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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성주·김천 시민들, “사드 반대” 첫 공동집회

원불교·성주·김천 시민들, “사드 반대” 첫 공동집회
 
 
 
편집국 
기사입력: 2016/10/12 [09: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원불교·성주·김천 시민들이 서울 보신각 앞에서 “사드 반대” 첫 공동집회를 개최했다. (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 편집국

 

11일 오후 2시 원불교 성주성지 수호 비상대책위원회와 사드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는 서울 보신각에서 ‘One – Peace 종교·시민 평화결사를 개최했다원불교 교인 3000여명성주·김천 시민 700여명이 보신각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집회참가자들은 사드 말고 평화”, “사드는 미국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사드반대라는 공동의 이해를 가진 원불교인들과 경북 성주·김천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 집회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집회참가자들은 앞으로 45천 성주와 14만 김천, 130만 원불교가 힘을 합쳐 사드철회까지 함께하자며 강한 연대의식을 보이기도 했다.

 

▲ 집회 참가자들이 "사드철회"와 "성지수호"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 편집국

 

 

▲ 집회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 편집국

 

한편 성주와 김천 주민들은 본 집회에 앞서 오후 1시 광화문 KT빌딩(미 대사관)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드배치 철회 요구에 대한 미국 백악관의 답변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다미국 백악관의 청원 사이트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은 10만명이 넘게 서명한 '사드 배치 철회 청원'에 대해 사드배치 철회 생각이 없다고 공식 답변한 바 있다.

 

 

▲ 성주와 김천 시민들이 본 집회에 앞서 사드배치를 강행하는 미국에 항의하는 집회를 미 대사관 인근에서 열고있다.  (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편집국

 

▲ 성주와 김천 시민들이 본 집회에 앞서 사드배치를 강행하는 미국에 항의하는 집회를 미 대사관 인근에서 열고있다. (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 편집국

 

향후 원불교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진행하는 국방부 앞 집회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며성주 투쟁위와 김천 대책위도 매일 저녁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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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진료기록 두 번의 압수수색, 검찰의 의도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10/12 12:04
  • 수정일
    2016/10/12 12: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단독]백남기 진료기록 두 번의 압수수색, 검찰의 의도는?

 
최명규, 남소연 기자
발행 2016-10-11 23:35:12
수정 2016-10-11 23:46:20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숨지기 전인 지난 9월 6일 검찰이 서울대병원을 압수수색했던 사실이 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정작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은 압수수색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다. 검찰이 9월 6일 압수수색(1차)을 실시한 뒤, 백남기 농민이 숨진 다음 날인 9월 26일 또 한 번의 압수수색(2차)을 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압수수색은 이미 공개된 사실이다.

이미 처음 압수수색에서 백남기 농민 진료와 관련된 모든 의무기록을 확보했기 때문에 2차 압수수색은 불필요했다. 하지만 검찰은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왜 그랬을까?

검찰의 의도는 두 번의 압수수색검증영장에 기재된 '피의자'와 '범죄사실'에서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이 11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9월 6일자 1차 압수수색 영장에서 피의자는 ▲강신명 경찰청장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신윤근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장 ▲배찬희 서울경찰청 제2기동단 경비계장 ▲성명불상의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 중대장 ▲한석진 충남경찰청 제1기동대 살수요원 ▲최윤석 충남경찰청 살수요원(이상 사건 발생 당시 기준 직위)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범죄사실로는 '살인미수'와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 두 가지가 명시됐다. 이는 강신명 전 청장 등을 상대로 한 백남기 농민 가족들의 고소·고발 사건 관련 수사를 위한 영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제출받은 9월 26일자 2차 압수수색 영장에서 피의자는 '성명불상'으로, 범죄사실은 '기타의죄'로 바뀌었다. 9월 6일자, 9월 26일자 압수수색 영장은 모두 같은 검사가 청구했음에도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대포를 직사한 경찰의 책임 대신 '불특정 다수'가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끼친 인과관계를 수사할 수 있게 된다. 일각의 어이없는 극우적 주장이라고 치부했던 이른바 '빨간 우의' 등도 수사 선상에 올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국가 책임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겠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전 사법위원장인 이재화 변호사는 11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처음 압수수색을 할 때는 (영장에서) 피의자를 특정했는데, 두 번째 영장에서는 이를 철회하고 원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고 죄명 자체도 특정을 안 했다"며 "기존 사건 수사하고는 다른 증거를 확보해서 다른 방향으로 틀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 출신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더민주) 의원도 "수사의 방향이 바뀐 것 같다. 9월 26일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에는 가해자 및 사망 원인을 완전히 열어 놓은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서 (검찰은) 물대포가 아닌 다른 원인에 착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빨간 우의' 관련된 고소고발장이 접수됐고 새누리당도 '빨간 우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며 "'빨간 우의'를 염두에 두고 그쪽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가 책임을 면하려는 수사의 방향 및 의도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백남기 농민에게 계속 물대포를 쏘고 있다.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백남기 농민에게 계속 물대포를 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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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무관한 편집기자 기소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기소한 검찰에 드리는 조언

16.10.11 17:24l최종 업데이트 16.10.11 20:53l

 

검찰이 지난 4.13 총선 칼럼을 문제삼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이례적으로 편집기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나선 것이어서 검찰의 기소 의도를 두고 언론 자유를 심대히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언론노조가 낸 11일 성명은 이번 검찰 기소의 문제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에 성명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검찰이 '세월호 모욕 후보' 심판을 위해 투표장에 나가라고 독려한 <오마이뉴스> 칼럼을 문제삼아, 편집기자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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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마이뉴스>의 한 편집기자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었다. 기소 사유는 지난 4.13 총선 당일 한 시민기자가 쓴 칼럼이 여야 후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투표를 독려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제58조의2 3호(투표참여 권유활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의 선거법 위반 다툼은 많았다. 그러나 이번 기소는 칼럼을 쓴 시민기자도, 언론사 대표도 아닌 편집기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기사의 편집은 기사의 작성이 아니다. 기사의 내용에서 오기나 비문까지 문제는 없는지 검토하고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의 적절한 게시 위치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기사 제목을 수정하기도 한다. 언론사에 따라 독자들의 언론사 홈페이지 방문율이 높지 않은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시키는 작업도 편집기자, 즉 에디터의 역할이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참여한 편집기자에게 언론의 공정성 책임을 묻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작년 9월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에서 제기한 '포털 모바일 뉴스 공정성' 논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뉴스의 취재나 작성이 아닌 뉴스 배열을 통해 유통을 담당하는 포털에 기존 언론사와 같은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댔다. 그나마 포털의 공정성 논란은 기사의 내용이 아니라 기사의 배열과 노출 방식으로 수렴되었지만, 기계적 중립성만을 공정함이라 여기는 논리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 대한 기소는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소장대로 해당 기자가 선거 후보자들의 실명을 노출한 기사를 그대로 배포했기 때문에 위법행위를 했다면, 같은 날인 선거 당일 후보자의 실명을 거론했던 기사를 포털 뉴스에 노출한 포털 사이트의 뉴스홈 에디터 또한 기소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편집기자가 "시민기자 및 <오마이뉴스> 편집국 최종 책임자와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다면, 뉴스홈 에디터도 "언론사 기자 및 네이버 기사배열 원칙 책임자와 공모"했다는 혐의를 같이 적용해야 한다.

이번 기소에서는 달라진 매체 환경에 대한 무지를 떠나, 여전히 시민들의 정치적 의견 표현을 제약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58조의2 3호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는 위법한 투표참여 권유 행위라는 조항 말이다.

기계적 중립성만이 강조되는 언론사 기자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시민의 기고에도 위 조항을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기표만 하라'는 침묵의 강요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의 무분별한 음해성 표현은 다른 법으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위 조항은 선거라는 그나마 제한된 정치적 의사 표현 기간에 정당도, 후보도 언급할 수 없게 만들고 선거에 관심을 가지라는 억지와 같다. 이번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기소 사태는 유권자 공동체를 없애고 모래알처럼 흩어진 이기적 개인만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법의 역설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검찰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약하는 이번 기소를 하루 빨리 취하해야 한다. 이것은 뻔한 성명서의 요구가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검찰의 무지를 신속하게 덮어주려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의 배려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2016년 10월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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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훔치고, 일자리 뺏고, 사람 죽이고

[장기투쟁사업장⑤] 하이디스, 해외 먹튀자본에 당한 비참한 현실
언론이 다루지 않는, 그러나 가장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민플러스가 연재보도한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 투쟁사업장. 동양시멘트지부,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콜트콜텍지회,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 하이디스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KTX열차승무원지부, 한국산연. 한달간의 연재가 끝나기 전에 문제가 해결 돼 취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편집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 ‘FFS기술’

화면을 측면에서 봐도 정면에서 볼 때처럼 또렷하게 보이게 하는 광시야각 원천기술(FFS). 여기에 전력사용량을 줄이고, 햇빛 아래서도 잘 보이게 하는 기술이 더해져 휴대폰 액정으로 사용한다. 스티브 잡스가 탐내던 이 기술을 애플은 아이폰4부터 장착했다. 삼성 제품을 비롯한 세계 모든 스마트폰과 테블릿PC에 사용하고 있다. 기술 특허 수입만 연간 1500억원.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광시야각 원천기술(FFS)은 하이디스가 98년 개발했다.

▲ 18개월째 하이디스 해고자들은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을 진행중이다.[사진제공 하이디스지회]

현대전자, 하이디스, 중국BOE, 대만E-ink

2003년 현대전자가 부도나자 중국BOE가 인수한다. 현대전자 하이닉스반도체에서 ‘하이’를, 현대디스플레이테크놀로지에서 ‘디스’를 따와 하이디스가 된다. 중국 BOE그룹은 하이디스에서 기술자료 4331건을 빼내 간 사실이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뒤늦게 적발된다. 2006년 법정관리하에 있던 하이디스를 대만 E-ink에 2800억을 받고 또다시 해외매각한다. 대만 E-ink는 FFS기술을 제공하는 특허권 사업에 집중한다는 경영방침을 세우고 2015년 하이디스 이천 공장을 폐쇄한다.

날아간 일자리 2000개

2002년 현대전자 시절 하이디스 직원은 2천여명이었다. 기술유출에만 관심이 있던 중국 BOE는 일자리를 1200개로 줄여 대만 E-ink로 넘긴다. E-ink는 대만 공장에 국내물량을 외주화했다. 2013년 840명까지 줄어든 하이디스에 또다시 희망퇴직 신청 공고가 뜬다. 400명이 퇴직 강요에 순응하고 만다. 2015년 이천 공장을 폐쇄하면서 희망퇴직자 200명, 정리해고 79명, 시설관리자 30명으로 2000개의 일자리는 이렇게 사라진다. 기업이 경영난에 빠지면 정부와 채권단은 해외 매각을 서두른다. 이 같은 해외 ‘먹튀자본’ 유치가 부른 최악의 시나리오가 하이디스에서 연출된 것이다.

▲ 배재형 열사(하이디스 전 지회장) 추모대회를 하고 있다.[사진제공 하이디스지회]

79명의 해고자 그리고 배재형열사

2015년3월31일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79명은 공장가동,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네 차례 대만원정, 동아면세점 앞 천막농성, 매주 수요일 투쟁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E-ink는 연봉 1천만원을 줄테니 대만에 와서 일하란다. 지난해 5월11일 비해고자로 함께 투쟁했던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배재형 전 지회장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는 “하이디스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연대해 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지난 1월에는 시설관리 요원으로 있던 30명중 15명이 또 해고당했다. 해외자본의 횡포로 해고된 노동자를 대한민국 노동부는 구제하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에서 해고자들은 패소했다.

▲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 무소속)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하이디스지회]

여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은 독자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으리라. ‘물음표’를 정리해본다. 현대전자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이사장이었다. 2002년이면 정 회장이 살아있었는데 왜 부도를 막지 않았을까? FFS기술이 엄청난 돈벌이가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 왜 특허권까지 중국 BOE에 넘긴 걸까? 중국 BOE가 기술자료를 유출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하고도, 법정관리 중이던 하이디스를 또 해외 자본(대만 E-ink)에 넘긴 이유는 무엇인가? 산업자원부는 대한민국의 산업기술을 어떻게 지킬 작정인가? 대만 E-ink가 ‘먹튀 자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왜 아직 하이디스와 FFS기술을 되찾아오지 못하는가? 노동부는 대한민국 노동자를 대만자본의 횡포로부터 왜 지켜주지 않는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의 답답함은 턱까지 차올랐다. “해고자로 18개월을 살았다. 해볼 짓, 안해볼 짓 다 해봤다. 산자부, 노동부, 외교부, 검찰, 국회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기술 훔치고, 일자리 뺏고, 사람까지 죽인 흉악한 ‘먹튀 자본’을 왜 아무도 단죄하지 못하냔 말이다.” 억울함을 호소할 때마다 (외국인 투자 촉진)법이 그렇단 말만 들었다며 이 지회장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지난해 3월31일부로 해고된 하이디스 79명의 해고자들은 6달은 실업급여로 버텼다. 다음 6달은 금속노조의 장기투쟁기금으로 버텼다. 이제 생활비도, 투쟁기금도 다 떨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답한다. 너무나 억울해서, 미치도록 답답해서.

하이디스 해고자들의 생활기금, 투쟁기금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후원할 수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HDf4IQ5ZUy3Ks4M5GyyEI74Y8QGTL8fM7yD_s06tWdw/viewform?edit_requested=true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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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증인, 문재인은 되고 우병우는 안된다.

