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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밭 그물, 새들에겐 ‘죽음의 덫’

김봉균 2018. 01. 02
조회수 390 추천수 0
 
새매, 물까치 등 걸려 서서히 죽어가
제구실 못해도 방치, 주인·당국 무관심
 
b8.JPG» 법정 보호종 새매가 밭 그물에 몸이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다.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회색빛 건물과 유리창이 즐비하고, 눈부신 빛과 굉음을 내뿜으며 내달리는 자동차와 도로 역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녀석들은 가던 길을 갔을 뿐인데, 무언가에 의해 이동에 방해를 받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 큰 사고를 겪기도 한다. 위험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밭 그물도 그 하나이다.
 
b1.JPG»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밭 그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보니 저 멀리 밭 그물에 무언가가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천연기념물 제323-4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에 지정된 법정 보호종 맹금류인 새매였다. 녀석은 거꾸로 매달린 채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b2.JPG» 밭 그물에 얽힌 새매는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서서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부림칠 수 없도록 포획한 뒤 자세히 살펴보았다. 얇고 날카로운 줄이 발과 날개, 몸통에까지 어지럽게 감겨있었다. 녀석이 스스로 줄을 풀어내고 탈출하기란 불가능했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서히 목숨을 잃어갔을 녀석이지만, 이 모습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은 신고자 덕분에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녀석을 구조한 뒤 주변을 살펴보았다. 밭 그물은 약 100m가 조금 넘는 길이로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짧은 길이의 그물에 법정 보호종 맹금류 3구, 까치·물까치를 비롯한 참새목 조류 6구 등 총 9구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고작 100m의 밭 그물을 딱 한 번 관찰했을 뿐인데, 살아있는 새매까지 총 10마리의 새가 걸려 있는 거로 보아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이와 같은 피해를 겪을지 예상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밭 그물은 너무 얇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물을 처음 겪는 새들에겐 몸이 엉키고 나서야 장애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3.jpg» 또 다른 새매는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물에 걸린 채 죽은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닷속에 버려진 폐그물에 끝없이 생물이 걸려드는 ‘죽음의 덫’이 떠올랐다. 이미 명을 다한 새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 사체를 먹기 위해 접근할지 모를 또 다른 야생동물이 걱정스러웠다. 
 
실제로 그랬을 수 있다. 과수를 먹기 위해 접근한 참새목 조류가 먼저 그물에 걸려 피해를 보고, 이후 이 새들을 먹이로 삼는 상위 포식자가 접근했다가 미처 그물을 알아채지 못하고 엉켜버렸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측도 가능하다. 사체가 소비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지 모를 질병의 전파까지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b5.JPG
 
b4.JPG»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체는 자칫 또 다른 2차 사고를 야기할지 모른다. 그물에 걸린 물까치(위)와 까치.
 
밭 그물은 애초 야생동물로부터 농작물이나 과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한다. 하지만 이 과수원에 설치된 밭 그물은 사실상 그 목적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듯 그물 곳곳이 찢어지거나 말려 올라 있어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오히려 폐그물처럼 너저분하게 널려있어 불특정 다수의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과수 피해를 우려하는 농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법정보호종인 야생동물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생물이 무차별적 피해를 겪고 있다면 그런 밭 그물은 제거함이 마땅하다. 당국은 더는 운영하고 있지 않은 과수원 등의 그물이 애초 설치목적과 어긋난다면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b6.jpg» 아랫부분이 거의 말려 올라가 야생동물을 막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상태인 밭 그물.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농작물 피해를 우려해 설치한 시설물에 대해 철거나 보수, 교체를 지도·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게 몇몇 관련 부서의 입장이다. 사실상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그물이지만, 그마저도 철거를 권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물의 사용 및 선택에 부분적 제한을 하거나,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점검 혹은 신고에 따라 적어도 버려진 밭 그물을 수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농민에게 관련 내용을 주기적으로 교육해 권고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현재로써는 농민들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물의 두께를 굵은 것으로 사용해 야생동물이 쉽게 그물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거나, 부드러운 재질을 이용해 신체가 걸리더라도 조금은 더 쉽게 빠져나가고 신체 손상이 덜 입도록 배려할 수는 없을까. 또 더는 필요치 않은 밭 그물을 깨끗하게 철거한다면 야생동물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밭 그물 설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생동물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 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이동권과 생존권만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밭 그물을 설치한 농민을 탓하기보다는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를 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밭 그물의 설치가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지, 자신의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끼치는 야생동물을 죽여 없애고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피해를 겪는 농민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b7.JPG» 구조한 새매의 몸 구석구석에서 그물을 어렵게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 사이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결코 뗄 수 없는 문제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은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오를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을 갖춰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됐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은 자연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에 이끌린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다.
 
단지, 야생동물도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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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 성패, 국방부에 달려있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대화 모멘텀 미국 협조가 필수"
2018.01.03 10:22:16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신년사를 발표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원론적 차원의 언급이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대화 제의를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 제의를 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난해 6월부터 북한에 지속적으로 보낸 문 대통령 메시지에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축사에서 북한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참석을 언급했다. 이후 7월 6일(현지 시각)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도 이를 반복했고 12월 19일 미국 방송 NBC와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한미 양국도 올림픽 기간에 예정돼있는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신년사 발표 이후 2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오는 9일 판문점에서 고위급 남북 당국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신년사에서 시급하게 만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굳이 오랜 시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며 적절한 제안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실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 사실상의 전제조건으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 또는 취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훈련의 중단 또는 취소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미국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훈련을 중단하면 무기 판매를 통한 매상 실적이 줄어든다. 한국의 방위산업 쪽도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라며 미국이 훈련 중단이나 취소에 합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측했다.  
 
그는 "또 실제 훈련과 관련한 합의는 통일부가 아니라 국방부가 해야 하는데 참수부대 창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국방부 장관이 미국과 훈련 규모를 축소하자는 이야기를 미국과 하고 싶을까?"라고 반문했다.  
 
정 전 장관은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방부에 확실한 지시를 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하면 '처삼촌 벌초하듯' 일이 진행될 것"이라며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중단하든, 남북 회담의 성공 여부는 국방부가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존에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미국으로 가는 남한 열차'를 탄 것 같습니다. 신년사에서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며 남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올해 대화 공세를 벌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던 부분입니다. 지난해 북한은 남북관계를 틀어막고 미국과 '일전불사'(一戰不辭)의 자세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남한과 대화든 민간교류든 응할 생각이 없다고 했죠. 실제 북한은 지난해 11월 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급인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뒤 '국가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난 올해 1월 1일 대화 공세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신년사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남북 대화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직접 언급하면서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고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낸 배경에는 당장 1월 29일에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 엔트리가 마감된다는 시일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신년사에서 시급하게 만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남한 정부 입장에서도 굳이 오랜 시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신년사 발표 다음날인 오늘(2일)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올림픽 참가에 대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사실 이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6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축사에서 북한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참석을 언급했습니다. 이후 7월 6일(현지 시각)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도 이야기했고 12월 19일 미국 방송 NBC와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한미 양국도 올림픽 기간에 예정돼있는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김정은의 이번 신년사는 지난해 6월부터 북한에 지속적으로 보낸 문 대통령 메시지에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정부는 고위급 회담 제의에서 회담의 격이나 의제를 상당히 열어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때문에 누가 남북 수석대표가 될 것이냐를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세현 : 회담의 수석대표는 장관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0년대 초에 열렸던 총리급 회담에 대해 남한은 남북 총리급, 북쪽은 북남 고위급 회담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총리급 회담을 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남한은 통일부 장관이 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평창 올림픽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등을 논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방부 등이 회담대표로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조 장관이 남북의 '상호 관심사'를 의제로 했기 때문에 평창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안이 회담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북한이 우리 쪽에 제기할 의제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아직 북한의 공식 응답은 없습니다. 판문점 연락 채널도 받지 않고 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시급하게 남북 당국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연락을 받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북한은 일단 회담 수석대표를 총리급으로 할지, 장관급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는 점을 북한이 잘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의도를 북한이 읽었다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나와서 조명균 장관과 장관급 회담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회담 의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당장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체육회담과 지난해 7월 남한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회담 모두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이번 남북대화는 평화적인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만나는 것으로 한정하고 체육회담과 군사회담만 할 것이냐 등을 고민할 것으로 보입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일 북한에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남북 고위급회담, 결국 국방부에 달렸다 

프레시안 : 북한이 평창 올림픽 참가 의지를 보였지만,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어떻게 될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확정지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올림픽을 계기로 군사훈련을 올해만이라도 중단시키면 자기들은 남는 장사라고 계산하고 오는 것일 겁니다. 결국 회담이 성사된다면 남한으로부터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에 대한 확답을 받고 싶어 할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올해 정권 수립 70돌이라는 점을 맨 앞부분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평창 올림픽을 언급하면서 '민족적 경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평창 올림픽과 자신들의 정권 수립일인 9.9절을 평화롭고 성대하게 치르자는 취지로 말을 꺼낸 겁니다.  

따라서 북한은 9.9절과 관련, 8월 중하순으로 예정된 또 다른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얻으려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는데,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훈련 중단은 어렵다고 못을 박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과 회담에서 훈련 중단이라는 답을 얻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키리졸브/폴이글' 훈련 중단도 고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UFG 훈련 중단까지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올해 계획된 모든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은 북한이 바라는 최대치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일단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없을 경우" 훈련 연기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사실 연기는 북한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카드가 아닙니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통해 받게 되는 군사적 압박뿐만 아니라, 이 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훈련을 해야 하는 것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에 적잖은 자원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훈련이 중단이나 취소가 아닌, 연기만 된다면 북한이 받는 군사적 압력과 경제적 불이익은 그 시기만 달라지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훈련 중단이나 취소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훈련 규모를 축소하는 수준에서의 타협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합의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미국이 훈련 축소까지 합의해줄지 의문입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지난해 12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동맹국으로서 (한미 연합) 연습과 관련한 동맹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훈련 내용을 건드리는 것에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훈련을 축소하면 미국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무기 판매를 통한 매상 실적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방위산업 쪽도 마찬가지 입장일 겁니다.  

또 실제 훈련과 관련한 협의는 국방부가 해야 합니다. 통일부가 나서서 미국 국방부와 훈련 문제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데 국방부 입장에서는 참 내키지 않는 일이 될 겁니다. 참수부대 창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국방부 장관이 미국과 훈련 규모를 축소하자는 이야기를 미국과 하고 싶을까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방부에 확실한 지시를 해야 합니다. 통일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하면 '처 삼촌 벌초하듯' 일이 진행될 겁니다. 결국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중단하든, 남북 회담의 성공 여부는 국방부가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동맹국인 한국 고려해 융통성 발휘해야 

프레시안 : 여러 우려 요인이 있습니다만 일단 회담이 이뤄진다면 우선은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대표단 문제부터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대표단은 북쪽에서 꾸릴 일인데 선수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이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와일드카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수단 외에 응원단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의 대표단 중에 어느 정도의 인사가 내려올 것인지를 두고도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일단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정도가 방문할 것 같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정도가 방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아무리 동생이라도 직책에 맞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대표단의 단장으로 내려오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결국 군사 문제에 대한 남북간 협의 결과에 따라 연동되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정부가 '관심사항'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면서 의제에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논의될까요? 

정세현 : 남북회담이 열리고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면, 그 과정에서 북한은 반드시 이 주제를 꺼낼 겁니다.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 발표된 5.24조치 문제를 먼저 제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래왕(왕래)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것 역시 민간인의 방북을 제한하고 있는 5.24조치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어쨌든 정부 입장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북한과 대화의 실마리를 잡았으니까 계속 이걸 놓치지 말고 가져가야 할텐데요.  

정세현 : 문재인 정부가 이 불씨를 잘 살려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핵심은 미국의 협조입니다. 사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데 북한의 대화 제의에 남한이 호응하면서 대화국면으로 넘어가면 압박과 제재에 김빠지는 느낌이 들겁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이러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두고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최근 갈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선박들이 북한에 선박 이전 형태로 정유 제품을 공급했다는 의혹을 미국이 제기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일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상임이사국들이 대놓고 갈등을 드러내면 제재 결의에 구멍이 나고 바람이 샐 수 있습니다. 

제재와 압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가 또 발생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추후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인공위성이라는 구실로 ICBM급 미사일을 또 쏘면 국제적인 제재가 필요한데, 미국이 이런식으로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협조해줄까요? 이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제재와 압박에 굴복해 남한에 손을 내밀었다는 관측도 있는데요. 

정세현 : 원인이 어디에 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남한을 지지하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규모를 축소해주고 남북회담의 지속성을 보장해 준다면 대화 분위기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그 결과를 미국에 전하면서 미북 간 접점을 만들면 양자회담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에 대해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한국 정부에 남북관계를 좀 잘해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봄과 가을 훈련을 축소하든지 연기하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해주기도 해야 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아베, 평창 올림픽 불참의 후과 생각해야 

레시안 : 그런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이 합의(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면서 사실상 파기 또는 재협상 의사를 밝혔는데요. 그러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평창 올림픽 참가를 위안부 합의와 연계시키면서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아베 총리가 지금 당장은 저렇게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미국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창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총리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아베 총리의 행동이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아베 총리가 잘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 피해자들 입장에서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공언하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시 대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이와 유사한 입장이었습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누가 됐든 위안부 합의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합의는 1㎜ 도 움직일 수 없다구요? 누구보다 국내 정치를 우선시하는 아베 총리가 한국 국내 여론과 정치도 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역사는 역사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분리한다는 '투 트랙' 외교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건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은 입장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런 부분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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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MB집 '깔따구 집회'... 시궁창 펄도 떠간다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4대강 독립군이 MB에게 보내는 공개 초대장

18.01.03 09:13l최종 업데이트 18.01.03 10:03l

 

이명박씨, 안녕하시지요?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들이 무술년 새해 벽두에 당신을 당신의 집 앞으로 초대합니다. 1월 6일(토요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학동 근린공원입니다. 당신 집에서 불과 2~3분 거리인 150m 떨어진 곳입니다. 당신에게 줄 특별 초대장도 준비했습니다. 행사가 열리기 전에 아주 이색적인 선물과 함께 직접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4대강 독립군'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초대장.
▲  '4대강 독립군'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초대장.
ⓒ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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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초대] 당신 집 앞 150m

당신을 초대한 사람들은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입니다. '금강 요정' 김종술 기자와 '낙동강 지킴이' 정수근 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4대강 백서'를 만드는 이철재 기자(전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입니다. 당신 손아귀에서 4대강을 해방시키려고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싸워온 사람입니다. 

