다”며 “3호 등은 언론 쪽 의견을 받아 채택했는데, 삭제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그래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비선일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이 법원 판결에 있어 렌즈를 넓히기 위한 조항으로 안다”며 “야당의 의견과 언론노조 등의 의견 수렴하는 과정에서 반영된 것인 만큼 삭제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고 반론을 폈다. 하지만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리는 잠시 정회한 뒤 이 부분은 삭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자체는 그대로 남아 야당과 언론계의 거센 반발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박범계 법무부장관도 이 조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징벌적 손배제에 찬성하는 민변조차 통째로 뺄 것을 요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새벽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자구를 수정한 후 통과를 선포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새벽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자구를 수정한 후 통과를 선포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프간에서 미국의 참패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8/25 08:35
  • 수정일
    2021/08/25 08: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침햇살140]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프간에서 미국의 참패①

 

이형구 | 기사입력 2021/08/24 [22:57]
  •  
  •  
  •  
  •  
  •  
  •  
 

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1. 아프간전에서 미국이 비참하게 패배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 9월 11일 비행기가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으로 돌진해 빌딩을 붕괴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수장으로 있는 알카에다를 지목하고 아프간 정부에 빈 라덴을 양도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아프간 정권을 잡고 있던 탈레반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2001년 10월 7일 아프간 폭격을 시작으로 아프간전에 돌입했다.

 

아프간 전쟁은 장장 20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제야 그 끝이 보이고 있다. 2020년 2월 29일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2021년 5월까지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다. 2021년에 출범한 바이든 정권은 9월 11일까지로 일정을 다소 미뤘고 현재 철군 중이다.

 

미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선 미국의 몰락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7월 2일 미군이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야반도주한 것이다.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 최대 미군기지다. 건설에만 9천 6백만 달러, 약 1천억 원을 들여 건설했다. 미군과 그 가족 등 10만 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한국의 평택 미군기지에 비견될만한 규모다.

 

미군은 바그람 기지에서 하루 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철수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수천 대의 차량과 장갑차 수백 대 등 350만 개나 되는 물품을 버리고 갔다. 워낙 비밀리에 철수하는 바람에 바그람 기지의 아프간군 사령관인 미드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미군이 떠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우리는 (미군이 떠난 다음 날인) 아침 7시가 돼서야 미군이 이미 바그람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프간군이 식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식수 공급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미군이 물품을 그대로 두고 떠나는 바람에 아프간 민간인이 기지에 들어가 물품을 약탈해 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프간군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들이 탈레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라며 긴장했던 당시 심정을 밝혔다.

 

미국이 왜 장갑차까지 내버려 두고 황급히 야반도주했을까? 선뜻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어떤 이는 미군이 물품을 두고 간 건 단지 아프간군에 무기를 넘겨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추측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운송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기 때문에 무기를 놓고 간 거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런 사유라면 미군이 자기 물품과 무기를 공식적으로 아프간 정부군에 인도해주고 가면 되는데 미군은 그러지 않았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는 주장은 미군이 매우 심각한 군사적 위기를 다급하게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추론일 뿐이지만 탈레반이 곧, 정말로 곧 기습한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그 피해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판단됐다면 미군으로선 몸만이라도 황급히 피하는 게 고작일 수 있다. 

 

아프간 최대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철군하자 탈레반은 빠르게 아프간을 장악했다. 이는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였다. 올해 6월 미 정보당국은 미군 철수 후 18개월은 지나야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거라고 예상했다. 7월 중순이 되자 미군은 30일에서 90일이면 카불이 함락될 것 같다고 예측을 수정했다. 실제로 카불이 함락되는 데 걸린 시간은 미군이 바그람 기지에서 철군한 후 40일만이다. 탈레반은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도 전에 아프간 수도 카불과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 아프간의 모습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과 아프간 친미세력 사이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우선 미 정치권에서 날 선 책임 추궁이 일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철수가 아닌 완전한 항복”이라며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발생하도록 한 것에 대해 불명예 퇴진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의 정치지도자들이 포기하고 도망갔다”라며 책임을 아프간 정부에 돌리는 궁색한 태도를 보였다. 

 

아프간에서는 미국과 친미정부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아프간을 탈출하려 하면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미 수송기에 타려고 달려들었고 어떤 사람은 이륙하는 수송기 바퀴에 매달렸다가 하늘에서 떨어져 추락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은 헬기를 동원해 미국 대사관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기도 했다. 이 장면은 베트남전을 연상시켰다. 1975년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후 헬기를 동원해 사이공에 있는 대사관에서 사람들을 탈출시켰다. 이 사진은 베트남전을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2021년 아프간에서 재현되었다. 

 

비교하자면 아프간 상황이 베트남전보다 더욱 심각하다. 베트남전에서는 미군이 철수하고 2년이 지나서야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했다. 헬기 탈출 사진도 사이공이 점령될 때의 일이다. 그런데 아프간에서는 미군이 채 다 철수하기도 전에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됐다.

 

 

▲ 1975년 주사이공 미국 대사관 모습. 사람들이 사이공에서 탈출하기 위해 헬기에 탑승하고 있다

 

▲ (위)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사이공에 있는 미 대사관에서 탈출하는 장면 (아래)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카불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모습


 

2. 아프간전 20년간 미국의 피해

 

아프간전은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미군 사망자만 2천 5백 명, 미군 직원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6천 명을 넘는다. 나토도 1천 1백 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은 6만 6천 명이, 아프간 민간인은 4만 7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아프간전에 쏟아부은 돈은 2조 달러다. 2조 달러는 미국의 부채이기 때문에 이자가 발생한다. 브라운 대학교는 2050년까지 발생할 이자만 총 6조 5천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피해가 심각하다 보니 미국은 아프간전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미국이 피해가 컸어도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안착시켰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아프간 정권은 탈레반에 의해 붕괴되기에 앞서 자체적으로 몰락하고 있었다. 

 

2019년 아프간 대선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대선에선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2위 후보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2020년 3월 9일 아프간엔 1, 2위 후보가 제각기 대통령 취임식을 열어 두 명의 대통령이 난립하는 막장드라마가 펼쳐졌다. 

 

미국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는데 그 결말도 황당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선거 여부를 판명해 당선인을 가리면 될 텐데 실제로는 1위 후보가 대통령을 하고 2위 후보는 내각 구성권을 갖기로 권력 분할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아프간 권력은 기득권층끼리 짬짜미로 나눠먹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리도 횡행했다. 2009년 당시 아프간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는 “이 나라 정치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세계 은행 금고는 아프가니스탄 정치인 돈으로 가득 찼다”라며 부정부패를 꼬집었다. 좋은 연설이지만 이런 연설을 한 카르자이 대통령 자신은 깨끗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연설을 한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은 아프간 마약왕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2010년엔 카불은행 회장이 은행 자금으로 두바이에 호화빌딩을 사는 등으로 1억 6천만 달러를 남용하고 총 3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안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카불은행의 보유자산이 1억 2천만 달러에 불과했으니 카불은행의 자산보다 더 큰 손실을 입힌 셈이었다.

