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오늘날 다시, 2016년 촛불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김종철 선생을 기리며] 촛불시위와 '시민권력'

"산업주의 문화는 이러한 겸손의 자세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성장해왔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인간'은 도덕적, 정신적으로 극히 왜소한 미숙아가 되어버렸다. 산업의 세계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자기 확대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분별없이 확대되어 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폭하고 어리석은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현재의 전 세계적 위기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웅변한다. 즉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해 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인간이 우애롭게 지내며, 각 개인이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그런 삶이었다. 그는 공생공락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로 농(農)의 세계와 촌락 자치를 주장했지만 이는 결코 복고 취미가 아니었다. 공생공락을 위한 세계 각지의 여러 움직임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연구하면서 이끌어낸 통찰이었다.


 

신문‧잡지의 칼럼을 모아 2016년 발간한 <발언 1,2>의 머리말에서 그는 "칼럼을 쓰는 동안 매일매일 발간되는 국내외 신문, 뉴스 매체들을 훑어보는 일이 어느덧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발언'을 위해서는 우선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주목('경청')하는 게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귀를 열어 경청한다는 것은 '발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윤리"이며 "농민, 노동자, 생활인들의 '현장'이 논밭과 공장 혹은 시장인 것처럼,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은 뉴스매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끼니를 거르는 일은 있어도, 신문이나 뉴스매체를 거르고 지나가는 날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리하여 일정하게 구독하는 몇몇 국내 신문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통해서 외국 언론매체들의 주요 기사, 논평들을 읽는 데 골몰하다 보면 오전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만다."

 

실제로 그는 하루 4시간 이상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한국에서 최초 또는 유일한 정기구독자인 외국 간행물이 여럿 된다고 자랑(?) 삼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가 탁월한 생태사상가인 동시에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처럼 폭넓은 탐색과 치열한 고민 끝에 지역화폐, 기본소득, 시민의회에 이르기까지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현실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나아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에 참여하는 등 그는 근래 보기 드문 전 방위적 지식인이자 실천적 사상가였다.


 

사실 김종철 선생이 걸은 길은 외로운 길이었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있었다. 1999년 펴낸 <간디의 물레> 머리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8년간 <녹색평론>을 엮어내는 일은 무엇보다 내게는 개인적인 구원이었다. 아마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치거나 깊이 병들었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녹색평론>의 편집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 안팎에 걸쳐 의의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그러한 사람들과 깊은 유대 또는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대감이나 우정을 통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형성에 새로운 삶의 희망이 달려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2008년 펴낸 <땅의 옹호>에서는 2004년 대학 교수직을 떠난 이후 4년간 계속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 "대학생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자본주의 문명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김종철의 사상과 통찰이 절실한 이때, 그는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은 그가 말한 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의 원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김종철 선생의 저서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발언 1,2>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중에서 9편의 글을 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시대를 바꾸고자 한 예언자이자 실천적 사상가, 김종철' (박승옥 글) 

2. 왜 녹색평론을 시작하였는가(1995년,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3. 거짓언어와 '성장'논리 속에서-나의 한국 현대사(2012년, <발언 1>) 

4. 땅의 옹호(2002년,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5.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開眼이다(2006년, <땅의 옹호>) 

6. 지역통화-삶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술(1998년, <간디의 물레>) 

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책머리에(2019년) 

8.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2008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9. 촛불시위와 시민권력(2017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0.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순환(1998년, <간디의 물레>)


 

시인 김해자는 근작 시 <여기가 광화문이다>에서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이것은 지금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많은 시민들의 공통적인 심경일 것이다.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빛이 사방을 덮어 세상 곳곳으로 퍼진다는 광화문"으로 모이는 까닭은 명백하다. 세습권력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충성해온 직업정치인, 관료, 언론, 각종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배체제를 탄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연민과 분배와 정의가 얼어붙은 사이/농촌은 해체되고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의 삶은 망가져버린" 나라를 다시 일으켜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 되고 분노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만인이 만인에게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되는 세상을” 열자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경이롭게도, 토요일의 광화문 풍경은 우리가 평소에 안다고 생각했던 그 한국 사회가 아니다. 거기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배려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로 충만한 공간이다. 물론 같은 목적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그곳이 환대의 장소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엄청난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안전을 배려하여 몹시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뭐든지 기꺼이 남에게 양보하려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바로 어제까지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도생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뿐만 아니다. 시위가 열리는 광장에는 개인 돈을 들여 마련한 촛불이나 핫팩 혹은 김밥을 참가자들에게 열심히 나눠 주는 이들이 있고, 자기 장사는 접고 차와 음식과 떡볶이를 무료로 나눠 주는 소상인들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젊은 자원봉사자들은 여기저기서 임시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팻말을 들고 추위 속에서 몇 시간이고 서 있거나 대규모 집회와 시위에 필요한 경비 마련을 위해 모금함들을 들고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를 돌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는 이 밖에도 많다. 시위가 있는 날은, 가령 청와대 근처의 도로는 경찰차들이 철벽처럼 길을 막아 놓고 있는 탓에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동네, 특히 세검정 일대의 주민들은 시위에 참가하려면, 그리고 참가한 뒤 귀가하려면, 걸어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중간에 자하문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몇몇 인근 주민들이 자신들의 승용차를 가지고 나와서 터널 구간을 무료로 태워주는 일종의 셔틀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내놓고 시위에 참가하고, 참가를 독려하는 이런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결코 ‘이상한’ 대통령 하나 때문에 광화문에 모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참으로 실감 난다. 사람들의 열망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제는 썩어 문드러진 구체제를 제대로 청산하고 정말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 세상은 어렵고 복잡한 말로 묘사할 필요가 없다. 주말의 광장에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에 대한 비전과 지혜가 놀랄 만큼 선명하게, 풍부하게, 강력하게 분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에 오른 어떤 밴드 가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옛마을운동"이라고 노래 불렀다. 그 노래의 뜻은 일찍이 박정희 정권이 요란하게 떠들고 유포시킨 '새마을정신'이란 실은 황금 물신주의를 조장하고 (농촌)공동체를 와해시킨 원흉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서로 돕고 살았던 '옛 마을'의 정신을 되살리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이 나라 정치인들이 "밥값을 못하고" "서비스 정신"이 몹시 부족하다고 신랄하게 꼬집고, "서비스를 제대로 못하는 업체는 갈아치우는 게 당연하다"고 읊조렸다.


 

주말의 광화문광장에서 듣는 발언은 감동적인 게 한둘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정치인, 기성 언론, 지식인들의 발언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생생한 힘이 넘쳐난다. 그것은 풀뿌리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과 생각들이 가식 없이 진솔하게 개진되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나라를 또박또박 설명하는 어린 학생들, 갑갑해서 강원도 산촌에서 서울로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시골 할머니, 지금 농촌이 어떻게 황폐화되고,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를 비통한 어조로 말하는 늙은 농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언급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등등. 광화문광장에서 지금 표출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수준 높고 품위 있는 언어들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새삼 느끼는 것은 종래의 정당정치, 대의제 민주주의로써 과연 이러한 민중의 민주적 열망과 지혜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민중의 지적·정신적 수준을 반영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런 기준에서 본다 하더라도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민중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게 아닌가?

 

주말의 광장에서 울려 나오는 구호 가운데는 쌀값 문제, 노동 탄압, 인권 및 환경 문제 등등 개별적 이슈에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가장 집중적으로 말해지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퇴진 문제이다. 완전히 무자격자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람이 한순간이라도 더 대통령직에 머무르는 것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스스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릴 것 없이) 당장 물러나는 게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대통령의 퇴진 문제 이외에 또 하나 강력하게 울리고 있는 구호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재벌문제를 척결하자는 외침이다. 실제로 이번 탄핵 사태에서도 역시 재벌이 문제였다는 것은 단순히 의혹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즉, 이번에도 재벌과의 부당한 거래에 국가권력이 남용 내지는 요용되었다는 언론 보도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 지금 광장에서 재벌 척결을 외치는 구호가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제 재벌 문제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좌절시키고, 한국 사회가 인간다운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원흉이라는 인식이 이 사회에서 광범하게 공유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의 한국 사회가 ‘헬조선’으로 돼버린 것은 무엇보다 소위 정경유착, 즉 정치가 금권에 의해서 유린·농락돼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이제는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된 느낌이다. 이른바 정계뿐만 아니라, 나라의 근본 중의 근본인 도덕적·윤리적 기초를 수호해야 할 언론도 학계도 사법부도 얼마나 금권에 의해 오염되고 타락 일로를 걸어왔는지는 지금 대다수 시민들이―아이들까지도―뼛속 깊이 알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은 정치권력과 금권의 부정한 결탁에 의해서 우리들의 삶이 끝없이 훼손되고 피폐해지는 상황을 더는 인내할 수 없다는 결의를 다지고 그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고 전국의 광장과 거리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선거민주주의를 넘어서


 

이 겨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래 처참한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끝끝내 꺾이지 않고 역사의 저류(底流)로 면면히 지속돼온 풀뿌리 저항정신이 다시 전면으로 분출하고 있는 장면임이 분명하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금 우리는 심히 긴장된 흥분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되돌아보면, 불과 두어 달 사이에 엄청난 일들이 신속히 진행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되새겨볼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즉, 지난 몇 년간 공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알지도 듣지도 못한 일개 사인(私人)에 의해서 이 나라 국가 운영이 철저히 농단·유린돼왔다는 황당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된 뒤,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단계가 된 지금까지, 이 상황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것은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정말로 촛불의 위력은 굉장했다. 사태 초기에는 무슨 계산을 하는지 탄핵을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국회가 마침내 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여당 의원들의 일부까지 가세하여 탄핵안을 처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촛불의 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던 검찰이 결국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여 수사에 돌입하게 된 것도 촛불의 거스를 수 없는 명령 때문이었다. 또한, 법원이 전례 없이 청와대 근접 거리에까지 시위대의 행진을 허용하고, 경찰이 습관처럼 취하던 시위대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일찌감치 포기한 것도 다름 아닌 촛불의 위력 때문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비록 매우 평화적인 시위라고는 하지만, 촛불을 통해서 발산되고 있는 시민들의 민주적 열망과 요구가 상상 이상으로 뜨겁고 강력한 것을 확인한 지배세력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에서 민중의 뜻을 거역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둔감하고 무책임하다 하더라도 이 엄청난 민중의 결집된 힘을 무시하고서는 결코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끈질기게 계속한다 하더라도 광장에서의 항거와 싸움은 어차피 영구적 지속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조만간 촛불의 크기는 줄어들고, 마침내 식어버리는 날이 온다는 것을 냉정히 고려해야 한다. 뭔가 이 상황에 '급진적인' 개입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대규모 촛불시위를 통해 전면으로 부각된 '시민권력'은 조만간 힘을 잃고, 민초들의 목소리는 또다시 억압되고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는 날이 올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디에서나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순간'은 일시적이고 단명한 것이었다. 민중항쟁에 의해 수세에 몰린 지배층은 일시 물러나서 양보를 하지만, 결국은 상황이 역전되고 역사적 반동이 시작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원래 근대 민주주의라는 게 철두철미 유산자들의, 유산자들에 의한, 유산자들을 위한 정치제도로 출발했고, 그 기본적인 틀이 수 세기 동안 조금도 변경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무산계층과 여성들에게까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부여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민주주의가 계속 변화·발전해왔다고 보는 견해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근대 민주주의는 그 외관상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늘 기득권층의 계속적인 지배를 합법화하고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해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대 민주주의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선거라는 제도가 큰 작용을 해왔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선거라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있듯이 본시 그 한계가 명확하다. 즉, 선거판에서는 거의 언제나 명망가나 재산가 혹은 그들의 비호와 지원을 받는 이른바 특권적인 '엘리트'들이 승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선거란 본질적으로 기득권층이 계속해서 집권하도록 돕는 장치, 다시 말해서 기득권층끼리 돌고 돌면서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매우 편리한 장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선거를 통한 정치는 불가피하게 금권에 의해서 오염·타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물론 정치가의 자질에 따라 부패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시 나약한 존재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든지 거의 예외 없이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타락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 본원적인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정치가의 개인적 자질에 관계없이 합리적인 정치가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고대 그리스인들, 공화정 시대의 로마인들, 혹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자유도시인들은 매우 현명한,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오랫동안 안정되게 유지했던 민주정이나 공화정 체제는 권력의 세습이나 집중화를 막고, 난폭하고 무책임한 정치가 불가능하도록 미리 구조적으로 설계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핵심적인 기제가 바로 제비뽑기였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없이 모두 ‘선거 근본주의자’가 되어버린 결과, 선거만이 공정한 정치제도를 보장한다는 근거 없는 미신에 빠져 있다. 하지만 원래 선거는 고대 이래 귀족 혹은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과두정(寡頭政) 체제가 즐겨 채택해온 제도였다(선거를 통해야 엘리트들이 계속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에). 반면에 민주주의 정신이나 공화주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한정된 공직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공직자는 제비뽑기로 뽑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제비뽑기로 뽑힌 대표자나 공직자들의 임기는 짧았고, 퇴임 이후에는 재임 중의 직무성과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평가와 감사(監査)가 실시되곤 했다. 가장 철저했던 예가 고대 아테네인데, 거기서는 심지어 실제로 아무런 과오도 저지른 바 없는 사람인데도 잠재적으로 독재자가 될 소질이 있어 보이는 인물은 시민투표를 통해서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라는 특이한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고 오늘날의 우리는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테네가 200년 동안이나 인류사에서 가장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아테네인들이 현명했던 것은 ‘권력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믿지 않고, 그 대신 부정·부패를 막는 사전 예방 장치로서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운영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민권력'의 제도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엄청난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이 촛불항쟁은 명백히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금으로서는 불명료하지만, 어떻든 우리가 이 상황을 통해서 보다 새롭고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길은 보다 밀도 높은 민주주의를 향한 길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광화문을 비롯해서 전국의 광장과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힘주어 말하는 게 있다. 즉, 나라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지, 일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1987년 6월이나 2008년 광우병 파동 때의 시위 상황에 비해서도 한결 더 진전되고 구체화된 민주주의적 요구의 직설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제 한국인들 대다수는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하고 결정할 때 그 의논과 결정의 주체는 직업적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소위 전문가들도 아니고, 평범한 시민들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훨씬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촛불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 지식인들 사이에서 '시민의회'나 '시민주권회의' 혹은 그 밖의 이름으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논의 및 결정 기구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도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예전의 시위 때에는 없었던 이런 제안이 지금 여기저기서 동시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것은 지금은 개별적인 사회문제를 하나하나 제기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보다 합리적인 정치가 가능한 틀, 즉 민주주의의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인 선진성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오늘날 극심한 사회적 격차 속에서 날로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미국의 평민들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파쇼적 기질이 농후한 무교양의 부동산 부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선택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선거제도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나 선택의 폭이 극히 협소했다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극우 파쇼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으로 쉽게 기울고 있는 오늘날 세계의 일반적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대다수 한국인들은 보다 강화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 이 점은 분명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시민들 중 상당수는 ‘시민의회’ 혹은 ‘시민주권회의’ 등의 제안에 대해서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런 개념 자체가 생소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국회가 있는데 왜 별도의 '의회'가 필요하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현재의 국회와 정당정치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탄핵정국이 발생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앞으로 국회가 할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이번의 대규모 촛불시위에서 우리의 정치가들이 배운 바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환골탈태할지 모른다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정치가의 선의를 믿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즉, 시민들이 상시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 기성의 정치가들이 민중의 의사를 정당하게 대변하는 정치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새로운 제도로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 중 가장 합리적인 것이 ‘시민의회’(혹은 ‘시민주권회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민의회는 전국의 평범한 시민들 중 (제비뽑기에 의해) 무작위로 뽑힌 대표자들이 자유로운 토론과 숙의가 가능한 규모의 회의체(mini―publics)를 구성하여, 거기서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아서 국가나 지방의 주요 현안을 의논·결정하여 국회와 정부로 하여금 이 결정을 수용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숙의민주주의’적 제도이다. 그러니까 개헌이든 선거법 개정이든 필요한 개혁에 대한 입안도, 사심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기성 정치가들에게 맡겨 놓지 말고, 이 시민의회가 주도적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방법은 근년에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가 개헌을 포함하여 주요 정책을 변경할 때 실행했던 방법이다(2016년 10월, 아일랜드는 낙태 합법화 문제를 비롯하여 몇 가지 현안을 토의하기 위해서 다시 시민의회를 출범시켰다).

