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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제국의 군대

저물어 가는 제국의 군대 1.

2016. 03. 16
조회수 284 추천수 0
 

1. 버릇없는 응석받이가 된 펜타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의 힘은 막강하다. 달러가 그 금융적 지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힘의 원천은 엄청난 군사력이다. 그러나 바로 그 통제되지 않는 막강한 군사력이 미국을 저물어 가는 제국으로 만든 원인이 되고 있다.  군사전문가인 윌리엄 어스토어(William J. Astore) 전  미공군중령과  외교안보전문가인 톰 엥겔하트 (Tom Engelhardt) 네이션 인스티튜트 펠로우에게  미 국방부와 미군은 오히려 제국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다.  어스토어는  미군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미 국방부가 부자병에 걸린 집안에서 자란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이처럼 행동하며 미국이라는 가정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엥겔하트는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대'가 어떻게 지난 14년동안 아프간,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 등 중동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는 물론이고 그 지역을 참담한 상황에 빠뜨렸는 지를 보여준다. 엥겔하트는 미국이 베트남에서처럼 패배를 선언하고 철수할 때 중동지역이 더 평화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1.버릇없는 응석받이가 된 미 펜타곤
2.세계 역사상 최고 군대’의 잇따른 실패

펜타곤.png 
  ‘부자병’(Affluenza)(1)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최근에는 2013년 음주운전으로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 10대 소년 이선 카우치와 관련해 등장하기도 했다. 재판에서 부모와 피고 측 증인은 카우치의 파괴적 행위에 대해 그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부모에게 과한 칭찬과 돈 세례를 받아 카우치가 완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자랐다는 이유였다. 즉, 부자병을 앓는 그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사리분별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판사는 4명의 무고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병을 인정해 카우치에게 징역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자병’진단이 잘못됐으며, 일종의 돌팔이 수법이라고 재빨리 일축했다. 부자병은 실제로 미 정신의학회가 분류하는 질병으로 정의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 그 무엇인가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선 카우치가 파괴적 삶을 사는 동안, 그와 유사하게 무고한 죽음에 책임이 있음에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칭찬과 돈 세례를 받아온 조직은 없을까? 부자병을 심하게 앓은 나머지, 실패와 부정행위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는 기관은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미군’이다. 미군은 카우치처럼 재판이나 집행유예도 받아본 적이 없고, 멕시코로 도주하거나 벌을 받기 위해 본국으로 강제송환된 적도 없다. 
 
‘부자병’을 앓고 있는 펜타곤
 
 우선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여기서 응석받이 노릇을 하는 펜타곤(미 국방부) 이야기는 명예로운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의 형제자매, 친한 친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을 넘어, 이라크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적군의 포화에 용감히 맞서는 그 누구도 버릇없지 않다. 나는 한 기관으로서의 미군을 말하는 것이다. 펜타곤과 그 고위간부들을 생각해보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언급한 군산복합체들과, 권력의 촉수가 뻗쳐 있는 국가안보 기관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의 부자병 진단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부자병의 한 측면, 무분별한 칭찬부터 이야기해보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신에게 미국의 축복을 비는 표현(2) 만큼 흔해진 나머지 미국 정치 담화의 단골손님이 된 문구를 반복했다. 그는 미군을 가리켜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대”라고 칭했다. 이러한 과장법이 처음은 아니다. 5년 전 대통령이 비슷한 표현을 썼을 때 나는 로마제국의 군단과 칭기즈칸의 몽골 기병들을 포함한 수많은 호전적 인물들이야말로 “역대 최고의” 워리어 볼(Warrior Bowl) 트로피를 받을 자격이 더욱 충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런 과장된 표현은 그칠 줄 모른다. 2014년 12월 애쉬턴 카터 미 국방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을 차기 국방 장관 지명자로 소개하자마자, 자신이 지휘하게 될 미군에 대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대”라고 칭송했다. 그의 표현은 앞선 8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휘력을 갖추고, 최고의 훈련을 받고, 최고로 무장한 군대”라고 한 대통령의 표현을 반복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찬양 표현, 즉 “인류해방을 위한 세계 최강군대”는 9.11 사태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및 기타 정치인들의 연설과 발언에서 심심찮게 사용됐다.  
 
칭찬과 돈 세례를 누리는 펜타곤
 
  미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군대의 노력에 끊임없이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대통령부터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9.11 이후 그토록 칭찬세례를 받은 기관은 없었다. 그런 점을 보면, 미국인들이 과학자, 의사, 목사, 성직자, 그리고 의원들을 포함한 그 누구보다 군대 지휘부를 신뢰한다는 정기 여론조사 결과는 놀랄 일이 아니다.
  자기 아들에게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한 이래 가장 영리하고, 가장 미남이며, 운동에도 가장 뛰어난 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부모를 상상해보라. 이런 부모를 보면 정신이 이상하든지 팔불출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군은 미국에게 있어 그런 금쪽같은 자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는 버릇이 없어지게 돼있다. 무분별한 칭찬 외에도, 미 국민들이 펜타곤에 정기적으로 주는 ‘용돈’을 생각해보라. 이를 부자병에 걸린 가족으로 본다면, 엄마와 아빠는 구형 아우디를 몰고, 그들의 사랑스러운 아들은 최신식 페라리를 몰고 다니는 셈이다. 미 연방정부의 ‘국방’, ‘국토안보’, ‘해외비상작전(전쟁)’, 핵무기 및 정보감시 작전 지출을 합산하면, 펜타곤과 그 국가안보 기관 동료들이 보유한 페라리들은 연간 7,500억 달러, 정부재량 지출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돈으로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다. 아무리 ‘금쪽같은 내 새끼’라 해도, ‘용돈’치고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2015년 교육부, 내무부 및 교통부에 대한 연방자금은 최대 950억 달러였다 (그것도 3개 부서를 합산한 금액이다!). 넓은 의미에서 군대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넘어서 ‘돌아온 탕자’다. 그 무엇으로도 그 탕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탕자는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공화당 삼촌들은 가족예금, 자물쇠, 주식, 석유 등을 언제고 조카에게 넘길 준비가 돼 있다.
  대개 버릇없는 아이들이 그렇듯, 펜타곤은 아주 약간의 ‘용돈’ 삭감도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 각종 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펜타곤 관료와 군 장교들,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위원회 위원들이 징징대는 모습을 보라. 치솟는 국방부 예산을 최소한으로 삭감하는 것이, 마치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시리아의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IS), 중국, 러시아 등과 관련한 과장된 위협에 대해 미 국민들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군다. 사실, 이들에게 진정한 ‘위협’이란 국방부의 의회 ‘부모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무제한적 자유와 풍족한 장난감들을 줄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한 특권에 대해, 막대한 예산으로 국방부 내에서는 상급 간부가 믿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는 관료주의가 팽배해있다. 9.11 이후, 3성, 4성 장군 및 해군 장성에 대한 의회 승인빈도가 1성, 2성 장군들보다 두 배 증가했다. 너무 많은 장성들이 너무 적은 전투 숙소를 차지하려고 하다 보니, 중상모략과 아부가 난무한다. 실제로, 장성들은 전투와 무관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온갖 배지와 리본들로 뒤덮인 제복을 입는데, 마치 호사스러운 옷차림을 한 옛소련 총리들이나 허구 속 루리타니아(3) 왕국 근위대 복장을 한 육군원수를 보는 듯하다. 
  그 사이, 간부들의 급격한 증가는 예산 증가로 이어졌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전투작전이 공식 종료된 이후 다소 줄었음에도, 미국의 국방 예산은 미국 다음으로 지출이 많은 상위 7개 국가의 군 예산을 합친 금액보다 많다(오바마 대통령은 상위 8개 국가의 합보다 많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 중 4개국(프랑스, 독일, 영국 및 사우디아라비아)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목록 내 유일한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보다 훨씬 적게 지출하고 있다.
  장난감과 관련해서, 군과 그 역성을 들어주는 의원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이들은 비싼 장난감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 현재 가장 인기있는 장난감은 제 기능을 다 못하는 최신예 F-35 스텔스전투기다. 사용되는 동안 1조 5천억 달러(그렇다, 지금 읽은 숫자가 맞다)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 말고도 미국의 핵무기를 ‘현대화’하는데 앞으로 30년간 수조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핵무기를 없애겠다고 했다). 공군의 신규 폭격기는 인수 예상 비용만 (경비 초과도 하기 전에) 벌써 1천억 달러에 달한다. 리스트는 계속 이어지지만 당신은 그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 

 

사과할 줄 모르는 뻔뻔한 펜타곤
 
  부자병 진단을 확실히 하려면 넘치는 칭찬과 용돈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총체적 무능력이다. 이는 카우치가 너무나 사랑받는 아들이라서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부자병 변호에 있어서 가장 역겨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카우치인 펜타곤과 미군을 생각해보자. 아무리 그들이 실수하고, 방탕히 지출하고, 심지어 범죄까지 저질러도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는 수렁에 빠져있다. IS는 날로 세력확장 중이다. 미군의 막대한 비용으로 훈련하고 무기를 갖춘 외국군대들이 계속 사라진다. 병원건물이 ‘실수로’ 파괴된다. 결혼식 피로연이 ‘실수로’ 망가진다. 고문(전쟁범죄)이 현장에서 자행된다. 수감자들이 학대받는다. 이에 대해 고위 지휘관 중 책임을 진 이가 있었던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내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을 진 재니스 카핀스키 준장 외에는 없다. 
   펜타곤은 오랜 조사 끝에 방아쇠를 당겼거나, 폭탄을 떨어뜨렸거나, 수감자들을 학대한 몇몇 개인들에게 가끔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한 펜타곤 장성들과 고위 간부들은 어떤 종류의 책임이나 처벌도 받지 않는다. 2007년 폴 잉글링 중령이 미군에서는 “총을 잃어버린 이등병이 전쟁에서 진 장군보다 더 큰 뒷감당을 해야 한다”고 회고한 이유다. 실제로 군이 목표달성을 못해도, 전장에서의 성과가 부족해도, 군은 계속 돈, 자원, 칭찬 등을 받고 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1월 28일 아이오와에서 열린 공화당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생각해보라. 젭 부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군대의 “배를 가르고 있다”고 비유하며 공격했다. 테드 크루즈와 마르코 루비오도 이에 열성적으로 동조하며 “급격히 저하된 군대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공화당 후보들(랜드 폴을 제외하고)이 가세해 국방비의 대폭증가와 지역 사령관들이 전장에서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권한을 주도록 ‘교전규칙 완화’를 요구했다. 정부 변호사들에 의해 강화된 규칙 때문에 이들은 “미국의 전사들이 팔 하나를 등에 묶은 채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군대를 옭아맨 이 거대한 매듭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이 바로 최고변호사,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국가채무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마이크  멀렌 전 미 합참의장은 미국이 직면한 최고의 위협은 ‘국가 채무’라고 했다. 크리스 크리스티는 토론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삭감할 연방 프로그램을 묻자, ‘가족계획협회’라고 답했다. 이 단체의 한 해 지출은 5억 달러로,  F-35전투기 두 대에 불과하다(군은 이 전투기를 2천 대 이상 구입하길 원한다).
  탕자에게 또 돈을 퍼주는 일은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광산에서 목숨을 잃은 펜실베니아 광부의 아들이자 한국전쟁 참전 용사, 전 펜실베니아 주 부관참모였던 제럴드 세이저 육군소장의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다. 9.11사태 이전에 예산이 넉넉하지 못하던 때에도, 상급지휘관들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세이저 장군의 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돈이 없다. 이제 생각할 때다.”

  

 카우치의 엄마처럼 어리석지 않다.


  펜타곤이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군대와의 관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선 카우치의 엄마처럼 행동해왔다. 비뚤어진 사랑으로 아들을 심판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카우치 엄마처럼 어리석지 않다. 아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와 미군의 관계에서도 유사점이 있다. 너무 많은 적자와 실패, 죽음과 혼란을 야기한 행동으로 가득한 성적표를 무시하면 안 된다. 군이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용돈을 삭감하는 것(간부들이 바로 앉아 집중하도록, 심지어는 생각하도록 만드는 방법), 지휘관들에게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그리고 칭찬을 자제하는 것이다. 군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이끄는 군대가 역사가 시작된 이후 최강의 군대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과 우리도 그 사실을 인지할 때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5620
 


글·/ 윌리엄 J. 어스토어 William J. Astore
전역한 미공군중령으로 톰디스패치(TomDispatch)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브레이싱 뷰스(Bracing Views)에서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풍요를 뜻하는 ‘Affluence’와 유행성 독감을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어. 1997년 방영된 PBS 다큐멘터리 <어플루엔자Affluenza>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흔히 ‘부자병’으로 불린다.
(2)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
(3) Ruritania, 앤서니 호프(Anthony Hope)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부 유럽 국가에 위치한 가공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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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이가 덫을 건드렸다면…,

아파트 놀이터 옆에 덫, 이번엔 너구리가 걸렸지만

김봉균 2016. 03. 15
조회수 1406 추천수 0
 

어린이놀이터 옆 밀렵도구 창애 설치, 너구리는 발 절단 뒤 무사
만일 아이가 덫을 건드렸다면…, 동물 혐오자의 무차별 폭력 섬뜩

 
ap0-1.jpg» 어린이놀이터 지척에 설치된 덫(창애, 붉은 원). 이 덫에 너구리가 걸려 있었다.

 
눈이 내리던 2월의 마지막 날, 목소리가 앳된 초등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의 소년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어떤 동물이 덫에 걸려있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덫이? 설마 그냥 어떤 구조물에 걸린 거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현장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정말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원 산책로 바로 옆에서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ap1.jpg» 덫(창애)에 앞다리가 걸린 채 고통스러워 하던 너구리의 모습.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너구리가 덫에 걸려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욱 무서웠던 건 이곳이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와 학교, 관공서, 큰 규모의 유치원도 자리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도 위치해 있었죠. 만약 어린아이가 산책로 근처의 풀밭에서 놀다가 이 덫에 걸리기라도 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현재 이런 덫이 어디에 얼마나 더 설치되어 있는지 파악되지 않아 그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아파트단지의 공원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자유로이 이용하는 장소여서 그 위험성은 더욱 높을 수밖에요. 
 
ap2.jpg» 덫이 설치되어 있는 위치는 어린이들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ap3.jpg» 바로 옆에는 놀이터가, 불과 200m 근처에는 큰 규모의 유치원이 위치해 있습니다.
 
덫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포획 틀이나 올무 등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덫이 바로 ‘창애’입니다. 창애는 동물이 덫의 일부분을 밟으면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날카로운 톱니 부분이 콱! 하고 맞물려 동물의 신체를 물게 되는 구조의 덫입니다. 
 
이 덫에 동물이 걸리면 피부와 근육의 손상, 골절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의 발목이 이 덫에 걸렸다면 어찌되었을까요? 골절 등의 큰 상처가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덫은 누구나 쉽게 구매해 설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의 소지 또한 높은 상황입니다. 사람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창애가 ‘쥐덫’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니까요.
 
ap4.jpg» 추운 겨울, 굶주림에 지친 너구리가 사람의 거주지 주변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헤메고 있었고, 북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덫 근처에 다가왔을 겁니다.
 
보통 동물이 이러한 덫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더 큰 상처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발버둥치면 칠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치료도 어려워지죠. 또 빼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ap5.jpg» 덫에 걸려 다리가 절단된 너구리의 모습.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너구리는 상당히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발가락의 일부만 덫에 걸려 있었고, 크게 발버둥치거나 물어뜯지 않아 상처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구조 이후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좌측 발가락에 약간의 폐쇄골절이 있었고 피부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역시 기존에 덫에 걸린 다른 개체들과 비교한다면 천만다행인 수준이었죠. 
 
ap6.jpg» 덫에 걸렸던 부위의 검사와 치료를 하는 모습. 
 
ap7.jpg» 좌측 발가락뼈에 골절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아파트 단지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덫을 설치해놓았을까요? 이런 곳에서 야생동물을 밀렵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최근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유기동물이나 길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혐오하는 마음에서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최근 뉴스만 봐도 독극물을 넣은 먹이를 이용해 길 위의 생명을 죽이거나 길고양이한테 화살을 쏘기도 하고, 길고양이에 밥을 주는 일명 ‘캣맘’이 폭행을 당하는 등의 동물혐오에 따른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p8.jpg» 바로 여기가 덫이 설치되어있던 장소입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 설치된 덫은 그 누구에게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리 길 위의 다른 생명이 불편하고 혐오스럽다 하더라도 어찌 이런 방법까지 선택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덫에 걸린 동물이 겪을 고통은 전혀 생각지 않았을 테죠. 
 
그렇다면 동물도 동물이지만, 만약 이 지역 주민이나 어린이가 덫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지도 생각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면 아무렴 어때 하고 개의치 않았던 걸까요?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지금 너무도 끔찍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와 같은 시간, 장소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셈입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생명을 앗아가는 것도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니겠지요.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ap9.jpg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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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만이 해법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만이 해법<칼럼>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유영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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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5  11: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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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반도 정세는 칼을 뽑고 활시위를 당긴 상황으로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말이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한국 배치 협의, 북의 4차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와 각국의 매우 강도 높은 대북 제재, 남북 간의 군 통신선마저 끊긴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노골화한 역대 최대의 한미연합 키리졸브/독수리연습, 이에 대응한 북의 고강도 위협과 무장력 과시.
한반도를 둘러싼 대결과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뒤덮인 위기 상황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 평화의 햇살 한 자락이 비치고 있다. 바로 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 동시병행 추진론이다. 북의 4차 핵실험 직전, 북미 양국이 이에 관한 초보적 접촉을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공식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 추진을 제안했다. 이른바 ‘왕이 이니셔티브’다.

주목되는 점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정부당국자들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최소한 이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최근 일부 미국 정부 당국자들의 한반도 비핵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을 곧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 추진론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사실 왕이 이니셔티브의 기초는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마련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정상화, 경제 에너지 협력,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동북아 평화안보협력체 논의에 관한 실무그룹을 만들어 이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 그것이다.

