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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장성들이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한 이유

문재인 대통령,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
 
임병도 | 2018-07-30 07:59: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통령께 대하여 경례. 충성!”

7월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어깨에 별이 달린 군장성 수십 명이 꼿꼿한 자세로 거수경례와 함께 ‘충성’을 외쳤습니다.

원래 청와대에서 열리는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이 있더라도 거수경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거수경례와 함께 충성이라는 구호까지 나왔습니다. 심지어 군장성들은 대통령이 오기 전에 거수경례와 구호를 연습하기도 했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장군들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랬던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관례를 깨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성 구호까지 외쳤을까요?

문재인 대통령, 계엄령 검토는 불법적인 일탈행위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이 나왔을 때만 해도 ‘계엄 문건이 구체적 실행 계획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라며 진위 파악이 먼저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실 관계를 정확히 검토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이다”라며 강하게 비판을 하고 나섰습니다.

문 대통령이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내란 음모’처럼 엄청난 범죄 사실로 규정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군을 더는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군을 견제하는 일 뿐입니다. 군장성들 입장에서는 군 통수권자를 잘 따르고 있다는 모양새를 취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충성’을 외치게 된 배경입니다.

국방부, 장군 76명 감축하겠다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군장성과 악수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국방부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 개혁 2.0 보고를 통해 “현재 436명의 장군 정원을 2022년까지 360명으로 76명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장군 숫자는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군 장성 감축 계획을 실행하려고 해도 군대 내의 반발로 무산되기 일쑤였습니다.

MB정부도 2020년까지 60명의 장군을 감축하겠다고 국방계획에 포함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고, 결국 40명 감축으로 축소됐습니다.

과거 정부와 다르게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군장성 감축은 실행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으로 국민 대다수가 장군 감축 계획에 적극 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목을 날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승승장구하던 장군들마저도 몸을 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개혁 2.0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는 ‘국방개혁 2.0,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 보고대회와 함께 열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가 마련한 ‘국방개혁 2.0’에 대해 “군 스스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국방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으로 임해 주시길 바란다”라며 아래와 같이 당부했습니다.

첫째, 질적으로 강한 군대를 건설해야 합니다.
둘째,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 태세를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스마트 국방, 디지털 강군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넷째,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기무사가 박근혜 탄핵을 막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엄령 문건을 만들고 내란음모를 계획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100만이 넘는 국민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국민의 힘이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군장성들은 결코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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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구두약속, 세상을 바꾸는 격변의 기폭제

[개벽예감 308] 비공개 구두약속, 세상을 바꾸는 격변의 기폭제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7/30 [08: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미국군 유골송환은 언제나 전승역사와 연관된다

2. 단독회담 중에 비공개 구두약속 있었다

3.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의 정체

4. 통일을 위해서라면 9억 달러짜리 시설도 아깝지 않다

5. 3단계로 도약한 조선, 2단계 진입 주저하는 미국

 

 

1. 미국군 유골송환은 언제나 전승역사와 연관된다 

 

2018년 7월 27일, 이 날은 조선에서 국가명절로 경축하는 전승절이고, 미국에서는 기억하기 싫은 패전일이다. 미국인들은 조미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했다는 조선의 역사인식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공화국 남반부를 무력으로 강점한 미제침략군이 공화국 북반부까지 강점하려고 추종국 군대들을 거느리고 전면전을 도발하였으나,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북침공격을 저지하고 정전협정을 항복의 표시로 받아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전승 65주년을 맞은 지난 7월 27일 오전 6시경, 오산미공군기지를 이륙한 미국 제11공군 산하 제15비행단 소속 C-17 글롭매스터(Globemaster) 수송기 한 대가  원산국제비행장에 착륙하였다.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가 담긴 유골함들이 수송기에 실렸다. 유골함을 실은 수송기는 곧바로 이륙하여 오전 11시경 오산미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지난 시기 조선은 판문점에서 육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원산에서 항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다.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조선에서 전승 65주년을 맞은 2018년 7월 27일 미국 제11공군 산하 제15비행단 소속 C-17 수송기는 원산국제비행장에서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가 담긴 유골함 55개를 싣고 오산미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이 사진은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한 수송기에서 유골함을 내리는 장면이다. 지난 시기 조선은 판문점에서 육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원산에서 항공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다.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을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원래 조선은 전승절 65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려고 계획하였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전협정은 조미전쟁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받아낸 첫 번째 항복의 표시이고, 종전선언은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받아낼 두 번째 항복의 표시이므로, 조선은 첫 번째 항복을 받아낸 곳에서 두 번째 항복도 받아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기가 조선에게 항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종전선언 발표를 뒤로 미루었다. 미국의 지연전술 때문에 종전선언 발표와 유골송환은 뒤로 미루어졌으나, 조선은 미국의 지연전술을 무력화시키고 오는 8월 중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나머지 유골을 추가로 송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미전쟁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항복의 표시로 정전협정을 받아낸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여야 마땅하므로, 종전선언을 발표하지 못한 채 미국군 유골만 넘겨주게 된 이번에는 판문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고, 다음번에는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면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이미 발굴된 미국군 유골 200여 구 가운데서 55구 유골만 1차로 넘겨주었고, 나머지 150여 구 유골은 판문점에서 추가로 넘겨주려고 남겨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평양국제비행장이 아닌 원산국제비행장을 송환장소로 택했을까? 원산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이 원산 앞바다를 침범하여 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끌어갔던 전승기억이 남아있는 항구도시다. 조선은 30여 년 동안 원산항에 푸에블로호를 전시하였다가, 1999년에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겼고, 지금은 2013년 7월 28일에 개관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보통강변 옥외전시장에 전리품으로 전시하였다. 판문점에서도 원산에서도 조선의 유골송환은 언제나 조선의 전승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미국군 유골송환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조미정상회담 확대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요청하여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된 것이므로, 백악관은 송환당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이 미국군 유골을 송환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지만, 그런 지적은 백악관의 일방적인 시각만 생각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백악관의 일방적인 주장을 따르는 편중보도로 유골송환의 진실을 가렸지만, 유골을 송환한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조선이므로 유골송환의 의미는 조선의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조선의 시각에서 유골송환을 바라보면,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조선이 그 대결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항복의 표시로 종전선언을 받아내기 위해 우선 미국군 유골 55구를 1차로 송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단독회담 중에 비공개 구두약속 있었다

 

2018년 7월 24일 미국 쌘프랜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외교-국방장관회담이 진행되었는데,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그는 취재기자로부터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를 시작하였다는 미국의 언론보도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때,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에 완전히 부합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구두로 약속했다”고 답변했다.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에서 중요한 계기이므로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려고 하는데, 우선 팜페오 국무장관의 답변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공동성명 이외에 공개되지 않은 구두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두 정상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들어있지 않은 비밀사항이어서 구두약속이 실행되기 전에는 두 정상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고, 더욱이 두 정상 간의 비공개 구두약속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격변의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개 구두약속을 나누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도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비공개 구두약속을 나누었다. 비공개 구두약속의 중요성을 간파한 트럼프의 정적들은 조미정상 단독회담의 비공개 구두약속과 미러정상 단독회담의 비공개 구두약속을 모두 세상에 공개하라고 백악관에 요구하며 소란을 피웠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 단독회담을 시작하기에 직전 취재기자들 앞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에서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구두약속을 나누었다. 두 정상 간의 비공개 구두약속은 모두 10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구두약속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격변의 기폭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나는 2018년 6월 18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트럼프가 말하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공개 구두약속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였다.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실현되는 것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철군조치에 상응하여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5년 동안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핵대결의 내면을 파헤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비공개 구두약속, 다시 말해서, 주한미국군의 완전한 철수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실현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조선이 이행하려는 중대조치가 실행되기 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다섯 가지 중대사안을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이행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 종전선언 발표 

- 평화협정 체결 

- 대조선 경제제재 해제 

- 주한미국군 철수

 

미국이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대조선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 분야별 교류를 추진하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섯 가지 중대사안을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이행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 미국군 유골송환 및 발굴 

-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 녕변흑연감속로 해체 

- 핵확산금지조약 복귀 

 

조선이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대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 분야별 교류를 추진하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구두약속 가운데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약속만 실행에 옮겼고,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약속은 뒤로 미루었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공개 구두약속 가운데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기로 한 약속을 이미 이행하였고, 지금은 미국군 유골을 송환, 발굴하기로 한 약속과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이 지연전술을 쓰는 바람에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속도가 약간 늦어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지연전술이 무력화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행시간표가 예정대로 실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3.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의 정체

 

2018년 6월 25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북조선이 여전히 핵분열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짤막한 발언이었지만, 조미관계의 깊숙한 비밀공간에서 그 발언의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새로운 대조선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의 눈치를 살피며 발언수위를 조절해야 하였던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에서 여전히 핵분열물질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슬쩍 덮고 넘어간 임기응변이었다. 임기응변을 발휘한 팜페오 국무장관의 머릿속에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차마 꺼내놓지 못한 말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조선에서 여전히 핵무기가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차마 꺼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핵분열물질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물질이므로, 조선에서 핵분열물질이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말은 핵무기가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뜻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조선에서 핵분열물질만 생산되고 핵무기는 생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를 알지 못하는 착오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와 동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완전히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점차적으로 축소한다고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조선에게 핵분열물질 감산과 핵무기 감산을 기대할 수도 없고, 요구하지도 못한다. 미국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점차적인 핵감산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허점이었다. 미국은 조선의 점차적인 핵감산 문제를 협상에서 제기하지 않은 실수를 후회하면서, 그 무슨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느니, 영구적이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라느니,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느니 하는 괴상한 개념들을 조작, 유포하면서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허상에 한 눈을 팔았다. 미국은 실책을 범했다.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에서 끊임없이 울려나오는 기계동음이 백악관의 속을 바작바작 태우고 있다. 백악관은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사업을 현지지도한 소식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보도에 나오는 현장보도사진들 가운데 하나인데, 공식명칭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가 놓여있다.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와 동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은 핵무기생산체계를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점차적으로 축소한다고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제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은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핵시설단지에서 가동되는 흑연감속로에서 핵물질을 연소하고 그것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하여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데, 그 생산량은 연간 5kg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건설하여 2010년에 세상에 공개한 우라늄농축시설에서 제조되는 고농축우라늄을 가지고 대부분의 핵무기를 생산한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8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핵탄두 보유량은 2017년 7월 28일을 기준으로 최대 60발에 이른다고 하는데, 2017년 6월 27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조선의 연간 핵탄두 생산량이 6~7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은 핵탄두를 2개월마다 1발씩 계속 생산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핵무기 생산을 중지시키는 것은,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를 끄는 것처럼 화급한 문제다. 백악관이 자기 발등에 떨어져 타들어가는 불덩이를 화급히 끄려면,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구두약속을 꾸물거리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도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연전술을 들고 나와 종전선언 발표를 뒤로 미룬 것은 발등에 불덩이가 떨어져 타들어가는 백악관의 화급한 처지를 망각한 처사였다. 

 

 

4. 통일을 위해서라면 9억 달러짜리 시설도 아깝지 않다

  

2018년 7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38노스(North)>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2018년 7월 20일과 22일에 각각 촬영된 그 위성사진자료들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업위성이 7월 20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자료에서 해체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 보인 것은, 그 해체작업이 그보다 며칠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평소에 조선을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미국 첩보위성이 상업위성보다 앞서, 더 세밀하게 해체작업현장을 포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24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해외참전노병 전국대회에서 연설하면서 “북조선이 핵심적인 미사일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을 해체하는 절차를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진들이 나왔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가 연설하기 전날인 7월 23일에 <38노스> 보도기사에 실린 위성사진자료를 보고나서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처럼 말한 것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7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38노스>에 실린 상업위성사진자료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위성발사시설들이 해체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한 중대조치들 가운데 하나다. 2011년 말에 완공된 서해위성발사장은 9억 달러짜리 현대식 위성발사시설이다. 지금 조선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런 위성발사시설을 주저없이 해체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7월 6일과 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을 마친 팜페오 국무장관은 7월 8일 일본 도꾜에서 한미일 3자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였는데, 회담 직후에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미사일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을 해체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약속해온 그 문제에 관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논의했다. 중요한 시기에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될 것인데, 곧 시작된다니 희망적이다. 이것은 비핵화를 향한 행동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그들의 목표를 이행하는 데서 좋은 발걸음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팜페오 국무장관의 이 발언은, 조미고위급회담 중에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재확인하고, 2018년 7월 20일 직전 어느 날부터 해체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통보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조미고위급회담 결과를 보고받고 조선이 7월 20일 직전 어느 날부터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7월 24일 해외참전노병 전국대회 연설에서 마치 그 전날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었던 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8일 도꾜에서 진행된 3자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이 “미사일시험장”을 곧 해체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는 보도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서해위성발사장 경내에 있는 대륙간탄도탄엔진분사시험장이 해체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38노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대륙간탄도탄엔진분사시험장과 함께 위성발사시설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을 해체하는 것은 응당한 조치로 되지만, 서해위성발사장 전체를 해체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서해위성발사장은 2011년 말에 완공되었다. 250만 평방미터(76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부지에 현대식 시설들이 들어섰다. 2012년 3월 31일 <조선일보>는 서해위성발사장 건설비용이 약 8억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한국 정보당국의 추산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완공 이후에도 조선은 서해위성발사장 시설을 더욱 확충, 보강하였으므로, 서해위성발사장 총건설비는 9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이 9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서해위성발사장이 9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비로 산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시설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만일 서해위성발사장이 없었다면, 1998년 8월 31일 조선이 첫 인공위성을 동해위성발사장에서 쏘아올린 때부터 오늘까지 20년 동안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기울여온 국가우주개발사업도 성과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우주개발은 위성발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6년 2월 7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4호를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가 서해위성발사장 수직발사대에서 거대한 화염과 굉음을 내뿜으며 우주공간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구관측위성을 탑재하고 수직발사대로 이동하기 직전 조립시설 작업장에 가로놓인 위성운반로켓 은하의 동체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기울인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고, 우주강국건설의 꿈은 원대하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스스로 중단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8천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결심하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국가우주개발보다 더 중대하고 고귀한 과업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기울인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다. 조선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제1차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자기의 우주과학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13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국가우주개발국(NADA) 창설을 결의하였고, 우주개발법을 채택하여 우주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조선에서는 국가우주개발국 이외에도 민간단체인 조선우주협회가 2016년에 조직되어 해마다 우주과학기술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우주강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은 2022년까지 정찰위성, 통신위성, 위치관측위성을 연속 쏘아올려 독자적인 위성항법체계(GPS)와 지리정보체계(GIS)를 구축하기 위한 우주개발의 길에 나섰던 것이다.  

 

2016년 8월 4일 미국 통신사 <AP>는 조선의 국가우주개발국 현광일 과학연구실장이 2016년 7월 28일 <AP> 특파원과 현지에서 진행한 대담을 실었다. 대담에 따르면, 조선의 우주과학자들은 제2차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2020년까지 완수하고, 그 다음에는 달탐사위성을 쏘아올려 달표면에 공화국 깃발을 꽂으려고 구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없어서는 안 될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다니, 지난 20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이제 와서 중단하려는 것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만이 내릴 수 있으므로, 지난 7월 20일 직전에 시작된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정에 따른 조치인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조선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오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스스로 중단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8천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얼마나 강고하고 강렬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국가우주개발보다 더 중대하고, 고귀한 과업이다.    

 

(2)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에 통일공화국이 세워지면, 분단체제 아래서 남과 북이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우주개발사업이 하나로 통합될 것이며, 통일공화국의 국가우주개발사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추진력과 추진속도로 비약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전략은 통일공화국에서 실현될 원대한 우주개발전략으로 확대되었다. 통일공화국의 우주과학자들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유리한,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서 최첨단 위성들을 우주공간으로 연속 쏘아올리며 신흥우주강국의 위용을 떨칠 것이다. 8천만 우리 민족에게 조국통일은 다른 모든 분야들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우주개발분야에서 경이로운 신기원을 이루는 대사변을 일으킬 것이다.   

