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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국의 제재는 달러붕괴 신호, 신뢰 상실

라브로브 탈달러를 위해 세계 각국이 각고의 노력 주장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09/24 [08:53]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미국의 제재는 달러붕괴 신호이자 신뢰 상실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의 달러체계는 완전히 신용을 상실하였으며, 미국 달러에 대한 신용이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파르스통신은 9월 22일 자에서 “미국의 제재는 달러붕괴 신호, 신뢰 상실”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스는 사라예보, 보스니아 그리고 헤즈체고비나를 방문하는 동안 러시아는 미국과 달러체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라브로브는 “우리는 그러한 결론을 이미 내렸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동반 국들과 함께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국가에 대해 의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미국의 제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상실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특히 라브로브는 “점점 더 많은 아시아, 라띤아메리까의 동반 국들이 [미 달러에 대한] 동일한 결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하였다고 보도는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러시아가 현재 국제적인 화폐로서 교역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달러를 배제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에 따르는 어려움 또한 아직까지는 없지 않다. 이에 대해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달러로부터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게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달러를 배제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러시아 은행들이지만 그래도 러시아는 달러를 제하고 유무상통의 원칙에 의한 교역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노력에 대해 “당신들은 즉각적으로 달러를 포기할 수 없다. 아마도 경제에서 그러한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이것(탈 달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작해야하며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러시아의 두 번째로 큰 은행의 은행장인 안드레이 꼬스띤이 지난주에 말 하였다고 파르스통신이 전하였다.

 

현재 세계는 달러라는 화폐를 가지고 세계적 차원에서 전횡을 저지르고 있는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 전에 러시아, 이란, 뛰르끼예 3국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 자국 내에서는 달러를 쓰지 않을 것이며, 3국간의 교역에 있어서도 역시 달러를 쓰지 않기로 합의를 하였다. 또 러시아와 중국 역시 두 나라간의 교역에서는 달러를 쓰지 않기로 합의를 하였다.

 

또 각 대륙들 역시 지역연합을 조직하고 정치분야 뿐 아니라 경제분야 역시 지역경제적인 차원에서 협조를 하기로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노력에 가장 앞서가고 있는 지역이 바로 아프리카와 라띤 아메리까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경우 지역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천연자원들을 그동안 자국 또는 대륙 내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모두 서방의 나라들에게 의존하는 형식 즉 자원 착취를 당하다 보니 정작 아프리카 나라들의 경제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오늘 날 아프리카 대륙 나라들의 경제발전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경제문제 해결에서 가장 앞선 주제로 삼고 지역 내의 나라들끼리 협조하에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지난 1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에서 진행된 제30차 아프리카동맹 국가 및 정부대표자 회의가 있었다. 그 회의에서 아프리카 대륙 나라들은 경제분야에 대해서 대륙의 경제적  자립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그 해결책으로 지역 내에서의 교역에 있어 《자유무역지대창설》이 있다. 물론 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이 지난 1월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를 창설에 대한 논의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프리카동맹성원국들은 대륙 내에서 자유무역지대창설을 통하여 2021년까지 각 나라들  사이의 교역량을 2배로 증대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3월 르완다의 끼갈리에서 있었던 아프리카동맹 특별대표자회의에서 아프리카자유무역지대창설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아프리카대륙의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은 세계무역기구창설 이후에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가 되며 지역 내의 총생산액은 무려 2조 5,000억 달러에 달하고 12억이라는 엄청난 인구를 가진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 대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된다. 

 

아프리카에서 자유무역지대창설은 대륙나라들 사이의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모든 나라들의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곧 자본주의체제에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경제적 착취로부터 아프리카 나라들이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쟁취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역내의 중앙은행의 창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지역내에서 통용될 수 있는 공통화폐의 발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역의 공통화폐의 발행은 곧 탈 달러 탈 서방제국주의약탈경제를 말 하는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치적인 분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는 길인 것이다. 경제적 자립과 독립은 외부 세계의 힘 있는 나라들의 간접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한편 라띤 아메리까 나라들 역시 그동안 1500년대 초 이후부터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식민지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각기 독립된 국가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라띤 아메리까 나라들은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로부터 완전하게 독립을 했다고 말 할 수 없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즉 라띤 아메리까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에게 완전하게 종속이 되어있다보니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것은 그 어떤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 단적인 예가 브라질과 아르헨띠나, 우루구아이 같은 나라들의 반복적인 경제침제와 국제통화기금체제의 지배와 예속을 들 수가 있다. 물론 세계인민들은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무능력하고 인민들이 게으르고 창조성과 의지력이 박약하다보니 나라가 그 모양으로 때만 되면 경제침체가 오고 또 국제통화기금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비난을 해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가에 대해서는 세계경제체제 특히 금융통화 및 과학기술 그리고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공업에 쓰이는 기술 등을 제대로 아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을 내리게 된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경제학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경제전문가들은 그동안 알려진 세계인민들이 가지는 라띤 아메리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현대 세계는 경제적인 고리를 매개로 온 누리를 완벽하게 장악을 하고 경제 뿐 아니라, 정치, 군사, 문화, 그리고 더 나아가 심지어 인간의 정서 즉 사고까지도 지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경제 특히 금융통화부분을 통해 세계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물론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가 딱 한 나라가 있기는 하다. 그건 바로 자립적 경제로선을 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 오늘 날까지 단 한 번도 그 어떤 광풍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온 조선이 유일하다. 

 

하지만 조선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그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위 러시아주요 은행관계자들이 “당신들은 즉각적으로 달러를 포기할 수 없다. 아마도 경제에서 그러한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이것(탈 달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작해야하며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 말이 이를 명확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띤 아메리까 나라들은 우선 정치적으로 《중남미까리브해연합》을 조직하였으며, 연합차원에서 정치 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까지 함께 협력하여 해결해나가기로 이미 합의가 되었고 또 그 일환으로 중앙은행까지 창설을 하였다. 또 중남미까리브해연합국들간의 교역에서 사용되는 자체 통화인 《수꾸레》를 발행하고 있다. 이는 중남미지역 내 나라들끼리의 교역에서는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중남미 국가들 역시 달러체제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지역 나라들의 의지의 발현이다.

 

위 라브로브가 “점점 더 많은 아시아, 라띤아메리까의 동반 국들이 [미 달러에 대한] 동일한 결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와 같은 세계적인 추세를 두고 한 것이다. 결코 러시아 외교부장관 세르게이 라브로브가 미국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고 하여 감정적으로 근거도 없이 한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이 오늘 날 세계는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달러 그리고 국제금융체제라는 수단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면서 전횡을 부리는  데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자유로운 나라를 이룩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러시아 주요 은행들이 말한 것처럼 그 길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자칫 잘 못하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대 말까지 약 15년여 간에 걸쳐 조선이 걸었던 혹독한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서 가장 위력한 수단과 방법은 바로 지역나라들끼리 그리고 개발도상나라들끼리의 강력한 단결과 협력에 있다. 그럴 때만이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지배주의와 패권주의로부터 모든 분야에서 완전하게 독립을 이룰 수가 있다. 그 추세는 오늘 날 더욱더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그건 곧 가장 시급한 《탈 달러》이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브 외교부 장관의 언급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며 정확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 번역문 전문 -----

 

2018년 9월 22일, 10시 13분. 토요일

 

러시아: 미국의 제재는 달러붕괴 신호, 신뢰 상실

 

▲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 외교부장관에 따르면 미국의 달러체계는 스스로 완전히 신용을 상실하였으며, 미국의 달러에 대한 신용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스는 사라예보, 보스니아 그리고 헤즈체고비나를 방문하는 동안 러시아는 미국과 달러체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달러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 이용섭 기자

 

테헤란 (파르스통신)-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 외교부장관에 따르면 미국의 달러체계는 스스로 완전히 신용을 상실하였으며, 미국의 달러에 대한 신용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스는 사라예보, 보스니아 그리고 헤즈체고비나를 방문하는 동안 러시아는 미국과 달러체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텔레비전(RT)가 보도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결론을 이미 내렸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동반 국들과 함께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국가에 대해 의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라브로브는 말했으며, 미국의 제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상실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목요일에 라브로브는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응을 하였다. 33명의 인물들과 단체가 대 러시아 국방정보국의 미국 재무부 제재목록(블랙리스트)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점점 더 많은 아시아, 라띤아메리까의 동반 국들이 [미 달러에 대한] 동일한 결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라브로스는 강조하였다.

 

지난 8월 같은 문제를 두고 말하면서 라브로브는 미국의 제재는 “불법적이며, 그들은 유엔의 결정에 의해 원칙적으로 승인된 사항과 국제무역에서의 모든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러시아의 주요은행들은 달러로부터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당신들은 즉각적으로 달러를 포기할 수 없다. 아마도 경제에서 그러한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이것(탈 달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작해야하며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러시아의 두 번째로 큰 은행의 은행장인 안드레이 꼬스띤이 지난주에 말했다.

 

 

----- 원문 전문 -----

 

Sat Sep 22, 2018 10:13 

 

Russia: US Sanctions Are Sign of Dollar Crisis, Decline of Confidence

 

▲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 외교부장관에 따르면 미국의 달러체계는 스스로 완전히 신용을 상실하였으며, 미국의 달러에 대한 신용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스는 사라예보, 보스니아 그리고 헤즈체고비나를 방문하는 동안 러시아는 미국과 달러체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달러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용섭 기자

 

TEHRAN (FNA)- The US dollar system has completely discredited itself and the confidence in the greenback is falling very sharply, according to Russian Foreign Minister Sergey Lavrov.

 

 

Russia is working on ways to cut its dependence on the US and the dollar system, Lavrov said Friday during his visit to Sarajevo, Bosnia and Herzegovina, RT reported.

 

“We are already drawing conclusions, doing everything necessary not to depend on the countries that are acting that way with their international partners,” Lavrov stated, adding that US sanctions undermine global trust in the world’s most used currency.

 

Lavrov was reacting to the fresh US sanctions against Russia introduced Thursday. 33 people and entities were added to the US Treasury blacklist of Russian defense and intelligence sector.

 

“More and more of our partners in Asia, in Latin America, start to draw the same conclusions [about the US dollar]. I think that this trend will only continue," Lavrov stressed.

 

In August, speaking on the same issue, Lavrov underlined that US sanctions are “illegal, they undermine all principles of global trade and principles approved by UN decisions”.

 

Russia’s leading banks have said that slashing the dependence from the US dollar is inevitable, but would be a tough challenge.

 

“You cannot immediately abandon the dollar. Probably, impossible taking into account its role in the economy. But if we do not start, we will never come to this, so we need to start now and we are already doing such work,” Russia’s second largest bank CEO Andrey Kostin stated last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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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정상회담, 통일의 기운 넘쳤다

[개벽예감 315] 평양정상회담, 통일의 기운 넘쳤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9/24 [12: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그 아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 깃발

2.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세계의 화약고’

3. 핵무기도 없고, 핵위협도 없는 삼천리강토

 

 

1. 그 아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 깃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만나 9월 20일 삼지연에서 헤어질 때까지 54시간. 70년을 헤아리는 통일국가건설운동에서 처음 보는 격동적인 사변을 민족사에 아로새기며 꿈같은 54시간이 흘러갔다. 5,000년을 함께 살다가 70년 동안 갈라진 민족분열의 통한을 잠시 접어두고, 누구라 할 것 없이 감격과 흥분을 진정하지 못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펼쳐놓은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의 순간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시간 속에서 겨레의 넋은 통일의 기운으로 뜨거워졌고, 민족과 통일이라는 네 글자가 겨레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봉과 회담과 교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메시지, 그 역사적인 사변이 8천만 겨레에게 전하는 강렬하고 절절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1) 2018년 9월 18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이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부터 9월 20일 오후 3시 30분 삼지연비행장을 출발할 때까지 일정을 수록한 영상기록과 사진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체류일정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특별한 피사체가 눈길을 끈다. 그것은 흰 기폭에 파란색 삼천리강토를 아로새긴 통일기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2018년 9월 18일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접을 받으며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 있는 뒤쪽 벽면에는 통일기와 똑같이 삼천리강토를 형상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첫 장에서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커다란 통일기가 5.1경기장 상단에 공식 게양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기 아래서 2박3일 동안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를 이어갔다. 그 깃발 아래서 남과 북은 더 이상 갈라져 살지 말자고, 우리 모두 통일강국 새 나라에서 함께 살자고 뜨겁게 약속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측에서는 단일기 또는 한반도기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잘못 부르고 있는데, 그 기의 올바른 명칭은 통일기다. 원래 통일기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남측 올림픽위원회와 북측 올림픽위원회는 1990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그 기를 응원기로 사용하였고, 이듬해 일본 지바현에서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선수단이 출전하였을 때 그 기를 선수단 단기로 사용하였다. 당시 남과 북은 그 기의 정식 명칭을 정하지 않은 채 ‘선수단 단기’라고 합의서에 명기하였다.  

 

이처럼 1990년대에 남북단일선수단의 단기로만 사용되던 그 기는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통일국가건설운동이 대전환기를 맞아 남북해외 각계각층 인사들이 회합하는 민족통일행사들에서 사용되면서, 남북체육교류를 상징하는 단일선수단 단기에서 겨레의 통일의지를 아로새긴 통일기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통일기는 민족통일행사들에서만 사용되었을 뿐, 네 차례 진행된 이전의 남북정상회담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섯 번째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은 통일기를 공식 게양하였다. 그렇게 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천만 겨레에게 전하는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형상한 통일기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체류기간 내내 내걸도록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체류일정준비를 지도하면서 심지어 식단표까지 세심히 검토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시각매체로 통일기를 선정한 것이다.   

 

그 깃발 아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가 이루어졌다.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와 독도까지 우리나라 삼천리강토를 아로새긴 그 깃발 아래서 남과 북은 더 이상 갈라져 살지 말자고, 우리 모두 통일강국 새 나라에서 함께 살자고 뜨겁게 약속했다.  

 

그 아름다운 약속은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맞은 북측 인민들이 평양국제비행장에서 공화국기와 함께 통일기를 흔들면서 열렬히 환영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환영하는 예술공연이 진행된 평양대극장에서도, 그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진행된 5.1경기장에서도 통일기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환영연회가 진행된 국가연회장 목란관에서도, 평양랭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마지막 오찬이 진행된 삼지연 호반의 이깔나무숲 설레는 오찬장에서도 통일기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온 겨레의 힘으로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통일 새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려는 아름다운 약속이 그 기폭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2) 2018년 9월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첫 장에서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커다란 통일기가 5.1경기장 상단에 공식 게양되었다. 그 깃발 아래서 연단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 속에 강렬하고 절절한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5.1경기장 관람석을 메운 10만명 평양시민들은 폭풍 같은 만세소리를 터치며 열광적으로 환호하였고, 그 연설장면을 텔레비전방송화면으로 지켜본 남북해외 모든 동포들도 환호하였다. 남측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그처럼 확실하게 천명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이 5.1경기장에 구름처럼 모여든 10만명 평양시민들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한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기 아래서 맞잡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장면이다. 그 순간, 5.1경기장 관람석을 메운 10만명 평양시민들은 폭풍 같은 만세소리를 터치며 열광적으로 환호하였고, 그 연설장면을 텔레비전화면으로 지켜본 남북해외 모든 동포들도 환호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리설주 녀사와 김정숙 여사와 함께, 그리고 남북의 수행원들과 함께 백두산 장군봉에 오른 뒤에 삼지연으로 내려와 오찬을 나누는 장면이다. 흰색 초대형 천막과 붉은 융단으로 꾸려진 오찬장에 통일기들이 내걸렸다. 온 겨레의 힘으로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통일 새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려는 아름다운 약속이 그 기폭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2018년 9월 20일 목요일 오전, 이 땅의 모든 산악을 낳아 키운 백두산이 가슴을 활짝 열었다.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솟아있는 민족의 성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216개 백두련봉의 전설이 깃든 천지의 잔잔한 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두산 천하절경은 수려한 풍치를 넘어 신비롭고 장엄한 세계를 펼쳐보였다.  

 

8천만 겨레에게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약속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 천하절경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등장하더니, 이윽고 굳게 맞잡은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격정의 순간, 통일의 기운은 마침내 최절정에 이르렀다.    

 

선조들이 수수천년 신령한 산으로 우러르며 국태민안을 빌었던 백두산 장군봉 마루에서 천지의 맑은 물을 굽어보며 두 손을 굳게 맞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수수천년 후대들에게 물려줄 백두산통일강국의 약속을 천지물에 붓을 적셔 백두산정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하였다. 통일국가건설의 여명은 백두산에서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 장군봉 마루에서 두 손을 맞잡고 번쩍 치켜든 순간, 8천만 겨레는 백두산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하였다. 아메리카핵제국의 방해책동을 꺾어버리고 삼천리강토에 끝없이 융성번영할 백두산통일강국을 일으켜 세울 거대한 힘이다. 백두산의 힘이 삼천리강산 휘감으며 저 멀리 한라산까지 죽 내리벋을 때, 우리 겨레는 백두산통일강국의 주인으로 용약 일어서리라!  

 

백두산통일강국에서 함께 살자는 8천만 겨레의 약속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통일기라면, 그 약속을 문서화한 것은 평양공동선언이다. 평양공동선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의 남북관계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나가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리설주 녀사와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8천만 겨레에게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약속한 두 정상이 굳게 맞잡은 두 손을 백두산정에서 높이 쳐드는 순간, 통일의 기운은 마침내 최절정에 이르렀다. 두 정상은 수수천년 후대들에게 물려줄 백두산통일강국을 세우자는 약속을 천지물에 붓을 적셔 백두산정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하였다. 통일국가건설의 여명은 백두산에서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백두산의 힘이 삼천리강산을 휘감으려 저 멀리 한라산까지 죽 내리벋을 때, 우리 겨레는 백두산통일강국의 주인으로 용약 일어서리라!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세계의 화약고’

 

평양공동선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이하 군사분야합의서로 약칭함)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교환한 직후,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고, 그 합의서를 교환하였다. 

 

군사분야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채택한 것은, 그 합의사항을 이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전에도 남과 북은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한 적이 있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이행하려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8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2018년 6월 14일 10여 년 만에 성사된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측에게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60km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정찰활동을 중단하고,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40km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공중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파격적인 제안이다. 

 

그 제안을 받은 남측은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단독으로 검토할 수 없었고, 남측의 작전통제권을 가진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함께 북측의 제안을 검토하였다. <뉴시스> 2018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 관계자는 남과 북이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기 전에 남측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합의서 초안을 놓고 사전협의를 충분히 하였다고 한다. 

 

남과 북은 2018년 9월 13일과 14일에 진행된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하여 ‘군사분야합의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군사분야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부속문서로 채택되었다.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지상평화지대, 해상평화수역, 공중평화구역을 각각 조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합의하였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2018년 9월 18일 평양남북정상회담 첫째날 회담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남측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배석하였고, 북측에서는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배석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평양남북정상회담 둘째날 회담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남측에서 서훈 국정원장이, 북측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이 각각 배석하였다. 이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친 뒤에 역사적인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평양공동선언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가 발표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지상에 평화지대를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5km 안에서 포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감시초소들을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조치로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남북의 감시초소들을 완전히 철수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기로 하였다. 

