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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면 종북' 천안함 신앙 강요해선 안돼”

 

참여연대 천안함 6주기 논평 “합조단 증거가 논쟁 불러… 과학적 재조사만이 해법”

천안함 침몰 사건 6주기를 맞아 천안함 침몰원인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과학적 재조사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 발표를 의심하는 것 자체를 비국민과 종북으로 모는 풍토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25일 내놓은 논평에서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6년이 됐지만 침몰 원인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며 “‘북한의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일종의 가설은 남북관계를 훼손하고 국내 여론을 분열시켜 대립을 조장한 원인이 돼왔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구체적인 침몰 양상과 원인을 따지고 규명하기보다 정부의 발표를 믿는 측과 의혹을 품는 측으로 한국 사회는 분열됐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억압받아 왔으며, ‘폭침’이라고 확인할만한 정보와 신뢰할만한 근거는 사실상 제기되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정부와 일부 언론은 북한에 의한 폭침 사건으로 단정 짓고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은 종북 분자로 매도해왔다”고 비판했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북한 1번 어뢰에 의한 폭침’ 조사결과에 대해 참여연대는 선체 파손상태와 시뮬레이션, 흡착물질, ‘1번 어뢰’ 등의 증거가 (과학적) 동의를 받거나 반박, 재반박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증거로 확정되지 못하고 오히려 논쟁만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어뢰침몰설에 의혹을 제기해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1심 판결 재판부도 “천안함 사건의 초기 대응과정에서 정부와 군의 지나친 정보 독점과 일부 부정확한 정보의 제공 때문에 피고인을 비롯한 국민들이 정보를 취사선택함에 있어 상당한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고 참여연대는 전했다.

 

▲ 천안함 함수.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안보공원. 사진=연합뉴스

참여연대는 “우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 그리고 몇몇 과학자들은 수년에 걸쳐 동일한 제안을 해 왔다”며 “검증 가능한 과학적 방법론이 제안되고 있는데, ‘의심하면 비국민이고 종북이다’라고 밀어붙이면서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검증과 재조사’ 만이 해법이라고 참여연대는 제안했다.

다음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25일 발표한 논평 전문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 ‘과학적 검증과 재조사’ 만이 해법이다

오는 26일(토)은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지 6년이 되는 날이다. 먼저 이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46명의 천안함 승조원들과 구조과정에서 희생된 한주호 준위, 그리고 98금양호 선원들의 명복을 빌며, 희생자 가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6년이 되었지만 침몰 원인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또한, ‘북한의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일종의 가설은 남북관계를 훼손하고 국내 여론을 분열시켜 대립을 조장한 원인이 되어왔다. 구체적인 침몰 양상과 원인을 따지고 규명하기보다 정부의 발표를 믿는 측과 의혹을 품는 측으로 한국 사회는 분열되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억압받아 왔으며, ‘폭침’이라고 확인할만한 정보와 신뢰할만한 근거는 사실상 제기되지 않았음에도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이 사건을 북한에 의한 폭침 사건으로 단정 짓고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은 종북 분자로 매도해왔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선체 파손상태와 시뮬레이션, 흡착물질, ‘1번 어뢰’ 등을 근거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가 동의를 받거나 반박, 재반박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뢰를 얻어 증거로 확정되지 못해 오히려 논쟁만 불러왔다. 어뢰침몰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 온 시민 중 한 사람인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1심 판결 재판부도“천안함 사건의 초기 대응과정에서 정부와 군의 지나친 정보 독점과 일부 부정확한 정보의 제공 때문에 피고인을 비롯한 국민들이 정보를 취사선택함에 있어 상당한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서울대는 라는 박사학위 논문에 최우수논문상을 수여했다. 이 논문의 필자는 천안함 침몰원인을 밝혀 줄‘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1번 어뢰’증거조사에서 합동조사단이 과학적으로 논쟁이 많은‘까다로운 증거’들을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주장했다가 새로운 논쟁을 부른 반면, 도리어 손쉽게 검증할 수 있는 증거들은 소홀히 다루어지거나 배제되었다고 지적했다. 합조단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것이 사전에 형성된 시나리오나 가설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리고 “천안함 침몰사건의 경우에 공적 조사기구의 ‘과학적 조사’는 논쟁적 상황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논쟁대상의 일부가 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 논문은 “그동안 소수 과학자들이 참여한 ‘과학논쟁’의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 지의 문제가 쟁점별로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왔으므로, 논쟁적 상황과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거나 해소하기 위해서 검증이나 재조사의 가능성도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 그리고 몇몇 과학자들은 수년에 걸쳐 동일한 제안을 해 왔다. 검증 가능한 과학적 방법론이 제안되고 있는데, “의심하면 비국민이고 종북이다”라고 밀어붙이면서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2016년 3월25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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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각 정당 공천 마감, 후보등록 시작

 
 
[판세분석] 새누리당 150, 더민주 107, 국민의당 20… 목표치 가능할까?
 
임두만 | 2016-03-24 14:24: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상최악의 공천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각 정당의 공천 전쟁이 끝났다. 이 공천 전쟁을 통해 새누리당은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광주의 2곳을 제외한 251개 지역구에서 공천자를 냈으며, 비례대표 후보로는 45명을 공천, 총 296명의 공천자를 냈다.

이어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취약지역인 대구 경북 경남 등에서 20곳의 공천자를 내지 못해 총 233개 지역구와 36명의 비례대표를 공천, 269명의 후보자를 냈으며, 제3당인 신생정당 국민의당은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총 182명, 비례대표 18명을 포함 총 200명을 공천했다.

그 외 정의당, 민주당, 민중연합당 등 정당이 약 100여 명의 공천자를 낸 가운데 이들 정당의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배제된 후보들을 포함, 무소속은 25일 등록이 완료된 후 집계되겠지만 대략 300명 안팍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전체 경쟁률은 3:1이 넘고 4:1은 안 될 것으로 추산된다.

▲총선 대전 출발선에 선 여야 3당 대표, 김무성 김종인 안철수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은 지역구 130여 석, 비례 20여 석을 당선 안정권으로 보면서 최소 과반(151석 이상), 최대 180석(국회선진화법 무력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의 목표인 107석(지역구90, 비례17)을 얻으므로 새누리당 개헌선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며,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의 목표선인 20석 이상(지역구 15석, 비례 5석)을 획득, 제3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외 정의당이나 민중연합당 등 진보정당, 민주당과 기타 군소정당은 최소한 1명 이상의 당선자를 내서 원내 정당으로 남는 것이 목표이며, 특히 정의당은 비례대표 5석, 지역구 2~3석(심상정, 노회찬, 박원석, 정진후 중 2~3명 당선)을 기대하면서 최소 7석, 최대 10석까지 기준치를 잡고 있다.

하지만 각 정당의 이 같은 목표치에 비해 현재 바닥의 민심은 근접한 정당도 있고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정당도 있다. 즉 공천전쟁 와중에서 애초 예측치가 상당부분 틀어진 때문이다.

우선 새누리당은 야권의 분열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총선 공천이 시작되기 전 최소 180석에서 최대 220석까지도 넘보는 압승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천전쟁이 시작되면서 ‘진박논란’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어긋난 발언을 했던 경력이 단 한번이라도 있을 경우 보복적으로 탈락시키는 무자비한 칼질공천을 강행,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끝내 유승민 주호영 이재오 등 중도보수, 이른바 합리적 보수세력을 모두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악수를 거듭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감행, 공천전이 시작되기 전 157석이던 의석이 공천이 끝난 현재 146석으로 제적 과반수도 붕괴된 상태다. 이에 바닥의 여론도 많이 식어 야권분열의 반사이익보다 여권분열에 대한 표분산을 우려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 새누리당의 외부적 목표치는 과반선을 넘기는 수준이다. 그러나 내심은 160석은 넘길 것으로 기대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가 제시한 107석이 희망선이다. 그러려면 전국 지역구에서 최소한 90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 그럴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 122석 중 야당 강세지역인 서울 강북권, 관악 구로 금천 등 서남권, 고양 안양 남양주 등 위성도시의 표심이 상당부분 야권으로부터 멀어졌으며, 더구나 다수의 야권후보가 난립, 당선 안정권으로 나타나는 여론조사가 드물다.

여기에 야당 텃밭이었던 호남권 28석 중 당선을 자신하는 지역구가 5~6개에 불과하다. 특히 이처럼 선거환경이 척박해진 가운데 김종인 대표의 김대중 폄하발언은 호남권 유권자들의 공분을 사게 되어 더불어민주당의 호남지역 총선 전망은 암울 그 자체다.

결국 이런 상황의 극복은 지역별 후보연대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표의 결집이 이뤄지는 상승작용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세균 의원 등 더민주 중진들의 연대발언이 자주 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현재 더민주와 국민의당 지지층의 균열은 이런 상승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더구나 선거전이 진행되면 그 균열은 더 벌어질 개연성이 크다. 이에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더민주의 총선 결과는 참패를 넘어 처참 수준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재 주요 3당의 총선 목표치에 가장 근접한 당은 국민의당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당은 대내적이나 대외적으로 이번 총선의 목표치를 20석 원내교섭단체 구성으로 잡고 있다. 따라서 이 목표치는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물론 국민의당도 총선 공천 잡음이 심각하게 돌출되었다. 하지만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비례공천 막판 ‘진산파동’에 비견할 ‘종인파동’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사실은 현재 호남권 김대중 지지층의 공분을 사고 있다. 공분은 앞서 문재인 전 대표를 포함한 친노그룹에게 있었던 반감에 반 김종인 감정까자 에스컬레이트 되어 더민주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힘들 정도다.

이는 한 때 천정배 국민의당 대표와 견줄 수도 있을 것이라던 광주 서을 양향자 후보의 지지율이 천 후보와 20%포인트 가까이 차이로 벌어진 것에서 증명된다. 때문에 국민의당은 이후 심각한 악재가 발생하지 않는 한 광주전남 18개 의석 중 최소 반타작 이상 최대 15석, 또 전북지역 10개 선거구의 절반 포함, 호남지역에서만 20석을 목표치로 해도 그리 과한 목표치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 예측은 3당의 헨디캡으로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은 정당 지지도가 있으므로 비례6~7석에, 수도권 2~3석을 더한다면 최대 30석을 넘길 수 있다는 예측치에 이른다. 이런 성적을 국민의당이 올린다면 이는 1992년 신생정당이던 제3당 통일국민당 31석, 2008년 신생정당이던 자유선진당 18석+친박연대 14석+창조한국당 3석=37석에 근접하는 신생정당 제3당의 성적표가 된다.

이 외 정의당은 현재의 5석 수준을 비례로 얻을 수 있는 전망치가 합리적 수준인데 야권의 지역별 연대를 통한 지역구에서 의의의 결과를 도출하면 예전 민노당 수준의 10석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여야 각당의 이런 전망과는 달리 이번 선거는 무소속 돌풍을 예측할 수도 있다. 즉 2008년 이명박 한나라당의 친박계 몰살공천이란 반사작용으로 친박연대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14석을 얻고, 무소속이 전국적으로 25명이나 당선되었던 선거의 재판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직전 해 대선 실패 후 지리멸렬했던 민주통합당이 81석이란 성적표를 받는 참패였음에도 1당이 된 한나라당은 과반에서 3석을 넘긴 153석만을 얻는데 그쳤다. 이는 3당인 자유선진당이 충청권을 기반으로 18석, 4당인 친박연대가 14석, 민노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무소속 25석을 획득한데 따른 것이다. 즉 이명박 바람의 여세를 몰아 애초 압승을 예상했던 한나라당은 가까스로 과반을 넘긴 153석이란 성적표를 받았던 것이다.

이런 전례와 현재 공천이후 생긴 잡음들을 감안해서 본보 또한 이번 선거의 결과는 2008년 18대 총선 결과에 근접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즉 새누리당 150석 내외, 더민주 80석 내외, 국민의당 25석 내외 정의당 5~6석 무소속 30석 정도로 보는 것이 정확한 판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편 24일부터 후보등록이 시작된 현재 여야 각 당에 따르면 목표 의석 수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경우 ‘보수적’이고, 더민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새누리당은 ‘과반’(150석 이상)을 제시한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예측은 “전통적인 지지층이 이탈하지 않는다면 과반 의석을 달성할 것“이며. 당의 전략통인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도 “당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과반수 이상이 목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더민주는 공식적으로는 107석이 목표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지난 1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당시 의석수인 107석 정도만 확보해도 선전했다고 판단한다며 이에 미달할 경우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은 130석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정 단장은 “일단 목표는 높게 잡아야하지 않겠느냐”며 “다만 상황이 유동적이라 조만간 실시할 여론조사를 토대로 정밀한 판세분석을 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130석은 사실상 최대 목표”라며 “19대 총선 때 1000표 미만 차이로 승부가 갈린 곳이 11곳이었는데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렵다”고 말해 내심은 상당하 비관적이다.

국민의당은 세간의 예측보다 더 보수적인 목표치를 언급했다. 박선숙 사무총장은 “실현 가능한 판세분석을 해봐야하는 데 현재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으니 일단 목표는 20석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출발선을 떠난 이들이 결승선을 통고해 들어 온 뒤 이들의 목표치가 얼마나 맞을 지는 선택권을 가진 유권자들 손에 달려 있다. 정당도 후보도 정당 지도부도 맘에 들지 않다고 기권하면 4년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과 최소한이라도 가깝게 되기 원한다면 유권자는 출마한 후보 중에서 최선을 골라 자신의 한 표를 던져야 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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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제1위원장의 미국 말리기 전략

김정은제1위원장의 미국 말리기 전략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3/25 [05: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장이나 군부대 현지지도를 가면 사적실부터 들러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해당 시설에 그간 기울인 노력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선대 수령의 지도가 있어 오늘 이 시설들이 은을 내고 있다며 그 꿈을 어서 빨리 실현시켜 드려야한다’고 늘 강조해오고 있다.


최근 북이 공개한 위력적인 무기들을 생산한 공장에 가서도 한 결 같이 그런 말을 하였다.

 

여기서 말한 꿈에는 북 주민 생활과 관련된 것도 있고 국가방위와 관련된 것도 있겠지만 가장 궁극적인 것은 미국과 대결전을 끝내고 조국을 통일하는 꿈일 것이다.

 

▲ 고체연료추진체 공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로켓엔진 개발에 계속 실패하여 공장이 불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개발하라고 과학자 기술자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막바지 대결전의 특징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간 비밀로 해왔던 위력적인 무기들을 거의 매일 하나하나 공개하며 강력한 대미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대결전의 막바지 단계로 넘어갈 때 나타나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북의 전쟁 영화를 보면 치밀하게 하나하나 다 준비해두었다가 상대를 깊숙하게 매복지점이나 함정으로 끌어들여 막바지에 준비한 역량을 일거에 쏟아부어 결전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결정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 때부터 준비한 역량을 매우 빠른 속도로 하나하나 공개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하나하나가 예상을 뛰어넘는 것들이어서 그간 미국과 남측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구축한 대응책들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금 북이 공개한 300mm대구경 방사포나,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 상공을 타격할 전술핵탄 장착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을 새로 마련하려면 미국과 관련국들은 또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부어야 한다. 돈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 꼭 대응책을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전술핵탄 장착 미사일만 해도 단 한 발이라도 요격하지 못하면 항공모함과 그 주변 수많은 이지스함이 일거에 끝장나기 때문에 100% 요격시스템이 아니면 아무 쓸모가 없다. 
만약 사거리가 200km나 나가는 방사포와 우란계열 신형 대함미사일, 스틱스계열 대함미사일 수백, 수천 발과 함께 이동식 차량 전술핵탄 미사일 그리고 잠수함발사 전술핵탄미사일을 동시에 쏘아대면 무슨 수로 항공모함전단이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 많은 포탄 중에서 핵탄두 미사일만 골라서 요격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원래는 핵탄두 없이 그런 다양한 미사일 집중 공격으로 항모전단을 타격하는 것이었는데 이젠 거기에 항공모함 상공에다 터트리는 전술핵탄미사일까지 시험발사를 하고 있으니 미국으로서는 정말 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핵탄은 굳이 항공모함을 맞출 필요가 없다. 수 킬로미터 상공에서만 터져도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된다. 특히 바다는 은폐 엄폐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핵폭탄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곳이다.

 

▲ 24일 MBC뉴스데스크의 북 300mm 대구경 방사포에 대응 불가능하다는 보도     © 자주시보



✦ 나날이 발전하는 로켓에 속수무책 대형장비들

 

미국이 정말 북과 전쟁을 할 생각이 있다면 지금의 항공모함전단 중심의 공격체계를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여 전면 개편하거나 먼저 북을 선제타격하여 모든 북의 포병기지와 미사일 기지를 다 파괴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우리 정부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미국의 미사일 요격시스템 킬  체인을 구축해왔다. 러시아의 대공미사일까지 수입하여 역설계 방식으로 만만치 않은 천마와 현무라는 대공미사일도 개발 실전배치해 두었다.


하지만 300mm 방사포에는 무용지물이다. 24일 엠비씨 뉴스데스크에서도 현재 북의 300mm 방사포는 킬 체인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보도하였다. 국방부에서도 공식 브리핑을 통해 당황한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현재는 방어수단이 없어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했다. 가장 발전된 로켓탄 요격 시스템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시스템도 방사포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데 과연 대책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설령 또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을 들여 대책을 찾는다고 해도 북은 구경이나 하고 가만히 있겠는가.

 

문제는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이 최근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대기권 재돌입체 기술과 소형수소탄 기술 그리고 얼마전 공개한 우주공간을 고도 200km 상공에서 수평비행하는 기상천외한 탄도미사일과 쏘자마자 17km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져 버린 귀신이 곡할 탄도미사일 등이 결합되어 미국 본토 거점을 타격할 기술을 공개할 경우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사실 대함미사일 중에서 가장 구형에 속하고 덩치는 커서 파괴력은 엄청나지만 팝업기능도 없고 해면밀착비행능력도 약해 요격하기 가장 쉽다는 스틱스 대함 미사일도 100% 다 요격하기 힘들다. 그보다 훨씬 빠르고 위력적인 요격회피 기능을 장착한 신형 대함미사일들의 경우엔 더더욱 요격이 어렵다.

