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마음 놓고 욕해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7/20 10:39
  • 수정일
    2020/07/20 10: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너는 박원순 욕할 자신 있느냐
 
이기명  | 등록:2020-07-20 08:44:32 | 최종:2020-07-20 09:04: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마음 놓고 욕해라.
-너는 박원순 욕할 자신 있느냐.

마음 놓고 욕해 보거라. 벼락 안친다.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가 있다고들 믿는가. 나도 그렇게 불러보자. ‘창조자’라고 하자.

창조자 님.

귀가 따가 우시죠. 뭐 이 따위 세상이 있느냐고 욕들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세상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한 인간들이 그 소리를 합니다. 뻔뻔한 놈들입니다. 물론 저도 그 중에 한 놈입니다.

개판 세상.

개판입니다. 새삼스럽게 그 이유를 설명하면 저만 못난 놈이 됩니다.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니 누가 민주당 욕을 하면 듣기 싫죠. 그러나 욕을 먹는 이유가 타당한데도 듣기 싫다고 하면 그건 나한테 문제가 있습니다. 욕먹을 이유가 있으면 개 소리 말고 받아 드려야 합니다. 다만 개들이 왜 우리만 욕을 하느냐고 물어뜯으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박원순이 자살을 하고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저게 혹시 자신이 아닌가 착각을 했다면 양심적인 인간입니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수많은 인간들이 아니라고 할 놈이 있으면 손 들어 보라고 하세요. 놈들에겐 실려 내려 올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자학이 아닙니다. 고백입니다.

요즘처럼 남성들이 도덕군자로 살아야 하는 때가 없습니다. 길을 가면서 이쁜 여성을 보면 기분이 좋아서 한 번 볼 거 두 번 봅니다. 이제 이쁜 여성이 나타나면 미리 시선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만약에 제 시선과 눈이 마주친 여성이 왜 자꾸 쳐다 보느냐면서 성추행이라고 하면 어쩝니까.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그렇게 느꼈다면 복잡해집니다. 더구나 고소라도 하면 저 잘난 변호사 나부랭이들과 기레기들과 무슨 무슨 단체들이 벌떼처럼 덤빌 테니 무슨 재주로 버티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다음은 태어나자 바로 죽는 것이라는 끔찍한 말이 떠오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애가 태어날 때 응아 하고 웁니다. 고생문이 열렸다고 슬퍼서 운다고 하고 이제 캄캄한 뱃속에서 광명을 찾았다고 기뻐서 운다고 합니다. 편한대로 해석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공과는 있다.

천하의 명성을 날린 큰 도둑놈이 마침내 잡혔다. 검사가 물었다. 세상을 위해서 공헌한 것 하나만 말 해 보라고. 도둑놈이 입을 연다.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헌데 검사님은 어떤 공헌을 하셨습니까.’

아니 이 자식이 함부로 아가리를 놀려. 검사는 화가 났지만 입을 닫았다. 가만, 정말 내가 세상에 공헌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말기로 했다. 그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지금 이 말은 검찰개혁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윤석열 한동훈 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 해 둔다. 괜히 시비 붙을까 겁이 난다.

▲(사진출처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SNS)

박원순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마다 공과는 있기 마련인데 박원순의 공은 눈 씻고 봐야 겨우 몇 개. 내 눈이 인색한가. 반면에 그의 과(?)는 아아 끔찍하다. 박원순의 추행을 욕하는 자들에게 너는 어떠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 묻는 사람이 바보다. 참 대단한 놈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도 살아 있는 자들의 입이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의 눈도 있다. 눈과 입을 악세사리로 달고 다니는 인간도 있다.

민주당은 거울을 한번 보라.

이 놈 저 놈 가려서 뭣하랴. 다 똑같은 놈이다. 이 말은 국민들이 하는 소리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왜냐면 스스로 아는 자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흉터가 있다. 음주운전 하다가 벽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술을 못 끊다가 어떤 계기로 술을 끊고 지금은 거짓말 보태지 않고 한 방울도 입에 안 댄다. 술고래에 알콜 중독이면서도 과음을 욕하던 나의 위선은 지금 온갖 못된 정치 다 하면서 호박씨 까는 정치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180석을 가지고도 미통당에 질질 끌려 다니는 민주당을 보면서 당 대표를 비롯해서 원내 대표를 엄청 비난한다. 국민의 비난은 안 들리는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제대로 지킨 기억이 몇 번이나 되는가. 선거 때는 개똥이라도 먹을 것 같은 인간들이 당선되면 국민 알기를 개 똥 보듯 한다.

박원순을 비난하는 거 좋다. 자기를 존경하고 따르던 국민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린 잘못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그는 스스로 삶을 청산함으로써 죄를 빌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다고 끝날 수도 없다. 얼마나 잘나고 깨끗한 인간들이 많은 대한민국이냐. 뒷구멍으로는 별의 별짓을 다하는 인간들이 박원순 비난에 앞장 서는 꼴을 보면 도둑놈이 죄 없다고 설치는 걸 보는 것 같다. 그 어떤 변호사 놈 보는 거 같다.

대표적인 악덕 변호사로 국민이 알고 있는 인간이 설쳐대는 꼴이라니 벼락은 뒀다가 뭘 하려는지 의심이 든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밝혀질지 모르나 피해자라는 여성도 처음 성추행을 당했을 때 들고 일어났으면 오늘의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은 처음 붙었을 때 끄는 게 상책이다.

민주당이 절대 다수 석을 차지했을 때 기대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미통당 억지에 끌려 다니며 비실거리는 꼴을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탄식하는 국민들 또한 얼마나 많았으랴. 미통당이 집권을 하면 세상이 어찌 될 것인지는 안다. 내가 점쟁이는 아니더라도 대충 알아 마친다.

거짓말 하는 놈에게 천벌을.

기왕에 말을 했으니 털어놓자. 인간에게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놓고 성욕이란 것을 빼 버렸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말 말거라. 성욕이란 것이 힘의 원천이란다. 성욕이 없으면 인간은 송장이란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눈살 찌푸리는 인간들이 보인다. 아이구 저기 여성의원님들과 무슨 전화 대표님들. 점잖은 체면에 입에 담기도 거북하신가.

그래도 인간에게 양심 쪼가리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개가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준 게 양심이다.

주둥이에서 단 냄새 나도록 떠들어라. 나는 가슴속에 양심밖에 없노라고 떠들어라. 아니 저기 저 양반. 왜 얼굴이 붉어지는가. 맞다. 그게 바로 양심의 색깔이다. 그럼 아가리 닥쳐라.

박원순이 잠시만 살아났으면 좋겠다. 모두 밝혔으면 좋겠다. 아아 박원순.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996&table=byple_new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 결정한 비공개회의

[개벽예감 404]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 결정한 비공개회의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7/20 [09:15]
  •  
  •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2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  
  •  
  •  
  •  
 

<차례> 

1. 날로 심각해지는 한반도 주변정세

2.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을 토의, 결정한 비공개회의

3.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

 

 

1. 날로 심각해지는 한반도 주변정세

 

2020년 6월 2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가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예비회의에서는 최근 조성된 정세가 평가되었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보류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예비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성된 최근 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였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승인되어야 하므로, 6월 23일에 화상회의로 진행된 예비회의에서 그 계획들이 보류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비회의에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기로 결정하기 직전에 최근 조성된 정세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최근 정세에 대한 평가가 대남군사행동계획들에 대한 보류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궁금증이 생긴다. 최근 조성된 정세가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하기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할 만큼 중대하고 심각한 최근 정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최근 남북대화가 재개될 만한 정세가 조성되지 않았고, 조미협상이 재개될 만한 정세가 조성된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와 조미관계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고, 지난해부터 계속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백하게도,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6월 2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는 최근 조성된 정세를 평가하고 대남군사행동계획을 보류했으니, 궁금증이 더욱 커질 만하다.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지난 6월 23일 예비회의에서 최근 조성된 정세를 평가하고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한 것은, 그 예비회의에서 한반도 정세가 아니라 한반도 주변정세를 평가하고 보류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대남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할 만큼 한반도 주변에 조성된 심각하고 중대한 정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날로 악화되어 이제는 무력충돌이 거론될 만큼 악화되어버린 중국과 미국의 관계다. 한반도 주변에 조성된 중미대립관계는 그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정세와 세계 정세를 변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다. 요즈음 날로 악화되는 중미대립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시기 무역부문, 금융부문, 기술공학부문 등에서 경쟁하거나 갈등하던 중미관계는, 홍콩 언론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20년 5월 21일 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식 외교통로가 완전히 차단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공식 외교통로마저 단절된 적대적 대립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2019년 6월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게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이 2020년 6월에 펴낸 회고록에 따르면, 중국 텐안먼사건 30주년을 맞았던 2019년 6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공산당의 텐안먼사건 유혈진압을 비난하는 백악관 성명을 발표되지 않도록 막았으며, 2019년 6월 9일 홍콩에서 범인송환법 제정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인권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내정불간섭원칙을 지켰고,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까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기회에 시진핑 주석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자기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청탁하면서 시진핑 주석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올렸다는 것이다. 

 

▲ <사진 1> 위의 사진은 2020년 5월 26일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데이쓰공군기지에서이륙한 미국 공군 소속 B-1B 전략핵폭격기 2대가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태평양 상공을가로질러 남중국해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요즈음 미국은 거의 매일 같이 전략핵폭격기와 항모타격단들을 동원하는 전례 없는 군사위협으로 중국을 압박, 자극하고 있다.이런 악조건에서 중국은 미국의 군사위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전략핵폭격기와 항모전투단을 서태평양으로 출동시켜 대응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관계가 그처럼 격화된 배경에는 대만문제가 놓여있다.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책동을 광란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가시화되었으며,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에 들어와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싹 달라졌다. 미국은 중국에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군사위협과 경제제재로 중국을 극심하게 압박, 자극했다. 이를테면, 미국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2020년 7월 7일 국가방위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미국군이 2020년 말까지 실행해야 할 임무와 목표를 명시한 10대 지침을 전군에 하달했는데, 10대 지침의 초점은 중국에 대한 군사위협에 맞춰져 있다. 미국군에 하달된 10대 지침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중국과 로씨야에 대한 미국의 군사계획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수정보완하고, 승인할 것.

2) 즉시대응무력, 급변사태대응무력, 역동적 군속부대는 준비태세개념을 향상시킬 것.

3) 국가방위전략에 따라 미국군을 재배속하고, 재조정하고, 재배치할 것.

4) 고도의 준비태세를 계속 유지할 것.

5) 동맹국들을 강화하고, 우호관계를 맺기 위한 조율된 계획을 수립할 것.

6) 미국 국방부를 개혁하고, 정치문제를 다루는 언론계를 관리할 것.

7) 미국 국방부 산하 중국부(Department on China)에 관심을 집중할 것.

8) 미국군을 현대화하고, 판세를 뒤집을 군사과학기술에 투자할 것.

9) 현실적인 전쟁모의실험, 군사훈련 및 훈련계획을 확립할 것.

10) 현대적인 전투개념과 전쟁교리를 개발할 것. 

 

요즈음 미국군은 위에 열거된 10대 지침에 따라 거의 매일 같이 전략핵폭격기들과 항모전투단들을 동원하는 전례 없는 군사위협으로 중국을 압박, 자극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 중국은 미국의 군사위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응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도 전략핵폭격기들과 항모전투단을 서태평양으로 출동시켜 반격능력을 시위하는 것이다.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즈> 2020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국가안전부는 2020년 4월 말 중국 최고지도부에 제출한 내부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서구식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경제적, 안보적 위협이자 도전으로 인식하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깎아내리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의 반중정서에 의해 중미갈등이 증폭되어 무력충돌 같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중국은 무력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중국국가안전부가 무력충돌에 대비해야 한다는 건의를 중국 최고지도부에 제출하기 전에, 중국인민해방군은 무력충돌에 대비하는 군사준비태세를 오래 전부터 갖추고 있다. 

 

지금 중미대립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들은 대만문제, 홍콩문제, 남중국해문제, 신장-위구르문제 등 여러 가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하고, 가장 중대한 요인은 대만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책동을 광란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가시화되었으며,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이처럼 심각하고 중대한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라보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신중히 검토하기 위해 일단 보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을 토의, 결정한 비공개회의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0년 7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확대회의 및 비공개회의가 조선로동당 본부청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도한 확대회의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들,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 및 고위급 정치위원들,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성 지휘성원들과 각 무력기관의 지휘성원들, 당중앙위원회 주요부서 부부장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중대보도가 나왔다. 확대회의에 이어 곧바로 비공개회의가 진행되었다는 보도였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는 보도는 처음 듣는 놀라운 보도였다.  

