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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협 회원들이 기억하는 문익환 목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24 11:01
  • 수정일
    2018/04/24 11: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손자뻘 학생의 죽음에도 큰절
문익환 목사, 우리의 보호막이었다"

[문익환의 사람과 물건 ④] 유가협 회원들이 기억하는 문익환 목사

18.04.24 08:50l최종 업데이트 18.04.24 08:50l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거목인 '늦봄'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문익환 목사와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가 남긴 물건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민족과 민중을 위해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리고, '촛불 혁명' 이후 새로운 체제와 다시 시작된 '남북대화 국면'을 맞아 올바른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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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78)씨가 자신을 포함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그들은 자식과 형제, 배우자의 죽음을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만 했고, 가장 열렬한 '투사'가 됐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으니까요. 아들도 죽었는데 나 죽는 게 문제냐는 생각으로."

유가협 회장 장남수(77)씨는 아들 장현구를 잃고 유가협에 들어와서 23년째 활동 중이다. 장현구 열사는 경원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 추진위원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고문 수사를 받았다. 석방된 이후에도 교수와 직원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가, 1995년 12월에 분신해서 사망했다.

유가협은 1986년 12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하거나 목숨을 바친 이들의 유가족을 모아서 만든 단체다. 이들은 전두환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이어진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해 가장 앞장서서 저항했다. 1998년도부터 1999년도까지 422일간의 투쟁을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에도 '용산참사 진상규명', '세월호 참사 해결' 등에도 앞장서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가협 후원회장 문익환
▲  유가협 후원회장 문익환
ⓒ 유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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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보금자리 한울삶 대문 앞에 회원들이 함께 섰다.
▲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보금자리 한울삶 대문 앞에 회원들이 함께 섰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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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는 이곳의 초대 후원회장이었다. 당시 유가협의 간사장을 맡고 있었던 남북민간교류협의회 김승균(80) 명예이사장은 "(유가협 내에서)후원회장은 문익환 목사님이 꼭 맡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사회적인 명망도 있을 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유가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라고 전한다. 

 

심지어 후원회가 만들어진 90년 8월 당시 문 목사는 방북으로 인해 수감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문 목사를 후원회장으로 모신 이유는 그가 열사들의 죽음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도 유가족 편에서 함께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해 10월에 문 목사는 병환으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가석방됐고, 유가협에 직접 '후원회'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박래전 열사의 형이자 당시 유가협 사무장이었던,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은 유가협의 기록을 담은 책 <너의 사랑 나의 투쟁>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문익환 목사님을 후원회장으로 모시고 유가협 간판 건너편 대문 기둥에 후원회 간판을 걸었던 날도 기억납니다. 목사님이 출소하신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지요. 그때 3백 명 가까웠던 후원 회원들이 있었고, 그들이 힘을 모아서 봉고차도 사주었지요. 그런 일들이 모두 그렇게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후원회가 남아 있다면, 그리고 커졌다면 유가협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문익환 목사의 존재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터전 한울삶에 모신 고 문익환 목사의 영정 사진.
▲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터전 한울삶에 모신 고 문익환 목사의 영정 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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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는 아들의 영결식에서 처음 문익환 목사를 봤다. 문 목사는 열사 26명의 이름을 외치면서 이한열 열사를 추도했다. 그러나 당시 배씨에게는 그 외침이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자신도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연세대에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이후에 그는 유가협 활동을 하면서 수도 없이 연세대를 드나들게 된다. 문 목사와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군사정권은 이어졌고, 학생들은 계속 죽었기 때문이다.

문 목사의 모습 중 인상깊었던 것을 물으니, 배씨는 '젊은이들의 죽음을 대하는 문 목사의 태도'를 언급했다.

"젊은 학생들 분신 많이 할 때, 영안실에서 보면 (영정을 바라보고) 큰절을 두 번 하세요. 처음엔 깜짝 놀라서 '목사님 왜 그러세요' 이랬는데, 목사님이 '오늘은 이 사람들(열사)이 당신네 윗사람입니다' 이러시는 거예요. 손자뻘 되는 사람들에게, 종교를 뛰어넘어  절을 올린 거죠.

우리(유가협 회원)들도 분향소에 가면 목만 숙여서 인사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절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죠. 믿음을 뛰어넘은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문 목사는 박종민김세진·이동수·홍기일·박선영·김성애 등의 열사들을 자신의 시를 통해 추모했고, 장례식의 조사를 쓰고 읽기도 했다. 열사들에 대한 존경심과 안타까움이 남다른 이였던만큼, 유가족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 이사장은 문 목사가 교도소에서 영치금을 모아 출소하면서 전달할 만큼 각별하게 유가협을 아꼈다고 강조했다.

"영치금을 모아서 저희에게 주시는데... 죄송스러웠어요. 물질적인 부분을 원해서 후원회장으로 모신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물질적인 도움도 주시니까 감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웠습니다. 말할 수 없게 감사하죠."

이어 배씨는 유가협 활동에서 문 목사의 역할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상황에서, 문 목사는 유가협이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일종의 '보호막'이 됐다는 것이다.

"정권도 함부로 못하는 분이잖아요. 명망도 있으시고 위엄도 있고. 그분은 후원회장으로서 저희의 보호막이었어요. 당시에 정부는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망자들을 좌경, 용공, 빨갱이로 취급했어요. 유족들도 감시당했고요. 그런데 문 목사님이 우리를 인정하고 이끌어 나가주신 게 고마운 거예요. 다른 분들은 사실 저희를 만나기조차 꺼려하던 시절이었어요. 심지어 유가협 회원의 형제들이 '자식 죽었으면 그만이지, 가족까지 망치려고 하느냐' 그러기도 했다니까요. 그러니 목사님을 존경할 수 밖에요."

그는 목사님의 대담함에 큰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가협 회원들이 가슴에 담아둔 말들을, 문 목사님이 장소도 가리지 않고 속 시원하게 말하면서, 유가족들의 '통'도 커졌다는 것이다. 배씨는 "정신적 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가협 회원들의 상실감이 굉장히 컸다고 한다. 구술작가 송기역이 기록한 박정기(박종철 열사 아버지)씨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유가족들의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94년 1월18일 유가협 회원들이 유일하게 의지해 온 어른 문익환 목사가 일흔여섯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소식을 들은 박정기는 유가족들과 함께 한일병원으로 달려갔다. 모두 망연자실 주저앉아 흐느꼈다. 박정기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온몸을 떨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했다. 옆에 있던 박채영이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학로에서 열린 노제엔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늦봄을 추모했다. 문익환은 박종철의 가묘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었다." - 2012년 4월 16일자 <한겨레> 29면 인용

유가협은 이들의 보금자리인 '한울삶'에 문 목사의 영정을 열사들과 함께 모시고 있다. 문 목사에 대한 유가협의 존경심과 신뢰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동시에 문 목사의 아내이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공동의장이었던 박용길 장로가 유가협 회원이 됐고, 박 장로가 문익환 목사의 역할을 이어간다. 

장씨는 박 장로에 대해 "민가협은 의장이었고, 유가협은 회원이셨는데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통일에 관한 강연이나 발언을 하시고, 어딜 가든 문 목사님이 해오던 역할을 하셨다"며 "매사 공정하고 자기보다도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자였다"고 강조했다.

촛불의 시대, 민주화 운동가들을 기억하는 법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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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에게는 암흑기였던 9년의 세월이 흘러 '촛불 정부'가 들어섰고, <1987>을 통해 이한열, 박종철 열사가 재조명됐다. 배씨는 정권을 바꾼 촛불시위를 보면서 문 목사와 함께 민주화 시위를 나갔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데모 현장에서도 항상 두루마리를 입고 앞에서 리드를 하시는 목사님을 따라갔어요. 경찰이 최루탄 던지면 골목길로 도망쳤어요. 그땐 염치고 뭐고 일단 숨어야 돼요. 그러다가 잠잠해지고 다시 만나면 '또 만났네'라며 반갑게 맞아주시곤 했어요. 이번 촛불 때도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어요. 여기에 최루탄을 터트리면 사람들은 어디로 피할 것인가. 피하다 보면 사고도 날 거고요. 그런데 촛불이 번지면서 승리를 했잖아요. 기뻐서 울었어요. 그때도 최루탄을 안 썼으면 이한열이라도 안 죽었을 거 아니에요. 슬퍼서도 울었고요."

<1987> 이야기가 꺼냈더니 배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보셨냐'고 물었더니 "아직 안 봤다"고 답했다. 

"이런 영화를 한번 또 만들고 싶다고 제안이 오면 난 그때는 못 만들게 하려고요. 안 보긴 했지만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애미가 눈을 뜨고 보는, 그런 나 자신이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1987>이야기만 하면  간이 벌렁벌렁해지고 정신이 없어져요. 부끄러워요. 자식이 죽어갔는데 애미는 밥을 먹고 살까 그렇게 볼 것 같아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들이 그때 일을 잘 모르잖아요. 나는 괴롭지만 이 시대의 이야기를 알린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고마운 거죠. 반반이에요. 괴로운 것을 초월해야 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전하는 거니까 고맙기도 하고요. 마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 경원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운동을 하다가 숨진 장원구 열사의 아버지다. 95년 12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유가협 활동을 하고 있다.
▲  장남수 유가협 회장. 경원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운동을 하다가 숨진 장원구 열사의 아버지다. 95년 12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유가협 활동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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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민주화 과정에서 두 사람만이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런 과정을 겪었다. 독재정권의 공작이 성공해서 알려지지도 못하고 의문사로 죽은 사람이 많다"며 계속해서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장씨는 민주화운동 묘역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천에 만들어진 '민주화운동 기념공원'과 묘역은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법률 등에 따라서 만든 것이지만, 다수 유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것이라 반쪽짜리 묘역이다. 실제로 희생자 136명 중 49명만이 안장됐다. 원래 묘역은 수유리 쪽에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김 이사장도 "하루빨리 열사들을 귀한 자리에 잘 모시고 싶다. 서울권에 묘역을 재조성해주길 바란다"며 정부에 당부했다. 이에 관해 배씨도 "대통령께도 건의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유가협 회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배씨는 "이럴 때 한마디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다시 문익환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곤경에 처해있을 때 목사님이 계시면 한 말씀 해주실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아서, 돌아가신 게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어쨌든 이소선 어머님마저 없으니까 정말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오늘 이렇게 목사님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좋네요."

문익환 목사가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들의 가장 든든한 '빽'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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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배 터뜨리고 죽는 ‘자폭 개미’가 있다

조홍섭 2018. 04. 23
조회수 1539 추천수 1
 
일개미는 배 수축한 뒤 독물 뿜어 적 물리치고
병정개미는 마개 모양 머리로 바리케이드 친다
 
a1.jpg» 작은 폭발개미 3마리가 침입자인 베짜기개미를 공격하고 있다. 맨 오른쪽 개미는 폭발 직전으로 노란 독액이 흘러 나오고 있다.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동남아 보르네오의 열대림에는 높이가 60m에 이르는 큰 나무가 서로 이어져 수관 생태계를 이룬다. 나뭇잎으로 이뤄진 이 공중 생태계의 지배자는 개미이다. ‘폭발 개미’로 알려진 이 개미는 적갈색의 작고 평범한 모습이다. 커다란 턱이나, 침, 개미산 방출 등 다른 개미에서 흔히 보는 방어 무기가 없다. 그러나 이 개미는 이름 그대로 자신의 몸을 폭발시키는 놀라운 방어 무기를 보유한다.
 
이 개미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16년으로 100년도 더 전이지만, 최근에야 정확한 분류와 생태가 밝혀지고 있다. 앨리스 래시니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곤충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최근의 현장 연구 결과, 이 개미가 모두 15종으로 이뤄졌으며 이 무리의 모델 종인 ‘콜로봅시스 엑스플로덴스’를 신종으로 과학저널 ‘주키스’ 20일 치에 보고했다.
 
ALEXEY KOPCHINSKIY_02-exploding-ants-Weaver-with-YG-02.adapt.1190.1-1.jpg» 커다란 베짜기개미를 공격해 배가 쭈그러든 채 죽은 폭발개미.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이 신종 개미는 높은 나무의 죽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만들고 수천 마리가 나뭇잎과 나무줄기 위를 활발하게 돌아다닌다. 작은 일개미가 주로 이 일을 하는데, 잎 표면의 불순물이나 벌레 등을 제거하는 ‘청소 활동’과 나무줄기 위에 돋아난 이끼나 지의류 등을 턱으로 뜯는 활동에 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 개미는 다른 종의 개미나 절지동물 등의 침입자를 만나면 꽁무니를 수직으로 들어올려 경고 신호를 보낸다. 만일 경고가 듣지 않으면 들러붙어 물어뜯고 여의치 않으면 비장의 자폭 공격을 감행한다. 상대방을 향해 치켜든 배를 강하게 수축해 터뜨린다. 뱃속에서는 밝은 노란색의 끈적끈적하고 유독성인 액체가 튀어나와 상대방을 죽이거나 물리친다. 물론 배가 터진 일개미도 목숨을 잃는다. 이번 연구에서 방출하는 독성물질의 성분 등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연구자들은 턱 샘에서 만드는 이 찐득한 분비물에서 카레 비슷한 자극적 냄새가 났다고 밝혔다.
 
a3.jpg» 침입자에게 꽁무니를 하늘로 쳐들어 경고 신호를 보내는 폭발개미.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기 무리를 지키는 행동은 흰개미나 꿀벌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흰개미나 꿀벌이 둥지를 지키려는 집단 방어 과정에서 자기희생을 한다면, 폭발 개미는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개별적으로 먹이활동을 하다가 상대방과 1대 1로 맞설 때도 자폭 공격을 하는 점이 다르다고 연구자들은 빈 자연사박물관 누리집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아마도 폭발 개미는 나뭇잎에 형성되는 미생물 군집 같은 먹이 자원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로부터 영역을 지키는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
 
a4.jpg» 폭발개미 가운데 둥지 안에서 주로 지내는 병정개미. 머리로 굴의 들머리를 막아 침입자를 물리친다. 알렉스 코프친스키 제공.
 
한편,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개미의 병정개미는 머리 모양이 마개 모양이어서 눈길을 끈다. 연구자들은 이 덩치 큰 개미가 머리를 바리케이드로 이용해 둥지로 들어오는 적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aciny A, Zettel H, Kopchinskiy A, Pretzer C, Pal A, Salim KA, Rahimi MJ, Hoenigsberger M, Lim L, Jaitrong W, Druzhinina IS (2018) Colobopsis explodens, model species for studies on “exploding ants” (Hymenoptera, Formicidae), with biological notes and first illustrations of males of the Colobopsis cylindrica group. ZooKeys 751: 1–40. https://doi.org/10.3897/zookeys.751.2266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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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끝내 사드기지 공사장비 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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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4/24 08:30
  • 수정일
    2018/04/24 08:3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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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끝내 사드기지 공사장비 반입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4/23 [21: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국방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사드 공사장비 반입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사진 :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 편집국

 

23일 군 당국이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 공사 장비 반입을 강행했다국방부는 공사 장비 반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경찰의 협조를 통해 진입로를 확보하고 공사용 자재와 장비 덤프트럭 등 차량 22대를 반입했다.

 

경찰은 오전 8시 16분부터 3,0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22일부터 농성중이던 주민들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 200여명에 대한 강제해산 작전에 돌입했다이 과정에서 주민 28명이 응급 후송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주민들과 사드 반대단체 회원들은 22일 오후부터 사드 공사 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 밤샘농성을 벌였다이들은 PVC 파이프 안으로 손을 넣어 연결한 후그물을 덮은 채 인간사슬을 만들어 완강하게 저항했다.

 

▲ 차량과 PVC파이프 등으로 인간사슬을 만들어 저항하고 있는 주민들. (사진 :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 편집국

 

하지만 경찰은 커터칼 등의 장비로 그물을 끊고견인차 등을 이용해 다리를 막고 있던 차를 제거하며 끝내 주민들을 해산시켰다.

 

소성리 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 등 사드철회 평화회의는 입장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종전협정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있다북핵 핑계는 사라졌다며 사드 부지공사를 한다는 것은 미군 생활환경을 안정시켜 어떻게 해서든 사드를 완전배치 시키겠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의심은 너무나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앞으로 2개월간 진행되는 장마철 전 지붕누수공사와 화장실문제 해결을 위한 오폐수공사를 먼저 한 후 나머지 공사는 북미상황회담 이후 다시 대화하자는 합리적 제안을 했다며하지만 국방부는 이마저도 거절 하였고수천의 경찰을 동원하여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해 오늘의 유혈사태를 조장하였다고 규탄했다.

 

▲ 경찰의 강제해산 후 이후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주민들과 사드배치 반대 단체 회원들. (사진 : 사드저지 전국행동)     © 편집국

 

사드철회 평화회의는 한미장병들을 위한 복지개선공사가 아니라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한 사드부지공사라며 앞으로 있을 3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매일 공사인부 출근 및 공사자재 출입저지를 통해 평화정세에 역행하는 사드를 못 박기 하려는 불순한 기도를 철저히 막아 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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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동원하여 불법 부당한 사드 운영 위한 공사 강행에 대한 입장문

 

1. 국방부는 결국 사드를 완전 배치를 위한 망치질을 했다그 무리한 망치질에 결국 주민들이 28명이 응급 후송되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병원으로 후송되었다소성리 80-90대 할머니들과 600일 넘게 평화촛불을 치켜든 김천 시민들진밭교에서 409일째 평화의 기도를 올린 원불교마저 짓밟았다이러한 피해는 물론 하늘과 땅을 울린 피울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2.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그의 일환으로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폐쇄했다남북정상회담에서는 종전협정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있다북핵 핑계는 사라졌다지난 70여년 간 적으로 간주해온 북도 평화를 원하는 이 마당에 동북아 신냉전을 불러올 사드 운영을 위한 공사를 하겠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사드 부지공사를 한다는 것은 미군 생활환경을 안정시켜 어떻게 해서든 사드를 완전배치 시키겠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의심은 너무나 합당하다.

 

3. 우리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 의한 불법공사이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앞으로 2개월간 진행되는 장마철 전 지붕누수공사와 화장실문제 해결을 위한 오폐수공사를 먼저 한 후 나머지 공사는 북미상황회담 이후 다시 대화하자는 합리적 제안을 했으나국방부는 이마저도 거절 하였고수천의 경찰을 동원하여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해 오늘의 유혈사태를 조장하였다.

 

4. 거기에 더해 경찰은 난데없이 나타난 수구단체와의 충돌을 막는 다는 명분으로 3일간 수백의 경찰을 소성리에 주둔시켰고극우보수 수구단체의 집회가 끝나자마자 창끝을 소성리 할머니김천주민원불교 교무와 교도들에게 돌려 토끼몰이식 진압을 하였다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우리는 이번 수구단체 망동의 배후에 국방부 또는 경찰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5. 오늘의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부지공사강행으로 명확해졌다이는 한미장병들을 위한 복지개선공사가 아니라 평화협정 전 사드를 못 박기 위한 사드부지공사였음이 명확해 졌다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있을 3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매일 공사인부 출근 및 공사자재 출입저지를 통해 평화정세에 역행하는 사드를 못 박기 하려는 불순한 기도를 철저히 막아 낼 것이다.

 

6. 오늘의 유혈사태는 물론 앞으로 발생할 모든 상황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현 정부(국방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

 

사드철회 평화회의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사드배치저지부울경대책위원회(),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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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서양미술사> 4권을 완간한 미학자 진중권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서양미술사> 4권을 완간한 미학자 진중권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 편>은 2008년 나왔다. 미술사 강의 때 쓸 적절한 교재가 없어 시작한 가벼운 프로젝트였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어떤 경우는 낡고, 시점도 간단했다.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3편으로 끝을 내려다 다시 ‘인상주의 편’을 써 최근 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4권 완간을 두고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 10년 만에 서양미술의 지도를 완성하다’라고 선전한다. 미학과 미술사를 넘나들며 서양미술의 역사와 원리를 한 번에 묶어낸 책이라고도 했다. 