 

얼마 전까지 아프간 대통령이었던 가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가니 대통령은 현금 2억 달러를 들고 탈레반을 피해 도주해버렸다. 대통령 대변인에 따르면 가니 대통령은 국방 요원들과 회의를 하고 오겠다고 말한 뒤 슬그머니 도주했다고 한다. 가니 대통령은 차량 4대에 현금을 가득 채워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돈을 헬기에 실으려고 했지만 다 들어가지 않아 일부를 활주로에 남겨둔 채 떠났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아프간 정부가 이 모양 이 꼴이다 보니 이미 정부는 통치력이 아프간 영토의 60% 정도까지만 미치는 상황이었고 사실상 카불을 중심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탈레반은 8월 22일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초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원했고, 카불 점령은 계획되지 않았다”라면서 “당시 아프간 정부군이 떠나면서 카불을 버렸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카불의 통제권을 넘겨받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 아프간 대통령궁을 점령한 탈레반

 

 

3.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과연 성과를 얻었는가

 

미국이 막대한 피해를 보면서도 아프간 전쟁을 20년이나 지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끌던 알카에다를 제거하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것이다. 둘째는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1) 빈 라덴, 알카에다, 탈레반 제거

 

먼저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탈레반 정권 축출의 측면을 보자.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테러 배후로 지목해 제거하고 탈레반이 이들을 비호한다며 축출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간전 개시 두 달 만에 탈레반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고 2011년 5월 빈 라덴을 사살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탈레반 정권 축출이 미국의 1차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미군을 철수시키는 건 아프간전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16일 “우리는 20년 전 9월 11일에 우리를 공격한 이들을 잡고 알카에다가 아프간을 공격기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표를 갖고 아프간에 갔다. … 우리는 그것을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로는 자신이 내세운 전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미국은 빈 라덴 제거엔 성공했다. 그러나 알카에다를 제거했는지는 의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17일 알카에다가 탈레반에 축하 인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알카에다가 아직 존재한다는 정황이 있는 것이다. 

 

AP통신은 미국 정부와 군 수뇌부들이 앞으로 미국이 테러단체의 공격을 받게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8월 15일 미 상원 의회에서 테러단체들을 대하는 기존 전략을 보완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미국은 9.11테러를 응징하고 재발을 막겠다고 했는데 이에 실패하고 또다시 두려움에 떨게 됐다.

 

그리고 미국은 탈레반 정권 축출에도 실패했다. 

 

결국 미국이 확실히 달성한 목표는 빈 라덴 제거 뿐이다.

 

2) 아프간에 친미정권 수립

 

미국의 목표는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탈레반 정권 축출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목적이 이것뿐이었다면 미국은 2011년 5월 빈 라덴이 사망했을 때 전쟁을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 후로도 아프간전을 지속했다. 이는 미국이 2차 목표를 갖고 있었다는 걸 알려준다. 

 

미국의 2차 목표란 바로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고 안착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20년 동안 전쟁을 지속할 만큼 2차 목표를 더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미국이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려고 한 이유는 첫째로 아프간의 자원을 차지하고 둘째로 아프간을 자신들의 전략거점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먼저 아프간엔 전략 자원이 많다. 대표적인 아프간의 자원은 바로 희토류다. 

 

희토류는 17개의 화학원소 물질을 통칭하는 말이다. 각 희토류 원소들은 각자 독특한 전자기적, 광학적 성질을 갖기 때문에 첨단산업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중국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자원이다. 북한에도 희토류가 많이 있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은 아프간 내 희토류 매장량이 140만 톤에 이른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2차 전지 원료인 리튬도 전략광물로 꼽힌다. 리튬의 경우 아프간이 세계 최대 매장국일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희토류를 포함한 아프간 광물의 가치는 1조 달러에서 3조 달러로 추정된다. 2010년 미국 지질조사국은 아프간이 광물 자원을 개발하면 10년 안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프간은 자원의 이동 통로로도 중요하다.

 

중동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의 이름은 카스피해로 바다 이름이 붙어 있다. 호수가 바다로 불리게 된 데는 사정이 있다. 국제법에는 호수에 있는 자원은 연안국들이 균등하게 나누게 되어 있는데 바다에 있는 자원은 연안 면적에 비례해 배분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카스피해 연안국들이 자원 배분 문제를 두고 십수 년간 갈등을 빚은 끝에 ‘특수 지위 바다’로 규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카스피해는 호수인데도 바다로 불리게 되었다.

 

이 카스피해에는 막대한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카스피해 자원은 러시아 가스관을 통해서만 수송이 되고 있었다. 미국은 카스피해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탐내고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간-파키스탄을 통과하는 관을 연결해 천연가스를 가져가려 했다. 

 

카스피해 가스관은 개전 당시부터 미국의 아프간 침공 배경으로 지목되었다. 최윤정 세계지역연구센터 연구원은 “9.11테러 사태와 아프간에 대한 보복전쟁이 개시되기 훨씬 이전에 국제정치무대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최윤정 연구원은 미국은 9.11테러 이전인 2001년 7월에 열린 G8 회의에서 탈레반 붕괴 후 아프간 정권 수립 계획을 논의했고 개전 직후인 2001년 10월부터 가스관 연결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아프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친미정권을 수립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던 것이다.

 

 

▲ 카스피해와 그 주변 나라들. 빨간 표기가 되어 있는 곳이 카스피해다


 

또한 미국은 아프간을 중앙아시아 전략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다. 

 

아프간은 중요한 지리적 가치를 갖는다. 아프간은 유라시아의 정중앙에 있다. 중국,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다. 중국,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인도와도 가깝다.

 

미국은 아프간을 대중국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은 아프간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신장 위구르의 분리주의 운동을 부추길 수 있다. 신장 위구르는 아프간과 같은 수니파 이슬람세력권이다.

 

실제로 미국은 아프간을 통해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을 성장시켰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사실 20년 전에는 신장 위구르 내 독립 세력들의 활동은 크게 심각하지 않았다. …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신장 독립주의 세력들에 대한 외부 지원이 더 은밀해지고 규모도 커졌다”라고 지적했다.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해진 건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한 후인 2008년 즈음부터다. 

 

미국은 반미국가에 여러 공작을 펼친다. 북한을 상대로는 한국의 탈북단체를 동원해 대북전단을 살포한다. 한국은 미국의 대북 공작 거점인 셈이다. 미국은 시리아에선 반군을 지원해 육성했다. 미국은 홍콩의 분리주의 운동도 지원했는데 홍콩 주변엔 배후거점으로 삼을 만한 곳이 없었다. 만약 홍콩 주변에 미국의 배후기지가 있었다면 홍콩 사태의 양상도 사뭇 달랐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이 아프간에 머물면 신장 위구르 반군을 조직해 중국에서 내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 중국은 아프간을 통한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 활성화를 막고자 2018년 아프간과 신장 위구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프간을 친미로 만들면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일대일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현대판 비단길(실크로드)을 만들려는 중국의 구상이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일대일로를 추진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와 중동으로 뻗어가려면 반드시 아프간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국이 아프간을 통제하면서 사실 일대일로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할 경우 크게 우회해서 지나가야 하므로 일대일로 계획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일대일로 사업도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타임스는 8월 16일 “중국은 아프간 개발에 기여할 수 있으며 앞서 제안한 일대일로를 추진해나가야 한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이 진행한 20년간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 이제는 중국이 미래 발전을 위한 투자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아프간을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군사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우용 군사평론가는 “이곳(아프간)을 군사 거점화함으로써 일본에서 시작하여 한국, 대만, 동남아제국, 인도차이나,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독립국가연합 및 몽골로 연결되는 중국에 대한 거대한 반달형 3면 포위망 구축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통해 대 중국 군사 포위망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이슬람운동, 러시아 체첸 반군운동 및 이란 반정부 시아 이슬람운동 등의 요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남부 캠프에서 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아프가니스탄에는 나토가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이 주둔하게 됨에 따라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불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프간이 미국의 대 러시아 군사 거점으로도 쓰인다는 지적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의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소련에서 분리된 스탄 국가들이 있어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러시아는 스탄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맺는 등 연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하면 스탄국가들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내는 정치공세를 펼 수 있다.

