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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해상서 낚시배 전복, 22명 중 17명 구조...일부 사망, 실종자 수색 중

문재인 대통령 “마지막 한명까지 혼신의 노력 다하라”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7-12-03 10:46:28
수정 2017-12-03 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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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6시12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영흥대교 인근 남방 해상에서 급유선과 충돌사고로 전복된 낚싯배를 해경 구조대가 인명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3일 오전 6시12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영흥대교 인근 남방 해상에서 급유선과 충돌사고로 전복된 낚싯배를 해경 구조대가 인명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인천 옹진군 영흥도 앞바다 낚시배 침몰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3일 “해경 현장 지휘관의 지휘하에 해경, 해군, 현장에 도착한 어선이 합심해 구조작전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께 청와대 위기관리 비서관으로부터 1차 보고를 받고 이같이 밝혔다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12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영흥대교 남방 약 2해리 해상에서 9.77톤급 낚시배가 급유선(336톤)과 충돌해 전복됐다. 사고 당시 배에는 선원 2명과 낚시객 20명 등 총 22명이 타고 있었다. 출동한 해경에 의해 22명 중 17명이 구조됐고, 이중 일부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경 소속 선박 8척과 해군 선박 3척, 소방헬기 2대, 민간구조선 6척 등이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번 침몰 사고와 관련해 두 차례의 전화보고와 한 차례의 서면보고를 받고, 필요한 조치를 지시했다고 박수현 대변인이 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9시25분께 위기관리센터를 찾아 해경·행정안전부·세종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세보고를 받고 “현장의 모든 전력은 해경 현장지휘관을 중심으로 실종 인원에 대한 구조 작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현재 의식불명의 인원에 대해 적시에 필요한 모든 의료조치가 취해지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의 선박 및 헬기 등 많은 전력이 모여 있는데, 구조 간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신원이 파악된 희생자 가족들에게 빨리 연락을 취하고, 심리적 안정 지원과 기타 필요한 지원사항이 있는지 확인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필요 시에는 관련 장관회의 개최를 행안부 장관이 판단해서 할 것도 주문했다.

이밖에도 문 대통령은 현장 구조 작전과 관련해 “국민들이 한치의 의구심이 들지 않도록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해 추측성 보도로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더해 "지금 현재 총력을 다하고 있는데 그래도 정부가 추가로 지원할 것이 있으면 현장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건의하라”고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어 “실종자 3명이 선상 내에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해상표류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항공기·헬기 등을 총동원해 광역항공수색을 철저히 하라”고 박경민 해경청장에게 지시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안전조끼를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아직까지 생존 가능성이 있으니 마지막 한명까지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찾아 해경·행정안전부·세종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세보고를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찾아 해경·행정안전부·세종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세보고를 받고 있다.ⓒ청와대 제공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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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죽음의 바닷길 따라 국민생선 명태가 온다

가난과 죽음의 바닷길 따라 국민생선 명태가 온다

등록 :2017-12-02 09:29수정 :2017-12-02 10:24

 

[토요판] 커버스토리 명태가 오는 길 
명태잡이 어선 사조 오룡501호 침몰 3주기
우리의 밥상을 차리는 ‘1천만원짜리 목숨들’

 
명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고기다. 수십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한국인의 쓰린 속을 달래고 밥상에 윤기를 더해왔다. 그 명태가 한국 바다에서 말라버렸다. 동해에서 자취(1981년 16만t→ 2007~2013년 1t 이하→ 2016년 6t)를 감춘 뒤에도 명태는 한국인들이 한해 가장 많이 먹고 가장 많이 수입하는 생선이다. 그 명태들이 거저 우리 밥상에 오르진 않는다. 한국인이 먹는 명태를 잡기 위해 명태를 먹지 않던 가난한 나라의 선원노동자들이 한국인이 타지 않는 원양어선을 타고 러시아 베링해로 간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송입-송출의 사슬에 묶여 그들의 삶과 노동은 깎이고 파인다. 2014년 12월1일 사조 오룡501호가 러시아 베링해에서 명태를 잡다 침몰했다. 사망·실종자 53명 중 42명이 외국인이었다. 침몰 뒤 3년이 꽉 찼다. 그사이 ‘갑’ 사조산업은 필리핀·인도네시아 유족들을 ‘을’로 삼아 ‘비밀해결합의서’를 체결했다. 6개월 뒤 사조를 상대로 ‘제대로 된 손해배상’을 요구한 유족들의 소송은 각하되거나 기각됐다. 사조가 합의서에 넣은 ‘조항 하나’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한국인의 ‘국민생선’ 명태는 그렇게 온다. ‘목숨값 1천만원짜리’ 이주 어선원들의 가난과 죽음의 바닷길을 따라 명태는 우리 밥상 위에 도착한다. ※다음 자료를 참고했다. 오룡501호 침몰사건 검찰 공소장, 사망자·실종자 가족의 손해배상 소장, 법원의 손배소 판결문, 사조-유족 ‘비밀해결합의서’, 전국원양산업노조-한국원양산업협회 ‘2014년 외국인 어선원 단체협약서’, 듀런·에포크 송출계약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무크타르 시체검안서, 공익법센터 어필과 국제이주기구의 ‘이주 어선원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바다에 붙잡히다’), 조사팀의 생존자·사망자 가족 현지 인터뷰(2015년 11월~2016년 2월) 녹취록. 비밀해결합의서와 유족 현지 인터뷰는 처음 공개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출처 123rf.com
명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고기다. 수십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한국인의 쓰린 속을 달래고 밥상에 윤기를 더해왔다. 그 명태가 한국 바다에서 말라버렸다. 동해에서 자취(1981년 16만t→ 2007~2013년 1t 이하→ 2016년 6t)를 감춘 뒤에도 명태는 한국인들이 한해 가장 많이 먹고 가장 많이 수입하는 생선이다. 그 명태들이 거저 우리 밥상에 오르진 않는다. 한국인이 먹는 명태를 잡기 위해 명태를 먹지 않던 가난한 나라의 선원노동자들이 한국인이 타지 않는 원양어선을 타고 러시아 베링해로 간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송입-송출의 사슬에 묶여 그들의 삶과 노동은 깎이고 파인다. 2014년 12월1일 사조 오룡501호가 러시아 베링해에서 명태를 잡다 침몰했다. 사망·실종자 53명 중 42명이 외국인이었다. 침몰 뒤 3년이 꽉 찼다. 그사이 ‘갑’ 사조산업은 필리핀·인도네시아 유족들을 ‘을’로 삼아 ‘비밀해결합의서’를 체결했다. 6개월 뒤 사조를 상대로 ‘제대로 된 손해배상’을 요구한 유족들의 소송은 각하되거나 기각됐다. 사조가 합의서에 넣은 ‘조항 하나’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한국인의 ‘국민생선’ 명태는 그렇게 온다. ‘목숨값 1천만원짜리’ 이주 어선원들의 가난과 죽음의 바닷길을 따라 명태는 우리 밥상 위에 도착한다. ※다음 자료를 참고했다. 오룡501호 침몰사건 검찰 공소장, 사망자·실종자 가족의 손해배상 소장, 법원의 손배소 판결문, 사조-유족 ‘비밀해결합의서’, 전국원양산업노조-한국원양산업협회 ‘2014년 외국인 어선원 단체협약서’, 듀런·에포크 송출계약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무크타르 시체검안서, 공익법센터 어필과 국제이주기구의 ‘이주 어선원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바다에 붙잡히다’), 조사팀의 생존자·사망자 가족 현지 인터뷰(2015년 11월~2016년 2월) 녹취록. 비밀해결합의서와 유족 현지 인터뷰는 처음 공개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출처 123rf.com

 

12월1일은 사조 오룡501호 침몰 3년째가 되는 날입니다. 오룡호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고 가장 많이 수입하는 생선’ 명태를 잡는 어선이었습니다.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를 찾아 러시아 베링해로 나아갔던 그 배의 선원 60명 중 48명이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가족의 생활을 짊어지고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온 그들은 한국인이 가기 꺼려하는 원양의 바다에서 한국인들의 ‘국민 생선’을 잡다 사망했습니다. 오룡호 출항 전과 후, 침몰 전과 후, 그 돌이킬 수 없는 항로를 따라가며 죽어서도 서러운 그들의 머나먼 길을 밟았습니다

 

 

 

냉수성 어류(수온 2~10℃ 서식)인 명태는 바닷물보다 차가운 삶들을 헤엄쳐 온다.

 

 

분류. 동물계. 척삭동물문. 조기강. 대구목. 대구과. 산란기. 12월~4월. 이름. 북어, 동태, 춘태(봄에 잡은), 추태(가을에 잡은), 망태(그물로 잡은), 조태(주낙으로 잡은), 왜태(큰), 애기태(작은) 등 수십가지. 분포. 알래스카, 북태평양, 오호츠크해, 베링해, 그리고 동해.

 

동해로부터 명태도 가닿지 않는 직선거리 2800여㎞. 7107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 필리핀에서 에포크 엘메(2014년 당시 41살)는 가족 4명(아내·장모·두 아이)을 부양했다. 그 섬들 중 6번째로 큰 파나이섬 안티케에서 그의 노동은 바다에 뜬 조각배처럼 출렁였다. 그는 농장, 식품공장, 건설현장을 단기직으로 떠다니며 일주일에 2천페소(4만3천원)를 벌었다. 실업 상태일 때가 많았고, 돈이 떨어지면 빚을 졌다. 아내의 친정 오빠가 바다 멀리 나가 이국의 배를 타라고 권했다. 일자리는 없고 바다는 많은 나라를 떠나 형님도 더 크고 더 넓은 바다에서 일본 배를 탔다.

 

에포크의 마을로부터 섬과 섬을 건너야 닿는 민다나오섬 남동쪽 제너럴산토스(직선거리 590여㎞)에서 듀런 리처드(당시 38)도 출렁였다. 대학교를 1년 다니다 중퇴했고 바나나 농장과 통조림공장에서 띄엄띄엄 일했다. 혼자 수입으로 지켜야 할 아이만 넷이었고 다섯째가 아내 뱃속에 있었다. 아내의 사촌이 뱃일을 제안했다.

 

듀런의 집으로부터 직선거리 2230여㎞. 정확하게 몇 개의 섬(1만3천~2만여개)으로 이루어졌는지 측량할 수 없는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헤루 세티아완(당시 23)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선원이 됐다. 그의 고향 테갈(자바섬 항구마을)에선 성년에 이른 남자들 대부분이 배를 탔다. 대부분이 한국 배를 타는 선원이 됐다.

 

헤루의 항구로부터 자동차로 300여㎞를 달려야 닿는 자카르타 우타라에서 무크타르 모코돔핏(당시 35)은 10여년간 3차례 한국 배를 탔다. 자카르타로 돌아와 3개월가량 쉬며 그는 4번째 한국 배 승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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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태잡이 어선을 타다

 

2014년 국가별 명태 어획량. 러시아 151만8천t, 미국 142만7천t, 일본 19만6천t, 캐나다 8천t, 그리고 한국 2t. 명태가 그물을 가득 채우던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1970·80년대에 7만t 수준(1981년 16만t으로 역대 최대)이던 명태 어획량이 1990년대 들어 6천t, 2000년대 100t, 2007년 이후 1t 이하로 급감(2016년 6t)했다. 노가리(명태 새끼) 남획 탓이 컸고 수온 상승 탓도 있었다. 한국 소비자들이 시장과 마트에서 구입하는 명태 중 현재 국내산은 없다. 그래서 러시아.

 

한국 어선들이 명태를 찾아 세계 최대 어장 러시아 베링해로 향했다. 그 배를 탈 선원들을 모집하는 구인행사가 2014년 6월께 필리핀 제너럴산토스의 한 스포츠 단지에서 열렸다. 사조에 자국 노동자를 공급하는 송출업체 팔콘이 주최했다. 듀런은 아내의 사촌동생과 행사장을 찾았다. 그에게 한국 어선원 취업을 제안한 아내 사촌은 정작 구직을 포기했다. 처음 3개월치 월급이 지급되지 않고 취업 넉달째 돼서야 한달치 첫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망설이는 듀런을 “‘미스터 김’이 설득”(아내)했다. 듀런은 7월2일 팔콘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가 탈 배는 사조 포세도니아(1016t·사조인터내셔널)였다.

 

 

 

동해서 사라진 국민생선 명태 찾아
러시아 베링해로 향하는 원양어선
한국인이 외면한 일 찾아서 떠나온
멀고 가난한 나라의 이주 어선원들
일부는 계약서 배와 다른 배 승선

 

 

2014년 7월 오룡호 타고 부산 출항
망망한 바다 위에 붙잡혀 감내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용의 복잡한 사슬
세 달치 월급 이탈보증금으로 보류 
한국 선원 최저임금의 3분의 1 급여

 

 

뱃일은 4D로 불렸다. 3D(Dirty·Difficult·Dangerous)한데 멀기(Distant)까지 했다. 명태를 잡기 위해 바다 위의 4D를 감내하는 한국인은 드물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명태를 잡기 위해 명태를 먹지 않고 살아왔던 가난한 외국인들이 한국 배를 탔다.

 

한국 원양어선원이 되기 위해 듀런은 다단계로 꼬인 고용 절차를 거쳤다. 한국 선사들은 노동력을 모집(현지 송출업체)하고 수입(한국 송입업체)하는 외주 대행업체를 뒀다. 송출·송입업체 사이에 제3의 브로커가 끼어들기도 했다. 단계가 쪼개질수록 노동의 값이 깎이고 가족의 삶이 흔들렸다.

 

듀런의 첫 3개월치 월급은 ‘이탈보증금’ 명목으로 지급 보류될 예정이었다. 송출회사는 그 돈을 ‘리드 머니’라고 표현했다. 계약기간 동안 도망가지 않으면 계약 종료 뒤 귀국한 다음에야 입금되는 돈이었다. 인도네시아 송출업체는 송출비용을 별도로 뗐다. 무크타르는 송출업체(코인도)에서 빌리는 방식으로 300만루피아(24만원)를 냈다. 헤루는 누나에게 250만루피아를 빌렸다.

 

계약 뒤 마닐라에서 일주일 교육을 받은 듀런은 7월9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날 오후 부산에 도착한 그는 다음날 승선할 배로 안내됐다. ‘이탈 방지’를 이유로 원양 이주 어선원들의 한국 체류 기간은 최소화됐다. 육지를 밟을 땐 한국 송입업체 직원들이 따라다녔다. 듀런의 눈앞에 정박한 배는 계약서에서 외운 포세도니아가 아니었다. 그는 오룡501호(사조산업) 갑판에 발을 디뎠다.

 

그해 3월 남태평양 미드웨이 해역으로 조업 나갔던 오룡501호는 7월2일 부산 감천항에 귀항해 있었다. 선장은 본래 오룡503호(건조 1966년·무게 1555t)를 운항했다. 사조는 미드웨이 출항 전 48년 된 오룡503호를 폐선하고 선장과 선원들을 501호로 옮겨 태웠다. 9명의 필수승선 인원 중 자격기준(선박직원법)을 충족한 사람은 2명뿐이었다. 선장과 2등 항해사, 기관장, 1등 기관사가 기준에 못 미쳤고 2등·3등 기관사와 통신장은 아예 승선하지 않았다. 사조는 타인의 항해사 면허증과 선원수첩을 도용해 선장 승선 허가를 받아냈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공무원들은 승무원 명부와 선원수첩의 직책을 수정해 자격을 갖춘 것처럼 꾸몄다.

 

인도네시아 테갈에서 4950㎞를 날아온 헤루와 자카르타를 떠나 5125㎞를 올라온 무크타르가 오룡501호에 올랐다. 그들은 필리핀 루손섬 타기그 출신 로얼 알제세라(당시 30)를 그 배에서 만나 동료가 됐다.

 

오룡501호도 36살 된 늙은 배였다. 듀런보다 2살 적었고 헤루보다는 13살이 많았다. 1978년 스페인 선사가 건조해 아르헨티나 해역에서 조업했다. 2010년 사조산업이 인수해 러시아 국적선(사조-러시아 법인 합작선)으로 운영했다. 인수 당시 선박 흔들림을 보완하기 위해 철제 보강재 140t을 씌웠다. 선미 피시폰드(fish pond·어획물 선별 및 보관 창고)는 2배 확장했다. 명태를 한번에 2.2t씩 운반선으로 옮길 수 있는 인양하중 3t의 하역설비를 2011년 새로 설치했다. 무게 1753t과 기관출력 3238㎾로 개조된 오룡호는 2014년 2월 한국 국적선으로 등록(트롤)됐다. 사조는 하역설비 안전하중 3t을 0.9t으로 속여 한국선급에 검사를 신청(2014년 1월29일)했다. 2월28일 한국선급이 검사증서를 발급했다. 세월호 참사 47일 전이었다.

