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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G20 직후 사이버사 확대 지시…창설 첫해부터 챙겼다

[단독]이명박, G20 직후 사이버사 확대 지시…창설 첫해부터 챙겼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입력 : 2017.10.17 06:00:05 수정 : 2017.10.17 06:00:57

 

ㆍ김해영 의원 ‘대통령 지시사항’ 문건 공개

[단독]이명박, G20 직후 사이버사 확대 지시…창설 첫해부터 챙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76·사진)이 국군 사이버사령부 창설 첫해인 2010년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종료 직후 사이버사 인력 확대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버사가 G20 정상회의 당시 인터넷상에서 댓글 공작을 벌여 정부 반대 여론을 제압하고 옹호 여론을 조성한 데 따른 조치다. 심리전 개입 의혹을 부인해온 이 전 대통령 측 해명과 달리 사이버사 창설 초기부터 부대 운용에 깊숙이 관여한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16일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실이 입수한 ‘대통령 지시사항 시달(국방부)’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국방부 정책관리담당관실은 2010년 12월2일 사이버사에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며 “군 사이버사령부 인력 확대”를 전파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추가로 필요한 소요는 현역병과 민간인력으로 보강할 것”과 “현역병은 복무기간이 지나면 제대하므로 민간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함”이라고 제시했다. 이후 사이버사는 댓글 공작을 주도한 심리전단에 민간인 출신의 군무원을 대거 채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11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이버사 인력 확대와 관련해 구두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적혀 있는 국방부 문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11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이버사 인력 확대와 관련해 구두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적혀 있는 국방부 문건.

 

이 문건에는 이 전 대통령이 2010년 11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이버사 인력 확대와 관련해 ‘구두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적혀 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은 그해 12월1일 국방부에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 및 보고 지시’를 내렸고, 국방부는 사이버사에 12월16일까지 ‘향후 대략적인 계획 및 추진방향’을 A4용지 1~2장 분량으로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앞서 공개된 국방부의 ‘사이버사령부 관련 BH(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2012년 3월10일)’ 문건에 “군무원 순수 증편은 대통령 지시로서 기재부 협조 시 대통령께서 두 차례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적혀 있는 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사이버사는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79명의 신입 군무원들을 선발해 이 중 47명을 심리전단에 배치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사이버사와 국가정보원 등을 동원한 여론조작 의혹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것을 보고받고 지시할 정도로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김해영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사이버사 창설 초기부터 부대 운용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해 불법의 온상이 된 사이버사 인력 확대를 지시한 배경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70600055&code=910100#csidxba9f81f40826c23bf60596e8bc369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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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장관께 드리는 공개 서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17 09:26
  • 수정일
    2017/10/17 09: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천안함 ‘1번 어뢰’를 2함대 천안함 기록관에서 일반에 공개할 것을 요청함
 
신상철 | 2017-10-16 22:43: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송영무 국방장관님,

박근혜 정권의 퇴진 그리고 급박하게 치러진 19대 대선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으로 제대로 준비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에서 국방장관이라는 중책의 직을 맡으시고 더구나 악화일로를 치달아 온 북미관계로 인해 한반도의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 시기 막중한 책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저는 지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조사단 민주당추천 민간위원으로 조사활동을 하면서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과 다른 주장을 펼친 이유로 고소 및 고발을 당하여 현재 8년째 재판을 받고 있는 신상철 전 조사위원입니다.

그렇잖아도 격무로 바쁘실 송영무 국방장관님께 이렇게 공개서한을 드리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 8년간 진행되어 온 천안함 재판이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관련 필수자료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 바, 지난 10월12일 자로 국방부에 온라인 절차를 통하여 천안함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들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림과 아울러 장관님께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시길 요청드리기 위함입니다. 

제가 국방부에 청구한 정보공개 항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2010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기록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실을 담고 있는 관련 서류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보공개를 청구합니다.

(1) 2010. 3. 26 천안함 교신기록
(2) 2010. 3. 26 천안함 항적기록
(3) 2010. 3. 26 백령도 서쪽 및 남쪽 해안 모든 초소 TOD영상
(4) 2010. 3. 26 ∼ 27 국방부(합참. 해작사 포함)와 해경간 통신기록 전부
(5) 2010. 3. 27 해경501함과 해경253호정 교신기록 전부
(6) 2010. 3. 26 ∼ 31 군 상황일지 (합참, 2함대, 작전사령부)
(7) 천안함 생존자 통신기록 전부
(8) 국방부 조사 생존자 육성증언 및 기록 전부
(9) 국군수도병원 천안함 생존자 관련 기록 전부 
(10) 천안함 사망자 시신 검안 기록 전부
(11) 해군2함대 천안함 거치후 수리내역 전부
(12) 합참 및 해군2해역사령부 KNTDS 천안함 이동경로 기록 전부

2. 천안함 1번 어뢰 일반에 공개할 것을 요청함

정부와 국방부가 주장하는 바, 천안함을 폭침시킨 소위 ‘1번 어뢰’는 2010년 5월 20일 공개 및 공식발표이후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유리케이스에 담아 공개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정밀사진을 찍어 과연 그것이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가 맞는지 여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자 국방부는 전쟁기념관에 비치된 1번어뢰를 국방부 조사본부의 창고로 이송하고 대신 모조품을 비치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현저히 저해시킬 뿐만 아니라 2함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천안함 선체와의 형평성 논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위 ‘1번 어뢰’를 2함대 천안함 기록관에 일반인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공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장관님,

항목들을 보시면 사고 당일의 천안함 항적기록, 교신내용, 통신기록, 상황일지 및 TOD영상등 천안함의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반드시 필수적인 내용들이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필수 내용들이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공개되거나 제출된 적이 없으며 지난 8년간의 재판을 통해서도 논의 자체가 의도적으로 기피되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이러한 내용에 대해 국방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에 대해서도 국방부 사건 관련자 및 실무자들이 여전히 <군사기밀>을 앞세워 공개를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저는 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관님께 이렇게 특별히 서한을 작성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아울러 우편서신으로도 보내드리게 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는 거짓과 은폐로 가득한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와는 달라야 합니다. 하여 <군사기밀>을 앞세워 공개거부가 예상되는 실무진들의 <은폐시도>에 대해 과감하고 냉철하게 대처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참고로 2002년 연평해전 당시 정부와 국방부는 교신기록은 물론 당시 작전상황까지도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렸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다시 돌아보기 위하여 관련 기사를 인용하겠습니다.

 

[SBS 단독] “천안함, 9시14분 ‘마지막 교신’ 나눴다”

<앵커> 군은 어제(1일) 천안함 침몰시간을 9시 22분으로 정정발표했습니다. 그런데 SBS 취재 결과 8분 전인 9시 14분에 근처 함정과 마지막 교신을 나눈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 8분이 의문을 푸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지만 군은 교신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시평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기자> “천안함이 근처 함정과 마지막 교신한 시간은 9시 14분,27분쯤, 속초함이 천안함을 불렀을 때는 응답이 없었다.” SBS가 단독취재한 천안함의 마지막 교신기록입니다. 천안함이 어느 함정과 어떤 내용을 주고 받았는지, 군은 함구하고 있습니다. 교신 내용은 천안함 침몰 전후 상황을 파악할 핵심 정보입니다.

천안함이 해안 근처로 이동한 이유, 천안함 폭발 전후 상황, 함대 사령부의 대응, 속초함의 함포 발사 당시 상황 등 여러 의문점들을 풀 수 있는 단서입니다. 국방부는 군사 작전 정보가 들어 있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기식/합참 정보작전처장 : 무선통신일지·NTDS가 동시에 공개된다면 우리가 작전하는 모든 것들이 거기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연평해전 당시에는 교신 내용 뿐 아니라 세세한 전술내용까지 공개했습니다. 환자복 차림인 부상자들 인터뷰도 허용했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생존자들을 격리시킨 채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편집하지 않은 교신일지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정국/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 : 어떠한 종류의 정보든 편집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보안에 문제되는 점을 가려서 철저히 마킹을 하신 다음에 그걸 달라고 하는 겁니다.]

실제로 군은 사건직후의 T0D 화면 편집본을 공개하고도 발생시간을 추정할 앞부분을 숨긴 사실이 드러나자 결국 발생시간을 정정한 바 있습니다. 군은 기밀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번의 교신내역 비공개는 거의 모든 내용을 공개하다시피했던 지난 2002년 연평해전 직후와 너무 대비된다는 지적입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729587

교신기록이 필요한 이유는 그 속에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사고 순간 그리고 그 사고에 대처하는 상황이 관련 기관과의 보고 지시 및 대응 과정을 소상하게 담겨 있으며 그러한 내용에 대한 확인 없이 사고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오죽하면 천안함 희생자 가족분들 조차 ‘편집하지 않은 교신기록’ 공개를 요구하며 ‘만약 보안에 문제가 된다면 가려서 마킹한 다음에 달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합참은 군사기밀 노출우려를 들어 거부하고 있으나 2002년 연평해전 당시 교신기록은 물론 군 작전내용까지도 일반에 공개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고 당시의 교신기록 공개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감추기 위한 의도라고 밖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할 것입니다.

아울러 2010년 당시 국방부가 <스모킹건>이라고 발표한 소위 ‘1번 어뢰’ 또한 정보공개 청구 요청서에 적시한 바와 같이 일반인에게 공개될 수 있도록 적절히 조치하여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천안함은 평택 해군2함대에 거치하여 누구나 방문하여 볼 수 있도록 조치하였음에도 정작 ‘폭침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하는 ‘1번 어뢰’는 국방부 조사본부 밀실에 감추어 두는 것은 형평성 논리에도 맞지 않고 진실을 은폐하는 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1번 어뢰’ 역시 평택 2함대 천안함이 거치된 바로 옆 ‘기록관’내에 유리케이스에 넣어 비치함으로써 누구나 접근하여 관찰할 수 있도록 공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투명성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잡음을 줄일 수 있는 바람직한 조치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의구심과 함께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2010 천안함 침몰 사건’의 진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과정을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져 또 다시 그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소중한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바라오며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소원합니다.

