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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당일, 조선일보 “북핵 폐기 못하면 아무 것도 아냐”

[아침신문 솎아보기] 남북정상회담, 단판승부 요구하는 조중동… “정부발표 따르라” 방통심의위 월권 논란도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8년 04월 27일 금요일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날 아침신문들은 1면에서 정상회담 소식을 다뤘다. 단계적 평화체제 구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보수신문은 ‘단판승부’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중동은 일제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상회담 보도에 대한 사전 ‘권고문’을 배포한 데 대해 ‘언론통제’ 논란을 제기했다. 드루킹 논란을 계기로 네이버에 ‘아웃링크’를 요구하는 기사들도연일 쏟아지고 있다.

다음은 27일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 오라”(경향신문)
“이 길에서 평화가 시작된다”(국민일보) 
“9시30분 판문점, 비핵화 첫발 뗀다”(동아일보) 
“분단 넘어서 평화 새길로”(서울신문) 
“분단 5cm 벽 넘어... 남북 평화 새 길 연다”(세계일보) 
“25년을 끌어왔다, 북핵 마침표 찍자”(조선일보) 
“비핵화 여정... 한반도 빅게임 시작됐다”(중앙일보) 
“1953. 7.27 정전 2018. 4. 27 평화”(한겨레) 
“남과 북, 모이고 포개졌던 사을 기억해 냈으면”(한국일보)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회담 성패는 ‘비핵화 의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는 크게 비핵화, 한반도 평화구축, 남북관계 등 3개 분야다. 이 가운데 정부와 언론은 비핵화 명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은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함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이번 회담에서의 비핵화 ‘의지’가 명문화 되는지 여부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회담에서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에 대한 궁극적 폐기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토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 임하게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 역시 “남북정상이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일각의 우려를 씻어내면서 회담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신문도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지만 한미,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의 디딤돌”이라고 밝혔다.
 

▲ 27일 중앙일보 기사.
▲ 27일 중앙일보 기사.

이 가운데 조중동은 북한이 모호한 합의 문구를 끌어내게 한 다음 순차적으로 경제지원 등을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부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많은 사람이 지금 마치 평화가 온 듯 생각하고 있다. 봄 바람이 불 때 얼음이 깨지는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면서 “북핵 폐기를 확인하면 성공이고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역시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의 인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비핵화에 합의해도 구체적인 후속조치에는 여러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선언적 의미의 비핵화만 합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내용을 ‘한 외교 소식통’을 통해 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핵우산 폐기 노림수가 들어 있는 조선반도 비핵화같은 모호한 합의 문구로 회담의 성공을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서 “혹여 김정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천명을 끝내 거부한다면 문 대통령은 의지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결기를 갖고 회담장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발표 따르라” 방통심의위 월권 논란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전 가이드라인 성격의 권고문을 배포한 데 대해 보수신문은 ‘언론통제 논란’으로 부각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6일 배포한 ‘취재보도시 유의사항’을 담은 공고문을 발표했다. 방통심의위는 △정상회담 기간 동안 특별 모니터링팀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고 △‘유의해야 할 사항’으로 ‘정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할 것’을 요구하고 △언론사가 직접 취재할 경우 확인되지 않은 발언 또는 주장 인용을 지양할 것 등을 권고했다. 

조중동은 일제히 권고문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방통심의위의 권고가 언론의 취재, 보도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방통심의위는 민간기구지만 정부여당이 추천하는 위원이 다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 행사에 부정적인 보도를 막기 위해 지나친 사전개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조중동은 26일 ‘사전개입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성명을 비중 있게 인용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진보 언론단체까지 ‘회담취재 부당한 간섭 중단하라’”는 제목을 통해 진보단체도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검열행위 비판, 공영방송 개혁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이들 신문이 이처럼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입장을 전하는 경우는 없었다. 

언론의 ‘아웃링크’ 타령 이어져 

드루킹 사건으로 촉발된 네이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언론사는 아웃링크(기사를 클릭하면 네이버가 아닌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에 네이버가 소극적이라는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매일경제는 “아웃링크 방식 도입이 국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면서 여야의 관련 법안 추진 계획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해외 주요 포털과 매체들은 이미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하는 아웃링크로 뉴스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 27일 중앙일보 기사.
▲ 27일 중앙일보 기사.

 

 

앞서 신문협회가 아웃링크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을 내자 24개 신문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 직접 방문 비율이 늘면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에 네이버 댓글 논란을 지렛대 삼아 이 같은 주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루킹 논란 이후 네이버가 댓글 개편을 했음에도 댓글량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서울경제는 “25일 총 31만 1373개의 댓글이 네이버 뉴스에 올라온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개편 전인) 24일에는 29만 926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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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닥치는 어린 죽음, 동물구조센터의 ‘잔인한 봄’

이준석 2018. 04. 26
조회수 757 추천수 0
 
소쩍새, 수리부엉이, 삵, 고라니…여름 전쟁터 앞둔 폭풍 전야
충돌, 둥지 파괴, 납치 등 어린 생명의 고통과 죽음 몰려들어
 
r2.JPG» 4월은 야생동물에게도 잔인한 철이다. 번식기여서 새끼가 늘어나고 구조되는 개체도 많고 짧은 생을 마감하는 동물도 많다. ‘솥 적다’고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채 건물에 충돌해 죽은 어린 소쩍새.
 
꽃샘추위가 지나고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려 푸릇한 요즘 새들은 저마다 둥지를 짓느라 분주하고, 여름 철새는 하나둘 돌아와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4월은 여름이라는 폭풍의 전야로 구조센터는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름은 야생동물의 번식기여서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만큼 많은 동물이 구조되고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어린 동물 또한 넘쳐나 구조센터로서는 정신없는 폭풍 같은 시기이다. 
 
4월 중순인 지금 멧비둘기와 수리부엉이 새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벌써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많은 동물이 밀려들 것이다.
 
r5.JPG» 어린 수리부엉이가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벌써 시작됐다.
 
생태계의 시간은 여간해서 크게 뒤틀리지 않는데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아닌 구조센터에서도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3월 말 가장 먼저 번식을 시작하는 수리부엉이와 연 2~3회 번식하는 어린 멧비둘기가 구조되면서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r15-1.jpg»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돌아간 어린 멧비둘기.
 
그 뒤를 이어 4월이면 까치와 올빼미 등의 새끼와 번식을 위해 돌아온 제비, 소쩍새, 솔부엉이 등의 여름 철새가 구조된다. 포유류 중에선 어린 삵이 가장 먼저 구조 혹은 납치되기 시작한다. 
 
5월이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다. 위에 언급한 동물들과 함께 더 많은 어린 새가 구조되는데 참새목에 속한 참새, 박새, 딱새 등의 유조는 한두 마리가 아닌 둥지째 구조되고, 흰뺨검둥오리, 원앙의 유조도 수 십 마리가 한 번에 구조되기도 한다. 포유류는 삵과 함께 너구리가 구조되기 시작한다. 
 
r7.JPG» 구조된 원앙 새끼들.
 
6월은 여름의 절정으로 여름 철새의 유조와 어린 고라니, 수달까지 구조되며 일 년 중 가장 많은 동물이 구조되는 시기다. 작년의 경우, 6월 한 달 동안 구조된 야생동물은 277마리이며, 4월부터 8월까지 700여 마리가 구조됐다. 다친 야생동물의 수만 봐도 여름이 폭풍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숫자로는 이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여름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생태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생태계의 시간에 발맞추는 야생동물의 삶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700여 마리의 동물이 구조됐는데, 숫자 하나마다 한 마리의 삶과 고통이 녹아있다. 그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단순히 700이라는 숫자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r6-1.jpg» 구조된 꺼병이(꿩 새끼).
 
최근 구조된 수리부엉이 유조는 차량과 충돌하면서 양쪽 날개가 모두 부러져 안락사시켜야 했고, 건물에 충돌한 소쩍새는 폐사했다. 이 시기에 구조되는 암컷 고라니는 태아를 지닌 상태로 숨이 끊어진다. 벌써 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곧 어린 포유류들이 납치당해 어미와 생이별할 것이다. 둥지 밖으로 나서보지도 못한 어린 새들은 나무가 베어져 둥지째로 추락하거나, 인간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둥지가 허물어지고 길바닥에 버려진 채 구조될 것이다. 죽은 어미 곁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어린 오리들이 구조될 것이며, 먼 길을 날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고를 당한 여름 철새들이 구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처절한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r-1-2.jpg» 차량 충돌로 다리가 골절돼 수술을 기다리는 고라니, 엑스선 사진에서 3마리의 태아를 볼 수 있다.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빛을 잃는 동물이 많다. 늘 죽음을 곁에 두는 곳이기에 익숙할 법도 하지만, 갑작스레 닥쳐오는 수백 마리의 죽음과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린 생명의 죽음, 잠깐의 방심과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생명을 보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의구심과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폭풍을 만나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다.
 
r11-1.jpg» 하나둘 떠나는 어린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순탄치 못한 야생동물의 삶은 인간으로 인해 더욱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짧지만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야생의 삶을 보노라면 별것 아닌 작은 행동에도 감동을 하게 된다. 그들이 그러한 삶을 잃고 모든 걸 체념한 눈을 할 때, 우리 손으로 그 삶을 다시 한 번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고 나선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올여름도 그들과 삶과 죽음을 함께할 것이다. 한 생명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름을 보내야겠다.
 
