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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꽁꽁 얼어붙은 ‘염천교 수제화 거리’ 장인들의 ‘한숨’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7-12-18 10:02:44
수정 2017-12-18 10: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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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교 수제화 거리 모습
염천교 수제화 거리 모습ⓒ민중의소리
 

옛 서울 고가도로인 '서울로 7017' 인근에 있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바람에 옷 매무새를 만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분주했고, 바로 옆 가지런히 놓인 수제화에 눈길을 주는 손님들은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장인들은 가게를 지키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모던보이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곳은 1925년 일제시대 때 서울역 인근에 피혁창고가 만들어지면서 구두상인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공간이다. 광복 후에는 미군들의 군화를 수선해 팔기 시작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호황기 시절인 1970~1980년대 염천교 수제화가 국내 구두 시장을 주름잡았다. 주로 멋쟁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번쩍이는 신사화, 숙녀화 등 이른바 '살롱화'가 불티나게 팔렸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어디에나 흥망성쇠의 역사는 있는 법, 1990년대 후반부터 대형 제화업체와 값싼 중국산 제품의 등장, 온라인 쇼핑 등으로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거리에는 약 50개의 구두 가게와 공장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죠" 구두 가게 주인의 한숨

염천교 수제화 거리 가게에 댄스화가 진열된 모습
염천교 수제화 거리 가게에 댄스화가 진열된 모습ⓒ민중의소리

15일 오전 염천교 수제화 거리를 걸어 다니다 형형색색의 '댄스화'가 눈에 들어왔다. ㅂO 제화 사장인 전모(45)씨는 "매일 적자죠.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 사장은 뜨개질을 하며 손님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고가공원 공사로 침체됐던 수제화 거리의 경기는 서울로의 개방 후에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는 가게 안에서 보이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가리키며 "사람보다 자동차를 더 많이 봐요. 여기가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고가도로 공사 이후에도 가게 앞 도로인 칠패로가 온종일 정체를 빚으면서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이 됐다. 상인들은 이전에는 차를 대 놓고 신발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건의 하역작업이나 택배를 받기에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차가 없는 이른 새벽에야 간신히 차를 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제 거의 마지막이지" 장인들의 한숨

수제화를 만드는 공장의 모습
수제화를 만드는 공장의 모습ⓒ민중의소리
수제화 공장에서 장인들이 구두를 만드는 모습
수제화 공장에서 장인들이 구두를 만드는 모습ⓒ민중의소리

상인들의 한숨 섞인 사정을 들은 후 상점들 사이에 있는 지하에 으슥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곳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보니 가죽 냄새와 본드냄새가 섞인 냄새가 올라왔다. 이후 '탕 탕 탕' 일정한 박자에 맞춰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도매를 전문으로 하는 ㄷO제화의 구두 공장이었다.

"여기 있는 분들이 다 구두 장인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쑥스러운 듯한 구두 장인은 "다들 기술자지. 여기 30년 넘은 사람들이야"라고 소개했다. 5명의 구두 장인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자 마자 작업대로 돌아가 구두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신발 본을 내주는 사람인 패턴사, 재단사, 거기에 맞게 신발 앞 가죽을(가피)를 붙여주는 사람과, 발모양에 맞춰 바닥(저부) 작업으로 나뉘어 일한다.

바쁜 손놀림으로 구두를 만들던 장인들은 "요즘 누가 수제화를 만들려고 하겠어... 구두 만드는 거 배우는 사람은 없지"라고 말하며 못내 아쉬워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장인들도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일 자체가 도급제야. 하는 대로 먹는거지. 한 켤레 하면 얼마 먹고. 한달 월급제가 아니고. 요즘에는 일이 없으니까 오후 2~3시에 끝나. 하루 평균 20~30켤레씩 만들어."

"지금은 가면 갈수록 제조업들이 자꾸 죽는 거야.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 하나로면 온라인 쇼핑 다 하고 결제도 다 하고. 길거리 매장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죽지. 공장 같은 경우 거래처가 길거리 매장 쪽에 있다보니까 이 사람들이 장사가 안 되니까. 자동적으로 일의 양이 줄 수밖에 없지..."

작업하는 손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장인이 "손이 못 생겨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장인은 "왜? 금손이지"라고 받아쳤다. 장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작업을 이어나갔다.

"수제화를 안 신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신은 사람은 없다"

수제화 만드는 장인이 구두의 하부 작업을 하는 모습.
수제화 만드는 장인이 구두의 하부 작업을 하는 모습.ⓒ민중의소리
온라인 쇼핑을 통해 판매가 되는 수제화의 모습
온라인 쇼핑을 통해 판매가 되는 수제화의 모습ⓒ민중의소리

수제화 거리의 한쪽에서는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허름한 간판들 사이로 갓 들어온 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OO슈즈 김모(35)사장은 15년 동안 수제화 거리에서 장사해온 부모님을 이어받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꾸몄다. 가게의 사정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기존의 도소매 거래가 아닌 인터넷 블로그에 구두 사진을 올리고, 고객들에게 인터넷 주문을 받고 있다.

그는 "수제화를 안 신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신은 사람은 없다"며 "한 번 사면 계속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내피에서부터 외피까지 이태리산 가죽으로 만들어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메이커보다는 가격이 덜 나가고, 기성화보다는 발이 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에겐 수제화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고, 그 밑천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차 어디다 댈 때 있습니까?" 상인들의 고충

염천교 수제화 거리 옆 칠패로 도로
염천교 수제화 거리 옆 칠패로 도로ⓒ민중의소리

하지만 수제화 거리 상인들에게는 고충이 있다. 바로 주차장 문제다. 서울역 염천교 상우회 회장인 권기호 ㅁO제화 대표는 "손님들이 차 어디다 댈 때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얘기를 못 한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엔 식당에도 있는 주차공간이 없다, 전체적인 경기도 어려운데, 차까지 못 세우니까 더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저기 서부역 주차장이 있는데 저기다 박아놓고 여기까지 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가까운 곳도 올까 말까 한데 저 밑에까지 누가 주차해놓고 오겠냐"라고 하소연했다.

고가공원 개방 후 보행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는 예상을 빗나갔다. 권 대표는 "고가를 막아놓아서 차들이 앞으로 다니는 통에 차량 통행이 많아지다 보니까 손님들이 와서 신발 사가는 손님도 줄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고가도로로 가던 교통량까지 염천교 옆에 있는 칠패로로 다니다 보니 가게 앞에 잠시라도 차를 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고가도로가 없어진 후, 수제화 거리 상인들은 매출 감소라는 직접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수제화 거리 바로 길 건너에 있던 서소문공원도 공사가 한창이다. 상인들은 서소문 공원에 있던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두고 오던 손님들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상인들은 공사가 끝나면 주차장 문제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서울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권 대표는 "올해 초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선정했지만, 정작 지원해주는 것은 없다. 서울시가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고, 수제화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장인들을 위해 수제화 거리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곳에서 60년 가까이 가게를 했어요" 가게를 지키는 상인들

수제화 거리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다. 이곳을 지키며 자신의 '업'이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 때부터 가게를 시작해서 저까지 이어받고 있어요. 이곳에서 6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수제화 가게를 2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말하는 ㅅO제화 송모씨(45).

"여기 계신 분들은 내년 봄 되면 잘되겠지 생각하면서 버티고 계신 거예요. 제 생각에는 이 정도로 가면 올여름만 되면 가게들이 많이 빠져나갈 거 같아요" 점심을 먹지 않고 난로 곁에 앉아서 손님들 기다리는 송 사장. 먼지 하나 없이 반질반질한 신사화들도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결과적으로 도태되는 것 보면 집집마다 특성이 없는 거예요"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를 지키고 계신 분들은 이곳을 잃고 싶지 않은 거예요. 한평생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에겐 소중한 일터니까..."라고 수제화 거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면서 "여기 국민대 학생들도 콜라보(협업)를 하려고 하는데 초기 과정이지만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 나아지려고 하는 상황"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제화 거리의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을 기대하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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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비어천가 부르던 언론, ‘문재인 지지자 일베 닮았다’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박근혜 정권 때와 비교
 
임병도 | 2017-12-18 09:25: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씨가 방중했던 2013년 6월 29일 조선일보,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1면과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했던 2017년 12월 15일 1면

 

박근혜씨가 2013년 중국을 방문했던 6월 29일 신문 1면과 2017년 12월 15일의 지면을 비교해봤습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씨와 시진핑 주석이 마주 보면서 선물 교환을 하는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12월 15일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식을 마치고 떠나는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진만 보면 마치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일보>는 2013년 6월 29일에는 박근혜씨와 시진핑 주석이 악수를 하는 사진을 2017년 12월 15일에는 중국인 경호원에 폭행당한 한국 기자의 사진을 1면에 배치했습니다. 신문 지면 1면 사진은 가장 중요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한국일보>는 한국 기자 폭행을 더 중요하게 보도한 셈입니다.

<매일경제>는 박근혜씨 방중 때는 <박 대통령.한 중 기업인들과 세일즈 외교, 중국 내수시장 개척 정부가 적극 지원>이라는 제목과 함께 선물 교환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한국경제>도 <중국 내수시장 적극 진출하자>라는 제목으로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씨의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 때 <매일경제>는 폭행당한 기자를 병문안 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의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한국경제>는 <롯데 사드 피해 2조, 기업에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 기업 피해 사례를 1면에 보도했습니다. 마치 박근혜씨 방중은 기업을 위한 외교를 했고, 문재인 대통령 방중은 기업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인용, 박근혜 방중은 성공, 문재인 방중은 실패’

 

▲ 고려대 서진영 교수가 2013년 박근혜 방중 성과를 평가했던 한국경제 인터뷰와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평가한 2017년 12월 중앙선데이

 

2013년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박근혜씨 방중을 ‘중국 서열이 총출동한 호의를 보여줬다’라며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중 삼각협력체제가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외교적 업적이 분명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2017년 서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미국과 일본의 신뢰를 잃었다’라며 ‘한국은 미국 입장에선 배신자, 중국 입장에선 기회주의자로 비친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진영 교수는 ‘잘못된 외교를 계속해 나갈까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의 말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실패자로 규정하면 그 말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이 서 교수의 입을 빌려 나온 것이 아닐까요?


‘같은 기자, 그러나 정권에 따라 전혀 다른 보도’

 

▲한국일보 김광수 기자가 2015년 핫라인과 관련해 보도한 기사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과 연관된 핫라인 기사. 김 기자의 기사 제목과 내용은 일부 수정됐다.

 

2015년 한국일보 김광수 기자는 <한중 국방 핫라인 가동도 초읽기>라는 제목으로 ‘핫라인은 북한의 군사위협을 놓고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2017년 김 기자는 <핫라인? 수화기 안 들면 그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상대방 전화번호를 저장해도 스팸으로 돌리거나, 착신을 전환하거나, 아예 수화기를 꺼버리면 그만이다. 왜 그럴까? 전화 받기가 귀찮고 성가시기 때문이다.”라며 핫라인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보입니다.

김광수 기자의 기사는 이후 <[뒤끝뉴스] 한중 핫라인 개설, 갈 길이 멀다.>라는 제목으로 수정됐습니다. 기사 내용도 아래와 같이 수정됐습니다.

<수정 전>
그런데도 기존 라인부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정상간 핫라인을 또 만들겠다니 한편으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아빠가 기껏 사다 준 네발 자전거를 창고에 처박아 놓고는 두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누비겠다는 철부지 아이와 영락없이 닮았다.

<수정 후>
그런데도 기존 라인부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정상간 핫라인을 또 만들겠다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패션 외교에 네티즌 반응까지 보도, 문재인 지지자는 일베와 닮았다’

 

▲2013년 박근혜 방중 때 매일경제는 패션 외교를 칭찬했으며 한국경제는 중국 네티즌들이 박근혜 관련 글을 올리고 검색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MBN은 한국 기자 폭행과 김정숙 여사를 연관시키는 뉴스를 보도했고,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일베를 닮아간다고 주장했다.

 

2013년 6월 29일 <매일경제>는 박근혜씨의 방중을 많은 지면을 통해 중요하게 보도했습니다. 특히 <패션외교, 노랑,황금색.. 중국인 사로잡고 품격도 살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근혜씨의 패션외교를 칭송하다시피 했습니다. <한국경제>는 박씨의 방중이 중국에서 연일 화제라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 박근혜라는 단어가 검색순위 14위에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은 전혀 달랐습니다. <중국경호원 기자 폭행 나눌 때 김정숙 여사는 스카프 나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기자가 폭행당할 때 김정숙 여사는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기 바빴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한국경제> 유승호 기자는 <중 공안에 기자가 맞을 짓 했다. 극성 문 지지자들, 어느나라 국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일베를 닮아가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기자의 폭행으로 한국 언론사와 기자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왜 문재인 지지자들이 기자의 폭행에 냉소적으로 반응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는 공익적인 보도를 위해 존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 MB와 박근혜 정권 때 기자들이 작성했던 기사들은 ‘공익’이 아닌 권력자의 ‘사익’을 위한 보도가 많았습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은 ‘박비어천가’와 같은 기사가 아니라 ‘진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사드로 인한 경제적 보복 철회 등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경호원의 ‘한국 기자 폭행’이라는 가슴 아픈 일도 벌어졌습니다. 한국 기자 폭행 사건으로 기자들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많은 설전이 오고 갔습니다.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이 ‘언론의 문재인 홀대론’이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박근혜 정권 때와 비교해봤습니다.