 

비공개회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작전회의실로 보이는 별도의 장소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주재로 진행되었는데, 15명 위원들만 그 회의에 참가했다. 비공개회의에 참가한 15명 위원들 중에서 남측 언론매체가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을 보고 신원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리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오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부일 당중앙위원회 군사부장, 김수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조경철 조선인민군 보위국장, 정경택 국가보위상, 조용원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정길 조선인민군 상장 (군직은 알려지지 않음) 등 9명이다. 남측에서 알지 못하는 나머지 6명 위원들도 국방부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고위급 간부들이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15명 핵심위원들만 참가하는 비공개회의를 소집한 것은, 100여 명이 참가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토의, 결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들을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그날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된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비공개회의 소식을 알려준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20년 7월 18일 조선로동당 본부청사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확대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확대회의직후 당중앙군사위원회 작전회의실로 보이는 별도의 장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비공개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이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진행된 비공개회의에는 15명 핵심위원들만 참가했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15명 핵심위원들만 참가하는 비공개회의를 소집한 것은, 100여명이 참가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토의, 결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들을 토의,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1)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는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가 토의되었다고 한다.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가 아니라,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를 토의한 것이다.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는,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국가분렬책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이는 복잡한 상황에서 그들의 국가분렬책동을 제압하려는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가시화되었고,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군사정세를 뜻한다. 만일 한반도 주변의 군사정세가 더욱 격화되어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작전을 전개하면, 조선인민군도 대남군사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해방작전이 임박했으면, 조선인민군의 대남군사행동도 임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난 7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선인민군의 대남군사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국-미국-대만의 3각 관계의 군사정세를 비공개로 토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는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기 위한 핵심문제들”이 토의, 결정되었다고 한다. 핵전쟁억제력이 아니라 전쟁억제력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것은 핵무력이 아니라 비핵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대한 의제들이 토의,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의 핵무력이 미국군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조선인민군의 비핵무력은 한국군을 상대하는 것이다. 조선의 핵무기는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무기이지, 동족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조선인민군의 비핵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대한 의제들이 토의, 결정된 것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지난 6월 23일 예비회의에서 보류되었던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이번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된 핵심과업들을 집행시키기 위한 여러 명령서들에 친필서명”했다고 한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친필서명한 여러 명령서들 가운데는, 위에서 언급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남군사행동계획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3일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에서 일단 보류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이번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의결되었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 결재까지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조선인민군이 결정적인 시기에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실행에 옮길 결정적인 시기는 언제인가?   

 

 

3.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

 

조선의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라고 복수로 표기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대남군사행동계획이 단계별로, 아주 세밀하게 작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작전계획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군사행동계획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썼다. 작전계획(Operation Plan)이라는 용어는 조선인민군의 적인 미국군이 쓰는 용어이므로, 그것을 피해서 군사행동계획(Military Action Plan)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동부전선에서 소집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 제출한 작전계획에 최종 수표했었다. 그 작전계획은 대남작전계획이 아니라 대미작전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최종 수표한 군사행동계획은 대미군사행동계획이 아니라 대남군사행동계획이다. 대미군사행동계획은 핵무기와 비핵무기를 모두 사용하는 전쟁계획이고, 대남군사행동계획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비핵무기만 사용하는 전쟁계획이다.    

 

대남군사행동계획이 몇 단계로 작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 단계 군사행동계획인 것으로 추정된다. 교전상대의 저항정도에 따라 한 단계씩 높여가는 식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대남군사행동계획 제1단계는 군사분계선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고, 제2단계는 우발적 무력충돌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었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고, 제3단계는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되었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의 목표는 조국통일이다. 조선에서 쓰이는 용어를 빌리면, 그것은 조국통일대전을 수행하기 위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인 것이다.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동시다발로 전개되어야 조선과 중국의 공동의 적인 미국의 전투력을 분산, 약화시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70년 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선의 서울해방작전과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면, 미국의 전투력은 분산,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70년 전 공군력과 해군력을 갖지 못했던 중국인민해방군은 6.25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대만해협을 가로막은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군함 10여 척의 차단선을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오늘 중국인민해방군은 미국이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을 출동시켜 대만해협을 가로막는 상황에 대비하여 항모타격단을 격파할 공군력, 해군력, 미사일능력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려면 반드시 항공모함을 출동시켜야 한다. 항공모함이 없으면 미국은 전쟁을 하지 못한다. 항공모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미국의 최대 강점이 아니라 되레 최대 약점으로 된다. 왜냐하면 미국이 유사시 항공모함을 출동시키지 못하는 뜻밖의 사태가 일어나거나, 작전지대에 출동한 항공모함이 교전 중에 격침당하는 경우 전쟁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기 항공모함이 절대로 격침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항공모함이야말로 적의 공격을 집중시켜 격침당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만일 항공모함이 격침당하면, 항모타격단은 무용지물로 되고, 미국은 전쟁에서 패한다. 

 

대만의 국가분렬책동이 지금보다 더 격화되어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에 나설 징후가 보이면, 미국은 즉각 항모타격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급파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몇 개나 출동시킬 수 있을까? 미국 해군은 항모타격단을 9개 운용한다. 미국 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11척이지만, 항공모함 2척은 교대로 정기적인 정비-수리를 받아야 하므로, 항모타격단은 9개밖에 운용하지 못한다. 미국 해군이 운용하는 9개의 항모타격단 중에서 5개의 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4개의 항모타격단은 북대서양에 배치되었다. 미국은 북태평양에 5개의 항모타격단을 상시적으로 배치해놓고 있다.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를 중심으로 북쪽, 남쪽, 서쪽 3개 방향에 배치해놓은 것이다. 이를테면, 제1항모타격단과 제11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 북쪽에 배치되었고, 제3항모타격단과 제9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 남쪽에 배치되었고, 제5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 서쪽에 배치되었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20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3개의 항모타격단을 북태평양에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에 맞서 중국도 2개의 항모전투단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배치했다. 

 

그런데 전시에 미국은 3개의 항모타격단만으로는 중국의 2개 항모전투단을 이기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에 나설 징후가 보이면, 미국은 현재 북태평양에 배치한 항모타격단 3개에 항모타격단 1개를 추가하여 모두 4개의 항모타격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켜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계산일뿐이다. 실제로는 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8월 17일 중국인민해방군 전투부대들이 대만상륙을 상정한 대만해방작전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동시다발로 전개되어야 조선과 중국의 공동의 적인 미국의 전투력을 분산, 약화시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할 핵방패를 가진 조선이 대남군사행동을 전개해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를최소화하는 단기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대만해협, 대만섬, 동중국해를 포괄하는 매우 넓은 작전지대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끝나기 힘들고,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다르게, 조선의대남군사행동은 작전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끝날 것이고, 따라서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중국인민해방군도 대만해방작전을 준비했고, 조선인민군도 대남군사행동을 준비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을 실행에 옮기면, 미국은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할 것이고,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동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미국의 전쟁은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계획을 실행에 옮길 결정적인 기회로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조선인민군의 대남군사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2개의 항모타격단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 급파해야 한다. 

 

2)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에 나설 징후가 보이면, 원동지역에 배치된 로씨야군도 고도의 대미경계태세를 취할 것이다. 원동지역에 배치된 로씨야군의 공군력과 해군력이 북태평양으로 대거 출동하면, 미국 알래스카주에 주둔하는 미국 공군은 대만 인근 해역까지 남하하지 못하고, 북태평양 상공에서 뱅뱅 맴돌아야 한다.    

 

3) 미국이 대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항모타격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급파하는 경우, 중국은 그에 대응하여 해군 함대를 하와이 인근 해역과 괌 인근 해역으로 급파하여 미국의 군사전략거점들을 동시에 위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중국이 해군-공군합동작전으로 하와이와 괌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하와이 방어와 괌 방어에 각각 항모타격단 1개씩 배치해야 한다. 

 

위와 같은 전시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미국이 북태평양에 출동시켜야 할 항모타격단은 8개로 늘어난다. 하지만 항모타격단이 9개밖에 없는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 8개의 항모타격단을 북태평양에 출동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어디에 출동시켜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중국의 대만해방작전도 저지하지 못하고, 조선의 대남군사행동도 저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동중국해와 한반도에서 연패할 가능성이 크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핵보유국이고, 중국도 그런 핵타격력을 가진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성된 대외의 형세 하에서 우리의 당면한 투쟁방향에 대하여’라는 첫째 의정에 대한 “력사적인 보고”에서 “미국의 핵위협을 제압하고 우리의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핵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미국 본토 전역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조선의 강력한 핵억제력은 미국이 조선에게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핵방패다. 중국의 강력한 핵억제력도 똑같은 핵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2013년 3월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억제력만 든든하면 천만대적이 덤벼들어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할 핵방패를 가진 조선이 대남군사행동을 전개해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조선의 대남군사행동은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를 최소화한 단기속결전으로 끝날 것이다.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대만해협, 대만섬, 동중국해를 포괄하는 매우 넓은 작전지대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 끝나기 힘들고,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다르게, 조선의 대남군사행동은 작전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 끝날 것이고, 따라서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2004년 4월 7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지시한 ‘전시사업세칙’ 제2장 제92조에는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을 실행에 옮길 때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을 비롯한 각급 정치기관들은 모든 작전과 전투에서...적군을 포섭, 전취하기 위한 조직, 선전공작을...작전단계별로...군사적 타격과 배합”해 전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에서 한국군을 타격하는 전투만 벌이는 게 아니라 한국군을 포섭, 전취하는 비전투공작도 배합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예견하면, 조선의 대남군사행동이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조선이 대남군사행동을 오랜 세월 미루어온 까닭, 그리고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을 오랜 세월 미루어온 까닭은, 미국이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고 핵참화를 막아줄 강력한 핵방패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선과 중국이 미국이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줄 강력한 핵방패를 각각 가졌으니,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고, 가장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때 결행시기를 선택하는 문제만 남아있는 것이다.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군사적 측면에서만 논할 수 없으며, 정치적 측면에서도 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측면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대남군사행동의 직접적 담당자인 조선인민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도를 받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국가를 영도하는 최고조직인 조선로동당의 영도를 받는 당의 군대이므로, 조선군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은 자기를 영도하는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길에서 피를 흘릴 각오를 한 혁명군대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민해방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로동당과 중국공산당은 평화통일도 준비해왔고, 무력통일도 준비해왔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2016년 5월 6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언명한 바 있다.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을 서로 대치시키거나, 어느 한쪽만 인정하는 것은 오류다. 평화통일이냐 무력통일이냐 하는 양자택일문제는 조성된 정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평화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면, 평화통일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고, 무력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면, 무력통일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분렬세력이 평화통일의 약속을 끝내 이행하지 않아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사라지면,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국가분렬세력을 제압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는 무력통일의 길을 택하게 되고, 무력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는 때에 맞춰 무력통일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선일보 광산왕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조선중아일보 여운형은 걸어서 뚜벅뚜벅”

<기고> 신창기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신창기  |  drshin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7.19  23:17:55
페이스북 트위터
   
▲ 몽양 여운형 선생 73주기 추모식이 19일 수유리 몽양 묘에서 열렸다. [사진제공-신창기]

19일 수유리 몽양 여운형 선생 묘에서 올해는 코로나19로 유족과 정부, 사회단체 인사들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올해로 벌써 가신 지 73주기 되는 해이건만
마치 하늘도 슬퍼하는 듯 새벽녘에 내리는 빗줄기에 행사를 앞두고 걱정이 되었지만
11시 쯤 서서히 비가 멈춰서 또 한 번 하늘조차 몽양 선생님을 기리는 듯했다.

지난 5월 이사장으로 새로 취임하신 강창일 이사장님은 인사말을 통해 “선생께서 온몸을 바쳐 이루려던 남과 북, 좌와 우,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하나 된 조국의 모습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또다시 추모식을 하게 되어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혔다.

   
▲ 인사말을 하고 있는 강창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사진제공-신창기]

이어서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은 “우리의 민주역량이 집결되지 않고는 끊임없는 우리 선열들의 희생과 세계인민의 정의의 피가 허사가 되기 쉽다”는 선생님의 유훈(遺訓)을 되새기며 “이제 우리가 그 유훈을 깊이 새겨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정의로운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얼마 전 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수많은 독립군을 때려잡고, 해방 후 한국전쟁을 통해 민간인을 학살한 백선엽의 죽음과 그의 현충원 안장을 놓고 벌였던 모습을 보며 “선생께서 간절히 염원하던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낙원’은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국가 건설이며, 이는 더디더라도 반드시 우리민족 스스로 자주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함세웅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장은 “조선일보 광산왕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동아일보 송진우는 인력거로 꺼떡꺼떡, 조선중아일보 여운형은 걸어서 뚜벅뚜벅”-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가 폐간된 후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을 인용하며 지금도 좌우 논쟁으로 옳고 그름을 탓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했다.

김영배 성북구갑 국회의원은 “선생이 실천으로 보여줬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 오로지 인민들의 이익을 우선에 두는 민주정치의 회복이 시급”함을 피력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밖에도 정동균 양평군수, 박겸수 강북구청장,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천준호 강북구갑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모두 표현은 달라도 ‘진정한 지도자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민족화합과 통합의 길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할 때’임을 밝히며 추모의 마음을 바쳤다.

