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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지, 미국이 해외군사기지 닫아야 하는 7가지 이유 언급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10/09 11:44
  • 수정일
    2016/10/09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타임 지, 미국이 해외군사기지 닫아야 하는 7가지 이유 언급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0/09 [00: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비용을 증명할 수 없고,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카토 연구소 존 글레이저가 타임 지에 기고했다.

 

8일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먼저 글레이저는 해외군사기지들이 어떻게도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할 수 없다고 전했다. "유럽 350개 기지에 8만 군인 배치는 미국인의 물리적 안전보장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글레이저는 말한다. 또한 그는 미국은 두 해양과 핵무기로 잘 보호되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 군사기지로부터 예상되는 '견제 효과'는 과대평가 돼있다. 효과는 반대일 수도 있다.

 

▲ 2016년 9월 9일 조선이 핵탄두기폭시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약 4시간 뒤 조선핵무기연구소가 핵탄두기폭시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사진은 리춘희 인민방송원이 조선핵무기연구소 성명을 낭독하는 장면을 방영한 텔레비전영상이다. 조선핵무기연구소는 성명에서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핵무력건설구성에 따라 우리 핵무미연구소 과학자, 기술자들은 북부핵시험장에서 새로 연구제작한 핵탄두의 위력판정을 위한 핵폭발시험을 단행하였다"고 밝혔다. 북은 미군의 대북 핵공격 위협, 특히 주한미군의 핵위협 때문에 그 방어를 위해 핵억제력을 구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셋째, 글레이저는 군사기지들이 핵무기 확산을 항상 막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방법으로 일본과 한국에 핵무기가 나타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과 같은 주변국가에 자체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

 

넷째,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 ▲ <>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주한미군 기지 앞 2015. 9. 19.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다섯째, 어느 국가에 군사기지 존재는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독재체제'를 유지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 제5함대 기반의 요충지가 있는 바흐레인의 경우가 그렇다고 글레이저는 말한다.

 

여섯째, 미국은 자신의 군사시설로 필요없는 전쟁을 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에서 충돌이 있을 경우, 대만, 일본, 필리핀의 안전확보를 위해서 미국이 개입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군사기지들은 이미 기술적으로 낙후되어있다. 현재 신기술 덕분에 부대를 빨리 멀리 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지들을 미국내에 배치해도 된다고 글레이저는 전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선후보도 미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줄이고 이를 경제활성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해외 주둔 미군을 축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해외 미군 기지를 축소 폐지하자는 주장이 어느 일개 전문가의 견해가 아니라 당선가능성이 높은 미국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미국 내에 해외미군기지 축소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분출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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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을 해부해버린 남자

 

[인터뷰] ‘시크릿파일 국정원’으로 돌아온 20년 국가정보원 취재 김당 기자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6년 10월 09일 일요일
 

김당 기자를 처음 본 건 TV브라운관에서였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까닭을 날카롭게 물으며 특검 이후 ‘남북 관계 훼손’을 우려했던 기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기자회견 영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각본설’에 휩싸일 때마다 SNS에서 회자되곤 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불법적이고 부정적인 것은 청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그가 왜 대북송금 특검에 의문을 제기했는지 한참 뒤에 알게 됐다. 그가 1995년부터 20년 동안 국가정보원을 취재해온 전문가였고 2003년 현대그룹이 국정원의 환전 및 편의 제공하에 5억 달러를 불법 대북송금한 사실을 특종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그가 지난달 30일 탐사보도 결정판인 ‘시크릿파일 국정원’이라는 책을 냈다. “한국 실정에 맞는 국가정보론 연구서의 공백을 메우는 아주 중요한 저작”이라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의 평가대로 역대 국정원장과 요원들의 증언이 빼곡한 국정원 실록에 가까운 저술이다. 

 

국정원 5급 이상 간부들의 고교·대학·출신지,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에 제공된 행사 비용, 탈북자와 관련된 대외비 등은 이 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고급 자료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불신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기관 사용설명서’를 제공해야 한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에서 정년퇴직한 김 기자를 지난 3일 오전 일산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간첩조작 사건’과 ‘대선 개입’의 주범으로 각인된 국정원의 바른 사용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주간이 지난 3일 오전 일산 교보문고점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대외비와 비밀의 장막 뒤에 숨은 정보기관의 실상을 알리고,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용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이자 목표다.”

-서문을 보면 “현존하는 출판물 가운데 국정원 간부들의 실명과 사진, 그리고 ‘대외비’가 가장 많이 포함된 책”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비밀의 금기와 터부를 깨는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비밀이나 공작활동의 무차별 폭로가 목표는 아니다. 취재와 인터뷰에 응한 50여 명의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신세를 진 책이다.”

-새롭게 공개된 사실이 있나?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피랍됐을 때, 한국 정부가 지불한 몸값이 2000만 달러라는 사실을 많이들 주목하는 것 같다. 국정원이 주도한 협상이었다.”

2007년 예비비 중 국정원 사용예산결산 내역을 보면,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로 900억 원의 예비비를 전액 사용해 불용액이 0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의문을 가졌던 그는 복수의 정보위원을 통해 국정원이 2008년 정보위 결산보고 당시 2007년 아프간 인질 석방 비용으로 2000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대테러 전쟁의 일반 원칙과 자국민 보호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을 최초 보도한 기자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관련 내용의 소제목 가운데 하나는 “정보기관공작을 법으로 심판한 노무현의 오판”이다.)이다.

“국정원이 하는 일의 태반은 큰 의미의 ‘공작’이다. 정상회담은 가장 큰 공작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국정원이 기획하고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과반인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고려, 협치를 기대하고 특검을 받아들였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특검을 수용하면서 남북관계가 3년 동안 단절됐다. 임기 말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10·4 선언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정권이 교체된 뒤 도루묵이 됐다. 전략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거액의 대북 송금이 있었고 이를 현대가 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대북송금 특검안을 수용했는데, 이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조사 대상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형사처벌을 받았다. 대북송금 특검은 지금도 호남과 친노 세력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김당 기자는 이번 저작에서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최고 수준의 국가 비밀공작의 결과였다. 5억 달러 대북송금 과정에서의 2억 달러 환전 편의 제공은 현대라는 기업을 매개로 당시 현대의 ‘7대 경협 사업’과 거의 동시에 병행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기소한 것은 1972년 남북한 당국이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정법을 어겼다고 기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에 대한 평가도 의외였다. 삼성 X파일 등 국정원이 자체 불법 감청 사례를 조사해 사법 처리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도청이 범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X파일 사건을 수사하다보니 감청 사례까지 걸러냈다. 감청을 하지 않는 정보기관은 없다. 그러나 들키면 안 된다.(웃음) 내부 고발자를 통해 밝혀진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자체 조사를 통해 사법처리를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이러는 경우는 없다.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위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감청이라는 기술적인 문제까지 국가기관이 개입해 처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현장 도청 미림팀을 운용한 안기부 수뇌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임동원, 신건 국정원장만 기소됐다. 끼어넣기식으로 진행되는 감청은 실제 원장이 알 수 없다.”

 

▲ 김당 기자가 지난달 30일 펴낸 저서 ‘시크릿파일 국정원’(출판사=메디치)

-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반면, MB정부 이후의 국정원은 민주 정권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다. 이를 증명해주는 인물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아닌가?

 

“YS정부의 권영해 안기부장과 MB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참 많이 닮았다. 권영해 안기부장(1994.12~1998.3)은 재직 중에 북풍, 총풍, 세풍 등 ‘3풍 사건’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공직자다. 원세훈 원장은 대선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개인 비리로 재직 중에 구속된 인사들이다. 정권에 충성하는 역대 원장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돈을 받아 사법처리된 사람들은 없었다.”

-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은 어떤 차이가 있나?

“원장들의 성향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 이병호 원장의 경우 국정원이 안보전문기관인 모사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신대로 조직을 운영하는지 의문이다. 국정원에서 국정원장은 신과 같은 존재다. 국정원장이 국정원장실에 있으면 주변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정도로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다. 원장님 지시말씀은 사실상 어명에 가깝다. 모든 인사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꼼짝할 수 없는 거다. 원세훈의 국정원은 이를 악용했다.”

- 국정원하면 ‘간첩조작’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최승호 전 MBC PD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혹시 봤나?

“보진 못했다. 오마이뉴스에 있을 때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치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최승호 PD를 보면서 내가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설마 간첩을 조작할까’라는 안이한 생각. 국정원 조직을 잘 안다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 최 PD가 취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한 데 대해 존경과 부러움의 박수 보낸다. (김 기자는 이번 책 제4장에서 탈북자와 관련한 대외비 자료를 공개했다.)”

 

▲ 영화 '자백'의 한 장면.

- 국정원 개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결국 좋은 개혁은 정권 교체다.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안보에만 심혈을 기울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주기적인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1960년부터 1998년까지 한 정권에만 충성했던 게 한국의 정보기관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 TK·PK 지역 편중이 다소 완화되고 권영해 등은 선거법 및 안기부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분명 변화가 있었다.”

- 현 야당이 집권한다면 국정원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가? 이뤄진다면 어떤 방식이 돼야 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완성은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개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첩보 위성을 확보하는 등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걸맞은 첩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백화점식 정보수집 방식은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정보기관이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국정원이 수집할 경제 정보도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머물고 있다. 모사드나 CIA는 1970년대에 이런 소모적 정쟁을 졸업했다.”

- 국내 언론은 의심없이 국정원발 소스를 받아쓰고 있는데, 국정원 전문 기자로 조언을 한다면?

“공영방송 KBS나 연합뉴스에서 쏟아내는 북한 보도와 관련해 국정원발로 의심되는 스트레이트가 는 것 같다. 과거 국정원은 산케이 등 일본 외신이 국정원 소스를 보도하게 만들고 이를 국내 언론이 인용하는 식으로 언론을 활용하곤 했다. 결국 기자들이 경계하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중요한 이슈라면 받아쓰기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최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김당 기자는 누구?

김당 기자는 1995년부터 20년 동안 정보기관을 취재해왔다. 그는 1987년 월간 ‘샘이깊은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사저널 창간해인 1989년 시사저널로 자리를 옮겨 10년 동안 재직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안기부 북풍공작 추적 보도’, ‘최초 공개 안기부 조직표’ 등의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이듬해인 1998년 시사주간지 기자로는 처음으로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동아일보 ‘신동아’ 팀을 거친 그는 2002년부터 ‘오마이뉴스’ 정치데스크를 맡아 대선 취재를 지휘했다.

2003년에는 현대그룹이 국정원의 환전 및 편의 제공하에 5억 달러를 불법 대북송금한 사실을 특종했고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탐사보도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편집주간 겸 부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시크릿파일 국정원’ 후속편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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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부검 말고 특검을" 국화꽃 든 추모대회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3000명 참가... "국가폭력 물러가라, 특검 실시하라" 외쳐

16.10.08 20:43l최종 업데이트 16.10.08 20:4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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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행진을 마치고 종로 거리에 차려진 임시분향소.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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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책임자 처벌·살인정권 규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대회는 '부검 반대', '특검 추진'에 집중됐다. 추모대회에 모인 참가자 3000여 명은 (경찰추산 2000명)은 "우리가 백남기다", "살인 정권을 규탄한다", "국가 폭력 물러가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외쳤다. 추모 대회는 서울 외에도 부산, 인천, 광주, 경남, 청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고 백남기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이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주가 다 돼가는데, 부검 영장으로 인해 아직 장례도 못 치르는 이 상황이 자식으로서 너무 힘들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백씨는 이어 "애초 무장도 안 했던 농민을 공격하고서는,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경찰이 (도리어) 시신을 빼앗아 부검하겠다는 적반하장 행태를 보니 화가 난다"라며 "조문 오시는 많은 분들 덕에 버티고 있다,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책임자들을 처벌받게 하고 사과를 받는 일만 남았으니 앞으로 힘내서 꼭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고 백남기씨는 지난해 11월 14일,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었던 '쌀값 21만 원 보장'을 요구하려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는 당시 두개골 골절·뇌출혈 등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에서 4시간 넘게 뇌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의식불명 상태로 317일간 투병하다 지난 9월 25일 오후 사망했다.