‘신문 1면 보도에서 드러난 의도적인 폄하’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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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핵무력 완성 vs 최대의 압박 캠페인

<2017 송년특집 ②> 북미관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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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8  06: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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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박근혜 탄핵’에 이어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남북관계의 복원에 따른 한반도 정세 변화가 기대됐으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일말의 변화의 조짐도 없었으며, 오히려 북미관계는 ‘말폭탄’에 이은 ‘말전쟁’으로까지 나아가 설전(舌戰)이 실전(實戰)으로 비화할 정도로 험악해져 한반도는 몇 차례에 걸쳐 ‘전쟁 위기설’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북한은 11월 29일 발사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급인 화성 15호 성공을 두고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역시 실제 완성 단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화성 15호가 북핵 해법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이른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로 인한 좁은 운신의 폭에 허덕이다가, 지난 10월 31일 그간 한중관계 경색의 원인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해법을 담고 있는 합의문 발표를 계기로 한숨을 돌렸다가, 이번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등에 합의하고 사드 문제를 사실상 봉합함으로써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한반도 정세에서 유일하게 변화가 온 한중관계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하면서, 통일뉴스는 <2017년 송년특집>으로 ①북한 내부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한미·한중관계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해 9월 3일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시켰다. 11월 29일에는 (이론적으로) 미국 본토 타격 가능한 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성공시키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권좌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건설을 ‘지도’한지 6년만이다. 2012년 미국과의 ‘2.29 합의’ 파기, 핵문제 전면 재검토(외무성 비망록, 2012. 8. 31)를 거쳐,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천명(2013. 3. 31)한지 4년 8개월만이다. 

올해 1월 20일 미국에서는 정계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했다. 대북 접근법도 ‘전략적 인내’에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바뀌었다. 

두 접근법의 공통점은 억지(군사)-제재(경제)-고립(외교)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제재-대화 투트랙 접근법에서 대화(협상)의 문턱을 높이고 제재(압박)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둘 다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차이점은 (명목상으로라도) 군사 공격을 옵션으로 갖고 있느냐 여부다. ‘전략적 인내’를 실행한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등 동맹을 배려하여 선제타격 옵션 등을 거론하지 않았다. 반면, ‘최대의 압박 캠페인’을 이끄는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올해 4월과 8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잇따라 불거진 배경이다. 
     
‘물밑접촉’에서 ‘8월 위기’까지

   
▲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첫날 신년사를 발표했다. [노동신문 캡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첫날 신년사에서 새로 등장하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해 ‘관망’ 자세를 취했다. 핵 억제력 강화 조치를 꾸준히 실시하는 한편, 미국 신 행정부의 의중을 탐색하는 외교도 병행했다. 북한식 ‘투트랙’을 운용한 것이다. 

북미관계에 밝은 전직 고위당국자는 “양측이 협상으로 갈 좋은 기회를 최소 두 차례 놓쳤다”면서, 올해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사건’, 6월 북한에서 풀려난 오토 왐비어 씨의 사망 사건을 거론했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뉴욕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20여 차례 만나 ‘오토 왐비어 석방’을 매개로 북미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양측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인 3월초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과 조셉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간 뉴욕 회동을 주선했으나, 2월 13일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무산됐다. 

여진이 잦아든 5월초 최 국장과 윤 특별대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용히 만났다. 6월 6일 북한은 지난해 7월 미국의 김정은 위원장 제재에 반발하여 폐쇄했던 ‘뉴욕채널’을 다시 열고, 왐비어 씨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알렸다. 윤 특별대표는 6월 12일 의사 2명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13일 혼수 상태인 왐비어 씨를 데리고 나왔으나, 6일 후 왐비어 씨가 사망했다. 북미관계의 문도 다시 닫혔다. 

   
▲ 미 항공모함 '칼 빈슨호'(CVN 70)가 3월 15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사진출처-주한미군사령부]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북미대화가 중단된 직후, 전략폭격기 ‘B-1B’와 항공모함 ‘칼빈슨’ 등이 동원된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4월 위기설’에 휩싸였다. 

‘왐비어 사망사건’으로 다시 대화가 끊어지자, 북한은 7월 14일과 28일 ICBM ‘화성-14형’을 발사했다. 미국 측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예방전쟁(8.5)’,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8.8)’와 ‘군사행동 장착완료(8.9)’ 발언이 쏟아졌다. 8월 9일과 10일 북한은 각각 전략군 대변인, 김락겸 사령관 명의로 ‘화성-12형에 의한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발표하며 맞섰다. 8월 14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당분간 미국의 행동을 좀더 지켜보겠다”고 한발 물러서고, 8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하면서 ‘8월 위기’가 가까스로 봉합됐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vs 핵무력 완성 

8월 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각국의 노력으로 긴장됐던 조선(한)반도 정세에 일부 완화 신호가 나타났으나 8월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미국과 한국이 조만간 군사연습을 거행함에 따라 조선반도 정세가 다시 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8월 21일 한.미는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8월 29일 일본 열도 너머로 ‘화성-12형’을 발사했고, 9월 3일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실시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완전파괴를 위협했다. [미 국무부 페이스북 영상 캡처]

9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를 통해 “대북 압박 최대화”에 합의했다.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를 가졌으나, 자신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을 것”이라 협박하고, “‘로켓맨(김정은)’은 그 자신과 그 정권의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조롱했다.

사흘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9월 15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 이후, 북한은 75일 간 휴지기를 가졌다. 미국 국무부 일각에서 ‘60일 도발 중단 시 대화’ 구상을 제기했으나, 백악관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1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고 발표했다. ‘김정남 암살사건’과 ‘왐비어 사망사건’을 이유로 들었다. 

11월 29일 북한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또 하나의 신형 대륙간탄도로켓 무기체계’인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고,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12월 4~8일 미국은 한국과 함께 스텔스 전투기 F-22 6대 등 항공기 230여대를 한반도 인근에 투입해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다. 캐나다가 주최하는 유엔사 파견국 회의를 통해 대북 해상봉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 측에는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러시아 측에서는 북한 노동자 고용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접점은 없나? 

북한의 기본 입장은 지난 10월 20~21일 ‘모스크바 비확산회의’에서 최선희 국장의 발표에 충실하게 담겨 있다. 

최 국장은 “조선(북)은 군사적 활동과 제재·압박 등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는 한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핵보유국으로서의 조선과 공존하는 올바른 선택을 취한다면 출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적대시 정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 트윗 등 비방.중상, △군사연습과 전략자산 전개 등 군사.핵 위협, △미국 국내법(양자) 및 유엔 안보리 결의(다자)에 기초한 경제 제재를 열거했다. 

최 국장은 “조선은 현실을 직면하고 문제를 조미 간에 해결할 것”이나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 등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고, 대조선 제재 부과를 반대하는 데 있어 여타국들의 공동노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을 절대로 핵 보유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이 진지한 비핵화 협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최대의 압박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을 비핵화-평화협정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중국의 ‘쌍중단’ 구상에 반대하고 있다.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제재 해제 의사도 없으며, 북한 내 인권침해자들을 추궁하는 캠페인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미가 지금처럼 제 갈 길을 간다면 ‘공포의 균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IFANS 주요 국제문제분석 2017-46』)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북한이 2차 핵타격 능력을 확보하여 핵 억제력을 완성하고 한미가 확장억제 등 대응군사력을 증강하여 전쟁 위기와 군비경쟁이 고조되는 악순환이 상시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의 창이 아주 닫힌 것은 아니다. 지난 12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 측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15일에도 “소통 채널은 열어놓고 있다”고 확인했다. 외교소식통은 “백악관 관리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싶다”고 말했다.  

   
▲ 펠트먼(왼쪽)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 7일 평양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났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지난 5~9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리용호 외무상 등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및 안보 상황의 심각성에 뜻을 같이 하고 유엔과 북한 간 의사소통 정례화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소통 채널 구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한이 유엔을 중재자 또는 완충지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내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 메시지를 발신한다면 그것 또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오른 것이 국면 전환을 위한 첫발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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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째 비어 있는 피고인석…‘불통’ 박근혜는 바뀌지 않았다

등록 :2017-12-17 09:44수정 :2017-12-17 10:14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⑫ 박근혜 탄핵 1년

 

 

최다 공범 최순실엔 25년 구형
이영선·장시호 등 유죄 판결문엔
일관되게 “대통령 지시” 판단
국정농단 1심 ‘박근혜 재판’만 남아

 

 

탄핵 법정에선 “사회 통념”
형사 법정에선 “정치 보복 당해”
피고인 없는 궐석재판만 세 차례
국선변호인이 ‘내심’ 짐작해 변론

 

 

 

지금으로부터 꼬박 1년 전인 2016년 12월9일 금요일 오후 4시10분. 영상 기온을 가까스로 웃도는 추운 날씨에 사뭇 뜨거운 공기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주변을 데웠다. 헌정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순간이었다. 1시간40분 뒤,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됐고 사건번호 일곱 글자가 이후 대한민국의 1년을 바꿨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과 비리 그리고 공권력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배경으로 한 사익의 추구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국민은 이러한 비리가 단순히 측근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본인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점에 분노와 허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 이 탄핵소추로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의사와 신임을 배반하는 권한행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준엄한 헌법 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탄핵소추 의결서 속 피청구인 박근혜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민간인 최순실씨의 대리인에 가까웠다. 대통령으로서 법률과 헌법 수호 의무에 눈감은 채 ‘40년 지기’ 최씨에게 권력을 위임하다시피 했단 내용이었다.

 

박 전 대통령 생각은 달랐다. 직무가 정지된 지 이레 만에 헌재에 낸 첫 답변서를 통해 그는 침묵을 깼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해도 이는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White House Bubble·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갇혀 외부와 고립되는 상황).”

 

“대통령이 최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씨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의 형사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의 정신에 위배된다.”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 총량 대비 1% 미만이다.”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을 채우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촛불과도 온도 차가 나는 답변이었다. 이후 92일간 탄핵심판이 이어지는 동안 박 전 대통령 쪽은 헌재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리인’으로 묘사하고, “부양해야 할 자식 없이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을 따뜻한 시각에서 봐달라”는 등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지는 발언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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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정치투쟁 고수하는 ‘피고인 박근혜’

 

1년 뒤,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아니라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된 박근혜는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구치소로부터 인치 보고서가 왔습니다. 피고인이 법정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있고 법정에 인치하기 곤란하다는 취지의 보고서입니다. 박근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의 인치도 현저히 곤란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에 의해서 피고인 출석 없이 그대로 공판 절차 진행하겠습니다.”(12월12일 김세윤 부장판사)

 

지난 10월16일 박 전 대통령이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정치투쟁을 선포한 뒤 피고인석은 8주째 덩그러니 비어 있다. 피고인 없이 열리는 궐석재판만 세 차례 열렸다. 접견을 거부하는 피고인 대신 다섯명의 국선변호인이 그의 내심을 미루어 ‘짐작’하며 변론할 뿐이다.

 

“(문체부로부터 지원 배제 리스트를) 받은 뒤 여러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이름이 튀거나 청와대로 보냈을 때 배제될 수 있는 단체들은 아예 문체부에 (명단을 보낼 때부터) 단체명과 대표자명을 바꿨습니다. 일종의 허위보고 내지는 조작을 한 겁니다. 선정이 위험한 단체들에는 전화해서 ‘이번에 말고 다음번에 신청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도 했습니다. 심의위원들에게는 ‘상부기관에서 이런 게 왔으니 심의위원 보이콧을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조건부 탈락’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고 보고하고 실제로는 일정 조건이 되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번째 궐석재판이 열린 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아무개 본부장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집행 과정을 증언했다. 문체부와 윗선으로부터 “청와대가 싫어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를 요구받았고, 배제 대상을 줄이기 위해 갖은 고육지책을 썼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저도 왜 지난 3년 동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몸담은 현장에서는 저더러 부역자라며 손가락질합니다. 박 전 대통령한테 책임을 꼭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랙리스트’ 업무는 피해자뿐 아니라 대다수 집행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김씨 말을 들어야 할 피고인 박근혜는 자리에 없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지난 14일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지난 14일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이란 현실도, 국정농단의 정점이란 혐의도 부정하지만, 법의 판단은 다르다.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2017년 3월10일, 헌재 파면 결정)

 

탄핵심판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끝내는 데 그쳤지만, 형사재판은 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16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밖으로 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일주일에 한번꼴로 속속 날아드는 공범들의 유죄 판결은 박 전 대통령에겐 암울한 소식이다.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11월15일 선고), 케이티(KT) 인사 청탁 및 68억 광고 수주 압력 행위의 공범인 차은택씨(11월22일)에 이어 최씨 조카 장시호씨 등이 삼성과 문체부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 지원을 강요한 혐의로 지난 6일 유죄를 선고받았다. 일찌감치 선고가 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포함하면 관련 사건 8건 중 6건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상황이다.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 전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은 더 작아 보인다.

 

“피고인의 지위나 업무 내용 등에 비추면 무면허 의료 행위를 청와대 내에서도 받으려는 대통령의 의사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서울고법 형사5부,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 ‘의료법 위반 방조’ 2심 선고)

 

“삼성전자의 영재센터 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이 부회장에 대한 요청과 이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장시호씨 1심 선고)

 

11개 혐의 ‘최다 공범’ 최순실씨 역시 내년 1월26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4일 최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하며 1년을 달린 국정농단 ‘1호’ 재판을 마무리했다.

 

“피고인은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과 끝입니다. 피고인은 박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로서 친분관계를 이용해 소위 지난 정부의 ‘비선 실세’로서 정부조직과 민간기업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된 국가위기 사태를 유발한 장본인입니다.”(검찰)

 

“재판 내내 피고인이 본건 범행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별다른 근거 없이 검찰 및 특검을 비난하는 법정 태도를 보며 참으로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국민의 가슴에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줬습니다.”(특검)

 

징역 25년 구형에 최씨는 무너졌다. 비명과 오열이 섞인 말을 늘어놓으며 격렬히 저항한 뒤 조기퇴정했다.