 

(2) 해상에 평화수역을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서해에서 남측의 덕적도 이북 해상으로부터 북측의 초도 이남 해상에 이르는 수역에서, 그리고 동해에서 남측의 속초 이북 해상으로부터 북측의 통천 이남 해상에 이르는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 및 함포의 포구포신에 덮개를 씌우고, 포문을 폐쇄하기로 하였다.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있고, 초도는 남포특별시 항구구역에 있으므로, 서해평화수역의 남북길이는 135km다. 속초는 남강원도 양양군과 인제군에 인접해 있고, 통천은 북강원도 회양군과 안변군에 인접해 있으므로, 동해평화수역의 남북길이는 80km다. 

 

- 남과 북은 2004년 6월 4일에 진행된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에 관련된 사항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복원, 이행해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서해 접경수역에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조성하는 문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안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해상순찰을 하는 문제, 남과 북이 한강(임진강)하구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한 문제 등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3) 공중에 평화구역을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 구역 안에서 고정익 항공기(전투기나 폭격기)의 공대지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 비행금지구역은 다음과 같다. 전투기 같은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4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고,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공격헬기 같은 회전익 항공기의 경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무인항공기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5km까지 구역에서,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비행선 같은 기구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5km까지 구역에서,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뉴시스> 2018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 관계자는 남과 북이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기 전에 남측 국방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합의서 초안을 놓고 사전협의를 충분히 하였으므로, 남과 북이 합의한 비행금지구역은 미국군에게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오산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동하는 미국군 고고도유인정찰기 U-2는 오는 11월 1일부터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20km 밖으로,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40km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또한 오산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동하는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도 오는 11월 1일부터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10km 밖으로,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15km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4) 합의서를 실질적으로 이행한다

 

주목되는 것은,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남측 차관급 당국자와 북측 부상급 당국자가 공동위원장직을 맡게 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군사분야합의서의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방지를 위한 항시적인 연계와 협의를 진행”하는 상설기구다. 

 

이제껏 남과 북은 무려 60여 차례에 이르는 군사회담을 개최하고 수없이 협상해왔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군사분야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이행을 다그칠 것이다. 남북공동군사위원회는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때까지 군사긴장완화 및 평화체제수립이라는 공동목표를 추구할 것이다.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과 공중에 각각 평화지대, 평화수역, 평화구역을 조성한 것과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첫 걸음이다. 6.25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정전체제 아래서 중무장한 전투부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크고 적은 무력충돌을 수시로 일으켰던 ‘세계의 화약고’가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역사적인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들어보이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선언문을 교환한 뒤에 그 자리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 서명식에서 남측 국방장관과 북측 인민무력상이 그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로써 평양공동선언은 군사분야합의서를 부속문서로 가지게 되었다.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지상평화지대, 해상평화수역, 공중평화구역을 각각 조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합의하였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들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이행될 것이다. 이 중대한 합의가 이행되면, 6.25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정전체제 아래서 중무장한 전투부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크고 적은 무력충돌을 수시로 일으켰던 '세계의 화약고'는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5) ‘세계의 화약고’ 해체되면, 유엔사령부도 해체된다 

 

남과 북이 ‘세계의 화약고’를 해체하는 도중에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것이다. 미국이 유엔 명칭을 도용하여 불법적으로 조작해놓은 유엔사령부는 43년 전에 해체되었어야 한다.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 제30차 본회의에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한 표결이 진행되었는데, 그 회의에서 미국이 상정한 3390a호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결의안에 따르면, 정전협정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 정부는 1976년 1월 1일 유엔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한, 1975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 의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 유의하면서”,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과 더불어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수 있도록 제1단계 조치로서 모든 직접 당사자들이 조속한 시일 안에 협의할 것을 촉구”하고, “유엔사령부가 1976년 1월 1일을 기하여 해체되고, 남코리아에 유엔 기치를 든 군대가 잔류하지 않도록 위에 언급한 협의가 완결되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미국의 사기극이었다. 왜냐하면,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하는데도, 미국은 그 문제를 협의하는 별도의 회담을 진행하려고 획책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미국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만 질질 끌다가 회담을 무산시킬 흉계를 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 사회주의국가들은 미국의 주도로 채택된 기만적인 결의안과 배치되는 3390b호 결의안을 유엔총회 제30차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그 결의안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유엔 기치 아래 남코리아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실제적 당사자들에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도록 촉구”하였다. 3390b호 결의안은 채택되었으나, 친미국가들을 동원한 미국의 방해공작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진영이 해체된 이후,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유엔총회에 상정되지 않았고, 조선만 그 문제를 줄기차게 유엔에 제기하였다. 그런데 2018년 9월 17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엔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사령부의 불법성을 거론하였던 것이다. 마차오쉬(馬朝旭) 유엔주재중국대사는 “유엔사령부는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유엔사령부가 조선반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Vasily Nebenzya) 유엔주재러시아대사는 “유엔사령부가 21세기 베를린장벽인가”고 묻고 나서, 유엔사령부는 1950년에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당시 소련은 중국 국민당 정부가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것을 반대하여 유엔안보리 회의에 불참한 시점에 “역사적 맥락을 거스르며 (그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만장일치제로 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안보리에서는 유엔사령부 해체문제가 상정되어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므로, 유엔안보리에서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1975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다수가결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아무 때나 불쑥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될 수 없다.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군사분야합의서’가 어느 정도 이행되면, 미국이 6.25전쟁을 위해 조작한 유엔사령부는 존재근거를 상실할 것인데, 그런 변화가 일어날 때 조선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6>  

 

 

▲ <사진 6> 2018년 7월 27일 6.25전쟁 정전 65주년이 되는 날, 조선은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를 미국에게 송환하였다. 오산미공군기지에 마련된 안치소에는 성조기와 함께 유엔기가 내걸리고, 모든 유골함에 유엔기가 덮혀 있었다. 이것은 미국군이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하였고, 정전 이후 유엔사령부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연출하는 기만극이다. 유엔사령부는 미국의 작간에 의해 불법적으로 조작되었고, 유엔과 전혀 무관하게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제멋대로 그 이름을 도용하는 것이며, 유엔군은 실체가 없는 유령군대다. 남과 북이 이번에 채택한 '군사분야합의서'를 이행하여 '세계의 화약고'를 해체하면, 유엔사령부도 해체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핵무기도 없고, 핵위협도 없는 삼천리강토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문재인 대통령과 서로 교환한 뒤에 진행된 기자회견 발언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습니다”고 언명하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5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립장이며 자신의 의지라고 비핵화의지를 거듭 확약하시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실현을 위해 북과 남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나가자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미 9월 5일에 천명하였던 비핵화의지는 9월 19일에 채택된 평양공동선언 제5항에 그대로 담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반도에서 핵위협만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핵위협과 핵무기를 모두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 문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를 핵위협이 없는 땅으로 만든다는 말은 한반도에 드리운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우산이란 핵폭발력을 타격대상에 맞춰 조절하는 신형 전술핵탄으로 정밀타격하는 선제핵타격을 뜻한다. 지난 시기의 핵우산은 전략핵탄의 핵폭발력이 너무 커서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핵위협만 가하는 핵공격억제를 뜻하였으나, 정밀타격능력과 핵폭발력조절기능을 지닌 전술핵탄이 출현한 이후 핵우산은 실전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선제핵타격을 뜻하게 되었다. 

 

조선은 미국의 핵우산을 어떻게 철거하려는 것일까? 조선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조선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말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조선이 핵무기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미국이 한국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군사동맹체제에서 알맹이는 떨어져나가고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핵우산 철거는 한미군사동맹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이 무력화되면, 그 동맹에 근거하여 주둔해온 주한미국군은 존재근거를 상실하고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핵위협 없는 조선반도’는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도 철수된 조선반도라는 뜻이다. 

 

(2) 2013년 6월 16일 조선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발표한 ‘중대담화’는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언명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과 미국이 한반도 전역에서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한반도 전역에서 상호핵사찰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에서만 핵사찰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상호사찰은 미국이 사찰단을 조선에 보내 조선의 핵시설들을 사찰하는 것과 더불어 조선도 사찰단을 남측에 보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사찰한다는 뜻이다. 그런 상호사찰을 하려면, 조선이 미국에게 사찰대상을 신고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도 조선에게 사찰대상을 신고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조선에게 핵신고서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미국도 마땅히 조선에게 핵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핵신고서 제출은 일방적 의무가 아니라 쌍방적 의무다.  

 

하지만 상호핵신고와 상호핵사찰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이 모두 상호핵신고와 상호핵사찰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는 상호핵신고 및 상호핵사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어서 조선이 미국에게 구태여 신고할 필요가 없는 조선의 핵시설들을 해체하고 사찰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구태여 신고할 필요 없이 미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조선의 핵시설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되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동창리발동기시험장과 로케트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서해위성발사장에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과 위성운반로켓발사대를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한다는 뜻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는 그 이외에도 다른 시설들이 있지만, 그 두 가지 핵심시설이 해체되면, 서해위성발사장은 사실상 폐기된다. 그러므로 위의 합의조항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폐기한다는 뜻이다.

 

또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 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폐기하는 경우,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조선은 녕변핵시설도 해체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녕변핵시설도 서해위성발사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되는 것이다.  

 

이제 명백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하여 폐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2018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미정보당국이 파악한 조선의 핵시설 15개소는 대부분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있는데, 한미정보당국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핵시설까지 합하면 약 100개소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양공동선언에 폐기대상으로 명기된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합하면 15개소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미정보당국은 그 이외에도 약 85개소의 핵시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의 15개소를 폐기하는 경우,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가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중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평양공동선언에 들어있다. 그 선언에는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라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한 이후 미국이 추가적인 상응조치를 취하면 그에 부응하여 다른 대상들도 추가로 폐기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취재진 앞에서 단독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시설 가운데 20%만 해체하면 이른바 '불가역적 비핵화'기 실현될 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미국의 추가적 상응조치에 따라 몇 개소의 핵시설으 추가로 더 해체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미국이 이행해야 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발표하고, 2019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의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2월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그 평화체제 위에 우리 겨레가 열망하는 자주적인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 암시는 매우 기묘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과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당시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가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조선의 비핵화를 완결하려면 15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잘못된 것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나, 20%를 (비핵화)하는 지점에 이르면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이며 저명한 과학자인 자기 삼촌 존 트럼프(John G. Trump)와 핵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면서 그런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존 트럼프는 1985년에 별세했는데, 당시 부동산개발에 열을 올리며 조선의 핵문제에 무관심했던 30대 재벌총수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 삼촌과 핵문제를 논하고 심층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아마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통령에게만 주어지는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정보보고를 통해 그런 심층정보를 파악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시설을 100%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20%만 해체하면 이른바 ‘불가역적 비핵화’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녕변핵시설은 한미정보당국이 추정하는 조선의 전체 핵시설들 가운데 약 15%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해체되기를 바라는 조선의 핵시설은 약 20%다. 그러므로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미국의 추가적 상응조치에 따라 몇 개소의 핵시설을 추가로 더 해체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모두 끝나게 될 것이다. 

 

조선은 평양공동선언에서 확약하기 이전부터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하였으므로,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서해위성발사장이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완전히 해체되면,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는 작업은 2018년 안에 완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조선의 종전선언 발표요구에 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올해 안에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삼지연으로 내려와서 못가를 산책하는 장면이다. 백두산의 정기를 머금은 밀림 속에 자리잡은 삼지연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두 정상은 그 풍경화 속에서 산책하며 신뢰를 더욱 쌓았다. 두 정상이 8천만 겨레에게 굳게 약속한 평양공동선언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대사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발표되면, 2019년 초부터 조선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녕변핵시설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녕변핵시설 해체작업은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견된다. 2019년 여름에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를 폐기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2019년 여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하고, 남과 북은 상호군비축소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20년 말에는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2월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조선과 미국의 공통된 목표다. 그 평화체제 위에 우리 겨레가 열망하는 자주적인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8천만 겨레에게 굳게 약속한 평양공동선언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대사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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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첫 독집 음반 준비 중인 가수 우위영 “10번의 생을 산 것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10월말 음반 발표 예정… “하루 종일 노래 하면서 치유하고, 스스로 내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8-09-24 14:01:03
수정 2018-09-24 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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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열린 석방 환영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후배가수 류금신과 함께 노래하는 가수 우위영
2017년 11월 열린 석방 환영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후배가수 류금신과 함께 노래하는 가수 우위영ⓒ민중의소리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침묵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우위영의 노래는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었고, 잠든 땅을 울리는 ‘북소리’였고, 침묵산천의 ‘함성’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동안 그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진보정당 대변인을 맡으며 진보정당 당직자로 살아야 했고, 박근혜 정권의 온갖 공격을 받으며 시련을 겪어야 했다. 결국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그는 다시 가수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노래마을’ 출신으로 ‘파랑새’, ‘굽이치는 임진강’ 등의 노래로 사랑받았던 우위영은 첫 독집앨범인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노래로 자신이 치유를 받고, 그 치유의 힘으로 세상도 위로받기를 꿈꾸며 노래하고 있는 가수 우위영을 만났다.

“나도 노래를 통해  
운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민중가수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었다”
 

그의 노래를 기억하고, 그의 노래로부터 힘을 받은 세대였지만 한동안 가수로서의 우위영을 잊고 있었다. 그가 민주노동당 문예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몇 차례 인터뷰도 했지만 모두 ‘대변인’ 우위영과의 인터뷰였고, ‘가수’ 우위영과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에게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물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 잘하나보다 했고, 어렸을 때부터 독창대회, 합창대회, 대학에선 민중가요 동아리활동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와 가까워졌다.” 1984년 대학에 입학해 교내 가요제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인연으로 라디오음악프로그램(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 어쩌면 대중가수가 됐을지 모르는 순간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민중가요’였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운동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당시는 다들 분위기가 그랬다. 87년 유월항쟁 직후라 졸업을 했어도, 어디 직장을 잡아서 돈을 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운동을 했던 이들 가운덴 많지 않았다. 나도 노래를 통해 운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민중가요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었다.” 

대학시절 스페인어노래동아리 엠티에서 노래하는 우위영
대학시절 스페인어노래동아리 엠티에서 노래하는 우위영ⓒ우위영 제공
가수 우위영이 노래마을 활동 당시 대학로 학전에서 공연하는 모습.
가수 우위영이 노래마을 활동 당시 대학로 학전에서 공연하는 모습.ⓒ우위영 제공

1988년 7월 ‘노래마을’을 찾은 우위영은 1993년까지 5년여 동안 가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 뒤 10년여 동안은 지역으로 가 청년운동과 지역운동, 그리고 정당운동에 힘을 쏟았다.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적어졌지만 그는 가수를 그만 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역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가끔씩 무대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행사에서 ‘초혼 아리랑’을, 2003년 1주기 행사 때는 ‘약속-우리 촛불을 켜자’를 불렀고,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가 한창일 때는 '평화아리랑'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2010년 효순이미선이 8주기엔 “때로는, 논평쓰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말하고 싶고, 말해야 할 사연이 너무 많아서 입니다”라며 기자들에게 효순이미선이 1주기 추모곡이었던 ‘약속-우리 촛불을 켜자’ 노래파일을 보냈다. 그에겐 ‘노래’도 그 어느 말보다 강한 ‘논평’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이어지던 가수로서의 모습은 진보정당 활동에 집중하며 점점 찾아보기 힘든 과거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 문예위원장을 할 당시까지만 해도 언제든지 노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08년 집단탈당이 일어나면서 중앙당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중앙당 경험 조금이라도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변인을 맡게 됐다. 후회는 하지는 않고,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느끼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분당이 없었다면 그렇게 깊이 관여하진 않을 것이고, 노래도 계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독방으로 돌아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를 만들고 싶어  
당시 성서에서 마음에 닿는  
구절을 뽑아 성가를 만들어 불렀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서  
악보를 만들고 부르니 노래가 됐다”
 

노래를 하지 못했지만, 노래를 향한 그의 갈망은 그친 적이 없다.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수임을 잊은 적이 없다. 지난 2002년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는 블로그 소개에 ‘나는 가수다. 누가 뭐래도’라고 글귀를 남겼다. 자신이 가수임을 잊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 11월 감옥에서 출소한 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출소 뒤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석방환영대회에서 후배가수 류금신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오른 우위영은 ‘가야하네’와 자신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파랑새’를 열창했다. 우위영은 “그날은 노래가 아니라 절규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 가수 우위영은 하루 대부분을 노래를 생각하며 보낸다. “지금 제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가운데 70% 이상은 노래다. 항상 노래를 하고, 항상 노래를 고민하고, 항상 생각한다. 나의 노래가 이 사회에 어떻게 전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되는 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 없이 행복하다.”

청주여자교도소 수감 당시 우위영. 감옥에서 우위영은 노래를 만들었고,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에도 3곡이 실려있다.
청주여자교도소 수감 당시 우위영. 감옥에서 우위영은 노래를 만들었고,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에도 3곡이 실려있다.ⓒ우위영 제공

감옥은 그에게 노래를 절실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위로가 된 건 노래였다. “감옥에서 적응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했다. 감옥에서의 고통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힘든 순간 감옥에서 세례를 받았다. 감옥에 가기 전에 함세웅 신부님의 삶을 보면서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신부님에게 수녀님을 소개 받아 교리공부를 하려고 연락처도 받았는데, 연락도 못 드린 채 구속되고 말았다. 함 신부님과의 약속도 있었고, 저의 간절함도 있어서 감옥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구치소 있을 때 종교집회가 1주일에 한 번 있다. 어떨 때는 미사가 없어서 2주에 한번 가야하고, 여름과 겨울엔 미사가 없는 방학이 있다. 미사에 가서 성가를 부르고 신부님 말씀을 들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 힘을 얻었다. 청주여자교도소에 가서는 교정사목 담당 신부님이 좋은 분이었다. 기타를 들고 와서 노래도 해주셨다. 신부님이 기타치며 노래를 배워주시던 그날, 독방으로 돌아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를 만들고 싶어 당시 성서에서 마음에 닿는 구절을 뽑아 성가를 만들어 불렀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서 악보를 만들고 부르니 노래가 됐다.”

그렇게 처음으로 성가를 만든 그날은 2017년 4월 14일 금요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막 구속된 다음이었다. 그 성가는 ‘하느님께서는 정녕 의로우시어 여러분에게 환난을 겪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겪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같이 안식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장 6~7절)라는 성서 구절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고통 받으며 지난 시간들에 아주 작은 안식이 찾아왔고, 그렇게 노래로 그는 힘을 얻었다. “A4용지를 4분의 1로 잘라서 연필로 오선지를 찍찍 긋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소리로 나오는 대로 음표를 그려 넣었다. 아주 낮게 불러가며 만들었다. 수십 번 수백 번 불러가며 음을 골랐다. 여기에 온통 집중하였다. 성가 다음으론 동생이 써서 보내준 시에 곡을 붙였다. 시간이 더 지나선 내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하고 했다.” 이번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음반에 들어갈 예정인 ‘은행나무’, ‘별들아’, ‘오랜 가뭄 끝에 비’라는 곡이 이렇게 감옥에서 만들어진 노래다.