‘왕이 이니셔티브’가 아니라 ‘평통사 이니셔티브’

평통사는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의 정세를 반영하여 한반도 평화협정(안)을 만들고 2008년 초에 이를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협정실현운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했다. 그 핵심은 한반도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연동하여 3년 내에 해결하는 내용으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미 양국의 핵심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북핵 포기를 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담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 병행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유일한 한반도 문제의 해법이라는 인식의 반영이다. 9.19공동성명을 구체화하고 진전시킨 내용이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론’은 사실 ‘왕이 이니셔티브’가 제안되기 9년 전에 평통사가 제기한 것으로 ‘평통사 이니셔티브’라 할 만 하다.

선 비핵화론은 9.19공동성명에 따라 북한도 참여하여 추진되었던 것으로, 2008년 12월 한미일 당국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북핵 검증 요구로 6자회담이 파탄나면서 실패했다. 이 방안은 지난 경험으로 볼 때 북의 일방적 핵 포기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공정하고 위험하다.

선 평화협정론은 한미일 당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없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다. 이는 실천적으로 평화협정과 통일을 무한정 미루는 반면, 미국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빌미로 자신의 패권을 영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의 이익에 반한다.

이런 점에서 “비핵화가 없다면, 평화협정도 없다. 평화협정이 없다면, 다시 말해 북한의 우려를 포함해 당사국들의 정당한 우려를 해소할 수 없다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은 적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왕 부장은 미국 측에서 ‘정식 제안하지 않았다'거나 '좀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유보적 반응이 나오자, “다음 단계로, 우리는 이 구상을 다듬어 실행 가능한 구체적 방안을 도출할 것이다. 중국은 언제든 각국의 의견의 청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이와 아울러 왕 부장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270호는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각항 제재조치를 착실히 이행함으로써 조선 핵무기 발전을 결연히 저지하되 조선 주민의 민생과 인도적 요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정세 긴장을 고조시킬 행동을 피하고 6자회담으로 복귀해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이 결의의 중요한 내용이며, 안보리 이사국들이 승낙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의 타당성과 현실성 알려야

문제는 제재와 대결 국면을 조속히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당면해서는 키리졸브/독수리연습으로 인한 전쟁위기가 군사적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적 과제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북한 붕괴에 가장 앞장서 날뛰는 박근혜 정부를 4.13총선에서 심판하여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에 대한 방해를 제어해야 할 것이다.

대결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고 북미대화, 남북대화, 6자회담 등 각급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 병행으로 추진하는 것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국민대중에게 널리 확산하는 일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이들의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과제임은 물론이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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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 통신자료 무차별 조회…정보수집 이유 몰라

 

대법 “통신자료제공 책임, 수사기관에”…시민단체 “사례 모아 공동대응 할 것”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최근 국회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이 일명 ‘국민감시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와 맞물려 온라인상에는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자신의 통신자료를 ‘무단 열람했다’는 성토가 잇따르며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일반 시민은 물론, 국회의원, 변호사, 교수, 언론인 등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지난 9일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자신의 통신자료를 들여다봤다며 시민들에게도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를 떼어보라’고 권유한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신사에 확인을 요청, 수사기관이 자신의 통신자료를 요청해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한 이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원과 검찰이 선거홍보용으로 지난해 10월 새로 가입했고, 홍보문자 발송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휴대전화 통신기록도 세차례나 들여다봤다”면서 “명백한 정치사찰 아니냐”고 비판했다.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테러범도 아닌 저의 통신자료는 왜 가져갔냐”면서 “지금도 법원의 영장도 없이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가져가는데,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도 “수사기관으로부터 통신자료 제공요청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며 “작년 11월 수서경찰서가 요청했는데 전혀 짐작이 안 간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자료요청이 있었는지. 나는 지난 10년간 오로지 학교 안에서만 있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지난해 5월18일에 종로경찰서가 자신의 통신자료를 통신사에 요청한 사실을 확인, “작년 5월18일, 그 무렵 나는 변호인 자격으로 김혜진 416연대 상임위원의 종로경찰서 경찰 조사에 참여했었다”며 왜 경찰이 자신의 정보를 수집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용마 MBC해직 기자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며 “작년 한 해 동안 관악경찰서와 서울경찰청이 불과 4개월 사이에 번갈아가며 내 통신 내역을 조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정도로 쉽게 들여다볼 정도면) ‘테러방지법’을 굳이 통과시킬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닌가?”라며 “이런 무도하고 불법적인 정권의 말로, 반드시 지켜볼 것”이라고 분노했다.

   

‘go발뉴스’ 취재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을 요청한 결과,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본 기자의 통신자료를 요청해 제공 받았음을 확인했다.

   
   

남대문경찰서에 통신자료 제공 요청 이유를 묻자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1차 민중총궐기 관련, 민주노총 관계자 내사 과정에서 해당 관계자와 통화한 내역이 있어 가입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이 언급한 민주노총 관계자의 전화번호가 본 기자의 휴대전화에 저장만 되어있을 뿐, 당시 그와 통화나 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역은 없다.

서울지방경찰청에도 같은 방법으로 관련 내용을 문의해봤다. 심지어 해당 기관은 왜 본 기자의 통신자료를 제공 받았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며, 관련 기록도 없다며 오히려 의아해했다.

이처럼 수사당국의 무차별적 개인 통신자료 수집 사례가 잇따르자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단체는 검경, 국정원이 수집해간 통신자료 수집 사례들을 모아 공동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참여연대는 “자신이 가입한 통신사에 정보제공 현황을 확인하고 결과를 알려주면 통신자료제공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손배소송, 헌법소원, 관련 입법 활동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 신청하기>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통신자료제공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대법원은 통신자료제공의 책임은 수사기관이 가진다고 하였고 그 수사기관의 책임을 묻는 재판은 최소한 제공이유를 밝혀야할 충분한 공익이 된다”며 “재판에서는 질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왜 정보요청을 했는지는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14일 경찰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수집된 통신자료는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작고, 수사의 ‘밀행성’ 등을 고려할 때 사유공개는 맞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청장은 “통신자료라는 건 가입자 이름과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비교적 낮은 수준의 개인 정보”라면서 “수량이 많고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적은 만큼 경찰의 관리 아래 두도록 한 게(개인정보법 등의) 입법 취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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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도 킬리만자로도 그냥 지나쳤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3/16 09:12
  • 수정일
    2016/03/16 09:1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길바닥 여행자의 '실시간 여행기'] 여행 512일차 탄자니아, 6번의 만남과 7번의 헤어짐

16.03.16 08:18l최종 업데이트 16.03.16 08:18l

 

2014년 9월 21일 한국을 떠나 지금도 세계여행 중인 김동범씨의 '실시간 여행기'를 싣습니다. 현지에서 보내온 생생한 여행기를 앞으로 계속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므완자(Mwanza)는 여행자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김동범
탄자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므완자(Mwanza)는 여행자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애초에 모시(Moshi)까지 한 번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들린 곳이라 크게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긴 하지만 정말 볼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조금 신기했던 것이라면 곳곳에 힌두교 사원이 있다는 것 정도랄까.

정신 없는 시장을 지나 므완자의 중심지로 보이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달리 볼거리가 없어 빅토리아 호수를 향해 걸었다. 빅토리아 호수는 아프리카 최대 호수로 그 면적이 한반도의 40%, 남한의 70%에 해당한다고 한다. 워낙 거대한 호수라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3국의 국경이 맞대고 있다. 케냐에 있을 때도, 우간다에 있을 때도 보지 못했던 이 호수를 탄자니아에 와서야 보게 되었다.

호수 앞에는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므완자의 유일한 구경거리가 아닐까 싶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여기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어 아무래도 외국인인 나보다 카메라에 관심이 있었나 보다. 내 카메라를 보더니 아주 좋은 거라며 칭찬을 했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사진을 같이 찍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다미씨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가 모시로 같았기 때문에 버스를 예약하러 갔다. 탄자니아에는 버스 회사가 너무 많아 고르기가 정말 어렵다. 몇 군데 돌아다니던 도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이사밀로 버스(Isamilo Bus)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상하게도 탄자니아에서는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적이 많다. 심지어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사람과도 말이다. 버스의 출발 시간을 물어보는 과정에서도 므완자에서 12시에 출발해 모시에는 8시에 도착한다고 답변을 들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면 모시까지 8시간 만에 가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 차례 확인을 한 끝에야 탄자니아 시간으로 이야기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에티오피아처럼 여기서도 따로 현지에서 사용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무튼 힘들게 표를 구입했다. 다미씨는 므완자에 오늘 도착했는데 내일 떠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나와는 달리 내일 모레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벌어진 실랑이... 숙소 창문으로 가방 훔쳐간 도둑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버스라 거의 잠을 못 자고 일어났다.ⓒ 김동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버스라 거의 잠을 못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 모시로 이동하는 동안 정신을 잃었다. 모시에 도착했을 때는 16시간이 지난 오후 8시였다. 킬리만자로로 유명한 이곳도 어두운 건 마찬가지였다. 물론 근처에 있던 아루샤(Arusha)보다는 작은 도시이기도 했지만. 배가 너무 고파 얼른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한 후 근처에 있던 현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므완자까지만 해도 덥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모시로 이동하니 날씨가 굉장히 더웠다. 그리고 무슬림이 많이 보였다. 아마 이 근처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는 것 같다.

모시에 오면 뒷동산을 보는 것처럼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킬리만자로의 흔적도 볼 수 없었는데 구름이 거의 없던 날 아침, 멀리서 희미하게 킬리만자로 산이 드러났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킬리만자로를 그냥 그렇게 바라봤다. 사실 모시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목적이 있다. 킬리만자로를 가거나, 세렝게티 사파리를 가거나. 그러나 난 둘 다 하지 않았다. 별로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도 하나의 이유였다.
킬리만자로.ⓒ 김동범
모시로 이동하니 날씨가 굉장히 더웠다. 그리고 무슬림이 많이 보였다.ⓒ 김동범
확실히 모시에는 관광객이 자주 보였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괜찮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킬리만자로도, 세렝게티도 가지 않는 나에게는 그저 작은 동네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내가 도착한 다음날 다미씨 합류) 별다른 일정도 없이 밥 먹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모시에서 지내는 동안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거나 길을 건널 때 차가 먼저 멈추는 것을 보고 안심했건만 도둑을 만났다. 그것도 오전 3시에.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 도미토리의 창문은 외부로 향해 있는데 세상에, 도둑은 그 창문을 통해 다미씨 가방을 훔쳐가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이어폰을 꼽고 사진을 정리하고 있어서 비명 소리를 못 들었는데, 창문 너머에서 뻗은 손에 자신의 가방이 들려있다면 얼마나 놀랄까. 

아무튼 창문을 사이로 두고 가방을 붙잡은 채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하고, 도둑은 오로지 작은 가방 하나만 가지고 갔다. 나보다 여행을 더 많이 다녀 별의별 일을 다 겪어서인지 아니면 정신이 없어서인지 다미씨는 도둑과의 사투(?)를 이어갔다. 그런데 무서움보다도 황당함이 앞섰다고 했다. 창문이 있는 바깥에는 약간의 도랑도 있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래에 있는 가방을 잡을 수 없거니와 철창이 있어 도구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도둑은 주인에게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가방을 놓지 않는 뻔뻔함도 보였다. 정말 다행인 건 훔쳐간 작은 가방에는 중요 물품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 바로 옆에서 도둑이 버리고 간 물품을 회수할 수 있었다.
도둑을 만났다. 그것도 새벽 3시에.ⓒ 김동범
모시에서 3일간 지낸 후 이번에도 나 혼자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으로 이동했다. 역시 버스를 예약할 때 벌떼처럼 달려드는 삐끼를 물리치느라 힘들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탄자니아의 수도인 줄로 알았던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였다. 잔지바르(Zanzibar)로 가는 마지막 페리가 4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황급히 달라달라를 타고 시내로 간 뒤 버스를 타고, 다시 보다보다(오토바이 택시)까지 타고 페리 터미널로 갔건만 페리는 이미 떠났다. 사실 마지막 페리는 3시 반에 있어 어차피 제 시간에 왔어도 타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이동하기로 하고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 YMCA로 갔다. 여기에서 프랑스인과 아일랜드인을 만나 같이 맥주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불과 며칠 전 다르에스살람에서 납치(주로 가짜 택시에 의한)를 당한 호주인과 독일인의 이야기였다. 

사실 동아프리카에서 위험한 도시로 유명한 나이로비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다르에스살람도 여행자 사이에서 위험한 도시로 악명이 높다. 나 역시 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다른 여행자로부터, 그것도 아주 최근에 당한 여행자의 소식을 들으니 괜히 쫄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걱정이 지나친 것도 그리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조심하지 않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이집트에서부터 6번째 다시 만난 여행자
페리를 타고 잔지바르로 이동했다.ⓒ 김동범
잔지바르, 특히 스톤타운의 분위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동범
다음날 아침 페리를 타고 잔지바르로 이동했다. 거금 35달러를 줘서 그런지 페리는 굉장히 깨끗하고 빨랐다. 그리고 흔들림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잔지바르, 특히 스톤타운의 분위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무슬림이 90% 이상이라 종교적인 차이도 있을 테고, 돌로 만들어진 하얀 집 사이에 형성된 골목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애초에 잔지바르는 다른 나라(탄자니아는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쳐져서 생긴 연방국가)이기도 했고. 인종도 아랍과 인도계가 섞여있으니 탄자니아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거기에 바다가 있는 섬이라 휴양을 즐기거나 카이트 서핑을 즐기기 위해 찾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곳이라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아프리카에서도 여행자는 항상 만나지만 지난 4개월이 동안 가장 많은 외국인 여행자를 여기서 본 것 같다.

고급스러운 호텔이 많았다. 확실히 숙박비 부담은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올라갔다. 가장 저렴하다는 숙소도 보통 15달러 정도는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먹는 것만큼은 부담이 없었는데 현지 식당이나 거리에서 끼니를 때우면 전혀 비싸지 않았다. 여행자들이 찾는 식당은 최소 1만 2000실링(약 6700원) 이상이었지만 내가 잔지바르에 있는 동안에는 보통 2500~4000실링으로 밥을 먹었다.

바다로 가봤다. 멀리서 봤을 때는 초록빛에 가까운 바다색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정도로 깨끗한 바다는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그런지 기분이 상쾌했다. 생각해 보니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후 처음 보는 바다였다. 그때는 이런 해변이 아니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처음이나 다름 없다고 봐야 할까.
형근이와 진화는 이집트에서부터 무려 6번째 만남이었다.ⓒ 김동범
저녁에는 드디어 형근이와 진화를 만났다. 여행하다 보면 비슷한 경로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는 많으나 이렇게 여러 번 만나는 건 흔치 않다. 형근이와 진화는 이집트에서부터 무려 6번째 만남이었다. 물론 이들은 어떻게 자전거 여행자보다 느릴 수 있냐며 구박을 주긴 했지만. 아무튼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여행자 시철씨와 석현씨도 만났다. 우리는 수다와 술을 나누며 자정을 가볍게 넘겼다.

잔지바르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모두 늘어졌다. 아침을 먹고 쉬고, 점심 먹고 쉬고, 바닷가 앞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고. 그러다가 저녁에는 술 마시며 달렸다.

여행자가 많아도 좁은 골목에서 배어 나오는 그들만의 분위기는 그대로다. 항구 근처에 여행자를 위한 야시장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아 모르겠고, 우리는 항상 잔지바르인들이 가득한 현지 야시장을 애용했다. 원래 이 자리는 낮에도 시장인데 밤이 되면 먹거리를 파는 곳으로 바뀐다.

싸고 맛있는 게 많다. 밥을 먹는다면 1500실링에도 해결할 수 있고, 돈을 조금 더 들여서 생선이나 탄자니아 피자 등 여러 음식을 사서 먹을 수도 있다. 야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냄새와 연기로 시선을 끄는 꼬치다. 어쨌든 먹을 것이 많으니 신났다. 탄자니아 피자(잔지바르에서는 잔지바르 피자라고 부름)를 기다리는 동안 시원한 사탕수수 음료를 마셨다.
잔지바르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모두 늘어졌다.ⓒ 김동범
우리는 항상 잔지바르인들이 가득한 현지 야시장을 애용했다. ⓒ 김동범
잔지바르에서는 하루가 참 단순했다. 그래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니 기분이 들뜨고 즐거웠다. 잔지바르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 걱정했는데 먹는 것만큼은 저렴했다. 아침은 숙소에서 주니까 걱정이 없었고, 점심은 주로 2500실링으로 왈리나시(Wali Nasi)를 먹었다. 신기하게도 왈리나시는 약간 김치찌개 맛이 났다.

며칠간 지냈어도 스톤타운의 골목길은 늘 헷갈렸다. 탄자니아로 넘어온 이후 날씨가 덥다고 느꼈지만 잔지바르에서는 더했다. 게다가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짠바람은 어찌나 끈적이던지 하루에 샤워를 몇 번을 해도 찝찝함이 느껴졌다.

스톤타운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바다 옆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게 역시 하루 중요한 일과였다. 더위도 식힐 겸 바다로 뛰어 들었다. 잔지바르에 있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고 자부하는데 정말 그랬나 보다. 기세 좋게 바다에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물도 아니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왔으니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경찰서까지 가서 휴대폰을 되찾고, 케냐에서는 도둑한테 뺏길 뻔한 적이 있어도 내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싶었는데 결국에는 내 부주의로 고장이 나고 말았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스톤타운의 골목길은 늘 헷갈렸다.ⓒ 김동범
더위도 식힐 겸 바다로 뛰어 들었는데...ⓒ 김동범
그런데 정말 다행이랄까. 상심하고 있던 나에게 석현씨가 남는 여분의 휴대폰이 있으니 주겠다고 했다. 사실 휴대폰이야 오래된 거라 고장이 나도 상관 없었지만 요즘에는 휴대폰이 없으면 여행하는데 엄청 불편해 그냥 있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사양은 낮아도 최근에 산 휴대폰을 선뜻 준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휴대폰 때문에 잠시 멘붕에 빠졌지만 주변 경치와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며 잊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다 내 잘못인 걸.