 

 

5. 3단계로 도약한 조선, 2단계 진입 주저하는 미국 

  

2018년 7월 24일 미국 쌘프랜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진행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외교-국방장관 직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팜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에 따라 미사일엔진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이 해체되는 경우, 미국은 해체작업현장에 사찰원들을(inspectors) 보내게 해달라고 (조선에게) 요구해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위에 인용된 팜페오 국무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할 때, 사찰단을 현장에 파견하는 검증문제를 조선에 제기했으나, 조선은 그런 검증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강도적인 검증요구”는 조선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체험적으로 잘 아는 미국은 통하지도 않을 검증요구를 그만 제기하고,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구두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 정상의 구두약속 이행과정이 어느 단계까지 진전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 확대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중대한 구두약속을 나누었고,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채택,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조선의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미국의 속도는 한참 느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년 뒤에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격변의 시간표는 온갖 장애를 넘어 힘있게 실행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이미 조미정상회담 직전에 이행하였고, 그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조미정상회담 직후에 이행하였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이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1단계를 이미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에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2단계와 3단계에 각각 순차적으로 진입하지 않고,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것만큼 이행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고,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년 뒤에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간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2단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은 2단계와 3단계에 동시에 진입하였는데, 미국은 2단계에 아직 진입하지 못하였으니 조선의 이행속도와 미국의 이행속도는 격차를 보인다. 피동에 빠진 미국이 조선의 주동적인 조치를 따라가려면,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은 일정한 시간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해체작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는 오늘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조선의 핵무기 생산을 중단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하루빨리 실현하려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하여 추진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추진속도를 높여 비공개 구두약속을 신속히 이행하는 것은 조미 양국의 공동이익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이므로,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용단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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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분단 때문에 주눅 들어, 통일이 해결책”

<인터뷰> 이경자 (사)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계환.조정훈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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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9  2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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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자 이사장은 달변이었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이 없었다. 목소리는 낭랑하고 소프라노였다. 손 제스처와 몸짓도 삼가지 않았다. 답변은 단호했고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경자 (사)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처음부터 그는 달변이었다. 한국작가회의에 최초로 여성 이사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자, 대뜸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변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일장 풀어놓았다. 이후 어떤 질문이든 막힘이 없었다. 목소리는 낭랑하고 소프라노였다. 손 제스처와 몸짓도 삼가지 않았다. 답변은 단호했고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이사장은 한국문학의 현황에 대해 “한국문학이 그동안 주눅 들어있었다”면서, 그 이유로 분단을 들었다. “분단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짓눌렀기 때문”에 “작가가 감수성을 세계화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응축”됐다는 것이다. 예술가들 정신에 식민지, 반공법, 6.25, 분단 등등이 ‘얼음’처럼 박혀있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당연히 분단문제 해결을 들었다. 분단문제가 해결되면 “작가는 우리의 현실을 더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언어와 문장, 문체로 표현해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문학은 세계성을 갖게 되는 것”이기에 “작가들에게도 통일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야 “우리 문학이 주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세계성을 띨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언어로 분단문제, 민족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역사를 반추하면서 일제식민지, 4.19, 5.16쿠데타 이런 걸 다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2007년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을 떼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꿀 때 “찬성”했다면서, 분단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민족문학보다는 그냥 한국작가회의라고 하는 게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는 게 세계성을 띤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특히, 이 이사장은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 기쁨, 자부심 그리고 해방”이라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며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 관심 갖고 풀 것을 제의했다. 

올해 초부터 한국사회를 강타해 홍역을 치른 문단 내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고은 시인이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은 문화가 달라졌다면서 “고은 선생을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사장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의 역할에도 애정을 표했다. 그는 “(한국작가회의가)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면서 “내 기질이나 분위기만으로도 회원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편안함, 누나에게서 느끼는 친근함,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만족해했다. 나아가 그는 “이경자가 작가회의 이사장하면서, 작가회의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첫 번째 욕심”이라며 “작가회의는 권력 단체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의 문학이 주로 분단문제와 여성문제 등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다룬 것에 대해 “내 기질과 비슷한 것 같다”고는, 고향인 강원도 양양을 ‘강원도의 전라도’라고 하며, 양양에 있는 조산을 두고 ‘양양의 모스크바’라고 했다며 자신의 삶과 기질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6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 소재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열렸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한국작가회의, 내가 이사장 된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

□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 : 지난 2월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첫 여성 이사장이다. 늦게나마 이사장에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

■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고맙다. 여성으로는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함축된 상징성이 있다. 그동안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변화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다. 물론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수공업 노동자, 그리고 미군이 한국에 왔을 때 양색시, 그 전에 일제시대 때 정신대 성노예 이런 게 있었지만, 그건 다 주류 남성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부수적인 존재였다. 

이어 한일협정반대 6.3데모니, 유신반대, 그리고 끝없이 통일을 주장하는 통일운동세력들, 그 다음에 전태일과 전태일을 통한 노동자들의 사회적 대각성에 따른 노동자 대투쟁, 그리하여 80년대 중반에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각성이 일어났지만 그건 거의 상징적 수준이었다. 여성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소수의 여성들만이 역사의 무대에 조금 등장한 정도였다.

   
▲ 지난 2월 10일 한국작가회의 총회에서 이사장 취임인사를 하고 있는 이경자 소설가. 왼쪽은 신임 사무총장 한창훈 소설가. [사진제공-한국작가회의]

이제 비로소 여성이 인간화, 주체화에 대해서 각성하게 되었는데. 그 각성한 것이 소수 지식인 여성이나 소수 엘리트 여성들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의 의식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20대 젊은 여성부터 말이다. 이런 것은 마치 누군가가 사회를 이념적으로 주도하는 계층에서 선도해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을 가진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올해 들어 누군가 불을 지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내가 작가회의 이사장이 된 것은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이 시대 한국사회는 남성적인 것, 남성문화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인 사회인 것 같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 가정이나 개인 등 총체적인 분야에서 남성이라고 지칭되는 군사문화, 폭력문화, 위계문화, 가부장문화, 싸움으로 해결하는 것 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진저리가 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점에 나이로 보나, 등단한 경력으로 보나, 작가회의에서 꾸준히 회원으로 역할 해온 것 등이 집약에 돼서 이사장이 된 것 같다.

□ 여성의 지위 역할의 변화과정을 설명하셨는데, 이게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 그렇다. 

□ 문단에도 남성이 많고 남성 위주로 돌아갈 테니까.

■ 특히, 한국작가회의는 내부에서 그런 문화가 지배했건 아니건 상관없이 외부에서는 굉장히 남성적이고 권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기질이라는 게, 권력을 싫어하고 또 군대 문화나 가부장 문화 같은 거 근본적으로 반대하기에 내가 있는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 내 기질이나 분위기만으로도 회원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편안함, 누나에게서 느끼는 친근함,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좋다. 기쁘다.

□ 지금 이사장 되신지 몇 개월?

■ 4개월 됐다. 

□ 한국작가회의에서 아직 큰 변화가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다.

■ 아니다. 변화가 있다. 왜냐하면 조직이 옛날과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옆 책상을 가리키며) 여기 우리 한창훈 소설가가 사무총장인데, 작가회의는 이 사람이 다 꾸려가고 있다. 내가 작가회의에 들어와 조직개편을 했다. 그래서 그동안 권위적인 것으로 비친 사무국에서 그런 권력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작가회의에는 2,700명 회원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중앙에서 내려가는 수직이 아니라 그 회원들에게 역할을 고루 분배하는,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조직을 개편했다.

□ 4개월 만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면,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 이사장 임기가 2년이다. 계속 변화하지 않으면 지루해질 것 같다.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오늘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이 변경돼 왔다. 각 명칭에는 그 시대를 반영한 정체성이 있을 것 같다. 단체 이름에 자유실천, 민족문학, 한국이 각각 들어간 이유를 설명해 달라.

■ 한국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창립된 게 1974년이다. 그때 유신반대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80년대까지는 모두 모여서 농성하고 데모하러 다녔다. 

그때 우리는 독자나 사회가 우리 작가를 통해 무엇을 요구하는지 귀 기울였다. ‘자유’를 실천하고 자유가 무엇인가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가 변해서 ‘민족문학’ 하자고 했다. 그리고 자유와 민족을 지나서 지금 ‘한국’작가회의가 가장 중요한 이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분단된 조국에서 분단현실을 인식하거나 자각하지 않으면 작가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민족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끼리만 하는 것 같다. 문학은 우리의 분단현실을 자각하고 그걸 개선하려고 하고, 또한 분단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비극이나 억압과 차별들을 극복해내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극복해내는 것, 문학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런 것들은 결국 세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도 폭력이지 않은가. 거대한 폭력의 산물이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 여러 군데에서 폭력이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데 우리가 분단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민족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고, 더 민족문제를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족문제를 떼고서는 우리 현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단문제로 인해 우리 내면에서 국가보안법을 의식하고, 분단된 반쪽을 끝없이 의심하고 밀어내고 배척해야 하고 증오하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 것 같은 왜곡된 심성이 길러지고 있다. 분단문제로 생긴 노이로제 때문에 남한 모든 사람들의 심성이 왜곡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민족문학보다는 그냥 한국작가회의라고 하는 게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는 게 세계성을 띤다는 게 내 생각이다.

□ 2007년 당시 제 기억에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을 떼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꿀 때, 1년여 시간을 끈 걸로 안다.

   
▲ "민족문제는 나의 문제이다.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름 바꾸는 것, 명패를 바꾸는 것에 나는 그때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문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체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위한 것인데 당장 밥상 위에 분단이 있어서, 그것을 드러내면서 우리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어떻게 세계성을 띨 수 있을까가 작가들의 고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취성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회의라는 게 무슨 누군가의 독재성을 갖고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라서, 가능하면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쓴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 반대가 심했다는 말씀이다.

■ 반대가 많기는 했다. 하지만 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는 것에 설득되거나 못마땅해도 받아들이거나 그렇게 된 거다. 인삼 녹용도 체질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이념이나 헌장 같은 것들이 누구에게나 다 맞겠는가. 

□ 그런데 아직도 민족에 대한 희망, 민족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 작가회의도 그렇고 나도 엄청 그렇다.

□ 단체 이름에 ‘민족’이 빠진 것 자체를 불순하게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 그건 오해다. 

□ 지난 3월 문단 일부에서 민족작가연합이 창립됐다. 민족작가연합은 강령에서 일제시대에는 저항의 문학을 지향해야 했듯이 분단시대에는 통일의 문학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바른 작가의 사명이라 했다. 그래서 ‘민족’을 넣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문학’이 빠진 것에 대한 반발로 보여진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향후 양 단체의 관계 설정은?

■ 나도 그 단체에 참가한 작가들의 명단을 봤다. 그리고 주축인 작가들을 광주에서 만났는데, 이 분들이 딱히 우리 한국작가회의에 대해서 대척점에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작가회의의 40년 넘는 역사에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수고들이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우리 작가회의에 계신 분들 중에서 투옥되고 고문 받은 분들이 많다. 그리고 그분들의 투옥과 고문에 대해서 후배 작가들의 존경과 위로를 위한 노력의 역사가 있었다. 상호 대립하는 게 아니기에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회의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 이사장께서는 소설 <순이>, <언니를 놓치다>에서도 보이듯 분단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 내가 쓴 작품에 50%가 분단과 관련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분단에 대해서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우리는 분단과 관련돼 있고 그리고 분단으로부터 나온 모든 억압이 우리들의 의식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는다고 하면 곤란하다.

□ ‘민족은 하나다’, ‘언어도 하나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분단 상황에서는 모국어를 쓰는 작가는 문학을 통해 민족과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사장께서 생각하는 민족문학이란?  

■ 나는 지금 민족의 현실이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민족문제는 나의 문제이다.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민족문제에 대해서 인식하든 아니든 남북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조짐에 한 발 한 발 가고 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민족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나아가 민족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게 된 원인들에 대해서는 처절하게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는 누군가 민족문제에 대한 분단현실, 분단을 낳게 된 역사적 맥락을 통시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디에서 일하든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본다. 민족문제에 대해서 자각이 없다면 박근혜처럼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쇼하다 만다. 그러면 안 된다.

“고은 선생을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 이사장께서는 분단문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특히 여성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 <절반의 실패>와 <사랑과 상처> 등은 페미니즘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시인이자 운동가였던 고정희의 정신을 잇기 위한 ‘고정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해 이사장이 된 뒤 문단 내 성폭력 문제, 미투 운동을 겪었다. 이에 대한 생각과 관련 문인들의 처리 방향은?

■ 신문이나 보도를 보셔서 알겠지만 고은 선생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기 발기인이다. 고은 선생이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이사장도 하면서 그 분의 이름과 우리 작가회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그 분 덕을 많이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시대에 따라서 영웅이 역적도 되고 그러는 게 인간사 아닌가. 시대는 변한다. 중국의 모택동도 대장정하고 농민혁명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손꼽히는 위인인데, 그렇지만 그 시대에 문화대혁명은 잘못됐다. 사실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이 그런 식으로 가는 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문화를 건들지 않으면 혁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모택동이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영웅은 없다. 그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고은 선생이 활동하시고 고은 선생이 사랑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는 맞다. 우리도 그 분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문화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너무나 훌륭하고 유명하기 때문에 전체 국민들이 다 아는 큰 사건이 되고 말았다.

   
▲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다. 고은 선생을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미투 운동 초기에 걷잡을 수 없는 세찬 바람이 불 때, 내가 이사장으로 오고 작가회의가 새 조직이 꾸려졌는데, 그걸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가회의에는 70-80세 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20대 회원도 있다. 우리는 너무나 상이한 문화를 습득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 조직은 앞으로 나가야 하고 발전해야 하는 조직인 것이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조직도 생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활습관이나 양성 간 관계의 인습들을 주장해서 새로운 물결에 대해서 담을 쌓으려고 한다든가 둑을 쌓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문학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기본 성정이 자유, 평등, 평화이어야 하는데, 그건 그 정신과도 배치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1973년에 등단했기에 고은 선생과 오래도록 같이, 내가 시를 쓰지 않았지만 늘 모임에서 인사하고 뵌 분이다. 나는 술을 전혀 못 한다. 그래서 술자리에 같이 있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고은 선생을 아무튼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회원이 아니다. 

□ 일종의 악역을 맡으셨는데, 착잡했을 것 같다.

■ 뭐, 굉장했다. 시간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신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그 분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행동이나 언행이 그냥 유쾌하게 통용되던 시대가 있는가 하면 지금은 범죄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미투 운동은 아마 지금 2, 3월처럼 요란하지 않아도 그 변화가 물밑에서 계속 흐르리라고 생각한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 관계에서, 남성에 의해서 여성이 억압받는가, 또는 그 반대인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 최근 한국사회가 다양화, 극단화되면서 ‘남혐’, ‘여혐’ 등의 조어가 나오면서 극도의 성 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여혐이 강한 ‘일베’에 대항해 ‘메갈리아’, ‘워마드’ 등이 나왔는데 일부에서 ‘남혐’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페미니즘 작가 입장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운동을 어떻게 보는가?

■ 레닌이 초기에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혁명은 처음에 이렇게 돌아있는 것을 이렇게 바꾸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가운데로 왔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림). 그래야 제대로 오는 것이다. 이건 모든 사회 변화에 필요한 명제이다. 극우는 극좌에 갔다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라고 생각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왜냐면 이렇게(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가는 걸 두고 나쁘다고 해서 막으면 이리(고개를 가운데로) 돌아올 수 없다. 저는 이런 거라고 본다. 

□ 정상화로 가는 길에 있어 피치 못할 상황이다?

■ 거듭 레닌이 말했듯이 운동이란 이것(오른쪽)을 이렇게(가운데) 돌리려면 이렇게(왼쪽) 가야 하는 거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도 집이 미아리고개 너머인데 버스 타고 대학로 가다 보면 성폭력과 성희롱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서 까만 옷 입는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가서 앉고 싶다. 제 마음이. 너무나 앉고 싶다. 그러면서 지나간다.

