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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에서 본 일본 영사관, 그래서 여기 세웠구나

[평화의 소녀상 답사 ①] 부산 평화의 소녀상을 가다

17.12.24 20:04l최종 업데이트 17.12.24 20:04l
글·사진: 홍윤호(freetr89)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인권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더불어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꾀한다). - 기자말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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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녀상을 찾아간 이유 

 

필자가 소녀상에 관심을 가진 직접적인 계기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때문이다. 

2017년 2월 어느 날, 대한민국 외교부가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부산 동구청에 공문을 내려 보내 일본 영사관 담장 옆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촉구했다는 기사를 보고, 복잡한 분노와 감정이 섞인 마음으로 현장에 찾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외교부 대변인은 "어떤 압박이라든가 강요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부는 이러한 입장을 작년 말부터 수차 표명해 왔다"라며 "좀 더 분명하게 관련 지자체에 (소녀상 이전에 대해 지혜를 모으자는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에 있어본 사람들은 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낸 공문의 내용이 비록 '권유'의 형식을 띠더라도 표현만 그럴 뿐, 사실상 명령이자 압박이라는 것을.
 

평화의 소녀상  온갖 사건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제 1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 평화의 소녀상 온갖 사건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제 1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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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교부는 당시 학습지도 요령 개정 초안 공개를 통해 독도 영유권 도발을 한 일본에 대한 외교적 대응보다 일본 외교관을 한국에 돌아오게 하기 위한 소녀상 이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나 보다(하필 공문을 내려 보낸 날(2월 14일)이 일본이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반드시 독도 영유권 표기를 하라는 학습 지도 요령 초안을 공개한 날이라니).

하여간 이 공문이 알려지면서 많은 비판이 일었고, 부산 동구청은 이전 계획이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이 해프닝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평화의 소녀상이 제자리에 안착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17년 12월, 다시 부산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좀 더 분명한 목적을 갖고.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평화의 소녀상 시민들의 정성으로 털모자, 털목도리를 착용하고 있다
▲ 평화의 소녀상 시민들의 정성으로 털모자, 털목도리를 착용하고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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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부산 지하철 1호선 초량역 5번 출구 옆.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전투를 벌이고 조선군을 전멸시킨 부산성, 바로 그 일대다. 

부산성을 지킨 정발 장군이 부산성 군대와 주민들과 함께 죽음을 당한 일대. 왜군은 이곳을 거점으로 동래성을 거쳐 한반도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하필이면 그 부산성 입구쯤에 해당하는 자리에 일본영사관이 들어앉아 있다. 지금은 성터의 흔적조차 없지만, 정발 장군의 동상만이 유일하게 그 자리를 증언하고 있다. 
 

정발장군 동상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발장군의 동상. 일본영사관 입구에 서 있다
▲ 정발장군 동상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발장군의 동상. 일본영사관 입구에 서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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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 주 부산일본영사관의 담장이 이어진다. 평화의 소녀상은 담장을 바라보며 의자에 차분하게 앉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둘 잠시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고 간다.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나 승용차 안 사람들도 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사관을 지키는 전경들이 담장 앞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의 노력을 거쳐 지금은 말끔히 정리돼 있다.

현장에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관계자가 소녀상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고자 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었다. 올 9월부터 담당자들이 날짜를 나눠 번갈아가며 1인 시위를 시작했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가능한 시간에 나와 1시간씩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시위는 일단 12월 말까지 진행되며, 그 다음 일정은 본부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단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모형이고 아직 공식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것이라, 가지고 다니기 좋게 바퀴가 달려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이 확정되면 제대로 된 모습으로 소녀상 옆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서게 될 것이다. 

"소녀상 건립도 그 난리를 겪었는데, 이게 어디 쉽겠습니꺼."

우리 땅에 우리 의지로 우리의 돈을 모아 세우겠다는데, 관청은 난색을 표하고 일본의 언론은 빈 협약 위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소녀상 건립 때는 국제 예양을 언급하더니 이제는 빈 협약 위반이란다.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 국민들의 반발과 대응은 더욱 거세지고 평화의 소녀상은 물론, 강제 징용 노동자상의 건립은 더욱 촉발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지만,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을 터. 

제법 객관적이라거나 고급 지식인 척하는 사람들은 국제 예양이니, 안보 위기가 거세지는 이 상황에서 굳이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이유는 없다느니, 굳이 그 장소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느니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말 하는 분들일수록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거나 현장에 와보는 사람 못 봤다. 
 

평화의소녀상 옆 우체통  소녀상 옆에 들어선 우체통. '할머니들께 보내는 마음을 넣어 주세요'
▲ 평화의소녀상 옆 우체통 소녀상 옆에 들어선 우체통. '할머니들께 보내는 마음을 넣어 주세요'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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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보자. 잠깐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 인도에서 도로로 나가 소녀상 뒤편에서 영사관 담장을 올려다본다. 정확하게 정면으로 일본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아하, 소녀상이 이 지점에 설치된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깨닫는 순간이다. 
 

영사관 내 일장기를 바라보는 소녀상  소녀상 뒤편에서 영사관 담장을 올려다보면 이렇게 일본 국기가 보인다
▲ 영사관 내 일장기를 바라보는 소녀상 소녀상 뒤편에서 영사관 담장을 올려다보면 이렇게 일본 국기가 보인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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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자체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하나하나 확인해보자.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다. 1930, 1940년대 당시 조선 소녀들의 일반적 외모인 단발머리를 하고 있으며,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맨발로 앉아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겨울에는 맨발이 추워 보여 시민들이 발에 두터운 양말을 신겨주기도 한다.
 

소녀상 뒤편 바닥의 할머니 그림자 소녀상은 소녀의 얼굴이되 바닥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 소녀상 뒤편 바닥의 할머니 그림자 소녀상은 소녀의 얼굴이되 바닥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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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소녀상 뒤편 바닥에는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를 별도로 새겼다. 조각상은 소녀상이되, 그림자는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이를 확인하는 순간 울컥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른다. 의미 깊은 상징이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빈 의자에는 방문객이 앉을 수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고 간다.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의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비롯해 현재 전국에 70여 개 이상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세워지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와 미시간주, 캐나다의 토론토에도 하나씩 있다. 모습은 약간씩 다르지만,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들은 '위안부 소녀상'이 아닌,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는 단순한 위안부 문제가 아니라 전쟁 범죄를 죄악시하고 비인간적인 전쟁 자체를 반대하며 전쟁 중에 벌어진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인류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표현한 용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부산 평화의 소녀상은 시작부터 갖은 풍상을 겪은 소녀상이었다. 2016년 12월 28일 이 소녀상이 처음 설치될 때, 부산 동구청 직원·경찰이 강제로 철거에 나서며 시민단체 측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소녀상이 강제 철거됐지만, 부산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를 통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12월 31일 제막식을 치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녀상은 계속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 주변 풍경  현재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평화의 소녀상 주변 풍경 현재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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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 

부산 평화의 소녀상 철거는 이 합의의 연장에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되면 같은 선상에서 서울의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도 철거 혹은 이전돼야 한다. 그러니 더욱 평화의 소녀상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의도는 알겠으나 그 '위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아. 그 '위치'야말로 핵심이다. 소녀상은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정식으로 지난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며 그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항의의 표현물이며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의 표현이다. 

소녀상이 무슨 기념물이나 관광의 대상도 아니고,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가장 좋은 위치가 부산 전체에서 이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과거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인권 유린과 조직적인 성폭력 그리고 현재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한 분노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더욱 일본 영사관 앞에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태도다. 가해자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피해자의 입장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들이 진즉에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배상하면서 그들 스스로 이러한 조직적인 성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의지를 보였다면, 우리가 이렇게 분노하며 강하게 나섰겠는가. 

이 문제는 국가 간의 문제를 넘어선,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다. 여성의 인권이 국가와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에 의해 철저하게 억압되고 유린된 극단적인 사안이다. 전쟁 상황에서 약 20만 명의 조선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가 성 노동을 강요당한 사안이다. 더구나 전쟁이 끝나가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집단 학살도 자행됐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숨어 살아야 했다. 따라서 철저한 배상과 명예회복이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있는 위안부 합의를 명분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 해 주한 일본 대사를 철수시켰던 일본 정부의 태도는 후안무치를 넘어선 뻔뻔함의 극치였다. 얼마 후 돌아오긴 했지만. 정치용일지는 모르지만, 그 조치 자체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알 만한 부분이다. 

주변의 숱한 빌딩숲과 담장이 무척이나 높아 거의 하루 종일 그늘지고, 그 안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주부산 일본 총영사관(처음 찾아갔을 때 무슨 교도소에 온 줄 알았다). 소녀상을 영사관 내에 세운 것도 아니고, 영사관 정문 앞에 잘 보이도록 세운 것도 아닌데,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기보다는 이를 시비 걸고 문제 삼는 일본 정부. 소녀상 뒤에서 올려다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일장기. 참 지지리도 못나고 아픈 우리의 역사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아울러 우리 역사 속 지도층이나 지배층이 해 왔던 숱한 못난 행태들도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학생 시절 똑똑하고 공부 잘 해서 지금 정부와 외교부의 상층부에 자리하고 있는 분들께 당부하고 싶다. 제발 그 좋은 머리를 대한민국의 자존과 국민들의 존엄을 위해 쓸 수는 없겠는가. 억울해하고 감정적으로 분노하는 국민을 상대로 국제 예양이니 뭐니로 소녀상 이전이 마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설득하려 하지 말고, 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상대로 스스로가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하게 하여 진정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그래서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수는 없겠는가. 

당신들은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의 지도층 아닌가. 국민들이 권력과 권한을 위임했다면, 그 좋은 머리와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라고 한 게 아니겠는가. 

국가·정부가 바로 서야 국민이 편하고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한일 위안부합의가 폐기되는 그날까지. 그리고 폐기되더라도 평화의 소녀상 답사는 계속될 것이다. 

그 시작은 부산이다. 일본이 자신들의 힘을 모아 외부로 팽창할 때, 대륙 침략의 거점 내지는 교두보가 되는 곳이 부산이다. 그러니 이를 막아내는 것도,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부산에서부터라야 한다. 
   
