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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세인 ‘전쟁 반대’, 물꼬 트는 평화협상

문재인 정부, 조건 없는 남북대화 제안해야

지난달 북미 양국 정상이 직접 전면에 나서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던 최고 수위의 긴장이 실제 있었나 싶을 정도다. 25일이 되도록 이렇다 할 조치가 없는 문자 그대로 ‘폭풍전의 고요’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아직 ICBM 등의 기술적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둥, 중국 당 대표대회 일정에 맞추어 발사하려는 것이라는 둥 근거 없는 주관적 판단만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고 수위에 이른 북미간 대결이 평화협상인가, 전쟁인가의 교차점에 서있다.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행동을 시사하는 각종 발언에 긴장하면서도 다른 한편 북미간의 평화협상 진행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먼저 북미간 평화협상을 시사하는 상황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결정적인 것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지난달 30일 베이징 발언이다. 그는 세 가지의 중요 사항을 공개하였는데 ▲“(미국만의)평양으로 열려있는 둘, 셋의 채널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들(북한)과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란처럼 조잡한 핵 합의를 북한과 꿰어 맞추진 않을 것”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다면 많이 진정될 것” 등이다. 이는 북미간 대화가 복수의 채널로 진행 중에 있고, 그 방식은 이란 핵 합의와 같은 다자간 참여와 합의가 아니라 양자 대화로 결론을 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 기간 동안 상황 과열을 막기 위해 북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 달라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북한이 지금까지 미사일 발사 등 초강경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로 보인다.

틸러슨 국무장관의 이 발언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시간낭비”라고 부정됐지만, 거꾸로 만약 미 정부가 이 발언을 인정했다면 아마 언론의 집요한 북미대화 취재열기와 미국 내 반트럼프 호전세력들의 대화 반대 여론조성으로 북미 대화는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6일 북한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의 러시아 방문과 이달 중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는 북미회담, 그리고 이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핵 비확산 관련 국제회의 역시 북미간 평화협상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최선희 국장이 러시아 방문 직후 “만족한다”고 평가한 게 러시아가 지난달 12일 조셉 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초청해 회담한 결과를 논의한 사실상의 삼각대화에 관한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트럼프 정부가 북에 대한 압력 행사를 동결하거나 임시 중단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보도하였고, 미국 상원의원 12명은 트럼프 정부에게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근거해 “북과의 직접 대화 상황과 전망에 대한 기밀 브리핑”을 요청하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요구사항은 ▲미사일 발사 중단 ▲북에 구속돼 있는 3명의 미국인 석방 요구 등이다. 여기에 스티븐 베넌 전 수석전략가의 말처럼 최소한 핵(무기) 동결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북의 입장은 리용호 외무상의 러시아 타스(TASS)통신 대표단과 면담에서 확인되듯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핵 위협의 근원적 폐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하되 “우리의 핵무기가 대상이 되는 어떤 협상에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는 북미간 협상이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북미간 무력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핵잠수함 ‘투싼’에 이어 ‘미시건’도 한국에 보내 두 척의 핵잠수함을 배치하고,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루스벨트 핵항공모함 전단도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B-1B랜서의 한반도 야간출격을, 전시에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직접 지켜봐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하원의원이 전한 대로 1만2000km에 달하는 ICBM 발사훈련을 준비 중이고, 리용호 외무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말이 아닌 불벼락 공격으로 미국과 최종 담판을 지을 것을 단호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다음주 동해에서 항모전단이 참여하는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면 정세는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이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풍 전의 고요”, “단 한 가지는 효과 있을 것” 등 발언에 이어 11일 “이런 상황이 계속되도록 놔둘 수 없다”며 군사작전을 강력 시사했다. 백악관도 이날 성명에서 ‘예방전쟁’을 거론하는 등 대북 위협을 이어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강경발언에 언론과 전문가들은 물론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까지 나서 3차 대전을 우려하며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 언론 ‘더 위크’에 따르면 국방부조차 ”북과의 전면전이 아닌 제한적인 군사작전으로도 현 사태를 해결할 길은 사실상 없다는 게 결론“이라고 밝혔다. 전쟁 반대 흐름은 영국과 독일 등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도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NATO) 총사령관은 북한에 ‘미치광이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며 ”어떠한 선제공격이나 예방적 군사옵션에도 의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처럼 북미간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사회 여론이 대세가 되고 있다. 전쟁인가, 평화협상인가 결단을 요구하는 북미간 최종적 대결국면에서 전쟁 반대가 대세인 것은 결국 평화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미치광이 전략’이란 한국전쟁 정전협상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협상의 유리한 결론을 위해 핵공격을 위협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전략은 이미 핵을 보유한 북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적 군사행동만 갖고도 바로 실제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 안팎의 광범한 전쟁 반대 여론은 이 전략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제 남은 길은 미국이 자신의 체면을 지키면서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평화협상을 진행할 것인가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미국의 처지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미 정부의 호전적 수사만 앵무새처럼 따라 해서는 결코 남북관계의 개선도, 한반도 운전자도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문 대통령의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 한다”는 패배적인 ‘상황 탓’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이것은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의지의 문제이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 촛불국민이 원하는 남북화해와 평화협정에 관한 명확한 입장과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제안해야 하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북미 평화협상과 병행, 발전시켜 나가야한다. 이를 위한 첫 조치로 정의용 실장, 강경화 장관 같은 대미추종 일변도의 수구보수적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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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 긴장 최고조

조.미 긴장 최고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7/10/14 [09: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이 한국과 합동군사훈련을 위해 부산항에 입항 시킨 미시간 핵 잠수함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미국과 한국이 핵 전략 확대 순환 배치를 추진히는 것과 관련하여 북은 1차적 절멸 대상이라고 경고를 보낸 후 미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부산항에 입항 시켜 한반도 긴장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미국은 13일 전략자산 핵추진 잠수함 미시간함(SSGN-727·18000t)을 부산항으로 들여 보냈다

 

미시간함은 길이 170m, 폭 12.8m로 최대 사거리 1600의 토마호크 미사일 150여 발 등을 탑재했다미시간함의 부산항 입항은 4월 이후 올해 두 번째다

 

▲ 미국의 한반도 전략 자산은 전멸아는 북의 걍고가 어떻게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한편 북은 미시간호와 미국의 전략 자산 한반도 배치에 대해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민족의 생존을 담보하는 막강한 핵억제력을 보유한 이상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핵전쟁에는 우리 식의 강력한 핵 타격전으로 주저 없이 맞대응하여 침략자들에게 쓰디쓴 참패를 안길 것 라고 경고해 조.미 대결에 의한 한반도 긴장이 최고도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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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를 꺾은 건 교수와 학생의 연대였다

 

등록 :2017-10-14 09:20수정 :2017-10-14 12:09

 

[토요판] 커버스토리
상지대 사람들
끈끈한 연대로 비리 사학재단 몰아내고
‘사학 민주화’ 주춧돌 놓은 10년 이야기

 

 

▶ 지난 8월 상지대는 ‘김문기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정대화(61) 교수를 총장직무대행으로 선임함으로써 1993년에 이어 두번째로 민주대학 시대를 맞았습니다. 2010년 김문기 전 총장 쪽의 옛 재단이 학교를 장악한 이후 만 7년의 싸움 끝에 얻은 결과입니다. 정 총장대행(이하 호칭 생략)은 요즈음 인근 고교를 찾아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상지대에 지원할 것을 호소하는 한편 공영 사학에 선정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는 등 학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를 찾아 민주화 투쟁 주역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본관 2층의 총장실은 아직 어수선했다. 길쭉한 회의 탁자 뒤쪽 책장과 그 앞에는 김문기 전 총장이 사용했던 책들과 명패, 액자, 그림 등이 쌓여 있었다. 다시 돌아올 거니까 손을 대지 말라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김문기 책상에 있었던 난 화분 두개도 바짝 마른 채 한편에 놓여 있었다. 김문기는 정대화가 총장대행에 임명된 뒤에도 그동안 세차례 총장실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총장석에 말없이 앉았다 가는 등 자신의 흔적을 끊임없이 남기고 있다.

 

하지만 김문기 때와 달리 총장실은 이제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그가 총장실에 발걸음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교수와 졸업생, 학생들이 수시로 자유롭게 들락거렸다.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지대는 SKY 대학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상지대가 지향하는 교육은 1등을 뽑아 1등으로 졸업시키는 것이 아니라 뒷등을 뽑아 앞등으로 졸업시키는 성취 교육이다”라고 적었다. 상지대 정상화의 최전선에 섰던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이 본관 2층 총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지대는 SKY 대학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상지대가 지향하는 교육은 1등을 뽑아 1등으로 졸업시키는 것이 아니라 뒷등을 뽑아 앞등으로 졸업시키는 성취 교육이다”라고 적었다. 상지대 정상화의 최전선에 섰던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이 본관 2층 총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0년부터 옛재단 상대 긴 싸움
박근혜 정부 시절 김문기에 승리
총학생회가 선도 투쟁 물꼬 트고
교수·교직원, 농성 동참 등 가세

 

 

교수협 대표는 학생 단식 합류
학생은 파면 교수에게 야외수업
교수 “투쟁 돌파구 학생 덕분” 
학생들 “교수들 함께해 큰 힘”

 

 

교수협 중심엔 정대화 교수
파면 굴하지 않고 투쟁 계속
지난 8월 총장직무대행 선임
상지대 바로 세우기에 앞장

 

 

“SKY대학 되는 게 아니라
성취 교육이 상지대 철학”
“제1호 공영사학이 첫 목표
구성원 참여도 등 자격 충분”

 

 

 

 

-오랜 싸움에서 결국 이겼는데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정대화(정)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대학이 되어 무엇보다 좋다. 그리고 최근 10년 동안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서 대학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니까 어려운 조건에서도 이기는구나라는 교훈을 우리도 얻고 세상에도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

 

-상지대가 이긴 것은 상지대만의 승리는 아닌 것 같다.

 

정 “우리는 우리 문제로 싸웠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사학 민주화를 공개 영역으로 끌어올린 의미가 있다. 상지대의 승리가 사학 민주화의 좋은 불빛이나 촉매가 될 것이다. 최근 3~4년 동안 상지대에서 무슨 일을 하면 다른 문제 대학에서도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식이었다. 상지대의 경우가 다른 대학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지대 활동이 준거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리산으로 걸려온 운명적인 전화

 

상지대의 뿌리는 1955년 원홍묵이 설립한 관서대의숙이다. 학교 운영이 어려워진 1972년 임시이사로 파견된 김문기는 2년 뒤인 1974년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상지대를 인수했다. 이후 김문기의 상지대는 교비 횡령과 부정 입학 등을 수시로 저질러 대표적인 비리 사학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과정에서 용공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1986년 가을 학생들이 전임강사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자, 학교 기획실장(김문기 사위)이 “가자, 북의 낙원으로”라는 등의 삐라를 만든 뒤 교정에 뿌려 학생 150여명이 고초를 겪게 만든 희대의 조작 사건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첫해인 1993년 당시 여당(민주자유당)의 3선 의원이자 학교 이사장이던 김문기가 사학 비리와 관련해 구속되면서 상지대는 ‘대학 정상화’의 첫발을 뗐다. 교육부에서 파견한 임시이사에 이어 2004년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상지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 사학’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2007년 대법원이 김문기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 때 구성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사학재단의 주인 찾아주기를 명분으로 2010년 옛 비리 재단 쪽 인사의 이사회 복귀를 허용함으로써 상지대는 다시 김문기 손아귀로 넘어갔다. 2014년 3월 김문기의 둘째 아들 김길남이 이사장으로 선출됐으며, 다섯달 뒤인 그해 8월에는 김문기가 총장이 됐다. 학교에서 쫓겨난 지 21년 만의 재등장이었다. 하지만 김문기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의 복귀는 상지대 구성원들로 하여금 다시 싸움에 나서도록 한 자충수였다.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이 학생식당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이 학생식당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문기가 돌아오니까 자연스럽게 투쟁의 불꽃이 튄 건가?

 

정 “그렇지는 않다. 김문기 아들이 이사장이 되고 김문기 본인이 총장이 되는 5개월 동안 학교가 오히려 조용했다. 김문기가 학교를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약간 위축됐다고 할까 그런 상태였다. 당시에는 교수협의회도 잘 안 움직였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깬 것은 학생들이었다. 당시 방학 중이어서 나는 지리산에 가 있었다. 산 위에서 총학생회장(윤명식)의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했어?’라고 물었더니 ‘올라가려고요’라고 하더라. 내가 ‘이미 올라와 있는데’라고 했더니 그가 ‘아니, 말고요. 2층이요’라고 말했다. 2층은 총장실을 뜻한다. 그제서야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하고 산을 내려와서 학교로 돌아왔다. 그때 학생들이 돌파구를 안 열었다면 싸움은 굉장히 늦어졌을 것이다.”

 

1991년 총학생회장을 맡아 학원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고 졸업(1996년) 뒤 학교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진광장(총무부장)은 “2007년 대법원 판결과 2010년 사분위의 상지대 정이사 추천을 거치면서 김문기 세력이 학교의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엿보이자, 교직원 가운데도 저쪽으로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문기가 온 뒤에 교직원 식당에 가면 직원들이 나와 눈을 안 마주칠 정도로 분위기가 썰렁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학생들이 총장실 앞 복도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은 김문기가 총장이 된 지 사흘 만인 8월17일(일요일)부터였다.