글·사진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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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등록 :2018-04-26 19:46수정 :2018-04-27 01:08

 

 

문 대통령도 흥남철수 피란민 출신
2004년 어머니·이모 상봉 직접 지켜봐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김치 넘버 1’ 손양영씨
5살 딸·9살 아들 두고 배에 오른 부모
그 이름 부르고 또 부르다 세상 떠나
“북한의 형·누나 만나 한 풀었으면”

 

‘김치 넘버 5’ 이경필씨
아버지 전쟁없이 살고 싶단 말씀에
가축병원 문 열며 ‘평화가축병원’ 간판
“부모 고향에 갈 날 하루빨리 오기를”

 

 

 

“죽기 전에 함경도에 있는 부모님 고향 땅을 밟고 북한에 남겨진 형 누나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북한과 왕래하며 사는 게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모두의 소망일 겁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25일, 성탄절을 맞은 경남 거제 장승포항에는 이틀 전 피란민 1만4천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난 미국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다. 혼란스러운 전쟁통이었지만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 배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고, 미국인들은 아이들에게 ‘김치 파이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배에서 첫 번째, 다섯 번째로 태어난 실향민 손양영(68)·이경필(68)씨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겨울올림픽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이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정상회담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이들이 태어난 빅토리호를 함께 타고 장승포항에 내린 피란민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낼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가 여동생을 만나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다섯 아기 중 첫 번째로 태어나 ‘김치 넘버 원’으로 불린 손씨도 “북한에 두고 온 형과 누나를 꼭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한을 풀고 싶다”고 소망했다. 흥남철수 당시 손씨의 부모에게는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이 있었다. 손씨는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다. 만삭인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함께 피란길에 오르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손씨의 형과 누나에게 “큰삼촌과 며칠만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빅토리호에 올랐다. 금방 전쟁이 끝나 자녀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손씨의 부모는 60년 동안 북에 두고 온 자녀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웠던 손씨의 부모는 생전에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를 때 항상 ‘영옥아’라고 하셨어요. 북한에 두고 온 누나 이름이 손영옥입니다.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는 제 아내한테 ‘영옥아, 영옥아’ 하셨고요.”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손씨의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어머니는 ‘곧 고향에 가서 자식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어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네요.”

 

지난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던 손씨는 ‘평화’를 구체적인 공기로 느꼈다고 한다. “김여정과 김영남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했어요. ‘곧 형과 누나를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빅토리호에서 막내로 태어난 ‘김치 넘버 파이브’ 이씨도 남북정상회담으로 불어온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반갑기만 하다고 했다. 이제 ‘수의사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이씨는 1975년 처음 문을 연 동물병원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동물병원 이름에 ‘평화’를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다른 가족들도 자영업을 했는데 ‘평화사진관’, ‘평화상회’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그의 아버지는 10여년 전 세상을 뜨면서 “묘비에 함경남도 흥남시 고향 주소를 적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후손 중 누군가가 대신 고향 땅을 밟아줬으면 하고 바라셨어요. 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차분하고 온화한 그의 말투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2269.html?_fr=mt1#csidx49a1978852ef6619258ca610e3b01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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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 철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4/27 06:30
  • 수정일
    2018/04/27 06: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연재] 오인동의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조국’ ⑪
 
오인동  | 등록:2018-04-26 10:28:25 | 최종:2018-04-26 11:07: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인동 /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이자 통일운동가

<차례>

1. 한 나라로 함께 사는 세상 
2. 연합방 경제체제 청사진 
3. 민족사 최고의 부강번영 
4. 서둘러야 할 연합방체제 
5. 미국: 평화협정 거부, 북: 핵개발 
6. 북핵은 겨레의 핵으로 

7. 다시 열어야 할 6.15시대 
8. 남북연합방 평화체제 먼저 
9. 겨레의 핵을 어쩔 것인가? 
10. 북남 겨레핵의 비확산 선언 
11.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철수 
12. 풍요 자유 평등 자주 통일조국

 

11.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 철수

2013년에도 인공고/무릎관절 수술하려 평양에 갔다. 출간한 책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 연합방>도 가지고 갔다.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들과 수술을 하고 난 오후, 책을 받아본 양철식 6.15선언실천 북측부위원장과 만났다. 척하거나 체하지 않고 말 수가 적은 북 고위관료들과의 대화는 재외동포에 연상인 내가 주로 이끌게 된다.

다른 날 저녁엔 초대소에서 해외동포위원회 맹경일 부위원장과 ‘연합방-연방’기에 북핵을 남북이 ‘겨레의 핵’으로 품어 안아야 할 데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서로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열흘 뒤 서울로 가서 10일 동안 대학과 시민단체들에서 통일 강연을 했다. '연합방 경제체제의 실행과 연합방 평화체제’ 합의에 대한 공감은 컸다.

2014 년 4월에는 3주 동안 6·15 남측위원회 지역본부 안영욱 위원장과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20차례 전국순회강연도 했다. ‘북핵=겨레핵의 비확산’을 합의/선언한 뒤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을 철수해 통일로 가자는 제언에 대한 놀라움과 공감은 대단했다. 2017년 8월, 서울에서 임동원, 백낙청, 정세현, 문정인 교수와 만나고 평양에 다녀왔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북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보며 먼저 미국의 기를 꺾어 놓고 보려는 듯했다.
   
2017년 말 북은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며 미국과 균형을 이뤘다고 했다. 미국에 맞대결하는 북에 놀란 남의 종미세력은 적화통일의 위기라고 선동하고, 남 정부는 킬체인, 미사일방어, 대량 보복체계를 서두른다는데 모두 효용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때 만난 듯 남에 무기 장사를 하니 남에겐 외화 낭비일 뿐이고. 핵 없는 남에 재래식 무기가 무슨 효력이 있으며, 전작권도 없는 남은 자신의 뜻대로 쏠 수도 없지 않나?

트럼프가 북을 전멸시키겠다니 그나마 문재인은 조국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압박(?)과 대화로 통일을 이루겠다며 미국 따라 북 지도자 참수 부대 창설도 한다니 이건 또 무슨 망발인가? 수구세력을 달래기 위해선가? 북이야 남 대통령 참수 작전 같은 얘기는 하지도 않을 텐데 부끄럽지도 않나? 트럼프가 남 국회에서 온갖 대북 욕설을 퍼붓는데 박수치는 의원들의 모습을 미국에서 보자니 한심하고 가여웠다.   
    
1900년대 후반 미국은 조국반도와 베트남 전쟁에서 각기 수만 명, 2000년대 이라크, 아프간, 중동에서는 각기 수천 명 미군 전사자를 냈다. 반면 상대국들의 수백 만 등 총 2천만 명이 살상된 것은 미국의 반인륜 인권유린 만행이었다. 현세 핵국가들 사이의 전쟁의 결말은 즉각적이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교전 상대방은 승리와 패배의 예상이 아니라 핵전쟁 뒤 인간적/물질적/ 도덕적 손실과 이득에 대해 심각한 고려를 할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핵선제 공격으로 평양이, 북의 반격으로 워싱턴이나 뉴욕이 당했다면 누가 이겼을까? 수 백 만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됐는데 승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핵국 사이의 핵전쟁은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핵국 북과 재래식 무력의 남 사이의 전쟁은 일어날 수도 없으나 남북대결의 악화로 우발적 이거나 전략/전술 차원에서의 국지전은 일어날 수도 있다. 혹시 조국강토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양극화가 극심해져 재부가 세습된다는 남의 5포, 7포 청년세대 중 전장에 나가 싸우겠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한 수구계 국제관계학자의 강연에서 10-20% 라는 얘기를 들으니 금수저/흙수저 얘기가 헛소리가 아닌가 보다.

한편, 2015년 8월 휴전선 지뢰폭발사건으로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자 남에서는 90여 병사가 애국심에 전역 연기 신청을 했다고 종미반북 언론들이 자랑스럽게 보도했다. 다른 한편 선군절을 맞았던 집단주의 북에서는 1백만 청년이 자진입대 청원을 했고, 2017년 여름 북미대결 때는 370만 명의 재입대와 신규입대 청원이 있었다고 한다.

남과 북의 이런 모습을 밖에서 보는 재외동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또 북은 ‘평화’, ‘통일’ 쪽지를 매단 방사포 공포탄 한 발씩을 인천공항 활주로와 여의도광장에 착지만 시켜도 공항폐쇄와 더불어 수도권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을 시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남북 ‘연합방 평화체제’가 합의되면 주한미군은 철수시켜야 한다 했지만 북의 핵/미사일 무력의 완성으로 합의된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미군철수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이다. 미군이 철수해도 북은 남침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전쟁 같은 짓을 이제 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매해 대북 핵전쟁 연습으로 남녘 주민들의 전쟁위기 의식을 자극하며 반북정서를 북돋고 통일 의지를 약화시켜 왔다.

그러니 통일해야 미군철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철수해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일찍이 LA Times 논평가 플레이트(T. Plate) 교수와 전 주한미국 대사 레이니(J. Laney)조차 ‘미군이 철수해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남의 정치인과 국방관료들 중에 미군철수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종미반북 수구세력들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평통사’를 북의 지령에 따르는 ‘빨갱이’라고 몰아친다. 북보다 여러 배의 국방비를 쓰는 남 정부나 군사전문가들이 국민을 확신시키지도 못했기에 주한미군 없이는 북 인민군에 패배한다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남의 국방비 40여조원은 북의 총생산액(GDP)보다 높고 남의 GDP는 북의 40배라는 데도 북을 포용하지도 못했다. 기득권 세력은 어제까지도 북의 붕괴/흡수통일을 말했는데 북미 핵대결 상황을 보며 패망한 남베트남의 부패한 종미세력들처럼 탈남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남은 북핵이 없었던 지난 50여 년에도 지금도 북에 맞서지 못하고 미군 뒤에만 선다. 마치 남녘에서 인기 있다는 노래 “애모”의 가사처럼 국군은 “…인민군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미군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와 같은 모습 같다.
    
그런데 남에서는 현역/퇴역 장성들과 국방관료들 중 전작권을 전환해야 한다는 소리도 없다. 전작권 전환이나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중의 시위에는 퇴역군인 장성들까지 성조기를 들고 반대시위하려 광장에 몰려나온다. 이에 더해 2006년 이래 10년에 36조 원 이상의 미국무기를 사들인 남이 정보/정찰 능력이 모자라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국과 같은 군사력을 갖췄단 말인가? 그 세계 나라들 중 하나도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맡기지 않았다. 미국이 독립국의 군사주권을 돌려주지 않겠다고는 못할 테니 남은 전작권을 전환하고 ‘북의 불가침보장’에 화답해 ‘연합방 평화체제’를 합의/선언하자. 미국이 거부한다 해도 주권국가의 ‘배타적 고유권리’인 군사주권은 남이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행사해도 된다.
   