저자에게 완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 19일 휴머니스트에서 진중권을 만났다. 완간 의미를 묻기 전에 최근 시사 이야기를 꺼냈다. 논객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는 그는 드루킹 사건과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 사건을 두고 독설을 날렸다. 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 진중권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자신을 ‘글 쓰는 사람’으로 규정한 진중권은 집필 중이거나 계획중인 ‘철학 오디세이’와 ‘미학사’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 연락처에 016 번호이길래, 지금도 쓰나 했어요. 혹시나 전화했더니 받으셨고요.

“고장이 안 나서요. 2G폰 써요. 슬라이드 폰요. 한 10년 됐어요.”

 

- 스마트폰 안 쓰나요. 

“통화가 되는데 왜 바꿔요. 그 점에서는 보수적이라서 늘 쓰던 거 쓰고, 늘 입던 거 입고, 늘 먹던 거 먹어요. 스마트폰은 없어도 아이패드가 있어요. 논문 PDF 다운을 많이 받아요. 위키피디아 볼 때도 아이패드가 편하죠. 카톡, 그거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웃음)” 

-SNS는 안 하는 듯하던데요. 

“트위터는 팔로워 86만 가고 접었어요. 페이스북은 옛날에 했는데 사적으로만 했죠. 페북 친구는 외국인으로, 그것도 열댓 명밖에 안 돼요.” 

- 책이나 강연으로만 발언하는 거네요. 

“<외부자> 나가서도 하니까요. 그것도 솔직히 지겨워요.(웃음) 한 이야기하고 또 하고요. 게다가 요즘은 온통 음모론자들이잖아요. 김어준, 드루킹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도 민주당도 바른미래당도 다 음모론에 빠져 있어요.” 

- 시사 문제는 나중에 조금 물어볼까 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니. 드루킹 사건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생각해 봅시다. 파주의 ‘산채’라는 곳에 모인 수십 명의 오타쿠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전형적인 음모론이죠. 그 사람들이 댓글 조작을 해야 얼마나 하겠어요. 하루에 쏟아지는 수천, 수만 개의 기사 중 몇 개를 하겠어요? 연구에 따르면 포털에 들어가 댓글 놀이하는 이들은 전체 누리꾼 중 0.0006%에 불과해서, 올라오는 모든 댓글을 약 3,000여명이 작성한다잖아요. 그걸 ‘여론’이라 부릅니까? 다른 연구에 따르면 댓글 보고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 사람은 없대요. 결국 조그만 찻잔 안에서 휘젓기 놀이하면서 찻잔 밖의 세계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과대망상이죠. 어느 사회에나 드루킹 같은 이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의 음모로 세상을 바꾸려 드는 정신병자들. 그 반대편에는 그 망상을 진지하게 믿어주는 김어준 같은 이들이 있죠. 눈에 뵈지 않는 소수의 조작으로 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니 색출하자. 뭐, 이런 황당한 음모론을 방송에 대고 떠들어대니, 세상에, 그걸 또 민주당에서 받아요. 그래서 경찰에 고발을 하고, 결국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죠. 2012년 총선은 김용민이 말아먹더니. 올해 지방선거는 정봉주-김어준이 말아먹게 생겼네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반대편에서 음모론에 가담합니다. 조선일보에서는 드루킹의 조작으로 대선결과가 바뀌었다는 투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나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후보 역시 자기들이 드루킹 때문에 정권을 놓쳤다며, 대선이 무효라 주장하잖아요. 다들 음모론에 환장했어요. 헷갈리면 일단 큰 그림부터 보면 됩니다. 첫째, 민주당에서는 불법적으로 댓글부대를 만들어 운용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잖아도 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이버전사 역할을 하겠다는 열성적 지지자들로 차고 넘치니까요. 둘째, 이번 수사는 민주당 측의 고발로 시작된 겁니다. 드루킹이 민주당이나 문 캠프에서 관리하던 댓글부대라면, 뭐 하러 경찰한테 그 실체를 밝혀달라고 하겠습니까? 이것만 봐도 사건의 성격은 분명해집니다. 민주당이나 문캠프에서 지난 대선에서 불법 댓글부대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려면, 일단 이 두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수언론이나 보수정당은 이 기초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없이 의혹을 뻥튀기 해 음모론만 펼치고 있지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항의 방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드루킹 댓글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항의 방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봉주 전 의원 사건 두고도 언론기고를 두차례 하셨는데, (정 전 의원) 팬들도 많고, 같이 방송도 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거짓말 할 줄 몰랐거든요. (정 전 의원 서울시장) 출마 전날 홍보영상 찍어줬거든요. 그다음 날 일이 터졌는데, 이틀 시간 두고 보겠다고 해서 정리 잘할 거라 봤는데, 갑자기 기자회견 열어서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화가 났죠. 믿었는데. (정 전 의원에게) 문자를 보냈죠. ‘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마초들과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때 적반하장으로 피해자한테 2차 가해를 하고, 프레시안과 같은 진보언론에 이지메를 가했잖아요.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비판한 거고요.”

- 최근 다시 모두 까기로 돌아가신 듯한데, 모두 까는 기준 잣대가 무엇인지요.

“생각해보세요.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서 피해자 편 드는 건 당연하잖아요. 정 전 의원과 팬들은 변명을 하는 게 아니라 외려 피해자를 공격했습니다. 뽀뽀할 수도 있지 하는 식으로. ‘키스 미수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너도 정봉주 의원에게 키스 미수 당하면 기분 좋겠냐고 묻고 싶어요. 한경오프를 공격하는 것도 그래요. 조중동도 아니고, 진보언론도 아니고, 오직 나꼼수만 믿겠다는 거죠. 이 ‘꼼진리교’가 대중의 의식을 현저히 왜곡시켰어요. 상황이 2012년보다 더 나빠요. 그때는 사실이 아닌 거로 드러나면 수긍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수긍도 안 해요. 그냥 종교가 된 거죠.”

- 미투운동은 어떻게 보시나요. 

“미투는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늘 가해자이니까요. 가슴으로 잘 못 느끼죠. 고작 키스 한 번에 정치 인생 날리는 건 너무하는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가슴으로 못 느끼면 머리로 생각이라도 해야죠. 여성이 해방되어야 남성이 해방돼요. 지금 학교에서 A받고, 이런저런 시험에서 우수 성적자들이 다 여자잖아요. 성실하고. 우수한 자원들 쓰면 경제도 좋아지죠.”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서양미술사>‘인상주의’ 편으로 총 4권 완간하셨는데요. 완간 의미 짚어 주신다면요. 10년 걸렸는데. 

“미술사 책은 잰슨 것이나 곰브리치 것이 나와 있죠. 많은 경우 (기존) 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그 많은 화가들 이름이나 유파들 기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 버려요. 그래서 그런 책을 읽기 전에 뭔가 ‘지도’의 역할을 해 줄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사에 골격을 세운다고 할까요? 골격만 서 있으면 피와 살을 붙이는 것은 독자 스스로 할 수가 있지요. 그럴 목적으로 세 권(‘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을 썼는데, 모더니즘 편을 강의하다 보니까,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데 뭔가 비어 있는 거예요. 모더니즘에 들어가기 전에 서너 시간은 인상주의 등 19세기 후반 미술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럴 바에야 아예 한 권을 더 쓰자고 해서 인상주의 편을 쓰게 됐죠.”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 서양미술사는 더 쓰실 계획은 없나요? 

“그러면 정말 본격적인 미술사가 되어버린다는 거죠. 그건 제 의도도, 제 전공도 아니고요. 기존 미술사는 모든 걸 다 다루다 보니 보통사람이 들어가면 길을 잃어요. 저는 미학 전공이니, 미학적 관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흐름을 잡아가게 해주는 거죠. 일종의 입문서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마냥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제 서양미술사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져요. 처음 ‘고전예술 편’은 쉽고, ‘인상주의 편’은 쉽되 그보다는 어렵고, 다음, ‘모더니즘 편’은 조금 어렵고, 마지막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은 많이 어렵습니다. 난이도가 1에서 2,3,4등급으로 올라가죠. 그래도 갈수록 용어가 익숙해지니까, 깊은 내용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 편’ 중 ‘나가며’를 읽으니 모더니즘 편 안내를 해놓았는데, 안 보신 분들이 본다면 시대순으로 읽어야 하겠네요. 

“그렇죠. 인상주의 편은 두 번째로, 역사 순서대로 읽으면 돼요. 그게 난이도의 순서이기도 하니까요.” 

- 한국에서 인상주의는 왜 인기가 많을까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현대 예술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예술에서 기대하는 건 ‘감각적 쾌감’입니다. ‘예쁜 것’을 좋아하고, 정서적 감동을 원하죠. 그런데 현대 예술은 그것을 파괴합니다. 지성적 쇼크를 충격을 준단 말이죠.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죠. 사람들은 감동받고, 작가와 소통하길 원하는데 현대 예술가들은 소통 자체를 거부해요. ‘당신 스스로 머리로 생각하라’고 하죠. 소통은 코드가 같아야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현대 예술은 엘리트주의에요. 그러니까 ‘네가 머리를 썩여서 내 코드를 이해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거야’. 이러니까 대중에게 재수가 없을 수도 있죠. (고전주의 같은) 옛것들은 대중에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죠. 제일 만만한 게 모던의 삶을 다룬 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겠지요. 대중들에게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 하면, 아마 대부분 고흐를 꼽을 겁니다. 세잔만 해도 사실 대중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죠.” 

- 인상주의 화가 중 누구를 좋아하나요. 

“인상주의 자체를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실은 후기인상주의의 세잔을 좋아해요. 그밖에 미술사에서 좋아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고야를 꼽고 싶습니다. 그의 ‘pinturas negras’(검은 그림들)은 매우 철학적으로 깊어요. 화가들 중에서 뭐랄까, 심연처럼 깊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고야이고, 또 하나가 세잔이에요. 전체 화가 중 하나만 뽑으라면 세잔을 뽑아요. 예쁘기만 한 그림은 별로 안 좋아하고, 값싼 감동도 혐오하는 편이라서요. 저는 이지적인 게 좋아요. 예술가의 고뇌 같은 말도 안 되는, 레토릭도 혐오하고요.” 

고야,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0㎝X43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검은 그림들’ 중 하나다.

고야,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0㎝X438㎝,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검은 그림들’ 중 하나다.

- 세잔은 좀 의외인데요. 현대미술가를 좋아할 듯했습니다. 

“세잔이 바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니까요. 세잔은 파고 파도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모든 사람이 원근법을 다 믿었잖아요.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사람이죠. 눈에 보이는 것이 원근법적 재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냈죠.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원근법적 재현만이 현실에 대해 유일하게 올바른 묘사라고 봤습니다. 원근법은 고정된 하나의 눈에 비친 장면을 평면에 옮겨놓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우린 사물을 두 눈으로, 안구를 움직여 시점을 바꿔가며 보죠. 망막도 구면으로 되어 있고요. 실제의 지각의 과정은 광학적이 아니라 뇌과학적이에요. 그때그때 시점과 초점과 위치를 바꿔가며 지각한 파편들을 뇌 속에서 하나의 전체상으로 종합하는 거죠. 그런데 그 옛날에 아무런 뇌과학적 지식 없이도 오로지 자기 감각에만 의지해서,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원근법적 재현과는 다르다고 말한 이가 세잔이에요.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을 갖춘 사람인 거죠. 메를로퐁티가 이 주제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세잔은 원근법적 재현이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세계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는데, 메를로퐁티가 이를 ‘체험적 원근법’이라 불렀죠. 사진을 찍으면 원근법 하고 일치합니다. 사진에 시각을 비유들 하죠. 하지만 우리 눈은 세상을 사진처럼 보지 않아요. 세잔은 그걸 감각으로 깨달은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의 시각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360도로 회전시킬 때가 있지요. 그때 화면에서는 나는 가만히 있고,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서 360도 돌아보세요. 그럼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도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하죠. 앞의 것은 시각적-광학적 지각이라면, 뒤의 것은 촉각적-뇌과학적 지각이라 할 수 있지요. 세잔은 바로 그 차이를 느낀 거죠.” 

세잔의 ‘벌거벗은 동자상이 있는 정물’(1895). 진중권은 세잔이 다시점을 도입해 묘사한 3차원 공간은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도저히 19세기 제작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세잔의 ‘벌거벗은 동자상이 있는 정물’(1895). 진중권은 세잔이 다시점을 도입해 묘사한 3차원 공간은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어, 도저히 19세기 제작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미술사 중 어느 시기를 제일 좋아하시나요. 

“저는 모더니즘이에요. 예술의 정점이었다고 봐요. 제일 재미있고요,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방가르드였죠. 미학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가 하나가 된 것이 모더니즘 시기이고요. 미술사의 영웅적이고 혁명적 시기죠. 물론 앤디워홀도 혁명적이기는 하나, 어딘지 체제 순응적이잖아요. 솔직히 워홀 이후의 미술사는 조금 재미없어요.” 

- 서양미술사는 처음 어떻게 쓰신 건가요? 

“그저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미술사를 강의하는데 적절한 교재가 없었고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어떤 경우엔 시점이 너무 오래됐고. 강의안으로 쓴 것인데, 10년에 걸쳐 쓰게 됐네요.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고요.” 

- 출판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학오디세이>는 모두 50만 부 넘었다고 하더군요. <서양미술사> 3권은 9만 정도고요. 상대적으로 적은데, 선생님 책이나 다른 분들의 책이나 미술책이나 인문책이 예전보다 판매량이 많이 줄었는데요.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변한 것이죠. 지금 팟캐스트 같은 게 흥하는 이유가, 예전 정보를 눈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는 거죠. 바로 사운드와 이미지죠. 거꾸로 팟캐스트에서 방송한 콘텐츠가 책이 되어 나오고요.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의 종언’인 거죠. 이 몰락은 필연적인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문학 책 읽는 사람은 중세 수도승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미디어 철학자가 빌렘 플루세르가 ‘디지털 시대에 순수 인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집단은 일종의 수도원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거든요. 전 (텍스트의 몰락에) 안타까움은 갖고 있지 않아요. 수익도 이제는 책에서 나오는 것보다 강연이나 다른 데서 나오는 게 훨씬 많아요. 채널이 달라진 거죠. 강연이나 팟캐스트 쪽으로요. 다만 그 강연이나 팟캐스트 역시 바탕에 텍스트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문자문화 이전으로 퇴행하게 되죠. 디지털문화는 문자문화 이후의 영상문화, 문자문화보다 진화한 영상문화입니다. 여기서 텍스트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뿐이죠.”

[전문]인상주의에서 음모론까지…‘서양미술사’ 완간 진중권 인터뷰

- 여기저기 강의를 많이 하는데요. 

“1주일에 한 번꼴로 해요.” 

- 수익 때문인가요. 

“그럼요.(웃음) 인문학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걸로 하진 않아요.”

- 강연 중엔 ‘미학으로 본 새로운 사회’ 강연 타이틀이 있던데, 그 새로운 사회는 뭔가요?

“그건 주최측에서 대충 정한 거예요. (웃음) 특정한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저를 보자고 하는 겁니다. 제목은 저렇게 대강 붙여 놓고 원하는 거 해주세요. 이런 거죠. 그래서 제목이 넓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강연과 할 수 없는 강연이 있잖아요. 제목을 좁혀서 요청을 해오면 제가 감당이 안 돼 거절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목은 넓게 붙여놓고, 강연 오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만 알려주고 알아서 거기 맞춰 해달라고 하세요. 앞뒤 (다른 강연자들의) 강연제목을 보고, 거기에 맞추어 준비를 해가죠. 르네상스 미술사, 현대미술사, 디지털 이미지의 미학, 미디어 이론 등등 뭐든 준비는 다 돼 있어요.” 

-네이버 파워라이트 on 에 ‘진중권의 철학 오디세이’를 최근 시작했는데요.

“지금 연재하는 철학 오디세이를 갖고 철학책을 쓰려고 해요. 논리 흐름을 정리 중이에요. 연재가 완료되면, 기획을 둘로 나눠 하나는 각주를 붙인 본격적인 철학사 책으로 구성하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대중을 위한 입문서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쉬우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써야겠죠. 제대로 된 철학사와 대중용 철학책 두 권을 낼 겁니다. 지금은 리딩을 하면서 논리의 흐름을 잡는 단계입니다.” 

-지금 4회 나갔던데, 목차만 1회 원고량 보면 꽤 방대할 것 같은데요.

“할 수 없지요. 이번에 나가미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후의 철학적 발전의 흐름을 잡아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서술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요.” 

-철학책 집필 계기는 뭔가요. 

“미학이 철학의 한 부분이니까요. 예전부터 쓰려고 했어요. 미학사도 하나 써야 하는데, 그 작업은 몇 년째 중단된 상태고요. 시간이 안 나요. 철학부터 정리하려고요.”

-저술가인가요, 방송인인가요, 아니면 논객인가요? 스스로 규정하면요.

“방송은 돈 때문에 하는 것이고, 돈 안 주면 안 하죠.(웃음) 전 글 쓰는 사람이죠.”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2017.01.01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2017.01.01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올해 출간 20주년으로 아는데요. 개정판이나 기념판은 염두에 두는지요? <미학오디세이>와 더불어 오늘의 진중권을 잊게 한 책인데요.

“그건 버리는 책입니다. 그때그때 일시적으로만 유효한 책들이 있는 거죠. 1997년 막 박정희 신화가 일어나고 있었을 때죠. 그걸 제압하려고 썼는데, 결국 실패해 박근혜가 대통령 된 사태가 벌어진 거죠. 재밌는 게 그 때 책을 쓴 계기를 제공한 것이 류철균씨였거든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박정희 소설(<인간의 길>)도 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소동의 최종결과가 가히 예술이네요. 바로 그것 때문에 결국 감방에 갔잖아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문체가 놀이체잖아요. 인터넷 체죠.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그때 인터넷 체 쓰는 사람으로 또 누가 있었냐면, 바로 딴지일보의 김어준이에요. 인터넷 특성을 활용해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동일한데, 길이 달랐어요. 나 같은 경우는 놀 때에도 로고스와 에토스의 영역을 떠나지 않으려 했죠. 이성과 윤리요. 그런데 저 친구(김어준)는 전적으로 뮈토스, 이야기 취향이에요. 신화를 만들고 음모론을 펴대니 안 맞을 수밖에 없지요. 같이 가면 좋은데 곽노현 교육감 사건 등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그가 만들었다는 3부작 다큐멘터리, 로고스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사기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렇게 음모론 팔아 장사를 해먹는 게 매우 비윤리적이라 생각하지만, 남의 신앙생활에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영화의 펀딩에 참여한 이들은 절대로 자기들이 사기 당했다고 생각 안 할 거거든요. 자기들은 그래도 좋대요. 그럼 된 겁니다. 다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로고스), 사회를 더 정의롭게(에토스) 만들어야 하는데, 음모론은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고, 진영논리로 이쪽 진영을 저쪽만큼 타락시키거든요. 그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김어준이 큰 일 한 게 있어요. 자유한국당을 지지해도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을 이쪽 진영에 묶어 놓는 거죠. 사실 나꼼수 지지하는 이들을 보면, 여성문제를 비롯해 여러 사회적 의제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과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진보와 보수가 7:3으로 나타나잖아요. 그런데 의제의 관점에서 조사를 해보면 진보와 보수가 5:5로 나뉜대요. 말하자면 보수에 있어야 할 2가 지금 진보로 넘어와 있다는 얘기죠. 거기에는 탄핵 등의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겠지만, 나꼼수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웃음)”

- 홍세화 선생은 최근 낸 책에서 공부나 생각하기를 강조하시더군요.

