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2년간 '기소중지' 반란 주역, 군인연금은 계속 수령

[추적] 수사 피해 95년 해외로 달아났던 조홍 전 육본 헌병감... 망각 속에 홀로 연금혜택

18.10.01 07:43l최종 업데이트 18.10.01 08:33l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해외로 도피해 22년 동안 '기소중지' 상태로 남아있는 피의자가 그동안 군인연금은 계속 수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해 반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고있는 조홍 전 육군본부 헌병감(육사 13기, 준장 예편)이 최근까지 군인연금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군인연금과는 '조홍씨에 대한 군인연금 지급 현황을 알려달라'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비례대표) 질의에 "조홍 전 헌병감은 군인연금수급대상자"라고 확인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구두로도 "조홍 전 헌병감은 지금까지 계속 군인연금을 수령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유족연금이 아니라 군인연금이 지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홍씨는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방부 측은 군인연금 수령 규모 등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사항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인연금법 제33조는 군인 또는 군인이었던 사람이 내란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도피해 기소중지 상태인 조씨는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인연금 수급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홍 전 육군본부 헌병감은 누구?] 반란의 시작과 끝에 모두 관여
  

1995년 12월 5일 자 경향신문 1995년 12월 4일 12.12 관련자로는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던 조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같은 달 16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검찰은 해외로 도피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조씨를 기소중지했고, 그는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2.12 군사반란관련자 중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 1995년 12월 5일 자 경향신문 1995년 12월 4일 12.12 관련자로는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던 조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같은 달 16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검찰은 해외로 도피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조씨를 기소중지했고, 그는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2.12 군사반란관련자 중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조씨는 검찰이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수사를 시작했던 지난 1995년 12월 4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한 차례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조씨는 같은 달 16일 딸들이 거주하는 캐나다로 출국해버렸다. 조씨는 출국 직후 "돌아가지 않겠다"는 편지를 검찰에 보내기도 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의하면, 조홍씨는 1979년 12월 12일 합법적 지휘계통에 있던 육군본부 측 지휘관들의 격리와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 아래 수경사) 헌병단장(대령)이었던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군사반란 당일 저녁 자신의 장군 진급 축하모임을 빙자해 서울 연희동의 한 요정으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등을 유인해 1시간 이상 붙잡아두고 있었다. 정식 명령계통에 있던 이들 장성들을 부대로부터 떨어지게 해서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불법연행에 대응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조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쯤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수경사에 모여있던 육군본부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하고 이들을 전원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부하인 신윤희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에게 하달해 실행토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수경사령관실로 진입한 헌병들에 의해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총상을 입었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문홍구 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이 무장해제된 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반란의 시작과 끝에 모두 조씨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셈이다.

쿠데타의 주역들은 반란 이틀 뒤 보안사에 모여 자축 샴페인을 터트린 후 기념 촬영을 했다. 이 사진 속에는 조씨의 모습도 보인다.

조씨는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직후 육군본부 헌병감에 올랐다가 1982년 준장으로 전역했다. 이후 재향군인회 사업국장과 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를 지냈고, 1983년부터 1989년까지 6년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2.12 쿠데타 이틀 뒤인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기념촬영한 12.12 쿠데타 핵심인물들. 빨깐 동그라미 안의 인물이 조홍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  12.12 쿠데타 이틀 뒤인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기념촬영한 12.12 쿠데타 핵심인물들. 빨깐 동그라미 안의 인물이 조홍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한 차례 검찰 조사 후 캐나다로 도피... 기소됐다면 중형 불가피

검찰은 12.12 반란 당시 조씨의 행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봤고,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기려 했지만 그가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기소중지했다. 만약 조씨가 재판에 넘겨졌다면 유죄 선고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조씨의 명령을 받고 육군본부 측 장성들을 불법 연행했던 신윤희씨가 징역 4년형(항소심에서 3년 6월로 감형)을 선고받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기망하고 체포하도록 명령했던 조씨의 범행은 한층 더 무겁다고 볼 수 있다.

내란(반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12·12와 5·18 관련자 18명 중 12·12 반란 당시 20사단장이었던 박준병씨 한 사람만 무죄를 선고받았을 뿐, 나머지 피고인 전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씨처럼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던 박희도·장기오씨의 경우도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있던 1998년 뒤늦게 귀국, 이듬해 7월 1심에서 군 형법상 반란지휘 혐의로 각각 징역 5년과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내란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12·12와 5·18 관련자 전원에 대해 정부는 군인연금 지급을 중단하고 이미 지급된 연금에 대해서도 환수 조치(예편 후 바로 선거직공무원인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전두환씨와 대법원 유죄 판결 전 사망해 공소 기각된 유학성씨는 연금환수 대상에서 제외)했다.

망각 속에 홀로 누려운 연금혜택... 김종대 "부실했던 '역사바로세우기' 사례"
 
1995년 12월 4일 자 경향신문 지난 1995년 12월 3일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의 소환통보에 불응,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 영장집행팀에 체포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튿날 검찰은 12.12 군사반란에 참가했던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의 첫 번째 소환 대상이 된 사람이 바로 조홍씨였다.
▲ 1995년 12월 4일 자 경향신문 지난 1995년 12월 3일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의 소환통보에 불응,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 영장집행팀에 체포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튿날 검찰은 12.12 군사반란에 참가했던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의 첫 번째 소환 대상이 된 사람이 바로 조홍씨였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이들 중 정호용(5.18 당시 특전사령관)·황영시(12·12 당시 1군단장)·장세동(12·12 당시 수경사 30경비단장)·허화평(12·12 당시 보안사 비서실장)·허삼수(12·12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 등 10명은 국방부를 상대로 2014년 1월 서울행정법원에 연금지급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같은 해 6월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들이 낸 군인연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역시 각하했다(관련 기사: 12·12군사반란 가담자 10명 "군인연금 달라" 소송).

이보다 앞선 2003년 7월에도 서울행정법원은 12·12반란 가담자 중 장세동·허화평·허삼수씨 등 3명이 "군사반란 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역군인연급 지급을 중단한 것은 부당하다"라며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무고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명예회복도 다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보위의 막중한 책임을 저버린 원고들에게 퇴직급여 청구권을 인정해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라며 "당시 반란수괴인 전두환을 비롯해 헌정질서 파괴의 반란군에 불과한 원고들이 진실로 반성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라고 꾸짖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독 해외로 도피한 조씨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존재조차 까맣게 잊혔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망각 속에서 숨어 연금 혜택까지 누려왔다.

군인연금 재원은 이미 1973년 고갈됐고, 지난 2010년부터는 해마다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군권을 불법으로 찬탈하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댔던 군사반란 피의자에게 국민 혈세로 꼬박꼬박 연금을 지급해온 꼴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그동안 우리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부실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특히 군인연금을 계속 지급해왔다는 사실은 반란사범을 노골적으로 비호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씨에게 지급된 연금에 대한 환수조치와 함께 반드시 사법처리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 : 2018.09.29 06:00:03 수정 : 2018.09.29 14:07:27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출산드라’는 그만 찾으세요

인구절벽에 온 나라가 출산 구호…가임지도까지 
경기 침체가 과연 저출산 탓만인지 따져볼까요

인구 문제는 21세기 한국의 ‘공인’된 공포 중 하나다. 포털 사이트에 인구절벽을 검색하면 이를 언급한 언론보도가 지난 6년간 1만건이 넘는다. 공포스러운 미래는 대개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한국은 8년 후 다섯 명 중 한 명이 고령자(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다.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인구(15~64세·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부터 이미 줄고 있다. 곧 내수는 얼어붙는다. 사회보장제도로 부양해야 할 노인 규모가 커 국가재정도 악화한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경기는 침체하고 모두가 신음한다.

그러나 두려울수록 따져봐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상수지만 나머지는 ‘변수’일 수도 있다.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구절벽이 일본식의 ‘잃어버린 세월’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되곤 하지만, 일본 내에서조차 저출산·인구감소와 ‘잃어버린 세월’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또 ‘65세 이상’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고령자로 보는 것은 적절할까. 한국이 다민족사회가 된다면 저출산이 정말 재앙일까.

온 국가가 ‘출산’을 외치고 있다. ‘출산력’이라는 단어가 적힌 공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정집에 붙어 있거나, 가임여성지도가 만들어지는 등 여성을 출산기계 취급하는 장면이 종종 매스컴을 탄다. 정책 목표가 태어난 아이의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출산’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잠시라도 ‘출산’이라는 구호는 접어두자. 대신 주어진 인구 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그럭저럭 잘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미래 상상에 영감을 줄 만한 역사적 사례, 연구, 통계 등을 모았다. 지금 절실한 건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받아들이고 힘을 합해 잘 헤쳐나가기 위한 ‘건강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경기 침체, 과연 저출산·고령화 탓인가

‘소멸해가는 나라’ ‘출산파업·임신파업·결혼파업’ ‘자기중심 사회’….

2018년 한국 언론보도가 아니다. 2006년 독일의 유력 일간지와 시사주간지들이 앞다퉈 쓴 표현들이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아이 안 낳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차 대전 직후에도 독일에선 인구 문제가 걱정이었다. 

■ 독일 타산지석 삼는 ‘인구감소 생각법’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왜 문제인지 당시 독일인에게 묻는다면 대체로 ‘민족’을 얘기했을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 공개적으로 ‘인구감소’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1년부터다. 1932년엔 인구통계학자인 프리드리히 부르크되르퍼가 <청소년 없는 민족>을 펴냈다. 민족 사멸에 대한 우려가 스며들던 시기였다. 

이후 나치 치하에서 인구학은 우생학과 부적절하게 결합했다. 나치는 “우월한 혈통”(아리아인)에 국한해 대대적인 출산장려책을 펼쳤다. 논문 ‘나치 독일의 가족과 인구정책’(유정희)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은 실형에 처했고 수천명의 매춘부를 체포했다. 이어 ‘결혼 자금대여’ 정책을 시행했는데, 여성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가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대출원금은 자녀를 4명 낳으면 사라진다. 다섯 번째 아이부터는 매달 자녀양육비를 줬고 나중엔 세 번째 아이로까지 확대했다. 여섯 번째 아이를 낳는 여성은 저명인사를 아이의 대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대출을 받은 부부들은 대개 아이 한 명을 낳고 현금으로 갚았다. “가치 있는” 집단으로 여긴 당 간부의 기혼자조차 평균 자녀 수가 1.1명이었다. 반면 나치는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손의 출산을 금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독일 민족 이외 민족의 출산을 막았다. 205개의 우생학 재판소를 설치해 5만6000건의 강제 불임시술을 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1960년대 독일에서도 베이비붐이 일었다. 그러나 이내 출산율은 또 떨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저출산이 도마에 올랐다. 

민족 소멸 우려 돈 주며 출산장려 
이후 국가·미래 불안 내세웠지만
유럽서 가장 아이 안 낳는 나라돼 
현재 독일, 인구정책 없지만 풍요

 

유럽 국가, 저출산·고령화 대책 
개인 삶 겨냥한 구체적 전략 없고
가족·노동·이민·재정 정책 간 
유기적 결합이 성장 돕는다 인식

 

<모성애의 발명>의 저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2006년 당시 언론과 저명인사들이 주도했던 저출산 논란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논쟁을 바라보면 빠진 게 무엇인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21세기 독일의 저출산 논의에서 “국가적 호소”나 “민주주의적 어조”는 적어도 “공식 공간”에서만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세대 간 합의의 파기’ ‘불안한 연금’ ‘사회복지 체계의 과중한 부담’ ‘경기침체’ 같은 표제어가 전형적인 공포의 시나리오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민족이나 국가적 사명 같은 자리를 대신 메운 것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전상진 교수는 “무려 100년간 자신들이 없어질까봐 걱정을 했던 독일에서 교훈을 얻자”고 말한다. 지금 독일이 소멸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전 교수는 “인구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인구 종말론자’라고 한다”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사적연금 시장을 키우거나,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겨 특정 세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정치적 노림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인구학회 학술세미나에서 독일의 인구학자 베른하르트 코펜 교수(코블렌츠대학)는 “인구축소(decline)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개별 시민을 직접 겨냥해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는 인구정책은 현재 독일에 없다”고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해 비교연구한 2010년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명시적인 성장전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진은 그러면서 “(이들 유럽 국가는) 가족정책, 노동정책, 이민정책, 재정정책 간 유기적 결합이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압축성장에 이어 ‘압축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대응 자세도 압축적으로 배울 수는 없을까. 
 

■ 경제는 진짜 망할까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의 가장 문제는 ‘경제’라고들 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인구(생산가능인구)가 곧 ‘노동자’이자 ‘소비자’인데 이들의 인구규모가 움츠러드니 만들어 팔 제품도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상식은 때로 입증이 어렵다. 

한 나라의 경제적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GDP다. 그동안 경제학계에선 GDP와 인구의 상관관계에 대해 오랜 논쟁을 해왔다. ‘인구감소=GDP 하락’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의 대표적 거시경제학자로 꼽히는 요시카와 히로시 릿쇼대 교수는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라는 책에서 150년간의 일본 인구추이와 실질 GDP 통계를 제시했다. 일본의 실질 GDP는 1950년 즈음부터 급격히 치솟았다. 그러나 인구는 거의 그 자리를 맴도는 수준으로 천천히 증가했다. 요시카와 교수는 “경제성장과 인구는 거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요시카와 교수가 노동력 인구 대신 주목하는 것은 ‘노동생산성’이다. 그는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 (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고 말한다. 

노동생산성은 주로 기술이 진보할 때 큰 폭으로 뛴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루기 직전 일본 취업자의 절반 남짓이 농업·임업·수산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했다. 만약 1차 산업 위주로만 국가경제가 돌아간다면 노동력 규모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도’ 성장은 어렵다. 핵심은 공업화였다. 일본에서 ‘신기 3종’이라 불린 흑백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는 초창기엔 가격이 비싸 대중화되기 어려웠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가격이 떨어졌다. 노동자 1인당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이 증가(노동생산성이 상승)한 것이다. 제품이 잘 팔리니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랐다. 고도성장기 일본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은 연평균 1.3%였고 이후 1차 오일쇼크부터 버블이 끝날 때까지(1975~1990년)는 1.2%였다. 거의 변화가 없다. 

한국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 애널리스트 중 한 명인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인구와 투자의 미래>에서 인구절벽 가설을 반박했다. 그는 일본의 1960~2015년의 토지·주식시장을 분석하면서 “‘인구절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90년 이후 일본의 긴 불황이 ‘인구감소에 따른 수요부진’ 때문에 나타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구가 아니라 자산시장의 거품 그리고 정책의 연이은 실패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랩2050 대표도 일본의 요시카와 교수처럼 노동력 규모보다 노동생산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21세기의 급격한 기술진보 흐름을 들여다보면 기술이 기존의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투입 노동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GDP가 인구 때문에 떨어지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앞으로 인간이 책임져야 할 노동으로는 돌봄과 관리노동 등이 남을 텐데 이런 노동은 시니어들도 잘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의 인구)를 15~64세로 계속 묶어두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이다.

노동력 규모보다 노동생산성 중요 
로봇 등 기술진보가 생산성 뒷받침
일본 150년간의 성장·침체기 통해 
‘인구감소 = GDP 하락’ 논리 깨져

 

미래 공포 내세워 출산 강요하는 
‘인구지상주의’는 도움 안돼
‘저인구 시대’ 대응 복잡하지 않아 
보편 복지·노동 정책 재설계를

 

오히려 문제는 분배와 복지다. 예를 들어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그동안 8시간이 걸렸다가 기계화에 따라 4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기업들이 일자리 총량을 줄여버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노동자들은 타격을 입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수량적 노동인구가 생산력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과를 배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적극적인 분배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 위원장은 “1차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분배가 필요하고, 2차적으로는 중심부의 노동자들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사회수당 등의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까. 오 위원장은 “미래엔 경제를 위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수에 어느 정도 의존하려면 대다수 인구에 소비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재 대표 역시 “지금처럼 65세를 기준으로 잘라 그 이전까지는 복지가 거의 없다가 65세부터 연금수령이 시작되니 ‘등산이나 다니라’고 권유하는 식의 정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면서 “새로운 인구구조에선 보편적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 이주민에 빗장 건 한국…앞으로도? 
 

