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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씨 일가는 왜 훈장을 받았나

조선일보 방씨 사주 일가 훈장 내역 살펴보니…‘장자연 사건’ 연루 의혹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도 ‘산업포장’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8년 04월 15일 일요일

조선일보를 이끌었던 고(故) 방일영·방우영 형제는 독재 정권은 물론 민주 정권에서도 정부 훈장을 받았다. 장자연 사건과 연루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도 1994년 산업포장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일보 방씨일가의 훈장내역을 분석했다. 

 

▲ 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 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박정희가 방우영에 준 ‘대통령표창’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12월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1928년 1월22일~2016년 5월8일)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납북인사 송환’ 100만인 서명 운동에 대한 공로였다. 방 전 고문은 당시 조선일보 사장으로 현 방상훈 사장의 작은 아버지다.

2013년 7월 월간조선을 보면 조선일보는 1964년 6월25일 6·25전쟁 14년을 맞아 총 3개 지면을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소식으로 채웠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본사(本社)는 만전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본 운동 개시 기일을 내(來) 7월1일부터 금추(今秋) 유엔개회를 앞둔 10월 말일까지로 정하고 한국 적십자사의 적극적 협찬 아래 본사와 지사 총국 지국 등 중앙과 지방의 전 조직망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명 운동 첫 날부터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정·관계 주요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서명 첫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직접 서명을 보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6월25일부터 12월13일까지 총 19회 관련 기사(단신 보도 제외)를 실었다. 이 가운데 11회는 신문 1면에서 보도했다. 서명인 수는 10일 만에 25만을 육박했다. 3주 만에 50만을 돌파했다. 1964년 8월20일 100만명을 돌파했다.

같은 해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방우영 사장에게 보낸 감사 서한에서 “귀사의 빛나는 노력이 우리 3000만 민족의 한결 같은 통일에의 염원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믿어 그 취지가 귀사에 길이 기록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2014년 새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칠 무렵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통일이 미래다’ 캠페인을 펼쳤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통일 대박’은 박근혜 비선 최순실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방일영문화재단은 언론과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언론·교육·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 11월 설립됐다. 사진=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 방일영문화재단은 언론과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언론·교육·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 11월 설립됐다. 사진=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1970년 두 형제 나란히 ‘국민훈장’

 

방우영 전 고문은 1970년 5월에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정부는 한국신문협회 부회장이던 그가 언론 창달과 언론계 육성 및 언론인 자질 향상에 공로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눠진다. 모란장은 1등급인 무궁화장 다음인 2등급 훈장이다.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1923년 11월26일~2003년 8월8일)도 같은 해 8월15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사회 산업 부문에서 국가 발전에 공이 크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훈장을 받았다. 방일영 전 회장은 1982년 4월 신문의날 기념식에서 “민주 언론 창달과 신문 기업 육성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같은 날 함께 무궁화장을 받았던 언론사 대표는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이었다.  

조선일보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1980년 5월26일자 사설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쓰는 등 신군부 폭거를 미화했다.

방우영 전 고문은 1985년 3월 조세의 날 기념식에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산업훈장은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눠진다. ‘동탑’은 3등급이다. 이날 1등급인 금탑 산업훈장을 받은 이는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수상자들은 국세청 방침에 따라 세무조사 면제라는 특급 혜택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받은 훈장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는 그들을 챙겼다. 방우영 전 고문은 노태우 정부인 1992년 4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회 발전과 언론 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였다. 그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8년 1월에도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최근 장자연 사건으로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11월 산업포장을 받았다. “에너지 절약에 공이 크다”는 이유로 153명이 각종 훈·포장 및 표창을 받았다.

코리아나 호텔은 정권 유착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방우영 전 고문은 자신의 저서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코리아나호텔과 관련해 “박정희 대통령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호텔을 지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65년 어느 날 방일영 회장이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아 갔다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런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신문사 형편으로는 고층 호텔을 지을 여력이 없었다. 방 회장이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민간 차관 중 일부를 할당해주겠다’며 호텔 건축을 강력히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정부의 지급 보증으로 일본에서 400만 달러 민간차관을 들여와 코리아나 호텔을 짓게 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인이 훈장 받아도 되나”

 

김대중 정부도 1999년 5월 방일영 전 회장에게 금관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은관 문화훈장 수상자로 결정된 권근술 한겨레 논설고문이 훈장을 거부해 화제였다.

미디어오늘은 1999년 “권 고문의 훈장 사절은 이미 친일파가 훈장 수상자로 둔갑하는 등 훈장의 권위가 실추돼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며 “다만 언론인에 대한 훈장 수여를 일부 언론이 1면 주요기사로 처리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김동민 당시 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 교수(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도 1999년 4월 “언론인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다는 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며 “만에 하나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에게 한정해야 한다. 방씨와 조선일보가 그러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현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1999년 9월 ‘밤 대통령, 낮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부가 조선일보 두 형제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을 비판했다.  

손 부장은 “총칼로 집권한 정치 군인도, 직선으로 뽑힌 ‘민주 인사’들도 앞다퉈 밤의 대통령에게 ‘추파’를 던지는 까닭은 무엇일까”라며 “바로 여론이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여론 형성에 막강한 힘을 지닌다. 더구나 조선일보를 비롯해 그와 ‘색깔’이 비슷한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 신문의 신문 시장 독과점은 70%를 넘나든다”고 지적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2001년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 조사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1999년 보광그룹 실소유주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2001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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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천안함 “추적 1번 어뢰, 천안함 재조사를 말한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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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4/15 11:14
  • 수정일
    2018/04/15 11:1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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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자, “나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뉴스타파  | 등록:2018-04-14 10:13:40 | 최종:2018-04-14 10:31: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8천안함 “추적 1번 어뢰, 천안함 재조사를 말한다”
(뉴스타파 / 심인보 /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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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자, “나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라는 ‘1번 어뢰’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소속으로 천안함 1번 어뢰의 부식 검사를 직접 담당했던 한국교통대학교 김의수 교수의 증언이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이 수행했던 부식 검사의 결과가 합조단 보고서에 왜곡돼 실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번 어뢰의 해수 잔류 시간을 측정하기 힘들다’고 보고했는데, 합조단은 보고서에 ‘1번 어뢰와 천안함 선체의 부식 정도가 유사하다’고 기술했다는 말이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사실을 국과수 문건으로도 확인했다.

김 교수는 또 합조단이 자신에게 재질 분석을 통해 1번 어뢰가 북한제인지를 입증해달라고 했으나, 국방부가 갖고 있던 대조품 북한 어뢰가 양산품이 아닌 시제품이어서 비교 분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뉴스타파는 이와 함께 합조단이 천안함 함수 인양 당시 천안함 내에서 캠코더를 입수해 안에 있던 동영상까지 복원했으나, 이를 증거물 목록에서 제외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했다.

김의수 교수, “1번 어뢰, 부식 검사로는 바닷속에 얼마나 있었는지 추정할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5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해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뉴스타파가 제기했던 여러 의문 가운데 하나는 천안함 사건의 ‘스모킹 건’이라는 1번 어뢰에 관한 것이었다. 뉴스타파는 당시 1번 어뢰의 부식 상태에 대해 합조단이 제대로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뉴스타파가 3년 전 제기한 의문은,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어뢰 부식 검사를 직접 담당했던 김의수 교수의 증언과, 이와는 별도로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을 통해 입수한 문건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김의수 교수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1번 어뢰에서 직접 시편을 채취해 부식 정도를 분석했으나 부식 정도를 가지고는 1번 어뢰가 해수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1번 어뢰 공개 당시 언론이 제기했던 의혹, 특히 ‘50일 만에 진행된 부식이라고 보기에는 부식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과학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재질이나 이런 쪽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것처럼, 부식이라는 것은 주로 해수의 염기도라든지 온도, 용존 산소량에 따라 크게는 몇 십 배 몇 백 배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1번 어뢰가 바닷속에서 어떻게 있었는지 그 상태를 모르고, 포지션을 모르고 또한 여러 재질이라든지 이런 부분들도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부식 정도를 가지고 시간을 추정한다는 게 어렵지 않느냐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분석을 해서 밝히는 게 맞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잔류 시간을 추정하기 힘들다, 이렇게 결론을 (합조단에) 보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담당자도 모르게 뒤바뀐 합조단 보고서의 결론

그런데 합조단 보고서에는 이 같은 김 교수의 분석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론이 실려있다. 합조단 보고서 199쪽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199쪽

“부식 상태로는 시간을 추정할 수 없다”라는 김의수 교수의 결론 대신 “전문가들이 육안으로 봤을 때 천안함 선체와 어뢰의 부식 정도가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결론이 실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의수 교수는 합조단 보고서를 처음 봤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제 이름이 거론이 되면서 선체와 어뢰의 부식 정도가 유사하다, 그런 부분이 확인이 되었다 그런 것을 보고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당시에 이 보고서를 제가 받았을 때 내용을 봤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햐면 제가 선체 부식을 전혀 분석한 적도 없고, 또 육안상 두 개가 비슷하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것은 공학이나 과학을 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폐이기 때문에…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더구나 김의수 교수는 합조단에 “육안으로 봤을 때도 양쪽의 부식 정도가 같은지에 대해 추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육안 검사를 통해서도 부식 정도가 유사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셨어요? 조사 당시에?)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왜냐하면 분석 장비를 통해서도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걸 육안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더더욱 제가 보기에 말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고...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김의수 교수의 의견은 왜 합조단 보고서에 왜곡된 채 실린 것일까? 뉴스타파는 합조단 보고서의 최종검수를 맡았던 윤덕용 전 천안함 사건 민군합동조사단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윤덕용 전 단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김의수 교수의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 전 단장은 김의수 교수가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과수의 어뢰 부식 검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윤덕용 단장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과수 문서에는 국방부 합조단이 2010년 5월 24일 국과수에 1번 어뢰의 시편 두 조각을 채취해 보내면서 ‘부식층 분석을 통해 해수 잔류 시간을 추정해 달라’고 의뢰했다고 돼 있다. 국과수는 1번 어뢰에서 채취한 시편을 전자현미경과 에너지 분광기 등을 통해 면밀히 살펴봤지만, 부식층 분석을 통해서는 잔류시간을 추정하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7월 12일 이같은 결론을 합조단에 회신했다. 김의수 교수의 증언이 국과수의 공식 문서로 확인된 것이다. 결국 적어도 1번 어뢰의 부식 문제에 관한 한 국방부의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는 심각한 왜곡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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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는 합조단의 의뢰를 받아 1번 어뢰의 해수 잔류 시간을 검사했지만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합조단은 그러나 국과수의 결론과 다른 내용을 보고서에 실었다.


1번 어뢰 재질 분석 시도… “북한제 결론 내릴 수 없었다”

김의수 교수는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1번 어뢰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통해 이 어뢰가 북한제가 맞는지를 판정하는 역할도 맡았다. 1번 어뢰의 재질과 국방부가 확보하고 있던 다른 북한 어뢰의 재질을 비교 분석하면 생산 기술의 수준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북한 어뢰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 담당자였던 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런 분석은 불가능했다. 국방부가 갖고 있던 북한 어뢰는 딱 하나였는데, 그 어뢰는 1번 어뢰와 달리 양산품이 아니라 시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 기술 수준을 비교하기 위한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교수는, 1번 어뢰의 생산기술은 우리나라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후진적이었던 점은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어뢰 자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산용 어뢰가 아니고 시험용 어뢰라고 그래서 그냥 한번 만들어보는 그런 용도의 어뢰이기 때문에… 재질도 완전히 틀리기 때문에… 같은 재질을 놓고 같이 비교를 해야지 생산기술적인 부분이나 조직적인 부분의 비교를 할 수가 있는데 재질 자체가 아예 틀리니까…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김 교수는 윤덕용 단장이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1번 어뢰를 북한에서 만들었다”고 확언하는 것을 듣고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이 분석한 부분만 가지고는 1번 어뢰를 북한 어뢰라고 단정하기에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조단의 정보분과 등에서 나름대로 분석을 했을 것이라 믿었고, 따라서 1번 어뢰가 북한제라는 결론을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 김의수 교수의 생각대로 합조단 정보분과는 1번 어뢰에 대해 철저히 검증했을까?


입수 경위도 모르는 ‘국정원 제공 설계도’가 유일한 근거

뉴스타파의 지난 2015년 취재 결과 당시 1번 어뢰의 설계도를 입수해 합조단에 전해준 것은 국정원이었다. 윤종성 전 천안함 사건 합조단 공동조사단장은 지난 2015년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 정보본부가 갖고 있던 정보로는 1번 어뢰가 북한 것인지 식별이 되지 않아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하자, 국정원이 곧바로 1번 어뢰의 설계도를 포함한 10여 건의 북한 어뢰 정보를 건네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정원이 제공한 1번 어뢰의 설계도가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입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정리해보면, 기술적 분석만으로는 1번 어뢰가 북한제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원이 어뢰의 설계도면을 제공했고, 그 설계도면의 입수 경위에 대해서는 당시 합조단의 최고위 관계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분석을 안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합조단에서 제시하는 것은 1번, 그리고 설계도라는 부분인데 만약에 그쪽 부분에서 판단하는데 있어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뢰가 북한제라는 부분은, 증거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조금 더 검토를 해봐야 되지 않느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뉴스타파는 국정원에 ‘이제는 천안함 침몰 8년이 지나 보안상 위험이 사라졌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어뢰 설계도의 입수 경위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정보 사안에 대해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틀에 박힌 대답만 반복했다.


누락된 천안함 증거, 8mm 캠코더 테이프의 내용은?

합조단은 또 천안함 함수에서 발견한 주요 수거물도 누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안함에서 캠코더를 발견해 국과수에서 영상까지 복원했지만 합조단 보고서 수거물 목록에는 빠졌다. 영상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국방부는 영상의 소재파악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천안함 조사 당시 국과수가 조사한 증거물 감정서 13개를 입수했다. 이 중 문서번호 ‘2010-M-12706’라고 돼있는 감정서에는 합조단이 국과수에 캠코더 안에 있던 영상물을 복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돼 있다. 캠코더는 천안함 함수에서 수거한 것이다. 국과수는 이 테이프 안에 있는 영상을 복원해 합조단에 보냈다.

캠코더와 같은 영상 장비는 군사 보안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으로, 훈련이나 군사 작전상황과 관계된 내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증거물이다.

하지만 합조단 보고서 어느 곳에서도 함수에서 발견된 캠코더와 국과수에서 복구한 영상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전기레인지와 군용 망원경, 심지어 돌덩이까지 보고서 수거물 목록에 수록한 점으로 볼 때 함수에서 발견해 복원까지 한 영상을 누락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천안함 사건 1년 뒤인 2011년 3월 정부 차원에서 발간한 천안함 사건 백서에서도 역시 캠코더와 영상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당시 실무자에게 확인해보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유의미한 자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국과수의 감정서에는 캠코더 안에 있던 8미리 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복원했고, 오후10시27분부터 오후 11시 22분까지의 시간 자막이 찍혀 있는 영상과 2005년 9월에 촬영된 영상이 있으며, 그 이후 다른 시간대 영상이 존재한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감정서만으로는 영상이 촬영된 날짜를 특정할 수 없다. 테이프에 기록된 시간도 설정값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시간과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과수가 합조단에 보낸 감정서에는 천안함에서 발견한 캠코더 영상을 복원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합조단은 이 내용을 보고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감정서에는 국과수가 복구한 영상 중 한 컷의 사진이 첨부돼 있는데 무엇을 촬영한 것인지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이 캠코더 안에 있던 영상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내용인지 알 수 없다. 국과수는 2010년 4월 28일에 복구한 영상을 담은 CD를 합조단에 보냈는데, 국방부는 현재 조사본부 실무자가 CD의 소재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생존 장병, “북한 소행 확신하지만 재조사에는 동의”

왜곡되거나 부실한 합조단의 조사는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이 때문에 지난 8년 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을 낳았고 사회 갈등은 커졌다. 최근 북한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내가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농담조로 자신을 소개하고, 천안함 생존 장병이 천안함 관련 KBS 추적 60분 내용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하면서 천안함 사건 논란이 재점화됐다.