2017. 10. 16

前 천안함 민군합동 조사위원
신상철 드립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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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문가,북 EMP 공격시 미국 치명적 피해

미국 전문가,북 EMP 공격시 미국 치명적 피해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10/17 [05: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6년 6월 22일 첫번째로 시험발사된 화성-10. 상승비행 중에 150-160km 고도에서 폭발됨. 한편 미국의 정찰위성들은 해수면으로부터 160-2,000km 고도에 있는 저지구궤도를 타고 지구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자주시보

 

북이 핵폭탄을 이용해 전자기파 공격을 할 경우 미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유아시아(RFA) 방송에 따르면 최근 미연방하원 국토안보위원회에서 마련한 청문회에서 전자기파 위원단(EMP Commission) 소속 전문가들이 “미국에서 전자기파(EMP) 공격이 이뤄질 경우 심각한 전력망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의 핵공격 위협이 높아지자 국토안보위원회에서 윌리엄 그래험 전 전자기파 위원단 단장과 피터 빈센트 프라이 전 수석연구원을 불러 북의 핵무기로 인한 전자기파의 파괴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두 전문가는 청문회에서 또 북한은 이미 60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으며, 북한이 개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미국의 덴버와 시카고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서, 사실상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라이 박사는 “우리는 북이 미국을 상대로 전자기파 공격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지난 9월에 실시한 수소탄 핵실험은 250킬로톤의 위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정도면 미국뿐만 아니라 북미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전력공급 중단은 물론 교통망과 통신망도 모두 마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자기파 위원단 설립자 중 한 명인 커트 웰던 하원의원은 “전자기파 공격이 이뤄지면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기기가 작동을 멈추게 돼, 비행기가 추락하고 자동차와 기차가 멈출 뿐만 아니라 전력망이 끊어지고 기반시설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자기파 위원단은 지난 2000년 미 의회 안에 설치된 기구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모여 전자기파로 인한 위험성을 의원들에게 알려오다 지난 9월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해체됐다. 

 

앞서 북 노동신문은 지난 9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 현지지도하면서 “분열 및 열핵장약을 비롯한 수소탄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100% 국산화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공정으로부터 부분품 정밀가공 및 조립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공정들이 주체화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강위력한 핵무기들을 마음먹은 대로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핵탄 위력을 타격 대상에 따라 수십 kt급으로부터 수백 kt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우리(북)의 수소탄은 거대한 살상파괴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핵무기 성능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노동신문은 4일 김책공업종합대학 학부장 김성원이 작성한 '핵무기의 EMP 위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일반적으로 핵탄이 30∼100㎞의 높이에서 폭발할 때 생기는 강한 전자기임풀스(북한의 EMP 표기)에 의하여 전자기구, 전기기계, 전자기 계통 등이 심하게 손상되거나 전력 케이블, 안전기 등이 파손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EMP가) 지면 가까이에 이르면서 10만V/m(미터당 전압·전자파의 세기 단위) 이상의 강한 전기마당(전기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에 의해 통신시설들과 전력계통들이 파괴되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어제(16일)부터 항공기 70여 대를 탑재하고 핵잠수함과 이지스 구축함까지 거느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호 미 항모 전단이 한반도 해상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훈련에는 한국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비롯해 양국 함정 40여 척이 투입됐으며, 동해에선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반도 유사시 북의 핵 시설 타격 훈련이, 서해에선 북 특수작전군 침투를 저지하는 훈련이 진행된다.

 

급기야 예정된 훈련이 재개되고 미국이 핵 전략자산들을 한반도 인근으로 속속들이 들여왔다.

 

이에 북이 군사적 대응조치를 단행하게 될 우려가 높아졌다. 그 대응 수준을 가늠할 수 없지만 이미 북이 공언한대로 태평양을 향한 수소탄 핵시험, 괌 포위사격 뿐만 아니라 미국 전문가들도 경고하고 있는 ‘초강력 EMP 공격’까지 이를 수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 운명이 풍전등화인 만큼 오히려 북미간의 군사적 대결을 부추기는 행동을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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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앞 무릎 꿇고 사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게인 MBC⑩] 장준성 MBC 노조 교섭쟁의국장 " '노영방송' MBC 되찾아야 하는 이유"

17.10.16 18:41최종업데이트17.10.16 20:40
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열 번째 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노조 민실위 간사로 활동하며 MBC 보도를 비판·고발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던 언론노조 MBC본부 장준성 교섭쟁의국장의 글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노동조합 이성주 위원장이 MBC 경영진 대신 사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당시 MBC는 유족 혐오 보도 등 이른바 '보도 참사'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노동조합 이성주 위원장이 MBC 경영진 대신 사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당시 MBC는 유족 혐오 보도 등 이른바 '보도 참사'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세월호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8일 오후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MBC 보도행태 규탄 및 선체인양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사태, 국정조사때 MBC 관계자 불출석, 농성가족 '불법집단' 매도 등 그동안의 MBC보도 문제와 함께 최근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가족들이 생존학생들의 대학특례를 요구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 "MBC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권우성


1. 

나는 '세월호 리본'을 단 한 번도 단 적이 없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나는 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였다. MBC의 세월호 보도 참사를 기록하고 고발하는 보도 민실위 간사였다. 

그때 노동조합은 또 싸움을 시작했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빡빡 삭발하고 경영진 대신 무릎 꿇고 사죄했다. 분향소를 찾아 안광한, 김장겸 사장 등이 마땅히 들어야 할 욕을 대신 듣고 사죄했다. 보도 참사를 기록한 'MBC 세월호 보도 백서'를 국회와 언론단체에 배포하며 대대적 공론화에 나섰다. 

당시 경영진은 그런 우리를 조롱하고 비아냥댔다. 유족 폄훼·혐오 보도를 끝까지 이어갔다. "현장 기자들이 발제를 하지 않아 몇몇 정부 비판 보도(안전행정부 국장 참사현장 기념촬영 논란 등)를 할 수 없었다"고 국회에 수차례 위증을 했다. 그래놓고 "MBC 세월호 보도가 국민 정서와 교감했다"며 자화자찬까지 했다. 노동조합을 향해 "야당 측에 회사 정보를 유출했다"고 비난했다. MBC 구성원의 릴레이 비판과 문제제기에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해고와 정직 등 중징계와 부당전보 피해자가 잇따라 또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는 물론 지금도 노동조합 집행부는 세월호 이야기를 어디 가서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결국 막지 못했다는 공범자 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리본을 달 자격마저 없다고 늘 생각했다. 

지난달 26일, 우리는 안산에서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을 만났다. "보도 참사 장본인들은 정작 따로 있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당신들 역시 공범이다", "MBC 정상화 이후, 보도 참사를 자행한 기간만큼 사과 방송과 정정 보도를 해야 한다"는 등의 질책을 들었다. 

어느 어머님이 물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식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싸움을 멈춘 것 아니냐." 우리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 어머님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가장 중요한 말을 빼먹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꼭 이기세요!"
 
  장준성 교섭쟁의국장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지난 9월7일)에 입장하는 김광동 이사를 향해 "MBC 경영진의 위법.범법행위를 비호.방조했다. 즉각 책임져라"고 외치고 있다.

장준성 교섭쟁의국장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지난 9월7일)에 입장하는 김광동 이사를 향해 "MBC 경영진의 위법.범법행위를 비호.방조했다. 즉각 책임져라"고 외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2. 

그 때 세월호 보도 참사의 주역, 김장겸 사장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정권 낙하산 사장은 낙하산 아니냐. 노조가 좋아하는(?) 사장이든 싫어하는 사장이든 결국 다 낙하산 아니냐"고. 맞다. MBC 역대 사장 대부분 '낙하산'이었다. 정치권력 영향권에서 자유로웠던 사장, '공영방송 정체성'에 충실했던 사장,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낙하산도 김재철-안광한-김장겸 같은 범법자·무법자, 불량 저질 낙하산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번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김장겸 같은 범법자-무법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이들과 유사한 '불량 저질 낙하산'들이 앞으로 다시는 내려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MBC노조 이창순 보도부위원장, 김인한 기술부위원장, 김민식 편재부위원장, 정세영 영상미술부위원장이 29일 오전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김재철 사장 해임'을 촉구하며 삭발단식농성에 돌입했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당시 삭발 장면ⓒ 조재현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당시.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3. 

MBC는 원래 사장이 크게 중요한 회사가 아니었다. 엔지니어, 아나운서, 촬영감독, 프로듀서, 방송경영, 편집자, 취재기자, 영상기자, 디자이너. 모든 직군이 "MBC는 너와 나의 회사, 우리 '오너'는 무조건 시청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책에나 쓰여 있는, '주인의식'이 있는 종사자들이었다. 마치 협동조합처럼.

그래서 기회가 올 때마다 노동조합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노동조합의 가치는 곧 종사자의 '밥줄'이었다. 공정방송-편성독립-종사자의 자율과 개성, 창의 보장-시청자의 권익 실현.

어느 누가 사장으로 와도 공정방송을 보장하는 노사 단체협약으로 일터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회사 재정이 어렵다고 하면 임금을 오히려 깎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노조원들이었다. 그만큼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노조 장악 방송, 즉 '노영방송'이라고 공격했지만, 정확하게는 종사자, 사원들의 방송-'사영방송'-, 시청자의 방송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노영방송 MBC'를 되찾아야 한다. 

4.
 
MB정부 국정원 'MBC장악 음모' 기사 살펴보는 조합원들 언론노조 MBC본부 총파업 11일차인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 사옥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출연자 및 프로그램 퇴출 사례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는 가운데, 조합원들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MBC장악 음모를 다룬 총파업 특보를 살펴보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출연자 및 프로그램 퇴출 사례 발표 기자회견.ⓒ 권우성


2010년. 국정원 '공영방송 장악' 지시 문건에 따라 MBC의 조직 문화를 파괴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MBC 사장 등 경영진이 국정원의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부인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들이다. 

실제로 이 범법자들은 단체협약을 일방 파기하고 노동조합 탄압에 나섰다. 이들의 국정원 문건 '실행' 작업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언론사상 초유의 부당 징계와 유배, 보직을 미끼로 한 노조 탈퇴 종용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2000명을 넘겼던 조합원 숫자(전국 기준)가 1600명까지 떨어졌다. 