사회는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맡습니다. 당신이 비밀 군사작전처럼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때 경기 여주 이포보에 올라가 장기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인물이죠. 4대강 독립군들은 이날 공원에서 조촐한 길거리 강연을 합니다. 2018년 2월경에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감사원의 4대강 4차 감사 결과를 앞둔 '죽음의 강 보고대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4대강 사업 공사중일 때 장기간 고공농성을 했던 이포보에 걸린 현수막.
▲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4대강 사업 공사중일 때 장기간 고공농성을 했던 이포보에 걸린 현수막.
ⓒ 복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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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독립군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당신의 이 말, 기억하시는지요? 

 

"저 물에 커피 타 먹고 싶다."

당신이 몇 해 전 달성보를 방문한 자리에서 낙동강 물을 가리키며 한 말입니다. 바로 그 썩은 물도 떠 가겠습니다. 강바닥에서 막 캐낸 2018년 1월산 '실지렁이'와 '깔따구' 전시회도 엽니다. 4대강 시궁창 펄에서 사는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입니다. 악취가 나기에 밀봉된 유리병에 담아갑니다. 그 상태에서도 몇 주 동안 생존하는 산소 제로지대의 생명체들입니다.     
 

 금강이 시커먼 펄 속에는 붉은 깔따구가 산다. 환경부가 공식 지정한 최악의 수질지표종이다.
▲  금강이 시커먼 펄 속에는 붉은 깔따구가 산다. 환경부가 공식 지정한 최악의 수질지표종이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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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오지 않는다면 빈자리는 시민들이 채워줄 겁니다. 4대강의 상징색이 된 녹색등을 핸드폰에 띄워놓고 당신 집으로 행진도 할 겁니다. 당신에게 세배하러 가는 게 아니라 4대강을 망친 책임을 묻고, 처벌을 요구하는 분노의 행렬입니다. 새해 적폐청산의 시작을 알리는 행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함께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다큐의 한 장면] "지금 당장 지우라니까요!" 

이명박씨, 
새해가 밝았지만 안녕치는 못할 겁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이 쇄도하고 있지요. 당신을 옥죄는 검찰 수사망도 마음에 걸릴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0년 동안의 '4대강 흑역사'인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데, 소식 들으셨나요? 많은 시민들이 격려하고 후원까지 해주고 계십니다. '이명박근혜 4대강'을 파헤쳐달라는 주문입니다.

그래서입니다. 오마이TV 4대강 다큐 제작팀은 지난 10년 동안 당신과 함께 승승장구했던 4대강 부역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이 '4대강 부역자 S급(스페셜)'으로 선정한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을 2017년 12월 18일에 만났습니다. 4대강은 망가졌지만, 그는 오케스트라 단장까지 하면서 잘 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궁금해하실 수 있기에 다큐로 만들어질 한 장면만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해(2017년) 12월 18일에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은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공연 행사장에 나타났다.
▲  지난해(2017년) 12월 18일에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은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공연 행사장에 나타났다.
ⓒ 안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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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경찰을 부르시죠."

그날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가 말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죠. 임무를 완수한 오마이TV 4대강 다큐 제작팀 안민식 기자는 빠른 걸음으로 강남의 한 호텔 행사장 앞 5층 로비를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오케스트라 행사 기획자라고 밝힌 사람이 달려가 안 기자의 외투를 낚아채더군요. 안 기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카메라를 품속에 넣고 필사적으로 방어했죠. 

"그거, 당장 지우세요. 지금 당장 지우라니까요!"

그는 거칠게 몰아붙였습니다. 이 전 장관과 자기가 찍힌 행사 관련 영상을 카메라에서 지우라는 요구였습니다. 두 기자는 대여섯 명에게 둘러싸였습니다. 호텔 경비원도 달려왔습니다. 안 기자는 "못 지우겠다"고 버텼습니다. 10여 분간 거친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행사 관계자들이 늘어났죠. 상황은 갈수록 다큐 팀에게 불리했습니다. 이들을 뚫고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경찰을 부르라고 말한 건 중재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당신의 '트리플 크라운 데이'로 불리는 날의 전야였습니다. 당신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2017년 대선 승리일인 12월 19일을 기념해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당신과 측근들이 축배를 마시던 시각에 두 기자는 이 전 장관을 만나 곤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큐 제작팀의 오마이TV 안정호 기자 등이 그날 진눈깨비를 맞으며 당신도 찍고 있었죠. 
 

[경찰 출동] 민중의 지팡이

다시 오케스트라 행사장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니까 7~8분 뒤에 정복을 입은 다섯 명의 경찰관이 나타났습니다.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사 주최 측으로부터 '불법 촬영' '도주 미수범'으로 찍혀있지만, 선임으로 보이는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우린 행사를 방해하지도, 행사장 안에 들어가지도, 행사장면을 찍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러 왔습니다. 4대강 다큐를 제작하고 있는데, 세금 22조 원을 들여서 4대강을 망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공인입니다. 국민 알권리 차원의 취재입니다."   

그는 민중의 지팡이였습니다. 행사 기획자라고 밝힌 여성에게 "영상을 당장 삭제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라면서 "기사에 문제의 장면이 나온다면 민형사 소송을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화가 난 기획자는 "어떻게 저 사람들 편을 들어줄 수 있냐"면서 경찰관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추적 1] 수소문해서 연락했으나... 허탕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과 만나 인터뷰를 하려했으나, 한 관계자로부터 저지를 당했다.
▲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과 만나 인터뷰를 하려했으나, 한 관계자로부터 저지를 당했다.
ⓒ 안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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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희는 가도 되겠죠?"

다큐팀 기자들은 경찰에게 이 말을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순간, 행사 기획자들이 따가운 시선이 등 뒤에서 느껴지더군요. 뜨끔했습니다. 안민식 기자의 이마에선 땀이 마구 흘러내렸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자마자 두 기자는 얼굴을 마주 봤습니다.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다큐 제작을 위해 4대강 부역자들을 찾는 일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부역자의 행적을 알 만한 사람에게 수소문하고, 인터넷을 뒤져도 연락처를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렵사리 얻은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도 무시했죠. 그들이 나타날 만 한 장소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탕을 치기 일쑤였죠.  

이만의 전 장관 취재도 두 번째 시도였습니다. 전경련 회관에서 한 행사의 축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전 장관을 만난 날도 포기 직전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행사장의 커다란 문은 닫혔고, 5층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잦아들 즈음에 그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 기자가 카메라 칩을 보호하려 했던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당신과 함께 22조 원을 강에 쏟아부은 부역자가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4대강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과 부역자들이 지난 10년간 4대강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샅샅이 기록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역사에 남기는 것이 또 다른 재앙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거리 강연자] '금강 요정' 김종술 기자
 

 '금강 요정'으로 불리는 김종술 시민기자가 취재비를 마련하려고 타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  '금강 요정'으로 불리는 김종술 시민기자가 취재비를 마련하려고 타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 안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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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대강 다큐 제작팀이 겪는 어려움은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들이 겪은 곤욕에 비해서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는 6일 당신 집 앞에서 '금강 요정의 4대강 분투기'란 제목으로 강의를 할 김종술은 10년 동안 금강을 출입처로 삼은 시민기자입니다. 1년 340여 일을 금강에서 살면서 당신이 저지른 일과 그 뒤의 생태계 변화를 카메라에 담아 고발해 온 기자입니다. 

이명박씨, 
당신은 오늘도 매달 1000만 원에 달하는 국민 세금을 써가며 서울 강남 사무실의 임대료를 내고 있습니다. 김종술 기자는 직업 기자도 아닌 탓에 자기 돈을 써가며 취재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가 대표로 있던 지역 언론사는 4대강 사업 비판 기사를 쓰는 바람에 광고주 압박 등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이 추운 날에도 그는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공주 밤 까기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취재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자,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이 과거 측근들과 호텔에서 만나 비싼 밥을 사 먹으며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지금도 그는 매일 아침 금강에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들고 취재하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특종도 많이 했습니다. 금강에서 큰빗이끼벌레를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유해성을 확인하려고 시궁창 냄새가 나는 녀석을 직접 먹은 뒤에 기사를 썼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공산성 붕괴 현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했습니다. 시궁창에서만 사는 실지렁이와 붉은색 깔따구를 맨 먼저 발견한 것도 그였습니다. 

그가 '금강 요정'이라고 불린 것은 물고기 떼죽음을 특종보도 하면서부터입니다.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 떼죽음을 보도하다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얻은 별명입니다. 금강과 함께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강의 죽음을 알리는 아래 '씨메기 사체' 사진도 그가 혼자 강변을 걷다가 건져 올린 특종 보도였습니다. 
 

 부여군 장하리에서 발견된 대형메기. 이를 유진수 금강을지키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  부여군 장하리에서 발견된 대형메기. 이를 유진수 금강을지키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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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독립군] '낙동강 지킴이' 정수근, '4대강 백서 기록자' 이철재 

이명박씨, 김종술 시민기자와 함께 당신 집 앞에서 강의할 또 다른 4대강 독립군은 정수근, 이철재 시민기자입니다. 

정 기자는 '낙동강 지킴이'란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기사는 1300만 명 영남인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의 죽음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입니다. 당신이 4대강 사업을 벌일 때 취재 현장에서 추락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을 당하면서도 카메라와 취재 수첩을 놓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에 낙동강의 '녹조라떼' 사진이 언론 지면을 장식한 적이 있습니다. 정 기자의 작품이었습니다. 낙동강 수질 악화에 대한 경고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절박감의 표현이자 풍자였습니다. 그는 낙동강 물고기 떼죽음을 집중 보도했고, 죽은 물고기 뱃속에 기생충이 가득 찬 것을 처음으로 보도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강준치의 배를 가르자 뱃속에 기생충인 촌충이 가득 들어있다.
▲  강준치의 배를 가르자 뱃속에 기생충인 촌충이 가득 들어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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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정수근 시민기자가 죽어가는 4대강의 현장의 고발자라면, 이철재 시민기자는 4대강 사업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을 씨줄 날줄 꿰매는 '에코큐레이터'입니다. 그는 '이명박근혜 시대'의 4대강 부역자들을 역사에 남기려고 '4대강 찬동 인사 인명사전'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제안으로 민족문제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의 취지와 같습니다. 일제에 부역한 자들을 기억해야 하듯이, 강을 망치는 데 앞장선 자들도 기록해야 했던 겁니다.  

그의 2018년 올해 목표는 '4대강 백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4대강 사업의 진행 과정을 단순히 엮는 작업이 아닙니다. 당신이 4대강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까지 파헤치는 일입니다. 4대강 생태 환경의 변화는 물론이고, 부역자들과 저항자들의 삶과 농민, 어민 등 피해자들의 삶의 변화까지 추적하는 힘겨운 일입니다. 당신이 4대강 사업을 불법·탈법으로 진행하면서 파괴한 민주주의와 이에 침묵하거나 동조한 언론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백서에 담아낼 겁니다. 

4대강 독립군들의 길거리 강연이 기대되지 않나요? 

[추적 2] "나는 0.1%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2017년 12월 18일 오케스트라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  2017년 12월 18일 오케스트라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 안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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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씨, 
이제는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마이TV 다큐 제작팀과 만났던 이만의 전 장관의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당신도 기억하시겠지만, 이 전 장관의 주목할 만한 어록은 이런 겁니다. 

"(4대강) 사업이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겠다... 역사적 심판을 받겠다."(2010년 국정감사)
"4대강 사업에 대해 0.1%도 부끄럽지 않다."(2013년 국감)

그날, 어렵사리 만난 그에게 4대강 사업에 관해 물어볼 말이 있다고 했더니, 손사래부터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야기 안 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0.1%도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단호했습니다.  

"예, 예. 전혀요!"

오케스트라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 4대강 사업에 대해 한 말씀만 해주고 들어가시죠.
"부끄럽지 않다고요!"

외마디 소리를 남기고 그는 자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인 행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이 2015년에 펴낸 자화자찬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의 서문에서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머지않아 우리 4대강이 되살아나 맑은 물이 가득 차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물을 뿌려보고 있다.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물을 뿌려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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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TV는 부끄러워해야 할 당신과 4대강 부역자들이 아직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떵떵거리는 모습도 낱낱이 기록하겠습니다. 당신 집 앞에서 열릴 4대강 심판 길거리 강연회도 다큐멘터리에 기록하겠습니다. 

이날, 4대강 다큐를 후원해주신 분들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도 바랍니다. 2018년 1월 6일, MB 집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서 4대강 독립군들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적폐청산과 4대강의 희망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4대강이 회복되는 날까지 4대강 독립군들이 지치지 않고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후원도 부탁드립니다.  
 


MB 10년 고발 다큐를 후원해 주세요
오마이TV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4대강 부역자들의 민낯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해온 '4대강 독립군'들도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자 조력자입니다. MB와 부역자들에 저항하면서 10년의 삶을 희생해온 독립군들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세요. 오늘도 찬바람을 맞으며 죽어가는 강과 함께 아파하는 진실 고발자들을 응원해주세요.
 


 
☞"4대강은 누구 겁니까?"... <오마이뉴스>, MB 고발 다큐 찍는다 
☞'셀프 감금'된 MB 아바타 "전 원조가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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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 시진핑 말고 문재인’

 2018 신년사, “북과 남이 마주앉아 우리 민족끼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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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1  16: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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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조선중앙TV>에 나와 2018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자 국무위원회 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는 대외관계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그에 반해 미국을 향해서는 ‘핵 억제력’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손을 잡기로 한 것.

김정은 위원장은 1일 오전 9시30분(평양시각 9시) 관영 <조선중앙TV>에 나와 2018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특히 신년사의 4분의 1 정도를 남북관계에 할애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입장과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혀 주목된다. [전문 보기]

문재인 집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먼저 김 위원장은 지난해를 결산하며 “남조선에서 분노한 인민들의 대중적 항쟁에 의하여 파쇼통치와 동족대결에 매달리던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집권세력이 바뀌었으나 북남관계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남조선 당국은 온 겨레의 통일지향에 역행하여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추종함으로써 정세를 험악한 지경에 몰아넣고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더욱 격화시켰으며 북남관계는 풀기 어려운 경색국면에 처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 등장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한 것은 물론 두 차례의 대북 독자제재에 나서는 등 대북 압박정책을 편 것에 대한 비판적 평가인 셈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하루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두 번째 대북 독자제재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고 북한 당국이 굉장히 분개했다”며 “현 정부 내에서도 친미세력이 주도권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고, <조선신보>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실명으로 성토하는 기사를 낸 것도 이같은 북측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기류를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나라의 통일은 고사하고 외세가 강요하는 핵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없다”며 “조성된 정세는 지금이야말로 북과 남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며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당장 북미관계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군사적 위기상황을 돌파하고 그나마 대화상대가 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와 관계 회복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신년사의 메시지가 예상했던 범위에서 나왔다”며 “결국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우리 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론을 통해서 국면전환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성렬 위원은 “현재 미국과의 관계도 북중관계도 상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한국이 약한고리”라며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긴장완화의 필요성이 있고, ‘보수’정부가 아니라는 표현처럼 새로운 집권세력에 일말의 기대 내지는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 평창올림픽으로 돌파

김 위원장은 전환점의 매개로 북한의 ‘공화국 창건 70돌 대경사’와 남한의 ‘겨울철 올림픽경기대회’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남측에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거둬치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미연합군사연습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를 중지하라는 요구다.