   
▲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19로 유족과 정부, 사회단체 인사들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사진제공-신창기]

끝으로, 여운형 선생의 동생인 여운홍 선생의 손자인 여인영 본사업회 이사는 “할아버지의 위대하신 민족 사랑과,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이념의 좌우도, 땅의 남북도 뛰어넘어 소통하고, 정적도 탄복하게 만들었던, 통합과 융화의 정신을 본받아 국난극복의 지혜를 얻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어느새 빗방울은 그치고 푸르고 푸른 우이동 몽양 선생님 묘소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돌아서는데, 방금 전 기타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던 ‘담쟁이’ 노랫말이 가슴에 파고드는 듯하다. 아! 이 뭉클함은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중략)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벽을 넘는다/벽을 넘는다/벽을 넘는다
(생략)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70년 동안 기억에도 없었던 곳, 한반도의 최북단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두만강 국경도시, 투먼(圖們)과 남양

2020년 6월 7일,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봉오동 전투'가 있은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8월에는 독립군 활동을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고 연일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봉오동 전투'는 한국인이라면 역사책에서 한 번쯤 본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단어다.

 

중국 연변지역 답사 코스 가운데 훈춘 코스는 관광만을 했다는 가벼움을 독립운동 사적지가 지그시 눌러주는 묵직함을 곁들인 여정이다. 그 시작이 봉오동 전적지이며 정점은 삼국 접경 지역인 방천이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의 북시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연길과 도문 간 고속도로 이정표가 나온다. 연길-도문 간 고속도로는 한국의 속도광들이 꿈에 그리는 질주 본능을 자극할 수 있는 곳인데, 총 길이 26km로 차량이 거의 없다. 2001년 개통 당시에는, 좀 과장하면 1km마다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였다. 도문 17km 이정표를 지나면 도문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철교를 볼 수 있다. 장안터널과 소반령 터널을 지나 약 25분을 달리면 도문 이정표가 보인다.

 

도문 나들목에서 왕청 방향 이정표를 따라 1.3km가면 도로 오른쪽에 수남촌(水南村) 팻말이 나온다. 길을 따라 곧바로 올라가면 3km 지점에 도문시 수도국 봉오동 저수지 관리소 대문이 굳게 빗장을 걸어놓고 있다. 여기를 지나야 비로소 봉오동 기념비를 볼 수 있다. 지금 세워져 있는 봉오동기념비는 2013년에 건립한 것이며, 이미 1989년에 도문시에서 건립한 것은 다른 곳으로 치워진 상태다.

 

멋진 소나무를 감상하면서 10여 분을 위로 올라가면 봉오동 저수지가 찾는 이를 맞이한다.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갓모양의 봉우리, 즉 초모정자가 보이는 지점이 홍범도, 최진동 부대가 일본군과 격렬하게 전투를 펼친 봉오동 전투의 현장이다. 지금은 저수지를 돌아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1920년 6월 7일 홍범도와 최진동이 지휘한 독립운동 연합부대는 봉오골 저수지에서 북쪽 10km 지점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 수십 명을 살상했다. <독립신문> 85호에는 봉오동 전투의 상황이 명료하게 정리돼있다.

 

6월 7일 상오 7시에 북간도의 주둔한 우리 군 700명이 북로사령소재지인 왕청현 봉오동을 향하여 행군할 새 불의에 동 지점을 향하는 적군 300명을 발견한지라. 동군을 지회하는 홍범도, 최명록(최진동) 양장군은 직접 적을 공격하여 급 사격으로 적의 120여의 사상자를 내었으며, 적의 궤주함에 따라 바로 추격전을 펼쳐 현재 전투중에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발표한 봉오동 전투의 일본군 사망자는 100여 명이며, 독립군 희생자는 3명이라고 했다.

 

일광산에서 바라본 투먼, 남양, 간도

 

봉오동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에 국경 도시 투먼과 남양이 있다. 두 도시를 좀 더 자세히 보려면 일광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일광산은 해발 약 450미터 높이의 산으로 사찰 일광사가 있다. 정상에 오르면 도문시와 북한의 온성군 남양읍이 한눈에 보인다.

 

일광산 정상에서 10시~11시 방향으로 바라본 도문과 남양은 한눈에 보기에도 도시 규모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도문과 남양은 해방 전까지 거의 같은 규모의 도시였지만 현재는 누가 보더라도 경제적인 규모면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의 색채 역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도문이 컬러라면, 남양은 흑백이었다. 그 사이에 두만강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흘러갔다.

 

일광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간평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사잇섬(일명 간도)라는 지명으로 유명한 곳이 눈에 들어오는 데 지금은 사잇섬이 아니라 붙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홍범도 장군이 습격한 강양동 초소가 성냥갑 만하게 보인다. 그곳을 통과하는 함경선 기차가 남양에서 힘겹게 달려오고 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경부선을 비롯한 남쪽 철도에만 익숙하다. 당연한 현상이다.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북선철도인 함경선은 함경북도 청진을 지나 경원, 온성, 회령을 거쳐 무산까지의 산악지대를 힘겹게 달리는 노선이다.

 

국경도시 투먼과 남양

 

도문은 중국어 발음으로 '투먼'인데, 1712년 백두산정계비의 비문 가운데 <서위압록 동위토문>에서 토문(토문) 역시 중국어로 투먼이다. 중국에서 투먼은 도문강의 국경도시이다. 도문은 만주어로 모든 물의 근원이라 한다. 도문의 원명은 회막동이었는데, 1933년 도문으로 고처 불렀다. 현재도 도문시 10만 인구 가운데 50% 이상이 조선족일 정도로 민족적 색채가 강한 도시이다. 도문 톨게이트에서 중심거리를 따라 9.6km에 위치한 도문해관은 주로 북한과의 무역창구이다.

 

도문 시내에서 남양과 도문을 잇는 철교로 가기 전에 국경로 회전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돌면 도문 해관 건물이 보인다. 40m 정도 들어가면 양 옆에 가짜 러시아제 물건과 북한산 우표 등 기념품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도 아니고 광장도 아닌 용도가 묘한 나대지를 지나 둔덕에 오르면 바로 두만강이 눈

앞에 있다. 2010년에는 폭 150cm의 기단에 <중국도문변경>이라고 음각한 오석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전에는 중조변경이라고 쓴 표지석을 설치했는데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 중국 투먼과 북한 남양 사이에 위치한 국경 표지석 '중국도문변경' ⓒ김주용

그 옆에 1991년 5월 8일 강택민이 쓴 <중국전문구안(中國前們口岸)>이 주위의 변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두만강 상류로 눈을 돌리면 철교가 보이고 하류에는 해관 정문이 북한의 남양 쪽을 응시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한국관광객들이 압도적이었지만 요즘은 중국의 신장된 경제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국경을 체험하기 위해서 삼삼오오 북녘을 향해서 카메라 세례를 퍼붓고 있다. 해관 정문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의 남양을 보다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상록에 묻힌 남양의 모습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우리에게 국경선이란

 

도문 외곽을 지나 두만강 하류를 끼고 가는 길은 중국 땅과 한반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길이다. 두만강을 따라가는 길은 이곳 이외에도 도문에서 간평을 지나 개산툰, 용정으로 빠지는 길과, 삼합에서 북한 무산이 보이는 숭선까지 가는 길이 있는데 각 구간마다 특징적인 아름다움이 있지만 하류 쪽은 넉넉한 두만강의 수량과 한반도 최북단 온성과 경원을 감상할 수 있어 마치 동해바다로 빨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70여 년간 잊혀진 곳, 눈에서만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식 저장 공간에도 없는 곳, 다만 아직까지도 초등학교 사회과 부도에는 한반도 전체의 식물의 북방한계선, 지하자원 지도 등이 실려 있지만 정작 가상세계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북녘땅의 현주소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1718152910192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당, 지금 뭐 하는가...왜 수구 적폐들에 끌려 다니는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7/19 13:46
  • 수정일
    2020/07/19 13: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에드워드 리 | 기사입력 2020/07/19 [10:40]
  •  
  •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2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  
  •  
  •  
  •  
 

*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Edward S. Lee) 선생이 SNS에 올리는 우리 사회에 대한 단평을 소개합니다.

 

민주당, 지금 뭐 하는가? 

180석에도 존재감 없는 민주당

대전환 짊어진 용병 의식 가져야 

 

일주일 넘게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억지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고백건대, 이명박이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는 한국 정치와 시민사회에 기대를 걸고 싶지 않았다. 불의한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제'라는 허구에 기대 몰표를 주었던 한국 사회. 

 

지금도 그런 비슷한 감정이다. 민주당을 보면서 갑갑함을 넘어 아프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부도 지나치게 수구 세력의 눈치를 살핀다. 왜 절대 다수당이 여전히 수구 적폐들에 끌려 다니는가? 결국은 박원순이라는 사회적 타살(로 본다)도, 고통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조국과 그 가족의 린치도 이런 토양 위에서 비롯된 현실 아닌가? 늘 침묵해버리는 민주당, 책임정치가 없다. 이재정이 최고위원에 출마하면서 개혁의 스피커를 자임하자 시민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민주당 정말 뭐 하는가? 국민들이 180석을 몰아주어도 아직까지 공수처를 비롯해 개혁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시대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민주당을 보면서 시민들은 화병이 도진다. 얼굴도 없는 고소인에 대해 "피해자의 2차 가해 안 된다"는 여성가족부 성명은 참 고루하고 비겁하다. 무슨 정치가 이런가? “사실 규명이 먼저다. 좀 기다리자”라고 해야지, 가짜 여론에 밀려 눈치를 보면 사회는 아류로 전락한다. 좀비들이 들끓는 우리 사회 현실은 당정의 무기력이 불러온 것이다.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란 말인가? 누군가 고소만 하면 범죄가 성립되는가?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자면, 오히려 박 시장이 피해자에 가깝다. 숨어서 공작하듯이 말도 안 되는 허접한 증거(라고 할 수나 있나?)물로 정치공세를 하는 게 미투고 진실규명인가? 망자에게 뒤집어씌워 벌이는 정치공세는 당장 중지해야 한다. 민주당도, 여성가족부도 담대한 책임정치를 해야 옳다. 

 

왜 항상 우리만 참고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이것은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 특히 여론에 기대 여성의 성적 수탈사까지 소환해 망자를 심판하려는 입진보(학자)들의 이중성에 절망한다. 누구라도 그 자신의 죄로만 판단되어야 옳다. 그가 시장이라고 해서 역사성까지 소환해 여론으로 그를 단죄하는 건 옳지 않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인권은 가해자의 죄가 밝혀진 후에 차분하게 사회적 어젠다로 다루어야 옳다. 거대 담론으로 한 사람을 미리 여론 재판하고 범인시해선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2차 가해다. 

 

정치권과 여성계가 시민들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아주어야 혹세무민이 그치고 사람이 사는 사회, 즉 진실이 바탕을 둔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이 아닌가? 전제한다. 모든 정권은 유한하다. 5년짜리다. 그 5년 안에 하나의 미술 작품을 완성하는 게 아니다. 정치는 영원히 미완이고, 그저 진행되어 갈 뿐이다. 그것이 정치의 숙명이고 정당정치의 속성이다. 정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수권 정당의 책무다. 

 

그런데 지나친 결벽증으로 할 일을 못 하고 눈치를 살핀다. 정치란 완전체가 아니다.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 게 정치고 삶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가 정당이고, 그걸 조정해나가는 게 정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정치가 작동하나? 그저 대립뿐이다. 그래서 국가 법질서가 무섭게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검찰 및 사법개혁의 당위다. 그런데 모두 그늘아래 누워있다. 참담하다. 

 

현재의 민주당이 국민과 약속하고 수권했으면 그 공약을 지켜나가야 한다. 적폐 청산과 재벌개혁 등이다. 그런데 가시적인 성과물이 없다. 시민들이 지치고 원성이 깊어진 이유다. 물론 시민사회가 직접민주주의를 작동할 만큼 깨어난 것은 이 정권의 공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정권은 엄밀하게 말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사회 아닌가? 

 

정치는 누가 해도 욕을 먹는다.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두를 품겠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신도 그렇게 못한다. 단지 더 많은 시민들에 지지를 받은 정책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런 공방의 연속이다. 그러니 대국민 공약이 수권정당의 가장 주요한 책무다. 도덕이나 윤리는 정치가 아닌 다른 부문, 시민사회의 몫이다. 국가는 그렇게 정부와 시민사회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사람은 고사하고 개망나니 수구 적폐에 끌려다니는 당·정·청이라니? 시민들 미치지 않고 사는 게 기적이다. 민주당은 역사의 대전환 앞에 선 용병이다.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 달 만에 1억 오른 아파트... 제 선택은 다시 '전세'입니다

대출·카드빚·부부싸움에서 벗어난 지금... 집 없다고 기죽어 있을 당신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20.07.19 10:52l최종 업데이트 20.07.19 10:52l양정숙(hayun9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퇴근길에 찍은 우리 동네 이 많은 집 중에 내집이 없다는 것이 새삼 서러웠다
▲ 퇴근길에 찍은 우리 동네 이 많은 집 중에 내집이 없다는 것이 새삼 서러웠다
ⓒ 양정숙

관련사진보기


나는 무주택자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가장 조롱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무주택자였을 것이다. 무주택은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며,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8년 전 그 결정에 대해 정말 내 손목을 부러뜨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후회가 분노, 좌절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몰려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나의 무주택 기간 8년이 떠올랐다.