물론 저들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노동조합은 망하지 않았다. 2012년 170일 파업과 대선 이후 패배감이 엄습했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서울과 지역에서 노동조합을 맡겠다고 나섰다. 온갖 징계와 불이익으로 너덜너덜해진 사람, 경력 관리 따위 포기한 사람, 2년간 지역 지부장을 하다 서울로 올라와 또 2년을 희생하는 사람,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네가 거절 못하니까 나도 거절 못한다는 사람 등등이 노조 집행부로 모였다. 

"이것들 봐라?" 경영진은 악에 받쳤다. 세월호 보도 참사를 계기로 공세는 더 악랄해졌다. 2015년 새로 출범한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해 경영진은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일방 해지 조치'를 내렸다. 그 누구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일할 수 없게, 원래 부서로 복귀 발령을 내버린 것이다.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조합에 투신했던 '고참' 노조 위원장은 1인 지명 파업을 시작했다. 나머지 집행부는 육아휴직으로 버텼다. 법에 따라 무조건 휴직이 가능하니까, 육아 대신 조합 일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노동조합은 5년을 버텼다. 조합원 숫자는 400명 넘게 빠져 나갔지만(2000명→1600명), "해직자 복직까지 우리가 함께 책임지겠다", "이용마를 반드시 제자리로 되돌려놓겠다", "MBC를 언젠가 재건하겠다"는 조합원들이 끝까지 견뎠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9월 8일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 권우성


2017년 10월 현재, 우리 노동조합은 조합원 수 2000명을 다시 넘겼다. 6개월 전만 해도 꿈도 못 꿨지만, 상암동 MBC사옥 로비를 가득 채워 집회도 열게 됐다. 남은 것은 이제, 이기는 것뿐이다. 2000명 조합원의 목표는 문화방송의 '문화'를 재건하는 것이다. 원칙을 세워 공영방송이 (세월호, 최순실 때처럼) '공영흉기'가 되는 비극을 막는 것이다. 권력과 결탁하고 "때에 맞게 적절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합리화로 온갖 불법과 악행을 은폐·비호해온 경영진을 몰아내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이완용은 120년 전 독립문(獨立門) 건립의 주역이었다. 초대 독립협회장이던 그는 독립문 현판 작업까지 참여했다. 하지만 이후 친미파, 친러파, 그리고 친일파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이완용은 "때에 맞게 적절함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때에 맞게 적절히' 바뀌지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잃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완용들'의 자기 합리화 끝엔, 1910년이 있었다. 교훈은 이렇게 반복된다.
 
 장준성 언론노조MBC본부 쟁의교섭국장

장준성 언론노조MBC본부 쟁의교섭국장ⓒ 장준성


장준성 국장은 2006년 MBC 기자로 입사해 2014년~2015년 10기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민실위 간사(상근), 2016년 11기 노동조합 SNS 홍보국장(비상근), 2017년 현 12기 노동조합 교섭쟁의국장(상근)을 맡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보도를 비판·고발하는 노동조합 민실위 간사로 활동하다 "회사와 특정 개인의 정보를 도용하고 외부에 유출했다"는 '죄목'으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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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부르는 한미 대규모 해상훈련 즉각 중단하라"

전쟁반대국민행동, 훈련 끝나는 20일까지 무기한 긴급 평화행동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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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6  17: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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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은 한미 연합해상훈련이  시작된 16일 광화문광장에서 긴급 평화기자회견을 열어 훈련 중단과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참가하는 한·미연합 해상훈련이 16일부터 시작됐다. 20일까지 동·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해역에서 진행되는 이 훈련에서는 북한을 겨냥한 항모강습단 훈련과 연합 대특수전부대 작전훈련이 실시된다.

반전평화 활동을 하는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평화행동)은 이날 시작된 한미연합 해상훈련이 미국의 핵잠수함과 핵항모 강습단이 동원된 대북 선제공격 훈련으로서 전쟁을 부르는 위험이 있다며, 훈련 중단과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평화행동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훈련이 끝나는 20일까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은 매일 '평화의 프레스센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부산, 광주, 대구 등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훈련에 대해 "미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무용론'과 더불어 공공연하게 '군사적전쟁 옵션'을 만지작거리는 것과 동시에,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핵항공모함 등 선제공격용 전략무기들을 집중시켜 놓고 북한 지휘부 타격 및 제거 훈련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말로는 군사훈련이지만 실제로는 언제라도 선제공격, 전쟁을 감행할 수 있는 정도의 무력을 집중시킨 군사적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일부 외신이 보도한대로 지난 9월 말 B-1B 전략폭격기가 NLL을 넘어 북상한 것과 같이 이번 핵 항모가 공해를 통해 원산 앞까지 진출할 경우 이미 괌포위 사격과 B-1B 격추를 예고한 북한과의 심각한 군사적 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완전한 파괴', '군사적 옵션 사용'을 거론하는 가운데 무력충돌을 유발하는 군사행동의 수위가 매우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한반도의 위험성은 과거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하다"고 거듭 우려를 표시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말로만 '전쟁 반대'를 반복할 뿐, 실제로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동원한 무력시위에 적극 협력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말로만 평화 운운하며 제재와 군사행동에 협력할 것이 아니라 대북 적대정책을 거부하고 공동선언 이행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또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은 "미국 등 강대국들이 핵, 전략무기를 독점하고 이를 휘두르며 대북제재와 군사적 압박, 일방적인 적대정책과 주권침해를 가한 것"에 있다며, 미국 정부가 지금 당장 제재와 한미연합 전쟁연습 등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충목 평화행동 상임대표는 "이런 식의 한미동맹이라면 전쟁동맹에 다름 아니"라고 일갈하고는 "오는 11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11월 4일 광화문을 포함해 반트럼프 국민투쟁을 전개하겠다.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국민들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고 말했다.

최나영 민중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은 "얼마전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트럼프가 갖고 있는 권력은 없었다. 트럼프에게는 세계의 인류를 대량학살할 수 있는 핵단추를 누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위험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성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민중이 원하는 건 오로지 평화이다. 왜 기성 정치권은 미국을 향해 너희가 물러서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이란과의 핵협상을 무위로 돌려버린 미국을 보면서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라고 되물었다.

   
▲ 이날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경찰 헬기가 인근 KT빌딩 주변을 선회 비행하며 소음을 일으켜 눈총을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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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발광전략 뒤에 무엇이 보이는가?

[개벽예감 270] 트럼프의 발광전략 뒤에 무엇이 보이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10/16 [11:3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

2. 트럼프는 왜 호호백발 늙은이를 백악관으로 불렀을까?

3.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

 

1.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

 

백악관 내부사정은 비밀장막에 가려져 세상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 내부사정을 엿볼 수 있는 틈새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백악관 관리들이 미국 언론매체들에게 가끔 전해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백악관 내부사정을 엿볼 수 있는 틈새로 된다. 그러므로 백악관 내부사정을 알려면, 그런 틈새를 찾아내어 분석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백악관 내부사정을 엿볼 수 있는 틈새가 벌어진 날은 2017년 10월 10일이었다. 그 날을 며칠 앞두고 백악관은 조선이 조선로동당 창건 72주년을 맞아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해안의 중간쯤 되는 북태평양 상공으로 발사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면서, 혹시 발사징후라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미국군 감시정찰수단들을 조선 주변에 집결시켰다. 그러나 미국군 감시정찰수단들은 10월 9일 밤이 다 지나도록 발사징후를 찾아내지 못하였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10월 10일 아침이 밝았다. 

워싱턴이 10월 10일 아침을 맞은 시각, 조선에서는 조선로동당 창건 72주년을 경축하는 축포가 평양을 비롯한 각 도소재지들에서 밤하늘을 수놓으며 터져오르고 있었다. 조선에서 축포가 터져오른 시각, 백악관에서는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백악관 상황실을 촬영한 것이다. 백악관에는 이런 상황실이 몇 개 더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국가안보협의회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국가안보회의를 정기적으로 소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화요일 오전에 소집하는 것이 관례인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는 언제라도 긴급히 소집된다. 2017년 10월 10일 화요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도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되었다. 백악관 상황실은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백악관 지하층에 건설되었으며, 고도의 보안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원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는 거의 매주 화요일마다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meeting)를 진행하므로, 백악관 대변인은 그런 일상적인 국가안보회의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런데 2017년 10월 10일 오전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 진행된 국가안보회의는 예외였다. 백악관 대변인은 10월 10일 국가안보회의에 관한 성명을 이례적으로 발표하여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백악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할 정도라면, 그 날 진행된 국가안보회의는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여느 국가안보회의들과는 격이 다른 특별회의였던 것이 분명하다. 열핵탄두기폭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계속 얻어맞으며 국가안보파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백악관은 그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은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지난 10월 10일 오전에 소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지난 10월 10일에 진행된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관리들과 함께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과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 합참의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그 보고내용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성명에 따르면, “보고와 토론은 북조선의 어떤 공격에도 대처하는 몇 가지 선택방안들, 또는 필요하다면, 북조선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몇 가지 선택방안들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은 위에 인용한 한 줄의 문장이 전부지만, 그 짤막한 성명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조미핵대결에 대처하기 위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위에 인용한 문장에 숨겨진 속뜻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보름 전의 기억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블룸벅 뉴스> 2017년 9월 25일부 보도에 그 기억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보도에 따르면,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국가안보보좌관은 워싱턴에 있는 전쟁연구원(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이 주최한 공개행사에서 “북조선과의 위기를 해소할 선택방안 4~5개가 준비되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개는 험악하다(ugly)”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말한 ‘험악한 선택방안’이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이 조선과 무력충돌을 벌이는 군사적 선택방안(military option)을 뜻한다.

