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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름매미가 운다, 가을이 온다

윤순영 2019. 08. 30
조회수 137 추천수 0
 
기후변화, 빛 공해, 길고양이…매미는 올여름 더위도 이겨냈다
 
c1.jpg» 참매미는 맴맴∼ 하는 울음소리와 나무의 비교적 낮은 곳에 앉아 우리에게 친숙하다. 기후가 더워지면서 말매미에 밀리고 있다.
 
이른 아침은 제법 서늘하다. 새벽부터 방충망에 붙어 잠을 깨우던 참매미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해가 떠올라야 참매미가 합창하고, 한낮엔 말매미의 파도 치기 울음소리가 여전히 요란하다. 길바닥에 죽어 떨어진 매미와 쓰름매미의 울음에서 여름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해 만큼은 아니었지만 올해 여름도 무척 더웠다. 매미는 더워진 여름을 가장 반기는 동물 가운데 하나다.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밤낮으로 울어댄다. 
 
전에는 매미가 밤에 울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데다, 길가와 공원의 가로등, 광고 간판, 아파트 불빛 등 빛 공해 때문에 매미가 잠을 잊었는지 모른다.
 
c2.jpg» 공원의 밤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
 
c3.jpg» 녹색 계열의 참매미.
 
c4.jpg» 매미채를 들고 가는 아이.
 
어릴 적 기억에 매미는 밤에 울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수도권 지역이 밝아지며 밤에 매미가 울어대는 횟수가 늘어났다. 개발과 함께 빛 공해와 도시 열섬 현상이 심해진 탓이다.
 
c5.jpg» 참매미 수컷. 배 위쪽에 울음판이 크게 도드라져 보인다.
 
c6.jpg» 참매미 암컷. 배 위쪽에 울음판이 있지만 매우 작다.
 
변주를 포함한 울음소리가 독특한 애매미는 주로 낮에 울지만,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도 운다. 쓰름∼쓰름∼ 소리가 우렁찬 쓰름매미는 저녁 무렵 많이 울어댄다. 수컷 매미는 번식을 위하여 암컷을 불러들이기 위해 운다.
 
수컷은 배 아래 쪽 윗부분에 특수한 발성 기관이 있어 소리를 내는데, 매미 종류마다 발성 기관의 구조와 소리가 다르다. 암컷은 발성 기관이 없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매미는 등 쪽 좌우에 청각기관이 있어 소리가 들리면 진동으로 감지한다.
 
c7.jpg» 애벌레가 매미로 바뀌는 탈피는 매우 느리고 취약한 과정이다. 매미는 본능적으로 천적들의 눈을 피해 캄캄한 밤 탈피를 시작한다.
 
c8.jpg» 직박구리가 매미를 사냥했다. 새는 매미의 주요한 천적이다.
 
매미는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되는 한살이가 특이하다.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탈피하여 어른벌레가 되는 불완전 변태를 한다. 성충이 된 뒤에도 나무줄기에서 수액을 빨아먹는다. 무려 7년에 달하는 유충 때의 수명에 비해 성충의 수명은 매우 짧아 한 달 남짓 된다. 천적으로는 새 말고도 사마귀, 거미 말벌, 다람쥐 등이 있다.
 
c9.jpg» 매미의 탈피 과정을 다중 노출로 찍은 사진.
 
c10.jpg» 갓 탈피한 매미. 이제 몸이 마르기만 하면 된다.
 
c11.jpg» 고양이가 탈피를 마친 매미를 사냥하고 있다.
 
몇 년간 매미의 우화 장면을 관찰하고 촬영해 봤지만, 빛이 밝은 곳에서는 허물을 벗지 않았다. 매미는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몸을 어두운 곳에 숨겨 은밀히 움직이며 허물을 벗는다. 빛은 매미의 탈피 과정도 방해한다. 빛은 무방비 상태의 매미에게 치명적이다.
 
애벌레는 만일 위협을 느끼면 움직임을 멈추고 기다리며 탈피시간을 늦춘다. 새가 잠든 밤에는 고양이와 족제비가 천적이다. 
 
c12.jpg» 다리를 뻗고 몸을 곧추세우면 날아갈 낌새다.
 
c13.jpg» 참매미는 항상 몸을 뒤로 내던져 뚝 떨어진 뒤 날개를 쳐 날아간다. 매미 아래에서 위로 매미채를 휘둘러야 잘 잡히는 이유다.
 
c14.jpg» 이어 자세를 바로잡아 날아간다.
 
c15.jpg» 매미가 나는 것은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참매미는 7월~9월에 출현하는데, 한여름인 7월 하순~8월에 가장 개체수가 많다. 수컷 참매미는 '맴맴' 혹은 '밈밈' 소리를 연속적으로 낸 뒤 마지막에 '밈'하고 높게 한번 음을 내면서 몸 전체를 뒤로 빼고 일직선 자세를 취하고 꼬리를 아래로 꼿꼿이 뻗는다. 그러고 나서 다른 나무로 이동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매미 소리는 참매미의 울음소리다. 도시공원과 시골 구분 없이 매우 흔하게 서식한다. 계곡 주변의 숲에 가장 많다.
 
c16.jpg» 짝짓기하는 참매미.
 
말매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매미로, 몸길이는 44㎜,, 날개까지 길이는 65㎜가량이다. 몸은 광택이 나는 검은색에 새로 나온 개체는 금빛 가루가 덮여 있으며, 배와 다리에는 주황색 무늬가 있다. 낮은 지대의 벌판에 있는 플라타너스, 버드나무 등에서 살며 성충은 6~10월에 활동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며, 중국에도 분포한다.
 
c17.jpg» 말매미
 
가로수에서 무리를 지어 울며, 밤에도 불빛이 있으면 합창한다. 울음소리는 쇠를 절단기에 넣고 자르듯 ‘짜르르르∼’ 하고 매우 시끄럽다. 주로 높은 가지에 앉아 한 마리가 울면 여러 마리가 경쟁적으로 동시에 소리를 내고 주변으로 몰려든다. 말매미는 주로 7월 중순~8월 하순에 주로 울어댄다.
 
c18.jpg» 쓰름매미
 
쓰름매미의 몸 빛깔은 짙은 회색이며 녹색 무늬가 나 있다. 몸에는 흰 가루가 덮여 있으며 배 끝에 흰색 무늬가 있다. 암컷은 긴 산란관이 있다. '쓰름∼쓰름' 하는 소리로 울며, 한여름에는 높은 가지에 앉아 운다. 주로 7월 하순~8월 하순께 나타난다. 보통 쓰르라미라고도 부른다. 
 
쓰름매미가 울면 찬바람이 난다고 하였다. 지금도 쓰름매미가 울면 찬바람이 난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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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빼고 한국 정부만 비판하는 미국, 무책임하다”

등록 :2019-08-31 09:13수정 :2019-08-3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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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3년전 우리 국민 강한 반대에도
미국 압력으로 지소미아 체결
작동 중단 원인 제공한 일본엔
미국, 비겁하게 책임 묻지 않아”

“최종 종료까진 3개월 여유
그동안 양국 협상으로 풀어야
재단 설립, 우리 기업 출연 등
우리 쪽 징용 해법 열려있어” 
“우리 정부가 내민 손을 일본이 무시하니까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양국이 협상으로 풀어야 할 때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리 정부가 내민 손을 일본이 무시하니까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양국이 협상으로 풀어야 할 때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한-일 관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경제 갈등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일본 조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한국 조처) 등 안보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은 2명의 학자 인터뷰(남기정, 양기호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강창일 민주당 의원에게 한-일 관계 해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강창일(67·제주갑) 의원은 국회에서 몇 안 되는 일본통이다. 일본 우익의 뿌리에 대한 연구로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17년부터 한일의원연맹 한국 쪽 회장을 맡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정부 쪽과 함께 오랫동안 고민해왔으며 일본 쪽과도 대화해왔다.

 

강 의원은 한-일 간 외교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봤다.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가 관건인데, 일본 경제나 정치적 역학관계 등으로 볼 때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지금 미국이 나 몰라라 할 때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일본 고도의 정치전략 사용 중”

 

―한-일 관계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에 이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배제 실행,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종료 결정 등 경제와 안보 분야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그렇다. 지금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그동안 한-일 간에 독도나 역사 교과서, 군위안부 문제 등등으로 조용한 적은 한번도 없긴 했지만, 그때는 한 테마로 싸움하고 옥신각신했다. 그래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투트랙이니 스리트랙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사 문제에서 시작해 경제 영역과 안보 문제 등 모든 분야로 전선이 확대됐다. 국교 단절 이외에는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일부터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예정대로 실행했다.

 

“수순대로 움직이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해놓고, 당분간은 지금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시행 자체가 가장 센 것이니까 더 구체적으로 자극하는 조처를 취해서 일본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는 빌미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일본이 고도의 정치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이 나온 뒤부터 일본 기업의 자산을 강제 매각할 때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부터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정부는 나름대로 해법을 내놓기 위해 애썼고, 저 역시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사들과 만나서 (강제 매각을) 미루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매각 결정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수출 규제 조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 이것은 자신들이 한 말과도 맞지 않는 그야말로 기습 도발이다. 이는 단순히 일본 국내 정치용이 아니라 거대한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심하게 말하면,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당화, 합리화하면서 군국주의적인 일본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것 아닌가 싶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강 의원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아시아주의-우익 낭인의 행동과 사상을 중심으로’, 2003년)에서 ‘일본의 조선 강점은 군부와 함께 일본 낭인집단이 앞장을 섰으며, 이 민간단체들이 후일 일본 우익세력의 뿌리가 됐다’는 점을 사료를 통해 증명한 바 있다.

 

―일본이 그렇게 큰 그림에 따라 움직인다면 우리도 장단기 목표를 정해서 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쪽 대응은 어떤가?

 

“일본의 속내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한데 우리의 대외관계에서 큰 전략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하는 좌표가 잘 안 보인다. 물론 일단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것 아니냐. 아베 총리가 일체 응하지 않으니까 지소미아 종료 등의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쪽에서는 지소미아를 연장할 것 같은 분위기가 다소 있었다. 8·15 대통령 경축사에서도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나.

 

“그랬다. 청와대 등 정부 분위기도 당일 낮까지 그런 게 있었다. 아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토론 과정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것 같긴 한데 지소미아 종료는 다른 나라들엔 우리가 새로운 문제를 꺼내든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저도 지소미아 결정 전에는 일본이 지소미아와 관련해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한국을 안보 비우호국 내지는 적대국 취급을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안보의 최고 가치인 정보 특히 군사정보를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자기모순을 일본이 해소해줘야만 한국도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런데 일본은 일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런 일본의 태도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영향을 준 건가?

 

“그동안 우리는 나름 성의를 다했다.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 등의 정보를 다 제공해주고, 8·15 경축사도 일본에 사전에 알려줬다. 문 대통령께서 그렇게 엄청 자제하면서 손을 내밀었지 않았나. 8·15 경축사에 대해 일본에서는 우리가 마치 형님이나 대인처럼 군다면서 기분 나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우리의 본심은 아베 정권과 손잡고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 주변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고, 우리의 호의를 무시했다. 우리가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최종 종료까지는 3개월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일본통인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나 몰라라 방관자로 있을 때가 아니다.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일본통인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나 몰라라 방관자로 있을 때가 아니다.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소미아 종료는 대일 협상카드”

 

―지소미아 종료가 협상카드의 하나라는 건가?

 

“저는 그렇게 본다. 일본통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 뒤에 한일의원연맹 일본 쪽 누카가 후쿠시로 회장한테 전화를 해서 이 조처에 대해 설명하는 등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나. 일본이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하겠다는 이 총리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제안이 아니겠느냐. 거기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이 이 총리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썼던데 그것은 아니다. 일본은 한국이 먼저 안을 내놔 봐라, 그리고 대화하자는 입장이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 27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지소미아 종료까지 남은 3개월 동안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고 우리는 지소미아의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두 사안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이 “강한 유감과 실망”이라는 등 우리 정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아주 무책임하다. 지소미아를 누가 만들었나. 미국이 앞장서서 만들었다. 3년 전 당시 야당인 우리가 매국적이고 망국적인 협정이라면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낼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도 미국이 정권에 압력을 넣어서 시작했던 것 아니냐. 그래놓고, 그것이 작동되지 못하도록 한 일본에 대해서는 비겁하게 책임을 묻지 않고 한국 정부만 비난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공조체제를 중시한다면 미국이 지금 나 몰라라 할 때가 아니다. 지금 동북아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가면 가장 좋은 게 누구냐.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아니냐.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미국은 빨리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한 지소미아는 애초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부터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6월에는 최종 서명 직전까지 갔으나,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에 대한 국내 여론의 강한 반발에 밀려 막판에 취소됐다. 국정농단과 관련한 촛불집회가 일어나던 2016년 10월 말 박근혜 정부는 느닷없이 지소미아 논의 재개를 선언한 뒤 한달도 채 안 된 11월23일 일본과 지소미아에 서명했다. 당시에도 여론은 60%가 반대(리얼미터 조사)였다. ―일본이 외교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일본이 외교 협상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상태가 계속되면 한국도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일본 경제도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 이대로는 상처만 남는 치킨게임이 되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결국 협상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더구나 앞으로 도쿄 올림픽과 북핵 문제 등 한국과 일본이 협력할 부분이 많이 있다.”

 

―대법원 판결 이행을 위해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하게 되면 일본이 다시 추가 규제에 나서지 않을까. 그러면 더 나빠질 수 있는데.

 

“그런 일이 있더라도 큰 틀은 아니고 자그마한 자극을 더 주는 정도일 거다. 그렇게 되기 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배상·보상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에 대해 우리 정부는 오픈돼 있다. 그런 것을 협상테이블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지난 5월에 낸 ‘1+1 해법’(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출연)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얘기했다. 일본이 딱 잘라서 이것이라고 하면 우리는 해결책을 줄 수가 있는데 지금은 일본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다.”