취재진은 천안함 생존 장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천안함 사건 당시 상병으로 침몰 순간 함 내 전투상황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김윤일 씨다. 생존 장병 김 씨는 ‘천안함 재조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천안함 생존 장병 김윤일 씨는 북한 소행임은 확신하지만 ‘천안함 재조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윤일 씨와 생존장병들은 천안함을 침몰 시킨 것이 100%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고 지금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근거는 합조단의 조사 결과다. 취재진은 김윤일 씨에게 합조단의 조사 결과가 부실하고 왜곡됐다는 위 취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내용을 들은 김 씨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이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지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합리적인 의혹이 있다면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취재 : 심인보, 신동윤
촬영 : 최형석
편집 : 정지성, 박서영, 윤석민
CG : 정동우

출처: https://newstapa.org/43695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493&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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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법원장제, 이대로 둘 건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9>]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1>] "대통령 개헌안, 일단 합격"...다음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2>] 국무총리 제도의 딜레마

 

나는 지금까지 8편의 연재 글을 통해서 한국의 대통령이 어째서 제왕적 대통령인지, 한국의 국회의원이 어째서 제왕적 국회의원인지를 설명했다. 대통령 개헌안이 어떤 면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탈제왕화에 실패했으며 왜 그렇게 됐는지 따져봤다. 동시에 국가권력을 틀어쥔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의원을 몰아낼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이번 개헌과정에서 본격적 공론화를 기대했다. 이제 제왕적 대법원장을 다룰 차례다. 두 편으로 나눠서 알아본다. 한국의 대법원장은 어떤 면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이며 어떻게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돼 왔는지를 밝히는 게 첫 번째 글이다. 두 번째 글에서는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혁파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며 그 관점에서 대통령 개헌안의 사법부 관련 사항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왕성의 근원은 법관인사권 독점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우리나라사법부는 제왕적 대법원장아래 3000명의 난쟁이 법관들이 땅 밑에서 일하는 1만3000 명 법원공무원과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대법원장의 제국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런 설명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장이 최고법원의 재판장으로서 법의 제국의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행정수반으로서 사법행정과 법관인사의 총책임자를 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법원장의 제왕적 지위는 그가 법원행정처의 보좌를 받아 법관인사권과 법원공무원인사권, 사법행정권을 독점 행사하는 사법부의 행정수반이라는 지위에서 온다.  

대법원장의 제왕성을 쉽게 이해하려면 국회의장과 비교해보면 된다. 따지고 보면 국회의장도 국회를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본회의 주재권한을 가진 국회'의장'일 뿐 아니라 사무처, 입법조사처, 도서관 등을 거느린 입법부의 행정수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을 제왕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법관 3100명 전체에 대해 전보, 승진, 징계 등 전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법원장과 달리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아무런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00명을 마음대로 상임위에 배치, 교체하고 마음대로 상임위원장을 시켜주며 마음대로 국회부의장을 시켜줄 권한을 가진 제왕적 국회의장을 떠올리면 된다. 현실세계에는 이런 권한을 가진 제왕적 국회의장은 없는 반면 전국의 법관을 상대로 이런 권한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법원장은 있다. 이게 우리 사법부의 근본문제이자 이번 개헌기회에 반드시 해소해야 할 근본과제 중 하나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완성된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중요한 기둥이자 제왕적 대통령의 하위파트너다. 제왕적 대통령은 제왕적 대법원장이 협력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모든 제왕은 적법절차를 무시하게 마련이라 그의 권력남용은 정치스캔들의 옷을 입고 언젠가 사법심사의 도마 위에 오른다. 이때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용감한 법관이 있으면 제왕적 대통령도 그때그때 필요한 법의 응징을 받는다. 실은 이렇게 되면 이미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다. 법원의 살아있는 견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뽑은 제왕적 대법원장이 법관의 돌출행동을 적절히 제어해줘야만 정권이 휘청거릴 만큼 결정적으로 불리한 '악성'판결을 예방할 수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승진, 전보 등 인사권을 무기로 용기 있는 소신법관의 출현과 도전을 억누른다. 아무리 정의로운 법관이라도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한직을 전전하다 옷 벗고 나갈 위험이 작지 않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끝까지 남아서 법원장을 하고 대법관을 하는 출세법관들이 대부분 교양 있고 매너 좋은 권위순종형 인간들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의중이 제왕적 대통령 편이라는 게 읽힐 때 이들은 기꺼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뜻을 따른다. 제왕적 대통령은 제왕적 대법원장을 통해서만 사법부 전체를 자신의 비옥한 영토로 삼을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반드시 제왕적 대법원장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사법부 독립이 법관 독립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고 국민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의 간섭아래 놓인다면 무슨 수로 제대로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사법부 독립의 실체는 사법(재판)의 독립이고 재판의 독립은 그 주체인 법관의 독립에 다름 아니다. 만약 사법부 소속 법관들이 여전히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며 재판에 임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서 사법부 독립은 법관독립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법관독립의 암적 존재다. 제왕적 대법원장시스템에서는 어떤 법관이라도 대법원장의 요직발탁과 승진, 대법관제청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레 세상의 이목과 대법원의 관심을 끌만한 재판에서 대법원장의 의중을 살피게 된다. 한마디로 제왕적 대법원장은 존재 그 자체로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의식하며 중요사건을 재판하게 만든다. 법관독립과 상극인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간섭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했어도 사법부를 대법원장의 제국으로 만든 대가는 혹독하다.  

강한 대법원장이 아니라 강한 법관이 강한 사법부를 만든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있으면 강한 사법부가 되지 못한다. 우선 기개 있고 소신 있는 법관을 길러내지 못하고 소속법원장의 인사고과와 대법원장의 정기인사를 의식하며 움츠려든 용졸한 법관들을 양산한다. 강한 사법부는 개별법관이 강한 사법부지 대법원장이 강한 사법부가 아니다.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법관독립뿐 아니라 강한 사법부를 가로막는 잘못된 시스템이다. 

강한 사법부도 법관독립이 강한 사법부를 의미한다.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를 법의 칼로 응징하며 약자의 최후 보루로 기능하는 강한 사법부는 법관이 권력의 유혹과 압력은 물론 여론과 통념에서도 독립하여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할 때만 가능하다. 물론 외부간섭과 윗분 눈치에서 해방된 법관도 적절한 통제를 받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제왕적 법관으로 타락할 수 있다. 법관독립의 강화가 다른 한편에선 법관의 권력남용 제어장치 강화로 귀결되어야 할 이유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헌법이 만들어냈다 

사법권을 행사할 사법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지는 헌법의 중요한 관심사이자 규율대상이다. 우리나라헌법의 현저한 특징 중 하나는 사법부(헌재 포함)에 대한 규정이 매우 간략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헌법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 독점을 당연시한 데서 비롯된다. 우리 헌법은 지금까지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의 귀속주체를 명시한 적이 없다. 우리 헌법상 대법원장의 권한으로 규정된 건 대법관제청권이 전부다. 나는 헌법학자들이 이 조항에서 법관인사권의 대법원장 귀속을 읽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인선권을 주었다면 그 아래 법관들에 대해서도 인사권을 주었다고 해석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사법행정권, 특히, 법관인사권의 대법원장 집중과 독점이 가져올 법관독립에 대한 악영향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선진국헌법의 예에 따라 대법원장 대신 제3기구(이를테면 최고사법평의회)를 만들어서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맡겼을 것이다. 설령 대법원장에게 법관인사권을 맡겼더라도 권한 행사의 절차요건을 규정하는 등 효과적인 견제장치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사회의 헌법학의 한계가 여론주도층의 헌법인식의 한계가 되고 그것이 다시 헌법규율의 실패로 전환된 전형적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국회와 청와대는 왜 제왕적 대법원장을 방치했나? 

헌법에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견제할 장치가 전혀 없지만 법원조직법에는 대법원장의 인사권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여럿 있는 게 사실이다. 대법관회의, 법관인사위원회, 대법관제청절차, 법관징계위원회, 법원별 판사회의 등이 그것이다. 대체로 사법파동을 거칠 때마다 신설되고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과 실무에서 모두 최대한 물 타기가 진행돼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 수준으로 운영된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는 각종 통제기구와 절차가 형식적으로 굴러가도록 온 힘을 쏟는 반면 법원행정처가 위원으로 위촉하는 내외부의 인사들이나 국회의원, 법학자들은 법의 취지나 운영실태에 관심을 두거나 개선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법원조직법의 절차통제가 유명무실해진 이유다. 

우리법원과 사회는 이미 헌법과 법률, 관행과 의식으로 수십 년 동안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수용한 상태였다. 이따금 법관들의 사법파동으로 실밥이 뜯어져나갔지만 옷의 원형이 바뀌지 않은, 몸에 잘 맞는 옷으로 여겼다. 

 

매년 어김없이 몇백 명씩의 법관이 전근 발령을 받아 보따리를 쌌지만 이런 전보인사 관행을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시비 거는 사람은 법원 내외에 전무했다. 

이론적으로는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서 제왕적 대법원장을 실효성 있게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이 헌법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법원조직법으로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법원조직법을 손볼 때도 대법원장의심복, 법원행정처의 엘리트판사들이 국회와 협의를 진행한다. 이들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축소나 통제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제왕적 대법원장을 지원하게 마련이다. 권력실세나 여당의원, 정권적 이해관계가 걸린 재판에서 필요한 정보를 가지려면 법원행정처의 엘리트판사들과 일정한 소통 고리를 잡고 있는 게 유용하다. 국회의원들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일로도 정신이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법부까지 건드려서 법원행정처 판사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다. 국회법사위원들은 주로 검찰출신이라 제왕적 대법원장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제왕과 측근에게 접근권이 있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제왕적 대법원장제가 편하고 좋다.  

청와대가 사법발전위나 사법개혁위를 만들어서 사법개혁을 추진했지만 그때도 제왕적 대법원장제, 즉,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 독점은 개혁의 도마 위에 올라오지 않았다. 사법발전이든 사법개혁이든 그 추진주체는 법원과 법관이라 누구라도 그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법원과 법관의 대표기구는 당연히 제왕적 대법원장의 최대수혜자들이 모인 법원행정처다. 실은 청와대건 국회건 사법부독립의 명분 때문에 사법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여기다 바깥사람들은 잘 알기도 어려운 게 사법부조직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제가 오랫동안 무풍지대에서 순항해온 이유 중 하나다. 

법학자와 법관들은 뭐 했나? 

제왕적 대법원장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한 헌법학자는 몇 되지 않는다. 헌법학계에서는 사법행정제도에 대한 비교헌법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입법부, 행정부와 더불어 3부 국가권력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인신구속과 강제집행 등 가장 직접적으로 강제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인데도 사법부의 구성과 조직, 통제에 대한 헌법전문가가 거의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입만 열면 사법부를 인권과 정의를 지켜내는 최후보루라고 치켜세우지만 막상 정의롭고 강한 사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사연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법학자들도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확대재생산을 방임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직접당사자인 법관들도 오랫동안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눈뜨지 못하고 대안을 알지 못했다. 일제시대 때부터 내려온 제왕적 사법행정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사법부가 비교적 예측가능성이 높은 능력주의 인사시스템을 발전시켰다고 자부하며 흔쾌히 수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 물론 이렇게 된 건 법관들이 공부한 표준적 헌법교과서들이 비교제도연구를 통해 우리 사법부의 제왕적 성격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보다 민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우리법연구회, 깨어있는 법관들의 첫 조직된 힘 

물론 제왕적시스템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느끼는 일군의 젊은 판사들이 간간이 사법파동을 일으켰다. 특히 1988년 사법파동의 여파로 우리법연구회가 1989년에 결성된 점은 특기할만하다. 우리법연구회판사들은 그 후 사법개혁의 내부추동력으로 자리를 지켰다. 우리법연구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외국의 사법행정제도와 법관인사제도를 틈틈이 공부하며 우리나라의 제왕적 대법원장제도가 사법독립의 진정한 적이라는 사실에 눈떴다. 일부 판사들이 새로운 지식의 세례를 받았으나 그것만으로 변화를 꿈꾸기에는 세력이 작았다. 구조는 강했고 변화는 더뎠다.  

몇 해 전부터 법원국제인권법연구회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더욱 본격적으로 법관인사와 사법행정에 대한 비교연구조사활동에 박차를 가해서 유엔이 펴낸 사법제도와 인권보장 책자를 번역, 발간했다. 여세를 몰아 법관독립과 인세제도에 대한 법관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연대로스쿨과 공동으로 법관인사제도와 법관독립에 관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새로운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법원행정처는 연구회 주도 세력과 심포지엄주제를 모두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대한 체제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심포지엄의 연기와 축소를 종용했다. 그 와중에서 결국 판사 블랙리스트 스캔들이 터져서 전국법관대표자회의까지 만들어낸다. 

판사 블랙리스트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전대미문의 드라마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을 겪으면서 곪을 대로 곪아 터져 드디어 세상에 그 흉측한 몰골을 드러냈다.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의 부당한 유혹과 압력을 이겨내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정의로운 판사가 있었다. 전국의 판사들이 공분을 느껴서 함께 들고일어났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도 남은 임기를 채우기 위해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소집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인사제도 개혁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적 규모의 법관 집단저항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높은 담을 무너뜨리고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안티테제를 내걸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출신이 대법원장을 맡는 일대 이변까지 연출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시대를 끝장내고 법관독립시대를 여는 첫 대법원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의 개막도 실은 촛불시민혁명 덕분에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1개월 단축된 바람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래는 박 대통령이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을 2017년 9월 중으로 인선할 터였다. 또한 더 이상 특권과 반칙, 갑질은 안 된다고 촛불시민들이 그토록 외쳐댔어도 법원행정처 고위법관들이 촛불혁명의 한가운데서도(2017년 1월과 2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습관적으로 회유와 협박 등 갑질을 일삼은 덕분이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그만큼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중독된 채, 그만큼 민심과 동떨어진 채, 살았다. 

요컨대, 제왕적 대법원장제 혁파의 시대적 소임을 받고 출범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촛불시민혁명과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깥세상은 너무 모르고 내부법관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오랫동안 유지돼온 제왕적 대법원장제라는 희대의 괴물을 우리사회가 다잡을 수 있는 첫 번째 역사적 기회는 이렇게 왔다. 결국 직접당사자인 법관들이 불의한 상황을 뚫고 동료들과 조직하고 연대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능성이 열렸다. 누구도 직접피해당사자들이 가만있는데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것도 피해당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느 사회에서나 최고의 엘리트로 인정받는 판사들 아닌가. 고도의 실력과 신분보장을 겸비한 판사 사회마저 자기분야의 고질적 구조를 자율적으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사회의 어떤 집단에게 자율해결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왕적 대법원장제, 개혁 무풍 지대에서 개헌 핵심 과제로!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지난 수십 년간 휘몰아친 5년 주기 청와대발 개혁의 소용돌이에서도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았다. 가끔 사법파동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성향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정권유착이나 인사전횡을 규탄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일부 드러난 현상과 싸웠을 뿐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본질, 제왕적 인사권과 그것이 강고한 구조를 바꿀 수 없었다. 법관운동의 고유한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헌사항이라는 속성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헌법사항은 아무 때나 바꾸지 못한다. 지난 30년 간 단 한 차례의 개헌기회도 열리지 않았다. 개헌론이 일어도 제왕적 대통령제에만 집중되었을 뿐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어서 그 전모가 어지간히 드러날 날도 멀지 않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이 어떻게 남용됐는지 더 생생한 증거가 나오면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의 귀속주체를 대법원장에서 제3기관으로 옮기자는 다양한 개헌제안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마침 30년만의 개헌정국 아닌가. 지난 수십 년간 학문적, 실천적 문제의식의 사각지대 속에서 순항을 거듭해온 제왕적 대법원장제가 드디어 역사의 박물관으로 들어갈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외부 개혁여건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제왕적 대법원장과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제안할 수 있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제도화돼 활동 중이다. 이미 일반법관들이 개혁열차에 올라탔다는 게 중요하다. 

 

둘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제왕제 극복과 법관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시대가 열렸다.  