앞서 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해, 경찰 수뇌부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유감 표명을 하기도 했다. 이는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11개월여 만에 경찰에게서 나온 첫 애도 발언이다. 그러나 경찰·검찰은 여전히 부검 영장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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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살인정권 규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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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3000여 명 참가자들은 "우리가 백남기다","국가 폭력 물러가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외치며 대학로부터 종로까지 행진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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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검찰 부검 강행하려 해... 국민 여러분께서 백남기 농민 지켜달라"

추모대회에는 정재호·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 윤소하·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도 함께했다. 이들 야 3당은 지난 5일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요구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정 의원은 이날 "박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을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가족이 다 같이 참가하기도 했다. 스스로 '하림이네 가족'이라고 밝힌 한 남녀 부부는 7개월·33개월 된 두 딸의 유모차를 각각 끌고 대회에 참석했다. 경기 남양주에 산다는 이들 부부는 "누가 봐도 외인사로 돌아가신 상황인데, 경찰이 부검하겠다는 건 억지라고 생각된다"며 "부검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특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추모대회 말미 검경 측의 부검 강행 의지를 비판하며 "백남기 농민을 지키는 일이, 부검 강행을 위한 시신 탈취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투쟁본부 측은 또 '국민 행동 제안' 낭독을 통해 "지난 5일 강형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사실상 '유족 동의 없이는 영장이 집행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경찰과 검찰이 10월 25일까지 영장 강제 집행을 하겠다고 우기고 있다"라며 "'우리가 백남기, 우리가 유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백남기 농민을 지켜달라, 특검 촉구 서명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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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월·33개월 된 두 딸의 유모차를 끌고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참가한 '하림이네 가족'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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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3000여 명 참가자들은 "우리가 백남기다","국가 폭력 물러가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외치며 대학로부터 종로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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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추모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후 국화꽃과 장미꽃 등을 들고 대학로부터 종로1가까지 행진했다. 종로 로터리를 거쳐 지난해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까지 행진한 참가자들은, 빌딩 앞에서 임시 분향소를 차리고 헌화하며 추모대회를 마무리했다.

백남기 농민을 오래 봐 왔다는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백남기 농민은 젊을 때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싸웠고 그 후에는 이 땅의 농촌을 지키려고 살았다"라며 "부검은 사인이 불명확하고 유가족이 원할 때 하는 것이지 이렇게 사인이 명확할 때 하는 게 아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백남기 농민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15일에도 전국 동시 다발 추모 대회·촛불 집회 등을 진행하는 한편, 백씨가 물대포로 쓰러진 지난해 11월 14일로부터 1주기 즈음인 11월 중순에도 민중총궐기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찰은 병력 71개 부대, 5680여 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에 대한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  10월 첫 주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29%를 기록했다. (4~6일 전국 성인 1009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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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경찰은 병력 71개 부대, 5680여 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가자가 경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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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임시분향소에 참가자들이 헌화 후 조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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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길 왜 갔냐고요? 세 아이의 아빠라서요

 
 
[토요판] 커버스토리 / 이진순의 열림 | 고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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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향기로운 가족

 

‘세월호의 의인’ 민간잠수사 고 김관홍
아내 김혜연이 말하는 ‘세월호의 기억’

 

 

잠수사들이 일당 백만원을 받고 시신 한 구당 5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보도되었을 때에도, 잠수사들은 산소를 공급하는 생명줄에 목숨을 매달고 수심 40미터 아래의 외로운 주검을 찾아 검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인터넷도, 신문, 방송도 닿지 않는 바지선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새우잠을 자면서 그들은 잠수의 기본규칙도 어겨가며 하루 네댓번씩 아이들을 찾아 심해로 내려갔다. 차가운 물속에서 공포에 질려 뒤엉킨 시신을 더듬어 품에 안아 올리는 동안, 그들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잠수병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과 ‘돈 벌러 갔다’는 주변의 오해, 법적인 문책뿐이었다. 결국 지난 6월17일 세월호의 의인으로 불리던 김관홍 잠수사는 오랜 트라우마와 후유증에 시달리다 심장 쇼크로 세상을 떴다. 그에겐 38살의 아내와 11살(라은), 9살(다은), 7살(효)짜리 세 자녀가 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묻는다. “다른 데선 사고 나도 거의 다 구조하던데 우리나란 왜 그래? 우리나라엔 그렇게 사람이 없어?”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안방 벽면에 붙은 가훈 ‘참 향기로운 가족’ 앞에 김혜연씨와 세 자녀가 손을 맞잡고 서 있다. 지난달 28일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씨를 만났다. 글 이진순 풀뿌리실험실 ‘와글’ 대표,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불이 난 원룸에서 사람들을 깨우고 미처 피하지 못해 희생당한 학생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딸이 말했다.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나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김혜연씨는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불이 난 원룸에서 사람들을 깨우고 미처 피하지 못해 희생당한 학생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딸이 말했다.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나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김혜연씨는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저는 잠수사이기 이전에 국민입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지 (제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에요…. 고위 공무원들한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김관홍 잠수사의 증언.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2015년 12월16일)

 

 

 

 

 

 

살려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던 아이들을 품고 세월호가 뒤집어졌을 때, 우리 사회 부패와 무능의 치부도 적나라하게 밑장을 드러냈다. 배에 버리고 나온 304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은 ‘사상 최대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그나마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민간잠수사들의 공이었다. 참사가 나고 7월10일 일방적인 수색중단 통지를 받을 때까지 희생자 292명의 시신을 수습해 올린 것은, 해경도, 해군도 아닌 단 25명의 민간잠수사들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지난 6월17일, ‘세월호의 의인’으로 불려온 김관홍 잠수사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걸 가족들이 발견했다. 11살, 9살, 7살 삼남매가 학교에 가려고 엄마와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아버지는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전날 밤 아버지가 삼남매에게 주려고 사온 초콜릿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장하고 자랑스런 일을 한 아버지가 팽목항 앞바다를 다녀온 뒤 점점 폐인이 되어간 이유를, 이 뻔뻔하고 치졸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그래도 끝까지 가슴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김관홍 잠수사의 부인 김혜연(38)씨를 찾아볼 용기를 낸 건, 김관홍을 모델로 한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가 출간되고, 부인이 운영하는 꽃집의 상품권과 책을 한데 묶어 파는 패키지 상품이 출시되었단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누군가 올린 블로그에, 부인이 운영하는 화원 ‘꽃바다’(fbada.com)의 명함이 실려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한 번도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유가족인데, 인터뷰를 청하는 게 무례는 아닐까? 인터뷰 요청은 조심스러웠다. 망설임 끝에 부인은 인터뷰를 허락했다. 남편을 대신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지난달 28일, 그녀가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다.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의 아담한 빌라였다.

 

 

굵고 짧게 살고 싶다던 남편

 

“이렇게 굵고 짧게 살고 싶다고 했어요. 이 화분은 자기 거라고, (화원 할 때) 어디 팔지 말라고 했죠.”

 

인삼 모양이지만 그보다 훨씬 굵고 튼실하게 생긴 뿌리가 흙을 뚫고 솟아올라 있었다. 남편이 특별히 좋아했다는 ‘와인쥐손이’ 화분을 바라보며 김혜연이 말했다. 아이들 장난감으로 가득한 앞 베란다 창틀에 작은 화분들이 오종종하니 진열되어 있었다. 남편이 애지중지했던 ‘좀백자단’이며 ‘꿩의다리’ 같은 낯선 야생화 이름이 적힌 화분이 아이들 점프하며 뛰어노는 트램펄린 옆에 놓여 있었다.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언론 접촉은 피하셨던 것 같아요. 장례식 기사에 실린 사진에도 얼굴은 가리고 나오셨던데요.

 

“지금 큰애가 사춘기거든요. 4학년 딸이요. 엄청 예민할 때라, 아이들도 인터넷을 다 보니까 조심스러웠어요. 지금은 많이 안정이 돼서 제가 인터뷰하는 거,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꿈이 기자로 바뀌었대요.(웃음) 사회부 기자를 하고 싶대요.”

 

다섯 식구의 세월호 기억목걸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다섯 식구의 세월호 기억목걸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삼남매와 함께한 가족사진 속의 김관홍은 다부지고 옹골찬 체격이 그가 좋아하던 야생화 뿌리를 닮았다.

 

-고양시에 사시는 줄 알았는데, 거긴 화원만 있는 건가요?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쯤 돼요. 전에 살던 집은, 야생화 키우는 하우스 안에 살림집을 겸한 거였는데, 신랑이 거기서 안 좋은 일을 겪고 보니 계속 살기가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안 봤으면 모르겠는데 아침에 아빠 쓰러진 걸 거기서 다 같이 봤고. 여자 혼자서 야생화 관리하는 것도 힘에 부치고요. 보안도 허술하고….”

 

-장례 치르고 이리 옮긴 거군요.

 

“네. 화원도 정리하고 지금은 인터넷 주문받는 일만 해요.”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에게 화환을 주문하는 전화가 간간이 걸려왔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엄마 혼자 밖에 나가 일하기가 힘들어, 집에서 인터넷으로 화환이나 꽃바구니를 주문받고 중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화원은 부인이 하시던 건가요?

 

“둘이 같이 했죠. 시아버지가 야생화 농장을 하세요. 애기아빠가 원체 꽃 만지고 분재 만지는 걸 어려서부터 좋아해서 일찌감치 ‘난(蘭) 자격증’도 따두었대요. 난 재배하는 전문가 자격증. 전 야생화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한테 배웠지요.”

 

-그럼 화원은 남편이 열자고 한 거예요?

 

“막내 태어나고 나서 시아버지가 권하셨어요. 이젠 아이도 셋이나 되니 바다에 나가서 위험한 일 하지 말라고.”

 

-그래서 잠수사 그만두고 화원만 하려고 했나요?

 

“그건 아니고요.(웃음) 바다를 버리지는 못하죠. 어차피 겨울에는 바다 일도 없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나 분재를 키우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인은 바다에 대한 남편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처음 그를 만난 것도 스킨스쿠버 교실에서였다. 김혜연은 실내 강습을 겨우 마친 초급생이었고 남편은 이미 스킨스쿠버 경력 10년 차의 전문가였다. 바다가 좋아서 같이 다니다가 정 많고 실속 안 차리는 그의 순수함에 마음이 끌렸다. 2005년, 만난 지 삼 년째 되는 날 둘은 결혼했다. 김혜연의 나이 스물여섯, 김관홍은 서른두살이었다.