북의 역량이 지금 같지 않았던 1992년 김용순(북)/캔터(미)회담, 2000년 김대중/김정일 대화, 김정일/올브라이트 대담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의 역할이 달라지면 통일 뒤에도 계속 주둔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을 구실로 삼는 핑계는 지난날의 얘기로 끝나야 한다.

트럼프가 현재 ‘73% 부담인 남의 방위비 분담금을 200%로 인상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단다. 미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고마워하는 남의 종미세력은 미국의 국방비 감축도 도와드릴 겸 미군을 고향으로 보내드려 절약되는 군사비를 사회복지에 쓰면 어떨까? 그리하여 민족사에 중국, 일본, 미국군대가 차례대로 조국에 주둔해 겨레가 피해와 수모를 겪어온 쓰라린 과거와 현재를 말끔히 청산하자!

‘연합방 평화체제’선언 뒤 겨레핵의 비확산을 선언하면 남북은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미군을 철수시켜 남으로 하여금 미군기지 신세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 뒤 남북은 세계비핵화를 위해 1996년 유엔에서 채택한 포괄적핵시험금지조약(CTBT)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 조약에 183국이 서명하고, 166국이 비준했으나 핵개발능력을 보유한 44개 발효 요건국들 중 영국, 프랑스 등 36국이 비준했는데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 이란, 이집트 8국의 거부로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후발 핵국 ‘남북’은 이 조약을 비준하고 미비준국들을 선도해 세계비핵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국의 남에 묻는다. 남이 북의 숙적 미국과 한패가 되어 어떻게 북과 통일할 수 있나? 미국과 북 중 누가 ‘우리’고 누가 ‘남’인가? 북에 묻는다. 외세배격/민족자주를 주장하는 북은 북남 평화체제부터 합의해서 겨레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연방’의 길로 남과 함께 가야한다. 
     
2016년 북의 5차 핵시험 뒤 뉴욕타임스는 “북은 비이성적인가? 아니면 미친 척 했나?”라는 기사에서, “천만에, 매우 합리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북은 남과 미국에 한 발짝 씩 물러서야 할 부담을 떠넘겼다”고 했다. 이번엔 미국의 뜻대로가 아니라 우리겨레의 뜻대로 해보자.

6.15 선언의 합의사항들을 10년 동안 이행해냈던 남북이었다. 이것이 오로지 남북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민족공조의 원칙이고, 또한 이것은 다른 그 어떤 대안도 없는 현실적 상식이다.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이 있었고 북미회담 전에 북러회담도 있음 직하다. 급변하는 이런 현상을 보며 남에선 그것이 북에 유리하다느니, 남에 불리하다느니 또는 그 반대라느니 하는 얘기들이 한창이다. 남북이 한 마음이면 북에 유리하면 남에도, 남에 불리하면 북에도 불리하다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 통일하겠다면 어떻게 남에, 북에 하며 따로 생각하나? 남북은 우리이고 주변국은 모두 남이다. 모든 일은 ‘우리 민족끼리 먼저’라는 원칙에서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회담은 북미
간이 아니라 남북/북남간이 먼저란 인식으로 더 자주 만나 주변국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민족차원에서 진솔하게 논의/실행해야 한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남이 해야 할 일은 제1장에서 말한 6.15시대를 다시 열어가기 위해 남북 ‘연합방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남은 남북교역 중단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환원과 개성공단 운영재개를 합의하자. 이는 모두 민족 내부의 일이니 유엔제재에 구속되지 말자. 더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산가족상봉이다. 그리고 10.4선언의 합의사항들과 북의 경제발전전략사업들을 총화해서 ‘연합방 경제체제’ 운영을 실행해갈 방안들에 대해 합의하기 바란다.

남 정부는 비핵화가 최우선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남은 이에 대해 먼저 나설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지난 세월 늘 북핵 문제는 북이 미국과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해온 남녘 논객들의 주장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이 성취하려는 바를 남은 먼저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핵을 남이 북과 함께 한마음으로 대처해 나갈 데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반대로 남이 미국의 북핵 폐기 주장에 함께 하려면 차라리 북 혼자 미국과 담판하게 맡겨두고 연합방체제 합의에 주력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

그런데 4월 21일 북은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중지”와  “핵시험장도 폐기할 것”이라며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과정으로 국제적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성명으로 북은 핵보유국임을 선포한 것이며 앞으로 핵국가들과 함께 세계비핵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의 이 선언은 앞에 제언해온 ‘겨레핵의 비확산과 세계비핵화’와 상통한다는 생각이다. 70여 년 분단의 멍에를 벗어제끼고 남북은 어떤 이상의 통일조국으로 가야할 지 제12장에서 얘기해 보자.

오인동 (Indong Oh) 약력 

   
 

인공관절수술전공의사(은퇴),6.15해외측미국위공동위원장
하버드의대(MGH)교수,미국고관절학회:J.Charnley, F.Stinchfield상
인공고관절기/기구고안 (HD-2, Spectron, Biofit, Tifit System등) 
인공고관절논문:70여편,수술법저서:14권, 미국발명특허:11 종

RoKorea - 윤동주민족상 - 윤동주사상선양회 - 2013
DPRKorea - 명예의학박사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2012
RoKorea- 한겨레통일문화상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2011

<밖에서그려보는통일의꿈> - 남북연합방, 다트앤, 서울, 2013
<평양에두고온수술가방> - 의사오인동의북한방문기, 창비, 서울,2010
<통일의날이참다운광복의날이다> - 밖에서본한반도, 솔문, 서울,2010
<Corea ,Korea>- 서양인이부른우리나라국호의역사, 책과함께,서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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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남북 정상회담]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소설가 박민규

입력 : 2018.04.26 22:02:00 수정 : 2018.04.27 00:01:49

 

 

ㆍ27일, 남북 정상 11년 만의 동행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저 날씨나 좋았으면 좋겠다. 화창하고 눈부신 날이면 고맙겠지만 아니어도 나는 족하다. 겨우 근근이 봄이구나, 싶은 하늘이면 또 어떠한가. 설사 날이 궂더라도 오는 이의 표정을, 또 맞이하는 이의 기다림을 서로가 알아볼 정도라면 나는 좋겠다. 오래전부터 당신은 손님이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이산가족인 나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1974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당시 조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의 얼굴에 서린 당신의 이름을 나는 또박또박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글씨를 못 읽는 꼬마였고 조부는 남하한 함경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합이란 이유만으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끝내 오지 않는 손님이었다.

이제 당신이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오늘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겠지만, 거기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지난 세기의 염원이고 이름이다. 어서어서 당신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대부분 눈을 감았고, 어서 당신이 오기를 재촉했던 이들도 미련을 접은 지 벌써 오래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 세대들이 이미 자랐고, 그들에게 당신은 딱히 간절하거나 그리운 이름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없이도 그런대로 살아왔다. 당신이 머물러 있을 그 길가에 희망이란 이름의 꽃들이 아직 피었나 모르겠지만, 풀 한 포기 없는 길이라도 누굴 원망할 처지가 아님을 우선 나부터가 잘 알고 있다. 불쑥, 어서 올 생각 아예 말아라. 어서어서 서두르다 넘어지지 말고 그러니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라. 어떠한 부담과 희망… 원망 없이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남북 정상회담]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우선은 그저 서로의 ‘실익’을 얘기하자. 하나의 겨레였느니 그딴 소리 접어두고 이익과 생존을 목표로 한 ‘각자’와 ‘각자’로 서로를 존중하자.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너는 너를 위하고 끝까지 나는 나를 위하자.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나를 위한 일이 너를 위한 일이었음을, 그래서 너가 나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각성하자. 그토록 서로가 떠들던 통일이란 말이 그래서 지난 세기의 철지난 단어임을 자각하자. 한바탕 굿판처럼 돌아갈 카메라들, 침 발린 소리들도 이내 바로 잊어버리자. 분단이 만든 괴물들이 여전히 서로의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자각하고, 분단을 부추긴 괴물들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잊지 말자. 그러니 살자, 같이 살자. 그리고 같이 걸어가자. 동행하자. 역사라는 수레를 끄는 두 개의 바퀴처럼, 나란히 동행하자. 그래서 나는 그저 날씨나 좋았으면 좋겠다. 허튼 이념 허튼 소리 오지도 않을 손님 더 이상 떠들지 않고 실익과 생존을 위해 남북이 동행하는 첫날이 오늘이기 때문이다. 껴안지 않아도 좋고 손잡지 않아도 나는 족하다. 그저 동행하기 좋은 봄날이라 그게 기쁘고, 나란히 이어질 두 개의 궤적을 따라 비로소 누군가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여 그저 걸어가자. 동행하자. 통일은 염원이나 소원이 아니라 다만 우리의 족적이고, 동행하는 우리의 기나긴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기다리지 않고 우리는 간다, 가겠다. 그러니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그저 봄날일 뿐이고 동행할 뿐인데 근근이 봄이구나, 싶은 이 하늘에도 왜 이리 족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나란히 걷는 이 봄길이 왜 이리 부시고 아름다운지도 나는 모르겠다. 동행(同行)이 곧 통일이다. 걷고, 또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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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남북정상회담 지지, 신자들과 특별기도

교황, 남북정상회담 지지, 신자들과 특별기도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4/26 [10: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며 격려의 메세지와 함께, 신자들과 함께 특별한 기도를 드렸다.[사진출처-정상회담준비위홈페이지]     ©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와 격려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수천 명의 신자들과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4월27일 남북한의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다.”고 말하고, “이 만남은 화해의 구체적 여정과 형제애의 회복을 이끌어낼 상서로운 기회가 될 것이며, 마침내 한반도와 전 세계에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며 기대를 표현했다.