 

이것만으로도 더 좋을 수 없는데 하나가 더 있다. 본격적인 개헌정국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대법원장에게 있는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대법관제청권 포함)의 귀속주체를 개헌으로 바꿀 수 있는 30년만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사법개혁의지가 높은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도 아주 좋은 조건의 하나다. 제왕적 대법원장제 혁파를 위한 내외부의 환경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지금은 모든 법관의 굴신을 강요하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사법부를 모든 법관의 독립 위에 굳건히 서있는 국민의 사법부로 전환할 절호의 시기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이듯이 결국 깨어있는 법관들의 조직된 힘이 사법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였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과 창립 멤버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대법원장의 1인 왕국으로 타락한 제왕적 사법부를 혁파할 역사적 기회가 위대한 촛불시민혁명과 깨어있는 법관들 덕분에 찾아왔다. 때를 놓치지 말고 이번 촛불개헌 때 제왕적 대법원장 시대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끝장내고 사법부를 국민을 위한, 소신 법관에 의한, 법의 제국으로 개편해야 한다. 

 

mendrami@pressian.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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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리아 정밀타격 공습 감행... 영국, 프랑스도 동참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 큰 폭발음 들려... 시리아 국영TV, “방공 시스템으로 미사일 13기 격추” 주장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8-04-14 13:02:38
수정 2018-04-14 13: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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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이 14일 새벽(시리아 시간) 시리아에 공격을 감행한 가운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상공에서 대공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는 장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이 14일 새벽(시리아 시간) 시리아에 공격을 감행한 가운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상공에서 대공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는 장면ⓒ뉴시스/AP
 

미국이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시리아 지역에 보복공격을 감행했다. 이번 공습에는 영국과 프랑스도 동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밤(미국 시간) 백악관에서 연설을 통해 “조금 전 미군에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화학무기 역량과 관련된 목표물에 정밀타격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 군대와의 합동 작전이 지금 진행 중”이라며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인간의 행동이 아닌 괴물의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각각 성명을 통해 시리아 정부를 응징하기 위해 이번 합동 공습 작전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추가 발표를 통해 이번 연합 공습은 시리아 화학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3개 목표물을 대상으로 정밀 타격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에서 최소 6번의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고 연기가 치솟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공격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홈스 지역에 집중됐으며, 시리아의 화학무기 관련 시설과 육군 부대 등이 주요 목표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국영 TV는 시리아 정부군이 대공 무기를 활용해 서방의 공습에 대응 중이며, 방공시스템을 통해 미사일 13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외신 보도에서 미사일 격추 장면 등이 보도되기는 했으나, 아직 정확한 피해 상황을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과 서방의 연합 공습 작전은 일단 마무리됐으나, 미군 당국자는 “오늘 밤 본 것으로 미국의 대응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이번 공습과 관련해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 배후를 확실히 자신한다”면서 “이번 공습에 작년보다 2배 강화된 무기가 사용됐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 “명백한 국제법 위반” 맹비난

시리아 정부는 이번 서방의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국영 매체를 통해 강력하게 비난했다.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은 14일(시리아 시간) 새벽 감행된 서방의 공습에 관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국제사회의 의지를 훼손한 것”이라며 “이번 공격은 실패할 운명”이라고 규정했다.

러시아 정부도 이번 서방의 연합 공격에 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미국 주재 러시아대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사전에 짜인 시나리오가 실행되고 우리는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면서 “모든 책임은 공격을 감행한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은 용납할 수 없는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며 “가장 큰 규모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다른 나라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알렉산드르 셰린도 이날 “이번 공격은 모든 국제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도 미국으로부터 공격 행동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우리(러시아)의 노력을 무산시키고, 러시아를 무릎 꿇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는(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범죄자다. 이 말도 모자란다. 그를 현대사의 두 번째 히틀러로 불러도 좋다”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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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 다시 맞은 봄... "기억하고 행동하겠다"

[현장] 추모 부스·플래시몹·행사...태극기 부대 "노란 마귀" 고함

18.04.14 22:12l최종 업데이트 18.04.14 22:12l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가 열렸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에서 어린이들이 무대에 올라 합창하고 있다.ⓒ 권우성
세월호가 가라 앉고 어느덧 4번째 봄이 왔다.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4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에 모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두 번째, 검찰이 세월호 7시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처음 맞는 봄이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부스들이 줄을 이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노란 리본을 얼굴에 그려 넣거나 팔찌를 만들었다. '4·16 기억 전시' 부스엔 단원고 피해 학생들과 교사들을 기리는 시가 전시되기도 했다.   

'기억의 나무'엔 청소년들이 "기억할 거야. 속상한 그 마음을", "언니오빠들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라고 적은 종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부스를 둘러보던 강아무개(20대)씨는 "벌써 4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박근혜가 탄핵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세월호에 관한 책임은 여전히 지고 있지 않아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오후 2시 30분. 광화문 광장 무대에선 대학생 100여명이 모였다. 대학생준비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진실의 봄을 만드는 우리들의 약속'을 진행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김태구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다시 4월 16일이 다가온다. 그런데도 아직 세월호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당일 대통령이 잠자고 머리 손질할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구조방기, 침몰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은혜진 한신대 총학생회장도 "우리는 4.16 세대로 불린다. 대학생들이 앞장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억하고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가 열렸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모여 노란리본을 만드는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권우성
오후 4시. 시민 4160명이 네 팀으로 나눠 잔디밭에 서서 거대 리본을 만드는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행사를 진행한 관계자는 "다시 한 번 기억하자는 의미로 리본만들기를 기획했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 와 주셨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적힌 풍선을 흔들며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불렀다. 

"진상규명 방해하는 황전원은 사퇴하라"

오후 7시엔 본 행사가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박진 활동가는 "벚꽃 아래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그 소녀들이 없지만 4월은 왔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던 소년이 없지만 4월은 왔다"며 "4년은 짧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 길지만도 않았다. 오늘은 다짐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영선·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서울시장 후보들도 행사에 참석했다. 박 시장은 "벌써 4번째 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엔 깊은 슬픔의 강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며 "그 슬픔을 위로하고 또 치유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진실이 온전히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가 열렸다.
1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우성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가 열렸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권우성
 세월호참사 4주기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가 열렸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만5천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권우성
유가족들은 합동 영결식이 진상규명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항간엔 영결식을 진행하면 모든 게 다 끝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합동 영결식이야말로 비로소 세월호 참사 규명을 새로이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밝혀진 세월호 7시간 검찰 발표 내용이 탄핵 이전에 나왔다면, 관련 내용이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담길 수 있었다"며 "2기 특조위가 지금 다시 세월호 참사규명을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 한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방해하는 황전원은 즉각 사퇴하라"며 자유한국당이 세월호·가습기살균제 2기 특별조사위원회상임위원으로 추천한 황전원 위원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오는 16일 오후엔 안산정부합동분향소에서 '4·16 세월호참사 정부 합동영결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박근혜 지지자들(경찰 추산 1000명)은 '박근혜 석방'을 촉구하며 광장을 에워쌌다. 이들은 '문재인은 퇴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이중 몇몇은 세월호를 추모하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노란 마귀", "빨갱이들", "세월호는 북한에서 침몰시켰다" 등 폭언을 퍼부어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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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다 아는 성추행 무혐의…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등록 :2018-04-14 05:00수정 :2018-04-14 09:45

 

 

[토요판] 커버스토리 
‘미투’ 고발한 리듬체조 코치 이경희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듬체조 선수였다. 한국 리듬체조가 겨우 첫걸음을 옮길 즈음인 1990년대 초 그는 각종 세계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지난해 은퇴한 손연재 선수가 거둔 성적보다 나았다. 당시 그의 조국인 북한에서는 최연소 ‘공훈체육인’으로 대접받았다. 선수 은퇴 뒤에도 그의 삶은 꽃길이었다. 친정도 잘나갔지만 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 집안이었던 시가는 더 잘살았다.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조차 모르고 살았다. 북한의 스포츠 스타 이경희(47·대한민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씨가 2007년 탈북해 서울에 온 것은 아이를 자유로운 세계에서 키우고 싶어서였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서울에서도 한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순회코치, 단체팀 코치 등을 맡았다. 남은 꿈은 “내 제자들을 이끌고 국제대회에서 북한 선수들과 경쟁해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요즈음 눈물로 지새울 때가 많다. 자신에 대한 체육회 고위 간부(전직)의 성추행 혐의가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탈북자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서러워서다. 이경희 코치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의 인터뷰 도중 미투 관련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듬체조 선수였다. 한국 리듬체조가 겨우 첫걸음을 옮길 즈음인 1990년대 초 그는 각종 세계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지난해 은퇴한 손연재 선수가 거둔 성적보다 나았다. 당시 그의 조국인 북한에서는 최연소 ‘공훈체육인’으로 대접받았다. 선수 은퇴 뒤에도 그의 삶은 꽃길이었다. 친정도 잘나갔지만 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 집안이었던 시가는 더 잘살았다.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조차 모르고 살았다. 북한의 스포츠 스타 이경희(47·대한민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씨가 2007년 탈북해 서울에 온 것은 아이를 자유로운 세계에서 키우고 싶어서였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서울에서도 한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순회코치, 단체팀 코치 등을 맡았다. 남은 꿈은 “내 제자들을 이끌고 국제대회에서 북한 선수들과 경쟁해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요즈음 눈물로 지새울 때가 많다. 자신에 대한 체육회 고위 간부(전직)의 성추행 혐의가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탈북자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서러워서다. 이경희 코치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의 인터뷰 도중 미투 관련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지난달 초 <제이티비시>(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체육계 미투를 다뤘습니다. 리듬체조의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이경희·47)가 대한체조협회 전직 고위 간부에게 오랫동안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송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피해자가 세계적인 리듬체조 선수 출신의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점에 눈길이 갔습니다. 남북을 오가면서 얻은 생채기가 눈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이경희 코치와의 인터뷰는 지난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의 한 카페에서 했습니다.

 

 

북한에서 리듬체조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공훈체육인’이었다고 하지만, 국제 스포츠계에서 이경희 코치(47·이하 호칭 생략)의 위상이 어땠는지는 감이 잘 안 왔다. 199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4대륙 리듬체조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3위(볼 1위), 1991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3관왕(개인종합, 공, 곤봉 각 1위)이었다는 경력을 봐도 막연했다. 지난해 2월 은퇴한 우리 시대의 스포츠 영웅 중 한명인 손연재(23)의 화려한 경력과 비교하고 나서야 이경희에 대한 느낌이 왔다. 세계적인 선수였던 손연재는 2015년 유니버시아드대회(광주)에서 3관왕(개인종합, 공, 후프 각 1위)을 차지했으며, 2016년 핀란드 에스포 월드컵대회에서는 개인종합 2위(볼 1위)를 기록했다. 손연재보다 20여년 앞서 국제 리듬체조계의 요정이었던 셈이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이름이 쟁쟁한 인물을 미투 운동의 고발자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참담했다. 미투와 관련된 내용보다 그의 인생 얘기를 먼저 듣고 싶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2007년 남한으로 온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코치)는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의 한 카페에서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내가 아무리 잘났으면 뭐 하나. 태어난 게 이북이라서 이렇게 힘든데”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호소했다. 최근 공개적으로 미투 피해를 고발했던 이 코치가 인터뷰 도중 설움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7년 남한으로 온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코치)는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의 한 카페에서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내가 아무리 잘났으면 뭐 하나. 태어난 게 이북이라서 이렇게 힘든데”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호소했다. 최근 공개적으로 미투 피해를 고발했던 이 코치가 인터뷰 도중 설움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평양에서 리듬체조를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11살 때인 1982년부터 시작했다. 사실 다른 아이들보다 입문이 한참 늦었다. 그때까지 나는 리듬체조가 뭔지도 몰랐다. 엄마가 주변에서 얘기를 듣고는 학교 리듬체조반에 넣었다. 북한에는 예술체조라고 부른 리듬체조가 당시에 이미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엄마가 나를 리듬체조반에 데려간 것은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였다.(웃음) 우리 집은 딸만 6명이었다. 아들 하나를 원하다가 딸부잣집이 됐다. 자매들은 모두 두살 터울인데 집에서 장난질치고 싸우면서 시끄럽게 굴었다. 평양은 당시 초등학교 상급반은 오전반, 하급반은 오후반으로 2부제 수업을 했는데 오전반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온 언니들이 ‘엄마, 경희가 방해해서 숙제를 못 하겠어’라고 일러바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6명 딸부잣집의 고집 센 셋째

 

―처음부터 소질이 뛰어났나?

 

“내가 어릴 때부터 몸매도 가늘고 팔다리가 유난히 길었다. 게다가 몸이 다른 애들보다 훨씬 유연했다. 선생님이 리듬체조에 맞는 체형이라고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나는 출발이 늦다 보니까 초등학교(북한은 4년제) 졸업 때까지는 시합에는 출전하지도 못하고 다른 선수들 심부름만 했다. 그래도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게 좋고, 체조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열심히 운동했다.”

 

―아버지는 체조를 안 시키려고 했다고?

 

“아버지는 딸 여섯 중에 중간인 나만은 무조건 대학에 보내겠다고 늘 말했다. 그래서 점심 먹으러 집에 들어오면 옆에 앉혀놓고 <노동신문> 사설을 읽히고는 모르는 단어를 가르쳤다. 때때로 구두시험도 봤다. 대학에 갈 공부를 일찍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딸이 운동에 시간을 많이 뺏기니까 아버지는 리듬체조 선생님을 찾아가서 ‘얘는 리듬체조에 재주가 없으니 그만두자. 시합도 못 나가지 않느냐’고 몇번을 말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이 ‘아니다. 잘하니까 조금만 더 해보자’면서 아버지를 달랬다.”

 

이경희의 아버지(2004년 작고)는 대부분의 평양시민처럼 점심을 집에 와서 먹었다. 그는 당의 주요 간부를 재교육하는 ‘김일성고급당학교’의 교원으로 일했다. 빨치산 투쟁 중에 숨진 부모(이경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혁명열사릉에 안치) 덕분에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는 등 혁명가 후손의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밟았다. 1990년대에 남한에 사촌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황해남도 해주공산대학으로 쫓겨가 일하기도 했다. 이경희의 어머니(2016년 작고)도 평양의 중앙당 공급소, 육류가공공장의 창고지기를 맡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코치들의 쟁탈전 대상이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는데.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자, 리듬체조 선생님들이 이경희를 서로 자기한테 달라고 부모님한테 졸랐다.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코치들은 제자를 잘 키워야 국제대회에도 나가는 등 자기도 성공한다. 부모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골머리를 앓다가 초등학교 시절의 첫번째 선생님(김득숙)한테 나를 맡겼다. 그 선생님은 결혼을 일찍 하는 바람에 국제대회 메달은 없었지만 나를 더 잘 지도하기 위해 야간대학까지 다니는 등 정말 열심히 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갔을 때는 나 하나만 가르쳤고, 나도 은퇴할 때까지 그 선생님에게만 지도를 받았다.”

 

 

북한의 리듬체조 선수 출신
유연성 좋아 일찍부터 두각
1991년 세계U대회 3관왕
최연소 ‘공훈체육인’ 영예

 

‘평양의 강남’ 동네에서 거주
친정은 혁명엘리트 집안
시가는 노동당 고위간부
“아이 자유롭게 키우려” 탈북

 

 

―운동을 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힘든 것은 말로 다 못 한다. 늦게 시작해서 다른 애들을 따라가려다 보니 더 힘들었다. 게다가 우리 선생님은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다. 실수하면 공으로, 리본으로, 곤봉으로 얼굴과 팔 등 닥치는 대로 때렸다.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칭찬도 잘 안 해줬다. 잘한다고 하면 내가 자만할까봐서 그랬다고 나중에 말하시더라. 어쨌든 선생님은 기술이나 열정은 뛰어난데 방법이 잘못됐다. 이다음에 나는 절대로 애들을 때려서 가르치지 않겠다고 뼈에 사무치도록 맹세했을 정도였다.”

 

―그런 시절을 어떻게 견뎠나?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힘들더라도 참았다. 내가 생각해도 착한 아이였다. 물론 선생님은 내가 또박또박 대꾸를 잘한다면서 ‘저년 보통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으면 항상 되묻는 등 아버지에게 <노동신문>에 나오는 단어를 배울 때처럼 운동할 때도 따지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따지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선생님이 야간대학에 다니며 과학적인 설명을 해주면서 선생님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그 전에는 공중에 던진 볼이나 곤봉을 못 잡으면 ‘바보처럼 그것도 못 하느냐’고 야단치면서 반복 훈련만 시켰는데 공중에서 볼이 낙하할 때의 중력 원리 등을 설명해줬다. 그 뒤에는 연습도 재미있어지고 실력도 확 뛰었다.”