 

카드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산업잠수사로 전업하겠다고 했을 때도 김혜연은 반대하지 않았다. 레저스포츠로 하는 잠수가 아니라 바닷속에서 용접이나 교각 작업을 하는 일이라 고되기는 할 테지만, 잠수 경력이 오랜 남편이 위험을 피하는 데 있어서는 베테랑이니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10년간 산업잠수사 일을 하면서 잠수후유증으로 크게 고생해본 적이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수습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잠수경력 20년의 베테랑 남편
오랫동안 공들인 큰 계약 앞두고
4월이라 화원은 한창 바쁠 때인데
‘그렇게 원하면 가도 좋다’ 하니
말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더라

 

해경들은 따로 밥해주는데
처음엔 컵라면 몇 개밖에 없다더라
잠수 도중 호흡 끊어져 병원 실려가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지켜보며
현장에서 돌아와 더 힘들어해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생업을 접고 왜 거기를 갔을까

 

-잠수사 경력이 꽤 오랜 편이죠?

 

“한 20년 되죠. 산업잠수사를 한 것만도 10년이니까, 그 전부터 다 합치면….”

 

-그 정도 경력이면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이게 들쑥날쑥해서 매달 똑같지가 않아요. 일당제로 하는데, 보통은 하루 100만원쯤 하고요. 하루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기본이 50(만원)이에요. 큰 작업은 월 단위로 끊어서 계약을 맺어요. 그렇게 하고 다시 몇 달간 쉬면서 몸을 회복하는 기간을 가지죠.”

 

-세월호 구조 현장에선 잠수사들한테 어떻게 일당을 지급해 줬어요?

 

“일당 받기로 하고 간 건 아녜요. 처음부터 자원봉사자로 간 거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고 일당을 정하고 그런 건 없었대요. 아마 계약서 안 쓰고 일한 유일한 경우가 될 거예요. 그러다가 5월에 잠수사(고 이광욱 잠수사) 사망 사고가 난 뒤부터 계약서를 쓰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현장으로 가기로 할 때 부인께 상의하던가요?

 

“그 무렵에 큰 공사 계약을 앞두고 있었어요. 오랫동안 공들여온 장기 사업이었는데 그건 액수도 크거니와, 그 일을 하고 나면 그다음 일이 연결, 연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큰 사업이었죠. 근데 그 계약을 며칠 앞두고….”

 

-거길 안 가고 세월호로 간 거예요?

 

“계속 전화가 왔었어요. 먼저 내려가 있는 아는 잠수사들한테서. 저는 물론 못 가게 하고 싶었죠. ‘거기 500명이 넘게 대기하고 있다는데 왜 꼭 당신이 가야 돼?’ 하니까, ‘500명이 있어도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10명도 안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해경도 못 할 거라면서….”

 

-그래서 동의하셨나요?

 

“며칠 동안 마음을 못 잡고, 뭘 해도 건성으로 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눈치였어요. 마침 4월이라 화원은 한창 바쁠 때인데, 마음이 벌써 떠버렸으니 여기 있으나 없으나 똑같겠다 싶어서 ‘그렇게 원하면 가도 좋다’고 했죠.”

 

-좋아하시던가요?

 

“그 말 떨어지자마자 당일로 바로 내려가던데요.(웃음)”

 

-생업을 접으면서까지 세월호로 달려가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가 대체 뭘까요?

 

“애가 셋이잖아요.”

 

-네?

 

“우리도 애를 셋 키우는 부모니까요. 처음에 제가 말렸던 것도 애가 셋이라 위험한 걸 하지 말라고 그런 거였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보니, 안타까운 부모 마음은 우리도 (세월호 유가족과) 똑같은 거더라고요. 처음엔 애들 때문에 말리다가 결국 애들 때문에 가라고 했어요.”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흔치 않은 큰일거리도 포기하고, 한창 바쁜 꽃집도 아내한테 맡겨두고, 김관홍은 맹골수도 세월호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4월23일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예상대로, 작업 가능한 현장의 잠수인력은 7~8명에 불과했고 5월10일이 넘어서야 25명이 겨우 채워졌다. 말로는 민·관·군 합동 작전이었지만, “해경 잠수부는 선체에 진입할 능력도, 장비도 없는 상태라” 선체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는 건 온전히 민간잠수사들의 몫이었다. 산소탱크를 메고 갈 만큼 통로가 확보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표면공급식’(바지선에서 수중의 잠수사에게 호스를 통해서 공기를 전달하는 방식) 잠수를 했다. 공기를 전달하는 생명줄이 꼬이거나 걸려도 안 되고, 바지선 위의 스태프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라 능숙한 산업잠수사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5월6일에 이광욱 잠수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어서 걱정 많이 하셨겠어요?

 

“매일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먹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먹을 거라곤 컵라면 몇 개밖에 없다고, 보급품이라고 왔는데 여자 팬티가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필요한 물건은 택배로 부쳐주기도 했어요.”

 

-체력소모가 극심한 일을 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했단 말이에요?

 

“해경들은 따로 밥해주는 데가 있었는데, 그걸 같이 먹지 못했대요. 4월30일 지나서야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얘기하는데 자기 쓰러져서 죽을 뻔한 거 아냐고, 잠수 도중 호흡이 끊어져 병원에 실려가서 입원도 3일간 했었다고 하더군요. 퇴원하곤 바로 또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처음부터 못 내려가게 할걸, 후회하지 않았어요?

 

“후회하죠. 왜 가라고 했을까…. ‘다른 잠수사들도 있는데 왜 당신이 하냐?’는 소리도 했어요. 팀 짜서 같이 갔던 잠수사들도 며칠 못 견디고 돌아왔는데, 당신도 다른 분들한테 맡기고 그냥 나오라고.”

 

-그러니 뭐라던가요?

 

“자기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그러죠.(웃음)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던 사람이라, 다들 자기처럼 할 거라고 사람을 믿었던 거죠. 오히려 거기(세월호 수색 현장) 있을 때보다 나와서 더 힘들어했어요. 그렇게 앞뒤가 바뀌고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 보면서….”

 

남편은 7월10일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색 작업을 변경하기로 하고 현장 작업 종료를 문자 한 통으로 통지한 것에 격렬히 분노했다. 292명을 꺼낸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현장에서 나가라고 하고 그 뒤 3개월간 2구밖에 인양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자원활동 하러 내려간 민간잠수사들을 돈 벌러 온 언딘 소속 사설업체 잠수사라고 오도하는 걸 보면서, 해경의 무리한 지시로 이광욱 잠수사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 법적인 책임을 민간잠수사 공우영(현재 1심 무죄 선고, 2심 계류 중)씨에게 떠넘기고, 정작 책임져야 할 해경 관계자는 승진하는 걸 보면서, 사람에 대한 김관홍의 믿음, 세상에 대한 김관홍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해양경찰청장 명의로 우편 배달된 감사장을 이빨로 뜯어 찢어버렸다.

 

 

“저희는 돈을 벌러 간 게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도우러 간 것이지. 양심적으로 간 게 죕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한테 벌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김관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2015년 9월15일)

 

 

 

 

한 구씩 달래서 가슴에 품고 나온 아이들

 

현장에서 나온 뒤 그의 몸과 마음은 한없이 허물어져 갔다.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생전 처음으로 아이에게 매를 들고, 매일 밤 술을 마셨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오고, 어깨 회전근막이 파열되고, 잠수사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라는 골괴사(뼈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뼈조직이 죽어가는 잠수병의 일종) 진단도 받았다. 다시 잠수사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대리운전 기사가 되었고, 정부에서 약속한 치료비가 나오지 않아 집에는 빚이 쌓여갔다.

 

-프로 잠수사로 잠수병의 위험을 잘 아시는 분이….

 

“다른 데서 일할 때는 30분 일하고 6시간 쉬고, 안전규정에 따라서 일을 하니까 몸에 해가 될 게 없죠.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에 네댓 번씩 잠수를 했으니까요.”

 

세월호 선체에 내려가 희생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그들이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배가 가라앉고 물이 들이치는 아수라장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 끔찍한 비극의 현장을 목도한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은 극심한 공포와 낮은 수온과 수압에 의해서 아주 고통스럽게 사망했습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한 구 한 구 얽혀서, 저희 손으로 한 구 한 구 달래가면서, 한 구 한 구 안아서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김관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2015년 9월15일)

 

 

시신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부둥켜안고 있는 경우도 있고 손을 꼭 잡고 얽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좁은 통로와 장애물들을 통과해서 나오려면 그 어깨와 손을 억지로 떼어내야 했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줘. 한 명만 데리고 나가고 곧 돌아올게. 엄마아빠 보러 같이 가야지.”

 

잠수사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달래가면서 한 구씩 인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몸에 최대한 밀착해서 꼭 끌어안고 나오는 방식으로.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낸 292명의 희생자들은 모두 그렇게 인도되었다.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 산 사람끼리 껴안을 때보다 다섯 배 이상 힘을 줘야 해…. 끝까지 포옹을 풀어선 안 되는 건 기본이고, 이동 중에 실종자의 몸이 장애물에 부딪쳐 긁히거나 찢긴다면 여러분은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할 거다.”(김탁환, <거짓말이다> 33쪽)

 

 

 

 

-남편이 그런 얘긴 안 하던가요?

 

“몰랐어요. 저도 책을 읽기 전까진 ‘애들을 안고 나왔다’는 걸 몰랐어요. 제게 밖에서 있었던 얘길 많이 하는 편인데, 제가 충격받을까봐 그랬는지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 대해선 일체 얘기하지 않았어요. 이따금씩 길에서 아디다스 줄무늬 추리닝 입은 아이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거기 아이들 3분의 2가 저 추리닝을 입어서 자긴 학교 체육복인 줄 알았다고 농담식으로 얘기했는데… 늘 수습하지 못한 9명이 눈에 밟힌다고 했죠.”

 

-김관홍씨가 다른 데서 인터뷰하신 것 보니까, 그 일 이후로 ‘아내나 아이를 포옹할 수 없었다’고 하셨던데.

 

“그것도 전혀 몰랐어요. 원래 아이들을 잘 안아주고 몸으로 놀아주는 사람이었어요.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문자 한 통으로 수색 종료 통지
‘돈 벌러 왔다’ 오도하기도
생전 처음 아이들에게 매질하고
매일 밤 고통 속에 술 마시기도
해경청장 감사장 찢어버렸다

 

‘애들 안고 나왔다’는 것 몰라
평소 몸으로 놀아주던 남편은
아내·아이 안아주지 않았다
아빠 핸드폰 갖고 싶다는 큰딸
아내는 남편 번호 지우지 못해

 

 

 

엄마는 의인이 되는 게 좋아?

 

-남편이 세상 뜬 지 석 달이 넘었네요. 남편이 없다는 걸 실감하시나요?

 

“아니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신랑이 바다로 가면 서너 달 떨어져 있다가 한 달에 한두 번 왔다 가고, 그렇게 10년을 살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어디 장비 메고 나간 것만 같아요. 며칠 전까지도 남편 핸드폰을 갖고 있었거든요. 핸드폰의 번호를 정리하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리 전화해줄 사람이 이젠 없구나.”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부인은 아직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남편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아이들한텐 뭐라고 하셨어요?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어요. 언론에서는 자살이다 뭐다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건 아니고요. 워낙 오랫동안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서 심장 기능이 무척 약해진 상태였어요.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체질인데 괴로우니까 술 먹고 잠을 청하고, 안 되면 수면제도 먹고 했기 때문에… 조그만 충격에도 심장이 버티질 못하는 거죠. 그날 밤도 ‘4·16 연대’ 사람들 만나고 와서 곧바로 잠들지 못하고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그래도 잠을 못 자니까 수면제도 두 알 먹은 거죠. 요즘 한 알로 안 돼서 양을 늘렸거든요. 약물중독은 아니고 경찰 부검 결과도 심장이 안 좋아 생긴 쇼크사래요.”