“요즘 세대가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보의 플랫폼이 달라졌어요. 우리는 책의 세대니까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세대는 게임의 세대라 서사적 의식을 갖고 있어요. 예전엔 역사를 창조한다고 했는데, 서사를 창작해요. 이야기도 모든 이가 믿으면 현실이 된다고 믿어요. 허구도 집단적으로 창작하면 현실이 된다는 거죠. 나꼼수가 모든 걸 설명해주잖아요. 꼼 진리교의 신도들은 논리적 정합성으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서사적 개연성만으로 신앙을 해요. 뭔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에 최소한의 개연성만 부여해주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믿어주는 거죠. 상황 전체를 봐야 하는데, 조각난 파편들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거죠. 마치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말이죠. 정봉주 건을 보세요. 자기는 두세 시 경에 홍대에 있었으므로 혐의가 없다는 얘긴데, 팬들이 그걸 믿어주잖아요. 본인의 입으로 어머니 병원에 갔다고 얘기한 시간대랑 충돌하는데도 말이죠. 이렇게 대중으로 하여금 전체를 보며 비판적 사고를 못하게 막는 게 음모론적 사고의 문제예요.”

- 지식이나 정보 양이나 유통은 예전보다 발달했는데요. 

“트위터는 그래서 접었어요. 예전엔 사람들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면 감사를 했는데, 지금은 굳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니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들에게는 틀렸다 안 틀렸다는 중요하지 않아요. 설사 정봉주의 말이 거짓이더라도 좋아, 드러나지만 않으면 돼! 이거죠. 그래야 속이 편하거든요. 자신이 믿었던 사실이 허위로 드러나면 머릿속의 신념체계를 온통 다시 구성해야 하는데, 그게 번거롭고 싫은 거죠. 대중은 나꼼수에 수동적으로 속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속아주는 겁니다. 정봉주 사건에서도 12월 23일의 알리바이를 대신 찾아주면서 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주문한 것은 대중이었습니다. 정봉주는 거기 편승한 거죠. 대중들의 바람은 정봉주가 참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더라도 들통만 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아이돌과 팬덤이 공동으로 허구를 창작하고, 그것을 집단으로 믿음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겠다는 거죠. 그게 잘못이라고 지적하면 칭찬이 아니라 욕을 먹어요. 이른바 ‘놀이 망치는 놈’(Spielverderber)이 되는 거죠. 놀이자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놀이의 상대자가 아닙니다. 적어도 상대자는 놀이를 진지하게 인정해주거든요. 정말 미운 것은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왜 하냐?’면서 놀이판 자체를 깨는 놈입니다. 그런 놈은 용서가 안 되죠. 

아무튼, 결국에는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죠? 그런 정봉주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진중권은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이 물음에도 그들은 음모론적으로 대답합니다. 첫째, 저놈(진중권)에게는 남다른 혜안이 있다는 거죠. 둘째, 그놈이 소 뒷걸음치다가 쥐을 잡았다는 거죠. 그게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라는 걸 인정을 안 해요. 왜? 그래야 자신들이 멍청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자기들은 특별한 ‘통찰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혹은 로토 게임에서 재수가 좀 없었던 사람들일 뿐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해야 자신들의 멍청함을 잊고 앞으로도 계속 멍청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죠. 그들은 그 편이 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 정 전 의원 성추행 의혹 관련 두 번째 기고는 육하원칙 위주로 기사처럼 썼는데요.

“오마이뉴스에 나온 (정 전 의원 관련) 두 번째 글은 검열 당했어요. 완전 편집부에서 마사지 한 겁니다.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인두로 신문 활판의 활자를 지우듯이 편집부에서 여기저기 표현과 문장과 문단을 인두로 지워버렸더라고요. 결국 ‘오마이뉴스’ 회원에서 탈퇴했어요. 나꼼수나 정봉주 팬덤의 항의가 그렇게 무섭다는 얘기겠죠. 이른바 ‘한경오프’라 불리는 진보매체들은 규모가 작아서 거대한 팬덤이 때려대면 타격이 크죠. 그걸 알기 때문에 후원은 끊지 않았어요.”

- 정의당원이죠? 

“당원의 한 사람으로 있고요. 당원 활동으로는 1년 반 넘게 ‘노유진의 정치 카페’ 100회를 했지요. 제 기억에 정치 브리핑을 담당했던 유시민 작가는 음모론을 펴지 않았어요. 드러난 사실들을 토대로 합리적 추정을 하려고 했죠. 결코 로고스의 영역을 떠나지 않았어요. 에토스도 지켰고요. 우리는 회당 100만 다운로드가 이루어지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죠. 방송 시작 전에 점심 얻어먹은 게 전부였죠. 우리가 요구한 건 우리가 게스트들의 출연료를 올려 달라는 것 밖에 없어요.(웃음). 손님을 불렀으면 최소한의 돈은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웃음). 로고스와 에토스의 영역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다 무너진 것 같아요. 요즘은 정치 팟캐스트들이 음모론 장사, 혹은 경선 거간꾼 놀이가 되어 버린 듯해요. 같은 소리를 너무 오래 듣다 보면 세뇌가 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도 자기들을 비판하고, 진보언론도 비판한다면, 자기들에게 뭔가 잘못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세뇌당한 머리들은 자기들이 늘 옳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진보언론이 자기들을 비판하는 것은 나꼼수에 대한 열등의식 때문이라고 믿는 거죠. 증상이 어느 정도냐 하면, 심지어 손석희마저 김어준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대요. 이렇게 진보언론까지 적으로 돌려놓으면, 이제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나꼼수와 그 아류들밖에 없게 되죠. 그러면 그럴수록 정보의 편식은 심해지고, 세뇌는 더 깊어지는 거죠.” 

- 할말 하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인 듯한데요. 

“정봉주 사건 때는 그나마 금태섭 의원이 이야기했죠. 그래서 욕도 먹고요. 예전엔 인터넷 논객들의 담론 하고 대중의 세론하고 연결이 됐어요. 대중끼리 하는 이야기와 지식인들 하는 이야기가 연결된 거죠. 대중과 지식인이 서로 주고받는 게 있었는데, 어느 날 김어준이 지식인의 담론을 공격했죠. 입진보라고요. 아무튼 그의 팬덤은 ‘무학’에서 ‘통찰’이 나온다는 그의 말을 철떡 같이 믿습니다. 행여 거기에 조그만 의혹이나 이견이라도 제시하면 바로 몰매를 맞지요. 그래서 그나마 제 정신 가진 이들은 팬덤에는 점점 더 과격하고 광신적인 사람들만 남게 되죠. 그렇게 팬덤은 서서히 사이비종교로 변해가는 겁니다. 그 극단적 예가 드루킹같은 선거 브로커죠.”

작가 강형구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붉은 반 고흐’ 앞에 서 있다. 고흐는 강형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다. 강형구는 이 작품에서 고흐의 광기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2010.02.9 김종목 기자

작가 강형구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붉은 반 고흐’ 앞에 서 있다. 고흐는 강형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다. 강형구는 이 작품에서 고흐의 광기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2010.02.9 김종목 기자

- 다시 미술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 전 강형구 작가 전시 때 강 작가와 ‘하이퍼리얼리즘’에 관한 서문을 쓴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한국 현대미술도 종종 보시나요.

“제 일은 아니에요. 제가 하는 미학이론과 관련해서 관심 있는 부분만 건드려요. 강형구나 한성필 작가를 위해 글을 쓴 것은 이 분들의 작업이 ‘가상과 현실’ 같은 제가 관심을 가진 철학적 주제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죠. 그렇지 않은 경우 개별 작가들에 대한 평론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연락은 많이 오는데 안 해요. 그걸 하려면 한 작가의 논리, 작업의 역사를 다 알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고요. 가끔 전시는 보러 가요. 오프닝 할 때 보면 어디를 가도 오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동네가 참 좁다는 느낌이 들죠. 그건 그렇고 젊은 세대 중에서 글 쓰는 사람이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위기인 게 영화 쪽도 젊은 감독이 안 나오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직 386세대가 자리를 잡고 앉아 민폐를 끼치고 있는 셈인데, 사실 우리가 적폐죠. 그래도 우리 세대는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앞의 세대를 부정하면서요. 젊은 세대들이 우리를 부정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나 봐요. 그리고 조영남 사건의 경우에는, 딱히 그 분 작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현대예술 논리와 관련된 것이라서 개입한 거고요. 판사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현대예술은 작가가 오소라이제이션(authorization) 하면 작품이 되는 거예요. 화투를 제일 먼저 누가 그렸나요? 조영남이죠. 화투를 그리라고 누가 시켰나요? 조영남이죠. 화투 그림에 누가 덧칠을 했나요? 조영남이죠. 최종적으로 거기에 누가 사이을 했나요? 조영남이죠. 사람들이 화투 그림 보면 누구 작품이라 생각하나요? 조영남이죠. 그러면 그 그림은 누구 손을 거쳤든 500% 조영남의 원작이 되는 겁니다. 그게 현대미술의 논리예요. 공판 때 전문가 증인으로 나갔는데, 미술계 쪽의 증인으로 나온 화가가 ‘진중권의 말이 맞다. 다만 내가 못 받아들이는 건, 조용남이 작가라는 생각이며, 그의 그림이 작품이라는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황당했죠. 꼭 미대 나와야 작가 되나요?” 

2016년 4월 작업실의 조영남씨. 이상훈 기자

2016년 4월 작업실의 조영남씨. 이상훈 기자

-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사람들은 직접 그린 거로 알 수 있는데요.

“방송으로, 쇼로 보여줄 수도 있죠. 그게 직접 모든 걸 실행했다는 건 아니죠. 덧칠만 할 수도 있고요. 직접 그렸는지 중요한 게 아니죠,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되요. 그걸 실행시켜서 만들게 하면 되죠. 법원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그리고 미술계 사람들이 조영남을 폄훼하잖아요. 그게 재수 없어요. 폄훼하는 이들을 보면 속으로 “솔직히 당신 작품도 후져”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조영남의 작품을 후진 걸로 만든다고 자기들 작품이 좋아지는 건 아니죠. 사실 뒤샹과 워홀이 깨려한 게 바로 그 허위의식이죠. 워홀도 회화 전공이 아니라고 전시를 뉴욕이 아니라 LA에서 했어요. 미대에서 페인팅을 배운 애가 아니라는 거죠.” 

- 몇 년 전 어느 레지던시에 갔다가 유명 화가 작업실에 제자가 그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게 당연해요. 알려지려면 작품 많이 그려야 해요. 혼자 다 못해요. 어느 유명 작가는 한해에 300점을 그렸다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화랑에서도 뻔히 다 알면서도 입 닫고 있는 거죠. 아무튼 2심과 대법원에서 판결이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애초 이런 문제는 미술계에 맡겨야 합니다. 원작의 오소라이제이션 개념을 왜 판사님들이 정의하죠? 관념과 실행을 분리해놓고, 관념이 더 중요하다는 게 20세기 미술에 일어난 이른바 ‘개념적 혁명’이거든요,” 

- 천경자 화백 ‘미인도’ 표절 건은 어떻게 보셨나요. 

“천경자 그분이 돌아가셨으면 논쟁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분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살아계실 때 아니라고 했잖아요. 설혹 진짜라고 해도 작가가 오소라이제이션 안해 주면 작가 것이 아닙니다. 워홀의 경우 어느 사람이 위작을 갖고 왔는데, 거기에 사인을 해줬어요. 그러면 원작이 되는 거죠.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완성하는 화가의 이미지는 인상주의 시절 전후한 짧은 시기에 형성된 겁니다. 르네상스 때도 제자가 대신 그렸죠. 다빈치도 스승보다 잘 그려서 유명해진 거고요.”

‘미인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미술계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부터 과천관에서 ‘미인도’를 전시했다.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은 이 전시에 대해 미술관을 고소했다. 관람객들이 지난해 12월 17일 ‘미인도’를 들여다보고 있다.‘미인도’ 앞 난간은 그림을 보호하는 시설물이 아니라 과천관 계단 난간을 본뜬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 ‘상대적 상관관계 2’다.<br />김종목 기자

‘미인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미술계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부터 과천관에서 ‘미인도’를 전시했다. 고 천경자 화백 유족은 이 전시에 대해 미술관을 고소했다. 관람객들이 지난해 12월 17일 ‘미인도’를 들여다보고 있다.‘미인도’ 앞 난간은 그림을 보호하는 시설물이 아니라 과천관 계단 난간을 본뜬 김민애 작가의 설치작품 ‘상대적 상관관계 2’다. 김종목 기자 

- ‘인상주의 편’ 서문에 고양이 루비에게 최고로 감사하다고 쓰셨는데.

“루리는 집에 있어요. 키워보면 왜 고양이가 좋은지 알게 되죠. 루비는 웬수같아요. 개는 아양도 떨고 하는데, 고양이는 철저한 에고이스트죠. 고양이에 관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갖고 책(<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도 썼죠. 여기(휴머니스트 건물) 짓기 전 개인주택이었는데 3개월 비어 있었어요. 2권 작업을 할 때죠. 아침마다 10시 전에 와서 참치 캔 먹고 가던 삼색 고양이가 있어요. 뒤샹이라고. 이 건물 들어서곤 못 만났습니다. 길냥이는 오래 살지 못해요. 지금 고양이 분양은 너무 상업적입니다. 새끼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잖아요. 동물권의 문제가 생기죠. 품종묘를 선호하는 풍습 역시 마음에 안 들어요. 인위적으로 만든 품종묘들은 종종 유전적으로 취약성을 갖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생명을 액세서리로 보는 거예요. 품종묘 개량이나 상업적 분양은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학자, 전 대학 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김영민 기자

미학자, 전 대학 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김영민 기자

- 요즘도 비행기 타시나요. 

“못 탄 지 오래됐어요. 한 2, 3년? 단양 비행장이 폐쇄되어서 제천 비행장으로 옮겼는데, 택시 타고 가야 하고, 활주로도 안 좋고 해서요. 언제 다시 탈지 모르겠어요.”

- 학교(동양대) 가실 때 차 안 가져가시나요. 

“차 없어요. 면허도 없고요. 대중교통 타고, 차야 얻어 타면 되니까 안 불편해요. 대중교통 잘 돼 있어요. 훨씬 빠르죠.” 

- 방송도 자주 나가서 글만 쓸 때보다 알아보는 분들 많을 것 같네요.

“더러 있죠. 종편도 나가니까, 나이 드신 분들 더러 알아보세요. 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에요.”

-정치 발언도 많이 하시는데 비평집이나 정치오디세이 낼 계획은 없나요.

“없어요. 원해서 낸 적도 없고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원해서 낸 것이긴 한데, 이후 칼럼집은 출판사한테 설득당해서 낸 겁니다. 칼럼은 그때그때 증발하는 거죠. 일시적인 글쓰기라 흔적을 남기는 거 자체가 부담스럽고, 애정도 없어요. 예전에 영세 출판사에서 하도 간절히 부탁하길래, 거절하지 못해 냈죠. 그 이후로는 거절했어요. 최근에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낸 적 있는데, 그건 칼럼이 아니라 한 번 강연한 걸 묶은 겁니다.” 

- 좀 전 여러 직함 중에 자신을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계획은요.

“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지금은 쓸 엄두를 못 내는데, 미학사를 계획하고 있죠. 미학의 원어인 Aesthetics는 원래 감성학이라는 뜻입니다. 재작년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감성론, 감각론에 관해 <창비>에 연재했어요. 그걸 묶어서 책으로 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정리를 못 하고 있죠. 지금 연재에 들어간 철학 오디세이는 이틀 만에 50매짜리 원고를 써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깁니다.”

-철학 오디세이 도판이 많이 들었더군요. 

“원래 그랬어요. 인터넷 세대라 그래요. <미학 오디세이>는 처음 나왔을 때 두 가지 욕을 먹었어요. 하나가 그림 많이 들어갔다는 거죠. 애들 보는 그림책이냐. 두 번째가 구어체였어요. 이게 갑자기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요즘은 가벼운 접근이 인문학의 표준처럼 되었죠. 여러 가지 ‘오디세이’들이 나왔잖아요. 제게 무슨 혜안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몇 권 더 팔아먹을 생각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게 우연히 시대와 맞아 떨어진 거죠.” 

- 책 많이 파시고, 강연도 방송도 많이 나가시는데 많이 버셨나요.(웃음)

“서울시내에 아파트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너무 비싸더라구요. 이번에 18평짜리 빌라를 하나 샀습니다. 5천 원짜리 커피도 잘 못 사먹어요. 화가 나요. 물 한 잔에 거의 한끼 밥값이라는 납득이 안 돼서.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합니다. 안락함에 빠지면 다시 못 돌아와요. 대신에 여유가 되는 한에서 맛있는 것은 많이 사 먹으려 해요.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건 한 번도 안했죠. 비트코인도 안 샀구요. 도끼란 래퍼가 하루 숙박비 몇 백만 원짜리 호텔에 살잖아요. 난 그게 맘에 들어요. 그냥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자기를 위해 쓰는 거잖아요. 그게 건물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거예요. 이 친구가 사치만 하는 거 아닙니다. 하루 5만원씩 저축도 한대요(웃음). 전 도끼 그 친구가 철학자라고 보거든요. 자기가 번 거 떳떳하게 과시하고요. 난 멋있다고 봐요. 건물주 돼서 세입자 등쳐먹고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봐요.”

래퍼 도끼(dok2)가 29일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2017 비키니코리아’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충진 기자 hot@khan.kr

래퍼 도끼(dok2)가 29일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린 ‘2017 비키니코리아’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충진 기자 hot@khan.kr

- 마무리할 때인 것 같은데요. 다시 이번 ‘인상주의 편’ 소개하실 말이 있다면요.

“그림 저작권료가 안 들어가요. ‘인상주의 편’은요. 그래서 도판을 원 없이 썼습니다. (웃음) 다들 저작권이 소멸된 거라.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 쓸 때는 많이 들어갔죠. 판 찍을 때마다 내야 하고요. 피카소는 너무 오래 살아서(웃음)…. 업적은 이 사람들이 쌓은 건데, 왜 저작권료는 유족들이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당사자 죽고 10년까지면 족하지 않을까요? 인상주의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가는 가교 역할을 했거든요. 전통적인 고전예술을 붕괴시키면서요. 그러면서 아직은 현대예술은 아니고요.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던 시기의 미술이죠. 현대예술이 어떻게 태동하는가, 그 과정을 볼 수 있죠. 한편으로,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이기도 하거든요, 처음으로 현대인들의 삶을 다룬 미술이거든요. 그전이 미술은 신화, 성서, 역서 등 삶에서 동떨어진 얘기를 했었지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40728001&code=960100#csidx8b63c37ef47b72c8b8ba1365c5c4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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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레일에 올라탔다

[기고] 비핵화 구체적인 프로그램 구상할 때

 

 

 

협상을 통한 비핵화의 서막이 열렸다. 북한이 먼저 치고 나왔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 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 탄도 로케트 시험 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 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었다"고 했다. 다행히 북한이 대남, 대미협상을 단기적인 거래로 보지 않고 연속적 거래행위로 파악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외 평가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하고 있다. 요약하면, "비핵화로 가는 긍정적 신호"에서부터 "북한의 핵무기 국가 선포"까지 분석과 전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자의 시각은 북한이 미국 등으로부터 체제보장과 외교관계 수립, 경제 보상을 받으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에,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의 군사력 우위에 '경제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비대칭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북한이 핵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국제관계 이론 측면에서도 이러한 상반된 평가(conflicting assessments)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신현실주의 이론가 월츠(Kenneth Waltz)에 따르면 국가는 생존이 목표이므로 이를 위해 모든 노력(self-help)을 추구한다. 군사력을 키우거나 다른 국가들과 안보동맹을 맺어 외부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대표적인 행동이다.  

