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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법부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3/05 10:24
  • 수정일
    2016/03/05 10: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국의 사법부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6/03/05 [00: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한국의 법은 아직도 권위주의, 관료주의에 식민통치 수단이던 일본식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며 다수의 진보적 학자들의 견해다. 일제의 주도로 심어진 일본만의 이익을 위한 근대 사법제도가  36년간 뿌리내렸고 이어진 미군정은 일제에 협력한 친일판사들을 대거 등용하여 친일판사들은 한국인의 이익은 뒷전이고 미국의 이익에만 치중했다고 비평했다. 이에 한국의 법관들이 미국의 이익에  얼마나 열심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한국에서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언급하는 자는 사법부 관리로서 자격이 없다. 미국에 반대하는 자<반미>나 좌파 <종북>에  해당하는 자는  그들의 범법행위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엄중히 처벌해야한다."< 1946년 6월 9일 대법원장 김용무> 이를 보도한 1946년  7년16일 Seoul times

 

"한국은 악법들이 온존하는 나라다.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 공무원의 단체활동과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노동조합과 제3자 개입금지조항 등이 헌법에 어긋나며 이러한 악법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와 국적불명의 학설들을  동원하여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학자들과  이들 악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헌법은 우리들의 상식이며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다."<출처- 박홍규 교수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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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국텔' 열풍, 완전히 새로운 뉴스 소비자들의 출현

 

[기자수첩] 콘텐츠 담는 그릇도 콘텐츠… ‘날 것 그대로’에 열광하는 독자들, 뉴스가 재밌으면 안 되나

 

 
조윤호 기자 ssain@mediatoday.co.kr  2016년 03월 05일 토요일

 

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중단을 전하는 미디어오늘의 기사 제목은 ‘보수 언론과 시민들이 벌인 9일간의 투쟁’이었다. 보수언론은 필리버스터의 의미를 왜곡하고 축소했지만 시민들은 국회를 찾았고 오랜 만에 정치인들에게 열광했다.

시민들은 필리버스터를 일종의 콘텐츠로 소비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미디어를 이용했다. 따라서 9일 간 190여 시간의 필리버스터는 새로운 미디어 소비행태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성 미디어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시간이었다. 필리버스터 현상은 미디어, 그리고 미디어 종사자를 향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시민들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콘텐츠에 높은 주목도를 보였다. 그간 시민들이 접하는 정치인의 말이나 언행은 언론에 의해 편집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언론은 자신의 기사에 맞춰 정치인들의 말을 가공하고, 정치인의 행보를 편집한다. 물론 이를 잘 아는 정치인들도 언론을 활용한다.

 

▲ 지난 3월 1일 필리버스터 방청을 위해 국회를 찾은 시민들.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갈등과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친박과 비박의 갈등, 친노와 비노의 갈등. 언론은 이런 의미에서 정치혐오를 조장한다. 시민들은 언론의 정치 기사를 “저놈들 다 잘라버려야 돼” “맨날 싸우기만 하는 놈들” 등 ‘씹을거리’로 소비한다.

시민들이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보며 “생각보다 괜찮은 정치인들이 많다” “정치인들이 저렇게 똑똑한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편집되지 않은 정치인의 말을 접했기 때문이다. 국회방송은 190시간 동안 정치인들의 말을 편집 없이 보여줬고, 언론에 보도된 정치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정치를 보면서 새삼 정치인이 싸우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란 걸 학습한 셈이다. 

미디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틀에 따라 무엇을 반영할지, 반영하지 않을지 결정한다. 그리고 미디어의 권력은 이 결정권에서 나온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생중계를 보며 정치혐오를 씻어낸 시민들에게 미디어의 권력은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린 셈이다. 

조선일보는 2월 25일자 사설에서 “야당은 아무리 걱정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치 염증을 키우는 필리버스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아무리 합법의 테두리 내에 있더라도 마치 선거운동하듯 필리버스터를 악용하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을 키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간 미디어의 권력을 이용해 정치혐오를 부추겨온 이들은 기성 미디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일보의 이 주장은 그 권력을 누리지 못할까 우려하는 불편함으로 들린다.

 

▲ 2월 25일자 조선일보 사설



둘째, 콘텐츠를 담는 그릇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필리버스터가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그 형식 덕분이다. 시민들은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는 국회방송을 두고 MBC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틀)을 빗댄 ‘마이국회텔레비전’(마국텔)이라고 불렀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마국텔의 형식은 마리텔과 매우 유사했다.

시민들은 ‘마국텔’을 보며 실시간으로 SNS에 댓글을 남기거나 시청 소감을 남겼다. 강기정 의원이 울부짖듯 연설을 할 때는 같이 울먹이기도 하고, 정청래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성대모사를 할 때면 ‘ㅋㅋㅋㅋㅋㅋ’를 남발했다. 마리텔과 매우 유사하다. 마리텔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구라, 백종원 같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실시간 방송을 통해 보여주면, 누리꾼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단다. 그러면 방송 진행자들은 다시 그 댓글을 방송에서 읽어준다.

마리텔이 치용한 아프리카TV 등 1인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또 다른 콘텐츠가 된다는 점이다. ‘마국텔’도 마찬가지였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구했다. 김경협 의원은 ‘테러빙자법’ ‘국민스토킹법’ ‘국민감시악법’ 시민들이 댓글로 남긴, 테러방지법 네이밍 60개를 소개했다.

 

▲ 강기정 의원의 필리버스터 생중계 장면을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형식에 합성한 이미지. 이미지 출처 = http://nightworld.tistory.com/128


이미 젊은 층은 아프리카 TV처럼 직접 방송을 보고 댓글을 남기고, 이 댓글이 또 다른 방송 콘텐츠가 되는 방식의 미디어 소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익숙함이 정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마저 즐거운 콘텐츠로 만든 셈이다.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과 의원들이 언급한 단어, 심지어 의원들을 방해한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김학용’ 의원 자리에 앉아서 항의하는 장면이 잡히자 김학용 의원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정청래 의원이 필리버스터 도중 고성을 지르는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다음 총선 때 도움 받으시려면 이름을 이야기하세요”라고 말한 이유다. 마리텔에서도 방송에 따라 실시간 검색어가 변동하고, 진행자들과 시청자들이 이를 함께 즐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신경민 의원은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 공약“이라며 새누리당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라고 말했고 이 말에 누리꾼들이 몰려가면서 새누리당 홈페이지는 다운 됐다. 마리텔에 출연한 가수 데프콘이 ‘뽐뿌’ ‘엠팍’ 등 특정 사이트 이름을 거론하고 누리꾼들이 특정 사이트에 몰려가는 식으로 맞장구쳐주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마리텔을 제작하는 박진경 MBC PD는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엄청난 강자가 나타나버렸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그만큼 마국텔이 마리텔과 유사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공식계정은 이에 ‘좀 쎄지요?’라는 맨션을 보냈다.

셋째,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도 콘텐츠가 된다. 필리버스터를 소비한 시민들은 의원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했다. 누리꾼들은 맨 처음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최연소 김광진 의원은 ‘민주당 학생회장’이라는 별칭을, 신경민 의원에게는 ‘죄 읽어주는 남자’라는 별칭을 붙였다. 

강기정 의원은 “진작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폭력 의원이 안 됐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다가 ‘강 목사의 신앙 간증’이라는 별칭을 안게 됐다. 누리꾼들은 차분차분 연설하는 김경협 의원이 심야 라디오 DJ를 닮았다며 ‘법이 빛나는 밤에’라는 이름을 붙였고, 김 의원의 연설에 끼어든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법밤의 깜짝 손님’이라고 불렀다. 누리꾼들은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의 팬아트를 그리고 의원들을 ‘모에화’했다. 캐릭터를 바탕으로 2차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 필리버스터 직후 더민주 김광진·은수미·신경민, 정의당 박원석 등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의 팬아트(fan art, 좋아하는 대상을 소재로 한 그림)가 만들어지는 등 필리버스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컸다. (사진 = 닝구)

누리꾼들은 이미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로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에 익숙하다. 이런 방식을 가장 즐겨 쓰는 매체가 피키캐스트다. 피키캐스트에는 ‘아이언형’ ‘괜찮은언니’ ‘평타공주’ 등 콘텐츠를 올리는 에디터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한다. 피키캐스트는 ‘에디터의 파우치를 털어보자’ ‘에디터들은 설날에 뭐할까’ ‘에디터의 제주도 여행’ 등등 에디터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만든다. 피키의 독자들은 이런 콘텐츠를 통해 에디터를 ‘덕질’한다.

필리버스터는 그 열광만큼 실망도 컸다. 의원들이 계속하겠다는 필리버스터를 ‘선거에 이겨야한다’고 지도부가 뒤집었다. 정치혐오를 씻겨준 필리버스터의 결말은 구태정치의 전형이었다.

잔치는 허망하게 끝났다. 하지만 필리버스터가 미디어에 대한 질문과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치라는 무거운 콘텐츠도 젊은 층에게 익숙한 미디어의 소비행태와 잘 만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필리버스터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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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도 또 가고 싶은 절, 합천 해인사의 '옥에 티'

 

장경판전 전면 통제,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

16.03.04 21:15l최종 업데이트 16.03.04 21:1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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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만대장경과 고려각판 견본 견본이 장경판전에서 학사대 가는 길목에 걸려 있다. 바로 옆에는 장경판전 내부와 팔만대장경 사진을 붙인 간이 벽이 세워져있는데, 이것을 배경으로나마 사진을 찍으라는 절의 '배려'인 셈이다. '인증샷' 따위에 별 관심이 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흉물스러울 뿐이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장경판전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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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말 광주-대구 간 고속도로가 확장 개통하면서 광주에서도 해인사 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톨 게이트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길도 4차선으로 확장되어,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을 감안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변변한 중앙분리대조차 없어 '죽음의 도로'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왕복 2차선의 88 올림픽 고속도로 시절에 견준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해인사는 1년에 적어도 두세 번은 찾게 되는 고향집과 같은 곳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 때문만은 아니다. 꼬불꼬불 절에 오르는 길, 길동무 같은 홍류동 계곡의 풍광이 아름다워서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1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나무들과 대화하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서다. 여느 절이 지니지 못한 해인사의 '복'이라 생각한다. 

해인사는 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흔히 '삼보사찰'로 불린다. 부처의 말씀, 곧 불법을 목판에 새겨놓은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어 '법보사찰'로 명명됐다. 주변에 수십 개의 부속 암자를 거느릴 만큼 사찰의 규모 또한 크고, 경내에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도 즐비해 사시사철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인사만큼 숨은 볼거리가 지천인 절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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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 경내에 오르는 길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오르는 길,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하듯 허리를 숙이고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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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해인사로 봄 마중을 나섰다. 대개 탐방객들은 주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오로지 팔만대장경을 향해 내달리지만, 해인사만큼 숨은 볼거리가 지천인 절이 또 있을까 싶다. 그나마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이 절의 맨 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서망정이지, 만약 입구에라도 있었다면 절 안마당으로 들어와 보지도 않았을 성 싶다. 서둘지 않고 안내판만 찬찬히 읽어봐도 해인사가 달리 보일 것이다.

절에 오르는 길, 우리나라 현대 불교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철 스님의 승탑(부도)을 놓치긴 아깝다. 그의 가르침을 현대적 조형미로 형상화 한 승탑 앞에서 그가 남긴 주옥같은 명언을 찾아 읽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성철 스님의 사리를 모셔놓은 이 승탑은 지난 1999년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환경문화상을 수상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해인사 관광 안내판과 나란히 자리한 곳에 생뚱맞은 삼층탑 한 기가 눈에 띈다. 이름조차 생소한 묘길상탑으로, 딱히 예술적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작품인데도 보물 제1242호로 지정되어 있다. 폐허가 된 절터 등에서 옮겨온 게 아니라면 마땅히 법당 앞에 자리하고 있어야 할 텐데, 절에서 쫓겨난 듯 일주문 바깥 외진 곳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그다지 볼품이 없어 탐방객들에게 별 관심을 끌진 못하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문화재는 아니다. 호족세력이 할거하고 농민봉기가 들불처럼 번지던 신라 말, 왕실의 편에 서서 맞서 싸우다 전사한 수십 명의 해인사 승려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위령탑이다. 더 이상의 사료가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 없지만, 당시 절이 무능하고 부패한 왕실과 결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더욱 재미있는 건, 이러한 내력을 담은 탑지를 작성한 이가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이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없는 현실을 비관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삶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 조정에 환멸을 느꼈을 그가 임금에게 보인 마지막 충정이었을까. 묘길상탑이 감추고 있는 역사의 비밀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장경판전에서 멀지 않는 절 뒤편에는 천 년 수령의 아름드리 전나무 한 그루를 이고 있는 학사대라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최치원이 시와 서를 즐기며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데, 일설에는 고무신 한 켤레를 벗어두고 홀연히 산속으로 사라진 터라고도 한다. 그 전나무도 당시 최치원이 거꾸로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 무성해진 것이라고 전한다.

그뿐 아니다. 장경판전 내 법보전에 모셔진 목조 비로자나불좌상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으로, 883년이라는 제작년도가 밝혀져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인사의 창건 때부터 줄곧 함께해온 불상인 셈인데, 아무리 금을 입혔다고는 하나 천 년을 견뎌낸 나무라니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나무의 나이로만 본다면 이 불상이 팔만대장경보다 한참 선배다.

일주문 못 미친 곳에 세워져 있는 '원표'도 스쳐지나가기 아까운 유물이다. 해인사에서 동서남북 방향의 주변 고을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사각 돌기둥으로, 절에 세워진 것으로는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대구부, 김천군, 진주군 등의 낯선 지역명으로 미루어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당시에도 해인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실 해인사는 대학시절부터 단골 답사코스였다. 죽으나 사나 팔만대장경만 팔며 호객하거나 규모가 크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그런 절이 아니었다. 근래 들어 군데군데 무늬만 기와집인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 경내가 조금 어수선하고 답답해진 느낌이 있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사연이 있고 역사가 담긴 해인사는, 고백하건대, 늘 가도 또 가고 싶은 몇 안 되는 절이다.

오죽하면 딸 이름을 낳기 전부터 해인이라고 지었을까. 출생신고를 하는데 주민 센터 직원이 사람 이름에 도장 인(印)자를 쓰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한자가 맞는지 재차 묻곤 했다. 명색이 가톨릭 신자가 딸의 이름을 절에서 따왔다고 하니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에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강물을 다 받아주는 바다처럼 살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거라며, 내 방식대로 해석해 설명해주었다.

'오직 현금 결제만 가능' 못내 아쉬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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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판전 내부에 설치된 철망 틈으로 손을 뻗어 대장경판을 꺼내보려는 일부 탐방객들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창틀 왼쪽 윗부분에는 'OO 왔다감'이라는 못자국이 나 있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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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못내 아쉬운 점도 있다. 하나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오래 전 관행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전에 없던 관행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매번 매표소를 지날 때마다 불만을 토로했고, 돌아와서는 직접 전화를 걸어 요구해온 것인데도 여전히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는 답변이다. 매표소에 카드 단말기 한 대 설치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듯 나 몰라라 하는 것일까.

요즘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관광지는 거의 없다. 몇 백 원짜리 입장권조차 기꺼이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에, 현금 아니면 안 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하물며 해인사의 경우, 어른의 경우 입장권이 3천 원(박물관 입장료는 별도)인데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주차료는 4천 원이니, 한 가족이 간다면 2만 원 가까운 돈을 현금으로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어쩔 수 없이 현금을 건네면서 물어봤다. 대형버스를 타고 온 단체관광객들도 예외가 없는지. 수표를 건네는 경우가 드물게 있긴 하지만, 어떻든 카드로는 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입장권에는 금액과 해인사 주지 명의의 날인이 찍혀 있고, 뒷면에는 문화재 보수 및 유지, 관리에 쓰인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입장권 수익을 절과 정부가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뜻일 텐데, 그렇다면 더욱 카드 결제가 투명하고 효율적이지 않을까. 

