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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호수공원에서 강제이주당한 물고기들, 지금 상태는?

[고양생태공원 생태보고서] 새들이 깃드는 정화지, 생명을 품어주는 곳

18.05.11 21:46l최종 업데이트 18.05.11 21:46l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고양생태공원
고양생태공원은 일산신도시를 조성할 때 버려졌던 나대지에 만들었습니다. 나대지는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그냥 땅만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 곳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12가지 주제를 선정해 풀과 덤불, 나무들을 식재했습니다. 나무는 작은 나무부터 큰 나무까지 다양한 종들을 옮겨 심었습니다.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했고, 바위로 된 암석원도 조성했습니다.

어린 나무는 해가 갈수록 성장해 아름드리가 될 것이고, 풀과 덤불, 야생화들은 질긴 생명력과 함께 놀라운 번식력을 보여주면서 우리 공원을 풍부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새들이었습니다. 새가 없는 생태공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공원에 텃새나 철새들이 찾아와 보금자리를 만들어 번식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간단하거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새들에게 새로운 생태공원이 생겼다고 알릴 방법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새들이 찾아오는 공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새들이 깃들 수 있을까,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주목한 것이 물입니다. 어디든 생명이 깃들려면 물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이어야 합니다. 곤충이나 물고기들이, 수생식물들이 살 수 있는 생명을 담거나 담을 수 있는 물이어야 합니다.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고양생태공원
나대지에 그런 물이 있을 리 없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야죠. 생태공원답게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인공 연못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고양생태공원에 정화지와 계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정화지는 연못의 형태로, 계류는 흐르는 계곡의 형태로 우리 공원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계류 중간에 작은 연못을 3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한 곳을 더 보탤 수 있는데, 바로 부들의 천국인 부들연못입니다.

우리 공원의 정화지와 작은 연못, 계류는 각기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물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부들연못도 마찬가지입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때문에 물은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생명을 담을 수 있고, 생명이 그 안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공원의 계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게 했고, 모양도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물길이 구부러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자연 하천을 닮은 모양이 되도록 한 것인데 그 이유는 물이 흐르면서 자연정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화지 조류관찰대
정화지 조류관찰대ⓒ 고양생태공원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고양생태공원
물이 흐르기만 한다고 자연정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수식물이 필요합니다. 부들, 갈대, 억새와 같은 정수식물을 식재하는 것은 물이 흐르면서 자연 정화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화지와 계류를 흐르는 물은 지하수입니다. 하루에 일정량을 펌핑하여 정화지, 계류, 생태연못, 부들연못을 휘돌아 다시 정화지로 퍼 올려 흐르게 합니다. 물은 생명이고 자연은 순환이니까요.

비가 많이 오면 어떨까요? 정화지나 계류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불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정화지나 계류가 흘러넘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공원과 연결된 대화천으로 불어난 물이 흘러 나가기 때문입니다. 대신 수량이 불어난 만큼 흐르는 속도가 빨라질 수는 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정화지, 연못, 계류의 물 깊이는 다릅니다. 같은 정화지도 가운데와 가장자리의 수심이 다릅니다. 가장자리는 얕지만 중심은 제법 깊습니다. 정화지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2미터 남짓 됩니다. 

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은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수생식물이나 생물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얕은 곳에 사는 식물이 있고 깊은 곳에 사는 식물이 있으며, 얕은 물에 깃드는 어류와 깊은 물에 깃드는 어류가 있습니다. 수생곤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다양한 종을 유치하려면 수심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수심을 조정했습니다. 계류나 작은 연못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들 전용인 부들연못은 다릅니다. 깊이가 일정합니다.
 수련
수련ⓒ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등에 연꽃과 수련을 집어넣었고, 수초들도 옮겨 심었습니다. 부들, 억새, 갈대 등도 심었습니다. 물을 자연정화하면서 수생곤충들이 모여들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것이죠.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면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와 같은 어족자원입니다. 텃새나 철새를 우리 공원으로 불러들이려면 그들의 먹이가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곳에 새들이 모여들 리가 없습니다. 

인공 정화지와 계류에 어족자원이 풍부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들은 날개가 있어 어디든 마음대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먹이가 풍부한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단 자연 상태에서 강제이주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다릅니다. 지느러미가 있어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물속에서만 가능합니다. 물고기들은 살기 좋은 환경의 인공연못과 계류를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어도 이동통로가 되는 물길이 없다면 마음대로 이주할 수 없습니다. 대신 강제이주가 가능합니다. 

고양생태공원에 정화지와 부들 연못, 작은 연못, 계류를 조성한 뒤에 물고기 강제이주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물고기들을 데려와야 할까요?
 꾀꼬리
꾀꼬리ⓒ 조병범
고양시에서 가장 물고기가 많이 사는 곳은? 장항습지, 가까운 공릉천? 이런 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어족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함부로 물고기를 잡으면 큰일 납니다. 보호 어종을 잡다가 걸리면 경찰 아저씨가 보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꿈도 꾸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물고기를 떼로 데려올 수 있는 곳이 고양시에 딱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일산호수공원입니다. 이곳은 일산신도시를 건설할 때 조성한 인공호수로 고양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호수 면적이 300,000㎡, 담수량이 453,000천㎡인 일산호수공원은 어족자원이 풍부합니다. 붕어, 피라미, 몰개, 밀어 등등을 포함한 다양한 어족자원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를 우리 공원으로 강제이주 시켰습니다. 2012년이었습니다. 붕어 몇 마리, 피라미 몇 마리 이렇게 물고기 종류를 가려서 강제이주 시키면 좋지만,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누가 몇 마리나 사는지 알 수 없기도 하거니와 호수 속은 수족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빽빽도요
빽빽도요ⓒ 조병범
뜰채로 뜨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뜰채로 떠서 옮기면서 이주하는 물고기가 몇 마리인지, 몇 종인지 확인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넓디넓은 호수공원에서 살던 물고기들이 좁은 우리 공원에서 적응하느라고 한동안 고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물에서 살다가 강제이주 당한 뒤에 좁다고 툴툴거리면서 불평하는 물고기들도 있었을 겁니다. 떠나온 호수공원을 그리워하는 물고기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적응하고 살아야죠. 

강제이주 당한 지 5년이 넘었으니, 공원 원년 이주 물고기 가운데 살아남은 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일부는 지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얼어 죽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살아남아서 정화지 가장 깊은 곳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줘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또 다른 놀라운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새들은 물고기를 먹기 위해 사냥도 하지만 다양한 어류의 알들을 다리에 붙여서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물고기들의 이동을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찾아드는 새가 74종이나 되는 우리 생태공원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번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에서 생물종을 이렇게 다양하게 퍼트리고 늘리는 새들의 역할이 신비하고 경이롭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는 이주 대상이 아니었던 참게는 어떻게 우리 공원에 올 수 있었을까요? 한강 장항습지와 연계되어 있는 대화천을 따라 영차영차 기어서 온 것입니다. 물길은 생명의 길이자 천연의 생태통로인 것입니다. 

생태공원에 깃드는 새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이주하는 물고기가 많아지고 그 덕분에 찾아드는 새들이 늘어나는 것은 생명을 품은 정화지가 안겨주는 선물입니다. 

이렇게 고양생태공원 안에 있는 돌이나 꽃, 풀, 나무, 물고기들은 단 한 가지도 허투루인 것이 없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도 각각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제게 그렇게 여겨집니다. 공원 조성단계부터 전부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중대백로
중대백로ⓒ 조병범
 청호반새
청호반새ⓒ 조병범
공원을 조성한 뒤, 새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나대지에 만든 생태공원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출 수 없었으니까요. 나무는 아직 어렸고, 야생화 군락지는 들인 품에 비해 빈약했습니다. 정화지에 계류에 강제이주 당한 물고기나 수생생물들은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고양시에서 최초로 만든 생태공원이라 기대가 컸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한 해, 한 해 세월이 흐르면 공원의 다양한 생물들은 무서운 복원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차츰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연은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공원 역시 온전한 생태공원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풀이나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어린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새들이 우리 공원을 찾아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새들이 찾아올까. 공원 조성이 마무리된 뒤, 기대감을 갖고 날마다 정화지를 기웃거렸습니다. 텃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나 까치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소리는 많이 듣게 됐습니다. 텃새가 온다면 철새도 올 수 있다는 기대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은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나 까치 같은 텃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큰유리새
큰유리새ⓒ 고양생태공원
우리 고양시에서 관찰된 적이 있는 텃새와 철새들이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원앙, 붉은머리오목눈이, 파랑새, 해오라기와 같은 새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런 새들이 깃든다는 것은 우리 공원이 생태공원으로 순조롭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람이 새들에게 전해졌을까요? 2013년인가요? 8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끈적거리는 더위가 살갗에 달라붙어 불쾌감을 주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출근하자마자 산책에 나섰습니다. 정화지 근처로 다가가자 까치들이 요란하게 울어댔습니다. 정화지 앞에 서서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정화지에서 온몸이 진한 녹색인 파랑새 한 쌍을 발견했습니다. 

아, 왔다. 드디어 왔다.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들의 다정한 모습은 평온해보였습니다. 파랑새의 산호빛 붉은 부리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아침 햇살이 반사돼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사진으로 그 순간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 모습은 제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파랑새
파랑새ⓒ 고양생태공원
그들이 우리 공원을 찾아온 첫 손님이 아닐지 모르지만, 제가 발견한 첫 손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엄청나게 반가웠지만, 인사를 건네거나 가까이 다가가서 아는 체를 할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그랬다가는 기껏 찾아온 손님을 쫓아내는 결과가 될 테니까요. 

그날 이후 관찰되는 새의 종류가 늘었습니다. 꾀꼬리, 물총새, 큰유리새, 청호반새, 후투티, 흰눈썹황금새, 밀화부리, 오색딱따구리, 원앙 같은 새들이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새로운 새의 실루엣을 발견할 때마다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새들에게 소문이 났어. 우리 공원이 새로 생겼다고, 놀러가자고. 

원앙을 처음 봤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원앙은 천연기념물 327호입니다. 천연기념물이 드디어 우리 공원을 찾아왔다는 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원앙
원앙ⓒ 고양생태공원
정화지에 새들이 깃드는 것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려면 조류관찰대가 필요합니다. 조류관찰대는 새들과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사이를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합니다. 새들에게 정화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좋은 서식처라는 믿음을 안겨주려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조류관찰대가 새들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공원에 조류관찰대가 두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정화지에, 다른 하나는 우리 공원과 연결된 대화천 앞에 있습니다. 두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 종류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생태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양생태공원 바로 옆에 대화천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 공원이 생태공원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대화천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천은 고양시의 많은 하천 가운데 하나로 북으로는 파주시, 남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이어지면서 흐르고 있습니다. 수로의 길이는 5.58㎢입니다. 고양생태공원과 연결되어 고라니, 너구리와 같은 포유류의 생태통로이자 도심 속 징검다리 녹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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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눈에 비친 남과 북, 다르고 또 닮았다

등록 :2018-05-11 11:27수정 :2018-05-11 11:53
 
 

 

사진작가 히시다 유스케, 7년 동안 남북 오가며 찍은 사진
비슷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 같은 시간대 풍경 등 찍어 병치
“일본인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 바꾸고 싶었다”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일본인 사진가가 비슷한 피사체를 찾아 카메라에 담은 북한과 한국의 사람과 풍경은 다른 듯 닮았다.

 

사진작가 히시다 유스케(菱田 雄介, 45) 씨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약 7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 이후 2017년까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수십 차례. 왼쪽에는 북한에서 찍은 사진을, 오른쪽에는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놨다. 비슷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을, 같은 시간대의 풍경을, 하나로 이어진 땅에서 핀 같은 종류의 꽃을 찍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남북의 어머니, 기타를 든 두 소녀, 아파트와 고가로 수 놓인 밤 거리의 풍경은 외국인의 눈에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히시다 씨가 사진에 눈을 돌린 건 2001년이다. 일본 민영 방송사 소속으로 미국의 동시다발 테러를 취재하던 중 전파를 타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영상 뉴스보다는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순간을 가까이에 두고 싶었다”. 그가 〈허프포스트〉 일본판에 한 말이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방문해 주민들의 일상을 찍었다. 당시 그가 분쟁국을 취재하면 목격한 것은 “국경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과 생각 그리고 운명을 바꾸는가”였다.

 

 

북한 어린이를 촬영 중인 히시다 유스케 씨.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북한 어린이를 촬영 중인 히시다 유스케 씨.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국경을 떠올리며 아시아에서 눈을 돌린 곳은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 분계선이었다. 그는 반도를 가르는 경계선 너머를 찾아보고 싶었다. 허프포스트 일본판의 보도를 보면, 그가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9년 5월이다. 그는 이 매체에 “전쟁 중인 일본으로 시간 여행을 간 듯한 느낌. 군국주의에 의해 지도자에게 충성하고 어릴 적부터 부국강병(선군주의)의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자신도 할아버지의 세대(전쟁 중의 일본 세대)에 태어났다면 같은 가치관을 가졌을 것이고, 북한에 태어났다면 전력으로 매스 게임에 참가하고 ‘영도자 만세’를 외치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히시다 씨는 “쇼윈도 도시”로 불리는 북한에서 안내원들이 보여주는 풍경과 허락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본질에 최대한 근사하게 접근하고 싶었다. 그리고 국경으로 갈린 “삶과 생각과 운명”의 대비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북한에서 찍은 사진과 최대한 같은 모습을 한국에서 촬영해 병치하는 것.