 

로얼이 501호에 승선했을 때 에포크와 재회했다. 로얼과 에포크는 503호를 타고 러시아~부산~하와이를 오갔다. 503호 계약 종료 뒤 에포크가 필리핀 송출업체(벤허)와 새로 계약한 배는 오양105호(사조오양)였다. 듀런과 에포크처럼 승선 당일 엉뚱한 배로 보내지는 경우가 잦았다. 계약대로 이행됐다면 타지 않았을 배가 그들을 회항할 수 없는 ‘그날 그 바다’로 데려갔다. 인도네시아 선원 36명(러시아에서 1명 하선), 필리핀 선원 13명, 한국 선원 11명이 2014년 7월10일 부산 감천항에서 러시아 베링해로 명태를 잡으러 출항했다.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 침몰(2014년 12월1일)한 사조 오룡501호의 생존 선원 6명과 사망 선원 21명의 시신을 태운 러시아 운반선 오딘호가 2014년 12월26일 오전 부산 감천항(사하구)으로 입항했다. 사망 선원들의 관이 배에서 내려지고 있다. 부산/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 침몰(2014년 12월1일)한 사조 오룡501호의 생존 선원 6명과 사망 선원 21명의 시신을 태운 러시아 운반선 오딘호가 2014년 12월26일 오전 부산 감천항(사하구)으로 입항했다. 사망 선원들의 관이 배에서 내려지고 있다. 부산/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바다 깊이 잠기다

 

2014년 4만t. 한·러 어업협정 체결(1991년) 뒤부터 양국은 매년 협상을 벌여 한해 명태 어획량을 결정했다. 러시아는 바다를 내주고 한국은 어획량에 따라 톤당 입어료(14년 350달러)를 지급했다. 러시아는 극동 항만개발에 한국의 가시적 투자가 없다는 이유로 2015년부터 2만500t(2017년 2만3500t)으로 물량을 줄였다.

 

바다로부턴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이 한번 바다에 뜨면 아내와 부모는 그들의 무사 여부를 하늘에 물어야 했다. 전화통화와 다음 전화통화 사이의 간격은 출항과 귀항 사이의 시간과 일치했다.

 

듀런의 아내는 2014년 8월 또는 9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룡501호가 러시아에 정박했을 때 듀런은 동료의 전화기를 빌려 고향집 번호를 눌렀다.

 

“‘미스터 김’의 비서에게 5천페소(10만8천원)를 빌려서 보냈으니까 우선 급한 대로 그걸로 버티라”고 남편은 말했다. 3개월치 월급이 이탈보증금으로 지급 보류되자 듀런은 생활비가 다급한 가족에게 보내기 위해 돈을 꿨다.

 

가장 확실한 이탈보증은 바다가 하고 있었다. 망망한 원양의 바다 위는 도망하고 싶어도 도망할 길을 찾을 수 없는 천연의 감옥이었다. 그 바다에서 ‘듀런들’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가족과 생활을 어쩌지 못해 이해되지 않는 ‘고용의 복잡한 사슬’을 감내했다. 듀런이 송출회사 팔콘과 계약(12개월)한 월급은 250달러(26만9천원·초과근무 수당 75달러 별도)였다. 듀런 아내가 4번째 달에 송금받은 남편의 첫 월급은 3천페소(약 59달러)뿐이었다. 남편이 말한 5천페소는 11월20일께 들어왔다.

 

이주 어선원은 자신의 임금을 두고 협상할 권리가 없었다. 그들의 최저임금(한국 선원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고시)은 한국인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정했다. 2014년 한국원양산업협회와 전국원양산업노조가 합의한 이주 어선원의 월 임금은 435달러(경력 36개월 이상의 ‘유능한 선원’은 585달러)였다. 2016년 원양어선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이 164만1천원(평균임금 662만9천원)일 때 이주 어선원은 52만원이었다.

 

듀런의 월급 250달러는 그해 최저임금 435달러보다 185달러 적었다. 초과근무 수당 75달러를 합쳐도 110달러가 낮았다. 에포크가 송출회사 벤허와 계약한 월급은 200달러(초과근무수당 60달러)였다.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35달러가 모자랐다. 월급이 현지 송출회사를 거쳐 가족에게 송금되는 과정에서 일정액이 사라지기도 했다.

 

“집안 상황이 어떠냐”고 듀런이 물었다. “돈은 없고 임신으로 힘들다”고 아내는 답했다. “일할 만하냐”고 아내가 물었다. 듀런은 “다 괜찮다”고 답했다. 남편은 평소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통화는 6개월쯤 뒤에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전화를 끊었다.

 

2014년 12월1일 새벽 6시. 오룡501호가 투망했다. 서베링해 북위 62도 07분과 서경 176도 27분 지점이었다. 사조산업 본사로부터 추가 어획량이 하달된 상태였다. 한·러 정부가 한해 명태 어획량을 결정하면 선사별로 할당량이 배정됐다. 선박 규모(총톤수와 엔진마력)에 따라 쿼터가 주어졌다. 쿼터 배정 뒤 선사들 사이에선 할당량을 사고파는 ‘전배’가 이뤄지기도 했다. 2014년 12월 러시아 수역에선 한국 명태잡이 어선 5척(2017년 3척)이 조업했다. 오룡501호의 선박 규모는 5척 중 4번째(전체의 12%)였지만 전배로 재조정된 물량은 두 번째(7928t·전체의 19.8%)였다. 허락된 조업 기간(협상 타결부터 그해 연말) 내에 할당량을 채우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오전 10시께. 풍속 20~25㎧와 파고 4~5m로 기상이 악화됐다. 다른 선박들은 아침 7시30분께부터 인근 항구로 피항하고 있었다.

 

오전 11시30분께. 명태 20t을 포획한 그물을 끌어올렸다. 침수를 우려한 갑판장이 말렸으나 선장이 피시폰드를 열고 명태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피시폰드가 열리자 바닷물이 10여차례 쏟아져 들어갔다. 해수가 전기모터를 덮쳐 조타기 고장을 일으켰다. 배가 표류하기 시작했다.

 

낮 12시30분께. 우현으로 기울어진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선장이 피시폰드의 명태를 왼쪽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오후 2시33분. 일몰이 시작됐다. 오른쪽에서 들이치는 파도로 왼쪽으로 배가 크게 기울면서 오물배출구로 해수가 유입됐다.

 

오후 4시28분. 선미부터 침몰이 시작됐다. 선장이 퇴선을 지시했다. 그는 명태와 배에 남았다.

 

오후 5시6분. 오룡501호가 완전히 침몰했다.

 

퇴선 지시가 내려졌을 땐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공포에 질린 선원들이 각자의 언어로 “살려달라”며 고함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손에 잡히는 대로 붙들고 매달렸던 선원들을 파도가 쓸어갔다. 로얼은 바지와 재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러시아 어선 카롤리나77호의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배에 끌어올려지기까지 45분 동안 나뭇조각 하나에 의지해 얼음물을 견뎠다. 승선 인원 60명 중 27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실종됐다. 인도네시아 선원 32명, 필리핀 선원 10명, 한국 선원 11명이 희생됐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한국 선원 최다 송출국 1위(2014년 기준 전체 2만2695명 중 29.6%)와 2위(24.2%)였다. 인도네시아인 무크타르(사망)·헤루(실종)와 필리핀인 에포크(사망)·듀런(실종)도 그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오룡501호에서 실종된 필리핀 선원 듀런의 사진을 아내가 지갑(왼쪽)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의 품엔 남편이 한국 배를 타러 떠날 때(2014년 7월) 뱃속에 있던 아기가 안겨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오룡501호에서 실종된 필리핀 선원 듀런의 사진을 아내가 지갑(왼쪽)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의 품엔 남편이 한국 배를 타러 떠날 때(2014년 7월) 뱃속에 있던 아기가 안겨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죽음도 차별받다

 

국적선과 합작선. 러시아 베링해에선 한국 국적선뿐 아니라 한·러 합작선도 한국인이 먹을 명태를 잡는다. 러시아 정부의 조업 쿼터(2001년엔 20만t) 축소 뒤 한국 선사들은 러시아 업체와 합작법인(현재 14개사)을 만들어 명태를 거둔다. 사조산업은 얀타(Yantar), 오리온(ORION), 케이에스에프시(KSFC) 등을 합작법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합작선이 조업한 명태는 수입 물량으로 잡혀 국내로 들어온다.

 

로얼은 카롤리나77호에서 엿새를 머물렀다. 12월7일 생존자 및 사망자 주검들과 오양96호(사조오양)로 옮겨졌다. 오딘호(러시아 운반선)로 바꿔 타고 12월26일 부산 감천항에 도착했다. 필리핀 대사관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사조 관계자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선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날 밤 해경에 침몰 상황을 진술했다. 12월27일 아침 사조가 제시한 돈 5500달러(6개월치 급여, 캐치 보너스 등)를 현금으로 받고 ‘합의’ 서명했다. 12월28일 사조가 사준 티켓으로 필리핀행 비행기를 탔다. “제대로 처리됐다면 치료와 위자료 등이 제공돼야 했지만”(공익법센터 어필 김종철 변호사) 사조는 생존 이주 어선원들을 신속하게 내보냈다.

 

12월2일 오후 필리핀의 에포크 아내는 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있었다. 송출회사(벤허) 쪽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안의 음성이 “진정하라”며 남편의 사망을 전했다. 울음이 터진 아내는 5년 전 통화가 생각났다. 남편에게 원양어선 일을 권했던 친정 오빠의 선박사고(실종) 소식도 그 전화로 받았다. 5년 뒤 남편의 사망을 말하는 송출회사는 마닐라로 오라고 했다. 사조가 사망·실종자 가족을 한데 모아 설명하는 자리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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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포크 아내가 전화를 받은 다음날 듀런 아내에게도 연락(팔콘)이 갔다. 남편이 탄 배가 빙산과 충돌했다며 “그를 찾을 수 있도록 신에게 기도하라”고 전화기의 음성은 말했다. 그에게도 ‘마닐라 회의’가 통보됐다. 사조는 자사 선박 사고로 사망·실종한 이주 어선원들의 유족을 직접 찾아가는 대신 현지 송출회사를 통해 마닐라로 불러 모았다.

 

12월17일께 유족들이 사조가 지정한 호텔방에 모였다. 서로 다른 송출업체(벤허·팔콘·크루링크)를 통해 오룡501호를 탄 선원 가족 10여명이 사조 관계자를 기다리며 울었다.

 

‘미스터 김들’이 한꺼번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족들은 ‘미스터 김’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웠다. 사조도 직원 김○○과 송입 대행업체 ㅎ교역 대표 김○○을 마닐라로 보내 ‘합의’를 처리했다. 듀런의 아내는 “제너럴산토스 스포츠 단지에서 남편을 설득한 ‘미스터 김’(사조 관계자인지 송입·송출업체 관계자인지 불분명)”을 다시 봤다. 사조는 보상금과 장례비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남은 가족이 살아가기에 충분치 않다”(에포크 아내)는 이야기가 유족들 사이에서 나왔다. “세 시간을 기다리게 한 사조가 한 시간 만에”(에포크 아내) 설명을 끝냈다.

 

 

12월1일 서베링해 악천후 속 침몰 
인니 32명, 필 10명, 한 11명 희생 
필리핀 유족들 마닐라로 불러모아
1천만원에 일괄합의 서명받은 사조 
합의서 “완전히 최종적·영구적 해방”

 

 

“사인 안 하면 시신 못 받을까봐”
유족 손배소 각하·기각…대법 상고
고리의 사채 쓰며 생활고 시달려 
고인 아내 “왜 하필 그 배였어요

 

 

이튿날 유족들은 개별 송출회사 사무실로 찾아가 ‘갑’ 사조가 내민 합의서에 ‘을’로서 서명했다. 듀런 아내는 12월23일 팔콘 사무실에서 “비밀해결합의서”에 사인했다.

 

“(보상) 갑은 을에게 위로금으로서 미화 1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책임의 부인) 을은 본 합의서의 어떤 조항도 갑 측에서 불법행위 또는 책임을 인정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합의한다. (클레임의 포기) 을은 … 501 오룡호의 침몰 및 고인의 사망에서 발생하는 관련이 있는 모든 청구 및 권리로부터 갑과 그의 대리인 또는 대표자를 완전히,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구히 해방시키고 면제하기로 약속한다. (소송) 을은 … 어느 국가에서도 민사 또는 형사 소송, 중재 또는 기타 소송에도 착수하거나 참여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 소송에 착수하거나 참여한 경우 갑이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는 즉시 취소되며, 을은 ㉮ 이자를 더한 보상금을 갑에게 환불하고 ㉯ … 갑에게 발생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 … 법원이 재정한 모든 손해배상액을 지불해야 한다. (비밀유지) 을은 본 합의서의 조건, 합의에 이르게 된 사실이나 상황, … 등을 …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하여서는 안 된다.”

 

팔콘이 듀런의 아내에게 사조의 ‘보상금’을 송금했다. 달러가 페소로 송금되는 틈에 일부가 증발했다. 아내가 실제로 받은 금액은 43만페소(8544달러)였다. 남편의 석달치 월급(이탈보증금)으로 팔콘은 3만3천페소(655달러)를 보냈다. 계약서상 최소 월급(수당 없는 250달러×3)보다도 100달러가 적었다.

 

에포크 아내는 ‘호텔 회의’ 이튿날 벤허 사무실에서 사인했다. ‘목숨값 1천만원’으로 사조의 책임 면탈을 확정짓는 합의서에 유족들은 동의했다. “사인하지 않으면 남편 시신을 받을 수 없다”는 벤허 쪽의 말에 동요했다. 정말 그럴까 싶으면서도 아내는 “그 말이 위협으로” 들렸다. 아내는 “하루라도 빨리 남편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은 마음에 사인”했다. “1만달러를 현금으로” 받은 뒤 아내가 사조 쪽에 말했다.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의 무크타르 아내는 텔레비전 뉴스를 본 남편 친구의 전화로 소식을 접했다. 침몰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필리핀 쪽과 달리 사조는 인도네시아 유족을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송출회사로부터 침몰 소식을 먼저 전달받은 유족은 없었다. 유족이 직접 전화해야 송출회사(코인도)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항의하는 무크타르 아내에게 코인도는 “사망 여부가 최종 확인되지 않아 연락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송출회사가 유족들을 자카르타로 불렀다. 헤루의 아버지는 사조로부터 1억8500만루피아(1500여만원)를 받는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미지급 임금 1250만루피아(100만원)과 장례비용 2500만루피아(201만원)가 더해졌다. 보험금 1억5천만루피아(1209만원)를 ‘다행히’ 받았지만 아들의 최저임금으로 계산할 때보다 900만원이 적었다.

 

거칠고 아득한 일터에 불안해할 때마다 자신을 달래던 듀런의 말을 아내는 잊지 못했다.

 

“괜찮아. 안 죽어. 죽더라도 걱정하지 마. 보험에 가입돼 있대. 우리 식구들 괜찮아.”

 

원양 이주 어선원은 죽어서도 차별받았다. 선주들은 한국인 승선 평균임금(2014년 해수부 고시 302만9천원)이 아니라 이주 어선원 최저임금으로 보상금을 산정하고 보험(송출국)에 가입했다. 대법원은 이주 어선원 재해보상에도 한국인 승선 평균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2013두5821·2016년 12월 선고)했으나 현실은 법으로부터 멀었다. 재해보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송출국 보험금조차 유족 다수는 수령하지 못했다. 듀런의 아내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팔콘에 전화했을 때 담당자는 “1~4년은 걸린다”고 답했다. 최종 사망 판정을 받지 못한 실종자여서 보험금 수령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듀런 아내의 전화를 더는 받지 않았다. 법과 제도에 서툰 이주노동자와 가족들이 법과 제도에 세련된 사람들 앞에서 항변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검안한 무크타르의 주검은 169㎝였다. 얼굴과 가슴과 왼쪽 어깨에 표피 박탈이 있었다. 양쪽 다리에선 멍이 발견됐다. 한국 검찰은 12월4일 무크타르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라”고 사건 지휘했다. 그의 주검은 2015년 1월8일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에포크는 사망 두달이 찬 2015년 1월31일에야 필리핀의 아내 품으로 돌아갔다. 12일 전 해수부는 “사측 주관으로 외국인 선원 보상이 2014년 12월23일 완료됐다”고 발표(‘원양어선 안전관리 개선 대책’)했다.

 

2011년 5월13일 이른 아침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항에서 오랜만에 소량의 명태가 잡혔다. 동해에서 모습을 감춘 명태는 2007년 이후 1t 미만(2016년 6t)으로 잡혔다. 고성/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011년 5월13일 이른 아침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항에서 오랜만에 소량의 명태가 잡혔다. 동해에서 모습을 감춘 명태는 2007년 이후 1t 미만(2016년 6t)으로 잡혔다. 고성/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렇게 우리 밥상에 온다

 

국민 생선. 동해에서 명태가 말라버린 뒤에도 한국인들의 ‘소비량 1위 어류’는 늘 명태였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인들은 매해 평균 23만2083t(2위 멸치 20만2860t)의 명태를 먹었다. 한국의 수산물 수입 물량 1위도 줄곧 명태(2016년 25만5766t)였다. 수입 명태의 절대량(85.3%)은 러시아(2016년 21만8392t) 베링해에서 왔다.