 

북한의 리듬체조 스타였던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가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을 걷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북한의 리듬체조 스타였던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가 지난 9일 서울 올림픽공원을 걷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39호실 대성은행 총재 지낸 시아버지

 

열다섯살부터 국제대회에 참석한 이경희는 곧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떠올랐다. 유럽계가 판치던 리듬체조 분야에서 동양인인 그가 19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것은 놀라움 자체였다. “국제대회에서 경기를 위해 입장하면 유럽 선수들이 다 쫓아 나와서 쳐다볼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북한에서는 최연소 ‘공화국 공훈체육인’이 됐으며,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청년영예상’까지 받았다. 1992년 북한의 유도 영웅 김창수가 남한으로 넘어간 뒤 북한 당국은 자국 선수의 모든 스포츠대회 참가를 3년간 동결했다. 이에 1994년 아시안게임 출전을 준비하던 이경희는 1993년 1월 은퇴했다.

 

이경희는 몇년 뒤(1996년) 결혼했다. 친정처럼 시가도 ‘평양의 강남’으로 불리는 보통강구역에 아파트가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잘살았고, 가문의 힘도 더 셌다. 시아버지는 군이 운영하는 외화벌이 총괄기구인 노동당 39호실의 대성은행 총재 등을 지냈다. 시어머니도 보통강구역 종합식당의 책임자로 일했다. 평양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남편도 북한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노동당 38호실에서 근무했다. 무역일꾼으로 중국에 나간 남편을 따라 이경희는 한동안 중국 창춘과 상하이에서 거주했다.

 

―북에서 생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 같다.

 

“굶주림을 피해 넘어온 대부분의 탈북자들한테는 정말 미안한 얘기이지만, 나는 어려서나 결혼해서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운동할 때는 부상품으로 받은 초콜릿과 꿀이 늘 넘쳤다. ‘고난의 행군’(1990년대 중·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북한이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시기로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짐)도 남한에 와서야 알았다. 결혼생활도 편했다. 시가 어른들은 배려심이 많은 훌륭한 분들이었는데 특히 셋째 며느리인 나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노동신문> 기자인 첫째 며느리보다 나를 더 좋아하면서 ‘너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아도 된다’고까지 아껴줬다.”

 

―북한의 최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탈북을 결심했나?

 

“남편이 2005년에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평소 가슴 부근이 답답하다고 했지만, 우리 둘 다 젊어서 그랬는지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건강검진조차 한번 안 받았다. 남편이 숨진 뒤에도 북한에서의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 때문에 남한으로 왔다.”

 

―무슨 뜻인가?

 

“내가 어려서부터 세상 구경을 다 하지 않았나. 그렇게 세계를 다 돌다 보니까 우리가 얽매여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양공항에 내리면 밖에서 본 것과 행동한 것을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언니와 동생들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나에게 늘 입단속을 시켰다. 그래서 자매들은 어느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는 신문 기사가 나온 뒤에야 내가 어디에 갔다는 것을 알곤 했다. 그런 게 너무 싫었다. 또 시가에서는 밤에 불을 켜도 커튼을 쳐서 불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고 살았다.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음식물 쓰레기도 밤에 멀리 가져다 버려야 했다. 음식을 해 먹으면 냄새 때문에 윗집·아랫집과는 나눠 먹지만, 굶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우리만 쓰레기가 나올 정도로 끼니를 챙겨 먹는 게 미안해서였다. 잘 먹고 잘살아도 마음이 안 편했다. 그런 틀에 매여 사는 데 한이 맺혀서인지 하나뿐인 아이만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다. 세상이 넓다고 말로 하는 것보다 네가 한번 눈 뜨고 몸으로 체험해보라고 하고 싶었다.”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코치)는 북한의 스포츠 스타였지만, 지금은 “내 제자를 데리고 국제대회에 나가 북한팀을 이기는 게 꿈”일 정도로 한국에서의 후진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제이티비시>(JTBC)에 출연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체조협회 한 고위 간부로부터 성추행 등을 당해왔다”고 폭로했다. 이 코치가 지난 10일 서울 세종고교 체육관에서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 고예진(광명중3)양의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코치)는 북한의 스포츠 스타였지만, 지금은 “내 제자를 데리고 국제대회에 나가 북한팀을 이기는 게 꿈”일 정도로 한국에서의 후진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제이티비시>(JTBC)에 출연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체조협회 한 고위 간부로부터 성추행 등을 당해왔다”고 폭로했다. 이 코치가 지난 10일 서울 세종고교 체육관에서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 고예진(광명중3)양의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이가 탈북자란 사실 아무도 몰라

 

이경희가 천신만고 끝에 2007년 3월 한국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10살이었다. 속상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올해 21살로 대학생인 아이는 비교적 알아서 잘 컸다. 자신의 출신이 알려질까봐 엄마를 학교에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다. 북한이탈주민에게 주어지는 급식이나 교복비 지원 등도 모두 거절했다. 그래서 고교 졸업 때까지 학교에서는 아무도 그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경희는 잘 커준 아이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늘 가슴이 아프다. “태릉에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할 때는 주중에는 거기서 머물러야 해서 주말에만 잠깐 집에 들를 수 있었다. 애가 혼자 지내다 보니 집안은 늘 난장판이었다. 그런데다 학교 결석도 잦았다. 시험 때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잠들면 아침에 시간 맞춰 깨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에 여러 개의 자명종이 여기저기에서 우는 것을 들을 때는 정말 마음이 짠했다.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입고 싶어했던 브랜드 옷도 한번 사주지 못했다. 옷은 주로 성당에서 얻어 입혔다. 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 계신데 여기 와서 저렇게 고생하는구나 싶어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경희는 남한에서 비교적 빠르고 순조롭게 정착하는 듯 보였다. 2008년 1월부터 체조협회 순회코치로 리듬체조 대표팀을 지도했다. 2011년 3월부터는 국가대표 리듬체조 단체팀 코치가 됐다. 그의 꿈은 “내 제자들을 데리고 국제대회에 나가서 북한 선수들과 시합해 이기는 것”이다. “남이냐 북이냐가 아니라 내가 키운 선수의 성공은 곧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겉과 달리 속은 달랐다. 그의 계좌에 들어온 월급은 2008년에 100만원, 2009년에 150만원이었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단체팀 코치가 된 뒤에도 212만원에 불과했다. 다른 코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아들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쓰지 않고 먹지 않는 생활을 해야 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참석한 북한의 리듬체조 대표인 이경희 선수(현재는 한국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가 북한의 유도팀 지도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희씨 제공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참석한 북한의 리듬체조 대표인 이경희 선수(현재는 한국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가 북한의 유도팀 지도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희씨 제공
돈이 부족한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것은 체조계에서 만난 한 사람이었다. 이경희가 남한 사회를 알아가기 시작할 즈음인 2009년 3월 어느날이었다. 리듬체조 강습회의 중 휴식시간에 맨 뒤쪽 자리에 앉아 있던 체조협회 고위 간부 아무개가 이경희를 불렀다. 그는 이경희에게 명함을 건네준 뒤 자기는 ‘체조계에서 엄청 강한 사람으로 소문났다’고 자랑했다. 체조협회의 실권자인 그는 처음에는 이경희에게 잘해줬다. 훈련장에 와서 ‘한국 선수와 북한 선수들의 차이가 뭐냐’고 묻기도 하고, 이따금 전화해서 “식사했느냐”, “밥 사주려고 전화했다”, “외롭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경희는 북한에서 온 자신을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여겼다.

 

―언제부터 성적인 괴롭힘을 당했나?

 

“2011년 초부터 리듬체조 국가대표 단체팀 코치가 됐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면 국제대회 참가가 필수적이다. 북한에서도 일년에 몇차례씩 나간다. 그런데 내가 맡은 뒤에는 국제대회에 전혀 안 내보내줬다. 그래서 권한이 있는 그 간부를 찾아가서 선수들을 국제대회에 내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되지도 않을 선수를 위해 왜 고생하느냐. 쉬엄쉬엄하라’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 내가 놀라서 피하면 ‘한국에 와서 아직 몰라서 그런다. 여기는 북한과 달라 자유가 많은 나라라서 좋다’고 하면서 추근댔다.”

 

이경희가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2017년 5월10일)에 따르면, 2011년 여름 이경희 집 앞으로 찾아온 그는 “대표팀 코치는 선수들 가르치는 것보다 내 말 잘 들어야 오래 할 수 있다”면서 차 안에서 강제 추행했다. 이후에도 이경희가 2012년 2월5일 급여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2012년 8월과 2013년 1월 그가 근무하던 한 학교의 체육관 사무실로 불러서 갔을 때 등 여러 차례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경희가 반항하면서 거부하자, “독한 여자다. 체조계에서 내가 30년 동안 맘먹은 대로 못 한 게 없다”고 협박했다. 적은 월급과 대표선수 한명의 이탈 사건 등으로 2014년 3월30일 사표를 내기 위해 이경희가 그의 집 근처에 찾아갔을 때도 그는 차 안에서 성폭력을 행사했다.

 

“그 간부의 전화가 오는 것도 무섭고 얼굴 보는 자체가 공포”였으나 이경희는 “치욕스러운 마음의 상처를 여자라서 참아야 했고, 북한에서 왔기에 참아야 했으며,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꾹꾹 참아야 했다”. 대신 “혼자 긍정적 마인드로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면서 살았다”.(2014년 4월,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탄원서)

 

 

“남의 밥그릇 뺏지 마라”는 말에 고소 안해

 

뒤늦게 대한체육회에 탄원서를 내게 된 계기는 뭔가?

 

“나는 참아야 되는 줄 알고 참았는데 그는 자신의 성적인 요구를 내가 안 들어준다는 이유로 교묘하고 유치한 방법으로 나를 코치에서 자르려고 했다. 나한테 손해가 있더라도 공개해서 다른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이라도 막자는 생각이 들었다.”

 

―탄원서 낸 뒤에는 어떻게 진행됐나?

 

“대한체육회가 감사에 나섰다. 나를 불러 얘기를 들은 뒤에 그를 조사했다. 공식적인 조사가 시작된 지 며칠 뒤 그는 체조협회에 사표를 제출(2014년 5월22일)했다. 그가 사표를 내자 감사 등 징계 절차도 끝나더라. 그런데 그는 감사를 받을 즈음부터 내가 자신의 연인이었다느니 내가 다른 이와 동거를 했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내가 대표팀 코치에서 잘릴 것 같으니까 자기를 음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너무 화가 나서 체조협회장한테 탄원서(2014년 6월9일)를 다시 냈다.”

 

이경희는 2차 탄원서에서 “저는 ○○○과 사랑과 결혼에 대해 한마디 말조차 섞은 적이 없으며 동거했다는 것은 범죄”라며 그의 거짓말로 인해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있으며 저의 계속적인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경희는 진상 규명을 해서 그를 중징계할 것을 체조협회에 요구했다. 하지만 체조협회도 그는 이제 민간인이라며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억압 벗었지만 또다른 고난
남쪽 코치 절반 불과한 급여에
“고위간부에게 성추행당해”
고소 이어 공개 ‘미투’ 나서

 

민사재판에선 “성추행한 듯”
검찰은 두차례 “무혐의” 기각
법원의 재정신청 결과 기다려
“‘정의 승리’는 옛말 되나” 눈물

 

 

―그때 경찰이나 검찰에 성폭력 혐의로 고소를 왜 안 했나?

 

“내가 그 사람한테 성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알았다. 그에게 당할 때마다 친한 사람들에게 내가 상담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법정에서도 증언해줬던 그들은 탄원서를 두번 낼 때 나한테 경찰에 고소하라고 권유했다. 경찰에서도 나의 피해 사실을 알고는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러나 체육계의 고위 인사 등 다른 지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의 밥그릇을 뺏으면 제일 큰 원한을 산다. 그가 사표를 냈으니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떠냐’고 말렸다. 나도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다시 상기해야 하는 게 너무 창피하고 싫어서 고소를 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다 잊히고 괜찮아지겠지,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그와 연인인 적이 없으니 나만 떳떳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고위 간부는 사표 낼 즈음부터 다시 체조협회의 고위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변에 큰소리쳤다.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그는 2016년 여름, 2년 전 떠날 때보다 더 높은 체조협회 고위직에 선임됐다. 그러나 상위 기관인 대한체육회는 그가 2년 전에 성추행 혐의로 감사받은 사실을 들어 인준을 거부했다. 그러자 그는 대한체육회의 인준 거부가 위법·부당하다면서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재판 끝에 1심 법원은 지난 2월 선고에서 대한체육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경희의 일관된 진술과 거기에 부합하는 여러 증거 등을 들어 “원고는 이경희의 주장과 같이 이경희를 여러 차례 성추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성추행을 인정했다.

 

 

북한의 리듬체조 국가대표 시절 이경희(현 한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씨가 1991년 후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북한의 스포츠 명장면을 담은 달력에 실렸다. 이경희씨 제공
북한의 리듬체조 국가대표 시절 이경희(현 한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씨가 1991년 후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북한의 스포츠 명장면을 담은 달력에 실렸다. 이경희씨 제공
전직 간부는 여전히 “우린 연인” 주장

 

―재판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던데.

 

“지난해 4월 증인으로 법정에 나갔다가 기절하다시피 했다. 그쪽 변호사들이 나를 방탕하고 꽃뱀 같은 여자라고 몰고 가는 것도 분통 터졌지만, 그가 증거라면서 법정에 낸 서류는 나를 미치게 했다. 몇몇 코치들이 ‘나와 그가 연인이었다’는 식으로 얘기한 진술서가 있었고, 그와 내가 펜션에서 자고 갔다는 펜션 사장의 확인서도 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다 고위 간부의 주문에 의해 만든 것이라는 점이 나중에 드러났지만, 그때는 억장이 무너져서 법정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고위 간부는 지금도 이경희의 말을 전면 부인하면서 연인설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2일 저녁 통화가 된 그는 “체육회 감사와 경찰 및 검찰 수사 때 대답한 것처럼 이경희씨와는 2011년 이전부터 성관계를 가졌고, 그와 결혼할 생각까지 혼자 했을 정도로 가까웠던 연인 관계였다. 그러니 강제로 추행하거나 성관계를 시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 이후 나야말로 정신과 약을 먹는 등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고소한 것은 재판에서의 증언 직후인가?

 

“그렇다. 그때서야 어떤 헛소문이 떠돌든지 간에 나만 떳떳하면 괜찮을 거라는 내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처박아뒀던 서류들을 찾아서 안고 무작정 경찰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고는 고소장을 작성(2017년 5월10일)해서 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6개월 이상 꼼꼼하게 수사했다. 경찰은 이경희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점, 재판 진술서 등이 그 간부의 요청에 따라 준비된 문구대로 작성됐다는 점 등을 들어 검찰에 구속영장 신청을 했다. 하지만 서울지검 검사는 영장신청을 기각하고 두차례에 걸쳐 담당 경찰관에게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라’고 지휘했다. 경찰은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겼고, 검찰은 공소시효를 들어 공소권이 없다거나 어떤 사례(2014년 3월3일 피해)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어 무혐의”라고 결론내렸다. 이에 이경희는 서울고등검찰청에 곧바로 항고했으나, 고검도 지난 2월2일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검찰의 두차례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낸 것으로 안다. 법적으로는 마지막 처분을 앞두고 있는데.

 

“곧 나올 법원의 재정신청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법원도 증거 없다면서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 두렵기조차 하다. 변호사나 전문가들은 이 정도 진술이나 정황이면 성범죄에서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하는데도 자꾸 검찰이 무혐의를 내리니까 무전유죄 유전무죄에 걸린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북한에서 온 힘없는 사람이라고 내 말에는 귀를 안 기울이는 것 같다. 그래서 요새 나는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내가 아무리 잘났으면 뭐 하나. 태어난 게 이북이라서 이렇게 힘든데.”

 

―지난달에는 공개적으로 미투 고발(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3월1일 방송)도 했다. 얼굴 내놓고 싸우겠다는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다 포기하고 했다. 설령 모든 걸 잃더라도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에는 서울시교육청에도 탄원서를 냈다. 성추행 사실이 인정돼 대한체조협회 부회장 취임이 승인이 안 된 사람인데 아직도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교육청에서는 법적인 판단이 있어야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답하더라. 체육회는 사표만 내면 끝이고, 검찰은 무혐의 처분하고, 교육청은 성추행한 사람을 교단에 그대로 두는 게 이 나라의 정의냐. 정말이지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2017년 6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리듬체조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가 대회를 알리는 표지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희씨 제공
2017년 6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리듬체조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가 대회를 알리는 표지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희씨 제공

 

“착한 끝이 정말 있는지 보고파”

 

―방송에 나오고 달라진 것은 없나?