 

-김탁환 작가가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 소설 <거짓말이다>를 내놓으면서 이례적으로 긴 작가의 말을 썼는데, 그 이유가 “고인의 자녀들이 이다음에 커서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의인이었는지 알게 하고 싶었다”고 밝히셨어요.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 있나요?

 

“대략은… 더 자세히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어요.”

 

-애들이 자라서 그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전모도 알게 되고 나서, ‘아빠가 그렇게까지 하실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며칠 전에 불이 난 원룸에서 사람들 다 깨우고 미처 피하지 못해서 희생당한 학생 있었잖아요. 뉴스에서 그분 어머니 인터뷰하는 거 보면서 저희 딸이 묻더라고요. ‘엄마는 저게 좋아?’ 하고요.”

 

-엄마는 저게 좋냐…?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그게 좋냐고요. 자기는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고요.”

 

-(한숨) 그래서 뭐라 하셨어요?

 

“그건 아빠의 선택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네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누군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어요.”

 

-끝으로, 제게 당부하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너무 포장해서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단순 무식하지만 정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그리고 애아빠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도, 시체 수습하면서 돈 많이 벌었을 거라고 농담처럼 얘기 던지는 분들도 있고 그랬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순수한 마음에 간 거라고 밝혀주세요.”

 

-네. 그대로 쓰겠습니다. 애들은 어리고 아직 젊으신데….

 

울컥하는 마음에 가슴속 말이 뛰쳐나왔지만, 그 뒷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38살 아직 너무나 젊은 나이, 김혜연은 이제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맹골수도 해역보다 혼탁하고 거친 세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짐을 나눠 지지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위로나 동정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한동안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 인사랍시고 겨우 찾아낸 말이 해놓고도 한심했다.

 

-앞으론…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이 많아질까요? 세상이 이런데… 우리 애들은 좀 살 만한 세상이면 좋겠어요.”

 

김관홍 잠수사가 세상을 뜬 뒤, 7월1일자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강제 종료되었고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일명 ‘김관홍잠수사법’(세월호참사 피해지원특별법 개정안: 민간잠수사를 세월호 피해자로 포함시킴)은 아직 논의조차 안 된 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녹취 심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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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반군 구형미사일 한 방에 미 신형 함선 격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10/08 17:19
  • 수정일
    2016/10/08 17: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후티반군 구형미사일 한 방에 미 신형 함선 격침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0/08 [04: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후티반군이 UAE해군이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는 미해군 HSV-2 Swift 고속 삼동선을 격침시키는 모습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예멘의 사바(saba)뉴스 3일 보도에 따르면 후티반군이 쏜 대함미사일에 아랍에미리트가 임대하여 예멘전쟁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를 격침시켰다고 보도하였다. 이번 후티반군의 공격으로 함선의 많은 병사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고속 삼동선은 전투보다는 주료 지휘함이나 수송선 등으로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운용하는 장비이다.

 

특히 삼동선 형태의 배바닥으로 물의 저항을 줄여 시속 50노트(92.6 km/h)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스텔스 선체에 스텔스도료를 발라 레이더 포착을 어렵게 하는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되었다.

 

▲ 미 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 , 안전한 후방에서 지휘선으로 이용하거나 수송선으로 활용하는 군함이다.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적지 않읕 크기이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니 미 해군의 첨단기술이 적용된 HSV-2 Swift가 후티반군의 레이더에 그대로 포착, 단 한 발의 스틱스 대함미사일(실크웜일 수도 있음) 미사일을 얻어맞고 그대로 화염에 휩싸여 불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6일 모 블로그에서 침몰한 선체를 인양했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는데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수리해서 재사용은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 후티반군의 북한제 스틱스 대함미사일(추정)에 격침되었다가 인양한 HSV-2 Swift 미 해군 고속 삼동선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에서 복제 생산한 중국제 C-802 지대함 미사일에 당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지만 동영상을 잘 보면 미사일 하단의 보조로켓이 함께 점화되어 날아가다가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스틱스계열 미사일이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후티반군이 쏜 대함 미사일이 미 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를 향해 날아가면서 보조로켓을 떨어뜨리는 모습, 하단 보조로켓으로 초기 가속력을 내는 대함미사일이 바로 스틱스이다.     © 자주시보

 

P-15 테르밋 (러시아어: П-15 "Термит") 대함미사일을 나토에서 SS-N-2 스틱스라 부르는 데 속도가 아음속으로 미사일 치고는 좀 느리고 사거리도 40KM 밖에 나가지 않지만 워낙 파괴력이 커서 한 발만 맞아도 치명상을 당하는 무기이다.

특히 이 미사일은 많은 양의 화약과 함께 로켓 추진을 위한 액체연료로 많이 담고 있는데 목표 타격 당시 남아있는 이 연료까지 가세하여 화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피격당할 경우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게 되고 불타면서 결국 침몰하게 되며 침몰하지 않더라도 화염에 많은 인명피해를 당하게 된다.

 

이를 중국과 북이 복제 개량생산하여 실전배치 했고 북은 이란에 관련 기술을 넘겨 주어 이란에서 이를 복제생산(면허생산)하여 중동 각지의 반미 진영에 공급하는 미사일로 알려져있다.

 

이 스틱스 미사일의 폭탄무게를 줄이고 터보제트엔진으로 바꾸어 사거리와 속도를 높인 미사일을 실크웜이라고 나토에서는 부르는데 이 실크웜도 스틱스의 형태는 거의 같아 야간에 날아가는 모양만으로는 구분하기는 어렵다.

 

▲ 러시아의 kh-35, 우란 대함미사일, 북도 똑같은 미사일을 최근 공개한 바 있다.     ©자주시보

 

▲ 이란의 대함미사일, 중국의 C-802 대함미사일을 복제했다고 한다., 아래에 보조로켓이 없다.  중국의 C-802도 북의  KH-35 우란계열 대함 미사일과 형태가 같기 때문에 이란이 중국이 아니라 북의 것을 복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중국은 미사일과 같은 핵심무기는 잘 수출하지 않는다. 영토분쟁을 많이 격고 있어 자국의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북은 미사일을 오래 전부터 제3세계 각국에 마구 수출해왔다. 심지어 탄도미사일인 스커드미사일까지도 적지 않게 수출해왔으며 이를 공개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최근에 이 실크웜도 여전히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해 요격미사일이나 기관포에 요격될 우려가 있다며 더욱 속도가 빠른 작고 길쭉한 대함미사일을 주로 개발하여 사용한다. 그것이 중국의 C-802대함미사일이고 북도 일명 KH-35 대함미사일이 이런 형태이다.

 

하지만 북은 이런 신형 대함미사일도 개발하여 실전배치를 하고 있지만 구형 실크웜이나 스틱스계열의 미사일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시켜가며 사용하고 있다. 특히 북은 레이더 교란기술이 뛰어나 상대 함선 지역 일대를 모두 레이더재밍무기로 교란시킨 후 이 미사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미사일의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상대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진행 중인 예멘 전쟁이 그것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예멘전쟁에서 후티반군은 구 예멘 반미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이런 미사일 무기를 이용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최신 구축함을 격침시키는 등 엄청난 활략을 하고 있다.

최신구축함은 위상배열레이더에 첨단 대공미사일과 기관포 등 미사일 방어무기를 수없이 장착하고 있는데 그런 사우디의 최신형 구축함도 후티 반군의 스틱스 미사일에 당해 바다에 침몰한 바 있다.

 

특히 후티 반군은 야간에 이 스틱스 대함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을 자주 가했는데 야간이라 더욱 그것을 탐지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 북의 스틱스 대함미사일(실크웜일 가능성도 있음) 발사 훈련 장면, 목표물을 명중하는 동영상을 보니 그 파괴력이 거대한 섬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났다. 항공모함도 이 미사일 한 발만 맞아도 성치 못할 것 같았다.     ©자주시보

 

▲ 후티 반군이 사우디 군함을 향해 발사하는 스틱스 미사일(실크웜일 가능성도 있음), 아래쪽에서 보조 로켓이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선명하다.     ©자주시보

 

▲ 후티반군이 사우디 군함을 공격하는 실전 유튜브 동영상에서 목표물로 나오는 사우디 최신형 스텔스 구축함, 헬기착륙장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선체가 완전 스텔스형이며 최신 위상배열레이더를 설치한 최근 구축함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동영상 장면이다.     ©자주시보
▲ 2015년 12월 5일, 후티반군 미사일 공격에 두동강이 나서 침몰하는 사우디 군함을 보도하는 이란 파르스 국영통신, 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크기의 적지 않은 군함이다.     ©자주시보

 

▲ 후티 반군에게 파괴된 사우디 군함 목록     ©자주시보

  

미사일이 발전한 현대전에서는 대형 장비가 오히려 죽음의 대형 공동묘지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대형장비를 값싼 미사일 한 발로 완파시켜버리고 있어 더욱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이번에 격침된 미 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도 1억달러나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격침시킨 미사일은 600달러 정도라고 한다.

 

3일 사나 통신에 따르면 이번 공격으로 더욱 자신감을 얻은 후티반군은 예멘 인근 해역을 지나가는 친미 하디 정부군이나 이를 지원하는 사우디 등 아랍연맹군, 미군 함선들을 보이는 족족 모조리 격침시켜버리겠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한편 5일 미국의소리 방송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예멘 정부(하디 정부)를 보호하려는 동맹국(아랍에미리트) 군함에 대한 반군의 공격을 강력히 비난"했다며 "예멘의 후티 반군은 지난 주말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밥 알-만데브 해협에 있던 아랍에미리트연합 군함에 로켓 공격을 가했다."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 예멘 후티 반군이 미 해군 수송선을 격침시킨 아덴만 인근 밥 알-만데브 해협, 빨간 풍선은 이먼 고속 삼동선을 파괴한 위치     © 자주시보

 

예멘 전쟁은 결국 북에 수없이 많이 생산 배치되어 있는 재래식 무기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임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내년에 더 이상 북의 핵개발을 두고 볼 수 없다면 전쟁을 일으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는 내부자 폭로가 나오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정권 교체, 한민구 국방장관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포 특수부대 창설 등 북을 심각히 자극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이란 말을 쉽게 꺼낼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첨단 무기가 북의 구형 무기에 저렇게 맥없이 당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만 있으면 북과 전쟁을 해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한반도 긴장고조를 막고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남북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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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1절 ‘남북해외 연석회의’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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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7  17: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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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호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남측 단장과 7일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내년 3월 1일 개최를 목표로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추진하기로 남북해외 대표단이 7일 합의했다.