 

시민의회를 잘 활용하면 보다 밀도 높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연간 1~2회 정도 시민의회를 소집하여 정부와 국회가 해당 기간 동안 행한 일들을 검토, 평가, 감사하고, 만약 오류와 부정이 있다고 판단될 때 정부와 국회에 주권자의 이름으로 시정명령을 내리는 제도도 충분히 구상해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숙고해야 할 것은, 이런 제도를 고안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이 촛불시위에서 발휘된 '시민권력'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시민의회'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시도해보지 못한 구상이고 가설이다. 하지만 우리가 염원하는 인간다운 세상은 우리들 자신의 용기 있는 상상력과 집단적 지혜로부터만 열린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2016년) 

출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녹색평론사, 2019년, 324~333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110562141846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터뷰] 기재부 개혁 벼르는 ‘파이터’ 김진애 “정신 차리게 만들겠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7/23 11:01
  • 수정일
    2020/07/23 11: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재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에 답답함 토로 “해야 할 일 안 하고 숫자 플레이만”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20-07-22 18:01:40
수정 2020-07-22 18:01:40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21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21ⓒ정의철 기자  
 
'저격수' 혹은 '파이터'. 열린민주당 원내대표인 김진애 의원을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18대 국회에서 2년 반이라는 짧은 의정활동 동안 4대강 사업 문제를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김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는 시작부터 기획재정부(기재부)를 향한 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도시 전문가'인 김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적 관심이 높은 현안인 부동산 문제를 언급하면서 기재부를 개혁의 대상으로 콕 집었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기재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직무유기'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기재부를 겨냥해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기재부에 대한 답답함이 가득 묻어났다.

기재부 직무유기 강하게 질타
"기재부서 할 일 안 하고 내버려 둬"

김 의원은 "부동산 문제의 기저에는 저금리 문제와 유동성이 많다는 데 있는데, 이것을 잡기 위해 기재부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세금과 관련된 것들은 기재부에서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기재부는 자기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도 해놓지 않고,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를 올리는 문제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니까 이렇게 온 국민이 '똘똘한 한 채'를 찾아서 삼만리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가 보유세가 낮다는 건 다 알지 않나. 보유세는 시장에 충격이 있기 때문에 국민에게 주의를 주면서 천천히 올려야 한다"라며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 있으면서 국회에 내버려 뒀다. 국회에 내버려 두면 미래통합당이 다 방어해주겠지라며 3년을 보낸 거 아니냐"라고 쏘아붙였다.

김 의원은 기재부가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 강화보다는 공급 확대에 무게를 두면서 '그린벨트 해제 검토' 등의 발언으로 정책의 혼선을 부추긴 것도 문제 삼았다. 참고로 문 대통령은 논란 끝에 전날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미래세대를 위해 두기로 결정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이제 와서 공급이 부족하다며 그린벨트를 푼다는 것도 왜 기재부가 나서는 것이냐"라며 "그것이야말로 국토교통부가 해야 하는 일이고, 환경부나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공급 때문에 부동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지 않느냐"라고 덧붙였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21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21ⓒ정의철 기자

김 의원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최고세율을 6%로 인상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부의 '7.10 대책'에 대해서는 "종부세를 올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마치 현행 3.2%에서 6% 올린 게 굉장한 것인 양 많이 올렸다고 한다. 이게 전형적인 (기재부의) 플레이"라며 "기재부는 끊임없이 숫자 플레이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개인별 종부세 과세표준 규모별 결정 현황'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종부세 최고세율 6%를 적용받는 대상은 고작 전체 종부세 납부자 38만여 명 중 20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전체 종부세 납부자의 0.005%에 불과해,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서는 종부세 과표 구간을 세분화하는 등의 세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지금 과세표준 구간도 3억 이하, 3~6억, 6~12억, 12~50억, 50~94억, 94억 초과 등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과표구간 12~50억은 시세로 하면 27~90억 정도 된다"며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왜 한 구간으로 묶느냐"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담아 과세표준 구간을 현행 6개에서 7개로 늘려 12~50억 구간을 12~20억과 20~50억 구간으로 나누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과표구간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두관 의원도 12~50억의 과표구간이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고, 박주민 의원 역시 입법 과정에서 이러한 주장도 함께 검토해 논의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김 의원은 "이것처럼 구간을 나누면 더 실효성 있게 세금이 부과된다"며 "제가 (부동산에 대해) 잘 알아서 하는 게 아니다. 제가 종부세 강화 법안을 내기 위해 스터디를 꽤 했는데 불합리한 점들이 보였다. 그런데 기재부에서는 불합리한 게 안 보이는 거다. (원래) 하던 대로 세금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기재부도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며 "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기재부가 혁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부처나 국회조차도 기재부에서 하는 숫자 게임에 놀아날 때가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다만 김 의원은 통합당이 제안한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는 "대체 누구 편을 들려는 것이냐"라고 일침을 가했다. 통합당은 '세금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기조하에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그린벨트 해제 등 공급량을 늘리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 의원은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통합당처럼 종부세도 완화하고 공급도 다 풀면 언제로 돌아가자는 거냐, 이명박 정부 때로 돌아가자는 거냐"라며 "건설업자 편들려는 것인지, 고소득층을 편들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산가만을 편들려는 것인지, 어떻게 이렇게 정신이 없나"라고 질책했다.

김 의원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입법으로 실현해내야 하는 민주당을 향해서는 "흔들리지 말고 꿋꿋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통합당이 생떼를 쓰면 '조금만 양보하자, 협치하자'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며 "최근 두 달은 민주당이 흔들리지 않고 잘 해왔다. '열린민주당은 3석이지만 우리가 뒤에 있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 국회 개혁도 고삐
"7월 임시국회서 정리돼야, 시간 끌면 문제 돼"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21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21ⓒ정의철 기자

부동산 문제 외에 '검찰 개혁'과 '국회 개혁'도 김 의원의 관심사다. 김 의원은 두 개혁 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인데,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법안심사 국면을 벼르는 중이다.

특히 김 의원은 검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김 의원은 "7월 임시국회에서 정리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꾸 뒤로 (시간을) 끌면 여러 가지 문제가 된다"며 검찰개혁의 고삐를 바짝 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물론 자신의 전문 분야와는 동떨어진 법사위에 '깜짝 배치'되면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김 의원은 "제가 (법사위 첫 회의에서) 비전문가니까 참신할 수도 있고 또는 엉뚱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두 가지 다 해보려고 노력 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의원은 가장 주력해야 할 검찰 개혁 과제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처(공수처) 출범을 꼽았다. 그는 "지금 검찰은 마지막 저항을 하는 중인데, 공수처가 있으면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검찰에서 수사권을 빼고 기소권만 남겨서 검찰이 정말 전문적인 검찰로 태어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 국토교통위로 배치된 최강욱 의원과 사보임을 통해 서로 상임위를 맞바꾸는 방안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김 의원은 "법사위가 열리고 나서 제가 한 발언들이 신선해서 그런지 말뚝 박으라는 소리도 나온다"면서도 "(하지만) 역시 제가 제 분야에 가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 의원은 '법사위에서 잘해보라'고 응원했던 한 의원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잠깐만'이라고(잠깐만 잘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제가 요즘 (기재부·검찰·국회 개혁을 위해) 몸이 세 개가 되어서 너무 힘들다. 빨리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데 가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열린민주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등대, 쇄빙선, 소금, 지렛대의 역할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총선 당시 '매운맛 민주당'을 표방하며 민주당보다 더 강한 어조로 개혁을 추진해가는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한 데 대한 연장선으로 보인다.

최근 잇따른 악재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대해서는 "(정부·여당은) 조금 더 일을 뚫고 나가는 힘, 문제를 뚫고 나가는 힘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다수 정당이나 교섭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막 끌고 나가지는 못하지만 이런 (등대, 쇄빙선, 소금, 지렛대의) 역할을 하면 민주당도 우리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소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인영 내정자는 무얼 해야 하나?

남북합의문 약속이행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짜야한다
김광수  |  no-ultari@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7.22  16:45:25
페이스북 트위터

김광수: 북(북의 사상과 정치) 정치학 박사, <수령국가> 저자,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통일부 장관 청문회(7/23)가 불과 하루 남았다. 예측컨대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대통령은 이인영 내정자를 임명할 것이다. 그러면 늦어도 7월 말, 혹은 8월 초에는 내정자 딱지를 떼고, 정식 장관임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인영 내정자도 그걸 알고 있기에 21일 내정자 신분으로 자신의 입장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발표를 보면 취임 후 가장 먼저 추진할 일로는 북측과의 대화 복원을 꼽았고, 다음으로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으로 표현한 인도적 교류·협력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는 이런 신뢰에 바탕해서 그동안 있었던 남북 간 합의와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대화복원 → 교류협력 → 약속이행>의 순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법의 첫 단추를 완전 잘못 꿰고 있다. 정반대여야 한다. <약속이행 → 교류협력 → 대화복원>순으로 말이다. 

뭔 말 인고 하면, 이렇다. 

첫째, 지금의 남북관계 경색이 대화가 부족해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지금의 남북관계 파탄이 교류협력을 통해 회복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넘어섰다는 말이다.(임계점을 훨씬 넘어섰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북관계가 복원되려면 이 내정자가 생각하고 있는 이행순서와는 정반대의, 즉 180° 뒤집어 생각해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정점에 남과 북이 약속했던(그것도 양 정상이 합의한) 합의문 이행 최우선이 있다. 

그래야만 북과 대화할 수 있고, 그 바탕위에서 교류협력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위 3단계 대북접근 방식은 전임 장관들과 똑같은 공허한 메아리로, 실패한 전철과 하등 다르지 않다. 3번째.

그 전제하에 장관 내정자에게 남은 사실상의 시간, 10여 일 동안 내정자는 무얼 해야 되는지 한번 고찰해보자.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유일한 것은) 지금의 남북관계 파탄이 이제까지 제안된 사업(아이디어)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이미 제안된 사업만으로도 임기 안에 하기 에는 너무나도 벅차다.) 

그래야만 자꾸 엉뚱한 해법도, 번지수가 틀리지도 않게 된다. 나아가 뭔가 쌈빡한 아이디어가 없는지, 그렇게 자꾸만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어떻게? 다른데 있지 않다. 

장관 내정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뭘 하겠다’이런 쓸데없는(?) 공약 남발보다는, 남북관계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를 곰곰이 되돌아보고, 그 성찰적 토대위에서 뭘 할지를 집중 구상해야 한다. 

그러면 제일 먼저 ‘신뢰’의 문제가 보일 것이다. 덩달아 그 신뢰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이 정부 들어와 남북 간에 이뤄낸 ‘합의문 약속이행’밖에 없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식을 그렇게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다음 약속이행 구현을 위한 필요한 것들, 넘어서야 할 것들,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할 것들,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한 액션플랜(action plan)을 구체화해내어야 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북 전단지 살포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입법추진이 제일먼저 천명되어져야 한다.(시간표 있게)

둘째, 신뢰회복 그 정점에 ‘합의문 약속이행’ 문제가 있음을 직시하고, 그 합의문 이행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가 분명하게 천명되어져야 한다. 

▶한미워킹그룹을 넘어설 전략
▶약속이행의 제도적 틀 완성: 국회비준 추진 
▶합의문이행을 위한 실행로드맵 제시 

셋째, 북에 의해 철거 예정되어있는 금강산 관광시설물, 그리고 2019년 북 신년사에서 ‘조건 없이’재가동되길 희망했던 금강산·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해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꼼수와 같은 ‘우회로’로에 집착하지 말고, 정공법에 해당되는 정면돌파의 전략을 수립해야 된다. 즉, ‘개별관광’이니 하는 그런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오는 몇 월, 며칠부터 금강산 관광은 전면 허용됩니다. 그에 맞춰 통일부는 북과 모든 협의를 마치고, 필요한 이행절차를 완전 세팅하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합의에 맞는 것이다.

넷째, 그렇게 위 ‘첫째’, ‘둘째’, ‘셋째’와 같이 해놓고, 다음으로는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할 내용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고, 돌파할 전략을 수립해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있다. 

▶5.24조치 
▶한미합동군사훈련(8월 예정)

먼저, 알다시피 5.24조치는 적폐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대북적대정책이다. 그러니 이 해법은 조치를 철회하면 된다. 그것이 촛불정부다운 것이고, 지난 10년의 민주정권 적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통일부가 적극 나서야하는 이유가 그렇게 발생한다.  

다음으로, 8월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개진해야 한다.

다 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통일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임을. 그럼에도 이 문제가 통일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남북관계 복원의 핵심 사안으로 가져가야 되는 이유는, 그래야만 남북관계가 뚫려 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해서 비록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만은 없겠지만, 입장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통일부가 적어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왜 문제인지는-실질적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할 문제임을 온 국민들에게 알려내고, 북에게는 통일부(장관)의 진정성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좋은 호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장관은 이후 정부안의 야당이 되어 훈련중지를 위해 모든 역량을 총 투입해 정부를 상대하고, 국민들에게는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의 필요성을 설득해나가야만 한다.(이는 그냥 언론플레이 하듯 기자만나 ‘내 개인적 소신은 합동군사훈련 반대하지만, 이건 정부차원에서 결정될 일이라서...’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라는 말이다.)

장관의 성패가 그렇게 거기에 있다. 이인영 장관 내정자에게 그런 기대를 해본다.

실패 시 이인영 장관 내정자 역시 길어봐야 1년 내외의 (욕 들어먹고, 역사의 기록에는 아무런 공적도 없는) 월급쟁이 장관직밖에 못할 것이다. 

한번쯤은 그렇지 않는 장관을 만나보자.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독]1400년전 경주판 '광화문 광장' 황룡사 앞에서 찾았다…7600평 규모, 월지까지 이어져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입력 : 2020.07.22 09:27 수정 : 2020.07.22 10:48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 터 남쪽 구역에서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1600년전 신라 광장이 확인됐다. 동궁 및 월지까지 500m(폭 50m)가량 이어진 이 광장의 규모는 2만5000㎡(7600평)에 달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 터 남쪽 구역에서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1600년전 신라 광장이 확인됐다. 동궁 및 월지까지 500m(폭 50m)가량 이어진 이 광장의 규모는 2만5000㎡(7600평)에 달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신라시대 최대의 사찰이던 경주 황룡사터 남쪽에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대규모 ‘광장’이 존재했다는 조사성과가 정리되어 발표됐다. 이 광장은 담장과 함께 황룡사에서 동궁 및 월지 방향으로 500m 가량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동궁 및 월지(서쪽)와 명활산성(동쪽)까지 동서로 이어지는 도로의 존재도 확인됐다.