 

또한 아프간은 이란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란 공격 기지로도 쓰이게 된다. 이란으로선 불안 요소를 머리에 인 꼴이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중앙아시아에 있는 기지를 대여해 사용하려고 한다. 만약 중앙아시아 기지 마련에 실패하면 카타르나 오만 등 중동을 거점으로 군사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 미국한테는 아프간이 이란을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기지다.

 

미국이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면 아프간 주변인 파키스탄과 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키스탄은 친미와 친중을 오가는 외교를 펴고 있다. 인도도 미국의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들어와 있지만 그렇다고 친미반중국가라고 하기엔 모호하다.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하면 파키스탄과 인도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다.

 

유럽 입장에선 아프간을 나토의 전진기지로 활용 가능하다. 중동 방면 미국과 나토의 주요 군사기지로는 터키도 있다. 그런데 터키가 점차 친러 행보를 하면서 미국과 나토로선 터키 기지가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면 미국과 나토는 매우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아프간은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은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해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이 20년 넘게 전쟁을 하며 공 들여 수립한 친미정권은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미국의 완전한 참패다. 

 

이제 아프간 상황은 미국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차지한 건 20년 전과 같다. 하지만 20년 전 탈레반과 오늘의 탈레반은 사뭇 다르다. 

 

과거에 아프간은 소련과 전쟁을 치렀다. 1989년 소련군이 철수했고 1996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아프간엔 소련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탈레반 정권도 반소 정권이었다. 하지만 지금 탈레반은 미국을 무찌르고 정권을 수립했다. 이제 아프간 국민도 반소가 아니라 반미 성향을 띌 것으로 보이며 탈레반도 반미-친중·친러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탈레반은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탈레반은 7월 10일 러시아와 회담을 열고 “우리는 러시아 측에 다른 나라들에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라며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권 국가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7월 28일 탈레반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아프간의 어떠한 세력도 아프간의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아프간 평화 재건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해 향후 경제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미국은 아프간에서 참패한 것을 넘어 커다란 역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계속)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느 일본인의 고백 "위대한 한글, 지금의 나 만들었다"

[우리말 천태만상④] 한글 홍보대사 되는 '수어 아티스트' 후지모토 사오리21.08.24 07:28l최종 업데이트 21.08.24 07:28l글: 김병기(minifat)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기획 '우리말 천태만상'은 세종국어문화원과 오마이뉴스가 함께합니다.[편집자말]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가 ‘사랑합니다’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가 ‘사랑합니다’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것 좀 보실래요?"

한국어 억양과 발음이 비교적 정확한 일본인이 겸연쩍은 듯이 머뭇거리면서 가방에서 꺼내든 공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박또박 눌러쓴 정자체 글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글도 적혀 있었다.
 

- 한글은 거의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글자.<br />- 해례본에 따르면 사람의 발성기관으로 '음'을 그대로 문자로 표현한 아주 과학적인 글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의 해례본까지 살펴본 그의 학구열에 감탄했다. '해례'는 세종대왕을 보필하면서 한글을 만든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글이다. 이를 제대로 들춰본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아래 4분짜리 영상도 한번 보아주기 바란다. 
 


"방탄소년단 노래 수어 안무... 감동 받았어요"

영상은 방탄소년단(비티에스·BTS)이 작년에 발표한 곡 'ON'의 강렬한 리듬에 맞춘 열정적인 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안무는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뜻이 담긴 말이다. 손짓과 몸짓, 표정이 다름아닌 한국 농인들의 수어였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7월 발표한 '퍼미션 투 댄스'에 등장하는 수어 안무가 세계 농인들을 감동시키기 1년 전에 그는 이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호응을 얻었다. 

"해외의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들이 보고 댓글을 달아줬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예술적으로 표현해줘서 놀랍고 고맙다는 반응이었어요. 안무를 공개하기 전에는 음악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거든요. 농인 아미들도 '우리 언어'로 표현해줘서 감동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수어 아티스트인 후지모토 사오리를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의 다국적 외국인 연예 기획사 에프엠지(대표 이승택)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 등으로 우리말이 오염되는 현상을 진단하는 기획 취재를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글'과 '한국 수어'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궁금했다.  

 

 그는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월드 클라쓰'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예선전 첫 경기에서 왼발로 첫 골을 넣었던, 매 경기마다 온 몸을 던져 볼을 쫓는 그의 투혼을 기억한다. 하지만 농인들 사이에서 그는 수어 아티스트로 더 유명하다. 사오리는 오는 10월 5일 한류 한글 학술대회 때 한글 홍보대사로도 위촉될 예정이다. 


그가 한글을 처음으로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해외 연수를 한국으로 왔는데 한국 학생들이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했고, 일본에서 한국어 능력시험 최고급 단계인 6급을 통과했다. 

한글에 이어 한국 수어 도전... "선한 영향력 전하고 싶다"
 
와 만나 독자들에게 자신의 ‘얼굴 이름’ 사오리를 표현하며 인사하고 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최근 ‘골 때리는 그녀들’ 방송 출연과 수어 아티스트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 출신인 후지모토 사오리가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FMG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독자들에게 자신의 ‘얼굴 이름’ 사오리를 표현하며 인사하고 있다. 사오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BTS 음악 수어로 전하는 사오리의 특별한 한글 사랑
ⓒ 유성호

관련영상보기

 
그는 졸업 후 한국 엔터테인먼트 일본 지사에서 유명 연예인 전담 통역과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다 2018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어가 유창했던 그는 그해 평창 동계 올림픽 대회 및 패럴림픽 대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쓰러져도 벌떡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일본 수화를 배운 적이 있는데, 패럴림픽 현장에서 주고받는 수어를 보고, 농인들의 언어도 나라별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죠. 한국어에 이어 한국 수어를 배우면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뒤부터 그는 한국국제관광전 홍보대사,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글로벌 홍보대사, 한국관광협회 중앙회 홍보대사, CSR포럼 홍보대사 활동을 이어가면서 한국 수어 공부를 병행했다. 외국인 중 한국어를 잘하고 특정 재능이 있는 사람을 국가별로 발탁해 브랜딩 하는 에프엠지 기획사의 프로젝트 공연팀 '한글'(한국 문화를 알리는 글로벌 아티스트)에서 문화공연도 했다. 

"언어는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수어를 하려면 농인 문화도 알아야 했죠. 잠시 방송 활동을 접고 수어 통역사 자격증 공부에 전념했어요. 국가시험 과목도 장애인 복지, 청각장애의 이해, 수어통역의 기초, 그리고 9급 공무원 수준의 국어시험이어서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험 한두 달 전부터는 새벽 5시부터 독서실에 앉아 밤 11시까지 공부했습니다."

외국인 최초... 한국 수어 통역 자격증 1차 시험 통과
 
큰사진보기 사오리는 지난 2020년 7월 외국인 최초로 국가공인 한국수어 통역사 자격증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사오리는 농인분들의 모국어가 수어이기 때문에 자신의 수어 퍼포먼스가 농인분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한국어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오리는 지난 2020년 7월 외국인 최초로 국가공인 한국수어 통역사 자격증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사오리는 농인분들의 모국어가 수어이기 때문에 자신의 수어 퍼포먼스가 농인분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한국어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사오리는 지난 2020년 7월 한국 수어 자격증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외국인 최초였다. 그는 작년 한글날 경축식 축하공연 때에는 서울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를 한국 수어로 안무하기도 했다. 