* 답사 정보
- 주 부산일본국총영사관 길가 담장 옆 위치 
- 주소는 부산 동구 고관로 18 일본국총영사관
- 대중교통으로는 부산 지하철 1호선 초량역 5번 출구 혹은 7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 아이를 데리고 온 뜻있는 부모라면, 인근의 부산과학체험관과 함께 들러보면 좋다. 혹은 부산과학체험관에 체험하러 온 김에 잠깐 소녀상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 부산과학체험관 051-792-3000, http://scinuri.pe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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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당세포를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2/25 11:31
  • 수정일
    2017/12/25 11: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폐막.."지금까지 일은 시작 불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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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4  2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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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3일 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를 마치면서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한 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를 마치면서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23일 조선노동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3일 대회에서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하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현시기 당세포를 강화하는 것은 우리앞에 가로놓인 온갖 시련과 도전들을 뚫고 사회주의강국 건설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가속화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라면서 당세포 강화의 총적 과업은 '전당의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로,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2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만든다는 것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기층당 조직건설 사상과 노선을 계승하고 구현하여 세포안의 모든 당원들을 참다운 김일성-김정일주의자들로 키우며 당세포를 사상의지적으로 굳게 단합된 공고한 전일체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앞장에서 끝까지 관철해나가는 위력한 전투대오로 강화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구호에는 현 시기 당세포를 강화하기 위한 근본방향과 목표가 담겨져 있으며 여기에 전당을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기 위한 열쇠가 있고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승리를 위한 담보가 있다"면서 "전당의 당세포들은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 당세포들의 수준이 당중앙의 요구에 못미친다면서 "당세포위원장들은 혁명하는 당, 투쟁하는 당의 초급 정치일꾼답게 성과와 경험을 적극 살리고 결함과 부족점들을 대담하게 시정 극복하면서 더욱 분발하여 일해 나가야 한다"고 대회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먼저 "무엇보다도 당세포위원장들이 세포안의 모든 당원들을 견실한 혁명가, 참다운 김일성-김정일주의자로 튼튼히 준비시키는데 기본을 두고 당생활조직과 지도를 강화하여야 한다"면서 5대교양사업(위대성교양·사회주의위업에 대한 신념교양·애국주의교양·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들 더욱 심화시키는 등 당원들의 사상생활을 강화하고 '고상한 도덕품성과 높은 문화적 소양'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사회주의 도덕교양과 문화정서교양'을 다양하고 참신하게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당세포위원장들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당원들의 당성을 단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조직생활에 대한 지도와 통제를 짜고 들어야"한다면서 "당생활총화의 정치사상적 수준을 높이고 세포안에 원칙적인 비판과 사상투쟁의 분위기를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며 맡겨진 혁명과업을 훌륭히 수행하는것은 당세포들앞에 나선 첫째가는 임무"라면서 "당세포위원장들은 현 시기 세포사업의 중심을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전원회의 결정관철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목표수행에 두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총동원하여야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나가는 전형단위 당세포들의 사업경험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마음을 맞추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단합된 힘으로 투쟁해나갈 때 놀라운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세포위원장들이 "사람들의 뜻과 마음을 합치고 집체적 지혜를 발동하여 대중적 영웅주의를 발휘하고 집단적 혁신을 일으켜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당세포위원장이라고 다 호남아고 절색일 수는 없겠으나 군중 앞에서는 얼굴 표정 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원칙적이고 일을 제끼는 일꾼이라 해도 항상 미간을 찡그리고 새파래 돌아가면 군중이 편하게 가까이 다가올 수 없다. 세포위원장은 인간적인 향기가 있어야 하고 항상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습관하고 체질화해 나가야 한다"거나 "세포위원장들은 늘 자신의 준비 정도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계속해야 하며 혁명적 수양을 쌓고 정치실무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부단히 쉬지 말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언급하면서 당세포위원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우리(북)의 사회주의 문화예술이 썩어빠진 부르죠아 반동문화를 압도하여야 사람들이 적들의 문화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지 않게 되며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 침투를 짓뭉개버릴 수 있다"면서 "문화예술부문 당세포들에서 세포사업을 철저히 기본혁명과업 수행에 복종시키고 창작가, 예술인들을 힘있게 불러 일으켜 혁명적인 예술의 힘으로 반동적인 예술의 침습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 21일부터 시작한 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는 23일 막을 내렸다. 김 위원장은 폐회사에서 지금까지 해놓은 일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많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위한 대담하고 통이 큰 작전들을 더욱 과감하게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한편, 이날 김 위원장은 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폐회사에서 "이번 대회의 기본정신은 전당의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만들어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자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당의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하는 사업은 무겁고도 책임적인 사업"이라면서 "모든 세포위원장들이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 초급정치일꾼으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자각하고 분발하여 떨쳐나설 때 당세포는 강화될 것이며 우리 당의 전투력은 더욱 높아지고 우리 혁명은 더 빨리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거듭 당세포위원장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또 "당정책관철의 직접적 전투단위인 당세포를 강화하여 당의 영도적 역할을 높이고 혁명과 건설에서 앙양을 이룩해나가는 것은 조선노동당의 전통적인 투쟁방식"이라면서 "우리 당은 앞으로도 이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나갈 것이며 당세포를 중시하고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계속 큰 힘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지금까지 해놓은 일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당중앙은 인민을 위한 많은 새로운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며, "동지들을 믿고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위한 대담하고 통이 큰 작전들을 더욱 과감히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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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경제학, 예수님이라면 자본주의에 찬성했을까?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7-12-24 17:20:19
수정 2017-12-24 17:20:19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한 사람이 천국의 문턱에서 심사를 받았다. “당신은 신을 영접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네”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좋습니다. 그러면 아래 평가지에 자신의 도덕성 등을 상세히 기록하세요. 당신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심사해보겠습니다”라고 요청했다.

천국의 문턱에 선 이 사람은 떨리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기록지를 받아든 면접관이 “평가를 마치겠습니다”라며 자리를 뜨려 했다. 이 사람은 다급한 심정으로“제 점수가 어떻게 나왔나요? 저는 천국에 갈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면접관이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을 했다.

“조금 더 기다리셔야겠어요. 이게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여서요. 오늘 천국 경쟁률이 4.5대 1이거든요. 님 점수가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경쟁을 붙여봐야 최종 당락을 알 것 같습니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만약 천국행을 이렇게 결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사람의 삶과 도덕성을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천국 자릿수에 맞춰 사람들을 경쟁 시스템으로 내몰아 천국행 자격을 결정하는 거다. 인사고과 상위 10%에게만 인센티브를 주듯이 죽은 자들 중 10%만 천국행을 허락한다. 그게 말이 되냐고? 당연히 말이 안 된다.

천국행을 그렇게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우리는 왜 이런 시스템에서 살고 있을까? 천국은 누구나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삶’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누릴 수 없다.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삶의 기회를 누린다. 신이 펼쳐주는 세상(천국)과, 그 신이 만든 인간 사회는 왜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공공재로서의 천국

경제학에서는 공공재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뜻한다. 예를 들어 공기, 햇빛,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 누구나 자유롭게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다. 그리고 예수가 민중들에게 길을 열어준 천국도 당연히 공공재에 속한다.

자본주의는 이 공공재를 끔찍이 싫어한다. 공공재는 누구나 노력 없이 사용할 수 있기에 자원을 낭비하고 분배를 비효율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공적 영역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사유화해 민영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다못해 초등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행위도 자본주의는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공공성을 강조해서 공짜 밥을 남발하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는단 말야!”라고 절규한다.

천국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천국은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매우 비효율적이고 분배의 정의에도 어긋나는 공공재가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전야 미사에서 아기 예수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전야 미사에서 아기 예수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AP/뉴시스

생각해보라. 평생을 선하게 살면서 주 예수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른 사람과, 죽음 직전에야 겨우 회개를 한 강도가 똑같이 천국에 간다면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실제 성경에는 예수의 오른쪽에서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회개하자 예수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며 그를 천국으로 초대했다.

이렇게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자본주의 경제적 질서는 엉망이 된다. 경쟁에서 이긴 자에게만 천국을 보장해야 사람들이 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 아니냔 말이다. 경쟁에서 패한 자들에게는 당연히 불지옥의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예수는 자본주의를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기복신앙과 번영복음을 앞세워 돈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식으로 왜곡하지만, 예수는 모든 민중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공공재로 개방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경쟁이 조금도 필요치 않다. 내 옆의 사람을 신앙심으로 이겨야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경쟁에서 패한 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내야 내 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예수는 그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모두에게 그 천국 문이 열릴 것이라고 알려줬다.

우리 인류는 예수가 탄생하기 오래 전부터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돕고 살았다. 그 공동체를 우리는 ‘사회(society)’라고 불렀다. 지금에야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자본가를 타도하고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전복하려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사용되지만, 초창기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사회주의는 사람들끼리 돕고 사는 그 사회를 복원하자는 취지의 용어였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7000년 동안 유지했던 사회를 박살냈다. 돕고 살기는커녕, 경쟁에서 패한 자들은 반드시 죽음으로 내몰아야 사회가 더 효율적으로 발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는 “사회가 누구냐? 사회,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우리는 모두 개별자로서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단언했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오른쪽)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생전 모습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오른쪽)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생전 모습ⓒ자료사진

그 대처 수상이 독실한 감리교인이었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가 살아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당신이 믿는 예수가 그렇게 가르치던가? 서로 돕고 사는 사회, 이웃을 배려하는 인간 따위는 없다고? 그래서 천국도 경쟁적으로 남을 짓밟아야 오를 수 있는 곳이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단언컨대 대처가 지금 있는 곳은 천국이 아닐 것이다. 천국에 가려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데,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을 낳은 복지국가 영국을 죽음의 나라로 만든 대처 같은 이에게 자리를 내 준단 말인가?

아무리 기독교가 예수의 뜻을 왜곡하고 자본주의와 결탁하려 해도, 예수가 우리 민중들에게 열어준 천국의 길은 경쟁을 통해 효율을 낳는다는 자본주의의 길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함께 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그 복을 아끼지 않고 베푸는 ‘사회’의 길이다.

예수는 그 누구에게도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이유로 “나가 죽어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패자들이 죽어줘야 사회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강조하지도 않았다. 예수가 꿈꿨던 사회는 결코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에서 뒤쳐진 패자들에게 “나가 죽어라”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같이 삽시다”라며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민중들에게 열어놓은 천국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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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자격증은 김건모의 노후를 정말 보장해줄까

등록 :2017-12-24 09:28수정 :2017-12-24 09:38

 

[토요판] 뉴스분석 왜?
커지는 드론 시장

 
농약 살포는 농민들의 오랜 숙제였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등 후유증과 부작용이 심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드론이 이 고민을 해결하면서 도시보다 들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픽사베이
농약 살포는 농민들의 오랜 숙제였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등 후유증과 부작용이 심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드론이 이 고민을 해결하면서 도시보다 들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픽사베이

 

‘이 지긋지긋한 거 그만하고 다른 거 하면서 먹고살 수 없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이런 번뇌에 빠지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 찰나 “7분에 2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이제 반백살이 된 국민 가수가 지상파 방송에서 말합니다. 누군들 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드론 수요 발굴로 5년간 3500억원 규모 공공 수요 창출.”

 

가수 김건모의 감은 아직 살아 있었다. 지난 11월말 김씨는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드론으로 노후를 준비중이라며 “드론을 날려서 농촌에서 비료를 주면 딱 7분 날리고 2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해 화제가 됐다. 그로부터 한달 만에 현재 704억원 규모인 드론 시장을 4조4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정부 계획이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 ‘드론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가·공공기관의 다양한 업무에 드론을 활용한다는 게 주된 계획이다. 계획을 보면, 5년 동안 3700여대, 3500억원 규모의 드론 시장을 창출한다. 공공건설, 도로, 철도 등 시설물 관리와 해양·산림 등 자연자원 관리에 드론이 활용된다. 실종자 수색, 사고·재난 지역 모니터링 등 치안·안전·재난 분야에도 드론이 투입된다. 국공유지 실태, 농업 면적 등 각종 조사에도 드론을 활용할 예정이다.

 

정부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6년까지 드론 관련 일자리만 약 17만개 이상이 새로 생긴다. 김씨가 계획했던 ‘농약(비료) 드론 방제사’ 외에도 드론 조종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밥벌이가 생긴다는 말이다.

 

가수 김건모씨가 방송에서 공개한 자신의 드론. 에스비에스(SBS) 화면 갈무리
가수 김건모씨가 방송에서 공개한 자신의 드론. 에스비에스(SBS) 화면 갈무리
국가공인 자격증은 오직 하나

 

폭설이 예보됐던 지난 20일 오후.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운동장에선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드론 실기수업이 한창이었다. 김건모씨도 준비중인 드론 조종사 자격증을 따려면 ‘초경량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자동차 면허시험처럼 학과시험(필기)과 실기시험을 쳐야 하는데 실기시험에 응시하려면 20시간의 비행 경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문교육기관에서 20시간을 채워야 한다. 드론과 관련한 국가공인자격증은 교통안전공단에서 주관하는 초경량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증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전문교육기관 등 민간에서 발행하는 자격증들이다.

 

실기시험은 이착륙 지점을 기준으로 좌우 이동, 직진·삼각·원주 비행 등을 평가한다. 수업도 시험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에서 차량을 느리게 움직이듯이 드론 역시 천천히 움직이되 정확한 지점에서 정지하고 이착륙하는 게 중요하다. 자동차 운전과 달리, 운전자(조종사)가 움직이지는 않은 채 입체 공간에서 드론의 움직임을 눈으로 파악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수업 3일차라 그런지 교육생들 대부분이 아직은 서툴렀다. 한 교육생이 1.5m 정사각형 착륙 지점에 드론을 착륙시키자 교관이 “그래도 네모 안에 넣었네요”라며 웃었다. 수강생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도 성별도 다양했다. 인천인력개발원은 지난 9월부터 드론 실기과정을 운영중인데 9회차까지 모두 50명이 수강했다. 30~50대(41명)가 가장 많았고 10대와 60대는 각각 2명이었다.

