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국방부 정책 홍보 기사 써주면 1200만원

[돈 받고 기사 쓴 언론 ①] 국방부 기획기사 대가로 문화일보·서울경제 각 1200만원 지급…문화일보-농림부 1500만원 기획 기사는?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8년 01월 23일 화요일

국방부는 지난 2016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사드 배치를 은밀하게 추진한 정황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잇따른 방산 비리로 군 사기가 떨어진다는 정치권의 비판 또한 쏟아졌다. 이 무렵 국방부가 이미지 쇄신과 자신들의 정책 홍보를 위해 신문사에 세금으로 기획 기사를 구매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각 정부 부처들이 어떤 언론사 지면을 구매했는지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일부 자료를 입수했다.  

문화일보는 지난 2016년 5월20일 10면에 ‘국방부가 군인가족 복지향상에 박차를 가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했다. 

▲ 2016년 5월20일자 10면 국방부 관련 기획기사
▲ 2016년 5월20일자 문화일보 10면 국방부 관련 기획기사
 

 

문화일보는 “국방부가 병영의 열악한 군 관사 보급률과 자녀교육 여건, 직업군인의 높은 별거율, 잦은 이사, 전방부대 여성군인의 출산 여건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군인 가족의 행복은 사기와 직결되고 전투력과 상관성이 있는 만큼 국가안보 강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판단”이라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또한 같은 날 36면에 ‘“부대선 戰友, 집에선 부부…늘 함께라서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소개했다. 육군의 일·가정 양립 정책 덕분에 ‘부부 군인’의 사이가 좋다는 내용의 기사다.  

 

미디어오늘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국방부는 대행업체를 통해 해당 기획 기사 작성 대가로 문화일보에 1200만원(부가가치세 별도)을 지급했다. 문화일보는 해당 기사에 국방부로부터 돈 받은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서울경제도 2016년 6월28일 8면 ‘원격진료 확대…응급환자 신고 앱 “군입대 자녀 건강 이상무”’라는 기사에서 “군에 자녀를 보낸 부모와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군대의 의료실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다”며 군이 의료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고 알렸다. “국군외상센터가 만들어지면 군 병원의 진료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국방부 보건 정책과 관계자 멘트도 등장했다. 

▲ 2016년 6월28일자 8면 서울경제 국방부 관련 기획기사
▲ 2016년 6월28일자 8면 서울경제 국방부 관련 기획기사
 

 

이 기사 역시 국방부가 1200만원(부가가치세 별도)을 들여 만든 기획 기사다. 서울경제는 해당 기사 끝에 “국방부·본지 공동기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어떤 표기도 하지 않은 문화일보와 비교하면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나 ‘공동기획’이란 표현으로는 국방부가 돈을 지급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  

보도만 보면 군에 자녀를 보낸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전쟁 이후 군에서 사망한 인원은 6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시가 아님에도 연 평균 100여명이 군에서 목숨을 잃지만 군은 유족들을 외면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2014년 여름 사망한 윤승주 일병(일명 윤일병 사망사건)의 사망 원인을 조작 발표했다. 뒤늦게 시민단체의 폭로로 선임병의 구타가 있었던 사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국방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윤 일병을 국가유공자보다 한 단계 낮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지정했고, 그 과정에서 장교가 대필로 서류를 작성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방부가 서울경제에 기획 기사를 부탁할 2016년 6월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던 때였다. 윤 일병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지난 4일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농림부, 문화일보에 1500만원짜리 기획기사  

정부발 기획 기사는 다양한 관점을 담지 못하게 된다. 문화일보는 같은 해 8월31일 21면에 농림축산식품부가 귀농상담·교육·컨설팅을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획 기사를 배치했다. 해당 기사에선 “농림부 정책 ‘高품질 서비스화’ 눈길”라는 부제가 달렸을 뿐 아니라 본문에서도 박근혜 정부를 홍보했다.

▲ 2016년 8월31일자 문화일보 21면 농림부 관련 기획기사
▲ 2016년 8월31일자 문화일보 21면 농림부 관련 기획기사
 

 

이 신문은 “과거 정책들이 수립 후 국민이 활용하기를 기다리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정부 3.0의 취지에 맞춰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발굴·수립하고 이용하기 편리하게 집행함으로써 만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에 대해 알렸다.  

농림부는 해당 기획 기사의 대가로 문화일보에 1500만원을 지급했다. 역시 기사 어디에도 농림부가 돈을 지급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같은 면에는 ‘반려동물 산업 육성 위한 제언’ 형식으로 이준원 농림부 차관의 칼럼이 실렸다.  

문화일보와 서울경제는 전·현직 간부들이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 광고나 자신의 일자리를 청탁해 논란이 된 언론사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에 대해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말 국민이 알아야 할 정책이라면 광고라는 걸 알 수 있게 표기하거나 부처 보도 자료를 뿌려 알리면 된다”며 “이렇게 기사를 매수하면 (돈을 받고 쓴) 해당 기사뿐 아니라 다른 기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론을 길들이는, 언론 장악의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UAE에 원전 수출한 날,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MB

[이제는 평화] 사용후핵연료 처분 약속 의혹,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와 맺은 비밀 군사협정, 핵발전소 수출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국익'이란 명분 아래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를 봉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3회에 걸쳐 UAE 사태의 문제점을 다룬다. (☞ 1편 보러 가기 : 한국을 중동 전쟁의 들러리로 세우려 하나)
 

지금도 법정기념일인 UAE 핵발전소 수출 성공일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연말과 일요일 겹친 평화로운 휴일, 우리 국민들은 TV에서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이명박 대통령의 긴급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아랍에미리트(UAE) 핵발전소 수출 성공 기자회견이었다.  

다음날 모든 언론은 UAE에 핵발전소 수출을 성공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연일 특집방송이 이어졌고, KBS는 원전 수주기념 열린 음악회를 여는 등 축제 분위기를 북돋았다. 

당시 정부는 UAE 핵발전소 수출은 200만 달러짜리 성과라며, 쏘나타급 승용차 100만대를 수출하거나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80척을 수출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며 수출 성과를 자평했다. 
 

▲ 지난 2010년 1월 30일에 방송된 한국원전수출기념 KBS 열린음악회 ⓒKBS 방송 갈무리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2010년부터 UAE 수출에 성공한 날(12월 27일)을 '제1회 원자력의 날'로 지정해 법정기념일로 삼았다. 1995년부터 진행되던 '원자력안전의 날(9월 10일)'이 있었으나, 2010년 행사를 마지막으로 이를 원자력의 날로 통합해서 지금까지 '원자력 안전과 진흥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12월 27일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해 1964년 만들어진 무역의 날 같은 행사도 있지만, 단일 품목인 핵발전소 수출에 성공했다며 법정기념일을 만든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을 둘러싼 논란 

장밋빛 환상과 축제 열기 속에 UAE 핵발전소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동안 금기였다. "핵발전소 수출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사업"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사설에 담은 언론사들은 "빨갱이 신문 폐간하라"는 항의를 받았고, 비판적 논조의 성명서와 칼럼은 어김없이 악성 댓글로 도배되었다. 

이후 UAE 핵발전소를 둘러싼 의혹은 계속 터져 나왔지만, 이는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UAE 핵폐기물 국내 반입설이다. 2011년 4월 <신동아>는 '한국이 UAE 방사성 폐기물 부담도 떠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UAE 측 문건을 보면 외국 공급자가 핵폐기물을 UAE 밖으로 가져가 처리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고, 여기에 한국이 관여될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한전은 이에 대해 허위보도라며 <신동아>를 상대로 출판물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UAE의 정책에 따라 사용후핵연료를 제3국에서 처리하는 절차에 한국전력이 관련돼 있다"는 정도의 내용이라며 한전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결국 해당 기사가 실린 신동아는 정상적으로 판매되었지만, 핵폐기물을 둘러싼 진위여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UAE 방문으로 시작된 논란에서도 당시 논란이 재연되자, 한전은 12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전과 UAE 핵에너지공사(ENEC)간 주계약상 한전이 UAE의 핵폐기물과 폐연료봉을 국내로 반입하기로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해명은 정확한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주계약이란 한전과 UAE 핵에너지공사(ENEC)간 맺은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건축 계약서에 건물 운영 중에 나오는 쓰레기도 치워달라는 계약을 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군사협력에 대한 MOU 역시 당연히 UAE 핵발전소 건설계약서에 담겨 있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전의 이 발표가 나온 시점까지 UAE 핵에너지공사(ENEC) 홈페이지엔 "UAE의 계획은 사용후핵연료를 냉각시키는 동안 현장(onsite)에 보관하고, 이후 핵연료를 갖고 온 나라(country of origin)로 돌려보내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은 연말까지 그대로 유지되다가 최근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결정을 내릴 시간을 갖고 있으며, 정부는 가능한 옵션을 고려중이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UAE 핵발전소 건설 이후 한동안 바뀌지 않았던 홈페이지 내용이 최근 논란이 되자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UAE 핵에너지공사(ENEC) 홈페이지 FAQ 중 핵폐기물 관련 부분(2017년 12월 31일

 

▲ UAE 핵에너지공사(ENEC) 홈페이지 FAQ 중 핵폐기물 관련 부분(2018년 1월 19일)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 없기 때문에 UAE의 사용후핵연료를 한국에 처분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경우는 매우 빈번하게 이뤄진다. 해외 위탁재처리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가장 잘 하는 나라가 UAE 핵발전소 건설을 두고 우리나라와 경쟁을 했던 프랑스다. 프랑스는 라아그에 사용후핵연료 핵재처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라아그 핵재처리공장에선 프랑스의 사용후핵연료 뿐만 아니라,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 유럽 각국과 멀리 일본의 사용후핵연료까지 재처리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는 UAE에 핵발전소 건설 옵션으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함께 해줄 것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UAE는 우리나라에게 프랑스의 제안을 언급하며, "너희 나라는 이런 것 없냐?"고 물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해서는 해당 나라로 사용후핵연료를 보내야 하고, 재처리 이후 냉각과 보관을 위해 수년씩 그 나라에 보관하기 때문에 해외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를 하나 신설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생긴다.  

마치 해외 약탈 문화재는 '반환'하지 않고 '장기 대여'형식으로 돌려주는 것처럼 영구 처분은 아니지만 계약에 따라 수년에서 수십 년씩 해외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해외에 보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계약은 보통 핵발전소 운영과정 혹은 사용후핵연료 발생 이후 수년이 지나서 맺기 때문에 계약을 맺는 시점에서는 계약서에 넣지 않아도 부속서나 MOU, 혹은 구두계약만 갖고도 충분하다.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현재까지도 핵 재처리 공장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2007년부터 정부는 '미래 원자력 종합로드맵'을 통해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UAE의 사용후핵연료가 나올 즈음엔 이런 것이 완성될 것이라고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와 조금 다른 기술이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임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여러 가지 논란 속에서 계속 되고 있다.

이후 이어질 피해까지 생각한다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UAE 핵발전소 수주를 둘러싼 의혹은 핵폐기물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군사협력 문제 이외에도 60년 가동 보장, UAE와 한국 간의 신용 차이로 인한 역마진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숨어 있다.  

이들은 현재의 여당이 야당 시절 열심히 제기해 오던 것들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된 것 없다. 오히려 최근 국회에선 '국익'을 위해 UAE 논란을 멈추자는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왕정 국가 UAE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진짜 '국익'인지 따져볼 일이다.  

최종처분이든 재처리 등 외국의 사용후핵연료를 국내에 들여오려면, 이는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핵발전소 장기 가동 보장이나 역마진 등의 문제 역시 공기업 한전의 경영상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 문제이고 매우 구체적인 피해로 연결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어느 때보다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적 청산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감춰졌던 의혹과 비밀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일도 포함된다. UAE 핵발전소 수출을 둘러싼 의혹을 지금 깔끔하게 풀지 못한다면 언제 풀 수 있겠는가?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이다.

다른 글 보기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홈페이지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비핵군축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안보 영역의 민주화와 세계를 바라보는 평화 패러다임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2003년 발족하였으며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구상, 국방·외교정책 감시, 군비 축소, 시민 평화주체 형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평화 올림픽이 ‘퍼주기’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투자인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1/23 10:38
  • 수정일
    2018/01/23 10: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8-01-22 18:53:53
수정 2018-01-23 08:14:49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한 쪽에서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이라고 부르고, 다른 한 쪽에서는 ‘평양 올림픽’이라고 부른다. ‘평화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평화가 우리의 가치라고 믿는 듯하고, ‘평양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북한을 물리쳐야 할 주적이라고 믿는 듯하다.

평화든 대결이든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신념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믿는 것은 신념의 자유에 속한다. 그래서 아무리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기 일쑤다.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 “내가 믿는 신이 더 옳아!”라고 싸워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문제를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화와 대립 중 무엇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주제는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이다. 가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하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발군의 견해를 남긴 경제학자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9년 열린 파리평화회의에 영국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주인공이다. 케인즈는 파리평화회의가 평화의 유지가 아니라 독일을 압살하는 보복적 방식으로 결론을 맺자 실망한 채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 만에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명저를 남겼다.

감정의 배설이 낳은 경제적 몰락

 

당시 상황은 이랬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은 파리에 모여 이른바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것을 체결했다. 회의를 주도한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자국 국민 140만 명과 74만 명의 목숨을 각각 잃은 프랑스와 영국은 이를 갈고 있었다.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는 “유럽 내전은 반복적 또는 최소한 한 번은 더 일어날 일이니, 아예 독일이 다시 힘을 기르지 못하도록 죽여 놓자”고 주장했다. 총선을 앞둔 영국의 로이드 조지 총리 역시 원수 독일을 박살내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독일을 향한 초강경책에 동의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경제를 파탄을 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연합국이 책정한 전쟁 배상금은 무려 1320억 마르크, 요즘으로 치면 300조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이 거금을 갚을 기간은 고작 10년이 주어졌다.

6·2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이 평창·평화올림픽 실현을 기원하고 있다.
6·2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이 평창·평화올림픽 실현을 기원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300조 원을 10년 안에 갚으려면 독일 국민들은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런데 연합국은 독일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시 독일이 유일하게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철과 석탄을 수출하는 것이었는데 연합국은 독일이 무역할 수 있는 배 자체를 전부 압류해버렸다.