"수어 통역사들조차도 저의 안무를 보고 '통역도 힘든데, 춤으로 보여준 것이 대단하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한국 수어를 한 사람이 일본 사람이었어?'라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분도 있었고요. 농인 최초의 언어학자인 강남대 변강석 교수님은 '수어 아티스트라는 저만의 새로운 장르가 생겼다'면서 청인과 농인의 가교 역할을 주문했죠."  
   
농인들이 그의 춤을 보면 노래 가사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수어에 기초해서 안무를 창작하지만, 리듬과 음악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이고, 슬픔과 기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신경을 쓴다"면서 "의미 있는 음악의 안무를 수어로 창작해서 전 세계 농인, 청인 모두가 함께 즐기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수어 아트"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수어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3월에 열린 수어 통역 자격증 2차 시험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그에게 '계속 도전할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될 때까지 한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 이유도 물었다.  

"수어는 한국 농인들의 모국어입니다. 수어 아트가 농인들의 언어를 훼손하지는 말아야지요."

그는 오는 10월 9일 한글날에 열리는 2차 시험을 벼르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글의 매력은?   
 
큰사진보기 사오리는 한글의 매력에 대해 “다른 언어와는 달리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쉽고 의미 있는 글을 발명했다”며 “(백성들을) 배려한 배경이 담겨져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  사오리 공책에는 한글을 공부하면서 적은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사오리는 한글의 매력에 대해 “다른 언어와는 달리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쉽고 의미 있는 글을 발명했다”며 “(백성들을) 배려한 배경이 담겨져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국 수어 통역사 자격시험은 한글의 구조와 맞춤법에서부터 한글 창제의 역사와 정신, 철학까지도 깊이 있게 이해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 따라서 사오리의 한글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런 그에게 한글의 매력을 물었다.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최고의 문자라고 극찬하고 있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다른 언어와는 달리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쉽고 의미 있는 글을 발명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일본어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반포일이나 한글날처럼 기념일도 없지요."

사오리는 한글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크게 2가지를 말할 수 있어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나뉠 수 있는 음운 문자라서 한자나 히라가나, 가타카나 같은 다른 동양 문자에 비해 디지털 시대에 유리합니다. 타이핑을 하는데 좋죠. 자모음이 나뉘는 건 영어도 마찬가지지만 영어는 뭉쳐서 음절 단위로 쓰지 못하고 풀어서 쓰는데 한글은 뭉쳐서 음절을 한 덩어리로 쓸 수 있죠.

또 자음이나 모음의 문자 모양이 단순한데도 비슷하게 생긴 글자들은 소리가 유사합니다. 가령 예사소리인 ㄱ, 된소리인 ㄲ, 거센 소리인 ㅋ 등 자음이나 모음이 문자 모양이 단순하지만 비슷하게 생긴 것은 모양만 봐도 어떤 소리인지가 예측이 됩니다. 느낌을 알 수 있죠." 


그는 "대학 졸업한 뒤 일본에서 회사에 다닐 때에도 무언가를 빠르게 받아 적을 일이 있으면 일본어가 아니라 한글로 쓰기도 했다"면서 "주변의 동료들이 내 노트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각 나라에서 통용되는 글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 나라만의 문화와 정신, 정서도 담겨있다. 그는 "한글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 한국의 '정' 문화가 느껴진다"면서 "일본어에는 애매한 표현들이 많은데 그건 집단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접할 때 '욕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감정 표현이 풍부한 데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면서 "한국 노랫말도 일본어로 번역하면 감정 표현이 배제되기 때문에 촌스럽게 바뀐다"고 지적했다.  

곳곳에서 목격된 외국어 남용... "속상하죠"
 
큰사진보기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가 ‘I LOVE YOU’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사오리는 전세계 농인들에게 한국 음악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가 ‘I LOVE YOU’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사오리는 전세계 농인들에게 한국 음악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사오리의 눈에 비친 요즘 한국의 한글 사용 풍속도는 어떨까? 거리에 나가면 현란한 간판 속에 한글이 사라지고 있다. 각종 매체나 홍보물에도 한국어, 한글의 자리를 영어 등이 대체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한글의 나라에 간다는 사실 때문에 가장 마음이 설렜습니다. 그런데 한글이 점차 없어지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서운하죠. 외국에서는 방탄소년단 등이 이끄는 한류 붐이 이어지고 있고, 한글을 공부하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수어도 전 세계 공통어가 될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는 10월 5일 한류 한글 학술대회 때 한글 글로벌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사오리는 다음과 같이 포부를 밝혔다. 

"제가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으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쓸 수 있는 문자입니다. 한글은 위대합니다. 한글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군·해군 이어 육군서도…성추행·스토킹 피해 하사, 극단선택 시도

등록 :2021-08-24 04:59수정 :2021-08-24 07:03

 
육군서도 드러난 성범죄·2차 가해
작년 4월 임관 일주일만에 ‘악몽’
신고 2주 지나서야 분리 조처
사단 담당관은 “빗물에 자료 유실“
사건 축소·가해자 솜방망이·2차 가해 방치
공군·해군 성추행 사건과 판박이

민간 변호사와 고소 뒤에야 수사
수원지검은 성폭력처벌법 혐의 기소
피해자 올초 극단적 선택 이어 또…
가족 “누군가 죽어야 개선되는 집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공군과 해군에 이어 육군에서도 상관으로부터 스토킹과 성추행을 당한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사건 축소·무마, 가벼운 징계, 피해자 신상유출 등 광범위한 2차 가해까지 공군·해군 사건과 판박이였다. <한겨레>는 23일 병원에 입원 중인 피해 부사관을 대신해 피해자 언니를 전화 인터뷰했다. 아무런 처벌 없이 징계만 받고 전역한 가해자는 뒤늦게 민간검찰 기소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육군은 “당시 피해자의 형사고소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ㄱ하사 쪽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바가 없고, (군에서)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부임 일주일만에 ‘교제하자’던 직속상관…거절하자 스토킹·성희롱·추행
 

ㄱ하사는 임관 직후인 지난해 4월 육군 한 부대에 배속됐다. 부임 일주일 만에 직속상관 ㄴ중사가 ‘교제를 하자’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ㄱ하사는 그 자리서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날 이후 ㄴ중사의 스토킹이 시작됐다는 게 ㄱ하사 쪽 설명이다. ㄴ중사는 ‘나와 교제하면 업무에 도움을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다고 한다. 새벽에 취한 상태로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수십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전화를 받지 않자 영외 숙소 앞까지 찾아와 계속 전화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토킹만이 아니었다. ㄴ중사는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성경험을 ㄱ하사에게 늘어놓거나 업무 중 은근슬쩍 몸을 만지기도 했다고 한다. 4개월 가까이 직속상관의 성희롱과 추행에 노출됐던 ㄱ하사는 지난해 8월 초 다른 선임의 도움을 얻어 부대에 신고했다.