또한 “미국이 아무리 핵을 휘두르며 전쟁도발 책동에 광분해도 이제는 우리에게 강력한 전쟁억제력이 있는한 어쩌지 못할 것이며, 북과 남이 마음만 먹으면 능히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긴장을 완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미합동군사연습 연기를 미국에 제안해 미측도 이를 수용, 사실상 발표만을 남겨둔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사실상 당국회담을 제안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측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북측은 공식 참가신청 기간 내에 신청을 하지 않자 북측이 상황을 지켜본 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대회를 한달여 앞두고 김 위원장이 전격 대표단 파견과 당국회담을 제안한 것.

평화3000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는 “평화올림픽을 줄기차게 외쳐온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화답한 것”이라며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육로 방문과 ‘남북 평화콘서트’ 개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회담을 빠른 시간내에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석회의 70주년, “대화와 접촉, 래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교류를 강조해 주목된다.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래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여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래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여야 정당과 단체, 개별인사들의 접촉과 왕래를 언급한 것은 올해가 1948년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70주년인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6.15민족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준비위원회(추진기획단)’은 2016년 12월 중국 선양에서 실무접촉을 갖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전민족대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고, 지난해 전민족대회(평화통일민족대회) 개최를 줄곧 추진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돼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소식을 듣고 고무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며 “대단히 환영할만한 제안이고 우리 정부도 상응하는 입장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창복 의장은 “우리가 추진했던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 연석회의’ 방법 밖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이 성격의 접촉과 회의 과정에서 새로운 교류와 협력 방안이 도출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구체적으로 “상대방을 자극하면서 동족간의 불화와 반목을 격화시키는 행위들은 결정적으로 종식되여야 한다”며 “남조선당국은 지난 보수‘정권’시기와 다름없이 부당한 구실과 법적, 제도적장치들을 내세워 각계층 인민들의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고 련북통일기운을 억누를것이 아니라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는데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짚었다.

이전 보수정권들과 똑같이 전방지역에서의 확성기 방송 등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대북 접촉과 방북 등을 ‘불허’하는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요구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청탁하여야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는 외세에게 간섭의 구실을 주고 문제해결에 복잡성만 조성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북과 남이 마주앉아 우리 민족끼리 북남관계 개선문제를 진지하게 론의하고 그 출로를 과감하게 열어나가야 할 때”라고 제시했다. 6.15공동선언의 핵심인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실천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아울러 “나는 이 기회에 해내외의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다시한번 따뜻한 새해인사를 보내면서 의의깊은 올해에 북과 남에서 모든 일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인사까지 덧붙였다.

북측의 최고지도자가 올해 남북관계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까지 했으니 북측은 이 기조하에 당국과 민간을 불문하고 적극 대화와 접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우려에 비해서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유화적인 조치를 담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 정부 하기에 달린 것 같다”고 평하고 “한국 정부가 4월까지 시간을 벌었으니, 평화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핵단추가 내 사무실책상우에 항상 놓여있다”

김 위원장은 전문가들의 관측대로 ‘국가핵무력완성’을 지난해 성과로 꼽았고,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호언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에 우리는 각종 핵운반수단과 함께 초강력열핵무기시험도 단행함으로써 우리의 총적지향과 전략적목표를 성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달성하였으며 우리 공화국은 마침내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미국본토전역이 우리의 핵타격사정권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책상우에 항상 놓여있다는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국가 핵무력 완성’의 결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 사정권에 두고 자신의 결심에 따라 언제든지 타격할 수 있다는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전체 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바라던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틀어쥐였다”며 “당의 병진로선과 과학중시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의 뚜렷한 증시이며 부강조국건설의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고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필승의 신심을 안겨준 력사적장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올해의 과제로 “핵무기연구부문과 로케트공업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면서 “적들의 핵전쟁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작전태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당부했다.

이 외에도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에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에서도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다”고 총화하고 올해의 구호로 ‘혁명적인 총공세로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를 제시했다. 특히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개선향상시키는 것”을 주요하게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당조직들이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온갖 잡사상과 이중규률을 절대로 허용하지 말고 당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일심단결을 백방으로 강화하여야 한다”며 “전당적으로 당세도와 관료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업방법과 작풍을 뿌리빼는데 모를 박고 혁명적당풍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 당과 인민대중과의 혈연적련계를 반석같이 다져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조직 내부의 사상투쟁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지난해 연말 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당세포를 충성의 세포, 당정책관철의 전위대오로 강화하자’고 호소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 소장은 “비사회주의 현상을 특별히 경계하고 있지만 일방적인 통제나 단속보다는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누르겠다고 했다”고 짚고 “세도라든가 부정부패 등은 거론됐지만 최근 몇 년 보다는 강도가 낮아진 것은 아마 지난 연말 당세포 대회에서 결속지은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추가,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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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봄, 통일이 오는 길

반도의 봄, 통일이 오는 길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28)
▲사진 : 뉴시스

1. 반도의 봄

우리에게 통일은 과연 언제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갈망한다. 허나 보통 사람들의 통일 체감온도는 아직 낮고 멀게 느껴진다. 통일을 달리 말하면 오랜 ‘분단체제’가 허물어지는 것인데,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분단체제는 여전히 겨울얼음처럼 견고하고 강하기 때문이다.

새 기운이 찬바람을 밀어내며, 강 밑에선 얼음이 깨지고 있으나 사람들은 계절이 완연해지기 전까진 그 변화를 잘 알 수 없다. 봄을 느끼려면 기운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도의 거대한 계절이 돌고 돌아, 새로운 문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시대를 지나 식민보다 길었던 분단, 불평등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새 청춘세대와 함께 우리는 통일시대로 가고 있다. 이 힘을 돌려세울 물리적 반동의 힘, 영원할 것 같던 제국의 힘도 기력을 거의 다 소진했다. 새 세대는 ‘77만원 세대’가 아니라 꿈에도 소원인 ‘통일세대’이다.

통일은 남북, 해외 온 민족 구성원의 노력으로 전진한다. 여전히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이 글은 평화적 방법을 중심으로, 남측의 통일운동보다 북-미간 대립과 상호 전략 변화를 중심으로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전망해보려 한다.

2. 미국의 ‘현상유지 전략’과 ‘2개 한국’ 정책(Two Koreas policy)

주변국들 모두가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알려진 상식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미국도 통일된 한반도를 원치 않는다. 이들 나라가 원하는 것은 ‘현상유지’이다. 즉 남과 북에 분단 상태가 지속되거나 아예 영원히 2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살기를 원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 남과 북이 합쳐 통일된 강국이 새롭게 출현하는 것을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강력히 반대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이다. 주변국이 모두 반대해도, 민족 내부와 한국 내부에 강력한 통일세력이 존재한다면 통일 가능성은 열리기 마련이다. 한국 정치권 내부에서는 어떤 통일을 원하며, 실제로 통일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움직이는 정치세력은 누구일까? 한국 수구보수세력은 통일 문제도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과 입장이 같다. 이들은 분단체제의 기득권 세력이며 분단을 지지하는 ‘통일 알레르기’세력이다. 이른바 안보, 종북, 반북 프레임으로 70여년을 유지해온 사실상 분단유지 정치세력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통일론이 있다면, 그것은 북이 붕괴하길 바라는 흡수통일이거나 미국이 주도하는 북진통일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중도정치세력은 통일을 원하는가? 그들이 원하는 통일은 미국과 다른가?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의 통일론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 체제전복이나 붕괴를 기본으로 삼아 대(對)한반도 정책을 수립했다. 이른바 70년 대북 적대정책이다. 대북 적대정책의 한 방도가 평화협정을 거부하며 남북 정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의 붕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협상’의 방법으로 남과 북을 영구히 분리해버리는 남북 영구분단 전략이다. 일종의 후퇴전략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미국의 ‘2개 한국’(Two Koreas) 정책이다.

민주당이 평화를 희망하지만 그들이 선호하는 통일방식은 2개의 현존하는 남, 북의 국가를 서로 인정하고 마치 일본과 그런 것처럼 교류하며 살아가는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이를 정치 용어로는 두 국가 사이의 ‘국가연합’이라고 한다. 이 역시 미국의 오래된 ‘2개 한국 정책’과 맥락을 같이한다. 결국 남과 북이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2개의 국가로 굳어지는 것이다. 분단의 유지이지 통일이 결코 아니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2개의 연합국가는 과도적이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통일될 것이라고 말한다.

3. 북의 통일전략 변화, 4차 당대회와 7차 당대회

그러면 북은 어떠한가? 북이 통일문제에 더 적극적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북은 분단 70여년을 보내며 견지해온 통일방식에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한국(조선) 전쟁 이후 가장 큰 변화상은 북미, 남북 간에 장기적 대치상황이 예견되는 것이었다. 전후 불과 7년 만에 발생한 남한의 4.19혁명을 보며 북은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다. 북 노동당 4차 대회의 통일노선은 이런 상황을 반영하였다.

1961년 9월 개최된 제4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남조선 인민들이 반제·반봉건투쟁을 성과적으로 진행하며 이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를 지침으로 하며,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혁명적 당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북한(조선) 민주기지론에 더해 남한 민주화, 남한 혁명에 의한 장기적 통일노선을 기본노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후 6~70년대 남한 내에 지하당 또는 진보정당을 만들려는 시도와 이를 깨고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간첩’을 만들려는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사건조작이 뒤엉켜 통일혁명당, 인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이어졌다.

▲사진 : 로동신문 홈페이지

또 한 번의 커다란 통일정책 변화는 1990년대 초 동구권 사회주의와 소련 붕괴 이전부터 있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밀리에 추진한 핵과 미사일 개발노선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핵무력 개발은 미국의 체제 전복과 핵전쟁 위협에 맞서 북 체제를 유지할 군사적 담보인 핵 억제력을 확보하는 게 1차적 목적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서는 핵과 미사일로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과 지배력을 끊어내겠다는 통일전략 구상이 장기전략으로 당시부터 이중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조국통일 방략의 무게중심이 ‘선(先) 남조선 혁명 통일론’에서 남측 혁명역량이 부족해도 북미 핵 대결과 대미 직접 타격역량 증강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파격적 전략이 장기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지난 2016년 30년 만에 열린 7차 당 대회에서 확인된 변화된 통일전략은 사실 지난 3~40년 동안 비공개로 추진해온 핵과 미사일 전략을 공개하고 재정리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통일노선으로 정식화하면서 말이다.

4. 코리아 핵과 통일 문제의 국제적 지위와 성격 변화

베트남 통일은 미국에게 충격과 패배를 안겨준 국제적 사건이다. 한반도 통일문제 역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베트남 통일 정도의 충격파에 비견되는 지역적 국제문제였다. 그런데 오늘날 북미 대결과 한반도 통일문제는 과거 베트남 통일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한반도 문제는 이미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흔드는 거대한 국제현안이 돼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조선)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인 큰 문제”라며 연일 북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이 “가장 절박하고, 위태로운 위협”이라고 말했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2017년 국제 안보 현안 가운데 최대 변화로 북 문제를 꼽았다. 북의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이후 신임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북핵 ‘런던 위협설’을 제기했다.

최근 북의 핵전략에서 더 놀라운 점이 발견되고 있다.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어 핵보유국 지위나 대미 핵억제력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과 실제적인 핵 균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미국과의 핵군축을 현실적 목표로 핵 기술과 무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것이 7차 당 대회와 ‘병진노선의 최종목표’라고 공식 보도하였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핵 경쟁을 시도하는 반제반미 국가가 다시 출현한 것이다. 북은 핵전략의 1차 목표에서 2차 목표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2차 목표의 종착역은 한반도 통일과 미‧중‧러 등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확고부동한 국제적인 정치군사적 지위 확보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북의 핵무력 완성으로 실제 미국의 대북 전쟁개시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아니 거의 불가능해졌다. 핵을 가진 나라를 섣불리 공격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국제 현실이다. 북이 또 짧은 기간에 미‧중‧러를 압도하는 핵과 미사일 기술을 질량적으로 계속 개발할 경우 미국에겐 냉전시기 ‘평화공존’을 추구하던 구소련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끔직한 재앙이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편에 서서 20여 년 동안 북핵을 반대하고 있지만, 종국에는 자기네보다 빠르게 더 높은 수준의 핵 기술과 전략자산을 자력 증강해가는 북한(조선)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는 게 그들의 속사정이다.

5. 지난한 북-미 비밀 비공개 협상 과정

오바마-트럼프로 이어지는 대북 적대정책 가운데서도, 지난 11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2~3개 채널이 열려있다”는 발언대로 북-미 비밀협상은 계속 있었다. 협상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에 흘러나왔다. 이 비밀협상 또는 이른바 ‘반관반민(半官半民. 1.5트랙)’ 채널의 주요 흐름을 읽으면 차후 진행될 북미 평화협정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다. 뉴욕 채널과 쿠알라룸푸르, 제네바, 오슬로 등지에서 비록 비공개지만 미국이 더 후퇴한 평화협상 개시 조건과 가능성을 전환적으로 밝힌 것은 오바마 정부 말기다.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거다.

미국이 오바마 정부 시절 구상한 비밀 평화협상안은 북핵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평화협상이었다. 이들 협상안엔 앞서 설명한 대로 북 비핵화와 주한미군 지위변경 주둔, 즉 ‘2개 한국’ 유지 평화협상안과,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된 더 후퇴한 비핵화 평화협상안 등이 있었다. 과거 9.19공동성명에서 실현하려던 방안과 유사하다. 만약 이것이 성사되었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지각변동은 지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은 핵 포기와 연관된 어떤 협상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정부 후반부터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유효했던 9.19성명의 공식은 북의 핵무력 완성으로 현실에서 완전히 의미를 상실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죽은 자식 뭐 만지듯 9.19와 6자 회담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지만 북은 흘러간 옛 노래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미협상의 최대 핵심 쟁점은 미국의 북 비핵화전략과 북의 핵 보유강화전략의 충돌이다. 한반도 평화협정과 핵문제는 같은 뿌리에서 산생했지만 별개의 문제이다. 북은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연계한 회담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비핵화 문제는 상호 군축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 발 더 후퇴해 북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한 북이 북-미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현재 전혀 없어 보인다. 미래의 평화협상의 내용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 협상이 지난하고 어려운 근본 이유이다. 싸움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오바마 정부 말기부터 북미 핵 전쟁위기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공개든 비밀협상이든 세계가 이 세기의 협상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6. 평화협상과 통일은 동전의 양면

가까운 미래 진행될 북미 평화협상의 내용이 한반도 남북 정부와 정치권에 미칠 영향은 메가톤급이다. 아무런 연관성 없이 분리, 운영되던 남북 정치의 기존 틀이 해체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과 체제로 들어선다. 오래전 기억이라 우리는 남북의 경계선이 점차 사라져가는 정치를 상상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지각변동이 남한 정치권, 즉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민중당 등 정치세력의 재편과 몰락, 부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945년 해방 직후에 이어 두 번째 맞이하는 전 한반도 차원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미국이 염두에 둔 평화협상안은 대략 아래의 3가지 수준과 형태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기본적인 대한반도 정책은 협상자체를 무시하고 정전상태를 유지하는 오만한 ‘현상유지’ 전략이었다. 미국은 협상자체를 불가피한 후퇴로 인식하고 있었다. 평화협정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서로 주고받는 ‘균형교환 협상’과 승패가 명확한 ‘승리협상’(강화조약)이다.