 
‘채동욱은 되고, 우병우는 안 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속사정’
 
임병도 | 2016-10-11 09:22: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우병우문재인국감증인메인본문-min

청와대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우병우 민정수석을 출석시키지 않겠다고 합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역대 민정수석은 국감에 안 나가는 게 관례이고, 관례대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민정수석이 국감에 나가지 않는 관례는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감증인으로 출석하면서 깨졌습니다. 2003년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예금보험공사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돼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기자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 경우가 있었다고 질문하자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는 되고, 박근혜 정부는 안되는 증인 출석’

2003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은 ‘대검찰청 국정감사’, ‘재정경제위 국정감사’, ‘국회운영위 대통령 비서실 국정감사’ 등 3차례나 국정감사장에 출석했습니다. 이 정도면 아예 민정수석의 국정감사 출석 관례는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2006년 전해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도 대통령 비서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사퇴 종용 의혹 당사자로 전 수석을 지목했고, 증인 출석을 놓고 파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 수석은 국감에 나와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홍경식 민정수석에 대한 국감 증인 출석 요구가 있었습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관례라며 홍 수석의 불출석을 당연하듯 말했습니다. 그러나 2003년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증인으로 채택될 때 법사위원장은 김기춘 의원이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전해철 민정수석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 예외가 아니라 그것이 관례입니다. 나가지 못하는 지금 모습이 더 이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바뀐 정진석, 우병우 국감 출석은 꿈도 꾸지 마라’

정진석우병우-min

 

▲ 귓속말하는 이정현-정진석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3차 태풍 피해 대책 당정협의에 참석해 정진석 원내대표와 귓속말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청와대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감증인 출석을 관례라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사례가 있므로 관례가 될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우 수석에게 제기된 의혹이 말 그대로 의혹일 뿐 밝혀진 것이 없고, 검찰 수사 중이기 때문에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쏟아졌던 의혹도 말 그대로 의혹이었고, 관련 사건들도 검찰 수사가 진행됐었습니다. 그때와 지금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사태 이후 바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원래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퇴진을 촉구했었습니다. 지난 7월에도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불출석 관행을 양해해 주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파행 이후 “우병우 국회 출석은 꿈도 꾸지 말라”며 돌변했습니다. 10일 오전에는 “(국감 증인 채택은) 여야 간의 협의절차, 절차적 정당성을 매우 중요하게 해야 한다”면서 “누구처럼 강행 처리할 생각 없다. 여야 간 협의를 거쳐야 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이 발언은 사실상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감 불출석을 허락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채동욱은 되고, 우병우는 안 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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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청와대-세종청사간 을지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 ⓒ연합뉴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마음이 바뀐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근거없이 의혹을 부풀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국민단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국론을 결집하고 어려운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협력하고 단합해야 할 때”라며 우 수석을 감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채동욱 검찰총장 비리 의혹 때는 “공직자는 오로지 청렴하고 사생활이 깨끗해야 한다. 사정기관 총수인 검찰총장의 경우 더더욱 사생활과 관련된 도덕성 의혹이 제기되면 스스로 해명하고 그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채동욱 검찰총장은 측근이 아니었고, 우병우 민정수석은 측근입니다. 자신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측근이 국감장에 나가서 입 한 번 잘못 열면, 레임덕 이전이라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병우 민정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이나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건을 직접 기획하고 관여한 인물입니다. 최종 몸통인 최순실까지의 접근을 ‘문건 유출 ‘등으로 방향을 틀어버렸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는 한 최순실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감 증인 불출석을 관례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정권을 지키기 위한 어거지에 불과할 뿐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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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군, 동.서.남해에서 무력시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10/11 10:29
  • 수정일
    2016/10/11 10:29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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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외 비공개..'선제타격론' 열기식힐 의도인 듯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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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0  2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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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해군이 10일부터 15일까지 동.서.남해 전역에서 대북무력 시위성 훈련을 진행한다. 사진은 훈련에 참가한 미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사진출처-로널드레이건호 공식 페이스북]

한국과 미국 해군이 10일 동.서.남해 전역에서 대북무력 시위성 훈련에 돌입했다.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로 이름 붙여진 훈련은 오는 15일까지 실시된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양국 해군은 오늘(10일)부터 15일까지 한반도 전 해역에서 '2016 불굴의 의지'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핵실험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한.미 동맹의 강력한 응징의지를 과시하고 양국 해군의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훈련에는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레이건호를 중심으로 순양함, 이지스구축함 등 함정 7척, 해상초계기, 미군 FA-18 전폭기, 한국측 함정 40여 척, 공군 전술기 등이 참가한다. 여기서 동.서해에서는 후방 침투 북한군 특수작전부대를 격멸하는 '대특수전부대작전훈련(MCSOF)'이, 서.남해에서는 항모강습단 훈련이 진행된다.

해군은 "해상무력 억제, 대잠전, 대공전, 대지 정밀타격훈련, 항모호송작전 등의 실전적인 훈련을 통해 양국 해군의 상호운용성과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지난 2010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동해와 서해에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참가시킨 가운데, 대북 무력시위를 벌인 바 있다. 천암한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한.미 국방장관이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 2016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연습에서 실시된 '대특수전 부대작전훈련'. [사진출처-국방홍보원]

하지만 이번 훈련에 핵추진 잠수함은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군 관계자가 밝혔다. 여기에 로널드레이건호가 후방에 정박하고 다른 참가 함정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 측이 이번 훈련을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거나, 박근혜 정부의 고조된 대북 선제타격 의지를 열기를 식히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8월 논평에서 "핵 선제타격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라고 반발했으며, 김광학 외무성 미국연구소 연구사는 9월 "미국의 부문별한 선제타격 움직임은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훈련이 실시된 당일에는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을 통해 "미국과 남조선 호전광들의 선제타격 기도는 패배자들의 단발마적 발악"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임박한 징후가 있을 경우에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며 대북 선제타격론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5차 북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를 통해 탈북을 종용하는 등 대북 강경발언과 군 당국의 선제타격론으로 북한을 자극해, 북한 당 창건기념일인 10일 추가 핵실험 혹은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을 기대했던 정부는 북한의 군사조치가 없어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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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는 오직 백남기 한 명을 향했다

물줄기는 오직 백남기 한 명을 향했다
경찰 살수차의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백남기씨가 317일 만인 9월25일 사망했다. 하지만 당시 물대포를 쏜 경찰도, 현장을 감독한 기동단장도, 이들을 지휘한 서울청장과 경찰청장도 사과하지 않았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6년 10월 10일 월요일 제473호
공권력이 물대포로 시민을 조준 사격해 중태에 빠뜨렸다. 이 시민은 317일 만에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14일 전남 보성을 출발해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 버스에 묶인 밧줄을 손으로 당기다 머리에 물대포 직사 살수를 맞고 쓰러졌다. 그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가 쓰러진 지 304일 만인 9월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살수차 ‘충남 9호’에 탑승했던 경장 2명이 출석해 증언했다. 가림막 뒤이긴 했지만 이들이 공개된 곳에서 증언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휘 라인에 있던 신윤균 전 제4기동단장(현 영등포경찰서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도 참석했다. 이날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못한 사실을 살펴보았다.
 
ⓒ시사IN 신선영
백남기씨 사망 당일인 9월25일 경찰과 시민들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먼저 청문회 결과 경찰의 살수차 운용에는 거의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 아무개 경장은 살수 방향 조절을, 한 아무개 경장은 살수 압력 조절을 담당했다. 두 사람 중 방향 조절을 담당한 최 아무개 경장은 “살수차에 실전 투입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최 아무개 경장은 실전은 처음이지만 교육훈련을 수십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사건 전날인 11월13일에도 전국 13개 지방청 살수차 운용 경찰관 57명을 대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교육은 경찰 내부 지침인 ‘살수차 운용지침’ 교육과 실습 훈련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살수차 사용 훈련 시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는 연습은 없었다. ‘살수차 운용지침’에 적힌 ‘살수차 사용 시 주의사항’에는 ‘직사 살수를 할 때에는 안전을 고려하여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여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훈련 단계에서 이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진선미 의원:사람을 대상으로 내지는 모형을 대상으로라도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는 연습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최 경장:교육훈련 시에 모든 상황을 가정해서 연습할 수 없다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선미 의원:그러니까 안 했다는 얘기지요?
최 경장:예,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략) 바닥에다가 살수하는 그런 위주로 훈련을 했었습니다.


사람 가슴 이하로 살수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두 경장은 사건 당일 ‘충남 9호’를 이끌고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 도착했다. 도착 이후 총 일곱 차례 살수했다. 이 중 네 번째 살수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두 경장은 당시 CCTV로 밖의 상황을 파악했는데, 야간이고 비가 내렸으며 4분할된 작은 화면이라 물줄기에 가려 백남기 농민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수차 물줄기에 가려 시야가 제한되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한 아무개 경장).” “개개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최 아무개 경장).”

그러나 두 경장이 살수 당시 상황을 파악했던 충남 9호 CCTV 영상을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이 같은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경찰청이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이 CCTV 영상을 보면, 네 번째 살수에서 밧줄을 당기는 시위대 무리를 한번 좌우로 훑은 물줄기가 CCTV 기준 시각 19시53분57초 백남기 농민 한 사람을 향해 움직인다. 이후 19시53분58초부터 약 20초 동안 백남기 농민과 그를 구하러 달려온 이들을 차례로 조준한다. 까만 사람 그림자가 보이면 흰 물줄기를 움직여 그 위에 포개는 식이다(CCTV 시각은 실제보다 한 시간 가까이 이르게 설정됐다). 화질이 좋지 않아 백남기 농민의 정확한 상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백남기 농민과 이후 모여든 이들을 향해 살수한 것은 확인된다.

이 과정에서 ‘가슴 이하 겨냥’ 지침은 물론 ‘거리에 따라 물살 세기에 차등을 두고 안전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살수차 운용지침도 무시되었다. 경찰은 당시 백남기 농민은 살수차에서 20m 떨어진 거리에 있었고 살수 압력은 2500~2800rpm이라고 주장했다. 이 수치는 지침에 명시된 예시(시위대가 20m 거리에 있는 경우 2000rpm 내외)를 초과해 논란이 되었다. 애초에 경찰의 주장이 사실인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살수차에는 거리 측정 장비도, 실제 사용된 물살 세기를 사후적으로 확인할 장비도 없다.


 
 
김영호 의원:그러면 거리 측정하셨습니까?
한 경장:예, 저희가 평소에 교육받을 때 거리별 살수를 연습했는데요. 그날도 지형지물이라든지 건물 위치 이런 것들을 확인하면서 거리를 짐작했던 것으로….
김영호 의원:아니, 백남기 농민이 보이지도 않는데 거리 측정이 가능해요?(중략)
한 경장:저희는 최대한 안전하게 살수하기 위해서 왕복하면서 좌우로, 한 명을 겨냥해서는 절대 쏘지 않았습니다.



한 경장은 ‘살수차 사용 결과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그는 충남 9호가 현장에 도착해 “경고 살수 1회, 곡사 살수 3회, 직사 살수 2회”를 했다고 적었다. 이 보고서는 사건 직후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했고 언론에도 보도됐다. 그러나 충남 9호 CCTV와, 맞은편에서 이 살수차의 살수 장면을 기록한 광주 11호 CCTV를 보면 총 일곱 차례 모두 직사 살수한 것이 확인된다. 살수차 운용지침에는 ‘살수차를 사용할 경우, 먼저 살수차를 사용할 것임을 경고 방송하고 소량으로 경고 살수를 한 후 본격 살수한다’고 되어 있다.

이 점을 청문회에서 추궁받은 한 경장은 경고 살수를 1회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밤샘 조사를 받고 그날 새벽에 다시 충남청 제1기동대로 내려가야 했다. 블랙박스를 서울청 감찰계에 제출하고 왔기 때문에 그 기억에 의존해서 살수차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사실과 다른 보고서를 작성한 것을 시인했다.

충남 9호차에 살수를 지시한 현장 책임자는 신윤균 당시 제4기동단장이었다. 신윤균 4기동단장은 “버스에 밧줄 6개를 걸고 수십명이 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걸 이격시키기 위한 살수라는 것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수를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이격’이란 ‘밧줄을 잡아당기지 못하도록 뒤로 빠지게 하는 것’을 뜻한다.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살수의 시작과 끝을 제외한 살수차 운용은 두 경장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무전을 주고받은 뒤 백남기 농민을 조준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경찰은 2009년까지 무전망 사용질서 유지 등을 위해 무전통신을 녹음해왔다. 그러다 2009년 촛불 1주년 집회 당시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이 진압에 대한 과잉 발언을 한 게 논란이 된 이후 112 신고처리 관련 무전망을 제외하고는 녹음을 중지했다. 살수 방향을 조절한 최 아무개 경장은 “시위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좌우로 상하로 흔들면서 하다가 (중략) 시위대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행사된 공권력에 의해 그날 오후 6시56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 이후에도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살수차 운용지침은 ‘살수차 사용 중 부상자가 발생한 경우, 즉시 구호조치하고 지휘관에게 보고한다’고 되어 있지만 살수는 백씨가 쓰러진 뒤에도 세 차례 더 이어졌다. 한 아무개 경장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저희는 처음 그 사실 자체를 몰랐다. 현장에서 집회가 다 마무리되고 서울청 감찰조사계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휘 라인에 있는 책임자들도 관련 사실을 저녁 8시40분~9시쯤 뒤늦게 파악했다고 말했다. 지휘 총책임자인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9시경에 TV의 자막을 보고 알았다”라고 말했다.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살수차를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위해성 경찰장비의 하나로 명시한다. 그런데도 위해성 경찰장비인 살수차의 운용지침은 경찰 내부 지침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위 진압용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용 기준에 대한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2008년과 2012년 권고했다. 같은 이유로 물대포 직사 살수는 헌법 재판관들의 우려도 받았다. 경찰청은 살수차 운용지침에 따라 사용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고,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현장 지휘관 교육 조치를 이미 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인권위의 두 차례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안전한 살수차 사용’의 현실을 백남기 농민 사건이 보여주었다.

살수차 사용에 관해 공권력이 갖고 있던 유일한 기준인 내부 지침을 어겼다는 점은 청문회에서도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경찰 실무자부터 지휘 책임자까지 하나같이 지침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 직후인 2015년 11월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출석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지침 위반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그때의 상황과 그 규칙을 준수할 수 있었던 기대 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외형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즉시 위법하다 그렇게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살수차 운용지침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남춘 의원실 제공
경찰청이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충남 9호 살수차가 백남기 농민(버스 앞 파란 옷 입은 이)에게 물대포를 쏘기 직전 상황.
물줄기는 오직 백남기 한 명을 향해 움직였다

이 같은 ‘당당한’ 태도는 지휘 라인부터 말단까지 일관됐다. ‘(백남기 농민이) 보이지 않았다’ ‘사고가 난 줄 파악할 수 없었다’라는 식이었다. 이들은 최대한 안전하게 살수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말도 했다. “저희 기계 작동이 느립니다. 좌우로 빨리빨리 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천천히 가기 때문에 영상 보시면 알겠지만 충분히 피하려면 피할 수가 있습니다(한 아무개 경장).”

경찰은 사건 직후 자체 감찰을 벌였다. 두 경장을 상대로 네다섯 시간 조사했다. 신윤균 4기동단장은 전화로 20분간 조사받았다. 경찰은 사건이 검찰에 고발되면서 조사를 중단해 최종 감찰 보고서는 없다고 했다. 중간 보고서는 있지만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야당 의원들이 법률에 없는 예외 사유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사건 304일 만에 어렵게 열린 청문회는 끝이 났다.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2015년 11월18일 강신명 경찰청장을 포함해 경찰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그해 12월 고발인 조사를 진행한 뒤, 2016년 6월 고발 일곱 달 만에 경찰 관계자 4명을 조사했다. 같은 날 있었던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소와 재판이 이뤄져 지난 7월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과 대비된다.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는 “하여튼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고발 열 달이 지나도록 조사받지 않았다. 9월29일 검찰은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소환할 뜻을 내비쳤다. 