 

뒤늦은 피해·가해자 분리…고위간부는 실명 언급하며 2차 가해 부추겨
 

ㄱ하사 쪽은 상담과 조사를 진행했던 사단 담당관과 법무실 대응이 무책임하고 부적절했다고 지적한다.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할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처는 신고 뒤 2주가 흘러서야 이뤄졌다. 그사이 ㄴ중사는 주변에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부대에는 ‘ㄱ하사가 평소 성적으로 문란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한 중사는 ㄱ하사에게 ‘어차피 너는 이미지도 좋지 않다. 부대를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떠나라’고 말했고, 가해자와 절친한 사이였던 다른 간부는 ㄱ하사에게 연락해 진술조서를 보여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피해자를 돕는 간부들은 ‘ㄱ하사를 왜 도와주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

ㄱ하사는 다시 부대 고위간부에게 만연한 2차 가해를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 고위간부는 면담이 끝난 뒤 ‘위(상급부대)에 알리지 말자. 간부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이후 이뤄진 전체 간부 교육에서 해당 고위간부는 오히려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ㄱ하사와 ㄴ중사 실명을 언급한 뒤 ‘뒤에서 욕하면 2차 가해로 신고당한다. 욕하고 싶으면 ㄱ하사 전출 뒤에 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충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과 정의당 충남도당이 지난 6월 공군 성추행 피해자가 근무했던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하게 수사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과 정의당 충남도당이 지난 6월 공군 성추행 피해자가 근무했던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하게 수사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해자 형사처벌 없이 징계만…피해자는 내부고발 낙인에 왕따
 

사단 법무실은 ㄴ중사를 형사처벌하지 않고 징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ㄱ하사가 스토킹·추행·성희롱 사실을 진술했고, ㄱ하사 가족도 직접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운영하는 국방헬프콜에 전화해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지만, 증거가 될 만한 시시티브이(CCTV) 자료나 통화내역 확보를 위한 강제조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ㄴ중사가 ㄱ하사에게 보낸 편지 등 각종 자료를 갖고 있던 사단 담당관은 ㄱ하사가 돌려 달라고 요구하자 ‘빗물에 유실돼 사라졌다’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ㄴ중사는 군 수사기관으로부터 별다른 조사도 받지 않은 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파면 보다 낮은 수준 징계인 해임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심각한 2차 가해를 저질렀던 부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 처벌은 없었다. 오히려 한 간부는 그 와중에 피해사항과 인적사항이 적힌 ㄱ하사 전출희망서를 촬영해 유출하는 등 또다른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한다.

 

결국 가해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ㄱ하사가 그해 11월 직접 민간 변호사를 찾아가 수사기관에 고소한 뒤에야 이뤄졌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 6월 가해자를 성폭력처벌법(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징계 처분하는 데 그쳤던 사단 법무실 결정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육군본부 공보정훈실은 <한겨레>에 보내온 입장문에서 “(가해자) 징계 절차 당시 피해자의 형사고소 의사가 확인되지 않아 징계 절차부터 신속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ㄱ하사 쪽은 “당시 징계절차 등 사건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피해자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고, 법적 절차에 대한 안내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징계 절차 그 자체로 피해자 쪽에서 이 문제를 사건화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가해자가 해임됐다는 것은 성추행 사실이 일부나마 확인이 됐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군이 형사 절차를 병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궁색한 해명”이라고 했다. 육군은 “당시 사건을 담당한 군 수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육군 중앙수사단에서 처리 과정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했다.

 

가해자 쪽은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피해감정과 별개로 피해 일시·장소·방법 등 법적인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 부분을 법정에서 다투겠다”고 했다.

 

“2차 가해도 처벌하는 제도 만들어야”
 

군의 가해자에 대한 미온적 조처와 허술한 피해자 보호는 2차 가해를 키우는 온상이 됐다. 초임 부대를 떠나 새로 전입한 부대에서도 ‘직속상관을 찔러서 부대를 와해시킨 문제아’라는 낙인이 ㄱ하사를 쫓아다녔다. ㄱ하사의 전출 사유와 인적 사항은 이미 부대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ㄱ하사 이름이 집중적으로 검색된 탓에 군 인트라넷 검색시스템에서 ㄱ하사 인적사항이 ‘블라인드’ 처리되는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ㄱ하사는 전출 뒤 두달 간 새 부대에서 사실상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ㄱ하사는 올 초에 이어 최근 또한번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상태에서 발견돼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다. ㄱ하사 쪽은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진행된 국방부 특별 신고 기간에 다시 신고했다. 육군은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지역군단에서 진행 중이다. 피해자 의사를 고려해 관할조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ㄱ하사 쪽은 군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고 했다.

 

ㄱ하사 언니는 “공군·해군 피해 부사관들이 겪었던 일들이 육군에 복무하는 동생이 겪었던 일과 너무나 흡사해서 충격을 받았다. 직접적인 가해자도 문제지만, 간접적인 가해자들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ㄱ하사의 언니는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게시판 청원을 올렸다.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문제가 개선되는 집단이라면 살아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날카로운 눈빛과 지속적인 물음으로 군대 내 성폭력 예방, 사건에 대한 투명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을 지지해달라.”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카불 공항 총격전으로 1명 사망...탈레반 "8월 31일이 레드라인"

CNN "탈레반, 미군 통역 아프간 가족에 사형 통보"...아프간 내 긴장감 고조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카불 공항 북문 근처에서 신원 미상의 총기 소지자들과 총격전이 벌어져 아프간군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군이나 국제연합군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간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 밖에는 미국이나 국제기구를 도운 현지인들이 탈출을 위해 몰려 들고 있는 가운데,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이 존재하는 등 매우 혼란하고 불안한 상황이다.

 

▲ 카불 공항 밖에서 모여든 아프간인들. 더운 날씨에 실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군 등 연합군이 식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진은 미군이 아프간인에게 생수를 건네는 모습. ⓒAP=연합뉴스

탈레반 대변인 "바이든, 31일까지 미군 철수 약속 지켜라"...영국-독일 등 "31일까지 철수는 불가능"

 

한편, 탈레반은 미국이 오는 31일로 설정된 철수 시한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23일 영국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바이든이 언급한 이달 말까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를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하며 "그들이 향후 추가 연장 시한을 원한다면 우리의 답변은 '안된다'"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또 "만약 그들이 주둔을 계속 한다면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이달 말까지의 철수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는 입장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바이든에게 더 많은 사람이 아프간을 떠날 수 있도록 미군 철수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도 이날 "진행 중인 작전을 완료하려면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며 철수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도 카불 공항의 상황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며 철수 시한을 연장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 기자회견에서 미군 철수 시한 연장 가능성에 대해 "시한 연장에 관한 논의가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탈레반, 美 협조자-여성 탄압 보도에 대해 "가짜 뉴스"라 했지만 CNN "미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 통보 받아"

 

샤힌 대변인은 이날 탈레반이 미국에 협조한 사람들을 색출하거나 위협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모두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또 여성 인권 유린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CNN은 이날 탈레반이 미군에 협력했던 아프간 주민 가족에게 사형 판결 통지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군 통역으로 활동했던 한 아프간 주민의 가족에게 3개월 동안 세 통의 탈레반 통지문이 배달됐다. 이 통지문에는 침략자들에 대한 맹종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거부하고 재판 출석 요구를 무시했다고 사형 판결이 내려질 것이며 이 결정은 최종적이며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


 

CNN은 보복 우려로 통지문을 받은 아프간인이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통지문은 탈레반이 미군 협력자와 그 가족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례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한편, 아프간 정부군과 지역 민병대로 구성된 탈레반 저항군들이 카불에 인접한 북부 3개주를 탈환하고 결사 항전 입장을 밝히는 등 내전 가능성도 높아졌다.