함세웅 신부와 함께 있는 우위영. 우위영은 함 신부의 삶에 감동에 세례를 결심했고, 교도소에서 세례를 받았다.
함세웅 신부와 함께 있는 우위영. 우위영은 함 신부의 삶에 감동에 세례를 결심했고, 교도소에서 세례를 받았다.ⓒ우위영 제공

그렇게 감옥에서 만든 노래와 예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모아 그는 첫 독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 감옥에서 만든 노래가 20곡 정도 있다.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앨범 하나는 될 것 같아서 독집 음반을 준비했는데 주변에서 새로운 곡으로만 앨범을 만들기 보다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예전 노래도 함께 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귀에 익숙한 노래들을 새롭게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곡해 우위영의 목소리로 담고, 새롭게 만든 곡도 음반의 주제에 맞는 곡을 골라 3곡을 넣은 것이다. 앨범 준비를 위해 노래마을에서 활동한 백창우 선배를 만났다. 백 선배는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예전에 내가 발표는 못하고 녹음만 했던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을 이번에 정식으로 발표하는데 동의해 주셨고 앨범 작업을 격려해 주셨다. 그 노래가 앨범 타이틀 곡이 됐다. 다시 들으니 가사도, 노래도 마음에 너무 와 닿았다. 1초 만에 앨범 제목이 됐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그대 잠들지 말아라 
그대 잠들지 말아라
 

마음이 착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지닌 것보다 행복하고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있나니
 

차마 이 빈 손으로 그리운 이여 
풀의 꽃으로 태어나 피의 꽃잎으로 잠드는이여” 
-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정호승 시, 백창우 작곡)
 

내란음모 조작, 종북몰이,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구속… 
“결국 우리 문제는 우리가,  
결국 우리한테 달려 있다.  
사회적인 복권과 명예 회복도  
결국 우리가 하는 몫이지,  
다른 이들이 해 주는 게 아니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향한 박근혜 정권의 부단한 공격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내란음모 조작, 종북몰이,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구속에 이르기까지 아픔은 컸다. “그 고통과 아픔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10번 정도의 생을 산 것 만큼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영원히 묻혀 있을 것만 같던 진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죽음의 늪 같았던 시간이었다.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도 했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힘이 되진 못했다. 현실은 고통이었으니까. 그런 상황 겪고 보니깐, 지금 진실이 새롭게 드러나는 너무 덤덤하게 느껴진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할 문제다. 나의 내면, 정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스스로 치유해야 하고,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 무대에 선 가수 우위영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 무대에 선 가수 우위영ⓒ우위영 제공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을 마친 뒤 청년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가수 우위영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을 마친 뒤 청년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가수 우위영ⓒ우위영 제공

오는 9월29일 김홍열 진보당 전 경기도당 위원장이 만기출소하면 내란조작 사건 관련자 가운데 이석기 전 의원만 감옥에 남게 된다. 끊임없는 양심수 석방 호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끝내 양심수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외면이 아니라 의도적 배제다. 아직 배제와 낙인이 있는 거다. 이미 역사를 되돌린 순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결국 우리 문제는 우리가, 결국 우리한테 달려 있다. 사회적인 복권과 명예 회복도 결국 우리가 하는 몫이지, 다른 이들이 해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걸 잘 알기에 그는 노래를 다시 시작했고, 요즘은 책도 준비하고 있다. “노래와 마찬가지로 책도 저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통의 근원을 찾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그걸 더 이성적으로 찾고,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외부의 바람이나 외부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제 스스로 가야하는 인생, 더 아프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정리하려 한다. 정리하지 않고 가면 그냥 미움과 억울함만, 원망과 감정만, 자책과 자괴감 그리고 패배감만 남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책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그는 고백했다. “하나의 사건 가지고도 한 권의 책 나올 만큼 엄청난 일들이 있었다. 책을 쓰는 건 대재앙의 빙산의 일각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노래도 그렇지만 글도 가슴으로 쓰는 거더라. 내 가슴이 허락하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간다. 지금 고 박영재 당원 부분을 쓰고 있다. 그때로 돌아가서 되새기는 게 너무 힘들다. 5분을 쓰고 나면 한 시간이 넋이 나가 있기도 한다. 쉽지 않다. 그래도 누군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통합진보당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시절까지 포함해 꼭 정리해 볼 계획이다.”

요사이 70~80 세대들의 노래가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데 
민중가요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힘겹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그의 노래는 예전과 다른 힘을 얻었다. “옛날에 노래할 때를 지금 돌아보면 참 어렸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소리를 지른 거였다. 지금은 노래를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또 당시는 노래를 즐길 줄도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노래고, 노래가 나인 게 아니라, 대상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노래가 도구라기보다 노래와 하나가 되려 한다. 하루 종일 노래를 하면서 치유하고, 스스로 내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가수 우위영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가수 우위영ⓒ우위영 제공

또한 자신이 받은 위로를 아이들과 나누기도 한다. “지금 물푸레 도서관 친구들과 음악수업을 한다. 이번 음반 작업에도 함께 하고 있다. 예전에도 푸른학교 노래수업을 했었는데,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는 월 30만원 강사료가 더 중요했다. 워낙 가난했다. 그래서 수업을 가야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부담이 생기고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함께 노래하는 것이 너무 좋다. 아이들의 어떤 행동도 예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들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수업이 기다려진다.” 

그는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이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민중가요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민중가요의 매력을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요사이 70~80 세대들의 노래가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데 민중가요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편곡이 잘 됐다. 음악을 들으면 아주 젊은 감각이다. 그 음악에 민중가요의 드라마틱한 선율이 더해지면 어떨지 기대가 높다.” 

이번 앨범엔 감옥에서 만든 노래 3곡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이외에도 ‘노동자의 길’, ‘백두산’, ‘동지를 위하여’, ‘굽이치는 임진강’, ‘파랑새’, ‘우리의 노래가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줌될 수 있다면’ 등 주옥같은 민중가요가 실릴 예정이다. 주옥같은 민중가요와 함께 다시 돌아온 가수 우위영이 전할 위로의 메시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목 상태나 연습 정도에 좌우되겠지만 지금은 10월말 정도에는 시중에 나오게 하려고 한다. 음반을 얼마나 팔 수 있을지 걱정하진 않는다. 꼭 사라고 말씀드리기도 그렇다. 그냥 듣고 싶은 분들이 들으면 된다. 아마도 내 음악을 듣는다면 충분히 위로가 되고, 정화가 되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노래를 하면서 큰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첫 독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는 가수 우위영은 오는 10월말 음반을 발표할 예정이다
첫 독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는 가수 우위영은 오는 10월말 음반을 발표할 예정이다ⓒ우위영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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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남북군사합의는 비핵화 위한 버퍼링 작업"

[인터뷰] 김종대 정의당 의원
2018.09.23 20:50:39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3차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군사 분야 합의'를 꼽았다. 김 의원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 종식'에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으로 미국까지 포함한 3자 종전선언으로 가는 중간단계이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으로 가는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언급한 것을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일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대국민 보고에서 "이번 비핵화는 사상 처음으로 북미 양 정상 사이에서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북미 양 정상이 국제 사회에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행되리라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평화협정으로 가는 여정에서 "예선전"을 치른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준결승, 결승 등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서 참패할 경우, 지금까지 추진해온 한반도 정책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강경파들은 호시탐탐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엎어지길 바라며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남한과 북한도 각각 내부에 반대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벌써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서해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등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있다. (9월 21일 김성태 원내대표)"며 '퍼주기 논란'을 또다시 꺼낼 태세다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 내 강경 군부 세력을 제어하면서 비핵화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태다.  


김 의원은 "평화는 유리와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각국의 지도자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평화의 신념'을 설파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듯 미국 국민들에게도 자유·평화·민주주의의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김 의원은 말했다. 


다음은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 ⓒ프레시안(이재호)


"군사 합의, '남북미 종전선언' 엔진 재가동"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공동선언' 부속으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어떻게 보나?  

김종대 : 3차 남북 정상회담과 '평양 공동선언'으로 지난 7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에 대한 원칙이 재논의되고, '전쟁 없는 한반도'가 가시권에 진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3자 종전선언으로 가는 엔진이 재가동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군사 합의'는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으로, 구체적인 이행 방안까지 담겨있다. 여기에 미국이 합류해 내용을 조금만 더 확장한다면, 3자 종전선언의 중간단계 2자 종선선언을 한 것이다. 지금은 주어가 '남북'으로 되어 있지만, 향후 미국이 합류한다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으로 진화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으로 가는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다" 

프레시안 : 미국에서도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까? 

김종대 : 미국은 '군사 합의'에 대한 관심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신고-사찰'에 집중하고 있다. 비핵화 신고 여부에 따라 종전선언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와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군사 합의'는 비핵화 문제와 짝을 이루는 것인데, 현재 비핵화 문제는 괄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남북 간 합의된 내용이 있다고 해도 괄호 밖으로 보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정상회담의 명분 확보를 위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띄운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만 한 소재는 되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북한 핵폐기의 수순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미국은 여전히 '신고'와 '사찰'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핵폐기, '신고-사찰 및 검증'이라고 하는 경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는데 북한이 핵 시설을 신고한다고 한들, 미국이 은폐했다며 의혹을 제기하면, 사찰단을 보내겠다고 하면, 북한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증'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 깨졌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문 등 좋은 합의가 있었지만, '신고-사찰' 단계로만 들어가면 서로 '못 믿겠다'며 판이 깨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여러 차례 경험한 바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상응조치가 없다는 주장이고. 합의점이 나오기 어렵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지금 미국과 북한 간에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 대책회의'한 남북, 결승전은 따로 있다"  

프레시안 : 북한 측은 '미래 핵'에, 미국 측은 '현재 핵'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종대 : 그렇다. 미국은 북한이 그동안 보여준 조치는 '동결' 조치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이 어딘가에 숨겨놓은 '현재 핵'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현재 핵', 즉 영변 핵시설 폐쇄를 이야기했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북한이 반발 짝 양보한 셈이다. 그러면서 '종전선언과 등가교환을 하자'고 미국에 다시 묻고 있다. 미국이 어떤 응답을 할지는 우리의 중재외교에 달려 있다. 만약 미국이 '노(NO)'를 하면, 3차 정상회담의 성과는 부정된다.  

또 어느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날 텐데, 그렇게 되면 상상력을 발휘해 파격적으로 순서를 바꾸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7월 이후 북미 간 교착상태는 상상력의 위기였다. 창의성의 위기였다. 기존 입장 그대로 하던 말만 계속하다 보니,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깨달은 것이다. 이래서는 문제가 안 풀린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허심탄회하게 한 것이고. 그래서 3차 정상회담은 남북이 '트럼프 대책회의'를 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숨겨진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은 어디까지나 예선전이고 준결승과 결승전은 따로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자만하면 안 된다.  

"'군사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버퍼링 작업"  

프레시안 : 남북 두 정상의 친밀감은 나날이 돈독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제든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번 '군사 합의'가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 같은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김종대 : 그렇다. 남북한 문제는 사실 우발적인 충돌 발생에 있다.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재래식 군사 분야의 충돌이 발생하면, 비핵화의 판이 깨진다. 비핵화 프로그램이 잘 작동되려면, 운영체계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군사 합의'는 그에 앞선 일종의 버퍼링 작업이다. 이 작업이 없으면 향후 비핵화 프로그램이 불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후가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군사 합의'를 보면, 과거 북한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상당수 들어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같은 조치에 합의했을까.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또 '군사적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전방 초소(GP) 철수처럼 다소 분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부분도 있다. GP는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상대방에 근접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시설물이다. 정전협정 상 DMZ에는 무장 시설이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무장한 채 DMZ에 있는 게 GP다. 

북한의 경계 작전 개념을 보면, 전방 GP를 주축으로 경계 작전을 수립했다. 남한은 후방 GOP를 경계 작전으로 설정해 놨기 때문에 전방 GP를 철수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후방에 다른 시설물이 없다. 따라서 GP 철수가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합의다.  

북한이 전방 GP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이미 DMZ 내 생활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DMZ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파종기에는 몇천 명씩 들어온다. 농사를 화전으로 한다고 불을 놔 산불도 일어나고, 식수를 구하겠다고 들어오기도 하고. 북한의 전방 GP는 이렇게 군사적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계속 증가했다. 정전협정 상 DMZ에 수천 명이 들어오면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지만, 남한은 지금껏 묵인해 왔다.

그런데 DMZ 내 GP를 철수해 평화지대로 만든다면, 어느 쪽 손해가 더 크겠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이전 장성급군사회담에서 GP 철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그리고 이 내용이 합의문에 담겼다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프레시안 : 전쟁의 위험성을 종식시켰다는 건, 북한 내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종대 : 그렇다. 지난 7월 이후 <노동신문>을 훑어보면,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 군부 내부 단속이 중요 변수로 대두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이 원로장성이나 혁명원로를 예우하는 보도가 부쩍 많아졌다. '핵무기라는 보검(寶劍)을 내려놓으면 우리 안보는 어쩌란 말이냐? 무장 해제하자는 이야기냐?'와 같은 내부 강경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다. '핵무기 없어도 전쟁 위협을 줄였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군사 합의'가 절실했다. 

이렇게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자유한국당은 '군사 합의'에 대해 "일방적 무장해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보수정당에게 북한은 항상 '공포'였다. 나약한 안보관과 패배주의적·비관주의적 발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모든 변화는 우리에게 공포다. 북한은 믿을 수 없다'라는 태도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핵은 놔두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했다'는 말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형성되어 있다. 

"'전방 GP 철수', 2005년 한나라당 아이디어였다"  

프레시안 : 자유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종대 : 사실 청와대가 평양으로 가기 전부터 걱정했던 지점이 부각됐다. 집권여당이 평양에 가기 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서둘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양 선언' 국회 비준까지 논쟁거리가 됐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했을 때처럼 합의문 제출 행위 자체가 정쟁이 됐다.

 


자유한국당의 '군사 합의=일방적 무장해제'라는 주장에 대해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 군사 분야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가기 전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을 통해 이미 합의된 내용이다. 또한 자유한국당 주장처럼 '무장해제'가 아니다. 수백조 원의 국방 예산을 투자해도 달성하지 못할 안보의 증진이며, 무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안보를 달성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라고 한들, 고민이 없겠는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4선언 발표 석 달 전, 한나라당은 대선을 겨냥한 대북 유화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내놨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GDP를 3000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각종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을 공약했다. 하지만 2008년 북한은 "이명박 역도"라는 말까지 쓰면서 거부했다. 

핵폐기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어서 그렇지, '비핵개방 3000'에도 북한과 협력하는 좋은 안도 있었다. 그래서 2009년 임태희 비서실장이 비밀리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물론 청와대 내 강경파인 김태효 비서관이 MB를 흔들어대는 등 암투도 있었지만. 2014년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며 대북정책을 펼쳤다.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만 한다며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의 정치적 위치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 꼬인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전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방 GP 철수 대한 최초 아이디어도 한나라당에서 나온 것이다. 2005년 전방에서 남북한 군인들 사이에 미미한 총격전이 벌어지자,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발 장비를 위해 남북한 모두 전방 GP를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방 GP 철수 문제는 당시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도 이야기됐다. 이 안이 이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보수진영도 정치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평화가 본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냉전 본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선언', 흥분 가라앉혀야…" 

 


프레시안 : 카퍼레이드와 백두산 등반 등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면서 여론은 호의적이다. 자유한국당의 반격, 과연 영향이 있을까?  

김종대 : '군사 합의'의 실효성 문제로 이미 전선은 형성됐다. 보수정당은 김대중-노무현 등 대북 친화 정책을 쓰는 정권을 향해 경제에서는 '퍼주기론', 안부에서는 '무장해제론'을 주장했다. 우리가 치르는 희생과 부담이 크다는 걸 적극적으로 부각하며 세금이 얼마나 들어간다는 식으로 

그런데 현재 우리 상황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여러 퍼포먼스에 취해 있어서 그렇지, 냉철하게 보면 경제지표는 악화됐고 민생은 추락하고 있다. '왜 이런 비용을 써야 하지?'라는 의문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보수정당이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해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  

따라서 퍼포먼스에 취하지 말아야 할 당사자는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평양 선언'의 실질적 의미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높은 정책 역량이 요구된다. 우리도 감정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번영의 고난과 역풍이 예상된다'는 발언을 세 번씩 하며 경고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움에 대해 첫날 환영만찬에서 한 번 언급했을 뿐 낙관주의로 일관했다. 지금은 예선과 본선을 치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결승전이다.  

'평양 선언' 합의문이 완성도가 높지만, 그럼에도 2박 3일간 벌어진 평양 퍼포먼스에 취하는 순간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숙제가 많다는 걸, 정책 당국자들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남북미, 각각 국내 상황이 문제  

프레시안 : 남북 모두 내부에 반대 세력이 있는 셈인데,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난관이 예상된다. 어떤 난관이 있을까?  


김종대 :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면서 11월에 있는 중간선거가 어려워졌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정책 심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으면 트럼프의 구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대외정책에 변화가 생기는 결정적 계기가 바로 중간선거다. 2006년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대패하자, 그동안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고립과 압박을 가했던 북한과 대화하겠다며 급선회했다. '이라크 전쟁'에 실패한 네오콘도 전부 숙청했다. 그래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워싱턴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에워싼 채 '대북제재는 뚫렸으며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는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 "새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의 불법 무기 판매와 위장된 연료 선적, 불법 금융거래의 최신 증거가 담겼으며 국제 경제제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북한 무기기술자들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개발을 돕고 있으며, 시리아·예멘·리비아와 다른 분쟁지역에 무기를 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각 뉴욕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이처럼 '대북제재 강화'를 선동하고 있는 미국 강경파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다. 그리고 일본의 '고춧가루 뿌리기', 즉 납치자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에서 거론해 달라는 것 역시 위협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제외한 다른 여건이 좋지 않다. '평화정책'이라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성과가 나오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고난과 역풍'은 바로 그런 의미다. 남북한이 손을 잡고 연대해 같이 노력할 때만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호소한 것이다. 우리가 과연 지금 취해 있을 때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정치는 냉엄한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준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국제정치는 절대 기회를 주지 않는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미국 국민을 향한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현지시간으로 9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일단 긍정적인데, 이후 상황이 진전될까? 

 


김종대 : 한미 정상회담이 더 중요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절반을 채웠다면, 나머지 절반은 한미 정상회담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회담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으로 수용하겠지만, 그럴수록 본인의 정치가 어려워지는 워싱턴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외교(公共外交, Public Diplomacy)가 있어야 한다. 미국 시민과 언론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기간인 1865년 3월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하면서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 앞에서 '150여 년 전 링컨 대통령의 메시지인 화해와 관용, 용서의 정신이 한국에서도 재현되기를 바란다'라고 연설한다면? 아니면,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나에게 꿈이 있다"며 설득한다면? 