어느 여성이 건물 앞에서 웃통을 벗어 던졌다고 치자. 이에 대해 그런 행위가 옳다, 나쁘다, 저거는 극단주의자다...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일반인은 그렇게 봐도 되지만 뭔가 사회 흐름을 읽고 책임지려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동참하면 안 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극우는 극좌로 가지 않으면 중간으로 올 수 없다. 그런 사회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71세인데. 아직 정신적으로 젊으시다.

■ 작가로서 늘 변화를 느낀다. 생각해보라. 한여름에 농구를 하다가 더우면 남자는 웃통을 벗는다. 웃통을 절대로 벗을 수 없는 사람의 억압 같은 거. 그 여성들은 우리도 남자처럼 웃통 벗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 어떤 극단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류에도 한국문학 들어있다’

□ 이제 한국문학의 수준과 현황에 대해 묻고 싶다. 지난 1970-80년대만 해도 한국사회의 문화 분야에서 문학이 강세였다. 특히 민주화운동 시기 문학은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었고 문인이 민주인사이기도 했다. 그만큼 사회적 파급력이 컸다는 얘기다. 지금 한류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데 한류에서 문화는 케이팝,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 등인데, 문학은 없다. 한국작가회의가 큰 단체인데, 수장으로서 섭섭하지 않은가.

■ 우리 세대에서 문학의 영향이 극대화된 시대는 1990년대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학이란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을 문자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요즘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Fake Love)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언어에 리듬을 얹은 것이다. 리듬 속에 언어를 넣은 것이다. 가사를 보면 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진 불안, 슬픔, 저항을 담고 있다.

케이팝이라는 게 그 노랫말도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2016년에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지 않은가. 책으로 된 것만 문학인 게 아니다.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 아리랑 아리라요”도 문학이다. 문학이 다양하게 넓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종이책이나 신문도 영향력이 약해졌다. 표현이 달라진 거다.

   
▲ 이경자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6월 26일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한류에도 사실은 한국문학이 들어있는 거군요.

■ 1970년대에 한국문학의 김지하 시인은 대한민국은 몰라도 세계적인 사람이었다. 유럽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다 알았다. 그런데 한국문학이 그동안 주눅 들어있었다. 왜 주눅 들었느냐. 분단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감수성을 세계화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응축된 것이다. 

황석영 선생의 소설을 봐도 그게 분단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가슴 후련하게 확대되어 있지 못하다. 작가정신을 옭매이고 있는 게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우리의 DNA에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종북도 있고.

그것들이 작가의 정신, DNA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분단문제가 해결되면 그게 해결된다. 그러면 작가는 우리의 현실을 더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언어와 문장, 문체로 표현해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문학은 세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가들에게도 통일은 너무 중요하다.

□ 촛불집회를 안 짚을 수가 없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사이에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촛불집회에는 참여했는가? 

■ 물론 참석했다. 안 갈 수가 없지 않은가. 회원들이 작가회의 깃발에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에서 막 오니까. 

□ 작가는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따라 작품은 사회와 사건을 반영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이 한국문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보는가.

■ 이런 것도 다 결국은 억압을 푸는 일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탐욕과 위선, 비애국, 반민족, 특권의식, 척결되지 않은 가부장제와 봉건의식 등 말이다. 비서실장 김기춘이 박근혜를 여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그런 의식을 가지고 권력을 누린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 민중이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수 엘리트나 대학생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것이다. 촛불은 민중이라는 것이다. 

□ 문학이 민중의 삶을 다뤄야 하는 만큼, 민중들이 촛불로 일어났으니 작품 속에도 녹아들어가겠다.

■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민중이다. 일단 민중이다. 민중이면서 작가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 기쁨, 자부심 그리고 해방”

□ 10여 년 동안 막혀있던 남북관계가 풀리고 있다. 남북의 정상과 북미 정상이 만나면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작가로서의 심정은?

■ 단어로 표현하라면 행복, 기쁨, 자부심 그리고 해방.

□ 다 긍정적인 표현이다.

■ 이번 기회를 통해서, 분단문제에 대해서 관심 없던 젊은 아이들이 아, 한국의 운명에는 이런 강대국과 연관되어 있구나, 이 사람들이 우리의 운명에 간섭하고 줄이 닿아있었구나, 그래서 이것에 의해서 우리 운명이 간섭받고 있었구나, 하는 게 교육된 것이다. 선생님이 교육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교육한 거다. 

   
▲ "앞으로 문학에서 남북교류는 작가회의가 중심이 되지 않고 아마도 범 문단적으로 남북작가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더군다나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한번 안 하겠다고 했다. 그게 엄청난 교육적 효과를 한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성을 우리가 획득하지 못하면 이렇게 종속된다, 우리 운명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강대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앞으로 문학 분야에도 남북교류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난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북측과 교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어떤 행사, 어떤 교류를 했는가?

■ 참여정부 때인 2005년에 남과 북의 작가들이 평양, 백두산 등에서 민족문학작가대회를 개최했고, 2006년에는 금강산에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는 끊겼다.

□ 앞으로 남북교류 계획은 있는가.

■ 예전 70-80년대, 90년대까지는 소수 엘리트들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촛불혁명에서 보듯이 모든 작가들과 단체들이 다 자기들의 지분과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작가회의가 중심이 되지 않고 아마도 범 문단적으로 남북작가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 그게 더 현실에 맞겠다. 촛불로 엘리트 위주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까.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한국작가회의가 기득권을 버리는 것 아닌가.

■ 기득권은 작가회의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지 버려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다 개개인을 존중하고 개개인이 가진 역량을 이해하는 사회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통일로 가는 길과도 맞다.

□ 이사장 되시고 4개월 지났다고 했는데, 그간 했던 사업은?

■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관심을 가져줬지만 제주4.3 평화문학, 5.18문학 등의 행사를 아주 크게 치렀다. 이들 행사에서 나온 어휘와 발언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적나라해졌다. 진실에 가까운 표현을 할 수 있었다. 학살자, 자유당 정부, 이승만 정권이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옛날에는 적나라하게 말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말하고 있다.

□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더 있는가.

■ 금년에 몇 개의 사업들을 할 것이다. 여수, 순천사건도 할 것이다. 감추어졌던 역사, 감춰진 비극을 우리가 분단과 관련해서 꺼내야 한다. 여순을 비롯해 4.3제주, 광주 등이 모두 분단과 관련된 것이다.

□ 민주정부가 들어선 나아진 조건에서 전보다 더 과감하게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큰 사건 위주로 다루는 것 같다.

■ 내가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정신에 얼음이 박혀있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의 정신에, 우리 민족의 정신에도 박혀있다고 본다. 이런 것을 꺼내는 작업 중의 하나가 여수, 순천사건이다. 

“내가 문학에서 분단문제와 여성문제를 주로 다룬 건 내 기질 때문”

□ 개인사가 궁금하다.

■ 해방공간에서 태어나서 내 고향이 38선 이북이다. 강원도 양양인데 양양의 절반이 38선 이북이다. 군청, 면사무소가 다 이북에 있었다. 내 집이 이북 쪽에 속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끝없이 엄마들이 부엌에서 속닥속닥하면서, 저 집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거다. 손가락질하면서 국군이 와서 쏴 죽였다, 굴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다, 평양에서 공부한 삼촌, 심지어 김일성대학 다닌 삼촌이 한밤중에 내려왔다가 들켜서 온 집안이 박살났다 등등. 나는 어려서 이런 걸 많이 겪었다. 게다가 60년대, 통일혁명당사건. 그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말하고, 그리고 인간이 잘 살자, 우리가 평등하게 살자, 가난과 부자의 간극을 줄이자고 말해서 무기징역을 받고 사형당한 것이다. 

   
▲ “내가 문학에서 분단문제와 여성문제를 주로 다룬 건 내 기질 때문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박정희 정권 때 더군다나 70년대 들어가면 선거 임박해서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막 생겼다. 간첩사건이 막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면 나는 내 정신에 꼭 얼음이 막 박힌 것 같다. 냉동실에서 ‘나’라는 정신이 냉동된 것 같다. 

이 냉동상태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거다. 북한은 원수다, 뿔 달렸다, 적화통일하자는 것이다. 우리 세대와 우리 윗세대가 이런 세뇌를 끝없이 받으면서 자랐으니,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물론 7.4남북공동성명도 있었고, 그게 오늘날 4.27판문점선언에 이르는데 주춧돌을 놓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때 그렇게 세뇌 받으며 컸다.

우리 예술가들도 정신에 식민지, 반공법, 6.25, 분단 등등이 박혀있는 거다. 이제 이런 것들이 통일과 관련해서 녹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문학이 주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성을 띨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언어로 분단문제, 민족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역사를 반추하면서 일제식민지, 4.19, 5.16쿠데타 이런 걸 다 쓸 수 있는 거다. 외국에서 한국같이 분단된 조건에서 왜 큰 문학이 안 나오느냐고 말하는데, 이건 우리를 너무 모르는 거다. 우리 정신에 얼음이 박혀있어 응축되어 있는 것을.

□ 1973년에 등단했는데,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 7번 떨어지고 8번째 붙었다. 

□ 습작도 엄청 많았겠다.

■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소설을 썼다. 중편도 쓰고 단편도 쓰고. 될 만할 때 된 것 같다.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단했다면 꼴값했을 것 같다. 내가 21살에 등단했다면 꼴값해서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망가졌을 것 같다. 7전 8기라서 그나마 조금 나았다. 

□ 신춘문예 당선이 무척 어렵다고 들었다.

■ 금방 되는 분도 있다. 한 번에 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소설가는 인생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40대에 되도 괜찮다. 나는 26살에 됐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썼다. 계속 썼다. 매년 신춘문예에 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글 잘 쓴다는 소리를 양양 시골 바닥, 인구 얼마 안 되는 거기에서 들었기 때문에, 그거 이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 태어나신 곳은 양양 골짜기인데, 문학은 분단문제와 여성문제를 주로 다뤘다. 뭐랄까 한국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에 접근했는데 이유가 뭔가?

■ 내 기질과 비슷한 것 같다. 강원도에서 양양을 어떻게 멸시하냐 하면, 비하하는 게 아니라 양양을 강원도의 전라도라고 한다. 

양양에 낙산사가 있는데 그 근처에 조산(造山)이라고 있다. 조산이 김일성 정권의 초대 사법상을 한 최용달 씨 고향이다. 그리고 초대 양양군 인민위원장이 조산에서 나왔다. 그래서 조산을 양양의 모스크바라고 한다.

양양에서 내가 초등학교 다니고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조회를 서면 설악산 대청봉이 보인다. 10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 대청봉이 하얗다. 그 대청봉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서 싹 쓸어가지고 동해로 빠진다. 그 사이에 뭔가 없다. 벽이 없다. 둔덕이 없다. 바람 막을 둔덕이.

그래서 양양 사람들이 아주 거칠다. 악착같이 살아남고. 일제 때 항일운동 하거나 사회주의운동 할 때 춘천에서 대회한다고 하면 양양 대표와 철원 대표가 오지 않으면 회의가 안 됐다고 한다. 양양이 대한민국에서 3.1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지역으로 손꼽힌다. 산골은 아니고 작은 읍이다. 아주 세고 거칠다. 유관순 오빠가 양양 여자하고 결혼했다. 양양읍 성내리 여자하고 결혼했다. 그런 양양이 내 고향이다. 

“작가회의는 권력 단체 아냐, 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해방”

□ 이사장 맡고 나서 바쁘실 것 같다. 그래도 본업은 작가다. 이사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행사나 모임에도 자주 참석해야 하기에 작가로서 작품을 못 쓰면 어떡하나 하는 기우가 든다. 혹시 최근에 준비하는 작품이 있는가.

■ 금년 5월에 장편을 끝내서 7월에 내는 게 목표였는데, 아직 못 쓰고 있다. 몇 년 동안 취재해서 쓴 것인데 멈춰있다. 가제인데 <슬픔의 정원>이다. 내가 분단문제를 <세 번째 집>으로 마감했다면, 이것은 여성 문제의 마감이다. 가부장제가 어떻게 남성을 망가뜨리나 하는 게 그 소설의 주제이다. 작가회의 일 때문에 아직 못 쓰고 있다. 

포항제철소 가면 용광로 불 안 꺼뜨리는데, 소설가는 그래야 한다. 용광로 불을 꺼뜨려선 안 된다. 장편소설 같은 경우는 1년간 용광로 불을 때야 한다. 제가 <사랑과 상처>를 쓰기만 하는 데 22개월 걸렸다. 그 22개월 동안 용광로 불을 유지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작가회의 일 때문에 멈춰 있다.

□ 그래도 이사장으로서 좋은 점도 있지 않은가.

■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미투 운동 일어났을 때, 다양한 인간성을 볼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지금 준비하는 장편이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새롭게 접하는 관계로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 "이경자가 작가회의 이사장하면서, 작가회의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첫 번째 욕심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이경자가 작가회의 이사장하면서, 작가회의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첫 번째 욕심이다. 사실 똑같은 소설가이지만 한창훈 사무총장이 나보다 열배, 백배는 고생하고 있다. 우리가 재미있는 게, 내가 강원도 양양 사람이고 한 총장은 거문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무처장인 안현미 시인은 태백이다. 다 촌사람이 모인 거다. 촌이라는 게 좋다.

□ 4~5개월 됐지만, 이사장으로서 아직 1년 반 남았는데 앞으로 큰 변화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단체도 크게 되길 바란다.

■ 작가회의는 권력 단체가 아니다. 권력 단체여서도 안 된다. 지역과 중앙이 동등해야 하고, 민주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해방이다. 인간성을 얽매이는 어떤 것도 풀어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해방과 자유,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긍정, 문학은 이런 것들에 기여하는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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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결단” 김진표 발언 띄운 중앙일보

[아침신문 솎아보기] 이재명 탈당 요구 왜? “文 대통령 핵심 지지층 의식”… 홍일표 한국당 의원 ‘재판 거래’ 의혹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8년 07월 30일 월요일

29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발언이 있다면 김진표 민주당 의원의 “이 시점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였을 것이다. 

민주당 대표 후보인 김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지사 탈당을 요구했다. ‘김진표’, ‘이재명’ 키워드는 한동안 온라인 검색어 순위권에 있었다.

김 의원은 “(경기지사) 취임 이후에 계속 (문제가) 불거지고 또 다른 이슈까지 겹치면서 증폭돼 안타깝다”며 “이것이 우리 당에 큰 부담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며, 당 지지율 하락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지사가 연루된 배우 김부선 스캔들, 폭력조직 유착 의혹 등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문재인 대통령에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이해찬 후보는 “그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며 “전당대회와 별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송영길 후보는 이 문제에 신중하다.  

 

▲ 중앙일보 30일자 1면.
▲ 중앙일보 30일자 1면.
 

30일자 일간지 가운데 김 의원 발언에 크게 반응한 건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1면’에 “김진표 ‘이재명 결단을’ 탈당 요구”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폭력 조직 유착 의혹이 불거진 이재명 경기지사의 더불어민주당 당적 유지 문제가 8·25 민주당 전당대회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해설했다. 종합 일간지 중 이 뉴스를 1면에 다룬 건 중앙일보가 유일하다.  

중앙일보는 6면에서도 “민주당 당권 레이스, 새 쟁점으로 떠오른 이재명”이라는 제목으로 이 지사를 크게 부각했지만 정작 본문 내용은 김진표·송영길·이해찬 후보 공약과 행보를 담은 평이한 기사였다.  