1안) 북 비핵화 평화협정 ; 주한미군 주둔(평화유지군 지위변경)→ 남북 연합제(‘2개 한국’ 정책). 이는 필연적으로 완전한 북미 적대관계 해소로 나가지 못한다. 북미 수교도 평화협정과 분리해 시간차를 두고 진행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미국과 수교는 1995년에 이뤄졌다. 북미 관계, 북한(조선) 상황, 남한 정권 교체에 따라 평화협정이 다시 깨질 수도 있다.

2안) 북 비핵화 평화협정 ; 주한미군 철수→ 남북 연합연방제(사실상 연방제)→ 북미수교. 이것은 과거 6자 회담과 9.19공동성명이 성실히 추진되었다면 가능했을 모델이다. 북은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만 갖고 과거 핵무력을 폐기하고 추가 개발을 포기하며, 상응하여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방안이다. 미국이 이를 두려워한 이유는 이 평화협정과 6.15선언이 결합되면 한반도가 사실상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통일국가로 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을 잃는다고 본 것이다.

3안) 핵보유 평화협정(핵문제 분리 평화협정) ; 주한미군 철수→ 북미 적대관계 해소→ 즉각 북미수교 추진. 북의 핵보유 문제를 평화협정과 분리해 상호 비핵화, 상호 군축 문제로 다루는 원칙적 방법이다. 북이 평화협정에서 미국의 핵 존폐 문제를 다루지 않듯이, 미국도 북핵 문제를 별도 처리하는 방안이다. 절충적으로 북의 ‘과거 핵’을 인정하고 ‘미래 핵’을 동결하는 방안도 있다. 사실상 북 핵보유 인정 방안이다. 모든 게 미국이 패퇴하는 협상이다. 미국이 영원히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게 된다. 협상이라기보다 패배한 종전 처리과정에 가깝다.

평화협상은 본질적으로 남·북‧미가 한반도 전쟁을 종결하는 것이다. 미국이 70여 년간 유지해 온 대북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말 그대로 상호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 문제이다. 이 협정 자체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통일은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앞서 본 것처럼, 통일의 주요 장애물이 이 협상을 통해 거의 제거된다. 따라서 평화협상 후 통일을 위한 남북 정치협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진행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즉 평화협정은 우리시대 통일로 들어가는 출입구이다.

▲사진 : 뉴시스

7. ‘미치광이 전략’의 끝과 미국의 혼돈

미국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어쩌면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최대의 압박과 관여전략)은 미칠 지경인 미국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협상도, 전쟁도 답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최소한 표면적으로 공고해 보이던 미국의 대북정책은 크게 금이 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미 행정부, 의회의 대북정책도 일대 혼란이다.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오락가락 대북정책의 연속이다. 지난해 10월 미 의회에선, 의회 동의 없는 대통령의 대북 선제 핵공격 결정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국무장관, 맥마스터 안보보좌관 등 권력 핵심들의 불화와 엇박자도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70년 대북 적대정책의 결과는 한마디로 “미국이 졌다”는 게 미국 주류 정치권의 솔직한 자평이자 흐름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1월29일자에 “북미대결은 이미 끝났다. 북한(조선)은 이미 핵무장 국가다”는 제프리 루이스의 주장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앞서 8월8일자에 “이제는 북한(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 할 때”라는 그의 기고도 실었다. 권위 있는 정치잡지 포린 폴리시는 “게임은 끝났고 북한(조선)이 이겼다”고 했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은 핵 국가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놀라운 변화다.

과거 수십 년간 대북정책에 관여했던 주요 전문가와 인사들(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 윌리암 페리 전 국방장관, 북미 제네바 수석대표 로버트 갈루치, 핵전문가 지크프리트 해커, 제임스 울시 전 CIA국장,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즉각 협상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틸러슨 국무장관이 들고 나온 “조건 없는 북미대화”는 쇼로 끝났으나 결코 우연히 제기 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은 사실 오래 갈 수 없는 고육책이다. 미치광이 전략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숨어있는 것은 ‘승전’이기보단 미국에 유리한 협상전략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트럼프가 제 임기를 마칠지조차 비관적이다. 미국이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을 얼마나 더 유지하고 버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망조를 자초하든 위기를 해소하든 미국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끝은 결국 더 패퇴한 협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바로 2018년에 그런 방향전환이 이뤄진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8. 중단 없는 2018년과 시대정신

크게 보면, 해방 후 치열하게 전개돼온 한국사회변혁 경로와 조국통일 경로의 선후 순서가 바뀌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평화협정 국면이 열린다 해도 통일이 저절로 성취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화협정은 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할 뿐이다. 통일의 방향, 속도와 질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이기 때문이다. 통일의 목적은 하나의 절멸이 아니라, 민족의 공동번영과 하나의 나라로 남과 북이 상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반미 반전평화운동, 평화협정 촉구운동, 자주통일운동의 변화 흐름을 주체적으로 읽고 임해야하는 이유이다.

지난 2017년 북미관계는 매우 격렬했다. 그러나 2018년 북미관계는 더욱 더 격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이상, 북미 대결은 세계사에 보기 드문 ‘끝장 대결’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북이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평창올림픽 참가 용의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문제는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정책 변화인데, 미국이 훈련 연기로 대응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자주통일’이 한국 진보만의 오랜 고민과 숙제인 시대도 이제 지나고 있다. 한국 정치권은 주요한 시기에 미국을 무조건 따라가는 망국적 한국 주류학계와 언론의 함정을 경계해야한다. 특히 민주당과 정부는 6.15공동선언과 그 정신을 견지하고 미국의 낡은 ‘2개 한국 정책’에 기대지 말아야한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냉엄한 국제정세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하며, 북의 전략과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북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돌아가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촛불정신 계승과 자주통일은 결코 돌려세울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이정훈 국제팀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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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국가건설 1082주년,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

[개벽예감280] 통일국가건설 1082주년,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1/01 [22: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1082년 전에 등장한 통일국가 고려의 위용

2. 1012년 역사를 파괴한 1948년 분단체제 

3. 민간인 165만7,000명이 희생된 참극과 재난

4. 민족대표 695명이 모란봉극장에 모였다

5.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정치대결

 

▲ <사진 1> 위쪽 사진은 왕씨 가문 족보에 나오는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이다. 개성에 사는 왕건의 31대손 왕지송 노인은 왕씨 가문에서 수 백 년 동안 소중히 보관해오던 가문 족보와 왕건이 사용하였다는 옥새를 들고 1992년 9월 개성시당위원회를 찾아가 그 족보와 옥새를 김일성 주석께 드린다고 하였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왕건릉을 몸소 돌아보고, 그 릉을 훌륭히 개건하여 통일국가 고려를 건설한 왕건의 업적을 기려야 한다고 지시하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왕지송 노인은 너무 감격하여 족보와 옥새를 김일성 주석께 드린다고 하였던 것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의해 훌륭히 개건된 왕건릉이다. 918년에 고려를 창건한 왕건은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하여 민족사적 위업을 마침내 완수하였다. 통일국가 고려를 건설한 것은 반만년을 헤아리는 우리 민족사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1082년 전에 등장한 통일국가 고려의 위용  

 

2018년은 통일국가건설 1082주년,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런 뜻깊은 새해의 첫날, 반만년 민족사에서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통일국가건설역사와 통일국가건설운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태조 왕건이 통일국가를 건설한 해는 936년이다. 918년에 고려를 창건한 그는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하여 민족사적 위업을 완수하였다. 왕건이 통일국가 고려를 건설한 것은 거대한 민족사적 의의를 지닌 대사변이다. 그 의의를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은 단순히 통일국가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천년강국 고구려를 계승한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점에서 거대한 의의를 지닌다. 고려라는 나라이름 자체가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통일국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진 1>

 

첫째, 통일국가 고려는 고구려의 첫 계승국이었던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포함시켰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강역에서 698년에 창건되어 926년까지 존재했던 동방대국이다. 고려가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포함시켰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통일국가 고려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발전경로로 확립하였다. 신라는 당나라를 추종하였고, 고구려는 당나라와 대결하였으므로, 고려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발전경로로 확립한 것은 민족의 자주성을 첫 통일국가의 기초로 마련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통일국가 고려는 이전에 고려의 국경선으로 알려졌던, 압록강 하구에서 강원도 원산을 잇는 선을 훌쩍 뛰어넘어 발해의 드넓은 강역을 자국 영토로 포괄하였다.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발전경로를 확립하였으므로, 발해의 강역을 자국 영토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윤한택 연구교수가 요나라 역사서 ‘요사(遼史)’와 ‘고려사’를 대조하여 연구한 내용을 2017년 5월 26일에 발표하였는데, 그는 옛 문헌들에 고려의 서북방 국경선으로 기록된 압록은 오늘의 압록강이 아니라 중국 랴오닝성 톄링(鐵嶺)시에 흐르는 랴오허(遼河) 지류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2017년 11월 17일 러시아 과학원 고고학자들은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고려의 유적과 유물들이 최근 연해주에서 발굴되었다는 정보를 공개하였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은 통일국가 고려가 서북방으로는 압록강을 넘어 요하 인근까지, 그리고 동북방으로는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까지 포괄하는 광대한 강역에 세워진 동방대국이었음을 말해준다. 

   

둘째, 통일국가 고려는 연호를 천수(天授)라 정하고, 오늘의 개성인 송악을 수도로 삼았으며, 천자국(天子國)으로 자처하였다. 천자는 곧 황제이므로, 천자국은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통일국가 고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정하고, 천자국으로 자처한 것은, 세계문명중심에 천자국 중국이 있고, 그 변방에 미개한 네 무리의 오랑캐들과 여덟 무리의 야만족들이 있다고 보았던 이른바 사이팔만(四夷八蠻) 천하관(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천하관을 정립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992년 10월 개성 인근에 있는 왕건릉 개건공사장에서 땅을 파던 굴착기 삽날에 걸려 출토된 특이한 청동유물이 있다. 그 유물은 의자에 앉은 청동좌상이었는데, 큰 귀, 가늘고 긴 손가락, 사각형에 가까운 발, 평평한 발바닥을 가진 벌거벗은 형상이었다. 출토될 때, 그 나신청동상에는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청동좌상은 금으로 장식한 옥대 장식물이 함께 출토되는 바람에 고려의 불상이 아니라 왕건의 청동좌상으로 고증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건의 청동좌상은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통천관(通天冠)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왕건의 통천관은 중국의 황제들이 쓰던 통천관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왕건의 통천관에는 태양을 표상하는 8개의 동그란 장식물들이 달려있는데, 이런 장식물은 중국 황제의 통천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통일국가 고려가 자주성을 건국기초로 삼았음을 말해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1992년 10월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 왕건릉 개건공사장에서 땅을 파던 굴착기 삽날에 걸려 출토된 왕건 청동좌상의 얼굴 부분을 촬영한 것이다. 이 청동좌상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형상되었는데, 큰 귀와 가늘고 긴 손가락, 사각형에 가까운 발과 평평한 발바닥을 가진 나신좌상이다. 출토될 때, 그 나신좌상에는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진에 나타난 왕건의 청동좌상은 천자(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통천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왕건의 통천관에는 태양을 표상하는 8개의 동그란 장식물들이 달려있는데, 이런 장식물은 중국 황제의 통천관에서 찾아볼 수 없다. 통일국가 고려는 자주성을 건국기초로 삼은 천자국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셋째, 통일국가 고려의 건설은 우리 민족이 사상 처음으로 통일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동질의식을 지니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아주 먼 옛날 아사달에서 단군조선이 개국된 이후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온 민족의 동질성을 공고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 

우리 민족은 통일국가 고려가 건설되었던 936년부터 1948년까지 1012년 동안 통일국가 안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며 함께 살아왔다. 1012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분단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으며, 알 필요도 없었다. 1910년 일제는 974년 동안 우리 민족의 존립거점으로, 생활터전으로 되어왔던 통일국가를 무력으로 강탈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일제의 악독한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남북으로 갈라지지는 않았다. 

 

 

2. 1012년 역사를 파괴한 1948년 분단체제 

 

미국의 분할점령정책과 단독정부수립정책에 의해 한반도에 세워진 것이 1948년 분단체제다. 미국의 분할점령정책에 따라 북위 38도선이 분단선으로 고착되었을 뿐 아니라,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의 열망을 짓누르면서 남조선단독선거가 강행되었으며, 그 선거결과에 의거하여 남조선단독정부가 출현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낼 필요가 있다.

 

(1)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국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밑에서 부관으로 복무했던 에드워드 로우니(Edward L. Rowny)는 2013년 6월에 출판된 자신의 회고록 ‘미국 병사의 코리아전쟁 무용담(An American Soldier's Saga of the Korean War)’에서 1945년 8월 초 미국 전쟁성 작전국 전략정책단 회의에서 딘 러스크(David Dean Rusk), 앤드루 굿패스터(Andrew J. Goodpaster)를 비롯한 영관급 장교들이 한반도를 북위 39도선으로 분할점령하자고 주장하였는데, 그들의 직속상관인 죠지 링컨(George A. Lincoln)은 북위 38도선으로 분할점령하자는 주장을 관철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만주전투에서 일제관동군을 제압한 소련군이 한반도를 향해 파죽지세로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 미국이 허겁지겁 북위 38도선을 분할점령선으로 획정하였다는 기존 정설을 뒤엎는 것이며, 미국이 한반도분할점령을 오랜 시간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3> 

 

▲ <사진 3>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점령군으로 들어간 미국군은 일제의 조선총독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일제가 조선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였던 바로 그 건물에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내걸었으며, 점령군 군사정부를 세우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위쪽 사진은 성조기를 게양한 미국 점령군 군사정부 청사의 모습이다. 점령군 군사정부는 38도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분할점령정책을 실시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미국 점령군 병사들이 개성 인근 38도선의 남북통행로에 초소를 세워놓고 경비를 서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은 1947년 5월 25일에 촬영되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폭력으로 짓누르고, 한반도분할점령정책과 남조선단독정부수립정책으로 고려의 통일위업달성 이후 면면히 이어져온 1012년 역사를 무참히 파괴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5년 11월 20일 당시 점령군 군사정부 사령관이었던 존 하지(John R. Hodge)의 정치고문 윌리엄 랭던(William R. Langdon)은 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단독정부수립구상을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이런 사실은 미국이 한반도를 분할점령한 직후부터 단독정부수립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미국은 1000년 통일국가를 계승하여 새로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과 노력을 분할점령과 단독정부수립으로 좌절시키고 1948년 분단체제를 세웠던 것이다. 

