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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짜 뉴스’ 결국, 백악관까지 나섰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2/05 09:41
  • 수정일
    2018/02/05 09: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개: 월스트리트 서울지부장, 트럼프 정권 선거 때문에 전쟁 이용
 
임병도 | 2018-02-05 08:54: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주말 <한겨레>의 영문 사설 하나 때문에 백악관이 난리가 났습니다. 백악관 대변인이 나섰고, 외신 기자 사이에서도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리해봤습니다.


‘발단: 한겨레, 대북 타격 작전은 선거 때문’

 

▲한겨레의 <무모하기 그지없는 ‘코피 전략’, 거론조차 말아야>한다는 사설을 번역해 보도한 영문판 ⓒ한겨레뉴스 화면 캡처

 

2월 2일 <한겨레> 영문판에는 < Trump’s “bloody nose” strategy must be completely off the table>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올라왔습니다. <무모하기 그지없는 ‘코피 전략’, 거론조차 말아야>라는 한겨레 사설을 번역한 기사입니다.

<한겨레> 사설은 북한의 핵 시설 등을 타격하는 ‘코피 전략’을 설명하며, 빅터 차 내정자의 지명 철회가 대북 강경파와 관계가 깊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한겨레>는 강경파가 탄핵까지 거론되는 트럼프 정권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북 타격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최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비공개 모임에서 ‘제한적 대북 타격이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도 전해진다.”(한겨레, 2018년 2월 1일)

<한겨레>는 ‘매슈 포틴저 NSC 보좌관이 대북 타격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발언을 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만약 <한겨레>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정권은 전쟁을 선거에 이용하려고 했던 아주 나쁜 정권이 됩니다.


‘전개: 월스트리트 서울지부장, 트럼프 정권 선거 때문에 전쟁 이용’

 

▲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부장은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대북 타격이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도한 한겨레 영문판 사설 내용을 트위터에 공유했다. ⓒ트위터 화면 캡처

 

<한겨레> 사설은 외신 기자 사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진짜로 ‘매슈 포틴저’가 모임에서 대북 타격이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면 엄청난 정치적 이슈인 동시에 트럼프 정권을 위협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저널> 서울지부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대북 타격이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한겨레>기사를 인용하고 링크까지 공유했습니다. 이 트윗은 곧바로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리트윗했고, 트럼프 정권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위기: 백악관 대변인, 그런 일 절대 없다. 무책임한 내용’

 

▲백악관 대변인이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부장의 트위터 내용을 반박했다는 미국 언론 기사 (좌)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부장은 매슈 포틴저 발언을 검증 없이 보도한 한겨레 기사를 공유한 것은 실수였다며 삭제했다.(우)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부장의 트윗은 백악관 대변인이 언급하는 사건으로 확대됐습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조나단 쳉 서울지부장의 글을 리트윗하면서 ‘절대 그런 일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포틴저는 두 번이나 참전했던 해병 출신으로 군사적 행동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무책임한 내용을 말하면서 나에게 코멘트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조나단 쳉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부장은 기존 트윗을 삭제하면서 실수였다고 밝혔습니다. 조나단 쳉 지부장은 “NSC에서는 이 보도가 ‘근거 없고(unsourced) 출처가 불명확하며(unbylined) 거짓(untrue)’이라고 반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말: 한국 사설은 믿지 마라’

 

▲외신기자와 트위터리안은 이번 사건을 전혀 근거 없는 보도이자, 번역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사설이 보도되자 안나 파이필드 <워싱턴 포스트> 도쿄 지부장도 트위터에 언급했고, 이후 ‘전혀 근거 없는 보도’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4년간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번역했다고 밝힌 한 트위터리안(@oranckay)은 ‘한겨레에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 컸다’라며 ‘따옴표를 지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트위터리안은 한국 사설을 있는 그대로 믿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의 사설과 영문판 보도는 단순히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는 사설에 담긴 뜻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검증 없이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언론의 오보, 가짜뉴스, 왜곡 보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그런지 한국에서는 이 사건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이 인터넷 게시판에 사건을 정리하는 글을 올리는 정도입니다.

이번 사건은 언론의 보도 하나가 얼마나 큰 외교적 파문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줍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다른 언론사가 보도의 무게감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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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 핵무기 공격시 정권 종말” 핵태세 보고서

북한(조선) 무려 62번 등장… “MD 역량 강화, 저강도 핵무기 증산 계획”
▲ 토머스 섀넌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패트릭 샤나한 국방부 부장관, 댄 브루리엣 에너지부 부장관이 2일 미 국방부 청사에서 ‘2018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고 있다.[사진 : VOA 홈페이지]

미국 국방부는 2일(현지시각) ‘2018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면서 북한(조선)을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의 하나로 꼽았다. 그래서 북이 핵 공격이나 확산에 나선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3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8년 만에 발표한 핵태세 검토보고서에서 북한(조선)을 큰 비중을 둬 다루곤 북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북은 이전 보고서에 비해 무려 15배 넘게 언급됐다. 2010년 보고서엔 4번밖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62번이나 등장한 것. 또 북의 위협과 대응전략을 다루는 별도의 목차도 만들었다. 이번 보고서에서 목차로 구성된 특정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조선), 이란뿐이다. 또 올해는 처음으로 보고서의 한국어 요약본까지 제작, 공개했다고 한다.

미 정부는 보고서에서 대북 억제전략으로 “미국이나 동맹국,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북의 핵공격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사용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어떤 시나리오도 없다”고도 했다.

미 정부는 또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나 관련 기술, 부품, 자문을 어떤 국가나 비국가 활동세력에 전달한다면 모든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경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이 김정은 정권과 핵심 군사, 지휘 체계 역량을 지키기 위해 견고하고 깊은 지하시설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은 이런 목표물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재래식과 핵 역량을 계속 갖춰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정부는 또 보고서에서 “북의 미사일을 요격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방어적, 공격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북이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것을 제한하고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의 미사일 군사력이 증가하고 이동이 편리해지고 있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의 미사일 방어역량 역시 증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의 미사일을 발사 전부터 약화시킬 수 있는 조기경보체계와 요격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북의 미사일 위협이 계속 증가하면 이런 방어역량을 강화할 것이란 계획도 명시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과정에 중국, 러시아와의 군비확산경쟁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 루드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이날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북한(조선)이 핵탄두 탑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큰 대가가 따를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조선) 미사일을 요격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요격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했다. 루드 차관은 “미국은 이런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미사일 방어역량을 계속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고 VOA는 전했다.

보고서엔 대북 전략뿐 아니라 북의 현재 위협수위를 평가하는 부분도 담겼다.

북이 핵무기와 미사일 역량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미국과 역내 동맹국들에게 핵무기 공격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다. 또 북한(조선) 당국자들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고, 북이 몇 달 안에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할 역량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북의 핵 역량과 함께 생화학, 재래식 무기역량을 거론하며 “북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긴급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면서 “북의 불법 핵 프로그램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제거돼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북의 핵, 미사일 위협 증가에 따른 확산 우려도 언급했다. 특히 북한(조선)이 핵무기 역량을 갖추려고 하는 것을 “국제사회의 안보와 안정에 대한 가장 임박하고 끔찍한 확산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어 북이 다른 무기 확산 세력들에 핵무기를 제공할 가능성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북에게서 직간접적으로 핵 위협을 받은 국가들이 핵보유 압박을 느낄 가능성도 문제로 꼽았다.

러시아와 중국에 관해선 두 나라의 핵무기 현대화에 대응해 “미국도 억제용 저강도 핵무기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강도 핵무기란 일반적으로 강도가 약한 핵무기를 가리킨다. VOA는 “기존 핵무기는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미국이 이를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간주하고 도발을 가할 수 있다는 이론에 기초한 것”이라며 “기존 핵무기보다 저강도 핵무기를 갖추는 편이 억제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저강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 선택 범위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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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국가대표…여자 아이스하키 4인의 ‘올림픽 스토리’

등록 :2018-02-04 09:49수정 :2018-02-04 10:16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특별한 국가대표들’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144명이다. 이들 중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전 종목에서 모두 15명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선 박캐럴라인(박은정·29·왼쪽부터)과 희수 그리핀(30), 임대넬(임진경·25) 3명이 특별귀화 방식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144명이다. 이들 중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전 종목에서 모두 15명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선 박캐럴라인(박은정·29·왼쪽부터)과 희수 그리핀(30), 임대넬(임진경·25) 3명이 특별귀화 방식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 개막을 앞둔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은, 현재까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해 단일팀을 꾸렸기 때문인데, 사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단일팀이 전부가 아니다. 어느 대표팀의 어느 선수든 한두가지 사연쯤 없을까마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엔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조금 특별한 선수들’이 많다. ‘남북 단일팀 뉴스’에 묻힌 4명의 선수 이야기를 전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144명이다. 이들 중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전 종목에서 모두 15명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선 박캐럴라인(박은정·29·왼쪽부터)과 희수 그리핀(30), 임대넬(임진경·25) 3명이 특별귀화 방식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 간 박윤정(마리사 브랜트·26)은 ‘국적 회복’을 거쳐 다시 한국인이 됐다. 남북한 단일팀 구성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선수들이 됐다. 단일팀 구성과 무관하게 남쪽 선수단이 구성되는 과정에서도 사연이 많았다.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거쳐 대표팀에 합류한 네 선수를 만났다. 이들과의 인터뷰 약속을 1월 초에 미리 잡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남북한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월12일 이후, 여자 대표팀은 선수촌 안으로 숨어버렸다. 꼭꼭 숨어 훈련하던 그들이 내일(4일) 평가전을 시작으로 다시 공개 무대로 나선다. ‘이야기’ 많은 올림픽에서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게 평창은…꿈같은 일이 벌어지는 중이에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특별하다. 대표팀은 여성들로 이뤄진 국내 유일의 아이스하키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엔 아직 ‘상설’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없다. 국가대표를 소집할 때만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구성된다. 대학팀도 실업팀도 없다 보니 ‘밥벌이’로 아이스하키를 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 고등학생(2001년생)부터 30대 초반까지 선수들 나이 폭도 넓다.

 

애초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올림픽 출전은 먼 훗날에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올림픽 개최국의 아이스하키 자동출전권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대회부터 폐지됐다. 최근 2~3년 새 실력이 늘었다지만 대표팀의 세계랭킹은 2018년 1월 현재 22위다. 8개 팀이 겨루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 자력으로 진출하기엔 갈 길이 멀었다. 그러다 2014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개최국 출전권을 부활시키면서 올림픽에서 뛸 기회를 잡았다. 출전권을 주는 대신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조건을 내걸었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대표팀의 경기력을 올림픽 본선 수준에 맞게 끌어올리라는 요구였다.

 

 

박캐럴라인
합류 제안에 다니던 회사 사표
의학대학원은 무기한 휴학하고
대표팀 합류하려 어깨 수술도
“내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고파”

 

 

임대넬
캐나다 대학팀 공격수로 뛰다
페북 메시지로 제안받고 합류
캐럴라인을 협회에 소개하기도
평창은 인생 최고의 순간 될 것”

 

 

희수 그리핀
한국인 어머니 이름으로 귀화
“어머니·할머니 나라의 국가대표
골까지 넣는다면…꿈같은 일
한국서 지도자도 하고 싶어”

 

 

박윤정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
동생은 미국 대표팀으로 평창행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평창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가능성이 있는 국내 선수를 발굴해 캐나다 등 ‘아이스하키 선진국’으로 내보내고, 반대로 아이스하키 선진국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세라 머리 현 여자 대표팀 감독이 영입됐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 ‘아이스하키 본토’에서 뛰는 한국계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박캐럴라인(박은정·29)과 임대넬(임진경·25), 희수 그리핀(30)과 박윤정(마리사 브랜트·26)은 이 과정을 통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아이스하키와 평창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이들에게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먼 나라였을지도 모른다.

 

‘특별하게’ 구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더 특별해졌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해 ‘남북 단일팀’이 결성됐기 때문이다. 단일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대표팀을 가까이서 보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지난달 12일 미국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대표팀은 16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이후 머리 감독의 인터뷰 외엔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통일부를 통해 공개되는 ‘훈훈한’ 훈련 사진이 전부다.

 

그런 까닭에 네 선수와의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평창올림픽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올림픽이다(물론 남자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당분간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른다. 설렘과 기대와 긴장 속에 있을 선수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할 수밖에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국적을 언제 얻었나요?

 

박캐럴라인(캐럴라인) “2015년 3월에 얻었어요. 대표팀 훈련은 2013년 7월부터 함께 했고요.”

 

임대넬(대넬) “작년 1월에요. 2013년 7월에 한국에 처음 왔는데 대학교를 졸업하느라 국적 취득이 미뤄졌어요.”

 

희수 그리핀(희수) “2015년 7월부터 대표팀 친선경기가 있을 때면 합류하곤 했어요. 지난해 4월에 국적을 받았어요.”

 

박윤정(윤정) “저는 3명과는 좀 달라요. 전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거든요. 그래서 귀화가 아닌 국적 회복 절차를 밟았어요. 2016년 9월에 승인됐어요.”

 

박캐럴라인과 임대넬은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두 선수의 부모는 캐나다로 이민 간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희수 그리핀은 어머니가 한국인 이민자다. 이들이 말하는 귀화란 국적법상의 특별귀화를 말한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하거나 부모가 한국인이어야 하지만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자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의 경우엔 특별귀화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페북 메시지로 시작된 평창 프로젝트

 

이들이 대표팀에 합류하는 과정은 그대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역사’가 될 만하다. 그 역사의 시작은 ‘미약’했다.