다만 이 신문은 “이해찬 의원을 지지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김진표 의원이 가시 돋친 발언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중앙일보 30일자 6면.
▲ 중앙일보 30일자 6면.
서울신문은 4면(“김진표 ‘이재명, 결단 내려야’… 사실상 탈당 촉구”)에서 “이 지사 논란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친문(친문재인) 성향 당원의 표심에 따라 전당대회 승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2년 전 전당대회 때보다 투표 비중이 커진 권리당원의 상당수가 문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 입당한 이들이다. 이들은 지난 대선 경선의 후유증으로 이 지사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 역시 5면(“與당권 주자 ‘이재명 거취’ 충돌”)에서 김 의원 발언에 “사실상 이 지사에게 부정적인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이 지사에 부정적인 친문 진영 정서를 의식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썼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각각 “이해찬, 봉하마을로… 김진표, 수도권 먼저… 송영길, DJ묘 참배”(한겨레 6면), “민주당 ‘당대표 본선’ 개막… 친문 표심에 ‘뜨거운 구애’”(경향 6면)를 제목으로 뽑았다. 

경향 역시 “친문 지지층이 이 지사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상황을 적극 파고든 것”이라고 분석했고 한겨레도 “이 지사에게 부정적인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의 표심을 고려”했다고 해석했다.  

 

▲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김진표(왼쪽부터), 송영길, 이해찬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한 후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김진표(왼쪽부터), 송영길, 이해찬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한 후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양승태 행정처-홍일표 ‘재판 거래’ 의혹

 

국민일보는 1면에 단독 기사를 실었다. 검찰이 ‘양승태 행정처’가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과 재판 거래를 벌인 단서를 잡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보도를 보면 홍 의원이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2014년, 당시 행정처는 홍 의원이 피고인 민사소송 내용을 직접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는 “대법원과 정치권의 재판 거래 정황이 일부 언급된 적이 있지만 검찰이 직접 조사에 나선 것은 홍 의원 건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홍 의원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한 A씨의 변호인 B변호사를 지난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 국민일보 30일자 1면.
▲ 국민일보 30일자 1면.
A씨 소송 1·2심은 지난 2013년부터 작년까지 진행됐다. 국민일보는 “검찰은 행정처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으로부터 확보한 자료 분석 과정에서 당시 행정처가 이 소송을 검토한 문건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10월 홍 의원을 상대로 서울북부지법에 사해행위 취소 소송(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으려 빼돌린 재산을 찾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9월 패소한 A씨는 바로 항소했고 지난해 8월 일부 승소했다.

홍 의원은 국민일보에 “소송은 (결국 제가) 일부 패소한 사건”이라며 “상고법원 추진은 이 사건과 아무 관계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 사건 적체 해소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상고법원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 한겨레 30일자 1면.
▲ 한겨레 30일자 1면.
한편 한겨레도 이날 1면치에서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한 직후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1심 소송에 개입하려 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2016년 1월 초 행정처 기획조정실은 배춘희씨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개입하는 계획을 짰다. 

기조실은 한·일 정부 합의 직후이자 조정이 무산된 직후인 2016년 1월4일께 ‘위안부 손배판결 관련 보고(대외비)’ 문건을 만들었다. 이 문건에서 기조실이 1심 재판 결론을 ‘각하’ 또는 ‘기각’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 보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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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의 또 다른 실책, ‘변.포.판’

양승태 사법부의 또 다른 실책, ‘변.포.판’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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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특수활동비 상납 및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렸던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 전경. 해당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공동취재단

지난 7월 20일 특수활동비 상납 및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렸던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 전경. 해당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공동취재단

 

최근 종영한 JTBC <미스 함무라비>에서 그려지는 고등부장 이상 고위 법관의 모습은 ‘꼰대’스러워도 재판에 있어서는 철저한 판사로 그려진다. 실제 대다수의 판사들은 드라마 속 판사와 유사하다. 작품의 원작자가 현직 판사라는 점도 현실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 법원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리 아름다운 모양새는 아니다. 밖으로는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이고, 안으로는 ‘재판을 하지 않는 고위 판사’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변포판(변호사로 나가는 것을 포기한 판사)’은 늘 있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되고 있는 ‘변포판’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판사의 ‘꽃’이라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거치고, 나아가 법원장 경험까지 있는 소위 ‘원장급 고등부장판사’가 새롭게 등장하는 변포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전임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임기 말인 2010년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사법개혁의 중요 과제로 도입했다.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는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를 분리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지방법원 판사는 계속 지방법원을 순환하며 하급심을 책임지고, 고등법원 판사는 항소심을 전담함으로써 각 심급의 전문성을 기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원화를 통해 사법관료화의 폐해로 지적돼 온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자연스럽게 폐지하고, 기수나 경력 면에서 대등한 위치의 고법 판사 3명이 재판부(합의부)를 구성해 항소심 재판의 전문성과 내실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불복률(상고율)을 낮추는 효과까지 기대됐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7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는 ‘고위 변포판’만 양산한 채 고등법원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법관 인사 이원화제도 골칫거리로 
당초 로드맵에 따르면 이 제도는 2017년에는 안착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양승태 코트는 전임 대법원장의 역점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하급심(1·2심)의 충실화를 통해 상고율을 낮추는 방법보다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상고법원’ 도입에 주목했다. 법원조직법 등 기존 고등부장과 고법 판사의 재판 안배를 위한 법 개정 노력도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고법 판사 모집을 할 때 지원하지 않고(당시 고법 판사 첫 지원 기수는 23~25기),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남아있던 23기 판사들이 2016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고등부장 승진대상이 되면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법부장 승진제도 폐지를 명시적으로 하지 않은 채 이원화를 가져가면서 스텝이 꼬인 것이었다. 고법 판사에 지원해 고법 부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사라진 고법 판사들과 지법 부장으로 남아있으면서 고법 부장 승진대상자가 된 동기 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거기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정기인사를 넉 달여 앞둔 2015년 11월 코트넷에 고법 부장 승진제도를 계속 운영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이원화 제도의 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양승태 사법부의 또 다른 실책, ‘변.포.판’

변호사 업계 불황으로 법복 안 벗어 
여기에 양승태 코트가 사법개혁 과제로 평생법관제와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가져오면서 법관인사 이원화 로드맵이 꼬였다. 고등법원이 대등한 3인의 고법 판사 재판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고법 부장들이 법원을 떠나야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이용훈 코트의 실책이기도 하다. 당시 제도 도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한 부장판사는 “2010년 이원화 시뮬레이션을 할 때 전제가 됐던 것이 고등부장들의 ‘용퇴’였다. 당시(2010~2011년)까지만 해도 고등부장들이 원장으로 나가면 법원장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사표를 냈다. 정년은 남았지만 후임들을 위해 퇴직을 하는 관행이 있었다. 거기에 맞춰 행정처에서도 로드맵을 짰던 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제가 바뀌면서 이원화 제도 역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평생법관제 및 고위법관 취업 제한 등에 따라 고법부장들이 사표를 내지 않기 시작했다. 법원장으로 나갔던 고법 부장판사들도 임기를 마치고 고등법원으로 돌아왔다. 고등법원 내 고위 법관 적체가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법원장에서 돌아온 일부 고등부장판사들의 업무행태였다. 차관급인 고등부장판사는 근무평정에서도 제외된다. 평가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리 보전만 남았다. “특조단에서 추가공개한 문건 중에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 관리문제가 있던데 지금 법원의 최대 문제는 일하지 않는 ‘변포판’이다. 원장급 고등부장들은 ‘노안’, ‘체력저하’ 등을 이유로 일을 안 한다. 판결문 초고도 재판연구원(로클럭)에게 다 맡겨버린다. 그러면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보다 더 나이 많은 대법관들도 1년에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원장급 고등부장판사들은 영감 노릇이나 하고 있다. 지금 고등법원은 고법 판사와 고법 부장판사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A 지법 부장판사)

“항소심의 충실이라는 당초 목표와 달리 어떤 재판부는 서로간의 불만과 갈등이 심해 재판장인 고법 부장판사와 고법 판사가 아예 서로가 맡은 사건을 건드리지 않는 곳도 있다. 예전에는 2인 합의라고 해서 재판장과 주심판사가 판결문 작성과정에서 계속 상의하며 결론을 내렸는데 이제는 각자가 맡은 사건은 각자가 알아서 결론내려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악의 경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재판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B 고법 판사)

원장급 고법 부장판사들이 나가지 않는 원인은 결국 변호사 업계 불황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국내 대형로펌으로의 취업이 제한됐다고 하더라도 소규모 로펌으로 가거나 개인사무실을 차리는 것에는 제한이 없음에도 이들이 퇴임하지 않는 것은 결국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법원에 남아있는 것이 이득인 상황으로까지 변호사 업계가 내몰렸기 때문이다.

전 서울변회 간부는 “대형로펌은 비용과 수익을 철저히 따지는 곳”이라며 “이미 국내 대형로펌들은 몇 년 전에 국내로 몰려드는 외국계 로펌에 대비해 송무파트의 판사들을 대거 뽑아놓은 상태라 유지비용만 해도 상당한 돈이 드는 고위 법관을 굳이 대기표 받아가며 뽑아갈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중견 로펌 대표 변호사는 “법원장급 고위 법관들은 대형로펌에서 ‘모셔’가지 않는 이상 자기 사무실을 차리려면 고용변호사도 여러 명 둬야 하고, 차량도 있어야 하고, 사무실도 어느 정도 규모있게 마련해야 하는데 사건 수임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업계 불황이 일하지 않는 변포판을 양산하고, 고등법원 운영도 파행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한 법원장급 고등부장판사는 “자리만 차지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후배 판사들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적폐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자체적으로 고법판사TF를 구성, 지방 고등법원으로 발령받는 고법 판사에 한해 재판장 역할을 맡기는 등의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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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290952001&code=940301#csidx757f84af30a04fa9b70731713dc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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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군 두바이 외국기업들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경고

 
예멘군 사우디와 UAE 외국인 투자기업들에 경고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07/29 [07:3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예멘군 두바이는 외국기업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

 

예멘군 대변인 육군 준장 샤랴쁘 루끄만은 자신들에게는 최첨단의 미사일들과 강력한 무인 전투기들이 있어 자국을 침략한 사우디와 그 동맹국들의 영토 그 어디든지 타격이 가능하다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레이트에 투자를 한 외국인 기업들은 더 이상 우리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파르스통신은 “예멘군 대변인 육군 준장 샤라쁘 루끄만은 최첨단의 미사일과 강력한 무인기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아랍에미레이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였다.”고 관련 사실을 보도하였다.

 

계속해서 파르스통신은 “예멘의 미사일들과 무인기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UAE)의 그 어떤 지역도 타격이 가능하며, 예멘은 자체 개발한 수천 개의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있고, 예멘은 미사일과 무인기를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월요일 보도한 아랍어 알-알람방송을 인용하여 전하였다.

 

이는 예멘을 침략한 사우디와 그 동맹국들에게 대단히 중대한 예멘의 경고이다. 파르스통신은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예멘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다고 강조하면서, 아랍에미레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투자의 위험을 외국인 기업들에게 경고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레이트 등에 투자한 외국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예멘에 대한 침략적인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직접 미사일이나 무인 폭격기를 동원하여 공격을 하겠다는 위협이다. 따라서 외국의 기업들이 계속해서 두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면 자국의 정부를 통해 사우디와 아랍에미레이트 당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예멘에 대한침략적인 공격을 멈추게 하라는 우회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레이트가 예멘에 대해 침략적인 공격을 계속 가한다면 그때에는 두 나라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 기업들을 공격하겠다는 경고이다.

 

만약 사태가 예멘군 대변인 육군 준장 샤라쁘 루끄만의 주장처럼 번져진다면 중동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위험한 지경에 빠진다고 보아야 한다. 즉 현재 사우디와 아랍에미레이트에 투자를 하고 있는 외국인 기업들은 서방연합세력들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들이다. 다국적기업들이라면 당연히 서방연합세력들의 나라들에서도 중추적인 기업들이다. 따라서 만약 두 나라에 투자를 한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예멘군들의 미사일이나 무인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을 당하고 또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 후에 벌어지게 될 상황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설왕설래 정확히 규정된 바 없지만 2001년 9월 11일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소위 말하는 《9·11 테러》사건을 들 수 있다. 《9·11 테러》사건으로 인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아 일부가 파괴되었다. 이 사건으로 약 2996명의 사람이 사망하고 최소 6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9·11 테러》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조지 W. 부시는 2002년 국토안보법을 발의하였으며 이 법안에 의거하여 미국미국 국토안보부 개설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9·11 테러》사건을 빌미로 하여 2001년 말 아프카니스탄을 침략하였으며,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조직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테러를 저지르고 있으며, 《9·11 테러》사건을 일으킨 테러조직 《알-카에다》 테러집단을 제거해야 세계가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지가 지속적으로 관련사 실들에 대한 실체와 진실들에 대해 보도하고 있지만 서방연합세력들이 말하는 알-카에다, ISIS, ISIL, 타흐리르 파따 알-샴프론트 등 거대 테러집단들은 절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서방의 기독교국가들을 타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 수리아와 예멘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서방연합세력들이 조직, 무장테러분자 모집, 군사훈련, 정보제공, 작전수립 및 지휘 등을 하고 있다. 또 서방연합세력들은 테러집단들에게 재정지원, 무기 지원, 군수물자 지원 등 전쟁에 소요되는 모든 요소와 수단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테러집단들이 어찌 자발적으로 조직이 되었으며 서방연합세력들을 증오하여 테러를 일으킨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세계인을 기만하고 우롱하고 있는 것인가.

 

바로 이와 같은 연유로 하여 7월 24일에 샤라쁘 루끄만 예멘군 육군 준장의 사우디와 아랍에미레이트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은 두 나라를 떠나라고 한 경고가 대단히 위험하고 또 중대하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온 중동이 전쟁의 참화속으로 빠져들 위험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수리아와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전쟁을 결코 가벼이 대하면서 지나쳐서는 안 된다. 두 전선에서 펼쳐지는 전쟁의 상황에 따라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전선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시해야 한다.


----- 번역문 전문 -----

 

2018년 7월 24일, 2시 42분. 화요일

예멘군 두바이는 외국기업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

▲ 예멘군 대변인 육군준장 샤라쁘 루끄만은 최첨단의 미사일과 강력한 무인기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아랍에미레이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였다. 예멘의 미사일들과 무인기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UAE)의 그 어떤 지역도 타격이 가능하며, 예멘은 자체 개발한 수천 개의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예멘은 미사일과 무인기를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두 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     ©이용섭 기자


테헤란 (파르스통신)- 예멘군 대변인 육군준장 샤라쁘 루끄만은 최첨단의 미사일과 강력한 무인기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아랍에미레이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였다.

 

 

“예멘의 미사일들과 무인기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UAE)의 그 어떤 지역도 타격이 가능하며, 예멘은 자체 개발한 수천 개의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있고, 예멘은 미사일과 무인기를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루끄만은 아랍어 알-알람방송에 월요일에 말 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예멘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다고 강조하면서, 아랍에미레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투자의 위험을 외국인 기업들에게 경고하였다.

 

예멘 인민위원회 연합군들의 지원을 받는 예멘군들은 지난 수요일 새롭게 공개한 무인기를 이용하여 수도인 리야드의 사우디 아람코 정유회사를 타격하였으며, (사우디 왕국)에 의해 그 공격이 확인되었다.

 

“우리의 무인항공군은 리야드에 있는 아람코 석유회사(원문-정제)를 목표로 타격을 가하였다.”고 예멘의 알-마시라흐 텔레비전 방송이 자신들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그 방송은 “무인 폭격기에 의한 공격작전은 침략을 저지하는 새로운 단계의 강력한 출발점이 된다.”고 한 루끄만 준장의 말을 인용하여 트위터에 올렸다.

 

알-마시라흐에 따르면 그 공격은 새로운 장거리 무인기를 이용한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아람코는 리야드에 있는 정유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화재를 확인하여 주었으며, 소방대와 사우디 민방위대들은 수도의 정유공장에서 이른 저녁에 분출하는 불길(원문-불꽃)을 진화하려고 하였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 하였다.

 

예멘군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여 예멘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보복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영토내의 (전략적)인 지역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리야드에 충성하는(원문-가까운 동맹) 만수르 하디를 권력의 자리에 다시 앉히기 위해 2015년 3월부터 예멘을 침략하여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사우디 주도가 주도하는 침략으로 인하여 수백 명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최소한 약 17,000명 이상의 예멘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안사룰라 전사들의 주둔지를 대상으로 폭격했다는 리야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폭격에 의해 주민거주지대와 민간인들에게 필수적인 사회기간시설들이 초토화 되었다.