 

1947년 8월 26일 미국군 수송기 한 대가 김포비행장에 착륙하였다. 수송기 출입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당시 미국 대통령의 특사 앨벗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였다. 중국을 방문한 뒤 서울에 나타난 웨드마이어 특사는 서울 방문을 마치고 일본 도꾜를 거쳐 워싱턴으로 돌아갔는데, 중국 및 남조선 시찰활동을 정리한 장문의 보고서를 1947년 9월 9일 트루먼에게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트루먼 행정부가 한반도정책을 확정하는 데서 결정적인 요소로 되었다. 그 보고서에 제시된 권고사항이 눈길을 끄는데, 그 부분을 번역,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에서 미국의 철수는 소련의 비례적 철수에 영향을 주는 합의에 근거하여,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담보조치들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적절한 담보조치들이 시행되는 것을 지지하고, 예상하는 남조선에 군사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 조선국립경찰과 조선해안경비대에 무기와 장비를 계속 제공한다.

- 북의 위협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미국군이 지휘하는 조선정찰군(Korean Scout Force)을 창설하여 현존 경비대를 대체한다.

- 조선에 대한 미국군의 임시점령(interim occupation)을 계속한다. 

- 기술전문인력과 전술부대들의 훈련에 조언을 준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1947년 9월 당시 트루먼 행정부가 한반도에서 미국군과 소련군이 동시에 철수하게 될 것을 예견하면서 그에 대비한 조치들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철군에 대비한 조치라는 것은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담보조치들”이다. 웨드마이어 보고서는 그 담보조치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트루먼 행정부가 아래와 같은 담보조치들을 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미국은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문제를 미소공동위원회에서 해결하려던 기존 전략을 포기하고, 그 문제를 유엔으로 끌고 갔다. 왜냐하면 집권야욕에 사로잡혀 정세를 오판한 남조선 우익세력이 모스크바 삼국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바람에 그 세력을 앞세워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려던 미국의 계획추진에 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친미반소성향을 지닌 우익세력을 내세워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려던 미국의 전략구상이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그 위원회를 깨버리고 자기의 전략구상을 유엔무대에서 실행에 옮기려고 획책한 것이다. 

그리하여 트루먼이 웨드마이어 보고서를 받아본 날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1947년 9월 17일 미국은 조선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였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현저하게 남아있지만, 1947년 당시 유엔은 미국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조선문제를 유엔으로 끌고 가면 미국이 마음먹은 대로 처리할 수 있었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2) 미국은 한반도분할점령에 계속 집착하였다. 미국군은 38도선 이남지역에 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 동안 그 지역의 공식명칭은 남조선이었다.) 명백하게도, 그들은 남조선주둔군이 아니라 남조선점령군이었다. 트루먼 행정부의 공식문건들에서 남조선주둔군이라는 용어는 찾을 수 없고, “남조선점령군(occupation force in South Korea)”이라는 용어만 나온다. 미국은 그 점령지에 군사정부를 세우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점령군 군사정부는 8.15 직후 남조선 각지에 건설된 모든 인민위원회를 폭력으로 제거하였고, 친미반소의 옷으로 갈아입고 변신한 부일반민족세력이 주도하게 될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광분하였다. 하지만 점령군 군사정부의 그 전략수행은 진보정치세력의 반대와 민중의 저항에 부딪쳐 그들이 예상한 대로 순탄하게 추진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점령군 군사정부는 진보정치세력을 제거하고, 민중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부와 경비대를 증강시키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정은 아래와 같다. <사진 4> 

 

▲ <사진 4> 백악관의 한반도분단정책을 현지에서 집행한 점령군 군사정부는 남측 각지에 건설된 모든 인민위원회를 폭력으로 제거하였고, 부일반민족세력이 주도하게 될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광분하였다. 점령군 군사정부의 그런 전략수행은 진보정치세력의 반대와 민중의 저항에 부딪쳐 순탄하게 추진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점령군 군사정부는 진보정치세력을 제거하고 민중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부와 경비대를 증강시켰다. 남조선경찰부를 확대, 개편한 한국 경찰청과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정규군으로 확대, 개편한 한국군은 1950년 6.25전쟁 직전부터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까지 남측 전역에서 113만명의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위쪽 사진은 미국군 장교가 '국민보도연맹원' 학살현장에서 한국군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1950년 7월 한국군이 후퇴하면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학살한 사진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5년 10월 21일 점령군 군사정부는 일제강점기 경무부에 소속되었던 부일민족반역자들을 긁어모아 남조선 각 도에 경찰부를 설치하였고, 이듬해에는 그것을 경찰청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1946년 1월 15일 점령군 군사정부는 일본군 출신과 만주군 출신 부일민족반역자들을 긁어모으고 광복군 출신자 몇 사람을 끌어들여 1개 연대 규모의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창설하였는데, 1948년 8월 15일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할 때 그 경비대를 정규군으로 개편, 증강시켰다. 

점령군 군사정부가 부일민족반역자들을 긁어모아 창설하였고, 미국산 무기로 무장시켜 지휘통제하였던 남조선경찰청→한국경찰청과 남조선국방경비대→한국군은 6.25전쟁 직전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까지 남측 전역에서 진보적 민중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학살하였다. 1960년 10월 20일에 결성된 전국피학살유족회가 당시 민주당 정부에 제출한 공문에 따르면, 자기 가족이 학살당했다고 신고한 피학살자 총인원은 남측 전역에서 113만명이었는데, 이를 지역별로 보면, 경상남도 25만명, 경상북도 21만명, 전라남도 21만명, 전라북도 19만명, 제주도 8만명, 경기도 6만명, 충청북도 5만명, 충청남도 3만명, 강원도 3만명, 서울 2만명이었다. 

 

 

3. 민간인 165만7,000명이 희생된 참극과 재난

 

점령군 군사정부는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창설하고 지휘통제하였으며, 경비대의 군사훈련을 지도하면서 무력을 체계적으로 증강시켰다. 웨드마이어 보고서에 따르면, 점령군 군사정부가 남조선국방경비대의 무력을 증강시키는 목적은 “북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만 놓고 봐도, 미국은 7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무력을 증강하는 구실로 ‘북의 위협’을 내세워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점령군 군사정부가 추진해온 남조선국방경비대 무력증강에 따라 그 경비대가 한국군으로 확대, 개편된 것에 한껏 고무된 이승만 정부는 무력으로 북을 점령하려는 이른바 ‘북벌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7월 17일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대한청년단 훈련장에 나타나 연설하면서 “국군은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명령만 있으면 하루 안에 평양이나 원산을 점령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49년 10월 7일 이승만은 <UP통신> 회견에서 “나는 우리가 3일 안으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만주와 한국의 국경은 38선보다 방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5>

 

▲ <사진 5> 미국은 단독정부수립정책에 따라 점령군 군사정부와 이승만을 앞세워 남조선단독정부를 세웠다. 위의 사진은 1945년 8월 15일 서울에 있는 점령군 군사정부 청사 앞마당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에 최고 귀빈으로 참석한 미국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와 한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후, 맥아더와 이승만은 이른바 '북벌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면서 한국군의 무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승만 정부의 ‘북벌정책’ 뒤에는 당시 일본-남조선 점령군을 총지휘하고 있었던 극동군사령관 맥아더가 버티고 있었다. 1948년 8월 15일 오전 11시 20분 중앙청 앞마당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 축하연설에 최고 귀빈으로 나선 맥아더는 “정의의 군대가 용진하는 이 시각, 그들의 승리는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인위적 장벽과 분단으로 무색해졌다”고 하면서 “이 장벽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며, 무너질 것이다. 자유국가에서 살게 된 자유로운 한국인들의 궁극적인 통일을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북벌정책’의 실질적인 추진자가 맥아더 자신이었음을 드러내준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1948년 분단체제를 수립해놓은 것에서 멈추지 않고, ‘북벌정책’까지 추진하였으니,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점령군이 한반도에 그어놓은 분단선은 국경선이 아니었다. 남측 시각에서 보면, 분단선은 대한민국과 그 북반부지역인 ‘북한’을 갈라놓은 것이고, 북측 시각에서 보면, 분단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 남반부지역인 ‘남조선’을 갈라놓은 것이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국가로 양립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는 오직 하나의 국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국가는 어떤 나라인가? 남측에서는 대한민국이 유일국가라고 하고, 북측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일국가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가운데 어느 한 쪽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이고, 다른 한 쪽은 국가가 아니면서도 국가를 참칭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남측에서는 북측을 ‘반국가단체’라고 부르고, 북측에서는 남측을 ‘미제의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 그리고 국가가 아니면서도 국가를 참칭하는 집단 사이의 대립과 충돌은 결국 전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분단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던 우리 민족에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참극과 재난이 닥쳐왔다. 1012년 동안 함께 살아온 단일민족이 ‘한국사람’과 ‘조선사람’으로 갈라져 싸우면서 서로 죽이고 죽였고, 미국군은 조선사람을 죽였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6.25전쟁 중에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된 평양의 모습이다. 얼굴에 부상을 당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폭격으로 파괴된 잔해 사이를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이들은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6.25전쟁에서 민간인 사망자를 추산하면, 남측에서 24만5,000명이 죽었고, 북측에서 28만2,000명이 죽었으니, 민간인 57만7,000명이 희생당한 것이다. 우리 민족을 그런 참극과 재난 속에 빠뜨린 원흉은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짓누르고, 1948년 분단체제를 수립해놓은 미국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누구도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으나, 6.25전쟁에서 군인 전사자를 제외하고 민간인 사망자만 추산하면, 남측에서 24만5,000명이 죽었고, 북측에서 28만2,000명이 죽었으니 민간인 사망자는 총 52만7,000명이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6.25전쟁 직전부터 정전협정 체결 직후까지 남측에서 민간인 113만명이 무참히 학살당했다는 사실이다. 대량학살을 명령한 미국군 고위지휘관들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 한국 정부 고위관리들과 한국 경찰 고위간부들은 요즈음 같으면 국제형사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처벌을 받았어야 하였으나, 그들이 되레 피학살자 유족들을 처벌하는 정치탄압을 자행하였다.    

전쟁 3년 동안 군인을 제외하고 민간인만 165만7,000명이 희생당했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참극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가혹한 재난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민족을 그런 참극과 재난 속에 빠뜨린 원흉은 분할점령과 단독정부수립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짓누르고, 1948년 분단체제를 수립해놓은 미국이다.   

 

6.25전쟁으로 더욱 굳어진 1948년 분단체제는 마땅히 자주적 발전을 위해 분출되어야 할 민족역량을 언제나 분열과 대결에 소모하도록 강제하였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의 의지와 지향을 끊임없이 도려내었다. 우리 민족이 단일한 언어와 혈통, 단일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운명공동체로서 존립하고 발전하려는 의지와 지향을 끊임없이 도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1948년 분단체제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가장 험악하고, 가장 해악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

 

 

4. 민족대표 695명이 모란봉극장에 모였다

 

1948년 당시 우리 민족에게 들이닥친 사태는 너무도 긴박하고 위중하였다. 점령군 군사정부와 이승만을 앞세워 단독정부수립을 집요하게 획책한 미국은 1948년 5월 10일을 선거일로 정해놓고, 선거준비사업을 강행하였다. 고려의 통일위업달성 이후 면면히 이어진 1012년의 민족사가 파괴되고, 통일국가건설운동이 좌절될 절체절명의 위기가 우리 민족의 보전과 존립을 시시각각 위협하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 남조선단독선거와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을 강행하려는 미국과 맞서 싸우며 기어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전민족적인 운동이 벌어졌다. 그 운동의 정점에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가 있다. 남북연석회의는 1948년 4월 19일 오후 6시 5분 평양에 있는 모란봉극장에서 성대히 개막되었다. 한반도 전역에서 56개 정당, 사회단체를 대표하는 민족대표 695명이 참석하였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1948년 4월 19일 평양에 있는 모란봉극장에서 개막된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 주석단을 촬영한 사진이다. 김일성 당시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하여 전조선인민은 단결하자!'는 구호가 내걸렸고, 한반도 지도 옆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남북연석회의가 진행된 시점에는 남북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이었으므로, 아직 국기를 공식 제정하지 못한 터라 북조선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사용하였던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파탄시키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전민족적인 투쟁의 고귀한 결실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파탄시키고, 고구려→발해→고려→근세조선으로 이어진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전민족적인 투쟁의 고귀한 결실이었다. 이 위대한 민족사적 과업을 실현하는 투쟁에 민족구성원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적극 나서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익정치세력을 대표하는 김구 한국독립당 대표와 김규식 민족자주연맹 대표는 남북연석회의에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었다. 김구는 4월 20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김규식은 4월 22일에 평양에 도착하였는데, 남북연석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고, 줄곧 밖에서 맴돌았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모란봉, 영천암, 만경대, 혁명자유가족학원을 방문하였으나, 회의장에는 나가지 않았다. 

소련군 연해주관구 25군사령부 군사위원이었던 니꼴라이 레베데브(Nikolai G. Lebedev)가 남긴 ‘비망록’에 따르면, 김구는 “나는 연석회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들 계획대로 회의를 계속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구는 4월 22일 회의 셋째 날이 되어서야 남북연석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인 오후 12시 45분경 회의장에 나타났는데, 5분 동안 축하연설을 하더니, 곧바로 퇴장하여 자기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김규식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남북연석회의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나중에 축하연회에만 잠깐 나타나 축하연설을 하였을 뿐이다. 

 

김구는 남북연석회의가 끝난 이튿날인 4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몸도 피곤하고 또 대표들(그를 수행한 한국독립당의 다른 대표들-옮긴이)이 참석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구차한 변명이었다.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에 간 진짜 목적은 자기들이 바라던 남북요인회담(4인회담)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두 우익정객은 왜 남북요인회담에만 집착하였을까? 원래 김구는 이승만과 손을 잡았었고, 김규식은 점령군 군사정부가 조작해놓은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했었다. 하지만 김구는 단독정부수립야욕을 품은 이승만에게 이용당했고, 김규식은 단독정부수립음모를 꾸미던 점령군 군사정부에게 이용당했을 뿐, 우익정치세력 내부에서 극우파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김구와 김규식은 그런 정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남북요인회담 추진이었다. 