 

교황은 이어 “평화를 열렬히 갈망하는 한민족에게 개인적인 기도와 아울러 온 교회가 여러분들 곁에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교황청은 사람들 간의 만남과 우정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유용하고 진지한 노력을 지지하고 격려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남북의 지도자들에게, “평화의 ‘장인’으로 역할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기를 기원한다”며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 내디딘 발걸음을 믿음을 가지고 걸어 나가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황은 남북정상회담 지지 격려 메시지에 이어,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고 평화의 아버지이므로,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남과 북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위해 기도를 바칩시다.”며 원고 없이 한민족을 위해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하였으며,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수 천 명은 일제히 ‘주님의 기도’를 암송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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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3채 마을에서 시작된 정전... '평화'로 마무리짓길

[박도 칼럼] 정전회담 당시 판문점 사진 공개... 4.27 이후 평화의 상징 되길

18.04.26 10:40l최종 업데이트 18.04.26 10:40l

 

 초기 판문점 정전회담장. 문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담을 마친 대표들은 헬기로, 기자단과 회담 준비요원들은 버스를 이용해 문산이나 서울로 철수했다. 원래 이곳은 초가집 세 채와 주점이 있었던 자그마한 마을로 애초 널문리였다.
▲  초기 판문점 정전회담장. 문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담을 마친 대표들은 헬기로, 기자단과 회담 준비요원들은 버스를 이용해 문산이나 서울로 철수했다. 원래 이곳은 초가집 세 채와 주점이 있었던 자그마한 마을로 애초 널문리였다.
ⓒ 조지 풀러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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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은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날이다. 부디 회담의 성공으로 '4.27'이 역사에 길이 기록될 평화의 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사를 쓴다. - 기자 말

정전회담 '소사'(小史)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처음에는 북에서 남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는 남에서 북으로 해일처럼 한반도를 덮쳤다. 하지만 1950년 초겨울부터 중국군이 참전한 이후 유엔군의 1951년 1.4 후퇴로 양측은 38선 일대에서 교착했다. 

유엔군과 공산군 양 측이 38선을 사이 두고 지루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피차 개전 초기와 같은 전선의 급격한 변동은 없었다. 그 무렵 전선은 서로 상대의 샅바를 거머쥔 채 상대방 허점만 노리며 씩씩거리는 씨름꾼의 형세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1951년 6월부터 유엔군과 공산군, 양 측은 그제야 비로소 단시일 내 상대편을 군사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런 데다가 전선도 장기간 북위 38도선 일대에서 교착되자 국제 외교가에서는 정전 논의가 슬그머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당시 미국인들의 전쟁 지지도는 65%였으나, 1951년 2월에는 39%로 떨어졌다. 게다가 대통령 트루먼의 지지도마저도 전쟁 초기 43%에서 1951년 5월에는 24%로 곤두박질쳤다. 

그러자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1951년 6월 초, 당시 유엔주재 소련 대사 야곱 말리크와 비밀리에 접촉해 정전협상을 제의키로 했다. 미소간 비밀 접촉 끝에 사전 조율한 각본대로 주유엔 소련대사 말리크가 신호탄을 쐈다. 그는 유엔방송을 통해 '평화의 가치'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련 인민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종용하고, 교전국 간의 정전협상 토의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 한 마디는 미국으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체면상 먼저 '정전'이라는 말을 차마 먼저 꺼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대외적으로 소련 측에서 이를 먼저 제의하자 미국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본심을 숨긴 채 몽니를 부렸다, 그런 뒤 겉으로는 말리크 소련대사의 체면을 살려주는 척, 의뭉스럽게 슬그머니 정전협상 테이블에 나갔다. 

개성에서 최초 정전회담이 열리다

국제 여론 역시 대체로 조속한 종전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리크 소련대사의 연설이 있은 지 얼마 뒤인 1951년 6월 29일 유엔군 총사령관 리지웨이는 원산 앞바다에 정박 중인 덴마크 병원선에서 정전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공산군 측이 개성에서 회담하자고 제의했고, 이에 따라 1951년 7월 10일, 개성 봉래장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이 최초의 정전회담을 열었다. 

이에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은 완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전국에서는 연일 휴전반대 관제 데모가 일어났다. '통일 없는 휴전은 있을 수 없다'며 학생들까지 나섰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개성에서 정전회담이 열리자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은 본회담 시작 17일 만에 5개 항의 의제와 의사일정에 전격 합의했다. 

한 서방 기자는 한국전쟁 정전회담 취재 차 3주간의 출장 명령을 받고 한국에 왔다. 그만큼 서방 대부분 나라는 한국전쟁의 정전회담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막상 정전회담에 참석한 양측은 서로 전장(戰場)은 아니더라도, 정전협상 테이블에서만은 이기고 싶었다. 
 

  1951. 7. 개성 봉래장으로 초기의 정전회담장이었다.
▲  1951. 7. 개성 봉래장으로 초기의 정전회담장이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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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은 그들이 깔보던 북한과 중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것 자체에서 치욕을 느꼈다. 그래서 미국은 그들의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정전회담에서 상대방에게 줄곧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들은 상대에게 최대의 피해를 주면서 정전회담을 우아하게 끝내고 싶었다. 

한편, 중국도 이참에 국제 사회에 '종이 호랑이'로 실추된 자존심을 살리고자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즐기면서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전회담장에서 미국과 대등하게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서방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慢慢的)를 즐기는 모양새였다. 

정전회담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회담이 아니라, 교전국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또 하나의 치열한 전쟁터가 됐다. 그래서 한국전쟁 정전회담은 그 어느 전쟁 강화회담보다 매우 지루하고도 잔인하게 그리고 장기간 계속됐다. 

정전회담장에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특히 포로 송환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양측은 서로 상대를 압박하고자 무력 공세도 서슴지 않았다. 유엔군은 폭격기로 북한의 수풍·장진댐을 비롯한 수력발전소를 폭격했고, 그밖에 군수공장에도 폭탄을 쏟아부었다. 공산군도 이에 맞서 지상공세를 강화했다. 정전회담 기간 중 전선에선 포로로 잡힌 병사보다 훨씬 더 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 
 

 1951. 11. 10. 원래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던 판문점 정전회담장.
▲  1951. 11. 10. 원래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던 판문점 정전회담장.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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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
▲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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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새로운 정전회담장이 되다

1951년 8월 공산군 측은 정전회담이 열리고 있는 개성 일대에 대한 유엔군의 야간 폭격에 격분해 정전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그러자 1951년 9월 6일, 유엔군 측 리지웨이 사령관은 이를 타개하고자 회담장소를 바꾸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공산군 측은 1951년 10월 7일, "회담장소를 개성 동남쪽, 송현리 서북쪽에 있는 널문리로 정하자"라고 회답했고 유엔군은 이에 동의했다. 

이로써 정전회담장은 개성에서 널문리로 옮겨졌다(해방 이전 행정구역상 주소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 당시 널문리는 초가집 세 채와 주점 한 곳이 있었을 뿐이었다. 유엔군은 작은 마을 앞 콩밭에 회담장을 지었다. 유엔군, 중국군, 조선인민군이 당사자로 참여하는 이 정전회담의 회담장은 영어, 중국어, 한글로 표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널문리'라는 지명은 중국어로 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의논한 결과 널문리에서 널문, 곧 '판문(板門)', 주점(酒店)에서 점(店)을 떼어낸 뒤 '판문점(板門店)'으로 작명했다. 이리하여 영어 표기는 'Panmunjom' 중국어로는 '板門店' 한글로는 '판문점'으로 확정했다. 
 

 1952. 9. 18. 하늘에서 내려다본 판문점 정전회담장 전경(가운데 회담장, 오른쪽 북측 사무실, 왼쪽 유엔군 측 사무실과 기자실).
▲  1952. 9. 18. 하늘에서 내려다본 판문점 정전회담장 전경(가운데 회담장, 오른쪽 북측 사무실, 왼쪽 유엔군 측 사무실과 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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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측 대표들은 회담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히 정전회담장에서 지루한 입씨름만 벌였다. 그런 가운데 전쟁 당사국들에게 정전회담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하는 사정이 발생했다. 

미국에선 1952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아이젠하워가 당선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국인들은 장진호 전투와 1.4후퇴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터라, 아이젠하워의 대선 종전 공약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출범하지마자 한국전쟁을 끝내고자 적극 노력했다. 아이젠하워는 취임 전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 전선을 조용히 시찰하기도 했다. 

그런 데다가 소련에선 1953년 3월에 스탈린 수상이 사망했다. 스탈린의 사망은 미국에 대한 소련의 냉전 기류를 완화시켰다. 중국 역시 내전을 마친 지 1년 만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라 피폐한 국내 사정이 있었다. 한국전쟁을 마냥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없었다. 
 

 1953. 4. 9. 유엔군 측 경비장교와 북한 측 경비 장교 간의 설전으로 정전협정 이후에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  1953. 4. 9. 유엔군 측 경비장교와 북한 측 경비 장교 간의 설전으로 정전협정 이후에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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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이었다,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5월, 공산군 측은 유엔군 측의 주장을 반영한 포로교환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 수정안에는 '송환을 원치 않는 포로는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에 넘겨 처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수정 포로교환 협정이 체결됨으로서 비로소 정전회담의 최대 난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보였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동쪽 입구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장군과 실무자가 판문점 정전회담장으로 입장했고, 그와 동시에 서쪽 입구에서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과 실무자가 들어와 판문점 정전회담장에 착석했다. 양측 대표는 서로 목례도, 악수도 없는 시종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측 대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본 9통, 부본 9통의 정전협정문에 부지런히 서명했다. 

양측 대표가 서명을 마치자 양측 선임 참모장교가 그것을 상대편에 건넸다. 그런 뒤 그들은 정전협정서를 교환하고 아무런 인사도 없이 곧장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그때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이었다. 이날 정전협정 조인식은 회담장 분위기조차 글자 그대로 '정전'이었지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소련이 정전협정을 제의한 지 25개월 만에, 모두 765차례 회담 끝에 이뤄졌다.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그제야 정전협정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155마일 휴전선에 비로소 총성이 멎었다. 
 

