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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불교와 범불자 결집대회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17.10.03 08:55
 
 

지난 학기 ‘불교윤리’라는 제목의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생들에게 ‘나에게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후에 한 주 동안 생각해보고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주로 윤리 교사가 될 준비를 하는 20대 초반 대학생들 개개인에게 불교가 과연 무엇으로 인식되고 있을까가 궁금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알아야 이후 강의 진행이 제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각각의 배경과 성향에 따라 여러 답들이 나왔지만, 불교에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은 크게 나누면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과목에서 배운 원효와 지눌, 연기와 공 같은 개념지식을 불교와 동일시하면서 수능시험 준비 과정에서 애를 먹은 것이 불교라는 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스러울 때 떠올릴 수 있는 휴식처로서의 절을 불교와 동일시하면서 무언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대상이라는 답이다. 후자에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템플스테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그 과정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면서 다른 학우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조계종 교육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이 개최한 제3회 청년출가학교.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이 둘에 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답변은 불교에 대한 거부감과 무관심,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특히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외제차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고급 식당에서 나오는 스님과 도박에 빠진 스님, 나이 든 보살인 자신의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스님 등과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수행자로서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승려에 대한 직ㆍ간접적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떤 학생은 그런 스님들과 자신이 알고 있는 불교이론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 한국사회를 평가해본다면, 급속한 개인화와 물질화, 분단구조의 고착화로 인한 전쟁 위험의 상시화 등을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지만, 탈종교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에 속한다. 사람들의 삶이 근원적으로 불안해지면서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높아지고 있지만 기존의 제도종교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는 종교사회학자 울리히 벡(U. Beck)의 분석과 진단은 우리사회에서도 이제 충분한 유효성을 갖는다. 10년 사이에 거의 10%가 줄어든 종교인구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고, 특히 불교의 경우 300만 불자가 준 사실에서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탈종교화 현상에 대응하는 방안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각 제도종교, 즉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전통종교들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면서 그 변화를 주도해가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인구수와는 달리 점차 늘어가고 있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껴안을 수 있는 다양한 대안들을 제도종교 안에서 마련하는 방안이다. 후자에는 이미 일정한 한계에 봉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심화와 다양화, 종교를 초월해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명상공간의 확충, 도심사찰 중심의 불교인문학 강좌의 확산 등이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에 앞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각 제도종교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정신과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하고, 불교는 붓다와 보살의 삶과 정신을 그 중심축으로 오롯이 간직해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우리 개신교와 불교는 그 점에서 내부와 외부 사람들 모두에게서 불신 받고 있다. 목사와 스님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를 남발하는가 하면, 신도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반인들이 헤아림의 범위를 넘어선다.

우리 승가공동체와 재가공동체에는 물론 그런 비난을 훌쩍 뛰어넘는 수행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고, 특히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으로 상징되는 탁월한 정신적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점이 문제다. 우리 시대가 정신적 영웅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객관적 여건과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청정비구와 비구니로 상징되는 승가공동체가 엄존하고 있는 한국불교계에 그런 기대를 쉽게 접을 수는 없다. 더 나아가 보살불교인 한국불교에서는 유마힐과 같이 석가의 제자들도 경외할 만한 청정한 재가보살에 대한 기대 또한 접을 수 없다. 재가보살과 출가보살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반삼아 깨달음을 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우리 시대 중생인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건강한 사부대중공동체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불교의 미래다.

9월14일 열린 '조계종 적폐청산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 모습.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유례가 없이 긴 한가위 연휴가 지나고 나면 ‘범불자 결집대회’가 조계사와 인사동 로터리 사이의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다. 10월 11일 수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이 대회는 ‘청정승가 구현과 조계종단 적폐청산’을 끈질기게 외쳐온 우리들의 함성이 방점을 찍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 보살의 조계사 앞 1인 시위로 시작해서, 그런 재가자들 보기가 부끄럽다며 단식에 돌입한 명진스님과 그 뒤를 이은 효림, 용상, 대안, 허정스님, 비구니 선광, 석안스님의 간절하고 절박한 외침, 매주 목요일 저녁 보신각 앞 광장을 채운 촛불법회, 그리고 지난 9월 14일 범불교도대회를 잇는 대장정의 한 정점을 이룰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해온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은 더위와 한기, 모기, 소음 등을 나누며 동지애를 지닐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이날 대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한국불교의 미래를 꿈꾸고자 한다. 그 미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불교이고, 출가 수행자들이 수행과 포교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불교이며 재가불자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깨달음과 자비의 지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불교이다. 그런 미래는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11일 저녁 범불자 결집대회에서 그런 열망과 함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설렘과 경외감이 함께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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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민주열사의 주검까지도 서울 밖으로 쫓아냈다

 
[르포] 민주열사 묻힌 모란공원, 이제 기념관 건립 논할 때
2017.10.04 13:38:46
 

 

 

 

많은 이가 지난 겨울 길거리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새삼 깨달았다. 과거 한국은 혁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민이 피 흘려 독재체제를 민주공화정으로 바꿨다. 동북아에서 한국처럼 민주의 의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확고히 새긴 나라는 없다. 
 
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는 지난겨울 촛불을 들기 전까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생생하게 경험해 보지 못한 탓이다. 우리는 4.19민주혁명의 의의가 무엇인지, 전태일의 항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반추해보지 않았다. 수십 년간 이어진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사를 밑줄 그어가며 공부해본 경험도 없다. 기성세대 대부분이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해 볼 겨를이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몸으로 체득한 이전 세대의 반민주적 교양을 자식에게 대물림할 뿐이었다. 
 
마석 모란공원 묘역이 특별한 이유다. 이곳은 방문한 이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의의를 되새기게끔 하는 곳이다.  
 

▲ 김근태 전 의원의 묘 인근에서 바라본 마석 모란공원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모란공원 묘역은 민주주의 산 교육장 
 
지난 19일 한국 최초의 사설 공원묘지인 모란공원을 찾았다. 모란공원 묘역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경춘선 마석역에서 도보로 약 20분가량 거리에 있다. 범 민주계열 정치인들이 중요한 시기마다 찾는 곳이다. 현재 약 13000기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약 160여 명의 민주열사가 묻혔다.  
 
공원 입구에서 위로 쭉 뻗은 길을 중심으로 묘역은 크게 좌우로 나뉜다. 오른편이 주로 민주열사가 묻힌 곳이다. 오른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민주열사 묘역 안내 책자 비치대와 민주열사가 묻힌 곳을 표시한 묘역도가 들어서 있다. 이들은 2013년 세워졌다. 묘역도는 구글 지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모란공원 묘역은 사설 묘지이기에 희망하는 누구나 안장은 가능하다. 실제 대부분 묘소는 일반인의 묘역이다. 3년에 25만 원가량 정도의 관리비, 약 1500만 원가량의 묘역비, 15년의 묘역권 등 묘역 이용 기준도 민주열사와 일반인에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모란공원 묘역이 상징성을 띈 이유는 1970년 분신한 전태일 열사가 이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이하 추모연대)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 등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은 노동권 존중을 요구하며 분신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낳은 전태일 열사의 유해가 서울시내에 묻히길 원치 않았다. 이에 보안당국은 유가족에게 전태일 열사의 묘지를 서울과 먼 거리에 조성하길 종용했다. 이에 유가족이 고른 곳이 모란공원이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기란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도 하루 두세 대 뿐이었고, 눈이 오는 날엔 접근도 어려웠다"며 "당시 정권은 최대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전태일 열사를 떨어뜨려두려 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모란공원은 새 묘지라 다른 묘를 찾기도 어려웠다"던 이소선 전 유가협 회장의 말과 일치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전 회장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평생을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았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타계 후 전태일 열사 묘소 왼편 두 칸 뒤에 안장되었다. 대부분 언론이 이소선 전 회장을 '이소선 여사'로 표현하는데, 남성에게는 대체로 전 직책을 붙여 호명하는 것과 비교하면 부당한 표기로 보인다.  
 
전태일 열사가 묻힌 후, 점차 더 많은 민주열사가 모란공원 묘역에 안장되기 시작했다. 1971년 5월 노조 활동 중 구사대에게 피습 당해 살해된 김진수 열사(당시 한영섬유 노동자), 1973년 10월 이른바 '유럽거점대규모간첩단' 명단에 포함돼 안기부의 고문으로 숨진 최종길 열사(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 1979년 신민당사 점거 투쟁 중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사망한 김경숙 열사(당시 YH무역 노동자) 등이 모두 모란공원에 묻혔다. 이들 모두 문민정부가 들어서 시민권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이른바 '빨갱이'로 모욕당한 민주화의 산증인들이다. 
 
추모연대에 따르면 사실 전태일 열사 이전 이곳에 묻힌 민주열사가 있다. 권재혁 열사다.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던 열사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추진하려 했으나, 1968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의 주범으로 내몰려 1969년 사형 당했다. 권재혁 열사는 사망 다음 날인 1969년 11월 5일, 모란공원 묘역에 안장됐다. 
 
모란공원이 본격적으로 세간에 알려진 계기는 박영진 열사 장례 투쟁이다. 박 열사는 1986년 신흥정밀에 입사해 임금 인상안을 놓고 사측과 맞서던 도중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노동계는 박 열사 유해를 모란공원에 안장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 민주열사 묘역이 모란공원에 조성된 터라 부담감을 느낀 정권과 대립, 한 달 열흘간의 투쟁 끝에 유해를 안장했다. 이 사건이 회자되면서 모란공원은 중요한 민주화의 성지로서 존재감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가 이곳에 안장된 사건은 20년 넘게 지속된 독재에 지친 시민이 대대적 항쟁에 나서는 도화선이 되었다. 
 
자발적으로 조성된 민주화 성지 
 
전두환 정권 붕괴로 형식적 민주화를 이룩한 다음에도 이곳의 상징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직장 투쟁으로 노동 현장의 민주화를 이루자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이후 모란공원에는 많은 노동열사를 비롯해 사회 각계의 누적된 모순과 싸우던 이들이 안장되었다. 수은 중독으로 15세 당시 입사 2개월 만에 사망한 문송면 열사, 백골단의 학생운동 폭력 진압으로 사망한 김귀정 열사, 원진레이온에서 근무하다 얻은 직업병으로 사망한 김봉환 열사와 고정자 열사 등 숱한 이가 이곳에 묻혔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전념한 문익환 목사, 정부의 강경한 노점상 철거에 맞서 싸우다 위법적 공권력 행사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덕인 열사, 항일독립운동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평생을 바친 계훈제 전 <사상계> 편집장, 효순이미선이 사건 당시 시민운동을 이끌다 귀가 도중 의문사한 제종철 열사, 레미콘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해 사측과 협상 도중 사측이 고용한 대체차량에 치어 사망한 김태환 열사, 한미FTA 반대를 요구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 등 숱한 이가 이곳에 묻혔다. 정권의 폭력적 철거에 맞서다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이상림·양회성·한대성·이성수·윤용헌 열사는 나란히 이곳에 묻혔다. 민청련 사건으로 군부의 살인적 고문을 받았던 김근태 전 국회의원도 이곳에 묻혔다. 
 
모란공원이 일방적으로 주입받은 화장한 한국의 얼굴이 아닌,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역사의 장인 셈이다. 이창훈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모란공원은 자연스럽게 조성된 민주열사 묘역"이라며 "권력의 인위적 조성이 아니라, 시민의 열망이 만든 일종의 성지"라고 강조했다.  
 

▲ 전태일 열사의 묘소 뒤로 이소선 전 유가협 회장의 묘소가 자리했다. 전태일 열사가 모란공원에 묻힌 후, 이곳은 점차 민주열사의 성지가 되어갔다. ⓒ프레시안(최형락)


언제까지 시민 손으로 관리를... 
 
그간 민주열사 묘역은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관리가 쉽지 않았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각 열사 추모단체가 개별적으로 개별 묘를 관리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어디에 묻혔는지 확인키도 어려웠다. 추모연대 등 여러 단체가 민주열사 묘역을 전반적으로 관리했지만, 인력과 자금의 부족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때는 2013년이다. 최재성 의원 등이 주도해 지역구 예산 2억 원을 관리에 투입했다. 묘역을 크게 가로지르는 이동로가 시멘트로 포장되고, 약자의 이동을 돕기 위한 손잡이가 이동로에 설치되고, 주요 묘소를 안내하는 나무 표지판이 설치된 게 이 때다.  
 
이창훈 집행위원장은 "예전에는 길이 전부 흙이라,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노약자는 이동조차 어려웠다"며 "그나마 지금은 예전에 비해 민주열사를 찾기가 쉬워진 셈"이라고 말했다.  
 
유가협 등 각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 매월 둘째 주 일요일마다 전반적인 묘역 관리에 나선 때도 2013년이다. 이에 따라 개별 열사 묘역이 따로 관리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민주열사로 확인된 이들의 묘역이 함께 관리되고 있다. 묘역 관리자를 위해 공원 입구에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진 것도 이 즈음이다. 자원봉사자들의 주요 업무는 묘역 잔디 관리, 이동로 관리, 표지판 관리 등이다.  
 
하지만,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 안내 책자 비치대는 외력으로 추정되는 힘에 의해 찌그러져 있었고, 안내 책자는 모두 바닥났다. 일부 나무 표지판은 이미 썩어 조금만 손을 대도 흔들렸다. 한편으로 크게 기운 표지판도 눈에 띄었다. 
 
개별 민주열사 묘역에는 그들의 행적을 간략히 소개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일부 표지판은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훼손한 듯 부러져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후 사망해 이곳에 묻혔음에도, 자원봉사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이가 여전히 많다는 데 있다. 통상 민주열사는 매년 6월 열리는 범국민추모제에서 확인하는 민족민주열사 안장 명단에 들어간 이로 구성된다. 이 명단에 든 이 중 모란공원 묘역에 묻힌 이의 묘지가 자원봉사자들의 관리 대상이다. 하지만 유가족 중 이 절차를 모르는 이는 서류신청이 필요하다는 절차조차 알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창훈 집행위원장은 "그나마 노동열사는 상급 단체 등이 추모사업회를 꾸려 관련 절차를 밟아주기에 괜찮지만, 개별적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가신 이의 유족은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 묻힌 이 중에도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음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가 많다"고 말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사진 왼쪽)과 이창훈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사진 오른쪽)이 모란공원 기념관 설립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제 기념관 건립을 논할 때 
 
무엇보다 유가족 단체는 모란공원의 상징성을 후대에 더 적극적으로 알릴 방안을 우리 사회가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 아니냐고 묻는다. 
 