 

늙은 우익정객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각계각층 민중들은 남조선단선반대투쟁전국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한 남북연석회의 방침에 따라 한반도 전역의 도, 군, 면에 남조선단선반대투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남조선단선반대투쟁전국위원회는 이승만을 앞세운 점령군 군사정부의 단독선거를 저지하려는 격렬한 대중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를테면 남조선 각지에서 선거사무소 습격사건들, 경찰서 습격사건들, 공공시설물에 대한 파괴 및 방화사건들, 야간봉화시위들이 계속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단선반대총파업투쟁에 궐기하였고, 청년학생들은 단선반대동맹휴학투쟁에 궐기하였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격렬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점령군 군사정부는 단독선거를 준비하는 선거인등록을 1948년 3월 30일부터 강행하였다. 1948년 4월 12일 서울에서 통행인 1,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선거인등록이 강제로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일보>가 1948년 4월 15일에 보도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선거인등록에 참여한 사람은 934명(74%)이었고,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328명(26%)이었는데, 참여한 934명 가운데 850명(91%)은 강제로 등록하였고, 84명(9%)만 자발적으로 등록하였다는 것이다. 경찰, 시청, 동회, 선거위원회, 우익청년단, 초중등학교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인등록을 강요하였다. 다른 사람의 도장을 갖고 가서 명부에 찍는 대리등록도 있었고, 있지도 않은 사람을 명부에 올려놓는 유령등록도 있었다. 이런 불법사례들은 선거인등록 자체가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위반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1948년 5월 10일 점령군 군사정부가 점령군에게 특별경계령을 내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전민족적인 반대와 저항을 짓누르고 강행한 남조선단독선거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남녀청년 5명은 남조선단독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한 대중투쟁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남조선 각지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단독선거반대투쟁에서 사망자는 128명, 중상자는 137명, 검거투옥된 사람은 5,425명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8년 5월 8일 점령군에게 특별경계령을 내린 점령군 군사정부는 5월 10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남조선단독선거를 강행하였다. 당시 언론보도는 “장총을 들은 경관, 곤봉을 들은 향보단원들이 길목마다 지켜 엄격한 경비를 섰고, 관공서, 각 학교, 상점, 음식점, 극장 기타 일체 신문사, 사회기관들은 설날처럼 문을 꼭꼭 닫고, 나다니는 길손도 미군 자동차 외에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고, 무섭게 흐리터분한 하늘에 미군 비행기의 폭음소리가 한갓 고요한 기분을 자아내었다. (중략) 무장경관 70명, 사복경관 30명, 향보단원 등 물샐틈없는 경비전 속에서 개표가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선거현장의 공포분위기를 전하였다. 단독선거반대투쟁에서 사망자는 128명, 중상자는 137명, 검거, 투옥된 사람은 5,425명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되었으므로, 단독선거를 감시한다는 유엔조선임시위원단은 전 세계 민주국가들이 공인한 선거원칙에 따라 단독선거를 무효화해야 하였지만, 미국의 추종국들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필리핀, 시리아, 엘쌀바돌, 대만, 프랑스가 파견한 친미대표들로 구성된 유엔조선임시위원단은 미국의 단독정부수립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다. 1948년 2월 12일 유엔소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하기 전, 유엔조선임시위원단 단장 벤갈릴 메논(Bengalil K. K. Menon)은 서울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남은 남이고, 북은 북이니, 그들은 결코 만날 수 없으리라”는 극악한 망언은 늘어놓았다.   

 

 

5.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정치대결

 

1948년 남북연석회의 이후 오늘까지 장장 70년 동안 우리 민족이 계속해온 통일국가건설운동의 대척점에 미국이 있다. 그 대척점에서 미국은 1948년 분단체제를 합법화, 영구화하려고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다. 지난날 미국의 분할점령정책과 단독정부수립정책은 오늘날 분단영구화정책과 대조선적대정책으로 전이되었다.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은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만들어 1948년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을 내건 미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라는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방대한 핵전략자산을 투입한 전쟁연습을 계속하여 정세를 고의적으로 긴장시키고, 친미세력의 장기집권을 보장해줌으로써 1948년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1948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면, 그 체제를 수립해놓고 유지, 관리하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켜야 한다.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이 존속되는 한, 1948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킨다는 말은 미국과 전면적인 정치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그 정치대결은 남북연석회의 역사를 계승한 전민족적인 통일국가건설운동과 그 운동을 짓누르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결이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숙명적인 정치대결이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서 시작된 통일국가건설운동사에 어느덧 70년의 연륜을 새겨넣은 올해 2018년은 한반도 전역에서 자주통일을 열망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단합하여 통일국가건설운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9> 

 

▲ <사진 9>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서 시작된 통일국가건설운동사에 어느덧 70년의 연륜을 새겨넣은 올해 2018년은 한반도 전역에서 자주통일을 갈망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단합하여 통일국가건설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2016년 8월 15일 서울 대학로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8.15 전국노동자대회의 한 장면이다. 대학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드배치 철회, 평화협정 체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요구한 거대한 함성은 그들의 통일열기만큼 강렬하였다. 선대들로부터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위대한 유업으로 넘겨받은 후대들에게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키고 기어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결의가 넘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8년 4월 23일에 진행된 남북연석회의 넷째 날 회의에서 ‘전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제목의 격문이 발표되었다. 70년 전 통일국가건설운동을 벌였던 선대들은 그 격문에서 70년 뒤 통일국가건설을 벌이고 있는 후대들에게 이런 절규를 남겼다.

 

“....조선민족은 죽지 않았다. 우리 조선민족은 또 다시 외국의 노예로서 암흑의 길을 결코 밟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이며, 우리 조국도 하나이다.... 우리 민족은 통일독립을 요구한다.... 우리 조국에 위험이 박두한 이 엄숙한 순간에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주저한다면 우리 후손들은 어찌될 것이며 그들은 얼마나 우리를 원망할 것인가....”

 

하지만 후대들은 선대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선대들로부터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위대한 유업으로 넘겨받은 후대들에게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키고 기어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결의가 넘친다.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을 맞이한 그들의 앞길에 2018년 새해 첫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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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박성민 | 정치컨설턴트

입력 : 2018.01.01 21:38:00 수정 : 2018.01.01 21:39:13

 

ㆍ박성민의 2018 정치 기상도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교수는 2016년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에서 뛰어난 통찰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는 ‘건국 이후 첫 주류 교체와 미국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미국을 한국으로 바꾼다면) 이 제목, 이 부제에 딱 어울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건국 이후든, 해방 이후든 주류 교체는 (정권교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혁명적 사건이다. ‘이 나라는 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 보수로서는 상상할 수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항상 주류였던 한국의 보수는 좋게 말하면 ‘주인 의식’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유욕’이 너무 강하다. 회사, 학교, 신문사, 교회도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식이다. 그런 인식의 연장에서 ‘국가’도 내 거다. 아무리 보수(우파)는 ‘재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보(좌파)는 ‘인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지만 한국의 보수는 지나치게 소유에 집착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보수의 민낯은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숨김없이 드러났다. 

 

반면 진보는 좋게 말하면 ‘비판 정신’이 강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비주류 의식’이 너무 강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야당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은 마치 챔피언처럼 행동한 반면 여당 후보였던 노무현은 도전자처럼 싸웠다.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의원 수도 많았고 이회창이 노무현보다 나이가 더 많은 탓도 있었겠지만, 이회창의 보수적 이미지와 노무현의 개혁적 이미지는 그들 속에 잠재된 주류 의식과 비주류 의식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비주류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건 과반 의석을 넘긴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잠재의식을 넘어서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그런 보수의 나라에서 지금 주류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제국 같았던 보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붕괴의 조짐을 눈치챈 사람들은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렇게 무기력하게 몰락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빈틈없이 강고해 보였던 지배권력은 대개 그런 식으로 한순간에 와해적 최후를 맞았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의 아우라도 사라진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지난 60년간 보수우위 시대를 지탱해온 보수의 히말라야인 일곱 개 기반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지식인, 보수 언론, 문화, 재벌, 권력기관, 기독교, 보수 정당의 물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담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보수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문화계 인사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광장에서 보수 권력을 조롱한다. 숫자가 너무 많아 (보수 정권은) 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하기도 버거웠다. 존경받는 (보수) 언론인, 종교인, 기업인도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보수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존경할 인물이 없다” “부패했다” “촌스럽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능력도 없다”가 추가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보수 몰락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혹은 이끌어) 온 보수의 두 축, 즉 세상을 ‘북한’과 ‘돈’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보는 ‘안보 보수’와 ‘시장 보수’는 1987년과 2017년 광장에서 탄핵당했다. 

보수의 시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으로부터 패권의 지위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과 비슷할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순간에 몰락했다. 

이제 와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신보수’와 ‘개혁보수’를 내세우지만 말장난에 불과한 느낌이다. “별의별 것을 다 갖다 붙여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던 노무현의 비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자유주의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 2>의 후기인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에서 “보수주의적 태도의 근본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 보수주의는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 결국 속도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1987년 이래로 보수가 서서히 몰락한 이유는 ‘선거’ 때문이다. 선거는 보수의 가장 약한 고리다. 다른 영역의 수구·보수 카르텔이 강고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평평했던 선거는 치를 때마다 보수의 성을 조금씩 무너뜨려왔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는 아마도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즉 ‘북한에는 강경하고 시장에는 관대한’ 전통적 보수 세력의 몰락을 볼 수도 있다. 1980년대는 김영삼·김대중의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손을 잡고 집권 보수 세력에 맞섰다. 1990년대는 김영삼·김대중의 자유주의 세력에 보수 세력이 투항한 시대였다. 자유와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수 정당 주도권이 자유주의 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 안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정체성이냐 외연 확대냐, 집토끼냐 산토끼냐의 치열한 논쟁은 당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한목소리로 충성을 보이라고 몰아붙이더니 급기야 국정교과서라는 자폐적 광기의 정점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때 보수는 끝났다. 민주당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다른 목소리를 막는 순간 정당은 죽는다.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거칠게 분류하면 30% 대 20% 대 30% 대 20%다. 맨 앞의 30%는 2007년 정동영과 권영길의 지지율 합이다. 마지막 20%는 이른바 ‘태극기’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은 앞의 세 세력이 손을 잡은 결과 80%의 압도적 지지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2012년 대선의 50% 대 50% 구도에서 세 번째 그룹이 이탈해 박근혜를 찍은 것이다. 이들을 중도 보수, 합리적 보수, 중도 우파, 자유주의 우파 등 뭐라 부르든 현재 한국 정치 지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이다. 적어도 다음 대선까지는 이들의 선택이 정치 지형을 좌우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70%라는 현실에는 ‘홧김에 서방질’하는 중도 보수의 풀리지 않은 분노가 숨어 있다. 앞의 50%는 문재인 당선으로 화가 풀렸지만 오히려 세 번째 그룹은 박근혜를 찍었었다는 부끄러움과 자괴감, 그리고 ‘쪽팔림’이 뒤엉켜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이들이 돌아올 것으로 믿는 모양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 중에는 이미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을 찍은 사람도 꽤 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은 사람 중 정몽준을 찍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박근혜를 찍은 사람 중엔 박원순을 찍은 사람이 꽤 있다. 박원순이 13%가 넘는 큰 차로 승리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때보다 훨씬 명분, 인물, 매력을 잃은 자유한국당을 찍을 것이라 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의 배경에는 비견될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2003년에는 다섯 명의 전직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다. 그중엔 상왕 이미지가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있었다. 야당에는 박근혜, 이명박이 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당은 소수당이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네 명의 대통령이 생존해 있지만 아무 영향력이 없고, 민주당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세 분은 돌아가셨다. 여야를 막론하고 강력한 차기 주자도 없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비슷한 위상이다. 

보수 세력이 분열하기 전에도 선거 지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2010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20~40대 유권자층에서 보수는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2017년 대선 때는 50대마저 잃었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전의를 상실하고 한강 전선을 포기했다. 홍준표 대표가 대구의 당협위원장을 맡겠다고 선언한 순간 수도권 승부는 끝난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는 호남을 국민의당에 완전히 잃은 민주당에 1석을 내주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뚫리지 않았던 보수의 아성 강남과 대구도 뚫렸고, 부산·경남은 누구의 텃밭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30~40대 여성에게 자유한국당은 혐오스러운 ‘마초 정당’으로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의 위기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두 당의 통합이 무산된다면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의 대척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통합이 된다면 신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있겠지만 ‘보수의 대안 정당’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세 번째 30%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다면 일거에 당 지지율이 2등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앨버트 허쉬먼이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에서 통찰한 대로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에서 이탈할 정당이 생기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통합에 성공하더라도 안철수와 유승민 두 사람의 정치 행로는 험난할 것이다. 안철수를 정치로 불러낸 세 그룹인 2030·중도·호남은 이유가 다 달랐다. 2030 젊은층은 기성 정치가 싫어서 안철수를 불러냈고, 중도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가 싫어서 불러냈고, 호남은 박근혜의 유일한 대항마인 문재인이 싫어서 불러냈다. 안철수가 ‘새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2030을 중심으로 중도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호남의 지지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둑에서 수순이 중요하듯이 정치에서도 수순이 중요한데 안철수는 호남을 기반으로 국민의당을 창당한 순간 2030의 지지를 거의 잃었고 중도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잃었다. 뒤늦게 수순을 바로잡아보려고 하지만 열 배는 어려운 길을 자초한 셈이다. 

정치가·군인·기업가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반면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는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와 군인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자가 된 것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동맹’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것도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도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회창이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대쪽 같은 원칙 대신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양김 정치의 절반만 배웠어도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는 합리적인 사람보다는 합목적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들과 싸우는 건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욕먹는 결단은 큰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정치가 어려운 이유다. 우디 앨런이 영화 <지골로 인 뉴욕>에서 장사가 안되는 중고서점을 폐업하면서 “요즘은 이런 귀한 책 찾는 놈들이 더 귀해”라고 한탄했지만 요즘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정치가를 볼 수 없다.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다. 지도자도 없고, 위대함도 없다. 

정치는 단순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지난 30년간 연합을 한 정치세력은 승리했고 분열한 세력은 패배했다. 예외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수가 정치적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보수 우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주류가 바뀌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에 성공한다면 6·13 지방선거는 통합신당과 자유한국당의 반민주당 연대,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반자유한국당 연대, 그리고 연대 없는 3당 경쟁의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담대한 연대’를 결단하는 지도자가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박성민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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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남북관계 중시한 김정은, 의도는?