 

대넬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김정민 홍보팀장한테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어요. 올림픽에 대비해 전력을 키우려고 한국계 선수를 찾는 중인데, 대표팀에 합류할 생각이 있냐고 묻더군요.”

 

―처음엔 긴가민가했겠네요?

 

대넬 “진짜일까 싶어서 한국에 있는 외삼촌에게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외삼촌이 직접 김 팀장을 만났어요. 장난이 아니었던 거죠. 협회가 진지하게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정민 홍보팀장은 “무식한 방식”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선 캐나다 대학에 소속된 팀들을 찾고 선수들 명단 중에 한국계 성씨일 가능성이 있는 김(Kim)이나 이(Lee), 박(Park) 등을 찾았죠. 캐나다 온타리오 디비전에 소속된 ‘로리에 골든 호크스’(Laurier Golden Hawks)에 임(Im)씨 성을 쓰는 선수가 있길래 사진을 보니 아시안이었어요.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하고 메시지를 보냈죠.”

 

협회는 임대넬의 삼촌을 통해 미국 프린스턴대 아이스하키팀에서 4년간 공격수로 뛰었던 박캐럴라인도 소개받았다. 박캐럴라인은 다시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격수로 뛰었던 한국계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협회에 전했다. 김 팀장은 희수 그리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임대넬이나 박캐럴라인이 대표팀에 합류했던 당시(2013~2014년)엔 대표팀 내 기존 선수들과 이들의 실력 차가 컸다. 임대넬은 캐나다 온타리오 디비전 챔피언팀의 현역 선수였다. 김 팀장은 “대넬이나 캐럴라인의 개인기가 월등했다”고 말했다.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 누리집에 실린 임대넬의 프로필과 그의 활약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기사. 누리집 갈무리

 

―당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캐럴라인 “특히 아버지가 많이 기뻐하셨어요.”

 

대넬 “‘영광스러운 기회를 잡게 됐다’며 모두들 기뻐했어요. 한국에 온 첫해(2013년)엔 오랜만에 어머니도 한국에 오셔서 당시 서울에 있던 오빠랑 여행을 가기도 했어요. 그때도 지금도 부모님 나라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해요.”

 

희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그래도 한국은 낯선 나라였을 텐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희수 “언어 문제가 가장 어려웠어요. 아쉽게도 제가 한국말을 거의 못하거든요. 다행히도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감독이나 코치도 외국인이라 팀 내에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궁금해요.

 

대넬 “조수지 선수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래서 팀 내에서 통역 역할을 해요.”

 

희수 “제게는 이진규(그레이스 리) 선수가 큰 도움이 돼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역시 두 나라 말을 다 잘하거든요.”

 

―한국어 실력이 궁금하네요.

 

윤정 “저희 넷 중엔 제 한국어 실력이 가장 처질 거예요. 국적을 받으려면 인터뷰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되는데, 전 그런 과정마저 없었기 때문에….”

 

대넬 “제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아직도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게. 인터뷰할 때 정말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한국어를 좀 더 공부할걸 하는 후회도 되고. 그래서 국적 얻은 후에도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캐럴라인 “점수로 매긴다면 절반 이상은 될 거예요. 말하기는 여전히 좀 어눌하지만 듣는 건 거의 다 되거든요. 상대방이 한국어로 말하면 저는 그걸 듣고 영어로 말하고 있죠. 동료들 대부분이 영어를 조금씩 하니까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희수 “여전히 한국어로 말하는 건 거의 못해요.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아요.”

 

 

동생과 함께라면…

 

박윤정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레베카 베이커 코치가 다리를 놓았다. 베이커 코치의 남편이 미국 미네소타 대학팀의 코치였는데 그 팀엔 박윤정의 동생인 해나 브랜트가 있었다.

 

박윤정에게 한살 터울인 동생 해나는 특별하다. 1992년 한국에서 태어난 박윤정은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네소타주 배드네이스하이츠시에 살던 그레그-로빈 부부는 결혼 후 12년 동안 아이가 없자 한국인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레그 브랜트의 여동생 또한 한국에서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살고 있었다.

 

윤정을 데려오기 2주 전 그레그 부부는 해나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윤정이 도착하고 6개월 뒤 해나가 태어났다. 자매는 어릴 적 피겨스케이팅을 함께 했었다. 그러다 5살 해나가 피겨가 싫다며 아이스하키를 시작했고 2년 뒤 언니 윤정(미국명 마리사 브랜트)도 동생을 따라 스틱을 들었다. 윤정은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피겨스케이팅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해나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윤정과 해나의 부모는 주말에 열리는 한국 학교나 한국 문화 캠프에 자매를 보내기도 했는데, 태권도나 전통무용을 좋아하던 해나와 달리 윤정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안 가면 안 되냐”고 부모에게 먼저 말을 꺼낸 이도 윤정이었다. 동생 해나는 와의 인터뷰에서 “언니는 자신이 한국에서 온 입양아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평범한 이곳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장에서 나란히 선 박윤정(마리사 브랜트)-해나 브랜트 자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지난해 1월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장에서 나란히 선 박윤정(마리사 브랜트)-해나 브랜트 자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2015년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한국에 온 적이 없나요?

 

윤정 “예. 입양을 간 뒤 한국에 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태어난 곳이지만 한국에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합류 제안을 가족들에게 전했을 때 동생은 무슨 얘길 하던가요?

 

윤정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며 좋아했어요. 해나가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 게 대표팀 합류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예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해나는 지난달 2일 발표한 평창올림픽 미국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랭킹 1위인 미국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 5연패를 노리는 캐나다와 함께 이번 대회 우승 후보다. 미국은 상위 그룹인 A조, 한국은 하위 그룹인 B조에 속해 있다. 1승이 목표인 한국 대표팀과 1등이 목표인 미국 대표팀의 맞대결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한국 대표팀한테 거듭 일어나야만 가능하다.

 

―언니는 수비수, 동생은 공격수인데 맞대결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윤정 “쉽지 않을 거예요.”

 

―미국에 계신 부모님은 이번에 한국에 오세요?

 

윤정 “물론이에요. 저랑 해나가 모두 올림픽에 나가는데 당연하죠.”

 

―국적 회복할 때 낳아준 부모님을 찾기 위해서 이름을 박윤정으로 바꿨다고 들었어요. 어느 인터뷰에선 “박윤정이란 이름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라고도 했던데요. 그동안 좀 알아낸 것들이 있나요?

 

윤정 “훈련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들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기도 해서 아직 구체적으로 (부모님을 찾으려고) 노력한 건 없어요.”

 

―올림픽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윤정 “평창올림픽이요? 해나와 함께 한국 여행도 하면서 즐겨보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아이스하키만 할 수 있다면…

 

희수 그리핀의 미국 이름은 랜디 희수 그리핀(Randi Heesoo Griffin)이다.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그는 유니폼에 랜디 대신 희수라고 쓰기 시작했다. 희수는 그의 어머니 이름이다. 어머니는 10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첫 경기를 기억하나요?

 

희수 “물론이죠.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어요. 어머니의 나라이자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나라를 대표하며 좋아하는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다는 게… 아이스하키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에 하나거든요.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소속팀이 없었어요 그게 가장 아쉬웠는데 다시 아이스하키를 하게 됐잖아요. 다시 선택해야 한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할 거예요.”

 

―언제부터 아이스하키를 했어요?

 

희수 “6살 때부터요. 클럽팀을 거쳐 2006년에 하버드에 입학했고, 4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어요. 동생도 하키 선수로 브라운대학에 갔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는 인기 스포츠잖아요. 대학 졸업 뒤 프로팀에 갈 순 없었어요?

 

희수 “여자 아이스하키도 프로리그가 있기는 한데, 남자 아이스하키처럼 규모가 크진 않아요. 많은 돈을 받지도 못하죠. 프로 리그에 소속되지 않은 선수가 대표팀에 뽑히기도 해요.”

 

―대표팀 합류 제안을 받고 “적응하기 힘들까봐 걱정했었다”던데, 실제 와보니 어땠어요?

 

희수 “한국에 가 본 적도 없고 한국어도 할 줄 모르니까 걱정됐죠. 무엇보다 졸업한 뒤엔 아이스하키를 거의 하지 않았거든요. 공백 기간이 5년 가까이 됐으니까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죠. 실제로 와서 하려니까 스케이팅이 잘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어요.”

 

―현재 듀크대학에서 진화인류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던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희수 “사실 하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다면 대학원 공부는 접을 수도 있어요. 미국아이스하키협회에서 받은 지도자자격증도 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서 우승한 뒤 목에 건 금메달을 확인하는 선수들. 오른쪽부터 희수 그리핀, 박윤정, 정시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서 우승한 뒤 목에 건 금메달을 확인하는 선수들. 오른쪽부터 희수 그리핀, 박윤정, 정시윤. 연합뉴스

 

희수 그리핀처럼 박캐럴라인도 현재 하던 공부를 잠시 미룬 상태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의학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될 생각이었다. 2013년 7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겠냐?”는 김정민 홍보팀장의 메일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이스하키는 한국에서 인기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여자 아이스하키는 더 그런데, 대표팀 합류를 망설이진 않았나요?

 

캐럴라인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아이스하키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였고, 부모님도 모두 제 선택을 지지해주시고 기뻐하셨거든요.”

 

―도대체 그 아이스하키의 매력이란 게 어떤 거예요?

 

윤정 희수 대넬 “스피드요.”

 

―그게 전부예요?

 

캐럴라인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들이 많아요. 우선 기본적으로 스케이트를 잘 타야 해요. ‘눈과 손의 협동감각 운동 능력’(hand-eye coordination)도 좋아야 하고, 두뇌 회전도 좋아야 하고, 체력도 갖춰야 해요. 팀 스포츠니까 동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죠. 이런 요소들이 잘 조합돼야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거든요. 이런 능력들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게 아이스하키의 매력이에요.”

 

박캐럴라인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고 다니던 병원을 그만뒀다. 대표팀 합류(2013년 7월) 뒤엔 미국 컬럼비아대 의학대학원에 들어갔다. 2014년엔 어깨 수술을 했다.

 

―대학원은 지금 휴학 상태인 거죠? 공부와 아이스하키를 함께 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캐럴라인 “의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에 협회로부터 제안을 받았거든요. 의학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아이스하키 선수로 올림픽도 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둘 다 포기할 수 없었어요.”

 

―대학원 공부를 미루고 있는 게 걱정되진 않아요?

 

캐럴라인 학부 때도 공부하면서 운동했으니까 둘 다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둘 다 포기하지 않아요.

 

―어깨 수술은 왜 한 거예요?

 

캐럴라인 “학부 때 경기를 하다 다친 어깨가 자주 빠졌거든요. 일상생활 하는 데 크게 불편하진 않았는데 하키를 하려면 수술을 해야 했어요. 한국 국적을 받고 올림픽에 나가려고 (수술을) 했죠.”

 

―대표팀 합류 전후로 인생이 파란만장해졌네요?

 

캐럴라인 “예정에 없던 수술을 하고, 올림픽 나가려고 대학원도 휴학하고, 동계아시안게임에도 나갔는데, 이제 며칠 뒤면 올림픽에서 뛸 테니 인생의 많은 부분이 휘익 바뀐 셈이죠.”

 

 

나에게 평창이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998년에 창단했다. 1999년 강원 겨울아시안게임 유치 당시엔 ‘개최국은 전 종목에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주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과 동호회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그 과정을 소재로 만든 영화 <국가대표2>를 보면, 아이스하키 대표팀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북한 아이스하키 대표 출신(북한이탈) 주인공의 퍽을 뺏으려다 빙판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반시계 방향으로 경기를 펼치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좌우 방향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아이스하키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급히 만든 팀의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강원 겨울아시안게임에서 57골을 내주고 2골을 넣으며 3전 전패. 2003년 일본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에서는 80골을 내주고 1골을 넣었다. 역시 3패.

 

2017년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맞붙은 남한의 희수 그리핀과 북한의 려성희. 둘은 이번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에서 같이 뛴다. 연합뉴스
2017년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맞붙은 남한의 희수 그리핀과 북한의 려성희. 둘은 이번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에서 같이 뛴다. 연합뉴스

 

그러던 대표팀이 지난해 2월에 열린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전 승리를 거두며 3승을 올렸다. 두 달 뒤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A그룹(4부 리그)에선 5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디비전2 A그룹 잔류가 목표였던 팀이었다. 이제 대표팀은 다음주 금요일(9일) 개막하는 평창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승’을 꿈꾼다.

 

―평창올림픽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캐럴라인 “부모님이 경기를 보러 한국에 오실 예정이거든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 선택과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희수 “어머니와 할머니의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거잖아요. 꿈같은 일이에요.”

 

윤정 “비록 다른 팀이지만 동생과 같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영광이에요. 저희 자매에겐 완벽한 올림픽이에요.”

 

대넬 “6살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이래,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될 거예요.”

 

―한국 대표팀은 1승이 목표라던데, 그 이상도 기대하고 있나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희수 “다들 강도 높은 훈련을 버텨냈거든요. 그에 걸맞은 성적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론 강릉에서 열렸던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어시스트만 했고 골이 없었거든요. 올림픽에서 꼭 골을 넣고 싶어요.”

 

대넬 “올림픽에서 골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네요.”