 

지난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봤다는 교육생 이정범씨는 수능 이후 시간을 활용해보라는 아버지 권유로 자격증에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공중에 뜬 드론과 지면 위의 지점을 일치시키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며 “자동차 면허증도 따는 중인데 드론 자격증과 함께 군대 갈 때 쓸모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인력개발원 양재덕 기획홍보팀장은 “방학 기간엔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는 반면 학기 중엔 중장년층 수강생들이 많다”고 했다. 수업은 4인 1조로 진행되는데 하루 8시간 수업을 하면 1인당 2시간의 ’비행경력증명서’가 발급된다. 따라서 수업은 2주(10일) 동안 계속된다. 주말반은 5주가 걸린다.

 

비행시간 20시간이 합격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비행이론 등을 다루는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2년 동안 실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올해 실기시험 합격률은 60%대다. 자동차 면허시험과 달리 연습했던 ‘그 학원’에서 시험을 보지 않고 신청자들이 모이면 기준에 맞는 장소를 지정해 실기시험이 진행된다. 평면이 아닌 입체 공간에서 드론을 조종해야 하기 때문에 24개 항목에서 모두 S(Satisfactory) 등급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이중열 교관은 “자동차 면허시험처럼 ‘공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 반복 학습으로 합격이 보장되진 않는다. 개인별 능력 차이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현재 ‘드론 자격증’(면허증)을 취득한 사람은 모두 3726명이다.

 

 

 

‘국민가수’도 꿈꾸는 드론방제사
비행경력 20시간 후 자격시험 가능
‘공식’ 통하지 않는 실기시험
합격률은 60%대…3726명이 취득

 

 

‘드론 자격증=고수익’ 보장 못해
“7분 200만원”은 현실과 동떨어져
국토부, ‘드론 발전 기본계획’ 발표
10년간 일자리 17만개 만들기로

 

 

드론 자격증이 없다고 드론을 날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무게가 12㎏ 이하이거나, (12㎏을 초과하더라도) 비상업적 용도로 날리는 경우엔 자격증이 없어도 가능하다. 농민이 본인 소유 논에 방제할 목적으로 12㎏을 넘는 드론을 조종할 땐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 결국 ‘12㎏이 넘는’ 드론을 ‘상업적’으로 운전할 때만 국가공인자격증(면허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신 개인적 목적의 사용자라도 12㎏이 넘는 드론은 국토교통부에 신고해야 하고 사업 목적일 경우엔 무게와 상관없이 모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3년 193대이던 드론 신고 대수는 2017년 11월 기준 3735대로 늘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완구형 드론은 대부분 무게가 1㎏ 미만이고, 카메라가 달린 드론 역시 전문가급이 아니면 대부분 1㎏ 안팎이다. 12㎏ 이상의 대형 드론을 날리는 사람들에게 신고를 의무화하거나 면허증을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8월 판매중인 20개의 초보자용 드론을 조사한 뒤 “다수의 제품이 안전가드가 없거나, 있더라도 상해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중열 교관은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안전 의식을 주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드론이라도 빠르게 회전하는 프로펠러는 몹시 위험한데 ‘드론=장난감’이라고만 여기니 그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까이서 본 12㎏이 넘는 드론은 흔한 장난감 수준이 아니었다. 교육장에도 헬멧을 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지난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운동장에서 드론 실기수업 교육생들이 비행 전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지난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운동장에서 드론 실기수업 교육생들이 비행 전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7분에 200만원은 가능할까?

 

자동차 대형 면허를 땄다고 고속버스를 당장 몰 수 없는 것처럼, 드론 자격증을 땄다고 ‘7분에 200만원을 버는’ 드론 방제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드론 자격증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드론을 날려 생계를 유지하려면 민간 교육기관에서 운영중인 심화 과정에 진학해 추가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실제 현장에 나가 도제식으로 배우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업용 드론은 현재 수요과 공급이 적절한 지점에서 만난 차세대 드론 시장으로 꼽히고 있긴 하다. 국제무인운송시스템협회(Association for Unmanned Vehicle Systems International)는 2013년 보고서를 통해 농업용 드론이 향후 드론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전세계 취미용 드론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한 중국의 디제이아이(DJI)도 2015년 농업용 드론 아그라스(AGRAS)-MG1을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2016년 기준으로 국내 드론 활용 시장은 473억원 규모인데, 농·임업(53%) 분야 비중이 가장 크고 그 뒤를 영상촬영(32%), 건설·측량(7%)이 잇고 있다. 지난해 11월 233개이던 국내 드론 방제업체는 올해 6월말 기준 294개로 늘었다. 과거엔 주로 무인헬리콥터를 이용해 방제를 했는데 최근 드론 보급이 늘어나면서 드론을 이용한 방제로 넘어가는 추세다.

 

물론 ‘7분에 200만원’은 과장된 수치다. 드론 방제업체 누리집 등을 통해 확인한 방제 비용은 논이 평(3.3㎡)당 30원, 밭이나 과수원은 50~100원으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논과 달리 밭이나 과수원은 접근하기 쉽지 않고 면적이나 경계도 들쑥날쑥해 비용이 더 높다고 한다. 논의 경우 한 시간 동안 드론을 가동하면 1만평 정도 면적에 농약을 뿌릴 수 있다. 한시간에 30만원을 벌 수 있으니 하루 종일 작업하면 ‘이론적’으로는 300만원까지도 가능하다.

 

드론방제협회 노덕호 지도조종사는 “논 방제는 주로 한여름에 하는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할 수는 없다. 주로 오전 5시부터 10시 사이,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만 작업을 한다. 한낮엔 햇빛이 뜨거워 약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루에 4만~5만평이 적정 수준”이라고 말했다. ‘7시간 200만원’이 좀더 현실에 가까운 수치다. 이 정도 수입도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개인이 드론 자격증을 따고 드론을 구입해 방제사업을 하기엔 초기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만약 김건모씨가 드론 방제사업을 하려면 우선 드론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인천인력개발원의 실기비행 과정 수강료는 280만원이다. 필기시험이 면제되는 국토부 지정 전문학원들의 수강료는 300만~500만원 수준이다. 자격증을 취득한 뒤 알음알음으로 조종 기술이 늘어 방제용 드론을 조종할 수준에 이르렀다면 대당 2000만원 안팎의 드론을 구입해야 한다. 보조배터리와 드론을 싣고 이동할 수단, 사무실 등도 필요하다. 이어 드론 등록, 사업장 등록 등을 하고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현행법상 보험 가입 없이 사업을 할 순 없다. 노덕호 지도조종사는 “날아다니는 것들은 떨어지게 마련이라 대인·대차·자차까지 모두 들어야 하는데 2000만원짜리 드론 한대당 1년 보험료는 390만원”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김건모씨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이 아니다. 시장에 진입해 살아남으려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작물에 대한 여러 정보 정도는 꿰뚫고 있어야 일감을 따 올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세상 만만한 일이 없다.

 

 

1가구 1드론 시대보다 먼저…

 

드론 시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는 중이라 현시점에서 4~5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평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드론 가격이 더 떨어지면 그에 비례해 사업 초기 비용도 떨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1농가 1드론 시대가 와서 드론 방제사라는 직업이 탄생과 동시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디제이아이의 농업용 드론을 국내에 판매하는 ㈜퓨처쉐이퍼스 이상민 대표는 “과거 여행지에서 사진 찍어주고 돈을 받던 사진사들이 1가구 1카메라 시대와 함께 사라졌듯이 방제용 드론도 가격이 떨어지면 1농가 1드론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드론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약 17만4000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전망되며 운영 분야가 15만8000명으로 제작 분야 1만6000명보다 9.9배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임업 7만6000명, 건설·측량 4만명, 영상촬영 1만9000명의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드론 ‘활용 시장’의 성장률이 ‘제작 시장’ 성장률의 8.5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 전망이 맞아떨어져서 1농가 1드론 시대보다 정부가 설계한 ‘드론 생태계’가 먼저 구축된다면 김건모씨를 비롯한 수많은 드론 조종사들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국내 유일한 ‘가수 겸 드론 전문가’ 김건모를 볼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천/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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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어떻게 덜 소유하고 함께 정주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소유자 중심 사회다. 도시 주거공간의 변화가 오로지 소유자 이익을 위해 일방통행으로 이뤄지는 탓에 주민들의 오랜 정주성이 파괴된다. 도시 공간 변화가 사회구성원의 평화롭고 평등한 공존을 애초 어렵게 만든다. 어떻게 공존의 가치를 앞세우고 덜 소유하며 함께 정주할 것인가. 

정주성을 빼앗는 소유자 중심 일방통행

최근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에서는 <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한울 펴냄)라는 뜻깊은 책을 발행했다. 1970년대 도시화 그늘에서 출발했던 빈민운동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지역주민운동으로 전환하고, 점차 공동체운동과 대안운동으로 발전해갔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대규모 철거 이주를 동반하는 재개발사업이 어떻게 지역운동의 뿌리를 송두리째 파괴했는지 접하게 된다. 헌신했던 활동가들과 지역주민들 노력으로 다져진 지역네트워크와 공동체가 재개발로 인해 허물어지고, 기존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지역주민운동의 동력도 함께 사라지곤 했다. 서울 신림동이 그랬고 봉천동이 그랬다. 재개발 뒤 새로운 주민들이 입주하고, 기존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행여나 다시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하더라도 주민운동을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 2002년 서울 난곡재개발지역.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벌어진 일이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요즘 한국에서 많이 언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바로 위와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경계해야 할 도시 변화 과정이다. 지역을 기반한 모든 형태의 사회운동은 결국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을 조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기존 토지 이용자를 내쫓는 재개발 같은 도시재생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져오고 지역 공동체 해체한다. 아무리 재개발로 인해 새로 공급된 신규 아파트 단지가 겉으로는 화려하고 정돈돼 보여도, 도시 공간 해체가 가져오는 공동체성 상실은 회복하기 어렵다. 결국 도시 공간 변화는 '누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 앞에 놓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도시 공간 변화가 철저하게 '소유자' 중심 일방통행으로 이뤄지고 기존 공간 이용자를 배제하고 내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데 있다. 불평등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도시 공간의 변화가 사회구성원의 평화롭고 평등한 공존을 애초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 문제다. 도시 평균 주거 조건에 미달하거나 절대 조건 자체가 불량한 주거지를 개량하고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도시 공간을 바꾸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 혜택을 기존 주민이나 동네 가게를 운영하던 상인들이 누리지 못하고 개발 과정에서 쫓겨난다면,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면, 애초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집중적으로 발생한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주거용 공간이나 세탁소와 같은 주민편의시설이 외지인을 주요대상으로 하는 상업공간으로 전환되는 형태로 일어난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도시 서민들의 적정 주거지이던 동네가 사라지고 기존 주민들 대부분이 내쫓긴다는 점에서 재개발과 재건축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불평등한 도시재생 모델의 대표 사례인 1980년대 서울에서 벌인 '합동재개발 사업'을 상기해본다면,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단지 최근 2∼3년 사이 현상이라기보다는 더 오랫동안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도시 공간에서 '정주성'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 전체가 '소유자 중심'에서 '지금 거주하는 주민 중심'으로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주민은 상가 임차인도 포함한다. 정주성의 향상은 단지 콘크리트와 시멘트, 벽돌로 덮어진 집을 포함한 '건조환경(인간 생활 관련 구조물 전체)' 개선에만 머물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기 편하다고 느끼는 장소는 건조환경뿐만 아니라 공생하는 동식물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새롭게 지은 신도시나 아파트 단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온갖 동식물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수십 년 된 아파트 단지에 '도시 숲'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재건축과 같은 도시재생 방식은 이러한 공간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기존 공간이 갖고 있던 정주성 역시 새로 지은 값비싼 주택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대체된다. 세상에 '좋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는 결국 기존 주민이 쫓겨나고 정주성 파괴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좋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양립이 불가능하다. 