지난해 말 3개월 간 예멘 후티 반군의 스틱스 미사일 집중 공격에 사우디아라비아 전함이 8척이나 격침되어 현재 물고기 아파트로 이용되고 있다.

 

▲ 프랑스 라파예트 전함, 스텔스 최신예 전함, 스텔스 기능이 탁월하고 최강의 요격미사일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자주시보

 

▲ 후티반군이 사우디 군함을 공격하는 실전 유튜브 동영상에서 목표물로 나오는 사우디 최신형 스텔스 구축함, 헬기착륙장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선체가 완전 스텔스형이며 최신 위상배열레이더를 설치한 최근 구축함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동영상 장면이다.  사우디가 보유하 이런 전함은 프랑스 라파예트급 전함이다.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후티 반군 진영이 공개한 동영상과 이란 파르스 통신, 러시아 스푸트닉의 관련 보도에서 8척이 수장된 날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도표화시켜 소개하고 있다. 그 전함 중에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1조원이 넘는 가격의 최신예 라파예트 스텔스 전함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라파예트급 전함 중에서도 사우디에 공급한 것은 특별 주문 제작한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싸서 거의 배수량 5000톤에 육박하며 미국 이지스함 못지않은 온갖 요격미사일과 방어기관포 등으로 중무장 되어 있으며 레이더를 제외한 대다수 장비가 다 각진 스텔스 선체 내부로 들어가 있고 스텔스 도료를 두텁게 발라 거의 탐지가 어려운 첨단 전함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 후티 반군에게 파괴된 사우디 군함 목록, 지난해 말 3개월간  격침된 전함 목록을 러시아 언론 SOUTH FRONT가 정리한 것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0여 년 전 레바논 전쟁에서는 중국제 저렴한 대함미사일에 이스라엘 하니트 스텔스 전함이 얻어맞아 반파되어 긴급히 후송되어 수리를 받았다. 
그 전 파키스탄 군함들이 한꺼번에 3척이나 인도의 스틱스 미사일에 물고기집으로 전락한 바 있다.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요격체계를 총동원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엑조세 대함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 것을 미리 알고서 요격하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한방 얻어맞고 셰필드 구축함이 그대로 수장되었고 대형수송선이 격침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몇 발 날아오는 대함미사일도 막지 못해서 이 난리인데 무더기로 방사포탄이 날아든다면 미국 구축함의 이지스체계건 뭐건 무슨 수로 다 막아내겠는가.

 

▲ 이라크 전쟁터의 미군, 널브러져 낮잠을 자고 있다. 미국은 거의 1조달러의 돈을 썼지만 거의 소득도 없이 철수를 해야했다.     © 자주시보

 


✦ 피가 마르는 미국

 

돈을 억수로 들여 구축한 패트리어트나 사드 요격체계도 현재 모든 미사일을 다 막을 수 없다고 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는데 전혀 보도 듣도 못한 이런 기상천외한 북의 탄도미사일과 무더기 방사포 공격을 막기 위해서 미국이 또 얼마나 많은 혈세를 쏟아 부어야 할지 모른다.

 

왜 혈세라고 하겠는가. 피 같은 돈이기 때문이다. 피가 마르면 생명체의 운명이 끝장나듯 나라의 세금이 마르면 나라가 말라비틀어져 죽어가게 된다. 
현재 미국의 도로를 보면 한심한 수준이다. 얼마나 돈이 없으면 뉴욕의 도로마저 울퉁불퉁 쩍쩍 갈라졌는데 땜질도 못하고 있겠는가. 자본주의 경제 위축은 뉴딜정책과 같은 국가의 세금을 생산적인 곳에 잘 투자해서 불꽃을 튀겨주면 서서히 엔진이 돌아가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생산유발 국책 산업조차 손을 댈 수가 없게 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쟁에 육군을 투입해보지도 못하고 손을 뗀 것도,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도 특수부대를 보내 카다피정권을 붕괴시킬 때처럼 하지 못하고 곱게 물러난 것도 괜히 손을 댔다가 말려들면 또 엄청난 전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오바마정권이 전쟁에 자꾸 말려들어 혈세를 자신들 무기구매에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는 국방비를 증액할 국가재정이 없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동에서 미군이 발을 빼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그래서 중동은 훗날을 기약하고 일단 더 중요한 태평양이라도 잘 보호하자며 아시아로의 회귀전략에 따라 태평양 무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그것이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현재 북의 엄청난 반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재 행보는 미국과 전쟁으로 결판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미국의 피를 말려 붕괴시키겠다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전쟁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면 미국도 북을 선제타격하는 마지막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 사실 지금 한반도 주변에 끌고 온 무력이면 언제든 선제타격을 가할 수가 있다고 본다. 그 시점은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마친 직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북 인민군의 피로도가 가장 높고 또 긴장은 가장 많이 풀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5월 초면 추위와 더위에 약한 미군들에게 전쟁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미국의 전략가들도 지금 공개된 북의 무기만 상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판단을 어렵지 않게 내릴 것이기 때문에 실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워낙 궁지에 몰린 미국이다 보니 지금 아니면 선제타격이라도 해 볼 기회가 앞으로는 더욱 더 찾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는 유지하기 어려운 전략적 인내

 

북은 정말 전쟁에서 사용할 비장의 무기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 입장을 한 두 번만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북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불이 번쩍나게 해제끼겠다는 말로 실제 미국과 대결전에서 사용한 무기와 전략전술이 따로 있음을 암시하였다.

따라서 지금 공개하고 있는 무기들은 매복지점으로 유인하기 위한 전술차원의 무기일 가능성이 높으며 계속 단계적으로 그 공개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정책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북이 무기를 하나하나 공개할 때마다.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동맹국들이 요동을 치는데 어떻게 무대응 인내로만 일관할 수 있겠는가.

 

지금 중동에서 미국이 발을 뺄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프랑스나 영국이 말로는 미국과 함께 어깨 걸고 싸울 것처럼 하지만 실전에서는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유럽은 러시아나 이란의 무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어디 바보들인가. 미국은 차량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도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러시아는 토폴m에 이젠 야르스24에 10여발의 다탄두 미사일까지 트럭에 싣고 다니며 위협을 해대니 어디 겁이 나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들이 밀 수가 있겠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해버려 유럽이 미국과 함께 강력한 대러시아 제재를 가동했지만 러시아 승전기념식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득달같이 달려가 푸틴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 2015년 5월 10일 러시아 승전기념식이 열리는 모스크바를 찾아간 메르켈 총리가 나치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며 사죄하였다. 메르켈 총리는 승전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푸틴과 정상회담은 진행하였다.     © 자주시보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유럽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데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이란게 허당이어서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란이 도와주는 시리아 내전에 유럽이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과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망을 믿고 있던 사우디라비아가 자국의 킹 칼리드 공군기지가 후티 반군이 쏜 탄도미사일에 쑥대밭이 되고 사우디 공군사령관과 모사드 요원 수십명이 죽고 말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과연 프랑스와 영국의 전략가들이 모를 수가 있겠는가.

 

▲ 예멘 미사일공격으로 사우디공항을 초토화시킨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베테랑투데이     ©자주시보

 

▲ 이스라엘 장성과 체첸 특수부대원들 사망관련 베테랑투데이 보도     ©자주시보

 

체첸 반군 특수부대들을 훈련시켜 요르단 인접 시리아 비밀 반군기지에 아사드 대통령을 저격하기 위해 데리고 들어갔던 이스라엘 장성이 시리아 정부군 공중폭격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장교들과 함께 황천객이 되고 말았지만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내놓고 경고도 하지 못하고 있고 또 육군 파병은커녕 반 정부군에게 무기지원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함부로 덤볐다가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지도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온 몸이 전율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사실 아사드 정부군과 싸우는 반군들에게 휴대용 대공미사일만 제대로 공급되었어도 시리아 내전에서 반 정부군들이 지금처럼 혹심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도 이스라엘도 주지 않은 것이다. 끽해야 미국에서 탱크에 구멍도 내지 못하는 한 물 간 구형 토우 미사일이나 좀 건네주었을 뿐이다.

이스라엘과 유럽은 그래도 이런 감각이라도 살아있으니 함부로 나대지 않고 신중하게 나라를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이라도 하는데 일본과 한국은 아예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있으니 이 어찌 큰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 다시 6.15공동선언 시대로 되돌아가 남과 북이 교류협력을 진행하는 것만이 우리 나라가 살 길이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우리 정부의 현실적인 대책마련의 시급성

 

그래도 북의 300mm방사포를 본 후에는 우리 언론들이 조금은 아픔을 느끼기는 한 것 같다.

미국과 한국, 일본은 북을 봉쇄하면 북의 피를 말려 고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가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피가 말라 회생불능의 장기병동 환자신세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더 높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이 나라 전략가들은 사태의 본질과 세상의 흐름을 바로 감지하고 지금의 위기를 타계할 현실적인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 혈세를 쏟아 붓는 무기경쟁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백해무익하다. 단순한 해가 아니라 치명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반대로 북과 관계를 개선하고 교류협력을 확대하면 귀중한 혈세를 밑도 끝도 없는 국방부에 다 투입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남북경협을 통해 경제회생의 활로를 뚫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일거다득이 아닐 수 없다.

 

북은 사실 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이 급할 게 없을 것이다. 무기를 하나하나 공개할 때마다 제3세계 국가들이 그 무기 기술 도입하기 위해 마구 달려갈 것이다. 요즘은 무기를 만들어 수출하는 시대가 아니다. 북의 엔지니어 몇 사람만 그 나라에 파견하면 얼마든지 무기 공장을 만들 수 있다. 기계와 장비 사는 것이야 일도 아니다. 이런 방식의 무기 수출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대북 경제 봉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실질적으로 북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경제봉쇄가 가해진다면 북은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불이 번쩍 나게 단숨에 끝낼 준비를 마쳤는데 무엇 때문에 당하고 있겠는가. 살인적 봉쇄를 당하던 나라치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경우는 없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한 판 붙어보기라도 하자고 다들 막판에는 덤펴들었다.


지금까지는 그 준비가 미쳐 덜 끝났기 때문에 참고 인내해온 것임을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에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북은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봐야 한다. 매일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아찔한 무기들을 정신차릴 수 없게 시험 공개하며 미국을 압박하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짐작하지 못한다면 이미 그 나라의 전략가들의 감각이 정상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설마 그 정도로 지능이 낮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AP통신은 "자국 군인의 유해는 적진에 두지 않겠다는" 미국의 성스러운 약속에도 조선에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군유해가 즐비하다고 보도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하기에 북미 사이에 전격적인 대화의 날이 곧 도래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어쩌면 지금 막후에서 열심히 그런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발 이제 무기 공개 좀 그만 하라며 요구가 뭐냐고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벌써 에이피 통신 북 지부에서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의 시급성을 환기시키는 기사가 어제 나왔다. 미군 유해발굴을 한다며 협상팀이 평양에 들어가 직접 협상을 진행했던 과거가 있기에 이는 주목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앞서 언급했지만 미국이 전쟁을 결심할 가능성도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5월 초가 그렇다. 어쨌든 미국의 전략적 인내만은 이제 더는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다. 돈이 없어서라도 미국은 더는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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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않는, 용혜인을 만나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나 또한 이 사건을 통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고, 내 가족들 역시 그랬다. 언제나 즐겁고 행복해야 할 가족들의 식사 자리가 상당 시간 동안 침묵으로 도배되었고,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으로 중단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평생 치유되지 못할 상처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여기 그 상처를 딛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던 한 청년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기가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었던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을 표어로 삼아 역설적으로 이제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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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이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와중에도 진보의 깃발을 들고 버티고 있는 미소정당, 노동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이번 총선에 출마를 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결코 눈에 띄지 않는 가난한 청년들, 어딘가의 반지하방, 어느 건물인가의 옥탑방, 좁아터진 고시원 같은 곳에서 음울하게 숨어 있으면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력수요를 최저임금 이하의 알바노동으로 채워주고 있는 그런 빈곤한 청년들 속에서 “내가 지금 여기 서 있으며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외치면서 나타난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인물이다.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용혜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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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용혜인 후보는 “”, 물뚝심송은 “”로 표기한다.)

 

 

호구조사

 

 : 어쩌다 이런 악의 소굴까지 오시게 되었는가?

 

 : 몰랐어요. 여기가 악의 소굴인가요?

 

 

이너뷰는 대학로 시절의 딴지 벙커원(최근 충정로로 이전했다)에서 있었다.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지하 벙커에 오면서 거기가 대한민국 최고의 악의 소굴이라는 것도 모르고 오다니, 참으로 순진한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사진을 찍고 난 뒤 본격적으로 이너뷰를 시작했다.

 

 

 :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큰 결심이었을텐데.. 괜찮으신가?

 

 : 괜찮냐고요? (웃음) 상당히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질문인 것 같네요. 고민도 많았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20대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너무 어리잖아요. 걱정도 많았는데, 출마하고 시작하고 나서 바쁘게 살다 보니, 특히 SNS에서 반응이 많이 오면서 힘을 얻기도 했어요.

 

 : 27살이신가? 그 나이면 뭐 당선되어도 최연소 기록은 안 되는데?

 

 : 만으로 스물다섯이니까 기록일 수도 있어요. 김영삼 씨가 만으로 스물여섯이었으니까요.

 

 

김영삼은 1927년 12월 20일생으로 1954년 5월 20일에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만 26세, 태어난 지 26년 5개월 만의 일이다. 용혜인 후보는 1990년 4월 12일에 태어나 2016년 4월 13일 총선에 도전하고 있다. 만약 당선된다면 똑같은 만 26세지만, 26년하고 단 하루 만에 당선된 것이니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을 5개월 차이로 깨게 된다. 아니 그 이전에 용혜인 후보의 입장에서는 4월 12일이 생일이니 엄청난 생일선물을 받게 되는 셈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이너뷰는 언제나 그렇지만,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들 보다는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봄으로써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는데 촛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언제 태어나셨는가?

 

 : 1990년 4월 12일에 태어났어요.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아버지 회사가 옮기면서 안산으로 같이 이사갔어요.

 

 : 어렸을 때의 가정 형편은?

 

 : 아버님은 자수성가 스타일이였고, 나름대로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 자수성가라면 돈을 많이 버셨다는 것인가?

 

 : 돈이 엄청나게 많지는 않았고, 크게 부족함 없이 알뜰하게 모아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차근차근 해 나가는 집안이었죠. 안산에서 중앙초등학교, 중앙중학교, 경안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 다 근처에 있는 학교들을 다닌 것인가?

 

 : 예. 맞아요. 아파트 단지에서 걸어서 십분 이내 거리에 있는 학교를 계속 다닌 거죠.

 

 :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라면?

 

 : 월드컵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 오, 2002년 월드컵.

 

 : 예. 그랬고 많이 놀았고,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해서 학교에 걸어가면서 책을 읽곤 했어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아파트 창문을 열고 “야! 용혜인!” 하고 외치셨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책 덮고 막 도망가고..

 

 : 혹시 그 시절에 읽었던 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 (웃음) 너무 어려서 기억이 잘 안 나요.

 

 : 중고교 시절에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었는가?

 

 

초중고 시절에 관한 추억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짐작케 해 줄 단서가 된다. 따라서 열심히 캐물었으나 정말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용 후보의 삶의 키워드는 “평범함”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말이다.

 

 

 : 대학 들어갈 때까지 별다른 일이 없어요. 사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데, 아버님께서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셨어요.

 

 : 위기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 처음에는 돈도 더 버시고 잘 되다가 고3 때부터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2008년 무렵이죠. 그때가 바로 광우병 촛불 때였는데, 제가 딱 그 세대였어요. 제 친구들은 다 야자 째고 집회에 나가곤 했었는데 저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요.

 

 

많은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이지만 용 후보는 고교 시절 광우병 촛불 시위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굉장히 많은 의미가 있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평범한 모범생이었다는 뜻.

 

 

 : 굉장히 모범생이었나 보다.

 

 : 모범생이었어요. 학원은 별로 안 다녔지만 야자 열심히 하고..

 

 : 공부도 굉장히 잘했는가?

 

 :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했어요.

 

 : 성적과 관계없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할 시점이었을 텐데.

 

 : 저는 아무래도 여자니까 교대나 사범대에 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왠지 그런 데는 가기 싫었어요. 여자는 교사를 하는 게 안정적이다, 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왠지 싫어했어요. 굳이 바득바득 우겨서 사회과학을 전공으로 택했죠.

 

 : 중고교 시절에 사회과학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한 경력도 없이?

 

 : 그런 적 없어요. 저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었고, 학교에서 짜놓은 대로 열심히 하고, 촛불시위도 안 나가고, 조중동 보면서 “성장이 우선이고 파이는 키우는 게 맞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어요.

 

 : 주류의 시각을 가지고..

 

 : 맞아요. 수행평가로 시사토론하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서 FTA 찬성 입장을 맡아 토론을 하기도 했어요.

 

 : 그랬던 소녀가..

 

 : (웃음) 예, 그랬던 소녀가 이렇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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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 지나치게 평범해서 오히려 비범한 수준. 뭔가 하나 특이점도 발견되지 않는다. 유일한 특징은 “책을 좋아한다” 정도.. 초중고 시절에 뭔가 특이한 점을 하나도 찾지 못한 채 대학 시절로 넘어간다.

 

 

 

대학 시절, 사회에 눈을 뜨다

 

 : 그래서 대학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 경희대 사회과학부 정치외교 전공 하고 있어요.

 

 : 굉장히 무서운 전공을 택하셨다. 재미는 있으신가?

 

 : 1, 2학년 때에는 학교 공부가 참 재미있었는데요. 3, 4학년 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학과공부에 흥미를 잃었어요. 책에 있는 내용이 현실과 맞지 않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라는 느낌인가?

 

 : 그런 거겠죠?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엄청 거창한 것, 사회를 바꾼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 사회가 구제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는데요. 책에는 그런 내용은 없더라구요.

