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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내쫓고 새로운 계산법 검토하는 트럼프

[개벽예감 364] 볼턴 내쫓고 새로운 계산법 검토하는 트럼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9/16 [07: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미국의 협상청원 수락한 조선의 특별담화

2. 새로운 대안 가져오라는 조선의 요구

3. 조미실무협상에 포괄적 의제 오른다

4.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에 담긴 뜻

5. 트럼프, 조미협상 가로막은 큰 걸림돌 치웠다 

 

 

1. 미국의 협상청원 수락한 조선의 특별담화

 

“나는 미국에서 대조선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개최에 준비되여 있다고 거듭 공언한 데 대하여 류의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는 지난 4월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며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나는 그 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 나는 미국측이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위의 인용문은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발표한 담화의 전문이다. 여섯 문장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담화이지만, 거기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그 담화를 특별담화라고 불러야 할 만큼 매우 중대하다. 조미실무협상 담당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에서 건국 71주년을 맞이한 날에 조미협상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은 중대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나는 미국에서 대조선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개최에 준비되여 있다고 거듭 공언한 데 대하여 류의하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공언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동안 미국 국무부는 조미실무협상이 속히 개최되기를 바라는 청원을 여러 차례 조선 외무성에 보냈다. 청원련락을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고, 따라서 몇 차례나 청원련락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보낸 것이 분명하다. 전형적인 청원외교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그 때로부터 약 반년이 지나 조선에서 건국 71주년을 맞이한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특별담화에서 그는 2019년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여 포괄적인 의제를 토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으로부터 무시와 질책을 받으면서도 거듭 청원해온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할 수 있다는 조선의 청원수락이다.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포괄적인 의제는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할 새로운 비핵화방안, 그리고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새로운 평화실현방안을 모두 포괄하는 의제라는 뜻이다.     

 

굳이 청원외교라는 말을 쓰는 까닭이 있다. 만일 미국이 대등한 조건에서 조선에게 협상을 개최하자고 요구했다면, 협상제의라는 말을 써야 하지만, 부등한 조건에서 협상을 개최하자고 요청했으니 협상제의가 아니라 협상청원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무릇 청원이란 낮은 지위에 있는 행위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상대자에게 자기 소원을 아뢰는 행동이다. 오늘날 조미관계에서 조선은 미국으로부터 거듭되는 청원을 받을 만큼 우세한 지위에 있고, 그와는 반대로 미국은 조선에게 청원을 거듭해야 할 만큼 열세한 지위에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 외무성이 미국 국무부의 거듭되는 청원을 받고서도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고 무시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거만하고 도도하기로 소문난 미국이건만, 조선으로부터 그처럼 거듭 무시를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다. 비공개 청원을 거듭하였으나 조선 외무성의 응답을 받지 못해 고심하던 미국 국무부는 공개 청원으로 돌아섰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에게 신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청원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19년 8월 27일 마익 팜페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텔레비전방송과 대담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그의 팀을 현장에 보내 나의 팀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미국인들을 위해 훌륭하고 확실한 결과를 이끌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에게 신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청원하기 나흘 전인 2019년 8월 23일 이례적인 일이 생겼다. 리용호 외무상이 담화를 통해 팜페오 국무장관을 심하게 질책한 것이다. 리용호 외무상이 그를 질책한 까닭은, 2019년 8월 21일 팜페오 국무장관이 미국 언론매체와 대담하는 중에 “만일 북조선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면서 비핵화가 옳은 길임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시건방진 말투로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그런 발언을 들은 리용호 외무상은 8월 23일 담화를 발표하여 팜페오 국무장관을 심하게 질책했던 것이다. 질책담화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어떻게 그가 이런 망발을 함부로 뇌까리는지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고, 이런 사람과 마주앉아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지 실망감만 더해줄 뿐”이라고 하면서, 그는 “미국 외교의 독초”이고, “조미협상의 앞길에 어두운 그늘만 던지는 훼방군”이라고 책망했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런 질책을 받고 기분이 상했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못하고, 나흘 뒤에 조미협상이 하루빨리 재개되기 바란다는 청원의사를 언론대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조선에게 조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청원해온 미국 국무부의 다급한 사정은 2019년 9월 6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대표의 연설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는 미시건대학에서 연설하면서 “현재 조미 쌍방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협상탁에 마주 앉아 타협점을 찾고 협상의 운률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즉각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조선도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행동을 그만두고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게 조속한 협상재개를 청원하다가 질책까지 받고서도 내색하지 못하는 미국의 쪼그라든 몰골, 그리고 그들의 거듭되는 청원을 무시할 뿐 아니라 질책까지 주저하지 않는 조선의 위풍당당한 태도, 바로 이것이 오늘 조미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 새로운 대안 가져오라는 조선의 요구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는 지난 4월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며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3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2019년 2월 27일과 28일에 진행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단된 조미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선결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조미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조미공동성명을 리행해 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리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략)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앞으로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여져야 나는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할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였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면적으로 거부한 미국의 계산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이며,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직전에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작성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사람이 바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나는 2019년 4월 1일 <자주시보>에 실린 ‘핵협상 결렬시킨 트럼프, 텔리미트리 점검하는 전략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2019년 3월 29일 영국 통신사 <로이터즈> 소속 백악관 특파원이 직접 읽어보았다는 백악관 외교문서, 다시 말해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에 관한 보도내용을 검토하면서, 그 외교문서에 담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6월 7일 마익 팜페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 장미원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직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의견충돌로 사이가 벌어졌다. 볼턴은 적대국들과 협상하는 외교는 시간랑비일 뿐이며, 제재압박과 정권교체와 무력사용으로 적대국들을 굴복시키는 폭압이 효과적이라고 믿는 극우전쟁광이다. 뭐가 뭔지 모르고 분별없이 날뛰는 그런 극우전쟁광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 다른 각료들로부터 소외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우익세력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려는 생각에서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지만, 그의 극우광기가 너무 심하여 그의 발언과 행동을 제지해야 하였고, 그러는 과정에 그와 수없이 의견충돌을 벌였으며, 종당에는 그를 백악관에서 쫓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키고, 조미협상을 지난 7개월 동안 정체시킨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던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은 볼턴이 입안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이다.     

 

(1) 핵동결 - 조선은 현존하는 모든 핵활동을 중단하고, 새로운 핵시설 건설도 중단한다.

(2) 핵신고 - 조선은 자기의 핵프로그램에 관한 포괄적 선언을 한다.  

(3) 핵반출 - 조선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반출한다.

(4) 핵폐기 - 조선은 핵기반시설, 탄도미사일, 미사일발사차량, 관련시설들, 생화학무기프로그램을 해체한다.

(5) 핵사찰 - 조선은 미국인 전문가들과 국제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찰단에게 핵폐기현장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한다.

(6) 핵기술집단해체 - 조선은 모든 핵과학자들과 핵기술자들을 비군사직종으로 전직시킨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나는 그 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고 하면서, “미국측이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시했던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아줄 수 있는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조미실무협상에 나오라는 뜻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 그리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3. 조미실무협상에 포괄적 의제 오른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으로부터 무시와 질책을 받으면서도 거듭 청원해온 조미실무협상을 오는 9월 하순에 개최할 수 있다는 조선의 청원수락이다. 조선의 청원수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 

 

위에 인용된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은 조미실무협상이 열리면 포괄적인 의제를 토의하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의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할 비핵화방안만 토의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평화실현방안도 토의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평화실현방안은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안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평화협정, 불가침선언, 보장협약의 3중구조 위에 수립하려는 조선의 평화실현방안에 대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조선이 미국에게 조미실무협상 개최시점으로 제시한 2019년 9월 하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게 제시한 시한(2019년 12월 말)까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이것은 조선이 2019년이 가기 전에, 다시 말해서 앞으로 석 달 안에 조미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해놓은 대미협상시간표에 따라 앞으로 3개월 동안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서 변화의 급류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올해 언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려는가?”고 물은 백악관 출입기자의 질문을 받고 “올해 어느 때 그렇게 된다. 틀림없이 그들은 만나기를 원한다. 그들은 만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켜보자. 나는 무엇인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면서도,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는 “그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엉뚱하게 답변하였다. 이 엉뚱한 답변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정원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은 올해 언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려는가?"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면서 올해 안에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기대를 표명하였다. 2019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가지고 조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면 올해 안에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건에 맞춰 올해 안에 반드시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생뚱맞은 답변이지만, 거기에는 올해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그의 생각이 녹아있다.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가지고 조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면, 올해 안에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건에 맞춰 올해 안에 반드시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는 말은 올해 안에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이 비핵화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로 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과 미국은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각자 외교력량을 집중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9월 4일 유엔주재조선대표부는 오는 9월 하순 뉴욕에서 진행되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려던 리용호 외무상이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발표하였다. 2019년 7월 10일 유엔사무국이 발표한 유엔총회 연설자 명단에는 조선의 상급(장관급) 인사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로 되었었는데, 지난 8월 30일에 수정된 연설자 명단에는 상급이 대사급으로 바뀌었다. 리용호 외무상은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므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려던 계획을 그만둔 것이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외교력량을 집중해야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는 것은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조치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전격 해임한 조치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4.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에 담긴 뜻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앞으로 열리게 될 조미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조선이 받아줄 수 있는 계산법에 기초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분별없이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또 다시 꺼내놓으면, 조미협상은 그것으로 완전히 파탄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한 것이다.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하였음을 알려주는 속보가 <연합뉴스> 웹싸이트에 실린 시각은 오후 11시 39분이었다. 속보가 실린 시점을 보면, 최선희 제1부상은 오후 11시 30분경에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간으로 오후 11시 30분을 워싱턴 시간으로 환산하면,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이다. 정오가 가까운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이 영어로 번역한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받아보았을 것이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의 2019년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9월 9일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미국 통신사 <블룸벅 뉴스>는 2019년 9월 11일 보도기사에서 지난 9월 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가 제재완화를 반대하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격론을 벌였다고 하였지만, 긴급회의에서는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와 함께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조미실무협상개최문제도 논의되었다.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실무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강하게 반대하였다. 대이란제재완화문제와 조미실무협상개최문제를 놓고 두 사람은 격론을 벌였다. 

 

미국 언론매체들에 실린 동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 3시 10분경 백악관 집무실을 나선 모습이 나타난다. 오후 7시에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엇빌에서 열리는 공화당 대통령선거유세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으므로, 그는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가기 위해 긴급회의를 마치고 백악관 정원으로 나갔던 것이다. 

 

백악관 정원에서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들 가운데는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발표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북조선에서 방금 나온 성명(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뜻함-옮긴이)을 보았다. 그것(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뜻함-옮긴이)은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겠지만, 언제나 나는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쁜 것이 아니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즉석답변을 읽어보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조미협상개최문제에 기대를 건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집한 긴급회의에서 조미실무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자기의 의견을 반대한 볼턴에게서 느낀 불편한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엇빌을 향해 이륙하는 대통령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페이엇빌 선거유세장으로 가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뜻밖의 긴급보고가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장에 도착하기 약 1시간 전인 오후 5시 53분(평양시간으로는 9월 10일 오전 6시 53분) 조선이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또 다시 진행하였다는 긴급보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리둥절하였다. 그의 천박한 정치적 식견으로는 조선이 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자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자마자 위협적인 시험사격을 단행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9월 10일 이른 아침 평안남도 개천비행장 활주로에 임시로 설치된 지휘소에서 제2차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지도하는 장면이다.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휘소 밖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은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특별담화가 발표된 때로부터 약 7시간 30분 뒤에 진행되었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으므로, 시험사격을 자제하거나 연기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그런 통념을 깨고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한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7시간 30분만에 시험사격을 단행하였다. 특별담화발표와 시험사격단행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양면조치였다. 만일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면, 조미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될 수 있으므로, 조선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압도적인 위력을 시위할 필요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장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7시 9분이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등장에 환호하였지만, 조선이 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자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자마자 위협적인 시험사격을 단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선거유세 중에 조미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세계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동맹관계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약 7시간 30분이 지난 9월 10일 오전 6시 53분 평안남도 개천비행장 활주로 공터에서 거대한 불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제2차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진행된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으므로, 시험사격을 자제하거나 연기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그런 통념을 깨고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7시간 30분 만에 주한미국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단행하였다. 

 

7시간 30분 시차를 두고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가 발표되고,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진행된 것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양면조치였다. 만일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면, 조미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될 수 있으므로, 조선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압도적인 무력을 시위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실상을 정확히 보도하지 않아서 독자들이 모르고 있지만, 이번에 조선이 시험사격한 초대형 방사포는 압도적인 위력을 지닌 타격수단이다. 주한미국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줄 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 초대형 방사포의 시험사격은 백악관에 보내는 조선의 강력한 경고메시지였다.  

 

 

5. 트럼프, 조미협상 가로막은 큰 걸림돌 치웠다 

 

페이엇빌에서 선거유세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그가 움직인 동선을 시간대별로 추적해보면, 그가 백악관으로 돌아간 시각은 오후 10시쯤이다. 창가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초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가 밤의 정적 속에 내려앉고 있었던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전화통화는 볼턴에게 국가안보보좌관직을 오늘 밤에 그만두라는 해임통보였다.  

 

그날 밤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한 통으로 볼턴을 전격 해임할 줄은 각료들과 백악관 고위보좌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튿날 오전 8시 58분에 트위터로 발표한 볼턴 해임소식을 듣고서야 간밤에 볼턴이 해임되었음을 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해임을 단행한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언론매체들은 9월 9일 오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를 놓고 볼턴과 격론을 벌인 것이 볼턴을 해임한 이유라고 지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국가안보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전격 해임한 까닭은, 오는 9월 하순에 조미실무협상이 실패하면, 조미협상이 파탄될 것이라는 최선희 제1부상의 서릿발 같은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2019년 9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볼턴 해임과 관련하여 언급한 발언에서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존(존 볼턴을 지칭-옮긴이)은 나와 아주 잘 어울린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 리비아 모델은 꺼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뒤로 밀어냈다. 솔직히 그는 나보다 더 강경하지 않지만, 강경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알다시피, 그는 강경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우리를 이라크(전쟁터)로 끌어갈 만큼 강경했다. 그는 나와는 매우 좋은 관계를 맺었지만, 행정부의 다른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그가 리비아 모델에 대해 언급하자 재앙이 일어났다. 가다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보라. 나는 그 이후(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꺼내놓아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조선이 대미협상을 중지한 이후라는 뜻-옮긴이), 김정은(위원장)의 발언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는 존 볼턴과 상종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볼턴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을 뜻함-옮긴이)은 강경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해 말을 삼갈 줄 아는 명석함의 문제다. 존은 우리와 같은 길에 있지 않았다. 때로 그는 우리가 너무 강경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9월 11일 미국 국방부 청사 앞 광장에서 진행된 9.11사태 18주년 추모식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백악관을 출발하기에 앞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볼턴 해임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말해주었다. 그는 볼턴이 제안해서는 안 되는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조선에게 제안하여 "재앙"을 불러일으킨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발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제안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킨 재앙의 책임을 볼턴에게 떠넘겼고,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조미협상이 7개월 동안 지체된 재앙의 책임까지 그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백악관에서 내쫒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볼턴을 전격 해임한 것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함으로써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긍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제기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재앙’의 책임을 볼턴에게 떠넘겼고,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조미협상이 7개월 동안 지체된 ‘재앙’의 책임까지 볼턴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백악관에서 내쫓아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볼턴을 전격 해임한 것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함으로써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긍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조치에 의해 조미협상을 가로막았던 큰 걸림돌이 치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는 것은 핵동결, 핵신고, 핵반출, 핵폐기, 핵사찰, 핵기술집단해체를 요구한 리비아식 비핵화방안 중에서 핵반출, 핵폐기, 핵기술집단해체를 들어내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만 남겨두는 것이다.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에서 핵심내용은 핵반출, 핵폐기, 핵기술집단해체인데, 그런 핵심내용을 들어내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만 남겨두면, 그것은 더 이상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이 아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하고 있는,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방안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새로운 계산법에 기초한 비핵화방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고, 최선희 제1부상이 지난 9월 9일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녕변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바 있고, 2007년 2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5차 6자회담 제3단계 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이행을 위한 2.13합의’에 따라 조선은 녕변핵시설에 대한 핵신고를 실행하고 핵사찰을 허용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조미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되면 녕변핵시설에 대한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을 합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녕변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일단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그와 동시에 미국이 등가적 상응조치를 실행하면, 녕변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문제도 합의될 수 있다. 2018년 9월 19일에 채택,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바로 이것이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동시행동원칙에 따른 단계적 비핵화방안이다. 