기존 이용자의 권리 확대와 기존 공간 동식물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생각해 본다. 이는 대규모 철거 뒤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하는 도시 공간 재편방식 자체를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건조물을 세우려면 완전히 기존 모든 인공건조물과 식물군을 갈아엎고, 기존 생물의 죽음과 축출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관련 법령에 따르면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을 할 때 환경영향평가 일환으로 동물과 식물 분포를 조사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민하게 되어 있지만, 사업성을 앞세워 절대다수가 잘려나간다. 동식물을 인간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도시재생 계획 단계에서 기존 동식물 보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기존 공동체가 지속되고 평등하며 공정한 도시재생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도시계획 관련 의사결정권이 경제, 사회, 정치적 자본을 소유한 이들에게 집중돼 있다. 취약한 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고 되찾게 할 것인가. 주거 세입자는 2년마다 집세 인상 압력 탓에 정주하지 못한다. 세입자의 잦은 교체는 지역 사회의 공동체성이 만들어지기 어렵게 한다. 공동체 유지 발전이 애초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재개발로 인한 공동체 해체가 2년 주기로 발생하는 셈이다. 상가 임차인 경우, 2009년 용산 참사 뒤로 권리 증진 노력으로 이전보다는 좀 더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2015년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개정 뒤부터 환산보증금 규모에 상관없이 5년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건물주의 힘은 여전히 커서 다양한 우회 방법을 통해 상가 임차인을 내보내고 더 높은 임대료 소득을 올리고 있다. 상가 임차인의 계약청구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주거 세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더 나아가 도시 서민이 공간 변화의 주인이 되어 이윤 획득보다는 '집'이라는 사용가치가 보호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대규모 철거 방식보다는 점진 개량 중심으로 도시재생 방식을 적용할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은 조합원 자격을 가진 부동산 소유주만 사업 관련 의사 결정권이 있는데, 공동체 유지와 정주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세입자도 의사 결정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새로운 소유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사적 소유권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더 격렬하게 발생할 수 있는 배경이다. 새로운 방식의 소유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CLT)' 제도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개별 건물의 사적 소유는 허용하지만, 토지는 '공동소유'라는 원칙에 따라 개별 건물 매매 방식은 공동체 약관에 의거 엄격히 규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개별 주택을 일정 가격으로 유지하고 서민을 위한 주거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도는 적정 주거의 지속적 확보뿐만 아니라 부동산 관련 수익을 공동체에 귀속해서 공동체성 확립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도 기존 주민시설을 상업지역으로 바꾼 탓에 일어나는 정주성 파괴를 전제한다. 최근 영국에서 실험 도입한 '지역공동체 우선 매입권'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시설을 지속해 확보할 수 있다. 2011년 입법된 '지방분권법(Localism Act)'에서는 도서관, 시장, 수영장 같은 시설을 지역 주요 자산으로 지정하고, 이것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경우 지역 공동체가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이 영국에서도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필요가 있다. 즉, 지역 공동체에게 우선 매입권을 부여해, 지역이 꼭 필요로 하는 세탁소, 동네 생필품 가게, 동네 카페, 도서관, 유치원 같은 곳이 손 바뀜을 통해 외지인을 위한 상업 용도로 전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시설을 공동소유로 보유하고, 동시에 공동체 지속을 위한 기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필수 주민시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주민시설이 점유한 부동산 매매는 엄격히 규제하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동산 계급사회'라고도 일컬어지는 한국에서 도시 공간 생산과 소비 방식을 뿌리에서부터 바꾸려는 시민사회의 자각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건물과 토지가 우리 삶을 위한 '사용가치'로만 남아야 한다. 시민 모두가 차별 없이 공간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회는 가능할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도 그 효용성을 잃어버리고 과거로 퇴장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일까. 공존의 가치를 앞세우고 덜 소유하며 함께 정주하는 삶을 우리 사회가 선택하는 때이다. '함께 사람답게 정주하는 것을 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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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순씨는 장애인 딸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싸운다

복순씨는 장애인 딸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싸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7.12.24 09:43:03

 

시각중복장애인 효정양의 엄마 강복순씨가 12월 18일 아이의 하교를 도우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시각중복장애인 효정양의 엄마 강복순씨가 12월 18일 아이의 하교를 도우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시리즈 목차 

1 시각중복장애인 효정이 엄마 복순씨 

2 장애학교 주변을 떠도는 엄마들 

3 내가 외로운 법정 싸움을 하는 이유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현실은 그러나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 계획만으로도 마을 주민들이 갈라질 정도로 큰 갈등을 빚는다. 장애인들도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 받을 권리와 행복추구권이 집값 하락이라는 논리 속에 번번이 무시된다. 장애아의 부모들은 비장애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들을 획득하기 위해 투사가 돼야만 한다. <주간경향>은 세 차례에 걸쳐 장애아를 돌보는 엄마들과 주변의 사연을 통해 오늘날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되짚어 보려 한다. 1회는 시각중복장애인 효정이를 돌보며 장애인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엄마 강복순씨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복순아, 이제 그만하자. 너 언제까지 그럴 거냐.”

나는 내 딸 효정이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1998년 7월에 태어난 내 첫째딸 효정이는 눈에 초점이 없었다. 백일이 다 될 때까지 효정이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쩌면 효정이의 세상은 어둠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지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조카를 보러 온 친정언니들이 나에게 말했다. “복순아, 언니들 말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효정이 눈이 좀 이상한 것 같다. 효정이가 사시면 고치면 되는 거니까 일단은 병원을 한 번 가보자.” 나는 무서웠다. 겁이 나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가 “아이가 눈이 안 보이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친정엄마는 두 언니들을 잡았다. 왜 애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한테 그런 말을 하느냐고 혼냈다. 나는 그냥 버텼다. 

남편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까. 100일이 채 안된 효정이를 끌어안고 있는 내게 남편이 먼저 병원에 가보자고 권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둘이 김안과를 갔다. 의사는 곧바로 “여기가 아니라 큰 병원을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서울대학병원으로 갔다. 곧바로 엠알아이(MRI) 촬영과 약물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친정엄마랑 아이를 업고 신(神)발이 제일 좋다는 오대산으로 갔다. 오대산 자락에 있는 보살에게 500만원을 주고 세 번의 굿을 했다. 새벽 첫 이슬이 내리기 전에 대기하고 있어야 아이가 낫는다고 해서 효정이를 들쳐업고 새벽 2시에 산을 올랐다. 친정엄마는 아이 배냇저고리와 아이 아빠 속옷을 들고 오대산 자락을 따라왔다. 

효정이는 결국 그날 이후 폐렴에 걸려 한 달을 입원했다. 그쯤 되면 나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신이 있으면 거기에라도 매달려 우리 효정이가 앞을 볼 수 있기를 빌었다. 서울대병원에서 결과가 나왔다. 담당교수는 나와 아이 아빠에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얘 눈 못뜨니까 그냥 애 잘 키울 생각이나 하라”고 했다. 효정이는 선천적 시신경위축이었다. 눈이 돌아갔다. 없는 돈 끌어다 500만원이나 주고 굿까지 했는데. 교수를 붙들고 싸웠다. 전공의들이 나와 아이 아빠를 끌어냈다. 병원 밖을 나온 순간부터 우리는 장애아이의 부모가 됐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내 새끼가 아픈데 부모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9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특수학교 관련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특수학교 관련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연합뉴스

나도 한때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애를 낳고 복직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장은 이제 나에게는 사치였다. 효정이와 내 앞에는 끝나지 않을 병원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동기, 언니들이 회사 민영화로 연봉이 오르고 직책도 오를 동안 나는 내 아이의 눈과 손, 발이 돼야 했다. 효정이가 서울맹아학교 유치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아이와 꼬박 5년을 붙어 있었다. 3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는 우리의 멘토였다. 아들이 뒤집으면 아들의 모습을 보며 효정이 뒤집기를 가르쳤다. 아들이 네 발 기기를 하고, 걸음마를 하는 것을 관찰해 효정이를 가르쳤다. 시각장애아이들은 시각적 자극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를 몸으로 가르쳐야 했다. 비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모든 것이 처음일텐데, 시각장애아는 나도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시각장애인을 본 경험은 출퇴근 때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맹인의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우울증이 심해졌다.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살았다. 커튼을 쳤다. 남편이 한마디 하면 “애새끼가 눈도 안 보이는데 불은 켜서 뭐 해”라고 날선 말을 뱉었다. 효정이가 4살 될 때쯤이었다. SBS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다 안산에 사는 동진이 사연을 접했다. 7살 시각장애아 동진이가 동네 심부름을 다니고, 일반 아이들과 노는 게 나왔다. ‘저 아이의 엄마와 통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담당 PD를 수소문해 울고불고 사정해서 동진이 엄마를 찾았다. 동진이 엄마는 내 동앗줄이었다. 이후 서울맹아학교 유치부에 다니며 동진이 엄마를 다시 만났다. 내게 “효정이 엄마야, 너 그냥 종로로 이사 와라. 여기서 우리 의지하며 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5살 되던 2003년에 종로구에 정착했다. 

어느 날 맹아학교 학부모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효정아 얼른 와라. 여기 좀 도와야 한다.” 당시 용산초등학교 학생 수가 줄어서 용산초 절반을 잘라 서울맹아학교 용산분교를 만들 예정이었다. 용산구 주민들의 항의는 너무 거셌다. 맹아학교 공사 첫 삽 뜨는 것을 막아섰다. 내게 “저 ×× 같은 ×가 저 모양이니 병신 ××를 낳았지”라고 말했다. 집안 대대로 목사인 한 주민이었다. 포클레인이 들어서지 못하게 마을 주민들이 학교부지에 눕기도 했다. 그때 장애아 엄마 2명이 포클레인 삽 위에 올라탔다. 기사님께 “모든 일은 우리가 책임질게요. 제발 학교 안으로 들어가주세요”라고 빌었다. 포클레인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주민들이 전부 일어섰다. 그렇게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세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깨달았다. 장애인 엄마가 투사가 되는 것은 그냥 내 아이를 지키려는 것이다. 약한 내 새끼 공부는 가르쳐야 하고, 사람은 만들어야 하는데 부모 아니면 아무도 내 새끼를 도와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5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정이 막바지였다. 장특법 제정은 반대가 심했다. 특수교육 현장을 바꾸는 건 다 돈이 들어가니까 다들 예산낭비라며 반대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그 평범한 엄마들이 머리를 깎고 삼보일배를 했다. 그때 현장에서 만난 한 아이의 엄마가 이 말을 했었다. “효정아, 이 법이 통과돼야 우리 애들 교육시킬 수 있다.”

나는 우리 딸의 생애주기마다 싸워 왔다. 장특법이 무서운 것은 학교장이 아이의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법이 통과돼야 내 딸이 학교를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내 딸은 20살이 됐다. 이 다음은 평생교육법 개정이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효정이 엄마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혜택을 받고 살아”라고 말이다. 나도 ‘나보다 몇 년 위 극성맞은 엄마가 있으면 편하게 따라갔을텐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암환자다. 2015년 특수교사 정원을 두고 반대의견을 내는 의원들이 있었다.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병원 화장실에서 피주머니를 빼고 친한 엄마에게 부탁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의사 허락 없이 의원들을 만나러 갔다. 특수교사 정원 확충은 엄마들에게는 큰 문제였다. 특수학급은 늘 과밀이었다. 효정이처럼 시각장애에 인지손상까지 있는 중복장애아들을 한 반에 6~7명씩 몰아넣고 선생님 한 분이 보라고 하면 그 사람보고 그냥 나가라는 말과 같았다.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 아이 교육이 달린 문제였다. 그때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다니면서 특수교사 정원이 700명으로 확 늘어났다. 그렇게 하나하나 나를 비롯한 장애아 엄마들이 아이들의 길을 닦아가고 있다. 공무원들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엄마들은 너무나 잘 안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전화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과장해서 백 번 전화하면 한 번 누구인가 싶어 확인전화하는 식이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9대 의원일 때 정 의원실 비서관과 함께 있는데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때마침 콜백을 했었다. 그 직원은 우리에게 “당신들이 진짜 엄마가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 당신들 그냥 영리단체 아니냐”고 했다. 듣다 못한 비서관이 “종로구에 사시는 엄마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그제야 기재부 직원은 우리를 만나줬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지금 효정이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공기 좋은 외진 곳으로 가서 살고, 효정이는 교통도 좋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서 나와 떨어져 살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는 한 달여 기간 동안 남편은 둘째·셋째아이를 보살피고, 효정이는 지역사회에 주간·단기보호를 맡겼다. 