 

 

-학생들이 투쟁에 먼저 나선 것은 의외다.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기는 하지만, 매년 주체들이 바뀌기에 전통이나 역사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정 “상지대만의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 학원 민주화 투쟁 경험이 선배들을 통해 학생회 간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또 학생들도 김문기 덕분에 스스로 학습하는 부분이 있다.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1986년의 용공 조작 사건인 것 같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 얘기를 들으면 김문기와의 싸움이 벌어졌을 때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이날 인터뷰가 끝날 무렵, 2014년 총학생회 부회장이었던 박준성이 마실 가듯 아기를 안고 아내와 함께 총장실에 나타났다. 그에게 학생들이 먼저 투쟁에 나선 까닭을 물었다. “싸움이야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먼저 하는 게 당연하지만, 솔직히 당시 저는 김문기도 생각이 바뀔지 모르니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응하자는 쪽이었다. 그런데 윤명식 회장이 완강했다. 막상 싸워보니까 오히려 김문기가 과거보다 더 심해진 것을 알겠더라. 시험기간에 전기세 나온다고 전기 끊고 학생들을 학교에 못 있게 했다. 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교육부 감사 끌어낸 교수·학생의 단식

 

학생들이 물꼬를 텄지만, 상지대의 반 김문기 투쟁에는 교수들과 교직원 등 학교의 나머지 두 주체들이 철저하게 함께했다. 학생들의 농성 돌입 열흘 뒤 교수협의회가 동조 농성을 시작했으며, 한달 뒤에는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가 공동으로 야외 천막농성장을 만들어 장기전에 들어갔다. 교직원 노조도 천막을 쳤다. 이어, 그해 11월에는 교육부의 상지대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면서 정대화와 총학생회 간부 7명이 함께 단식투쟁을 벌였다. 결국 교육부가 11월 말부터 종합감사에 들어갔으며, 이듬해인 2015년 3월 김문기의 해임을 요구하는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1차적인 승리였다.

 

김문기는 해임(2015년 7월)된 이후에도 여전히 학교를 사실상 장악한 채 자신을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 교직원들을 징계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문제가 해결된 듯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곪아들어갔기에 더 힘든 시기였다. 이를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교수와 학생들의 연대였다. 지난해 여름 총학생회장(정성훈)과 부학생회장(배준)이 교육부의 재감사를 요구하면서 단식농성에 들어가자, 교수협 대표인 김명연이 단식에 나서면서 학생들의 단식을 중단시켰다. 대신 학생들은 교육부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까지 200㎞가 넘는 길을 도보 행진했다. 결국 지난해 8월 교육부의 특별종합감사가 다시 실시됐고, 그 결과 김문기를 떠받치던 이사회의 이사 전원에 대한 임원취임 승인 취소 조처가 나왔다. 2010년 사분위 사태 때부터 따지면 7년 만에 상지대 구성원들이 이뤄낸 완벽한 승리였다.

 

본관 2층 총장실 한편엔 총장 선임이 취소된 김문기 전 총장의 개인 사물이 아직도 쌓여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본관 2층 총장실 한편엔 총장 선임이 취소된 김문기 전 총장의 개인 사물이 아직도 쌓여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상지대는 구성원들의 연대가 강하게 오랫동안 유지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진광장 “그렇다. 어느 한 주체로만으로는 안 됐을 것이다. 교직원과 교수, 학생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싸웠기에 우리는 이겼다. 수원대를 보면 이인수(총장)가 그렇게 엉망으로 하는 데 대해 교수 몇 명이 열심히 싸웠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고 있지 않나.”

 

정 “왜 우리 학교에서는 구성원들이 잘 뭉칠까를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요령부득이다. 직원사회를 잘 건사한다고 할까 학생들이 잘못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진광장 부장 같은 이가 선배로서 한 역할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들이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누가 한사람이나 한쪽에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상지대는 약간 특이한 면이 있다. 또, 총학생회장의 개인 성향 등에 따라 학생들이 변할 수 있는데 그것을 잡아준 것은 교수협의회라고 할 수 있다. 교수협은 지난 10년간 일관되게 방향을 유지해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 덕분이었다. 학생들이 치고 나가면 교수들이 같이 가는 등의 상호관계 속에서 대오가 유지된 것 같다.”(상지대 교수협의회는 전체 교수의 70%가 참여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박주환(박) “2011년과 12년에 사분위 사태와 관련해 덕성여대, 세종대 등과 연대 투쟁을 할 때였다. 다른 대학은 교수가 기껏해야 한두명 등 소수만 참가했다. 그래서 다른 대학은 플래카드 하나 거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는데 우리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학생들이 투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교수들이 판을 깔아준 게 있다. 2011년으로 기억하는데, 한번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였다. 교수님들이 늦게 왔는데 경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여기는 안 된다고 해서 약간 위축됐다. 그때 정대화 교수가 나타나서 ‘당신들 뭐야’라면서 고함치자 경찰들이 쫄더라. 그런 식으로 늘 교수들이 함께 있어서 굉장히 많은 힘이 됐다.”(박주환은 2012년 총학생회장을 지낸 뒤 상지대 투쟁과 관련한 영상기록을 빠짐없이 해왔다.)

 

 

두번째 안식년도 포기

 

정대화는 공고한 연대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상지대 투쟁의 중심에는 늘 정대화가 있었다. 2010년 사분위 사태 때 그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여름 내내 서울 광화문의 정부서울청사 후문 길바닥에서 농성을 하는 등 반 김문기 투쟁을 이끌었다. 2011년 미국에서 보내려고 했던 안식년도 포기하고, 교수협의회 대표 자리를 기꺼이 맡았다. 안식년 포기는 2004년에 이어, 교수협 대표는 2005년에 이어 모두 두번째였다. 세 주체의 연대 투쟁을 이끄는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런 정대화는 김문기에게 눈엣가시였다. 김문기는 총장이 되던 날 정대화를 징계위에 회부해, 교수직에서 파면(2014년 12월)했다. 재단 쪽은 2011년에만 11차례(지금까지 총 41차례)나 정대화를 고소 또는 고발했다.

 

 

-파면된 뒤 교수 연구실에서 항의 농성을 벌이다가 2015년 2월의 주말 새벽에 학교 쪽 인사들로부터 습격을 당했던데.

 

정 “그날은 토요일이어서 교수들과 학생들도 모두 귀가하고 나 혼자 연구실을 지키고 있었다. 새벽 5시에 학교 쪽에서 보낸 사람 4명이 문을 강제로 부수고 쳐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30분간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와서 물을 떠 줬다.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았는데 물을 마시자 그제서야 말이 제대로 나오더라.”

 

박 “그날 새벽에 연락받고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정 교수님이 몸을 떠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그 상황을 상상만 해도 무섭지 않나.”

 

-강제로 납치하려고 했던 걸까?

 

정 “전례가 있다. 1985년에 교원 부당 인사에 항의하면서 이사장실에서 농성하던 교수 3명을 재단 쪽에서 고압 소방호스로 진압한 뒤 이들을 수안보와 장호원, 이천에 분리 감금했다. 그러고는 징계위를 열어 해임했다. 이들은 대법원에서 이겼지만 학교에는 끝내 못 돌아왔다. 내 연구실이 전선 사령부처럼 되니까 자기 눈앞에서 나를 치워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사건 이후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은 순번을 정해 정대화 연구실을 지켰다.

 

박 “두달 동안 정 교수님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면서 당번을 섰다. 개인 일정들을 다 빼야 하니까 굉장히 힘든 일인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굳이 험하게 싸우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분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앞장서는 데 대해 다들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때 어떤 교수님이 이렇게 얘기하더라. 신념과 상관없이 저 사람(정대화)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기는 거기에 있다고 말이다. 싸움이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신념과 정의 때문인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런 연대의식이 더 많이 작용했다고 본다.”

 

김근주(2009년 총학생회장)는 졸업한 뒤 계약직으로 학교 일을 하거나 교수협의회 일을 도와주면서 학생과 교수 간의 가교 역을 해왔다. 김근주도 인터뷰 중간부터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2011년 교수협 대표로 정대화를 뽑은 데 대해 “정 교수님이 그동안 투쟁에 가장 앞장서는 등 구심점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됐다. 자기희생적인 그런 모습에 학생들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정대화는 상지대가 ‘민주 사학’으로 한참 자리잡을 때인 1996년 3월 교수로 부임했다. 1984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공을 바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마쳤다. 상지대에 온 직후 초대 법인 사무국장(5년)과 기획처장을 잇따라 맡는 등 처음부터 학교 일에 열심이었다. 보직을 마친 뒤에는 총선 낙선운동(2000년) 등 학교 바깥에서 자신의 전공인 정치개혁 시민운동을 주로 벌였다. 그를 다시 학교로 불러들인 것은 2010년 사분위 사태였다.

 

 

2010년 8월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지대 구성원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0년 8월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지대 구성원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비리 사학재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덕성여대·상지대 등의 대학생들이 2012년 7월12일 오후 비리 사학의 퇴출을 촉구하며 서울 보신각에서 출발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비리 사학재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덕성여대·상지대 등의 대학생들이 2012년 7월12일 오후 비리 사학의 퇴출을 촉구하며 서울 보신각에서 출발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문기와 잘 해보시죠” 은밀한 회유

 

-교수들이 서로 양해하는 안식년이 예정돼 있었기에 학교 일에서 적당히 발을 뺄 수도 있었을 텐데.

 

정 “상지대에 오기 전부터, 또 오고 나서도 쭉 관심있게 했던 게 시민운동이다. 시민단체들과 반부패 정치개혁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김문기 쪽이 다시 돌아온다는데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학교 밖에서는 텔레비전에 나와 좋은 얘기를 떠들면서 학교 일에는 침묵하면 거짓말쟁이밖에 더 되나. 미국에 집까지 계약해놓았던 안식년이고 뭐고 다 포기해야 해서 집 식구들한테는 정말 미안했다. 아내한테 양해를 구했더니 ‘당신이 교수협 대표로 뽑아달라고 광고했지 않느냐. 기자회견할 때 마이크 잡고, 가운데 서고 할 때부터 다 알아봤다’고 하더라. 사실 그랬다. 안식년 나가려고 생각했다면 2010년 여름 사분위 투쟁 끝난 뒤에 학생들 시야에서 사라졌으면 됐는데 그해 11월말까지 뛰어다니다가 12월에 연구년 간다니까 사람들한테 동의가 안 되는 거였다.”

 

-고비마다 사학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셈인데 언제부터 투사가 됐나?

 

정 “사적으로 얘기하자면 대학 때 안 한 것을 벌충한 부분이 있다. 75학번인데 군대를 먼저 갔다 왔더니 일반 학생운동권에서 안 받아주더라. 반독재 시위 때 개인 차원에서 열심히 돌은 던지고 했는데 체계적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교수가 된 뒤에 순전히 김문기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이렇게 됐다. 하하.”

 

-김문기 쪽에서 회유는 없었나?

 

정 “김문기가 2014년 총장 된 직후에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만나자는 얘기가 몇번 있었다. ‘총장님(김문기)과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고, 정 교수가 그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천막 치고 농성만 합니까’라고 하더라. 거기에 대해 내가 저들 예상보다 더 단호하게 나갔더니 그다음부터는 그런 일도 없었다.”

 

-오랫동안 싸우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는데 후회한 적은 없나?

 

정 “그런 적은 전혀 없고, 내가 학생들과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나는 교수로 있으면서 왜 학교가 교수를 괴롭히나 또는 직원을 괴롭히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적었다. 대신 어떻게 학생을 간첩으로 몰아가나, 학생들이 니네 장난감이냐는 분노는 많았다. 교수가 지식만 전수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할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수의 할 바를 나름대로 다 한 것 같다. 잘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설령 잘 안 돼서 내가 파면돼 돌아오지 못했더라도 교수의 할 바를 했다고 대답할 것 같다.”

 

 

정대화가 총장직무대행이 된 후 상지대는 2013년부터 지정됐던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서 풀렸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정상화’의 길을 다시 걷고 있다. 그러나 과제들도 만만치 않다. 김문기가 재단을 장악한 뒤 급격히 나빠진 신입생 충원율(2016년 93%)이나 재학생 중도 탈락률(2016년 8.2%)을 개선해야 한다. 또, ‘민주 사학’ 당시 한때 강원도에서 입시 경쟁률 2위를 기록했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정대화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지대는 SKY 대학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상지대가 지향하는 교육은 1등을 뽑아 1등으로 졸업시키는 것이 아니라 뒷등을 뽑아 앞등으로 졸업시키는 성취 교육이다. 공부를 잘해야 하지만 성적이 좋은 학생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나고 협력하는 책임감 있는 일꾼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김문기 이전 상지대가 공영 사학 모습”

 

-앞으로 과제는?

 

정 “오늘 오전에 인근 고교에 가서도 얘기했는데, 내가 할 일은 교육은 교육답게 대학은 대학답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건 구성원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첫 성공 여부는 내년에 교육부가 선정할 공영사학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제1호 공영사학이 됨으로써 상지대가 민주화됐고 발전됐다는 것, 또 승리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게 목표다.”

 

-공영사학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건가?