 

―이낙연 총리는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식(10월22일)을 계기로 삼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일왕 즉위식에 대통령은 못 가더라도 총리는 가서 축하를 해야 한다.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 8·15 때도 과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 분이다. 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니까 축하해야 한다. 대화는 그 전에라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어느 쪽이 먼저 하면 다른 쪽이 뒤따라 조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양쪽이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4일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를 위해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비롯한 일본 대표단과 강창일(왼쪽 둘째) 한국 쪽 회장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과 만나 얘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4일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를 위해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비롯한 일본 대표단과 강창일(왼쪽 둘째) 한국 쪽 회장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과 만나 얘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징용 피해 배·보상에 우리 정부도 나서야”

 

강 의원은 지난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청와대 및 정부 쪽 고위인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왔다. 그가 줄곧 제시한 안은 일본 기업이 책임질 부분과 우리 정부가 해결할 부분을 나누는 것이다. 즉 명백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은 판결대로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되, 현실적으로 재판을 걸기 힘든 피해자들은 국민 보호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서 해결하자는 거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서 일본 쪽 부담이 적을 것으로 본다. 그마저 일본이 반발하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같이 부담하게 하는 방안(1+1 해법)도 가능하다는 견해다. 소송이 불가능한 대다수의 피해자는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득을 본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위로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강 의원은 “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든지 현실적인 해법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일본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 답답하다. 일본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도 사태 해결을 위해 냉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07886.html?_fr=mt1#csidx852f9ffebbffa9aa58b6fa99ab3f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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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미국의 오만한 내정간섭을 이번을 계기로 과감하게 물리쳐야한다

미국에 노라고 하는 용기는 국민들과 역사로부터 평가받게 될 것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8/30 [09:14
 
 
 
미국이 우리민족의 기를 꺽기위해 지금 미친듯이 덤벼들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단행한 용기있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식조치에 대해 미국은 또 다시 “강한 우려와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는 둥 계속해서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행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관계자는 한국외교부에서 미대사를 불러 항의를 전달한 다음날에도 또다시 “깊은 실망“이니 "우려"니 뭐니하면서 내정간섭을 일삼았다. 

이와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대한민국의 이익앞에 그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런가운데 이번에는 국방부장관이라는 인물이 또 나서서 협정파기에 실망한다느니 뭐니하며 공개적으로 지껄였다. 이는 한국정부가 주한미대사를 불러 불만표시 자제를 요구한지 불과 하룻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주권국가에 대한 모독이자 남녘땅을 자신들의 점령지로 보는 아주 오만한 자세에서 나오는 버릇이 아닐수 없다. 이것은 또한 한국정부가 독자적인 자기목소리를 내는것에 자신감을 얻을것을 두려워한 미국측이 위기감에 빠져 미친듯이 초장길들이기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2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정부의 조치에 대해서 또 다시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 도쿄와 서울에서 회담을 하면서 그들을 격려했고 갈등 해결을 촉구했다”며 노골적인 내정간섭 자세를 숨기지 않았다. 
 
함께 기자회견을 한 조셉 던포드 미 합참의장도 “한일 양국 간 정보공유같이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고 거들며 나섰다.

이들은 아니나다를까 그 '이유'를 북의 동족을 내세우고 있다. 에스프는 이 자리에서 "조선과 중국 등 직면한 공통의 위협이 있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일할 때 더 강해질수 있다”며 또다시 우리민족의 분열과 대결을 사주하는 망발을 서슴없이 늘어 놓았다. 
 
필요할때마다 써 먹는 전가의 보도인 바로 그 누구의 위협이니, 그 누구로부터의 보호니 하는 새빨간 거짓당근을 또 다시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마치 한국정부의 항의를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민족의 자주적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닐수 없다. 이것은 한국정부의 결정이라해도 우방이라는 미명하에 자기마음대로 하겠다는 아주 거만한 자세가 없다면 나올수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언제 한번 미국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한 적이 있던가. 미국이 세르비아나 저 멀리 다른 나라와의 군사정보교환 협정을 맞는데 한국정부 관리들이 차례로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미국은 과연 수용할 것인가. 이것은 심각한 자주권에 대한 침해로 되는 것이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지금까지 자기들의 군사기지, 식민통치 대상지로 이 땅을 얕잡아 보고있다한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남의 상에 감놔라 배놔라 할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같은 동족을 거짓으로 색칠하고 악마화하면서 그 무슨 위협 운운하며 싸움질을 붙이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웃 부부가 싸움을 해도 말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이 양키해적 후예들은 우리민족에게 왜이리도 못할짓을 행한다는 말인가.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대한민국의 이익앞에 그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는 입장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그 용기는 국민들과 역사로부터 평가받게 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 어떠한 압력으로 들어오더라도 지금처럼 단호하게 맞받아쳐야 한다. 이번처럼 저들의 파렴치한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한번 밀리면 끝이다.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되며 들을 가치도 없는 망발들은 철저하게 무시해야한다. 

미국은 영원히 우리민족의 통일을 원치 않으며, 일본과의 자신들을 위한 희생양으로 써먹기만을 원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이상 저들의 말장난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박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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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연루자들의 공통점은..." 이탄희의 확신

 

소중한(extremes88)[서초산성 ⑦] 에필로그 - 판사 이탄희, 변호사 이탄희
등록 2019.08.30 07:48 수정 2019.08.30 08:20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보도를 통해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 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 ⓒ 남소연


취재차 독일로 떠나기 전, 많은 이들로부터 "그 사람들에게 사법농단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섞인 조언을 많이 들었다. "외국인들은 전관예우란 단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각자의 경험담과 함께.
 
실제로 그랬다. '사법농단'이란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재판거래'나 '법관 블랙리스트'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애를 먹었다.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일의 법조인들을 만나, 주어진 인터뷰 시간 중 절반을 사안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써야 했다.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들의 얼굴이 비로소 어두워져야, '이제 조금 설명이 됐구나'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사법개혁의 힌트를 얻기 위해 독일에 다녀온 뒤인 지난 7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를 만났다. 그도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판사 시절 미국에 연수를 다녀왔던 그는 "사법선진국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확립된 근대 국가 대부분은 법원을 재판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우리처럼) 법원을 피라미드 구조, 위계조직으로 생각하는 곳은 거의 없다"라며 "보편적 시각에서 볼 때 사법농단이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잘못된 일인지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2017년 2월 법관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낸 뒤, 이 변호사는 많은 해외 법조인들과 그 내용을 공유했다고 한다. 그는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대법관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공관에 가서 만나고, 대법원장이 피고의 법률대리인을 집무실에서 세 번이나 만난 것 자체에 경악한다"라며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들(사법농단 연루자)이 재판을 한다는 것에 또 한 번 경악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조계에 일본에서 들여온 문화가 많다, 지난 70년 동안 변화가 적었기 때문에 다른 직역보다 더 심할 수 있다"라며 "법원을 하나의 위계조직으로 생각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 다른 나라는 다 안 그러는데 우리나라와 일본만 그런다면 일단 의심해보는 게 좋다"라고 쓴웃음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인터뷰 동안 "법조계에 일본과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면 그건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반복해 강조했다.
 
요원과 법관
 
이 변호사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이들을 법관이 아닌 '요원'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설명하는 요원의 특징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더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심리적으로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이며 "뭐든지 은폐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이는 법관이 지녀야 할 덕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 변호사는 "법관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본인의 법정에서 주장과 증거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또 은폐가 아닌 진실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이다"라며 "근데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원행정처 법관들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사안을 은폐하려고 했으며 '다 시키는 대로 했다', '수족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 무서운 건 한 번 요원의 덕목을 내면화한 사람은 완벽히 법관의 상태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저는 그걸 확신한다"라며 "국민들은 사법행정 잘하고 제도설계 잘하는 법관을 존경하는 게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법관이 잘 할 수 있는 건 재판이다, 법관은 재판만 잘하면 된다"라며 "사법개혁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법관은 재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법관은 재판만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법원을 떠난 이유와도 비슷했다. 2017년 2월 이 변호사의 첫 사표는 반려됐으나 이후 사법농단의 실체가 속속 드러났고, 그는 2019년 1월 다시 사표를 낸 뒤 결국 법원을 떠났다. 이 변호사는 "(사법농단이 알려지고) 막상 일이 진행되는 걸 겪어보니 진실이 드러나는 걸 막고 싶은 사람들이 있더라, 거기에 맞서 싸우는 게 투쟁 아니겠나"라며 "그 과정에서 제가 운동하는 사람에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다, 그러한 점이 제가 생각해 온 법관의 모습과 달랐기 때문에 법원을 떠났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그런 기준이면 진짜 법원을 떠나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래서 끊임없이 빨리 나오라고 외치고 있다"라고 답했다.
 
"난 안 변했다" 
     

▲ 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 ⓒ 남소연


독일에서 마주한 사법 시스템의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었다. 이 원리에 입각해 아주 촘촘한 장치들이 행정부·입법부·법원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큰 틀에서 행정부가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독일의 제도 자체를 우리에게 적용시키긴 어렵겠지만, 견제와 균형이란 원리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 변호사가 강조한 "법관은 재판만 잘하면 된다"는 원칙과도 연결돼 있다. 사법농단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독점과 독선의 체제는 법관이 재판 외 다른 것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그는 "대법원장이 평판사부터 대법관까지 모든 법관의 임명 과정에 관여하고,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전보·승진 및 법원장 보직 권한까지 갖고 있다"라며 "국회가 법관을 탄핵하는 건 삼권분립 차원에서 견제와 균형에 충실한 행동인데도 이에 역행하는 행동인양 한쪽에서 몰아세운다,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두 독점과 독선에 가까운 사법 시스템이다"라고 비판했다.
 
사법농단 사태 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현 대법원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넘겼다. 지난해 12월 제출된 이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 사법행정회의 및 법관인사운영위원회 신설 ▲ 법원행정처 폐지 및 법원사무처 설치 등이다. 현재 이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변호사는 "개정안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투영돼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최소한 내부에서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공감대를 만들 정도로 지속적인 자정운동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현재 대법원의 리더십이 그런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사법발전위원회 및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 후속 추진단(아래 후속 추진단)'의 제안보다 후퇴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고 대거 면죄부를 줬다(대법원은 검찰이 넘긴 비위 명단 66명 중 10명만 징계했으며 현재까지 징계 법관이 누군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기자 주)."
 
이 변호사는 그 동안 인터뷰에서 현 대법원과 관련해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여왔다. 그는 이전 인터뷰에서 "아직은 말을 아끼고 싶다"(2월 11일 <한겨레>),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많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5월 14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 "리더십이 좀 약한 면이 있다"(6월 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겠다"(6월 10일 <시사in>)라고 이야기해왔다. 이번에 만난 이 변호사의 비판 수위가 훨씬 높아진 셈이다.

그는 "시기마다 현 대법원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내가 변한 건 아닌 듯하다"라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법관의 덕목
 
앞서 말한 대법원 개정안에 담긴 사법행정회의는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심의·의사결정기구'로 규정돼 있다. 의장을 맡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위원 11명으로 구성되며, 여기에는 법원행정처를 대신해 신설되는 법원사무처의 처장(비법관 정무직)도 들어간다. 나머지는 전국법원장회의 추천 법관 2명,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3명, 외부위원 4명으로 채워진다. 한편 인사운영 부분은 법관인사운영위원회를 설치해 맡기기로 했는데, 이곳은 전원 법관으로 구성된다.

사법행정회의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독점을 막기 위한 신설하려는 기구다. 당초 후속 추진단에선 사법발전위원회를 총괄기구로 규정해 대법원장의 힘을 '1/N'로 제한하는 안을 내놨다. 하지만 대법원 개정안에 담긴 내용은 총괄기구가 아닌 심의·의사결정기구였다. 이는 사법행정의 총괄 권한을 여전히 대법원장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후퇴안'이란 비판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사법행정회의 위원의 다수, 법관인사운영위원회 위원의 전원이 법관으로 채워지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 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 ⓒ 남소연


이 변호사는 위원 구성 및 운영에 좀 더 방점을 뒀다. 그는 "사법행정회의가 실질적으로 힘 있는 기구로 출발하면, (심의·의사결정기구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결국 총괄기구로 만들어질 수 있다"라며 "중요한 것은 외부위원이 실질적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법관징계위원회, 법원감사위원회 등 지금까지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여럿 꾸려졌다. 근데 이게 다 유명무실해서 사법농단을 막는 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위원들 거의 모두가 거수기 역할만 했기 때문이다. 외부위원이 권한을 가지려면 상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또 외부위원 숫자를 최소환 법관 위원과 동수로 구성해야 한다. 한쪽 집단이 무리하게 의결하려고 할 때, 다른 집단이 이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사법행정회의 안에 법원사무처장이 위원으로 들어가게 설계돼 있다. 비법관이라고 하더라도 법원사무처장은 일상적으로 사법행정을 집행·총괄하는 사람이다. 법원사무처장과 일반 위원들의 정보는 엄청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3일 전에 회의 자료 보내주고 겨우 1~2시간 회의를 진행한 뒤 법원사무처장이 쭉 설명하면서 '이거 통과시켜 달라'라고 하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위원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 그냥 법원사무처장이 원하는 대로 통과만 시켜주는 기구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변호사는 법관인사운영위원회가 전원 법관으로 채워지는 개정안 내용도 "견제 받고 싶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나는 게 두려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원행정처를 없애고 법원사무처를 만드는 것과 관련해선 "이름을 어떻게 바꾸든 법관은 그 안에서 모두 빠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 법원 내부에선 인사권만큼은 법원이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법관은 재판하는 사람이다. 헌법 어디에도 법관이 꼭 법관을 뽑아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관이 되고 나면 통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누가 법관이 되느냐'는 법원 외에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이 법관이 될 수 있다."
 
- 법원행정처를 법원사무처로 바꾼다는 계획은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든 법관이 모두 빠져야 한다. 만약 법관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사직 후 가면 된다. 더 이상 행정관료로 일하던 법관에게 재판을 받고 싶지 않다는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 1심 판결과 관련해 논란이 있지 않았나. 비서(김 지사 1심 재판장이었던 성창호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비서실 소속이었다 - 기자 주)의 덕목이 법관의 덕목과 다르다는 걸 국민들이 아는 것이다."
 