내가 퇴원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니 아이가 울면서 내 팔을 꼭 잡았다. 암이니 수술이니 입원이니 하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으니 그저 엄마가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딸과 떨어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정이가 장애인들끼리 특정 시설에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평범한 삶 속에 스며들어 살 수 있는 장애인 주거모델을 만드는 게 내 마지막 목표다. 내 딸 효정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의 핫클릭!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240943031&code=940100#csidx9c1c140d546f4a3a04e8a7c2462f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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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돌변에 기자들 "와, 대박"... 포토라인에서 있었던 일들

 

 
대통령 탄핵으로 예정보다 일찍 치러진 대선이 불과 7개월 전이라는 게 믿겨지시나요?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고 적폐 청산 작업이 곳곳에서 일어난 올 한해는 유독 큰 사건이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 사건이 최종적으로 당도하는 곳, 검찰은 특히 더 분주했습니다. 지난 권력의 핵심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독특(?)했던 장면들을 뒷이야기와 함께 풀어봤습니다. 

① 최순실 돌변에 기자들 "와, 대박" 
항변하는 최순실 "자백 강요하고 있다"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소환되며 취재기자들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공동 책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 항변하는 최순실 "자백 강요하고 있다"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씨가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소환되며 취재기자들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공동 책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유성호
박영수특별검사팀의 소환 통보에 한 달 동안 버티다 지난 1월 25일 결국 강제 구인된 '비선실세' 최순실씨. 지난해 10월 첫 검찰 소환 당시 "죽을죄를 지었다"며 울먹이는 모습은 이날 볼 수 없었습니다. 상아색 수의를 입고 법무부 호송 차량에서 내린 그는 좌우를 한번 살피더니 돌변했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버티며 "억울하다"고 소리친 최씨는 결국 교도관들에 떠밀려 조사실로 올라갔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청소노동자가 "염병하네"라고 응수하기도 했죠. 불과 한 달 전 고개를 푹 숙이고 특검 조사실로 향하던 모습에서 돌변한 겁니다. 상황 종료 직후 기자들 사이에선 "와, 대박"이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최씨는 법정에서도 종종 돌변합니다. 쉬는 시간 "못 참겠어. 빨리 사형시키란 말이에요"라고 통곡하는가 하면, 검사를 향해서는 "나에게 뒤집어씌우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합니다. 25년형을 구형받은 날에는 피고인 대기실에서 "끄아아악"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②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우병우의 "고맙습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1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희훈
검찰 포토라인을 이야 하자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첫 소환 때 질문하는 여성 기자를 노려봐 논란을 부른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세 번 더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회(?)가 거듭될수록 태도는 조금씩 유순해졌습니다. 네 번째 포토라인에 서던 날에는 취재진 질문에 답을 마치고 옅은 미소와 함께 "고맙습니다. 들어갈게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뜬금없는 감사 인사였지만 '우병우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로부터 보름 후, 세 번째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그는 다시 한번 레이저 눈빛을 발사했습니다. 법원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밀려든 취재진에 떠밀려 그만 유리문에 부딪히고 만 겁니다. 큰소리로 "으아악" 비명을 지른 우 전 수석은 한동안 취재진을 노려봤습니다. 다음 날 새벽 그는 구속 영장 발부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③ 포켓몬고? 추선희고!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관제데모'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지난 10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관제데모'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늦더위가 차츰 물러가던 지난 9월 2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선 느닷없는 '술래잡기'가 펼쳐졌습니다. 'MB 국정원' 지시를 받고 관제데모를 벌였다는 의혹의 주인공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 때문이었습니다. 

추 사무총장의 출석 예정 시간인 오후 4시가 다가오자 청사 앞에는 하나둘 출입기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정 시각에서 20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곧 "당초 4시에 출석하기로 했으나 5시쯤 출석하겠다고 전해왔다"는 기자단 공지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5시 정각이 되어서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기다림이 한 시간 이상 이어졌고, 다시 "추선희씨가 출석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두 번째 공지 문자가 왔습니다. 모두가 허탈해하며 자리를 뜬 이후 '추선희씨가 어딘가 숨어서 기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몇몇 기자들은 그를 찾아 검찰 청사 앞 화단과 계단, 출입구를 샅샅이 훑었습니다. '오기'로 정문 밖 편의점까지 살펴본 기자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인기를 끈 게임 '포켓몬고'를 연상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추 사무총장은 지난해 박근혜 정부 관제데모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됐을 때도 기자들을 따돌린 전력이 있습니다. 소환 예정 시각보다 30분 일찍, 다른 출구로 들어오는 방법이었습니다. 당황한 기자들이 급히 따라붙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답답한 기자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에게 "부정이든 긍정이든 한마디만 해달라"라고 했고, "청와대 지시받은 적 없어요"라는 답을 겨우 들었습니다. 그제야 기자들은 "아휴, 가자"라며 흩어졌습니다. 

④ "한 말씀 할 테니까 밀지 마" 당당한 남재준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정기적으로 상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면서 취재진들을 뿌리치며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2017.11.08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정기적으로 상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지난 11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면서 취재진들을 뿌리치며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2017.11.08ⓒ 최윤석
국정원 특수활동비 40여억 원을 청와대에 상납해 역대 국정원장 3명에게 동시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죠. 그중에서 첫 번째로 포토라인에 선 사람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 남재준 전 원장이었습니다. 

지난 11월 8일, "40년 군인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는 그는 포토라인에서도 양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어깨를 활짝 편 특유의 걸음걸이로 걸어왔습니다.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의 남 전 원장은 취재진이 혐의에 대해 캐묻자 불편한 심기를 마구 표출했습니다. 

"국정원 돈을 왜 청와대에 상납했습니까"라는 묻자 "쓸데없는 소리"라고 답하더니, 앞에 있는 마이크를 손으로 훼훼 뿌리치고 돌진했습니다. 취재진이 따라붙어 "한 말씀만 하고 들어가시라"고 설득하자 그제서야 "한 말씀 할 테니까 밀지 마"라며 포토라인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었습니다. 대신 아침 조회 때나 들어본 '훈화말씀' 같은 어조로 "국정원 직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취재진을 거칠게 밀치며 조사실로 향했습니다. 

⑤ '레이저 꿈나무' 신연희 강남구청장
"마이크 치우세요"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이 21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들의 마이크를 뿌리치며 청사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마이크 치우세요"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이 지난 6월 21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들의 마이크를 뿌리치며 청사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윤석
검찰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들은 보통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라는 뻔한 말 정도는 남기고 떠납니다. 대선을 앞두고 수백 명이 모인 카톡방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방한 글을 올린 혐의로 지난 6월 21일 검찰에 소환된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좀 달랐습니다. 

출석 예정 시각보다 약 20분 앞서 검찰 청사 앞에 도착한 그는 입을 꾹 다물고 포토라인까지 걸어왔습니다. 취재진 앞에서 잠시 멈췄지만 질문에는 일절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이어지자 손으로 마이크를 뿌리치고 청사 안으로 들어 가버렸습니다. 취재진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갔지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 기자가 답답하다는 듯 "나는 당당하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자 신 구청장은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습니다. 

최근 검찰은 "여론을 왜곡해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라며 신 구청장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습니다. 재판부의 선고는 내년 1월 10일에 내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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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구속으로 번지는 적폐청산, 시민들 모여 집회 개최

이명박 구속으로 번지는 적폐청산, 시민들 모여 집회 개최
 
 
 
대학생통신원
기사입력: 2017/12/23 [20:2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명박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대학생통신원

 

12월 23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명박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집회를 주관한 MB구속 시민연합은 적폐의 꼭지점 이명박을 구속해야 한다.”며 매주 토요일 마다 집회를 열고 있다.

 

이명박은 국정원 불법공작으로 각종 공직자 선거에 개입했으며문화계 블랙리스트방송 장악을 벌였다또한 사자방으로 불리는 4대강 사업자원외교방산비리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시민들은 이명박을 구속하여 철저히 수사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 이명박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 대학생통신원

 

분노한 시민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이명박에게는 감옥도 과분하다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청소년의 발언과 이명박이 온 나라를 망쳐놓았다.”, “이명박의 가장 큰 죄는 부정선거다.”라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자유한국당규탄 시민연대 홍정기 대표는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이명박 정권이 국가를 장악하면 국민이 아무것도 모르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명박 언론장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박근혜다.” “이명박 구속으로 하루빨리 적폐청산을 이뤄야한다.”고 목소리 냈다.

 

▲ MB 스나이퍼 청년학생 실천단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대학생통신원

 

포토존과 이명박 구속촉구 서명운동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진행되었다. 5시부터는 MB 스나이퍼 청년학생 실천단 참가자들이 집회 장소 주위에서 이명박을 저격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이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 MB 구속이라는 과녁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 구속을 촉구하는 쥐잡이 특공대 활동을 벌이려 한다.”고 했다.

 

이들은 30일 집회와 대학생 쥐잡이 특공대등 이명박 구속을 촉구하는 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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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굴욕외교'였더라도 칭찬받아야 하는 이유

[하승수 칼럼] 감옥 갔던 핀란드 대통령 조각상이 세워진 이유?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후에 '굴욕외교'니 '혼밥'이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그러나 설사 굴욕이라고 해도 어떤가? 또 '혼밥'이었다고 해도 어떤가? 국가를 위해서라면 홀대를 받아도 외국을 가야 하고, 자존심을 죽이면서도 외교적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이다. 그런 것을 망각하고, 자국의 대통령에게 비난을 하는 행태를 보면 '무책임'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두고 이런 논란을 하는 것은 한가한 얘기이다. 심지어 국가를 살리기 위해 자국의 전임 대통령을 전범으로 감옥에 보내야 했던 나라도 있다. 바로 핀란드 이야기다. 

핀란드는 1918년 좌-우간에 심각한 내전을 겪었다. 그후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던 중에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해서 영토의 상당부분을 빼앗기게 된다. 이 전쟁을 겨울전쟁이라고 한다. 


영토를 빼앗기고 절치부심하던 핀란드는 1941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손을 잡고 소련을 공격한다. 그래서 잃었던 영토를 되찾는다(이를 두고 '계속전쟁'이라고 한다). 

문제는 소련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의 길로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일과 같은 편에 섰던 핀란드는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게 되는 위기로 몰린다. 그래서 핀란드는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휴전을 하기 위한 협상에 매달린다. 그래서 소련과 휴전을 하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 대통령이었던 '리스토 뤼튀'는 책임을 지고 사임하고, 만네르하임이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리고 핀란드는 지금까지 같은 편이었던 독일군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살려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리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소련은 핀란드에게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사실은 1939년에 먼저 침공을 한 쪽은 소련이었고, 핀란드는 영토까지 빼앗긴 피해자였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가 된 소련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스토 뤼티. ⓒsuomenpresidentit.fi

그래서 핀란드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련은 독일과 손잡고 소련을 공격하기로 한 전임 대통령 '리스토 뤼튀'와 총리 등 핵심인사들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려 한 것을 두고 '전범'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핀란드 입장에서는 부당한 일이었고, 자국의 전임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없는 '굴욕'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에 핀란드 대통령이었던 만네르하임은 이를 받아들였다. 단지 핀란드 법에 따라 핀란드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 정도가 다른 전범재판과는 다른 점이었다. 