굳이 차 몰고 절 코앞까지 가는 탐방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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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판전의 출입 통제선 해인사 탐방의 백미인 장경판전 안마당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간이 울타리를 따라 서너 명의 어르신 봉사자들이 철저히 출입을 막고 있었다. 그 중 한 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준이 낮아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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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볼썽사나운 관행도 있다. 절 아래에 넓은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굳이 차를 몰고 절 코앞까지 가는 탐방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대동한 경우를 제외하곤 차량의 접근을 막는 건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당연한 조처다. 그런데, 예외가 너무나 많은 듯하다. 언뜻 걷는 탐방객보다 오가는 차량의 수가 더 많아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대형 버스들이 수시로 오르내리기도 한다. 입구에서 물어보니 다른 지역의 불교 신자들을 태운 사찰 순례 차량이란다. 물론 그들 중에도 연로한 어르신들이 없진 않겠지만, 절을 아끼고 사랑하는 불자들이라면 마땅히 다른 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탐방객들에게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걸어오라고 통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불자라는 이유로 '특권'을 누리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모름지기 '해인삼매'를 구현하겠다는 절답지 않은 관행도 생겨날 판이다. 탐방객들의 장경판전 접근을 아예 차단한 것이다. 곧, 장경판전 내 팔만대장경과 고려 각판(국보 제206호)은 별도로 마련된 외부 게시판의 견본품을 통해 만날 수밖에 없다. 일부 탐방객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맞서 세계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적이 민망한 일이지만, 장경판전 기둥에 뾰족한 물건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흔적도 있고, 창틈으로 손을 끼워 넣어 대장경판을 꺼내보려는 걸 막기 위해 철창을 덧댄 모습도 있다. 한 해설사는 탐방객들의 저급한 수준을 나무라며 전면 통제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어쨌든 곳곳에 설치한 CCTV도, 상시 근무 중인 해설사와 자원봉사자들도 별무소용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입구와 출구를 따로 정해 동선을 일원화하고, 동시에 관람하는 탐방객 수를 입구에서 조정하는 것이다. 또, 순서를 기다리는 탐방객들에게 잠깐이나마 훼손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협조를 당부하는 교육을 행하는 것도 효과적이라 본다. 물론, 여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처럼 건물과 직접 접촉하지 못하도록 통제 라인을 세우는 것은 기본이다. 

'ㅁ'자형 장경판전으로 에워싸인 마당 가운데에 서서 느끼는 아늑함과 편안함은 먼발치에서 장경판전과 그 틈으로 팔만대장경을 바라보는 감동에 비할 바 아니다. 해인사가 수많은 화재와 난리를 겪었음에도 이곳 장경판전이 무탈했던 이유를 굳이 분석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더 이상 만끽할 수 없게 된 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무작정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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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애초 둘로 나뉜 땅이었다

한반도는 애초 둘로 나뉜 땅이었다

조홍섭 2016. 03. 04
조회수 67 추천수 0
 

고생물학자의 옛 땅이야기 ‘생생’

남·북 중국 두 땅덩어리 충돌하면서 한반도 탄생

금강휴게소엔 ‘눈덩이 지구’ 흔적, 태백 이웃은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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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지질학자, 기록이 없는 시대의 한반도를 찾다   
최덕근 지음/휴머니스트·1만4000원
  

 

10억년 전은 기껏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 어림하기도 힘든 먼 과거다. 길이로 바꿔 1년을 1㎜라고 한다면 10억년은 1000㎞,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거리다.

 

그 까마득한 기간 동안 한반도가 어떻게 형성돼 현재의 꼴을 이뤘는지를 상상이나 짐작이 아닌 관찰과 추론을 토대로 연구하는 이들이 바로 지질학자다. 이들은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는 자연사의 비밀을 암석을 ‘읽어’ 알아낸다. 

 

ch3.jpg» 퇴적층에서 지질조사를 하고 있는 지질학 연구자들. 오른쪽 끝이 지은이인 최덕근 교수.  

 

우리나라의 대표적 삼엽충 연구자인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는 평생 화석과 퇴적암을 들여다 보며 시간여행을 했다. 이 책은 고생물학자가 대중을 위해 쓴 최초의 ‘한반도 시간 여행기’인 셈이다.
 

북한 당국이 들으면 ‘분단 고착화를 획책한다’며 펄쩍 뛰겠지만, 한반도는 애초 둘로 나뉜 땅이었다. 10억년 전 지구의 모든 땅덩어리는 하나로 모여 초대륙 로디니아를 형성했다.

 

초대륙은 이후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는데 한반도는 두 개의 땅덩어리에 나뉘어 자리 잡았다. 3억년 전 새로운 초대륙 판게아가 생겼지만 서로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백악기 초 판게아가 분열해 떠돌던 두 땅덩어리는 대충돌을 일으켜 오늘날 보는 한반도의 꼴을 이루게 된다.
 

단순화해 말한다면, 황해도 이북의 북한과 영남지방은 중국 북부를 포함한 땅덩어리의 일부였는데 중국 남부를 실은 땅덩어리와 충돌하면서 그 일부가 북한과 영남 사이에 끼어 현재의 경기·충청·호남을 이뤘다는 것이다. 
 

ch4.jpg» 최덕근 교수가 제안한 한반도 지체구조도. 한반도를 3개의 지괴로 나누고 옥천대로 알려진 지역을 태백산분지와 충청분지로 나누었으며, 임진강대를 황해도 전역을 포함하도록 넓혔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 교수는 10억년 전부터 3억년 전 사이 한반도를 포함한 땅덩어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5억년 전 한반도에 서식하던 삼엽충 연구자의 시각에서 되짚었다. 최 교수는 2014년 <한반도 형성사>(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이런 이론을 정립한 바 있다. 그는 “한반도의 기원에 관해 일반인도 널리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모를 흥미로운 얘기도 적지않다. 금강휴게소 국도변에 드러난 절벽에서는 눈덩이 지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7억년 전 적도까지 두꺼운 얼음에 덮여 지구가 사실상 눈덩이처럼 바뀌었을 때 쌓인 빙하 퇴적층이 곧 이은 온난화 시기에 쌓인 석회암층과 함께 드러나 있다. 당시의 지층은 충주호에서 옥천까지 이어져 나타난다.

 

ch1.jpg» 지구가 눈덩이처럼 거대한 빙하에 덮였을 때 쌓인 빙하퇴적물. 가는 모래와 점토로 이뤄진 바탕에 다양한 크기의 자갈이 박혀있다. 충주호와 옥천을 잇는 구간에서 볼 수 있다.
 

5억년 전 태백은 지금의 서해처럼 얕은 바다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뿐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한 삼엽충이 살았다. 지금은 태백이 영월보다 50㎞ 동해에 가깝지만, 당시엔 영월은 깊은 바다 태백은 얕은 바다였다. 출토되는 화석의 종류에서 그런 사실이 밝혀졌다.
 

한반도가 중국을 남·북으로 자른 땅덩어리가 충돌하면서 형성됐다는 가설은 지질학계가 받아들이지만 ‘어떻게’를 놓고는 논쟁이 뜨겁다. 최 교수는 이른바 ‘만입쐐기모델’를 제시했다.

 

ch5.jpg» 최덕근 교수가 제안한 동아시아 지체구조도. 한반도의 북부비괴와 남부지괴는 중한랜드에 속했고 중부지괴는 남중랜드의 가장자리에 위치했는데 두 땅덩어리가 충돌하면서 중부지괴가 북부와 남부지과 사이로 끼어들었다.

 

남중국을 포함한 땅덩어리(남중랜드)가 북중국 땅덩어리(중한랜드) 아래로 파고들면서 남중랜드 가장자리에 있던 퇴적물이 중한랜드에 달라붙어 임진강대와 경기육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전혀 다른 시기에 형성된 태백산 분지와 충청 분지가 합쳐져 남한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옥천대를 형성한 것이 한반도의 모태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옥천대 형성의 비밀을 밝히고 그 내용을 대중에 알리는 일을 이번 저작의 후속작업으로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책은 과학자가 꿈이었던 한 소년이 지질학자로 터잡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성적이 모자라 원하던 화학과 대신 지질학과로 진학하고, 중생대 꽃가루를 전공하다 삼엽충을 연구하게 된 우연과 행운의 역정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1억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기다리다 엉겁결에 5억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게 되었다. 그러나 5억년 전 세계에 불시착한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라고 그는 적었다.
 

북한산 등산로를 속속들이 꿰는 사람은 흔해도 그 산의 화강암체가 언제 어떻게 형성돼 지금에 이르렀는지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한반도는 땅은 좁아도 25억년에 걸친 암석이 고루 분포하는 복잡한 지질구조를 지녔다.

 

땅덩어리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시간 여행을 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목적지가 있을까.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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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밑바닥 '박근혜 반대 정서' 강하다"

 
[정치통] "내 꿈은 검찰 개혁, 경찰 수사권 독립 추진"
 
| 2016.03.03 16:46:48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 1호 인사로 들여온 표창원 비상대책위원 겸 선거대책위원은 더민주 최고의 스타 중 하나다. 그의 영입은 정치권에 인재영입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현재까지 굵직한 당직을 맡으며 더민주의 '입'으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경찰대 교수 출신인 그는 경찰대가 있는 경기도 용인정 지역에 출사표를 사실상 던진 상태다. 
 
표 비대위원은 경찰대학교 출신으로 영국 엑시터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로파일러로 이름을 날렸고, 경찰대 교수를 지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산하 자치경찰 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를 만들 때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표 비대위원은 지난 2일 <프레시안>과 팟캐스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가 공동 기획한 '정치통(通)' 인터뷰에서 더민주의 총선 전략과 관련한 폭 넓은 이야기를 했다. 
 
표 비대위원은 "제 꿈은 경찰 개혁, 검찰 개혁이다. 욕심이 좀 크다. 그러려면 정권 교체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표 비대위원은 특히 "경찰을 분권화시키고 민주적 감시를 강화시킨다면, 경찰은 투명한 조직이라 수사권을 받아도 된다는 생각을 시민들이 많이 갖고 있다"며 "가장 문제의 핵심은 검찰(개혁)이라는 데 국민 총의가 모아져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권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은 사실 많지 않다. 경찰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주장이다. 표 비대위원은 "만약 당선이 된다면 한번 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고 족적을 남기고 그만두겠다"고 강조했다. (☞정치통 표창원 인터뷰 바로가기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총선은 히딩크에 한번 맡겨보자" 
 
표 비대위원은 '중간층', '정치 무관심층'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햇볕정책 업그레이드론' 발언 등은 전략적 행보의 일환이라는 설명도 내 놓았다. 표 비대위원은 이제 "히딩크에 맡겨달라"고 했다. 계파, 학맥 등으로 얼룩져 있던 한국 축구계에 뛰어들어 '개혁 선발'을 통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김 대표를 대입한 것이다.  
 
표 비대위원은 "이미 과거에 선명한, 하나로 된 이데올로기적인 정당의 모습으로 (선거를) 해 봤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패배를 했다. 현재 2016년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선택은 다채롭고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정당 모습이다"라며 "일단 이번 경기는 히딩크(김종인)에 맡겨달라"고 말했다.  
 
"'햇볕정책 업그레이드론' 등 정체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는 문제의 발언들이 김종인 대표에게서 나온다"는 지적에 대해 표 비대위원은 "대단히 전략적인 행보라고 보고 있다. 일단 정면대응이다. 호남에서의 이야기지만 전국을 향한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표 비대위원은 이어 "호남이 더민주의 고향이고 원천이고, (더민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고 있다는 말도 전달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대와 다르다. 그 때 만들어진 것을 금과옥조처럼 철칙으로,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에는 반대한다. 이런 발언을 호남에서 한다는 것은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표 비대위원은 "호남의 반응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냐'고 하는데 그런 반응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과거로 회귀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봐 달라"며 "그 모습을 보면서 전국에 있는 다른 유권자와 국민들은 더민주가 과거로 돌아가는 '도로 민주당'은 아니구나, 외연을 확대하고 넓히고 수권정당으로서의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모습이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 ⓒ프레시안(최형락)

표 비대위원은 "호남에서도 언제까지나 과거의 변화가 되지 않은 모습만으로 호남 민심을 얻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호남 민심은 호남만의 정당, 호남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호남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전국적인 정당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졸속 협상과 관련해 김 비대위원이 "한일 위안부 협상을 고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고 발언한 데 대해, 표 비대위원은 "역시 현실론이다. 김종인 대표의 언행들을 보면, 대단히 차갑다는 느낌이 들고 전략적이다.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이라는 게 읽혀진다"고 평가했다. 
 
표 비대위원은 "위안부 협상에서도 정치적 코멘트라고 하면 '최대한 바꾸도록 하겠다'는 게 모범답안이지만, 김 대표는 그렇게 안하더라.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표 비대위원은 "당이라는 게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각자 다른 입장을 낼 수도 있고, 특히 더민주는 문재인 전 대표가 가진 철학과 이념과 행보, 현재 비대위 대표인 김종인 대표가 보여주는 행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가운데 합쳐서 하나가 돼 있다. 그것이 나라 전체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수권정당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그런 것을 노린 전략적 발언인가"라는 질문에 표 비대위원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내부에서의 반발과 분열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구분되는 지점이 무엇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표 비대위원은 "새누리당은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다. 국민의 인권을 지켜내는 정당이 아니다. 대북 정책, 국제 관계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대단히 위험하다"라며 "어떤 위험도 불사하겠다, 전쟁도 하겠다, 이것은 도저히 저희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스탠스다. 새누리와 더민주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고 말했다.  
 
표 비대위원은 "여론조사로 잡히지 않는 밑바닥의 반 박근혜 정서가 강하다는 데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 체감도 하고 있다. 현장 목소리 등을 본다면 꼭 더민주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는 안 된다. 바뀌어야 한다는 정서는 읽힌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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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마음 없앨 수 없다”

최규화 북DB 칼럼니스트 somecrud@interpark.com  2016년 03월 03일 목요일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이정희의 말, 말, 말

-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

- "(민중연합당을)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프리즘②]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

- 이정희는 누구? : 
혹시 그 이정희? 맞다. 그 이정희다. 2012년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집권여당 후보에게 “당신 떨어뜨리려 나왔다”라고 말하던 사람.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대표. 정당 해산 이후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아까운 진보 정치인’과 ‘시대착오적 운동권 정치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그냥 좀 천천히 삽니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 어떤 책을 냈나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진보를 복기하다>다. 통합진보당의 핵심 과제로 추진됐지만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것, 또는 주목받게 되어 비난을 불러온 것”들 가운데, "진보의 대안을 담고 심어진 새싹"들을 골라 담았다. 참신하거나 근본적이거나 절박한 것들부터. 그렇다고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이 직시해야 할 잘못과 한계가 깊은 반성과 함께 담겨 있다. 어떤 독자는 이렇게 한 줄 서평을 남겼다. “딱 이정희 같다."

- 지금 왜 이정희를 만났나: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던 2014년 겨울부터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되고 봄을 바라보기까지, 1년 2개월 동안 정치판과 언론에서 이정희는 사라졌다. 그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가 2월 20일 보도된 ‘주간경향’ 인터뷰다. 그리고 이번이 그녀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두 번째 인터뷰. 정치인 이정희를 ‘저자 이정희’로 만나, 그녀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뼈아픈 패배를 곱씹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남긴, 이정희식의 사죄를 따라 읽기 위해서였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진보정책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녀는 정치평론가나 정책 입안자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독자들 앞에서 서서 반성문을 읽는 느낌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할 때도 대답을 하기 전에 한참씩 말을 멈추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진보와 보수 양쪽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예민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분명 그 점을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긴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사죄의 대상만큼이나 분명한 질타의 대상도 있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2월 20일, 진보당 해산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기사 머리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라는 대답을 읽었는데, 살아보려고 애쓰는 와중에 이 책을 쓰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 혼자 이것들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소멸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 정책들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있는데, 적어도 그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내가 가지게 된 것들만큼은 그분들께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Q. 그 주인공들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통상절차법에 대해 이 책에 썼는데요, 그 법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경험하고 나서 만든 거였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영감을 준 촛불소녀와 촛불시민 같은 주인공들이 있죠.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은 온전히 농민들이 만들어내신 거라 그분들이 주인공이고요. 기업살인처벌법은 산재로 고통 받은, 지금도 위험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이 만든 법인 거죠. 그분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들께 "당신들의 목소리가 이런 법안을 만드는 데까지 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Q.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칠 때쯤 되면 지역구 주민들께 의정보고서를 돌리기도 하고 정책보고서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그런 일을 할 겨를조차 없이 그저 해산 결정에 따라서 강제된 스스로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작년 10월 중순에, 갑자기 잊혀가는 정책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오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웃음) 책에는 맺음말로 들어가 있지만 일단 그 글을 먼저 썼고, 그 뒤로 두 달 반 정도 쓴 것 같아요.