 

히시다 유스케. 사진 요시노 다이치로TAICHIRO YOSHINO/허프포스트 일본판.
히시다 유스케. 사진 요시노 다이치로TAICHIRO YOSHINO/허프포스트 일본판.

 

예를 들어, 북한에서 왼쪽의 사진을 찍으면 한국으로 날아가 가장 비슷한 장면을 찾았다. 허프포스트 일본판은 “(히시다 유스케는) 겉으로 봤을 때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 기상 조건, 건물과 산천의 배치를 찾아 몇 번이고 걸음을 옮겼다”고 전했다.

 

일본인으로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고 싶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무서운 나라, 납치하는 나라, 싫은 나라’. 텔레비전에서 평양의 영상이 흐르면 일본인인 우리는 이런 선입견으로 북한을 본다. ‘이상한 나라’로 치부하고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며 “그런데, 거기에 비친 얼굴을 보고 ‘이들도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고 밝혔다. 텔레비전의 영상에서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아래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100㎞도 떨어지지 않은 북한의 남포와 한국의 인천에서 해수욕하는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찍었다.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히시다 씨는 2017년 12월 이 사진들을 묶어 작품집 〈경계|한반도〉(원제 ‘border | korea’, 리브로아르테 출간)를 냈다. 지난 1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경계 155’전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사진 히시다 유스케 YUSUKE HISHIDA.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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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는 대북강경파의 견제를 뿌리칠 수 있을까

아직 건재한 미국 내 대북 강경파... 북한 ‘불신’과 대북 협상 ‘회의론’ 여전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8-05-11 09:23:03
수정 2018-05-11 09:23:0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김동철씨(오른쪽 두번째)가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며 양 팔을 올려 두 손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김동철씨(오른쪽 두번째)가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며 양 팔을 올려 두 손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AP/뉴시스
 
 

역사상 최초로 개최되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 역시 북한이나 미국의 공식 발표가 아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깜짝’ 발표로 알려졌다.

한때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평화의집이 유력한 개최 장소로 검토되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중립국 이미지가 강한 제3국인 싱가포르로 회담 개최지가 확정된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바로 미국의 특히, 외교정책 결정 과정이다. 사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개최 결정은, 실무자들이 여러 번 협상을 통해 확정한 다음 결정권자(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받는 일반적 과정과는 전혀 궤를 달리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서로 ‘미치광이’라는 말폭탄을 주고받던 북미관계였다.그러나 중재자 역할을 맡은 한국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와 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전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를 즉각 수용했다.

그래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right away) 하자. 평양이라도 가겠다”고 말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회담 시기는 ‘5월 말’로 다시 ‘5월 말과 6월 초’로 미뤄지다가, 다시 당겨지는 듯하더니 6월 12일로 확정됐다.

 

개최 장소 역시, 일부 ‘평양 개최설’에서 ‘5개국’으로 다시 ‘2개국’으로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판문점 개최설’에서 다시 원점으로 향하다가 결국 싱가포르로 확정됐다.

풀이하자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과정은 실무자들이 밑에서 결정해 위로 향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정권자(대통령)가 결단을 내리면 실무자들이 최종 결정은 따르지만(일명 탑다운(Top-Down) 방식), 구체적인 사항은 반대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의 입지(위상)이다. 워싱턴 외곽 비주류 출신의 ‘정치적 이단아’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은 아직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오히려 최근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등 여러 의혹에 휘말리면서, 녹록하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40%대를 회복하면서 다소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일 미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북한의 위협을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놓는 역할을 한다면, 그의 위상은 일거에 반전될 수도 있다. 대통령 중간평가로 여겨지는 11월에 실시될 의회 중간선거에서 녹색등이 켜질 가능성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도보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도보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트럼프 대북정책 지지율 과반수 돌파... 뿌리 깊은 ‘회의론자들’

당장 10일(현지 시간) CNN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을 77%가 넘는 미국 국민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대북 정책 지지율도 과반수를 넘긴 53%를 기록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한과 말폭탄을 주고받고 군사행동 가능성을 거론해 미 국민들이 안보 위협을 느끼며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졌던 불과 몇 달 전 상황과는 천양지차인 셈이다. 일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목을 매고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특히, 미국 유권자들 앞에 내놔야 하는 트럼프로서는 이번 회담에서 기존의 예상을 깨는 이른바 ‘빅뱅(Big Bang) 합의’를 발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핵시설, 핵무기 폐기 등 이른바 비핵화 문제와 함께 종전선언이 기본적으로 북미 합의서(공동발표문)에 담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와 함께 북한 체제 보장에 관한 선언과 향후 평화협정 추진에 관한 내용도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도 유력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결정과 장소·시기 확정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바로 미국 내부에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이른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이다. ‘통 큰’ 합의를 해도 세부 사항(detail) 이행 과정에서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온갖 스캔들에 휩싸여 있는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뒤집고 ‘노벨 평화상’까지 거론될 정도로 전세를 역전시킬 절호의 찬스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미 간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물밑 합의’가 성사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트럼프와는 달리 ‘대북 협상 회의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뿌리는 매우 깊다. 미 행정부 내의 이른바 ‘네오콘(Neocon)’이나 ‘강경 매파(Super-Hawk)’ 등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세력이 주장하는 핵심은 한마디로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역설적인 측면은 공교롭게도 이들 대북 강경파의 핵심 세력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북 협상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 협상의 수장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그 핵심 세력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비밀 방북 몇 달 전에도 중앙정보국(CIA) 국장 자격으로 방송에 나와 북한의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대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잠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라고 폄하한 사람이다.

볼턴 보좌관 역시 NSC 보좌관에 임명되기 불과 몇 달 전까지도 공개적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강경 매파이다. 북한과의 그 어떠한 합의도 오직 시간만 벌게 해줄 뿐이라며, 더 늦기 전에 군사력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북 초강경파인 셈이다.

이들이 대북 협상이나 북미 정상회담의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아예 초강경파들이 북한과의 합의를 주도했으니, 오히려 합의 이행이 쉬울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한다. 스스로 자신들도 참여한 합의를 깨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기존 북미 간의 합의도 모두 이행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대북 초강경파인 이들이 이행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는 브레이크를 걸면서 임명권자(대통령)를 따라가는 흉내만 낼 뿐이라는 불신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접견한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접견한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조선중앙통신

트럼프, 대북 강경파를 평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핵심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개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를 지닐 것은 분명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말처럼 ‘수십 년 적국’일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발발 이후 거의 70년 동안 북의 주장처럼 ‘철천지원수’였던 양국의 정상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남 자체가 서로 상대국에 관한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희망의 씨를 뿌리고 상호 신뢰와 평화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또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일정 부분 혹은 통 큰 ‘일괄타결’이 되든 합의문을 발표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문제는 다시 그 합의의 이행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미국은 북한에 철저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겠지만, 이에 따른 확고한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 간의 합의 발표로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기 내에 상호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지 않아, 또 북미 합의가 깨진다면 역풍을 맞게 될 것이 뻔하다.

또 어떠한 합의를 내놓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는 물론 대북 강경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과 회의론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하다. 협상은 북한과 하지만, 평가는 미국 국민과 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받아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다시 이른바 대북 초강경파 세력들이 걸림돌로 등장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벌써 북미 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살인 정권’의 독재자와는 어떠한 회담을 해서도 안 된다는 대북 강경파 인사들의 칼럼이 미 주류 매체에 봇물을 이루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넘어야 할 ‘디테일의 악마’는 미국 내에 도사리고 있는 이들 대북 초강경파 세력일지도 모른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과정의 우여곡절이 아직도 미국 내에서는 이들 세력이 건재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곧 개최될 예정이다. 이제 그의 결단과 지도력이 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대북 강경파 세력을 평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진정한 결실을 이룰 수 있을지 온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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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서울발 기차가 12시간만에 중국 도착한다

[기고] 철도로 남북 사업은 거미줄처럼 넓혀 갈 것이다

 

 

한반도발 세기적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렸던 한반도에서 평화와 공존, 번영의 새 길이 열리려 하고 있다. 이 같은 도약의 시기에 중요한 물리적 장치로 철도가 부상하는 것은 필연이다. 침략과 수탈의 도구였던 한국철도가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여는 철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제 두 줄 강철 선로는 남과 북을 단단히 이어 평화와 공존의 기운을 세계로 실어 나르게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철도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약속했다. 또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남북중 철도 연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한반도발 대륙 행 열차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남북 철도 운행과 중국으로의 열차 운행은 어떻게 현실화 될 것인지, 또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남과 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사업을 우선 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동해선은 남한 최북단 제진역에서 남쪽 강릉까지 선로가 없다. 100킬로미터가 넘는 이 구간에 설계와 시공을 거쳐 운행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동해선 연결 작업은 남쪽 미 연결 구간인 삼척-영덕 구간을 포함해 건설작업에 속도를 낸다면 부산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가 마침내 완결되게 된다.  
 
반면, 경의선은 약간의 점검과 보완을 거친다면 바로 운행이 가능하다. 이미 남북철도는 수색과 북측 봉동을 왕복하는 열차를 운행한 경험이 있다. 낙후된 북한 철도 사정을 감안해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6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운행되는 평양발 베이징행 K28 국제열차의 평양-신의주-단둥 구간 소요시간은 2016년 시각표 기준 6시간 13분이다. 당장이라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국제열차가 12시간 정도 달리면 압록강을 건너 국경을 넘어 중국 땅에 들어설 수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북한 철도를 개량한다면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다.  
 

▲ 1938년 조선총독부 철도국 발행 시각표-국제특급열차가 서울-단둥간을 8시간 20분만에 주파했다. ⓒ박흥수

조선총독부가 1938년 발행한 조선 열차시각표에 따르면 당시 국제특급열차인 히까리호는 부산을 저녁 6시 55분에 출발해 서울(경성)역에 새벽 2시 55분에 도착했다. 3시 5분에 서울역을 출발한 히까리호는 개성-신막-평양-정주-신의주를 달려 단둥에 11시 23분에 도착했다. 증기기관차 시대에 서울-단둥구간을 8시간 25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서울-신의주 구간을 남한 수준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운행여건으로 개선한다면 서울-평양간은 2시간 30분, 평양-신의주 구간은 4시간 안쪽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국제역이된 서울역에서 6시간 정도 열차로 달리면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된다. 장기적 전망을 갖고 서울-신의주 구간에 고속철도 노선을 건설하게 된다면 이 시간은 또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한국으로의 철도 연결 사업에 매력을 갖고 있는 남북중러가 호흡을 맞춘다면 이른 시간 안에 서울역 전광판에 중국 도시들이 뜰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연결 가능한 노선은 서울-베이징 구간이다. 이미 평양-베이징 국제노선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서울-평양만 연결한다면 서울-베이징 구간 국제 열차 운행을 실현 시킬 수 있다. 최소 주1-2회의 정규 열차 편성을 추진할 수 있다. 서울-개성-평양-신의주-단둥-선양-베이징을 잇는 국제 열차는 한-중의 수도를 직결하는 노선으로 동북아 평화를 상징하는 철도가 될 것이다. 현재 단둥-선양 구간은 3시간 30분, 선양-베이징 구간은 4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빠른 시간 안에 국제열차가 운행된다면 서울-베이징 구간은 20여 시간의 여정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북한 철도 개량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운행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추진 해 볼만한 노선은 서울-이르쿠츠크 노선이다. 서울-평양-신의주-단둥-선양-하얼빈-만주어리(滿洲里)-자바이칼스크-치타-이르쿠츠크로 이어지는 거대 노선은 한국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접속하는 이른바 손기정 루트를 복원하는 길이다. 
 
유라시아 철의 실크로드로 불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동북아시아에서 접속하는 노선은 베이징-울란바토르-울란우데-이르쿠츠크로 이어지는 몽골횡단철도와 앞서 말한 만주어리-치타-이르쿠츠크로 이어지는 만주횡단철도노선이 있다. 만주횡단철도노선은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접속하는 노선이다.  
 