그리고 연합국은 배상금을 석탄 현물로 갚으라고 강요했다. 유일한 돈벌이 수단인 석탄마저 현물로 날린 독일 경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독일 정부는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그 때문에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이 독일에서 벌어졌다. 1918년 0.5마르크면 살 수 있었던 빵 한 덩이의 가격이 1923년 무려 1000억 마르크(오타가 아니다)로 올랐다. 1달러를 얻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독일 돈은 무려 4조 마르크(역시 오타가 아니다)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감정 배설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원수 독일 경제를 박살내야 한다는 그들의 목표도 달성했다. 그런데 그 대립의 이데올로기가 경제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독일 경제가 박살이 나면서 이웃한 프랑스와 유럽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촉발된 대공황이 유럽을 덮쳤다. 경제적 파국을 맞은 독일은 히틀러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잠시잠깐 독일을 파멸시켰다는 감정의 배설에 성공했지만, 수 천 배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케인즈의 견해와 평화 올림픽의 가치

케인즈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감정을 잠깐 접어두고 냉정하게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자”고 주장했다. 만약 독일을 거덜 내서 망하게 하면 독일 혼자 망하지 않는다는 게 케인즈의 예측이었다. 당시에도 유럽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공동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한 곳이 망하면 반드시 경제적 여파가 이웃나라로 번지게 된다는 것이 케인즈의 시각이었다.

그래서 케인즈는 이렇게 주장했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고려를 방해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은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들고 서로를 빈곤하게 만들 방법을 고안해낸다. 개인적 행복보다 집단적 증오를 더 선호한다.”

무엇이 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야 이 원수들아!”라고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생각해보자. 북한이 망하면 한국 경제에 이익일까, 손해일까?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 공동체였던 남북한의 관계를 생각하면 북한이 몰락하면 한국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북한이 고립될수록 우리가 물어야 하는 국방비 부담이 늘어나고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 무역을 하는데 비용이 높아진다.

그래서 남북 평화를 위해 드는 비용은 ‘북한에 퍼주는 돈’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경제를 위한 투자다. 북한 대표단 체류비이건 뭐건, 그 돈이 들어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경제적으로 무조건 남는 장사라는 이야기다. 당장 평화 올림픽이 실현되면 국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진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막대하다.

케인즈는 100년 전에 “카르타고 식 평화(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압살하는 방식으로 유지하려는 평화)는 지금 유럽의 모든 자원과 용기, 이상주의가 서로 힘을 합해 맞서야 할 위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북한 놈들 물러가라!”라는 감정 배설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자원과 용기, 이상주의가 서로 힘을 합해 맞서야 할 위험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로 얼싸안은 KBS 구성원들, "드디어 끝났다"

'고대영 해임' KBS 새노조, 24일 업무 복귀... 김연국 MBC 노조위원장도 '축하'

18.01.22 21:50최종업데이트18.01.22 21:58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고대영 사장 해임 가결 소식을 듣고 피켓을 들어 축하하는 모습.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고대영 사장 해임 가결 소식을 듣고 피켓을 들어 축하하는 모습.ⓒ KBS 새노조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고대영 사장 해임제청안 가결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총파업 141일만에 '고대영 사장 퇴진'을 주장했던 KBS 새노조 조합원들은 총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게 됐다.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고대영 사장 해임제청안 가결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총파업 141일만에 '고대영 사장 퇴진'을 주장했던 KBS 새노조 조합원들은 총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게 됐다.ⓒ KBS 새노조


"우리가 이겼다! 공영방송 되살리자!" 
"다시 KBS! 국민의 방송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찬 함성이 KBS 본관에 울려 퍼졌다. 22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 고대영 사장 해임안이 가결되자 KBS 새노조 조합원들은 "드디어 끝났다"고 외치며 서로 얼싸안았다. 

이날 새노조가 집회를 연 여의도 본관 1층 로비에서는 "꽃길만 걷자"는 300여 명 조합원들의 외침과 함께 축포가 터졌다. 총파업 141일차, 고대영 사장의 해임을 애타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찾아온 '승리'였다. 

 
 KBS 새노조 성재호 위원장이 고대영 사장 해임 가결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주먹을 쥐고 오른손을 높게 뻗고 있다.

KBS 새노조 성재호 위원장이 고대영 사장 해임 가결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주먹을 쥐고 오른손을 높게 뻗고 있다.ⓒ KBS 새노조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하다"는 말로 입을 뗐다. 조합원들은 박수로 성재호 위원장의 투쟁에 화답했다. 성 위원장은 이어 정연주 전 사장이 KBS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간 2008년 8월 8일을 언급하며 "오늘은 지난 10여 년간의 싸움을 일차적으로 마무리하는 날이 아닌가 한다"라며 "앞으로 내부의 고대영 사장 적폐들과 싸워 청산해야 한다"라고 이어질 투쟁을 예고했다. 

성 위원장은 또한 "시민 여러분들도 KBS를 계속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고 비판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집회에는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위원장도 참석했다. 김연국 위원장은 "오늘하루만큼은 다 잊고 즐기라"면서도 "내일부터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며 KBS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김 위원장은 "내일부터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려운 싸움이 여러분에게 펼쳐질 것이다. 그건 바로 스스로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했고 그렇다면 10년 전의 방송과는 정말 다른 방송을 내놓아야 한다"며 "진짜 싸움의 대열로 들어선 걸 축하드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BS 새노조 조합원이 고대영 사장 해임 가결 소식을 듣고 감격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KBS 새노조 조합원이 고대영 사장 해임 가결 소식을 듣고 감격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KBS 새노조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역시 "내일부터 떨어진 신뢰도와 시청률 그리고 내부 적폐 청산이라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밖에서의 싸움보다 어려울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해내리라 본다"며 격려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KBS 구성원들을 격려하면서 "이제부터 MBC와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141일에 걸친 총파업 승리를 선언한 KBS 새노조 조합원들은 이틀 뒤인 24일 오전 9시부터 업무에 정상적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더 크고 엄청난 정세변화 일으킬 남북관계개선 급진전

[개벽예감283] 더 크고 엄청난 정세변화 일으킬 남북관계개선 급진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1/22 [15: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조미핵대결종식으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

2. 미국에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3. 모호화 어법 뒤에 숨겨진 비밀 

4. 쌘프랜시스코 3자비밀회담, 그건 허사다

 

 

1. 조미핵대결종식으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

 

지금 세계의 시선은 급격한 정세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로 집중되고 있다. 그 정세변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남북관계개선의 급진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아침에 신년사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남북관계개선이 마치 경이로운 기적처럼 우리의 눈앞에 극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펼쳐가고 있는 중이다.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힘과 슬기를 합쳐 밀고 나가는 남북관계개선은 다음 달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아로새긴 멋진 서막을 올리게 된다. 지금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여 준비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신성한 강토를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불태우겠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을 토해낸 미치광이의 핵공갈을 물리치고 기어이 평화를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장한 기상을 세계에 떨칠 사상 최고의 평화축전으로 펼쳐질 것이다. 

 

▲ <사진 1> 이 사진은 2018년 1월 9일 판문점 남측 구역에 있는 평화의 집에서 남북고위급 회담이 개최되었을 때 남과 북의 대표단 단장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장면이다. 남측 대표단 단장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고, 북측 대표단 단장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아침에 신년사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남북관계개선이 마치 경이로운 기적처럼 우리의 눈앞에 극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펼쳐가고 있는 중이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급격한 정세변화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반만년 민족사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조국분단으로 무려 70년 동안 갈라져 살아왔지만, 우리 민족끼리 뜻이 통하고 힘과 슬기를 합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분단체제를 허물어버리고 위대한 통일국가를 건설할 엄청난 저력이 우리 민족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을 실증한 것이다. 70년 분단체제 밑에 짓눌렸던 민족의 저력이 굴종과 적폐의 거죽을 찢고 솟구쳐 올라 삼천리강산을 뒤덮으며 용용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은 남과 북 중에서 어느 한 쪽이 홀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 뜻이 통하여 힘과 슬기를 서로 합칠 때, 바로 그럴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빛나는 혁신이며, 눈부신 도약이며, 가슴 벅찬 승리이다. 그리하여 남북관계 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된 오늘의 정세변화 속에서 남과 북이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위협을 배격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대전환의 출발점에 나서는 것이며, 분단체제를 혁파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 것이다. 남과 북이 힘과 슬기를 합친 민족주체역량으로 관계를 개선하는데, 어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랴!  

남북관계 개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부터 2007년 10.4선언이 발표된 때까지 8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이 실현되었다. 그런데 올해 실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실현되었던 남북관계개선과 매우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1)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기간에는 조미핵대결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그 기간에 실현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의 ‘금지선’을 넘어설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조미핵대결이 남북관계개선의 속도, 방향, 범위를 내리누르는 억제요인으로 되었던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핵대결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남과 북은 관계개선 초기단계에는 들어섰으나 완성단계에로 더 멀리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조미핵대결이 종식되는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야 남북관계개선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8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종식된 정세의 질적 변화 속에서, 그 질적 변화를 추동요인으로 하여 실현되기 시작한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개선이다. 만일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지 않았더라면, 남북관계도 개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미핵대결종식과 남북관계개선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사진 2> 이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한 뒤 백화원 영빈관에서 마련된 환송오찬에 참석한 장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오찬원탁 중앙에 앉은 뒤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2000년 6월에 그 곳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도 바로 그 자리에 앉으셨다고 말했다. 두 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김영일 총리는 환송오찬 축하발언에서 "오늘 선언은 온 겨레에게 새로운 힘과 신심을 안겨주고 있다. 북남수뇌상봉은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고 말했고,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뒤이은 축하발언에서 "남북 정상께서는 만남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민족의 장래에 하나같이 소중하고 뜻깊은 합의를 이뤄내셨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또 다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된 정세의 질적 변화를 추종요인으로 하여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이루어졌던 남북관계개선과 다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2)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동안 남북관계개선에서 이룩된 귀중한 성과들은 대북적대정책을 또 다시 들고 나와 휘둘렀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도발망동에 의해 혹심하게 파손되었고, 남과 북은 이전의 적대관계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연속 자행한 대북도발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붙어 돌아간 종속변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한, 그런 대북도발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붙어돌아가는 종속변수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대북적대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민족의 염원과 정세발전의 요구에 맞게 대북관계개선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는가 아니면 완화하지 않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끝내 완화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대북관계개선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할 것인가 아니면 완화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진전여부를 전망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미국에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정전된 이후 오늘까지 65년 동안 미국 역대 행정부들은 조선을 고립, 압살해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왔다. 65년 동안 지속되어온 그런 대조선적대정책이 트럼프 행정부에게로 계승되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대조선적대정책을 자발적으로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예상되는 완화계기는 하나뿐이다. 조선과 미국이 격돌한 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여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하라고 강제하고, 미국은 조선의 그런 강압적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 다시 말해서 조미적대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조미적대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으면, 지금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기간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70여 년 지속되어오는 조미적대관계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은 정세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70년 조미적대관계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엄청난 변화다. 그래서 그것을 질적 변화라고 불러야 한다. 최근 <자주시보>에 실린 내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해오고 있는,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25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조미핵대결종식, 바로 이 사변이 70년 조미적대관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질적 변화다. 하지만 미국 언론매체들이 교묘하게도 보도형식을 빌어 퍼뜨리고 있는, 조미핵대결에 관한 헛소문들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런 엄청난 사변,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 <사진 3> 위의 두 사진들은 2013년 3월 29일 0시 30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긴급작전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작전실에 게시되었던 '전략군 미 본토 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의 핵타격계획도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날 심야작전회의는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켜 조선에 대한 핵위협을 감행한 것으로 하여 긴급히 소집되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날 긴급작전회의에서 "명령만 내리면 첫 타격으로 모든 것을 날려보내고 씨도 없이 재가루로 불태워버리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위의 핵타격계획도가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은 이미 2013년 이전에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에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이 2017년 말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것은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에 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주시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여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는데도,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지 않았다느니, 또는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파괴하는 이른바 ‘코피공격(bloody nose attack)’을 감행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기습타격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느니 하는 해괴한 소문들이 미국에서 떠돌고 있다.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그런 헛소문들은 한국 언론보도에도 버젓이 실리고 있고, 그런 보도 아닌 보도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진전여부를 전망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므로, 요즈음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조미핵대결종식에 관한 헛소문들이 얼마나 황당한 거짓말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 조선의 완성된 대륙간탄도미사일능력을 깎아내리려는 미국의 일부 미사일전문가들은 화성-15형이 정상각으로 발사되지 않고 최대 고각으로 발사된 것이 마치 어떤 기술공학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이야말로 허튼 소리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는 것보다 최대 고각으로 발사하는 것이 로켓기술공학적으로 더 어렵다. 조선이 화성-15형의 사거리를 크게 줄여 정상각으로 발사하면, 일본 열도를 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조선은 재돌입체의 돌진낙하비행상황을 관측하지 못하고 미국만 그 상황을 관측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화성-15형 재돌입체의 돌진낙하비행상황을 단독으로 관측한 경우, 그 재돌입체가 돌진낙하하다가 대기마찰로 타버렸다고 허위선전을 해도 조선은 반박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은 조선에서 관측할 수 있는 동해 수역에 재돌입체를 떨어뜨리기 위해 화성-15형을 최대 고각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그런 논거 이외에 더 있다. 조선은 2016년 3월 14일에 진행되었던 대륙간탄도미사일 재돌입체성능을 판정하는 대기권 재돌입환경 모의시험에서 합격한 재돌입체를 화성-12형에 장착하고 2017년 5월 14일 동해 상공으로 고각발사하였고, 2017년 8월 29일과 9월 15일에는 각각 북태평양 상공으로도 발사하였다. 또한 조선은 화성-12형에 장착하였던 재돌입체를 화성-14형에도 장착하고 2017년 7월 4일과 7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고각발사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재돌입환경모의시험을 통과한 재돌입체를 화성-12형에 장착하여 세 차례 시험발사한 뒤에 화성-14형에도 장착하고 두 차례 더 시험발사한 것이다. 물론 조선은 그 다섯 차례 시험발사에서 모두 성공하였다. 