 

“저는 박 대통령이 젊은 시절 그분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딛고 일어난 그분의 강한 모습에 존경과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그분을 40년 동안 곁에서 지켜온 것뿐입니다. 사실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려운 시간이 많았고 박 대통령을 탄압하기 위해 정권마다 저희에게 이뤄진 세무조사와 의혹 제기는 완전히 제 삶을 무너지게 했고 딸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받아 어린 학생의 꿈은 없어져버렸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통령이 되셨을 때 떠났어야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나 떠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이런 국정농단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을 박 대통령과 충격을 받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반성은 없었다. 최씨는 ‘비선 실세’라는 말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자신은 ‘투명인간’이라고 했다. 이경재 변호사 역시 “최씨는 드러나지 않은 대통령의 조력자”라며 거들었다. 투명인간이든 숨은 조력자든 공직자에겐 그 존재만으로 치명적이라는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과 그를 보좌한 자신에 대한 연민을 토해내며 23분간의 최후진술을 끝맺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 곁에서 투명인간같이 살아온 삶은 정말 어려웠고, 제 개인의 삶은 실종되었고 결국 가족들의 많은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결코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 어떤 사익도 추구하지 않았고 어떤 이익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씨를 끝으로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은 박 전 대통령 사건만 남겨 두게 됐다.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된 탄핵을 막을 기회는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탄핵 직전 박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진실을 말할 기회를 여러 차례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거짓말을 내놓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지난해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장에 나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꿋꿋했다.

 

“최순실을 제가 알았다면 무언가 연락을 하거나 통화라도 한번 있지 않겠습니까?”(김기춘 전 실장)

 

“최순실을 언제 알았습니까?”(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이번에 태블릿피시가 노출되어 가지고 이름이 나와서 알았습니다.”(김)

 

“(정윤회 문건을 제시하며) ‘최태민 목사의 5녀(女) 최순실’ 이렇게 ‘정윤회 부’라고 등장하거든요.”(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착각했습니다.”(김)

 

“정말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을 하십니까? 여기 첫 문장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최순실입니다.”(박)

 

“본 지가 오래돼서 착각했습니다.”(김)

 

“아직도 대통령을 매력적(charming)이고, 위엄(dignity)하고, 엘레강스(elegance) 우아하다’고 생각합니까?”(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대답하세요.”(안)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까?”(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김)(2016년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지근거리에서 국정농단에 눈감았던 참모들은 탄핵을 막지 못했고, 끝내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과오로만 남은 박근혜 정부 4년을 돌이켜보며, 박 전 대통령과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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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만의 졸업장, 故백남기 명예학사학위 수여식…김상곤 “농민열사로 부르고자 한다”

눈물 흘리는 故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경숙 여사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7-12-16 20:13:22
수정 2017-12-16 20: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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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저는 고인을 ‘백남기 농민열사’로 불러드리고자 합니다. 고인의 정의로운 희생은 촛불혁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문재인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백남기 농민열사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 정신은 시대와 함께 숨 쉴 것이라 생각하며 저부터 그 정신 이어받아 선생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6일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김상곤 사회부총리의 말이다. 그는 고인을 “농민열사”라고 칭하며 “문재인 정부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부당하고 억울함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이 적폐청산의 정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수여식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백남기 농민열사의 아내 박경숙 여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중앙대학교는 이날 서울캠퍼스 대학원 5층 대회의실에서 수여식을 열었다. 수여식에서 대학 측은 유가족 대표인 백도라지씨에게 백남기 농민 명예졸업증서 및 공로패를 전달했다. 수여식에는 김 부총리 외에도 김영진·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창수 대학총장이 참석했다. 유가족으로는 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경숙 여사와 딸 백도라지, 아들 백두산씨가 참석했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과 백남기 농민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이명준씨 및 선후배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각계각층의 시민사회 대표자들도 수여식을 찾았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故백남기 농민열사, 49년만의 졸업장
“중앙대에 백남기 동상을 세워달라”

이날 故 백남기 농민열사는 중앙대학교 68학번 행정학과 명예졸업생이 됐다. 대학입학 이후 49년만의 일이다.

그는 대학입학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한 평생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1971년 위수령 시위로 제적을 당했고, 1973년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가 수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1980년 복교한 뒤 유신잔당 장례식과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등을 주도했다. 이같은 활동으로 5월17일 신군부의 계엄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과 수감생활을 겪었다. 학교에서마저 퇴학을 당했다. 이후 고향 보성으로 귀향해 가톨릭농민회에 가입, 농촌살리기 운동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2015년 11월14일 농민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317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백남기 농민은 중환자실서 생을 마감했다.

백남기 농민 유가족에 따르면, 중앙대학교 민주동문회가 백남기 농민열사의 명예졸업장을 추진하고 학교가 준비해 이날 수여식이 열리게 됐다. 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께 49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만…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라는 빡빡한 시스템 안에서 이례적인 명예수여식자리를 마련해 준 아버지 동문들과 학교관계자들, 이 자리를 찾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수여식에서 백남기 농민열사와 함께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중대 신문방송학과 69학번 이명준(70)씨는 “의혈 탑에 백남기 농민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에 평생을 몸 바친 사람은 몇 없다”며 “백남기 농민은 중앙대학교의 창학이념인 ‘의와 참’ 정신이자 촛불혁명의 중요한 상징이기에 동상을 세워줄 것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촛불의 출발을 백남기 농민이 이루었고, 평화적 시위로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촛불혁명을 말할 때 백남기 농민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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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침묵 속에 아이들이 산채로 태워지고 있다

[함께 사는 길] 제국주의가 낳은 로힝야족의 비극
 
 
"군인들이 아이들을 산채로 태웠고,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했다. 달아나는 주민들에게는 총격을 가했다. 미얀마 군의 인권유린은 사실이며 폭력은 폭넓고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를 비롯한 58개 국제 시민사회 인권단체들이 지난 11월 2일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서한의 일부다. 이들은 잔혹 행위를 벌이고 있는 미얀마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른 경제 제재를 촉구했다. 미얀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보트를 타고 미얀마를 탈출해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족. ⓒDan Kitwood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소수민족인 로힝야(Rohingya)족에 대한 인종청소 문제는 미얀마 라카인(Rakhine)주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는 수십 년에 걸친 군부독재 끝에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를 향한 과도기를 밟아 가고 있던 터였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8월 일어났다.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이 8월 25일 라카인주에서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항전을 선포하고, 국경 인근의 경찰 초소 30여 곳을 습격한 것이다. 이에 미얀마 군은 반군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병력을 투입해 군사작전을 펼쳤다. 토벌과 다름없는 무차별 군사작전은 두 달 넘게 계속됐고, 그 결과 60만 명 넘는 로힝야족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미얀마 군이 토벌 작전을 벌이며 살인, 방화, 성폭행 등을 일삼았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국제 민간기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며 국제사회의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의 이번 로힝야족 사태를 '인종 청소'로 규정, 미얀마 정부를 향해 군사작전의 즉각 중단과 국제 구호단체가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촉구하고 있다. 

인구 5500만 명의 미얀마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불교를 믿는 버마 족이 68퍼센트로 제일 많으며 샨족(9퍼센트), 카렌족(7퍼센트), 라카인족(4퍼센트) 등 소수민족의 수도 매우 다양하고 많다. 로힝야족은 인구 2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이며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다.  

로힝야족은 전 세계에 200만 명이 있으며, 미얀마에 1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로힝야족은 원래 남아시아 출신으로 인도 인근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았다.  

하지만 1885년 영국은 미얀마를 인도의 한 주로 편입하면서 로힝야족을 비롯한 인도인들을 미얀마로 강제이주 시킨 뒤, 미얀마 인들을 소작농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는 영국의 분리통치 지배방식의 일환이었다. 분리통치란 언어, 인종, 이념 등이 다른 부족들을 서로 싸우게 해서 약해진 양쪽을 적은 힘으로 동시에 제압하는 전략을 뜻한다. 

로힝야족은 영국의 비호 아래 미얀마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고, 각 지방의 주요 관직에 배치되어 영국의 미얀마 수탈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로힝야족은 영국 편에 서서 많은 미얀마 인을 살상하기도 했다.  

르완다 인종청소 이후 최악의 참사 
 

▲18살 소년은 로힝야족이란 이유로 버마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았다. ⓒDan Kitwood

로힝야족 갈등은 과거 제국주의 전쟁의 소산인 한편 현대 미얀마 정부가 야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미얀마는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미얀마는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취급해왔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 주에 몰아넣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금했다. 모든 참정권을 박탈하고 2인 이상 자녀를 갖는 일도 막았다. 이 같은 악조건에서 로힝야족 청년들은 IS 등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들게 됐고 미얀마-로힝야족 사태는 폭력의 악순환에 걸려들었다. 

역사적 증오 속에 반목해 왔던 로힝야족에 대해 미얀마 정부군은 지난 8월 로힝야족 ARSA의 공격을 빌미로 탄압을 본격화했다. 무자비한 폭력과 강간, 살인을 피해 로힝야족은 이웃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 이동한 난민만 60만 명을 넘어섰다고 알려졌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11개 로힝야 난민 수용소 가운데 6개가 최근 지어졌다.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 대란을 치르며 미얀마에 항의하는 중이다.  

하지만 난민송환을 위한 방글라데시-미얀마 간 양국 회담에서 미얀마는 하루에 300명만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얀마는 꼼꼼한 신분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지만 이 경우 전체 난민송환에 6년 이상이 소요돼 방글라데시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난민 대부분이 실제 미얀마 국적이 없고, 미얀마 내 거주 사실을 증명할 서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힝야족 사태로 인해 미얀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자문역을 맡고 있는 아웅산 수치가 현 상황에 침묵하는 것에 대하여 실망스럽다는 여론이 높다. 한 편에서는 아웅산 수치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유니세프는 8월 25일 이래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 아동 5만9000여 명을 진찰한 결과, 1970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며 7000명은 보통 상태의 영상실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휴먼라이츠워치는 미얀마 군인들이 로힝야족 여성과 소녀들을 상대로 집단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은 이번 사태를 1994년 르완다 인종청소 이후 최악의 참사로 규정했다. 

미얀마 정부가 폭력의 악순환 끊어야  

유엔난민기구는 전 세계 75개국 320만 명이 국적 없이 살고 있는 문제가 있으며 실제 무국적자는 10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얀마 로힝야족, 시리아 쿠르드족, 옛 유고연방의 집시, 케냐 펨바족 등이 무국적자로 방치되어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과거사는 안타깝지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미얀마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잔혹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arqus@ekara.org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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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법통"

(추가) 충칭 임정청사 방문,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와 오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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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6  14: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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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와 함께 16일 오전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방문, 김구 흉상에 헌화 묵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 2017.12.16.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충칭(中京)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고 방명록에 이같이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0분(이하 현지시간, 한국시간 10시 30분) 수행단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을 찾아 김구 주석이 사용했던 ‘주석 판공실’ 등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간담회를 갖고 “여기 와서 보니 우리 선열들이 중국 각지를 떠돌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바쳤던 그런 피와 눈물, 그리고 혼과 숨결을 잘 느낄 수가 있었다”며 “우리 선열들의 강인한 독립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임시정부는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법통이다”며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건국의 시작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고 재확인하고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면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고, 그것은 곧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된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해방 정국에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을 이끌지 못했다는 점이 우리로선 한스러운 부분”이라며 “앞으로 기념사업 통해서라도, 임시정부 기념관 통해서라도 법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뉴라이트 계열 등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삼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 내부에 있는 김구 주석이 사용했던 ‘주석 판공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에 전시된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문 대통령은 “100주년 이 기간 동안 국내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한다”며 “부지는 마련이 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모든 힘을 다해 조기에 임시정부 기념관이 국내에서도 지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중국 각지에 흩어진 과거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최선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아직까지 광복군 총사령부는 복원되지 못했다”며 “총사령부 건물도 빠른 시일 내에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말 여기 와서 보니 가슴이 메인다”며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나라도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히고 “우리가 2019년에 맞이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 100주년의 정신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국격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임정청사를 찾아간 문재인 대통령이 수행단과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렇게 대통령께서 방문한 것에 대해 정말 기쁘다”며 “이 지역은 당시에 내 집이라 할 정도로 살다시피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고 참석자들을 소개했다.

이종찬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은 “여기(중국) 유족들은 사실은 서울에 와서도 갈 데가 없었다”며 “대통령께서 용단을 내리셔서 이 기념관(서울 임정기념관)을 마련해 주신 것은 참으로 감동스러운 일”이라고 사례했다.

이어 “임시정부의 정신은 자주, 화합, 평화와 민주”라며 “이제 2019년이 되면 또 다른 세기가 시작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테이프 끊는 첫 대통령이 돼서 새 임시정부 기념관이 서울에 섦으로써 그런 것이 다시 강조되는 시기가 오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달 선생의 후손 이소심 여사는 “충칭은 우리 대한민국에게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임시정부 청사는 6년간 있었는데 정치, 군사, 외교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성과가 많았다”며 “한․중 양국 우의가 앞으로 영원히 계속되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충칭 임정청사 방문에는 김정숙 여사와 강경화 외교장관, 노영민 주중국대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등 수행단과 특별수행원인 이해찬․송영길․박병석․박정 의원, 김구 선생 주치의였던 유진동 선생의 후손 유수동 선생 등 독립유공자 후손 6명이 참석했다.

   
▲ 충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와 오찬을 가졌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 오찬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천민얼 당서기가 환담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 오전 11시 35분 충칭시 유주빈관 3호에서 천민얼(陈敏尔) 충칭시 당서기와 오찬을 갖고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으며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 사업’ 재개에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충칭은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초한지와 삼국지의 역사적 배경이기도 하지만 우리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와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이고 또 주은래 등 중국 지도자들과 활발히 교류를 하고 협력했던 그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며 “그간 충칭시 정부가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 관리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주신데 대해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충칭은 역사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그런 대단히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한-충칭 간 경제협력의 확대가 중국의 서부대개발과 또 중국의 균형발전에 아주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천민얼 서기는 “이번 중국 방문 기간에 특별히 우리 충칭시를 방문해 주신데 대해 뜨거운 환영의 말씀드린다”고 인사하고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적 관계, 우리 사이의 공동적 우정하고 기억할 만한 옛날의 일도 기념할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도 우리 사이의 실무적 협력을 강화할 수가 있다”고 화답했다.