기술이 진보해도 ‘노동력 인구’의 문제가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령자 비중이 커지면 강도 높은 체력이 요구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3D 업종의 인력난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노인이 많아질수록 간병인 수요도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거론되는 대안이 이민자 유입의 확대다. 경제적 이유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령화 속도를 늦춰 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였던 호주, 캐나다, 미국, 독일, 스페인에선 그렇지 않았던 일본에 비해 고령화가 완만하게 진행됐다. 특히 독일은 1990년대엔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 심각했으나, 이후 20여년간 이민자를 대규모로 받아들인 이후 고령화 속도를 늦췄다. 1990년 독일의 이주민 비중은 전체 인구의 7.51%였는데, 2015년에는 14.8%에 이르렀다. 스페인도 일본보다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 대비 고령자 인구수) 규모가 컸다. 하지만 25년간 이주민 비중이 6배 늘었고, 2015년 노년부양비는 일본보다 낮은 28명이다(한국은행 2017년 보고서). 대규모 이주민 유입이 이들 국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줄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주민에게 폐쇄적인 국가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정주민’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영주권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이들은 이른바 고급인력들뿐이다.
 

◆이민자에 적대적이던 일본, 초고령사회 이후 “일본어 못해도 오라”

터키 출신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해체공사 전문가 카르타르 바틴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철현 제공

터키 출신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해체공사 전문가 카르타르 바틴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철현 제공 

1980년대 민족 강조했지만 
인구 줄며 폐쇄주의 사라져
“신속한 이민 시스템 구축” 
아베 총리 2016년 선언

이민자 더 많이 받아들인 
호주·캐나다·미국·독일 등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 더뎌
 

애초 외국인 노동자를 받을 때부터 한국은 이들의 정주화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을 설계했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3년간 특정사업장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업장 변경은 사업주의 폭행, 상습폭언, 임금체불 등을 정부가 인정한 경우에만 3회 가능하다. 그러나 입증이 쉽지 않아 합법적 이동이 어렵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대한민국은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처럼 외국계 인구가 총인구의 17~18%를 구성하는 이민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가 멀게 느껴진다면 초고령사회 ‘선배’ 국가인 일본을 참고할 수 있다. 일본 역시 한국처럼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국가였다. 1980년대엔 근면, 성실 등 일본 민족 특성 때문에 경제대국이 됐다는 내용의 ‘니혼진론’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폐쇄주의는 사라졌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엔 이주민에 개방적인 나라가 되려 힘쓰고 있다.

일본이 이민정책 변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시점은 2016년 즈음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해에 “세상에서 가장 신속한 이민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요즘 일본은 ‘일본어 못해도 일하러 오라’고 손짓한다. 전문·기술직을 우대했던 그동안과는 달리 단순노동 분야에서도 취업문을 활짝 열기로 했는데, 일본은 이들에게 “300시간 학습하면 도달할 수준”의 쉬운 일본어 시험을 치르게 할 예정이다. 건설, 농업 분야에선 기준을 더 낮췄다. 일본어로 “제초제를 갖고 와 달라”는 말을 듣고 알아맞히는 사진을 고를 수 있으면 된다. 

그 결과 일본 사회의 풍경은 꽤 달라지고 있다. 일본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 박철현씨는 “산업폐기물과 일반쓰레기 처리업에서 일본인을 본 적은 거의 없고 공사장 인부, 빌딩 관리도 점점 외국인이 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외국인과 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는 융성하고 폐쇄적인 사회는 쇠락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민자 권리보호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발언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0년 펴낸 ‘다문화 사회 정착과 이민정책’의 한 대목이다. 이 보고서는 다문화·다인종 국가일수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지식기반산업, 첨단산업을 일궈가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기존의 연구들을 근거로 주장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 가운데 절반은 이민자가 창업했다고 한다. 당장의 노동력 부족 문제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이주민 정책은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얘기다.

저출산·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감소는 분명 ‘충격’에 가까운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적응만 잘한다면 재앙은 아니다. 대응책을 생각해보는 것도 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무작정 공포스러운 미래를 그린 후 ‘출산’을 강조하는 지금의 인구 지상주의식 공론화는 다양한 상상을 위축시킨다. 인구가 감소해도 꽤 괜찮은 미래, 어쩌면 지금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논의하느냐에 달렸다. 
 

◆시대 따라 구호 달라진 대한민국 인구 캠페인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출산율에 따라 국가의 인구 캠페인 기조는 급격히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두 자녀’(위 사진 첫번째), 80년대에는 ‘한 자녀’(두번째)를 강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출산율 제고가 관건이었다. 한 백화점이 개최한 출산장려 캠페인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한반도 지도 모양 조형물 위에 올랐다(세번째). 2015년 한국생산성본부가 출산장려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한 포스터는 ‘외동이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다(아래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관련기사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290600035&code=940100&sat_menu=A070#csidx1f3950986176104af58be2bfcce54a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안검사들은 왜 ‘공익’을 싫어하나

공안검사들은 왜 ‘공익’을 싫어하나

등록 :2018-09-29 15:44수정 :2018-09-29 17:17

 

 

다시 도마 오른 검찰 공안부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가 2014년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수사결과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가 2014년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수사결과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검찰 공안부가 다시 개혁 대상에 올랐다. ‘공익부’로 이름을 바꾸고 노동 사건을 분리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공안부 개편 방안이다. 한때 독재정권의 전위대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했던 공안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차 존재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공안부의 55년 ‘흑역사’와 향후 개편 전망을 짚어봤다.

 

“서울 시내에만 고정 간첩이 수십만명입니다. 국가안보가 정말 중요합니다.” ㄱ부장검사는 몇년 전 후배 검사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고정 간첩 수십만명이라니. 얘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 후배 검사는 소위 ‘정통 공안’으로 분류되는 검사였다. ㄱ검사는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그 아무개가 맞는지 다시 봤다”며 “너무 진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자기 생각이 망상에 가깝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같은 검사들 사이에서도 ‘적응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공안검사들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검찰 공안부 개편 논의에 다시 물꼬가 터졌다. 공안부는 검찰 안에서 대공, 선거, 집회·시위, 노동 관련 사건을 다루는 부서다. 대검 공안부를 비롯해 일선 검찰청 12개 공안부(서울중앙지검 3개부, 서울 남부·수원·인천·부산·대구·창원·울산·광주·대전지검 각각 1개부) 등에 100명이 훨씬 넘는 검사들이 포진해 있다. 서울지검에 1963년, 대검에 1973년에 처음 설치돼 특별수사부(특수부)와 함께 검찰 내 ‘양대 산맥’, 에이스 집단으로 불리워 왔다. 법무부와 대검은 최근 검찰 공안부를 ‘공익부’로 바꾸고 노동 사건을 공안부에서 형사부로 이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현실화할지는 불투명하다. 진보성향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대상’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던 공안부가 이번에는 정말 개혁될 수 있을까.

 

 

_________ 
대검의 공안부 개편 추진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 당시 성역에 가까웠던 검찰 조직에 칼을 대 대검 공안부장 출신 이건개(77) 대전고검장 등 현직 고검장 3명의 옷을 벗겼다. 하지만 2년 뒤 신군부의 12·12사태와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처리를 맡기며 되레 공안검사들을 중용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인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공안정책, 즉 ‘신공안’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공안검사 물갈이를 시도하고 조직도 축소했다. 하지만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을 구속했던 ‘성골 공안’ 김원치(2008년 사망)를 검사장으로 승진(1998년)시켰고, 박근혜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논란을 일으킨 ‘마지막 구공안’ 고영주(2015~2017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69)를 대검 감찰부장으로 중용(2004년)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정권의 ‘탄압’에 맞서 공안검사들은 오히려 더 크게 목소리를 냈다. 1993년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 적용 범위 축소 등이 추진되자,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 부장 등 공안부 소속 검사 5명이 기자실로 우르르 내려와 “간첩 수사의 난관을 초래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03년 송두율 교수에 대한 법무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대해서도 송광수(68) 당시 검찰총장부터 정점식(53) 공안부 평검사까지 사표를 내겠다고 버텨 결국 구속수사를 관철시켰다.

 

현재 법무부와 대검이 추진하는 공안부 개편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대검은 지난 7월 전국 공안검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선거, 노동 사건을 공안적 시각에서 편향되게 처리한다는 오해와 비판을 불식하겠다”며 ‘공안부’라는 이름을 ‘공익부’로 바꾸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검찰이 파업 등에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등 노동 사건을 공안의 시각으로 처리했다”는 지난 6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노동 사건을 공안부 담당에서 형사부로 이관시키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공안부를 개편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안검사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이나 국정원·기무사의 불법적 정치개입 행위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 용산 참사·쌍용자동차 파업 진압같은 공권력 남용 사건에 대한 편향적인 처리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검찰 공안부가 보여준 행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공안검사 출신 한 검찰 간부는 “과거 정부에서 공안부가 잘못한 일들을 철저히 분석해서 공안검사들을 재교육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_________
사라지는 존재감

 

 

하지만 개편 방안의 각론에는 반대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노동 사건을 형사부로 이관하는 방안과 관련해 “노동 사건을 떼어내면 공안부가 검찰 내 하나의 독자적인 ‘부’로 존립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엿보인다.

 

역대 공안부는 대공·선거·집회시위 사건보다 노동 사건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다른 사건들은 급감한데 비해 노동 사건은 계속 증가해 그 비중이 커졌다. 지난해 기준 공안부 처리 사건의 89.2%를 차지할 정도다. 최근 들어선 공안부로 매일 꾸준히 사건이 송치되는 유일한 ‘일감’이기도 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공안부 사건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대공 사건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과거 공안검사에게 간첩 사건 수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특수부 검사에게 재벌총수나 유력 정치인·관료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등 정치사회적 환경이 바뀌면서 대공 사건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1997년 한 해 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은 897명에 달했지만, 2017년엔 14명까지 줄었다. 1970∼80년대 맹위를 떨쳤던 공안검사의 ‘무기’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돼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검찰이 재판에 넘긴 대공 사범은 2명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2013년)의 70명이나 지난해 14명과 비교해서도 크게 감소했다.

 

집회·시위 관련 사건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집회·시위의 권리가 기본권으로 존중되고 있는 추세여서 많이 줄고 있다. 만약 노동 사건을 떼어낸다면 공안부가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검 공안부 관계자는 “과거 공안부의 노동 사건 처리가 잘못됐다면 그걸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 전문성이 없는 형사부에 노동 사건을 넘기게 되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_________
독재정권 ‘보위’하며 승승장구

 

지금은 궁지에 몰린 듯한 모습이지만, 공안부는 1963년 서울지검에 설치된 이래 검찰 내 최고 ‘노른자위’였다. 특히 군사독재 정권 시절엔 법의 이름으로 독재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전위대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작곡가 윤이상(1995년 작고) 등을 간첩으로 몰았던 동백림 사건(1967년)을 비롯해 이후 과거사 조사 및 재심 결과 ‘조작사건’으로 드러난 사건들이 모두 공안검사들의 손끝에서 처리됐다.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3과장(현 공안기획과장), 대검 공안과장,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치면 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직으로의 승진은 물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까지 넘볼 수 있는 ‘출세 코스’로 인식됐다. 공안검사들이 특수부 검사들과 달리 정권 교체에 따른 부침이 큰 이유도 출세 지향적 사건 처리에 따른 자승자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이런 공안검사의 전형이 바로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대학 3학년 때인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소년 등과’한 김 전 실장은 유신헌법을 제정(1972년)하는데 기여해, 이듬해 부장검사급인 법무부 인권옹호과장으로, 1975년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다. 당시 그는 36살이었다. 1976년 ‘민주구국선언’ 발표로 구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김광일(2010년 작고) 변호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김 전 실장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겠다. 김대중 앞잡이 노릇 집어치워라”라고 김 변호사를 협박했다고 한다. 김기춘은 5공 때 서울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6공 때인 1988년 40대 검찰총장이 됐고 곧바로 법무부 장관(1991년)에 올랐다. 당시 기사를 보면 김기춘은 총장 시절 대검·서울지검 공안 관계자 전원을 총장실로 불러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체제 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특수부와 함께 검찰 내 양대산맥 
간첩·선거·집회시위 사건 등 다뤄 
독재정권 시절 체제유지 전위대 
검사장 등으로 올라가는 승진코스 
김기춘, 이건개, 고영주 등 ‘배출’

 

 

김대중·노무현 정부선 개혁 제자리 
문재인 정부, ‘공익부’로 이름 바꾸고 
노동 사건 형사부로 분리 방안 추진 
“전문성 없어 누구도 득 안돼” 반발 
일각선 “아예 없애야 한다” 주장도

 

 

이건개 전 국회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이건개 전 국회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이건개 전 의원 역시 대표적인 공안검사다. 서른살 때인 1971년 서울시경 국장(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발탁됐고, 5공·6공 때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부장을 맡았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으로 몰아친 공안정국 땐 공안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아 77일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85명을 구속하는 ‘신기’를 보여줬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제1 야당인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에게 불고지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긴 주역들로, 김기춘·이건개·당시 안강민(77)서울지검 공안1부장·이상형(69) 공안1부 검사를 묶어 ‘공안 4인방’이라고 부른다.

 

출세욕에 눈먼 일부 공안검사들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했다.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김근태(2011년 작고) 전 의원은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조사한 김원치 검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에 얼어버린 채 남영동에서 검찰로 왔을 때, 교양 있는 검사를 끊임없이 짝사랑하게 된다. 그래도 끔찍한 고문을 안 해서 고맙고 감사하고 때로는 슬쩍 가족 얼굴을 보게 해주고 우리의 검사님은 너그러움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올가미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이다.” 당시 김원치 검사는 김 전 의원이 경찰에게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원치 전 검사장. <한겨레> 자료 사진
김원치 전 검사장. <한겨레> 자료 사진

 

스스로 ‘거악’으로 규정한 반체제사범을 향해 돌진했던 ‘돈키호테 검사’의 후예들은 지금도 검찰 조직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유우성씨를 여전히 간첩이라고 믿는 부류가 ‘정통 공안’들이다. 한 고위 검사는 사석에서 기자들을 만나 “유우성 사건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무죄가 선고됐지, 유우성은 100% 간첩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사 사건 재심 청구로 무죄가 선고돼 수십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은 이들을 향해서도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뿐 간첩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검사’는 일부일 뿐 대다수의 공안부 검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건처리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항변도 나온다. 1980년대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근무했던 한 원로 법조인은 “당시 공안검사를 너무 화려하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다수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 주느라 월급봉투 한번 제대로 집에 가져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간부급 검사는 “변호사로 돈을 벌고 싶으면 공안검사보다는 금융·조세·특수 쪽으로 가는 게 맞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공안을 한다고 검사장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공안검사를 하려는 검사들은 정말 공안 관련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꼭 해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_________
“시각 안 바뀌면 개편 무의미”

 

문재인 정부의 공안부 개편도 일선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익부로 개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안녕하세요, 대검 공익부장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소집해제는 언제 되나요’라고 할지 모른다”는 비아냥이 돌아다닌다. 공익부를 ‘공익요원’에 빗댄 것이다. 공익부라는 명칭이 수사기관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름에 ‘수사’를 넣자는 의견이 많아, 대검에서는 ‘공익수사부’ 등 수정안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사건 분리에 대한 반발도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선 개편 방안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유우성씨 등 대공 사건 피의자 변호를 전문적으로 맡아온 장경욱 변호사는 “공안부 특유의 극우보수적인 ‘공안적 시각’을 갈아엎지 않는 이상, 공안부 개편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가진 공안검사들 대상 강연 자리에서 “공안부는 아예 없애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공안부가 찾아야 하는 자리는 어디일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3766.html?_fr=mt1#csidx381e6bf6e493a74928737c87aa070b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양승태, 박근혜 옆으로 보내자" 광화문 채운 '분노의 목소리'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시민 수백명 모여 행진... "사법부 전면 개혁해야"

18.09.29 19:22l최종 업데이트 18.09.29 19:30l

 

사법적폐 청산 '분노의 펀치'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사법적폐 청산 '분노의 펀치'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지난겨울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더한 놈이 있었다. 우리 국민이 나서서 양승태 꼭 구속시키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사법적폐 청산'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젊은 층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 휠체어를 타고 온 노인 등 다양했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단체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이게 사법부냐! 국민들은 분노한다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가 열렸다. 광화문에서는 처음 진행되는 사법농단 의혹 집회에 시민 700명(경찰 측 추산 인원 400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오후 5시 10분께 보신각부터 오후 6시께 세종문화회관 옆까지 약 1시간 가까이 행진을 하며 "양승태 구속"을 외쳤다.