 


결국 핀란드의 전임대통령 '리스토 뤼튀'는 전쟁 책임을 지고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감옥으로 갔다. 그는 감옥 안에서 병에 시달리는 등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핀란드에서는 전범재판을 해서라도 국가를 구하려했던 만네르하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고 감옥으로 간 '리스토 뤼튀'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1994년 핀란드 국회 의사당 옆에는 '리스토 뤼티'의 조각상이 세워졌다. 2004년 핀란드 국영방송인 YLE는 위대한 핀란드인 1위에 만네르하임을, 2위에 '리스토 뤼티'를 선정했다. 당시 핀란드의 현직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이 짊어져야 했던 짐은 '어떻게 해서든 국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도 만만치 않다. 한반도의 평화와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 위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다. 그것을 위해 굴욕과 혼밥을 감수했다면, 오히려 칭송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물론 '굴욕'과 '혼밥'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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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같은 ‘5.24조치’의 진실을 알고 있다

나는 쓰레기같은 ‘5.24조치’의 진실을 알고 있다
 
[진실의길 Story ⑤] 응징(膺懲)의 진정한 의미
 
신상철 | 2017-12-22 15:52: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6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촛불혁명

 

후세의 역사는 2010년대의 가장 파괴력이 컸던 역사적 사건으로 촛불혁명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2016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촛불혁명’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그 여파로 인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가져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앞 글에서 제가 2010년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꼽았던 세 개의 사건 - 2010 천안함 침몰사건, 2012 대선부정선거, 2014 세월호 사건 - 과 동일 선상에 놓고 그것을 하나의 ‘단일 사건’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오랜 세월 친일매국 세력과 군부독재 잔재들이 만들어 낸 수 많은 부정과 부패 그리고 관습적 비리가 총체적으로 누적된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은 ‘단일 사건’이 아니며 고질적이고 복합적이며 오랜 세월 쌓여온 결과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적폐(積弊)’라고 규정하였던 것이지요.

만약 오래 전부터 그들의 부패와 비리로 양산된 수많은 사건들을 하나씩 밝혀내고 깨어부술 수 있었다면 현 시대에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오랜 적폐(積弊)’의 이면에는 그동안 우리가 그것을 간과했거나, 외면했거나, 역량이 부족하여 밝혀내 처벌하지 못했던 무능함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저는 세월이 흐를수록 ‘2016 최순실 국정농단과 촛불혁명’이라는 명제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의 존재감은 쪼그라들고 ‘촛불혁명’의 의미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세력이 아닌(야당은 더더욱 아닌) 순수 민중의 가녀린 손으로 촛불 하나만을 들고 역사의 물꼬와 흐름을 바꾸어 놓은 ‘아름다운 혁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응징(膺懲)의 진정한 의미

최순실과 박근혜의 몸을 빌어 빙의된 결과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적폐(積弊)’라 정의하였고 그래서 ‘적폐청산(積弊淸算)’이라는 화두는 구태와 패악으로 뭉쳐진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창출시키는 가장 커다란 동력(動力)이요 동인(動因)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 정권은 ‘적폐(積弊)를 밝혀내고 과감하게 청산(淸算)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부여받는 ‘정치권력’인 것입니다. 기분같아서는 민중들이  회초리를 들고 때릴 놈 때리고 세울 것 바로세우고 싶지만 민주국가의 절차가 있으니 그 절차를 존중할 뿐이지요.

정치권력은 그 의미를 존중해야 합니다. 민중이 일구어 낸 혁명의 과제가 무엇인지 새겨야 합니다. 자신들이 잘나서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맨 손으로 적폐덩어리를 무너뜨릴 때 자신들은 녹슨 포크레인 운전면허를 가진 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 정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와 그로인해 구속되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들을 우리가 ‘응징(膺懲)’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응징(膺懲)’이 아닙니다. ‘처벌(處罰)’일 뿐입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 처벌받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응징(膺懲)’이라 말 속에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패악의 뿌리와 근원에 이르기까지 닿아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진실규명(眞實糾明)’이 있어야 함은 물론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들이 완료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서 ‘응징(膺懲)’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세 개의 사건이 갖는 중대한 의미

천안함 침몰사건, 대선부정선거, 세월호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간략하게 기술하겠습니다. 이 세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그에 대한 제도적 보완 그리고 응징(膺懲)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동일한 과오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2010 - 천안함 침몰 사건

‘단순 해난사고’를 ‘범죄 살인사건’으로 둔갑시킨 사건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기관을 총 동원하여 조작을 하고 국민을 속였습니다. 군 당국은 철저히 거짓과 왜곡, 은폐와 조작에 국방부는 철저히 충실하게 가담하였습니다. 국가기관이 모든 권력과 공권력을 동원하여 전 국민을 속인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살인사건’으로 둔갑시켜 졸지에 가해자가 된 북한은 우리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내어야 할 ‘우리 민족의 반쪽’입니다. 천안함 침몰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북한을 살인범으로 만들어놓고 그것을 빌미로 5.24조치를 취해 남북관계를 단절시키고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킨 죄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그 상황에서 남북간의 화해와 대화가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저는 분명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쓰레기같은 5.24조치의 진실을 알고 있다”라고. 항해를 전공하고 해군장교로 복무했으며, 선박을 운항하고 조선소에서 선박을 13척이나 만들었던 제 인생의 소중한 경험과 경력으로 저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기에 북한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인 대한민국 해군은 유사이래 패한 적이 없습니다. 잠수함 잡는 것이 주특기인 초계함이 NLL 가까이에서 경계근무를 수행중 구닥다리 잠수함의 원샷 어뢰공격에 폭침당했다고 스스로 패잔병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며 오늘도 사관생도들에게 거짓된 사실을 교육하고 있는 우리 해군은 23전 23승의 이순신 장군 앞에 무슨 낯으로 설 수 있을까요?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실규명을 통해 국가기관이 국민을 속인 죄에 대한 응징, 민족의 절반을 살인범으로 만든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응징, 세계 해군사에 길이 남을 충무공의 명예와 위상을 훼손한 것에 대한 응징 그리고 우리 해군의 미래를 책임질 간성들에게 거짓과 조작과 왜곡을 가르치고 있는 과오에 대한 응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2012 - 대선 부정 선거

촛불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권이 창출되었지만 ‘현행선거법’이 존재하는 한 부정선거의 불씨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덜 떨어진 사람들이 묻습니다. 2012 대선이 부정선거였고 그래서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면 2017 5월 대선에서 어떻게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느냐고? 그 해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현행선거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혹은 그 일부 조직세력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부정을 통해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완벽한 ‘친(親)부정부패적인 선거제도’입니다. 그 효과는 박빙의 상황에서 극대화됩니다. 2∼3% 초박빙상황에서는 극히 일부분의 부정만으로도 결과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왜 5월대선에서 결과가 뒤집어지지 않았을까요?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정국으로 만들어진 5월대선에서 결과가 뒤집어지려면 적어도 10%대 이상의 부정을 저질러야만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부담을 안고 18대 대선에서 부정을 저질렀던 당사자들이 동일한 부정의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이미 2012 대선결과에 대해 정보공개청구와 자료수집 그리고 완벽한 분석을 끝낸 네티즌들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럼에도 무리수를 두었다면 ‘피를 보는’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려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문제는 없는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언제까지 우리 진영이 10% 이상의 격차를 벌이며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이 땅에서의 대선은 ‘최순실 같은 불멸의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 한 언제나 박빙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벌써 잊은 듯 합니다.

선거관리제도 그 근본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보완이 아니라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던진 소중한 한 표가 온전하게 보전될 수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시절의 3.15 부정선거는 2012 대선에 비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부정이었습니다.

이 순간 그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은 부끄러이 여겨야 할 일입니다. 자신이 던진 한 표가 사라지거나 엉뚱한 곳에 가서 악인을 위해 효자노릇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외면하고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것은 주권국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2014 - 세월호 사건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우리가 그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했더라면 2014 세월호 침몰 때 참사를 피할 수 있었거나 최소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단순 해난사고’라는 진실을 제대로 밝혀냈더라면, 아니 이명박 정권과 김태영 국방장관 그리고 군 당국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거짓하고 은폐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건은 우리가 해난사고를 당했을 때 어떻게 생명을 구해야 할지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침수가 이루어지는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초동 조치를 해야 하는지, 구조와 인양을 위해 어떠한 조직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수중에 가라앉아 있는 선체 내부에 갖힌 인명의 구조를 위해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심지어 선체내부의 에어포켓 확보를 위해 어떠한 새로운 설비가 필요한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한 것은 ‘가해자로 조작된 북한’을 비난하는 일과 국제사회에 거짓된 결과를 공표하며 민족의 반쪽을 음해하는 일과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연합군사훈련에 몰두하는 것만 했습니다. 그 결과는 대형 선박이 침몰하는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속수무책인 현실로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지요.

그리고 구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았던 국가기관은 또 다시 거짓과 은폐로 국민을 속이는 짓을 반복하였습니다. 콘트롤 타워는 무능하고 부실했으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고를 방치하고 키웠습니다. 그 어느 독재국가와 전제국가도 자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토록 방치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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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중대한 사건들에 대하여 그 진실을 규명하지도 않고 그 잘못에 대해 응징하지 않고 우리 역사가 진보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상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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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길 Story

[진실의길 Story ①] 진실을 향한 기나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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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오 의원직 상실은 적폐세력의 정치판결”

“윤종오 의원직 상실은 적폐세력의 정치판결”
 
 
 
편집국
기사입력: 2017/12/22 [22: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중당 대표단들이 윤종오 의원의 의원직 상실형 판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민중당)     © 편집국

 

22일 대법원이 윤종오 민중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최종심에서 벌금 300만원의 원심을 확정했다이로서 윤 의원은 의원직이 상실 됐다.

 

이에 대해 민중당은 오후 3시 국회 정론관에서 대표단 기자회견을 열고 윤종오 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적폐세력의 정치판결” 이라며 민중과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종오 의원은 박근혜 적폐검찰에 놀아난 사법부의 부당한 정치판결이며 진보노동정치를 겁박하려는 명백한 정치탄압이자 거짓판결이라며 분노했다그는 노동자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가장 환영할 세력은 진보정치를 억압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적폐세력이라며 사법적폐를 향한 엄중한 분노로 진보정치를 지지해 주시고 민중직접정치가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 입장을 밝히고 있는 윤종오 의원. (사진 : 민중당)     © 편집국

 

김종훈 상임대표는 오늘은 윤종오 의원이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이 땅의 민주주의를 상실한 날로 기억할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모든 적폐의 중심에 있는 홍준표는 무죄를 선고했고 노동자국회의원 윤종오에게는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다고 지적했다김 대표는 지금도 여전히 적폐는 계속 되고 있고 진보정치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며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이 땅의 열심히 일하면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진보정치를 더욱 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창한 상임대표는 박근혜정부 시절검찰은 노동자 출신이 61.49%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자억지수사 억지기소로 진보정치탄압과 노동탄압을 가했다고 지적하며 검찰과 사법부가 이번 사건에서 보인 입장은 노동자 민중은 정치에 절대 관여하지 말라는 신호이며노동자 민중은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말라는 시대에도 뒤떨어진 행태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김 대표는 비정규직이 차고 넘치고농민들은 삶과 농업주권이 무너지고청년들의 미래가 암담하며한반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윤종오 같은 국회의원이 더없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당은 별도의 논평을 통해서도 윤종오 의원직 상실형에 분노한다며 적폐세력의 정치판결을 민중과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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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오 의원직 상실형에 분노한다.