저녁이 되자 해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축구를 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바라봤지만 유난히 관심을 보이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시철씨였다. 시철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해왔고,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부상으로 축구를 계속 할 수 없어 꿈을 접어야 했다고. 

이런 사연을 가진 시철씨가 탄자니아에 있을 때 아주 특별한 일을 한 적이 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구하던 도중 호스트가 축구팀을 운영하는 것을 알고 숙식을 제공해주면 축구 코치를 하겠다고 자처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70명이나 되는 축구팀에 공이 4개 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시철씨는 페이스북에서 축구공을 구입하기 위한 기금마련에 나섰고 짧은 기간이지만 173명이나 참여할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덕분에 축구공 30개는 물론이고 조끼와 보호대 등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당 내용은 최근 기사로도 다뤄졌다.

해는 서서히 저물었지만 뜨겁게 달궈진 대지는 식을 줄 몰랐다. 밤에도 더운 건 마찬가지였고, 여전히 끈적였다.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정박한 배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곤 했다.
잔지바르ⓒ 김동범
배 위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들.ⓒ 김동범
말라위 대사관 옆 북한 대사관... 자꾸 눈길이 갔다

잔지바르에서 만나 3일간 함께 지냈던 시철씨가 가장 먼저 떠났다. 시철씨는 대부분의 여행자와는 달리 모로코에서 잠비아로 날아와 북쪽으로 가고 있어, 아프리카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우리는 한 번씩 안아주며 떠나는 자의 행운을 기원했다.

오후에는 스톤타운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키짐카지(Kizimkazi)에 갔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남쪽 바다를 보기 위해 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곳은 돌고래를 보기 위한 장소로 유명했다. 딱히 이곳에서 할 것도 없고, 돌고래 보러 가자고 꼬시는 현지인들의 말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배를 타기로 결정했다.

나름 돌고래 투어인데 돌고래는커녕 물고기 한 마리도 보기 힘들었다. 대신 어마어마하게 몰아치는 파도에 작은 보트는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는데도 파도가 움직임에 따라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과 없는 돌고래 투어를 마치고 스톤타운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난데 없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달라달라가 있으니 오후 4시 반에 있으니 택시를 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택시비는 뻔했기에 우리는 절대 탈 수 없다고, 게다가 너희들을 믿고 투어를 했으니 다른 방법을 알려달라 했다. 결국 그들은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우리를 데려줬고,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면 차를 탈 수 있을 거라 했다.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했다.ⓒ 김동범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으로 차를 기다리는데 사람과 짐을 실은 트럭이 우리 앞에 멈췄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트럭 뒤에 올라탔다. 늦은 시각에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며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싣고 돈을 버는가 보다. 자리는 좁고 불편했으나 바람을 맞으며 지나치는 작은 마을을 바라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난 아프리카에 있구나, 라는 쓸데 없는 감상이었다고 할까.

잔지바르에서 5일째 되던 날, 형근과 진화는 다르에스살람으로 떠났다. 곧장 잠비아로 가서 다시 자전거를 탈 이들과는 달리 나는 말라위로 갈 예정이라 앞으로 다시 만나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형, 남아공에서 만나요!"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 6번의 만남과 7번의 헤어짐이었다.

잔지바르가 큰 섬은 아니지만 5일 동안 스톤타운에(Stone Town)만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모두 떠나고 혼자가 되자 난 잔지바르의 동쪽에 있는 파제(Paje)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내릴 곳을 지나쳐 핑궤(Pingwe)까지 가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핑궤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으니 오히려 잘 됐다고 해야 할까. 핑궤 바다색은 '초록색'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다. 저 먼 바다에서 오는 짙은 물결은 해변에 도달하면 옅은 색깔로 변해 여러 개의 층을 이루었다.
핑궤에서 유명한 바위 위에 있는 식당.ⓒ 김동범
핑궤에는 꽤 유명한 장소가 있는데 바로 바위 위에 있는 식당이다. 사실 해변과 매우 가까워 걸어가도 무방하지만 손님을 태우는 보트가 있다. 보트를 타면 5초 만에 도착한다는 게 조금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식당의 가격이다. 가장 싼 샐러드가 18달러인 것을 보고 메뉴판을 조용히 내려놨다. 물론 경치는 나름 괜찮았지만 이런 비싼 식당에 머무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웠다.

오는 도중에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 둘과 같이 사진을 찍고 원래 목적지인 파제로 돌아갔다. 우리는 파제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역시 물가가 비싼 곳답게 적당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허름한 숙소를 깎고, 깎아 7달러에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파제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김치말이국수를 먹었다. 이미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 김치말이국수는 일본인이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워낙 한국 음식을 좋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그 일본인은 볼 수도 없었다.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가격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비쌌다. 그것도 최근까지 1만 5000실링이었는데 지금은 1만 7000실링이다.
외국인을 위한 리조트나 바가 있어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김동범
카이트 서핑.ⓒ 김동범
분명 이곳은 시골마을인데 바닷가로 가면 외국인을 위한 리조트나 바가 있어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실제로 파제는 완전히 외국인을 위한 바다였다.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카이트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해변을 걷거나 일광욕을 하는 사람은 전부 외국인이었다.

카이트 서핑을 하려면 바람이 항상 강하게 불어오는 곳에서만 가능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레저 스포츠가 아닌데 파제에서는 그 조건이 충족되나 보다. 이런 장소는 세계에서도 몇 군데 없다고 한다. 아무튼 직접 할 수는 없으니 남들이 하는 것을 구경만 했는데 자유자재로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공중에서 회전을 하며 날아갈 정도로 잘 탄다. 당연히 이런 곳이라면 외국인 물가가 형성돼 있는 법. 다행히 마을에는 현지인들을 위한 식당이 몇 군데 있고, 노점이 있어 저렴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하루는 파제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잠비아니(Jambinai)로 가봤다. 일단 가볍게 걷다가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했는데 원래 우리 목적지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태워줬다. 이곳도 역시 바닷가에만 외국인을 위한 근사한 리조트가 있을 뿐, 특별한 풍경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파제보다 더 한산했고, 바다도 덜 예뻤다. 그래서 잠비아니 주변을 걷다가 밥을 먹고 파제로 돌아왔다.

파제에서 3일간 지낸 후 스톤타운으로 돌아왔다. 원래 잔지바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능귀(Nungwi)도 가보려 했으나 바다는 다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다르에스살람으로 돌아가 타자라 열차를 타야 할 것 같았다. 말라위 비자도 받아야 했고. 다르에스살람으로 돌아갈 때는 플라잉 홀스(Flying Horse) 페리를 탔다. 이 페리 역시 외국인에게 두 배 이상 비싸게 받는데 그럼에도 킬리만자로보다는 싼 20달러였다. 대신 하루에 딱 한 대 있는 페리는 오후 9시에 출발해 그 다음날 오전 6시에 도착한다.

다르에스살람으로 돌아오니 다시 다미씨를 만나게 되었고,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 병길씨도 만나게 되었다. 병길씨는 잔지바르를 갈 예정이었는데 마침 시간이 남아 나와 함께 말라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기로 했다. 찾아가는 방법이 복잡할 줄 알았던 말라위 대사관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자도 당일 바로 받았다. 다만 나중에 듣기로는 말라위 비자는 국경에서 바로 받는 게 75달러로 더 싸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여러 사람들의 정보로는 국경에서 비자 받는 게 간혹 힘들 수도 있다고 해서 일부러 대사관까지 찾아갔는데 오히려 비싸게 100달러나 내고 받았으니 속이 쓰렸다.
말라위 대사관 바로 옆 북한 대사관.ⓒ 김동범
말라위 대사관 바로 옆에는 놀랍게도 북한 대사관이 있었다. 어쩌면 한국 사람에게는 말라위보다 더 신기하고 관심이 가기 마련인 북한 대사관이 보여 기분이 묘했다. 혹시 이곳에서 기웃거리면 북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상상을 해봤지만 높은 담장과 살짝 휘날리는 어색한 인공기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지만 다르에스살람에서는 굳이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 나와 다미씨는 곧장 타자라 열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타자라(TAZARA:Tanzania Zambia Railway Authority) 열차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무척 유명하다.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연결하는 데다가 국립공원도 지나기 때문에 여러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동물은 본다거나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아무튼 여행자는 대부분 이 열차를 타고 잠비아로 향한다.
타자라(TAZARA:Tanzania Zambia Railway Authority) 열차.ⓒ 김동범
타자라(TAZARA:Tanzania Zambia Railway Authority) 열차.ⓒ 김동범
열차를 타기 며칠 전 전화를 했을 때 이미 1등석은 매진이라 2등석 밖에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조금 좁긴 했지만 2등석도 괜찮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열차는 깨끗했고, 시설도 좋았다. 2등석은 6명이서 한 방을 쓰는데 출발할 때는 탄자니아인과 잠비아인 그리고 전날 숙소에서 만났던 미국인과 함께 했다.

첫날에는 계속 산만 지나쳐 별다른 풍경을 볼 수 없었는데 이틀째가 되자 작은 마을을 자주 보게 되었다. 잠시 멈춘 열차를 향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뛰어왔다.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그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내 입장에서 열차는 너무나 느렸다. 음베야(Mbeya)까지는 점심 때면 도착할 줄 알고 있었는데 2시가 지나고 3시가 지나도 도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쫄쫄 굶은 배를 부여잡고 버티던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음베야에 도착했다. 무려 29시간 만이었다. 음베야 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귀찮게 따라오는 삐끼들과 한바탕 신경질을 부리다 숙소를 잡았다. 음베야는 말라위로 넘어가기 위한 도시 그 이상도 아니었기에 다음날 바로 떠났다. 다만 원래 말라위로 바로 가려다가 다미씨가 투쿠유(Tukuyu)로 간다고 하길래 나도 따라갔다.

음베야에 고작해야 몇 시간 머물러 어떤지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투쿠유가 더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아마 국경과 가깝지 않았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 더 머물렀을 것 같다. 투쿠유에서 하루만 지낸 후 곧바로 말라위 국경으로 향했다.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김동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www.likewind.net/1325)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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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이 보였다.”

 
천안함 항소심 재판이 4월부터 시작됩니다
 
신상철 | 2016-03-15 10:24: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천안함 항소심 재판이 4월부터 시작됩니다

 

 

2014.10.27 오후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524호 천안함 제30차 공판 중,

신상철 : “증인께서는 해군에 근무하신 경력이 22년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16년의 승선경력을 갖고 계신다고 했지요?”

김수길 : “네, 그렇습니다.”

신상철 : “그러면 사격훈련 뿐만아니라 폭뢰(Depth Charge) 투하훈련도 많이 하셨지요?”

김수길 : “네, 많이 했습니다. 1년에 한 번씩은 했습니다.”

신상철 : “증인께서는 최초 사고 순간 ‘쿵’하는 소리 - 그것이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큰 상선이나 (천안함과) 동급의 함정이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고 하셨는데, 폭뢰훈련 때 많이 들었던 폭발음과는 달랐다는 말씀인가요?”

김수길 : “예, 달랐습니다.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로 판단했습니다.”

 


폭뢰(Depth Charge)의 폭발음과도 달랐다

2014년 10월, 제30차 천안함 공판에 증인으로 김수길 전탐상사가 증인석에 섰습니다.  김수길 상사는 최초 사고순간 “쿵~ 하는 충돌음을 들었다”며 “(천안함과) 동급의 함정과 부딪친 것으로 생각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체가 파손된 부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며 “(자신은) 전탐직종이어서 소리에 특히 민감하다”고 덧붙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가 1년에 한번씩은 했다는 폭뢰투하훈련은 초계함이나 구축함이 잠수함을 추적한 후 격파하기 위하여 함미에서 폭뢰(Depth Charge)를 바닷속으로 떨어뜨리며 달리는 훈련을 말하며 폭뢰의 화약량은 통상 어뢰에 비해 1/5~1/7수준에 불과합니다. 

 

폭뢰 투하훈련 장면 / 폭뢰(Depth Charge) 

 

따라서 그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사고순간 들었던 충격음은 폭발음과도 달랐을 뿐만아니라, 크기에 있어서도 폭뢰 폭발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의 증언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천안함에서 보고된 최초의 보고는 '좌초'였으며, 상부에도 '좌초'로 보고했다”고 법정증언한 심승섭 준장(당시 해군 함대사령부 작전처장)의 증언과 함께 어쩌면 천안함 사건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정황증거인 셈입니다.  

김수길 상사는 오후4시~8시 당직이지만 잠시 복수근무(당직인수인계가 끝났지만 잠시 함께 근무를 서 주는 것)를 해주고 8시30분경 전탐실을 나와 원상사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 9시8분경 수면하 침실로 내려와 침대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김수길 상사, “하늘의 별이 보였다.”

사고 당시 김수길 상사가 있었던 공간은 ‘(수면하) 중상사 침실’입니다. 주갑판 아래로 두 번의 데크(갑판)를 더 내려가야 하고 해수면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창문도 없는 구획입니다. 

 

반파된 천안함 함수 / 직격탄을 맞은 중상사침실 / 상부 데크 천정의 멀쩡한 형광등 

 

그런데 김수길 상사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의 별이 보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원래는 폐쇄된 공간이었지만 사고순간 충격에 의해 벽면이 일부가 뜯겨져 나가면서 하늘의 별이 보였던 것이지요. 김상사는 그야말로 생과사의 경계선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폭발의 메카니즘

국방부의 주장은 천안함 하부에서 '350kgTNT의 화약'이 폭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수길 상사가 거주하던 중상사실의 벽면은 화약폭발에 의한 충격파가 벽면을 뜯어버린 것으로 되겠지요. 만약 그랬다면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화약이 폭발하면 일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충격파(Shockwave)이고,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화염(Flame)과 가스(Gas)입니다.

무슨 얘긴고 하면, 폭발로인해 순간적으로 발생한 춛격파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물리적인 손상을 야기시킨 직후, 폭발원점에서 발생한 3000도의 화염이 뒤따라 솟구쳐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화약냄새가 진동하겠지요.

그러네 김수길 상사 뿐만아니라 중상사실에 있었던 어느 누구도 머리카락 한 올 타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화약냄새를 맡지 않았습니다. 벽면이 뜯겨져 나가고 '하늘의 별'이 훤히 보일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한 항소심이 4월부터 시작됩니다.

지난 5년여의 1심재판을 통하여 60여명의 증인이 출석하였고, 가능한 많은 증거들과 자료들이 펼쳐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이제 항소심을 통하여 더욱 더 깊이 있게 파헤쳐보려 합니다. 부디 관심을 잃지마시고 함께 하여 주시길 당부드리며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천안함 관련 글들을 많이 퍼날라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천안함 사건의 실체와 그 구체적 진실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 보신 분들도 그저 분노하시고 삭이시는데 그친다면 진실을 밝히는 길은 더욱 더 요원해 집니다.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보이시면 주변의 지인분들께도 소개하시도 보내어 주셔서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월1만원 CMS후원에 동참해 주십시오.

전투에는 총알이 필요하듯이, 일체의 광고도 없이 오로지 독자님들의 후원에만의존하는 <진실의 길>과 <서프라이즈> 역시 탄약고(^^)가 필요합니다. <월1만원 CMS후원>에 동참해 주시고 주변 분들께도 <월1만원 후원 동참>을 독려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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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로 어두운 세상에 진실을 밝히는 소명에 전력 매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상철 드림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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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고발뉴스 브리핑] 3.15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장호준 목사, ‘朴심판 광고’로 여권 반납 당해…박정희때 이어 악연류효상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3월 17일 열리는 ‘깐죽’ 콘서트 D - 2 
일정, 장소 등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로 확인해 주세요~
https://goo.gl/LMpnto

1. 새누리당의 현역 의원 컷오프 여부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는 비박계 권은희, 홍지만, 주호영 의원 등이 경선에서 배제됐습니다.
이한구 위원장의 '개혁·품위' 대상인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더민주당의 이해찬 공천배제가 힘이 될라나? 거참~

   
▲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제6차 공천결과 브리핑을 마친 후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권은희(대구 북구갑) 홍지만(대구 달서갑) 의원이 14일 공천 탈락했다. 또 서상기(대구 북구을)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의 경우 우선추천지역으로 설정, 전격 컷오프 됐다. <사진제공=뉴시스>

2. 더민주당 전략공천위가 당내 논란이 된 현역 컷오프 지역에 대한 전략공천 권한을 비대위에 넘겼습니다. 
갑작스런 컷오프에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 김종인 비대위 대표 등 지도부에서 책임지고 공천을 하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전략공천위가 전략이 없다는 말씀인지 답답합니다~

3.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등 23개 단수 공천 지역과 19개 경선지역을 확정했습니다.
김한길 의원의 서울 광진갑과 천정배 대표의 광주서을, 박지원 의원의 전남 목포도 단수 공천됐습니다.
다들 광야로 나오셨네... 어떻게 장열하게 전사할 준비는 되셨는지요?

4. 20대 총선을 30일 앞둔 가운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야권연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선거구의 상당수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는 점에서 야권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면 뭐하나... 들은 척을 해야지 말야~

5. 성인 3명 중 1명은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이민자를 편견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뜻하는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50점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국 나가서 받은 설움을 그대로 갚아주는 건 아니겠지요? 더불어 함께... 이게 안 되나?