 

특히 2017년 7월 29일 조선이 고각으로 쏘아올린 화성-14형은 정점고도 3,724.9km까지 올라갔다가 동해 수역에 탄착했는데, 거기에 장착된 재돌입체가 돌진낙하비행 최종구간에서 대기마찰로 타버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탄착하였다는 사실은 일본 <NHK> 홋까이도 지부에 설치된 기상관측카메라가 촬영한 기상관측동영상에서 실증된 바 있다. 이에 관해서는 <자주시보> 2017년 8월 7일에 실린 나의 글 ‘마하스템 예고한 7월 29일 오전 0시 28분’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 <사진 4> 이 사진은 2017년 7월 29일 일본 홋까이도 지부의 기상관측카메라가 촬영한 동영상 중에서 화성-14형 재돌입체의 섬광이 마지막 순간에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장면을 확대한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위쪽 섬광체의 크기는 아래쪽 섬광체에 비해 작고 섬광의 밝기도 낮다. 이것은 재돌입체에 들어있는 핵탄두폭발조종장치가 모의열핵탄두를 기폭하는 순간, 모의열핵탄두는 폭발되고, 핵탄두폭발조종장치는 파열되면서 서로 떨어져나간 장면이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재돌입체에서 파열잔해들이 튀어나왔으므로 마치 섬광이 위아래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소멸현상이 나타났다. 만일 재돌입체가 정상적으로 탄착되지 않았다면 섬광체는 위아래로 갈라지지 않은 채 소멸되었을 것이다. 조선은 다섯 차례 검증을 거치면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한 재돌입체를 2017년 11월 29일에 마지막으로 화성-15형에 장착하고 최대고각으로 쏘아올렸다. 조선의 국가핵무력은 그렇게 완성되었고, 조미핵대결은 그렇게 조선의 승리로 25년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들은 조선이 만든 재돌입체가 적어도 다섯 차례 검증을 거치면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조선은 다섯 차례 검증에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한 재돌입체를 한층 더 발전시킨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s)를 화성-15형에 장착하고 최대 고각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2017년 11월 29일 조선은 화성-15형에 장착된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모의탄두들이 “조선동해 공해상의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되였다”고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정확히 탄착되었다’는 말은 예정된 탄착구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며, 동시에 돌진낙하비행 최종구간에서 대기마찰로 타버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탄착하였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7년 12월 4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동해의 밤하늘에 나타난 붉은 섬광체 3개’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능력을 그처럼 고도화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실증되었는데도 미국의 몇몇 분별없는 미사일전문가들은 그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면서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2)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파괴하는 이른바 ‘코피공격’을 감행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기습타격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은 원래 영국의 언론매체 <텔리그라프(Telegraph)>가 2017년 12월 20일에 처음 퍼뜨린 것인데,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코피공격검토설’을 언론에 흘려준 사람은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2017년 12월 상순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과 미국이 반관반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직후인 12일 12일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이 토론회 연설에서 조선에게 조건 없는 양자회담을 전격 제의하였을 때,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양자회담제의를 극력 반대하면서 이른바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처럼 헛소문을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텔리그라프>가 기사화한 이후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그 헛소문은 2018년 1월 9일 미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과 <비지니스 인싸이더>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각각 고개를 다시 쳐들었다. 그 두 언론매체들은 최근 백악관에서 조선의 전략핵시설들에 대한 ‘코피공격작전’이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다시 실었고, 한국 언론매체들은 그 헛소문을 분별없이 퍼날랐다. 

 

▲ <사진 5> 이 사진은 미국 텔레비전방송이 이른바 '코피공격작전'에 관한 보도를 내보내는 화면이다. '코피공격작전'이라는 것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공습으로 파괴하는 기습타격전을 뜻한다. 2017년 12월 상순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과 미국이 반관반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직후인 12월 12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토론회 연설 중에 조선에게 조건 없는 양자회담을 전격 제의하였을 때, 허벗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양자회담제의를 극력 반대하면서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처럼 헛소문을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다.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은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녕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헛소문을 23년 만에 또 다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그러나 그 헛소문은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헛소문을 23년 만에 또 다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2017년 4월 12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가 추적,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것도 사실은 헛소문이었다고 한다. 조미회담을 반대한 극우파 관리들이 조선에게 겁을 주려는 망상에 빠져 조작한 헛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미회담을 반대하는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조선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는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또 다시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으니 ‘제 버릇 개에게 주지 못한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짓이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이그재미너> 2018년 1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코피공격작전’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펜타곤이 무관심한 군사작전을 백악관이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헛소리다.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핵강국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헛소리는 러시아가 미국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헛소리만큼이나 황당무계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면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고 언명한 바 있다.  

 

3. 모호화 어법 뒤에 숨겨진 비밀 

 

위에 서술한 두 가지 헛소문은 미국 언론매체들 속에서 잠시 떠돌다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런 헛소문과 달리 남북관계개선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게 아니냐 하고 우려할 만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018년 1월 18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확장억제전략협의회(EDSCG) 제2차 회의가 진행된 것이다. 이 회의에는 양측에서 외교 및 국방부문의 차관급 관리들이 각각 참석하였다. 한국 국방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 차관급 회의에서 남북관계개선에 대해 협의하였고, 한미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하였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한, 미 전략자산의 한국 및 주변지역에 대한 순환배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 보도내용을 읽으면, 미국은 올해에도 지난해처럼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편대를 한반도에 수시로 출동시키면서 군사적 긴장을 여전히 고조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최근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 개선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이후에 중지되는 게 아니냐 하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좀 성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이후 미국이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편대를 한반도에 또 다시 출동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차관급 관리들이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심중히 결정해야 하는 국가안보문제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지난 며칠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이 줄줄이 꺼내놓은 아래와 같은 연속발언들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월 1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진행된 <월스트릿저널> 기자들과 대담하는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질문을 비껴갔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2018년 1월 16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외무장관 다자회의 직후 캐나다 외무장관과 함께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이 나왔을 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직답을 피했다. 

이튿날인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의사소통을 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는 장면이다. 그는 대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의사소통을 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물은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였다. 그 자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직답을 피하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같은 날,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조선과 미국 사이에) 열려있는 통로들이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직답을 피하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실재하는 사실을 시인하기 힘든 정황이 조성되었을 때,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화(glomarization) 어법이 사용되는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는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이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화 어법을 사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그에 대한 응답을 아직 받지 못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 민감한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구체적인 발언을 꺼내놓은 사람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다. 그는 2018년 1월 17일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는 질문이 나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외국지도자들과 통화한다”고 답변하였다. 얼핏 동문서답처럼 들리는 이 답변 속에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있다. 켈리 비서실장의 그 답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대화를 제의한 것이 아니라 제3자의 도움을 받아, 다시 말해서 제3국 국가지도자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간접적으로 대화를 제의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그의 대화의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제3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논할 필요가 있다.

 

패자가 승자에게 먼저 대화를 요청하는 것은 국제관례다.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을 승리로 이끈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먼저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대화제의를 비밀로 감추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한 대화의 형식은 정상회담이다.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는 중에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을 것인데,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하게 될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이제 현 시점에서 남은 길은 없다. 우리는 이 사람(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함-옮긴이)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가 조미정상회담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8년 1월 17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팍스 뉴스>의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담자 브렛 베이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켈리 비서실장은 그 대담에서 지금 미국에게 남아있는 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협상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조미정상회담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제의에 대한 응답을 주지 않았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에 응답을 주지 않았다. 왜 응답을 주지 않았을까? 첫째는,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원한다면, 국제관례에 따라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식으로 제의할 것이지,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제의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퇴짜를 받을 어설픈 행동이었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식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한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제의를 받아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1일 자신의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비난한 사람, 조선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도 비난과 지탄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사람과 마주 앉아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무시해버리고, 조미고위급회담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 쌘프랜씨스코 3자비밀회담, 그건 허사다

 

2018년 1월 17일 한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중요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2018년 1월 13일 미국 쌘프랜씨스코에서 한미일 3자안보수장회담이 은밀히 진행되었다는 보도였다. 그 비밀회담이 진행된 날로부터 나흘 지난 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와대 관계자는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찌 쇼따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보장국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자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쌘프란씨스코 3자회담은 그것이 은밀히 진행된 비밀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음모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그들은 비밀회담에서 어떤 음모를 꾸민 것인가?

 

일본 <NHK> 2018년 1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비핵화협상에 나오도록 최대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기존 방침을 쌘프란씨스코 3자회담에서 재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기사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3자회담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2자회담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조선이 비핵화협상에 나오도록 최대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비밀회담에 정의용 실장이 참석한 것은, 최근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에 대처하는 문제도 당연히 그 비밀회담에서 논의되었음을 말해준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일본-한국이 3자합동으로 조선에게 최대 압력을 가하는 문제와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문제는 상극 중의 상극이다. 조선에게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과 남과 북이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양립될 수 없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조미회담과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는 극우관료집단의 우두머리다. 그런 흉심을 품은 극우관료가 3자비밀회담을 긴급히 소집하여 조미회담과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사진 8> 이 사진은 조선에서 전승절 60주년을 맞은 2013년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푸에블로호 앞에서 조선인민군 및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하며 입장하는 장면이다. 2018년 1월 23일은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에게 나포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국에게 자국 군함을 나포당하는 치욕을 겪었으며, 사죄문을 조선에게 바치고서야 7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던 전쟁포로 82명을 송환받는 치욕을 겪었다. 50년 전 조선에는 핵무기가 1발도 없었고, 미국에는 핵무기가 수 천 발이나 있었지만, 미국은 조선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핵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핵무기가 1발도 없었던 조선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국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을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미국이 조선에게 그 무슨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푸에블로호의 치욕을 망각한 것이며, 치욕과 비교할 수 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2018년 1월 23일은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USS Pueblo)가 조선인민군에게 나포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국에게 자국 군함을 나포당하는 치욕을 겪었으며, “미국 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한다고 명기한 사죄문을 조선에게 바치고서야 7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던 전쟁포로 82명을 송환받는 치욕을 겪었다. 50년 전 조선에는 핵무기가 1발도 없었고, 미국에는 핵무기가 수 천 발이나 있었지만, 미국은 조선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핵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핵무기가 1발도 없었던 조선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국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을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미국이 조선에게 그 무슨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푸에블로호의 치욕을 망각한 것이고, 치욕과 비교할 수 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2018년 1월 17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진행된 간담회에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국무장관과 함께 참석하여 발언하는 중에 “미국과 북조선이 협상탁에 나서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조미협상이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한 비핵화협상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핵대결에서 자기들이 패했는데도 조선의 비핵화를 협상목표로 내건 기존 방침에 미련을 두고 있다. 그들이 조선을 비핵화하겠다는 참으로 미련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조선이 그들의 회담제의를 받아줄리 만무하다. 

 

미국은 조미핵대결에서 패하였으면서도 자기들이 최대 압력을 가하면 조선을 비핵화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오류, 실패, 좌절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억설과 궤변을 늘어놓는 법인데, 지금 조선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이 꼭 그런 꼴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조선에게 회담제의를 계속해도 조선으로부터 ‘개무시’를 당하고 있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된다. 

 

▲ <사진 9> 이 사진은 2000년 9월 15일 남북선수단이 오스트레일리아 씨드니에서 열린 여름철올림픽대회 개막식에 단일기를 휘날리며 공동으로 입장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지금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여 준비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신성한 삼천리 강토를 '화염과 분노'로 불태우겠다는 극악한 폭언을 토해낸 미치광이의 핵공갈을 물리치고 기어이 평화를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장한 기상을 세계에 떨칠 사상 최고의 평화축전으로 펼쳐질 것이다. 남과 북이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은 단일기를 휘날리게 될 '평화올림픽'이 성사되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으며, 그리고 제국주의전쟁위험을 배격하는 전 세계 평화애호인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남북관계개선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진전될 것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미국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제아무리 반대하고 가로막아도 한반도 정세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쌘프랜씨스코 3자비밀회담에서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그건 허사다. 남과 북이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은 단일기를 휘날리게 될 ‘평화올림픽’이 성사되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으며, 그리고 제국주의전쟁위험을 배격하는 전 세계 평화애호인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남북관계개선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진전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우리 조국이 일제 통치에서 해방된 후 처음 한 자리에 모인”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진행되었다. 한반도 전역의 56개 정당 및 사회단체를 대표하여 그 역사적인 정치회합에 참석한 민족대표 695명은 ‘전 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제목의 격문에서 “우리 조국강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하고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우리 민족끼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라”고 외치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과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백절불굴의 민족적 진취기상 만세!”를 불렀다. 70년 전 백절불굴의 민족적 기상을 안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였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절절한 외침. 그 외침은 70년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도 삼천리 강산을 쿵쿵 울리며 우리 민족을 이끌어주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고 단합하여 난관과 방해를 뚫고 통일의 길로 가라고, 어서 가라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명박 저격수가 된 최측근들

[김종철 칼럼] ‘배신’이 아니라 촛불혁명의 당연한 귀결이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cckim999@naver.com  2018년 01월 22일 월요일
지난 17일 김백준 청와대 전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거액의 특수활동비(특활비)를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이명박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특히 김백준 전 기획관이 오랜 기간 그의 ‘집사’ 노릇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바로 그날 오후 즉각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며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1월20일자 한국일보 1면에 대서특필 된 김희중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제1부속실장) 단독인터뷰 기사는 초대형 수소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기사 제목은 ‘특활비 모든 진실 알고 있는 분은 MB뿐’이었다. 김희중은 이명박이 초선 국회의원이던 1997년에 6급 비서관으로 채용된 뒤 대통령 재임 시절을 포함해 15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그의 ‘분신’이자 ‘성골집사’ 또는 ‘걸어 다니는 일정표’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처럼 비선에서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다스부터 국정원 특활비,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 국정원 등 정부기관의 ‘댓글 사건’에 이르기까지 전모를 샅샅이 파악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 2012년 7월24일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012년 7월24일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김희중은 한국일보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 이명박 청와대 상납 수사’에 관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청와대 근무 당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10만 달러를 건네받아 당시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수행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1억8천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대법원에서 징역 1년3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어 복역했다. 그러나 김희중은 그 돈을 사적으로 쓰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는데도 이명박 임기 말의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만기 출소하기 직전에 생활고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김희중은 국정원 특활비에 관한 진실을 검찰에서 밝힌 것이 “(이명박에 대한) 배신감이나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더 이상 잘못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돈 쓰면 안된다고 충언하지 못한 죄가 크다”며 이명박을 향해 준엄하게 경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 시선이 얼마나 높아졌느냐”, “더 이상 국민들이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께서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이명박을 ‘절대 군주처럼 모시던’ 최측근들 가운데 이명박 저격수로 변해버린 이는 김희중 한 사람 만이 아니다. 최근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백준에게 첫 번째 특활비 2억 원을 전달한 뒤 이명박을 독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2년 뒤에 다시 2억 원 상납을 요구받았다고 진술했다. 류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도 대통령과 김주성의 청와대 집무실 만남을 조율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인정했다. 2007년 검찰 수사와 이듬해 특검 수사에서 다스는 이명박과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던 김성우(다스 전 사장)는 최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11년 전 검찰, 10년 전 특검에서 한 진술은 거짓이었다는 내용의 자수서를 쓰면서 다스의 전신인 대부기공을 설립할 때 이명박에게 보고하고 지시도 받았다고 밝혔다.