 

윤정 “전 수비수인데다 슈팅 능력이 그닥 좋지 않아서… 경기 앞두고 해나랑 ‘너를 위해 골을 넣을게’라는 문자를 주고받거든요. 그게 올림픽에서 실현되면 기쁠 것 같네요.”

 

―한국 팬들에게 아이스하키는 여전히 생소한 스포츠예요. 재밌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희수 “아이스하키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격렬한 스포츠거든요. 몸싸움이나 순발력이 필요한 스케이팅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재밌을 거예요.”

 

대넬 “아이싱(전방으로 쳐낸 퍽이 어느 선수에게도 닿지 않은 채 상대팀 골라인을 넘어가는 경우 주어지는 페널티)이나 오프사이드 같은 기본적인 규칙 몇 가지만 알아도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어요.”

 

―가까이에서 본 세라 머리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요?

 

대넬 “선수가 감독을 평가할 순 없어요. 노코멘트 할래요.”

 

―본인들 외에 주목할 만한 대표팀 선수를 꼽아본다면?

 

윤정 “글쎄요. 한두 명만 꼽긴 쉽지 않은데….”

 

대넬 “전 주전 골리 신소정 선수요. 늘 노력하는 선수거든요.”

 

희수 “전 수비수 엄수연 선수랑, 공격수 한수진 선수요. 영리하고 센스가 좋아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게 평창올림픽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넬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던 2013년과 비교하면 여자 대표팀은 정말 엄청난 성장을 이뤘어요. 이런 속도로 성장하고 노력하고 지원한다면 3~4년 뒤엔 또 달라져 있을걸요. 마지막이 아닐 것 같은데요?”

 

희수 “어린 선수들을 잘 키우면 예선 통과 못 할 것도 없을 텐데요? 중국과 일본도 했는데 한국이라고 왜 못 하겠어요?”

 

 

2015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세라 머리 당시 대표팀 코치와 박캐럴라인 당시 플레잉코치.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2015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세라 머리 당시 대표팀 코치와 박캐럴라인 당시 플레잉코치.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아이스하키와 대표팀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이들에게 남북 단일팀으로 평창올림픽에 나서는 소감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하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상대편이던 북한 선수들과 같은 팀으로 만난 기분이 어떤가요?” 따위의 ‘상투적’인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단일팀 관련한 인터뷰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전했지만 통일부나 문체부는 “정부 차원에서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남북한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안했다는 지난 1월12일, 대표팀은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날 공항에서 골리 신소정과 주장 박종아, 부주장 조수지 선수가 “선수들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결정에 실망스럽다”고 말한 게 단일팀으로 평창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감이었다. 그날 이후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진천선수촌 안에서 비공개로 훈련 중이다. 1월25일엔 북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의도치 않게 베일에 싸이게 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4일 저녁 7시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스웨덴과 평가전을 치른다. 단일팀이 만들어진 뒤 치르는 첫 경기이자 올림픽을 앞두고 여는 처음이자 마지막 평가전이다.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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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방해, 한반도 전략무기 배치 미국반대! 2018 첫 반미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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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2/04 11:39
  • 수정일
    2018/02/04 11:3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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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방해, 한반도 전략무기 배치 미국반대! 2018 첫 반미집회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2/03 [21: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한파가 몰아친 3일 오후 서울, 부산, 대구, 춘천, 광주 등에서 '평화올림픽 방해,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반대'의 내용으로 집회가 열렸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다시 한파가 매섭게 몰아친 3일 오후 주요 도시의 미군기지와 시내에서 2018년 첫 ‘반미집회’가 열렸다.

 

서울, 광주, 대구, 부산, 춘천에서 ‘평화올림픽 방해,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반대’와 각 지역별 요구가 결합된 반미의 함성이 한파를 뚫고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 용산미군기지 4번 게이트 앞에서 집회를 한 참가자들이 6번 게이트까지 행진을 했다. 피켓 사이사이로 용산미군기지의 담벼락과 철조망이 보인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 -민족공조로 주한미군을 내보내자!

 

서울 용산미군기지 4번 게이트(기지 문) 앞에서는 ‘평화 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반대와 미군기지 온전한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행동’이 열렸다. 

 

시민행동은 2시부터 용산 미군기지 10개의 게이트 앞에서 피켓팅 및 소규모 집회를 여는 작전명 ‘용산 미군기지 봉쇄작전’, 본집회, 6번 게이트까지 풍물을 앞세운 행진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 용산주민모임의 최명희씨는 연설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이 용산, 우리 주민들이 앞장서서 미군기지를 온전하게 되찾겠다."고 밝혔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본 집회는 먼저 ‘용산기지 온전히 되찾기 용산주민모임’의 최명희씨 연설로 시작되었다.

최명희씨는 “용산에 6년 째 살고 있다. 1주일에 한번 1달에 1번 용산 미군기지 3,4번 게이트 앞에서 집회와 풍물한마당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용산 미군기지 내부오염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벤젠 672배 초과, PPH는 기준치 7~800백배가 넘어서 검출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부 일부에 불과하다, 기지 전반에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탄저균 실험도 불법적으로 시행되었다. 주한미군은 서울의 한복판에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이들의 민낯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우리는 미군기지 문제를 용산주민들 먼저 나서서 해결하겠다. 많은 관심과 함께 투쟁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한성 서울 민권연대 대표는 평창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 반대의 내용으로 연설했다. 

한성 대표는 “우리는 군사전문가가 아니어도 <B2>, <B-52>, <칼빈슨호>가 무엇인지 다 안다. 미국은 남북대화를 지지한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바란다고 이야기했지만 괌에 B2, B-52를 전진 배치했고, 칼빈슨호를 출항시켰다. 이런 것은 모두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하려는 우리 민족에 대해서 제동을 걸고자 하는 의도이다. 트럼프 행정부 새로운 대북제재를 했으며, 국정연설에서 탈북자를 끌어들여 북에 대한 규탄했다. 트럼프는 ‘우리민족끼리’를 훼방하려고 하는 것이다.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가장 대중적인 반미반전 투쟁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 용산미군기 지 온전한 반환! 집회 참가자가 든 손피켓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하인철 학생은 미국은 대북적대정책 철회하고, 한미연합훈련 중단하라는 내용으로 발언을 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온 겨레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소식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평창올림픽 기간에도 핵항공모함 3척을 배치하고, 올림픽 이후에는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한다고 했다. 미국은 북의 변화한 전략적 지위에 대해서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북의 핵무기 위협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하와이에서 벌어졌던 북 미사일 오보경보 사태가 단적인 예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북의 실제를 인정하지 않고 제재를 하려고 한다. 제재와 무시로는 북을 통제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대북제재와 한미군사훈련을 북을 자극만 할 뿐이다. 대화를 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발언했다.  

 

윤기진 국민주권연대 공동대표가 마지막 연설을 했다.

윤기진 공동대표는 “국민들은 평창이 잘되어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번 삼지연관현악단 예매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방해하는 미국은 한반도 주변에 항공모함 3척을 배치, 전략폭격기, 특수부대, 코피작전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세력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은 단일기 걸지말라, 단일팀 하지 말라고 난리를 펴고 있다. 심지어 송영무 장관은 북을 지도에서 제거하겠다는 망발을 했다. 이번 평창올림픽의 단일팀 구성으로 2007년 10월 4일 이후, 10년 만에 우리 민족에게 숨통이 트였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 좋은 것은 미국에게 공포로 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공존, 공영에겐 미국에겐 공포로 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의 힘으로 남북을 갈라놓고 지배하려는 미국을 이 땅에서 영원히 지워버리자. 민족공조로 주한미군을 내보내자”고 절절하게 호소하였다. 

 

▲ 윤기진 국민주권연대 공동대표는 "민족공조로 주한미군을 내보내자!"고 연설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3일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대학생 노래패 '노래악단 씽'이 통일노래를 부르면서 참가자들의 열기를 높이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3일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시민행동 참가자들이 풍물패가 앞장서서 행진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본 집회를 마치고 풍물패를 앞세우고 행진을 한 집회 참가자들은 6번 게이트 앞에서 미군기지를 향해 풍물소리, 부부젤라, 싸이렌과 미군은 이 땅에서 당장 나가라고 함성을 외친 뒤 집회를 마쳤다. 

 

 

▲ 3일 오후 4시 부산항 8부두 앞에서 '평화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 반대와 부산남구 세균실험실 폐쇄를 위한 시민행동'이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부산 미군전용부두 8부두 앞 - 세균실험실 폐쇄에 힘을 모으자!

 

부산에서는 3일 오후4시 부산항 8부두(미군전용부두) 앞에서 <평화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의 전략무기배치 반대와 부산남구 세균실험실 폐쇄를 위한 시민행동>이 진행되었다.

 

시민행동 집회에는 국민주권연대 부산지역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부경연합, 민중당 부산시당 노동자통일선봉대, 민중당 남구지역위원회, 세균실험실 폐쇄를 위한 주민모임 등의 회원들이 참가하였다.

 

▲ 이성우 범민련 부경연합 부의장은 "평화올림픽을 미국은 핵항공모함 3척 배치를 비롯해서 전략무기들로 훼방을 놓고 있다."고 규탄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먼저 범민련 부경연합 이성우 부의장은 “집에 사랑하는 연인이 방문했는데 골목 곳곳에 불량배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야 되겠냐, 평화 올림픽에 항공모함 3척의 배치를 비롯해 각종의 전략무기들로 훼방을 놓고 있는 미국을 규탄한다.”는 내용으로 연설을 했다. 

 

이어 민중당 부산시당 노동자통일선봉대 대장 최승환씨는 “위험천만한 세균실험실이 도심에 들어와 있다, 또한 이곳 남구 백운포 미 해국작전사령부에는 미국의 핵 잠수함, 항공모함이 수시로 드나든다. 민중당과 지역의 여러 동지들이 힘을 합쳐 세군실험실, 미 핵전력 입항 기지 모두 몰아내는 싸움을 함께 하자”고 호소하며 오는 3월 17일 백운포 기지 앞에서 민증당 결의대회에 함께 하자고 연설했다.  

 

▲ 최승환 민중당 노동자통일선봉대 대장은 "미군 세균실험실과 미 핵전력 입항기지 폐쇄에 다함께 힘을 모으자."는 연설을 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국민주권연대 부산본부 김인규 대표 투쟁선포문 낭독했다.

김인규 대표는 투쟁선포문을 통해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평화 올림픽을 미국이 갖은 수를 다해 재를 뿌리고 훼방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계 민심은 반미로 확고히 돌아서고 있다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올림픽 성사하고 올해 반미투쟁을 더 뜨겁게 일으키자.”고 강조했다. 

 

집회를 마친 뒤에 풍물패 대동놀이가 진행되었다. 

대동놀이는 전쟁연습, 핵전략자산, 세균실험실이라고 적힌 피켓을 집회 참가자들이 짓밟으며 함께 길놀이를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 부산 8부두 앞에서 진행된 시민행동 참가자들이 미군의 핵전략자산을 밟으며 풍물놀이를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대구 캠프워커 후문 앞 - 역진불가한 한반도 평화 만들자!

 

▲ 대구의 캠프워커 후문에서 '평화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 반대 대구시민행동'이 오전 11시에 열렸다.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대구에서는 캠프워커 후문 앞에서 3일 오전 11시 <평화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 반대 대구시민행동>이 진행되었다. 

 

시민행동은 1인 시위와 연설로 진행되었다. 

 

▲ 국민주권연대 대구본부 조석원씨는 "평창을 넘어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을 다시 열어 돌이킬 수 없는 역진불가한 한반도 평화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대구주권연대 소속 조석원씨는 연설을 통해 “평창올림픽에 악재가 많이 있었다. 러시아팀 , NFL주요선수 불참 등으로 국민들이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강원 동계체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1월 1일부터 날아온 남북평화의 훈풍, 단일팀 구성으로 온 세계인이 평창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너무나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은 레이건 항모를 한반도에 배치하고 이른바 '코피작전' 등으로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국민 모두다 전쟁보다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유엔헌장에서도 불법인 예방타격을 운운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해치는 심각한 도발이다, 우리는 평창올림픽을 넘어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을 다시 열어 돌이킬 수 없는 역진불가한 한반도 평화를 만들자. 그리고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미국추종과 미국의 평화 파탄행동을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분쇄”해야 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 춘천 명동거리- 한반도 평화통일 방해 트럼프를 반대한다!

 

▲ 3일 오후 6시 춘천 명동거리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반전평화 토크버스킹'이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춘천의 명동 거리에서 ‘반전평화 토크버스킹’이 6시부터 열렸다. 

‘반전평화 토크버스킹’은 양희원, 김원목 학생의 ‘이젠 나가주세요’ 노래 공연을 시작으로 해서 ‘트럼프는 들어라 시민필리버스터’, ‘전쟁반대 N행시 백일장’, ‘트럼프 망언 BEST3’, ‘통일의 꽃을 피워요’ 통일 노래 공연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시민 필리버스터에서는 세 명의 학생들이 나와 ‘한반도에서 전쟁 훈련을 하고, 계속해서 전쟁 무기를 반입하는 미국’을 규탄하는 내용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방해 하는 트럼프’를 규탄하는 연설이 있었다. 

이어 ‘남북단일팀 환영! 평화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내용의 발언이 이어졌다.