   
▲ 평택 실종 예비 초등생 故신원영군 암매장 사건의 현장검증이 진행된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의 한 야산에서 피의자 친부 신모씨(38)와 계모 김모씨(38)가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경기지방경찰청 제공, 뉴시스>

6. 경찰이 '평택 원영군 사건'을 포함한 잇단 아동학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아동학대 전담경찰관을 1000여 명 규모로 늘릴 계획입니다.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아동학대 단속을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아동학대 예산이 2015년도보다 26.5%나 삭감된 건 아시는지? 이러니 믿음이 가냐고~

7. 대한항공의 한 부기장이 SNS에 여객기 조종사들이 비행 전 수행하는 절차를 조목조목 짚어보는 글을 올리자 조양호 회장이 '조종사 업무가 그렇게 힘드냐? 개가 웃는다‘는 댓글을 달아 논란입니다.
이에 조종사 노조는 ‘다수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고발을 검토 중입니다.
회장님 업무는 힘드세요? 월급에 비해서 별루 안 힘들어 보이는데... 혹시 개가 웃을지 모르겠다는~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대한항공 부기장 김모씨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조종사 업무가 그렇게 힘드냐'는 취지의 댓글을 달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지출처=페이스북>

8. 변호사와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서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절했다가 신고·적발되는 사례가 5년 만에 13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금을 덜 내려고 소득을 숨겨 차명계좌를 통해 비용을 입금받는 등 온갖 꼼수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라 법을 잘 아니 탈법도 잘하는 모양입니다. 부끄러운 건 모르고?

9. 전국의 도심에 양봉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첨가물 없는 천연 벌꿀을 직접 수확하고, 건강도 챙기고, 재테크도 가능하기 때문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작된 양봉이 이제 수원·대전·대구·창원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꿀 따면 좀 나눠 먹었으면 좋겠다는... 그래야 달달한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10. 국방부는 전군에서 윗몸 일으키기 방식을 개선한 내용이 포함된 '2016년 군 장병 체력검정'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군무원을 포함해 전 장병이 참가하는 체력검정은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펴기, 3㎞ 달리기 등 3개 종목으로 진행됩니다.
별 달고 계신 장군님들도 하시는 거죠? 전군 열외없이 집합~

11. 영화 ‘귀향’이 국내외에서 흥행몰이를 하는 가운데 일본의 대표적 보수 월간지가 의도적인 흠집 내기에 나섰습니다. 
일본의 월간지 '사피오'는 최근 발행한 4월호에서 영화 '귀향'을 집중 분석하며 ‘최악의 반일영화’로 규정했습니다.
이유는 영화 귀향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겁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긴 이 분위기에 뭔 소린들 못할까~

12. 성인 남성은 점점 뚱뚱해지고 여성은 다리가 점점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남성 35~39세의 비만율이 52%로 가장 높았고, 여성은 20대 이상 전 연령대에서 다리 길이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이 먹어도 배 좀 들어가고 다리가 길어지면 좋을 텐데... 그건 아닌가 봅니다~

13. 새 학기마다 반복되는 반장선거가 일부 초등학교 학부모들 사이의 과열로 이른바 ‘선거 과외’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회당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 상당의 수업료까지 지불하는 등 반장선거에 대한 관심이 4.13 총선 못지않으며,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사교육 난립과 의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학원을 안 다녀서 이 모양인가? 사교육이라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14. 남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군부대 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잇따라 9명의 사망 사고가 일어나 군 기강해이가 또다시 수면위로 부상했습니다.
더 이상의 군내 의문사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억울한 죽음은 이제 그만~

15. 중국내 '송중기 상사병' 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중국 공안부는 수천만 명의 소녀들이 '송중기 상사병'에 걸려 위험할 수도 있다며 법률적인 위험까지 경고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줌마들이 난리라던데... 아무튼 ‘반했지 말입니다’

16. 서울시교육청이 신종 촌지로 사용되는 모바일 상품권 수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촌지에 연루된 교사뿐 아니라 학교장 등 관리자도 처벌할 방침입니다.
카카오톡 기프티콘이 새로운 촌지라네요... 이거야 원~

17. 외국에서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는 신문광고를 게재했다가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여권 반납’이 결정된 이는 고 장준하 선생의 3남인 장호준 목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장 목사는 신문에 광고를 계속 싣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박정희대 장준하. 박근혜대 장호준. 안이나 밖이나 입 다물라는 얘기인듯...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 <사진제공=뉴시스>

18. 정부가 ‘인공지능 AI 총괄팀’을 새로 만들어 지난주부터 가동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또 민간기업과 함께 ‘AI 개발 콘트롤타워’를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알파고-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 열풍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책’입니다.
K- 알파고 얘기가 나오더니... 역시 기대에 부응하시는 구만요~ 대단해요~

19. 오늘 15일은 세월호 참사 700일입니다. 
오늘 오후 2시 광화문 416 광장에서는 2주기 추모의 달(3.15~4.16) 공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저녁 7시에는 참사 700일 기획전시 개관 문화제가 열립니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러게요 저도 빨리 진실이 밝혀졌으면 합니다.

20. 블루베리가 노인의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광주시민대책위가 왜곡·오류 초등6 사회 교과서의 폐기를 촉구했답니다.
안보리 제재 후 북한의 중국 정광 수출이 오히려 늘어났답니다.
세무공무원의 돈 받은 경기2청 경찰간부가 긴급체포됐답니다.
육군이 신병에게 ‘4·19 5·18이 북한 간첩의 폭동’이라고 교육했답니다.
국민의당 후보가 ‘정의당 이정미 부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했답니다.

사학개혁 국민운동본부가 사학비리를 비호한 문제로 현역 의원 세분의 낙천을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분은 여러 시민단체의 낙천자 명단에 계속 오르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누군지 궁금하시다고요?
오늘 11시 반 2차 낙천 촉구 명단과 함께 ‘2016 총선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각 정당의 경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 모양입니다.
귀찮다고 생각지 마시고 적극 참여하세요.
선거는 참여가 꽃입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하루 되시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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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딸', 결국 괴물이 되는가?

 
[유라시아 견문] 아웅산 수치 : 장군의 딸
 
| 2016.03.15 07:04:49

 

 

 

장군의 딸

'황금의 땅(Golden Earth)'에 내렸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거대한 쉐다곤 사원은 더욱 우뚝해졌다. 양곤의 밤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일견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남자들은 긴 치마로 몸을 두룬 론지를 입었다. 여자들은 BB크림이라도 되는 양 다나카를 발랐다. 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야 호수로 행진했다. 목적지는 대학로(University Avenue)에 자리한 2층 목조 가옥. 그 앞에서 입을 맞추어 'Lady!, Lady!'를 외쳤다. 

환호에 화답하듯 아웅산 수치가 등장했다. 나무 상자로 만든 연단 위에 올라섰다. 가택 연금 시절 토요일 오후 4시면 이런 식으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꽃가지를 비녀처럼 꽂은 상징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2015년 11월 7일 총선 전야, 마지막 선거 유세였다. 가까이서 보니 옅은 화장 사이로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1945년생, 벌써 일흔을 넘겼다. 'Lady'가 된지도 어언 30년이다. 

1988년이었다. 20년 넘게 지속된 군사 독재에 맞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궐기했다. 8월 8일이 상징적인 날이다. 그래서 '8888', '88 항쟁'으로 기억된다. 마침 아웅산 수치가 귀국해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곁을 지켜드리기 위해서였다. 근 30년 만에 양곤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곳에서 뜻밖으로 아버지와 조우한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두 돌이 못되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해방 공간, 정적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 아버지의 초상이 양곤 도처에 널려 있었다. 거리를 메운 수천의 학생들과 수만의 시민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것도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 중 일부는 군홧발에 짓밟히고 총에 맞아 죽어갔다. 아버지의 사진도 찢기고 깨져나갔다.

다급해진 학생들이 수치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간절히 동참을 요구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도 인생도 우연으로 점철된다. 그래서 운명이라 할 것이다. 그녀의 삶도 역사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쉐다곤 사원과 양곤 대학에서 대중 연설을 시작한다. 1947년 아버지의 연설을 빼다 박은 내용이었다. '장군'을 환기함으로써, 'Lady'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환생인 듯하였다.

수치가 미얀마를 떠난 것이 1959년이다. 14살 때였다. 어머니가 인도 대사로 취임했다. 그래서 10대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도 뉴델리이다. 20대에는 영국으로 유학 간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가 티베트 문학 연구자 마이클 아리스이다. 책벌레였던 그는 동양의 불교 국가에서 온 아리따운 학생에게 금세 빠져들었다.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의 국적은 자연스레 영국(미얀마의 식민 모국)이 되었다. 그것이 반세기 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족쇄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60년대 후반에는 뉴욕에서 생활했다. 유엔(UN)에서 근무하는 영국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당시 미국은 격동기였다. 68 혁명의 한복판이었다. 우드스탁에는 히피들이 집결했고, 유엔 건물 밖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시위가 매일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그녀의 일상은 당대의 풍조와는 멀찍했다. 가정과 직장을 오고가는 무사한 나날이 이어졌다.

떠들썩한 뉴욕을 떠나 이른 곳은 히말라야의 불교 왕국 부탄이다. 그곳에서 남편은 왕실의 가정교사 노릇을 하며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수치는 영국 대사관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영국으로 돌아간 남편은 교수가 되었고, 수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 역할에 충실했다. 1988년까지 그녀의 삶은 평온하고 평탄했다.

'8888' 이후 수치는 세계적인 명망가가 된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불과 3년 후, 1991년이다. 마침 소련이 해체된 해였다. '역사의 종언'이 선포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만국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동아시아도, 동유럽도 민주화의 궤도에 진입했다. 미얀마도 다르지 않으리라. 순식간에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등극한 것이다.

'군사 정부 대 아웅산 수치'라는 프레임이 널리널리 퍼져갔다. 미국과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버마 민주화' 인사들도 가세했다. 언론 활동과 로비를 통하여 미얀마 군사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가중시켰다.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세력은 미국의 네오콘이다.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 기지'라고 지목했다. '악의 축' 이라크 후세인의 운명을 지켜본 미얀마 군부는 2005년 양곤에서 네피도로 천도했다. 양곤과 만달레이 사이, 밀림 깊숙이 자리한 이 행정 수도는 지하 벙커로 점철된 인공 요새이다.

10년 만에 그 행정 수도의 주인공이 바뀌게 되었다. 돌아보면 2015년 총선은 아웅산 수치에게 최적기였다. 그해 2월 13일이 아웅산 장군 탄신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웅산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연중연시 성황이었다. 그 기세에 힘입어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대승이고 낙승이었다. 아웅산에서 아웅산 수치로,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아웅산 수치의 마지막 유세. ⓒ이병한


버마식 사회주의 

아웅산과 수치 사이에 네윈(Ne Win)이 있었다.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딸의 정적이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접수한 것이 1962년이다. 1988년까지 장장 26년을 집권했다. 유별난 일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다. 대만(타이완)도 태국(타이)도 군사 정권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 군사 정변이 일어났다. 필리핀도 독재 정부였다. 

도처에서 군대는 근대의 첨단이었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미국의 암묵적인 지지나 개입이 없었다. 이른바 '근대화' 이론에 기초한 개발 독재를 추진하지 않았다. 네윈이 표방한 것은 '버마식 사회주의'였다. 자력갱생을 주창한 마오쩌둥 사상의 변종이었다.

네윈은 1911년생이다. 수치가 미얀마로 돌아온 1988년에는 이미 노인이었다. 군부 후계자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말년에는 명상과 요가에 전념했다고 한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영성을 갈고 닦았다. 독재자의 최후는 평화로웠다. 침상에서 숨을 거둔 것이 2002년이다. 근 한 세기를 살아낸 것이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때어났을 때부터 조국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대영제국의 식민지 간에도 위계가 있었다. 양곤(당시 랭군)에는 총독이 없었다. 콜카타(당시 캘커타)의 총독이 버마를 대리 통치했다. 영국과 인도의 중층적 식민지였다.

혈기왕성한 민족주의자였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대동아공영권을 세우자는 일본이 접근해온 것이다. 버마 해방을 선도할 최정예 30명을 선발했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 섬으로 데려가 혹독한 군사 훈련을 시켰다. 그곳에서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교육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미얀마의 군부 독재가 일본군의 진도지휘 아래 배양되었다. 

미얀마의 '선군 정치'는 최장수일뿐더러 가장 순수한 형태의 군사 독재이다. 민간 정부 위에 군부가 군림하기보다는 군대 자체가 곧 국가였다. 경제와 행정 등 국가 전 영역이 군대와 일체화되었고, 장교들이 장관으로 국사를 처리했다. 네윈 나름으로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그는 군부가 전권을 쥐지 않으면 미얀마는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여겼다. 근거가 없지도 않았다. 이웃 인도는 파키스탄(1947년)과 방글라데시(1971년)로 차례차례 분할되어 갔다. 동아시아의 분단과 남아시아의 분할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시 상태도 그치지 않았다. 대전이 끝나자 냉전이 닥쳐왔다. 미얀마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 군이 미얀마까지 패주해왔다. 동북부 샨(Shan) 주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윈난성 재탈환의 기회를 노린 것이다. 대만으로 패퇴한 장제스가 무기 공급을 지속했다. 

미얀마 군부로서는 응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개의 중국'이 자국 내에서 경합하는 상황을 종식시켜야 했다. 자연스레 군부에 힘이 실렸다. 성과도 거두었다. 1961년 국민당 잔군을 완전히 국경 밖으로 몰아낸다. 라오스와 태국으로 밀어낸 것이다. 작년(2015년) 이맘때 소개했던 태국 고산 지대의 화교 마을이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종식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샨 주의 소수 민족들이 준독립에 해당하는 자치를 요구했다. 동부서는 카렌 족이 북부서는 카친 족이 일어섰다. 실제로 미얀마는 30개가 넘는 다민족,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 다종교 국가이다. 일종의 '미니 제국'이다. 영토도 영국과 프랑스를 합한 것보다 크다. 그 영토의 절반이 고산 지역이다. 그래서 소수 민족들이 5000만 인구의 4할을 점한다. 인문 지리에서 윈난성과 흡사한 것이다.

네윈은 협상으로 타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고 여겼다. 우격다짐 소제국의 실상을 국민국가의 틀 속으로 우겨넣어야 했다. 무릇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듬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자발적 쇄국 정책, 주체 노선이었다.

따라서 1988년의 민주화 운동을 88 항쟁으로만 기억해서는 미진하겠다. 다른 민주화 요구도 있었다. 평야에서 (버마족이 절대 다수인) 시민들이 봉기하자, 산악 지대의 소수 민족들도 덩달아 궐기했던 것이다. 중국과 태국의 국경선을 따라 소수 민족들이 재집결 했다. 윈난 성의 와(Wa) 족들과 생활 세계를 공유하는 미얀마의 70만 와족 들이 가장 먼저 이탈해갔다. 전체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최대 소수 민족 샨 족 역시 태국으로 솔깃했다. 이들도 혈통으로 따지자면 버마 족보다는 타이 족에 더 가깝다. 살림살이 형편도 태국 쪽이 더 나아보였다. 

그리하여 1989년 전격적으로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수정한다. '버마 족 패권'에 저항하는 소수 민족들의 불만을 일부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실은 '버마'라는 이름부터가 영국이 부여한 것이다. 식민지 이전의 마지막 왕조가 '미얀마'였다. 수도의 이름을 '랭군'에서 '양곤'으로 바꾼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해외로 망명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버마'를 고수하고 있음을 일방으로 편들기가 힘들어진다. 버마 족이 중심이 된 '영국식 민주주의로의 이행'만이 8888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제국의 실제에 부합하는 연방제형 국가로의 전환 또한 88 항쟁의 자명한 요구였다. 

실제로 1989년과 1990년 사이에 미얀마 군부와 소수 민족 간의 다양한 정전 협정이 체결된다. 무려 17개의 반군 조직과 평화 협상을 체결했다. 1960년대부터 봉기하여 가장 강경하던 카친 독립군을 비롯하여, 카렌 민족군과도 화해했다. 독립 이후 근 반세기 만에 항상적이었던 내전 상태가 (일시적으로) 종식된 것이다. 

고산 지역에 살아가는 수백만의 소수 민족도 비로소 일상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비록 불완전했을망정 적지 않은 성과였다. 그럼에도 외부에서는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다. 오로지 '민주 대 독재'라는 프레임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늘 아웅산 수치로만 향해있었다. 
 

▲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15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병한


미얀마식 자본주의 

내전 상태를 봉합함으로써 미얀마 군부는 개발 독재형 군사 정부로 이행했다. 왕년의 한국, 태국, 대만, 필리핀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를 지향했다. 문제는 미국이 더 이상 '개발 독재' 정권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이 '근대화'에서 '민주화'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민주 정권 아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킴으로써 개발 독재 정권이 축적했던 국부를 회수해가는 것이 세계화의 목표였다. 이를 거부하는 미얀마에는 봉쇄와 제제를 강화했다. 스스로 자폐를 선택했던 나라를 더 고립시키는 설상가상의 전략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 옆에는 중국이 있었다. 선교의 전통이 없는 이 나라는 남들 내정에는 무심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국을 우회하여 개발 독재를 실시할 수 있었다. 차츰 중국의 번영이 미얀마 변경까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웃 태국의 정책도 바뀌었다. 냉전기 CIA의 지원 하에 미얀마의 소수 민족을 무장시켜 군정의 전복을 꾀했던 태국 역시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실리를 선택했다.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하는 데 군사 정권의 지속이 나쁘지 않았다. 태국의 민주 정부와 미얀마의 군사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곧이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등도 군사정부를 승인했다. 1997년에는 아세안에도 가입했다. 명실상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자연스레 '버마식 사회주의'가 '미얀마식 자본주의'로 전환되어갔다. 동유럽과는 상이한 동남아식 탈냉전이었다.

당장 양곤의 번화가부터 변화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부티크 호텔로 재개장하거나 레스토랑과 바로 변신했다. 미얀마 중산층들은 반세기만에 소비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10대들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을 수 있었고, 장군들은 명품 골프장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때마침 동북아에서는 한류도 불어왔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TV에서는 온종일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그 덕을 톡톡히 누렸다. 아웅산 박물관의 관장이 몹시 환대해준 것이다. 손자가 <주몽>의 열렬한 팬이란다. 박물관 안내를 자청하여 아웅산 장군의 일대기를 설명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산간의 소수 민족도 이익을 취하는 쪽으로 달라졌다. 미얀마와 중국 간 국경 무역이 재개되자 그들이 가장 먼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한 손에는 미얀마의 자원을 들고, 다른 손에는 중국의 산업혁명이 생산하는 상품을 쥐었다. 중국식 개혁 개방을 미얀마에 전파하는 전위부대가 된 것이다. 윈난 성에 사는 소수민족들과 핏줄로 연결된 '꽌시' 또한 주효한 전략이 되었다. 