미국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이 조미핵대결에 대처할 군사적 선택방안들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행사에서 언급하였다면,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그 선택방안들이 보고되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미 토론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맥매스터 국가안보좌관이 위와 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때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10월 10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국방장관과 던포드 합참의장으로부터 조미핵대결에 대처하는 군사적 선택방안들을 보고받고, 국가안보관리들과 함께 그 문제를 토론하였다는 백악관 대변인 성명이 나온 것이다. 불과 보름 사이에 미국군 수뇌부가 또 다른 군사적 선택방안들을 추가로 작성하여 10월 10일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였다는 뜻일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조섭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을 촬영한 것이다. 2017년 10월 10일 오전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국방장관과 던포드 합참의장으로부터 조미핵대결에 대처하는 선택방안들을 보고받고, 국가안보관리들과 함께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다. 이 회의는 조미핵대결의 향후방향을 예견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9월 25일 맥매스터의 발언내용과 10월 10일 백악관 대변인 성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로 들린다. 이런 불일치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백악관 대변인 성명을 다시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성명에 나온, “북조선의 어떤 공격에도 대처하는 몇 가지 선택방안들(a range of options to response to any form of North Korean aggression)”은 지난 9월 25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공개행사에서 언급한, 4~5개의 선택방안들 가운데서 몇 가지 험악한 선택방안들, 다시 말해서 조선과의 무력충돌을 상정한 군사적 선택방안들이다. 

 

그런데 백악관 대변인 성명에 들어있는 두 번째 문장은 좀 난해하다. “필요하다면, 북조선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몇 가지 선택방안들(if necessary, a range of options to prevent North Korea from threatening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with nuclear weapons)”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위에 인용한 두 문장들 사이에 “또는(or)”이라는 부사가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또는이라는 부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표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백악관 대변인 성명에 들어있는 또는이라는 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국가안보관리들이 매티스 국방장관과 던포드 합참의장으로부터 군사적 선택방안들과 비군사적 선택방안들을 각각 보고받고, 그 두 종의 선택방안들 가운데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토론을 벌였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국가안보관리들이 토론한 비군사적 선택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조선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비군사적 선택방안, 다시 말해서, 미국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diplomatic option)이다. 

 

그런데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은 외교수장인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이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고 토론해야 마땅한 것인데, 왜 군수뇌들인 매티스 국방장관과 던포드 합참의장이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고 토론하였을까?  그 까닭은 미국군 수뇌부가 그 날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한 외교적 선택방안이 군사문제에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0월 10일 오전 백악관 상황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재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군사문제에 직결된 외교적 선택방안이 집중적으로 토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보다 사흘 앞서 2017년 10월 7일 오후 12시 40분에  트위터에 이런 문장을 올려놓았다. “전임 대통령들과 역대 행정부들은 지난 25년 동안 북조선과 대화하였고, 합의에 도달하였으며, 많은 돈을 지불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조선은) 합의문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위반하여, 미국측 협상대표들을 우롱하였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한 가지만은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Sorry, but only one thing will work!)” 

이 인용문에 나온, ‘효과를 보게 될 한 가지 선택방안’이 무엇인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었는데, 지난 10월 10일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 관한 백악관 대변인 성명이 그 궁금증을 풀어줄 결정적인 단서로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 있게 말한 ‘효과를 보게 될 한 가지 선택방안’은 군사문제에 직결된 외교적 선택방안인 것이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7년 10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마친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헨리 키씬저를 접견하는 장면이다. 키씬저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연이어 역임하며 미국의 국가안보를 주물렀던 고위관료출신이다. 올해 94세인 키씬저는 심신이 노쇠하여 인식능력이 저하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관계에 관한 심층정보도 접하지 못하는 퇴역관료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그를 왜 백악관으로 부른 것일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트럼프는 왜 호호백발 늙은이를 백악관으로 불렀을까?

 

2017년 10월 10일 오전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끝난 직후,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백악관 정문에 들어서는 호호백발 늙은이가 있었다.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였다. 2017년 10월 10일 오전 11시 48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키씬저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그와 함께 짤막한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취재기자들에게 “실패한 오바마케어(Obamacare)”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바마케어는 오바마 행정부가 만들어놓은 건강보험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을 폐지하려고 한다. 키씬저는 노인건강보험문제를 걱정하는 미국 노인층의 대표자가 아니라,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연이어 역임하며 미국의 국가안보를 주물렀던 고위관료출신이다. <사진 3> 

 

키씬저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케어를 들먹이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가 오바마케어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어 키씬저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양로원 침대 위에서 생의 마지막 시기를 정리하고 있어야할 호호백발 늙은이에게서 무슨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있다고, 뉴욕에 사는 그를 백악관으로 부른 것일까? 

 

언론매체들은 그 날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선택방안에 관한 자문을 구하려고 키씬저를 만났을 것으로 추측하였지만, 그건 빗나간 추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키씬저가 백악관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을 토론하였으므로, 그 문제와 관련하여 키씬저의 자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욱이 몇 달 전 키씬저가 조미핵대결 해법이라고 하면서 언론매체에 기고한 내용은 황당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키씬저는 조미핵대결 해법에 관한 견해를 담은 글을 <월스트릿저널> 2017년 8월 11일부에 발표했는데, ‘북조선 위기를 해결하는 방도’라는 제목에 붙어 있다. 올해 94세인 키씬저는 심신이 노쇠하여 인식능력이 저하되었을 뿐 아니라, 조미핵대결과 관련된 심층정보도 접하지 못하는 퇴역관료인데, 그런 주제에 조미핵대결 해법에 관한 글을 언론에 발표한 것 자체가 주책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어떤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조미핵대결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 글을 발표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 

 

첫째, 키씬저는 그 글에서 조선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아직 갖지 못했다고 전제하고 논지를 전개하였는데, 그런 전제는 조선의 핵무력이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무지가 만들어낸 잘못된 전제 위에서 전개한 논지가 엉망진창으로 엉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둘째, 키씬저는 그 글에서 미국과 중국이 조선의 비핵화에 공동의 절실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미국이 중국과 손잡고 조선을 비핵화할 수 있으며, 또 비핵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야말로 오늘날 전례 없이 복잡하게 꼬인 조중관계, 조미관계, 미중관계를 알지 못하는 허튼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키씬저는 그 글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하여 조선을 비핵화하는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 언명하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 2017년 7월 29일부가 키씬저의 ‘해법’에 대해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의 정권이 붕괴되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중국에게 약속하고, 중국은 그 약속을 믿고 미국과 서로 협력하여 조선을 비핵화할 수 있다는 것이 키씬저의 ‘해법’이라고 한다.  요컨대, 미국이 중국에게 조선의 비핵화가 실현된 이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약속하면, 그 약속을 믿은 중국이 안심하고 미국의 조선정권붕괴책동에 적극 호응할 것이고, 그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공조로 조선의 정권을 붕괴시켜 조선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해법’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하여 조선의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호호백발 늙은이가 노망을 부린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더욱이 미국이 중국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를 약속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설령 미국이 중국에게 철군을 약속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중국은 국제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리는 데서 악명 높은 미국의 철군약속을 믿어줄 만큼 어리석지 않다. 

 

2017년 10월 10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진행한 기자회견 중에 키씬저는 한 마디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대통령님, 나는 이런 기회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집무실에 들어서는 것은 언제나 대단한 영예로 됩니다. 지금 여기서 나는 건설적이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매우 위대한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진보와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6년 12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당시 대통령당선인의 구두친서를 전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아온 헨리 키씬저를 접견하는 장면이다. 지난날 요직에 있을 때, 키씬저는 미국의 중국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였는데,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중국통'이라는 자기의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초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하기에 앞서, '중국통'인 키씬저를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정책에 관한 조언을 들었던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키씬저가 언급한 “건설적이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매우 위대한 기회”라는 말은 미중관계의 발전을 염두에 둔 말이다. 사실 키씬저의 머릿속은 미중관계로 가득 차 있다. 지난날 요직에 있을 때 그는 미국의 중국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였는데,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중국통’이라는 자기의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4월 2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16년 11월 중순 자기 사위 재럿 쿠쉬너(Jared C. Kushner)와 함께 트럼프 타워에서 키씬저를 만났고, 그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 소통하는 비공식 연락통로를 개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트럼프는 키씬저에게 자신의 구두친서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를 베이징에 파견하였다. 그 부탁을 받은 키씬저는 2016년 12월 2일 베이징에 도착하여 시진핑 주석을 면담하고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구두친서를 전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초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문기에 앞서, ‘중국통’인 키씬저를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정책에 관한 조언을 들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3.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

 

지금으로부터 근 석 달 전 미국 국방부에서 진행된 국가안보회의가 요즈음 뒤늦게 미국 언론매체들의 관심을 끌었다. <CNN> 2017년 10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2017년 7월 20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 있는, ‘탱크(tank)’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보안회의실(secure conference room)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소집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고위급 국가안보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되기 전날인 7월 19일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관해 토론한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되었다.

 

<NBC> 2017년 10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 마익 펜스(Michael R. Pence) 부통령, 라인스 프리버스(Reinhold R. Priebus)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션 스파이써(Sean M. Spicer) 당시 백악관 대변인, 케이스 쉴러(Keith Shiller) 당시 대통령 집무실장, 스티브 므누친(Steven T. Mnuchin) 재무장관, 스티브 배넌(Steven K. Bannon)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 재럿 쿠쉬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참석하였고, 군수뇌부 성원들로는 매티스 국방장관, 패트릭 새너헌(Patrick M. Shanahan) 국방차관, 던포드 합참의장, 폴 쎌바(Paul J. Selva) 합참부의장이 참석하였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텍사스주에 머물고 있어서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중앙정보국장은 안보토론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콜로라도주 애스픈에 머물고 있었는데, 맥매스터 국가안보좌관 이름이 왜 보도기사에서 빠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미국 국방부 청사에 있는 보안회의실이다. 공식적으로는 미국군 합참본부 회의실이라고 하는데, '탱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백악관 상황실과 마찬가지로 이 보안회의실도 핵공격에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지하층에 건설되었으며, 고도의 보안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2017년 7월 20일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소집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고위급 국가안보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평소에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되는 국가안보회의가 그 날따라 이례적으로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진행된 것은 미국군 수뇌부로부터 어떤 중대한 군사문제와 관련한 보고를 듣고,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언론보도내용을 분석하면, 그 회의에서 미국군 수뇌부는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 전개상황, 그리고 주한미국군 병력수와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행에 관한 심층정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고,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을 왜 실행할 수 없는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차근차근 설명하여 그를 이해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 언론매체들이 근 석 달 전에 진행된 국가안보회의에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그 회의 직후 다른 고위관리들과 자리를 함께한 사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moron)”라고 모욕하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큰 파문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CNN> 보도에 따르면, 7월 20일에 진행된 국가안보회의는 몇 주 전부터 예정된 회의였다고 하는데, 이런 사정을 보면, 그 회의는 조선이 2017년 7월 4일에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선이 화성-14형을 발사하자 충격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몇 주 후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소집한다고 미리 통보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관례적으로 국가안보회의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줄곧 진행되어오는데, 지난 7월 20일에는 이례적으로 미국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이것은 어떤 중대한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군 수뇌부의 보고를 듣고,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음을 말해준다.  