양승태
 

▲ 보석으로 풀려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으로 구속되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월 2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재판부 직권보석 결정으로 석방되고 있다. ⓒ 권우성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7월 22일 구속 기한 만료를 앞두고 재판부의 직권보석 결정으로 구치소를 나왔다. 구속된 지 179일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증인 대거 신청, 과도한 증거검증 요구 등 일반 재판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 벌어지며 시간만 속절없이 지나갔다.
 
이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공사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본인이 공직에 있을 때 한 행동에 대해 조사를 받는데 마치 집안일에 대해 조사받는 것처럼 말해왔다"라며 "직무상 사용한 컴퓨터를 일기장으로 표현하고, 직무행위에 대해 조사받는 걸 사찰이라고 표현하는 등 공사 구분이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이는 사법농단을 주도한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생각 같다"라며 "공직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역할에 불과한데 자기가 입신양명해서 획득한 신분이자 소유물로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직이나 권력그룹의 일부에서 소속감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법관과 어울리지 않다"라며 "대법원장이 주도하는 인사 시스템 때문에 '내가 법관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외국 법관들과 교류해보면 우리 법원은 굉장히 봉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걸 느낀다. 대법원장이란 가부장을 중심으로 직무가 아닌 평판 및 관습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그러면 법정 안팎의 경계가, 재판과 행정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러니 대법원 재판연구관 같은 보직을 받으면 회식 때 대법원장에게 큰절하는 법관들이 나왔던 거다. 과거 체육대회 때 대법원장이 입장하면 법원별로 지역 특산물을 입에 떠먹여주는 장면이 연출되는 거다. 어떤 법원에선 상자에 비둘기를 담아 와서 날리고, 목마를 태우고, 카드섹션을 준비하고, 코스프레를 선보이고...
 
2018년 1월에 2차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대법관 전원의 이름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관련) 재판개입은 없었다'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그 재판 당시 대법관 13명 중 6명은 대법관이 아니었다. 법관은 본인이 모르는 걸 대외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대법관 전원이 입장문을 냈을까. 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법관이라는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하는 거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이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이 변호사는 "증인으로 채택된 현직 법관들이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미뤄지는 모습에 화가 많이 났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당직이라고, 체육대회 있다고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법관들이 있던데, 평소 자기 재판에서 그런 증인이 있다면 과태료를 부과했을 것이다"라며 "이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는 건데 그럼에도 버젓이 재판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대법원이 사법농단 연루자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선 법관들에게 이 사건이 별 것 아니라는 신호를 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날의 낮잠  
 

▲ 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 ⓒ 남소연


이 변호사는 국회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제도 개혁은 국회의 역할이잖나. 근데 국회에서 법원의 의견에 너무 휘둘리는 것 같다"라며 "다른 분야 중 그런 데가 있나. 검찰 개혁이나 국정원 개혁을 두고 이렇게 휘둘리진 않잖나, 국회도 열심히 공부해 두 눈 부릅뜨고 법원을 봐야 한다"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자꾸 법원에 의존하면 그때부터는 국회의 잘못이 된다"라며 "국회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고해 자신 있게 입법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지난달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를 맞아 '제1회 노회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공동수상자였다. 이 변호사는 "시상식이 있던 날 아침 모란공원에 들러 고인의 깊은 뜻을 많이 생각해봤다"라며 "고인이 노동과 사법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개선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저와 김용균씨의 어머님이 선정된 것으로 안다, 앞으로 사법 시스템 전반을 개선하는 데에 그 역할을 피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이 변호사에게 "첫 사표를 냈던 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 가장 또렷하게 생각나는 장면"을 물었다. 그는 "낮잠"을 떠올렸다.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 많아 꼽긴 어렵지만... 첫 사표를 내기 전까지 거의 잠을 못자고 고민했다. 사표를 내고 나서 오전 재판을 소화한 뒤 오후부터 휴가를 내고 일찍 집에 갔다. 그때 일순간이나마 푹 잤던 기억이 갑자기 난다. 이미 10년 가까이 법관 생활을 했고, 정년까지 법원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좋은 재판을 하고 싶다는 꿈을 여전히 간직했던 때다. 때문에 사표를 내는 건 굉장히 힘든 결정이었다. 사안의 특성상 많은 사람과 상의할 수도 없었다. 사표를 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압박과 회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잘한 선택, 올바른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오후만큼은 맘 편하게 잤던 것 같다. 꽤 잤던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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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왜 모계사회를 이뤘나

조홍섭 2019. 08. 29
조회수 1169 추천수 1
 
암컷이 임신∼양육 도맡아…암컷 연대와 지식전파가 생존의 핵심
 
w1.jpg» 두뇌가 크고 고도의 사회생활을 하는 고래는 강력한 모계사회를 이룬다. 최고의 사회성 고래인 범고래 어미와 새끼가 뛰어오르고 있다. 로버트 피트먼, 미 해양대기국(NOAA),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영장류와 함께 두뇌가 크고 사회생활을 하는 고래는 대표적으로 모계사회를 이루는 동물이다. 암컷 중심으로 무리가 움직이고, 자식에게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전파한다. 심지어 딸만 우대하는 ‘성차별’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래는 왜 암컷이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루크 렌델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 철학회보 비(B)’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고래의 행동생태학에 관한 연구결과를 종합해 이 문제를 검토했다. 연구자들은 모계사회의 기원을 육지에서 바다로 간 고래의 조상에서 찾았다.
 
4900만∼4000만년 전 바다로 간 육지 포유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적응해야 했다. 딱딱한 땅 위에 살다 3차원 공간으로 갔다. 바다에서는 이동이 훨씬 쉽고, 먹이 자원을 빼앗기지 않으려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먹이가 풍부한 데다, 바다에는 먹이를 숨기거나 저장할 곳도, 방법도 없다. 연구자들은 “큰돌고래를 32년 동안 지켜보아도 남의 먹이를 훔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는 한 연구자의 관찰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바다환경은 더운피 동물인 고래에게 체온 유지라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14종의 수염고래는 몸집을 불려 여름 동안은 플랑크톤이 번성하는 온대와 극지방 바다에서 다량의 먹이를 섭취해 지방으로 비축하고, 나머지 6개월은 사실상 단식하는 방식으로 적응했다. 이빨고래 76종은 초음파를 내쏘아 먹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반향정위’ 방식으로 다양한 먹이를 효율적으로 사냥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문제는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르는 일이다. 연구자들은 “다른 모든 포유류처럼 고래도 암컷이 임신, 수유, 젖떼기, 양육 등 번식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다”며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어떤 고래 수컷도 교미를 하면 그걸로 끝이지 양육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다처 또는 다부다처의 생식 방법과 관련이 있다.
 
w2.jpg»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는 새끼의 빠른 성장을 위해 새끼에게 지방이 풍부한 모유를 하루 220㎏ 먹인다. 미 해양대기국(NOAA),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새끼가 바다에서 체온을 잃지 않으려면 빨리 자라 단열 기능이 있는 지방층을 쌓아야 한다. 어미는 새끼의 빠른 성장을 위해 지방이 풍부한 모유를 다량 분비한다. 몸길이가 30m인 대왕고래가 새끼에게 먹이는 모유의 양은 매일 220㎏에 이른다. 어미에겐 엄청난 에너지 부담이다. 
 
어미에 바짝 들러붙어 헤엄치는 새끼는 물결을 거스르는 일종의 저항으로 작용한다. 몇 달 자란 새끼는 안전과 수유, 쉬운 유영을 위해 어미의 배와 꼬리 사이에서 헤엄치는 ‘유아 자세’를 취한다. 당연히 어미는 헤엄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새끼는 생후 4개월 때부터 젖 뗄 때까지 기간의 39%를 이런 자세로 지낸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수유 기간에 어미는 평소보다 먹이를 40% 더 먹어야 한다. 그러나 새끼 때문에 큰돌고래와 흰고래는 잠수시간을 줄인다. 깊이 잠수해 오징어 등을 사냥하는 향고래는 보모가 새끼를 대신 봐준다.
 
젖을 뗀 새끼 고래를 돌보는 일도 오로지 어미의 몫이다. 수염고래 새끼는 태어난 첫해 어미를 따라 열대바다에서 극지방 먹이터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어미가 가르쳐 준 경로를 익혀 되풀이한다. ‘전통 지식’을 전수하는 셈이다. 이동지식뿐 아니라 새로운 사냥지식도 어미를 통해 전수된다. 혹등고래가 바다 표면에 꼬리를 내리쳐 물고기를 사냥하는 신기술은 모계로 전해진다.
 
w3.jpg» 노르웨이의 한 피오르 해안에서 범고래가 꼬리치기 기술로 물고기를 사냥하고 있다. 야틴 크리슈나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새끼를 기르는 힘겨운 과정에서 책임을 온전히 떠맡는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는 고래 사회의 주춧돌”이라며 “엄혹한 환경에서 암컷끼리의 혈연과 연대가 협동 사냥과 공동 방어, 정보 공유 등을 통해 무리의 생존능력을 높여준다”고 밝혔다.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는 대형 이빨고래 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향고래 수컷은 10대 초반 무리를 떠나고 다양한 모계의 암컷끼리 수십 년 유지되는 안정된 중층 사회구조를 이뤄 공동육아 등을 해 나간다. 범고래도 모계 혈연관계가 사회를 지탱한다. 연어를 잡아먹는 범고래 집단에서는 먹이가 부족할 때 늙은 암컷의 생태 지식이 모계 집단의 생존을 좌우한다. 범고래 등 일부 고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포유류에서 유일하게 아직 생식능력이 있는 암컷이 폐경 한다. 나이 든 암컷은 생식을 젊은 암컷에게 넘기고 자신은 돌봄에 치중함으로써 무리에 기여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관련 기사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 하나).
 
w.jpg» 새끼와 헤엄치는 향고래. 깊은 바다에 장시간 잠수할 때는 다른 암컷이 새끼를 돌봐준다. 가브리엘 바라티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대형 이빨고래가 아닌 큰돌고래에서도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의 모습이 발견된다. 큰돌고래는 수컷이 작은 동맹을 이뤄 떠나고 암컷이 새끼들과 무리를 이룬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샤크만 큰돌고래에서 어미가 새끼 가운데 암컷과 유독 강한 유대를 맺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돌고래 어미는 바로 옆에서 헤엄치는 새끼 돌고래를 배려해 자신의 잠수시간을 줄이는데, 그런 배려는 새끼가 암컷일 때만 나타났다. 또 사냥기술을 전수할 때도 아들보다 딸에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 집단에서 수컷보다 암컷 새끼가 나중에 어미의 사회 네트워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w5.jpg» 새끼와 헤엄치는 큰돌고래. 아들보다 딸을 ‘편애’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고래 암컷의 사회적 역할을 비교 분석하는 것은 사람이 포함된 영장류 사회에서 암컷의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예컨대 현대 인간사회에서 여성이 왜 지도적 위치에 과소 대표되고 있는지, 또 그 해결책은 뭔지를 생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endell L, Cantor M, Gero S, Whitehead H, Mann J. 2019 Causes and consequences of female centrality in cetacean societies. Phil. Trans. R. Soc. B 374: 20180066. http://dx.doi.org/10.1098/rstb.2018.006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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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심종두는 감옥으로, 톨게이트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8월29일] 노동동향브리핑
▲ 대법원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근로자 지위소송에 대해 판결을 내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한 톨게이트 노조들이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요금수납원은 이미 도로공사의 직원이거나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29일 대법원 판결 후 당사자인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입장문을 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과 한국노총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동조합은 입장문에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면서 정부와 도로공사에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해고된 1500명 요금수납원 모두를 직접고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오늘 판결은 요금수납원 304명에 해당하는 판결이지만 304명에게만 적용된다고 하는 것은 법률가들의 해석일 뿐, 이 판결의 효력은 해고된 1500명 모든 요금수납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원고의 이름만 다를 뿐 모든 것이 똑같은 요금수납원들에게 이 판결의 효력이 적용돼야 하는 것이 법 이전에 상식”이라고 강조하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요금수납 노동자들에게 가짜 정규직인 자회사를 강요하고 강행하면서 벌어진 사태의 잘못을 인정하고 법대로 직접고용하라”고 주장했다.

○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고 “두 번 말할 필요 없는 당연한 판결”이라며 “청와대는 자회사 전환 정책 중단과 직접고용 원칙을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정부는 1500명 집단해고 사태에도 오로지 자회사 전환을 강요했을 따름이며, 노동부는 법에 따라 불법파견 시정명령과 근로감독을 실시하라는 노동조합 요구를 묵살했고,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김앤장에 거액을 써가며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문제해결을 회피했다”고 지적하곤 “(이제)해고자 전원 직접고용을 회피할 핑계란 없다”면서 “만약 정부와 도로공사가 오늘 판결 효력을 재판 참가 노동자로만 축소할 발상을 하고 있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정부는 임시방편 고통전가에 불과한 자회사 전환 꼼수 철회하고 1500명 해고자 전원을 직접고용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요금수납노동자들은 불법파견 된 노동자다. 도로공사가 직접고용 하라’
- 대법원 판결 관련 1500명 해고 요금수납노동자 입장 -

불법파견 인정과 직접고용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요금수납원은 이미 도로공사의 직원이거나 도로공사가 직접고용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한 문장을 확인받기 위해 우리는 해고를 당하면서까지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 최초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7년 가까이 되어 나온 판결이다. 두 달째 길바닥 생활을 해온 1500명 모든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판결의 효력은 1500명 해고 요금수납원 모두에게 일괄 적용되어야 한다.
오늘 대법원 판결은 해고된 1500명 요금수납원 중 304명에 해당하는 판결이다. 그러나 이것을 304명에게만 적용된다고 하는 것은 법률가들의 해석일 뿐이다. 이 판결의 효력은 해고된 1500명 모든 요금수납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원고의 이름만 다를 뿐 모든 것이 똑같은 요금수납원들에게 이 판결의 효력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법 이전에 상식이다.