 

정 “교육부가 검토 중인데, 상지대의 지금 모습, 그러니까 2010년 김문기가 들어오기 전의 모습이 공영사학과 유사했다. 이사회가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움직이고,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따라서 상지대는 제1호 공영사학이 될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을 갖췄다고 자신한다.”

 

2014년 11월 상지대는 김문기에게 반대하는 정대화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2014년 11월11일 ‘한국 정치론’을 수강하던 학생 80여명이 정 교수의 야외 단식농성장으로 책상을 옮겨 수업을 듣고 있다. 상지대 제공
2014년 11월 상지대는 김문기에게 반대하는 정대화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2014년 11월11일 ‘한국 정치론’을 수강하던 학생 80여명이 정 교수의 야외 단식농성장으로 책상을 옮겨 수업을 듣고 있다. 상지대 제공
2015년 3월24일 상지대 강의동 출입구에 ‘수업 거부’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5년 3월24일 상지대 강의동 출입구에 ‘수업 거부’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대화가 외부 일정 때문에 오후 2시에 자리를 먼저 뜨기 직전 현 총학생회장(원진섭)과 부학생회장(김용준)이 뒤늦게 인터뷰에 참여했다. “우리가 이겼다는 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다. 장기간 싸우면서도 분열없이 사학 비리의 큰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선후배 간 끈끈한 정, 교수와 학생 간의 단합력 때문이다. 이런 힘으로 간다면 10년 전의 중부권 명문사학 그 이상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원진섭) “여러 선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싸움을 마무리할 수 있는 뜻깊은 해를 맞고 있다. 올해 안, 늦어도 내후년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김용준) 학생들의 생각이나 바람도 총장이나 선배들과 같았다. 학교를 나올 때 다시 한번 정문 위의 플래카드에 눈이 갔다. ‘여기는 대학민주화의 성지 상지대학교입니다’라는 문구가 ‘상지대 총학생회’라는 작은 글씨와 함께 힘차게 펄럭였다.

 

원주/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상지대 총장직에서 해임된 김문기(맨 뒷자리 왼쪽)가 지난 9월18일 총장실을 찾아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왼쪽 줄 앞에서 둘째) 등이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상지대 제공
상지대 총장직에서 해임된 김문기(맨 뒷자리 왼쪽)가 지난 9월18일 총장실을 찾아 정대화 총장직무대행(왼쪽 줄 앞에서 둘째) 등이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상지대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14479.html?_fr=mt1#csidxed792bf13606848a32d2bc84ca3fb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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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내놔라 내 파일'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불법사찰)파일! 시민행동'을 제안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국정원의 불법사찰의 전모를 밝히는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국정원 개혁에 참여하자는 취지입니다. 곽 전 교육감은 앞으로 3편에 걸쳐 이 운동의 취지를 밝히는 글을 보내올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검찰 소환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검찰 소환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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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MB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국민사찰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정권에 비판적이면 여야진영을 가리지 않고 불법사찰과 심리전 대상으로 찍혔다. 

문재인, 박원순, 조국 등 당시의 야권인사는 물론 홍준표, 정두언, 이상돈 같은 여권인사도 사찰을 피하지 못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방송인과 연예인, 스포츠스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수 이효리, 야구선수 이승엽, 방송인 김미화, 김제동, MC 몽, 배우 김여진 등이 사찰기록을 남겼다. 특히, 전교조가 지독하게 당했다. 전교조 와해목적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전교조 교사로 위장해 전교조 탈퇴 양심선언을 조작했을 정도다.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정원이나 군이 정권안보에 매달려  조직적인 국민사찰에 여념이 없었다.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사찰)파일' 
 
이미 드러난 정황으로 미뤄볼 때 온 국민이 잠재적 사찰대상이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와 무관하게 관행적으로 이뤄진 국민사찰의 전모를 대강이라도 밝히고 국민사찰 근절에 필요한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다시는 불법적인 국민사찰을 되풀이하지 못한다. 

이는 일부 위법사실 폭로와 몇 사람의 책임추궁, 부분적인 조직개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정원 개혁책임을 국정원개혁위에 떠넘기고 국민들은 가만히 앉아 처분을 기다려서도 불가능하다. 잠재적 사찰대상자이자 피해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서 그동안 국정원이 벌인 국민사찰의 전모를 밝히는 시민참여 운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정원에 내 사찰파일을 공개하라는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시민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정신이 돌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혀를 찰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국정원이 그런다고 정보파일 하나 내줄 것 같으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따지고 들면 그렇지 않다. 국정원에 내 개인정보를 내놓으라고 신청하는 것은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이 보장하는 모든 시민의 권리다. 지금까지 우리시민사회가 활용하지 않았을 뿐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다. 적극적인 시민들과 활동가들에게 알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하는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사찰)파일' 캠페인을 제안하는 제도적 배경이다.   

지난 9년 이명박근혜 정권시절 정치활동이나 사회운동, 시민행동이나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있는 분들이 1차 대상이다. 이런저런 반정부 집회시위나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한 경력이 있는 분들도 1차 대상이다. 이런 분들은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의 불법사찰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운동은 그런 분들을 위해,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진행할 국정원 적폐청산 캠페인이다. 적극적인 시민의 알 권리 행사 캠페인이자 피해구제 캠페인이다. 시민 개개인의 작은 권리행사에 터를 잡아 국정원의 무차별 불법사찰을 확인하기 위한 불법사찰청산과 근절캠페인이다. 국정원의 불법사찰 중단을 넘어 산처럼 쌓여있는 불법사찰파일의 영구삭제와 폐기를 촉구하는 과거청산캠페인이다. 

국정원법상 국정원 국내파트는 국가안보에 필요한 정보(전문용어로 '국내보안정보')만 수집하도록 제한된다. 내국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대북, 방첩, 대테러, 내란, 국제조직범죄'에 대한 정보만 수집할 수 있다. 국정원의 법적 존재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범주의 국내보안정보를 빠짐없이 효율적, 전문적으로 수집·분석하는 데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의 시작은?
 
 FBI(자료사진)
▲  FBI(자료사진)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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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국가안보정보보다 정권안보정보, 즉 정권비판 위협세력에 대한 광의의 정치정보를 더 광범위하게 수집하며 정치개입을 일삼아왔다. 국정원 적폐청산은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관행을 정조준한다. 무엇보다 먼저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의 진상을 최대한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피해당사자들이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국정원에 내(사찰)파일을 내놓으라고 청구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정보기관에 대한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청구운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지만 세계적으로 처음은 아니다. 미국이 이 운동의 선구자다. 국내정보기관인 FBI에 대한 사찰기록 공개청구운동이 이미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정보자유법과 프라이버시법이 제정되면서 자연스레 알 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해서 FBI의 불법사찰에 대항하자는 정보공개청구운동이 불붙었다. 

FBI의 항시적 사찰대상에 올랐던 진보성향 인사들과 단체들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많은 사찰기록을 부분적으로 공개 받을 수 있었다. 수천, 수만 페이지의 FBI 기록들이 군데군데 새까맣게 지워진 채 공개되고 나서야 수많은 의문이 풀렸다. 어째서 전화통화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는지, 어째서 미행당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어째서 연설이나 강연 약속이 자주 취소되었는지, 과거의 미스터리들이 한꺼번에 풀렸다.  

독일에서도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권이 대규모로 활용된 때가 있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체제이행을 서두를 당시의 독일 정부는 악명 높은 비밀정보기관 '슈타지'가 수집·작성·보관해온 본인 관련 사찰보고서를 누구든지 과거청산 차원에서 알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고 신청을 받아 열람을 허용했다. 과연 동독은 비판세력의 입을 틀어막고 사생활까지 감시한 슈타지의 국가였다. 

슈타지는 목사, 변호사, 교사 등 고신뢰 직업군까지 끄나풀로 고용해서 한 국가를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밀고자들의 사회로 만들었다. 독일통일 전후의 슈타지 활동을 그린 영화 <타인의 방>이 잘 보여주듯이 많은 동독인들이 본인에 대한 사찰기록을 열람하고 경악과 슬픔에 잠겼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시콜콜한 사생활정보까지 상세하게 기록돼있는가 하면 음해성 엉터리 허위정보가 많았기 때문이다.    

용두사미로 끝난 국정원 개혁

지금까지 국정원 개혁은 언제나 용두사미로 진행됐다. 대형폭로로 시작해서 몇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식으로 끝났다. 늘 폭로된 사안에만 초점이 머물렀고 좀처럼 대증요법을 넘지 못 했다. 국정원의 권한과 조직, 운영방식을 대폭 정비하는 구조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 20년 넘게 간간이, 국가안보를 위한 비밀정보기관이 북풍, 세풍을 만들어내고, 간첩을 조작하고 도청에 매달리며, 블랙리스트와 정치댓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때마다 국정원 개혁요구가 높았으나 간신히 국정원장이나 그 하수인을 벌주는 선에서 무마됐다. 국정원법 개정은 고작 정치개입 금지 유형을 구체화하고 형량을 강화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 꼭 필요한 구조개혁은 시도도 못했다.   

이제야 국정원을 둘러싼 근본구도와 정치상황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은 정권안보와 선거개입, 심리전 수행에 일로매진한 '이명박근혜' 국정원에 대한 일대 '징치'이기도 했다. 국정원은 오직 국가안보를 위해 음지에서 무명의 헌신을 해야 한다. '국정원도 적폐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촛불시민들의 구호는 정권안보를 위해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 국정원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양지로 나와 온갖 기관을 제집 드나들 듯 출입해온 국정원은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서훈 국정원장은 국내보안정보 외에 관행적으로 수집해온 전방위적 국내정보 수집 활동을 취임 직후 전면 중단시켰다. 아예 일반국내 정보를 담당해온 국내파트 두 국을 폐지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는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만들어서 연말까지 과거청산 작업에 나선다. 개혁발전위는 한편으로는 지난 9년 동안 발생한 중요한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사건을 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발방지에 필요한 국정원법개정안을 만들어서 종전과 차원이 다른 구조개혁을 단행할 방침이다.     

촛불 시민의 명령
 
광화문 일대 뒤덮은 '박근혜 퇴진' 촛불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 광화문 일대 뒤덮은 '박근혜 퇴진' 촛불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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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이제 직권남용과 정치개입이라는 오랜 불법 관행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이러려면 국내파트 전체가 잠시 쑥대밭이 되더라도 지난 9년의 일탈과 타락을 다시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특단의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적당히 넘어가면 안 된다. 다소 가혹하더라도 총체적 타락상을 밝히고 엄격하게 책임을 추궁해야만 조직 전체에 경각심을 불어넣고 망각의 유혹을 방지할 수 있다. 대선댓글사건은 물론 국내파트의 갖가지 권력 남용 관행 유형을 철저히 조사해서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 이유다. 

창설 이래로 반세기 넘게 지속되며 조직의 DNA처럼 아로새겨진 정권안보 본능과 정치개입 기질, 권력남용 체질을 이번에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촛불혁명'과 '촛불시민'의 명령이다. 문재인 정권과 국정원개혁위는 이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직원은 음지에서 민주공화국을 위해 헌신하는 본연의 역할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념과 충성심이 투철하고  해외정보기관에 견줘서 정보수집·분석 역량이 출중할 만큼 유능하고 식견이 높아야 한다. 이제부터 업무수행의 적법성을 넘어 고도의 전문역량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내파트는 국내보안 정보만 한정적으로 수집·분석해야 한다. 해외파트의 전문역량 제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필요한 최고급 정보는 물론 해외경제·무역·금융과 자원·에너지·기후변화에 관한 최고급 정보까지 제공하는 가장 스마트한 국가기관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해온 온갖 유형의 불법행태를 생각하면 국내파트를 완전히 해체·재편하지 않고 몇 사람만  혼내주는 방식으로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부분의 국내파트 직원은 광의의 국내보안정보를 수집한 게 아니라 광의의 국내정치정보를 수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경험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약에 쓸래도 쓸 데가 없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을 국내보안 정보로 정상화할 경우 국내파트의 대폭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 통상적인 국내정보수집분석을 멈춘 지금도 유휴인력이 워낙 많을 것이다. 국정원개혁위는 이들이 어떤 이유와 명분을 붙여서 재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정보인권운동

'내놔라 내 파일'운동은 국정원이 수집·작성·보유한 내 파일 내용을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내게 알려달라는 정보인권운동이다. 내 관련 정보가 국가안보를 위한 국내보안정보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고 정치사찰 정보나 사생활 정보인지 알아보는 국정원의 불법사찰확인운동이다. 만약 국가안보와 아무 관련이 없으면 국정원의 불법사찰행위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인권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운동이다. 그 배상금의 전부 또는 일부로 정보기관 감시 전문 시민단체를 만들려는 시민기금마련운동이기도 하다.  

대규모 공개신청 후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리 속단할 수 없다. 국정원이 정보공개법 제4조의 규정을 일방적으로 해석해서 국정원은 아예 공개신청대상 기관이 아니라고 발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보공개법 제4조는 국정원과 군 기무사, 경찰정보파트가 수집한 정보를 법 적용 대상에서 아예 제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제4조의 문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 적용대상에서 원천 배제되는 정보는 '국가안보 목적으로 수집, 작성된 정보'뿐이다. 국정원이 정권안보 목적, 기타 정치 목적으로 수집·작성한 불법사찰정보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정한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이 국가안보 목적인지, 비판세력제압을 위한 국내정치 목적인지는 법원의 판단을 따르면 된다. 