Q. 책에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대한 반성도 많이 있습니다. 뼈아픈 기억을 되짚어야 했기 때문에 집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쓰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몇 분을 뵐 일이 있었어요. 당이 해산당하고 나서, (세월호 가족처럼) 고통을 겪고 계신 당사자 분들을 잘 못 뵙겠더라고요. 너무 죄송해서. 그러다가 작년 11월쯤에 기회가 있어서 뵀어요. 뵙고 나서 한참 몸살을 앓았어요. 그분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제가 너무 싫더라고요. ‘잘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건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이 책을 내놓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많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Q.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각 장마다 있는 농민화가 박홍규 화백의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 구성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신 건가요?

박홍규 화백님의 ’무제’라는 그림,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을 다룬 장에 실린 그림을 책에 꼭 넣고 싶었어요. 농민들이 앉거나 서 있는 뒷모습을 그렸는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이 꽂힌 대상은 화폭에 등장하지 않아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백님의 설명은 "농민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다 안다"라는 말이었어요. 박 화백님도 농민이기 때문에 차마 그릴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태풍이 오고, 정부는 무관심하고, 그해 농사지은 것들을 다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농민의 한 해가 다 날아가는 상황을 그린 거예요.

그 그림을 책에 싣고 싶다고 화백님께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면서, 당신이 그리신 그림 가운데 책과 맞는 것이 있으면 더 써도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굉장히 짧은 기간에 네 작품 정도를 새로 그려주셨어요. 굉장히 마음이 찡하고 참 감사하더라고요. 책 편집도 한 달 정도로 굉장히 빨리 한 것인데, 책을 받아보고 나서 출판사에서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주셨다는 게 느껴져서 참 고마웠어요.

Q. 각 장마다 다른 책에서 찾은 시구나 감성적인 글귀들이 인용돼 있습니다. 전부 직접 읽고 찾은 것인가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시죠.

지금도 독서노트를 쓰는데요, 거기서 골라낸 글들이에요. (기자 : 얼마나 된 습관인가요?) 몇 년 안 됐어요. 삼사 년?(웃음) 평소에도 좋아하는 글귀는 1장 기업살인처벌법 부분에 실린 김해화 시인의 ’이렇게 나뉜 사랑-상사화’라는 시예요. 김해화 시인께서 철근 일을 지금도 하시는데, 당신이 일하시면서 느끼는 생생한 감성들이 날 것 그대로가 아닌, 한번 아픔을 겪으면서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으로 담겨 있어서 무척 감사하게 읽었어요. 시를 책을 싣도록 허락해주셔서 애독자로서 매우 영광이었어요.

 

 
"혁명을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 헌법 안의 진보만 생존 가능"

 

Q.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기업살인처벌법에 대한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온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은 너무 비극적이고, 한 순간도 연장돼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또 세월호 참사처럼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진보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해요.

Q. 기업살인법 부분을 보면 ’정명(正名)’이라는 단어와 함께 "진보정당이 만들어내는 대안은,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말을 만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지금 진보세력이 시급하게 만들어내야 할 말, "말하지 못했던"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진보도 혁명이라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가 됐잖아요.(웃음) 인류의 역사는 혁명으로 진보해온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것을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고 ’헌법 안의 진보’만을 생존 가능한 것으로 만들잖아요. 세상을 정말 근본에서 바꾸고 싶다면 그 말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저항권이고, 저항권이야말로 헌법의 핵심이고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죠.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민주주의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요.

Q. 책에서 "평화를 이상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평화정책을 법안의 형식으로 제안하자면요?

아마 ’한반도 평화협정 비준동의안’쯤 되겠죠. 제가 제안한 정책 가운데 ‘한반도 4자 평화선언’에 대해 책에 한 꼭지를 넣으려다가 넣지 못했어요. 한반도에서 분쟁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 정전(停戰) 상태가 아니라 평화 상태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종전(終戰)선언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드린 바 있는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평화협정 이야기가 중국에서도 제기된 바 있고 북-미 간에도 의논이 있었다고 하고,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그 이야기를 책에 쓰려다가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회의원 일을 하면서도 늘 고민스러웠는데요, 평화통일 문제를 다룰 때 국회의 논의만으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대외관계와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정당 입장에서도 정책을 제안할 수는 있는데 당장 국회에서 뭔가를 통과시키기가 어려워서, 이 책에 하나의 장으로 담지는 못했어요. 다만 국회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분단의 올가미에 사로잡혀서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일만은 없게 하는 것은 책임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차별금지법과 대체복무법에 담겨 있는 거죠. 이 정도라도 국회가 해준다면 분단에 발목 잡히지 않는 진전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비슷한 맥락에서 군데군데 국가보안법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국가보안법을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개정이 아니라 철폐가 답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인가요?

만약에 제가 ‘꼭 없애야 할 법 열한 가지’ 이런 책을 썼다면 국가보안법이 첫 번째로 들어가겠죠.(웃음)

Q. 통상절차법을 다룬 부분에서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국회 들어오기 전에 제가 기지촌 여성 문제부터 주한미군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다뤘어요.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인권 문제들을 보게 됐는데 그때 가진 의문이 있어요. ’우리 정부가 아무리 나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적어도 외국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안에서는 투닥투닥 서로 싸워도 밖에 나가면 우리 식구가 좀 번듯하게 뭔가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인 거죠.(웃음)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대외적 독립성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독립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국민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한미관계부터 우려하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는 그런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나가고 싶었어요. 특히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잖아요. 그 에너지가 성과를 남기기를 바랐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원하는 게 진보, 결국 남는 건 사랑"

 

Q. 책의 마지막은 ‘사랑’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보다." 어찌 보면 좀 뻔하고 뜬구름 같은 사랑이란 말을 마지막에 한 이유는 뭔가요?

유행가 가사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죠.(웃음)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얼굴들이 잘 안 잊히기 때문이었어요. 진보라는 것이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의 현실도 계속해서 바뀌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해법도 계속 바뀌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사회를 좋게 바꾸고 싶고 그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진보라면, 결국 고갱이로 남는 건 사랑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걸 표현한 겁니다.

Q. 최근 민중정치연합(인터뷰 이후 민중연합당으로 정식 창당)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이 목격됩니다.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을 이유로 “재건 통진당”이라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없앨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어떤 순간에는 민주노동당으로, 또는 통합진보당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모일 수 있는 거죠. 보수언론들에서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사람의 말할 권리와 모일 권리가 보장돼야 민주주의 사회인 건데요,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덕분이라는 것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Q. 과거 한 강연에서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추천하시는 걸 봤습니다. 당 해산 이후, 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당 해산 이후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봤어요. 네루다가 1945년에 칠레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요. 선거운동을 하면서 광부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니죠. 그 장면을 쓴 대목이 있어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 한 대목을 읽음)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노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에서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제조업 공장 생산라인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여기저기 불꽃도 튀고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정신없어요. 비닐장갑도 끼고 목장갑도 두 겹씩 끼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제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면 그 장갑을 하나하나씩 벗고 손을 잡아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짜릿해요.(웃음) 네루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 다시 생각나서 많이 와닿았어요. 누군가에게 ‘맞아 나는 외롭지 않아. 누군가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어.’ 이런 마음을 주는 대상이 되는 건 참 행복한 일이겠죠.

Q. 읽어주신 대목 중에서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라는 문장이 와닿았던 것은, 이 전 대표님 스스로가 ‘아픔을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문득 드리고 싶은 질문인데요,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안 남아도 괜찮아요.(웃음) … 그게 욕심인 것 같아서요.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Q. 마지막 질문은 대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질문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언제쯤이면 ’앞으로의 계획’을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준비가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북DB 기사 보기)

 

 
 

 

 

 

사진 : 신동석 · by 글/사진 최규화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이정희의 말, 말, 말

-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

- "(민중연합당을)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프리즘②]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

- 이정희는 누구? : 
혹시 그 이정희? 맞다. 그 이정희다. 2012년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집권여당 후보에게 “당신 떨어뜨리려 나왔다”라고 말하던 사람.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대표. 정당 해산 이후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아까운 진보 정치인’과 ‘시대착오적 운동권 정치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그냥 좀 천천히 삽니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 어떤 책을 냈나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진보를 복기하다>다. 통합진보당의 핵심 과제로 추진됐지만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것, 또는 주목받게 되어 비난을 불러온 것”들 가운데, "진보의 대안을 담고 심어진 새싹"들을 골라 담았다. 참신하거나 근본적이거나 절박한 것들부터. 그렇다고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이 직시해야 할 잘못과 한계가 깊은 반성과 함께 담겨 있다. 어떤 독자는 이렇게 한 줄 서평을 남겼다. “딱 이정희 같다."

- 지금 왜 이정희를 만났나: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던 2014년 겨울부터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되고 봄을 바라보기까지, 1년 2개월 동안 정치판과 언론에서 이정희는 사라졌다. 그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가 2월 20일 보도된 ‘주간경향’ 인터뷰다. 그리고 이번이 그녀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두 번째 인터뷰. 정치인 이정희를 ‘저자 이정희’로 만나, 그녀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뼈아픈 패배를 곱씹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남긴, 이정희식의 사죄를 따라 읽기 위해서였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진보정책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녀는 정치평론가나 정책 입안자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독자들 앞에서 서서 반성문을 읽는 느낌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할 때도 대답을 하기 전에 한참씩 말을 멈추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진보와 보수 양쪽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예민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분명 그 점을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긴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사죄의 대상만큼이나 분명한 질타의 대상도 있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2월 20일, 진보당 해산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기사 머리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라는 대답을 읽었는데, 살아보려고 애쓰는 와중에 이 책을 쓰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 혼자 이것들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소멸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 정책들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있는데, 적어도 그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내가 가지게 된 것들만큼은 그분들께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Q. 그 주인공들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통상절차법에 대해 이 책에 썼는데요, 그 법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경험하고 나서 만든 거였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영감을 준 촛불소녀와 촛불시민 같은 주인공들이 있죠.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은 온전히 농민들이 만들어내신 거라 그분들이 주인공이고요. 기업살인처벌법은 산재로 고통 받은, 지금도 위험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이 만든 법인 거죠. 그분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들께 "당신들의 목소리가 이런 법안을 만드는 데까지 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Q.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칠 때쯤 되면 지역구 주민들께 의정보고서를 돌리기도 하고 정책보고서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그런 일을 할 겨를조차 없이 그저 해산 결정에 따라서 강제된 스스로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작년 10월 중순에, 갑자기 잊혀가는 정책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오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웃음) 책에는 맺음말로 들어가 있지만 일단 그 글을 먼저 썼고, 그 뒤로 두 달 반 정도 쓴 것 같아요.

Q. 책에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대한 반성도 많이 있습니다. 뼈아픈 기억을 되짚어야 했기 때문에 집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쓰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몇 분을 뵐 일이 있었어요. 당이 해산당하고 나서, (세월호 가족처럼) 고통을 겪고 계신 당사자 분들을 잘 못 뵙겠더라고요. 너무 죄송해서. 그러다가 작년 11월쯤에 기회가 있어서 뵀어요. 뵙고 나서 한참 몸살을 앓았어요. 그분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제가 너무 싫더라고요. ‘잘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건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이 책을 내놓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많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Q.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각 장마다 있는 농민화가 박홍규 화백의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 구성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신 건가요?

박홍규 화백님의 ’무제’라는 그림,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을 다룬 장에 실린 그림을 책에 꼭 넣고 싶었어요. 농민들이 앉거나 서 있는 뒷모습을 그렸는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이 꽂힌 대상은 화폭에 등장하지 않아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백님의 설명은 "농민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다 안다"라는 말이었어요. 박 화백님도 농민이기 때문에 차마 그릴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태풍이 오고, 정부는 무관심하고, 그해 농사지은 것들을 다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농민의 한 해가 다 날아가는 상황을 그린 거예요.

그 그림을 책에 싣고 싶다고 화백님께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면서, 당신이 그리신 그림 가운데 책과 맞는 것이 있으면 더 써도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굉장히 짧은 기간에 네 작품 정도를 새로 그려주셨어요. 굉장히 마음이 찡하고 참 감사하더라고요. 책 편집도 한 달 정도로 굉장히 빨리 한 것인데, 책을 받아보고 나서 출판사에서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주셨다는 게 느껴져서 참 고마웠어요.

Q. 각 장마다 다른 책에서 찾은 시구나 감성적인 글귀들이 인용돼 있습니다. 전부 직접 읽고 찾은 것인가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시죠.

지금도 독서노트를 쓰는데요, 거기서 골라낸 글들이에요. (기자 : 얼마나 된 습관인가요?) 몇 년 안 됐어요. 삼사 년?(웃음) 평소에도 좋아하는 글귀는 1장 기업살인처벌법 부분에 실린 김해화 시인의 ’이렇게 나뉜 사랑-상사화’라는 시예요. 김해화 시인께서 철근 일을 지금도 하시는데, 당신이 일하시면서 느끼는 생생한 감성들이 날 것 그대로가 아닌, 한번 아픔을 겪으면서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으로 담겨 있어서 무척 감사하게 읽었어요. 시를 책을 싣도록 허락해주셔서 애독자로서 매우 영광이었어요.

 

 
"혁명을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 헌법 안의 진보만 생존 가능"

 

Q.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기업살인처벌법에 대한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온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은 너무 비극적이고, 한 순간도 연장돼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또 세월호 참사처럼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진보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해요.

Q. 기업살인법 부분을 보면 ’정명(正名)’이라는 단어와 함께 "진보정당이 만들어내는 대안은,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말을 만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지금 진보세력이 시급하게 만들어내야 할 말, "말하지 못했던"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진보도 혁명이라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가 됐잖아요.(웃음) 인류의 역사는 혁명으로 진보해온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것을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고 ’헌법 안의 진보’만을 생존 가능한 것으로 만들잖아요. 세상을 정말 근본에서 바꾸고 싶다면 그 말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저항권이고, 저항권이야말로 헌법의 핵심이고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죠.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민주주의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요.

Q. 책에서 "평화를 이상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평화정책을 법안의 형식으로 제안하자면요?

아마 ’한반도 평화협정 비준동의안’쯤 되겠죠. 제가 제안한 정책 가운데 ‘한반도 4자 평화선언’에 대해 책에 한 꼭지를 넣으려다가 넣지 못했어요. 한반도에서 분쟁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 정전(停戰) 상태가 아니라 평화 상태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종전(終戰)선언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드린 바 있는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평화협정 이야기가 중국에서도 제기된 바 있고 북-미 간에도 의논이 있었다고 하고,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그 이야기를 책에 쓰려다가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회의원 일을 하면서도 늘 고민스러웠는데요, 평화통일 문제를 다룰 때 국회의 논의만으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대외관계와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정당 입장에서도 정책을 제안할 수는 있는데 당장 국회에서 뭔가를 통과시키기가 어려워서, 이 책에 하나의 장으로 담지는 못했어요. 다만 국회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분단의 올가미에 사로잡혀서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일만은 없게 하는 것은 책임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차별금지법과 대체복무법에 담겨 있는 거죠. 이 정도라도 국회가 해준다면 분단에 발목 잡히지 않는 진전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비슷한 맥락에서 군데군데 국가보안법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국가보안법을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개정이 아니라 철폐가 답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인가요?