그사이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퇴임했다. 신윤균 4기동단장은 영등포경찰서장 발령을 받아 근무 중이다. 최 아무개 경장과 한 아무개 경장도 정상 근무 중이다. 사건 당시 시위 진압을 담당한 이중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국장은 강원지방경찰청장 발령을 받았다. 아무도 공식 사과하지도, 징계를 받지도 않았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건 직후는 물론이고 청문회 당일,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후에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실관계와 법률관계가 불명확”하므로 수사와 재판 결과가 나오면 책임진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심심한 사죄”를 할 때조차 강신명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의 가족을 바라보지 않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사실·법률관계가 나와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지난 7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1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백남기 농민을 향한 경찰의 직사 살수가 위법하다고 인정했다. “경찰은 (중략) 시위 참가자인 백남기의 머리 부위에 직사 살수하여 그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뇌진탕을 입게 하였고, 쓰러진 이후에도 그에게 계속하여 직사 살수를 한 사실, 같은 날 밤 시간 불상경 부상을 입고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시위 참가자와 그 응급차량에까지 직사 살수한 사실이 인정된다. 경찰의 이 부분 시위 진압 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 실수에 의한 것이든 위법하다.”

법적 판단 이전에 사과한 전례도 있다. 참여정부 당시인 2005년에도 시위에 참가한 두 농민 전용철·홍덕표씨가 사망했다. 전용철씨가 숨진 직후 충남 보령경찰서는 전씨가 농민집회에 참가한 뒤 그날 밤 10시30분께 귀가 중 쓰러졌다는 조사 내용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다.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현장에서 쓰러진 전씨를 집회 참가자들이 옮기는 사진과 전씨가 경찰에 맞아 쓰러졌다는 증언이 나온 뒤에도 경찰 폭력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병인 간경화나 음주, 시위대에 밀려 쓰러졌을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12월14일 경찰은 전씨의 사망과 관련해 과격 진압의 책임을 물어 이종우 기동단장을 직위 해제했다. 홍덕표씨의 부상이 진압 경찰의 가격에 의한 것이라고도 시인했다.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있었고 전씨와 홍씨의 사망 원인이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판단한다며 해당 부대를 특정해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경찰청장에게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책임자 징계도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 조사 결과는 형사적 사법 판단이 아니었다. 두 농민의 사망 모두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발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은 행위자별 ‘범죄 사실’이 특정되고 형사적인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연합뉴스
2005년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한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과 허준영 경찰청장(왼쪽)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경찰청장·서울청장 사퇴

노 대통령은 “폭력 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날 이기묵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시위 대응을 맡은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사퇴했다. 허준영 경찰청장은 인권위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도 임기는 마치겠다고 말했다. 이틀 뒤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히고 사퇴했다.

2015년 11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은 백남기 농민에 대한 언급 없이 그날의 시위대를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에 견주었다. 이후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유가족이 반대했지만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당일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9월2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부검 영장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기자들에게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불명확해 부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참석했던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국가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갈 권한이 없다. 미필적 고의든 사고든 국가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 백남기 농민이 거기서 시위를 했건 폭동을 저질렀건 내란을 했건, 어떤 행위를 했건 현장에서 공권력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는 책임져야 한다. 경찰청장이 그런 책임의 의미 자체를 이해 못하고 있었다.” 2016년 9월25일 백남기 농민이 317일 만에 사망하기까지는 물론 사망한 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어떤 관료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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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해~한반도, 슈퍼태풍 고속도로 되나

필리핀해~한반도, 슈퍼태풍 고속도로 되나

김정수 2016.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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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4도까지 바짝 다가온 ‘슈퍼태풍'
최근 40년 동안 최고 도달지점
북위 28도에서 ‘6도’ 북상
한반도 턱밑까지 올라와
 
최근접 슈퍼태풍은 27도 도달 ‘매미'
빈도 변함 없어도 강도는 세져
‘한반도 안전지대' 머잖아 끝날 수도

 

512 (1).jpg
 
지난 5일 부산에 상륙해 짧은 시간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고 사라진 태풍 차바는 10월 태풍치고는 이례적으로 강력했다. 이날 제주 고산에서 측정된 차바의 최대순간풍속 56.5m/초는 국내 태풍 가운데 역대 4위를 기록했고, 제주도와 남부지방 곳곳에서 강수량과 풍속의 기존 10월 극값 기록을 바꿔놨다. 
 
과학계의 연구 결과는 앞으로 한반도가 이처럼 이례적이고 강력한 태풍을 갈수록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슈퍼태풍’도 예외가 아니다.
 
슈퍼태풍은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의 정의로 ‘1분 평균 최대풍속이 초속 65m(시속 234㎞) 이상인 태풍’을 말한다. 우리 기상청의 태풍 분류에서 최고 단계인 ‘매우 강’한 태풍보다 강도가 50%가량 더 센 초강력 태풍이다. 
 
2013년 필리핀을 초토화한 ‘하이옌’, 최근 대만과 중국 등에 큰 피해를 준 ‘네파탁’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는 지금까지 슈퍼태풍의 안전지대로 남아 있었다. 한반도 주변까지 올라온 슈퍼태풍이 없었고,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가운데는 2003년 9월 매미가 북위 27도까지 슈퍼태풍급 위력을 유지하며 올라온 것이 가장 근접한 기록이다. 
 
슈퍼태풍까지 발달했다가도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면서 모두 세력이 약화됐다. 그러나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가 또 다른 이례적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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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2012년에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슈퍼태풍이 통과한 위치와 통과 빈도. 문일주 제주대 교수(태풍연구센터 소장) 제공
 
상륙하는 태풍일수록 강도 세져
 
태풍이 탄생해서 발달했다가 소멸하는 데까지는 해수면 온도뿐 아니라, 대기 상·하층에 부는 바람의 속도와 방향 차이인 윈드시어, 이동 경로 주변의 기압 배치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미래 태풍의 발생 빈도와 강도를 두고는 오래 논란을 벌여온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분석 결과를 보면, 태풍의 발생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태풍의 강도는 점차 강화돼 왔다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태풍위원회는 2012년 평가보고서에서 미래 기후를 전망하는 기후모델들 대부분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서태평양 지역에서 태풍의 발생 빈도는 줄어들지만 강도는 강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웨이 메이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 상핑 셰 교수는 지난달 5일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육지에 상륙하는 태풍의 강도가 지속해서 강화됐다고 보고했다. 상륙하지 못하고 해양에 머물다 일생을 마친 태풍들의 강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대만, 일본, 한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태풍은 1977년 이후 최근까지 12~15%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륙한 태풍의 강도 증가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연안 바다 표층의 온난화와 연결지었다. 점차 따뜻해진 연안 바다가 자라나는 폭풍에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는 데 따른 지속적인 해수면 온도 증가로 중국 동부와 대만, 한국, 일본 등이 앞으로 갈수록 강력한 태풍을 맞게 되리라고 이들은 경고했다. 
 
인간이 일으키는 지구온난화가 태풍이 발원하는 ‘웜풀’ 확대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한국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연중 수온이 섭씨 27도에서 30도를 유지해 지구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로 꼽히는 적도 주변의 인도-태평양 웜풀은 1953년과 2012년 사이 60년 동안 32% 팽창했다. 
 
포항공과대(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팀은 이 팽창을 불러온 주범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임을 알아내 지난 7월 <사이언스>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보고했다. 기후모델을 이용한 분석 결과 웜풀 팽창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를 반영했을 때만 실제 상황대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 교수는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웜풀의 팽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이러한 인위적인 팽창은 인도양과 태평양 해역에서 비대칭적인 패턴으로 일어날 수 있고, 피해를 줄 수 있는 강수나 태풍과도 연관이 있어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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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2012년 인도·태평양 웜풀의 변화 모습. 민승기 포항공과대 교수 제공 
 
슈퍼태풍, 40년 동안 660㎞ 북상
 
지난해 국립기상연구소 최기선 박사 등이 1977년 이후 태풍을 대상으로 분석해 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1999년 이후부터 태풍이 최대 강도를 나타내는 위도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1999~2013년의 태풍들은 1977~1998년의 태풍들보다 열대 및 아열대 북서태평양의 북서해역에서 많이 발생해 태풍이 발생한 지점의 위도도 증가했다. 
 
태풍의 진로도 1998년까지의 태풍들은 주로 필리핀 동쪽 먼 해상으로부터 인도차이나반도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일본 동쪽 먼 해상으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1999년 이후 태풍들은 주로 동아시아 중위도 지역으로 북상하는 패턴을 나타내 훨씬 고위도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 연구팀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에 활용된 이십여개 기후모델의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 열대 사이클론 활동을 예측한 것을 보면, 북대서양을 통과하는 허리케인의 빈도는 앞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북서태평양 해역의 태풍, 특히 동아시아의 중위도 지역인 한국과 일본에 상륙하는 태풍의 빈도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강도는 강화되더라도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거나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제시됐던 앞선 다른 연구 결과들과 다르게, 미래로 갈수록 한반도가 더 자주 더 강한 태풍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허 교수는 “태풍이 일생 동안 최대 강도가 나타나는 위치가 북상을 해 동아시아 해안으로 가까이 오게 되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연관된 해수 온도 상승, 편서풍이 약화되는 데 따른 상하층 바람의 차이인 윈드시어의 약화 등에 의해 태풍이 올라오면서 약화되는 과정이 점점 천천히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라며 강력해질 태풍에 대한 대비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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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태평양 태풍 활동지역의 최근 40년 간 바닷물 수온 상승 실태를 살펴보면 한반도로 태풍이 올라오는 길목과 한반도 주변의 상승 속도가 특히 높다. 문일주 제주대교수(태풍연구센터 소장) 제공.
 
201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제임스 코신 교수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1982년부터 2012년 사이에 발생한 태풍을 포함한 열대 사이클론 자료를 재분석해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열대 사이클론이 이동 중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10년마다 북반구에서는 53㎞씩, 남반구에서는 62㎞씩 극 방향으로 이동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학계에 알렸다. 당시 학술저널 <네이처>에 실은 연구 논문에서 이들은 대기 상하층 바람의 윈드시어 변화, 해수면 온도로 대표되는 폭풍 잠재강도의 변화, 열대구역의 확장 등을 이동을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 소장인 문일주 교수 연구팀이 1975년부터 2012년까지 38년간을 19년씩 전·후반기로 나누어 북서태평양의 태풍과 슈퍼태풍 발생 빈도를 분석해본 결과, 태풍의 연평균 발생 빈도는 전반기 25.1회에서 후반기 24.6회로 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슈퍼태풍의 발생은 태풍이 주로 발달하는 해역의 해양 열용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반기 연평균 2.9회에서 후반기 연평균 4.4회로 52%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슈퍼태풍 상태로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이 없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중에 최성기 때 슈퍼태풍급으로 발달했던 태풍의 발생 빈도를 따져봤더니 전반기 연평균 0.58회에서 후반기 연평균 0.68회로 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5년 이후 40년 동안의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슈퍼태풍의 도달 위도를 따져봤더니, 가장 많은 태풍이 도달한 위도는 전반기 북위 17도에서 후반기 21도5분으로 4도5분 북상했고, 최고 북상 위도는 전반기 북위 28도에서 후반기 34도로 6도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도 1도가 110㎞이니, 북쪽으로 660㎞ 치고 올라온 셈이다.
 
문 교수가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1979년부터 2014년까지의 바닷물 수온 자료를 분석한 것을 보면, 필리핀 동부에서 한반도 주변까지 이어지는 해역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이동하는 해역 가운데서도 특히 빠른 수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태풍의 발달과 소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기 상층과 하층 바람의 차이인 윈드시어의 장기적 변화도 갈수록 한반도 주변을 태풍 발달에 좋은 환경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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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간 태풍 발생과 이동 지역의 윈드시어 변화 추이를 보면 한반도 주변의 윈드시어의 약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대기 상하층 바람의 방향과 속도의 차이인 윈드시어가 약화될수록 풍이 잘 발달하게 된다. 문일주 제주대교수(태풍연구센터 소장) 제공.
 
문 교수가 1979년 이후 2014년까지의 미국 국립환경예보센터(NCEP) 자료를 재분석해봤더니, 태풍이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북서태평양과 그 주변 지역 가운데 특히 한반도 주변에서 윈드시어의 약화 추세가 두드러졌다. 
 
윈드시어가 크면 태풍이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고, 약할수록 태풍의 발달에 유리하다.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문 교수는 “한반도 주변이 태풍 발달에 좋은 대기 조건으로 바뀌고 있고, 한반도 주변 태풍 길목의 수온 상승으로 가까운 미래에 슈퍼태풍이 강도를 유지하고 북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오염 개선 안 할 수도 없고…
 
미국 컬럼비아대 대기과학자 애덤 소벨을 비롯한 6명의 연구자들이 지난 7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열대 사이클론(태평양의 태풍과 대서양의 허리케인을 아우른 용어)의 잠재 강도 증가가 대기오염에 의해 억제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가 열대 사이클론의 강도를 강화시키려는 힘이 인간이 대기 중에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형성되는 에어로졸에 의해 많은 부분 억제됐다고 밝혔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인 에어로졸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함으로써 냉각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어로졸의 이런 효과는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계속 증가하면서 에어로졸의 냉각 효과를 압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 찾아올지 모를 강풍과 폭우 피해를 줄이겠다며 대기오염 개선 노력을 중단하고 국민에게 더러운 공기를 계속 마시게 할 정부가 있을 리 없다. 결국 공기가 맑아지면서 태풍의 강도는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란 얘기가 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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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연어...노르웨이 세계최대 연어양식장에 가다

[밥상 위의 세계(1)]돌아오지 않는 연어...노르웨이 세계최대 연어양식장에 가다

올레순|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쿠르시쿠이 해안가에 위치한 마린하베스트 바다양식장에서 관리자들이 양식장을 살펴보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쿠르시쿠이 해안가에 위치한 마린하베스트 바다양식장에서 관리자들이 양식장을 살펴보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세계 최대 연어양식업체인 노르웨이 마린하베스트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100만 마리의 연어가 파이프로 공급되는 사료를 받아먹으며 자란다. 자연산 연어의 트레이드마크인 분홍빛은 크릴새우에게서 나오지만, 양식연어는 그 성분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빛깔을 낸다. 이 회사에서 ‘만들어진’ 연어가 서울의 대형마트에 진열되기까지는 7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2015년 ‘지구의 밥상’ 시리즈를 통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글로벌화가 우리 먹거리에 농축돼 있음을 보여줬다. 콜라식민지가 된 섬에서부터 경제제재로 인해 본의 아니게 ‘미래 먹거리의 실험장’이 된 쿠바까지, 밥상을 규정하는 거대 산업과 그 속에 숨겨진 차별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우리 밥상 위의 생선과 고기, 채소와 과일이 어떻게 세계화의 톱니바퀴 속에 물려 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핀다.