적폐세력의 정치판결민중과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

 

대법원이 결국 민중당 윤종오 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 형을 선고했다박근혜 정권의 정치검찰과 이명박 정권이 임명한 정치판사의 합작품이다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가 되고 박근혜 적폐청산으로 민중이 기대와 환희에 차 있는 이때진보정치는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민중당 윤종오 의원은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도 위반할 이유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모든 혐의가 그러하지만 유죄취지로 판단한 유사기관 이용사전선거운동 혐의는 결단코 인정할 수 없다컴퓨터전화 등 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주민이용기관이 어찌 유사선거기관이란 말인가진보정치인의 일상생활과 같은 1인 시위가 어찌 사전선거운동이란 말인가상식에 어긋나는 거짓판결에 분함과 서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오늘의 판결은 노동자의 더 큰 분노와 민중의 더 뜨거운 정치열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노동자 민중촛불세력에 대한 반란이자 선전포고이기 때문이다밟으면 밟을수록 질기게 피어나는 것이 민초의 성정이다민중당은 더 크고 단단하게 민중의 힘을 조직해 적폐세력의 준동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오늘의 판결이 민중정치노동자정치를 향한 우리의 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이다잠시 주춤거릴 수는 있지만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본분이다민중당은 가장 낮은 곳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전국 곳곳에서 <윤종오 지키기활동을 벌여온 당원노동자들헌신적으로 연대해 주신 각 계 각 층 시민사회진심어린 걱정을 보내주신 울산 주민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민중당의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해 그 지지를 다시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

 

2017년 12월 22

민 중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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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센터 회원들 눈물 "왜 하필 그때 사우나 갔대"

[현장] "제천 시내가 초상집"... 출입문 오작동·소방당국 대응 문제 지적도

17.12.22 21:33l최종 업데이트 17.12.22 21:33l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현장감식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현장감식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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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도 아침에 오는 손님이거든. 근데 왜 그 시간에 갔어."
"OO씨는 이번주에 오전 근무였대. 다음 주부터는 오후고."
"어떡해... (희생자 명단을 가리키며) 다 아침에 가는 멤버들이야."

22일 오후 3시, 여전히 매캐한 냄새에 둘러싸인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 대여섯 명의 중년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전날 아침에도 이곳에서 운동과 사우나를 했다는 그들은 희생자 명단을 가리키며 "어떡하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들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고 종종 눈물짓기도 했다.

이 스포츠센터는 2011년 7월에 지어졌다. 올해 몇 달간 경매로 문을 닫긴 했지만, 10월에 재개장해서 회원들이 한창 많을 때였다. 회원들은 헬스 회원만 500~600명으로 추측된다고 밝혔고, 사우나만 월정액권을 끊어서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약 6년간 서로 얼굴을 봐왔던 이들은 'OO 엄마'나 별명처럼 불렀던 '직업'을 이야기하며 이웃의 죽음을 슬퍼했다. 

"'아로니아'는 일찍 찾았다며..."
"'닭갈비'도 그렇게 됐대."
"걔는 왜 그 시간에 왔대. 요즘 나랑 계속 아침에 왔는데'"
"요즘에 며칠째 오후에 왔어. 그 시간이 한가하대서."
"아휴 진짜 왜..."

희생자들 시신이 안치된 제일병원에 방금 전 갔다 왔다는 A씨는 눈물을 쏟으며 "여기 사망자 명단에 있는 분 다 아는 사람이다. 아침이 오는 손님이 재수가 없어서 오후에 와서 죽었다"라며 "왜 그 시간에 갔어"라는 말을 반복하며 한탄했다. A씨는 21일 사고 당일 아침에 헬스장에 갔다가 사우나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여기 한동네 사는 사람들인데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만날 만나는 사람이잖아요. 또 여자들 사우나 문화가 있으니까 맛있는 거 있으면 싸 와서 나눠먹고 그랬어요... 지금 제천 시내가 초상집이야.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대요 그래." 
 

 22일 오후 충북 제천 제천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주민들이 현장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22일 오후 충북 제천 제천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주민들이 현장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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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한 B씨, 자동문 안 열리고 비상구 찾기 힘들어

B씨는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씻고 운동을 하려고 스포츠센터에 들렀다. 그는 "주차장 있는 데서 공사하는 걸 보고 올라갔다. 탕에서 씻고 나와서 반소매 반바지인 헬스장 옷만 입은 상태였는데 경보음이 울려서 그 상태로 바로 뛰쳐나왔다. 나올 때 탕 안에는 20명 정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단 5분도 안 돼서 불길이 너무 크게 번졌다. 매점에서 119에 '빨리빨리 오세요'라며 신고하는 것도 들었는데"라며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B씨는 2층 여탕 입구에 설치된 버튼식 자동문의 오작동과 비상구 위치를 참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들어올 때도 자동문이 잘 안 열려서 세 번이나 버튼을 눌렀다고 밝혔다. 연기 때문에 버튼이 안 보일 경우에는 더 문을 작동시키기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했다.

게다가 창고 쪽에 있는 비상구에는 선반 위에 목욕 바구니가 잔뜩 쌓여있었다고 한다. 평소 회원들이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를뿐더러, 목욕 바구니까지 쌓여있으니 그곳을 비상구로 생각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게 B씨의 지적이었다.

"나오기 전에 할머니, 엄마, 딸이 함께 왔다던 그분들을 봤다. 매일 오후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자주 마셨는데..." 

그는 "괜찮냐"는 전화만 50통을 받았다며, 본인이 죽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했다. 사고가 일어난 후 놀라서 한숨도 못 자고 있는 그는 청심환을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2층 통유리 깨면 되는 거 아니었나"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현장의 모습.
▲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현장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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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까지 사우나 월정액 회원이었던 C씨는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화재를 목격했다. 그는 소방당국의 해명(관련 기사: "LPG 탱크 폭발 방지가 먼저... 구조요원도 4명뿐")에도 그는 "2층 창문을 안 깬 게 이해가 안 간다"라며 분노했다. 

"3시 55분 정도에 차가 터지는 소리가 펑펑펑 났다. 그 이후에 소방차 세 대가 왔는데 제가 보기에는 물 뿌렸을 때는 아직 연기가 안 나왔을 때였다. 한 대가 물만 뿌리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고가 사다리도 필요 없고, 얼마든지 나머지 소방차들로 2층으로 사다리를 놓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람도 한쪽으로만 불었기 때문에 불길을 피해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나도 여기 다녀봐서 구조를 알지만 2층 창문 깨면 적어도 구하러 왔다는 신호는 줄 수 있었다. 사다리를 놓는다는 좋은 방법을 두고 왜 안했을까"라며 "소방차가 왔을 때는 이미 주차된 차도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때도 늦지 않았는데 핑계를 대고 있다"며 소방당국을 비난했다. 

C씨 역시 여탕 자동문에 대해 지적했다. "그 자동문은 예전부터 작동이 잘 안됐다"며 대피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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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대북접촉 예비심사 민간기구에 위임해야"

민화협 '통일국민협약 2017공동회의', "남북협력기금도 통일협약기구에"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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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2  23: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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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21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2017 공동회의-통일국민협약과 지속가능한 대북.통일정책'을 주제로 2017 공동회의를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남북 사회문화교류를 위해서는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법의 대북접촉 신고 조항 등을 개정해 실질적인 신고제로 전환하고 나아가 (가칭)사회문화교류발전위원회와 같은 민간참여 독립기구를 설립해 이 기구에 예비심사를 위임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는 21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대표의장 김홍걸) 주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2017 공동회의-통일국민협약과 지속가능한 대북·통일정책'에서 '남북사회문화교류의 내용과 추진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사회문화교류 관련 '통일국민협약'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의 2 제1항은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과 회합·통신, 접촉하려면 통일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하는데, 다만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접촉 후 신고할 수 있도록  '사전·사후 신고제' 규정을 두고 있으나 제3항에서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 등이 있을 때는 통일부 장관의 권한으로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바람에 '수리거부는 곧 불허'가 되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어온 불합리를 개선하자는 것.

또 현재 정부에서 운영하는 1조 9,707억원 규모(2017.11월 현재)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앞으로는 통일국민협약 이행기구인 (가칭)남북사회문화교류발전협회가 일부 운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남북 사회문화교류의 토대를 강화하고 자원 확충을 통해 대북 협상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남북 사회문화교류'에 대해서는 "분단구조로 인한 남북간의 차이와 갈등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사회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며, 남북간의 상호 변화와 발전, 신뢰 증진을 추구해 나가는 다방면의 교류협력 행위"라고 정의했다.

물론 이같은 제안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별개로 민간교류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정부는 민간교류를 적극 지원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이승환 대표는 북한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이에 한미 당국이 '최대의 압박'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사회문화교류는 많은 제약이 있지만,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당국이 남북교류에 대한 민간의 판단과 인·허가를 사실상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당국 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민간을 통한 통한 유효한 대북정책 지렛대를 확보하는데 실패하거나 대북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이 불가능했던 경험, 그리고 일부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접촉을 통한 상호 변화'에 호감을 갖는 상당한 동의기반을 감안하면, 사회문화교류에 대한 사회적 합의 가능성은 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회문화교류는 국민 동의의 기반이 가장 넓은 사안을 중심으로 내용을 점차 확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위안부문제나 독도문제 등 남북공동대응이 가능한 정치적 교류도 단계적 추진에 얽매이지 말고 병행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민·관을 분리하고 민간의 다양성 실현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 변화에 대한 다층적인 접근경로를 확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서 민주주의의 확장이자, 우리 사회가 가진 대북정책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민간교류의 독립성 보장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 변화의 다층적 통로를 확보하고 통일과정에서 시민참여와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원칙"이자, "사회문화교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추진의 본질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또 민·관을 분리해 협력적 거버넌스를 창출하는 것은 민간 역시 남북관계 운영과 한반도 평화의 책임있는 행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정부가 대북 통일정책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일정한 권한을 위임하여 남북관계 운영에서 정부 일방주의, 또는 직접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조합주의적(Corporatism) 대안체제'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사회문화교류 관련 사회적 합의의 핵심내용은 결국 '다층적인 북한 변화 경로의 확보를 위한 민·관분리의 제도화'라고 규정했다. 

이어 통일국민협약의 주요내용으로 교류 주체들이 교류의 내용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는 한편 평화와 안보·지속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회문화교류를 추진할 의무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문화교류의 발전과 지원을 위해 정부와 민간 교류 주체 사이에 일종의 조합주의 기구이고 협약추진기구이자, 협약이행의 주체인 (가칭)남북사회문화교류발전협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정이 단순히 기구나 조직을 만드는 일로 되어서는 냉소적 반응을 극복하기 어렵기때문에 시민사회 차원에서 분야별, 주체별로 분산 파편화된 사회문화교류 역량을 집약시키는 과정이 되도록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는 이날 사회문화교류의 역진방지를 막는 제도화를 위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북접촉 절차를 실질적인 신고제로 전환하고 나아가 민간 독립기구에 예비심사권한을 위임하자는 등의 제안을 내놓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어 각 분야 통일국민협약 추진이 구체적인 이행단계에 들어서면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과 정당·사회단체 협의체인 민화협, 6.15남측위원회, 한국자유총연맹, 통일부 주도의 민족통일중앙협의회 등 각종 협약기구의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편에 대한 법적 검토와 여러 논의는 신중히 처리해야 하겠지만 통일국민협약을 추진하는 궁극적 목표가 '협약적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것인만큼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의 협력적 관계에 의한 국가운영은 그 협약적 거버넌스가 실현된 '협약이행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협약이행단계에서는 관련 기능과 역량이 그곳으로 집중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남한 사회 내부의 정부와 시민사회관계에서 맺어진 통일국민협약은 결국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통일분야 사회협약 정치는 남북관계 협약체제로 확산될 수 밖에 없으므로 남북 양 정부와 남의 시민사회 사이의 협약관계까지 염두에 두는 포괄적 시야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남북기본합의서나 6.15공동선언과 같은 남북 당국간 협약은 물론 1989년 고 문익환 목사가 북을 방문해 발표한 4.2공동코뮤니케 처럼 남의 민간과 북 당국이 맺은 협약도 있고 2000년 이후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등 남북 해당기관과 단체간 협약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협약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당국간 협약에 비해 지속성과 제도적 수준은 떨어질 수 있지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도 일정한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두루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국내적으로는 '통일국민협약', 남북관계에서는 '남북기본협정'으로 도식화해 펼치는 주장은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당국관계 중심으로만 보는 견해라고 지적했다. 