 

▲ 3일 춘천 명동거리에서 열린 '반전평화 토크버스킹'은 트럼프의 망언 베스트 3, 시민필리버스터 등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반전평화 토크버스킹’은 2018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열어 나가고, 남북의 화해와 단합의 과정에 찬물을 끼얹는 미국을 반대하는 춘천시민들과 대학생들이 모여 열렸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한파경보가 내린 날씨 속에서도 평창올림픽을 넘어 평화통일의 올림픽이 되기를 염원하며 구호를 외치고, 발언과 공연을 진행했다. 

 

 

 

▲ 3일 오후 3시 서울 미 용산기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평창올림픽 방해하는 미국을 반대한다!'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3일 서울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트럼프를 반대하는 피켓을 든 참가자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미군은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 책임져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서울 용산미군기지의 환경오염에 대해 직접 시민들이 조사하겠다는 뜻으로 '시민조사단'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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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엔 정말 '서지현들'이 없었나요?

봇물터지듯 나오는 '#미투', 방관자에서 목격자로... 변화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18.02.03 20:18l최종 업데이트 18.02.03 20:18l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JTBC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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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JTBC 뉴스룸에 한 여성 검사가 출연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SNS에서 수없이 공유됐다. 다음 날 온라인 뉴스란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는 글도 읽어보지 않았다.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필자는 이런 사건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마주했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수많은 피해 생존자들, 그리고 그녀들이 당한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나에겐 그저 공기처럼 둥둥 떠다니다 어느 순간 그 실체를 드러낸 단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그런데 온라인 상에서 많은 이들의 분노가 모였다. '어, 이 흐름은 뭐지' 싶던 그 순간,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전국 동시다발 긴급 기자회견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급하게 잡힌 기자회견. 몇 사람이 업무를 나눠 당일에 쓸 플래카드를 맡기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단체 실무자들에겐 일상적인 업무.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 온 너무나 익숙한 일상.  

그다음부터였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구나' 확신하게 된 것은. 

다른 유관단체에서 먼저 연대발언을 하겠다고 요청해왔다. 매번 연대단체 발언을 부탁할 때마다 일정상 참여하지 못했던 단체의 대표가 이번 기자회견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여성폭력 이슈라고 하면 으레 여성단체들만이 모이던 것과 달리, 지역 내 진보단체에서도 연대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이건 무슨 일일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었기에 지금까지 항상 부차적으로 다루어지거나 여성'만'의 문제로 다루어지던 여성폭력 문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는 걸까.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녀가 남긴 긴 글을 쭈욱 읽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고, 다시 글을 읽기를 반복했다.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얼마나 다행이야..."

그녀의 글의 마지막 단락에 쓰인 이 구절에선 숨이 막혀오듯 답답해졌다. 그녀가 82년생 김지영씨를 떠올리며 '<72년생 박지현>을 써야했나'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한 가지 기억이 더듬더듬 올라왔다.

2017년 여름,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을 때다. 그날의 주제는 차별 경험 드러내기. 그런데 10대 중 후반의 여·남 청소년들의 반응은 달랐다. 

너무나 빠르고 쉽게 자신의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 청소녀(청소년이라는 지칭이 남성을 상정하고 있어 이렇게 표현하고자 함)들과 다르게 남성 청소년들은 오래도록 말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마무리하던 중 간담회를 지켜보던 30대 초반의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02년 김지영은 적어도 다르지 않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그녀와 후배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되묻고 싶었다. 갑자기 울컥한 마음도 들었다.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저들의 삶이 80년대생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건 어떻게 해야 설명해야 하는 거냐'고, 왠지 그를 향해 항변하고 싶었다. 물론, 좋은 분위기를 깨는 '프로 불편러'가 되기 싫었던 나는 침묵했다. 

내가 만난 '서지현들'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한 누리꾼이 보낸 꽃바구니가 1월 31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현관 안내탁자에 놓여 있다.
▲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한 누리꾼이 보낸 꽃바구니가 1월 31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현관 안내탁자에 놓여 있다.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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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가 남긴 글,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보았을 게다. 물론 여성들이 쏟아내는 고백을 귀기울여 듣지 않고, 눈여겨 보지 않은 그 누군가에겐 충격일 수도 있겠다. "아직도 이런 일이, 저렇게 '똑똑하고 야무진' 검사에게도 일어나다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그녀가 놓여있던 상황 하나하나는 내가 만났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에게 울며 하던 이야기들과 똑 닮아 있었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갔을까' '왜 그때 문제제기 하지 못했을까'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원망하던 그녀의 모습은 내가 만났던 그녀들, 바로 그녀들이었다. 

"왜 어제랑 같은 옷이야? 뭐 남자친구랑 뜨거운 밤이라도 보냈어?" 
"어, 오늘 좀 예민하네. 뭐 '그 날'이야?" 


이런 말을 아침 인사처럼 건네 들었던 그녀들.

"요즘 인사 시즌인데 나 곧 인사과로 갈 거야. 자기소개서 들고 와봐. 내가 봐줄게." 

정규직이 되는 게 꿈이었던, 계약직 직원이던 그녀를 따로 불러 추행한 그와 수없이 존재하는 '그들'. 

하지만 성희롱, 성추행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피해 당사자가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성폭력은 결국 힘의 차이, 권력의 차이에서 발행한다) 가해자를 향해 문제제기를 하는 건 한국 사회처럼 집단과 위계를 중시하는 곳에서 쉽지 않다. 이건 때론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 왜 그 자리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못했을까요?" 

그녀들은 부당하게 자신을 대한 이들에게 향해야 할 화살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돌려놓은 채 내내 괴로워했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그녀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건 그 현장을 목격했거나 혹은 함께 생활해왔던 이들의 반응이었다. 

피해 생존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민한다.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한 그 순간부터 피해 생존자들은 '말'할 공간을 잃었고, 가해자들은 '말'할 공간을 적극적으로 넓혀갔다. 

"뭘 이런 사소한 일 가지고 저렇게 유난스럽게 굴어?" 
"그때 그럼 거부를 했어야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니야?" 
"둘이 사귀어 놓고 이제 와서 저러는 거 아니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일상을 나누었던, 그래서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가볍게 던지는 말들은 그녀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녀들은 그들로부터 고립되어 갔다. 

"선생님, 저는 적어도 그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진 않더라도 비난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걸 보면서 저는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녀들이 말했다.  

서지현 검사의 경우, 용기 있는 고백 이후 많은 이들이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검찰 내에서는 그녀의 성품과 업무 능력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2차 가해다. 

서지현 검사의 고백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내가 그녀다'라며 #미투(MeToo)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녀들이 당했던 피해 경험이 다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위계적인 조직 문화, 남성들이 대다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검찰에서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먼저 그곳에 머무는 여성들에게 "당신, 지금 괜찮은가요?"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을까. 

그 연대가, 한 사람만을 향하지 않기를 
 

 경남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2월 1일 오전 창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용기 낸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며 성역 업슨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  경남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2월 1일 오전 창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용기 낸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며 성역 업슨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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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오전 11시 검찰청 앞 검찰 내 성폭력 규탄 기자회견에는 필자가 활동한 이래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많은 남성들이 기자회견을 함께 했다.  

기자회견 현장 주변에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자회견문을 나눠주고, 실무를 보며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위치에 서 있던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3일에 한 번 여성들이 데이트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다. 아내 폭력, 여성혐오 범죄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이 죽음의 고리를 끊는 데 함께 하자고 호소했을 때 그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2009년 3월, 우리 곁을 떠난 고 장자연. 그녀의 이름도 내내 떠올랐다. 20대 여성 연예인 지망생이 남기고 간 편지 속 이야기들은 잔인했고 끔찍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 우리의 분노와 움직임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작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 사건 1주기 기자회견. 다음 날 진행되는 5.18 행사를 준비하던, 다른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그들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왜 우리의 옆에 함께 서지 않았을까. 

물론 지난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 여성들이 말할 공간을 얻었고, 서로 연대했다. 그 결과로 소라넷 폐지와 낙태죄 폐지 20만 명 서명 등의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냈다. 이 또한 지금 서지현 검사를 향한 지지와 연대의 현상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전에 나왔던 수많은 증언 피해 생존자들, #OO_내_성폭력 운동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지현 검사를 향한 많은 이들의 지지와 연대는 너무나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지지와 연대가 단 한 사람만을 향하진 않길 바란다. 우리 스스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내가 발 딛고 일하는 그 자리에서 성찰할 수 있길 바란다. 

분명, '나 또한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로 살아가며 말할 공간, 말할 힘조차 없는 '그녀들'이 있을 것이다(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여성단체 활동가이기 때문에 원고를 의뢰받고,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얻었다. 내 위치에 부여된 힘이 있음을 고백한다).

강 건너에 붙은 불을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우리가 화재 대비를 못했다, 안전 대책이 부족했다'는 식의 분석을 쏟아내는 건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바로 내 앞에서 불이 났을 때, 도망가지 않고 동료를 덮치는 불을 마주하고, 함께 그 불을 끄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방관자에서 목격자로, 목격자에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당사자로 우리는 이제 피하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예민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는지, '좋은 분위기 깬다'며 비난하지 않았는지, 그 '좋은 분위기'는 대체 누굴 위한 것이며, 누구를 소외시키고 있는지, 어쩌면 우리 모두 공범은 아니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게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미리내씨는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태그:#직장내성희롱 ##ME_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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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정국 돌입, 조중동·경제지의 ‘색깔론’ 공격이 시작됐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민주당이 자유민주주의 부정한다며 반발, 한겨레 “조선일보·한국당의 색깔론 악의적”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8년 02월 03일 토요일
 

본격적인 개헌 정국이다. 여당이 개헌안을 마련하자 조중동과 경제지는 ‘색깔론’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누락된 게 사회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고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들이 자유시장경제를 무너뜨린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검찰 내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이를 은폐한 정황이 있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사과했다. 언론은 입을 모아 대책위원회가 성역 없이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 개헌안 발표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의원총회를 통해 최대 쟁점인 권력구조와 관련해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다는 당론을 확정했다. 또 선거제도는 비례성 강화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도 밝혔다. 앞서 1일 민주당은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을 명시하고 토지공개념 강화, 국민소환제 도입, 생명권 및 안전권을 신설하는 등 기본권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안을 발표했다.  

민주당이 이날 발표한 개헌안은 다소 모호하지만 사실상 4년 중임제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대야 협상용으로 대통령 임기와 연임 여부를 못 박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여당안으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야당의 협상참여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대통령 임기 등 세부내용에는 여지를 뒀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 역시 “구체적인 정부 형태와 선거제도 개편안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야당과의 협상을 고려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면서 “민주당은 도시는 소선거구제, 농촌은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지역별 정당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을 경우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 개편은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조중동-경제지, ‘색깔론’ 공세 

 

이날 조중동과 양대 경제신문은 민주당의 개헌안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 신문은 민주당이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으로 발표했다 철회한 일을 두고 사상을 의심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해석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다 포함한다”면서 “다만 헌법이 허용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 등과 구별하기 위해 자유라는 단어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 3일 보수신문 사설 제목.
▲ 3일 보수신문 사설 제목.

 

 

조선일보 역시 “자유민주에서 자유를 빼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며 “이들이 개헌 문제를 보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밝혔다. 특히 조선일보는 사설 뿐 아니라 ”교과서 집필기준 초안서 자유가 빠졌다“ ”법률에도 담지 못했는데 사회적 경제, 토지 공개념 헌법에 대못박기 시도“ ”진보측 ‘자유민주주의는 유신헌법의 잔재’... 자유단어 삭제 주장“ 등 여러 기사를 통해 개헌안에 집중적인 이념공세를 폈다. 앞서 조선일보는 한국당도 관여한 국회 개헌특위자문위 보고서에 대해서도 이념적 편향성이 강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번째 타깃은 경제-사회 분야 조항이다. 민주당은 ‘사회적 경제’를 명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토지공개념 강화’방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보수신문들은 당장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건설되는 것처럼 반응했다. 

중앙일보는 “사회적 경제와 토지 공개념을 강화하는 내용들이 선의로만 해석되지 않는다”면서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려는 저의가 느껴지는 까닭”이라고 밝혔다. 

경제지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경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인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우리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실패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국가권력이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계획경제와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 “조선일보 한국당의 색깔론 악의적” 

한겨레는 개헌안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인 한국당과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사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의 악의적 개헌 색깔론”에서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 일제히 색깔공세를 펴고 나섰다”면서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주사파 본색, 사회주의 체제로 변경하려는 목적이라고 단정하니 할 말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 표현이 누락된 데 대해 “과정을 짚어보면 누가 봐도 실수임이 분명히 보인다. 대변인이 착오였다고 공식 발표도 했다”면서 “(조선일보는) 자극적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자유한국당은 무슨 교시라도 받들듯 이 문제를 트집 잡으며 벌떼처럼 공격을 퍼부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정한 프레임에 따라 한국당이 움직인다는 지적이다.  
 

▲ 3일 한겨레 사설.
▲ 3일 한겨레 사설.

 

 

이어 한겨레는 한국당의 이 같은 공세의 배경을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뜻일 것”이라며 “나라의 근본인 개헌문제까지 색깔 딱지를 붙여 정쟁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한심함이 혀를 차게 한다. 자유한국당이 보수언론의 시대착오적 이념공세를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한 결코 새로운 보수로 거듭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법무부장관 사과, 대책위 구성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해 박 장관 등 법무부 관계자들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서다. 앞서 서 검사가 박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법무부는 ‘받은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정정했으며, 면담 요구에 뒤늦게 대응했고 인사상 불이익이 없다고 밝히는 등 미흡한 결론을 내렸다.  
 