2016년부터 황룡사 남쪽 구역(3만1000㎡)을 조사중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이민형 연구원은 24일 경주에서 열리는 ‘황룡사 남쪽 광장 정비를 위한 정비 및 활용’ 학술대회에서 2만5000㎡(7600평·동서 500m×남북 약 50m)에 이르는 광장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조사구역에서 드러난 신라시대 광장. 높이 60㎝ 정도의 담장과 함께 조성되어 있다. 폭은 50m 가량이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조사구역에서 드러난 신라시대 광장. 높이 60㎝ 정도의 담장과 함께 조성되어 있다. 폭은 50m 가량이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이민형 연구원은 22일 정리된 논문(‘황룡사 남쪽광장과 도시유적 조사성과’)에서 “맨먼저 조성된 광장의 배수로를 채운 유물 중에 ‘의봉 4년명’ 기와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의봉’은 당나라 고종(재위 649~683)의 9번째 연호(676~679년)이며, 따라서 ‘의봉4년’은 679년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광장의 첫번째 조성시기는 늦어도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초로 추정된다. 광장은 지금도 도로 포장 등에 쓰는 마사토(지름 0.002mm 이하, 점토분이 12.5% 이하인 입자로 된 토양)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주먹 크기의 냇돌을 촘촘히 덮은 구조로 조성했다.

동궁과 월지까지 길게 조성된 동서도로. 후대에 이 도로 위에 광장이 조성됐다. |신라문화연구원 제공

동궁과 월지까지 길게 조성된 동서도로. 후대에 이 도로 위에 광장이 조성됐다. |신라문화연구원 제공

이후 1차 정비된 광장은 처음의 광장 위에 마사토와 사질점토를 덮고 자갈을 전면적으로 깐 모습이었고, 2차 정비된 광장은 20~30㎝의 냇돌을 자갈과 함께 깔아 조성했다. 광장의 동쪽 경계부에서는 길이 30.4m, 너비 280㎝ 정도의 넓은 배수로가 남북방향으로 연결된채 노출됐다. 1차로 조성된 광장으로 유입되는 물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밖에 광장보다 더 남쪽에 조성된 주거단지와의 구분을 위해 설치한 담장도 보였다. 담장은 광장보다 60㎝ 정도 높게 조성됐으며, 확인된 길이만 280m에 달했다. 이민형 연구원은 “너비 1.5m의 담장은 동궁(월지)까지 500m 정도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황룡사에서 월지 및 동궁까지 500m가량 이어진 대규모 광장의 세부구조. 광장은 지금도 도로 포장 등에 쓰는 마사토(지름 0.002mm 이하, 점토분이 12.5% 이하인 입자로 된 토양)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주먹 크기의 냇돌을 촘촘히 덮은 구조로 조성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황룡사에서 월지 및 동궁까지 500m가량 이어진 대규모 광장의 세부구조. 광장은 지금도 도로 포장 등에 쓰는 마사토(지름 0.002mm 이하, 점토분이 12.5% 이하인 입자로 된 토양)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주먹 크기의 냇돌을 촘촘히 덮은 구조로 조성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조성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사팀장은 “광장의 규모는 도로를 제외한 광화문 광장(약 600m×60m) 보다는 약간 작지만 1300~1400년 전의 경주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규모”라고 설명했다. 물론 신라인들이 이 넓은 광장에서 무엇을 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라벌에 절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었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寺寺星張 塔塔雁行)”(<삼국유사>‘원조흥법염초멸신’)는 기록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521년) 불교를 수용했다. 그러나 불교는 신라에서 꽃을 피워 신라에서 결실을 맺었다.

광장보다 더 남쪽에 조성된 주거단지와의 구분을 위해 설치한 담장도 보였다. 담장은 광장보다 60㎝ 정도 높게 조성됐으며, 확인된 길이만 280m에 달했다.|신라문화연구원 제공

광장보다 더 남쪽에 조성된 주거단지와의 구분을 위해 설치한 담장도 보였다. 담장은 광장보다 60㎝ 정도 높게 조성됐으며, 확인된 길이만 280m에 달했다.|신라문화연구원 제공

17만8936호가 살았다는 왕경에 ‘별처럼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던 절과 탑을 상상해보라. 특히 월성 동북쪽에 우뚝 서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은 서라벌의 랜드마크였을 것이다. 탑 높이가 자그만치 80m나 됐다.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서라벌 백성들이 황룡사 앞에 조성된 광활한 광장에 모여 우뚝 솟은 목탑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과 개인의 화복을 빌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이 광장에서 팔관회와 같은 국가적 행사가 열렸을 가능성이 있다. 팔관회는 가을의 추수를 천신에 감사하기도 하고,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종교 행사였으며 문화제였다. “572년(진흥왕 33년)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7일간 팔관연회가 열렸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진흥왕조’ 기록이 있다. 898년(효공왕 2년)에도 “팔관회를 시작했다”는 기사(<삼국사기>)가 등장한다. 이민형 연구원은 또한 “발굴지역에서 동서도로와 남북도로 1·2호 등 도로 3곳이 확인됐으며, 시차를 두고 조성된 十자 교차로도 찾아냈다”고 밝혔다.

광장의 담장 남쪽에 조성된 가옥군도 확인됐다. 가옥군은 남북도로와 작은 도로로 4개의 공간으록 구분됐다. 경주 도시계획의 치밀함을 보여준다.|신라문화연구원 제공

광장의 담장 남쪽에 조성된 가옥군도 확인됐다. 가옥군은 남북도로와 작은 도로로 4개의 공간으록 구분됐다. 경주 도시계획의 치밀함을 보여준다.|신라문화연구원 제공

동서도로와 1호 남북도로가 교차되는 도로는 시차를 두고 조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동서도로는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7세기초 만든 광장은 이 도로 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민형 연구원은 “폭 15~19m의 동서도로는 조사구역 전체(동서 316m)로 뻗어있었으며, 서쪽으로는 경주 동궁 및 월지, 동쪽으로는 명활산성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도로 양쪽 가장자리는 광장을 조성할 무렵 의도적으로 매립한 흔적이 보이며 그 안에서 통일신라시대 토기와 기와 목제 도장 등의 유물과 복숭아씨, 밤껍질, 가래씨, 잣 등 자연유물이 출토됐다.

조사구역. 광장과 도로, 가옥군까지 경주의 도시계획을 알 수 있는 유구와 유물들이 쏟아졌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조사구역. 광장과 도로, 가옥군까지 경주의 도시계획을 알 수 있는 유구와 유물들이 쏟아졌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이민형 연구원은 “발굴성과 중 하나는 광장 담장 남쪽에 조성된 가옥군(주택단지)의 확인”이라고 밝혔다. 주택단지는 남북도로 2기와 작은 도로(小路) 2기에 의해 4개의 공간으로 구분됐다. 조성윤 팀장은 “신라의 공간은 140~160m 간격의 바둑판 모양처럼 구획되는 것으로 그동안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결과 그 사이 70~80m 간격의 작은 도로로도 나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황룡사는 연약한 습지 위에 흙을 성토하면서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민형 조사원은 “특히 이 넓은 대지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크고작은 구획으로 나눠 45도 경사지게 성토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원활한 배수를 위해 굵은 돌과 자갈, 그리고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 쌓았다”고 전했다.

황룡사 9층목탑과 금당이 있었던 자리. 13세기 몽골침입 때 소실됐다. 황룡사 9층목탑은 높이만 80m 가량 되었다. 17만5000호가 된 서라벌 주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항룡사 앞에 조성된 광장에서 나라와 개인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경향신문 자료사진

황룡사 9층목탑과 금당이 있었던 자리. 13세기 몽골침입 때 소실됐다. 황룡사 9층목탑은 높이만 80m 가량 되었다. 17만5000호가 된 서라벌 주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항룡사 앞에 조성된 광장에서 나라와 개인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경향신문 자료사진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년) 건립된 사찰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은 “진흥왕이 처음엔 새로운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나는 바람에 사찰 조영으로 계획을 바꿨으며 17년 만인 569년(진흥왕 30년) 절(황룡사)을 완성했다”고 기록했다. 이 절에는 신라의 세가지 보물(三寶·장육존상, 9층목탑, 천사옥대) 중 두 가지인 장육존상과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지만 13세기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됐다.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은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황룡가 광장과 담장, 동궁 및 월지까지 이어진 도로 등을 연결하는 유구를 복원하는 프로그램을 완성하며 대단한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20927001&code=960100#csidx585c8d5db61815981874af529055e6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행정수도 완성’ 연일 띄우는 여권…법 개정까진 현실벽 높아

등록 :2020-07-22 05:01수정 :2020-07-22 07:07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청와대·국회, 세종시로” 드라이브

김태년 “국회에 특위 구성 제안”
이낙연·김부겸도 긍정적 의견
당내 보고서 “행정수도법 검토”

여권서도 “집값 불만 회피용 안돼”
주호영 “위헌 문제 풀려야 논의”
세종시 중심부. 세종시
세종시 중심부. 세종시
더불어민주당이 연일 국회의사당 세종시 이전 등을 거론하며 ‘행정수도’ 재이슈화에 힘을 싣고 있다. 야당과 합의만 있다면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며 내부적으론 ‘실행 전략’도 마련했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선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여당의 논리지만, 야당 반대가 완강하고 공론화를 위한 정지작업도 없었던 터라 논의가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ins class="adsbygoogle" data-ad-client="ca-pub-0061834038389973" data-ad-slot="2720503008" data-adsbygoogle-status="done"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0px; height: 0px;"><ins id="aswift_2_anchor" style="display: block; border: none; height: 0px; margin: 0px; padding: 0px; position: relative; visibility: visible; width: 0px; overflow: hidden; opacity: 0;"><iframe id="aswift_2" name="aswift_2" sandbox="allow-forms allow-popups allow-popups-to-escape-sandbox allow-same-origin allow-scripts allow-top-navigation-by-user-activation" width="300" height="250" frameborder="0" src="https://googleads.g.doubleclick.net/pagead/ads?client=ca-pub-0061834038389973&output=html&h=250&slotname=2720503008&adk=2860099519&adf=1546900832&w=300&lmt=1595382752&psa=1&guci=2.2.0.0.2.2.0.0&format=300x250&url=http%3A%2F%2Fwww.hani.co.kr%2Farti%2Fpolitics%2Fassembly%2F954641.html%3F_fr%3Dmt1&flash=0&wgl=1&adsid=ChAI8KTa-AUQ1OGWuKmEtc1bEkwA6iwtaEr-J7GLZ9F4i3f4-e4jALhypNKiv_mzwiqWkBoFbdxvZHR515vEWIfgZ27jHnxDWNWs0GMoHbhMUQu7AGb7Sz9RawIm_OZT&dt=1595382752276&bpp=1&bdt=758&idt=1&shv=r20200716&cbv=r20190131&ptt=9&saldr=aa&abxe=1&cookie=ID%3D46c5f63e729189d2%3AT%3D1555820986%3AS%3DALNI_MZMTiOy2KzAUA0nThNbf4z1qW3lyg&prev_fmts=728x90&prev_slotnames=5440422807&correlator=929089694605&frm=20&pv=1&ga_vid=393888072.1536705507&ga_sid=1595382752&ga_hid=863528109&ga_fc=0&iag=0&icsg=4490379720132610&dssz=51&mdo=0&mso=0&u_tz=540&u_his=24&u_java=0&u_h=1080&u_w=1920&u_ah=1040&u_aw=1920&u_cd=24&u_nplug=3&u_nmime=4&adx=467&ady=2152&biw=1903&bih=937&scr_x=0&scr_y=0&eid=21066393%2C21066532%2C182984000%2C182984200&oid=3&pvsid=497256159219043&pem=191&ref=http%3A%2F%2Fwww.hani.co.kr%2F&rx=0&eae=0&fc=640&brdim=0%2C0%2C0%2C0%2C1920%2C0%2C1920%2C1040%2C1920%2C937&vis=1&rsz=%7C%7ClEbr%7C&abl=CS&pfx=0&alvm=r20200720&fu=8192&bc=23&ifi=3&uci=a!3&btvi=1&fsb=1&xpc=xPQaQWuyj7&p=http%3A//www.hani.co.kr&dtd=5" marginwidth="0" marginheight="0" vspace="0" hspace="0" allowtransparency="true" scrolling="no" allowfullscreen="true" data-google-container-id="a!3" data-google-query-id="CJj13_Hf3-oCFbbETAId9UYPQg" data-load-complete="true" style="left: 0px; top: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width: 300px; height: 250px;"></iframe></ins></ins>

김태년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 추진하기 위해 국회에 행정수도 완성 특위를 구성할 것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제안한다”고 말했다. 전날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 ‘청와대·정부·국회 세종시 이전론’의 연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언급하며 “시대 변화에 따라 관습헌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여야 합의에 의한 국회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권 주자들도 힘을 보탰다. 이낙연 의원은 “여야가 합의하거나, 헌재에 다시 의견을 묻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문화방송> 라디오)고 했고, 김부겸 전 의원도 “자꾸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두고 대책을 세워봐야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 같다”(<와이티엔> 라디오)고 거들었다.

 

이날 <한겨레>가 입수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보고서를 보면, 민주당은 기존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행정수도법’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헌법소원 제기 시, 헌법재판관 다수가 진보 성향이라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도 “안심하기만은 어렵고, 관습헌법 논쟁이 종식되기가 어렵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민투표로 행정수도 이전을 결정하거나 행정수도에 대한 원포인트 헌법 개정 방안도 거론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런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난관이 많다. 우선, 여론의 폭넓은 지지가 확보돼야 한다. 민주당이 꺼내든 행정수도 이슈가 수도권 집값 급등으로 인한 불만을 돌리기 위한 시선 분산용이 아니라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이라는 공감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구 전 대통령 직속 정책위원회 위원장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단순히 부동산값이 올라서 옮겨야겠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 발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문제다. 북한까지 포함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혔다.

 

야당 설득도 관건이다. 청와대와 입법기관을 이전하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민주당 단독으로 법 개정을 시도하거나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 개헌 역시 재적의원 3분의 2(200석)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행정수도는 이미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났던 문제다. 위헌성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에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장나래 기자 yj@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54641.html?_fr=mt1#csidx7af1ad05b22a4998469cf591bbac75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0년 천안함 재판 신상철에 세번째 징역 3년 구형

[항소심 결심] 변호인 “쌍끌이 어선 50톤짜리 가스터빈 있는 곳 작업 모순”
 
미디어오늘  | 등록:2020-07-22 06:57:28 | 최종:2020-07-22 07:02: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0년 천안함 재판 신상철에 세번째 징역 3년 구형
[항소심 결심] 검찰 “공적 조사 불신 초래, 의혹제기 홍보의장” 변호인 “쌍끌이 어선 50톤짜리 가스터빈 있는 곳 작업 모순”
(미디어오늘 / 조현호 기자 / 2020-07-22)


천안함 항소심 재판이 우여곡절 끝에 10년을 넘긴채 마무리됐다.

검찰은 21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에 징역 3년 형을 내려달라고 구형했다. 신상철 전 위원과 변호인들은 무죄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세번째 검찰의 징역 3년 구형이다. 재판부는 오는 10월6일 오후 2시반에 10년 넘은 이 사건의 선고를 하기로 했다.

검찰측인 소재환 검사는 21일 결심공판에서 신상철 피고인을 두고 “주장이 악의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왜곡해 비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소 검사는 △고의로 실종자 구조 작업을 지연 △군이 사고원인을 은폐조작, 조작 △천안함이 용트림바위의 제3의 선박과 충돌 △좌초후 후진했으며 명백한 해난사고라고 한 신상철 피고인의 주장을 두고 “이 모두는 재판과정에서 허위로 입증됐다”고 했다.