 

위에 인용한 <CNN> 보도에 따르면, 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 사령관들에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계속 들이대는 바람에 회의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거의 같은 시점인 지난 7월 중순 이란 핵합의에 관해 토론한 국가안보회의 분위기와 매우 달랐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10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중순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란 핵합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고 발언한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그리고 다른 고위관리들의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서 “격노하였고(he was incensed)”, “발작을 일으켰다(he threw a fit)”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017년 10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를 불인정한다고 발표했는데, 그는 이미 지난 7월 중순 그 합의를 불인정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것이다. <사진 6>  

 

▲ <사진 6> 위쪽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표(signiture)를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사람의 정신상태는 필체에 나타나기 마련인데, 매우 특이하게 보이는 그의 수표는 공격적이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발광전략을 들이대며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와 대립 속에 빠뜨리고 있는데, 다혈질이고 경망스러운 그는 때로 화를 참지 못하여 유사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를 미치광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외상후 분노조절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라는 정신질환의 초기단계에 들어선 듯하다. 그러므로 백악관 주치의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를 백악관으로 불러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정밀검진해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 미국인들이 조선의 수소탄보다 더 무서워하는 공포의 대상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미치광이로 낙인이 찍힌 그가 갑자기 발작증세를 일으키면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미치광이 대통령에게 핵탄발사통제권을 넘겨주고 날마다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하는 미국의 비극적 현실은 너무 참담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에 인용한 몇 가지 보도내용들을 종합하면, 지난 7월 중순 이란 핵합의와 관련하여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되었고, 7월 19일에는 아프가니스탄전쟁과 관련하여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되었고, 7월 20일에는 어떤 다른 국가안보현안과 관련하여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 20일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토론된 국가안보현안은 무엇일까? 

위에 인용한 <CNN> 보도에 따르면, 7월 20일 국가안보회의에서 “미국 국방부의 보고초점은 세계 각 지역에 있는 군대 수준에 대한 미국의 조약들을 실행하는 문제들로부터 미국의 국익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 있었다”고 한다. 이 인용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군 수뇌부가 “세계 각 지역에 있는 군대 수준에 대한 미국의 조약들을 실행하는 문제들(U.S. treaty commitments to troop levels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을 국가안보회의에서 보고하였고, 그 문제를 토론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군대 수준(troop level)이라는 말은 해외주둔 미국군 병력수라는 뜻이고, 미국의 조약들이라는 말은 미국과 동맹국이 맺은 상호방위조약이라는 뜻이다. <NBC> 2017년 10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7월 20일 국가안보회의에서는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 및 군사작전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고 한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참담하고 있다. 그래서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지난 6월 24일 <MSNBC>와 진행한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도 빠짐없이 조선에 관해 자신에게 묻고,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다고 하면서, 조선으로부터 오는 국가안보위협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조선 문제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지난 7월 20일에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군사문제들이 폭넓게 토론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미국이 어떻게 하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국가안보현안에 직결된 군사문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토론된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지난 7월 20일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급 국가안보관리들은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진행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미국군 수뇌부는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 전개상황, 그리고 주한미국군 병력수와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행에 관한 심층정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고, 군사문제에 무지한 그가 미국군 수뇌부에게 단도직입적인 질문들을 계속 들이대는 바람에 회의 분위기가 썰렁해졌던 것이다. 

추측컨대, 그 날 회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선제타격으로 조선의 핵시설들을 파괴할 수는 없을까 또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따위의 무식한 질문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무식한 질문이 아니고서야 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질 까닭이 없다. 그 회의에서 미국군 수뇌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꾸 물어보는 무식한 질문들에 대해 차근차근 답변하면서 그를 이해시켜야 했었는데, 그러는 바람에 회의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진 것으로 보인다. <NBC> 2017년 10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7월 20일 국가안보회의는 장시간 진행되었다고 한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들을 고찰하면, 2017년 7월 20일 국방부 보안회의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미국군 수뇌부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을 왜 실행할 수 없는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차근차근 설명하여 그를 이해시켰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회의에 참석하였던 고위급 국가안보관리들 중에 스티브 배넌이 있었다.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그 회의에 참석하였던 그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이 왜 불가능한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미국군 수뇌부가 설명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 8월 16일 온라인매체 <미국의 전망(American Prospect)>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사적 해결은 없다. 그런 건 잊어버려라. 서울 인구 1천만 명이 재래식 무기 공격으로 전쟁 개시 30분 만에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는 방정식을 누군가 풀어주기 전에는 나는 당신(대담자를 지칭함-옮긴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 군사적 해결은 없다.”

배넌의 이 발언은 한반도 군사정세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내용이므로 비밀사항이 아니지만, 미국에게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이 없다는 사실은 비밀사항으로 될 수 있다. 배넌은 국가안보회의 중에 들은 그런 비밀사항을 미국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공개한 것으로 하여 한때 기밀누설자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미국의 국가안보관리들이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까지 포함된 모든 선택방안이 백악관 집무실 탁자 위에 놓여있다고 이따금씩 떠들어댄 것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은 실행될 수 없는 것이라는 비밀사항을 애써 감추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광전략을 어떻게 해서든지 안받침하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2017년 7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므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미국의 외교적 선택방안들만 남게 되었다. 그 때로부터 두 달 20일이 지난 10월 10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는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이 검토되었다. 위에서 인용한 백악관 대변인 성명에서 “필요하다면, 북조선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몇 가지 선택방안들”이 검토되었다고 언명한 것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이 검토되었음을 그런 문장으로 서술한 것이다.

그런데 10월 10일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을 보고한 것은 국무부가 아니라 국방부였다. 이것은 미국군 수뇌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사문제에 직결된 어떤 외교적 선택방안을 보고하였음을 의미하는데, 군사문제에 직결된 외교적 선택방안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선택방안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0월 10일 오전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 수뇌부로부터 한반도 철군문제를 보고받고,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회의에서 철군하기 위한 사전준비, 그리고 철군의 시기, 절차, 방법 등에 대해서도 토론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1977년 1월 지미 카터(Jimmy E. Carter Jr.)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한반도 철군문제를 토론한 때로부터 꼭 40년 만에 그 문제를 다시 토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제39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취임한 날로부터 나흘이 되던 1977년 1월 24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수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는 반대파의 저지공작을 돌파하지 못하고 철군계획을 접었지만, 집권한 직후부터 철군계획을 정력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때로부터 꼭 40년이 지난 2017년 10월 10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검토하였다. 지난날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전혀 받지 않았던 카터 행정부는 주한미국군을 자율적으로 철수하려고 하였는데, 오늘 조선의 초강력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받으며 국가안보파탄의 벼랑끝에 떠밀린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국군을 타율적으로 철수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40여 년 전 자율적 철군계획은 국가안보파탄문제와 전혀 무관하였으므로 미국 내부의 반대로 중단될 수 있었지만, 오늘날 타율적 철군계획은 국가안보파탄문제에 직결되었으므로 미국 내부의 반대가 있어도 중단할 수 없게 되었다. 40여 년 전에 제기되었던 철군문제와 오늘날 제기되는 철군문제는 그렇게 다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반도 철군문제를 토론하였으므로, 그 회의 직후부터 조선에 대한 백악관의 발언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존 켈리(John F. Kelly) 대통령 비서실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며칠 전 각각 서로 다른 자리에서 꺼내놓은 대조선발언을 들어보면, 그들의 발언방향이 이전과 상당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7년 10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존 켈리 비서실장은 보도 당일 예고 없이 백악관 기자실에 불쑥 들어섰다고 한다. 그가 비서실장에 취임한 이후 처음 백악관 기자실에 들어선 것은, 최근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린 자신의 사임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려는 행동이었는데, 취재기자들은 그런 그에게 조미핵대결에 관한 질문을 들이댔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조선의 핵위협 때문에 밤잠도 편히 잘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면서,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고 한다. “바로 지금 우리는 그 위협(조선의 핵위협을 뜻함-옮긴이)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현재 상태 이상으로 커지면...글쎄, 외교가 통하기를 희망해보자(But over time, if it grows beyond where it is today...well, let's hope diplomacy works)” 

켈리 비서실장의 이 발언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고 전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외교적 선택방안에 기대감을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7년 10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켈리 비서실장이 그렇게 발언한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백악관 출입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전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럴 만하다면, 나는 협상을 향하게 될 것이다(I would be open to negotiations if plausible).”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을 파괴하겠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을 늘어놓아 전 세계를 경악과 충격에 빠뜨린 발광전략의 장본인이 이제는 자기 입에서 협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극적인 상황반전을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받으며 국가안보파탄의 벼랑끝에 떠밀린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음을 자인한 것이며, 그로써 트럼프의 발광전략 뒤에서 마침내 철군징후가 보이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017년 10월 11일 러시아 <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리용호 조선 외무상은 최근 평양을 방문한 그 통신사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이 응답할 차례다. 우리 전체 군대와 전체 인민은 말로서가 아니라 오직 불우박(hail of fire)으로 미국인들과 최종 결산하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우리는 미국과 실제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길에서 결승점에 거의 도달하였다. 미국이 대조선압박정책을 단번에, 모조리(once and for all) 근절하지 않는 한, 우리의 핵무력은 결코 협상의제로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 서술한 여러 사실들을 살펴보면, 장장 25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이 마침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다는 ‘개벽예감’을 더욱 뚜렷이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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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차명계좌 실명전환 않고 4조4천억 싹 빼갔다