▲ 3일 경향신문 기사.
▲ 3일 경향신문 기사.

 

 

법무부는 이날 ‘법무부 성희롱 성범죄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다. 1986년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권 원장은 여성, 인권분야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이날 언론은 법무부의 대처를 지적하며 근본적 문제 해결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향신문은 “더욱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법무부의 불투명한 태도”라며 “어떻게든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조사단은 박 장관이 현직 장관이라는 이유로 감싸려 해선 안 된다”면서 장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모든 진실을 파헤치고 뒤틀린 검찰 조직문화를 뜯어고치는 것”이 오명을 벗는 길이라고 밝혔다. 

#미투 물결 확산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서 검사의 폭로로 시작돼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조명했다. 사건 이후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년 전 자신이 취업하려 했던 로펌 대표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밝혔다. 이효경 민주당 경기도 의원은 6년 전 동료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공개했다. 익명게시판앱인 블라인드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주기적으로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파장이 큰 상황이다. 

경향신문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면서 “피해사실을 호소해도 피해자 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물론 오히려 2차 피해를 걱정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우리 사회는 이들의 피해와 고통에 오랫동안 너무 무관심했다”며 “용기를 낸 이들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한겨레 역시 “곳곳에서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하다”면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고 피해자들이 조직에서 당당하게 살아남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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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국정원은 왜 이 사건을 피하나

국정원-통일부 등 정부기관, 가족에게 소송대리권 위임받은 민변과 면담 요청 회피

18.02.03 12:01l최종 업데이트 18.02.03 12:01l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입국한 탈북 종업원들과 관련해 지난 1년 9개월여 동안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해왔으나 관련 정부기관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그 배경에 의문이 더해지고 있다.

민변은 여성들의 가족에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고 이들을 만나 '자진' 탈북 의사를 확인하고자 활동해왔다. 최근 국정원, 경찰청, 통일부 등 정부기관은 민변의 면담 요청에 거절 의사를 밝히거나 답신을 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10월 25일 있었던 민변-국정원 기조실장 면담을 앞두고 신현수 기조실장은 "종업원들 중 한 명이라도 원치않게 휩쓸려 입국했다면 중대한 사안"이라며 "내 소관은 아니지만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변에 따르면 2018년 2월 초 현재까지 국정원 측으로부터 어떤 회신도 오지 않았다. 종업원들의 입국 직후부터 현재까지 1년 9개월간 민변은 지속적으로 '국정원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경찰청 보안국도 민변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지난 1월 4일, 민변은 여성들을 담당·보호 중인 '신변보호관' 면담을 경찰청 보안국에 정식으로 요청했으나, 같은 달 26일 보안국은 보안국장 명의로 "경찰 신변보호관 전원이 면담 의사가 없다"고 회신해왔다. 사유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2017년에도 보안국은 여성들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민변의 공문에 "본인들이 만날 의사가 없음을 알려왔다"고 답변한 바 있다.  

정부기관들 모르쇠로 일관하는 '북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지난 7일 입국했다고 밝혔다.
▲  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지난 2016년 4월 7일 입국했다고 밝혔다.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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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7일, 민변은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통일부 앞에서 여성들의 입국 경위와 자의에 의한 탈북 여부를 정부가 나서서 조사하길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 면담신청서를 제출했다. 해당 기자회견엔 평양시민 김련희 송환촉구 모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가 함께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같은 달 24일 면담 요청을 거절하는 의사를 전해왔다. 민변은 "조명균 장관은 평창동계올림픽 건으로 바빠서 민변의 면담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며 "대신 인도협력국장이 면담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해왔다"고 전했다.

현재 통일부가 종업원들의 신상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대략 2가지로 보인다. 탈북민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임대주택이 제공된다. 통일부가 임대주택 보증금을 LH공사나 SH공사에 납입하도록 돼 있다. 또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 측이 통일부에 탈북민이 입학했음을 고지한다. 그동안 국정원은 민변에 종업원들의 거주지를 개인정보임을 들어 공개하길 거부해왔다. 이에 민변은 통일부가 여성들의 주소지나 대학교를 직접 방문해 만나보라고 제안했으나 통일부는 "종업원들이 통일부를 안 만나겠다고 해서 가보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그동안 국정원과 통일부는 "종업원들 본인이 민변과 만나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거나 "종업원들이 노출되면 재북 가족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종업원들이 재북 가족의 위임을 받은 민변 변호사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종업원 면담 본인들이 거부"... 국정원장·통일부 장관 면담 요청도 안 받아
 

 경찰청 보안국이 민변에 보낸 공문.
▲  경찰청 보안국이 민변에 보낸 공문.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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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지난 2016년 8~9월 여러 차례 서초동 민변 사무실을 찾은 지배인 허아무개(38)씨의 진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허씨는 여성들을 이끌고 지난 2016년 4.13 총선 직전 입국했다. 그는 여성들의 여권을 걷어서 일괄 보관했고, 식당 업무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하는 실질적인 사장으로 알려졌다.   

당시 허 지배인은 국정원이 자신을 포함해 종업원들에게 민변을 두고 "종북세력이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반복해서 주지시켰다"고 귀띔했다. 허씨는 민변에 "종업원들은 민변이 종북이며 나쁘다고 생각한다"며 "종업원들은 민변을 만나면 (북한에 있는) 부모가 연좌제로 죽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탈북자 가족을 연좌제로 엄히 다스리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들의 국내 입국 직후부터 지난 2년 가까이 꾸준히 국제사회를 향해 '유인 납치' 혹은 '강제실종'이라고 못박은 이상 부모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탈북동포들이 모이는 한 사이트에는 "여성들의 부모가 딸들이 탈출했다고 국가보위성 등의 조사를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애들 관리를 제대로 못해 남한에 가게 만들었다고 보위성에 항의했다"면서 "애들을 다시 데려오라고 보위성과 당국에 강하게 항의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말 놀라운 일"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애초에 이들 13명의 입국 시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북한 해외식당 직원들이 집단 탈북해왔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은 다름아닌 한국정부다.  

민변에 따르면 민변은 그동안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장, 통일부 각 국장, 경찰청 보안국장, 국정원 기조실장 등과 면담했으나 진술이 서로 상이했다.  

장경욱 민변 변호사는 "센터장 면담 당시 국정원은 손뗐다고 했다"면서 "종업원들을 통일부와 경찰이 담당한다고 했다. (인신보호 구제 청구를 했지만) 법정에도 안 나왔다. 우리는 이들을 국정원이 특별관리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장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인권위 조사관에게 독자적으로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센터장은 여성들을 통일부와 경찰이 담당한다고 밝혔으나 북한인권운동 시민단체인 '북한인권제3의길'이 여성들과 접촉하게 해달라고 통일부에 진정을 하자, 통일부는 "여성들이 국정원장에 의한 '특별보호대상(가급 경호대상)'으로 지정돼 통일부는 그들과 접촉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로 볼 때 종업원들이 현재 어느 기관의 담당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부모와 법률대리인이 보내는 서신도 전달 못해

민변은 그간 국정원을 상대로 접견 신청, 서신 전달, 인신보호법상 구제 청구(위법한 구금을 긴급히 해제시키기 위한 법적 절차), 접견 거부 취소 소송 등의 활동을 했으나 모두 거부되거나 기각됐다. 그외 유엔 및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대한적십자사와 접촉해 인도적 해결을 촉구해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북한 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전달한 부모들의 편지를 받았으나 여성들을 만나지 못해 현재까지 보관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서신은 부모가 딸에게 보내는 12통의 편지다. NCCK는 유엔·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각각 계류, 기각됐고, 국정원·유엔인권서울사무소에도 수차례 방문해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북한인권제3의길도 통일부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관련 사안을 알리는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이렇듯 관련 법조·시민단체들이 2년 가까이 활동해왔으나 여성들을 만나기는커녕 부모와 법률대리인이 보내는 서신조차 전달하기 어려웠다.   

앞서 1월 중순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우리 측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제안하자 북측이 여성들의 귀환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1월 초 채널에이는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해 대북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이들 종업원 중 1~2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12월 서울을 방문한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한국정부의 설명에 의문이 있다"며 민변 변호사들과 긴급 면담을 갖고 관련 사안을 논의했다. 그는 당시 "유엔 내에서 이 사안을 계속 다루고 있다"며 "북한을 방문해 북측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관련 보도가 나오고, 나라 안팎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경찰청 보안국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종업원 당사자들도 면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신변보호관들이 노출이 되면 (여성들도) 같이 노출이 되는 것"이라며 "지난해에 종업원들이 면담을 거부한 것과 동일한 사유로 면담을 거부한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여성들이 어느 기관의 소관인지를 묻는 질문엔 "탈북자 정착지원법에 의거해 탈북자 신변보호는 경찰청에서 맡고 있다"며 "자유의사에 의한 입국 여부는 우리에게 확인받기 어렵다. 국내 정착에 도움을 주고 신변 위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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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오너만 자유로운 시장주의 체제

[연재기고 (5)] 금융 자유화와 이건희의 범 삼성계

김춘효 자유언론실천재단기획편집위원 (매체 정치경제학 박사) media@mediatoday.co.kr  2018년 02월 03일 토요일

한국 경제의 최대 권력이 삼성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 미디어의 최대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자는 이건희로 대표되는 삼성 오너 일가라고 단언한다. 삼성은 한국 최대의 미디어 집단을 소유하고 있다. 삼성은 광고, 협찬 등으로 한국 언론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미디어 통제력은 이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나온다. 삼성의 미디어 권력은 근본적으로 미디어를 둘러싼 제도 장악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삼성의 성장史, 삼성의 미디어 진출 역사, 이병철의 제국 통치 방식, 삼성家와 한국 파워 엘리트, 이건희의 범 삼성家 확장, 삼성 미디어 제국,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한국 미디어 (신문, 유료방송, 광고, 영화) 시장 구조와 삼성의 미디어 검열 영향력 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삼성 권력은 자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 미디어의 구조 장악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경제력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력의 뿌리가 되는 미디어 통제력을 정밀 분석할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분명해진다.  

이에 저자는 미디어오늘·자유언론실천재단과 함께 한국 미디어 통제 체제와 나아가 한국 사회 지배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삼성의 한국 미디어 통제에 대한 심층 연구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 편집자주  

목차는 다음과 같다.  

 

(01) 왜 삼성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인가
(02) 삼성 제국과 내부 통제 라인 
(03) 이병철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한국 파워 엘리트 
(04) 한국 매스컴 속의 삼성 미디어史 
(05) 금융 자유화와 이건희의 범 삼성계 
(06) 누가 한국 신문 시장을 지배하는가 
(07) 누가 한국 광고 시장을 통제하는가 
(08) 누가 한국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가 
(09) 누가 한국 유료 방송 시장을 통제하는가 
(10) 삼성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1) CJ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2) 중앙일보 그룹의 소유 구조와 이사회 
(13) 1965년 사카린 밀수 사건과 2005년 X-파일 
(14) 범 삼성가의 미디어 검열 방식 
(15) 누가 미디어 자유화의 최대 수혜자인가 
(16) 삼성 없는 한국 미디어를 위하여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재벌 

 

1980년대는 과도기였다. 정치적으론 군사 독재정권에서 시민정부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기였고, 경제적으론 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도입기였다. 정치적 전환 변곡점은 1987년 시민혁명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은 7년 동안 국민들을 강압적인 폭력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한국인은 자유롭게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게 됐다. 정치적 자유화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제적 체제 변화는 시민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미국에 의한 외압 때문이었다. 한-미간 무역거래에 있어 미국의 적자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1985년 한국정부와 미국 통상대표부는 한국의 금융, 보험, 광고, 영화 시장 개방에 대한 협상을 시작했다. 한국경제가 세계 경제 자유화 흐름에 편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 다음해부터 한국정부는 보험업과 증권 등 금융업과 영화와 광고 등의 미디어 시장을 개방했다. 경제 중심축이 정부 주도형에서 시장 중심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Sa, 1993).

사실 한국 시장 개방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의 자발적 협력도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모델을 승계할 수 없었다. 그동안 금전적 물적 자원을 지원해 줬던 미국과 일본이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 등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국가들은 불황 타개책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마디로 시장 중심 경제구조를 말한다. 대표적인 정책들은 공기업의 사기업화, 금융시장 활성화, 소유 지분 완화 및 기업의 인수 합병 (M&A) 활성화 등이다. 미국과 영국은 또한 이 같은 경제 개방화 조치를 아시아국가도 요구했다. 자국의 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Harvey, 2005). 이 같은 시장 개방화 흐름 속에서 전두환은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려 했다.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인정을 위해서였다. 전두환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시장주의자들을 경제 관료로 임용했다. 이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 축소, 기업 활동 자유 보장, 금융 자유화 그리고 공공 부문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Kim, 1999).  