정부도, 도로공사도, 김앤장도 모두 틀렸다. 지금은 책임을 져야할 때다.
도로공사의 소송결과에 대한 기대는 헛된 망상으로 끝났다. 도로공사를 부추겨 수십억을 빼간 날강도 법률집단 김앤장도 틀렸다. 마지막까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은 소수에 불과할거란 이강래 사장과 도피아들의 예상도 틀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갈라치기 하고, 대법원 판결이 지연되면 거리투쟁도 정리될 거라고 한 판단도 완전히 틀렸다.

정부와 도로공사는 술수가 아니라 직접고용으로 책임져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정부와 도로공사가 또 다시 300명과 1200명을 갈라치기 위한 술수를 짜고 있다면 당장 중단하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요금수납노동자들에게 가짜 정규직인 자회사를 강요하고 강행하면서 벌어진 사태다. 잘못을 인정하고 법대로 직접고용하면 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큰 투쟁을 부르고 더 큰 사태로 확대될 뿐이다.

모두를 직접고용하지 않을 경우 해고기간 임금만 년 간 600억원,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도로공사는 벌써부터 원고별로 케이스가 다르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불법파견이 분명한 1200명 불법파견 요금수납노동자를 직접고용 하지 않는다면 도로공사가 지급해야 할 해고기간 임금만 년 간 600억 원이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발생될 이 엄청난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도로공사는 자기 발목을 잡는 외통수 입장이 아닌 직접고용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1500명 모두의 직접고용 쟁취를 위해 오늘부터 모든 걸 걸고 투쟁할 것이다.
이번 대법판결이 1500명 모두의 직접고용으로 정리되지 않는 한 끝이 아니다.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조와 민주노총 요금수납노동자들은 하나의 요구로 싸우기로 결의했다. 1500명 직접고용의 해법은 청와대에 있다. 우리는 오늘부터 모든 걸 걸고 1500명 모두의 직접고용 쟁취를 위해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다. 대법원도 판결했다. 1500명 직접고용 청와대가 책임져라!

2019년 8월29일
요금수납노동자 불법파견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날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 한국노총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동조합

▲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피해자,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조합원들의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및 해고자 복직 촉구’ 8월 상경투쟁 모습. [사진 : 뉴시스]

○ 대법원이 29일 오전, 유성기업 등에 개입해 노조파괴 범죄를 저지른 창조컨설팅 심종두 대표와 김주목 전무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유죄판결이 확정되자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내고 “(창조컨설팅은)산별노조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자본과 모의해 산별노조 사업장 조직을 파괴했다. 노사 분쟁을 일으킨 뒤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를 풀어 겁박하며 조직을 와해시키거나 노조에서 탈퇴시키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꼬집곤 “오늘 판결에 만족하지 않는다”면서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창조컨설팅과 같은 유해단체와 이를 운영했던 인물들이 다시는 번성할 수 없도록 사회를 바꾸고, 제2의 심종두와 김주목을 꿈꾸지 못하도록 끝까지 추적하고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일인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대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9일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삼성 측이 최순실 측에 제공한 말 세마리 구입액,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액을 모두 ‘뇌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며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구속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은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 상식, 정의와 공정의 관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히곤 “정부와 삼성은 적절한 절차를 통해 이재용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며, 그 전에 이재용은 스스로 경영권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또 별도 논평을 내 “서민 유죄, 재벌 무죄 관행을 깨뜨린 판결”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재벌총수에게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뒤 2심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으로 낮춰 선고하는 악습인 이른바 ‘3‧5법칙’을 깨뜨렸다”면서 “재벌총수가 법 위에 군림하며 대를 이어 우리 사회 부의 대부분을 빨아들이는데도 헌법 어디에도 없는 ‘경영권’이라는 정체불명의 권리를 들이대며 자본권력을 물신화하던 법원 판결 풍조에 이번 대법원판결이 경종을 울린 셈”이라고 평했다.
이어 “사법부는 적극적인 법리 적용과 해석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국내 재벌들이 국정농단 세력과 공모해 저지른 부정한 범죄를 강력히 처벌하고, 고질적인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디어 서민유죄 재벌무죄 관행 깨뜨린 대법원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정경유착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평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은 무도한 정권의 겁박에 굴복해 정치자금을 헌납하는 수동적 ‘돈줄’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재벌은 보수언론을 움켜쥐고 정치‧경제‧사회 곳곳에 해악을 끼치며 총수 일가만의 소왕국을 쌓아 올리고 있다.

노동자‧시민이 일어나 국정농단 세력을 내쫓으며 재벌개혁을 시대적 과제로 삼았는데도 사법부는 1심 최저형 선고에 이어 2심 집행유예 선고로 이 부회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경영승계 작업’ 자체가 없었다는 삼성의 주장을 고스란히 수용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재벌총수에게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뒤 2심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으로 낮춰 선고하는 악습인 이른바 ‘3‧5법칙’을 깨뜨렸다.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 중 무죄로 봤던 부분을 추가로 뇌물로 인정하고, 삼성에 경영 승계작업이 있었음을 분명히 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벌총수가 법 위에 군림하며 대를 이어 우리 사회 부의 대부분을 빨아들이는데도 헌법 어디에도 없는 ‘경영권’이라는 정체불명의 권리를 들이대며 자본권력을 물신화하던 법원 판결 풍조에 이번 대법원판결이 경종을 울린 셈이다.

1심 재판부가 내렸던 5년형은 삼성이 저지른 정경유착 범죄의 핵심 혐의를 외면하고 내린 법정 최저형에 불과했다. 그 바닥에 도사린 ‘기업인을 잡아 가두면 경제가 망한다’는 주장은 재벌과 공생하는 보수언론과 재벌 자신의 공포소설에 불과하다.

금수저‧흙수저론이 웅변하는 재벌의 세습 특권과 무소불위 행태는 헌법에 명시된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 등의 자정능력과 의지를 잃은 병든 사회의 대표 징후일 뿐이다.

사법부는 이제 마지못해 내리는 최소한의 양형이 아닌, 적극적인 법리 적용과 해석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국내 재벌들이 국정농단 세력과 공모해 저지른 부정한 범죄를 강력히 처벌하고 고질적인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법원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경영세습을 위해 회계조작과 뇌물수수를 저지르고, 기업 이익을 위해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해쳐도 묵인하고 넘어가던 관행을 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8월2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편집국  news@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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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오나?

 문 대통령, “교량국가의 시작은 한반도 평화정착”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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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30  06: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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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매우 의미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아세안 3개국 방문을 앞두고 30일 태국 <방콕 포스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청할 것을 제의해주셨고, 여러 정상들이 지지해주셨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10월말께 ‘방콕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북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협력할 수 있을지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 문제는 북미 간 대화를 포함하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상황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며, 아세안 국가들과도 관련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미-남북대화가 모두 교착된 현 상황을 의식한 것이다.   

“핵 대신 경제발전을 택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밝힌 의지”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은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의 중요한 소통창구가 되어 주었다”고 평가했다. 2000년 태국의 적극적 지원 하에 북한이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했고,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지역 안보협의체다. 두 차례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개최됐다.

“한국이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교량국가”가 되겠다는 구상도 소상하게 설명했다. 

“한국은 교량국가의 시작이 한반도 평화정착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평화경제를 구축하면 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나아가 유럽과도 긴밀히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정부의 ‘신북방정책’입니다. 남으로는 인도를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하여 포용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남방정책’입니다.”

문 대통령은 9월 1일부터 태국을 공식 방문한다. 이어 6일까지 미얀마와 라오스를 국빈방문할 예정이다. 11월말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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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대법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불법파견 인정 “직접 고용하라”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8-29 10:42:28
수정 2019-08-29 1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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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67명에 대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성 대법원 선고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8.28.
민주노총·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67명에 대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성 대법원 선고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8.28.ⓒ뉴시스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취지의 최종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노정희 대법관)는 29일 오전 10시 대법원 1호 법정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368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2013년 한국도로공사 외주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이하, 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2013년 한국도로공사 외주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이하, 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도로공사와 외주 용역 업체 사이에 체결된 용역계약은 사실상의 근로자 파견계약이며 '불법 파견'으로, 파견법에 따라 2년의 파견 기간이 만료된 날로부터 공사 측이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한국도로공사 측은 "외주용역업체가 독자적으로 노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 역시 독자적인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근로자파견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앞선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1,2심 법원은 한국도로공사가 수납원들을 '불법파견'해 직접 고용의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1,2심 재판부와 같이 한국도로공사와 외주용역업체 사이의 계약을 "근로자 파견계약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소송을 제기한 요금수납노동자 2명에 대해서는 근로자 지위 인정 여부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면서 파기환송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7년 항소심 판결이 있은 후로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도로공사는 요금수납노동자들의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 소속 전환을 추진해왔다. 전체 6,500여명의 노동자들 중 5,000여명은 자회사로 갔지만, 나머지 1,500여명은 자회사 소속 전환을 반대해왔다. 이들은 지난 달 1일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사실상의 해고상태에 빠졌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해고된 요금수납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 소속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현재 해고된 노동자들은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케노피 위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며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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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조사 끝내고도 입 다문 인권위

[단독]북한 여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조사 끝내고도 입 다문 인권위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보고서 발표 비정상적 지연
남북관계 우려, 정치적 이유”

지난 2016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이 탈북해 입국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지난 2016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이 탈북해 입국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국가인권위원회가 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최종보고서까지 작성하고도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가 국제사회의 비판, 남북관계 등 정치적 이유로 보고서 공개를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법률가들로 구성된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진상조사단’ 소속 니루퍼 바그왓 변호사(인도)는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권위가 이 사안에 대해 조사를 다 마치고도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며 “보고서 공개가 비정상적으로 지연되고 있는데, 인권위도 지난 26일 진상조사단과의 면담에서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준 사사모토 변호사(일본)도 “이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이상 지났고 여러 단체에서 인권위에 조사결과를 빨리 공개하라고 촉구해왔음에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계속 지연되는 건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1972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이뤄진) ‘김대중 납치 사건’ 때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았다”며 “이번에도 한국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해 공표를 지연시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25일 방한한 진상조사단은 통일부, 경찰청, 국가정보원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해당 기관들은 모두 “인권위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면담을 거부했다. 경찰청은 공문을 통해 “탈북 종업원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진상조사단의 탈북 종업원 면담 주선 요청도 거부했다.

북한 종업원 탈북은 총선을 닷새 앞둔 2016년 4월8일 통일부가 13명의 탈북 사실을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신변 문제 등으로 탈북자 관련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 관례를 깬 것으로, 통일부는 이들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당시 북한은 “국정원이 조작한 집단적 유인 납치행위”라고 반발했고, 식당 지배인이던 ㄱ씨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국정원 직원의 협박과 회유에 따라 집단입국을 했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단은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평양에서 탈북 종업원 가족, 당시 식당에서 탈북하지 않고 북으로 돌아갔던 종업원 등을 만날 계획이다. 이들은 방북 조사활동 등을 토대로 진상조사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290600025&code=910303#csidxda6a6fac8317d7ab33f2c4681fa0a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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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민 김복동

[창비 주간 논평] 평화와 상생의 촛불정신
 
2019.08.29 07:56:39
 
 

이번 여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송원근 연출)은 일본군 '위안부'(성노예제) 피해자인 김복동(1926~2019)의 생애를 다룬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의 증언자에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확장되는 한 인물의 여정을 차분하고 서늘하게 보여준다. 군복공장에 일하러 간다는 말에 속아 만 14세에 강제로 위안부가 된 김복동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니다가 8년이 지난 1948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1년 김학순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이듬해 김복동은 62세의 나이로 본격적 증언 활동에 나섰다. 아시아 연대회의,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남긴 그는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분쟁지역 아동과 전쟁 피해 여성을 돕는 활동에 앞장섰다. 국내외를 순회하는 김복동의 인권평화운동은 27년간 지속되었다. 
 

▲ 다큐멘터리 <김복동> 스틸컷.


올해 초 김복동은 소원하던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하고 영면하였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과하라!"는 그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온다. 더불어 관객들의 깊은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2015년 12월 박근혜-아베 정부가 공식적 사죄를 원하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직후의 모습이다. 당사자 없는 졸속 합의와 위로금 지급, 화해치유재단의 설립을 두고 거센 비판이 일었음에도 일본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에 호응하였다. 영화의 후반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김복동과 그의 활동에 연대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숨 가쁘게 쫓아간다. 다큐에서는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위안부 피해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역사적 쟁점은 이후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 혁명의 중요한 불씨가 되었다. 

아베 정부가 퇴행적 군국 논리의 부활로 역사를 거스르는 행보를 시작한 가운데, 이 영화는 우리가 대면해야 할 중요한 현실로서 식민지 역사를 환기한다. 올해 7월, 아베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표명한 후, '백색국가' 제외 조처를 발표하였다. 강제징용배상 판결을 경제적 문제로 바꾸는 일본 정부의 대응 방식은 전쟁범죄의 책임을 부정하고 은폐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고 그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되었으며, 일본군 '위안부'도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제국주의의 논리가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 다큐멘터리 <김복동> 스틸컷.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동시에, 자국에도 이로울 리 없는 경제전쟁을 시작한 아베 정권의 의도는 명확하다.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적대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아베 극우정권과 기득권 집단이 기도하는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의 부상을 경계하는 극우정권의 '신정한론(新征韓論)' 이면에는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일본의 영향력 감소에 대한 불안과, 중국이 부상하면서 달라진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촛불혁명의 동력을 바탕으로 평화체제로 나아가려는 한반도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무력화하려는 국내외 우익 기득권 세력이 이러한 일본의 정치 논리와 연결되는 맥락도 뚜렷하다. 그런 점에서 아베 정권이 일으킨 경제전쟁은 촛불혁명이 주축이 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세계적 영향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3.1운동 이후 우리 시민들이 오랜 기간 실천하고 심화해온 민주·평화 혁명의 정신이 남기는 메시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며 새 시대를 열어온 촛불의 정신은 남북화해와 한반도 통일 및 세계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실제로 한일 갈등과 무역 보복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은 그동안 단련되어온 촛불시민혁명의 저력을 실감케 한다.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소비실천과 역사교육을 통해 창의적 발상의 시민 참여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인들의 시민운동 편승을 배격하며 아베 정부가 아닌 일본 자체를 적대시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행동은 일본 내에 존재할 다수의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더불어 촛불정신이 현재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진정한 동력이 되려면 불평등과 적폐를 개선하려는 사회정치 개혁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경제전쟁에서 실질적 타격을 받는 다수 시민들을 위해서 민생을 압박하는 사회 제반의 불평등 현실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정부의 체계적 정책 제안과 노력이 필요하다.
 