[단독] 이건희, 차명계좌 실명전환 않고 4조4천억 싹 빼갔다

등록 :2017-10-16 05:02수정 :2017-10-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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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삼성비자금 사과 “유익한 일에 사용” 약속했지만…
특검이 찾아낸 1천여개 계좌서 전액 출금
금융위, ‘조 단위’ 과징금·세금 회피 길터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가운데)과 사장단이 2008년 4월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당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가운데)과 사장단이 2008년 4월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당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검에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신탁한 것으로 이번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

 

2008년 4월22일 삼성그룹이 발표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및 경영쇄신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하지만 삼성과 이 회장이 약속한 차명계좌의 실명전환과 누락된 세금 납부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대 수조원이 국고에 환수되지 않고, 이 회장에게 건네진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2008년 조준웅 특검 시 확인된 은행별 차명계좌 및 실명전환 현황’ 자료를 보면, 64개 은행계좌 가운데 1개만 실명전환됐고 957개 증권계좌에선 실명전환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일반은행국 강선남 검사기획팀장은 “은행계좌 가운데 실명전환된 1개는 차명계좌주(임직원) 명의로 바뀐 것이고, 이건희 회장 소유 계좌는 실명전환하지 않고 모두 해지한 뒤 찾아갔다”고 밝혔다. 증권계좌 957개는 모두 전액 출금(이체)됐고 646개는 계좌가 폐쇄됐다. 나머지 311개는 유지되고는 있지만 잔고가 없거나 나중에 입금된 고객예탁금 이용료 등 소액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앞서 2008년 특검은 삼성 전·현직 임원 486명 명의로 된 주식(4조1009억원)과 예금(2930억원) 등 총 4조5천억원 규모의 1천여개 차명계좌를 찾아내고, 이를 이 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인정해줬다. 이번 금감원 자료에는 이 가운데 주식과 예금 약 4조4천억원을 이 회장이 찾아간 것으로 나와 있다.

 

삼성은 특검 수사 뒤인 2008년 말 기존 차명계좌에 있던 4조원 규모의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주식을 이 회장 앞으로 실명전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차명계좌를 해지한 뒤 이 회장 명의 계좌에 입금시킨 명의변경으로,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과징금과 세금 납부를 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실명전환과는 다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긴급명령)이 시행된 1993년 8월12일부터 ‘실명전환 의무기간’(같은 해 10월12일까지)이 지난 뒤 실명전환을 할 경우엔 그간 이자·배당수익의 최고 99%를 소득세·주민세로 원천징수하고, 긴급명령일 당시 자산 가액의 50%(의무기간 5년 이상 경과)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돼 있다. 결국 실명전환할 경우 이 회장은 많게는 조 단위로 추정되는 과징금과 세금을 정부에 납부해야 했지만, 이 회장은 명의변경을 통해 온전히 차명 재산 전액을 찾아갔다.

 

박용진 의원은 “금융당국이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법상 실명전환 의무가 있는 비실명자산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려줘, 이 회장이 차명 재산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찾아갈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누락된 세금과 과징금을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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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뉴욕 채널'이 어쩌면 북한과의 전쟁을 막을 최선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0/16 10:32
  • 수정일
    2017/10/16 10: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게시됨: 업데이트됨: 
KIM JONG UN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 피부과 전문의, 스포츠 의학 의사, 패키지 여행사 등이 입주한 한 빌딩에는 북한 외교관 두 명이 워싱턴 미국 관계자들과의 비공식 대화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 채널'로 알려진 이 사무실은 엄밀히 말하자면 유엔 주재 북한 대사관의 일부다. 1990년대 이 시설이 한창 사용됐을 당시, 이곳은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했다.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말폭탄과 전쟁 위협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이 곳은 서로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끔 사용하는 우편함에 가깝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폭탄' 전쟁이 격해지고 있지만, 두 나라 정부 당국자들이 핵무기 발사를 피하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뉴욕채널'은 비교적 조용하지만 향후 미국과 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될 수 있다. 두 나라가 이 채널을 실질적으로 이용할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말이다.

현재 이 '뉴욕 채널'을 담당하고 있는 북한 측 인사는 박성일 주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미국 담당)과 그를 보좌하는 권종근 참사관이다.

그들은 항상 함께 움직이는데, 여기에는 망명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들은 이른바 '2 트랙' 외교관(민간인)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 이들은 미국 정부 당국자와 북한의 비공식 대화에 개입하는 미국 민간인이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가끔 만난다. 그들은 가끔 언론에 한정된 북한 투어를 주선하는 일도 한다. 다만 허프포스트가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들은 응답을 하지 않았다.

2

이 빌딩 1층에는 홀마크 매장이 있다. 또 이 빌딩에는 바베이도스, 방글라데시, 네팔, 크로아티아, 앙골라, 페루, 마다가스카르, 시리아,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외교관들이 입주해있다.

홀마크의 매니저 KJ 싱은 "그들이 여기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논쟁적인 말을 할 때마다 한국과 일본 언론사 기자들이 빌딩 바깥에 모여든다고 싱은 말했다.

유엔 대표부에서 다른 직책을 맡기도 했던 박성일 차석대사는 미국 정부 당국자와 '2트랙' 외교관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다. 그는 북한 외무성 산하 기관인 군축평화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이 연구소는 미국 학자 및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국제 회의에 북한 대표로 참석해왔다.

북한 '뉴욕 채널' 담당자들과 만난 경험이 있는 한 '2트랙' 관계자들은 그들이 고국에 있는 지도자처럼 과장된 레토릭을 구사하지는 않는다고 전한다.

"그들은 프로파간다에 개입하지 않고, 책상을 쾅 치지도 않는다. 위협을 하지도 않는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관으로 일했던 로버트 칼린이 말했다. "미국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알아내는 게 그들의 임무다."

"썩 좋은 메시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을 대했던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것들은 신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을 담당했던 에반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가 말했다. 그는 지금도 뉴욕의 북한 측 관계자들을 만난다.

kim jong un

'뉴욕 채널'의 역사는 이것이 외교적 돌파구가 될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수십년 동안, 북한과 미국 외교관들은 "가끔씩 즉석에서" 만나곤 했다고 칼린은 전한다.

1993년 6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새 정부의 외교 정책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미국과 북한의 외교관들이 뉴욕에서 만났다. 이 만남은 큰 성과를 냈다. 두 나라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결정을 철회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 정권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데 합의했다.

이 뉴욕 회동이 성과를 내자 국무부 한국 전문 고위 외교관은 두 나라 간 새로운 채널을 개설할 것을 제안했다.

칼린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뉴욕 채널'은 그렇게 태어났으며, 이듬해 두 나라는 '제네바 합의'로 알려진 비핵화 협상을 마무리했다.

서로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뉴욕 채널'은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중국 베이징까지 14시간을 날아가지 않아도 외교관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예를 들어 현역 시절 칼린이 북한 정부 당국자와 비공식 대화를 원할 때, 그는 당시 북한 유엔대표부 미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뉴욕에 갈 이유를 만들어내면 됐다.

"가끔은 비공식적으로 거기에 가곤 했다. 그리고는 유엔주재 북한 대사에게 '친척을 보러 (뉴욕에) 갈 건데 커피나 한 잔 하면 어떻겠냐'고 말한다. 물론 친척을 보러 간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칼린이 회고했다. "그러면 그쪽도 무슨 뜻인지 아는 거다."

donald trump oval office

1999년이 되자 당시 국무부에 있던 리비어는 북한과 더 나은 개인적 관계를 만들 때가 됐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유엔 북한대표부 외교관 두 명이 국무부와의 회동을 위해 워싱턴에 왔을 때, 그는 그들을 워싱턴DC 인근 헌든(버지니아주)에 있는 자택으로 초청해 '집밥'을 대접했다. (리비어는 현 '뉴욕 채널' 담당자들의 전임자인 그 북한 당국자들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리비어는 "말하자면 나는 나한테 허가를 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속한 부서는 북한 외교관들이 워싱턴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가증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국무부는 북한 같은 제재대상 국가의 정부 당국자들의 미국 국내 여행을 금지한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했다간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리비어의 한국인 아내는 저녁 늦게까지 머물렀던 손님들을 위해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준비했다. 북한 외교관들은 리비어의 아내에게 자신들의 (구식으로 보이는) 음악 취향을 귀띔하기도 했다고 리비어는 회상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고 그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후퇴를 겪었다. 제네바 합의는 2003년 폐기됐다.

부시 정부에서 '뉴욕 채널'은 "거의 바싹 말랐다"고 칼린은 말했다. 국무부 당국자들은 더 이상 직접 북한 당국자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할 수 없었다. 외교관들은 "무언가 형편없는 일을 하지 않도록 (NSC) 경호원들 대동해야만 했다. 마치, 진짜 외교관처럼 말이다." 칼린이 말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시대가 이어졌다. 이 정책은 흔히 북한 정권이 협상에 임하기에 앞서 스스로 먼저 생각을 바꾸기를 기다린다는 전략으로 규정된다. 이 기간 동안 '뉴욕 채널'은 여전히 잠잠했으며, 대부분은 북한에 투옥된 미국인들에 대한 대화를 하는 데 사용됐다.

지난 7월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중단했다. 미국이 인권침해 혐의로 김정은 개인을 제재대상에 포함하면서다. 그러나 미국을 대한 경험이 있는 북한 대사는 당시에도 뉴욕에 머물며 '2트랙' 민간 외교관들을 만나왔다고 칼린이 말했다.

donald trump

지난 1월 트럼프가 취임했을 때, 뉴욕에 있는 북한 당국자들은 새 정부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그들은 미국 측 '2트랙' 관계자들에게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물었다.