모란공원은 사설묘지여서 민주열사와 일반 안장자의 무덤이 혼재되어 있다. 이미 묘역이 꽉 차, 더 많은 이를 받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민주열사의 묘지는 이동로에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공권력의 힘으로 해결하기란 어렵다. 묘지란 기본적으로 함부로 손대선 안 되는 공간인 데다, 이런 혼재성이 역설적으로 모란공원이 시민의 자발적 힘으로 만들어진 공간임을 알리는 상징성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가족 단체는 모란공원의 상징성을 살리되,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인 이곳의 의의를 시민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해주기를 원했다. 구체적 대안으로 이들이 요구하는 안이 기념관 건립이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모란공원을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민주열사 묘역은 그 어느 곳보다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장소"라며 "궁극적으로 모란공원 기념관을 설립해 시민 누구나 이곳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제화된 묘역보다, 살아있는 역사인 이곳에서 청소년이 우리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며 "자라는 세대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가장 좋은 곳이 모란공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정부는 과거 기념관 설립을 검토한 바 있다. 모란공원 입구에 위치한 모란미술관을 정부가 매입한 후, 이곳을 추모시설로 바꾸는 방안이다. 당시 정부는 약 200여억 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일반 묘역이 민주열사 묘역과 섞인 만큼 당시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와 관련해 최근 유가협, 추모연대 등 민주열사 관련 단체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모란공원 재정비 방안을 마련해 다시금 정부에 관련 논의를 이어줄 것으로 요청할 예정이다.  
 
이창훈 집행위원장은 "엄밀히 말해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은 관리가 어렵다기 보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 민주계 정치인이 찾는 곳인데,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해로 시민의 힘으로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 체제를 이룩한 지 30년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위해 시민이 흘린 피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선거권 획득이라는 중대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민주화의 의의를 상징할 모란공원은 더 큰 관심을 원한다. 
 
민주화의 상징 묘역들
 
모란공원 외에도 전국 각지에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보여주는 민주열사 묘역이 있다. 
 
먼저 손꼽을 곳은 광주 망월동 구 묘역(3묘역)이다. 망월 구 묘역은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상징성을 얻었다. 1980년 신군부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숱한 이를 학살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이 사건의 희생자 상당수가 망월 묘역에 묻혔다. 이후 이곳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광주에 빚을 진 숱한 민주화운동가들이 망월동을 찾았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망월동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민주화 운동이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는 유족마저 망월동을 방문하기 어려웠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망월 구 묘역에서 추모제를 열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을 살았다. 
 
이후에도 숱한 민주 열사가 망월 구 묘역에 묻혔다. 이한열 열사가 대표적이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이한열 열사는 사후 망월 구 묘역에 묻혔다.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다 숨진 강경대 열사도 망월 구 묘역에 안장됐다. 경찰의 물대포로 인해 숨진 백남기 열사도 망월 구 묘역에 안장됐다. 
 
망월 구 묘역은 최근까지도 접근이 쉽지 않은 공간이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곳을 찾을 당시 8000여 명의 전투경찰이 망월동 인근을 에워싸, 구 묘역을 참배한 후 신 묘역으로 이동하던 유족을 막았다. 현재 구 묘역에는 민주열사 묘지 40여기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149명의 가묘가 조성돼 있다. 본래 망월 구 묘역에 있던 5.18 희생자들의 묘소는 1997년 신 묘역이 완성된 후 그곳으로 이장됐다. 신 묘역은 2002년 국립 묘지로 승격됐다. 
 
경남 양산 솥발산 공원묘역은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열사 묘역이다. 경남 일대는 중공업 단지가 밀집된 탓에, 일찍부터 노동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 상당수가 솥발산 공원묘역에 묻혔다. 이곳이 ‘노동운동의 성지’가 된 까닭이다. 
 
2003년 사측의 탄압에 항의하다 살인적 손배소에 짓눌린 끝에 분신한 배달호 열사가 이곳에 묻혔다. 배달호 열사의 죽음은 형식적 민주화가 완성됐다 여겨진 당시 사회에 직장 민주화가 여전히 요원함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이후 노동운동가와 싸우던 주요 회사는 가장 손 쉬우면서도 잔인한 무기로 손배소를 꺼내들어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현재 이곳에는 노동열사 30여 명이 묻혀 있다. 
 
'보수의 성지'로 알려진 대구에도 민주열사 묘역이 있다. 대구 현대공원 묘역이다. 
 
현대공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인민혁명당 사건 희생자들의 유해가 남은 곳이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박정희의 유신에 반대하리라 점찍은 인물들을 증거 없이 연행해 대법원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한,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속칭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민혁명당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도예종 삼화토건 회장, 여정남 전 경북대 학생회장, 서도원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김용원 경기여고 교사 등 8명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현대공원에는 인혁당 희생자 8명을 비롯해 민주열사 17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이들의 죽음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었음을 발표한 후, 2007년 정부가 희생자 유가족에게 245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뒤늦게 바로 잡혔다. 인혁당 사건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희생자 유가족을 모욕하는 발언을 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처럼 전국 각지에 자리한 민주열사 묘역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성지로 자리 잡게 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마석 모란공원과 대구 현대공원, 양산 솥발산 묘역은 지금도 사설 묘지다. 망월 구 묘역은 현재 광주광역시가 관리하는 시립묘다. 
 
민주열사를 모시는 유일한 국립 묘역은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있다. 지난 2001년 민주공원 묘역 사업이 결정된 후 수년 간 적절한 후보지를 물색하던 정부는 2007년 12월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를 최종 부지로 확정했다. 이후 2016년 6월, 총예산 497억 원을 들여 시공한 국립 묘역을 개원했다. 
 
이곳에는 90년대 초반 학원 민주화와 노태우 정권 타도, 노동 해방 등을 요구하며 민주화 이후에도 학생운동이 이어지게끔 산화한 강경대 열사를 비롯해 민주열사 56명이 안장되어 있다. 전체 안치 규모는 136기다.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국가 인정 사망자만 안장될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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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 잊었다” 말하지만...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의 명절

 

67년 세월 동안 수많은 미제사건으로 남아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발행 2017-10-04 10:15:23
수정 2017-10-04 10: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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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자료사진ⓒ구자환 기자


 ‘사랑의 자리’낙엽이 떨어져도 생각이 나고
강물이 흘러가도 생각이 난다.
돌아온다고 약속해놓고 오지않는 무정한 님아.
사랑이 머물던 자리 그님은 어디가고
어디가고 돌아올 줄 모르나.

할머니는 불쑥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둘째 딸이 ‘어머니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다’는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88세의 고령에 맞지 않게 고운 음색과 음정을 갖춘 노래가 잔잔한 침묵을 뚫고 있었다.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며 먼저 가버린 남편의 그리움과 원통함을 애써 달랬다. 어떤 때 할아버지(남편) 생각이 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이젠 다 잊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대답은 외려 무덤덤했다. 수십년이 흐르면서 눈물도 말라버렸다. 숱한 세월이 흐르면서 죽은 사람을 슬퍼하기보다 당장 삶을 이어가는 것이 급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는 것이다. 가해자들이 침묵을 강요하며 노린 것이 ‘시간’이었을까. 통한의 아픔도 숱한 세월 속에 묻혔다. 당시 농사를 지으며 마산소방서에 다녔던 남편 황치원씨는 21세 나이의 청춘이었다. 20세인 할머니는 첫딸에 이어 둘째 딸을 태안에 품고 있었다. 다행히 열서너 마지기의 논이 있어서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 수가 있었지만 남편이 없는 농사일은 ‘골병’ 그 자체였다. 홀로 어린 딸을 키워야 했던 가혹한 시간이 어느새 67년이 흘렀다. 할머니는 가혹한 시간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느냐고 했다.

20세의 나이에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이귀선 할머니
20세의 나이에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이귀선 할머니ⓒ구자환 기자

노래를 마친 이귀선 할머니는 잠시 자리를 벗어낫다. 67년의 세월이 흐른 동안 국가는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 진상조사에서 진실규명이 되었지만 법원은 증거능력이 부족하고 마산형무소 수감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심마저 기각했다. 현재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부역 사건 등 다수의 유족들은 법원으로부터 ‘국가 잘못’이라는 판결을 받고 보상을 받았으나 유족 일부는 법원으로부터 비슷한 이유로 기각 당했다. 보도연맹학살 사건 등 진실규명 미신청 유족은 신청자보다 훨씬 많이 남아있다.

“돌아와서 들에 풀어놓은 소를 찾아오겠다고 나갔어. 그리고 안 돌아오데”

2일 찾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11일 미군 폭격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2002년 영국 BBC에서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송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 방송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침묵했던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국민보도연맹학살 사건이 그 이전에 있었다. 당시 마산과 진주일대 국민보도연맹원은 한국전쟁 초기인 음력 6월1일 소집 통보를 받고 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산의 계곡과 인근 바다에서 집단 학살됐다.

“아침에 ‘나중에 돌아와서 들에 풀어놓은 소를 찾아오겠다’고 하고 나갔어. 그리고 안 돌아오데”

남편은 진전지서에서 ‘가입하면 군에도 안 가고 좋다’는 권유를 받고 가입했다. 그것이 국민보도연맹인 줄은 알지 못했다. 1949년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을 대상으로 사상을 전향하고 계도하기 위한 관변단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역 할당제가 실시되면서 국민보도연맹원에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농민이 다수 가입됐고, ‘말 깨나 한다’는 지식층과 중고등학생까지도 가입됐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위협하고, 농민에게는 대출과 농기계 대여를 해주고, 가입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취급한다고 협박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가입시켰다. 시골마을에서는 이장이 주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지니고 있던 도장을 찍기도 했다. 이때부터 ‘도장을 함부로 주지 말라’는 말이 생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37만명으로 추정되는 국민보도연맹원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에게 동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예비 검속되고 전국 곳곳에서 무차별 학살됐다.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에는 가입하지 않은 인사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논과 밭을 팔아 뇌물을 주고 풀려난 보도연맹원도 곧잘 회자된다. 집안이 부유했던 아버지는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논과 밭을 팔아 포대자루에 담아 뇌물을 전했다. 그럼에도 돌아오지 못한 자식도 있었다. 뇌물을 받은 순경 등은 ‘담배 사가져 오라’는 등의 말로 풀어주었지만 순박했던 사람은 담배를 사들고 다시 되돌아와 죽임을 당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한 순경이 자신이 존경하는 독립운동가를 살리기 위해 ‘선생님, 목욕하고 오시라’고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독립운동가 역시 목욕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죄가 없으니 도망갈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순경은 크게 탄식을 하면서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욕설을 마구 퍼부으며 울었다고 한다.

유족들이 괭이바다에서 수장된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헌화하고 있다.
유족들이 괭이바다에서 수장된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헌화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남편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풀려난 마을주민으로부터 남편의 소식을 들었다. 이 마을에는 진전면장의 힘으로 주민 3명이 살아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온 주민 중 한 사람은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음력 7월 10일 제사를 지내라’는 단 한마디만 전했다. 이날이 남편인 황치원씨가 마산 구산면 ‘괭이바다’에서 수장 학살된 날이었다.

마산 괭이바다에 수장된 음력 7월 10일

“우짤거고, 아무리 한이 맺혀도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

할머니는 끝내 그 비통했을 순간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오랜 고통을 되새기는 질문을 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던 것에 비해 무척 허탈한 답변이었다. 듣고 있던 둘째 딸이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는 듯이 대신 거들었다. 당시 할머니의 태안에 있던 유복자다.

“말 안 해도 뻔 한 거 아닙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을 치고 대성통곡을 했겠지.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산 사람의 원이라도 풀어줘야 하지 않습니까.”

할머니는 참혹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제는 남편의 생각도 잊었고 눈물도 말라버렸다. 담배와 술을 먹으며 지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애써 웃었다. 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체념이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 일을 당하면 사람은 웃는다.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이 벌어진지 67년이 지났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는 수많은 민간인학살 사건 등에 대해 진실규명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로 접어들면서 활동기간을 연장하지 못하고 종료됐다. 짧은 활동기간은 여전히 수많은 미제 사건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학살 사건’을 10대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2018년 초 ‘제2의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재조사 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남편을 잃은 유족들 대부분은 기억을 상실하거나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나마 생존한 유족들도 오랜 시간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 체념하거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이것이 제2의 진실위가 하루빨리 활동을 재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침묵을 강요당하고, 역대 반공우파 정권에서 배척한 대한민국의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이제 살아있는 자들을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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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원래 ‘하루’만 쉬는 날이었다?

 
등록 :2017-10-04 09:29수정 :2017-10-04 09:51
 
추석 풍경 변천사
1970년 고향길 대표 풍경은
‘만원 열차·무임 승차’
첫 ‘연휴’는 전쟁 중인 1951년
작년까지 최장 추석연휴는 5일
가족·친척들과의 긴 만남보다 해외여행과 ‘방콕’이 일상이 되고, 극장가가 붐비는 지금 추석 모습은 예전과 어떻게 다를까? 대체휴일과 임시공휴일이 만나 사상 초유 ‘10일 연휴’를 갖게 된 2017년 추석을 맞아, 추석 연휴의 역사와 모습을 살펴봤다.

 

 

■ 추석은 원래 ‘하루’만 쉬는 날이었다

 

추석이 법정공휴일로 제정된 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이다. 이후 1986년에는 추석 다음날, 1989년에는 추석 전날이 휴일로 지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3일 연휴’ 체제가 완성됐다.

 

하루만 쉬던 추석이 2일 이상 쉬는 ’연휴’가 된 건 추석 다음날 일요일이 붙은 1951년이 처음이었다. 이후 연휴가 법제화된 1986년에 이르기까지 일요일을 앞뒤로 낀 추석연휴는 1951, 1954, 1958, 1967, 1974, 1975, 1981, 1984년 등 모두 8번 있었다. 10월3일 개천절과 이어진 이틀짜리 연휴는 1963년 한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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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연휴가 법제화된 1989년 전까지 3일짜리 추석 연휴는 이틀짜리 추석 연휴(10월7일, 8일) 뒤로 한글날이 맞물린 1987년 단 한 차례 뿐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하루 또는 이틀 안에 고향을 다녀오려는 귀성객들로 열차와 버스가 몸살을 앓았다. 추석 3일 연휴가 5일로 길어진 때도 있긴 했다. 1990년 당시 법정공휴일이었던 국군의날(10월1일·월)이 일요일과 추석 연휴 사이에 끼면서 사상 첫 5일 연휴를 만들어냈다. 그 탓이었을까. 국군의날은 그해 11월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됐다.

 

4일 이상의 연휴가 흔해진 건 2004년 토요일을 쉬는 ‘주5일제’가 시행된 이후다. 2014년 대체휴일제가 도입되면서 추석은 어지간하면 4일을 쉬는 ‘가을 휴가’가 됐다. 해외를 다녀오려고 여행객들로 공항이 붐비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사람들은 주변 휴일과 공휴일 사이로 개인 휴가를 끼워 일주일 안팎의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 광복 이전: 하루만 쉬어도 텅~비었던 서울

 

가족끼리 모여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나눠 먹는 추석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장거리·대규모 귀성은 과거에 흔치 않았다. 일가친적이 가까운 곳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적 의미의 귀성은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타지로 나간 이들이 늘어난 일제시대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귀성은 없었으며, 고향이 가까운 사람들만 주말을 끼고 가족을 찾아갔다. 1924년 9월12일자 <동아일보> ‘임박한 추석과 가을의 선물’ 기사는 당시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다.