내가 무주택자로 전락(?)한 것은 2012년이다. 그리고 2020년이 된 지금까지 약 8년간을 전세로 살아왔다. 나는 생애 첫 집을 5년간 살다가 팔았다. 입주하던 날 가슴이 벅차 잠을 못 이뤘던 그 집을 결국 팔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슴 벅차게 집을 사고 알게 된 것들

첫째, 빚이 너무 많았다. 24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약 1억2000만 원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나와 남편은 IMF 직후인 1998년 결혼했는데, 그때 얻었던 신혼집이 전세 3000만 원이었다. 출발 금액이 적었으므로 2억 원가량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도저히 빚을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가 5%가량이었다. 
 

매달 이자로만 50만 원을 내면서 5년을 버텼다. 5년이 지나자, 원금상환부담이 덮쳐왔다. 매달 80만~90만 원을 상환해야만 해야 했다. 그것도 약 30년 동안이나. 60살이 넘도록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게다가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맞벌이를 하지 못했던 때라 원금을 미리 상환할 여력도 없었다. 둘째, 신용카드로 생활비 돌려막기를 했다. 빚만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달 대출금 상환하는 것만 신경 쓰고 나머지 가정 경제는 엉망이었다. '생각 없이 신용카드를 긁는다→명세표가 날아온다→월급으로 카드값을 꾸역꾸역 갚는다→다시 신용카드를 쓴다' 이 패턴이 매달 반복되고 있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회사에서 퍼가니까 늘 집에 현금이 말랐다. 그래서 또 카드를 긁다 보면 내가 매달 얼마를 쓰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중에는 카드 명세표를 열어보는 것이 성적표 받는 것처럼 두려워졌다. 그래도 집이 있다는 안도감과 집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서 이 패턴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셋째,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당시 내가 살던 신도시는 특정 대기업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대기업 사원을 남편으로 둔 그들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씀씀이를 가지고 있었다.

사교육비로 아이 하나당 백 단위를 쓰는 것은 보통이었고, 중형 이상급의 자동차를 전업 주부 엄마들도 타고 다녔다. 연말에 상여금이라도 받고 나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명품가방을 하나씩 장만해서 모임에 나타났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부내와 경제적 안정감은 나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들볶는 일이 많아졌고, 없는 살림을 쥐어짜서 아이를 사교육에 몰아넣었다.

나의 열등감을 가족을 통해 해소해 보려는 짓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내가 괴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집을 팔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결국 집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집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시가 어른들의 걱정은 그냥 무시했다. 대출금 일부를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 그분들의 노후 자금을 내 집 밑에 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집값이 더 뛰면 어쩔래"라고 길길이 반대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 집을 내놓은 지 약 10개월 후, 집이 드디어 팔렸다!

그동안 집값이 올라서 얼마 정도 시세 차익을 남겼지만, 대출금을 상환하고 세금, 복비를 제하고 나니까 변두리 지역에 전세를 얻을 돈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전세자금 대출을 약 3000만 원가량 더 받았다.

집을 팔지 않았더라면 못했을 것들

집을 전세로 옮기면서 가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마이너스 통장도 없앴으며, 신용카드를 가위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오로지 현금만을 가지고 생활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때 제윤경씨의 <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를 읽었는데, 가정 경제를 구조적, 가시적으로 만드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신용카드를 썼을 때는 보이지 않던 수입과 지출의 현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항목별로 나누어 통장을 만들어 관리하고 정해진 금액 내에서만 돈을 썼다. 그리고 월급이 들어오면 저축부터 했다(전세자금 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싸고 그나마 소액이라 금방 갚았던 것 같다).

현금이 돌기 시작하자, 저축과 노후 준비를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민 연금에 임의가입자(당시 나는 전업주부였다) 자격으로 가입하고 개인연금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약관내용과 보장액도 모르고 난잡하게 넣어놓았던 보험 중 과도한 보험은 해지하고 손품을 팔아 직접 보험을 설계하여 필수적인 보험만 남겨놓았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도 줄였다. 그러기 위해서 전에 살던 아파트 엄마들은 의도적으로 '손절'했다. 그리고 소득을 늘리기 위해 파트타임 강사일을 시작했다. 자동차는 '굴러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지 않았고, 온 가족 휴대폰도 현금을 주고 사고 알뜰 통신사에 가입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할부금이나 빚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8년을 살다 보니, 이제 남편과 나의 월급이 입금되면 자동으로 돈이 각 항목에 맞게 착착 이체되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12월이 되면 다음 해의 변화된 소비 항목에 맞춰 각 통장에 이체될 금액을 조금씩 수정해 두기만 하면 되었다. 저축액도 상당히 늘어갔으며, 검소한 소비 패턴은 생활화되었다.

남의 집 자식들과 비교할 일이 없어지니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게 되었고, 다행히 아이들도 사교육비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나름대로 알아서 공부를 했다. 남편과의 다툼도 줄어들고 우리의 노후 준비를 위한 대화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가정 경제도 안정되고 여유자금도 확보되어서 슬슬 외곽의 집이라도 사볼까 했는데, 이번에 부동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단기간 투기성 매매자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2020.7.5
▲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다시 전세를 선택하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의 매매가가 1억 원 이상 오른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그게 최근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겨우 두 달 말이다. 남들은 오른 집값에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데, 나 혼자만 복장이 터져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집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내가 그동안 헛짓을 했구나... 부동산은 경제 이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사회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사람들의 공포, 불안, 욕망 등의 심리가 함께 맞물려서 돌아가는 게 부동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경제책 몇 권 읽고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울분과 좌절이 잦아들면서, 조금씩 이성을 찾게 되었다.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전세를 살 뿐이고, 남들은 1억 이상을 벌었지만, 아직 그 집에서 살고 있으므로 1억을 실제로 손에 쥔 집은 사실 몇 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이제 집을 사야겠다'라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마침 집을 사려고 했고, 모아둔 돈도 준비되었는데 턱없이 올라버린 집값이 나의 상실감을 자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했다. 집을 안 사면 된다.

8년 동안, 큰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했고, 작은 아이는 고1이므로 2년 후에는 그도 독립을 할 것이다. 학군이나 통학거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셋집 선택이 매우 자유로워진다. 게다가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책상, 옷가지 등의 짐들이 사라지므로 더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가도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몇 번씩이나 이사를 다녔는데, 그 짬밥으로 두 명 사는 집을 이사하는 건 껌이다. 그리고 집을 사지 않아서 남는 여유자금은 노후 준비자금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전세 살아?"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나는 집을 살 기회를 놓쳤지만, 그동안 저축으로 모은 꽤 많은 종잣돈을 집을 사는데 '꼬라박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

"낼모레 오십인데 아직 전세 살아?"라는 남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집을 사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남들에게 내가 몇 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브랜드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지 알게 하고 싶은 욕망만 잠재우면 된다.

남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떠벌릴 때 자존심을 버리고 '부럽네'라며 가볍게 말해줄 수 있는 멘탈만 갖추면 된다. 그리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이 8년간 단련했던 검소한 생활은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그 산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기회다. 그러나 탄탄하고 검소한 가정 경제를 만들어 놓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둘을 한꺼번에 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아직 집이 없다고 기죽지 말자.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만약 집이 없다면 어떨까?
집이 없다고 죽지는 않는다.
대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된다.
내 노동과 자유를 남들의 시선과 바꾸면 된다.
- <내일의 부>, 조던 김장섭, 트러스트북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렸던 글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나의 꿈은 '노동자'입니다 ⑨]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 20.07.17 20:20l최종 업데이트 20.07.17 20:20l정현주(chamir) 

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사망 소식 전하는 이태성씨 2018년 12월 11일, 이태성씨는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사망 소식 전하는 이태성씨 2018년 12월 11일, 이태성씨는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 이태성

관련사진보기

    
"2014년에 친한 동생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어요. 태안화력에서 함께 일하다가 승진해서 보령화력으로 갔는데, 거기서 그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나기 일주일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조금 있으면 딸이 백일이 되니까 보령에 와서 술 한잔하자고 했어요. 그때 그 동생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노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노조는 그런 사망 사고가 나면 사실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고작 위로금이나 걷고 있었어요."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 이태성씨, 그가 이렇게 긴 직함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전력공사의 복잡한 하청구조와 관계 있다. 한전은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1990년대부터 발전소 설비정비, 운전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근무하는 한전산업개발은 발전사의 9개 하청 업체 중 하나다.

하청업체들은 원칙적으로 3년마다 공개 입찰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회사는 입찰에서 떨어질까 봐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사고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돌렸다. 하청노동자들은 회사가 입찰에서 떨어지면 직장을 잃는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2014년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이태성씨와 노조는 무력했다.

"제가 1998년도에 입사했는데, 20년째 작업 환경이 변하지 않았어요. 저와 동료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초속 5m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석탄 가루로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곳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4km 정도의 거리를 왕복하며 안전 점검을 하고 탄가루 치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컨베이어 벨트가 도는 속도가 빨라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기에 접근 방지 펜스와 자동제어 스위치를 달아줄 것과, 시야 확보를 위해 조도를 높여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2년 전인 2018년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에야 펜스와 조명이 설치됐습니다."
  
 
▲ 태안화력 발전소 내부
ⓒ 이태성

관련영상보기

 
3년마다 입찰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태성씨가 근무하는 동안 실제로 태안화력에서 공개 입찰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3년마다 재계약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는 비용 절감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위험한 근무 환경은 20년 이상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31일에 태안화력에서 처음으로 입찰이 나왔다. 노조의 반대를 우려해서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입찰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한전산업개발은 이 공개 입찰에서 떨어졌다.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 전원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낙찰받았던 기업들이 숙련된 인력을 다 채울 수가 없어서 차례로 낙찰을 포기했다. 결국 3순위였던 한전산업개발이 다시 낙찰을 받고 직원들은 회사에 남았다.

"발전소는 1급 보안시설로 폐쇄된 공간이에요. 발전소 출입을 위해서는 신원확인을 하고 서약서를 써야 할 정도로 출입도 통제되죠. 전쟁 나면 타격 1번이 될 만큼 국가의 존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간산업입니다. 국민의 생명 안전과도 직결되고요. 그런데 여기에 민간기업의 이윤추구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와 민영화와 외주화를 한 겁니다.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할까요? 외주화 결과 20년 30년씩 노후된 시설이 안전 설비도 없이 방치되고, 근무 조건이 열악해서 수많은 산재가 발생했고요.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현실을 '입찰에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숨겨왔다는 거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받아왔고요."

  
한전산업개발 발전노조는 2016년 입찰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소 민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2017년 11월에 태안화력에서 또 보일러 밸브에 머리가 끼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담당자들은 태안화력방재센터에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다친 노동자는 구급대원의 안전조치 또한 받지 못했고, 구급 차량이 아닌 협력 업체 소장의 차로 이송됐다. 입찰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산재 사고를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한 죽음 막아야
  

산업사회에서 '공기'와 같이 필수적인 '전력'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비용절감과 효용성 제고라는 명목 아래 다치고 죽어가는 하청 시스템은 반드시 바뀌어야만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전분야 비정규직 연대회의'가 만들어졌다.

발전 노동자들은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의 국회간담회를 시작으로 기자회견과 국회의원 면담을 이어나가며, 정규직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태성씨는 노조 사무국장으로 이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그는 전날 밤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관련기사: "취임 초 문 대통령 행보에 펑펑 울었는데 지금은..." http://omn.kr/1exkg)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지부 사무처장은 "오늘도 또 동료를 잃었다"라며 울먹였습니다.
▲  2018년 12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은 "오늘도 또 동료를 잃었다"라며 울먹였습니다.
ⓒ 민주노총

관련사진보기

   
"저는 오늘 동료를 잃었습니다.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꽃다운 젊은 청춘이 또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용균은 12월 10일 밤, 혼자 일하다가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끼어 사망했으며 발견되기까지 4시간 동안 방치됐다. 2019년 작성된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39명이고, 부상을 포함한 사고 발생 건수는 428건에 이른다. 그리고 2018년 이후 현재까지 사망 사고만 3건이 더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산재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으나, 최근 5년간 산재 사고의 97%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김용균 사망 이후 올해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어요. 28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개정된 법안에 '위험 작업은 2인 1조'라는 조항이 담겼지만, '위험 작업'의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서 여전히 혼자 일하는 곳도 있고요. 이 법은 재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12월 12일 '당정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로 한전산업개발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한전의 상시적 업무인 발전소 설비정비, 운전 업무를 원청이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도록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 요청이 있은 지 7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시점까지 현실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태성씨는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570일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김용균의 동료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덧붙여 집권 여당이 약속을 지키고, 노동자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용균 사망 이후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천막농성부터 일인 시위까지 노동자들은 아직도 거리를 지키고 있다.
  