다행히 현재 국정원개혁위가 가동 중이므로 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해석을 제공하며 국정원에 정보제공을 채근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이는 군데군데가 지워진 엄청난 분량의 사찰기록을 받을 것이고 어떤 이는 해당사항 없음이나 전면 비공개 결정을 통보받을 수도 있다. 공개된 기록은 국가안보와 무관한 내용일 것이다. 안 그러면 비공개대상으로 지정돼 삭제됐을 터다. 신청인이 받아본 국가안보와 무관한 정보는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 처음부터 국정원이 수집하거나 작성해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지금에라도 국정원이 일괄 삭제, 폐기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무관하게 정치적 이유로 불법사찰 당한 시민은 법원에 그로 인해 발생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있다. 

국정원이 나에 대해 어떤 파일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주권자적 시민과 활동가, 명망가는 국정원에 대해 먼저 정보공개 및 열람신청을 내도록 하자. '열려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청구운동에 동참함으로써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적폐청산을 향한 작지만 확실한 발걸음을 내딛자. 시대의 대의를 요구하며 작은 행동으로 함께 뭉친 국민을 이길 장사는 세상천지에 없다. 박근혜, 이재용, 원세훈을 촛불 하나 들고 단죄한 우리 국민 아닌가. 이번에는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신청서를 한 장씩 써서 흔들며 불법사찰과 인권유린, 정치개입의 적폐청산에 나서자.

덧붙이는 글 | 곽노현 기자는 전 서울시교육감입니다. '내놔라 내파일 운동'에 관심 있는 단체는 김윤태 교수(010-2225-6899)에게 문자를 보내주십시오.

태그:#국정원#정치적폐청산#촛불#국민사찰근절운동#이명박근혜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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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최초 ‘평화의 소녀상’ 세워진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14 17:21
  • 수정일
    2017/10/14 17:2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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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학생들, 내년 3월 2일 건립 목표로 추진위 발족.. 당국은 난색
대전=임재근 객원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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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2  18: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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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오후 1시, 충남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충남대학교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개최되었다. [사진-임재근 통일뉴스 객원기자]

“2018년 3월 2일, 충남대학교 민주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할 예정입니다.”

충남대학교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12일 충남대학교 내 민주광장에서 발족식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지난 7월 초부터 준비에 나섰다.

추진위는 “국가가 지키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위로를 전하는 방법으로 평화의 소녀상 설립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며, “도민들의 성금으로 성장한 충남대학교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돌보고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국립대학교의 역할에 대한 재적립이 가능하며, 학우들의 애교심 증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화의 소녀상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8월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20여 일간 온라인 설문을 진행하기도 했다. 설문결과 1,168명이 참여해 95.6%인 1,135명이 건립에 찬성을 표했다. 또한 9월 11일에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열고, 학내 평화의 소녀상 설립을 87.6%의 찬성으로 의결하기도 했다.

이에 추진위는 이날 발족식을 열고 다음 새 학기에 맞춰 2018년 3월 2일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건립 예정 부지는 과거 충남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던 제1학생회관 앞에 위치한 민주광장이다.

   
▲ 추진위 발족식이 진행된 충남대학교 1학생회관 앞 민주광장. 오른쪽 잔디 위 흰색 천이 깔린 곳이 추진위가 추진하고 있는 소녀상 건립 후보지다. [사진-임재근 통일뉴스 객원기자]

하지만 학교 당국에서는 소녀상 건립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추진위는 지난 8월 대학본부 측에 학내 평화의 소녀상 설립 입장을 전달했으나, 그동안 대학본부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다가 최근에는 절차상의 문제를 들며 학내 평화의 소녀상 설립에 우려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추진위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절차상의 문제로 평화의 소녀상 설립을 지연시키고 있는 대학본부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통해 어떠한 정치적 개입, 외교적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교육의 길을 열어줄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소녀상 건립 부지 문제를 대학본부와 원만히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며, “하지만 대학본부는 설립 시기를 지연시키며 추진위원들을 지쳐가게 하고 있어 어제(11일) 부지 사용요청서를 대학본부 측에 공식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날 충남대민주동문회를 대표하여 격려사에 나선 졸업생 이호경(경영학과 09) 동문은 “전국 많은 지자체와 초중고, 심지어 일본 대사관 앞에서도 평화의 소녀상을 볼 수 있다”며, “이것만으로도 우리 학교 안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본부는 건립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진실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협조를 당부한다”며, “충남대학교 캠퍼스 안에서도 하루 빨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충남대 분회장 박양진 교수(고고학과)도 격려사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고, 과거의 기억을 발판으로 나가아는데 평화의 소녀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충남대학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지역사회에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박교수는 “평화의 소녀상은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되고, 희망의 상징이 되어야 하고, 말 그대로 평화의 상징이다”고도 덧붙였다.

추진위 자문위원을 맞은 조승래 국회의원(충남대 사회학과 86)도 “오늘 발족식을 통해 국가의 아픈 역사를 공감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소녀상 건립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며 축전을 보내왔다.

   
▲ 추진위 발족식 사회를 보고 있는 충남대학교 이현상 총학생회장. [사진-임재근 통일뉴스 객원기자]

추진위는 충남대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교수, 직원, 동문 등 충남대학교 구성원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건립을 위한 비용은 구성원들의 십시일반 모금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평화의 소녀상 제작에는 충남대학교 조소과 김석우 교수가 추천되어 협의 중에 있다.

한편, 대전광역시 최초의 소녀상은 지난 2015년 3월 1일 대전시청 앞 보라매공원에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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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참칭하는 '적폐 카르텔', 지금 흔들어야 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0/13 10:36
  • 수정일
    2017/10/13 10:3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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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의 정치시평] 정권에 대한 비판과 지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필요하다
2017.10.13 03:54:45
 

 

 

 

최근 적폐의 근원 중의 하나이자, 지난 정권이 은폐했던 이명박 정권 시절의 국가 범죄가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적폐의 청산의 대상이 이명박 일파로 정조준되며 깊이 파헤쳐지기 시작하자 적폐 세력들은 단골 메뉴인 ‘종북’이상의 추악한 프레임인 ‘노무현 욕보이기’를 들고 나와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도 저들이 만들어 내는 그럴싸한 양비론 속에서도 어느 한 쪽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있는 것을 은폐하는 양쪽 주장 간의 엄청난 차이를 깨닫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들의 허구적 프레임도 국면에 따라서는 일정정도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적폐 세력들의 무리한 도발이 노리는 점도 바로 이런 효과에 있다. 
 
그런데 조금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러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다시 지지와 비판의 대상이 개인 행위자로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논쟁의 대상은 전직 대통령들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문재인 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심지어 진보좌파 진영에서조차 지난 대선 국면 시기는 물론 최근까지도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지지와 비판, 혹은 반대의 논리가 횡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전, 현직 대통령들 뿐 아니라 적폐 야당 대표들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 그리고 최근 적폐를 옹호하거나 고인에 대한 모욕을 의도적으로 해 온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시 행위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에 과도하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차 강조해 왔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행위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행위자들, 특히 주요 지도적 엘리트들의 행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계속 드러나고 있는 이명박 정권 시절의 국정원 조종에서 보듯, 실제로 이들의 역할은 매우 막대하다. 그리고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대통령이라는 개인 행위자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에 대해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진보적 전문가들이라면 개인행위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지지와 비판을 자제하고, 이들이 대변하는 혹은 이들을 내세운 사회의 다양한 기득권 지배세력들의 지배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촛불 시위와 정권 교체의 과정 속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민중들이 단순히 실패한 전 정권, 부패 여당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총체적 적폐 문제에 대해 각인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국민 다수가 한국 사회의 문제가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문제 혹은 특정 정당이 집권했을 시기만의 그 정당의 문제, 그것도 정치 영역에서만의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는 이제 매우 작은 단위에서의 위계적 권력 관계까지도 타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만큼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오히려 심지어 진보적인 지식인들조차 문재인 정권에 대한 왼쪽으로부터의 비판에 민감한 이들을 무조건 ‘문빠’로 규정하는 등 촛불 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민중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 하고 여전히 개인행위자 중심의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 한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선거 당시 심상정 후보의 격한 문재인 후보 비판에 대한 강한 반발이나 선거 이후 소위 '한경오'의 보도에 대한 불만의 폭발을 단순히 민주당과 문재인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자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 한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현재에도 민주당에 대해 민중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상황은 정당과 정권 자체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사회의 적폐 청산을 위한 싸움을 지지하는 것이다.    
 
누차 강조했다시피, 마치 진보의 반대편에 자연스럽게 위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 세력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이는 정치사회라는 무대 위에서의 연극일 뿐이다. 그 무대 아래와 뒤의 실제 사회에서는 자신의 특권을 확대 강화하려는 기득권 지배 세력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스스로를 보수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일부 민중들이 존재할 뿐이다. 서구 복지 국가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다를 바 없지만, 단지 이들 국가들에서는 오랜 동안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인해 기득권 지배 세력이 자신의 특권을 전적으로 행사할 수 없도록 제도적 제어 장치가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즉 이들 일부 국가들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과 국가들에서는 그러한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는 정당, 의회, 선거 정치가 작동하는 그 이면의 실제 기득권 집단의 지배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득권 지배 세력은 단순히 자본가이거나 일부 정치권력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자본-노동’의 두 축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분석틀만으로는 비중심부 대부분의 국가에서의 지배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기존의 틀 속에서 사고하다 보니, 다양한 관료 지배 권력은 물론 언론, 교육, 종교 권력 등 자본가 외의 한국 사회의 지배 집단에 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도 쉽게 도입하는 등 비정규직 문제에는 관심이 높지만, 정작 더 큰 고통을 받고 있거나 그 비중이 막대한 영세 자영업자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사라지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나은 문제인 성산업과 관련해서도 심지어 포주와 조폭들을 단체협상의 당사자들 중 ‘고용주’로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는 극단적인 관념론적 오류를 보여 주기도 한다.  
 
또한 직접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임금 외 편법적이고 특권적인 재산 축적의 수단을 바탕으로 사회와 지역 곳곳에 또아리를 틀어서 부당한 기득권을 확대하고 있는 각종 이익 집단과 부유층, 그리고 이들과 강고한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는 폭력 조직들, 그리고 이들과 얽혀 있는 주변화된 우리 사회의 거대한 반범죄적 사회 집단들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직접적인 지배 권력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 관료 권력 및 자본 권력 지배 메커니즘 중 가장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들은 단지 시민 사회 내에 당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이익 집단일 뿐이라고 여겨지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집단에 대해서는 범죄학에서나 다루어야 하는 문제인 걸로 착각한다. 자본의 그늘에 숨어 있는 지배 세력들과 사회의 곳곳에서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들 세력들은 서로 강력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을 무대로 내보내 정당 정치의 가면을 쓰고 정치인이라는 개인 행위자들을 조종한다.
 
특히 대부분의 관료 집단들의 수장들은 바뀌었으되, 기존의 특권 관료 권력은 그대로 남아 지배 계급의 이익과 자신의 독자적인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국민 다수의 힘,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적폐 청산에 맞서는 기득권 카르텔들은 곳곳에서 동맹을 맺고 저항 중이다. 또한 대부분의 적폐 청산 노력과 이에 맞서는 부패한 카르텔들의 저항의 무대는 국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저항은 대외적으로는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라는 외적 요인 이상으로 외교와 국방 관련 적폐 세력들의 방해 역시 제대로 된 대응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드 배치나 북핵 관련 미국과의 공조 등의 외교에서의 난맥상에 대해 단순히 문재인을 필두로 한 문재인 정부 일각의 인사 실패나 정책적 실패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문제의 본질이 이렇다고 정당 정치, 의회 정치, 선거 정치의 틀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민 혁명의 모범으로 극찬해마지 않았던 소위 촛불 혁명 과정도 사실 시민의 직접 정치가 아니라 선거 정치가 전제된 지지율에 따라 정권의 강경 진압 기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광장의 해방, 그리고 탄핵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배 계급 내의 불화와 갈등에 따른 사상 초유의 수준의 국정 농단 현실이 폭로되었고, 이에 분노한 대중의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가 급속하게 철회됨으로써 정세가 급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도 자유주의적 민주당 정부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도 분명히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당 정치, 의회 정치에 대한 대안이 부재한 현재 여전히 그 틀 속에서 사고하더라도 현재의 정권의 오류들이 반드시 집권 여당이나 대통령 등 개인 행위자들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사고하고 발언하는 오래된 습관을 이제는 벗어 던질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기득권 지배 연합과 유사한 과거의 보수 야당적 모습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던 현 시기가 기득권 지배 카르텔을 일정정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적기이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적폐 세력들이 모든 것을 무위로 돌려놓지 못 하도록 구조화시키는 데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동원해야 할 임무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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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공무원,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연대, “11월 총력투쟁” 선포
▲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11일 청와대 앞에서 연대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는 야속한 님을 보는 심정으로, 155일째 망부석처럼 속을 태우며 문재인 정부의 결단을 기다렸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1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노조할 권리 쟁취’와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연대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전교조는 법외노조이며, 공무원노조는 설립신고가 되지 않아 모두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또 교사와 공무원들은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국선언 같은 정치의사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구속, 처벌, 해직되는 등 의사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오른쪽부터),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대,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회견에서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자는 게 아니라 박근혜 적폐를 청산할 원동력이 되려는 것이다”며 공동투쟁의 의미를 밝혔다.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과거와의 단절, 미래의 포부가 없다면 촛불을 배신한 행정이다”며 해직자 원직복직과 이명박근혜 정권의 노동 적폐 청산을 요구했다.