 

2015년 10월19일 검찰은 사조산업 대표이사와 전·현직 임원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업무상 과실치사, 선박직원법 위반 등을 적용했다. 오룡501호 침몰의 핵심 원인으로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의 해기 능력 부족을 지목했다. 침몰 3년이 꽉 찼지만 지금까지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기소 2년이 넘도록 1심 선고는 물론 검찰 구형도 내려지지 않았다(2018년 4월6일 심리 속행).

 

필리핀·인도네시아 유족 22명은 자국과 한국 변호인(법무법인 가을햇살)에게 의뢰해 2015년 6월 사조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사조가 시신 인도 등을 지연하며 합의서 서명을 강요했고, 충분한 손해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듀런과 에포크, 무크타르와 헤루가 한 배에서 사망·실종된 지 6개월 만에 그들의 가족이 하나의 소장 안에서 만났다. 필리핀 생존자 로얼이 유족과 변호인을 만나 침몰 당시를 증언했다.

 

재판부는 사조의 손을 들어줬다. 1심(2016년 11월17일)은 각하됐고, 항소심(2017년 8월25일)은 기각됐다. 합의서에 적힌 부제소 조항(추가 법적 대응하지 않겠다)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부제소 합의에 반해 제기된 소송은 부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시신 인도와 연계한 합의 강요 주장도 “증거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들은 대법원에 상고(2017년 9월25일 사건접수)했다.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죽고 생활의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합의서에 서명했다. 부제소 조항을 이유로 유족에게 불리한 합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김종철 변호사)

 

사조산업 관계자는 “외국인 선원들과의 모든 합의는 종결됐다”고 했다. “우리가 외국인들을 직접 고용한 게 아니라 현지 대행사를 통해서 했으므로 합의금(1천만원)도 그 시스템 속에서 결정됐다.”

 

듀런의 아내는 사채를 쓰며 살고 있다. 고리(20%)의 은행 빚도 졌다. 마을 가게에서 빌린 돈은 식료품을 살 때마다 값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상환하고 있다. 듀런의 아내는 그를 만나러 찾아온 한국인들(김종철 변호사 등 ‘이주 어선원 인권 실태조사팀’)에게 울며 소리쳤다. 아빠가 한국으로 떠날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엄마에게 안겨 칭얼댔다.

 

“남편이 러시아에서 전화했을 때 그랬어요. 배(오룡501호) 아주 크다고. 밧줄도 굵고 구명조끼도 많다고. 큰 파도 쳐도 끄떡없다고. 하느님, 당신을 저주해요. 왜 사조였어요? 왜 하필 그 배였어요? 왜 하필 내 남편을 데려갔어요?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냥 가족 먹여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을 뿐이에요.”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는 우리 밥상에 그렇게 온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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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사드뽑고 평화심자. 더 치열한 시작하겠다"

소성리 6차 범국민평화행동, "사드 나가지 않는 한 물러날 생각없다"(전문)
성주=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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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2  23: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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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김천·원불교와 대구·경북, 부울경,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은 2일 오후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6차 범국민평화행동을 개최하고 '사드뽑고 평화심자'를 내년 구호로 채택, 끝까지 사드철회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해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앞서 검토를 지시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배치는 온 나라를 뒤흔든 촛불항쟁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후에도 강행돼 지난 9월 새 정부하에서 실제 배치가 강행되고 지난달 말에는 운용을 위한 공사장비가 반입되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의 과도기인 4월 26일 야음을 틈탄 사드 기습배치, 새 정부 출범 이후 9월 7일 사드발사대 4기 추가배치, 11월 21일 사드 운용을 위한 공사장비 반입 등 일련의  절차는 성주군 초천면 소성리 주민들과 성지를 수호하려는 원불교, 그리고 사드배치가 북핵 방어에 무용할 뿐 아니라 안보위기를 초래할 뿐이라고 우려하는 평화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된 절차였다.

'임시' 꼬리표를 달고 주한미군의 사드 1개포대 배치가 마무리된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달마산 아래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2일 오후 성주·김천·원불교와 대구·경북, 부울경,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그동안 줄기차게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해 온 '6주체'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참여연대 등 연대자 400여명이 모여 2017년 한 해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6차 범국민평화행동을 개최했다.

범국민평화행동 참가자들은 이날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마저 박근혜 적폐세력에 이어 미국을 쫓아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엮이는 사드배치 완성의 길로 돌아서고 말았지만 사드는 단순한 무기체계가 아니라 북·중·러를 겨낭한 한·미·일 삼각동맹에 동참하는 문제라고 하면서 "우리의 주권과 평화·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며, "그 누구보다도 평화를 갈망하는 민중들의 힘을 동력으로 삼아 기필코 사드 철회의 길을 열어젖혀야 한다"고 밝혔다.(전문은 아래 상자)

이들은 '사드뽑고 평화심자'는 구호 아래 이날로 468일째 타오르는 김천 촛불과 267일을 넘기고 있는 원불교의 진밭교 평화기도와 연대해 사드를 철거하는 그날까지 주민들의 손을 놓지 않고 사드 철회의 의지를 강화하면 사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며, "2018년을 사드를 뽑아내는 희망의 해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사드철회가 적폐청산!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촛불은 계속된다'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대회장에는 '사드철회는 적폐청산, 주권회복, 평화실현의 길-이게 촛불정부인가? 우리는 미국앞에 당당한 정부를 원한다'는 현수막이 무대를 휘감았다.

   
▲ 왼쪽부터 박석민 사드한국배치전국행동 집행위원장, 강해윤 성주성지수호원불교비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 김대성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석주 소성리 사드배치철회 성주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 김찬수 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 대표,  신종관 민주노총 경남본부 통일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석주 소성리 사드배치철회 성주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나라의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들을 짓밟으면서 웃음을 짓는 것이 미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미국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배치하는 사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그들이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짓밟고 사드장비와 공사 자재를 기어코 들여갔지만 그걸 막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놀랄만큼 잘 싸웠다. 끝나지 않았다. 더 치열한 시작이 내년에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 한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실망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2018년에는 꼭 사드를 뽑아내겠다는 각오로 싸우겠다"며, 올 한여름에 소성리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주민들과 함께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성주성지수호원불교비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인 강해윤 교무는 "지난 4월 26일과 9월 7일, 11월 21일 수천명의 경찰병력과 세 번에 걸쳐 싸우고 있는 동안 세상의 관심은 멀어지고 걷어내려고 했던 사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지적했다.

이어 "겨울에 접어든 저 산야의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리듯이 우리는 사드가 나가지 않는 이상 물러날 생각이 없다. 비행기로 넘어가든 샛길로 가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막고 있는 진밭교로는 넘어갈 수 없도록 오늘 아침에도 막아나섰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사드로는 북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며, 하위동맹국인 한국의 안보불안을 빌미로 미국이 무기장사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본질이 드러날 것이라는 점에서 83개에 달하는 한국내 미군기지에 소성리를 추가하려는 한미당국의 시도는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라고 확언했다.

강 교무는 "이 겨울을 보낸 후 내년에는 사드를 들고 이 땅의 모든 평화세력, 민중과 함께 청와대를 향한 평화의 행진을 벌일 것이며, 그동안에는 한시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지키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김대성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김찬수 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 대표와 신종관 민주노총 경남본부 통일위원장도 무대에 올라 "사드로는 북핵을 막을 수 없고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안보불안과 전쟁만 불러오게 된다"며, 2018년에도 최선을 다해 사드철회를 위해 나서겠다는  각오를 표명했다.

박석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사드배치는 끝난 것이 아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사드 추가배치와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무대에 오른 6주체 대표들과 함께 "'사드뽑고 평화심자'는 더 큰 힘으로 단결하고 연대하려는 우리의 내년 구호"라고 역설했다.

   
▲ 소성리 할매들도 '사드뽑고 평화심자'는 구호를 들고 자리를 지켰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진밭교 방향으로 행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각 대표들이 진밭교 교당 옆에서 평화염원을 담아 6개의 솟대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경찰이 사드 포대로 접근을 막고 있는 저지선이 처져 있는 진밭교 평화교당 앞까지 행진을 하고 교당 옆에 평화를 염원하는 6개의 솟대를 설치하는 상징의식을 치른 후 이날 범국민평화행동을 마무리했다.

성주·김천·원불교를 비롯한 사드반대 6주체 단체는 매주 수요일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진행하는 평화집회는 계속 돌아가면서 주최하되 전국 집중 평화행동은 이날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한편, 종교인협의회를 중심으로 내년 3월께 제주 강정과 밀양, 소성리, 진도 팽목항 등을 경유하면서 청와대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배치 주요 일지>

-2016.7.8. 사드1개 포대 한국배치 공식 발표(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 토머스 벤달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
 
-2016.7.13. 사드 배치지역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공군 성산포대 발표, 성주 촛불 집회 시작
 
-2016.8.21. 사드배치반대 김천 촛불 시작
 
-2016.9.30. 국방부 사드배치지역 성주군 초전면 달마산으로 변경 발표
 
-2017.4.26. 주한미군 사드 레이더와 발사대 2기 배치 후 즉시 실전운영상태 유지 발표
 
-2017.9.7. 사드발사대 4기 추가배치 강행
 
-2017.11.21. 사드운용을 위한 공사장비 반입

결의문(전문)

6차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을 맞는 우리의 다짐
2018년은 사드를 뽑아내는 희망의 해로 만들자 ! 

백해무익한 사드가 강제 배치된 울분과 통한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미일을 군사동맹으로 엮으려는 미국을 좇아 박근혜 적폐세력에 이어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마저 사드 배치 완성의 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이제 공사가 시작되면 사드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한미 당국이 사드 배치의 명분으로 삼은 안보 환경은 더욱 악화되는 실정이다. 동맹 강화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거세기만 하다. 사드를 뽑아내기에 더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로는 북한 핵미사일을 막을 수 없으며, 사드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촛불의 염원을 저버리고 사드를 받아들인 문재인 정부도 추가 사드 배치, 미국 MD 참가, 한미일 동맹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드가 자국의 안보이익을 해칠 것을 걱정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 사드 철회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사드를 둘러싼 정세로 보면, 우리는 사드가 뿌리를 내릴 수도, 사드를 뽑아낼 수도 있는 마지막 갈림길에 서 있다. 

사드는 단순한 무기체계가 아니다. 한미일 MD 구축을 위한 핵심체계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삼각동맹에 동참하는 문제이다. 전쟁과 핵 대결을 불러와 우리의 주권과 평화·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이에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굳게 손잡고, 전쟁과 대결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평화를 갈망하는 민중들의 힘을 동력으로 삼아 기필코 사드 철회의 길을 열어젖혀야 한다.

2017년 우리는 평화의 땅 소성리에 사드를 심으려는 미국과 이에 부역한 적폐세력에 맞서, 또한  갖은 패악질로 주민들을 괴롭힌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극우세력의 행패에 맞서 서로 투쟁의지를 세워주고 의지하며 신뢰를 다져왔다. 회유와 이간질, 보상이라는 사탕발림도 극복해내었다. 

소성리 할매들은 사드가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 길의 맨앞을 막아 나섰다. 연대자들은 다치고 넘어져도 소성리로 달려와 주민들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하여 마을회관 앞길은 사드를 막는 길,  미군, 기름, 장비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우리는 비록 사드를 막아내지 못했지만 절대 패배한 것이 아니다. 고되고 험난한 평화의 길을 우리가 닦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 다가오는 2018년에는 사드가 결코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공사를 막아내고, 사드 철거의 평화 정세 조성을 위한 투쟁에 더욱 힘을 기울임으로써 평화의 길을 더 넓게 내야 한다.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매일 아침마다 소성리 진밭교에서는 “사드 뽑고 평화 심자”는 구호가 울려퍼진다. 김천 촛불은 468일째 타오르고 있다. 원불교의 진밭평화기도는 267일을 넘기고 있다. 그렇다! 사드를 철거하는 그 날까지 주민들의 손을 잡고 더욱 힘차게 투쟁하자! 우리가 사드 철회의 희망이 되자! 전쟁과 핵군비 대결 반대, 조건 없는 대화 재개, 사드의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자! 그리하여 반드시 2018년을 사드를 뽑아내는 희망의 해로 만들자!  

2017. 12. 2. 
6차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 참가자 일동

   
▲ 소성리가 낳은 '세계적인 평화 가수' 정진석 씨가 '평화'와 '영일만 친구'를 개사한 '소성리 친구'를 열창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트럭에서 북치면서 '우리에게 평화를 달라. 전쟁반대 사드도 반댈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율동맘과 율동천사들의 공연은 언제나 어른들이 좋아하는 단골 순서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구평화합창단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진밭교 앞 통행제한 안내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잡귀 잡신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세워진 솟대 뒤 다리를 따라 멀리 달마산이 보이고 그 끝에 사드 기지가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사드뽑고 평화심자'는 평화의 구호와 함께 미국을 저주하는 구호라며 선창이 나오자 참가자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따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원불교 진밭평화교당 앞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사드철거, 미군철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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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전쟁 위기, 벗어나려면?

<기고> 장대현의 ‘다시 보는 2017년’ (1)
장대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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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1  13: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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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전 집행위원장)

 

1. 항모전단은 언제 오나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 한반도 전쟁 위기는 북과 미국의 ‘말과 행동’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북에게 핵과 미사일이 있다면 미국은 더 그렇다. 그중 북이 가장 예민하게 대하는 것은 항모전단이다. B-1B 전략폭격기가 뜨면 비난과 위협 정도지만, 항모전단이 배치되면 차원이 다른 긴장이 조성된다.

이처럼 항모전단은 전쟁위기를 몰고 오는 미국 쪽 손바닥이다. 올해 들어 1개 이상의 항모전단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전개된 경우는 알려진 것만 모두 4회다. 한 번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머물렀으니, 사실상 1년 내낸 전쟁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항모전단은 언제 나타날까? 첫째, 북의 도발을 사전 억제하기 위해서란 설명이다. 4-5월의 두 개 항모전단이 그런 경우란다. 정말일까? 군사적 압박이란 단추를 누르면 더욱 강경한 대응이 나온다는 것이야말로 북미 관계 기본 원리다. 실제로 북은 5월 14일 화성-12형 중장거리미사일 최초 시험발사, 7월 4일 사상 첫 번째 ICBM(화성-14형) 시험발사, 9월 3일 수소폭탄 실험 등 초강경 반응을 했다.

둘째, 북의 핵, 미사일 도발을 사후 응징하는 차원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5월 14일 화성-12형 미사일 발사 이후 오히려 5월 31일 칼빈슨 항모전단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또한 트럼프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던 북의 첫 번째 ICBM 발사 이후에도 오지 않았다. 더구나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보인 9월 3일 수소폭탄 실험 직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거대한 몸집이 다시 나타난 시점은 수소폭탄 실험으로부터 쳐도, 한 달하고 일주일이 지난 10월 10일 무렵이다.

미 항모전단이 한반도에 오는 이유가 북 핵, 미사일을 억지하거나 응징하기 위한 것이라는 ‘다수설’은 이처럼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작동원리는 무엇일까? 북미 간 대결 밖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2. 말로는 억지, 실제로는 반작용 불러

1월 1일 북이 신년사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이 최종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자, 바로 다음날 트럼프 당선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철썩 같이 말했다. 당시 ‘그런 일’을 정말로 저지하려 했다면 방법이 있었다. 대화와 협상이란 단추를 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핵, 미사일 동결을 목표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1.9)”는 대화파의 권고, “미국이 핵전쟁연습을 그만두면 된다(최강일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NBC 인터뷰. 1.25)는 북의 사실상 협상 제안을 모두 일축했다. 거꾸로 그는 참수작전과 선제타격이란 초고강도 압박을 선택한다.

1월 12일 매티스 국방장관 후보자는 ‘북한 핵 시설 격퇴 계획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해, 선제타격을 공론화한다. 2월 3일 매티스 국방장관은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 강도를 높이기로 한국과 합의한다. 3월 13일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은 이랬다. 참수작전 - 3월 10일 요인 암살에 특화된 미 해군 특수부대가 항공모함 칼빈슨에 탑승해 한국 주변 해역에서 임무를 연습했다. 선제타격 - 3월 19일 칼빈슨 항모전단에서 전투기들이 날아올랐다. 올해 처음 일본에 배치된 최신예 F-35B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날아왔다. 폭격 후 주일미군기지로 돌아가려면 공중급유가 필수라는 점에서 훈련의 현실적 의미가 느껴진다. 점령 - 3월 27일에서 4월 5일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평양진격훈련이 진행됐다. 이처럼 긴장이 꼭대기에 이른 직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3. 시진핑과 틀어진 트럼프, 칼빈슨 항로변경

미‧중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북 핵, 미사일, 둘째 미국의 무역 적자, 셋째 남중국해 등이다. 남중국해의 경우 “중국의 인공섬 건설을 차단하겠다(틸러슨 국무장관 후보자. 1.11)”던 미국이 “국제 규범의 준수를 촉구한다”는 수준으로 한 발 물러서며 잘 넘어갔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개는 달랐다. 북 핵, 미사일 관련,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유엔 제재 이행 등 기존 합의 사항을 재확인했으나, 북에 대한 중국의 독자 제재를 주장하는 미국과 북의 핵 프로그램, 미국의 한미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요구하는 중국이 충돌했다.