 

 

“고향 가까운 사람들은 부모형제 모여앉아 송편 한 개라도 달게 먹으려고 고향으로 다니러 가는 사람이 많다는 바, 추석날은 마침 토요일이므로 학생들도 일찍 공부를 마치고 나오리라는 데 금년에는 여러 가지 재앙으로 연사가 전만 못함으로 따라서 추석 놀이도 전에 비하면 매우 쓸쓸하리라더라.”-1924년 9월12일 <동아일보>

 

 

그런 상황임에도 추석이 되면 서울은 텅 비었던 것 같다. 1921년 <동아일보>는 텅 빈 서울의 모습을 잘 묘사해 놓았다. 100여년의 세월 차이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다.

 

 

“어제 16일은 음력 추석이라. 있는 집에서는 곰국을 푸지게 끓여놓고 아이들까지도 모두 재미있게 지내는 모양. 더욱이 어제 하루 동안은 시내의 각병문에 인력거 구경을 할 수가 없었고 3~4전 하던 무 한 단에 십전씩 주어도 얻어볼 수가 없었으며 관에는 고기가 동이 났다 함은 아무리 죽네 하여도 경황이 전보다 나은 것을 증명”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신세를 비관해 명절에 자살하는 이들이 있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사람마다 그 준비에 분망중인 지난 29일 밤 극도의 생활난으로 세상을 비관하여 사랑하는 자식 두 명을 양팔에 안고서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참극이 있었다.”-1933년 10월3일자 동아일보 3면 ‘명절이 고통 애자양명을 포옹코 진행차에 투신자살’

 

“한 노파가 (열차에) 뛰어들어 무참히도 자살을 하였는데, 조사 결과 그는 서성리 김씨(61)로서 추석 명절이 닥쳐왔건만 생활이 곤궁하여 한끼니의 밥도 지어 먹을 수 없음을 비관하고 추석날 미명에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한다.”-1935년 9월14일 동아일보 5면 ‘생활난 비관 노파가 자살’

 

 

 

■ 광복부터 1950년대까지: 승차권 못구한 승객들 무임승차…미군 객차까지 투입돼

 

1949년 추석 당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고향을 찾는 이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귀성의 핵심은 기차였다. “서울역 광장에는 차 탈 사랑들이 문재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섰다. 서울역 오후 5시45분발 열차는 개찰도 하지 않았는데, 용산에서부터 초만원이 되었다” 1949년 10월7일자 <경향신문>이 묘사한 추석 하루 전날 서울역의 풍경이다.

 

1951년은 사상 첫번째 연휴였지만, 전쟁으로 명절 분위기를 한껏 낼 수는 없었다. <동아일보는> 9월15일자 신문에서 “고난과 궁색 중에서 맞이한 조상의 제례도 못 올리는 오늘의 추석 명절…(중략) 그래도 무심히 뛰노는 새 옷 입은 거리의 아이들이 조국의 꽃봉오리다. 그리고 변함없이 반가이 맞아주는 만월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새 희망으로 고난극복”이라고 짧게 썼다.

 

고향가는 길은 휴전선이 정해진 뒤인 1952년부터 다시 혼잡해졌다. ‘대규모 무임승차’로 열차가 연착하는 등 지연운행이 극에 달했다.

 

 

“추석을 앞둔 부산역의 혼잡은 극도에 달하여 비난의 초점이 되어있는데, 지난 2일 부산역을 출발한 서울행 급행열차와 대전행 여객열차는 승차권을 구입치 않은 여객들도 초만원을 이루어 여객차는 스프링이 주저앉아 이날 아침 8시에 출발, 6열차는 삼랑진에 이르러 2시간이나 늦어 대구역에 이르렀으나 극도의 초만원을 이루어 열차가 움직일 수 없게 되자…‘-1952년 10월3일자 <경향신문> 2면 ’삼랑진 대구서 연발소동‘

 

 

 

열차 귀성객이 폭증하자 정부는 1955년에는 미군에 객차 10량을 긴급 요청해 투입했으며, 1956년에는 임시열차를 증편 운행했다. 하지만 열차만으로 장거리 여객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서민들이 정원 초과 열차표마저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일부 국회의원은 역무원에게 특권을 요구하는 등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추석의 명절을 앞두고 제각기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시민들은 서울역이 갑자기 좁아진 듯 터져라고 몰려들고 있다. 언제나 2~3할 정도의 여유를 보여주던 각선 열차는 그 전날에 벌써 정원을 초과하고 차표를 못산 승객들은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특히 가족 수행원들을 이끌고 귀향하는 국회의원 제공들의 접대에 서울역장실은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1955년 9월29일 <경향신문> 3면 ‘혼잡한 추석 열차 어제 서울역 풍경’

 

 

 

무리하게 승객을 태우다보니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잇따랐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사고는 ‘평해호 침몰 사고’다. 1949년 10월 5일 인천항을 출발한 여객선 평해호가 강화군 작약도 100m 앞에서 전복해 71명이 숨졌다. 50인승 ‘똑딱선’에 귀성객을 비롯해 200여명이 넘는 승객을 태워 발생한 인재로, 당시 선장은 만취한 상황이었다.

 

 

■ 1960년대: 기차로, 비행기로…빈부 따라 갈라진 고향길

 

산업화로 고향을 떠난 ‘이촌향도’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60년대의 귀성길 혼잡은 극심했다. 몰려든 승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열차의 스프링이 내려앉는 등의 사고가 잇따랐다.

 

6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부유층이 이용하는 백화점과 아파트 상가를 중심으로 흥청거리는 명절 분위기가 퍼졌다. 1968년 10월4일자 경향신문 ‘추석경기 흥청-사치품이 날개돋혀’ 기사는 서울 시내 일부 백화점에서 매상목표 5천만원을 예상했던 상품권이 매진되는가 하면, 귀금속 등 사치품과 냉장고, 에어컨 등 고가 전자제품의 거래가 늘어나는 등 과거와 다소 다른 명절 분위기를 전했다. 항공편을 이용하는 귀성객이 부쩍 늘어 서울-부산을 비롯한 주요 노선의 예매가 완료됐다는 소식과 함께 ‘초만원’ 서울역에 질서 유지를 위해 사복경찰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의 1977년 추석 모습. 국가기록원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의 1977년 추석 모습. 국가기록원
■ 1970년대: ‘고속도로 시대’ 개막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대전-대구 구간을 끝으로 전 구간 개통하면서 본격적인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다. 철도를 이용한 귀성객은 1969년 60만5000여명이었으나 1970년에는 36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귀성객들은 출발 간격이 짧고 정류장이 가까운 고속버스를 선호했다. 역 앞에서 펼쳐졌던 귀성길 혼잡은 고스란히 버스정류장으로 옮겨갔다. 고속버스가 입석 승객을 받는 위험천만한 일도 빈번했다.

 

고속버스로 승객이 분산된 데다 승차원 예매제도가 시작되면서 추석 당일 서울역 등 주요 기차역의 혼잡은 줄었다. 하지만 날짜가 옮겨졌을 뿐 매표소에 길게 늘어선 줄은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여전했다. 1970년 9월12일 <매일경제>는 “추석을 사흘 앞둔 12일 서울역을 비롯한 시내 35개 열차표 매표소는 이날 낮부터 귀성객들로 붐비고 있으며, 이미 12일용의 호남선 특급열차 태극호와 백마호의 차표는 11일의 예매에서 매진됐다”고 전했다.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주차장이 된 1989년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 모습. 연합뉴스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주차장이 된 1989년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 모습. 연합뉴스
■ 1980년대 이후: 사라질뻔한 5일 연휴

 

1986년 추석 다음 날이, 1989년 추석 전날이 휴일로 지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3일 연휴’가 시작됐다. 길어진 휴일과 승용차 보급으로 명절 고속도로 혼잡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매표전쟁에 질린 시민들은 포니 엑셀, 프레스토, 르망, 프라이드 등 신형 국산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됐다. 마을로 묘지로 향하는 시골길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의 성묫길 풍경. 연합뉴스
80년대의 성묫길 풍경. 연합뉴스

 

“붐비는 건 고속도로뿐이 아니었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국도와 시골길을 거쳐 고향 마을에 들어서자 황토길에도 서울 넘버의 포니와 르망과 시골택시와 봉고차에 경운기까지 뒤엉켜 마을안길 역시 차량들로 어수선했다.-1986년 9월19일자 <동아일보> 5면 ‘고향찾는 마음’

 

 

승용차의 증가로 고속도로 정체가 절정에 이르면서 사람들은 막히지 않는 철도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PC통신’의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부터 역과 터미널 앞에 길게 늘어선 예매 줄이 모니터로 옮겨갔고, 혼잡을 피해 서울의 가족 친지를 찾는 ‘역귀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1984년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역에 몰린 귀성객들. 연합뉴스
1984년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역에 몰린 귀성객들. 연합뉴스
지금은 5일 연휴가 비교적 흔하지만, 1990년대 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공휴일 조정’을 구실로 추석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990년 8월24일 국무회의에서 국군의날과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내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정부는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5일 연휴가 ‘기사회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짧았던 일주일 동안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한 사람들도 있었다. 시민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졸속행정에 분통을 터뜨기도 했다. 그해 유지됐던 국군의날과 한글날은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2017년. 역 앞에 늘어선 긴 줄은, 컴퓨터 화면을 거쳐 모바일로 들어왔다. 명절엔 반드시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의식도 희미해지면서 3일 이상 연휴를 여행이나 긴 휴식으로 보내는 이들도 늘어났다. 올해는 ‘7일 연휴’도 아쉽다는 여론에, 정부가 10월2일 하루를 더 붙여 10일을 쉬기로 했다. 추석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지 68년 만에 하루였던 휴가가 10일이 된 것이다. 5일 쉬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며 휴일의 허리를 자르고자 했던 과거 정부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바뀌었다. 다음번의 추석은 어떤 모습일까.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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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학교 차별 4년 반...그 재판 결과는?

 
[기고] 전면승소와 최악의 부당판결: 판단이 갈라진 조선학교 '무상화'재판

 

 

일본정부가 교육의 기회균등을 목적으로 창설한 '고교무상화'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일본 전역의 조선고급학교(10교) 학생만 제외한 것이 2013년2월. 그로부터 4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이 부당한 차별조치에 항의해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규슈, 도쿄의 조선고급학교 학생 또는 학교법인이 일본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일으켰다. 길고 힘든 재판투쟁 끝에, 올해 들어 히로시마, 오사카,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각기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 중 오사카의 판결(7월 28일)에서는 원고가 전면 승소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히로시마(7월 19일)와 도쿄(9월 13일)에서는 원고 패소라는 부당판결이 선고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일제 식민지시기를 중심으로 한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 정책의 범죄성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있다. 또 재일조선인에게 대한 일본정부의 무자비한 탄압과 억압의 역사에 대해서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각지의 재판 진행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일본국가가 바로 식민지주의적 가치판단의 기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부정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의 인식이 부족했음을 통감하고 있다. 나는 민족차별 정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법부가 민족교육의 의의를 처음으로 인정한 오사카지방재판소의 판결 의의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오사카의 판결(7월 28일)에서는 원고가 전면 승소했다.ⓒ후지나가 다케시

▲그러나 히로시마와 도쿄에서는 '최악의 부당 판결'이라는 평이 나왔다. ⓒ후지나가 다케시

무상화제도 적용을 막은 '불령선인(不逞鮮人)'관  
 
각지의 고교무상화 재판에서 피고인 일본국가가 주장하는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북한,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다고 의혹이 있는 조선학교에 취학지원금을 지급하면 지원금이 '북한, 조선총련'에 유용될 의혹이 있으므로 조선고급학교를 지원금 지급 대상 학교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도쿄의 판결은 둘 다 이 논리를 추인해 원고패소의 부당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국가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정권은 발족 직후 우선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조선고급학교의 지정을 염두에 둔 근거규정을 삭제하는 문부과학성령을 개악했다. 그 이유가 정치적 외교적 판단에 의한 것임은 너무나 명확하다. 예를 들면, 2012년 12월 28일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대신(당시)이 기자회견에서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점, 조선총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교육 내용, 인사, 재정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점 등으로, 현시점에서 지정에는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어 불지정의 방향으로 수속을 진행한다"고 말한 것 등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부당한 지배'를 들고 나온 것은 정치적 외교적 이유에 의한 근거규정 삭제 조치가 교육의 기회 균등을 추구한 무상화 제도의 목적에 반하는 것임을 정부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에, 나중에 덧붙여 억지로 꾸며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심리 과정에서 일본국가 측은 근거규정의 삭제가 쟁점화되는 것을 피하고자 대부분 소문에 지나지 않는 산케이신문의 보도나 공안조사청의 치안관리 정책 의의를 강조하는 보고서 등의 기술에 근거해, 조선학교의 교육이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 아래 실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안조사청 보고서에는 조선학교의 교직원과 학생, 일본인 지원자들이 고교무상화 적용을 호소하는 활동조차 조선총련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히로시마 및 도쿄 지방재판소는 이러한 공안기관의 편견적인 '분석'이 "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이며…… 일정한 조사, 분석 능력을 대비한 조직"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해 증거로 채용했다.  
 
이렇게 고교무상화제도 부적용이라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정책을 정당화한 것은 그뿌리를 파고들면 실은 국가에 의한 치안관리의 사상이었다. 원래 이 재판은 교육행정의 본연의 자세를 둘러싼 것이었을 터인데, 일본국가 측이 재일조선인에 대한 치안대책이라는 논점으로 몰고가는 전략을 취했다. 결국 일본의 공안기관에 식민지시기부터 뿌리 깊게 자리잡은 '불령선인'관에 기초한 차별의식이,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무상화 적용을 가로막는 벽으로 작용한 것이다.  
 
'짜고 친' 국책 판결  
 
물론 가령 '부당한 지배'이 논점이 되었다 하더라도, 조선학교가 취학지원금을 부정 수급할 "의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지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히로시마와 도쿄의 지방재판소는 일본국가 측의 의도에 부응한 판결을 내렸다. 
 
특히 도쿄의 원고 변호인단은 조선고급학교가 무상화제도에서 배제된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또 증인심문에서는 문부과학성의 당시 담당자에게 철저히 따져, 조선고급학교 지정의 근거규정을 삭제하고 불지정으로 정한 진짜 이유가 정치적 외교적 판단에 의한 것임을 논증했다.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불지정이 위법임을 확실한 증거로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부당한 지배'론에 가담한 도쿄지방재판소는 치안정책적 관점에서 문부과학대신의 판단을 적법으로 인정하고, 정치적 외교적 판단에 의한 근거규정 삭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내쳤다. 원고 변호인단의 주된 주장을 무시하고 전혀 응답하지 않는 모욕적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짜고 친' 판결이었던 것이다. 임기가 아직 남아있던 전 담당 재판관을 결심 직전에 교대시킨 이례적인 조치에 대해 의혹의 시선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한편, 도쿄 지방재판소의 경우는 문부과학대신의 판단을 "불합리한 것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며"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서는 보다 노골적으로 조선학원이 "취학지원금을 부풀려 대리 수령"할 경우 "부당한 공작 등에 의해" "그러한 사태가 표면화되지 못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는 피고 일본국가의 주장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까지 단언했다. 즉, 히로시마의 판결은 사실상 '조선인은 신용할 수 없기에 취학지원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판결이 있던 날 저녁에 열린 판결보고집회에서 아다치 슈이치(足立修一) 원고변호인 단장이 "조선학교 아이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헤이트(혐오) 판결"이라고 엄중히 지탄한 것도 당연하다 (히로시마 "헤이트 판결": 역전 승리를 맹세한 재출발의 날' <월간 이어> 제22권 제9호, 2017년 9월, 7쪽).
 