▲ 다큐멘터리 <김복동> 스틸컷.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그동안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역사 인식과 교육의 문제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평화통일이 세계평화에서도 왜 중요한 쟁점인지를 알려준다. 영화가 포착한 김복동의 삶 역시 가혹한 식민지 현실을 거쳐 오랜 기간 투쟁해온 한반도 민중이자 세계시민의 생애와 겹쳐 보인다. 그의 증언과 평화운동은 전쟁폭력의 참상을 고발하고 치유를 도모하는 세계적 차원의 여성 연대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기습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에 맞서 시민들이 거리와 광장에 선 그 시점은 각계각층의 적폐와 불법에 항거하는 촛불혁명의 시발점과 얽혀 있다. 국내외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촛불의 힘은 남북의 상생과 평화를 기도하며, 지역적·세계적 냉전 세력에 대한 저항과 타격이 되었다.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거리와 광장에 선 김복동과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네트워크 및 여러 시민들이 간곡하게 호소했던 것 역시 이러한 평화적 저항운동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집단지성의 메시지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평화와 상생을 기도하는 촛불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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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재용 '운명의 날', 제대로 잠을 잤을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8/29 09:38
  • 수정일
    2019/08/29 09: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오후 2시 대법원 '국정농단' 선고] 엇갈렸던 박근혜 2심-이재용 2심... 최종 결론은?

19.08.29 07:33l최종 업데이트 19.08.29 07:33l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전경
▲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전경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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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의 최종 결론이 드디어 나온다.

오늘(29일) 오후 2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국정농단이 불거진 지 약 3년 만이다.

2016년 12월 꾸려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특검 박영수)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남용, 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을 받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공무원이나 문화예술단체에 불이익을 준 사실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훈련을 지원하는 등 뇌물을 건넨 혐의도 밝혀졌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박근혜-이재용 뇌물사건의 디테일을 두고 재판부마다 조금씩 다른 결론을 내놨다.

재판부마다 달랐던 디테일
 
 박근혜·이재용 재판 주요 쟁점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 '유령회사'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는 형태로 정유라씨의 승마훈련을 지원했고(계약금 약 213억 원, 실지급 36억 3484억 원) ▲ 정씨에게 말 세 마리와 차량 등을 제공했으며(41억 6251만 원) ▲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세운 미르(125억 원)·K스포츠재단(79억 원)과 영재센터(16억 2800만 원)에 돈을 줬다고 봤다. 그리고 승마 쪽엔 단순뇌물죄(77억 9735만 원), 재단과 영재센터 지원부분에는 제3자뇌물죄를 적용했다.

최초 판단은 2017년 8월 25일에 나왔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 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개별 현안은 없었으나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작업이 존재했다며 이 부회장이 대가를 바라고 박 전 대통령 쪽에 뇌물을 건넨 게 맞다고 봤다. 다만 말 수송 차량 구입대금과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금을 제외한 89억 2227만 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이미 구속 중이던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실형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가 지난해 4월 6일 내린 결론은 약간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경영권 승계작업은 없었다'는 대목이었다. 재판부는 따라서 제3자 뇌물죄 성립조건인 '부정한 청탁'도 없으니 이 혐의는 전부 무죄라고 판단했다. 다만 승마지원금 중 72억 9427만 원은 단순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은 다른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을 지시한 혐의 등도 있었기 때문에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 선고를 받았다.

항소심에서 두 사건의 온도차는 더욱 커졌다. 2018년 2월 5일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 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경영권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심이 일부 유죄로 판단한 제3자 뇌물죄도 전부 무죄로 결론내렸다.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본 승마 지원금 중에서도 정유라씨가 사용한 말 세 마리의 소유권은 삼성에게 있다며 제외, 총 36억 3484만 원만 인정했다. 이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선고가 난 이 부회장은 1년 간의 구치소 생활을 끝냈다.

하지만 박근혜 항소심(서울고법 형사4부, 재판장 김문석 부장판사)은 폭넓은 범위에서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8월 24일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작업은 포괄적 현안이었다'는 이재용 1심 판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 외국자본으로부터 삼성의 경영권 방어 ▲ 이 부회장이 적극 추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 지원 등을 개별 현안으로 인정했다. 또 삼성이 정유라씨를 계속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며 '액수 미상의 뇌물 약속'까지 유죄로 봤다. 그러나 단순뇌물죄는 말 보험료 등을 제외, 70억 5281억 원만 인정했다.

대법원이 박근혜 항소심 결론 받아들이면 이재용은 재수감 가능성

대법원은 뇌물을 준 액수와 뇌물을 받은 액수, 제3자 뇌물죄의 법리뿐 아니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업무수첩의 증거능력도 정리할 전망이다. 이 수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가 그대로 담겨 있어 국정농단 사건에서 중요한 증거로 쓰였다. 그런데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만 유일하게 이 수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를 엿볼 수 있는 강력한 정황 증거가 날아간 덕분에 이 부회장은 사실상 강요로 뇌물을 건넨 피해자가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근혜 항소심 결론을 받아들이면 이 부회장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돼야 한다. 2심에서 뇌물 인정범위가 좁아지면서 횡령액까지 줄어 실형을 피했던 이 부회장에게는 부담스러운 결론이다. 또 대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을 경영권 승계작업으로 인정하면, 삼성 뇌물사건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이어진다. 어쩌면 이 부회장은 다시 한 번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 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은 악재에 악재가 겹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29일 오후 2시, 그 결론이 대법정 현장은 물론 대법원 페이스북와 유튜브 채널, 네이버TV 생중계로 공개된다.
 
 14차 범국민행동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리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삼거리에서 박근혜퇴진 이재용구속 집중집회 참석자들이 삼성본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2017년 2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삼거리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이재용구속 집중집회 참석자들이 삼성본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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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계속 방사포를 쏘는 이유

북이 쏜 발사체, 방사포일까 미사일일까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끝났으나 북한(조선)의 방사포 발사는 멈추지 않는다. 그 까닭을 알아보기에 앞서 북이 쏜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를 둘러싼 논란부터 해명해 본다.

방사포를 미사일로 오해한 이유는 북이 유도제어가 가능한 발사체를 쏘았기 때문이다.

발사체의 사거리가 400Km에 달하고 탄두 지름이 400mm가 넘는 것 때문에 미사일이 아니냐 하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이는 방사포(MRLS)와 미사일의 차이를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방사포와 미사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런칭(발사)장비와 유도제어다.

미사일의 런칭장비는 직선형 레일로 발사대라고 부르고, 방사포의 런칭장비는 나선 모양의 레일로 포신이라고 부른다.

직선 레일을 통과한 미사일은 자체 회전하지 않지만 나선 레일을 통과한 방사포는 회전하며 날아간다.

최근 북이 쏜 발사체에서 자체 회전이 확인됨에 따라 방사포로 분류되었지만, 유도 기능이 있다는 북한(조선)의 발표로 인해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방사포탄은 미사일과 달리 유도제어가 불가능하다.

나선형 홈이 있는 포신을 통과한 방사포탄은 회전 비행하므로 자이로스코프(축 회전)의 균형이 외부제어에 의해 변경되지 않아 유도가 불가능하다.

만약 방사포탄이 유도 제어가 되면 고도의 명중률을 가질 수 있으며, 비행고도가 낮은 데다 여러 발이 동시에 날아오기 때문에 요격이 불가능해진다.

“세상에 없는 또 하나의 주체 무기”라고 자랑하는 북한(조선)의 방사포에 과연 유도 기능이 탑재되었을까.

발사체의 유도제어는 추진엔진이 동작하는 능동구간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방사포탄의 경우 능동구간에 외부제어가 불가능하므로 피동 구간(관성과 중력에 의해 탄도를 따라 비행하는 구간)인 종말 단계에 보조 엔진이 작동해서 궤적을 변경해야 한다.

무기 선진국의 경우 포탄 비행시간이 2분 이상인 대구경 장거리포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보조 엔진을 장착, 비행 과정에 공기저항으로 회전량과 속도가 감소하는 종말 단계에 엔진과 날개를 활용해 탄도를 수정하는 유도기능을 도입한다.

북한(조선)이 주장하는 “국방력 강화에서 전례 없는 기적 창조”란 이처럼 유도기능을 갖춘 방사포 개발을 두고 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조선)은 유도 기능까지 갖춘 최신형 방사포를 왜 자꾸 쏘는 걸까?

그 이유는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이미 밝힌 바 있다.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에 자주정신을 흐리게 하는 사대적 근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남북관계 개선에 복종시킬 것을 요구했다.

특히 북미 관계 중재에 쓸데없는 힘을 쓸 대신 남북관계 개선에 미국 눈치 보지 말고 당사자로 나설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9월평양공동선언’에서 채택한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한미 합동군사훈련 실시로 파탄 내고, 한미 워킹그룹의 압력에 밀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마저 재개하지 못함으로써 ‘평화 번영’의 길에 난관을 조성했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통일 전성기’를 열겠다는 결심을 한 북한(조선)으로선 남측 당국에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조선)이 방사포를 쏜 또 다른 이유는 미국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각인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실제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북한(조선)은 지난 2016년 발표된 ‘공화국정부성명’에서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전개한 핵 타격 수단의 제거와 한국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그 때문에 이번에 쏜 방사포는 한미 합동군사연습 재개에 대한 대응이면서도 미국이 적대시 정책에 계속 고집한다면 자립적 국방산업의 기술 향상 계획이 계속 추진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특히 지금은 주한미군 기지를 사거리로 한 유도제어 방사포를 발사했지만, 연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나오지 않으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고성능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다시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미국이 북한(조선)의 방사포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이해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방사포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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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자택 앞 “이재용 구속하라”

29일 대법원 판결앞두고 민주노총·민중공동행동 ‘기자회견’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8/28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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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이재용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민중공동행동은 27일 오전 10시 이태원에 있는 이재용 자택 앞에서 ‘이재용 재구속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농단 범죄자 이재용이 가야할 곳은 이 집이 아니라 감옥”이라면서 이재용 재구속을 촉구했다.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삼성장학생 재판부가 2심에서 이재용을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집행유예로 풀어줬는데 박근혜, 최순실과 함께 29일 대법판결이 열린다니 다행이지만 더 늦기 전에 범죄자 이재용은 감옥에 가야 한다”면서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 6천억 손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몸통, 6천여 건의 노조파괴 문건 발견 등 범죄자 이재용의 구속은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경영권 박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진두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사무처장은 “이재용 재판이 29일 대법 전원합의체로 선고가 예정돼 있는데 국민들이 바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면서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서 이재용, 박근혜, 최순실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농성장에 결합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재용 자택은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지 오래된 집처럼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이 부회장이 소유한 자택은 2006년 기준 42억 9천만 원으로 평가돼 당시 국내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연면적 578.42㎥·대지 면적 988.1㎡)으로 알려졌다.

참가자들은 이재용 자택 철문에 ‘경영세습 위한 뇌물’, ‘노조파괴 뇌물증여 분식회계’, 말 세 마리가 뇌물이 아니면 뭔가?‘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철문에 붙이면서 “이재용을 구속하라”라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말 모양의 분장을 한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재용이 박근혜를 통해 정유라에게 준 ‘말 세 마리’가 뇌물이냐 아니냐에 대한 여부가 이번 대법 판결에 쟁점으로 떠오른 탓이다.

세 마리 중 1번 말 분장을 한 참가자는 “2심에서 말의 주인이 아니라고 말해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 자그마치 38억이나 되는 말의 주인이 누구인지 상고심에서 명확히 가려지길 바라면서 서울을 돌아다니겠다”고 말했다.

2번 말 분장을 한 참가자는 “정유라에게 가서 잘 보여 주인 기 좀 살려주려고 열심히 고생해서 갔는데 뇌물이 아니라고 해서 속상하고 억울해서 나왔다”라고 빗대 말했다.

참가자들은 12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 14시 이재용이 박근혜, 최순실과 만난 곳 청와대 앞. 16시 이재용 집무실이 있는 삼성본관에서 기자회견, 선전전 등을 통해 ‘이재용 구속’을 알려나간다. 말 세 마리 분장 퍼포먼스도 함께 대동한다.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이재용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기자회견 후 삼성 리움갤러리 앞으로 이동하여 발언과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이재용 자택 앞에서 주최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상징의식으로 피켓을 붙이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이재용 자택 앞에서 주최하는 기자회견에서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이재용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이재용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삼성 리움갤러리 앞에서 말인형을 입고 정유라와 최순실 가면을 쓴 참여자들이 갤러리 입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이 27일 오전 삼성 리움갤러리 앞에서 발언과 선전전을 이어가는 말머리 탈을 쓴 참여자들이 리움갤러리 입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출처: 노동과세계 강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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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전' 한가운데로...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석] '조국 죽이기'와 '조국 구하기' 사이에서

19.08.28 07:07l최종 업데이트 19.08.28 11:08l

 

 

  27일 오후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 의학전문대학원 간호대학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이 상자를 옮기고 있다. 2019.8.27
▲   27일 오후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 의학전문대학원 간호대학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이 상자를 옮기고 있다. 201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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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전'의 한가운데로, 검찰이 성큼 뛰어들었다.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부장검사 고형곤)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및 가족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장소만 따져봐도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PE, 학교법인 웅동학원 등 전방위다. 수사대상은 딸의 장학금과 입시 특혜 의혹, 조 후보자 가족 소유 사학 문제, 사모펀드 논란 등 광범위하다. 검찰은 수사 주체도 형사1부에서 하루 만에 특수2부로 바꿔 화력을 집중했다.