 

오는 9월 하순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되면, 미국은 조선이 제시하는 동시행동원칙에 따른 단계적 비핵화방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석 달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원이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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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바꾼 풍경] 자유롭고 처우 좋은 IT 대기업에 웬 노조? 편견은 그만

네 번째 이야기 :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9-15 09:27:50
수정 2019-09-15 09: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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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결사체지만 이기적이고 불온한 듯 비칠 때가 많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청계시장에서 몸에 불을 붙였지만 오랫동안 우리나라 전역은 노조의 동토지대였다.

노조가 널리(?) 확산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부터다. 이전부터 일부 열성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있긴 했지만, 군사독재를 정치적으로 패퇴시킨 6월항쟁의 에너지가 ‘이제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열망으로 분출됐다. 그해 여름 구로공단부터 울산과 거제까지 노조 깃발이 휘날렸다. 헌법에서 잠들어있던 노동3권이 부활했다.  

그로부터 3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조 조직률 즉, 전체 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이들의 비율은 10% 남짓이다.(2017년 말 현재 10.7%) 이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모두 합친 숫자다. 최근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자가 맞는지, 사용자가 누군지 등이 사회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파업한다고 비난받고 밥그릇 지키기라고 욕을 먹어도 노조는 꾸준히 성장했다. 비정규직이 대거 노조를 결성했고 정규직과 함께 노조를 구성해 힘을 키우거나 아예 정규직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지켜지지 않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해, 살인적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조건을 줄였다. 라이더라 불리는 배달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 작지만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사나 IT업종 같은 그간 불모지였던 고임금 또는 신산업 업종에도 새로운 유형의 노조가 들어서기도 했다. 여성, 비정규직 등 이전에 상대적으로 노동의 주변부였던 이들도 빠르게 단결을 확장하며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노조의 확산은 노동자의 권리의식을 높이고 직장문화도 바꿨다. 최근 직장 내 ‘갑질’이 단지 ‘꼰대’라 불리는 상사나 선배의 일탈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 침해, 나아가 위법행위라는 인식이 분명해진 것도 변화의 증거다. 노조는 현장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산업계의 체질도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법규도 바뀌고, 사회전반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노조가 바꾼 풍경’에서 이를 짚어본다.  

*이 기획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개최한 2019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홈페이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홈페이지ⓒ사진 = 네이버지회 홈페이지 갈무리
 

2018년 4월 2일, 국내 1위 인터넷업체 네이버에 창립 19년 만에 최초로 노동조합이 생겼다.

사람들은 의아하고 신기해했다. 평균연봉이 7천만 원이 넘는다는데, 출퇴근 시간도 없고 맡은 일만 하면 퇴근해도 한다던데, ‘부장님’, ‘차장님’ 직급 없이 직원들끼리 서로 ‘님’이라고 편하게 부른다던데, 복장도 자유롭다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노동조합을 만든 거지? 하는 궁금증들이 꼬리를 이었다.

더구나 이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 소속 ‘네이버지회’로 만들어진다고 하자 의구심은 더 커졌다. 40~50대 생산직 노동자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을 외치는 모습이 떠오르는 ‘강성’ 이미지 민주노총과 최첨단 판교 테크노밸리를 오가는 20~30대 IT개발자들의 모습이 쉬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IT 회사 노조가 왜 화학섬유식품노조 밑에?’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네이버지회를 ‘귀족노조’로 매도하며 “배부른 투쟁”을 한다고 힐난했다. 또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격차를 심화시키려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신생노조에 적잖은 눈총이 쏟아졌다.

이런 온갖 의구심에도 네이버지회는 15개월 남짓 자신들의 길을 걸어왔다. 차근차근 조합 활동을 하며 몸집도 키웠다. 네이버 본사의 노동자들은 물론 자회사와 계열사 내 다양한 직군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지회 측에 따르면, 2019년 7월 현재 조합원수가 2000여 명을 훌쩍 넘었고, 이는 8000여 명 정도 되는 네이버와 관련사 전체 직원 수의 25~30%에 달하는 숫자라고 한다.

오세윤 전국민조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 지회장이 23일 성남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7.23
오세윤 전국민조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 지회장이 23일 성남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7.23ⓒ김철수 기자

‘네이버지회’는 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노조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업계 대표기업 네이버라면 처우도 좋을 거 같은데 노조를 왜 만들었냐’는 삐딱한 질문에 오세윤 네이버지회 지회장은 이렇게 반문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건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상관없지 않나요? 노동자라면 당연히 노동조합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서 “노동자가 있는 곳엔 다 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에 자본과 노동이 동등하게 있게 된다”라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니까, 그 안에서 좀 더 사람답게 지낼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직장이 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오 지회장은 회사와 노동자 간의 ‘투명한 소통’에 대한 요구 때문에 노조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직원들끼리는 수평적이다. 호칭도 ‘님’을 붙여 부르고 자유롭게 대하고 복장도 그렇다. 그렇지만 회사 내 의사결정 구조는 수직적인 게 있었다. 회사가 경영상에 큰 변화가 있거나 하면 직원들과 같이 상의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설명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해 노조를 만들게 됐다”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민중의소리

‘노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네이버 노동자들이 모인 익명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예전부터 심심찮게 올라왔다고 한다. 그러다 실제로 노조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오픈채팅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2018년 1월 오프라인서 첫 모임을 했다. 처음 모인 사람은 4명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 사람씩 구성원이 늘어, 노조 출범 시점쯤엔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활동을 함께 했다고 한다. 

모인 이들 모두 ‘노조’, ‘노동운동’엔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노조를 만들겠다고 모였지만 기존 ‘노조’에 대해 가진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는 점도 비슷했다.  

오 지회장은 만화 ‘송곳’을 보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노조를 만들기로 하면서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파리바게뜨 청년 노동자들이 정의당 ‘비상구’(비정규직 노동 상담 창구)를 찾아가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를 소개 받고 노조를 만든 이야기였다.  

오 지회장의 기억이 씨앗이 되어 네이버 노동자들 역시 ‘비상구’를 찾았고 화섬식품노조를 소개받았다. 이후 화섬식품노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조 출범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3개월여 만인 2018년 4월 2일 드디어 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의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오 지회장은 “앞서 파리바게트 노조와 일하면서 잘해온 것 같았다. 또 만나서 저희 현장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의견은 존중해줬다. 적극적으로 노력해 줘서 함께 하게 됐다”고 밝혔다.  

네이버지회가 별칭 ‘공동성명’을 인쇄해 조합원들과 함께 나눠 입은 티셔츠
네이버지회가 별칭 ‘공동성명’을 인쇄해 조합원들과 함께 나눠 입은 티셔츠ⓒ사진 제공 =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네이버지회의 등장이 물꼬 튼 ‘노조 문화’의 변화  

네이버지회 구성원들은 새로 만든 노조가 ‘노조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 갇히지 않길 바라며, 활동과 투쟁에 새로운 방식을 고민했다.  

오 지회장은 “노조가 워낙 이미지가 안 좋다. 언론에서 자꾸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니까 그런 것 같다. 우리가 보통 노조에 대해 교육받는 적도 없지 않냐”면서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다 보니, 노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리-브랜딩(re-branding)’이란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네이버지회 사람들은 제일 먼저 노조에 ‘별칭’을 붙여 친근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이들의 별칭 ‘공동성명’(共動成明)은 “함께 행동해서 네이버를 깨끗하게 성장시킨다”는 뜻으로 박상희 사무장이 직접 지은 것이다. 지회에서는 별칭을 티셔츠, 후드점퍼, 목걸이 줄에 인쇄해 굿즈(GOODS)로 만들고 쟁의행위 때 조합원들과 함께 착용하며 공동체성을 높였다.

노조 간부들은 누구나 다가오기 편하도록 ‘쟁의국장’, ‘교육선전국장’ 이란 호칭 대신 ‘staff(스태프)’로 일괄해 부르기로 했다. 현수막, 피켓, 노동조합 유인물 등 홍보물 제작엔 순화된 용어를 쓰고 딱딱하지 않게 디자인과 색깔에도 신경을 썼다. 지난 2월 20일 첫 점심시간 쟁의행위 때는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로비에 녹색의 현수막이 등장했다.  

(왼쪽)네이버지회가 지난 4월 24일 부분파업 당시, 영화 단체 관람을 하기위해 오리 CGV 영화관 내에 붙인 안내문
(왼쪽)네이버지회가 지난 4월 24일 부분파업 당시, 영화 단체 관람을 하기위해 오리 CGV 영화관 내에 붙인 안내문ⓒ사진 제공 =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또 보통의 집회 현장처럼 크게 민중가요를 트는 대신, 익숙한 동요 ‘둥글게 둥글게’를 틀었다. 조합원들은 손에 풍선을 들고 동요에 맞춰 8박자 구호를 외쳤다. 꿀벌캐릭터 ‘네이-비(NA-BEE)가 등장해 깜찍한 모습으로 현장을 오고 가며 분위기를 친근하게 만들었다.

지난 4월 24일 첫 부분 파업 때는 기나긴 집회를 하지 않고, 영화관을 대관해 조합원들이 좋아하는 최신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단체로 보기도 했다.  

오 지회장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노조 활동의 큰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디테일을 가다듬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기 위해 디테일을 보완해 나간다고 보시면 된다. 기존의 노조들이 좋은 것들을 많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것들을 보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급 단체 화섬식품노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IT분야엔 워낙 노조가 없다 보니, 네이버지회의 현장 경험과 설명을 화섬식품노조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귀담아듣고 있다고 한다. 오 지회장은 “저희가 홍보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피력한 부분들을 화섬식품노조에서 많이 수용해주셨다. 그런 부분은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네이버지회는 달라진 스타일로 활동을 이어가며 여러 가지를 이뤄냈다. 작년엔 노사협의회에 노동자대표로 참여해 IT업계 고질적 병폐인 포괄임금제를 폐지했고, 올해는 단체 협상을 맺으며 노사 간 ‘소통의 투명성’도 상당 부분 확보했다. 앞으로 회사는 경영상 주요 부분에 대해 직원들에게 설명해야 하고, 그동안 직원들에게 제각기 지급되던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객관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게 됐다. 그 외에도 업무 시간 외 SNS로 업무 지시 금지, 유급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확대, 노조 활동 보장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도 이뤄진다.  

네이버지회가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1층 로비에서 점심시간 동안 쟁의행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손에 풍선을 든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네이버지회가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1층 로비에서 점심시간 동안 쟁의행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손에 풍선을 든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사진 제공 사진 제공 = 네이버지회

변화는 이제 시작, 앞으로 남겨진 것들  

네이버지회는 오랫동안 노조의 불모지였던 IT업계에 새로 깃발을 꽂고 영역을 개척해, 더 많은 IT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게 물꼬를 텄다. 네이버 지회를 본 인터넷·게임 업체 노동자들도 스스로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회가 출범한 지 5개월만인 지난해 9월, 게임 회사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 노조가 생겼고, 그해 10월엔 카카오에도 노조가 만들어졌다. 2019년 7월 현재, 4개 노조는 각각 본사와의 단체협상 체결을 완료한 상태다.  

오 지회장은 “저희는 업계에서 괜찮은 편이고, 그런데도 노조를 만들었다. 저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 저희를 보고 용기를 내서 노조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저희도 연대해서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야 판교 인근 IT회사에 지회가 4개 생긴 것이다. 더 많은 노조가 생겨야 한다. 노조를 통해 노동권이 보장 되고 노동자들이 더 존중받게 되어야, 한국 IT산업도 성장하지 않겠나. 이게 네이버지회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린 네이버지회 단체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네이버 노조)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2019.02.11ⓒ민중의소리

네이버지회는 또 다른 측면으로도 연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네이버지회는 ‘계열사 노조’다. 네이버 본사 뿐 아니라 그에 딸린 자회사, 손자회사 등 40여 개 기업에 속한 노동자를 포괄하는 것이다. 실제로 20개 자회사, 손자회사의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지회는 이 중 16개 회사와의 교섭권을 확보한 상태다.  

지회 측에 따르면, 본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제일 나은 상태이고, 자회사나 계열사로 갈수록 열악해진다고 한다. 또 각 회사들이 본사에 재무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종속된 상태라, 인사·처우 문제 등에 있어 본사의 입김이 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회는 계열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각 사측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처우의 노동자들끼리도 ‘노조’라는 한울타리 내에서 연대가 가능함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지분 100%를 보유한 손자회사 ‘컴파트너스’의 노동자들도 네이버지회 조합원으로 활동중이다. 이 회사는 네이버 검색광고 상담, 네이버 및 자회사 직원 업무 지원 등의 일을 한다. 소속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므로, 관련한 노동자 보호 조치와 휴식권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지회는 지난해 8월부터 컴파트너스 사측과 15회 넘는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회는 노조활동 보장, 리프레시 휴가 3년 근속에 3일 보장 등으로 요구사항을 축소했지만 지난 7월 교섭은 결렬됐다. 이 때문에 컴파트너스 소속 네이버지회 조합원들은 쟁의행위에 돌입했고, 8월 19~21일 간 부분 파업을 진행했다. 향후에도 투쟁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네이버지회 컴파트너스 스태프 한용우 씨는 “저는 손자회사 직원이지만 네이버지회 안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다. 지회 안에서 각 자회사, 손자회사 법인 별로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대처해 나간다. 파업 때도 그랬고, 현재 진행 중인 컴파트너스 노동자 17인의 초과수당 미지급에 따른 체불임금 소송도 지회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지회장은 “계열사 노조이니, 자회사·손자회사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는 건 당연하다. 앞으로도 ‘우리 노조는 하나’라는 연대감, 끈끈함을 다 같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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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최강자 미국, '빨갱이 공포'를 내면화하다

[전쟁국가 미국·3강-⑨] 현존위험위원회(CPD)와 반공군사주의
2019.09.14 10:36:31
 

 

 

 

공화당의 반격과 CPD의 대응

1951년 1월 5일 아이젠하워는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현지 실태 조사를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같은 날 공화당 출신의 전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미군의 유럽 추가 파병은 "또 다른 한국전쟁을 초래"할 것이라며 나토 결성을 강력 반대한다.

후버는 공군과 해군력만으로 미국을 지킬 수 있다면서 유럽이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이후에 군사원조와 미군 파병을 단행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유럽을 잃는다 해서 우리 안보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고 히스테리에 빠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도 이날 2시간 30분에 걸친 의회 연설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의회 승인 없이 미군의 해외파병이 가능한가? 둘째,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할 의도가 있다"는 증거가 있는가? 셋째, 유럽에 미군을 파병하면 오히려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 아닌가? 등이다.  