트럼프가 가장 중시하는 ‘돈 문제’에서 양측의 파열음은 더 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유일하게 합의했다고 밝힌 것은 앞으로 100일간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00일 계획을 공동으로 마련하겠다는 것밖에 없었다(조선일보. 4.10)”는데 이마저도 “중국 측 발표문에는 ‘100일 계획’에 대한 합의가 빠져 있다(중앙일보. 4.10)”니까, 아직은 미국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트럼프는 회담 다음날(4.8), 훈련을 마치고 한반도를 떠나갔던 칼빈슨 항모전단의 항로를 돌린다. 4월 9일 태평양사령부는 칼빈슨의 한반도 출동을 발표하고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옵션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다. 4월 11일 트럼프는 “거기에 잠수함도 보냈다”고 한 발 더 나갔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시리아(를 폭격한 것)처럼 북에도 할 것”이라며 선제타격 분위기 조성에 무게를 보탰다.

약효는 빨랐다. 4월 12일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투고 돌아선지 4일 만에 다시 대화를 요청한 건 물러설 용의가 있다는 것이며, 그 전화에 응한 건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했다는 것이다. 공개된 것만 보면 중국과 미국은 서로 한 가지씩 양보했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 방안 관련, 정상회담에서 주장한 “대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빼고 대신 “평화적 방식의 문제 해결”을 넣었다. 대화하라는 말은 안 할 테니 전쟁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거래는 등가 교환이 아니다.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피비린내 나는 무역전쟁이 벌어지는데, 양국이 투자와 무역으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이는 미국에 결코 이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는 트럼프 최대 공약이어서 함부로 철회하기 어렵다. “지금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북한의 위협과 관련한 중국과의 대화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엄청난 양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핵심 공약 불이행에 대한 절묘한 변명, 손오공식 정치기술이다. 중국의 북미 대화 요청을 침묵시키고, ‘100일 계획’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고, 환율조작국 공약에서 자유로워진 트럼프. 손오공에게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칼빈슨 항모전단이 있다.

4월 12일 <38노스>는 위성사진 분석 결과 “북한이 6차 핵실험 준비를 마쳤다”고 발표하고 4월 13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북한이 30일 이내에 핵실험을 할 확률은 84%, 14일 이내에 할 가능성은 58%”라는 예측 결과를 공개한다. 그것을 ‘억지’하려면 항모전단이 필요하단 것이다.

니미츠 항모가 한반도 주변에 추가 배치됐다. 미국이 핵실험 예상일로 지목한 4월 15일(태양절)이 지나자 미국은 4월 25일(건군기념일)을 다시 찍었다. 4월 25일도 그냥 지나갔으나 항모전단은 여전히 한미연합 군사훈련이란 운동장에서 근육 자랑을 한다.

이 시점에 중국은 스스로 한반도 상황에 말려든다. “만약 한‧미 양국이 38선을 넘어 북한에 공격을 가하고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하면 중국도 즉각 군사적 개입을 진행할 것(환구시보. 4.22)”이란다. 미국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면 중국은 ‘즉각 군사적 개입을 진행할’ 준비에 실제 돌입해야 하고, 국력의 상당부분을 거기 소진해야 한다. 지렛대가 마련된 것이다. 4월 30일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종료일을 맞았다. 그러나 미국은 5월 1일 B-1B 2대를 한반도에 출동시키고, 핵잠수함 미시간 호를 부산항에 진입시켰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5월 11일 ‘100일 계획’ 중간 합의사항이 발표된다. 미국산 쇠고기, 미국산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한 시장 개방,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미국 카드회사들의 중국 진출 허용,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트럼프의 주요 요구사항이 망라됐다. 5월 14일 북이 새로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최초로 시험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나 5월 31일 칼빈슨 항모전단은 유유히 한반도에서 철수한다.

3~5월 한반도 전쟁 위기는 미국인의 전쟁 불안감을 크게 높였다. 4월 19일 미국의 인터넷 미디어 <AOL 뉴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미국 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는 사람이 10명 중 6명이나 됐다. 이런 여론 지형 위에서 트럼프는 5월 23일 전년보다 국방비를 10%(500억달러) 증액하고, 복지비를 18%(151억달러) 감액하는 2018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한다. 이라크 전쟁도 끝난 지 오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발을 많이 뺐는데 세계 최대 군사비를 쓰는 것도 모자라 그걸 10%나 올리다니? 그런 의구심이 드는 미국인들을 위해 언론은 3-5월 내내 북의 핵, 미사일 공포를 배달한 것이다.

4. 첫 번째 ICBM, 그러나 침묵

7월 4일 북이 사상 최초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은 7월 4일을 기점으로 한계점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심리적, 현실적 '레드라인'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ICBM의 미 본토 본격 겨냥이란 '설마 했던' 상황이 현실로 닥친 데 따른 미국 내 충격은 대단했다(중앙일보. 7.5)”

트럼프도, 미국 안보집단도 정말 그랬을까? <한국일보> 7월 6일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의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3시간 정도 골프를 즐겼다. 그리고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고도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휴가 차 한국을 떠났다. 이들의 여유, 근거가 무엇일까?

7월 22일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핵무기 카드를 갖고 있는 게 결국 많은 억지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봐 왔다”는 발언에 답이 있다.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 책임자가 북의 핵, 미사일을 “생존을 위한 억지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생존하는 한, 먼저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의 전쟁 지휘부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북을 자극할 수 있는 군사학적 이유다.

5. 미중 경제대화 결렬, 다시 긴장고조

7월 19일 제1차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가 열렸다. 7월 16일 종료된 ‘100일 계획’의 2라운드다. 여기서 미국은 ‘100일 계획’으로는 부족하니 ‘1년 계획’을 짜자고 중국에 요구한다. 100일 동안 ‘시정된 무역 불균형’이 결국 중국의 부를 미국으로 옮긴 것일 텐데, 그걸 앞으로 1년 동안이나 더 하잔다. 중국은 거부했다.

7월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다”라고 말한다. 다음 날 스콧 스위프트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은 “대통령의 명령이라면 언제든지 중국에 대한 핵 공격에 착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골적인 위협이다. 7월 30일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미국 채권 1위 보유국으로서 실제 달러화를 지탱하고 있는 건 중국이다. 중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다” 반격한다. 8월 1일 시진핑 주석은 ”모든 침략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고 배수진을 친다.

한반도는 다시 가열된다. 8월 5일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예방 전쟁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며 북을 자극한다. 같은 날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도 발표된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이번 세대의 가장 엄중한 제재”라고 만족스러워한 제재다.

북은 8월 7일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그 어떤 최후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8월 8일 트럼프는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강경 발언을 한다. 8월 9일 북은 미국이 새롭게 고안해내고 감행하려는 '예방전쟁'에는 미국 본토를 포함한 적들의 모든 아성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대응하게 될 것(북 총참모부 성명)이라면서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 '화성-12'형으로 괌도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북 전략군 성명)고 발표한다.

“화염과 분노” 대 “괌도 포위 사격” 초강경 발언이 오고가는 상황을 언론은 ‘말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로운 용어로는 당시의 전쟁 위기를 실감할 수 없다. 미국이 ‘예방 전쟁’과 ‘화염과 분노’로 북을 자극했다면 북은 ‘괌도 포위 사격 검토’를 통해 미국을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제 미국은 북을 선제공격해도 할 말이 충분하다. 북도 미국을 주시하며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국 투자 외국인들이 먼저 움직였다. 8월 9일부터 사흘간 1조 1,000억 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다. 미국 월가도 얼어붙었다. 8월 10일 월가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지수(VIX)가 전날 보다 44% 급등했다. 주식 값 하락 예측이 하루 새 44%나 올라간 것이다. 실제로 8월 10일 미 다우지수는 204.69포인트(0.93%), 나스닥지수는 135.46포인트(2.13%) 급락했다.

당시 위기의 실상을 간접 시사하는 두 장면이 있다. 먼저, <뉴욕타임스>의 ‘처절한 톤다운’이다. “뉴욕 타임스는 8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관련 언급을 하면서 책상 쪽을 흘깃흘깃 쳐다봤지만, 그가 쳐다본 문서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에 관련한 내용으로 확인됐다며 “완전히 즉흥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한겨레. 8.11)” 화염과 분노 발언에 아무 무게가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대북 메시지를 뽑아내기 위해 자국 대통령을 깔아뭉개는 상황, 미국 주류 언론의 걱정을 반영한다.

둘째는 러시아의 항공 정찰이다. “러시아 정찰기가 9일 두 차례나 미국 안보의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 DC 상공을 날며 국방부 건물(펜타곤), 버지니아주 랭리의 CIA와 메릴랜드주의 캠프 데이비드, 앤드루스 공군기지 상공을 정찰했다(조선일보. 8.10)“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2002년의 ‘영공 개방 조약’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동의와 미군기의 호위 없이는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미국의 개전 가능성에 상당한 의심을 품었다는 것, 미국이 북에 보내는 ‘톤다운’ 신호로 이를 활용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8월 13일 미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 공동기고문을 통해 ”이번 사태는 한국 전쟁 이후 경험하지 못했던 긴장 상황이며,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다. 국무, 국방장관 공동명의라는 형식으로 상황관리 메시지에 무게를 싣고, 신문기고라는 방식을 통해 사후 책임성을 덜어보려는 행보다. 그리고 8월 14일 서울을 방문한 던포드 미 합참의장이 ”선제 타격에 관한 어떤 대화나 토론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8월 15일 북은 “좀 더 지켜보겠다”고 한다.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예정된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에 눈길이 쏠렸다. 8월 18일 미군은 UFG훈련 참가 미군 병력이 작년 2만 5,000명에서 올해 1만 7,500명으로 7,500명 축소된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톤다운 흐름의 연속인가? 껍질을 벗겨보면 다르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병력은 오히려 500명 늘어났다. 원래 UFG는 한반도 증파 임무를 할당받은 해외 미군 단위부대 지휘부가 한국 전장에 휘하 병력을 투입하는 절차가 주요훈련내용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올해 UFG에 해외 미군의 참여숫자가 증가한 점이다. UFG는 축소된 게 아니라 지난해보다 강화됐고, 실질적인 규모도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경향신문. 8.21)”

UFG훈련이 시작된 다음 날 북은 “무자비한 보복과 가차없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다시 강력 반발하고, 8월 29일 화성-1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한다. 고각발사 방식으로 위협 강도를 조절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정상발사, 일본을 넘어 역대 가장 멀리 날았다. ‘괌 포위 사격’ 프로그램의 재가동인 것이다. 그리고 9월 3일 북은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다.

미 언론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를 내보냈고, 트럼프는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어떤 대책이 나왔나? 다음날인 9월 5일 트럼프는 “나는 일본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증가한 규모의 매우 정교한 군사 장비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6일 기자들에게 군사행동을 제외한 다른 압박 수단을 먼저 취할 것이라며, 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다른 뭔가가 있다면 좋을 텐데, 라고도 말했다. 북핵 해법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조선일보. 9.8)”

그런 일은 없을 것, 이라더니 이제 와서는 해법이 없단다. 북 핵, 미사일을 동결할 수단이 미국 앞에 놓인 것은 벌써 몇 년 전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카드, 눈앞에 해결책이 있는데 없단다. 9월 11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통과시켰고 북은 9월 15일 화성-12형 중장거리 미사일 2차 시험 발사를 통해 괌 타격 능력을 처음으로 입증하며, ‘괌 포의 사격’ 위협을 가중시켰다.

8월 11일 중국 <환구시보>의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대북 공격을 시도한다면 중국이 막겠다”는 발언을 뒤집으면, 이 치킨 게임이 가열될수록 중국 부담이 더욱 커진다는 고백이다. 9월 12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방미, 미중 국무장관과 회담한 후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중국을 국빈 방문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트럼프의 방중을 공식 확인해주지 않았다. 9월 25일 미 상무장관이 중국에 날아가 사전협의를 마친 다음에야, 전리품 목록의 윤곽을 확인한 후에야 미국은 트럼프의 중국 방문을 공식 발표한다.

6. 항모전단 북상, 아베 총선 승리

중국의 타협을 도출했음에도 트럼프는 9월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다음날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것을 걸고 미국에 대해 초강경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성명을 직접 발표한다. 유엔총회에 참석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에 대해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상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북을 억지하는 효과는 전혀 없고, 오직 북의 더 강력한 반발 공간만 생길 텐데, 트럼프는 왜 이랬을까? 북의 반발, 그것은 미국에게도 공간이다.

10월 3일 한반도를 향하는 레이건 항모전단이 홍콩에 기항한다. 10월 6일 루스벨트 항모가 모항인 샌디에이고를 떠나 태평양으로 이동한다. 10월 7일 핵잠수함 '투산'이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한다. 10월 10일 B-1B 전략폭격기 2대가 한반도 상공에 날아왔다. 10월 13일 북은 “우리로 하여금 부득불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10월 16일 레이건 항모전단이 동해에서 한미연합훈련에 돌입한다. “보통 항모는 포항 동쪽 공해상에서 훈련을 하는데 이번에는 울릉도 남방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예상보다는 많이 위로 올라갔죠(한국일보. 10.21)”

9월 중순 갑자기 분위기를 만들고, 10월 초 항모전단을 파견하고, 10월 16일부터 3일간 항모전단을 이례적으로 북쪽 깊숙이 접근시킨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간다. 트럼프는 왜 이랬을까? 일본으로 눈을 돌려야 답이 나온다.

7월 2일 아베는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역사적인 대패를 당한다. 자민당은 전체 127석 중 겨우 23석에 그쳐, 도쿄도 의회 선거 참패 여파로 민주당에 정권을 뺏긴 2009년의 38명 당선보다 더 추락한다. 그 직후 일본의 주요 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의 지지율은 36%, 5월에 비해 무려 25%나 떨어졌다. 8월 3일 아베는 지지율 반등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다. 첫째 개각이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 등 여론의 지탄을 받는 각료를 해임하고 파벌 안배 등의 조치를 가미한다. 둘째 “아베 총리는 이날 개각 뒤 기자회견에서 “최우선시할 일은 경제재생”이라고 말했다. 헌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는 “스케줄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한겨레. 8.3)”

그럼에도 8월 4일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35%, 제 자리 걸음이었다. 이런 상태로 9월 말 가을 국회까지 가면, 사학 스캔들 등 아베의 치부를 향한 야당의 공세가 대폭 강화될 것이고 결국 아베는 결정적으로 휘청거릴 것이다. 그렇게 난타를 당해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가면 사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9월 28일 국회가 열리기 전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9월 20일 트럼프의 유엔 총회 ”완전 파괴“연설은 이 즈음 터져 나온 것이다.

이후 ”태평양상 역대급 수소폭탄 실험“으로 북미 위기가 증폭되자 9월 25일 아베는 중의원 해산, 10월 22일 총선거 실시, 생사를 가르는 카드를 던진다. 항모전단, 핵잠수함이 몰려들고, 북이 “부득불 군사적 대응”을 경고하는 등 북미 간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10월 8일 아베는 일본 기자클럽의 여야 당수 토론에서 “북한이 핵으로 일본 열도를 소멸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국난이다"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그런 아베가 10월 13일 북의 “부득불 군사적 대응” 발언을 듣고 가슴이 설레지 않았을까? 10월 16~18일 미 항모전단의 동해 북상을 전후로 북에서 미사일이라도 올라오면, 그만큼 선거 승리도 가까워진다. “17일 밤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8일 오전 일정을 모두 비웠다는 소식이 전해져 북한이 도발하는 것 아니냐며 한바탕 소동을 치르기도 했습니다(한국일보. 10.21)”

북은 침묵했다. 그러나 아베는 22일 총선에서 대승했다. “회사원인 나카무라 테루히코(中村輝彦ㆍ45)씨는 “북한과 미국의 군사충돌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일본의 정권이 바뀌면 위험하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아베 총리밖에 없다”고 말했다(한국일보. 10.19)”

7. 60일 동결에 대한 대답, 테러지원국 재지정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을 앞둔 10월 24일 이 지역을 관할하는 7함대 작전지역에 기존 레이건함에, 루스벨트함과 니미츠함을 추가 배치했다. 그리고 29일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B-2 스텔스 폭격기를 태평양으로 출격시키고, 그 사진을 공개했다. 외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력으로 하는 것, 협상력의 근원은 군사력임을 여실히 입증하는 사례다.

11월 3일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아시아 매체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2차 대전이후 지난 70년간 강대국들이 충돌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미‧중 전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정상회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협상력 높이기다. 11월 6일 제주 인근 해역에서 한국, 미국, 호주 3국 합동훈련, 11월 7일 한반도 동해에서 미국, 일본, 인도 3국 합동훈련이 벌어지는 가운데 트럼프는 11월 8일 중국에 도착한다.

앞서 그는 11월 6일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미국 무기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사길 바란다”며 아베의 동의를 받았고, 7일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에서는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이런 장비들을 주문하시는 것으로 말씀해 주셨다. 한국에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역시 무기를 팔았다. 봄부터 뿌린 한반도 전쟁위기의 씨앗을 수확하는 또 다른 장면이다.