 

아프간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 지휘하는 1만 명 가량의 저항군은 탈레반에 포괄적 정부 구성을 요구하며 탈레반이 대화를 거부할 경우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240328027188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을 믿지 말라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  
  •  승인 2021.08.23 10:07
  •  
  •  댓글 0
 
 
 
▲ 왼쪽 : 1975년 4월 사이공(지금의 호찌민) 주재 미국 대사관 지붕 위에서 헬리콥터에 타려고 줄을 지어선 모습. 오른쪽 : 2021년 8월 중순 성조기가 내려진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상공을 선회하는 지누크 헬리콥터 모습
▲ 왼쪽 : 1975년 4월 사이공(지금의 호찌민) 주재 미국 대사관 지붕 위에서 헬리콥터에 타려고 줄을 지어선 모습. 오른쪽 : 2021년 8월 중순 성조기가 내려진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상공을 선회하는 지누크 헬리콥터 모습

미국은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미국을 못 믿겠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아프칸에서 야반도주하다시피 패주한 미국을 보고 하는 소리이다. 바이든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바이든의 선택은 트럼프에 이어 “미국 우선주의”였다. 바이든이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질서있는 퇴각”을 할 수 있었는데, 순간의 판단착오로, 또는 노인네의 고집으로 베트남식 “탈출극”을 자초한 것일까?
상황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스스로가 "미군을 철수시킬 좋은 시기란 없었다"고 고백했듯이, 도주하는 것 말고는 미국은 할 수 있는 것이 애초부터 없었다.
사실 아프칸과 미국간 전쟁의 승패는 오래 전에 결판이 났다. 오바마 시절 이미 철군 구상을 하다가 철회한 바 있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올해 5월까지 철수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터였다. 

바이든은 "얼마나 더 많은 미국인의 목숨을 걸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미국국민에게 항변하기도 하고, "아프간군조차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고 죽어선 안 된다"며, 미군 목숨값이 아깝다는 식의 말을 많이 했지만, "지난 한 주 동안 전개된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 미군이 아프간 개입을 끝내는 것이 옳은 결론"이라고 강변했다.
바이든은 지난 4월 아프칸 침략을 촉발한 9·11테러 20주년 전까지 모든 미군을 아프간에서 철수시킨다고 폼나게 선언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서둘러 도주한 내막은 사실 별 게 아니다. 8월에 아프칸 정부군 몰래 나오지 않으면, 9월 11일 직전 뒷발을 잡는 아프칸 정부군과의 충돌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미국은 아프칸에서 질서있는 퇴각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결국 대공세를 펼친 탈레반은 지난 15일 수도 카불에 진입해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한국은 아프칸과 다르다?

아프칸 사태로 자신이 외교 정책에 노련한 전문가이고,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한 바이든의 꼴은 말이 아니게 구겨졌다.
아닌게 아니라,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은 미국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 것이다"라는 트윗을 날리고, 미국내 여론 역시 '제2의 사이공 함락'이라며 비판하자, 바이든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지난 18일(현지시각)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중국이 대만에게 ‘봤지? 당신들 미국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은 자기 이익밖에 모르고,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삽시간에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대만, 한국 등에서 국익에 맞지 않으면, 미국이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바이든 행정부는 급하게 불끄기에 나섰다.
바이든은 아프칸과 “대만, 한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서, “동맹이 침략당하면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지난 17일 “대통령은 그가 반복해온 것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우리 군대를 감축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런 약속을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디로 한국과 대만에는 “아직 먹을 게 많아 포기할 수 없다”는 소리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기만이고, 미국이 하루 빨리 떠나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황당한 소리이다.
한국과 아프칸은 다르다. 아프칸은 20년을 뜯어먹었지만, 한국은 70년을 뜯어먹었고, 앞으로도 계속 뜯어먹겠다는게 미국의 속심이기 때문이다.

엉뚱한 교훈

아프칸 사태를 보며, 상대적으로 급속한 불안감에 빠지는 지역은 아마 대만일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 등 분리독립파들이 과연 끝까지 미국을 믿고 중국과 맞서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독립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엄청난 불안감에 쌓일 것은 분명하다.

아프칸 사태를 놓고 불안감에 젖어 엉뚱한 교훈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있다.
보수언론들은 이제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로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이 한국에게 동맹 유지비용 청구가 더 늘어날 것이니 이에 잘 협조해야 살 길이 열린다는 식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거는 이익이 한국을 대중국포위전략에 동원하는 것이니만큼, 빨리 이를 수용하여 미국을 잘 붙들어 매야 한다는 황당한 매국논리를 연일 설파하고 있다. 자신이 생존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데 이골이 난 세력이 이 땅의 주류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그간 남북관계 방해, 방위비 분담금 강요, 한미연합훈련 강행, 세균부대 배치, 코로나19방역위반 폭죽난동 등 미국의 행패에 눈살을 찌푸리는 국민들이 버젖이 보고 있는데도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걸 보면, 불안하기는 불안한가보다.

아프칸 사태에서 진짜 가져야 할 교훈은 미국이 이제 자신의 입으로 “미국은 자국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을 대놓고 실토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제국주의국가라는 것을 고백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 악당을 때려잡는 경찰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쇠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반도에만 오면, 한국은 아프칸과 다르다면서, 종속적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그 침략성을 강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알아야 한다. 이 땅에서 미국이 경찰노릇을 해 줄 것을 원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데, 미국이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것을 알만한 국민은 다 안다는 것을. 특히 우리 국민은 이 땅이 미국을 위한 중미대결의 병참기지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런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은 이 땅에서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건 정말 ‘언론 죽이기’ 법일까

‘시민 피해 구제’ 취지에서 대폭 후퇴...국회·언론 호들갑에 가려진 진짜 ‘허점’

지난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을 막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1.08.19.ⓒ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여권의 주도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이 입법 가시권에 들었다. 지난 19일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은 데 이어 24일 법제사법위원회, 25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수적으로 유리한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의 의지가 강한 만큼 이제 남은 과정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언론중재법은 논의 단계에서부터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다. ‘언론개혁법’,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 혹은 ‘언론재갈법’, ‘언론장악법’ 등 법안을 부르는 명칭도 극과 극이다. 언론중재법을 반대하는 집단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대안을 제시하며 반대하는 쪽, 다른 하나는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반대만 하고 보는 쪽이다. 전자에는 시민사회단체가, 후자에는 국민의힘이 대표적으로 포함된다.

시민사회와 결 다른 국민의힘 ‘무조건 반대’

국민의힘이 언론중재법에 반대하는 논리는 권력기관, 부동산, 의료 관련 법안처럼 앞서 여당이 주도한 입법에 반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반대를 위한 반대’다.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진행된 여러 차례 언론중재법 관련 회의에 참여하며 언론계보다도 법안에 관한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문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심의를 위해 소집된 문체위 전체회의를 파행시키며 제시한 명분도 ‘자체 대안을 만들어 올 테니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끝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언론중재법을 통과시킨 여당을 겨냥,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다”며 발끈하는 국민의힘 모습이 진정성 없게 비치는 이유다.

시민사회는 왜?