소 검사는 쟁점이 된 ‘고압세척을 통한 선저 스크래치 지운 흔적 유무’ 관련 “합조단 위원들 모두 스크래치 발견되지 않았고, 실제로 2010년 4월30일 이전 고압세척을 한적이 없다”며 “버블흔을 세척으로 사라진 흔적이라 주장하나 세척으로 사라진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잠수함을 거론한 것을 두고 소 검사는 “이스라엘 잠수함이 출몰했다는 주장 자체가 난센스”라고 했다. 그는 함안정기의 손상을 “압력흔과 버블흔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소 검사는 “신상철 피고인은 합조단에 있으면서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가치가 없는 자료를 근거로 계속 주장을 폈다”며 “악의적 경멸적 표현과 단정적 허위사실을 기재했다”고 했다. 그는 △기소이후에도 허위사실을 적시 △피해자들의 처벌의사 △공적 조사결과에 대한 국민 불신 초래 △희생장병의 명예훼손 △심각한 국론분열을 들었다. 신상철 피고인의 의혹 제기 자체를 문제삼기도 했다. 그는 “항소심에서도 정부 합조단 판단에 대한 의혹제기를 위한 홍보의장으로 만들었다”며 “원심 5년 넘게 법정 안팎에서 의혹제기를 계속했고, 천안함 생존자에게 희생자 CCTV를 보여주며 고통스러운 질문을 한 것을 보면 정상참작의 사유가 모두 틀렸다”고 주장했다.

신상철 피고인측 변호인인 김종귀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천안함 사건을 좌초후 충돌로 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허위라는 검찰주장에 하나하나 이견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좌초와 관련 우현 프로펠러의 경우 특이한 손상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합조단이 시뮬레이션했으나 밝혀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원심판결문에 ‘현대 과학의 한계’라는 표현을 들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천안함 우현의 프로펠러가 가변피치프로펠러로, 역회전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전진과 후진이 다 가능하다”며 “이를 반복하면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에스자형태의 손상이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에 전시된 천안함 함미. 2018년 9월13일 서울고법 형사5부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특히 쌍끌이 어선의 어뢰추진체 인양의 모순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박정이 합조단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격자무늬로 탐색해 폭발원점을 지나는 과정에서 건졌다’고 주장한 점을 들어 “가스터빈이 50톤이 넘는 대형구조물인데, 이 위를 쌍끌이어선이 지나갔다는 것은 그물이 찢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며 “가스터빈실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지나가면서 물건을 건져올릴 수 있느냐. 상식에 반한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폭침 어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가져온 어뢰”라며 “이어도호와 장목호가 2010년 4월4일부터 5월8일까지 탐색했지만, 어뢰 추진체보다 더 작은 물건도 식별하는데, 어뢰가 식별되지 않은 이유는 그 시점에는 어뢰추진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된 생존자 진술서 원본을 두고 김 변호사는 “굉장히 핵심 증거”라며 “분석 결과 폭발보다 압도적으로 충돌이라고 진술한 장병이 많았다”고 밝혔다.

피고인인 신상철 전 위원은 “그동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며 진실을 밝혀 남북관계를 미래지향적 관계로 만들고, 북한에 씌운 누명 벗겨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 전 위원은 1심 판결에서 유죄로 선고된 ‘고의구조 지연’ 주장을 두고 “함수가 16시간동안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도 아무 조치하지 않았다”며 “이게 구조지연한 것 아니냐. 박성균 하사 시신도 여기서 발견했지 않느냐”고 반론했다. 증거인멸 주장 관련 신 전 위원은 “함미 인양 당시 (좌현 선저에 있는) 길이방향 스크래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판결로 한반도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을 고려해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천안함 가스터빈 외판의 좌측 부분. 2015년 촬영. 사진=조현호 기자

심재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역사적, 정치사회적 의미를 들어 무죄를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심 변호사는 이 사건이 1,2심 포함 10년을 넘긴 점을 들어 “재판부의 부담을 보여준 것”이라며 “국방부와 검찰이 진실의 목소리를 억압해 법정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재판부가 진실에 대한 무거운 부담이 있겠지만 진실앞에 단호한 태도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심 변호사는 특히 “지금 사법부 불신이 상당한 것은 잘못된 재판을 해왔기 때문”이라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강기훈유서대필사건 △삼성은 봐주고 뇌물 폭로한 노회찬 유죄판결 사건 △이회창 전 총리가 판사시절 서명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언도 사건 등을 들었다. 심 변호사는 “신상철 피고인이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며 “정부의 황당한 발표에 의문을 갖는 것이 어떻게 10년이나 재판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검찰 수사 당시 MB 정권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정부발표를 믿지 못하게 하는 자를 신속히 수사해 엄벌에 처하라고 했다”며 “진실을 밝히고자 용기를 가진 피고인을 법정에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10년이나 진행한 사건, 실무적으로 부담이 있고, 어떤 결론을 낼지 복잡한 생각을 가지리라 본다”면서도 “진실의 편에 서면 된다. 가짜판결의 오명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로써 신 전 위원은 검찰의 3년 구형만 세 번째 받은 피고인이 됐다. 검찰은 1심 재판 때 3년 구형(1심 판결은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항소심 재판 중인 지난해 11월21일 신 전 위원에 3년형을 구형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김형두 부장판사)는 지난 1월30일 선고공판을 하려 했으나 여러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종결했던 변론을 재개했다. 그 후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통째로 바뀌었다. 새로 바뀐 재판부로 구성된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는 지난 4월24일 변론기일에서 한차례 공판을 진행한 뒤 이날 변론을 종결하기로 한 바 있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303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997&table=byple_new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규직 소송 포기하면 3천만원’ 현대위아 비정규직, 회유 거부하고 공장 점거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법원 판결대로 정규직 전환하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07-21 20:50:24
수정 2020-07-21 20:50:2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공장 로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2020.07.21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공장 로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2020.07.21ⓒ김철수 기자  
 
자동차 엔진을 생산하는 평택 현대위아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철회 등을 대가로 3천만 원을 주겠다’,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울산으로 내려보내겠다’ 등의 회유·압박을 거부하고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21일 공장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현대위아는 현대기아자동차에 자동차 엔진을 납품하는 현대기아자동차 부품생산 계열사다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이날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정규직 전환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대회엔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뿐만 금속노조 경기지부 소속 노동자,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단 관계자 등 700명이 참여해 사내하청비정규직을 법원 판결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의대회가 끝난 뒤,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은 공장 안으로 진입해 건물 로비를 점거했다. 이들 조합원은 현대위아 평택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다른 직원들을 동원해 이들의 공장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40여 명의 사내하청비정규직들이 로비까지 진입하는 것을 막진 못했다.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2020.07.21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2020.07.21ⓒ김철수 기자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공장 로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2020.07.21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공장 로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2020.07.21ⓒ김철수 기자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이같이 로비 점검 농성을 벌이게 된 이유는 회사가 ‘이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취지의 1·2심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온갖 회유·압박으로 사내하청비정규직들에게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갈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늦어도 올해 안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모두 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비조합원들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2천만 원을, 금속노조 조합원 대상으론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3천만 원을 지급하겠다며 회유하고 있다. 또 오랫동안 평택에서 일해 온 이들 노동자에게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울산 공장으로 내려 보내겠다는 압박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송을 취하하고 직고용 정규직 전환을 포기하면 평택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자들은, ‘소송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울산공장 발령’은 사실상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해고’라고 보고 있다.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관계자는 “구형 봉고차 엔진을 만드는 울산공장에서 필요한 인원은 약 20명 정도다. 40명이 일할 때도 물량이 없어서 주3일 노동을 하던 곳”이라며 “그런데 이곳에 120명가량을 보내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자회사 분쇄! 고용보장! 정규직화 쟁취' 현대위아비정규직 평택지회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열고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7.21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는 21일 경기도 평택 현대위아 1공장 앞에서 자회사 분쇄! 고용보장! 정규직화 쟁취' 현대위아비정규직 평택지회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열고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7.21ⓒ김철수 기자

김영일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지회장은 “일할 때는 최저임금 주면서 부려 먹더니,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다고 설비도 식당도 없는 텅텅 빈 울산공장으로 부당전보발령 내면서, 월급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하는 신종 탄압을 (현대위아) 자행하고 있다”라며 “현대위아가 이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그동안 저질러온 불법파견 범죄를 회피하고, 사내하청비정규직들의 피와 땀을 착취할 수 있는 노동구조를 바꾸고 싶지 않아서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지회장은 “이런 (부당한) 노동구조를 법으로도 바꿀 수 없다면, 노동자들이 단결된 힘밖에 없다”라며 “단결된 힘으로 꼼수 막아내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하자, 비정규직 철폐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고 외쳤다.

김영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은 “딸이 6살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재롱잔치에 (노조) 빨간 머리띠를 매고 나갔었다. 그런 딸이 이젠 숙녀가 됐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아직까지 난 노동자이고, 우리 딸 또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라며 “이런 현실을 더 이상 후대에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비정규직이 있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본부 본부장은 “그동안 도급업체 정규직으로, 하청업체 직원으로 포장돼 왔던 비정규직이 자회사 정규직으로 포장을 바꾼다고 해서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라며 “평택 현대위아 비정규직 투쟁은 인간답게 제값 받고 노동자답게 살기 위한 투쟁의 최전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금속노조는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현대위아는 불법파견에 대해 사죄하고 불법파견을 해결할 종합적인 대책마련을 위한 대화에 나서라”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금속노조는 이미 현대위아 측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하는 논의 테이블을 구성해 문제해결에 나서자고 제안한 바 있다”라며 “모든 사회구성원이 지혜를 모아가야 할 시기에 현대위아가 비정규직 노조파괴, 집단해고, 불법파견 무력화를 위한 탄압에 나서고자 한다면 금속노조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양심세력에 전면전을 선포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이 농성을 시작한 현대위아 평택 1공장은 현재 신규투자를 받고 설비를 개선하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장 재개는 올해 9월쯤으로 예상된다.

이승훈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인영, "아주 대담한 변화 추진하겠다"


"국민 공감, 미국의 신뢰, 북과 대화할 수 있는 변화"...취임 즉시 북측과 대화 재개 입장 발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7.21  11:12:53
페이스북 트위터
   
▲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21일 오전 남북회담본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통일정책 추진에 있어서 우리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변화, 그리고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아주 대담한 변화를 추진하겠다."

23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21일 오전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통일부의 대담한 변화를 예고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있어서 공식적이고 공개적이며 대중적인 영역에서 통일부가 주무부처라는 확고한 위상과 역할을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통일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우리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변화, 그리고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후 가장 먼저 추진할 일로는 북측과의 대화 복원을 꼽았다. 그리고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싶은 것'으로 표현한 인도적 교류·협력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런 신뢰에 바탕해서 그동안 있었던 남북간 합의와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당장 남북관계 발전의 저애요인으로 지목된 한미워킹그룹에 대해서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서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과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해야 할일은 구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재와 관련해서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통일적이고 효과적으로 해제절차를 밟은 사례도 있기 때문에 여전히 워킹그룹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하고, 예컨대 '먹는것, 아픈 것, 죽기전에 보고싶은 것' 등 통칭해서 인도적 교류와 관련한 영역에 있어서는 워킹그룹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는 "통일부 이전에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연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전시작전권 반환 등의 필요에 따른)국방부의 요구와 코로나19 확산상황 등을 모두 감안해서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후보자는 금강산관광을 개별관광 방식으로 풀어보려는 기존 시도는 유의미하다고 평가했고 고령 이산가족의 개별방문과 상호방문은 물론 일상적인 화상상봉, 서신교환 등에 대해서 남북관계 제약을 제거하고 나면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남북교역과 관련해서는 "벌크캐시(대량현금) 문제들이 제재와 관련해서 직접적인 제약조건으로 작용했다"고 하면서 "물물교환 방식으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뛰어넘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먹는 것, 아픈것, 보고싶은 것 등 인도적 교류협력 영역에서부터 작은 교역을 추진해 보았으면 좋겠다"며, "금강산과 백두산의 물, 대동강의 술, 그런 것들이 물건 대 물건, 현물 대 현물, 아주 많은 교류가 아니더라도 작은 교류가 시작되어서 상황과 조건이 나아지면 큰 교류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북측과의 대화 재개에 대해서는 "장관에 취임하게 되면 그 시점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북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북이 대화로 나설 수 있는 그런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권 핵심지지층 30대도 이탈…“사태 심각성 몰라, 감 잃었다”

등록 :2020-07-21 04:59수정 :2020-07-21 07:18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등돌리는 민심 왜
끊이지 않는 악재
정의연·인천공항공사 논란 이어
부동산 정책 시장 신뢰 잃어
박원순 의혹 대응 결국 폭발
한 보좌관 “조언 해봤자 안 먹혀”
이원욱 의원 “내로남불 대처 화근”