사실 해외 파병은 의회 승인 사항이다. 그런데 트루먼 행정부는 북한의 남침을 막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경찰 행동(police action)이라는 이유로 의회 승인 없이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그런 전례가 반복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미군의 유럽 파병은 오히려 소련을 자극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그는 "평화에 대한 최대의 현존하는 위험은 트루먼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정부의 행동, 특히 미국인 장군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통합 유럽군대의 창설"이라면서 대규모 미군의 유럽 파병은 "엄청난 재정적자와 인플레, 미국의 병영국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생존해 있는 유일한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양심으로 불리는 태프트 의원의 경고는 대중들의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다음 날인 1월 6일 부어리스는 워싱턴에서 CPD 회의를 소집해 "유럽에 대한 미 군사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후버 전 대통령의 제안이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제안을 지지하는 편지가 의회에 쇄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월 7일 CPD는 유럽은 "소련이 노리는 다음 먹잇감"이라고 맞받아쳤다. 소련이 유럽을 먹는다면 이는 "2억 명, 그것도 대부분 고도로 산업화된 주민들이 미국에 대항하는 공산 제국에 흡수되는 꼴"이라는 것이다. CPD는 "미국의 성공적 방어는 유럽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를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뒤늦게 깨달았다"면서 트루먼의 유럽 파병을 적극 옹호했다.

1월 8일 트루먼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그는 "남한 침략은 세계를 단계적으로 접수하려는 소련 공산 독재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서유럽이 소련 침공에 무너지면 소련의 석탄 생산량은 2배, 철강 생산량은 3배로 늘어날 것"이며 "미국이 유럽을 외면하면 소련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소련이 유럽과 아시아의 자유국가들을 집어삼키면 미국으로서는 감당조차 할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며 "그런 상황이 되면 소련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강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서는 제한전을 수행하는 한편 지구적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전쟁의 승리보다는 핵심 산업지역인 서유럽과 일본의 재무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우리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그 원조는 이제 그들의 국방 건설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2월 7일 코난트는 전국 라디오 연설을 통해 "미국이 위험에 처해 있다. 분명히 군사적 위협이다. 우리는 즉각 국가적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모든 국민들은 의회와 행정부에 대해 현 위기 상황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을 청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상원 외교위와 군사위는 유럽 파병에 관한 합동 청문회를 개최한다. 2월 20일 청문회에서 마셜 국방장관은 미군의 유럽 파병은 이미 1950년 9월 트루먼 대통령이 군부의 조언을 받아 결정한 사항이라면서 4개 사단 증파 방침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에 대해 후버 전 대통령은 2월 27일 증언에서 "미군의 유럽 파병은 러시아와의 승산 없는 지상전, 그리고 미국 청년들의 학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의회에서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CPD는 3월 4일부터 매주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국민 직접 설득에 나선다. 국민들의 의식을 바꿔 의회 반대파들을 압도한다는 전략이다. 3개월간 지속된 방송 캠페인의 첫 번째 연사는 과학계의 거물인 바네바 부시였다.

부시는 이제 소련과의 대결에서는 "모든 군사력에서의 우위"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소련의 핵개발 이전까지는 미국의 핵 독점으로 소련의 군사행동을 억지할 수 있었으나 핵 독점이 무너진 이후에는 핵무기 및 재래식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NSC-68의 핵심 요지로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 독트린이 된다. 즉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외정책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이다. 1996년 클린턴 행정부가 천명한 '전방위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는 바로 이러한 정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어 3월 11일에는 로버트 패터슨 전 전쟁부 장관이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책은 전면적이고 신속한 대외 군사 원조"라면서 아이젠하워가 주도하는 나토 결성을 전폭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18일에는 윌리엄 도노번 전 OSS 국장이 심리전 등 비밀공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CPD는 라디오 연설 내용을 소책자로 발간하는 한편 '쫄면 죽는다(The Danger of Hiding Our Head)'라는 제목의 만화 10만부를 배포하고 '현대 무기와 자유인(Modern Arms and Free Men)'이라는 선전영화를 제작했다. 기업계는 이러한 선전 책자를 확대 보급했다.

CPD의 대국민 선전 작업은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 덕택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부어리스 부의장은 자체 평가를 통해 전국 라디오 연설은 "CPD의 활동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국민들에게 우리가 처한 위험을 일깨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1951년 4월 5일 의회는 10만 미국 병사의 유럽 파병을 승인하는 한편 대통령에게 대외 및 군사정책에 대한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한다. CPD의 대국민 선전이 이뤄낸 개입주의의 승리였다. 

맥아더 해임 

그런데 바로 이날 또 하나의 폭탄이 의회에서 터진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조셉 마틴 의원이 중국 본토 공격을 주장하는 맥아더의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중국 국민당 병사 80만을 동원해 중국 대륙에 대한 제2전선을 열자는 것이었다. 즉 한국전쟁을 중국대륙으로 확대해 중국 공산정권까지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그는 유럽의 운명은 아시아의 반공전쟁에서 결정된다면서 "공산주의 음모가들은 아시아를 세계 정복의 주전장으로 택했다. 우리 군인들은 이곳에서 유럽을 대신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곳의 외교관들은 여전히 말싸움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극동에서의 전쟁에서 패한다면 유럽의 상실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맥아더는 1월 중순경 중국군을 저지하고 반격하기 위해 만주에 원폭 공격을 가하는 한편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를 동원해 중국 본토를 공격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제한전 방침을 굳힌 트루먼 행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유엔 결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단독으로 확전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유엔 결의에 참여한 유럽 국가들이 3차 세계 대전을 의미하는 확전에 동의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승리를 포기한 정부 방침에 분노한 맥아더는 자신의 복안을 야당에 알리면서 사실상 항명 행위를 한 셈이다. 4월 11일 트루먼은 맥아더 해임을 발표한다. 이로써 미국의 대외정책 논쟁은 개입주의 대 불개입주의에서 유럽우선주의 대 아시아우선주의로 바뀐다.  

전쟁 도중 지휘관을 교체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인데 유럽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고 군사원조를 한다? 대중들은 분노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트루먼은 진짜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애치슨 국무장관과 마셜 국방장관,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지금은 전면전을 치를 수 없다.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제한전 방침을 고수했다. 미국과 서유럽의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51년 당시 미군 지휘관들은 소련과의 전면전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맥아더 서한이 공개되면서 공화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태프트 상원의원은 한반도에서 유화정책을 버리고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선택은 "애치슨인가 맥아더인가...애치슨을 해임하고 국무부 내의 공산주의 동조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단합은 없다"고 역설했다. 

윌리엄 제너 상원의원은 "오늘날 우리나라는 소련의 지령을 받는 비밀요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우리는 즉각 우리 정부 내의 암적 음모 집단을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트루먼 대통령을 탄핵하고 우리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색출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닉슨은 트루먼 대통령을 견책해야 한다면서 '맥아더 해임은 세계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책'이라고 주장했다. 매카시는 트루먼에 대해 '개새끼(son of bitch)'라고 막말을 퍼부으면서 이제 온 나라가 붉게 물들 것이라고 개탄했다. 4월 12일 공화당 하원 정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뮌헨을 능가하는 거대한 유화책이 트루먼-애치슨-마셜에 의해 준비되고 있는가?"라고 공격했다. 

5월 3일, 이른바 맥아더 청문회가 시작된다. 트루먼의 맥아더 해임이 정당한가를 따지는 청문회였다. CPD는 교묘한 여론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부어리스는 맥아더 해임 논쟁으로 공산주의의 위험이 새롭게 부각된 것은 오히려 좋은 징조라면서 여론전을 지휘했다.

우선 4월말 <뉴욕타임스>를 통해 무엇보다 국민적 단합이 중요하다면서 유럽 우선이냐, 아시아 우선이냐는 부차적 문제라고 물타기를 시도했다. 특히 미국이 한국전쟁을 우선시 할 경우 유엔과 나토의 단합이 무너져 자칫 미국 혼자 반공 성전에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5월 14일부터 세 차례에 걸친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주장을 무력화시킨다. 첫 번째 방송에서 부어리스는 맥아더 휘하 극동사령부의 2인자인 클라크 아이첼버거 장군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의 대응은 적절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유럽 방위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리고 5월 20일의 두 번째 방송에서 결정적 한 방을 이끌어낸다. 이날 출연자는 맥아더의 절대적 지지자인 두 명의 반공 신부였고 그중 한 명은 매카시에게 빨갱이 사냥에 나서도록 권유한 에드먼드 월시 신부였다. 그는 맥아더와 장시간 대화를 나눴으며 맥아더가 "자신의 극동 전략이 아이젠하워의 유럽 동맹 결성을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이의 증언을 통해 맥아더의 본심을 뒤바꿔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사실상 논쟁은 끝이 났다. 맥아더는 내심 유럽보다는 아시아를 우선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나토 결성보다 한국전쟁에서의 승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공을 위해 단합해야 하며 아시아 우선이냐, 유럽 우선이냐는 부차적 문제라는 CPD의 원론적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결국 의회는 "맥아더 해임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리에 속한다"며 트루먼의 해임 조치를 추인했다. 

이로써 1951년 1월 시작된 미 대외정책의 대논쟁은 유럽에서의 반공을 우선하는 개입주의의 승리로 사실상 끝이 났다. 또한 1951년 10월 10일 유럽에 대한 경제 원조를 군사 원조로 대체하는 내용의 상호안보법이 통과되면서 CPD는 자신의 모든 임무를 완수한다. 이 법은 사실상 CPD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군사 원조 위주의 상호안보법이 제정됨에 따라 1952년 미국의 대외원조는 73억 달러로 늘어난다. 1948-51년 마셜 플랜에 따른 연간 원조액 40억 달러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즉 서유럽에 대한 원조 확대로 이들 국가들을 미국 진영에 묶어둘 수 있게 된 것이다.  

1951년 말 CPD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으나 실제 해산은 1953년에 이루어진다. 첫째 이유는 너무 일찍 해산할 경우 소련 공산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CPD가 주창한 반공군사주의를 실천할 지도자로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을 돕기 위해서였다. 결국 1차 CPD는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 이후 해체된다.

그리고 CPD 의장 제임스 코난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독일 고등판무관으로, 부의장 트레이시 부어리스는 나토 국방보좌관 겸 해외조달(Offshore Procurement) 책임자로 발탁된다. 즉 NSC-68의 반공군사주의를 홍보했던 사람들이 이의 집행에도 참여한 것이다.

고등판무관은 미국의 독일 점령에서 민간 부문 최고 책임자로 재무장과 경제 통합에 관한 정책들을 담당한다. 해외조달 책임자란 나토 병력을 위해 유럽에서 생산된 군수물자를 미국 돈으로 구매하는 역할을 한다. 즉 유럽 기업에 일감과 함께 달러 수입을 제공함으로써 대서양동맹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또한 미 의회와 국민들의 퍼주기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1954년 유럽에서의 해외 조달 액수는 23억 달러에 이른다.

반공군사주의의 확립 

1947년 냉전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에서는 두 가지 빨갱이 공포가 성행했다. 하나는 공화당 우파가 유포한 것으로 '공산주의 일반'의 위협을 앞세워 국내의 반대파 척결에 나섰다. 아시아, 유럽 등 해외 공산주의에 대한 대응은 그 다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집권 민주당에 의한 것으로 '소련 공산주의'의 서유럽에 대한 위협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매카시 등의 빨갱이 사냥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으나 NSC-68을 관철해냄으로써 반공군사주의 체제를 확립한다. 요컨대 미국의 두 정치세력 모두가 '빨갱이 공포'를 정책 수행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역사가 멜빈 레플러는 2차 대전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은 반공을 매개로 냉전 합의를 이룬다고 말한다. 즉 트루먼은 공화당이 자신의 대외정책을 지지해준다면 공화당 요구대로 국내의 이른바 '체제 전복 세력'과 맞서 싸울 용의가 있었다. 반면 공화당은 (국내에서의) 반공을 위해 마셜 플랜과 나토 창립, 독일 및 일본의 재건과 미군 해외 주둔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반공군사주의는 미 대외정책의 초당적 합의로 굳어지고 이 합의는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 때까지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빨갱이 공포가 내면화됐다는 점이다. 1950년대는 미국의 국력이 역사상 최강, 세계에서 절대적 우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내면에서는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직장에서는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는 민방위훈련이 실시됐고 1957년에는 폭격기 갭, 1960년에는 미사일 갭 등 미국의 군사력이 소련에 뒤진다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환기됐다. 바로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미국의 군사주의를 유지, 확대하는 자양분이 됐다.  

미국은 나토 창설 당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그 이유로 들었다. 또한 독일이 통일될 당시 소련에게 나토가 단 1인치라도 동쪽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동유럽 거의 모든 나라를 나토에 가입시켜 러시아를 포위하고 있으며 199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해체에 나토를 동원했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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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1인 시위에 '재 뿌린' 박근혜 지지자들

[현장] 황 대표, 추석연휴 두 번째 1인시위 진행... 류 전 최고위원 "박근혜 석방" 촉구

19.09.14 21:04l최종 업데이트 19.09.14 21:07l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황 대표 앞에 무릎을 꿇고 "박 전 대통령 석방"을 호소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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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18시 50분, 이때까지만 해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추석 연휴 두 번째 서울역 1인시위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붉은색 바탕에 태극기 무늬 치마와 하얀색 저고리를 입은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황 대표 앞에 나타나 "박근혜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호소하자 현장은 한마디로 난장판이 됐다.

당직자들은 류 전 최고위원을 끌어냈고 그는 특유의 목소리로 "왜 나를 밀치냐"면서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곤 이내 다시 돌아와 황 대표 앞에 무릎 꿇고 다시 한 번 강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 힘을 합쳐 달라"고 호소했다.

굳은 표정의 황 대표는 잠시 지켜보더니 류 전 최고위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 이야기를 건넸다. 그제야 류 전 최고위원은 현장에서 물러났다.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류여해 전 최고위원이 1인 시위 중인 황 대표에게 다가와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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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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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뒤, 황 대표는 기자들을 향해 "(추석 연휴 기간) 국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줬다"면서 "그렇지만 '조국 임명은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공감이 컸다"라고 서울역 두 번째 1인시위의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조국 장관을 사퇴시켜야 하고 문재인 정부는 사과해야 한다"라고 촉구하며 "우리 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국민과 함께 이겨내겠다"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이어 검찰이 조국 장관의 5촌 조카를 체포한 것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법에 따라서 엄정하게 처벌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그렇게 돼야 한다"라고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황 대표가 1인 시위를 마친 뒤 현장을 벗어나자 지지자들이 '황교안'을 연호했고, 황 대표는 멈춰 서서 "연휴 기간에 나와줘 대단히 감사하다. 여러분 응원에 힘입어 반드시 문재인 정권을 이겨내겠다"라고 말하며 떠났다.

황 대표는 이날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 지난 12일에 이어 두 번째로 '조국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1인 시위 내내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악수한 황 대표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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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번째 서울역 1인시위를 예고한 황 대표는 14일 오후 5시 57분 지지자들의 열띤 환호 속에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황 대표가 자리를 잡자, 시민들은 '황교안이다'라고 외치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입구가 막히자 당직자들은 지난 12일 황 대표의 1차 1인 시위 당시의 혼잡함을 고려한 듯 선제적으로 "길을 열어달라"라고 외치며 통로를 만들었다. 자리를 잡은 황 대표 역시 지지자들이 몰려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자 손짓을 하며 "우리가 길을 막고 있다"라는 말을 하며 주변 정리를 지시했다.
  
그러나 황 대표의 말은 여기까지였다. 1인 시위 시작과 동시에 기자들이 다가와 "다시 1인 시위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가", "조국 장관 5조 조카가 구속됐다. 어떻게 보나" 등의 질문을 건넸지만 황 대표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피켓만 들고 있었다. 

지지자들에게는 달랐다. '황교안'을 연호하며 지지자들이 다가오자 황 대표는 고개를 숙여가며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눴다. 일부 지지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황 대표에게 다가가 물과 음료수 등을 건네며 "힘내시라"는 말을 외쳤다.