 

 : 그런 건가.. 하여간 그런 대학을 가려면 요즘 기준으로는 공부를 엄청 잘하신 것 같다.

 

 : 아닙니다. (웃음)

 

 : 정리해 보자면 그렇게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대학에 와서 사회과학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이제 전공 공부가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거다. 그 다음에는 관심이 어디로 가게 되었는가?

 

 : 고3 때 아빠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수능 끝나고 입학할 때까지 알바를 했어요. 강남에 있는 예식장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 최저 임금이 3,800원이었는데 수습이라는 명목으로 3,500원을 받고 일을 했어요. 구두 신고 머리 올리고 하루 종일 7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날랐습니다. 그 때 제가 하루 종일 일을 하면 14시간 정도 일을 하고 5만 원 좀 안 되게 받았거든요. 7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300개씩 나르고 했었는데, 그것만 해도 2,100만 원이에요. 그런데 저는 일당으로 이 스테이크 한 접시를 못 사 먹는 거죠.

 

알바가 끝나고 나면 직원들이 알바생 수십명을 모아 놓고 남은 스테이크를 나눠 먹여 줘요. 그럴 때나 겨우 맛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직원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겨울이니까 고객들이 모피 같은 걸 많이 입고 오시는데, 음식을 쏟기라도 하면 세탁비가 더 나가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라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먹었어요.

 

 : 그렇다면 그런 사고를 치면 그걸 알바가 보상을 해야 한단 말인가?

 

 : 사고를 한 번도 쳐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웃음)

 

대학에 들어오면서 미래를 상상했어요. 서울에서 밤에 청계천 같은 곳을 돌아다니면 보이는 불 켜져 있는 고층 빌딩 같은 곳에서, 그런 곳에서 입에 빵하나 물고 야근하는 직원 같은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알바를 해보니 내 자신이 너무 하찮아 보이는 거에요.

 

 : 그 때 느낌을 표현해 본다면?

 

 : 슬픔에 가깝고, 무력감 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미래와 자신이 겪게 된 현실의 괴리감.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청년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이런 괴리감 속에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극소수다. 어떤 이는 순응해서 살아가고 어떤 이는 좌절해서 쓰러질 뿐이다. 차이점은 무엇일까?

 

 

 : 당시에 최저임금제 같은 제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는가?

 

 :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강제사항인 줄도 잘 몰랐고, 그런 제도가 있어 봐야 현실에서 “누가 그걸 지켜?” 라고 생각을 했어요.

 

 : 고교 시절, FTA를 찬성하고 성장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처럼, 이런 제도는 당연히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인가?

 

 : 그렇죠. 하지만 내가 막상 당사자가 되니,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 느끼게 된거죠.

 

 : 일은 많이 힘들었는가?

 

 : 사실은 그 알바를 입학한 뒤에도 계속했어요. 평일에는 학교를 가고, 주말에는 알바를 하는 식으로 이틀 벌어서 일주일을 살아야 되는 건데, 이게 너무 힘들거든요. 밤중 9시까지 구두 신고 서서 일을 하고, 다음날 또 아침 일곱시까지 나가야 되고 하니까 견디기 힘들었죠. 토요일은 일하고 일요일은 뻗어 버리고 그랬어요.

 

 : 몸이 버티질 못하는 상황.

 

 : 예. 그렇게 되면 돈이 모자르고, 신입생이라 MT 같은 거 가게 되면 또 일을 못 하게 되고 생활비가 부족하게 되고 그랬어요.

 

 : 많이 속상하셨겠다.

 

 : 많이 답답했죠. 제가 원래 모범생이고, 효녀였거든요.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안산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교통비가 이천 원 정도 들어요. 왕복하면 사천 원인데 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그 돈 사천 원이 없어서 학교를 못갔어요.

 

어떻게 사는 게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무 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어떻게 인생이 이러지..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죠.

 

 : 가장 행복해야 할 시절에..

 

 

내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가슴 한 구석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져서 질문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아주 사소한 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아주 작은 돈이 없어서 일상이 중단되는 느낌은 안 겪어 본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차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 가고, 라면 한 봉지 살 돈이 없어서 밥을 굶어야 되고, 사용요금을 못 내서 전기나 가스가 끊기는 경험.

 

바로 빈곤의 실체와 직면하는 순간이다.

 

못 겪어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까지 가난해질 때까지 왜 대책을 안 세우는가, 뭔가 잘못이 있는 거 아닌가, 게을렀거나 무능했거나 악행을 저질러서 벌을 받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겪는 자라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 사회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 과도하게 가진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생존에 필요한 수준의 기본적인 소유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부의 편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자와 빈자의 구분은 대부분 “운”에 기인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빈곤에 직면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누군가에게, 십중팔구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뭔가 죄를 지었다고 믿어 버리게 된다. 가족관계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게 더 무서운 일이다.

 

가난은 그렇게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죠. 자존심 상하니까 친구들에게는 “난 오늘 아파서 학교 못 가.” 이렇게 얘기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엄마한테는 “어차피 학교 가기 싫었는데 하루 쉬지 뭐.” 이렇게 얘기를 했죠. 그렇게 얘기하고 넘어가는 데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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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럴 때 보통 부모님을 원망하기가 쉬운데..

 

 : 그러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부모님들도 최선을 다하고 계셨거든요. 열심히 살고 계시는데 왜 안 되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 보통 IMF 때나 2008년 이후 금융위기 때에도 게으르거나 뭔가 잘못한 사람들이 망해서 어려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알기는 어려웠을 것 같고, 열심히 사는데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셨던 모양이다.

 

 : 맞아요.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 이제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음은 무엇인가?

 

 : 처음엔 그랬어요. 제가 겪고 있는 문제가 더 심화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저 말고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내가 겪는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서 나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존재를 깨달은 거에요.

 

 : 어떤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가?

 

 : 예식장 알바 할 때, 같이 일하던 오빠가 있었어요. 거기는 원래 각자 알바가 가능한 시간에 나와 알바를 하게 되는 구조인데 거의 매일 일을 하는 사람이었죠. 이렇게 일을 하면 언젠가는 정직원이 되지 않겠냐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 얼마나 일을 해 왔는가?

 

 :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6개월 이상한 거 같아요. 일을 잘해서 직원들도 좋아하고 그랬는데, 저는 그렇게 해서 정직원이 되겠나 싶고 안타까웠어요. 그만큼 정규직 되기가 힘든 거잖아요.

 

 

사람은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정규직이 되고 싶어 발버둥 치는 다른 이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 자신은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특별한 가정에 태어나지 않는 이상 평온하게 학업을 마치고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으로 보인다.

 

 

 : 또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이거에요. 한진 중공업 관련해서 희망버스에 참여했었어요. 어려서 조중동만 읽다가 대학 들어와서 한겨레, 경향, 각종 시사 주간지 같은 걸 읽게 되면서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다가 2011년에 1차 희망버스에 참여했습니다.

 

 : 아, 그 때, 남쪽으로 내려가신 건가?

 

 :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어요. 그냥 친구와 후배들이랑 술 먹으면서 “무가당”이라는 걸 만들었었어요.

 

 : 그게 뭔가?

 

 : “무적의 가짜 노동당”. (웃음) 지금은 남한에도 노동당이 있지만 그 때는 북한에만 노동당이 있었잖아요. 하도 뭐만 하면 종북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가짜 노동당이라고 주장한 거죠.

 

 : 지금의 노동당은 당시에는 진보신당이었는가?

 

 : 그렇죠. 그 무가당 친구들이 희망버스라는 게 있다는데 한 번 가보자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가게 된 거에요. 친구들은 뭔가 좀 알고 갔던 거 같은데 저는 진짜 얼결에 갔어요. 부끄럽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서 막 담 넘고 그러던 것이 저에겐 무척 충격이었어요.

 

거기다가 갔다 와서 이런저런 조사를 해 본 거죠. 저분들은 왜 저러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니 정리해고 문제 같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김주익이라는 분이, 김진숙 씨가 투쟁하고 있던 바로 그 트레인에서 목을 매서 자살하셨다는 것이었어요.

 

 

일반인들이 흔히 하기 힘든 경험. 사회적인 집회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약간의 폭력과 약간의 무질서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자주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그런 행동들은 언제나 처음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아가 그 투쟁의 현장이 바로 얼마 전에 또 다른 노동자의 생명이 끊어진 바로 그 장소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충격은 배가된다. 

 

 

 : 그것도 모르고 내려갔던 것인가?

 

 : 예. 바로 그 자리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어요. 저는 2008년 FTA 찬성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민주화 운동은 마무리되었으며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 이런 싸움들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이렇게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본 거죠.

 

그 때 처음으로, 나 말고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에요.

 

 : 2002년 노무현의 참여정부 출범에 대해서는?

 

 : 그 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어요. 월드컵만 열심히 봤죠. 그 때 효순이 미선이 사건 기억나고 촛불시위가 있었는데 그저 그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느꼈죠.

 

 : 그렇다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참여 이전에는 사회적인 활동 경험은 거의 없었는가?

 

 : 네. 신입생 시절에 종편 반대 집회에 구경하러 갔던 기억이 나긴 해요. 친구가 가자고 해서 그냥 구경하러 따라간 거죠.

 

 : 사실 학업 외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 그렇죠. 정말 여유가 없었어요. 학교가 너무 멀어서 가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그렇게 일 년 반을 다니다가 고시원 생활을 했어요. 처음에는 좋았죠.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느낌이었어요.

 

월 27만 원짜리, 창문도 없는 고시원 생활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지더라구요. 남녀 공용 고시원이라 남자들이 막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너무 좁고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시절까지 내가 가난하다는 생각을 거의 못해봤는데,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가 진짜 가난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 때, 고시원 방보다 더 넓은 친구 하숙방에 가서 같이 자고 고시원에 돌아와서는 옷만 갈아입고 하기도 했어요.

 

 

가난의 물리적인 실체는 이런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너무나 당연한 안전하고 평온한 공간이 누군가에는 정말 갖기 힘들고 절실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 그러다가 2012년에 4학년이 되면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되는 거에요. 학점도 별로 안 좋고 스펙도 쌓아둔 게 없잖아요. 먹고 살길이 막막한 거죠.

 

 :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하셨는가?

 

 : 학자금 대출이죠. 2009년도 학자금 대출 이자가 7%였어요.

 

 : 그거 완전 사채이자 아닌가?

 

 : 그렇죠. 나중에 갚는 것 말고는 아무런 메릿이 없는 조건이었어요. 바로 매달 만 원 이상 이자를 내야 되는데 그게 밀리면 은행에서 독촉전화가 오는 거죠. 정말 스트레스였어요.

 

 : 8학기 대출을 다 받았은 건가?

 

 : 그때 또 아버님이 사업이 망해 다 정리하고 양평에 가서 비닐하우스까지 하시다가 원래의 거래처에서 연락이 와서 다시 사업을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졸업하면서 빚지고 시작해서 되겠냐는 이유로 어떻게 마련을 해 주셨죠.

 

그렇게 등록금을 감당하다가.. 작년에는 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았었죠. 아주 꼬박꼬박 빼가더라구요.

 

 :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졸업은 하셨는가?

 

 : 한 학기 남았어요. 그러다가 생각을 해 보니, 결국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5급 공무원.

 

 : 5급이면 바로 행정고시 아닌가?

 

 : 그렇죠. 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신림동에 방을 얻고 학원은 비싸서 못 가고, 인강 위주로 했죠. 독서실 같은 곳에서 복사해주는 자료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거에요.

 

 : 그런 시험 공부는 잘하는가?

 

 : 고딩 때는 제가 공부를 좀 했는데 나중에 또 하려니까 쉽지 않더라구요. 많이 힘들었어요. 2012년부터 공무원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했죠. 한국사 같은 것도 하고, 토익 공부도 하고. 하루 종일 혼자 있으려니까 너무 이상해서 사람 말소리를 듣고 싶어 야구 중계를 틀어 놓고 공부를 했어요.

 

 : 야구를 좋아하시는가? 어느 팀을 응원하시는가?

 

 : 넥센이요.

 

 : 넥센 이외의 팀을 응원하시는 분들은 어쩌려고 그런 얘기를..

 

 : (웃음)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 너무 재미가 없고 사는 게 힘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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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취라는 게 김치 하나 먹으려 해도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되거든요. 다른 분들은 또 자취하면 맨날 스팸 같은 거 먹는 줄 아시는데, 스팸 그것도 무척 비싼 거에요. 시장이 훨씬 쌉니다. 시장에 가서 반찬을 조금씩 사다가 먹고, 참치캔 같은 거, 진미채 볶음 같은 거 먹고 밥도 다 해 먹고 그랬어요. 하루 종일 그렇게 방안에만 있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 좁은 방 안에서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죠.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고 이러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언제 성공하고 성공할 때까지 어떻게 버티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그렇게 5급 공무원이 된다고 해서 뭐가 바뀌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2013년에는 알바연대 같은게 생기면서 조합비 내고 활동을 했어요.

 

 : 조합비는 얼마나 되는가?

 

 : 한 달에 한 시간 최저 임금. 요즘 같으면 6,030원이죠.

 

당시 대학생 알바 관련된 일을 하면서 야간에 실태조사 같은 거 하고, 야간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랬어요.

 

오후 8시에 시작해서 야간알바 12시간 하고 아침 8시에 퇴근해서 씻고 자면 다시 저녁때 출근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완전히 사회와 격리되어 살게 되는 거에요.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한 거죠.

 

그러다가 2014년에 세월호 참사를 겪게 된 겁니다.

 

 : 드디어 세월호인가.

 

 

용혜인과 세월호

 

 : 2014년 1학기에 졸업을 위해 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게 된 거에요. 안산에 오래 살았고, 제게는 단원고 이름이 익숙해요. 어찌 보면 친구 후배들이고..

 

당시 시험 기간 전주라 학교에서 시험공부 하던 중에 아침에 수업을 들어가는데, 수업 들어가기 전에 뉴스를 보게 된 거에요. 그런데 당장 전원 구조라는 얘기가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수업 듣고 나오니까 오보였다는 거에요. 처음에는 멍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큰 배가 넘어가는데 이렇게 실종자가 많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부가 구조하고 있었고, 저 안에 누군가 살아 있어서, 일부러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일주일 정도는 말이죠.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 그러다가 얼마 시간이 흐르고 밤늦게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과목이 서양 정치사상 이런 거였어요.

 

 : 제목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

 

 : (웃음) 아리스토텔레스 나오고 하는 시험공부를 하다가 트위터를 통해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대교 건너 행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에요.

 

아니, 정부가 그렇게 구조하고 있다고 하고 그러는데, 왜 저럴까 사람들이.. 왜 저러지? 라고 생각을 했어요.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실제로 뭐가 문제인지는 거의 언론에 안 나왔어요. 그건 거의 몰랐는데, 제가 놀란 것은 경찰이 경찰버스를 열대를 동원해서 그 가족들을 막아섰다는 거에요.

 

제가 정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들을 잘 달래서 이해를 시키고 문제를 잘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고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막아선다는 것, 공권력이 그 상황에서 그 가족들을 상대로 어떻게 저러지? 하는 의구심이 생겼어요. 충격적이었죠.

 

어떻게 가족을 잃고, 가족을 아직 찾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권력이 저럴 수 있지? 하면서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충격을 받았어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막연히 국가 권력에 대해 선의의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이 국가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지고 움직일 것이다, 그 구성원에 대해 최소한의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뭐 이런 당연한 기대 말이다.

 

그런 당연한 기대가 깨지는 순간 사람들은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기 전에 당황을 하게 된다. 용혜인 후보 역시 그랬던 것 같다.

 

 

 :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 어떤 것을 하려고 한 것인가?

 

 : 친구들하고 모여서 지금 생각하면 참 조악하지만 노란 리본이라도 만들어서 돌리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진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하고 얘기를 한거죠. 추모의 뜻이라도 표현을 해야겠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거죠.

 

그래서 침묵 행진이라도 하자, 한 손에 국화꽃을 들고 노란 리본을 들고, 또 한 손에는 뭔가 해야 하는데, 고민을 하다가 당시 사람들 사이에 많이 돌던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을 떠올린 거에요.

 

 : 그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신 건가?

 

 : 선내에서 그런 방송을 했다는 거 자체가 마음 아픈 거죠. 그러나 유가족들을 진도대교에서 막아서는 모습을 생각했던 거죠.

 

한국사회에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현상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을 한 거죠. 처음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런 문장을 생각하다가 결국 깔끔하게 “가만히 있으라”로 결정한 거죠.

 

이 말이 우리에게 울림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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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을 우리 사회에 알린 그 첫걸음.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로 상징되는 그 침묵시위는 이렇게 정말로 평범한 모범생의 정말로 사소한 기획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 울림이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울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상식적이고 단순한 기대가 바로 연대의 가능성을 알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권력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시작을 과대포장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상식적인 시작을 상식적이지 않은 누군가의 음험한 기획으로 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배후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배후는 그들의 망상 속에만 존재하는 법이다.

 

 

 : 함께한 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 지금도 같이 하는데, 학교 후배, 고대 친구, 서강대 친구,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 그건 범 대학 연대 구조 아닌가?

 

 :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었지만, 의도한 바는 아니었어요. 그냥 아는 친구들일 뿐. (웃음)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런 거 하면 경찰에서 연락 오고 그럴 거라고. 거기다가 저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잖아요.

 

그래도 뭐 괜찮아, 뭐 별일 있겠어? 하면서 강행을 한 거죠.

 

처음에는 청와대 게시판에 이 일을 알렸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었기도 하죠. 행진을 시작하기 바로 전날, 24시간 전에 이 일을 홍보했어요.

 

 : 바로 전날, 그것도 청와대 게시판에 알리는 건 너무 급박한 거 아니었을까?

 

 : 별로 홍보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저 친구들끼리 모을 수 있는 사람들 모아서 한 이삼십 명 모여서 하려고 한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오신 거죠.

 

 : 첫날 얼마나 모였는가?