돌파구 없나
단체장 3명 하차 뼈저린 반성
하루빨리 단호한 대책 내놔야
부동산 혼선 결코 가볍지 않아
장관 교체 카드도 검토 가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구·경북·제주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구·경북·제주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ins class="adsbygoogle" data-ad-client="ca-pub-0061834038389973" data-ad-slot="2720503008" data-adsbygoogle-status="done"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0px; height: 0px;"><ins id="aswift_1_anchor" style="display: block; border: none; height: 0px; margin: 0px; padding: 0px; position: relative; visibility: visible; width: 0px; overflow: hidden; opacity: 0;"><iframe id="aswift_1" name="aswift_1" sandbox="allow-forms allow-popups allow-popups-to-escape-sandbox allow-same-origin allow-scripts allow-top-navigation-by-user-activation" width="300" height="250" frameborder="0" src="https://googleads.g.doubleclick.net/pagead/ads?client=ca-pub-0061834038389973&output=html&h=250&slotname=2720503008&adk=2860099519&adf=876695311&w=300&lmt=1595287883&psa=1&guci=2.2.0.0.2.2.0.0&format=300x250&url=http%3A%2F%2Fwww.hani.co.kr%2Farti%2Fpolitics%2Fassembly%2F954468.html%3F_fr%3Dmt1&flash=0&wgl=1&adsid=ChAI8IHV-AUQv6-SusST1fkBEkwAy1M5MMihnUPBcDE_Br3Q7BMrWJqE5eAa1kFENfakainF3Tlu97eEkahHpwjJJV20x_pLk8OByum71ApCJsR4ovnKln5uz7muMahB&dt=1595287883958&bpp=7&bdt=852&idt=7&shv=r20200716&cbv=r20190131&ptt=9&saldr=aa&abxe=1&cookie=ID%3D46c5f63e729189d2%3AT%3D1555820986%3AS%3DALNI_MZMTiOy2KzAUA0nThNbf4z1qW3lyg&prev_slotnames=5440422807&correlator=2403798598184&frm=20&pv=2&ga_vid=393888072.1536705507&ga_sid=1595287884&ga_hid=421674154&ga_fc=0&iag=0&icsg=4500294650560514&dssz=49&mdo=0&mso=0&u_tz=540&u_his=20&u_java=0&u_h=1080&u_w=1920&u_ah=1040&u_aw=1920&u_cd=24&u_nplug=3&u_nmime=4&adx=467&ady=1580&biw=1903&bih=937&scr_x=0&scr_y=0&eid=21066393%2C44717727%2C182984000%2C182984200&oid=3&pvsid=1822989451809133&pem=191&ref=http%3A%2F%2Fwww.hani.co.kr%2F&rx=0&eae=0&fc=640&brdim=0%2C0%2C0%2C0%2C1920%2C0%2C1920%2C1040%2C1920%2C937&vis=1&rsz=%7C%7ClEbr%7C&abl=CS&pfx=0&fu=8192&bc=23&jar=2020-07-20-02&ifi=2&uci=a!2&btvi=1&fsb=1&xpc=vHbBON6CLt&p=http%3A//www.hani.co.kr&dtd=15" marginwidth="0" marginheight="0" vspace="0" hspace="0" allowtransparency="true" scrolling="no" allowfullscreen="true" data-google-container-id="a!2" data-google-query-id="CPaS1bz-3OoCFRzCTAIdWDUBfA" data-load-complete="true" style="left: 0px; top: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width: 300px; height: 250px;"></iframe></ins></ins>
청와대와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오르내릴 때마다 “숫자 보고 정치하지 않는다” “지지율 등락에 일희일비 않는다”고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로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할 때도, ‘조국 사태’로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이어진 지지도 추락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집권 4년차, 총선 압승 100일도 되지 않아 나타난 ‘추세적 하락’이란 점에서 자칫 ‘레임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 탓으로 보인다. 여권은 무엇보다 정권의 핵심 지지층인 30대마저 이탈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민심은 왜 등 돌리나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7주째 하락했다. 7월 3주 지지율은 46%로, 올해 최고점을 찍었던 5월 1주에 견줘 25%포인트 하락했다. 20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평가(51.0%)가 긍정평가(44.8%)를 앞질러 ‘데드크로스’ 현상까지 발생했다. 국정 지지율은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주 이후 최저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낮다.지지율 하락 배경에는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등 지난 4월 총선 뒤 끊이지 않은 여권발 악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최근 급격한 민심 이반은 신뢰를 잃어가는 부동산 정책과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및 이에 대한 여권의 부적절한 대처 등이 맞물리면서 가속화됐다. 충북 청주시와 서울 반포동에 아파트 2채를 갖고 있던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 아파트가 아닌 청주 아파트를 처분한다’고 밝힌 것은 최악이었다. 부동산이 삶의 근간이 되는 주거의 문제라는 점 때문에 민심이 더욱 크게 흔들린다는 진단도 나왔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부동산 이슈는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미래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권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부동산으로 들끓던 민심은 ‘박원순 사태’로 폭발했다. 여권 관계자는 “박 시장이 성추행 의혹을 받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이후 사건을 대하는 여권의 태도가 지지자들마저 등 돌리게 했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이해찬 대표의 ‘××자식’ 발언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민심이 어떤 상태인지, 박 시장 성추행 의혹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선이 어떤지에 대해 여권이 감을 잃었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실제 ‘박원순 사태’와 관련해 당의 대응 기조를 정하려 할 때마다 젊은 당직자와 보좌진 그룹과 의원 그룹 간 견해차는 상당했다. 한 의원 보좌관은 “사태 초기부터 아무리 조언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의원 대부분이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전날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한 이원욱 의원은 ‘내로남불’식 대처를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를 ‘가짜뉴스’ 탓으로 돌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고발사건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에 실망한 국민은 공정함을 잃은 것에 실망했고, 내로남불식 태도에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여권, 돌파구는? 조국·윤미향·박원순 사태를 잇따라 겪은 여권에선 ‘인연과 의리에 이끌리지 말고’ 단호하게 조기 수습에 나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기류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내놓아 민심을 달래고, 개혁 과제 처리에 집중해 지지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는 것이다.여권 관계자는 “‘조국 사태’ 때만 해도 ‘검찰개혁’이라는 정책 이슈가 맞물려 있어 버틸 여력이 있었다. 이번 위기는 ‘권력형 성범죄’라는, ‘찬반’으로 나눌 수 없는 이슈에서 비롯된 위기이기 때문에 심각하다. 하루빨리 단호한 대책을 추가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에 소속된 한 의원도 “당이 발표한 대응책은 은폐 의혹을 받는 서울시에 진상조사를 떠맡기는 모양새다. 더 단호하게 대처해야 국민들의 화가 풀릴 것”이라며 “부동산 문제도 당·정·청 혼선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개혁 입법을 통해 지지자의 마음을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핵심 지지층’에 의지하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 행태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콘크리트 지지층도 악재가 계속되면 무너진다는 사실을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지 않았느냐”며 “안희정·오거돈·박원순까지 3명의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이 같은 사안으로 물러났는데 정권 차원의 사과가 없다. 이슈를 대하는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유창선 박사는 “여권 내부에 위기경보를 발송하고 민심에 부흥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며 “부동산은 주무 장관을 교체해서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김원철 서영지 기자 wonch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54468.html?_fr=mt1#csidxc80c4756fea4ce8b8ac78b6e520047c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독한 근대적 미신...'대안이 없다'는 말은 진실인가?

[김종철 선생을 기리며]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

"산업주의 문화는 이러한 겸손의 자세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성장해왔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인간'은 도덕적, 정신적으로 극히 왜소한 미숙아가 되어버렸다. 산업의 세계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자기 확대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분별없이 확대되어 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폭하고 어리석은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현재의 전 세계적 위기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웅변한다. 즉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해 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인간이 우애롭게 지내며, 각 개인이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그런 삶이었다. 그는 공생공락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로 농(農)의 세계와 촌락 자치를 주장했지만 이는 결코 복고 취미가 아니었다. 공생공락을 위한 세계 각지의 여러 움직임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연구하면서 이끌어낸 통찰이었다.


 

신문‧잡지의 칼럼을 모아 2016년 발간한 <발언 1,2>의 머리말에서 그는 "칼럼을 쓰는 동안 매일매일 발간되는 국내외 신문, 뉴스 매체들을 훑어보는 일이 어느덧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발언'을 위해서는 우선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주목('경청')하는 게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귀를 열어 경청한다는 것은 '발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윤리"이며 "농민, 노동자, 생활인들의 '현장'이 논밭과 공장 혹은 시장인 것처럼,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은 뉴스매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끼니를 거르는 일은 있어도, 신문이나 뉴스매체를 거르고 지나가는 날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리하여 일정하게 구독하는 몇몇 국내 신문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통해서 외국 언론매체들의 주요 기사, 논평들을 읽는 데 골몰하다 보면 오전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만다."

 

실제로 그는 하루 4시간 이상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한국에서 최초 또는 유일한 정기구독자인 외국 간행물이 여럿 된다고 자랑(?) 삼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가 탁월한 생태사상가인 동시에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처럼 폭넓은 탐색과 치열한 고민 끝에 지역화폐, 기본소득, 시민의회에 이르기까지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현실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나아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에 참여하는 등 그는 근래 보기 드문 전 방위적 지식인이자 실천적 사상가였다.


 

사실 김종철 선생이 걸은 길은 외로운 길이었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있었다. 1999년 펴낸 <간디의 물레> 머리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8년간 <녹색평론>을 엮어내는 일은 무엇보다 내게는 개인적인 구원이었다. 아마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치거나 깊이 병들었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녹색평론>의 편집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 안팎에 걸쳐 의의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그러한 사람들과 깊은 유대 또는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대감이나 우정을 통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형성에 새로운 삶의 희망이 달려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2008년 펴낸 <땅의 옹호>에서는 2004년 대학 교수직을 떠난 이후 4년간 계속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 "대학생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자본주의 문명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김종철의 사상과 통찰이 절실한 이때, 그는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은 그가 말한 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의 원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김종철 선생의 저서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발언 1,2>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중에서 9편의 글을 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시대를 바꾸고자 한 예언자이자 실천적 사상가, 김종철' (박승옥 글) 

2. 왜 녹색평론을 시작하였는가(1995년,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3. 거짓언어와 '성장'논리 속에서-나의 한국 현대사(2012년, <발언 1>) 

4. 땅의 옹호(2002년,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5.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開眼이다(2006년, <땅의 옹호>) 

6. 지역통화-삶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술(1998년, <간디의 물레>) 

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책머리에(2019년) 

8.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2008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9. 촛불시위와 시민권력(2017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0.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순환(1998년, <간디의 물레>)


 

2008년 8월 3일 모스크바 근교에서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작가 솔제니친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신의 하나였다. 한때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상당한 인기가 있어서 적지 않은 작품이 번역되어 읽혔다. 많은 사람들에게 솔제니친은 전체주의체제하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 체제의 실상을 용기 있게 폭로하고, 꺾이지 않는 인간정신을 증언하기 위해서 비타협적으로 싸운 불굴의 이름으로 기억되어왔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솔제니친은 단순한 반공 작가가 아니었다. 1974년 <수용소 군도>가 국외에서 발간된 직후, 소련당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추방된 뒤 미국에서 20년에 걸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반서구적(反西歐的) 언동은 물론이고, 실제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비교적 초기에 쓴 중편소설 〈마트료나의 집〉이 특히 그렇다.


 

혁명 후 러시아 오지(奧地) 풀뿌리 농민들의 삶에 관한 이 뛰어나게 감동적인 이야기는 솔제니친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거쳐 전승되어온 러시아의 심오한 정신적·사상적 맥을 정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작가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스탈린이 강제적으로 추진한 집단농장화로 인해 러시아의 옛 농민공동체가 어떻게 철저히 파괴되었는가를 암시하면서, 농민들이 집단농장의 일개 타율적인 노동자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농민으로서의 심리와 정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성마저 잃어가는 비참한 상황을 묘사한다. 하지만 모두가 모두에 대해서 사나운 늑대가 되어가는 이 상황에서도, 러시아 사회의 오래된 ‘거룩한 바보’의 전통, 즉 자기주장이 아니라 자기희생을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철저히 겸허한 정신이 끝끝내 살아 있음을 작가는 발견한다. 솔제니친에 의하면, 아무리 타락한 세상이지만 아직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은 자기희생의 습관이 몸에 밴 이러한 '거룩한 바보'의 존재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데다가 늙고 병든 이 '바보'에게 ‘마트료나’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녀가 만물을 품 안에 기르는 어머니―대지(大地)를 표상하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마트료나'는 '마티'에서 왔고, 러시아어에서 ‘마티’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사실, 솔제니친의 저작 속에서 러시아 농민이나 농민공동체에 대한 언급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농민에 관한 일을 묘사하거나 언급할 때 그의 어조는 매우 날카롭고 강렬하다. 예를 들어, <수용소 군도>는 혁명의 과정과 혁명 후 소련에서 일어난 수많은 부조리, 잔혹함, 비극적 사건들을 엄청난 치밀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기록한 방대한 기록이다. 그렇게 기록된 사건의 하나로, 1932년 모스크바 근교 집단농장에서 다섯 명의 농민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그 이유는 기막힌 것이었다. 그날 집단농장에서 다른 농민들과 함께 풀베기 공동작업을 끝낸 뒤에 이들 다섯 명이 농장에 남아서 자기들이 개인적으로 키우는 말에게 먹이려고 따로 풀을 베어서 갖고 간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솔제니친이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드러내는 극도의 분노이다. "만일 스탈린이 이 다섯 농민 이외에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만으로 그는 극형에 처해졌어야 마땅하다"라고 그는 쓰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 범죄가 한둘이 아닌데도, 특히 이 농민들의 죽음에 관련해서 솔제니친이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드러낸 것은 어째서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러시아 옛 농민공동체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애정이었을 것이다. 솔제니친은 특히 혁명 전까지 계속되었던 농촌의 협동적 자치조직, 즉 '젬스트보'에 대해 관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 지식인들이 흔히 들먹이는 솔제니친의 이른바 '슬라브주의'라는 것도 실은 이러한 자치적 협동성의 생활기반 위에서 생을 영위하던 옛 러시아 농민의 세계를 옹호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부활시키고 싶다는 갈망에 깊이 관계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실제로 이와 같은 농민공동체는 따져보면 모든 인간다운 삶의 토대 중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나 작가로서 솔제니친의 위대성은 그가 평생 유지했던 강인한 정신적 에너지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에너지는 바로 이 농민적 세계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향수나 갈망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충전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집단농장의 풀을 개인적 용도를 위해서 베어 갔다고 해서 사형을 당한 농민들의 이야기에서 좀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즉, 그 이야기는 무엇보다 소비에트사회주의체제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에트체제는 인간사회의 오랜 관습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인간성에 반하는 폭력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던 것이다. 집단농장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집단농장화는 농민의 심리와 정서를 아예 무시하는 폭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생산력이라는 견지에서도 소농 중심 경제가 우월하다는 유력한 학문적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견해를 표명한 당대의 저명한 농업경제학자 알렉산드르 차야노프 등의 지식인은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그리하여 1928년에서 1933년까지 강행된 집단농장화의 직접적인 결과는 사회적 갈등과 비극적인 대기근과 그에 따른 엄청난 인명 손상이었고, 그 궁극적인 결과는 소비에트사회주의 자체의 붕괴였다.

 

물론 소비에트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스탈린의 폭압통치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와 같은 압제체제의 근간에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 인식에 있어서의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초기 소비에트의 이상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결국 산업화와 생산력 제고를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환원되어버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체가 생산수단의 국유화였다. 그 결과 농촌은 단지 도시와 공장에 식량과 원료를 공급하는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공동체는 파괴되고,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유리된 채 집단농장의 한갓 노동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고 해서 생산력 경쟁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가 일차적으로 효과적인 산업화 혹은 경제성장의 도구로 인식되는 순간, 국가가 독점적인 자본가가 되고 인민은 전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고 마는 기형적인 사회주의체제의 출현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 ⓒ프레시안

근대적 발전사관의 덫


 

돌이켜보면, 현대 사회주의운동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주도해왔던 맑스주의 자체 속에 이미 사회주의의 기형적인 발전을 예고하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우선, 사회주의가 성립하려면 먼저 물질적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자본주의 문명의 발달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맑스 자신의 논리가 그러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바 있듯이, 이러한 논리에 이미 혁명이 “자유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함”을 겨냥하는 운동으로 왜소화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나아가서, 여기에 내포된 역사 발전에 대한 일원론적이며 단계론적인 관점은 결과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비서구 민중공동체에 대한 공격과 침탈을 정당화하는 매우 위험한 논리로 이어지고 만다.


 

1857년과 58년에 걸쳐 일어났던 인도 민중의 대대적인 봉기에 대해서 영국 식민당국이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을 때, 맑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인도의) 이 목가적인 마을공동체들이 '동양적 전제주의'의 견고한 토대가 되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문제는 이러한 아시아의 사회 상태에 근원적인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인류가 그 운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영국의 죄악이 무엇이건, 영국은 그런 혁명을 위한 역사의 무의식적인 도구였다.