당당하고 차별받지 않는 노동을 위하여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면서 노조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면서 노조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 이태성

관련사진보기

 
태안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엔 어촌 특화사업을 해보고 싶어 했던 이태성씨는 1992년 태안에 건설된 화력발전소에 1998년 12월 한전산업개발로 입사해 화력발전소 운전 분야에서 일해 왔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나 학창 시절에는 막연히 '노조는 과격하고 불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그는, 비정규직의 부조리를 겪고 동료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변해갔다.
   
2019년 이태성씨는 '허위사실을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유포해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했다' 하여 원청 정규직 노조 관련자로부터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찰서에 가서 몇 시간씩 조사받고 마음고생을 했다. 조사 결과 '기소 의견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관련 기사: "노동자가 김용균 대책위 노동자 고발... 의도가 다분하다" http://omn.kr/1j8rl)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노조 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 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 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정규직은 위험한 일을 시켰을 때 거부권이 있지만, 비정규직은 없어요. 이것도 변해야 합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다뤄서는 안 되죠. 노동자의 목숨이 깃털은 아니거든요. 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 제정으로 기업들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비정규직 사용제한법' 같은 것들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기업은 엄히 처벌해야 하고, 비정규직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쓰는데 악용되는 일도 막아야 합니다."

이태성씨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는 시선에 대해, 특히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들은 지금 당장 거부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규직화는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일임을 알아줄 것을 당부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90%는 노동하는 사람들인데, 왜 어떤 노동의 가치는 천박하게 인식되는 걸까요? 특히나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생산직 노동을 더 그렇게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노동교육을 의무화하고 어릴 때부터 노동은 소중하고, 나는 기업이 주는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 당당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기업과 노동자는 평등한 계약관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노동자가 마치 기업의 소유물처럼 인식되고 있으니 이건 아주 잘못된 거죠. 우리나라는 10년째 OECD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1위라고 해요. 경제 대국인 나라에서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군 세균전’에 ‘부산 폭로전’으로 맞선다

  • 기자명 선현희 기자
  •  
  •  승인 2020.07.17 18:38
  •  
  •  댓글 0
    •   
  • <h4 class="sub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875rem; padding: 0px 0px 0px 0.75rem; font-weight: bolder;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1.25; font-size: 1.25rem; letter-spacing: -0.075em; border-left: 3px solid rgb(174, 174, 174);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18일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전국연석회의와 부산시민 원탁회의 열려</h4><article id="article-view-content-div"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부산 8부두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하라’는 목소리가 전국에 퍼진다.

    오는 18일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전국연석회의와 부산시민 원탁회의가 연달아 개최된다.

    3시 전국연석회의에서는 미군 세균전 계획을 꾸준히 추적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미군 세균전계획’을, 소파협정 전문가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미군 세균전계획과 소파협정’에 대해 발제할 예정이다.

    또한 부산 8부두 미군기지에 맹독세균샘플을 반입한 주한미군 사령관을 검찰에 고발한 것과 관련된 보고가 이뤄지며, 2015년 탄저균 밀반입을 겪은 경기도 평택의 단체대표를 통해 경험과 현황을 청취한다.

    이날 회의에서 오는 8월 15일 미 대사관 앞 항의 기자회견과 9월 UN총회 미국 제소 등 향후 투쟁계획을 확정하게 된다.

    7시 부산시민 원탁회의에서는 장마와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된다.

    회의결과는 ‘부산시민 원탁회의 결정문’으로 발표되며 ▲하반기 대규모 ‘추방 궐기대회’ 결의, ▲9월까지 주한미군 사령관 고발인단 1천인 모집, ▲풀뿌리 소모임까지 관련 교육 확대, ▲규모있는 선전홍보진행 등을 논의 의결할 예정이다.

    [세균전부대 추방 부산시민 화상 원탁회의 참가안내]

    장마로 인한 불확실한 기상조건과 코로나19 부분확산에 대한 우려에 따라, 7월 18(오후7시 백운포에서 개최 예정이던 부산시민원탁회의를 아래와 같이 화상(온라인)회의로 전환하여 진행됨을 알려드립니다.

     

    1. 소속단체로 참가신청하신분 자신이 속한 테이블 조장이 별도로 안내해 드린 회의장소로 오후 7시까지 모여주세요.

    2. 온라인으로 개인참가 신청하신분 오후 7시 노동복지회관 2층 대강당

    구글로 참가신청을 하신 개인에 한 함. (현장 참가자 접수는 없습니다)

    3. (참관유투브주소 https://youtu.be/LbonuZPX_vs

    </article><article id="article-view-content-div"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열 여섯째 이야기, 사드 가고 평화 오라(2)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35)
정해랑  |  jhr1376@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7.18  01:35:35
페이스북 트위터

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삽화-백소(白笑)]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앞 분수대로 가는 길을 가면서 신돌석씨는 촛불시위가 한참이던 2016년 겨울의 마지막 토요일을 떠올렸다. 그날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시위하는 군중에게 노상에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거기까지 오는 데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0월 말부터 11월까지에는 경찰에 막혀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신돌석씨는 이렇게도 역사가 진전하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었다.

그렇게 시위 등의 압력과 합법적인 절차를 병행하는 전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신돌석씨 주위에는 많았다. 특히 8-90년대의 거친 상황을 지나오면서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그래봤자 저들이 굴복하냐고 하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러한 전술은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것을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집단지성이 창출해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그때 불만을 말한 사람들은 막상 박근혜가 탄핵이 되자 별 말이 없다가 그 뒤 새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이 더디게 되자 다시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그때 국회를 해산시켰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런 전략 전술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야기할 지식도 부족하고 논리력도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때 국회를 해산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는데도 안 했단 말인가?

청운동 동사무소를 지나서 사랑채에 갔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도 들어갈 때 발열체크를 하고 이름을 썼다. 나와서 보니 분수대 앞에는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11시 10분 전에 도착해서 한번 죽 둘러보았다. 작년에 했을 때 보았던 신천지 피해자 가족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있었다. 동일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딸이 집을 나갔는데 신천지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작년에만 해도 좀 황당하게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신천지에 대해 보도가 많이 되면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11시 정각이 되자 장선우가 피켓을 들고 왔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전쟁의 불씨 사드 배치 문재인 정부 규탄한다’ 라는 구호가 적힌 것들이었다. 부근의 시민단체에 피켓을 갖다 놓고 매일 시위할 때마다 가지고 왔다가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보통 1인 시위는 1시간을 하는데 이번에는 두 시간을 하였다. 바람이 좀 세차게 불었다. 피켓이 자꾸 날아가려고 하였다. 그것을 꽉 붙들고 있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보면 촛불혁명 뒤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한눈에 보였다. 바로 옆에 여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방위비 인상 반대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사드반대와 가장 가깝게 느껴졌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역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참사피해 유가족들이 노란 점퍼를 입고 서 있었는데 7명이 와 있었다. 이곳에 터줏대감이라고 장선우가 소개한 사람은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뒤 전교조 합법화를 요구하며 여기서 살다시피 한단다.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가림막도 쳐 놓은 사람은 ‘이석기 전의원 석방’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다 아는 주장들인데 조금도 진전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는 잘 모르던 요구사항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돈 농가의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과 토지강제수용을 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 KT 전 회장 황창규를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1인 시위했던 사진을 내걸고 있었다. 억울한 관청 피해에 대해 호소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람들의 피켓일수록 작은 글씨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제일 특이한 사람은 신돌석씨의 왼쪽에 있는 사람인데 라엘 오르그라는 프랑스인의 방한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말을 걸어오기에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후쿠시마에 있다가 오키나와로 옮긴 사람인데 1983년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서 한국에 못 들어온다고 하였다. 오키나와에서도 주일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단다. 거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가 UFO를 보았고, 그것이 후쿠시마 지진도 유발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1인 시위의 요구가 꼭 진보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이라고 하면서 중국인을 막지 않은 문재인이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들이 몰려와서 시위를 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 이곳에서 죽치던 성조기 부대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정말 민주주의는 죽 쒀서 개 주는 것 아닐까?

장선우가 먼저 가고 남아서 1시까지 1인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다시 청운동 주민센터 쪽으로 나왔다. 피켓이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라서 들고 가기에 쉽지 않았다. 장선우는 한 정류장 정도 거리이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는데 그것도 뭐해서 그냥 들고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보곤 하였다. 이전에는 부자들이 살던 동네였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이 사람들은 아마 정치적 구호에 꽤 익숙하리라. 온갖 시위가 다 이곳에 와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 어딘가에 외할머니가 살았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외삼촌을 여의고 며느리인 외숙모와 손주들과 사셨다. 주로 아니 거의 대부분 외할머니가 찾아왔지 신돌석씨 형제가 외할머니한테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신돌석씨에게는 항상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면서 어머니를 옥죄는 사람이라는 양면적 이미지가 있었다. 그 외할머니도 세상을 뜬 뒤에는 외숙모나 외사촌들과는 경조사 때나 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사진을 찍고 나서 조금 있다 보니 상황실장이 왔다. 올 때마다 보는 사람이었다. 대구에서 평화와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벌써 4년째 이곳에서 먹고 살면서 상황실장을 하였다. 처음 오던 때 그의 안내에 따라 기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달마산에 올랐었다. 걸어서 가기에도 좁게 보이는 산길을 그가 운전하는 경차를 타고 갔다. 어느 지점에 가서 내린 뒤 걸어 올라갔는데 그는 빨치산이 연상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비탈진 산을 올라갔었다.

   
▲ [삽화-백소(白笑)]

사드가 배치되고 해가 바뀐 2018년 지방선거가 있던 6월 13일이었다. 신돌석씨는 장선우와 지역 문화 단체 활동가인 최운영과 함께 소성리에 내려갔다. 그때는 최운영이 가져온 차를 타고 갔다. 그래도 명색이 그랜저였는데 오래 되어서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든다고 최운영이 투덜대었다. 그래서 좀처럼 타지 않는데 장거리를 가야 하니 몰고 간다는 것이었다. 지방선거라 공휴일인데도 길은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조금 넘어서 소성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전해에 있었던 기습 배치 이후에 매주 토요일에 김천역 앞에서 집회가 있었고, 소성리에서는 수요일마다 집회를 하였다. 수요 집회 주관을 공동행동에 소속된 여러 단체가 돌아가면서 하였다. 그날은 신돌석씨의 지역에서 하기로 했는데 막상 갈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신돌석씨와 최운영이 가게 되었다. 집회를 주관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소성리 지역 대책위원들, 현지의 상황실과 원불교 성지 수호 대책위원들이 다 준비해 놓았다.

가자마자 집회에 참석하였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커다란 차양이 쳐져 있었다.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앞자리에 앉았다.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이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경북 지역의 개신교나 천주교 목회자 활동가들, 지역에서 평화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다.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40여 명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동네는 100가구가 안 되고, 인구 수도 200명 안 된단다. 사실상 마을 주민 모두가 사드반대 투쟁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발언을 시켰다. 장선우나 최운영더러 하라고 했는데 굳이 신돌석씨가 가장 연장자니까 해야 한단다. 그래서 나가서 발언을 했다. 오늘이 지방선거 날이다. 지방자치를 잘 하자고 선거를 하는 날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는 사드를 왜 엉뚱한 동네 사람이 결정해서 하려고 하냐? 한 마디 묻지도 않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잘 한다고 박수를 쳤다. 장선우도 최운영도 말 잘 했다고 하면서 이제 기회만 되면 하란다. 신돌석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날은 1박하기로 하고 가서 집회가 끝나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교무의 안내로 원불교 성지를 둘러보았다. 원불교 사원이 있는 곳과 2대 종사인 정산송규종사의 생가는 좀 떨어져 있었다. 사드만 아니면 평온하기 그지없는 곳일 듯하였다. 신돌석씨 일행을 안내한 교무는 원불교 내에서도 사드 반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성지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출발했다가 이제 사드 배치 자체가 교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반대를 한다고 하였다.

저녁 5시 반이 되자 부대 앞으로 이동하였다. 마을회관에서 진밭교까지 10분 정도 걸었고, 거기서 부대 앞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꽤 멀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돌석씨 일행도 걸어가다가 도중에 상황실장의 차가 와서 거기에 동승해서 갔다.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져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드 기지는 미군 기지임이 분명한데 우리 군이 지키고 있단다. 그것도 최정예부대의 하나라고 하는 특공대 장병들이 지킨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협정의 어느 조항에 우리 군이 미군부대를 지켜 주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상황실장은 이야기하였다. 법이나 규정이 별 소용이 없는 것이 한미관계인 것 같다.