세계의 ‘닭공장’이 된 브라질에서 이민자들의 물결은 축산업의 흐름을 바꾸었다. 주스와 빙수와 디저트를 넘어 제사상에도 오르게 된 새로운 ‘국민과일’ 망고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손에서 뜨거운 증기에 소독돼 한국으로 향한다. 북아프리카의 수단에서는 지평선까지 펼쳐진 참깨밭에서 생산한 참깨를 거대 공장에서 타작한다.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아티초크 등 식탁 위를 다국적 언어로 채우는 채소들의 고향 격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는 슬로푸드 운동이 한창이다.

한때 ‘녹색 혁명’의 성공사례로 꼽히던 인도의 농촌은 세계 농업의 모든 문제점이 집약된 곳이다. 데칸고원의 농민들이 벌이는 씨앗지키기 운동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씨앗을 보관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다. 10회에 걸친 이번 ‘밥상 위의 세계’ 시리즈 마지막회에서는 ‘노아의 방주’로도 불리는 북극권 스발바르 섬의 종자보관소를 찾아가본다.


 

 

루베르트 이작센(52)이 연어를 처음 먹어본 것은 3살 때였다. 그 어릴 때 일이 머릿 속에 남은 건 맛이 “기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부였다.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어부였다. 노르웨이 북부 작은 어촌 마을 호브(Hovden)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동네 친구의 아버지는 어선 냉동기계에 다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친구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꼬마 루베르트는 1960년대 인기 어린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배운 동요 ‘세 마리 작은 물고기(tre sma fisk)’를 흥얼거리곤 했다. 이 노래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아침에 빵과 곁들여 즐겨 먹는 고등어통조림 광고에도 쓰였다. 10대 때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는 공장에서 대구 턱살을 잘라내는 일이었다. 한때는 노르웨이 서부 해안을 오가는 120년 역사의 여객선 후르티구르텐에서 일했다. 지금은 수산업 수출을 지원하는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NSC)에서 디지털마케팅을 맡고 있다.

그의 삶은 늘 바다와 엮여있었다. 어린 시절 가족의 밥상에는 1주일에 5번은 생선이 올라왔다. 주로 아버지가 노르웨이의 찬 바다에서 잡아온 대구, 명태 같은 흰살 생선이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강에서 잡아 온 기름진 연어는 낯설었다. 집에서 직접 연어를 훈제해서 먹었다. 참나무, 자작나무를 태운 뜨거운 연기에 연어가 바로 익어버리지 않도록 연기를 모으는 관을 길게 만들고, 연어를 매단 상자에 연결해 향이 배게 했다.
 

■연어는 ‘만들어진다’

낚시꾼을 유혹하는 탄력 넘치는 붉은살은 연어가 다음 세대를 위해 비축해놓은 에너지의 결과물이다. 연어는 10~12월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올 때 아무 것도 먹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에 엄청난 양의 지방을 축적해둔다. 그래야 강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고난의 행군’을 끝낼 수 있다. 이런 연어의 독특한 회귀는 종종 문학작품이나 노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어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강 곳곳에 댐이 생겼고 강물은 오염됐다. 야생연어는 남획 탓에 보호의 대상이 됐다.

연어는 크게 그린란드로 갔다가 강으로 돌아오는 대서양 연어와 베링해로 갔다가 강으로 돌아오는 태평양 연어로 나뉜다. 북쪽 그린란드 같은 몇몇 곳을 빼면 야생 대서양 연어는 거의 사라졌다. 왕연어, 은연어, 홍연어 등 태평양 연어는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동부 정도에만 남아 있다. 이작센은 “노르웨이에서 연어낚시는 이제 마니아들과 돈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 스포츠”라고 했다. 정부의 보호방침에 따라 연어낚시를 하려면 하루에 최대 4000크로네(55만원)를 내야 한다. 한국에서도 연어는 포획금지생물종이다.

그 대신 연어는 세심하고 철저하게 계획된 공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대형마트와 초밥집에서 보는 신선한 오렌지색 살토막은 원산지가 노르웨이건 캐나다건 칠레건 스코틀랜드건 모두 양식된 대서양 연어다. 연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대신에 플라스틱 상자에서 부화되고 커다란 수조에서 사료를 먹으며 성장기를 보낸다. 다 자라면 배에 실려 해안 가두리로 옮겨진다. 사료로 몸집을 키워 주변 가공공장에서 생을 마친다.

지난해 한국에서 소비된 연어의 40%는 이런 사계절 양식의 산물인 생연어다. 그 생연어의 99.2%가 노르웨이의 피요르 가두리에서 자란 대서양 연어다. 양식 생연어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오는 연어는 알래스카 자연산 연어 통조림이나 냉동 양식연어로 만든 훈제연어 위주였다. 이마트의 김상민 수산팀 바이어는 “한국에서 생연어를 많이 먹기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포스나보그에 위치한 세계 최대 양식기업 마린하베스트의 연어 가공공장에서 직원들이 도살된 연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세척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나보그 | 이인숙 기자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포스나보그에 위치한 세계 최대 양식기업 마린하베스트의 연어 가공공장에서 직원들이 도살된 연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세척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나보그 | 이인숙 기자

연어는 오메가3가 많은 ‘수퍼푸드’라는 홍보가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자들에게 먹혔다. 1~2년 새 연어 무한리필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난해 수산물 수입의 ‘큰손’ 러시아가 서방 제재로 노르웨이 연어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장 공급량이 늘어 연어가격이 떨어진 것도 국내 연어붐을 도왔다.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은 이미 노르웨이 양식연어에 길들여졌다. 롯데마트 신호철 MD는 “알래스카 홍연어나 뉴질랜드의 왕연어 같은 자연산은 양식연어보다 비싸고 맛도 좋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오렌지빛 살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노르웨이 연어가 각인돼 있어 큰 호응이 없다”고 말했다. 자연산은 양식연어와 달리 선홍빛을 띠며, 지방이 많은 사료를 먹지 않기 때문에 흰색 줄무늬가 선명하지 않고 가늘다. 맛도 담백하다.
 

■예방주사 맞는 연어

9월 16일 노르웨이의 수산도시 올레순의 루테빌카야(Rutebilkaia) 부두를 찾았다. 쾌속보트에 올라,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올린 알록달록 장난감같은 마을을 벗어나 깊고 잔잔한 피요르로 향했다. 한 시간 가량 물살을 가르자 피요르의 끝, 스테인스비크(Steinsvik) 마을에 다다랐다. 하얀 구름띠가 허리에 걸린 가파른 산이 거울같은 수면에 그대로 그려지는 한적한 시골, 주민은 고작 50명 남짓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 선착장 옆에 이질적인 회색 공장 두 채가 서 있다.

세계 최대 연어양식 기업 마린하베스트가 버려진 신발공장 부지를 사들여 지난해 새로 만든 시설로, 알에서 깨어난 치어가 자라는 곳이다. 세계 양식 연어 4분의 1을 수출하는 마린하베스트는 유전자, 알, 치어, 사료부터 양식장과 도살·가공공장까지 ‘연어의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한다. 이 회사가 자랑하는 것은 자기들만의 품종 ‘무비(Mowi)’다. 노르웨이 최대 연어 서식지 중 한 곳인 보수(Vosso)강에서 채집한 연어를 수십년간 교배로 개량한 것이다.

이 회사는 무비 암컷의 배에서 알을 채취해 수컷의 정액과 섞어 수정한 뒤 이곳으로 옮긴다. 공장의 위생관리는 강박적이었다. 갈아신은 실내화에 비닐캡을 씌우고 머리에도 비닐캡을 쓰고 손을 닦았다. 인공부화실 앞에 놓인 스폰지를 밟자 거품이 나와 신발 비닐캡을 또 한번 세척한다. 부화실은 서늘했다. 성장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온도는 5℃ 안팎으로 맞춰져 있다.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에서 치어들을 살피고 있는 직원.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에서 치어들을 살피고 있는 직원.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플라스틱 서랍이 16개씩 들어있는 철제 선반 10개에 든 치어는 320만 마리. 약 713억원의 가치를 지닌 ‘귀한 몸’들이다. 플라스틱 서랍을 꺼내보니 투명한 오렌지색 영양주머니인 난황낭을 단 치어들이 꼬물거린다. 연어가 양식 물고기의 대표선수가 된 것은 알이 크고 영양분이 많아 부화시키기 쉽고, 몇 주 동안 먹이 없이도 자랄 수 있는 이 난황낭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 2명이 스포이트로 죽은 치어를 골라내 컵에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두달 정도를 보내고 치어가 사료를 먹을 수 있는 크기(0.2~5g)로 자라면 둘레 15m, 깊이 4~5m 수조로 옮겨진다. 스몰트(smolt)라 불리는 이 시기 연어는 사람으로 치면 10대다. 크기별로 4단계를 거쳐 네 개 수조를 옮겨 다니다 몸무게가 200g이 되면 바다로 간다. 사료도 점점 커지고 성분도 처음에는 단백질이 많았다가 지방이 늘어난다. 바다에서 보는 연어는 은빛과 올리브색이 섞여 반짝거리지만 민물에서 자라는 치어는 어두운 녹색이다. 강에서 살 때 진화시킨 보호색이다. 빛을 싫어하는 새끼 연어를 위해 수조가 있는 공간도 어둑했다. 수조마다 사료 탱크가 있고, 거기서 나온 긴 관이 걸쳐져 있다. 관에 한 줄로 뚫린 작은 구멍에서 몇 초마다 사료가 떨어진다.

바다로 나가기 직전 단계의 새끼들은 일주일 전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연어가 다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물에 수면제를 넣어 잠들게 한 뒤 펌프로 끌어올려 컨베이어벨트에 놓으면 기계가 연어의 배를 찾아 주사를 놓는다. 연어는 박테리아 감염병인 절종증 등에 걸리기 쉬운데 과거에는 사료에 항생제를 넣어 문제가 됐다. 1980년대 후반 노르웨이 수의협회가 연어 백신을 개발한 뒤 항생제 사용은 크게 줄었다. 농업부에서 어류 건강 담당을 맡았던 수의학자 파울 미틀링은 세계보건기구(WHO) 기고에서 “연어의 수가 노르웨이 사람보다 2배는 많은데 노르웨이 사람이 1년에 섭취하는 항생제는 5만kg인 반면, 연어에 사용되는 항생제는 1000kg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 플라스틱 상자안에서 난황낭을 먹고 자라는 연어 치어.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 플라스틱 상자안에서 난황낭을 먹고 자라는 연어 치어.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100만 마리가 자라는 양식

바다 양식장은 배로 30분 떨어진 구르시쿠이(Gurskøy)에 있었다. 가두리 9개와 통제센터 역할을 하는 배, 그물을 청소하는 기계가 달린 배, 가두리를 옮겨다니는 이동식 ‘선상 사무실’이 주요 시설이다. 가두리에서는 은빛 연어가 쉴 새 없이 물 위로 뛰어올랐다. 둘레 160m, 깊이 40m의 거대한 가두리 한 개당 17~18만 마리가 들어 있다. 6개 가두리가 가동 중이니 이 양식장에만 약 100만 마리가 자라고 있는 셈이다. 18~20개월이 지나 4~6kg이 되면 가공공장으로 간다.

양식장의 조건은 꽤 까다롭다. 움직임이 격렬한 연어가 밀집되지 않도록 가두리는 해수 97.5%, 연어 2.5%로 구성되야 한다. 항생제는 쓸 수 없다. 한 세대의 양식 사이클이 끝나면 해저환경을 위해 3개월 간 양식장을 놀려야 한다. 마린하베스트가 노르웨이 전역 양식장 120개 중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100개 정도다. 연어 배설물로 바다가 오염된다는 문제 제기에, 2007년부터 양식장 바로 아래 바닥과 500m 떨어진 곳의 바닥 샘플을 채취해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양식장 운영은 모두 기계가 한다. 상시 근무직원 2명은 감독만 할 뿐이다. 통제센터 모니터에는 가두리별로 몇 마리가 언제 들어왔고 지금까지 사료를 얼마를 줬는지, 모든 상태가 숫자로 표시된다. 가두리마다 카메라가 있어 조이스틱으로 상태를 살필 수 있다.

양식장에서는 ‘쉭쉭’ 바람 부는 듯한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통제센터에서 발전기를 이용해 각 가두리에 연결된 관으로 사료를 밀어내는 소리다. 연어 100만 마리가 하루에 먹는 사료는 40~50톤. 피요르 연안을 오가는 사료공급선은 매주 두차례 이곳을 지난다. 가두리 청소는 12일에 한번씩 한다.

사료는 마린하베스트가 노르웨이와 스코틀랜드에 설립한 공장에서 만든다. 과거에는 피요르의 청어 따위를 갈아서 줬지만 이 식욕 넘치는 물고기를 살찌우기 위해 야생 물고기가 남획되자 비판이 일었다. 이 때문에 점차 식물성 성분을 늘리고 있다. NSC에 따르면 사료는 콩단백질 25% 등 식물성 단백질과 탄수화물 50%, 식물성 기름 19%, 사람이 먹지 않는 생선머리나 부위를 갈아 만든 어분(魚粉)과 물고기 기름 29%로 돼 있다.

양식 연어가 바다 양식장에서 먹는 사료.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사료는 콩단백질 등 식물성 성분이 50%, 식물성 기름 19%, 사람이 먹지 않는 생선머리나 부위를 갈아 만든 어분(魚粉)과 물고기 기름 29%로 구성돼 있다. 구르시쿠이 | 이인숙 기자

양식 연어가 바다 양식장에서 먹는 사료.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사료는 콩단백질 등 식물성 성분이 50%, 식물성 기름 19%, 사람이 먹지 않는 생선머리나 부위를 갈아 만든 어분(魚粉)과 물고기 기름 29%로 구성돼 있다. 구르시쿠이 | 이인숙 기자

연어의 트레이트마크인 오렌지색도 ‘만들어진다’. 연어살이 붉은 빛을 띠는 것은 먹이인 크릴새우와 플랑크톤 속 항산화물질 아스타잔틴 때문이다. 마린하베스트의 가이르 홀 홍보매니저는 “크릴에서 나오는 성분과 유전적·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성분을 복제해서 만든다. 인체에는 100% 무해하다”고 설명했다.