 

이렇게 '문명화'라는 개념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맑스의 논리는 "아시아의 '근대화'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본에는 아무런 전쟁책임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도 없다"는 오늘날 일본 보수우파의 논리나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를 미화하는 한국의 뉴라이트 그룹의 논리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그렇게 해서 비록 한정된 논리에서일지라도 오늘날 한일 우익 논객들이 뜻밖에도 맑스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 있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핵심은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맑스를 단순히 근대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얘기가 되겠지만, 비록 잠정적으로나마 맑스에게도 '자본주의 근대'는 역사 발전의 불가결한 단계로서 긍정하고 옹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 '근대'를 통해서만 사회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근대'를 허용해야 할 잠정적인 기간이 과연 얼마 동안이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과연 어떤 수준까지 발전해야 사회주의혁명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려줄 객관적인 척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역사법칙에 의해서 언젠가는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렇게 되면 '과학적 사회주의'가 그토록 강조한 '과학'과는 상관없이, 혁명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맥락에서 또 희극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오키나와(沖繩)에서 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어떤 글에서 자신이 아는 일본의 한 젊은 맑스주의 운동가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그 젊은이는 일본 자본주의가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아직 미숙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혁명적 수준까지 자본주의가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던 운동을 접고, 대기업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터무니없는 희극들이 발생하는 것은 서구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의해서만 문명생활도 가능하고, 더 높은 단계로의 인간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어온 뿌리 깊은 ‘근대적 미신’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생존의 궁극적 테두리인 우주와 자연은 순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갈 뿐인데도, 서구 근대문명은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내세워 직선적인 진보를 끝없이 추구·확대해왔고, 그 과정에서 생태적·사회적·인간적 한계는 계속해서 무시되어왔다. 근대문명이란, 간단히 말해서, 재생 순환적인 태양에너지 체계의 근본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장구한 세월 동안 땅속 깊숙이 묻혀 있던 석탄,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및 기타 지하자원을 채굴하여 마구잡이로 사용하자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는 문명이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문명이 영속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옛날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 개국 초에 일본에 와 있던 영국 공사가 당시 일본의 석탄 생산이 전근대적이어서 일본에 기항하는 영국의 선박에 원활한 연료공급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한 나머지 막부의 관리에게 근대적인 석탄 채굴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제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막부의 담당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일본의 석탄은 우리 세대에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은 전형적인 '비근대인'의 세계관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는 단순히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적으로 소비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 세계인식의 문제이다. 무엇이 정말 좋은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가, 혹은 어떤 사회가 진실로 선진사회인가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오로지 서구 근대적 발전사관에 의거해 있을 때, 위기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운동 세력 대부분이 지금까지 파행을 거듭해온 것도 결국 이러한 발전사관의 덫에 걸려온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란다우어의 '사회주의'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통설에 대부분 굴복한 채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안이 없다’는 구호 밑에 강화되어온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것보다 어쩌면 더 지독한 전체주의체제라고 할 수 있다. 감세, 노동유연화, 규제철폐, 민영화, 자유무역 등등, 그럴싸한 언어유희 밑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갈수록 벌어지는 사회적 격차, 부와 권력의 극심한 편중, 토지와 물을 포함한 공공재의 상품화, 국가기구의 사유화,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는 환경파괴이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이라고 부를 만큼 거의 노골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이 수탈 구조를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정말 이 시점에 ‘대안’이 없다는 게 진실일까.


 

그러나, 깊이 생각해볼 때, '대안이 없다'는 논리에 굴복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물질적 풍요와 계속적인 경제성장이 인간다운 삶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는 고식적인 관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용기 있게 이 상투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실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사회는 장구한 세월 동안 공동체의 호혜적 관계망을 토대로 다양한 상호부조의 경제를 경험해왔고, 그것은 아직도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생활을 떠받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업화된 세계에서 우리들은 현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상호부조의 경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 두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상호부조의 경제를 시급히 복구하려는 노력이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온 글로벌 자본주의시스템에 대한 계속적인 굴종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활로가 열리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사람들은 '상호부조의 경제'라는 개념에서 대뜸 '가난'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상호부조의 경제란 기본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적으로 사용할 것을 강요하는 성장경제시스템의 바깥에 있는 경제이다. 따라서 이른바 생활수준의 저하는 어느 정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가난'은 회피할 게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껴안아야 할 미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 철학자 프루동에 의하면, 정상적인 인간생활은 원래 가난한 생활이었다. 중요한 것은 '가난'을 견딜 만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가난'을 삶의 축복이 되게 하는 사회적 토대, 즉 공생공락의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일이다.


 

구스타브 란다우어는 유태계 독일인으로 20세기 초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뛰어난 문예비평가, 사상가, 평화운동가였다.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위해서 헌신적인 생애를 살다가 1차 대전 직후 짧은 순간 존립했던 바이에른 소비에트공화국 혁명정부의 문화 담당 각료로 활동하던 중 1919년 49세의 나이로 반동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란다우어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 언젠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진보'를 믿지도 않았으며,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찬성하지도 않았다. 그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철저히 자발적인 상호부조와 협동적 공동체들의 연합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기초는 생산력의 발전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였다. 그는 자본주의국가가 혁명에 의해서 전복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고, 새로운 사회공동체가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도 않았다. 그에게 국가는 "하나의 조건,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이자 행동양태"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즉 우리가 서로서로에 대하여 종래의 방식과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지금 당장 국가의 지배를 벗어나거나 심지어 국가를 폐기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게다가 그는 생애의 후반기로 갈수록 땅과 농촌공동체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는 토지를 떠난 인민은 자본가에 맞설 수 있는 독립성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산업노동자들이 도시의 공장으로부터 퇴각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들이 만일 '협동적 사회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대도시를 떠나 농촌공동체에서 농업과 소규모 공업의 결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란다우어의 생각이었다.


 

구스타브 란다우어의 '사회주의' 사상은 주류 사회주의 사상들에 밀려나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러나 '사회주의'란 무엇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의미한다는 그의 명료한 메시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들에게 요긴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경제’라는 덫에 걸려 사고력이 정지되어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강력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란다우어와 함께 우리는 우리 각자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서, 이웃들과 더불어 자발적인 협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당장에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2008년)


 

출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녹색평론사, 2019년, 74~82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011230402800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한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부산시민 원탁회의’, 열려

 

  • 기자명 반송남 현장기자
  •  
  •  승인 2020.07.20 14:03
  •  
  •  댓글 1
  •   

- 78개 원탁 800여명, 각자 가정, 사무실, 카페 등 에서 화상으로 접속해 진행
- 전국 지역, 전문가 모인 ‘전국연석회의’에서는 주한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운동 전국화, 국제화 결의해

 

  • <article id="article-view-content-div"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지난 18일(토) 오후7시.

    “외세없는 새로운100년, 부산에서부터! 미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부산시민 원탁회의를 여러분의 힘찬 박수로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선언과 함께 78여개 원탁조, 800여명이 함께 온라인 화상으로 모이는 ‘부산시민 원탁회의’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영상 다시보기

    이 회의는 지난 해 12월, 주한미군이 8부두 세균전부대 시설을 ‘현장설명회’란 이름으로 공개할 당시, 미군 책임자가 직접 맹독성 세균샘플 반입을 실토한 것에 분노한 부산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이 시설과 부대를 철거할 수 있을지’를 집단적으로 토론하고 결의하기 위해 기획됐는데, 본래 백운포 미 해군사령부 앞에서 대규모로 진행하려던 것을 장마와 코로나19의 우려로 인해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하게 됐다.

    본 행사를 기획한 ‘부산 미 세균전부대 추방 시민대책위’는 지난 달 부터 원탁회의에 참가할 조(동아리, 소모임, 분회)를 조직해 왔으며, 민주노총부산본부, 부산여성회, 진보당 등 지역조직과 분회가 있는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참가신청을 해 왔다고 한다. 특히, 8부두를 끼고 있는 남구의 ‘감만동(8부두)미군부대 세균무기실험실 철거남구지역대책위’의 경우, 20개 원탁을 조직하겠다는 목표로 주민만남과 단체만남을 진행하며, 아래로부터의 회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대연우암공동체의 경우, 회의 당일 마을회관에 30여명이 모여 노트북을 열고 참가하는 등 곳곳에서 활기찬 분위기가 넘쳐났다.

    회의가 대규모 화상회의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도 생겼다. 자기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함께 하던 원탁조에서는 사회자의 구호제창 요청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멀뚱히 있는 바람에 사회자가 진땀을 빼기도 했고, 대학생들로 구성된 조가 전체화면에 등장하자 어느 조에서 마이크를 끄지 않은 채 “와~ 젊네”하는 감탄사를 내뱉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각 원탁을 책임지는 조장들이 사전에 2시간동안 진행교육도 받고, 준비물도 꼼꼼히 챙겼음에도 당일에는 여기저기서 ‘소리가 안들린다’. ‘인터넷연결이 안된다’ 등의 하소연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누구하나 찡그리지 않고, 새로운 형식의 집회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으며, 원탁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이번 원탁회의 생중계 무대는 민주노총부산본부 2층 강당에 마련됐으며, 8개의 원탁을 두고 현장감을 살려 진행됐다, 이 원탁들에는 6.15부산본부, 공무원노조, 대학생겨레하나, 신진문화예술인 등 무대행사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첫 순서는 신진문화예술행동 흥에서 직접 만들어 온 보급곡을 함께 배워보는 시간이었는데, 이번 원탁회의를 겨냥해 ‘우리에게 권력을’이란 행진곡풍의 노래를 힘차게 선보였으며, 가사는 아래와 같다.

    ☞공연영상은 유튜브

    우리에게 권력을

    신진문화예술행동 흥

     

    누가 누구를 대변 하는가

    주인이 아닌 거짓된 자들

    언제까지 눈 앞에 있는

    진실을 왜곡하면서 살아갈텐가

    누가 누구를 억압 하는가

    주인이 아닌 제국의 자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두 주먹 불끈 쥐고서 싸워보자

    여기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권력을

    함께 외쳐 나가자 자주의 권리를

    여기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권력을

    함께 외쳐 나가자 자주의 권리를

    주인이 누구인지 이젠 보여줘야지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이어 최근 주한미군 사령관을 고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부산 민변의 이현우 변호사가 ‘공고한 연대를 통해 반드시 세균전부대를 추방시키자’는 인사말을 전했으며, 부산 남구에 위치한 오륙도아이쿱생협 김영옥 이사는 사무실에서 화상으로 준비한 인사말을 남겼다.

    다음 순서로 주한미군 세균전추방을 위한 전국연석회의에 참가한 전국의 대표들이 무대로 나와 차례로 인사를 했으며, 오후3시부터 진행된 전국연석회의 결과를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발표하였다.

    이번 전국연석회의는 최근 폭로된 ‘주한미군의 세균전부대 전국 배치계획’에 대해 우려를 가진 경남, 경남진해, 대구, 평택, 경기, 부산, 부산남구지역의 시민단체대표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권정호 변호사,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구 교수 등의 전문가들 포함 26명이 참가해 진행됐으며, 3시간에 걸친 열띤 발제와 토론을 통해 “주한미군 세균전부대 문제는 ‘생명과 안전, 자주와 평화’를 화두로 ‘전국화’, ‘국제화’로 나아가야 함”에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이에 기초해 아래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전국연석회의라는 틀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으며각 지역 세균전부대와 미군기지 현황과 투쟁자료 등을 공유하기 위한 소통창구를 마련하고지역 집행책임자와 전문가를 포함한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사업기획과 집행을 책임지기로 함.

    전문가 그룹의 여론사업 및 국회 사업 진행(9월 중 국회 토론회 진행 및 특위 구성 논의등)

    - 8.15에 미 대사관 앞 항의기자회견을 전국연석회의가 주최해 진행하고, 8.15민족자주대회 대표자회의에 참여하기로 함.

     전국에서 많은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참가자들은 큰 힘이 모이는 것 같아 기쁘다는 반응이었으며, 이후 진행된 전기훈 정책기획위원의 ‘미군 세균전부대 실체’에 대한 10분 발제와 함께 원탁토론을 활기차게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토론은 “주한미군 세균전 부대 어떻게 하면 추방할 수 있을까?”, “하반기 대규모 궐기대회 성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심도 깊게 진행됐으며, 각 원탁별로 제출된 의견들은 즉시 심의위원에게 송출되어 아래 10여개의 의견으로 간추려지는 데 활용됐다.

    1. 다큐멘터리광고방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활동을 적극화한다.

    2. 세균전부대의 심각성을 알리는 선전을 전면화하자.

    3. 온라인 교육영상을 제작해 온라인교육을 활성화한다.

    4. 세균전부대추방 강사단을 구성해 찾아가는 교육을 강화한다.

    5. 부산뿐 아니라 전국적인 투쟁을 기획하고 확대시켜 나간다.

    6. 미세균전부대 감시단을 구성해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한다.

    7. 세균전부대 철거를 위한 기층조직(주민조직현장조직청소년 조직 등)을 건설해 부산시민대책위를 확대 강화한다.

    8. 전국연대와 나아가 국제연대를 확대하고 강화한다.

    9.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미세균전부대추방 문제를 모든 후보가 공약화하도록 정치권을 압박한다.

    10. SOFA협정 개정운동으로 나아가자.

     

    위의 내용 중 3개를 선정하기 위해 회의참가자 전원에게 문자를 발송해 투표를 진행했는데, 1,2,9번 항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참가자들의 토론과 투표결과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은 역사적인 <부산시민 원탁회의 결정문>이 탄생했으며, 부산지역대학생겨레하나의 ‘바위처럼’ 몸짓공연과 노동예술지원센터 흥의 축하공연을 마지막으로 2시30분에 걸친 대 회의는 막을 내렸다.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부산시민 원탁회의 결정문>

    1. 2020년 12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대규모 부산시민 궐기대회'를 진행한다.

    2.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해 전국 지역단체전문가등과 함께 '국회토론회'를 개최하고이 문제의 전국화국제화를 꾀하기 위한 연대모임을 더욱 발전시킨다.

    3. 생물무기금지협약 등을 위반해 온 주한미군 사령관에 대한 '부산시민 1천인 고발인단'을 9월까지 모집해 2차고발을 진행한다.

    4. 미군 세균전계획 본질을 정확히 알리는 중,소규모 강연을 풀뿌리단체소모임까지 적극적으로 진행해, 12월까지 '부산 미 세균전부대 추방 시민대책위소속 단체를 100개로 확대한다.

    5. 미군 세균전계획의 본질을 폭로하는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해 대 시민 홍보를 백방으로 강화한다.

    6. 다큐멘터리광고방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활동을 적극화한다.

    7. 세균전부대의 심각성을 알리는 선전을 전면화하자.

    8.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미세균전부대추방 문제를 모든 후보가 공약화하도록 정치권을 압박한다.

    생소한 온라인 화상회의에 참가한 시민들은 운영에 일부 미숙함이 있었지만, 코로나19시대에 새로운 시도로 재미도 있었고, 의외로 집중도도 높아서 2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고 평했다.

    이번 원탁회의를 통해 참가자들은 주한미군 세균전부대를 추방하고 이 땅의 자주와 평화,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그 누가 아닌 우리가 해야 할 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함께 각인하게 되었으며, 전국으로 세계로 이 운동이 뻗어 나갈 첫 단추를 꿰었음을 확신하며, 향후 이 운동의 주체가 될 것을 다짐했다.

    </article>

관련기사

 

키워드

 

  • <article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WP 호건 주지사, 내가 한국에서 진단키트 50만개를 구입한 이유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에 실망
 
뉴스프로 | 2020-07-20 10:45: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WP 호건 주지사, 내가 한국에서 진단키트 50만개를 구입한 이유
–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에 실망
– ‘한국의 사위’ 문대통령의 스스럼없는 호칭, 큰 의미 돼
– 트럼프의 한국 비판 발언, 방위비 협상 불만 표현한 가십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6일 매릴랜드 주지사 호건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Fighting alone (외로운 싸움)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딸린 I’m a GOP governor. Why didn’t Trump help my state with coronavirus testing? (나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관련하여 우리 주를 돕지 않았을까?)라는 부제는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의문과 비난으로 가득하다.

먼저, 기사는 호건 주지사의 말을 빌어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과소 평가하고 검사전략과 물자 조달을 각 주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떠맡겼으며 원하는 사람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지사들이 검사를 간절히 요청하는 상태에서도 각 주에서 해결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매사추세츠의 경우 주에서 구입한 마스크 300만개를 연방정부에 압수당한 상태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호건 주지사는 점점 심각해져 가는 매릴랜드의 코로나 사태를 트럼프의 미온적인 대처에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인 아내의 힘을 빌어 문대통령에 도움을 요청해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를 위한 긴밀한 협조와 50만 개의 진단키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기사에 의하면, 트럼프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언급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주지사들은 연례회의를 위해 워싱턴에 모였고 이 때 각 부문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코로나가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에 대해 충격적인 의견을 들었으며, 공화당 소속의 주지사들은 따로 트럼프를 초청해 사적인 만찬을 가졌다는 것이다. 기사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자신의 친구인 일본의 신조 총리와 골프를 친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은과 얼마나 잘 지냈는지에 관해 언급하면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상대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끔찍한 사람들”이라며 왜 미국이 지금까지 한국을 보호해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한국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라고 불평했다. ‘ 고 언급하고 있다.