오사카 판결의 역사적 의의 
 
한편,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일본국가에 대해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 대한 취학지원금 지급에 관한 불지정 처분을 취소할 것, 이 학교를 취학지원금 지급 대상 학교로 지정할 것을 명하는 원고 전면승소의 판결을 내렸다. 쟁점이 된 조선고급학교 지정에 관한 근거규정 삭제에 대해서는 시모무라 문부과학대신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위법이며, 또 오사카조선고급학교는 적정한 학교 운영을 요구한 '규정' 제13조에 대해서도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부당한 지배'에 관한 일본국가 쪽의 주장을 물리치고 히로시마·도쿄 판결과는 정반대인, 역사에 기록될 만한 획기적인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판결에서는 시모무라 문부과학대신이 "교육의 기회균등의 확보와 관계없는 외교적 정치적 판단에 근거해" 근거규정을 삭제한 것은 고교무상화법에 정해진 위임의 취지를 일탈한 것이라고 명확히 인정했다. 또한 '규정' 제13조 적합성 판단, 특히 '부당한 지배'에 관한 판단에 대해 문부과학대신의 재량권은 인정받을 수 없고, 이 쟁점에 관한 일본국가의 주장의 대부분이 "합리적 근거에 기초하는 것으로서의 주장도 입증도 없다"는 등의 이유로 "본건은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판결은 조선학교와 조선총련과의 관계, 재일조선인에서 민족교육의 의의 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조선총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나라(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자주적 민족교육이 수많은 곤란을 겪는 가운데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실시를 하나의 목적으로 결성되어 조선학교의 건설과 인허가 수속 등을 진행해 왔으며, 조선학교는 조선총련의 협력 아래 자주적 민족교육시설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기에 …… 이같은 역사적 사정 등에 비춰보면, 조선총련이 조선학교의 교육활동 또는 학교운영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한들 양측의 관계가 우리나라(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의 유지 발전을 목적으로 한 협력관계일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양측의 관계가 적정하지 못하다고 바로 추인할 수는 없다. 또한 조선고급학교는 재일조선인 자녀에게 조선인으로서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인 외국인학교인 바, …… 모국어와 모국의 역사 및 문화에 대한 교육은 민족교육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민족적 자각 및 민족적 자존심을 양성하는 데 기본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고급학교가 조선어로 수업을 실시하고, 북조선의 시각에서 역사적, 사회적, 지리적 사정을 가르침과 동시에 북조선을 건국하고 현재까지 통치해 온 북조선의 지도자, 국가이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조선고급학교의 앞의 교육목적 그 자체에는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조선고급학교가 북조선이나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로 인해 자주성을 잃고 앞서 언급한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바로 인정하기 어렵다."
 
이렇듯 오사카 지방재판소 판결은 일본 사법이 처음으로 조선학교의 민족교육 의의를 정면에서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재판투쟁  
 
히로시마와 도쿄의 판결은 행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정책을 사법부가 자신의 권위와 신뢰성을 해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잡한 논리로 추인한 것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부당판결을 용인한다면, 일본국가는 자의적으로 '반일' 딱지를 붙인 개인과 집단에 대해 마음놓고 차별 정책을 취할 것이다. 만약 제소를 당하더라도 사법부가 정당화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무상화제도 부적용은 이미 민족차별이라는 틀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사법 독립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다. 부당판결을 내린 재판관은 마땅히 수치스러운 국책 판결의 장본인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것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오사카에서 획기적인 판결이 내려진 뒤라서 국가권력의 중심지인 수도 도쿄 지방재판소의 판결 내용은 한층 비정상적으로 비쳐졌다. 배외주의를 선동해 차별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일본국가의 의도는 이미 명백하다. 무상화 재판의 행방에 대한 일본사회의 관심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국지인 아사히신문 이외에 도쿄신문, 가나가와신문, 시나노일일신문, 교토신문 등의 지방지도 도쿄 판결의 부당성을 엄중히 비판하는 사설, 해설기사 등을 게재했다. 
 
히로시마에서는 8월1일에, 도쿄에서는 9월25일에 원고가 항소해 조선학교 관계자와 지원자들은 불굴한 투지로 역전 승소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오사카 판결에 대해서는 8월 10일 일본국가가 항소해 국가측이 총력을 다해 공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내년에는 아이치와 규슈에서 판결이 선고될 전망이다.  
 
투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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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실천하면 우리민족에게 평화 올 것”

민족종교.단체, 개천절 기념식 개최..남북해외 공동행사 불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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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3  22: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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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종교협의회와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3일 광화문광장에서 ‘단기4350년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했다. [사진제공 - 개천절준비위]

“조국통일의 주체는 전체 단군민족이며 온 민족이 힘을 합쳐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확립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와 300여 민족단체가 참가한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3일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쟁반대! 평화가 답이다!’는 기치 아래 ‘단기4350년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했다.

민족종교와 민족단체 소속 참가자들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제 선의식’을 봉행한 뒤 기념식을 갖고 ‘남북·해외 8천만 동포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남북·해외 온 겨레가 분단을 걷어치우고, 조국통일의 그날을 속히 앞당길 것을 단군민족의 이름으로 뜨겁게 호소한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당초 평양 단군릉에서 남북해외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남북관계 악화로 불발돼 북측은 평양 단군릉에서 별도의 천제와 기념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해외 8천만 동포에게 보내는 호소문’ 역시 남북 간 협의가 진행되지 못해 남측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와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의의 목소리만을 담았다.

참가자들은 도천수 공동대회장이 낭독한 호소문에서 “홍익정신으로 단군민족 본래의 모습을 찾고, 단군 민족의 저력을 배가시켜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을 호소한다”며 “홍익인간이라는 개천정신으로 동북아와 한반도 모두가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한반도 통일을 방해하는 그 어떤 행위도 결단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명백히 반대하고 역사왜곡과 독도침탈 책동에 대해 결단코 맞설 것이며, 동북아와 인류 전체의 평화와 공동이익, 발전을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일본과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개천절은 우리민족의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민족 건국의 기원”이라며 “민족의 분열을 타파하여 모든 대립과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확대발전시키고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이강산 한민족운동단체연합 공동대표가 낭독한 ‘개천선언문’을 통해 “우리민족의 원형질(D.N.A)인 3․1 독립정신, 8․15 단결정신, 홍익인간 정신이야말로 오늘날까지 민족의 3대 한민족의 정신문화”라며 “민족수난의 역사를 하나로 한 결 같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오게 한 단군성조의 개천절 홍익인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 하였던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 혼불에 남과 북이 함께 되돌아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담론을 하나로 소통시키지 못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 이날 기념식에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소속 민족종교 관계자와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소속 300여개 민족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사진제공 - 개천절준비위]

앞서,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대회사 나서 “우리는 민족종교와 민족운동진영을 중심으로 지난 2002년, 2003년 그리고 2014년 평양 단군릉에서 남북이 하나되어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해 왔다”며 “올해 개천절은 남북간의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사죄했다.

이어 “개천절을 계기로 남과 북은 무한정 대결을 지양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의 새장을 열어가기 위해 남북이 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온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실천한다면 우리민족에게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은 기념사에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문화의 힘”이라며 “‘홍익인간’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나아가 세계 정신문화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오늘의 개천절을 기려주시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윤승길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김영두 대종교 종무원장과 이범창 천도교 종무원장 등이 축사를 했고, 개천절 노래와 단군 경배.분향으로 마무리했다.

기념식에 앞서 강화도 참성단 마니산 천제를 지내는 항일운동의 총본산 대종교가 주관하여 천제 선의식을 봉행하고 기념식에 이어 이정희 문화위원장의 사회로 ‘개천절 민족화합대축제’를 같은 장소에서 진행했다.

 

<남북·해외 8천만 동포에게 보내는 호소문 (전문)>

오늘은 원시조 단군성조께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하늘 이치로 이 땅과 인간을 깨우치시고 나라를 세우신 지 건국 4350년이 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원시조 단군성조 이래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은 민족 전체의 합의로 일구어낸 정신이기에, 그 어떤 정세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야 할 통일의 기치이며, 종교와 이념, 지역과 계층을 떠나 모두 하나가 되어야 단군민족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분단 72년인 금년 단기4350년(2017) 개천절을 맞아, 우리는 원시조 단군의 한 후손으로 하늘에 천제를 올리고 하나가 되어, 온 민족이 단합하여 거족적인 통일운동으로 조국통일을 이룸으로써 단군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담아 남과 북, 해외 8천만 온 겨레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첫째, 자주는 민족의 자존이며,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민족보다 존엄한 자주민족입니다.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단군민족의 자존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자주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며, 우리의 역사와 철학, 전통문화가 전 인류를 홍익인간으로 이끌어갈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자각하고, 홍익정신으로 단군민족 본래의 모습을 찾고, 단군 민족의 저력을 배가시켜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을 호소합니다.

조국통일의 주체는 전체 단군민족이며 온 민족이 힘을 합쳐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확립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겨레를 사랑하는 단군민족의 후손들인 우리들은 민족의 안녕과 이 땅의 평화번영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 단합하여, 홍익인간이라는 개천정신으로 동북아와 한반도 모두가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한반도 통일을 방해하는 그 어떤 행위도 결단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내외의 어떠한 왜곡도 막아내고, 특히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명백히 반대하고 역사왜곡과 독도침탈 책동에 대해 결단코 맞설 것이며, 동북아와 인류 전체의 평화와 공동이익, 발전을 위해 앞장설 것입니다.

셋째, 단군민족이라면 남과 북, 해외 어디에 살건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남북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전진시키고, 공동선언을 계승, 실천하여 남북 화해와 협력을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한겨레로서 동질성을 확인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아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대단합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 자강, 자립의 정신과 원칙으로 민족의 분열을 타파하여 모든 대립과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확대발전시키고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을 호소합니다.

개천절은 우리민족의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민족 건국의 기원입니다!

건국 반만년! 뜻깊은 단기4350년(2017) 개천절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이 발휘한 호국정신을 되새기며 경천·숭조·애인의 미덕을 이어받아 남과 북, 해외의 동포가 개천절의 큰 뜻으로 하나가 될 것을 호소합니다!

남북·해외 온 겨레가 분단을 걷어치우고, 조국통일의 그날을 속히 앞당길 것을 단군민족의 이름으로 뜨겁게 호소합니다! 단군민족 통일만세!

단기 4350년(2017) 10월 3일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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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숨긴 오염물질 검출 위치, 주유소·동물병원 주변이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03 14:29
  • 수정일
    2017/10/03 14: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단독]미군이 숨긴 오염물질 검출 위치, 주유소·동물병원 주변이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입력 : 2017.10.03 10:00:00 수정 : 2017.10.03 10:01:01

 

 

ㆍ한·미 3차례 합동조사…대법 압박에 위치 뺀 1차 결과 공개
ㆍ경향신문 확인 결과, ‘벤젠 기준치 162배’ 관정도 주유소 옆
ㆍ미군 책임 확실한데도 모호한 KISE 기준 탓 늘 빠져나가

그래픽 | 엄희삼 기자사진 크게보기

그래픽 | 엄희삼 기자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을 앞두고 있지만 기지 내부의 오염 상태는 여전히 철저한 비밀에 부쳐져 있다. 2013년 6월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한·미 양국은 용산 미군기지 내부에 대해 3차례 합동 환경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3차례 실시된 조사 결과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미군의 반대를 이유로 한국 정부도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SOFA 합동위원회 각서에는 한·미 양측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자료를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조사 결과를 봉한 정부는 환경·시민단체가 제기한 법정 소송에 휩싸였다. 지난 4월 대법원이 1차 조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판결하자 환경부는 1장짜리 자료를 내놓았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쪽 용산 미군기지 내부 주유소의 반경 200m 안쪽 관정 14곳만 대상으로 한 소규모 조사 결과였다. 지하수·토양 조사를 위해 뚫은 관정 14곳 중 7곳에서 벤젠·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이 검출됐다. 모두 발암·유해 물질들이다. 정부가 내놓은 자료엔 해당 관정들의 연번이 공개됐지만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2001년 7월 발생한 녹사평역 기름 유출 사고의 휘발유 오염원으로 지목된 용산 미군기지 내 주유소(AAFES).  김기범 기자

2001년 7월 발생한 녹사평역 기름 유출 사고의 휘발유 오염원으로 지목된 용산 미군기지 내 주유소(AAFES). 김기범 기자

환경부 관계자는 “관정 위치도 기지 내부 정보이기 때문에 미군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이 2·3차 조사 결과도 공개하라는 1심 판결을 내놨지만, 환경부는 미군 반대에 부딪혀 다시 항소한 상태다. 

 

경향신문은 추가 취재를 통해 환경부가 공개 안 한 관정 14곳 중 12곳의 위치와 기준치 이상 오염물질이 검출된 관정 7곳 중 6곳의 위치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미군 측 자료 ‘녹사평역 오염 프로젝트: 유출 관련 관정과 배수조에서 지하수와 생성물의 샘플링 및 레벨 측정 결과Ⅰ’을 보면, 미군 자체조사에서 기준치 이상 오염된 관정 7곳 중 6곳(B01-868·869·870·

873, RW-101·102)은 휘발유가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된 주유소(AAFES)와 동물병원(NVC) 주변에 모여 있다. 나머지 1곳(B09-256)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미 육군 공병대가 삼성물산에 용역 조사를 맡겨 2002년 1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주유소와 동물병원 주변 반경 500m의 지하수·토양을 채취·분석해 2003년 7월 제출한 것이다.

환경부가 공개한 1차 조사 결과 자료를 참고하면, 주유소 옆 ‘B01-873’은 가장 심각한 오염이 발견된 관정이다. 1급 발암물질 벤젠이 기준치의 162배나 검출됐다. 동물병원 뒤편의 4개 관정에서도 기준치의 최대 96배에 달하는 벤젠과 2배 안팎의 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이 검출됐다. 군견 훈련장 쪽 언덕의 1개 관정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벤젠이 나왔다. 

지난 8월9일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 담장 밖에서 토양오염조사 전문가들이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는 10여년간 약 70억원의 비용을 들여 기지 주변 정화작업을 해왔지만 여전히 기준치의 최대 수백배에 달하는 독성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9일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 담장 밖에서 토양오염조사 전문가들이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는 10여년간 약 70억원의 비용을 들여 기지 주변 정화작업을 해왔지만 여전히 기준치의 최대 수백배에 달하는 독성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녹사평역은 2001년 7월 지하 터널에서 유류 오염이 발견된 곳이다. 2002년 미군은 유출된 기름의 일부인 휘발유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했지만 대부분을 차지한 등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녹색연합 등은 녹사평역에서 발견된 등유 ‘JP-8’이 미군이 사용하는 유종이라는 근거를 들며 추궁했다.