 

 : 그게 지역마다 좀 다른데, 홍대에서 시작할 때 한 30명, 서울광장에는 150에서 200명 정도가 모였어요.

 

 : 무섭지 않으셨나?

 

 : 처음에는 무서운 줄 몰랐어요. 그런데 끝나고 집에 가는데 앞에 스타렉스가 갑자기 서는 거에요.

 

 : 검은색?

 

 : 은색이요. 저는 심지어 그 번호판까지 기억을 해요. 1120.. 전 남친 생일이거든요. (웃음) 친구하고 얘기를 하면서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광교 근처였어요. 갑자기 차 한 대가 서는데 운전석에 한 명이 있고,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뭔가를 들고 있는데 빨간색 빛이 보이는 거에요.

 

 : 카메라?

 

 : 그렇죠.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 쫓아가서 따져 물었어야 하는데, 그냥 어~ 하다가 차가 가버린 거죠. 그걸 보는 순간 좀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요.

 

 

작은 개인이 드디어 국가 권력과 만나게 되는 시작점이다. 왜 국가는 이런 작은 개인에게 그냥 당당하게 다가와서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가,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정상적인 대화로 물어보지 않는 것일까? 당장 경찰 요원을 투입해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채증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뭘까?

 

단순하다. 그들 또한 두려운 것이다. 이들의 상식적인 요구를 자신들이 들어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상식적인 요구가 수많은 사람들의 동의와 연대의 힘을 업고 국가 권력에 대한 준엄한 비판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한참 인터뷰가 중단되었는데 원인은 단순하다. 딴지 벙커원의 열악한 시설에 의해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누가 썰렁한 개그를 친 것도 아닌데 추웠다. 결국 무릎담요 같은 걸 준비하고 나서야 이너뷰가 지속되었다. 

 

 

 : 그 이후로 엄청난 일들이 생겨나 버렸는데, 그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어떤 변화를 겪으셨는지 궁금하다.

 

 : 가장 큰 변화라면 취업을 포기한 것이죠.

 

제가 뭐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엄청나고 거창한 의지를 가지고 이런 걸 포기한 것은 아니고요. 아주 식상한 답변이 될 수도 있겠는데..

 

다시 골방에 처박혀 시험공부 하는 삶으로 돌아가기가 싫었어요. 그렇게 살면 제가 너무 우울할 것 같았죠. 삶의 낙이 없을 거 같았어요.

 

 : 내가 못 견딜 것 같은 느낌?

 

 : 그런 거에요.

 

 

가장 솔직한 답변이다. 여기에 뭔가 거창한 이유를 붙였다면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결정을 미화하기 위하여 명분을 붙이곤 하는데 사실은 그 대부분은 거짓말이다. 용 후보의 이유는 가장 원초적이었고 순수했으며 솔직한 그것이었다.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는 것.

 

 

이렇게 살면 돈을 못 벌겠죠. 사회적으로 5급 공무원이 되는 것만큼 성공하진 못하겠지만, 돈 조금 벌고 살면 되죠. 저는 오히려 좋은 집에는 못 살아도 좋은 차를 몰면서 살고 싶었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로 경찰서 다녀오고 그러면서, 그냥 대중교통 타고 조금 좁은 집에 살고 결혼도 제때 못하더라도 나 혼자 생계를 이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어요.

 

 : 시험을 포기하는 순간에도 뭔가 다른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것은 아닌 것 같다.

 

 : 그렇죠. 그냥 학교 계속 다녔어요.

 

 : 졸업은 하셨는가?

 

 : 아직 한 학기 남았어요.

 

 : 대학을 참 오래 다니신다.

 

 : (웃음) 그런 편이죠.

 

 

용혜인에게 세월호는 우울하고 암울한 삶의 궤도를 저버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안정되고 평온한 미래가 보장된 길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 삶으로 돌아가기는 싫게 만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었다.

 

이만큼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

 

 

왜 노동당인가?

 

 : 입당은 2010년에 했어요.

 

 : 무척 일찍 입당을 한 것 같다.

 

 : 사실 저는 굳이 노동당이어야 한다고 생각은 안 했어요. 하지만 정치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정당의 당원이 되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뿐이에요.

 

진보신당의 존재 자체를 2010년에 처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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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이제는 진보신당의 역사에 대해서는 조금 아시는가?

 

 : 이제는 좀 알죠. 당시에는 전혀 몰랐어요. 당시 그냥 당비를 내는 당원이 된 거에요. 당에서 무슨 활동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죠.

 

단지 당시 노회찬 후보의 선거운동을 선배의 소개로 하게 되었는데, 그 선거운동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되고 입당을 한 거에요.

 

 : 그 노회찬 후보는 이제 진보신당에 있지 않은데.

 

 : 그렇죠. (웃음) 하여간 저는 꼭 이당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죠. 다만 저는 이 당에 들어왔고, 이 당에 있어야 하는데 떠나간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노회찬 씨도 그 중의 하나.. (웃음)

 

 : 그렇다면 당을 선택하는 과정상의 치열함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 그렇죠. 하지만 세월호 이후에 생겼어요. 당시에 집회 같은 거 많이 했잖아요. 사람들과 모여서 같이 하고, 집회 끝나고 흩어지는데 언제나 가장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저기 있고,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끝까지 같이 서 있어 주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고 느낀 거에요. 소속감이 생긴 거죠.

 

이 사회에서 존재가 지워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언론에서 보도해 주지도 않고, 정부에서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회에 알리는 방식이 농성하거나, 단식하거나, 광고탑에 올라가거나 하는 방법밖에 없잖아요.

 

이 사람들에게는 길거리를 전전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정당은 이 당밖에 없다는 거죠.

 

 

최후의 궁지에 몰린 약자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방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약자들에게 옆에 함께 서 줄 수 있는 정당, 함께 할 수 있는 정당이 노동당밖에 없었다는 것.

 

이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거기에 더해, 그런 약자의 편인 정당이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소수정당이라는 점이 더해지면서 가슴 한켠이 무거워진다. 우리 현실의 무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정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길거리에서 해 왔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제가 길거리에서 해 왔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거에요. 거리에서 해왔던 것을 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다는 정치가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담아낼 방법이 없어요.

 

기가 막힌 경험이 하나 있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관련법 제정 문제로 600만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왔어요. 그런데 이한구 원내대표가 유가족들에게 야당의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협상의 전권을 주시라고 요구하는 거에요. 제가 박영선 대표였다면 굉장히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요.

 

이 얘기는 바로 자신들은 이 600만의 사람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의미잖아요. 정치는 이래서는 안 되죠. 그 사람들이 우리의 대표여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50%를 득표했다면 확률적으로 유가족의 절반은 박근혜를 찍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은 유가족들을 대변할 마음이 없는 거죠.

 

이것은 우리의 정치가 아닌 거죠.

 

 : 자신들은 유가족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 거기다가 이한구 대표가 이런 얘기를 해요.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국민들의 뜻을 받아 안고 협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대변하는 국민들은 따로 있고, 유가족들은 대변하지 않겠다는 거죠.

 

무척 화가 났었어요. 그래서 찾아봤죠. 이한구 원내대표가 표를 얼마나 받고 당선되었는가 봤더니, 3만표 정도였어요. 그렇구나..

 

 : 이것은 정치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 이런 정치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결국 우리가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죠.

 

거리에서 벌어지는 정치의 순간들을, 기존에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곳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일을 하겠다고 맘을 먹은 겁니다.

 

 : 매우 짧은 시간 속에 압축적인 경험을 하셨다.

 

 : 그런 셈이죠. 그래서 출마 결심을 했고, 지역구를 할까, 비례대표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노동당은 사실 많이 득표하기 힘들잖아요. 많아야 3%, 적으면 1.5%. 비례는 한 석이라도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거기다가 지역구는 그래도 말할 기회도 많고 그런데 비례후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 골목 골목 다니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역시 지역구 후보가 낫다.

 

 : 그렇게 다니면서 얘기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고 싶었는데, 노동당이 어렵잖아요. 외적으로 내적으로 다 어렵습니다. 결국 비례대표에 나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대표 하시는 구교현 대표도 그런 쪽으로 말씀을 해주셨어요. 당의 상황을 고려해서 사실 조금 더 어려운 길이긴 하지만 비례대표로 나가기로 결정했어요.

 

 

노동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현 당대표인 구교현 후보와 용혜인 후보로 결정이 되었다. 용혜인 후보가 1번.

 

 

 : 정치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 맞아요. 기탁금이 천오백만 원이더라구요. 대출받아야죠. (웃음)

 

 : 펀딩은 안 하시는가? 당차원에서 할 수 있을텐데..

 

 : 비례는 원래 개인 후원을 받지 못하죠. 공보물이나 이런 것은 당에서 선거기금으로 해주긴 하는데, 기탁금은 순전히 개인이 내야 하는 거에요. 대출받아 해결할 생각이에요.

 

 : 정말 큰 일이다.

 

 : 어떻게 되겠죠. (웃음)

 

 : 어떻게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신불자 되는 거 한 순간이다. (웃음) 당내에 용혜인을 지지하는 모임이 있는가?

 

 : 저는 청년 당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실제로 활동하는 청년당원이 가장 많은 정당이 노동당이에요. 제가 만나는 청년 당원들도 세월호 관련한 활동을 하다가 입당한 친구들이 많아요. 저 친구도 민주당 출신이에요.

 

 

그러면서 용 후보를 수행해 온 청년당원을 지목했다. 왠지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만 두기로 했다. 어떤 답이 나올지 머리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급하게 해야 하는 일들, 실무적인 일들을 맡아 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세월호 때부터 계속 같이해온 친구들인 거죠.

 

사실 이런 거에요. 저라는 후보가 있고 사람들이 그 후보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제가 정치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이후 같은 일을 해 왔던 사람들이 우리의 정치를 하겠다고 집단적인 결정을 한 것이고 저는 단지 그들을 대표해서 후보가 된 것뿐이에요.

 

 : SNS 활동 같은 것은 어떻게 분담하는가? 한방에 훅가는 수가 있는데..

 

 : 그건 제가 직접 다 합니다. 조심해서 하고 있죠.

 

그런데 정말로 언론이 보도를 안 해줘요.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용혜인이 만약 다른 당 후보로 나왔다면 훨씬 더 많이 보도해 줄 것이라는 얘기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SNS에서는 활발한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 사실 SNS는 현실 세계에는 별다른 힘이 없는데..

 

 : 그래도 SNS 마저도 없다면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겠죠.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저에게 있는 힘은 바로 이런 분들이 주시는 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SNS에서는 수많은 진보적 담론이 오간다. 그러나 그 비율은 지극히 적다. 현실세계에 힘을 미치기 힘들다. SNS 사용자들 역시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인식을 하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실이나 어떤 주장들은 그런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회에 알릴 방법이 없기도 하다. 그 미약한 힘 하나를 붙들고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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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에 하나 당선이 되었다. (웃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 제일 먼저 할 일이 있어요. 저를 도와준 친구들과 국회 잔디밭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거에요. 짬뽕도 됩니다.

 

 : 국회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 그런 면도 있죠. 실제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결국 청년 일자리 문제에요.

 

사실 이 문제는 청년들에게 복지 조금 늘려주고 혜택 조금 더 준다고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누적되어온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청년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제 선심성 정책이나 시혜 정책은 필요 없어요.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 줘야 하죠.

 

거기다가 어른들은 청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지만, 청년들은 지금 구조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는 상황이에요. 예전같이 학생운동 하고 놀다가도 취직해서 가정 꾸리고 집도 사고 그럴 수 있지만, 요즘에는 불가능해요.

 

제가 다니는 학교, 나름대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이고 취업율 높은 학교인데도 졸업생 취업률이 50%가 안 되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에요. 최저임금 만 원, 노동 시간 단축 이런 문제, 일자리 나누기, 이런 것들이 중요하죠.

 

중요한 것은 인간답게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기본소득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확실하게 해 두자. 이 이너뷰에서 기본소득 이야기를 먼저 꺼낸 쪽은 분명히 용혜인 후보 쪽이다. 내가 먼저 꺼낸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본소득 얘기만 꺼내면 물뚝은 맨날 기본소득 얘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하도 뭐라 해서 하는 소리이다.

 

그만큼 일자리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기본소득 이야기로 갈 수 밖에 업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 요즘 기본소득은 녹색당이 가장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분위기다. 노동당은 어떤가?

 

 : 사실 기본소득을 가장 먼저 주장하신 분들은 노동당에 계십니다. 당내에서 여러가지 이견들이 있어서 이런 논란들을 당이 받아 안아 가면서 생산적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그런 점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노동당에는 전 사회당 대표 금민씨가 있고, 그 분이 우리나라에 기본소득 관련 아이디어를 처음 도입한 최초의 멤버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그 금민 전 대표에게 직접 기본소득에 대해 들어본 인터뷰 기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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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기본소득은 사회주의적 제안인가? - 전 사회당 대선후보 금민을 만나다

 

 

 

녹색당이 잘하는 걸 보면서 좀 부럽기도 했어요. 운동권 사람들은 사실 자기 완결성 때문에 좀 복잡해요. 선거국면에서 국민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한데 그게 좀 늦어지는 것 같아요.

 

 : 언제 들어왔다고 벌써 당을 음해하다니.. (웃음)

 

 :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웃음)

 

 : 건강은 어떠신가?

 

 : 큰 병은 없는데 체력이 그렇게 센 편은 아니에요. 밤은 잘 새는데, 다음날 쓰러지죠.

 

 : 취미는?

 

 : 저는 모범생이었고요. 별다른 취미는 없어요. 주로 잠을 자죠. 데이트 할 때 영화 보는 거 같은 건 싫어해요.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할 시간도 없는데, 컴컴한데 들어가서 앞만 보다가 나오는 건 좀 아깝다고 생각을 해요.

 

 : 덕질을 하는 분야는?

 

 : 아이돌 팬이에요. (웃음) 신화의 오래된 팬이죠.

 

 : 아니, 신화가 아직도 아이돌인가?

 

 : 무슨 소리신지.. 신화는 아이돌 맞습니다. (웃음)

 

 : 여행은 좋아하시는가? 음식 취향은?

 

 : 부모님께서 여행을 좋아하셔서 어려서 많이 가 봤어요. 강원도 쪽을 주로 많이 다니셨죠.

 

음식은 주로 매운 걸 좋아하거든요. 밤중에 가끔 불닭볶음면 같은 걸 먹죠. 좀 매우니까 우유 한 통 사다가 같이 먹곤 하죠.

 

 : 아악.. 그건 인간의 음식이 아니다!! 어찌 되었거나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 딴지일보 독자들에 드리는 말씀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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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너뷰는 마무리되었다.

 

아주 평범하게 자라온 한 사람이 가난이라는 괴물과 부딪히게 되고, 현실의 부조리를 깨닫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사회적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사람은 어떤 변화를 해온 것일까 하는 문제가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떻게 바뀌었길래, 심지어 한 정당의 1번 비례대표 후보로 정계에 뛰어들 결심을 한 것일까?

 

독자 여러분들에게 그걸 전달하고 싶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변화의 폭이 커서 인생의 경로 자체를 바꾸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바뀐 인생경로를 따라가게 될 그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우리 모두의 인생을 바꿔 놓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두렵고 힘들지만 나와 타인의 인생을 모두 바꿔놓을 수 있는 거대한 모험이다.

 

동화 속에 나오는 소년같이 용감하게 대모험의 길을 떠나는 용혜인 후보의 앞길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며 마친다.

 

끝.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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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탈출하라 선내 방송" 거짓 보고…왜?

 
[세월호 의혹의 확정 ④] 목포서 상황실 3
 
 
 

지난 회에 둘라에이스호 도착 이후 언제라도 퇴선 지시만 내려졌다면 전원 구조는 가능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퇴선 지시는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퇴선 방송을 한 적도 없고, 구조를 위해 도착한 해경 123정이 퇴선하라는 대공 방송을 한 적도 없고, 123정 승조원들이나 헬기 항공구조사들이 세월호에 올라타 메가폰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육성으로라도 퇴선 지시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기록을 한 번 봐주세요. 

 

 

ⓒ박영대


10시 5분 목포상황실은 "탈출하라고 대공 방송 중"이라는 상황을 문자상황방에 입력하여 상황을 전파, 보고합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어떤 형태로든 퇴선 지시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신고 이후 목포해양경찰서(목포서) 상황실, 서해지방청찰청(서해청) 상황실, 본청 상황실 등은 해경 내부망인 문자상황보고시스템(코스넷)을 이용하여 서로 상황을 전파, 보고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해경 채팅방을 만든 것입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바로 거기에서 10시 5분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숫자를 조금 다르게 입력한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해양경찰 공무원이, 그것도 정확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상황실에 근무하는 경찰 공무원이, 굳이 키보드를 눌러서 입력을 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문제, 가장 안타까운 문제를. 

누구에게 정보를 받았을까요? 그 누구는 도대체 어디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전달받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은 실수나 착각의 범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는 명백한 의혹으로 확정하고자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목포 상황실에서 문자상황방을 담당했던 해경은 확인이 가능합니다. 다수의 진술을 통해 당시 문자상황방 담당자는 목포서 상황실 B조의 이모 경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당장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포해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10시 조금 넘은 어느 시점부터 탈출 선내방송이 이루어진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은 곳곳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우선 경찰청입니다.

 

 

 

ⓒ박영대


위 상황보고서는 경찰청(해양 경찰 말고 육지 경찰을 말합니다) 112종합상황실의 상황보고서(3보)입니다. 우선 여기에서도 10시 18분에 세월호 선장이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선내 방송"을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해경에 이어 경찰청도 전파하고 있습니다. 

또 목포서 상황실은 단지 "탈출하라고 대공 방송 중"이라고만 보고했지만, 경찰청은 '선장'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면서 탈출 선내 방송의 주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은 이미 9시 46분경 세월호 조타실을 빠져나와 123정에 올라탔습니다.