주최 쪽은 "사법부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를 바로 잡고자하는 국민 열망에도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법적폐를 국민이 바로 잡고자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며 "지난 9월 1일 대법원 앞에서 국민대회를 한 뒤 광화문에 진출하자고 해 드디어 오늘 열렸다"라고 집회 목적을 밝혔다.

이어 "검찰이 사법농단을 수사한 지 100일 됐는데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고 있다"라며 "국정농단 청산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다시 사법 적폐청산을 위해 국민이 모였다. 분노한 목소리를 들려주자"라고 외쳤다.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참가자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아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에 줄이 매여있는 피켓 등을 들고 "양승태, 박근혜 옆으로 보내자", "양승태를 구속하라", "적폐법관 파면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종로 거리 행진에 도보를 지나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행진을 지켜보기도 했다.

행진에 참가한 강아무개(26)씨는 "촛불시위 이후 광화문 집회에 처음 참석한다"라며 "사법개혁은 국정농단 적폐청산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촛불 들기 전에 사법적폐 청산돼야"
 
행진을 마친 뒤에는 세종로 공원에서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사법부 전면 개혁이 거론됐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먼저 발언에 나섰다. 박 상임대표는 "지금 사법부가 하고 있는 짓거리가 가관"이라며 "이렇게 됐으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데 지금 자기들 동료들 범죄를 감춰주느라 법을 깔아뭉개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판사들이 90% 영장을 기각하고 있으니 국민이 나서서 특별재판부 설치를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참에 사법부 전면 개혁을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또, 양동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양승태 사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판거래로 아직 우리 노동자들이 땅을 치고 있다"라며 "김명수 사법부는 사법농단 척결의 주역이 돼야 하고, 국회는 헌정질서 파괴를 바로잡을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행정권력은 피해 보상 응급조치에 나서라"라고 요구사항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피켓과 휴대폰 플래시를 켜며 응했다. 주최 쪽은 "오는 10월 20일에도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있다. 그때는 촛불을 들 것"이라며 "그전까지 사법적폐가 청산된다고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귀결될까?

[기고]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귀결될까?
 
 
 
이채언(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기사입력: 2018/09/29 [18: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미국이 했던 약속; 핵무장의 해제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4. 세계비핵화로의 길

1. 미국이 했던 약속핵무장의 해제

미국은 지난 1970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한 바 있다“NPT 4: (2) 핵무장의 해제와 핵개발경쟁의 조기중단을 위한 효과적 조치에 관한 국제협상과전반적이고도 완전한 (general and complete) 무장해제를 엄밀하고도 효과적인 국제적 관리통제 하에 이루기 위한 조약에 관한 국제협상을본 조약당사국은 각자 선의를 갖고 모색하기로 약속한다.”

이 약속은 적어도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미국이 1970년 NPT를 맺으면서 핵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을 모색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는데 북한도 마찬가지로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하였다.

미국이 NPT에서 약속한 핵무장의 해제는 조약당사국들이 핵무장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을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만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약속이었다.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으니 아직 그것을 모색하는 중이라고만 답하면 그만이다그래서 아무도 미국더러 아직도 그것을 가시적으로 모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도 않고 있다.

북한이 서명한 북미공동성명의 제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는 약속은 48년 전에 미국을 비롯한 핵강대국들이 한 약속의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다북한도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한다.”고만 약속하였다.

지금 북한은 미국이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강제하게 될 것이다미국은 아직도 핵협상 방안을 모색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만 북한은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에 미국보다 한발 앞서 이미 착수했다핵보유국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명과 책임을 솔선수범하는 쪽은 오히려 북한이다.

원래 법률적 문서에서 ‘A를 재확인한다.’고 했으면 나중에 가서 난 A에 관해서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할 수가 없다북미공동성명에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했으면북미 두 나라는 나중에라도 판문점선언의 내용에 대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미국도 판문점선언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판문점선언의 내용 가운데 꼭 알아둘 것이 3가지 있다.

(1) 남과 북은 앞으로 상대방에 대해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한에서는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남과 북은 금년 중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미 3자 또는 남···중 4자회담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도 금년 중에 정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의 핵무기와 핵시설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될 수 없다한반도에 미지상군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언제라도 한반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주한미군을 그대로 존치하려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해야 한다).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북미공동성명 제3항에 명시된 비핵화노력의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미국은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지지해주기만 하면 된다물론 비핵화를 지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어도 많이 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공개적으로 이번에 북미공동성명에 새겨놓은 한반도비핵화약속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자칫하면 그것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전략적으로 주도하는 북한이 세계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래 표는 비핵화된 나라와 원래부터 핵이 없는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핵보유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있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있지만비핵화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없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없다.

그러나 몰래 감추어둔 핵이 있을 수 있고 다시 핵무장을 할 능력도 있기 때문에 핵으로 보복할 능력도 있다그래서 비핵화국은 핵으로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은 못하지만 다른 나라의 핵공격을 핵으로 보복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는 타국의 핵위협에 대응해서는 다른 핵보유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야만 한다그 대가로 핵우산을 제공해준 나라에 종속되고 그들의 패권적 지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이에 비해 비핵화국은 핵우산도 필요하지 않고 타국에 대해 핵우산도 제공하지 않는다.

 

 
핵 보유국
핵 미개발국
비핵화국
세계비핵화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가능
 
불가
 
불가
 
불가
타국의 핵공격위협
핵 방어 가능
핵우산 이용
(숨긴 핵으로)
핵 방어가능
필요 없음.
 
타국의 재래식공격
핵사용 가능
핵우산 이용불가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핵 우산
 
동맹국에 제공
 
동맹국에 구걸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패권주의
 
패권으로 지배
 
패권에 피지배
 
불가
 
불가
 
<표 1> 핵 미개발국과 비핵화국의 차이 
 

이 차이는 세계질서의 새로운 재편을 의미한다비핵화국은 핵을 몰래 보유할 수는 있어도 핵으로 남을 위협하거나 남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패권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그러나 타국의 핵공격 시에는 언제 (숨긴핵으로 보복 공격할지 모른다는 암묵적 위협은 줄 수 있다따라서 비핵화국에 대해서는 핵보유국도 함부로 핵공격을 할 수 없다그러나 세계비핵화가 이루어지면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할 수가 없기 때문에 타국의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숨긴)핵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핵우산 같은 패권놀음도 없어지고 패권국가의 갑질도 사라진다.

북한이 한 비핵화약속은 앞으로 이웃나라나 지역에 대해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지핵이 없던 옛날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약속이 아니다미국을 제외한 다른 핵보유국들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도 사실은 공표를 안 했을 뿐이지 사실은 이미 비핵화과정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미국을 제외하곤 다른 어느 나라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런 단순논리도 이해하지 못해 비핵화 프로그램의 제출(이것까지는 가능하다), 핵 신고핵 반출핵 해체의 검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도를 넘은 망발이다미국이 NPT에서 핵무장의 해제를 약속한 것도 이런 방식의 무장해제는 아니기 때문이다북한도 미국처럼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하기만 하면서 고주알미주알 말싸움만 하면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면 어쩔 셈인가?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북미공동성명에 명시된 쌍방의 의무사항은 비대칭적이다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노력을 약속한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의무조항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그러한 약속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즉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대전환과 한반도의 공고한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북미 간의 공동노력 등을 북미공동성명에서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판문점선언의 이행에 대해 남북한의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이러한 비대칭관계를 가려주고 마치 북한이 굴복한 것 같은 외관을 던져주는 것이 바로 트럼프대통령이 구두로 확인해준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느 정도 비가역적 지점에 이를 때까지는 유엔의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언급이다

그의 이 언급은 북미공동성명을 아예 뒤엎어 버리는 매우 모순적인 발언이다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려면 미국도 동시에 북미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수립도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한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계속하면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될 리 없고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어느 누구도 다그칠 명분도자격도능력도 없다이런 식이면 북한의 대응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미국에 대한 단계적 접근보다는 일괄해결이 효과적이다.

북한이 평소 요구해온 경제제재의 해제주한미군의 철수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같은 사안에 대해 북의 언론매체가 일체 언급을 않는 것에 대해 트럼프는 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을 협상의 천재로 치켜세우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트럼프가 자진해서 북미관계를 전환하기 위해 주동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떠밀려 억지로 실천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북미정상회담은 무슨 협상을 통해 결론을 내린 회담이 아니다협상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bottom-up) 방식으로 하나씩 밀고 당기면서 결정된다그런데 이번은 정상회담의 날짜부터 먼저 정한 뒤에 시작되었으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top-down) 방식으로 기본원칙이 먼저 정해지고 세부실천계획만 나중에 협의된다양쪽 정상이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다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회담결과가 한반도비핵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이 결의한 공동의 약속을 천명한 공동성명에서 드러났다그러나 미국에서는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탑다운 방식이 아닌 마치 바텀업 방식이나 되는 것처럼 미행정부의 하부단위에서 시비를 걸고 아예 뒤집어버리려는 사태가 일어났다

비핵화약속에 대한 세부프로그램이 없고핵 리스트가 없으므로 무효라는 것이다어쩌란 말인가자기들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으니 무효로 돌리자는 소리인가그러면 왜 하필 정상회담을 했단 말인가국무장관 아니면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같은 맨날 그런 급의 사람이나 파견해서 일일이 따지며 세월을 보낼 일이지?

미국의 그런 시비질은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몰라서거나 아예 모르는 척하기에 나온 것이다이미 북한은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하여 더 이상 핵·미사일의 시험발사는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마치 총이나 대포는 이미 완성된 무력이므로 더 이상 시험발사를 필요로 하지 않듯이북한의 핵·미사일도 더 이상 시험발사는 필요 없고 앞으로는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만 태평양을 무대로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동해상에서 재개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핵전략자산(핵전투기)에 대응하여 괌 인근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밝혔다북한이 태평양을 무대로 핵·미사일훈련을 한다면 미국은 그때마다 북한이 군사훈련을 핑계로 미국을 불시에 핵·미사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간과할 수 없으므로 초비상경계태세를 취해야 한다

사실은 그동안 북한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바람에 그에 걸맞는 초비상경계태세로 곤혹을 겪었고 특히 농번기에는 그 때문에 늘 농촌일손이 부족하여 농사에도 많은 애로를 겪었다.

북한이 태평양상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1년 내내 쉼 없이 이어간다면태평양을 오가는 해상무역이 1년 내내 통제될 수밖에 없고 미국은 미국대로 늘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하며 해상무역의 잦은 중단으로 늘 수입물자의 부족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이미 그것을 트럼프도 알고 있었기에 금년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군사적 대립관계의 해소를 미국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그러나 당시 북미 간에는 모든 대화통로가 막혀 있었다북한은 미국의 대화요청을 거부하며 미국이 먼저 대북적대행위부터 중단해야 북미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답해왔다

남북대화가 신년 초에 재개된 것을 누구보다 반가와 한 사람은 바로 트럼프였다남북대화를 축복한다고까지 말했다미리 2월에 있을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도 도리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관계를 이대로 둔 채로는 남북관계를 한 걸음도 진척시킬 수 없다.’는 남측특사의 간곡한 권유에 민족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언들 못 하겠는가라는 취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본다이번에 한국의 중재가 없었다면 4월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부터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태평양상에서 전개되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비핵화약속에 대한 세부프로그램을 따지고 핵 리스트를 제출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금 미국이 과연 할 때인가그러면 미국은 왜 1970년의 NPT조약에서 한 약속을 4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프로그램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가핵무장의 해제는 당사국의 선의에 맡길 일이지 남의 나라가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전쟁에서 패한 패전국이라면 당연히 승전국으로서 각종사찰까지나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패전국이 아니지 않은가북한의 언론보도가 그런 시비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은 미국의 그런 어리석은 짓이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4. 세계비핵화로의 길

북한의 갈 길은 아직 멀다종전선언평화협정주한미군철수나 기다리며 비핵화과정을 무작정 뒤로 미루면 자칫 세월만 낭비한다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북한에서 눈감아 주기로 한 것은 북이 비핵화를 완료하기 이전까지는 미국의 핵우산을 필요로 하는 남쪽 사람들의 심리를 감안한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모순이 개재되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첫째주한미군의 계속주둔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남쪽이나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이 다 같이 인정했다는 점이다이런 식이면 앞으로 주한미군의 계속주둔도 북한의 허락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한반도의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비핵화까지도 포함된다그러나 주한미군의 비핵화는 미국본토가 비핵화 되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하다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미국본토의 비핵화가 필요하고 이는 곧 세계비핵화까지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본토의 비핵화만은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라면 주한미군부터 미리 철수시킬 각오를 해야 한다한국 국민들의 대북 심리적 불안을 달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면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라도 미국이 먼저 세계비핵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셋째미국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아예 포기하고 핵을 가진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택하면 어찌 되는가주한미군이 있는 한 북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북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신고반출점검감추어 둔 핵을 핑계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계속 고집하면 어찌 될까

북한의 목표는 100%의 완전한 한반도비핵화에 있기 때문에 당분간 주한미군철수문제는 건너뛴 채 미국을 과녁으로 한 장거리 핵미사일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비핵화과정을 조속히 밟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맞바꾸는 미국과의 일괄해법을 모색할 때까지 시간을 그대로 계속 끄는 것이다아직은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다고 해서 한반도비핵화과정의 장애로까지는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철수문제만 건너뛰면 다른 수순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미국만 제외하면세계의 다른 핵보유국들은 이미 사실상 비핵화의 문턱에 거의 다 왔다그들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도 타국에 대해 핵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지도 않고다른 나라에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으며패권국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외적으로 비핵화를 선언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나 마찬가지이다문제는 미국이다미국만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고 미국만 핵우산을 제공하여 그것을 근거로 패권을 행사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가 지금 세계비핵화를 선언하기만 한다면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할 나라는 미국 외에는 안 남아 있다그러면 구태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핵 없는 나라들이 모여들어 미국의 패권적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핵우산이 불필요하면 미국의 패권이 저절로 와해된다미국이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미국이 남게 되었을 때 그것이 미국에게 무슨 이점이 있을까아래 표는 맨 앞에서 제시한 핵보유국핵미개발국비핵화국의 비교를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시 비교해 본 것이다맨 아래 줄부터 읽어나가자.

 
유일한 핵 보유국
핵 미개발국
비핵화국
세계비핵화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가능
불가
불가
불가
 
타국의 핵공격위협
소멸
소멸
소멸
소멸
 
타국의 재래식공격
()테러전쟁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핵우산
무용지물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패권주의
불가
불가
불가
불가

<표 2>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경우

미국이 아직도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지만 핵보유국의 패권주의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미국 외에는 핵공격을 할 나라가 없으니까 미국의 핵우산을 필요로 않고미국의 핵우산이 불필요하니 미국의 패권적 지배도 불필요하다

이제 국제간의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 외에는 전부 재래식 무기로만 싸울 것인데 핵을 가진 미국과 재래식 무기로 싸울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그러나 자기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재래식 무기를 갖고도 미국과 전쟁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테러전쟁이다테러전쟁에는 아직 대응방법이 없다테러와 반()테러 사이의 전쟁방법만 날로 지능화되고 현대화되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365일 쉴 틈 없이 이어가고 있다.