회견에선 또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노동에 등급을 매겨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적폐가 지속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연대투쟁을 선포하면서 “(노조할 권리와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오랫동안 염원해 왔고 긴 세월 인내하며 기다려 왔다”면서 10월 안에 해결하지 않을 경우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오는 11월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연가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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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세월호 당일 일지 조작…첫 보고 시점 30분 늦춰 기록”

청와대 “세월호 당일 일지 조작…첫 보고 시점 30분 늦춰 기록”


등록 :2017-10-12 15:46수정 :2017-10-12 15:49

 

임종석 비서실장 발표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최초 상황을 보고한 시점을 30분 늦추는 등 보고서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국가위기관리 지침을 적법 절차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지난달 27일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 등에서 관련 문건을 발견했다며 이런 사실을 밝혔다. 임 실장은 “가장 참담한 국정 농단의 표본적 사례”라며 “해당 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814218.html?_fr=mt1#csidxf63c130280f9fe9baa8ab0baf1069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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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미국이 침략할 경우 비공개 전략무력으로 단호히 징벌

김정은, 미국이 침략할 경우 비공개 전략무력으로 단호히 징벌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0/12 [12: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정은 위원장이 21일 직접 성명을 발표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해 사상최고의 초강경조치 대응을 경고했다.

 

12일 연합뉴스에서 소개한 러시아 타스통신과 북 리용호 외무상 대담에 대한 기사에서 나온 그의 발언 중에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무한한 무력을 가진 우리 전략군대가 침략국 미국을 징벌 없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었다.

 

리 외무상은 북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을 언급하며 "자신의 호전적이고 정신없는 유엔 연설로 트럼프는 우리를 향한 전쟁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타스통신과의 대담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이 발언에 앞서 "우리는 미제와 실질적 힘의 균형을 이루는 최종 목표를 향한 길에서 거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는데 결국 이 두 발언을 종합해보면 북은 미국과 전쟁시 사용할 비공개 전략무기를 따로 갖추고 있으며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 힘의 균형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성격의 무기라고 주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가 듣도 보도 못한 전략무기는 누구도 모르는 무기이기 때문에 방어를 시도조차 하기 힘든 무기이다. 이를 공개할 경우 미국은 또 그 무기에 대한 방어무기, 대응무기를 개발할 것이고 그러면 북은 또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결정적 전략무기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신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력적인 무기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의 무기를 개발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공격 기도를 사전에 차단하고 근원적인 적대관계 청산과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리용호 외무상은 이번 타스통신과의 대담에서 "미제의 대조선(대북) 압살 정책이 근원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핵무기는 협상의 대상이 될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리용호 외무상은 타스통신의 '어떤 조건에서 북-미간 대화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미국이 근원적으로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며 대북적대시정책 포기와 함께 실질적인 핵 위협 포기를 조건으로 걸었다.

 

이는 주한미군철수와 한반도 주변에서 매년 진행해온 대북합동군사훈련 근원적 폐지를 요구한 것으로 사실상 미국의 태평양 패권포기를 요구한 것과 같다.

태평양에 미국인들은 얼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패권을 포기하고 동아시아 주변국들과 호혜평등한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미국의 태평양패권붕괴는 사실상 세계패권붕괴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북은 미국에게 제국주의 패권정책을 버리고 호혜평등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북의 요구를 결코 쉽게 들어줄 리가 없다. 미국은 제재와 압박으로도 북을 굴복시키지 못할 경우 북과 전쟁까지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종합해보면 북의 핵무력 강화는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며 그에 따른 미국의 대응도 더욱 강도를 높여갈 것이며 결국은 그런 북과 미국이 대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그것도 북이 핵무력을 강화해가는 속도를 보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정부에서도 이런 점에 유념하여 한반도 위기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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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씨의 평화 메시지, 정부가 해야 할 역할"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 기업 아닌 정부가 풀어야
2017.10.12 08:14:09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 시각) 또다시 모호한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까지 북한과 협상은 매번 실패했다면서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가 군사적 선택지를 실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군 지도부를 상대로 필요할 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을 보유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이건 아직 군사적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며 "결국 한 가지 방법이라는 건 경제적 제재와 국제적 고립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지난 9월 15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시험 발사한 이후 어떠한 군사적 행태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이 마치 ICBM을 발사할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긴 하다"면서도 "그런데도 실제 발사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움직임을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북미 간 접촉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면서, 러시아와 독일 등이 양측을 중재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한국 정부라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거의 한 달 동안 사고를 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이 자신들과 양자 협상 테이블에 나와주길 바란다는 고도의 계산된 행위다. 이럴 때 한국 정부가 미국에 북한과 양자접촉의 틀을 짜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그런데도 지금 한국 정부는 과도하게 미국에 경도돼있는 것 같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하고 있다. 정부의 외교 안보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남 말 하듯이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나"라며 "미국에 읍소라도 해서 현재 상황이 종결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국민들도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북한이 지난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 이후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박봉주 내각총리를 황병서 총정치국장보다 앞서 호명한 것을 두고 정 전 장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견지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경제 쪽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김정은 시대에서는 군이 핵무력 건설을 했으니, 이제는 이대로 가면 되겠다는 판단으로 경제 쪽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에 신경을 쓰려면 당 중심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11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각) 북한과의 협상이 매번 실패했다면서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이 결국 군사적 선택지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와중에 정작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몇 주째 잠잠한 상황입니다. 지난 9월 15일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북태평양 방향으로 발사한 이후 거의 한 달 동안입니다. 북한은 무슨 생각으로 지금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일까요? 또다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세현 : 북한이 마치 ICBM을 발사할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긴 합니다.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의원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런데도 실제 발사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움직임을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이야기한 한 가지는 군사적 선택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군 지도부를 상대로 필요할 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을 보유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뒤집어보면 그런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 그 선택지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가 됐다면 굳이 저런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우발적으로 전쟁이 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우발적으로 직접 일을 저지를 수는 없습니다. 결국 한 가지 방법이라는 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와 국제적 고립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하기에는 중국과 갈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있습니다. 결국 해상 봉쇄와 같은 다양한 고립 방식을 여러 가지로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현 국면이 정리되기 위해서는 결국 북한과 미국이 만나야 할 것 같은데요. 양측의 접촉이 가능한지가 의문입니다.  

정세현 : 양측 접촉을 러시아가 중재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필요하다면 본인이 나설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사실 양측에 만남을 권고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정부입니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주도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건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당사자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면서 나서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담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용기있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현 정부에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프레시안 : 오는 11월 트럼프가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을 방문할 예정인데요. 이렇게 아시아 순방을 계획하고 있다면, 트럼프 입장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 뭔가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트럼프는 상황 관리만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한국의 무기시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카드로 북한을 쓰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절박성이 없습니다. 다만 전쟁이 날 것 같은 위기감만 고조시키면 됩니다. 이런 위기감이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한국 정부는 과도하게 미국에 경도돼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하고 있어요. 정부의 외교 안보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남 말 하듯이 이야기하면 어떻게 합니까? 미국에 읍소라도 해서 현재 상황이 종결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국민들도 불안해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 거의 한 달 동안 사고를 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또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트럼프가 트위터에 메시지 쏟아내고 북한이 여기에 대응한답시고 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하면 다시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한 달 이상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단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자신들과 양자 협상 테이블에 나와주길 바란다는 고도의 계산된 행위입니다. 이럴 때 한국 정부가 미국에 북한과 양자접촉의 틀을 짜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본인의 승리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긴장이 필요합니다. 소위 '트럼프의 푸들'이라고 불리는 아베가 트럼프를 살살 꼬드겨서 트럼프가 자극적인 말을 쏟아내게 만들고, 이 때문에 북미 간에 말폭탄이 오고가서 긴장이 고조되면 아베 총리는 좋을 수 있지만 한국 정부는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지는 겁니다. 

소설가 한강 씨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미국 정부에 전해서 한반도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면, 평화를 원하는 국민들에 대한 봉사의식이 없는 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업습니다. 국민들이 전쟁 대비 배낭을 주문하지 않게, 안보 걱정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부 및 관료의 임무입니다. 

황병서보다 최룡해‧박봉주가 먼저 호명된 이유는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북한은 지난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열었는데요. 인사 부문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북한 매체가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4번째로 호명했고 대신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습니다. 박봉주 내각총리도 황병서를 앞섰는데요. 그저 한 번의 호명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향후 북한 지도부의 판도가 달라지는 신호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최룡해가 당 내에서 조직 담당 비서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고 봐야 합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의전서열로는 최룡해 부위원장보다 앞서지만 상징적인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면 최룡해 부위원장이 실질적인 '넘버 2'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북한이 당 중심성을 더 확고하게 가져가고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합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 23일(현지 시각) 유엔 총회에 참석해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에 따르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에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는데요. 지난 9월 3일 6차 핵실험을 하면서 핵 능력 강화는 이제 이 정도 페이스로 진행하면 된다고 판단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병진노선을 견지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경제 쪽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뜻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선군정치보다는 당 중심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봉주 내각총리의 호명 순서가 황병서보다 앞으로 나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 북한이 일종의 시장경제 요소를 받아들여서 경제가 그나마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박봉주 총리의 역할이 컸습니다. 지금 박봉주가 총리가 된 지 4년이 넘어가는데, 민간 영역도 있지만 어쨌든 박봉주를 기용하면서 경제가 돌아간 측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이는 북한이 향후 경제를 당과 행정부가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는데 군이 많은 역할을 했고 이게 미국과 협상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정도의 역량을 확보했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러면 이제 경제를 활성화시켜서 체제를 안정시키고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박봉주 총리의 위상을 올려준 이유에는 이러한 측면도 포함돼있다고 봅니다. 

김일성이 집권했을 당시에는 당이 행정부를 지휘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1994년 김정일 사후에 당은 경제에서 손을 떼라며 군을 앞세우는 선군정치를 시작했죠. 당의 관료주의 병폐가 체질화돼서 매너리즘에 빠졌고, 일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 배경이었습니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당보다는 군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런데 김정일 사후 시장경제요소가 들어가면서 군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할 수 있는 역할을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김정은 시대에서는 군이 핵무력 건설을 했으니, 이제는 이대로 가면 되겠다는 판단으로 경제 쪽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 지난 7일 전원회의 모습. 왼쪽부터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박봉주 내각총리,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프레시안 : 이번 인사에서 김기남 당비서와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났고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섰는데요. 북한 지도부의 일종의 세대교체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김기남 비서가 노동당에서 선전 선동 책임비서였을텐데, 꽤 오래 했죠. 그리고 김여정이 부부장으로 있다가 지금 정치국 후보위원까지 된 것 아닙니까? 김기남 밑에서 배운 걸로 이제는 김여정 본인이 직접 움직일 수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김기남이 이제는 김여정 혼자서도 잘할거라는 식으로 김여정을 소위 '인증'해주면, 김정은 입장에서도 자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기남보다는 동생인 김여정이 좀 더 상대하기 쉽기 때문에 김기남의 역할을 김여정에게 넘기라고 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김정은의 장악력이 더 강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정세현 : 일종의 친정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번 전원회의는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김정은은 지금까지 국내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는데 열을 올렸고요. 올해 10번 이상 미사일을 쏜 것도 이러한 목적도 있어 보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의 행태를 보도하며 미국이 아무리 겁을 줘도 우리 원수님은 굴하지 않고 미국을 제압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선전할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이번에 인사로 나타난 것이겠죠. 

프레시안 : 북한이 이제 경제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경제발전에 매진하려고 해도 이미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상당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데요. 외부 투자를 사실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 경제를 신경쓴다고 해도 실제 성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60년이 넘게 자급자족 체제를 운영해왔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경제에서 자립을 내세웠는데 국제적 정세 때문이었죠. 당시 소련과 중국의 분쟁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편을 들었습니다. 소련의 수정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의 1인 지배 체제에서 벗어난 상황이었습니다.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식의 통치를 비판했죠.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은 스탈린과 유사한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해서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스탈린 방식을 부정하고 있으니 소련과 가까워질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북한이 중국에 의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북한은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죠. 그래서 북한에는 '내부 예비', 즉 국가 내부에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끌어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북한은 이러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핵과 미사일 문제로 유엔이 북한에 가하고 있는 제재가 10개나 있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굴러가고 있는 상황인데, 그 과정에서 내부 예비를 총동원하며 박봉주 내각이 경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내부에서는 박봉주의 관리 방식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규모가 커지려면 내부 예비를 총동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밖에서 투자가 들어와야 합니다. 더구나 북한이 중국과 국경지역에 특구를 만들어놓고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제재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박봉주 내각이 아무리 경제를 잘 운영하려고해도 내부예비는 시간이 갈수록 한계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밖으로부터 자본이든 뭐든 들어와야 하는데 그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과 접촉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이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상황이 풀리기를 기대하면서, 미국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도록 자꾸 미사일을 발사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 개성공단 가동,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프레시안 :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지난 2일 북한이 개성공단의 임가공 공장 일부를 무단으로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실제로 북한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을까요? 