점차 산골의 시골마을이 국제무역도시가 되어갔다. 내가 이틀 밤을 보낸 망라(Mang La)라는 국경 마을은 '작은 중국'에 방불했다. 양곤이나 만달레이보다 더 흥청망청이었다. 24시간 ATM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밤새 문을 여는 술집도 적지 않았다. 쿤밍에서 미처 사용하지 못한 위안화를 마저 사용할 수도 있었다. EXO의 히트곡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북조선의 나진 선봉도 이러할 것인가 잠시 상상해보았다.

인구 이동의 방향 또한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특히 1988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들이 대거 북진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위하여 국경 지대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부작용도 없지 않다. 향락과 부패도 스며들고 있다. 혼자 앉아 있노라니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lady boy'라고 불리는 트렌스젠더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성들까지 섹스 산업이 활황이다. 주 고객은 중국 남부에서 온 사업가들이나 미얀마의 화교 자본가들이라 한다. 그들은 위한 카지노와 보신용 야생동물 식당도 성업 중이다. 

시진핑이 반부패 칼날을 휘두르면서 마카오 출입이 어려워진 부호들이 이곳을 부쩍 찾는다고도 했다. 이 지하경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푸젠 성과 광둥 성 출신의 조폭들도 진출하고 있었다. 미얀마의 동북부는 확연히 대중화경제권에 편입된 모양새다. 숙소 직원들도 영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중국어는 곧잘 말했다. 

상부 구조가 하부 구조와 무연할 수 없겠다. '미얀마식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군부 또한 헌법 개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참조했다는 후문이다. 군부가 의회에서 일정한 지분을 확보하는 술책을 강구했다. 

양곤에서 만난 BBC 특파원은 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1920~30년대 영국의 버마 통치를 참고했을 것이란다. 당시 대영 제국은 버마의 의회에 가능한 천천히 권력을 이양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과연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식 민주주의'로 가는 7단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2003년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군부와 수치 간의 비밀 협상도 개시되었을 것이란다. 군정에서 민정으로의 '점진적 이행'에 양 세력이 합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싸한 견해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그가 쓴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얘기는 한 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추론'에 내가 보탠 것은 중국과의 관계였다. 이미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선거에 앞서 아웅산 수치가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과 리커창은 그녀를 '국빈'으로 예우하며 연쇄 회동을 가졌다. 중국이 군부뿐 아니라 야당의 대표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중국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는 책임대국으로서의 풍모를 과시했고,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최대 투자국인 중국이 자신을 승인했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내부적으로는 군부와,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일정한 조율을 마친 끝에 11월 총선이 열렸던 것이다. '관리된 민주화'였다. 

역사의 단층 

선거 사흘 후 NLD 당사를 찾았다. 도로 가에 자리한 허름한 건물이었다. 정문이랄 것도 마땅히 없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외국인들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가운데 말쑥한 양복 차림의 백발 백인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두 팔 벌려 맞아준다. 자기 자리로 안내하여 차까지 대접했다. 나는 <프레시안>에서 파준 명함을 건네고 저널리스트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 군복을 벗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돌아왔다. 총 대신에 성경을 든 것이다. 비록 전쟁에서 졌을망정 복음을 전파해야한다는 사명감마저 저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수단을 바꾸어 공산주의와의 성전을 지속한 것이다.

그의 삶도 고단했다. 베트남에서는 추방되었고, 캄보디아에서는 비자 발급이 중단되었다. 마지막 선교지가 미얀마였다. 주로 고산 지역의 소수 민족에게 선교 활동을 했다. 평야에 내려와서는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다. 그 일념으로 미얀마에서 산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기독교를 믿는 소수 민족인 카렌 족 여인과 새 가정을 꾸렸다. 딸은 13살이다.

그는 시종일관 들떠 있었다. 수치의 승리로 말미암아 청년 시절의 회한을 비로소 만회한 듯 보였다. 그녀에게 동지애 혹은 전우애를 느끼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일흔을 넘긴 어르신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집권 여당을 목전에 둔 NLD 당사 안에서 말이다. 

내 생각은 좀 나르다. 낙관을 금한다. 도리어 걱정이다. 이미 필리핀과 캄보디아를 둘러보고 난 차였다. 이웃나라 태국은 민주화 이후의 혼돈 끝에 군사 정부로 돌아간 상태이다. 더 불길한 것은 '폭정' 이후의 나라들 때문이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의 발칸이 떠오른다. 2000년대 후세인 제거 이후의 이라크가 연상된다. 2010년대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도 비슷하다. 

인종 학살과 종족 간 폭력이 분출했다. 미얀마는 건국 이래 70년 가까이 내전 상태를 지속해온 나라이다. 그 내분을 억지로 억눌렀던 군부가 약화되고 다수결로 운영하는 선거제가 가동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 '민주 내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련이 떠나고 난 아프가니스탄도 '민주주의 국가'였다. 

외부에서는 이번 총선을 군부와 수치의 대결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총선에 참여한 정당은 양당만이 아니었다. 무려 100개에 육박한다. 산간 지역에서 소수 민족을 대변하는 지방 정당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회에서 이들이 차지한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상의 이유로, 안보상의 이유로 참정권이 원천 봉쇄되었다. 그 비중이 20%에 달한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선거는 '버마족 패권주의'의 압승일지 모른다.

의회를 장악한 버마 족들이 군부와 타협하여 장기 집권을 획책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전혀 허황한 전망만도 아니지 싶다. 수치는 선거를 전후하여 서북부 아라칸 주에서 발생한 무슬림 난민 사태에 시종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들이 정착한 곳은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이다. 실제로 로힝야 족은 버마 족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없다. 차라리 인도양 건너 오만과 더 연결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글로벌 무슬림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이다.

미얀마의 60%를 점하는 버마 족은 독실한 소승 불교 신자들이다. 군사 정부와 결탁해 왔던 불교계에서는 '불교 근본주의'라 할법한 현상마저 불거지고 있다. 스님들이 무슬림에 가장 적대적이다. 버마를 복원하여 불교 정토를 만들자고 한다. 때문에 이슬람과 기독교계 소수 민족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긁어 부스럼이기 십상이다. 수치 또한 표를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 정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치를 대신할 대통령이 누구이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된 사이에도, 내가 더 주목한 소식은 카렌 족의 일부가 재무장을 시작했다는 뉴스이다. 부디 그녀만은 아버지의 운명을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미얀마에 가기 전, '중국과 인도 사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가보니 영국풍이 여실했다. 쇄국 정책 탓에 더더욱 영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양곤이 그러하다. '랭군'이야말로 대영제국이 만들어낸 '신도시'였기 때문이다. 벵골 만을 사이로 콜카타와 마주하고 있는 개항장으로 최적의 위치에 자리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와의 연결망으로서도 제격이었다. 즉, 영국으로 말미암아 미얀마의 중심이 만달레이에서 양곤으로 옮아간 것이다.

나라 이름도 다수 민족의 이름을 따서 버마라고 불렀다. 나아가 영국령 인도의 일부로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시종 미얀마의 지리적-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식민 통치가 관철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미얀마'와 무관한 '근대적 버마'가 들어섰던 것이다. 1886년을 기점으로 옛것과 새것 사이에 현격한 낙차가 생겨났다. 미얀마가 싹둑 버마로 동강나서 근대 세계로 내던져진 것이다. 

하여 오늘날 미얀마가 직면하고 있는 산적한 과제 또한 대영제국 시절로 거슬러 오르지 않고서는 그 전모를 온전히 살피기가 힘들다. 물론 '유라시아 견문'에서 미얀마 근대사를 통으로 훑어갈 여력은 없겠다. 하더라도 작금 '민주 내전'의 기운을 되 지피고 있는 분열의 기원만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는 대영제국만큼이나 대일본제국도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과 서의 두 제국이 충돌했던 역사적 유산이 지금껏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실상은 실로 복잡다단했다. 대일본제국과 대영제국이 최후를 다투었던 임팔 전투를 복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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휑한 위안부 피해자 묘지, 주변엔 '복수초'만 피었다

 

묘비석도 없는 김우명달 할머니 묘... 우리는 지금 어떤가요

16.03.14 21:06l최종 업데이트 16.03.14 21:06l

 

 

할머니께서는 1943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돼 만주 봉천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고 해방 후에도 온갖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 2007년 3월 12일 여든아홉 인생을 마감하셨다. 

김우명달 할머니 묘지 앞에 10년 만에 다시 섰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에 파묻혀 할머니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 <귀향> 개봉 소식을 들었지만, 그 절절한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를 다시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주저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서부경남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던 언니가 우리 부부가 진주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운을 띄웠다. 

"이번 주말(3월 12일)이 김우명달 할머니의 기일이니, 산소에 같이 가자." 

기억 넘어 잊고 있던 사람들이 흑백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게다가 요즘 영화 <귀향> 상영관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얼굴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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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운 할머니 공개강연 포스터 진주 지역의 젊은 청년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어 준비했다. 정서운 할머니의 마지막 증언이 이날 이뤄졌다.
ⓒ 밥과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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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할머니들에게 애정이 있는 선배·친구들과 함께 '밥과 민들레'라는 이름으로 서부경남 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다. 우리의 활동은 2003년 3·8 세계여성의 날 즈음해 하동 악양의 정서운 할머니를 경상대에 모시면서 시작됐다. 

"조국이 힘이 없어 끌려간 것인데, 부끄럽다면 조국이 부끄러워야지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던 정서운 할머니의 강단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외로워 보이는 무덤 그리고 노란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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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작은 무덤 그 흔한 조화 한송이 없어 얼핏 보면 무덤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할머니의 이름 석자 세길 묘비도 찾을 수 없으며, 찾아온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처연한 시간이 묻어난다.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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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묘비석도 없고, 그 흔한 조화 하나 없이 덩그러니 잠들어 계신 김우명달 할머니 묘지 앞에 섰다. 죽어서도 서럽고 외로움에 시간을 쓸쓸히 견뎌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생각하니 할머니의 삶이 더욱 가엾다. 

함께 간 언니는 김우명달 할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라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다며 평소 좋아하시던 식혜와 곶감을 올려 조촐한 상을 차렸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지요'라고 두 번의 절을 올리고는 뒤를 돌아보니 노오란 복수초들이 환하게 할머니의 삶을 비추는 촛불처럼 묘지 주변으로 피어있다. 

이날 나와 함께 김우명달 할머니 묘소를 찾았던 남편은 할머니 장례를 치를 때 마을 뒷산에 피어 있었던 복수초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복수초 꽃잎 하나 하나에 할머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너거도 산다고 바빴제, 그래 정신없었을 끼다. 잘왔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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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곁에 활짝 핀 복수초 쓸쓸한 할머니곁에서 피고 지는 복수초를 보며 할머니가 우리에게 보내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며,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그들에게 복수의 마음을 품었다.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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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8명 중 2016년 2월 20일 기준으로 마흔네 분이 살아계시다고 한다. 현재 진주를 포함한 서부경남 지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모두 소천하셨다. 

할머니들의 명예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실험본 교과서에 '전쟁터의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진 제목과 함께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다"라는 사진 설명이 서술됐으나, 최종본 교과서에는 사진이 삭제되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라고 서술했다.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구체성이 결여된 서술로 바뀐 것이다. 할머니들의 아픈 삶이 아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지금 저 산 속에서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복수초처럼, 할머니들 곁을 지켜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타이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의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됐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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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가 사셨던 집 대문의 모습 금낭화를 예쁘게 가꾸시던 할머니 꽃밭이 그리워 찾아갔다. 소박하지만 너무도 정갈하고 깔끔하던 할머니의 손떼가 묻어 나던 집이었으나, 주인을 잃고 집은 창고로 변해 있었다.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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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김우명달 할머니,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그곳에서는 고통없이 편히 쉬세요. 밥과 민들레에서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과 찍은 사진.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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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평통사, "스테니스 핵 항모는 돌아가라!"

부산 해작사 앞에서 기자회견,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 (전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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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4  17: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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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평통사는 13일 스테니스 미 항공모함이 입항한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 부산평통사]

한미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이 한창인 가운데 미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스테니스가 부산항에 입항하자 부산평통사 회원 등이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부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부산평통사)는 13일 오후 3시 해군작전사령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테니스 핵 항공모함 전단의 입항과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포항 상륙훈련 반대 실천에 참가했다가 부산을 방문한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어제 포항에서도 확인했지만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은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미국은 선제공격무기들을 한반도에 보내고 있는데 지금 여기 입항한 핵 항공모함이야말로 한반도 유사시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아무런 위기관리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북‧미, 남북 간 벌어지는 극한 대결은 민족의 생존과 민중의 삶을 더욱 벼랑끝으로 내몰 것”이라고 주장했다.

   
▲ 스테니스 원자로 항공모함은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사진제공 - 부산평통사]

미국 미시시피 정치가 존 C. 스테니스의 이름을 따온 ‘USS 존 C. 스테니스(CVN-74)’는 니미츠급 원자로 항공모함으로서 배수량 10만 3,300톤, 전장 332.8m, 폭 76.8m에 달한다. 비행갑판 면적이 축구장의 3배에 달해 항공기 80여대를 탑재할 수 있는 그야말로 ‘떠다니는 군사기지’인 셈이다.

스테니스 항공모함 전단은 9천200t급 구축함인 스톡데일(DDG-106)함, 정훈(DDG-93)함, 윌리엄 P. 로런스(DDG-110)함, 9천800t급 순양함인 모바일베이(CG-53)함, 제9항공단, 제21구축함전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테니스 함은 미군이 동아시아 지역에 항모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지난 1월 15일 모항인 워싱턴 주 브리머틴 킷샙 해군기지를 출발하여 7개월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다. 이로써 미군은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두 척의 항공모함을 운영하게 된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스테니스 핵 항모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 부산평통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오늘 부산에 입항한 핵 항공모함이야말로 한반도 유사시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이라며 “스테니스 항모와 같은 선제타격전력이 참여하는 한미연합연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에게는 엄청난 군사적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미일 3국의 동북아MD 작전 지휘부와 전력을 갖춘 레이건 항공모함에 더하여 스테니스 항모까지 동아시아에서 운영된다는 것은 북한 뿐 아니라 남중국해 분쟁 도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중국 당국과 중국군의 경계와 대응작전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동북아의 긴장과 대결을 가일층 높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미중간 긴장 격화는 미국과 공동으로 대북 선제공격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호시탐탐 대 한반도 군사적 개입을 노리고 있는 일본의 군사 개입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들은 “핵항모와 핵잠수함 등 미국의 핵추진 전력들이 부산을 이용하여 전쟁연습을 벌이는 것은 부산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우리는 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담보로 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의 즉각 중단과 스테니스 핵 항모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북한 핵실험과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동시에 중단하고 대화를 재개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실현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유일한 평화의 길”이라고 제시했다.

 

<기자회견문(전문)>
한반도 핵전쟁위기 불러오고 동북아 대결 격화시키는 존 C. 스테니스 핵 항모는 돌아가라!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호(CVN-74) 항모강습단이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 참가를 위해 부산에 입항했다.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위기를 가속화하고 대결을 격화시킬 핵 항공모함 부산 입항을 규탄하며 즉각 돌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은 대북 선제공격과 체제 붕괴까지를 상정한 ‘작전계획 5015’에 따라 사상 최대규모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징후만 보여도 선제공격한다는 초공세적 ‘4D’(억제→교란→파괴→방어) 작전개념이 처음 적용된다. 동원되는 한미 양국군의 전력과 훈련도 대북 선제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늘 부산에 입항한 핵 항공모함이야말로 한반도 유사시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이다.

존 C. 스테니스 항모 강습단은 존 C. 스테니스(CVN-74)호를 비롯해 9천200t급 구축함인 스톡데일(DDG-106)함, 정훈(DDG-93)함, 윌리엄 P. 로런스(DDG-110)함, 9천800t급 순양함인 모바일베이(CG-53)함, 제9항공단, 제21구축함전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행갑판 면적이 축구장의 3배에 달해 미 해군 호넷(F/A-18) 전투기, 프라울러(EA-6B) 전자전기, 호크아이(E-2C) 조기경보기 등 항공기 80여대를 탑재한다. 그야말로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스테니스 항모와 같은 선제타격전력이 참여하는 한미연합연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에게는 엄청난 군사적 압박이다.

이에 북한도 “군사적 대응 방식을 선제공격적인 방식으로 모두 전환시킬 것” 이라며 한미 양국군의 전력과 장비 등에 대한 선제타격과 청와대 및 아태 지역 미군과 미군기지, 미 본토에 대한 보복전을 공언했다. 북한은 신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진행했으며 핵탄두 경량화를 언급하면서 핵탄두들을 언제든 쏠 수 있게 항시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급기야 부산, 평택, 광양등 유사시 미국 증원 전력을 한반도에 투입, 전개하는 주요 항구를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협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북미, 남북 간 극한 대결과 위기관리 체계 부재는 사소한 군사적 충돌조차 걷잡을 수 없게 확전되어 2013년 봄의 한반도 핵전쟁위기를 능가하는 위기를 불러오거나 실제핵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스테니스 함은 미군이 동아시아 지역에 항모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지난 1월 15일 모항인 워싱턴 주 브리머틴 킷샙 해군기지를 출발하여 7개월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다. 이로써 미군은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두 척의 항공모함을 운영하게 된다.