문재인 대통령, 미국 시민들과 '평화의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평양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양 15만 시민 앞에서 보여준 진심을 미국 시민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각오 없이 뉴욕을 간다면,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방미 일정을 늘리더라도 이런 공공외교, 평화외교가 있어야 한다. 

여야 3당 대표가 평양을 다녀왔지만, 정작 대통령과 같이 가야 하는 곳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안 갈 것이다. 오히려 미국 내 싸늘한 시선을 믿고, 더 냉전적인 상황으로 갈 것이다. 평화번영시대에 냉전주의자들이 더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저쪽이 힘을 얻으면, 현재의 평화는 파괴된다.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프레시안 :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김종대 :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지난 9년 보수정권에서 안보는 더 나빠졌다. 평화는 유리와 같아서 아무리 애써 만든 것이라고 해도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깨져버린다. 평화가 가지고 있는 연약한 속성이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수반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를 한 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밀협상을 통해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으로 이스라엘군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철군했다. 하지만 1995년 라빈 총리가 암살된 뒤, 상황은 나빠졌고 전쟁에 돌입했다.  

'평화'라고 하는 것은 완성되는 성격의 그 무엇이 아니다.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평화 체제를 완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느냐, 마련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성공했다. 그는 야당을 설득해 정권이 교체되어도 평화 체제가 유지되게 했다. 그렇게 독일은 통일이 됐고, 강국이 됐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바른미래당이 평양행을 막판에 취소한 것은 아주 아쉬운 대목이다.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킬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을 국회에 비준시키면서 초당적 상황을 만들 수 있었는데 실패했다. 국회 비준에 찬성하는 당대표들만 평양에 갔다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닌 본전치기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제2의 데탕트 시대' 열어야" 

프레시안 : 청와대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미숙한 것도 있는 것 같다. 계속 문젯거리가 될 것 같은데 

김종대 : 협치(協治)에 능하지 않은 지도자가 평화에 성공한 적은 없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세워 바르샤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수차례 비공식 접촉을 가진 끝에, 1972년 중국 상하이에서 마오쩌둥 국가주석을 만나 '상하이 코뮈니케(Shanghai Communiqué)'를 체결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국교 정상화 합의 과정에서 '대통령이 내가 공을 독점하지 않을 테니, 지원해 달라'며 야당인 민주당을 직접 설득했다. 그의 노력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 위원회를 구성, 중국과의 수교를 뒷받침했다. '데탕트(Détente)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면서 에곤 바 외교안보 특사를 미국과 소련 등 주변국에 보내 설득했다. 첫 반응은 당연히 안 좋았다. 당시 키신저 보좌관은 브란트 총리를 '값싼 민족주의자'라고 말했다. 독일 야당인 기민당조차 브란트 총리를 인식 공격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브란트 총리는 평화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민당이 차기 정권을 잡았음에도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서명하면서, 독일이 통일시대를 맞았다.  

지금처럼 이데올로기 전선이 강화된 한국의 경우, 그 어느 때보다 '평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양보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해 자신의 신념을 확산시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연정과 협치에 능한 지도자가 평화를 구현한다.  

요즘 들어,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국내 정치의 연정과 협치가 대외정책과 평화정책으로 이어진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같은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이데올로기 전선으로만 해석했다.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이 차기 정권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아닌지.  

만약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정책을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대북정책으로 계승하겠다'라는 선언이 나온다면…. 정말 꿈같은 나라가 될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요한 지적이다. 현 정부가 야당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평화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종대 : 과한 지지가 때로는 공격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 더 넓게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로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전선은 이미 형성됐다고 말했다. '군사 합의'에 대한 실효성 문제다. 이게 전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중심으로 이데올로기 전선이 형성되면, 무조건 정권에 분리하다. 따라서 후반기 국정운영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평화의 원칙과 비전이 이제는 승리로 이어지는, 그런 국정 운영이 되어야 한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는 1993년 미국 워싱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만나 가자지구·요르단강 서 안에 팔레스타인 자치를 허용하는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었다. 즉시 이스라엘 보수층이 반발했고, 각 도시에서는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70대 노(老)정객은 '반대 시위가 열리는 도시를 방문해 직접 설득하겠다'고 나섰고, 이듬해 한 도시에서 연설하던 중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가슴을 관통했다. 얼마 뒤 '평화의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가 피에 젖은 채 그의 양복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평화 지도자'로 자신의 희생까지 불사한 그의 용기와 신념은 이스라엘 국민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전 대통령은 아랍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의회에서 '당신들의 신은 우리와 전쟁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라는 연설을 하는 등 평화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빵 보조금 폐지와 같은 국내 정치 문제와 맞물리면서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들과 유럽 국가 정상들이 참석했지만, 그를 반대한 아랍 국가 및 공산주의 국가 정상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20세기의 마지막 평화정책이자, 21세기의 첫 번째 평화정책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지만,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자민련과 공동 정부가 깨지면서 '햇볕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권을 재창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10년간 유지됐다. 

독일의 '동방정책'을 제외하면, 20세기 평화정책 중 10년 동안 지속하 경우는 '햇볕정책'이 유일하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그 정책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3대에 걸쳐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문재인의 평화정책은 역대 대북정책 중 평화에 가장 근접해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세 명의 지도자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결과다.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역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전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품격으로 평화정책을 성공시켜야 한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노회찬 서거, 그 후

프레시안 : 고(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진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정의당은 어떤가. 

김종대 : 정말 악몽 같은 여름을 보냈다. 정의당은 '노회찬'이라는 큰 정치인을 잃고, 원내교섭단체마저 무너졌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탑이 무너진 기분이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든 구조물이 붕괴된 상황이다. 공든 탑이 무너졌는데, 격려가 조금 늘었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지 않나. 

특히 원내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자, 자유한국당은 노골적으로 정의당을 배격하고 있다. 이정미 대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하는가 하면,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위원장에 내정된 심상정 의원에 대한 입장도 바꾸었다. 정의당을 헌정특위에서 배제한 뒤로는, 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국회 제1당과 2당이 '선거법 개정'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사실상 해태(懈怠)하고 있는 셈이다. 

재벌의 청구 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제완화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처리하다니…. 집권여당이 보수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의 지위가 더 뚜렷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있다. 노회찬 의원 서거 후유증이 치유되거나 회복되지 않고, 더 악화하는 쪽으로 정국이 흘러가고 있다. 안타깝다. 


정의당이 국민들에게 처지가 어렵다는 걸 진솔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국민들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을 닮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자는 꿈, 지금도 유효하다. 그 희망을 국민들과,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다.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싶다.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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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 검사 임은정 인터뷰 “이명박근혜 지킴이도 정치검사들이었다”

‘내부고발’ 검사 임은정

지난 15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한 후 겪은 일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15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한 후 겪은 일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검사 임은정(45·사법연수원 30기·현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부장검사)은 대표적 ‘내부고발자’다. 2012년 상반기부터 검사게시판 ‘이프로스’와 페이스북에 검찰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끊임없이 올렸다. 자신이 직접 겪거나 동료들로부터 들은 내부의 부당한 관행이나 불의에 대한 폭로도 멈추지 않았다.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선 양심을 속일 수 없어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거역하고 ‘무죄구형’을 해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퇴출 위기까지 겪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서야 강제 퇴출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임 검사와의 인터뷰는 좀처럼 가능하지 않았다. 검사윤리강령과 검찰청 공무원 행동강령상 검찰 소속 공무원의 인터뷰는 기관장 사전 승인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람은 그대로’인 검찰에서 임 검사의 ‘입’은 ‘화약고’와 같기에, 수뇌부로선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지난 17일 검사가 대외적으로 의견을 밝힐 때 소속 기관장의 승인 없이 사전에 신고만 하면 되도록 검사윤리강령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그 이면에 임 검사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 검사와의 인터뷰는 강령 개정 전인 지난 15일 서울 정동에서 이뤄졌다. 그에 대한 인터뷰 승인은 앞서 지난 4일 떨어졌다.

 - 두달여 전까지만 해도 임 검사와의 인터뷰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청주지검장에게 들었는데, 어떻게 승인이 났고, 강령까지 개정됐나요.

 “내부고발자들이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부득이 외부로 나가게 됐을 때, 인터뷰 내용과 상관없이 무조건 절차 위반의 징계 위험을 감수하는 거라, 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서지현·안미현·최근 박병규 검사의 인터뷰 모두 승인 없이 결행된 것이거든요. 지난 7월 경향신문의 인터뷰 요청 공문이 검찰에 정식으로 접수된 걸 계기로 지휘부에 맞서 싸웠어요.”

 - 어떻게요.

 “사전 승인제는 검찰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라 위헌 소지가 있죠. 행동강령을 총괄하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찾아가 검찰 행동강령의 문제점을 알리고 개정 권고를 요청하겠다는 취지의 문서를 작성했어요. 이걸 대검 감찰1과와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에 보내고 지휘부와 논쟁을 벌여 승인이 떨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검찰 소속 공무원의 인터뷰 사전 승인제를 신고제로 완화하는 강령 개정이 추진된 것으로 알아요.”

 - 조직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내부의 치부를 밖으로 표출하면 당연히 안에선 좋지 않게 볼 테고 불이익도 감수해야 해요. 그럼에도 내부고발을 계속하는 이유가 뭔가요.

 “뜻있는 동료들을 모으고 검찰개혁에 대한 내부여론을 환기시키려고 도시락폭탄을 투척하는 독립투사의 심정으로 글을 지속적으로 써왔어요. 저는 역사를 좋아해요. 1~2년, 10~20년으로 시간을 짧게 끊어 생각하면, 역사가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길게 보면, 역사는 암초를 만나더라도 굽이쳐 돌거나 올라타면서 노도와 같이 결국 흘러가게 마련이에요. 그 시기를 앞당기는 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검사들 언론 인터뷰 사전 승인제서 신고제로 윤리강령 개정 쟁취

 임은정 검사가 사람들의 뇌리에 처음 각인된 것은 이른바 ‘도가니 사건’에서다. 2007년 광주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1심 공판검사였던 그가 ‘법정에서 수화로 소리 없이 울부짖는 농아인들을 위해 대신 싸우겠다’고 다짐하며 쓴 글이 2011년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다. 그해 9월 임 검사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박형규 목사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심을 담당하면서 ‘백지구형’이 아닌 ‘무죄구형’을 했다. 당시 법정에서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한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무죄 논고문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한편의 서사시와 같은 깊은 울림이 있었던 것이다.

<b>‘도가니 검사’</b> 2007년부터 2009년 광주지검 공판부에서 근무하면서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맡았다.

‘도가니 검사’ 2007년부터 2009년 광주지검 공판부에서 근무하면서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맡았다.

 “논고문은 검찰의 최종 의견진술이에요. 피고인은 물론 법정 어느 자리에선가 귀 기울이고 있을지 모를 원혼과 유족에게, 피해자에게, 우리 사회에 보내는 충고와 위로라 생각해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왔어요. 특히 박 목사님의 경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며 엄혹한 시대에 십자가를 짊어지신 분이라, 좀 더 사죄와 감사의 마음을 담고 싶었죠. 미리 작성하면 공안통이 주류인 수뇌부에서 보고 안 했다고 트집 잡을까봐 구형 당일 아침 30분 만에 써내려갔어요. 하나님이 박 목사님의 삶을 제 입을 통해 칭찬해주신 거라 그런 글이 나온 거라 생각해요.”

 공안부와 지휘부는 ‘검찰 선배들을 모두 권력의 주구로 몰았다’며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임 검사는 3개월 후인 그해 12월 고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재심에서 공안부와 윗선의 집요한 백지구형 요구를 거부하고 또 무죄구형을 결행했다. 구형 당일 아침 검사게시판에 징계청원글을 예약 게시한 후 법정 검사 출입문까지 안으로 걸어 잠그고서다. 지휘부에서 임 검사 대신 다른 검사에게 이 사건을 재배당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임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윤길중 진보당 간사 재심, 공안부·윗선 지시 어기고 ‘무죄’ 구형…그 뒤 5년간 검찰 내부서 생매장당하는 것 같은 괴로움 겪어

 - 징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왜 그랬습니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관련 기록을 검토해보니, 당연히 무죄였으니까요. 무죄를 무죄라고 말하는 게 검사의 법적 의무예요. 상부 지시로 다른 검사가 저 대신 들어가 백지구형을 하기로 정해졌을 때, ‘너희들은 검사가 아니다. 내가 대한민국 검사다. 법정 공판검사석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다’라고 생각했어요. 네가 백지구형 못한다고 해서 다른 검사가 대신 들어가겠다는 건데 왜 그것도 막았냐는 핀잔을 당시 많이 들었는데 방관도 죄예요. 저도 공범이 되는 거예요.”

 - 정직 4개월의 징계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떤 심경이었나요.

 “징계하라고 몸을 던지면, 백지구형이 옳은지 제대로 법리검토를 해줄 것으로 믿었어요. 백지구형은 형사소송법 302조와 검찰청법 4조에 따른 적법한 구형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대검과 법무부는 징계 과정에서도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대검 지시공문도 못 본 체하며 상명하복만 앵무새처럼 읊조렸죠. 검사징계위가 열려도 끝까지 저는 우리 검찰이 이성적으로 무혐의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늦은 밤 지하철로 귀가하는데 한 줄 속보가 뜨더라고요. 정직 4개월 의결됐다고. 그날….”

 그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목이 메어 목소리는 낮게 갈라졌다.

 “지하철 역사를 나오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렸어요. 사무치게 시리고 많이 억울했어요.”

 - 단순히 정직 4개월을 넘어 5년 가까이 많은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아요.

 “이런저런 배제와 불이익, 괴롭힘이 있었죠. 근속기간 원칙을 무시하고 창원으로 발령 났고, 보복배당이다 싶을 때도 종종 있었고 동기보다 승진도 2년7개월 늦었어요. 내부게시판에 올린 제 글에 달린 조롱성 댓글도 아프지만, 글을 쓸 때마다 부장실, 차장실, 검사장실로 불려다니며 인사 포기하지 말라는 회유와 징계하겠다는 경고에 시달렸어요. 얼굴도 모르는 후배가 굳이 내부망으로 말을 걸어 ‘임 검사님, 검사들이 욕하는 거 아시죠?’라고 한 일도 있고요. 가까웠던 후배가 제 인사를 못 들은 척 굳어진 얼굴로 스쳐 지나갈 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 일종의 왕따였던 건가요.

 “불가촉천민의 삶이 이런 건가 싶었죠(웃음). 저는 2005년 5년차 검사시절부터 실무 수습 온 사법연수원생의 지도검사로 후배 지도를 해왔는데, 무죄구형 후부터 사법연수원생들을 제 방에 배치하지 않는 등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어요. 반면 세평 수집 명목으로 감시는 집요했어요. 저와 친한 후배가 임은정의 부역자로 놀림받기도 했고요. 선택한 길이니 감수는 하겠는데 생매장당하는 것 같아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 어떻게 버텼습니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마음을 전해준 동료들도 있었고 밖에서 응원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무엇보다 제가 옳으니까, 결국 이길 것을 알았으니까요.”

 - 현재는 검찰에서 직권으로 재심청구를 하고 무죄구형을 하고 있어요.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보람을 느끼지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요.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해 억울한 사람들을 기소해 실형을 살게 하면 안됐고, 누명을 좀 더 빨리 벗겨줬어야 했어요.”
 

“백지구형 거부로 ‘4개월 정직’…퇴근길 속보 보며 눈물 차올라”

<b>의정부지검에서</b>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의정부지검에서 근무했다. 사진은 임 검사가 집무실에서 야근을 하는 모습.

의정부지검에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의정부지검에서 근무했다. 사진은 임 검사가 집무실에서 야근을 하는 모습.

 - 임 검사를 두고 의도를 의심하며 부정적 평가를 하는 검찰 간부들도 적지 않아요. 공명심이 강해서라거나 유명해지고 싶어서, 또는 정치에 뜻이 있어서 돌출행동을 한다는….

 “2012년에도 윗선과 징계위에서 제가 무죄구형 전후로 정치권, 언론과 접촉을 했는지 물었어요. 검사인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이었어요.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사람을 보는 거니까요. 그런 분들이야말로 정치권, 언론과 접촉하여 사건을 처리하고, 출마하려고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되묻고 싶어요. 또 무죄구형 후 최교일 당시 검사장을 비롯한 동료들이 제게 ‘직’을 걸 일이냐고 했는데,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은 검사의 본분이에요. 검사의 직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검사의 구형의무가 너무 무거워서 직을 거는 거예요.”

 - 실제로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은 없었습니까.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어느 변호사님을 통해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입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거절했어요.

 - 왜요.

 “검찰 후배들에게 ‘검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많은 보기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에요. 그때가 제가 심층적격심사에 회부돼 퇴출 위기에 처해 있을 땐데,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잖아요.”

 -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가 없습니까.

 “진모 검사가 영장회수 사건을 겪고 연락해와 감찰 요청하는 것을 보고, 또 안미현 검사가 그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보고, 버틴 보람이 있구나 했어요.”

 - 검사로 살아오면서 ‘직’을 걸 결심을 한 건 과거사 재심사건 말고 또 있었나요.

 “가장 먼저는 이명박 정부 때 법무심의관실에서 근무하면서 상부 지시로 노태우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자격에 대한 법리 검토를 하면서였어요. 당시 청와대 뜻에 따라 법무부에서 내란목적살인 등의 유죄판결이 있음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됐으니 결격사유가 해소됐다고 법적 해석을 뒤집었거든요. 민정수석실과 김경한 장관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결국 TK출신인 이 대통령의 뜻이겠죠. 황당했어요. 그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던 날, 집 인터넷망이 고장난 상태에서 노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줄 알고 국립묘지안장심의회에서 반대의견 제시하고 사표 쓸 각오로 비장하게 출근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었어요. 그런데 2011년 안현태 전 장군이 결국 같은 논리로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니, 잘 지켜봐야 해요.”

 - 2015년 12월 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올랐어요. 그에 앞서 2015년 하반기에 병가를 냈었지요.

 “무죄구형 때 법무부 모 간부가 ‘저런 XXX이 있나. 저X 적격심사 얼마 남았어’라고 했다는 말을 후배에게 전해들었어요. 이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죠. 2015년 상반기에 병가를 낸 것은 난임시술(그는 무죄구형 딱 1년 후인 2013년 12월28일 결혼했다) 이유도 있었지만 트집 안 잡히려 자리를 피한 것도 있어요.”

 - 난임시술은 어떻게 됐나요.

 “시험관 시술을 통해 착상에 두번 성공했고 아이 심장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어요. 그 두근거림을 평생 기억할 거예요. 몇 주 만에 결국 사산 판정을 받았거든요. 마음이 사무치게 고단하던 2015년 11월 동료가 연락해 ‘행정소송에서 지겠지만 일단 자르기로 했다고 하니, 준비하시라’더군요. 아마 그때 법무부에서 심층적격심사에 저를 회부하기로 결정난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대성통곡했어요.”