일부 시민 "박근혜 즉각 석방하라"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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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황 대표의 1인 시위 현장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모였다. 이들은 황 대표를 향해 '박근혜 대통령 즉각 석방'을 요구하며 "그러면 황 대표를 지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중에는 황 대표가 들고 있던 피켓을 가리키며 "조국 임명 철회하라가 도대체 무엇이냐. '구속하라'를 외쳐라. 확실한 투쟁을 보여 달라"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황 대표가 앞장 서서 단식을 하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1인 시위 후 기자들을 만난 황 대표는 '보수통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런 얘기는 이런 자리에서 간단하게 할 얘기가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기본적인 대통합을 해서 문재인 정권을 이겨내야 한다"라고만 답변했다.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14일 저녁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간 두 번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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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의 1인 시위 현장에는 지지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류 전 최고위원의 소동 직후 한 20대 청년은 황 대표 앞에 다가가 "지금 이런 행동이 되게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에 일부 흥분한 황 대표 지지자들이 청년에게 욕설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30m 떨어진 지점에선 자신을 '사법농단 피해자 가족이자 당사자'라고 밝힌 한 시민이 맞불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진실규명 사법정의 실현, 조국 법무부장관 합격"이라는 피켓을 들고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은 물러나라"라고 외쳤다. 이번에도 흥분한 일부 황 대표의 지지자들이 욕설을 하며 격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한편 황 대표는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오후 3시 국회에서 소속 의원들과 함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규탄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국민보고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에는 소속 의원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해 조국 임명 규탄 집회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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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연 주권방송 편집국장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4. 서지연 주권방송 편집국장
 
 
 
신혜원 
기사입력: 2019/09/15 [11: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주권방송 편집국장 서지연     © 신혜원

 

원 : 자기소개해 주세요.

연 : 저는 주권방송 편집국장 서지연입니다.

 

원 : 주권방송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연 : 2010년 10월 1일에 창립됐어요. 준비사업은 2009년부터 했고 2008년에는 ‘615TV’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원 : ‘615TV’ 때부터 같이 하신 건가요?

연 : 네.

 

원 : 어떻게 방송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연 : 2007년에 아이를 낳고 쉬고 있다가 방송국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고 복귀하면서 같이 준비하게 됐어요. 

 

원 : 그 전에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연 : ‘깨우는 동화’라는 애니메이션 동화를 만든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꽤 큰 프로젝트였는데요. 

 

원 : ‘깨우는 동화’에 대해 어떻게 기획해서 하게 됐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연 : 벌써 십몇 년 전 일이네요. 60년 동안 깨지 않는 악몽이라는 주제로 분단과 미국, 제국주의의 한반도 전략에 의한 피해와 아픔, 상처들에 관한 내용을 야기 형식으로 편하게 풀어보자는 목적으로 만들게 됐어요. 생활 곳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려다 보니 범죄 얘기를 많이 다루게 되었죠. 기지촌으로 가게 된 지 며칠 만에 살해당한 여성, 주한미군 기지로 확정되며 땅을 빼앗긴 평택 대추리 이야기, 폭격 훈련장으로 이용되던 매향리 투쟁,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조중필 학생 등 변하지 않는 미군 범죄에 대해 다루며,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군이 있는 한 우리는 피해를 받는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TV동화 행복한 세상’같은 형식으로 ‘깨우는 동화’로 만들었고요, 그림 그리고 극하는 동지들과 같이 진행했었어요. 

 

원 : 영상을 만들었던 경험만으로 방송국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결심이었을 것 같은데요, 당시 방송국을 만들었던 목표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연 : 당시는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던 때였어요. 그 이전에는 다음 아고라가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였다면 미디어몽구를 비롯해 동영상 콘텐츠 제작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대중적으로 영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죠. 유튜브 이전에 아프리카TV나 판도라TV 등이 사용될 때였어요.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경향에 맞는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에서 시작되었죠.

 

원 : 동영상 콘텐츠 제작뿐 아니라 방송국이라는 형태를 시작할 때는 다른 고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연 ; 2007년부터 국민주권시대라는 고민을 하며 국민의 목소리는 높아지는데 기성 언론이 이 목소리를 다 대변하지 못한다는 생각했어요. 그런데서 개인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 공신력을 가진 언론으로 국민의 대변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 : 그렇군요. 그렇게 시작한 주권방송이 10년이 되었네요.

연 : 내년에 10주년이 돼요.

 

원 : 10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연 : 많은 일이 있었지요. 이름인 ‘주권’처럼 주인다운 힘을 느꼈던 10년이었어요. 이명박근혜 시기가 이 안에 다 있어요. 주권방송의 시작이 광우병 촛불 때부터였거든요. 천안함이나 세월호, 부정선거 등 큰 사건들과 큰 집회의 현장도 많았고, 통일정세 상에서도 극한점까지 갔다가 다시 정상회담까지 오는 과정도 보게 됐지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는 우리 민족, 국민의 힘을 느꼈던 10년이었어요. 우리가 막 일구어왔다기보다 계속 노력하시는 분들, 어떻게 돌파해나갈 것인가 고민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다 보니 10년이 간 것 같아요.

 

원 : 참 다사다난했던 10년이었네요. 그 안에서 편집국장님의 역할이나 마음가짐의 변화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연 : 많이 배우고 알게 됐죠. 예전에는 기획방송에 대한 고민보다는 정규방송과 현장방송을 중심으로 고민했는데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전해야 할 목소리는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하게 되는 과정이었어요. 저도 주인으로 서는 과정이었던 거죠. 몸도 마음도 훨씬 더 건강해졌어요.

 

원 : 몸은 어떻게 건강해진 거예요?

연 : 이전에는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안 아프고 일주일을 다 출근하기 힘든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일도 많고 챙겨야 할 사람들도 많아졌는데 나를 몰아세우면서 했던 걸 그렇지 않게 됐어요. 예전 같으면 상황이 나를 몰아가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랄까요. 마음이 건강해졌어요. 아이들이 커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옛날부터 저를 알던 사람들이 지금 제가 더 편해 보인다고 이야기해요.

 

원 : 편집국장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거예요?

연 : 다 같이 하는 것이긴 한데, 방향을 잡고 기획을 하고요. 어떤 내용의 방송과 기사를 어떤 형식으로 낼지를 정해요. 혼자 정하는 것은 아니고 조금 더 먼저 고민하는 사람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큰 것은 기사 검토예요. 처음의 목적대로 제작되었는지 확인하고 기자들과 토론을 많이 하면서 방향을 잡아나가기도 하고요.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인 거죠.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지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원 :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검토를 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실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지요?

연 : 10년 동안 느낀 것은 개개인이 실력을 쌓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전체적으로 고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놓고 싶어요. 그리고 기술 실무능력을 키우는 것에 빠지기 쉬운데 정세분석이나 우리의 몫에 대한 고민 등 정치적 판단능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희는 회의 시간 외에 정세분석 관련해서 토론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세계, 국내, 한반도 정세 등 분야별로 나누어서 토론하는데요, 이런 내용이 ‘박둥지의 세계의 눈’ 같은 콘텐츠로 제작돼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토론을 일상적으로 많이 해요. 기술 실무적인 능력은 계속 배우는 중이에요. 같이 배우기도 하고 개별로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하고요. 책을 정해서 같이 읽기도 하는데요, 따로 보면 다 읽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매일 독서이어달리기라는 것을 해요. 가장 감명 깊은 구절과 단상을 남기는 것인데요, 매일 당번이 있어서 안 읽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요. 이런 방식을 통해서 개인이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요. 주권방송 구성원들은 매일 저녁 9:30에 출근, 업무, 독서 등에 대해 하루 보고를 해요. 무엇을 보고할지, 몇 시에 보고할지 그런 내용도 다 토론해서 결정한 거예요.

 

원 : 하루 보고라.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연 : 처음 시작은 평창 동계올림픽 즈음이었어요. 제가 독감에 걸려서 출근을 못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기운이 높아지는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마음을 모으며 집중 기간을 정했어요. 개인별로도 목표를 정하고, 전체적으로 100 콘텐츠를 만들고 10만 조회 수를 달성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러면서 집중 기간답게 매일 보고를 하자고 하여 시작된 것인데, 당시의 성과를 계속 이어나가자고 하며 꼽은 것들 중의 하나예요. 하루를 돌아보게 되어 좋았다는 평이 많았어요. 

 

원 : 정말 좋은 방도인 것 같네요. 주권방송 10년의 역사 동안 중요하고 기억에 남은 콘텐츠는 무엇이 있나요?

연 : 최근 것이긴 하지만 정상회담 보도 영상이 떠오르네요. 하루에 12개 정도씩 만들어서 올렸어요. 다들 똑같은 마음으로 영상들을 쏟아냈죠. 이 귀한 순간들을 잘 전달하자는 마음으로 녹취를 다 해서 자막을 정확하게 올리자고 했어요. 잘 알아듣기 힘든 발음을 몇 번씩 들어가면서 녹취를 했죠. 실수 없이 정확하게 전문을 다 따자고 결심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터지는 중에도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잘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노력보다는 그렇게 하고자 했던 마음들이, 그 순간 그런 걸 제작하는 것 자체가 신나고 벅찼죠. 또 하나는 탄핵촛불 때요. 박근혜가 탄핵되던 순간, 천안함이나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것들도 있고요. 천안함은 10년 동안 놓치지 않고 있고, 세월호도 구원파 사무실까지 찾아가며 진실을 찾으려 했지요. 노래 영상들도 많이 만들려고 했어요. ‘이름을 불러주세요’같은 영상은 조회 수가 180만이 넘었어요. 그 외에도 통일콘서트, 채널 615등 통일과 한반도 정세전망 전문 방송을 1주일에 1개는 꼭 하면서 이어왔죠.

 

원 : 참 많은 일을 해 왔네요. 지금 주권방송이 하는 방송들 소개를 해주세요.

연 : 정규방송으로는 매일 나가는 ‘황당한 뉴스’가 있고요, 주 2회 나가는 시사이슈 ‘단상’과 세계정세를 보는 ‘박둥지의 세계의 눈’이 있어요. 정세를 해설해주는 ‘시사돋보기’, 심리학자 김태형의 미국심리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미심쩍다’, 장경욱 변호사의 ‘조작’이 있고요. 월 1회 일본어로 읽어주는 ‘칼럼 읽는 남자’가 있어요. 그리고 현장 보도영상과 카드뉴스, 진보강좌(진보적 의제나 한미관계에 대한 것을 강연 형식으로 만든 것)들이 있고 때때로 기획영상과 노래 영상들도 만들어요. 지금은 끝났지만 ‘천안함의 진실 2019’라는 방송도 했네요.

 

원 : 와,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하죠?

연 : 저희는 개편을 수시로 해요. 인터넷 방송의 장점이죠. 긴 흐름을 갖고 가는 것도 있긴 한데 쉽게 쉽게 하려고요. 우리가 1주에 한 번씩 하는 정세토론의 내용을 방송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만들다가 2주에 한 번으로 바꾸기도 하고 그래요. 사안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기본 틀을 잡고 꾸준히 하면서 그 안에서 이러저러한 궁리를 하죠. 예를 들면 강연 영상을 찍을 때 강연만 올리면 집중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하면서 ppt도 화면에 같이 보여주자는 방도가 나오고요.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정확하고 빠르게 내는 것을 연습 중이에요. 그래서 갖가지 방법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원 : 그렇다면 주권방송의 목표?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연 : 몇만, 몇십만이 보는 콘텐츠들 속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콘텐츠, 젊은 사람들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게 목표예요. 뭔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 EBS를 보는 것처럼 정세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되면 주권방송을 보도록 하는 것이 첫째 목표, 둘째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이 보도록 하는 거예요. 작년보다 조회 수가 2배로 늘었지만 만대의 시청률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마지막으로는 아직 젊은 층이 보기 힘들어하는데 더 젊은 세대들에 맞춰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원 : 주권방송과 함께 한 10년 세월 속에 서지연이라는 사람에게 있어 보람과 어려웠던 점들에 관해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연 : 보람이라. 좋았던 거라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많이 배웠던 과정이었어요. 세월호 가족들, 신상철 대표, 평생 통일운동 해 오신 분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순간들에 많이 배웠어요. 콘텐츠 제작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거라 서로 빛내어주는 과정이 행복했어요. ‘이름을 불러주세요’ 만들 때 아이들 책상을 꼭 찍고 싶었는데, 두 동지가 가서 1반부터 10반까지 모든 반을 돌며 모든 책상을 하나씩 찍어왔어요. 무얼 해야겠다고 하면 다 같이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든든한 곳에서 일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같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과정 동안 주권방송에 계속 있었는데 동지들 덕에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과 믿음을 많이 느끼는 과정이었죠. 어려웠던 건 부족함을 느낄 때예요.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경우들도 있는데 그럴 때 내가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말하는 내용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잘 안 될 때도 부족함을 느끼죠. 안 보는 콘텐츠는 안 보는 이유가 있거든요. 조회 수만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조회 수가 바로 보이니까요. 결국 우리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느낄 때 어렵죠.

 

원 : 그렇다면 올해까지 서지연 편집국장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연 : 제가 일을 제때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해야 할 일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헉헉대면서 하는 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중요한 일을 제시간에 많이 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들만 쳐내다가 해야 할 일을 폐기하게 되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생겨요. 지금 꼭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하는데. 이창기 선배처럼 다른 사람들이 신심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신심 높게, 해야 할 일이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것을 배워야겠어요.

 

원 : 높은 책임감으로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편집장님, 앞으로도 좋은 방송 부탁드립니다.

 

‘깨우는 동화’ 참고자료

https://youtu.be/klUNCqsUi6w

https://youtu.be/QtmEZST5I_0

 

*    *        *    *    *        *    *     *        *    *

 

▲ 신혜원 작가가 서진연 편집국장과 대담하면서 느낀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 신혜원

 

 

무척 바쁜 주권방송 편집국장님을 8.15가 끝난 주 일요일에 겨우 만났어요.

그날도 집수리를 하는 도중에 겨우 빠져나와 급하게 인터뷰만 하고 가셨는데요.

어떤 질문을 해도 개인의 이야기보다 주권방송, 우리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을 보며 집단과 동지들을 귀히 여기는 그런 마음이 주권방송을 튼튼하게 만드는 하나의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어요.

계속 전진할 서지연 편집국장과 주권방송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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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노동자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 일주일, 더 커지는 연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9/15 11:50
  • 수정일
    2019/09/15 11: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노동과 세계 보도, 14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주최 결의대회 500여명 참석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9/15 [01:30]
 

 
 

14일 오후2시 도로공사 앞 결의대회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이 일주일을 맞았다.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백양사지회 서영희, 조관옥 조합원은 “청와대와 비교하면 별 5개 호텔이다. 공기도 좋고 밤에 별도 초롱초롱 빛난다”고 말했다.

생활하기는 조금 나아졌지만 마음은 무거워졌다. 한평 부스에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에서 일했는데, 정규직 직원들은 이렇게 크고 좋은 건물에서 일하는 걸 보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서다.

언제 경찰이 침탈할지 몰라 두려운 마음도 있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불안할 것”이라며 매일 경찰차가 몇대 와있는지, 상황이 어떤지 알려준다고 한다.

“안에 있는 조합원들이 연대하러 온 사람들 얼마나 있냐고 매일 물어봐요. 누군가 더 온다는 게 희망이에요. 딱 한번만 100만 민주노총의 힘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비정규직 이제그만' 주최 결의대회에 500여 명 참석...
톨게이트 노동자, "우리는 우리 회사에서 사장과 만나려는 것뿐"

 

결의대회 참석자 전체사진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조합원들의 바람대로 톨게이트 투쟁에 전국 노동자, 시민의 힘이 모이고 있다.

14일 오후2시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주최로 ‘자회사 폐기! 직접고용 쟁취! 불법파견 종식! 톨게이트 투쟁 사수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서울, 부산, 인천, 제주, 강원 등 전국에서 500여 명의 노동자, 학생, 시민이 참석했다.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요구하며 10일째 집단단식 중인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결의대회에 함께했다.