조 후보자 쪽은 친인척 관계자로부터 압수수색 소식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갑작스런 강제수사 상황에 법무부 인사청문회 준비단도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오전 9시 15분경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오늘 후보자는 출근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어 오전 9시 30분쯤 사무실 앞에 도착한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제 막 출근해서 정확한 상황은 파악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상황이 달라지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를 마치고 승강기를 탑승하고 있다.
▲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를 마치고 승강기를 탑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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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늦은 출근길에 나선 조 후보자는 "검찰의 판단에 대해선 제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검찰 수사를 통해서 모든 의혹이 밝혀지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또 '법무부 장관이 되면 검찰을 지휘하는데, 수사가 공정하겠냐'는 질문에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에 대해 구체적 지휘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즉 '나도 몰랐다'이고, 앞으로도 '모르겠다'는 선언이다. 그는 민정수석으로 임명될 때부터 "(검찰이) 수사를 알아서 하되, 잘못됐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수사 불간섭 원칙'을 밝혀왔다.

이 모든 상황의 긴장감은 조 후보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과 대표적인 검찰개혁론자라는 점에서 나온다. 그는 법대 교수 시절부터 줄곧 정치검찰의 청산을 말해왔고,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으로서 중점을 둔 정책 역시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는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였다. 때문에 검찰의 움직임에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시점이 미묘하다. 하루 전 조 후보자가 검찰개혁안을 발표했고, 여야가 9월 2~3일 청문회 개최에 합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검찰의 숨은 의도를 경계하는 관점은 전혀 다른 두 시각이 공존한다. '조국 죽이기'와 '조국 구하기'. "이번 압수수색이 검찰개혁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는 발언이 전자를 대변하고, "검찰이 수사하는 시늉만 보일 수도 있고, 진정한 수사 의지가 있을 수 없다고도 본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발언이 후자를 대표한다.

검찰 "신속한 증거보전 차원... 다른 사정 고려 없다"

하지만 이런 해석에 검찰은 억울해한다. 압수수색 시점에 대해서도 청문회 직후나 임명 직전, 또는 임명 이후 언제 하든 말이 나올테니, 원칙적으로 신속히 진행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이고, 여러 건의 고발이 제기돼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신속한 증거보전 차원의 압수수색이 필요했고, 다른 사정은 고려한 바 없다"고 했다. 또한 "검찰개혁 이슈와 전혀 상관 없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미 검찰개혁 관련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강력한 명분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다. 역대 총장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총장도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어떻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나갈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그동안 보여왔던 정치검찰의 행태를 청산하라"고 당부했다.

27일 검찰의 조 후보자 관련 움직임은 이러한 흐름에서 볼 수 있다. 조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런 그를 검찰이 정조준했다는 것은 '우리는 더는 정치검찰이 아니다'라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수사를 두고 '검찰이 제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있다.

꽃놀이패

반격이든 방어든 검찰이 유리한 상황이다. 끝까지 판다는 특수부, 그것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들이 맡았으니 어떤 결론이든 한쪽은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조 후보자 관련 의혹이 '혐의 없음'으로 나온다면 후보자는 후보자대로 결백을, 검찰은 검찰대로 정치적 중립성을 얻는다.

검찰의 전리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의 신상, 재산내역 등이 탈탈 털린 법무부 장관이다. 수사는 몰라도 검찰개혁을 지휘해야 하는 인물이 본인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검찰에게 얼마나 수술용 메스를 들 수 있을까. 한 법조계 인사는 이번 수사를 "조 후보자에게 '검찰을 안고 가야 한다'고 각인시키는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수사 결과가 반대라면 조 후보자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했다'는 성취가 남는다. 개혁의 대상으로 몰린 검찰에게는 진정한 반격의 기회가 찾아오는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은 검찰개혁을 원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검찰개혁을 부르짖고 추진하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검찰이 수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누가 웃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집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2019.8.27
▲   윤석열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집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201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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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국주의의 모습

[지구화시대 자본주의 -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4장 현대제국주의 ①
  • 김정호 북경대 박사
  • 승인 2019.08.27 20:31
  • 댓글 0

한국 변혁진영 내 이론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저자 김정호씨의 양해 아래 그 동안 레디앙에 연재해 오던 [지구화시대 자본주의―‘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앞으로 민플러스에서도 공동 연재하기로 하였다. 저자는 이 연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우리는 19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당시의 자본주의에 대해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 같은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간 이 문제를 별반 고려하지 않은 채 행동해 왔다. 하지만 변혁운동의 전진을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떤 단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리라고 본다. 본 글의 연구주제는 간단하다. 즉, 지구화시대인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떤 자본주의인가, 여전히 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 아니면 새로운 국제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하였는가? 이 궁금증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설정된 본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장 신자유주의의 본질 ; 제2장 국제독점자본의 형성과 발전 ; 제3장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 ; 제4장 현대제국주의 ; 제5장 다극화와 신국제질서.

현재 제3장까지 (총 7회) 연재가 끝난 상태이며, 민플러스는 앞으로 연재되는 ‘제4장 현대제국주의’부터 게재할 예정이다. 그전 내용이 궁금한 독자께서는 기존 레디앙에 연재된 저자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아래 링크 참조)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전후 미국중심 현대제국주의체제를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 등에서 독자들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논의자체를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폭넓은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독자들의 공론화의 장으로서 역할을 자임하며, 현대제국주의와 한국사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대한다. [편집자]

[새 장을 시작하며] ‘제국주의’란 말이 요즘 들어 다소 낯설게 들린다. 지구화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개념은 유효할까? 그런데 한편에선 세계 모든 일에 간섭하려고 하는 미국이란 존재는 우리를 난감하게 만든다. 단순히 ‘패권주의’라는 규정만으로 그 복잡한 동기와 행동논리를 다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패권주의’란 무엇인가? 지구화시대에 있어 더욱 많은 문제들이 국제정세와 연계되며, 과거보다도 훨씬 대외적 요소의 내적 규정성은 강해졌다. 이 같은 외부적 힘을 올바르게 이론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 때문에 ‘제국주의’ 개념은 오늘날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된다.

제4장 현대제국주의

현대제국주의는 과거 식민지지배로 상징되었던 구제국주의와 구분되는 의미에서의 제국주의이며,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이후 냉전체제하에서 성립된 이래 오늘날 지구화시대에 이르기까지 존재하고 있는 제국주의를 일컫는다. 우리는 앞서의 논의를 통해 지구화시대인 오늘날 현대제국주의의 성립과 관련된 객관적 조건에 대한 인식에 접근할 수 있는 일정한 기초를 확보하였다고 판단된다. 즉 '생산의 국제성'과 '자본의 일국적성(민족성)' 간의 모순으로 집약되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국제 분업의 더 한 층의 발전에 대한 객관적 요구와, 이를 가로막는 '지역경제 집단화'라는 국제독점 동맹 간의 모순 등으로 구체화되어 표현된다.1)

그러나 이 같은 모순이 존재한다고 하여 정치적 상부구조로서의 제국주의2)가 곧 바로 성립하거나 현실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국가가 모두 제국주의로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듯이, 제국주의 문제에 있어서도 반드시 그 객관적 필연성과 주관적 능력간의 관계가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오늘날에 있어 더욱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국부적이고 지역적인 영향력만 가지고서도 출현할 수 있었던 구제국주의와는 달리, 지구화시대의 현대제국주의는 반드시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슈퍼 제국주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국주의는 아무 국가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전 지구적인 거대한 슈퍼 제국주의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현대제국주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우선 부딪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현대제국주의의 기원과 관련한 문제이다.

독점자본의 상부구조로서의 제국주의는 한편에선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경제관계의 궁극적인 규정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 그 자신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나름의 역사적 진화를 겪는다. 때문에 얼마간 역사적 시기가 근접한 제국주의 간에는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일정한 연계와 계승성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지구화시대의 현대제국주의는 냉전체제하에서 성립된 현대제국주의를 직접적인 발판으로 삼고 있으며 그 계승자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현대제국주의의 출발점은 2차 대전의 종식이며 이를 전후로 하여 구제국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큰 획을 긋지만, 그러나 종전 이후 출현한 현대제국주의에 있어서도 다시 그것의 내부적 발전에 따라 서로 다른 두 형태의 제국주의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은 지구화시대의 현대제국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관건적이다. 비록 과거에나 지금이나 현대제국주의에 있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변화가 없지만,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이라는 동일성 때문에(즉 그것의 현대제국주의 내의 연속적인 지배적 지위 때문에) 그가 대표하는 현대제국주의가 중간에 질적 변화가 발생한 점을 놓치는 것은 이론연구에 있어 실패를 자초하기 쉽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종전 후 냉전체제 하에 존속했던 제국주의는 냉전종식 후의 제국주의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는데, 사실상 현대제국주의의 이 같은 내부변화는 일찍이 1970년대 초반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제국주의는 그 성격 변화에 따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전기는 대체로 ‘냉전체제’에 상응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식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에 해당되며, 후기는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초중반 이후 지금까지에 이르는 시기의 그것을 말한다. 이 같은 현대제국주의의 시기구분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크게 보면 대체로 그 경제적 하부토대인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내부적 성격변화에 또한 조응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국독자 역시도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현대제국주의 내에 있어 후기 형식은 당연히 전기의 현대제국주의를 모태로 한다. 때문에 그 전기 형식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지구화시대의 제국주의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담고 있다. 필자는 전기의 그것을 '동맹적 제국주의'로 그리고 후기의 그것을 '단일패권적 제국주의'로 부르고자 한다.

1. 냉전체제하의 '동맹적 제국주의'

1) 구제국주의와 현대제국주의

현대제국주의의 초기 형태가 그 성격에 있어 '동맹적'3)이었으며 또 그것이 왜 그 같은 형태로 밖에 출범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구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성격상의 차이, 그리고 그에 따라 제국주의가 갖추어야 할 주체조건 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의 직접적인 점령여부는 구제국주의와 현대제국주의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식이 된다. 구제국주의는 식민지에 대한 강점을 전제로 하는 동시에, 정복과 군사력 그리고 행정적 통치에 의존해서 그것을 유지하였다. 이에 비해 현대제국주의가 의지하는 것은 주요하게는 국경과 지역을 초월하는 일종의 '규범' 혹은 '규칙'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광범한 식민지 민중들의 자각과 전쟁 당사국인 구식민제국들의 쇠락 그리고 세계사회주의체제의 존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직접적 점령과 같은 강압적인 식민통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새롭게 나타난 것이 '규범'과 '규칙'에 의한 통치방식인데, 이는 현대제국주의에 강압적인 인상 대신 일정 합법적 외투를 걸칠 수 있게 해주었다.

현대제국주의는 이렇듯 일종의 특정한 규범적 국제 질서이자 기제라고 할 수 있으며, 또 이 때문에 그것은 처음부터 세계적 규모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자는 상호 의존적이다. 세계적 범위에서 통용되지 않으면 감히 국제 질서라 부를 수 없으며, 또 범세계적 차원에서 관철되기 위해서는 형식상으로나마 보편적 규범에 입각한 국제 질서이어야만 한다. 이에 비하면 전통적 제국주의는 일종의 국부적이며 지역적인 존재에 불과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대영제국이 강점한 식민지가 비록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세 개 대륙에 걸쳐 있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렸지만, 그러나 그러한 영국도 모든 식민지들을 점령하지는 못했으며 더더구나 지구적 통치를 구축하는 차원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따라서 구제국주의국가와 현대 제국주의국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구제국주의국가의 경우 침략당하는 국가에 비해 경제와 기술 그리고 군사 방면의 실력이 일정한 우위를 갖추기만 하여도 식민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포르투칼이나 스페인과 같은 오래된 식민주의국가들은 당시 대면했던 상대가 대부분 아직 노예제나 씨족사회의 단계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단지 신식 항해기술을 장악하고 조총이나 대포로 무장한 얼마 되지 않는 모험가들 대오만을 거느리고서도 자신들보다 인구나 면적 면에서 수배 내지 수십 배에 달하는 식민지를 점령통치하는 일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불가능하다. 현대제국주의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이미 독립을 획득하여 주권을 지닌 국가들이며, 또한 일부 지역의 소수 몇 개 국가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다. 때문에 현대제국주의가 하나의 세계질서와 세계패권을 건립하고 유지하려면 강력한 군사‧경제‧과학기술 방면의 하드파워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상당한 정치‧문화‧사상‧이데올로기 방면의 소프트파워 또한 필요하다. 이 같은 실력과 영향력을 갖출 때만이 각종 국제법과 국제규칙을 제정하고 또 그것을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 형상적 비유를 빌자면 현대 제국주의자는 '지구 사령관임'에 비해, 전통적 제국주의자는 '지방 성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4)