 - 아무래도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요.

 “솔직히 검찰 때문에 아이들을 잃었다고 생각해요.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사 사건 등에서 우리가 검찰권 남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너무도 고통스럽게 했잖아요. 지금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고 있지만, 그분들이 겪은 고통의 1만분의 1, 10만분의 1을 하나님이 제게 알게 해주신 것 같다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통한의 세월과 고통을 제대로 알아야 검찰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b>‘무죄구형’으로 징계</b> 2013년 2월 검사징계위에 특별대리인으로 한인섭 교수(오른쪽), 김칠준 변호사(왼쪽)와 함께 출석했다.

‘무죄구형’으로 징계 2013년 2월 검사징계위에 특별대리인으로 한인섭 교수(오른쪽), 김칠준 변호사(왼쪽)와 함께 출석했다.

MB정권, 노태우 국립묘지 안장 자격 부여 때도 ‘사표 쓸 각오’

 - 2013년 5월 징계취소소송을 제기했지요.

 “중징계 전력을 그대로 두면 조만간 다가올 적격심사 때 자를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겠다는 우려도 있었고, 징계사유 중에 ‘마치 검찰이 부당한 구형을 하고 과거사에 대한 입장이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글을 내부게시판에 올려 외부에 전파되도록 하여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문구가 있었어요. 이 사유를 그대로 확정시키면, 백지구형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어서 내버려둘 수 없었어요.”
 

 - 결국 징계 후 4년8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임 검사에 대한 징계취소 판결이 나왔어요. 적격심사는 2016년 1월에 통과됐고요.

 “2012년 위법한 지시와 부당한 징계를 한 지휘라인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공개 사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1심부터 승소했지만, 법무부는 항소·상고로 재판을 질질 끌며 징계시효 3년을 도과시켰어요. 소송 과정에서 관련자들 중 검사장 승진을 목전에 둔 이들이 대법원 판결을 최대한 지연시키려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번 사법농단 문건들을 보니 당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가 거래한 게 아닌지 몹시 의심스러워요.”

 - 검찰은 임 검사가 소송을 하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왜 중징계를 하고, 적격심사를 통해 잘라내려 했을까요.

 “내부자 질타가 밖의 질책보다 아프니까요. 다른 검사들이 동조하면 큰일이잖아요.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갔다가 사표를 던진 소동에 소장판사들이 들고일어나서 사법농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요.”

 - 시민들이 검찰을 불신하는 근원에는 ‘권력 유착’ 의혹이 있어요. 재벌권력, 정치권력, 힘 있는 자들 편에 서서 수사·기소권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죠.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이나 문체부 블랙리스트 공무원들이나, 출세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될 것인가가 목표인 거죠. 자신의 일을 가볍게 여기고 가고자 하는 자리를 쳐다보고 있으면,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보지 못해요. 아니, 보지 않는 거죠.”

 - 얼마 전 특수통으로 유명했던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이 30대 내연녀와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과 갑질이 큰 파장을 일으켰어요. 그동안에도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브로커 검사’ ‘성폭력 검사’ 등 검사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았죠. 왜일까요.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지 법을 적용받는 기관이 아니라는 그릇된 의식 때문이에요. 치외법권인 거죠. 남들이 받으면 뇌물이지만 내가 받으면 선물이고, 내가 후배를 추행하거나 때리는 것은 격려와 애정표현이라는…. 검찰은 사람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거 폭행, 상해로 처벌하면서, 독직폭행 조항이 있음에도 사람을 때려서 자백을 받기도 했고 2003년에도 그래서 중앙지검에서 사람이 죽어나갔어요. 권한이 의무가 아니라 권력이 될 때, 그 권력을 견제할 기구가 없을 때 예외없이 부패해요.”

 -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과 상고법원을 거래하려 한 의혹이 있어요. 정치권과의 결탁 면에선 지금껏 검찰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요. 정치검찰의 오명을 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검찰 간부들이 정치권이 인사로 목줄을 쥐어서 그렇다고 남 탓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틀렸어요. 검사들 탓이에요. 출세를 위해 영혼을 판 검사들, 기꺼이 부역한 검사들, 알고도 침묵한 검사들, 지레 포기하거나 냉소하며 외면한 검사들…, 모두의 책임이죠. 모 후배가 정치권에서 독립시켜주지 않는다고 하길래, 독립은 시켜주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거라고 말해줬어요. 그런 사고로는 정치권 압력을 버텨낼 수 없으니까요.”

 - 검찰이 정치검찰 오명을 벗고 새로 태어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까.

 “자정능력이 회복돼야 하지만, 사람이 그대로인데 갑자기 자정능력을 회복하긴 어렵지 않겠어요?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그 지위와 책임에 합당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조속히 도입해, 위법한 지시를 한 상급자들을 고발할 제3의 기관을 만들어야 해요. 우리 검찰은 인사로 1~2년마다 어디로 갈지 몰라요. 또 매일매일 배당과 결재로 검사들을 괴롭힐 수 있는 구조예요. 인사의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제고하면, 검사들이 그래도 할 말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검사들 ‘치외법권’에 있다는 그릇된 인식…위법한 명령 내리고 굴종한 자들에게 합당한 책임 물어야

 - 2016년 10월 검사가 업무 스트레스와 상사의 상습적 폭언·폭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어요.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 어느 정도인가요.

 “작년까지 법무부가 제 행정소송에서 공식 문서로 주장한 게 상급자의 지시가 중대하고 명백하게 위법일 때만 복종의무가 없고,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인지는 원칙적으로 그 하급자가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어요. 검찰의 상명하복이 조폭의 그것과 다른 점은 정의로서의 법과 원칙이 우선한다는 것인데, 종래 법무부 주장은 거의 조폭 수준의 상명하복인 거예요. 양승태의 대법원은 김기춘·우병우와 거래했지만, 우리 검찰은 김기춘·우병우의 지시를 받지 않았겠어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탱한 주축은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에요.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가 관철되는 조직문화이기에 간부의 성희롱, 폭언들도 용인되는 거예요.”

 -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약속하며 출범했고, 지난해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도 구성했어요. 내부자로서 검찰개혁에 진전이 있다고 느끼나요.

 “검찰이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대형 이슈들을 수사하면서 검찰개혁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듯해 우려스러워요. 검찰은 번번이 그런 식으로 검찰개혁을 피해왔어요. 검찰은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 현 정부 첫 검찰 최고 수장인 문무일 총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처음엔 좀 기대를 했는데, 2015년에 벌어진 서울남부지검 성폭력범죄에 대한 조직적 은폐와 관련한 감찰과 수사 요구를 묵살하고, 이의제기절차 지침을 만들기는 했는데 안 하느니만 못한 규정을 비공개 예규로 만들어 오히려 상명하복을 강화한 일 등을 겪으면서 기대를 접었어요. 노력은 하시는 것 같은데 시대의 요구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잘못된 조직문화에 워낙 젖어 있던 분이다 보니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을 듯해요.”

 - 정부가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검찰이 너무도 문제가 있어 개혁 대상이 됐어요. 검찰이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아무 말을 못했던 사람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생각하면 답답해요. 검찰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스스로 변화하는 노력을 해야지,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반대부터 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대형 이슈들 수사하며 검찰 개혁 후순위로 밀려…문무일 총장, 노력하고 있지만 시대의 요구엔 부족

 임 검사는 우리 사회의 미투운동에 불을 지핀 서지현 수원지검 청남지청 부부장검사(45·사법연수원 33기)의 성추행 피해 사실 폭로 때도 추가폭로 등을 하며 힘을 보탰다. 서 검사 성추행 피해 당시 서 검사를 만나 피해 진술을 요청하고 감찰에 협조하도록 설득했으며 그 과정에서 최교일(56·현 자유한국당 의원) 당시 검찰국장이 불러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느냐”고 질책했다고 페북에 밝혔다. 또 자신이 2003년 직속상관에게 입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2015년 후배 여검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 진모 전 검사에 대한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며 전·현직 검사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 서 검사의 폭로로 꾸려진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을 끝으로 사실상 해산했어요. 조사단에 몇점을 주고 싶나요.

 “40점이오. 여론의 압박 속에서 맘고생이 컸으니 그나마 40점을 준 거예요. 하지만 결과물은 조사단에 수사 의지가 없었음을 명백히 드러냈어요.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대한 증거가 충분한지 이런저런 뒷말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검찰이 개인적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하고 ‘은폐’라는 조직적 범죄에 대해선 눈감았으니까요.”

 - 최교일 의원은 임 검사의 폭로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며 부정했어요. 소환조사도 거부하고 안 전 검사장 재판에 증인으로도 나서지 않고 있고요.

 “절대 안 나오겠죠. 그분은 많이 유하신 편으로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검찰 조직문화에서 승승장구한 전형적인 검사예요. 저를 아껴준 고대 선배이기도 해서 마음이 많이 불편해요. 최 검사장님이 증인으로 나오면 제가 증인으로 불려가는 모양인데, 그래도 사실대로 증언해야죠.”

 - 2015년 후배 여검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 진모 전 검사에 대한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며 지난 5월25일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과 김수남 당시 대검차장을 비롯해 이모 당시 감찰본부장, 장모 당시 감찰1과장, 오모 당시 서울남부지검장, 김모 당시 부장검사 등을 고발했어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제가 매달 참고자료를 제출하고 있어요. 지난달까지는 빨리 고발인 소환조사해달라고 독촉하다가, 이번달부터는 차라리 경찰청에 수사지휘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그 사건에 직접 관련된 당시 감찰1과장이 올해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당시 조직적 은폐에 가담한 당시 대검 대변인 등이 검사장으로 같이 승진했는데, 이런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을까요?”

 - 황교안 전 총리의 대통령 출마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어떻게 봐요.

 “수오지심(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거죠. 법과 원칙을 말하는데, 그 사람들의 법과 원칙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명박 정부 첫 법무부 장관인 김경한 장관도, 황교안도 미스터 법질서란 별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돼 있으니 그들의 법질서는 뭘까요? 대통령의 그와 같은 폭주를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건데, 그걸로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나요?”

<b>‘미투운동’ 조력자로</b> 2018년 2월6일 임 검사가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에 검찰 성추행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운동’ 조력자로 2018년 2월6일 임 검사가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에 검찰 성추행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했다. 그는 1974년 부산 대신동에서 태어났고,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보수동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딸 셋을 키웠다고 했다. 임 검사는 막내였는데, 집안형편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 딸부잣집 막내면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았겠어요.

 “부모님이 공부에 한이 많으셔서, 교육열이 뜨거웠어요. 딸 셋이 내려갈수록 공부는 잘하는데 못생겨서(웃음),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 사랑을 쟁취했어요. 부모님이 첫째는 교수, 둘째는 의사, 셋째는 법관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셨는데, 검사가 됐으니 제가 소원 하나는 이루어드린 셈이에요. 제 적성에도 딱 맞고요.”

 -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나요.

 “아주 늦게 트인 아이였어요. 여덟, 아홉살 때까지 말이 어눌하고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 낙제점을 받았어요. 한글을 익힌 후 책을 좋아하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부를 잘했어요.”

 - 주로 어떤 책을 즐겨 읽었나요.

 “초등학교 때는 세계문학전집과 김소월 시집, 윤동주 시집에 빠졌어요. 시 외우길 좋아했고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간 적도 많았어요. 고전은 <논어> <맹자>, 역사소설은 <삼국지>, 역사책은 <사기>를 좋아해요. 임관하고 나서도 제가 감정이 메마르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시를 읽어서일 거예요.”

 - 성격은 어땠나요.

 “왜?라는 의문을 쉽게 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 같아요. 낙천적이고 밝아 친구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중·고교 시절 사춘기는 호되게 보냈어요. 우리집이 가난한 것과 심한 외모 콤플렉스로 부모님께 반항을 많이 했거든요.”

 - 많이 가난했나보군요.

 “아휴, 아니에요. 언니들 옷 물려입기 싫고 고기 반찬 실컷 먹고 싶어서였죠(웃음). 당시 아버지는 쌀 배달하는 자전거로 저를 등·하교를 시켜주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 대들다 대판 다투고 사흘간 학교에 걸어서 갔어요. 나흘째 되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로 쫓아오면서 타라고 하셨어요. 못 이기는 척 올라탔는데 바람결에 아버지 등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숨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내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2 때 그렇게 사춘기가 끝났어요.”

<b>세 자매 중 막내</b> 1970년대 부모가 운영하던 부산 대신동 수정상회 앞에서 언니들과 함께 나란히 선 임은정 검사(왼쪽 사진 중 오른쪽)와 부산 대신여중 졸업 때 모습.

세 자매 중 막내 1970년대 부모가 운영하던 부산 대신동 수정상회 앞에서 언니들과 함께 나란히 선 임은정 검사(왼쪽 사진 중 오른쪽)와 부산 대신여중 졸업 때 모습.

 - 그런 부모님인데, 딸이 징계받았을 때 상심이 크셨겠어요.

 “2012년 무죄구형 전 징계청원을 하고 부모님께도 ‘제가 무슨 짓을 할 건데 신분의 변화가 있을 수 있으니 마음 비우시라’고 미리 알렸어요. 며칠 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다며 뜻을 바꿔줄 수 없냐고 사정하셨죠. 아버지는 3월8일 암수술을 받으시고 한달간 입원하셨는데, 부모님은 저 몰래 우시고, 저는 부모님 몰래 울었어요. 퇴원 후 어느 날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은정아, 아빠 힘들었다. 독립투사들이나 민주화운동하던 사람들 부모들은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 지금 아버지 상태는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아버지는 딸이 검찰총장이 되기를 학수고대하며 딸의 인사에 일희일비하던 분이세요. 그런 분이니 제가 징계를 받고 보수신문들에서 피의자와 검사실에서 성관계를 맺은 모 검사 등과 함께 도매급으로 ‘부끄러운 검사’로 매도당하고, 부임지를 남에 번쩍, 북에 번쩍 옮겨다니는 걸 보며 너무도 힘들어하셨죠. 지금도 성에 좀 안 차하시긴 해도 우리 딸이 잘했다고 뿌듯해하세요. 아마도 이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 경향신문 토요판을 부산에서 싹쓸이하셔서 동네에 뿌리고 다니실 거예요(웃음).”

“딸바보 아버지 제 인터뷰 나온 경향신문 토요판 싹쓸이해 동네에 뿌리실 것”

 - 1993년 고대 법학과에 입학했는데, 대학생활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어려서부터 춤추는 걸 좋아해 1학년 때는 고대 응원서클 영타이거에서 활동했어요. 덕분에 검사가 되고 나서 노래방에 가면 ‘젊은 그대’를 부르다 제 동작이 커서 뒷사람이 맞기도 했죠(웃음). 2학년 땐 운동권도 아닌데 얼떨결에 끌려가 법대 여학생회장이 됐어요.”

 - 사시에 비교적 빨리 합격했더군요.

 “재학 중에 사시에 합격하려고 두번 휴학했어요. 5학년 때 1차를 두번 도전 끝에 합격했고 6학년 때 2차 합격했어요.”

 그는 천성이 명랑해 보였고 말은 속사포처럼 빨랐다. 오후 2시에 만났는데 시계는 어느덧 오후 7시를 가리켰다. 사위는 이미 어두웠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검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돌아온 답은 상투적인 듯했지만 진리를 담고 있었다.

 “검사선서문에서 검사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해요. 그런 검사를 닮으려고 노력해야죠. 그게 검사니까요.”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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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친선, 평화'의 평양국제영화축전 열리다

북한 예술로 읽다(32)
  •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9.22 19:58
  • 댓글 0
▲ 도라지꽃의 오미란;사진 : 동영상 캡처]

4·27 선언 이후 기대와 달리 민간 부문에서 문화예술의 교류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다만 제3국을 경유한 물적 교류와 국제행사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영화’이다.

지난 7월 15일 저녁 부천시청 앞 야외 상영장에서는 ‘우리집 이야기’가 최초 공개 상영이 되었다. 스무살 아가씨가 고아 7명을 키워내 ‘처녀 어머니’란 칭호를 받은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 외에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장편영화 ‘불가사리’와 ‘김동무 하늘을 날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를 과거와 달리 일반 상영했다. 지난 시기 특수자료로 묶여서 제한적으로 상영한 것과는 달리 최초로 일반 대중들에게 상영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9월6일부터 (사)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가 개최하는 申필름예술영화제 개막식에서는 고 신상옥 감독 연출에 고 최은희 주연의 조선영화 ‘소금’이 국내 최초로 공개상영을 했다. 이 영화로 최 배우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 북측은 최초로 조선영화 <춘향전>(1959)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꽃파는처녀>(1972)가 체코에서 열린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9월7일 열린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는 ‘북한영화 특별전: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을 노래하다’를 마련했다. 하와이국제영화제와 루체른국제영화제 등에서 소개된 북미합작 영화인 ‘산너머 마을’과 북측 애니메이션인 ‘향기골에 온 감자’, ‘농부와 얼룩이’, ‘참외를 굴린 개미’, ‘나무할아버지가 준 선물’을 상영했다. 

북측에서도 국제영화제가 있다. 북측의 대외 이념이기도 한 ‘자주, 친선, 평화를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87년 9월 1일 개막한 <제1차 쁠럭불(비동맹) 가담 및 기타 발전도상 나라들의 평양영화축전(이하 ‘평양국제영화축전)>이 그것으로, 다분히 정치적인 배경과 의도에서 출발했다. 1983년 10월 2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의원연맹(IPU) 제70차 총회 불참을 선언한 동기간에 진행된 ‘비동맹 및 개발도상국들의 교육·문화장관 회의’ 평양 합의이기 때문이다. 이후 1986년 9월 제8차 비동맹정상회의에서 평양 개최를 결정했다.

1987년 9월 1일에 시작한 제1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는 예술영화 46편, 기록영화 42편, 만화영화 22편이 출품되었다. 예술영화 부문에서는 북측의 <도라지꽃>이 영예의 ‘횃불금상’을, 리비아의 <파편>과 이집트의 <죄없는 사람>이 ‘횃불은상’을 수상하였다. <도적을 쳐부신 소년>이 ‘만화영화 부문’ 최우수상을, 기록영화 <조선의 사시절>이 기술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살펴보면 예술영화 부문은 이승환 영화인동맹 부위원장이자 영화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장이, 단편 및 만화영화 부문은 이하규 과학교육영화촬영소 총장이 맡았다.

여기서 탄생한 스타가 바로 최우수 여자배우상을 수상한 오미란이다. 북측 최고의 인기 여배우이자 인민배우인 오미란은 특히 고향이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으로 알려져 남측에서도 주목을 끌기도 했다. 본인은 평양에서 출생을 했지만 인민배우이기도 한 부친 오향문이 전곡 출신으로, 한국 전쟁 시기 북행한 후, 국립연극단과 조선번역영화제작단 등에서 연극배우 겸 화술배우(성우)로 활동을 하였다. 1992년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받고 2000년 10월 사망했다.