이후, 기사는 이수혁 주미대사가 주최하고 모든 주지사와 배우자들이 참석한 리셉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미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특히 미국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매릴랜드 주지사 부인에게 자랑스러움을 표했으며, 호건 주지사를 한국의 사위라 칭했다면서 이런 따스한 말이 매릴랜드와 한국 간의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전조가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후 매릴랜드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주정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진단검사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은 계속되었으며 지난 정부에 대한 비난 등 으로만 대응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건 주지사는 스스로 국립보건원에 공동 검사 실시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알고 한국인 아내의 도움을 빌어 한국에 진단키트 구입을 의뢰해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건 주지사는 기고문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주지사들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내가 극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릴랜드는 충분한 검사량에 근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 라는 말로 미국 연방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의 미흡한 조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항구적 우정작전이라고 명명된 프로젝트에서, 호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팀이 얼마나 신속하고 긴밀하게, 또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 주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기사는 ‘ 트럼프 대통령은 “매릴랜드 주지사는 검사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불평하며 “매릴랜드 주지사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고, 상당한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주지사가 한국까지 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지사가 약간의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라고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을 호건을 비난하고 주정부가 한 일을 무시하는 데 썼다고 비판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래리 호건 매릴랜드 주지사가 기고한 워싱턴포스트 기사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번역: 이소민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wapo.st/30pUImL

Fighting alone
외로운 싸움

I’m a GOP governor. Why didn’t Trump help my state with coronavirus testing?

나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관련하여 우리 주를 돕지 않았을까?  

Maryland Gov. Larry Hogan (R) says that President Trump played down the severity of the coronavirus outbreak, leaving states to come up with their own testing strategies and supplies. (Gabriella Demczuk for The Washington Post)
래리 호건 매릴랜드 주지사(공화당)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여 각 주들에 검사 전략 수립과 물자 조달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떠맡겼다고 말한다.

By Larry Hogan

JULY 16, 20

My wife, Yumi, and I stood on the tarmac, waiting in cloth masks, on the morning of April 18. Finally, a Boeing 777 landed and taxied to the far corner of Baltimore-Washington International Marshall Airport. It was the first Korean Air flight ever to land at BWI, but it didn’t have a single passenger aboard. The crew of five had flown 14 hours, straight from Seoul.

4월 18일 아침, 나의 아내 유미와 나는 천마스크를 착용하고 공항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보잉 777기가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 마셜 공항(BWI)에 착륙한 후 제일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 비행기는 BWI 공항에 착륙한 최초의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였지만 탑승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5명의 승무원 만이 서울에서 14시간 동안 직항으로 비행했다.

“Congratulations, honey,” I told Yumi as the pilot turned off the engines. “You helped save a lot of lives.”

파일럿이 엔진을 끄자 나는 아내 유미에게 “축하해요, 여보. 당신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왔어요”라고 말했다.

The plane was filled with 500,000 test kits for my state, where the coronavirus had already infected 12,308 Marylanders and killed 463 of them. The numbers were still climbing, and we would never be able to contain them without mass testing. “Anybody that wants a test can get a test,” President Trump had declared the previous month. In reality, only 2,252 Americans had been tested at that point in March. Across the country, my fellow governors were desperately pleading for help on testing. But in early April, Trump said it was the states’ job.

비행기에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12,308명의 주민이 감염되고 그 중 463명이 사망한 우리 주에서 사용할 50만 개의 검사 키트가 실려 있었다. 감염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고, 대대적인 검사 없이는 결코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앞서 “검사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라고 선언했었다. 실제로는 3월 당시 단 2,252명만이 검사를 받았었다. 미국 전역에 걸쳐 나의 동료 주지사들은 바이러스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는 각 주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Yumi was born and raised in South Korea, a country that had, by then, erected a well-coordinated testing regime. So, with nowhere else to turn, Yumi and I asked President Moon Jae-in for help. He arranged the sale of a half-million test kits from LabGenomics, one of the world’s leading medical testing firms, for $9 million. It was a bargain considering the $2.8 billion in revenue we projected the pandemic would cost Maryland.

나의 아내 유미는 당시 이미 체계적인 검사를 시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렇기에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유미와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의료 검사기 제조 업체인 랩지노믹스로부터 50만 개의 검사 키트를 900만 달러에 살 수 있도록 조율해 주었다.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매릴랜드 주가 입을 피해규모 추정치가 28억 달러에 달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금액이었다.

Now the kits had arrived. The crew members came down together, walked over and stopped six feet away. Yumi bowed, and the crew bowed in return. Following their lead, so did I. Then a caravan of Maryland National Guard trucks escorted by the Maryland State Police drove the tests from the airport to a refrigerated, secure warehouse at an undisclosed location. The federal government had recently seized 3 million N95 masks purchased by Massachusetts Gov. Charlie Baker. We weren’t going to let Washington stop us from helping Marylanders.

이제 그 검사 키트가 도착했던 것이다. 승무원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우리쪽으로 걸어와 6피트 거리에 섰다. 유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자 승무원들도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들을 따라 인사를 했다. 매릴랜드 주 방위군 트럭이 매릴랜드 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와 공개되지 않은 모처에 위치한 냉장설비를 갖춘 보안 창고로 검사기를 운반했다. 연방정부는 최근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구입한 N95 마스크 300만 개를 압수한 바 있었다. 우리는 매릴랜드 주민을 위하는 일에 워싱턴의 연방정부가 끼어들어 방해하도록 가만두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This should not have been necessary. I’d watched as the president downplayed the outbreak’s severity and as the White House failed to issue public warnings, draw up a 50-state strategy, or dispatch medical gear or lifesaving ventilators from the national stockpile to American hospitals. Eventually, it was clear that waiting around for the president to run the nation’s response was hopeless; if we delayed any longer, we’d be condemning more of our citizens to suffering and death. So every governor went their own way, which is how the United States ended up with such a patchwork response. I did the best I could for Maryland. Here’s what we saw and heard from Washington along the way.

이러한 일은 필요하지 않았어야 한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러스 발병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면서, 백악관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하거나, 50개 주의 전략을 수립하거나 국가 비축물로 있던 의료장비나 인공호흡기를 미국의 병원으로 보급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을 보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적인 대응을 실행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는 것이 명백했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지체했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고통 받고 사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주지사들이 각자 방법을 모색했고, 그리하여 결국 미국은 일관성 없이 주마다 각각의 다른 대응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매릴랜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워싱턴에서 보고 들은 것은 다음과 같다.

President Trump is joined by Vice President Pence, Health and Human Services Secretary Alex Azar and members of the coronavirus task force for a briefing at the White House on Feb. 26. Early in the pandemic, Trump assured that the United States had the outbreak under control. (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6일 백악관에서 펜스 부통령과 알렉스 아자르 보건복지부 장관,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TF) 위원들과 함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 대유행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발병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Trump’s first public utterance about the coronavirus set the tone for everything that followed. He was in Davos, Switzerland, on Jan. 22, after the first American diagnosis. “Are there worries about a pandemic at this point?” asked CNBC anchor Joe Kernen.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 최초의 공개적인 발언은 그 뒤를 따라 일어난 모든 일의 방향을 설정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직후인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 있었다. CNBC의 조케르넨 앵커가 “현 시점에서 대유행 우려가 있는지” 질문했다.

“We have it totally under control,” Trump responded unhesitatingly. “It’s one person coming in from China, and we have it under control. It’s going to be just fine.” And off the president went for the next eight weeks. The rest of January and February were peppered with cheerful or sarcastic comments and tweets, minimizing the outbreak’s severity and the need for Americans to do much of anything.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며, “중국에서 입국한 한 사람일 뿐이며 우리는 이를 통제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후 8주간 손을 뗐다. 그 이후 남은 1월과 2월에는 바이러스 발병의 심각성과 미국인들이 무엇이든 해야 하는 필요성을 최소화시키며, 쾌활하거나 빈정거리는 발언과 트윗이 쏟아졌다.

Only days after his first dismissal, we got our first scare in Maryland. A traveler who’d been in China landed at BWI with sniffles, coughs and lung distress. The passenger tested negative, but we were already making decisions in the governor’s office about how we should react when the first positive cases arrived. “It won’t be long,” I assured our team.

트럼프 대통령이 첫 일축을 한지 불과 며칠 후, 매릴랜드에서 처음으로 공포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여행자가 BWI 공항에 도착했는데, 콧물, 기침, 폐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해당 승객은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주지사실에서 이미 우리는 첫 번째 양성 환자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얼마 걸리지 않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우리 팀에 말했다.

So many nationwide actions could have been taken in those early days but weren’t. While other countries were racing ahead with well-coordinated testing regimes, the Trump administration bungled the effort. The test used by the federal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early on was fraught with inaccuracies, and onerous regulations hindered the nation’s private labs. The resulting disorganization would delay mass testing for almost two months and leave the nation largely in the dark as the epidemic spread.

초창기에 전국적으로 많은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이 잘 조직된 검사 체계로 앞서 나가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노력을 망쳤다. 초기에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사용한 검사기는 부정확성으로 문제가 되었고 부담스러운 규제 때문에 전국의 사설 실험실은 행동하지 못했다. 이렇게 초래된 혼란은 대대적인 검사를 거의 두 달간 지연시키고 전염병이 확산됨에 따라 미국을 암흑으로 빠뜨릴 것이었다.

Meanwhile, instead of listening to his own public health experts, the president was talking and tweeting like a man more concerned about boosting the stock market or his reelection plans.

한편, 자신의 공중 보건 자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주식 시장의 부양이나 자신의 재선 계획을 더욱 염려하는 듯 말하거나 트윗을 날리고 있었다.

America’s governors took a different approach. In early February, we descended on Washington for the annual winter meeting of the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As chairman, I had worked closely with the staff for months assembling the agenda, including a private, governors-only briefing at our hotel, the Marriott Marquis, to address the growing viral threat. We brought in Anthony Fauci,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who was already widely admired but whose awesome knowledge and straight-talking style hadn’t yet made him a national rock star; CDC head Robert Redfield; Ken Cuccinelli, the acting deputy secretary of homeland security; Jay Butler, the CDC’s deputy director for infectious diseases; and Robert Kadlec, assistant secretary for preparedness and response at the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미국 주지사들은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2월 초, 우리는 주지사협회의 연례적인 겨울 회의를 위해 워싱턴에 모였다. 나는 의장으로서 점점 커져가는 바이러스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묵었던 매리어트 마키스 호텔에서 주지사들만을 위한 비공개 브리핑을 비롯하여 회의 안건을 취합하는 등 직원들과 몇 달간 긴밀히 협력했다. 우리는 이미 널리 존경받고 있지만 엄청난 지식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아직 전국적인 스타가 되지 못한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 켄 쿠치넬리 국토안보부 차관 대행, 제이 버틀러 질병통제예방센터 전염병 부국장, 로버트 카들렉 보건복지부 준비 및 대응 차관보를 불러들였다.

They hit us with detailed presentations and the unfiltered truth, as well as it was known then. I remember hearing many dire claims: “This could be catastrophic. . . . The death toll could be significant. . . . Much more contagious than SARS. . . . Testing will be crucial. . . . You have to follow the science — that’s where the answers lie.”

그들은 자세한 프리젠테이션과 당시 알려진 만큼의 여과 없는 진실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비관적인 의견을 많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은 재앙이 될 수 있으며…. 사망자 수가 상당히 많을 것이며…. 사스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하며…. 검사가 아주 중요할 것이며…. 과학을 따라야 한다-그곳에 답이 있으니.”

It was jarring, the huge contrast between the experts’ warnings and the president’s public dismissals. Weren’t these the people the White House was consulting about the virus? What made the briefing even more chilling was its clear, factual tone. It was a harrowing warning of an imminent national threat, and we took it seriously — at least most of us did. It was enough to convince almost all the governors that this epidemic was going to be worse than most people realized.

전문가들의 경고와 대중을 향한 대통령의 일축은 충격적으로 큰 대조를 보였다. 이 사람들은 백악관이 바이러스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명확하고 사실적인 어조는 브리핑을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임박한 국가적인 위협에 대한 끔찍한 경고였으며 우리는, 혹은 적어도 우리 중 대부분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전염병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거의 모든 주지사들에게 납득시키기에 이는 충분했다.

During the retreat in D.C., the Republican Governors Association sponsored a private dinner with the president. Backstage beforehand, I said hello to him. We took a photo together. He was perfectly cordial, even though we’d criticized each other in the past. Then he came out and gave one of his unscripted rally speeches that seemed to go on at least an hour too long. I don’t remember him mentioning the virus, but he talked about how much he respected President Xi Jinping of China; how much he liked playing golf with his buddy “Shinzo,” Prime Minister Abe of Japan; how well he got along with North Korean dictator Kim Jong Un.

워싱턴에서 머무는 동안 공화당 소속 주지사 협회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사적인 만찬을 주최했다. 사전에 단상 뒤에서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과거에 서로를 비난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그는 나와서 원고 없이 연설을 했는데 적어도 한 시간은 되는 듯 너무 길었다. 대통령이 바이러스를 언급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자신의 친구인 일본의 “신조” 총리와 골프를 친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은과 얼마나 잘 지냈는지에 관해 언급했다.

Then, the jarring part: Trump said he really didn’t like dealing with President Moon from South Korea. The South Koreans were “terrible people,” he said, and he didn’t know why the United States had been protecting them all these years. “They don’t pay us,” Trump complained.

그런 다음 불쾌한 부분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상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끔찍한 사람들”이라며 왜 미국이 지금까지 한국을 보호해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한국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라고 불평했다.

Yumi was sitting there as the president hurled insults at her birthplace. I could tell she was hurt and upset. I know she wanted to walk out. But she sat there politely and silently.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모국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동안 유미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유미는 속상하고 화가 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나가고 싶었을 것이지만 예의바르고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If I didn’t do something dramatic, we simply would not come close to having enough tests in Maryland,” Hogan writes. (Gabriella Demczuk for The Washington Post)
호건 주지사는 “만약 내가 극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릴랜드는 충분한 검사량에 근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The next night, Saturday, Lee Soo-hyuck, the South Korean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hosted a reception at his official residence for all the governors and their spouses. Yumi had worked with the ambassador to plan the event. Moon delivered a video message, welcoming the governors and thanking them for Korea’s very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다음날인 토요일 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는 모든 주지사와 배우자들을 위해 관저에서 리셉션을 열었다. 유미는 그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 이 대사와 함께 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 통해 주지사들을 환영하고 한미 간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감사함을 전했다.

Speaking in Korean with English subtitles, he said how proud he was of Yumi as the first Korean American first lady in the United States. Then he referred to me as the son-in-law of the Korean people. It meant a lot to us to hear him say that, though it would take a couple of months before we would learn just how much his warmth would truly mean to the people of my state.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어를 하는 동안 영어 자막이 달렸고,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주지사 부인인 유미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나를 한국의 사위라고 칭했다. 비록 대통령의 온정이 우리 주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되기까지 몇 달이 더 걸릴 테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것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였다,

In the days and weeks that followed, as the coronavirus hit Maryland, we worked frantically, issuing executive orders, holding news conferences, calling other governors and federal infectious-disease experts, talking to local officeholders, strategizing with my senior staff — and constantly sanitizing our hands.

코로나바이러스가 매릴랜드 주에 발생하며 그로부터 몇 주 동안 우리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다른 주지사들 및 전염병 전문가들과 연락하고, 지방 공무원들과 대화하고, 우리 주 고위직 직원들과 전략을 세우는 등 꾸준히 손을 씻어가며 미친 듯이 일했다.