노태우정부가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보듯이 당국 차원에서 대강(大綱) 방식으로 협약이 체결되는 경우 내용의 구체성 여부를 떠나 그 이행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동력이 당국관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남북관계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민간이 주체가 되어 각 분야별로 협약을 맺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한반도평화와 번영을 위한 2017공동회의'는 민화협 소속 200여 정당·시민사회단체가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연간 정례회의이며, 김홍걸 신임 상임대표의장 취임 이후 처음 열린 올해 회의의 주제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남북기본협정 체결 등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목표로 한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 분야 16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인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에서 착안한 '통일국민협약과 지속가능한 대북·통일정책'으로 정해졌다.

이정철 숭실대학교 교수가 '통일국민협약 프로세스와 통일정책-사회협약형 패러다임의 구축'을 주제로,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이 '대북인도협력 분야의 내용과 추진과제'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부설 한국여성평화연구원 원장, 정도상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과 임헌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세원 연세대학교 학생이 각각 여성·문화·시민사회·법조·청년을 대표해 '통일국민협약과 지속가능한 대북·통일정책' 주제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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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 ‘예루살렘 지위변경 반대’ 결의안 압도적 채택

찬성 128개국, 반대 9개국… 구속력 없지만 국제사회 ‘미국 전횡’ 규탄여론 확인
▲지난달 1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 모습. 이날 유엔총회에선 2018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대회 휴전결의안을 채택했다. [사진 : 뉴시스]

유엔이 21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다. 예루살렘의 지위를 바꾸려는 어떤 조치와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유엔총회는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해당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28표, 반대 9표, 기권 35표로 통과시켰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21개 나라가 표결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과반 찬성으로 채택된다.

이날 채택된 결의안엔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이란 낱말이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예루살렘의 지위와 관련한 최근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긴급회의는 아랍 국가들과 터키 등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들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결의안은 구속력은 없지만 미국의 결정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재확인하는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된다고 VOA는 분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표결이 끝난 뒤 표결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면서 “이스라엘과 진실을 지지해준” 트럼프 대통령과 헤일리 대사에게 감사를 표한다며 “결국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반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는 환영의 뜻을 전했다. 파지 바르훔 하마스 대변인은 “이번 결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타격을 줬다”며 “결의안은 팔레스타인이 신성한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밝혔다고 뉴시스가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전 “일부 국가들이 미국에게서 상당한 원조를 받으면서도 미국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며 “미국은 이번 표결을 지켜볼 것”이라고 원조 중단을 경고하는 등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미국은 각국의 표결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트럼프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압도적 다수의 국가들이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전횡을 단죄한 것이다.

앞서 지난 18일 유엔 안보리에서도 이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않았다. 반면 유엔총회는 안보리와 달리 특정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고 각국은 1표만 행사할 수 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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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구리 기르느라 소 키우게 된 사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2/22 12:45
  • 수정일
    2017/12/22 12: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소똥구리 기르느라 소 키우게 된 사연

이강운 2017. 12. 22
조회수 82 추천수 0
 
신선한 똥 구하려 방목지 헤매다 결정
멸종위기 애기뿔소똥구리 증식 필수 요원
 
c1.jpg»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방목지에서 풀만 먹고 자라는 횡성 한우 코프리스와 한우를 이강운 소장이 살펴보고 있다. 이 소는 방목지를 뛰어놀며 풀을 먹고 신선한 똥만 싸면 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이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연구소는 북극의 어느 외딴곳 같다. 겨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영하 15~17도의 혹독한 추위가 열흘 이상 이어지고, 햇살은 투명하지만 어둠이 깊고 깊어 온통 침묵의 시간이 계속된다. 겨울 끝에 다다라 힘을 다해 내일부터 얼음은 녹을 것이고 해가 길어질 것이다. 오늘은 동지(冬至). 
 
녹색의 숲이 아닌 얼음과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이 어우러진 흑백의 생태계라 담백하다. 얼음과 눈이 압도하는 혹한의 겨울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빙하기 곤충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씩씩하게 몸을 놀린다. 극한의 매섭고 차가운 바람을 맞고 저 애벌레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인간적인 걱정이 앞서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러한 추위가 필요하다. 
 
c2.jpg» 19일 드론으로 촬영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전경.
 
소똥구리 취재차 연구소에 방문한 방송국 드론으로 눈 덮인 아름다운 흰색 세상을 하늘에서 본다. 깨끗한 겨울의 햇빛을 받아 비단처럼 눈부시게 반짝이지만 눈을 돌려 연구소 실험실을 바라보면 ‘일’이 된다. 망으로 씌운 야외 곤충실험실은 자칫 무거운 눈 무게에 무너질 수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망 위의 눈을 털어내느라 연구소 모든 식구가 총출동이다. 촘촘하게 파이프로 살을 넣어 튼튼하게 만들었지만 지름 30m에 높이가 15m이니 눈이나 눈이 녹아 언 얼음이 얹히게 되면 폭삭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을 털어내려면 긴 장대에 솜뭉치를 달아 위를 쳐다보며 털어내야 하니 목은 비틀리고 손목은 시다.
 
c3.jpg» 눈에 덮인 야외 곤충실험실.
 
c4.jpg» 야외 곤충실험실의 지붕이 무너지지 않도록 눈과 얼음을 털어내는 것도 큰 일이다.
 
눈 내리면 쌓이는 눈, 꼭 그만큼 힘이 들고 고생을 하지만 그래도 ‘눈’ 참 예쁘다! 
 
12월부터 2월 말까지 횡성 한우 ‘코프리스’와 ‘업쇠’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한겨울에는 방목지에 나가 마음껏 풀을 뜯어 먹지 못하므로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삼시 세끼 꼬박 챙겨주어야 하고, 요즘처럼 강추위가 계속되면 먹는 물이 얼어버려 수시로 보온 물통에 미지근한 물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멸종위기 곤충 애기뿔소똥구리의 신선한 먹이 때문에 키우지만 사실은 소똥구리 키우는 일이 소를 키우는 일과 같으므로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c5.jpg»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애기뿔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이 곤충의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증식과 복원 사업을 한다.
 
올해를 빛낸 세 곤충: 식용곤충, 외래종붉은불개미, 그리고 최근의 소똥구리 
 
며칠 전에 환경부가 '소똥구리 5000만 원어치 삽니다' 공고를 낸 이후로 폭발적인 국민적 관심과 오해를 받고 있다. 그 많던 소똥구리는 어디로 갔고 왜 멸종되었나? 그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국가 간 양해각서를 통해 도입이 가능할 텐데 굳이 민간을 통해서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축 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에이급 바이러스로 지정된 구제역이나 인수공통전염병인 부루세라 등 잠재적 위험이 큰 병을 매개할 수 있는 소똥구리를 왜 도입하려 하는가? 크게 3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c6.jpg» 환경부가 공개입찰을 통해 종 복원을 위해 구입을 추진 중인 소똥구리. 흔하게 있었지만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소는 늘어나는데 소똥구리는 줄어들거나 멸종한다? 그중에서도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만 왜 멸종했는지 궁금한데 답은 주지 않고 사행심만 조장하는 이벤트가 되어 버렸다. 몽골에서 가져와도 됩니까? 몇 달 전에 시골 마당에서 소똥구리를 봤는데요. 진짜 5000만원 줍니까?
 
c7.jpg» 방목지에서 애기뿔소똥구리와 함께 발견되는 뿔소똥구리.
 
사실 소똥구리는 고단하다. 초식 동물 배설물이 풍부한 드넓은 서식지가 살 곳인데 마음 놓고 편안히 살 데는 없다. 소를 살찌우겠다고 비좁은 축사에 모두 집어넣고 동물성 사료를 주면서 소가 미쳤고, 동물성 사료를 주지 못하게 막으니 대체한다고 곡물 사료를 주는데 이 또한 초식성 동물인 소에겐 맞지 않는 사육 방법이다. 곡물 사료를 먹은 소의 똥은 소똥이라도 먹을 수 없어 소똥구리는 허기지다. 
 
신선한 똥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똥 먹는 집파리와 똥파리는 너무 많고 강해 먹이인 똥을 뺏기기 일쑤다. 가까스로 똥을 구해도 빨리 말라버려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똥 먹는 소똥구리들은 똥 덩어리가 말라붙어 못쓰기 전에 잘 먹을 수 있는 특이한 저장 행동을 한다.
 
c8.jpg» 창뿔소똥구리. 배설물 속에서 경단을 만들어 알을 낳는다.
 
어떤 놈은 똥 덩어리를 둥글게 말아 멀리 굴려간 뒤에 땅 밑에 묻고(소똥구리, 왕소똥구리), 어떤 놈은 똥 밑으로 굴을 미리 파고 터널 맨 끝에 동그란 똥 덩어리를 채워 넣는다(뿔소똥구리, 애기뿔소똥구리). 또 어떤 놈은 똥 속에서 경단을 만들어 직접 알을 낳는다(창뿔소똥구리). 이렇게 하면 똥을 더 오래 먹을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자신만의 서식지도 만들 뿐만 아니라 새끼를 천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지하 벙커를 세우는 셈이다. 힘들게 똥을 지고 나르고 땅을 파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 까닭이다. 
 
왜 똥 굴리는 소똥구리만 멸종했지?
 
c9.jpg» 왕소똥구리. 과거엔 한반도에 흔했지만 이제는 사라졌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활동하는 소똥구리와 왕소똥구리는 눈에 잘 띄므로 천적인 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된다. ‘먹을 게 부족해 몇 마리 없는 데다가 소 꽁무니 쫓아다니며 소똥구리 잡아먹는 백로가 이들을 멸종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밤에 활동하며 이동을 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뿔소똥구리, 애기뿔소똥구리가 그나마 조금 살아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소를 비육하기 위해 축사에 가둬놓고 곡물 사료로 키우면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소똥 자체가 없어지므로 결국 멸종할 것이다. 이들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c10.jpg» 소똥 경단 속에서 태어난 애기뿔소똥구리 애벌레.
 
먹고, 새끼 키울 경단 만들고, 그 경단 속에서 애벌레가 먹고 다시 어른이 된다. 서식지이자 평생 먹거리인 소똥은 소똥구리에게 전부인데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소똥구리를 키울 것인가? 고달프더라도 세월을 거꾸로 돌려 옛 방식으로 갯가에 매어놓거나 산에 풀어 놓고 키우는 수밖에.
 
15년 전 소를 방목해 키우겠다고 하자 동네 어른들은 그깟 벌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고 나무라기도 하고,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클 거라고 걱정을 해 주셨다. 방목하는 축산 농가의 허락을 어렵게 받아 소똥을 통 몇 개에 나누어 고개를 넘고 산을 지나 들고 다녔다. 구제역이나 브루셀라 같은 질병 때문에 늘 농장주의 눈치를 봐야 했고, 팔이 떨어질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이 뒤따랐다. 소똥구리 키우겠다고 신선한 소똥을 구하러 이곳저곳의 방목지를 헤매며 애태우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떠한 충고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15년 전 조성한 약 1만여 평의 방목지에 소가 잘 놀고 있고, 그 소똥을 받아 멸종위기 곤충 애기뿔소똥구리가 잘 자라고 있다.
 
c11.jpg» 창뿔소똥구리 애벌레.
 
둘째 아이 대학 논술시험을 준비할 때 특별히 과외를 시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자기 생각을 전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주제가 나오든 소똥구리 이야기로 묶으라고. 소똥구리 진한 녹색 똥을 만지며 앞으로 복원될 소똥구리로 행복했던, 아빠와 방목지를 돌아다니던 이야기를 썼다 한다. 소재가 특별했던지 서울교대에 입학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 소똥구리가 준 은혜.
 
c12.jpg» 세계에서 가장 큰 타이의 소똥구리는 애기뿔소똥구리보다 4∼5배 크다.
 
21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 유학을 추진했고 여러 대학에서 입학 허가와 장학금을 받기로 했다. 그때,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극렬히 반대했다. 똥지게를 지더라도 내 나라가 낫지 외국은 안 된다며. 약 5년 정도 공부하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아마도 당신 딸이 고생할 걸 걱정하셨던 것 같은데. 꼭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강원도 연구소를 차리게 됐다. 
 
장인어른 말씀대로 지금도 똥지게를 지고 산다. 소똥구리 때문에.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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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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