당시 서울시는 농업기반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에 2001년 1차 조사, 2002년 2차 조사를 맡겨 휘발유·등유의 오염원이 모두 미군기지라는 결론을 냈다. 비슷한 시기 미군은 삼성물산에 조사를 맡겨 2002년 2월 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녹사평역 오염 지하수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기지 밖 오염 지역 동쪽·북쪽의 난방유 탱크와 대성주유소 등을 오염원 후보로 지목하면서 기지 내부 군견훈련장 옆 주거단지는 오염원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 주거단지에 있던 지하 유류탱크 2기는 2001년 2월 누유 점검을 통과하지 못해 지상 탱크로 교체된 것들이었다. 그해 8월 추가 검사에서는 군견 훈련장 인근 탱크 1기가 더 교체됐다. 이 탱크들엔 1999년 이후 등유 ‘JP-8’이 저장돼 있었지만 보고서는 지하수·토양 조사 결과 등유 유출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시는 녹사평역은 2001년부터, 캠프 킴은 2006년부터 약 70억원의 비용을 들여 주변 정화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시료 채취를 시작한 2004년 녹사평역 주변 관정에서는 기준치의 최대 1957배에 달하는 벤젠이 검출됐다. 10여년 동안 정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벤젠·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석유계총탄화수소(TPH) 모두 기준치의 수배~수백배가 남아 있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는 1966년 한·미가 체결한 SOFA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OFA에는 환경오염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2000년 미군이 한강에 맹독성 물질 포르말린을 무단 방류한 사실이 알려진 뒤인 2001년에야 한·미가 합의한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해(KISE)”라는 모호한 기준이 담겼다. 미군은 KISE에 해당하는 오염만 정화하겠다고 시간을 끌다 2007년 정화작업 없이 23개 기지를 반환했다. 이 중 22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TPH가 검출됐다. 정부는 땅을 다시 매각할 17개 기지 정화비용으로 1865억5000만원을 지출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미국과 공동환경평가절차서(JEAP)에 합의했다. 이후 반환 미군기지 오염 조사 방식은 국내법에 의한 ‘토양 정밀조사’에서 ‘위해성 평가’로 바뀌었다. 위해성 평가는 오염이 인체에 미치는 위험을 산출한 뒤 KISE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반환된 부산 하야리아 기지는 전체 면적의 0.26%만 위해성이 인정돼 정화비용 3억원이 책정됐지만 정밀조사에선 17.96%가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화비용은 146억원으로 불어났다.

기지 안쪽에서 기름이 흘러 퍼지고 스며들어도 한국 정부에선 알 길이 없다. 지난 4월 녹색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미국정보자유법(FOIA)에 따른 절차를 거쳐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 유출사고 기록(1990~2015)’을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6년 동안 용산기지 곳곳에서 일어난 유류 유출사고는 84건에 달했다. 3.7t 이상 유류가 유출된 사고는 7건, 400ℓ 이상 유출된 사고는 31건이다.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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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 말 글 점점 사라지고 있구먼..!

우리 얼 말 글 점점 사라지고 있구먼..!

 

어른들은 옛날부터 사람은 나이, 날짜, 날씨만큼은 우리 말글로 해야 올바른 사람으로 알아주고 정겹게 받아주었지만 우리 말글이 많이 망가지고 없임여김 받는 요즘에는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이 든다.

 

나이를 말할 때도 별별 못난이들이 있다. “쉰 둘 입니다.”하면 될 것을 ‘오십 둘, 오십 두 살입니다’ ‘오십 이 세 입니다’하는 사람 “마흔 여덟입니다.” 하면 쉽고 간편한 것을 ‘사십 팔세입니다.’ ‘사십 여덟입니다.’해서 쓴웃음을 짓게 하는 얼간이들이 종종 있다.

 

날짜도 오늘은 “시월 초사흘 개천절입니다.”하면 될 것을 ‘10월3일 십월삼일 입니다.’ ‘시월삼일입니다.’라거나 “시월 초나흘”하면 끝날 말을 ‘10월4일 십월사일’ ‘시월사일’이라고 해서 날짜도 제대로 말 못하는 팔푼이노릇을 하는 젊은이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아직 날씨만큼은 우리 말씨가 살아남아서 “맑음, 흐림, 구름 있음, 비 또는 눈 내림, 안개 낌, 해돋이, 해넘이 한가위, 둥근 보름달”등 우리 말글이 많이 살아있어 그나마 기쁨을 주고 있다.

 

옛 어른들은 이렇게 우리말글로 반드시 제 나이와 날짜 그리고 날씨만큼은 순우리말로 하게끔 했을까? 같은 겨레 한민족임을 가장 잘 들어내는 일은 나이와 날짜 날씨를 알려주고, 서로 말로 소통할 때 다정하고 정다울 수 있고 한 핏줄 같은 겨레임을 스스로 느끼며 사이좋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 가르침인가? 우리 한 어버이들 남기신 얼 말 글 속에 담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만 지켜나가도 우리 후손들은 얼마든지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아나갈 수 있음을 깨우쳐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외국 문화와 문명이 넘쳐나고, 물밀 듯 쳐들어오고 우리 말글을 밀어내고 쑤시고 들어와 제자리 차지하고 점령하려는 때에 속수무책으로 멀건이 맥 놓고 있노라면? 나라는 어느 틈엔가 “얼빠진 국가로 망해 버리고 말 것 같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지금이라도 일어서야 되지 않겠는가? 얼 말글이 죽으면 그 나라와 민족은 멸망하거나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시한번 외치고 외치며 남겨놓고 싶다. 왜 우리겨레가 이 세상에서 살아져버려야 하는가? 얼마나 억울하고 기막힌 일인가? 아름다운 동방에 횃불이던 코리아가 사글어 들어 없어졌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무어라고 말 할게 있겠는가?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얼 말 글 사랑에 힘을 쏟아야 하고, 열심히 빛나는 얼과 말글을 아끼고 다듬고 돋보이게 하는 일에 온갖 힘을 모아내야 한다. 들어온 말, 외국어를 바꾸거나 우리말로 새롭게 만들어 써야하고, 외래어 외국어도 모두 알기 쉬운 한글로 고쳐서 넉넉하게 쓸 수 있도록 바꿔내는 연구도 국립국어연구원 같은 곳에서 힘 기우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식민지 같은 72년간을 슬기롭게 벗어나는 독립운동에 발 벗고 나서야 하고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모두 나서서 힘써야 한다. 북조선은 남녁보다 우리 말글사랑이 뛰어나서 살아있는 말글이 더 많고 활발한 것이 분명하니 서로 돕고 배워나가면 더욱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미군을 몰아내고, 민족통일을 이뤄내서 한겨레 한민족이 되어 양키유대자본 손아귀에서 홀연히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가로 거듭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남은 여생을 살았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얼빠진 부모가 아직도 어린아이를 영어학원으로 보내 혀 꼬부라진 말을 돈 버리며 가르치는가? 어리석고 미친 노릇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참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 얼굴로 진솔한 우리말글을 예쁘고 아름답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시건방지게 영어, 중국어, 일본어 나부랭이 지껄인다고 자랑할게 전혀 못 할 짓인 것을 알아야 된다. 오죽이나 못났으면 제 얼 뿌리를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말에 정성을 쏟고 있단 말인가? 바보짓이고 어른들에게 큰 잘못과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더없이 맑고 고운 우리 얼 말글을 아끼고 다듬고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가꾸고 바꿔내고 바로 잡으며 아들 딸 손자손녀 이어받을 아이들 위해 세상에 으뜸가는 얼 말 글이 되도록 우리 모두 애쓰고 힘 모아 살려나아 갔으면 소원이 없겠다..! 오늘은 이만~

 

단기4350년 시월초사흘 불날(화요일) 풀잎 이 필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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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의 승리, ‘번개’의 승리예감

[개벽예감268] 베가의 승리, ‘번개’의 승리예감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10/02 [21:0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조선인민군에게 불리하고, 미국군에게 유리한 작전환경

2. 예상치 못한 기종이 참가한 9.23야간작전연습 

3. ‘낚시바늘’에 걸려들지 않은 조선인민군 방공망

4. 베가의 승리에서 ‘번개’의 승리를 예감한다

 

 

1. 조선인민군에게 불리하고, 미국군에게 유리한 작전환경

 

2017년 9월 23일 밤 11시 30분경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의 작전계획에 따라 공습편대가 동해 북부 상공으로 북상하여 약 두 시간 동안 야간작전을 연습하였다. 9.23야간작전연습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군사기밀이어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보도기사에서 드러난 윤곽만 보더라도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가 그 작전연습을 오랜 시간에 걸쳐 꽤 치밀하게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 Jr.) 미국군 합참의장은 2017년 9월 26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자신의 군직을 재신임 받은 자리에서 9.23야간작전연습을 준비한 정황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최근 작전을 진행할 때. 이 자리에서 기밀사항까지 언급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작전능력과 상대의 작전능력을 알아보고, 작전시점과 예상되는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매티스 국방장관과 나는 각자 그 작전계획을 몇 시간에 걸쳐 검토하고 처리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동아일보> 2017년 9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B-1B 전략폭격기 2대, 그리고 일본 오끼나와의 가데나공군기지에서 F-15C 전투기 6대가 각각 출격하였다고 한다. 이 보도기사는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가 제11공군 산하 제36비행단 소속 B-1B 전략폭격기들과 제5공군 산하 제18비행단 소속 F-15C 전투기들을 앤더슨공군기지와 가데나공군기지에서 각각 출격시켜 야간작전을 연습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1> 

 

▲ <사진 1> 2017년 9월 23일 밤 11시 30분경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의 작전계획에 따라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1B 전략폭격기 2대와 일본 오끼나와의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15C 전투기 6대 등으로 구성된 공습편대가 조선 동해 상공을 북상하여 야간작전연습을 감행하였다. 위쪽 사진은 B-1B 전략폭격기를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사진은 F-15C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다. 공습편대가 강원도 원산에서 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벌인 야간작전연습은 조선인민군에게는 불리하고, 미국군에게는 유리한 작전환경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한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B-1B 전략폭격기 2대와 F-15C 6대로 편성된 공습편대는 강원도 원산에서 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해 상공으로 북상하여 야간작전연습을 감행하였다. 350km는 원산에서 울릉도까지 거리와 같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조선 동해안에서 350km나 떨어진 동해 상공에 나타난 것은 조선인민군 방공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9.23야간작전연습이 조선인민군에게는 불리하고, 미국군에게는 유리한 작전환경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첫째, 9.23야간작전연습이 진행된 작전구역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산에서 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 공습편대 작전구역이 설정되었으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원산비행장이나 함흥 덕산비행장에서 미그-21 요격편대를 긴급히 대응출격시켜야 하였다. 

미그-21 전투기는 1959년에 처음 실전배치되었고, F-15C 전투기는 1976년에 처음 실전배치되었으므로, 17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그-21을 얕볼 수 없다. 미그-21은 근접공중전에 적합한 기종이고, F-15C는 원격공중전에 적합한 기종이다. 미그-21이 적기의 공대공미사일 사거리 안으로 파고들어 근접공중전에 돌입하면, 민첩한 비행술로 F-15C와 대등하게 맞붙을 수 있다.   

그런데 F-15C 작전반경은 1,930km나 되고, 미그-21 작전반경은 370km밖에 되지 않는다. 작전반경이 370km밖에 되지 않는 미그-21이 발진기지에서 350km 떨어진 동해 상공으로 날아가 작전하려면 공중급유를 받아야 하는데, 미그-21에는 공중급유장치가 없고, 조선에는 공중급유기가 없다. 이런 사실을 아는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는 미그-21의 작전반경 한계선에 가까운 동해 상공으로 공습편대를 출동시켜 미그-21 요격편대가 대응출격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 9.23야간작전연습이 진행된 작전시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산으로부터 약 350km 떨어진 작전구역에서 야간작전연습을 감행하던 미국 공군 공습편대는 원산비행장에서 미그-21 요격편대가 대응출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약 150km 더 북상하여 함흥 덕산비행장에서 약 200km 떨어진 공역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덕산비행장에 주둔하는 미그-21 요격편대가 대응출격을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덕산비행장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동해 상공은 그 비행장에서 출격한 미그-21 요격편대의 작전반경 안에 있으므로,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상대할 수 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16년 9월에 진행된 원산국제친선항공축전에 참가한 미그-21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함경남도 함흥 인근에 있는 덕산비행장을 상업위성이 촬영한 것이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는 원산에서 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야간작전연습을 벌이다가, 약 150km를 더 북상하여 덕산비행장에서 약 200km 떨어진 공역에 들어갔다. 덕산비행장에서 약 200km 떨어진 공역은 미그-21의 작전반경 안에 들어가므로, 그 비행장에서 미그-21 요격편대가 대응출격하면,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간작전은 미그-21에게는 불리하고, F-15C에게는 유리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미그-21 전투기의 전자장비성능은 F-15C 전투기의 전자장비성능에 비해 크게 뒤진다. 이를테면, F-15C에 설치된 APG-63 능동전자위상배열(AESA)레이더의 탐색거리는 250km나 되는데, 미그-21에 설치된 RP-21 레이더의 탐색거리는 30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F-15C는 미그-21을 먼 거리에서 먼저 포착할 수 있다. 지상에서나 공중에서나 군사작전 중에 교전상대를 먼저 포착한다는 말은 교전상대를 먼저 공격한다는 뜻이다. F-15C가 발사하는 AIM-120 공대공미사일의 사거리는 180km이고, 미그-21이 발사하는 R-77 공대공미사일의 사거리는 193km이므로, 공대공미사일의 성능은 서로 비슷하지만, F-15C가 먼저 미그-21을 포착하면 곧바로 공격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자기들이 모는 추격기의 전자장비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월한 전자장비를 갖춘 미국군 전투기들과 맞서 근접공중전을 벌일 수 있는 고난도 전술을 연마해왔다. 전 세계에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만 할 수 있는 고난도 공중전 전술은, 레이더와 통신장비를 모두 꺼놓고 낮은 고도로 날아가는 무전파저고도비행술로 적기의 공대공미사일 사거리 안으로 파고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전투비행사의 비행감각과 육안시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무전파저고도비행은 야간에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캄캄한 밤에 나타나는 경우, 그에 대응출격하는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은 전자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미그-21이 전자장비를 켜는 순간, F-15C에게 비행방향, 비행고도 및 속도, 비행위치가 즉각 노출된다.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는 이처럼 F-15C와 미그-21의 작전성능격차를 타산한 뒤에 공습편대를 야간에 출동시킨 것이다. 그래서 조섭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은 2017년 9월 26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미국 공군의 작전능력과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작전능력을 알아보고, 작전시점과 예상되는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과 자신이 각자 야간작전연습계획을 몇 시간에 걸쳐 검토하고 승인하였다고 말했던 것이다.