‘소박하며 진실하고 화술이 여성적’이라고 평가받은 오미란(1954~2006)은 1972년 평양예술단 무용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자리를 옮긴 후 1980년 <축포가 오른다>의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1984년 ‘노력영웅’과 ‘공훈배우’의 칭호를 받았고, 1987년 ‘인민배우’가 되었다. 대표작은 <도라지꽃> 외에 <생의 흔적> <민족과 운명: 6~10부> 등이 있다.

▲ 15차 평양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 : 조선의 오늘]

1990년 9월에 평양국제영화회관에서 열린 제2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의 마지막 날 시상식에서는 이란영화 <행복의 작은새>가 예술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을 수상했다. 기록영화 부문에서는 임수경의 북측 활동을 담은 <통일의 꽃>이 횃불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오미란은 1차에 이어 2차에서도 <생의 흔적>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3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1992년 9월 6일에 열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바로 불멸의 영화로 칭송되고 있는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이 예술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을 받은 것이다. 이 작품은 1992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50회 생일을 기념해 제작이 되었다. 시리즈의 1부와 2부에 해당하는 최덕신을 다룬 작품으로, “개인의 운명은 결국 민족의 운명 속에 귀속 된다”는 점을 모티브로 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영화제는 이어져 4차 5차 행사는 계속되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해에도 제4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9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렸다. 지도자를 추모하는 분위기에서 개최된 영화제에서 북측은 역대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예술영화 부문에서 <고마운 처녀>의 김경애가 연기상을, 기록영화 부문에서 <평양의 사계절>이 촬영상을 받는 데 그쳤다. 1996년 9월16일부터 24일까지 개최한 제5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는, <그는 오늘도 대오에 서있다>가 기록영화 부문 횃불금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제6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1998년 9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 여기서 북측은 <먼 후날의 나의 모습>으로 예술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과 여자배우연기상을, <천하제일봉>으로 기록영화 부문’에서 횃불금상과 촬영상을 받아 영화제 개최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만회하였다. 영화제 직전인 8월31일 광명성 1호를 발사하고, 9월5일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면서 ‘김정일 시대“를 축하하는 의미가 강했다.

2000년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열린 7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지난 시기의 고난을 극복하고, 특히 6.15 공동선언의 분위기 등 대외관계의 순풍에 힘입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였다. 출품 작 수도 대폭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학교>, <남자는 괴로워> 등 6편의 일본영화가 최초로 상영이 되었다. 횃불금상은 이란영화 <잃어버린 사랑>에 돌아갔지만, 북측은 재일조선인의 차별을 다룬 <사랑의 대지>가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함으로써 체육인 최초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정성옥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조선의 훌륭한 딸>이 기록 및 단편영화 부문에서 영화문학상을 받았다.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된 2002년에도 북은 예외없이 8차 영화제를 개최했다. 이 해에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초연하기도 해서 체제의 건재함을 만방에 알리도 했다. 러시아영화인 <별>이 횃불금상을 받았고, 북측은 <살아있는 영혼들>로 횃불은상과 남자배우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색적인 것은 특별상을 받은 영국의 기록영화 <삶의 경기 : The game of their lives>로, 1966년 월드컵대회에서 8강 신화를 달성한 북측의 축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대니얼 고든이 제작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는 <천리마축구단>으로 소개가 되었으며, 북측에서 처음으로 촬영된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의의가 있다.

북의 영화사적으로 주목할 것은 <살아있는 영혼들>이다. 광복을 맞아 귀국길에 오른 5천명의 강제 징용 노동자들을 일본이 폭침으로 고의 수장시킨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의 침몰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이제까지 제작된 조선영화 중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었으며, 컴퓨터그래픽(CG)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영화이고, ‘반일’을 주제로 하면서도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2002년 4월 개봉 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14차 평양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 : 노동신문]

이후 평양국제영화축전은 2006년 영화상에서 ‘횃불’이라는 명칭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는 국제영화제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순항을 하고 있다. 짝수년도에 열리는 격년제로 양각도에 있는 국제영화회관을 본 상영관으로 하여 인민문화궁전, 대동문영화관, 개선영화관 등에서 열리고 있다. 8차 영화제 이후 금상을 받은 작품은 아래와 같다.

2004년 제9차 <어머니의 딸, 중국>, 2006년 제10차 <나폴리 학교, 독일>. 2008년 제11차 <집결호, 중국>, 2010년 제12차 <걸어서 학교로 가다, 중국>, 2012년 제13차 <큰 희망, 독일>, 2014년 제14차 <나의 아름다운 나라, 독일>, 그리고 2016년 제15차 영화제에서 북측은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던 <우리집이야기>로 최우수 작품상인 금상을 거머쥐었다.

조선영화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바로 스토리이며, 이것을 담은 ‘영화문학’(시나리오)을 기초로 하여 영화 제작이 이루어진다. 김승구-백인준-리종순-리춘구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영화문학은 작품 창작계획에 따라 각 영화촬영소에 소속된 영화문학창작실에서 창작하며, 작품 심의와 선정은 각 촬영소의 심의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데, 해당 촬영소의 부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출대본은 감독과 촬영감독, 미술가, 작곡가 등 주요 예술가들이 참여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채택이 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독은 제작 스텝을 구성하고 제작을 한다.

완성대본은 해당 촬영소에서 당중앙위원회에 영화의 첫 필름을 보낼 때 함께 보낸다. 이것은 마지막 수정을 위한 편집을 고려한 조치이다. 완성대본을 만드는 책임은 부연출가가 맡는다. 이와 같은 단계를 거친 뒤에도 촬영소에서는 영화를 프린트해서 먼저 내부 시사회를 하고 이어 다른 촬영소와 문화성 영화관리국에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영화문학창작사는 영화대본을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기관으로 1948년 6월 '시나리오창작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주제의 대본을 창작해 왔는데, 한국 전쟁시기에는 <소년빨치산> 등을, 천리마운동 시기에는 <뜨거운 이름> 등을 창작했다. 최근에는 선군과 강성을 ‘종자’로 한 예술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 <한 장의 사진> 등을 선 보였다. 대표작으로 1992년부터 시리즈물로 제작이 이어오고 있는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이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가사를 중시하는 북측 경향에 따라 ‘가사창작실’을 따로 두어 OST 제작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창작실의 초연작품으로는 영화 <한 의학자의 길>의 주제곡인 ‘석류꽃의 노래’로 가수 남희가 불렀다고 알려졌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지애의 노래`(영화 `조선의 별`), `나는 알았네`(영화 `월미도`),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영화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사가로는 전동우가 있다. 함경남도 금야군의 빈농에서 출생한 그는,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마치고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청춘’(1961년) 발간 등 200여 편의 서정시를 발표했다. 시인이 작사하는 것이 일반화 된 북측에서 그 역시 ‘나의 조국’ ‘종다리’ 등의 명작을 남겼다. 1972년 조선영화문화창작사 가사창작실 실장을 맡아 ‘기쁨의 노래안고 함께 가리라’(1976) 등 영화주제가와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1989) 등을 작사했다. 쉬우면서도 깊은 철학을 담은 그의 작풍은 서정성이 풍부해서 널리 사랑을 받았다. 1986년 김일성상 계관인을 수여한 그는 1999년 10월 애국열사릉에 영면하였다.

영화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는 ‘평양연극영화대학’이 있다. 1953년 11월1일 평양종합예술학교로 문을 연 이 학교는 56년 8월 `국립연극학교`로, 59년 9월 `평양연극영화대학`으로, 72년에는 `평양영화대학`으로 교명을 달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기, 연출, 이론 등 관련학과 외에 2008년부터는 특수촬영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는 화상기교학과, 영화음향학과, 영상가공학과 등을 신설했다. 산하에 연극영화예술연구소와 박사원(대학원), 청소년영화창작단 등을 두고 있다. 북측 영화계 인사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으로, <꽃파는 처녀>의 홍영희, <도라지꽃>의 오미란 등의 스타를 배출하였다.

16차 평양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 : 노동신문]

2018년 제16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은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평양특별시 태송군 영흥2동에 소재한 영화제조직위원회(www.korfilm.com.kp) 안내에 따르면, 영화제 시상은 장편영화 경쟁, 기록영화와 단편 및 애니메이션 경쟁, 조직위원회 특별상, 국제심사위원회상, 기타 특별상으로 구분이 되었다. 출품작의 경우 동영상 자료는 HD 기준으로 하여 avi, mp4, mkv 중 택일한 파일로 제출하면 된다. 영화제 측에서는 “독립, 평화와 우정과 함께 세계 영화 제작자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영화예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4.27선언의 실천적 이행을 위해 남측의 관련 단체에서도 영화제 참관을 신청하였으나, 역시나 참관은 실현되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7월 문성근 배우를 공동위원장으로 한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를 발족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영화교류를 의제화 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부천국제영화제 측도 참관 신청과 지속적인 교류를 제안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참관에 더해 10월 부산에 북측 영화인 초청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영진위에서는 북측에 남아 있다고 알려진 이만희 감독의 걸작 <만추>(1966) 등의 지난 영화 프린트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사업을 제안하였다.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대중적 전파력이 강한 영화 부문의 교류가 순항하기를 소망한다.


나의 사랑 나의 행복 - 예술영화 <나의 행복>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W-Y8itaSqD4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 - 예술영화 <열네번째 겨울>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YYoF-5MB2jk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 -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G0e8JmAL9Wk

아, 내 조국 - 예술영화 <은비녀>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2XhPjXcoxxo

동지애의 노래 - 예술영화 <조선의 별>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VSRtw0pfG5Q

사랑의 별 - 예술영화 <봄날의 눈석이>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W_3JCnXtVs

- 예술영화 <평양날파람> 
https://www.youtube.com/watch?v=6X7TrJnyH6U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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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포기', 알고보니 '가짜뉴스'

한번도 인정 않던 北이 오히려 'NLL 인정'...결국 '정치 공세'만 남아
2018.09.22 20:24:48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 언론들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군사 분야 합의서'의 '서해 적대 행위 중지 구역' 설정에 대해 'NLL 포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NLL 포기'는 팩트일까? 군사 분야 합의서 어디를 봐도 'NLL 포기' 문구는 없다. 오히려 합의서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북한은 지금까지 NLL을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NLL을 인정한 것이다.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NLL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우리군이 주장해 온 NLL을 인정한 것이 맞다. 따라서 'NLL 포기' 주장은 일종의 '정치 공세'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왜 이들은 'NLL 포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재미'를 본 적이 있다. 2012년 박근혜가 당선됐던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 정문헌 전 의원 드이 중심이 돼 펼쳤던 'NLL 포기 공세'가 2018년에도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면서 이같은 논란을 벌였다.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먼저 나섰다. 이 신문은 21일자 3면에 "국방부 '靑비서관, 추석 밥상서 NLL 팔아먹었다고 할까봐 그런 듯'"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 신문은 "군 안팎의 소식통들은 '특히 공중·해상 적대행위 중단은 사실상 북한 뜻대로 됐다. 해상의 경우,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민감하게 걸려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뜻대로 흘러갔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또 '국방부 당국자'가 "내일모레 추석인데 추석 밥상에 NLL 팔아먹었다고 (언론에) 나와버리면 안 돼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도 전했다. 군 소식통, 국방부 당국자 등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됐다.  
 
조선일보가 꼬투리잡은 것은 NLL 기준으로 아래 쪽(남측)으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위쪽(북측)으로는 상대적으로 짧게 '서해 적대 행위 중지 구역'이 설정됐다는 것이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육지와의 거리' 등 우리 측에 유리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전체 면적으로 따져도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북한이 우리 측이 주장해온 NLL을 인정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사실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교통방송 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NLL 일대라는 건 NLL이 존재했을 때 일대가 나오는 것이지, NLL 없이는 일대가 안 나오기 때문에 (북한이 NLL을) 인정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NLL 주변에서 군사 행동을 자제하자는 합의를 'NLL 포기'로 호도하는 셈이다. 평화 분위기에 위기감을 느낀 극우 진영이 공세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군사 행동 자제 구역'을 누가 몇 킬로미터 더 가져갔는냐 하는 지엽말단적인 부분들을 적극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같은 주장을 자유한국당이 받았다. <조선일보> 조간에 'NLL 팔아먹었다'는 취지의 기사가 나간 날 김성태 원내대표는 아침 회의를 주재하고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정찰 자산을 스스로 봉쇄했다"며 "'노무현 정부 시즌 2' 정부답게 노 전 대통령이 포기하려 했던 NLL을 문재인 대통령이 확실하게 포기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1일자 ⓒ<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이에 대해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22일 "'NLL 포기'는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공작의 2탄이며 사실상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김성태 원내대표의 전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에 대해 매우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 또한 이러한 허위 주장은 팔천만 겨레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김 원내대표의 주장에 반박하며 "첫째, 서해 완충구역은 북측에 양보한 것이 아니다. 쌍방의 해안포 포병 등 밀집된 전력규모 등을 고려할 경우 우리측에게 상당 부분 유리하게 설정된 것이다. 둘째, 완충구역은 해상과 육지를 포괄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측에게 유리하다. 셋째, 이번 완충구역은 NLL을 기준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사실상 우리의 NLL을 북측이 인정한 것이다"라고 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번 군사분야합의서는 서해 완충지역을 '분쟁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전환한 것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며 "그런데도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NLL 포기'만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케케묵은 안보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시대착오적 인식과 후진적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팔천만 겨레의 염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NLL 포기 가짜뉴스 생산을 즉각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했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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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샀다, 하지만 버스 못탔다, 몇년째 계속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9/23 10:09
  • 수정일
    2018/09/23 10: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9월 평등UP ②]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고속도로에서 호두과자 먹기... 내년엔 가능하겠죠?

18.09.22 19:38l최종 업데이트 18.09.22 20:06l

 

'민족 대명절'이라는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이 날은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친지를 보는 시간이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편 누군가에게 추석은 가족 내, 일상의 차별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별, 장애, 고용형태, 성적지향 등에 따라 마주하는 다양한 추석명절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명절'이 되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2014년 겨울이었다. 설 명절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러 갔다. 고향에 가려고 버스터미널로 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었다. 표를 가지고 있어도 탈 수 없다는 것을. 아마도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표를 흔들며 버스를 태워달라고 소리치기 전까지는.

그해 봄, 송국현이 죽었다. 시설에 27년을 갇혀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지 6개월 만에 집에 불이 났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국가에 요청했지만, 장애등급이 낮기 때문에 안된다는 말만이 되풀이 되던 순간, 송국현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고, 장애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정당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단지 '장애'가 이유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분하고 억울하다.

탈 수 없는 버스에 표를 끊고 타보기를 수없이 했다. 탈 수 없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터미널에 가는 마음은 어떨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 만원 버스라 타지 못한 적은 있어도, 아예 탑승이 불가능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비장애인으로 불리는 나는 표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이 되어 보상을 받을 수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표가 있어도 고객이 될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싶었던 우리 모두는 송국현을 추모하고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집에 자주 방문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가까운 곳이 그의 집이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갔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장애가 있든 없든 고속버스 타고 여행도 다녀보고 싶었고, 송국현의 억울한 죽음에 사과도 받고 싶었던 해, 그 해가 강렬하게 아직도 빛난다.

우리도 버스 타고 싶다
   
 2014년 12월 강남고속터미널 장애인 이동권 투쟁장면
▲  2014년 12월 강남고속터미널 장애인 이동권 투쟁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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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이용한다면 시외이동은 기차로 한다. 왜냐하면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0'대이니까! 하지만 기차는 철로가 있는 곳까지만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딱, 거기까지만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2014년부터 부지런히 명절은 물론 기회만 닿으면 버스타기 투쟁을 하러 버스터미널에 갔다.

시외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몇몇 당사자들은 수많은 호두과자 중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 좀 먹어보자며 외쳤다. 물론 개인 차량이 있으면 못 먹을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나를 포함해 내 동료들은 개인차량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고속버스 휴게소 호두과자를 먹을 수 있는데, 내 동료들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억울했다. 내가 사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서 사먹고 싶었다.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고속·시외버스가 되어서 어디든 갈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하고 재미있는 구호였다. 바로 그것이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외쳐야하는 구호가 된다.

일상에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종종 시민사회계에서 OO버스를 타고 투쟁의 현장으로 가는 프로젝트를 하거나, 내가 활동하는 곳에서 단체로 지역을 이동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 참으로 난감하다. 분명 장애인 차별금지법에서는 보장구는 신체의 일부라고 하는데, 우리는 신체의 일부를 분리해서 버스를 타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렵다. 먼저, 장애인과 함께 이동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물리적 환경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미리 물어봐주거나 사전에 점검해야 할 것을 챙겨주는 분들에게 참 고맙다. 물어봐주기!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삶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 너무나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기가 중요하다.

또 하나는, 장애인도 당연히 단체 이동을 하는데 탑승 가능한 리프트 장착 버스가 너무 없다는 것. 장애를 가진 성인의 평생교육 기관인 노들장애인야학은 1년에 한 번씩 모꼬지를 가는데, 정말 전쟁이 따로 없다. 장애인 당사자가 많은 곳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미리 재빠르게 버스 대절을 준비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설 업체들이 개별적 운영을 하고, 그 숫자마저 매우 적으니 대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것은 이러한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버스도 같이 타고, 내 옆집에 함께 살고, 나의 일터에 동료로 함께하며, 학교 안에서도 내 친구로 있는 것이다. 바로 '일상'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특별한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생애주기 안에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함께 했었는가가 장애인식개선교육보다 때로는 더 값진 것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탈 수 없는 버스를 타러갈지 몰랐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한 활동가의 말이다. 나 역시 그랬고, 2014년 설 명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이라니!! 명절만 앞두면 이번엔 어떤 제목으로 현수막을 맞춰볼까 고민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언제까지 명절을 터미널에서 보내야 하나 생각하며 평화로운 명절을 꿈꾸기도 했다.

2017년 추석명절에 국토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교통약자 이동권 증진을 위한 민관 협의체를 꾸리고, 2018년 8월까지 4차례의 논의를 진행했다. 논의를 바탕으로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내용을 발표한다. 시외이동권을 포함하여 시내 저상버스 도입 100%를 위한 방안, 마을버스와 농어촌 버스의 저상화, 특별교통수단의 운영, 단체이동을 위한 교통수단 등의 내용을 담았다.

마침내 2019년 하반기부터 고속·시외버스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9월 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국토교통부는 광화문광장에서 훨체어탑승설비를 갖춘 고속버스 시승 행사를 열기도 했다.

내년 추석에는... 버스 타고 고향으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시승회에서 한 장애인이 탑승 체험을 하고 있다.
▲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시승회에서 한 장애인이 탑승 체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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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5년에도 시범사업 예산이 국회까지 갔으나 국회에서 증발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큰 좌절과 씁쓸함을 맛보며 더욱 단단해진 우리다. 버스타고 호두과자 먹으러 휴게소 가는 것이 소망인 우리다. 그렇기 때문에 기분은 나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또 쉬지 않는 겨울을 보내고, 내년 하반기 내 동료들과 고속버스 타고 여행을 약속할 것이다.