레이건 항공모함은 동북아 MD 작전의 (선제)공격작전을 임무로 하는 주력이다. 레이건 항공모함 선단을 이루는 이지스 순양함 사이로(CG-67)는 항모 선단의 BMD 사령관이자 7함대 BMD 사령관으로, 사이로함뿐 아니라 타함의 MD 작전도 지휘한다. 한미일 3국의 동북아MD 작전 지휘부와 전력을 갖춘 레이건 항공모함에 더하여 스테니스 항모까지 동아시아에서 운영된다는 것은 북한 뿐 아니라 남중국해 분쟁 도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의 핵심 축”이라며 한국이 미국의 대중 포위망의 첨병, 전초기지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존 스테니스 호의 한국 영해 진입과 연합훈련 참가는 반접근과 지역거부 전략으로 제1, 2도련선 내의 대미 제해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당국과 중국군의 경계와 대응작전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동북아의 긴장과 대결을 가일층 높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일 중국은 존 스테니스호가 남중국해에 들어오자 함대를 바로 투입, 미 항모 전단 주위에 근접해 감시작전(포위)을 펼쳤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직후에도 당시 요코스카에 배치되었던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가 대북 무력시위를 위해 서해로 진입했다가 중국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으며, 중국은 북경군구와 선양군구를 동원해 대응 작전을 펼친 일이 있다.

미중간 긴장 격화는 미국과 공동으로 대북 선제공격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호시탐탐 대 한반도 군사적 개입을 노리고 있는 일본의 군사 개입 빌미를 제공할 것이다.

일본 합참의장은 지난 달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에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전폭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세적으로 전개되는 한미연합연습에 따라 한반도 위기가 조성될 경우 일본의 개입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렇듯 존 스테니스 호의 부산 입항은 남북, 미중, 일중 간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고 전쟁위기를 불러온다. 또한 이 틈을 비집고 일본군이 호시탐탐 한반도에 재출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이어 한미 당국이 각각 개별적인 제재를 결정하는 등 힘에 의한 대북 압박과 흡수통일 의도가 전면화되고 있다. 남북, 북미관계가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핵 항모의 부산 입항은 한반도를 전쟁 전야로 몰아갈 수도 있다.

핵항모와 핵잠수함 등 미국의 핵추진 전력들이 부산을 이용하여 전쟁연습을 벌이는 것은 부산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다. 최근 주한 미해군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로 이전하면서 한미 해군 간 공조가 훨씬 강화되는 상황이 부산을 더욱 위험한 지역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북한이 핵실험 재개를 언급한 것처럼 공세적 전쟁연습은 북핵 폐기는커녕 도리어 북한 핵전력 강화로 귀결될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대북 군사적 압박이 아니라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중단하는 데 있다. 최소한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공세적 성격을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해 북한에 대한 안보 위협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는 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담보로 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의 즉각 중단과 스테니스 핵 항모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다.

북한 핵실험과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동시에 중단하고 대화를 재개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실현하는 한반도 평화협을 체결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유일한 평화의 길이다.

2016년 3월 13일
부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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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재래식전쟁에서 전면핵선제타격으로 전환

북, 재래식전쟁에서 전면핵선제타격으로 전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3/15 [00: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지도하는 가운데 시험발사하고 있는 화성탄도미사일 일명 스커드 미사일, 북은 여기에 수소탄을 탑재하여 항공모함 전단 상공에 터트려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훈련을 진행했다고 보도하였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핵탄두 탄도미사일로 미군 주요 거점 타격 시험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 지도 상에 동해의 항모 전단 위치에 선이 그어져 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사상 최대의 미군이 동원된 대북압박훈련이 현재 한반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미는 물론이고 호주와 뉴질랜드 군인까지 동원되었으며 장비와 군인 모든 면에서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 없이는 보도할 수 없는 방대한 규모의 대북압박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북도 핵미사일로 항공모함 전단을 타격하는 훈련을 공개하는 등 전례없는 전법을 공개해 극단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북미대결전을 분석해보면 이전과 다른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 북 재래식 전쟁에서 전면 핵선제타격으로 전환

 

최근 북의 대미군사적 경고의 특징은 선제공격과 전면핵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존의 핵무기는 사용이 목적이기보다는 억제력이었고 실제 전쟁은 재래식 무기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국이 도발을 해올 경우에 방어와 함께 반타격전으로 조국통일을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전쟁의 기본 목적은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국한될 가능성이 많다.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서는 일본이나 미국 본토까지 점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핵을 사용하게 되면 한반도 특히 남녘 주민들은 거의 희생될 것이며 미국과 일본 국민들도 거의나 궤멸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북의 보도와 발표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미대결전 군사 전략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재래식 전쟁은 보조적 수단일 뿐이고 핵무기를 전면에 내세운 선제타격 작전이 중심으로 그 타격 범위는 일본은 물론 미 본토를 포괄하고 있음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북의 간부가 이런 미 본토 핵선제타격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5월 북의 정부기구인 조국통일연구원 박영철 부원장이 CNN과의 대담에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미사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이 압박할 경우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CNN 대담: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0335

 

그런데 이젠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미사일로 미국 항공모함 전단과 그 거점인 군항을 타격하는 훈련을 현지지도하고 수소탄을 미사일에 장착하는 공장까지 현지지도를 가서 전면핵선제타격발언을 주저 없이 내놓고 있다.

 

항모 핵타격 훈련: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6376

수소탄미사일공장: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6346

 

이것은 매우 심각한 변화로 북이 쉽게 전쟁을 못할 것이라는 본지의 예상마저 완전히 재검토하게 하고 있가.

연구 검토한 결과 이 전면핵선제타격작전은 당장 북이 실전에 옮길 수 있는 방식이며 미국과 그 추종국에게는 가장 취약하고 북은 가장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져보기 전에는 북미 모두 공멸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북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전략으로 판단되었다.

 

필자가 그간 북이 쉽게 전쟁을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전쟁으로 인한 남녘과 미국, 일본 주민들의 막심한 희생이 첫번째이고 다음은 전쟁 이후 세계적인 경제적 혼란으로 전 세계 인류에게 가해질 고통이었다. 달러체제가 붕괴되면 적어도 일정 기간 식량과 석유거래가 중단 되는 등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는 등 막심한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각 대륙별 자주적인 지역블럭이 형성되고 상하이연합과 같은 나름 각 국의 경제적 자립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가 형성되어가고는 있지만 아직 시작 단계여서 북미대전쟁 이후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북이 미국과 전면전 결심을 내리기 힘든 조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북이 수소탄과 핵선제타격을 통한 미 항공모함전단 타격 작전 지도를 공개한 것, 그리고 이후 이어진 북 핵과학자들의 북 수소탄의 위력에 대한 설명, 예멘의 후티반군의 북 탄도미사일 사용을 통한 사우디 중심 아랍연합군 거점 정밀 타격 등을 종합해보았을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선제타격 작전으로 순식간에 미국과 대결전을 끝내고 미국을 완전히 장악한 후 그 힘으로 세계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히 이번 북의 수소탄 시험과 광명성-4호 위성 발사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결의안 동의 등 대국주의 행보에 대해 북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을 보면 중국 주도 상하이연합과 러시아 주도 유라시아연맹과 같은 대안 국제질서로는 각 민족의 자주권을 옹호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북은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에서 파견한 문화친선사절단 국가공훈합장단과 모란봉악단 북경공연을 하루 전에 전격 취소하고 철수시키는 것이 국가관례상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후 이루어진 북의 전격적인 수소탄 시험 등의 행보를 보았을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독자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한 그 동맹세력과 이제 승부를 볼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북미전쟁 이후 엄습할 세계 경제 대혼란은 북이 미국 본토까지 순식간에 완전히 점령을 하게 되면 사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북은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와 금융의 힘을 이용하면 큰 혼란없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무리 없이 가장 순조롭게 건설해갈 수도 있겠다고 북이 확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나더라도 미국의 주요 군사 거점만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도시와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게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북이 확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만 있다면 북은 결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북 주민들 지대에 대한 전면 핵공격을 가한다면 북도 그에 대한 대도시 보복공격을 가할 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미국의 군사체계만 마비시키는 타격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판단된다.  

 

▲  수소탄을 장착하는 미사일 공장 현지지도를 하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 미 본토 타격용 화성 13호와 화성 14호뿐만 아니라 단거리탄도미사일도 이 공장에 즐비하게 놓여 있다. 이런 미사일에도 수소탄 핵탄두가 장착되는 것이다.  ©자주시보

 

 

✦ 북의 초정밀 타격이 가능한 핵미사일

 

북은 민중중심 사회주의 종주국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에 인류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왔다.

그렇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3판이나 내리 이기기도 하듯이 비약적인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군사 거점만 초정밀 타격이 가능하고 핵무기를 전면적으로 사용해도 핵심 거점만 정확히 타격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순식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준비를 북이 다 갖추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은 알파고가 나오기 전에 이미 세계 컴퓨터 바둑계를 오랜 동안 평정해왔다. 그때 이용했던 알고리즘을 알파고도 이용하고 있다. 북의 조그마한 휴대용 대공미사일이 목표물을 스스로 알아서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구형인 맨패즈라는 북의 대공미사일을 입수한 반군에 의해 며칠 전에도 시리아 정부군 미그기가 떨어졌다. 다 인공지능의 위력이다.

 

미군의 주요 거점을 일거에 소멸할 수 있는 초정밀 핵탄을 각종 사거리별 미사일에 장착을 끝냈고 각 로켓 전략군 부대에서는 발사단추를 누르라는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는 북 언론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의 미사일이 얼마나 정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지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예멘전쟁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구 예멘 정부 살레 대통령이 90년에 북으로부터 수입한 미사일을 후티 반군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었는데 이 후티 반군이 발사하는 수백키로미터 사거리의 일명 스커드 미사일(북에서는 화성 5호, 6호)과 사거리 100-200여키로미터의 SS-21 토치카, 일명 스캐럽(독사) 미사일이 사우디연합군 공군기지와 비밀근거지 등을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다.

 

미국의 패트리어트 반공망을 값비싼 돈을 들여 도입하여 그런 군 공항을 철저히 방어했고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방공망도 가세하여 후티반군의 미사일을 막아보려했지만 아예 미사일이 날아오는지 조차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킹 칼리드 사우디 군사공항에서 모사드 요원 수십명이 폭사한 것이 그 증거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2157

 

지난해에만 이런 북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우디 공군사령과 아랍에미리트 전선사령관, 미국 용병 회사 블랙워터 지휘관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 20여명과 수많은 핵심간부들이 기지 안에서 즉사하였다. 그 기지에 있던 헬기 등 장비들도 다 녹아버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민간인들이 무슨 피해를 보았다는 보도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토치카 미사일은 체첸반군과의 전쟁에서 사용하였는데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와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는데 예멘에서는 아직 그런 보도가 없다.

 

▲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용하고 있는 스커드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의 것과 똑 같다. 세계 언론에서는 구 예멘 정부 살레 대통령이 수입한 북 탄도미사일을 후티반군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자주시보

 

▲ 북의 스커드 미사일이 한 발 터지자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멀리까지 폭풍이 일었다.     ©자주시보

 

동영상을 통해 분석한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후티 반군의 미사일이 떨어지면 화염보다는 흙먼지가 그 거점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많이 일고 엄청난 진동과 충격파가 나온다는 점이다. 지하 깊숙한 곳까지 뚫고 들어간 포탄이 파편만이 아니라 무슨 충격파를 통해 생명체를 타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그러니 핵심 지휘관과 장교들이 주로 희생되고 주변 민간인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 아날까 한다.

 

지금의 북의 미사일과 90년대 미사일은 비교할 수 없이 그 정밀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사일 발사 시험을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지도하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북이 스커드 미사일을 공개적으로 시험발사를 했다면 미국의 첩보 위성으로 감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요격회피능력이나 정확도 등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화성-13호 재진입체에 장입되는 핵탄두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실물 핵탄두를 그처럼 자세히 살펴본 국가지도자는 전 세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사진은 세계정치사에 특기할 매우 특별한 사진이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핵탄두에는 격발기에 연결되는 구멍이 있다. 격발기의 중수소-삼중수소 혼합가스통을 그 구멍에 연결시켜놓으면, 격발 순간 그 구멍으로 중수소-삼중수소 혼합가스가 들어가게 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여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수소탄을 직접 안고 나와 공개하였다. 정밀타격이 가능한 사거리별 각종 미사일과 위력적인 특수고폭탄에 소형화, 표준화, 규격화된 수소탄까지 준비를 마쳤음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나와서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지도자가 핵미사일 공장을 방문하여 수소탄을 안고 사진을 찍어 공개한 적이 있는가. 지도자의 권위를 걸고 보증할 수 있는 위력적인 수소탄이며 그 수소탄으로 뭔가 이루려는 중대한 결심을 내렸음을 알리기 위한 것 외에는 어떤 해석도 불가능한 행보라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북은 전 주민들이 일시에 대피할 수 있는 지하시설을 구축하고 있기에 미국과 전면 핵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북 주민들은 살아남을 수가 있다. 하지만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된 미국은 전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의 핵무기면 지구를 깨뜨릴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핵무기로 지구가 깨지는 일은 없다. 이미 지구 안 내핵에서는 엄청난 핵폭탄들이 지금도 계속 터지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다만 인류가 만든 핵무기로 세계 전체의 도시를 쓸어버리고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도 몇몇 사람들은 살아남겠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북은 거의 모든 인구가 다 살아남게 된다.

 

▲  미국의 항공모함 기지, 항공모함과 그 호위용 이지스 구축함,  대형수송선들의 거점인데 이 기자 상공에서 핵폭탄이 터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미국의 대응책

 

미국이 무슨 비장의 전략을 꽁꽁 숨겨놓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의 군사작전으로 북의 전면적인 핵선제타격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찾을 수가 없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과 미군의 주요 군사거점은 북의 각종 핵탄을 장착한 미사일들이 일시에 발사되면 순차적으로 궤멸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공개된 미국의 모든 군사기지와 근거지들은 모두 일시에 핵폭탄이 상공에서 혹은 지하 깊숙한 곳까지 뚫고 들어와 터지게 되면 그 순간 무력화될 것이다. 미 본토의 경우 북의 공격을 감지하고 피신한 전투기나 함선들이 내려앉거나 정박하려는 공항도 어디든 2차 타격이 가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피신을 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미국은 그간 감히 미국을 건들 나라가 없었고 또 세계 경찰국가로서 원거리 타격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항공모함과 구축함, 잠수함 등 대형 해군장비와 수송선, 대형 전략폭격기, 전투기 등의 장거리 공중타격무기 그리고 그것을 수용할 대형 군항과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군사력을 구축해왔다. 이를 위한 병참기지 등  안락한 시설을 갖춘 대형군사기지를 중심으로 군대를 운용해왔다.

그런데 핵미사일에게는 이점이 치명이다. 미사일이 날아와도 쉽게 피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 100여곳의 미군 기지는 북의 핵미사일이 가장 타격하기 좋은 고정목표물인 셈이다.

 

▲ 시리아 정부군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으로 초토화된 알레포 반군 거점     © 자주시보

 

물론 패트리어트와 사드 요격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스스로도 그 한계를 인정하고 있으며 요격체계에 있어서는 미국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하는 이스라엘 아이언 돔마저 예멘전쟁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초기인 2014년 4월 미국 도널드 쿡 이지스함이 러시아 수호이 24 전투기의 전자전 공격을 받고 모든 레이더 체계가 무력화되는 사상 초유의 경악할 사태를 겪었다.  

 

북이 지난해 100여발의 프로그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왜 단행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혹시 100개의 미군 기지 타격 훈련을 진행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이 자꾸 저런 시험을 하게 되면 그게 시험인지 선제타격인지 미국의 전략가들도 구분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북의 핵선제타격을 미국이 알아차리고 보복타격 명령을 즉각내렸을 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무기체계는 미 본토의 고정 사일로우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북의 탄도미사일이 발사 후 고정 사일로우 탄도미사일을 타격하게 될 20여분만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리지 못하면 거의 모든 미국의 핵미사일은 북의 공격에 무력화될 것이다. 나머지 군 기지는 남한의 경우 1분 30초, 일본의 경우 2분, 괌과 하와이 등도 거의 10분 안에 다 궤멸될 것이다. 수소탄이 상공에서 터져 일단 지상의 모든 시설을 초토화하고 동시에 지하 깊숙한 곳으로 뚫고 들어간 미사일이 터지며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에 거의나 살아남을 군인들은 없게 된다. 일부가 살아남는다고 해서 무슨 전의를 가질 것이며 무슨 무기로 싸울 것인가.

 

잠수함은 바닷속에 은밀히 매복해 있을 경우 파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북은 수많은 잠수함을 만들어 1:1로 미국 잠수함을 추적해오고 있다고 한다. 잠수함 전에서도 미국 잠수함의 피해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북은 수중에서 사용할 핵무기가 있다는 보도도 내 놓았다. 북의 소형 잠수함들이 이런 핵어뢰나 핵미사일을 장착하고 미군 잠수함과 격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100% 다 북이 미국 잠수함을 제압할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잠수함에 북에 대한 공격을 미국 수뇌부가 과연 지시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다. 

미국 고정 사일로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과 핵잠수함 트라이던트 핵순항 미사일은 그 파괴력이 북의 군사거점이 아니라 북의 대도시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걸 쏘는 순간 미국의 대도시도 북의 핵 보복타격으로 끝장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함부로 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초기 타격시 백악관도 초토화되고 미국 수뇌부 자체가 다 궤멸될 것이다. 미국의 의원들이 긴급하게 새로운 지도부를 세운다고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시간이면 북의 특수부대가 백악관을 점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임시 지도부가 꾸려진다고 해도 한반도 인근 미군 거점이 박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미국의 명령권자들이 과연 쉽게 북을 완전히 초토화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후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북은 핵심 기지들은 다 지하 요새로 들어가 있다. 지상의 군 시설들을 미국이 아무리 파괴한다고 해도 생채기도 되지 못한다. 북은 계속해서 미국에 대해 핵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국을 돕는 동맹국이 나타난다면 그에 대한 공격도 연속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대전은 물량전이라면서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만들어 비축해왔던 것을 보면 북은 이미 핵선제타격을 상정하고 오랜 기간 면밀하게 준비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북이 핵 선제타격이 아니라 재래식 전쟁을 한다면 미국은 핵심 거점과 미국 본토, 그리고 동맹국으로부터 끊임없는 물량을 공급받아 집요하게 북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북이 설령 한반도 전체를 장악한다고 해도 미국은 끊임없이 일본과 필리핀 등의 거점에서 북에 대한 재래식 공격을 마구 퍼부어댈 것이다. 봉쇄와 재재는 더욱 혹심하게 진행하여 북의 군수품을 말려버리려 할 것이다.