 

 

2. 예상치 못한 기종이 참가한 9.23야간작전연습 

 

조선인민군이 동해 상공으로 북상하는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상대하려면 작전성능이 우수한 미그-29 요격편대를 출격시키면 된다. 미국의 온라인 군사전문매체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실린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미그-29 전투기 약 40대를 실전배치하였다고 한다. 군사전문지 <오릭스 블럭(Oryx Blog)>에 실린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서로 다른 비행장에 각각 2대씩 배치된 미그-29 4대를 긴급히 출격시킬 준비태세를 24시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9.23야간작전연습에 대응하여 미그-29 4대가 긴급히 출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동해안 일대에 있는 비행장들에 미그-29가 배치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는 없고, 평안남도에 있는 순천비행장과 온천비행장에 미그-29가 배치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들만 있다. 비록 동해안 일대에 있는 비행장들에 미그-29가 배치되지 않았다고 해도,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동해 상공을 북상해서 약 두 시간 날아다니는 동안, 순천비행장이나 온천비행장에서 미그-29 요격편대가 출격하면, 얼마든지 공습편대를 상대할 수 있었다. 2017년 6월 26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9.23야간작전연습이 끝난 때로부터 약 48시간이 지난 뒤 “평양 등지에서 남쪽으로 향해 있던 전투기 10여 대를 동해안으로 이동배치했다”고 한다. 평양 등지에서 동해안으로 이동배치된 전투기들이 바로 미그-29다. <사진 3>

 

▲ <사진 3> 위쪽 사진은 2016년 9월에 진행된 원산국제친선항공축전에 참가한 미그-29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미그-29가 주기되어 있는 평안남도 순천비행장을 상업위성이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에는 지붕에 나무를 심어놓은 격납고들이 보이는데, 긴급대응출격준비를 마친 미그-29 2대가 격납고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동해 상공을 북상하여 야간작전연습을 진행한 때로부터 약 48시간이 지난 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미그-29 전투기 10여 대를 동해안에 있는 비행장에 이동배치시켰다. 미그-29 요격편대가 출격하면,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상대할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사정을 미리 간파한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는 이번에 공습편대를 동해 상공으로 출동시킬 때, 미국 제5공군 F-15C 편대와 조선인민군 항공군 미그-29 편대가 공중전을 벌일 가능성을 예견하였고, 그에 따라 F-15C가 공중전에서 격추될 사태에 대비하여 전투기에서 비상탈출하여 낙하산을 타고 바다에 떨어진 전투비행사를 구조할 HH-60 탐색구조헬기를 함께 출동시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동해 상공을 북상해서 약 2시간 동안이나 야간작전을 연습하였는데도,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미그-29 요격편대를 출격시키지 않았다. 일반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방공망을 구축해놓았다는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동해 상공에서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약 두 시간 동안 야간작전을 연습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2017년 9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국회 정보위원장 이철우 의원에게 “북한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산에서 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해 상공 작전구역에서 야간작전연습을 벌였는데도 조선인민군 방공망이 잠잠하자, 미국 공군 공습편대는 약 150km를 더 북상하였다. 이것은 동해안 일대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의 지대공미사일 사정권 안으로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깊숙이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게 조선인민군 반항공군 지대공미사일기지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잠잠했다. 여기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방공레이더가 가동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함경남도 해안 일대에 있는 지대공미사일기지들에서 방공레이더가 가동되면, 거기서 120~130km 떨어진 동해 상공까지 접근한 미국 공군 공습편대는 지대공미사일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알 수 없으므로 3km 고도로 급강하하는 회피기동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방공레이더가 가동되지 않았으므로 미국 공군 공습편대는 회피기동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지대공미사일기지들이 왜 그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한국과 일본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인민군이 야간에는 방공레이더를 꺼놓는다느니, 전기가 부족하여 방공레이더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느니, 미국 공군 공습편대의 출현에 겁을 먹고 대응하지 못했다느니 하는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조선의 함경남도 해안에서 120~130km 떨어진 상공까지 접근하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에서 조선인민군 방공망은 왜 가동되지 않고 잠잠하였을까? 이 수수께끼 같은 물음에 해답을 찾으려면, 미국이 9.23야간작전연습을 왜 감행하였는가 하는 물음부터 해명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한국의 군사전문가들은 9.23야간작전연습의 목적이 조선을 공중무력시위로 위협하려는데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9.23야간작전연습은 조선을 위협하려는 군사행동이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 측면만 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측면을 간과하여 실체의 절반밖에 볼 수 없다. 간과할 수 없는 다른 측면은, 공습편대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기종이 9.23야간작전연습에 동원되지 않은 반면, 전혀 예상치 못한 기종들이 9.23야간작전연습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기종은 F-16CJ/DJ다. 이 기종은 F-16 전투기를 ‘적방공망진압작전(SEAD)’에 적합하게 개조한 것인데, 미국 공군은 이 기종을 전자전기로 사용한다. 전자전기가 방해전파로 적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공습편대는 적의 지대공미사일 공격을 받게 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만일 공습편대에 F-16CJ/DJ가 포함되면, 그 공습편대의 작전이 실전연습이 아니라 실전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일 그 기종이 포함되지 않으면 맥빠진 실전연습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9.23야간작전연습에 동원된 뜻밖의 기종은 MC-130 수송기와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다. MC-130 수송기와 E-3 공중조기경보기가 9.23야간작전연습에 각각 동원되었다는 중요한 정보는 <동아일보> 2017년 9월 25일 보도와 9월 29일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9.23야간작전연습에 F-15C 전투기와 HH-60 탐색구조헬기를 출격시킨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 산하 제5공군 제18비행단에 MC-130 수송기와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사진 4>

 

▲ <사진 4> 맨위쪽 사진은 미국 공군 공습편대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전자전기로 개조된 F-16 전투기다. 가운데 사진은 이번 공습편대에 포함된 KC-130 수송기와 같은 기종이고, 맨아래쪽 사진은 이번 공습편대에 포함된 E-3 공중조기경보기와 같은 기종이다. 프로펠러식 비행기인 MC-130 수송기와 보잉 707 여객기를 개조한 E-3 공중조기경보기는 몸집이 비대하고 비행속도가 느려 지대공미사일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공습작전에는 나가지 않는데, 야간작전연습에 동원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프로펠러식 비행기인 MC-130 수송기나 보잉-707 여객기를 개조한 E-3 공중조기경보기는 몸집이 비대하고 비행속도가 느려 지대공미사일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공습작전에는 나가지 않는데, 왜 9.23야간작전연습에 동원되었을까?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함경남도 해안에서 120~130km 떨어진 동해 상공까지 접근하면,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의 지대공미사일 사거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므로, 지대공미사일기지에 격추될 위험이 커진다.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격추당하지 않으려면, 자기들의 접근비행이 공습이 아니라는 점을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에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MC-130 수송기가 공습편대에 포함된 까닭은, 그 공습편대의 접근비행이 공습이 아니라는 점을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에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E-3 공중조기경보기는 적국의 미사일기지나 공군기지 등에서 발신되는 각종 전파를 포착, 식별하여 그 기지의 위치와 작전능력을 파악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9.23야간작전연습의 목적은 공중조기경보기를 동원하여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의 전파발신을 포착함으로써 지하기지 위치, 방공망 가동상태 및 작전능력, 방공레이더망이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등을 파악하려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낚시바늘’에 걸려들지 않은 조선인민군 방공망

 

만일 조선인민군의 방공작전능력이 미국군에게 노출되면, 조선인민군은 미국군이 자기들의 방공망을 타격, 파괴할지 모르는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이 미국의 직접적인 선제타격위험 속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9.23야간작전연습에서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기지들은 지하화되었다. 그래서 미국 정찰위성이 그 위치를 찾아내기 힘들고, 가동능력이나 탐색범위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상에 노출된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기지들을 촬영한 위성사진들이 인터넷에 나돌고 있지만, 그런 위성사진에 촬영된 지대공미사일기지들은 미국 정찰위성을 기만하기 위한 위장시설들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방공레이더 화면을 촬영한 것이다. 화면에는 네 개의 비행체가 나타나 있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기지들은 지하화되었다. 그래서 미국 정찰위성이 그 위치를 찾아내기 힘들고, 가동능력이나 탐색범위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상에 노출된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기지들을 촬영한 위성사진들이 인터넷에 나돌고 있지만, 그런 위성사진들에 촬영된 지대공미사일기지들은 미국 정찰위성을 기만하기 위한 위장시설들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기지의 실제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알려준 자료는 2008년 11월 조선인민군 군부대들과 군사시설들을 시찰하였던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2008년 11월 26일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기지를 시찰한 소감을 서술한 보고서다. 원래 이 보고서는 미얀마군 내부보고서인데, 기밀유지에 허점이 생기는 바람에 인터넷에 유출되었다. 해당부분을 번역,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부대의 레이더체계는 전부 땅속에 건설되었는데, 지하기지 꼭대기에 두 개의 덮개가 있다. 그 덮개들에는 흙이 덮여 있고, 거기에 나무들을 심어 위장해놓았다. 전동장치로 그 덮개를 열고 닫는데, 덮개가 열리면 레이더가 지상으로 올라간다. 레이더를 사용한 뒤에 다시 땅속으로 내려 보내고 덮개를 닫으면, 덮개 위에서 자란 나무들로 위장된다. 그 레이더는 네 개의 지하시설과 연결되었다. 그 중에 한 지하시설에는 지대공미사일을 탑재한 발사대차들과 전투원들이 드나든다. 그리고 지대공미사일 네 발을 발사하는 발사대차 한 대와 미사일운반차량 두 대가 드나드는 지하시설 세 개가 더 있다. 이 지하시설들에는 각각 철문이 설치되었다. 미사일을 발사하려 할 때는 전동식 철문을 열고, 전동장치를 사용하여 발사대차를 밖으로 꺼낸다. 미사일을 쏘고 나면, 반격을 받지 않기 위해 전동식 철문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와 더불어, 지휘통제차량 한 대가 지하시설 안에 들어가 있다. 그 지휘통제차량은 레이더가 수신한 자료를 분석하고 미사일발사명령을 내린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 정찰위성은 철저하게 은폐, 위장된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의 위치와 가동능력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는 이번에 E-3 공중조기경보기를 함경남도 동해안에 접근시켜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의 위치와 가동능력을 탐지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E-C 공중조기경보기의 전자정찰이 B-1B 전략폭격기의 야간작전연습보다 더 중요하였다. B-1B 전략폭격기가 조선의 방공레이더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불러내려는 ‘미끼’였다면, E-3 공중조기경보기는 그 ‘미끼’를 이용해 조선의 방공망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낚아채려는 ‘낚시바늘’이었던 셈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1986년 3월 미국의 리비아 공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리비아 근해에서 공습작전을 연습하는 중에 공중조기경보기를 동원하여 리비아군 방공망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뒤에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공습편대들이 리비아군 방공망을 파괴하였다.  

 

리비아군 방공망은 ‘낚시바늘’에 걸렸으나, 조선인민군 방공망은 ‘낚시바늘’에 걸려들지 않았다. 동해안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기지들은 전파를 발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은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동해 상공에 출현하였을 때, E-3 공중조기경보기 한 대가 공습편대와 함께 북상하는 것을 포착함으로써 미국의 작전의도가 자기들의 방공망을 정찰하려는 데 있음을 일찌감치 간파하였고, 그에 따라 조선인민군 방공망은 전파를 발신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은폐하였다. 그래서 공습편대와 공중조기경보기를 동원하여 조선인민군 방공망을 탐지하려던 미국태평양공군사령부의 9.23야간작전연습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 

 

 

4. 베가의 승리에서 ‘번개’의 승리를 예감한다

  

9.23야간작전연습이 실패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7년 9월 25일 당시 유엔총회에 참석 중이던 리용호 조선 외무상은 자신이 머물던 유엔플라자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발표문을 내놓았다. 그는 발표문에서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이상 앞으로는 미국 전략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계선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올려 떨굴 권리를 포함해서 모든 자위적 대응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또 다시 조선 동해 상공으로 북상하면,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추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 공군 공습편대가 조선 동해 상공으로 또 다시 북상하면, 조선인민군은 그 공습편대를 격추할 수 있을까? 조선인민군이 동해 상공으로 북상하는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격추할 수 있는 유력한 공격수단은 장거리 지대공미사일이다. 

전 세계에서 사거리가 가장 긴 장거리 지대공미사일은 지난날 소련에서 개발되어 사용되었고, 지금도 러시아군이 성능을 향상시켜 계속 사용하는 S-200 지대공미사일이다. S-200이 세상에 출현한 때로부터 50년이 지났다. 그 동안 S-200의 우수한 작전성능이 실전에서 입증된 적은 딱 한 차례밖에 없지만, 미국 전투기들을 상대한 실전에서 미국 전투비행사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S-200이 자기의 작전성능을 과시한 실전은 1986년 3월 리비아군이 미국의 공습에 맞서 싸운 전투였다. 그 전투는 ‘초원의 불길(Fire on the Prairie)’이라는 작전명으로 미국 전쟁사에 기록되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러시아군이 운용하고 있는 장거리지대공미사일 S-200이 발사되는 장면이다. 위쪽 사진은 이란의 언론보도사진에 나온 발사장면인데, 러시아가 이란에 수출한 제3세대 S-200 베가가 거대한 불줄기를 내뿜으며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그처럼 엄청난 추력을 내야 마하 4.0의 속도로 날아가 초음속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다. 아래쪽 사진은 S-200 베가의 상승비행 중에 보조로켓엔진을 가동하여 증폭분사하는 장면이다. 이 지대공미사일은 미국 전투기를 상대한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여 미국 전투비행사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과 아주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졌던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은 카다피 정권을 무력으로 전복시키고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흉심을 품고, 1986년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리비아 공습을 감행하였다. 

 

러시아 군사전문가 안드레이 포취타레브(Andrey Pochtarev)가 2001년 8월 29일 러시아 전문지 <붉은별(Red Star)>에 발표한 글 ‘베가의 초연(The Debut of Vega)’은 1986년 3월 리비아-미국 무력충돌에서 S-200 베가(Vega)가 발휘한 작전성능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자료다. 1980년대에 소련은 S-200 베가를 비롯한 자국산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하였으며, 소련군 지휘관들과 무장장비기술자들 수 백 명을 리비아에 파견하여 리비아군의 군사지도를 맡아보게 하였다. ‘베가의 초연’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당시 리비아에 파견되어 리비아군 반항공군의 군사지도를 맡아보았던 소련 반항공군 제1부사령관이며 노력영웅인 예브게니 유라쏘브(Yevgeny Yurasov)의 회고담이 실렸다. 그 회고담 중에서 S-200 베가의 작전성능에 대해 서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리비아군 반항공군은 지중해 해안선으로부터 약 300km에 이르는 수역의 상공을 S-200 베가로 방어하고 있었다. 1986년 3월 24일 오후 1시경 미국 해군 항공모함 3척에서 이륙한 각종 작전기 약 100대가 지중해 상공을 뒤덮었는데, 공중조기경보기와 전자전기가 가장 높은 고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A-6E 전투기 2대가 리비아 해안으로 돌진했다. 그 전투기들이 해안선으로부터 약 115km 떨어진 상공에 접근하는 순간, 리비아군 반항공군은 S-200 베가 한 발을 발사하였다. 미국 전투기들은 그 미사일을 피하려고 비행고도를 4.5km에서 2.5km로 낮추며 황급히 회피기동을 하였으나, 리비아군 방공레이더 화면에는 전투기 한 대가 격추된 것을 보여주는 정황이 뚜렷이 표시되었다. 오후 3시경 리비아군 반항공군은 S-200 베가 한 발을 더 발사하여 75~100km 앞에서 날아드는 미국 전투기를 또 한 대 격추하였다.      