문재인 정부, 적극적으로 기회 활용해야
2018.01.01 16:14:45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공언하며 과거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남북관계 개선 방안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전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되 향후 정책을 미국과 섬세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올림픽 참가 의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진정으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왕래)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며 올림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과거 어느 신년사보다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성이 높은 입장을 내놨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북과 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충돌과 전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2016년 신년사 역시 "북남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 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며 기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물론 김 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고위급 회담 재개뿐만 아니라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며 적극적인 대화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경우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남북 양측 모두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선언'하는 식으로 발표했던 전례가 있어, 그 자체로 현실적인 남북대화 제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또 2015~17년에 발표된 신년사와 비교했을 때 올해 신년사에 남북관계를 언급한 분량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은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남북대화 통한 북미 협상 추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이 이번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평가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전례 없이 매우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며 "북한이 지난해 보였던 남북대화 거부 입장에서 탈피할 것이라는 전환을 보여줬다"고 논평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당국회담이 성사되어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대외관계 중 남북관계를 가장 비중있게 다뤘다"며 "핵무장 완성을 재확인하고, 억지력을 바탕으로 평화 공세로 전환했다. 이는 남북관계를 징검다리로 대외 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위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이라며 미국과 날을 세웠다. 

이를 두고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핵무력 완성'으로 이제 안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신년사에서 핵탄두와 탄도 로켓의 대량 생산과 실전 배치를 지시함에 따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고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2018년에도 전력화 실전배치를 명분으로 핵무력의 기술적 완결성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공언하면서도 남한에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의도에 대해 "북한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겠다는 점을 내비치면서 대신 남한 쪽으로 적극적 평화공세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대화)이 아니라 통남봉미(通南封美, 미국을 배제하고 한국과 대화)를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에 적대적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미국과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통남봉미'는 이를 위한 하나의 단계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단계적으로는 남한과 관계를 트고 미국과 적대적으로 갈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목표는 결국 미국과 관계 개선이다"라며 "우선 1단계로 남한과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를 안정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미국과 국제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이 변함없는 북한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신년사에서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바탕으로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며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낮추면서 미국의 군사적 선택지 사용 가능성을 감소시키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읽고 군사적 선택지 대신 북한과 협상에 나설 수 있느냐다. 이에 대해 백 수석연구위원은 "미국도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이 쉽사리 군사력을 동원해 전쟁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군사적 선택지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측면의 딜레마뿐만 아니라 북한이 미국의 메시지를 오도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장기적으로 동북아에 중국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미국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남북이 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긴장 완화로 가게 되면 미국이 군사적 선택지를 강화하기도 힘들다"고 예측했다. 
 

▲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인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청와대


문재인 정부, 적극적으로 기회 활용해야 

북한이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를 중요하게 다룬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향후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이번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아주 명명백백하게 남북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아서 고위급 회담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남북회담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림픽 특사든 비공개접촉이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북한에서 고위급이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현재 북한 정권의 2인자인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정도가 움직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이 저렇게까지 나왔기 때문에 실제 (최룡해가)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또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위해 "미국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것에 조속히 합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했기 때문에 미국도 동의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북한과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 어떤 회담을 할지를 미국과 상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 혼자서 북한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며 미국과 세심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관계 악화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만큼 관계 개선을 위해 고려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요구와 북한의 입장 사이에는 차이가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평창 올림픽이라는 기회가 있다면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북한에 '와일드 카드'를 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나 미국과 쿠바의 '베이스 볼 외교'의 사례처럼, 체육 외교를 본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오늘부터 장애인 올림픽이 끝나는 3월 말까지 석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반도 정세에서 지난 10년 동안 사라졌던 '당사자'가 귀환하는 시간"이라며 "너무 서두르지 않으며, 너무 큰 기대를 앞세우지 말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한 걸음씩 내딛을 때"라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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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신년사,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 용의”

“남북관계 개선해야…각계 단체 대화의 길 열어놓을 것”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18-01-01 11:20:11
수정 2018-01-01 1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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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를 맞아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아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뉴시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과적으로 열리길 바란다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신년사 연설에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동족끼리 행사를 돕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메시지도 내놨다. 그는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 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북남이 폭넓게 교류해 통일 주체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는 진정으로 민족적 화합을 바라며 각계단체 인사와의 대화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민간교류 재개 가능성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나는 이 기회에 남, 북, 해외 전체 조선 동포들에게 따뜻한 새해 인사를 남기며 북남의 모든 일이 진심으로 잘 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남북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언급했다. 그는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한다”면서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난 7월 우리 정부가 제안했던 남북 군사당국회담에 북측이 응할 가능성도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은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할 게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 노력에 성의 있게 나서야 한다”며 “외세와의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며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행위를 걷어 치워야 한다”고 한미 군사연합훈련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서는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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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년기획 1면]헌법 11.0···다시 쓰는 시민계약

입력 : 2018.01.01 01:15:00 수정 : 2018.01.01 02:03:40

 

[경향신문 신년기획 1면]헌법 11.0···다시 쓰는 시민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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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년기획 1면]헌법 11.0···다시 쓰는 시민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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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독일 헌법 첫머리는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이다. 국가로 시작한 헌법과 인간으로 시작한 헌법. 2018년 1월1일자 경향신문 표지는 이런 차이에 주목한 한 편의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글자체나 글자 배치를 이용한 디자인)이다.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를 역사적, 환경적, 철학적으로 해석해 표현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명조체와 가운데 정렬 방식을 채용했다. 명조체는 붓글씨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양의 관념적 특징을 갖고, 가운데 정렬은 권위적이면서도 우아한 방식이다. 독일 헌법은 고딕체와 왼쪽 정렬 방식을 썼다. 고딕체는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기능적 글자체다. 왼쪽 정렬은 1900년대 이후 등장했는데, 사람이 읽기에 가장 편한 방식이다. 개헌이 화두로 떠오른 2018년 독자들에게 우리 헌법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김의래 디자이너(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가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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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지속 가능한 나라 만들기

[김성훈 칼럼]
2017.12.31 21:30:50
 

 

 

 

2017년 정유년 세밑을 뜨겁게 달군 농업계 화두는 단연 '농업 가치 헌법 반영 1000만 명 서명운동'이 추진된 지 한 달 만에 목표 1000만 명을 돌파한 사건이다. 그리고 12월 5일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과 서울특별시 박원순 시장의 동참 서명이 대미를 장식하였다.

농업 가치 헌법 반영 1000만 서명 돌파!!

농협중앙회(회장 김병원)가 선두에서 이끈 동 서명운동은 농(임,축산)업과 농촌이 갖는 농림축산물의 본원적인 생산 기능 외에도 식량 안보와 안전, 농촌 경관 및 환경 생태계 보전, 수자원 확보와 홍수 방지 등 다양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농업의 만고불변한 기본 가치(價値)를 헌법에 명시적으로 반영하여 정부의 관심을 적극 끌어들이려는 농업계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1987.10.29. 전부 개정)의 기초(起草) 전문위원으로 농업 및 경제 분야 조문의 개정 작업에 직접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역대 정권 교체기마다 농정 적폐청산 제1호로 지목 받던 농협중앙회가 새 정권 초기에 발 빠르게 농업 가치 헌법 반영 서명운동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그 감회가 더욱 착잡하다.

서명운동에 참여한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과 농업종사자들은 개정 헌법에 농업의 가치가 제대로 명문화되면 정부와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올곧게 일깨우고 무언가 좀 더 3농 부문을 긍정적으로 배려하여 침몰 직전의 농촌경제와 환경생태계를 되살릴 묘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설사 획기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지난 9년간의 암흑과 같은 '이명박근혜' 정권 치하의 농업 무시, 농촌 천대, 대농민 사기 행위들일랑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잡고 싶었을 것이다. 

헌법에 농업 가치 조문이 명문화되지 않아 3농이 피폐해졌나?

그러나 말이야 바로 해 권력과 돈의 힘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현실 정치구조를 직시해 볼 때, 헌법에 농업의 가치가 명문화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나라 3농, 즉 농업·농촌·농민이 이렇게 피폐해졌는가? 아니다. 그게 전적으로 헌법 조문 탓만이 아니다.

예컨대, 현행 헌법 제121조 제①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小作制度)는 금지된다'라고 엄연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48년 제헌국회 헌법이래,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하의 제3공화국 헌법,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그리고 1987년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수록 계속 강화돼 왔다.

그런데도 그 결과는 어떠한가? 제헌헌법 하의 '농지개혁법'이 1950년 실시되기 이전보다도 현재 전국의 논과 밭은 그 절반 이상이 비농업인, 부재지주 그리고 도시 투기꾼들에 의해 더 많이 소유되어 소작(임차) 농민의 비중이 60% 에 달한다. 도시 근교의 농지는 8~90%가 임차 소작농지이다. 참고로 1950년 농지개혁 당시 소작농지 면적은 전체 농지의 32.4%이었다.

결코 이 '농사직썰'란에서 주장하려는 메시지는 농업가치의 헌법 반영이 필요 없다거나 그 선의를 폄하하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도리어 헌법 조문화의 선행(先行) 조건과 이행조 건 그리고 그를 추동하는 농정철학(農政哲學)이 확고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농업 가치의 헌법 조문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를 추진할 정직하고 정의로운 정부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철학이 깊은 정의로운 정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워낙 급하게 탄생한 정부이다. 이재욱 농어촌사회연구소장이 '문재인 정부의 농정을 평가한다'(<농촌과 목회> 2017년 겨울호)에서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는 국정 운영 계획을 정부가 출범한 후에 세울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탄생했지만,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 구두로 직접 약속한 말까지 없었던 일인 양 눈감아주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농업 문제는 자기가 직접 챙기겠고 또 농정철학과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고 공언했지만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어떻게 직접 챙길지 전혀 오리무중이다. 최소한 농민 대표들을 공식적으로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직접 만나 토론 한 번 하지 않았다. 농정 기조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담화 발표도 이제껏 한 번도 없다. 그와 똑같은 말을 이미 박근혜 씨도 대통령 후보 때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몰락한 후 들어선, 농정 철학이 깊은 정의로운 정부가 취할 자세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전임 대통령인 김영삼 씨 후보 시절 발언으로 적잖이 재미를 본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겨우 4개의 농업분야 과제에 포함되어 시선을 끈다. 구체적으로, 사람이 돌아와 살고 싶은 복지 농산어촌을 만들기 위해 교통·의료·생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휴식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실천사항이 마치 외지 사람들이 놀러 오는 농산어촌을 만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으로만 읽히는 것은 너무 오버한(over, 지나친) 판단인가. 

핵심은 새 정부의 농정철학과 기조가 너무 얄팍하고 광대하여 분명하지 않거나, 역대 정부의 실패한 농정의 되풀이 또는 설거지하는 모양새라는 점이다. 농민의 연평균 농업소득은 2005년 수준에 제자리걸음하고 있으며 명목상의 농가소득 총액이 4000만 원에 훨씬 못 미치는데 비해 농민이 주인이라는 농축협 조합장의 연봉은 그 몇 곱절의 억대를 호가하고 중앙회장을 비롯 간부 임원들의 연봉도 평균 3억4000만 원으로 농가 소득의 거꾸로 된 역피라미드 소득구조는 무엇인가. '임직원을 위한 농축협'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사실이라는 것만 확인시켜 준다. 위치와 가치가 전도(轉倒)된 농정 현장은 거슬러 올라 가 보면 수입먹거리 위주의 식품행정, 자급률의 끊임없는 하락 현상, 농약으로 뒤덮인 농토와 환경생태계,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국민소비자, 농가와 농민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늘어나는 농업 관련 공직자와 단체들과 임직원, 중앙으로만 집결된 농정관련 권력과 행정력과 예산권이 이 나라 농정을 거꾸로 치닫게 하고 있다. 농정현안, 현장에서는 배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지속·재생 가능한 농업과 나라 

구미 선진제국이 추구해온 농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속가능한 재생 농업이다. 지속가능한 재생농업(Sustainable Regenerative Agriculture)이란 무엇인가?

첫째, 농업 생산력의 주체인 농업인이 안정된 삶을 유지하면서 상호 신뢰와 협력으로 지속적으로 환경과 인간이 성장하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며, 둘째, 환경생태계와 농업생산 활동이 조화를 이루어 공존·공영하는 것이며, 셋째, 농업과 공업, 유통업이 상호 연계되어 발전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이 서로 보완 발전한다. 끝으로 지역 지방 정부가 농정활동의 주체가 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수평적 협력 체제를 일컫는다. 그래야 농업 농촌 농민이 지속 재생할 수 있고 사회와 국가가 유지 발전 재생할 수 있다. 

위 네 항목 중 그 어느 하나라도 미진하거나 불비(不備)할 때 그 사회 그 나라의 지속가능성과 재생 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진다. 농업부문이 먼저 망하고 그 사회 그 국가도 마침내 지속 불가능해진다. 친환경적인 농업이야말로 사회와 국가 형성에 최소한 갖춰야 할 필요기본조건(National Minimum Requirement, NMR)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꿈꾸듯 토로한 지속가능한 농업의 기본 틀과 철학은 앞에 소개한 네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을 두고 말한 것이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행정 사항은, 농산물 및 그 가공품의 판로 확보와 가격안정, 그에 의한 농어민 소득의 안정적인 유지 보장, 그리고 농어민 주도의 생산, 가공, 유통, 무역 활동, 이른바 농민 주도의 6차 산업화 대책 등이다. 그리고 이를 더욱 알차게 실천하기 위한 농민 생산자/소비자의 자조적인 협동조직 육성과 연계, 지방분권에 의한 명실상부한 지방정부 주도의 3농 현장지원 활동 등이다. 

이 같은 복합적이고 중차대한 농정 철학과 기본 틀, 즉 지속 재생 가능한 국가사회 건설은 단순히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영역을 넘어 대통령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임무이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가 경영의 기본 조건인 것이다.  