일정 정도의 핵무기를 확보하면 외부 위협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생존능력은 확보하게 되는 셈이기에 무정부 국제질서 하에서 핵무기 보유는 확실히 매력이 있는 유인요소임에 틀림없다.  

이는 물론 북한이 미국과 적대적 관계만 해소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과 상치된다. 게다가 협상 카드로서 핵무기를 만들고, 나중에 이를 포기한 국가는 아직까지 없다. 따라서 월츠는 핵무기야말로 북한으로서 국가생존에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므로 어느 나라도 북한 핵 보유를 막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반대로 저비스(Robert Jervis)는 공격에 비해 방어의 우위가 이루어진다면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가 완화되어 적대관계가 협력적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북한 입장에서 방어의 우위를 점하는 한 가지 방법은 미국과 한국이 자발적으로 군사력을 현저하게 낮추는 조치를 비핵화와 동조화하는 일이다. 

상호 협력이 북미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됨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배반'을 선택하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죄수의 딜레마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게임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북한과 미국이 배반으로 얻는 단기적 이익보다 협력을 통한 장기적 이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노동신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CIA 국장이 비밀리에 방북한 후 나온 북한의 풍계리 핵시설 폐쇄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험 발사 중지 선언은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평양에서 발신된 셈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옵션은 테이블에 있다'는 식의 협박이 아니라 파국에서 오는 불이익을 김정은에게 진지하게 이해시켰다고도 추론할 수 있다. 북·미가 합의해서 얻을 이익과 피할 수 있는 손실을 양측이 올바르게 인지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김정은이 안보(핵)와 경제 중 택일해야 하는 병진노선의 딜레마에서 핵 철로 위에 놓여있던 궁핍한 북한체제를 경제 철로 위로 옮겨 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를 시연했던 것처럼 어쩌면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을 수도 있는 풍계리 핵시험장을 시멘트 등으로 봉인하는 장면과 ICBM 몇 기를 상징적으로 파괴하는 '세리머니'를 할 수 있겠다 싶다. 보수 일각에서는 애당초 이를 '쇼'로 폄하하지만 '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할 일이다. 

협상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진행되기보다는 오히려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게임 성격이 더 강하다. 필요하다면 남북 정상 간 전화통화 이후 남측에서 특사를 평양으로 파견하여 우리의 구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신뢰를 구축하는 하나의 전술이다. 

트럼프 역시 기존의 국제정치 및 외교의 문법을 깡그리 무시하는듯한 변종 협상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번에 남북한과 북·미 간 비핵화 관련한 협상 내용에서 비핵화 종료 시점이 명시적으로 적시된다면 비핵화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셈이다.

북한판 '협력적 위협감소' 프로그램 짤 때 

북한은 지난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면서 북·미 사이 서명한 '제네바 합의'(1994.10)는 휴짓조각이 되었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별도의 제재를 받지 않고서 NPT 탈퇴를 선언했다. NPT에서 서명하고서 탈퇴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NPT 의무사항인 IAEA 사찰과 검증을 받을 법적의무도 자동적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북한을 다시 NPT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지원과 사용하지 않은 핵연료봉을 구입해 주는 등 일정한 반대급부 내지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나아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과정이 합의가 되면 북한은 보유 핵무기와 시설의 공개, 사찰, 제거 과정 등을 거쳐 마침내 IAEA 등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된다.  

결국 북한 비핵화의 핵심은 매 단계마다 '검증'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그 단초는 이미 2.13 합의문(2007년)에 마련되어 있다. 2.13 합의문에 명시된 북한의 조치는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와의 합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 요원을 복귀토록 초청하는 일이다. 그리고 북한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도록 했다.  

보도에 따르면, 5메가와트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우라늄농축시설 등이 있는 영변 핵시설만 해도 확인된 건물만 390개에 달한다. 영변 핵시설만 해체·제염하는데 수천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영변 이외의 비밀 장소에 고농축우라늄을 은닉했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 내지 촉진 목적으로 북한판 '협력적 위협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 CTR)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CTR에 대한 국내 연구는 오래 전에 있었다. 그동안 먼지가 두껍게 쌓였을 연구보고서를 꺼내어 관련 전문가들을 재조직하여 내용을 보완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한국 단독으로 추진될 성질이 아니며 무엇보다 북한의 수용성을 고려하여 다자체제의 틀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슈를 선점해야 국제협력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동시에 남북관계도 강화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오랜 남북협상 및 경제 과학기술 협력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적 동질성 언어 등 여러 측면에서 대북 CTR 적용을 주도할 수 있는 여건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비용분담은 물론 세부시행과제의 수행에 과학기술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원자력 공학, 물리학, 화학, 국제관계, 안보, 남북문제, IAEA 사찰 및 검증 유경험자, 법률 등 각 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상황들을 작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핵화 로드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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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중앙위 3차 전원회의 결정서 톺아보기

‘병진노선 결속’의 정치적 의의 언급 없는 이유와 북미정상회담의 상관관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핵심 화두는 발표된 결정서들에서 보듯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다.

대부분 언론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과 북부(풍계리) 핵시험장 폐쇄에 주목했는데 3차 전원회의의 일부를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태도라고 하겠다. 확대해석은 다른 부분을 축소하는 편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 이해를 왜곡한다. 왜 그런 결과(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에 이르렀는지는 원인(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을 제대로 따져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관심이 적다. 북의 정치선전 정도로 치부한다. ‘왜’란 물음이 없고 이유를 따지지 않으니 해석이 평면적이고 더욱이 뒤틀려 있다. 꼬리가 몸통이 된다. 언론이 ‘북한(조선) 선 비핵화’ 관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쓰지만 ‘북 비핵화’라고 읽는 버릇은 여전하다. 이번 3차 전원회의를 북미정상회담과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작용했다. 모든 게 연관돼 있긴 하지만 앞서처럼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시각을 고집하면 연관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도, 해설도 못한다.

▲ 사진 : 로동신문 홈페이지

먼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을 보자. 일각에선 병진노선의 ‘폐기’라고도 해석하는데 오독이다. 폐기란 오류 또는 실패로 드러나 중도반단한다는 뜻인데 ‘결속’은 그런 낱말이 아니다. 종료, 마친다는 거다. 노선이 제 역할을 다해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북쪽 평가는 ‘승리’)해 끝낸다는 얘기다. 병진노선을 폐기했다는 해석이 옳으려면 북은 핵무기도 폐기해야 한다. 실패한 노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속은 폐기가 아닌 거다. 그럼 북은 병진노선의 목표를 달성했는가?

김정은 당 위원장이 목표 달성의 판단 근거로 제시한 건 ‘국가 핵무력 완성에 따른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다. 핵무력(수소탄 등 다양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운반수단)을 계속 양산하고 실전 배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북미 핵공방 과정에서 지켜본 결과들이다.

이는 군사적 측면에서 핵무력 건설을 중심으로 목표를 설명한 것인데 정치적 목표에 관한 표현을 자제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5년 전 병진노선 채택 당시를 돌아보면 알게 된다.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적들은 우리에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위협 공갈하는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하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회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항시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핵보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나가지 않을 수 없다.”

병진노선을 결속하는데 ‘노선 유발자’에 관한 언급이 일체 없는 점이 외려 흥미롭다. 이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북미정상회담을 염두엔 둔 것으로 보인다. 북의 각종 매체를 보면,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미국에 관한 언급을 가급적 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문제에 관한 정치적 목표 달성은 사실 올해 신년사에서 이미 공표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된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연초부터 평화공세를 펴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한 마당에 병진노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부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핵시험 중단과 핵시험장 폐기에 대해 직접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호평했다. “큰 진전”이라며 “김정은과의 회담을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겨냥한 정치적 목표 달성을 강조했다면 이런 반색과 회담에 대한 기대감 표현이 가능했을지 궁금하다.

북은 결정서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 결정서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대목은 넷째 항목으로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둘째 항목인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페기할 것”이란 데 시선을 집중했다. 앞서 지적했듯 원인이 있고서야 결과가 있다.

넷째 항목에 주목하는 이유는 북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표현하고 있어서다.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화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도 마찬가지. 북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될 비핵화의 범위가 주로 ‘미래핵’에 맞춰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핵’의 경우 마치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 같은 상징적 범주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정서 셋째 항목의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란 언명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핵군축’에 보조를 맞출 핵보유국이란 얘기다. 물론 북은 최근 ‘핵보유국’ 대신 ‘전략국가’란 표현을 주로 쓴다.

그래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1일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북의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서에 대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시험 금지, 선(先) 사용 금지, 이송 금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면서 “이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북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분석했다. 주한미대사 일보직전에 낙마했지만 노회한 전문가인 건 분명해 보인다.

3차 전원회의의 ‘병진노선 결속’과 북미정상회담의 관련성은 다른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지난 12일 한겨레는 복수의 소식통을 최근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비핵화에 상응한 대가로 ▲미국 핵전략자산의 한국 철수 ▲한미연합훈련 때 핵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북미수교 등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 지난 2016년 북이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한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5개 대미 요구사항(▲남조선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조선 핵무기와 기지 철폐 ▲조선반도 주변 핵타격수단 전개 중단 ▲핵사용 전쟁위협 중단 ▲주한미군 철수 선포)과 적잖이 겹친다. 북측이 주한미군 철수(선포)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빼면 대동소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협상이 진행 중이란 사실은 지난달 16일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서 확인됐다. CIA가 막후협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쪽 상대는 통일전선부라고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한 게 3월9일이고 보면 곧바로 북미간 실무협상에 착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확인한 폼페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비공개 특사 방북 사실이었다. 폼페오 지명자가 4월 초 북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고 “만남은 매우 순조로웠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를 긍정 평가했다.

북미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해 언론 등에 공개된 일련의 정보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할 막후 실무협상이 늦어도 3월 중순 본격화됐는데(NYT) 여기서 북은 미국에 비핵화의 대가로 5개항을 제시했고(한겨레), 협상 내용을 확인 내지 중간 점검하러 대통령 특사인 폼페오 지명자가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그런데 “만남은 매우 순조로웠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트럼프 트윗)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북이 병진노선 종결을 선언할만한 노선유발자와의 관계에서 변화 요인이 조성됐다고 하겠다. 미국과 협상과정에서, 대외적으론 어떻게 표현됐든 북이 병진노선의 ‘정치적 승리’라고 판단할 기준과 요건들이 충족됐다고 볼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진노선은 채택된 이래 북이 일관되게 지속할 노선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2016년 5월 열린 조선로동당 7차대회에서 병진노선을 두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혁명의 최고 이익과 직결된 항구적인 전략노선이 완료됐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고 이익 구현에서 제기된 정치적 목표 달성 없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시간이 알려줄 일이다.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 병진노선 결속의 자연스런 귀결

다음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의 채택은 병진노선이 결속된 만큼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에 동시에 힘을 쏟는다’는 게 병진노선이고, 여기서 핵무력 건설을 완성하고 노선유발자인 미국에게서 정치적 승리라고 할 조건들을 얻어냈다면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란 얘기다.

또한 병진노선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별개가 아니다.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진노선 종결(승리) 결정서에서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뒤이을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의 내용을 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하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당면목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 정상화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게 하고 전야마다 풍요한 가을을 마련하여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이 국가목표로 설정한 사회주의 강성국가의 3대 지표, 즉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가운데 마지막 목표인 경제강국 건설에 총매진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지난 2016년 당 7차대회에서 공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기간(2020년까지)에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상승궤도에 확고히 올려 세우며 나아가서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주의경제, 지식경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곤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목표란 정도가 김 위원장 발언을 통해 확인됐을 뿐 내용이 공개한 적은 없다.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이 채택된 만큼 이를 적극화하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북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결정서로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물론, 북은 해당 결정서 첫째 항목에서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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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오픈 박근혜 등 국정농단 피고인 38명 판결문 전문 공개

[언론사상 최초 주요사건 판결문 상시적 공개 대행 서비스] 헌법 109조 '판결 공개' 원칙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18.04.23 09:58l최종 업데이트 18.04.23 09:58l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언론 사상 최초의 주요사건의 판결문 공개 대행 서비스다.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언론 사상 최초의 주요사건의 판결문 공개 대행 서비스다.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는 오늘(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문 576페이지 전문을 공개합니다.

재판부는 지난 6일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형량만 보면 중형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고, 아무 권한도 없는 민간인이 국정을 농락하도록 한 죗값으로 충분한 것인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를 보는 시민들의 시각도 '충분하다, 부족하다, 과하다' 여러 갈래로 나뉠 것입니다. 판결문을 공개하는 이유는 법원의 판단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시민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함께 국정농단에 가담해 재판을 받은 또는 받고있는 피고인 38명의 판결문도 공개합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총 56명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의 1심과 항소심, 대법원의 상고심을 합해 총 32번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1심과 항소심 등 총 10개 판결문은 현재 열람이 제한돼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판결문의 피고인수가 56명이 아니라 38명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열람 제한 판결문 가운데 이미 이 부회장의 1심과 항소심 판결문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나온 국정농단 판결문 중 8개를 제외한 모든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총 24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열람이 제한돼 있는 판결문도 대부분 입수를 한 상태입니다. 여기에는 최순실, 안종범, 신동빈 등 핵심 피고인의 1심 판결문도 있습니다. 최순실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된 이 판결문은 재판 직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열람 제한을 신청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법원의 조치를 존중해 열람이 제한된 판결문을 당장 공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법원의 판결문 열람 제한 조치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또 해당 판결문 공개가 공익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지 공개하겠습니다.

판결문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공개를 위해 <오마이뉴스>는 '열린판결문'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모든 판결문은 이곳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서비스 중 '국정농단 세력의 죄와 벌'이라는 메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메뉴 외에도 앞서 <오마이뉴스>가 공개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판결문과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항소심 판결문도 별도의 메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공개되는 판결문은 모두 법원의 '전자우편 등을 통한 판결문 제공에 관한 예규' 절차에 따라 각급 법원에 열람을 신청하고 공식적으로 제공받은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은 지속적인 판결문 공개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플랫폼입니다. 일회적인 공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국정농단 사건의 판결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주요 사건의 판결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곧 재판이 진행될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 사건의 판결문도 공개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이 플래폼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판결문을 제공한다.
<오마이뉴스> 4월 23일 '열린판결문'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이 플래폼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판결문을 제공한다.ⓒ 오마이뉴스
우리는 왜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을 만들었는가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의 기획의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을 넘어 불합리한 판결문 공개 제도를 고발하고 개선 방안을 공론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한마디로 판결문을 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109조에 따라 재판의 판결은 공개돼야 합니다. 재판의 공개는 곧 공정함을 의미합니다. 또 법관의 판결을 사회가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야 법치국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판사들의 자긍심 담긴 말도 그것이 공개 됐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판결문 공개 제도를 운영합니다. 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예규에 따라 각급 법원은 확정된 판결문 사본을 일반에 제공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은 지금 너무 멀리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와 국회의원조차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판결문은 절대 '이재용', '삼성'이라는 단어로 찾을 수 없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키워드로는 판결문 검색이 안됩니다. 일단 검색을 위해서는 법원이 부여한 사건번호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법원 사이트 어디에도 사건번호를 알려주는 기능은 없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내든, 사건 관계자에게 연락해 물어보든, '각자 알아서' 알아내야 합니다.

어렵게 사건번호를 알아내고 나서도 판결문을 보기까지 과정은 한참 남아있습니다. 각급 법원 사이트에서 사건번호로 검색한 후 '판결문 사본 열람신청'을 해야 합니다. 이후 법원에서 이메일 회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짧으면 2~3일, 길게는 2주 걸립니다. 열람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으면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판결문에 '비실명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이 과정을 거쳐 국정농단 판결문을 모두 입수하는데는 약 한 달 가량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받아도 참 난감합니다. 이재용 부회장 판결문에 '이재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비실명화 됐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게다가 이재용만 비실명 처리된 게 아닙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이 실제와 관계없는 영문 이니셜로 대체 됩니다. '삼성'과 같은 법인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판결문을 읽어도 누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을 통해 공개되는 판결문도 이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모든 판결문이 공개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국정농단 사건 10개의 판결문처럼 열람 제한이 걸린 판결문이 있습니다. 사건 관계자들이 판결문 열람 제한 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줬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따라 심리가 비공개로 진행되거나 '국가 안전보장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비공개 됩니다. 이밖에 '사생활의 비밀이나 생명·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경우', '영업비밀이 현저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사건 관계인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판단해 열람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 제도를 두고 법원이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는 헌법의 취지가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판결문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법관들 뿐입니다. 사법불신이 팽배해지는 것도 이 같은 폐쇄성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습니다. 법관도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주체는 국민입니다.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들이 알 필요가 있는 주요한 사건의 판결문을 공개하는 일종의 '판결문 공개 대행서비스'입니다. 앞으로 주요 사건의 판결문을 적극적으로 먼저 입수해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물론,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검색 등 지속적인 서비스 업그레이드도 약속드립니다.

[박근혜 등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38명 판결문 공개] 오마이뉴스 열린판결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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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제국의 밀사는 평양에서 무슨 말을 들었나?

[개벽예감 296] 핵제국의 밀사는 평양에서 무슨 말을 들었나?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4/23 [09: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핵제국의 밀사는 어떻게 평양에 가게 되었나?

2.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백악관에 스며들다

3. 평양에서 한미동맹파기요구를 받은 핵제국의 밀사

4. 미국은 정보전과 두뇌전에서 패하고 있다

 

 

1. 핵제국의 밀사는 어떻게 평양에 가게 되었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극적인 사변으로 한반도 정세가 또 다시 요동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로 평양에 파견된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중앙정보국장을 접견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은 2018년 4월 17일 <워싱턴포스트> 단독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았다는 사실을 트위터에서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4월 17일 단독보도에서 팜페오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envoy)로 평양을 방문했다고 서술했지만,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극비리에 방문하였으므로 밀사(secret envoy)라고 서술해야 옳다. 

 

특사파견과 밀사파견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 차이를 간과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수교국에는 특사를 공개적으로 파견하고, 미수교국에는 밀사를 극비리에 파견하는 것은 외교관례다. 미국이 건국 이래 오늘까지 242년 동안 대통령의 특사를 동맹국 또는 수교국에 보낸 경우는 흔하지만, 미수교국에 밀사를 보낸 경우는 한 차례밖에 없었다. 1971년 7월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대통령이 자기 심복인 헨리 키씬저(Henry H. Kissinger) 국가안보보좌관을 중국 베이징에 밀사로 보낸 것이다. 키씬저 밀사는 1971년 7월 9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면서 미중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은 바 있다. 47년 전 닉슨 대통령의 밀사로 베이징을 방문했던 키씬저, 그래서 누구보다 밀사파견의 의미를 잘 아는 키씬저, 그런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동안 몇 차례 조미외교문제를 조언했을 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2018년 3월 19일부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계획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이 키씬저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이 오래된 흑백사진은 1971년 7월 9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닉슨 대통령의 밀사로 베이징에 파견된 헨리 키씬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키씬저 밀사는 1971년 7월 9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렀다. 키씬저 밀사는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을 또 다시 방문하였다. 누구보다 밀사파견의 의미를 잘 아는 키씬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동안 몇 차례 조미외교문제를 조언했을 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계획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 밀사를 평양에 파견한 것이 키씬저의 조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47년 전 저우언라이-키씬저 회담에서 해결된 문제는 베트남전쟁 종식과 대만 주둔 미국군 철수였다. 그런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키씬저의 조언을 듣고 팜페오 밀사를 평양에 보낸 것은, 6.25전쟁을 종식시키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중대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내비친 것이 아닐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팜페오 밀사가 평양에 파견된 것은 키씬저 밀사가 베이징에 파견된 때로부터 꼭 47년 만에 일어난,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밀사파견이다. 1971년 당시 중국은 미국의 미수교국이었지만, 오늘 조선은 미국과 정전상태에 있는 적국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적국에 밀사를 파견한 것이다. 