만약에 제가 ‘꼭 없애야 할 법 열한 가지’ 이런 책을 썼다면 국가보안법이 첫 번째로 들어가겠죠.(웃음)

Q. 통상절차법을 다룬 부분에서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국회 들어오기 전에 제가 기지촌 여성 문제부터 주한미군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다뤘어요.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인권 문제들을 보게 됐는데 그때 가진 의문이 있어요. ’우리 정부가 아무리 나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적어도 외국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안에서는 투닥투닥 서로 싸워도 밖에 나가면 우리 식구가 좀 번듯하게 뭔가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인 거죠.(웃음)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대외적 독립성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독립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국민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한미관계부터 우려하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는 그런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나가고 싶었어요. 특히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잖아요. 그 에너지가 성과를 남기기를 바랐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원하는 게 진보, 결국 남는 건 사랑"

 

Q. 책의 마지막은 ‘사랑’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보다." 어찌 보면 좀 뻔하고 뜬구름 같은 사랑이란 말을 마지막에 한 이유는 뭔가요?

유행가 가사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죠.(웃음)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얼굴들이 잘 안 잊히기 때문이었어요. 진보라는 것이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의 현실도 계속해서 바뀌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해법도 계속 바뀌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사회를 좋게 바꾸고 싶고 그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진보라면, 결국 고갱이로 남는 건 사랑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걸 표현한 겁니다.

Q. 최근 민중정치연합(인터뷰 이후 민중연합당으로 정식 창당)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이 목격됩니다.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을 이유로 “재건 통진당”이라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없앨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어떤 순간에는 민주노동당으로, 또는 통합진보당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모일 수 있는 거죠. 보수언론들에서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사람의 말할 권리와 모일 권리가 보장돼야 민주주의 사회인 건데요,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덕분이라는 것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Q. 과거 한 강연에서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추천하시는 걸 봤습니다. 당 해산 이후, 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당 해산 이후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봤어요. 네루다가 1945년에 칠레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요. 선거운동을 하면서 광부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니죠. 그 장면을 쓴 대목이 있어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 한 대목을 읽음)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노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에서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제조업 공장 생산라인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여기저기 불꽃도 튀고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정신없어요. 비닐장갑도 끼고 목장갑도 두 겹씩 끼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제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면 그 장갑을 하나하나씩 벗고 손을 잡아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짜릿해요.(웃음) 네루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 다시 생각나서 많이 와닿았어요. 누군가에게 ‘맞아 나는 외롭지 않아. 누군가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어.’ 이런 마음을 주는 대상이 되는 건 참 행복한 일이겠죠.

Q. 읽어주신 대목 중에서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라는 문장이 와닿았던 것은, 이 전 대표님 스스로가 ‘아픔을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문득 드리고 싶은 질문인데요,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안 남아도 괜찮아요.(웃음) … 그게 욕심인 것 같아서요.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Q. 마지막 질문은 대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질문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언제쯤이면 ’앞으로의 계획’을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준비가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북DB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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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270호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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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3/04 07:54
  • 수정일
    2016/03/0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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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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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유엔 역사상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한 제재"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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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3  00: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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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3일 0시 17분(한국시간)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지 57일만이다. 

결의 2270호는 전문 12개항, 본문 52개항, 그리고 4개 부속서로 구성 돼 있다. △무기 거래, △제재대상 지정, △확산 네트워크, △해운.항공 운송, △대량살상무기(WMD) 수출통제, △대외교역, △금융거래, △제재 이행 분야에서 기존 결의 2094호 등에 들어있는 조치들이 대폭 강화됐다.

나아가 기존 결의에는 들어있지 않은 새로운 조치들도 다수 포함됐다. 

우선, 주권국가의 자위권 유지 차원에서 허용됐던 소형무기(small arms) 수입까지 금지했다. 전면적인 무기 금수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재래식 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물품 거래를 불허(catch-all 수출통제)하고, 군사훈련 교관 파견 등 군경협력도 불법화했으며, 무기 수리.거래를 위한 운송도 금지했다. 

국가우주개발국, 원자력공업성, 노동당 군수공업부 등 단체 12곳과 현광일 국가우주개발국 과학개발부장, 리만건 노동당 군수공업부장,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장 등 16명을 제재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미.중의 초안에 들어있던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러시아 대표는 러시아 측의 문제제기로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유엔 차원에서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북한 단체는 32개, 개인은 28명으로 늘었다. 

제재 회피나 위반에 연루된 북한 외교관과 정부 대표 추방을 의무화했다. 북한의 불법행위에 연루된 외국인 추방도 의무화했다. 

북한을 들고나는 모든 화물에 대한 전수조사가 의무화됐다. '금지 품목이 포함됐다고 믿을 만한 이유'라는 요건을 없애 각 나라가 원하면 언제든 모든 북한 화물을 검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금지품목을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항공기의 이착륙 및 영공통과가 금지됐다. 북한이 제3국 항공기.선박을 대여해 제재 회피할 가능성도 차단했다. 제재 대상이 된 선박이나 불법활동 연루 의심 선박 입항을 금지했다. 특히, 이미 제재대상이 된 원양해운관리회사(OMM) 소속 선박 31척을 자산동결대상으로 명시했다.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모든 물품에 대한 수출통제(catch-all)를 의무화하고, 핵.탄도미사일 관련 교육.훈련 프로그램 제공이 금지되며,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모든 기술 협력이 금지됐다. "북한의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가장한 탄도미사일 능력 증강을 방지하고, 유.무형의 모든 기술 이전을 차단(정부 당국자)"하자는 취지다.  

북한산 석탄, 철, 철광 수입을 금지했다. 북한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석탄 거래를 차단해 돈줄을 죄겠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 목적으로 WMD와 무관한 경우는 수출 예외를 적용했다. 금, 바나듐광, 티타늄광, 희토류 수출은 예외없이 전면 금지됐다. 러시아의 요구에 따라 북한 나진항을 통해 다른 나라로 운송되는 러시아산 석탄에 대해서는 예외가 인정됐다. 

로켓 연료를 포함한 항공유 수출이 금지됐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전투기는 물론 민항기 운항이 위축되어 북한의 대외 인적.물적 교류가 축소되고, 북한 공군 운용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러시아의 요구에 따라, 북한 민항기에 대한 해외급유가 허용됐다.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가 대폭 강화됐다. 북한 은행의 해외 지점.사무소 신규 개설이 금지됐을 뿐 아니라, 기존 지점에 대해서도 90일 이내 폐쇄를 요구했다. 유엔 회원국 금융기관의 북한 내 사무소나 은행계좌 개설도 금지됐으며, 기존 사무소나 계좌도 인도지원 등의 목적을 제외하고는 90일 이내에 폐쇄하도록 했다. 국제금융시스템에서 사실상 축출된 북한이 금괴 등을 이용해 제재를 우회할 가능성도 차단했다. 

금수 대상 사치품도 기존 7개(진주, 보석, 보석용 원석, 귀금속, 요트, 고급자동차, 경주용차)에서 12개로 늘었다. 고급 손목시계, 수상 레크레이션 장비, 스노우모빌, 납 크리스탈, 레크레이션 스포츠 장비가 추가된 것이다. 

안보리 결의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북한 인권문제가 거론됐다. 전문에 "북한 주민이 처한 심각한 고난(grave hardship)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표현이 들어갔다. 

정부 당국자는 "금번 안보리 결의는 70년 유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라고 자평했다. "북한의 WMD 개발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WMD 차원을 넘어서 북한 관련 제반 측면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제재 조치들이 포괄적으로 망라돼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국내 이행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해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우방국들과 공조해 모든 유엔회원국들이 이번 결의를 철저히 이행해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 노력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행과정에서 열쇠를 쥔 나라는 여전히 중국이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만일 결의가 통과된다면, 중국은 착실하게 결의를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부터 방한 중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정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도 한국 측 당국자에게 '전면적인 이행'을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자 단둥발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은 1일부터 자국 내 금융기관에 북한 기업 및 개인에 대한 달러화 및 위안화 송금 중단 지시를 내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일 중국이 일부 항구에서 북한산 광물 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2일(현지시간) 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에 맞춰 북한 국방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 등 단체 5곳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오극렬, 리용무 국방위 부위원장,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등 개인 12명을 제재목록에 추가했다.  

(추가, 02:40)

<유엔 안보리 추가 제재 대상>

0 단체 (12곳)
 
국방과학원, 청천강해운, 대동신용은행, 혜성무역회사, 조선광선은행, 조선광성무역회사, 원자력공업성, 군수공업부(또는 기계공업부), 국가우주개발국, 39호실, 정찰총국, 제2경제위원회.

0 개인 (16명)

최춘식 (전) 제2자연과학원장, 최성일 단천상업은행 베트남 대표, 현광일 국가우주개발국 과학개발부장, 장범수 단천상업은행 시리아 대표, 장용선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 이란 대표, 전명국 단천상업은행 시리아 대표, 강문길 남천강무역회사 대표, 강룡 KOMID 시리아 대표, 김중종 단천상업은행 베트남 대표, 김규 KOMID 대외업무담당, 김동명 단천상업은행장, 김영철 KOMID 이란 대표, 고태훈 단천상업은행 대표, 리만건 군수공업부장, 류진 KOMID 시리아 대표, 유철우 국가우주개발국장.  

(자료제공-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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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대통령이 깔아놓은 남북 도로 역주행

클린턴이 DJ에게 맡긴 운전대, '폭주족'이 잡았다

[북핵 20년과 박근혜의 역주행 ③] 전임 대통령이 깔아놓은 남북 도로 역주행

16.03.03 20:09l최종 업데이트 16.03.03 20:09l

 

 

북한은 왜 핵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일까? 1차적 배경은 1991년까지 존재한 주한미군 전술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의 안보우산이었던 북-중-러 북방삼각동맹이 사실상 붕괴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남한이 러시아(1990년)-중국(1992년)과 수교함에 따라 냉전시기의 북방삼각동맹이 깨진 반면, 북한은 자국이 추진했던 북-일, 북-미 수교협상이 실패함에 따라 독자 생존을 위해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배경은 동구권의 몰락과 외교적 고립으로 인한 경제난, 중-러 안보우산의 상실 같은 복합적 요인들이 중첩돼 있지만, 결국 핵심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이 시기에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적대적인 안보환경을 변화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병행했다. 북한은 북미 대화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와 북미 수교를 요구했으며, 그 결과로 '북미 공동성명'(1993)과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1994), '국제테러에 관한 북미 공동성명'(2000), '북미 공동코뮤니케'(2000) 등에 잇달아 합의했다. 

북한은 특히 '국제테러 공동성명'에서 모든 국가와 개인에 대한 테러행위에 대해 반대할 것임을 공식 표명하고 테러 관련한 유엔협약 등의 가입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등장으로 북미관계는 수교 문턱에서 멈춰 섰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클린턴을 계승한 엘 고어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섰으면 북미 수교까지 갔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MAD(상호확증파괴)에서 NPR(핵태세검토)로

2001년 9.11테러 이후 부시 정부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공격 독트린'을 담은 '핵태세보고서 2001'(NPR 2001)을 발표했다. 이에 북한은 반발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서둘렀다. 4년의 허송 세월 끝에 부시 2기 행정부는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 수교,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의 구축을 교환하는 내용의 '9.19공동성명'을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은 공동성명과는 별도로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관련계좌 동결조치를 병행했고,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은 미국과 BDA 문제를 줄다리기한 끝에 2007년 2.13합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왔으나,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악화 이후 핵개발을 협상-보유 양면카드에서 보유 쪽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노선 변화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2009년 1월 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내부적으로 결정한 뒤, 핵무기 개발과 이를 운반할 장거리로켓의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해왔다는 것이 조성렬 박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등 많은 전문가의 시각이다. 

인류가 첫 핵실험을 한 해는 1945년이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현재 전세계 추정 핵무기는 15,800여 기로 미국-러시아가 전체의 93%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작전 배치된 핵무기는 4,500여 기로 추정된다. 그보다 더 많은 핵무기들이 그동안 감축되거나 해체되었다. 결과적으로 인류가 만든 수만 개의 핵무기 중에서 실전에 사용된 것은 '리틀 보이'와 '팻 맨', 두 개뿐이었다. 전자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우라늄탄이고, 후자는 사흘 뒤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플루토늄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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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시기 핵억지력으로 작동해온 상호확증파괴 (MAD)는 너 죽고 나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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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의 가공(可恐)할 위협을 감안하면 '뿐'이라는 조사는 부적절하다.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생산-배치된 수만 기의 핵무기 중에서 실전에 사용된 것이 2기뿐인 까닭은 'MAD' 덕분이었다. 미-소 양극체제 하에서 상대방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냉전 시기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유지하는 억지력으로 작동되어온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상호확증파괴)는 UAD(Unilateral Assured Destruction, 일방적확증파괴)로 바뀌었다. 계기는 2001년 9.11테러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NPR(Nuclear Posture Review, 핵태세검토)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구소련은 전략폭격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으로 구성된 '핵 3원체제(Nuclear Triad)'로 핵억지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9.11테러는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보복 억지전략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죽으려고 달려드는 놈한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살을 무릅쓴 핵테러리즘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핵전략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기존의 Triad를 대체하는 New Triad(핵무기와 비핵무기 및 방어무기체계의 '새로운 조합')로 공격적 타격시스템을 구축하고 선제적 핵공격 의지를 명문화한 미 국방부의 NPR 보고서가 나온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선제 핵공격 대상국

2002년 1월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했다가 언론에 공개된 NPR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방부는 유사시 핵무기 사용대상국으로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중국 외에도 당시 부시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이라며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 5개국을 지목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잠재적 핵공격 대상국을 늘렸을 뿐 아니라, ▲ 지하군사시설에 대한 공격 ▲ 상대방의 핵-생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보복 ▲ 돌발적인 군사사태 등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상황을 종전보다 훨씬 더 폭넓게 상정했다.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 쓰기 위해 적합한 소형 특수핵무기를 새로 개발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국은 이 5인의 악당 국가 가운데 이라크에 이어 리비아, 시리아를 무력으로 침공했고, 이란과는 강온 양면으로 핵협상을 타결지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 4월에 발표한 '핵태세보고서 2010'(NPR 2010)에 따르면,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 선제공격 대상국이다. 

오바마는 NPT 탈퇴국가 및 위반국가에 대해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제외한다는 '제한적 핵선제공격 독트린'을 유지했다.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면, 현재 미국의 핵선제공격 대상국은 북한뿐이라는 얘기다. 이에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각종 핵무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현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핵보유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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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2016년 기준)

그러나 <CIA팩트북> 등을 참조해 작성한 CNN의 '세계 핵보유 현황'([표] 참조)에서 보듯, 북한의 추정 보유핵무기는 10기 미만이고, 작전 배치된 핵무기는 없다. 아직은 탄두의 경량화-소형화에 이르지 못했고 핵폭탄의 폭발력 조절 능력도 없는 원시적 핵무기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선제 타격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만, 그것은 곧 미국의 일방적확증파괴에 의한 북한의 '절멸'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아무리 무모하고 천지 분간을 못해도 미국과 핵무기로 싸우면 절멸뿐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북한은 "미제를 위시한 제국주의자들은 이 나라들(이라크, 리비아)에 대량파괴무기가 없음을 확인하자 마음 놓고 침략하였다"면서 자위권 차원의 핵무기 보유노선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핵문제는 94년 6월 1차 북핵 위기 이후 이미 20년이 넘게 반복된 일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과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surgical strike)을 계획했다. 당시 미 국무부 수석통역 김동현(미국명 Tong Kim)의 <신동아> 기고문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는 가족까지 피신시킬 만큼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 대사는 워싱턴의 승인을 받기 전에 한국에 와 있던 군인 가족들과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하고, 서울을 방문 중이던 딸과 손자들을 서둘러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전쟁 시나리오에서 미군은 5만 명 이상, 한국군은 수십만 명, 일반 시민은 100여만 명이 희생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일단 전쟁이 나면 김정일 정권을 제거한다는 것이 최종목표로 설정됐다. 이 목표는 현재의 작전계획에도 반영돼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작전계획 목표가 전투력 못지않게 억제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한다."(한미정상회담 통역 27년, 김동현씨가 본 '굴곡의 한미동맹', 신동아, 2005년 9월호)

클린턴 "한반도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운전대 잡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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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6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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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핵 위기는 카터의 중재와 뜻하지 않은 김일성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로 봄눈 녹듯 해소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되었다. 대북정책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며 클린턴의 갈피를 못잡게 했던 김영삼이 물러나고 오랫동안 분단문제를 고심해온 전략가 김대중이 등장했다. 