그 외 이 상황보고서의 발송일자는 4월 16일 10시 13분인데. 10시 18분의 일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타로 이해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언론입니다. 역시 10시 조금 넘은 시점부터 언론에서도 일제히 탈출 선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세월호의 모든 갑판과 난간이 물에 잠겨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곳은 다 물에 잠긴 시간이 10시 17분경이고, 마지막 표류자가 구조되는 시간이 10시 21분경입니다. 즉 10시 조금 넘은 시간은 사실상 세월호가 전복되는 시간대입니다. 

해경의 123정과 헬기, 초계기(CN-235) 등은 이 과정을 뻔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언론은 이 과정을 취재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해경, 경찰청, 언론이 한목소리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일을 전파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탈출 선내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짓 정보 전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의혹을 구성합니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해경, 경찰청, 언론이 하나같이 거짓 상황을 전파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 

오늘 하나의 의혹을 확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렇듯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잔뜩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상규명을 위해 6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의 서명을 통해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져 현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28일과 29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세월호 특조위의 제2차 청문회가 개최됩니다. 침몰 원인이 주된 주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침몰 원인 및 선원 조치의 문제점, △선박 도입 및 운영 과정 문제점, △침몰 후 선체 관리 및 인양의 문제와 관련된 증인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침몰원인으로 정부가 제시했던 것들이 과연 타당한지, 침몰 당시 선원들은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세월호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도입되었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리고 인양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묻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특히 인양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시민분들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팩트TV, 416TV, 오마이TV, CBS 노컷뉴스, 고발뉴스, 국민TV, 주권방송 등이 청문회를 생중계한다고 합니다. 방청을 오셔도 좋고 중계를 시청해 주셔도 좋습니다. 청문회 이후라도 관심 있는 특정 주제 부분을 조금씩이라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세월호에 관심을 가져 주실 때 진상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청문회 지나고 뵙겠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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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된 노량진 수산시장, 붉은 글씨로 가득

 

[르포] 반으로 쪼개진 수산시장의 하루

16.03.24 21:07l최종 업데이트 16.03.24 22: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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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중'이라는 글씨가 적힌 노량진 수산시장 벽면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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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오전 10시 40분, 노량진 전철역에서 수산시장으로 이어지는 육교를 지나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한구석에 래커 스프레이를 하나씩 손에 쥔 장정들이 대여섯 모여 있었다. 주차장 벽면 이곳저곳에는 이미 '철거중', '위험', '신축으로' 같은 글자들이 붉게 휘갈겨져 있었다. 곧 장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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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벽에 래커 칠을 하고 있다. (사진 : 칼라TV)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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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두 층을 내려가면 노량진 수산시장이다. 2층엔 상인들이 쓰는 사무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장정들은 계단을 내려가며 보이는 벽면마다 붉은 래커로 똑같은 글자들을 휘갈겼다. 

'철거 중', '위험' 

글자가 없는 곳은 'X'자로 채워졌다. 장정들을 발견한 상인들이 시장 여기저기서 호루라기를 불어댔고 성난 상인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2층으로 올라왔다. 장정들은 아랑곳없이 래커로 글씨를 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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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내벽에도 래커 칠을 하고 있다. (사진 : 칼라TV)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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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을 한 바퀴 훑으며 벽을 온통 붉은 글씨로 채운 장정들은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시장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상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우르르 뒤를 쫓았다. 상인들과 잠시 몸싸움을 벌이던 장정들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대신 상인들은 얼마 전부터 새로이 영업을 시작한 '신축 수산시장' 건물 입구로 밀고 들어갔다. 

장정들이 상인들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영업 방해하지 마시고 나가세요!" 상인들은 쫓겨났고 곧 방패를 든 경찰들이 몰려와 입구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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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건물 입구를 막아선 경찰들. (사진 : 칼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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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협 측이 노량진 수산시장에 게시한 공고문. 상인들이 직접 공고문을 떼어 냈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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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사이에 두고 신축 건물과 반대편에 있는 주차장 앞으로 상인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집회가 벌어졌다. 상인들은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전면 중단!', '전통 노량진 수산시장을 꼭 지키겠습니다!'라는 글귀가 박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상인들 다 죽이는 현대화 사업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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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를 열고 있는 수산시장 상인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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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이후, 수산시장은 전쟁터가 되었다

2004년경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은 2012년 수협중앙회가 시장 부지 옆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오랫동안 단층으로 있어 온 수산시장을 6층짜리 건물 안으로 집어넣겠다는 것이 수협의 계획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수협은 거의 다 지어진 새 건물로 예외 없이 들어와야 한다고 상인들에게 통보했지만 상인들은 "새 건물에 들어가면 다 망한다"며 격렬히 맞섰다(관련 기사 : 새 노량진 수산시장... "저기 들어가면 다 망한다"). 결국 임대차 계약 만료는 3월까지 연기되었다.

계약 만료일인 3월 15일을 앞두고 일부 상인들은 새 건물로 들어가 영업을 시작했다. 현재 단층 수산시장 군데군데엔 이 빠진 듯 휑하니 비어 버린 자리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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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상인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현재 비어 있는 상태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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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매상인들 대부분은 여전히 새 건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수협이 "3월 15일 이후에는 명도 소송을 걸겠다"고 경고했음에도 상인들은 완강했다. 23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상인에게서 15일 이후의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월요일(21일)부터 용역이 들어와서 건물 외벽에 폐쇄 경고문을 붙이고 래커 칠을 하고 있어요. 각 정당들이 걸었던 현수막도 다 찢었고요. 그게 다 불법이에요. 저희 상인들은 불법적인 행동을 한 게 전혀 없어요. 

수협은 현재 저희한테 아직 정식으로 명도 소송도 걸지 않았어요. 내용증명 하나 떨렁 보내 놓고서, 3월 15일 이후부터 너희들은 불법 점유다, 이렇게 나오는데 오히려 이게 불법 아닌가요? 이건 위화감 조성해서 저희를 내쫓으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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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글씨로 가득한 수산시장 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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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투입되기 시작한 용역들이 시장으로 들어오는 화물 차량을 못 들어오게 막았어요. 해수(바닷물)하고 경매용 물건들 같은 것들이 들어와야 저희가 장사를 하는데 그걸 막은 거예요. 어제(22일)도 해수 차량을 용역들이 막았지만 저희 상인들이 몸으로 차량을 에워싸 겨우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수협 측은 자꾸 해수를 끊으려 해요. 밸브를 잠그기도 하고. 수족관에 해수가 안 들어가면 고기들 다 죽는데 저희들 장사하지 말라는 소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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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에 'security'라고 적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산시장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 :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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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할 때 필요한 얼음도 공급을 끊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비용을 부담해 얼음을 인천 쪽에서 따로 들여오고 있습니다. 얼음은 수협이 실수한 거예요. 저희가 얘네 얼음 다 팔아 주고 있었는데."

"쓰레기 문제도 있어요. 수협 측과 일부 상인들이 새 건물로 이사 가면서 무단 투기한 쓰레기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걸 저희가 비용까지 부담해 가며 다 치웠어요. 이미 25톤 차량 8대 분량이 나갔고 오늘도 두 대 분량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마비시키려고 고의적으로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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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를 치우는 수산시장 상인들. (사진 :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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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측은 저희가 공간이 좁고 임대료가 올라서 새 건물에 안 들어간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지금 총체적인 난국이에요. 새 건물 자체가 노량진 수산시장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아닙니다. 설계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됐어요. 새 건물 가 보시면 천장에 다 구멍 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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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외기를 연결하기 위해 천장에 구멍을 뚫어 놓은 새 건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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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측에 요구합니다. 용역 철수시키고 저희 장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건 영업 방해나 다름없습니다. 수협 측은 지금 여러 가지 위법 행위를 알면서도 저지르고 있는데 저희도 변호사를 통해 고발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수협 측의 이야기 "상인들이 불법 점유를 하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을 담당하는 수협 측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화를 통해 들어볼 수 있었다. 

- 시장에 용역이 들어와 있다는데.
"용역이 아니라 시설 관리업체 직원입니다. 현재 직원들 인력으로는 구시장까지 관리가 안 되니까 시설 관리업체를 따로 선정한 거죠." 

- 시장으로 들어오는 해수 차량을 막은 사실이 있는가?
"막은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안내를 한 거예요. 그 해수 차량은 저희 쪽에서 처리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이러이러한 차량이 들어온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들어오게 해 드렸을 텐데 그런 과정이 없이 갑자기 들어오니 저희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막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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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부터 영업을 시작한 새 건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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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 공급도 끊었다고 하는데 
"16일부터 얼음 공급을 끊었습니다. 새 건물에서 신시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저희가 기존의 인력으로 구시장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어요. 직원 수는 똑같은데 면적이 두 배로 늘었으니 관리가 힘듭니다. 얼음은 상인분들께서 자체적으로 구입을 하시겠다고 했어요."

- 쓰레기 무단 투기는?
"새 건물로 들어가신 분들이 다 치우고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며칠 동안은 쓰레기들이 쌓여 있긴 했습니다. 구시장 쪽에 계신 상인 분들께서도 거기다 버리기도 했고요. 어쨌든 지금은 다 치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현재 사태에 대한 향후 대책은?
"일단은 저쪽(구시장)에서 불법적으로 점유를 하고 계시는 건 사실이잖아요. 아직 명도 소송을 들어가진 않았지만 현재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쪽(신시장)으로 오시는 걸 희망하시면 그 부분도 병행해서 검토를 해야 할 거고요. 지금 비대위 분들 접촉을 해서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동안의 갈등이 하루아침에 타결되기는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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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시장 내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상인들. (사진 :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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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쪼개진 시장,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수협 측은 '신시장'과 '구시장'이라는 언급을 통해, 새 건물로 들어온 일부 상인들과 기존의 수산시장에서 여전히 영업을 하는 상인들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수협'과 '상인들' 사이에 선을 긋는다. 수산시장이 반으로 쪼개진 것엔 누구나 동의하지만 어느 쪽과 어느 쪽으로 쪼개졌는지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

3월 23일, 용역 혹은 관리업체 직원이 시장 벽면에 래커로 붉은 글씨를 휘갈기고 있는 동안 새 건물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정례회의가 열렸다. 해양수산부, 서울시, 수협, 상인연합회가 참여한 그 회의에서는 앞으로 계속 협의를 해 보자는 가닥만 잡혔을 뿐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수협 측은 상인들에게 무조건 새 건물로 들어오라 통보했고, 상인들은 수협 측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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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를 열고 있는 수산시장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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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명도 소송도 걸지 않은 상태에서, 계고장 하나 없이, 어디선가 데려온 외부 직원들을 동원해 벽에 붉은 래커로 '철거', '위험'이라는 글씨를 휘갈기는 모습은 분명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철거민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철거촌에서 용역들이 쇠망치와 곡괭이를 들고 쳐들어오기 직전에 흔히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상인들은 수협 측이 동원한 '관리업체 직원'들을 서슴없이 '용역'이라 부르고 있다. 최악의 사태까지 치닫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오는 4월 첫째 주에 노동당 서울시당 주최로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의 현황을 짚는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상인연합회 측은 "수협에 공청회 관련 공문을 보냈으나 참석하겠다는 답변을 받진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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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삼성전자 10년 안에 망할 것"

 

[e사람]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의 도발적 문제제기

16.03.24 08:44l최종 업데이트 16.03.24 08:44l

 

 

'e사람'은 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장 노동자부터 학자, 관료, CEO, 사회단체 등 그 누구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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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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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문제는 삼성전자가 망했을 때 한국경제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더 큰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죠." 

그의 표정은 답답한 듯 했다. 인터뷰 시간이 100분을 훌쩍 넘어섰다. 기자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전세계 IT(정보통신) 기업 가운데 100년이상 유지해온 곳은 없다"라고 했다. 게다가 이미 삼성전자의 위기는 시작됐고, 삼성그룹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것. 문제는 한 기업의 몰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혹독한 시련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파산은 관련 중견기업들의 잇단 도산으로 이어지고, 제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기업들의 잇단 도산은 해고와 실업 증가로 이어지고, 금융시장에선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빼나갈 것이 뻔하다.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그는 "향후 한국경제가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남미형 경제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를 '삼성발 경제위기'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박 교수는 전형적인 재벌개혁론자다. 그동안 정부와 재벌주도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양극화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역시 그의 화두였다. 최근엔 정보통신분야에서 관련 기업과 경영전반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그는 최근 3년 동안 핀란드의 대표적 기업이었던 노키아의 실패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노키아에서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가 무너질 경우,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대비해야할지로 이어졌다. 그 내용이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미래를소유한사람들 펴냄)이라는 제목의 책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지난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노키아가 진짜 망한 이유

- 노키아를 연구하기 위해 핀란드를 두차례 다녀왔다고 하는데.
"2011년에 처음 갔을 땐 노키아가 망하기 전이었다. 물론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 노키아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지 전문가들 뿐 아니라 삼성 현지법인 사람들도 모두 그랬다. 게다가 애플이 2007년에 아이폰을 내놓기 전에 이미 노키아에선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빨리 무너질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그런데 노키아는 그후 3년 만에 무너졌다.  
"2014년에 핀란드에 다시 갔다. 노키아 몰락에 대해 국내외 분석이 대체로 판에 박힌듯, 피상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핀란드 알토대학의 부오리 교수를 만났다. 그는 노키아 핵심 경영진 50여 명과 수차례 인터뷰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노키아 몰락을 연구해 왔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후 여러 연구소를 찾아다니고, 자료도 모으고,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그렇게 핀란드에서 노키아의 몰락을 따라갔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잘나갈 땐(2000년) 핀란드 국내총생산의 4%를 담당했다. 해외언론들은 이런 핀란드를 두고 '단일 기업경제(one firm economy) 체제'라고 불렀다. 그런 노키아가 결국 망했다. 대체로 애플 아이폰으로 불리는 스마트폰의 혁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노키아는 2006년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그것이 노키아의 경쟁력이었죠. 2007년 이후에도 노키아는 앱이나 소프트웨어보다 원가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실제 이런 전략이 노키아 성공의 원동력이었고... 물론 노키아도 스마트폰 시대를 예상하고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준비를 했죠. 실제로 시장에 나오기도 했고."

- 그럼에도 사실 노키아 스마트폰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키아는 이미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휴대폰의 틀 안에서 점진적인 혁신을 추구했다. 하지만, 애플은 휴대폰 시장 판도를 바꾸는 단절적 혁신, 창조적 혁신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담아낸 것이다. 사실 애플 같은 후발 도전자 입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노키아도 내부적으로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았지만, 내부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박 교수는 "기득권이 큰 기업일수록 그 기업은 더 비대화되고 관료화되기 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직에선 결국 새로운 것보다 기존의 것을 강화하고 유지하는데 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노키아가 아이폰과 같은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그들이 기존 시장에서 갖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는 노키아의 몰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제2의 노키아?... "2014년부터 위기 시작됐지만 이재용 승계에만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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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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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삼성전자로 넘어갔다. 박 교수 역시 노키아 몰락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과연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다를까. 삼성전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도 망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라고. 게다가 삼성이 한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삼성의 위기는 말 그대로 아찔하다. 

- 삼성전자도 위기라고 한다. 
"(고개를 저으며) 이미 위기가 상당히 진행됐다. 노키아와 삼성전자는 여러가지로 닮은 점도 있다. 이건희 회장과 올릴라 CEO라는 인물의 강력한 리더십이나 원가절감, 지역특화 모델 개발 등도 비슷하다. 게다가 매출 증가에 따라 조직이 관료화되는 모습도 그렇다. 특히 삼성전자의 이익 대부분을 내고 있는 휴대폰 사업이 심각하다."

- 최근에 내놓은 갤럭시 에스7(S7) 역시 시장 반응이 밋밋하다. 
"그동안 삼성의 강점은 알다시피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 전략이었다. 창조적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갤럭시 S4까지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에 따라 큰 성과를 올렸지만, 이후 S5, S6 등은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이미 신흥시장은 중국의 중저가폰에 밀리고, 프리미엄 시장은 애플에 뺏기는 상황 아닌가. 노키아도 비슷했다. 삼성도 이대로 가면 노키아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다."

- 실제 삼성전자 매출이나 이익 등을 보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2012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찍은 이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그 당시에만 보더라도(2012년-2013년) 이 회사의 매출(50%)과 이익(70%) 대부분이 휴대폰에서 나왔다. 하지만 2014년엔 전체 매출이 2013년보다 10% 가까이 줄어서 206조2100억 원, 작년엔 더 줄어들어 간신히 200조6500억 원이었다. 영업이익도 2014년에 25조300억 원, 작년엔 26조4100억 원이었다. 2013년과 비교하면 30%이상 줄었다. 노키아처럼 불과 3년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 삼성전자 역시 위기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룹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사업을 개편하고 있는데.
"물론 어느정도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의 위기는 이미 2014년부터 시작됐는데, 이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 현재 진행중인 계열사 합병이나 사업 매각 등은 이재용 중심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는 것 아닌가. 삼성 스스로 위기라고 말하지만, 오로지 관심은 오너의 승계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삼성발 경제위기... 삼성전자 이대로라면 5년, 10년 안에 사라질 것"

그는 답답한 듯 말을 이어갔다. 박 교수는 "삼성그룹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히 독보적"이라고 했다. 핀란드가 노키아에 의존한 것을 두고 '단일기업 경제'라고 했지만, 한국은 더 심각하다. 오히려 '단일기업 집단'인 삼성에 훨씬 더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2014년 기준으로 삼성그룹 총 매출액이 303조 원이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전체 GDP가 1485조 원이예요. 매출액으로 따지면 GDP대비 20%가 넘죠. 노키아와 비교하면 삼성 쏠림은 더 심하죠. GDP 점유율(GDP대비 부가가치 생산액의 비율)이 2000년에 노키아는 4.0%였지만, 삼성그룹은 2013년에 4.7%였어요. 법인세도 노키아가 14.2% 책임졌지만, 삼성은 19.3%(2014년기준)나 냈어요. 수출도 노키아는 핀란드 수출의 20.7%(2000년)였지만, 삼성은 28%예요."