 

47년 전 키씬저 밀사는 중간기착지인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극비리에 베이징으로 직행했었는데, 이번에 팜페오 밀사는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 있는 엘먼도프공군기지에서 특별기에 급유를 받고 북태평양 상공과 동해 상공으로 이어지는 긴 항로를 따라 평양으로 직행했다. 그래서 핵제국의 밀사가 평양을 다녀온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밀사 한 사람만 평양에 보내지 않았다. 대조선심층정보를 잘 아는 관료와 통역관이 팜페오 밀사와 동행했다. <월스트릿저널> 2018년 4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팜페오 밀사의 평양파견에 코리아임무쎈터(Korea Mission Center) 요원들이 동행했다고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는 팜페오 국장의 지시로 2017년 5월에 결성된, 대조선정보활동을 전담하는 특수조직이다. 미국에서 대조선심층정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코리아임무쎈터(Korea Mission Center) 책임자 김성현(앤드루 김)이므로, 이번에 그가 팜페오 밀사와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핵제국의 밀사파견은 극비리에 진행된 것이어서 그 내막이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수박 겉핥기식 보도나 엉터리 추측보도만 내돌렸다. 하지만 핵제국의 밀사파견보다 더 극적인 사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제국의 밀사파견보다 더 극적인 사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이다. 미국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에만 시선을 고정했으나, 관측시야를 넓혀 조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이라는 더 극적인 사변이 보인다. 이 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이라는 두 측면을 통전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집필한 것이다.    

 

핵제국의 밀사파견소식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워싱턴포스트> 2018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그 소식을 알려준 정보누설자는 팜페오 밀사의 평양파견에 관해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두 사람”이라고 한다. 백악관 국가안보부문 고위관리 두 사람인 듯하다. 그 정보누설자 두 사람은 밀사파견소식을 <워싱턴포스트>에 알려주면서 말을 매우 아꼈지만, 그들이 전해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정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정보누설자들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한 “직후에(soon after)” 밀사파견준비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 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한 날은 2018년 3월 13일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중앙정보국과 조선 정찰총국 사이의 “비공개연락통로(back-channel communication)”를 통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기사가 나온 날은 2018년 3월 16일이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4일 또는 15일에 밀사파견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8일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개최제안을 듣고, 즉석에서 황급히 수락한 날로부터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밀사파견을 다급하게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조미정상회담을 다급하게 준비한 것만 봐도, 그가 조미정상회담에 얼마나 목을 매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으로 조미핵대결에서 패하여 미국의 국가안보가 파탄에 빠지고 말았으니,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그처럼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다. 

 

관측시야를 좀 더 넓히면,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 보인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파탄에서 벗어나려고 허둥지둥 다급한데, 그와 대조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차 조중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조미정상회담, 제2차 조중정상회담, 조러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현란한 외교지략을 펼치며 엄청난 정세격변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다가오는 조미정상회담이 누구의 지략에 따라 진행되고 결속될 것인지를 예고해준다. 

 

(2)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14일 또는 15일에 밀사파견준비에 착수하였고, 조미비공개연락통로를 통해 팜페오 밀사를 평양에 보내겠다고 조선에 알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통보를 받은 날은 3월 18일 또는 19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 <사진 2>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14일 또는 15일에 밀사파견준비에 착수하였고, 조미비공개연락통로를 통해 팜페오 밀사를 평양에 보내겠다고 조선에 알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통보를 받은 날은 3월 18일 또는 19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밀사파견통보를 받은 즉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방문과 조중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제의하여 성사시켰다. 두 초대국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비범한 외교지략이 아닐 수 없다. 위의 사진은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2018년 4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다. 그 회의에서는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지하고, 북부핵시험장을 폐쇄한다고 명시한 결정서가 채택되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조선의 핵동결조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적 선제공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은 전격적인 조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베이징을 비공식방문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26일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환영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오늘 우리는 전례 없이 격변하고 있는 조선반도의 새로운 정세 속에서 ... 중화인민공화국을 전격적으로 방문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시진핑 주석이 “이번에 우리의 전격적인 방문제의를 쾌히 수락해주시고 짧은 기간 동안 우리들의 방문이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기울인 “지성과 극진한 배려”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위에 열거한 일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통보를 받은 직후, 시진핑 주석에게 전격적으로 중국방문을 제의하여 조중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음을 알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방문제의를 받고 불과 1주일 만에 급하게 조중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였다.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G2’라고 불리는 미국과 중국 두 초대국을 한꺼번에 자신의 전략구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놀라운 외교지략을 펼치고 있다. 

   

(3) 정보누설자들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팜페오 밀사는 “지난 부활절 주말(Easter weekend)”에 평양을 “극비방문(top-secret visit)”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기독교 명절로 지키는 부활절은 올해 4월 1일 일요일이었으므로, 팜페오 밀사는 3월 31일 평양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4월 1일 평양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월 31일 오후에 팜페오 밀사를 접견한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베이징을 비공식방문하였으므로, 중국방문을 마친 날로부터 불과 사흘 뒤에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를 평양에서 접견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밀사를 접견한 장소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접견실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외부인이 일절 출입할 수 없었던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파견한 방북특사단을 3월 5일에 접견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이 파견한 팜페오 밀사를 3월 31일에 접견하였으며, 시진핑 주석이 파견한 쑹타오(宋濤) 특사를 4월 14일과 17일에 접견하였다. 

 

(4) 정보누설자들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 밀사를 평양에 파견한 것은 “북조선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해” 논의하게 될 조미정상회담준비를 위한 “기초를 놓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은 조미정상회담준비사업이었다. 

 

어느 나라나 국가수반이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특사를 파견하는 경우 친서 또는 구두친서를 상대쪽 국가수반에게 전하는 것이 일반적인 외교관례다. 지난 시기 미국 대통령들이 특사를 평양에 파견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 또는 구두친서를 전하였다. 친서를 전하러 가지 않으면, 특사파견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파탄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미정상회담준비사업의 일환으로 팜페오 밀사를 파견하였으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밀사가 전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런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31일 오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접견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파견한 팜페오 밀사를 접견하면서, 그가 올린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고,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할 미국의 요구조건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조선의 요구조건들을 밀사에게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2.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백악관에 스며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나눈 담화내용은 비밀이므로 알 길이 없지만, 미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엿볼 수 있다.

 

2018년 4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을 뜻함 - 옮긴이)이 매우 부드럽게 진행되었고,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과 담화가 “부드럽게 진행되었다”고 지적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조선의 요구조건들과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 밀사를 통해 제시한 미국의 요구조건들이 대립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으로 “(조선과 미국 사이에)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지적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그가 팜페오 국장으로부터 밀사임무수행에 관한 보고를 받고 조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낙관하였다는 뜻이다. 

 

프랑스 통신사 <AFP> 2018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도 당일 플로리다주 팜 비취에 있는 마러라고 휴양소에서 아베 신조(安培 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하는 중에 워싱턴과 평양이 그 동안 “매우 높은 급에서 접촉해왔다”고 밝히면서, “세계 문제(조선의 핵문제를 뜻함 - 옮긴이)를 해결할 큰 기회가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선의(goodwill)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조미)정상회담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 우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바란다. 아주 열심히 하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이 발언도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2018년 4월 17일과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를 미국 플로리다주 팜 비취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마러라고 휴양소로 초청하였다. 위의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아베 총리 부부가 만찬탁에 앉아 환담하는 장면이다. 아베 총리가 미일정상회담계획을 일본 당정협의회에서 밝힌 날은 2018년 4월 2일이었는데,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밀사를 평양에서 접견한지 이틀 뒤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아베 정상회담이 열렸던 4월 17일 오찬석상에서 팜페오 밀사의 평양파견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런 정황은 일본 안에서는 심각한 비리사건에 휘말려 정치생명이 위태로와졌고, 일본 밖에서는 미국의 조미정상회담추진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충격을 받은 아베 총리의 침울한 심사를 달래주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 부부를 마러라고 휴양지로 급히 초청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플로리다에서 아열대 바람이나 쐬면서 침울한 심사를 달래볼까 하는 심정을 안고 마러라고 휴양지로 달려간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접한 치즈버거를 먹으며 그와 함께 골프나 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빈 손으로 도꾜에 돌아갔다. 원래 위로연에는 먹을거리는 별로 없고, 말만 풍성한 법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4월 18일 미국 <PBS> 방송 대담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빅토리아 코우츠(Victoria Coates)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팜페오 국장의 매우 건설적인 회담(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사접견을 뜻함 - 옮긴이)이 진행된 조건에서, 지금 북조선이 보여주는 분위기는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도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말해주는 것이다.  

 

2018년 4월 12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한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조선 지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들을 적절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미국과 전 세계가 절실히 요구하는 외교적 결과를 달성하는 길을 내올 수 있으리라고 낙관한다”고 말했다. 12일 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고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담화를 나눈 그가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조미정상회담에 대해 낙관한다고 말한 것을 무심히 들을 수 없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심복들은 이번에 밀사를 파견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비핵화요구가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미정상회담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미정상회담은 그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요구조건들이 합의되겠지만, 그보다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하는 더 중대한 요구조건들이 더 많이 합의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매우 유리한 협상위치에 올라서게 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불리한 협상위치에 내려앉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매체들도 그렇게 예견하고 있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는 2018년 4월 21일 보도기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담한 조치(audacious moves)들”을 먼저 취하여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적 고지(diplomatic high ground)”를 차지하였다고 논평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대담한 조치들이란 2018년 4월 20일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주재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에 명시된 조치,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중지하고, 북부핵시험장을 폐쇄하는 핵동결조치를 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핵동결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하여 ‘평화적인 선제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동결조치에 상응하여 대조선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할 판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화적인 선제공격’을 받고 완전히 수세에 몰린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3. 평양에서 한미동맹파기요구를 받은 핵제국의 밀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조선의 요구조건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밀사를 파견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시한 미국의 요구조건들은 무엇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밀사를 통해 서로 교환한 중대한 요구조건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2018년 4월 12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한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종잇장 이상의 것”을 요구할 것으로 예견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으면서 확인한 것이다. 그가 언급한 “종잇장”이란 조선과 미국이 체결하게 될 협정문을 뜻하는 말이고, 그가 언급한 “종잇장 이상의 것”이란 미국이 조선의 요구에 따라 행동으로 이행하게 될 중대조치를 뜻하는 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종잇장(협정문) 이상의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팜페오 국장의 예상발언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면, 조미정상회담준비상황에 대해 아는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한겨레> 2018년 4월 13일 단독보도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소식통들이 <한겨레>에 전해준 정보는 “최근 북미접촉에서”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다섯 가지 요구조건들에 관한 것인데, “최근 북미접촉”이란 2018년 3월 3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밀사를 접견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섯 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 열거된 다섯 가지 요구조건들은 “미국 핵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한미연합훈련 때 핵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미수교”다. 

 

대북관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4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밀사에게 “단계적 비핵화”를 실행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26일 조중정상회담에서도 시진핑 주석에게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밀사접견과 조중정상회담에서 각각 언급한 단계적 조치들은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요구조건들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이행해야 할 다섯 단계 조치를 제시한 것이다. 

 

나는 2018년 4월 16일 <자주시보>에 실린 “상황이 복잡해도, 그 날은 온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위에 열거한 다섯 단계 조치를 상론한 바 있는데, 그 다섯 단계 조치를 타결되는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제1단계 - 미국이 재래식 및 핵무기로 조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는 조치

제2단계 - 조선과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조치 

제3단계 - 미국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영구중지하는 조치

제4단계 -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핵전략자산을 철수하는 조치

제5단계 - 조선과 미국이 국교를 수립하는 조치 

 

타결순서에 따라 배열한 다섯 단계 조치들 가운데서 제1단계의 불가침협정과 제2단계의 평화협정은 종잇장(협정문)으로 공약하는 조치들이고, 제3단계의 한미합동전쟁연습 영구중지, 제4단계의 한국에서 핵전략자산철수, 제5단계의 조미국교수립은 미국이 행동으로 이행해야 할 조치, 곧 종잇장(협정문) 이상의 조치들이다. 미국이 변심하는 경우 언제라도 파기될, 그야말로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불가침협정과 평화협정만 믿고 조선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허망한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4월 12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한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이 발언하는 장면이다. 그는 발언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언급하였다. 하나는 조미정상회담을 낙관하는 자신의 전망을 언급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종잇장 이상의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지난 시기 다른 나라들과 맺은 국제협정들이나 국제조약들을 수없이 뒤집거나 파기하거나 위반해온 미국이 조선과 불가침협정,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언제 변심하여 그것을 파기할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1953년 7월 27일 조선과 정전협정을 체결한 직후, 그 협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협정에서 금지한 주한미국군 무력을 대폭 증강시킴으로써, 협정위반을 버젓이 자행하였다. 미국이 변심하는 경우 언제라도 파기될, 그야말로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불가침협정과 평화협정을 믿고 조선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허망한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영구히 중지하고, 한국에서 핵전략자산을 철수하는 단계적 조치를 제시한 것인데, 바로 이 두 단계의 조치들이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혁명적인 조치들이라는 점이다. 한미합동전쟁연습 영구중지와 핵전략자산철수는 주한미국군의 존재이유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고, 주한미국군철수는 곧 한미동맹파기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이 2018년 4월 12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언급한, 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종잇장 이상의 것”은 한미동맹파기를 뜻하는 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 명료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동맹파기를 요구하였으므로, 앞으로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파기를 정식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 명료해졌다.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것은 한반도를 비동맹화하는 혁명적인 조치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취해야 할 조치는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조선반도의 비동맹화’인 것이다. 조선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조선반도의 비동맹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전략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미동맹이 파기되어 한반도의 비동맹화가 실현되면, 동맹군은 불가피하게, 자동적으로 철수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비동맹화는 주한미국군철수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주한미국군철수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국군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전략에 대해 알지 못하고 떠드는 소리다. 

 

 

4. 미국은 정보전과 두뇌전에서 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은 고도로 긴장된 협상이며 동시에 치열한 정보전, 두뇌전이다. 그러므로 정상회담 상대국에 대한 심층정보가 없으면, 두뇌전에서 패하고 협상에서 뒤로 밀리게 된다.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조선과 미국이 진행하게 될 정상회담은 단계적인 비동맹화와 단계적인 비핵화를 일괄타결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회담이므로, 조미정상회담이야말로 정보전, 두뇌전의 승패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처럼 조미정상회담의 성패문제가 정보전, 두뇌전의 승패에 달려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책임자인 국무장관에게 조미정상회담준비를 맡기지 않고, 정보책임자인 중앙정보국장에게 조미정상회담준비를 맡겼다. 

 

일본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아사히신붕> 2018년 4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기관 코리아임무쎈터 소속 요원들이 2018년 3월부터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을 빈번히 드나들고 있으며, 내각정보조사실 고위간부가 미국에 가서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을 만났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팜페오 국장은 한국 국가정보원의 협조는 물론이고,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협조까지 받으면서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정보전, 두뇌전에 전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정보전에서 직면한 핵심문제는 조선의 핵시설 및 핵무기에 관한 정보, 다시 말해서 대조선핵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중앙정보국은 390여 개의 크고 작은 핵시설들이 꽉 들어차 있는 평안북도 녕변핵시설단지를 첩보위성으로 줄곧 감시하면서도 그 방대한 규모의 핵시설단지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첩보위성으로는 지붕만 내려다볼 수 있으므로, 지붕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상업위성이 촬영한 평안북도 녕변핵시설단지 위성사진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첩보위성으로 촬영한, 해상도가 높은 위성사진은 이보다 더 세밀하고, 명료할 것이다.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사각형 건물은 흑연감속로가 설치된 오래된 핵시설이고, 왼쪽에 보이는 큰 구면체를 지붕에 얹은 직사각형 건물은 시험용 경수로가 설치된 새로운 핵시설이다.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녕변핵시설단지에는 390여 개의 크고 작은 핵시설들이 꽉 들어차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처럼 방대한 규모의 핵시설단지를 첩보위성으로 줄곧 감시한다고 하지만, 그 핵시설단지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첩보위성으로는 지붕만 내려다볼 수 있으므로, 지붕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더욱이 미국 중앙정보국은 조선에 지하핵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 채, 의심의 눈동자만 굴리고 있으며, 조선의 핵전략자산이 얼마나 많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런 한심한 정보력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정보전에서 조선에게 패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백악관도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두뇌전에서 조선에게 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더욱이 미국 중앙정보국이 첩보위성으로 감시하는 대상은 녕변핵시설단지에 국한되어 있다. 그들은 조선에 다른 지하핵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 채, 의심의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감시대상국들 가운데 하나인 시리아에서 그들의 허술하고 빈약한 정보력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국제테러집단을 진압하겠다는 명목으로 미국군을 시리아에 주둔시키고 있고, 얼마 전에는 반란군이 자행한 화학무기공격을 시리아 정부군의 짓이라고 뒤집어씌우고 그것을 구실로 얼마 전 시리아에 순항미사일공격까지 감행했지만, 미국 중앙정보국은 시리아의 화학무기생산시설이 어디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허술한 정보력을 가진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선의 핵시설정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선의 핵전략자산이 얼마나 많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워싱턴포스트>는 2017년 8월 8일 분석기사에서 2017년 7월 28일에 작성된 미국 정보기관의 최신 정보평가자료를 인용하여 조선이 보유한 핵탄두가 최대 60발에 이른다고 보도하였는데, 이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선의 핵탄두 수량을 최대 60발로 추정하였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런 정보평가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유추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수준의 대조선핵정보는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백악관의 두뇌전에서 결정적인 제약요인으로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 중앙정보국은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정보전에서, 그리고 백악관은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두뇌전에서 각각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가오는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의사를 밝히면, 정상회담 이후 진행될 후속실무회담에서 조선은 핵전략자산정보를 제시하고, 그 정보에 의거한 단계적 비핵화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렇게 되면 정보전과 두뇌전에서 패한 미국은 조선이 제시하게 될 핵전략자산정보와 단계적 비핵화방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조선이 실제로는 핵동결과 부분적인 비핵화만 실행하고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실행했다고 발표해도, 조선의 핵전략자산정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국은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정보가 없으므로 검증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백악관이 그동안 입버릇처럼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를 떠들어온 것은 미국의 허술한 정보력으로는 영원히 붙잡지 못할 신기루를 쫓아다닌 허망한 짓이었다. 그래서 익명의 미국 정부 고위관리는 <뉴욕타임스> 2018년 4월 21일부 기사에서 그처럼 허망한 짓을 거듭해오는 미국이 조선이 설치한 “동결의 덫(freeze trap)”에 걸리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지만,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다. 