 1953. 7. 25. 판문점, 정전회담 본회의장
▲  1953. 7. 25. 판문점, 정전회담 본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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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4. 11. 유엔군 측 대표 다니엘 제독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  1953. 4. 11. 유엔군 측 대표 다니엘 제독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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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6. 8. 정전회담장을 나오는 북한군 측 남일과 이상조 대표.
▲  1953. 6. 8. 정전회담장을 나오는 북한군 측 남일과 이상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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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를

유엔군과 공산군은 이후 정전협정 기구들의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회의장 건물과 마당을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설정했다. 공동경비구역 북쪽에 있는 '판문각'은 1964년에 지은 육각정을 헐고 1969년 9월에 신축한 뒤 1994년에 증축한 3층 석조 건물로 북한 대표부가 쓰고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집'은 1989년 12월에 준공한 3층 석조 건물로 남측 대표부가 쓰고 있다. 이번에 이곳이 역사적인 4. 27. 남북정상회담장이 된다. 

사람 팔자도 알 수 없듯이, 땅 팔자도 알 수 없다. 전쟁 전 개성 동남쪽 송현리 서북쪽에 초가 세 채의 자그마한 널문리 마을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한 정전회담장으로, 그동안 양 진영의 첨예한 대립 장소로 65년의 명맥을 이어왔다. 

이번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의 8000만 겨레는 한결같이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분단'과 '대립'의 상징에서 '화해'와 '평화'의 상징 땅으로 도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이러한 8000만 겨레의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 아무쪼록 화해와 평화의 큰 발자취를 남겨주시길 기원한다. 그리하여 판문점은 우리 겨레 화해의 광장, 만남의 광장으로, 후일 '4.27 평화의 광장'으로 명명, 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쓰고자 다음의 도서를 참고했음. 1) 신광수 엮음 눈빛출판사 <끝나지 않은 전쟁> 2) 박태균 지음 책과함께 <한국전쟁> 3) 이태호 엮음 눈빛출판사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4)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 1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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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특집 완전분석: 자유한국당의 리비아식 해법이 헛소리인 이유1

 

 

 

[전제 1]

의식의 흐름 그대로 쓰려고 한다.

 

[전제 2]

5일 연속 술독에서 허우적거리다 쓰는 글이다.

 

[전제 3]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써달라는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의 ‘주문’이었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이미 주요의제에 대한 합의는 다 끝났을 테고, 핵심은 북미협상으로 가기 전 ‘중간점검’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민족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행사’이며, 어쩌면 70여 년 남북분단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이벤트일 수도 있다. 아니, 그게 맞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모의고사’라는 게 내 판단이다. ‘본고사’는 북미회담이다.

 

 

 

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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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모 방송사에 나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리비아식 해법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

 

란 발언을 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방송에 나와 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다. 홍준표 대표가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면, 협상의 가치가 없으며 북한의 ‘시간끌기용’ 회담이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폄훼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해의 범주 안이었다.

 

“북한은 그래왔으며”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으며”

“이제까지 보여준 자유한국당(전신인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의 발언과 행동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북한에게(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네 목을 따겠다.”

 

라고 선언한 것이다.

 

핵무기가 이 세상에 나온 지 70여 년, 수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이 중 성공한 나라는 안전보장 이사국 5개국과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보유했지만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타협’을 본 이스라엘만이 핵무기를 개발했고, 보유했다.

 

수 많은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만큼의 절망을 경험해야 했다. 이제까지의 역사 중 그나마 ‘덜’ 절망스러웠던 역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고수하던 남아공은 전 세계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외교적, 군사적으로 고립돼 있던 남아공은 자신들의 활로를 찾기 위해 핵이란 금단의 병기에 손을 댔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인정권’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마지막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반아파르트헤이트 헌법을 통과시킨 정치인. 이 사람 덕분에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 흑인정부가 별 무리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가교가 된 백인 정치인)는 1993년 3월 의회 연설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남아공은 핵무기 6개를 생산해 보유했으나 모두 폐기했고, 개발정보도 모두 파기했다.”

 

이 메시지를 내보내기 위해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1991년 11월부터 2년 반 동안 남아공의 모든 핵 관련 시설을 100여 차례 사찰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이때 남아공이 ‘왜’ 핵무기를 포기했는지 속으론 알고 있었지만, 겉으론 다른 말을 했다.

 

“남아공의 인류 평화와 아프리카의 안정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했다.”

 

개소리였다. 남아공이 핵무기를 폐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

 

“흑인들에게 핵무기를 건네줄 수 없다.”

 

남아공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친절하게’ IAEA의 사찰단을 맞이했다. 처음부터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와 양도,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의 철저한 파괴를 ‘기본방침’으로 내세운 정부였기에 IAEA의 사찰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남아공의 핵무기 개발 덕분에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남아공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실험할 때 이스라엘의 핵무기도 ‘덤’으로 터트려줬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전면적으로 핵무기 포기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찰에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였다. 하물며 의지도, 명분도, 국제정치적인 ‘여건’도 만들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전면적인 핵을 포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김성태 원내대표가 선언(?)한 리비아식 해법은 어땠을까?

 

1980년대 광풍 같은 테러의 물결이 스쳐 지나가고, 미국의 보복(리비아 공습)과 뒤이은 리비아의 보복(팬암 103편 폭파 사건) 등으로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달렸다. 이 둘의 국교단절은 1980년대 시작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미국은 1981년 리비아와 단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다는 건 자본주의 체제하에 편입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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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금까지 북한의 목에 걸려있는 각종 규제들 중 큰 것만 하나씩 살펴보면,

 

① 수출관리법: 인도적 물자와 홍보자료를 제외한 상업물자의 수출 전면 금지.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PC의 OS가 뭔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대부분 ‘윈도우’ 체제일 텐데,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MS 오피스나 윈도우를 쓸 수 없다. 이 때문에 김정일이 생전에,

 

“주체 조선의 컴퓨터 운영체제는 리눅스로 한다!”

 

라고 선언한 거다.

 

② 무역법: 최혜국 대우(MFN)와 특혜관세(GSP)부여 금지. 북한이 아무리 미국에 수출을 하고 싶어도 엄청난 관세를 두들겨 맞기 때문에 사실상 수출이 불가능하다.

 

③ 대적성국교역법: 대적성국교역법의 ‘외국자산 통제규정’에 의거, 북한과의 금융거래는 대부분 금지되어 있으며, 미국 은행 시스템을 통과하는 북한 자산은 동결된다.

 

④ 수출입은행법: 대북한 무역 시 수출입은행의 보증이나 지원 전면 금지. 수출은 물론 북한 물건을 수입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⑤ 대외원조법: 인도적 식량지원을 제외한 어떠한 원조도 제공불가. 이 법의 가장 무서운 조항은 다음인데,

 

“테러지원국을 원조하는 국가에 대한 원조금지”

 

항목이다. 즉, 북한을 지원하는 국가 또한 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없다. 국제적인 ‘왕따’를 만든 거다.

 

⑥ 국제금융기관법: 테러지원국에 대한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제공에 반대하도록 의무화. 이는 사실상의 북한에 대한 차관제공을 불가능하게 한다. 국제금융기관의 경우 출자금 액수에 비례하여 가중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차관반대 의사표명은 곧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차관제공 불가를 의미한다.

 

⑦ 국제안보 및 개발협력법: 테러지원국으로부터의 상품 및 용역 수입 금지

 

북한은 90년대 동구권의 붕괴 이후 전 세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돼 있었다. 전 세계는 지금 미국 주도 하의 WTO 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다. G2라고 ‘설레발’ 치는 중국도 미국의 WTO 체제 아래서 ‘달러’를 가지고 거래하며, 미국 채권을 산다. 이런 세상에서 경제발전과 생존이 가능할까? 이제까지 버틴 북한이 대단한 거였다.

 

...그렇다면 리비아는? 리비아의 경우는 북한보다 제재가 ‘덜’ 했다. 1986년 미국 내 리비아 자산의 동결, 미국의 대(對)리비아 교역 금지 조치가 이루어졌다. 1992년에는 UN 안보리 제재를 받았고, 원유 수출이 금지되면서부터는 하루하루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당시 리비아의 카다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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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을 하는 것만이 리비아와 내가 살 길이다.”

 

독재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유혹이다.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의 발언권의 차이, 국제사회의 위상. 사람들은 핵의 ‘폭발력’과 이후 벌어질 수많은 위해(방사능 낙진)를 걱정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핵무기는 발사하는 순간 위력이 사라진다. 즉, 핵은 ‘고도의 정치적 무기’란 말이다. 보유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 이게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다.

 

역사학자들이 핵무기를 두고 농담 삼아,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 딱 2번만 사용한 뒤 사용하지 않은, 그럼에도 계속 만들어지는 극히 드문 제조물”

 

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핵은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무기가 아니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만약 사용한다면? 사용한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핵무기는 정치적인 무기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이 이란 쪽으로 병력을 옮기자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당시 미국 주재 소련대사인 그로미코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란에서 48시간 이내에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은 원자탄을 사용할 것이다.”

 

소련은 24시간 안에 철수했다. 소련이 핵무기를 가졌을 때는 어땠을까? 2차 중동전은 영국과 프랑스에겐 다 이긴 전쟁이었다(이스라엘이 박살 낸 뒤에 영국과 프랑스가 뛰어든). 그러나 중동, 게다가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를 넘길 수 없었던 소련은 이집트 편을 들었고, 프랑스와 영국에게 핵 협박을 한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절치부심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데, 당시 프랑스는 무려 국방예산의 25%를 핵무기 개발에 쏟았다.

 

(미국은 월남전 때도 북베트남에 핵 협박을 했었다. 구정 대공세 당시 전황이 어렵다고 판단한 존슨 대통령이 핵 협박을 했고, 닉슨 대통령 역시 북베트남과의 종전협상 테이블에서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며 협박했다. 이렇게 미국은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에게 ‘핵 협박’을 일삼았는데, 이는 결과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 특히 독재자들에게 핵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핵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국과 동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하는 ‘절대병기’였으니까.)