그런데 2차 대전이 막 종식 되었을 무렵만 하더라도 기존의 오래된 제국주의국가들을 포함해서 이 같은 현대의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국가의 자격을 갖춘 나라는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미국조차도 당시에는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훨씬 미달하였다. 종전 직후의 미국은 비록 경제와 군사 면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였지만, 그러나 미국의 영향력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구적'인 것이기 보다는 '국부적'인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미국은 독립 후 줄곧 국내 문제에 치우쳐 왔으며 해외 식민지 개발에 있어서는 다른 서구 열강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었는데, 그 같은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비록 2차 대전 기간 중 연합국진영에 참여하여 그 지도적 국가로서의 위신을 크게 넓혔다고는 하나, 객관적으로 볼 때 종전 직후 미국의 경제‧정치‧군사 면에서의 영향력은 자신이 대전기간 중 직접 군대를 주둔시키거나 점령한 서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일부 국가와 지역의 범위를 크게 상회한 것은 아니었다.5) 이 같은 조건을 감안 할 경우 종전 직 후 전 세계적 범위에서의 규칙 제정권을 요하는 현대제국주의의의 성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몇 개 유력한 국가들의 협력이 요구되었으며, 이에 따라 현대제국주의의 초기형태는 '동맹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신흥 강대국인 미국은 오직 서유럽의 전통적인 구제국주의국가들 (그중 특히 영국)과의 동맹을 통해서만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종전 후 미국과 몇몇 서유럽국가들이 결합한 '동맹적 제국주의'는 우선 국제연합(UN)의 설립과 'IMF-GATT 체제'의 구축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이들 기구 출범이 갖는 의의는 초기 참여국의 규모가 가졌던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이들에 의해 제정된 규칙들은 종전 후 정치와 경제면에서 국제질서를 규정하였으며, 이후 회원국들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이들 기구는 명실상부한 전 지구적인 질서와 규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국제 정치조직으로서의 국제연합은 연합국진영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천명한 '반파시스트 투쟁정신'의 계승을 자신의 표면상의 설립취지로 삼았다. 이 때문에 국제연합의 이념에는 전 세계의 항구적 평화에 대한 옹호, 회원국 간의 상호평등과 존중 및 공존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에 비해 국제 경제조직인 IMF와 GATT가 설립목표로 삼았던 것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세계무역질서의 수립이다. 비록 위의 국제조직들은 정치면에서 거부권을 갖는 안보리 5개국 상임이사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 경제면에서 일국화폐인 미국달러를 세계기축통화로 삼는 등의 일정한 형식상의 불평등을 포함하였지만, 그러나 우리가 너무 이상에만 치우쳐서 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내용만 가지고서 '패권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당시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세계 각국이 수용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논란이 많은 'IMF 통화체제'라 할지라도, 당시 달러 자신은 국제협약에 의하여 '1온스=35달러'의 가치로 황금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또 이를 지키기 위한 미국 국내법의 구속을 받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었다. 예컨대 미국의 국내 화폐(즉 유통 중인 미연방준비이사회의 지폐) 가치의 25%는 법률 상 황금에 의해 지지되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같은 국제통화제도는 '준 금본위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규정이 끝까지 제대로 지켜진다면, 이 제도의 형식상의 '공정성'은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형식상으로나마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규범이 마련되었는데, 이는 현대제국주의가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의 일부가 갖추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것만 가지고서는 사실상 형식상의 '공정경쟁'을 위한 규칙을 제공한 것일 뿐 아직 '제국주의체제'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 같은 규범과 규칙이 실제 어떻게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기능하게 되었는지, 또 국제적으로 이러한 질서구축을 위해 일부 서유럽 유력 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미국이 어떻게 그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킴으로써 최종적으로는 '패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여기서 일국 내 법률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규칙'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더 관건적일 때가 많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결국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존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여야 한다. 그중 경제력은 궁극적으로는 한 국가의 패권실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지만, 단기적으로만 보자면 보다 직접적으로는 정치군사적 요인이 결정적인 경우가 많다. 미국은 당시 경제력과 군사력 이 두 가지 측면의 우세를 모두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우세는 모두 전쟁 종식 직후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일시적이며 결코 항구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후 전후 복구과정을 통해 서유럽의 동맹국들이 경제부흥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들은 경제방면에 있어 얼마든지 다시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또 만약 미국의 경제적 우위가 지속될 수 없게 된다면, 그 군사적 우위 또한 오래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종전 후 국제질서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해에 맞게끔 방향 지워야 할 동기를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 서유럽 국가들이 소련을 비롯한 새롭게 출현한 사회주의권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이를 위한 좋은 계기를 제공하였다. 미국이 이를 위해 채택한 전략이 동서 간 '냉전체제'의 의도적인 구축이었는데, 이 같은 냉전체제를 빌려 미국은 종전 후 경제와 군사방면에 있어 자신의 일시적 우위를 보다 항구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6) 그리고 이 과정은 종전 후 자본주의 국제질서가 초기 다소 모호하고 때론 '이상주의적'이기까지 했던 색채를 벗어 던지고 점차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하였다.7) 여기서 현대 제국주의의 출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냉전체제의 성격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하에서 그것의 의의·성격·형성과정 등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2) 냉전체제와 '동맹적 제국주의'의 수립

미국에 있어 냉전체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의도하는 국제질서 구축에 있어 필수적인 '전 지구적 배치를 갖는 군사력'을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종전 직후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아직 서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일부 지역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전 지구적 배치를 갖는 군사력' 창출이라는 이 문제가 해결될 때라야만 현대제국주의는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주의권이 배제된 자본주의진영만의 단독적 시장을 성립시키는데 있어서도 그러하며, 또 나중에 명백해지듯 미국의 달러패권의 유지의 측면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후자의 경우 이는 순수한 경제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정치·군사력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또 이 같은 달러패권의 유지는 미국이 경제패권을 지속할 수 있는 관건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냉전체제는 어떻게 미국의 이 같은 군사력 창출이 가능토록 도왔을까?

냉전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있다. 그런데 당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국제문제의 가장 주요한 이슈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종전 후 전쟁으로 파괴된 기존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서유럽 각국 내의 계급투쟁이 격화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본래 일국적 상황으로 전개되는 계급투쟁이 국제적 차원에서 다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양대 진영 간의 대립으로 확대 발전하는 데에는 많은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예컨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 국가독점자본주의 간 국제적 대단결의 성공, 당시 서유럽의 가장 강력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산당의 전후 국제정세에 대한 전략적 판단 오류와 타협주의노선, 소련의 경직된 '양대 진영' 이론과 패권적 야심 등등이 그것이다. 어떻든 이 같은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동서 양대 진영의 분화와 대립은, 서유럽 각국의 노동계급이 전쟁이 가져온 폐허와 생활고 속에서 기존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계급투쟁의 수위가 임계점에 접근함에 따라, 그리고 미국과 같은 패권적 야심을 가진 국가의 전략적 의도가 첨가됨에 따라, 어렵지 않게 한 단계 수위를 높인 전면적인 군사 대결적 성격으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과 서유럽 각국의 통치계급은 국내의 불만을 국제적인 긴장조성을 통해 상대적으로 완화시키고 대중의 관심을 외부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처음 양대 진영이 성립하는데 있어 원인을 제공하였던 이데올로기적 차이와 대립은, 점차 본격적으로 군사집단화한 양대 진영에 대해 다시 그 존재에 대한 나름의 명분과 합법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리하여 냉전체제는 먼저 각국의 일국 내 계급투쟁을 국제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수렴시킨 후, 다시 이를 군사집단화한 양대 진영 간의 대립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통해 성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냉전체제의 형성은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적 제국주의'가 성립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으로 작용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 동맹이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면서 군사적 성격을 띠도록 만들었다.

냉전체제의 구축을 통해 미국은 현대제국주의의 성립에 필수적인 지구적 범위에서의 군사력 배치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이로부터 국제관계의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세계적 범위로 냉전체제가 확산되어가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냉전은 처음 1945~49년 기간에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소가 유럽대륙에서 각자 비교적 안정적인 전략적 구조를 건립한 후인 1950~60년대에 점차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및 세계 각지로 확대되었다.8)이러한 냉전체제의 세계적 확장에 수반하여 미국은 유럽과 지중해 그리고 아시아와 근동지역에서 필요한 군사기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또 자신이 주도하는 각종 지역안보동맹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냉전체제 구축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미국과 영국 간의 동맹관계이다. 미국은 당시 정치상으로 영국의 지지가 대단히 중요하였다. 영국의 지지가 있어야만 유럽에서의 군사적 주둔을 계속할 수 있고, 또 반드시 유럽을 '발판'으로 하여야만 자신의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9) 이 때문에 종전 직후 미국이 현대 제국주의국가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절차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국제정치 무대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과 상호이익의 기초위에서 세계분할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이루는 일이었다. 이 점에 있어 영국은 당시 국민당 장개석 정권의 통치하에 있던 중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권리를 인정해 주었으며, 그 대가로 미국은 영국의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있어서의 정책과 행동을 지지하는 식의 타협이 이루어졌다.10)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지중해의 세력범위를 분할하는데 있어서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지중해는 전통적으로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 열강의 세력범위에 속하였는데, 미국의 독점자본은 근동지역(터키를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 일대)에 진입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 경우 특히 영국자본은 가장 크고 완강한 경쟁 상대가 되었으며, 만약 미국 해군이 지중해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대영제국의 이익과 장차 크게 충돌하게 될 것이 우려되었다.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배경과 관련하여 당시 독일 자본의 근동지역 진출을 둘러싸고 이 지역에 기득권을 갖고 있던 영국 자본과 대립이 발생했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때마침 이러한 곤란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는데, 이하에서 소개하는 1947년2월에 발생한 그리스사태가 바로 그것이다.11)

그리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앞서 일찍이 1944년10월 해방을 맞이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나치 점령 치하에서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공산당이 거의 전역을 석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어서 옛 종주국인 영국의 군대가 진주하면서 자신의 대리정권을 내세웠으며, 이에 따라 내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격화하면서 마침내 1946년 전면적인 민중봉기가 발생하였다. 이듬해 봄 영국은 4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고 또 전쟁 피해로 여의치 않은 자국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선 거액인 4.6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였지만 여전히 사태의 발전을 통제하지는 못하였다. 영국정부는 이로써 국내적으로 커다란 재정과 정치 양면의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할 수 없이 미국에 원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1947년2월21일 영국정부는 마침내 정식으로 미국정부에 각서를 보내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3월31일 이후 그리스에 경제와 군사원조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이 이 중임을 맡아줄 것을 희망한다는 공식 의사를 표명하였다. 당연히 미국이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할 리가 없다. 미국정부는 이것은 영국이 '세계의 영도력'을 자신에게 건네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간주하였으며, 기꺼이 이 역사적 임무를 감수하겠다고 선뜻 회답하였다.12) 미국정부는 장차 이 사태에 대한 개입으로 부터 얻게 될 다음 세 가지 전략적 이익에 주목하였다. 첫째, 대영제국의 기반을 접수하여 자신의 세력범위를 확대하고 그 세력을 중동과 지중해까지 넓힐 수 있다. 이는 미국이 꿈에도 그리워하던 숙원이었다. 둘째, 자신의 세력을 소련의 변경지대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유럽의 허약한 복부(腹部)인 중근동지역에 있어 소련에 대한 '억제정책'을 펼 수 있는 전초기지를 세울 수 있다. 셋째, 원조의 제공자요 자유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공산주의 확장에 대항하는 중임을 떠맡을 수 있는 자유세계 지도자로서의 형상을 수립할 수 있다.

1947년은 잘 알려지다시피 '마셜플랜'이 발표되는 등 유럽에서 냉전체제가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중요한 한 해이다. 우리는 이 같은 해의 년 초에 발생한 그리스사태의 새로운 진전과 그 이후 동서 간 냉전적 대립을 촉진시키는 일련의 사태발전이 긴밀한 인과 관계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 시작된 냉전을 동아시아에까지 확대하는데 성공하였다. 미국의 군사력이 비교적 일찍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진출하였던데 반해 중동지역에의 진출은 약간 늦어졌다. 이 역시도 주요하게는 영국이 여전히 2차 대전 이후에도 자신의 식민지였던 중동 각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실력의 지속적인 상승에 따라 영국은 점차 중동지역에서도 철수하게 되는데,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 이후 영국은 완전히 이 지역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은 영국군이 사용하던 일련의 군사시설을 포함하여 영국의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접수하게 된다.13) 1968년이 되면 미국은 월남전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대한 간섭이 그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 월남전에 참여한 54만 명의 미군을 포함하여 100여만 명의 미군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 및 인근 도서에 주둔하였으며, 30만 명의 미군은 본국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군함에서 생활하였다. 미국은 이 무렵 전 세계에 2000여 개의 군사기지를 설치하였으며, 40여개 국가와 지역에 대한 정식 보호 의무를 떠맡았다.14)

이상의 종전 후 미국이 주도하는 현대제국주의가 건설되는 과정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전후에 미국의 경제와 군사력은 서유럽제국과 소련 등 다른 경쟁국들에 대해 상당한 우세를 점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현대제국주의가 필요로 하는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패권구축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할 때 서유럽이 지니고 있던 경제‧정치‧정신상의 영향력과 군사상의 잠재력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는 미국의 지구적 전략을 실현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였다. 미국의 독점자본과 지배집단은 종전 후 서유럽경제의 침체와 사회동란 그리고 서유럽국가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냉전 구도를 설계하고 추진하였으며 최종적으로 그것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서유럽제국과의 정치와 경제 및 군사방면을 포괄하는 동맹관계를 결성하고 이에 기초한 새로운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냉전체제를 배경으로 성립되고 존속한 현대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동맹적 제국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동맹적 제국주의'는 이후 미국이 지역차원의 강대국에서 진정한 세계적 패권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덧붙이자면, 이렇게 성립된 '동맹적 제국주의'는 내부관계에 있어서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냉전시기 내내 그 구성주체 간의 관계에 있어 '동맹'적 성격의 틀을 끝까지 유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동맹' 성격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비록 이들 간의 관계에 있어 미국의 리더십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종적인 복종관계 보다는 횡적인 평등관계에 가깝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형식에 있어 기본적으로 동등한 '파트너 관계'임이 공식적으로 천명되었으며,15) 내용적으로도 비록 미국이 간혹 패권적 행동을 보일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원래의 파트너 관계로 복귀함으로써 그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전 직후의 제국주의가 그 내부관계에 있어 기본적으로 '동맹'적 성격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냉전체제 자체의 성격과 구속력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보여 진다. 미국은 종전 후 자신이 패권국가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냉전체제'의 구축을 구상하고 적극 실천하였는데, 이러한 냉전적 국제질서는 이후 반대로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이 상호 장기간 '동맹'적 성격을 유지하도록 강제하였다.