 

▲ 1월17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월17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김백준과 김진모가 구속되던 날만 해도 급히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며 노골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바 있는 이명박은 ‘측근들 중의 최측근’ 김희중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에 관해 구체적인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는데도 단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1990년대 중반에 뜨거운 인기를 누리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최민수가 친구 우석에게 건네던 물음이 떠오른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이명박의 최측근들이 과거의 ‘지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실탄을 퍼부어 대는 것은 뒤늦게 되살아난 정의감의 발로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촛불혁명이 빚어낸 당연한 귀결이다.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면 왜 그런지가 저절로 드러나리라고 본다. 만약 박근혜가 지난해 3월 헌재에서 파면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4년 동안 저지른 온갖 국정농단과 헌정 파괴 행위, 부정과 비리에 대해 퇴임 뒤에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으려고 19대 대선에서 필사적으로 부정을 획책했을 개연성이 크다. 마치 이명박이 18대 대선에서 그를 위해 그렇게 했듯이. 그러나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집권세력 내부에는 권력의 진공 상태가 빚어져 아무도 대선 부정을 저지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23차에 걸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1700만여명이 일구어낸 촛불혁명이 두려워서라도 누가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 촛불혁명에 힘입어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극우보수정권의 비호 아래 호사스런 생활을 계속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되었으리라.  

 

▲ 지난 2010년 4월12일 오후(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미국 워싱턴 D.C.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와 면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010년 4월12일 오후(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미국 워싱턴 D.C.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와 면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이 안고 있는 위법행위와 부정·비리 의혹은 ‘4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부터 근자에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든 UAE와의 비밀군사협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차고도 넘친다. 촛불혁명의 주역들은 물론이고 적폐 청산을 염원하는 주권자들은 검찰이 언제 그를 포토라인에 세울지를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속보]대법원 추가조사위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다수 발견”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입력 : 2018.01.22 11:39:00 수정 : 2018.01.22 12:11:47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2일 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2일 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판사의 성향이나 동향을 조사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지난 두달여간 조사를 벌여온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문건을 다수 발견했다고 22일 밝혔다.

문건들은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작성된 것이다. 일선 판사들의 성향이나 동향을 뒷조사한 것은 물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에 대해 청와대와 이야기 나눈 내용도 문건에 담겨있다. 

추가조사위는 이날 “인사나 감찰 부서에 속하지 않는 사법행정 담당자들이 법관의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해 작성한 문서 가운데 정보 수집의 절차와 수단에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고 그 내용이 사법행정상 필요를 넘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다수의 문서를 보고서에 담았다”며 보고서를 공개했다.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을 뒷조사한 문건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2015년 8월18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ㄱ판사 게시글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ㄱ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올린 글과 해당 글에 달린 댓글 분석, 이에 대한 판사들의 반응 등이 차례로 정리돼있다. 뿐만 아니라 ㄱ판사의 성격과 스타일, 가정사, 고민하는 테마의 내용, 독일 유학 복귀 후의 동향 등도 기재돼있다. 

 

2015년 1~2월쯤 작성된 또 다른 문건에서는 ㄴ판사가 코트넷에 게시한 글과 함께 ㄴ판사의 성향을 정리해놨다. ㄴ판사가 정세판단에 밝은 전략가형이며 법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 및 의혹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선동가·아웃사이더·비평가 기질이 있다는 평가도 덧붙여있다.

법원행정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 동향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 다음날인 2015년 2월9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을 보면 선고 이전에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한 경위와 내용, 선고 이후 외부 여론과 판사들의 평가를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청와대가 원 전 원장 재판에 대해 문의해왔고 법원행정처가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는 부분도 있다. 추가조사위는 “선고 이전에는 외부기관(BH)의 문의에 대해 우회적·간접적으로 항소심 담당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렸다”며 “선고 이후에는 외부기관(BH)의 희망에 대해 사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는 내용의 기재가 있다”고 밝혔다. 


추가조사위는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법행정 담당자가 법관들에 관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해 이념적 성향, 인적 관계와 행적 등을 분석·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면 이러한 문서는 그 대응 방안이 실현되었는지 또는 인사상의 불이익 조치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러한 경위와 목적으로 작성됐다는 자체만으로도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촛불 대통령' 문재인의 역사적 책무, 개헌"

[개헌 좌담] '포괄적 개헌' 회피하면 정쟁만 남는다
2018.01.22 08:18:02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한 사람의 변심이 30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개헌 기회를 시계제로 상태로 몰아넣었다. "곁다리 개헌" 한마디로 대선 공약을 팽개친 홍 대표 탓에,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하다.

홍 대표의 심술에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카드는 '최소 개헌'이다. 권력구조 문제는 추후로 미루고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등 합의 여지가 큰 내용만으로 6월 개헌을 우선 추진하자는 제안이다. 많은 논박이 오간다. 개헌 추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이해에서부터 오히려 개헌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반박까지.  

지난 18일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박갑주 변호사와 함께 최대 고비에 처한 개헌 논의를 짚어봤다. 최태욱 교수와 박갑주 변호사는 국회 개헌자문위원회의 개헌보고서 성안 과정에 참여했으며, 하승수 대표는 시민사회 진영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개헌 및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해왔다. 
 

▲ 좌측부터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박갑주 변호사,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를 비롯한 정치체제 변화를 개헌의 핵심으로 보는 이들은 문 대통령에게 '정공법'을 입 모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개헌 논의의 핵심으로 들어가서 정면으로 답해야 한다."(최태욱)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권력 배분과 선거제도를 논의해야 한다."(하승수) 
"개헌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은 권력 분립의 문제다."(박갑주)

6월 개헌을 위해 불가피하게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직접 발의한다면, '포괄적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또한 지방분권과 기본권 강화도 정치체제의 의미있는 변화가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데에 의견이 같았다. 

하 대표는 "개헌안을 포괄적으로 던지면 역사적 의미가 크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긍정적 작용이 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대통령이 보여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새로운 한국 민주주의 체제를 위한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그럴싸한 개헌안을 내놓으면 오히려 사회 분열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박 변호사는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던지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입법예고 형식처럼 한 번 더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붙이면 오히려 개헌이 어려워진다"고 신중한 견해를 밝혔다. 

아울러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자유한국당과 진지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한국당 내에도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다수인 만큼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빅딜'의 내용은 간명하다. 한국당 다수가 바라는 권력구조를 수용하되,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양보를 얻어내 다당제와 협치의 정치구조를 안착시키는 것이다. 이뤄진다면, 문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이라고 해도 손색없겠다. 

다음은 좌담 전문. 

사회주의 개헌안? 정치 공세! 

프레시안 : 촛불의 제도적 완성이란 의미에서 촉발된 개헌론이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진전을 못 보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지만, 개헌의 동력을 살리고 이를 실현시킬 수단에 대한 의견들을 듣고자 한다. 우선 국회 개헌자문위원회가 마련한 개헌보고서 논란이 향후 개헌 정국의 예고편이 아닐까 싶은데, 자문위에 참여했던 분들의 의견부터 듣겠다.

박갑주 : 나는 경제 분과를 담당했다. 타깃이 된 '사회주의 개헌안'이라는 비판에 대해 먼저 짚어보자. 경제 분과에 국한해 말하자면, 논란의 핵심은 사회적 경제였다. 사회적 경제에 관한 안이 만들어지자 공동위원장 중 한 분이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고 그걸 처리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라는 표현은 과거 새누리당이 썼던 표현이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 용어는 외국에선 일반적으로 쓰인다. 사회적 경제에는 협동조합도 포함된다.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은) '사회적'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의미를 오도한 정치 공세다. 

실제로 우리 분과는 논의 과정에서 사회주의 개헌은커녕 중도적 개헌안을 만들고자 많이 타협했다. 자문위원들 모두 추천경로가 다르고 성향도 다르다. 그럼에도 자문위조차 타협안을 못 만든다면 여야가 합의하는 개헌안을 만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제로 합의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가장 처음 합의 한 부분은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이었다. 보수 쪽 분들은 이것 때문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한다고 비판한다. 진보 쪽은 국가개입이 더 가능하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이걸 손대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그래서 이건 손대지 말되 우회적으로 다른 조항을 손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합의된 단일안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보려고도 했다. 원래의 헌법정신 그대로를 향했다. 자문위 안을 보면 상생협력참여조항이 존재한다. 이 조항은 제헌헌법에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보수 측이 받기 힘들다. 노동 쪽에선 논의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합의하기 힘들다. 그래서 '생산주체는 생산자, 노동자, 소비자가 있다. 그러니 그 모든 주체가 전체과정에서 참여하고 상생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의 조항이 들어간 것뿐이다. 이렇게 합의될 수준의 안을 지향해 나온 결과를 사회주의 개헌안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공세다.
 

▲박갑주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최태욱 : 선거와 정당이 내 분야였다. 우리 분과 위원들은 대부분 정치학자였고 시민단체에서 몇 분들도 계셨지만 논란이 크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문제는 비례성 보장 정도였다. 보수와 진보가 함께 했지만 적어도 비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초반에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오갔을 뿐이다.

하승수 : <조선일보>가 개헌안에 대한 이념공세를 폈는데, 이는 자유한국당이 잘못 짠 프레임을 방어해준 것이다. 한국당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했다가 파기했지만,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자문위의 개헌안 보고서를 트집 잡아 사회주의 좌편향이라는 프레임을 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프레임도 잘 먹히지 않고 있다. 

30년 만의 개헌 기회, 핵심은 정치체제 변화 

프레시안 개헌이 될지 안 될지 몰라도 적어도 지방선거까지는 살아있는 이슈다. 개헌을 정치세력 간의 논쟁에서 끌어내 의미를 되살릴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하승수 : 개헌의 현실성도 중요하지만, 개헌이 어떤 내용인지도 중요하다. 이번 개헌은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가 권력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폭 넓은 의미에서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권력배분과 선거구조가 그것이다.

물론 시민사회에선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에도 관심을 많이 갖는다. 그러나 기본권 강화를 더 폭넓게 보자. 다들 말은 국민이 주권자라고 하지만 실제로 국민이 국가 의사결정에 참여할 통로는 제약되어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하려면 개헌안에 국민소환제보다 국민발안제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헌법을 국민들이 손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지방분권도 그렇다. 지방분권은 중앙정권과 지방정권 간 권력배분의 문제다. 

의원내각제, 대통령제, 국민발안제 등 그 모든 문제와 다 연결된 것이 선거제도다. 지금처럼 정당이 얻은 지지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상황에선 분권을 하려해도 제대로 안 된다.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서 권력배분을 손봐도 마찬가지다. 국회구성이 정당득표율대로 이뤄져야 한다. 즉, 표심 그대로 의석수가 반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기본권 강화보다 정치시스템 강화를 말한다.  

따라서 다들 정부형태를 강조하지만 직접민주주의와 선거제도야말로 개헌의 핵심인 것이다.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답을 잘못 한 점이 있다. 권력구조가 합의 안 되면 최소 개헌을 하자고 했는데, 이건 개헌이 안 되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단계적 개헌이나 최소 개헌은 야당이 모두 반대한다. 이래서는 개헌이 안 된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배분, 주권자 참여, 마지막으로 선거에서 유권자 의사가 공정하게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선거제도가 비례성이 보장된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은 분권은 위험성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지방 선거제도도 바뀌고 지역 내에서 민주적인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을 때 지방분권도 좀 더 파격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 하승수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박갑주 :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대의민주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직접민주주의 이야기가 약간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다. 국민소환은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서 소환하는 것이다. 그런 걸 넘어선 국민소환이라면 조직력이 강한 보수세력이 진보정당이나 소수파 의원에 대한 흔들기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  

또한 해외 사례에서 보면 국민발안제 역시 우파적 의제를 관철시키는 쪽으로 힘이 실렸다. 건설 예산을 관철시키거나, 난민 수용을 좌절시키는 식이다. 국회는 정치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힘의 역관계를 교정해주는 역할도 한다. 정치의 시장에 내맡겨버리면 훨씬 보수적으로 갈 우려가 있는데, 이런 점을 국회가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분권은 강화돼야 하지만 연방제적 지방분권은 한국사회에 맞지 않다고 본다. 모든 갈등이 지역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앙적 갈등은 중앙에서 다뤄져야 한다. 국가적 의제와 국민적 의제까지 지역에서 다뤄질 필요는 없다. 

최태욱 : 87년 체제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개헌 이야기가 나왔다. 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핵심은 민주주의 체제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기본권이나 경제조항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시민들은 여전히 삶이 어렵다.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생기는 것이고, 그 불만이 쌓여서 개헌론이 나왔다. 

개헌은 헌정체제의 개혁이다. 조항 몇 개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계속 외쳐왔다. 핵심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작동하는 정치시스템에 대한 요구다. 따라서 선거구조, 권력구조, 정당체제, 이 세 가지를 고치는 것이 골자다. 이 지점이 합의가 안 되면, 합의 되는 다른 것부터 하자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개헌 논의의 핵심을 피해가면 개헌을 왜 하려고 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예컨대 헌법 119조 2항만 제대로 지켜도 경제민주화는 이뤄진다. 하지만 이 조항은 사문화됐다. 정치가 작동을 안 해 경제민주화가 안 된 것이다. 119조 2항은 정치체제가 작동해야 같이 작동한다. 만약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개선하기 위한 핵심 헌법조항을 고치지 않는다면 119조 2항 꼴이 또 나올 수 있다. 골자를 피해 갈 거라면 왜 개헌하는가. 문 대통령이 좀 더 핵심으로 들어가서 정면으로 답하면 좋겠다.  
 