 

카다피 역시 핵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 제재국면에서 리비아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핵’이었다. 그 역시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세계의 정치지형이 뒤바뀌게 된다.

 

『Never Forget』

 

미국은 보이는 게 없었다(이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 거 같다). 당시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영공개방을 거부했고, 미국은 아주 정중하게 파키스탄을 폭격할 거라고 말했다(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후원자였으나, 협박과 300억 불의 경제지원, 이스라엘과 인도를 끌어들였다는 ‘대외적 명분’을 이유로 영공을 개방한다).

 

상황이 어떠한지는 북한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었는데, 미국과 대척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눈 돌아갔다는 걸 직감하고, 즉각적으로 테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우리나라 외교부와 청와대, 국방부 등도 덩달아 긴장해서 대기했었는데, 북한이 911테러에 털끝만큼이라도 개입했다간 한반도가 사라질 기세였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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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를 장식한 건 이라크의 후세인이었다.

 

눈치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악에 받쳤던 건지 후세인은 911테러가 ‘신의 응징’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 결과는 2년 뒤에 전 세계인이 확인하게 된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에 발맞춰 카다피가 백기를 든다. MI6(영국 비밀 정보국)를 통해서 미국 측에 협상을 제안했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

 

눈 돌아간 미국에게 반기를 든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회담은 강경 일변도로 흘렀고, 2003년 4월부터 그해 11월까지 비밀협상이 진행됐다. 이때 리비아는 협상재료(?)로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공개했고, 이를 완전히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

 

2003년 12월부터 지난한 ‘사찰’과 ‘감시’이 시작되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건 물론, 2004년 1월부터 8월까지 IAEA의 고강도 사찰을 받았다. 핵무기 제조의 핵심장비라 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핵 무기 제조장비와 관련 서류 25톤이 미국 테네시즈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옮겨졌고,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종료된다. 2005년 10월에야 모든 게 끝났다.

 

리비아의 핵개발 계획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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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로부터 가져온 화학무기를 살펴보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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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흐리는가?

누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흐리는가?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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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6  03: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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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다가왔습니다. 이어 5월 말-6월 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예정돼 있습니다. 어떤 일의 성패 여부는 사전 분위기를 엿보면 대강 감지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미 3국에서 회담 성사와 성공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한창입니다.

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입니다. 북측은 남측 및 미국과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두 개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북한의 분위기 조성 노력이 주효했습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해 성공적 평화올림픽 개최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아울러 특사를 파견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판문점 남측 지역 개최 및 남측과의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 등을 수용하면서 회담 성사의 물꼬를 텄습니다. 미국에도 일찌감치 ‘비핵화’ 언질을 줌으로써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걸림돌을 제거했습니다.

특히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건설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경제발전 전략적 노선’으로 수정했으며, 동시에 핵무력건설 폐기 입장에 따라 ‘Δ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Δ북부 핵실험장 폐기 Δ핵무기, 핵기술 이전 않을 것’ 등을 선언함으로써, 두 개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에 열성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건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이후 전개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연일 쌍수를 들고 흥분과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동회견에서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세계적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20일 북한의 핵과 ICBM 시험발사 중지 선언에 “북한과 세계에 아주 좋은 뉴스이고 큰 진전!”이라고 반색하면서 “우리의 정상회담을 기대하라”고 장담했습니다.

또한 24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김정은은 정말로 매우 열려 있고 나는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일이 아주 명예롭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들떠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착 가라앉아 있는 편입니다. 문 대통령은 23일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자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면서 “북한이 핵 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의 길로 간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며 일반론을 펼치지만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남북.미 지도자들이 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위해 적공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망동도 나타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5일 “문재인 정권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제재위기로 붕괴위기에 처한 북한을 살려주려고 하는 것이고 속아선 안 된다”라고 비판한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행위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미국 주류의 분위기는 치밀한 것 같으면서도 가관입니다.

미국에서는 북한은 정권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무기 불포기론’, 북한의 핵무기는 단순히 체제 보장 목적이 아니기에 북미 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이뤄낼 가능성이 없다는 ‘비핵화 불가론’과 ‘정상회담 무용론’, 제대로 준비를 못한 회담일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에 연기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정상회담 연기론’ 그리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까지 대북 제재가 계속되어야 하고 단계별 비핵화 조치에 보상을 해선 안 된다는 ‘재뿌리기 형’ 등 다양하고 요란합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민족통일과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분수령이 될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들 회담의 성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판에 사전부터 분위기를 흐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들 비관론자와 회의론자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도를 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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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

조홍섭 2018. 04. 25
조회수 1618 추천수 0
 
질병 들끓는 열대서 면역체계 유지보다 번식기 온대 이동 유리
여름 철새, 온대 텃새와 비슷한 면역체계…힘든 번식기 부담 덜어
 
03952151_P_0.JPG» 대표적인 여름 철새인 제비는 왜 겨울을 난 동남아가 아닌 온대지역에 와 번식할까. 질병 회피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강재훈 기자
 
해마다 때가 되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장거리 이동을 감행한다. 누, 흰긴수염고래, 도요새, 연어, 제왕나비, 된장잠자리 등 포유류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동물이 지구 전체를 이동한다. 이 가운데 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생태 신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러기가 오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고 제비가 날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동물의 이동은 광범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이 무언지 딱 부러진 결론은 없는 상태이다. 먹이 부족을 피하거나 적절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것이 흔한 이유이지만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겨울 철새는 추위를 피해 찾아와 겨울을 난 뒤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름 철새는 왜 열대지역을 떠나 온대지역으로 오는 걸까. 떠나는 곳에 겨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러기가 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건 왜일까.
 
01313252_P_0_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JPG» 봄·가을 우리나라를 지나 대규모로 이동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무리. 김태형 기자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밀리 오코너 스웨덴 룬드대 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여름 철새는 질병을 피해 이동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의 조류 1311종의 계통 유전학 자료를 분석해 면역체계가 새들의 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연구자들은 온대인 유럽의 텃새와 사하라사막 이남의 적도 아프리카 텃새, 그리고 적도 아프리카에서 온대 유럽으로 이동해 번식하는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를 비교했더니, 아프리카 텃새의 면역체계가 가장 다양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헬레나 웨스터달은 “깜짝 놀란 것은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유럽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점이었다. 철새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병원체 모두를 견뎌야 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적도로 갈수록 다양하고 많아진다. 아프리카 텃새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온대지역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것은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그만큼 부담이 많이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김봉규 기자.JPG» 인천 연평도 인근 무인도에서 번식한 저어새. 번식기는 어미나 새끼에게 매우 힘든 시기로 병원체 위협이 적은 곳이 번식에 유리하다. 김봉규 기자
 
특히 번식기에 그 부담은 크다. 어미 새는 번식기 때 생리적 부담이 극한에 이르기 때문에 질병에 대처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 어린 새도 일생 중 이때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면역체계를 회피한 채 번식을 병원체가 적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텃새와 철새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아시아와 동남아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나타날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mily A. O’Connor et al, The evolution of immunity in relation to colonization and migr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https://doi.org/10.1038/s41559-018-050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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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넘는 첫 북한 지도자 김정은, 키워드는 파격·실용·호탕

군사분계선 넘는 첫 북한 지도자 김정은, 키워드는 파격·실용·호탕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앞줄 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 자리에는 김여정(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동석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앞줄 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 자리에는 김여정(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동석했다ⓒ청와대 제공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대외적으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들어 전면에 직접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반전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연일 자신감과 여유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당일 북측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다. 이 극적인 장면은 전세계로 생생하게 송출된다. 그동안 간접적으로만 접해온 터라 처음으로 일거수 일투족이 생중계될 김 위원장의 모습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침 없는 행보에서 드러나는 스타일
"30대 중반 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평가도

김 위원장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후계자로서 권력을 넘겨받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이듬해 노동당 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올랐고, 2016년에는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외부의 우려와 달리 빠르게 집권 기반을 마련하고 강화한 셈이다. 1984년생으로 29세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은 어느덧 집권 6년차를 보내고 있다.

그만큼 서른 한 살 나이차가 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마주 앉아도 '세대 차이'에 따른 어색함 없이 남북 정상으로서 대화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관훈클럽 조찬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본 분들한테 '김 위원장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같이 얘기하면서 김 위원장의 나이를 인식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이에 '나이를 인식한 적이 없다. 나이 차이를 못 느꼈다'고 얘기하더라"며 "그 얘기는 그 나이 치기 같은 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김 위원장이 2012년 4월에 처음 대중 앞에서 연설한 모습,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서 했던 퍼포먼스 등을 보면서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느꼈다"며 "어떨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세대 차이를 느껴서 얘기를 못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뉴시스/노동신문

이러한 모습을 바탕으로 한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데 이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조성된 대화 국면을 계속 이끌어나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남북 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4월 초에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현 중앙정보국장)를 만나고서는 '나와 이렇게 배짱이 맞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연일 이어지는 파격적인 행보에는 김 위원장의 실용주의적인 성향과 과감한 결단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불필요한 격식을 따지기 보다는 필요한 내용에 충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을 경험한 만큼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와 사상을 지녔다는 평가도 받는다.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뒷줄 오른쪽) 수석 대북특사와 서훈(뒷줄 왼쪽)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이 지난3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나 환담하고 있는 모습.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뒷줄 오른쪽) 수석 대북특사와 서훈(뒷줄 왼쪽)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이 지난3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나 환담하고 있는 모습.ⓒ청와대 제공

김정은, 농담도 줄곧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

또한 김 위원장은 농담도 즐길 줄 아는 여유롭고 호탕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지난 3월 5일 방북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났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특사단)이 실제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특사단과 만찬을 즐기던 김 위원장은 남측 언론이나 해외언론을 통해 보도된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도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무겁지 않은 농담'을 섞으며 여유 있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언급하던 '로켓맨' 등 자신을 조롱하는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또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 대통령이 새벽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재치 있는 말로 무거웠던 그간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 '봄이 온다'를 직접 관람한 후 남측 예술단에 특유의 '북한식 유머'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문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나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이 본인 이름을 언급하며 남측 예술단 공연에 만족감을 표한 것으로, 친근감을 쌓기 위한 '농담'으로 해석됐다.