 

“달라진 것도 바뀐 것도 없다. 잘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괜히 창피하게 됐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라도 동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하지는 않나?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내가 비굴하게 살지 않고 늘 당당하게 살아온 것을 안다. 또 말은 안 해도 내가 그 간부한테 당한 것을 안다. 그가 나한테만 그랬겠나. 그의 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더럽고 힘드니까 떠났지만, 나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그래서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착한 끝은 있다니까 진짜 그런가 보려고 한다. 나는 그가 감옥 가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죄가 인정돼서 단돈 만원, 아니 천원의 벌금형이라도 받는 걸 원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정의가 있는 것 아니냐. 체조계가 다 아는 성추행에 대해 무혐의라는 게 말이 되나.”

 

인터뷰 중간쯤 북한에서 고생하던 얘기를 할 즈음부터 이경희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남한에 내려와서 차별받던 얘기를 하면서부터 뺨을 구르기 시작한 눈물은 3시간 동안의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그는 “정의가 이긴다는 건 옛말인 거 같다. 그런 것을 믿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한 채 참으면서 세상을 살아왔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말은 꼭 써달라”는 부탁을 남기고는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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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서 빙하 밑 소금호수 발견, 외계 생명 찾기 단서

조홍섭 2018. 04. 13
조회수 1001 추천수 0
 
얼음 밑 740m, 바닷물 5배 짠 물, 천지 크기
12만년 고립돼 독특한 미생물 진화했을 듯
 
p1.jpg» 얼음 밑 740m 지점에서 소금물 호수가 발견된 캐나다 북극의 만년설인 데본 아이스 캡 지역 전경. 안자 루티샤우저 제공.
 
빙하가 수백∼수천m 두께로 덮인 차고 캄캄한 얼음 밑에도 호수가 있다. 남극에선 빙상 밑에서 보스토크호를 비롯해 400여개의 얼음 밑 호수가 발견됐고(▶남극 얼음 밑 4천m 호수서 다양한 생물 확인) 그린란드에서도 몇 개가 추가됐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담수호인 데다 주변의 지하수나 얼음 녹은 물줄기와 연결돼 있다. 캐나다 북극에서 새로 두 개의 얼음 밑 호수가 발견됐는데, 이들은 매우 짠 염수호인 데다 주변과 완벽하게 격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계 행성의 환경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p2.jpg» 얼음밑 호수가 발견된 북극 지역 위치도. 안자 루티샤우저 외 (2018)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미국과 캐나다 연구자들은 캐나다 북극의 만년설 지대인 데본 아이스 캡의 기반암을 조사하기 위해 항공기로 이 지역을 비행하면서 레이더로 원격탐사를 했다. 레이더 자료를 분석하던 연구자들은 뜻밖의 현상을 발견했다.
 
미 항공우주국(나사)과 텍사스 대 지구물리학연구소의 원격탐사 자료에서 문제의 호수를 발견한 안자 루티샤우저 캐나다 앨버타대 박사과정생은 “애초 얼음 밑 호수를 찾으려던 게 아니었어요. 만년설인 데본 아이스 캡은 표면부터 땅속까지 얼어붙어 있으니 물이 액체 상태로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지요”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p3.jpg» 데본 만년설 지역의 원격탐사를 위해 그린란드 공항을 출발하는 항공기. 날개 밑 붉은 장치가 레이더 안테나이다. 톰 리히터 제공.
 
전파 음향 측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얼음 밑 각각 740m와 560m 지점에 면적 8.3㎢와 5㎢의 액체 호수가 길쭉한 막대 모양으로 놓여있음이 분명해졌다. 호수 크기는 면적이 9㎢인 백두산 천지에 견줄 만하다. 이곳은 만년설 밑에 해발 1700m의 산맥과 깊이 100∼200m의 계곡이 있는 지형인데, 호수는 기반암의 계곡 두 곳에 떨어져 자리 잡았다.
 
연구자들은 호수가 위치한 얼음 밑의 온도가 영하 10도여서, 물이 얼지 않기 위해서는 바닷물의 4∼5배에 이르는 매우 짠 물일 것으로 추정했다. 소금기는 기반암이 과거 증발로 형성된 퇴적층이어서 암반에서 녹아 나왔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 호수의 기원을 “바닥 얼음이 주변 암석의 소금기에 녹으면서 호수가 형성됐거나, 간빙기에 갇힌 고대 수체에 주변 암석에서 소금기가 녹아들어 형성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4.jpg» A. 호수(T1, T2)가 위치한 기반암의 등고선 B. 호수 주변의 온도 분포 C. 기반암과 얼음층 사이에 위치한 호수의 단면도 D. 소금기를 품은 기반암(노란색) 분포. 안자 루티샤우저 외 (2018)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진한 소금물이 담긴 호수는 지하수 등 다른 물줄기와 전혀 연결돼 있지 않은 채 12만년 동안 고립돼 있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런 환경은 얼음에 덮인 밑에 액체가 존재해 외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유로파와 화성 등 태양계 일부 행성과 매우 비슷하다. 루티샤우저는 “이 호수는 목성의 얼음 덮인 달인 유로파와 아주 유사하다”며 “유로파의 얼음 표면 밑과 아마도 얼음층 중간에는 소금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호수에 미생물이 산다면 12만년 동안 고립돼 진화했을 것”이라며 “호수에서 시료를 채취하면 미생물이 사는지, 어떻게 진화했고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고 있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보도자료에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이 지역의 만년설 밑에 염분이 있는 기반암이 분포하기 때문에 소금호수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 Rutishauser, D. D. Blankenship, M. Sharp, M. L. Skidmore, J. S. Greenbaum, C. Grima, D. M. Schroeder, J. A. Dowdeswell, D. A. Young, Discovery of a hypersaline subglacial lake complex beneath Devon Ice Cap, Canadian Arctic. Sci. Adv. 4, eaar4353 (2018). http://advances.sciencemag.org/content/4/4/eaar435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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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14 09:57
  • 수정일
    2018/04/14 09: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사설] 삼성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삼성의 노조와해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 지사와 관계자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용인 흥덕 삼성전자서비스 경원지사에서 검찰 관계자가 압수품 상자를 옮기고 있다.[사진 : 뉴시스]

재벌적폐의 상징 삼성을 개혁할 때가 됐다. 삼성의 불법 비리가 폭로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요즘처럼 그 불법성, 폭력성, 사기성이 한꺼번에 전방위적으로 폭로된 경우는 처음이다. 쌓이고 쌓인 적폐가 고름처럼 여기저기 마구 흘러나오는 모양새다.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에서부터 이명박의 미국 내 다스 소송비 대납, 6000건에 달하는 노조파괴 문건, 그리고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발행과 유통사건 등은 삼성이 국내 1위 기업이란 미명 뒤에 얼마나 못되고 가증스러운 짓을 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단적인 사례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답게 사회대개혁이란 관점에서 삼성 문제를 다뤄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증권 등 개별 기업 차원의 비리 해결이 아니라 그간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적폐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몇몇 임직원에 대한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들이 쳐놓은 정경유착 고리와 언론, 관료, 법조계 등과의 유착그물망을 개혁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팽배한 전근대적, 반인권적 노사관계를 평등하고 자주적인 노사관계로 바꾸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재벌적폐 청산은 한국 사회의 근간을 바꾸는 사회대개혁의 핵심이다.

이번에 확보된 6000건에 이르는 삼성의 노조와해 문건이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관련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이것은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노조파괴를 지휘했음을 말한다. 검찰이 압수 사실을 공개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태도다. 그러나 지난 2월에 압수한 문건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검찰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의심케 한다. 검찰은 지난 2013년 폭로된 ‘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따른 이건희 회장 부당노동행위 고발 사건을 결국 무혐의 처리해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그러나 이 문건은 대법원에서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판결났다. 검찰이 진정 삼성의 불법적인 노조파괴공작을 엄단할 의지가 있다면 문건 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국민적 지지에 의거해 적극 수사해야 한다. 그것이 삼성과 검찰의 오랜 유착의혹을 불식시키고, 삼성의 무노조 황제경영을 끝내는 길이다.

사실 지금까지 드러난 노조와해문건만 봐도 삼성이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노조파괴를 진행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른바 단계별 대응지침을 담은 ‘마스터플랜’과 실행조직인 ‘티에프(TF)’에 의해 ‘표적감사’, ‘단체교섭 지연’, ‘반대시위 기획’ 등이 진행되고, 노조원과 그 가족에 대한 불법적인 도감청, 미행, 협박과 회유, 그리고 노조원 시신 탈취 등 온갖 불법과 폭력이 검찰과 노동부, 상당수 언론의 감싸기로 덮어져 왔던 것이다. 이런 조치가 비단 삼성전자서비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배척하는 위헌적인 것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하고, “(에스그룹 노사전략)문건의 존재 여부가 대법원에서 판단됐으므로 위법·탈법 행위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제 정부와 검찰은 삼성그룹 전반의 전근대적 황제경영을 가능케 한 반헌법적, 반인권적 무노조 전략을 근절하는 방향에서 이 사안을 다뤄야 한다. 아울러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문제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돼있는 만큼 민주노총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총력 대응해 차제에 반드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폐기시켜야 한다.

더불어 이번 삼성증권의 허위유가증권 발행과 유통은 한국 금융질서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란 점에서 충격적이다. 삼성증권이 발행한 총주식수는 8930만주였고, 최고 발행한도는 1억2000만주인데 28억주가 배당으로 나간 것이다. 그리고 22명의 직원들이 이를 바로 팔거나 팔려고 시도해 501만주나 유통됐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흔히 이 사건을 (비차입)공매도 문제와 연관시켜 청와대에 공매도 중단청원이 쏟아지지만 사실 이 사건은 공매도보다 더 심각한 범죄행위이자 질서문란행위이다. 공매도는 차입이든 비차입이든 이미 발행된 주식에 의거하지만 삼성증권의 이번 사건은 없는 주식을 즉석에서 발행해 유통시키고 또 이것이 실제 거래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금융질서 전반을 뒤흔든 대형 사기사건이라 할만하다. 또한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상당수 언론은 이를 판매한 직원(애널리스트)들의 도덕불감증에 초점을 맞추지만 바로 드러날 범죄행위를 단순한 돈 욕심에 실행할 바보는 드물 것이다. 이 사건은 어쩌면 선물거래 등 외부와 연계돼 통상적으로 자행된 작전일지도 모른다. 실제 사건 당일(6일) 삼성증권 주식 선물거래가 전날에 비해 40배가량 폭증한 42만1875계약, 1609억5300만원어치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이런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허위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전산시스템이다. 삼성증권 같은 한국의 대표적 증권사가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상당수 다른 증권사는 이미 현금배당과 주식거래가 분리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유독 삼성증권을 비롯한 몇몇 증권사만이 이런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실 세간엔 그동안 자사 발행주식수보다 많은 주식들이 쏟아져 나와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를 공매도 문제로 치부했지만, 어쩌면 작전설이 사실일수도 있다는 의심을 키우기에 충분한 시스템을 삼성 등이 운영해 온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일반투자자들의 심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증권은 마땅히 금융질서 교란과 불법 사기혐의로 민형사상 책임과 영업정지 이상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렇듯 삼성은 이재용 뇌물, 이학수 뇌물 사건에서 보듯 정경유착의 표준을 만들고, 그도 모자라 언론, 검찰, 법조, 정당 내에 자기들의 그물망을 만들어 가히 ‘삼성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오게 했다. 이를 배경으로 80여 년간 노동자를 탄압하고 전근대적인 무노조 경영을 강압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경제 전반에서 삼성증권 사건 외에도 수많은 특혜와 초법적 이권 추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한국경제를 대표한다는 1위 기업의 민낯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파동이 그의 강경한 재벌개혁 입장 때문이고 배후엔 삼성이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제 삼성을 비롯한 재벌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벌을 보호해 이른바 ‘낙수효과’를 보자는 주장이 허위임은 현실의 극단화된 양극화 사회가 증명하고 있다. 재벌적폐의 청산은 비단 정부여당의 몫만은 아니다. 그로 인한 피해를 보는 국민 모두의 과제다. 특히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삼성 개혁이 곧 노동자 전체의 삶과 권리 실현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맨앞에 나서야 할 것이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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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와 헤어질 수 있을까?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월호 참사 4주기의 다짐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온다. 벚꽃만 피어도 가슴 한편이 시큰거리고, 거짓말과 발뺌으로 일관하던 인물들이 떠오르면 울화가 치미는 것도 그대로인데, 올해는 정부가 주관하는 합동영결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합동영결식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의식이기도 하겠지만, 세월호 참사에 연루된 우리 모두를 위한 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영원히 헤어진다는 게 가능할까마는, 이별도 숙제라면 4주기의 다짐은 무엇이어야 할까? 

4주기를 맞는 지금  

3주기에 우리는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온' 모습을 확인했다.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거대한 전환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어진 촛불대선에서 시민들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는데, 그는 당선이 확실시된 순간 광화문으로 나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정부든 국회든 사법부든 생명과 안전을 강조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헌법에 생명에 대한 권리와 안전하게 살 권리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폭넓은 합의가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죽음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30일 100일이 된 제천 화재 참사를 기억해보자. 당시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던 사람은 모두 불이 아니라 연기 때문에 죽었다. "유리창만이라도 깨줬더라면"이라는 탄식은 "퇴선 명령만 있었더라면"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깨닫게 했다. 유가족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함께 아파하던 시기가 지나면, 진상규명 과정에서는 배제되기 십상이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끝났다 하고 주위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냐고 물어온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세월호 참사는 각자의 삶을 짓는 터전이라 믿었던 지반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데도 내가 버려진 채 죽어갈 수 있다니….' 세월호 참사는 사회의 붕괴를 경험하게 했던 만큼 사회의 재건을 숙제로 남겼다. 지금까지로 본다면 한국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재건의 기치로 올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목숨을 구할 줄 아는 사회, 누구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줄 아는 사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생명과 안전을 지킬 방법을 찾고 익혀야 한다.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추궁해야 

 

방법을 찾는 데에 '인권'이 길잡이가 된다. 생명과 안전이 권리임을 확인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생명에 대한 권리가 명시되진 않았지만 누구도 생명이 기본적 인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권리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가가 모를 뿐이다. 이제 방법을 알아야 할 때라면 국가의 의무에 대해서도 확장된 접근이 필요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익숙한 방식은 형사법적 접근을 따른다.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죄'로 구성되고 '벌'에 처해진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123정장을 비롯하여 해경 지휘부 누구도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거나 퇴선 안내 및 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경123정장을 제외하고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았고 누구도 잘못을 빌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결정 역시 같은 한계에 멈춰 있다. 정해진 것을 어기지 않으면 된다는, 소극적 의무만 판단하는 방식이다.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들은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모색하는 데에 참조가 된다. 몰타 국영 조선소 수리공들이 오래 동안 석면에 노출된 사건에 관해 재판소는, "최소한 1970년대 초부터는 석면에 노출된 환경에서 근무하는 조선소 수리공들의 위험에 대하여 알았거나 알았어야 했"다고 지적하며 그 이후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위험에 처한 사실이 알려진 후에야 국가에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알려졌어야 할 때 알지 못한 것부터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해경 지휘부의 '배 안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책임져야 할 수많은 잘못 중의 하나다. 