현대전은 물량전이란 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래서 매우 강조하였고 그 준비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만들어 두었다고 해도 장기전으로 가면 북이 미국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기에 분석을 하면 할수록 현재 북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포한 전면 핵선제타격 전법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북에서는 가장 유리한 전법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의 전면 핵선제타격 경고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될 말인 것 같다. 미국의 신속한 논의와 결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이미 전략은 전면적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북의 주요 군사 지휘관들도 다 물갈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결심만 남은 것 같다.

 

물론 미국도 무슨 비장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 아무리 북이 준비를 잘 했다고 해도 핵전쟁의 경우 미국이 1차 타격에서 남은 핵으로 총 공격을 가하면 북도 그간 세운 모든 산업시설과 도시들이 파괴되고 방사능 오염으로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북은 반드시 미국 일본 본토까지 장악하여 이주 대책까지도 생각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금은보화 가득한 조국 산천을 핵방사능을 뒤집어 쓰게 될 수도 있는 핵전쟁이기에 북도 그런 핵전쟁을 결코 바랄 리가 없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하자마자 모란봉 악단 공연에서 미키마우스를 등장시키고, 로드먼과 같은 미국 농구선수와도 바쁜 시간을 쪼개 친구로 사귀었던 것은 미국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실천적 의사표시였다고 본다. 지금도 그 의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기에 미국이 지금이라도 북과 대화를 통해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시작해야할 것이다. 50년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협정이다. 기술적으로 잠시 휴전하고 있을 뿐이다. 북이 핵미사일을  막대하게 보유하게 된 지금 미국이 북과 계속 전쟁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의 위기는 넘기더라도 북은 더 강력한 핵무기를 계속 공개할 것이고 미국은 더 강력한 군사적 압박과 제재를 가할 것이 자명한데 그런 대결전이 격화되다보면 결국 기어이 전쟁이 터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이제는 재래식 전쟁도 아니다. 핵전쟁이다. 부디 우리 정부에서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더 이상의 정세격화를 막고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대화를 모색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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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정청래, ‘야당 여기있다’며 맨 앞자리서 고슴도치 됐더니..”

김어준 “정청래, ‘야당 여기있다’며 맨 앞자리서 고슴도치 됐더니..”조국 “조중동이 찍으면 공천배제?”…김진혁 “경제프레임 전환 커녕 종편 프레임에 말려”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2015년 12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임정 국무위원 김승학이 김구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2000년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중앙>에서 특종 발굴한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하면서 가슴에 품고 왔다는 극악한 친일을 한 일제 부역자 살생부 명단”이라며 “우리는 반민특위의 좌절로 오히려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고 품고 왔던 극악한 친일 행위자 263명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천배제에 대해 “남들 대신해 고슴도치가 됐더니 그게 보기 싫다는 사람들 많다며 이제 물러나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김 총수는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89편에서 “의리가 없으면 염치라도 있어야지”라고 정치권을 비판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김어준 총수와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에서 맹활약했던 정봉주 전 의원도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의혹 제기와 관련 감옥에 갔었다. 2011년 12월 26일 수감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민주통합당의 정동영·박영선·안민석·원혜영·천정배 의원 등이 환송 행사에 대거 참석하며 구명을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정청래 의원의 정치활동에 대해 김 총수는 “사람들이 대체 야당은 어디서 뭘 하고 있냐고 답답해 할 때 야당 여기 있다고 손들고 나와 맨 앞자리에 섰던 사람이 정 의원이다”며 “맨 앞자리에 서 있느라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을 참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총수는 “이제 손들어야할 때이다, 정청래 계속 보고 싶은 사람, 여기 있다고, 여기 많다고”라며 “전화를 하라, 당신들 잘못 생각한 거라고, 미쳤냐고”라고 시민들의 항의 참여를 촉구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야당 안에서 조중동이 찍은 사람은 결국 배제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자리 잡는다면, 이후 야당 의원의 언동은 순치(馴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조 교수는 “게다가 대여투쟁에서는 립서비스 또는 시늉만 하고, 자기자신과 계파 이익 보존을 위해서는 당 깨기를 불사하며 치열하게 투쟁하는 ‘정당 브레이커’ 김한길 등은 다 받아들여 공천을 준다면”이라며 “이후 더민주의 칼라와 좌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고 따져물었다.

조 교수는 “필리버스터 출구전략에 대한 이견을 표명했을 때도 말했지만, 정치는 ‘공학’만이 아니다”며 “비대위의 현명한 판단을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지식채널e’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더민주 지도부가 친노 프레임이란 걸 실체로 인정하고 정청래 등을 컷오프 시키니 종편이 친노의 핵심인 정세군계는 못 건드렸다며 오히려 비난한다”며 “조중동 프레임에 말린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경제프레임의 전환은 커녕 친노를 쳐냈느냐 아니냐로 선거를 치를지도 모르게 된 것”이라며 “어리석은 지도부”라고 비난했다.

   

또 김 교수는 “조중동 프레임을 등에 업고 야권에서 기생하는 민집모류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며 “이들이 우클릭을 주장하는 것 역시 이런 기생적 구도가 자신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민집모는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의 약칭으로 비주류 의원들의 모임이다. 지난해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로 들끓을 당시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박영선‧박지원 전 원내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등은 혁신 토론회를 열었다. 이후 지난해 12월 7일 ‘야권 대통합을 위한 구당모임’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이종걸 원내대표, 주승용 최고위원, 최재천 정책위의장 등이 이날부터 당무거부를 시작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10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점토론회 '새정치연합, 뭐가 문제인가?'에서 안철수, 김한길 의원 뒤로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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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광명성 4호 안정 성능 개선" 강조

 
위성 과학자, “지구 행해 안정 각도 유지”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3/14 [07: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의 우주 전문가는 광명성4호가 안정된 각도를 유지하는 것을 근거로 위성기능이 개선 되었을 것이라며 실패가 아닌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미국의 위성 전문가가 조선이 지난달 7일 쏘아올린 ‘광명성 4호 위성’이 안정적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 놓았다.

 

미국의소리방송은 지난 13일 미국의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조너선 맥도웰 박사가 “조선의 ‘광명성 4호 위성’이 지구 중력을 이용해 인공위성의 자세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가 밝힌 소식을 보도했다.

 

맥도웰 발사는 지난 10일 ‘VOA’와의 전화 대담에서 “미국의 레이더망과 민간의 사진 자료를 검토한 결과 한이 지난달 쏘아 올린 위성이 소위 ‘중력경도법 (gravity gradient)’을 이용해 궤도를 뒹굴며 도는 현상을 멈추고, 위성 하단이 일관되게 지구를 향하도록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늘고 길게 제작된 위성의 상.하단에 각각 다른 강도의 중력이 가해지도록 조정함으로써 지구를 향해 일직선으로 선 채 회전하게 됐다는 관측이다.

 

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조너선 맥도웰 박사는 네덜란드의 고고학자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마르코 랑브루크 박사가 최근 촬영한 ‘광명성4호’ 사진을 근거로 들며, (위성에서 분리된) 로켓은 여전히 궤도를 뒹굴며 돌고 있지만 위성은 이미 안정단계에 들어섰다는 감식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조너선 맥도웰 박사는또 2012년 12월 발사된 ‘광명성3호’는 마지막 단계 로켓을 포함한 다른 3개의 물체와 궤도를 돌고 있지만 현재 ‘광명성4호’와 함께 회전하는 물체는 분리된 로켓 뿐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맥도웰 박사는 “이 같은 자료와 가용한 정보를 종합해볼 때 조선 위성은 단순히 우주를 떠도는 고철 덩어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하고 있으며, 완전히 가동 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장조했다.

 

또 “카메라가 장착됐을 위성 하단이 줄곧 지구를 향한 채 궤도를 돌도록 한 점으로 미루어 지구관측용이라는 조선의 주장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맥도웰 박사는 ‘광명성4호’가 불안정하게 회전하는 ‘텀블링’ 상태에 빠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초기 진단과 관련해 위성이 발사 직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선 수 주일이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하며 광명성 4호가 실패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는 “다만 광명성 위성에서 아직까지 어떤 무선 신호도 감지되지 않고 있는 것을 중요한 한계”라며 “조선 상공을 지날 때만 지상과 교신하도록 설계돼 있는지, 아니면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고 말해 광명성4호를 기술적으로 다 이해하지 못했음도 시인했다.

 

일부 우주 전문가들은 광명성4호가 북과의 교신은 이루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는 교신내용이 잡히지 않도록 설계 제작 되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 놓고 있다.

 

맥도웰 박사는 앞으로 조선이 위성에서 촬영된 사진을 공개하는 지와 누군가 위성의 무선 신호를 포착하는지가 조선 위성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맥도웰 박사는 지난 2012년 12월 태양동기 극괘도 위성인 은하3호 로켓 발사 직후,조선 위성이 정상적으로 궤도를 돌고 있지만 발신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분석 결과를 처음 공개해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러시아와 우주세계 우주관계국과 전문가들에 의해 은하 3호가 제대로 작동운용 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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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성 세대가 청년을 '집단 이지메' 하고 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3/14 08:36
  • 수정일
    2016/03/14 08: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청년, 청년 배당을 말하다⑧] 청년 배당 앞에 놓인 운명은?
 
| 2016.03.14 07:50:01
역시 '사이다 시장'이라는 별명이 어울렸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직설적인 비유가 자주 나왔다. 물론 차분한 논리의 설명이 먼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특정 나이의 모든 청년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준, 청년 배당을 시행하고 있는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지금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집단 '이지메(따돌림)'를 가하고 있다"는 말로 청년 배당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기회와 가능성까지도 신규 세대가 오히려 기성 세대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후진국에 태어나봐야 정신 차리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나쁜 짓의 수준을 넘어 무식한 패악질"이라고 이 시장은 말했다. "노인을 위한 기본소득은 되는데 청년을 위한 기본소득은 왜 안 되냐"고 되묻기도 했다.  
 
청년배당을 반대하는 이들도 자기 자식의 취직 걱정에 한숨이 깊지 않냐며 이 시장은 "기성세대가 상반된 행동을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상반된 행동'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청년 실업 등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매번 말하면서도, 청년을 위한 성남시의 청년 배당과 서울시의 청년 수당 등의 정책은 반대하고 있다. 이 시장은 "정부가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자신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그렇다"고 평가했다.  
 
진행 중인 관련 소송에서 지면 청년 배당은 어쨌든 중단이 불가피하다. 이 시장과 성남시의 도전 앞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은 지난 7일 성남시청에서 진행된 이 시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프레시안(최형락)

 
"정책 비판하기 어려우니 지엽적인 '상품권 깡' 비난…청년 배당으로 깡 하면 안 되나?"
 
프레시안 : 청년배당 사업이 1분기 지급이 지난 1월 이뤄졌다. 첫 지급 후 어떤 반응들이 있었나? 
 
이재명 : 금액은 적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현장의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은 높았던 것 같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 정도로 무슨 도움이 되겠냐, 사실상 낭비라는 식으로 폄훼도 하고 아주 지엽적인 '상품권 깡'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많이 쓰는 SNS를 살펴 보면, 호응이 좋았다. 우리가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공동체에 대한 기대나 신뢰가 살아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또 정치적 의미도 부여해주더라. 좋은 정치로 혜택을 받는구나 평가하는 것도 봤다.  
 
프레시안 : 청년 배당의 후속 보도로 '상품권 깡' 기사가 쏟아져 나온 것은 다소 엉뚱했다. 
 
이재명 : 사실 어디 가서 깡을 하나? 깡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한다해도 부모에게 하겠지. 할인이 아니라 할증으로 돈 더 받고 말이다. 12만5000원 어치 상품권 엄마에게 장 보라고 주고, 15만 원 받았겠지. 할아버지한테 주면 20만 원 받고, 애인에게 주면 못 받겠지만.(웃음) 사실 지역 화폐는 용도가 제한돼 있어서 정상적인 할인 시장이 없다. 등록돼 있는 점포만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상품권 거래 사이트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일간베스트(일베)에서 편집해서 올려 놓으니, 보수 언론이 마치 지금 일인냥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 자료가 일베에서 나온 거라는 건 이미 증명되지 않았나. 
 
왜 그런 비판을 할까? 정책 자체를 비판하기 어려우니까 그 정책으로 인해 생기는 지엽적이고 부수적인 부작용을 확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깡' 하면 안 되나? 현금을 준 것인데, 그 돈으로 술을 사먹든 애인을 주든 엄마한테 할증을 하든 물건을 사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상품권 대신 현금을 줬다면 아무 문제가 없나? 현금으로 주면 원래 용도와 더 다르게 사용됐을 것이다. 지역 화폐로 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청년 배당의 두 번째 목표 때문이다. 그 목표에서는 대성공이었다. 성남시 재래시장 매출이 늘어났다. 여러 정책 효과가 겹치긴 했지만, 성남 수정구가 서울 강남구 다음으로 전국에서 창업하고 싶은 지역으로 선정됐다. 심지어 <조선일보> 조사였다.  
 
프레시안 : 정작 가난한 사람들이 이 정책의 혜택을 못 받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될까봐 못 받아갔다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 전체 1만3000명 가운데 청년 배당을 받으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이 140명이 있었고, 그 가운데 실제 40명이 청년 배당을 안 받아갔다. 극단적인 예외 사례다. 그런데 그건 정부 제도의 문제 때문에 불거진 일이다. 일정 소득이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도록 설계된 중앙정부 제도 말이다. 
 
그 경계선에 있으면 청년 배당을 못 받게 되니 고쳐 달라고 했다. 청년 배당은 복지 혜택인데 그 돈을 왜 소득으로 인정하냐는 게 내 생각이다. 청년 배당만이 아니라 국민 연금을 받아도 소득으로 잡히도록 현재 제도가 돼 있다. 정부 정책의 문제를 청년 배당만의 문제인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행정을 하는 정부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정치도 아니고. 나를 공격하자고, 자기들이 만든 전체 제도의 문제를 마치 청년 배당 정책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간 것이다.   
 
"기본소득이 비용도 덜 드는데, 이건희 회장 골라내자고 돈 더 쓰자?"
 
프레시안 : 이번 기획에서 만난 청년 가운데 청년 배당을 실제 받았던 청년은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재명 : 성남시의 대부분의 복지는 선별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복지를 다 선별복지로 해야 할까? 반대로 모든 복지는 다 보편적으로 해야 할까?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성남시의 수백 가지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선별적 복지다. 급식, 교복, 산후조리원만 보편적 복지다.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도 아이를 낳으면 보편적 복지로 지원하지 않나? 국민에게 의무적인 요소가 있는 것들은 대개 보편적 복지 형태로 돼 있다.  
 
선별이냐 보편이냐의 판단은 재정 상황이나 각 시행 주체의 역량, 현장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택하는 정책 결정의 영역이다.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절대적으로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 성남시는 그동안 노인과 장애우 등에 대한 선별 복지를 많이 늘려 왔고, 그 부분이 어느 정도 채워졌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보편 복지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청년 배당은 복지라기 보다는 부분적 기본 소득에 가깝다.   
 
프레시안 : 청년 배당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부분적 기본 소득'이다. 여전히 기본 소득은 낯선 개념이다.   
 
이재명 : 국가의 소득재분배 정책, 쉽게 말하면 복지가 약자 보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 크게 말하면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자본주의는 무한경쟁 체제인데 다치거나, 애를 낳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탈락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방치하면 노동력 공급이 더 이상 안 된다. 복지는 국가가 공짜로 선심 쓰는 것이 아니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다. 물론 그 외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인권적 측면도 있다.  
 
사실 선별 복지는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른 측면이 있다. 이건희 손자 골라내려고 인력을 써야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사실 유지 비용이 더 든다. 청년 배당을 예로 들면, 이건희 손자 500명 골라내봐야 5000만 원 아끼는 건데, 그를 위해서는 매년 신규로 들어 오는 1만3000명을 일일이 조사하고, 분기별로 상황이 바뀌었는지 또 조사하고…. 돈이 더 든다.  
 
한 가지 더, 복지는 경제 상황과도 관계가 있다. 나미비아에서 실험을 해 봤더니,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니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선별적 복지제도를 할 경우, 오히려 보호 대상자가 한계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동을 안 하는 것과 대비됐다. 선별 복지의 대상자는 영원히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다. 혹은 소득이 안 잡히는 비정상적인 일만 한다. 선별 복지가 오히려 일을 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니, 이야말로 비효율적이지 않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무 소득이 없으면 한 달에 28만 원을 준다. 그 돈을 받으려고 지금은 아무 일을 안 한다. 그런데 기본 소득 형태로 주면 그 돈과 일해서 번 돈을 다 가질 수 있으니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한 가지, 왜 돈 잘 버는 사람을 주냐는 비판의 대목이 있는데 그건 세금으로 더 걷으면 된다. 세금의 누진시스템을 조금만 손 보면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비용도 덜 들고, 개인의 소득 증대에도 도움 되고, 경제성장에도 더 도움이 된다.  
 
프레시안 : 유럽에서는 이미 기본소득제도가 많이 도입이 돼 있다. 
 
이재명 : 핀란드에서 올해부터 전국민에 대한 기본소득이 도입된다. 스웨덴도 도입을 위한 투표를 한다. 도입할 경우 세금이 70% 올라가는데도, 좋다고들 한다. 우리와 달리 그 나라들에서는 자신이 낸 세금을 대부분 돌려주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한다. 복지를 국민에 대한 투자로 보는 나라들이다. 전 국민에 대한 기본소득 이전 단계에서는 청년 수당, 학생 수당, 아동 수당, 취업 장려 수당 등 부분적 기본소득 제도가 있었다. 
 