지난 4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서 이용객이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람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서 이용객이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람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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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한 연인, 미쳐버린 여인... 가장 슬픈 결혼식

[리뷰] 종자돈 100만원의 기적,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보여준 진정성

18.04.25 10:59최종업데이트18.04.25 11:24
광주에서 '봄'이라는 낱말은 사람들 뇌리에 5.18, 금남로, 대검, 총, 공포, 붉은 피, 주검 등의 연관 단어들을 불러들이고 '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어휘로 자동완성 된다. 80년대 광주에서는 해마다 5월만 되면 예식장 예약률이 저조했다. 5월엔 청첩장을 돌리지 않기에 결혼축의금 지출도 없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5월에는 결혼식을 삼가는 불문율을 엄수했다. 결혼의 계절 5월에 광주에서는 결혼축가 대신 장송곡이 도시를 가득 메우곤 했다. 

그러던 1982년, 그해도 역시 5월이 아닌 2월 추위에 한 건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주변 동지들이 중신을 서고 주선하여 성사된 혼사였는데 장소는 화려한 예식장이 아닌 산기슭의 묘비가 즐비한 공동묘지였고, 초례청엔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부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랑한 결혼 축가 대신 애절한 한편의 진혼곡을 제창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 설치돼 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 설치돼 있다.ⓒ 이돈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중항쟁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후배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주제가였다. 레퀴엠 또는 웨딩마치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후 각종 시위와 집회의 첫 식순에 등장하는 출정가로 애창됐다. 비장한 곡조와 결연한 노랫말은 민중을 강력한 연대의 대열로 결집시켰다. 군사·독재정권은 이 노래의 파장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석상에서는 금지곡이었다. 지난 정부시절 보훈처가 주관하는 어느 해 5.18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행진곡' 제창 대신 악단의 흥겨운 '방아타령'이 망월동 영령들을 능멸하기도 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포스터.ⓒ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2018년 봄, 온갖 탄압과 시련을 견디고 5.18 정식 지정곡으로 선정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레퀴엠에서 결혼행진곡으로 장르를 확장했다. 박기복 감독의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진혼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결혼행진곡으로 한 쌍의 혼례를 빛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광주 첫 시사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출정식'으로 대체되었다. 광주 5.18을 소재로 한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경제적, 사회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3년 만에 겨우 완성됐다. 그리고 의미 있는 첫 시사회가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에서 개최된 것.  5.18을 소재로 한 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에 비우호적이었던 전 정권 하에서 직간접적으로 가해지는 방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크랭크인에 돌입하여 마침내 마지막 컷을 선언하기까지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가 뒷받침되어 주었다.    

역사적인 첫 광주시사회는 '출정식'이라는 행사 이름에 걸맞게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되었다. 출연진은 겸손한 자세와 인사말로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공유를 호소했다. 배우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연기한 영화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소망을 강하게 내비쳤다.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 첫 시놉시스를 접하고 난 후에 받았던 충격,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와 연기에 임했던 각오를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자신들의 작은 노력이 당시 고통 받았던 광주시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하길 바라는 듯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

식전 행사가 마무리 되고 드디어 스크린이 밝아오자 객석은 침묵이 흘렀다. 사전 언론노출이 많지 않아 스포일러는커녕 줄거리 개요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참석한 시사회 관중석엔 긴장감이 흘렀다.      

영화는 5.18과 이철규 열사 변사사건을 큰 줄기로 구성됐다. 그러나 화면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관객의 정서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풀어가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과장하거나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주인공들이 경험한 사랑과 동지애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투쟁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나갔다. 

* 이철규 의문사 -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광주·전남지역 공안합동수사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씨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 상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노태우 정부 시절 대표적인 의문사 중 하나다. / 한국근현대사사전 등 요약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관객은 정신은 혼미하지만 80년 봄의 추억에 관한 한 완벽히 청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명희(김부선)의 회상을 따라 37년 전 그들의 5월을 추체험한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는 37년째 정신병동에서 생활하는 명희(김부선)의 2018년 현재와 과거 80년 시점을 회상 기법으로 넘나든다. 명희의 기억은 80년 5월에 멈춰있다. 당시의 총격으로 총알이 머리에 박힌 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명희는 연인 철수와의 추억만큼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관객은 정신은 혼미하지만 80년 봄의 추억에 관한 한 완벽히 청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명희의 회상을 따라 37년 전 그들의 5월을 추체험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열렬한 학생운동가인 철수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명희의 작업실에 숨어들고 둘의 까칠한 첫 만남이 시작된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80년 봄 법대생 철수(전수현)와 미대생 명희(김채희)는 명희의 아틀리에에서 처음 만났다. 열렬한 학생운동가인 철수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명희의 작업실에 숨어들고 둘의 까칠한 첫 만남이 시작된다. 평범한 미대생이었던 명희는 처음엔 철수의 개인의 행복을 포기한 투쟁가로서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몸부림으로 바뀔 만큼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회 정의와 인권,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는 철수의 강한 신념과 열정 그리고 인간적 매력에 반해 명희는 먼저 철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둘은 이내 연인이자 동지로 발전한다. 같이 대자보를 작성하고 살벌한 감시를 피해 대자보를 붙이고 시위를 주도하고 농활을 펼치는 등 사랑과 정열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철수에게는 동생 뒷바라지에 매우 헌신적인 형, 철호가 있다. 학생운동의 주동자로 늘 쫓기는 처지이지만 철수와 명희는 살벌한 긴장 속에서도 마냥 행복하다. 두 연인의 사랑은 무르익고 동지들과의 연대는 끈끈하고 철수, 철호 형제의 우애는 더 없이 돈독하다. 행복한 5월의 봄날이다.  

그러나 철수에 대한 수배 망이 점점 좁혀오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철수는 급한 김에 명희를 향해 마음에 없는 냉정한 이별을 통보하고 잠수를 탄다. 그러나 불심검문에 걸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악랄한 사복경찰 영찬(이한위) 일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철수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형사들의 잔인한 고문으로 철수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자신들의 고문치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형사들의 조치로 철수는 단순사고사로 위장된 채 처참한 익사체로 떠오른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철수는 불심검문에 걸려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악랄한 사복경찰 영찬(이한위) 일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명희는 철수의 장례식을 치르려던 과정에서 경찰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때 명희의 배속에는 5.18둥이 딸 희수가 잉태되어 있었다.  

친엄마 명희를 대하는 딸 희수(김꽃비)의 심정은 복잡하다. 큰아버지 철호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미친 여자'를 친엄마로 인정하길 거부했던 일화에서 알 수 있듯 희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늘 원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긴 세월 정신병동에 갇혀 사는 친엄마에 대한 연민을 떨칠 수 없다. 명희에 대한 연민과 원망이 같은 무게로 그녀를 짓누른다. 

희수는 서른여덟 늦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양가 상견례 자리에 친엄마 명희가 불청객으로 침입하면서 희수의 결혼은 파토 나고 만다. 그렇잖아도 가슴의 응어리였던 엄마가 인생 중대사에 결정적 방해를 하는 상황에 희수의 원망은 극에 달한다. 명희는 어렴풋이 자신의 존재가 딸의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철규 의문사와 5.18의 결합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분명 전라도인데 철수는 물론 철호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철수형제는 원래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자랐다. 그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무작정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도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감독은 이렇게라도 5.18에 덧씌워진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지역 간, 세대 간, 이념적 차이로 인한 사회적 장벽과 편견을 깨기 위한 감독의 노력은 작품 곳곳에서 강박적일만큼 자주 목격된다. 언뜻 지나치는 풍경, 대사, 소품, 배우들의 행동 하나에도 80년 5월의 시공간적 배경을 어느 특정한 지역과 계층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시대가 품어야 할 공동의 역사이자 비극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포착된다. 그래서 부자연스런 장면이나 소품, 대사 등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에서는 의심하기 보다는 이 장치가 암시하는 메시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영화는 애매한 디테일적인 요소로 관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상상하게 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희수가 파혼으로 취소된 결혼식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신랑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을 예정대로 감행하겠다는 희수의 호언장담은 지켜질 수 있을까. 희수가 계획한 결혼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살리는 최고의 이벤트가 된다. 

스크린에 불이 꺼져도 스피커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나머지 소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노래의 마저 끝날 때 까지 일어서지 않고 정숙했다. 어두운 스크린을 응시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 마지막 소절을 조용히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이 모두 추억의 민중가요들로 짜여있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민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그 자체로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듯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민중가요가 삽입된 신은 느린 화면으로 처리하여 공감각적 감동을 오래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특히 철수의 비밀장례미사를 집전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어 가는 젊은 사제의 이마 위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애잔하게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처연한 분위기가 고조된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는 희수(김꽃비)가 파혼으로 취소된 결혼식을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이철규 열사의 죽음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지만 주인공 철수에게는 다양한 인물이 중첩되어 있다. 철수가 학생운동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보면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 열사를, 철수가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학내외 투쟁에서 보여주는 역할을 감안하면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수배 중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사고사로 위장 당하는 과정은 제4수원지에서 처참한 익사체로 떠오른 이철규 열사 사건이 투영되어 있다. 학생과 시위대가 철수의 빈 관을 들고 행진하면서 위장행렬로 경찰들의 시신탈취 공작을 따돌리는 작전은 지금도 지역에서 '운암대첩'으로 회자되는 고 강경대군의 장례행렬을 재연한 듯 보인다.