연어가 다 자란 뒤에는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바다 양식장에서 가공공장까지 1~2시간, 공장에서 도살·가공되는 데는 10분이면 된다.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상처가 나지 않게 하려고, 도살하기 전 먼저 물에 이산화탄소를 넣어 의식을 잃게 한다. 홀은 “연어를 도살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동물권을 존중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세척된 연어는 아이스박스에 담긴 채 트럭에 실려 7시간만에 오슬로 공항에 도착한다. 전용 터미널에서 직송 항공기에 실려 한국의 세관·검역을 통과해 도매업체를 거쳐 매대에 오르기까지는 7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천-오슬로 직항 여객기는 여름 한철 운행되지만 생연어가 타고 오는 직항은 연중 주4회 대한항공이 화물기를 띄운다.
 

■고등어 컨베이어벨트

강에서 태어난 연어가 살아서 바다에 갈 확률은 1%다. 양식은 이런 자연의 방정식을 깼다. 노르웨이는 연어양식을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다. 1970년 7월 히트라 섬에서 오베·시베르트 그론트베드 형제가 자연산 연어 새끼 2만 마리를 모아 양식에 성공한 것이 최초다. 1960년대부터 품종개량을 연구해 온 하랄 셰르볼트와 트뤼그베 예드렘은 41개 강에서 연어 종을 채집한 뒤 사료를 적게 먹이면서 빨리 성장시키는 미국의 동물 사육 원리를 가져와 성장 속도를 극대화시킨 연어혈통을 만들어냈다. 노르웨이는 30년만에 세계 연어의 절반을 생산하는 1위 수출국이 됐다. 해안선 8만3000km에 걸쳐 연어 양식장 1076개가 들어서 있다.

양식 연어 2위 생산국은 칠레다. 노르웨이와 정반대편 남반구 끝에 있는 이곳 앞바다에서도 대서양 연어가 자란다. 원래 남미에 연어는 없었다. 차가운 물에 사는 연어가 적도를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개발한 품종이 칠레, 뉴질랜드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됐다. 노르웨이 해안이 양식장으로 붐비고 규제가 심해지자 노르웨이 연어회사들은 규제가 덜하고 노동력이 싼 곳으로 진출했다.
 

9월 14일 올레순 인근 엘링소이 섬의 닐르 스페르 공장에서 트롤어선이 잡아온 고등어가 박스에 담겨 포장되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 14일 올레순 인근 엘링소이 섬의 닐르 스페르 공장에서 트롤어선이 잡아온 고등어가 박스에 담겨 포장되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북해유전으로 돈을 버는 산유국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르웨이의 뿌리는 바다다. 194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산부를 설치했으며 수산업은 석유, 가스에 이어 3번째 수출산업이다. 수산물 대국 노르웨이는 이제 한국의 밥상에서 ‘국민생선’ 고등어의 자리도 차지할 참이다. 한국 연근해에서 1990~2000년대 평균 18~20만톤씩 잡히던 고등어는 최근 5년 새 평균 12만톤 정도로 감소했다. 덜 자란 고등어까지 싹쓸이한 남획 탓이다. 2011년까지 수입 고등어의 절반은 중국산이었는데 이제는 국내에서 팔리는 고등어 4마리 중 1마리가 노르웨이산이다.

9월이면 노르웨이에서는 고등어철이 시작된다. 고등어의 지방 함량이 30% 가까이 돼 가장 맛있을 때다. 9월 14일 올레순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엘링소이(Ellingsøy) 섬에 들렀다. 마침 수산물 가공기업 닐스스페르(Nils Sperre) 공장에 올해의 첫 고등어가 들어온 날이었다. 공장과 연결된 부두에는 트롤 어선이 들어와 있었다. 닐스스페르 같은 업체들은 유통시간을 줄이기 위해 어부들이 만든 온라인 경매 ‘실델라갓’에서 바로 생선을 사들인다.

아침부터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에서 가을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그러나 고등어는 비를 맞을 일이 없다. 공장 입구에 설치된 고압 펌프가 배 아래 5℃ 차가운 물탱크에 담긴 고등어 350톤을 바로 끌어올려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쏟아놓았다. 일본 도쿄의 수입업체에서 온 바이어가 연신 고등어의 배를 갈라보며 선도를 점검하고 있었다. 공장을 함께 돌아보던 사장 하랄 스페르(63)는 여름휴가에서 이제 막 돌아왔다. 그는 일본 바이어를 가리키더니 “저이는 일주일 전부터 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며 “고등어 수확이 시작되는 매년 9월부터 끝나는 11월까지 28년째 이곳에 와 고등어를 살핀다”고 귀띔했다. 이 시기 공장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돌아간다.

9월 14일 올레순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판매원이 해산물을 봉지에 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삶은 바다와 떼어놓을 수 없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 14일 올레순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판매원이 해산물을 봉지에 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삶은 바다와 떼어놓을 수 없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고등어는 레일을 지나며 200~600g까지 크기별로 4단계로 나뉘어져 20kg짜리 박스에 담긴다. 선반에 차곡차곡 쌓인 고등어 상자는 커다란 냉각팬이 -24℃ 냉풍을 뿜어내는 터널로 들어가 18시간 안에 꽁꽁 얼려진 뒤 냉동고로 향한다. 지난해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등어 필레 3만톤의 절반이 한국으로 수출됐다.

하랄은 1923년 이 회사를 세운 닐스 스페르의 아들이다. 바닷가 작은 나무창고에서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인 ‘바칼라우’를 만드는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온풍기로 말리지만 아버지 시절에는 대구를 소금물에 푹 절여 돌에 널어 말렸다. 포르투갈어로 대구를 말하는 바칼라우가 노르웨이어로는 ‘바위(klipp)’과 ‘생선(fisk)’이 합쳐진 ‘클립피스크(klippfisk)’라 불리는 이유다.
 

■어촌의 삶은 기다리는 삶

9월 16일, 올레순 북쪽 부두에 정박해 있던 루랑(LoRan)호는 출항 준비로 분주했다. 이 배는 스톨라 오토 디브(55)와 세 자녀가 함께 운영한다. 일종의 가족기업인 셈이다. 디브 가족은 주변 작은 섬 구도이(Godøy)에 터잡고 살아온 어부 집안이다. 30명 안팎인 섬 주민은 모두 디브 집안의 어선에서 일했다. 삼남매 중 둘째인 루벤(30)은 “우리 할머니의 일생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바다에 나간 아버지를,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기다렸고 나이 들어서는 아들을, 지금은 손자를 기다린다”며 웃었다.

선장 스톨라는 “물고기는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며 이날 밤 선원들과 바닷길에 나섰다. 길이 51m의 대형 주낙어선 루랑은 북극해인 바렌츠해까지 나가 대구, 해덕대구, 핼리버트(넙치) 따위를 잡는다. 주낙의 길이는 50km에 달한다. 루랑호에서 잡아올린 대구의 70%는 올레순의 공장에서 바칼라우로 만들어진다. 장남 트론트(33)는 “청정한 바다에서 우리가 잡는 생선에는 어떤 항생제도 없고 주낙으로 하나씩 건져 올리는 생선은 가장 신선하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홍일점인 막내 토냐(24)는 아버지와 오빠들처럼 선장이 되기 위해 견습 중이다. 토냐는 15살부터 배를 탔다. 거칠고 험한 바닷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어선은 어획량 쿼터가 정해져 있다. 30여년 전만 해도 제한이 없었지만 물고기가 급감하면서 규제가 생겼다. 북대서양 국가들이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만든 국제해양개발위원회(ICES)의 자료를 토대로 해마다 각국이 어획량을 합의하면 정부는 어선들에 쿼터를 배분한다. 노르웨이에서 할당량은 ‘물고기 보호장벽’이면서 어업을 폐쇄적인 구조로 만드는 ‘경제장벽’이다. 할당량은 어부가 아닌 배에 속한다. 배가 상속되면 할당량도 상속돼 하나의 재산권이 됐다. 그래서 어촌에는 가족기업이 많으며, 어민들은 상대적인 고소득층이다. 최근 저유가로 석유산업이 기울자 어업의 주가는 더 올라갔다.

9월16일 노르웨이 올레순 북쪽 부두에 정박해 있는 원양 주낙어선 루랑호 앞에서 선장 스톨라 디브(맨 오른쪽)와 장남 트론트(왼쪽에서 두번째), 둘째 아들 루벤(맨 왼쪽), 막내딸 토냐(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16일 노르웨이 올레순 북쪽 부두에 정박해 있는 원양 주낙어선 루랑호 앞에서 선장 스톨라 디브(맨 오른쪽)와 장남 트론트(왼쪽에서 두번째), 둘째 아들 루벤(맨 왼쪽), 막내딸 토냐(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바다는 언제까지 아낌없이 ‘선물’을 내줄 수 있을까. 지구의 70%는 바다이고 어업은 먼 바다에서 일어나는 까닭에 우리는 물고기의 일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씨뿌리고 김매고 농약을 칠 일 없이 거두기만 하면 되니 공짜인 것만 같다. 중금속이 없고 안전하다면 물고기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 것일까.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고등어에 버금가는 ‘국민생선’ 명태는 2000년 이후 어획량이 제로다. 맥주 안주로 사랑받는 쥐포의 재료 말쥐치는 한때 잡히면 버릴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급감해 지금은 잡히지 않는다. 이제 명태는 러시아에서, 쥐치는 베트남에서 온다. 고등어는 국산에서 중국산, 노르웨이산으로 옮겨왔다. 노르웨이 고등어마저 씨가 마르면 다른 바다를 찾을 수 있을까. 세계자연기금(WWF)은 “국제 어선단의 조업 능력은 지금 바다가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의 2~3배를 넘어서 전 세계 바다의 절반이 고갈됐다”고 지적한다.

노르웨이 연어산업의 기틀을 닦은 사육학자들은 양식이 해법이라고 봤다. 마린하베스트의 슬로건은 ‘파란 혁명(blue revolution)을 선도한다’다. 업계는 연어 1kg을 얻는 데 필요한 탄소발자국(2.5)이 소(30), 닭(2.5), 돼지(5.9)보다 훨씬 적다고 주장한다. 양식업계는 유전시추 기술을 접목한 심해 양식장, 완벽한 환경 통제가 가능한 육지양식장 개발까지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품종개량을 넘어 유전자조작(GM)까지 넘본다. 미국 회사 아쿠아바운티가 개발한 GM연어 ‘아쿠아어드밴티지 연어’는 지난해 11월 미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았다. GM연어는 성장속도가 야생 연어의 11배, 기존 양식 연어의 2배 가까이 빠르다. 지난 5월 캐나다도 GM연어의 판매를 승인했다.

연어치어시설, 바다 양식장과 가공공장은 연어산업의 거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관리는 치밀했고, 과학적이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이렇게 많은 돈과 에너지가 투입된 연어를 먹어야 할까, 지구 저편에서 비행기타고 온 생선을 먹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 속에서 돌아다녔다.
 

■자연산과 양식연어가 섞이면

연어양식의 규제망이 예전보다 촘촘해진 것은 맞지만 연어, 참치 같은 먹성 좋은 물고기를 대량 사육하는 것이 지속가능한지에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연어를 키우느라 바다생물을 싹쓸이한다는 비판이 일자 이제는 사료의 절반 이상을 옥수수, 콩 따위로 채우고 있다. 전 세계 콩의 70%가 가축 사료로 쓰이는 지금 양식 물고기까지 살찌우려면 더 많은 숲이 사라지고 콩밭이 들어서야 한다. 참치의 경우는 살 1kg을 얻는데 사료 20㎏이 필요하다.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 수산도시 올레순. 올레순 | 이인숙 기자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 수산도시 올레순. 올레순 | 이인숙 기자

연어 항생제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미국 최대 도매업체 코스트코는 지난해 항생제 사용이 지나치다며 칠레 양식 연어의 수입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올 상반기에는 칠레 양식장에서 연어가 전염병으로 집단 폐사해 연어값이 뛰었다. 백신으로 항생제를 대신한다 해도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지금 연어 양식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다물이(Sea lice)’다. 연어의 피부에 기생하는 바다물이는 양식업 규모에 비례해 무섭게 번식했다. 양식장 연어가 모두 폐사할 위험은 물론 야생 연어에도 옮는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이 때문에 연어 생산량이 5% 줄었다. 정부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양식장 허가를 더 이상 내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양식장에서는 살충제를 뿌리거나 바다물이를 잡아먹는 ‘청소 물고기’를 가두리에 집어넣거나 온수를 분사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아직 해법을 찾지 못했다. 비싼 레이저 기계를 양식장에 투입하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업계가 지난해 바다물이 문제에 쏟아부은 돈만 50억 크로네(6800억원)다.

연어가 가두리를 탈출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사람이 주는 사료를 먹고 통제된 환경에 길들여진 연어가 야생 연어와 유전적으로 섞이면 연어는 언젠가 자연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현지 환경단체 그린워리어의 소셜미디어에는 자체 제작한 감시선이 노르웨이 연안을 오가며 연어 배설물이 깔린 양식장 바닥을 찍어 고발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온다.

WWF는 1995년 세계 최대 수산기업인 유니레버와 제휴해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기준을 정하는 비영리단체 해양관리협회(MSC)를 만들었다. MSC인증이라는 환경라벨을 붙여 소비자를 움직이고 그 힘으로 기업을 움직이는 것이다. 2010년에는 양식관리협회(ASC) 인증제도가 탄생했다. 구르시쿠이 양식장 사무실 벽에는 2012년 6월 ASC인증을 얻었다는 증서가 걸려 있다. 노르웨이 전체 수산업 양식장 1069개 중 ASC인증을 받은 양식장은 76개로 7% 수준이다. 마린하베스트는 2020년까지 모든 양식장에 ASC인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해초 사료, 초식 물고기 양식, 물고기 배설물을 분해하는 해초 등 지속가능한 양식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어차피 인증제도는 판촉수단일 뿐이라며 불신의 눈길을 보낸다. 그린피스 북유럽지부의 할바르 루어븐트 북극해 캠페이너는 “ASC 인증에는 바다물이를 없애기 위해 쓰이는 과산화수소 등 화학약품에 대한 규제가 없다”며 “이런 인증은 자칫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생선을 먹는다는 착각을 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한 해산물 리스트를 만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 수족관의 해산물감시위원회(Seafood Watch)는 노르웨이의 ASC인증 연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식장 2곳을 뺀 노르웨이 양식 연어는 ‘피해야 할 생선’으로 붉은 딱지가 붙어 있다.