김대중은 98년 6월 미국을 처음으로 국빈 방문했다. 클린턴은 김대중을 남아공의 만델라, 체코의 하벨 등과 함께 이 시대의 '자유의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예우하면서 대북정책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김대중은 신명난 어조로 30분간 자신이 평생 갈고 닦은 '햇볕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조율한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에 따르면, 클린턴은 진지하게 경청하며 적극적인 찬동을 표시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김 대통령의 비중과 경륜을 볼 때 이제 한반도 문제는 김 대통령이 주도해주기 바란다.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임동원, <피스메이커 :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 2008)

한국 대통령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더불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시각도 붕괴론에서 변화론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98년 11월 18일 밤 축포가 쏟아지는 가운데 정주영 명예회장을 포함해 826명의 관광객을 태운 금강산관광선이 동해항을 출발했다. 

한국을 답방한 클린턴은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두번째 관광선이 출항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튿날 한미 정상회담 공동회견에서 "어젯밤 축제 분위기 속에서 관광객을 가득 태우고 출항하는 평화스런 장면을 보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며 "매우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남북 화해협력의 현장을 목격한 미국 대통령의 이 발언은 한반도 위기를 외치는 강경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코리아 리스크'로 투자를 꺼리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클린턴이 김대중에게 '핸들'을 맡긴 결과였다. 2년 뒤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도 김대중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잡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박근혜의 애국가, 4절까지 부른다고 애국자는 아니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취임 초기부터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함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탓에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지만, 이라크전 파병과 한미 FTA 같은 중대 사안에서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허송 세월 끝에 성사시킨 2차 남북정상회담은 멈춰선 남북관계를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기에는 너무 늦게 개최되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은 되지도 않을 '비핵개방3000'을 내세워 5년을 허송 세월로 보냈다. 이명박도 첫 미국 방문 때 부시와 함께 차를 타면서 운전대를 잡기는 했다. 그런데 부시가 내어준 것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차가 아니라 쇠고기 수입을 약속한 대가로 태워준 '골프카' 운전대였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던 그가 한 것은 금강산관광 중단에 이어,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경협을 중단시킨 5.24 제재조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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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4월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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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표방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만에 '통일대박론'으로 국민을 들뜨게 하더니 집권 3년만에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켜, 정부를 믿고 투자한 기업인들을 하루아침에 '쪽박신세'로 만들었다. 운전에 비유하면 깜박이도 켜지 않고 차를 모는 난폭하기 짝이 없는 '후진' 운전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전략적 인내'로 깔아놓은 남북관계의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범법운전이다.

청와대는 최근 박 대통령의 취임 3년을 기념해 3년 동안의 연설문과 회의속기록 등 공개발언 1,342건을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5029회), '경제'(4203회), '대한민국'(4012회)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특히 "국민과 대한민국이 주로 관용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관련어 사용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그러나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고 해서 애국자인 것 아니다. 그렇게 경제를 외쳤지만, 집권 1년차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위기관리의 무능으로 경제도 실패했다. 집권 2년차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가방역관리의 무능함으로 역시 경제도 실패했다. 그리고 집권 3년 차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분단관리의 무능함으로 경제 실패를 예고했다. 세월호나 메르스와 달리 분단관리의 실패는 전쟁으로 발발하기 십상이다.

'막장 드라마' 박근혜, 불복종과 탄핵밖에 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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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6.2.2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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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통과 노래를 불러온 황교안 총리가 정작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인줄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김광진 의원의 송곳질의에서 밝혀진 것도 애국가와 애국자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필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줄 알아야 애국자'라고 믿는 매우 단순한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박근혜의 얼굴을 보면, 30여년 전에 '전라도 출신 대학 재학생=데모 학생'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신병들을 구타한 고참의 얼굴과 중첩된다.

박근혜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코리아 리스크' 언급하며 국회를 윽박질렀다. '코리아 리스크'는 자신이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사회가 불안하고 어디서 테러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가 또 발전할 수 있겠나"라고 국회를 겁박하고, 야당이 국회법에 보장된 필리버스터를 활용한 것에 대해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대중과 샌더스도 했고, 새누리당도 공약한 필리버스터를 '기가 막힌 현상'이라니 이쯤 되면 국정이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배신'은 막장 드라마 핵심 코드 중의 하나이다. 연인의 배신, 가족의 배신, 친구의 배신 등등. 박근혜는 지금 한반도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북한과 중국, 그리고 국회(야당)의 '배신'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 '김정은 참수작전'과 사드(THAAD), 그리고 국민의 응징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냐"고 국회에 호통을 친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도대체 전쟁이 터져 얼마나 않은 국민이 죽어야 퇴로 없는 강경몰이를 그만둘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남은 2년간 더는 나라가 거덜나지 않고, 이 땅의 청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라도 국민이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수밖에 없다. 임기도 반환점을 지난 지 오래다. 그동안 박정희 성역화와 새마을운동 국제화,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운전대를 놓아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국민의 불복종과 탄핵밖에는 답이 없다는 얘기다. 탄핵할 사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비상사태나 긴급한 사유가 없음에도 명백하게 사유재산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한 헌법을 위반했다.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인 분단 관리에 실패해 '코리아 리스크'를 조장하고 국민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3~4월에는 한미 키 리졸브-독수리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안보위기와 군사적 긴장 속에서 총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이 또한 민주적 헌정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탄핵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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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판사

 
대법원이 독재권력과 결탁해 흑과 백을 뒤섞어 놓은 사례가 비일비재
 
강기석 | 2016-03-03 08:48:2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지원 의원이 결국 자기 갈 길을 제대로 갔다. 새정치연합에서 탈당을 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할 때나, 결국 더민주당에서 탈당을 결행할 때나, 대법원에서 자신에 대한 무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이 났을 때나 늘 ‘통합’해야 한다고 외치더니, 결국 통합과는 아주 먼 길을 갔다. 아니 앞으로도 그는 자신이 야권통합을 위해 국민의당에 갔노라고 강변할 것이다.

 

 

아무튼 그는 정치 하나는 기막히게 잘 하는 셈이다. 이 쪽, 저쪽 애를 태우다가 안철수 국민의당이 가장 간절하게 자신을 원할 때 그 손을 잡은 것이다. 박 의원이나 안 의원이나 상식과 이성이 있는 정치인들이라면, 곤두박질치는 국민의당 지지율이 박 의원의 합류로 다시 올라갈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곧 구성될 원내교섭단체가 유일무이한 목적일 것이다. 묵직한 국고 지원금이 쏟아지면, 박 의원의 역할이 결정적인 만큼 그의 몫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이 같은 박지원 의원의 빛나는 한 수는 무엇보다 사법부의 아량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저축은행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대법원이 1심 무죄의 손을 들어 준 덕분에 다 죽어가던 정치생명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호남토호이며 반노 인사다.

반면에 대표적인 이른바 친노인사인 한명숙 전 총리는 대법원이 2심 유죄의 손을 들어 준 탓에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비슷한 범죄혐의에 대해 이른바 친노 한명숙 전 총리는 유죄, 이른바 반노 박지원 의원에게는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뭐 대단한 객관적 증거의 차이나 법리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법관이 어떤 증인의 증언을 신빙성 있게 받아 들였느냐의 차이다. 한 총리 때는 돈을 줬다던 사람이 법정에서 양심선언을 하며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 번복했는데도 믿지 않았고, 박 의원 때는 돈을 줬다는 사람이 일관되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는데도 믿지 않은 것뿐이다.

하나는 유죄, 하나는 무죄인데 결과는 똑같이 야당에 타격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총리 유죄는 야당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었고, 박 의원 무죄는 야당의 혁신을 방해하고 통합을 수렁에 빠트리는 결과를 빚고 있다. 의도적으로 무죄를 유죄로, 유죄를 무죄로 뒤집었을 리야 있겠나만, 결과적으로 두 경우 모두 대법원이 현 집권세력을 돕는 정치행위를 하고 만 셈이다.

 

 

그래도 대법원을 최종적인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대법관도 인간이니만큼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차원의 문제 제기가 아니다. 과거 간첩사건과 시국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에서 보듯 대법원이 조직적으로 독재권력과 결탁해 흑과 백을 뒤섞어 놓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적 사건에 있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진실과 정의에 눈 감고 늘 수구 집권세력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왔다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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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필리버스터: 야당의 본질은 무엇인가

 

 

 

 

야당의 본질은 무엇인가

 

민주공화국의 기본은 의회정치이고, 의회는 여당과 야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의 야당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저렇게 나누어 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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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유신 시대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다. 여당이 있되 여당이 아니었고, 야당이 있되 야당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투표를 통해 의회를 구성한 게 아니라 거의 종신집권 총통에 가까운 대통령이 만든 여당이 있었고, 민주주의를 하라는 서구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흉내만 내도록 만들어 놓은 야당이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었어야 하는 의원들 대신에 '유정회'라는 대통령 친위조직이 국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이를 민주주의라고 칭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사회, 민주 공화국에서의 야당의 본질은 무엇일까? 제대로 된 야당은 왜 존재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야당의 존재 이유

 

제대로 된 여당이라면 다수의 유권자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즉, 이 사회의 다수가 지지하는 정당이 여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논리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야당이라면 소수, 그것도 다수가 원하는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는 소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만들어지는 것이다.

 

야당은 소수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야당이다. 소수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더 적은 의석을 배정받아야 하며, 더 적은 지지를 받기 때문에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기보다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국정의 문제점을 찾아 지적하고 고치도록 요구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가지게 된다.

 

다수의 지지를 받은 여당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게 된다면 그 사회는 조만간 독재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소수에게 이를 지켜보고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역할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하에서의 삼권 분립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의회 구성의 묘가 지니는 위대한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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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에게 권한을 주되, 소수의 역할이 필수적인 시스템,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하에서의 다당제 의회가 가지는 복잡미묘한 가치이며, 그 안에서 야당의 존재 이유는 자명해진다. 이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며, 새로운 가치들을 사회에 받아들이고, 여당의 시스템 유지 능력이 약화되었을 때 언제든지 대치해서 국정 운영의 권한을 받아 줄 수 있는 대안세력, 그것이 바로 민주 공화국의 의회에서 야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정리하자면, 여당의 역할이 다수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획득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라면, 야당은 여당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다수의 유권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높이는 것이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가치에 대한 설득이 다수의 공감을 받게 되면 여야는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상적인 의회정치는 일찌기 이 땅에 존재해 본 적이 없기는 하다. 덕분에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공허하겠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기에 정리해 봤다.

 

 

 

대한민국의 다수는 누구인가

 

정확히 알 수 없다.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충분히 동일한 가치를 가질 때, 그리고 그 유권자들의 투표 비율과 정당의 의석수 비율이 일치할 때, 그리고 선거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질 때, 지역 구도나 권력의 선거개입이 최소화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유권자들의 다수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그렇게 누가 다수인지, 다수의 의견은 무엇인지를 '선거'를 통해 확인하도록 되어 있는데, 선거 과정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다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렴풋이는 알 수 있다. 부족하나마 300석의 의석이 전국에서 뽑히고 정당 비례로 선출되는 선거구조는 과거 유신 시대와는 달리 어지간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권력이 개입하고 정보기관이 개입하여 선거를 망가트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국적인 여론조사의 결과와 선거의 결과는 대략 일치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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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도는 수십 년의 역사 속에서 거의 깨진 적이 없다. 심지어 대한민국 정치사가 낳은 위대한 거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도 민주당은 다수당이 되지 못했었다. 그때조차도 다수 의석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그 계열의 정당, 친일과 개발독재의 유산에 토건과 경제성장의 신화를 그대로 유전자에 새겨 담고 있는 그 정당이 가지고 있었다.

 

비록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 변화의 열망을 불러 일으키고 당선되었지만,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건방진(그들의 입장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려던 의회의 오만이 극에 달했을 때, 분노한 유권자들이 딱 한 번 그들에게서 다수당의 지위를 빼앗아 버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다수당의 지위는 또다시 그들에게 넘어가 버렸다.

 

이 정도라면 거의 틀림이 없다. 이 사회의 다수는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제발 그래선 안 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호소하고 있지만, 박정희의 유신 정권의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고, 우리 사회의 다수는 개발독재를 지지하며 분배보다는 성장을 지지하고 소수자를 보호하기보다는 다수의 부를 더욱 중시하고, 다수의 중소기업보다는 몇몇 재벌에게 부가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으로는 물질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 간단히 말해서 배금주의를 숭배하는 천박한 유권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괴물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현실은 딱 이 수준이다. 여기에 반론은 불가능한 일이다.

 

 

 

야당의 선택지

 

우리 사회의 다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한다면, 그 환경에서의 야당의 선택은 아주 단순해진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권의 획득을 우선시한다면, 우리 사회의 다수 유권자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현재의 집권세력, 민정당으로부터 이어지는, 아니 그 이전에 박정희의 공화당으로부터 이어지는 개발독재 세력이 하고자 했던 일을 야당이 스스로 더 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당 세력이 말로만 개발과 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강변하면 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경제는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고, 성장률은 감소하며 수출은 마비되고 있음을 역설하면 된다. 우리는 더 성장시킬 수 있고, 우리는 더 소수자를 차별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물질을 숭배하는 집단이라고 역설을 하고, 당신들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면 된다. 다수의 천박한 유권자들이 이에 동의한다면 새누리당을 대치할 수 있는 집권세력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권력 지향형 야당'의 선택지라고 명명하기로 하자.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가?

 

해방 이후 70년간 우리 사회는 그 길로 달려왔고, 미국의 원조에 힘입어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그만큼 문화 수준은 천박해지고 세상은 더욱 각박해졌으며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의 사회를 만들어 버렸고 젊은 세대를 좌절시켰다. 그걸 이제 와서 더 빨리 계속하자고? 그렇게 지옥의 나락으로 이어지는 무한 경쟁의 세상을 향해 더 빨리 달려가자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그렇게 주장할 셈인가?

 

또 하나의 다른 길이 있다.

 

비록 소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는 유권자들이 있다. 인권을 존중하고 소수자를 보호하며 물질보다는 문화적 가치를, 경제규모의 성장보다는 지속 가능한 분배를 우선하고, 권위주의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소중히 하고, 국제 사회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생각하며, 전쟁보다는 평화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역설하며 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개발지상주의자들을 설득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배에 탑승한 모든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가치들을 심어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길이다.

 

그 어렵고 힘든 길을 가다 보면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들에 동의를 하게 되고, 이 새로운 가치들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이 수가 더 많아진다면 야당에게는 자연스럽게 권력이 넘어오게 될 것이다. 이것을 앞서 설명한 '권력 지향형 야당'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가치 추구형 야당'으로 이름 붙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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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모두 정당한 야당의 역할이며, 현존하는 야당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당장의 정권획득인가? 아니면 느리고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이 사회의 확실한 변화를 이끄는 길로 가야 하는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당신이 원하는 야당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필리버스터에 감동하는 이유

 

그간 우리 사회의 야당, 현재 명칭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첫 번째의 길을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야당 지지자들이 답답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의 경제실적이 참담함을 보여주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권 10년간의 실적이 더 좋았음을 강변한다. 새누리당의 부패와 무능을 꼬집으며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외친다.

 

심지어 전두환의 국보위에 쫓아가 부가세의 폐지는 곤란한다고 역설을 했던 김종인, 이 사회의 주류 경제논리의 상징인 그 김종인을 대표로 영입하며 그에게 선거 전반을 지휘해 달라며 전권을 위임한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가치, 인권과 평등과 분배와 지속가능성을 역설하는 소수의 유권자들은 심지어 '야당에게도 버림받는'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그 결과 환경을 중시하는 자들은 녹색당으로,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찾는 자들은 정의당으로, 더 나아가 확실하고 급속한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자들은 노동당으로 뿔뿔히 흩어져 갔다.

 

인권을 얘기하면 '씹선비질'로 몰렸고, 성차별은 SNS에서나 화제거리가 되고,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노조원들은 성장 논리에 몰려 불평분자 취급이나 받으며 목숨을 걸고 굴뚝에나 올라가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수가 원하는 가치가 살아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심지어 경제논리만 따라가며 제2의 새누리당이 되고자 하는 걸로 보이던 더민주 안에 숨어 있던 다수의 초선 비례 의원들, 재선을 포기하고 컷오프 당하고 한 번 써먹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이나 받던 그들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싹이 피어난 빈틈은 심지어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지금 통과시키려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었던 '대테러방지법'이라는 괴물같은 법안이 느닷없이 직권상정이 되었고, 이를 저지하고자 누가 넣었는지도 모를 '필리버스터' 조항이 적용되면서 다섯 시간, 열 시간씩 무대를 독차지한 비례 초선 의원들의 연설이 시작된 것이다. 정의당 같은 소수정당도 거기에 합세했다.