미국도 미국 이외에는 다른 어느 나라도 핵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핵공격의 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비핵화국도 핵공격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같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처음부터 핵을 보유한 적 없는 나라들은 미국으로부터의 핵공격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진다이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

세계비핵화는 이를테면 총기소지가 불문율에 의해 금기시된 사회와 같다불문율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금기를 깨트리고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누가 총기를 몰래 갖고 있다가 강도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총기를 난사해도 그것이 정당방위였느냐 아니었느냐만 문제되지 총기사용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같은 원리에 의해 비록 세계비핵화의 문턱에 들어섰더라도 유독 미국만 끝까지 핵을 가지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미국은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에서 유독 혼자 총기를 공개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혼자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깡패노릇을 한다면 같은 깡패노릇이라도 더 주목을 받고 더 나쁜 사람으로 지탄을 받는다그것이 쌓이면 결국엔 주변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

같은 원리로 세계비핵화흐름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만 남아 아직 핵무기 개발의 근처에도 못 가본 약한 나라들만 골라가며 국제분쟁을 일으킨다면 정말로 미국을 불로 다스릴 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한국이 주한미군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미국을 불로 다스릴 때 한국도 유감스럽지만 미국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한국의 민초들이 한 목소리로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요구하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구원하자고 나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9월 평양공동선언과 2019년 예산안

  • 이정희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집행위원장
  • 승인 2018.09.29 17:07
  • 댓글 0

3차 남북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을 보면서 ‘속도전’이 뭔지 실감하게 된다. 
올해만 벌써 3번째,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방문이 성사되면 한해에 4차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다. 분기별 1회, 최소한 최고지도자급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일상적 만남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만나야 통일이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만남 자체를 넘어 형식과 내용 또한 겨레에게 민족의 단합과 통일의 희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판문점회담 때 손을 맞잡고 금단의 선을 넘어서고 도보다리에서 흉금을 터놓는 대화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평양정상회담에서는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천지에서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판문점선언에서는 10년의 공백을 넘어 6·15와 10·4선언을 단숨에 복원했으며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머뭇거리던 미국을 회담장으로 이끌어내고 9월 평양선언을 통해서 종전선언과 2차 북미정상회담을 선도하고 있다.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분야 합의서는 대규모 군사훈련의 중지, 군사분계선 인근의 포사격 및 기동훈련 중지, 해안포와 함포의 포신 덮개 설치, 비행금지구역 설치등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일체의 충돌과 긴장조성행위를 금지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가 포함되었다.

문재인대통령은 평양회담의 성과를 안고 UN으로 달려가 총회연설에서 ‘지난 1년 동안 한반도에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라고 호소했다. 3차 정상회담의 결과 교착된 북미협상과 2차 북미정상회담도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감동과 감격을 넘어 이제 한국사회에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실질적으로 이행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선 7월말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과 8월말 정부가 발표한 <2019년 정부예산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국방개혁 2.0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북적대정책, 선제공격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국방개혁 2.0은 유사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지휘부를 점령하기 위한 입체기동작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킬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을 포함하는 한국형 3축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입체기동작전과 한국형 3축체계는 한국군 독자전력으로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전략일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첨단군사장비구축을 위한 천문학적 예산을 요구한다.

▲ 2019년 정부예산안[그래픽 : 뉴시스]

실제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을 실현하기 위해 5년간 270조원의 소요재원과 년평균 국방예산 7.5% 증가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2% 늘어난 46조 7천억원을 제출했다.
이는 2008년 8.8% 인상 이후 11년 만에 최고수준이며 이명박정부 평균 5.2%, 박근혜정부 평균 4.1%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국방전략과 대규모 첨단무기 구입을 위한 국방비증액은 판문점선언-평양선언정신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과 방향에도 맞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도 방향착오다.

3차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문재인정부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불과 한 달 전에는 50%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6월 지방선거 시기 80%를 넘나들던 문재인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임금 공약 파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둘러싼 정책혼선, 재벌개혁의 포기와 규제완화를 통한 친재벌 성장정책 회귀, 고용상황 악화, 수도권 부동산 폭등 등으로 지지율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결국 경제문제,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법과 실질적인 개선 없이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했다.

문재인정부 지지율하락의 주요원인이 된 두 가지 사안을 돌아보면 철학의 불명확함, 정책수단의 혼선, 재원마련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다. 
최저임금문제는 재벌중심 경제구조극복이라는 전략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한계에 내몰린 중소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상가임대차보호,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카드수수료문제 등의 정책이 함께 제시되지 않아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부동산폭등은 높은 지지율에 취해 보유세 현실화 등 부동산 불로소득근절이라는 정책방향을 외면한 채 주택임대사업활성화와 대규모 개발계획 발표 등의 헛발질을 한 결과다.

문재인정부는 8월말 정부예산안 제출과 9월초 당정청 전원회의를 통해 소득주도성장의 유지· 보완, 사회복지의 확대를 통한 ‘혁신적 포용국가’로 정책방향을 정비했다. 
이러한 정책방향을 뒷받침하기 위해 2019년 예산안을 9.7% 증액했지만 저출산 고령화, 대외경제환경의 악화, 고용상황 개선, 복지국가 기반구축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된 한반도정세와 포용적 복지국가건설을 위해서는 재정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경제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 전환했듯이 한국판 병진노선의 전환, 노동-민중복지 집중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평양선언 이전에 마련된 국방개혁 2.0과 2019년 예산안을 변화된 정세에 맞게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국방예산중 최소한 F-35A도입, 한국형 3축 체계도입 등 공격형 무기도입을 위한 방위력개선비 15조 4천억원에 대해 대폭 삭감하고 복지, 일자리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주한미군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식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문재인대통령을 극찬하면서도 ‘연합훈련에 당신들이 돈을 내야 한다’, ‘엄청난 무역흑자를 보는 부자나라들의 군대에 돈을 주는 것은 안된다’ 라면서 1조원의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어렵고 국민의 부담이 큰데 왜 연합훈련을 계속하고 주한미군주둔비를 부담해야 하는지 근본질문을 해야 할 때다.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한미연합훈련을 전면중단과 주한미군의 철수, 최소한 감축을 공론화해야 한다. 
북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국제사회의 화답을 호소하기 전에 남이 먼저 화답해야 한다.

이정희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집행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베는 평화주의자 할아버지를 말하지 않는다

등록 :2018-09-29 09:24수정 :2018-09-29 09:44

 

 

아베 신조가 선택한 길
가운데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왼쪽이 그의 할아버지 아베 간, 오른쪽이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가운데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왼쪽이 그의 할아버지 아베 간, 오른쪽이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3연임에 성공해,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맡을 수 있게 됐다. 아베는 전쟁 금지와 군대 보유 금지를 명확히 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일본을 바꾸려 하고 있다. 개헌은 아베가 존경하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이루지 못한 숙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친할아버지인 아베 간은 일본 군국주의에 맞선 평화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도 평화헌법을 옹호했다. 아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바람에 어긋나는 길을 선택했다. 아베는 왜, 어떻게 우익의 길을 걸었을까.

 

64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큰 선물을 받았다. “필생의 과업”(lifework)을 수행할 기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61) 전 자민당 간사장을 꺾고 3연임에 성공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은 다수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맡을 수 있다.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2·3차 내각(2012년 12월~현재)에 이어 앞으로의 임기(3년)까지 더하면 10년 동안 집권하는 일본 역대 최장기 총리가 된다.

 

아베는 당선 뒤 인사말에서 “드디어 여러분과 함께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민당의 개헌안을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해왔다. 아베는 2013년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은 내 라이프워크다. 국민투표법은 만들었지만 개헌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정치가가 됐는지 생각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는 2020년까지 개헌을 끝내고 싶어 한다.

 

헌법 개정을 놓고 일본 정치세력들의 투쟁이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과 중국 등은 불안한 눈으로 이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아베는 지난해 5월 헌법 시행 70주년 연설에서 “헌법 9조 1항, 2항을 그대로 둔 채 자위대를 명문으로 써넣는 것에 대해선 국민적 토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해당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그 행사를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 영원히 포기한다”, 2항은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를 수정할 경우 거센 비판과 반발이 불어닥칠 것이 뻔하다. 아베는 ‘우회로’를 택했다.

 

자민당이 지난 3월 낸 시안은 ‘9조의 2’를 신설해, 9조의 2-1항을 “전조의 규정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켜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자위의 조치를 갖는 것을 막지 않으며, 이를 위해 실력조직으로서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내각의 수장에 해당하는 내각총리대신을 최고 지휘감독자로 한 자위대를 보유한다”, 9조의 2-2항 “자위대의 행동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회의 승인, 그밖의 통제에 따른다”고 규정하자고 했다. ‘군대’나 ‘전력’이라는 말을 쓸 수 없으니 ‘실력조직’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해 군대를 보유하겠다는 얘기다.

 

 

아베가 가지 않은 길

 

아베는 2013년 9월 미국의 한 보수적인 싱크탱크에서 연설하며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고 말했다. ‘우익 군국주의자’의 길이 아베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뿌리를 살펴보면 다른 길도 있었다.

 

아베는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선거구(시모노세키가 포함된 야마구치 4구)를 물려받은 3대 세습의원이다. 부모, 장인·장모(시아버지·시어머니), 조부모 또는 3촌 이내의 친척 가운데 국회의원이 있고, 이들의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이를 세습의원이라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앞줄 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손자인 아베 신조를 무릎에 앉히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뒷줄 오른쪽에 서 있는 여성이 어머니 요코, 그리고 앞줄 맨 왼쪽이 형 히로노부다. 일본 총리관저 제공
기시 노부스케(앞줄 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손자인 아베 신조를 무릎에 앉히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뒷줄 오른쪽에 서 있는 여성이 어머니 요코, 그리고 앞줄 맨 왼쪽이 형 히로노부다. 일본 총리관저 제공
아베는 할아버지 때부터 닦아놓은 지역구를 물려받고 있지만, 할아버지 아베 간(1894~1946)을 언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간은 신조가 태어나기 전에 숨졌다. 그러나 신조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베 간이라는 분이다. 익찬선거라는 것에 반대해 익찬회가 아닌 비익찬회로서 당선된 매우 드문 의원이었고, 반 도조 (히데키) 정권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온 의원이기도 했다.”

 

‘익찬선거’는 1942년 4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를 말한다. 일본은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며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시작했다. 도조 히데키(1884~1948, A급 전범으로 기소돼 교수형) 내각은 전쟁 수행을 위해 ‘익찬정치체제협의회’를 만들어 군부의 정책에 협력하는 이들만 중의원 후보에 추천했다. 앞서 1940년 모든 정당이 해산되고 관제 국민통제조직인 ‘대정익찬회’가 만들어졌다. 협의회는 ‘대동아공영권 확립’이라는 이념에 불타는 인물 등을 후보로 추천했다. 비추천 후보들은 경찰의 탄압을 받았다. 아베 간은 도조 내각과 전쟁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협의회 추천 후보 466명 가운데 381명이 당선했고, 비추천 후보는 613명이나 됐으나 당선자는 85명에 그쳤다. 간은 중의원에 재선됐다.

 

야마구치현 오쓰군 헤키초(현재 나가토시)에서 태어난 간의 집안은 대대로 간장 등을 만드는 양조업을 하고, 논밭과 산림을 많이 소유한 지주였다. 간은 도쿄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정치자금을 만들기 위해’ 도쿄에서 자전거를 만들어 파는 상회를 설립했다. 이웃마을 유력가문의 시즈코와 1921년 결혼했지만 1924년 이혼하고 갓 태어난 아들 아베 신타로(1924~1991)를 안고 귀향했다.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주민들이 찾아와 촌장을 맡아달라고 간청했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다고 한다. 그는 1937년 4월 무소속으로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할아버지의 반전·평화·친노동

 

이때 간의 선거 공보물에는 “이번 총선거는 시대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각오를 묻는 중대한 총선거” “국제 정세가 극도로 긴박해 2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잉태하고 있는 상태” “해가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져… 아무리 일을 해도 생활의 안정을 얻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등의 문구가 담겨 있다. 또 “국민의 이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재벌 특권계급의 앞잡이가 되고 있다”고 기존 정당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흥정당”을 만들고 싶다며 군부와 선을 그었다.

 

1961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가운데)가 총리관저 만찬회에서 기시 노부스케(왼쪽) 등을 만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61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가운데)가 총리관저 만찬회에서 기시 노부스케(왼쪽) 등을 만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간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전 건강이 악화해 고향으로 돌아가 병상에 누웠다. 뜻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1946년 1월 숨졌다. 아들 신타로는 당시 나이가 되지 않아 피선거권이 없었다. 1946년 4월 선거를 앞두고 ‘원 포인트’ 후계자가 필요했다. 친척인 의사 기무라 요시오가 낙점됐다. 기무라는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중의원에 만들어진 제국헌법개정안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해 평화헌법 제정에 기여했다. 간의 후계자로서 그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간이 병상에 있던 1945년 봄, 아들 신타로가 찾아왔다. 신타로는 도쿄대 법학부 진학이 결정됐으나, 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1944년 10월 해군 시가항공대에 징병됐다. 그리고 자살공격을 뜻하는 ‘특공’에 지원했다. 군대에서는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간은 아들에게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다. 쓸데없이 죽거나 하진 말거라”라고 당부했다. 신타로는 7월 특공훈련을 받고 출격을 기다리다 종전을 맞았다. 그는 나중에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특공대로 출격해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평화는 소중한 것이기에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신타로가 정치인이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다. 그는 “아버지는 대정당(익찬회)을 적으로 돌리고 금권부패를 규탄했으며, 평생 일관되게 전쟁에 반대하는 자세를 이어갔다. 아버지에게 정치가로서의 신념과 청렴결백함을 배웠다”고 했다.

 

 

“나는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신타로는 대학 졸업 뒤 “살아있는 정치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기자가 되기로 하고 1949년 <마이니치신문>에 입사했다. 2년 뒤 선배의 소개로 기시 노부스케(1896~1987)의 큰딸 요코(99)와 결혼한다. 신타로는 “내가 (전범 용의자의 딸과) 결혼을 해준 것”이라고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1956년 기시가 외무상이 되자 신타로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기시의 비서관이 됐다. 1958년 5월 아버지의 지역구에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다. 기시 가문의 후광을 입고 신타로는 출세의 길을 달렸다. 관방장관, 외무상, 자민당 간사장 등을 역임하고 총리 물망에 올랐다. 그래도 그는 입버릇처럼 “나는 기시 노부스케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아베 간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1991년 췌장암으로 숨지면서 총리의 꿈도 스러졌다.

 

신타로가 숨진 뒤 <마이니치신문>은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라는 자민당의 매파 계보를 이어 보수의 본령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평화헌법 옹호론자로서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유연한 노선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평화주의를 추구했다. 1985년 12월 외무상이었던 신타로는 중의원 외교위원회에서 “세계대전은 일본을 망국의 위기에 빠뜨린 매우 잘못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도 이 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엄혹한 비판이 있다. 정부도 그런 비판을 충분히 인식하며 대응해가야 한다”며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내보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신조야, 나는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나는 아베 간의 아들이다. 난 반전평화니까”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조가 택한 길은 ‘아베 간의 길’이 아닌 ‘기시 노부스케의 길’이었다.

 

신조는 1996년 공저로 낸 <보수혁명선언>에서 “아버지는 전쟁이라고 하는 지극히 비극적인 경험을 했던 당사자로서 그 체험이 사상 형성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기시)의 경우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어떤 의미로 일본이 대단히 비약적인 전진을 달성했던 영광의 시절이 청춘이었으며 젊은 날의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라고 썼다. 아버지의 전쟁 체험을 ‘사상 형성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 평가한 반면, 외할아버지의 청춘 시절 일본이 러일전쟁, 한반도 식민지배, 만주 침략 등으로 나아간 때를 ‘영광의 길’이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의 길

 

‘쇼와의 요괴’로 불린 기시는 1896년 11월 야마구치현 구마게군 다부세초에서 태어났다. 기시의 동생은 ‘비핵 3원칙’(핵무기는 만들지도 않고, 갖지도 않으며,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을 선언해 197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1901~1975) 전 총리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관료가 된 기시는 1936년 10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총무사장이 됐고, 국가 주도형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했다. 이는 이후 한국에서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모델이 되었다. 1941년 만주군 출신의 도조 히데키가 총리가 되자 상공대신에 임명됐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 전시물자를 통제하는 군수차관을 맡았다. 그러나 1944년 사이판이 함락되자 조기 종전을 주장하며 도조와 대립했고, 이 대립이 도조 내각의 붕괴를 불렀다. 일본의 각의(한국의 국무회의)는 만장일치제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일이 그가 전후 전범으로 기소되는 것을 면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 무렵 기시는 아베 간을 문병했다. 사상적으로 정반대였던 간을 찾아간 이유는 분명치 않다. 기시의 직계 중의원 의원으로 자치상 등을 지낸 후키다 아키라(1927~2017)는 “기시 선생은 아베 간 선생이 훌륭한 분이었다며 평생 존경했다. 정치가로서보다 인간으로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는 “(기시는) 아베 간의 아들이라면 괜찮다, 똑바른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며 신타로와 요코의 결혼 배경을 설명한다.