9일부터 본관 내 농성에 함께한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차헌호 지회장은 “한쪽 벽면 전기가 다 끊겨서 휴대폰 사용도 어려워졌다. 2층부터 전기를 다 차단해서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씻는다”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편지도 이어졌다. 47일 간 곡기를 끊은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김수억 지회장,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고공농성을 중인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이영수 사무국장, 76일째 영남대의료원 70m 고공에 올라있는 박문진, 송영숙 조합원이 직접 쓴 편지를 전했다. 창원지역에서 온 아르바이트 노동자, 불교계, 데모당 등 연대발언도 이어졌다.

결의대회 마지막 발언에 나선 민주연합노조 박순향 부지부장은 “걱정 많이 하시는데, 안에서 잘 버티고 있다”고 인사했다. 이어 “잠시 여기 내려와있지만 한명씩 끌려나오면 다시 청와대로 갈거다. 그간 참고 살아온 세월이 10년, 20년이다. 불법점거니 퇴거니 쉽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이강래 사장은 여기 와서 교섭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이강래 사장 불러다 바로 이곳 교섭자리에 앉히라”며, “우리는 여기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음을 알린다”고 말했다.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김수억 지회장 편지를 낭독하는 현대차 전주지회 이병훈 지회장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투쟁기금, 릴레이 손글씨 등 연대는 계속돼...
민주노총, 15일 문화제 이어 18일, 21일 결의대회 개최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연대는 더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데모당은 페이스북 모금을 통해 하루만에 모금된 600여 만원을 전달했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 케피코지회 등에서도 투쟁기금을 전했다. 지난 추석기간 동안 농성장 간식 후원계좌에는 3일만에 2천만원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온라인에서는 톨게이트 노동자를 지지하는 손글씨 릴레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15일 오후8시 문화제를 열고, 18일 영남권 결의대회, 21일 민주노총 집중 결의대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발언하는 민주연합노조 박순향 부지부장 (사진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백승호)


출처: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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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일본정부의 범죄에 공범자가 되선 안된다

[기고] 후쿠시마 사고와 도쿄올림픽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 ― 1949년생. 전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 조교. 원자력 전공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개념의 근본적 허구성과 위험성을 밝히는 데 평생을 바쳤다(그의 지위가 마지막까지 최하위직 교원 신분인 '조교'였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된 책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2011), <원자력의 거짓말>(2012)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글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세기적 재해가 여전히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부흥 올림픽'을 내걸고 파국적 상황을 은폐하려는 아베 정부의 부도덕성에 눈을 감고 2020년 하계 올림픽을 도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한 국제올림픽위원회와 230여 개 각국 올림픽위원회 앞으로 2018년 8월에 보낸 문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문서는 후쿠시마 사고의 통제불능 상황을 설명하고, 현재 도쿄는 방사능오염 지역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각국의 올림픽위원회가 더이상 일본 정부의 반인륜적 범죄에 동참하는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 글은 <녹색평론> 168호에도 실렸다.(바로가기)
 
2011년 3월 11일,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도교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전체 정전은 원전에 파국적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측대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는 용해되어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주변의 환경에 방출되었다. 일본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고로 인해 1.5×1016Bq, 즉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 168개분의 세슘―137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히로시마 원폭 1개분의 방사능도 아주 무서운데, 그 168배의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고 일본정부는 말한 것이다.
 
사고로 노심이 용해된 원자로는 1호기, 2호기, 3호기로, 총 7×1017Bq, 히로시마 원폭으로 환산하면 약 8,000개분의 세슘―137이 노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 대기 중으로 방출된 것이 168개분으로, 바다로 방출된 것까지 합산하면 현재까지 환경으로 방출된 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약 1,000개분 정도일 것이다. 즉, 노심에 있던 많은 방사성물질이 여전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파괴된 원자로 격납건물 등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노심이 더 녹게 되면 다시금 방사성물질이 환경으로 방출되게 된다. 이를 막으려고 사고 이후 7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녹아내린 노심을 향해 끊임없이 물을 주입해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매일 수백 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축적되었다. 도쿄전력은 부지 내에 1,000개가 넘는 물탱크를 만들어 오염수를 저장해왔는데, 그 총량은 이미 100만t을 넘었다. 부지는 한계가 있고, 물탱크의 증설에도 한도가 있다. 가까운 장래에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종결'될 수 없는 원전사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용해된 노심을 조금이라도 안전한 상태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지만, 7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녹아내린 노심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조차 모른다. 현장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발전소가 화력발전소라면 문제가 없다. 사고 초기에는 며칠 동안 화재가 이어질지 모르지만, 불이 꺼지면 현장에 직접 갈 수 있다. 사고를 조사하고 복구해서 재가동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사고 현장에 사람이 접근하면 죽어버린다. 정부와 도쿄전력은 사람 대신에 로봇을 투입하려고 했지만 로봇은 방사능에 취약하다. 명령을 인식하는 IC칩이 방사선에 노출되면 명령 자체를 잘못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투입된 로봇은 거의 전부가 귀환하지 못했다.
 
2017년 1월 말에 도쿄전력은 원자로 압력용기가 놓여 있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받침대 내부에 위내시경용 카메라와 같은 원격조작 카메라를 삽입했다. 그 결과 압력용기 바로 아래에 있는 강철제 작업용 발판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서 녹은 노심이 압력용기 아랫부분을 뚫고 내려와 그보다 더 아래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조사를 통해 보다 중요한 사실이 판명되었다. 사람은 8Sv의 피폭을 당하면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압력용기 바로 아래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20Sv였는데, 여기까지 도달하기 전에 이미 530Sv 혹은 650Sv의 방사선이 계측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선량 방사선이 측정된 장소는 원통형 받침대 내부가 아니라, 받침대의 벽과 격납용기의 벽 사이였다. 도쿄전력과 정부는 용해된 노심은 받침대 내부에 쌓여 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30~40년 후에는 용해된 노심을 회수해서 용기에 봉입하고, 이로써 사고 수습을 종결짓기로 예정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녹은 핵연료가 받침대 밖으로 흘러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정부와 도쿄전력은 로드맵을 바꾸어, 격납용기의 측면에 구멍을 내어 그곳을 통해서 직접 끄집어내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작업을 하게 되면 작업에 투입된 노동자가 막대한 피폭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당초부터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처럼 후쿠시마 원전도 석관으로 막아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왔다. 체르노빌 원전의 석관은 30년이 지나면서 노후화되어 2016년 11월에 더 큰 규모의 제2석관으로 다시 감쌌다. 이 제2석관의 수명은 100년이라고 한다. 그다음에는 어떤 수단이 가능할지는 모른다. 지금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체르노빌 사고의 종결을 보지는 못한다. 하물며 후쿠시마 사고의 종결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죽은 다음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설혹 용해된 노심을 용기에 봉입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방사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후 수십 년에서 100만 년 동안 그 용기를 안전하게 계속 보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계속되는 인간적, 환경적 비극 
 
발전소 주변에서도 여전히 극심한 비극이 진행 중이다. 사고 당일 '원자력긴급사태'가 발령되어 처음에는 3km, 다음에는 10km 그리고 20km로 강제피난 지시가 확대되었고,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짐만 가지고 집을 떠났다. 가축이나 애완동물들은 버려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40~50km 떨어져 있어서 사고 직후에는 아무런 경고나 지시도 받지 않았던 지역인 이다테무라(飯館村)에는, 사고 후 1개월 이상이 지나고 나서 극도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피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마을 전체가 피난했다. 
 
사람의 행복이란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족, 친구, 이웃, 연인과의 평온한 날이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평범하게 이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피난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체육관 등의 피난소, 다음에는 2인당 4조 반(약 7.3m2) 정도 넓이의 가설주택, 그리고 재해부흥주택이나 지자체 등에서 제공하는 주택으로 옮겨 갔다. 그러는 동안에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생활이 파괴되고, 절망의 나락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극도의 오염으로 인한 강제피난 명령이 내려진 지역보다 더 바깥쪽에도, 본래대로라면 '방사선관리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안될 오염지대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방사선관리구역'이란 방사선을 취급함으로써 급여를 받는 성인, 즉 방사선 업무 종사자들만이 들어가는 게 허용되는 구역이다. 그리고 방사선 업무 종사자라고 해도, '방사선관리구역'에 들어가면 물을 마시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된다. 물론 자는 것도 금지되고, '방사선관리구역'에는 화장실도 없고 배설행위도 할 수 없다. 정부는 긴급사태라는 구실로 종래의 법령을 무시하고, 그런 오염지대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방치했다.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갓난아기를 포함해서)은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당연하게도 피폭으로 인한 위험을 지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사람들은 모두 불안할 것이다. 피폭을 피하기 위해서 일을 버리고 가족 전원이 피난한 사람도 있다. 아이들만은 피폭으로부터 지키고 싶다고, 아버지만 오염지역에 남아서 일을 하고, 아이들과 어머니만 피난한 가족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생활이 붕괴되거나 가정이 붕괴된다. 오염지역에 남으면 몸이 망가지고, 피난하면 마음이 상한다. 버려진 사람들은 사고로부터 7년 이상, 매일같이 고뇌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2017년 3월이 되어 일본정부는 피난 지시에 따르거나 혹은 스스로 피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1년간 20mSv를 넘지 않는 오염지역으로 귀환할 것을 지시하고, 그때까지 충분치도 않게 지원하던 주택보상을 끊었다. 그렇게 되면 오염지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지금 후쿠시마에서는 '부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상태에 처해지면, 물론 누구라도 부흥을 바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매일같이 공포를 안고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싶어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나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잊도록 유도한다. 오염이나 불안을 입에 올리면, 부흥에 방해가 된다고 비난을 받는다.
 
연간 20mSv라는 피폭량은, 과거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지만 방사선 업무 종사자에 대해서나 비로소 허용되는 피폭 한도이다. 그런 피폭량을 피폭으로 인한 그 어떤 이익도 없는 사람들에게 허용한다는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짓이다. 게다가 아기나 아이들은 피폭에 민감하다. 그들에게는 일본 원자력의 폭주,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마저 방사선 업무 종사자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원자력긴급사태선언'하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긴급사태가 하루, 일주일, 한 달,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1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면, 혹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고 후 7년 반이 지나도 '원자력긴급사태선언'은 해제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법령으로 매스컴의 입을 적극적으로 틀어막음으로써 국민들이 후쿠시마 사고를 잊어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이 '긴급사태'를 해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방사성물질의 주범은 세슘―137이며, 반감기는 30년이다. 100년이 지나도 겨우 10분의 1로 줄어들 뿐이다. 일본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서도 '원자력긴급사태선언' 상태로 있을 것인가. 
 
공범자가 될 것인가 
 
올림픽은 어느 시대건 국위 선양에 이용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 다시 무너뜨리는 방대한 낭비사회의 구축과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토건세력이 중심이 된 기업들의 먹이가 되어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원자력긴급사태선언'을 한시라도 빨리 해제할 수 있도록, 온 나라가 총력을 기울여 움직이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최우선의 과제이며,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피폭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올림픽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부의 위기가 심하면 심할수록, 권력자는 위기로부터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후쿠시마를 잊게 하기 위해서 매스컴도 앞으로 더욱더 올림픽에 열광하고, 올림픽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국민'이라고 부르는 날이 올 것이다. 지난 전쟁 당시에도 그러했다. 매스컴은 대본영의 발표만을 그대로 반복했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전쟁에 협력했다. 자신을 우수한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일수록 전쟁에 반대하는 이웃을 비국민이라고 단죄하고 말살했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들을 버린 채 올림픽이 중요하다고 하는 나라라면, 나는 기쁘게 비국민이 되겠다.
 
후쿠시마 사고는 거대한 비극을 안은 채 100년 단위로 이어질 것이다. 방대한 피해자들을 곁눈으로 보면서도, 이 사고의 가해자인 도쿄전력, 정부 관계자, 학자, 매스컴 관계자 등 누구 한 사람도 책임을 지지 않고, 처벌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지금은 멈춰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고, 해외로 수출하겠다고 하고 있다. '원자력긴급사태선언'하의 나라에서 개최되는 도쿄올림픽. 여기에 참가하는 나라와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물론 피폭의 위험에 노출되는 피해자가 될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나라의 범죄에 가담하는 공범자가 될 것이다.(김형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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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못 다 이룬 꿈, 검찰개혁

문재인의 못 다 이룬 꿈, 검찰개혁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입력 : 2019.09.13 15:08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과제의 최우선순위로 ‘검찰 개혁’을 꼽았다.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개혁을 둘러싼 참여정부와 검찰의 대립 결과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라고 통탄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정치 보복’의 칼로 쓰이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제도적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검찰에 자율성만 보장하면 검찰이 스스로 개혁하리라던 낙관적인 전망을 반성했다. 다른 저서 <운명>에서는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사법 개혁과 함께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구상의 요체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법제화다. 그 핵심이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온 검경수사권 조정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법이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가 검찰을 견제해야 하고, 법무부 장관의 임기는 적어도 2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못 다 이룬 검찰 개혁의 과제를 완수할 인물로 조국 법무부 장관을 꼽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의 대화와 대선자금 수사

노무현 정부가 처음으로 검찰과 맞부딪혔을 때는 2003년 3월9일 ‘검찰과의 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검찰 개혁 방향을 토론하고 싶어했지만, 논의는 겉돌기만 했다. 당시 생중계된 대통령의 대화에서 평검사들은 ‘검찰 독립을 위해서 인사권에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유명한 말이 이때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의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 방안은 법무부의 견제와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되, 수사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 검사’들에 대한 일종의 좌천성 인사를 추진했다. 대신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과 핫라인(직통 전화)을 끊은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이어진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을 더욱 어렵게 했다. 2003년 12월 대검 중수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전 후보 등 여야 전반의 대선자금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썼고, 노 대통령의 측근들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 대상이라는 상황은 청와대와 법무부의 검찰 개혁에 대한 운신 폭을 좁혔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내내 중수부 폐지를 정부가 추진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정권 차원의 보복 또는 검찰 손보기라는 식의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추진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부정부패를 처단하는 청렴한 검찰 이미지를 얻었고,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줄어들었다. 자연히 검찰 개혁의 동력은 상실돼 갔다.

■개혁 대상은 주체가 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에게 자율성을 줬을지언정, 제도 개혁까지는 나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전 대통령은 저서 <운명이다>에서 “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정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이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운명이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정권이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맞춰 장악하려는 시도만 버린다면 검찰의 민주화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절로 따라온다고 봤다”며 “너무 나이브한 생각(<검찰을 생각한다>)”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이후로 문 대통령에게는 개혁의 대상이자 ‘기득권’인 검찰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생각이 자리잡힌다. 그 결과 문 대통령이 구상하던 검찰 개혁의 요체가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간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법이다.

■조국, 문재인 민정수석의 페르소나?

조국 법무부 장관은 박상기 장관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다. 비검찰 출신 인사 기용은 문 대통령의 평소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위의 책에서 비검찰 출신은 “검찰을 장악하는 데 부족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검찰 출신은 “너무 검찰 마인드에 빠져서 검찰 개혁이 어렵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의 역할에 대해선 “법무부가 검찰 견제 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면서 “법무부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인권 옹호”라고 당부했다. 또 “법무부 장관은 적어도 2년, 가능하다면 대통령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 일관성 있게 정책도 행할 것”이라고 했다.