 

여러 보도들에 따르면 예멘을 대상으로 한 사우디 주도의 전투기들의 폭격은 인도주의적인 대 재앙으로 이끌어 더욱더 빈곤한 국가로 전락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치명적인 공격은 병이 든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바깥세상(원문-해외)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으며, 전쟁으로 갈갈이 찢어진 나라(예멘)로 의약품이 유입되는 것을 막음으로서 인도주의적인 대재앙을 가중시켰다.

 

예멘은 예멘인들의 욕망은 여러 측면에서 폭증하고 있으나 지속적인 갈등으로 인하여 경제가 붕괴되었으며, 사회적인 봉사망들이 대폭 위축되었고, 생계수단 등이 거의 사라짐으로서 2,200만 명 이상의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는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빠져있는 나라이다.

 

유엔 인도주의 구호 담당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전 지역에 걸친 봉쇄조치로 인하여 최근 예멘에서 식량 수입이 감소하는데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약 1000만 명 이상의 예멘 사람들이 년 말까지 극단적인 기아선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 원문 전문 -----

 

Tue Jul 24, 2018 2:42

Yemeni Army: Dubai No More Safe for Foreign Firms

▲ 예멘군 대변인 육군준장 샤라쁘 루끄만은 최첨단의 미사일과 강력한 무인기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아랍에미레이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였다. 예멘의 미사일들과 무인기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UAE)의 그 어떤 지역도 타격이 가능하며, 예멘은 자체 개발한 수천 개의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예멘은 미사일과 무인기를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두 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     © 이용섭 기자


TEHRAN (FNA)- Spokesman of the Yemeni Army Brigadier General Sharaf Luqman stressed the country's high missile and drone power, warning foreign companies in the UAE and Saudi Arabia to leave.

 


"The Yemeni missiles and drones are capable of hitting any region in Saudi Arabia and the UAE, and Yemen is in possession of thousands of home-made missiles and it is trying to modernize its missile and drone systems," Luqman told the Arabic-language al-Alam news channel on Monday.

 

He underlined that Abu Dhabi and Dubai are within the range of the Yemeni missiles, warning the foreign companies of the danger of investment in the UAE and Saudi Arabia.

 

The Yemeni army, backed by fighters from allied Popular Committees, had last Wednesday attacked a refinery of the Saudi oil company Aramco in the capital Riyadh using a new drone unveiled, with the kingdom confirming a fire at the plant.

 

"Our drone air forces have targeted the refinery of Aramco company in Riyadh," a Twitter posting on the account of Yemen’s al-Masirah television channel read.

 

"The operation by the drone air force is a strong start in a new stage of deterring the aggression," the channel quoted General Luqman as saying in a tweet.
 
 According to Al-Masirah, the attack was the first to be conducted using a new long-range drone.

 

Aramco confirmed a fire at its refinery in Riyadh, saying fire control teams and the Saudi civil defense had contained a limited blaze that erupted in the early evening in its refinery in the capital.

 

Yemeni forces regularly attack positions inside Saudi Arabia in retaliation for the Saudi-led war on Yemen.

 

Saudi Arabia has been striking Yemen since March 2015 to restore power to Mansour Hadi, a close ally of Riyadh. The Saudi-led aggression has so far killed at least 17,000 Yemenis, including hundreds of women and children.

 

Despite Riyadh's claims that it is bombing the positions of the Ansarullah fighters, Saudi bombers are flattening residential areas and civilian infrastructures.

 

According to several reports, the Saudi-led air campaign against Yemen has driven the impoverished country towards humanitarian disaster, as Saudi Arabia's deadly campaign prevented the patients from travelling abroad for treatment and blocked the entry of medicine into the war-torn country.

 

Yemen is the world’s largest humanitarian crisis with more than 22 million people in need and is seeing a spike in needs, fuelled by ongoing conflict, a collapsing economy and diminished social services and livelihoods.

 

The United Nations aid chief has recently expressed concern over the decline of food imports to Yemen amid restrictions put in place by the Saudi Arabia, warning that a further 10 million Yemenis could face starvation by yea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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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들이 뜻 모았다, 설정원장 퇴진하라” 보신각 앞서 열린 촛불 법회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설조스님 단식 39일차 맞아 종단 개혁 촉구 촛불 법회 개최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8-07-28 20:33:21
수정 2018-07-29 01: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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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불교적폐 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불교적폐 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다.ⓒ김철수 기자


88세 설조스님이 단식 39일차를 맞은 28일, 조계종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불자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설조스님의 단식 중단을 요청하며 "설정 총무원장은 물러나라"고 목소리 높였다."종도들이 뜻 모았다. 설정원장 퇴진하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는 이날 오후 6시 보신각 앞에서 '설조스님과 함께하는 사부대중 촛불 법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가한 1천여명(주최측 추산)의 불교신자와 시민들은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 등 3원장 퇴진 ▲자승 전 총무원장 구속 ▲종단개혁 등을 촉구했다.

사회를 맡은 조재현 참여불교재가연대 운영위원장은 녹색병원 이보라 의사가 이날 단식장을 방문해 설조스님의 현재 건강상태를 진단했다고 말했다. 사회자는 "(설조스님의) 장기가 타고 있는 상황이고 혈압이 떨어져 있어 지금 당장 쓰려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며 "이제 시간이 없다. 더 이상 설조스님 이렇게 놔둬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종단 개혁 위해 우리도 목숨 걸고 싸우자"
동조단식 동참 촉구
"설조스님이 시작한 촛불은 어둠 몰아낼 횃불 돼"
임순례 감독, 설조스님 단식 중단 호소 편지 낭독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원정도박승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이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원정도박승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이다.ⓒ김철수 기자

6일째 설조스님과 함께 동조단식을 하고 있는 이용성 풍경소리 사무총장은 "덩치도 좋고 젊은 제가 단식을 하는 것도 힘든데 스님은 내일이면 단식 40일째"라고 힘겹게 입을 뗏다. 이어 "제가 오늘 아침에 (설조스님께) 문안인사 드리면서 '저 이제 6일 했는데 힘든데, 스님은 어떻게 버티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마음을 굳게 먹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딱 한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사무총장은 "이런 분이 단식으로 건강을 해쳐서 우리 싸움의 끝을 같이 못 보면 안 된다"며 "스님 옆에서 이 싸움을 끝낼 때까지 우리도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확신을 주면 설조스님도 단식을 그만둘 것"이라고 동조단식 동참을 호소했다.

이날 집회에는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의 영화를 만든 임순례 영화감독도 자리했다. 임 감독은 지난 16일 설조스님과 함께 1일 동조단식을 진행했고, 그 뒤로 9일 동안 한끼 단식을 수행했다. 임 감독은 "저에게 부처님의 말씀이 리틀 포레스트이고, 한국 불교가 한국인의 리틀 포레스트인데, 몇몇 권승들이 한국인의 숲을 이렇게 망쳐 놓게 해서 되겠냐"며 "우리가 왜 조용히 수행하고 불교의 정신을 서로 조용히 전파해야 할 우리들이 이 염천에, 바닥에 나와서 앉아 있어야 하는 지 정말 울분이 생긴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임 감독은 전날인 27일 설조스님께 단식 중단을 호소하기 위해 전달했던 편지를 낭독했다. 임 감독은 편지를 통해 "불교는 불살생의 종교이다. 스님의 선택은 조계종 종단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소멸이 아니라 회생을 위한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생명의 비자연적인 소멸을 받아드리기에 이 불자는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면서도 "그러나 대한민국은 부족하나마 자유국가이다. 스님의 목숨을 담보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이 염천에 수많은 신도들과 스님들이 함께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순례 감독은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의 생전 얘기를 꺼냈다. 임 감독은 "노회찬 의원이 고민을 상담하는 조카에게 말했다. 고민이 있을 때는 가장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하라고. 스님께서는 아마 지금 단식을 중지하시는 일이 아마 단식을 지속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선택일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한국 불교를 생각하는 사부대중을 위하여 부디 그 어려운 선택을 해주시길 간청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의롭고 올바른 사람은 결연히 이 세상을 하직하고, 부정직하고 탐욕스러운 무리들은 한량없이 뻔뻔한 낯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이 아프고 좌절스러운 현실을 저희들에게 또 한번 각인하고 떠나시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이어 "설조스님의 초인적인 행동으로 이제 불교계 안팎, 사회 각계, 언론 등에서 조계종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스님이 시작하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큰 횃불로 커져가고 있다"고 종단개혁의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 감독은 "설정원장은 이 자리에서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시점이 언제냐의 문제일 뿐 그자리를 내려올 방법이외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그 분이 내려온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설조스님이 이 자리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한국불교 조계종단의 개혁은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임 감독은 "불자들이 이 어둡고 혼란한 시기에 맘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큰 스님으로 저의 곁에 현존해 주시길 온 마음 다해 빌어본다"며 "부디 오늘 자로 단식 중지를 선언해 주시길 바라며"라고 끝을 맺었다.

"설조스님 목숨 건 숭고한 뜻 이어받겠다"
스님들도 종단개혁 촉구
조계종의 3원장의 범계행위 질타하는 재가자와 불자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원정도박승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이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원정도박승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이다.ⓒ김철수 기자

스님들도 집회에 참석해 설조스님의 단식 중단을 호소하며, 종단 개혁을 촉구했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는 허정스님은 "설조스님이 설종원장이 내려오는 것으로 종단이 깨끗해진다고 생각 안 한다"며 "승려대회를 통해 총무원장 직선제가 통과되고 출가를 했을 때 맨몸으로 절집에 들어와 입을 걱정, 먹을 걱정, 잘 걱정하는 출가자들에게 수행 보조비라는 명목으로 일정 부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승려대회 이전과 이후는 많이 다를 것"이라며 "진정한 개혁은 그런 것이고, 제도가 바꿔서 승려가 청정할 수 있을 때 우리도 당당한 스님을 만나서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선원수좌회의 한 스님은 "설조스님의 간절한 뜻이 저의 마음을 울린 것 같다" 울먹였다. 곡성스님은 "저 하나라도 앞장서면 불이익 당할 것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선원위수좌스님들께서 한 명이라도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스님은 "우리 불자님들께서, 일부 앞장선 스님들의 노고로, 설조스님의 목숨 건 투쟁의 숭고한 뜻으로 정말 좋은 기회 맞이했다"며 "선원스님들을 비롯한 수행자들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국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상임대표는 그간에 불거졌던 조계종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했다. 김 상임대표는 "불교대통령인 설정스님은 비구니 스님을 성폭행하고 임신을 해서, 바로 당사자가 증언한 내용이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교육원장이 종무원을 데리고 대구 시내 나가서 성추행하고, 술집 끌고 나가다가 미투에 걸렸다. 포교원장 역시 여자 직원에게 '너 딴 사람 생각하면 죽을 줄 알아'라는 성희롱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가 들켰다"며 "그런데도 세 명 원장이 아직도 내려오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의 배후에 바로 자승 전 총무원장"이라며 "자승 전 총무원장이 서울 시내 돌아다니면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유와 협박을 하는 것을 본사 주지스님이 고백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설정 원장이 따르겠다고 하는 종도의 뜻은 자승 전 원장이 장악한 본사 주지와 종회 의원들로 구성된 세력"이라며 "(자승 전 원장)은 설정원장 퇴진 이후 자신에게 칼 끝이 돌아올까봐 종단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하려고 음모를 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교계 조계종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자승 전 원장을 구속 시켜서 두 번 다시 부처님 곁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설정퇴진 자승구속'이라고 적힌 파란 몸조끼를 입은 불자와 시민들은 "중앙종회 해체하고 개혁회의 구성하라" 등의 구호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더위와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시민들은 도정스님이 직접 만든 '해외 원정도박승 구속하라"라고 붉은 글씨가 적힌 부채로 더위를 식혔다. 이들은 "상습도박장 개설 자승을 처벌하라", "청정도량에서 상습도박 웬말이냐" 등의 손팻말을 높이 올렸다.

촛불 법회 이후 참가자들은 보신각에서부터 설조스님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장소인 조계사 우정총국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전국불교청년들, '조계종 적폐청산'과 '설조스님 살리기' 나서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원정도박승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이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불교개혁 촉구 촛불집회 진행 참석자들이 원정도박승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은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설조스님 단식 39일째이다.ⓒ김철수 기자

이날 사전집회에서 대한불교청년들도 조계종의 적폐청산과 설조스님 살리기에 뜻을 모았다.

대한불교청년회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모임(이하, 불청사랑)은 이날 오후 5시 조계사 건너편 조계종 템플스테이관 앞에서 '조계종 적폐청산과 설조스님살리기 전국불교청년 1080인 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불자와 시민 등 40여명(주최측 추산)은 "설조스님 힘내세요", "설종스님(총무원장) 물러나라", "자승 땡초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구호에 맞춰 호루라기를 불고, 북과 징을 치며 집회 분위기를 올렸다. 맞은 편에 있는 조계사에서는 불경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에 집회 관계자는 "이 시간에 틀어놓지 않는데,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서 금강경을 틀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불교청년회·전·현 회원들로 구성된 불청사랑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언문과 명단을 공개했다. 불청사랑은 설조스님 단식 25일차부터 단식 39일차인 28일까지 전국의 1,100여명의 불자들이 선언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불청사랑은 선언문을 통해 "세수 88세 설조스님은 오로지 부끄러움을 아는 청정한 승려가 종단의 소임을 맡기를 원하는 비원(소원) 하나로 온갖 비리로 인구(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3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임종게(고승들이 입적할 때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를 남기고, 목숨을 던지는 단식정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파계권승들을 향해서는 "죽음이라는 최후의 족적 하나만을 향해 걸어가고 계시는 노스님의 뒷조사를 한다며 회유와 협박을 일삼고 있고, 파계승려 어느 누구 하나도 참회하는 자 없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자가 없음에도, 그들과 같이 근본적인 개혁을 하자며 노스님을 희롱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한 "지금의 조계종 권력승들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탄핵받지 아니할 특권을 누릴 수 없다"며 "지금 그들이 누리는 것은 청정한 스님에게 바치는 신도들의 청결한 공양물과 국민 혈세를 훔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MBC 피디수첩에서 보도된 조계종 권승들의 일탈은 일반인에게도 경악 그 자쳬였다"며 "그럼에도 청년불자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 우리를 존재하신 뜻을 저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불청사랑은 "청년불자들은 설조스님을 외호하고(외부에서 보호하고), 살리는 길이 조계종단에서 가짜 비구승려를 퇴출함에 있어 각인하고, 그들의 퇴출운동에 동참한다"며 "우리는 불교파탄의 도덕적·정치적·법적 책임을 져야할 현 조계종 집행부와 중앙종회가 해체되고, 사찰과 종단의 재정 투명성, 종단의 자정기능을 마련할 비상혁신기구가 구성될 때까지 투쟁을 멈주치 아니한다"는 등의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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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그 후 5일... 기억해야 할 사람과 사건

[게릴라칼럼] '민중의 친구' 노회찬, 그가 남긴 유산들

18.07.28 20:27l최종 업데이트 18.07.28 20:43l

 

큰사진보기영정 속 노회찬은 웃고 있었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은 빈소 모습
▲ 영정 속 노회찬은 웃고 있었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은 빈소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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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으론 부족했을까. 아니, 그러고 싶었던 게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이 진행되던 지난 26일 저녁, 전날에 이어 빈소를 다시 찾았다. 추도식 장소가 지척이었지만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 인파 속 넘쳐흐르는 통한의 파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 순간에도 영정사진 속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미소 짓고 있었다.

어떻게 한 주가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23일 월요일 오전 실시간으로 접한 사망 소식 이후 우울감이 엄습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라기보다, 2009년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의 죄책감과 아픔을 반복하는 듯한 무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그럼에도 '하필 당신이 왜?'라는 질문을 떨칠 수 없었다.