소련이 1967년에 실전배치한 제1세대 S-200 앙가라(Angara)의 사거리는 180km이고, 소련이 1970년 이후에 실전배치한 제2세대 S-200 베가(Vega)의 사거리는 240km이고, 제3세대 S-200 베가의 사거리는 300km다. 소련이 1976년에 실전배치한 제4세대 S-200 두브나(Dubna)의 사거리는 400km다. 위의 회고담에서 리비아군 반항공군이 미국 전투기를 격추한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300km에 이르는 제3세대 S-200 베가였다. 

 

▲ <사진 7> 이 사진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S-200 베가를 살펴보는 장면이다. 조선은 1987년과 1988년에 S-200 베가 24발을 수입하여 4개 대대에 배치하였다. 1986년에 리비아군 반항공군이 S-200 베가로 미국 전투기들을 격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도 그 지대공미사일을 수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사진 7>은 2017년 7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진행된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 성공기념 음악무용종합공연’ 중에 공연무대에 설치된 초대형 배경화면에 비춰진 사진영상 190편 가운데 하나다. 그 사진영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S-200 베가를 살펴보는 장면이다. 조선은 1987년과 1988년에 S-200 베가를 소련에서 수입하여 4개 대대에 배치하였다. 그러므로 위의 사진은 1987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S-200 1개 대대마다 미사일이 6발씩 배치되므로, 당시 조선은 24발을 수입하였다. 1986년에 리비아군 반항공군이 S-200 베가를 발사하여 미국 전투기들을 격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에서도 그 지대공미사일을 수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 <사진 8> 이 사진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 중에 5축10륜 견인발사차량에 실려 등장한 번개-4 지대공미사일을 촬영한 것이다. 번개-4는 조선이 1987년에 수입한 S-200 베가와 겉모양이 같지만, 조선은 지난 30년 동안 성능개량을 거듭하여 작전성능이 크게 향상된 번개-4를 만들어냈다. 번개-4의 작전성능은 S-200 베가의 작전성능을 능가하는 S-200 두브나의 작전성능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S-200 두브나와 마찬가지로, 번개-4의 사거리는 400km이고, 요격고도는 40km이며, 400km 밖에서 날아가는 30평방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비행체를 격추할 만큼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은 지대공미사일이다. 번개-4는 고폭탄두를 장착하면 지대공미사일로 쓸 수도 있고, 25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면 전자기파폭탄으로 쓸 수도 있다. 만일 미국 공군이 조선을 겨냥하여 야간작전연습을 또 다시 감행하면, 공습편대가 조선 동해안으로부터 40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 접근할 때, 번개-4가 날아갈 것이다. 번개-4가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격추하면, 조미핵대결이 종식될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사진 8>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 중에 5축10륜 견인차량에 실려 등장한 번개-4 지대공미사일의 모습이다. 번개-4는 조선이 1987년에 수입한 S-200 베가와 겉모양이 같지만, S-200 베가의 복제품이 아니다. 조선은 지난 30년 동안 성능개량을 거듭하여 작전성능이 크게 향상된 번개-4를 만들어냈다. 번개-4의 작전성능은 조선이 30년 전 수입한 S-200 베가의 작전성능을 능가하는 S-200 두브나의 작전성능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S-200 두브나와 마찬가지로, 번개-4의 사거리는 400km이고, 요격고도는 40km다. 번개-4는 400km 밖에서 날아가는 30㎠ 크기의 작은 비행체를 격추할 만큼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은 지대공미사일이다. S-200 두브나와 마찬가지로, 번개-4는 무게가 217kg인 고폭탄두를 장착할 수도 있고, 25킬로톤급 전술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다. 번개-4는 원래 지대공미사일이지만, 고폭탄두를 전술핵탄두로 교체하면 전자기파(EMP)폭탄으로도 사용된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른 팔러씨(Foreign Ploicy)> 2013년 4월 1일부에 실린 분석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번개-4를 40개 대대에 배치하였다고 한다. 번개-4는 1개 대대에 6발씩 배치되므로, 번개-4 240발이 실전배치된 것이다. 한국 정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2년 3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지난 10년 동안 번개-4 보유량을 20배 증가시켰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0월 현재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에 실전배치된 번개-4는 300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F-15C의 비행속도는 마하 2.5인데, 번개-4의 비행속도는 마하 4.0이다. 그러므로 F-15C가 일단 번개-4 사정권 안에 걸려들면, 회피기동을 해도 번개처럼 날아오는 번개-4를 피할 수 없다. 

번개-4처럼 사거리가 긴 지대공미사일을 쏘려면, 유효거리가 긴 레이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장거리레이더가 없으면, 장거리지대공미사일을 쏠 수 없다. 

 

<연합뉴스> 2017년 3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성능이 우수한 레이더 200여 대를 전국 각지에 촘촘히 배치하였다고 한다. 2015년 1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기록영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을 조직지도하시였다’에서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운용하는 P-35M 탐색레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효거리가 350km인 P-35M는 번개-4에 배속된 장거리탐색레이더다. 

번개-4를 발사하려면 탐색레이더만이 아니라 감시레이더와 사격통제레이더도 있어야 한다. 이 세 종류의 레이더가 서로 연동되면서 번개-4를 운용하는 것이다. 번개-4에 배속된 5N62 사격통제레이더의 유효거리는 400km이고, 번개-4에 배속된 5N69 감시레이더의 유효거리는 500km다. 

 

위에 열거한 성능지표들을 보면,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번개-4를 발사하여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격추할 수 있다. 하지만 번개-4를 발사하더라도, 지하방공망 위치가 미국 공군 공중조기경보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하기지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차량견인식 방공레이더와 차량견인식 번개-4를 이동시킨 뒤에 발사할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9.23야간작전연습에서 은폐술로 대응하였지만, 만일 미국 공군이 그런 야간작전연습을 또 다시 감행하면 공습편대가 조선 동해안으로부터 40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 접근할 때 번개-4가 날아갈 것이다. 번개-4가 미국 공군 공습편대를 격추하면, 조미핵대결이 종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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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짜리 역대 최장 명절 연휴에도 안 쉬고 달리는 ‘윤석열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뉴시스
 

열흘짜리 역대 최장 추석 연휴에도 검찰은 빡빡한 수사 일정으로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윤석열 검사장이 이끄는 서초동의 서울중앙지검은 추석 연휴 중 혹은 연휴 직후 수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사건들도 있어 황금연휴를 제대로 즐길 겨를이 없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연휴 전인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협조가 가능한 경우라면 연휴 기간에도 관련자 소환조사가 있을 수 있다”며 “다들 출석이 어렵더라도 자료 분석 등 다른 일은 계속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윤대진 1차장검사 산하에서는 형사3부(부장검사 이진동)가 담당하고 있는 故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공소장을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추석 이전에 백남기씨 사망 사건 처리를 목표로 열심히 수사를 했으나, 수사팀 인사이동 구성 등을 이유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10월 중으로 조사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 사건 관련자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해 사건을 처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가 추석 연휴 직후 결정될 전망이다.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을 맡은 박찬호 2차장검사 산하 공안 부서들의 일정은 더욱 빡빡하다.

민간인 댓글부대(사이버 외곽팀) 운영 책임자로 구속된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구속 만료 시점이 연휴 중인 8일이므로, 검찰은 해당 날짜 이전에 민 전 단장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민 전 단장과 같은 혐의로 우선 8일 이전에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관리한 의혹을 받는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도 연휴 기간 동안 관련 범죄사실을 구성하는 등 연휴 이후 관련자 소환 등 수사에 진척을 내기 위한 밑작업들을 쉴 틈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에는 국정원의 이명박 정부 비판세력 제압 활동과 관련해 원 전 원장 등을 수사해달라는 수사 의뢰서를 국정원 적폐청산 TF로부터 새롭게 접수받았다.

박찬호 3차장검사 산하 특수수사 및 방위사업수사 부서들은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방산비리 사건 수사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다.

방위사업수사부는 지난 23일 KAI 방산비리 혹은 경영비리 의혹의 정점에 있는 하성용 전 사장을 분식회계 등 10개 혐의로 구속, 수사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 전 사장의 구속영장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최대한 빨리 방산비리 수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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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니”

전북겨레하나 평화의소녀상 귀향 환영모임 열어
전주=김성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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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2  23: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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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소녀상 귀향 환영모임에 나온 전북겨레하나 회원들.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151번 버스를 타고 서울 시민을 만나던 평화의소녀상이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대전, 대구, 원주, 수원과 더불어 소녀상을 맞은 전주에서는 전북겨레하나 회원들이 작은 환영 모임을 가졌다.

   
▲ 전주 풍남문광장에 도착한 소녀상을 맞이하다.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10월 2일 오전 11시 일본대사관에서 출발한 평화의소녀상은 오후 5시 20분에 전주 풍남문광장에 도착했다. 귀성길 교통 정체로 예정보다 두 시간가량 지체되었다.

광장에는 전북겨레하나 방용승 공동대표와 회원들이 오후 3시부터 소녀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 나란히 앉은 두 소녀상.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정읍 출신의 김종도 씨가 승용차에 태우고 온 소녀상은 풍남문광장에 있는 ‘전주평화의소녀상’ 옆 자리에 앉혔다. 전주평화의소녀상은 2015년 8월 13일 시민 6,448명의 참여로 건립되었다.

김춘진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이 소녀상에 헌화하고 “국가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힘을 모으자”고 역설했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방수민 학생.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이어서 방수민(전북여고 1) 학생이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수민 양은 편지글을 통해 “저만한, 아니 어쩌면 저보다 어린 시절에 그 끔찍한 일을 겪으시면서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셨는지요”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고 세상에 나와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해준 할머니들의 용기에 존경을 표했다.

   
▲ 문제 해결에 늘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는 노은찬 대학생.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대학생 노은찬 씨도 소녀들의 아픔을 반드시 기억하고 문제 해결에 늘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북겨레하나 방용승 공동대표는 “머나먼 타국에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소녀들을 기리고 전쟁이 없는 세상,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지자”고 제안했다.

연휴 기간 전주 시민들이 고향을 찾은 소녀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 두 소녀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고 있다.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 소녀의 차가운 발에 따뜻한 버선을 신겨 주고 있다. [사진-김성희 통일뉴스 통신원]

이날 참석한 시민들은 나란히 앉은 두 소녀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고 먼 길을 달려온 소녀의 차가운 발에 따뜻한 버선을 신겨 주었다. 빨강 꽃신 두 켤레도 나란히 놓아 소녀들의 슬픔을 달래 주었다.

전주를 찾은 평화의소녀상은 연휴 기간 풍남문광장을 찾는 시민들과 함께 슬픔과 희망을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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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퇴행적 시도”라는 망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0/02 12:41
  • 수정일
    2017/10/02 12: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민은 모든 진실이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준구  | 등록:2017-10-02 09:51:00 | 최종:2017-10-02 09:54: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명박근혜 정권의 9년 동안 우리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애써 일궈온 민주헌정질서는 그 뿌리 채 흔들렸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무시로 짓밟혔습니다. 정부가 팔 걷고 나서서 국민을 내편, 네편으로 갈라놓고, 네편에게는 공권력까지 동원해 해꿎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속속 밝혀지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범죄행위들을 보면서 그 동안 우리가 왜 그렇게 숨이 막혀 살아왔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정원이 네편을 골라내 탄압하고, 내편을 위해서는 선거개입까지 서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지난 몇 년 동안 그 증거를 부지런히 인멸해 온 탓에 그 범죄행위의 편린만이 드러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이제는 왜 MB정권이 2012년의 대선에 팔 걷어붙이고 박근혜의 당선을 위해 안간힘을 썼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지적했듯, 박근혜가 갖고 있는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그를 밀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박근혜가 갖고 있는 치명적 결함 때문에(just because of) 불법행위까지 감행하며 그를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야 너무나도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의 행위를 은폐해 줄 수 있는 흠 많은 후속 정권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을 꽉 쥐고 있으니 자신을 함부로 치지 못할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하에 그런 일을 저질렀던 데 한 점 의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불법적인 대선 개입 덕분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가 바로 그 불법을 파헤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나는 법률의 문외한이지만,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죄 없는 사람들을 박해한 행위, 반대파를 불법적으로 사찰한 행위, 각종 선거에 개입한 행위는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그저 사소한 범죄행위가 아니라 민주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범죄행위입니다. 민주국가에서 정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공정해야 할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생각이라도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범죄행위의 정점에 MB가 있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랫사람들이 그런 범죄행위를 일삼았는데, 오직 대통령인 MB만 그걸 모르고 5년을 지냈다는 게 도대체 상상이나 가능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MB가 그렇도록 어수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MB가 검찰 앞의 포토라인에 서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자기 재임 시절 자행된 불법행위의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그는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왜 이런 비리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겠습니까? 설사 자기는 전혀 몰랐고 아랫사람들이 몰래 그런 일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엎드려 사죄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연 MB의 첫 마디는 진솔한 사과가 아니라 “적폐청산이 퇴행적 시도”라는 망언이었습니다. 어떻게 범죄행위를 밝혀내 처벌하는 것이 ‘퇴행적 시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가 과연 무슨 생각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퇴행’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를 했어도 덮어두자는 주장의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 행위가 전혀 범죄행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면 그가 누구이든 간에 조사 받고 범죄행위가 밝혀지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기본 아닌가요? 이떻게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 기본에 어긋나는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은 친일반민족 행위를 밝혀내거나 유신독재 부역자를 찾아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최근의 범죄행위를 밝히자는 것 아닙니까? 만약 그들에게 아무 죄가 없다면 당연히 법원의 판결이 그렇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범죄행위의 의혹이 있는 사람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 하는데, 거기에 시비를 걸 여지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지난 28일 MB의 “대국민 추석 인사”를 보면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은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과거를 묻어버리자고 주장한 대목입니다. 안보와 민생이 범죄행위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만약 안보와 민생이 어려우면 도둑질한 사람도 눈 감아 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이런 사기에 가까운 논리는 MB뿐 아니라 그를 비호하는 모든 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보수 신문을 한 번 펴들고 관련 기사를 읽어 보십시오. 그런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유신 때의 그 소름끼치는 독재도 바로 그런 사기에 가까운 논리로 정당화했던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처럼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들은 이처럼 좋은 기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적폐청산의 노력을 정쟁이니 정치보복이니 하는 말로 먹칠을 하려 드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런 와중에 드디어 적폐청산 노력이 “퇴행적 시도”라는 MB 자신의 망언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최소한 의혹의 당사자 자신이 할 말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내지 못한다면 또 다시 악의 싹이 움터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추상같은 단죄가 필요한 이유는 후세 사람들이 다시는 그와 같은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말라는 경고를 주기 위함입니다. 지난 9년 동안의 폐정으로 인해 그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는 민주헌정질서 회복의 첫 걸음이 바로 적폐청산입니다.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이야 말로 어느 것보다 신속하게 그리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입니다. 안보와 민생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적폐청산을 한다고 안보와 민생을 소홀히 할 리 있겠습니까? 과거를 덮고 싶은 사람들이 공연히 그런 구실을 붙이는 데 불과할 뿐이지요.