 

기시는 1945년 9월 에이(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3년여 동안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기소를 면하고 1948년 12월24일 석방된다. 도조 등은 하루 전 처형됐다. 기시는 1953년 3월 야마구치현에서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총리는 요시다 시게루(1878~1967)로,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부흥에 집중한다’는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을 내놓았다. 요시다는 “새 헌법(평화헌법)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스러워해야 할 참으로 훌륭한 헌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시는 평화헌법을 ‘점령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봤다. 그는 “현재의 헌법은 (미국이) 점령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기시는 보수대연합을 주도하며 1955년 자민당을 탄생시키고, 초대 간사장을 맡았다. 1957년 총리가 된 기시는 1960년 5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을 의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켜 거센 반발을 불렀다.(아베 신조도 2015년 9월 안보법제를 날치기 통과시켰다.) 시민들은 일본 내 미군기지가 아시아에서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사용될 수 있는 것에 반대했다. 기시는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살해당한다면 바라는 바다”라고 말하며 버텼다. 결국 두달 뒤인 7월 총리에서 물러났다. 헌법 개정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다정했던 외할아버지, 차가웠던 아버지

 

기시는 ‘요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신조한테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신조는 1954년 도쿄에서 신타로와 요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시는 손자들을 자주 불러서 함께 놀았다. 요코는 “아버지는 손자들을 귀여워해 시간이 되면 언제든 함께했다”고 말했다. 기시는 손자들을 등에 올려 말을 태워주곤 했다. 신조는 “외할아버지는 에이급 전범 용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고, 그러한 분위기에 반발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교도통신> 정치부 기자 출신의 노가미 다다오키는 “신조의 기시에 대한 사상적 편향을 이해하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되는 게 아버지와의 관계”라고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기시한테 쏠린 게 아니냐는 얘기다. 신조는 소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부유한 집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세이케이학원에서 다녔다. 자동적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해, 입시를 치른 적이 없다. 신조는 이른바 명문대로 불리는 도쿄대나 게이오대, 와세다대를 갈 성적이 못 됐다. 할아버지·외할아버지·아버지는 모두 도쿄대를 나왔다. 신타로가 “도쿄대에 가라”고 신조를 닦달하고, “대학은 도쿄대밖에 없다고 생각하라”면서 두꺼운 사전으로 신조의 머리를 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지난 20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수를 치는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지난 20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수를 치는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아베 
“드디어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싶다” 
‘실력조직’이란 말 만들어 자위대를 
명시하는 개헌안 임시국회 제출 뜻

 

 

아베 “나를 군국주의자라 불러도 돼” 
할아버지는 ‘평화주의’ 길 걸으며 
‘전범’ 도조 히데키 내각·전쟁에 반대 
참전한 아들에게도 “쓸데없이 죽지 마라”

 

 

기시 노부스케 딸과 결혼한 아버지 
“나는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평화헌법 옹호하며 반전·평화 노선 
아베는 정반대 ‘기시의 길’ 선택

 

 

“일본의 영광의 시절이 외조부 청춘” 
도쿄대에 가라는 아버지와의 갈등도 
기시에게 편향되게 했다는 분석도 
평범했던 아베, 정계에서 우익 노선

 

 

일본인 납치문제 계기 총리직 올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헌법 해석 바꾸고, 안보법제 날치기 
반대여론 커 개헌 이뤄질지 불투명

 

 

신조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세이케이대 법학부를 다닌 동창생들은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인상이나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할 정도다. 신조는 대학 졸업 뒤 미국으로 어학연수 겸 유학을 갔다 2년 만에 귀국해 고베제강소에 ‘정략 취직’했다. 1982년 외무상이 된 신타로는 신조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비서관이 되라고 했다. 아베는 잠시 저항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과 회사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회사가 퇴직 설득에 나섰고, 신조는 정계에 발을 디뎠다.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에서 중의원에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추락했다.

 

신조의 형 히로노부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가가 되기 싫었다”고 하면서, 큰아들인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신조가 정계에 입문한 뒤)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이에 기시의 사고방식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고베제강소에서 신조의 상사였던 야노 신지는 “그(신조)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우파라는 것은 전혀 느낀 적이 없다. 정치권에 들어간 다음에 몸에 익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강아지가 늑대 새끼 무리에 들어간 것처럼, 이후 그렇게 돼버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5년 9월19일 안보법제 제정·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위헌” “폐안”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2015년 9월19일 안보법제 제정·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위헌” “폐안”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도련님에서 매파의 기수로

 

1993년 8월 비자민당 연합세력으로 집권한 호소카와 모리히로(80)는 총리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난 전쟁은) 침략전쟁,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발한 자민당의 우파 의원들은 ‘역사·검토위원회’를 만들어 1995년 ‘대동아전쟁의 총괄’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일본이 수행한 대동아전쟁은 자존·자위의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침략전쟁이 아니고, 난징대학살이나 위안부는 날조로 사실이 아니며, 가해·전쟁범죄는 없다”고 했다. 이 위원회에 초선이던 아베도 참여했다. 아베는 이후 우익활동에 적극 나서면서 ‘부잣집 도련님’에서 ‘매파의 귀공자’로 변해갔다.

 

아베가 스타가 된 결정적 계기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였다. 2002년 9일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76)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해서였다. 이날 오전 북한은 일본이 납치 피해자라며 조사를 요청한 이들에 대해 ‘5명 생존, 8명 사망’이라고 통보했다. 8명 사망 소식에 고이즈미 등은 망연자실했다. 관방부장관으로 회담에 참가했던 아베는 “(사망자에 대한) 설명과 사죄가 없다면 공동선언에 서명하지 않는 게 좋다. 그때는 자리를 박차고 돌아가자”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음을 솔직히 사죄하고 싶다”고 했고, 고이즈미는 평양선언에 서명했다. 두 나라는 국교정상화 회담도 재개하기로 했다.

 

일본 사회는 8명 사망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아베는 최대 수혜자였다. 평양에서 강경론을 주도한 게 알려지면서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납치 피해자 5명이 일본에 일시 귀국한 뒤 이들을 북한에 돌려보내는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정부는 피해자들한테 맡기자는 태도였다. 아베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정부는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 아베한테는 ‘납치의 아베’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타가 된 아베는 2003년 자민당 간사장에 발탁됐고, 2005년에 관방장관에 임명돼 사실상 고이즈미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

 

2006년 9월 총리에 취임한 아베는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총리였다. 아베는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와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내세웠다. 전후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건 연합군총사령부(GHQ)가 ‘강요한’ 평화헌법 등을 해체하겠다는 뜻이다.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고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고, 국민투표법을 제정하며 한걸음씩 나아갔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도 무력화하려 했으나, 미국 하원이 2007년 7월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좌절됐다. 각료들의 정치자금 스캔들 등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궤양성 대장염으로 건강이 악화된 아베는 9월 총리에서 물러났다. 아베는 “어떤 칼럼니스트가 학교에서 ‘아베한다’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에 대한 글을 썼다. ‘아베한다’는 도중에 일을 내던지는 뜻이라고 했다”고,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말한다.

 

 

참담한 실패와 재기

 

아베는 산에 오르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신약으로 궤양성 대장염도 치료됐다. 재기에 나선 아베는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 당선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주위에선 경제를 파고들어야 재집권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때부터 아베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라 할 양적완화(대규모 유동성 공급)를 주장했다. 2012년 9월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가 도전할 것이라는 예상은 적었다.

 

아베의 마음을 돌린 것은 기시 노부스케의 선거구를 물려받은 후키다 아키라로 알려졌다. 그는 아베에게 “기시 선생은 정치가는 일단 정치가가 됐으면 완전 연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네. 기시 선생은 ‘다시 한번 총리가 돼 헌법을 개정하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다네. 당신에게도 미련이 있을 것이네. 승패는 신경쓰지 말고 나서게”라고 했다. 아베는 올해도 맞붙은 이시바한테 1차 투표에서는 뒤졌으나 국회의원만 투표권을 갖는 2차 투표에서 이겨 당선됐다.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2013년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도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995년 8월15일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94) 총리는 종전 5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라고 밝혔었다. 아베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도 방문했다.

 

 

최종 목표, 개헌

 

역대 일본 정부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이를 무력으로 저지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아베는 2014년 각의 결정으로 이를 뒤집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허용된다고 헌법 해석을 바꿨다. 이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2015년 자위대법, 중요영향사태법 등 이른바 ‘안보법제’를 개정·제정했다. 9월18일 한밤중에 참의원 본회의에서 날치기 통과시켰다. 자위대는 미군이 가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이든 따라가 미군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2015년 9월23일 일본 도쿄에서 2만5000여명의 시민이 아베 신조 정권의 안보법제 제정·개정 강행처리와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2015년 9월23일 일본 도쿄에서 2만5000여명의 시민이 아베 신조 정권의 안보법제 제정·개정 강행처리와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이제 아베는 헌법 자체를 바꿔 외할아버지의 염원을 실현시키려 한다. 그러나 실제 개헌에 이르는 길은 평탄하지 않다. 개헌 찬성 세력이 중의원과 참의원의 3분의 2 이상이지만, 국민투표를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교도통신>이 지난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가 가을 임시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51%가 “반대한다”고 답했고, “찬성한다”는 35.7%였다. 상당수 일본인들이 개헌에 동의하지 않는 셈이다.

 

스즈키 게이스케(41) 자민당 청년국장(중의원 의원)은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이 개헌 찬성이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높게 나오면 60%가 나올 수 있지만, 투표 당일 북한이 미사일을 쏴주면 80%는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과 핵실험,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등을 빌미로 힘을 키워온 일본 우익의 셈법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개헌을 추진하는 그들에겐 탐탁지 않다. 섣불리 국민투표를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투표에서 부결되기라도 하면 다시 개헌을 추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베가 국민들의 반대와 주변국들의 반발 등을 무릅쓰며 사활을 걸고 개헌을 강행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참고자료

 

<아베 삼대>(아오키 오사무 지음)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노가미 다다오키 지음)

 

<아베는 누구인가>(길윤형 지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63747.html?_fr=mt1#csidx391df401b70d33db677c7d01be22b4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궁색한 폭로전과 대정부 투쟁에 되레 폭탄 끌어안은 심재철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정부·청와대와 정면충돌...법적 공방까지 가시화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8-09-28 20:49:02
수정 2018-09-28 20:51:1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및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재부 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및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재부 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정부의 비공개 예산 정보에 접근해 확보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자료를 마구잡이로 공개하며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역공을 맞는 모양새다.

자료 확보 경위를 둘러싼 위법 논란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심 의원의 잇따른 폭로전으로 인해 청와대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의혹으로 번졌다.

하지만 심 의원이 제기한 의혹의 근거가 다소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만 더 악화된 꼴이다. 심 의원과 함께 대정부 투쟁에 당력을 집중하던 자유한국당도 덩달아 머쓱해진 형국이다.

비인가 자료 유출 논란 속에서 막무가내 청와대 자료 공개한 심재철

당초 비인가 자료 유출 경위를 둘러싼 논란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사태가 더 심각해진 건 심 의원이 내려 받은 자료를 언론에 잇따라 공개하면서다. 

심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재정정보원으로부터 고발 당한 다음 날인 지난 18일 '청와대가 업무추진비를 불법적으로 집행한 증거'라며 디브레인 접속을 통해 확보한 일부 자료를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해당 자료 확보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사실이 아니다'라며 즉각 반박했음에도, 심 의원은 21일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수행원들이 업무추진비 예산을 한방병원에서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고,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업무추진비를 심야시간이나 주말에도 쓰는 등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검찰은 21일 심 의원의 국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이후 추석연휴를 보낸 27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은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이에 탄력을 받은 듯, 심 의원은 28일에는 급기야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청와대 내부 회의에 참석을 하면서도 회의 참석을 명목으로 부당한 수당을 받아왔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당사자 실명까지 모두 공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라며 심 의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대응 수위를 높였다. 심 의원과 청와대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는 인수위원회 없이 작년 대선 다음 날 곧바로 출범했던 정부 특성상 신정부 출범 초기에 한해 각 분야 전문가를 정식 임용에 앞서 정책자문위원 자격으로 월급 대신 최소수당을 지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심 의원은 "청와대 신원조회 기간인 약 한 달간은 봉급이나 수당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없다"라고 재반박에 나섰지만, 청와대 역시 "예산집행지침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주장"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정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참모진들이 내부 회의 참석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정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참모진들이 내부 회의 참석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시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짠돌이'라는 별명을 안고 있는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이날 작심한 듯 업무추진비가 미용 서비스 등에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심 의원의 의혹 제기에 직접 반박에 나서면서 청와대에 힘을 실었다.  

심 의원이 마치 청와대가 '미용업종'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의혹을 몰아갔으나, 청와대 확인 결과 카드사의 오류로 업종이 잘못 분류됐을 뿐 평창동계올림픽 관계자 격려금 등으로 사용된 것이었다는 해명이다.  

게다가 사용 규모도 '1인당 목욕비 5,500원', '치킨・피자 제공 6만원', '고깃집 오찬 6만원' 등으로 약소했고, 내역 역시 부당한 사용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심 의원의 거창해 보이던 의혹 제기가 다소 궁색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정치권 밖에서는 심 의원이 국회 부의장을 지낼 때 받은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부터 공개하라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업무추진비로 따지자면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이 합쳐서 연간 71억원 수준이고, 국회가 103억원으로 국회가 더 많다"라며 "자유한국당이 국민의 알 권리를 얘기하던데, 그렇다면 자기들이 국회에서 써 왔던 업무추진비부터 공개하는게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심재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심재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뉴시스

자유한국당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고발" 으름장 
민주당 "가짜뉴스 생산 말라" 비판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대치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예고한대로 이날 대대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검찰의 심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과 관련해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 발의를 검토하고,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면밀히 검토해서 부정 사용이 발견되면 공금유용 및 횡령 혐의로 전원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국을 흔들 정도의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내역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자유한국당은 되레 여론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불법자료 유출도 모자라 기초적인 검증도 없이 자료를 공개한 것은 또 다른 범죄 행위"라며 심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민주당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심 의원은) 오히려 국가기밀을 무분별하게 유출하고, 심지어 탈취한 국가기밀로 '유흥주점에 결재했다', '꼼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등의 온갖 가짜뉴스까지 생산하고 있다"라며 "전대미문의 국회의원 '국가기밀 불법탈취 사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야당 탄압'을 내세운 물타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왼쪽)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이 28일 국회 의안과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가기밀 탈취 관련 윤리위 징계 요청안을 제출하고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왼쪽)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이 28일 국회 의안과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가기밀 탈취 관련 윤리위 징계 요청안을 제출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DMZ의 기록, 철책보다 더 무서운 게 먹고 사는 일이었다

[프레시안 books] 김녕만의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
2018.09.28 21:45:39
 

 

 

 

"처음엔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만 분단의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늘 철책 너머 그 안쪽으로만 골몰했던 시선을 돌리자 접경지역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철책 바로 아래까지 농작물을 심고 하루종일 멈추지 않는 대북 대남방송의 웅성거림 속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을 접했을 때 아찔한 전율이 왔다. "이것이 삶이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계속되는 것이로구나." 지뢰 팻말이 매달린 철책 옆에서 고추모종을 하는 농민, 풍년을 꿈꾸며 모내기를 하고 있는 농민, 논을 갈아엎는 이양기 뒤를 따라가며 뒤집어진 땅 속에서 기어 나온 벌레를 잡아먹는 백로와 왜가리, 저어새...
 