소셜 미디어를 보는 일이 고통이었다. 누군가의 오열을 마주하는 일도, 그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하려는 이들의 패륜을 목도하는 일도 매한가지였다. 그 한 주간 만난 이들 중 "정의당 입당" 의사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는 이도 있었고, 이미 입당했다는 이도 있었으며, 무거운 감정을,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그런 황망하고도 아픈 한 주를 보냈으리라. 27일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도 '노회찬'이란 이름 석자는 내 눈과 귀에서 떠날 줄 몰랐다. 상주란에 가족의 이름이 많지 않은 것조차 아프게 다가올 정도였으니까.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를 알리는 장례식장 화면.
▲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를 알리는 장례식장 화면.
ⓒ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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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 보세요. 속담이라는 말은 속한 말이라는 거예요. 지식인들이 만든 말이 아니에요, 속담은. 속담은 전체가 비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은 그 상황 상황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비유라는 거예요. 판을 갈자고 해서 정치판갈이를 무슨 관을 세워서 철학적으로 해석해 봐요. 웃기잖아요. 그냥 삼겹살 먹던 불판이 40년, 50년 해쳐먹었으면 빨리 갈아버려야 되지 않냐. 그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노회찬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게 철학에 있어선 누구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우리 시대에 경기고까지 나온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민중이랑 밀착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민중의 언어가 몸에 배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상황 상황에서 민중의 언어로 얘기하기 때문에, 민중이 무엇보다 속 시원하고 친근하고 비근하게 느낀단 말이에요, 이걸."

무심코 재생한 팟캐스트 어플에선 지난 2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민중'이란 단어도 반가웠지만, "예수가 바로 '민중의 언어'를 쓸 줄 알았다"던 도올은 그렇게 정치인 노회찬과 민중을 자연스레, 납득 가능한 논리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지금 제 가슴에서 지금 눈물이 끓어오르는데. 정말 이거는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이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가. 모든 사람의 심정이 이런 심정일 거란 말이죠. 저는 국민들이 진정한 민중의 친구와 민중의 언어를 상실했기 때문에 이렇게 애통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싶어요."

'민중의 친구' 노회찬
 
 영결식 당일 노회찬 의원을 떠나 보내고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  영결식 당일 노회찬 의원을 떠나 보내고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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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듣자, 한 장의 사진이 스치고 지나갔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도로 열해 머리를 숙인 그 비감한 풍경, 슬픔을 머금은 표정의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어느 청소노동자를 안아 주던 그 흔치 않은 장면.

"국회청소노동자들이 고 노회찬 의원을 애도하며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열하는 청소노동자를 이정미 대표가 위로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립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

노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한창이던 27일 민주노총이 페이스북으로 전한 추모 글이다. "정치인 노회찬"이 "민중의 친구"라던 노올의 쩌렁쩌렁한 육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 '민중의 친구'여던 노회찬 대표는 그 민중의 애통한 마중을 받으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을 국회를 뒤로 했다. 평소 국회 노동자들을 위해 의원실 한 편을 내주려고 했다던 노 원내대표를 향한 진심 어린 예의였으리라.

지난 23일 이후 며칠 간,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노회찬 당 대표의 수락 연설이 화제였다(관련 기사 : 노회찬 명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이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정의당 입당을 결정했다고 했다. '민중의 친구'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명연설이라 할 만 했다. 이 영상을 본 수많은 이들이 이찬진 전 대표와 같은 자책 혹은 자각의 감정을 느꼈으리라.

가장 슬펐던 몇몇 장면들
 
큰사진보기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의 부인 김지선 씨가 고인의 사무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의 부인 김지선 씨가 고인의 사무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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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에 목소리에 이어 재생되던 한 팟캐스트에서는 정치인 노회찬의 약사를 훑고 있었다. 그 중 노회찬 원내대표의 부인이자 인천 노동운동의 대모였다던 김지선씨의 사연,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 생활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울컥하는 감정을 실어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란 제목의 글이 회자되고 있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어요...
열여섯 나이에 동일방직에서 일하던 여자사람.

노동조합 만들어 사람대우 받으려다
온 몸에 생 똥을 쳐발라 대는
공권력 앞에 온 몸으로 저항했던 한 사람.
서슬퍼렀던 군부독재시절...

여의도 부활절 예배 단상에 올라
노동삼권 부르짖다 구속됐던 사람...

노회찬 만나
동인천 역앞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통금해제 기다리며
그냥...마냥 앉아 말로만 사랑 나누던 여인.

7년 수배중이던 남편은 옥살이로
신혼여행은
시외버스로...
누워 쉴 방도 없던
그런 날들을...
이것도 삶이려니 했던 통 큰 여인...
인천 노동운동의 대모...

1955년 양띠해에 태어나
온몸으로 살며 사랑하며를 실현했던
노회찬의 부인.


27일 영결식에서 오열하던 김지선씨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남편이자 동지를 먼저 떠나보낸 이의 그 한없는 슬픔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으리라. 그러자 빈소 앞에서 오열하던 유시민 작가의 모습이 스쳐갔다. 평생 처음 "회찬이 형"이라 부르며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라던 추도사와 함께. 

'진보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형' 노회찬과 함께 한 어느 팟캐스트에서 '진보어용지식인'을 선언했던 유시민 작가의 오열하는 얼굴 역시 노회찬 대표의 영정사진과 더불어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노회찬 영정 앞에서 목놓아 운 유시민 작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은 유시민 작가가 상주석에 선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다. 오른쪽은 심상정 의원.
▲ 노회찬 영정 앞에서 목놓아 운 유시민 작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은 유시민 작가가 상주석에 선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다. 오른쪽은 심상정 의원.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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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 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역시나 흘러가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차마 보지 못했던 영결식 장면을 기어이 클릭하고야 말았다. 조사를 읽어 내려가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그 슬픈 얼굴과 목소리는 추도식에서, 발인장에서 오열하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기어코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라고 다짐하던 조사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 눈물의 의미를 헤아리고 싶은 이들라면 더더욱.

그렇게 5일이 흘렀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인간 노회찬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추도식과 영결식이 끝났어도, 노회찬을 떠나보내기 힘겹다는 이들이 부지기다. 이제는 '민중의 친구'이자 '진보정당의 역사'였던 그 노회찬이 남긴 유산들을 되돌아 봐야할 것 같다. 황망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눈물이 넘쳐났던 2018년 7월 23일과 그 후 5일 간을 뒤로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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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백혈병 참사, 역사로 남기자

[안종주의 안전사회] 미래 세대와 소통하는 장치 마련해야
2018.07.28 12:58:28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었던 삼성전자 백혈병 참사를 둘러싼 갈등이 이제는 정말 끝나는가?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중재방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힌 뒤 하루만인 24일 양쪽이 이에 서명했다. 살인더위 속에 폭포수의 물줄기를 맞는 듯한 청량감이 몰려왔다.

삼성전자 백혈병 직업병 참사는 또 하나의 직업병 사건이 결코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직업병 사건을 뛰어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30년 전 7월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숨진 열다섯 문송면 군과 1000명 가까운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환자를 양산한 원진레이온 참사를 잇는, 산업보건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다. 앞으로 적어도 100년 동안은 우리 사회가 잊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일부 언론은 삼성전자 백혈병 직업병 참사와 관련한 갈등 해결의 배경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 또는 "이 부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판결을 얻고 싶어 전격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사회 각계의 노력이 줄기차게 청와대에 전달돼 이것이 다시 이재용 부회장 쪽에 전달돼 나온 결과일 수도 있다.

살인더위와 극한 한파도 견뎌낸 피해자 가족들과 반올림

하지만 이런 것은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지난 12년간 생계도 내팽개치고 가시밭길을 걸어온 삼성전자 백혈병의 상징인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비롯해 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눈물 나는 투쟁의 산물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1000일하고도 20여 일을 더 삼성전자 사옥 앞 강남역 8번 출구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여왔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 살인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농성장을 지켰다. 차가운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겨울도 결코 이들의 투쟁 의지를 꺾지 못했다, 마구 쏟아지는 집중호우도 천막을 거두어들이게 하는 데 실패했다. 화려한 벚꽃과 온갖 아름다운 꽃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봄날에도, 만산홍엽으로 전국의 산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있을 때도 그들은 이를 즐기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함과 행복이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이제 그 고난의 행군은 끝났다. 고난 행군의 끝이 행복 행진의 시작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삼성 백혈병 피해자·가족들이 중재위가 제시할 내용에 무조건 합의하기로 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80명이 넘는 피해자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대다수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돈으로 때우려던 삼성, 마침내 항복 선언 

이 모든 것은 돈으로 해결하거나 치유할 수 없다. 지난 10여 년간 돈으로 참사와 갈등을 해결하려한 삼성전자의 일그러진 행태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리하여 삼성은 물론이고 기업들이 산재·직업병 예방에 힘을 쏟지 않고 재해가 일어난 뒤 돈으로 때우려하는 작태를 벌이려는 마음을 더는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삼성백혈병 사태는 새로운 막을 열고 새롭게 기록해야 한다. 삼성백혈병 참사에 두 눈 질끈 감고 있었던 일부 시민과 언론, 정치인, 전문가들은 양심을 소환해 성찰해야 한다. 특히 삼성 백혈병과 관련해 삼성의 광고 때문에 침묵하거나 왜곡보도를 해온 언론은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지면과 방송을 통해 자기고백을 해야 한다. 언론사 차원이면 더욱 좋고 적어도 그런 언론인이 곳곳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는 삼성백혈병 참사의 2막을 열기 전에 2막에서는 국민이라는 관객 앞에서 무엇을 보여줄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2막에서 보여줄 내용에는 삼성 백혈병의 어제에 대한 역사, 즉 백서를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담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 

백서 발간, 추모기념재단 설립해 영원한 교훈으로 남겨야

왜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막을 수는 없었는지, 11년 전 최초의 피해자 황유미가 물위로 떠오르고 잇달아 다른 피해자들도 나왔음에도 왜 삼성은 침묵했는지, 이런 엄청난 참상이 벌어졌음에도 대다수 주요 언론은 왜 이를 외면했는지, 결국 수원의 한 자그마한 지역매체가 이를 처음으로 알리게 됐는지도 말해야 한다.

사실 삼성 백혈병 참사 정도의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이루어졌어야 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를 낸 비극이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다. 그래서 백서라도 남겨 그 백서에 참사의 진상과 교훈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황유미를 비롯한, 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 땅의 많은 젊은 노동자들의 한 맺힌 것을 풀어줄 추모기념재단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 가족들과 삼성백혈병 투쟁에 동참해온 각계 양심적 인사 등이 함께해 이 기념재단을 매개로 해 백서 출간과 산재·직업병 추모대회, 학술대회, 삼성백혈병인권상(가칭) 등을 개최하거나 만들어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삼성백혈병 직업병 참사를 너무나 소홀하게 다루고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이런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조정위가 이를 잊지 않고 챙겨 오는 9월 조정안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아니 조정위가 적어도 이 정도는 해주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내년부터는 미안함을 덜고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2막의 공연을 보자. 그리하여 공연이 끝난 뒤 밀려오는 그 감동을 널리 방방곡곡에 퍼트릴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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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년들의 동네 공존기]함께 살기·일하기·놀기…‘상생의 풍경’ 을지로의 재발견

[커버스토리-서울 청년들의 동네 공존기]함께 살기·일하기·놀기…‘상생의 풍경’ 을지로의 재발견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입력 : 2018.07.28 06:00:03 수정 : 2018.07.28 06:01:01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서울 을지로의 공업소 골목은 세월이 흘러 쇠락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지난 26일 공업소 골목에서 한 노인이 짐수레를 밀며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서울 을지로의 공업소 골목은 세월이 흘러 쇠락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지난 26일 공업소 골목에서 한 노인이 짐수레를 밀며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세운상가, 도시재생으로 탈바꿈 
‘원주민’과 새로 온 청년들 ‘협업’
“추억 조명에만 집중해 아쉬워” 

낡은 골목에 숨은 ‘핫플레이스’ 
공업소 사장님과 전시 연 예술가
“늘 긴장되는 건 젠트리피케이션” 

수십년 한 곳을 지켜온 사람들과 
새로운 세대가 함께하는 공간
을지로가 다시 주목 받는 이유
 

을지로에는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간이 같이 흐른다. 수십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낡은 간판들 사이로 간판도 없는 아지트 같은 새로운 공간들이 숨어들었다. 또 을지로는 수십년째 성실한 노동을 수행해온 사람들의 땀이 흐르는 공간이면서 젊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발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을지로가 기존의 강남이나 이태원 등 ‘핫플레이스’와 다른 이유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이전 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공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게 주목받는 을지로의 골목골목을 들여다봤다. 
 

■ 다시·세운 프로젝트 

1968년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로 문을 연 세운상가는 올해로 50년이 됐다. 상류층이 거주하는 호화아파트로 주목받았고 한때는 국회의원회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0년대 재정비 논의가 대두하면서 철거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가 도시재생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2015년 11월 서울시는 ‘2025 서울시도시재생전략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의 노후한 지역 13곳을 선정해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세운상가도 그중 하나였다. 2015년부터 착수한 공사는 2017년 9월 1단계 사업을 마친 상태다. 세운초록띠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세운광장이 탄생했고 3층 보행 데크가 정비되면서 세운상가 가동과 대림상가 사이에는 공중 보행교가 등장했다. 보수 과정을 거친 보행 데크에는 청년 스타트업, 창업점포 등이 입주했다.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는 공간만 공유하는 게 아니었다. 세운상가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장인·상인들과 새로 이곳에 들어온 청년들의 협력도 이어진다. 한때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세운상가 장인들의 저력이 요즘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서울시는 기술력을 가진 장인과 청년들의 세대 간 교류를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을지로를 4차 산업혁명의 혁신지로 부각시키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가 새로운 일상을 만들기보다 오래된 ‘추억’을 조명하는 데 집중하는 점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4년째 세운상가에서 전자통신기구를 판매하고 있는 정성규씨(57)는 새롭게 주목받는 세운상가가 오랫동안 이곳에서 전자제품 유통업에 종사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변화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어요. 그러나 예스러운 것, 추억할 수 있는 오디오 장비, 수리나 제조 이런 것들만 다루거나 아니면 아예 새롭게 들어온 것만 조명하는 게 아쉬워요. 저희처럼 오래 한 곳에서 전자제품을 팔아온 사람들도 세운상가를 지켜온 사람이거든요. 여기 들어온 청년층은 아직 좀 이질적으로 느껴져요. 저희와는 교집합이 별로 없으니까요. 전자제품 유통시장이 어렵긴 하지만 온·오프로 판매망을 넓힌 사람들도 있고 또 제조 아웃소싱과 같이 하기도 하고 다양한 콘셉트로 시도하고 있어요. 소규모지만 기반을 잡고 가는 가게들인데 여기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 서울 을지로에 문을 연 펍(pub) ‘감각의 제국’. 박송이 기자

지난 1월 서울 을지로에 문을 연 펍(pub) ‘감각의 제국’. 박송이 기자 

■ 숨어있는 핫플레이스 

을지로는 종종 ‘핫플레이스’로 소개되지만 막상 을지로에 들어서면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날의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인쇄소·공업소 골목에서 변화의 조짐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방을 둘러봐도 ‘핫’하다는 카페나 펍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을지로3가역 앞 인쇄소 골목. 한 건물 입구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입간판이 서 있다. 한지에 붓글씨로 ‘감각의 제국’이라고 쓰여 있고 그 옆에는 #4층 #열린문화회관, #무릉도원 #퇴사잼 #펍 등의 해시태그에 붙어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 층계를 따라 올라가니 2층엔 영화 관련 협회, 3층엔 적막하게 문이 닫힌 사무실이 있다. 한 층 더 올라가봤자 아무래도 ‘펍’ 같은 게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4층에 올라가 꽉 닫힌 문을 여니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 2명의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고 있다. 