 

2005년 터키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 호흡곤란을 겪는 신생아가 공립병원들이 서로 치료를 떠넘기던 중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병원은 그 부모에게 치료 장치가 없다, 치료센터에 자리가 없다는 등의 변명을 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국가의 의무 위반이 아기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병원 상호간의 협력 부족, 신생아 센터 내에 장비의 불충분(인큐베이터 고장), 응급의료검사의 부재"라는 상황이 문제였고, 결국 아기는 "적절한 응급치료에 대한 접근을 박탈당한 점에서 병원 서비스 장애의 희생자"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적절하고 유효한 긴급구조에 대한 접근을 박탈당한 사건이다. 국가가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해경 지휘부를 비롯한 재난 컨트롤타워의 재수사는 필수적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위와 같은 실체적 의무뿐만 아니라 절차적 의무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린다. 절차적 의무란 사건 발생 후 그 원인과 관련 기관의 책임을 묻는 조사가 제대로-즉각적으로/유의미하게/효율적으로 등-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생명과 안전이 권리라면 불충분한 조사, 서두른 종결, 지연된 배상 등도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밝힐 줄 아는 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줄도 알 것이므로, 절차적 의무는 본질적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의 은폐, 진상규명 방해, 특조위 해산 시도 등을 끝까지 밝혀내는 것은 진상규명과 무관한 정치보복이 아니라 진상규명 그 자체의 요소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 ⓒ프레시안(최형락)


피해자는 권리의 주체  

국가의 의무를 더욱 적극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환기되어야 할 것이 피해자의 권리다. 1기 특조위의 강제해산 경험을 딛고 다시 세워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첫 회의에서 장완익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들은 민원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루는 참사의 당사자이자, 특별조사위원회의 또 다른 구성원입니다." 진실과 정의에 피해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권의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사회는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대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유가족'이 사회에 등장할 때 사람들은 동정을 보낸다. 유가족이 호소하는 피해를 함께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동정은 혐오의 이면이기 쉽다는 말은 여기에도 들어맞는다. 사회는 사건의 배경화면 정도에 유가족의 위치를 지정해준다. 너무 빨리 웃어도 안 되고 너무 오래 울어도 안 된다. 알려주는 만큼만 궁금해하고 쥐어주는 만큼만 감사히 받아야 한다.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여러 사건의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다. 그/녀들은 전혀 다른 사건을 겪었지만 마치 같은 일을 겪은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한결같다는 증거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기 이전에 권리를 보유한 주체"로서 유가족을 만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유가족은 정해준 자리에 있어야 할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유가족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 희생자를 대신해 권리의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참사를 겪은 피해생존자다. 그리고 어떤 설명에도 앞서, 한 사람이다.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를 권리의 보유자가 아니라 민원인으로 취급하게 된다.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생명과 안전이 과연 권리로 자리 잡았는지, 국가는 의무를 깨달았는지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피해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권 현실에 대한 고발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녀들이 있는 곳이 진실과 정의의 자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녀들이 모든 걸 알기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을 애도하고 그리워하기 위해 진실과 정의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권을 약속하자 

 

재난참사에서 인권에 기초한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 인권 무시나 차별의 관행과 법제도는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재난참사의 위험에 취약하게 만든다. 또한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구조에서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는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인권의 증진을 목표로 삼고 실현할 방법을 찾아내 익히는 만큼, 재난참사는 덜 발생하고 덜 지속된다. 생명과 안전을 강조하며 자칫 사람들을 보호나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도 경계할 수 있다. 

 

4주기 합동영결식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다짐도 희생자들의 영전에 바쳐질 것이다. 그들은 다시금 생명과 안전을 강조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할 텐데, 시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다짐을 해야 할까? 당신들의 약속보다 더 오래 갈 인권의 토대를 세우겠다는 다짐을 해보면 어떨까? 우리 스스로 인권의 주체임을 잊지 않고,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밝히기 위한 진상규명 운동에 다시 신발끈을 묶어야 할 때다.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는 다음 자료를 참고하고 인용했습니다. 김성진, 국가의 국민 안전보장의무: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를 중심으로, 공익세미나 <국가의 국민 안전보장의무:세월호 참사 이후 법적 논쟁>(2017.7.11)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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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실상 북에 항복선언

미국, 사실상 북에 항복선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4/14 [04: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대북선제타격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폼페오 국장의 진단은 사실상 미국의 항복을 의미한다.     © 설명글: 이창기 기자

 

 

✦ 대북선제타격은 재앙적 결과 초래

 

마이크 폼페오의 12일(현지시간) 국무장관 인준청문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13일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미국이 북의 핵무기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길은 외교의 길 즉 대화를 통한 해결뿐이며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는 것이었다. 

 

폼페오 지명자가 '제재가 북미정상회담을 가져왔다', '북의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등의 여러 말들을 했지만 "대북선제타격은 쟁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폼페오는 특히 북핵해법에는 외교적 길밖에 없으며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실패하더라도 외교적 해법을 계속 찾아갈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 실패시 북을 공격할 것이라는 그간 전문가들의 진단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폼페오 지명자는 현재 북의 군사력만 놓고 봐도 북미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에게 대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절대로 전쟁의 방법은 쓸 수 없다고 잘라말한 것이다.

 

폼페오 국장은 미국 중앙정보국장 일은 해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최신 대북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면 현재 북의 군사력만으로도 미국에게 재앙을 안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말과 같다. 이는 사실상 미국은 북과의 대결전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한 것과 같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 같은 날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짐 매티스 국방장관과 함께 출선한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이 '북이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성공적으로 실험했다.'면서, '북은 ICBM에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핵무기도 실험한 바 있다.'고 밝혔다.

 

 

✦ 미군 수뇌부 북의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못 막아

 

북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미국의 관련 군부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북미 사이에 전쟁이 터져서 북의 핵미사일이 미 본토를 타격하면 결국 대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말을 폼페오 지명자와 던포드 합참의장이 미국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다. 

 

▲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앞)과 조셉 던포드 미 합참의장(옆)이 2018년 4월 12일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답을 하고 있다.     ©설명글: 이창기 기자

 

더욱 충격적인 점은 던포드 합참의장이 북의 미사일 공격을 미국이 막을 수 없다고 처음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던포드 합참의장은 "미국은 현재 북의 역량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일단 의원들을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북이 계속해서 미사일 생산을 늘리는 등 역량 개발(미사일 수를 늘리는 일)에 나선다면 미국의 방어 역량을 뛰어 넘어 미국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누군가 진지하게 공격용 역량을 키워가는 것으로부터 자신(미국)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던포드 합참의장: “We can never create the defense against growing serial production missile capabilities by the North Koreans. So North Koreans would be able to hold us at risks, where they go into serial productions with the numbers of missiles that would exceed our ability to defend, and the equation can never be, you can never afford to defend your way out of something that people are serious about building offensive capabilities.”]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958

 

북은 지난해 시험발사에 성공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도 얼마든지 미국의 요격망을 뚫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미사일보다 훨씬 사거리가 짧고 위력이 낮은 화성-12형으로 지난해 두번이나 일본열도를 넘겨 태평양 상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시험과 훈련을 진행하였는데 미국과 일본은 아예 요격미사일을 발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바 있다. 그래서 괌과 화와이 그리고 미국 본토 주민들 사이에 북 미사일 신경과민반응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미군 합참의장이 현재 화성-15형급 위력의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그 수가 많아지면 결국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군수공업분야에서 이런 미사일 생산에 박차를 가하여 만드는 족족 실전배치하라는 과제를 제시하였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태백산 트럭에 실린 미사일들이 연속 동음을 울리며 자기 진지로 배치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북은 발사관 방식의 더 위력적인 고체연료 미사일의 경우 실물만 공개했을 뿐 시험발사까지는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다. 미국이 어떻게 날아가는지 본적도 없는 이런 미사일을 막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사실상 항복

 

결국 폼페오 미 국무장관 지명자는 하루라도 빨리 북이 더 강하고 더 많은 수의 미사일을 개발 생산하기 전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북미직접대화를 통해 한반도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북의 일관된 주장이었고 미국은 경제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 북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이 기본 정책이었다. 대화를 하더라도 북이 핵폐기를 약속하고 사찰단을 받아들이는 등 실제 행동조치를 취해야만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그간 미국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폼페오 지명자와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인 어떤 약속도 없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의용 특사를 통해 전달한 '비핵화 용의가 있다'며 북미정상회담을 원하니 평양으로 오기를 바란다는 말만 듣고도 너무 좋아서 당장 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적극 환영하였다. 

그리고 이 북미정상회담을 장막 뒤에서 총괄 주도해온 폼페오 전 중앙정보국 국장이 국무장관 인준청문회에 나와 '전쟁은 재앙이고 대화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하였다. 의회에서 그에 대한 인준을 결정한다면 미국 의회도 그에 동의한 것으로 된다. 결국 미국이 자신들의 기존 제재와 압박을 포기하고 북의 요구를 전격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미국의 항복이라는 것이다.

 

특히 폼페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북 정권교체 입장을 묻는 의원들 질문에 대해 자신은 북의 체제전복(정권교체)를 주장한 적이 전혀 없다며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북의 정권교체 뜻이 없음을 밝힐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폼페오 지명자는 지난해 7월 20일 미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안보포럼에서 행한 연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둘(핵무기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를 국내외 언론들은 정권교체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본지에서 앞뒤 맥락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결국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진단하고 향후 북미대타결을 향한 미국정부의 노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4683

 

그 분석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폼페오 국장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수재이다.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어째든 북의 체제보장을 인준청문회에서 확실하게 표명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이 한반도 비핵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미국의 근본적인 대북적대시정책 폐기'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말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켜놓고서, 경제적 압박을 가하면서, 여행통제국으로 지정을 해놓고서 대북적대시정책을 폐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북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방향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로 달성하겠다는 것이 청문회에서 폼페오 지명자가 밝힌 핵심내용이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통크고 대담한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물론 그 이행은 단계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전략

 

그런데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지난 3월 22일과 지난 11일 뉴스룸과의 대담에서 자신도 참여한 헬싱키에 회담에서 북 최강일 외무성 미국국장 등 북 외교관들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낙관하면서도 과연 트럼프가 정말 북미정상회담에 나올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들도 미국이 이제 더는 버티지 못하고 협상탁으로 나올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좀더 추가적인 정보를 듣기 위해 일부러 그런 반응을 보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그들의 우려가 지난친 기우였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초청을 그렇게 전향적으로 냉큼 받아들일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이미  그럴 것을 내다보고 올해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설계도를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번 남측예술단을 만나서도 가을에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하자며 한반도 평화과 교류협력에 대한 확신을 표명하였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최강일 미국국장도 미처 알 수 없는 모종의 작전이 전개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이 이제는 대화에 나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뭔가 심각한 압박과 경고를 은근히 미국에게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그에 대한 뭔가를 파악했기 때문에 북중정상회담에서 완전히 미국과의 대북압박공조정책을 폐기하고 사회주의, 반제자주전선에 확고히 서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대미 압박의 하나가 지난 3월 1일 푸틴 대통령이 전격 공개한 6가지 차세대 슈퍼무기일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그 무기 개발에 북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역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고 본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341

 

✦ 향후 전망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실무접촉에서 북이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뭔가 착오가 있는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어쨌든 미국은 최대한 주한미군만은 한반도에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지 여전히 태평양을 자신들의 호수로 삼을 수 있고 남측의 친미세력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면서 북과 교류사업이 활성화된 국면을 이용하여 북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작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한미군은 있느나마나의 군대가 아니라 주둔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 국민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친미, 친일 사대매국세력들이 활개칠 수 있게 한다. 

하기에 북미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되건 민족의 존엄과 자주적 발전을 바라는 진보자주진영의 주한미군철수 투쟁은 더욱 완강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주한미군 주둔명분이 더욱 없어지게 된다. 과거엔 대소전진기지라는 명분이 있었는데 그 명분은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북미관계만 풀리고 한반도 핵문제만 해결된다면 주한미군철수 운동은 더욱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비용을 한국이 부다하라는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김종대 의원 

 

▲ 2018년 4월 13일 열린 방위비 분담 2차협상에서 미국은 미군 주둔비 증액은 물론 항공모함, 핵폭격기,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때 드는 비용도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하였다. 항공모함은 하루 운영비가 1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김종대 의원은 나토 등 어디에서도 미국이 전략자산 운용비용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만 봉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에서 주한미군 바짓가랭이 붙잡고 저렇게 쩔쩔매면서 제발 주둔해달라고  애걸복걸하니 어찌 봉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 설명글: 이창기 기자

 

더군다나 미군이 자기들의 기지를 지키려고 최근 도입한 사드미사일 때문에 성주 주민들이 피눈물 투쟁을 전개하고 있고 재정파탄에 이른 미국정부가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떠넘기면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주한미군주둔비를 요구하고 있어 미군철수에 대한 전국민적인 열망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까지 개선되면 한반도에서 전쟁걱정은 사라질 것이며 전쟁이 나더라도 미군기지만 한반도에 없다면 남측에는 북의 포탄이 떨어질 이유가 없게 된다. 

남측에서 지출하는 천문학적인 미군주둔지원비와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여 주민복지와 청년실업문제 해결에 사용한다면 그 돈들이 여기저기서 소비를 창출, 경제의 선순환을 일으켜 한국경제위기 극복에도 더 없이 좋은 명약이 될 것이고 남북경협까지 추진한다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잘 되고 고용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청년실업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가보안법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도 날로 높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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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천안함 ‘1번 어뢰’가 가짜인 10가지 이유

신상철 대표, 천안함 ‘1번 어뢰’서 또다른 매직펜 글씨 테스트 흔적 찾아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는 11가지 이유를 민플러스에 기고한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진실의 길’ 대표)이 이번엔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이른바 ‘1번 어뢰’가 가짜인 10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신 전 위원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침몰원인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고 부실한 구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0년 8월 검찰에 기소돼 7년여 동안 재판(현재 항소심 진행 중)을 받고 있다. 또 지난 10일엔 ‘천안함 침몰 사고 당일 국방부가 CCTV를 조작했다’며 검찰에 국방부를 고발했다.[편집자]

“천안함 ‘1번 어뢰’ 하면, 구멍 안에서 발견된 가리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실 거예요. 동해안에만 사는 붉은 멍게도 나왔고…, 또 녹슬고 부식된 어뢰 위에 매직팬으로 쓴 ‘1번’…”

“이것은 민플러스에 최초로 공개하는데 1번이라고 쓰인 곳 말고 다른 부분에, 파란색 매직팬으로 콕콕 찍어보고 몇 군데 테스트 한 흔적을 찾았습니다.”

1. 백색물질의 분포

▲ 무작위적으로 분포돼야 할 백색물질은 알루미늄 부위에만 집중 분포돼 있다.

어뢰에 백색물질이 분포돼 있다. 국방부는 어뢰 폭발 때 생긴 3000℃ 온도 때문에 폭약 속 알루미늄 성분이 산화하면서 생성된 하얀 가루가 어뢰에 달라 붙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 주장대로라면 무작위적으로 분포돼야 할 백색물질은 특정부위에, 즉 알루미늄에만 집중 분포돼 있다. 알루미늄인 프로펠러에는 붙어있고, 프로펠러를 조이는 스테인레스로 된 불트‧와셔엔 없다. 백색물질은 날라와 붙은 것이 아니라 알루미늄 자체가 부식해 생성된 것임을 의미한다.

2. 페인트 아래 백색물질

▲ 검정색 페인트를 살짝 들어보면 그 밑에 하얀 물질이 가득하다.

국방부 주장대로 백색물질이 날아와 붙었다면, 어뢰의 검정색 페인트 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정색 페인트 밑에 백색물질이 있고, 또한 백색물질이 넓게 퍼져 있는 곳엔 아예 페인트 자체가 없다. 손톱으로 긁어봐도 알 수 있다. 검정색 페인트를 살짝 들어보면 그 밑에 백색물질이 가득하다.

3. 우리집 보트가 ‘1번 어뢰’ 맞았냐?

▲ 네티즌이 찍어 보낸 보트 프로펠러(오른쪽), 천안함 '1번 어뢰' 프로펠러(좌측 아래), 해수에서 부식된 프로펠러(좌측 상단)

한 네티즌이 자기 보트의 프로펠러 사진을 찍어 보내 왔다. 그러면서 “우리집 보트가 ‘1번 어뢰’ 맞았냐?”고 반문했다. 네티즌의 사진을 보면 천안함 ‘1번 어뢰’ 백색물질과 똑같이 생겼다. 백색물질은 다름 아닌 알루미늄이 산화하면서 생긴 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4. 어뢰의 부식상태

▲ 어뢰 모터 부식 상태

어뢰를 보면 적어도 몇 년은 된 고철덩어리다. 처음부터 녹슨 어뢰를 쏘진 않았을 테고, 아무리 폭발로 손상을 입는다해도 이렇게 구석구석 썩을 순 없다. 특히 어뢰 모터 부분은 꽁꽁 감아둔 코일 사이사이가 녹슨 게 보인다. 코일은 녹이 잘 슬지 않는 구리로 만든다. 조사 당시 러시아조사단원들도 ‘1번 어뢰’의 부식상태로 볼 때 천안함과 관련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5. 어뢰에 쓰여진 ‘1번’

▲ 어뢰에 매직으로 쓴 ‘1번’은 녹 위에 쓰여졌다.