 

반면에, 조선은 조미정상회담 및 후속실무회담을 착실히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밀사파견에 대해 아는 미국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CNN> 2018년 4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팜페오 밀사는 조선이 조미정상회담을 “잘 준비하였다(well prepared)”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팜페오 밀사의 그 말을 들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놓을 제의를 훤히 꿰뚫고 있으며, 그 제의들에 대한 대응조치들을 철저히 준비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회담쌍방의 사정을 살펴보면, 조미정상회담과 후속실무회담이 각각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견할 수 있다. 정보전과 두뇌전에서 패한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신기루를 열심히 쫓아다니다가 “동결의 덫”에 걸려들 것이고, 정보전과 두뇌전에서 승리한 조선은 조미정상회담과 후속실무회담을 자기의 회담전략에 따라 주도하며, 미국을 돌이킬 수 없는 한미동맹파기로 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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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성주 사드 반대 집회 강제해산 돌입...부상자 속출

국방부, 사드기지 공사 장비 반입 착수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8-04-23 09:21:58
수정 2018-04-23 09: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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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경찰이 사드 반대 단체 주민을 해산시키고 있다.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경찰이 사드 반대 단체 주민을 해산시키고 있다.ⓒ소성리 종합상황실 제공
 

국방부가 23일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공사 장비 반입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경찰이 경주 소성리에 모인 주민들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들을 강제해산 시키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경찰 진압이 계속되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앞서 주민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 등 200여명은 전날인 22일 밤부터 경북 소성리 사드 기지 앞 진밭교 위에서 비닐 등으로 비와 추위를 막고 밤샘 농성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팔과 팔을 원형 통으로 연결하고 그 위에 그물을 덮어 경찰의 강제 해산에 대비했다.

경찰을 13개 중대 13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사드기지로 향하는 진입로를 확보하고 사드반대 단체와 주민들과 대치했다.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농성 중인 주민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들의 모습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농성 중인 주민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들의 모습ⓒ소성리 종합상황실 제공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경찰이 사드 반대 단체 주민을 해산시키고 있다.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경찰이 사드 반대 단체 주민을 해산시키고 있다.ⓒ소성리 종합상황실 제공

주민들과 사드반대 단체 회원들은 "오늘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국방부가 시급하다고 요구하는 지붕누수와 화장실 공사를 먼저하고 한달 뒤 있을 북미정상회담 이후에 나머지 공사에 대한 대화를 다시 하자고 했으나 국방부는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23일 "현재 시급한 성주 기지 근무 장병들의 생활 여건 개선 공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하에 경찰과 협조해 오늘부터 공사에 필요한 인력, 자재, 장비 수송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강제해산은 오전 8시 16분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공보에 따르면, 아침 8시 30분 경찰이 칼로 그물을 자르다가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손을 다치는 등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부상을 당한 주민의 모습
23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인근 진밭교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부상을 당한 주민의 모습ⓒ소성리 종합상황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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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 대표, "방송법 개정의 방향은 '시민 참여'"

양승동·최승호의 '공영방송 혁신' 방송학회 '특별 대담'
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4.22 21:11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이 '방송법 개정안'과 관련, 공영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서 시민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에 공감을 표했다.

21일 한국외대에서 열린 '2018 한국방송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는 공영방송 혁신을 주제로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의 특별대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공영방송 혁신 과제와 관련해 크게 ▲공영방송 지배구조 ▲공영방송과 정부의 관계 설정 ▲공영방송의 재원확보 ▲조직문화 개선 ▲지역방송 활성화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2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열린 '2018 한국방송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는 공영방송 혁신을 주제로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의 특별대담이 열렸다.(미디어스)

■ 공영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 '시민참여' 담겨야

양승동 사장과 최승호 사장은 모두 현 방송법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선출됐지만, 선출 과정에 시민 참여가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MBC의 경우 이번 사장선출은 과정이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됐으며 사장후보자에 대한 시민들의 질의가 공개 프리젠테이션, 최종면접 등에 반영됐다. KBS의 경우 시민자문단이 구성돼 시민들의 의견이 사장선출에 직접 반영됐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관행에 의해 여·야 정치권의 추천으로 구성돼왔다.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이사 7명과 야당 추천 이사 4명, 방송문화진흥회는 여당 추천 이사 6명과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사장선출을 비롯한 공영방송의 운영은 언제나 정파성 시비에 휘둘렸다.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파성을 줄이는 '방송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공영방송 사장선출 과정에 시민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양 사장은 "현재 방송법과 이사선출 방식은 기본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여야 7:4 구도에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에서는 퇴장·기권 등 파행이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 사장은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회가 합의해 시민자문단 제도를 도입하고, 그 속에서 사장을 뽑았다. 이것이 앞으로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참고가 될 것"이라며 "상당히 중요한 단서와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논의되는 몇몇 안들은 '중립지대', '시민참여' 등을 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여야가 정파적 대립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도입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승호 사장은 "원전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 공론화를 거쳐 국가대사를 대단히 안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봤다. 이후 양 사장이 뽑히는 과정에서도 KBS 이사회가 시민자문단 룰을 잘 규정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시민참여에 긍정적 의견을 냈다. 

최 사장은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분들을 보면 학계 원로 등 훌륭한 학자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이사회는 심각한 파행으로 흘러갔다"며 "결국 정파라는 테두리 속에 한 정파가 자신을 선정했다는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게 만드는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색깔보다는 '공영방송사를 제대로 경영할 사람이 누구냐'를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 같이 논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은 시민참여에 의해 사장에 선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승동 사장과 최승호 사장이 사장후보자 당시 시민들 앞에서 정책발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청와대와 공영방송의 관계, "건강한 관계 될 것"

공영방송에 대한 청와대의 입김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파성 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다.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공영방송 사찰,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 사례가 대표적이다. 친정부 인사가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출되면서 공영방송의 보도 방향이 설정되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이러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사장은 "청와대와 방송과의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상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언론장악' 이슈는 현 정부에서 있을 수 없다는 청와대의 의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방송문화진흥회)이사들로부터 여러 말씀을 들어봐도 본인의 선택에 (청와대의) 압력을 느꼈다던가, 바람이 전해졌다든가 하는 것은 없었다"면서 "언론사 사장으로서 청와대를 대하는 태도는 충분히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사장은 사장후보자 당시 정책발표에서 사장임기가 종료되면 저널리스트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언론사 사장으로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사장은 "앞으로 청와대와 방송사의 관계는 굉장히 건강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양 사장 역시 "지금 시기 청와대에서 공영방송 장악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보도부문 책임자 임면동의제, 편성위원회 정상화 등 내부 제도화를 통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 사장은 "보도와 시사영역 국장 임면동의제를 실시하고, 방송법상 편성위원회 운영을 정상화시키는 것을 내부 제도화 시키면 상당한 정도로 자율성을 갖고 독립성 있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역차별 많이 받아"... 광고제도 개선 필요성 언급

언론의 공정성 확립을 위해서는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필수요건으로 꼽힌다. 언론사가 안정적인 재원확보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공익성 구현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케이블방송의 강세,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1인 방송의 확산 등으로 인해 과거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에 자리하던 광고시장은 상당부분 분산됐다.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중간광고 등 공영방송이 타 방송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공영방송의 재원이 튼튼하지 않으면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시민들을 위해 방송하는 기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영국의 경우 수신료를 튼튼한 재원으로 해 (방송을)꽃 피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변화가 상당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MBC의 경우)시청률 하락 비율보다 광고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주요한 이유는 역차별"이라고 분석했다. 최 사장은 "유료방송·종편과 광고나 각종 제도에서의 역차별이 매우 심하다"며 "특히 중간광고 부분은 지상파방송은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방송들에 허용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재원에 있어 많은 차이를 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사장 역시 "광고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미국, 일본, 영국 등의 나라들 수준에 맞춰 광고제도는 허용돼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 사장은 "2012년 미디어법이 만들어지면서 (지상파는) 비대칭 규제를 당했다. 역차별을 많이 받았다"며 "지상파 방송사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구현해 한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면 역차별은 해소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KBS의 수신료 현실화와 관련해 양 사장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양 사장은 "KBS는 이상적으로 수신료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지금 수신료 현실화 정책을 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저희도 잘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양 사장은 "신뢰도가 바닥치고 있다. 신뢰도 회복 이후 수신료 현실화를 언급할 수 있다"며 "그 전에 중간단계에서 여러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고 광고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 9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MBC본부의 총파업 출정식 모습(사진=미디어스, 연합뉴스)

■ '제작 자율성' 우선 보장... 지난 10년 폐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지난해 9월 시작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MBC 본부의 공동파업의 결과로 선출될 수 있었다는 공통점 역시 가지고 있다. 당시 두 노조가 파업 구호로 삼은 것은 '공정방송 쟁취'와 '적폐청산'이었다. 구성원들의 구호에 답하듯 두 사장은 제작자율성 보장을 통한 공정방송 실현과 지난 시기 과오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양 사장은 "지난 번 KBS는 140일간 파업을 했다. 그 파업과정은 의미 있었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내부적으로)상당히 합의된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 제작 자율성 보장"이라고 말했다. 양 사장은 "제 경험으로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다짐하는 심정으로 제작 자율성을 얘기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양 사장은 "어떻게 과거를 청산하고 조직을 극대화할지 방안을 강구하는 중이다. 일부 구성원들이 냉소적으로 되지 않도록 적절히 균형을 맞추려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지난 10년 많은 파행과 문제가 있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새 출발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그런 과정을 분명히 거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사장은 "내면적으로 제작 자율성 보장 측면은 이미 완벽하게 이뤄져 있다"며 "큐시트라는 걸 본 적이 없다. 임원회의에서도 어젯밤 어떤 보도가 나갔는지 얘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물론 어떤 보도가 잘못됐다는 여론이 강하다든지, 보도국이 대처를 충분히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으면 환기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보도에 대해 사장이 평가하는 것 등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과거청산과 관련해 최 사장은 "MBC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완전히 망각하고, 심하게 얘기하면 범죄적인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그냥 통합해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진정한 공영방송 회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그런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정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법률적 자문을 충분히 받아가며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가급적 빨리 정리하려고 애쓰고 있다. 충분히 신중함을 기해 마무리되면 미래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모든 지혜를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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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새 전략노선 제시

김정은 위원장 “핵무기 병기화 완결,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필요 없게 됐다”
[사진 : 로동신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당 위원장이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의 결속(완료)을 선언하곤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이란 새로운 전략노선을 제시했다고 북의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지난 20일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는, 지난 2013년 3월 미국과 첨예한 군사적 대결을 벌일 당시 제2차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로선”을 제시한 이후 5년 만이다.

[사진 : 로동신문]

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날 전원회의는 안건으로 ▲첫째,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힘있게 다그치기 위한 우리 당의 과업에 대하여. ▲둘째,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 ▲셋째, 조직문제에 대하여를 상정했다.

첫째 안건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후 우리의 주동적인 행동과 노력에 의하여 전반적 정세가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하곤 “조선반도와 지역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에로 향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국제 정치구도에서 극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였고 운반타격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여 핵무기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북부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였다”며, 앞으로 “인류의 공통된 념원과 지향에 부합되게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위업의 최후 승리를 앞당길 현 단계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노선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라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또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 기간의 당면 목표로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상승궤도에 확고히 올려 세우며 나아가서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주의 경제, 지식경제를 세우는 것”이라고 설정하곤,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당의 병진로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된 것처럼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로선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모두 다 우리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기 위하여 용기백배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사진 : 로동신문]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둘째 안건 토론에서 “과학과 교육은 국가건설의 기초이며 국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라면서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전원회의 셋째 안건으로 김정각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을 비롯해 주요 당직 인선을 마무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당의 새로운 혁명적 로선에 관통되여 있는 근본핵, 기본원칙은 자력갱생”이라고 강조하면서 “오직 자력갱생, 견인불발함으로써 번영의 활로를 열고 훌륭한 미래를 앞당겨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전원회의를 “우리 혁명 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전략적 로선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륭성 번영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건설하고 우리 인민의 자주적 리상과 행복을 꽃피워 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은 력사적인 계기로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 : 로동신문]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

첫째, 당의 병진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림계 전 핵시험과 지하 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 핵무기와 운반수단 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둘째,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페기할 것이다.

셋째,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

넷째,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나라의 인적, 물적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다.

여섯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련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다.

결정서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하여>

첫째,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에서 당 및 근로단체 조직들과 정권기관, 법기관, 무력기관들의 역할을 높일 것이다.

셋째, 각급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집행 정형을 정상적으로 장악 총화하면서 철저히 관철하도록 할 것이다.

넷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법적, 행정적, 실무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

결정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

첫째,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다.

둘째,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우리 나라를 사회주의 교육강국, 인재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릴 것이다.

셋째, 과학교육부문에서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을 힘있게 벌리며 본위주의를 철저히 없앨 것이다.

넷째, 과학기술과 교육사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늘이며 전 사회적으로 과학중시, 교육중시 기풍을 더욱 철저히 확립할 것이다.

다섯째, 각급 당조직들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정상적으로 장악 총화하면서 철저히 집행할 것이다.

여섯째, 내각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를 관철하기 위한 행정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이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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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정원은 왜 유가려-변호인 만남을 방해했나?
2018.04.21 12:21:02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검찰을 통해 처음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최미복 판사)은 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막아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권영철 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에 대한 재판을 20일 열었다. '유우성 변호인단 접견권 침해' 논란 관련 국정원 관계자가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씨 변호인단은 2013년 초 가려 씨에 대한 접견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국정원이 이를 모두 불허했다며 국정원을 고발했고, 5년 만에 책임자가 법정에 넘겨졌다.

변호인단은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던 가려 씨가 진술을 번복할 것을 염려해 국정원이 고의적으로 변호인단과의 접촉을 막았다고 줄곧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은 이번에 검찰 공소장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이 작성한 권 씨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내 유우성 사건 수사팀은 '유우성 변호인단이 유가려를 회유, 실체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되므로 유가려와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논의했다. 이후 수사국장이었던 권 씨는 수사팀에 '유가려의 변호인 접견 거부 의사 표명'을 이유로 접견을 불허할 것을 지시했다.

유우성 사건에서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가려 씨의 자백이었다. 그러나 가려 씨의 진술은 국정원 회유와 협박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결국, 접견 방해 또한 국정원의 조직적인 간첩 조작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접견 방해 행위의 위법성은 변호인단이 제기한 민사 소송 등을 통해 여러 번 확인됐다. 그러나 접견 방해의 목적, 고의성 등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레시안(서어리)


국정원, 유가려-변호인 만남 어떻게 방해했나 

변호인단이 가려 씨를 만나기 위해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2013년 2월이었다. 국정원은 △'유가려는 참고인 신분으로 변호인 접견 대상인인 피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유가려 본인이 변호인과의 만남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접견을 차단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관은 가려 씨에게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고지했고, 가려 씨로부터 "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도 받았다. 가려 씨가 변호인 접견권 대상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유가려는 참고인 신분으로 변호인 접견 대상인이 아니'라는 국정원의 설명은 애초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가려 씨가 제출한 변호인 접견 거부 확인서 또한 가려 씨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가려 씨의 본심은 재판에서 드러났다. 

 

 

2013년 3월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보전절차. 당시 유 씨의 변호인 측은 가려 씨에게 "제가 이번에 국정원 가면 저 꼭 만나줘요. 만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가려 씨도 "만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분명히 만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의 만남은 연거푸 불발됐다. 국정원의 방해 때문이었다.

증거보전절차 다음 날인 2013년 3월 5일 장경욱‧천낙붕‧양승봉 변호사가 합신센터에 찾아가 접견 신청을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가려 씨를 만날 수 없었다. 국정원 측은 이번엔 변호인이 접견 신청을 한 사실 자체를 가려 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 날인 6일에도 천낙붕‧장경욱‧김용민‧김남국‧양승봉‧하주희‧이광철‧설창일‧김진형 변호사가 신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국정원은 변호인 접견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은 변호인 접견권을 외면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해까지 하여 수사기관이 해야 할 책무를 책임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버렸다"며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검찰은 왜 수사국장만 기소했나" 

변호인단은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심판의 기회가 늦게나마 열린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권 씨 한 명만 기소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권 씨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닌 조직적 범죄이며, 따라서 다른 관련자들을 추가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정에 불려 나온 권 씨는 지난해 11월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 결과 '내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한 수사국장'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가려 씨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거짓으로 나타나자 합신센터 직원들은 권 씨에게 유 씨에 대한 압수 및 체포영장 신청 보류를 건의했다. 수사국 실무진도 '결정적 물증이 없고, 유가려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고 있어 현 시점에서 강제수사 진행은 무리'라고 반대했다. 권 씨는 이를 무시하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 "국정원 수사국장, 유가려에 무리한 수사 강행 확인") 

그러나 적폐청산TF 조사 결과는 국정원 내 여러 가담자 가운데 소수의 책임자만 지목한 점, 증거 조작 문제에만 집중한 점 등으로 축소‧부실 조사 논란을 낳았다.

실제로 국정원 내부 제보자는 유 씨 변호인단 측에 서신을 보내 '이번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에서도 자신들(당시 수사팀 간부들)은 유우성에 대해 수사 착수를 반대했으나 국장이 강권했다고 진술하는 등 아직까지도 나쁜 버릇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다른 관련자들을 규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단독] 국정원, 간첩 조작 수사 방해 "철저히 조사할 것")

변호인단은 이번 기소 또한 적폐청산TF 조사 결과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변호인 측은 "공소장에 나온 '피고인'의 행위 자체가 단독범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권 씨의 윗선과 아래 부하들은 왜 기소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꾼 중앙합동신문센터. ⓒ프레시안(최형락)

 

 

 

유가려 "국정원 압박에 '변호인 거부' 거짓 진술...증인 신청해달라"

이날 재판은 권 씨 측 변호인 변경 문제로 이렇다 할 쟁점 다툼 없이 끝났다. 기소 내용에 대한 권 씨의 입장을 청취할 기회는 다음 공판이 열리는 다음 달 29일로 미뤄졌다.

권 씨의 혐의 시인 여부와 함께 이 재판에서 주목할 점은 사건 핵심 증인인 가려 씨의 증인 채택 여부다. 

가려 씨는 20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합신센터 수용 당시 변호인 접견을 못 한 데 대해 "독방에 갇히고 잠도 못 자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수사관들이 저한테 '변호사를 만나게 되면 중국에 있는 아버지에게도 안 좋다', '변호사 만나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뒤에서 돈 많이 썼다. 마음만 먹으면 증거는 다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며 "너무 무서웠고 결국 압박에 못 이겨 그런(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증거보전절차 이후 국정원 측에 변호사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너무 억울하고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있다"며 "만일 검사가 저를 증인으로 신청할 경우 꼭 재판에 출석해서 제가 겪은 일들을 사실대로 다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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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반도 평화의 봄이 온다” 촛불광장서 ‘평화통일’ 외친 사람들

노동·시민단체들, 광화문광장서 ‘남북 정상회담 성공 개최’·‘평화 통일’ 촉구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가 통일합시다"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시민과 노동자들이 성공적인 정상회담 개최와 함께 평화 통일 세상을 염원하며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민주노총은 2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을 열고 "남북 노동자 대표자회의를 성사하자"고 목소리 높였다.

참석자들은 한반도기에 민중의례를 한 후 ‘임을 향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동자들은 "평화협정 체결하자", "조국통일 실현하자", "자주교류 확대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통일실천단은 "멈춰라 멈춰라 전쟁훈련 멈춰라", "지금 당장 평화협정 체결해", "사드배치 다 해놓고 남 탓하지. 고마해 이제 좀 고마해라" 등 ‘따르릉’을 개사한 곡에 맞춰 율동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사드배치로 '잃어버린 봄'을 살고 있는 소성리 주민들의 투쟁의 모습도 영상으로 상영됐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참석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참석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 대표들이 통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 대표들이 통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청년이 만나는 노동자 평화통일' 토크쇼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무대 위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남북 노동자들의 통일축구, 6.15 공동수업, 대륙철도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장지철 경기지부 통일위원장은 6.15 남북 공동수업에 대해 "수업을 가지고 ‘빨간색’, ‘파란색’ 색깔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업하는 모습을 직접 와서 보시길 바란다"면서도 "분단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보다 평화를 원하는 많은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통일위원장은 휴전선 평화철길을 복원하자고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통일이 되기 전에 남북이 화해와 평화가 열리면 유럽에 갈 수 있다"며 "평도철도가 열리게 되면 남북이 서로 오가면 그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의 휴전에 끊어진 철로 위에 우리가 침목을 하나 하나 놓는 것은 다시 없는 기회에 찾아온 평화에 대해서 쐐기를 박는 것이고 통일의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화철도 타고 평양, 신의주 넘어 대륙으로 가즈아"라고 외치며 마무리 했다.