정세현 :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개성공단에 있는 공장 중에 봉제공장 정도를 돌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봉제공장은 어렵지 않게 가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난 2013년 재가동된 개성공단 내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봉제 업무를 하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

 
중국에서 원자재를 사다가 실을 사고 재봉틀을 돌리는 정도는 개성시 입장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출퇴근하던 노동력도 있지 않습니까? 또 봉제공장이면 그렇게 많은 전기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전기를 조금만 가져오면 기계는 돌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낮 시간에 쓸 수 있는 가정용 전기를 끌어다가 배전해서 공장 가동을 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공장 가동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당장 남북한 채널도 모두 막혀있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답답해 보입니다.  

정세현 : 이 문제는 남북 당국간에 풀어야 합니다. 아무리 공장 설비가 북한 땅에 있다고 해도 남한의 재산권을 마음대로 쓰면 안된다고 항의를 하든, 아니면 로열티를 지불하고 쓰라고 하든, 어떤 방식으로 해결을 하든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당국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북한이 사고친 것을 비난만 하고 있는 건 정부의 역할이 아닙니다.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따지기 위해서라도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기업들에게 떠밀어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일단 당국이고, 우리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및 당국이 관여하고 있으니 기업인들의 현장 방문 및 조사를 등을 통일부가 당국 차원에서 북한에 제안해줘야 합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기업들이 정부와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가고 싶어도 북한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북한에서 방문 신청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북한이 거절하더라도 정부는 당국 간의 접촉을 시도해야 합니다. 비록 전 정부가 공장 가동을 중단했지만, 현 정부에서도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북한과 접촉해서 무단 가동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 파악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당국 간 접촉이 일어난다면 다른 문제들에 대한 대화 모멘텀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접촉이지만 이러한 시도가 한반도의 긴장을 다소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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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넷마블 개발자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넷마블이 삼킨 청춘①] 2014~2016년, 넷마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17.10.11 18:00l최종 업데이트 17.10.11 19:02l

 

지난 2016년 넷마블게임즈에서 3명의 젊은 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했습니다. 그해 11월에 일어난 한 노동자의 죽음은 이듬해 6월 과로사로 확인됐습니다. 3명의 노동자가 연달아 사망하면서, 넷마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번 국정감사 때도 넷마블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다뤄집니다. 1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맞춰,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는 넷마블 잔혹사를 재조명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넷마블게임즈(주)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서 권영식 대표 등 임직원들이 축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지난 5월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넷마블게임즈(주)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서 권영식 대표 등 임직원들이 축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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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넷마블게임즈(이하 넷마블)가 국내 주식시장의 실질적 황제주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반 주가로는 삼성전자가 주당 256만4000원으로 최고가지만, 서로 각각인 액면가를 5000원으로 맞춰 비교하면 757만5000원의 넷마블이 최고의 황제주라는 내용이다.

이처럼 넷마블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방준혁 이사회 의장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신흥 부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넷마블은 게임 산업의 성공신화를 이끄는 선도 기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 넷마블에서 지난해 7월 한 게임개발 노동자가 돌연사했다. 38세였던 이 청년은 급성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9월 또다른 한 노동자가 본사 사옥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그리고 2016년 11월 또 한 명의 게임개발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 청년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어마어마한 부를 끌어 모은 기업이자 수조 원 대의 주식상장을 앞둔 게임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유지·보수하던 청년노동자가 돌연사하고 자살한 것이다. 2016년 11월 23일부터 익명 게시판 앱인 블라인드에서 죽음의 원인과 책임을 두고 들끓기 시작했고, 5일 만에 545명의 노동자들이 노동건강연대의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넷마블을 꺼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왜 2013~2015년을 악몽으로 기억하는가?

 

이 설문조사에는 언론에 알려진 것 말고도 특이점이 있었다. 넷마블을 퇴사한 전직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현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현격하게 달랐다. 

퇴직자들은 하루 13시간 이상 일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41.0%나 됐다. 당시 재직자들에게서도 이 비율은 14.8%나 되었지만 퇴직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기억의 차이인지 경험의 차이인지 당시로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넷마블 개발사들 2012~2015년 근로기록을 조사하면 어마어마할 겁니다. 꼭 시정되도록 부탁드립니다."

느닷없이 들어온 이 상담 문자메시지의 의미를 헤아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게임 출시와 업데이트를 앞두고 초장시간 밤샘 근무를 하는 '크런치 모드'가 오늘의 넷마블을 있게 한 성공 비밀 중 하나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한 넷마블 노동자들의 기억은 달랐다. 

"3000억 원의 매출을 1조 원 매출로 신장시킨 것은 내가 재직했던 2014~2015년의 일이다. 모두 중국에서 고생했다. 하지만 우리 팀에 돌아온 건 권고사직이었다. <다함께 던전왕> 중국 진출이 실패했다는 게 이유다. 그때 그만둔 동료들이 40명이다."

배신감과 원망에 가득한 눈빛으로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중국에서 그땐 한두 시간 쪽잠자면서 3~4일씩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100시간 동안 쪽잠 자며 일해본 적도 있다. 숙소에서 잤다고 충분히 쉬고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전 5시에 들어가면 다시 10시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4시간 정도 머리만 대다 다시 나오곤 했다."

넷마블 노동자들은 당시 회사가 요구했던 일정에 따라 데드라인을 맞추고, 크런치 모드를 묵묵히 견뎌냈다. 야근 수당도 없이 성공보수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 자신이 속한 팀의 프로젝트가 중단되기라도 하면, 권고사직을 종용받는다고 한다. 물론 권고사직을 제안 받기도 전에 야근이 힘들어 먼저 그만 둔 경우도 많다. 주 5일 밤샘 야근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넷마블을 떠난 퇴직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2013~2015년 넷마블에서의 근무 기억은 악몽일 수밖에 없다.

넷마블 게임개발 잔혹사
 

 이들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든 <길드오브아너>는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었다. 동료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이들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든 <길드오브아너>는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었다. 동료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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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마블은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라, 게임을 유통·공급하는 회사다. '넷마블 게임' 개발사들은 대부분 넷마블게임즈의 자회사이거나 관계사들이다. 데드라인을 앞두고는 본사(넷마블게임즈) 직원들도 야근을 하지만, 게임 개발 중간 점검 기간을 뜻하는 '빌드 주간'에 밤샘하고, 크런치 모드 속에서 주말과 저녁을 반납한 채 집중적으로 야근을 하는 건 자회사나 관계사의 게임개발 노동자다. 넷마블 네오, 마이어스 같은 개발사들 말이다.

마이어스는 넷마블이 개발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하던 2011년 인수된 개발사다. <길드오브아너> 게임을 개발했다. 2014년 마이어스의 <골든에이지>가 성공하지 못하자 이듬해 바로 글로벌화를 목표로 새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길드오브아너>다.
 

 <길드오브아너> 게임개발자 A씨의 2015년 4~12월 주당 평균 노동시간.
▲  <길드오브아너> 게임개발자 A씨의 2015년 4~12월 주당 평균 노동시간.
ⓒ 노동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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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스 게임개발자 A씨가 <길드오브아너>를 출시하기 위해 일한 근무시간을 그래프로 옮긴 것에 따르면, 그는 2015년 7월에만 주당 평균 71.1시간을 일했다. 게임 출시를 앞둔 8·9·10월은 물론 11월에도 주당 평균 60시간을 넘기며 근무했다. 산재보험법에서는 보통 12주 동안 60시간 이상 일하다 사망한 경우 과로사로 인정하는데, A씨는 무려 21.5주를 60시간 넘게 일했다.

게임 개발은 출시로 끝나지 않는다. 매월 업데이트 서비스를 하면서 수익모델을 갱신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유지·보수 업무를 할 때에도 노동자들은 밤샘 야근을 한다. 본사의 빌드 점검은 다음날 오전에 이뤄지고, 게임 업데이트는 게임 유저의 편의를 위해 새벽에 이뤄질 때가 빈번하다.

2016년 업데이트 업무를 수행했던 <길드오브아너> 개발자들도 예외 없이 밤을 샜다.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길드오브아너> 게임개발자 B씨는 매월 있었던 업데이트를 위해, 1월에는 주 61.0시간, 2월에는 62.8시간, 3월에는 주 75.3시간을 일했다.

2016년 3월 이 게임개발자의 출퇴근기록은 정말 혹독했다. 3월 9~10일, 17~18일 밤샘 야근을 했고, 3월 21~22일, 23~24일에는 연이어 밤을 샜다. 전날 밤을 샜건 안 샜건, 거의 매일 밤 12시에 퇴근을 했고, 토요일에도 6~8시간씩을 일을 했다.

이들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든 <길드오브아너>는 성공했다. 그래서 2016년부터 마이어스의 노동자들은 넷마블 본사가 제공하는 200만 원 상당의 복지 포인트를 받았고, 20층 카페테리아 이용권도 얻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었다. 동료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급성심정지로 돌연사한 노동자가 바로 <길드오브아너>를 개발하던 아트 디자이너였다. 그 역시 다른 동료들처럼 열심히 일했다. 동료들은 과로사일 거라 의심했지만, 유독 넷마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달여 뒤 넷마블이 언론에 밝힌 입장은 다음과 같다. 

"돌연사한 직원의 경우, 유족들이 과로사는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과로사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28살 청년의 과로사는 막을 수 있었다

넷마블이 "과로사는 절대 아니"라고 한 사이, 넷마블 게임개발사들의 노동자들은 예전처럼 똑같이 일했다.

넷마블의 게임개발 관계사 중 하나였던 인피니티 게임즈는 <나우>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나우>는 2016년 하반기 출시가 목표였다. 이 게임을 개발하던 노동자도 <길드오브아너> 게임 개발자처럼 런칭을 앞두고 21.5주 동안 매주 60시간을 넘기며 일했다.
 

 <나우> 게임개발자 B씨의 2016년 1~12월 주당 평균 노동시간.
▲  <나우> 게임개발자 B씨의 2016년 1~12월 주당 평균 노동시간.
ⓒ 노동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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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길드오브아너> 게임 개발자가 돌연사하자, 8월 주 근무시간이 54.5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9월부터 개발자들은 다시 60시간을 넘겨 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게임은 출시되지 못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중단됐고, 인피니티 게임즈는 넷마블 네오에 인수합병됐다.

출시와 업데이트를 앞둔 게임개발자들이 2016년 하반기에도 밤샘 야근을 계속한 사이, 넷마블 네오에서 <킹오브파이터즈>를 개발하던 28살 청년이 과로로 사망했다. 11월 21일의 일이다.

이 노동자가 왜 사망하였는지는 이듬해에야 밝혀졌다. 9월과 10월 사이 이 청년에게도 야근이 집중됐다. 10월 첫 주에만 95시간 55분, 넷째 주에는 83시간 4분 동안 일한 것이다. <킹오브파이터즈>는 2017년 2월에 출시될 예정이었고, 그도 다른 게임개발자들처럼,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로 밤샘야근을 했다. 그렇게 일하다, 주말 집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회사로 출근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난 8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인의 죽음을 과로 등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했다.

넷마블의 게임개발 환경에서는 누가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4개월 동안 넷마블이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이, 우리 사회가 넷마블 게임개발 환경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28살의 청년의 죽음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넷마블의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시간 노동, 과로로 노동자가 고통 받거나 사망하면, 그의 소속 (원청) 법인과 사업주는 최소한 세 가지 책임을 져야 한다. 

① 진상규명과 함께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
② 원상복구 및 각종 보상의 책임을 지는 것
③ 재발방지 및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책임을 지는 것

과로사나 과로자살에는 피해당사자의 과실이라는 게 없다.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고, 무엇인가에 의해 조장되었으며, 구조적인 원인들로 인해 발생한다.

그런데 넷마블은 이 모든 책임의 첫 관문인 진상규명부터 어렵게 했다. '유족들이 과로사가 아니'라고 말했다며, 업무연관성에 대한 모든 합리적 의심을 배격하려 했다. <킹오브파이터즈> 개발자 과로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넷마블은 과로사 직후 노동건강연대가 시도한 설문조사 자체를 불온시 했고, 조사중단과 함께 발표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 증명부터 보냈다.

진상규명에 소극적이었던 만큼 넷마블은 원상복구나 보상의 책임을 지는 것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밤샘야근을 줄이려는 노력도 지난 2월 <경향신문>이 대서특필하고 시민사회가 들끓고 난 뒤에야 "야근 최소화" 계획을 발표했다. 

"보상은 업계 최고"라며 적어도 임금만큼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일관하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이후 44억 원의 임금체불액을 지적당하고 난 뒤에야 야근수당을 지급했다. 

3년치 체불임금 지급도 마찬가지였다. 무료노동신고센터가 진정인들을 모아 증언대회를 준비하고, 의원실이 산재 인정사실을 알리고 난 뒤에야 움직였다. 유가족에 대한 사과도 그제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여전히 넷마블은 연장근로 제한 한도를 훌쩍 넘기는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가 과로사한 것에 대해 법적·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의 경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기업이 과로사는 물론 공짜야근이 재발되지 않도록 스스로 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렇게 내놓은 대책이 실제로 하고 있는 게 맞기나 한 건지, 효과가 있기는 할 것인지, 지역시민사회의 감시 없이도 스스로 지속할 의사는 있는 건지, 우리는 모두 의문을 가지고 있다.