어뢰에 매직으로 쓴 ‘1번’은 녹 위에 쓰여졌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1번’ 매직 밑에 녹이 피어있다. 더구나 사포 같은 걸로 닦은 흔적까지 있다. 그러다보니 닦은 곳과 닦지 않은 곳이 명확히 구분된다.

6. ‘1번’ 매직 테스트 흔적

▲ 매직으로 콕콕 찍어보고 몇 군데 테스트한 자국을 찾았다.

신상철 전 위원이 최근 어뢰 정밀사진에서 ‘1번’ 글씨와는 별개인 매직팬 테스트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수백장의 사진을 뒤져보다가 ‘1번’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매직팬으로 콕콕 찍어보고 몇 군데 테스트를 한 자국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신 전 위원은 이 사진을 다음 공판 때 증거물로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7. 수산화물이냐? 산화물이냐?

국방부의 주장대로라면 백색물질은 3000℃의 온도로 인해 해수가 증발해 H2O(물)가 없는 알루미늄 산화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백색물질을 분석한 결과 H2O가 포함된 알루미늄 (황화)수산화물로 판명났다. 이는 3000℃의 온도, 즉 폭발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안동대학교 정기영 박사는 법정에서 “백색물질은 알루미늄 입자가 와서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자라난 조직이다”고 증언했다. 즉, 알루미늄 녹이란 뜻이다.

8. 가리비

▲ 어뢰 추진체 뒷부분 동그란 구멍 안에 가리비가 있다.

어뢰 추진체 뒷부분 동그란 구멍 안에 가리비가 있고, 그 가리비 위에 백색물질이 붙어 있다. 이런 경우가 가능하려면 어뢰 폭발과 동시에 하얀 가루가 생성되는 0.00몇 초 사이에 가리비가 헤엄쳐서 구멍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가리비 의혹이 제기되자 국방부는 전쟁기념관 유리상자에 비치돼 있던 어뢰에서 가리비를 후벼파 떼어내 없애버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2.5cmX2.5cm 조개 껍데기를 만들어 그것이 서해안에도 자라는 비단가리비라고 발표한다. 그러나 구멍 크기는 불과 2cm가 채 되지않았던 것. 프로펠러 뒤의 구멍(반경 1.8~2cm)이 아닌 앞쪽의 구멍처럼 보이는 5cm에 맞추다보니 잘못 제작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지적하자 국방부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급기야 1번 어뢰를 수거해 국방부조사본부 창고로 이동시키고 현장에는 어뢰유사 모조품으로 대체해 버렸다. 2010년 11월 KBS <추적60분>이 ‘의혹의 천안함'편에 가리비 부분도 포함시켜 방영하려 하자 ‘가리비’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방영을 못하도록 압박을 가해 결국 가리비 부분은 잘라내고 '안동대 정기영 박사의 백색물질'을 중심으로 재편집 방송되었다.

9. 동해안 붉은멍게

▲ ‘1번 어뢰’ 프로펠러에서 동해안에만 자라는 붉은멍게 유생이 발견됐다.

‘1번 어뢰’ 프로펠러에서 동해안에만 자라는 붉은멍게 유생이 발견됐다. 프로펠러 블레이드 날 모서리에 빨간 점들이 콕콕콕 찍혀있는데, 네티즌들이 정밀 마이크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분석한 결과 촉수가 있는 해양생물체, 붉은멍게 유생이었다. 붉은멍게는 Red Sea Squirt라는 학명을 쓴다.

10. 해양 식물

▲ 백색물질 곳곳에 실타래처럼 생긴 해양식물이 곳곳에 박혀있다.

백색물질 곳곳에 실타래처럼 생긴 해양식물이 곳곳에 박혀있다. 만약 국방부 주장대로 3000℃의 폭발이 있었다면 나풀거리는 촉수와 해양식물은 타고 없어야 한다. 때문에 군데군데 박혀있는 해양 식물체는 어뢰 폭발의 존재를 부정한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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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끝내 은폐하려는 이 보고서, 대체 무엇이길래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②] 유족이 소송 통해 받은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 삼성 '비밀' 들어있나

임자운 반올림 상임활동가 (변호사) sharps@hanmail.net  2018년 04월 13일 금요일

최근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고용 노동부의 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삼성은 행정심판과 소송까지 제기하며 이를 막으려 합니다. 수많은 언론들은 고용노동부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보고서가 무엇인지 그동안 이 보고서와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필자 주

 

 

2012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소송을 심리하던 중 삼성전자에게 원고가 근무했던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이하 ‘작업환경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법원은 각기 다른 사건에서 삼성 혹은 고용노동부에게 같은 자료를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제대로 제출된 적은 없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 임의로 삭제·편집된 정체불명의 자료가 제출되거나 “사업장의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아무런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2014년 10월 어느 직업병 피해가족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그마저 거절되자 행정심판을 거쳐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이 보고서가 정말 삼성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법적으로 다투어보자는 거였다. 2년에 걸친 소송에서 피해가족은 완승을 거뒀다. 대전고등법원은 2018년 2월 이 보고서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근로자의 생명·건강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돼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판결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판결을 수용하기로 하며 “앞으로 작업환경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전고등법원의 판결 취지에 비추어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직업병 피해자들은 일제히 재해노동자가 근무했던 사업장의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모씨 유족은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보고서를, 림프종으로 사망한 황모씨 유족은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보고서를 림프종에 걸려 투병중인 김모씨는 삼성 LCD 탕정공장 보고서를 각각 청구했다.

 

 

▲ 지난해 11월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반올림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지난 10년간 숨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반올림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지난 10년간 숨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약속대로 보고서 공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삼성이 여기에 다시 제동을 걸었다. 보고서가 공개되면 삼성의 영업비밀이 침해된다며 고용노동부의 공개결정에 행정심판과 소송을 걸었다.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소송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했다.

 

대체 이 보고서가 무엇이길래 이 난리일까.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에 대하여 작업환경측정을 한 후”, 그 결과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하고 “근로자에게도 알려야” 한다(동법 제42조). 여기서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이란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가 있는 작업장”을 뜻한다(동법 시행규칙 제93조 제1항).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에는 발암성ㆍ생식독성 같은 인체유해성이 확인된 183종의 화학적 인자와 2종의 물리적 인자, 6종의 분진이 포함되어 있다(동법 시행규칙 별표 11의5).

요컨대 삼성 반도체 공장은 산안법이 말하는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이다. 따라서 삼성은 산안법이 특별히 유해하다고 판단한 190여종의 유해인자가 공장 내부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정기적으로 측정해야 하고, 그 결과가 기재된 보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지금 그 보고서의 공개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보고서는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입증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다. 노동자가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으려면 ‘업무 중 유해인자에 상당 수준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4조). 그런데 그러한 노출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얼마 없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운영되는 ‘가스 누출 감지 시스템’ 작동 기록이란 것도 있지만, 삼성은 관련 기록은 더욱 심하게 은폐해 왔다. “1년이 지나면 다 폐기해 버린다”고 주장했고 감독기관이 요청할 때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니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공장 내부의 유해물질 노출 상황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가 이 ‘작업환경 보고서’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들을 알 수 있는 걸까. 이를테면, 지난해 어느 직업병 사건에서 확보할 수 있었던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작업환경 보고서’가 있다. 역시 삼성의 영업비밀 주장에 따라 상당부분이 삭제된 보고서였지만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은 총 57종의 유해 화학물질이 복합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공장에서 노출될 수 있는 물질 중에는 5종의 1급 발암물질을 포함한 16종의 발암물질이 있었고 2종의 1급 생식독성 물질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정보를 담고 있는 보고서이기에, 직업병 피해가족들은 소송까지 제기해가며 이 보고서의 공개를 요구해 왔던 것이고, 대전고등법원은 “근로자의 생명·건강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반도체 사업장에서도 이 보고서의 공개여부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산재소송 중에 법원의 제출요청이 떨어지면 다른 사업장들은 이의 없이 제출했다.

유독 삼성만 직업병 피해가족들의 산재소송에서, 그리고 고용노동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절차에서, 보고서 공개를 강하게 반대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피해자들이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법원이 그 공개를 결정한 이유와 삼성이 보고서 공개에 반대하는 이유는 같을 것이다. 이 보고서가 반도체 사업장 내 유해물질 노출 상황을 알게 하고 노동자들의 직업병 발병 이유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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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KAL858 사건 재조사하라"

KAL858대책본부, 국회서 '항공사고' 주제로 토론회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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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2  23: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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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역 공군중령 김성전 KAL858 대책본부 고문이 1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1987, 전두환 그리고 KAL858기 사건”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대한항공 KAL858기 조사는 사고조사의 기본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조종사가 정말 교신 한 번 하지 못하고 비행기가 사라졌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미얀마 안다만 인근 상공에서 사라진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예비역 공군중령 출신의 김성전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본부’(KAL858 대책본부) 고문은 11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1987, 전두환 그리고 KAL858기 사건” 주제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섰다.

김성전 고문은 먼저 ‘인간은 거짓말 하지만 비행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들어 항공기 사고조사의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사고의 원인을 예단하지 말라 △사고의 원인은 현장과 잔해에 있다 △사고조사기간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잘못된 사고원인 규명은 또 다른 사고를 부른다는 것.

그는 1988년 발생한 ‘팬암 103 사고’와 1996년 발생한 ‘TWA 800 사고’를 사례로 제시했다. 팬암103 사고는 잔해들을 수거해 항공기 기체 중앙하단에서 최초의 폭발이 있었고, 유류품에서 시한장치 부품을 발견해 폭발사고를 밝혀냈고, 범인을 검거했다. 애틀란타 올림픽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TWA800 사고는 4년간의 조사를 통해 테러와는 무관한 연료 탱크 내부에서 발생한 연료 증기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으로 결론지었다.

주무부서는 빠지고 사고 당사자가 조사본부 참여

   
▲ 김성전 고문은 최근 가족을 거쳐 입수된 비행기 잔해(오른쪽)에 대해 KAL858기 잔해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토론회에는 KAL858기 가족회 관계자들과 대책본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에 반해 KAL858 사고는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시신이나 유품, 잔해를 전혀 수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수색이 종료됐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주도로 북한의 테러공작으로 발표됐다.

특히 항공기 사고조사의 주무부서인 교통부는 당시 사고조사본부에 3명만 참가했고, 사고 주체인 대한항공이 오히려 18명이나 참여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서류상으로는 1명만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 사고조사는 안기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전 고문은 “사고조사 위원으로 참석했던 교통부 요원들이 사고 잔해가 발견되기도 전인 1987년 12월 10 본국으로 전원 철수함으로써 사고조사 주무부서인 교통부 요원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조사가 이루어지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모든 항공기 사고조사에는 사고 당사자가 참여할 수 없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은 사고조사의 주체로 참여했고, 나아가 “훗날 KAL858 사건과 관련된 모든 잔해와 관련 자료 등을 안기부가 보관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김성전 고문은 “그 동안에는 제대로 된 사고조사가 없었다. 전부 김현희 증언으로 가다 보니까 본질이 흐려졌다”며 “아부다비에서 떠서 바그다드에서 짐을 싣고 내렸다. 거기에 대한 보안책임은 대한항공에 있다”고 짚고 중간기착지에서 타고 내린 승객 명단조차 부정확한 점을 들어 대한항공에 대한 전면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물상에 팔린 KAL858 잔해... 잔해 재수색 필요

안기부는 1990년 3월 태국 어부들이 잔해를 대량으로 수거했고 상당량을 고물상에 넘겼지만 잔해 수거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의뢰한 잔해에서 폭파흔적이 발견되지 않자 반환을 요청하지 않아 국과수는 이를 처분하기까지 했다.

김성전 고문은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 5장 13절을 근거로 ‘새로운 증거나 중대한 증거가 발견되면 재조사를 할 수 있다’며 잔해 재수색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건지는 기술이 발전해서 소나(SONAR, 수중음파탐지기)로 수색을 하고 카메라 통해 확인한 다음 잠수부를 집어넣기 때문에 기간도 짧고 비용도 적게 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성전 고문은 최근 피해자 가족을 통해 확보된 비행기 잔해에 대해 “대한항공에서 오랜 정비경험이 있는 퇴역 정비사에게 논의를 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보잉 707의 잔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 KAL858기와 같은 기종의 내부. 객실 선반이 공개형으로 중간기착지에서 짐을 두고 내렸을 경우 보안요원이 이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폭발시에도 파괴력이 분산되는 구조다. [자료사진 - 김성전]
   
▲ 안기부가 수거했다고 공개한 KAL858기 잔해를 근거로 시물레이션한 결과. 붉은 색이 잔해다. 주로 비행기 진행방향 왼편에서 잔해가 발견됐고, 김성전 고문은 오른쪽 밑쪽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자료사진 - 김성전 제공]

그는 당시 안기부가 수거했다고 발표한 KAL858기 잔해 조각을 컴퓨터로 재구성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김현희는 7B.C석 상단에서부터 일어났다고 주장해왔으나 이 잔해 형태를 보게 되면 절대 거기에 폭발이 일어날 수 없다”며 “오른쪽 잔해가 없다. 폭발이 오른쪽에서 있었다는 거다”라고 추정했다.

특히 당시 국정원이 수사결과 발표에서 적시한 라디오에 적재한 컴포지션4 350g과 양주병에 넣은 액체 PLX 폭약 700cc로는 ‘조종사가 교신 한 번 하지 못할 정도’의 폭발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김성전 고문은 “TWA에서 보다시피 폭발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조종사가 반사적으로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며 “그것조차도 없었다고 하기 때문에 대단히 조종사들은 불행하게도 조종실 근처에도 폭발물을 설치해서 같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싶다”고 추론을 제시했다.

실제로 일본 <아사히TV>는 2004년 폭약 전문가 로버트 박사가 KAL858기와 비슷한 조건에서 실험을 실시한 결과 김현희의 주장보다 3배의 폭약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반해 안기부는 맨땅에 폭약과 강판(5mm, 10mm)을 놓고 폭파시험을 해 강판이 찢겨나갔다며 폭발력이 충분하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 이듬해 동일 기종으로 폭발력 실험

   
▲ Aloha 243 사고기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자료사진 - 김성전 제공]
   
▲ KAL858기와 같은 기종을 이용한 FAA 실험 결과. 조종사가 구조요청을 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 [자료사진 - 김성전 제공]

더욱 결정적인 실험은 FAA(미국 연방항공청)이 사고 이듬해인 1988년 7월 KAL858과 동일한 기종으로 실시했고, 그 폭발력은 조종사가 구조요청 신호인 ‘메이 데이(mayday)’를 발신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전 고문은 작동하는 라디오에 컴포지션4 350g을 장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양주병을 올려놓아도 선반 천정과 22cm의 공간이 있고, 당시 KLA858기 객실 선반은 밀폐형이 아닌 개방된 형태였기 때문에 폭발력은 분산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1988년 발생한 Aloha 243편 사고 사례를 보더라도 훨씬 동체 파손이 크게 발생했지만 승객들은 무사히 탈출했다고 제시하고 “나한테 중고 707기를 주고 똑같이 폭파시켜봐라. 내가 끌고 내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전 고문은 1987년 제17전투비행단 대위 시절 좌측 엔진이 손상된 F-4E 항공기를 안착시켜 공군참모총장으로부터 ‘웰던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김성전 고문은 자신의 민항기 조종사 경험을 들어 “대한항공 사고는 조종사의 피로도가 절대적이다. 전 세계에서 조종사들을 가장 혹사시킨다”며 “결국 국토부와 대한항공을 압수수색을 해서라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재조사의 주체는 국토교통부가 되어야 하고 대한항공에 대해서 전면적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KAL기도 마찬가지였고 천안함도 마찬가지였다”

   
▲ 서현우 KAL858 대책본부 조사팀장(오른쪽)과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 류지열 KBS 피디가 토론자로 나섰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서현우 KAL858 대책본부 조사팀장은 토론자로 나서 “항공기 사고 매뉴얼에 대해서 오늘 몰랐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하고 “90년에 수거된 잔해를 실제 KAL858기 잔해로 기정사실화 하고 그 전제하에서 설명했는데, 그 잔해가 KAL858기 잔해가 맞는지 정확하게 입증된 것이 없다고 본다”고 짚었다.