원불교 교무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낮에 있었던 집회와는 달리 참석한 사람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부대 앞에서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참석한 사람 모두가 짧게라도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선창하였다. 오는 도중에 보았던 가지각색의 현수막에 적혀 있는 구호가 소리가 되어 나오는 듯하였다. 전국의 모든 운동단체들이 다 현수막을 내건 것 같은데 왜 저지할 힘이 되지는 못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집회를 끝낸 뒤에는 진밭교로 내려와서 공사하는 사람들의 차량을 막았다. 여기서도 약식으로 집회가 있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차량에 탄 사람들은 기다렸다. 매일 있는 일이라서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경찰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서로 암묵적으로 약속이 되었는지 약식 집회가 끝나고 그들을 향해 우리 민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기지공사를 하지 말라고 한 뒤 길을 터주었다. 일단 이 사람들은 명분상 사드기지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지 내 장병들을 위한 편의시설 공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밤에는 주민들이 마련해준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마을회관에서 잤다. 세 사람과 상황실장이 함께 잤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상황실장이 차려 준 아침 식사를 한 뒤 진밭교에서 하는 예배를 드리러 갔다. 아침마다 거기서 개신교 목사 집도로 예배를 본다고 하였다. 어제 저녁과는 달리 진밭교에는 경찰 수십 명이 와 있었다. 할머니들인 주민들 10여 명과 상황실장, 원불교 교무, 개신교 목사 그리고 거기서 잔 신돌석씨 일행 세 명이 전부였다. 경찰의 절반도 안 되는 수였다. 경찰을 보자 신돌석씨는 갑자기 긴장감이 느껴졌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찬송을 부르고, 목사의 기도가 있고, 설교가 있었다. 7시 40분쯤부터 차들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퇴근한 사람들이 다시 공사장에 출근하려는 것이었다. 입구를 막고 예배를 보고 있는데 차들은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7시50분이 되자 경찰 지휘관인 듯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입구를 열어 달라고 하였다. 신돌석씨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끝까지 막고 싸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켜 주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싸우자 말자 하기도 뭣하였다.

원불교 교무가 귀띔을 해주었다. 그냥 일어설 수는 없고 경찰이 옮겨 줄 테니 거기에 몸을 맡기시라고 했다. 지휘관이 지시를 내리자 경찰 세 명이 일조가 되어 의자채로 들어서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고 ‘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어찌 보면 형식적인 싸움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비참한 현실이기도 하였다. 저항을 해봤자 들려 나가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 [삽화-백소(白笑)]

상황이 종료되고 상황실장에게 물으니 공사를 우리가 막고 있다는 것을 아침 저녁으로 보여준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해는 되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신돌석씨에게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말하기도 어려웠다. 예배가 끝나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상황실장이 기왕 오셨으니 시간이 되면 달마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사드 기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의 차를 타고 달마산에 가게 되었다. 상황실장이 운전하느 경차를 타고 마을 밖으로 나가서 산을 빙 돌아서 갔다.

그러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경차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을 한참 올라갔다. 차를 세워 놓고도 걸어서 산길을 타고 올랐다. 세 사람은 상황실장을 따라가기가 힘겨울 정도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이럴 때 자주 나오는 말이 나왔다. 운동 좀 해야 하는데. 산에만 가면 중년의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산만 내려가면 다시 잊어버리고 음주에 찌들어 버리곤 했다. 상황실장은 산을 잘 타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산에 아주 익숙한 듯 평지에서 뛰듯이 올라가다가 뒤돌아보고 기다려 주곤 하였다.

정상에 올라 너럭바위 위에 앉으니 정말 기지가 한눈에 보였다. 상황실장은 망원경을 들고 갔다. 매일 한 번씩 여기에 올라와서 상황을 체크한단다. 사진도 여러 장을 찍었다. 신돌석씨도 핸폰으로 몇 장 찍었다. 헬리콥터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반대쪽에 출입구가 없다고 한다. 출입구가 이쪽에만 있는데 우리가 막고 있으니 병사들의 부식 등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기지 내 도로를 따라 차들이 이동하는 것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지된 느낌을 주었다.

달마산에서 본 기지는 정말 천혜의 요새였다. 어떻게 산 꼭대기에 그런 평지가 있는지 희한하게 느껴졌다. 롯데에서 이 땅 내놓기가 아까웠을 것도 같다. 어쩌면 더 큰 것을 받아내기 위해 알아서 준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쉽게 주기에는 아깝게 보였다. 원래 그 자리에 목장이 있었는데 롯데가 사들여서 골프장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돼서 사드 기지로 낙점되었다고 한다. 상황실장이 망원경을 건네주면서 저게 바로 문제의 사드니 잘 봐두라고 하였다. 저게 무엇이기에 이 마을 주민들을, 우리 국민들을 괴롭게 하는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코로나19 때문에 마을회관이 폐쇄되어서 어디서 묵고 있냐고 물었더니 상황실장은 웃으면서 소성리가 다 자기 집이라고 하였다. 대구에서 평화운동, 통일운동을 하다가 이곳에 파견되어 왔던 이 사람은 벌써 햇수로 5년째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사람처럼 말없이 헌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쉽게도 오늘은 대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하였다.

점심때가 되니 할매들이 점심 먹기 위해 나타났다. 진밭교를 지키던 사람들과 할매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장선우가 오늘은 마을회관도 닫히고 해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자고 했는데 뜻밖에도 갈비탕이 점심으로 왔다. 함께 둘러앉아서 갈비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이지만 여러 번 오니 낯이 익은 할매들도 많았다. 그 중 한 할매가 지난 번 경찰의 침탈 이야기를 하면서 성주경찰서가 괘씸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장선우가 술 마시다 간 날도 이 조그마한 동네에 무려 4천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고 하였다. 그것도 의경들이 아니라 기동대 소속인 듯 거구들만 모였단다. 순식간에 마을회관부터 통제해서 진밭교로 못 올라오게 하고, 진밭교에 이중으로 진을 쳐서 장비를 진출입시켰다고 한다. 분을 못 삭이며 이야기를 하는 할매는 지방선거 이기고, 국회의원 선거 이기면 뭐하냐고 하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을 몇 번씩 하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피말리는 연장전 끝에 되살아난 오뚝이…이재명표 정치 날개달다

등록 :2020-07-16 16:21수정 :2020-07-17 02:30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집요하게 괴롭힌 모든 혐의서 벗어나
16일 경기도청 신관에 출근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경기도 제공
16일 경기도청 신관에 출근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경기도 제공

피말리는 연장전 끝에 이번에도 되살아난 오뚝이 정치인.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이 지사는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4가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다시 한번 정치인으로 기사회생에 성공하면서 코로나19 대응으로 높아진 인지도와 지지도를 기반으로 대선가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 지사는 지방선거 이후인 2018년 12월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공표 외에도 성남시 분당 대장동 개발 관련 업적을 과장하고, 2002년 검사를 사칭했던 전력을 부인했다는 공직선거법(허위사실유포) 위반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한 허위 사실 외에 나머지 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선 성남시장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시작된 재판과 곧이어 터진 여배우 스캔들, 조폭 연루 의혹 등을 한꺼번에 받았던 지난 2년은, 이 지사의 말처럼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였다. 특히 여배우 스캔들은 대형 악재였다. 이 지사는 사건을 조사중인 경찰에 신체 감정을 요구한 뒤 거부되자, 자신이 직접 아주대 병원으로 이동, 의료 전문가와 언론이 참관한 현장에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내기도 했다.

숱한 고비를 넘겨온 이 지사지만 항소심 재판 이후 대법원 선고가 지연되면서는 “단두대에 올라간 심정”이라며 극도의 긴장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확정할 경우, 지사직 상실은 물론 여권 잠룡에서 추락하며 정치적 앞날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지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수사·재판에 시달려왔던 이재명표 경기도정이 활력을 얻는 동시에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날개를 달게 됐다.

피말리는 송사 외에도 그의 삶엔 고난을 딛고 일어선 장면이 여럿이다. 경북 안동 출신의 이 지사는 가정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성남 상대원공단에서 5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산재로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던 이 지사는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당시 생활을 담은 책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서 그는 “고통스럽고 혼란한 미래에 두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리틀 이재명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이후 시민운동가로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에 나섰으나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정치의 길로 나선 이 지사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성남시에서 재선 시장을 지냈다. 당시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과 극복, 성남시 청년수당 등 3대 무상복지를 통해 점차 ‘변방 사또’에서 ‘스타 시장’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 지사는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 당시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면서 최종 후보가 되지 못했다.

다음해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를 24%의 큰 표 차이로 누르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 지사는 ‘억강부약’을 기조로 공정과 평화의 가치가 담긴 자신의 정책을 쏟아냈다. 경기도 청년수당의 지급과 경기도 내 하천 불법 시설물 일제 철거 등의 강력하고 신속한 정책 등이 그 예들이다. 특히 자타 공인 국내의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인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명실상부한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체급을 늘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한 것은 물론, 집단 감염의 진앙지로 거론된 신천지 고발과 현장 점검 등의 강력하고 선제적 대처, 남북 간 대치 국면 속에서 대북 전단 살포 강력 대응 등을 통해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왔다.

이는 이 지사에 대한 지지도 상승으로 귀결됐다. 취임 직후 각종 의혹 등 악재에 시달리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29.2%로 전국 17개 시도 단체장 중 꼴찌로 시작했던 그는, 지난달 조사에서는 71.2%로 1위에 오르는 등 드라마 같은 지지율 변화를 끌어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개 키워드로 본 이인영 후보자 통일관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 인도적 지원은 "꾸준히"... 북한인권법엔 "실효성 없다"

20.07.17 08:25l최종 업데이트 20.07.17 08:25l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밝은 얼굴로 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고 있다. 2020.7.6
▲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고 있다. 2020.7.6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 3일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이인영 후보자는 평소 북한과의 적극적 교류협력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이래 4선(17·19·20·21대) 의원인 이 후보자는 20대 국회 전·후반기 모두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에서 활동했고, 21대 국회에서도 외통위를 희망해 배정됐다. 민주당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남북관계 발전 및 통일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때문에 여권에선 이 후보자가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본격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야당에서는 이 후보자를 가리켜 "과거 편향적인 대북관을 가졌던 분"(박진 미래통합당 의원), "그동안 행적을 보면 굉장히 북한에 편애를 많이 보였던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 후보자의 과거 발언과 저서, 발의했던 법안들을 중심으로 몇 개의 중심 키워드를 추린 다음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① 대북 인도적 지원] 정치·군사 상황 떠나 꾸준히
 북한은 지난 2019년 5월 4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쏜 데 이어, 9일에도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두 차례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이 후보자는 남북·북미 대화 소강 국면에서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후보자는 북한의 군사적 행동과 식량 지원은 별개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2019년 5월 10일 이 후보자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체 없이 인도적 지원을 해서 (남북) 서로의 신뢰를 강화하고, 또 그런 남북관계를 통해서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 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긍정적 기여를 해야 하는 때"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 후보자는 현장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 문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흔쾌히 하겠다는 입장이었다"라며 "미사일 문제와는 별개로 식량 지원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의 소출 상황도 좋지 않고, 많게는 150만 톤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한다"라면서 "어린이·산모·노약자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식량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적 교류와 협력'을 강조한 이 후보자는 관련 법안 발의에도 적극적이었다.

지난 2016년 12월에는 일관성 있는 대북 인도·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남북한 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은 대북 인도·협력사업을 정치·군사적 상황에 연계하지 않고 인도주의 원칙에 기반해 중립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는 기본원칙을 법에 명시했다.

2019년 4월에 발의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2017년 9월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에선 각각 '남북 간 교류와 관계 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명시하고, 남북경협기업의 사업이 경영 외 사유로 중단됐을 때 보상 범위를 넓히는 조항을 넣었다.

다만 이들 법안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부분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② 북한 미사일] 합의 위반, 도발은 이제 그만

이인영 후보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 2019년 5월 10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보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는 정신적으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법률적으로는 위반이냐 아니냐를 따질 수 있겠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합의의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군사적 행동은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북미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북한이 더 이상 도발적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③ 대북전단] 접경지역 주민에 위협이자 피해 
 
박상학 대표가 북한에 보낸 전단 박대표가 북한에 살포한 전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세습수령절대독재를 위해 형님(김정남)까지 독살한 희대의 악마, 인간백정'이라고 규정했다.
▲ 박상학 대표가 북한에 보낸 전단 박대표가 북한에 살포한 전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세습수령절대독재를 위해 형님(김정남)까지 독살한 희대의 악마, 인간백정"이라고 규정했다.
ⓒ 신나리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쟁점이 된 적이 있었다. 2016년 9월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대북전단 살포의 적합성 유무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중 대북전단 살포행위 규제를 협력법으로 규율하는 것을 놓고 정부·여야의원들의 입장이 엇갈렸던 것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은 대북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할 경우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인영 후보자는 외통위 회의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해당지역 주민에게는 명백한 위협이고 재산상 피해가 있을 수 있다"라며 "정부와 통일부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30일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대북전단 살포행위 등 남북합의서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고, 미수범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해 사전적 차단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21대 국회 첫 번째 법안으로 발의했다.