 

그리고 그 연설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인권을 배우고 개인 정보의 소중함을 배우고 국정원의 일탈의 행적과 권력의 참담한 불법행위들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단지 시간끌기용의 수동적, 방어적 조항에 불과한 필리버스터, 요리법이나 읊고 사전이나 읽어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필리버스터의 조항이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 와서,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소수 유권자의 진보적 가치들이 논리 정연한 말의 향연으로 되살아나 수만 명의 가슴을 울리고, 밤을 새우며 화면 앞에 눌러앉아 그 긴 연설을 경청하도록 만드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버린 것이다.

 

외신들도 놀라 이에 대해 감동적인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충혈된 눈과 피곤한 몸으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연설이 중계되는 화면 옆의 채팅창에는 놀라움과 감탄의 목소리가 빛의 속도로 스크롤 되기 시작했고,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의 후원금 계좌는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이런 국회의원들이 있었다니,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던 국회에 이런 보석들이 숨겨져 있었다니 하는 감탄이 줄을 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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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대로 된 말에 굶주려 있었다. 터무니없는 적반하장의 언사가 아니라, 정확한 자료에 근거한 제대로 된 주장, 논리 정연한 강연에 목말라 했으며, 우리 사회가 처한 정신적 빈곤을 채워줄 새로운 가치에 대한 강연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쏟아진 말의 향연은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으며,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의원들이 저기 저렇게 감동적인 모습으로, 또는 처절한 모습으로, 또는 유쾌한 모습으로 서서 이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이 없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저 사람들에게 힘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뿐이구나 하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작은 균열이었고, 새로운 싹이 비집고 나올 틈이었으며, 모든 것에 짓눌려 숨도 못 쉬던 수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을 하나 뚫어주는 상황이었다. 이는 작은 반란이었고, 변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016년 대한민국 의회에서 있었던 필리버스터는 이렇게 감동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동 파괴자

 

수만 명의 젊은 유권자들이 받았던 감동은 그리 길게 가지 못하고 무산되고 만다. 그리고 그 파괴의 망치는 여당도 아니고 청와대도 아닌 야당의 내부에서 먼저 나오게 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는 야당의 선택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집권세력의 길을 그대로 따라하며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길로 가고 있던 야권의 주류들에게 있어 이 필리버스터라는 작은 반란은 매우 거추장스럽고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 필리버스터는 거시적인 여론에 아무런 영향을 못 주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으며, 오히려 큰 틀에서 소위 중도 유권자의 의심을 사기 딱 좋은 위험한 불장난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기독교인들 앞에서 동성애 합법화는 우리 당론이 아니며 성적소수자들을 탄압하는 기독교인들의 입장과 우리의 당론은 한치도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는 야당의 비대위원 박영선 의원의 눈에는 더욱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계속하기로 결정하는 의총의 결론 따위,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김종인의 눈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이었을 것이며, 뼈대가 약한 원내대표 이종걸은 이러한 김종인의 논리 앞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녹아 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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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한겨레

 

겨우 몇만. 그들에게는 무려 몇만이 아니고 겨우 몇만 이었다. 4천만 유권자의 0.1%에 불과한 겨우 몇만의 감동은 그들의 손익계산서에서는 누락되어도 좋은 작은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다. 진짜 보기 드물게 타오르던 수만 명의 감동의 물결을 파괴해 버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겨우 몇만의 감동보다는 선거일정이 더욱 중요하며, 일부 소수 유권자의 주장보다는 다수 중도층의 안심이 더욱 소중했고, 인터넷 언론 찌끄러기들의 보잘것없는 영향력 보다는 입을 굳세게 다물고 있던 메이저 언론들의 역풍이 더 중요한 안건이었을 것이다.

 

더민주는 여당과 똑같은 길을 우리가 더 잘 갈 수 있음을 강변하며 잘못된 다수 유권자들의 눈에 들어 권력을 되찾아 오기 위한 '권력 지향형 야당'의 길을 선택했으며, 이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심어 뿌리내리게 하고자 하는 '가치 추구형 야당'의 길을 버린 것이다.

 

이는 비단 김종인과 박영선만의 결정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여준 박영선 의원의 추한 무능은 아마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지만 말이다. 현실론이며, 다수의 의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정권 탈환을 가장 우선으로 간주하는 다수의 야당 지지자들 역시 여기에 동의할 것이다. 가치를 얘기하는 사람들을 '진신류', '진보충'이라 매도하고, 그들에게 표를 주지 말라고 단속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SNS 공간에서 너무나 흔하게 발견된다.

 

이렇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싹이 텄던 그 감동적인 말의 향연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말의 향연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들, 앞서 필리버스터에 참여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극히 일부의' 국회의원들은 바보가 되고 말았다. 아니 눈치 빠르게 선거운동 잘 한 약삭빠른 인간들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의 감동은 파괴 되었고,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의문

 

다 좋다. 모두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정권탈환이 급한지, 그렇게 급하게 되찾아온 정권으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봐주도록 하자.

 

사실 우리는 그렇게 급하게 정권을 가져보고, 의회의 다수당을 가져본 적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불과 십 년 전의 역사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정권을 찾아와야 된다고 외치는 것,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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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의 집권세력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우리 사회를 과거로 퇴행시키고 있으며,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더 우리 사회는 망가지고 있는 중이다. 급하긴 하다. 솔직히 나도 무섭다.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폭압적인 정권이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 아니라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성립한 정권이라면, 그런 정권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다수라면 상황은 다른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그런 유권자들이 다수라면 우리는 절벽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유권자들을 꼬드겨서 정권을 잡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권력을 운용한다면, 그게 현재의 상황과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권력을 추종하고, 심지어 야당조차 이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세태에 동참해서 우리 사회를 더욱더 각박하게 만들어 버리는 대열에 합세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사회를 진심으로 바꾸고 싶은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알아서 다 잘하겠다고 외치고 집권한 박근혜가 지금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잖은가.

 

게르만의 대부흥을 약속하고 집권한 히틀러가 독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지 못했는가? 지금도 독일의 수상은 때만 되면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 된다.

 

야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정권탈환을 위해서라면 모든 부당한 짓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야당의 역할인가? 또 하나의 여당, 이름만 다른 여당이 될 생각이란 말인가?

 

야근에 지친 몸으로, 아니 야근에 시달리면서까지 몰래몰래 인터넷 화면을 켜놓고 필리버스터에 나선 보석 같은 의원들의 귀중한 강연을 들어가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수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파괴해 놓고 도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한단 말인가?

 

이들이 느끼는 감동의 씨앗을 세상으로 퍼트려서 삶에 지쳐 각박해진 다수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진정한 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며, 그것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정한 야당의 역할이라는 당연한 명제는 당신들의 머릿속에는 절대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 그들은 소수니까... 결과에 상관 없으니까...

 

- 그까짓 욕, 잠시 기다리면 다 잊어버릴 텐데...

 

- 어차피 찻잔 속의 태풍, 선거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지극히 현실적인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내게는 권력이라는 악마와 타협한 자의 음험한 속삭임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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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미친 듯한 폭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당신들에게 또 한 번의 내키지 않는 표를 던지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제 더 이상 내 마음 속의 야당은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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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기수입 1위 한국의 암울한 미래

미국 무기수입 1위 한국의 암울한 미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3/02 [19: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4년 무기수입국 1위는 한국     © 자주시보


 

2015년 12월 26일 미 의회조사국(CRS)이 발간한 연례 무기판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 78억 달러(약 9조1299억 원) 규모의 무기를 샀다. 이 중 90%인 약 70억 달러(약 8조1935억 원)어치는 미국산이었다. 이전 4년간 매년 약 3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힙해온 것에 비해면 2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이에 대해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한국형 전투기인 KFX 사업을 시작하면서 미국과의 무기 계약액이 크게 늘었고 사업 첫해 계약액을 기준으로 통계가 나와 2014년 무기 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뉴욕타임스는 “북한과의 긴장 관계가 한국의 무기 수입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결국 차기전투기사업이나 글로벌호크 도입 등도 모두 북 군사력을 의식한 결과이기 때문에 결국 북과의 긴장이 지금과 같은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을 가져온 것이다.

 

문제는 이 국방비 지출이 대부분 미국 무기 수입하는데 이용되고 있고 자체의 무기개발 지원에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영원히 미국의 군수산업체 문어발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어떤 나라이건 국방분야 핵심 기술은 절대 이전해주지 않는다. 이미 KFX사업에서도 4대 핵심기술 이전은 절대 안 된다고 미국은 대못을 박은 상태다.

 

본지 기고가인 중국시민이 중국의 경우 서구의 기술도입에 의존한 민수경제분야의 경우 그 나라의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는 바람에 계속 종속이 심화되었지만, 첨단 기술을 절대로 이전해주지 않는 국방분야는 죽으나 사나 스스로 개발할 수밖에 없어 자체개발에 국가적 차원의 핵심역량을 투입하며 몸부림을 쳤더니 80년대부터 제법 해외 무기수출로 돈을 벌어들이기까지 하고 있으며 자체개발한 무기로 미국과도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해왔다. 그런 국방과학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민간위성사업, 민간항공기 사업에도 기술적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주국방의 효과는 단순한 수치로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이치로 보면 한국은 영원히 미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에 꽁꽁 묶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세금을 미국 무기 사들이는데 이렇게 많이 털어 써 버리면 정작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 여지는 더욱 줄게 되어 나라의 경제가 구제불능의 상황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우려가 높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국방비를 많이 쓴 나라들은 하나같이 경제위기가 갈수록 더 심화되었다. 그래서 주변국과 연합하여 무기를 개발하는 등 국방비 지출을 줄이려고 계속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유럽의 경제위기는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경제활성화를 촉발시킬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경제살리기용 추경을 대대적으로 편성하고 선 집행하는 등 빚까지 내서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3년 동안의 재정적자가 95조원을 넘어섰다.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재정적자 규모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5년이 지나면 160조가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재정적자 규모가 10조 9천억원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15배가 넘게 정부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과도한 국방비 지출에 세금을 털어 써 버리면 경제살리기 재정지출은 고사하고 정부의 재정적자로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지는 등 그 자체가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명약관화이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5년간의 10조의 재정적자에 대해서 나라를 거덜냈다고 난리를 쳤었는데 3년만에 10배가량 재정적자가 늘었는데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다. 언론에도 재갈을 물려 깩 소리도 못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의도가 이런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이 박근혜정부와 여당의 실정에서 나왔다는 국민들의 불만과 앞으로 터져나올 저항을 틀어막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나라가 완전히 거덜나고 있다. 북은 전술무기의 시험은 자주 공개했지만 아직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막강한 전략무기를 제대로 공개한 것이 없다. 그것을 다 공개하면 국군의 국방비는 수백, 수천배를 늘려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북은 한국이 아니라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군사력을 키워왔다. 국방비에 세금 투입을 늘려 그런 북을 상대로 나라의 안전을 꾀한다는 것은 아예 굶어죽자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국방을 강화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대처하자는 것이다. 6.15, 10.4선언만 이행해도 오히려 국방비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안전을 보장받은 상태에서 외국 무기 수입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자체의 무기개발에 주력한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강력한 군사강국을 머지 않아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정보통신기술 등 기본적인 기술력이 있는 한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이런 국민과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을 아예 들어보려고 하지를 않고 있다. 자신들과 다른 주장은 무조건 종북이라며 탄압의 총칼을 휘둘러대고만 있는 것이다. 이젠 테러방지법이란 기관총까지 준비하고 있다.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다.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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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서 ‘3.1 민족행동’, “무능력한 외교 멈춰라”


겨레하나, 3.1에서 8.15까지 ‘역사바로세우기 행동’ 계속할 것
이하나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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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2  22: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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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97주년을 맞아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 회원들이 전국에서 다채로운 퍼포먼스와 행사를 벌였다. 겨레하나 회원들은 한일‘위안부’합의 무효, 일본의 침략지배 사죄등을 요구하고, 한일군사협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귀향> OST 맞춰 퍼포먼스, “무능력한 외교 멈춰라”

   
▲ 3.1절 97주년을 맞은 1일, 서울겨레하나는 서울 인사동에서 한.미.일 정상과 맨발의 소녀를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펼쳐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사진제공 - 겨레하나]
 

서울 인사동에서는 영화 ‘귀향’의 OST ‘가시리’에 맞춰 동작을 멈추는 ‘스탑모션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한일‘위안부’합의 무효 서명을 받고, 주변에 유인물과 노란 풍선을 나눠주던 사람들은 노래가 흐르는 동안 동작을 그대로 멈추었고, 지나던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한.미.일 정상이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고 있는 아래에 맨발의 소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형상화 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겨레하나 신상현 간사는 “노란 꽃을 든 소녀, 나비 날개를 등에 단 사람 등 회원들이 직접 준비를 해와 퍼포먼스에 참여했다”며 “스탑모션 퍼포먼스는 한일‘위안부’문제를 합의하며, 한미일 군사협력 등으로 한반도 평화까지 위험하게 하는 무능력한 외교를 멈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 인사동에서 나비 날개를 달고 퍼포먼스를 진행한 서울겨레하나 회원들. [사진제공 - 겨레하나]
 
   
▲ 시민들과 더불어 인사동에서 퍼포먼스와 행진을 진행한 서울겨레하나. [사진제공 - 겨레하나]
 

부산 1,000개의 의자, 전북 31분 침묵시위 등 다양한 행사 열려

3.1절 행사는 전국에서 다양하게 벌어졌다. 부산에서는 일본영사관 앞에서 1,000개의 의자에 시민들이 직접 인간 소녀상이 되어 자리하는 ‘평화를 지키는 3.1대회’를 개최했다.

부산은 이날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를 공식 발족하며, 소녀상 건립을 본격화하기로 하였다.

   
▲ 부산에서 열린 ‘천개의 의자’ 행사. [사진제공 - 겨레하나]
 
   
▲ 부산은 이날'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를 공식 발족했다. [사진제공 - 겨레하나]
 

전북 소녀상 옆에서는 31분 동안 침묵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침묵시위를 제안했던 전북겨레하나 방용승 대표는 “지난해 12월 28일 있었던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크게 외치고 싶었다”면서도 “오늘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내고 싶었다. 침묵의 시간 동안 끌려간 소녀들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그들의 역사를 잊고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음을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전북에서는 31분동안 침묵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제공 - 겨레하나]
 

경남 창원에서는 ‘301인 원탁대토론회’가 열렸다. 청소년부터 대학생, 지역 주민들은 각 테이블별로 한일‘위안부’협상과 민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남겨레하나 관계자는 “이번 한일 합의에 자신이 왜 분노했는지 이야기하며, 앞으로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며 “3.1만세운동 때처럼, 국민들이 나서서 뭐라고 해야 한다는 주민들이 많았다”고 행사 소감을 밝혔다.

   
▲ 경남 창원에서 열린 301인 대토론회. [사진제공 - 겨레하나]
 
   
▲ 경남 창원에서 열린 301인 대토론회. [사진제공 - 겨레하나]
 

이 밖에도 울산, 대전에서는 한복을 맞춰 입고 만세시위를 재현했고, 경주에서는 영화 ‘귀향’ 공동체 상영회와 함께 청소년 소녀상 지킴이들이 한일‘위안부’합의 무효 서명캠페인을 진행했다.

   
▲ 울산에서 열린 3.1km 행진. [사진제공 - 겨레하나]
 
   
▲ 대전에서 열린 3.1만세시위 재현. [사진제공 - 겨레하나]
 
   
▲ 경주에서는 청소년들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 겨레하나]
 

겨레하나 “3.1절 이후에도 역사 바로세우기 위한 행동 계속할 것”

겨레하나는 이날 호소문을 발표하며, “3.1에서 8.15까지 우리 역사와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민족 행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겨레하나 신미연 운영위원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위안부 합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겨레하나는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올바로 세워나가기 위한 행동을 계속하겠다. 올해 8월 15일에는 전국 겨레하나 회원이 한 자리에 모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소문(전문)>
3.1에서 8.15까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행동을 이어가겠습니다.