2003년 <KBS 일요스페셜>에서 이 사건을 다뤘던 류지열 피디는 “범행 준비와 실행, 탈출한 과정이 단 하나도 진실이 없다. 다 거짓말이다”며 90년 3월 수거된 잔해들의 촬영 일화를 소개한 뒤 “14년이 지났는데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반박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정부의 책임하에 밝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8년째 재판을 진행중인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는 “국가기관이 어떠한 사고나 조작사건을 주도하거나 개입했을 때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그 사람들이 조사의 주도권을 쥔다”며 “KAL기도 마찬가지였고 천안함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임채도 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87년 마지막 순간에 KAL858기 사건으로 해서 엄청난 진실의 왜곡, 역사 왜곡이 이루어졌다”며 “촛불시민이 만든 정부의 국토교통부가 은폐된 진실, 조작된 사실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에 착수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위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KAL858 대책본부 총괄팀장 신성국 신부는 “국토부 차원의 사고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된다”면서 “김현희의 폭발물 설치에 대한 것이 다 거짓으로 드러났음을 오늘 밝힌다. 그래서 김현희에 대한 재수사가 또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성국 신부는 “2부는 폭발물 문제를 심동수 박사가 다루기로 했는데 지난 금요일부터 제게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며 “어제 오후에 오늘 이 발표회에 참석 못 하겠다라는 최종적인 연락이 왔다”고 전하고 “이 사건을 조작한 어떤 기관에서부터 아직도 이러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협박하고 회유하고 온갖 음해를 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성전 고문도 “이 사고 조사를 하면서 두려움이 온다”며 정동영 의원에게 “신변보호라든가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 나타날 어마어마한 파장에 대해서 항상 대비책을 마련해주십사 꼭 부탁드리겠다”고 말했다.

   
▲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KAL858 대책본부 총괄팀장 신성국 신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KAL858 대책본부가 주최하고 KAL858기 가족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탈북민 홍강철 씨가 김현희 신원 관련 토론을 했고, ‘KAL858기 가족회’ 김호순 회장 등 가족들과 윤원일 KAL858 대책본부 대표,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점심 식사 후 국회의원회관 제4 간담회실에서 신성국 신부 사회로 간담회를 이어가며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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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시리아 공습 운운하더니 망신 자초

미국과 유럽, 시리아 공습 운운하더니 망신 자초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4/13 [08:1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48시간 안에 시리아를 공격하겠다고 분명히 언론에 공개해놓고도 48시간이 지나자 이제와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발뺌하는 트럼프,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 설명글: 이창기 기자

 

 

13일 YTN보도에 따르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짐승이라고 표현하며 48시간 이내 중대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히고 이후 스마트한 미사일이 시리아에 날아갈 것이라며 러시아는 각오하라고 경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48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말을 바꿨다. 미국의 체면이 또 한 번 휴지처럼 구겨졌다.

 

YTN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아직 결정이 안 돼 공격에 대한 상세한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이 아직 결정을 못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관련하여 연합뉴스도 매티스 장관이 청문회에서 "화학무기 공격이 있었다고 믿는다"면서도 "우리는 실제 증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제 본지에서 미국은 절대 시리아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 그대로이다. 

 

YTN에 따르면 이에 대해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러시아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민을 확실히 보호할 것입니다. 시리아에 있는 국민과 군인들을 말이죠."라며 미국이 공격할 경우 응수할 것임을 분명했다. 

 

한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시리아가 동구타 두마지역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지만 그 증거를 아직 공개하지는 못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의 시리아 공격에 물자는 공급할 수 있지만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시리아정부군은 동구타를 수복할 때 끝까지 반군을 소탕한 것이 아니라 항복의사를 밝힐 경우 이들리브로 떠날 갈 수 있게 길을 내 주었다. 동구타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반군과의 격전지에서 항복의사를 표현한 반군들에게는 원하면 가족들과 함께 떠날 수 있도록 버스까지 준비해주었으며 조금도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런 반군들이 지금 주로 결집하고 있는 곳이 이들리브이다. 아시드 정부는 같은 이슬람교를 믿고 같은 혈통인 동족들과 골육상쟁을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사드 정부가 무엇 때문에 반군도 아닌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염소가스통을 투하하여 수십명의 주민들을 죽이겠는가.

치열한 격전지도 아니고 이미 승리한 도시이고 3차에 걸쳐 반군도 다 이들리브로 떠난 곳이라 굳이 공격을 할 이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반군이 장악했던 지역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친서방 어용조직으로 의심받고 있는 화이트헬멧과 같은 모략을 일삼아온 단체들과 온갖 서방 의료지원단체 및 인권단체에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사드 정부를 반인권 정부로 낙인을 찍고 난리를 피울 것이 자명한데 제정신을 가지고서야 아사드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리가 없다.

실제로 아사드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통해 화학무기 공격설은 음해이며 모함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하여 아사드 정권을 돕고 있는 러시아도 미국이 증거도 없이 48시간 공격설 운운하는 것만 봐도 음모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이 공격을 할 경우 강력한게 반격할 것이라고 맞경고 하고 나섰던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입장이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중동의 강한 반미국이며 친러, 친이란, 친북적인 시리아정부를 전복하여 중동의 반미 핵심국 이란을 포위하고 지중해의 러시아 거점항인 시리아 타르투스항을 점령하려고 했던 미국과 서방의 기도가 반군 몰락과 시리아정부군 승리로 파탄이 나자 마지막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끝까지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를 압박해보려다가 오히려 체면만 더 구긴 셈이다.

 

미국의 몰락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장기적인 경제위기를 겪고 있으며 사람들의 정신까지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유럽도 이런 미국의 위선적인 도발에 푸들강아지처럼 졸졸 따르는 것을 보니 이제 갈때까지 간 것 같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좀 할 말은 하는데 이런 나라도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하면 군대만 파병안하지 군수물자나 병참을 공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서방의 미래가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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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출범날도 '원하는 거 다 해줄게' 회유하는 삼성"

[삼성에서 노조하기④] 임원위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장

18.04.13 07:50l최종 업데이트 18.04.13 08:01l

 

검찰이 최근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문서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은 창립 이후 '무노조 경영'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며 노조 설립을 방해해 왔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영원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노조가 이미 여럿이다. 그들이 노조를 만들고 삼성과 맞서왔던 과정이 모두 삼성노조의 역사다. 그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를 통해 싣는다. [편집자말]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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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노조하기' 위해 임원위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웰스토리 지회장은 휴가를 타의반, 자의반 반납했다.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를 받지 못 해, 근무 시간 외 모든 시간을 노조 업무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기자회견이 있는 날에는 반차를 냈다. '5-2 근무(새벽 5시 출근, 오후 2시 퇴근)'를 하고 난 뒤에도 퇴근을 못했다. 바로 노조 업무를 해야 한다. 지난 1년 임 지회장의 일상이다. 

삼성웰스토리 노동자들은 지난해 4월 1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성웰스토리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삼성웰스토리는 단체 급식과 식자재 공급 등을 하는 회사로, 지난 2013년 삼성에버랜드에서 분사했다.

기자회견 이후 1년이 흘렀다. 삼성웰스토리 노조의 첫 1년은 어땠을까.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시 보정역 인근에서 만난 임원위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웰스토리 지회장은 차가운 커피를 들이키며 '출범 1년'을 "가시밭길"이라고 표현했다. 사측이 조합원을 해고하거나 징계하지는 않았지만, 회유·감시·최저고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임 지회장은 "노조간부에게 노조탈퇴를 회유하고 승진에서 누락하는 것은 물론 간부의 컴퓨터를 원격에서 사찰하고 주변에 감시자를 배치한 정황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웰스토리 지회는 삼성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로는 처음으로 다수 노조가 됐다. 단체교섭 권한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마저도 '노조 고사'에 이용하고 있다. 임원위 지회장은 "교섭이 지난 1월 시작됐지만, 이제야 교섭안을 처음 회람 했다"라며 "사측에서 사소한 부분을 걸고 넘어져서 늦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 지회장은 "조합원들은 결과가 빨리 나오길 바라기 때문에 지칠 수밖에 없다"라며 "그야말로 노조를 고사시키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삼성의 '노조와해'는 삼성웰스토리에서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삼성웰스토리는 검찰의 수사망에서 벗어나있다. 임 지회장은 "검찰이 노조가 있는 삼성 4개 계열사 모두 압수수색 할 줄 알았는데 안했다"라며 "(이미) 삼성웰스토리 본사 직원들의 PC와 핸드폰이 다 바뀌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압수수색 해봤자 먼지밖에 안 나온다"라고 검찰 수사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다음은 임원위 지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삼성은 회의에 넘어가는 순간 냉정해진다"

- 삼성웰스토리에서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나? 노조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2008년 1월 입사했다. 11년차다. 입사 4년차였던 지난 2012년 직장상사에게 구타와 폭언을 당했다. 너무 괴로워 노사협의회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당시 노사협의회는 가해자인 상사에게 '임원위가 (당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는데 노사협의회는 직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기다 회사는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를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불만을 제기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나다'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불만을 틀어막는 것이다. 실제로 날 괴롭혔던 상사도 2억 원 넘는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뒤, 협력사에서 많은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2016년 4월 노사협의회 선거에 나갔다. 그때부터 사측의 방해가 시작됐다. 출마를 한다고 하니, 갑자기 서울지사로 발령이 났다. 난 경인지사로 입사해 9년 동안 이 지역에서만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서울로 출퇴근하게 된 것이다. 굴하지 않았더니 사측에서는 '(노사협의회 선거에) 안 나가면 고과를 챙겨주겠다'라고 회유했다. 방해공작은 계속 됐다. 노사협의회 선거에 갑자기 나와 같은 경인지역에서 한 명이 더 후보로 또 나온 것이다. 표가 분산돼, 결국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되지 못 했다."

-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되지 못한 게 노조 설립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가?
"그 해 말 회사는 100여명을 명예퇴직 시켰다. 회사는 퇴직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사람을 기존 근무지에서 60~70km 떨어진 곳으로 발령을 내버렸다. 그 곳에서 겨우 적응을 하면 바로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지금도 웰스토리 본사에 가면 PC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10명도 넘는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사협의회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오히려 '큰 돈을 받고 명예퇴직 하게 돼서 (그 직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 '명예퇴직해서 (노동자들이) 엄청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울화가 치밀었다."

- '무노조 경영' 방침 아래서 노조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다.
"(노조 출범 준비를 하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인사팀장과 상무가 나를 포함해 노조 간부들에게 찾아와 '형이라고 불러라', '왜 굳이 힘든 길 가려고 하냐', '원하는 거 해 줄 테니까 불만 있으면 말해라', '말로 하자. 왜 노조하려고 하느냐'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노조 출범 기자회견 전날 밤인 지난해 4월 11일에도 회유는 계속됐다. (사측에서) 비싼 참치회를 사주며 '어떻게 살거냐, 모아둔 재산은 있냐, 꿈 펼쳐야 하지 않겠냐,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라고 했다.

심지어 기자회견 당일에도 인사팀장이 날 찾아와, 4시간 동안 설득하기도 했다. 인사팀장은 나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기자회견 가지마. 지금 핸드폰 끄고 짐 챙겨서 1주일만 잠수를 타라. 뒷일은 알아서 해줄게'라고도 했다. 나만 회유한 게 아니었다. 결국 사측의 제안에 넘어가 노조의 회계감사가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 동료가 회견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사측의 제안에 흔들리지는 않았나?
"회사를 믿지 않았다. 회사는 설득할 때는 온갖 말로 회유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매몰차게 변한다. 2015년 삼성웰스토리가 에버랜드에서 분사한 것을 두고 소송할 때도 그랬다. 5명이 대표단으로 소송을 진행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회사의 회유에 넘어가 퇴사했다. '4년치 연봉을 주겠다'며 회유하고 그 사람들이 그 제안을 받자마자 회사는 '짐도 택배로 부쳐줄 테니 당장 회사를 나가라'라고 냉정하게 나왔다. 그런 모습을 알기에 (회사를) 믿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 8000명 중 조합원은 100명, 계란으로 바위치는 느낌"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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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노조를 만들었다. 그 이후 회사의 태도는 어땠나? 
"노조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해고도 각오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해왔고 해고는 (그런 경영의) 수순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장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이 복직하는 것을 보면서, '삼성이 예전처럼 하지는 못 하겠구나', '잘려도 언젠가는 복직을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나 해고는 없다. 대신 노사협의회 출신이 사업장에 한 명씩 배치돼, 노조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다. 한 번은 (내 사업장에 배치된) 그 사람이 회식 날 술에 취해 '너무 힘들다. 뭔가 계속 보고하라고 하는데, 뭘 보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무슨 일 있으면 이야기 좀 해달라'라고 나한테 말했다. 

노조 조합원을 불법 사찰하려고 한 정황도 있다. 한 조합원의 컴퓨터 화면에 갑자기 '정보유출 방지를 위해 화면 캡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뜬 것이다. 누군가가 원력으로 해당 컴퓨터의 화면을 캡처하려다가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고과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작년에 입사 후 처음으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역량 부족'이 이유였다. 황당해서 이의신청을 했지만 사측에서는 '누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말해줄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연봉이 동결됐다."

- 삼성은 일명 '어용노조'를 노조와해의 전략으로 세우기도 했다. 웰스토리에서는 어땠나?
"우리 노조가 만들어지고 4개월 뒤쯤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만들어졌다. 이 노조를 어용으로 보는 건 삼성지회(에버랜드)의 어용노조 대표였던 사람이 위원장으로 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리 노조의 회계감사를 회유했던 사람이 부위원장으로 있다. 또 회사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하고 에버랜드에서 분사할 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노조에 있다. 본인들은 어용노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시위에 나서자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현장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노조를 하겠다고 나서니, 반대급부로 우리 노조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늘었다. 한 번도 찾아가지 못 했던 지방 사업장에서 원서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한 조합원은 '노조에 심을 실어줘야 할 것 같아서 가입했다'라고 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긴 사람들이 희망의 씨앗인 노조까지 방해하려고 한다라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일명 '알박이 전략'은 웰스토리에서 효과가 없었다.
"노조 만든 뒤 한, 두 달 있다가 '업무개선 TF팀'이라는 게 갑자기 생겼다. 사업장에 에어컨을 설치해주고 유니폼을 바꿔주는 등 큰 돈 들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이 바라던 것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노조 없어도 회사가 다 해준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조 무력화 시도로 볼 수 있다.

거기다 사측에서 노조하면 큰 일 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내에 '임원위는 사기꾼이다', '요리도 할 줄 모르는 애다', '큰 돈 받고 퇴사하려고 노조 하는 것이다', '(노조) 같이 하는 부지회장이 제일 불쌍한 애다' 등의 소문이 퍼졌다. 사업장마다 찾아가 노조 홍보를 했는데, 문전박대 당했다. 노조 홍보지랑 명함 나눠주면 직원 몇몇이 그것을 걷어갔다.

사람들이 노조 가입 하는 것에 겁을 낼 수밖에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노조 가입이 저조하다. 협력업체를 제외하면 웰스토리 노동자 8천 명이 노조 가입 대상인데 금속노조 소속은 100여 명, 한국노총 소속은 30여 명 밖에 안 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이다."

- 그럼에도 노조를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가 일한 만큼 인정받고, 회사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될 수 있는 근무조건이 필요하다. 웰스토리는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웰스토리 매출이 5년 사이 1조가 늘었지만 노동자의 기본급은 20만 원이 올랐다. 11년 차인데 내 기본급은 180만 원이다.

기본급이 낮지만 '능력급'이라고 해서 성과급을 받는 구조다. 고과권자가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 공개되지 않고 투명하지 않다. 심지어 고과권자가 한 직원의 고과를 잘 주는 대신 직원의 성과급을 나누고 접대를 받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의 일탈이라며 징계하고 끝내버렸다. 고과 시스템의 문제인데 말이다.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고 노조에 가입하면 고과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과급은 커녕 임금이 깎인 사람도 있다. 반대로 (회사에) 잘 보이면 고과를 잘 받아 임금이 확 뛴다. 노조가 투명한 고과 시스템을 요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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