11월 9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2535억 달러(약 282조원) 규모 무역협정을 체결,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다. 중국 상무부장이 282조원의 대미 투자 약속을 하면서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액수”라고 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에 찍힌 한국의 무기 구매 및 투자 액수는 총 100조원에 이른다. 중국에서 3을 뽑았다면 우리에게선 1을 빼냈다. 중국과 우리 덩치를 비교하면 출혈이 도를 넘는다.

11월 11일 한반도 동해 NLL(북방한계선) 근접 해상에서 미 항모 3척과 이지스함 11척 등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시작한다. “항공모함 3척이 오늘부터 14일까지 우리 해군과 동해상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일본 해상 자위대도 12일, 이들 미 해군 전력과 공동으로 훈련에 나선다. 다만 한미일 3국의 대규모 연합훈련은 실시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중앙일보. 11.11)” 사실상의 한‧미‧일 해상훈련이다.

11월 13일 레이건 항모 훈련 상황이 언론에 공개됐고 제5항모강습단장 마크 돌턴 준장이 기자회견을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대규모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우리는 훈련 중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봄부터 지은 농사는 다 수확했으니, 다시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뜻이다.

북이 핵, 미사일을 동결한지 꼭 60일이 되는 11월 14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0월 30일 “북한이 60일 동안 핵,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일 것”이라고 말하고, 틸러슨 국무장관이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슬쩍 받쳐주면서 힘을 얻게 된 이른바 ‘60일 시계’ 얘기다. 북이 60일을 참으면 미국이 대화에 나설까?

동결 59일째인 11월 13일 트럼프는 “15일에 무역, 북한 등에 대한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북미가 ‘60일 동결’을 조건으로 대화로 넘어가기로 물밑 합의를 했다는 추측 기사가 나오고, 15일 트럼프의 입을 고대하는 눈들이 늘었다. 그리고 11월 20일 트럼프는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 게다가 12월 4일부터 8일까지 미 공군기 150 여대에 우리 공군기 90 여대 등 240 여대가 참가하는 한‧미 공군훈련을 한다고 발표됐다. 일본과 한국에 배치된 미 공군기들을 거의 모두 동원하는 초대형훈련이다.

북은 11월 29일 화성-15형 ICBM을 시험 발사했다. 75일 만에 동결을 깬 것이다. 최대고도 4,475㎞에 비행시간은 약 53분이다. 7월 28일 화성-14형 2차 발사 당시 최대고도 약 3,700km, 비행시간 45분에 비해 훨씬 고도화됐다. 북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12월 미국의 전투기 150 여대가 한반도 상공을 뒤덮으면 북은 가만히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미국이 가만 놔둘까?

8. 희망, 평창올림픽 휴전결의안

11월 13일 유엔 총회는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의결했다. 내년 2월 9-25일 평창 겨울올림픽과 3월 9-18일 겨울패럴림픽 기간에,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7일 뒤까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적대행위를 중단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미국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이 결의를 준수한다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취소되거나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엔 총회 결의는 구속력이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나라가 결정하면 강제력이 생기지만 유엔 회원국 모두의 결의에는 그런 힘이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올 봄 칼빈슨 항모전단을 되돌렸을 때 중국도 압박을 받아 일보 후퇴했고, 일본도 자장에 들어 아베 지지율 상승, 개헌 동력 확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트럼프발 북풍의 한가운데를 뚫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그 힘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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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 YTN 보도국장 내정자, "적폐청산 없으면 지명 거부"

보도국장 내정 뒤 첫 입장 “노조, 최남수 사장 내정자 만나 개혁 의지 확인해주길”… 노사 담판에도 상황 변화 없을 경우 “지명 거부 여부 신중히 판단할 것”… 고심 끝 박진수 YTN 노조위원장 “단두대 서는 심정, 최 내정자 만나보겠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12월 02일 토요일

YTN 차기 보도국장으로 내정된 노종면 기자가 지난 1일 오전 YTN 노조에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와의 ‘담판’을 요청했다. 노조를 포함한 YTN 다수 구성원들이 최 내정자를 ‘부적격자’로 판단하고 사장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 내정자의 개혁 의지를 최종적으로 노조가 확인해달라는 호소다. 

노 기자는 이 과정을 거쳤는데도 최 내정자가 노조에 믿음을 주지 못하고 노조도 최 내정자의 YTN 정상화 의지를 신뢰하지 못하면 보도국장 지명 거부 여부까지 고려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노 기자는 2008년 MB 정부의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하다가 해고된 뒤 지난 9년 동안 ‘언론 정상화 투쟁’ 선봉에 섰던 언론인이다. 그가 지난달 30일 차기 보도국장에 내정되면서 YTN 정상화가 가시화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정작 노 기자는 노사의 담판을 요구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 MB 정부의 YTN 낙하산 사장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던 노종면·조승호·현덕수 YTN 기자는 지난 8월 동료 선·후배 기자 80여 명의 환대 속에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 첫 출근했다. 노 기자가 YTN 동료와 부둥켜안고 복직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MB 정부의 YTN 낙하산 사장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던 노종면·조승호·현덕수 YTN 기자는 지난 8월 동료 선·후배 기자 80여 명의 환대 속에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 첫 출근했다. 노 기자가 YTN 동료와 부둥켜안고 복직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노 기자는 이날 YTN 사내 게시판을 통해 “오는 7일은 보도국장 내정자인 제가 단체협약에 따라 ‘보도정책 및 운영방침’을 공표해야 하는 시한”이라며 “이 시한이 ‘YTN 정상화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판단에 노조와 노조위원장께 감히 한 가지 요청을 드린다. 박진수 노조위원장이 최 내정자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달라”고 호소했다.

 

노 기자는 “최남수 내정자에게 ‘적폐청산’ 의지가 있는지 노조위원장의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해달라”며 “시대의 요구이자 YTN 혁신의 출발이어야 할 ‘적폐청산’이 흔들림 없이 실행될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 방안을 확인하고, ‘적폐청산’의 선명한 기준과 단단한 제도를 확보해달라. 만약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구성원들을 믿고 주저 없이 회군하시라”고 말했다.  

 

노 기자는 “‘담판’ 이후 노조가 사장 내정자를 인정하기로 결정한다면 제 개인의 판단과 무관하게 노조의 결정에 따를 것이며, 즉시 보도국장 동의 절차가 요구하는 일정에 임할 것”이라며 “반대의 경우라면 담판이 끝난 뒤의 상황을 본 뒤 지명 거부 여부를 신중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기자는 “‘선 보도국 정상화’의 현실적 필요성과 시급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지만 인사권자와의 조율 없이는 조직 개편도, 보도국을 넘어서는 인력 재배치도 불가능하다”며 “혁신은커녕 최소한의 정상화도 이루기 힘들며, 오히려 섣부른 처방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보도국 정상화’를 ‘YTN 정상화’의 큰 틀에서 이뤄내는 것이 순리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 기자 글이 게시된 뒤 한나절이 지나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이 사내 게시판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박 지부장은 “아직도 최남수 내정자가 최선의 방법이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노종면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일 준비도 없이 제 소회와 다짐을 밝혀야 한다는 것에 속상함을 넘어 만감이 교차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지부장은 “최남수 내정자와 배석자 없이 만나서 적폐청산 의지를 확인하고, YTN 미래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며 “선 보도국 정상화가 시급함을 알면서도 YTN과 보도국은 별개가 아니고, 더 이상 YTN 정상화를 방치해 둘 수 없기에 마지막 단두대에 서는 심정으로 최남수 내정자에게 협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박 지부장은 최 내정자에 대해 “적폐청산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이어야 한다”며 “적폐청산은 YTN이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진정한 통합의 미래로 가기 위한 절대적인 대원칙이라는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2008년 8월 구본홍 전 YTN 사장 체제부터 2017년 5월 조준희 전 사장 체제까지 부역한 언론이라는 과오를 벗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이제 그 과오를 속죄하고 다시 도약하기 위해 날개를 펴야 한다. 이를 위해 적폐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가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내정자는 복직기자들의 상처를 보듬겠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가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내정자는 복직기자들의 상처를 보듬겠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머니투데이방송(MTN) 대표를 지낸 최 내정자는 YTN 출신이다. 노조를 포함해 다수의 YTN 언론인들은 그가 MB 정부의 YTN 장악 국면에서 회사를 떠나는 등 개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최 내정자는 지난달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2008년 MB 정부에서 해고됐다가) 복직한 후배들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지 않다”며 “노종면·조승호·현덕수 등 복직 기자들에게 충분히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내정자는 ‘인적 청산’에 대해서도 “후배들의 이야기와 내가 봤던 것을 종합해보면, 이견의 여지없이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인사들이 있다”며 “책임 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내정자는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언론 바로 세우기, 언론 개혁, 공정방송과 내부 적폐 청산에 대해 YTN 구성원들과 뜻을 같이 한다”며 “국민 신뢰를 받고 시대 아픔에 공감하면서 내용적으로 뉴스 혁신 리더가 되는 방송국을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 “후배들과 세상 보는 관점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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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죽인 현장실습, 정말 달라질까?

[기자의 눈] 칼 빼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
2017.12.01 17:16:16
 

 

 

 

지난 11월 19일,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일하던 고 이민호(19) 군이 프레스기에 목이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6일, 박모(19) 군이 자신이 일하던 안산 공장 옥상에서 투신해 중태에 빠졌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전주 여고생(19)이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이들은 모두 현장실습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일하던 이 군은 작업장에서 혼자 일했다. 현장실습생은 선임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규칙을 회사가 어겼다. 노동자 한 명의 임금이 곧바로 회사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프레스기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이 군이 주변 동료들(현장실습생)에게 발견되기까지 5~6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공장 옥상에서 투신한 박 군은 안산 반월공단 내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10명이 조금 넘는 노동자가 전부다. 사장은 3년 전 이 업체를 세웠다. 박 군은 선임에게 욕설을 듣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체 사장은 욕설이 전혀 없었다고 해명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했다고 덧붙였다.  
 
직접적인 투신 원인은 이처럼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이곳 안산 반월공단은 소규모 업체들이 모여 공단을 이룬 곳이다. 불법파견의 온상으로 불리는 곳으로, 작업조건이나 급여 등이 매우 열악하다. 노동부의 감시도,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 군이 다니는 학교는 이곳에 많은 학생들을 현장실습 보낸다. 그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어디냐는 식이다.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상담사로 일하던 홍은주(가명) 양은 일명 '욕받이' 부서에 배치됐다. 인터넷 해지 방어 부서로, 기존 베테랑 상담사들도 꺼리는 업무다. 고객이 해지하려고 하면, 이를 막는 게 홍 양의 업무였다. 그렇다 보니 손님에게 육두문자를 듣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홍 양은 그 부서에 배치됐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 11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특성화고 실습생 고 이민호 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앉아있다. ⓒ연합뉴스

'묻지마 취업률‘에 목매는 학교들, 왜? 
 
현장실습을 하다 죽은 학생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 실습생은 지금까지 뇌사상태라고 한다.
 
학생들이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구조는 오래전부터 고착화됐다는 방증이다. 통계자료에도 나와 있다. 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특성화고 출신 취업률은 2012년 41.5%에서 2015년 62.6%로 증가한 반면,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급감했다. 질 좋은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취업률이라는 실적이 급한 학교는 학생들을 사실상 목숨 걸고 근무해야 하는 곳으로 몰아넣었다는 얘기다.  
 
학교가 취업률에 전전긍긍하는 까닭은 돈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사업 대상은 '취업률 45.5% 이상인 학교'로 제한돼 있다. 취업률 기준에 못 미치는 학교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취업률은 말 그대로 '취업률'만 본다. 학생이 실습하는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 노동조건 등은 따지지 않는다.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취업률이 미미하거나 일정 규모 이하인 특성화고는 종합고(인문계와 전문계가 같이 있는 학교)에 통폐합을 권고하고, 취업률에 따라 지원을 차등하는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대로면 아이들은 점점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현장실습제도, 칼 빼든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그나마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해결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특성화고 학생의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하지 못한다.  
 
다만 정부는 예외적으로 실습 지도와 안전 관리 등이 확보된 현장에는 현장실습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수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을 각 학교에 제공하고 해당 기업에 대해선 다양한 행정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현재 고교생 실습이 이뤄지고 있는 모든 현장을 전수 점검해 학생의 인권보호와 안전 현황을 중점 확인한 뒤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각 학생들의 복교를 조치키로 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도 손질해 학생의 현장실습 자율성을 부여하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부과키로 했다. 취업률 중심의 학교평가와 예산지원 체제의 개선도 약속했다.  
 
이러한 개선안은 학생들의 작업현장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조치를 조금 더 일찍 했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생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지 않고, 산업을 중심에 둔 정책이 빚은 참화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리라 믿는다. 문 대통령은 1일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 학습권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
 
앞으로도 학생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위한, 사람 중심의 정책이 보다 많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들의 업무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라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누군가 프레스기에 끼여 사망할 것이고 상담을 하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는 노동자들은 또 나온다. 
 
교육 당국과 학교 역시 작업 현장의 열악함, 위험성은 그대로 둔 채, 즉 노동하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덮고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그저 '폭탄 돌리기'일 뿐이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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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美·中 사이버전 “미 해군함정 사고, 우연이 아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2/02 08:42
  • 수정일
    2017/12/02 08: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밀리터리 차이나-윤석준의 ‘차밀’]
 
윤석준  | 등록:2017-12-01 15:15:55 | 최종:2017-12-01 15:42:4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중국의 사이버전 능력이 크게 향상돼 미국 국가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다!

지난 9월 조셉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이 의회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실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2014년 중국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는 기구 ‘정보화 영도소조’를 신설해 수장 자리까지 맡으며 관련 정책을 직접 챙기고 있다. 그 다음 해엔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는 사이버전 전문부대를 창설했다. 해킹으로만 알려진 사이버전 양상이 국가안보 차원으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조셉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 [출처: 워싱턴타임스]

시 주석은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했다.

제4전투공간인 우주, 사이버 및 전자기 작전 영역에서 우세권을 장악하여 국가 안보를 방어할 군사대국(軍事大國) 상징의 신형부대(新型部隊)다.

앞으로 중국군이 사이버전에 대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더 나아가 중국군은 미국보다 한참 뒤처지는 전략 공백을 사이버 전력으로 메울 생각까지 한다. 
 
원래 중국군의 사이버전 개념은 지금처럼 공격적이지 않았다. 2009년 중국군 육군 소장 다이칭밍(載淸民) 장군은 군전력 체계를 통합하기 위해서 사이버 부대 창설을 얘기했다. 하지만 전략지원사령부가 창설되자 사이버 공간에서 상대방의 지휘통제 체계를 교란시키고 작전부대 혼란을 야기하겠다는 공세적 태도로 변했다. 2013년 중국군사과학원(中國軍事科學院)도 중국군 개혁에 “사이버 공간 장악 부대를 추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전략지원 사령부 미국 내 많은 방위산업체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될 반도체 공급 제휴를 맺고 있는 중국 내 정보통신업체들을 이용하여 미군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한 7월 자 ‘US NI Prceedings’지 [출처: 미 해사협회]

하지만 아직까지 전략지원사령부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지난해 중국 군사전문잡지 ‘함선지식(艦船知識)’이 중국 인터넷 업체와 중국군 간 군민융합(軍民融合)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정도다. 그래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중국군이 앞으로 사이버전에 어떻게 나설지는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사이버 공격 대상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용 인터넷(LoT)을 활용하는 미 해군 함정, 잠수함 및 항공기의 생산을 담당하는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등 유수 방위산업체가 타깃이다. 여기에 반도체 공급을 맡고 있는 중국 민간·국영업체를 활용하는 방안도 중국군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지난 7월 발간된 미국 해사협회에서 발간하는 ‘US NI Prceedings’지는 “중국 전략지원사령부가 미국 방위산업체 슈퍼컴퓨터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중국 업체를 통해 대미(對美) 사이버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최근 미 해군은 이상하리만큼 잦은 해상사고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서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미해군 7함대 소속 함정 사고가 빈번하다. 올해 1월 31일 미해군 티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안티에탐(CG-54)이 일본 요코스카 근해에서 선체 접촉 사고를, 5월 9일엔 티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레이크 참프래인(CG-57)이 울릉도 근해에서 한국 어선 남양호와 충돌했다. 6월 17일에도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랄드(DDG-62)가 필리핀 상선과 일본 근해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8월 21일,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존 맥케인(DDG-56)이 리베이아 유조선과 충돌했다. 다수의 군사전문가는 중국 전략지원사령부가 벌인 사이버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6월 17일에는 미 구축함 피츠제럴드호가 필리핀 화물선과 충돌하는 사고를 내 10명의 승무원이 실종됐다. [출처: 아시안 뉴스]

미 해군 당국은 당직자의 근무태만으로 결론지었으나, 석연치 않은 정황이 포착됐다. 8월 30일 미 해군 참모총장 존 리처드슨(Admiral John Richardson)은 “사이버 공격 가능성 제기를 염두에 두고 함정의 항해 컴퓨터를 조사 중”이라며 “올해 8월까지 총 4건의 해상사고를 단순히 인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 해군 함정이 사용하는 각종 상용 장비와 주파수 대역은 보안에 매우 취약하다. 