But the president was all over the place. He avowed, falsely, that “anybody” could get a test, even as my fellow governors were desperately pleading for help on testing. Then he shifted from boasting to blame. “We inherited a very obsolete system” from the Obama administration, he claimed, conveniently ignoring the fact that his own CDC had designed the troubled U.S. testing system and that his own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had waited a full month before allowing U.S. hospital labs to develop their own tests.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두서가 없었다. 나의 동료 주지사들이 검사를 위해 간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 조차 대통령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거짓을 공공연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과시에서 비난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한물 간 시스템을 물려받았다”라고 주장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문제가 많은 미국의 검사 시스템을 설계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식품의약청이 미국 병원 실험실의 자체 검사기 개발을 허가하기까지 꼬박 한 달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무시해버렸다.

On March 25, the president was back to bragging again. “We now are doing more testing than anybody by far,” including South Korea, whose widespread testing program was being praised around the world. This was true in absolute numbers, since we are a much bigger country, but we’d tested far fewer per capita than the Koreans had — 1,048 tests per million people vs. South Korea’s 6,764 per million — and of course that was the only figure that mattered. During one White House briefing in late March, Trump said the issue had been dealt with. “I haven’t heard about testing for weeks,” the president insisted.

3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다시 자랑하는 것으로 돌아와서 광범위한 검사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로부터 칭찬을 받던 한국을 포함해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가 더 많이 검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인 까닭에 이것은 절대적인 수치로는 사실이지만, 1인당 검사 수를 비교하면 – 우리는 100만 명당 1,048회, 한국은 100만 명당 6,764회로 – 우리가 훨씬 더 적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수치였다. 3월 말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며 “나는 몇 주 동안 검사에 관해 들은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Really?
정말일까?

As Trump was making these comments, I was requesting his approval to conduct joint testing at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I even called Francis Collins, the head of NIH, to make this request, but he stopped me before I could. Not to argue but to plead: “Actually, Governor,” he said, “I’m glad you called, because I was going to ask you for help.” At NIH headquarters, he explained, his people had the capacity to perform only 72 tests a day. “I don’t even have enough tests for my immune-compromised patients or for my staff,” he said. He wondered if I might prevail upon Johns Hopkins, whose Suburban Hospital is across the street from NIH, to do some testing for him.

트럼프 대통령을 이런 발언을 하는 동안 나는 대통령이 국립 보건원과의 공동 검사 실시에 대해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요청을 하기 위해 프란시스 콜린스 국립 보건원 원장에게 연락하기도 했지만, 내가 말하기도 전에 원장이 나를 제지했다. 논쟁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주지사님,” 원장은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 왜냐하면 제가 도움을 요청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원장은 국립 보건원 본부에서 하루에 수행할 수 있는 검사가 72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면역결핍 환자나 보건원 직원을 검사하기 위한 검사기조차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원장은 내가 국립 보건원의 길 건너편에 분원을 가지고 있는 존스 홉킨스를 설득하여 국립 보건원 측의 일부 검사를 해줄 수 있을지 알고자 했다.

Hogan is joined by his wife, Yumi Hogan, in Annapolis on April 20 to announce the state’s purchase of 500,000 coronavirus tests from South Korea. The first lady, a Korean American, played a pivotal part in securing the deal. (Michael Robinson Chavez/The Washington Post)
호건 주지사는 부인 유미 호건이 함께 하는 가운데 4월 20일 안나폴리스에서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검사기 50만개를 구입한 사실을 발표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주지사 부인은 이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It was hopeless, waiting around for him. Governors were being told that we were on our own. It was sink or swim. And if I didn’t do something dramatic, we simply would not come close to having enough tests in Maryland.

대통령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주지사들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내가 극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릴랜드는 충분한 검사량에 근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Luckily, I had a special ally on my side: Yumi Hogan.

다행히도 내 편에 유미 호건이라는 특별한 동맹이 있었다.

We’d all seen how South Korea, hard hit at first by the virus, conquered its outbreak with a swift program of social distancing, testing and contact tracing. Yumi was almost a celebrity in her home country. (I remembered the cheering people waiting on the sidewalk once outside our hotel in Seoul: “First lady! First lady!”) And hadn’t Moon recently called me a Korean son-in-law? Maybe the Koreans would be willing to help.

우리는 모두 애초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심하게 타격을 입었던 한국이 어떻게 사회적 거리두기, 검사, 접촉자 추적 등 신속한 프로그램으로 발병을 극복했는지 봤다. 유미는 조국에서 거의 유명인사였다.(나는 서울에서 우리가 머물던 호텔 밖 인도에서 “주지사 부인!”을 환호하며 기다리던 사람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에 나를 한국의 사위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아마도 한국인들은 우리를 도와주려 할 것이다.

On Saturday, March 28, I asked Yumi to join me on a call with Ambassador Lee. We spoke about the special relationship between Maryland and Korea, and Yumi made a personal plea in Korean, asking for the nation’s help.

3월 28일 토요일, 나는 유미에게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와의 통화를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한국과 매릴랜드 사이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유미는 한국의 도움을 요청하며 한국어로 개인적인 간청을 했다.

That request set in motion what we called Operation Enduring Friendship, 22 days of vetting, testing and negotiating an unprecedented set of protocols. Our scientists and doctors spoke to their scientists and doctors. Eight Maryland government agencies got involved, as did their counterparts in Korea. It took dozens and dozens of phone calls, night after night — sometimes it seemed like all night — working through language barriers and a 13-hour time difference.

그 요청은 항구적 우정 작전(Operation Enduring Friendship)으로 불리며 추진되었고, 22일간 전례 없는 프로토콜을 조사하고, 검사하고, 협상했다. 우리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한국의 과학자들과 의사들과 대화했다. 8개의 매릴랜드 주정부 기관이 개입했고, 한국의 상응하는 기관도 개입됐다. 언어 장벽과 13시간이라는 시차를 두고 일하며 수십 통의 전화 통화를 밤마다 했다- 때로는 밤새도록 한 듯하다.

Moon’s team helped to cut through miles of bureaucratic red tape and connected us directly with executives at LabGenomics, a molecular diagnostics company. We explained what we were trying to achieve in Maryland and how desperate our need was. The LabGenomics people seemed to understand.

문재인 대통령의 팀은 관료적인 갖가지 절차를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우리를 분자 진단 기업인 랩지노믹스의 경영진과 직접 연결시켜주었다. 우리는 매릴랜드에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과 우리의 필요성이 얼마나 절실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랩지노믹스의 경영진이 우리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The scramble eventually culminated in the arrival of those half-million tests. I could finally breathe a sigh of relief: We had the tools at least to learn the scope of the outbreak.

이 쟁탈전은 결국 그 50만 개의 진단기가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발병 범위를 알아낼 수 있는 도구를 가졌다.

I thought we might get a congratulatory word from the president. Trump always had a taste for bold gestures — but, apparently, only for bold gestures he could claim. The president spent much of the following Monday’s White House briefing criticizing me and dismissing what we had done. “The governor from Maryland didn’t really understand” about testing, Trump grumbled. “The governor of Maryland could’ve called Mike Pence, could’ve saved a lot of money. . . . I don’t think he needed to go to South Korea. I think he needed to get a little knowledge.”

나는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대담한 행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명백히 본인이 취한 대담한 행동만 좋아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월요일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을 나를 비난하고 우리가 한 일을 무시하는 데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릴랜드 주지사는 검사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불평하며 “매릴랜드 주지사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고, 상당한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주지사가 한국까지 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지사가 약간의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The president’s comments that day seemed to confuse test kits with testing labs, but whatever. It was a great day for Maryland.

그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검사키트와 검사실을 혼동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어쨌든 매릴랜드에게는 멋진 날이었다.

Pence called me a few days later. We had a friendly and productive conversation on a range of topics related to Maryland and the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At the end of the call, I jokingly said: “By the way, the president said that instead of working with South Korea, I should have just called you to get tests. If I had known it was that easy, I could have saved a heck of a lot of effort!” He chuckled, but there wasn’t much else to say.

며칠 후 펜스 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매릴랜드와 전국 주지사 협회와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친근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통화 마지막에 내가 농담조로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함께 일하는 대신에 부통령께 전화해서 검사기를 받았어야 했다고 말하셨는데, 그렇게 쉬울 줄 제가 알았더라면 엄청난 노력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웃었지만 별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100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로나19로 ‘주가 급락’한 틈 타 증여 나선 재벌가들

CJ·LS·GS 그룹 등 코로나19 사태에 가족·친인척 등에 주식 증여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20-07-20 19:49:46
수정 2020-07-20 19:49:46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CJ그룹 본사 자료사진
CJ그룹 본사 자료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식 시장이 급락하자, 이 시기를 틈타 일부 재벌가들이 주식 증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주가 하락을 이용해 절세 효과를 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증여 주식에 붙는 세액은 증여일 기준 전후 2개월간 종가 평균액을 토대로 산정된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이뤄졌던 두 자녀에 대한 주식 증여를 취소하고 올해 4월 재증여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딸 이경후 CJ ENM 상무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에게 각각 CJ 우선주 92만주씩 총 184만여주를 증여한 바 있다. 당시 증여 시점 전후 2개월 동안 평균 주가는 6만5962원으로 총 증여액은 1,214억원 규모다. 이에 따른 증여세도 약 724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올해 3월 30일 증여를 취소하고, 4월 1일 재증여했다. 재증여 주식수는 기존과 동일했다. 증여 시점만 작년 12월에서 올해 4월로 바뀐 셈이다. 다만 5월 말까지의 평균 주가가 5만5555원인 점을 고려하면 증여세 규모는 609억원으로 당초(약 724억원)보다 증여세를 115억원 절감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증여세 과세표준 신고기한은 증여가 발생한 월의 마지막 날로부터 3개월로 이 기간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증여 취소가 가능하다.

CJ그룹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부득이 이같이 결정했다”면서 “4월 주가 수준으로는 증여하는 주식의 전체 가격과 세금이 비슷해 증여의 의미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LS그룹 사옥
LS그룹 사옥ⓒLS그룹 제공

LS그룹 총수 일가도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가족과 친인척 등에게 주식을 대거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자열 LS그룹 회장과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회장,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 구근희 씨 등은 지난 5월 이후 자녀와 친인척 등에게 LS 주식 총 95만9천주를 증여했다.

증여는 지난 5월 11일과 12일 집중해서 이뤄졌다. LS 주가는 11일 3만5천900원, 12일 3만4천900원으로 코로나19 여파가 있기 전인 지난해 말 대비(4만7천800원) 25%가량 하락했다.

구자열 회장은 두 딸에게 10만주씩, 구자홍 회장은 두 명의 조카에게 6만주씩 증여했다. 구자엽 회장은 아들과 친인척 등에게 12만7천주를, 구자은 회장은 두 자녀에게 10만주씩을, 구자균 회장은 두 자녀에게 5만주씩을 각각 넘겨줬다. 총 335억원대의 증여가 이뤄진 셈이다.

GS그룹 총수 일가도 비슷한 시기 가족들에게 주식을 증여한 바 있다. 지난 4월 28일 허연수 GS리테일 대표이사 부회장은 아들에게 19만2,000주를, 5월 12일에는 허 부회장 누나인 허연호씨가 아들에게 8만28주를 넘겼다. 작년 말 5만원대를 웃돌던 GS의 주가는 코로나 이후 20% 이상 내린 상태다.

또한 허영인 SPC 삼립 회장도 지난 4월 장남에게 주식을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 회장은 지난 4월 8일 SPC삼립 보통주 40만주를 장남인 허진수 부사장에게 증여했다.

당시 SPC삼립의 주가는 6만6,300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전인 지난해 말(8만7,200원) 대비 23.9%나 급락한 상태였다.

윤정헌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태년 "국회 통째로 세종시 내려가야" 행정수도 개헌 필요성 시사

김태년 "국회 통째로 세종시 내려가야" 행정수도 개헌 필요성 시사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인쇄 글자 작게 글자 크게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56)가 20일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며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완성을 제안했다. 김 원내대표는 ‘개헌’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국회 이전을 고리로 사실상 개헌 이슈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은 일자리와 주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지방소멸은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동안 공공기관을 대거 지방으로 이전하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충분치 않았다”며 “행정수도 완성이 지체되면서 효과는 반감됐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수도권 집중이 8년 가량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시 한 번 균형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완성의 명분을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부동산 문제 해결에서 찾았다. 그는 “(행정수도를 완성하면)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행정수도 완성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 혁신성장을 위한 대전제이자 필수 전략”이라고 했다.

<iframe width="1" height="1" src="http://adv.khan.co.kr/RealMedia/ads/adstream_sx.ads/www.khan.co.kr/pvcheck@x01"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allowtransparency="true"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none; outline: none 0px; vertical-align: baseline; background: none 0px 0px repeat scroll transparent; display: block; width: 0px; height: 0px;"></iframe>

김 원내대표는 “서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도시·세계도시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01040001&code=910100#csidx087f233937e5eeaabdc4b9164f0058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 외교안보팀이 해야 할 일, 한미 훈련 중단

[황재옥의 '한반도 톡'] 남북대화, 북미대화 살리기 위해 결단해야

우리의 차후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것은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여부에 따라 향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의 태도가 결정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고이다. 우리의 태도가 결정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메시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을 끌고 갈 외교 안보라인을 대폭(국가안보실장,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교체했다. 이는 임기 말까지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해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새롭게 교체된 외교안보라인에 기대를 나타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북한도 남북대화나 북미대화의 문이 아주 닫혀버리는 것을 원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문제 삼은 대북 전단 문제는 일단 지난 17일 전단 살포 단체의 법인 설립이 취소됐고, 대북 전단 살포를 강력 규제할 관련 법제정 절차는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북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통상적으로 매년 8월 중하순에 실시했던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서는 아직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새로 지명된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 내정자는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7월 하순에나 취임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바꿔 말해, 새로 취임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장관의 결단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는 후퇴할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취임을 해도 이인영 통일부장관이나 박지원 국정원장이 한반도 평화·번영을 향한 문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일 한미연합방위 태세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올해도 대규모 연합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같은 주장 외에도 전작권 환수, 한미동맹 강화 이유로 한미 연합 훈련을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분야합의서에 상대방에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안 하기로 한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매년 8월에 실시됐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등 한미 연합 훈련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부터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겠다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약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올 2월에 예정됐던 한미 연합 기동 훈련은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됐다.

 

이렇게 한미 양국 정부의 정무적 판단으로 중단할 수도 있고, 축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는 것이 한미 연합 훈련이다. 그렇다면 새 외교안보팀은 청문회가 끝나기 전이라도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시키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새 외교안보팀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 연합 훈련은 중단돼야 한다. 15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망자는 58만 5619명, 확진자는 1366만 2667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중 미국이 사망자 수 압도적 세계 1위로, 2위인 브라질의 7만 5366명보다 두 배 많고, 전 세계 사망자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부에 따르면 이달 9∼15일 미국에서 들어온 주한미군 장병 12명과 가족 2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현재 주한미군 관련 누적 확진자 수는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8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은 코로나19 때문에라도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마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 1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인도주의 휴전" 결의문을 15개 이사국 전원합의로 채택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안보리가 휴전 결의문을 낸 것은 다행이다. 코로나19가 극복될 때까지 온 인류는 총을 내려놓고 공동의 적인 코로나19와 전투에 임해야 한다.

 

한미 연합 훈련 몇 번 안 한다고 한미동맹이 약화되지 않을 것이고, 한미 연합 훈련 안 하면 전시작전지휘권 전환이 어렵다는 것도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을 다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테이블로 불러 낼 수 있다면, 올해 한미 연합 훈련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노력해 왔던 성과가 후퇴하지 않게 새 외교안보팀은 결단해야 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00934204406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