6,7일 양일간 중국 선양(심양) 칠보산호텔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남측 단장으로 참석한 임상호 6.15남측위 공동대표는 7일 낮 현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7일 오전 계층, 부문별 실무모임 직후 임상호 단장은 “좀더 폭넓게 연석회의를 3월 1일 정도로 한번 해보자고 잠정적으로 결정됐다”며 “가능하면 남이나 북, 국내에서 했으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해외에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7일 오전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남북해외 연석회의 추진 관련 남북해외 협의가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상호 단장과 이승환, 한충목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연석회의 추진기획단’ 위원과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 양철식 부위원장, 김성혜 위원, 림용철 6.15북측위 학술분과위 부위원장, 그리고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해외측준비위원회’ 신필영 명예위원장과 손형근 부위원장, 조선오 사무국장 등은 칠보산호텔 3층 회의장에서 연석회의 관련 실무협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전날 공동토론회 결과를 담은 공동결의문에서 남북해외 대표들은 “우리는 그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각계 접촉과 교류를 복원시키고 전민족적 통일회합으로서의 연석회의를 반드시 실현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구체적 시점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 6일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상호 단장은 회의 분위기에 대해 “지금 정세가 정세인 만큼, 이대로 계속 간다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다”며 “남북해외가 어떻게 긴장국면을 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평상시보다 더 깊은 고민을 갖고 임했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 분들, 특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본 분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남다른 바람을 느꼈고, 미국에서 통일운동을 해온 분들도 민족공멸의 위기 상황에 절박한 마음으로 연석회의를 같이 준비하고 오셨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문제는, 아직 추진기획단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남측이다. 북측과 해외위는 연석회의 준비위를 구성하고 적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임상호 남측 단장이 6일 공동토론회 모두에 축하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울산진보연대 상임대표와 6.15울산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오랫동안 진보운동진영에 몸담아온 임 단장은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가 좀더 노력해야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처음으로 남북해외 공동행사의 단장을 맡았다는 임 단장은 “전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제대로 대표해서 전달할 수 있는가 많이 부담스러웠다”며 “다행스럽게도 다들 평상시에 참여했던 분들이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고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한편, 7일 오전 칠보산호텔에서 진행된 각 계층 부문별 실무협의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오갔지만, 남측 정부가 민간교류를 전면 금지하고 있어 성사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석민 6.15노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올해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됐던 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내년 5월 1일 개최를 목표로 다시 추진키로 했다”며 “남북이 합의했던 일제의 침략만행과 재무장화를 규탄하는 반일토론회를 조속히 개최하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상은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은 “11월 평양에서 통일농민 추수한마당을 개최하자고 논의했다”고 밝혔고, 황철하 6.15경남본부 집행위원장은 “내년 4월 평양국제마라톤대회에 초청하고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손동대 6.15청학본부 집행위원장은 “북측이 지난 9월 제안한 청년학생 대회합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남북해외 모두가 노력키로 했다”고 말했다.

최진미 6.15여성본부 집행위원장은 “올해 열기로 합의했던 남북여성대표자 상봉모임과 평양에서의 남북해외 대규모 상봉모임을 연내에 꼭 이뤄보자고 했다”며 “만약 실현되지 못 하면 내년 제일 선참으로 여성들 상봉모임을 이뤄내 남북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이루는데 여성들이 절반의 역할을 꼭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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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게 경주는 특별했다

 

경주 개발은 박정희 정권이 집권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문이었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자는 경제 논리가 깔려 있었다.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0월 07일 금요일 제472호
활성 단층대 위에 놓인 경주는 요즘 계속된 지진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관광객도 크게 줄어든 것 같다. 온통 학생들로 들썩이던 수학여행의 계절인데도 불국사나 석굴암, 대릉원, 첨성대 등의 주변이 한산하다. 음식점 주인들은 한숨만 쉬고 숙박업소마다 빈 객실이 넘쳐난다. 경주를 한국의 대표 관광도시로 키우려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재의 광경을 보면 어떤 심정일까?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KBS 당진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인 10월24일에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해 4월6일 1단계 개장을 완료한 상태였던 보문단지를 다시 점검·시찰하러 간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전신인 국제관광공사에서 당시 개발이사로 재직 중이던 고 최귀남씨는 그날 대통령을 보문단지 현장에서 영접한 사람이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전날 대통령이 보문단지에 뜬다는 전갈을 받은 뒤 밤차를 타고 경주에 도착해 대통령 맞을 준비를 했다. 박정희는 다음 날 오후 3시쯤 나타나 보문단지 순시에 들어갔다.  박정희는 상가 단지 앞에 차를 세우고 건물 색조 하나하나, 식재된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며 여러 사항을 지적했다고 한다. 나아가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을 때를 대비해 야외극장을 활용할 여러 가지 프로그램 개발과 쾌적한 휴양지, 다시 찾는 휴양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경주개발동우회 <그래도 우리는 신명 바쳐 일했다> 121쪽, 고려서적, 1998).

 
ⓒ영상역사관
1973년 7월3일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경주 지역 유적 발굴조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정희는 대통령 재임 기간 툭하면 경주를 찾았기에 이 방문이 아주 특별한 행사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겨우 이틀 전에 보문단지를 방문한 박정희의 행적은 자신이 만들고 집착했던 작품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필연 같은 우연’으로 보이기도 한다.

경주를 향한 박정희의 꿈은 매우 담대한 것이었다. 천년 수도에 포진한 신라 시대 문화재를 관광산업과 접목해 죽은 도시를 재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박정희 자신이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입안했으며,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 10월26일까지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경주 개발은, 박정희 정권이 집권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문이었다. 일종의 산업 육성 차원에서 경주 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절실히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자는 경제 논리가 튼실하게 깔려 있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경주를 시작으로 설악산·제주도·한려수도 등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다만 다른 관광지와 달리 경주 개발에는 ‘국민정서 함양’이라는 목적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면 신라의 삼국 통일 정신을 본받아 남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등 신라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것이다. 이렇게 정권의 정치적·산업적 의지가 복잡하게 얽힌 경주 개발 계획의 중심부에 보문단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의 관광산업 육성 의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1970년대 후반 들어서다. 1978년 11월27일 오전 8시20분, ‘대망의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해 100만 번째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미국 여성 바버라 존슨(당시 59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KAL 005편으로 김포공항에 들어왔다가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았다. 여담이지만 바버라 존슨이 실제로 1978년의 100만 번째 외국인 관광객은 아니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교통부와 관광공사가 홍보 효과 극대화를 위해 해당 항공기 승객 가운데 미국인 여성을 미리 선정해놓았다. 당시 외국 관광객 가운데 절대다수를 점하던 일본인은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연합뉴스
1979년 10월11일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 보문단지에 주한 외교사절들을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2000명 외국인 손님에 긴장한 1979년 경주

이토록 ‘관광입국(觀光立國)’에 대한 열망이 거셌으니, 제28차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총회 및 제19차 워크숍(1979년 4월 중순 개최) 유치에 성공했을 때 한국 정부와 관광업계가 얼마나 흥분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은 연례 국제행사인 PATA 총회를 1965년에 이미 한 차례 개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관광산업을 보는 한국 측의 시각이 달라지고, PATA 총회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한국이 유치한 1979년 총회의 경우, 참가단 규모가 2000명 이상일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까지 한국은 이 정도의 인원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를 단 한 번도 개최해본 적이 없었다. PATA를 준비하는 자세와 열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그것에 못지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PATA 대회의 장소는 두 군데로 확정됐다. 4월16~18일 총회는 서울에서, 4월20~21일 워크숍은 경주에서 열렸다. 경주 워크숍 장소가 바로 보문관광단지였다. 지금은 ‘육부촌’이라 불리는 경북관광공사 관할 ‘컨벤션센터’다.

물론 경주 개발 계획이 처음부터 PATA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다. PATA의 한국 개최가 확정된 것은, 경주 개발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6년 4월21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25차 PATA 총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PATA는 경주 개발 계획, 특히 보문단지 조성에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대회를 코앞에 둔 4월6일, 보문단지가 1단계로 서둘러 부분 개장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당시 사정을 회고하면서 고 최귀남 국제관광공사 개발이사는 “1979년 초순경 공정에 쫓기는 모든 관계자가 이곳저곳에서 바삐 움직이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는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당시 자욱한 먼지에 덮인 보문관광단지는, 포성이 연달아 터지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박정희는 1979년 2월6일 교통부를 연두 순시한 자리에서 ‘성공적인 PATA 회의 개최를 위해 정부 각 부처나 관광공사가 적극 협조하여 회의를 잘 치르도록 하라’고 당부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78년까지만 해도 골조 공사 단계였던 보문단지 내 컨벤션센터와 상가가 대회 직전에 완공되었다. 경주조선호텔과 경주도큐호텔도 PATA 회의 직전 문을 열 수 있었다.

4월16일부터 진행된 PATA 총회와 워크숍의 참가단 규모는 역대 최대인 43개국 2424명(국내 대표 499명 포함)에 달했다. PATA 총회 역사상 참가 인원 2000명을 최초로 넘긴 성공적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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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펭귄이 첫번째 알을 버리는 이유

‘방랑자’ 펭귄이 첫번째 알을 버리는 이유

조홍섭 2016. 10. 07
조회수 2875 추천수 0
 

한반도 10배 남극해 영역 이동 중 알 낳을 준비, 과부하가 부실한 첫째 알로

나중에 진화한 장거리 이동이 초래한 진화 ‘부적응’, 생식체계 고치기보다 쉬워

 

p1_Jerzy Strzelecki _Macaroni_(js)1.jpg» 노랑색 눈썹이 독특한 마카로니펭귄. 가장 개체수가 많은 왕관펭귄의 하나로 두 개의 알 크기 차이가 심한 종이기도 하다. Jerzy Strzelecki, 위키미디어 코먼스

 

황제펭귄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남극해에는 왕관처럼 휘날리는 멋진 노랑색 눈썹과 수수께끼의 방랑 생활로 눈길을 끄는 펭귄이 산다. 뉴질랜드 근해 등 남극해에 서식하는 왕관펭귄속 펭귄이 그들로 마카로니펭귄 등 6종이 있다.

 

알을 한 개만 낳는 황제펭귄과 달리 이들은 2개를 낳는데, 처음 낳는 알은 나중 알보다 절반까지 작은 극심한 크기 불균형을 나타낸다. 어미 펭귄은 처음 낳은 작은 알을 어김없이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드물게 부화에 성공하더라도 작은 새끼는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고 만다. 

 

p3_Didier Descouens_마카로니펭귄.jpg» 마카로니펭귄의 알. 첫째 알의 무게는 두번째 낳는 알의 62%에 지나지 않는다. Didier Descouens, 위키미디어 코먼스

 

결국 버릴 알이라면 왜 굳이 낳을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하나만 제대로 낳아 잘 길러내는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 왕관펭귄속 알의 이런 크기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두고 1960년대부터 논란이 계속돼 왔다. 

 

여러 가설이 나왔다. 예비용으로 낳았다는 설이 있다. 알이나 새끼를 잃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첫째 알이 크기는 작아도 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둥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란 주장도 있다. 왕관펭귄은 번식지에 돌아오면 부지런히 알부터 낳는데, 남보다 먼저 번식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첫째 알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p2_Andrew Shiva.jpg» 바다를 헤엄치는 마카로니펭귄. 왕관펭귄 무리는 남빙양의 바다를 떠돌며 겨울을 난다. Andrew Shiva, 위키미디어 코먼스

 

1990년대부터 왕관펭귄의 방랑 기질에 초점을 맞춘 가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넓은 바다를 헤엄치면서 남극의 겨울을 나는데, 6개월 동안 돌아다니는 바다의 영역이 200만㎢, 곧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이른다.