   
▲ 오찬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천민얼 당서기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 국빈방문 수행단과 충칭시 간부들이 배석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오찬 간담회가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천민얼 당서기가 충칭시 독립운동 유적지 중 하나인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 사업’을 재개한다는데 합의했다고 전했다.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은 이전 정부에서 합의됐으나, 사드 문제로 중단됐고, 문 대통령이 14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던 사안이다.

윤 수석에 따르면, 천민얼 당서기는 “충칭시는 중·한 관계 우호협력을 위해 특별한 역할을 하겠다”며, “충칭 내 한국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연구하고, 충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천민얼 당서기와의 오찬에는 김동연 부총리, 강경화 외교부장관, 노영민 주중국대사, 정의용 안보실장,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등 우리 측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 등이 배석했으며, 중국측에서는 장궈칭 충칭시장, 추궈홍 주한국대사, 탕량즈 충칭시 부서기, 왕센강 충칭시당위 상무위원, 류구이핑 충칭시 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천민얼(57) 충칭시 당서기는 지난 10월 19차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25명)에 선출된 3명의 1960년대생 위원 중 한 명으로 시진핑 주석의 이후 차기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추가,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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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을 연발케 한 낙동강의 '무서운' 복원력

[현장] 보 개방 이후 ‘낙동강 네트워크’의 현장조사에 동행해보니

17.12.16 19:00l최종 업데이트 17.12.16 19:00l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자, 황강 합수부에 돌아온 거대한 모래톱. 합천보 쪽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모래톱까지 상당히 넓은 면적의 모래톱이 돌아왔다.
▲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자, 황강 합수부에 돌아온 거대한 모래톱. 합천보 쪽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모래톱까지 상당히 넓은 면적의 모래톱이 돌아왔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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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모래톱은 강 반대편까지 길게 뻗어있다.
▲  돌아온 모래톱은 강 반대편까지 길게 뻗어있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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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모래톱 좀 봐라, 정말 놀랍데이, 강이 이렇게 흐르기만 하면 강은 지가 알아서 회복해간다 카이. 4대강사업 전의 여 모습이 그대로 돌아온 거 같다 카이. 모래톱이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마 옛날 그대로다. 아이 좋아라."

수문을 연 낙동강 모니터링의 안내를 맡은 '낙동강 네트워크'(낙동강의 수질과 수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결성된 민관협의 기구로 낙동강 전수계 환경단체 회원 및 낙동강유역청의 실무자들로 구성됨)의 임희자 공동집행위원장은 감탄을 연발했다.

모래톱의 회복과 강의 무서운 복원력

그랬다. 합천창녕보(이하 합천보) 아래는 황강 합수부에서부터 그 상류 쪽으로 모래톱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지난달과는 그 모습이 또 달랐다. 깨끗하고 드넓은 모래톱은 강의 한가운데를 지나 반대쪽 제방으로 내달려 거의 50미터 정도의 거리만 남겨두었다. 반대편 제방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조금만 더 모래톱이 회복되면 반대편까지 완전히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돌아온 모래톱이 강 건너편까지 길게 뻗어 곧 강 전체를 완전히 뒤덮을 것 같다.
▲  돌아온 모래톱이 강 건너편까지 길게 뻗어 곧 강 전체를 완전히 뒤덮을 것 같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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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되면 이 일대는 완전히 재자연화가 완성된 모습일 터. 임희자 공동집행위원장이 감탄을 연발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식물사회학이자, 저서 <식물생태보감>으로 유명한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가 말하는 4대강 사업의 가장 심각한 생태적 문제인 이른바 "건너지 못하는 강으로서의 4대강사업의 병폐"를 완전 극복하게 되는 현장인 것이다.

4대강 사업은 강의 수심을 평균 6미터 깊이로 파고, 거대한 보로 물을 막았기 때문에 평균 강 수위가 6미터 이상이고 깊은 곳은 10미터가 넘어가는 곳도 있다. 그로 인해 그동안 낮은 낙동강을 맘껏 건너다녔던 야생동물들은 더 이상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어, 서식처가 반토막 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김종원 교수는 "서식처가 반 토막 나면서 야생동물의 로드킬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 했고, 그의 주장은 강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로드킬 현장이 증명해줬다. 
 

 낙동강 네트워크 소속 단체 회원들이 낙동강으로 걸어들어가, 되돌아 온 모래톱 위를 밟아보고 있다.
▲  낙동강 네트워크 소속 단체 회원들이 낙동강으로 걸어들어가, 되돌아 온 모래톱 위를 밟아보고 있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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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가? 모래톱 곳곳에서 수달의 흔적들도 발견된다. 수달이 놀고간 모래톱의 흔적과 그 위에 싸질러 놓은 앙증맞은 수달 똥(이날 수달 똥에는 기생충인 리굴라 촌충이 포함돼 있었다. 아마도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를 잡아먹고 그것이 배변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설물의 흔적은 낙동강에서 왕왕 목격이 되었다)은 이곳의 낙동강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모래톱 위 수달의 흔적. 모래톱이 복원되면서 강이 되살아나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도 돌아왔다.
▲  모래톱 위 수달의 흔적. 모래톱이 복원되면서 강이 되살아나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도 돌아왔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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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달의 똥.
▲  수달의 똥.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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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황강 합수부 일대는 창녕함안보(이하 함안보) 관리수위의 영향을 받는다. 12일 현재 함안보의 수위는 2.8미터로 원래 관리수위 4.8미터에서 2미터나 내려가 있는 상태다. ㅊ최대 2.2미터까지 내리기로 했으니 아직 60센티미터 수위가 더 내려갈 수 있다. 그리되면 이 모래톱이 또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앞선다.
 

 낙동강 황강 합수부가 4대강 사업 이전의 모습으로 거의 돌아왔다. 강의 복원력이 무섭다.
▲  낙동강 황강 합수부가 4대강 사업 이전의 모습으로 거의 돌아왔다. 강의 복원력이 무섭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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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무서운 복원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랄까. 그래서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가볍고, 이곳에서 대자연의 경외감을 절로 느끼게 된다. 

낙동강의 지천도 다시 살아난다 

자연의 무서운 복원력은 조금 더 상류에 위치한 지천인 회천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회천은 합천보 2킬로미터 상류 지점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지천으로 4대강 사업 전에는 모래톱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낙동강 제1지류인 모래강 내성천에 견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합천보 관리수위를 해발 10.5미터로 관리하면서 회천의 수위도 동반 상승했다. 회천의 모래톱들은 거의 강물에 잠겨버렸다. 회천 합수부부터 강이 흐르지 못하고 그 상류 4~5킬로미터 지점까지 낙동강 물로 뒤덮여 버리게 된 것이다.

 합천보 수문을 열기 전 낙동강 강물이 역류해 회천의 모래톱을 완전히 뒤덮은 모습
▲  합천보 수문을 열기 전 낙동강 강물이 역류해 회천의 모래톱을 완전히 뒤덮은 모습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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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더 이상 회천의 모래톱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많던 회천의 재첩들도 동시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런 회천에도 합천보 수문을 열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12일 현재 합천보 수위가 7.8미터(합천보 관리수위는 원래 해발 10.5미터)로 관리수위보다 2.7미터가 내려갔고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아직 합수부는 물에 잠겨 있지만, 그 상류 1킬로미터 지점부터 모래톱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깨끗하고 드넓은 회천의 모래톱을 다시 보게 되니, 정말 가슴이 쿵쿵 뛰는 것 같았어예, 놀랍지 않습니꺼."  

낙동강 네트워크 임희자 공동집행위원장은 감격에 겨워 함께 모니터링 나온 낙동강 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에게 신나서 설명했다.  
 

 강물이 빠지자 되돌아온 회천의 모래톱. 거의 4대강 사업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  강물이 빠지자 되돌아온 회천의 모래톱. 거의 4대강 사업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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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또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내려가 확인을 해보니까 모래톱 바로 밑에는 펄이라예, 그리고 그 아래는 또 모래고예, 그러니까 펄, 모래, 펄, 모래... 이런 식으로 층층이 쌓인 거라예."

그러니까 비가 올 때 위에서부터 몰려왔던 모래가 강바닥에 쌓이면 그 위헤 펄이 쌓이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모래톱이 퇴적됐다는 소리다. 보에 의한 강의 변화를 여기에서도 확인하게 된 셈이다.  

모래톱 대신 사석, 위험한 낙동강 보

그러나 합천보 수위 변동에 따른 변화의 끝인 달성보 직하류의 모습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달성보 바로 아래 모래는 온데간데없고 드문드문 펄밭이 보였다. 그 위에 사람 머리통만 한 각진 사석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대체 저 사설들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합천보 수문을 열자 강물이 빠지면서 달성보 아래 하상이 드러났다. 강 바닥에 모래 대신 사석이 가득하다.
▲  합천보 수문을 열자 강물이 빠지면서 달성보 아래 하상이 드러났다. 강 바닥에 모래 대신 사석이 가득하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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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발견한 사석 망태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달성보 하류의 심각한 세굴현상을 막기 위해 4대강 공사 당시 엄청난 양의 사석 망태를 달성보 아래 처박아 넣었다. 그 모습을 당시 현장 모니터링을 하던 기자도 목격했다.

가톨릭관동대 박창근 교수는 달성보 하류가 모래 대신 사석들로 채워진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낙동강 보 아래마다 저런 사석 망태가 엄청나게 깔려 있을 겁니다. 4대강 공사 당시에도 보 아랫부분이 엄청나게 세굴되었고, 그때마다 사석 더미나 사석 망태 등을 강에 집어넣었으니 그것들이 떠밀려 강 가장자리로 몰려오게 된 것입니다."
 

 세굴 현상을 막기 위해 보 바로 아래 집어 넣었던 사석 망태.
▲  세굴 현상을 막기 위해 보 바로 아래 집어 넣었던 사석 망태.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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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은 합천보 하류에서 그대로 목격된다. 흐르는 강을 인위적인 구조물로 막았고, 그 구조물은 강한 강물의 힘을 받으면서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그 균열의 일단을 우리는 저 사석 더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달성보 고정보에 누수의 흔적도 발견됐다. 이는 고정보에서 물이 샌다는 것으로, 누수된 부분이 겨우내 얼어 팽창되면 누수는 가속화 될 것이 뻔하다. 거대한 바윗돌도 반복되는 한 방울의 물 때문에 깨지기 마련이다. 결국 누수는 보의 균열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달성보 고정보의 누수 흔적. 보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달성보 고정보의 누수 흔적. 보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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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8개 보가 모두 열려야 하는 이유

지난달 13일부터 낙동강의 8개 보 중 함안보, 합천보 두 개의 보가 열렸다. 단 두 개의 보만 열렸을 뿐인데 강은 벌써부터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  

낙동강 8개 보가 모두 열려야 하는 까닭이다. 낙동강은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길게 이어진 강이다.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고르게 흐를 때 비로소 낙동강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황강에서 맑은 물과 모래가 계속해서 흘러들어온다. 낙동강 보의 수문을 모두 열어라. 그러면 낙동강이 흐를 것이고, 흐르는 낙동강은 저 황강처럼 회복될 것이다.
▲  황강에서 맑은 물과 모래가 계속해서 흘러들어온다. 낙동강 보의 수문을 모두 열어라. 그러면 낙동강이 흐를 것이고, 흐르는 낙동강은 저 황강처럼 회복될 것이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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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기다려진다. 환경부는 낙동강 6개 보의 추가개방을 약속했다. 내년 봄 농번기가 시작되면 다시 수문을 닫기로 했다. 내년 봄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수문을 빨리 열어야 한다. 이번 보 개방을 통해 확인한 강의 변화상을 통해 보의 존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추가 개방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환경부의 시급한 결단이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연합 활동가로 지난 9년간 4대강사업 현장과 이후의 낙동강의 모습을 꾸준히 모리터링하고 있고, 그 결과로 쓴 기사입니다. 지역 인터넷 매체 <평화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보 수문개방#황강 #달성보#낙동강#모래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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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옆 '노란집'의 정체, 그땐 알지 못했네

[시골에서 책읽기] 미국 사람이 쓴 미군기지 이야기 <기지 국가>

17.12.16 13:31l최종 업데이트 17.12.16 13:31l

 

 
 겉그림
▲  겉그림
ⓒ 갈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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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국가>(갈마바람 펴냄)라고 하는 두꺼우면서 묵직한데다가 아픈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온갖 생각이 갈마들었어요. 책을 덮고 나서도 숱한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책을 살짝 잊고 제 어릴 적에 지켜본 몇 가지를 조각조각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라면서 본 여러 가지를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나 나이가 들면서 하나하나 조각을 맞출 수 있었는데, <기지 국가>를 읽는 사이에 어느덧 수수께끼 같은 흩어진 조각이 오롯이 모이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미국 땅에는 독립된 외국 기지가 하나도 없는 데 비해, 외국에는 현재 약 800개의 미군 기지가 있으며, 수십만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23쪽)
 
전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보유한 해외기지를 합하면 약 30개가 된다. (26쪽)

해외에 군인 한 명을 주둔시키기 위해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연평균 1만∼4만 달러에 달한다. (31쪽)

제가 살던 집하고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시내버스로 두 정류장만큼 떨어졌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1학기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어요. 그때에는 집하고 학교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몰랐어요. 그저 아는 한 가지란 어머니 말씀. "종규야, 집하고 학교는 버스로 두 정류장이야. 알겠니? 버스가 한 번 서고 나서 다음에 설 적에 내리면 돼."

그런데 제 국민학교 무렵인 1982∼1987년은 학교마다 콩나물시루였어요. 그나마 제가 다닌 국민학교는 한 반에 고작 쉰다섯에서 예순이었고, 다른 학교는 웬만하면 일흔이나 여든을 넘겼고, 한 반에 백이 넘기도 했어요. 저는 3학년까지 아침반하고 낮반으로 나누어서 한 교실을 두 학급이 썼는데요, 이런 콩나물시루인 학교로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는 대단히 많았어요. 아침마다 버스에서 찜쪄 죽는 줄 알았지요.