조국 수석은 취임 다음날인 지난 10일 검찰개혁추진단 구성을 지시한 데 이어 11일에는 법무검찰개혁위 발족을 지시했다. 조 장관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고 검사 비리 감찰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역진 불가능한 검찰 개혁은 결국 법개정이라는 측면에서 검찰 개혁의 열쇠는 조 장관보다는 국회가 쥐고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검경수사권 조정법과 공수처 도입법은 오는 10월 말부터 12월 말 사이 본회의 표결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 임명이 사법개혁안 국회 통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가 조 장관을 겨누고 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이 조 장관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전망을 어렵게 한다. 조 장관으로서도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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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국회 앞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의 간절한 추석 소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9/14 09:35
  • 수정일
    2019/09/14 09: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국회 앞에서 수백일 째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5.18 단체들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9-09-13 20:12:53
수정 2019-09-13 20: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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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명절의 넉넉함을 즐길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국회 앞에서 수 백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5.18단체들도 비슷한 처지다.

각기 다른 이유로 국회 앞에 모였지만, 이들이 바라는 건 비슷하다. 명절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수 년째 표류 중인 법안들이 통과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국회는 20대 마지막 정기국회이기 때문에 이들의 간절함은 어느 때보다도 컸다. 만일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한다면, 해를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21대 국회에서 법안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0일, 국회 앞에서 차려진 농성장 두 곳을 찾아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2012년부터 국회 농성 이어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민중의소리

"추석에도 이곳에 있어야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최승우 씨에게 '추석에는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묻자 허탈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 답변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최 씨는 지난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이제 그의 농성장 주변에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피해자 등 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모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과거사법은 지난 2010년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다시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위원회를 통해 그동안 규명되지 못했던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 회복 조치를 취해달라는 게 피해자들의 요구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제동으로 관련 논의는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 상태다.  

최 씨는 "지금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통과됐는데, 자유한국당이 안건조정위 구성을 신청하는 바람에 90일 동안 묶여있다"며 "벌써 몇 년 째 논의를 해 온 건데, 무엇을 더 논의해야 한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로 넘어간 법안은 최대 90일까지 묶여있게 된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추석 연휴가 지난 후 오는 23일까지 안건조정위에서 논의하게 되는데, 이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체회의로 법안이 넘어가도 또다시 계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법안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 씨는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냐"며 "그런데도 지금 국회의원들은 자기들 당리당략만 생각하지,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 피해자들은 안중에도 없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호소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외면'이었다.

최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났던) 부산이 지역구인 한 의원을 찾아갔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만 하더라"라며 "어떤 의원실은 '왜 자꾸 찾아오느냐'고 해서 부딪힌 적도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 씨는 걱정만 늘어간다. 이번 국회에서도 과거사법이 처리되지 못하면 또다시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안건조정위에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합의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게 저의 제일 큰 걱정"이라며 "지금 전혀 논의가 안 되면 21대 국회로 넘어가고, 그러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참 걱정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농성장 건너편에는 '함께 웃는 한가위', '행복한 추석 되세요'라고 적힌 각 정당의 추석 인사 현수막을 걸려 있었다. 그 현수막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 씨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으면 현재에도 그 일이 반복될 테고, 미래로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는 여야가 합의를 해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무사히 잘 갔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전했다.  

"지금까지 하나도 이뤄진 게 없어, 하지만 포기 않는다" 
다시 신발 끈 조여 맨 5.18 단체들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5.18 농성단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5.18 농성단ⓒ민중의소리

최 씨의 농성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5.18 단체들의 농성장이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지만원 공청회'를 계기로 5.18 유공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곳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시작했던 농성은 어느덧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김용만 농성단 홍보팀장은 "얻어낸 게 하나도 없으니 농성을 끝낼 수가 없는 괴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자유한국당 '망언 3적(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제명,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가동하라고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농성을 한 지도 200여 일이 지났지만 그중에서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씁쓸해했다.

실제로 '극우논객' 지만원 씨가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해당 공청회에서 5.18 모욕 발언을 했던 의원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진상조사위도 여전히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사안들이었지만, 5월이 지나자마자 다른 현안들에 밀려 흐지부지되는 상황이다.  

김 팀장도 이 부분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농성을 해도 어차피 '망언 3적' 제명이나 법안 통과는 다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이라며 "그런데 지난 5월에만 하더라도 반드시 관철시킬 것처럼 얘기하던 정치인들이 5월이 지나자마자 그런 사안들이 있기냐 했었냐는 것처럼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최악의 경우, 내년 5월까지도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시간만 흐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5.18 단체들은 좌절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장기전'을 대비해 다시 한번 신발 끈을 조여 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 팀장은 "농성단 입장에서는 전열을 재정비해서 투쟁 역량을 높여야 할 때인 것 같다"며 "이번이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다. 내년에 설사 임시국회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있어 국회의원들 마음은 다 콩밭에 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큰 그림을 보지 않고, 그때그때 당리당략만으로 움직이는 근시안적 정치를 하고 있다"며 "그래도 우리는 국회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다. 농성단이 없으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반드시 5.18 관련 사안들 중 하나라도 해결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그때까지 농성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김 팀장은 "우리가 요구했던 것들을 하나도 얻지 못한 채 농성을 멈춘다는 건 저들의 시간 끌기 작전에 항복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지금으로서는 농성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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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소통? 개점휴업?... 남북연락사무소, 두 가지 시선

9월 14일로 개소 1년... 남북 접촉은 이어지지만, 지자체-NGO 역할 강화도 필요

19.09.13 19:24l최종 업데이트 19.09.13 19:24l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이 열린 가운데 사무소 외벽에 대형 한반도 기가 걸려 있다.
▲  2018년 9월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이 열린 가운데 사무소 외벽에 대형 한반도 기가 걸려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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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지상 4층, 높이 23.45m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남북 소통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남북 최초의 '상시협의 채널'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오는 14일 개소 1주년을 맞는다. 개소 당시 '365일, 24시간 남북한 상시소통 채널'임을 강조했지만, 현재는 남북 연락사무소장 소장회의도 열리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소장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연락사무소 소장을 맡은 서호 통일부 차관은 지난 5월 취임 후 아직 북측 소장을 만나지 못했다. 남북은 2층엔 남측사무실을, 4층엔 북측사무실을 마련해두고 3층을 남북 공용의 공간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3층 회담장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공동연락사무소를 서울-평양 상주대표부로 확대·발전하려던 한때 목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북미 비핵화 협상과 북미 관계 진전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남북관계의 소통이 '일시적'으로 중단됐을 뿐이니 북한에 '대화에 나서라, 소장 회의에 참석하라' 등의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 현실적으로 북미 관계의 부침에 따라 남북 관계도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황해북도 개성시에 마련된 남북 최초의 상시협의 채널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의미] 하루에 두 번, 여전히 만난다
 

서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인 서호 통일부 차관(왼쪽)이 지난 10일 연락사무소를 방문해 박진원 연락사무소 부소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호 소장은 이날 북측 관계자를 만나지 못했다.
▲ 서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인 서호 통일부 차관(왼쪽)이 지난 10일 연락사무소를 방문해 박진원 연락사무소 부소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호 소장은 이날 북측 관계자를 만나지 못했다.
ⓒ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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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회의는 열리지 않지만, 공동연락사무소에서 꾸준히 지켜지는 일정도 있다.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 30분과 오후 3시 30분에 남북 연락관이 만난다. 요즘처럼 남북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가 없을 때는 논의할 주제가 마땅치 않다지만, 연락관 협의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공동연락사무소 3층에 마련된 회담장은 6개월이 넘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당시 남북이 합의한 매일의 일정은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남북이 하루에 두 번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창구가 닫히지 않았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될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남북이 매일매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남북의 연락관이 여전히 '상시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남한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역할을 관두라'는 날 선 비난을 하는 북한이지만, 짐을 싸서 남북의 '소통창구'인 공동연락사무소를 떠나지는 않았다.

한 건물에 남과 북이 있다는 건 비공식의 만남도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갈 때, 각자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건물을 나설 때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상대'가 떠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언제고 다시 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현재도 공동연락사무소에는 남북 각 15~20명이 머무르고 있다.

[한계] 정부, 남북관계 창구 단일화 욕심?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등 참석자들이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제막식을 하고 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등 참석자들이 2018년 9월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제막식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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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북미 관계에만 의존한다면 공동연락사무소의 한계는 명확하다. 사실 '공동연락사무소'의 한계라기보다는 현재 남북관계의 한계일 수 있다.

하지만 북미가 풀어야 할 비핵화 협상의 속도만 쫓다 보면, 남북은 언제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는 지적도 상당하다. 남북의 지난한 역사에서 경색국면이야 언제든 있었는데, 연락사무소까지 마련된 상황에서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한 이후 정부가 모든 남북관계의 창구를 '단일화'하려는 욕심을 부렸다는 쓴소리도 있다. 공동연락사무소는 ▲교섭·연락업무 ▲당국 간 회담·협의 업무 ▲민간교류 지원 ▲왕래 인원 편의 보장 등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하며, 민간협력을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남북 교류협력단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민간단체까지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서만 남북이 소통하도록 '통제'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3국에서 만나온 남북의 민간교류를 공동연락사무소 개소 후,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서만 북측과 접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30여 년 남북의 민간교류 분야에서 일한 관계자는 "남북의 소통이 잘 될 때는 정부가 주도해 민간단체의 남북교류를 통제하려 한다, 공동연락사무소도 마찬가지"라며 "지난해 민간교류단체들은 연락사무소를 거치지 않고는 북한과 접촉할 수 없었다, 그동안 지자체나 민간단체 나름의 방식으로 북한과 교류해온 것들을 정부가 통제하려 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남북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할 수 있으면 알아서 해보라는 식이다, 남북교류를 대할 때,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늘 있었던 문제가 공동연락사무소에서도 재발했다"라고 짚었다.

[대안] 지자체-NGO를 주목해야

공동연락사무소가 처음의 취지대로 24시간, 365일 소통의 창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주도하며 운영하는 연락사무소에 지자체나 NGO, 기업, 국제기구 등 비정부 주체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변수에서 자유로운 비정부 주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공동연락사무소의 다원적인 운영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큰 맥을 가지고 사업의 방향을 이끌어간다면 남북교류의 오랜 경험을 쌓은 지자체나 NGO 단체들은 그 외의 남북교류를 담당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가 각기 남북교류 추진 조례를 갖추고, 일부 전담 조직을 마련한 상황에서 정부 외의 소통창구도 열어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간교류 단체 관계자 역시 "남북 교류협력이 안정적으로 지속하려면, 정부 주도의 연락사무소처럼 지자체·민간 주도의 연락사무소를 별개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민간교류가 정부 주도의 교류에서 하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대북 제재가 있는 현실에서 비정부 주체가 정부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남북교류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정치·군사 분야에서 생긴 문제가 남북 교류의 전체를 막아서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공동 연락사무소에 비정부단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 최소한 남북교류의 단절은 막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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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의 껍질을 벗기니 ‘뼈속까지 친미’

이흥노/미국 발티모아 메릴랜드, 입만 벌리면 우리는 동맹이요 혈맹을 외치지만 실은 일방적이고 짝사랑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9/14 [00:41]
 
 

 

 

▲  미국방장관 마크 에스퍼가 지난달 급거 한국으로 날아와 "한미동맹은 철통같다"며 속국 관리들로부터 다짐을 받고있다.


 


<한미동맹>의 껍질을 벗기니 ‘뼈속까지 친미’  
 
                                                                                           

최근 자유한국당과 보수매체들을 비롯한 반북 반통일 보수우익 세력의 ‘한미동맹’ 소동이 부쩍 더 요란해지고 있다. 하긴 꽃노래도 아닌 그놈의 소리를 70년 넘게 들으니 이젠 정말 지겹고 진절머리가 난다.

또, 걸핏하면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심지어 일장기 까지 둘러메고 ‘안보타령’과 ‘종북소동’을 벌린다.

일본이 벌인 무역전쟁에 투항하자면서 노골적으로 일본편에 선다. ‘지소미아’ (한일정보보호협정)가 정지되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 발작수준의  ‘안보소동’을 벌인다.

‘아시아 중시정책’ (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오바마가 한미일 ‘3각군사동맹’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이를 대체한 게 ‘지소미아’다. 아첨과 아부의 달인 이명박의 각료들이 몰래 골방에 숨어 ‘지소미아’를 타결하려는 순간 그만 탄로가 났다. 온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막아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이걸 끝내 타결하고 말았다.
 

이 협정의 핵심 내용은 모든 북측 군사정보를 한일이 공유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탄생되지 말았어야 할 ‘지소미아’가 늦게나마 종료된 건 다행이고 타당한 일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 발전에 결정적 장애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소미아’ 종료에 얽힌 사연 사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협정 반대세력일수록 자주 자립 통일 지향적이고, 지지세력일 수록 외세의존 예속근성 경향이 아주 짙다.

또한, ‘지소미아’ 지지세력은 신통하게도 한결같이 ‘한미동맹’에 목을메고 그걸 ‘금과옥조’로 모신다. 휴전 결사반대, 북진통일을 외치던 리승만을 달래기위해 미국이 급조한 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 조약은 일방적이고 불평등하다. 70년이 흘러도 ‘국방주권’이 없다. 독립국이라 할 수 있을까?
 

한국은 조선보다 45배 더 많은 군비를 쓴다. 그러고도 미군철수 소리만 들려도 사시나무 떨 듯 하며 까무라친다. 이런 비겁한 인간일수록 정부의 ‘지소미아’ 정지를 성토하고 ‘한미동맹’까지 거덜났다고 오두방정을 떤다. 그리고는 슬쩍 일본편에 달라붙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숱한 전문가들의 ‘안보소동’이 주요 언론매체를 도배질하고 있다. 선량한 백성들을 오도한다. 전문가들중 한 외교관과 한 대학교수의 주장을 대표적 예로 한 번 살펴보자.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문 정부가 남북관계에 매몰돼 동맹∙우방들과 협력을 거부해 왕따됐다. 그래서 “한미동맹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주장한다. 미국에 순종하는 게 ‘한미동맹’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가 쓸개를 빼놓고 평화를 교섭하러 다녔다는 걸 생각하니 입맛이 쓰다.

 

홍광희 성대 정치학 교수는 '북한'을 적이 아닌 친구 (동족)이라 보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인식이 화근을 불렀다고 결론짓는다. “적과 공조하려는 발상”이 틀렸다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지소미아’ 중단으로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붕괴돼서 미국의 반발을 초래했다고 펄쩍뛴다.
 

하나가 되야 할 제동족을 적이라며 공조가 아니라 무찔러야 한다는 정신상태를 가진자가 교육자라니. 제나라 제민족의 이익을 먼저 걱정해야 정상이지, 미국의 이익을 더 지키지 못해 안달하니 정신나간 교수다. 미국사람 이상의 미국사람이다.

홍 교수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국익 보다 우선할 수 없다”라고 한 발언을 어떻게 평가할까? 아마 미국을 배신하는 발언을 했으니 종북으로 몰아 철창에 쳐넣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서울의 주요 매체들에 연일 오르내리는 쓸개빠진 전문가들의 주장 속에는 민족의 자주, 존엄, 긍지, 통일이라는 글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오로지 대국에 메달리는 게 사는 길이고, 그게 애국 애족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니 이들은 ‘균형외교’라는 소리만 나와도 펄쩍뛴다.

외국군도 없고 비동맹인 조선과 관계발전을 도모키 위해서 뿐 아니라 북중러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미군사동맹’을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다. 입만 벌리면 우리는 동맹이요 혈맹을 외치지만, 실은 일방적이고 짝사랑이라는 것이 여지없이 들어나고 있다. 동맹타령, 안보타령은 결국 스스로 ‘봉’이니 맘껏 농락해도 된다는 신호로 미국을 읽는다고 믿어진다. 그러니 미국이 더 큰 고지서를 뻔질나게 내밀지 않나 말이다.
 

남북 북미 관계 발전과 비핵 평화를 위해서 ‘한미작계-5015’는 오래전에 마땅히 폐기됐어야 옳다. 그것은 한미의 북침→점령→참수작전 계획이다. 지난번 한미합동군사훈은 명칭과 규모만 바꿔 또 다시 그걸 재연했다.