이곳의 주인인 흥건씨(별칭·38)는 10년 동안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2년 전 퇴사했다. 유명 광고제에서 상도 받고 즐겁게 광고 일을 했지만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에 지난 1월 이곳에 펍을 열었다. 주변에서 작업실을 하고 있는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영화도 상영한다. “단골 중에 예술가들이 많아요. 같이 놀다가 전시 같이 해보자, 음악 하면 여기서 공연해보자 이렇게 하는 거죠. 을지로는 그런 걸 펼치기 좋은 공간이에요.” 새로운 공간들이 간판 하나 없이 아지트처럼 숨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오래도록 인쇄소 하시고 공업소 하신 분들이 많은데 뭔가 새로운 가게들이 막 들어서서 골목을 접수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면 그렇잖아요. 또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막 드러내놓고 하기보다는 좀 숨겨놓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예술가 그룹 R3028이 지난 6월 서울 을지로의 한 골목에서 ‘철의 골목’이라는 주제로 음악공연을 하고 있다. R3028제공

예술가 그룹 R3028이 지난 6월 서울 을지로의 한 골목에서 ‘철의 골목’이라는 주제로 음악공연을 하고 있다. R3028제공

■ R3028 

을지로에는 저렴한 임대료로 작업실을 찾는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홀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인근의 장인·상인들과 어우러지기도 한다. R3028은 을지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R3028 고대웅 대표는 2016년 이곳에 작업실을 열고 ‘창작’ ‘전시’ ‘공연’ ‘예술교육’ ‘도심재생사업’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조형예술을 전공한 고 대표는 2015년 임대료가 낮은 작업실을 찾다 을지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중구청의 공간지원사업을 통해 작업실을 꾸린 후 지역 기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과 을지로의 철골목은 멀게 느껴지지만 고 대표는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본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사실 이분들은 일한 만큼 수익을 내는, 어떻게 보면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들인데 그림 그리고 조각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패턴에 대해서는 인식차가 있으셨겠죠. 이곳 사장님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연, 기념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고 정이 많이 들었죠. 골목길에 멍하니 서 있으면 한쪽에서 팔짱 끼시면서 막걸리 먹으러 가자고 하세요. 정이 많은 이웃, 형들이 생겼죠.” 

지난 6월에는 산림동 한 골목에서 ‘철의 골목: 야인시대’ 전시를 열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험난한 시기, 산림동 골목에 모여든 사람들이 땀과 노력으로 불어넣은 바람이 철을 녹였고 한국의 산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죠. 그들의 소망대로 아들, 딸들은 굶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나 우리는 어느덧 그 시간을 잊어가고 있어요. 그들의 노고가 녹아 있는 골목에서 그들의 삶을 주목하는 전시를 열었어요.” 공업소 ‘사장님’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진행하는 작업도 있다. “13곳의 공업소와 13명의 작가들을 매칭해서 셔터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작가들이 공업소 사장님들과 함께 시안을 짜서 그림을 그렸죠. 시안을 짜는 과정에서 공업소 사장님들도 예술 주체가 되는 거죠.”

관계를 이어가고 골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즐겁지만 늘 긴장되는 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젠트리피케이션은 쫓아올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미 청계상가 서편은 재개발이 시작돼 26층 건물이 들어온다고 해요. 동네 경관이 달라지고 상업의 변화도 극심해질 거예요. 사람들이 을지로가 ‘힙’하다고 하는데 그건 강남에서 느낄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가치를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제조업·인쇄소 골목은 건재할까 

을지로에는 공구나 철물부터 금속을 다루는 공업소, 가구·조명·타일·도기까지 품목별로 자연스럽게 골목이 형성됐다. 을지로에 가면 없는 게 없고 구하지 못하는 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과거 미군 부대의 기계와 공구를 가져다 팔면서 만들어진 소규모 업장들이 점점 늘어나며 을지로는 제작과 수리, 판매, 중간 단계의 상인까지 연결되는 제조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했다. 모든 업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공정을 처리한 사업장이 다음 공정을 담당하는 사업장을 소개해주는 사업방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을지로 제조 산업의 많은 부분이 용산과 영등포, 구로 등 도심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을지로 인쇄 골목은 을지로 3가와 4가 그리고 충무로 일대에 이른다. 크고 작은 인쇄 업체가 밀집한 골목에는 쉴 새 없이 짐을 실어나르는 오토바이와 ‘삼발이’가 오고 간다. 을지로 인쇄 골목은 충무로 일대에 영화관이 등장하면서 전단지와 포스터 등을 인쇄하면서 성장해왔다. 1980~1990년대가 인쇄 골목의 전성기였으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물량이 급감하고 이후 IT산업 발달 등으로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지금 다시 을지로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위주의 저성장 시대, 해법은 도시재생” 

서울연구원 보고서…주민 참여 확대·임대료 안정화 대책 필요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서울의 미래, 도전받는 도시’ 보고서는 2040년 서울이 직면할 과제를 예시했다. 서울은 저성장과 고령화를 겪고, 기후변화와 세계화에 적응해야 한다.
 
보고서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도시재생’을 꼽았다. 기존의 도시정비 사업이 낡은 주택 등을 한꺼번에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이라면, 도시재생은 지역의 역사·문화와 도시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시민들의 변화한 생활양식에 맞게 공간을 개·보수하는 방식이다. 도시재생은 전면 철거방식인 신축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주민들이 참여해 지역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할 수 있어 1인 가구 위주의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에 적합한 모델로 꼽힌다.
 
중앙정부 역시 도시재생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쇠퇴도시지역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도시재생을 공약으로 제시한 문재인 대통령은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주민참여형 도시재생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나 체감도는 낮다. 당초 취지와 달리 지역주민의 요구나 필요 사업보다 관주도의 도시재생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결국 지가·임대료 상승, 부동산 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추진지역을 발표하며 투기 조짐이 보이면 사업을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투기를 방지할 실질적인 개발이익 환수대책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향후 임대료 안정화를 골자로 하는 ‘상생협약 체결 활성화’를 제시하긴 했지만, 이는 당사자가 거부하면 강제할 수 없다. 실제로 2014년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이 처음으로 시작된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지구에서는 거래량이 늘고 지가가 오르는 등 투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임대료 갈등의 극단적 사례인 서울 서촌의 ‘궁중족발’은 ‘상생협약’이 별다른 실효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절실하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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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노환으로 별세

박정기씨, 28일 오전...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 31일 발인

18.07.28 10:51l최종 업데이트 18.07.28 11:43l

 

 20일 오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입원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을 찾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씨의 손을 잡고 쾌유를 빌고 있다.
▲  지난 3월 20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입원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을 찾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씨의 손을 잡고 쾌유를 빌고 있는 모습. 안타깝게 박정기씨는 7월 28일 오전 별세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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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90)씨가 아들 곁으로 떠났다. 아들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지 31년 만이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오전 5시 50분께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지난해 1월 넘어져 척추 수술을 한 뒤로 급격히 쇠약해진 박씨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장례는 부산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31일 엄수될 예정이다.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하고 쓰러졌다"며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지만, 결국 물고문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는 같은 해 6월항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화 <1987>의 한 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  영화 <1987>의 한 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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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개봉한 영화 <1987>은 당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박씨가 아들 박종철 열사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많은 이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1987년 당시 박씨가 한 말이었던 "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할 말이 없대이"라는 대사가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 1월, 이철성 당시 경찰청장은 경찰 지휘부와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박종철 열사의 영정에 고개를 숙였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지난 3월 박씨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아 당시 은폐에 가담한 검찰을 대표해 사과했다. 문 총장은 박씨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1일 다시 병문안했다.

한편 박종철 열사의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하려고 한 강민창 전 내무부 치안본부장은 지난 6일 노환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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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는 종전선언 약속을 이행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7/28 11:43
  • 수정일
    2018/07/28 11: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사설] 트럼프 정부는 종전선언 약속을 이행하라!

오늘(7월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이 되는 날이다. 온 겨레는 바로 오늘 “한국전쟁은 끝났고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이 나오길 간절히 기대했다.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를 향한 첫걸음이며, 4.27판문점선언과 6.12북미공동성명 이행을 통한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로 나아가는 세기적인 대전환의 입구, 출발점인 까닭이다.

북한(조선)은 7.27을 맞아 미군 유해송환과 함께 서해 위성발사장 해체를 단행하는 등 북미정상 합의와 약속을 이행하는 조치를 속속 취하고 있다. 북한(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에 ‘종전선언’ 약속을 지킬 것을 강하게 촉구하면서도 ‘선제적 평화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핵시험장의 선제적 파괴조치와 같은 맥락이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종전선언 등에 상응하는 조치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와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과연 북미공동성명을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5일 북미공동성명 이행 실무협상을 위해 방북한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조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 또한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까지 멀리 뒤로 미루어 놓으려 했다.”

잘 아는 것처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은 1) 새로운 북미 관계 2)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3)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4) 미군 유해송환 등 네 가지 합의사항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행을 위한 첫째 실무협상은 이 네 가지 의제의 이행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러나 폼페오는 오직 비핵화, 그것도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조선)만의 비핵화에 매달렸다.

지난 5일 폼페오는 방북길에서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조선)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지속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북미공동성명에서 빠지게 되자, 합의에는 있지도 않은 새로운 용어를 고안해 낸 것이다. 그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FFVD의 대가인 것처럼 말했다. 북미정상회담 전 ‘선비핵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나아가 폼페오는 지난 25일 미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2021년 1월 이전 CVID 달성’이라는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하면서 “북한(조선)의 대량파괴무기(WMD) 제거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 전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꺼냈다가 북미정상회담 무산위기까지 불러왔던 WMD+탄도미사일 폐기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23일 미 상하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또는 2만2000명 미만(현재 2만8500여명)으로 줄일 때엔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새로운 국방수권법안을 의결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정부는 오히려 대북제재 단속과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6.12북미정상회담 당일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이 대북제재 조정을 공개 주장한 데다, 6월19일 북중정상회담에서 양국간 협력이 우호적으로 논의되자 트럼프 정부는 제동을 걸고 든다.

6월22일, 지난 정권이 발동한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 6건의 효력을 1년 더 연장한 데 이어 6월25일엔 트럼프가 직접 나서 “중국이 대북제재를 풀면 정말로 안 좋을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이어 6월27일 베이징으로 날아간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중국의 대북제재 유지를 압박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대북제재 단속강화 압력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폼페오는 6월18일과 6월28일 연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 전화를 걸어 강력한 대북제재를 압박했다. 지난 25일엔 폼페오가 이례적으로 조명균 통일부장관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대북제재 유지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통화는 폼페오가 7월25일(현지시각)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대북제재를 이어가기로 한 입장을 밝히기 직전에 이뤄졌다.

방한 중인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은 지난 26일 코레일을 비롯한 대북경협기업 관계자들과 비공개 만남에서 “대북 경협에 너무 앞서 나가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그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민간 기업들이 북한(조선)과 교류사업을 추진할 때 반드시 정부와 사전 협의를 하고, 필요하면 미국측에도 직접 문의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남북경협 기업인은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마무리돼 모든 제재가 해제되기 전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이런 대북제재에 대한 전방위적인 단속과 압박이, 한국 정부가 최근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 개성공단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 공사를 위한 물자 반입에 대한 포괄적 대북제재 유예 조치를 신청한 시점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북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스포츠용품 관련 제재 대상에서 제외를 요청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각하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7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미국은 미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발의된 ‘대북 은행업무 제한 법안(BRINK Act. 브링크액트)’과 외교위원회에서 발의된 ‘효과적인 외교 촉진을 위한 영향력 법안(LEED Act. 리드액트)’ 등 새로운 대북 제재와 관련된 두 건의 법안을 의결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비춰볼 때,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재제 유예조치 요구에 동의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남북체육회담(6.18), 남북적십자회담(6.22), 남북철도협력분과회담(6.26), 남북도로협력분과회담(6.28), 남북 해상 긴급연락망 가동(6.1),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공사 시작(6.2)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과 북의 노력이 미국의 대북제재 앞에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평화를 애호하는 전 세계인들 앞에서 천명한 6.12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를 뒤집고 역행하면서, 남북 사이 평화를 위한 노력을 가로막는 배경에는 지극히 정략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 내 보수언론을 비롯한 반북세력들은 ‘얻은 것이 없는 실패한 회담’이라고 폄하하면서 “북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숨기고 있다”, “비밀 농축유라늄 시설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미사일 생산공장이 있다”는 둥 근거도 없이 악선전을 해댔다.

더욱이 ‘러시아스캔들’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는 “북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까지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트럼프의 이 발언을 ‘포괄적이고 전격적인 비핵화’ 입장에서 ‘단계적 동시이행’의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정부가 행한 일련의 언행은 미국이 취해야할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를 서두르지 않고 ‘최고수준의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으로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의 성과와 핵과 미사일 실험발사 중단, 핵시험장 폐기, 미군 유해송환, 미사일(위성)발사장 해체 등 북의 선제조치에 따른 정치적 수혜만 챙기고 종전선언과 제재완화 등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회피할 생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 대중무역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트럼프가 북중관계의 밀착을 견제하면서 대북제재를 미중무역전쟁의 고리로 활용하고, 미중무역전쟁을 중국의 대북재제 강화의 지렛대로 쓰려는 것이 아닌가는 의심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종전선언 약속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트럼프에겐 정치적 흥정물이거나 정략적 소재일지 모르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겐 생존과 운명이 걸린 문제다.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북미관계를 선언한 북미공동성명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계속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연인원 수천 만 명이 참가한 촛불시위, 그 강력한 한국민의 저항과 거대한 에너지가 트럼프와 미국을 향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문재인 정부에게도 촉구한다. 지금의 현실은, 미국의 요구에만 순응해서는 남북은 결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체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의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미국에 종전선언과 제재완화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자주적 입장 없이는 궁색한 위안이거나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국의 평화통일세력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거족적인 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 판문점선언은 남북의 정상이 서명했지만 그 실천과 이행의 주체는 남과 북, 해외의 전민족이다. 평화와 통일을 향한 온겨레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그 어떤 합의도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은 6.15시대가 준 준엄한 교훈이다.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그 어떤 것도 투쟁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다.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제국주의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판문점선언과 북미정상회담의 감동에만 빠져 있어서도 안 되고, 그 무엇이 다 된 것처럼 착각해서도 안 된다.

일제 36년, 그 두 배나 되는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주통일의 큰길을 열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절체절명의 기회인 오늘, 온 힘을 판문점선언 이행에로 쏟아 붓자. 판문점선언 이행은 그 이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투쟁이다. 지금 당장 종전선언이행, 대북제재 해제운동에 떨쳐나서 민의 힘으로 이를 쟁취하자. 그리고 그 힘으로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자.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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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 김여정, 최선희 - 북한의 여성들

<기고> 서울겨레하나, '판문점선언 시대'를 읽는 아카데미 (4)
강혜진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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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7  18: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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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겨레하나는 7월 4일부터 31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시민강좌 ‘판문점선언시대를 읽는 아카데미’를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7월 24일 ‘분단체제와 혐오를 넘어, 평화시대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김귀옥 한성대 교수가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북한여성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판문점시대에 남과 북의 여성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떤 평화시대를 만들어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강연 : 김귀옥 한성대 교수
정리 : 강혜진 서울겨레하나 홍보팀장

 

   
▲ 서울겨레하나가 24일 개최한  '판문점선언 시대'를 읽는 아카데미 네 번째 강좌. 김귀옥 한성대 교수가 24일 ‘분단체제와 혐오를 넘어, 평화시대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혜진 통신원]

2018년, 남북이 만들어온 한반도 평화의 타임라인을 떠올려보자.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북한 대표단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 그리고 4.27 판문점선언과 이후 북미정상회담까지. 이 역사의 꼭지점마다 공통점은 현송월, 김여정, 최선희 등 북한‘여성’들이 함께 자리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를 보면 여성이 25% 내외를 차지하는데 남한의 경우, 최근 여성 국회의원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고, 기초 지자체의 경우 여성의 수가 많아지고 있지만 수치로 보자면 압도적으로 북한이 많다. 북한에서 여성은 어떤 지위를 획득해 왔을까. 시기별 북한 여성의 삶의 궤적을 함께 살펴보자.