엄강민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올해 남북 노동자 통일 축구가 열리길 기대했다. 엄 부위원장은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몸을 부딪치며 경기하는데 승패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며 "남북의 노동자들이 만남은 평화통일의 길을 살짝 여는 마중물이 되는 만남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에 경기하게 되면 서울, 홈그라운드에서 경기하게 된다"며 "북측에 각오를 단단하게 하고, 준비 열심히 하시고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반도는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한반도가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뜨겁다"며 "성큼성큼 통일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까지 앞으로 일주일, 일주일이 지나서도 자뭇 기대되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면서 "우리 노동자들은 여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힘 있게 남북의 노동자 대표자, 현장의 노동자들이 만나는 자리 더욱 넓게 추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같은 시간에는 남북정상회담성공개최 ‘서울평화통일선언대회’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열렸다. 선언 이후 6.15 남측위 서울본부 등은 광화문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어린아이들이 한반도기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어린아이들이 한반도기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날 오후 5시부터는 광화문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 문화제가 열렸다.

'화해와 평화의 봄'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인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이날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인 회담이 되고 평화 통일의 지평이 되는 회담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며 "제재를 뛰어넘어 화해와 협력,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과감하게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화 통일에는 국가보안법, 색깔론, 불평등한 한미동맹은 존재할 수 없다"며 "평화의 봄을 넘어 통일의 가을 그 위대한 길로 함께 나아가자"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행사 1부에는 '촛불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를 주제로 각계 발언과 함께 프로젝트팀인 '고래'의 비보이와 랩 공연, 방송인 김미화씨의 시낭송, 방북예술단 평양공연에 참여했던 가수 최진희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2부에는 '촛불이 부르는 통일의 봄'을 주제로 '평창스노우어린이합창단' 공연과 연극 꽁트 '어깨동무 내 동무' 등의 문화공연이 펼쳐졌다.

평양공연에 참가했던 가수 최진희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평양공연에 참가했던 가수 최진희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정의철 기자
개그맨 김미화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시낭송을 하고 있다.
개그맨 김미화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시낭송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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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한인- 미국인 연대 대규모 반전평화시위

뉴욕에서 열린 한인- 미국인 연대 대규모 반전평화시위
 
 
 
김수복 미주통신원 
기사입력: 2018/04/21 [22: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한반도 전쟁반대와 통일을 위한 집회가 뉴욕에서 열렸다.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http://www.zoominkorea.org/korean-americans-join-spring-action-to-end-wars-at-home-and-abroad

 

▲ 대북적대정책 중단과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뉴욕시민들 집회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 뉴욕에서 반전집회가 대규모로 열렸다.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 김동균 미주6.15위원회 사무국장의 구호를 따라외치는 미국시민들, "단결하면 이긴다"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지난 15일 일요일 2시에 뉴욕 지역의 코드핑크, 평화재향군인회, IAC, ANSWER, 노둣돌을 미롯한 많은 반전 평화단체들이 연대해서 뉴욕 메이시백화점앞에서 2시간 정도 집회를 진행하였다. 시위에는 약 천명에서 천오백여명이 모였다. 한인과 미국시민들의 연대집회 참가인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국 단체 대표 발언자들은 아프가니탄, 시리아, 예맨, 베네주엘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범죄적인 전쟁과 제재를 중지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트럼프 정부의 백인우월주의의 위험성, 이민자와 근로자 특히 흑인에 대한 차별의 부당성에 대하여 각 단체들이 뜨겁게 성토하였다.

 

노둣돌, 6.15미주위원회 단체의 발언자들은 주한미군철수, 근본적인 대북적대정책 철회, 북미평화협정체결을 강하게 촉구하는 발언을 이어나갔는데 미국시민들이 열열히 호응하였다. 

 

약 2시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2시간여 진행한 뒤에 대통령 주택 트럼프타워까지 행진하고 마무리하였다.

 

 

 

특히 우리 한인동포들은 노둣돌 회원들이 준비한 풍물패와 함께 우리가락에 맞춰서 흥겹게 행진했다. 날씨가 추운데도 항상 집회에 참여하는 80이 넘은 김 수곤 선생님도 이번 시위여 참여하여 큰 힘이 되었다. 집회 동영상은 줌인코리아zoominkorea.org에 올라있다.

http://www.zoominkorea.org/korean-americans-join-spring-action-to-end-wars-at-home-and-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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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노조 5년,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을 만나다

 

 

 

 

나는 전교조 소속 교사다. 누군가 전교조 욕을 하면 싫다. 도대체 전교조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어 억울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진지하게 교육을 고민하고 묵묵히 학생들에게 헌신하는 교사 중 많은 이들이 전교조 조합원이다.

 

그런데 말이다. 누군가 전교조가 교원노조로서 뭘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 의해 법외노조가 되고 나서도 버티고 버텨 꾸역꾸역 살아남아 있는 것?

 

그리고 음... 흠...  

 

내가 속한 지부 선생님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본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법외노조 관련한 협의는 어떻게 이뤄가고 있는지, 학교 현장의 평범한 조합원들의 고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덜컥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지난 2월 28일 유난히 덜컹거리는 기차를 탔다. 뜬금없이 쏟아지는 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도착한 전교조 본부는 매우 엉뚱한 골목 깊숙이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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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 조, SickAlien(김현희 교사): 김, 코코아 기자: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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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사 조창익

 

: 중등 사회 선생님이셨죠?

 

: 네. 사회. 지리교육 전공입니다.

 

: 교사는 어떤 계기로 되신 거에요?

 

: 제가 어려서 서당을 다녔어요. 증조부께서 마을 서당 훈장님이셨는데, “너는 커서 선생님이 돼라. 아이를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동안 자신도 변화할 수 있다. 가르치는 건 귀한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 서당 경험이 교육관에 영향을 줬나요?

 

: 조부님의 교직관은 성직관에 가까웠어요. 가르침이란 아주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교육에 외경심을 가지게 됐고요. 성직관에 가까운 교직관을 가지고 교사를 시작했는데, 사회의 모순을 심하게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항 운동을 하게 됐죠.

 

: 그 유명한 자료 있잖아요. 1989년 문교부가 일선 교장들에게 내려보냈다는 ‘문제교사 식별법’. 저는 교사로서 이걸 보면 웃퍼요. 예전에 선생님들은 도대체 촌지를 왜 그렇게 많이 받았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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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도 편차가 있긴 했어요. 도시하고 농촌의 차이도 있고, 도시 안에서도 대도시, 중소도시 차이.

 

: 공무원 월급이 너무 적어서 그랬다고도 하는데,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라 당시 분위기가 궁금해요.

 

: 사실 저는 시골에 있어서 촌지 개념이 지금도 와닿지는 않아요. 촌지를 주는 학부모를 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요. 부교재 채택 같은 문제는 심했죠. 그런 거 하잖아요. EBS 교재. 학년부장이 특정 서점에서 50만 원이고 30만 원이고 주면 선생님들이 나눠 가지고.

 

: 제일 웃겼던 건 이거에요.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하하.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 하하. 주말에도 아이들 남겨서 더 가르치는 거죠.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우리반 아이들 잘 가르치고 싶어서요.

 

: 지나치게 열심히 하셨군요?

 

: 네. 그때 전교조 선생님들은 늘 가슴이 뜨거웠죠. 특활 활동도 하고 아이들이랑 체육대회 때 가장행렬 같은 거하고.

 

: 오~ 가장행렬을? 몇 년도에요?

 

: 95, 96, 97년도요. 그때 전두환, 노태우가 심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 중에 몇 명이 노태우, 전두환으로 분장해서 심판대에 서는 극을 하는 거예요.

 

: 그게 가능했어요? 학교에서?

 

: 가능했어요. 당시에 봉고차도 하나 샀거든요. 주말이면 아이들 태우고 고인돌, 폐총 같은 선사시대 유적지 찾아갔어요. 거기서 글도 쓰고 신석기 시대인과 전화하기 활동도 하고.

 

: 현안도 교실에서 이야기했어요?

 

: 예. 그랬죠. 저는 교단에서 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가르쳤어요. 5월 수행 평가로 하기도 하고. 5월에는 이 노래가 있단다, 노래를 써보고 의미를 되새겨보려고요. 

 

: 아...

 

: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 때까지도 했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권 때 고발이 들어왔어요. 자유총연맹 이런 데서 학교 교장에게 압력을 넣어요. 왜 시험 문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냐고요. 타협하라는 말을 들었죠. 제가 그분들께 그랬죠. 그게 그렇게 힘드시다면 시험문제로는 안 내고 수업 시간에만 배우는 거로 하겠다고 타협했죠.

 

: 전남이라서 가능했을까요? 솔직히 저희는 감히 시도도 못 할 거 같거든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학교에서 다함께 부른다? 되게 어려울 거 같은데... 학부모들한테 항의받은 적 없으세요?

 

: 거의 없었죠. 저는 (투쟁)조끼 입고 학교에도 갔어요.

 

: 조끼를 입고 학교에 갔다구요? 하하.

 

: 예. 비정규직 철폐라고 써 있는 조끼 같은 거요.

 

: 지부장 하실 때요? 아니면 그냥 평조합원일 때?

 

: 평조합원일 때도요.

 

: 상상이 안 가요.

 

: 학생들에게 일부러 조끼를 보여준 거예요. 노동자들이 지금 싸움을 하고 있다. 선생님도 그 뜻에 동참한다.

 

: 학생들은 뭐라고 했어요?

 

: 학생들은 택배 선생님 같다고 그랬죠. 하하.

 

: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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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그때 조끼 종류가 달라지죠. 예를 들어 구호가 입시 폐지, 대학평준화라면 학생들이 묻잖아요. 입시 폐지가 뭐냐고.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해요. 내 몸을 교육 수업자료로 쓰는 거죠.

 

: 학부모에게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게 신기해요.

 

: 학부모들을 만나 설명하고, 밥도 같이 먹고 했죠.

 

 

2. 해직교사 조창익

 

: 전교조 초창기부터 활동하셨잖아요. 당시 분위기는 어땠어요?

 

: 전교조 운동은 80년대 민주화 운동화 함께 태동해요. 특히 87년을 거치면서 교육계에도 변화에 대한 거대한 욕구들이 분출되고, 교단의 변호를 바라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집단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거죠. 전교조 이전에 전국교사협의회라고 하는 임의단체가 있었고요.

 

: 어떤 마음으로 참여한 건가요?

 

: 사회의 큰 변화가 자극한 측면이 있고, 교단에선 교사로서 견디기 힘든 억압적 질서도 있었어요.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영화를 강제로 보는 게 있었어요. 제가 영화비 걷는 업무를 맡았는데, 학생들 돈 걷어서 절반은 경우회(퇴직 경찰공무원들이 만든 조직) 주고, 일부는 교장 교감에게, 나머지는 친목회에 넣어서 회식하고 그랬어요. 오래된 필름 돌려서 학생들 돈 뜯어먹는 구조였지요. 너무 충격적이고 견디기 힘든 구조였어요.

 

: 심했네요.

 

: 또 하나, 교련이라고 하는 조직이 있었어요. 대한교육연합회.

 

: 현재 한국교총의 전신이죠?

 

: 예. 그 단체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입이 되어 있는 거에요. 내 월급 중 일부가 나가고 있었어요. 당시 전두환한테 우리 돈으로 고가의 선물 사줬다는 게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어요. 교단의 비리가 속속들이 폭로되는 시기였던 거에요. 군사독재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하는 열망이 교단에도 불어 닥치면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조직화되기 시작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학교 내에서 교련 탈퇴 운동을 주도했어요. 그 이유로 교장한테 미운털이 박혀서 쫓겨나기도 했고요. 

 

: 82년에 선생님이 되시고, 89년에 해직. 94년에 복직하셨잖아요. 5년 동안 뭐하셨어요?

 

: 조직에 남았어요. 어려운 시기였고 탄압을 많이 받아서 조직을 복원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죠. 그땐 만 명도 안 됐기 때문에. 1527명이 해직되었고, 그 분들 일부는 생활 문제로 생계 현장으로 가시고, 다른 동지들은 조직 안에 남아서 활동했죠. 그때 후원으로 많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함께 해주셨어요. 지금은 활동비를 받지만 그때는 활동비를 한 달에 10만 원 정도밖에 못 받았어요. 교통비도 안 됐지만 너무 신명났죠.

 

: 시민들도 많이 후원해줬나요?

 

: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조직적 연대, 전교조를 지켜야 한다, 전교조가 올바른 참교육 정신의 화신이기 때문에 전교조를 잘 키우자, 이런 움직임이 많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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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전교조는 빨갱이라는 말 많이 했잖아요. 저는 빨갱이 소리까지는 안 들었어요. 북한 찬양 같은 거 솔직히 너무 동떨어진 문화고. 그런데 요즘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이런 말 많이 해요. 일단 긍정적으로는, 벌떡 교사요. 교무회의 시간에 벌떡 일어나 이의 제기하는 용감한 선생님들. 부정적으로는 좀 피곤한 사람들 그리고 꽉 막힌 사람들.

 

저는 솔직히 빨갱이 소리하면 웃어요. 너무 말이 안 돼서. 근데 전교조가 꽉 막혔다는 말 듣는 건 무서워요. 그런 표현과 프레임이요. 선생님은 조합원 생활하면서 그런 거 없으셨어요?

 

: 전교조는 태어날 때부터 늘 공격받았어요.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중첩적이고요. 이제 전교조 노력으로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고민을 늘 하죠.

 

: 선생님은 이런 공격이 익숙하세요?

 

: 네. 1989년도에 전교조가 태어 날 때는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 죽었다구요?

 

: 선생님들의 부모들이 이랬죠. 전교조 탈퇴를 하지 않으면 내가 농약을 먹겠다고. 아들, 딸을 잘 키워서 선생님 만들어 놨는데 전교조 한다고 해, 정부가 탄압하니 교직을 잃게 생겼고.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낀 부모님들은 농약을 마셔서라도 말리겠다고 하고. 천륜을 갈라놓을 정도의 탄압이 있었죠. 그걸 극복하면서 태어난 전교조에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탄압 속에 병들어 죽었죠. 교장과 관료들의 탄압 속에서. 학교 안에서.

 

: 요새는 농약 먹고 죽겠다는 소리까지는 안 하지만 저희 아빠도 그래요. “전교조 하긴 하더라도 앞장서서 하지 마라.”

 

: 하하.

 

: “그냥 뒤에서 따라만 다니고 앞에서 마이크는 잡지 마라” 하하.

 

 

3. 전교조 투쟁의 방식

 

: 선생님 혹시 아세요? 6개월쯤 전에 딴지 벙커에서 조합원들 30명 정도가 만났어요. 그때 한창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였고... 조합원들이 전교조에 대해 얘기하고 기사로도 나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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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기사 링크

 

: 현장 선생님들이 전교조 조직 방향의 문제점에 대해 말한 거였죠?

 

: 네, 제가 페북에서 느닷없이 제안했고, 선생님들이 모인 거에요. 그때 나눴던 얘기 중 첫 번째가 이거였어요. 전교조에는 전투 DNA가 있다. 활동 방식이 소모적인 면이 있다. 맨날 머리에 띠 두르고 조끼 입고 거리에서 시위하는 모습만 언론에 보도된다. 언론도 문제지만 전교조도 활동 방식을 좀 바꿔야 하지 않냐. 이런 말 많이 들으시죠?

 

: 그렇죠. 예. 늘 듣죠.

 

: 어떠세요 그럴 때마다?

 

: 수용할 부분도 있죠. 하지만 그 부분만 부각이 돼서 그렇지 사실 전교조는 총체성이잖아요. 현장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것. 그 일상이 사실은 전교조거든요.

 

: 음, 맞아요.

 

: 전교조 조직 방식이라고 하는 건 현상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거고. 실제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맺는 만남, 교육적 내재율이 풍성하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 흐름이 전교조거든요. 그런데 그건, 아무도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잖아요.

 

: 네. 그거를 취재해야 되겠어요. 하하. 수긍되긴 하지만 이런 건 있어요. 전투 대오를 이루면 활동가가 돌격대에요. 헌신을 많이 해야 되고, 희생도 하고, 징계도 많이 받잖아요.

 

: 그렇죠.

 

: 그런데 저 같은 평조합원은 그런 게 되게 미안해요. 죄책감도 들고. 근데 나는 저렇게는 못하겠다. 이런 심정이 드는 거죠.

 

: 전교조 총체성으로 보면. 그 미안함과 그 죄책감도 전교조죠. 그런 게 나는 자산이라고 봅니다.

 

: 그건 그렇지만..

 

: 조금 더 원거리에 있으면 그것도 없거든요.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것이 전교조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그 감정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들이 덜 다치셨으면 좋겠는 거죠. 일은 일대로 다 하고 욕먹는 거 보면 싫고요.

 

: 그런데 상대가 정권이지 않습니까? 정권이 가하는 폭력은 너무나 무자비한데 우리들은 맨몸밖에 없고, 그러니까 몸으로 다가서는 건데. 몸으로 가다 보면 다치죠. 다가서지 않으면 다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다가서죠. 좀 더 가까이 가야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나야 알려지게 되니까.

 

: 다가서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다. 음...

 

: 전투적인 모습만 비춰지다보니 대중적 지지를 못 받는 것 같다고도 해요.

 

: 예. 그런데 그 프레임도 어찌 보면 일방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해요. 전교조가 진정성을 가지고 방향을 설정해 투쟁을 해가면 조합원 선생님들은 뜻을 함께해주세요.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확하게 방향을 잡아 주시거든요. 그런데 그때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투쟁 일변도라고 해석해서 우리들을 배제하죠. 가급적이면 안 다치고 하는 방향을 찾으려고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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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가투쟁에 관해서도 현장에서 다양한 소리가 나와요. 다들 정말 할 게 이거밖에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효과가 있을까요? 그냥 계속 바위에다 계란을 던지는 기분이에요.

 

: 네. 효과 있어요. 수가 적고 많고 정도의 차이도 있지만, 연가투쟁을 한다 그러면 청와대가 긴장을 해요. 일단.

 

: 긴장해요? 하하.

 

: 청와대가 왜 긴장을 하냐? 우리는 느껴요.

 

: 그래요?

 

: 예. 연락이 오니까.

 

: 음.

 

: 연가투쟁 안 하면 안 되냐고 연락와요. 연가투쟁은 총파업 투쟁이라 징계권을 행사해야 되는 거에요. 칼을 들어야 되요. 공무원 법 위반이니까. 그전 정부는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 본인들만 안 하면 이상한 거죠. 그래서 지금 정부가 지금 조중동에게 공격을 받고 있죠. 연가투쟁 했는데 왜 징계 안 하고 있느냐고요.

 

이번 연가투쟁 때도 전화를 얼마나 많이 받은 지 몰라요. 청와대 관계자들. 행정관. 비서관. 비서실. 연락 옵니다. 정권이 민감한 거에요. 선생님들한테 일일이 다 알리지 못했죠. 하지만 전교조 집행부는 바로 그런 힘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겁니다. 투쟁을 해서 지도부가 다칠 수도 있어요. 한때는 다치기도 했고. 연가투쟁을 해서 해직됐다는 사람은 없었잖아요. 있다면 약간의 경고에다가 조금 감봉이나 견책 이런 정도고. 지도부는 이제 조금 더 센 것을 맞죠. 하지만 정권을 건드려야 관심을 받고, 정책 변경이 가능한 지점까지 전진할 수가 있어요.