▲ 최태욱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文대통령 2단계 개헌론은 비현실적 

박갑주 : 개헌에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은 권력분립의 문제다. 지난 정부의 실패는 헌법 문제만이 아니지만, 민주적 통제가 되지 않아 생긴 문제다. 따라서 권력분립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이 지방분권이고 마지막이 기본권이라고 본다.

하지만 개헌에 대한 생각과 개헌의 동력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개헌의 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기본권을 개헌의 핵심으로 본다. 헌법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개헌의 동력은 국민들과 지방분권론자들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본다. 그들이 개헌의 동력을 낼 수 있다.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지방분권으로부터 개헌동력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역시 중요하다는 얘기다. 개헌은 두 가지가 함께 간다. 첫째로 정부와 국민의 관계다. 다음으로 권력문제와 기본권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87년 이후 30년 동안 변화한 시대를 지금 헌법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하승수 : 기본권이 강화되려면 정당구조와 정치체제가 달라져야한다. 제헌헌법에도 노동자들의 이익균점권이 나온다. 사기업 이익도 노동자가 받아낼 수 있다는 권리이지만 이는 '종이 속 권리'에 불과했다.  

국민이 기본권 강화를 말하는 것은 내 삶이 나아지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에 해당조항을 넣는다고 기본권이 곧바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정당이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제도적 정치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민들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정치구조가 돼야 한다. 이것의 전제는 선거제도의 개선이다. 기본권 강화를 위해서라도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박갑주 : 국회를 통해 의결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의결해야 개헌이 발효되는 현실적인 절차를 감안했을 때 개헌의 동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단계로 개헌을 할 것이라고 한 발언은 신중했어야 한다. 대선 때 내놓은 개헌공약을 지킨다는 진정성이 오히려 개헌을 안 되게 만들 수도 있다. 결국 국회 의결을 통해 국민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2단계 개헌이 될 수만 있다면,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 헌법을 경성헌법에서 연성헌법으로 바꾸고 추후에 다시 개헌을 하자는 말에도 의미는 있다고 본다. 

최태욱 : 기본권 강화는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물론 지방분권도 강하게 원한다. 하지만 정치체제에 의미 있는 변화 없이 기본권이 강화되고 지방분권이 이뤄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권력구조를 뺀 개헌을 하겠다면 현재의 정치체제를 변화시킬 대안으로 설득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문 대통령이 개헌 발의 옵션까지 열어둔 것처럼 말을 했는데, 이는 국회에 긴장하라는 뜻을 담은 메시지로 보인다. 국회가 합의 못하면 자신이 발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은 국회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의결은 무조건 안 된다. 국민투표에 회부 할 수가 없다. 한국당을 설득하고 타협할 전략이 무엇인 복안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현실적인 의미가 없다. 

만일 문 대통령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골라서 정말 매력적인 개헌안을 공개한다면 반응은 좋을 것이다. '역시 우리 대통령'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쪽은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이다. 매력적인 개헌을 하겠다는데 반대한다고. 이러면 정쟁이 심각해질 것이다. 이걸 문 대통령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6월 개헌은 필수인가? 

프레시안 : 그동안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하승수 대표의 견해는 좀 다를 듯하다. 

하승수 : 그래서 대통령이 개헌을 포괄적으로 발의해야 한다고 본다. 권력작동과 관련된 정부 형태, 지방분권, 직접민주주의 확대, 선거제도 개편 등을 포괄적으로 담아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설령 부결되더라도 엄청난 의미가 있을 것이다. 87년 이후 제대로 된 개헌안이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 시킬 수 있는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야당도 함부로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태욱 : 포괄적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같은 생각이다.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한국 민주주의 체제로서의 개헌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고 부분적으로 그럴싸한 개헌안을 내놓으면 오히려 사회 분열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갑주 : 정말로 그럴 수 있으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여야 간에 이견이 많은 권력구조 문제와 선거제도 문제가 걸려 있다. 대통령이 한국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개헌안을 던지더라도 자유한국당은 그 안을 받지 않을 것이다.  

최태욱 : 부분적 개헌안을 던져도 한국당은 받지 않는다.
 

▲ 하승수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하승수 : 개헌안을 포괄적으로 던지면 역사적 의미가 크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긍정적 작용이 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대통령이 보여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가진 헌법에 대한 전체적 그림이 좋다. 역대 지도자 중에서 87년 체제를 극복할 가장 훌륭한 그림을 가지고 있다. 100대 국정과제에나 공약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 그림을 헌법안으로 하면 된다. 물론 갑자기 발의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일종의 입법예고처럼 하면 된다. 쟁점이 되는 부분에 관해선 1안과 2안을 내놓는다면 야당과 협상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국민들도 개헌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도 있다.

박갑주 : 그 의견에 동의한다. 전제는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그리고 당파 이익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보고 개헌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전제가 충족된다면 개헌안 발의를 고민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던지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입법예고 형식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다. 한 번 더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붙이면 오히려 개헌이 어려워진다.

프레시안  : 세 분 의견은 포괄적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결부시킬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다소 차이가 보인다. 
박갑주 : 1단계 개헌안은 통과가 안 될 거라고 본다. 개헌안을 협상용이 아니라 공세용으로 쓸 생각이라면, 이는 철회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사회를 생각하고 포괄적 개헌안을 만들더라도 6월 처리를 걸고 야당 압박용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승수 : 나는 포괄적 개헌안을 6월에 맞춰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 스타일이 약속은 지킨다는 것이다. 개헌 관련해서 기존 정치인들은 말을 너무 많이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기도 약속을 했으니 최대한 진정성 있게 노력해 볼 필요가 있다. 개헌안 내용은 평소 대통령의 소신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물론 곧바로 개헌을 발의하기 보다는 지방선거에 맞춰서 논의를 진작시켜보되, 최종적으로 발의할지 말지는 마지막에 판단해도 된다.  

박갑주 : 6월 개헌에 반대하는 한국당이 걸린 문제다. 한국당은 현재 덫에 걸렸다. 대선 공약으로 지방선거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약속했다가 철회했고, 이제는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올해 안에는 하자고 한다. 이 말의 속 뜻은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번 정도 더 여유를 두고 이야기해볼 수 있다.

하승수 :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마지노선은 4월이다. 3월 경 입법예고안을 낸다고 생각하고 2월에 사전공청회나 토론을 하면 어떨까 싶다. 이런 과정을 거쳐 4월에 최종 발의할지 말지 판단해도 된다고 본다.  

홍준표 몽니에 복잡해진 한국당 속내 

프레시안  : 개헌 시기도 그렇지만, 한국당을 어떻게 개헌 테이블에 앉도록 할 것이냐가 개헌의 현실화를 위한 최대 관건이다. 

하승수 : 한국당을 보는 영남 여론이 안 좋다. 대구 지역의 보수적인 일간지가 연일 홍준표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개헌이 안 되는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고 공격하는 사설이 나온다. 영남권의 보수적 언론들과 여론주도층도 한국당이 연말까지 개헌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지방이 살려면 지방분권 개헌 정도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개헌 시기를 연기하자는 자유한국당의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생각하는 개헌 방향이 국민들 생각과 너무 다르지만, 보수도 어쩔 수 없이 출구를 찾을 것이라고 본다.  
 

▲ 최태욱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최태욱 : 나는 자유한국당의 곤궁한 처지를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줬으면 좋겠다. 한국당에 한 가지 명료한 것은 분권형 권력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가장 선명한 대통령이라면,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개헌 논의를 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권력구조 개편에 목매고 있다면, 문 대통령이 87년 체제에 대한 개혁 의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도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개편 이야기를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 이슈로 내놓았다. 그 후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가 되었을 때, 2015년 2월 중앙선관위가 권역별 연동제를 제안하자 이를 당론으로 받았다. 민주당 당론은 아직까지 변함없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은 4년 중임제를 선호하지만 만약에 선거제도를 바꾼다면 분권형이나 의원내각제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얼마나 박수 받을 이야기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 지점에서 물꼬를 틀 수 있는 사람이다. '자유한국당이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을 원한다면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참여하라. 나도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 참여하겠다'면서 협상테이블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자유한국당과 협상해야 선거제도 개편하는 일도 가능하다. 협상을 시작하면 중간 어느 지점에서건 만날 것 아닌가. 한국에 적합한 분권형 권력구조를 가지면 되는 것 아닌가. 적절한 선에서 한국당에 양보를 하고, 또 한국당으로부터 선거제도에 관한 양보를 받을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살릴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다. 

박갑주 : 나는 개헌의 기회는 올해 말까지라고 본다. 대통령 의지가 강하더라도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의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통령이 진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한국당은 개헌에 대한 유불리 문제를 놓고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다. 한국 보수 세력이 어떤 제도를 받아들여야 살아남는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개헌을 계속 미루는 것이다. 

하승수 : 나는 자유한국당에도 6월 개헌을 원하는 의원들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한국당이라는 정당 입장에서 보면 선거제도를 일정하게 양보하더라도 지방분권이나 권력구조 문제를 바꾸는 게 유리하다. 또한 선거제도가 개혁되는 것이 반드시 한국당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대로라면 2020년 총선에서 한국당은 수도권에서 거의 전멸할 수 있고, 부산경남도 만만치 않다. 당장 올해 지방선거만 봐도 수도권 의회에선 거의 전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제도가 비례성을 보장한다면 한국당에도 나쁘지 않다. 전국적인 보수정당으로 가려면 조금 양보하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지방분권은 영남 지역의 보수층도 원하고 있다. 

반면 홍준표 대표는 지금 권력구조 그대로 두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게 아니면 지금 행보를 해석 할 수가 없다. 홍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많은 의원들의 생각이 다른 것이다. 영남권도 그래서 홍 대표에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다. 홍 대표와 한국당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결국 홍 대표 개인이 한국당 내의 개헌 요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데, 문 대통령이 포괄적 개헌을 가지고 협상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한국당도 내부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박갑주 : 홍준표 대표와 한국당 국회의원을 나눠서 보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의원들은 아직 선거제도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다. 당장은 이번 지방선거를 버텨보고 다음 총선까지 기다려 보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입장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는 건, 역으로 개헌의 동력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올해 말까지 개헌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많고, 동력도 살아있다고 보고 싶다. 충분히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개헌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단순하게 정리하면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를 양측이 서로 빅딜하는 방안이 현실적이고, 문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로 좁혀지는 듯하다. 

최태욱 : 그게 현재 유일한 방법이다. 

하승수 : 물론 어느 정도까지 타협이 될지는 협상을 해봐야 안다. 국민들 의견도 중요하다. 국민들은 순수 의원내각제는 원하지 않는다. 이처럼 대통령과 야당,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다보면 절충점이나 타협점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헌법 개정으로 어느 쪽도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일정 정도 타협이 불가피하다. 물론 밀실 논의가 되면 문제이지만, 공개적으로 논의하면 가능하다. 

30년 동안 개헌을 하지 않은 나라는 많지 않다. 만약 이번에 되지 않더라도 개헌논의는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정치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임기 중에 개헌하는 것이 국가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 제대로 된 개헌을 문재인 대통령 때 하면 좋다는 생각이다.최태욱 :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문제를 풀어나갈 동력의 문제라면,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같은 제3정당도 주목해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포괄적 개헌에 소극적이라면, 이에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제3정당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쪽도 정치적으로 살 길은 그 방법이다. 박지원 의원 등이 만드는 개혁신당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입법을 돕겠다는 것 아닌가. 이처럼 선거제도 개혁에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자유한국당을 뺀 모든 정치세력이 함께 할 가능성이 있다. 

박갑주 : 그런 측면에선 저는 온건다당제를 말하는 안철수-유승민 대표가 추진하는 신당에 주목한다. 

하승수 :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다당제를 선호한다. 보수도 합리적인 국가운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금의 권력구조나 선거구조는 보수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권 강화를 바라는 국민들 요구를 받아주는 것도 보수가 사는 길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수는 정말 지리멸렬하다.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비전도 없다. 

프레시안  : 권력구조에 앞서 선거제도 변경을 우선순위에 놓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승수 : 정치제도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 개혁이고 출구는 정부 형태라고 본다. 물론 이를 따로 논의하지 말고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이 좋다고 본다. 중도 보수적인 시민사회 분들과 얘기해보면 그분들도 표심 그대로, 민심 그대로 국회의원을 나누는 방안에 동의한다. 이 같은 선거제도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부형태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같이 가도 꼭 상호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최태욱 : 라틴아메리카 나라 대부분 대통령 중심제이면서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다. 소위 연정형 대통령제인데, 유럽 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를 보면서 어려운 조합, 곤란한 결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도 DJP 연합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라도 유력한 당이 여럿 있다면 그에 부합하는 제도적 조화를 모색하게 된다. 연정과 협치다. 제도화가 되지 않으면 불안정하겠지만, 나름대로 그 안에서 진화를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개헌이 되면 분권은 일어난다. 지금처럼 절대왕정은 될 수 없다. 4년 중임제 방안에도 대통령 권력 분산이 포함된다. 만일 비례대표제를 통한 다당제와 대통령제가 맞부딪치게 되면 또 다시 권력구조 개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당장 부딪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다당제로 운영을 해보다가 제도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그때 또 다시 부드럽게 변화를 모색해 갈 수 있다고 본다.

하승수 : 우리나라는 국무총리라는 완충장치가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제와 맞지 않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다당제 국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되면 국회와 협치하게 될 수밖에 없다.  
 

▲ 박갑주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박갑주 : 권력구조 문제의 핵심은 행정부를 누가 장악하는가의 문제다. 기존 대통령제가 왜 문제인지를 보면 예산, 인사, 법률안을 대통령이 다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안도 행정부가 다 짜고 법률안도 제출권도 대통령에게 있고, 인사권도 대부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쥔 많은 권한을 넘기자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이렇게 되면 누가 행정부 권한에 다가가더라도 분권이 일어난다.

하승수 : 제도보다는 정치 과정으로 풀릴 문제가 많다.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4년 중임제에도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큰 방향에 동의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답이다

프레시안  :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호하는 세 분의 입장이 일치하는데, 선거제도 개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중대선거구제다. 하승수 대표는 이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으로 안다. 