어떻게 대응할지 미국 측 비공식 관계자들이 항상 확신을 가졌던 건 아니다. "모두가 아직까지는 트럼프를 알아보려고 하는 중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 부분에 있어서 모든 게 명확히 드러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군 태평양 사령관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랄프 코사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부터 취임 후 몇 주가 되기까지 북한은 미사일 시험을 중단해왔다. 미국 새 대통령이 긴장을 낮출 의향이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를 탐색했다. 북한 당국자는 코사에게 매년 진행되는 한국과 미국의 합동 군사훈련이 올해 '톤 다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 훈련들은 몇 년전에 계획이 세워지기 때문에 매년 열리는 훈련을 개최한다고 해서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려 했다." 코사가 말했다. 그러나 지난 3월 계획대로 훈련이 진행되자, 북한은 이를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올해 2월부터 북한은 모두 15번의 미사일 발사시험을 했다. 그 중에는 미국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도 있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는 뜻을 내비치자, 트럼프는 전쟁을 위협하는 모호한 위협을 트위터에 올리고 북한과의 협상은 시간 낭비라고 주장하며 미국 최고위직 외교관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joseph yun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요즘 '뉴욕 채널'은 대부분 '2트랙' 민간 외교관들 간의 회동으로 그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 북한의 유엔 대표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유일한 미국 정부 당국자는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뿐이라고 지난 8월 AP가 보도한 바 있다.

윤 특별대표와 박 차석대사의 협상은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송환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대화들이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진전됐다고 볼 만한 신호들은 없다.

핵 관련 협상의 부재는 결국 북한 핵 개발 가속화는, 물론 향후 협상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쥐도록 하는 데 기여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 미사일로 미국을 타격할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기까지, 또 우리가 확신을 갖게 됐다고 믿을 때까지 몇 번의 시험 발사를 더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코사가 말했다. "그들이 그 단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내 생각에는 북한이 입장을 바꿔서 '이제 대화를 하자'고 할 것이다. 그 다음 결국에는 자신들의 도발을 막으려면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만 하도록 시도할 것이다."

만약 그 때가 온다면, '뉴욕 채널'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곳에 있는 북한 외교관들은 그 임무의 적임자들이라고 리비어가 말했다.

"그들은 누구도 사지 않는 제품을 팔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끝내주게 해낸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A Secretive NYC Backchannel May Be The Best Hope For Avoiding War With North Korea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관련기사 : 북한이 '트럼프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미국 전문가들을 조용히 접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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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치우고 깨끗이 나가라'..온전한 반환 촉구

'깨끗이 치우고 깨끗이 나가라'..온전한 반환 촉구용산기지대책위, 연말까지 주4회 '환경·평화 용산행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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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5  13: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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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미군기지를 온전히 반환받기 위한 '2017 환경평화 용산행진'이 14일 첫 걸음을 내딛었다. 행진은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는 12월 31일까지 매주 4차례 계속 진행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용산미군기지의 연말 평택 이전이 석달도 채 남지 않은 14일 시민의 힘으로 용산미군기지를 온전히 반환받으려는 '2017 환경·평화 용산행진'이 첫 걸음을 내딛었다.

'용산미군기지 온전한 반환을 위한 대책위원회'(용산기지대책위)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역을 출발해 전쟁기념관과 지금은 폐쇄된 용산미군기지 2번게이트, 그리고 한미연합사 출입지역인 3번게이트에 이어 녹사평역 육교를 지나 이태원까지 약 2km 구간을 행진하면서 '용산 미군기지  온전한 반환'과 '미군의 책임있는 정화'를 요구하는 '2017 환경·평화 용산행진'을 시작했다.

용산기지대책위는 서울시민과 함께 △용산미군기지 내부오염 조사를 촉구하고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를 오염당사자인 주한미군이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차원에서 이 행진을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는 올해 12월 31일까지 매주 4회 용산기지 주변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남영역-전쟁기념관-2번게인트-한미연합사-이태원광장에 이르는 2.2km 구간을 돌며 해설과 규탄 퍼포먼스, 항의행동 등을 진행하며, 매 행진은 에스앤에스(SNS)로 생중계한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은 저녁 7시 30분부터 야간행진, 수요일은 오전 11시, 토요일은 오후 2시부터 행진을 시작하며, 11월 11일은 중간집중일로 정해 큰 규모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 남영역 사거리에서 진행된 2017 환경 평화 용산행진 시작 집회.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방진복과 안전모, 작업복을 차려입은 시민조사단이 한미합동으로 용산기지 내부 환경오염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행진단은 메가폰을 들고 시민과 미군기지 내 근무자들에게 용산기지 환경오염 실태조사의 필요성과 미국이 정화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행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기념관 앞에서 맞은 편 국방부를 향해 구호를 외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행진대열이 한미연합사로 향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깨끗이 치우고 깨끗이 나가라'. 한미연합사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내부오염 조사결과 전면 공개하고 용산기지 내부오염 전면 조사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태원으로 향하는 육교 위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태원으로 들어와 마무리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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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과 전쟁이 없는 나라 만들자!” 새 진보정당 ‘민중당’ 공식 출범

 

민중연합당-새민중정당 신설합당, 1만 명 모인 ‘광장 출범식’ 대대적으로 열려

신종훈 기자 sjh@vop.co.kr
발행 2017-10-15 19:24:58
수정 2017-10-15 19: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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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에서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 등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에서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 등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연합당과 새민중정당이 함께하는 대중적 진보정당 '민중당'이 15일 공식 출범했다.

민중당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전쟁없는 나라!' 슬로건을 내걸고 '광장 출범식'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앞서 새민중정당과 민중연합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신설합당을 위한 수임기구 합동회의에서 당명을 민중당으로 확정하고 기본정책과 당헌·당규, 대표단 구성을 결정하는 등 합당을 위한 모든 법적 절차를 완료했다.

민중당 상임대표로는 김종훈(울산 동구) 전 새민중정당 대표와 김창한 전 민중연합당 상임대표가 선출됐다. 원내대표는 윤종오(울산 북구) 의원이 맡기로 했다.

공동대표로는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치위원장,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솔 민중연합당 흙수저당 대표, 안주용 민중연합당 농민당 대표, 이화수 새민중정당 여성위원장, 장지화 민중연합당 엄마당 대표, 정태흥 민중연합당 공동대표 등이 각각 선임됐다.

양당은 지난 11일 합동 브리핑을 통해 "촛불혁명과 광장의 주역인 99% 민중의 직접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며 통합된 새 진보정당 창당의 당위성을 역설한 바 있다.

1만 당원 모인 민중당 '광장 출범식'
"민중 위한, 민중의 정치적 결사가 최대 정치적 과제"
"진보정치 성과와 한계 되돌아보며 촛불혁명 이어받겠다"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에서 당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에서 당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출범식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당원 1만여 명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당의 상징색인 주황색 옷을 입고 서로 악수하며 창당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었다. 또 청년 당원 100여 명은 다양한 '몸짓' 율동을 통해 행사의 활기를 북돋워줬다.

통일광장·민가협양심수후원회·민주노총·전농·한국진보연대 등 각계의 진보단체 인사들도 영상메시지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 투쟁이 한창인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도 연대를 당부하는 이석주 이장의 호소가 이어졌다.

민중당 지도부는 전국 15개 시·도당 위원장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평화·노동·직접정치 등 당의 지향점을 담은 출범 선언문을 낭독했다.

민중당은 "한국 정치는 1%도 되지 않는 외세와 수구 기득권 세력을 일방적으로 비호해왔다"며 "민중을 위한 정치, 민중 자신의 정치적 결사가 우리 앞에 놓인 최대 정치적 과제"라고 밝혔다.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에서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에서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어 "1천700만 민중의 총궐기로 이뤄낸 촛불혁명의 승리 이후에도 현실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다"며 "밖으로는 대미 추종외교와 대북 적대정책, 안으로는 재벌중심의 경제정책과 소수 엘리트들만의 정치체제는 여전히 굳건하다"고 지적했다.

민중당은 "20년 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민주개혁세력의 집권 이후에 이같은 추세는 오히려 더 심화됐다"며 "그 결과 한국사회는 무권리 상태에 놓인 청년과 비정규직노동자, 농민과 여성의 한숨으로 가득차게 됐고 한반도 평화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지난날 거리를 가득 메운 민주화 함성과 자주민주통일운동을 계승하고, 성장과 퇴조를 반복해온 진보정치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며, 오늘 우리는 촛불혁명의 성과를 이어받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범을 민중 앞에 당당하게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민중당은 "승리를 향한 민중의 직접행동을 조직할 것"이라며 "민중당으로 굳게 뭉쳐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새로운 대한민국, 평화로운 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밝혔다.

"우리들의 진짜 목소리 대변해줄 진보정당 기다려왔다"
'민중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평화를!'

민중당 지도부가 15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보신각으로 행진하고 있다.
민중당 지도부가 15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보신각으로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당의 1만 당원들은 출범식을 마친 뒤 종로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보신각으로 행진했다.

노동·청년·여성·농민·빈민 등 민중당을 구성하는 주요 단위들은 행진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피켓·현수막과 복장을 통해 부문별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한미동맹 해체로 자주와 통일', '평화협정 체결하라', '사드 뽑고 평화 심자', '트럼프는 한반도 전쟁위협을 당장 멈춰라' 등 한반도 평화를 요구하는 행진 대오를 필두로 '양심수 석방하라', '농민헌법 쟁취', '노동자가 정치한다', '비정규직 완전 철폐', '최저임금 보장하라', '독박육아 끝장내자' 등 각계각층의 상징의식 행렬이 뒤따랐다.

흥에 겨워 춤을 추며 행진하던 당원들은 새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중당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보신각으로 행진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
민중당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보신각으로 행진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경남 합천에서 온가족과 함께 상경했다는 배기남(45세.남) 씨는 '민중의소리'와 만나 "그동안 진보세력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원했다"며 "3년간 당이 만들어지길 기다려왔던 만큼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희대에 재학 중인 유래연(23세.여) 학생은 "지금 청년들이 사람답게 살기 힘든 현실인데, 민중당을 통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민중당이 많은 국회의원들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만들어내는 더 큰 정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신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소개한 백진환(46세.여) 씨는 "모든 정치인들이 말로만 비정규직 철폐나 노동자 권리를 위해 공약을 내세우지만, 노동자를 위해 현장에 나가 우리들의 진짜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당은 민중당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보신각 앞에서 행진을 마친 당원들은 "우리가 촛불혁명을 완성하자"는 결의문을 함께 낭독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광장 출범식 후 퍼레이드를 진행한 민중당 당원들이 박수를 치며 행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광장 출범식 후 퍼레이드를 진행한 민중당 당원들이 박수를 치며 행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아래는 '민중당 당원 결의문' 전문이다.