지난 10월 영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IHS 제인은 “군용 표준이 아닌 민간 인터넷이 적용되는 90〜110㎑급 일반 대역폭에 중국군의 사이버 접속이 용이하다”며 “중국군이 미국 함정에 가짜 위치정보와 주변 선박 정보를 뜨게 해서 선체 접촉 및 해상 충돌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는 또 있다. 핵심 방어체계인 이지스의 무력화다. 1991년 미 해군이 이지스 전투 체계(ACS)를 도입했다. 이후 비용을 줄이겠다며 상용 정보통신기술(COST)을 활용하는 개방형 체계를 도입했다. 게다가 미 해군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의 이지스 체계는 해군 인트라넷을 이용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소프트웨어적인 보수 및 점검을 할 수 있다. 미 해군 7함대 소속 버지니아 달그랜에 있는 중앙 이지스 센터도 일본 요코스카에 파견소를 만들었다. 여기서 동아시아 전개용 미 해군 함정의 응급 수리를 담당하고 있다. 일종의 온라인 닥터인 셈이다.    
 
하지만 2014년 미 해사협회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국 해군은 미 해군의 온라인 이지스 전투체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실제 중국 해군 함정의 기관 수리 온라인 체계와 유사한 체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를 잘 안다고 생각한 중국군은 오히려 사이버전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미 해군의 이지스 온라인 수리 체계가 중국군의 사이버 공격에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이는 미군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바다. 중국은 전략지원사령부를 세우는 등 태평양에서 사이버 공격에 다양한 대비책을 내놓고 있다. 미 육군은 훈련할 때마다 사이버 방어체계를 가동하고 미 해·공군은 함정과 항공기에 사이버전 침투방어체계를 탑재했다. 미 육군이 사이버 퀘스트 2017 시스템을 적용한 것과 미 공군의 F-22 전투기에 레이시온사의 방어체계를 해군 함정에 암호화된 항법시스템(e-Loran)에 부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래도 중국군에 뚫릴 수 있다는 불안은 여전하다. 이유가 있다. 중국군은 언제든지 중국 민간 통신업체 업무에 개입할 수 있다. 해외 합작업무도 전부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國家開發改革委員會)가 통제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미국 방위산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 중인 레노버, 화웨이, 알리바바, 바이두, ZTE 등 27개로 구성된 반도체 연합체를 꾸렸다. 미 정보당국도 화웨이와 ZTE가 중국 당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파악해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2005년 중국인 해커가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영국 롤스로이스 사를 해킹했다. 롤스로이스사는 각종 항공기 엔진에 쓰인 핵심 기술을 가진 회사다. [출처: 인디텐던트지]

전 세계 사이버 공간을 잇는 해저 케이블 공사도 다 중국 업체 차지다.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텔레콤, 차이나 모바일이 저가수주를 무기 삼아 전 세계 케이블 공사 건 수주를 독점하다시피 한다. 자금이 풍부한 중국 국영기업도 재정난에 빠진 서구 방산업체 주식을 무더기로 사들인다. 이를 통해 얻은 접근 권한으로 기술이 빠져나가는 일도 발생한다.

2005년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영국 롤스로이스사의 해킹 피해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롤스로이스사는 미국 F-35 전투기, 줌왈트급 스텔스 구축함, 그리고 T-AO-205급 대형 군수지원함의 핵심 엔진을 공급하고 있었다. 중국은 슈퍼컴퓨터 기술마저 수준급이다. 방대한 발생하는 방산 분야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난 해독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반면 미 해군 함정을 제조하는 선박회사는 해킹에 매우 취약하다.

그만큼 중국이 사이버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개연성도 크고, 실제 나선다면 상대국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8월 21일 싱가포르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과 충돌해 선체가 파손된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존 S. 매케인함 [출처: CNBC]

물론 이번 미 해군의 함정 사고가 중국 사이버 공격 탓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미 해군의 첨단 장비 보안이 허술하다는 점과 중국군이 이를 잘 알고 적극적으로 사이버전 전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중국에선 미 해군의 첨단 장비와 무기체계가 일시적 교란 상태에 빠졌을 때 어떤 식으로 피해가 확산되는지를 정밀하게 따져보고 있다. 당장 미군과 대등할 전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이버전 능력 키우기’는 매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전략일 수 있다. 당장 한국도 지난해 9월 국방부 국방중전소가 북한에게 해킹당해 약 235기가바이트 분량의 군사비밀이 빠져나갔다. 한국이 중국 전략지원사령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사이버전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글=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정리=차이나랩 김영문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5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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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5형, 초강력 쌍둥이엔진으로 힘 남아돌아

[동영상] 화성-15형, 초강력 쌍둥이엔진으로 힘 남아돌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2/01 [23: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화성 15형 발사 동영상]

 

▲ 육중한 미사일을 순식간에 창공높이 쏘아올린 화성-15형 쌍둥이 로켓엔진이 힘차게 화염을 내뿜으며 대지를 박차고 있다.     © 자주시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충분한 사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의 주장에 이어 국방부도 미국 서부 수도 워싱턴을 타격할 사거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하여 세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보조로켓이 과연 없나?

 

이런 엄청난 힘을 만들어낸 로켓엔진에 대해 국내 로켓전문가들은 한결같이 3.18엔진, 일명 백두산엔진을 쌍둥이로 장착하여 엔진 1개를 설치했던 화성-14형보다 비추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평가했다.  

 

화성-14형은 한 개의 대형노즐에 소형 보조로켓노즐을 4개 장착하였는데 이 보조로켓노즐이 방향전환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비추력의 일부를 담당할 수 있을 만큼 꽤 컸다. 그래서 발사단계에서부터 대형노즐과 보조노즐에서 모두 화염이 뿜어져나왔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 이 사진은 화성-14형이 상승비행하는 장면이다. 4개의 소형 보조노즐이 초기 발사단계에서 가동되고 있다.

 

화성-15형은 발사단계에서 쌍둥이 중심노즐 2개만 화염을 내뿜었고 모든 전문가들은 보조노즐이 없이 이 중심노즐만으로 비추력도 만들고 방향전환도 하게 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화성-15형은 중심노즐을 회전식으로 만들어 방향전환까지 해내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미국의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센터 연구원도 중심노즐을 움직여 방향전환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는 이를 짐벌(gimbal)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매우 발전된 기술이라고 평가하였다. 첨단 전투기에서도 날개와 함께 노즐을 움직여 방향전환을 한다. 미국의 B-2스텔스기는 레이더 포착을 피하기 위해 수직꼬리날개조차 없애버리고 이런 노즐을 회전식으로 움직여 자유자재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루이스 연구원은 날개로 방향전환을 할 때는 뒤로 잡아끄는 힘이 생겨 비추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다만 보조로켓을 이용한 방향전환과 짐벌시스템에 의한 방향전환에 대한 비교대조는 하지 않았다.

무엇이 더 좋은 방식인지는 어느 쪽이 더 안정적이며 값이 싸고 가벼운 장치인가로 결정될 것이다. 특히 무거우면 그만큼 비추력을 확 떨어뜨린다. 

 

▲ 화성-15형 로켓 밑면, 대형 쌍둥이 노즐이 선명하게 보인다. 자세히 보면 작은 꼭지가 하나는 아주 선명하게 보이고 3개정도 더 흐릿하게 보인다.     © 자주시보

 

필자는 화성-15형에도 보조로켓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상승하는 로켓의 바닥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화염은 내뿜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작은 꼭지가 최소 2개에서 4개가 보이는데 그것이 방향전환용 보조로켓노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 발사 동영상을 보면 비상하는 도중에 이 보조로켓이 가동되어 양 옆으로 화염이 뻗어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물론 대기권을 벗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가능성 등 꼭 보조로켓 가동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는 하다.

 

▲ 화성-15형 화염이 비상하다가 위에서부터 갑자기 두꺼워졌다. 보조로켓을 이때부터 가동해본 것이 아닌가 추정되기는 하는데 확신할 수는 없다. 보조노즐 크기에 비해 화염이 너무 굵어지고 있어서 더욱 확신은 할 수 없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허나 짐벌시스템의 경우 무게를 특별히 늘리지 않고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엄청난 추력을 뿜어내어 그 무거운 로켓을 그 빠른 속도로 비상하게 하는 반작용 힘을 견디어 내기 위해서는 튼튼한 구조적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할텐데 회전식으로 노즐을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그리 간단치 않아보인다. 

또 북이 그런 기술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한번 사용하고 나면 떼어내어 떨어뜨릴 1단로켓에 값비싼 돈을 들여 꼭 그런 체계를 적용하겠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대신 보조로켓은 터보펌프에서 뿜어내는 가스화된 고압의 연료 중 극히 일부를 작은 관으로 빼서 작은 연소실을 만들어 연소만 시키면 되기 때문에 퍽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다만 이번에 그 보조로켓노즐이 매우 작았고 점화와 초기 상승단계에서는 아예 작동을 시키지 않은 것은 화성-14형처럼 비추력까지 담당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방향전환용으로만 이용하려고 아주 작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회전식 짐벌시스템을 도입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이 첨단 전투기제작 기술에 있어서도 매우 높은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북이 핵무장력을 완전히 구축하고 나면 미국의 랩터에 대적할 최첨단 전투기 비행구름으로 창공을 뒤덮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필자는 쌍둥이 노즐을 달아 힘이 넉넉해져서 굳이 보조로켓으로 비추력까지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이번 화성-15형의 엔진은 힘이 남아돌 정도였던 것 같다. 

연합뉴스, YTN 등이 소개한 발사 동영상을 보니 정말 그 육중한 덩치를 순식간에 창공 높이 올려 한점 불빛으로 만들어버렸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안정적인 자세로 대지를 박차고 쓕~쓕~! 비상하는 화성-15형은 마치 힘을 주체하지 못해 콧김을 힝힝 내뿜으며 마구 돌진하는 코뿔소같았다. 

 

  

✦ 추종불허의 초강력 쌍둥이 노즐 엔진

 

발사 후 약 2분 10초만에 1단과 2단이 분리되어 2단로켓이 밝고 영롱한 힌 빛을 뿜으며 우주 공간으로 까마득히 사라져갔는데 이 1단 가동시간은 사실 매우 긴 시간이다. 화성 14형은 약 1분 5초만에 1단과 2단이 분리되었으니 화성-15형은 1단로켓가동시간이 거의 두배나 길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높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노즐이 2개면 연료 분사량도 두배가 되기 때문에 비슷한 연료통이라면 오히려 비행시간이 단축되어야 하는데 2배로 늘었다는 사실이 잘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화성-14형의 큰 구멍 노즐 한 개를 화성-15형에서는 두 개 노즐로 쪼개 구멍을 작게 하여 더 적은 양의 연료를 사용하면서도 내뿜는 속도를 훨씬 높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화염분출 속도가 비추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즐의 구멍을 줄이면 상식적으로 속도는 세제곱에 비례해서 높아진다. 하지만 구멍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최적의 구멍크기를 찾아서 노즐을 여러개로 만들어 다발로 묶는 것이 효율적인데 이 경우도 노즐이나 관등이 많아져 오히려 무게가 늘어나기 때문에 무한정 노즐수를 늘릴 수는 없다. 보통 대형 중심 노즐을 2-4개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 9축 18륜 차량에 탑재된 육중한 화성-15형, 화성-14형에 비해 바퀴가 2개나 늘었고  운전석 앞으로 탄두부가 튀어나와있는 것을 보면 그 크기가 꽤 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2단의 지름이 획기적으로 커졌다. 이로써 1단의 연료양도 약 10-20% 늘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1단 비행시간은 배나 늘었다. 1단 로켓의 효율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이정섭 기자

 

북의 화성-15형은 두개 즉, 쌍둥이 노즐을 장착한 것이다. 물론 소모하는 연료양을 절반까지 줄이지는 못해 미사일 크기를 더 키웠고 차량의 바퀴도 16개에서 18개로 2개를 늘렸던 것이다. 필자의 계산으로는 1단만 따졌을 때 연료양이 약 10%, 많아야 20% 늘었은데 그 가동시간이 2배 즉, 100%나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화성-15형 엔진의 효율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4개 중심노즐을 한 다발로 묶은 은하-4호 로켓도 1단가동시간은 1분 30여초 정도였다. 지금까지 북이 쏜 로켓 중에서 화성-15형의 1단로켓 가동시간이 가장 길었다. 그래서 그 먼거리를 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러시아의 스틸레토 대륙간탄도미사일 

 

따라서 이것은 거의 완전히 새로운 엔진을 개발한 것이나 같다고 본다. 북이 러시아의 스틸레토 대륙간탄도미사일처럼 이 엔진을 4개 노즐 한다발로 만들어낸다면 세계 최강의 전략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10발 이상의 다탄두에 수많은 기만탄까지 장착할 수 있는 괴물대륙간탄도미사일도 북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 북이 은하-4호를 이용하여 광명성위성 발사 성공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성개발 현지지도 관련 동영상에서 공개한 북의 은하-4호 엔진 노즐 대형 중심노즐 4개에 보조노즐이 4개장착되어 있다. 보조노즐은 회전식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어 방향조종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은 이미 대형노즐4개를 하나로 묶은 은하-4호를 이용하여 광명성 위성 발사에 성공한 바 있다. 이미 북도 러시아 못지 않은 다발엔진기술 즉, 엔진크러스터링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더 크고 위력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의 로켓기술의 끝이 어딘지 도무지 짐작조차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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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가 시급한 세가지 이유

[시민정치시평] 공수처, 제대로 만들자

 

 

지난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대혼란 속에서 주권자 국민이 밝힌 촛불의 빛은 국가의 비전을 밝혀주었다. 이 사태를 둘러싼 흑막이 양파껍질과도 같이 하나둘 벗겨지자 거대한 비리의 먹이사슬이 얽혀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총체적 부패 상황은 기존의 검찰, 특별검사나 특별감찰관제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로써 오랜 동안 논의만 무성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가 다시금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는 기관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보아 온 특검이 상설화되는 것과 같다. 이는 2006년 참여연대가 그 도입을 주장한 이래 그 동안 17차례나 국회에 입법발의 되어 온 이력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치권의 무관심과 법무부와 검찰의 반대로 번번이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총량만 늘이는 옥상옥(屋上屋)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으나 이면에는 그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공수처는 검사는 물론 검찰이 손대지 못한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척결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첫째, 권력형 비리로 오염된 나라를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정권실세나 권력자들의 비리를 척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체로 대통령 및 그 비서실 등의 고위직 공무원,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검사, 법관 등과 같은 성역(聖域)으로 여겨진 이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존재를 이유로 효율성 문제를 들지만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하여 제대로 칼을 들이댄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집권세력에 장악당하여 정권지킴이 역할에 충실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주변 권력자들의 부패는 끝간 데를 모르고 독버섯처럼 자라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진작 공수처가 있었더라면 이런 국가적 불행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둘째, 무소불위 검찰을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하여도 필요하다. 알다시피 우리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장악하여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런 검찰권에 구애를 펼치며 집권세력이 내미는 손을 맞잡고 검찰은 그에 의지하여 끝없이 권한확대를 추구해 왔다. 그 결과 검찰은 통제 불능의 권력기관으로 자가발전해 왔으며 내부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부패가 싹터왔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성추문 검사, 벤츠 검사, 오피스텔 123채 변호사 전관예우, 120억원 주식대박 현직 검사장 사건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정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검찰은 늑장수사 및 제 식구 비리 감싸기에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검찰이 바로서면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검찰만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서는 처지에 놓였다. 한편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검찰권의 분산 및 견제기능을 수행하고 이것이 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가능케 한다는 순기능도 있다. 공수처가 비록 검찰수사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지만 검찰 제자리 찾기의 일환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의 유명무실이다. 한국사회에서 특검제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다. 하지만 상설특검법이라고 알려진 특검법은 실상을 알고 보면 '상설’이 아닌 특검 '임명절차법’에 불과하다. 따라서 특검 수사를 하려면 여전히 국회의결을 거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에 대한 감찰을 위한 특별감찰관제도 또한 식물감찰관으로 불린다. 청와대가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쫓아낸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의 예에서 보듯이 실효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예산 낭비 요인을 이유로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는 데서 결국 공수처만이 유일한 대안임을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공수처의 방향이다. 아무리 공수처가 필요하다지만 그 단추를 잘못 꿰면 누더기 법률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특검법이나 특별감찰관법에 다름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이 그 핵심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선 독립기구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권의 입맛에 따라 조직의 향방이 좌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수처 스스로의 규칙제정권과 독자적 예산편성권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공수처장의 자격요건을 법조인만으로 한정할 이유가 없다. 처장에게는 실무보다는 조직을 독립적․중립적으로 이끌 수 있는 자질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질이 반드시 법조경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처장 임명은 국회소속의 국회추천위원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여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처장 후보자의 다양화나 국회에 의한 후보 추천을 통하여 법조인만의 것이 아닌 국민의 공수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찰청 검사의 공수처 검사로의 진입을 최대한 억제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현직 검사 퇴직 후 곧바로 공수처 검사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면 검찰에 의하여 장악되어 기구의 효율성 문제에 시달릴 수 있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 선봉에 서서 그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잘나가던 박근혜 정권 권력의 상징처럼 보이던 '문고리 3인방’도 하나같이 구치소로 향했다. 그런데 이 엄동설한에 적폐청산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매섭게 몰아칠수록 더 강해지는 의구심이 있다. 혹 검찰이 자신에 대한 개혁요구를 물 타기 하려는 것은 아닐까라는 노파심이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절을 경험한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이래서 평소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공수처가 필요한 것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주장하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특수활동비 관련 특검 요구도 필요 없게 된다. 고위공직자의 직무관련 범죄로서 당연히 공수처에서 수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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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문가, 화성-15형 수소폭탄 장착 가능하다!