10월 1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넷마블 서장원 부사장이 출석한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뒤늦게라도 넷마블이 책임 있게 사과하고, 21세기를 새로운 부를 선도하는 기업답게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기업이라 소명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청년들의 꿈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박준도 기자는 '노동자의 미래' 정책기획팀장으로,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 정책부장도 맡고 있습니다.

 
태그:#넷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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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경력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본 문제점

 

[주장] 반복되는 타워크레인 사고, '깜깜이 신호수'부터 바꿔야... 신호수 국가 자격증 제도 필요

17.10.10 22:08l최종 업데이트 17.10.11 11:45l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  지난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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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건설 현장의 대형 타워크레인이 넘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오늘(10일)도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쓰러졌다. 이 사고로 작업 인부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타워크레인 사고는 여러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아 가는 것은 물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힌다. 지난 5월 YTN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타워크레인은 5800여 대에 이른다. 그런데 일선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삼면의 사각지대, 100% 신호수 무전에 의존해 작업하지만...

 

어느 현장이건 타워크레인을 원활하게 사용하려면 경험이 풍부한 타워크레인 조종사뿐만 아니라 유능한 신호수가 있어야 한다. 신호수는 한쪽에서 물건을 잘 매달아 주고 필요한 곳에서 곧바로 되받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일어난 의정부 사고의 경우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5월 1일 일어난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의 경우, '소통의 부재'가 사고 원인이었다. 신호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현재 건설 현장에서 이런 업무를 맡는 사람은 신호를 전문으로 하는 이가 아닌 경우가 많다. 흔히 알고 있는 철근, 목수 반장이나 현장의 팀장들이 무전기로 대충 신호수 역할을 한다. 이마저도 자신의 작업을 위해 마지 못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전문성이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신규 현장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신호수의 경험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어떤 식으로 무전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어떤 이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향해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곤 마치 전화를 받는 것처럼 자기 귀에다 무전기를 대고 기다린다. 이런 사람은 보나마나 완전 초보다. 

신호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겐 무전기를 건네주지 말아야 하고, 또 잡지도 말아야 한다. 아무런 요령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신호를 보냈다간 뜻하지 않은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사 초기라면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지정된 신호수에게 맞춤 교육을 몇 차례 시도하면 어느 정도 작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건설 현장의 특성상, 자신과 관련이 없는 분야의 일은 신호를 잘 안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 분야별로 신호수를 한 명씩 지정하여 작업을 진행하지만, 그런 중요한 사람이 수시로 그만두고 새로 충원되는 변수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매번 신호수 교육을 시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시각으로는 건물 층수가 더 높이 올라 갈수록 잘 보이지 않는 곳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타워크레인은 신축 중인 건물 외벽에 가까이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조종석에서 훤히 보이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마저도 꽤 높은 곳에 떨어져 있다 보니 신호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외 나머지 삼면의 사각지대는 100% 신호수가 휴대한 무전기 신호에 의존해 가며 작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호수가 제대로 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 어찌 될까.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이어지고 있는 고공 작업 중에 단 한 차례도 신호수의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어느 곳이든 공사현장 바로 옆 인도엔 많은 행인과 자동차가 수시로 지나다닌다. 그런 곳에서 유능하지 못한 신호수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작업 신호를 보낸다면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현실이 이런데, 무수히 많은 건설현장에서 아직도 신호를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등을 떠밀려 타워크레인 신호 업무를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종사의 손발이 되어주는 신호수, 아무나 맡긴다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1일 오후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지난 5월 1일 오후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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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은 사각의 철재 기둥 위에 얹혀 있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다. 공중에 설치된 타워크레인 조종석을 기준으로 했을 때 뒤쪽 구조물 끝부분엔 사각형 모양의 무거운 콘크리트가 몇 개씩 얹혀 있다. 콘크리트 수량은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콘크리트 블록이 뒤에 얹혀 있는 이유는 앞쪽에 있는 붐의 어느 위치에서나 정해진 중량물을 보다 안정적으로 들어 올리도록 밸런스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신호수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신호수는 운반하고자 하는 물건을 꼼꼼하게 잘 매단 뒤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들어 올리라는 무전 신호를 보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 역시 신호수의 지시대로 호이스트(무거운 물체를 상하로 이동시키는 데 사용하는 장치) 상승 레버를 최대한 천천히 작동시켜야 한다. 신호수는 도중에 들어 올리려고 하는 물건의 정중앙에 훅이 위치해 있는가를 확인하고, 잘못됐을 때는 언제든 정지 신호를 보내 바로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함부로 물건을 들어 올렸다가는 큰 사고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적게는 몇백 Kg에서 수십 톤까지 나가는 물건이다. 만약 신호수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갑자기 중량물이 움직일 수도 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원칙을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하면 신호수는 물론 그 근처에서 함께 일을 거들고 있는 사람까지 순식간에 협착 또는 압착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경험이 없는 신호수는 타워크레인으로 이동해야 할 물건과 해선 안 될 물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일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훅에 매달 중량물에 비하여 줄걸이용 와이어나 샤클(체인 등의 연결에 쓰는 경철구 일종)이 규정에 미달해도 그냥 매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작업 도중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사각지대에선 힘들다. 미숙하더라도 전적으로 무전기를 갖고 있는 사람의 신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타워크레인은 그 어떤 장비보다 정교하고 예민한 기계다. 그래서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타워크레인 조종 레버를 잡아야 훨씬 더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매번 빈 훅이 힘을 받아 물건이 바닥에서 살짝 떠오를 때까지는 최대한 저속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 

위로 올려야 할 물건이 타워크레인 운전석에서 가까우냐 머냐에 따라서 상당한 시간 차이가 생긴다. 앞쪽 붐 전체가 마치 낚시대의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인양하고자 하는 물건의 무게만큼 자연스럽게 밑으로 숙여진다. 물건의 중량이 많이 나가는 것을 들어 올릴 땐 타워크레인 기둥도 앞으로 조금 당겨지면서 앞쪽 붐 끝 부분은 최대 2미터까지 숙여진다. 

그러므로 타워크레인 조종사와 신호수는 물건이 땅에서 살짝 떠오를 때까지 매번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물건을 들어 올리게 되면 50톤 이상 나가는 타워크레인 상부 전체가 갑자기 앞으로 당겨지게 된다. 또 그와 동시에 붐이 밑으로 빠르게 숙여지면서 장비가 심하게 흔들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와 반대로 공중에서 고속으로 물건을 내릴 때에도 땅바닥에 닿기 몇 미터 전부터 속도를 충분히 줄여서 매우 느리게 닿도록 신호를 보내야 안전하다. 이렇게 하지 않고 고속으로 땅바닥에 물건이 닿도록 신호를 보내면 타워크레인 상부 전체가 뒤로 넘어가며 앞 붐이 물건을 매달 때 숙여졌던만큼 위로 튀어 오르게 된다.

이때 심한 충격을 받게 된 타워크레인은 앞뒤로 계속 흔들리면서 쉽게 멈추질 않는다. 타워크레인은 이런 식으로 흔들리게 되면 끝내는 약한 부위의 볼트가 절단되어서 중심을 잃고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타워크레인 기사는 이상한 소음이 들리거나 장비가 조금씩 흔들릴 때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어떨 땐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신호수의 충분한 사전 지식과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지금 비전문 신호수들이 전국의 건설현장을 누비고 있다.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타워크레인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 

국내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대체할 만한 효율적인 중장비는 아직 없다. 예전보다 층수가 훨씬 더 높이 올라가고 갈수록 규모가 큰 현장이 많아지기 때문에 타워크레인의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신호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타워크레인 신호수 국가 자격증 제도를 하루빨리 신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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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 노조 “단식은 중단한다…교섭재개 및 총파업 병행”

 

학교비정규직 노조와 교육부·교육청 교섭을 재개하기로 결정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7-10-11 13:31:55
수정 2017-10-11 13: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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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5일 무기한 총파업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5일 무기한 총파업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보름 동안 단식농성을 이어온 학교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단식을 중단하고 교육부·교육청과의 교섭을 재개한다. 다만 노조는 조속하고 성실한 2017년 임금교섭을 촉구하기 위해 예정대로 총파업을 준비할 계획이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전국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는 11일 서울시교육청 단식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교섭 파행과 단식사태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성실히 교섭하겠다는 사용자 측의 의견을 존중하여 집단단식 농성을 중단하고 노사 간 대화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부로 단식농성을 중단하고 교섭재개 및 25일 총파업을 준비한다. 정식교섭 시작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서로의 안에 대한 검토 등 사전 조율이 필요해 정식 교섭이 재개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연대회의와 교육부·교육청은 지난 8월18일부터 9월26일까지 총 8차례 집단교섭을 진행했다. 노조는 근무하면 근무 할수록 벌어지는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완화해 보고자 근속수당 1만원 인상(근속수당 2만원→3만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육부·교육청은 애초 교섭의제에 포함돼 있지도 않은 통상임금 산정시간(243시간→209시간) 변경을 요구했고, 이를 전제해야만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버텼다. 노조는 “통상임금 산정시간 변경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며 반발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간부 18명은 추석 전 마지막 집단교섭을 앞두고 집단삭발을 감행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추석연휴 전 집단교섭이 파행에 이르자 3개 노조 40여명의 간부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추석연휴 기간 중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간부 4명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지만 계속됐다.

그러던 중 지난 10일 오후 늦게 김상곤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이 단식농성장을 찾아 유감을 표명하고 새롭게 교섭 자리를 제안했다. 이날 김 장관과 농성장을 함께 방문한 조히연 서울시교육감은 "앞으로 새롭게 성실한 자세로 교섭에 임하겠다는 메시지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노조 간부들이 11일 집단농성을 풀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조희연 서울시-장휘국 광주시-김석준 부산시-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이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4일째 단식 중인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농성장을 찾아 지도부를 면담하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조희연 서울시-장휘국 광주시-김석준 부산시-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이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4일째 단식 중인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농성장을 찾아 지도부를 면담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3개 노조는 1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내용 없는 성실교섭 약속만을 믿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총파업을 선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는 “예정된 25일 총파업 전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며 “이제 정부와 교육청이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간 끌기 식 교섭태도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키는 꼼수를 중단하고, 노조의 초소한의 요구안인 2년차부터 근속수당 3만원 인상 제도를 올해부터 우선적으로 도입해 학교비정규직 차별해소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김종인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참여해 “정부가 앞장서서 최저임금 탈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교육부·교육청이 노조 측에 요구한 통상임금 산정시간 월 243시간에서 월 209시간 변경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최저임금 1만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편법·탈법”이라며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월 기본급은 160만 수준으로, 이는 현행 243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시급 6,588원이 된다”며 “올해 최저임금 6,470원 대비 118원 많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토요일을 무급화하여 기준시간을 209시간으로 조정할 경우, 시급은 7,660원이 된다”며 “이는 내년 최저임금 7,530원보다 높아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전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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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大)고조선인가, 소(小)고조선인가?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10) 고조선의 강역논쟁
  • 박경순 우리역사 연구가
  • 승인 2017.10.10 10:02
  • 댓글 0

고조선은 기원전 30세기 초에 건국되어, 기원전 108년까지 2800여 년 동안 존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이다. 고조선의 역사는 우리나라 5000년 역사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고조선에 관한 역사기록이 대부분 소실돼 버린 탓에 고조선의 구체적 면모를 알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 발전에 힘입어 문자기록의 부재부분을 상당정도 보완할 수 있게 됐고, 고조선의 면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문제를 이해하는데 고고학적 연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문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 못지않게 고조선에 대한 논쟁점 중에서도 매우 뜨거운 분야에 속한다. 고조선의 중심지 문제는 요동설과 평양설, 중심지 이동설로 대별되는데, 요동설을 강하게 주장하던 북한의 역사학계에서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평양설로 정리함으로써 남북 사이에 이견이 많이 해소됐다. 하지만 고조선의 강역문제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고조선의 강역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고조선-한 전쟁 이후 설치된 한사군의 위치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조선 명칭의 유래

고조선은 당대에 쓰던 국호가 아니다. 당대에 쓰던 국호는 조선이다. 이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안다. 그런데 고조선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흔히 후대의 조선(이씨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렇지 않다. 고조선이란 명칭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이다. 이 책은 알다시피 고려 충렬왕 때(1281년경) 중 일연이 쓴 우리나라 역사책이다. 그 책 첫머리에 단군신화가 기술돼 있는데, 그 제목이 ‘고조선古朝鮮(왕검조선王儉朝鮮)’으로 돼있다. 삼국유사에서 처음 고조선이라는 명칭을 썼을 때, 그 의미는 이씨조선과 구별되는 고조선이라는 뜻이 아니라, 세칭 기자조선으로 알려져 있던 후조선과 구별되는 옛 조선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고조선이란 명칭은 후조선에 앞선 단군조선 왕조를 지칭하는 역사적 개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근대이후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봉건 조선왕조(이씨조선 왕조)와 구별되는 옛 조선이라는 개념으로 확대되어 사용돼 왔다.