“일본인은 물러가라, 조선은 조선 사람의 것이다”
97년전 3월 1일, 한반도에는 만세의 함성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상인들은 상점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섰고, 학생들은 동맹휴학시위를, 전차운전사 등 노동자들은 파업과 만세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농민, 기독교인, 천도교인, 광부들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시위였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 존재한다. 오늘은 만세를 부르는 날이다”
3.1의 함성은 두 달 동안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전국에서 1214번의 시위가 벌어졌고 200만명이 참여했습니다. 5개 군과 1개 섬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에서 체포자가 나왔을 정도로 한반도 전체가 들끓었습니다. 일본은 만세운동에 나선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곤죽이 되도록’ 때려가며 억압했지만 흰옷의 만세운동 물결은 끊일 줄 몰랐습니다.
3.1만세운동은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선포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살아있던 독립열정을 확인했고, 이 힘은 새로운 독립운동의 여정으로 이어졌습니다.

3.1 정신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가 독립하지 못하면, 영원히 후손들에게 씻지 못할 후환을 남길 것이다”
당시 거리에 나선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일제는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는 분노, 짓밟힌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떨쳐나섰을 민중들의 목소리를 떠올려봅니다.
그러나 해방된 지 70년을 넘어선 지금에도, 우리 민족의 자존심은 일본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한일 일본군‘위안부’합의가 끝나자마자 일본은 ‘위안부 강제 연행 증거는 없다’고 나섰고, 일본 집권당 자민당은 ‘소녀상’ 철거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아베는 “더 이상의 인정도, 사과도 없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은 사과를 받기는 커녕 돈 10억엔에 이 싸움을 ‘불가역적으로’ 끝내라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오고 있는 자위대, 그리고 되살아나는 친일

일본은 지난 침락 역사에 대한 사과 대신, 한국과의 군사협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지우고 새롭게 한일관계를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아베총리는 일본군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의 진출대상이 한반도임을 노골화하면서, 적반하장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자고 합니다.
지금의 일본에서 과거 조선을 구해주겠다는 명분으로 이 땅에 들어와 결국 한반도를 강제로 집어삼켰던 일본군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침략역사를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일본정부에게 ‘한반도 평화’를 명분으로 우리 군사정보를 내어주고, 함께 군사훈련을 진행한다는 것은 지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친일세력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친일역사논란으로 한국사회를 뒤흔든 ‘국정교과서’가 밀실에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집필하는지도 알 수 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것은 일제에 항거한 선조들의 민족독립정신을 훼손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변명을 앞세우는 교과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와 경고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교과서는 이제 곧 우리 아이들에게 유일한 역사로 보급될 것입니다.

더 이상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군대와, 외교와, 결국 주권까지 일본에 넘겨준 친일세력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보급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눈물을 외면하며 소녀상을 철거해버리고, 일본군대가 다시 이 땅에 발을 들이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 끝이 어디까지 이어지게 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제는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200만명이 들고 일어섰던 97년전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되새겨봅니다.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았음을,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민족의 자존심이 살아있고 그것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일본은 ‘위안부’피해 할머니들께 무릎꿇고 사죄하라!”
“친일역사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는 필요없다!”
“일본은 재무장 중단하라!” “일본군 자위대 한반도 진출 용납할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 우리의 목소리가 들끓어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와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민족행동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2016년 3월 1일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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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결국 여당안대로 더민주 퇴장 "총선 뒤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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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의하는 이종걸...말리는 원유철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앞두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관련 신상발언을 하자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를 말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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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2일 오후 11시 50분] 

192시간 넘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이끈 테러방지법이 2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157인 중 찬성 156인, 반대 1인이었다.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이는 김영환 국민의당 의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 외 106인이 발의한 테러방지법 수정안이 부결되자 모두 퇴장했다. 더민주의 수정안에 대한 표결 결과는 재석 263인 중 찬성 107인, 반대 156인이었다. 

앞서 더민주는 이 수정안에서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자의적 판단을 막으려고 '테러행위에 대한 예방 및 대응활동 등'에만 테러방지법을 적용하도록 했다. 또 국정원장에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조사추적권을 부여한 것을 삭제하고 대테러센터가 해당 업무를 총괄하도록 수정했다. 

아울러, 국정원장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 및 위치정보를 정보사업자에 요구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법원의 허가를 먼저 얻도록 했다. 이외에도 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설치하도록 한 인권보호관을 국회가 추천하고 정부의 대테러활동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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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방지법 국회 본회의 통과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주호영 의원 외 156인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이 재석 157인 중 찬성 156인, 반대 1인으로 가결됐다.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반 의원들이 표시되고 있다.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당 의원중 유일하게 김영환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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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상정 '변명' 가로막힌 정의화, 테러방지법 수정안 찬반토론도 후끈 

사상 초유의 필리버스터 사태를 이끈 법안인 만큼 표결 과정도 '조용하지' 않았다. 당장 정의화 국회의장이 자신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까닭을 설명하려 하자, 야당 측에서 거세게 항의했다. 정 의장이 "오랜 여야 협상 결과 이(테러방지법 악용)에 대한 통제장치가 다각도로 마련됐다고 본다, (야당에서) 무제한 감청을 주장했지만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면서 사실상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찬성 토론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앞서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부의장도 야당의 필리버스터 도중 "사실관계를 밝힌다"라면서 찬성토론을 전개해 국회법 107조를 위배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국회법 107조에는 "의장이 토론에 참가할 때에는 의장석에서 물러나야 하며, 그 안건에 대한 표결이 끝날 때까지 의장석에 돌아갈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아예 단상 아래로 나아가 정 의장에게 의석에서 내려와 발언하라고 항의했다. 정 의장이 "여기가 의장 발언대"라면서 이를 거부했지만 야당의 항의는 계속됐다. 결국 정 의장은 자신의 발언을 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사진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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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앞두고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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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의 테러방지법 수정안에 대한 찬반 토론 때도 여야의 고성은 계속됐다. 김광진 더민주 의원이 찬성 토론에서 "국민과 야당을 힘으로 지배하려는 생각은 민주주의의 상식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통치하려 하지 말라,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다"라고 말하자, 여당 의원 사이에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뒤를 이어 반대 토론에 나선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도 "왕조국가가 아니라 법치국가라서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김광진 의원의 발언을 즉각 반박했다. 그러나 이 의원도 발언마다 야당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그는 토론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192시간 필리버스터도 들었는데) 우리가 하는 건 5분도 못 들어주느냐"라고 역정을 냈다. 

이철우 의원 등은 "새누리당의 안대로 처리하더라도 국정원의 권한 오·남용 가능성이 없다'면서 더민주의 수정안을 반대했다. 또 '더민주의 수정안대로라면 제대로 된 권한을 부여받지 못해 실질적인 테러 방지를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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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한 김무성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의 찬반 토론이 이어지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피곤한 듯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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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테러방지법을 정부에서 추진하지 않았나, 두 전직 대통령이 야당 주장대로 국민을 함부로 감청, 인권을 침해했단 말인가"라면서 새누리당에서 발의한대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더냐, 만에 하나 (국정원의 권한이) 남용될 수 있더라도 그것이 두려워서 이 법을 포기하거나 할 수 없다"라면서 "국민 생명 보호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으면 허깨비가 보인단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도 "10년 전 내가 국정원 불법도청사건 주임검사로 최고위직 국정원장 두 명을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다,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지금 국정원은 내가 감옥에 보냈던 그 시대 국정원과 다르다, 정말 국정원이 불법을 행한다면 과잉공포조장 전에 근거로 말해라"라고 지적했다. 또 "이종걸 원내대표 수정안대로라면 국정원에게 집에서 애나 보라는 것이다, 국정원에 제대로 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라면서 "뉴욕, 파리 테러가 서울, 부산에서 일어나지 않으란 법 없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더민주는 필리버스터에서 주장했던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재차 짚으면서 수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광진·정청래·신경민 의원이 찬성 토론자로 나섰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이 위헌가능성이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정청래 더민주 의원은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은 통과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으로 막을 것"이라면서 "여러분 솔직해지자, 양심에 호소한다, 여당 의원들도 청와대 수뇌부로부터 사찰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경민 더민주 의원도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은 부칙이란 이름으로 (감청요건을 제한한) 통신비밀보호법을 고칠 수 있도록 했다"라면서 "이건 성사되더라도 위헌심사를 받아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성'으로 화답했다. 정 의원이 "이 법(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새누리당 의원들도 도청될 것"이라고 말하자 "거짓말 하지 말아"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신 의원이 "국정원을 과연 믿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을 땐 "믿어야지"라고 곧장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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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민주 의원들 집단 퇴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 외 106인이 발의한 테러방지법 수정안이 부결되자 집단 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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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미국 드라마서 얼핏 본 필리버스터 도입한 것 자성해야" 

한편, 새누리당은 표결 직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지난 2월 23일부터 9일 동안 진행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선거운동용이었다"라고 비난했다.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은 "야당 의원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구 예비후보로 등록했는지 광고하고 자신이 쓴 책 소개하고 막바지엔 울부짖으면서 총선에서 표를 달라고, 과반 의석하게 해달라고 했다"라면서 "(야당의) '힐링'버스터였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에게는 '울화통' 버스터였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은 지난 2008년 한미FTA 앞두고 '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 숭숭 구멍 난다', '맹장 수술하는데 3천만 원 든다'는 공포 마케팅을 통해 법안을 막고자 했다"라면서 "정말 이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의 무차별 휴대폰 감청법이라면 본회의장 면책특권에 숨지 말고 국회 밖에서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도입한 새누리당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드라마에서 얼핏 봤던 제도를,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를 도입했다"라면서 "이렇게 악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제도를 도입한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김태흠 의원도 "(이번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규정 운운하면서 눈물 흘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기나 하고 기록 경신, 사전 선거 정치쇼에만 집중됐다"라면서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발목잡기용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민주주의적 절차가 아니라 절차적 악법으로 활용해 선동정치로 진화시키고 정부와 국민을 갈라놓는 분열정치를 한 것"이라면서 "국민을 선동하고 정치 불신을 부른 야당의 정치 행태를 반드시 심판해 달라"라고 말했다. 

더민주는 같은 시각 국회 로텐더홀에서 테러방지법 강행처리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다. 더민주는 "이로써 '음지에서 국민을 사찰하고 양지에서 정권에 충성해온' 국정원은 '박근혜 정권의 가장 완벽한 통치 도구가 될 것'이고, 동시에 '민주주의와 국민 인권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라며 "총선 승리 후 테러방지법 전면 개정에 나설 것임을 국민 앞에 다짐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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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 대표와 주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에 참석했으나 테러방지법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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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아버지에 이어 朴 입법 쿠데타, 국민저항권으로 막아달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3/02 12:16
  • 수정일
    2016/03/02 12: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정원장이 국회의장 방문후 직권상정, 제정신 아냐…쿠데타 또 성공시켜선 안돼”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무제한 토론 39번째 주자로 나선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쿠데타로 분명히 입증됐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한 필리버스터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의 정의화 국회의장 방문 이후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이 이뤄졌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 이어 이날 아침 7시 2분에 연단에 오른 이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쿠데타에 대해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헌법에 명시돼 있는 저항권 행사”라며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것을 알리기 위해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나요’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국민 통제하에서의 국회 해산은 대통령에 의한 쿠데타라고 보여지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항간이 이런 말이 나올 때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장이 신념을 버리고 가당치도 않게, 터무니 없는 직권상정을 한 것은 대통령의 권력에 의한 압박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표는 “유승민 원내대표 사건 이후 대통령은 모든 입법 행위에 간섭했다”며 “모든 입법활동이 대통령이 입김이 깔린 채 진행돼 왔다”고 그간 국회와 대통령의 상황을 짚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의 권력 행사 압박이 상시 존재하고 국회의장의 책무감이 수개월 지속되는 상황에서 잠시 착란상태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며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실수가 있지 않았나 본다”고 정 의장의 직권상정을 비판했다.

   
▲ 박근혜 대통령(좌)과 국정원장 출신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우) <사진제공=뉴시스>

국회법에 규정된 직권상정 요건을 짚으며 이 원내대표는 “국가 비상사태는 현재 없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식이다”면서 “특별히 전문가의 해석을 요하지도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라고 보고 직권상정을 했다”며 “국정원에 의한 무도한 국민감시법 직권상정은 국민 저항권을 행사해야 할 권력에 의한 쿠데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역사적으로 “권력에 의한 쿠데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했다”고 되짚으며 “국정원에 의한 국민침해법, 국민인권유린법인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으로 쿠데타 한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했다.

이 원내대표는 “아버지에 이어서 다음 대통령이 된 박근혜 대통령에게 또 쿠데타를 성공시키게 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쿠데타를 막을 무기는 총칼이 아니다, 국민의 의지와 뜻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열망이다”고 역설했다.

테러방지법 이름에 대해서도 이 원내대표는 “우리당은 국민감시와 공공 사찰을 위한 테러빙자법 또는 국정원 무제한 감청 및 금융정보 취득법이라고 읽겠다”며 “줄여서 테러빙자법이라고 하겠다”고 밝혔다. 

필리버스터 중단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정말 잘못했다, 정말 죄송하다”며 “저 이종걸 그리고 한두 사람의 잘못으로 180여 시간 동안 의원들의 열정과 열망, 참가하려고 했던 분들께 제가 한순간으로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정말 죄송하다, 죽을 죄를 졌다”고 사과했다.

또 그는 “시간에 쫓기는 국회 일정 때문에 잘못 처신하고 판단한 것을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깊은 고뇌없이, 더 많은 성찰 없이 국민들과 만나고 국민을 섬겼던 제가 사과드린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 필리버스터 시민참여 아카이빙
☞ 필리버스터 응원 사이트 ‘필리버스터 닷미’ 
☞ 필리버스터 정보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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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고승, 가림 없이 ‘없음’을 서로 묻고 답하다

세 명의 고승, 가림 없이 ‘없음’을 서로 묻고 답하다

2016. 03. 02
조회수 547 추천수 0
 
  혜국-아잔 간하-아잔 브람 스님 무차토론
 
사본(원)1-15.jpg» 무차토론을 벌이는 세기의 고승들. 왼쪽부터 사회를 본 각산 스님, 아잔 간하 스님, 아잔 브람스님, 혜국 스님.
 
 아무 것도 없다는 그놈은 지금 어디 있는지 찾는다
 그 답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 답이 있을 뿐
 
 성적 욕구 갖고 있나? 없다면 왜 안 갖고 있나?
  참 깊은 질문을 하시는군요
 얼른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자
  나도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깨달음이 없다면 공은 있나?
 있다면 공이 아니다
 공이 없다면 누가 공을 아는가?
 그 답을 내가 듣고 싶다
 
 내려놓는 방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내려놓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바로 공성으로 가는 것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내려놓는 것
 
 고통이 없었다면 현대도 삼성도 없어, 고통에서 행복 온다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것에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커
 마음에는 고통이 없다.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놈이 누구인가

 

 
역시 그들은 고승이었다. 평생 깨달음을 추구하며 수행한 고승의 언어는 사부대중을 감동시켰다. 그들의 가슴 깊숙한 것에서 나오는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며, 인간이 느끼는 고민과 번민을 무력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들은 ‘없음’을 강조했다. 모든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지를 이야기했다. 그 경지에 가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말을 통해 그 경지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6일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홀에서는 ‘세기의 무차(無遮)토론’이 벌어졌다. 무차토론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한 불교의 독특한 토론방식이다. 수행을 오래한 고승들이 일갈을 하고, 그 일갈에 대해 사부대중이 의문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마치 오랜 검술 수련을 한 검객들이 중원에서 맞붙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전 아무런 각본도 없다. 누가 어떤 질문을, 어떤 공격을 할지 모른다. 사부대중은 자신들이 들어온 고승들의 수행 깊이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이번 무차토론에는 모두 3명의 고승이 참여했다.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과 타이의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는 왓 프레담마람 수도원장 아잔 간하 스님, 그리고 타이 수행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영국 출신 명상지도자 아잔 브람 스님이 함께 했다. 사회는 각산(참불선원 선원장) 스님이 보았다.
 세 가지 언어(한국어, 영어, 타이어)를 통해 토론하는 바람에 때로는 불편함이 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쉽게 뛰어넘기는 어려웠다. 깊은 정신적 고뇌의 산물을 서로 다른 언어가 교통하긴 쉽지 않았다.
 또 수행방법도 달랐다. 혜국 스님은 해인사에서 10만배 정진을 마친 뒤, 오른쪽 손가락 세 개의 절반을 태우는 연비로 견성성불의 결연한 뜻을 세웠다. 또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동안 솔잎과 쌀로 생식하며 정진했고, 성철, 구산 스님을 모시며 간화선으로 수십 안거를 지냈다. 
 아잔 간하 스님은 킹 코브라를 손길로 쓰다듬어 조용히 사라지게 한 일화로 타이 불자들에게  ‘루앙포야이(최고의 스님)’로 추앙을 받고 있고, 아잔 브람 스님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다 호주 최초 사찰을 세운 호주불교 개척자다. 유튜브에서 그의 명상수행법과 법문을 담은 동영상은 수백만명이 접속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다음은 고승들의 무차토론 내용이다.
 