여기서 그의 생각은 만약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로 이어진다. 그는 "사람도 늙으면 죽기 마련"이라며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화가 필연적인듯 기업도 언젠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 망하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 그는 삼성전자의 실적 감소에 따른 주가 하락을 놓고, 삼성 몰락 시나리오를 직접 그렸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 책을 보니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자못 놀랐는데. 
"휴대폰 판매 부진 등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가장 높았을 때 대비해 70% 하락할 경우, 그룹의 여타 계열사 주가도 폭락하게 된다. 지배체제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주가는 각각 70%, 63% 급락한다. 이 영향으로 다시 삼성전자 주가는 87%까지 폭락한다. 이것은 사실상 삼성그룹 계열사의 파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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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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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망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삼성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삼성 계열사 주가가 폭락하면 금융시장이 휘청거린다. 삼성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위태롭다.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외국인이 돈을 빼내가면 외환위기가 오게된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아까 법인세 이야기했지만,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에 19조 원을 투자하고 있어요. (삼성이 망하면) 이 돈도 다 날아가는거예요. 삼성전자와 관련된 중소하청업체들도 타격을 입죠. 사람들은 삼성이 망하도록 가만히 있겠느냐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노키아도 한순간이었어요. 이번 시뮬레이션은 그나마 보수적으로 잡은건데... 정말 예전 IMF 이상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어요."

- 이런 가정이 실제로 언제쯤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잠시 생각하더니) 좀더 연구를 해봐야 한다. 삼성전자가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빠르면 5년 안에 일어날 수도 있다. 10년은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이 남긴 것 

- 5년 안에, 10년 안에 삼성전자가 망하고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그렇다. 삼성전자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국경제는 살아남아야 하고,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 근간이 흔들리고, 앞으로 중남미식 경제로 떨어질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대안은 뻔하다. 다시 재벌개혁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 때마다 나온 단골메뉴다. 박 교수는 "왜 아직도 재벌개혁이 나오나"라고 반문한다.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소개한 것은 이스라엘식 재벌개혁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2013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경제력집중법을 통과시켰어요. 우파정권이 지난 2010년부터 준비를 했던 것인데, 핵심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바꾸고, 경제력 집중을 거의 없애는 거예요. 아주 강력한 법이에요. 이스라엘의 1, 2대 재벌은 금융 또는 비금융 사업 가운데 택일을 해야 하고, 지주회사와 자회사 구조로 지배구조를 짜야 합니다. 그것도 법 시행 후 6년 안에 하도록 했어요."

그는 지난해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해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스라엘 우파 정부가 이런 강력한 재벌 개혁정책을 추진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고 했다. 이같은 특정 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으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시장경제도 되지 않고, 정치적 민주화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앞으로 5년 안에 우리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고 했다. 또 총선과 대선에 맞춰, 경제민주화가 다시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제대로 된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것이기도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마지막으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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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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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북제재 아랑곳 없이 '4월의 봄 국제친선예술축전'

북, 대북제재 아랑곳 없이 '4월의 봄 국제친선예술축전'
 
국내. 해외, 동포 예술인들 축제 마음껏 공연 펼칠게 할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3/24 [11: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일성 주석 탄생을 기념하는 4월의봄친선예술축전이 오는 4월 자주 친선 평화의 이념아래 열린개 된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선이 유엔안보리와 서방의 제재 소동에서도 제30회 '4월의 봄 국제친선예술축전'을 개최한다.

 

연합뉴스는 지난 23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해외에 거주하는 조선 예술인들을 포함해 국내외 유명 예술인들과 동포단체 공연예술이 평양대극장동평양대극장모란봉극장중앙서커스 및 여타 광장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30차 4월의 봄 국제친선예술 축전 주최 측은 해외에서 건너온 예술인들이 마음껏 기량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참가 인원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4월의 봄축전은 4월 15일 김일성 주석 탄생 축하 전야에 열리는 행사로 2년에 1회 개최된다.

 

2014년 행사에는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말레이시아오스트리아우크라이나베트남쿠바 등 기타 국가들의 예술인들이 평양을 방문해 행사를 빛냈다당시 러시아는 내무부 산하 군악대의 군인들이 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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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무모한 도전?②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민주노총이 흔들다.
 
‘노조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임병도 | 2016-03-24 10:18:3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1998년 대구 달성군 재보궐선거에 당선된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추경호 새누리당 후보 사무실에 걸려 있는 박정희 사진과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모습이 담긴 현수막.

#총선아바타팀은 3월 21일 대구 달성군을 찾아갔습니다. 달성군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대구 달성군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3선 의원을 거쳐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보니 대구 달성은 오로지 그녀의 사람들만이 출마했고 당선됐습니다. 박정희의 사진이나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현수막은 선거 전략의 기본이자 달성 지역 출마자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야당 후보자들은 나와도 패배하기 일쑤였고, 야당에서는 거의 포기한 지역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3월 21일까지 선관위에 등록된 후보 중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정의당 후보는 없었습니다. (3월 23일 더불어민주당은 조기석 대구시당위원장을 달성군에 전략공천했다.)

▲대구 달성군 예비후보자 명단 (3월 23일 오전 8시 기준)

야당조차 포기할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는 새누리당 예비후보 이외에 무소속 후보 한 명이 등록돼 있습니다. 그는 바로 민주노총의 조정훈 후보입니다.

조정훈 후보는 금속노조 대구지역에서 추천하고 민주노총 회의에서 심의돼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민주노총은 7대 전략 지역구를 선정했는데 당선 가능성 있는 곳, 정치적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대구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3선을 하고 박 대통령 내정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곳으로 정치적 의미가 있는 전략 지역구에 속합니다.

다음은 조정훈 후보와 #총선아바타팀이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무소속 후보인가? 아니면 당이 있거나 바뀌나?)-일부 언론에서는 조정훈 후보를 정당 후보로 표기
= 민주노총 후보로 출마했다. 당은 실제 민주노총 내부적으로 각기 지지하는 정당들이 있다. 이번 총선투쟁의 가장 큰 의미가 노동개악 저지이자 새누리당 심판이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해서 출마한 거다.

(지금 보면 조정훈 후보자 없으면 무득표 당선이다)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다른 진보정당에서 아마 출마를 했다면 굳이 저희가 무리해서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야당도 아무도 출마하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는 심지어 곽상도라는 민정수석 실장이 공천을 받기 위해 내려왔다가 더 친박인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에게 쫓겨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현직인 이종진 의원은 선거운동 중간에 어떤 외압인지 모르지만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다.

(원래 예비후보 세 명인데.. 별 이야기도 없다.)
=세 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활동했다. 추경호 권영석 구성제. 여론조사에서 구성제 후보가 일등을 했고 추경호 후보는 이등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쟁 통해 추천한 게 아니라 단수 추천으로 공천 확정한 거다.

새누리당이 국민들에게 공천 돌려주겠다 온동네 플랜카드 걸었지만 결국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 국무조정실장 추경호를 공천하는 일로, 공천이 마무리됐다. 그래서 자기들 내부에서도 구성제 후보가 이걸 인정하지 못한다고 재심 청구하고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무소속 출마하겠다고 공헌한 상황이다. 이를 보면서 국민은 온데간데없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실한 사람만 따지는 경쟁을 하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민주노총 후보로 대구 달성에 출마한 조정훈 후보

( 민주노총, 노조가 왜 지역구 후보 낸 배경은?)
=민주노총은 2015년도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추진했던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총파업을 비롯한 총력투쟁을 일년간 했다. 또한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서, 민중 요구를 담아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통해서 민중 요구를 여러 가치를 통해서 투쟁으로 표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정권은 민중 요구 묵살하고 심지어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살인 진압하고. 쉬운해고 막겠다는 한상균 구속하고 탄압을 더욱 거세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13일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 선거가 박근혜 노동개악 추진하려는 사람들로 대거 당선되고,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할 경우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밥쌀용 쌀수입 개방과 세월호 진실규명 은폐 등이 분명하게 일어난다.

특히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곳 사업장에 많다 있다. 금속 노조 조합원이 한 1800명, 민주노총 조합원이 전체가 3500명이 된다. 이 분들이 박근혜의 노동개악과 반민주를 두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총선 투쟁 통해 새누리당 심판하고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우리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출마하게 된 거다.

(그런데 이 정도 숫자로는 당선된다고 보기 어렵다)
=달성군은 사실 막대기만 꽂아도,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3선을 한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 계속 국회의원 했던 곳이다. 그래서 투표율이 전국에서 가장 저조한 곳 중 대표적인 곳이다. 투표해도 별로 실효성이 없다. 야당이나 다른 곳이 당선될 가능성이 없기때문에 투표를 포기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하면 희망이 있다. 노동개악 저지. 재벌들에게 세금을 내게해서 복지 확장하고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막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충분히 나온다.  화원구 선거구에 젊은 세대들 많이 유입됐다. 그분들이 적극적이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 또 3500명 조합원들이 다 달성 사는거 아니지만 지인분들 친지들에게 우리 민주노총 정당성을 이야기하면 그 파급력은 새누리당이 가진 것 못지않게 더 넓게 퍼질 것이라 확신한다.

▲총선아바타팀이 찾은 3월 21일 조정훈 후보 사무실 전경. 흔한 현수막 하나 없었다.

(선거운동에서 가장 어려움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예전엔 박근혜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는 왜 박통 욕을 하느냐는 비판 여론 있었지만, 현재는 후회한 사람이 더 많다.

(달성에서도?)
=당연하다. 왜냐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에 사는게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경제 민주화한다고 하고 재벌들만 배부르게 하고 사내유보금 700조 800조 쌓이게 하고 국민들 가게 부채는 1200조 넘게 해서 감당이 안 된다.

달성군도 테크노폴리스 등 아파트가 생겼는데 아파트값이 너무 올랐다. 서울에서 온 사람이 투기 목적으로 대구 아파트값을 엄청나게 높여 놨다. 실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더 크게 됐고, 어렵게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 조금만 나가도 장사가 안된다. 소득 줄고 가게 부채 늘어나니 돈을 쓸 수가 없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아이엠에프보다 더 심한 경제 위기라고 말한다.

이 책임은 누가 지나? 박근혜 대통령 너무한 거 아니냐. 달성 위해 한 게 없다. 아무것도… 달성에서 다리놓고 지하철 연장, 개인이 한 거 아니지 않나? 달성 주민들의 삶의 질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박통이 3번하고 박통이 내정한 사람들이 국회의원 네 번째 다섯 번째 하려는 이 상황에서 달성군민들은 삶이 힘겹다 아우성 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 말하면 이구동성 다 맞다고 한다. 그분들이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는 게 제 투표 전략이다.

(추경호 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추경호 후보는 공식적인 인터뷰를 거부했다.
=추경호 후보 개인에 대해 폄하하거나 비하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국회의원은 20만 달성 군민들을 대표해서 입법기관으로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법안들을 만들어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행정부의 하수인 노릇을 하기 위해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달성구민 자존심을 완전히 무참히 짓밟는 행위이다.

차라리 국회의원 하지 말고 장관 하던가 아니면 국무조정실장을 계속하던지 해야지. 명실상부한 국민들 위한 입법기관인 독립기관인 국회의원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 위해 일하겠다고 버젓이 플랜카드 걸었다. 저렇게 하는 건 달성 군민들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다. 달성군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 그래서 우리의 권리를 다 위임받아서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권리 되찾아서 아까 말씀드린 여러 가지 민생의 노동자 서민 위해 입법기관으로 열심히 활동하겠다.

(전과가 많다. 노조 활동하다가 벌어진 일인가?)
=상신브레이크 해고자다. 지금 6년 차다. 2010년도 팔월에 창조컨설팅과 상신브레이크가 공모해 노조를 파괴했다. 용역깡패가 들어와서 실제 조합원들 폭행하고 나쁜 짓하고 그랬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 의원에게 중재 요청했다. 그런데 모르쇠 일관하고 대통령이 됐다. 2014년에는 특정 노조 파괴 해고, 복직 판정 나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안 되고 있다. 2016년의 노동개악은 대한민국 전체 노동조합을 말살하는 정책이다. 특히 저성과자 취업규칙 변경은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노총을 겨냥해 무분별하게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것이다.

▲2014년10월 국회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희훈

(당시 박근혜 의원을 찾아가지 않았나?)
=(박근혜 의원) 보좌관 통해서 연락하고 찾아가고 했는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보좌관에 전화하니까 알아서 하세요라는 말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간에 대구 방문했을 때도 만나긴 했지만, 그냥 외면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하는 짓과 똑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왜 아이들이 죽었는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해도 유가족을 물대포로 폭력으로 진압했다. 더 이상 이런 정권 유지하면 안 된다.

해고되고 나서 화원장에서 8개월간 닭집에서 알바를 했다. 일하면서 노동자 서민들이 주머니가 두툼해야 돈을 쓴다는 것을 체험했다. 특히 삼월에 대학등록금 내는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돈을 못 쓴다. 닭도 안 팔린다. 그리고 월급날 직전에는 돈이 없다. 서민들 삶이라는 게 아득바득 힘들게 하루하루 산다. 이런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복지 위해 써야 할 재원들이 일부 정치인과 재벌을 위해 사용된다. 반드시 바꿔야 한다.

▲민주노총은 영남노동벨트를 비롯해 20대 총선에 7군데의 전략지역에 후보를 출마시켰다.


‘노조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민주노총이 후보를 내고, 전략 지역에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와 연대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 활동의 핵심은 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임금. 복수노조, 비정규직, 해고 등 각종 법에 따라 노조 운동은 위축되고 엄청난 손배상 소송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노조가 법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대회나 시위, 거리 투쟁, 삭발 등의 방법을 동원해도 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론과 정부는 색깔론이나 경제 위기론을 앞세워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노조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미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의 노동조합은 정당이나 정치에 참여하거나 선거를 통해 집권 또는 법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은 노조원 1명당 10표를 만드는 운동을 전개한다고 합니다. 노조가 정치에 참여해 합법적인 방법으로 법을 바꾸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나선 모습은 민주주의 사회에 가장 합당한 방식이라고 봅니다.

노동자를 위한 노조의 정치 참여가 끝까지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살아남았으면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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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유승민 역풍, 새누리 과반 무너질 것 같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 “박근혜가 독재자? 유승민도 언동 돌아봐야” … 더민주에 "도로 운동권당" 비난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6년 03월 24일 목요일
 
 

유승민 의원이 결국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밝혔다. 후보등록이 시작되는 24일이 되기 1시간 전에 탈당을 밝혀 새누리당과의 ‘치킨게임’을 끝낸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찍힌 유승민 의원을 내치면 역풍이 불 여론을 인식해 시간끌기만해왔다. 이에 언론은 새누리당의 행태가 졸렬하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유승민 의원에게 언동을 돌아봐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야당의 공천과정도 비판받고 있다. 23일 사퇴를 고민하던 김종인 대표가 당무에 복귀했다. 김 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면서 ‘셀프 공천’으로 논란이 됐던 비례대표 2번도 되찾았다. 이러한 잡음에 보수언론은 ‘운동권의 패권’을 이유로 들고 나왔다.

다음은 24일 아침에 발행하는 종합일간지 1면 제목이다.

경향신문 <유승민 “당이 보여준 모습 정의가 아니다”>
국민일보 <유승민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
동아일보 <결국, 그가 떠밀려 나갔다>
서울신문 <유승민 “새누리 탈당…무소속 출마”>
세계일보 <내쫓긴 원조친박… 총선 중대 변수로>
조선일보 <1시간 남기고 탈당한 유승민>
중앙일보 <유승민 “시대착오적 정치보복” 무소속 출마>
한겨레 <내쳐진 유승민, 결국 무소속 출마>
한국일보 <유승민 “권력이 버려도 국민만 보고 간다”>

유승민 의원이 23일 밤 탈당했다.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 대구 동을의 공천을 계속 늦추면서 사실상 탈당을 유도한 것이다. 4.13총선에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려면 후보등록이 시작되는 24일 전날인 23일 밤 12시까지 당적을 옮겨야하기 때문에 유승민 의원은 1시간을 남기고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 의원은 23일 밤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한다”며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당의 모습은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이다”라며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 3월24일 동아일보 1면.
유승민 의원은 작년 원내대표를 시작하면서부터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에 이어 ‘국회법 파동’으로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라는 비난을 받았다. 4.13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후폭풍이 이어졌고 유승민계 의원들은 경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이러한 여당의 결정이 여당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정두언 의원은 “역풍은 이미 불고 있다”며 “(과반의석 확보는) 무너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에 발행하는 종합일간지인 9개 신문의 1면은 모두 유승민 의원은 탈당 소식이었다. 신문의 성향과 관계없이 모두 새누리당이 공천을 미뤄 유 의원을 탈당으로 유도한 것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뒤탈 겁나 자르지도 못한 여(與)’라고 쓰고 3면 분석 기사를 통해 “새누리당 공천위는 어떻게 하면 후폭풍을 최소화하며 유 의원을 공천 배제할지만 고민해왔다”고 썼다. 동아일보도 1면 제목을 ‘결국 그가 떠밀려 나갔다’로 짓고 2면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눈치 보기 공천이었음을 공관위가 스스로 시인한 셈”이라고 썼다. 한겨레 역시 이런 상황을 “유 의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며 끝까지 치졸한 고사작전을 이어갔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공천과정에서 잃은 것이 유승민 의원뿐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공천 잡음으로 새누리당의 옛 친이명박계인 이재오 의원을 포함해 주호영, 류성걸, 윤상현 의원 등 5명의 의원이 탈당하면서 새누리당의 과반이 무너졌다고 밝혔다. 5명의 탈당으로 새누리당은 과반에서 한석 모자란 146석이 됐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박 대통령이 강조한 경제입법을 언급하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얻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상반기에는 법안 통과가 어렵게 됐다”며 “가뜩이나 여야의 극한 대립에 뛰쳐나간 비박(비박근혜)계의 반발까지 겹쳐 국정과 개혁입법은 수렁 속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종합일간지의 사설 역시 모두 비판 어조였다. 사설 제목을 보면 ‘대통령 눈 밖 난 유승민 탈당 몰아간 여는 공당 자격 없다’(조선일보), ‘통치권에 무릎 꿇은 집권당 국정 포기했나’(동아일보), ‘유승민 밀어내기, 정치사의 수치로 남을 것’(중앙일보), ‘국민 손으로 넘어간 ‘박근혜-유승민’ 대결’(한겨레), ‘유승민 축출, 막말 비례로 끝난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경향신문), 집권당의 한계 보여준 유승민 탈당(서울신문), ‘유승민 찍어 낸 집권당, 과정도 결과도 졸렬하다’(세계일보), ‘새누리, 유승민 꼭 이렇게 내쳐야 했나’(국민일보) 등이다.