그렇다면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복수의 시민사회단체에서 민주당 표 언론중재법 통과에 우려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시민사회는 누구보다도 언론개혁 취지엔 공감한다. 이들이야말로 언론개혁 논의에 힘이 실리기 이전부터 십 수년간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당사자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법률적 결함은 물론 ‘언론보도로 인한 시민 피해구제 강화’라는 개정 취지에서 후퇴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열린민주당 의원들이 각각 낸 16개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 두 달 새 급하게 논의됐고, 그 결과물 곳곳엔 허점이 드러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쟁점과 해법 긴급토론회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열리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1.08.05.ⓒ뉴시스

‘5배 징벌적 손해배상’, 법원 실제 적용 가능성은

현재 민주당이 내놓은 언론중재법에서 가장 부각되는 내용은 신설한 제30조의2(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중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법원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하면, 언론은 최대 5배까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 재판을 진행해도 피해구제율이 낮고, 책정되는 손해배상액이 적다는 점이 제안 배경으로 꼽힌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최근 2년간 언론 관련 손해배상 인용 사건의 약 60%는 인용액이 500만 원 이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변호사 선임 비용보다도 적은, 즉 소송비용도 안 나오는 액수가 언론에 맞선 시민들의 손해배상액으로 산정되는 것이다. 시민이 입은 피해에 비해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된 것이 판결의 관례였고, 언론보도로 당한 명예훼손을 피해 금액으로 산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 보상 효과는 지나치게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현재 운영되는 제도조차 실효성이 없는데 여기에 배액배상제만 추가하는 건 시민 피해구제에 실익이 없단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소극적인 손해배상 산정 태도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손해배상액 배수를 높인다고 해도 ‘징벌성’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손해배상제 적용 요건인 허위·조작보도에서 보도의 ‘조작’ 여부는 증명조차 어렵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면서도 그간 손해배상 인용액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온 원인을 살피거나 적정 수준의 손해액에 대해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는 절차는 등한시 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민주당은 배액배상제를 도입하면 시민 피해구제가 높아진다고 주장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5배든, 3배든 크게 의미 없다”고 꼬집었다.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도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 법원이 개인의 명예에 대해서 쳐주는 값이 너무 낮기 때문에 기본적인 법원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배액배상제 자체가 무력화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송 교수는 “‘징벌적’이란 레토릭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현실적으론 법원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고 판사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법 자체를 바꾼다고 큰 의미가 없다”며 “(손해배상액의) 상한선은 정했지 최저선을 정한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민의 낮은 정보 접근성 고려 않은 ‘입증 책임’ 요건

개정안에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의 입증 책임’ 주체를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아 원고(피해자)와 피고(언론사)에게 동일하게 입증 책임을 부여한 부분은 시민 피해구제 효과를 떨어뜨린다. 애초에 언론사에 비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피해자가 언론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보도의 고의성·허위성·조작성을 입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에 반해 언론은 ‘직접’ 취재만 했다면, 어렵지 않게 보도에 고의성·허위성·조작성이 없었다고 증명할 수 있다.

민언련은 민주당에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덜도록 조항 수정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문체위원들은 11일과 12일 언론계와 면담을 거친 뒤 입증 책임 부분과 관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의 주체임을 명확히 해 입증 책임에 대한 모호함을 없애겠다”며 수정 의사를 밝혔다가 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를 맞닥뜨렸다. 결국 해당 사항은 백지화돼 최종 수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신미희 사무처장은 “시민에게 모든 걸 다 입증하라고 하는 건 현행법보다 더 후퇴하는 진짜 개악”이라며 “모든 걸 다 시민에게 지게 하는 게 무슨 피해구제법인가, 그건 언론특혜법이다. 민주당 측에서 ‘우리가 오판했다’며 백지화했다”고 전했다.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조항’에 나열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정정보도·추후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사진·삽화·영상 등)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 조항도 결국 해석의 영역이다. ‘보복적’, ‘반복적’ 등의 잣대가 주관적일뿐더러 법원이 판단해야 할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부분을 굳이 4가지 사례로 특정한 것도 불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준 모양새가 됐다.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의 임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제외한 것도 논란거리다. 민주당은 ‘언론의 기능 침해’를 주장하는 언론계의 의견을 반영해 사회 권력층에 한해 이런 예외 규정을 뒀다고 하지만, 타당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언론인권센터는 5일 성명에서 “공인에 대한 보도라도 모두 ‘국민의 알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인에 대하여도 고의·중과실에 의한 보도로 피해를 입혔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언론계를 포용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언론피해구제 측면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특칙”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을 고려해 손해 배상액을 산정하도록 단서를 신설한 부분도 위헌성 소지가 있다. 언론사는 규모에 따라 신문·방송 외에도 다양한 계열사를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데 개정안은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에 해당하는 기준과 언론사 사업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1.08.19.ⓒ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언론중재법이 “집권 연장 수단” 될 수 없는 사례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국회에서 언론중재법을 제정할 때도 ‘언론 자유 위축’, ‘정부의 언론 장악’ 우려가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제정에 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현재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국제 사회에서 양호한 편에 속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지난 4월 발표한 ‘2021 세계언론자유지수’ 결과 한국은 조사대상국 180개국 중 42위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선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는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기록한 역대 최하위 순위 70위에서 크게 회복했다. 참고로 한국이 언론자유지수 최고 순위를 기록했던 때는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31위)이다. ‘언론중재법 제정이 언론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언론중재법을 두고 “진짜 목적은 정권 말기 권력 비판 보도를 틀어막아 집권 연장을 꾀하려는 것”(윤석열 전 검찰총장), “문재인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부가 내년 대선을 노리며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중재법을 처리하고 있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이르면 25일 본회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내년 3월 9일 예정된 대선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다.

현행 언론중재법 제5조(언론 등에 의한 피해구제의 원칙) 2항의 조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언론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하다고 믿는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언론은 그 보도 내용과 관련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적시한다. 이는 강력한 언론의 책임면제 조항으로 거론된다. 결국 이러한 전제를 고려하면 고의성이 다분한, 손에 꼽히는 악의적 보도만이 처벌 대상에 속하는 구조다.

송현주 교수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MBC ‘광우병 보도’ 사건을 언급,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정당이든 그 어떤 사람도 PD수첩 보도에 대해서 비난했던 사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은 언론중재법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기본적으로 없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건 정치적인 공격일 뿐”이라며 “심지어 한국언론학회 회장단도 모여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성명서를 냈던데 그들은 당시 PD수첩이 공격받을 때 아무 말도 안 했던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법에 따르면 PD수첩은 처벌할 수 없다. 악의가 없고 중대한 과실도 없던 PD수첩 ‘광우병 보도’는 그 어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며 “‘언론중재법이 개정됐다면 과거 최순실 보도는 할 수 없었을 것’이란 주장은 다 헛소리”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오보 피해 문제점이 보도된 한 주간지 기사를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2021.08.23.ⓒ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우왕좌왕, 갈팡질팡” 민주당이 자초한 논란들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 전반에서 민주당이 논란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44개의 언론·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한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9일 논평에서 민주당을 겨냥해 “(언론중재법) 추진과정은 우왕좌왕, 갈팡질팡이었다”며 “시민사회가 줄곧 미디어 개혁의 과제로 요구해온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 인터넷 표현의 자유 확대, 성 평등 미디어의 실현, 미디어노동인권 강화 등을 뒷전으로 밀어둔 채 강행 처리한 게 이 법안이라니 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불신과 적대에 기대는 방식으로 언론을 개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임기 말이 돼서야 어렵게 논의 국면을 맞았지만, 민주당은 지지층 표심을 의식해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언론중재법 관련 논의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례를 끌어와 민주당이 이른바 ‘가짜뉴스’의 피해자임을 지나치게 피력한 점, 언론사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을 단기간에 7개→6개→4개로 줄인 점, 열람 차단이 청구된 기사에 해당 사실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한 조항을 뒤늦게 삭제한 점, 손해배상액 하한선이 없는 점 등은 법안의 부실함을 비판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시민사회가 가장 답답함을 토로하는 부분도 민주당이 불필요한 논쟁에 몰두해 ‘시민 피해 구제 강화’에 주력하지 않았단 것이다. 민언련은 언론중재법이 문체위를 통과한 19일 성명을 내 “시민피해 구제를 높이기 위한 핵심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여야의 언론중재법 논의를 바라보는 내내 법안이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거나 시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언론단체는 언론중재법 통과 시 “강력한 대여 투쟁”을 엄포했다. 하지만 법안 논의 과정 전반을 살펴보면 언론계의 의견은 이미 상당 부분 반영됐다. 전국언론노조·기자협회 등이 자체적으로 작성해 국회에 송부한 언론중재법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과 크게 다르지 않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은 통화에서 “언론노조·기협 등에서 낸 안이 민주당 안에 비해 특별하게 언론 자유를 훨씬 더 보장하는 형태도 아니다. 민언련·민변 등 기존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주장한 사람들이 만든 안과 오히려 흡사하다”며 “실제로 (민주당의) 법안이 이상하게 만들어져서 꼬투리 잡기 좋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긍정 평가’ 받는 부분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언론중재위원회 정원 상한을 90명에서 120명으로 확대하고, 언중위 위원 추천 규정을 강화한 점은 진영을 막론하고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다. 정정보도 청구 방법을 다양화하고 정정보도 청구 기간을 보도 발행일 6개월 이내에서 ‘1년 이내’로 늘린 점, 정정보도 크기를 원 보도의 최소 2분의 1 이상으로 의무화한 점,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을 신설한 점도 의미 있게 해석된다.