봉건 조선왕조와 구별되는 옛 조선(고조선)은 기원전 30세기 초에 건국되어 기원전 108년에 붕괴되기까지 2800여 년간 존속했는데, 이 기간동안 단군조선(전조선), 후조선, 만조선 세 왕조가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사용돼는 고조선은 단군 조선, 후 조선, 만 조선, 세 왕조를 포함된 개념이다. 고조선의 첫 왕조인 단군조선은 최근 단군릉 발굴로 기원전 30세기 초에 건국됐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단군조선 붕괴와 후조선 건국의 경위와 연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하지만 <삼국유사>, <삼한 시귀감> 등 단군조선을 다룬 여러 역사책들에서 단군조선 1500년 설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서 제기한 단군조선 건국연대(요임금 즉위 50년 경인년)와 붕괴연대(주 무왕 원년 기원전 1122년)를 계산하면 12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중 일연은 이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 조선 1500년 설을 주장했다. 왜 그랬을까? ‘ 단군조선 1500년설’이 중국 요 임금 즉위나 주 무왕과 관계없이 우리나라에서 따로 전해오던 유력한 연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 고유의 전승으로 단군조선 1500년설이 대대로 전해져 와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한 사실로 고착됐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단군조선의 붕괴와 후조선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15세기경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것은 최근연도에 발굴된 유적 유물들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후조선은 자신의 전성기 때 서쪽지역으로 영역을 크게 확대해 난하 유역에 이르렀는데, 이를 보여주는 유적 유물이 바로 위영자 문화(기원전 14~12세기)와 그를 계승한 능하 문화(기원전 11~4세기)이다. 위영자 문화와 능하 문화는 비파형동검 문화, 좁은 놋단검(세형동검) 문화에 속하며, 후조선 시기에 고조선 사람들이 서쪽으로 이주해 창조한 문화이다. 이 문화의 연대로 볼 때 기원전 15세기 말~14세기에 후조선 왕조가 안정돼 서부 영토를 크게 확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조선의 붕괴연대는 기원전 15세기경으로 보는 게 옳다. 후조선 왕조는 기원전 15세기부터 만이 후조선 왕조를 붕괴시키고 만왕조를 세운 기원전 194년까지 1200여 년간 존속했다.

대고조선인가, 소고조선인가?

고조선의 중심지 수도는 줄곧 평양이었다는 것을 남북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고조선의 강역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매우 크다. 강역에 대한 견해 차이는 강역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조선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를 담고 있다. 소(小)고조선론자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크지 않은 영역을 갖고 있던 작은 나라에 불과해, 한반도 전체의 문명화(고대화)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치 않았다고 본다. 즉 한반도의 본격적인 문명화 과정은 삼국시대에 비로소 본격화됐는데, 여기에 고조선의 영향은 별로 크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에 대(大)고조선론자들은 단군조선(전조선)에 의해 한반도 전체의 문명화(고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본다. 단군조선이 처음 건국됐을 때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압록강 이남, 강화도를 포함한 임진강 이북 오늘날의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포괄하는 나라로부터 시작됐으나, 건국이후 신석기 시대 이래 우리겨레가 살고 있었던 지역들(한반도, 만주, 연해주)에 고대문명 전파를 통해, 고대화(문명화)를 촉진하고, 자신의 강역으로 편입시켰다. 그리하여 단군조선 전성기에는 한반도 전체와 만주 연해주 남부지역을 다 포괄하는 대국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 고조선(단군조선) 강역도 (BC 30세기 초~ BC 15세기 중엽)

고조선의 강역에 관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이 단군조선의 강역에 포함됐었는가 여부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은 단군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 근거로 고인돌의 형태 차이를 들고 있다. 탁자식(북방식) 고인돌의 분포지역만이 단군조선의 강역에 속하는데, 한강이남에서는 탁자식 고인돌이 없기 때문에 단군조선에 강역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한강 이남지역에서도 탁자식 고인돌이 다수 발견됨에 따라 설득력이 없게 됐다. 고인돌의 유형을 남방식, 북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이다. 일제 강점기 어용사학자들은 한반도 남과 북의 고인돌의 기원이 서로 다른 것처럼 왜곡하기 위해 남방식, 북방식이라는 비과학적 용어를 조작해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반도 고인돌의 기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원에서 발전해 왔다. 그것은 평양근처 침촌리에서 발굴된 초기형 고인돌 무덤(침촌형 고인돌 무덤)으로부터 기원해 오덕형(탁자식) 고인돌 무덤 양식과 묵방리형(개석식) 고인돌 무덤으로 발전해 왔다. 즉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발전해 왔으며 한강이남 지역에서도 이 세 가지 유형의 고인돌 무덤 양식이 모두 발견됨으로써 서로 기원이 다른 것처럼 묘사된 남방식, 북방식이라는 용어는 폐기돼야 한다. 한강이남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남방식으로 불렸던 기반식 고인돌 역시 한강 이북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이 단군조선의 강역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사라졌다.

반면에 대고조선론자들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 만주, 연해주 지역을 단군조선 강역으로 본다.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이 단군조선 강역이었다는 것은 역사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으며, 유적 유물 자료로써도 확증될 수 있다고 본다.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 역시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역사자료는 <제왕운기>(고려 충렬왕 때 유학자 이승휴가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시로 쓴 역사책)이다. <제왕운기>에서 시라, 고례,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 맥이 다 단군의 통치 지역이었다고 한 것은 단군조선의 강역이 실제로 요하하류 동쪽, 북류 송화강 유역 남쪽, 연해주 남부지역, 한반도 전체까지 광대한 지역을 다 포괄하고 있었던 사실을 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시라는 후기 신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이 다 단군조선의 통치지역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다.

이는 단군조선의 강역을 대표하는 표지 유적 유물을 통해서 보다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단군조선의 강역을 보여주는 표지 유적 유물로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을 들고 있다.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이 분포돼 있는 지역이 단군조선의 강역이라는 것은 학계에서 대체적으로 합의된 견해이다. 그러므로 이 유적 유물의 분포지역을 확인해 보면 단군조선의 강역을 확증할 수 있다. 특히 비파형동검은 형태와 제작방법에 있어서 매우 독특해, 이웃지역의 청동제품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청동검인 동주식 동검은 검몸과 손잡이가 일체형으로 제작됐으며, 북방지역 오르도스 동검 역시 일체형이다. 반면에 비파형동검은 검몸과 손잡이가 분리된 조립식이다. 이러한 청동검 제작방법은 이후 세형동검(좁은 놋단검)으로까지 계승돼 고조선의 고유한 문화양식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이 함께 발굴되는 지역은 단군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통치력과 영향력이 미쳤던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한강이남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 역시 단군조선의 강역에 속했다고 확증할 수 있다.

한강이남 한반도 중남부지역 전역에서 고인돌과 비파형동검이 발굴됐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고인돌의 문화적 뿌리가 다른 것처럼 왜곡했던 남방식, 북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 전 지역에서 고인돌 문화의 뿌리는 평양지역 근처 침촌리에서 발굴된 침촌형 고인돌에서 연원한다. 고인돌의 초기형인 침촌형 고인돌은 한강 이남지역에서도 발굴됐다. 강원도 춘천시 천전리, 충북 제천시 황석리, 대구시 대봉동 등지에서 발견된 고인돌 무덤은 평양일대에서 발견되는 침촌형 고인돌 무덤(3, 4형식)으로, 축조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3000년기 후반기에 해당된다. 또한 한강이북 지역에서만 발굴되었다는 오덕형 고인돌 무덤(탁자식 또는 북방식 고인돌 무덤)이 충북 제천시 황석리, 옥천군일대, 전북 고창군 도산리 죽림리 일대, 전남 나주시 일대, 전남 완도, 노화도, 대당리,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강진군 지석리 고인돌 무덤을 비롯해 낙동강 영산강 한강유역 일대에서 많이 발견됐다.

▲ 고창 도산리 오덕형 고인돌(탁자식, 북방식)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노동자구 일대 묵방형 고인돌 무덤(남방식)

또 한강이남 지역에만 있다 해서 남방식이라고 불리던 고인돌 무덤은 키 큰 오덕형고인돌 무덤(탁자식)을 제외한 키 낮은 고인돌 무덤 전반을 가리키는데 1980년대 말 평양근처 남포시 용강군 석천산 고인돌 무덤떼의 발굴을 시발점으로 평남 개천시 묵방리, 숙천군, 평원군, 대동군, 증산군, 성천군 및 평성시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조사 발굴됐다. 이로써 한반도 고인돌 무덤은 남이나 북이나 그 기원이 다른 게 아니라, 하나의 기원(침촌형 고인돌무덤)에서 유래된 동일한 문화권에 속한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단군조선과 우리 민족

단군조선은 기원전 30세기초 평양을 수도로 건국됐다. 초기 영토는 강화도를 포함한 한강이북에서 압록강 이남에 이르는 지역으로 지금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에 해당된다. 단군조선은 건국이후 신석기 시대이래 우리겨레들이 살고 있던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남부지역에 단군조선이 창조한 비파형동검 문화를 비롯한 고대문화를 전파해, 이 지역들의 고대화를 촉진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하여 기원전 3000년기 중후반에 이르게 되면 한반도 전체를 비롯해 우리겨레가 살고 있던 전 지역의 고대화가 이룩되고, 단군조선의 영역에 편입됐다. 우리 겨레는 단군조선이 붕괴되기까지 1000년 이상 단일한 국가권력의 통치아래 생활했는데, 이 과정에서 핏줄과 언어, 문화의 공통성이 더욱 더 높아지면서 하나이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를 갖는 단일민족으로 발전해 갔으며, 우리나라 정치와 문화의 기초가 마련됐다.

박경순 우리역사 연구가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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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한반도 전쟁은 세계 열핵 전쟁화

북, 한반도 전쟁은 세계 열핵 전쟁화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7/10/11 [09: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은 한반도 에서의 전쟁은 세계 열핵 전쟁화를 의미 한다며 미국의 조선 적대시를 경계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북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하면 세계는 열핵 전쟁화 하게 된다며 미국의 전쟁 의도를 짓부셔 버릴 것이라고 경고해 나섰다

 

지난 10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논평 인류의 멸살을 노린 음흉한 기도를 이 같이 밝혔다

 

민주조선은 미국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수위를 더한층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지난 9월 21일부터 미국은 나토성원국들과 함께 우리의 탄도 로켓공격을 가상한 요격연습을 진행하고 있다10월 18일까지 근 한달동안 진행되는 이 군사연습에는 미국과 함께 영국카나다프랑스이딸리아스페인네덜란드의 함선 및 전투기들3,300명의 병력이 참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은 말이 로켓 요격훈련이지 본질상 우리 공화국을 불의에 군사적으로 타격하기 위한 다국적 공격훈련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훈련에 나토성원국들까지 끌어들인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서 우리는 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시기 주권국가들에 대한 실제적인 군사적 공격에 미국은 항상 나토성원국들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볼 때 우리는 미국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고 폭로했다

 

이어 미국의 악랄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의해 지금 조선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초긴장상태가 조성되고 있다우발적 요인에 의해서도 삽시에 전면적인 무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문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조선반도정세를 주시하면서 이 지역에서의 사태발전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스러움을 나타냈다

 

아울러 미국 당국자들이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를 자극시키는 행위가 어떤 엄청난 후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데 대해 모르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언행을 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당국자들의 처신은 이와는 너무도 상반되고 있다고 미 당국자들의 처신에 주목했다

 

특히 대통령이라는 자가 직접 유엔총회무대에 올라가 상식이하의 반 공화국 악담질을 함부로 해댔는가 하면 실제적인 군사행동전야에만 볼 수 있는 반공화국도발행위들을 거리낌 없이 감행하고 있다 심지어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합동군사연습기간에도 끌어들이지 못했던 핵 항공모함 타격단을 또다시 조선반도에 끌어들이려고 획책하고 있다이제 곧 로널드 레이건호 핵 항공모함 타격단이 기어들어 조선동해상에서 남조선해군과 고강도 연합훈련을 진행하게 된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조선은 조선반도 정세가 최대로 악화되고 있는 시기에 미국이 나토무력을 동원하여 북 미사일 요격훈련을 강행 한다 로널드 레이건호 핵 항공모함 타격단을 조선반도에 끌어들인다 하고 야단 법석이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으며 미국은 조선반도정세를 최대로 고조시켜 우리의 자위적대응을 유도함으로써 전쟁도발의 명분을 마련해보려고 꾀하고 있다고 명백히 고발했다

 

이것은 미국이 조선반도정세를 완화할 아무런 의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우리 공화국을 기어이 압살하고 전 조선을 타고 앉으려는 흉심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면서 우리 공화국을 기어이 군사적으로 압살하기 위한 미국의 승냥이본성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우리는 이를 절대로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미국에 경고했다

 

이어진 글은 얼마전 폴란드 인터넷 잡지 흐 뽈리띠쩨는 미국이 조.미 충돌시 나토를 끌어들이는 방안도 추구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세계적인 열핵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못 박았다

 

특히 조선반도에서 기어이 세계적인 열핵전쟁의 불꽃을 튕기려는 미국의 기도는 인류를 핵전쟁의 참화 속에 몰아넣으려는 극히 위험천만한 망동으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신문은 끝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자위적인 핵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해나감으로써 인류를 세계지배야망실현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미국의 극악한 범죄적 기도를 철저히 짓 부셔버릴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조.미 사이의 팽팽한 대결 국면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아지 않고 있어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해법이 여구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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