개정안에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행위, 시각매개물 게시행위 및 북한 전단 살포행위 등 남북합의서에 위배 되는 금지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12명의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들과 함께 이 법안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④ 북한인권법] 실효성 없다, 북한 개방이 더 현실적

이인영 후보자는 북한인권법에 대해 "미국, 일본의 북한인권법과 같이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압박 수단일 뿐 실효적이지 않다"라면서 "북한을 압박 및 고립하는 정책은 그동안 효과적이지 않고 실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2011년 12월 김재원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펴낸 <진보 보수 마주보기>에서 "법의 실효성이 있어야 하는데, 남한에서 북한인권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 실효성이 없지 않나요. 미국의 북한인권법이든, 일본의 북한인권법이든 모두 일종의 북한 압박 수단이지 그 법 자체가 실제로 북한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실효적인 지배력은 없지 않을까요"라고 꼬집었다.

이 후보자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북한과 소통하고 문호를 열어서 북한 사회 전체에 변화가 생기도록 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우리가 북한 인권을 개선하자는) 말을 하는 것까지도 인색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사실 저는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라며 "북한 인권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으면서도 북한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 동반해 간다고 하면 당연히 그리 가자는 것이죠"라고 주장했다.

[⑤ 한미워킹그룹] 독자 추진 가능한 일 하겠다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사진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한미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남북 교류협력 사업 관련 대북 제재 면제를 효율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채널로 출범했지만, 실제로는 북미 비핵화 협상보다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앞서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측면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상 한미워킹그룹의 제재 면제 '승인' 없이는 철도·도로 연결, 이산가족 화상 상봉, 양묘장 건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사업 등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한 사안들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인영 후보자는 지난 6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우리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대북)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므로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남북 간의 대화와 북미 간의 대화가 끊기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 기능을 담당하는 한미워킹그룹의 틀을 벗어나 통일부가 독자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독자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오는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취재수첩] 문재인 대통령 향한 ‘구두 테러’ 현장 목격기

구멍 뚫린 대통령 경호, 만약 폭탄이었다면?
 
임병도 | 2020-07-17 08:40: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제(7월 16일) 국회는 다른 날과 달리 검문검색이 철저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식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 예정됐기 때문입니다.

국회 본청 주변에는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과 경호 차량이 자리를 잡았고, 입구에는 국회 방호직원과 청와대 경호원들이 이중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엑스레이 장비를 통과하고 난 뒤에도 경호원의 몸수색과 가방 검사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과 본청 입구 계단, 로텐더홀은 사전에 취재 허가를 받은 비표를 착용한 기자들만 갈 수 있을 정도로 삼엄했습니다.

기자는 원래 국회에서 촬영도 하고 있지만, 국회 영상 기자단 소속이 아니라 카메라를 휴대하지 못하고 취재 비표만 받고 겨우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2시 20분에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약 30여분 동안 연설을 했습니다. 2시 52분쯤 연설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박병석 국회의장 등을 만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오길 기다렸던 50대 남성

▲기자와 구두 던진 남성이 서 있던 자리. 빨간 카페트 주변에만 경호원들이 있었고, 장애인 통로 주변에 바로 옆에는 경호원이 없었다.

본회의장에서 취재를 한 뒤 본청 입구로 내려왔습니다. 경호 차량과 문재인 대통령 전용차가 입구에 대기하고 있어, 가시는 모습을 보고 소통관(국회 미디어센터)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본청 입구에는 구역 비표를 받은 취재진만 있을 수 있어, 야외기단 옆 장애인 통로 쪽에 서 있었습니다. 기자 옆에는 50대 남성이 스마트폰을 들고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남성의 목에는 국회 출입증도 없고, 행사 참석이 가능한 비표도 없었습니다. 국회 직원이나 보좌관, 취재진, 방문객은 모두들 출입증을 착용하고 있는데 남성은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구두에 맞을 뻔한 문재인 대통령

 

 

15분 정도 기다리자 문재인 대통령이 나오시는지 경호원들과 취재진들이 분주해졌습니다. 이윽고 문재인 대통령이 나오시고 차량에 탑승하려는 순간 갑자기 옆에 있는 50대 남성이 “빨갱이 문재인”이라는 소리와 함께 신고 있던 구두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던졌습니다.

다행히 문 대통령은 구두에 맞지 않았고, 그저 이쪽을 한 번 쳐다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차량에 탑승하고 국회를 떠났습니다.

남성이 구두를 던지고 소리를 치자 즉시 경호원들이 움직였습니다. 갑자기 저에게 달려드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놓칠 뻔했습니다. 다행히 경호원들과 방호직원들은 제가 아닌 그 남성을 제압했습니다.

“빨갱이 문재인을 자유대한민국에서 당장 끌어내라”고 소리쳤던 남성은 급히 달려온 청와대 경호원과 국회 방호직원에 의해 제압당했지만, 계속해서 “가짜평화주의자, 가짜 인권주의자 문재인이 어떻게 평화와 인권을 운운하냐”며 소릴 질렀습니다.

이 남성은 방호직원들이 제압을 한 상태에서 ‘잡지 말라’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에게 구두를 던져 놓고 잡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황당했습니다.

덧붙여 이 남성은 “신발을 문재인을 향해 던졌으니, 그 사람 보고 고소하라고 하라”면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잘 모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구멍 뚫린 대통령 경호, 만약 폭탄이었다면?

▲기자와 구두 던진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서 촬영한 사진. 대통령 전용차 탑승 통로와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 구두 테러 사건을 목격하면서 만약 구두가 아니라 폭탄이었다면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청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방 검사를 했지만, 이 남성은 야외기단 쪽에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검사를 받지 않은 듯했습니다.

사진은 저와 구두를 던진 남성이 위치한 곳에서 촬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용차 탑승 위치와 약 10미터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총을 들었다고 해도 경호원들 때문에 저격할 수는 없었겠지만, 수류탄이나 사제 폭탄이라면 충분히 살상 반경 범위 내였습니다.

남성이 구두를 던진 직후 경호원들과 방호직원이 뛰어왔지만, 그 시간이 약 3초 이상이었습니다. 충분히 두 번째로 뭔가를 던질 시간적 여유가 됐습니다.

사실 경호원들이 남성을 바로 제압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애인 통로라서 경호원들이 돌아서 올라와야 했고, 제가 좁은 통로에 서 있어 저를 밀치지 않고서는 바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호원들이 제 쪽으로 뛰어 오길래 저도 놀랐습니다.

극우 세력 중심으로 유사 사건이 벌어질 수도

▲경찰에 인계되기 전까지 방호직원에게 둘러싸인 구두 던진 남성. 이 남성은 자신은 일반 시민이며 국민이 받는 치욕을 느껴보라고 구두를 던졌다고 말했다.

아마 청와대 경호실은 이날 난리가 났을 겁니다. 비록 구두였지만 대통령 바로 곁에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경호상의 허점을 보여준 셈입니다.

이날 경호원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설마 하는 마음 때문이었지 모릅니다. 저 또한 국회에서 대통령을 향해 구두가 날아올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 런식의 테러는 계속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극우 유튜버들은 마치 정씨를 애국지사나 의사로 지칭하며 오죽하면 구두를 던졌겠느냐며 옹호하고 있는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갖은 막말과 욕설을 하는 극우 세력 중에 또다시 비슷한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청와대 경호실은 극우 세력들을 주시하며 지금보다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문재인 대통령에게 구두 던진 남자의 최후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8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가 외면한 세계,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이겼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7/17 12:01
  • 수정일
    2020/07/17 12: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쿠바와 코로나19] 느린 사회,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나다

여기, 우리가 외면해 온 작은 나라가 있다. '저개발국'이라 치부되던,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의 바깥에 있는 세계, 쿠바에도 코로나19는 찾아왔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2020년 7월 3일까지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400명 이하이고, 총 사망자는 86명이다. 사망률도 WHO의 평균보다 낮은 3.6%이다.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재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교에 재학중인 김해완 씨가 본 '쿠바의 의료 체계'와 관련된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혼비백산하기 전까지, 쿠바는 한국의 배낭족들 사이에서 격상하고 있던 새 여행지였다. 올해 3월에 쿠바 국경이 닫히기 직전까지도 아바나 시내를 돌아다니는 한국 여행객들이 보일 정도였다. 숨 쉴 틈도 없이 돌아가는 한국과 정반대라는 이질성에 끌렸던 것일까? 수많은 여행 책자들은 쿠바를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소개했다.

 

쿠바가 원래부터 이런 정적인 이미지였던 것은 아니다. 한때 쿠바도 찬란한 근대화를 꿈꿨다. 1959년에 시작된 혁명 정부는 쿠바 경제를 왜곡시키는 외국 자본을 일소하고 국민 모두를 위한 발전을 추진했지만, 발전의 시계는 1991년에 멈췄다. 쿠바를 지원국이었던 소련이 공중분해된 것이다. 그 후로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를 홀로 버텨냈다. 이 고립된 생태계가 역설적으로 오늘날 어떤 사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느린 풍경’을 만들어냈다. 쿠바에서는 거의 모든 물품이 품귀이고, 인터넷 환경도 몹시 제한적이다. 하지만 그게 또 쿠바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다. 50년대 미국산 올드카가 여전히 길거리를 굴러다니고, 밤이 되면 말레꼰(아바나 바닷가의 방파제)에 모인 사람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여흥을 즐긴다. 개발의 열기가 침투하지 않은 커뮤니티 속에서 쿠바인들은 정을 나누며 소박하게 살아간다.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했나

 

이 조용한 섬나라에도 어김없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도착했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출발한 바이러스가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고 대서양을 가로지르기까지 석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쿠바의 국가수입 1위를 책임지는 것이 관광업인데, 이곳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보내는 국가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혹독히 겪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쿠바 정부도 공항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는 수준의 조치를 취했지만, 지역 사회 감염 리스크가 점점 불거지면서 결국 국경 봉쇄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관광업을 잠시 접더라도 팬데믹 방역에 힘을 쏟겠다는 뜻이었다.

 

국경 봉쇄를 나흘 앞두고 뉴스가 나오던 날, 쿠바에 있던 외국인들은 앞 다투어 쿠바를 탈출했다.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한국과 중국이 겨우 코로나바이러스의 불길을 잡았고, 의료 물자가 넉넉한 유럽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신속한 페이스에 완전히 휘둘렸다. 그런데 쿠바 같은 나라가 어떻게 코로나바이러스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곳에는 고도의 테크놀로지도 없고, 의료 물자는 만성적으로 부족하며, 음압병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쿠바는 파죽지세의 바이러스를 막아낼 무기가 없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믿음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예상을 깨고 쿠바가 연신 훌륭한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2020년 7월 3일까지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400명 이하이고, 총 사망자는 86명이다. 사망률도 WHO의 평균보다 낮은 3.6%이다. 수도 아바나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며, 3단계에 걸친 정상화 과정이 이미 진행 중이다. 중남미 대륙이 팬데믹의 새 진원지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쿠바의 방역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루에 새 확진자가 4만 명씩 늘어나는 브라질 같은 이웃나라는 물론이고, 중남미 대륙 바깥과 비교해도 상황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쿠바는 의료 붕괴를 겪는 나라들을 돕기 위해 의료진을 외국으로 파견하기까지 했다. 시작부터 그랬다. 쿠바 의사들이 이탈리아로 파견된 것이 국제 뉴스에 떴을 때는 쿠바도 막 방역을 시작하던 3월이었다. 그 동기가 국제적 이타심이냐 의료의 정치화냐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세계 만국이 의료 붕괴로 쩔쩔 매는 상황에서 이는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쿠바가 내민 손길이 그 나라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쿠바 아바나 시내의 거리 ⓒ박세열

쿠바의 발명품, 의료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떻게 이런 성취가 가능했을까? 쿠바의 의료체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결과에 놀라지 않는다. 쿠바에는 ‘가난한 의료선진국’이라는 별칭이 있다. 비록 경제규모는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치지만, 의료 부문만큼은 그 수준이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기준으로 쿠바는 인구 천 명 당 8명의 의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최소 네 배는 더 높은 수치다. 또 쿠바 의료 시설은 완벽하게 공공 영역으로서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따라서 쿠바의 평균 수명과 유아사망률이 선진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물론 쿠바 의료를 미화해서도 안 된다. 쿠바의 어려운 상황은 의료 부문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의료 물자의 부족은 언제나 의료진의 발목을 잡고, 낙후된 의료 시설이 위험을 초래할 때도 있다. 제1세계의 인력과 제3세계의 조건, 쿠바 의료 시스템은 이 양면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독창적인 발명품이다.