사본(원)1-11.jpg» 혜국 스님.
사본(원)1-10.jpg» 아잔 간하 스님.
사본(원)1-2.jpg» 아잔 브람 스님.
 
 혜국 스님: 아무 것도 없다고 했는데, 간화선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그놈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찾는다.
 아잔 브람: 그 답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 답이 있을 뿐이다.
 혜국 스님: 간화선과 남방불교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아무 것도 없다고 할 때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람이 있을 때만 그 말이 나온다. 간화선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위치에 가면 아무 것도 없는 언어가 나온다. 똑같은 제자를 두고 지장의 머리는 희고 혜회 머리는 검다고 마조가 말한 게 본보기이다. 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간화선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각산 스님: 아잔 간하에게 묻는다. 간화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아잔 간하: 선불교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들었지만 관심을 둬 본 적이 없다. 법은 상좌부나 대승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마음 챙김과 지혜만 있다면 선불교나 상좌부 상관없이 진리에 이를 수 있다.
 혜국 스님: ‘주시한다’, ‘관찰한다’를 마음 챙김이라는데 간화선에서는 보이고 들리는 것 모두가 환영이라고 한다. 환영인줄 알고, 주시하고 마음 챙김을 하나? 인정을 않고 마음 챙김을 하는 것인가? 환영인줄 안다면 환영인줄 아는 그놈을 보는 것이 간화선이다. 이를 어떻게 지도하고 있나?
 아잔 간하: 자신의 몸과 말뜻(신구의)을 아는 것이다. 수행을 하면 지혜와 이해가 생긴다.
 아잔 브람: 나는 여행을 자주 한다. 공항에서 “화장실이 어디있나요?”라고 묻는다. 사람들은 내게 화장실이 쓰인 표지판을 가리키고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그 표지판이 있는 화장실에 소변을 보는 시늉을 한다. 사람들은 내게 화장실은 안에 있는데 무엇하느냐고 한다. 그럼 나는 내게 언제 그렇게 말해줬느냐고 한다. 사람들이 논쟁을 할 때 결국 화장실에 가지 않고 화장실 문에 소변을 보는 행위와 같다. 화장실에 들어간다면 더 이상 논쟁이 없다.
 혜국 스님: 한국스님들의 간화선에 대한 신심은 세계적이다. 간화선을 중국불교라 말하지만 법을 모르는 소리다. 부처님은 연기법은 과거 미래에 영원하다고 했다. 중국선이다, 남방선이다 하는 것은 부처님 법을 구속시키는 것이다. 부처님 법이 한국에 살아있다고들 인정한다. 언어를 떠난 세계,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세계를 물었다. 그런데 언어의 장벽으로 질문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다른 것을 질문해도 똑같은 결과일 것 같다.
 
개구리는 물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물을 안다
 
  청중 질문: 아잔 간하 스님, 실제로 코브라에게 어떻게 설법을 했는가?
 아잔 간하: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청중의 질문: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를 하는지?
 혜국 스님: 분명히 무아이다. 온 우주가 나와 하나가 돼있지 독립된 나는 없다. 나는 담배를 안 태운다. 그래서 담배 사러가는 법이 없다. 담뱃집에 태어날 일이 없다. 무아인줄 모르고 업을 따라가면 윤회이다. 무아인줄 안다면 존재 자체가 된다.
 
사본(원)1-8.jpg 
 
 아잔 간하: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말로 계속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다. 말을 계속하면 사람들의 혼란만 가중시킨다. 우리가 직접 수행을 해서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하다. 태국의 테라바다 전통에서는 “~을 하라”, “이해하라”가 아니라 “직접 알아봐라”, “발견하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말하면 항상 오해가 생긴다.
 아잔 브람: 한 예를 들겠다. 연못에 올챙이가 살고 있었다. 올챙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화학을 배웠다. 물이 H₂0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의 화학성분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올챙이가 물이 어떤 것인지 진정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물고기는 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물속에서 태어났고 일생에서 물속에서 살았으니 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동안 올챙이가 많은 공부를 했지만 물이 진짜 무엇인지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올챙이에게 팔과 다리가 생겨 개구리가 됐다. 개구리가 펄쩍 뛰어서 연못 밖을 나왔다. 이제야 개구리는 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이 다 사라진 다음에야 물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있는 자리를 놓아버릴 때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잔 간하가 대답을 않는 것이다. 올챙이에게 물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화두를 타파하면 성욕도 사라지나
 
  각산 스님: 혜국 스님과 아잔 간하에게 질문한다. 화두를 타파하면 성욕도 사라지는가? 수행을 하면 어느 시점에 성욕이 사라지는가.
 아잔 간하: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깨달은 사람이. 알아차림과 지혜만 있어도 성욕이 없는데, 하물며 깨달은 사람에게 성욕이 있을 수 있는가. 여러분이 참 깊은 질문을 하시는군요.
 아잔 브람: 성욕에서 자유로운 수행자를 봤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문화가 우리에게 부과한 것이다. 물리학을 전공해 지금도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 과학자들이 섹스 중인 커플의 뇌를 스캔했다. 그때 감각이 일어나는 뇌 부분은 통증이 일어나는 부분과 같았다. 성행위 시 느끼는 쾌감 부위와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같다. 근데 우리는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부처님 말씀을 생각했다. 성적 즐거움이란 너의 인식을 왜곡하는 것이다. 실제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붓다의 말이다. 내가 런던에 있을 때 영국 맥주를 처음 마셨다. 맛이 형편없었다. 사람들이 왜 많은 시간과 돈을 맥주 마시는데 쓰는지 이해가 안 갔다. 펍(맥주집)을 들락날락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맥주를 좋아하게 됐다. 동료들의 압박 같은 것이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것과 같은.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지혜로 판단할 때 성적 즐거움은 고통스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혜국 스님: 성욕 이야기로 웃는 것 자체가 간화선에서는 웃을 일이 아니다. 간화선은 성욕과  물마시고 싶은 마음과 배고프면 밥 먹고 싶은 마음을 같게 본다. 세상 사람들이 중점을 둬서 성욕을 대단하다고 한다. 깨달음은 욕망이 공하다고 한 것을 보는 것이다. 성욕이 있지만 다만 끄달리지 않는 것이다. 욕망에 끄달리느냐, 욕망을 내가 활용하느냐의 차이이다. 일체 모든 욕망은 하나이다. 공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욕망이 일어났을 때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공이다.
 아잔 브람: (혜국 스님에게) 성적 욕구를 갖고 계십니까? 없다면 왜 안 갖고 계십니까?
 혜국 스님: (웃으며) 얼른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자.
 아잔 브람: 나도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혜국 스님: 그러면 스님도 보는 놈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  간화선이 그런 걸 모르고 어렵다는 것은 근본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잔 브람: 통역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나라면 누가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라고 하겠다.
 혜국 스님: 그건 아니다.
 
욕망의 차이는 없다, 다만 업의 차이만
 
  청중 질문: 간화선에서는 깨치면 부처라고 한다. 부처와 아라한의 차이는?
 아잔 간하: 아라한과 부처 사이에는 번뇌, 욕망의 차이는 없다. 다만 과거로부터 쌓아온 업의 차이만 있다. 아라한과 부처는 바라밀을 닦았다.
 혜국 스님: 업의 차이라고? 아라한은 업이 없다. 허공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부처님은 공성이다. 도를 깨달으면 아라한은 이름일 뿐 깨달음에는 차이가 없다.
 아잔 브람: 허공은 무상하다. 항상 여기 있지 않다. 이는 기본적인 물리학으로 증명된다. 빅뱅이 있기 전 허공도 없었다. 빅뱅이 있기 전 부처는 어디 있었나?
 혜국 스님: 이 허공은 스페이스가 아니다. 공성을 말한다.
 아잔 브람: 깨달음이 없다면 공은 있나?
 혜국 스님: 있다면 공이 아니다.
 아잔 브람: 공이 없다면 누가 공을 아는가?
 혜국 스님: 그 답을 내가 듣고 싶다. 말하고 보고 듣는 것은 내 안에 있지 않다. 공은 망에도 진에도 머물지 않는다. 전체가 진일 때가 공이다.
 아잔 브람: 무엇이 윤회하는가에 대한 내 답은 “어리석음이다”라고 하겠다. 어리석은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윤회를 이끄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모두 없애면 더 이상 윤회는 없다.
 
질문할 것이 있다면 덜 떨어진 놈
 
  청중 질문: 지켜보는 자가 마음의 깨침을 이루는 것인가?
 아잔 브람: 아는 사람은 없지만 앎은 있다. 그래서 아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앎의 행위가 끝나면 멈춘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다른 앎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다리 위에 서서 물을 바라본다. 매일 같은 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제 있던 물은 오늘 없다. 강물은 어떤 과정이지 개체가 물체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앎의 흐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는 자가 아니고 앎의 흐름이 있다고 했다.
 혜국 스님: 말을 할수록 그르친다는 것에 동감한다. 그런데 한국 젊은이에게 그렇게 말하면 통하지 않는다. 통역 문제가 심각하다. 석종사에도 외국인들이 제법 온다. 참선하면 기가 나온다고 하니까 맑은 기가 나온다는 말을 통역은 개스가 나온다고 통역하더라. 성철 스님도 일단 질문할 것이 있다면 덜 떨어진 놈이다고 했다. 자기가 답을 찾지 못하면서 왜 남의 답을 들으려고 하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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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잔 브람: 깨달음을 말하는 것보다 최고의 행복을 말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에 더 관심을 보인다. 우리 절에서는 행복을 판다. 내가 그 마케팅의 도구이다. 여러분이 많이 웃을수록 사람들이 절에 더 많이 찾아온다. 태국으로 출가하러 간 이유도 런던의 수많은 사찰 중 태국 스님들이 가장 많이 웃었다. 웃는 입을 나는 깨달음의 측정계라고 부른다. 입꼬리가 올라갈수록 더 많이 깨달은 것이다. 행복은 깨달은 사람의 일부이다. 한국의 스님들이 웃는 만큼 사람들이 더 많이 절을 찾을 것이다.
 청중의 질문: 내려놓음을 강조하는데?
 아잔 브람: 명상은 어떻게 하면 고요해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생각이 없다. (물컵을 들어보이며) 컵 안의 물이 고요한가? 집중을 하겠다. 물이 고요한가? (청중: 아니요.)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명상을 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물은 더 흔들린다.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컵을 내려놓으며) 내려놓으면 된다. 계속 들어보면서 고요해졌나 살펴보는 명상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내버려둔다. 이것이 바로 내려놓는 방법이다. 아주 단순하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 아주 쉽다.
 혜국 스님: 간화선은 내려놓음을 강조하는 것 아니라 내려놓아져 있다고 말한다. 내려놓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바로 공성으로 가는 것, 내려놔야할 성질을 공성으로 부처로 만들어보자. 모를 뿐인 화두로 돌아가는 것이 방하착이다. 본래 없기 때문이다. 화두 일념만 하라고 한다.
 아잔 브람: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자아가 있으면서 명상을 하면 욕망이 된다. 우리가 사라져야 한다. 때론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책에 있는 것들을 본인은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거기 있는 거 아잔 브람은 할 수 없다고 답한다. 스님은 정직해야 하니까. 아잔 브람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면 명상에서 나오는 멋진 체험과 깨달음이 일어난다. 내려놓으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 몰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다이다.
 
모든 고통은 언제 이겨내도 이겨내야 할 짐
 
  청중 질문: 아잔 간하는 행복은 고통에서 온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아잔 간하: 고통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고통을 덜어낼 방법을 찾는다. 고통의 원인을 가진 사람은 법의 수행을 멈추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알아차림과 지혜를 통해 고통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알아차림과 지혜를 통해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고 원인을 볼 수 있다. 여기 있는 모든 첨단기기(에어컨 카메라)들은 모두 고통에서 나왔다. 불편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마음의 산물이다. 고통이 없었다면 현대도 삼성도 없었다. 고통에 감사해야 한다.
 청중 질문: 고통은 실재하는가?
 아잔 브람: 물론 고통은 존재한다.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여기 없을 것이다. 고통은 어리석음에서 약이 된다. 여러분이 우리 절에 와서 수행한다면 무릎이 아프면 움직이면 된다. 마루바닥에 앉을 수 없다면 의자에 앉으면 된다. 우리는 지금 느끼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혜국 스님 말씀처럼 깊은 명상에 들어간다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 몸이 사라져 버린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오직 남은 것은 마음이다. 이 지점에서 신체적 고통이 사라진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은 우리가 고통이라 부르는 것의 일부이다. 정신적 고통도 있다.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것에는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 그런데 바로 이 정신적 고통에서 놓아버림이 효과가 크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있는데 이 둘은 분리돼 있다. 여러분은 몸을 놓아버리고 마음의 세계로 갈 수 있다. 마음의 세계로 들어간 후에는 다시 공의 세계로 갈 수 있다. 이런 발전이 일어날 때 사람들의 명상에 대한 관심은 커진다. 현재 서양에서는 알아차림 명상이 굉장히 인기가 있다. 이슬람교도도 명상을 한다. 이는 신체적 고통을 완화해주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됐다.
 
사본(원)1-13.jpg» 토론을 마친 뒤 아잔 브람 스님과 혜국 스님이 악수를 하고 있다.사본(원)1-13.jpg 
 
 혜국 스님: 그 고통을 언제 느끼나? 내 생각대로 안 될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선방에서처럼 가부좌 틀고 앉았더라면 편안했을 텐데, 지금은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고통스럽다. 간화선에서는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 내 습관인지 마음도 느끼고 있는지 살핀다. 마음에는 고통이 없다.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놈이 누구인가? 이를 보여준 것이 화두이다. 일체의 모든 고통은 언제 이겨내도 이겨내야 할 짐이다. 화두공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고통 없는 자리를 보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차나 한 잔 마셔라
 
  청중 질문: 사회부조리 등이 많은데 명상과 참선을 해서 나만 바뀌면 돼나?
 아잔 브람: 일이 있을 때는 전념을 다해서 하고, 할 일이 없을 때는 그냥 내려놓아라. 영국군 4~5명이 2차대전 때 버마에서 일본군에 포위당했다. 포위를 뚫고 나가자고 생각했다. 그때 소대장이 차나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어떻게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나. 명령이니까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잔을 채 다 마시기 전에 누군가가 말할 때 “적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포위가 풀린 것이다. 첫번째 상황에서 나보다 많은 적을 맞서 싸운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때가 내려놓을 때이다. 적군이 움직이면서 길이 열렸을 때가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때이다. 정치를 하든 회사에서 일을 하든 삶을 살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때는 그냥 차나 한 잔 마셔라. 그러나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은 기다리거나 내려놓거나 하는 것을 모른다. 삶의 성공은 이 두 가지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청중 질문: 생각은 어느 곳에서 나오는가?
 아잔 간하: 침묵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살아있는 것에서 생각이나 두려움이 나온다. 죽으면 이것도 없다
 정선/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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