 

글렌 크로신 캐나다 댈하우지대 교수와 토니 윌리엄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생물학자는 이런 장거리 이주로 인한 부담이 부실한 첫번째 산란으로 이어졌다는 가설을 주장해 왔는데, 이번에 자신들의 이론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p5_Ben Tubby-Rockhopper-Colony.jpg» 남아메리카 포클랜드 섬에 있는 바위뛰기펭귄 번식지. 먼 바다에서 번식지를 향해 헤엄치는 동시에 알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Ben Tubby,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B)> 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2개의 알을 낳는 펭귄 16종을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첫째 알과 둘째 알의 무게 차이와 번식지에 도달해서 알을 품기까지의 기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장거리 이동을 하는 왕관펭귄속의 펭귄에서만 알 크기의 차이가 나타났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선뿔펭귄(Eudyptes sclateri)으로 처음 81.6g짜리 알을 낳은 뒤 두번째엔 그 2배 가까운 150.9g의 알을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카로니펭귄도 처음 알 무게가 둘째 알의 62%에 그쳤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첫째 알과 둘째 알의 크기 차이가 클수록 번식지에 도착해 알을 낳기까지의 기간이 짧다는 현상이었다. 펭귄의 알에 노른자가 만들어지는 데는 약 15일이 걸린다. 그런데 왕관펭귄속의 펭귄들은 번식지에 도착하고 나서 15일이 되기 훨씬 전에 알을 낳는다. 로열펭귄은 10일, 마카로니펭귄은 10.5일 만에 산란했다.

 

다시 말해 왕관펭귄은 먼 바다에서 미처 번식지에 도착하기 전에 알의 노른자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왕관펭귄은 다른 펭귄보다 2배나 빠른 하루 72㎞의 속도로 번식지로 돌아오는데,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헤엄치기와 알 만들기를 동시에 하려니 자연히 알이 부실하다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우리의 연구결과는 중첩된 이주와 생식이 왕관펭귄의 알 생산에 압박을 가해, 두 가지가 많이 겹칠수록 처음 나은 알과 나중 나은 알 사이의 크기 차이가 커진다는 가설이 옳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p4_Arjan Haverkamp_북방바위뛰기펭귄.jpg» 동물원의 바위뛰기펭귄. 여전히 처음은 작고 나중엔 큰 알을 낳는다. 진화가 일으킨 부적응 상태이다.Arjan Haverkamp,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다면 왜 왕관펭귄은 수백만년 동안 진화해 오면서 쓰지도 않을 첫째 알을 포함해 알을 두 개 낳는 방식을 고수해 왔을까. 사육장의 왕관펭귄도 자연 상태에서보다 알 크기 차이는 작지만 두 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보아 이런 형질은 유전적인 뿌리를 지닌다.

 

연구자들은 가능하면 알을 일찍 낳는 형질이 처음부터 펭귄에 강한 선택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알을 일찍 낳는 개체일수록 번식 성공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환경변화에 따라 펭귄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었다. 나중에 진화된 형질은 불가피하게 이동과 산란 준비가 겹치는 과부하를 불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말하자면 진화는 왕관펭귄에게 깔끔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 셈이다. 생식구조를 뜯어고쳐 알을 하나만 낳게 하는 것보다는 처음 낳는 알을 포기하는 쪽이 훨씬 쉽고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rossin GT, Williams TD. 2016 Migratory life histories explain the extreme egg-size dimorphism of Eudyptes penguins. Proc. R. Soc. B 283: 20161413.

http://dx.doi.org/10.1098/rspb.2016.141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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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다시 돌아왔다, 그 본성대로

참새가 다시 돌아왔다, 그 본성대로

윤순영 2016. 10. 06
조회수 2827 추천수 0
 

사람들의 삶과 가장 친근했던 그들

아침을 열고 저녁을 알렸다

 

허수아비에공기총에 쫓기고

포장마차 안주감으로

 

쌀값이 떨어지고 농촌은 늙어가고

이젠 그들을 거들떠도 안 본다

 

그들도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사람 곁에서 떼지어 논다

 

크기변환_DSC_0603.jpg» 3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들판에서 만난 참새 떼. 참새의 계절이 돌아왔다.

 

'짹’ 참새는 재잘거리며 아침을 열고 저녁을 알렸다자연이 사는 곳에서 멀지 않던 시절 우리는 참새 둥지를 털어 새끼를 꺼내 키웠고논에서 소리쳐 쫓았고밤에는 초갓집 처마 밑을 손전등으로 비춰 잡기도 했다우리 곁에 친근하기로 이만한 새가 있을까.

 

크기변환_DSC_0304.jpg» 참새는 정겹고 화목한 새다. 한국화 화조도에 잘 등장 한다.

 

참새는 많기도 했지만 나락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무조건 잡을 대상이기도 했다. 1970~1980년대 공기총 사냥이 성행할 때 참새의 수난은 시작됐고 포장마차에 참새구이가 단골 메뉴로 올랐다

 

자연히 참새는 총은 물론이고 어깨에 나무 막대만 걸쳐도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사람이 멀찍이 보이기만 해도 날아갔다.

 

크기변환_DSC_3527.jpg» 모래 목욕을 즐기는 참새. 몸에 붙은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크기변환_DSC_9203.jpg» 들깨도 참새가 즐겨 찾는 열매이다.

 

크기변환_DSC_0523.jpg» 참새는 곡식과 애벌레, 곤충 등을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다.

 

참새에게 가장 큰 타격은 살 곳을 없앤 것이었다새마을 사업으로 마을이 현대화 되며 초가집과 기와집이 사라졌다아파트와 슬래브 주택 어디에도 참새가 둥지를 틀 빈틈은 없었다.

 

크기변환_DSC_9405.jpg» 마을이 현대화되어 농경지를 감싸안은 아파트와 슬래브 집들, 농경지 가운데 영농창고 시설과 나무들이 마을을 떠난 참새들의 터전이 되었다.

 

크기변환_DSC_0588.jpg» 초가집과 기와집이 사라져 나무 구멍을 선택하여 번식을 한다.

 

참새는 이제 도시에서 떨어진 들판으로 내몰렸다도시에선 참새 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농촌에서는 워이~워이~’ 양동이를 두드리며 참새를 쫓는 일이 사라졌다

 

농약과 비료를 치면서젊은이는 떠나고 노인들이 농촌을 지키면서쌀값이 폭락하면서 이제 참새가 나락을 먹는 것을 신경 쓰는 이들은 거의 없다.

 

크기변환_DSC_9432.jpg» 참새를 쫒던 허수아비. 이제는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크기변환_DSC_9446.jpg» 참새의 잔치 상이 펼쳐진 논. 예전 이맘때면 참새 쫓는 소리가 요란했을 것이다.

 

요즘 참새가 다시 돌아왔다떼를 지어 농촌을 날아다닌다도시에서도 공원에 가면 참새 무리를 쉽게 만난다이제 더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사람이 곁에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애초 참새는 제비처럼 천적을 피해 사람 곁에서 살던 새였다사람의 삶의 방식과 환경이 바뀌면서 다시금 참새는 본성대로 사람 곁에 돌아온 것이다.

 

크기변환_DSC_9647.jpg» 우두머리 참새가 먼저 도착해 주변을 살핀다.

 

크기변환_DSC_0888.jpg» 안전한 것을 알고 참새 무리가 울타리에 날아와 앉는다.

 

크기변환_DSC_1410.jpg» 울타리에 앉아있던 참새들이 차례차례 논으로 내려와 벼 낱알을 턴다.

 

크기변환_DSC_1015.jpg» 열심히 벼 낱알을 먹던 참새가 화들짝 놀라 울타리 위로 날아오른다.

크기변환_DSC_1021.jpg» 논 옆에 있는 울타리는 벼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횃대이자 피난처로 제격이다. 다용도의 환경을 알고 참새는 이곳을 선택했다.

 

크기변환_DSC_1445.jpg»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덩굴이 참새들의 은폐물이 된다.

 

3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들판에서 참새떼를 만났다번식기를 빼고는 철저한 무리 생활을 한다우두머리는 무리를 이끌지만 먹이를 먹으러 내려앉을 때는 모두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 맨 마지막에 합류한다지도자답다.

 

■ 참새의 정지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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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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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하 김진태, 두 놈 듣거라!

한 놈은 의사 면허 취소, 또 한 놈은 의원직 박탈해야
 
김갑수 | 2016-10-06 15:21: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알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 어려운 사정이 있거나 불가피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 잘못을 후회하는 법이며, 개중에는 진정으로 뉘우치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인간의 범주에 넣어 줄 수는 있다. 나쁜 놈도 어떻든지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놈’이면서 동시에 ‘가증스러운 놈’이 있다. 이런 놈들은 사정이 어렵지도 않은데,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데 자발적으로 나쁜 짓을 한다.

백남기 선생의 주치의 백선하는 따로 기자회견까지 열어, “유족의 반대로 연명치료를 받지 못해 백 씨가 사망에 이른 만큼 사인을 ‘병사’로 표기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놈은 덧붙이기를,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해 사망에 이른 만큼 병사가 옳다면서, 백남기 선생 사망의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고 모함질까지 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당시 백남기 선생은 이미 가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료진은 가족에게 요양병원에 보낼 것을 권했으나, 그때 등산복을를 입고 홀연히 나타난 백선하 이 놈이 불필요한 생명 연장 수술을 기획적으로 감행하고 317일 간이나 의료비를 누적시키면서 질질 끌어온 것이다.

이미 317일 전부터 이 놈은 패륜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망 없는 환자의 고통을 굳이 연장시키면서 자기 이익을 취하는 놈은 의사는 고사하고 인간도 못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 놓고서는 이제 와서 연명치료에 반대했다는 구실을 대며 죽음의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으니 이게 어디 인간이란 말인가?

백선하 못지않은 놈으로 김진태가 있다. 이 놈 역시 자발적으로 나서 백선하 편을 들어주면서, “사인을 밝히는 알파요 오메가는 부검이다. 그걸 하지 않겠다면서 무슨 특검을 하고 진상을 밝히겠다는 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고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말했다.

게다가 김진태 이 놈은, “이때 백씨 딸은 어디 있었을까.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중이었다. 이 딸은 아버지가 사망한 날 발리에 있으면서 페북에 ‘오늘밤 촛불을 들어주세요. 아버지를 지켜주세요’라고 씁니다.”고 덧붙였다.

백남기 선생의 둘째 딸 민주화 씨는 원래 한국에 살지도 않았으며, 중요한 가정사가 생겨 시댁 식구들과 함께 발리에 사는 시댁 형님을 잠깐 방문하고 있던 차였다.

백선하와 김진태, 이런 놈들은 절대로 자기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법이 없다. 이런 놈들을 가리켜 이른바 ‘확신범’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런 놈들까지 인간의 범주에 넣어 줄 수는 도저히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정상적인 인간들이 사는 공동체라면 이런 놈들이 인간 행세를 하고 살아가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급한 대로 우선 한 놈은 의사 면허 취소, 또 한 놈은 의원직을 박탈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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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향한 미국의 '변심', 한국 준비됐나

 

[주장] 싱크탱크 기관들도 '평화협정' 제안... 미 차기 정부 '대화' 국면 예상16.10.06 20:54l최종 업데이트 16.10.06 20:54l글: 정대화(dhchung1)편집: 박정훈(twentyrock)

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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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미국의 외교전문가들과 싱크탱크들이 '북한과 대화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대화'를 중시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한 달 후, 11월 8일이면 미국 대선이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중요 언론이나 중요 연구소의 발표와 주요 인사들의 말 중 상당수가 북한에 대한 정책전환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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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위트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 뉴욕타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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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북한 전문 웹페이지 '38 노스'를 운영하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조엘 위트(Joel Wit) 교수의 언급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미 국무부에서 10여 년간 대북담당관으로 근무했고 1994년 북한과의 제네바 협상에 참가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뉴욕타임스>의 기고에서 북한 핵 개발의 정도가 진전돼 미국의 새 정부는 북한의 5차 핵 실험 이후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외교구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 이야기는 한미 합동군사 훈련의 유보 혹은 중지,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포함한다고 언급했다. 