부분적 기본소득은 우리도 도입될 뻔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심지어 이건희 회장까지도 기초노령연금을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당선되고 나서 돈 없다고 하면서 결국 사기가 됐지만, 명백하게 당선된 대통령의 대국민 공약이었다. 기초노령연금이야말로 부분적 기본소득이다. 선거를 통해 국가 정책으로 채택까지 됐다. 집권 이후 후퇴해서, 지금은 멀쩡하게 월 20만 원을 받는 사람이 40%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노인을 위한 기본소득은 되는데, 청년을 위한 기본소득은 왜 안 되는가?
 
"어버이연합 회원들도 자기 손자 보면 한숨 나올 걸" 
 
프레시안 :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복지는 '보호'의 개념이고, 청년은 그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이재명 : 사지 멀쩡하면, 장래에 무한한 꿈과 미래가 펼쳐져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프레시안 : 기성 세대의 인식은 그렇다. 
 
이재명 : 옛날엔 맞는 말이다. 지금은 안 맞는다.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도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기성 세대보다 신규 세대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심지어 기성 세대들 자기 자식을 생각하면 한숨만 쉬지 않나. 어버이연합 구성원도 자기 손자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걸?(웃음) 젊은 세대도 '우리는 가능성이 없어'라는 데 동의한다. 아버지보다 더 나빠질 거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안 낳는다.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나빠질 거라 믿고 있는 것이다. 진짜 서글픈 일이다.  
 
기성 세대와 신규 세대의 꿈과 미래가 역전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에게 '가능성'을 말하면 안 된다. 과거 얘기하면 안 된다. 쌀밥만 먹으면 행복할 때가 있었지만 우린 이미 쌀밥 먹고 있다. 그런데 쌀밥에 만족하라는 무식한 소리가 어딨냐? 정치 지도자들이 '후진국에 태어나봐야 정신 차리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나쁜 짓의 수준을 넘어 무식한 패악질이다. 새 새대에게 우리 세대가 가진 것 이상의 기회를 줄 생각을 해야지, 우리보다 더 나쁜 것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 있나. 역사의 발전을 부인하는 것이다. 발전하지 말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가?  
 
프레시안 :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재명 : 실제 기성 세대가 매우 상반된 행동을 한다. 집단으로 보면 젊은 세대에 대한 작은 복지 혜택도 엄청나게 아까워하고 기회와 미래를 만들어주는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개인으로는 아들·손자 걱정에 시름이 깊다. 그런데 이는 집단으로 놓고 보면 자식 세대에게 '이지메(따돌림)'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기성 세대 중 일부는 복지 혜택의 수혜자다. 그 세금은 젊은이도 내고 있다. 아이스크림 사먹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기성 세대에게 들어가는 복지의 재원을 낸다. 똑같이 세금도 내고, 상황은 더 나쁜데도 왜 청년만 복지의 혜택을 받아선 안 되나? 
 
성남시의 복지 예산 전체에서 노인 관련 복지가 30%가 넘고, 청년 관련 복지는 청년 배당까지 포함해도 겨우 1.9%다. 청년 관련 복지에 등록금 이자 지원 정책까지 합쳐져 있는 것인데도, 겨우 그 수준이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수가 기회와 이윤을 독점하는 사회, 망할 징조다" 
 
프레시안 : 기성 세대의 '집단 이지메'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인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저성장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이재명 : 그런 면도 있다. 기회의 총량 자체가 줄어든 것은 맞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가 더 적냐면 그건 아니다. 그럼 왜 우리만 유난히 청년 문제가 심각할까. 세계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할 만큼 말이다. 기회와 소득, 이윤을 특정 소수가 독점해서 그렇다.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이 망할 징조를 본다. 역사적으로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될 때, 나라가 망했다.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면 그 나라가 흥한다. 물론 기득권의 저항은 있었고 그걸 전쟁이든 혁명이든으로 막아야 했지만, 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나라가 흥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 이미 재벌이 슈퍼마켓까지 다 뺏고 나서는 미용실도 뺏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부려 먹기 좋은 것이 청년이다. 기회가 적어지니 힘 없는 사회 초년병에게 압박이 집중된다. 청년실업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정책을 보면, 실제로는 청년 괴롭힘 정책이다. 인턴제, 청년고용 보조금제가 전부 그렇다. 보조금 받는 동안은 청년을 싸게 쓰고, 그 기간이 끝나면 자른다.  
 
청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야 전세계적 문제지만, 우리는 유독 고용 유연성이 강하다. 다 1년짜리 연봉제를 하는데, 이는 결국 사람의 인생 가운데 많이 남겨 먹을 수 있는 시기만 써먹고 이익보다 비용이 커지면 버리겠다는 것이다. 임금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이 생기는 것을 기업이 다 가져가는 건 당연하고, 수익이 적을 때는 왜 그 손해를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나? 손해 나는 농사는 안 짓고 이익이 생기는 일만 하려는 것이 제대로 된 기업인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은 결국 기업더러 청년 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정부가 청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못 갖게 강요하는 셈이다. 고용안정성을 낮추려면 임금을 높여야 한다. 헌법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그게 맞다.  
 
프레시안 :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데, 정치에서는 오히려 전면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청년 정책들을 내놓긴 하지만 말이다. 
 
이재명 : 2011년 <프레지던트>라는 드라마에서 최수종 대통령 후보가 이런 말을 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표하는 국민이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못 배우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버스 타고 읍내에 나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여러분은 애인 팔장 끼고 산으로 들러 놀러가지 않았냐"고. "권리 위해 잠자지 않는 사람은 보호 받지 못하고 투표 하지 않는 계층은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서운 건 주권을 행사하는 주인, 말하는 주인이다. 바보 처럼 말도 안 하고, 관심도 없는 주인은 안 무섭다. 지배 대상일 뿐이다.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주인에게는 그렇게 못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주인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다. 정치는 이 사회의 자원 배분 뿐 아니라 고용과 산업 등 경제에 대한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결정이 자신에게 유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보다.
 
"정부가 지자체 복지에 제동? 자신들의 본질 드러나는 게 두러워서"
 
프레시안 : 사실 성남시나 서울시의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앙정부의 견제에도 당연히 정치적 해석이 깔려 있다.   
 
이재명 : 정부가 성남시의 복지 정책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자신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그렇다. 첫째,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시장이 살림을 잘 하니까 혜택이 나한테 돌아오네'라는 걸 알게 되면 복지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둘째, 재원에 관한 문제다. 우리 시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똑같은 살림으로 전에 모 시장은 빚만 수천억 남겼는데, 시장 바뀌고 세금을 더 걷는 것도 아닌데도 빚도 다 갚고 자꾸 뭘 주네? 저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런데 정부는 왜 못 하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각종 부정부패, 예산 낭비, 이권 챙기기 등을 국민이 알게 된다. 
 
사실 나는 시민에게 걷은 세금을 좀 아껴서 돌려줬을 뿐이다. 그게 왜 악마인가? 물론 다른 지방정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앙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지방 정부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다. 구조상 지자체는 정부보다 무능하거나 부패할 수가 없다. 감사만 해도 엄청나게 많고, 그런데 중앙정부는 스스로 감시하지 않나. 
 
프레시안 : 청년 배당 등 복지 정책 때문에 여러 소송이 한꺼번에 진행 중 아닌가. 
 
이재명 : 경기도가 먼저 제기했다. 물론 법과 상식에 따라 법원이 판단한다면 이길 것이라고 본다. 지방자치는 헌법에 따라 독자적 권력과 독자적 재정을 가지고 있다.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다. 주민 복리에 관한 사안을 지방정부가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에는 중앙정부와 '협의'하라고 돼 있다. '협의'는 우리도 했다. 그런데 협의가 잘 안 됐다. 안 되면 사회보장위원회 조정에 넘기게 된다. 그럼 우리는 조정 결과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나? 아니다. 조정 결과를 반영하라고 법에 써 있다. 법 조항이 '따른다'가 아니다.  
 
그 조항을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건 일방적인 해석일 뿐이다. 법원과 헌재가 이런 억지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정치하는 곳도 아니고, 법을 따라 심사숙고해서 합리적 결론을 내기면 이길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다면?  
 
이재명 : 지면 법에 따라야지.  
 
프레시안 : 청년들의 실망이 클텐데….  
 
이재명 : 청년들의 몫이다. 그런 소송을 거는 도지사를 뽑았잖아.(웃음) 사실 다른 지자체도 협의 중인데 예산은 편성해 놓은 곳이 많다. 그런데 그런 곳은 소송 안 걸면서 성남시만 콕 찍어 소송을 제기했다. 거긴 합법이고 우리만 불법인가? 집행을 하는 예산은 불법이 되고, 집행을 안 하는 예산은 합법인가? 이 재판에서 지면 못 한다. 섭섭해 해도 어쩌겠나. 그런 도지사가 뽑히도록 왜 가만히 있었냐고 물어야지.  
 
 
"청년 배당은 노인기초연금이고 서울시 청년 수당은 '노인 일자리 사업'"
 
프레시안 : 서울시에서도 청년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지원 활동을 곧 시작한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비슷한 정책으로 같이 묶어서 많이 얘기하는데, 평가를 해본다면?
 
이재명 : 각 자치단체마다 필요와 상황에 맞춰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다 똑같이 하라고, 획일적으로 하라고 강요하지만 그건 자치를 부인하는 행위다. 각 지차체가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필요한 각종 정책을 만들어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서울시의 정책은 청년 배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교 대상도 아니다. 청년 배당은 부분적 기본소득의 개념이고 청년 수당은 선별적 청년 복지 정책이다. 굳이 비슷한 예를 들자면 성남시는 노인기초연금이고 서울시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프레시안 : 정치 얘기를 마지막으로 해보자. 4.13 총선을 앞두고 있다. 야권은 분열돼 있고, 여당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재명 : 야권에 매우 비관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 진짜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가려질 것이라 본다. 정치가 권력을 획득하고 월급 받으려고 해 먹는 '짓'이 아니지 않나. 우리 공동체가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것이 정치다. 실제로는 자기 자리 유지에만 급급하고 국민과 나라 생각은 없는 정치인이 상당히 많다. 전체는 다 죽이고 자기 혼자 혜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이번에 걸러지지 않을까? 또 걸러져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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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조 전 통일차관 유고집 『이봉조의 통일 수첩 』

임동원 “‘피스 메이킹’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료”<화제의 책> 이봉조 전 통일차관 유고집 『이봉조의 통일 수첩 』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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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3  1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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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고, 평화는 깨지고 나서야 그 귀중함을 아는 것일까? 연일 ‘평양 진격’이니 ‘서울 해방’이니 군사적 갈등이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평화를 만드는 길’(피스 메이킹)에 전념했던 한 인간에 대한 발자취가 출간돼 주목된다.

   
▲ ‘이봉조 유족회’가 2주기를 맞아 엮은 『이봉조의 통일 수첩 - 협력을 위한 평화, 평화를 위한 협력』(출판사 옹기쟁이)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봉조(1954~2014) 전 통일부 차관의 2주기를 맞아 ‘이봉조 유족회’가 『이봉조의 통일 수첩 - 협력을 위한 평화, 평화를 위한 협력』(출판사 옹기쟁이)을 펴냈다. 60세를 일기로 갑작스럽게 별세한 고인의 수첩 기록과 기고문, 연보를 정리한 것.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통일이 진전되어야 하고, 통일부에서 일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에 통일부 직원 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해서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이봉조는 민화협 기관지 『민족화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통일부(당시 통일원) 입부를 이같이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흥사단 활동으로 사회의식이 싹텄고, 서강대학교를 다니면서 ‘데모’에 참가했던 ‘운동권 학생’ 전력의 그가 통일원에 들어간 것은 그의 말대로 ‘운이 좋았다’.

그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과 청와대 통일비서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정책조정실장 등 중책을 맡다 통일부 차관을 끝으로 통일부를 떠난 2006년까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시기다.

그의 상관이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추천사에서 “고인과 나는 ‘피스 메이킹’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료였던 셈”이라며 “이 책은 1990년로부터 2010년대까지 20여 년간 ‘피스 메이킹 시대’의 일부를 복원해주고 있다”고 적었다.

실제로 그가 남긴 수첩에는 1990년대 초반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과 남북기본합의서에 관한 메모들이 확인되며, 헌법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음’에 반해 현실은 ‘de facto(사실상) 국가로 승인’하고 있는 모순에 관한 메모는 이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한 특수관계로 표현돼 현실화 됐다.

그의 가장 화려한 활약은 아무래도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5년 5월 제1차 남북차관급회담을 꼽을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 역사적인 이들 사건에 그는 청와대 통일비서관과 통일부 차관으로서 핵심적인 역할과 주역을 담당했고, 그 과정을 수첩에 메모했다.

그의 메모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과욕을 부리지 않겠다”, “1972. 2. 닉슨 미국 대통령은 마오쩌둥을 만났다. 그 만남은 어떤 합의보다 중요했으며,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어렵고 심각한 문제는 시간을 두고 협의해갈 것” 등을 언급했음을 알 수 있고, 그는 평양 백화원 2호각 281호실에 천해성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묵으며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했음이 확인된다.

그의 메모는 남북정상회담 분위기에 대해 “허심탄회, 오해 풀고 신뢰 조성에 역점. 성과는 덤으로 생각. 54시간 체류 기간 중 11시간 대화”라고 적었고, 김 대통령의 발언을 4개 분야로 요약하면서 ‘의제 주도’라고 기록했다. ‘이봉조 판 김대중-김정일 대화록’인 셈.

스스로 ‘가장 힘이 컸던 시기’로 회고한 바 있는 NSC 정책조정실장 때는 6자회담까지 관할했고, 2006년 제15대 통일부 차관에 취임해 1년 7개월간 직무를 수행했다. 차관으로서 제1차 남북차관회담에 나서 제15차 장관급회담 개최와 평양 6.15통일대축전 남측 정부 대표단 참가, 비료 20만톤 지원 등의 합의를 이끌어낸 과정도 기록됐다.

통일연구원장을 거쳐 야인이 된 그는 흥사단 도산통일연구소 소장 등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고, 공직을 떠난 후 본격적으로 여러 언론에 기고한 글들은 이 책의 2부에 고스란히 실렸다.

“우리는 남북대화에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북대화의 재개 이것만이 그나마 우리가 11월의 날씨마냥 우울한 갈등과 고립에서 벗어나 2014년 새해를 밝은 마음으로 맞게 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통일뉴스>의 경우 20013년 11월 4일자 칼럼 ‘최근 한반도를 둘러 싼 정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끝으로 그해 12월 ‘간암 판정’을 받고 “더 이상 기고를 이어갈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해왔고, 2014년 3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문제의 근본을 직시하고 신중한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안정을 위해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체적인 행동계획으로 옮겨 동북아 갈등 구조의 해결에도 기여해야 한다.” 그가 <국제신문> ‘시사프리즘’에 남긴 마지막 공개 기고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임동원 전 장관은 “내가 아는 고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바로 이러한(통일 업무 공직자의) 요건과 자질을 고르게 갖춘 뛰어난 통일 관료였다”며 “오늘날에도 그가 나와 함께 일하며 보여준 전문성과 정책 입안 능력, 협상 능력,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대해서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회고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추천사에서 “상아탑 속에서 이론적으로 쓴 글들이 아니고 통일 문제 최일선에서 복잡다단한 문제들과 부대끼면서 느낀 점, 아쉬웠던 점, 개선점들을 정리해 놓은 글들”이라며 “그저 그런 한 사람의 유고집이라고 쓰-윽 한번 훑어보고 말 일이 아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엮은 필자는 “분단의 역사에 가장 우선되는 시대정신은 통일”이고 “자주적인 평화 통일을 향해 실천한 시대정신이 바로 햇볕정책”이라면서 “그 성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다 뜻을 미처 다 이루지 못하고 아쉽게 떠난 고 이봉조 차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생전의 가까운 지인들이 살아온 행적을 모아 훗날을 위한 자료집을 발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사와 동료는 물론, 부하 직원들에게도 사리에 맞지 않거나 무리한 보고 또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거나 “이봉조 스스로는 배경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므로 매사에 열심히 노력할 뿐이라고 아내에게 말하곤 했다”는 등 연보를 비롯한 책 내용 곳곳에는 ‘인간 이봉조’의 면면도 녹아있다.

   
▲ 2009년 11월 13일,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재일 삼천리철도 도상태 이사장 일행을 초청해 도라산역과 판문점을 둘러봤다. 사진 맨 왼쪽이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맨 오른쪽이 이봉조 전 차관의 파트너인 남상삼 삼천리철도 부이사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사족으로 이 책을 소개하는 기자 역시 재일동포 통일단체인 ‘삼천리철도’(이사장 도상태)를 취재하며 이봉조와 파트너인 남상삼 삼천리철도 부이사장의 교류를 지켜본 적이 있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해 해외에서 성금을 낸 삼천리철도가 정작 남북철도 개통식에 초대받지 못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삼천리철도 간부들을 초청해 도라산역을 둘러보았고, 삼천리철도는 이들을 일본 나고야로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이후 삼천리철도는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봉조 전 차관과 남상삼 부이사장은 이 과정의 실무책임을 맡아 빈틈없이 일을 추진했고, 이봉조 전 차관은 나중에 한국을 방문한 남상삼 부이사장 부부를 안내해 서울 구경은 물론, 지리산 둘레길을 함께 걷는 등 개인적으로도 도타운 친분을 쌓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상삼 부이사장이 2012년 6월 먼저 세상을 등졌고, 이봉조 전 차관 역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대북 밀사역을 담당했던 박철언 특보의 『역사를 위한 바른 증언』이나 임동원 전 장관의 『피스 메이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칼날 위의 평화』 등이 모두 남북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이들의 자필 원고라면, 이봉조 전 차관의 『이봉조의 통일 수첩』은 유고집이라는 점에서 아픔이 남는다.

‘이봉조 유족회’와 지인들은 고인의 2주기인 오는 15일 오후 5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포레스트헤븐 1계간 4-10)에서 추도 및 『이봉조의 통일 수첩』 헌정식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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