 

▲ 1985년 4월26일 미국을 방문중인 전두환 대통령 내외와 레이건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발코니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1985년 4월26일 미국을 방문중인 전두환 대통령 내외와 레이건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발코니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은 한국 미디어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1980년 중반 통상 협상을 통해 새로운 민영 방송국 설립, 외국 광고대행사의 자유로운 영업활동 보장, 헐리우드 영화의 직접 배급 등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이 같은 미국 측의 요구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정부는 SBS 등을 포함하는 민영방송국을 추가로 허가했고, 다국적 광고대행사들과 헐리우드 영화 배급사들은 한국 미디어 시장에서 자유롭게 영업 활동을 하게 됐다(Kim, 1996). 이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199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영삼 정권 때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994년 쌀 시장을 개방했고 1995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한국 독점기업으로 성장한 재벌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특히, 재벌들은 외국 은행에서 차관을 직접 들여와 금융 계열사를 설립하고 국민들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했다. 또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중화학 공업, 반도체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 한국 경제 부실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재벌의 무분별한 경제활동을 제재할 수단이 없었다. 독재 정권 시절의 ‘강한 정부-약한 재벌’의 권력 관계가 민주 정부시절엔 ‘약한 정부-강한 재벌’로 역전된 것이다 (홍덕률, 2006). 한마디로 1990년대는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통제하는 재벌공화국 시대였다.

 

금융 자유화와 삼성가의 편법 상속  

경제 자유화와 시장 개방화 흐름 속에서 삼성의 통치권은 설립자 이병철에서 이건희로 교체됐다. 이병철 삼성 창립자는 198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삼성은 32개의 그룹 계열사, 종업원 15만 명, 11조 원이상의 자산에 17조 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가 12월1일 그룹 회장 직을 승계했다. 회장에 취임한 그는 당면한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 발굴과 형제들 간의 상속 문제였다.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유통, 종합화학, 영화-영상사업, 인터넷 등의 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특히 삼성자동차는 1999년 법정관리로 넘어가면서 약 4조5천억 원의 부채까지 남겼다. 자산 매각을 통해 2조 원 정도의 부채는 상환했지만, 나머지 약 2조5천억 원을 갚아야했다. 이처럼 이 회장의 경영실적은 탁월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그는 삼성전자를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시켜 세계인의 머릿속에 삼성을 각인시켰다. 이건희의 경영 스타일은 이병철과 비슷하다. 그룹 비서실 (또는 구조본부)을 통해 수렴 청정하는 방식이다. 그룹의 장기적인 밑그림과 자금운영은 비서실에서 총괄하도록 하고, 정기적인 그룹 사장단 회의를 통해 계열사 업무를 보고 받았다(선우정, 2000).  

 

▲ 1980년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
▲ 1980년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
 
이건희 회장의 또 다른 임무는 가족 간의 상속 문제를 무난히 처리하는 거였다. 그는 선대회장으로부터 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았다. 그가 낸 상속세는 150억 1800만 원이었다. 삼성 자산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속세금을 냈지만 위법 사항은 아니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아들에게 넘긴 자산은 237억 원 2300만 원과 몇 개의 공익재단이었기 때문이다(권영준, 2005). 공익재단에 대한 세금 규정이 없는 점과 재벌 총수가 그룹 경영권을 통제하는 한국 재벌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세금을 아낀 것이다. 한국 최고의 재벌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세금을 적게 냈다는 도덕적 비난을 받았지만 법적 처벌 사항은 아니었다.

 

 

선대 회장은 공익재단을 이용해 절세했다면 이건희 회장은 금융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이들 부자의 상속 방법은 달랐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 상속세를 적게 냈다는 공통점은 있다. 선대회장 보다 이건희 회장의 상속 문제는 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출자순환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삼성 그룹을 6개 범 삼성가로 나누고 그의 자녀들에게도 경영권을 세습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범 삼성가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한 특수 관계인들이다. 이병철은 1987년 1월 일본 동경으로 6명의 사람을 부른다. 동경 6인들은 큰 딸인 이인희, 작은 아들 이창희, 셋째아들 이건희, 장손자 이재현, 그리고 막내 딸 이명희 등이다 (정혜연, 2012, p. 200). 특수 관계인은 그룹 창업자의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들을 특수 관계인으로 명명한다.

 

 

삼성을 분할하는데 있어서 이학수 등 구조본부 사람들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재무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중핵기업들에 첨단 금융기법을 접목시켰다. 대표적인 중핵기업은 에스원, 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서울통신, 에버랜드 그리고 SDS 등이다. 활용한 금융 기법은 사모전환사채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다. 정부가 기업들의 자금 조달 편의성을 위해 1990년대 도입했다. 삼성은 주식 상장을 앞둔 중핵기업의 CB와 BW를 상속 수단으로 활용했다.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비상장 주식이 장외시장에서 거래돼 소득이 발생할 경우 시세차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하지만, 상장 주식의 경우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삼성의 행위는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삼성비서실의 종자돈 불리기(1단계), 불어난 자금으로 핵심회사 장악하기 (2단계: 불어난 자금으로 핵심회사인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 SDS의 CB나 BW를 저가로 인수하는 단계), 순환출자구조를 통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기, 지배구조의 강화 및 안정화(4단계), 차기 경영 전면에 등장 및 황제이미지 구축하기 등이다 (조승현, 2014, p. 274).

 

 

▲ 2013년 5월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이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2013년 5월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이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1990년대 삼성에버랜드를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그룹 내 부동산 관리회사였던 중앙개발에서 삼성에버랜드로 개명한 이 기업은 그룹의 사실상의 지주회사였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은 그의 자녀들에게 약 61억 원을 증여했다. 증여세금 약 16억 원을 내고 남은 돈 46억 원으로 주식 상장 직전인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구매했다. 상장되자마자 주식을 되팔아 450억 원을 만들었다. 이 돈을 종자돈 삼아 회장 자녀들은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그리고 제일기획에서 발행한 CB를 대량 구입한다. 다른 주주들은 대부분 신주 인수를 포기한다. 그 결과, 아래 표에서 보듯, 이재용과 그의 여동생 3명은 1996년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이 회사는 삼성 그룹의 사실상의 지주회사이므로 이재용과 그의 여동생들은 16억 원의 세금만 내고 삼성을 상속 받은 셈이었다. 왜냐하면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베랜드로 돌고 도는 순환 출자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 일가가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그룹 경영권을 세습하고 통제권을 확보하는 행위는 현대, SK, LG 등 다른 재벌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조승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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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표 내용 중 중앙일보와 이재현, CJ의 지분 변동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은 1996년 중앙일보 사장이었지만 그의 지분은 1%도 되지 않았다. 그 당시 중앙일보 최대주주는 이건희 (26.44%)였다. 나머지 중앙일보 지분은 이 씨의 형제들과 삼성 중핵기업들이 공유했다. 홍석현씨나 그의 형제들 이름은 명부에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상황이 1996년부터 벌어졌다. 중앙일보는 삼성 에버랜드의 신주 CB 인수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 자격을 상실했다. 심지어 1998년에는 에버랜드 주식이 하나도 없다. 1년 뒤 1999년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에서 분가했다. 보광 그룹과 함께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 중앙일보의 최대주주는 홍석현이었다. 그의 지분은 1997년까지 1%미만에서 1999년 21.51%로 증가했다(최경운, 2005, p. 205). 삼성에버랜드와 중앙일보 지분이 맞교환 됐을 수도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분가 이후 중앙일보 최대주주는 홍석현 등 홍씨일가다. CJ와 이건희의 큰 조카 이재현도 살펴보자. CJ는 1997년 삼성에서 정식 분가했다. CJ는 다른 주주들과 달리 삼성에버랜드의 CB 발행 신주를 유일하게 인수했다. 그 지분을 2010대 초반까지 갖고 있었다.

 

 

▲ 2013년 5월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 출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홍라희 여사 뒤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인다. ⓒ 연합뉴스
▲ 2013년 5월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 출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홍라희 여사 뒤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인다. ⓒ 연합뉴스
 
이런 식의 주주 맞교환 형식을 통해 이병철의 삼성은 6개의 범 삼성가 그룹으로 확대됐다. 이인희씨는 삼성으로부터 전주제지 등의 제지사업과 통신장비계열사를 인계 받아 1993년 분가해 한솔그룹으로 독립했다. 이창희씨는 VCR 등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한일합섬을 상속받아 새한그룹으로 독립했다. 이건희는 핵심사업 영역인 전자, 금융, 제조, 의류, 서비스 관련 계열사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이재현은 식품업 위주로 상속 받아 CJ 그룹으로 1997년 독립했다. 이명희는 1999년 백화점 등 유통업 계열사를 갖고 1999년 분가했다. 이건희의 처남인 홍석현은 1999년 중앙일보 그룹으로 분가했다. 이들 범 삼성가 그룹들 중 새한 그룹을 제외하고 모두 시장에서 선두 기업들이다. 이들 모두 한국 광고 시장을 떠받치는 광고주들이다. 이중 삼성, 중앙일보 그리고 CJ 그룹이 분가 이후 정보와 대중문화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김춘효 자유언론실천재단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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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 발생, 환자·가족·직원들 긴급 대피

박세호 기자
발행 2018-02-03 09:43:36
수정 2018-02-03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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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본관 건물 푸드코트에서 전기 합선 추정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 진압을 했다.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본관 건물 푸드코트에서 전기 합선 추정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 진압을 했다.ⓒ김철수 기자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본관 건물 푸드코트에서 전기 합선 추정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 진압을 했다.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본관 건물 푸드코트에서 전기 합선 추정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 진압을 했다.ⓒ김철수 기자
 

3일 오전 7시 55분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본관 3층 음식점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소방당국은 대응2단계를 발동하고 진화에 나섰다.

건물 안의 환자와 직원들은 1층으로 긴급 대피했으며, 현재 로비 등에서 화재 진압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현장에는 다량의 소방차 외에 소방헬기 2대와 구급차들이 대기하며 만일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목격자들은 화재 발생으로 인근 병실까지 자욱한 연기가 가득했다고 밝혔다.

 

현재 화재는 어느 정도 진압됐으나 건물 안에는 매캐한 냄새가 강하게 남아 있다.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본관 건물 푸드코트에서 전기 합선 추정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 진압을 했다.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본관 건물 푸드코트에서 전기 합선 추정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 진압을 했다.ⓒ김철수 기자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 발생 환자와 직원 등은 긴급 대피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 발생 환자와 직원 등은 긴급 대피ⓒ민중의소리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 발생 환자와 직원 등은 긴급 대피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 발생 환자와 직원 등은 긴급 대피ⓒ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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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평화정신계승국민회의’를 제안한다

<칼럼>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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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2  16: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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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평창올림픽 축하 금강산 남북합동공연 취소 통보가 북한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이어 1월 31일 트럼프 대통령은 첫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미국본토 위협에 ‘최대 압박’을 강조했다. 2월 1일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되어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까지 받은 인사의 내정이 취소됐다.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평창올림픽 이후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거부할 경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정밀타격에 나설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생각이 깔려 있다. 평창올림픽을 위한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강하게 주문하는 미국의 강경한 목소리는 평창올림픽을 불과 1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나온 것이라 매우 불안하다.

금강산합동공연도 금강산 공연장 가동을 위해 남측이 1만톤 석유를 공급하려는 것을 석유가 UN 대북제재 품목이라는 이유로 제동이 걸려 취소된 것이다. 이 공연을 성사시키려면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특수상황을 근거로 미국을 비롯한 UN을 설득해서 UN 제재위반을 피해가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 보수 야당과 그 추종자들의 거친 색깔론 공세와도 맞서야 한다. 게다가 최근 국정지지도 하락은 20대 젊은층의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일부 연유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으로 열린 공간에 남북대화를 성공시키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도 평창올림픽으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만의 생각일까? 새 정부의 국정지지도는 날로 떨어지고, 보수언론은 다시 뭉쳐 평창올림픽을 막무가내로 색깔론으로 공격한다. 새 정부는 미국과 국내 보수세력을 지나치게 의식해 UN과 미국을 향해 제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한미동맹을 의식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다자안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고, 평창올림픽 이후 한미합동군사훈련 재개를 거듭 강조했다. 미국도 평창올림픽 이후 북한과 대화할 계획이 없다고 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북미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미국의 속내는 한반도 평화보다는 핵보유국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불평등한 핵무기비확산체제(NPT) 사수에 있는 것은 아닐까. 엄격히 말해 북한은 NPT체제에서 2003년, 2006년 두 번이나 탈퇴했다. 북한이 위반한 것은 NPT가 아니라 UN 제재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미국이 강조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북한이 과연 받아들일까? 북한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채택한 유일한 방식은 핵무기 보유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주민의 삶과 경공업을 모두 희생하고 국제사회의 완전고립을 감수하면서 핵무기 실험과 ICBM 발사실험에 광분한 것은 체제생존을 지키기 위함이 일차적 목적이다.

그래서 북한이 9번째 핵보유국이 된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미국이 이란과 리비아에서 핵문제 해결시 보여준 태도를 보고 북한은 미국의 비핵화 이후 약속을 믿지 않는다. 이것이 평창 이후 미국과 북한의 정면 군사적 충돌이 심히 염려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핵무기 있는 북한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주장이 있다.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다시 가져오자는 입장,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가자는 입장, 그리고 남한도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입장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 주장들에서는 동족상쟁 없는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는 간과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다면 남측은 북한이 비록 무리수를 두더라도 북한과 접촉과 대화의 끈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끈을 놓는 순간 대북 압박 정책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평화외교라는 평화적 해법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무척 유약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긴밀한 남북교류를 통한 이러한 자주적 외교능력의 확충은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적 당위에도 부합된다.

북한은 자기체제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때 남한과 정상적 대화와 교류를 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올 것이다. 북한의 남북대화와 국제사회로의 복귀 시간을 앞당기려면 남측과 국제사회가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이래 남한은 물론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대북압박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현재도 정권은 바뀌었지만, 남한이 미국과 UN 눈치를 보는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부터 한반도에서 대내외적으로 좀 나은 위치에 있는 남한 정부가 UN을 비롯한 미국을 설득하는 평화외교의 공세를 펼칠 시기이다.