즉,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네바 협상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ucci)도 지난 4일 워싱턴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지역문제 토론회에 참가해서 '대화와 협상'을 주장했다.

2. 다음으로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는 사실이다. 이 매체는 기사에서 '(북한의 전략은) 힘이 약한 국가가 강대국을 적으로 마주했을 때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이러한 <뉴욕타임스>의 태도 변화는 1972년 미-중 화해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의 마오쩌둥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하다. 이때도 지금의 남북대치 못지않은 냉전시대였으나, 당시 중국에 대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의 보도 논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3.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가 되든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즉 중요한 연구기관인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발표도 예사롭지 않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을 배출하며 세계정치를 막후에서 좌우한다는 이 영향력 있는 연구기관이 지난달 16일 특별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101쪽 분량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중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를 성패의 관건으로 꼽으며 총 6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1, 2가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동맹국들은 하루속히 중국을 한반도 문제에 관한 5자 협의에 참여시켜야 한다. (2) 미국은 시급히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고 비핵화와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도록 협상 방식을 재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기자가 주장해 왔고 중국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이 들어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 영향력 있는 정책연구 기관이 오바마의 정책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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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정권수립일을 맞아 지난 9월 9일 오전 핵실험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소식통이 밝혔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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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 10대 연구소 안에 드는 우드로 윌슨 연구소(Woodrow Wilson Center for International Scholars)의 제인 하먼 소장이 <워싱턴 포스트>에 현지시각 10월 2일자로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하먼 소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일단 장기적 목표로 두고, 북한의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의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북한 복귀를 '당면목표'로 삼아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했다.

그는 나아가 "이것은 평양과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당사국 간에 너무 많은 불신을 낳은 6자 회담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핵 동결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며 '"핵 동결 이후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 해체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외교적 자본을 투자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5.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북핵 해결을 위한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로 유명한 클린턴 정부의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의 최근 발언이다.

페리 전 국방장관 겸 대북정책조정관은  지난달 26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 및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며,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 포기 대신 핵 프로그램의 '동결 및 비확산'을 목표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와 행동을 보여주기 전에는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는 오바마나 박근혜 정부의 현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이자, 차기 미 행정부에 대한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시키기엔 너무 늦었다"고 밝혔다. 또한 "(현 단계에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피해를 제한하는 것이 전부"라며 시그프리드 헤커(Sigfried Hecker)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이 제시한 '3가지 노(No)' 정책이 "협상을 시작할 때 좋은 목표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3가지 노'는 헤커 선임연구원이 2008년 제시한 북 핵 해법으로, ▲ 핵폭탄의 추가생산 금지 ▲ 추가적인 성능향상 금지(실험 금지) ▲ 수출 금지 등 북한 핵 및 미사일 능력의 동결과 비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페리 전 장관은 한·미의 대북 강경파들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하는 이른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서도 "현 상황에서 실질적인 전략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해선 북한을 붕괴시키거나 북한 붕괴를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어떤 근거도 알지 못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차기 정부에서는 대북 정책 바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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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와 클린턴의 대선 토론
ⓒ NBC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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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 최근 들어 '대북정책 전환'에 대한 신호를 연속으로 내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전이 미국이 승리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자 닉슨이 마오저뚱을 만나러 갔듯이, 북한 핵 무력의 '임계점'에 도달하니 미국이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힐러리든 트럼프든,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대북정책은 바뀔 것이다. '핵 동결'이 미국의 이익에 필수적인 조치고, 이는 현재의 정책을 유지해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북미 정상회담까지 예상할 수 있다. 클린턴 정부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의 조명록 대장이 클린턴을 만났던 것처럼 대화 국면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새 대통령의 취임 초 1년 안에 미국의 여러 외교정책 사안들이 재정비되고 북한에 대한 정책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나라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대화님은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로 전 UN 관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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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초토화’ 불러올 한민구 장관은 사퇴하라!”

“‘한반도 초토화’ 불러올 한민구 장관은 사퇴하라!”
 
 
 
편집국 
기사입력: 2016/10/06 [15: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권연대가 6일 국방부 앞에서 한민구 국방부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편집국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권유하는 발언 이후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6일 오후 1시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권연대는 한민구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김정은 위원장 제거 부대 창설’, ‘평양 초토화 계획등의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이런 강경발언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민권연대는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북핵문제의 안전한 관리와 한반도 평화임을 강조했다한민구 장관의 말처럼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평양이 초토화’ 되는 것이 아니라 핵대결로 인해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기에 평화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한민구 국방부장관 사퇴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있다.     © 편집국

 

민권연대는 국방부 장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민권연대는 국민들을 지켜줄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지 국민들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내모는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또한 한민구 장관의 발언과 행동은 '평화 통일천명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과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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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한반도 초토화’ 불러올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으로 인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의 수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9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대북강경발언을 쏟아냈다한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 제거 부대를 만드느냐는 의원의 질의에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했다북측 지도부에 대한 암살 계획을 우리정부가 공식화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또 평양 초토화’ 계획과 관련해선 그런 역량을 갖추기 위해 여러 수단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북한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탄으로 서울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대북 강경발언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남북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며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다.

북한 지도부 제거 부대 등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군사전문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핵실험 동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 군의 수준에서 유사시 지도부의 위치 파악 등 작전이 실행 가능할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북핵문제의 안전한 관리와 한반도 평화다현대전이 일어나면 승패를 떠나 한반도 자체가 잿더미가 된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 초토화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된다북한 지도부를 참수하겠다는 한민구 장관의 발언은 결국 우리국민들을 참수하겠단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국민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유사시 중국러시아 등으로부터 군사적 타격의 우려까지 거론되고 있는 사드를 지역주민의 반발과 국민들의 비판적 의견을 무시하고그것도 2달여 사이에 최적지를 바꿔가며 배치를 강행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 통일'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보이는 행보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며 우리 국민들의 안정과 생명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는 태도다.

 

 

우리는 국민들을 지켜줄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지 국민들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내모는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에는 관심 없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사퇴하라!

 

 

2016년 10월 6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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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회의 반드시 실현, 전환적 국면 열 것”

<추가> 선양서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공동결의문 발표(전문)
선양=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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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6  19: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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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남․북․해외 대표단은 6일 오후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박성일 6.15북측위 사무국 부국장, 남주현 재일본조선여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황철하 6.15경남본부 집행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는 그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각계 접촉과 교류를 복원시키고 전민족적 통일회합으로서의 연석회의를 반드시 실현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것이다.”

6일 오후 3시(이하 현지시간)부터 중국 선양(심양)시 칠보산호텔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남․북․해외 대표단 30여명은 공동결의문을 통해 민간교류 복원과 연석회의 실현을 다짐했다. 그러나 연석회의 결성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경로 등은 제시하지 못했다.

대표단은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과업, △전쟁위험 방지 및 평화 실현, △전 민족적 통일대회합 실현 등을 주제로 3시간 동안 토론회를 진행한뒤 오후 6시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남과 북, 해외 각계각층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더욱 높여나갈 것”이라며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 등 각계각층의 연대를 더욱 굳게 다지고 다양한 공동행사와 통일회합을 적극 추진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실현에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라면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공동선언들이 열어놓은 6.15시대의 소중한 결실들을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남측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북측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해외측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아울러 “남북공동선언들이 제시한 민족자주와 대단결 정신을 굳게 견지해나갈 것”이라며 “남과 북, 해외의 어느 곳에서나 사상과 이념,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반도의 전쟁위기 종식과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면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각종 군사훈련 및 무분별한 군비개발과 경쟁 등 모든 형태의 군사적 위협행위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결의문은 “전쟁의 위기를 막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 실현과 민족화해와 단합, 그리고 온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달성을 위해 결의한다”며 “남과 북 해외으 모든 정당과 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 남북공동선언들의 정신을 지키고 그 실천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제2의 6.15시대’를 개척해나갈 것을 뜨겁게 호소한다”고 맺었다.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문제, 남북 간의 회합과 접촉을 활발히 진행해서 통일운동을 발전시키는 문제, 3 주제를 가지고 남북해외가 각각 한명씩 발언하고 간단한 결속발언을 주제별로 하는 것으로 진행했다”고 소개하고 “남북해외의 입장이 다른 얘기들이 여과되지 않고 이뤄질 수 있어서 실무적인 고충 때문에 토론회 자체는 비공개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토론자들이 6.15공동선언 1항과 10.4선언 2항의 정신을 되살려 “당국관계가 최악이라 하더라도 민간 통일운동은 이런 원칙을 확인하면서 서로 힘을 합쳐 통일운동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자는 것이 토론의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제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돼 있고, 2007년 10.4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 이번 토론회를 이끌어간 남북해외 주석단. 왼쪽부터 최상은 남측 전농 부의장, 신필영 해외측준비위 명예위원장, 임상호 6.15남측위 공동대표, 양철식 북측준비위 부위원장, 손형근 해외측준비위 부위원장, 림용철 6.15북측위원회 학술분과위 부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승환 공동대표는 “지난 8월 양철식 6.15북측위 부위원장이 연석회의 북측준비위 부위원장을 맡아 앞으로 이쪽 일에 대해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들었다”며 “남측은 연석회의 추진기획단 공동단장이 참석하려 했으나 중국 비자 문제로 아쉽게 됐다”고 말하고 “해외는 각 지역 대표들이 다 왔다”고 설명했다.

연석회의 내지는 민족대회합의 추진 일정 등에 대해서는 “6.15남측위원회와 민족공동행사를 통해 계속 연습해왔기 때문에, 6.15남측위원회를 떠나서 새로운 준비기구를 만들고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6.15남측위 차원에서 추진기획단을 만들어서 대응하고 있다”며 “6.15남측위원회가 중심이 돼서 통일대회합을 해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제정당들까지 참여하는 민족대회합은 현재 남측의 정치 지형상 여당까지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짚었다.

공동토론회를 마친 남북해외 34명의 대표단은 오후 7시부터 칠보산호텔에서 만찬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틀째인 7일 오전에는 각 계층, 부문별 실무협의를 갖고 공동식사를 한 뒤 오후에 귀국할 예정이다.

남북 농민들의 모임에서는 북측 수해지역에 남측에서 남아도는 ‘통일쌀’을 보내자는 협의 등이 진행될 예정이고,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개최한 일본군‘위안부’ 토론회 후속 사업 등이 논의되는 등 계층, 부문별 현안들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 공동결의문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남북해외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선양 공동토론회에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연석회의 추진기획단’ 단장인 임상호 6.15울산본부 상임대표를 비롯해 이승환, 한충목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 등 8명이 참석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에서는 양철식 련석회의 북측준비위 부위원장을 비롯해 림용철 6.15북측위 학술분과위 부위원장, 박영희 민족화해협의회 녀성부 부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가장 많은 16명의 대표단이 참석한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해외측준비위원회’에서는 일본지역에서 손형근 해외측준비위 부위원장 등 6명, 중국지역 차상보 해외측준비위 위원 등 5명, 미국지역 신필영 해외측준비위 명예위원장 등 3명, 카나다지역 김수해 해외측준비위 부위원장 등 2명이 참석했다.