인구는 더 늘어나고 사람들은 더 많은 물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생물’ 물고기의 미래와 ‘식품’ 물고기의 미래 사이 균형점은 어디일까.

■특별취재팀: 구정은 박경은 이인숙 정환보 남지원 이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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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신입 철도노동자의 속내 “이 악물고 버텼는데 또 인턴 하라니...”

 

퇴직을 앞둔 그와 이제 막 입사한 그, 그들이 말하는 ‘성과연봉제’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6-10-10 08:31:14
수정 2016-10-10 09: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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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오는 27일 예정된 총파업을 결의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오는 27일 예정된 총파업을 결의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철밥통 지키기”, “불법파업”,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는 별개”

정부여당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노조에게 쏟아내고 있는 비판이다. 정부는 노조의 파업을 “정당성이 없다”고 비난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10일째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정부와 정치권에 성과연봉제 시행을 유보하고, 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2017년 3월까지 공공기관 개혁과 임금체계 개선방안을 마련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총파업 중심에는 2만7000여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왜 이토록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하는 것일까? 총파업에 나서게 된 그들의 속 얘기를 들어봤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김주형 기자

“기관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신입 기관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생인턴제”

“상사 눈치만 보며 연월차는 쓰지 못하고, 다쳐도 산재신청을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기관사만 되면 바뀔 거라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온갖 일을 하면서 버티고 정규직이 됐더니 동료들끼리 경쟁을 하며 서로를 짓밟으라고 한다.”

7일 <민중의소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철도 부기관사 이모씨(30대)는 “성과연봉제는 노예연봉제·평생인턴제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올해 6월30일 입사한 3개월 차 신입 기관사다.

이씨는 구의역 사고의 김군과 똑같은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 최저임금을 받으며 물류하청 일 등을 하면서 기관사 시험을 4년간 준비해 기관사가 됐다. 올해 6월 부기관사로 한국철도공사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 3개월간의 인턴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만 하는 인턴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해야만 했다. 어렵게 경쟁을 뚫고 기관사가 됐지만, 이번에는 경쟁체제로 모는 성과연봉제가 노조의 동의도 없이 통과된 것이다.

그는 “인턴 동기들의 피눈물위에 살아남으니, 또다시 동료들과 그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경쟁을 하라고 강요한다”고 분노했다.

게다가 이번 신입채용 계획은 지난해 노사가 임금피크제 시행과 함께 합의한 내용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1310명을 올해 내로 채용하기로 해 놓고, 500여명만 채용한 상태다. 3개월 인턴과정을 고려하면 회사는 최소 9월경에는 하반기 채용을 시작했어야만 했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2천300여개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한 뒤 외려 청년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역시 “청년일자리 만드는 성과연봉제”로 포장하고 있다.

이씨는 “약속했던 신규채용은 절반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성과연봉제를 일자리 만들기로 치장하지만, 사실상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안에 떠는 청년들과 우리를 대립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과연봉제로 일하는 환경은 더욱 악화될 거고, 공기업을 시작으로 전 영역으로 확대 되리라 본다”며 “그런 점에서 철도사람들의 파업은 단순히 자기 밥그릇 지키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깃발을 앞세우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깃발을 앞세우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성과연봉제, 회사 내 인간관계 악화
노동조합 파괴로 노동자 권리 악화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회사다. 그런데 정부와 회사가 말하는 성과연봉제는 직원 간 관계와 분위기는 필요 없고, 열심히 일해서 수익만을 높이라는 말이다. 회사 내 인간관계는 파괴될 것이다”

1976년 12월에 철도청에 입사해 40년간 기관사 일을 해온 전성철씨(59)는 “회사 직원들끼리 함께 산에도 가고 공도 차는 등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옆에 동료가 곧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씨는 “지금도 매달 사내 시험을 보고, 1년에 두 번은 비교적 엄격한 평가를 하고 있다”며 “성과제가 도입되면 이런 평가·시험제도는 더욱 강화되고 동료 간에 분위기는 삭막하게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동자의 권리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사가 합의한 객관적인 평가방식이 있더라도, 사용자의 주관이 개입돼 노조원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전씨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동조합이 무력화 될 것”이라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모든 행동이 통제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성과자 평가는 곧 퇴출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에 발표한 양대지침의 주요내용에는 ‘직무능력·성과 중심 인력운영 및 근로계약 해지절차’가 담겨 있다. 노조가 성과연봉제는 곧 퇴출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되는 이유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전북버스 노동자가 ‘성과주의 반대’ 수건을 펼쳐들고 있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전북버스 노동자가 ‘성과주의 반대’ 수건을 펼쳐들고 있다.ⓒ김주형 기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위한 것”

2005년 4월25일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운행 중이던 급행열차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한 뒤 선로변의 아파트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06명이 숨지고, 562명이 부상당했다. 이 참사는 전역에서 지체한 1분30초를 만회하려던 기관사가 과속으로 운전하면서 발생했다.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나친 경쟁사와의 경쟁, 실적 압박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후쿠지야마 사고는 공공부문 성과주의가 어떻게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실적 압박의 중압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의 노동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라고 강조했다.

이어 “철도를 비롯한 공공부문에 불어 닥친 ‘성과주의’라는 태풍은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인 ‘공공성’을 침해할 것”이라며 “이윤만을 위한 철도가 아닌, 국민의 철도가 되기 위한 파업임을 공감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철도 부기관사 이모씨는 “이미 철도는 117년의 노하우로 안전에 기반 한 최대한의 효율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기에 더 무리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모두 시민의 피해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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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이 골프장 때문은 아니라는 얼빠진 천안함재단

 
‘원인 규명과 추모보다는 안보 교육을 위해 이용됐던 천안함재단’
 
임병도 | 2016-10-10 08:46: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0년 KBS의 천안함 특집방송 및 모금 생방송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승조원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KBS는 주말 3일 동안 13시간 천안함 특별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KBS는 ‘특별생방송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방송하면서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원인 규명이 되기도 전에 추모와 모금 방송이 나오는 모습에 일부 국민들은 반감과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민들이 모은 성금 중 일부가 군 지휘관 회식비용 등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국회에서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모인 성금은 400억 원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만 유가족에게 돌아갔고 나머지는 ‘천안함 재단’ 설립에 사용됐습니다. 숨진 46용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천안함재단’ 그러나 오히려 유족들이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천안함 폭침이 골프장 때문은 아니라는 천안함재단’

천안함 유가족들은 재단의 설립 목적인 추모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차라리 해체해서 그 돈을 국가나 국민에게 반환하라는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2015년에는 유가족들이 재단 해체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와 국가보훈처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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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재단 임원들의 골프장 이용을 문제 삼자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2함대에 있는 골프장 떄문에 폭침 사고가 난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KBS뉴스 캡처

 

2015년 유가족들은 천안함재단 임원들이 2함대 해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며 이를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유가족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2함대 앞바다 바닷물이 그냥 보통 물로 보이냐. 가족의 눈물이 고여 있는 데다. 그것만은 막아달라고 제가 처음에 그 부탁했거든요.”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재단 임원들이 같이 가는 건 일 년에 한 번 갑니다. 2함대에 있는 골프장 때문에 천안함이 그렇게 폭침 사고가 난 건 아니잖아요?”라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46용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 임원들이 그들이 숨진 바다가 보이는 해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은 성금을 낸 국민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변명 또한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퇴임 선물로 황금열쇠 받은 김인규 KBS 사장, 천안함재단 고문으로’

더불어민주당 김해영의원(부산 연제구 정무위)은 국가보훈처로부터‘천안함재단의 운영현황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천안함재단이 모 방송국 사장의 퇴임을 축하하며 재단의 경비로 10돈짜리 황금열쇠(297만원)를 선물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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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선물로 황금열쇠를 지출했다는 천안함재단의 지출결의서와 김인규 전 KBS 사장의 재단 고문 위촉 사진 ⓒ천안함재단

 

여기서 말하는 모 방송국 사장은 김인규 전 KBS 사장을 말합니다. 김인규 사장은 2012년 11월 퇴임을 했고 이듬해인 2013년 4월 2일 천안함재단의 고문으로 위촉됐습니다.

천안함재단이 김인규 전 KBS사장에게 297만원짜리 황금열쇠를 선물하고 고문으로 위촉한 이유는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자 발빠르게 추모 방송과 특집 성금 모금 방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군인 46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보다 오히려 방송으로 홍보에 힘쓴 인물에게 황금 10돈의 선물과 고문이라는 직책을 선사했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기억하려는 천안함재단이 해야 할 사업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차례 감사를 요구했지만, 외면한 국가보훈처’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에 따르면 천안함재단 유가족들은 ‘재단발전간담회’ 등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천안함재단의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① 이사장의 개인저서를 재단의 경비 2,000만원으로 사들여 군부대등에 기증했다 유족의 반발로 다시 반환
② 이사장, 이사진 등은 두 쪽 난 천안함이 내려다보이는 제2함대체력단련장(골프장)에서 해군측의 준회원 자격 부여로 골프를 즐김.
③ 모 방송국 사장의 퇴임을 축하하며 재단의 경비로 10돈짜리 황금열쇠(297만원)를 선물
④ 이사장은 군부대 특강에서 재단의 경비로 출장일비, 교통비, 숙박비, 식비를 지원
⑤ 해당 부대에 재단 경비로 100~200만원씩 위로금으로 지급
⑥ 이사장은 부대에서 따로 특강료를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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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재단 이사회 회의록 ⓒ천안함재단

 

천안함유가족들은 2015년부터 국가보훈처 등에 천안함재단의 감사를 요구했습니다. 2015년 6월 KBS 방송으로 관련 뉴스가 보도되자, 재단 측도 국가보훈처에 감사를 요구했습니다.

천안함재단 이사회는 7월과 8월에도 국가보훈처에 감사를 재요청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유가족의 감사요청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도 천안함재단에 대한 감사는 없었습니다.


‘원인 규명과 추모보다는 안보 교육을 위해 이용됐던 천안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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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이후 초등학교 안보교육 등이 급증했다

 

유가족들은 천안함재단이 추모사업비와 생존자와 유가족 지원에 너무 적은 비용을 사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천안함재단의 사업비 중에서 눈에 띄는 지출은 ‘천안함 추모 음악회’나 ‘대국민 안보 교육’이었습니다.

재단 측은 추모행사비용은 대부분 보훈처와 해군에서 지원했기 때문에 적었고, 재단 특성상 직원이나 사무실 운영비는 불가피한 예산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400억이 넘게 모아준 성금이 고작 재단 직원의 급여와 사무실 운영비를 위해 사용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46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숨진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안보 교육’에 치중하고 ‘안보 정국’을 만들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는 이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천안함침몰KBS성금모금-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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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백남기 보험청구땐 ‘외상성’ 진단서엔 ‘병사’…“사기쳤냐”

 

11.14 이후 11번 ‘외상성’ 보험청구…SNS “백선하 수정지시하고 사죄하라”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 故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학교병원 교수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견동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서성환홀에서 열린 故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기재해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작 건강보험급여 청구에는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기재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고 백남기씨의 상병코드를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기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11차례 건강보험급여(보험급여)를 청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심평원의 관련 내역을 확인한 결과 서울대병원은 고 백남기씨가 병원에 실려온 지난해 11월14일부터 2016년 9월까지 줄곧 백씨의 상병코드를 ‘외상성’ 경막하출혈(AS0650, AS0651)로 기재해 보험급여를 청구했다.

서울대병원은 11차례에 걸친 보험급여 청구에서 ‘(양방)열린 두개내 상처가 없는 외상성 경막하출혈(AS0650)’과 ‘(양방)열린 두개내 상처가 있는 외상성 경막하출혈(AS0651)’를 기재했다.

그러나 고 백남기씨 사망 직후 9월25일 백선하 교수의 지시로 레지던트 권모씨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했다.

정춘숙 의원은 “서울대병원과 백선하 교수는 스스로 결자해지하는 자세로 사망진단서 오류를 바로잡고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해당 보도가 알려지자 SNS에서는 서울대병원의 시정을 촉구하는 의견이 잇따랐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서울대병원장은 백선하 교수에게 진단서 수정을 지시하고 공개사과하라”라고 성토했다. 또 정 전 의원은 “검‧경찰은 부검시도를 철회한다는 발표를 하고, 이제 특검을 통하여 살수과정과 은폐 등에 대한 자세한 수사를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애 전 의원은 “백남기 농민 의료보험 청구할 때는 ‘외상성 출혈’로 썼군요. 그것도 11번이나. 뭡니까?”라며 “사망진단서에는 왜 ‘병사’라 쓴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도 “서울대병원과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패륜적 만행 사죄하고 사망진단서 외인사로 수정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SNS에서는 “존경받는 의사가 어찌하여 얼마 남지 않은 권력 앞에 양심을 팔아 먹은 건지, 영원한 권력은 없소이다, 명예를 지키세요”, “보험은 외상성으로 돈 받아 먹고, 진단서는 병사로써서 가족에게 돈 받고, 이건 사기 아닌가”, “저게 사실이라면 서울대병원 보험사기친 거냐? 병원 폐업시켜라”, “보험공단은 서울대병원 부당보험급여청구 감사하라”, “서울대학병원 고발 당하겠네”, “양심을 파는 백선하임이 판명됐네요” “백선하 한 사람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그 동안 쌓은 명예가 한 순간 날아갔다”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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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방 이야기]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대륙서점'

30년째 같은 간판 쓰는 주인장의 속내

[나의 책방 이야기]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대륙서점'

16.10.09 19:59l최종 업데이트 16.10.09 19:59l

 

지인에게 "동네에 자주 드나드는 단골책방 없냐"고 물었더니 "누가 요즘 책방에 가느냐"고 면박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책방은 계속 생겨나니까요. 심지어 심야책방, 책맥(책+맥주), 낭송회 등등의 문화도 선도해 만들어갑니다. 여러분의 취향저격 책방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 동물원, <혜화동>

어릴 적, 자신이 살던 동네 혹은 골목길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골목길'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아련함,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내게도 걷기만 하면 늘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골목이 존재한다. 바로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성대골'이 그렇다.