손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 범죄행위를 비호하려는 거짓 논리들이 결코 진실을 은폐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모든 진실이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아직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준구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08&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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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국토부가 만들어놓은 한심한 '철도 쪼개기'

 
[기고] 철도 개혁,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유럽 철도차량 제작사의 양대 산맥인 알스톰과 지멘스가 합병을 선언했다. 세계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4위의 알스톰과 6위의 지멘스는 합병을 통해 단숨에 세계 2위 업체로 뛰어오르게 됐다. BBC는 9월 26일, “유럽철도 챔피언 탄생”이라는 헤드라인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알스톰과 지멘스는 유럽철도차량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는 알스톰은 중동, 아프리카, 인도, 중남미에 진출해 있고 지멘스는 중국, 미국, 러시아에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두 기업의 결정은 유럽철도차량시장의 확고한 지배를 바탕으로 세계철도차량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새로 탄생한 거인은 <지멘스알스톰>그룹으로 결정됐으며 본사는 프랑스 파리에 두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큰 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린 이유는 세계 철도차량시장의 초강자로 떠오른 중국 중차(CRRC)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국영 철도차량제작사인 중국중차는 2015년 신조차량 매출 기준 점유율 33.4%로 세계 1위의 거대 기업이다. 중국중차 역시 세계 1, 2위의 점유율을 가진 중국남차와 중국북차의 합병으로 탄생한 역사를 갖고 있다. 강철 네트워크로 중국의 도약을 꾀하겠다는 철도굴기의 한축이 중국중차이다. 풍부한 중국내 철도 인프라를 배경으로 선진국과 대등한 차량제작기술을 확보하게 될 때 중국철도의 잠재력은 현실적 힘이 된다. 
 
이처럼 철도차량제작사들이 통합으로 몸집을 불리는 이유는 철도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비탄력성은 풍부한 자금력과 연구개발 투자의 적극성이 일관되게 유지될 때 성장을 보장한다. 이것은 비단 차량제작 분야만이 아니라 철도시설 건설과 운영에도 적용된다. 세계철도시장은 완성차 납품이 아니라 신호체계, 운영기술, 유지보수, 건설노하우가 패키지로 움직인다. 알스톰의 지분 20%는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다. 알스톰의 해외시장 진출에는 프랑스 정부 및 프랑스 철도공사(SNCF)가 함께 움직인다. TGV를 한국형으로 제작해 KTX를 수출할 때에도 차량제작사 알스톰과 운영자인 프랑스 철도공사 양측에서 기술진을 한국으로 파견했다.  
 
                          <2015년도 주요 철도차량 제작사 세계 철도차량시장 점유 순위>
 
이 같은 세계 철도산업의 흐름에 한국은 어떤 실정인가? 지난 십 수 년 간 고집스러울 정도로 역행했다. 철도정책의 컨트롤 타워 자체가 부재 했다. 정책결정을 책임진 국토부는 철도 민영화 계획을 현실화 시키는 일에만 집요하게 매달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은 국토부의 앵무새가 되어 정부논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철도의 현실을 왜곡하는 억지논리가 양산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117년 철도독점체제 논리다. 수서고속철도 출범을 알리는 언론들의 보도도 117년 넘는 독점체제가 드디어 무너졌다는 것으로 채워졌다.  
 
독점은 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기댄 국토부의 선전이 먹혀들었다. 한국철도는 100년 넘는 독점의 안일함에 빠져 세금만 축낸 적자기업이라는 오명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했다. 식민지와 전쟁 가난이 이어진 수 십 년 간 서민들의 발이었던 철도가 독점기업 100년의 횡포로 둔갑했다.  
 
국토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철도 경쟁체제는 많은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질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자국 내 경쟁이 아니라 철도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국가들의 시장 확대를 위한 정책이었다. 분단된 한국의 협소한 선로 망에서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자 두 기관의 갈등구조만 커졌다. 최근 발생한 경강선 시험운전 단계에서도 시설공단과 철도공사는 정확한 시험운행 계획과 과정이 공유되지 못했다. 결국 시험운행에 나선 기관사가 사망했는데도 시설공단이나 철도공사 어디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차량제작사와 시설과 운영 기관의 공조가 필수적인 해외시장 진출은 허상에 불과하다. 
 
심각한 것은 시설과 운영의 분리 외에도 고속철도 운영기관을 분리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설계하고 박근혜 정권이 완성한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T)는 정부가 주장하는 경쟁체제의 효과가 무색하게 한국 철도를 좀먹는 체제로 기능할 것이다. SRT를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집행된 온갖 불공정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수익이 보장된 노선, 코레일로부터 고속철도 차량 임대, 코레일의 SRT 차량정비, 코레일 전산망을 활용하는 통합발권 시스템 등 한쪽의 일방적 희생으로 경쟁사를 살찌우는 일이 진행됐다. 국토부가 주장한 경쟁체제의 진면목이 이런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여기에 국토부 관료들의 낙하산 문제, 최근 불거진 채용 비리까지 국토부의 위장기업 SRT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10년 넘게 눈부신 발전을 했어도 모자랄 판에 역주행만을 일삼아온 철도 정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레일과 SRT의 통합문제를 다루겠다는 TF 운영의 문제도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됐다. 국토부는 한 술 더 떠 경쟁체제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자며 통합논의를 연기하자는 주장도 펼친다. 속보이는 시간 끌기 전술이다. 이미 고장이나 궤도를 벗어난 위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멀리 달아날 뿐이다. 
 
세계 철도 시장은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합병이다.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그 속에서 효율성을 키우려 하고 있다. 현재의 북핵 위기가 해소되는 국면이 도래하고 남북 대화의 새로운 길이 열릴 때 대륙으로 향하는 철도는 평화와 소통의 중요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중국, 러시아 철도와의 교류 협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실한 공공철도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고작 600킬로미터 남짓한 고속철도도 통합운영하지 못하는  공기업 코레일이 대륙철도운영국가들 사이에서 당당할 수 없다. 해외철도시장 개척에 나서도 상대국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 지난 세월 국토부가 만들어놓은 한심한 단상이다.   
 
눈앞의 이권과 자리에만 매달려 분리하고 쪼개온 철도산업으로는 미래가 없다. 시간끌기로 일관하며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철도 개혁에 맞서는 동안 개혁의 골든타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코레일과 SRT 통합의 시동을 걸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세계 철도의 흐름을 따르는 길이다. 철도가 시민의 발이 되고 대륙으로 뻗는 철의 실크로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철도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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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보수언론들 대북 전쟁 필연성 일제히 주장 시작

미 보수언론들 대북 전쟁 필연성 일제히 주장 시작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0/02 [01: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9월 29일 미 보수 잡지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 에서 대북 전쟁은 필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최근 제4언론 대표이자 중국 칭화대 초빙교수인 정기열 교수가 미국의 보수언론들이 갑자기 '북핵문제 해결은 이제 전쟁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근거로 지난 9월 29일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의 '왜 북과의 전쟁은 필연적인가-Why War with North Korea Is Inevitable'란 제목의 기사(http://nationalinterest.org/blog/the-buzz/why-war-north-korea-inevitable-22532)와 같은 날 폴린폴리시 잡지(Foreign Policy Magazine)의 '무엇이 진정으로 북을 단념시키게 할지를 생각할 때-It’s Time to Reckon With What It Would Really Take to Deter North Korea'란 제목의 기사(http://news.kodoom.com/en/iran-politics/it-s-time-to-reckon-with-what-it/story/6772523/) 등을 들었다.

 

▲ 2017년 9월 29일 폴린폴리시의 특단의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기사 

 

읽어보니 해당 기사에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아직 그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북이 미국 본토를 핵미사일로 공격할 능력을 확보해가고 있어 3억 미국인의 운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공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미사일요격시스템 구축예산을 삭감한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책이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또 북이 괌포위 사격만 단행해도 한국과 일본, 호주와의 굳건한 동맹이 빠르게 해체(unlavel)될 것이란 우려도 표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의 핵우산정책이 파산되어 미국의 태평양패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과 같다. 태평양패권의 붕괴는 곧 세계 패권붕괴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 보수언론들은 소련연방공화국이나 중국의 핵과 북의 핵은 차원이 다르다면서 북의 지도자들은 기어이 한반도 통일을 이루어내고 미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북의 지도자들은 필요하다면 미국을 향해 얼마든지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과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대화나 제재로는 이런 북의 행보를 막을 수 없기에 이제는 북의 핵무장을 저지하고 미국의 안전을 보장받는 길은 전쟁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기사들이었다.

 

정기열 교수도 본지에 보낸 전언에서 "The National Interest와 Foreign Policy 둘 다 오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력의 대부쯤 되는 자들이 만든 것으로 오늘 군산복합체세력을 대표하는 잡지들이다. 전자는 어빙 크리스톨(유대계)이 1980년대 초 후자는 새뮤얼 헌팅톤(유대계)이 1970년대 초 만들어 오늘에 이른 워싱턴의 대표적인 네오콘잡지이다.

얼마 전까지 "군사적 방안은 없다"며 "조선과 대화, 외교만이 해법이다."라고 주장하고 평화협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던 미국의 전 현직 고위공무원들, 연구조직, 언론, 학자,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 세력이 트럼프 정부가 유럽, 중국 등 국제사회를 총동원한 전대미문의 극단적인 대조선봉쇄와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자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지 마치 모두 하이에나로 돌변, 북에 대한 전쟁카드를 다시 꺼내드는 변화가 요 몇일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정기열 교수는 매일 미국을 위시한 서방언론은 물론 국제사회의 주요 언론들 모두 살펴보며 세계 정세 흐름을 꾸준히 분석해오고 있는 국제정세 전문가이자 언론인이다.

 

트럼프정부는 10월에 도널드 레이건호 항공모함까지 동원하고 주변 동맹국을 총동원한 대북선제타격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것이라고 이미 예고하였다. 

 

10월의 위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면밀한 조사와 지혜로운 대응이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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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부의 ‘잘못된’ 인식들

<기고>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 성공의 조건(2)
김광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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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2  0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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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

이 글은 총론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라는 주제 하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분야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모색의 글에 가깝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담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두 문제의식에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북핵문제의 본질을 짚어내고자 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다음은 연재 순서이다. / 필자 주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Ⅰ. 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
 1. 
북-미대결의 산물, 북핵
 2.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한 정확한 이해
 3.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서 갖는 북핵의 의미

Ⅱ.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 성공의 조건
 1.
 DJ·참여정부에서의 경험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얻는 교훈
 2.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들
 3.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에 대한 분석과 대안

Ⅲ. 담대한 제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하여

 

곧 10일 연휴의 한가위이다. 풍성한 계절이고 추억과 덕담이 오가는 명절이어야 하겠지만, 정세는 영 그러하질 못하다. 지향은 촛불정부이나 민주정부 3기에 불과하고, 옹졸한 문재인 정부 땜에 10일 연휴의 한가위는 그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21일 통일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영유아와 임산부 등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는 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나,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워딩되었다면 그런대로 봐줄 만은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서 나왔다. 그는 그날-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회의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반적인 여건을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와 조 장관의 발언은 상당한 모순적 결합이다. 참으로 ‘웃고픈’코미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아예 그 말씀-인도적 지원의 경우는 정치·군사적 문제와는 분리대처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는 말씀을 하지 말던지, 그 말씀 한마디로 인해 대북 인도적 지원조차도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현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보수·수구세력에게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정부임을 고백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게 되어져 버렸다.
 
촛불민심이 있고, 인도주의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국제기구의 보편적 원칙과 가치로 통용되는 규범이 있는데도 뭘 그렇게 좌고우면해야 된다 말인가?
 
옹졸하다 못해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북 인도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 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4차 핵실험 이후에는 '지원 규모와 시기 등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 나간다'는 단서를 달아 지원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와 너무나 그렇게 닮아있다. 누가? ‘그’문재인 정부가.    

해서 정권교체 5개월을 넘긴 지금,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필자의 감정은 한마디로 YS정부 때와 같은 데자-뷰(deja vu)이다. 필자만 그러한가?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못하다”고 호기를 부렸던 YS 정부는 정권 내내 남북관계가 최악이었다. 아마도 YS의 머릿속에는 ‘나 문민대통령이야. 평생을 반독재민주화투쟁을 해왔어. 그런 정부의 수장인 내가 남북문제 하나 못 풀 것 같아’그런 감정이 분명 있었으랴.
 
그리고 그 데자-뷰는 ‘나 JI(재인, 영어 이니셜)야. 해병대 출신에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정부에다 70%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런 정부의 수장인 내가 북한이 하자는 대로 질질 끌려 다녀? 그렇게는 못해’그런 오기와 자만을 갖고 있다면 촛불민심은 매우 불행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깊은 여운으로는 ‘아, JI여!’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과도 똑같다.

실제 촛불민심은 이미 남북·북핵문제와 관련해서 만큼은 ‘이러려고 정권 교체했나?’라는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 엄중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작금의 남북·북핵문제에 대해 어느 한 친문 의원은 다음과 같은 영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주1) 어느 신문기사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이 ‘기는 것뿐 아니라,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야’”하는 것은 2-3수 앞을 내다보는 지혜라고.
 
백번 양보해서 정말 그렇게라도-2ܩ수 내다보는 지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영 다른 기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파병 결정으로 인해 민주·시민사회와는 결별했고, 그 결과 이후 노무현 정부의 추동력은 상당히 붕괴되어졌던 기억이 그것이다. 이 또한 데자-뷰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반복되지 않는 역사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현 정부도 그 의원도 심각한 인식적 오류에 빠져있다. 이유는 그가 기억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 시기 이라크 파병과 그 대가로 북·미관계 호전과 10.4선언이 가능했다는 논리적 인식에 바탕하고 있었을 텐데 그 결론을 수용하더라도-실제 이라크 파병과 북·미관계 호전 및 10.4선언이 가능했다는 것과의 상관성이 있는지는 없는지는 바라보는 시각마다 다 달라 그 시각차를 논의로 하더라도-이라크파병은 어디까지나 ‘제3자적’관점이다. 반면, 지금의 북핵문제는 우리-대한민국 스스로가 주체적 관점에 서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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