 

▲ 3월24일 조선일보 사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어조를 취하는 듯하면서도 유승민 의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유 의원은 (작년)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면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을 인용해 박 대통령이 마치 독재자라는 인상까지 줬다”며 “유 의원은 이날 탈당 회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여당 원내대표로서 적합한 언동이었는지는 유 의원 스스로도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 공천잡음에 보수언론 일제히 “운동권 패권 때문”

여당 못지않게 야당의 공천과정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퇴를 고민해온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당 잔류를 선택했다. 비례대표 2번도 되찾았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갖고 “나의 입장만을 고집해 우리 당을 떠난다면 선거가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잔류 이유를 밝혔다. 또한 논란이 됐던 ‘셀프공천’에 대해서는 “내가 당을 끌고 가기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며 “당을 떠남과 동시에 비례 의원직을 던진다는 각오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최종 확정했다. 김종인 대표가 주장했듯 김 대표를 2번에, 김 대표가 전략 공천한 인사들도 모두 앞번호에 배치했다. 또한 ‘제자 논문 표절’ 등으로 논란 가운데 있는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를 여전히 1번에 놓았다.

 

 

▲ 3월24일 동아일보 1면.
보수언론은 이 상황을 두고 ‘운동권에 밀린 김종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비례대표 공천에서 김 대표는 친노·운동권의 벽 앞에서 물러서고 말았다”고 썼고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도 ‘도로 운동권黨(당)의 김종인, 무슨 낯으로 표 달랄 건가’라고 김종인 대표가 당 내 운동권에게 밀렸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도 ‘진보 패권 세력’, ‘운동권 출신’이 공세에 나섰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진보 패권 세력은 그동안 김 대표의 중도·실용 공천 개혁에 반격하지 않았다. 당장 공천과 총선준비가 급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공천이 마무리되자 이번에 대거 공세에 나섰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문재인 대표 시절 운용됐던 혁신위, 친노 성향의 당내 을지로위원회, 외곽에서 당을 지원하는 원로 원탁회의의 주요 인사, 정봉주 전 의원, 강금실 전 장관 같은 외곽 그룹 등을 진보 패권 세력이라고 묶었다. 이러한 세력이 막판에 공세를 멈춘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라며 “그들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운동권 출신 수명이 비례대표에 들어가는 실리가 확보됐고, 당장 김종인 대표의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김종인 대표의 ‘노욕’이라고도 분석되는 이번 상황을 ‘운동권의 패권’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 외 언론들은 더불어민주당의 고질병인 패권을 지적하긴 했으나 패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약점이 함께 드러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 3월24일 한국일보 6면.
한국일보는 이날 6면기사에서 △총선 20여일을 앞두고 수장이 당무를 거부했음에도 문제 수습에 나선 인사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 △중앙위의 표결결과가 김종인 대표의 추천과 달라지면서 드러난 갈등이 계파 패권을 드러낸 점 △경쟁 세력이 당권을 잡을 경우 끊임없는 지도부 흔들기를 통해 리더십 약화를 자초해온 것을 또 반복한 점을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더불어민주당의 문제가 총선이 끝나면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비례대표 파동’의 상처 큰 더민주’에서 “이번 파동의 직접적 계기는 비례대표 의원 공천 문제이지만 갈등의 밑바탕에는 당의 정체성, 이념, 철학을 둘러싼 시각 차이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총선이 끝나고 나면 잠복했던 갈등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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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기업평가 후 정부가 인수하라”

개성공단포럼, 한명섭 변호사 “어렵다면 보상 특별법 제정해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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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3  19: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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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기업협회 등이 23일 개최한 제12회 개성공단포럼에서 한명섭 변호사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을 위한 실효적 방안으로 정부가 기업의 우선 환매권 부여를 전제로 기업자산을 인수, 관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조치를 취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개별 입주기업에 대한 공정한 자산평가를 한 뒤 이를 모두 인수하여 북한에 소재한 우리의 국유재산으로 편입시켜 관리하는 한편, 재가동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입주기업에게 환매권을 부여하자.”

개성공단기업협회와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가 공동주최해 2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진흥회에서 열린 제 12회 개성공단포럼에서 한명섭 변호사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을 위한 실효적 방안으로 정부가 기업의 우선 환매권 부여를 전제로 기업 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특히 지난 2013년 공단 잠정 중단 때와는 달리 사실상 영구적 폐쇄로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수를 통해 일괄 정리하고 북한에 남아있는 자산은 정부 자산으로 일괄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변협 남북교류협력소위원회 위원장인 한 변호사는 포럼 기조발제를 통해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서, 또 다른 나라와의 대북제재 공조를 위해서 법적 근거는 없지만 부득이하게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 하면 보상 문제 역시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 다 인수해주고, 그게 어려우면 국회의 협조를 얻어 특별법을 제정해서 보상해주면 된다”고 밝혔다.

기존에 특별법안이 제기된 바 있으니 조금 손을 봐서 제정하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4월 총선을 앞둔 19대 국회에서 서두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총선 이후에도 원 구성에 바쁜 20대 국회에서 서둘러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기업들에 대한 보상과 형평성이 제기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금강산관광 중단, 5.24 대북제재 조치, 개성공단 폐쇄 등은 입법 미비 상태에서 먼저 정부 주도로 사업이 추진된 경우였기 때문에 정부 책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미비 상황에서 처벌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와 달리 손실에 따른 보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후입법도 문제없다고 밝혔다.

또 개성공단 기업들이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다며, 이를 보상을 회피하는 근거로 제시하는데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가 안보상의 필요를 이유로 공단을 폐쇄하고 기업을 철수시켰다면 전혀 별개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번 공단 폐쇄 조치가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실상 대북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조치이므로 입주기업들의 손실에 대한 법적 구제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합리적 보상도 없이 전면적으로 추진한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고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했다.

한 변호사는 특히 이번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대해 정부가 ‘정치적 행정행위’라는 낯선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행정은 법에 의거해서 해야 하며, 정치적이라는 표현을 강조한 것은 결국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헌법에 근거한 긴급명령이나 긴급조치이지만 그마저도 요건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요건이 되더라도 국회의 동의를 받거나 사후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에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다고 남북교류협력법에 있는 조정명령제를 활용한 것도 아니어서 나온 표현이 ‘정치적 행정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만약 소송으로 간다면 쟁점이 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고도의 정치행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어서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결이 날 것”으로 짐작했다.

지난 2010년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몇 개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률적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통치행위론을 법원이 받아들였고, 이같은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특히 최근 정부가 발표하는 지원대책이라는 것은 손실을 입은 기업으로서는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며, 그중에서도 개성공단이 유일한 생산기지인 대부분의 기업들에게는 피해 보상의 현실적인 필요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진 왼쪽부터 한명섭 변호사,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정책실장,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와 관련,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빨리 피해 보상을 받아서 그 자금으로 사업을 재개하고 그 계기에 대출도 받아야 하는 경영정상화의 순서가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 애로”라며, 대출 일변도의 정부 지원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개성공단의 경영손실이 법적 근거없이 결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대외 불신감은 경제적 손실보다도 씻기 어려운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정책실장은 “4월 13일 선거를 앞두고 개성공단 현안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당과 후보는 없으며, 5월 31일 열리는 제20대 국회까지 제19대 국회의원들이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을 것이며 국회에서 원 구성하는데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른다”며, 개성공단 기업들이 장기전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방안은 나올 수 있지만 1년 안에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면서 살아남는데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결국 시간이 문제일 뿐 제재 다음의 수순은 대화일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에는 그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개성공단의 가치는 보는 시각에 따라 상생발전, 공동번영의 장이라고 볼 수도 있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장경제라는 차원에서 의미를 둘 수도 있다”며, “개성공단 문제를 남북공단이라는 관점보다는 우리 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당부했다.

   
▲ 사진 왼쪽부터 홍양호 개성공단포럼 공동대표,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김태훈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홍양호 개성공단포럼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정부에서 발표한 북핵문제는 최고의 안보위기이고 정부가 이에 대해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우리 기업들도 정부가 보호해야할 국민이고 자산이기 때문에 기업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지금까지도 정부는 기업에서 보상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 하고 있다. 배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무책임하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정 회장은 “정부는 신속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며, “그 보상의 대가로 해외든 국내든 (기업들이)투자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태훈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법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남북관계발전과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그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개성공단에서 기업활동을 해 왔다면 기업들이 실제로 입은 피해에 대해서만큼은 보상을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특별법 제정도 필요하지만 이와 함께 개성공단 기업을 제대로 평가해서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도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만 포럼 상임대표는 개성공단포럼이 12회에 이르는 동안 북한 경제전문가들의 관심도 점차 식어가고 있다며, 개성공단에 대한 전만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날 포럼은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김영수 현대아산 상무, 박정원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조유현 중소기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지정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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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스 치던 풀 · 꽃이 가슴에 들어와 사랑이되었다

그냥 스치던 풀·꽃이 가슴에 들어와 사랑이 되었다

김정수 2016. 03. 23
조회수 230 추천수 0
 
권희정 생물다양성교육센터장
1458641167_00553727001_20160323.JPG» 식물종 교육 프로그램 전문가인 생물다양성교육센터 권희정 센터장이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홍릉수목원 숲에서 봄꽃 탐방을 하던 중 활짝 꽃을 피운 풍년화 나무 옆에 잠시 멈춰 섰다.

“선생님, 이게 무슨 식물이에요?”

 

새내기 교사는 당황했다. 생물교육 전공으로 대학에서 분자생물학 강의까지 들었던 그다. 하지만 교실 주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식물들의 이름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1984년 첫 발령을 받은 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주변의 생물에 관한 단원을 가르치는 중이었어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식물종의 이해를 통한 자연 보전’을 내건 생물다양성교육센터의 권희정(55·이학박사) 센터장. 그가 20여년 교사 생활을 접고 식물종 전문 교육 프로그램 운영자로 살아가도록 이끈 밑바탕에는 그때의 당황스러움과 미안했던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19일 그와 함께 이른 봄꽃들을 찾아 서울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수목원 숲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생물교사 생활을 하면서 식물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도 애들 키우느라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러다 2003년 큰애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시간을 낼 수 있게 됐을 때 마침 동북아식물연구소에서 낸 ‘교사를 위한 자생식물 워크숍’ 광고를 보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죠.”

 

 

이름을 알면 흥미가 생기고
흥미는 이해로 이끌고
이해하다 보면 아끼게 된다

 

 

아이들이 물은 흔한 식물조차 몰랐다 

20여년 교사 생활을 접고

식물종 교육 운영자가 된 밑바탕엔

새내기 교사 때의 미안함의 기억

 

 

규제와 감독 벗어나려 지원 안 받아

1억원 자본금 갉아먹고 있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행복이 있다

 

 

젊은 사람 일 빼앗지 않고

사회에 기부한다는 마음으로

 

 

‘분류학 바탕한 식물종 익히기’ 첫 박사

 

교사들에게 필요한 연수점수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었고, 100만원이라는 참가비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뤄뒀던 식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저만큼 앞서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자연을 배우게 됐다”고 했다. “생물 교사라고 자연을 아는 게 아니에요. 카페만 가다가, 식물 공부를 하러 산에 가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자연을 알게 됐죠.”
1458641198_00553761401_20160323.JPG» 홍릉수목원 숲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복수초 군락.

 

1년 가까이 진행된 자생식물 워크숍은 2004년 워크숍 참가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교사식물연구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는 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아 신생 단체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2005년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이 그에게 학생 식물캠프를 해보자고 했다. 제안을 받고 기존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성에 차지 않았다. “생태나 숲과 같은 포괄적인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들만 있었고, 식물종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없었던 거죠.”

 

식물분류학에 기초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솟았다. 그러려면 좀더 공부가 필요했다. 2007년 순천향대 생명과학과 신현철 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아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한 학기를 다녀보니 교직과 새로운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 했다. 47살 때였다.

 

00553727101_20160323.JPG» 권희정 센터장이 2008년부터 식물종 익히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직접 제작해 사용한 교육자료들.

“뭘 정리할까 하다가, 다른 분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생물 교사를 그만두기로 했어요. 공부를 더 해 좋아하는 식물만 가르치면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고 보람될 거 같아서였죠.” 그로부터 4년 만에 그는 박사모를 썼다. 국내에서 분류학적 접근에 기반한 식물종 익히기 프로그램 개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홍릉수목원 숲 탐방길에서 맨 처음 만난 봄꽃은 복수초, 다음은 풍년화였다. 홍릉수목원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의 하나인 풍년화는 네 장의 기다란 꽃잎이 각기 약간 꼬이듯 비틀려 있는 특이한 꽃이다. 풍년화라는 이름은 잘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붙여졌다. 올해 농민들은 풍년을 맞을 수 있을까? “저 정도면 잘 핀 것”이라는 것이 권 센터장의 판정이다.

 

학생들에게 식물종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연 속에 들어간다는 것, 자연 자체가 일단 교육 프로그램의 반이에요. 거기다 그냥 풀, 꽃이라고만 아는 것과 그것들의 이름을 아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되죠.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생각은 일단 식물의 이름을 알아야 생기는 겁니다. 식물의 이름이 흥미를 유도하는 매개가 되고, 그것이 발단이 돼 이해로 나아가고, 이해를 하다 보면 사랑하게 되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남긴 소감글들을 보면 그런 것이 녹아 있어요.”

 

 

새롭게 눈뜬 아이들 마음 곳곳에

 

정말 그랬다. “산에 가면 구경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식물과 내가 서로 알고 있는 사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2015년 식물종 익히기 전문캠프 참가 명덕여고 1학년 황지우) “이름 없는 꽃은 없고, 비슷한 듯해도 각자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요즘엔 엄마와 집 근처 산에 오르며 꽃 얘기를 한다. 나도 모르게 잎차례를 보고 있다.”(2013년 식물종 익히기 전문캠프 참가 장평중 3학년 장유미)

 

봄꽃 탐방을 마치고, 서울 강남 수서역 근처에 있는 센터 사무실에 들러 들춰본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의 탐구보고서에는 학교와 부모가 보내서 별 기대 없이 참가했다가 새로운 세상에 눈뜬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꽃, 아직 덜 피어나 연둣빛이 도는 히어리꽃, 뾰족 봉오리를 내민 진달래 등을 더 만나고 숲길을 한 바퀴 돌아 거의 내려왔을 때다.

 

어디선가 향긋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한 발짝 앞서가던 그가 “여기 어디쯤 올괴불나무가 필 때가 됐는데…”라며 주위를 살피더니 “아, 저기 있네” 하고 외친다. 인동과의 자생식물인 올괴불나무는 산수유와 함께 우리 숲에서 일찍 피는 대표적인 봄꽃이다. 그를 뒤따라 길옆 언덕으로 올라가니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분홍의 앙증맞은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매달린 꽃송이들 가운데는 자주색 꽃술이 떨어진 것들이 더 많았다. 주변에 모인 탐방객들이 “일찍 성숙해 벌써 수정을 마친 꽃들”이라는 권 센터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생물상 조사 등 연구 프로젝트도

 

생물다양성교육센터는 그가 2008년 교직을 떠나면서 맡아온 동북아식물연구소의 교육 부문을 분리해, 자본금 1억원의 주식회사 형태로 2012년 출범시켰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형태도 고민했으나,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규제와 감독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는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학생 교육 프로그램 외에 교사 연수 프로그램, 식물 준분류학자를 양성하는 일반인 대상 파라택소노미스트 과정, 생태관광인 ‘꽃 따라 숲길 따라 힐링여행’ 프로그램 등을 4년 동안 운영해오면서 센터는 자본을 계속 갉아먹고 있는 상태다. 언제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동행한 홍숙윤(55) 센터 이사가 “아마 영원히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권 센터장과 같은 사범대에서 화학교육을 전공하고 한때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홍 이사는 센터 설립 때부터 권 센터장과 함께했다.

 

외부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들이나 엔지오들의 교육 프로그램과 경쟁하며 수익을 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생물다양성센터는 그래서 교육과 함께 생물상 조사와 같은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연구 프로젝트 참여 수입을 통해 사무실 운영 경비라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계산이다.

 

그에게 적자를 내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답변이 궁금했다. “부담이 될 정도의 적자는 아니고 연구 파트에서 고정 수입을 만들어가면, 시간이 지나면 적자는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고, 저를 믿고 주식이 모인 데 대한 책임감도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것은 젊은 사람들 일 빼앗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기부도 하는데, 사회에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죠.”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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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늪에 빠트린 4명의 '미친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3/23 10:36
  • 수정일
    2016/03/23 10: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메이지헌법(明治憲法), 메이지 천황 시절 만들어진 구 일본제국의 헌법이다. 일본에서의 공식명칭은,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國憲法)’ 

 

이 헌법의 제1장은 ‘천황’에 관한 내용으로, 나라의 성격을 규정하는 제일 첫머리를 ‘천황’이 장식했다는 것만으로 구 일본제국이 추구하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제2장은 신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은 제국의회, 제4장은 국무대신 및 추밀고문, 5장은 사법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 메이지 헌법 제1장의 몇 가지 조문을 소개할까 한다.

 

Meiji_Kenpo04.jpg  

'대일본제국헌법' 제1장

 

제1장 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제1장 5조
천황은 제국의회의 협찬으로써 입법권을 행사한다.

 

 

 

제1장 7조

 

천황은 제국의회를 소집하여 개회, 폐회, 정회 및 중의원의 해산을 명령한다.