철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먹고 사는 일이었다." 
 
(김녕만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 中) 
 

▲김녕만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SF 영화에 나오는 판타지로 생각할 것 같다"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말이다. 김 위원장 스스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판타지'로 느꼈다.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을 하고 배석자도, 통역도 없는 회담을 진행했을 때 많은 이들이 "초현실적 광경"이라고 평했다. 보고도 믿지 못할 풍경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초현실적 판타지. 전쟁과 분단, 단단하게 구축된 비정한 현실의 논리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인식에 던져진 파장은 컸다. 한반도에 정말 평화가 오는 것일까.  
 
우리 땅에는 초현실적인 곳이 많다. DMZ(비무장지대)와 판문점이 대표적인 곳이다. 5000년을 오갔던 땅이지만 65년간 방치된 곳이다. 지금은 따로 없지만, 예전엔 '판문점 출입기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판문점에 상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생중계되고 수많은 미디어가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시대가 아니던 때에는 제한된 미디어만 그 긴장의 집을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1983년~85년, 1988년~94년 판문점 출입기자를 지낸 사진 작가 김녕만의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도서출판 윤진, 2018년 7월)은 판문점과 DMZ, NLL(북방한계선) 등 분단 현장의 기록이다. 김녕만은 1980년 광주를 기록했고, 냉전 말기 베트남을 찾아 전쟁의 상흔을 기록했으며, 한반도 분단의 현장에 천착해 왔다. 사진기자로서, 사진 작가로서 아시아 냉전의 시대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해온 셈이다. 
 
4.27판문점 선언 이후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것은 대사건이다. 공간이 주는 진정한 힘은,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이 우리에게 어떠한 기억으로 남을 때다. 김녕만은 판문점을 "80년대와 90년대에도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남북 스포츠 교류, 북한의 수해물자 전달 등 대화의 기조가 이어지다가도, 금세 상황이 급변하면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로 반전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던 곳으로 기억한다. 도끼날이 오가기도, 평화의 사절이 오가기도 하던 곳이 그곳이었다.  
 
두려움과 슬픔, 희망이 뒤섞인 그 공간에서 저널리스트들은 고군분투했다.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리는 제 6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위해 판문점에서 북측 지역으로 가던 남북의 장교가 전날 눈이 내려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빙판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잡은 짧은 순간을 포착해낸 사진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긴장감을 그대로 전해야 할 의무 속에서도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은 그렇게 애태우며 작은 희망을 기록해 왔다.   
 

▲도서출판 윤진 제공 ⓒ김녕만

김녕만의 분단 기록은 2000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83년부터 2000년 이전까지는 사진기자의 신분으로 판문점과 비무장지대의 '안'을 취재했고, 2000년 이후부터는 신문사를 퇴직하고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의 작업으로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의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철원에는 분단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생창리 용양보는 참으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DMZ 철책선이 북진하는 바람에 지금은 제한적으로 민간인도 들어갈 수 있게 된 용양보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마치 태고적 풍경처럼 정갈하고 신비롭다. 왕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룬 물가로 각종 새들이 날고 부서진 출렁다리 목책에는 가마우지가 나란히 줄지어 앉아 사람들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 뒤로 멀리 높은 산봉우리에 북한군  초소가 작은 점으로 보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곳에 고요히 서면 분단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분단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할 것인지 아득해진다."  
 
"강화도에서 더 서쪽 교동도에는 엄마 손을 잡고 바다 건너 황해도 연백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엄마를 따라온 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 시장골목에 이발소를 차렸고 백발이 되도록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발사로 늙어가고 있다." 
 
김녕만의 '분단의 현장'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다. DMZ은 철책, 경계선 그 자체만이 아니다. 지뢰 표지판을 등지고 땅을 가는 농부의 삶이고, 정갈한 늪 속에서 헤험치는 노루의 삶이며, 남측을 노려보는 이름 모를 북한 병사의 삶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는 '선'이 없다. '선'이 있을 것이라 상상한 곳에 세워진 철책만 있다. 분단선 근처의 풍경 사진을 보다 보면 경계선이란 건 마음속에 있어서 단단한 것이지, 물리적 철책 자체로 단단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마음 속 분단을 허무는 작업들이 지금 한반도 주변에서 진행중이다. 김녕만의 사진들이 판타지같으면서 판타지같지 않은 이유다.  
 

▲도서출판 윤진 제공 ⓒ김녕만

▲도서출판 윤진 제공 ⓒ김녕만

▲도서출판 윤진 제공 ⓒ김녕만

▲도서출판 윤진 제공 ⓒ김녕만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노총, “현대기아차는 무법지대인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9/29 11:05
  • 수정일
    2018/09/29 11: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노총, “현대기아차는 무법지대인가?”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9/29 [00: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주노총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현대기아차는 즉각 직접교섭에 나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지 9일째집단단식을 시작한지 7일째인 28일 민주노총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현대기아차는 즉각 직접교섭에 나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현재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4년 전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 판정한 현대·기아차에 정규직전환 시정명령을 내려달며 농성중이다.

 

지난 8월 1일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당사자 간 협의 등 적극적 조치를 권고했다하지만 이후 면담이 진행됐으나 노동부는 사측에게 시간만 벌어줬다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가다사측과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당사자를 배제한 채 특별채용에 합의했다현재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퇴거요청서만 6차례 보낸 상태다.

 

민주노총은 재벌 앞에만 가면 무용지물이 되는 대한민국의 법치와 행정력은 더 이상 공신력이 없다며 현대기아차의 정몽구삼성의 이재용을 그들이 저지른 죗값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재벌천국 노동지옥인 나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온 나라에 파견노동자용역노동자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넘쳐난다통계에 잡힌 것만 300인 이상 기업에서 90만 명을 차지하고 있다며 다른 정책 수단 없이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법대로 정규직 전환만 해도 좋은 일자리 수십만 개가 창출된다고 지적했다.

 

▲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4층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지 9일 , 단식 농성 7일째를 맞고 있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민주노총은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고용노동부의 의도적인 직무유기로 더 이상 방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스스로 직무를 유기하고범법자를 비호하고적폐행정을 덮으려는 고용노동부가 퇴거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향후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을 적극 엄호한다는 계획이다.

 

------------------------------------------------------------------

<기자회견문>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명령 권고 즉각 이행하라!

 

현대기아차는 무법지대인가언제까지 법을 농락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14년 전 고용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했다이후 법원 하급심과 대법원은 일관되게 현대기아차 뿐만아니라 자동차 공장 사내하청노동자는 모두 불법파견임을 확인하고 판결했다고용노동부 스스로 적폐행정을 청산하겠다며 설치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법원 판결에 따른 직접고용 시정명령과 현대기아차 원청과 당사자인 비정규직지회와의 협의를 적극 중재하라는 권고결정을 내렸다.

 

이 모든 결정과 판결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당당하게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치외법권 자본인가되묻지 않을 수 없다재벌 앞에만 가면 무용지물이 되는 대한민국의 법치와 행정력은 더 이상 공신력이 없다어제 검찰은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 수사결과 발표를 하면서 전사적인 역량이 동원된 조직범죄로 규정했다그러나 조직범죄임에도 조직의 우두머리인 이재용이 관여한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며 면죄부를 주었다현대기아차의 정몽구삼성의 이재용을 그들이 저지른 죗값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재벌천국 노동지옥인 나라일 뿐이다.

 

지금 온 나라에 파견노동자용역노동자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넘쳐난다통계에 잡힌 것만 300인 이상 기업에서 90만 명을 차지하고 있다비정규직 중에서도 악성종양 같은 나쁜 일자리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그 중에서 다른 정책 수단 없이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법대로 정규직 전환만 해도 좋은 일자리 수십만 개가 창출된다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불법파견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을 법대로 바로잡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이 될 것이다.

 

이재갑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어제 취임식에서 "일자리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미조직 노동자특수고용직 등 취약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호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지지한다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자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있고법의 사각지대에서 무법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대기아차 정몽구-정의선이 있다이곳이 장관이 있어야 할 현장이다.

 

민주노총은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고용노동부의 의도적인 직무유기로 더 이상 방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스스로 직무를 유기하고범법자를 비호하고적폐행정을 덮으려는 고용노동부가 퇴거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어제 검찰은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온 반면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규정되어 있고사측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되어 온 경향이 있어 우리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며 뒤늦은 자백을 했다.

 

우리는 검찰과 사법부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재벌대기업현대기아차와 한 배를 타고 앉아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만들고 있는 주범임을 분명히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현대기아차는 즉각 직접교섭에 나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하라

고용노동부는 재벌비호 중단하고 불법파견 처벌하라

- 14년 직무유기고용노동부는 즉각 직접고용 시정명령하라

검찰은 불법파견 현행범 정몽구-정의선을 당장 구속하라

 

2018년 9월 28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들은 괴로워…피 빠는 모기, 눈물 빠는 나방

새들은 괴로워…피 빠는 모기, 눈물 빠는 나방

조홍섭 2018. 09. 28
조회수 951 추천수 1
 
소금과 단백질 섭취 위해…무기력한 밤중에 대롱 삽입
악어, 거북, 사람 눈물도 섭취하는 나비·나방·벌 보고돼
 
moraes-1.jpg» 잠자는 개미잡이새의 목에 앉아 기다란 대롱을 뻗어 눈물을 빠는 나방. 가슴에는 모기가 붙어 있다. 모라에스 (2018) ‘생태학’ 제공.
 
땀에 젖은 등산복에 나비가 날아와 앉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땀 속 염분과 단백질을 빨아먹으려는 행동이다. 나비나 나방은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 축축한 땅이나 동물의 배설물, 사체 등에 종종 내려앉는다. 동물의 두 눈도 예외가 아니다. 눈은 미네랄과 단백질이 듬뿍 든 액체가 솟아나는 두 개의 작은 웅덩이일 테니까.
 
t2.jpg» 타이의 침 없는 꿀벌이 사람 눈물을 섭취하고 있다. 눈동자 아래 5마리, 위 1마리가 보인다. 한스 벤지거 외 (2009) ‘캔사스 생태학회지’ 제공.
 
소 등 포유류의 눈은 크고 눈물이 샘솟는 훌륭한 장소이다. 사람 눈에 덤벼들어 눈물을 빠는 꿀벌도 발견됐다. 그러나 눈물을 먹는 곤충의 표적은 포유류에 그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 생태학자들은 열대림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중·남아메리카 악어인 카이만에 나비와 벌이 날아들어 ‘악어의 눈물’을 핥는 모습을 관찰해 과학저널 ‘생태학과 환경 최전선’에 보고했다. 이 잡지에는 에콰도르 생태학자들이 아마존 강 민물 거북의 눈물을 먹는 나비를 보고한 바 있다(▶관련 기사아마존 우림 나비, 거북 눈물 좋아해).
 
amalavida.tv_A_butterfly_feeding_on_the_tears_of_a_turtle_in_Ecuador_(cropped_to_butterfly).jpg» 아마존 민물거북의 눈물을 빠는 나비. amalavida.tv,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t3.jpg» 코스타리카 열대림에서 카이만의 눈물을 빠는 나비. 아만다 로사 제공.
 
악어나 거북보다 동작이 빠른 새는 눈물을 빨기에 적당하지 않은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통념을 깨고 독일 생물학자 롤란트 힐가르트너 등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잠자는 새의 눈에 대롱처럼 생긴 주둥이를 넣고 눈물을 빠는 나방을 발견해 2007년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 나방은 보통 과일이나 다른 동물의 피를 빠는데, 밤중에 잠자는 새를 공격했다. 주둥이 끝에는 미늘이 여러 개 달려있어 눈꺼풀 속에 일단 걸면 잘 빠지지 않는 구조였다.
 
t4.jpg» 새의 눈물을 빠는 나방을 처음 보고한 마다가스카르의 숲. 오른쪽 위를 확대한 모습이 오른쪽 아래 사진이다. 힐가르트너 외 (2007) ‘바이올로지 레터스’ 제공.
 
2007-1.jpg» 새의 눈동자에 고정하기 위해 미늘이 난 나방의 대롱 입 모양. 힐가르트너 외 (2007) ‘바이올로지 레터스’ 제공.
 
2015년엔 브라질 생물학자 이반 사지마가 콜롬비아 구역의 아마존 강에서 밤나방 상과의 대형 나방이 물총새의 눈물을 핥는 모습을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다. 최근 이 발견지로부터 500㎞ 떨어진 브라질 아마존 강에서 새로운 사례가 나왔다. 브라질 국립 아마존연구소 생태학자 레안드루 모라에스는 과학저널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대형 나방이 개미잡이새의 눈물을 핥는 모습을 2차례에 걸쳐 관찰했다고 밝혔다.
 
t5.jpg» 아마존 강 콜롬비아 유역에서 발견된 잠자는 물총새의 눈물을 빠는 나방. 이반 사지마 (2015) ‘브라질 조류학회지’ 제공.
 
모라에스는 “목에 앉은 나방이 대롱 주둥이를 길게 내어 이리저리 더듬으며 눈 부위로 접근한 뒤 눈 속에 집어넣었다”며 “새는 나방의 이런 행동을 개의치 않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는 나방의 존재를 아는 것 같았지만, 눈만 껌벅일 뿐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 모라에스는 “밤에 기온이 떨어져 새가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고, 나방은 새의 목에 앉아 멀찍이 긴 대롱을 뻗어 눈물을 빨아 새를 덜 교란했다”고 설명했다.
 
잠자리 개미잡이새의 눈물을 빠는 나방 영상. ‘사이언스 매거진’ 제공.
 
나방은 눈물로부터 귀한 소금기와 알부민 등 200종이 넘게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을 섭취한다. 그렇다면 새들은 나방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볼까. 모라에스는 “눈물을 섭취함으로써 나방은 비행과 생식에 도움을 받지만, 새가 얻는 직접 이득은 없어 보인다”며 “오히려 감염 가능성이 커진다”고 밝혔다. 그는 “나방의 새 눈물 섭취가 매우 드물게 관찰되고 있지만, 관찰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더 많은 사례가 있을 수 있다”며 시민 과학의 기여를 기대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eandro João Carneiro de Lima Moraes, Please, more tears: a case of a moth feeding on antbird tears in central Amazonia, Ecology, doi: 10.1002/ecy.251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찰·운동권 출신도…‘삼성’쪽에 서면 바뀌는 씁쓸한 풍경

경찰·운동권 출신도…‘삼성’쪽에 서면 바뀌는 씁쓸한 풍경

등록 :2018-09-28 10:46수정 :2018-09-28 13:42

 

[더 친절한 기자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수사결과를 보며

전현직 경찰·장관 보좌관·경총까지 폭넓게 연루
경찰 출신이 총괄하고 운동권 출신이 자문한 노조파괴
사용자단체 경총은 삼성 위해 ‘발연기’
“법과 검찰은 노동자·사용자에 평등한가?”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거요. 당신들은 안 그럴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웹툰 ‘송곳’에서 노동운동가 구고신이 했던 대사입니다. 지난 27일 검찰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중간 수사결과를 보면서 바로 이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전현직 경찰과 전 노동부 장관 보좌관, ‘노조파괴 자문’ 노무법인 출신 노무사,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법정 사용자단체 한국경영자총협회까지 폭넓게 연루된 이번 사건은 ‘서는 곳’이 ‘삼성’일 때, 풍경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 풍경은 ‘삼성공화국’에서 가능한 불법적인 행위들이 망라돼 있습니다. 삼성은 ‘노조 와해’를 ‘미래전략’으로 삼았고 ‘신속 대응’했습니다. 그에 따라 협력업체 사장들은 삼성이 자신의 업체를 폐업시킬까봐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그린화(무노조화) 하겠다”고 맹세해야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를 위협받아야 했으며, 결혼·이혼 여부, 임신·정신병력 등 건강 상태까지 사찰 당했습니다. 삼성은 노조의 세력이 커질까봐 자살한 노조 조합원의 아버지를 돈으로 매수하기도 했습니다. 현직 경찰은 삼성에 돈을 받고 회사쪽 교섭대리인 행세를 했습니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경찰 출신이 총괄하고 운동권 출신이 자문한 노조파괴

 

‘관리의 삼성, 인화의 엘지(LG)’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화의 엘지’가 과장됐다는 반론이 있지만 ‘관리의 삼성’에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이 ‘관리’가 긍정적으로 발현되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60조원 영업이익과 같은 엄청난 실적으로 돌아오지만, 부정적으로 가면 바로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다.