또한 이 노선은 물류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역인 만주어리 역의 화물 취급 량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 발 물류는 만주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길을 먼저 낼 수 있다. 대륙철도 운행을 위해서는 OSJD(국제철도협력회의)가입도 필요하다. 신규 가입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허가 되는데 번번이 북한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던 것을 남북철도 협력 국면에서 해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만저우리-하얼빈 구간을 달리는 만주횡단열차 안에서 본 만주벌판의 석양. 서울에서 출발하는 만주행 열차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박흥수

대륙철도 운행은 코레일과 북한 철도성이 공동 투자한 대륙철도합자회사 형식을 갖춘다면 남과 북의 철도가 긴밀한 협력과 공조를 이루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노선의 치타나 울란우데에 도착한 중국이나 몽고발 열차에는 해당국의 승무원들이 승강장에서 승객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과 북의 철도노동자들이 국제열차에 승무하며 세계인을 맞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하는 상상도 해볼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은 한국의 철도 산업을 발전시키는 전기가 된다. 수주량 부족으로 정체 상태에 빠진 철도차량제작 분야에도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북한 철도 차량의 현대화와 대륙 연결 수요에 부응하는 차량생산량 확보는 철도차량제작 분야도 발전시켜 세계철도시장 경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현대 철도는 전기철도다. 전기철도는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지구 온난화 방지에 기여하고 환경오염도 최소화 하는 친환경 인프라다. 또한 많은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도 기관차 견인력이 좋아야 하는데 디젤 기관차는 전기기관차의 효율을 따를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 운행되는 대형디젤기관차의 견인력은 3000마력인 반면 전기기관차는 그 두 배인 6000마력이 넘는다. 그러나 북한의 전력사정은 전기기관차의 운행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의 발전소를 신설하는 인프라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철도를 매개로한 남북 협력 사업은 거미줄처럼 그 분야와 대상을 넓혀 갈 것이다. 한반도를 찍은 심야 위성사진을 보면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북쪽은 암흑에 둘러 쌓여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북한 철도 개선 작업이 진행된다면 철도 연변을 따라 북녘 땅은 밝아지게 된다. 이 빛은 마침내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밝히는 횃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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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위원장과 폼페오장관 얼굴에서 피어난 함박웃음

[동영상] 김정은위원장과 폼페오장관 얼굴에서 피어난 함박웃음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5/11 [01:03]  최종편집: ⓒ 자주시보
 
 

 

 

10일 SBS에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폼페오) 미 국무장관의 면담과 관련 북 보도 동영상 전체를 유튜브를 통해 소개하였다.

 

동영상에서는 폼페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제안을 담은 구두친서를 전달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으며 북미수뇌상봉과 관련된 세부 일정과 내용에 대해 토의를 하여 만족할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한 동영상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가온 북미정상상봉과 회담이 조선반도의 긍정적인 정세발전을 추동하고 훌륭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훌륭한 첫걸음을 떼는 력사적인 만남으로 될것"이라고 확언하였다고 지적했다.

 

짧은 동영상이지만 대화가 아주 잘 진행되었음을 화면에 비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폼페오 장관의 얼굴에서 자주 피어나던 환한 함박미소만 봐도 그대로 느껴졌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폼페오 장관 면담 동안 자주 피어난 함박미소     © 자주시보

 

▲ 면담을 마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거의 끌어안으며 사진을 촬영한 폼페오 장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누구든 만나면 안기고 싶어지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리기에...     © 설명글: 이창기 기자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폼페오 국무장관의 1차 면담과 2차면담 모습을 비교한 SBS 비교 사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인지 면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올 때는 폼페오 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하며 다른 한 팔로 스스럼 없이 가볍게 껴안는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10년은 정이든 사이처럼 행동했다. 이북 주민들도 만나면 팔에 매달리고 그렇게 안기고 싶어하던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누구든 만나면 안기고 싶어지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 정의용 특사단이 방북했을 때처럼 차를 타고 면담을 했던 당중앙 청사를 떠나는 폼페오 장관에게 손을 따뜻하게 흔들어주었고 폼페오 장관도 차가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유리창을 열고 손을 흔들어 답례하였다. 

 

동영상을 보는 내내 뛰는 심장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50년 전쟁의 포연이 해해년년 온갖 전쟁훈련으로 계속 이어져온 세계 최대 화약고 한반도에서 완전히 전쟁이 끝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호흡도 자꾸만 가빠졌다.

 

한반도문제는 북미문제이다. 그 어떤 문제건 북미사이에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그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 평화의 결정적 계기로 될 것이며 패권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지고, 호혜평등의 시대, 화합의 시대, 각 나라 각 민족의 존엄과 주권이 존중받는 찬란한 자주의 시대로 진입하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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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년, 경실련은 왜 '실망'했나

경실련 "노동공약 완전이행율 4.9%"... 양대 노총 "진일보했지만 아직 부족" 평가

18.05.10 16:37l최종 업데이트 18.05.10 18:02l

 

지난 5월 3일 문재인 정부가 임기 1년을 맞아 국정과제 추진 현황을 담은 '문재인 대통령 1년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밝힌 항목은 총 35개. 그러나 같은 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완전이행 비율이 12.3%에 불과하다며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이는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째의 완전 이행 비율(28%)보다도 낮은 것이다. 

경실련은 '노동 존중 사회실현'을 위한 세부공약의 경우 완전이행률이 4.9%에 그쳤다고도 밝혔다. 양대노총 위원장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일부 긍정할 뿐,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노동법률> 5월호 커버스토리 '새롭게 열린 노사정 대화 시대, 양대노총 위원장을 만나다' 참고)
 

 지난 5월 8일 제20회 국무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의사봉을 들고 있다.
▲  지난 5월 8일 제20회 국무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의사봉을 들고 있다.
ⓒ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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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조 일자리 예산에도 취업자 증가폭 '둔화'

 

당장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정부 전체 일자리 예산은 지난해보다 12.6% 증가한 19조 2312억 원. 그러나 올해 1분기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 중 상용근로자는 18만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수가 35만3000명 증가했던 지난해 1분기보다 증가폭이 둔화된 것이다.

실업률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실업자수는 125만7000명, 실업률은 4.5%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2조 8329억 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p 증가한 11.6%를 나타냈다. 2016년 2월 11.8%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경실련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공약 완전이행률이 24.1%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경실련의 분석과 최근의 고용동향을 종합해보면, 정부 일자리 정책이 이행되더라도 일자리 문제 개선에는 역부족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보고서에서 약속을 지켰다고 밝힌 내용 가운데 '공공부문 고용창출로 일자리 증가, 공공서비스 질도 향상'이라는 항목을 소개했다. 정부는 당초 2022년까지 공공일자리 81만명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까지 경찰ㆍ소방ㆍ사회복지 등 현장민생공무원 3만5000명이 충원됐다. 정부는 또 보육ㆍ요양 등 사회서비스 관련 공공일자리는 같은 기간 1만8000명이 충원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고용동향을 보면 공공서비스 인력 확충이 민간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던 정부의 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경실련은 "일자리 창출 공약은 재정지원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양적인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며 "일자리의 대부분을 만드는 중소기업 분야의 활력과 경쟁력을 키우는 구조적인 정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논평했다.

노동시간 단축 둘러싼 시각차 여전

노동시간을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감축한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세부 사항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보고서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일ㆍ생활의 균형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기업은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며, "청년들은 확대된 일자리를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이 현장에 안착하도록 신규채용 인건비 지원과 기존 노동자 임금감소액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의 구체적인 내용과 후속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완책을 주문하고 나선 상황이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노동법률>과의 인터뷰에서 "휴일수당 중복할증이 인정되지 않은 것, 운송과 보건업종이 특례조항으로 남은 것, 5인 미만 사업장이 여전히 제외된 것은 특히 아쉽다"고 평가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도 같은 날 진행된 <노동법률>과의 인터뷰를 통해 "5개 특례업종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며 "(노동시간 특례업종인) 운수업종이 장시간 노동의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게 한계"라고 말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특례업종 종사자들을 위해 도입된 연속 11시간 휴식시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인력이 충원돼야 하고 교대제가 바뀌어야 하는데 교대제 논의를 안 하고 있다"며 "교대제 개편, 근무제도 개편과 인력 충원이 따라와야 가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보고서가 발표된 지난 5월 3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실노동시간을 단축시켰다는 점이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의 후속조치로 △한국적 현실에 부합하는 근로시간 유연화제도 수립 △근로시간의 이면인 휴식제도의 보편성 확립 등을 주문하기도 했다.

"20만 명 무기계약 전환이 비정규직 대책의 본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노동계 일각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 10일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한 지 약 8개월 만에 비정규직 10만여 명의 정규직 전환 결정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오는 2020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목표치 20만5000명 중 49.3%의 전환 결정이 완료된 것이다.

그러나 고용부 발표가 있던 날, 곽승용 서비스연맹 공공사업국장은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20만 명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대책의 본질"이라며 "오늘 고용부가 10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해서 (청와대는) 성공하고 있는 줄 알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자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결정하는 '전환심의위원회'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전환심의위원회에 반노조 성향의 인사가 위원으로 선임되거나, 전환 예외 규정을 임의로 해석해 전환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황선웅 부경대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있어 문재인 정부는 소극적이었던 과거 정부와는 확연히 대조된 모습"이라면서도 "여전히 절반 이상의 인원은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또 "적용 예외 사유 자체의 모호성과 자의적 확대 해석, 정책 추진 주체의 의지 부족, 관리ㆍ감독 소홀 등이 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은 정책 과제로 남아 
 

큰사진보기 지난 3월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2차 고용정책심의회를 주재했다.
▲  지난 3월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2차 고용정책심의회를 주재했다.
ⓒ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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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ㆍ연초를 뜨겁게 달궜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지난해보다 16.4% 인상됐다. 이는 역대 최대 인상폭이다. 정부는 보고서에서 "전체 노동자 중 23.5%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ㆍ영세기업인들의 경영상 부담을 완화하고자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을 초과하는 임금 인상분만큼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정부의 후속대책이다. 이를 통해 30인 미만 고용 사업자에게 월 보수 190만 원 미만 노동자 1명당 월 13만 원을 지원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위축되는 후폭풍을 차단하고자 마련된 보완책이다.

이 같은 후속조치에도 영세 사업장의 우려는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매출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최저임금이 인상된다는 소식에 원래 있던 알바생들 대신 가족들이 십시일반으로 일을 돕고 있다"며 "정부가 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업주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더 많이 일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에 노동계는 소상공인ㆍ영세 자영업자들과의 연대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다. 실제 민주노총은 최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한상총련)과 정책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이를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연대라는 뜻의 '노상연대'로 명명하고, 한상총련과의 대화를 지속해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때마침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기조를 뒷받침할 만한 국책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내 섣부른 분석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서 말한 한국노동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고용량에 대한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이미 결론을 생각해두고 급하게 작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노동법률> 노동연구원 발표 두고 경제학계, ""저임금 인상 영향력 평가하기 아직 이르다")

'ILO 핵심협약 비준' 임기 1년 보고서 어디에도 없어

노동기본권과 관련된 현안은 앞으로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노동 존중 사회실현의 세부 공약 중 노동계가 유심히 살펴보는 내용은 바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다.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ILO 핵심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관한 협약은 전교조 등을 둘러싼 법외노조 논란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정부가 약속을 지켰다고 밝힌 35개 항목 중 이 같은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부가 노력해야 할 과제들을 담은 보고서 뒷부분에서도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4월 12일 국제노총(ITUC)과 양대노총ㆍ국회 헌법33조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아직까지 비준하지 못한 결사의 자유 협약과 강제노동 협약의 비준을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심협약의 비준을 위해 협약 내용과 국내법의 상충 여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핵심협약에 반하는 국내법 개정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출범 1년을 맞아 발표한 정부 보고서에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이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핵심협약 비준 여부를 두고 양대노총은 각각 성명과 논평을 통해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 "문재인 정부, 이전보다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부족"

한편, 한국노총은 지난 5월 9일 성명에서 "노동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특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 등의 부문에서 정부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의 평가는 한국노총보다 다소 수위가 강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은 "노동존중을 위한 긍정적 조치와 신호가 있었다"고 언급한 뒤 "거기까지였다"고 논평했다. 이어 "1년을 맞은 지금, 노동정책 공약을 이행할 의지와 계획, 정책과제 추진을 위한 로드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률을 점검한 경실련은 노동분야 공약 이행률 제고를 위해 국회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다수의 노동정책이 국회 입법을 필요로 하는 만큼 국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초심을 지켜가자"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심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공약이 현장에 잘 안착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5월 10일 기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6.1%를 기록(리얼미터,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 응답, 응답률 5.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대영 월간 <노동법률>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5월 10일 월간 <노동법률> 6월호 인터넷판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www.worklaw.co.kr/)

 

 

태그:#노동공약#공약평가#노동존중사회#노동정책#임기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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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검문소와 북촌한옥마을 주민 시위

중앙일보가 수사내용 가장 구체적으로 보도, 반기문 전 총장 공항철도 발매기, 턱받이, 퇴주잔도 묘사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2018년 05월 10일 목요일
 

드루킹 작업기사 1만9000건, 2만건, 9만건 제각각

드루킹 김동원(49) 일당의 댓글 조작 수사내용이 오늘 일간신문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세계일보는 1면에 ‘드루킹 대선 전후 기사 9만건 댓글 조작’이란 기사를 썼다. 국민일보는 ‘1만 9000건’이라고 달았고, 몇몇 신문은 이를 줄잡아 ‘2만 건’이라로 표현했다.

▲ 중앙일보 2면
▲ 중앙일보 2면

대부분 경찰이 드루킹의 최측근 김모(필명 초뽀)씨의 USB에서 확보한 내용을 근거로 삼았다. 중앙일보는 오늘 2면에 ‘초뽀 USB엔 기사 9만 건... 반기문 치명타 턱받이 댓글도’라는 머리기사로 다른 신문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드루킹 일당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2017년 1월 12일 귀국 당일부터 댓글 조작을 벌인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드루킹 일당이 12일 귀국한 반 전 총장이 공항철도에서 표를 구매하기 위해 1만원권 2장을 발매기에 집어넣고, 14일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죽을 떠먹이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턱받이 한 것과 같은 날 선친 묘소에서 퇴주잔을 받아 마신 장면에 조롱과 비난 섞인 댓글을 어김없이 달았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도했다.