1999년 아직은 코흘리개였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손 잡고 처음 이곳에 온 뒤로 성대골은 내가 10대 시절을 오롯이 보낸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닌 골목길이었고, 코밑에 수염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는 매일 오가던 등하굣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아련했던 10대 시절이 그리울 때면 가끔씩 찾아 향수를 느끼곤 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 골목길 한 켠에 유일한 동네책방 '대륙서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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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전경 1987년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튼 대륙서점은, 30년 동안 줄곧 이 자리를 지켜왔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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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생일을 앞둔 대륙서점

대륙서점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던 서점이었다. 그러나 1987년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양성훈 사장이 인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대륙서점은 성대골 주민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대형 서점이 도서시장을 장악하면서 동네책방들에 위기가 찾아왔다. 대륙서점이라고 그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고심 끝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지 전문 서점으로 거듭났다. 딱 거기까지가 내가 대륙서점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성대골은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나의 10대 시절 추억도 이젠 기억에 묻어야 하는구나'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쓸쓸히 걷고 있을 무렵, 어느덧 내 발걸음은 대륙서점 앞에 멈춰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 보이는 대륙서점은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던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밝은 조명 아래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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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책방지기가 인수하기 전, 30년 동안 대륙서점을 운영해왔던 양성훈·남덕임 부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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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대륙서점으로 다시 탄생하기 전, 학습지 전문 서점이었던 시절의 대륙서점 내부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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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거듭난 대륙서점을 찾다

"어서 오세요."

서점에 들어서자, 젊은 책방지기(이곳에서는 주인을 이렇게 불렀다) 박일우(41)씨가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곧이어 그의 아내 오승희(33)씨도 들어왔다. 책방을 한 번 스윽 둘러보기 무섭게 책방지기 부부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었었던 거냐"고 물었다. 오씨가 웃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학습지 전문 서점으로 거듭난 뒤에도 대륙서점의 운영 상태는 좋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에 책방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30년 가까이 대륙서점을 지켜왔던 양성훈·남덕임 부부도 더 이상 서점 운영을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 5년 이상 수익이 나오지 않아, 임대료조차 납부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 결국 고심 끝에 노부부는 2015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신혼부부였던 박일우·오승희 부부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당시 두 사람은 성대골에 신혼살림을 차린 상태였다. 성대골에 처음 자리를 잡아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부부에게 우연히 접한 대륙서점 폐점 소식은 운명과도 같았다.

오씨는 "책방을 인수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딱 하루 걸렸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음식점을 차릴까도 고민해 봤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차라리 더 자신 있었다"고.

부부는 다음 날 바로 서점을 찾았다. 지금은 전 주인이 된 양성훈 사장 역시 하루 고민하고 바로 다음 날 "책방을 인수하라"며 젊은 부부에게 대륙서점을 넘겼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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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을 인수한 뒤에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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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비는 책으로 받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방을 인수하고 나니, 막막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리모델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마침 오씨가 활동하던 '청춘플랫폼'을 만든 디자인 기업 블랭크(Blank) 측이 대륙서점 리모델링에 두 팔 걷고 나섰다.

블랭크는 도심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빈 공간들을 재활용하여,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주로 만들어 온 사회적 기업이었다. 블랭크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설계비를 책으로 받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어려운 사정을 들은 블랭크 측이 책으로 설계비를 받기로 했다. 그래서 매월 5권씩 3년 동안 블랭크 팀에 책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친구들이 읽고 싶은 책들을 알려오면, 우리가 직접 주문해서 가져다주고 있다."

블랭크 측이 이토록 파격적인 양보를 한 것은 '우리 마을에도 좋은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데 부부와 뜻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테리어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 역시 '어떤 공간으로 활용할 것인가'였다. 내부 장식보다는 어떤 책을 팔고, 어떤 공간으로 운영해나갈 것인지 논의를 거듭했고, 그 결과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는 지금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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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내부 모습 동네책방이라고 하지만 매우 좁다. 이 좁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책방지기 부부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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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아지트

책을 좋아한 오씨와 커피를 좋아하는 박씨는 각자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책방 한 켠에서 커피와 맥주 등 음료를 파는 '북카페'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북카페가 아니었다. 부부는 "책하고 사람들을 좀 더 쉽게 연결해줄 수 있는 아지트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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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한 켠에는 이렇게 음료를 제조해서 파는 공간이 있다. 대륙서점을 찾는 주민들은 직접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밤에는 맥주 한 잔과 더불어 책맥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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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5년 11월 8일, 절기상으로는 이제 막 겨울에 들어서는 입동(立冬)에 대륙서점 시즌 2가 문을 열었다. 많은 책을 구비할 여유가 없어, 처음에는 200만 원 어치의 책으로 시작했다. 앞으로 계속 쌓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새롭게 문을 연 지 이제 1주년이 가까워져 오는 지금, 부부는 "예전에 비해서 책이 훨씬 많아졌다"며 웃는다.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니 책을 소개하는 코너의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보통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으로 분류하는 대형 서점과는 달리 '현재 우리는 어떤 사회에 있나요?', '가슴 뜨겁게 취하고 싶은 날, 술친구가 되어주는 책', '새벽에 홀로 깨어 있고 싶을 때'와 같이 문구 형식으로 이루어진 코너명이 참으로 신선했다. 부부가 직접 고민해서 붙인 문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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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코너의 문구는 책방지기 부부가 손수 지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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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점에 비하면 입고되는 책의 규모도 턱 없이 부족할 터. 특별히 책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우리 부부가 좋아했던 책이나, 작가 혹은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책 위주로 입고했다. 그렇게 200권의 책을 갖다놨는데, 정작 주민들은 베스트셀러를 찾았다. 주민들의 수요에 맞춰서 지금은 우리가 추천하는 책과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함께 갖다놓고 있다."

대륙서점은 주민들로부터 '예약 주문'을 받기도 한다. 동네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주문하면, 책방에 자연스럽게 입고한다. 그러다가 책방지기 부부가 읽어보고, 괜찮은 책이라고 판단하면 추가 입고해서 다른 주민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부부는 "우리만의 책방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하는 책방이다"라고 대륙서점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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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대골 주민들의 공유서가 대륙서점에는 '공유서가'란 게 있다. 책방 단골 손님들이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한 달 동안 대륙서점에 대여해주면, 서점에서 코너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코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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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잡지를 출판하기도

대륙서점에서는 '독립출판물' 코너 역시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독립출판물이란 저자가 기획, 편집, 출판 그리고 서점 입고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는 출판물을 의미한다. 베스트셀러가 장악해버린 도서시장에서, 독립출판물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차원인 셈이다.

올 여름에는 대륙서점에서 직접 출판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상도동 그 가게>가 바로 그것. 대륙서점이 위치한 성대골(상도동) 일대의 아주 오래된 가게부터, 새로 생긴 호텔까지 상도동에 있는 가게들을 소개하는 잡지다. 

상도동 주민 기자단부터 마을활동가, 건축하는 청년,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인 청년 그리고 대륙서점 책방지기 부부가 참여해 만들었다. 이 책은 오로지 대륙서점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대륙서점에서는 <상도동 그 가게>에 이어, 올 하반기에 <상도동 그 소설>이라는 주제의 다음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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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명의로 처음 출간된 <상도동 그 가게>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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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다

학습지 전문서점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온 대륙서점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것에 대해 동네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많은 주민들이 동네에 이런 데가 생겨서 좋다고들 한다. 물론 여전히 관심 없는 이들도 많다. 워낙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다보니, 이런 책방이나 행사에 관심 없는 주민들도 많다. 그런 이들조차도 가볍게 발걸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모임을 주선해오고 있다."

실제로 대륙서점은 책을 파는 서점이지만 서점의 역할을 넘어 동네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매월 첫째 주에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우리 동네 독립영화관'을, 둘째 주에는 독립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씨네륙'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다큐 공동체인 '푸른 영상'과 연대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감독을 서점으로 초청해 '감독과의 대화'를 갖기도 한다. 이번 달말에는 동작구 지역라디오 '동작FM'과 연대하여 '한국 현대사 30장면, 그 오욕과 감격의 역사'라는 주제의 한국현대사 특강을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 상영을 넘어 인문학 강좌까지 외연을 넓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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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에서 진행한 '우리 동네 독립영화관' 상영 모습. 대륙서점에서는 정기적으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감독을 초청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 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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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대륙서점 주차장에서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했다. 오씨는 "결국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동네 주민들에게 대륙서점으로 들어오는 문턱을 낮춰주기 위함이다"라며 "평소엔 들어오기 꺼려지던 서점이지만, 플리마켓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들어오고, 또 그렇게 책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륙서점은 사회 참여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세월호 참사 900일을 맞아, 플리마켓 수익금 10만 원으로 '세월호 기억 팔찌' 캠페인에 후원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 참여 활동에 앞장서는 것은 책방지기 부부의 소신이 뚜렷한 탓이다.

"살아가면서 더 이상 사회적인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세월호 코너를 만드는 등, 책방을 찾는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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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에서 개최하는 플리마켓 당시 모습. 평소 책과 거리가 멀었던 동네 주민들에게 대륙서점의 문턱을 낮춰주기 위한 행사였다. 대륙서점 측은 수익금 10만원을 '세월호 기억팔찌 캠페인'에 후원했다.
ⓒ 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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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책 한 권 찾아주는 곳이 동네책방

최근 들어 동네책방이 때 아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수 요조, 개그맨 노홍철 등 유명인사들까지 앞다투어 책방을 열면서, 동네책방을 찾는 젊은 세대들의 발걸음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책방 열풍을 두고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며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서점의 규모나 위치에 있어서 대형 서점이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하나둘 문을 닫아가는 동네책방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그렇다면 대형 서점에 비해 동네책방이 갖는 매력 포인트는 뭐가 있을까?

"대형 서점에 가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매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유명하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책들은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책방은 다함께 읽고 고민해보고 싶은 책들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러 발견한 그 책이, 어쩌면 평생 만나보지도 못했을 책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평생 책' 한 권 찾아주는 것이 동네책방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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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를 직접 소개하는 책방지기 오승희씨의 모습. 그녀는 특히 황경신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별도로 황경신 작가의 코너가 서점 한 켠에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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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

학습지 전문 서점에서 지역공동체의 사랑방이자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난 대륙서점. 그러나 여전히 '각종 초.중.고 학습지 접수처'라고 쓰인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부부는 "지난 30년의 역사를 계승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부부가 책방을 인수하면서, 대륙서점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출발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왔던 추억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어렸을 때 여기서 문제집 사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중에 책을 낸 친구도 있고, 우리와 문화공연을 함께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에겐 결국 이 서점이 추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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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에는 흔치 않은 '턴 테이블'과 'LP판'이 있다. 책방지기 부부가 신혼살림으로 장만해온 것이라고 한다. 점점 잊혀져가는 옛 가치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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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인터뷰 내내 유독 '같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단어야말로 대륙서점 운영철학을 잘 담아내고 있는 표현이었다.

"동네 사람 누구나 와서 같이 얘기하고, 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다같이 어울려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친구를 사귀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저 책방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는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삶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그런 친구 관계로까지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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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을 찾은 주민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는 것 역시 대륙서점의 목표 중 하나다. 근처에 거주한다는 박혜성씨는 "이런 공간이 우리 동네에 생겨서 너무 좋다. 책방을 가려면 항상 홍대 등 번화가로 나가야했는데, 진정한 동네책방이 생긴 셈"이라며 대륙서점의 새로운 출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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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취재를 마치고 나와, 대륙서점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는 그 순간. 대륙서점이 입주한 건물 옆으로 새로 올라가고 있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섭게 올라가고 있는 건물 옆에서 낡은 대륙서점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문득 '이러다 대륙서점마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책방지기 부부 역시 "사실 건물이 재개발될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설사 재개발이 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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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의 책방지기 박일우·오승희 부부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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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관대했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추억이 깃든 공간을 찾아 헤매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지 않던가. 다시 찾은 그 공간이 더 이상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온전히 내 기억 속에만 묻어두고 돌아와야 했던 발걸음은 또 얼마나 쓸쓸했던가. 그래서일까. 성대골 주민들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대륙서점의 노력이 눈물겹게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성대골의 명물(名物)이 된 대륙서점. 지난 30년 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상호명: 대륙서점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성대로 40 1층 대륙서점 
영업시간: 매일 AM 11 : 00 ~ PM 10 : 00 
TEL : 02-821-8878 
블로그: http://blog.naver.com/daeruk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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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삼성, 제주기지 반대 맞서 “공개돼선 안 될 긴밀한 협조”

 
[토요판] 뉴스분석 왜?
해군-삼성 분쟁이 ‘중재’로 간 까닭
2013년 8월19일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이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작성한 협조 공문. 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삼성의 손실배상 산정 과정에서 해군은 검찰에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 지휘를 요청한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군은 설명했다.
2013년 8월19일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이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작성한 협조 공문. 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삼성의 손실배상 산정 과정에서 해군은 검찰에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 지휘를 요청한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군은 설명했다.

 

 

 

▶ 2013년 제주해군기지 공사 반대로 공사기간이 연장됐다며 삼성물산이 국가에 손실액 보상을 청구합니다. 몇 달 앞서 해군은 검찰에 공문을 보내 삼성의 손해액 산정 절차로 소송(공개)이 아닌 중재(비공개)로 사건 지휘를 요청합니다. 소송 과정에서 ‘어떤 사실’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해군의 전략이었습니다. 해군과 삼성 사이엔 감춰야 할 공조 정황이 있었습니다. 해군-삼성은 적극적인 협조로 공사 반대에 대응했고, 협조 정황 공개를 막기 위한 ‘중재 작전’엔 법무부도 힘을 보탰습니다.

 

 

 

2013년 8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공문 한 장이 작성됐다. 발신자는 해군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기지건설사업단)이었다. 그달 19일 사업단에서 전결 처리됐다.

 

공문은 ‘시공사와의 분쟁에 있어서 중재 합의에 대한 검찰 지휘 요청 의견서’란 제목을 달았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삼성물산(항만 1공구 시공사)과의 분쟁을 검찰이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을 지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공사와 국가 사이의 계약서에 의하면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소송 또는 중재에 의할 수 있으며, 중재에 의할 경우 (…) 양측 당사자 사이의 중재 (절차에 동의하는) 합의가 필요함. 중재의 경우 소송의 경우를 준용하여 검찰청의 지휘를 받도록 법률에 규정이 되어 있기에 중재 합의를 함에 있어서도 검찰청의 지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이 됨.”