 

검찰 수사 결과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의 강한 위계를 바탕으로 한 노조 와해를 위한 ‘관리’의 전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번에 기소된 삼성 임직원만 18명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고 또한 놀랍게도,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만든 것은 서는 곳을 달리해 다른 풍경을 택한 ‘드라마틱’한 인물들입니다.

 

검찰이 발표한 자료에서 피고인 연번 1번에 해당하는 강경훈 삼성그룹 미전실 인사지원팀 부사장과 2번인 김아무개 전무는 각각 경찰대 2·3기로 경찰출신입니다. 이들은 경찰에서 퇴직한 뒤 삼성에서 인사·노무관리 업무를 두루 맡았습니다. 이들은 노조 와해를 위해 협력업체 기획폐업·노조탈퇴 종용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총괄한 혐의를 받습니다. 경찰 출신이 불법을 총괄한 셈입니다.

 

이랬기 때문에, 현직 경찰(경찰청 정보국 김아무개 경정)이 3년동안 삼성전자서비스를 위해 회사쪽 대표인 것처럼 협상테이블에 앉아 노조 관계자와 교섭을 하고 협상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 전 경정은 그 대가로 삼성에서 610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삼성직원 가운데 ‘특이 경력’을 가진 이는 경찰 출신 뿐만 아니라, ‘노조 파괴 자문’으로 대표가 지난달 23일 징역 1년2월에 법정구속된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도 있습니다. 박아무개 과장은 ‘신속대응팀’의 실무를 맡았습니다. 또 협력업체를 대리해 교섭업무를 맡았던 경총 전문위원도 삼성전자에 영입됐습니다.

 

가장 극적인 인물은 검찰이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의 노조전문가’로 표현한 송아무개 자문위원입니다. 그를 아는 노동계·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그는 원래 사용자보다는 노동계에 더 가까웠던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고려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송씨는 민주노총의 한 연맹 산하 노동조합에 강의를 다니고, 이와 관련한 석사논문도 썼던 사람입니다. 1999년 노사정위원회 홍보전문위원을 시작으로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거치는 등 공직에도 몸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노동자쪽이 아닌 사용자 쪽에 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에 대해 “개인자격으로 운동권의 역사나 노동조합의 역사 등을 강의하러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다른 인사는 “4~5년 전부터 노사관계 관련 토론회에서 사용자 편에 선 발제를 하더라. 우리끼리 ‘저 형님 왜 저러시나’ 하는 말을 했다”고 떠올렸습니다. 그가 삼성 노조와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인사는 “사람 변하는거 무섭네요”라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송씨는 2014년 6월부터 지난 3월까지 모두 13억원을 지급 받고, 노조에 대한 이른바 ‘번 아웃’ 전략을 수립해 삼성에 자문한 혐의를 받습니다. 여론전을 통해 노조를 고립시키고, 조합원·비조합원을 분리시키고 선별적 고용승계로 조합 역량을 소진시킨다는 ‘전략’입니다.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이 지난 4월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삼성 마크가 달리지 않은 작업복을 가리키며 사쪽의 노조파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이 지난 4월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삼성 마크가 달리지 않은 작업복을 가리키며 사쪽의 노조파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삼성 위해 ‘발연기’한 법정 사용자단체 경총

 

경총은 원래 협력업체를 대신해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의 교섭에 나섰지만, 실제로는 협력업체가 아니라 삼성쪽에 섰습니다. 경총은 삼성의 요구대로 교섭을 지연·해태한 혐의로 전무를 비롯한 임직원 2명(전직 포함 3명)이 기소됐습니다. 경총은 단체교섭을 미루고 쉽게 응해주지 말라고 지도해 교섭 개시를 석달이나 미뤘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경총이 협력업체 대표들을 상대로 했다는 ‘역할극’입니다. 2013년 7월 협력업체 대표들을 경기도에 있는 콘도로 불러모았습니다. 경총 직원들은 노조 조합원으로 분장한 뒤,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생수병을 던지거나 책상을 발로 차고 욕설하는 등의 행동을 일부러 했다고 합니다. 대표들에게 노조에 대한 공포심과 왜곡된 인식을 심게 한 것이죠.

 

경총은 한국의 경영계를 대표하는 법정 사용자 단체입니다. 노동관계법 개정이나 최저임금 결정 등을 비롯한 노사관계 전반, 노동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합리적 노사관계’를 주장하며 노조가 파업을 할 때마다 각종 우려 성명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경총이 합리적 노사관계를 위해 했던 것이 삼성과 함께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직원들을 노조 조합원으로 분장시켜 ‘발 연기’를 하게 했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삼성이 노조와해를 위한 전문인력을 ‘인 하우스' 형태로 다수 보유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했다”며 “외부 컨설팅 업체를 한시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를 채용하거나 자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로 전문가들을 영입·육성하여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공작을 벌였다”고 밝혔습니다.

 

 

■ 모든 역량을 동원해 치밀하게 관리한 삼성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삼성 임직원들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에 걸쳐 18명에 달합니다. 협력업체 대표와 외부 자문위원까지 포함하면 26명입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으로 특별검사에 기소된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5명이었고,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때는 이건희 회장 등 10명이었습니다. 이에 견줘 인원수가 훨씬 많은 셈입니다. 다른 사건들이 경영권 승계 등을 위해 저지른 것과 달리, 이번 사건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무시하고 ‘무노조 경영’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각 영역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에 어떤 형태로든 연관되면 즉각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현직 경찰이든, 전직 노동운동가든, 노무사든, 경총 관계자든, 협력업체든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불법임을 충분히 인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저마다 모두들 별다른 고뇌의 흔적 없이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습니다. 특히 자살한 조합원의 아버지는 삼성의 요구에 따라 아들의 장례를 ‘노동조합장’으로 치르지 않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6억여원을 받고, 법정에서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위증까지 했습니다. ‘관리의 삼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가족적 비극이 아니었을까 판단됩니다.

 

 

■ 검찰의 부당노동행위 봐주기만 없었다면

 

삼성이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온갖 불법행위들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공권력이 삼성과 기업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삼성의 이번 행위를 ‘반헌법적 범죄’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노사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도 했습니다. 전에 없던 검찰의 이런 사뭇 격한 언사를 보면 ‘서는 곳’이 달라진 검찰이 이제 ‘풍경’을 이전과는 다른 쪽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검찰은 보도자료에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온 반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규정되어 있고, 사측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되어 온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잘 아는 검찰은 그동안 뭘 했을까요? 노동자들을 강하게 처벌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사쪽에 유리하게 해석·운영해온 것은 다름 아닌 검찰 조직 자신입니다. 해석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2013년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삼성그룹 차원의 노조파괴문건인 ‘S그룹 전략문건’에 대해 “그동안 의혹만 제기되어 오던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른 노조와해 공작의 전모가 밝혀졌다”고 자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2013년 당시에 벌써 밝혀냈어야 할 일입니다. 검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하지 않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바 있습니다. 그때 검찰과 지금 검찰은 다른 검찰일까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하지 않은 것 역시 검찰입니다. 노조파괴의 대명사 격인 유성기업을 비롯해 대부분의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서 검찰은 대부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노조는 이 때문에 법원 재정신청을 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검찰은 공소제기 명령이 내려진 뒤에야 기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성기업의 경우 1심 선고가 나기까지 무려 6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검찰이 이번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노조파괴 전문’이라고 언급한 창조컨설팅에 대해서도 검찰은 사건 발생 5년이 지나서야 기소했고, 그마저도 대부분의 혐의를 뺀 채 ‘방조범’으로 ‘봐주기 기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창조컨설팅 전 대표 심종두씨는 사건이 발생한지 8년이 넘은 지난달 23일 ‘징역 1년2월 형’에 법정구속됐습니다.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전문직에 속하는 공인노무사 또는 노무법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나아가 헌법과 법 질서를 경시하는 태도마저 엿보인다”며 “피고인들은 비록 방조범이긴 하나 각 정범들보다 더욱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일갈했습니다.

 

만약 검찰이 유성기업·창조컨설팅으로 대표되는 각종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이번 사건에서 스스로 밝힌대로 “전사적인 역량이 동원된 조직범죄의 성격을 갖고 있고 장기간에 걸쳐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사안이 중하므로 불법행위에 직접 가담한 주동자를 대거 기소하여 엄정한 대응을 했다”면 제 아무리 삼성이라도 이런 짓을 못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곽형수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왼쪽)과 조병훈 통합사무장이 지난 4월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서 각각 고 염호석, 고 최종범 조합원의 영정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곽형수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왼쪽)과 조병훈 통합사무장이 지난 4월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서 각각 고 염호석, 고 최종범 조합원의 영정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삼성은 어떻게 될까

 

이번 사건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전략에 따라 이행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총수일가는 기소대상에서 빠졌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된다”고 말했다는 이병철 창업주의 유지에 따라 이어져온 경영철학이고 이것이 현실화된 것인데도 말이죠. 검찰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개입이나 공모 증거는 확보된 게 없다. 추후 에버랜드 등 삼성 계열사 수사 때 살펴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 임직원들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도 관심사입니다. 형량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당노동행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낮은 축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과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노무사의 형량도 징역 1년2월에 그쳤습니다. 삼성 임직원들은 부당노동행위로 파생된 개인정보보호법·근로기준법 위반이나 뇌물공여로도 함께 기소됐는데, 이 혐의들이 유죄로 인정되어야만 법원이 높은 형량을 선고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고용부는 부당노동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하며 법정형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집권여당 국회의원조차 부당노동행위 처벌을 상향하는 법안을 제출한 사례가 없습니다.

 

2016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에게 “법은, 검찰은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모두 평등하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된 강효상 갑을오토텍 대표에게 징역 8월을 구형하고,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에도 똑같이 징역 8월을 구형한 사례를 듭니다.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회사(유성기업)에 항의하며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걸었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검찰이 노조에게도 징역 8월이라는 ‘불평등 구형’을 했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의 구형과 달리, 법원은 강 대표를 법정구속(징역 10월 선고)했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는 벌금 50만~100만원을 판결했습니다.

 

삼성의 노조파괴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조합원 2명은 노조파괴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삼성공화국’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법 앞에 평등한지, 앞으로 법원 판결을 통해 지켜볼 일입니다.

 

박태우 최현준 기자 ehot@hani.co.kr

 

 

관련기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863656.html?_fr=mt1#csidx69175a19a80ce3bbbed8c62b0dc48a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상회담 재 뿌리는 조선일보

언론의 황폐화는 저널리즘을 포기한 언론사와 기자의 문제
 
임병도 | 2018-09-28 09:13: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쩌다저널리즘 #파일럿06. 정상회담 재 뿌리는 조선일보

# 오프닝

신문을 모아 책처럼 읽고 분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이따위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신문을 모아 분석해보니 50퍼센트의 그릇된 희망과 47%의 그릇된 예언, 3%의 진실 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얘기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지면 신문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엠피터TV 오리지널 콘텐츠
어쩌다 저널리즘
지금 시작합니다.

# 거들떠보자

한겨레 : ‘남북 경협’ 인사 대거 동행…‘한반도 신경제’ 힘 싣는다
경향신문 : 방북 공식수행단, 외교 장관 포함…이재용 부회장·가수 에일리 간다
조선일보 : 대북제재로 경협 불가능한데… ‘4대 그룹’ 내일 文대통령과 방북
중앙일보 :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방북 동행
동아일보 : 이재용-최태원 방북… 경협 확대 시동 건다

대통령으로 3번째 방북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까지. 판문점에서 봄에 약속한 ‘가을 평양 방문’은 약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의 방북뿐 아니라 누가 수행단에 포함돼 함께 방문하는지도 이슈였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평양 방문 이틀 전인 16일 청와대가 공식 수행원 14명과 특별 수행원 52명 등 66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다음 날 17일 월요일의 주요 일간지 1면 헤드라인은 바로 이 명단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헤드라인만 두고 본다면 조선일보는 벌써 ‘재 뿌리기’ 바빴습니다.

조선일보를 먼저 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대북제재로 경협 불가능한데’라는 말을 헤드라인에 넣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등 4대 대기업 대표가 포함됐지만 ‘대북 제재로 인해서 경협이 어렵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합니다.

한겨레와 동아일보는 각각 ‘한반도 신경제 힘 싣는다’, ‘경협 확대 시동 건다’라는 문구를 헤드라인에 넣었습니다. 주요 대기업 인사들이 포함된 점을 ‘남북 경제협력’에 힘을 싣기 위함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일보는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방북 동행’이라는 제목을 1면에 담았습니다. 얼핏 보면 경제전문지로 볼 수 있을 정도의 헤드라인입니다.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한겨레는 첫 문단 마지막 문장에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별수행원 명단에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고 적었습니다. 지난 두 차례 평양 정상회담에서 대기업 대표자가 함께했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명단에 포함될지 여부는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이제 와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하기에는 ‘논란이 생기기 위한’ 뻔한 문장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비핵화가 잘 진행되고 남북관계가 많이 진전되면 ‘평화가 경제다. 경제가 평화다’라고 생각한다”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과 “본격적인 남북관계 발전에서 경제 비중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준비 차원”이라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대북 제재 상황에도 대기업 대표자가 함께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경제협력 확대’에 중점을 뒀습니다. 첫 문단에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끝장 협상’에 들어가는 동시에 비핵화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남북 경제협력 확대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또 경제인 17명이 포함된 것에 대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당시 경제인 수행단과 같은 규모다. 이번 방북단 규모가 2007년보다 100명가량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경제인 비중은 더욱 커진 셈이다’라며 경제협력을 위한 방북 명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계속해서 ‘실제로 방북 수행원에는 철도, 도로, 관광, 전력 등 남북 경협 관련 장관과 기업인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을 적으며 대기업 대표자 외에도 남북 경협과 관련한 관계자가 많이 방북한다는 점을 짚어줬습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특별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대기업 총수들이 포함된 데는 북측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첫 문단에서 적었습니다. 하지만 확인된 정보는 아닙니다. 늘 이야기하듯 ‘재계’, ‘정부 관계자’의 소식입니다. 실제로 지난 두 차례 평양 정상회담에도 4대 그룹 대표자들이 참석한 적 있습니다. 그런 반론에 대응하기 위해서인지 이어서 ‘재계에선 “대북 제재가 없었던 과거 1.2차 평양 정상회담과 달리 현재는 대북 제재로 인해 기업들의 경협 사업 추진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남북 회담의 들러리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라고 썼습니다. ‘얘기가 나오고, 전망이 없지 않지만’ 역시 확인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이렇게 첫 두 문단에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은 후 나머지는 보도자료와 별 다를 바 없는 소식을 담았습니다.

2000년과 2007년 평양 정상회담에서 매번 두 정상은 ‘다음 정상회담’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무려 5개월 사이에 3번이나 만났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올해 안에 서울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만나기도 전에 걱정입니다. 언론이 매번 트집만 잡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대통령도 안 갔으면 하는 평양에, 대기업 대표자들까지 따라가서 배가 아픈 것일까요?

#제대로써보자

남북 정상회담 속에서 많은 뉴스가 나왔습니다. 많은 언론 기사 속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른 북한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에서 ‘수뇌 상봉’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역사적인 조미 대화 상봉의 불씨를 문 대통령께서 찾아줬다. 조미 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나 노동신문의 성명 등에서 나오는 표현이기에 언론에서는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지만 수뇌라는 표현은 우리 언론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표현입니다. 역시 북한에서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수뇌’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떤 조직, 단체, 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리의 인물’을 뜻한다. 여기에서도 ‘북한어’라고 표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능률교육의 한영사전에 따르면 ‘수뇌’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로는 ‘head, leader, chief’가 있습니다.