그래도 많이 왔다. 처음 국토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 2020년까지 고속버스 모델을 연구하고 2021년부터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지금은 2019년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고속버스로 이동하기 위해 4년 동안 타지도 못할 버스 티켓팅을 하고, 15번의 버스타기를 했다.

물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하기도 했고, 시외이동권 차별을 구제하는 소송도 했고, 국회의원들과 함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도 했다.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고, 권리를 권리로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존엄한 인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역사는 이렇게 변하고, 권리는 이렇게 확장되고 만들어지는 것을 매번 배운다.

앞으로 전 노선 100% 리프트 장착 버스가 운행될 수 있게 하려면,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배제되지 않으려면, 또 몇 번이고 무엇인가를 반복하며 외치고 길 위의 춤을 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동에서뿐 아니라 또 어디선가에서 차별이라는 벽에 마주할 것이다. 그때마다 벽에 균열을 내는 것. 나도 사람이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 시켜내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의미 아닐까 싶다.

"내년 하반기, 그러니까 2019년 추석부터는 버스타고 고향 갈 수 있겠지요? 우리 같이 탑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양유진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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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조건되면 개성공단 정상화 될거란 확신든다"

 평양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 회장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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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2  18: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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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에 다녀 온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21일 "어느 정도 조건이 마련되면 개성공단 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왔다"며 이번 방북 성과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두어 차례 소개를 해주어서 개성공단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돌아온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평양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신 회장은 "개성공단 투자기업, 영업기업, 협력기업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염원을 가지고 갔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조건이 마련되면 가능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 4.27 판문점선언에서 철도·도로연결사업 외에 10.4선언 합의사업 추진이라는 표현으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에 대해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 2조 2항에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한 데 대해서도 기대를 표시했다.

20일 새벽 4시에 평양을 출발해 올라간 백두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타고 있는 삭도(케이블카) 앞에서 대화하는 신 회장의 모습이 방영된 바 있어서 그것부터 물었다.

"천지로 내려가는 길에 삭도에 앉아 있던 문재인 대통령과 눈이 마주쳐서 목례만 했는데 마치 개성공단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또 내쪽을 쳐다보길래 '맞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삭도쪽으로 걸어 갔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고생하는 개성공단 회장"이라고 소개를 하고 그 자리에서 2분여 가량 이야기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신 회장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간간히 웃기만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께서 '(개성공단)시설물들이 잘 유지보수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이야길 들었느냐'고 물어서 '지난 14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행사에 참석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번에 와서도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다 똑같은 이야길 하더라'고 답했다"고 했다.

신회장은 "만나 본 북측 인사들은 한결같이 '고생이 많다.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알고 있다'고 격려를 하더라"며 허탈한 듯 허허 웃었다. 

또 "북측 인사들은 개성공단은 당연히 (다시)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측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지난 8월)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처음 만난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이번 평양 방문 기간에 수시로 마주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8월 13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도 개성공단 정상화 의제가 다뤄졌다고 확인을 해주었다는 것. 그런데 정작 통일부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옥류관 앞에서 만난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기계 다 썩고 있다, 그거 우리가 지금 다 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금강산이고 개성공단이고 다 무너진다"고 신 회장에게 '쎄게' 한 이야기도 전했다.

신 회장은 북측에서 공장 설비들이 동파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전기도 공급하고 있다는 정도는 김 부위원장과 리 위원장 등 고위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했으나 기계를 가동하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 벽면의 현수막. '한반도 신경제지도, 개성공단 정상화로부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첫날(1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리룡남 내각부총리와 특별수행원에 포함된 17명의 경제인들이 면담할 때도 개성공단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리룡남 내각부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주재해서 17명 경제인과 함께 1시간 정도 면담을 하던 중 신 회장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주요 3대 사업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리 부총리가 '그렇지 그것부터 해야지, 신경제지도는 무슨'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

김현철 경제보좌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언급에 리 부총리는 "우리도 2020년까지 목표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무너진 기초산업을 다시 복구시켜서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얹겠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북에서 3대 사업을 안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결국 남측에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있는 것(3대사업) 부터 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리 부총리와 남측 경제인들의 면담에는 방강수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조철수 부위원장, 황호영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지도국장 등이 나왔는데, 개성공단 기업인들과 낯이 익은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총국 부총국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신회장은 전했다.

한편, 신 회장은 이번 방북기간 중 아침에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평양역까지 산책을 갔다왔는데 북측 관계자들이 알고도 특별히 제지하지 않더라며,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또 우리 땅을 밟고 오른 백두산에 대해서는 "과거 두번 오른 적 있는 있는 중국쪽 백두산이 급경사에 나무가 꽤 자라는 풍경인 반면 우리쪽 백두산은 급경사가 없고 토양의 차이인 지 주변 10km 정도에 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면서 "무엇보다 우리 땅을 밟고 올라간다는데 훨씬 감동이 컸다"고 소회를 밝혔다.

20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백두산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비가 꽤 내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거 틀렸다'고 했는데 삼지연비행장에 내려 백두산까지 40km 남짓한 외길 도로를 '넥서스' 짚차 49대에 분승해 달리는 도중 도로 옆에 도열하듯 서 있는 침엽수림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삼지연 비행장을 떠날 때까지 맑은 날씨가 계속 돼 "날씨마저 우리를 돕는구나"라는 상서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5년에 대집단체제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본 적이 있는 신 회장은 이번 '빛나는 조국'에서는 남측 손님들을 배려해 이념적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한 것이 느껴졌다고 하면서 "일부 수행원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때 어떻게 이런 공연을 준비하겠느냐는 걱정을 하기도 하더라"고 전했다. 

신 회장은 "대통령이 올해 8.15경축사에서도 평화가 경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우리가 늘 하던 이야기"라고 하면서 "결국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성공단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큰 의미에서 한반도신경제지도가 그려졌고 그 안에 개성공단이 포함되어 있으니 여기에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결국 평화가 담보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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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 ‘폭등’에 이재명 경기지사 함께 ‘뜨는’ 이유

분양원가공개 전격 추진,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토지공개념 도입 주장까지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18-09-22 09:44:31
수정 2018-09-22 09:44:3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자료사진
이재명 경기도지사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부동산 정책이 눈에 띈다. 분양원가를 공개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분양가를 견제하고, 공공임대주택의 지자체 참여율을 늘려 서민 주거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구체화해 국토보유세를 걷고 그 세수로 전 국민 기본소득을 지급해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복지 확대’라는 큰 그림도 제시했다.

‘예산 절감’ 공공건설 원가 공개, 
분양원가공개로 확장  
도민 10명중 9명 찬성, 폭발적 지지… 
반쪽짜리 공개 논란은 왜?
 

이재명 지사가 지난 7월과 8월 꺼내놓은 ‘건설공사 원가공개’는 업계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이재명 지사는 10억원 이상 공공건설사업에 대한 설계내역서와 도급내역서, 하도급내역서, 원하도급 대비표, 설계변경내역 등 원가자료를 홈페이지에 그대로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알려지지 않던 자료가 대규모로 풀리면서 다양한 ‘검증’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지사는 연이어 건설공사 단가 산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100억 미만 공공건설사에 적용되던 ‘표준품셈’을 ‘표준시장단가’로 바꿔 예산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표준품셈이란 재료나 노무 등 ‘품셈’에서 제시한 수량에 단가를 곱하는 방식이고 표준시장단가는 표준품셈을 적용해 완료한 공사에 계약단가나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산정한 직접공사비를 말한다. 따라서 정해진 단가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표준품셈보다는 시장 상황을 반영한 표준시장가격이 대체로 낮게 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경기도는 설명한다. 이재명 지사는 이에 대해 “셈법만 바꾸면 1,000원 주고 사던 물건을 900원에 살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의 부당한 이익은 누군가의 손해로 귀결된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지사가 연이어 발표한 공공건설공사 원가 공개와 품셈 변경은 ‘예산 절감’ 차원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가 원가 공개 범위를 경기도시공사가 짓고 있는 아파트의 건설원가 공개로 범위를 넓히면서 국민들과 이해 관계가 높은 ‘분양원가공개’로 확장됐다.

이 지사는 공공건설원가공개 방침을 밝힌 지 약 보름만 뒤에 경기도시공사에서 시행하는 아파트 건설사업 등에 대한 원가 공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27세에 취업한 청년이 수도권에서 내 집 하나 장만하는데 왜 15년에서 25년이나 걸리는지, 왜 그 기간은 점점 늘어만 가는지 의문”이라며 경기도시공사의 아파트 건설 원가 공개가 집값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지사의 발언은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수천만원씩 오르는 서울의 부동산 시장과 맞물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기도시공사의 아파트 원가가 공개되면 이를 근거로 민간건설사들의 아파트 원가를 검증할 수 있게 된다. 그간 건설사 등이 주변 시세에 따라 과도하게 부풀려진 원가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에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서울·세종 전역과 부산·경기 일부 등 집값이 급등하고 있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참여정부 수준 이상인 최고 3.2%로 중과한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에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서울·세종 전역과 부산·경기 일부 등 집값이 급등하고 있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참여정부 수준 이상인 최고 3.2%로 중과한다고 밝혔다.ⓒ김슬찬 기자

‘원가 공개’에 대한 도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경기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민 10명 중 9명이 ‘공공건설공사 원가공개’에 찬성했다. 건설업계는 원가 공개가 재산권을 침해하고 영업비밀이 공개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시민들은 그보다 ‘건설사업의 투명성 제고’(39%) 나 ‘공사비 부풀리기 개선’(35%) ‘도민의 알 권리 충족’(21%)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도로와 철도 등 토목공사의 원가 공개 찬성률(90%)보다 아파트 등 주택건설 공사원가 공개 찬성률(92%)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현행 주택법상 공공아파트는 택지비, 공사비, 간접비, 그 밖의 비용을 포함한 12개 항목을, 민간아파트는 택지비 외 6개 항목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에는 공공아파트 61개, 민간아파트 7개 항목을 공개하도록 했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제도는 무력화됐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아파트의 원가공개를 61개에서 12개 항목으로 축소한 데 이어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민간아파트의 분양가를 아예 자율화해버렸기 때문이다.

원가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방법이 없으니 건설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경실련이 분석한 화성동탄2지구 25개 아파트 사업의 분양원가 분석 결과를 보면 건축비에만 1조8천억원에 달하는 ‘거품’이 끼어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실련에 따르면 적정건축비보다 2조원에 육박하는 거품이 끼었고 이것이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승을 주도하면서 주변 아파트 가격까지 따라서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분양원가만 공개해도 반값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원가공개는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민들에게 가장 관심이 높은 경기도시공사의 민간 참여 분양주택 원가 공개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반발이 심해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이달 중순께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추석 연휴인 현재까지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
경기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제공 : 경기도

‘주거복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토지공개념’ 도입해 ‘국토보유세’ 징수...기본소득 정책으로 연결

‘원가공개’가 재정안정·집값잡기에 효과가 있다면 최근 경기도가 발표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는 ‘주거 복지’와 관련된 내용이다. 경기도는 오는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20만호를 확대 공급하기로 했다. 공급이 완료되면 현재 37만6천호 수준인 공공임대주택은 57만호로 늘어나고 전체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8.5%에서 유럽연합평균(9.3%)보다 높은 11.6%까지 높아진다. 

눈에 띄는 것은 사회의 ‘상대적 약자’가 되어버린 청년층에 대한 각별한 배려다. 경기도는 공공임대주택 20만호 중 30%가 넘는 6만1천호를 신혼부부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 청년층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 

중국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이재명 지사를 대신해 발표를 맡은 이화영 평화부지사는 “주거권은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이며 국민의 주거권 보장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주거복지 강화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이재명 지사는 주거복지를 넘어선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 복지 확대’라는 큰 그림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는 ‘부동산 불로소득 없는 경기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와 기본소득 실현이라는 밑그림을 강조했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국토보유세를 신설하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한 뒤 이를 전 국민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우선, 현행 ‘부동산부자’에게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전체 토지 보유자에게 부과하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토지, 건물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종부세와 달리 전국에 있는 토지를 인별 합산해 과세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 지사는 “작금의 대한민국은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이라며 “헌법은 토지를 국민의 공통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현실은 특정 소수의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 국민과 나누어야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제도적 장치가 바로 기본소득용 국토보유세”라고 설명했다.

국토보유세를 전국에 전면 도입하는 것은 많은 부담이 따르는데 실현 가능하고 의지가 있는 지방정부가 이를 선택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지방세제 입법 과정을 거친 뒤, 세율과 세목을 정할 수 있게 하면 경기도에서만큼은 국토보유세와 공평 배분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 이 지사의 생각이다. 

이재명 지사는 여기에 더해 ‘과도한 분양 초과이익 환수’와 ‘장기공공임대주택 건립’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 지사는 “분양가 논쟁의 핵심은 공급에 필요한 가격과 시중에 거래되는 가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투기요인이 있다는 것으로 실제 거래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원가를 부풀려 건설업체가 이익을 가져가거나 분양받은 사람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공공택지에 대해서만이라도 분양에 따른 초과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며 “환수한 이익을 다른 데 쓰지 않고 특별회계 기금으로 만들어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것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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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최악의 오보’

오보는 왜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뒤집을 수 있는 무서운 재앙
 
임병도 | 2018-09-21 09:28: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쩌다저널리즘 #파일럿05. 동아일보 ‘최악의 오보’

# 오프닝

아이엠피터가 왜 정치이야기보다 미디어 비평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정치를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도 많고 유튜브 영상도 엄청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꾸준하게 언론을 비판하는 콘텐츠는 별로 없습니다.

언론 오보가 가짜뉴스보다 더 나쁘기에 아이엠피터의 미디어 비평은 늘어나고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엠피터TV 오리지널 콘텐츠
어쩌다 저널리즘
지금 시작합니다.

# 거들떠보자

경향신문: [메르스 재발병]입국장서 못 걸러낸 메르스, 2주가 ‘고비’
한겨레 : 3년만에 다시 메르스…추석까지 2주가 고비
동아일보 : 3년만에 온 메르스… 위기경보 관심→주의 격상
조선일보 : 3년만의 메르스… 정부는 놓쳤고, 민간은 빨랐다 
중앙일보 : “열흘 설사” 알린 메르스 감염자, 공항검역관이 그냥 보냈다

2015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9월 10일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은 ‘메르스’였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메르스 최대 잠복기인 14일을 기준으로 앞으로 ‘2주가 고비’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메르스 위기경보가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격상됐음을 짚었고, 조선일보는 ‘정부는 놓쳤고, 민간이 빨랐다’며 정부 대응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중앙일보는 4면에서 ‘공항검역관이 그냥 보냈다’라며 역시 검역체계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기사를 들여다보면,
경향신문은 ‘앞으로의 2주가 고비’라는 점을 강조하며 밀접접촉자와 일반접촉자들이 최대 잠복기인 14일 동안 집중 관리받을 것이라는 점을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메르스 환자로 확진 판정받은 ㄱ씨의 동선을 시간대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특히 ㄱ씨를 공항 검역에서 놓쳤다는 지적에 대해 “소화기 증상이나 근육통 등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에 ㄱ씨와 같은 비특이 증상을 모두 검역에서 걸러내는 시스템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한겨레는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밀접 접촉자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비행기의 다른 승객 등 놓친 접촉자가 없는지 꼼꼼하게 봐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2주가 고비’라는 점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또 ㄱ씨 진료를 맡은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위중한 상태는 아니지만, 완치 판정을 내리려면 최소 2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본다. 20일께까지 다른 감염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내에서의 전파는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통해 막연한 ‘불안감 조성’보다는 긍정적인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첫 문단에서 ‘공항 검역소를 무사히 통과한 후 4시간여 만에 메르스 감염 진단을 받아 감염병 방역체계에 여전히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언급한 것 외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환자와 병원의 대응이 신속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대규모 환자가 발생한 2015년 메르스 사태와는 여러모로 달랐던 것이다’라고 환자와 병원이 신속히 대응한 점을 먼저 꺼냈습니다. 하지만 ‘공항 검역 단계에서 환자 상태를 좀 더 꼼꼼하게 살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추가로 언급했습니다. ‘격리 조치는 아니더라도 이 환자를 추적 관리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정부의 대응 문제에 대해 다소 억지 섞인 비판을 덧붙였습니다.

중앙일보는 ‘해외 유입 감염병을 막는 첫 단추인 공항 방역망이 뚫렸다’며 기사 전반적으로 ‘구멍 뚫린 검역’을 강조했습니다.. ‘2015년 감염자 가운데 25.8%는 발열 증상이 없었다.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도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반면 복통, 설사 등 소화기 증상을 호소한 감염자가 12.9%에 달했다’며 ‘설사’ 증상을 보인 환자를 통과시킨 검역관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사 마지막에 ‘만약 공항 입국 단계에서 환자를 격리했다면 공항에서 음압시설이 된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했을 터이고, 그러면 출입국심사관, 의료진 4명, 가족, 택시 기사 등은 밀접 접촉자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가정을 덧붙였습니다.

3년 만에 발생한 메르스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부 대응 덕에 크게 퍼지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언론의 말처럼 공항 검역소에서 완벽하게 확인해 조치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메르스 특유의 비증상 발병이나 오랜 잠복기 등의 이유로 모든 검역에서 확인이 쉽지 않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3년 전 언론은 ‘중동식 독감’, ‘전염성이 없다’, ‘낙타 고기’ 따위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습니다. 그런 언론이 이제 와서 ‘정부보다 민간이 낫다’, ‘검역 체계가 뚫렸다’고 떠들기에는 3년 전 그때에 비해 지금 정부의 대응은 매우 적절하고 안정적입니다.

# 제대로써!보자

요즘 정치권 화두 중 하나는 ‘협치’입니다. 많은 정치인이 ‘협치’를 꺼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협치’의 뜻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협치’는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실제로 2016년 당시 대통령이던 박근혜 씨가 국회 개원 연설에서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썰전에 출연 중이던 전원책 변호사가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국회 개원 연설을 하러 가는데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썼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협치’는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일반인들이 등록해놓은 ‘오픈 사전’으로 협치의 뜻이 설명돼 있습니다.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의미. 무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조성을 선행하겠다는 말.”
“정치를 함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여 중요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을 말함.”

많은 정치인이 사용하는 만큼 대다수 언론에서 ‘협치’를 그대로 표기합니다.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했으니 사전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혹은 뜻을 제대로 모르더라도 보도를 하면 되는 것일까요?

네이버 기준으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사는 129,491건이 나옵니다. 가장 오래된 기사는 2000년 4월 21일에 올라온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일본은 학계 언론계 법조계 연구소 등 각계각층 민간인 49명으로 “21세기 일본 구상간담회”를 구성, 지난 1월 “일본의 프론티어는 일본 내에 있다:자립과 협치로 이룩하는 신세기”라는 보고서를 냈다’는 문장 속에서 ‘협치’가 등장합니다.