1만 9000건, 2만 건, 9만 건으로 신문마다 서로 다른 숫자으로 제목에 뽑아 독자들이 헷갈릴 수 있다. 초뽀의 USB에 담긴 기사주소(URL)의 총량이 9만 건이고, 이 가운데 1만 9000건이 지난해 대선기간에 활용한 주소다.  

베네치아 검문소와 북촌한옥마을 주민 시위 

조선일보는 국제면(16면)엔 ‘베네치아에 관광객 검문소, 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한 이탈리아 북서부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한 해 20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바람에 물가가 오르고 혼잡이 심해 주민들 삶의 질이 떨어지자 시 당국이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 2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성수기엔 현지 주민만 통과시키겠다는 조치를 취했다.  

비슷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틀 전 한겨레신문은 13면에 ‘관광에 뺏긴 사생활 돌려주오... 북촌은 시위중’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를 썼다. 북촌한옥마을운영회가 지난 5일 오전 한옥마을 입구에서 ‘북촌 주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기사에서 주민들은 “골목에 대소변을 보고 가는 이들(관광객)도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일회용 음료 컵이나 아이스크림 컵 등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2017년 6월 30일 20면. 베네치아를 소개한 여행가 김남희씨의 글.
▲ 경향신문 2017년 6월 30일 20면. 베네치아를 소개한 여행가 김남희씨의 글.

 

 

이탈리아 베네치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팔마 등 유럽 유명 관광지는 10여 년 전부터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 유입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차츰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유명세 때문에 찾아간 관광지가 막상 가보면 언론보도만큼 볼거리가 없는 경우도 많다. 언론이 온갖 수사로 화려하게 포장해준 기사를 믿고 한여름 베네치아에 갔다가 푹푹 찌는 습한 더위에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잠만 자다 왔다는 이들도 많다.

반면 화려한 수사와 냉정한 현실을 잘 배합해 베네치아를 소개한 여행기도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6월 30일자 20면에 한 면을 털어 보도한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아름다움에 빠져 몸유병자처럼 걷다’는 제목의 글을 권한다. 김씨는 베네치아를 토마스 만의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모티브로 해설했다. 부와 명성과 예술적 성취를 모두 이룬 노작가 아센바흐 교수가 베네치아로 여행 왔다가 14살 폴란드 소년 타치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파멸한다는 스토리 자체도 극적이지만 소설 속 주무대인 베네치아 리도 해변 묘사도 아름답다. 하지만 김씨는 관광지 미화만 늘어놓지 않는다. “무서운 물가와 연중 이어지는 소란과 운하의 오염을 피해 원주민들은 점차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 주인 없는 방앗간의 쥐들처럼 온 도시를 관광객이 장악하고 있었다. 수상버스 바포레토는 러시아워의 서울 지하철만큼이나 붐볐다. 운하에서 올라오는 썩은 물냄새가 코를 찔렀다.”  

반면에 베네치아는 곤돌라 모는 사공도 오페라을 부르고,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할머니조차 패션 센스를 뽐낸다. 허름한 식당의 테이블에도 이웃한 무라노 섬의 수공예 유리잔이 놓여 있다. 이렇듯 김씨는 도도하고 오만한 베네치아를 잘 표현했다.

급기야 주민들이 시위에 나선 북촌한옥마을을 놓고 서울시는 실태조조사와 설명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베네치아처럼 관광 시간대를 제한하는 방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촌은 조선 후기 북촌은 노론 집권세력의 권문세가가 살던 화려했던 땅이다. 북촌 바로 아래 안국동을 중심으로 기생집과 요릿집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김종필 같은 군사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70년대까지 ‘요정 정치’를 이어갔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안국동 아래 요즘 한창 뜨는 익선동엔 이후락과 김두한 김성곤 같은 정관계 인사들이 들락거렸던 요정 ‘오진암’이 있었다. 오진암은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4남북공동성명을 위한 물밑 작업을 벌였던 장소다. 오진암은 헐리고 그 자리엔 엠베서드 호텔이 들어섰다. 호텔 출입구 옆에 옛 영광을 추억하듯 오진암의 유래를 적어 놨다. 중국 관광객들이 그게 뭔지 알기나 할까.  

서울시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 시행  

여러 신문이 서울시가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전국에서 첫 시행한다는 소식도 비중 있게 다뤘다. 국민일보는 12면 머리기사로 ’감정노동자 악성민원 대응 후 30분 휴식‘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서울시는 시 산하 사업소와 출연기관까지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 서울시는 민원 응대 통화를 의무적으로 녹음하고, 민원인이 감정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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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계엄군, 여성 3~4명 산으로 끌고가 집단 성폭행”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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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5/10 09:08
  • 수정일
    2018/05/10 09:0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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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5·18 때 계엄군, 여성 3~4명 산으로 끌고가 집단 성폭행”

등록 :2018-05-10 05:00수정 :2018-05-10 08:38

 

피해자 ㅇ씨에 대한 5·18재단의 구술록 확인
여성만 3~4명 차에 태워 끌고 가 집단 성폭행
공포를 일으키기 위한 성폭력적 학살 사례도 
전문가 “국가에 의한 성폭력으로 처벌해야”
“‘인도에 반한 범죄’로 공소시효 없다고 봐야”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여성들을 집단으로 납치해 성폭행했다는 구술 자료가 확인됐다. 이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당시 군인들에게 납치돼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승려가 된 ㅇ씨였다. 이는 광주항쟁 당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상습적으로 벌어졌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성·인권 단체들은 이들 사건을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로 규정하고 당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별도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항쟁 20년 뒤인 2000년 ‘5·18기념재단’이 5·18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기록한 구술 자료집을 보면, 당시 여고생이었던 집단 성폭행 피해자 ㅇ씨의 증언이 실려 있다. ㅇ씨는 1980년 5월19일 계엄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 혼자였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들 서이(셋)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아줌마 같애”라고 말했다. 자신 외에 계엄군에게 끌려가 성폭행당한 여성이 3명 더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ㅇ씨의 성폭행 피해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더 많은 피해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ㅇ씨의 증언을 보면 계엄군이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한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ㅇ씨는 당시 광주 주변 도시에서 광주의 한 여고를 다니던 중에 5·18을 맞았다. ㅇ씨는 다른 여성 2~3명 정도와 함께 계엄군들에 의해 강제로 차량에 태워진 것으로 보인다. ㅇ씨는 “(광주시) 유동에선가 어디서 잡혔는디, 집에 갈려다, 맞아 갖고 차에 끌려갔어요. 살려달라고 막 난리가 아니제”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당시 이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했던 계엄군은 계획적으로 이런 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군인들이 여성들만 납치했기 때문이다. 질문자가 “남자들은 내리고 여자들만 데리고 간 거예요? 아니면 원래 처음부터 여자들만 태웠어요?”라고 묻자 ㅇ씨는 “여자들만 태웠재”라고 답변했다.

 

ㅇ씨 등 여성 3~4명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지점은 광주시 남구 백운동 인근 야산으로 추정된다. ㅇ씨는 “어, 그때 기억으로 차에서, 아니 차에서 산에 데리고 갔어”라고 했다. 이들이 성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5월19일은 11공수특전여단이 광주에 증파된 날이다.

 

ㅇ씨는 성폭행당한 직후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해 학교에도 나가지 못했다. ㅇ씨는 “막바로 이상해 갖고, 집에서 가방 들고 갈라믄 못 가게 하고”라고 말했다. ㅇ씨 가족들은 3~4년이 지난 뒤에야 ㅇ씨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 5·18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들에 의해 불임수술까지 받았던 ㅇ씨는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5·18 당시 계엄군 군인들이 여성들에게 저질렀던 학살과 폭력행위는 전쟁범죄와도 같았다. 5월22일 광주시내에서 시위대는 온몸이 두부처럼 짓이겨지고 가슴이 잘린 여성 시신을 발견했다. 사망자는 당시 19살이었던 ㅅ씨였다. 1980년 6월20일 광주지검 공안과에서 작성한 검시 조서는 “ㅅ씨가 가슴이 날카로운 것에 찔린 ‘좌유방부 자창’에 골반부와 대퇴부에 여러 발의 총탄이 관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계엄군은 대검으로 ㅅ씨의 젖가슴을 찔렀고, 실신했거나 죽은 상태의 ㅅ씨의 성기 쪽에 집중적인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가슴과 성기를 난자하는 행위 등은 전쟁 때 진압군이 피지배 여성들의 전의를 꺾기 위한 전형적 ‘과시적 성폭력’으로 분석된다.

 

안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 때 여성에 대한 공격이 더 잔혹했던 이유는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계엄군이 여성에게 가한 만행은 남성의 경우와 달리 성적 차별까지 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5·18 당시 계엄군 등 신군부가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작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도 “만약 국내법상 공소시효 때문에 법적 처벌이 어렵다면, 5·18 때 저질러진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에 대해 진상 규명이라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적 심판이 이뤄져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2005년 집계한 통계를 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다. 항쟁 당시 숨진 165명 중 여성은 13명이다. 사망자 165명 중 129명은 총상, 9명은 자상, 17명은 타박상으로 희생됐다.

 

향후 5·18특별법 제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면 여성들에 대한 국가폭력을 더 엄정하고 섬세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 김상훈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나 친고죄 여부 등의 법적 조항만 보면 실정법상으로 처벌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5·18 당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국가 폭력 범죄로 다른 처벌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5·18 당시 여성에 대한 군인들의 성폭력을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는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경규 경북대 연구교수는 “군대가 총기를 이용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행위와 그 와중에 발생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된다”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런 범죄는 아예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기소해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 책임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5·18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입수한 당시 합동수사본부 직제표를 보면, 합수본부는 단장·국장·부국장 밑에 조정통제과, 수사1·2·3과, 특명반, 대공과 등의 6개 과에 66명이 근무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연재5·18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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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의 비극, 소년들은 암매장 됐다

[선감도의 비밀, 감춰진 아이들 ① - 르포]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도에 가다
18.05.10 08:01 | 정대희 기자쪽지보내기
▲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선감학원은 소년 강제 수용소였다. ⓒ 경기도


선감도엔 비밀이 있다. 감춰진 소년들의 이야기다. 일제가 어린아이들을 강제로 끌어가 노역에 동원했던 기록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똑같았다. 이곳저곳에서 애들을 잡아다가 모진 육체노동을 시켰다. 여기선 40년 동안 어린 소년들을 몽둥이로 다스리고 숨을 거두면 아무렇게나 땅에 묻었다. 그래서다. 이 섬은 인권유린의 땅이자 지옥 섬이었다. 

이런 생지옥의 흔적을 되짚고자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챙겼다. 지난 4월 24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선감도로 향했다. 혼자 간 건, 아니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과 함께 갔다. 그는 지난 20년간 선감도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도에 가다
 

▲ 선감도엔 죽음의 흔적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땅에 묻힌 자국이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풀이 푸성하게 자란 여기가 소년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 정대희


선감도는 섬이 아니었다. 한때 바닷물이 흐르던 곳에 콘크리트 길이 뻗어 있었다. 방조제는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했다. 자동차가 '지방도 301'을 따라 쉬지 않고 달렸다. 불도방조제 삼거리를 지나자 '경기창작센터'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비밀을 안고 있는 장소다. '소년 강제 수용소' 선감학원의 현재 이름이다. 

네 바퀴의 속도가 줄었다. 선감학원 터로 향하던 차가 방향을 틀었다.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 엔진이 멈췄다. 정진각 소장은 "보여줄 게 있다"라고 했다. 산기슭에 있는 풀이 웃자란 땅으로 이끌었다.  

그가 손짓했다. 손끝을 따라 눈을 돌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현수막에 '이름도 없는 어린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라고 적혀 있다. 그제야 풀밭이라 여겼던 땅덩어리에 뭔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봉분이었다. 

"여기가 아이들이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작게라도 무덤이 있는 건, 무연고 분묘다. 어린 소년들의 무덤은 흔적도 없다. 강제로 끌어와 노역을 시키고, 그러다가 죽으면 대충 묻은 거다."

죽음은 흔적을 남긴다. 흙으로 덮여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장비가 동원됐다. 이 지역을 지표투과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로 탐사한 거다. '선감학원 사건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 조사 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에 실린 내용은 이랬다. 

"6개 블록에서는 45곳 정도의 이상대가 확인되었으며, 조사한 영역이 전체 조사지역의 1/3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조사지역 전체에는 150구 정도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풀이 무성히 자란 무덤 터를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 수첩엔 "죽음, 왜?"라고 썼다. 운동화에 묻은 흙을 털지 않고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유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소년들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컨테이너에 진실을 추적한 자료가 쌓여 있었다. 선감역사박물관은 컨테이너 3동을 연결한 시설이었다. 여기에 의문의 죽음을 풀어줄 단서와 실마리가 있었다. 앳된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이야기다. 벽에 걸린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부랑아 감화시설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부랑아들을 보호 육성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태평양 전쟁을 위한 인적자원으로 충원하기 위한 훈육기관으로 운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 시설은 계속 존치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군 주둔지로 41개 동의 건물이 신축되었는데, 미군이 철수하자 더 큰 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로 복귀되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내내 정부에 의해 강도 높게 진행된 부랑아 단속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혹은 성과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소년들을 부랑아로 무차별 연행하고 선감학원 등으로 보냈던 것이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력 착취, 심한 폭력 등 인권유린을 당하였고 많은 소년들이 생명을 잃었는데, 수용소 당국은 사망한 소년들을 적합한 절차 없이 암매장하였다."