종속적 여성에서 독립적 여성으로 - 남녀평등권과 토지개혁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사회가 변화한다. 그 중 여성의 사회적 성격을 바꿔놓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여성의 존재론적 성격과 위상을 바꾸는데 가장 의미가 있는 사건은 남녀평등권 도입이다. 제도적 성평등은 남한보다 북한이 빠르게 도입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제도적인 성평등을 먼저 만든다. 남한의 경우 1989년도에 들어와서야 남녀평등권을 만드는 것에 비해 북한은 46년 7월 30일에 공포된 “북조선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9개조)”와 9월 14일 공포된 법령의 “시행세칙(29개조)”에 남녀평등권을 기초에 둔다. “동일노동·동일임금” 권리,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자유결혼권, 자유이혼권과 재산상속권과 이혼시 재산과 토지분배권을 제정한다. 또 조혼이나 민며느리제도, 일부다처제, 공·사창제도를 금지하였다.

둘째, 현실적으로 여성의 평등권을 보장한 최초의 제도적 실효는 토지개혁으로 나타난다. 토지개혁 당시 성인 남녀 모두에게 같은 1점씩을 부여하였는데, 설령 토지는 호당 합산되어 분배되었지만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몫을 자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자신의 몫을 갖게 된 것은 남편에 대한 의존적 삶에서 사회정치적으로 독립된 개체로서 각성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셋째, 문맹퇴치운동과 건국사상총동원운동 등은 여성의 근대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 직전 전국 문맹률은 77.8%에 달했고 여성 문맹률은 90%이상이었다. 그러나 1945년 말에 각 도에 ‘야학회’나 ‘성인학교’ 등에서 문맹퇴치운동이 시작되었고 1949년 초쯤에 운동이 끝났다. 문맹퇴치운동과 건국사상총동원운동으로 일제 잔재나 봉건 잔재를 청산하면서, 미신 숭배나 남존여비 사상도 척결해 가는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들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여성이 사회역사의 주인이라는 인식으로 발전하여 여성의 권리 의식의 발전과 함께 사회적 책임감도 같이 형성된다.

넷째, 조선민주녀성동맹이 1945년 11월 18일 창립되면서 조선직업총동맹이나 농업근로자동맹, 민주주의청년동맹 등에 가입하지 않았던 북한 여성들도 조직원으로서 지위를 가지게 된다. 여맹원들은 남녀평등권을 실현해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남성이나 사회단체들에 대하여 설득과 비판을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는데 앞장섰고 일반 여성들에게 여성해방 인식을 보급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가져온 ‘여초사회’

한국전쟁은 남북 모든 주민들에게 절대절명의 위기를 주었다. 전쟁 직후 북한에는 ‘트럭 대 일’이라는 농담이 유행하는데 한 트럭분의 여성에 남성 한 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은 전통적으로 남초사회였다. 토지가 남쪽에 비해 부족하지만 광산 등이 존재했고 이를 토대로 일제강점시기 공업단지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는 일제강점시기 이남이 93.2, 북이 108.3이었으나 전후에 상황이 역전되어 1953년에는 북이 88.3으로 감소된다.

전쟁 직후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되면서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여성들이 공장을 직접 돌리거나 농사를 전담하기도 했고, 과거 금녀(禁女)의 직종이었던 트럭이나 기차 운송업, 어업(선원), 광업(광부)에도 투입된다. 특히 중공업 중심으로 공업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당시 북한은 젊은 남성 대부분을 이러한 공장 혹은 건설부문으로 투입한다. 그 과정에서 농촌에서는 여성 관리자들이 일찍이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이 조성된다. 한달화 협동관리위원장과 같은 인물이 1960년대부터 배출되었던 것이 이러한 배경이다.

아이가 있는 여성들에겐 2시간의 휴식시간을

   
▲ 김귀옥 교수는 북한의 모성보호제도 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혜진 통신원]

일하는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노동전선에 뛰어들기 위해서 국가는 무엇을 보장해줘야 할까. 바로 보육, 가사, 교육 등이다. 북한에서는 본격적인 ‘여성의 노동계급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탁아소 건설을 비롯한 모성보호 제도를 갖춘 여성복지 제도를 구비하기 시작한다. 북한이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3대 기술혁명’을 추진하며 여성들을 가사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과제들을 제시한다. 또한 여성의 간부화와 인테리화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여성관련 정책 중 모성보호제도를 살펴보자. 모성보호제도는 월 1회의 유급 생리휴가제, 임산부의 경우 가벼운 업무 배치와 시간외노동과 야간노동 금지, 산전산후 100% 유급휴가제를 들 수 있다.

남한과 다른 특이한 제도로는 ‘수유권’을 들 수 있다. 북한도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생후 1년 이하 유아를 가진 직장 여성의 경우 오전 오후 각 2회 각 30분씩, 1년 이상의 유아를 가진 어머니의 경우 오전 오후 각 1회 각 30분씩 휴식시간을 가진다. 북한은 공장별, 직장별로 탁아소를 운영하는데 본인이 일하는 일터에 어린이집이 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쉬는 시간에 이러한 육아시설에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러 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육뿐만 아니라 가사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가사의 사회화’정책을 실시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각종의 옷 공장과 생필품 공장, 공동세탁소, 공동식당을 운영하고 가정용 냉동고와 전기가마 등의 부엌세간을 공급해 나갔다. 이후 밥공장이나 부식공장, 된장공장, 간장공장 등이 전국적으로 설립된다.

남-북 여성이 ‘어떤’ 한반도평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이제 분단국가주의의 가부장적 제도를 만들어 왔던 이전 시기와 결별을 할 때가 되었다. 한반도평화시대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함께 만들어야 한다.

통일의제를 만들어 가는데 여성이 있음으로서 젠더화된 통일의제를 설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여성교류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만남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남북여성교류의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도 제고해야 하고 혐오, 반공, 분단의식에 대한 성찰적 태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해보겠다는 자세다. 그리고 상대방의 좋은 점은 본받고 아쉬운 점은 서로 고쳐 가면 된다.

북한 사회에서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가져올 것이 있다면 조직성이고 우리 사회의 장점은 자율성이다. 조직성과 자율성이 결합했을 때, 새로운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분단국가주의 아래 착취당하는 여성의 삶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과 북의 여성이 함께 힘을 합쳐 만들어갈 새로운 한반도에서의 여성의 삶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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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맞아 평화협정 체결 미군철수 의지 높여

7.27 맞아 평화협정 체결 미군철수 의지 높여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7/28 [09: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대북제재, 정전협정, 주한미군, 종속적 한미동맹을 걷어내자!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7월 27일 광화문광장에서 '전쟁은 끝났다. 평화의 시대를 열자'라는 주제로 열린 평화행동 참가자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2018년 7월 27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판문점선언 실천, 815자주통일대행진 추진위원회'는 전쟁은 끝났다평화의 시대를 열자'는 주제로 '7.27평화행동 종전 퍼포먼스(이하 평화행동)'을 진행했다.

 

평화행동에서는 8월을 가장 뜨겁게 살 통일선봉대통일대행진단의 결심을 밝히는 자리가 이어졌다.

 

또한 올해로 10주기를 맞는 정유미(전민특위 사무총장)의 남편인 쟈니클라인 목사의 미국규탄연설 등이 있었고전체 참가자들이 상징의식을 함께 하면서 판문점 선언 이행조국통일 실현 의지를 다졌다.

 

▲ 7월 28~29일 활동을 하는 서울지역자주통일선봉대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서울지역자주통일선봉대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서울지역자주통일선봉대 대장인 박희진(민중당 자주통일위원장)씨는 우리는 판문점선언을 통해 길게는 100짧게는 70년간 지속되어온 대결과 전쟁을 끝내고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로 나아가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바로 지금이 분단과 전쟁대결의 상징인 주한미군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 나갈 적기이다역사적인 촛불혁명으로 분단과 대결의 시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어낸 서울시민들과 함께 2018, 서울지역자주통일선봉대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조헌정 목사는 올해안에 평화협정 체결에 힘을 모으자고 연설했다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이어 평화행동 공동대표 조헌정 목사는 우리 국민의 힘으로 종전선언 이뤄내고올해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쟈니 클라인 목사는 미국의 역사는 한국에 비해 어린 국가이지만 폭력의 역사범죄의 역사이다전 인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미국은 폭력에 미쳐있다미국은 쇠퇴해가지만 그들은 폭력을 끝낼 의지도 없다한국이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전쟁을 끝내야할 때이다미국이 한국 땅에서 사라져야 할 시기이다라고 연설했다.

 

▲ 대학생들이 통일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8월을 맞아 한반도 곳곳에 미군철수통일의지를 높이는 대학생 통일선봉대통일대행진단 대장들의 결의발언이 이어졌다.

 

대학생들은 노동자 통일선봉대와 성주부산평택 등에서 활동을 할 예정이다. 8월을 자주와 평화통일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판문점선언 이행한미동맹 파기주한미군철수종전선언 과 평화협정 체결 내용으로 전국의 국민들을 만나겠다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역사의 주인으로 우뚝 서겠다고 밝혔다.

 

▲ 노동자 평화통일실천단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주한미군철수하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이어 전체 참가자들이 대북제재정전협정, 주한미군종속적 한미동맹 등을 걷어내고 통일한반도를 만드는 상징의식을 하면서 평화행동을 마무리했다.

 

▲  평화협정 체결하고 주한미군 철수하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한편국민주권연대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은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정전협정 체결 65평화협정미군철수대회를 개최했다.

 

윤기진 국민주권연대 공동대표는 시대가 바뀌었다. 6.12 북미합의를 미국에게 이행시켜야 하는 시기이다. 6.12 북미합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약속한 것이다그런데 미국은 국방수권법을 통해 주한미군을 22천명이하 감축시키는 것은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을 확정했다우리의 힘으로 미국이 합의를 이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한미군을 우리 땅에서 들어내야 한다. 8월 15, 9월 8, 11월 3일 총집중에서 미군을 철수시키자고 호소했다.

 

▲   7월 27일 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정전협정 65년, 평화협정, 미군철수대회가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김한성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통일의 시대에 맞게 태도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다왜 여전히 미국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통일농구대회에 우리 대표팀은 공군기를 타고 갔다이는 대북제재 때문이다왜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대북제재 해제하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가, 5.24 조치도 당장 해제해야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게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변화를 요구했다.

 

또한 김은진 국민주권연대 공동대표는 연설에서 하반기에 미군철수와 평화협정체결을 위해 11월 3일 자주독립선언대회까지 온힘을 다해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조기가 붙어 있는 얼음을 깨뜨리는 상징의식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 평화협정 체결하고 미군을 철수하라!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시원한 얼음처럼 미군도 시원하게 나가달라는 상징의식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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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수원, 4월에 공문으로 원전정비 연기했다

한빛‧한울 1호기 한수원에 보낸 공문 “조중동 경제지의 여름철 폭염으로 원전 재가동설 거짓 확인”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18년 07월 27일 금요일

올 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탈원전을 하려던 정부가 원전 재가동에 나섰다는 조중동과 경제지 등의 보도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이 이미 지난 4월 정비기간을 연기한다는 계획을 세운 사실이 내부 공문을 통해 확인됐다.

여름철 폭염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가 돌연 원전을 재가동하기 위해 정비착수시기를 연기했다는 조중동과 경제지 등 주류 언론의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우원식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노원을)이 확보한 ‘한빛 1호기 제24차 계획예방정비 기본계획서’(2017년 10월13일자), ‘한빛 1호기 24차 계획예방정비공사 시행계획서 제출’(지난 4월2일자), ‘한울 1호기 제22차 계획예방정비 시행계획 제출’(4월4일자) 등 한수원 내부공문 세 건을 보면, 공사 시작기간이 한빛 1호기는 8월13일에서 8월18일로, 한울1호기는 8월15일에서 29일로 각각 연기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한빛원자력본부장이 지난해 10월13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한빛 1호기 제24차 계획예방정비 기본계획서 제출’ 공문을 보면, 한빛 1호기는 애초 제25주기 연료재장전 및 제24차 계획예방정비를 위한 기본계획을 오는 8월13일 오전 10시부터 10월19일 저녁 7시까지 1617시간(67.4일) 동안 시행할 계획이었다. 한빛1호기는 공문에서 “한울2호기 21차 OH시 CLP 점검범위 적용 및 CLP 정비범위에 따라 공기(공사기간)연장 가능”이라고 썼다. 

(※OH(overhaul‧계획예방정비), CLP(containment liner plate‧격납건물내부철판) 원자력발전소의 돔 형태의 건물 콘크리트 안쪽에 있는 얇은 철판)

이후 한빛원자력본부장은 다시 지난 4월2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한빛 1호기 24차 계획예방정비공사 시행계획서 제출’ 공문에서 공사기간을 오는 8월18일 오전 10시부터 11월7일 오후 4시까지 1950시간(81.3일) 동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빛 1호기의 계획 예방정비를 위한 공사 시작시점을 연기한다는 계획은 4월2일에 이미 한수원 본사로 제출돼 그대로 결정됐다. 

▲ 한빛1호기 본부장이 지난해 10월13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공문. 사진=우원식 의원실
▲ 한빛1호기 본부장이 지난해 10월13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공문. 사진=우원식 의원실
 
▲ 한빛1호기 본부장이 지난 4월2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공문. 사진=우원식 의원실
▲ 한빛1호기 본부장이 지난 4월2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공문. 사진=우원식 의원실
 

한울원자력본부장이 지난 4월4일 한수원 정비처장에 보낸 ‘한울 1호기 제22차 계획예방정비 시행계획 제출’ 공문에 따르면, 한울 1호기의 22차 계획예방정비를 위한 공시가간을 변경 전에는 오는 8월15일 오전 10시부터 10월6일 오후 2시30분까지 1252.5시간(52.2일) 동안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변경 후엔 오는 8월29일 오전 10시부터 11월21일 오후 2시30분까지 2020.5시간(84.2일) 동안 진행한다고 밝혔다.

 

착수일의 변경사유에 대해 한울원자력본부장은 공문에서 “추가운전 가능일 반영에 따른 착수일 변경”이라고 썼다.  

한수원 관계자는 “하계 피크기간에 대비한다는 이유도 포함해 착수일이 연기된 것”이라며 “매번 계획예방정비 때마다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들어있지 않은 것이지, 그 안에는 하계 전력수급 확보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 공문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려다가 여름철 폭염 전력수요급증으로 갑자기 원전을 재가동하기로 했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며 원전 가동이나 정비일정은 갑자기 변경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처럼 지난 4월에 이미 공사 착수일 연기 결정을 해놓고도 지난 22일 보도자료에서는 폭염시 전력수급을 위해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의 계획예방 정비를 전력 피크 기간 이후로 조정키로 했다”고 표현해 오해의 여지를 남겼다. 그 이후 당일에만 두차례 더 추가 보도자료를 냈지만 조중동과 경제지는 ‘탈원전 정부 폭염에 원전 재가동’(조선일보 23일자) ‘전력수급 문제없다더니 허둥지둥 원전 5기 더 돌린다’(중앙일보 23일자) ‘최악 폭염 덮치자 원전 다시 찾는 정부’(한국경제 23일자)라고 썼다.  

우원식 의원실 관계자는 27일 “전력피크 시기에 맞춰 가용 발전기가 투입되도록 정비기간을 조정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보수언론들이 억지주장을 해왔는데 이 내부 공문은 ‘탈원전 정부가 폭염에 원전을 재가동했다’는 주장이 왜곡됐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 한울1호기 본부장이 지난 4월4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공문. 사진=우원식 의원실
▲ 한울1호기 본부장이 지난 4월4일 한수원 정비처장 앞으로 보낸 공문. 사진=우원식 의원실
 
▲ 경북 울진에 소재한 한울 원전 3, 4호기 전경. 사진=연합뉴스(한울원자력본부 제공)
▲ 경북 울진에 소재한 한울 원전 3, 4호기 전경. 사진=연합뉴스(한울원자력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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