하승수 : 지방의회에선 해볼 수 있다고 보지만 국회의원 선거에 중대선거구제는 답이 아니라고 본다. 민주당 당론은 권역별이긴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국민의당은 당론은 아니지만 지난해 안철수 대표가 중대선거구제보다 비례대표제를 하자고 했다. 선거제도는 개별 국회의원들의 선호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정당이 당론을 가지고 협상해야 하는 문제다. 중대선거구제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익숙하게 들리지만 논의 지형으로 보면 중대선거구제는 채택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도 중대선거구제가 약간이라도 효과적이려면 한 구역에서 서너 명을 뽑아야 한다. 이 방법은 한국당과 민주당이 동의를 안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선거구 감당도 안 될뿐더러, 지역대표성도 많이 떨어진다. 3~4인 선거구가 되면 구역이 너무 넓어지고 지역대표성이 애매해 국회의원들도 싫어한다. 그래서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수렴될 것이다. 

프레시안 : 비례대표제 강화에는 의원수 증원이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여론의 반발은 엄청난 장벽이다.  

박갑주 : 자문위 내에서도 국민정서를 고려해 의원수 문제를 건드리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문위는 과감하게 500명 정도를 늘리는 방안도 제안해보는 게 어떤가 싶었다. 기존의 국회예산 범위 내에서 증원한다면 국민들을 설득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야 가능한 일이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것을 내려놓기는 싫고 여론은 무서우니 손을 대지 말자는 쪽으로 가서 안타깝다. 

하승수 :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 정원을 늘릴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선후보로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정치시스템 개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분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국회 특권 내려놓기가 맞물릴 필요가 있다.

최태욱 : 학계, 시민단체, 언론에서 꾸준히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할 필요성을 말해줘야 한다. 국회의원 월급을 중위소득자 월급에 맞추면 500명까지 뽑아도 된다. 국회의원들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녀봐야 안다. 보육비 때문에 고생 해보고, 교육비 걱정하고, 부모 모실 일 생각하며 고민도 해봐야 한다. 머리로 하는 것과 가슴으로 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야 그 현실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 

박갑주 : 국회 예산은 더 늘어날 필요가 있지만, 국회의원 연봉을 중위소득에 맞추자는 점에는 동의한다. 따져보면 우리나라 의원들의 특권이 미국 의원들에 비해서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승수 : 정말로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개헌을 하자고 해서 협상테이블에 진지하게 앉으면 우리 국민들 여론을 감안했을 때, 선거제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고 여러 가지 문제들도 풀릴 것이다.  

프레시안 : 자유한국당을 뺀 모든 정치세력이 개헌에 동의한다. 자유한국당의 개헌 공약 파기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데, 한국당에 대한 포위 구도가 강화되면 좀 달라질 수도 있을까? 

최태욱 : 문재인 대통령이 포괄적 개헌으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제3신당이 대박이 나고 홍준표 대표가 정신을 차릴 가능성은 크게 없다.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개헌이 된다. 이는 모두 정치권 소관인데, 가능성이 별로 없다. 특히 이 과정에 국민들이 배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개헌여론이 상당히 뜨거워진다면 이걸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당제와 비례성 강화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 그럴 수 있다. 

하승수 : 시민들 관심이 제도개혁으로 모여 있지 않은 실정인 것은 맞다. 정치권 논의만으로는 그런 계기들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솔직히 지금은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이 제대로 될 전망이 불투명하다. 하지만 한국은 늘 최후의 보루인 시민들이 돌파구를 만들어 냈다. 

당장은 홍준표 대표가 입장 바꾸기 어려울 것이고, 제3 정치세력이 제 역할 못 하는 상황이라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본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계기가 있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점을 모르지도 않고 촛불혁명 결과로 당선된 역사적 책무도 있다고 본다. 

어차피 문 대통령은 5년 단임제 대통령이라서 이번에 개헌을 해도 임기나 권한에 변함이 없다. 이 다음에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대통령 나와서 선거제도와 개헌을 마무리 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문재인 대통령 성공을 바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야말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화 <1987>을 600만 이상이 보는 시대인데, 이런 시점에 이 체제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해보자면 국민들이 관심을 충분히 가질 것이라고 본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정규 기자 faram@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프레시안 이정규 기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유한국당과 일본 극우만 반대하는 남북 단일팀

자유한국당은 2014년처럼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남북 단일팀을 환영하기를
 
임병도 | 2018-01-22 08:44: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나경원 의원이 평창올림픽을 가리켜 ‘평양올림픽’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은 2030 세대의 기회를 박탈했다는 식의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과연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잘못된 결정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정치적 행사에 불과할까요?


‘우리는 하나다, 북한팀 참가를 간절히 원했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 자유한국당은 과거에는 북한의 참가를 요청하고 희망했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참가는 반대하며 ‘평양올림픽’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을 정치도구화 시킨다고 비난했습니다. 나 의원은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북한의 체제 선전장으로 둔갑되어선 안 된다’라며 IOC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나경원 의원은 2012년에는 TV조선에 출연해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 북한 정식 선수단을 초청하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나 의원은 ‘북한이 패럴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는 일은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들고 김정은 독재 체제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홍 대표는 2011년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이 참가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여자축구팀을 응원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대표는 폐막식에서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고위급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열심히 북측 축구팀을 응원했다’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2011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스포츠가 정치나 이념의 도구가 돼서는 안된다”며 북한의 대회 참가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평양올림픽’이라며 평창올림픽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논의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급하게 추진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의는 이미 1990년부터 꾸준하게 있었습니다.

1990년 남과 북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친선 축구 경기를 했습니다. 당시 김유순 북한 IOC위원겸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은 동계아시안게임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코리아’와 실제 남북 단일팀의 모습.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우승하자, 전 세계는 깜짝 놀라며 통일 관련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남북단일팀은 분단 이래 1991년에만 두 번 구성됐습니다. 그해 4월 일본 자바 현에서 개최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와 5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였습니다. 영화 ‘코리아’의 배경이 됐던 탁구 남북단일팀은 우승까지 하며 남북 교류와 통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이후 남과 북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 구성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개·폐회식 `동시입장’이나 응원단 파견 등에 그쳤습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 참여하는 남북 단일 아이스하키팀은 올림픽으로는 처음입니다.


‘세계는 남북단일팀 환영, 그러나 일본 극우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방식을 확정 발표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 IOC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처

 

지난 1월 20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 위원회 (IOC) 위원장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IOC는 22명의 엔트리를 남북단일팀에 한해서는 35명 (한국 23명, 북한 12명)까지 허용했습니다.

IOC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 정신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모았다. 동계올림픽이 더 밝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이 희망의 행사에 세계를 초대한다. 바로 이것이 평창이 세계에 주고자 하는 평화의 메시지다”라며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AFP 통신>은 IOC의 배려와 결정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전쟁 중인 두 나라 사이에 역사적인 합의를 IOC가 승인했다’라며 “역사적인 합의(landmark deal)”라고 표현했습니다. <AFP 통신>은 ‘평창은 한반도 비무장지대로부터 불과 80km 떨어져 있으며 남북한 사이 전쟁은 1953년 중단됐으나 평화 조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현재 휴전 상태’라는 설명을 통해 ‘평화 올림픽’이라는 의미도 강조했습니다.

 

▲ 고이케 지사는 간도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본군 성노예와 신사 참배 문제에서도 극우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다. ⓒ다음뉴스 화면 캡처

 

대부분의 나라가 남북단일팀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환영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 것에 대해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이케 지사는 간도 대학살과 일본군 성노예를 인정하지 않으며 신사 참배를 했던 극우 정치인 중의 한 명입니다.

<교토 통신>은 “한국에서는 기존 23명 선수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다른 참가국들은 35명의 로스터 구성이 불공정하다고 여긴다”며 조중동과 비슷한 논조로 보도했습니다.

남북 단일 아이스하키팀의 올림픽 참가는 분단 72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오늘 우리는 긴 여정의 이정표를 하나 세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큰 의미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계속 ‘평양올림픽’이라며 ‘평창올림픽’을 비난하고 딴지를 거는 행위는 헌법에 명시된 ‘평화 통일’을 막겠다는 반헌법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2014년처럼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남북 단일팀을 환영하기를 바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48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 정부 ‘비리기관’ 오명 시청자재단, 재건 깃발 올렸다

[인터뷰]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신임 이사장, “시청자재단, 주류언론에 맞선 시민언론 성장 돕겠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8년 01월 21일 일요일
 

신태섭 교수가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 때 KBS 이사에서 부당하게 해임된 그가 다시 공직을 맡았다. 지난해 12월26일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관 시청자미디어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미디어 교육을 수행하는 각 지역의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총괄하는 준정부 기관이지만 박근혜 정부 때 ‘비리 기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실 출신 이석우 초대 이사장은 신입사원 채용비리, 파견근로자 부적절 채용 등이 밝혀져 해임 건의안이 제출되기까지 했다. 자유한국당 보좌관 출신 고위 간부는 직원들에게 수차례 폭언 욕설을 해 면직됐다. 센터에 국정 홍보영상을 틀고, 미디어 교사들에게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강제하면서 미디어 교육 기관으로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사실상 ‘재건’이 필요한 재단을 맡게 된 신태섭 이사장은 참여정부 때 처음 건립된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설립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지금의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모습은 처음 설립 때와는 다르다. 지난 9년 동안 정체하거나 일부는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시청자미디어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시청자미디어재단 산하 센터 설립에 관여했다고 들었다. 

“2004년 시청자미디어센터를 만들자는 논의가 시민사회 영역에서 강력하게 제기됐고 이 제안을 참여정부가 받아들였다. 제3섹터까지는 아니지만 방송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가 국가 영역에서 지원을 하고 자문을 하면 미디어 운동을 하는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이 곳을 기반으로 자율성을 갖고 운영을 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처음 만들어진 곳이 부산 센터였고 당시 건립 추진위원을 맡았다.”

-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왜 필요한가. 

 

“당시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예견된 상황에서 미디어에 대해 비판적인 해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어느 나라든 주류미디어의 여론 영향력이 너무 컸다. 선진국의 경우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공론장이 확보됐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한국은 주류언론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언론개혁은 주류미디어에 대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표현할 줄 알고, 주류미디어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공론장을 활성화하는 방향도 있다.”

- 지금 설명하는 설립 당시 센터의 모습과 현재의 시청자미디어재단은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발전하기보다는 정체되고 부분적으로는 퇴보한 상태로 9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시청자미디어센터였는데 지난 정부에서 ‘재단’이라는 중앙 조직을 만들고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관으로 만들었다.” 

- 이명박 정권 이래로 방송통신위원회 조직의 성격이 변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건가.

“방송통신 융합에 대비해 방송위를 강화하는 건 참여정부 때 설계한 내용이다. 단, 융합 과정에서 공론형성이 시민의 자주성에 기초해 잘 되도록 돕는 것이 방통위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기능을 위축시키고 방통위를 독임제 부처처럼 만들면서 언론규제 기능을 강화했다. 박근혜 정부 때 진흥 기구인 미래창조과학부를 별도로 분리하면서 또 다시 위축됐다. 미래부는 산업논리로, 방통위는 규제논리로 접근하는데 정작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방송통신의 핵심적인 의무를 수행할 기관이 없어진 것이다.” 
 

▲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이치열 기자.
▲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이치열 기자.
 

- 현 정부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어떤 식으로 미디어교육을 할 생각인가.

“전시행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류미디어가 갖는 점유율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주류미디어와 시민미디어의 격차를 줄여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센터가 되도록 정비해야 한다. 전체 미디어 지형에서 시민공론장의 몫은 5%에 불과하다고 본다. 시민 공론장을 키우면 어느 언론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심을 잡고 받아들일 수 있다.”  

-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가.  

“센터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와서 스마트폰 사용법 정도를 익힐 수도 있다. 이게 시작이다. 학생, 학부모, 시장 상인, 노동자 등 누구든지 간에 센터의 시설, 장비를 활용하고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돕는다. 재단은 토양을 형성하는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한 끝에 시민들이 ‘이 기구는 민주주의를 위해 뭔가를 하는구나’라고 느끼기를 바란다.” 

- 지난 정부 때 재단이 마을미디어를 비롯한 시민사회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을 미디어나 지자체 센터 등이 있는데 이들과 힘을 합칠 것이고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이다. 회의를 함께 하고 공동사업도 많이 하면서 말이다. 방송위원회 때는 시민사회와 함께 ‘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최종의결은 방송위가 하더라도 심의기능은 운영위에 맡겼다. 각 센터장은 운영위에서 선발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과제를 고민할 것이다.” 

- 자유학기제 때 시청자미디어재단 차원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디어 정규교과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디어 전문 교사를 양성하고 미디어 교육 개별 과목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는데 보편적인 사례도 아니고 정착되기도 힘들다고 본다. 개별 과목에서 미디어 교육을 응용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직접 교육을 맡겠다고 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 측면의 교육의 경우 교사들이 우리의 전략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도와드릴 수는 있다.”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법 개정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각 부처별로 산재된 미디어 교육 기능을 방통위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부처 이해관계 등의 이유로 제대로 조율되지 않고 있다. 

“법을 어떻게 만드는 게 최적인지 연구가 더 필요하다. 사회적 논의도 더 풍부해야 한다. 당장 내 구역, 네 구역 구분하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지금은 과도기라고 봐야 한다. 당장 법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과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 한다. 제대로 일을 하고 이게 쌓여 성과가 나면 법의 방향성도 잡힐 거라고 본다. 단, 학교 미디어 교육과 사회 미디어 교육 등을 기본권으로 제정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 센터 추가 건립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기존 센터가 비효율적인 권역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센터 확충이 필요하다. 7곳이 있는데, 더 많은 지역에 만들어져야 한다. 비효율적인 권역이 문제인 것도 맞다. 현재는 강원센터에서 경북 일부 지역까지, 울산센터는 대구경북 지역까지 커버해야 한다. 지금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센터를 옮길 수는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식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단, 지자체 사정과 예산과 인력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적정선을 찾아 반영해야 한다.” 

- 이사장 부임 이후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게 있나. 