때론 진실이 더 잔혹하다. 선감도의 숨겨진 이야기는 소년들의 비극이다. 선감학원은 물 위에 떠 있는 소년 강제 수용소였다. 이런 걸 짓느라 일제는 땅을 사들이고 주민들을 섬 밖으로 쫓아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시청 공무원과 경찰이 소년들을 납치하다시피 잡아다가 선감학원에 보냈다. 

선감도의 비밀, 소년의 비극
 

▲ 일제 강점기 선감학원 ⓒ 홍석민


섬 한가운데 비극의 현장이 있었다. 선감역사박물관을 빠져나오자 정 소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경기창작센터에서 온 연락이었다. 이날 열리는 선감학원 피해자 위령제를 위한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전화였다. 선감학원 터에 지금은 경기창작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기억의 발자국을 찾아 나섰다. 경기창작센터에 남은 선감학원의 흔적을 훑어봤다. 흑백사진에서 봤던 목조건물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뀌어 있었다. 먼지가 날리던 운동장엔 천연잔디가 깔렸었다.

두 발로 비극을 기록하고자 길을 나섰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경기창작센터에서 나루터까지 이어진 '선감이야기길'을 걷기로 했다. 정 소장과는 잠시 헤어졌다. 나 홀로 취재 장비를 챙겨 탐방을 시작했다.  

포도밭 옆에 비극의 자국이 남아있었다. 소년들이 머물던 막사였다. 빛바랜 사진 속에 있던 '원생 숙소'와 다르지 않았다. 가방에서 정 소장이 준 선감학원 자료집을 꺼냈다. 일제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아이가 '원생 숙소'에 끌려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1942년 6월 2일, <매일신보>에 게재된 '자취 감춘 부랑아 선감도에 200명 수용'이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29일 오전 4시 부내 각 경찰서를 총동원시켜 일제히 관내에 산재해 있는 부랑 소년 300여 명을 영등포역전에 모이게 하여 그중 7세로부터 14세까지 200여 명을 버스 6대에 분승시켜 오전 11시경 인천으로 보내 동일 오후에 선감도로 승선시켰는데..."


1942년 3월, 일제는 조선소년령을 제정했다. 같은 해 5월 29일, 선감학원은 설립기념일을 가졌다. 법을 만들고, 수용소의 문을 열고, 아이들을 끌어오기까지 약 3개월이 걸린 거다. 아귀가 '딱딱' 맞는 흐름이다.  

선감학원이 '소년 창고'였다는 기록도 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만든 문서다.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는 자료다. '선감학원 운영대책' 중 '별첨자료'인 '수용아동현황(1982년 7월 15일 기준)'에 수치가 기록돼 있다. '입원 누계 5775명, 퇴원 누계 5694명, 현원 65명'이라 쓰여 있다. '원생 숙소'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는 거다.
 

▲ 선감학원 터에 들어선 경기창작센터 ⓒ 정대희


한때 소년들의 숙소를 지나 언덕에 오르자 쉼터가 나타났다. 드넓은 평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고사리손으로 풀을 베고, 밭을 갈았던 터다. 이걸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군사정권 시절, 8살 나이에 선감학원에 끌려갔던 곽은수, 혜법 스님의 증언이다.
 

"뽕잎 따기 풀 뽑기, 산을 논으로 개간하는 일을 했는데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식당에 들여보내질 않는 거예요. 어떤 날은 새벽에 일하러 나가기도 했는데 작업량을 못 채우면 아침을 거르게 되는 거죠. 간신히 작업량을 채우고 식당에 갔는데 밥이 없으면 정말 피눈물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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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62)씨도 10살 즈음에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가 입을 연 국가폭력의 민낯은 이렇다.
 

"정말 힘든 게 노동이었어요. 그 어린아이들한테 성인도 하기 힘든 하역 작업을 시켰어요. 배에서 연탄이나 40킬로(그램)나 되는 시멘트 부대 같은 것을 내리는 일이었는데, 그때 시멘트 부대를 진 채로 배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게 지금도 저를 괴롭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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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일제 강점기에 기록을 찾고자 구술기록을 뒤졌다. 농사일 말고도 황민화 교육을 받고 군사훈련에 참여했다는 증언이 있다. 책 <아! 선감도>를 펴낸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84)씨의 말이다. 그는 선감도의 비극을 처음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소년들은)오전에 6시 기상, 7시 넘어까지 공부했습니다. 공부는 일본어와 천황폐하의 칙어를 반복적으로 따라 하게 했습니다. 7시 반이나 8시쯤 아침을 먹었고... 중식 후에는 농사일을 하거나 운동장에 모여서 교련을 했습니다.

식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영향실조에 걸리거나, 고픈 배를 달리기 위해 개구리, 쥐, 뱀을 잡아 먹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뭐든지 먹었기 때문에 위에 탈이 나서 쓰러지곤 했습니다... 피병사(避病舍)에 있는 어린이를 몇 명 봤습니다. 상처 난 곳에 파리가 잔뜩 꼬여서 커다란 검은 점같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어 보였습니다."



자료집을 덮었다. 더는 읽기 힘들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틈도 없었다. 가야할 길이, 기록해야 할 게 아직 남았다. 언덕길을 내려와 나루터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벚꽃이 땅 위를 하얗게 수놓았다. 발밑이 꽃길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어린 소년들에겐 생지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이들이 끌려와 처음 발을 내디뎠던 나루터에 도착했다. 대부도가 보였다. 

섬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는 이야기. 나루터에도 있다. 뒷산에서 봤던 죽음의 흔적은 지옥 섬을 탈출하다가 실패한 어린아이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일이다. 이하라 히로미츠는 이렇게 증언했다.
 

"해변에서, 물에 빠져서 죽은 아이를 본 건 2, 3명 정도였습니다. 도망갔지만 주변이 바다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헤엄쳐서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도망친 아이들은 대부도로 갔습니다. 대부도에서 민가로 가는데 모두 배가 고프니까 밥을 훔쳐 먹습니다. 그러다가 잡혀서 대부도 사람-당시는 조선인이라고 했는데-들이 선감도로 데려왔습니다. 잡혀 온 아이들은 매를 맡았고, 묶여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다르지 않다. 소년 임용남은 12살에 선감학원에 끌려왔다. 3년 동안 7번 탈출을 시도한 끝에 나루터를 벗어나 육지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의 증언은 취재 수첩에 적어둔 궁금증도 풀어줬다.

 

"7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면서 무턱대고 바다로 뛰어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요. 그곳에 있는 3년 동안 10번 정도 죽음을 목격했는데, 대부분 도망치다 바다에 빠져 죽은 경우였어요. 정말 끔찍합니다. 몸은 퉁퉁 불어 있고, 조그마한 조개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시체를 건지면 가마니에 둘둘 말아 묻으면 그만이에요. 개죽음이죠."



[관련 기사] 7번의 탈출, "정말 견디기 힘든 게 성폭력" 

이런 증언을 읽고 고개를 들자 방범대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태극기가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소년 임용남이 아른거렸다. 그에게 국가는 없었다. 아니, 키 작은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건, 국가였다. 

끝나지 않은 선감도의 비극
 

▲ 선감도에 강제로 끌려온 어린아이들이 생활했던 '원생 숙소' ⓒ 정대희


"나루터 옆 포장마차에서 칼국수 한 그릇 합시다."

지난 4월 24일 낮 12시 30분, 다시 정 소장을 만났다. 선감학원 피해자 위령제 회의가 뜻대로 안 됐는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칼국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얼굴이 상기됐다. 선감도가 한눈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갔다. 주인장이 정 소장을 아는 체한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이랑 종종 이 집을 찾아와요. 그러다가 알게 됐는데. 여기 주인이 말하길, 이따금 혼자서 칼국수에 소주 한잔하면서 우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나도 모르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이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여기서도 어린 소녀를 향했던 서슬 퍼런 폭력의 기억을 들을 수 있었다. 머리와 가슴을 할퀸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선감도를 떠나기 전, 선감학원 피해자 위령비를 찾았다. 경기창작센터 한 귀퉁이에 있었다. 혼자서 훑어볼 땐, 못 봤던 거다. 지난 2014년 정 소장과 뜻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세운 거였다. 위령비에는 이런 설명문이 달려 있었다.
 

"본 조형물은 유년시절 놀이기구의 하나인 방패연 이미지를 사용하여 구상한 작품으로 방패연, 얼레, 꽃잎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패연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 얼레는 연이 날 수 있도록 바람을 일으킴과 동시에 연을 묶어두는 양면적 상황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하였고 꽃잎은 어린아이의 고귀함과 순수를 은유한다. 이는 자유롭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속적인 자유를 염원하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다."


위령비의 방패연 문양 구멍 사이로 뒷산이 보였다. 선감도에 끌려왔다가 죽은 어린 소년들이 묻힌 장소다. 이날 처음 찾은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선감도의 비극,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을 시작으로 선감도의 비밀을 추적한다. 감춰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한다. 일제가, 군사독재 정권이 소년들에게 가한 강제노역과 폭력, 인권유린을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낱낱이 공개한다. 

진실은 아직 땅속에 묻혀있다.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진실이 규명되는 그날을 위해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놓지 않겠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다.
 

 
▲ 선감도 나루터는 한때 무덤이었다. 어린아디들은 섬을 탈출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다 실패하면 여기서 사체로 발견됐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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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상 "서울-신의주-중국 잇는 철도 사업 가능"

"北에 일방 요구만 말고 체제·경제 보장해야"
2018.05.09 18:03:09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향후 북한 비핵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보상, 이른바 '당근'을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비핵화에 "상응하는 피드백"에 대해 국제사회가 논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9일 문 대통령과 리 총리의 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두 정상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양국 간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양국 정상은 특히 북한에 대해 일방적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행할 경우 체제 보장과 경제개발 지원 등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양국 정상은 북한의 경제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신의주-중국을 잇는 철도 건설 사업이 검토될 수 있으며, 한중 양국 간의 조사연구 사업이 선행될 수 있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고 구체적 경협 사업에 대해서도 한중 정상 간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같은 접근에는 중국이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 총리는 회담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피드백을 (북한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한국을 메신저로 삼아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 총리가 말한 '북한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 "핵실험장 폐기 등 북한은 나름 본인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미국의 피드백'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북한이 성의를 보이는 것에 대한, 미국 쪽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같은 '보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이야기"라며 "'비핵화가 이뤄진다면'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리 총리의 발언이 지금 단계에서 대북 제재를 완화해 달라는 등의 의미는 아닌 것으로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과 리 총리의 회담 전날, 중국은 북한과도 비핵화 관련 대화를 나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전날 전격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한 조선노동당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한 데 대해 지지"를 보냈으며 "중국은 한반도 정세의 발전과 변화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취한 중대한 결단과 조치들을 높이 평가하고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이날 전했다. 

전날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위해 "단계별 동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세기의 회담 '마지막 고빗길'...北은 '성의'를 보일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인 '단계적·동시적 조치'라는 말 자체가 지난 3월 28일 김 위원장과 시 주석 간의 북중 정상회담 당시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文 "남북회담 성공, 전적으로 中 지지 덕분"…李 "한반도 비핵화 함께 추진"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중국의 강력한 지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중국을 치켜세우거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국 쪽에서 많은 지지와 협력을 해준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하는 등 이른바 '차이나 패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저와 시진핑 주석, 리 총리의 전략적 소통이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뒷받침했다"며 "앞으로도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리 총리는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돼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데 대해 축하 인사를 드린다"며 "중국은 한반도 정세 완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대통령 본인의 노고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중국 측은 한국과 함께 양자관계에서 건전하고 안전한 관계를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며 "한국 측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리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중국공산당 외교부장의 지난 2~3일 방북 결과 등 최근 북중 간 교류 동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 정상, 오는 6월 미세먼지 공동 대응 '환경협력센터' 출범 환영

문 대통령은 "오늘 한중일 정상회의가 아주 성공적으로 잘 마쳐져서 기쁘다"며 "중국이 차기 의장국을 맡은 다음 회의도 조기 개최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주 기대가 크고, 이번을 계기로 한중일 회의가 정례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는 안보 사안 외에 한중관계 발전과 환경 문제 공조 등도 함께 논의됐다. 청와대는 "두 정상은 양국 국민들의 공통 관심사인 미세먼지 대응 등 환경 협력을 총괄하게 될 '한중 환경협력센터'의 내달 출범을 환영하고, 미세먼지 대응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한중 환경협력센터는 한중일 환경장관 회의(6.23~24, 중국) 계기에 출범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미세먼지와 관련해 "한중 양국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세먼지 문제고, 이 문제는 양국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양 정부가 진지하게 걱정하고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리 총리는 "미세먼지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며 그 이유도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한국과 함께 연구하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리 총리에게 한국 단체관광 제한 해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롯데마트 매각 및 롯데월드 프로젝트 조속 재개 등 지난해 중국 측에 요청한 사안이 하나둘씩 해결되고 있다며 사의를 표하고 "좀더, 보다 빠르고 활력있게 진전되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중국 내 위치한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에 중국 정부가 관심과 지원을 보내 달라고 당부했고, 리 총리는 적극 협력하겠다는 취지로 화답했다.  