남한 정부 혼자 할 수가 없다. 남한 내 한반도 평화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시민사회 제 세력이 남한정부와 역할분담 차원에서 다른 한 축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 남한 내 모든 평화세력은 평창 이후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지키고 계승하는데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한반도의 핵전쟁은 세계의 핵전쟁이요 인류공멸이다. 한반도 평화는 바로 세계평화이다. 남북한은 바로 이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남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에 의거해 남북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 정상화를 자주적 외교로 풀겠다는 것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끈질기고 치밀하게 설득시켜야한다.

평창으로 켜진 한반도 평화의 큰 흐름을 살리자. 남한 내부와 남북한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가 세계평화라는 미국여론과 국제여론을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만들어내자. 이 강력한 국제여론이 UN제재와 미국의 군사적 정밀타격이라는 선택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 UN 대북제재 일변도의 압박정책은 최선이 아니다. 그래서 이 한반도 평화의 기운을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2022년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이어 동북아의 평화를 이루자.

이를 위해 국내적으로 6.15남측위와 민화협을 포함해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가칭 ‘평창평화정신계승국민회의’를 범국민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현재 촛불혁명의 동력인 퇴진행동이 2017년 새 정부 출범이후 해체되어 분단적폐 청산을 위한 시민사회의 구심동력이 없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 촛불 평화운동의 구심력이 매우 약하다. 강력한 분단적폐 청산을 위한 새로운 동력 구성이 필요하다.

한반도 내외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력이 ‘평창평화정신계승국민회의’라는 이름하에 큰 연대를 만들어 국내외적으로 힘차게 평화전략의 새로운 동력을 만드는 것이 첫 관건이고 매우 시급한 시점이다.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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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성을 다해 자주언론을 후원해준 박노익 선생을 추모하며

열과 성을 다해 자주언론을 후원해준 박노익 선생을 추모하며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2/03 [02: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자주민보 후원인 박노익 선생     ©자주민보

 

▲ 박노익 선생이 어려운 형편에도 귀중한 후원금을 자주민보에 보내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애독자가 박노익 선생의 건강을 위해 써 달라면 보내온 성금 100만원을 당시 자주시보 이정섭 대표가 박노익 선생에게 전달하는 모습     ©자주민보

 

필자가 자주민보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박근혜 정부는 자주민보 전 기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혹은 불구속 수사를 벌이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한 바 있다.

 

그때 충주의 박노익 선생이 적지 않은 정성어린 후원금을 보내주어 그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북이 고향인 박노익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등지고 남녘으로 피난 온 일을 두고 고향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통일이 되면 산골이었던 고향마을에 수도를 놓아주기 위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자주민보 후원금으로 전해주었다.

 

하도 고마워서 틈나는 대로 충주에 들러 인사를 드렸는데 가서 보면, 한 겨울에도 전기장판 한 장에 의지한 채 두꺼운 조끼를 껴입고 생활하시며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을 여러 통일운동, 시민운동 단체 후원금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렇게 북녘 고향에 가고 싶어 자주민보, 자주시보에 올라온 미래과학자거리 등 북녘 사진을 일일이 프린트해서 보고 또 보고 하던 박노익 선생이었다.

 

그러던 박노익 선생이 더는 거동이 불편해져서 2016년 청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바쁠텐데 이런 곳까지 왜 왔냐"고 하면서도 그렇게나 반가워하였다.

싸들고 간 과일도 깍아드리고, 먹고 싶은 것 사 드시라고 용돈 좀 드리고, 말벗도 해드리다 다시 찾아오겠다며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그렇게 두 손을 꼭 부여잡고 통일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며 눈굽에 맑은 눈물이 어리었다.

 

그 뒤 찾아간다 간다 하면서 거의 1년 넘게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새해도 되고 해서 어제야 과일을 사들고 청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퇴원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몇 달 전에 별세했다고 알려주었다.

 

한 동안 귀가 멍했다.

 

몇 달만 먼저 왔어도 선생님을 뵐 수 있었을텐데...

얼마나 반갑게 손을 부여잡고 좋아하셨을텐데 한 없는 자책이 밀려왔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과 가족 친지들을 다시 못 보고 어찌 눈이나 제대로 감으셨을지...

왜 이다지도 분단이 길어지는지...

왜 이 찬란한 21세기에도 우리 민족은 이런 그리운 고향에도 못가고 보고 싶은 혈육들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뜨거운 가슴을 삭힐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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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대응책 있다” 중 군부 호언장담, 이유는?

[밀리터리 차이나-윤석준의 차·밀] “사드 대응책 있다” 중 군부 호언장담, 이유는?
 
윤석준  | 등록:2018-02-02 12:48:27 | 최종:2018-02-02 12:59: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6년 12월 31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총서기가 지원병종(兵種)이었던 ‘제2포병군’을 단일군인 ‘로켓사령부’로 확대개편했다.  중국 군부는 최근 다탄두 다중목표 공격 재돌입체(MIRV) 기능을 갖춘 ICBM 둥펑(DF)-5/31과 신형 ICBM을 개발 중이나 여전히 성능 부문은 미지수다. 12000㎞ 사정거리와 10개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DF-41 ICBM을 지난해 11월 고비사막에서 최종 시험하였으나, 2018년 중반경에서야 실전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엔 신형 DF-21D 탄도 미사일을 시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영국 『제인국방주간』은 몽골자치구에 떨어진 1단계 발사체의 성능을 분석한 결과 조기 실전배치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엔진출력이 예상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탄도 미사일 방어체계는 더욱 진화하고 있다. 2017년 5월 5일 결정된 미국 탄도 미사일 방어계획 검토보고서에 의하면 미 국방부는 매년 350억 달러를 향후 30년간 탄도 미사일 방어 개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지난 30년간 미 해군이 사용해온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레이더를 파장이 극히 짧은 X/S-band 적용한 신형 AN/SPY-6(V)로 교체할 예정이다. 신형 AN/SPY-6(V)는 레이더탐지단면(RCS) 0.01㎡ 크기의 골프공도 탐지한다. 이는 중국의 탄도 미사일 대부분이 AN/SPY-6(V)에 의해 탐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동 훈련 중인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왼쪽)과 F-35A 스텔스 전투기. [출처:셔터스톡]

더욱이 중국의 기존 탄도 미사일 탐지체계로 방어가 되지 않는 ‘음영구역(shadow zone)’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고 이곳을 골프공 정도의 RCS인 미 해‧공군의 공중 전력이 파고 들고 있다. 특히 괌에 배치된 트라이던트(Trident)형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탑재한 로스엔젤레스급 핵전략잠수함(SSBN) 4척이 동맹국 한국 해군 및 일본 해상자위대와의 연합 훈련을 수시로 실시하면서 음영구역을 찾아내고 있다. 이에 일부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지난해 7월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가 중국 동북 3성 음영구역을 겨냥하고 있다며 이를 “중국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군사 작전에 미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와 F-35A를 참가시켜 중국 대공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F-22와 F-35A 전투기의 RCS인 0.0002㎥ 수준으로 중국 탐지체계에 식별되지 않는다.

더욱이 미 공군은 스텔스 전투기에 스텔스 기술이 채택된 장거리 공대함 미사일(LRASM)과 공-대지 사거리연장(JASSM-ER) 미사일을 탑재시킬 계획이다. 이들 미사일 RCS는 0.01㎡ 수준이다. 반면 중국내 주요 산악에 설치된 방어체계는 0.8㎡ 크기의 표적만을 탐지할 수 있다. 즉 기존 방어체계로는 F-22 및 F-35 탐지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중국 군부는 로켓사령부 주도로 혁신적 타격 및 탐지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1. 골프공 RCS의 창(槍)
 
우선 RCS 골프공의 ‘극초음속 비행체(HGV)’ 개발이다. 2014년 1월 이후 중국과학원 원사(院士) 칭호를 받은 미사일 과학자 덩샤오강(鄧小剛) 주도로 중국항천과기집단공사(ASIC)가 WU-14 극초음속 비행체 시험발사를 7차에 걸쳐 실시했다. 

덩샤오강 [출처: 바이두 백과]

이는 기존 DF-21/31에 골프공 크기의 RCS 효과를 내는 HGV를 탑재시켜 100km 상공에서 분리시킨 뒤 수 천㎞를 음속 10배의 초음속으로 활공함으로써 표적을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장거리 활공을 지원할 군사인공위성 체계가 미완성이어서 시험비행만 거듭하고 있다.  WU-14가 수 천㎞의 활공 궤도 유도를 위해서는 우주에 138개 군사위성을 띄워야 하는데 이는 2030년에야 가능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이 시험개발 중인 WU-14 극초음속 비행체.[출처:위키피디아]

2. 골프공 RCS 잡는 방패(盾)
 
중국 탄도 미사일 방어체계는 주로 러시아와 체코 탐지체계를 모방한 것이다. 체코 체계는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세르비아가 F-117 스텔스기를 격추시키고 2011년 이란이 RQ-170 스텔스 무인기를 추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러시아형 사드인 토르(Tor) 대공방어체계를 모방한 중국의 HQ-17체계는 F-15인 0.8㎡ RCS 표적만을 탐지할 수 있어, 골프공 RCS 0.01㎡의 F-22, F-35A 및 스텔스 미사일 탐지는 어렵다.

과거에는 미국 탄도 미사일의 탄도를 미리 예상하여 탐지체계를 주요 길목에 설치함으로써 공격 징후(indication) 예보가 가능했다. 그러나 F-22와 35A 스텔스 전투기가 LRASM과 JASSM-ER을 탑재하여 원거리에서 발사하는 경우 벌거벗고 싸우는 것과 진배 없다.특히 미 해군은 LA급 전략핵잠수함(SSBN)이 수중에서 음영구역을 찾아내 미 공군 F-22와 F-35A에게 침투정보로 제공하고 있다. 더욱 방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전자과기집단공사(CETC)가 골프공 RCS 표적을 탐지할 수 있는 2개의 신형 탄도 미사일 탐지체계를 개발해 공개했다.
 
하나는 CETC 산하 난징전자기술연구소(NRIET)가 개발한 SLC-7 L-band 레이다는 약 450㎞ 장거리에서 RCS 0.05㎡ 표적을 탐지하며, 300㎞ 거리에서 0.01㎡ 표적 탐지율이 80-90%에 달한다. 이론상 스텔스 전투기와 미사일 탐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함께 개발한 YLC-8B는 서방의 제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대상으로 하는데 약 550㎞ 거리에서 스텔스 전투기, 약 350㎞ 거리에서 스텔스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고, 탄도 미사일의 경우 700㎞에서 초기에 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한 YLC-8B 레이더.[출처:바이두백과]

특히 저고도 탐지에 유리한 L-band를 사용하고, 최소 6명의 운용인원이 15〜30분 이내에 설치하는 이동식이어서 음영구역에 신속히 배치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들 모두 중국이 개발한 J-20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대상으로 베이징(北京) 근교 가오베이뎬(高碑店) RCS 시험장에서 평가를 거쳤다. 향후 중국로켓사령부는 WU-14 극초음속 비행체, SLC-7과 YLC-8B를 북부전구, 동부전구와 남부전구내에 발생된 음영구역에 배치하여 미국의 창에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중국의 코앞에 전진배치된 미국의 사드를 무력화시키는데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사드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장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정리=차이나랩 정용환 

윤석준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자, 예비역 해군대령이다. 2011년 12월31일 제대 이전까지 수상함 전투장교로 30년 이상 한국해군에 복무했으며, 252 편대장, 해본 정책분석과장, 원산함장, 해군본부 정책처장, 해본 교리발전처장 및 해군대학 해양전략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97&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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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찾아 헤매다 고시텔서 사망한 그 입양인...

[서리풀 연구通] "입양특례법 개정, '아동 최우선의 원칙' 지켜야"
 
 

2017년 10월 18일, 보건복지부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국이 이 협약에 서명한 것이 2013년 5월이니, 4년 5개월만이다. 이 협약은 입양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길 것을 강조하면서, 불가피하게 입양을 보낼 경우에도 국내 입양을 우선으로 하고, 해외입양의 경우 양국 정부가 나서서 양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입양아 국적 취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최대의 '고아 수출국' 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 협약이다. 정부가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남윤인순 의원 등은 그에 걸맞은 입양특례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법 개정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기사 : "우리는 아동 일부를 포기합니다언제까지?"). 

최근 몇 년 동안 해외로 입양되었던 국제입양인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언론을 통해 간간이 알려졌다. 바로 한 달 전에도 '얀'의 사연이 보도되었다. 노르웨이로 입양된 '얀'이 한국으로 돌아와 5년 동안이나 친부모를 찾아 헤매다 결국 고시텔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사례는 왜 우리가 '아동 최우선의 원칙'에 입각해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내용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얀'의 경험은 그만의 특수한 것이 아니다.