버스가 너무 괴롭고 숨조차 쉴 수 없기에 2학기부터는 걸었어요. 저는 6학년을 마칠 때까지 학교를 걸어다녔는데, 우리 마을에서 학교를 걸어다닌 동무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너무 위험해서 둘레 어른들은 그 길을 걸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1898-2015년 사이에 쫓겨난 사람들
▲  1898-2015년 사이에 쫓겨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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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미국 정부의 지난 기록을 보면 비민주적 국가, 심지어 카타르나 바레인 같은 독재 국가에 기지를 두는 쪽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32쪽)

미국은 1944년 괌을 일본에게서 다시 빼앗은 뒤 수천 명을 강제 이주시키거나 주민들이 섬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았다 … 군은 결국 섬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했다. 군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중에 오키나와의 넓은 구획의 땅을 빼앗고, 주택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미국은 1년 만에 오키나와섬 경작지의 20퍼센트에 이르는 4만 에이커를 차지했다. 1950년대에 이르면, 군은 오키나와 경작지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서 결국 섬 주민의 약 절반인 25만 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114쪽)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 어린이는 왜 그 길을 걸으면 위험했을까요? 먼저 우리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고속도로가 있었어요. 경인고속도로인데, 인천항에서 내린 원자재를 엄청나게 큰 짐차가 싣고서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어귀가 바로 마을 앞이자 학교 앞입니다. 또는 원자재가 월미도 쪽 공단으로 달리는데, 우리 학교는 바로 그 길가였어요. 그러니 아이를 둔 어버이는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짐차가 무시무시한 짐을 잔뜩 싣고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학교 가는 짧은 길'에 되도록 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식품공장이 있었어요. 가공식품을 내놓는 커다란 공장인데 이곳에서 내뿜는 매연하고 폐수가 끔찍하도록 코를 찔렀어요. 학교 오가는 길에 늘 이 냄새를 맡아야 하니, 아이를 둔 어버이는 또 아이를 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도 식품공장 커다란 굴뚝이 보였고, 날마다 엄청나게 내뿜는 코를 찌르는 매연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군부대가 한 곳 있었어요. 여기에 연탄공장도 한 곳 있었지요. 연탄공장 옆을 지나갈 적마다 숨을 참으려 했지만 늘 매캐한 탄가루를 잔뜩 들이마셔야 했습니다. 여기에다가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시외버스역이 있어서 커다란 시외버스가 늘 끊이지 않고 지나다녀서 배기가스가 대단했어요. 커다란 버스도 아이들한테 위험했고요.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는 '옐로우하우스'가 있었어요. 이 '노란집'은 요즈음도 그곳에 그대로, 다만 크기는 줄어든 채 있어요. 어릴 적에는 노란집이 어떤 곳인지 까맣게 몰랐고, 노란집이 있는 그곳에 오락실이 있어서 학교를 마치거나 일요일이 되면 그 오락실에 가느라 바빴어요. 그러나 오락실은 저녁 대여섯 시가 가까우면 문을 닫고 아이들을 내쫓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일찍 내쫓는다며 툴툴거렸는데요, 오락실 아저씨가 우리를 내쫓은 까닭을 안 지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한참 뒤입니다.
 
 1945년 미군 해외 군사기지
▲  1945년 미군 해외 군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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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6년 한국에서 미군은 서울 이남의 미군을 통폐합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이미 점유하고 있던 2제곱마일의 캠프 험프리스를 확장하려고 했다. 미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 정부는 토지 수용권을 발동해 대추리와 평택시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농민들의 땅 2841에이커를 확보했다. 농민들이 저항하자 한국 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보내 퇴거를 집행했다. 전투경찰이 불도저와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대추리에 진입해서는 시위대를 구타하고, 학교를 부수고, 농민들의 논과 관개수로를 망쳐 놓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계속 이주를 거부하자 한국 정부는 경찰, 군인, 철조망으로 마을을 에워쌌다. (120쪽)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가 사는 서울에 가끔 나들이를 가면 서울에서는 공장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어릴 적에는 구로공단을 몰랐어요. 그저 인천은 어디를 가다 공장투성이인데 이 공장이 하나같이 서울로 물건을 보내는 곳이라고만 알았어요. 그리고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있던 '노란집'이 주한미군 사내한테 성매매를 하는 곳인 줄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을 어떤 터전에서 낳아 기르거나 돌보면서 가르친 셈일까 헤아려 봅니다. 마을이나 학교 바로 옆에 공장도 가득하고, 군부대도 있고, 연탄공장도 있고, 고속도로하고 기찻길이 있으며, 시외버스역에 주한미군 성매매촌까지 있습니다. 

마을은 왜 이러한 얼거리가 되어야 했을까요. 제가 나고 자란 인천뿐 아니라 이 나라 구석구석에는 왜 미군 기지가 숱하게 많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 성매매촌은 골골샅샅 있을까요? 그리고 미군 기지 둘레뿐 아니라 '한국 군부대' 둘레에도 왜 성매매촌이 있어야 할까요?
 
 1989년 미국 해외 군사기지
▲  1989년 미국 해외 군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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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은 석유를 필요로 하다 보니 미국 군대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량은 스웨덴 전체의 소비량보다도 많다 … 석면, 납이 함유된 페인트, 기타 위험 물질 등 독성 물질을 강과 개천에 그냥 흘려보냈다. 또 툭하면 먼지를 막기 위해 비포장도로에 기름을 뿌렸다. 일부 기지에서는 핵무기, 생물무기, 화학무기와 관련된 위험 물질들을 바다에 버렸다. 육군의 한 대변인은 미국 11개 주의 수역에서 육군이 "비밀리에 신경가스와 머스터드가스 물질 6400만 파운드를 바다에 버렸고, 화학물질이 함유된 폭탄, 지뢰, 로켓탄 40만 개, 500톤이 넘는 방사성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거나 배의 짐칸에 넣어 통째로 가라앉혔다"고 인정했다. (194, 195쪽)

두툼하고 묵직한 <기지 국가>는 미국사람이 미국을 걱정하면서 쓴 책입니다. 그런데 이 <기지 국가>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필리핀 이야기가 꽤 길게 나옵니다. 세 나라에는 미군 기지가 참으로 많거든요. 

더욱이 세 나라는 사람들 앞에서는 안 밝히는 숨은 짓을 많이 했대요. 미군 기지 관리비를 엄청나게 몰래 댈 뿐 아니라, 온갖 뒷거래를 하고, 미군 PX에서 내보내는 물건으로 주둔지 공무원이나 군 관료를 사로잡는다고 하며, 갖은 범죄에 성매매를 일삼고, 끔찍한 독극물이나 화학무기나 폭탄조차 그냥 아무 땅에나 파묻는다고 합니다.

기지촌과 성매매는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하던 한국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정부 문서를 보면, 남성 관리들이 휴가를 받은 미군 병사가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여성들에게 돈을 쓰도록 장려하는 전략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관리들은 기초 영어와 예절 수업을 제공해 여성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자기를 팔고 더 많은 돈을 벌도록 장려했다. (232쪽)

2002년 한 보고서에서 (미국) 국무부는 한국이 인신매매 피해 여성의 종착지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2007년, 3명의 연구자는 한국의 미군 기지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유라시아 출신의 여성들을 한국과 미국에 공급하는 초국가적인 여성 인신매매의 중심축"이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235쪽)
 
 북미 원주민 영토와 미국 초기 해외 군사기지
▲  북미 원주민 영토와 미국 초기 해외 군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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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기지 국가>는 미국사람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필리핀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걱정하면서 쓴 책이 아닙니다. 미군 기지 때문에 크게 피해를 입는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걱정하지 않아요. 이 책을 쓴 분은 바로 미국을 걱정합니다.

지구별 거의 모든 나라에 군사 기지를 세운 미국을 걱정하는 책입니다. 엄청난 군사 기지하고 군인하고 전쟁무기 때문에 등허리가 휘는 미국사람을 걱정하는 책이지요. 미국은 미국 스스로 평화롭지도 아늑하지도 않은데, 이런 전쟁 소용돌이를 미국뿐 아니라 다른 거의 모든 나라에 잔뜩 심는 몸짓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해외에서 PX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미국) 군대만이 아니었다. 미 공군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바로 위에 제트기를 띄우고 있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스페인 고위 장교들에게 미군 PX와 장교클럽을 이용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334쪽)

미군 기지가 있는 곳이면 거의 어디서든 항상 인명 사고, 폭력 범죄, 현지인의 분노 등을 목격할 수 있다. (360쪽)

사드 같은 미사일은 왜 한국에 있어야 할까요? 사드 같은 미사일이 참으로 평화를 지켜 줄까요? 대추리에서 일어난 끔찍한 주먹다짐은 누구를 돕는 몸짓이었을까요? 제주 강정마을에 때려짓는 해군 기지는 참으로 이 나라에 평화를 심는 몸짓일까요?

<기지 국가>가 온갖 자료와 인터뷰로 낱낱이 밝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숱한 이야기 가운데에서 성매매촌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미군 부대이든 한국군 부대이든 군부대 옆에 나란히 달라붙는 성매매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군부대에서 엄청나게 쓰는 지구자원이란 무엇이며, 군부대마다 몰래 엄청나게 버리는 독극물이나 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한국도 미국도 다른 모든 나라도 군부대를 크게 두기 때문에 평화하고 자꾸 멀어지면서, 민주나 복지하고도 동떨어진 길을 가지 않나 하고 짚어야지 싶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은 아직도 일본 오키나와에 드넓게 미군 기지를 거느린다.
▲  일본 오키나와. 미군은 아직도 일본 오키나와에 드넓게 미군 기지를 거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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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준 1972년의 거래는 '반환'이라고 널리 알려졌지만, 일본은 오키나와 반환 협상의 일환으로 대미 섬유 수출 할당량을 준수하고, 6억 85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 … 현재 일본은 미군 병사 1인당 연간 15만 달러가량의 배려 예산을 미군에 지원한다. 2011년 한 해에만 일본 납세자들은 전체 기지 비용의 4분의 3 정도인 71억 달러를 제공했다. (368, 369쪽)

<기지 국가>를 쓴 분은 미군 기지가 있는 모든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독일이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같은 나라에서 깜짝 놀랐다고 해요. 미국에서는 어림도 할 수 없는 대중교통이 매우 잘 뻗었을 뿐 아니라, 기본의료 혜택이 잘된 모습에 혀를 내둘렀대요.

미국에는 기본교육도 기본의료도 기본복지도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미국사람은 무엇을 누릴까요? 엄청난 세금에 짓눌린 채 산다고 해요. 그리고 엄청난 세금에 눌리고 싶지 않은 이들이 '군인이 되는 길'을 간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군인이 되면 기본교육과 기본의료뿐 아니라 높은 교육과 의료와 복지에다가 집까지 거저로 얻을 수 있다고 해요. 미국에서 '군인이라는 일자리'는 더없이 훌륭하거나 멋진 '직업'이라고 합니다.

독일, 일본, 한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노르웨이, 벨기에 등과 달리 미국은 자국 시민 전부에게 의료보장을 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국민 의료보험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포기하자고 한다 … 나는 독일, 일본, 한국같이 미국 기지를 수용하는 몇몇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던 인상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미국의 기지 투자는 수십 년 동안 교통, 의료, 교육, 주거, 기반 시설, 기타 인간의 필수품을 무시하고 희생시켰다. 매년 전 세계 기지에 투입되는 700억 달러 이상의 절반 정도만이라도 미국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해 보라. (434, 435쪽)
 
 미군이 그냥 버린 무기들. 미군은 해외 군사기지이든 자국 군사기지이든 엄청나게 많은 생화학무기와 폭탄 들을 그냥 땅에 파묻거나 바다에 집어던져 버렸다고 한다.
▲  미군이 그냥 버린 무기들. 미군은 해외 군사기지이든 자국 군사기지이든 엄청나게 많은 생화학무기와 폭탄 들을 그냥 땅에 파묻거나 바다에 집어던져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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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국가>라는 묵직한 책이 밝히기로는 미국이 세계 곳곳에 끝없이 기지를 늘리면서 '리틀아메리카'를 심는다고 합니다. 마치 '차이나타운'처럼 '작은 미국'을 심는다는데, '리틀아메리카'는 이름하고 다르게 작은 미국마을은 아니라고 해요. 이 '리틀아메리카 미군 기지'는 새로운 도시하고 같으며, 극장에 야구장에 골프장에 대형마트에 놀이공원에 학교에 종합병원에 공항에 …… 갖은 편의시설을 다 갖춘 곳이라고 합니다.

이 '작은 미국마을'에 군인으로 들어가서 일할 적에는 오직 이곳에만 있어도 남부러울 것 없이 느긋하게 '군인으로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성매매촌은 '작은 미국마을' 바깥에 현지인이 현지 정부를 등에 업으면서 큼직하게 마련하고요.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최강의 군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국의 군사력과 핵 역량을 증강하는 게 타당하다. 중국으로서도 북한이 붕괴해 한반도가 통일되면 이미 아시아 대륙 본토에 있는 수만 명의 미군이 중국 국경에 가까이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므로, 북한을 지원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441쪽)

기지가 스스로 생명을 얻으면서 발생하는 위험은 돈과 국가 자원의 낭비를 훨씬 뛰어넘는다. 소방관과 달리, 해외기지가 할 일을 찾는 경우 그 결과는 잠재적 낭비와 비효율을 한층 뛰어넘는다. 여러 면에서 해외기지는 안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종종 세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447쪽)

미군 기지가 있는 곳마다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독재자 감싸기, 마피아와 함께 지내기, 환경 더럽히기, 성매매, 군인 사이에 남성 폭력·남자 군인이 여자 군인 성폭행, 엄청난 예산 집행·횡령, 전쟁·내전 부추기기, 미국 복지·교육·의료·기반 시설에 등돌리기 따위라고 해요. 미국은 미국에 있는 군부대하고 전쟁무기를 건사하는 돈을 뺀, 미국 바깥에 있는 기지를 건사하는 데에만 해마다 700억 달러를 웃도는 돈을 쓴다고 합니다. 게다가 700억 달러 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숨은 돈(비밀 집행 예산)이 대단히 많다고 합니다.