한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리커창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드(THAAD)'에 대해 언급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께서 미세먼지 해결책, 여행객 제재 해제 등을 재차 요청하는 과정에서 리 총리도 한마디 언급하고 넘어갔고, 심각한 논의가 이뤄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윤나영 기자 dongglmoon@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획팀에서 노동 분야를 담당하며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 등을 다뤘다. 이후 환자 인권, 의료 영리화 등 보건의료 분야 기사를 주로 쓰다가 2015년 5월부터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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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떠오른 평양이 암시하는 제국주의시대의 끝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5/10 07:32
  • 수정일
    2018/05/10 07: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떠오른 평양이 암시하는 제국주의시대의 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5/10 [02: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9일 JTBC뉴스룸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은 미국인 3명 석방 이후  미 외교가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이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9일 JTBC뉴스룸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은 미국인 3명 석방 이후 미 외교가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이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본지에서 여러차례 예측했던 바 그대로다. 물론 아직 확정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제도권 언론에 이런 정보가 흘러들 정도라면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그리고 이해찬 총리까지도 팟캐스트 대담에 나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에 나선 것은 미국의 사상초유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으로 지금 북의 전방위적 외교를 분석하면 틀릴 수밖에 없으며 우리 정부도 기회를 놓쳐 막대한 손해를 피하기 어렵다.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솟구쳐오르는 전방위적 정상회담은 2016년 북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최첨단 재래식무기와 2017년 과시한 미사일 장착용 소형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어마무시한 핵전략무기 시험성공이 추동한 일로 봐야 정세를 정확히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본토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대결전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결정적 사변'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대북제재와 항공모함 5척까지 동원한 대북압박도 그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패배라는 주장이었다.

 

미국이 제국주의 패권국의 힘이 있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하는데 미국은 북과 대화를 선택했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문제 해결은 원래부터 북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일이었고 미국은 선핵폐기 없이는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강변해왔다. 결국 북의 요구가 관철된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이제 북과 종전에 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종전선언과 북미평화협정체결,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내용이고 미국은 북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을 푸틴 대통령식으로 평가하면 북이 승리한 대결전을 수습하는 회담인 것이다. 따라서 내용과 장소, 일정은 북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북은 한국전쟁과 그 이후 이어진 미국의 대북 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다. 북은 총알 한 발 미국 본토에 쏜 것이 없다. 회담 장소와 회담 내용은 피해자가 선택하는 것이지 가해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역사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린 상황에서 협의된 종전선언은 모두 다 그랬다.

 

물론 북의 승리는 미국 국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가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과의 대결전에서 승리이기에 사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은 호혜적인 나라로 거듭나게 될 것이어서 미국 국민들도 내용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장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이 감축, 철거되어 미국인들의 세금이 국방비로 쓰이지 않고 미국인들의 의료와 교육, 주거 및 엉망이 된 채 돈이 없어 보수도 못하고 있는 도로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철도 등을 정비하는 일에 쓰일 것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는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제국주의 미국의 패배인 것이다.

 

이것이 북미정상회담의 본질이다. 북이 핵시험장을 공개적으로 폐쇄하고 완전히 핵폐기에 나서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군사패권을 추구할 의사가 전혀 없는 북이기 때문에 북미대결전을 종식시키는 등 북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더는 핵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북의 판단으로 보인다. 그래서 폐기에 나서는 것뿐이리라.

 

물론 가능성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혹시 미국이 약속을 어기고 회담 이후 다시 북을 핵으로 위협할 우려를 품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대비는 어려울 것이 없다. 북은 유일하게 미국의 핵공격에도 전 주민을 대피시켜 일년 이상 생활할 수 있는 완벽한 지하대피시설을 갖춘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이 핵공격을 가하는 날 북의 지상은 좀 파괴되겠지만 북 주민은 모두 살아남는다. 그리고 바로 지하에서 미국 본토를 직격하여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릴 무기를 신속히 만들어 보복에 나설 것이다. 그날로 미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며 북 주민들은 오염된 한반도를 일시적으로 떠나 미국에 가서 살면 된다.

미국도 북의 그럴 능력까지는 폐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북이 자신있게 한반도 비핵화에 나선다는 것은 모든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제국주의가 종국적으로 완전히 끝장나지 않는 한 북의 선군정치 정신은 절대로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북에서 공식적으로 한 두번만 밝힌 내용이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0여일만에 다시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로 국경을 넘은 것도 뭔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중국 외교부에서도 이번 다롄 북중정상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불러서 간 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간 것이란 말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대결전을 대화와 협상으로 매듭지으려고 여러 수를 펴가다보니 중국과 전략, 전술적으로 추가 논의할 필요성을 느껴 다시 시진핑 주석을 만난 것일 뿐이다.

어쨌든 이번 북중회담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더욱 확고한 북중협력관계를 확인하여 미국이 대화에서 다시 발을 빼서 중국과 대북 제재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대못을 박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자세한 분석은 이미 기사화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9473)

 

▲ 북 노동신문은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두 번째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5월 7일 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방문하고 이틀 간의 정상회담 일정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수를 펼쳐가던 중 북중사이 전략, 전술적 추가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번 회담으로 북은 더욱 확고한 북중협력관계를 확인하여 미국이 대화에서 다시 발을 빼서 다시 중국과 대북 제재로 되돌아갈 수 없고 대못을 박았다.

 

그간 행보를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단히 실용적이며 대범 대담하고 대화 상대에 대한 아량도 깊어 미국의 애로도 들어주면서 대화를 진행시켜갈 것이기에 평양이 아닌 곳에서 회담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본다. 하지만 북미대결전의 흐름과 기본 관례를 놓고 보았을 때 평양 외에는 다른 곳은 생각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내용적으로 제국주의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협상이 북미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세계사적 대격변을 몰고 오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호혜평등 새로운 세계질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새벽 직전의 어둠이 가장 짙은 법이다. 우여곡절과 난관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기본 대세는 이미 굳어져가고 있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든다.

 

일본도 곧 북일정상회담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도 지난해 북미정상회담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북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독일 메르켈 총리는 미국 압박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의 대북압박 중단과 대화를 통한 한반도문제 해결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유럽의회 한반도관계대표단장 너지 데바는 북미평화협정을 최근에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영국도 북미전쟁이 발발한다면 이제는 미국을 도와 파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이미 오래 전에 북과 밀월관계에 들어섰다.  

북이 여기서 더 핵과 미사일 시험을 단행하게 되면 미국은 물론 유럽도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온 세계가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란 기관차를 고철 녹이는 용광로로 몰고가는 원격조종 운전대를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잡고 있는 형국이다. 북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북미정상회담이 정말 열릴 것인지, 장소는 어디로 될 것인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쓸데 없이 우리 정부에서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판문점을 권하는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닌가. 그런 헛수고야 세금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를 제대로 보지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조국통일의 적기를 놓치게 되면 그 피해는 실로 막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남북교류협력만이 우리 경제의 살 길이라는데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대세를 잘 못 읽으면 그 투자 적기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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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모기가 피를 더 빤다

조홍섭 2018. 05. 08
조회수 862 추천수 1
 
왜 빨까? “단백질 섭취 외에 ‘수분 확보’도 중요”
얼마나? “습도 20% 줄면, 모기 5배 더 덤빈다”
시사점? “모기예보제 등 방제 대책에 반영해야” 
 
Muhammad Mahdi Karim-Aedes_aegypti-2.jpg» 목마른 모기는 주변에 수분을 섭취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흡혈로 해결하러 든다. 건조 상태에서 흡혈 행동이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진 숲모기의 일종. 무하마드 마흐디 카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산란을 앞둔 모기 암컷은 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확보하기 위해 동물의 피를 빤다. 그러나 모기의 흡혈 이유에는 산란과 함께 목 축이기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목마른 모기가 흡혈에 나선다면 기상 조건에 따른 모기 방제도 달려져야 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실험실에서 모기를 연구하다 우연히 발견했다. 미국 신시내티대 생물학과 연구자들은 여러 조건에서 모기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건조한 유리병에서 기르던 모기들이 실수로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모기들은 하나같이 아주 공격적이었고 사람에 덤벼들어 물려고 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는 밝혔다.
 
ANDREW HIGLEY_UC CREATIVE SERVICES-1.jpg» 실험실에서 다양한 조건에서 사육하는 모기들. 우연히 이 유리병에서 탈출한 모기들의 놀라운 공격성이 이번 연구의 계기가 됐다. 앤드류 히글리, 신시내티대 제공.
 
연구자들은 집모기, 숲모기, 얼룩날개모기를 대상으로 목마른 상태가 흡혈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했다.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방의 습도가 10% 줄어들면 모기가 숙주에 앉는 비율이 2배로 늘었고, 습도가 15∼20% 줄면 그 비율이 4∼5배로 늘었다”라고 밝혔다. 집모기의 흡혈 시도는 방의 습도가 20∼30% 줄어들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 목마른 모기가 목을 축이기 위해 흡혈에 나서기 때문이었다. 보통 실험실 암모기 가운데 5∼10%가 흡혈에 나서는데, 건조 상태에서는 그 비율이 30%로 높아졌다. 그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물이 있을 때는 건조한 조건에서도 흡혈에 나서는 비율이 높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흔히 모기는 비 온 뒤 고인 물에 알을 낳을 때 사람을 물어 병을 옮기거나 성가시게 군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로 건조한 상태라고 모기로부터 안전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 적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모기가 옮기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의 감염률은 건기 동안 가장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모기는 기온이 높을수록, 또 강수량은 적을수록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상청은 강수량과 모기 개체 수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이유를 “강수량이 많으면 모기의 서식지인 고인 물을 쓸어내는 효과가 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처럼 건조할 때 수분을 섭취하기 위한 모기 활동이 늘어난다면, 기상 조건 등을 고려해 시행하는 모기 예보제 등 모기 방제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ichard W. Hagan et al, Dehydration prompts increased activity and blood feeding by mosquitoes, Scientific Reports, (2018) 8:6804, DOI:10.1038/s41598-018-24893-z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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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미 국무 전격 방북…억류 미국인 3명 데리고 올듯

등록 :2018-05-09 08:40수정 :2018-05-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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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시간도 정해져…거래 성사 희망”
북, 억류 3인 석방으로 대화 분위기 무르익을 듯
 
그래픽 정희영
그래픽 정희영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다시 방문했다. 북-미 간 사전조율과정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폼페이오 장관의 2차 방북으로, 단기 교착국면의 돌파구가 마련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외신들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데리고 함께 귀국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이란핵협정 탈퇴를 발표하던 백악관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금 폼페이오 장관이 다가오는 김정은(국무위원장)과의 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으로 가는 중”이라고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폼페이오 장관)는 곧 거기에 도착할 것이다. 아마 1시간 안에”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 회담이 예정돼 있다. 장소를 선택했고, 시간과 날짜도 정해졌다”며 “우리는 매우 큰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그 관계가 잘 돌아가는지 볼 것”이라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가 성사되기를 희망한다”며 “중국과 한국, 일본의 도움으로 모두를 위해 위대한 번영과 평화의 미래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석방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라며 “석방되면 아주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3명의 미국인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8일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수행기자단에게 “그때(폼페이오 장관의 첫 방북)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상회담 의제의 개략적인 내용들을 만들어왔다”며 “이번 방북에선 그 중의 몇가지를 확정하고,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틀을 마련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은 과거에 갔던 길로 다시 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재 완화를) 작은 단계적 방식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방법은 김정은이 원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미 안보관계에서 역사적이고 커다란 변화의 기회를 그들(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에게 줄 수 있는 일련의 조건을 제시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올리고 언급해 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을 직접 만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북한의 최고위급 지도자들을 만날 것”이라고만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부활절 주말(3월31일∼4월1일)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등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지휘해왔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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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북한은, 사실 북한이 아니었다

[프레시안 books] 박한식·강국진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
2018.05.08 23:12:39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인 기자 유나 리, 로라 링이 북한에 의해 억류됐다. 그들의 석방을 위해 방북 길에 나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몰려든 미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자세한 것은 박한식 교수에게 물어보라"
 
박한식 교수. 1939년생, 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시기, 평양 피난민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분단이 되면서 경북 청도로 내려왔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쳤다. 가르치던 학생의 소개로 조지아 주지사였던 지미 카터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카터를 통해 덩샤오핑을 만났고, 덩샤오핑의 주선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후 50여 차례 평양을 방문,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보고 연구했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중재했고, 미국의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조언을 해온 그는 현재 미국 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 중 한명이다. 
 
4.27남북정상회담 직전 박 교수의 책이 나왔다. <서울신문> 강국진 기자가 묻고 박 교수가 답한 대담집 <선을 넘어 생각한다>(부키, 2008년 4월)는 현 시점 남북, 북미 관계의 전후 맥락을 설명해 주는 최고의 해설서이자, 북한을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입문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 정부와 교섭해야 한다"고 했다. 분단 이후 반세기 넘게 우리는 북한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그 이미지를 상대해 왔다. 숱한 선거, 격동의 정치 속에서 구호와 적개심을 재료로 북한을 창조했고, 창조된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워 왔다. 
 