 

: 들으니까 본부 입장은 이해가 돼요. 그렇지만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연가투쟁은 엄청난 부담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그럼요 선생님들에게 부담이죠.

 

: 눈치 엄청 봐요. 저 멀리 있는 정부보다 내 옆 반 선생님이 더 무섭잖아요 사실.

 

: 맞아요. 그래서 한때는 지침도 있었어요. 연가투쟁 갈 때 학교에 선생님 한 분이 가는 거로 하는 지침.

 

: 음...

 

: 학교 대표로 당신이 가라. 우리를 대신해서. 열심히 싸우고 와라. 우리의 뜻을 모아 준다. 당신이 징계를 받으면 우리가 함께하겠다는 거죠. 연가투쟁은 전선에 서는 투쟁이에요. 정부에 힘을 보여주는.

 

: 노동조합의 권리이고 의사 표현인 건 맞지만, 사람들이 요구하는 교원노조로서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연가투쟁을 택할 수 있는 거지만, 실력행사 외에 여론과 대중을 공략하는 방법은 없나 싶은 거죠.

 

: 그렇죠. 그것도 하죠. 서명도 하고 청원도 하고 행진도 해보고. 평화롭게. 온 나라 걷기는 제주도에서 걸어서 서울까지도 오잖아요.

 

: 그런 것들은 너무 안 보여요.

 

: 그렇죠. 평화적인 방식은 한없이 해도 언론이 안 봐요. 노출되는 정보가 평등하지 않은 거죠.

 

작년 말, 전교조는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투쟁에 나섰다. 조창익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는 단식 농성을, 조합원들은 연가투쟁으로 힘을 보탰다. 그러나 전교조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촛불로 세운 정권을 왜 '굳이' 흔드느냐는 비판이었다.

 

: 작년에 대대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했었잖아요.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시나요?

 

: 저는 있다고 봐요. 분명 정권을 압박하고 부담감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투쟁은 정당했고요. 교육부 담당자들도 우릴 만날 때마다 법외노조 철회 문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정권이 부담 없는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미루고 있긴 하지만...

 

: 대정부 투쟁이 정당성은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중적인 지지를 더 잃게 하지는 않았나라는 우려가 들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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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저는 오히려 싸우지 않고 편안하게, 평화로운 방식으로 있었으면 전교조의 지지는 지금 얼마만큼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아무것도 안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음..

 

: 이명박근혜 시절 투쟁 방법과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 방법이 조금 달라야 된다고 지지자들은 생각하거든요. 전교조가 정권을 흔들어서 정권이 흔들리면, 결국 다시 이명박근혜 정권 같은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예. 저희도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실 우리 행동이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는 거라고 해석합니다. 사실 작년 7월에 전교조 법외노조를 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북핵, 사드 문제가 나온 거에요. 전교조 법외노조까지 이슈화되면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거에요. 홍준표류가 끊임없이 정부를 공격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나서서 해야만 하는 싸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정부 투쟁의 경우 전교조가 정교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일면 억울한 측면도 있다. 법외노조 이후 전교조가 받고 있는 불이익, 이른바 4대 후속조치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조가 아니라 임의단체가 된 전교조는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없게 됐고, 사무실 지원금을 못 받게 됐으며, 교원 노조로서 맺었던 단체협약이 해제됐고, 교육 협의회에서도 배제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외노조가 철회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여유는 없었던 셈이다.

 

 

4. 전교조 정파에 대하여

 

: 정파 얘기 좀 할게요. 선생님은 어떤 정파 소속이셨어요?

 

: 예.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약칭 교찾사라고 하는 의견 그룹. 정파라고 하는 표현도 맞지만 저는 의견 그룹이라는 말을 주로 쓰죠.

 

: 정파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정파의 존재를 작년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조합원이 된 지 7년이 되어 가는데 정파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건 일단 제 책임이지만 조합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나 해요. 정파가 비밀스럽게 활동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사실이에요?

 

: 정파는 비밀스럽지 않아요.

 

: 그래요?

 

: 회보를 내고 공개된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제출하니까 공개적인 방식이죠.

 

: 공개적인 방식이고... 정파들끼리의 다툼이 도를 넘는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한이 큰 자리에 자파의 사람을 앉히기 위해 능력 있는 자를 배제한다거나 하는 거요.

 

: 글쎄요. 그런 경우라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컨데 이런 거겠죠. 전교조는 선거를 통해서 집행부를 구성합니다. 동질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집행부를 꾸리려고 하는 목적 하에서 선거 캠프가 꾸려지는 거고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같은 에너지를 결집 시키겠죠. 애초에 통합 집행부를 하겠다. 의견 그룹과 상관없이. 이렇게 공표를 하고 선거를 치르려 했다면 여러 견해를 가진 인재들을 모아서 집행부를 꾸렸겠죠.

 

보통 선거캠프에 자신의 견해에 맞는 정책을 세우고, 당선이 되죠. 그런 일관성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인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쓴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죠. 왜냐하면 견해를 달리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니까요. 2년 동안에 책임지고 집행을 하고, 조합원들로부터 심판받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파 활동이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적은 없으세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생긴 건데, 어느 순간 의도와 달리...

 

: 의견 그룹 숫자가 사실은 얼마 안 돼요.

 

: 두 개인가요?

 

: 두 개라고 할 수 있고, 열 개라고도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까요.

 

: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 그거는 전형적인 음해성 조,중,동 이데올로기에요. 

 

: 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모 선생님의 ‘전국대의원대회 때 일부 정파의 끝없는 필리버스터’ 주장이요. 이건 분명 없는 말은 아닌 거 같았는데..

 

: 아 저는 꼭 다 동의하기는 어려운 말씀이었어요. 활동하고 있는 주체들이 가진 운동관과 세계관에 대해서 온전하게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배후에서 누가 조종을 한다. 이거는 분명 과도한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 그럼에도 선생님. 제 생각에는 개선할 부분이 많긴 해요. 좀 더 공개적으로 정파 활동을 해야 된다던지 하는..

 

: 의견 그룹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치열한 논의, 논쟁을 통해서 자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의견 그룹은 논쟁하지 않으면 소멸합니다.

 

: 그렇죠.

 

: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그 논쟁의 과정에서 특수한 시기에 특별한 의견이 특별한 방식으로 제출됐을 때, 해석은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죠. 작년 기간제 교사 논쟁도 그랬고. 앞으로 나가기 위한 진통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건강성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 솔직히 저 같은 평조합원은 선거를 할 때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홍보물, 공고물을 봐도 다 똑같아 보이고. 누구 뽑아야 되나 하다가 그냥 누군가가 권유하는 사람을 그냥 뽑게 되는 거에요. 이 부분은 해결책이 있나요?

 

: 그래서 전에 온라인 정책토론회도 했었어요. 실시간 중계를 해서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판단하게 하기 위해서요. 근데 막상 도입했더니 접속률이 너무 낮은 거에요. 몇 명 안 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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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언제 했던 거에요?

 

: 그거. 해 왔죠. 최근 몇 년 동안 쭉 해 왔죠. 해봤는데 접속률이 낮았어요.

 

: 혹시 막 근무시간에 하고 이건 아니죠? 근무시간에 하셨으면 할 말 없으신 거에요. 하하

 

: 저장해 놓고 쏴주기도 하고, 홈페이지에 링크 걸기도 했었죠. 그럼에도 접속률이 낮았어요. 결국 공력에 비해서 실효성이 낮은 방식이라 판단해 폐기하게 됐고. 조직 내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들은 매 시기별로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어요.

 

 

5. 민주노총 산별노조로서 전교조

 

: 현장 교사들 중 전교조가 민주노총 산별노조라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어요. 조합비 나누는 문제도요. 전교조 조합비 중 민주노총에 가는 게 얼마나 되나요? 한 10% 되나요?

 

: 아뇨. 아주 작아죠. 2%였나.

 

: 2%요?

 

: 네. 조합원 개인당 천 원 조금 넘을 거에요. 

 

 후에 확인한 바로는 1인당 1650원. 

 

: 한편으로는 이런 점도 있어요. 저도 노동조합끼리 함께 소리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서울에 상경투쟁 가면, 심정적으로 좀 뭐랄까.. 계속 민주노총 쫓아다니는 기분? 쫓아다니다가 민주노총 사람 나와서 얘기하면 그걸 한참 듣고, 교육 얘기는 거의 못 하고 그냥 집에 가는 거에요.

 

: 그렇죠. 민주노총에 80만 명이 있잖아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나 많죠. 민주노총은 노동이라는 의제로 그걸 다 포괄해서 지금 제출하는 거고.  그 안에 교육노동이 특수하게 자리 잡고 있고.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고민도 굉장히 크죠.

 

: 민주노총도 교육을 고민할까요?

 

: 내가 민주노총이에요.

 

: 아...그건 그런데.

 

모두: 하하

 

: 이런 거 있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노조별 특수성. 특히 언론노조나 교원노조는 노동 환경, 처우 개선뿐 아니라 노동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려 하잖아요.

 

: 그렇죠. 특수성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우리한테 의지하는 바도 커요. 전국 도처에 1만 개 사업장이 있는 건 전교조밖에 없어요. 일 만개 사업장. 그 모든 곳에 조합원이 최소 한두 명씩 있어요. 사회적 영향력이 아주 크죠.

 

: 그 말씀이 맞지만, 전교조는 어쨌든 교원 노조잖아요. 그 사명감을 살려서 교육 개혁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가.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가라는. 그 부분에 자신이 없어요. 선생님은 안 그러세요?

 

: 우리가 주도를 해야 된다는 건 맞아요.

 

: 의제 선점 얘기를 하면 물론 그런 건 있죠. 워낙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다 보니 그럴 틈이 없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질 부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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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측면도 있어요. 한 10여 년 전부터 우리가 주장했던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라고 하는.

 

: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 10여 년 전부터 공교육 재편이라는 새판을 제시하는 공격적인 의제였죠. 교육혁명대장정을 통해 십년간 꾸준히 제출해 왔어요. 중간 중간에 대통령 후보들이 자신들의 입을 통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공약으로 걸게 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너무 좋죠. 근데 문제는 이게 전혀 안 와 닿는다는 거에요!

 

: 확실히 예전에 했던 ‘촌지 안 받기 운동’에 비하면 구체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니까.

 

: 네, 안 와 닿는다니까요. 찬성은 하지만 매우 장기적인 과제이고.

 

: 예. 그러니까 그 부분이 지금 현실화되는 단계에 있다.

 

: 현실화되지 않았고 아직 너무 먼 것 같은데요? 하하.

 

: 대학입학 자격고사도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공약을 한 거에요. 그게 대학 평준화와 관련 된 거에요.

 

: 한편으로는 실제로 교육을 받는 학부모나 학생들은 그 주장에 크게 동의하지 않아요. 그 흐름 자체를.

 

: 경쟁 이데올로기가 아직은 지배적이기 때문에. 협력적인 이데올로기 공간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죠.

 

: 그 과정에서의 전교조의 역할이 뭐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게..

 

: 예. 열심히 하고 있는데 표가 안나요. 교육혁명대장정인 기간인 현재도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대토론회하고 있어요. 한 20여 개 중소도시, 대도시요.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전망을 제시하고 얘기하고 있죠.

 

큰 스피커로 전파를 확보하게 되면 정착이 되는 건데... 지금 김상곤 교육부 체제가 그걸 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끊임없이 교섭하고, 제출하고, 국정기획 자문위원회 시절부터 해서 두툼한 보고서 제출하고 많이 만났죠. 일부는 반영이 됐어요. 그런데 미흡하죠. 그래서 우리는 멈출 수 없고, 앞으로 바꿔 가야죠.

 

: 방법적으로 바꾸실 생각은 없으세요? 취지는 존중해도 사실 조합원들도 잘 모르고. 이름도 교육혁명대장정 같은 건 좀...

 

: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자기 문제로 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 그걸로 정책화하는 것이 목표에요. 근데 교욱부에는 교욱부 장관 혼자거든요. 나머지 관료들은 이명박, 박근헤 때 그 체제 속에서 실질적인 교육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 분들이 계획을 세우고 김상곤 장관한테 보고 하고 현장에 내려보내는 체제에요. 그러니 교육 관료들의 정책 시각이나 그 견해에 대해 재해석 할 수 있는 인적 재구조가 가장 필요하죠.

 

: 인적 재구조?

 

: 사람도 바꿔야 하고 정책도 바꿔야 되는데 지금 사람은 못 바꿨죠. 정책은 계속 전달했어요. 계속 전달했는데 그들이 먹지를 않아요. 소화를 안 해요.

 

: 그 사람들이 먹을 리가 없는 거 같아요. 물론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말은 계속 해야겠죠. 그러나 지금 상황이요. 지금 교원 43만 명 중에 전교조 조합원이 5만 명에 불과하잖아요. 그렇다면 교사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게 먼저 아닌가. 특히 교사들이요. 그래야 저 윗사람들이 움직이지.

 

: 마음을 얻기 위해서 지금 싸움을 하는 거에요.

 

: 아니 아니, 하하.

 

: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를 해야 되니까.

 

: 아...

 

: 우리가 마음을 얻는 방법이 어떤 걸까? 생각해 보거든요.

 

: 교원노조니까 교원들의 마음, 교육 주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도 구체화 시킬 필요는 있는 거 같아요.

 

: 전적으로 동의해요. 국가교육회의만 해도 현장 교사가 한 명도 없어요. 현장을 바꾸려면 현장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위원회에 초중고 교사가 없어요. 초등 선생님만큼 초등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박사학위 가진 교수님도 몰라요. 개혁의 주체 동력을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 인식이 아직 없는 거에요.

 

우리는 현 정부의 교육개혁이 완전히 위기라고 보고 있어요. 현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중반전 넘어가기 전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쇄신을 통해서 정책 중심에 접근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아주 변혁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요. 선생님들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게 뭔가. 괴로운 게 뭔가. 그 고충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손잡아줄 방법은 뭔가. 자기 전문성 신장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 접근해, 어떻게 지원할 건가.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어떻게 확대할 건가. 제도적인 역기능과 저항을 어떻게 감소시켜 갈 건가. 저항과 대안에 동시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업무죠. 선생님들의 고충을 어떻게 해소할 건가? 이거는 힘이 있어야 되거든요.

 

: 힘이요. 그러니까 계속 꼬리의 꼬리를 물긴 하는데...

 

: 그간 사회가 많은 교사들을 위축되게 했지만 교육을 중심부로 이끌어 줄 사람들은 교사들입니다. 당당한 교사가 있는 교실이 행복할 수 있잖아요.

 

: 맞아요.

 

: 의기소침하고, 위축되고, 아이들로부터도 공격당하고. 수업 자체가 괴로운 공간에서는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도 불행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을 중심에 정확하게 세울 수 있는 그 힘, 그 힘을 어디서 가져올 건가를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이 필요한데 그 당당함의 기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 어디서 찾을까요?

 

: 저는 교원노조 활동이 학교 안의 중심으로 서야 한다고 봐요. 선생님들 간의 협력. 그 공동체성이 강화되는 질서 속에 답이 있다고 봐요. 지금 학교는 관료주의적 질서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고, 거기에 비민주성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인간 소외가 있고, 차별이 발생하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외의 벼랑 끝으로 밀어 넣으면서 삶을 절망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놔두어선 안 된다는 거죠. 교사들 손을 잡아줄 사람은 누구냐? 그건 교사에요. 교사가 교사의 손을 잡아야 됩니다.

 

: 교사가 교사의 손을 잡아야 한다.

 

: 교사의 연대성을 어떻게 회복할 건가? 학교 자치는 어떻게 만들어 낼 건가?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학교장이 섰을 때 가능한 거에요. 지금과 같은 승진구조는 관료주의, 비민주성을 그대로 품은 교장을 잉태하기 때문에. 그 개인의 심성과 상관없이, 관료주의라는 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존재. 매우 무력하기 짝이 없는 그런 리더로 존재하기 쉽다. 그래서 학교 사회 전체를 진정한 교육자치 공간으로 변모시켜야 합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냐? 민주주의의 핵심인 교원노조죠. 학교 안 분회라고 하는 조직이 교육자치의 핵심이고, 교무회의가 민주적으로 운영이 돼야 된다. 이겁니다. 교무회의가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어야  학교장의 정보 독점과 의사결정의 불균형이 시정된다는 거에요. 교장보직선출제를 이뤄야죠.

 

: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좋네요. 전교조 본부가 내리는 판단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도 하구요. 조합원과 본부 간 소통하는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조합원들은 본부와 괴리가 왜 이리 심한가 계속 생각하거든요.

 

: 예. 저희들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각 단위가 다 활성화되어야 하거든요. 본부는 주요하게 정부 쪽을 상대하고. 지부는 시, 도 교육청. 이렇게 나누뉘는 건데, 본부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동맥경화에요. 지역사회 교육 현안에 대해서는 지부가 해결 능력을 갖고 접근해야 하거든요.

 

: 네. 전교조도 너무 탑다운 방식이라는 비판이 있어요. 본부에서 정하고, 지역 간 차이 고려 없이 똑같이 지침을 뿌려버린다는. 예를 들어 대전과 광주는 상황이 너무 다른데도 똑같은 방침이 내려오니까.

 

: 그런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대전 지부장님도 있고, 광주 지부장님도 있긴 하세요. 그래도 중앙 중심의 사업이 상대적으로 많이 느껴지면 그만큼 지역사업들의 공간이 협소해지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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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외노조 풀리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으세요?

 

: 수십 명 해직 교원들 복직부터 해야죠. 법적 지위를 회복하면 모든 걸 정상화시켜서 교육정책, 예산 복원에 대해서 단체 교섭도 하고요. 무엇보다 현장이 일번이죠. 현장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야합니다.

 

지금 상반기 중에 단체교섭안 다시 작성하고 하반기 프로그램도 있어요. 교육부하고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정상화 시킬 겁니다. 그때 가서도 모순은 다시 발생할 겁니다. 그때는 또 또다시 다른 투쟁이 필요하겠죠.

 

: 복직하실 거죠?

 

: 복직 해야죠.

 

: 몇 년 남으셨어요?

 

: 저는 이제 2년 반 남았나? 복직이 그 안에 될지 모르겠어요. 2년 반. 교단에서 정년 해야죠.

 

: 하하. 네 문집도 만드셔야죠.

 

: 예. 문집 만들어 놓고 싶어요. 마지막 아이들과 함께 기억 남기고, 사진도 찍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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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 구면이다. 조창익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내가 사는 지역의 모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사진에서만 뵈었는데 반갑습니다 위원장님.” 이라 말하며 악수를 청하자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잡으셨다. 표정은 밝았지만 얼굴은 무척 수척했다. 당시 법외노조 철회 단식 투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힐끗 바라보니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계셨다. 그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분도 선생님이다. 길에서 단식하고, 멋없는 조끼입고 우렁차게 투쟁을 외치는 저 분도 같은 학교에서 일했다면 믿고, 의지했을 동료 선생님이었겠구나.'

 

전교조라는 조직을 신뢰하는 조합원 중에도 본부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선생님들이 있다. 분명 전교조가 늘 잘해왔던 건 아니다. 나도 여러 불만을 느껴왔고, 앞으로도 좋은 소리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조창익 위원장이 말하듯 전교조는 지도부나 활동가가 만들어 이끄는 조직이 아니다. 내가 전교조다. 옆동네 교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름 모를 교사가 전교조다. 전교조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길을 걷는 자취일 뿐이다.

 

전교조 역사에 흐르는 똘기에 가까운 결기. 그것이 우리의 위기를 자초했지만, 그 결기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전교조, 안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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