이 중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언론보도 내용이 진실하지 않거나, 언론보도로 개인의 사생활 핵심 영역이 침해받는 등 피해를 입는 경우 청구할 수 있는 것인데 기사 삭제와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미디어 환경이 진화하며 언론보도를 공유하는 방식은 빠르고 다양해졌다. 그만큼 커뮤니티 댓글 등을 통해 한 보도에 인용된 사람의 인권이 맹목적으로 공격받는 상황도 잦게 발생하고 있다.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이런 상황에 노출된, 긴급 규제가 필요한 피해자의 방어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일각에선 기사 삭제 요구 남발을 주장하지만, 개정안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언론보도 내용이나 표현이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사회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경우’엔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언론단체와 정의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전면 재논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언론중재법 통과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고, 현시점에서 미뤄진다면 대선 이후에야 논의를 재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야의 정치적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추후엔 각 단체와 이견을 좁히려는 민주당의 태도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의 의견을 언론단체 의견만큼 경청하고, 언론중재법 통과 뒤 후속 논의를 이어가며 보완 조치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배액배상제 도입 시 이중 처벌 소지를 해소하기 위해 김용민 의원이 사실적시 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을 각각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307조 1항과 제309조 1항을 폐지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만큼 연동 법안에 관한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말 바르고 쉽게]⑧ ‘국어기본법’을 아시나요…공공언어부터 바로잡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8/24 05:10
  • 수정일
    2021/08/24 05: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성민 기자입력 : 2021-08-23 00:00
한국어에 대한 법규·제도 담긴 ‘국어기본법’ 2005년 시행프랑스도 비슷한 법 있어…상품·서비스 이름 프랑스어 의무화올바른 한국어 공공기관이 앞장서고 교과서에 법규 게재
세종한국어1'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인도네시아 거점 세종학당 학습자들. [사진=세종학당재단 제공]

'세종한국어1'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인도네시아 거점 세종학당 학습자들. [사진=세종학당재단 제공]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의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1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한국어를 배우면서 꿈이 생겼어요. 한국에서 유학도 하고 한국 회사에 취직도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여행도 자주 했으면 정말 좋겠네요.”

한국어는 누군가에게는 꿈과 희망의 언어다.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세종학당에 다니는 김지수(가명) 씨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났다.

각계각층에서 소중한 꿈을 키우는 한국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중 근간이 되는 것이 ‘국어기본법’이다.

◆ 한국어의 뿌리 ‘국어기본법’

2005년 시행된 ‘국어기본법’ 제1장 제1조를 보면 ‘이 법은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국어는 한국어를 말한다.

또한 ‘국어기본법’에는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의 수립, 국어 사용의 촉진 및 보급, 국어 능력의 향상 등 국어에 관한 법규와 제도가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학당재단’이다. 외국어 또는 제2 언어로서의 국어 보급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세종학당재단을 설립했다.

2007년에 3개국 13개소로 처음 시작한 세종학당은 올해 기준 전 세계 82개국 234개소로 확대됐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한국의 문화처럼 세종학당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신규 세종학당 공모에는 43개국 85개 기관이 신청(경쟁률 3.3대 1)했으며, 서류심사와 화상 면접 등 약 6개월간의 심사과정을 거쳐 운영 역량과 여건이 우수한 기관들을 선정했다.

문체부와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사업을 지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2022년까지 전 세계 세종학당 270개소로 확대하고, 맞춤형 현지화 교원 파견 확대 및 현지교원 양성과정 운영, ‘세종학당 문화강좌’를 통한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강점을 살리는 정책은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최신 정보기술(인공지능·음성인식 등)을 활용한 국가별 특화 학습 콘텐츠 개발 등으로 교육 여건 개선 및 학습 지원 강화 등을 추진해 전 세계인이 체계적이면서도 쉽고 친근하게 한국어를 접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해외에 알리는 것과 더불어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다듬는 일도 중요하다. 국어심의회는 국어사용과 관련한 어문 규범 개정을 비롯해 한국어 국외 보급, 공공언어 개선, 전문용어 표준화, 지역어 보전 및 진흥 등에 대한 사항을 심의한다.

국어(교육) 분야 외에 외국어, 사회・행정, 신문・방송・출판, 디자인(글꼴) 등의 전문가를 위촉해 다양한 시각에서 국어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국어교사, 한국어교원을 추가로 위촉하고 한국수화언어법·점자법 제정에 따른 국어 정책 범위의 확대에 따라 한국수어와 점자 관련 전문가들도 위촉했다.

◆ ‘국어기본법’이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

‘국어기본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프랑스의 사례다. 최초의 ‘프랑스어 사용법’은 1975년에 제정된 ‘바로리올법’이며, 이 법을 강화해 1994년 ‘투봉법’이 만들어졌다.

18세기에 유럽 궁정과 사교계의 ‘공용어’로 인정되기도 했던 프랑스어는 20세기 초부터 영어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어가 프랑스 국내에서도 프랑스어를 본격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한다. ‘영어투성이의 프랑스어’를 가리키는 ‘프랑글레’(franglais)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24개의 조문으로 구성된 ‘투봉법’은 크게 총칙·상품화·행사·회의·노동·교육·방송·공공 업무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상품화 관련 조항이다. ‘제품 또는 서비스의 명칭, 제공, 소개, 사용법이나 사용 설명서, 보증 기간과 조건 기재, 그리고 계산서와 영수증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그 위반에 대해서는 경범죄를 적용하여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국어기본법’에는 국어를 사용하는 국민의 의무를 규정하면서 선언적 명문 규정만 제시하고 있고, 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 이를 제재할 규정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범칙금 같은 제재보다는 한국어를 자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에서 올바른 한국어를 쓰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어기본법에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을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국어책임관을 의무적으로 두어야 하는데 두지 않는 곳도 많고. 대부분 겸직이다 보니 제대로 책임 있게 운영이 안 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기관에서는 아예 별정직으로 제도를 바꿔 국어 바르게 쓰기에 전담하게 해야 한다”라며 “국어기본법에 그런 잘못된 공공 언어 사용에 대해 프랑스처럼 강제 벌칙 조항을 넣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장의 국어책임관 제도를 통해 공공언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나가야 한다”라고 짚었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국어기본법’을 알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실제로 ‘국어기본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국어 교사들조차도 ‘국어기본법’ 전문을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국어기본법의 취지와 강제성 여부를 떠나 국어기본법 자체가 그 존재 의미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모든 과목, 모든 지도서에 국어기본법을 부록으로 싣고 학생들 국어 교과서에는 어문 생활 관련 중요 규정이라도 실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