미제무기 수입국 1위에 올라가면서 최첨단 무기들을 대량 도입하기로 돼있다. 무기 반입과 한미훈련은 ‘4.27선언’과 ‘남북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북측은 남북대화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실제 한미합동훈련은 ‘6.30 판문점 회동’에서 취소가 합의됐다. 그러나 조선의 거센 항의에도 강행됐다. 미군부를 달래야 하는 트럼프의 한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한미훈련은 조미가 상호 인정 수용하게 된 것이다. 조미가 ‘짜고치는 고스톱’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한미동맹’을 ‘신주단지’로 모신다. 이걸 시비하면 영낙없이 찍힌다. 심지어 미국과 의견만 달라도 당장 외교참사요 안보참사 소리가 요동친다. 무조건 미국에 순종하는 게 ‘한미동맹’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이런 예속적 주종관계에 익숙해져서 미국이 하는 짓은 틀린 게 없고 우리는 그저 따라가는 게 동맹이라고 한다. ‘한미동맹’의 껍질을 벗기면 허망한 “뼈속까지 친미친일”이라는 알맹이가 튀어나온다. 원래 이 말은 이상득 당시 국회의장이 자신의 동생 “이명박은 뼈속까지 친미친일”이니 미국이 믿어달라고 아첨하면서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흥노/미국 발티모아,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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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자작극으로 중동침략 대학살을한 악마들을...

자주일보 | 기사입력 2019/09/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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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국제무역센터(W.T.C)와 펜타곤에 대한 공격, 그리고 워싱턴 D.C 공격을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극단주에 테러분자들의 소행이라고 했던 <9.11사태>는 아프카니스딴과 이라크를 침략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위해 미국의 네오콘들과 이스라엘 기득권층이 벌인 자작극이다.     © 이인숙 논설위원



 

오늘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을  침략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9.11사건을  일으킨  18주기이다.

뉴욕워싱턴 D.C. 그리고 펜실베니아에서 일으킨    9.11사건에 대해  수많은  조사 결과와 정황들은,   미국이  떠드는 극안무도한  테러리스트들이   오사마 빈라덴이 아니라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층등의  자작극이었음을 드러내고있다

 

나는 전에 이 9.11사건은 중동침략을 위한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썼었다<< 9.11테러의 진실그리고 덮어씌우기 사기꾼 美 언론” [ 2]  http://blog.daum.net/win/18  ( 2013.05.07 국민뉴스 http://kookminnews.com/news/view.php?idx=4910  )>> 자본주의 돈귀신들은 한푼의 달라를 손에 쥘수있다면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몇 억씩 말살해버린다해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행할 악마들이다9.11과 중동 침략전쟁이 그 실체를 명백히 증명해주고있다.   

 

지금 9..11에 대한  수많은 정황들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점점  진실을  알아가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진실에 대해   아직도  계속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고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KO5t3rcIZU&fbclid=IwAR1YIRHGPk1tkG8wN1F6mwn_iFkl1O2nQainzmjSYlWz6sw_i_8EkieffAg ) 

 

이렇게 극악무도한 자작극을 벌리고 이 사건을 명분으로 중동을 침략하여 수백만 양민들을 죽이고 초토화시켰으며 수천만 난민들을 만들고 국제법으로도 금지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기형아가 태어나고 병으로 죽게하였으며그들의 석유금괴 등 재산을 강도질해간 범죄를정의가 있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그리고 또 이 범죄는 지금도 진행되고있는데 어떻게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유럽물리학 전문지뉴스(Europhysics News)에 게재된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 3곳의 붕괴에 대한 새로운 법의학적 조사는 "이 증거들은  건물폭파공법에 의해  세개 건물이 모두 파괴되었다는 결론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254&v=IYUYya6bPGw- )

 

9/11 테러를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은퇴한 미국인 학자 제임스 헨리 페처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2001 9 11일 미국에서의 위장된 조작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프레스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9.11 테러 당일부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십 장의 사진을 새로 공개한데 대해 논평하면서 딕 체니에 대해 언급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d2y9VOTJWnI&fbclid=IwAR2u6ESM85gM9Dw0rJHMGvlup2_QbOta1Uh1jcCuKCXdWH6qjskXCnvgwng )

 

9.11사건 몇달전  이 건물 지하에 있던  연방정부의 금괘들은  어딘가로  옮겨졌고9..11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도날드 럼즈펠는  9/11 비극적인 사건 하루 전인 2001 9 10펜토간(국방부) $2,300,000,000,000 달러의 행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대중에게 발표했다그 빌딩은 매달 1500만 달러 씩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새로 쌍둥이 건물 전세 계약을 한지 1년도 안되어 불과 몇달전 테러보험까지 크게 들어서 돈벼락을 맞은 것은 우연일까? (1400백만불 보험들어 80억 달라를 벌었다). AIG 보험회사는 납세자의 세금으로 응급구제를 받았고   손해는 커녕 격려금(보나스)까지 나눠주었다.

 

그리고  CIA 요원이  병원에서  산소통을 끼고  죽기전에  자신이  9.11 빌딩 # 7  건물철거폭파 붕괴시켰다고 고백했다.  << CIA Agent Confesses on Deathbed: ‘We Blew Up WTC7 on 9/11’  July 13, 2017   Baxter Dmitry   YourNewsWire.com    ( #7건물이 무너지는 동영상 자주시보: http://jajusibo.com/sub_read.html?uid=34709%C2%A7ion=sc29%C2%A7ion2=  )>>

 

그날 2500여명의 증권거래 유태인들은 어떻게 똑같이 출근하지 않았을까?  로스엔젤레스 타임즈는  어찌 무역빌딩에서 일하던  수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한명도  그 사건당일  나오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고,  랍송 가수는  이를 빗대어  ‘너희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라는  노래를 했었다

 

세계 무역 센터에  폭탄이 설치되는 동안 보안을 맡았던  회사인 Securacom  최고 책임자는 조지 부시의 동생Marvin 과  그의 사춘Wirt Walker 였다그런데   죠지 부시는20173   ‘people magazine’ 에서    .... 나는 그들이 본 끔찍한 장면(소방관경찰첫 번째 대응자)을 보지 못했고그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요란한 폭발과 폭탄에 의해 뇌진탕을 일으키지도 않았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일어난 2001 9.11테러로   뉴욕경찰 241, 343명의 소방원의  사망과 함께   2,996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억 달러의 재산과 기반 시설에 피해를 입혔다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로  인한   심각한  합병증과  독성 흡입으로  장기적인   질환에 고통을 받고 있다.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WTC)를 탈출하는 모습이 포착돼  '더스트 레이디(Dust Lady) '로 불리었던   여성이  42세에  암으로 사망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 폭파의 영향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고통 당하고  있다.  매년  돌아오는 추모식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가짜 테러리스트가 아닌  진짜  테러리스트를  "영원히 잊지 말자"(never forget )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9.11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구실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침공후 중동의 무죄한  인민들이  수백만명이  죽어나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고자   난민이 되어    배를 타고 건너다    배가 뒤집혀 죽어갔고어린아이들은  인신매매 납치되어 인간의 내장을  팔기위한 희생물이 되었으며,  유럽등에   도착한  난민들은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서   숨죽이며  견뎌야 했다.

 

그리고 이 침략군들은  이라크나 여러나라에서  이 날강도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전기고문,  물고문동물고문성고문등으로 죽이고   이 모진  학대속에서   살아났다해도  평생 정신병자로  떠돌며  살아간다전쟁광들이  쏟아부은  무기와  아직 터지지 않은 폭탄들과  그 살인무기에서  품어낸 화학물질로   인해   중동의 삶은  그야말로    피 눈물 고통의 바다가 되었다.

 

미국은 이제 (한국 휴전상태 빼고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18년 동안의  전쟁을  아프카니스탄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요근래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몇일전에는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수십명이 죽어나갔으며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번  트럼프가  볼턴을 파면한  여러  이유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시녀정부와  탈레반과의  협상에 대한   불협화음이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의 최선희 부상이 볼턴을 해고해” 라고한 말일 것이다.)

 

사실  영리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상식만이라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9.11   통킹만 사건같이  이미  계획된   사고였음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9.11로 미국 온 나라가 경악하였고 모두가 하나같이  애국자가 되어 눈물콧물 흘리며  오사마 빈 라덴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으며 모슬림만 보면  웬수를 대하듯했다.  사실 모슬렘 운전수와 그외의  여러 사람들이  중동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성조기를 달지 않으면 공격을 당할가봐 집과 차에 성조기를 달고 다니던 광기어린 분위기였다.

 

내 지인은  9.11 폭발 사건후,   로스엔젤레스 연방빌딩앞에서   전쟁반대  일인시위를  금요일, 토요일 하루에  6시간씩  했었다.  물론 그는  그 주위에 사는 이스라엘인이나  미국 제일주의   인간들로 부터   위협과 얼음 세례를 받았고   ‘네 나라로 꺼져’ 라는  야유을 받았으며,  한국사람들로 부터도 미국인들이 한국인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도   직장에서  수십명의   미국사람들에게  9.11  오사마 빈라덴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전문가들이  조목조목  설명한 비디오를   구입하여 그들에게  배포까지 했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물리학자공학자건축가비행기 전문가들이  전문지식으로 조목조목  설명해도   이해하려는 태도보다는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 두둔자라고    매도 했다

 

호주의 전수상  케빈 러드는  “수천 명의 호주군을 이라크 침공에 투입하기로한  존 하워드의 결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 외교정책의 두 가지 큰 실패 중 하나로 꼽힌다고 말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기로한 멘지스의 결정이다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두 사건 모두 호주 정치 리더십의 최악의 실패를 나타낸 것으로당시 미국 정부의 무모한 결정에 대한 항복에 의해 촉발되었다.” 라고 그의 책에 썼다.

두 가지 결정 모두미국의 전쟁 목표의 정당성 여부전쟁에서 승리하고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 군사 전략의 신뢰도 문제그리고 호주의 국익에 대한 장기적인 결과에 대한 호주의 독자적인 분석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쟁광 악의 축에 속한  노예국가들은  케빈 러드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네타냐후도 미국을 아프가니스탄 분쟁으로 몰아넣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면서 동영상을  올렸는데,   네타나후가   "아프가니스딴에서 당신들이 제안한 것을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지만나는 그 이웃국가들이  아직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이어  네타냐후는 "승리가 축적될 수록 다음 승리는 쉬워진다아프가니스딴에서의 첫 승리는 이라크에서의 두 번째 승리를 훨씬 쉽게 만든다이라크에서의 2차 승리는 3차 승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따라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선택은 좋은 선택이고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사탄의 후예들은  원래  유전인자(DNA) 부터가   악의 인자이기때문에   범죄행위가  오히려  이들에게는  자랑이다불의가  너무  가득차  질식할 것 같은 이세상에서   산소를 공급하여  숨통을 터줄   최후심판 예수의 재림이  간절한  지금이다죽어가는  인류를 살릴   재림예수가 과연 누구인가

 

돈에 미친 독사들의 세상을 바르게 인민이 주인인 사회로 만들수있는 나라는 정의와 가족사랑으로 가득한 사회 – 우리 북부조국 조선만이 답이다악마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선한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듯이현대의 악마들이 선한 조선을 죽이고 싶어 중상모략과 마녀사냥하는 꼬라지도 어쩜 그렇게 똑 같을까?  

 

그러나 2천년 전의 개인 예수는  생존을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 개인의 변화를 핵심으로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지만오늘의 재림예수는  사회가 생존을 보장해주어 인간이 이기적일 필요가 아예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 없는 집단사회체제의 모습으로 오신 조선은 악마들을 철장권세로 박살내고 인민이 주인인 새하늘과 새땅을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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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명절에 마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명절하면 떠오르는 노동자’, 그들이 거리에 나와 외치는 것

‘추석을 앞두고 더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 ‘추석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번에 들려오는 답은 ‘마트 노동자’, ‘택배 노동자’, ‘백화점 노동자’ 등 서비스 노동자를 비롯해 ‘톨게이트 노동자’, ‘버스운전 노동자’ 등이다.

그들은 명절을 앞두고 더 많은 제품을 진열해야 하고, 더 많은 손님을 응대해야 하며, 더 많은 물품을 배달해야 하고, 명절 연휴가 끝날 때까지 더 많은 귀성객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며, 이런 운전노동자가 통과하는 톨게이트의 노동자들 역시 더 많은 통행차량과 마주해야 한다.

이렇게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대목’에도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유는 그들에게 현장은 ‘하루이틀 다니고 말게 될 일터’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둔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마트노조가 기자회견을 열고 ‘무거운 박스에 손잡이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마트노동자들은 “명절 물량에 허리가 휜다”며 “박스에 손잡이를 설치하라”고 외친다.

명절을 앞두고 마트의 입고상품 물량은 4~5배까지 늘어난다. 매장을 비롯해 후방창고에서 일하는 마트노동자들은 무거운 박스를 수없이 들고, 나르고, 진열한다. 최소한 박스에 ‘손잡이 구멍’이라도 있으면 옮기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과도한 무게로 인하여 근골격계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663조). 5kg 이상의 중량물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 해당 물품의 중량과 무게중심에 대하여 안내표시를 하며,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 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해야 한다(665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트노동자들이 접하는 박스에는 대부분 손잡이가 뚫려있지 않다.

마트노동자들은 어깨 들기, 목 숙이기, 허리 숙이기, 쪼그리기, 손목과 팔꿈치를 반복해서 사용해 일하며, 무거운 박스를 들고 나르는 등 비정형 반복작업에 50~55%가량 노출돼 일한다. “근골격계질환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마트노동자는 69.3%에 달한다.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이 지난 5월 마트노동자 51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근골격계질환 설문조사’ 결과다.

마트노조는 마트노동자들의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박스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포장단위를 소포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스에 제대로 된 손잡이만 설치돼 있어도 ‘들기 지수’를 10~39.7% 경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0일 서울고용노동청을 찾아 고용노동부를 향해 “마트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실태 및 중량물 작업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 지난 5일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실태 발표 및 개선촉구’ 기자회견을 연 택배연대노조와 전국택배노조. [사진 : 택배연대노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로 유명한 택배노동자들은 늘어나는 택배 물량을 두고 “지옥 같은 추석 시즌”이라고 말할 정도다. 택배노동자들은 지난 5일 장시간 노동실태를 폭로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택배노동자들은 추석 선물 등 배송물량이 급증함에 따라 아침 7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을 마쳐도 오후 2시를 넘겨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9월24일)을 전후로 CJ대한통운의 분류작업 종료시간은 평소보다 늦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분류시간이 늦어짐에 따라 배달 종료시간 역시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추석연휴가 지난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 지난해 추석(9월24일) 전 택배물량 분류작업 종료시간과 소요시간

택배노조는 “한국은 2018년 기준 ‘OECD 노동시간 3위’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택배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직종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3848시간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택배노동자들은 1인당 연간노동시간(1967시간)보다도 무려 1881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은 우체국 집배원에게도 심각하다. 택배노조가 전한 우체국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2017년 기준). 보통 토요일까지 일하는 우체국 집배원의 경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이 훌쩍 넘는다.

반복되는 집배원의 과로사 문제에 이어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6일, 평소보다 4배나 많아진 추석 택배 물량을 소화하느라 일몰을 넘겨서까지 일할 수밖에 없었던 한 집배노동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우체국 집배노동자들은 ‘명절기간 특단의 대책 마련’과 ‘정규집배인력 충원’ 등을 요구해 나섰다.