 

 

 

제1장 11조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

 

 

몇 가지 조항만 추려봤음에도 천황의 권력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제1장 11조다.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 이 11조 때문에 일본제국은 군부의 손에 놀아났고, 전쟁국가 일본이 되었다. 

 

국가에게 있어선 ‘최후의 주권’이라 말할 수 있는 군사력이 국민의 손이 아니라 군인의 손에 떨어졌다. 당시 깨어있는 일본 정치인들은 군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군권(軍權)을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의 정치인에게 양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생각뿐이었고, 현실적인 목표는 ‘군부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였다. 그러나 군 통수권에 대한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보일라치면 군부는 메이지 헌법 제1장 11조를 들고 나와 상대방을 압박했다. 

 

“군 통수권은 신성한 천황의 권한이다. 그런데 일개 신하가 감히 천황의 통수권을 침범하려 하는가?”

 

군부는 천황을 방패로 내세웠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대본영(大本営)

 

이었다. 원래는 육군성 내 일개 국의 위치였으나, 육군성에서 독립해 천황 직속의 참모본부가 된다. 덕분에 천황은 육군성이나 육군대신, 해군대신의 도움 없이도 직접 군대를 통솔하고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원래는 전시(戰時)에 조직되는 천황 직속의 통수기관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전쟁국가 일본의 컨트롤 타워가 돼 버렸다(평시 일본제국 육군의 지휘부는 참모본부, 해군은 군령부였다. 그러나 전시 체제가 돼 대본영이 꾸려지면서 참모본부는 대본영 육군부, 군령부는 대본영 해군부로 바뀌고, 천황은 대원수로서 육군에 내리는 명령인 ‘대륙명大陸命’, 해군에 내리는 명령인 ‘대해령大海令’을 내리며 전쟁을 진두지휘한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대본영은 전시(戰時)가 아닌 사변(事變)에도 대본영을 둘 수 있게 전시 대본영 제도가 ‘살짝’ 바뀐다. 그럼 사변이 뭘까? 

 

‘전쟁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병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적 사태나 난리 또는 선전 포고 없이 이루어진 국가 간의 무력충돌’

 

즉, 전쟁은 아닌데 전쟁인 상황 혹은 전쟁에 준하는 군사적 움직임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바로,

 

‘지나사변(支那事變)’

 

이다. 

 

 

1. 지나사변, 전쟁인 듯 전쟁 아닌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벌써 70년이 넘어섰음에도 일본 우익들은 중일전쟁을 ‘지나사변’이라 부르곤 한다. 어째서 일본은 ‘전쟁’을 ‘사변’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말 그대로 ‘사변(事變)’으로 중일전쟁을 바라봤던 당시 일본 군부의 자신감(?)
둘째, 국제정치학적 필요. 

 

우선 ‘사변(事變)’으로 바라본 당시 일본 군부의 시각이다. 중일전쟁 발발 직후 일본 군부는 중국군과의 전투를 만주사변의 연장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대륙을 3개월 이내에 완전히 장악하겠다.”

 

이 호언장담을 눈여겨봐야 한다. 당시 일본 군부는 중국군을 얕잡아 보고 있었고, 만주사변과 같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ha5_394_i1.jpg 

 

애초 노구교사건(일본과 중국의 군대가 노구교에서 충돌한 사건. 중일전쟁의 발단이 됨) 직후 일본 군부 내의 강경파들은,

 

“이 참에 화북지방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자!”

 

라며 전선확대를 주장했다. 솔직히 당시 일본 군부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만주사변, 상하이 사변, 러허사변을 일으켜 중국의 땅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고 그때마다 중국은 무기력하게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중국은 병든 돼지였고, 옆구리를 찌르면 땅을 떼어주는 자판기 같은 존재였다. 이런 경험치로 인해 일본은 지나사변을 ‘가볍게’ 생각했다. 

 

“화북지역 5개성 정도를 가볍게 접수해서 만주국 같은 괴뢰국을 하나 더 세우자. 그렇게 되면, 화북지방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로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중일전쟁을 지나사변이라 부르는 두 번째 이유는 국제정치적으로 ‘꽤’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맺어왔던 각종 조약과 이 조약에 의한 명분의 유지, 그리고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전쟁’을 할 수 없었다. 

 

우선 생각해 볼 건 그 동안 일본과 중국이 맺었던 각종 조약들이다. 몇 번의 사변과 전쟁을 통해 중국과 일본은 수많은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때마다 일본은 조계와 치외법권을 확보했다. 그런데 만약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동안 누려왔던(?) 일본의 특권이 모두 무효가 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야 할까? 분명 전쟁인데,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조약상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이 대외적으로 맺은 조약들도 걸림돌이 됐다. 대표적인 게 부전조약(전쟁포기에 관한 조약)과 9개국 조약(일본의 중국진출을 억제함과 동시에 중국의 권익보호가 목적)이다. 자위적인 전쟁은 인정하지만, 침략전쟁은 용인할 수 없다는 부전조약에 사인했던 게 일본이다.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워싱턴 해군 군축체제를 붕괴시킨 일본이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최소한의 ‘명분’은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일본을 압박한 최고의 동인은 ‘미국’이었다. 1935년 미국은 ‘중립법’을 통과시킨다. 전쟁 당사국에게는 무리 및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원료 등의 수출을 금지하고, 금융거래를 제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경제의 상당부분을 미국에 의지하고 있었던 일본으로서는 이 중립법을 피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런 이유가 모여 중일전쟁은 ‘지나사변’이 됐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인 중국과 주변의 열강들, 그리고 일본조차도 이 사태가 ‘사변’이 아니라 전쟁이란 걸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일본만이 자신들만의 명분과 아집에 아직까지 ‘사변’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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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늪에 빠지다 ① 

 

일본에게 있어서 태평양 전쟁의 시작은 1937년이다. 많은 이들은 태평양 전쟁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1941년 12월에 시작된 걸로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본군을 발목을 붙잡은 것은 ‘중국’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사망자 200만 명 중 절반이 중국 땅에서 죽었고, 1943년 중반까지 일본군 예산의 50% 이상이 중국에 투입됐다. 이것만 보더라도 일본군의 주 전선이 중국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어째서 일본은 이런 무모한 전쟁을 시작한 것일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일본군은 중일전쟁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3개월 안에 중국대륙을 점령하겠다는 호언장담. 이 호언장담이 결국 일본군의 발목을 잡았다. 중국은 더 이상의 타협을 용인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1937년 7월 12일 장제스는 장시성 노산(盧山)에서 노산 국방회의를 열었다. 중국의 주요인사 150여 명이 참석해 5일간 현 상황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여기서 그 유명한 ‘노산담화’가 나왔다.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전민족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중략) 우리는 철저히 희생하고 철저히 항전할 뿐이다.”

 

장제스의 결의가 중국 전역과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까지의 중국이 아니었다. 

 

이 당시 일본은 어떠했을까? 당시 총리였던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가 ‘노구교사건’을 보고 받은 것이 1937년 7월 8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각 회의를 열어 확전방지 대책을 강구하려고 했지만, 육군대신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가 길길이 날뛴다(일본 패망과 조선 독립에 앞장선 훌륭한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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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 

 

“이번 노구교 사건은 중국의 계획적인 도발이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준 반일성향을 보라! 중국은 계획적으로 우리를 공격한 것이다. 당장 3개 사단을 증파해 중국군을 쓸어내야 한다!”

 

스기야마 하지메의 생각 없는(!) 외침에 제동을 건 것은 해군 대신이었던 요나이 마쓰마사였다. 육군 참모본부 내에서도 중국 침략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는데(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개념’있는 장교가 많아서인지 신중론이 우세했다), 관동군이 멋대로 일으킨 충돌을 전쟁으로까지 비화시킨다는 것이 영 성미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상식적으로 중국과의 전쟁이 이치에 맞을까? 

 

관동군과 내각에 있었던 육군대신의 면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동군 참모장은 그 유명한 도조 히데키(東条英機)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주역이었고(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관동군 참모는 ‘근성론’의 대가이자 한때 ‘작전의 신’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병신 중의 상병신 츠지 마사노부(辻政信)였다. 츠지 마사노부의 명저 <이것만 읽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를 보면,

 

“(미국과의) 전쟁은 승리다. 비행기와 전차와 자동차와 대포의 숫자는 (미군이) 지나(중국)군 보다 훨씬 더 많으므로 주의해야 하지만, 구식인 것이 많을뿐더러 그 무기를 쓰는 병사들이 약하므로 쓸모가 없다. 따라서 야습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만 봐도 그의 수준을 알 수 있다. 훗날 대본영으로 들어가 일본 패망에 앞장 선 훌륭한 인물이다. 

 

그리고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무기의 부족이 패배의 원인은 될 수 없다.”

 

“...황군은 먹을 것이 없어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병기가 없어, 탄환이 없어, 먹을 것이 없어 싸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탄환이 없으면 총검이 있다. 총검이 없으면 맨손이 있다. 맨손이 없으면 발로 차라. 발도 없으면 물어뜯어라. 일본 남아에게 야마토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잊었는가?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

 

김성종 원작의 <여명의 눈동자>에 잘 묘사돼 있는 ‘임팔작전’의 책임자였던 무타구치 렌야가 내뱉은 말들이다. 당시 노구교사건의 해당 부대(연대) 연대장이 무타구치 렌야다. 

 

노구교사건을 어떤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JSA – 공동경비구역>의 이병헌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무타구치 렌야가 연대를 훈련하던 도중 휘하 병사 중 하나가 사라졌다. 이 병사는 급한 용무, 그렇다. 똥이 마려워 화장실로 사라진 상황. 그러나 무타구치 렌야는 이 병사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턱대고 중국군 소행이라고 판단을 내려 이를 상부에 보고한다. 그리고 중국군을 공격했다(한 병사의 장 트러블이 이후 8년 동안 2천만의 중국인을 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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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도조 히데키, 츠지 마사노부, 무타구치 렌야

 

도조 히데키, 츠지 마사노부, 무타구치 렌야. 이 3명이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 일본에게는 ‘불행’이었다. 무타구치 렌야가 노구교사건을 일으키자마자 도조 히데키는 즉각 혼성 2개 여단을 편성해 출동시켰고, 츠지 마사노부는 무타구치 렌야에게 달려가, 

 

“뒤는 관동군이 받쳐주겠습니다. 마음껏 때려 부수시오!”

 

라면서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당시 육군대신이었던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

 

히로히토: 일본과 미국 사이에 일이 터지면, 육군은 얼마 만에 정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시오?

 

스기야마: 남쪽 방면만 한다면 3개월 안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히로히토: 스기야마, 그대는 중국사변 발발 당시 육군대신이었소. 그 때 그대가 중국사변 이후 우리 일본이 중국을 1개월 정도면 정리할 수 있다고 한 말을 짐은 아직 기억하오. 그렇지만 4년이나 질질 끌었고 아직도 정리를 못했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스기야마: 중국은 오지가 넓기에 예상과는 달리 작전을 못 폈습니다. 허나 폐하, 태평양은 도서지역이기 때문에 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히로히토: 뭐요? 중국의 오지가 넓다면 태평양은 더 넓소이다! 대체 무슨 확신이 있어 3개월이라는 소릴 하는 것이오?

 

 

 

<쇼와사> 中 발췌

 

 

한도 가즈토시가 쓴 <쇼와사>의 한 대목이다.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에 히로히토 천황이 스기야마 하지메에게 태평양 전쟁에 관해 묻자, 자신 있게 ‘3개월’이라고 대답한 대목이 인상 깊다. 상식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과도한 자신감이 발로일까? 중일전쟁 개전 초기에도 히로히토에게 1달 안에 전쟁을 정리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전쟁은 8년을 끌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답이 없다(스기야마는 훗날 참모장과 작전과장이 결사반대한 ‘임팔작전’을 무타구치 렌야의 얼굴을 봐서 결재해 주라고 명령했던 인물이다).

 

이 네 ‘미친놈’들이 일본을 늪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 참고자료

 

1. 전쟁국가 일본/ 살림출판사/ 이성환
2. 호호당 선생의 ‘프리스타일’
3. 세계전쟁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황금알
4. 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 이북스펍/ 이윤섭
5. 조선역사 바로잡기/ 가람기획/ 이상태
6. 다시 쓰는 한국근대사/ 평단문화사/ 이윤섭
7. 대본영의 참모들/ 나남/ 위텐런 지음, 박윤식 옮김  
8. 나모위키 
9.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추수밭/ 이노세 나오키 지음
10. 『중일 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 미지북스/ 권성욱 지음 
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서해문집/ 김효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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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북, “박 대통령 제거 작전 돌입" 중대 보도

 
조평통 중대 보도 “청와대 안 또는 근접에서 진행 될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3/23 [08: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하며 작전은 청와대 안이나 근접에서 지행 될 것이라고밝혔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선이 한국 공군의 북 핵심 군사시설 타격훈련 등을 거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군사행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는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중대 보도를 통해 “이 시각부터 조선인민군 정규부대들과 노농적위군, 붉은 청년근위대를 비롯한 우리의 혁명무력과 전체 인민들의 일거일동은 박근혜 역적패당을 이 땅, 이 하늘 아래에서 단호히 제거해버리기 위한 정의의 보복전에 지향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조평통 중대보도는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과 박근혜 역적패당의 무분별한 군사적 도발망동이 극한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평통은 지난 21일 한국 공군의 조선 핵심시설을 겨냥한 정밀타격 훈련 등을 거론하면서 "이것은 우리의 최고 존엄에 대한 치 떨리는 도발이며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대결망동"이라고 강조했다.

 

조평통은 이어 "우리의 보복전은 청와대 안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청와대 가까이에서도 전개 될 수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평통은 "우리 전략군의 실전배비(배치)된 초정밀타격수단들의 첫째가는 타격대상이 청와대를 포함한 남조선 지역 안의 모든 적 소굴들이라는데 대해서는 이미 선포한 상태"라면서 "무적을 자랑하는 우리 포병집단의 위력한 대구경방사포들도 박근혜가 도사리고 있는 청와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격동상태에 있다"고 경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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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의 늪으로 내모는 우리교육 언제 바뀔까?

 
무한경쟁의 늪으로 내모는 우리교육 언제 바뀔까?
 
 
 
김용택 | 2016-03-23 09:07: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는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겠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는 학교 간 성적 편차가 거의 없다. 네덜란드는 지원자가 가장 많은 의과대학 입학생을 성적순이 아니라 추첨제로 뽑는다. 서유럽 강대국 독일은 사설학원이 없다. 선행학습은 부정행위에 준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져 철저히 금지된다. 정은균이 쓴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가을이 왔다고/담임 선생님이 창가를 내다보며/미소 지었다.
아이들의 눈꺼풀에는/아침잠이 아직도 덕지덕지한데
담임 선생님이 몇 마디 더 해도/아이들은 꿈벅꿈벅/송아지 같이 앉았다
넓은 교실/담임선생님 혼자 인간같이 서 있다...
수학시간이 끝나고/난사된 총알을 맞은 듯
여기저기서 아이들이/퍽퍽 쓰러진다....
김수영을 배운다/바람이 불고...
풀이 눕고.../ ‘풀이 눕는다’ 한 줄 읽을 때마다
풀포기 같이 누워가는 아이들...’

컴퓨터 검색 창에 뜬 어느 고3학생의 ‘잠과의 전쟁’이라는 시다. 수능준비를 하는 교실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런 참혹(?)한 현상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것이다.

아침 6시 학교 출발 정규수업, 오후 4시 정기 수업 및 보충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동안 저녁 식사 시간, 밤 10시가 지나서야 자율 학습을 마친다. 이 시간이면 집에 돌아가 지친 몸을 쉬고 내일의 학습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인데 정작 고 3학생들의 일과는 지금부터다. 밤 열 시 반부터 새벽 두 시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전전한다. 집에 돌아가 씻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3시다. 우리나라 고 3학생들의 일과다.

고 3학생들의 사당오락(四當五落)은 이미 진부한 얘기다. 이제는 초등학생들의 ‘3당 4락’이라는 선행학습이 유행이다. 3과목 선행학습을 하면 떨어지고 4과목 선행학습을 하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소수 몇째 이하 자리까지 점수를 내 서열을 매기는 우리나라와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겠다는 핀란드… 수능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꿈이라도 꿀 수 있는 학생이나 지원하는 의과대학을 추첨제로 뽑다니… 우리와는 왜 이렇게 다를까?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 교육법 제 1조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친구가 경쟁의 대상이 되는 학교에는 홍익인간이 아니라 일류대학입학을 위한 점수따기가 목표다. 일류대학 몇 명을 더 입학시켰는가의 여부로 일류학교가 가려지는 학교에 어떻게 북유럽교육선진국이 길러내는 인간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교육을 살리겠다고 안간 힘을 다 쏟고 있다. 정부에서는 자유학기제를 운영해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겠다고 한다. 진보교육감지역에서는 혁신학교를 운영해 수업방식을 바꾸고 민주적인 학교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한 학기동안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진보교육감지역에서 혁신학교를 운영하면 입시학원이 된 학교가 교육하는 학교,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질까?

<이미지 출처 : 경북도민일보>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입시제도, 학벌사회를 놓고는 그렇다. 교육이 상품이 되어 수요자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는 한 백약이 무효다. 의과대학 입학생을 추첨을 통해 뽑고 학교 간 성적편차가 없는 나라, 선행학습을 부도덕한 행위로 보는 관행은 교육을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 보기 때문이다. 교육이 상품인 한 수요자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양질의 상품, 고급 과외를 받아 일류대학 진학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결국, 경기 전에 승패가 가려지는 공정하지 못한 경기로 서열이 가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 용 날 수 없는 사회구조는 현대판 카스트제도만 현실화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는 잘못된 제도를 방치하고는 불가능하다. 건강한 사회, 학교가 교육할 수 있는 사회는 교육의 기회균등이 보장 될 때만 가능하다.


이 기사는 전라북도교육청이 발행하는 ‘가고 싶은 학교’에도 실려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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