종자돈 100만원의 기적, 이 영화의 진정성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화순군 지역의 시골여중생이었던 나는 80년 5월 어느 날 실시된 갑작스런 봄방학에 너무 신이 나서 광주에서 '폭도'들이 한 달쯤 더 데모를 해주길, 그래서 전원 광주 거주민들인 선생님들이 계속 무단결근을 하고 이 꿈같은 휴교조치가 더 이어지길 간절히 염원했다. 15세 청소년으로서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고 자위한다. 광주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의 시골 중학생인 우리들은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도청소재지 광주에서 그토록 처참한 만행이 자행되고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화순 출신이지만 나이가 조금 많다는 이유로 당시 광주에 유학중이었던 감독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지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명희가 37년 세월을 머리에 박힌 총알로 인한 광기에 시달리듯 광주를 겪었던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인한 크고 작은 분열 증세에 시달린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또한 그 세월을 온전한 정신으로 견딜 수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빚어낸 분열증상의 결과물이다.  

"그 친구가 제게, 백만 원을 주면서 이 영화를 꼭 만들어 달라 당부했거든요."

영화 마지막 자막, 이 영화를 헌정한다고 언급했던 친구의 사연을 감독은 회한에 젖은 어조로 들려주었다. 첫 제작비용 백만 원을 대줬던 친구라고 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로 함께 5.18을 경험한 그는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갖게 된 친구에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 백만 원을 쥐어주며 꼭 '5.18영화'를 만들어 달라 당부했다고 한다. 친구의 부탁은 결국 유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친구는 불의의 사고로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종자돈 백만 원의 우정이 오늘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다. 감독은 첫 시사회의 감격을 줄곧 지금은 가고 없는, 백만 원을 쥐어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꼭 완성하라고 당부했다던 친구의 유훈을 떠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김꽃비, 김부선, 이한위 등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다. 점점 문화예술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일회적으로 신드롬화 되어 가고 있는 예술시장에서 이 영화의 소박한 매력과 진정성을 관객들이 간파해주길 바라본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컷.ⓒ (주)알앤오엔터테인먼트


5.18광주민중항쟁 38주년에 즈음하여 개봉하는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8년의 5월 추모분위기를 계승할 가장 시의적절한 콘텐츠라 확신한다. 올봄, 스크린에서 재개될 세기의 영혼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여 진혼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 결혼행진곡으로 제창되는 감동적인 출정식을 함께 하길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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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종전선언은 남북미 합의 이뤄져야 성공”

아베 일 총리,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일 정상회담 시사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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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4  18: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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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해 협의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종전 선언은 남북만의 대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남북미 3자 합의가 이뤄져야 성공을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4시 40분부터 40분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아베 총리와도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미 3자 만으로도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중국의 경우, 1994년 9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하면서 정전체제 관리 권한과 책임을 포기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은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물론이고 일본과 북한 두 나라 사이의 관계 정상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일북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아베 총리에게 권고했다. 

이어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될 경우 북일 대화나 북일 정상회담이 이어질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과 북한 사이에는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납치 등 여러 문제가 있으나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치면 일본과 북한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핵 문제, 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의미하며, 그럴 경우 일본과 북한 사이에서 과거 청산과 관계 정상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납치 문제’를 고리로 하여 북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실제로, 북.일 간 물밑 대화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케.모리토모 스캔들’ 수렁에 빠진 아베 총리의 낙마 여부가 변수다.  

아베 총리는 지난 17~1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고 납치된 사람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협조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기회가 닿는대로 북쪽에 납치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 때도 아베 총리의 입장을 전달하겠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이 동북아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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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 ‘남북 상설 연락사무소’ 추진한다

[단독] 판문점에 ‘남북 상설 연락사무소’ 추진한다

등록 :2018-04-25 05:01수정 :2018-04-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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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D-2
문 대통령, 회담 때 김정은에 제안
사실상 남북 대표부 첫 단계 모색
정치·군사 분야별 공동위도 구성
회담 관계자 “합의 가능성 있다”
그래픽_정희영
그래픽_정희영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열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표부 기능을 하는 남북의 상설 협의·연락사무소를 판문점에 설치해 운영하자고 제안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상설 회의체 성격을 지닌 남북 공동위원회를 정치·군사·경제 등 분야별로 구성·운용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 상황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24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쪽이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제안할 것”이라며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합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이 3일 앞으로 다가온 27일 오후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만남을 전 세계에 알릴 경기도 고양 킨텍스 프레스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통신 등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정상회담이 3일 앞으로 다가온 27일 오후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만남을 전 세계에 알릴 경기도 고양 킨텍스 프레스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통신 등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문 대통령이 이미 추진 의사를 밝힌 ‘정상회담 정례화’를 포함해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 당국 대화의 정례화·상시화·상설화 진전의 획기적 전기로 삼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른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이번 회담에서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고려해 당국 간 회의체 정비·강화 등 ‘비제재 분야’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할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했으나 ‘직통전화 운용’ 수준으로 유명무실화한 ‘판문점 연락사무소’ 합의(남북기본합의서 1장 7조)의 복원·현실화 추구다. 아울러 2005년부터 개성공단 안에 설치돼 남과 북의 당국자 등이 한 건물에서 근무하며 협의하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현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의 기능과 위상을 ‘경제’에서 ‘모든 분야’로 확대하려는 것과 같다.

 

현재 운용되는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판문점 남쪽 ‘자유의집’과 북쪽 ‘통일각’에 따로 설치돼 직통전화 운용으로 기능이 한정돼 있지만, 이번에 추진될 연락사무소는 사실상 대표부 구실을 하는 남북 공동의 상설 협의·연락 체계 및 공간의 창출을 도모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통한 소식통은 “원칙대로 하자면 서울-평양 상호 연락사무소(대표부) 개설이 좋지만, 현재 남북관계의 수준을 고려할 때 당장 가능한 방안이 아니다”라며 “당국 간 대화 상설화의 초보적 형태로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추진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할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모습은, 현재의 ‘직통전화 운용 판문점 연락 채널’보다는 2005~2010년 개성공단에 설치돼 운영된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확장판으로 이해하는 게 낫다. 남북경협협의사무소는 1층엔 통일부·경제부처·무역협회 등 15명 안팎의 남쪽 인원이, 2층엔 민경련 등에서 파견된 북쪽 인력 10여명이 상주하며 경협 관련 협의·연락 창구 구실을 해왔다. 70년 분단 역사에서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한 건물에서 일한 유일한 사례다. 이 사무소는 2010년 천안함 사태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 제재 조처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폐쇄됐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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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가시도 모자랐나, 잭나이프 무장 물고기

조홍섭 2018. 04. 24
조회수 1620 추천수 1
 
쏨뱅이류에서 발견, 뺨에 숨겨두었다 유사시 펼쳐
어른도 죽일 독가시에 추가, 동남아선 식용으로 인기
 
f1.jpg» 쏨뱅이류의 하나인 병정물고기. 왼쪽 잭나이프를 펼치고 오른쪽은 숨긴 상태이다. 미국 어류 및 파충류 학회 제공.
 
포식자가 들끓는 바다에서 살아남는 길은 최고의 방어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랜 진화과정에서 바닷물고기들은 기발한 방어 무기를 잇달아 발명했다. 위장술과 날카로운 가시, 그리고 독물 주입은 흔히 개발된 수단이다. 
 
태평양과 인도양 해안에 서식하는 쏨뱅이 무리는 특히 날카롭고 맹독성 독물로 유명하다. 쏨뱅이 목에는 1500종 가까운 물고기가 포함되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쏠배감펭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또 하나의 방어수단이 숨겨져 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바로 평상시에는 숨겨두었다가 유사시 드러내는 ‘잭나이프’다.
 
f2.jpg» 대만 어시장에서 쏨뱅이류 샘플을 찾는 연구자. 레오 스미스 제공.
 
윌리엄 레오 스미스 미국 캔자스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교수는 쏨뱅이류 어류를 연구하기 위해 대만 어시장을 뒤졌다. 새우잡이 어선의 그물에는 수많은 종류의 이 무리 물고기가 들어있었다. 연구실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자 눈 아래 뺨에 독특한 뼈가 들어있었다. 이 뼈는 등뼈가 확장된 것으로, 보통 때는 접어 두었다가 위협을 느끼면 마치 잭나이프처럼 90도 각도로 펼쳐졌다. 물고기에서 처음 발견된 방어수단이다.
 
스미스 교수는 “이런 발견이 어떻게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아마도 이 무리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두명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스미스 교수와 미국 연구자들의 이 발견은 과학저널 ‘코페이아’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이 잭나이프의 길이가 눈 지름의 0.5∼2.5배였으며 크기가 작은 종 물고기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또 어떤 종의 잭나이프는 형광을 띠기도 했다.
 
j1.jpg» 숨긴 상태의 잭나이프 모습. 레오 스미스 제공.
 
연구자들은 또 ‘눈물 칼’로 이름 붙인 쏨뱅이 무리의 잭나이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해부학적 얼개도 밝혔다. ‘눈물 칼’은 많은 아가미의 근육과 인대로 연결돼 있어 아가미를 닫는 강력한 힘으로 나이프를 펼친 뒤 골격의 홈에 고정한다.
 
스미스 교수는 잭나이프가 이미 상당히 뛰어난 기존의 방어 무기에 추가된 것이라며, 이 물고기들은 가시와 위장술, 그리고 어른도 죽일 만큼 세계 최강의 독물로 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가 나이프를 몸에 직각 방향으로 펼치면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f3.jpg» 쏨뱅이류의 한 종인 파라센트로포고 롱이스피니스. 레오 스미스 제공.
 
 
f4.jpg» 바다 밑에서 나뭇잎을 흉내 내는 쏨뱅이목 물고기 와스프피시. 레오 스미스 제공.
 
 
f.jpg»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도 등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쏨뱅이목 물고기 쏠배감펭. 크리스찬 멜퓌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는 “이 물고기를 연구하면서 쏘이지 않으려고 편집증적으로 노력했다”며 “그러나 이들은 맛있는 물고기여서 식용으로 포획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양식도 한다”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 Leo Smith, Elizabeth Everman, and Clara Richardson, Phylogeny and Taxonomy of Flatheads, Scorpionfishes, Sea Robins, and Stonefishes (Percomorpha: Scorpaeniformes) and the Evolution of the Lachrymal Saber, Copeia 106(1):94-1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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