“개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재단과 센터가 함께 있는 구조가 좋다고 생각한다. 와서 보니 뚝 떨어져 있더라. (현재는 센터는 각 지역에 있고 이를 총괄하는 재단 사무실은 서울 여의도에 있다.) 현장에서는 정책을 짜는 쪽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짜는 분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다음에 광역센터를 건립하게 되면 논의를 해서 한 센터와 재단을 함께 쓰는 통합센터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드론 날리기 새 취미, 겨울철새 쉴 곳 잃을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1/21 12:11
  • 수정일
    2018/01/21 12: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순영 2018. 01. 19
조회수 1029 추천수 0
 

몸 무거운 큰고니 한 번 나는데 반나절 먹이 사라져

강 복판 피신한 고니를 드론으로 괴롭혀, 규제 시급

 

크기변환_YSY_5701.jpg» 경기도 팔당 한강 수면 위에 나타난 드론.

 

드론이란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 무선전파 유도에 의해 비행과 조종이 가능한 비행기나 헬리콥터 모양의 무인기를 뜻한다드론은 고공영상·사진 촬영과 배달기상정보 수집농약 살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신기술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난 1월 1일 경기도 팔당에 드론 1대가 떠다니고 있었다이곳은 멸종위기종인 참수리흰꼬리수리참매호사비오리, 원앙말똥가리 등 다양한 새들의 월동지이다

 

처음 보는 물체에 팔당에서 월동하던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큰고니들이 야단법석이다큰고니 300여 마리가 월동하는 지역을 순찰하듯이 드론이 접근하자 큰고니들이 당황하여 피하거나 자리를 뜬다드론은 이런 광경이 즐거운 듯 계속해서 쫒아 다닌다.

 

크기변환_YSY_7391.jpg» 매년 300여 마리의 큰고니가 팔당에서 겨울을난다.

 

드론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했지만 원격조종을 하기 때문에 어디서 누가 조종하는지 알 수 없어 단속이 어려웠다큰고니에게 위협을 가하는 드론을 추적해 보았다.

 

크기변환_YSY_5688.jpg» 드론이 큰고니를 귀찮게 쫓아 다닌다.

 

크기변환_YSY_5645.jpg» 큰고니 머리 위에 드론이 떠있다. 새들은 처음 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크기변환_YSY_5652.jpg» 교란을 피해 강 가운데 자리 잡았던 큰고니는 다시 새로운 괴롭힘을 만나 자리를 옮겨야 한다.

 

크기변환_YSY_5737.jpg» 큰고니를 추적하다 갑자기 사진을 찍는 필자 앞으로 달려드는 드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론이 우리를 향해 달려든다카메라가 드론을 촬영하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코앞까지 다가와 희롱을 일삼아 엄청난 불쾌감이 몰려왔다새들도 모자라 사람까지 멋대로 촬영하다니.

 

크기변환_YSY_5686.jpg» 영문도 모르는 물체에 큰고니 무리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크기변환_DSC_4769.jpg» 지속적인 추적으로 큰고니를 학대하는 드론. 큰고니 무리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마침내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을 찾았다. 40대 초반으로 보인다다가가도 눈치채지 못하고 휴대폰에 연결된 영상을 보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었다

 

팔당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계울타리를 쳐 둔 상수원 보호 구역이다그 안에 들어가 불법으로 드론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우선 그 자리에서 나오게끔 했다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크기변환_YSY_3785.jpg» 드론으로 인해 큰고니가 날아오른다. 고니는 몸무게가 무거워 한 번 나는데 반나절 먹은 먹이가 소모된다고 한다.

 

크기변환_YSY_5621.jpg» 이곳저곳에서 큰고니들이 난리다.

 

팔당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양주시 물 공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 안내 현수막을 설치하였으나 법적인 근거를 대라는 드론 동호인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철거했다고 한다.

 

크기변환_YSY_5718.jpg» 드론이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

 

 

동물보호법은 조류를 포함한 척추동물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한 신체적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록 이 법이 동물 학대에 너무 느슨하게 적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법 정신에 비추어 법정보호종을 보호구역에서 못살게 구는 것도 동물 학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사람과 차량을 피해 강 복판으로 피신했는데, 그곳까지 드론으로 찾아가 괴롭힌다면 겨울철새는 쉴 곳이 없는 셈이다.

 

크기변환_YSY_5724.jpg» 큰고니를 쫓아다니다 이를 추적하던 사진가들이 있는 곳으로 와 살펴보는 드론.

 

크기변환_20180101_150020.jpg» 큰고니를 괴롭힌 드론 조종자들.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명확하게 밝히고 사과를 받았다. 드론이 야생동물의 영역을 침범해 위협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드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때문에 앞으로 드론의 사용이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야생동물들은 이제 하늘에서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촬영이라는 명목으로 위협을 당하고 있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20180101_150832.jpg» 단속에 의해 회수된 드론.

 

드론에 의한 야생동물 피해를 막을 세부적인 규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필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잊을 수 없는 그날, 2009년 1월 20일 새벽

[기고][ 그날 - 용산철거민 학살 추모 9주기에 바쳐
2018.01.20 14:54:55

 

 

그날
 
그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발끝부터 화형당하던 
그날
가난한 이들의 비명소리조차 진압당하던 
그날
통곡도 절규도 경악도 수갑에 채워지던
그날
다섯 명의 전태일이 다시 한꺼번에 불태워지던
그날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이 다시 옥상으로 내몰리던
그날 
누군가가 다시 고문당하고 의문사 당하던 
그날 
중앙정보부 안가 7층에서 최종길이 다시 내던져지던 
그날 
신민당사 옥상에서 김경숙이 다시 뛰어내리던
그날 
신흥정밀옥상으로 내몰린 박영진의 몸에 다시 불길이 타오르던 
그날 
안양병원 옥상에서 다시 박창수가 내던져지던
그날 
부정투표함을 지키던 구로구청 옥상에서 다시 사람들이 뛰어내리던
그날 
접근금지의 비무장지대에서
천만 비정규직들이 이천 이백만 노동자 가족들이 
오백만 도시빈민들이 이백만 청년실업자들이 백만 이주노동자들이
오십만 장애인들이 다시 길 잃은 난민으로, 국외자로 몰리던 
 
그날 
재벌들의 앞날이 환해지던 
그날 
모든 금수저 특권층 대주주 가족들의 저녁이 풍성해지던
그날 
고위 관료들의 미래가 더욱 안전해지던
그날 
부패한 정치인들의 차기 차차기가 밝게 점쳐지던
그날 
진압책임자가 학살책임자의 총애를 받아
일본총영사로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등극하던 
그날 
 
그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어디에선가 불태워지는 가난한 자들의 절망을
오늘도 어디에선가 생의 주소지를 잃고 헤매는 이들의 막막함을
오늘도 헬조선의 비애를 숙명처럼 살아가야 하는  
모든 흙수저 N포세대 인생들의 가녀린 소망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모든 생의 아픔 곁에서
오늘도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갈 곳 잃고 서성이는  
다섯 철거민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철거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의 무한한 독점과 탐욕이라는 것을
진압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 소수의 권력과 특권이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언젠가는 꼭 이루고 말리라 약속하며 
눈물로 떠나 왔던 남일당 건물 위 파란 망루를
다른 꿈을 꾸는 이들의 작은 꼬뮌이었던 레아를 
작은 광주였던 그곳을
작은 1987이었던 그곳을 
작은 7.8.9였던 그곳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 남겨두고 온 나의 약속을 
잊을 수가 없다 
 

▲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최형락)

(덧말) 
 
오후 내내 몽롱한 상태에서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조금은 더 외롭고 가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너무 많은 말들과 갈등과 욕망들에 노출되어 있어서인지 뱃속이라도 비우고 싶었으리라.  
 
며칠 잠을 설친 탓도 있어서였을까. 고작 세 끼 굶은 것인데도 저물 무렵이 되자 나른한 정신이 허공으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 목디스크 증상으로 몇 달째 먹고 있는 ‘아편성 진통제’로도 느껴보지 못했던 몽롱함이 고단한 현실로부터 내 영혼을 떼어내 위무라도 해주는 듯, 과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 순간 밀려드는 졸음까지도 달콤. 까무룩하니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자정이 넘은 시간. 모두가 가고 난 사무실의 투명한 적막조차도 나쁘지 않았다. 언제쯤이나 나의 영혼은, 우리는 삶의 감미로움과 평온과 고요를 얻을 수 있을까.
 
괜한 상념을 접고,  
 
9년 전 용산 참사 현장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야 했다. 날이 밝으면 추모시 한 편을 다시 출력해 가슴에 담고 마석 모란공원으로 가야 하는 날. 
 
굳이 지금 와서 용산 철거민 참사의 내막과 의미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날 새벽 남일당 위 파란 망루 안에서 잠시 일렁이다 이내 거대한 불기둥으로 솟던 발화의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서울시장 시절 서울 전역 서민 주거지 100여 곳을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건설 지역으로 허가해 일부 자산가들과 투기 건설자본의 먹이를 만들어주고, 대통령 재임 시절 용산4가에서 철거민들의 첫 저항이 발생하자 발빠르게 대터러 진압부대를 투입해 신속하게 망루를 진압하게 했던 이명박을 역사의 법정에 꼭 세워야 한다는 말은 적지 않을 수 없다. 그 재빠른 진압의 노고를 인정받아 일본총영사로,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이제 다시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행세하고 있는 전임 서울경찰청장 김석기에 대해 분명히 단죄해야 한다는 분노의 말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다.  
 
잊을 수 없는 2009년 1월 20일 새벽. 
 
‘그날’은 가난한 철거민 다섯 명과 무고한 일선 경찰관 한 명만이 짓밟히고 죽임을 당한 날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거덜나있던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수천만 민중들의 인권이 처참하게 불태워진 날이었다. ‘그날’은 용산4가 철거민과 연대하던 타 지역 철거민들만이 끌려 간 날이 아니라, 토건 부동산 투기 공화국의 무한한 영화를 위해 집 가지지 못한 모든 자들의 권리가, 가난한 모든 이들의 최소 생존권이 재갈 물려 끌려 간 날이었다. ‘그날’은 철거민 다섯 명의 시신만이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힌 날이 아니라,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평화와 평등의 염원이 꽁꽁 얼려져 시대의 냉동고에 갇힌 날이었다.
 
‘그날’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2017년 촛불항쟁을 통해 몇 명의 권력자들과 자본가를 감옥으로 보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키워 온 보수금권의 토대와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 소수의 자본가들과 금수저 특권층들을 위한 온갖 혜택들은 여전히 넉넉한 대신, 흙수저 N포세대들의 절망은 끝나지 않고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들의 비참한 현실은 오늘도 명백한 진행형이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추모문화제 한번을 열기 위해 구속을 각오해야 했던 그 수많던 날들. 사과박스에 작은 스피커를 숨겨 들고 나가야 했던 청계광장에서의 매일 촛불. 녹아내린 파란 망루를 지키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던 남일당 앞 미사. 평화바람 유랑차를 끌고 용산으로 들어와 주셨던 문정현 신부님. 레아의 독립미디어센터, 끝나지 않는 미술전과 연극제. 두 달만에 긴급히 펴냈던 르뽀집 ‘여기 사람이 있다’와 문학인들의 연대 산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등등. 네 번의 점프 가투 끝에 잡혀 들어간 혜화경찰서 유치장. 철거민을 학살해두고 무슨 ‘서울 하이페스티벌’이냐고. 서울시청 광장 개막식 무대를 점거하고 올라가던 수많은 저항자들.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또 울고, 싸우고 또 싸우며 미친 듯 지내야 했던 2009년의 ‘그날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용산. 이명박이 비로소 역사의 법정에 서는 날. 김석기의 번지르한 양복깃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뱃지를 떼어내고 그 역시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날이면 ‘그날’ 우리 모두가 나눠 가져야 했던 뜨거운 불꽃상처 또한 조금은 식고 아물게 되는 걸까.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남아 있는 용산의 분노를 되새겨본다.
 
(2009년 용산참사 투쟁 당시 현장 낭송시 바로가기 ☞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송경동)
kakiru@pressian.com다른 글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현송월 등 북한 예술단 일행, 21일 서울·강릉 오가며 공연장 점검한다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8-01-20 21:34:47
수정 2018-01-20 21:34:47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북측 일정 중지로 사전점검단 파견 하루 순연...사유 확인 안 돼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이 시작된 15일 오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현송월 모란봉악단장이 참석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이 시작된 15일 오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현송월 모란봉악단장이 참석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평창 동계올림픽 예술단을 파견하기 위한 북한의 사전점검단이 21일 방남하기로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은 20일 오후 6시 40분경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단장 리선권 명의 통지문을 남북고위급회담 남측 수석대표 조명균 통일부 장관 앞으로 보냈다.

통지문에서 북측은 “예술단 파견을 위한 사전점검단을 21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파견하며, 일정은 이미 협의한 대로 하면 될 것”이라고 통지했다.

이에 정부는 북측 제의를 검토한 후 사전점검단이 21일 방남하는 것에 동의했다.

당초 북측의 사전점검단 방남은 20일로 예정돼 있었다. 이는 북측이 지난 19일 일정을 통지하고 우리 측이 동의하면서 결정됐다.

 

그러나 북측이 같은 날 밤 갑자기 ‘일정 중지’를 통보하면서 20일로 예정됐던 방남은 무산됐다.

이에 우리측은 20일 오전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 명의 전통문을 북측에 보내 사전점검단 파견을 중지한 사유를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북측은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21일로 방남 일정을 다시 통지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연락관을 통해서는 (사유가) 확인이 안 되는 것 같고, 내일 (사전점검단이) 오면 한 번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1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북한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 남북 고위급 실무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과 대표단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1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북한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 남북 고위급 실무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과 대표단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통일부 제공

일정을 제외한 북측의 사전점검단 구성 등은 모두 당초 협의한 내용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이끄는 7명의 사전점검단은 21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내려와서 1박 2일 동안 서울과 강릉의 공연장의 시설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번 북측의 사전점검단 파견은 지난 15일 예술단 파견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에서 합의된 사안이다.

당시 남북은 삼지연관현악단 140여명으로 구성된 북한 예술단이 서울과 강릉에서 1차례씩 공연을 하는 것과 이를 위한 사전점검단 방남에 합의했다.