 

분쟁은 제주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으로 발생한 삼성의 추가 비용 청구 건이었다. 해군은 공문에 붙임자료(‘공기연장 추가비용 지급 사안의 현황과 그 해결책의 검토-중재의 필요성’)를 딸려 보냈다. 자료엔 검찰이 중재로 지휘해야 할 ‘내밀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기지건설 반대에 맞서는 해군-삼성 간의 “적극적”이고 ‘공개돼선 안 될’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이 ‘같은 편끼리의 귓속말’처럼 검찰에 설명됐다. 공사지연 배상금 규모를 다투는 분쟁 형식도 “긴밀한 협조” 정황의 노출을 차단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소송 아닌 중재로 지휘해달라”

 

“왜 소송으로 가지 않고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보냈는지 우리도 궁금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그때’(중재 절차 당시)를 회고했다. 2012년 5월16일 제주해군기지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발주처인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은 공기 변경 계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으로 ‘2010년 1월29일~2014년 7월28일’로 잡혀 있던 공사기간이 2015년 9월26일까지 늘어났다. 변경 직후 삼성은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금액으로 360억2916만4277원과 그 이자를 요구했다. 연장의 이유를 해군과 삼성은 기지건설 반대 시위에서 찾았다. 애초 양쪽 사이에 공기 연장의 책임규명 논란은 없었다. ‘반대시위로 입은 삼성의 피해액 산정’이 분쟁의 형식과 내용이었다.

 

 

2013년 8월 해군이 검찰에 공문 
삼성 공사지연 손실액 산정 절차 
소송 대신 “중재합의 지휘” 요청 
“삼성과 협력정황 노출되면 안돼” 
법무부 승인으로 해군 뜻대로 진행 

상사중재원 판정문에 ‘협조’ 흔적 
2012년 삼성에 케이슨 가거치 지시 
반대자들에게 ‘공사 불가역성’ 전시 
7기 중 6기 파손 91억 국고 낭비 
해군 “사실관계 답할 사항 아니다”

 

 

해군이 검찰에 요청한 대로 절차는 진행됐다. 삼성과 해군은 손해액 산정을 상사중재원에 판단을 맡겼다. 상사중재원은 중재법에 따라 설립(1966년 3월)된 상설 중재기관이다. 중재 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받는다. 소송이 상대를 공박하며 승패를 겨루는 싸움이라면, 중재는 합의를 전제로 합의 내용을 정하는 과정이다.

 

2015년 6월18일 상사중재원은 해군이 삼성물산에 27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판정을 기초로 해군은 2016년 3월28일 기지 건설에 반대한 116명과 5개 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공기 연장 추가 비용 275억 중 34억4839만3880원을 해군은 반대시위 탓으로 계산했다.

 

소송이 아닌 중재를 통해 손해액 합의에 이른 데엔 해군의 ‘기획’이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간사)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한겨레> 취재로 확인됐다. 중재는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한 해군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군은 중재를 선택한 이유를 “소송과 비교할 때 법적 효력은 같되 처리 절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겨레>에 설명했다.

 

“삼성이 국책사업 과정에서 (공사 반대로) 손해를 입었고 공기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란 사실은 우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문제는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인데 소송으로 가든 중재로 가든 효력은 같다. 소송이 몇 년씩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재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해군본부 공보과장·대령)

 

2012년 9월 초 제주 강정 앞바다에 가거치된 케이슨이 태풍에 파손돼 쓰러진 채 잠겨 있다. 원래 공정엔 없던 케이슨 가거치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 주민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군이 삼성에 지시(대한상사중재원 판정문)해 이뤄졌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초 제주 강정 앞바다에 가거치된 케이슨이 태풍에 파손돼 쓰러진 채 잠겨 있다. 원래 공정엔 없던 케이슨 가거치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 주민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군이 삼성에 지시(대한상사중재원 판정문)해 이뤄졌다. 연합뉴스
해군본부의 설명은 기지건설사업단이 검찰에 보낸 공문 붙임자료에도 언급돼 있다. “본 사안의 본질은 추가 비용에 대한 책임규명이 아니라 적정한 추가 비용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므로 소송보다는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해군이 설명하지 않은 ‘삼성과의 관계’가 있었다. 내용은 공문 붙임자료에 명시돼 있다. “제주민군복합항 건설 사업의 경우 해군과 시공사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응하여 긴밀히 적극 협조하여 왔음. 지금까지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해군이 협조를 요청하는 사항에 대해 시공사는 이해득실을 떠나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왔으며, 이는 추후 분쟁 발생시 (…) 상호 신뢰하여 이루어진 행위 등을 존중하고 (소송이 아닌 중재로) 해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신뢰하여 왔기에 이루어진 측면이 강함.”

 

검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해군의 논리에서 몇 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① 해군기지 반대 시위 대응은 해군과 삼성의 공조 속에서 이뤄졌다. ② 이해득실을 떠난 삼성의 적극적 협조는 손해배상액 산정 등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군의 ‘중재 처리’를 기대하며 들어둔 일종의 ‘보험’이었다. ③ 공기 연장으로 삼성이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과는 삼성의 기대대로 처리됐다.

 

해군은 이 협력 관계가 소송에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러한 신뢰를 뒤로하고 (그간의 협조) 절차가 공개되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소송으로 분쟁을 해결할 경우 당사자 간의 이미지 및 신뢰가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임.”

 

‘삼성과의 적극 협력’ 중엔 노출돼선 안 되는 정황들도 있다고 했다.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의 경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기에 소송에 의할 경우 그 액수가 큰 점을 고려하면 또다시 언론에 노출이 될 수가 있음. 언론에 노출이 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사항과 대처사항 등 내부적으로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임.”

 

중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로 ‘비공개 심리’를 꼽기도 했다. “중재 절차는 일반인에게 비공개로 진행이 되기에 이러한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해군이 검찰에 중재 지휘를 요청한 ‘깊은 뜻’은 이랬다.

 

 

법무부까지 힘 보탠 비공개 전략

 

삼성이 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한 시점은 2013년 11월이었다. 해군이 검찰에 중재 지휘 요청 공문을 보내고 3개월 뒤였다. 이미 정부-삼성-검찰 간에 중재 절차 합의가 끝난 뒤였다. “신청 접수는 분쟁 쌍방 간의 중재 절차 합의를 전제로 한다”고 중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피신청인은 “대한민국(소관 해군)”이며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법률상 대표자로 명기됐다. 법무부는 2013년 9월10일 제주지검으로 공문을 발신했다. 해군의 뜻에 따라 ‘중재 지휘’ 수용을 요청한 제주지검에 법무부 차원에서 승인을 공식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중재 신청에 따른 비용 납입은 12월(사건개시)에 이뤄졌고, 1차 심리는 한 달 뒤인 2014년 1월에 열렸다.

 

해군본부는 삼성의 중재 요청도 해군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중재로 가기 위한 ‘세팅’도 해군이 했다는 뜻이다.

 

“삼성은 국가에 손해배상만 요구했지 소송과 중재 중 특정 절차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중재로 가는 것이 맞다는 판단은 우리가 했다. 우리 제안을 삼성이 받아들였다.”(공보과장)

 

검찰에 보낸 공문에서 해군은 다르게 설명했다. 해군은 삼성이 국가에 중재를 요청한 때가 2012년 12월(해군의 공문 발송 8개월 전)이라고 썼다. “(삼성의) 합의 요청서가 국가 측에 넘어온 이후에도 중재 절차가 타당한지, 타당하다고 해도 중재 합의를 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기관이 어디인지를 두고 8개월간 절차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고 했다. 해군은 “결국 중재 합의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이라는 결론이 내부적으로 내려졌으나 (…) 정부 내에서 절차를 지연시킨다고 (삼성이)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조속한 지휘”를 촉구했다.

 

<한겨레>에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에 중재를 제안한 해군이 삼성을 앞세워 검찰의 중재 지휘를 독촉하는 모양새다.

 

“언론에 공개돼선 안 될 내용이란 없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해군-삼성 간의 협조가 무엇인지 해군은 답변하지 않았다. 변남석(준장)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은 “더는 내가 답할 부분이 아니”라며 추가 설명은 해군본부로 넘겼다. 해군본부는 “우리의 공식 답변은 국책사업이란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지 그 부분에 해군이 답할 사항은 없다”(공보과장)고 했다.

 

해군이 함구하는 삼성과의 “긴밀한 협조” 중 하나가 상사중재원 판정문에서 확인된다. 2012년 3월부터 삼성물산은 케이슨 7기(수중 건설 기초공사에 주로 사용되는 상자 모양의 구조물)를 1공구 쪽 바다에 가거치(임시거치)했다. 그해 여름 세 개의 태풍이 잇달아 강정바다를 덮쳤다. 7월18일 태풍 ‘카눈’, 8월27일 태풍 ‘볼라벤’, 8월31일엔 태풍 ‘덴빈’이 케이슨을 때려 6개를 파손시켰다. 아파트 8층 높이(20여m 8885t)의 케이슨들이 망가진 채로 바다에 방치됐다. 그해 11월25일 삼성물산 예인선(45t급)이 새 케이슨 거치 작업을 마치고 회항하다 태풍에 깨진 케이슨과 부딪혀 침수됐다. 파손된 케이슨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포클레인이 바지선 위에서 부숴 밤바다로 밀어 넣는 장면도 목격됐다. 바다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연산호 군락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상사중재원은 케이슨 가거치의 ‘숨은 목적’을 기록으로 남겼다. 케이슨 가거치는 애초 삼성물산의 공사 계획엔 포함돼 있지 않은 공정이었다.

 

“피신청인은 반대 민원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상태에서 공정을 만회하고 반대 민원인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서 공기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건 공동수급자(삼성물산)에 케이슨 가거치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삼성은 해군의 지시에 따라 7개의 케이슨을 가거치했다. ‘케이슨 가거치로 공정이 단축됐다’는 해군의 주장을 상사중재원은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협력 결과 ‘국고 91억원 낭비’

 

강정 앞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해군은 시공사 선정 당시 입찰 안내서에 50년 빈도의 한계파고를 10.4m로 제시(상사중재원 판정문)했다. 가거치 때 삼성은 감리단 검토를 거쳐 그보다 높은 11.5m로 한계파고를 설정했다. 파도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케이슨을 파도 방향에 세로로 놓고 케이슨 사이에 이격을 두어 파압 감소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2년 태풍은 삼성의 대처를 넘어섰다. 50년 빈도의 파고를 초과하는 최대 12.3m의 파도가 덮치며 가거치된 케이슨들을 깼다. 케이슨 파손은 해군이 주장하는 가거치 이유(공정 단축)와 정반대로 공기 연장(케이슨 재제작 기간 77일)과 추가 비용(재제작 8억원+파손처리 83.33억원=91.33억원)을 발생시켰다. ‘공사의 불가역성’을 강변하기 위해 삼성에 케이슨 가거치를 지시한 해군은 결국 ‘국고 91억원 낭비’란 결과를 낳았다. 해군은 “(사실 여부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이철희 의원은 지적했다.

 

“군과 시공사는 그간 있었던 은밀한 협조를 숨기기 위해 공개 절차인 소송이 아닌 공개되지 않는 타협인 중재로 하였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중재 절차는 국가와 기업이 짬짜미한 것으로, 그 부담을 국가가 공사 반대 주민과 시민에게 떠넘겼고 그 결과가 구상권 청구인 것이다.”

 

현재 대림산업(항만 2공구 시공사)도 해군과의 합의를 거쳐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대림이 국가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231억원이다. 삼성물산도 2차 배상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액수가 결정되면 해군은 강정 주민들과 단체들에 추가 구상금을 청구할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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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를 통해 '사죄'를 읽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The Apology' 국내 첫 상영
부산=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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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8  2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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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중국, 필리핀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The Apology'가 8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국내에 상영됐다. 사진은 영상 속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 [사진출처-'The Apology' 공식 페이스북]

일본 우익의 망발 '창녀는 돌아가라'. 이에 맞선 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다시는 우리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소설이 아니다. 실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다. 2012년 일본 증언집회를 간 할머니를 향해 우익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으로 악을 써댔지만, 길원옥 할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를 설파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사죄를 받으려 하는가. 사죄를 받기 위해 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영화가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The Apology(사죄)'가 8일 오후 부산 센텀CGV에서 처음 상영됐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목소리'가 처음 선보인 1995년 이후 20여년 만에 '위안부'를 주제로 한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

영화는 대만계 캐나다인 티파니 슝(Tiffany HSIUNG) 감독이 7년에 걸쳐 만난 한국, 중국, 필리핀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통해 사죄의 의미를 찾는다.

여기에는 길원옥 할머니가 일본 우익들의 망언을 고스란히 듣는 장면이 담겨있다. 참을 수 없는 표현에 영화 속 할머니의 표정은 덤덤하다. 오히려 평화를 외친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한다. 무관심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는 마이크를 잡고 끊임없이 평화를 설파한다. 그렇게 길원옥 할머니는 평화활동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카오 할머니. [사진출처-'The Apology' 공식 페이스북]

중국 카오 할머니. 한번도 제대로 자녀에게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위안부'를 곱지않게 보는 사회의 손가락질은 카오 할머니를 체념케했다. 자신의 엄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접한 딸의 눈빛에는 과거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움이 역력하다.

필리핀 아델라 할머니. 그 또한 사회의 시선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자상한 남편이 자신을 떠날까봐, 아들이 부끄러워할까봐.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의 고통과 침묵의 강요로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리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들 피해자들이 보다 편한 삶을 누릴 수 없을까.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이다. 한국과 일본정부가 지난해 '일본군'위안부'합의'('12.28합의')에서 보여준 '대독 사과', 아베 일본 총리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허울뿐인 사죄는 피해자들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20여년 동안 흔들림없는 일본 정부의 오만함과 마주하면서도 왜 사죄를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아델라 할머니가 침묵의 강요를 떨쳐내고 카오 할머니가 체념에서 벗어나며, 길원옥 할머니가 더 이상 노구를 이끌고 세계를 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정의와 기억없이 화해와 치유란 없다는 이야기다.

   
▲ 필리핀 거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아델라 할머니. [사진출처-'The Apology' 공식 페이스북]

다큐멘터리 'The Apology'가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무겁지만은 않다. 여느 할머니와 같이 약이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고, 흘러간 옛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앞으로의 계획은 먹고자는 일이라는 일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티파니 슝 감독이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고 후유증을 어떤 방식으로 헤치며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왔는지 기록함과 동시에 그녀들이 가진 힘과 회복력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처럼,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의 삶과 정신력을 보여준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The Apology'라는 원제를 '나비의 눈물'로 바꿔 소개하고 있다. 과연 '나비의 눈물'이 영화를 요약할 수있을까. '위안부' 주제로 최근 흥행을 거둔 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의미를 알 수없는 CG로 등장한 '나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옥의 티다. 

다큐멘터리 'The Apology'는 오는 12일까지 영화제 기간 동안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 말자. 내년 초 영화 'The Apology'는 국내에 개봉될 예정이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나비의 눈물'이 아닌 제대로 된 제목으로 국내 관객들과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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