<기지 국가>를 쓴 분은 참으로 미국을 걱정할 만합니다. 평화도 민주도 교육도 복지도 의료도 아닌 전쟁무기에, 이 가운데 '미국 바깥 기지'에만 해마다 (밝혀진 예산만) 700억 달러를 웃도는 돈을 펑펑 쓰는 미국을 걱정할 만합니다.

미국이 외국 기지를 없앨 수 있다면, 또 미국이 '제 나라 전쟁무기와 군부대'를 줄일 수 있다면, 이뿐 아니라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남녘하고 북녘 두 나라도 전쟁무기하고 군부대를 줄일 수 있다면, 나아가 전쟁무기하고 군부대를 송두리째 없앨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달이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살림돈으로 받을 만할는지 모릅니다.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쟁무기에 돈을 안 쓸 적에는 모든 교육이나 공공시설을 '간접세'만으로도 넉넉히 댈 만할는지 모릅니다.

쉽게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남녘에 사드라는 미사일을 놓으면 북녘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미국이 외국 기지를 자꾸 늘리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전쟁무기에 쏟아부으면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우리는 미군 기지 등쌀에 밀리면서 자꾸자꾸 평화나 민주나 평등하고 동떨어진 길을 걷지는 않나요?

부디 미국이 '기지 국가'도 '전쟁무기 넘치는 나라'도 벗어던질 수 있기를 빌어요. 평화로운 미국을 이루자면, 또 평화로운 지구별을 이루자면, 여기에 평화로운 남북녘을 이루자면, 우리가 걸어갈 길은 하나이지 싶어요. 이 땅에 '외국 기지'도 '모든 전쟁무기'도 몰아내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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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유엔 안보리에서 정면 ‘설전’... ‘비핵화’ vs ‘핵보유국’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2/16 13:35
  • 수정일
    2017/12/16 13: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틸러슨 국무장관, “위협 지속적 중단해야” 핵 포기 강조 vs. 자성남 대사, “미국 겁에 질려 있다” 비확산 의무 이행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7-12-16 10:28:47
수정 2017-12-16 10: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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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현지 시간) 유엔 안보리 장관급회의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발언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현지 시간) 유엔 안보리 장관급회의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발언하고 있다.ⓒ뉴시스/AP
 
 

미국과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으로 설전을 벌였다.

15일(현지 시간) ‘핵 비확산’을 주제로 열린 안보리 장관급회의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며, 비핵화를 강력히 촉구했지만,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북한(DPRK)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며 반박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과의 대화가 이뤄지기 전에 위협적인 행동의 지속적 중단(sustained cessation)이 있어야 한다”면서 최근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했던 기조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는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은 없다”면서도 “우리는 북한이나 다른 이들이 제시하는 전제조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틸러슨 장관은 특히, “우리(미국)는 북한과의 전쟁을 추구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방어를 위해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은 북한의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 미국은 평양 정권이 세계를 인질로 잡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무모하고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계속 책임을 지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1차 발언이 마무리된 후 발언권을 얻은 자성남 북한대사는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면서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는 한 북한은 어떠한 국가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비확산’과 관련해서도 “(북한은) 핵무기 기술의 불법적인 이전을 막을 절대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 대사는 특히, “미국은 핵무기를 완성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우리 공화국의 엄청난 힘에 의해 겁에 질려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을 비난했다.

한편, 틸러슨 장관은 이날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이 ‘대화 전제조건’에 관해 재차 질의하자, “대화와 관련해 우리는 (북한의) 전제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핵·미사일-군사훈련) ‘동결을 위한 동결’이나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인도주의 지원 재개 등을 대화 전제조건으로 수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문제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입장(same page)’이냐는 질문에는 “우리가 (대북) 압박 캠페인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분명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국제사회를 단결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압박을 지속하고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다만 북한과 대화에 관해서는 “우리 대화 채널은 열려있고, 북한도 그것을 안다. 그들은 문이 어디 있는지 알고, 그들이 대화를 원할 때 걸어 들어올 문을 안다”면서 ‘대화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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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라, 유지한다, 검토하겠다’ 정부 답변은 딱 거기까지!”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노동3권보장, 성과급‧교원평가 폐지’ 촉구 3500 교사 연가투쟁
 
▲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이 ‘법외노조 철회, 노동기본권 쟁취, 성과급‧교원평가 폐지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정부는 ‘법외노조 철회’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관되게 외친 성과급 폐지와 균등수당화 요구에 대해서도, 정부는 ‘성과급을 유지하겠다. 차등비율 완화 후 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마련해 운영해보자.’ 딱 여기까지만 답했다. 교원평가제는, ‘개선하겠다’ 그리고 ‘학교 평가로 일원화해 검토하겠다’는 답변뿐이었다. 딱 거기까지가 정부의 답이었다.”

‘법외노조 철회, 노동3권보장, 성과급‧교원평가 폐지’를 요구하며 지난달 1일부터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국 ‘정부와의 협의 결렬’을 선언하고 3500명의 교사 노동자가 서울에 모여 연가투쟁을 벌였다.

15일 서울 종로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법외노조 철회-노동기본권 쟁취, 성과급‧교원평가 폐지 전국교사결의대회’를 연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 6월부터 새 정부 관계자들과 서른 차례가 넘도록 만났지만 전교조 요구에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진전된 대화 없이 7개월이 흘렀다”고 연가투쟁을 하루 앞둔 14일, 정부와의 ‘협의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합원들에게 보고했다.

조 위원장은 “어제 교육부가 이전 안과 비교해 변화된 안을 제시했다. ‘교원평가 폐지’를 적시한 협의안이면서, 노조 전임자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고민이 담긴 안이었다. 그러면서 전교조에게 ‘연가투쟁 중단’을 제시했다”고 교육부가 전교조를 교활하게 능멸했다고 강하게 질타하곤, “연가투쟁은 교육 노동자들의 고유한 권리이며, 교육 적폐청산을 위한 전교조의 위대한 선언”이라며 연가투쟁에 참가한 조합원들에게 격려의 인사를 보냈다.

조 위원장은 또 “성과급 차등폭을 완화하고 최소화하겠다는 말로 성과급의 껍데기를 남기려는 정부의 속셈은 교사들을 정치적으로 억압하려는 기재이며, 교원 통제정치의 일환”이라고 규정하곤 성과급 제도 자체의 철폐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도 무대에 올라 전교조의 연가투쟁에 힘을 보탰다. 최종진 직무대행은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도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공약조차 지키지 않고 ‘기다려 달라’고만 말하는 사이에 교사 노동자들은 억압당하고, 노동권을 유린당하고 있다”고 비판하곤 “연말에 이어지는 청와대발 노동개악,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유지 등 노동 적폐를 연말까지 철회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를 민주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로, ‘촛불정부 아님’으로 규정할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에게 경고했다.

박소영 대구지부 조합원은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성과급으로 인해 교육현장이 황폐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소영 조합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정부가 알아서 다 해줄 텐데’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연가서를 내자 교장선생님은 ‘공무관리 철저’라고 쓰여진 교육부 공문을 들이밀었다”면서 교사들에게 연가투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조합원은 또 “정부가 바뀌고 ‘법외노조 철회’만을 기다리며 단체교섭 팀도 꾸리고 단체협약안도 다시 마련했지만 교육부는 감감 무소식에, 교육청은 ‘법외노조’라면서 전교조와의 정책협약도 외면했다”고 전교조 법외노조화로 인한 노동3권 박탈을 규탄한 데 이어 “교사들을 줄 세우고, 경쟁으로 내몬 성과급제로 인해 12월만 되면 강사선생님들의 자리는 하나둘 없어지고, 기간제 교사들도 채용 게시판을 보면서 내년의 일자리를 걱정한다”며 교원성과급제의 폐해를 지적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오늘 연가투쟁은 새로운 투쟁으로 가는 디딤돌”이라며 ‘▲동료 교사들과 함께 반교육적 성과급‧교원평가 폐지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 철회와 교원의 노동3권 쟁취▲치열한 교육적폐 청산 투쟁을 통해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 전망 확보’라는 세 가지 결의사항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한 다음 광화문 사거리와 지하철 경복궁역 사거리를 거쳐 청운동사무소 앞까지 행진한 뒤 대회를 마무리했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관련기사icon“법외노조 철회” 외쳤더니 ‘연가투쟁 철회’하라고?icon“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교원평가 폐지” 촉구icon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교육적폐 청산!” 단식농성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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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무력 완성' 선포 이어 '7차 당대회 과업' 관철 다짐

<2017 송년특집 ①> 북한 내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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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5  17: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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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박근혜 탄핵’에 이어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남북관계의 복원에 따른 한반도 정세 변화가 기대됐으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일말의 변화의 조짐도 없었으며, 오히려 북미관계는 ‘말폭탄’에 이은 ‘말전쟁’으로까지 나아가 설전(舌戰)이 실전(實戰)으로 비화할 정도로 험악해져 한반도는 몇 차례에 걸쳐 ‘전쟁 위기설’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북한은 11월 29일 발사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급인 화성 15호 성공을 두고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역시 실제 완성 단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화성 15호가 북핵 해법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이른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로 인한 좁은 운신의 폭에 허덕이다가, 지난 10월 31일 그간 한중관계 경색의 원인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해법을 담고 있는 합의문 발표를 계기로 한숨을 돌렸다가, 이번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등에 합의하고 사드 문제를 사실상 봉합함으로써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한반도 정세에서 유일하게 변화가 온 한중관계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하면서, 통일뉴스는 <2017년 송년특집>으로 ①북한 내부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한미·한중관계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북한 <노동신문>은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다음날인 11월 30일 1면 사설을 통해 '화성-15'형 시험발사의 대성공은 국가핵무력 건설 위업의 완수를 만천하에 시위한 쾌거라고 보도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시험발사 장면.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동지는 새형의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5'형의 성공적 발사를 지켜 보시면서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케트강국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긍지높이 선포하시었다."

북한은 지난 11월 29일 '새형의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성공'이라는 제목의 공화국 정부성명을 통해 이날 새벽 2시 48분(평양시간) 평양 교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5'형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국가핵무력 완성'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그로부터 약 2주일이 지난 12월 12일 김 위원장은 제8차 군수공업대회 폐막식이 진행되는 4.25문화회관에서 "국가핵무력 완성의 대업을 이룩한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사생결단의 투쟁으로 쟁취한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역사적 승리"라며 '국가핵무력 완성'을 재확인했다. 또 이것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의 정당성을 확증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공화국은 세계 최강의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더욱 승리적으로 전진 비약할 것"이라면서, 굳게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2일 폐막된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서 북은 세계 최강의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더 전진 비약할 것이라고 천명했다.[자료사진-통일뉴스]

2017년의 끝자락에서 올해를 '국가핵무력 완성'이라는 열쇳말로 결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앞으로도 병진노선을 끝까지 지켜 국방공업 분야에서 첨단 자립적 국방산업으로의 비약을 목표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부문과 단위가 당 제7차 대회에서 제시한 강령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다짐으로 한해를 마감하는 분위기이다.

그 길은 지난해 당 제7차 대회가 제시한 당의 발전과 사회주의 위업 완성,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세계 자주화의 실현으로 이어져 있다. 사회주의 위업 완성을 위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과학기술강국 건설 △경제강국 건설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실현 △문명강국 건설 △정치·군사적 위력 강화는 지표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핵무력 완성'을 위한 집요한 노력

지난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을 전략적 노선으로 채택한 북한은 지난해 5월 7일 당 제7차 대회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자위적인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정오 2017년 신년사를 발표, 올해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올해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핵위협과 공갈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의 문전 앞에서 연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연습 소동을 걷어 치우지 않는 한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봉쇄와 다름없는 초고강도 제재, 역대 최대급으로 핵전략자산을 투입하면서 지속하는 군사적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지난해 2차례의 핵실험과 위성발사용 장거리 로케트 '광명성호' 발사, 그리고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0'형과 개량형 탄도미사일,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등을 잇따라 발사한 데 이어  올해에도 1차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15차례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집요하게 강행했다.

지난해에는 1월 6일 허를 찌른 첫 수소탄 시험(4차핵실험)의 성공에 이어 9월 9일에는 핵탄두 폭발실험(5차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국가핵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관문을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3월 초까지는 잠잠했지만 지난 3월 18일 자체 로켓 개발의 서막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부여해 '3.18'혁명이라 부르는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하고  7월 4일과 28일에는 '대형 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케트'인 '화성-14'형의 1, 2차 시험발사을 연이어 성공시켰으며, 지난 9월 3일에는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시험(6차 핵실험)에 다시 한 번 성공해 '국가핵무력 완성의 완결단계 목표를 달성하는데서 매우 의의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1월 29일 '미국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또 하나의 신형 대륙간탄도로케트 무기체계'인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7월 3일  '화성-14'형 시범발사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특히 지난 7월 4일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지도한 김 위원장이 "올해 안에 미국본토 타격능력을 보여줄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반드시 단행할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표명한 뒤 짧은 시간 내에 이같은 언명이 말로 그치지 않고 현실화된 것에 대해 미국과 세계는 크게 놀라고 있다.