미 전문가, 화성-15형 수소폭탄 장착 가능하다!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7/12/01 [10: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지난 달 29일, 북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수소폭탄을 장착할 수 있을만큼 성능이 높아졌다고 미국의 전문가가 의견을 표했다.

 

1일, 미국의소리(VOA)는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센터 연구원이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북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화성-15형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며, 주 엔진 2개를 움직여 방향을 조정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제프리 연구원은 ‘화성-15’형은 미사일 크기의 대형화와 두 개의 엔진이 방향을 정하는 ‘짐벌’형식이며, 이것은 서방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연구원은 ‘짐벌’ 형식은 2 개의 엔진이 움직이면서 방향을 조정이 가능해,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화성-15’형은 수소폭탄처럼 큰 핵탄두를 탑재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 작은 탄두 여러 개나 미사일 방어체계를 교란하는 장치를 탑재 가능한 것이 특징이라고 밝혀다. 이것에 의하면 미국이 ‘화성-15’형을 요격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9축 18바퀴 차량에 탑재된 화성-15형, 탄두부가 매우 크고 둥그런 것을 보니 다탄두를 장착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바퀴수는 중국, 러시아 최대 미사일보다도 많다.     ©자주시보

 

제프리 연구원은 또한 ‘화성-15’형의 사정권은 미국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플로리다의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도 타격가능 했을 것이며 또한 핵탄두 수백kg를 탑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에 9축식 이동식 발사차량으로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성공한 것은 앞으로도 북이 생산할 수 있는 미사일 수에 대한 제약이 많이 없어질 것이며, 이동식 발사차량으로 미국이나 한국의 발사지점 추적이 어렵다고 제프리 연구원은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 성공률에 대해서는 그동안 미국은 날씨 상태가 좋을 때고 성공률이 높지 않았으며, 북은 낮과 밤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어, 북이 발사한 미사일 중 최소한 1발 이상은 미국의 요격 체계를 피한 뒤 미 본토에 떨어질 것이라고 제프리 연구원을 말했다.

 

제프리 연구원은 앞으로 북이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고체연료 미사일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미국에게 더 큰 위험이 될 겄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달 29일 북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화성-15’형에 대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화성-14’형보다 진화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맞다고 인정하고 있다.

 

북의 주장대로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 안에 있다고 가정할 때, 이제는 미국이 북의 신호에 대해서 답을 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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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철 9호선 파업, MB의 ‘민자철’ 때문

노동자들의 파업은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6일 동안, 파업의 배경과 원인은?
 
임병도 | 2017-12-01 08:50: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9호선1단계운영노조의 파업 첫날 아침 모습. 승객들이 계단 위까지 올라와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지하철 9호선 1단계 운영회사 노동자들이 30일부터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파업은 12월 5일까지 6일 동안 진행됩니다. 파업의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9호선 파업, 지하철 운행은 문제없나?’

‘서울9호선운영노조’의 파업으로 지하철 운행이 전면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지하철은 ‘필수유지 공익사업장’이라 운행에 필요한 일정 규모의 인력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파업 첫날인 30일 오전에도 운행에 필요한 인력이 대거 투입됐습니다.

그런데도 30일 오전에는 열차의 지연 출발이 이어졌습니다. 출입문 고장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날 오전 7시 25분 김포공항역에서 신논현역으로 출발하는 급행열차에서 출입문 고장이 발견돼 후속 차량으로 교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하철 9호선은 출퇴근 시간에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지옥철’이라 불릴 정도입니다. 평소에도 출퇴근 시간에는 급행열차를 한 번에 탑승하기 어렵습니다. 몇 대를 보내야만 겨우 탈 수 있습니다. 파업 때문이 아니라 고장과 출근 시간 혼잡이 겹쳤다고 봐야 합니다.

보통 지하철 파업 등의 사태가 벌어지면 다른 대체 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9호선 급행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선택이 별로 없습니다. 콩나물시루 같아도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파업이 시작된 30일 오전 4시부터 ‘비상수송대책본부’를 가동했습니다. 25개 역사에 시청 소속 직원을 2명씩 배치했습니다. 9호선 노선을 경유하는 시내버스 24개 노선에 예비차량 30대를 투입했습니다. 다람쥐 버스(혼잡한 지역에 투입돼 짧은 구간만 반복적으로 운행하는 셔틀형 순환버스) 2개 노선도 오전 6시~9시로 연장 운행하고 있습니다.

고홍석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파업이 진행돼도 지하철은 정상 운행되며, 만약 가동률이 떨어지더라도 대체수송력을 최대한 활용해 시민 불편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하철9호선 노동자들은 왜 파업하나?’

9호선 노동자들은 왜 파업을 할까요? 노조가 내세운 파업 사유는 “승객이 안전한 9호선을 만들기 위한 전면적인 차량 증편과 인력충원”입니다.

 

▲ 2015년 진성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주관했던 ‘서울시 지하철 9호선 출근대란의 원인과 해결방안’ 토론회 자료에 나온 서울 지하철 노동자 근무시간

 

지하철 1~8호선 직원 1인당 수송 인원은 16만 명입니다. 그런데 9호선은 무려 26만 명입니다. 9호선 1킬로미터당 운영인력 25명은 서울교통공사 기준 인력의 40% 수준에 불과합니다.

9호선 25개 역 중 10개 역이 공익근무요원도 없이 상시 1인 근무 역사입니다. 나머지 역도 2명씩 배치됐지만, 휴가를 가면 증원 없이 혼자서 근무합니다.

1호선~4호선 노동자는 월평균 근무일이 17.3일이고 5호선~8호선은 16.3일입니다. 그러나 9호선 1단계 노동자들은 20.3일로 3~4일을 더 근무합니다. 운전 시간도 1호선~8호선은 4시간 30분이지만 9호선 1단계 기관사들은 5시간 34분으로 1시간 이상 더 운행합니다.

9호선 노동자들은 이대로 가면 열차와 승객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경고 파업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근시간인 오전 7시부터 2시간 동안은 100%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예견된 민자철 9호선의 비극’

 

▲지하철9호선은 구간별로 운영회사가 다르다. 개화~신논현역 1단계 구간은 서울9호선운영(주)회사가 위탁을 한 프랑스 회사 RDTA가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 9호선이 다른 지하철과 달리 인력도 부족하고 근무여건이 열악한 이유는 복잡한 구조 때문입니다. 지하철9호선과 관련한 회사만 3개입니다.

1단계(개화~신논현)는 ‘서울9호선운영(주)’가, 2단계(신논현~종합운동장)는 ‘서울시메트로9호선(주)’가 각각 맡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울9호선운영(주)의 모 회사인 프랑스계 기업 ‘RDTA(RATP Dev Transdev Asia)’가 있습니다.

지하철9호선 1단계 구간은 서울지하철 중 유일하게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노선입니다. 서울9호선운영(주)는 민간 자본인 프랑스계 회사 ‘RDTA’가 80%, 나머지 20%를 현대로템이 투자해 만든 회사입니다.

문제는 MB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고작 16.3%를 투자한 민간에게 무려 30년간 운영권을 넘겼다는 점입니다. 2012년 9호선 요금 인상 파동도 ‘서울지하철 9호선 민간투자사업 실시 협약’에 명시된 자율요금 징수의 권한을 민간업자에게 일임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자본이 합작해 만든 1단계 운영사인 서울9호선운영(주)는 자본금 8억을 출자해 지난 7년간 234억5천만원을 배당금으로 받아 갔습니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회사가 운영하다 보니, 시민들의 안전은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2039년이 돼야 지하철9호선을 운영할 수 있는 서울시’

 

▲ 2016년 19세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현장.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발생한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는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 9호선 요금인상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국내 최초로 1천억 원 규모의 채권형 ‘시민펀드’를 도입해 지하철 9호선 문제를 시민과 함께 풀어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파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하철9호선 1단계 구간을 서울시가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개선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시는 1단계 구간의 운영사인 9호선운영(주)의 노사협상에 직접 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9호선운영(주)의 운영권이 만료되는 2039년이 돼야 9호선 전 구간을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번 지하철9호선 파업을 단순히 불편하다고 끝내서는 안 됩니다. “고수익 구조 민자사업”이 얼마나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지 되짚어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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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갤럭시 특혜', 이재용 재판 요동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2/01 11:24
  • 수정일
    2017/12/01 11: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해설] S5 등 특혜 의혹이 항소심에 미칠 영향... '5분 독대' 거짓말 탄로 위기

17.12.01 09:13l최종 업데이트 17.12.01 09:13l

 

항소심 공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하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4차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항소심 공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하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1월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4차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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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기존에 '제3자 뇌물'로 봤던 이 부회장의 혐의를 '직접 뇌물'로 다르게 판단하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온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204억 원의 뇌물죄 유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특검의 승부수로 보인다. '박근혜-이재용 게이트' 2라운드의 시작인 셈이다. 

지난 16일 특검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 6차 공판에서 "기존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을 제3자 뇌물제공으로 기소했는데,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출연금을 대신 부담하거나 지원한 것으로 직접 뇌물 범죄 사실로 공소사실을 변경하겠다"라며 "제3자에게 뇌물을 준 것이 아닌 (박 전 대통령이 내야 할) 출연금을 대납하는 구조로 직접 뇌물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공소장을 변경한 이후 지난 29일 8차 공판에서 두 가지 새로운 조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하나는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 홍보 비서관의 검찰 진술 조서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3일 빠른 2014년 9월 12일 처음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이 전 부회장 측의 핵심 변론 요지를 뒤엎는 진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박 전 대통령이 갤럭시S 시리즈의 규제 관련한 보고를 수차례 직접 받았다는 정황 증거다. 청와대 참모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제출됐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위해 삼성전자 갤럭시S5의 규제를 풀어줬다면 뇌물에 대한 대가성 특혜로 볼 수 있다. 두 개 증거 모두 이 부회장의 '직접 뇌물'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만을 위한 특혜, 뇌물 대가였나

<오마이뉴스>가 지난달 30일 단독 보도한 특검의 수사 내용을 살펴보면, 박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는 2014년 2월 출시한 갤럭시S5를 비롯해 이후 갤럭시노트4, 갤럭시S6와 관련한 규제 완화 작업을 주도했다. S5의 경우 심박도 측정 센서가 탑재됐고, 노트4와 S6에는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 센서가 탑재됐다. 모두 기존에는 의료기기로 분류됐던 것들이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삼성 갤럭시 '심박도 어플'도 직접 챙겼다)
 

 삼성 갤럭시S5(위)와 기어핏 뒷면에 설치된 심박계 센서.
▲  삼성 갤럭시S5(위)와 기어핏 뒷면에 설치된 심박계 센서.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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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로 분류될 경우 식약처의 별도 심사를 받아야 해 출시 시기가 늦어지는 상황이었다. 제품의 판매나 수출에도 제약을 받는다. 그러자 식약처는 각 제품에 출시에 맞춰 관련 규제를 풀었다. 당시에도 이 같은 조치들이 삼성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모바일과 바이오산업의 융합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꼭 삼성 제품 출시에 맞춰 규제가 풀리면서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검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이 부회장 뇌물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대가성 특혜로 보고 있다. 당시 이 부회장과 삼성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단순한 규제 완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 휴대폰의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었고, 중국을 비롯한 경쟁업체는 성장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의료기기와 접목한 스마트폰은 삼성이 내놓은 회심의 카드였고, 이를 주도한 것이 이 부회장이다. 

이 같은 특검의 수사 내용을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할 경우 '박근혜-이재용'의 커넥션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는 2014년 9월보다 약 6개월가량 앞당겨진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2014년 2월 S5 출시 → 3월 심박도 측정 의료기기 관련 식약처 규제 완화 → 5월 이건희 회장 와병 → 9월 박근혜·이재용 1차 독대 → 9월 노트4 출시 → 2015년 1월 식약처 산소포화도 측정 의료기기 관련 규제 완화'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S5와 노트4 등의 출시가 당시 삼성전자의 최대 현안이었고, 박 전 대통령은 딱 그 시기에 맞춰 관련 규제를 풀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당시의 휴대폰 판매 실적은 곧 이 부회장의 입지가 평가받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재판부가 이러한 정황을 인정하고 특검이 제출한 관련 자료를 증거로 채택한다면 이 부회장은 더욱 불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논리 무너뜨린 안봉근의 진술

특검이 제시한 또 다른 또 다른 증거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검은 지난 1심부터 2014년 9월 15일에 앞서 9월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한 차례 더 이뤄졌다고 주장해 왔다. 특검은 1심 재판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증인신문 하면서 관련 의혹을 집중 질문했지만, 독대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부회장 역시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9월 12일 독대 여부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봉근 전 비서관이 최근 청와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지난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독대했다고 진술했다. 안 전 비서관은 자신이 직접 이 부회장을 독대 장소로 안내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특검은 안 전 비서관의 검찰 진술조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부회장 측은 증거에 부동의 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증거에 부동의 하는 것으로 대응했을 뿐, 9월 12일 독대설에 대해서는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이 부회장 측에서 9월 12일 독대설을 완강하게 부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측은 '2014년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독대한 것이 처음이었고, 시간은 겨우 5분에 불과했기 때문에 부정한 청탁이 이뤄지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논리로 뇌물 의혹을 부정해왔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9월 12일 독대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특검 측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짧아 부정한 청탁을 할 수 없었다'는 이 부회장 측의 주장이 사실상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9월 12일에 부정한 청탁이 오갔고, 3일 뒤 만남에서 이를 확인하는 수준에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이 현재 특검 측의 판단이다. 

특검은 이와 관련해 안봉근 전 비서관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여 이달 18일 공판에서 증인신문이 이뤄질 예정이다. 특검은 또 조만간 S5 특혜와 관련한 서증조사(검찰이 제출해 증거로 채택된 자료들을 설명하는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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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칼럼] 아직도 양심수가 감옥에 있어야하나

양심수의 존재는 정권의 민주성을 가늠해

명숙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발행 2017-11-30 18:30:45
수정 2017-12-01 00: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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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가 629 선언으로 다 풀어줬어. 재판이 안 끝나도 풀어주고 기소 중인 사람도 다 나왔지.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새 정부로 바뀌었다는데 양심수가 아직도 감옥에 있을 줄 몰랐어.”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정순녀 님이 말했다. 80년대 그녀의 딸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후 민가협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딸은 풀려났다고 했다. 군부정권조차 대대적인 양심수 사면을 했는데 어찌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이럴 수 있냐고 했다. 말을 들을수록 씁쓸했다.

1987년 7월 9일 사면조치된 시국사범은 김대중, 백기완, 문익환 등 2천명이 넘고 1988년 12월 21일 사면자는 김남주, 문부식 등 천명이 넘는다. 김영삼 정부도 많은 양심수를 석방하였다. 독재정권이나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민주적인 외양을 갖추고자 특별사면을 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중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를 수렴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속이구선언’이라 일컫는 629선언에서도 “모든 시국관련 사범들도 석방되어야”한다며 양심수석방을 언급했던 것이다. 이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 양심수의 존재가 정권의 민주성을 가늠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지난 2014년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에서 어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양심수 석방과 인권, 민주주의 증진을 촉구하고 있다. 목요집회는 지난 1993년 9월23일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4년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에서 어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양심수 석방과 인권, 민주주의 증진을 촉구하고 있다. 목요집회는 지난 1993년 9월23일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됐다ⓒ김철수 기자

집회시위의 자유와 민주주의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특사)이 성탄절을 앞두고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특사 대상자는 ‘정치인 사면·복권, 법무부가 특정한 집회 참가자 등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자, 생계형 범죄자’라는 보도가 나온다. 특히 법무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 반대집회,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 용산 화재 참사 관련 시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 세월호 관련 집회 등 5개의 집회 참가자에 대해 특사 검토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검토 중인 시국사범이 대부분 집회 참가자라는 점은 이전 정부가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했는지를 보여준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는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정도와 맞닿아 있다. 특히 돈과 권력이 없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요구를 알리는 수단이 집회이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해 정책의 부당함을 알리고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힘 있는 사람이나 다수자-기득권 세력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억압되기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도 명시된 기본권이다. 집회시위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모이고 행동할 수 있는 기본 인권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대법원 판례들은 집시법이라는 현행법을 위반했더라도 ‘평화로운 집회 시위 그 자체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가 아니라면 불법이라 하더라도 보장해야 한다고 판례들은 말한다. 그런 점에서 5개 집회 참가자들을 구속 또는 기소한 것은 애초부터 반인권적인 조치였다. 이제라도 사면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왜 5개 집회에 한정하는지 묻게 된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노동자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안은 5개 집회에 한정할 수 없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시켰던 민중총궐기 집회가 대표적이다. 민중총궐기는 노동개악에 국정화 조치까지, 박근혜 정부의 인권후퇴적 정책에 대해 11대 요구안으로 모인 대규모 집회였다. 당시 민중총궐기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경찰의 탄압은 심했다. 집회와 행진을 불허하고 도심을 차벽으로 막은 상태였다. 그에 대항하기 위한 행동들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이 맞는지 국제사회는 물었다.