박 교수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것은 딱 두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붕괴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닳고 닳은 '북한 붕괴론'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북한 붕괴론의 역사는 길다. 1948년 북한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됐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견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북한 붕괴가 시간 문제라고 봤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한 교수는 북한이 빠르면 사흘, 늦어도 3년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통일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가 닥쳐올 수도 있다"라고 했다. 1997년 황장엽 망명 때도 신문 방송에서는 북한이 붕괴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사실상 '종교적 도그마 수준'인 북한 붕괴론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별다른 근거 없이 맹신했다. 
 
결국 북한 붕괴론은 허상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었다. 허상 위에 쌓은 정책이 실적을 낼 리 만무하다. 지난 10년간 미국과 한국 정부는 '전략적 인내'의 모순적 조어로 상징되는 위험한 '기다림'만 이어갔을 뿐, 노벨평화상을 '미리' 수상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 됐던 '이명박근혜' 정권은 대북 정책에서 완전한 실패자들로 기록됐다.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Insanity)의 정의를 내리면서 '똑같인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라고 했다. 잘못된 인식,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대북 정책을 펴 왔는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으로 나서길 바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난 반세기 가까이 '북한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금기로 하면서 똑같은 일들을 반복해왔다. '지금까지 방식이 잘못됐으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강제된 사유를 체화해 인식론적 오류를 숱하게 범하면서도 '빨갱이'로 몰릴까 말하기를 두려워 했다. 북한은 우리 사회의 자유롭고 객관적인 사고를 억압하는 가장 강고한 기제였다.  
 
이제 그것을 깰 때가 왔다. 복잡하게 얽힌 북한 문제를 쾌도난마식으로 풀어가는 박 교수의 식견을 따라가다보면, 북한이라는 '유령'의 실체를 새롭게 볼 수 있다. 

▲조지아대학교 매거진에 실린 박한식 교수 ⓒ조지아대학교

우리는 '북한의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독재 치하에서 못살고 탄압받는 인민들의 나라다. 보수 언론 중심의 단편적이고 왜곡된 (심지어 확인조차 불가한) 보도는 북한을 '환상'의 영역에 고정시킨다. 오늘 보도되는 북한은 엄혹한 중세 시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지만, 내일 보도되는 북한은 '돈 맛'을 본 인민의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의 사회다. 시스템에 대한 접근 없는 개별 사건들의 나열,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와 추상적 '수치'들의 건조한 팩트만 어지럽게 제시될 뿐이다.   
 
이를테면 북한에 '장마당'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장마당'의 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박 교수가 장성택 처형의 맥락과 의미를 '장마당'의 대치 개념으로 묶어 해석한 부분은 특히 주목할만 하다.  
 
"(장마당은) 돈을 벌어서 자신들이 다 갖는 것이 아니라, 각 단위에서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단위에서 수익을 갖는 구조입니다. 평양에 유명한 약장 골목이 있는데 서로 자기 집 약을 팔기 위해 호객 행위를 하며 경쟁깨나 벌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게마다 속해 있는 생산 단위가 있어 매상이 오르면 그 단위의 성적이 올라가고 상여금도 받게 됩니다. 집단과 집단 간 경쟁이 있는 것이지, 개인과 개인의 경쟁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북한에서 '경제 발전'은 확고하게 국론으로 자리를 잡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다만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장성택 방식'은 절대 안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성택 방식은 자본주의 방법으로 사유재산, 개인주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성택은 국가 이름으로 거래하면서 자신의 개인 재산을 중국 은행에 축적한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북한 체제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장성택의 가장 큰 죄가 개인주의였던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개인은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데 장성택은 그렇지 못한 행위를 저질렀고, 더욱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거북한 존재가 되면서 일종의 혹으로 인식된 셈이지요.  
 
한마디로 북한의 시장은 통제되는 시장입니다. 중국도 경제적으로 자본주의화가 되었지만 공산당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도 노동당의 통제하에서 자본주의적 요소와 경제성장을 도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단위'가 성과를 올리는 시스템. 이 '단위' 라는 것은 일종의 '협동조합'으로 해석될 수 있다. 쿠바가 1990년대 경제 위기를 겪은 후 협동조합 단위를 발전시켜 급속한 개인주의화를 막고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을 도입한 것과 같은 맥으로 읽을 수 있다. 쿠바가 극심한 제재에도 내부 경제를 탄탄히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북한 역시 비슷한 방식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느정도 효과를 보이고 있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몇몇 탐욕스러운 상인'들이 북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일반적 해석들과는 다른 '시스템'이 발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인 재산 축적'의 상징으로 지목된 장성택의 처형과 관련해서는 조금 더 복합적인 해설을 곁들인다.  
 
"2013년 12월에 있었던 장성택 처형은 ()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대다수 한국 사람들에게 장성택을 누가 죽였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저는 '모른다'고 답할 것입니다. 제가 평양에서 들은 바를 종합해보면 조선노동당의 여러 최고위급 간부들이 협의한 끝에 장성택을 처형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겨정 과정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당 차원에서 '당과 국가를 위해 살려둘 수 없다'고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당에서 결정'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당의 결정'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수령'의 나라 북한은 '수령'이 없는 체제로 24년을 이어왔다. 북한의 체제를 지탱하는 것은 김정은과 몇몇의 엘리트가 아니라 '조선노동당원'들이다. 박 교수는 "조선노동당은 거대하고 구심력이 매우 강한 복합체로 당원 규모가 360만 명이나 됩니다. 북한 전체 인구가 약 2500만 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노동당이 얼마나 방대한 조직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조선노동당원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철저한 능력주의에 입각해 있어 승진을 하거나 중책을 맡는 일 모두 집단적인 평가 과정을 거친다. 한국에서는 '당원=특권층'의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북한 체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고정관념이다. 당원과 일반 대중의 '계급'이 존재하고, 그것이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보수 정치인들의 말대로 민중 봉기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선노동당과 인민 대중은 결합돼 있다고 한다.  
 
쿠바를 수십차례 방문해 연구한 미국의 학자 아널드 오거스트가 쓴 <쿠바식 민주주의 : 대의민주주의 VS 참여민주주의>(삼천리, 2015년 9월)에서는 '쿠바는 독재국가', '쿠바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미국인들의 통념을 깨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의회가 없는 쿠바에서는 수많은 '인민 조직'들이 의회를 대체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왔다. 쿠바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쿠바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의 의사가 정치에 실제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비슷하다. 북한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만든 체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만든 체제에 그들이 익숙하기 때문이며, 삶의 불만을 해결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도 사람이 산다', 이 단순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박근혜의 '망루 망신'...북핵 중국 책임론의 허상 
 

▲ 선을 넘어 생각한다(박한식, 강국진 지음) ⓒ부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허상'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유행했던 관점이 이른바 '북핵 중국 책임론'이었다.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는 물론, 한국의 공무원들, 심지어 기자들 역시 '북핵 중국 책임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북핵 위기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시론이 언론사 지면을 도배하다시피했다. 
 
'북핵 중국 책임론'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말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힘이 있으면서 그 힘을 쓰지 않는 것일까? 박 교수는 이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주목한다. 
 
"북핵 중국 책임론이 나온 정치적 맥락을 살펴보면 그 허구성이 바로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북핵 중국 책임론'은 조지 W.부시 행정부의 작품이나 다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 정부는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막으려고 한다는 점을 이용하는 동시에 북핵 전략 부재에 따른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서 북핵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중국에 공을 넘겨버렸던 것입니다. 미국측 인사의 다음 증언은 이 프레임의 전략적, 전술적 유용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우리도 정말 중국이 북한에 결정적인 압력을 가하거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더 좋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이것은 나름대로 유용했다. 특히 미국이 북핵 문제를 두고 공개적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하는 지렛대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에 전략적 도움이 된다. (이성헌 '북핵의 중국 책임론과 미국의 외교 전략' 성균차이나브리프, 2014. 118~123쪽)'
 
미국 정부로서는 대단히 편리한 알리바이를 손에 넣은 셈입니다. 언론에서 북핵 문제에 왜 진전이 없느냐고 물으면 미국 정부 관계자는 그냥 '중국이 협조를 안해서'라고 답변하면 만사 오케이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같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프레임에 그대로 포섭되었습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외교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중국 책임론'은 특히 도그마처럼 받아들여졌다. 청와대 참모진은 '중국 역할론'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책임론'이라는 허상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망루 외교'를 펼쳐 한국의 보수 세력마저 당황케 했다. 천안문 망루에 선 박근혜 대통령은 이듬해에 (중국 견제 의도가 담긴) 사드 도입을 추진하는 극도로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바다.  
 
이명박 정부는 그래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시도했었다. 역대 대북 문제에서 가장 무능한 정권은 박근혜 정권이었다. '전략적 인내', '기다리기'를 넘어서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했다.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잘못된 정보, 잘못된 인식에 토대한 행동이 얼마나 문제 해결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북한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알고 있는 북한'만 중요했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남한은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달랐다. 중국과 구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다. 북한의 생존 방식이었다. 사회주의 진영의 양대 축 중 한쪽에 경도될 경우 난감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조선노동당 관계자에게서 "세상 모든 나라 중에서 제일 의존하면 안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주성'을 특별히 중시하는 북한이나, 다목적 포석으로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중국 역할론'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북한 인권 문제와 탈북자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박 교수는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해석을 내놓는다. 
 
1994년 7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이 현재 핵탄두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탄두 5개를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주장한 강명도 사건을 예로 든다.(강명도는 자신을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 것은 이 기자회견 자체가 청와대 지시로 급조됐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측은 "기자회견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 이유는 북핵 협상이 한국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2000년대 초반 탈북자 김운철이 북한 내 강제 수용소와 고문, 처형 등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증언했을 때, 전 세계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스스로 김운철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박충일이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드러났다. 1997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돈벌이를 하다 다섯 번이나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다 탈북한 인물이었다. 
 
최근 사례로는 신동혁이 있다. 그는 스스로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탈북자라고 주장했고,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책을 냈다. 오바마 행정부 국무장관이었던 존 케리가 "북한의 인권 탄압을 알리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선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신동혁은 4호 수용소에서 태어났다고 했다가 후에 이를 번복하는 등 수차례 증언을 바꿨다. 신동혁의 지인인 정광일 씨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동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14호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지적해도 다른 사람들은 시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더라. 동혁이는 국내에선 별 활동을 안했다. 들통날까봐 두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관련해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송지영 교수가 쓴 글을 인용했다.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 의회, 서구 언론을 불문하고 질문은 한결같다. '왜 북한을 떠났나? 그곳에서의 삶은 얼마나 끔찍했나?' 그들의 이야기가 끔찍하면 끔찍할 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북한 인권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본질도 비슷하다. 국정원은 유우성 씨 동생에게 '남한에서 정착해 살 게 해 주겠다'는 것을 미끼로, 거짓 증언을 이끌어냈다. 국정원은 애초에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스스로 상상해낸 북한의 모습에 사회적 약자인 북한 이탈 남매의 삶을 끼워 맞춰 넣었고, 겁박과 강요를 통해 원하는 말을 수집했을 뿐이었다. 북한의 인권 문제든, 간첩 조작이든 탈북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북한 인권 실태를 과장해야 하고, 간첩이 끊임없이 잡혀야, 지금 현재 우리의 시스템이 우위에 있으며, 간첩을 잡아들일만큼 건재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탈북자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길 권한다. 
 
"저는 탈북자 문제를 접근하는 기본 방식으로 두 가지 측면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이들이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하는 이주 노동자와 본질상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역지사지 하는 마음입니다. 탈북자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의 흐름에 따라 저임금 지역에서 고임금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평범한 사람이다. 이들을 모두 '투사'로 만들어내 북한을 악마화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웜비어 사건'부터 '대북 퍼주기'의 허상까지, 당신이 궁금해하는 북한
 
박 교수는 북한 정치 체제와 사회 체제에 대한 실증적 지식을 토대로 민감한 사안을 거침없이 풀어 설명한다. 웜비어 사건 등 북한의 외국인(특히 미국인) 억류 문제를 비롯해, 숱한 오해를 낳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내놓는다. '극우' 성향의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김용갑 전 의원이 '작명'한 '대북 퍼주기'라는 환상을 깨고, '통일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통설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아가 북한 비핵화, 남북 경협, 북미 관계, 북일 관계 등을 조망하고, 전망까지 제시한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묻어난다. 트럼프 대통령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트럼프 스타일이 남북 문제에 끼칠 영향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5월 3일자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특별히 눈치채지 못한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비핵화가 남북이 아니라 북·미 간의 문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비핵화가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 간 문제라고 얘기하면 친북, 종북, 북한 대변인 소리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는 점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 인식은 서서히 바뀌어 간다. 이 교수가 지적한 것과 함께, '북한에 관한 우리 안의 허상'을 깨는 것은 남북 평화 체제로 가는 첫 단계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용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과 친해지기'에 대한 공포가 깨질 때, 남과 북은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 그래야 공존의 다음 단계인 통일의 구체적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강국진 기자는 박한식 교수의 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꼼꼼한 팩트 체크를 거쳐 풀어냈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사안이지만 호흡이 빠르고 술술 읽힌다. 
 