첫째, 냉전체제는 동서진영 간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대립'을 기본으로 삼는다. 이 경우 유럽은 근대문명의 출발지로서, 인류문명에 대한 기여도나 역사의 유구함 그리고 학문적 전통과 이론적 깊이에 있어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다른 한편,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강고한 독일파시즘을 패망시키는데 있어 결정적 기여를 한 소련과 그 제도인 사회주의가 세계 인민으로부터 높은 위신과 기대를 모으고 있었던 사정도 고려하여야만 하였다. 때문에 미국은 냉전체제 하에서 계속해서 이념적 우세를 점하기 위해선 반드시 서유럽의 정신적·도덕적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둘째, 냉전체제가 요구하는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의 측면에서 볼 때도 그러하였다. 종전 후 미국이 아무리 초군사강국이고 막강한 공업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당시 세계 최강의 육군병력을 보유한 소련과 그 사회주의 동맹국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미국의 핵 독점은 1949년 소련이 원자탄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일찍이 무너졌으며, 1960년대 중 후반에 이르러선 미소양국의 핵전력은 비슷한 수준으로 전반적인 균형에 이르게 되었다. 또 1957년과 1959년에 소련이 미국보다 한발 앞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과 유인 우주선을 각각 지구궤도에 쏘아 올린 데서 볼 수 있듯이, 과학기술면에 있어서도 소련은 첨단 강국에 속했으며, 그 경제력 역시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던 데서 볼 수 있듯이 만만치 않았다. 냉전 후기인 1980년대 초에는 소련 경제는 한때 미국 GDP의 2/3에 이를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렇듯 소련 하나만 가지고서도 미국은 상대하기가 벅찼으며, 여기에 사회주의권 전체를 적으로 삼아야 하는 냉전적 대결구도를 전 지구적 범위에서 형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은 반드시 서유럽과 일본의 힘을 빌려야만 하였다. 아래 표4-1은 미국이 1970년대 중반 들어 군사비지출 면에서 소련에 오히려 뒤처진 상황을 보여주며, 표4-2는 나토의 집단적 힘을 빌려 비로소 소련과 그 동맹국에 대항할 수 있었던 상황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에 자신과 동등한 동맹국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의 요인 때문에 냉전기간 현대제국주의의 내부관계는 기본적으로 '동맹'적 성격이 유지되었다. 물론 이러한 동맹적 관계가 순탄하게 저절로 실현된 것은 아니다. 사적영역의 독점형태인 카르텔과 마찬가지로, 현대제국주의 내부 주체 간의 동맹 역시도 상호 역관계의 변화, 미소관계, 제3세계권과의 관계 등 주변 조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는 동요와 갈등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현대제국주의 내부에서 '동맹관계'라는 기본적 성격의 규정은, 상호간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도달한 일종의 종합적 '균형'의 결과이자 표현이라 할 수 있다.18) 이리하여 이상 열거한 요인 중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자연적으로 소실되거나 인위적으로 해결 짓게 된 것들이 생겨나게 됨에 따라, 현대제국주의의 성격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본문주석>

1) 만약 어떤 역사적 시기에 있어 제국주의가 등장하는 것이 나름의 현실적 의의를 갖는다면, 오늘날의 그것은 분명 생산의 국제화와 관련된 지구화의 추진과 일정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차원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예컨대 오늘날 '지구적 공급사슬'과 같은 국제 분업의 발전추세와 이를 가로막는 '지역경제 집단화'와 같은 국제독점 동맹 간의 모순은 결코 경제적 범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현대 제국주의'라는 현실 정치역량이 객관적 요구로 떠오르게 되는 필연성이 여기서 제기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기본모순(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사적점유 간의 모순)은 지구화시대인 오늘날에 있어선 주요하게는 '생산의 국제성'과 '자본의 민족성' 간의 모순형태로 집약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상부구조로서의 현대제국주의와 관련한 문제는 이 같은 자본의 '국적성' 내지 '민족성'과 관련된 모순이 가장 고도하고 집약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본 글에서 제국주의 개념은 이처럼 주요하게는 정치적 상부구조 측면에서 파악된다. 이 같은 규정은 엄밀한 것은 아니며 편의상의 고려에서이다. 그것은 레닌이 말한 “금융자본의 기초위에서 성장한 비(非)경제적 상부구조, 즉 금융자본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라는 규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레닌전집>(제27권),1990년,인민출판사, p397. 레닌은 원래 '제국주의'를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의 경제와 정치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이 점은 레닌의 제국주의에 관한 '5가지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즉 ➀독점 형성➁금융자본의 형성➂자본수출➃경제적 세계분할➄영토분할이 그것이다. 그중 앞의 네 가지는 경제와 관련되며, 마지막 다섯 번째는 정치와 관련된다.

3) 여기서 '동맹적'이라는 개념은 현대제국주의를 형성하는 주체(서구 선진 자본주의국가들) 내부에 있어서의 상호관계를 주로 지칭하며, 그것의 외부적 표현으로서의 객관적 국제질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4) 이상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성격규정 및 관련 내용은 [中]王金存,2008년,《帝国主义历史的终结―当代帝国主义的形成和发展趋势》,pp.101-104참조.

5) <강대국의 흥망성쇠>의 저자 폴 카네기는 2차 대전 종전 무렵의 미국 군사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러나 나중의 분석이 지적하는 것과 같이, 미국의 군사역량은 실질적으로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강대하지는 않았으며 (미국은 단지 몇 개의 원자탄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또한 원자탄 사용이 일으킬 커다란 정치적 결과를 고려하여야만 했다), 미국은 또한 그 군사력을 이용해서 소련과 같은 멀리 떨어져 있고 의심으로 가득 차있는 수수께끼 같은 나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려웠다." [英]保罗·肯尼迪,《大国的兴衰》(下卷),p92. 1945년에 미국은 유럽에 69개 사단과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26개 사단을 주둔하고 있었으며, 미국 본토에는 한개 사단도 없었다. 위의 책,p93.

6) 카터 정부 하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는 그의 대표적 저서인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오늘날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인 소위 '미국체계'에 대해 이 같은 "미국체계의 대다수 내용은 냉전 기간에 출현"하였다고 서술하였다. [美]兹比格纽·布热津斯基,《大棋局―美国的首要地位及其地缘战略》,pp24-25.

7) 미국 권력층 내에서도 종전 후 수립될 국제질서와 관련하여 상당한 노선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전쟁 중 수립한 소련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일명 '비둘기파'가 존재하였으며, 소련을 배제하고 서유럽만으로 소위 자유진영을 구축하고 소련에 대해선 더 이상 공산주의가 확장되지 못하도록 봉쇄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매파' 진영이 존재하였다. 비둘기파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3기 집권 시 부통령을 역임한 당시 상무부장관이었던 헨리 월라스를 대표적 인물로 하였는데 대체로 민주당내 좌파세력이 집결하였다. 매파는 당시 부통령으로서 루스벨트의 후임이 된 트루만과 국무부장관인 벨라스를 대표적 인물로 하였으며, 민주당내 우파와 공화당 연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두 노선의 대립은 1946년에 들어서면서 대충 우세가 판가름 났다. 결국 후자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1947년부터 이후 '트루만 독트린'과 '마샬 플랜' 등으로 이어지는 대 소련 봉쇄와 대결정책이 본격화 되었다. [中]刘金质,2003년, 《冷战史》(上卷),pp98-99 참조

8) 냉전은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발생과 확대 그리고 종식의 역사 과정을 밟았다. 필자가 참고한 [中]刘金质,2003년,《冷战史》(上·中·下卷) ,世界知识出版社는 46년에 이르는 냉전사를 이하 5 단계로 나누었는데 참고할 만하다. 즉 냉전의 개시(1945-1949), 냉전의 확대(1950-1962), 냉전의 완화(1963-1979), 냉전의 재현(1980-1984), 냉전의 종식(1985-1991)이 그것이다.

9)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는 유럽이 미국 패권전략에 있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미국의 서부 파트너 (서유럽을 지칭함-주)가 미국을 그 주변지역의 근거지로부터 쫓아낸다면, 미국은 자연스럽게 유라시아 대륙의 체스 판에서의 경쟁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럽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유라시아 대륙의 지역정치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교두보이다. ……미일 관계와는 다르게, 대서양 동맹은 유라시아 대륙에 있어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과 군사력을 직접적으로 확립시켰다. ……유럽의 어떠한 확대도 모두 자연스럽게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력 범위의 확대로 된다. 반대로, 만약 범 대서양 간의 긴밀한 관계가 없으면, 미국의 유라시아 대륙의 주도적 지위는 곧 존재하지 않게 된다." 《大棋局―美国的首要地位及其地缘战略》,p30; pp47-49.

10) 미영 양국 간의 타협 내용은 위 《冷战史》上卷, pp98-99의 내용 참조.

11) 이하 그리스사태와 관련한 내용은 위의 책, pp107-110 참조.

12) 《冷战史》上卷, pp109-110. 그 당시 트루먼정부의 고위관리였던 에치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역사의 전환점이 이미 이르렀으며, 미국은 필히 용감히 나서서 몰락 중인 영국을 대신해서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세계창조의 현장기―나의 국무부에서의 세월>,뉴욕1969년,p220. 위의 책,p110.

13) 그러나 미국이 진정으로 중동에 군사기지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영향력 확장에 나서게 되는 것은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침입한 후의 일이다.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 판>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냉전의 최후 단계에 세 번째 방위 '전선' 즉 남부전선이 유라시아 대륙의 지도상에 출현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미국의 두 측면에서의 반응을 일으켰다. 첫째는 미국이 직접 아프간 민족항쟁을 원조해서 소련을 곤궁에 빠지게 하였다. 둘째는, 페르시아 만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건설해서 위협역량으로 삼은 것이다." 《大棋局―美国的首要地位及其地缘战略》,p6. 미국과 중동 각국의 군사관계 및 군사기지는 이후 냉전이 종식된 직후 비교적 큰 변화를 겪었다. 이때부터 미국 군사시설과 군대가 더 많은 중동국가에 진입하였으며, 이후의 10년간 미국은 중동의 군사기지를 통해 이라크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유지하였다. 이 밖에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나토의 '동쪽 확대'를 추진하였는데, 지금까지 이미 동유럽 몇 개 국가에 군사기지의 효능을 갖춘 시설들을 계속해서 설립하였다. '9.11'테러습격 이후 미국은 반테러전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에 진출하여 반테러전쟁의 필요라는 명의를 빌려 군사기지를 설립하였다. [中]樊吉社 张帆 共著,《美国军事―冷战后的战略调整》,p70.

14) [中]刘绪贻 杨生茂 总主编,2008년, 《美国通史》(第6卷),p388.

15)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소위 '웅대한 계획'이라 이름붙인 유럽정책에 관한 중요한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유럽을 동반자(파트너)로 간주하며, 그들과 완전히 평등한 기초위에서 함께 자유국가 공동체를 건설하고 수호하는 모든 중대하고 지난한 임무에 종사할 수 있다. " 《美国通史》(第6卷), p274.

16) 《世界经济统计简编1982》,p70에서 재인용.

17) 《世界经济统计简编1982》,p71에서 재인용.

18) 이 같은 상호간의 갈등과 투쟁은, 미국과 서유럽과의 관계를 실례로 들 경우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종전 직후에서 1940년대 말까지는 서유럽이 미국에 대해 경제와 군사상에 있어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1949년4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정식 출범하였는데, 미국은 그 지휘권의 장악을 통해 서유럽을 정치와 군사상으로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 서유럽 국가들의 전쟁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경제부흥이 시작되면서 양자 관계는 조정을 받는다. 그 첫 번째 상징적 사건이 1953년2월 서유럽 6개국의 '유럽석탄강철공동체'의 설립이었다. 이는 프랑스와 서독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국가들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초기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이후 1958년1월 6개국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 건설에 대한 조약 (로마조약)이 성사됨으로써 더욱 진전되게 된다. 이 같은 단합을 바탕으로195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은 미국에 대해 자신들의 실력 향상에 걸 맞는 정치·경제·군사상의 합당한 지위를 요구하게 되었다. 1960년대 들면서 이 같은 양자관계의 조정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는데, 그 힘의 균형은 후반으로 갈수록 미국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한편에서, 미국은 그간 계속된 군비지출 특히 월남전의 확전으로 막대한 국지수지 적자가 발생함으로써 날로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졌다. 다른 한편, 강력한 민족주의자인 프랑스의 드골이 1958년 정권을 잡은 이후 그 독자노선을 노골적으로 천명하면서, 미국의 주도권에 정면 도전하였다. 그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모든 문제에 있어 미국과 나란히 동등한 지위를 갖기를 요구하였으며,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와 영국수상에게 비망록을 보내 미·영·불 3국으로 구성되는 '안전조직'을 결성하여 지구적인 정치와 전략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드골은 심지어는 미국을 현대문명의 어머니인 유럽의 '자식'이라고까지 불렀으며, 유럽이 마땅히 인류 진보에 있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 유럽이 미국의 국제수지 균형을 유지토록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드골의 이러한 독립적인 자주정책의 영향 하에서, 그간 미국 혼자서 조종해오던 나토조직은 크게 쇠약해졌다. 미국의 이러한 곤궁은 1970년대 초 닉슨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야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미국은 우선 서유럽과 일본을 압박하여 달러의 금 불태환과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관철시켰는데, 이러한 국제통화체제의 변화는 날로 누적되던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서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한 때 상당히 악화되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1973년 중동전쟁 이후 OPEC의 석유가격 인상을 계기로 화해의 실마리가 찾아졌다. 즉 제3세계권의 새로운 도전에 맞선 공동대처의 필요성에 공감하였던 것이다. 이후 카터 대통령시기 미국과 서유럽 동맹국 간의 일정한 관계개선이 이루어 졌으며,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1980년대에 양자관계에 있어 더욱 적극적인 진전이 나타났다. 미국은 이 시기 소련과의 신 냉전을 획책하였는데, 이 과정을 통해 서유럽동맹국들과의 공동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이전의 약화된 주도권을 상당부분 만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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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시작하며 ① '신자유주의 본질' http://www.redian.org/archive/133369
신자유주의의 본질, 이론·역사와 그 현대적 기원 http://www.redian.org/archive/133718
신자유주의와 후기 국독자 http://www.redian.org/archive/133878
국제독점자본과 국제분업, 지구적 경제일체화의 기초 http://www.redian.org/archive/13423
1990년 이후의 국제독점자본 http://www.redian.org/archive/134498
금융업자본의 인수합병 http://www.redian.org/archive/135010
국제 외환·채권·주식시장의 형성 배경 http://www.redian.org/archive/135325

링크모음 : 후기국독자론1-3장 https://drive.google.com/file/d/1NfXFHO2n1e-gzUy_AUTZgdrGFOQXMnXa/view?usp=sharing

 

김정호 북경대 박사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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