2016년 1월 한국을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합법여부가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방한을 마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실제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 인기가 높은 권리는 아닐 수도”있으나 “이러한 권리는 소수 그룹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은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좌)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좌)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민중의소리

한상균과 통합진보당 관련자까지 석방돼야

그런데 어떤 집회는 사면대상이 되고 어떤 집회 참가자는 안 되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보장돼야 하는 것이 모여서 행동할 권리다. 집회시위만이 아니라 결사의 자유를 억눌러왔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기간 구속된 사람들의 권리를 회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반인권적 정권이 자신의 정책과 다른 입장을 갖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잡아간 사람들은 다 사면 대상이 돼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결사의 자유를 막은 대표적 사례가 노조탄압이고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이들이 그대로 감옥에 갇혀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그만큼 답보상태라는 뜻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점과 기조이다. 과거 정부에서 탄압받았던 양심수를 다 석방한다는 기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결국 새 정부도 ‘온갖 이유로 기본적 인권을 제한했던 과거의 기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번 성탄절에 양심수가 모두 석방되는지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현 정부가 얼마나 민주적인가, 얼마나 인권을 보장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 잣대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명박 박근혜 때보다 낫다는 평가에 머물러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새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유지하려면 좀 더 분명하게 인권 보장을 향한 기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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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결재한 ‘사이버사 2012년 총선 대응 지침’ 나왔다

김관진 결재한 ‘사이버사 2012년 총선 대응 지침’ 나왔다

등록 :2017-11-30 11:23수정 :2017-11-30 11:59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TF’ 3차 조사결과 발표
‘북한·종북 세력 선거 개입 대응 심리전 작전 지침’ 추가 확인
사이버사, 인터넷 매체 <포인트뉴스> 3억원 들여 운영
기무사 부대원 470여명이 가족, 친족 명의로 댓글 활동
군 사이버사 여론 조작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군 사이버사 여론 조작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장관 시절 결재한 사이버사의 댓글 관련 문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국방부의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티에프’(TF)는 30일 이런 내용 등이 담긴 ‘3차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김 전 장관은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한·종북세력의 선거 개입에 대응하기 위한 심리전 작전지침’에 결재했다. 김 전 장관이 2012년 3월9일를 결재한 이 작전지침 문건은 ‘2012년 3월12일부터 4월11일까지 사이버사령부(530단) 전 인원이 투입되는 총력대응 작전을 한다’는 내용이다. 조사 티에프는 당시 사이버사가 4월 총선에 총력 대응이 필요했던 경위에 대해 추가 조사 중이다.

 

김 전 장관은 앞서 2012년 ‘사이버 심리전 작전 지침’에 직접 서명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조사 티에프는 9월29일 국방부는 김관진 당시 장관이 사이버사의 댓글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과거 수사기록에서 530단 상황 일지와 대응 결과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서들이 편철돼 있음을 발견했고 당시 수사 과정에서도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다수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공개된 ‘2012년 사이버 심리전 작전 지침’ 문서에 대해 “김관진 전 장관이 서명한 문서”로 확인하고 “이외에 김관진 전 장관이 결재한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의 비밀문서들을 확보해 현재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티에프는 또 사이버사령부가 인터넷 매체 ‘포인트 뉴스’를 직접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 티에프는 “현재 서버에 7500건 뉴스가 남아있는데, 국방 관련 기사는 대략 1000여건 정도 되고, 이 중 ‘종북주의자 감별법’, ‘대선은 종북좌파에 맡기면 안 된다’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티에프의 추가 확인 결과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는데 총 3억4200여만원의 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령부의 댓글 의혹도 추가 확인됐다. 조사결과 현재까지 부대원 470여명이 가족, 친족 등의 명의로 계정을 만들어 댓글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청와대 지시로 4대강 사업과 동남권 신공항 건설 등에 대한 댓글 대응을 했으며, ‘4·27 재보궐 선거 겨냥한 좌파 활동 양상 분석’, ‘사이버상 좌파활동 대응’ ‘SNS의 총선 영향력 평가’ 등 정치관여가 의심되는 SNS 동향분석 보고서 등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TF’ 3차 조사결과 발표
‘북한·종북 세력 선거 개입 대응 심리전 작전 지침’ 추가 확인
사이버사, 인터넷 매체 <포인트뉴스> 3억원 들여 운영
기무사 부대원 470여명이 가족, 친족 명의로 댓글 활동
군 사이버사 여론 조작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군 사이버사 여론 조작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장관 시절 결재한 사이버사의 댓글 관련 문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국방부의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티에프’(TF)는 30일 이런 내용 등이 담긴 ‘3차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김 전 장관은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한·종북세력의 선거 개입에 대응하기 위한 심리전 작전지침’에 결재했다. 김 전 장관이 2012년 3월9일를 결재한 이 작전지침 문건은 ‘2012년 3월12일부터 4월11일까지 사이버사령부(530단) 전 인원이 투입되는 총력대응 작전을 한다’는 내용이다. 조사 티에프는 당시 사이버사가 4월 총선에 총력 대응이 필요했던 경위에 대해 추가 조사 중이다.

 

김 전 장관은 앞서 2012년 ‘사이버 심리전 작전 지침’에 직접 서명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조사 티에프는 9월29일 국방부는 김관진 당시 장관이 사이버사의 댓글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과거 수사기록에서 530단 상황 일지와 대응 결과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서들이 편철돼 있음을 발견했고 당시 수사 과정에서도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다수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공개된 ‘2012년 사이버 심리전 작전 지침’ 문서에 대해 “김관진 전 장관이 서명한 문서”로 확인하고 “이외에 김관진 전 장관이 결재한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의 비밀문서들을 확보해 현재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티에프는 또 사이버사령부가 인터넷 매체 ‘포인트 뉴스’를 직접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 티에프는 “현재 서버에 7500건 뉴스가 남아있는데, 국방 관련 기사는 대략 1000여건 정도 되고, 이 중 ‘종북주의자 감별법’, ‘대선은 종북좌파에 맡기면 안 된다’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티에프의 추가 확인 결과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는데 총 3억4200여만원의 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령부의 댓글 의혹도 추가 확인됐다. 조사결과 현재까지 부대원 470여명이 가족, 친족 등의 명의로 계정을 만들어 댓글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청와대 지시로 4대강 사업과 동남권 신공항 건설 등에 대한 댓글 대응을 했으며, ‘4·27 재보궐 선거 겨냥한 좌파 활동 양상 분석’, ‘사이버상 좌파활동 대응’ ‘SNS의 총선 영향력 평가’ 등 정치관여가 의심되는 SNS 동향분석 보고서 등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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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사대주의와 패배주의 역사관의 청산을 위하여, 첫 번째 글
  •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
  • 승인 2017.11.30 11:24
  • 댓글 0
▲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에게 빼앗겼다가 136년 만에 장기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조선 장군기인 수자기(帥字旗). [사진 뉴시스]

1. 상선을 위장한 《제너럴셔먼》호의 정체

《제너럴셔먼》호는 1866년, 대동강에 들어와 교역을 하자며 행태를 부리다가 평양 관민(官民)들의 격분을 사서 소침된 미국 선박이다. 5년이 지난 1871년 미국은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신미양요를 일으킨다. 나는 이전까지는 서양의 개항 요구에 주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답답해하면서 “상선에 불을 질러 미국의 침략 명분만 준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한반도 개입과 지배야욕이 갈수록 노골화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시작이었던 《셔먼》호 사건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논점은 《셔먼》호가 과연 상선이었는지 여부이다. 이제까지 나는 《셔먼》호가 미국 정찰선 역할을 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선이라고 보는 축이었다. 이 무렵 미국이 굳이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까지 갖지 못한 단계라는 막연한 추측이었다. 그러나 《셔먼》호의 정체를 알려면 당시 미국의 식민지 정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본격적인 식민침탈 단계였다면, 《셔먼》호는 미국의 조선 침략 척후대였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보통 무역선이었을 것 같다.

과연 당시의 미국은 미국이 유럽의 열강들처럼 본격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설 단계가 아니었을까? 1854년 폐리 제독이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켰지만, 1861년∼1865년 남북전쟁으로 아시아 침략은 보류되고 국내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으니 식민지 쟁탈을 본격화할 여력이 없었다. 덕분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 성공시킬 시간을 벌기도 했다. 그렇지만, 1850년대부터 미국이 식민쟁탈전에 나설 단계가 아니었다는 생각은 미국의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 대한 완전한 무지였다. 미국은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급속히 유럽 수준의 산업자본주의 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미국 남부는 아직 아프리카 노예를 기반으로 한 면화 생산 등 농업을 위주로 한 경제였지만 북부는 이미 1830∼40년대 유럽 수준의 산업자본주의로의 발전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그에 따라 식민지를 획득하기 위한 침략 정책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이다. 1848년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를 빼앗은 결과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태평양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즉 청나라를 둘러싼 유럽 열강들과의 쟁탈전에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850년대 초 상해에 입항한 외국 선박 중 미국 선박이 47%로서 영국을 압도하게 되었다. 미국은 태평양 횡단 항로를 만들기 위해 조선과 일본을 주요 침략대상으로 삼고 부산을 <샌프란시스코–상해>간 항로를 위한 중간 기착지로 만들려고 하였다.(《가쓰가이슈 전집》Ⅰ 도쿄) 조선연해에 대한 미국 선박의 침입도 빈번해졌는데, 1853년 1월 경상도 동래부 용당포 미국 포경선 '싸우스어메리카'호 침입 사건. 1855년 7월 미국 포경선 '투 브라더즈'호 선원, 강원도 통천 난파 사건 등이 그 예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은 영국 등에 비해 늦어진 식민 쟁탈전에 적극 끼어들기 위하여 다른 열강들이 손을 뻗치지 못한 중국 동북부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조선은 중국 동북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1860년 중.러 베이징 조약 체결로 우수리 지역이 러시아로 편입됨에 따라 두만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인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은 단순한 기항지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미국의 대아시아 침략전쟁을 보장할 수 있는 침략 거점으로서 의미로 격상된다.

미 국무장관 씨워드는 동방과의 무역은 ‘우리를 아시아 대륙에 접근시켰으며 새로운 사태는 우리들 지위에 비상한 변화를 일으켰다. 아시아 대륙에 식민지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조우하였다.’라고 하였다.(《태평양에서의 미국》 1932년) 러시아 주재 미국 공사 크레이는 미국의 아시아 침략에서 동아시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강조하면서 이 지역에서 미국의 기지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아시아 침략에선 《육군과 해군이 튼튼히 의거할 수 있는 기지》를 창설하여야 하며 《지브로울터와 같은 의의를 가지고 있는 조선 남해의 거문도를 우선 점령하여야 한다.》고 하였다.(《짜르 궁전에서의 캔터기인》 1935년)

1866년부터 미 국회에서 조선에 대한 무장간섭을 조직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1866년 2월 《샤를》호 부산 앞바다 침입사건, 5월 《서프라이즈》호 평안도 선천포 표류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미국은 프랑스가 조선의 카톨릭 탄압을 핑계로 조선침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프랑스에 조선침략 포기를 종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급해진 미국은 프랑스보다 한발 앞서 부랴부랴 남북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군함 《셔먼》호를 조선에 파견하게 된다. 이처럼 《셔먼》호의 조선침입은 우발적으로 감행된 침입사건이 아니라 183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실천 단계에 들어선 미국 자본주의의 조선침략정책의 필연적 산물이다.

2) 《제너럴셔먼》호가 국적불명의 상선으로 위장한 이유

그런데 《셔먼》호는 왜 국기도 게양하지 않은 채 상선으로 위장했을까? 그러다보니 국적불명의 해적선이 평가도 있다. 신미양요 때 미국이 《셔먼》호에 대한 진상조사를 명분으로 침략해왔지만, 사실은 미국 배도 아닌데 침략명분으로 활용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분명히 《셔먼》호는 조선을 개방시키기 위한 미국의 침략정책을 관철, 집행하기 위한 척후대였다. 당시 조선이 서양과의 교역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상선으로 들어와서는 말로는 개항압력을 가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유럽 열강이 군침 삼키며 조선을 노리고 있는데 버젓이 군함을 끌고 들어오게 될 경우, 뒷감당이 어려울 수 있었다. 그런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의 군함을 국적불명의 상선으로 위장하는 것이었다.

《셔먼》호는 침략 목적을 위장하기위하여 1866년 6월 천진에서 영국 메도우즈 상사와 용선계약을 맺고 유리그릇, 면포, 시계 등 서양 잡화들을 구입하였다. 6월 18일 ‘선원들이 건강회복을 위하여 경치 좋은 조선 산천 구경을 떠난다.’는 소문을 내고 천진을 떠나 6월 28일 조선 침략의 길에 올랐다. 선상에는 2문의 포가 보란 듯이 걸려 있었고, 또 2문의 포가 감추어져 있었다. 또 많은 장총들과 단총, 환도, 포탄과 탄약들이 가득했다. 자연히 조선으로 떠나는 첫날부터 의심을 받을 만했다. 프레스톤 일당도 조선 지방관들에게 ‘우리 배는 군함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자인하였다.《일성록》

협상 차 승선했던 조선 관리들의 기록을 보면 《셔먼》호에는 프레스톤, 토마스, 조반량 같은 미국인 영국인 덴마크인 중국인 등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여러 나라 해적무리들의 집합으로 보면 안된다. 선주로 알려진 프레스톤은 미국의 1등 무관이었다. 미군 해군 소속 함선은 반드시 미 국무성의 승인 하에서만 해외로 파견될 수 있었다. 황주 목사 정대식이 ‘당신들의 배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온 여부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하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줄 수 없는데, 바로 나라 일과 관계되기 때문’이라 말했다고 기록하였다.

3. <은인의 나라>가 아닌 침략자 미국의 실체를 분명히 보아야한다.

오랫동안, 이 무렵의 미국은 식민지 침탈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를 지배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은인의 나라 美國’라는 이미지가 우리국민들에게 잠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조선말기 에서부터 나타난다. 청나라 관리 황준헌이 써서,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홍집에게 주었다는 《조선책략》. 이 책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친중국(親中國)ㆍ결일본(結日本)ㆍ연미국(聯美國)하라’는 것인데 미국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미국은 정의의 나라니까 조선을 이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며 애초에 영국의 폭정에 반발하여 독립 및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조선을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책은 조선 개화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고종과 지배계층이 미국에 대해 일방적인 호감을 갖는 근거가 되었다. 이웃 열강들이 모두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모략을 다 부리는데, 영토적 야심도 없이 친절을 베푸는 나라! 처음부터 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졌다고 하니 얼마나 이상적인 나라인가? 미국에 대한 환상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을 기념하여 1883년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를 통해 굳건해 진다. 고종은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개화파 인사들로 미국을 돌아보게 했다. 또 고종은 1885년 다른 나라 경쟁자를 물리치고 미국 공사관 의사였던 알렌에게 제중원(세브란스 병원 전신)을 맡기게 된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을까? 미국은 1850년대부터 우리를 대 중국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려 했는데, 우리는 ‘친근하게 우리를 보살펴주는 나라’의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와 식민지 침탈을 대가로 만들어진 자본주의 화려한 외양>에 속았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환상은 커졌으며 급기야 1945년 9월 미군이 한반도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인천항에 나갔던 환영 인파 중 일부가 미군의 총에 맞아 2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점령군을 해방군으로 착각한 탓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시각은 여전히 ‘은인의 나라’였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최고의 강자. 미국에게 기대어 나라를 팔아먹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만드는 치욕을 범했다.

《셔먼》호 사건에 대한 평가는 미국 사대주의적 역사관의 종말을 찍는 첫 작업이 되어야 한다. 다음번 칼럼에서 《셔먼》호의 만행과 평양민중들의 투쟁, 그리고 역사적 의의에 대해 다룰 생각이다. 《셔먼》호는 미국 조선침략의 첫 신호탄이었으며, 조선 민중들에 의해 전원 몰살되는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었다. 이 사건이 미국의 조선침략의 빌미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첫 번째 침략을 물리치고, 이후로도 미국의 대조선 침략을 어렵게 만드는 첫 번째 투쟁이었다. 이것이 《셔먼》호의 진실이다!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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