이 글은 전국농민회가 발행하는 <한국농정신문> 2018년 1월 1일 자 '농사직썰'난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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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농업 및 환경문제 전문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프레시안> 고문을 맡고 있다. 대학과 시민단체, 관직을 두루 거치며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앞장 서 온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서 <김성훈 칼럼>을 통해 환경과 농업,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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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위원장, 2018년 초강경 행보 걸을 것

김정은위원장, 2018년 초강경 행보 걸을 것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1/01 [04:0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최근 국내 한 북관련 동영상 사이트에 소개된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어'. 이 영화는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2012년부터 2016년 초반까지 북의 최고지도자로서 걸어온 행보를 정리 종합한 동영상이었다.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어 화면복사

 

▲ 김일성주석과 머리 모양도 비슷하게 하는 등 외모는 물론 북 주민들을 만날 때의 미소, 글씨체까지 같이 하려고 애를 써온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글씨체도 김일성주석과 비슷하다. 사업분야에 있어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빠른 속도로 추진해나갔다. 하여 북 주민들은 김정은위원장을 통해 두 선대 지도자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2017년 각종 위력적인 전술핵탄두장착용 탄도미사일 시험들은 물론, 두 번의 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과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까지 성공시키면서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행보를 보여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게에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2018년에는 더욱 더 강력한 행보를 내디딜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된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상정치사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진들, 각 분야 핵심간부들에 대한 사상정치사업이 정말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당 세포비서(세포위원장) 대회만 봐도 조선노동당 창건 이후 총 다섯 번 중에 김정은위원장 집권 6년 동안 두 번이나 진행했다.  대회마다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나와 연설도 했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 북녘 곳곳에 김일성 김정일 선대 지도자의 동상과 기념비를 대거 새로 건립하고 있다. 주요 도시는 물론 마을과 공장에도 우후죽순처럼 건립되고 있다.  북 주민들이 두 지도자를 단 한 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원히 함께 있다는 말이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최근 국내 한 북 동영상 사이트에서 소개한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련 기록영화를 보니 2017년의 과감한 행보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위해 집권초부터 북 간부들에 대한 사상정치사업을 치밀하게 진행해왔으며 서해 최전방 작은 섬 초소까지 찾아가 직접 주민들과 만나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며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 의지를 매우 빠른 속도로 최상의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 북의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라는 기록영화를 보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짧은 기간 써 낸 노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교육, 국방, 경제, 행정, 건설, 문화예술 등 주요분야는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시절 군부대 현지지도를 가면서 헐벗은 산을 보며 가슴아파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무심기와 관련된 노작까지 전 분야에 걸쳐 매우 구체적인 제목으로 쓴 노작이 헤아릴 수 없이 소개되고 있었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더불어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미국과 그 동맹국이 아무리 강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더라도 자체의 힘, 자강력으로 뚫고 나갈 비결을 과학기술로 보고 과학자 기술자들의 사기를 최대로 끌어올려 최첨단 무기도 개발하고, 경제발전도 이루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은 1년을 경제선진국 10년 맞잡이로 따라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도 과학기술력을 이용하여 추동해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을 위해 은하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살림집, 김책공대교수 살림집 등 과학자 기술자들을 위한 일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대학과 각 지역에 수많은 연구소를 설립하고 최신식 시설과 장비를 갖추어주었다.

하여 지금은 최첨단 모든 군사장비를 100% 북의 기술과 재료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경제분야도 거의 국산화 비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 북의 최근 보도들이다.

 

▲ 북 국가나노연구소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 북의 연구소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하면서부터 북의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북 주민들에게 미국과의 전쟁공포로부터 벗어나 마음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는 북 언론 보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북을 방문하고 온 해외동포들의 전언에 따르면 실제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좋은 살림집이 제공되고 매대마다 질좋은 상품들이 가득가득 쌓이고 있으며 월급도 획기적으로 오르게 되니 북 주민들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열광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장성택 숙청 이후 혼란스러워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 주민들 전체에게 100% 상여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해외 언론인의 전언에 따르면 성과급제가 도입되어 실적을 높이면 월급을 두세배가 아니라 수십배를 더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상교육이 1년 더 확대되고 전국 도처의 애육원 육아원이 새로 건설되었고 고아들의 기숙학교인 초등학원과 중등학원이 최신식 시설로 전국 도처에 일떠서고 있다. 

해외교포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뿐만 아니라 평양에 유희장, 물놀이장, 동물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과학기술전당 등 북 주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학습도 할 수 있는 최신 시설들이 계속 건설되어 북 주민들의 생활의 질을 높여내고 있으며 평양에 정치사상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온 북의 각 지역 간부들도 이를 참관하고 나서 자신들이 일한 보람으로 국력이 커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또 자신들의 지역에도 그런 시설들을 건립할 꿈을 키우게 하여 지방까지도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한다.

  

 [↑ 위의 동영상은 최근 국내 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소개한 북 기록영화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어'의 한 대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의 최고지도자로서 국방과 경제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지도를 단행한지 만 6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정치를 그대로 변함없이 이어나갔다는 사실이다. 위의 동영상만 봐도 머리 스탈일에서부터 주민들을 만날 때 표정까지도 같았다. 외모는 김일성주석을,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많이 닮았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11월 29일 오전 2시 48분(평양시간) 평양의 교외지역에서 화성-15형이 거대한 발사폭음과 불줄기와 후폭풍을 내뿜으며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다. 최대고각발사체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서 화성-15형은 최고정점고도 4,475km까지 상승하여 950km를 53분 동안 비행하였고, 동해의 설정된 수역에 탄착하였다. 화성-15형 전투부에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가 장착된다고 한다. 화성-15형의 사거리는 14,000km로 추산된다. 화성-15형은 100% 조선의 힘과 기술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발되었다고 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따라서 2018년에도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뜻을 이어나가려는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모든 성과를 이제 북미대결전을 끝내는데로 집중시켜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7년 이전에는 사상정치사업과 경제분야에 대한 현지지도 많았는데 지난해는 경제지도가 퍽 줄었다. 대신 박봉주 총리나, 최룡해 부위원장 등이 단독적으로 경제단위에 대한 현지요해사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연초부터 어린이 가방공장 등 경제단위 현지지도도 하기는 했지만 2017년 김정은위원장은 군사분야에 주력했다. 단 몇 발만으로 미국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수소탄을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적으로 시험했고 미 본토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전략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화성-14형, 화성-15형 두 종류나 성공시켰다. 

 

이럴 경우 미국은 선제타격으로 북을 제압하거나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제재를 기본에 두면서도 끊임없이 선제타격 가능성도 타진하였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김정은위원장은 전쟁도 제재도 북 주민들이 일심단결만 굳게 한다면 얼마든지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과학기술력을 활용하면 실질적으로 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를 보면 2-3년만에 북 주민들이 보여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열광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김정은위원장이 각 사업장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북 주민들이 열광하는 장면을 이번 영상에서 처음 공개했는데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열열한 장면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집권 3년 안에 찍은 영상들이었는데도 그랬다. 

 

[↑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전 지도자였던 김정일국방위원장 급서로 북 주민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최고지도자가 되어 북의 전권을 맡아야했다. 나이도 너무나 젊었으며 모든 것이 장막에 가려져 있어 과연 북 주민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낼 수는 있을지, 권력다툼 속에서 확고한 지도력을 장악할 수는 있을지 의문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위의 영상을 보면 2-3년도 지나지 않아 북 주민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외모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북 주민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점도 역할을 했겠지만 단 몇년만에 북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여낸 점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이라는 자긍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어 북 주민들의 그에 대한 열광은 더욱 뜨거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2016년 1월 6일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보도를 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백두산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을 게재했다. 이때부터 최후승리를 앞당길 결정적 조치들을 단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집권 초부터 최후승리를 앞당겨내자고 호소한 바 있다. 북이 말하는 최후승리는 사회주의 이상사회건설, 북미대결전 종식, 조국통일 이 세가지를 이루는 보이는데, 북 주민들의 지지를 최대의 높이까지 높여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힘을 모아 최후승리 목표를 향해 더욱 빠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두 차례의 수소탄 시험과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한 무지막지한 공세적 행보도 그런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6년부터 최후승리를 앞당길 구체적 조치들을 단행할 결단을 내렸던 것 같다. 2016년 수소탄 시험 이후 선군915전차의 위력적인 도하훈련과 사격훈련, 오차 1미터 안 초정밀 타격이 가능한 200km사거리 300미리 대구경방사포, 훨씬 위력이 커진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완벽한 성능을 보여준 번개 지대공 미사일 등 각종 전술무기들을 줄줄이 공개하였다. 이는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통일성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2017년 미국이 전쟁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미사일 장착용 수소탄과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한 것이다.

 

미국이 이제 평화적으로 살고자 한다면 북과 우호관계를 맺거나 선제타격으로 제압하거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미국은 지난해 실제 심각하게 전쟁을 고민했다. 항공모함을 3척이나 동시에 한반도 수역으로 끌고 오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것이다. 하지만 2106년부터 북이 보여준 전술무기들과 2017년 저 엄청난 전략무기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김정은위원장은 2018년은 아마 이보다 더 강력한 행보를 보여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일심단결력이 더 높아지는 등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는 앞으로 질주할 일만 남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 2017년 이전보다 그 후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 의지는 열 배 이상 더 뜨거울 것이 확실하다. 이젠 경제적으로만 풍요로워진 것이 아니라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강국이라는 자부심까지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력이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어떤 행보도 이제는 주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봐야한다. 

지난해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수소탄을 두 번이나 시험할 결심을 내렸을 때 전쟁까지도 예상했을 것이다. 화성-12형은 정상각까지 쏘아 일본열도를 두 번이나 넘겼다. 태평양의 괌 미군기지까지 북 미사일 사정권에 완전히 들어갔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다만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고각발사만 하고 정상각발사는 하지 않았다.

 

만약 북이 그런 전략무기들을 정상각도로 쏘아 미국 앞바다를 뒤집어 놓거나 태평양 상에 수소탄을 터트리는 시험이라도 단행하면 미국은 정말 북과 전쟁이 아니면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체결 담판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반도는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 휴전 즉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정전협정 상태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핵미사일을 중국, 러시아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로 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8년 최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초강경 행보가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대책을 잘 수립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군사적 제재와 압박은 더욱 더 강한 북의 반발만 초래해왔다는 이미 증명된 사실을 잘 분석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장하고 있듯이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에 기초한 대화의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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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한반도 평화 새 지평 열자

평창, 한반도 평화 새 지평 열자

등록 :2018-01-01 09:24수정 :2018-01-01 09:31
 
위기 가시지 않는 한반도
세계가 평창올림픽 주목
군사긴장 악순환 끊으려면
북 도불-한미훈련 중단해야
메티스 국방, 훈련 연기 시사
200개의 천연색 엘이디(LED)가 장착된 픽셀스틱(라이트 페인팅 도구)을 들고 지나가면 공중에 빛이 뿌려진다. 카메라 셔터를 4초 동안 열어 공중에 뿌려지는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사진과 평창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를 함께 담았다. 평창/김명진 이정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개의 천연색 엘이디(LED)가 장착된 픽셀스틱(라이트 페인팅 도구)을 들고 지나가면 공중에 빛이 뿌려진다. 카메라 셔터를 4초 동안 열어 공중에 뿌려지는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사진과 평창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를 함께 담았다. 평창/김명진 이정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분단의 한반도, 그중에서도 분단의 땅 남강원도에 속해 있는 평창은 올림픽 정신에 가장 적합한 개최지다. 올림픽 휴전 기간 동안 의미있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2017년을 뒤흔들었던 한반도 위기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2018년 평창에서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낼 천금같은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고 했다.

 

‘하나된 열정. 새로운 지평.’ 평창 겨울올림픽(2월9~25일)이 열리는 2018년 새해가 밝았다. 평창에 이어 2020년 여름 도쿄와 2022년 겨울 베이징까지 ‘평화의 제전’은 앞으로 4년간 동북아에서 릴레이로 치러진다. 평화를 향한 열정으로, 냉전의 유일한 섬으로 남은 한반도의 새 지평을 열 기회다.

 

 

미국외교협회(CFR)는 2018년 미국이 직면하게 될 ‘8대 안보위협’ 가운데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첫손에 꼽았다.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보면 결코 무리한 평가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23기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한차례(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11월29일엔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의 도발적 발언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백악관에선 공공연히 ‘선제타격’, ‘예방전쟁’이 거론됐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등 전략자산을 대거 전개시키며 위기감도 키웠다. 한반도는 1년 내내 ‘위기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북-미가 실제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유엔 헌장 2조3항은 “회원국은 국제분쟁을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의 근거로 삼는 헌장 41조는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조치”에 국한돼 있다. ‘자위적 차원’의 군사력 사용의 명분이 되는 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란 전제를 달고 있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위기감이 가시지 않는다. 북-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소한 실수와 판단 착오가 언제든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이를 두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잠든 채 걷듯 전쟁으로 빨려들 수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상황의 엄중함은 미 의회의 이례적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회는 지난해 11월14일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권한을 따져묻는 청문회를 열었다. 상·하원을 막론하고 미 의회가 핵무기 사용 문제를 두고 청문회를 연 것은 냉전이 불을 뿜던 1976년 3월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었다.

 

북-미 사이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실수든 판단 착오든 ‘군사적 옵션’이 가동된다면 한반도는 파멸 수준의 대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에 나선다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모두 파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은 즉각 보복 대응에 나설 것이다. 쉽게 전면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미국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관련 보고서에서 “개전 초기 불과 몇시간 안에 재래식 무기 공격만으로도 최소한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일단 멈춰야 한다. 더이상의 정세 악화를 막고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위기의 한복판에도 기회는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1월13일 만장일치로 ‘평창 올림픽 휴전 결의’를 채택했다. 올림픽 개막 1주일 전인 2월2일부터 패럴림픽(3월9~18일) 폐막 1주일 뒤인 3월25일까지 유엔 회원국은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 결의 채택 당시 마리아 테오필리 유엔 주재 그리스 대사는 “차이와 불평등, 갈등으로 점철된 세계가 잠시나마 휴전에 합의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19일 미국 <엔비시>(NBC)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평창 올림픽 뒤로 연기할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12월29일(현지시각) 기자 간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 연기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 정부가 발표할 것”이라며 “우리는 늘 훈련 일정을 조정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통상 매년 2~4월 열렸던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은 ‘올림픽 휴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52일간의 ‘올림픽 휴전’이 만들어낸 평화의 문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한-미 연합훈련 연기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맞물려야 한다. 이럴 경우 잠정적이나마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이 성사될 수 있다.

 

낙관은 금물이다. 어렵게 대화가 시작돼도 당장 손에 쥐는 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암울한 전망을 할 필요도 없다. 경험도 있다. 냉전체제 해체 직후인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2년 동안 남북은 모두 8차례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이를 통해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17일)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1991년 9월27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년 12월13일)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발효(1992년 2월19일) 등을 이끌어냈다. ‘한반도 평화여건 조성’과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긴장완화 조치’를 이유로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릿 훈련을 1992년 중단한 게 결정적이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91년 중반께 이듬해 팀스피릿 훈련 중단을 결정해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 등 숱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기회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2018년 평창을 시작으로 앞으로 4년간 동북아 3국을 돌며 열리는 ‘평화의 제전’을 버팀목 삼아 긴 안목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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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저앞에서 이명박 구속 촉구하는 촛불집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2/31 15:05
  • 수정일
    2017/12/31 15: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Posted by: Byung Taek Jeun in Headline, 스토리파이, 정치 2017/12/31 00:11 0 267 Views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의심받고 있는 자동차 부품 업체 다스(DAS)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1. 오늘 이명박 구속 촉구 집회에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함께했다. 박 의원은 "제가 쥐띠다. 그런데 오죽하면 쥐를 잡아야 한다고 여기 왔겠냐"며 "10년 동안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는 말을 품고 살았다"고 말했다. 2017년 마지막 토요일 열린 이명박 구속 촉구 촛불집회 모습을 뉴스프로에서 모았습니다.
  2. MB집 앞에서 외쳤다 “이명박을 구속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