북한을 공부할 때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허상을 통째로 깨야 한다. 이 책은 북한 이해를 위한 길잡이로서 훌륭한 입문서다. 
 

▲박한식 교수와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 ⓒ조지아대학교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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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토하며 죽어간 남자... 그는 '삭힌 홍어'였다

[인권을 먹다24-마지막] 임성국과 흑산도 홍어회

18.05.09 08:12l최종 업데이트 18.05.09 08:12l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사람들-국가폭력피해자들이 있다. 그들의 억울함을 듣고 조사하는 과거사 위원회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만나는 일을 해왔다. 나는 국가폭력피해자를 음식으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편집자말]
 임성국과 홍어회
▲  임성국과 홍어회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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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흑산도 바다는 섬 이름처럼 검고 깊었다. 그 검은 빛깔 때문인지 섬 전체가 스산해 보였다. 선착장에 내리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홍도를 가기 위해 온 관광객들이었다. 흑산도는 큰 섬임에도 홍도를 경유하기 위한 섬으로서의 역할이 큰 듯 보였다. 흑산도에 거주하는 몇 사람만 내렸다. 우리는 곧장 흑산도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대둔도 들어가는 배는 언제 옵니까?"
"아, 수리요? 30분 정도 기다리시면 옵니다. 근데 나오는 배가 오후 3시에 있으니 오늘 나오시려면 그 전까지 오셔야 해요."

지금 시간이 오전 10시니 11시에 대둔도에 도착한다고 하면 4시간밖에 없었다.

 

"섬에 민박집이 있나요?"
"그 섬은 작아서 민박 같은 건 없고요. 주무시려면 여기 예리(대흑산도)로 나오셔야 합니다."

수리라고 불리는 섬을 오가는 객선은 작았다. 배에 오르자 먼저 타고 있던 5~6명의 사람들은 우리를 경계했다. 섬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은 반갑지 않다는 눈치였다. 

"모두들 내가 임성국을 죽였다고..."

30여 분 정도 배를 탔다. 바다는 온통 김, 미역, 전복 양식장으로 꽉 차 있었다. 양식장 사이로 난 뱃길을 따라 들어가려니 원래의 시간보다 더 걸렸다. 수리라고 불리는 대둔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동안에도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았다. 배가 육지에서 멀어지는 동안에도 그들은 우리를 계속해서 경계했다. 

"왜 저렇게 경계하지? 무슨 공포영화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처럼."

배 조사관이 혼자 중얼거렸다. 곧장 흑산면 출장소를 찾았다. 섬마다 설치된 출장소는 섬에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민원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소통공간이기도 했다.

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출장소에 들어가자, 마치 집에서 자다가 나온 듯이 편한 복장을 한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서울에서 오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예, 수고많으시네요."

그는 급하게 책상을 정리했다. 

"혼자 근무하시나 봐요?"
"그럼요, 코딱지 만한 섬에 민원도 별로 없어서 그다지 바쁜 것도 없네요. 그나저나 장소가 누추해서 어쩌죠?"

먼지가 쌓인 책상은 어림잡아도 수개월은 사용한 적이 없는 듯 보였다.

"저희가 오늘 만날 사람은 김○○인데 어디 계신가요?"
"아 그 김씨가 오늘 양식장에서 올라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는가 보네요. 잠시만요."

출장소장이 마당에 나가 바다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아직 양식장에 있나 보네요."

그는 휴대전화를 집어들어 전화를 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지 이내 끊었다.

"아, 이 양반, 전화를 안 받네."

나는 소장에서 우리가 직접 움직이겠다고 했다.

"그럼, 작은 모터보트가 있는데 그거 타고 나가실라요? 저 앞이라 금방이긴 한데..."

다시 섬을 빠져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간은 늘 우리의 편이 아니다. 우리는 곧장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정박되어 있는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로프가 풀리고 곧장 모터에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출발한 배가 5분여 정도 달려 전복 양식장 앞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 순간 양식장에서 한 사내가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그곳에 정박해 있던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양반이 왜 도망을 가?"
"저희가 만나려 했던 사람이 저 사람입니까? 그럼 쫓아가야죠."

우리 역시 그 보트를 쫓았다. 뜻밖에 추격전이 되었다. 양식장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 배를 따라가던 중 갑자기 '텅' 소리와 함께 배가 허공에 뜨더니 전복되었다. 양식장 사이를 연결하고 있던 로프가 스크루에 감겼던 것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구조가 되었고, 도망간 그도 곧 해경에 의해 잡혀 마을로 들어왔다.

우리는 마을 이장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를 마주했다. 조금 전 사고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나로서는 그를 향해 치미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모든 일정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노트북 등 기자재는 방수가방 덕택에 무사했다. 마을 이장 댁 거실에 마주하고 앉았다. 일명 '몸빼'라고 부르는 옷을 입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 보다는 이런 상황을 만든 그를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도망갔느냐는 말에 그는 무서웠다고 했다.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지난 일로 인해 자신이 해를 입을까봐 무서웠다고 했다. 무서운 지난 일이 무엇인지 또 물었다. 모두들 임성국을 자신이 죽였다고 하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내가 임성국이를 죽였다고 모두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어요."
"왜 그렇게 손가락질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그게..."

삭히지 않은 홍어

1985년 당시 그는 대둔도 수리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었다. 젊은 이장은 섬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생선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마을에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달려갔다. 그러나 섬 생활 중 마음에 걸리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마을에서 가장 부자로 소문난 최씨 때문이었다. 최씨네 형제 중 한 명이 한국전쟁 때 월북하였고, 그 집안을 감시하거나 조사하기 위해 안기부와 보안대 수사관들이 섬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때마다 섬사람들은 마을에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85년 광주 보안대에서 최씨네 사람들을 잡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던 임씨네 큰 아들 임성국도 잡혀 갔다.

"평소 성국이는 마을에서 성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어요.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혼자 힘을 돌보며 살아도 늘 예의 바르고 성실했거든요. 그 녀석이 물고기를 잡아오면 꼭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어요."

그렇게 성실했던 임성국은 광주 보안대에서 이틀간 조사를 받고 섬에 돌아왔다. 그러나 섬에 돌아온 임성국은 이전의 임성국이 아니었다. 힘이 좋고 날랬던 임성국은 바위에 멍하니 걸터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다. 가끔 피를 토할 만큼 깊은 기침을 하기도 했다. 혼자 힘으로 화장실까지 걷는 것도 힘들었다. 힘들게 소변을 보면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보안대에서 죽도록 맞았답니다. 결국 성국이는 보안대 다녀오고 나서 보름인가 있다가 죽었어요. 장례를 치르며 죽은 성국이의 몸을 보니 온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더라구요."

마을 이장이었던 그는 보안대 수사관으로부터 마을 사람들의 동향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입장에서 보안대 수사관의 지시를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부할 수 없는 지시였다. 그리고 거부하지 못한 지시로 인해 임성국이 죽었다는 죄책감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보안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증언해 줄 다른 사람은 없을까요?"
"증인이라..."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한 명 있어요. 보건소장."
"보건소장요?"
"그때 이 섬마을에 처음 보건소가 생겨서 고등학교 갓 졸업한 간호사가 초대보건소장으로 왔었죠. 내가 그 보건소장 이름을 보건소 건물 입구에 직접 새겨줬다니까. 그 보건소장이라면 분명 치료도 해주고 했을 테니까."

곧바로 함께 간 배 조사관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초대 보건소장의 재직여부 등을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건소장이 전라북도 남원의 작은 마을에서 보건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미 흑산도로 나가는 배는 끊긴 시간이었다. 이장이 눈치를 보다 어렵게 말을 뗐다.

"괜찮으시면 제 배로 모셔다 드릴게요. 그 전에 식사부터 하세요. 지금껏 아무것도 못 드신 것 같으니..."

곧이어 푸짐한 한상 차림이 나왔다. 갖은 반찬과 함께 회, 탕이 올라 있었다. 회를 먹어보니 쫄깃하고 단맛이 강했다. 아니 씹을수록 차진 것이 찹쌀떡을 씹는 것 같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탕도 함께 맛을 보았다.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었다.

"회가 아주 쫄깃하고 차지네요. 무슨 회인가요?"
"그것이 홍어회예요. 탕도 그렇고. 삭히지 않은 홍어는 그렇게 차지고 단맛이 나요."
"아니 홍어는 삭혀서 먹는 음식 아닌가요?"
"삭힌 홍어는 큰 배가 먼 바다에 나가서 잡아오는 문화에서 시작된 거지요. 예전에 흑산도에서는 목선을 타고 가까운 앞바다에서 잡아서 왔으니 싱싱한 홍어만 먹었어요. 그래서 탕도 회도 삭히지 않은 것을 먹었지요. 성국이가 그 홍어를 겁나게 잘 잡았다니까."

그랬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삭힌 홍어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육지에서의 홍어는 모두 삭힌 홍어였던 것이다. 

본래의 맛을 잃어버린 홍어처럼

다음날 우리는 배를 타고 섬을 빠져 나와 남원으로 향했다. 보건소는 남원의 작은 시골 마을 입구에 눈에 띄는 흰색 건물이었다. 미리 협조를 받아 놓기는 했으나, 우리를 맞이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저녁 무렵이라 보건소에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는 평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찾아오세요. 물리치료기에 누워서 치료도 받고 수다도 떨고 하시지요. 여기가 경로당이에요."

차를 내주며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저희가 찾아온 이유는 미리 말씀드렸지만..."

그녀가 말을 받았다.

"네, 저도 잊고 있던 기억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그 섬에 들어갔을 때 나이가 21살인가, 22살 때였어요. 학교를 막 졸업하고 처음 간 곳이 외딴 섬이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리고 그 사건이 났던 그때는 보건소 건물조차 없었어요. 보건소는 그 사건 나고 다음 해에 지어졌거든요."
"섬은 굉장히 아름다운 섬이더라구요. 이장님이 특별히 회도 주시고.."
"혹시 홍어회 드셨어요?"
"네, 굉장히 신선하던데요?"

그녀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맞아요. 그곳 생선들이 모두 신선해요. 보건소가 지어지기 전에 이장님 댁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밥을 자주 얻어먹었거든요. 그때마다 신선한 해산물이 자주 올라왔어요. 삭히지 않은 홍어도 그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죠." 

이 사건으로 죽은 임이라는 청년도 자주 홍어나 생선을 잡았다고 했다. 임성국의 홍어는 그녀의 기억 속에 그 옛날과 연결된 끈이었던 것이다. 

"정말 건강했어요. 다른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죽은 그 사람도 보건소에 올 일이 거의 없었어요. 생선이나 가져다 줄 때 빼고는요. 그런데 그 사람이 보안대에 잡혀갔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그리고 며칠 뒤에 보건소에 찾아 와서는 진통제가 있으면 달라는 거예요."

마을 이장으로부터 보안대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던 그녀는 진통제를 구하러 온 그가 무서웠다. 찾아온 그의 눈빛은 공포로 가득했고, 빠릿빠릿하지 않았다. 이미 혼이 빠진 것 같은 상태였다. 그의 죽음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의 죽음을 정상적인 자연사로 볼 수 없어요. 죽음에 이를 정도의 큰 질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보안대에서 가혹 행위를 당하고 와서 죽었다는 정황도 있잖아요. 결국 보안대에서의 가혹 행위가 그의 죽음에 영향을 주었을 거예요."

학교를 갓 졸업해 홀로 섬에서 지내는 동안 상처와 죽음을 대면한 그녀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살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때의 기억을 잊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잊히지 않았다. 

본래의 날 것으로의 홍어가 아닌 삭혀져 본래의 맛과 색을 잃어버린 홍어처럼, 그 섬에서 죽어간 그도 보안대에서 두들겨져 보름간 삭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보안대에서 알몸으로 벌벌 떨던 그는, 그를 요리하던 수사관들에게 그저 하나의 던져진 요리 재료였다. 삭혀져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려야 하는...
 

임성국은
임성국은 전남 신안군 대둔도에 살았다. 가족은 어머니와 임성국, 임성산, 임성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대둔도는 섬이 좁아 농사를 지을 곳이 많지 않다. 섬 사람들 대부분은 바다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임성국의 집도 바다에 의지해 살고 있다. 가난한 임성국의 집안은 마을에서 가장 형편이 좋은 최응두라는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오빠 임성국이 광주 보안대에 끌려갔다 온 뒤 고문후유증으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할 때 여동생 임성자는 중학생이었다. 피를 토하며 점점 죽어가는 오빠를 보며 어쩌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오빠가 죽은 뒤 가족들은 끔찍한 섬을 빠져 나와 군산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가난은 끝이 없었다. 군산 외곽에서 작은 컨테이너를 빌려 살아야 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임성산은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친에게 의지해 살았다. 이제 여동생도 결혼해 돌봐줄 사람 없는 임성산은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2009년, 형 임성국의 죽음이 광주보안대의 고문후유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수억 원의 국가배상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친척이 모두 빼돌려 그의 가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다.

임성국은 대둔도에 묻혀 있다. 임성산, 임성자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인권을 먹다] 연재를 24회로 마칩니다. 많은 성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태그:#지금여기에#임성국#국가폭력 피해자#인권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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