이와 관련, '핵무력건설'의 완성을 선포한 북한으로서는 병진노선의 다른 한 축인 '경제건설'에 매진해야 할 이유와 여유,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만큼 내년에는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대북제재 국면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평화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핵과 '화성-15'형을 비롯한 전략 탄도미사일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추가 실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공고해지는 당, 김정은 체제

지난해 36년만에 당 제7차 대회를 열어 '김정은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한 북한은 지난 10월 7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심의 국정운영 철학을 분명히 하고 김 위원장과 함께 활동할 빨치산 3세대를 대폭 정무국과 당 전문부서의 주요 인물로 발탁하는 세대교체를 이뤄내 '김정은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으로 보선된 인사들. 리용호 외무상은 후보위원에서 위원이 되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지난해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에 올랐다가 이번에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기남, 최태복, 곽범기 등 2세대가 실무에서 물러나 원로로 활동하게 하고, 박광호·박태성·태종수·박태덕·안정수·최휘 등이 당의 새 부위원장으로 선출되고 이들 중 박광호·박태성· 태종수·안정수와 기존 후보위원이었던 리용호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당 조직지도부장을 겸하는 것으로 알려진 최룡해 당 부위원장은 당 중앙위원회와 당 정치국은 물론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도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것으로 보이며,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이름을 올린 것 등도 특징 중 하나이다.

   
▲ 북한은 지난 10월 7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개최해 병진노선의 관철을 재확인하고 세대교체 성격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특히 최룡해 부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장으로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검열해 처벌했다는 일각의 추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앞으로 당 조직지도부가 군 조직에 대한 검열을 확대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달 하순에는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히 하며 현시기 당세포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강화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토의하고 지도하기 위해 평양에서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를 소집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대회에서는 지난 2013년 1월 개최된 제4차 세포비서대회 이후 성과와 경험을 분석해 당세포사업을 개선하고 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가 토의될 예정이다.

자력자강과 과학기술 강조

제2차 전원회의는 조직개편과 함께 △'당의 병진노선을 계속 철저히 관철하여 국가핵무력 건설을 완수'하고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과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켜야 한다는 내용을 당면 정세에 대처하는 전략적 과업과 방도로 제시했다.

또 11월 7일에는 제2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해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동력과 식량, 원료와 자재의 자급자족을 인민경제 주체화의 중요한 과업으로 틀어 쥐고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최단 기간에 실현하여야 한다"면서 각 단위별 과업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만리마속도' 표어를 제시하면서 '70일전투', '200일전투'로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한 북한은 올해 들어서는 1월 25일 당 중앙위원회 보도문으로 연말 평양에서 '만리마선구자대회' 소집할 것을 알리면서 '전민총돌격전'에 불을 붙였다.

연초부터 각지에서 군민연환대회와 공훈국가합창단, 모란봉악단의 지방 순회공연을 진행하면서 '만리마선구자대회' 준비를 독려하던 북한은 10월 초부터 갑자기 대회 이름을 각종 보도에서 거둬 들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연말까지 남은 기간 살펴보아야겠지만 최근 진행된 제8차 군수공업대회를 통해 핵심 분야인 군수공업 분야에서 성과를 결산하는 것으로 '만리마선구자대회'를 갈음한 것으로 보는 평가가 많다.

한편, 제2차 전원회의 이후 유난히 자급자족과 자력자강을 강조하는 흐름은 북의 핵 고도화에 대응해 유엔안보리와 미국 등의 제재 강도가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4차 북핵실험에 대응한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 2270부터 불법적인 수출뿐만 아니라 북의 일반 수출까지 범위를 크게 확대해 감축 및 금지 조치를 시작했으며, 지난 9월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2375에서는 광물, 수산물, 섬유제품 등 북한 전체 수출의 90%에 금수조치를 내리고 북에 대한 투자,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 해외노동자 파견 등 새로운 영역으로 제재를 대폭 확대했다.

미국은 지난 1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최근에는 해상봉쇄를 거론하는 등 고강도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 5년 남짓한 기간에 모습을 드러낸 세포지구 축산기지. [자료사진-통일뉴스]

올해 북한은 지난 5년 남짓 끌어오던 강원도 세포, 평강, 이천군을 포괄하는 5만여 정보의 대규모 축산기지인 '세포지구 축산기지'를 지난 10월 27일 준공한 성과를 거두고 지난해 11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시작한 백두산 인근 삼지연군꾸리기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11월에 대형화물차 생산공장인 3월16일공장, 금성트랙터공장에 이어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까지 연달아 현지지도하면서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력을 강화하자면 자동차를 자체로 생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모든 생산공정의 현대적 개건을 주문하는 등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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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한호석 소장, 유엔 중재자로 북미대화 돌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2/16 11:26
  • 수정일
    2017/12/16 11: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특별대담] 한호석 소장, 유엔 중재자로 북미대화 돌입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2/16 [05: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본지 해외기고가인 한호석 소장이 최근 민족통신 유태영 논설위원과 한반도정세에 관한 시사대담을 나누었다. 

이 대담에서 한호석 소장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첫 대화' 제의는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안보리사무국 사무차장의 방북결과를 보고 받고 내놓은 미국 정부의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는 유엔안보리사무국을 중재자로 내세워 미국이 북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호석 소장은 그 대화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할 문제라고 했다. 

 

다음은 모 해외사이트에 소개된 관련 시사대담의 전문이다. 북미정세만이 아니라 남북관계와 우리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내용도 담고 있어 그 전문을 소개한다. 

 

 

[특별대담]

유태영박사, 한호석박사 만나 시사질문

 

▲ 유태영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이 한호석박사(통일학연구소 소장)와 대담     © 노길남 기자


 

[뉴저지 포트 리=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정리] <유엔의 제프리 펠트먼 사무차장의 평양방문의 배경과 의미>에 대하여 쓴 분석글을 읽은 유태영 박사는 12월13일 이글의 필자인 한호석 뉴욕통일학연구소 소장을 만나 오찬을 함께 나눈뒤 시사대담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유태영박사는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의 진단을 청취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축약하여 게재한다.

 

▲ 유태영 박사와 시사 대담을 나누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노길남 기자

 

[질문]펠트만 유엔사무차장의 평양방문 의미에 대한 분석글을 민족통신과 자주시보를 통해 잘읽었다. 그 이후 변화와 움직임에 대해서 듣고 싶다. 

 

(답변)그 이후 두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북에서 제7차군수공업대회가 있었는데 태정호 대장이 연설을 통해 고난의 행군시절에 핵무력을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20여년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강의 핵강국으로 지향해서 나간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래서 2018년 신년사에 핵강국으로 선언하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늘 13일 보도에 따르면 틸러슨 미국무장관이 <무조건 첫대화> 제의발언이 나온 파격적인 일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대환영이었고, 미국 언론들도 대체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다(Shifted)고 반응하였다.

펠트만 유엔사무차장이 돌아와 안또니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에게 방북보고를 한 이후 이러한 내용들이 미국 백악관측에 전달된 것으로 본다. 틸려슨의 발언도 그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말해 유엔이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펠트먼의 조선방문을 계기로 조선과 유엔사무국은 각이한 급에서 내왕하면서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구떼헤스가 이끄는 유엔사무국이 핵대결을 벌이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중재를 제대로 설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엔사무국의 중재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틸러슨 미국무장관의 <무조건 첫대화>제의발언이나 미언론들의 대조선정책 변화촉구의 움직임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내가 일본 강연에서 금년내 조미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이 있을것으로 예견하였는데 이제 그 날자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보름정도 남았는데 일단 두고보자고 여운을 남긴다.)

 

▲ 모두가 궁금해하는 중요한 질문을 내놓은 유태영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 노길남 기자

 

[질문]해내외 진보세력내부에는 촛불민심으로 정권의 중심에 오른 문재인새정부의 남북관계 입장과 자세에 대하여 일부는 좀더 기다려보자며 비판을 유보하고 있는 동포들도 있는가하면 시작부터 이해할 수 없다면서 아예 기대를 접고 있는 동포들도 있는데 이에대하여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답변)내가 보기에는 문재인정부가 정세를 보는데 아주 둔감한것 같다. 이들은 정세를 읽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신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질문]요즈음 들어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한국이나 해외동포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며 폭력행위까지도 나오고 있는데 이것의 현상은 어떻게 보는가. 

 

 (답변) 그같은 현상은 극우보수세력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로 보인다. 초조와 불안의 표현으로 보면 좋겠다.

 

 

[질문]6.15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이 이명박정권과 박근혜정권에 들어와 고수이행되지 못하고 중지된 상태이고 이에 따라서 6.15민족공동위원회 활동과 그 지역위원회 활동도 침체된 상태인데 이런 운동이 활성화 되는 전망에 대해 듣고 싶다. 

 

(답변)이 운동은 당국간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의 정세를 보면 조미,북미간의 협상 가능성은 보이는데 오히려 남북간의 협상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문재인정부가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도 있다고 본다.

 

 

[질문]지금 조미관계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데 남북관계는 얼어붙은 상황이다. 우리가 보기는 미국이 오히려 북미관계 정상화를 서두르고 있어 보이는데,이에 비해 한국이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주한미군이 철군될것이 자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 당할 그 경제금융 체계가 파탄날 우려가 큰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답변)오늘날 한국의 경제금융체계는 아주 취약하다. 대만의 경우와도 다르다. 내수를 견딜 힘이 없다. 자급자족율이 20% 안팎인데 미국이 손을 떼면 한국은 간단히 말해 경제금융체계는 파탄될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국가재정이 바닥나 있는 상황이다. 이미1997년 IMF(국제금융기구)사태가 발생되어 난리를 겪은바 있었다. 김영삼정부때 실시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거둔 돈들이 탕진해 버렸기 때문에 국고자금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로 가계부채가 기하급수로 늘어나 한국 국민들의 부채가 엄청나게 불어난 상황이어서 빚을 갚을 길이 없는 것이고, 셋째로 비정상적 자본투기라고 볼 수 있는 <Kripto Currency>라고 하여 비트 코인 같은 것들이 2천개나 되는데 여기에 돈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여 운영되는 제도이다. 그런데 여기다 자본을 투입해 보았자 이 자금이 생산현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 돈이 밖으로 유출할 수 있어 여차하면 한국의 자본을 밖으러 빼돌리는데 이용되기 쉬운 부조리한 제도로 지적받고 있다,

이것은 국제은행이 아니고 국제사회에 있는 개인이 만든 금융제도로<가상화폐> 혹은 크립토 커렌시라고 말한다. 이 가상화폐를 가장 많이 구입한 나라 사람들이 한국사람들로 나타났다. 주한미군철수하면 이런 돈들은 몽땅 외부로 빠져나간다. 중국같은 나라는 이런 제도를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다시말하면 한국의 금융경제 체제가 이렇게 아주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질문]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변)한국경제구조가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이 나오게 될 것이다.그럼으로 나중에 후에 하지 말고 지금부터 <우리민족끼리>를 생각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군문제는 조만간에 거론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때가서 당황하지 말고 한국정부는 지금부터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다시 열것을 구상하여 자체적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즉 <우리민족끼리> 이외의 다른 길은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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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연대 민중당 집단 입당식, 자주통일의 지향에 성심껏 함께할 것

국민주권연대 민중당 집단 입당식, 자주통일의 지향에 성심껏 함께할 것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12/15 [16: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5일 오전 11시 여의도 민중당 당사에서 국민주권연대의 집단 입당식이 진행되었다. 입당서를 전달하고 민중당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와 국민주권연대 윤기진 공동대표가 함께 환영의 의미로 손을 들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017년 12월 15일 오전 11시 여의도 민중당 당사에서 국민주권연대의 집단 입당식이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15일 오전 11시 여의도 민중당 당사에서 국민주권연대의 집단 입당식이 진행되었다. 

 

앞서 지난 8월 26일 국민주권연대는 고 김승교 동지 2주기 추모제에서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주권방송, 민들레(예술인 모임), 민주통일당추진위원회, 좋은대한민국만들기대학생운동본부, 청년미래교육원 등이 함께 하나의 틀 속에서 사업을 펼치기로 하고 발족식을 갖은 바 있다.

 

▲ 국민주권연대 윤기진 공동대표는 “촛불 때 느꼈던 성난 파도와 같은 우리 국민의 기질과 지향을 담아낼 수 있는 당이 너무나 절실했는데 민중당이 정확하게 부합한다”며 집단입당의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윤 대표는 “우리 민족의 위상, 자주통일이라는 민족의 지향에 부합하는 정당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왔다”라고 소감을 전하며 “우리 당이 생긴 만큼 민족의 요구,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민중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민주권연대 윤기진 공동대표는 “촛불 때 느꼈던 성난 파도와 같은 우리 국민의 기질과 지향을 담아낼 수 있는 당이 너무나 절실했는데 민중당이 정확하게 부합한다”며 집단입당의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윤 대표는 “우리 민족의 위상, 자주통일이라는 민족의 지향에 부합하는 정당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왔다”라고 소감을 전하며 “우리 당이 생긴 만큼 민족의 요구,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국민주권연대 이광석 공동대표는 “민중당은 촛불이 만들어낸 당이라고 생각한다. 촛불의 염원인 적폐청산, 민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모여 민중당으로 왔다”면서 “민중당이 가는 길에 예술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래, 그림, 극, 영상 등으로 함께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국민주권연대 이광석 공동대표는 “민중당은 촛불이 만들어낸 당이라고 생각한다. 촛불의 염원인 적폐청산, 민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모여 민중당으로 왔다”면서 “민중당이 가는 길에 예술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래, 그림, 극, 영상 등으로 함께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국민주권연대 대표단 인사말에 이어 민중당 편재승 사무총장이 현재 전당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5만 당원-100만 유권자 만나기 사업>을 소개했다. 편 총장은 직접정치 시대에 당원과 민중을 주인으로 세우기 위한 당의 전략을 설명하며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 다운 면모를 자랑하고 많은 지지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에 국민주권연대도 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국민주권연대 대표단 인사말에 이어 민중당 편재승 사무총장이 현재 전당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5만 당원-100만 유권자 만나기 사업>을 소개했다. 편 총장은 직접정치 시대에 당원과 민중을 주인으로 세우기 위한 당의 전략을 설명하며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 다운 면모를 자랑하고 많은 지지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에 국민주권연대도 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민중당 대표단의 축하와 환영의 인사도 이어졌다. 