이후에는 2002년에 지역 뉴스를 전하며 ‘협치와 혁신으로 자치 발전 실천’이라는 문장에서 사용됐습니다. 이외에도 협치를 ‘협력 정치’로 풀어서 쓰는 경우도 보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사용된 단어이지만 여전히 명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자기가 원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협력’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도움과 지지를 달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의견을 모아 함께 하자’는 뜻으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고작 ‘협치’를 ‘표나 의석 정도를 도와줄 테니 우리 말도 좀 들어주라’ 정도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언론은 정작 누구도 ‘협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협치’라는 말로 멋대로 축약해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뜻을 모르는 단어는 언론에서 무조건 인용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정확히 물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보도자료를 받거나, 받아쓰기 바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협치’의 정확한 뜻,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보의 역사

지난 시간에 시민들은 오보를 가짜뉴스보다 더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드렸습니다. 단순히 시민들의 생각뿐일까요? 오보가 얼마나 엄청난 사태를 불러 오는지, 역사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1면입니다. 제목을 보면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주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미국은 조선의 즉시 독립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소련은 우리를 다시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12월 16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영국, 소련 외무 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여 전후 처리를 논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기사가 나온 시점에서는 회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면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 받았다고 하는데’,’ 어떠한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정확한 최종 합의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단정해서 보도한 셈입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를 보면 신탁 통치안이 합의됐습니다. 그러나 신탁 통치안을 제안한 쪽은 동아일보의 보도와는 다르게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었습니다.

동아일보의 오보 이후 우리나라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와 파업이 잇따랐으며 이후에는 신탁통치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으로 유혈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동아일보는 12월 27일 오보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소련과 좌익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왜곡 보도를 해왔습니다. 동아일보를 창간했던 김성수가 당시 최대 우파 정당이었던 한민당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의 오보 이후 한반도가 혼란에 빠지면서 미소 공동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고, 남북 단독정부 수립 및 영구 분단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오보는 단순히 왜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뒤집을 수 있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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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보낸 선물이에요" 눈물 흘린 95세 할머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9/22 09:55
  • 수정일
    2018/09/22 09: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스팟 인터뷰]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 받은 김지성 할머니

18.09.21 18:04l최종 업데이트 18.09.21 20:26l

 

 김지성 할머니 21일 김지성 할머니가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을 품고 눈물을 닦고 있다. (김기창씨 제공)
▲  김지성 할머니 21일 김지성 할머니가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을 품고 눈물을 닦고 있다.
ⓒ 김기창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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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어머니에게 택배가?"

오전 7시 30분경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김기창씨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전날 뉴스에서 본 그 소식인가 싶으면서도 괜한 기대감일까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상했다. 아흔 다섯, 어머니 앞으로 올 택배가 무엇이 있을까. '어제 그 소식 아닐까' 곱씹다 두 시간 후, 우체국에서 메시지가 왔다. 송이버섯이었다.

"북한 대통령이 보내왔어요!"

"마냥 우시죠. 뭐. 사실 어머니가 정신이 맑지 않으셔요. 연세가 워낙 많으시잖아요. 그래도 받으시고 우시더라고요. 사진 찍으며 웃어보라고 해도 내내 우시더라고... 여러 감정이 드시나 봐요. 그렇겠죠. 당연히…"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창씨가 말끝을 흐렸다. 기창씨의 어머니인 김지성 할머니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를 10여 년 앓고 있다. 할머니의 기억은 드문드문하다. 다만 가슴에서 꼭 쥐고 놓지 않은 기억이 있다. 북한 소식이다.

 

6.25 전쟁에서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는 할머니의 부모님과 네 명의 여동생. 기창씨가 북에서 온 선물이라고 하자 할머니는 송이버섯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북한 대통령이 가족들 못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선물을 보냈다고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우셨죠."

할머니의 고향은 개성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며, 선생님을 하다 결혼 후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신혼생활을 했다. 아들인 기창씨를 낳으러 개성에 갔을 때만 해도 가족들을 잃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6.25 전쟁 이후 가족을 모두 잃게 된 거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게. 마냥 그리워만 하고 사는 거예요. 제가 그 이름을 하도 들어서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할머니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참 고약했다. 할머니는 지난 20여 년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단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었다.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지난 8월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 할머니는 억울했다. 왜 나만 자꾸 떨어지냐고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기창씨는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대한적십자사를 찾아갔다.

"김대성, 김장성, 김옥순, 김희명"

할머니의 여동생이자 기창씨의 이모들인 네 명의 이름을 적은 상봉신청서를 눈앞에서 확인시켜야 했다. 신청을 안 한 것도 못 한 것도 아니라고. 하긴 했는데, 그저 이번에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달래야만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문 대통령 내외의 인사말 문 대통령이 북한 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에 인사말을 담아 이산가족에게 전했다.
▲ 문 대통령 내외의 인사말 문 대통령이 북한 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에 인사말을 담아 이산가족에게 전했다.
ⓒ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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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기다릴 수 있을까

18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내외가 공항에 직접 마중 나왔다. 남북 정상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어머니는 그냥 보기만 하면 우셔요. 우시는 게 일이에요. 어머니가 벌써 아흔이 넘으셨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한시라도 빨리, 생사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기창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남북관계가 좋아졌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이산가족상봉을 우선순위에 놓는다고 했으니, 안심해도 될까. 아흔다섯, 할머니가 동생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기창씨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지막까지 기대해봐야죠. 송이버섯뿐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북한에서 온 송이버섯에도 가슴이 이렇게 뛰는데, 가족들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지성 할머니 21일 김지성 할머니가 북한 김 위원장이 받은 송이버섯을 입에 넣었다.
▲ 김지성 할머니 21일 김지성 할머니가 북한 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을 입에 넣었다.
ⓒ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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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창씨가 송이버섯을 씻었다. 이가 하나도 없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드려야 할까. 잘게 빻아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리면 될까. 북한에서 온 송이버섯의 기운으로 올해에는 꼭 북쪽에 사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송이버섯과 함께 온 대통령 내외의 인사말을 바라봤다.
 
"북한에서 마음을 담아 송이버섯을 보내왔습니다. 북녘 산천의 향기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그리는 이산가족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픈 가족의 얼굴을 보듬으며 얼싸안을 날이 꼭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내외 문재인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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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신문, '남북 정상 부부 백두산 등반,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

북 신문, '남북 정상 부부 백두산 등반,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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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1  1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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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여사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 [캡쳐사진-노동신문]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성과적으로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고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신문은 "삼천리 강토를 한 지맥으로 안고 거연히 솟아 빛나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 반만년 민족사에 특기할 격동의 순간을 맞이 하였다"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북남 수뇌분들께서 민족의 상징인 백두산에 함께 오르시어 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의 새시대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기신 것은 민족사에 특기할 역사적 사변으로 된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백두연봉에서 제일 높은 장군봉 마루에 서시어 웅건장중한 영봉들의 거창한 산악미와 거울처럼 맑고 푸른 천지 초반의 장쾌한 전경, 민족의 혈맥인양 연연히 뻗어간 천리수해를 오래도록 부감하시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넋과 기상이 어린 성산에 오른 감격을 피력하면서 오늘의 첫걸음이 온 겨레가 모두 찾는 새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였다"고 알렸다.

   
▲ 신문은 이날 4면에 걸쳐 화보와 함께 양 정상 부부의 백두산 일정을 보도했다.[캡쳐사진-노동신문]

이어 양 정상은 여사들과 함께 천지에 내려가 호반을 거닐며 백두산에 오른 소감을 나누고 백두산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지 호반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서 김 위원장과 리 여사는 이날 오전 백두산 탐승을 위해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한 문 대통령과 김 여사를 미리 나와 맞이하고 평양국제비행장 환송 의식에 이어 환영의식을 별도로 진행하고 삼지연못가에서 오찬을 마련하는 등 문 대통령을 깍듯하게 대접했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은 오찬 후 백두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삼지연못가를 산책하며 환담을 나누기도 했으며, 김 위원장 부부는 귀로에 오르는 문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삼지연비행장에 나와 환송의식까지 빈틈없이 챙겼다.

이날 4면에 걸쳐 화보와 함께 관련 소식을 실은 신문은 "북남수뇌분들의 역사적인 9월 평양상봉과 회담은 북과 남이 손잡고 마련한 귀중한 성과들을 더욱 공고히 하며 북남관계를 새로운 평화의 궤도, 화해협력의 궤도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통일대업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획기적 전환점으로 되었다"고 강조했다.

   
▲ 김 위원장 부부와 문 대통령 부부는 백두산정에서 천지호반으로 내려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 삼지연못가의 오찬과 산책. [캡쳐사진-노동신문]
   
▲ 김 위원장은 이날 아침 삼지연비행장에 미리 도착해 문 대통령을 맞이하고 함께 백두산과 천지에 오른 뒤 오찬과 산책 일정까지 챙기고 귀로에 오르는 문 대통령을 삼지연비행장에서 배웅하는 등 깍듯하게 대접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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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완성을 위해서는 인적 청산이 절실하다

[대담]이세춘 민족재단 이사장
 
문경환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9/21 [18: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추석을 앞두고 이세춘 (재)민족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민족재단은 다방면에 걸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통해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2015년에 만든 재단이다. 이세춘 이사장은 9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통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대화를 하였다. 

 

이세춘 이사장은 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가 되어 무척 고무되지만 산적한 과제가 여전히 너무 많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적폐청산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컸으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되려면 인적청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주말마다 태극기부대가 서울 도심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는 이명박근혜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적폐세력들을 인적청산해야 한다고 고언하였다. 

 

또 이세춘 이사장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을 도왔다는 이유로 세무사찰을 받고 사업에 큰 타격을 입었는데 최근에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며 정치적 탄압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래는 대담 전문이다. 

 

▲ 이세춘 민족재단 이사장     ©자주시보

 


 

 

문경환(이하 문): 안녕하십니까. 추석이 다가오는데 고향에 내려가십니까?

 

이세춘(이하 이): 나야 고향이 평양이고 실향민인데 어딜 가겠나?

 

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했는데 곧 고향방문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그러면 다행이지. 그런데 정권 바뀌고 평양 의과대학에 기부를 하려고 방북신청을 냈는데 통일부는 계속 미루기만 하면서 허가를 안 하는 게 문제야. 재촉하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

 

문: 빨리 방북이 성사되면 좋겠습니다. 

 

이: 통일부도 그렇고 어디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전 정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야. 적폐청산하라고 촛불혁명으로 조기 정권교체까지 시켰는데 뭐하는지 모르겠어.

 

문: 적폐청산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적폐청산이라는게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핵심은 인적청산이지. 사람을 바꿔야 해. 탄핵이 뭐야? 대통령만 바뀌면 그게 탄핵인가? 대통령이 쫓겨났으면 대통령 모시던 측근들, 고위 공직자들도 다 알아서 물러나야지.

 

문: 그래도 장차관들은 대부분 바뀌지 않았나요?

 

이: 장차관만 문제가 아니야. 정보기관, 수사기관, 판검사들, 세무기관에서 구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들, 말하자면 충견들이 99%가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러니 태극기 부대가 주말마다 기승을 부리지. 주말에 서울시청 앞에 한 번 나가봐. 아주 가관이야.

 

문: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태극기 부대가 아직도 활개칠 수 있는 건 누군가 돈을 대고 있어서야. 다시 자기들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돈줄이 있는 거지. 돈줄을 막으면 태극기 부대는 자연히 사라지게 돼 있어.

 

문: 그걸 합법적으로도 할 수 있는 건가요?

 

이: 당연하지. 과거 독재정권이 야당이나 재야를 탄압할 때 어떻게 하는 줄 아나? 민주화 투쟁을 후원하는 사업가에 대해 세무사찰, 세무조사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패가망신시키는 거야. 그러면 아무도 무서워서 후원을 못하지. 

 

문: 마치 미국이 북한에게 경제제재를 하는 것과 비슷하군요.

 

이: 맞아. 나라 사이에도 대국이 못마땅한 소국을 혼쭐낼 때 돈줄을 틀어막는 거야.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똑같아.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에게 헌금을 보낸 자를 발각하면 체포하고 가족까지 귀신도 모르게 몰살시켰어. 그러니 그 때 독립운동가에게 돈을 댄 애국자의 이름은 전혀 남지 않았지. 

 

문: 지금은 사람을 죽이기까지는 않겠죠?

 

이: 목숨은 살려주는 거지. 나도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시절에 김영삼을 후원했다가 혹독한 세무사찰을 당했어. 지금이야 평가가 다르지만 당시엔 김영삼이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야당지도자였거든. 

 

문: 세무사찰 받은 건 어떻게 됐습니까?

 

이: 재판만 10년을 했는데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되고 취임 1주일을 남겨놓고 패소했어. 도합 4억8천만 원을 추징당했는데 강제집행으로 아내는 기절해 쓰러지고 우리 집은 완전히 패가망신했지. 괘씸한 건 김영삼이 내 후원을 받고서도 구제해주지는 않더군. 자세한 건 내가 쓴 『나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보면 나와. 그때 나만 피해를 입었을까? 아마 민주화를 위해 헌금을 바친 많은 이들이 세무조사나 다른 검은 그림자에게 피해를 입었을 거야.

 

문: 그래도 군부독재가 끝나고는 그런 일이 없었겠죠?

 

이: 아니야. 그 뒤로도 내가 이런저런 통일운동단체나 민주화운동 단체에 후원을 많이 했는데 세무조사나 이런저런 검은 그림자 때문에 곤욕을 치렀어. 이명박, 박근혜 정권 아래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문: 이제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죠?

 

이: 모르는 소리. 정권이 바뀌면 뭘하나. 아까 얘기한 것처럼 박근혜한테 충성하던 자들이 고스란히 원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문: 그럼 최근에도 비슷한 일을 겪으셨나요?

 

이: 작년 가을에도 세무조사를 나왔더라고. 그런데 세금 문제야 복잡하니까 자세히 얘기할 필요는 없고, 이상한게 실제로는 와서 별로 조사하는 것도 없고 한다는 얘기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참으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는데 존경합니다” 그러는 거야. 그리고는 과거 전두환 시절에 김영삼을 도운 일을 언급하더니 최근에 자주시보라고 인터넷 언론에 기사 실린 것도 봤다는 거야. 세금조사하러 와서 그런 얘기를 왜 하는지 이상하더라고. 

 

문: 그저 인사치레일 수도 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진보언론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느낄 수도 있겠네요. 

 

이: 그래 내가 세무당국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내가 탈세를 했다는거냐고 물으니 탈세했다는 것은 아닌데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만 하는거야. 그리고는 이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고 위에서 결정한 거라고 하더군. 나중에 세금고지서가 나온 다음 심사청구를 했는데 직권남용으로 부당하게 과세했다는 걸 심판관 모두가 인정했지만 심판장인 서대문세무서장이 “내가 세금 내라 하고 내가 뒤집을 수는 없다”며 고집해서 심사청구가 기각됐어. 

 

문: 이건 제가 내막을 모르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뭐 이 이야기는 됐고 아무튼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고 많은 일을 했다지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진 독재 치하에서 희생당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 지금도 양심수들이 사면을 못 받고 감옥에 있지 않나? 그리고 구 정권의 충견들을 모조리 색출해서 처벌해야 촛불혁명이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거야. 

 

문: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남북관계가 빨리 나아져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이: 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했으니 좋은 소식 오겠지. 통일만 된다면야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이야 뭐 그리 중요한가. 다 잊을 수 있지. 

 

*대담 후 통일부에서 방북 승인이 나왔다. 이세춘 이사장은 평양과기대 초청으로 9월 27일~10월 1일 평양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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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 파격적 의전에 깍듯한 예우 ‘솔직 리더십’

김 위원장, 파격적 의전에 깍듯한 예우 ‘솔직 리더십’

등록 :2018-09-21 05:00수정 :2018-09-21 09:00

 

 

2박3일 ‘최고의 의전’ 환대

공항 트랩까지 나와 영접하고
차량 오른쪽 뒷좌석 상석 배려
마지막날은 삼지연 공항서 배웅

15만 평양시민 앞 연설 기회 주고
백두산행 소원 화답 천지 동행
“사진 찍어드릴까요?” 친화력 발휘 
솔직·당당…자신만의 ‘리더십’ 알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대화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대화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20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기간 ‘파격 리더십’을 통해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 협상의 ‘중재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신뢰와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드러내면서 향후 미국과의 대화 재개 의지를 피력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첫날 평양 순안공항에 문 대통령 부부를 마중 나온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날 백두산 삼지연공항에서 배웅할 때까지 2박3일간 대부분 일정에 동행하면서 극진히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 수반 방문 때 공항에 나가 영접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공항에서 문 대통령의 숙소 백화원영빈관으로 가는 길에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평양 시내를 지나갔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차량 오른쪽 뒷좌석인 상석에 앉도록 배려했다.

 

둘째 날 저녁 문 대통령의 만찬에까지 깜짝방문하는 등 일곱 차례 식사 가운데 네 끼를 함께하며 문 대통령을 대우했다. 또 문 대통령에게 평양 시민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서 연설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 위원장은 시민들에게 직접 문 대통령을 소개하며 “오늘의 이 순간 역시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줍시다”라며 시민들의 환호를 유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쌓은 신뢰가 있기에 미래를 열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빨라질 것이다”(18일 만찬), “문재인 대통령과 흉금을 터놓고 진지하게 논의했다”(19일 공동선언문 발표) 등의 발언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북-미 협상 교착 상황에서 문 대통령을 중재자로 인정하고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보통 협상이 안 풀릴 땐 중재자를 이용한다. 김 위원장은 현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솔직한 심정과 진정성을 보여주며 문 대통령에게 중재 역할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및 북-미 협상 재개를 성사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오는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뜻을 전달한다. 김 위원장이 그 전에 ‘문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표시를 나타냄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문 대통령의 설명을 신뢰를 갖고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답방 약속’은 김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효과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전문가들은 특히 ‘확약’이라는 표현에서 비핵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평가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구심을 표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만의 ‘리더십’을 세계에 알리는 데 노력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 부부에게 백화원영빈관 내부를 직접 안내하면서 “발전된 나라에 비하면 초라하다. 최대한 성의를 다했으니 마음을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카퍼레이드에서 평양의 ‘부촌’인 여명거리를 지나면서 북한의 발전상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2박3일간 여러 이벤트를 만들면서 동시에 북한 주민들에게도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에서 지존한 자리에 있는데,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현실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평양 시민과 세계에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남쪽 수행원들에게 친근한 모습도 보였다. 20일 백두산에서 남쪽 수행원들에게 “여기가 제일 천지 보기 좋은 곳인데 다 같이 사진 찍으면 어떻습니까?”라고 사진 촬영을 제안한 뒤 “남측 대표단들도 대통령 모시고 사진 찍으시죠? 제가 찍어드리면 어떻습니까?”라며 친화력을 발휘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북한산 송이버섯 2톤을 선물로 보내며 ‘통 큰 대접’의 정점을 찍었다.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적대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도 문 대통령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긴장이 완화돼야 체제 유지 및 외부 원조를 받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여러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화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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