2003년 <미국교정정신의학회지>에 실린 논문 "청년이 된 국제입양아 - 스웨덴 코호트 연구"는 발표된 지 무려 15년이 흘렀음에도 오늘날 한국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당시 스웨덴 연구진은 국가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추적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1968~1975년 사이에 태어난 5942명의 스웨덴 입양인 자료를 이용하여 가족과 고용조건, 정신 건강 문제, 학력 등을 확인하고, 이를 일반 인구집단, 이민자, 그리고 입양 가족 내 다른 형제자매들과 비교했다. 연구대상이었던 입양인 5942명 중 3237명이 동아시아 지역 출신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2658명이 한국에서 태어나 입양된 이들이었다. 나머지 중에서 1422명은 남아시아, 871명은 라틴아메리카, 412명은 아프리카 출생자였다. 


분석 결과, 전 연령에서 성인 입양인들은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정신질환, 약물남용, 알코올 중독 등 정신건강 문제를 더 자주 겪고 있었다. 장기간의 실직을 경험할 가능성 역시 입양인들이 더 컸고, 그러다보니 장기간 사회복지 수혜를 받는 경우도 더 많았다. 학력 수준은 일반 인구집단과 비슷했지만 사회경제적 위치를 고려해보면 그렇지 못했다. 즉, 입양된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일반 인구집단과 비슷하다고 할 때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교육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의 학력은 이민자 집단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교육수준이 자녀의 대학 진학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입양아들의 대학진학 가능성은 어머니의 교육 수준과 관련이 없었다. 입양인들은 같은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 가능성도 더 낮았다.  


한편 보다 어린 나이에 스웨덴으로 입양된 이들일수록 정신건강 상태와 학력 등의 지표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입양 연령을 0~1세, 2~3세, 4~6세로 구분한 결과, 4~6세에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온 경우 모든 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출신인 경우에 정신건강 상태와 교육 수준, 고용 상태, 사회복지 수혜 여부 등 모든 면에서 결과가 좋았고, 남성보다는 여성 입양인의 결과가 좋았다. 


연구진은 비슷한 교육 수준을 가진 스웨덴 출신자에 비해 국제 입양인들이 장기간 실업을 많이 경험하는 것은 눈에 띄는 외모 차이가 차별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학력조건이 비슷할 때, 스웨덴 출생자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유럽권 이민자들이 비유럽권 이민자들보다 일자리를 쉽게 구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국제입양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가 더 적은 것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복지국가 모델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스웨덴에서조차' 국제 입양이라는 사건이 아동기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 7월, 국내 언론에는 "나는 입양 한인이다"라는 제목으로 미켈 룬 아너선(28세)의 이야기가 실렸다. (바로 가기 : "나는 입양 한인이다" : 스칸디나비아 입양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그는 생후 5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되었고, 25년 동안 스스로 덴마크 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체로 행복하게 자랐던 그는 2012년 학교에서 한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을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정체성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상황을 "두 의자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덴마크에도 스웨덴에도 미국에도, 수많은 미켈 룬 아너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입양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권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마다 정체성 갈등을 겪기 시작하는 시기와 이유,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원 가정 양육을 우선한다'고 선언한 것, 그리고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7조에서 아동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만큼 인간에게 '정체성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 입양아를 맞아들인 새로운 부모, 이 과정을 연계하고 돌봄을 제공한 여러 단체와 선의의 자원봉사자들. 이들 모두가 입양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각자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동 최우선의 원칙'이다. 실업과 차별, 고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입양인들, 무엇보다도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입양 아동과 청소년, 성인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입양특례법 개정에서 아동 최우선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mendrami@pressian.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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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외무상, 유엔총장에 미국의 핵전쟁도발책동 완전 중지 촉구

북 외무상, 유엔총장에 미국의 핵전쟁도발책동 완전 중지 촉구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8/02/02 [11: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리용호 북 외무상  ©

 

리용호 북 외무상은 유엔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핵전쟁도발책동을 완전히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인터넷 소식에 따르면 북 노동신문은 2일 리용호 외무상이 조선()반도에서 북남관계개선과 긴장완화에로 향한 긍정적인 변화가 도래하고 있는 시기에 위험한 군사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1월 31일 유엔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리용호 외무상은 일촉즉발의 전쟁위협이 배회하던 조선반도에 평화와 안정민족의 화해와 협력통일을 지향하는 극적전환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전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숭고한 민족애와 애국애족의 통일의지정화수호의 대응단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대범하고 주동적인 조치에 따라 북남대화에서 좋은 결실들이 맺어져 온 겨레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관계개선의 좋은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도 이를 적극 지지환영하면서 조선반도정세완화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며 그런데 미국당국자들은 북남대화를 저들이 가해온 전례 없는 제재압박의 결과로 여론을 오도하고 있으며 북과 남이 마주앉아 정화의 장을 열어나가는 시기에 핵항공모함타격단들을 비롯한 전략자산들을 조선반도 주변에 끌어들이면서 정세를 고의적으로 격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현 무력증강책동은 그 성격과 내용투입되는 병력과 전쟁 장비들을 놓고 볼 때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선제타격을 노린 것으로서 북남사이의 화해과정을 막고 조선반도정세를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국면에로 몰아가는 주되는 요인이라며 미국은 또한 겨울철올림픽경기 대회 후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적인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질 때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엄중히 위협당하고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은 극도에 달하였으며 모처럼 마련된 대화에도 엄중한 난관과 장애를 조성하였다는 것은 온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리 외무상은 우리는 앞으로도 북남관계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지만 그에 찬물을 끼얹는 불순한 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조선반도와 주변에 핵전쟁장비들을 끌어들이며 정세를 격화시키고 있는 미국의 책동으로 하여 모처럼 마련된 북남관계개선과 긴장완화의 분위기가 깨여지게 된다면 미국은 그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또 그는 유엔은 마땅히 미국이 조선반도와 주변에서 정세를 긴장시키고 온 세계를 핵전쟁의 참화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한 놀음들을 벌려놓는데 대하여 침묵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나는 당신이 유엔헌장에 따르는 자기의 사명에 맞게 북남관계 개선과 긴장완화를 해치는 미국의 핵전쟁장비배비와 핵전쟁도발책동에 심중한 주목을 돌리고 이를 완전히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리 외무상은 당면하여 당신이 유엔안전보장리사회 절차규정 제2장 6조에 근거하여 북남관계개선과정을 환영하고 주변나라들이 그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말데 대한 문제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상정시킬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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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가족'으로 살아야 했던 '1987'

형사 조력자 된 선생님, 16살 소녀가 겪은 슬픔

'운동권 가족'으로 살아야 했던 '1987'

18.02.01 20:59l최종 업데이트 18.02.02 09:28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편과 함께 영화 <1987>을 보았다. 당시 대학생이던 남편은 1987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이야기했다. 그해 경찰에 세 번 잡혔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초등학생 막내가 나에게도 물었다. 

"엄마는? 엄마는 안 잡혀갔어?"

나? 나는 경찰에 잡힌 적이 없다. 게다가 그해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 2년이 지나서야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엄마는 달리기 잘해서 한 번도 안 잡혔어."

영화 <1987>엔 등장인물이 많다. 그중 가장 눈에 잡힌 인물은 고 박종철 열사의 가족이다. 부검 장소에 뒤늦게 나타난 삼촌은 부검을 지켜보며 눈이 충혈된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킨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는 자리가 삼촌이 선 자리였고 '운동권 가족'의 선 자리이기도 하다. 

누군가 민주화 운동을 할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운동권 가족'이 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은 다만 당하고 견디고 버텨내야 한다. 수많은 가족이 모욕을 당했고 두려움에 떨면서 '운동권'을 뒷바라지했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운동권' 아들 뒷바라지 했던 엄마
 
 영화 <1987>의 한 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  영화 <1987>의 한 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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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느 날, 난생 처음으로 아들이 다니는 대학교 교수님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 ○○이가 교정에서 미친X처럼 날뛰고 있으니 빨리 오셔서 데려가세요."

순진한 엄마는 그 전화를 받고 가슴이 덜덜 떨렸다. 가게 문을 닫고 자식을 잡으러 학교로 쫓아갔다. 그 뒤로 엄마는 전화벨만 울리면 한동안 가슴이 벌렁거렸다 한다.

어떤 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었다. 문 앞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데 형사 아저씨 둘이 왔다.

"왜 안 들어가니? 열쇠 없니?" 

아저씨가 물었다.

한 아저씨가 윗집 슈퍼에 다녀와서 또 물었다.

"슈퍼사장님 말씀이 너 방금 집에서 나왔다던데 열쇠 있으면서 우리 때문에 안 들어가는 거지?" 

거짓말을 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기가 막혔다. 슈퍼 아저씨가 없는 말을 만들어서 했을 리는 없으니 거짓말은 형사들이 하는 게 분명했다. 더 이상 말대꾸하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들은 내 뒤통수에 대고 '버릇이 없네' 하는 말을 했다.

또 한번은 집에 압수수색을 하러 형사들이 닥쳤다. 형사들은 책장과 서랍을 뒤지더니 책 몇 권을 가져갔다. 그들이 가고 아버지는 책이란 책을 다 꺼내서 던져 버렸다. 집안엔 비명이 쏟아지고 물건이 부서졌다. 그 난장판은 결국 엄마가 치웠고 우리는 그렇게 '운동권 가족'이 되어갔다.

"오빠 직장이 어디니?" 담임쌤의 질문

1986년, 담임선생님이 날 교무실로 불렀다. 나의 고1 선생님은 대학원을 갓 졸업한 새내기 남자 선생님이었다. 큰 키에 마른 몸매로 손가락까지 길고 하얬다. 가르치는 과목은 내가 좋아하는 수학이었다. 선생님은 길고 하얀 손에 분필을 잡고 칠판에 그래프를 척척 그려냈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의 솜씨에 감탄했다.

우린 화이트데이 때 선생님께 사탕을 사 달라고 졸랐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사탕이 가득 든 봉투를 들고 오셨고 교실엔 환호성이 터졌다. 선생님은 얼굴이 발개지도록 쑥스러워하시곤 교실서 나가셨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나는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오라고 하신 거다. 선생님은 내가 낸 가정환경 조사서에 오빠 이름 옆 칸을 손으로 가리키셨다. 오빠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였다. 

"여기 직장이 어디인지 안 썼더라. 직장이 어디니?"

내 몸의 모든 촉수가 곤두섰다. 여태까지 학교에서 부모님의 직장에 대해선 자세히 물어도 내 형제자매에 대해 자세히 묻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오빠는 형사가 압수수색까지 한 인물이다. 형사가 찾아온 거 같았다. 

"어디 다니긴 하는 거 같은데. 회사 이름은 잘." 
"아니, 이상한데 어떻게 고등학생이나 된 동생이 그걸 모를 수가 있어? 이상하지 않아? 선생님은 이상한데."

선생님은 날 몰아세웠다. 갑자기 화가 났다. 이렇게 윽박지르면 내가 그걸 술술 말할까? 내가 그리 순진하게 보이나?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동생이 그런 거 모를 수도 있지 뭘 그러세요."
"아니, 넌 선생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담임은 내게 화를 냈다. 형사의 부탁으로 담임이 나에게 내 형제의 행적을 물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게 된 건 그 이후에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선생님, 교수님... 당신들 잊지 않겠습니다 
 
 영화 <1987> 스틸컷
▲  영화 <1987>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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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형사들은 결혼한 큰 언니의 시댁까지 찾아갔다. 외국에 사는 언니가 친정에 무슨 일이 있냐며 국제전화를 해서 형사가 사돈댁까지 찾아 갔다는 걸 우리도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관계가 사돈이 아닌가? 사돈댁까지 형사가 찾아갔다니 우리 학교 찾아 오는 건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에 찾아온 형사가 담임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면 담임은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 86년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이니까. 그것까진 이해하겠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 형제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나에게 '이상하다'며 윽박지른 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의 바닥을 나에게 보였어야 했을까? 

나는 열여섯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슬펐던 것은 고등학생인 내가 선생님을 아무 이유 없이 마냥 좋아하는 그 마음을 더 이상 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결국, 난 선생님도 믿지 못하는 학생으로 자랐다.

그해 연말에 오빠는 구속된다. 엄마는 오빠를 면회 가다가 고 박종철 열사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엄마가 느꼈을 고통을 나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몇 개월 뒤, 오빠는 집행유예를 받고 나온다. 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6월 9일 이후로 시내에는 시위 때문에 한동안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엄마는 아침에 고등학생인 나를 위한 도시락을 두 개 싸주고 집에 안 들어오는 오빠를 위한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섰다.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걸어갔다. 자식의 생사를 확인하고 자식에게 밥을 먹이고 엄마는 또 그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저녁을 차려 드려야 했으니 엄마의 발걸음은 급했다.

서둘러 걷던 엄마는 시내방향으로 걸어가는 아줌마 무리를 만난다. 수십 명의 아줌마들은 네 명씩 줄지어 명동 성당 쪽으로 가고 있었다. 엄마는 저이들은 식구들 저녁도 안 짓고 어디를 가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렇게 많은 엄마가 저녁도 안 짓고 나섰으니 세상이 정말로 바뀌긴 바뀌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민가협 어머님들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그렇게 회상한다. 

1987년 '운동권' 가족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살았다. 우리 집 말고도 더 많이 고생한 가족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 수많은 엄마, 아버지, 배우자에게 애 많이 쓰셨다. 그리고 고생하셨다. 위로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형사의 조력자로 나섰던 우리 담임 선생님.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 한 교수님. 독재에 조력했던 일부 교육자들은 영화 <1987> 보고 언제가 되든지 꼭 한번은 반성했으면 좋겠다. 팔순의 우리 엄마도 당신의 전화를 잊지 못하고 당신이 함부로 윽박지르던 학생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 않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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