 

이 독특한 의료제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기세를 꺾을 수 있었던 것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지난 몇 달 간 쿠바의 방역 활동에 직접 참여한 의대생으로서, 나는 총 세 가지 이유를 꼽겠다. 첫 번째는 의료 제도의 높은 접근성이고, 두 번째는 뻬스끼사(pesquisa)라 불리는 의대생들의 문진(問診) 활동이며, 세 번째는 주민들의 끈끈한 커뮤니티다. 이번 프레시안 연재를 통해서 이 항목들을 하나씩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의료시설의 접근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 때 쿠바인들이 보여준 일사분란함은 이 나라가 반세기 넘게 쌓아온 의료제도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 시간 동안 의료가 주민들의 일상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그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쿠바의 의료제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100% 무상’이라는 키워드에 먼저 시선을 뺏긴다. 병원 문턱을 넘은 쿠바인들 중 누구도 돈을 내지 않는다. 방문 이유가 해열제 처방이든 간이식수술이든 상관없다. 이는 의료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지정한 헌법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비 무료만으로 의료 접근성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물리적인 접근성도 몹시 중요하다. 병원이 너무 멀어서 걸음하기가 어렵다면 이는 의료제도로부터 물리적으로 소외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쿠바 의료의 또 다른 아이콘이 탄생한다. 가족주치의와 그들의 근무지인 꼰술또리오(Consultorio)가 바로 그것이다. 꼰술또리오는 동네 산보를 하다보면 몇 개씩 볼 수 있을 만큼 흔하다. 어느 가정집에서든 도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족주치의는 그곳에서 몇 년씩 상주하면서 평균 500가구의 가족들의 건강을 상시적으로 살핀다.

 

꼰술또리오는 쿠바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료 시설이다. 그 위에는 24시간 운영되는 동네 종합 병원인 뽈리끌리니꼬(Policlínico)가 있다. 하나의 뽈리끌리니꼬가 스무 개 정도의 꼰술또리오를 관리하는데, 가족주치의가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환자를 받는다. 뽈리끌리니꼬에서 해결할 수 없는 소수의 케이스만 오스삐딸(Hospital)이라 불리는 대형 병원으로 따로 운송된다. 이 체계적인 시스템은 무(無)에서 창조되지 않았다. 이는 ‘예방’을 화두 삼아 80년대부터 설계되었다.

 

▲쿠바 아바나 시내 바닷가의 풍경 ⓒ박세열

예방 의학, 1차 진료의 중요성 보여준 쿠바의 코로나 대응

 

물자가 항상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좋은 치료법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발병을 막는 것이다. 병이 싹을 틔울 때 일치감치 그 뿌리를 뽑는 것이다. 이것이 일차 진료(primary care)의 의미이며, 일차 진료의 꽃인 꼰술또리오와 뽈리끌리니꼬는 실제로 80%의 환자를 조기에 치료한다.

 

예방의학에 최적화된 쿠바의 의료제도는 전염병 예방에도 제 몫을 해냈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쿠바 정부가 실행한 고육지책 중 하나가 대중교통의 전면 중단이었다. 통행량을 줄여서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였다. 쿠바에서는 개인 승용차를 소유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들의 발을 묶어놓는 조치와 다름없다. 하지만 이 고립 조치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는데, 교통수단 없이도 의사를 만나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사람들과 함께 동네에 산다. 병원은 먼 시가지가 아니라 바로 동네에 있다. 사람들에게 의료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팬데믹 속에서 이 ‘동네 의료팀’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이다. 덕분에 쿠바 정부는 안심하고 교통을 멈출 수 있었다.

 

동네의 고립은 오히려 의료인들의 역량을 지역 사회에 더 효과적으로 집중시켰다. 가족주치의들과 간호사들은 현재 휴일도 없이 근무하면서 동네 상황을 스캔하고 있다. 온 주민들이 자기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사태 파악이 더 용이하다. 확진자는 발생하자마자 동네에서 격리 시설로 신속하게 이동된다. 접근성 높은 의료체계에 양질의 의료진이 더해지면서 이뤄낸 쾌거다.

 

쿠바의 방역은 쿠바 맞춤형이다. 그대로 따라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쿠바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소중한 현장이다. 우리는 선진국에서만 과학과 의료가 발전할 수 있다고들 생각한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쿠바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현장으로 증명한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지 않고 정보도 전산화되지 않은 쿠바지만, 쿠바의 ‘아날로그 방역’의 효과는 훌륭한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세포 밖에서, 즉 사람 밖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양상도 사람 사는 모습을 닮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방법도 사람 사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저개발’이라고 치부되는 느린 사회에도 바이러스를 잡는 느린 전략들이 살아있다.

 

앞으로 이 전략에 대해 하나씩 소개할 예정이다. 의료진 외에도 의대생과 주민들 역시 방역에서 톡톡히 제 몫을 하고 있다. 전 세계 국경이 막혀버린 현재, 이 연재가 독자들에게 머나먼 쿠바를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 김해완은 현재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교 재학생입니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 (북드라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북드라망), <뉴욕과 지성> (북드라망) 이 있습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1516230592795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머릿속 생각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여성서사로 본 국보법 8월25일부터 한달간 전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7.16  21:07:37
페이스북 트위터
   
▲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원회'는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원회]

지난 72년동안 국가보안법은 누군가의 생각과 말을 가로막는 악법이었다.

이 법이 특별한 어떤 개인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법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전시회가 열린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는 오는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한달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를 개최한다.

추진위원회는 15일 오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전시회 개최를 앞두고 사전 설명회 성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전시회는 그동안 온전히 기록되지 않았던 국가보안법 피해자이거나 피해자의 가족인 여성들의 구술을 젠더석 관점에서 채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며, 여성들의 구술은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부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과 2부 '국가보안법 연대기'로 구성되며, 주요 주제인 1부에서는 구술채록집에 담긴 여성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낭독하고 2부에서는 국가보안법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맥락을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고애순, 권명희, 김은혜, 김정숙, 배지윤, 안소희, 유가려, 유해정, 정순녀 씨 등 국가보안법으로 감금된 세계를 경험한 11명의 여성들이 한 구술을 구술작가단의 홍세미, 이호연, 유해정, 박희정, 강곤 씨가 기록하고 구술자들의 사진은 정택용 사진작가가 촬영했다.

이들 여성들의 구술은 배우 문소리, 조민수, 소설가 정세랑, 황정은, 영화감독 김일란, 임순례, 래퍼 슬릭, 가수 요조, 문학평론가 손희정,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김시연 어머니 윤경희, 변호사 이상희 씨의 목소리로 일상공간에서 녹음되었다.

1부는 남영동 대공분실 심문실로 사용되던 5층에, 2부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자료를 바탕으로 4층 전시장에 구성된다.

민주인권기념관 중앙정원에는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상징하는 '12개의 문'이 설치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국가보안법으로 잡혀온 사람들을 가둔 문을 뜻하는데, 각각의 문에는 국가, 민주주의, 자유, 평화, 정의, 그리고 법에 대한 질문이 새겨진다.

기념관 1층에는 국가보안법에 감금된 세계를 의미하는 검은 방이 설치된다. 끊임없이 국가보안법 법조항이 읊어지는 이 방에서 관객들은 방 구석 책상에서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는 글을 쓰고 그 글을 벽에 걸어두는 실천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회를 총괄 감독하는 권은비 예술감독은 "국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억압했는데 그 피해는 개개인의 몫이었다. 전시에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보다는 당사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감금됐던 사상의 자유, 억압된 것들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 국보법 폐지운동을 주되게 한 이들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기억, 기록, 망각에 반하여-여성의 목소리로 전하는 국가보안법』(가제) 책을 준비하고 있는 구술 작가단 강곤 작가는"'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라는 시민운동이 준비되면서 국가보안법이 박물관으로 간다면, 가기 전부터라도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목소리'’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며, "그 목소리에는 당연히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당사자 주변의 사람들, 당사자이지는 않지만 피해를 당했던 사람들,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보안법과 당당히 맞선 싸우는 사람들,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활용한 권력자, 가해자, 그리고 이 법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요 주제로 잡은 이유는 "2018년 미투 이후 한국사회는 리모델링 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환기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그와 같은 흐름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거대담론이 아닌 우리의 삶, 일상, 소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김명환 위원장은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배치하거나 전시하는 것이 박물관인데 이번 전시에서 무엇이 살고 무엇이 죽어야 할지 뚜렸이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자, 죽어야 할 것은 국가보안법"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형 민변 회장은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몇 국가가 되지 안된다. 특히 7조 천양고무죄는 이미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다. 전시회가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촉발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규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이번 전시회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예술가가 함께 하고 시민의 참여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마련하려고 한다"며, "코로나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이 관람하고 참가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NSA.Museum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nsa_museum/

   
▲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 포스터. [사진제공-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원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군사훈련, 알고보니 참수작전 포함된 ‘선제공격’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0.07.15 18:05
  •  
  •  댓글 1
 
   
 

​주한미군을 비롯한 태평양사령부 미군기지들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해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하지만 정작 더 큰 걱정은 딴 데 있다.

오는 8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예정대로 전개되면 지난 6월 정식 편제로 출범한 레인저 부대가 출격한다.

이 경우 북한(조선)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대북전단에 대해 ‘최고 존엄’을 건드렸다며 보복을 각오하라던 북한(조선)이 ‘참수 작전’ 임무를 띤 레인저 부대를 어떻게 취급할지 불 보듯 뻔하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여부에 한반도 평화가 달렸다. 단지 미군부대에 만연한 코로나19가 군사훈련 과정에 확대되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적으로 대하는 행위를 중단키로 한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대로 이참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중단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의 길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참수작전 포함된 선제공격 훈련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주한미군사령관이 비준한 ‘작전계획OPLAN’에 따라 전쟁연습을 진행한다.

2015년 6월에 발효된 ‘작전계획 5015’는 북한(조선)과의 전면전에만 초점을 두고 있던 작전계획 5027을 개선한 후속 계획이다.

작전계획 5027이 방어·반격·수복으로 짜인 방어개념인 반면, 작전계획 5015는 북한(조선) 핵심시설 700곳 이상을 유사시 선제타격하는 계획이다.

특히 작전계획 5015에는 북한(조선) 지도부를 겨냥한 ‘참수작전’을 위해 전쟁 시기에나 창설되던 미군 최정예 특수부대 ‘레인저’(제75레인저연대)를 한국에 둔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단지 계획에 그친 게 아니라 2017년 5월에 임시 부대로 창설된 제75레인저연대 정보대대는 지난달 정식 편제로 출범했다. 이 부대는 무인항공기 운용, 정보 수집 및 분석(인간정보, 기술정보, 지형정보 등), 방첩, 사이버 대응 등을 맡게 된다.

▲ 레인저 부대에서 운용하는 MH-6M Little Bird. 레인저 부대는 1942년 창설된 제1레인저대대가 시초이고, 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의 밀러 대위가 제2레인저대대 C중대장이며, 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서 고전하는 부대는 제3레인저대대 B중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창설되어 전쟁이 끝나면 해체했다. 그러나 1975년 상설부대로 제75레인저연대가 창설되었다. [사진 : 미 특수 작전 부대 홈페이지]
▲ 레인저 부대에서 운용하는 MH-6M Little Bird. 레인저 부대는 1942년 창설된 제1레인저대대가 시초이고, 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의 밀러 대위가 제2레인저대대 C중대장이며, 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서 고전하는 부대는 제3레인저대대 B중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창설되어 전쟁이 끝나면 해체했다. 그러나 1975년 상설부대로 제75레인저연대가 창설되었다. [사진 : 미 특수 작전 부대 홈페이지]

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됐던 레인저 부대는 1950년 한국전쟁 때 6개 레인저 중대로 재창설되었다. 제8군, 제2보병사단, 제3보병사단, 제7보병사단, 제25보병사단, 제1기병사단, 제187공수연대, 제1해병사단 등에 배속되어 정찰, 습격, 매복, 반격 선두 부대 임무를 맡아보던 레인저 부대는 전쟁이 끝난 1956년 해체되었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종류만 14개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봄·가을에 실시하는 동맹연습(alliance exercise)이 대표적이다.

3월에 열리는 동맹연습은 1976년 팀스피릿(Team Spirit)으로 시작해 1994년에 한미 연합전시증원연습(RSOI)로 바뀌었다가, 2008년 키 리졸브(Key Resolve)와 독수리 연습(Foal Eagle)으로 대체됐다.

2018년엔 평창동계올림픽 관계로 쉬었다가 2019년에 “19-1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지만,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실시되지 않았다.

하반기 동맹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UFG)은 1954년부터 유엔사가 주관하던 포커스렌즈 군사연습과 정부 차원의 군사지원훈련인 을지연습을 통합한 훈련으로 매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실시한다.

2019년엔 프리덤가디언을 떼어내어 역시 “19-2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후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으로 교체됐다.

상·하반기 실시하는 한미 연합공중훈련 맥스 선더(Max Thunder)와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는 2019년부터 ‘연합 편대군 훈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밖에도 한미연합 상륙훈련인 쌍용훈련(격년제), 대테러 종합모의훈련인 연합대테러훈련(연 1회), 해상에서 모의전투·함포사격 등을 훈련하는 환태평양훈련(격년제), 선박수색 및 구조를 훈련하는 한·일 수색 및 구조훈련(격년제), 잠수함 승조원 구조를 위한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전 훈련(3년 1회), 기뢰대항전 훈련인 서태평양 기뢰대항전훈련(격년제), 잠수함 전력을 평가하는 한미 잠수함전 훈련(격년제), 상륙돌격을 위한 연합상륙전훈련(연 1회), 전력 중고도 침투훈련인 연합공격편대군훈련(연 6회), 저고도 침투 및 비포장 활주로 전술강습 이착륙 훈련인 태평양 공군 연합전술훈련(격년제)이 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