그리고 택배노조는 장시간 노동을 만드는 ‘분류작업의 개선’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했다. 이 법엔 ‘종사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휴식시간 및 휴식공간의 제공’의 내용이 담겨 있으며, 집배송업무를 하는 ‘택배운전 종사자’와 분류업무를 하는 ‘택배분류 종사자’를 구분함으로써, 분류업무가 집배송업무와 별개의 업무임을 밝히고 있다. 그동안 “분류작업도 택배노동자의 당연한 임무”라고 주장하며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고 ‘공짜노동’을 강요해왔던 택배사들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추석을 앞두고 더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 ‘추석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인 이들은 물량이 늘어나는 명절뿐만 아니라 그들이 노동하는 현장에서의 하루하루는 ‘근골격계 질환’, ‘장시간 노동’ 등과 싸우는 일상의 반복이다.

▲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한국도로공사 입장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 규탄’과 ‘1500명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또 다른 노동자, 추석연휴에도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도 있다. 명절 연휴기간 일터에 출근해 수없이 많은 귀성차량의 통행 요금수납을 맡았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6월30일 해고돼 일터를 잃었고, 청와대 앞과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농성을 이어오던 이들은 지금 김천의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도 농성 중이다. 지난달 29일 있었던 대법원 판결대로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대법원 소송에 참여한 인원만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9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 이 고용안정방안을 발표한 직후 노동자들은 ‘이강래 사장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하며 본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으며 한국도로공사를 위한 근로를 제공하였으므로 이들과 한국도로공사는 근로자 파견관계에 있다”는 대법원판결 이후 도로공사가 ‘고용안정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은 대법 소송 참여인원 304명에 대한 직접고용이었다. 도로공사는 “8.29. 대법원판결이 확정되었으나 상고심(대법) 원고들과 1·2심 원고는 개별적 특성에 큰 차이가 있어, 사법부의 최종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원고들 개개인별로 근로자 파견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 ‘해고된 1500명에 대한 직접고용은 못 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8월29일 판결에서, 앞서 “1)기초적인 사실 대부분은 원고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인 점, 2)전국에 산재해 있는 한국도로공사 영업소를 통일적으로 운영·관리할 필요성, 3)한국도로공사 스스로 외주화 초기에는 통행료 수납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업체가 존재하지 않아 한국도로공사에 의하여 교육이 실시되기도 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는 점, 4)한국도로공사는 그 후로도 계속 외주사업체 소속 근무자들의 업무수행에 관하여 지휘·명령을 하여왔다고 보아야 하는 점” 등을 들어 한국도로공사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판결이 정당하다고 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서울고등법원 원심판결이 지적한 것처럼 전국에 산재해 있는 한국도로공사 영업소는 통일적으로 운영·관리된다. 서울톨게이트 영업소가 불법파견이라면 경기, 대전, 대구, 전남톨게이트 영업소들도 불법파견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대법소송자 선별복직이 아닌, 자회사 전환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한 1500명의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복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8월29일, 대법원 판결 직후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흘렸던 기쁨의 눈물은 추석 연휴를 시작하기도 전에 ‘분노’로 바뀌었다. 그들은 추석 연휴,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일터’도 아니며, ‘가족들의 옆’도 아닌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이강래 사장의 얼굴은커녕 점점 늘어나는 경찰병력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짧았던 ‘기쁨의 눈물’은 ‘분노의 눈물’로 바뀌었고, 경찰의 강제진압 시도에 맞서 온몸으로 격렬히 싸우는 중이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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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맨' 트럼프에 도전하는 여성 대권 후보들

1872년부터 좌절된 여성 대통령의 꿈, 2020년에는?
2019.09.13 10:04:09
 

 

 

 

2020년 11월 3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2016년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에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민주당이 2016년 패배를 설욕하느냐가 기본 구도다.

공화당 내에서도 비주류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불법 이민자 추방, FTA 협정 재협상, 파리기후협약 파기 등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우선하는 인종주의적, 신고립주의적 정책을 주창했다. 그의 정치 노선은 백인 노동자 계급 등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들이며 대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정치적 성향 때문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여성과 유색인 후보의 약진이다. 5명의 여성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12일(현지시각)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리는 3차 토론회 무대에 오르는 10명의 상위권 후보 중 3명(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여성 후보다.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매사추세츠)은 파산법 전문가로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경쟁자 중 하나로 거론되던 인물이기도 하다. 민주당 내 진보적인 성향의 의원 중 하나로 분류되며,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첫 여성 검사와 캘리포니아주의 첫 여성 법무장관에 오른 카멀라 해리스 의원(캘리포니아)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유색인종을 대표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남녀 임금 격차를 좁히고 교사들의 급여를 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 제안을 내놓고 있다.

중도성향인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미네소타)은 연방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 당시 그의 성희롱과 성폭행 문제를 의제화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이들 중 특히 워런 의원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하며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태다.
 

▲ 왼쪽부터 엘리자베스 워런, 카멀라 해리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AP=연합뉴스


정치인이 되기 이전인 기업인 시절에서부터 숱한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자 노골적인 여성비하 발언을 쏟아냈던 트럼프 대통령의 극렬한 반대세력 중 하나가 여성들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2017년 1월 21일 여성 약 50만 명이 워싱턴DC에 모여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 정책을 비판하는 '여성행진(Women's March)' 시위를 벌였다. '여성행진'은 이후 2018년과 2019년에도 미국 전역에서 시위를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여성주의적 성향'은 여성 유권자들과 정치인들을 자극해 2018년 중간선거에서 상원 25명, 하원 102명 등 역대 최다수의 여성 의원들이 탄생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오카시오-코테츠,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 등이 이때 의회에 입성한 의원들이다.

여기에 2017-18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Me Too)' 운동도 여성들의 정치 의식 고양과 정치 참여를 늘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패배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좌절된 꿈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는 내년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되려는 도전은 1872년부터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12일 "1872년 대선에 뛰어든 한 여성은 사탄에 비유됐고 갇혀 버렸다. 그녀의 이메일 때문이 아니었다(A woman who ran for president in 1872 was compared to Satan and locked up. It wasn’t for her emails)"라는 제목(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2016년 당시 '이메일 스캔들'로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에 빗댄 제목이다. 필자주)의 기사를 통해 미국에서 최초로 대통령에 도전했던 여성 빅토리아 우드헐(Victoria Woodhull)을 소개했다. (원문 보기)

 

우드헐은 1870년 <뉴욕 헤럴드>의 칼럼을 통해 "나는 무권위 여성들을 대변할 권리를 주장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1872년 자신이 만든 평등권 정당(Equal Rights Party) 대선 후보로 당선됐다. 우드헐은 당시 너무 어려서 대통령이 될 수도 없었고, 여성은 투표권이 없어서 스스로에게 투표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도전'은 여성이 투표권 뿐 아니라 공직에 출마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또 우드헐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장을 펄쳤다. 그는 여성의 성적, 사회적 해방을 의미하는 "자유 연애"(free love) 주장했고,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남성에게 재산권, 자녀에 대한 권리 등이 종속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우드헐의 이런 주장에 대해 당시 남성들은 그를 '사탄'으로 비유하는 만평을 그리는 등 극도의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만평은 우드헐이 "자유로운 사랑에 의해 구원을 받으라"고 쓰인 선전물을 들고 있는 사탄으로 묘사했고, 그 뒤를 두 명의 아이를 안고 업고,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까지 등에 짊어진 여성이 우드헐을 외면하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여성들이 난봉꾼인 남편과 자녀 양육 노동으로 고통 받을지라도 우드헐의 '악마와 같은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란 비유였다.  
 

▲ 우드헐을 사탄에 비유한 만평. ⓒ워싱턴포스트 화면 갈무리


우드헐은 1872년 11월 유명한 개신교 목사인 헨리 워드 비처 목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글을 썼다. 우드헐은 이 글에서 "자유 연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이 목사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 남성들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글은 '외설법(obscenity laws)' 위반으로 그의 정치적 파멸을 초래했다. 우드헐은 체포되어 두달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통령 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 됐다. 때문에 우드헐이 아니라 1884년 국가평등권당(National Equal Rights Party)의 제3자 후보였던 벨바 록우드(Belva Lockwood)가 최초의 여성 대권 후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최초의 여성 대권 후보를 우드헐로 보든, 록우드로 보든 간에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여성 대통령'을 향한 도전은 140년 넘게 계속 됐다. 2020년 대선에서 실제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실질적으로는 선거과정에서 '마초맨'(2020년 트럼프의 공식 선거 노래 중 하나가 '마초맨(Macho man)'이다)을 자처하는 현직 대통령의 반여성주의적, 반인권적 폭주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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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있어 싸우나"... 70년전 경고 무시한 아베

[일본 어제오늘] 개각으로 평화헌법 파괴 향하는 일본, 현대판 '와다쓰미'는 어디에?

19.09.12 20:46l최종 업데이트 19.09.12 20:46l

 

 리츠메이칸 대학에 전시된 '와다쓰미' 동상(리츠메이칸대 홈페이지)
▲  리츠메이칸 대학에 전시된 "와다쓰미" 동상(리츠메이칸대 홈페이지)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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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쓰미(海神, わだつみ)

단순 한자 풀이를 따르자면 '바다의 신(海神)'을 뜻하는 일본말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일본 학도병을 나타내는 명사로 종종 활용된다. 이 때문에 '와다쓰미'라는 용어는 '반전(反戰)' 그리고 전쟁 비판의 상징으로도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이 단어가 반전의 상징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기반에는 조금 특별한 역사적 콘텐츠가 존재한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きけ, わだつみのこえ)이라는 제목의 책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제의 침략전쟁(중일전쟁·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젊은 일본 학도병들이 쓴 유고를 모은 것이다.
 

 와다쓰미회 홈페이지 메인 갈무리
▲  와다쓰미회 홈페이지 메인 갈무리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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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고집의 주인공은 75명의 일본 학도병이다. 당시 이들은 각지의 대학·고등전문학교에 재학하거나 졸업한 어린 학생들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전쟁에 대한 비판·공포 등 복잡한 감정을 펜에 눌러 담고, 또 다르게는 평화를 꿈꾸기도 하며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이들의 사연은 당시 패전으로 좌절해 있던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밤 그렇게도 옛 추억을 그리워했다. 참으로. 그렇게도 책을 읽고 싶었고, 그렇게도 영화를 보고 싶었다. 참으로. 그렇게도 평화를 바랐다."  - 야마기시 히사오(1946),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일본전몰학생기념회, 한승동 역 


무엇보다 이들의 수기는 일본제국에 대한 헌신, 일왕에 대한 맹목적 충성보다 전쟁에 대한 인간적 고뇌와 비애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많은 일본 국민들은 학도병들의 심정에 공감했고 성원을 보냈다.

책은 곧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전쟁은 안된다'는 반성과 평화의 가치가 일본에 뿌리내리는 데 기여해 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논문 <베트남전쟁의 현실과 일본의 평화담론>에서 이 책에 수록된 학도병들의 수기가 "반군 의식에서 나오는 평화주의의 원류를 형성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상이 '와다쓰미'가 전몰 학도병으로서 반전을 상징하게 된 대략적인 배경이다. 한편,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출간을 기점으로 창설된 일본전몰학생기념회, 이른바 '와다쓰미회'는 아직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한 일본 헌법 9조의 수호와 일본의 전쟁 책임 추궁 등을 골자로 한 시민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후 70년

이처럼 '와다쓰미'를 중심으로 빛났던 일본의 반전·평화 무드도 이제는 벌써 70년 전의 일이 됐다. 중요한 것은 현재가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평화주의는 그때에 비할 바가 못된다. 아베 총리 개인도 '반전(反戰)'의 기치를 뒤로 감춘 지 오래다. 매년 8월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 역대 총리들이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부전의 맹세(不戰の誓い)'와 '반성'에 대한 언급도 7년 동안이나 들을 수 없었다. 
 

 지난 8월 15일 일본 도쿄의 '닛폰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 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지난 8월 15일 일본 도쿄의 "닛폰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 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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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 평화주의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 시도, 일본의 국제적 무력 행사와 이의 수단이 될 군대의 보유를 전면 금지한 일본 헌법 9조가 그 핵심에 있다.

지난 11일 아베 총리의 측근을 전면에 배치하며 관심을 모았던 개각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헌법 개정'에 있음이 드러났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개각 당일인 11일 오전, 아베 총리는 자민당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새로운 체제 하에서 오랜 숙원인 헌법 개정을 당이 한마음이 돼 강력히 진행하겠다"라면서 개헌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표시했다.

실제로 개각 인사를 보면 어느한 곳 허술한 데 없이 아베와 손발을 맞출 강경 우파가 임명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자타공인 아베 총리 최측근이자 일본회의 소속인 '모테기 도시미쓰'가 외무대신, 방위대신에 '고노 다로', 문부과학 대신에 정권의 나팔수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보복의 선봉장 '세코 히로시게'는 개헌 논의 진행에 촉매가 될 수 있는 참의원 자민당 간사장이 됐다.
 

 지난 11일 개각을 발표하는 스가 관방장관.
▲  지난 11일 개각을 발표하는 스가 관방장관.
ⓒ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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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비확장은 평화 역행의 실체를 그래도 보여준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2020년 방위예산은 무려 60조 수준이다. 2023년까지 일본 GDP의 1.3% 수준까지 올려나가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즈모' '가가' 등 호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계획에 착수하고 있으며, 특히 이즈모의 경우 내년 개조비용까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아베, 자민당의 폭주를 말릴만한 대항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강경일변도의 '우회전'을 저지할 '현대판 와다쓰미'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체 그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존재하긴 한 걸까?

이 시대 '와다쓰미'를 찾아서

미미하지만 일본의 현대판 와다쓰미들은 분명 존재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자민당 주류의 보수 드라이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도쿄·오사카 등에서 '반전·평화' '반(NO) 아베'의 기치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다소 조악해 보일 순 있지만 분명한 실체가 있다.

'아베 9조 개헌 NO!전국시민행동' '전쟁·헌법 9조 파괴 반대! 총행동실행위원회' 등 단체들은 다부진 계획과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아베 정부의 개헌 시도, 군국화에 맞선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반대, 군비 축소를 요구하기도 하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본 헌법 공포일인 11월 3일을 기해 집회를 준비하기도 한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최근에는 '한일 연대'를 외치기도 했다.  
 

 <전쟁·헌법 9조 파괴 반대! 총행동실행위원회> 집회 안내 포스터
▲  <전쟁·헌법 9조 파괴 반대! 총행동실행위원회> 집회 안내 포스터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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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뿐만 아니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보면 2015년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관련 법제'를 강행 통과시킬 당시, 이를 반대하며 일본 국회의사당 앞을 매운 시민들(2015년 8월 31일), "한국은 적인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아베 정부의 평화 말살과 전쟁 가해책임을 지적한 일본의 지식인들도 모두 현대판 와다쓰미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개인·단체들의 규모가 결코 크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1949년 당시 일본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불과 75명의 학도병 수기였다. 이들의 수기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 전몰 학도병, 즉 '와다쓰미'들이 일본을 대표할 만큼 성공하거나 대중적인 부류여서가 아니었다. 평화에 대한 솔직한 동경, 전쟁에 대한 두려움, 비판을 이야기해줬기 때문이다.

여기, 마치 지금의 아베 정부를 향해 남기는 듯한 학도병의 수기가 있다.
 

"그들은 정복감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모든 걸 빨갛게 칠해버리는(일본 영토로 만듦) 것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 이래서야 과연 성전(聖戰)이라 할 수 있을까." -히라이 세쓰조(1942)

"솔직히 말한다면, 정부여. 일본이 지금 수행하고 있는 전쟁은 승산이 있어서 하고 있는 것인가. 언제나 막연한 승리를 꿈꾸며 싸우고 있는 건 아닌가. 국민에게 일본은 반드시 이긴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언제나 이 단언을 위해 엄청 무리에 가까운 조건을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쓰오카 긴페이(1945)

- 출처: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일본전몰학생기념회, 한승동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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