 

'10.4선언 발표 9주년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결의문(전문)

오늘 남‧북‧해외 각계층 대표들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향한 민족의 이정표, 10.4선언 발표 9주년에 즈음하여 남‧북‧해외 공동토론회를 진행하였다.

토론회에서 남‧북‧해외 각계층 대표들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의 남북공동선언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의 원칙과 방도를 밝히고, 6.15통일시대를 이루어낸 민족통일의 대장전이자 역사적 이정표임을 확인하였다.

남과 북, 해외의 대표들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험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게다가 각계의 접촉과 교류마저 중단되어 남북관계가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한결같이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또한 남북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만이 현 남북관계의 위기를 타개하고 평화와 통일, 공동번영의 출로라는데 대해 의견을 함께 하였다.

토론회에 참가한 남‧북‧해외 각계층 대표들은 전쟁의 위기를 막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 실현과 민족화해와 단합, 그리고 온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달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다.

최악의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현 남북관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무엇보다 남북의 소중한 합의인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공동선언들을 부정하고 그 이행에 장애를 조성하는 모든 행위에 단호히 반대하며,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공동선언들이 열어놓은 6.15시대의 소중한 결실들을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해나갈 것이다.

2. 남북공동선언들이 제시한 민족 자주와 대단결 정신을 굳게 견지해나갈 것이다.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 것은 남북공동선언들의 기본정신이다. 우리는 공동선언들이 제시한 민족 자주의 정신을 통일문제 해결의 제1원칙으로 굳게 지켜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남과 북, 해외의 어느 곳에서나 사상과 이념,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한반도의 전쟁위기 종식과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온힘을 다해 노력해나갈 것이다.

평화 없이 통일 없고, 평화 없이 민족의 미래도 없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평화운동을 적극 전개해나갈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각종 군사훈련 및 무분별한 군비개발과 경쟁 등 모든 형태의 군사적 위협행위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다.

4. 남과 북, 해외 각계각층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더욱 높여나갈 것이다.

남과 북, 해외의 각 정당, 단체, 인사들 사이의 다양한 교류와 연대는 통일운동을 활성화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 등 각계각층의 연대를 더욱 굳게 다지고 다양한 공동행사와 통일회합을 적극 추진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실현에 앞장서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각계 접촉과 교류를 복원시키고 전민족적 통일회합으로서의 연석회의를 반드시 실현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남과 북 해외의 모든 정당과 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 남북공동선언들의 정신을 지키고 그 실천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제2의 6.15시대’를 개척해나갈 것을 뜨겁게 호소한다.

2016년 10월 6일
중국 심양


(수정,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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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야, 김천이 만만해 보이니?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10/06 09:48
  • 수정일
    2016/10/06 09: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성주읍 인근 성산포대에서 김천 혁신도시 인근 롯데골프장으로 사드 최적지가 변했다. “성주군민들의 투쟁으로 쫓아낸 사드가 김천으로 날아왔다. 김천이 우습게 보이나? 김천을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칠 것” 김대성 김천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김천 사드철회 투쟁을 성주와 비교해 본다.

▲ 김천 41일째(왼쪽), 성주 80일째(오른쪽) 촛불이 10월1일 진행되고 있다.

성주촛불 7월13일부터, 김천촛불 8월22일부터

김천은 8월22일부터 사드반대 촛불을 들었다. 처음엔 김천민주단체협의회가 시작했다. 박보생 시장이 사드반대 김천투쟁위를 결성하면서 촛불은 투쟁위가 주관했다. 9월 들어서는 시민대책위가 촛불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천역에서 진행되는 사드철회 촛불은 1천여 명을 유지해 오다 국방부의 3부지 발표 후, 5백여 명이 더 늘어났다. 롯데골프장 바로 밑인 농소면과 혁신도시로 꾸려진 율곡면 주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최근 남면 주민들이 합세하고, 김천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촛불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율곡과 농소면에서는 매일 7시 관광버스가 주민들을 태우고 김천역으로 향한다. 매일 진행되는 김천 촛불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교육’과 ‘공지사항’ 전달이다. 이 시간을 통해 사드를 공부하고, 투쟁 방향과 행동지침을 전달받는다.

성주에 카톡방 ‘1318+’가 있다면 김천엔 ‘시민 밴드’가 있다.

김천역 촛불 광장과 네이버 밴드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는 시민들의 소통을 책임지는 양대 축이다. 2500명이 넘는 회원을 두고 있는 ‘시민밴드’는 ‘1318+’에 비해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현안에 대한 밀도 있는 토론을 보장하는 데서는 강점이 있다.

▲ 지난달 30일 롯데골프장으로 사드부지가 발표되자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드철회 성주투쟁위와 사드철회 김천시민대책위

제3부지가 거론되자, 성주투쟁위에서 일부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빠져 나가 한 차례 내홍을 겪었다. 김천투쟁위도 촛불을 지속할 기획력과 재정이 바닥나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성주가 투쟁위원장을 새롭게 인선하면서 대오를 정비했던 것처럼, 김천도 시민대책위로 투쟁기구를 새롭게 구축했다.

김항곤 성주군수와 박보생 김천시장

5만 군민을 대표해 성산포대 사드배치를 막겠다던 김항곤 군수는 제3부지가 거론되자 사드 찬성으로 돌아섰다. 반면 박보생 시장은 “15만 김천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내 손으로 지킨다. 성주가 뱉어 논 것을 김천이 주어먹을 수는 없다. 염속산이면 몰라도, 롯데골프장은 절대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로서 김 군수와 달리 박 시장은 출구가 사라졌다. 이 지역에서 차기 국회의원직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박 시장은 사드철회 투쟁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 사드반대 성지수호 원불교 비상대책위원회는 사드철회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천 사드철회 투쟁엔 원불교가 있다.

롯데골프장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원불교 성지가 있다. 이곳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성지 이전은 불가피 해진다. 원불교는 지난 시기 훈련터를 육군 계룡대에 빼앗겼고, 한남동 수도원터는 미군부대에 양보했다. 그러나 이곳 ‘달뫼 성지’에는 원불교에서 법모로 모시는 정산종주의 생가가 있다. 정산종주가 롯데골프장이 있는 이곳 ‘달뫼’에서 탄생하고, 성장했으며, 도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드렸다. 원불교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어도 여한이 없다)의 각오로 성지를 지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사드반대 성지수호 원불교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매일 국방부 앞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각기도를 올리고, 오후 7시에는 촛불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1일 사드철회 3주체(성주, 김천, 원불교)가 서울에 모인다.

성주투쟁위, 김천시민대책위, 원불교비상대책위는 스스로를 사드철회 3주체라 부른다. 이들은 오는 11일 서울 종각에 모인다. 이날 오후 2시에 원불교는 5대종단과 함께 기도의식을 진행하고, 성주와 김천 주민들은 미대사관에 항의서를 전달한다. 오후3시 3주체가 종각에 모여 사드 철회를 위한 평화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대회 규모는 1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골프장과는 아직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

성산포대는 이미 군사기지였기 때문에 부지를 수용하거나 정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롯데골프장은 사정이 다르다. 협상을 해봐야겠지만, 부지 인수비용만 7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국방부는 롯데 측과 사전협의도 없이 덜컹 부지부터 발표해버린 상태라 협상과정에서 롯데 측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성주와 김천의 사드 반대 투쟁은 다른 듯 닮았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미국 사드 필요없다’는 구호가 성주에도, 김천에도, 원불교에서도 울려퍼지고 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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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

[성명] 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  
 
 
 
자주시보 편집부 
기사입력: 2016/10/05 [17: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4년 인천에서 열렸던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축구에서 우승한 북 여자축구선수들이 시상대 위에서 환호하는 남녁동포들에게 손을 들어 흔들면서 답례하고 있다.     © 자주시보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 <10.4선언 > 9주년을 맞이하여 "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 보내온 성명서에 의하면 " 6.15공동선언에 이어 발표된 10.4선언은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해 나가는 귀중한 선언이다."라고하며 10.4선언을 남북 갈라진 겨레 하나되는 길에서 귀중한 선언으로 규정하였다. 10.4선언은  6.15공동선언에  대한 그 실천강령으로 남북 지도자가 합의하여 발표하였다.

 

또 성명에서는 6.15와 10.4선언을 하던 시대에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겨레 하나가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었고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통일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던 희망찬 연대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남측 당국이 앞장에 서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서 조선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상태에 빠져있다고 현 조선반도를 위기상황으로 보았다.

 

성명은  그러나 우리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조국통일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사상이 응축된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외세가 우리민족의 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남과 북 해외의 민족들은 자주적이고 민족대단결로 조국의 통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성명서에 못을 박고 있다.

 

성명은 마지막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만이 조국 땅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온다"면서 "우리는 자주평화 통일의 신심을 안고 그 어떠한 시련이 있을지라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자주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향해 의연하게 진군해 나갈 것이다."라고 재미동포들의 조국통일에 대한 각오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럼 아래에서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성명서 전문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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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

 

 온 겨레의 가슴 절절한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은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발표된 지 9년이 지났다. 6.15공동선언에 이어 발표된 10.4선언은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해 나가는 귀중한 선언이다.

 

2007년 10.4선언이 우리 조국강토위에서 울려 퍼져 세계로 뻗어 나갈 때 통일은 되었다면서 그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얼싸안았다. 그리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남과 북 해외가 함께 어깨동무하며 자주평화통일을 향해 전진해나갔다.

 

그러나 지금의 조국 땅에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미군과 일본 그리고 박근혜정부는 전쟁을 유발하는 각종 군사행동과 함께 중상모략, 경제제재 등 대북 적대정책을 악랄하게 감행하고 있다.

 

미국이 앞장서서 이남, 일본과 함께 하는 대북군사적대행위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다.

 

과거에는 방어훈련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선제공격을 위한 훈련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핵무기를 동원하고 일본까지 끌어들여 각종 한미일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북을 적대시하는 대북 적대정책에 환장해 미국보다 더 설치고 있어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최고의 파국상태에 달하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조국의 통일은 반드시 자주통일, 민족대단결로 해야 한다.

 

외세인 미국과 추종 국가들이 우리 민족의 염원인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주적으로 단결단합하여 반드시 조국을 통일할 것이다.

 

통일은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해야 한다. 남녘 땅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외세군대들은 물러나야 한다. 특히 북과의 전쟁을 획책하는 미군과 추종 국가의 군사세력은 핵무기를 들고 사라져야 한다.

 

통일은 평화롭게 해야 한다. 민족의 대참화를 가져오는 전쟁으로 통일할 수 없다. 분단과 전쟁을 이용하는 무리는 결코 정의롭지 못한 악의 세력들이다. 평화를 깨트리는 각종 대북군사책동과 대북 중상모략은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만이 조국 땅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주평화 통일의 신심을 안고 그 어떠한 시련이 있을지라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자주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향해 의연하게 진군해 나갈 것이다.

 

2016년 10월 4일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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