 

▲ 김종훈 민중당 상임대표는 “집단입당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렇게 함께 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마음일까 생각한다. 촛불혁명의 과정에서 가장 앞장서 투쟁한 동지들이 민중당에 함께 해주셔서 참으로 기쁘다”며 환영인사를 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김종훈 민중당 상임대표는 “집단입당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렇게 함께 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마음일까 생각한다. 촛불혁명의 과정에서 가장 앞장서 투쟁한 동지들이 민중당에 함께 해주셔서 참으로 기쁘다”며 환영인사를 했다. 이어 “사회대개혁, 자주통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과제다. 그 길에 함께 손잡고 나갈 결심 해주셔서 너무 큰 힘이 된다. 5만 당원에게 오늘의 이 마음 잘 전하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 김창한 민중당 상임대표는 “자주민주통일 정당인 민중당에 주권연대 동지들이 함께 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 대표는 “민중당이 진보집권으로 달려가기 위해 민중 속에 더욱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국민주권연대 동지들께서 그 힘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오늘을 계기로 더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며 희망을 전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김창한 민중당 상임대표는 “자주민주통일 정당인 민중당에 주권연대 동지들이 함께 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 대표는 “민중당이 진보집권으로 달려가기 위해 민중 속에 더욱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국민주권연대 동지들께서 그 힘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오늘을 계기로 더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며 희망을 전했다.  

 

▲ 이어 입당서 전달식이 진행됐다. 입당원서를 건네받은 민중당 대표단은 신입당원들에게 민중당 배지를 직접 달아주며 입당을 축하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이어 입당서 전달식이 진행됐다. 입당원서를 건네받은 민중당 대표단은 신입당원들에게 민중당 배지를 직접 달아주며 입당을 축하했다. 

 

▲ 국민주권연대 권오창 고문이 입당서를 작성하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오늘 집단입당식에는 국민주권연대 윤기진·이광석 공동대표와 권오창‧홍갑표 고문, 민주통일당 추진위원회 김은진 위원장(민중당 공동대표), 민주통일당 추진위원회 장송회 사무국장, 주권방송 권오혁 대표, 민권연대 김성일 사무총장, NK투데이 문경환 기획실장, 주권연구소 곽동기 수석연구원 등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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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한 미국의 야만적인 만행

사대주의와 패배주의 역사관 청산을 위하여 (3)
  •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
  • 승인 2017.12.14 11:33
  • 댓글 0

1. 계속되는 미국의 조선침략

이상하게도 우리 역사가들은 미국의 근대 조선 침략에 대하여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는다. 《고종실록》과 미국에 분명한 기록으로 있는데도 우리 역사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비록 잠시 외세를 몰아내보았자, 더 큰 침략의 빌미만 주고, 결국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뜻인가? 전형적인 역사 허무주의이다.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본질을 분석하는 일을 하지 않다보니, 미국을 ‘아름다운 은인의 나라’로 오인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우리 국민들이 이웃 나라의 침략과 횡포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현대 제국주의의 주범 미국에게 왜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가? 이웃 강대국은 사이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 들어왔다! 남연군묘 도굴 역시 미국의 조선침략 공작이었다.

《셔먼》호 소식을 궁금해 하던 미국은 그 해 8월 말 한강일대를 정찰하고 귀환한 프랑스인들로부터 대동강에서 서양 배 1척이 소침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국은 곧 《셔먼》호로 단정하고 조선 굴복의 구실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청을 통해 조선에 《셔먼》호 행방과 선원들을 돌려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낸 결과, 그것은 영국 배이며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는 답신을 받았다.《고종실록》 미국은 《셔먼》호 행방을 직접 알아본다며 《와츄세트》호를 황해도 앞바다에 보내 5일간 조선 해안일대를 정찰, 측량 후 돌아갔다. 이 정찰자료에 따라 미국의 조선 침공이 추진된다. 이때 아시아 정세를 보면 프랑스는 《선교사 살해는 10월 로즈함대의 조선원정(병인양요)으로 징계되었다》면서 미국의 공동출병 요구를 거절한다. 미 국무장관 시워드는 《영국은...큰 이해관계는 없으며... 북독일은 아직 동방에 별다른 정책이 없다...우리 단독으로 조선을 개방하려고 하는 시도는 잘 될 것》이라고 했다.《미합중국정부의 대외관계사료》 하와이 뿐 아니라 조선까지 포함하는 태평양 침략계획이 작성된 것이다.《테오도로 루즈벨트와 로일전쟁》

이 무렵, 상해 미국 총사령관 통역, 젠킨스는 천인공노할 계획을 꾸민다.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유골을 미끼로 불평등 조약을 강요한다는 것! 오페르트는 이렇게 썼다. 『조선인들에게는 완고한 조상숭배에 대한 미신이 있다.... 대원군은.... 유물을 모두 자기 아버지의 묘에 묻어두고.... 매장물을 손에 넣으면 우리 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다』 《쇄국한 나라》 미국은 이 계획을 승인하고 젠킨스에게 《셔먼》호 승무원 중, 생존자는 구할 것, 《셔먼》호 배상금을 받아낼 것,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약체결 등을 지시하였다. 도굴 후에도 협상거부 시, 여름에 대규모적 무장간섭을 협박하라고 하였다.《은둔국 조선》 미국은 젠킨스를 총책임자로, 조선에서 10년간 활동한 프랑스 신부 페론을 통역으로, 독일계 상인 오페르트를 비롯한 140여명으로 된 도굴단을 조직하고 선박 등, 일체를 보장해주었다. 이 사건은 「독일계 오폐르트」와 「프랑스 신부 페롱」을 주범으로, 미국인 제킨스는 자본을 댄, 『국제도굴단』으로 알려졌지만 미국 통역사였던 제킨스에게 큰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배후는 미국이며 구미 각국 출신을 끼어놓음으로써, 공격의 화살이 미국에 돌아오지 않도록 술수에 불과하다.

2. 침략선 《셰난도어》호의 대동강 침입과 격퇴

미국은 이와 함께 《셔먼》호의 행방을 알아본다는 구실로 군함 《셰난도어》호를 조선에 보냈다. 이 배에는 1문의 대구경포와 8문의 보통대포가 설치되었으며 230명의 미군이 타고 있었다. 제킨스 일당보다 먼저 《셰난도어》호를 보낸 것은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각종 소동을 벌리면서 이목을 대동강 일대에 집중시켜 놓고, 남연군묘 도굴을 성공하려는 것이었다. 《셰난도어》호는 1868년 3월18일 청나라 어선 3척을 나포하고, 길 안내를 받아 오리포 앞바다에 정박하였다.《고종실록》 20여명이 상륙, 닭 돼지 양 등을 요구하였고 5명은 마을로 가서 약탈하였다. 21일 수군방어사가 검문하려고 배에 접근하자, 대포를 쏘면서 막은 후 또 다시 상륙, 마을 사람들에게 서울까지의 거리, 알곡과 목화 산지 등을 물어보고, 기독교 유인물들을 던져놓고 돌아갔다. 22일, 조선 관리는 편지를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23일, 작은 배로 편지를 가져간 저들은 24일, 강을 거슬러 정박하였다. 25일 《셰난도어》호는 조선 관리의 배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오리포로 끌고 가서 대동강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대동강 수심이 낮아 큰 배가 항해할 수 없다고 하자, 《셰난도어》호로 돌아가 총포사격을 가하였다. 26일에야 저들은 편지를 보내, 「대동강에서 없어진 배를 조사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시로 왔다면서 우의룰 두텁게 하려는 것이니 귀국 왕이 잘 의논하여 두 나라가 길이 화목하게 지내기 바란다.」고 하였다.《고종실록》 27일 조선은 《셰난도어》호가 보는 앞에서 《셔먼》호 승무원들 4명이 살아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침략의 구실을 준 김자평을 처형하였다.

미국의 파렴치한 행위는 조선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백성들의 기세에 고무받아 의병투쟁을 호소하는 격문이 나돌고 의병대들이 모여들었으며 민중들은 원호사업에 나섰다. 대동강 연안 요충지들인 동진, 보산, 정이산 등 에도 방어진지가 꾸려졌다. 이런 분위기 에서 30일 다시 관리를 《셰난도어》호에 보내 나가라고 하였으나 미국은 물러가지 않았다. 결국 철도포대에서 경고 사격을 받고 평양 침입을 포기한 후 4월 1일 안악경내로 물러섰다. 8일 비련도에 상륙, 대원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조선의 정당한 방위조치를 비난하면서 만일 자신들이 《셔먼》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면 곧 대규모적인 무력간섭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였다.《고종실록》 그 후에도 20여 일 동안 우리 연안을 측량하는 불법행위를 계속하였다.

▲ 차이나호의 침입과 퇴각경로

3. 침략선 《챠이나》호의 침입과 남연군묘 도굴사건

《셰난도어》호가 남포 앞바다에서 소동을 피우던, 4월 8일 젠킨스 일당은 680톤급의 《챠이나》호를 타고 상해를 출발하였다. 나가사끼에 들러 연료, 식량, 무기를 보충한 다음 16일 아산만에 들어왔다. 18일 홍주 행담도에 들어온 젠킨스 일당은 빼앗은 배 2척과 《그레타》호 등에 나누어 타고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하였다. 러시아 군대로 가장하고 숨어있던 카톨릭 신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관청을 습격한 다음 남연군의 묘로 쳐들어갔다. 그들이 남연군묘로 접근하자 이를 본 민중들은 호미와 괭이를 들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들은 총 칼을 휘두르면서 민중들의 반항을 제압하고 묘를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고종실록》 19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묘의 한 귀퉁이를 파헤칠 수 있었다. 그러나 썰물시간이 다가온 데다, 조선군이 몰려오면 생명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도굴을 포기하고 도망가고 만다. 젠킨스 일당은 도굴 실패 분풀이로 4〜5호 밖에 없는 덕산군 후포 마을로 들어가 약탈한 후 22일 영종도 앞바다에 정박하였다. 여기서 프러시아 수군 제독 명의로 대원군에게 협박장을 보냈다.

▲ 남현군묘 도굴 장면

“...남의 무덤을 파는 것은 예의가 없는 행동에 가깝지만 무력을 동원하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보다 나으므로.... 원래는 여기까지 관을 가져오려고 하였으나 정도가 지나친 것 같아서 그만두고 말았다. 이것이 어찌 도덕에 어긋나는 일 이라고 하겠는가... 귀국의 안녕과 위태로움이 귀하의 처리에 달려있으니.... 협상하자.... 계속 우유부단하다가 나흘이 지난다면 우리들은 돌아갈 것이니 지체하지 말 것이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우환을 당할 것이니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면 천만다행이겠다.”《고종실록》 영종첨사는 23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반박편지를 보냈다. “귀국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원래 서로 연계도 없었고, 또 서로 은혜를 입었거나 원수진 일도 없었다. ... 인간의 도리로써 차마 할수 있는 일이겠는가? 뿐만 아니라.....몰래 침입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무기를 빼앗고,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한 것도.... 우리나라 신하와 백성들은 다만 있는 힘을 다하여 한마음으로 귀국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수 없다는 것을 다짐할..... 몇 달 뒤에 설사 싸움배가 온다고 하더라도...방비할 대책이 있다,... 이제부터 표류해오는 서양각국의 배에 대해서는.... 도리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니.... ” 《고종실록》

젠킨스 일당은 분풀이로 4월 25일 영종진을 공격하였지만 조선 군사들은 그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2명의 목을 잘라 동쪽 성문에 달아매고 공포를 주었다.《고종실록》 그들은 “완강하고 억센 조선 사람들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은둔국 조선》며 상해로 달아났다, 《차이나》호에 큰 기대를 걸고 20여 일 동안 황해도 연해를 다니며 정세를 긴장시키던 《셰난도어》호도 같은 시기 상해로 도망갔다. 그린피스는 이 사건으로 조선의 반미감정이 높아진데 대하여 이렇게 썼다. 「이제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침입하려는 목적이 시체를 강탈하고, 가장 신성시하는 인간의 본성까지 유린하려는데 있다는 의혹을 목전에서 생생하게 확증하였다. 결국 외국인은 모두가 야만인이요, 대부분 절도나 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1871년 들어온 미국의 군함이나 국기에 대해여서도 꼭 같은 눈초리로 흘겨보게 되었던 것이다.」 《은둔국 조선》

비록 속셈은 식민지 개척 일지언정, 모든 침략국가가 겉으로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걸기 마련이다. 통상의 자유? 약소국 보호?, 전쟁을 선포할 때에도 선전포고의 구실을 찾으려고 갖은 조작을 다 하기 마련이다. 이 사건은 최소한의 요건마저 무시하고, 힘도 안들이고 한 나라를 집어삼키려던 파렴치의 극치이다. 사자의 유골까지 파내어 흔들어대면 조선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무지하고 야만적이며 천박한지... 그것이 바로 미국의 본 모습이다.

조선정부는 제킨스 일당의 만행에 대해 청나라에 알리면서 관계 인물 국가 영사들에게 사건해명을 요구했다. 상해 주재 프러시아 영사는 오폐르트, 폐롱 신부, 젠킨스 등은 프러시아 사람이 아니며 선주 뮐러와 선원들은 음모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함부르크 영사는 오페르트의 혐의 사실을 시인하면서 응분의 처분을 내렸다. 개인이 사사로이 국가 공무원을 사칭하여 외교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였다. 결국 오페르트는 본국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미국 총영사 슈워드는 젠킨스를 불법적이고 수치스러운 원정을 준비했다는 등 8개의 범죄 조항을 들어 상해 미국 영사 재판에 기소했다. 미국 영사 재판소 판사도 이 사건을 세계 침략사상 있어보지 못한 대단히 엄중한 사건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재판을 하는 척 하다가 미국 법상 해당 조목이 없다는 이유로 석방하게 된다. 이 사건이 개별적 해적집단의 범죄행위가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 침략 정책에 따라 감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기만적인 재판으로 위기를 벗어난 미국은 대규모적이며 모험적인 조선침략 전쟁준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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