한편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20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북측이 사전점검단 파견 일정을 갑자기 중단했던 것과 관련해 “여러 추정이 있지만 정부로서는 섣불리 예단하기보다 차분히 대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북한은 우리 언론 보도에 대해 불편한 반응 보여왔다”며 언론의 추측성 보도나 비판적 보도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정부는 현시점에서 마음을 모아서 평창을 평화올림픽으로 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북한주민들을 따뜻한 동포애로 맞아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가진 포용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종필이 명령하고 거지왕이 창조한 '생지옥'

[서산개척단⑫] "독재 좀 하면 어때!" JP가 설계한 서산개척단

18.01.20 20:08l최종 업데이트 18.01.20 20:08l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한 박정희 정권은 부랑자, 고아들을 충남 서산에 가뒀습니다. 바다를 막아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이들과의 강제 결혼을 위해 부녀자도 끌려왔습니다. 보상 대신 그들 앞에 놓인 것은 20년 상환으로 갚아야 할 빚 뿐. 대부업자는 국가입니다. [편집자말]

손연복씨를 만났다. 김종필 전 총리(JP)와 서산개척단의 연관성을 찾던 끝에 만난 인물이다. 서산개척단 연대장 출신인 손씨. 설득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2017년 초, 손씨는 조심스레 서산개척단 탄생 과정에 입을 열었다. '거지왕' 김춘삼과 김 전 총리가 핵심인물로 등장했다. 5.16 쿠데타 직후 손씨는 김춘삼과 함께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본부를 같이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5.16이 딱 나고 나니까 김춘삼씨가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본부를 간다고 그러더라고. 거기서 JP가 김춘삼을 만나서 '기왕에 혁명한 거 혁명정부가 수권능력을 펼칠 판을 짜자'는 거야. 그래서 사회 문제아들을 김춘삼씨에게 맡겨 가지고 5.16 정부가 통치한 거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자신의 자택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  김종필 전 국무총리. (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김춘삼은 1950년대 전국 10여 곳에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세웠다. 부랑아 구제 사업이 명분이었지 실상은 조직적 폭력 행위와 원생 착취로 악명이 높았다. 이와 동시에 원생을 이용한 개척단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1961년 5월 1일에는 '한국합심자활개척단'을 조직, 강원도에서 개척 사업을 진행했다. 그 직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김춘삼의 조직은 자연스럽게 국가재건최고회의로 흡수되게 됐다.

 

"JP가 전국 깡패 놈들과 거지들은 다 거지왕한테 맡기라고 해서 그놈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진주, 울산, 춘천, 영주, 태백 5개 지구 국토건설단에 잡아넣었어."

국토건설단이 창단 후 부랑아로 낙인찍힌 전국의 청년들이 납치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점차 사업은 위태로워졌다. 납치된 청년들이 현장을 계속 탈출했기 때문이다. 혁명정부는1961년 7월 7일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을 임명하고 정 장관을 통해 개척단 사업을 확대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서산개척단이다.
 

 좌로부터 서산개척단 연대장 시절 손연복, 1991년 서산시 의원으로 출마한 손연복의 선거 공보물, 1996년 자유민주연합 중앙당 건설분과위원장 당시 김종필과 함께 찍은 사진
▲  좌로부터 서산개척단 연대장 시절 손연복, 1991년 서산시 의원으로 출마한 손연복의 선거 공보물, 1996년 자유민주연합 중앙당 건설분과위원장 당시 김종필과 함께 찍은 사진
ⓒ 이조훈

관련사진보기


김종필은 이제라도 응답해야 한다 
 

손연복은 누구?
서산개척단 출신 손연복씨는, '거지왕의 아들'로 불렸다. 11살 거지들에게 붙잡혀 거지왕초 밑에서 동냥생활로 연명하다 부산에서 거지왕 김춘삼을 따르며 아버지로 부르게 됐다. 이후 서울역 앞으로 거처를 옮겨 부왕초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서울역 앞에서 잡힌 그는 서산개척단으로 끌려갔다. 

민정식 개척단장은 '거지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손씨를 간부로 승진시켰고 이후 연대장까지 발탁됐다. 이후 개척단 재정 관련 업무까지 맡게 된다. 정부에서 지급받은 보금품을 직접 인수하러 다니게 된 그는 민 단장이 개척사업의 지원금을 착복하고 관료들에게 상납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전국 거지 왕초들이 서산개척단에 끌려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외부세력의 힘을 이용하게 됐고, 개척단 해산 후 그 세력을 이용해 시의원에 출마해 서산시 시의원 및 부의장까지 지내게 된다. 충청지방에서 정치력을 확대한 그는 1991년 김종필이 총재로 있던 자유민주연합에서 건설분과위원장까지 맡게 된다. 

"자고 나면 사람이 줄어. 군사정부 혁명과업이 달성되기도 전에 사람이 없는 거야. 자꾸 도망가 버리니까. 그래서 민간으로 넘어온 게 서산지구 개척단이야." 

증거는 사진으로도 남았다. 서산개척단에서 당시 발행한 '형설촌 안내'라는 책자를 보면, 정희섭 보사부 장관이 개척단 현장을 내방한 사진이 등장한다. 개척단 사업의 민간 운영자는 민정식 단장으로 위촉된다. 그러나 실질적 운영은 중앙정보부가 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개척단 관련 공문서 중 일부 첩보 문서들은 대전 대공분실에서 발신해 충남도지사 또는 보건사회부 및 내무부로 이송됐음을 확인했다. 또한 개척단에서 일한 단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상시적으로 개척단 활동을 감시하고 이를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 개척단 주위로 정보부 사람들이 감시하고 다녔지. 주변에 나타나면 우리는 알지. 우리랑 옷도 다르고 모양새가 다르니까. 그렇게 사업이 잘 되는지 감시하고 다녔어." (정영철)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이 서산개척단을 내방, 박정희 대통령이 금일봉을 하사 - 형설촌 안내 책자, 1964년 발행
▲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이 서산개척단을 내방, 박정희 대통령이 금일봉을 하사 - 형설촌 안내 책자, 1964년 발행
ⓒ 이조훈

관련사진보기


1961년 6월 10일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현 국가정보원의 전신 기관이다. 창설 직후부터 1963년 1월까지 초대 부장은 김종필 전 총리였다. 개척 사업을 초기 단계부터 설계하고 이후 관리 감독한 조직의 수장이 JP였던 셈이다. 김 전 총리가 개척단 사업에 지속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는 아래 사진에 있다.
 

  대한자활개척단 발대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종필, 1968년 5월 13일
- 뒤로 대한자활개척단 단장 김춘삼의 모습이 보인다.
▲  대한자활개척단 발대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종필, 1968년 5월 13일 - 뒤로 대한자활개척단 단장 김춘삼의 모습이 보인다.
ⓒ 이조훈

관련사진보기


JP와 서산개척단의 연결 고리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1961년 충남대에서 열린 김종필 연설장을 찾은 안영진 전 <중도일보> 기자는 취재 당시 김 전 총리가 개척단에 대해 보인 관심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 기자는 "JP가 고향일이라 암암리 뒤에서 (개척단 사업에) 입김을 넣어준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JP가 연설을 하는 도중 내뱉은 말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차마 이 대목은 기사로 쓰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 그 자유 자유하는데, 지금 우리가 너무 가난하잖아? 앞으로 우리가 잘 살아야하는데, 설령 독재 좀 하면 어때!"

이렇게 설립된 개척단 사업의 자금은 미국의 원조사업 'PL-480'을 통해 가능했지만, 이 지원금은 정치자금으로 탈바꿈됐다.("지원금 빼돌려 대선자금으로"... 촘촘히 '부패 그물' 짠 박정희)

1966년 6월 서산개척단원 800여 명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여기에는 당시 정부가 개척단 사업에 사용해야 할 비용이 어떻게 유용됐는지를 묻는 내용이 있다.

"정부당국에서 1. 지원해주신 보조금이 어느 정도며 또 어떻게 사용된 것인지? 2. 외원당국에서 지원해주는 양곡은 얼마나 되며 또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처리되는지?3. 구호물자 등은 어디서 나오며 얼마나? 그러고 어떻게 나오는지? 또 그것을 매각했다면 얼마나 되는지?"

당시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사업에 관여한 채 지금까지 살아있는 핵심 정부관료, 김종필은 이제라도 응답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큰코영양 20만 떼죽음 원인은 세균 감염

조홍섭 2018. 01. 19
조회수 575 추천수 0
 
2015년 전체 62%인 20만마리 떼죽음
혹한 뒤 고온다습 기상이 면역약화 불러
 
s1.jpg» 2015년 큰코영양 떼죽음 현장. 매일 수천 마리의 영양이 증상을 보인 지 몇 시간 안에 죽었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큰코영양이 떼죽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15년 5월 중순 카자흐스탄 초원지대를 둘러본 수의학자들은 경악했다. 이제까지 간혹 벌어진 떼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기 때문이다. 
 
주로 암컷과 갓 태어난 새끼들이 입에서 거품을 뿜고 설사를 하며 죽어갔다. 임신하거나 분만을 한 암컷이 먼저 죽고 새끼가 뒤를 따랐다. 죽은 어미의 젖꼭지에 매달린 새끼도 있었다.
 
s2.jpg» 감염사태가 일어난 것은 새끼를 낳기 위해 암컷이 대규모로 모인 집단에서였다. 감염은 어미에서 새끼로 이어졌다. 세르게이 코멘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제공.
 
수백㎞ 범위의 초원에서 매일 수천 마리의 큰코영양이 죽었다. 사망률은 100%였고, 시료를 채취한 뒤 구덩이에 사체를 묻고 서둘러 다음 몰살 지점으로 이동해야 했다. 
 
당시 현장 조사를 벌인 스테펜 주터 카자흐스탄 생물다양성보전협회 국제 코디네이터는 “출산 집단 전체가 몰살한 이번 떼죽음 사태의 규모와 속도는 전례 없는 일로 다른 종에서 관찰된 적이 없다”며 온라인 과학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s3.jpg» 영양의 떼죽음이 워낙 빠르고 광범하게 일어나 신속하게 사체를 매장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세르게이 코멘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제공.
 
3주일 동안 계속된 재앙은 6월초 수그러들었지만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가장 높은 보전등급인 ‘위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큰코영양의 전체 개체수 가운데 62%인 약 20만 마리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대참사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했다. 죽은 영양에서 공통으로 검출된 세균에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지만, 이 세균이 흔한 장내세균이고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종류여서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큰코영양의 떼죽음 원인을 조사한 국제 연구진의 첫 번째 보고가 나왔다. 리처드 코크 영국 왕립수의대 수의학자 등 연구자들은 11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번 참사의 직접 원인을 출혈성 패혈증을 일으키는 세균(Pasteurella multocidat ype B) 감염이라고 확인하고, 감염이 번진 배경은 이례적으로 높은 습도와 온도라고 밝혔다.
 
s4.jpg» 조사단은 토양, 식물, 물, 곤충 등 자연환경뿐 아니라 가축 사육과의 관련성 등 다 학문적인 접근을 했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연구자들은 참사가 일어난 겨울 혹한이 덮친 뒤 봄에 기록적인 습도와 강수량, 고온 상태를 보였고, 이것이 세균 번성을 낳았다고 추정했다. 큰코영양은 이런 이상기상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출산을 위해 한 데 모인 상태에서 세균에 감염돼 집단 폐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어떤 경로로 감염이 이뤄졌는지, 다른 스트레스나 바이러스 감염이 대규모 세균 감염의 방아쇠 구실을 했는지 등은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s5.jpg» 2015년 죽은 수컷의 두개골. 뿔은 한약재로 쓰기 위해 잘려나갔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연구자들은 출산 집단이 패혈증으로 집단 폐사한 사례가 1981년과 1988년에도 발생했고,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떼죽음도 2010∼2011년과 2017년에 일어났다고 밝혔다.
 
유라시아 스텝지역에 서식하는 큰코영양은 혹독하고 변동이 심한 기후에 적응한 생활사를 영위한다.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가뭄 때 종종 떼죽음해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지만 이후 빠르게 군집을 회복한다. 새끼의 3분의 2가 쌍둥이인 것도 몰락에서 빠른 복원을 위한 적응이다.
 
s6.jpg» 큰코영양 새끼. 혹독한 기후와 수천㎞에 이르는 장거리 이동에 대비하기 위해 큰코영양은 체중 대비 가장 큰 새끼를 낳는 동물의 하나다. 카자흐스탄 큰코영양 건강 합동 모니터링 팀 제공.
 
이 동물의 유달리 길고 아래로 구부러진 코도 대륙성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장치이다. 한겨울에는 찬 공기가 직접 폐에 닿지 않도록 덥히고, 반대로 여름엔 콧구멍 속의 혈관에서 혈액을 식히는 구실을 한다.
 
고대 영양의 모습을 간직한 큰코영양은 한때 카스피해에서 몽골에 걸친 유라시아의 방대한 스텝 초원지대에 널리 분포했지만,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1920년 절멸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소련의 보전 노력으로 1950년엔 200만 마리까지 불었지만 소련 붕괴와 함께 한약재로 뿔을 팔기 위한 밀렵이 성행하면서 다시 멸종위기에 놓였다.
 
Philip Sclater_The_book_of_antelopes_(1894)_Saiga_tatarica.png» 1894년 필립 스클레이터가 그린 큰코영양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 영양은 스텝 지역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선 겨울이 워낙 추워 시든 식물이 썩지 않는데, 큰코영양이 이를 먹어 분해함으로써 영양분을 토양으로 돌려주는 구실을 한다. 큰코영양이 줄어 죽은 식물체가 늘어나면 대규모 산불의 원인이 될 수도 한다. 영양 자체는 늑대, 여우, 검독수리 등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s7.jpg» 큰코영양의 무리. 메마른 초원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며 수천㎞를 이동하며 살아간다. 세계적으로 가장 멸종위험 단계가 높은 ‘위급’으로 지정돼 있다. 야코프 페도로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패혈증을 일으키는 세균은 이 지역에 토착화했다”며 “앞으로 또 다른 떼죽음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또 기후변화와 함께 기상의 변동성이 커지고 강수량과 온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영양에게 위협이다. 연구자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밀렵 단속, 가축 방역, 영양 무리의 이동 경로 보장 등의 관리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ichard A. Kock et al, Saigas on the brink: Multidisciplinary analysis of the factors influencing mass mortality events, Kock et al., Sci. Adv. 2018;4: eaao2314, DOI: 10.1126/sciadv.aao231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