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전에 있었던 포츠담 회담은 공식적으로 ‘연합국 수뇌회담’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됩니다. ‘수뇌’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실제로 군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을 모두 일컬어 ‘군 수뇌부’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북한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많은 일반적인 단어들이 우리나라 언론뿐 아니라 곳곳에서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언어부터 함께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 단일팀도, 아시안게임 단일팀도 사용하는 표현이 달라 작전 수행 당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이팅 대신에 힘내자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어쩌면 영어의 화이팅보다 우리말인 힘내자가 남과북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북한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배제하기보다는 남북이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언어를 언론이 앞장서서 보도했으면 합니다.

#오보의 역사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북한 기자와 남한 기자들이 함께 취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 생소하면서도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매번 내보냈던 북한 관련 오보 때문입니다.

2015년 언론은 인민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당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언론은 현영철 무력부장이 수백 명이 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처형당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처형 이유가 군 일꾼 대회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불경죄’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현영철 무력부장은 남한 언론 보도 다음날에 조선중앙TV에 나왔습니다. 죽었다는 사람이 부활한 것일까요?

남한 언론의 오보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비공개 현안보고에 나왔던 내용을 검증 없이 받아쓰면서 나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단순히 졸았다는 이유 만으로 처형됐다는 국정원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보도한 것입니다.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는 1면에 김일성 주석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주말의 동경 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자화자찬까지 했습니다.

김일성 암살 보도는 조선일보 동경특파원이 들은 카더라 통신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언론은 조선일보 특종을 검증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문이 나오지 않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호외를 냈습니다.

김일성 피격 사망, 김일성이 열차에서 총을 맞았다, 폭탄에 당했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카더라 식의 보도가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사망했다는 김일성은 조선일보의 보도 사흘 만에 평양공항에 등장했습니다. 몽고 주석을 만나는 김일성의 모습을 본 시민들은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오보, 그리고 검증 없이 기자의 상상력으로 만든 언론사 기사들이 무려 사흘 동안 대한민국 여론을 조작한 셈입니다.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는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현송월이 김정은의 옛 애인이며, 김정은과 가졌던 고려호텔 밀회 몰카가 들통나 기관총으로 처형됐다고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8월 말부터 12월까지 ‘음란물’,’공개 총살’,’기관총 처형’,’화염방사기로 잔혹 처형’,’김정은 옛 애인 섹시 댄스 영상’ 등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 제목의 기사 여러 건을 보도했습니다.

공개 처형 이유도 사망 날짜도 증인도 다 나와 죽은 줄만 알았던 현송월은 2018년 1월 15일 판문점에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자로 등장했습니다. 죽었다는 현송월이 등장했는데도 조선일보는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현송월의 ‘협상 이미지’ 전략, 2015년 중국 때와는 달랐다”라며 그녀의 화장과 머리 스타일을 연예인보다 더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북한 관련 오보가 나올 때마다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국정원의 이야기를 받아 썼을 뿐이다’,’ 북한의 폐쇄성이 만들어 낸 오보이다’라고 변명만 늘어 놓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할 말로는 참으로 구차해 보입니다.

모르면, 검증되지 않았으면 쓰지 않고 보도하지 않으면 됩니다. 기사는 기자의 상상력으로 쓰는 소설이 아닙니다.

# 클로징

자유한국당 정용기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이 너무 황폐화돼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자 출신인 이낙연 총리는 2018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이 180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60위, 70위 등 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은 미국보다도 더 높은 39위였습니다.

언론의 황폐화는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을 포기한 언론사와 기자의 문제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4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유엔본부 앞 폭우속 "대북제재 중단하고 종전선언하라!"

6.15남측위 시민평화대표단, 유엔본부 앞 기자회견 등 평화활동
뉴욕=김병규·류경완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8.09.27  16:58:15
페이스북 트위터

뉴욕=김병규 통신원 (6.15남측위 조직부위원장)·류경완 통신원(KIPF 운영위원장)

   
▲ 6.15남측위가 파견한 유엔시민평화대표단이 25일 낮 12시 뉴욕 유엔본부가 바라보이는 함마슐드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북제재 중단과 종전선언을 촉구했다. [사진제공-유엔시민평화대표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한 25일 낮 12시(현지시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에서 파견한 유엔시민평화대표단(단장 조성우 6.15남측위 상임대표)는 유엔본부가 바라보이는 함마슐드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북제재 중단과 종전선언을 촉구했다.

폭우로 인해 뉴욕 일대에 재난경보가 발령된 상태에서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전날 뉴욕 JFK공항에 도착한 유엔시민평화대표단 10명과 6.15미국위원회 대표단, 뉴욕 지역 동포들, 그리고 미국의 평화운동단체 대표 등 30여명이 참가했다.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조성우 단장은 "일단 대북제재 중단하고 종전선언으로 가야 하는 것이 순리다. 남북이 사실상 종전선언을 했는데 미국이 반대할 명분이 없다. 이번 방미 활동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에게 현재 남북한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뉴욕 체류 중 활동 계획에 대해 밝혔다.

최진미 6.15여성본부 상임대표는 "우리 한반도는 65년간 전쟁이 중단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평양회담에서 밝혔던 한반도 평화가 빨리 찾아오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제재와 압박은 평화의 단어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하루빨리 제재와 압박을 멈추고 종전을 선언하기를 8천만 겨레의 이름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병규 6.15남측위 조직부위원장은 "유엔 사무국과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전달하는 서한은 한국 촛불운동과 평화 통일운동을 대표하는 각계 원로 및 대표 100여명이 공동연명으로 작성한 것이다. 또 종전선언과 대북제재해제를 촉구하는 한국시민 5만여명의 서명지를 들고 왔다. 이 서명은 불과 보름만에 5만명이 참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서한은 대표단이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우편을 통해 유엔 사무총장과 사무국 관계자들 그리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이사국, 유엔 주재 대표부에 전달했다"면서 "특히 유엔사무국은 직접 만나서 서명운동지를 전달할 계획"이라 밝혔다.

양현승 6.15 워싱턴위원회 대표위원장은 "세 마디 말만 하겠다"며, "대북제재 해제하라! 종전선언 선포하라! 노스코리아 US 평화협정 체결하라!" 간결하게 구호를 외쳤다.

미국 평화단체 대표인 재클린 카바소 변호사는 "지난 2004년 비무장지대에서 남북철도연결 기념식에 참석한 바 있는데 그때도 오늘처럼 비바람이 심했다. 2004년 비무장지대에서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보았는데 오늘 이 순간에도 평화와 통일의 희망이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대북제재를 압박하는 6명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 편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압박과 제재가 아니라 촛불시민의 요구에 따라 시작됐다고 썼다. 또한 비핵화과정은 북한에만 해당 되는게 아니라 미국과 핵무기를 보유한 모든 국가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라고 서한의 내용을 소개했다.

인터내셔널 액션센터(IAC, International action center)의 세라 집행위원장은 운율에 맞춰 준비한 강렬하고 짧은 구호 'End the Korea War-Sign a peace Treaty NOW!'를 선창한 뒤 대표단과 함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류경완 위원장은 해외동포들에게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http://bit.ly/peacesign2018)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대표단은 유엔본부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기념촬영을 한 후 기자회견을 마쳤다.

   
▲ 유엔시민평화대표단은 25일 저녁 뉴욕 인터내셔널 액션센터(IAC)에서 미국내 평화단체 활동가 등 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유엔시민평화대표단]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단은 저녁 7시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IAC에서 미국내 평화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 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현재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그 원인과 진행 과정에 대해 궁금해 했으며, 기본적으로 대표단의 주장에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제주 강정해군기지와 성주 소성리 사드(THAAD)기지 경과를 비롯해 유엔군사령부가 남북철도연결을 위한 방북조사를 불허한 일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등 3시간에 걸쳐 깊이있는 질의 응답과 토론이 이어졌다.

유엔시민평화대표단은 26일에는 유엔본부 맞은편 유엔 처치센터에서 유엔산하 NGO초청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바우티스타 유엔 NGO 대표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바우티스타 대표는 대표단의 주장과 활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 유엔시민평화대표단은 26일  유엔처치센터에서 유엔산하 NGO초청 컨퍼런스를 개최, 바우티스타 유엔NGO대표와 간담회도 진행했다. [사진제공-유엔시민평화대표단]
   
▲ 조성우 유엔시민평화대표단 단장이 26일 뉴욕타임즈에 게재한 '종전선언 및 대북제재 중단 촉구' 광고를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유엔시민평화대표단]

이날 대표단은 뉴욕타임즈에 미리 준비한 '종전선언 및 대북제재 중단 촉구' 광고를 게재했다.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 일정으로 뉴욕에 체류중인 유엔시민평화대표단은 유엔본부 정치국 공식면담을 확정하고 27일 진행하며 이때 서한과 함께 서명지도 전달할 계획이다.

또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 방문 일정을 확정하고 28일 진행할 예정이며, 한국대표부 방문은 일정을 조율중이다.

   
▲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광고. [사진제공-유엔시민평화대표단]

(수정 : 18:54)

뉴욕=김병규·류경완 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 보수의 언어, 공허하거나 모순이거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9/28 10:55
  • 수정일
    2018/09/28 10: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교협의 시선] 북한을 '절멸 대상'으로 보는 '무의식'
2018.09.27 14:53:24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와 이명박 대통령의 첫 광복절 축사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이념적 스탠스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북녘동포와 7백만 해외동포 여러분"으로 청중을 호명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62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가슴 벅찬 기쁨으로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설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연결되지만 그럼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 하나가 있음을 환기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하나의 큰 숙제가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냉전의 굴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총성은 멎었지만, 아직 평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이제 경축사의 지배적인 논조는 남북 간 평화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과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62년 전, 우리는 분단을 우리 힘으로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함께 협력하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듬해인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 첫해 광복절 경축사를 낭독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재외 동포와 국가유공자, 그리고 내외귀분 여러분!"이라는 청중 호명에 이어 다음의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60년 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어서 경축사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갖는 긍정적인 가치와 결과를 알리는 데 할애되었다. "저는 오늘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저는 이 역사가 기록되고 새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현대사 박물관'을 짓겠습니다.", "건국 60년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당당히 싸워왔습니다."
 
두 텍스트는 전혀 동일하지 않다. 서로 조응하거나 화해할 수 없는 '역사 해석'의 대립구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명이 말해주고 있듯이, 2007년 경축사에서 북녘동포는 광복과 해방의 기쁨을 기꺼이 함께 누려야 할 민족 구성원의 범주에 포함되었다가 다음해에는 그 민족적 자격을 박탈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8월 15일을 제국주의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으로 의미화하고 그 해방 위에서 남과 북이 단일한 근대국가로 수립되는 정치적 과정을 이루지 못한 것을 민족적 비극과 고통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통일은 민족적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8월 15일을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보다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날의 의미로 접근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가 말하는 8.15는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이다. 경축사의 정식 명칭이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였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남북한이 각각 다른 정치체제를 수립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것을 민족적 슬픔으로 보기보다는, 통일 민족주의에서는 불완전과 결손을 의미하는 대한민국의 수립을 '성공'과 '발전'과 '기적'과 '자유 수호'라는 정반대의 가치로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연설, 그러니까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경축사는 한국의 보수가 추진하게 될 이른바 '건국절' 아이디어에 정확히 잇닿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져온 건국절 제정 운동은 1948년 8월에 출발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공식적으로 기념하려는 보수의 정치적 욕망을 본질로 한다. 그 건국절 논쟁에 대해 학계와 정치계는 1919년 임시정부를 둘러싼 성격규정을 핵심으로 하는 문제로 접근하고 있지만, 보다 궁극적인 차원은 북한과의 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에 비추어보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지난 60년간,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싸워서 '자유의 가치'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일차적 대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북한이었다. 건국절이란 언어 속에는 북한은 함께 정치공동체를 구성할 파트너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남한만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렇게 '건국된' 대한민국은 보수의 집권 아래에서 오랜 시간 악마로 규정되어 온 북한과의 체제경쟁 승리를 지상 목표로 삼아 왔고, 스스로 그 성과를 자랑스럽게 평가해왔다. 건국절은 그러한 역사적 성취 혹은 쟁취의 기념일이다. 그러니까 건국절은 반공주의, 반북주의의 또 다른 이념적 용어인 것이다.  
 
한국의 보수에게 북한은 슈미트(C. Schmitt)가 말한 절멸해야 할 적 그 자체로 존재해왔다. 북한은 민족통일의 파트너십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빛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패배시켜야 할 적의 운명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토로한, 분단이 만들어낸 민족적 슬픔은 한국의 보수에게서는 이입될 정치적 감정이 될 수 없었다. 정치와 외교는 동지와 적의 이분법 위에서 작용하지만 그 적이란 공존해야 할 존재다. 하지만 북한은 그 기준에서 예외였다.  
 

▲박근혜의 '통일 대박론'을 적극 설파했던 조선일보 ⓒ조선일보 누리집 갈무리

그렇게 보면 한국의 보수가 북한을 상대로 표출한 수많은 화합의 언어들은 사실 공허하거나 모순적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통일, 화해, 평화. 공존을 말해왔다. 그 단어들은 북한을 대화와 협상 나아가 함께 살아갈 상대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북한을 그러한 범주로 받아들이지 않아온 한국의 보수에게서, 한반도의 미래를 이끌 그처럼 아를다운 언어는 사실 아무런 내용이 없는 낱말이다. 우리가 언어를 기표(의미의 형식)와 기의(의미의 내용)의 일치로 볼 수 있다면 북한을 향한 보수의 언어에는 그러한 의미의 대응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의미 없는 기표만이 떠다니거나, 실제적인 의미를 숨긴 거짓된 기표가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대박론과 같은 구호야말로 거짓의 기표, 허구의 기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결정되고 나서 정부와 여당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에게 방문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수야당들은 화려한 핑계의 논리를 대면서 거부했다. 그들의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그건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찰과 판단이라기보다는 이미 거대한 대전제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된 폭력적 연역법에 불과했다. 그 대전제란 건국절에 깔려 있는 북한에 대한 '절멸주의적 태도'다. 완전히 멸망시켜야 할,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보여줄 대상이 되어야할 북한과의 열린 대화와 협상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며칠 전 한 방송에서, 결국 야당은 처음부터 방문의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의견은 정확한 판단으로 보인다.  
 
가라타니 고진은 <헌법의 무의식>에서 일본인들이 전후헌법 9조의 수정이나 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평화체제를 향한 일본인들의 정치적 무의식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동북아 평화질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예이지만 정반대로 우리에게는 민족적 적대와 대결을 조장하는 정치적 무의식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1948년 분단과 전쟁에서 시작해 남북의 화해와 통일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현재까지 동일한 양상으로 온존하고 있는, 건국절 제정의 욕망으로 드러나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이다.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된 19일에 나온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논평은 그러한 정치적 무의식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두 야당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전혀 없는 공허한 성명"(자유한국당), "비핵화를 위한 철저한 실무협상이 되어야 할 남북정상회담이 요란한 행사밖에 보이지 않는 잔치로 변질됐다"(바른미래당)고 비판했다. 그들의 오랜 정치적 무의식은 지난 19일 발표된 '9월 평양공동선언'의 제5조(1-3항)가 구체적인 비핵화의 의지와 절차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좀 더 솔직해지자.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어떤 노력을 하든, 평화구축을 위한 어떠한 실제적 성과가 산출 되든, 자신들은 북한을 공존해야 할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고백하자. 한국의 보수가 솔직해지는 것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정치언어의 기표성과 기의성의 불일치를 방기하지 않는 일이고, 의미 없는 기표가 떠다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이 고립되거나 붕괴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화해와 통일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파멸의 대상으로만 북한을 바라보면서 대화와 협상을 외쳐서는 안 된다. 
 
언어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진실의 언어로 존재해야 한다. 내용 없는 공허한 수사,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기호는 생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언어공동체가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의 패러다임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의 언어공동체에서 보수의 정치언어들은 그 유용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자신들의 언어가 사라지는 비극적 상황을 피하려면 한국의 보수는 현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들을 움직여온 정치적 무의식의 퇴행적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본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필자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