우리 민중당은 국민주권의 위대한 승리 촛불혁명을 완성하여 새 사회 건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국민이 주인이다. 우리가 국민의 정치적 권리, 민주적 권리를 무한하게 넓혀가자.

2.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우리는 모든 특권과 반칙, 차별을 반대하자.

3. 평화 없이 주권 없고, 주권 없이 평화 없다. '전쟁 없는 나라', 우리가 만들자. 분단국가 보내고 평화통일국가 우리가 만들자.

4. 청년은 우리당의 주인공이다. 청년이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들자.

5. 여성에 대한 온갖 차별과 폭력, 혐오를 걷어내자

6. 1000만이 비정규직, 일상생활이 전쟁터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우리가 만들자.

7. 농민주권 실현 돼야 식량주권 실현된다. 농민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자

8. 노점상, 철거민 강제철거 중단하고 용역깡패가 없어야 민주사회다. 도시빈민 생존권을 지키자.

9. 민중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평화를! 민중에게 행복을! 민중당이여 전진하자!

민중당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보신각으로 행진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
민중당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보신각으로 행진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당 서비스노동자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카트를 끌고 보신각으로 행진하고 있다.
민중당 서비스노동자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중당 광장 출범식을 마친 뒤 카트를 끌고 보신각으로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당 윤종오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정치 퍼레이드를 마무리하며 정치연설을 하고 있다.
민중당 윤종오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정치 퍼레이드를 마무리하며 정치연설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당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와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정치 퍼레이드를 마무리하고 있다.
민중당 김종훈-김창한 상임대표와 당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정치 퍼레이드를 마무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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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세월호 보고조작 30분이 우습나?

 

[비평]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발표할 ‘중요한 사안’…불안과 공포 과대 포장하는 조선일보

정상근 기자 dal@mediatoday.co.kr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0분, 좌현으로 크게 기울어진 세월호에 승객들이 가득 있었다. 세월호 상공에는 구조 헬기가 도착했지만 그 누구도 세월호 승객에게 당장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선내 방송에선 ‘가만히 있으라’는 말 뿐이었다.

이때, 정부는 컨트롤 타워도 없이 중구난방이었다. 탑승객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이 혼란을 정리해야 할 대통령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늦게야 나타난 대통령은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구조하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까”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댔다. 

당시 청와대의 관계자들은 대통령에게 10시에 보고했으며 10시15분 관련된 첫 지시가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일을 엉망으로 하는 정부·청와대 직원들이 사고인지 후 1시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청와대의 비서실장이라는 김기춘이라는 자는 국회에 나와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하지만 이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리고 조작이 있었다.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안보실 공유폴더에서 지난 정권의 전산파일을 발견해 공개했다. 여기서 나온 문서를 보면, 위기관리센터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전 9시30분에 세월호 상황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후 이 보고시간은 10시로, 30분이나 늦춰졌다. 이 말인 즉 박근혜씨는 오전 9시30분에 보고를 받고 45분이나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를 숨기기 위해 청와대가 보고시간을 일부러 30분이나 늦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30분은 결코 적지 않다.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만약 9시45분 경 퇴선명령을 내렸다면 탑승자 476명이 전원 탈출하는데 불과 6분17초밖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박근혜는 무려 45분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국민들은 이날 방송 생중계로 배가 기울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 그것도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 많은 국민들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있기를 기원했다. 그야말로 모두가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45분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10월14일자. 사설.
조선일보 10월14일자. 사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 30분이 하찮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10월14일자 사설 <국정 운영 우선순위 심각하게 전도돼 있다>에서 “그 30분 때문에 사람들이 더 죽었다는 얘기까지 뒤따르고 있다”며 “세월호가 처음 알려졌을 때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지시한다고 사고 현장에서 사람을 구조하고 지시 안하면 구조 않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몰라서 저런 주장을 펼치는지, 알고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저런 주장을 펼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당시 정부의 구조 활동이 ‘아예 없었다’고 주장한다. 구조랍시고 한 일은 이미 선실 밖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배나 헬기에 옮겨 태우는 수준이었지 안에 있는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한 활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재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태에서 각 정부부처의 협조와 공조가 절실했던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대통령은 실종 상태였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있건 없건 구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을 쓴 논설위원은 2014년 4월16일에 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조선일보는 또한 말한다. “그 30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정말 수도 없는 비난을 받았다. ‘30분’으로 얼마나 타격을 더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구조 실패, 아니 구조조차 하지 않은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박근혜씨가 이미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고 이 일을 묻어두자는 투라니, 이 글을 쓴 논설위원이 박근혜의 고통에 공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생된 국민과 그 국민들의 유족, 그들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의 고통에는 전혀 공감능력이 없는 모양이다. 

 

▲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세월호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세월호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긴급 발표를 두고 “다음날 박 전 대통령 구속을 연장하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라며 “실제로 그 외에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민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아직 신원을 찾지 못한 대형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제외하고 또 찾아야 할 이유랄 것이 있을까?

 

조선일보는 “국민들은 전례 없는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안보에나 신경 쓰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12일 미국의 2인자로 꼽히는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며 이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견해임을 강조했다. 물론 현재의 위기를 과서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조선일보처럼 모든 것에 우위에 놓을 만큼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국가 에너지 대계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원전 정책이 비전문가들 손에 넘어가 있고 미·중과의 통상마찰,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문제 등은 앞으로 우리 경제에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주장이 사실이어도 전 정권의 기만, 공문서위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들에 밀릴 ‘후순위’임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일에도 지면을 할애하는 조선일보가 선순위 후순위를 운운하니 우습기도 하고, 몇 백의 고귀한 목숨이 오갔던 그 안타까운 30분을 하찮게 취급하는 모습을 보니 분노스럽기도 하다. 피해를 받은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이런 사설은 대체 누가 쓴 것인가? 이것이 정말 조선일보 전체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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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 19

 
(41일,42일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강명구  | 등록:2017-10-15 10:22:48 | 최종:2017-10-15 10:24: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도나우 강은 왈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선율을 닮아 생기가 넘친다. 강을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그 생기는 바람을 타고 그대로 내 가슴에 옮겨진다. 어디선가 호른으로 시작되는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아침에 괼러스도르프를 출발한 지 꼬박 한나절을 달리다 도나우 강변길로 들어섰다. 강을 마주하자 나는 댄스홀에 들어서서 적당한 파트너를 물색하는 눈으로 강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렸다. 푸르고 생기 넘치는 강물은 주위 모든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묘한 마법을 부린다.

 

 

▲ 비엔나 상류에서 바라본 도나우 강

한참 강가를 따라 달리다 도나우 강을 반으로 나누는 20여km나 되는 긴 섬을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가을 햇살 좋은 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 저쪽으로는 백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가 나를 놀라게 한다. 이 섬은 다뉴브 강 범람을 막기 위해서 만든 인공 섬이라고 한다.

그 마법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된 비엔나는 다시 찬란히 빛나는 진주 목걸이처럼 도나우 강을 장식한다. 프라하는 고전이 홀로 무대에서 단독공연을 펼치는 도시라면 비엔나는 고전과 현대가 서로 부둥켜안고 왈츠를 추는 조화로운 도시이다. 음악과 문학과 예술은 머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살다 죽은 곳, 사랑과 실연을 나눈 곳, 환희와 고통을 겪은 곳, 성공과 좌절을 겪은 곳 그곳에서 시작한다. 도나우 강 기슭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말고도 모차르트, 하이든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이 태어났다.

 

 

▲ 비엔나 시내 중심에 있는 벨베데레 궁정

 그날 프란츠 요제프 황제 생일 연회가 있었다. 왈츠 선율이 생동감 있고 달콤하게 흐르는 가운데 씨씨는 그날 주인공인 언니 헬레나 뒤를 따르고 있었다. 15살의 호기심 많고 아리따운 소녀 씨씨는 미래의 형부이자 사촌오빠가 언니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춤을 추는 동안, 저만치서 말없이 흘끔흘끔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프란츠 요제프가 어린 사촌 동생과 눈을 마주치자 사랑의 여신은 장난을 치고 말았다. 젊은 황제는 그녀를 보자 홀딱 사랑에 빠져 헬레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들고 있던 붉는 장미를 씨씨에게 건네고는 사람들 앞에서 제국의 황후가 될 사람이라고 선포해버리고 말았다. 씨씨는 프란츠 요제프와 손을 잡고 배를 타고 도나우 강을 따라 내려와 열렬한 환호 속에 빈에 도착하였다. 어린 황후는 174cm에 48kg, 50cm 허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남편의 사랑을 오래 사로잡지는 못했다.

씨씨는 바이에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랐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엄격한 궁정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서로의 다른 성장배경이 불화의 시작이 되었다. 게다가 젊은 황제에게는 다가올 재앙들이 서주를 연주하는 오래된 제국이 있었다.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딸을 낳자 양육권을 빼앗기고 그 딸은 얼마 안 있어 죽고 다시 딸을 낳고 또 빼앗기고 말았다. 나중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황후는 건강이 악화되어 폐결핵에 걸렸다.

병은 고쳤지만,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괴한에 의해 송곳에 찔려 암살을 당하고 만다. 그녀에게 아주 짧은 사랑의 기쁨과 오랜 사랑의 슬픔을 안겨준 프란츠 요제프. 그는 세계 1차 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조약에 사인을 하고 군주제를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을 했던 사람이다. 씨씨 황후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을 지닌 쇤브른 궁전이다. 참으로 민비의 운명과 너무도 흡사해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이다.

 

 

▲ 러시아 관광객들과 / 광장에 들어서니 러시아 관광객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없듯이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2차 대전 때 미군들이 커피를 큰 대접에다 타 먹는 걸 보고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생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는 비엔나에서 유래하지만 그런 종류는 3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코마향 가득한 것은 ‘멜랑지’라 하고 진한 크림을 듬뿍 얹은 것은 ‘아인슈페너’를 주문해야 한다. 낭만의 상징 비엔나커피는 아이러니 하게도 오스만과 전쟁의 산물이었다.

오스만 튀르크 군대 30만은 화약을 이용한 대포와 총으로 무장하고 오스트리아 빈까지 진격해 왔다. 오스만 군은 거의 빈을 점령한 상태였지만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닥치고 군 보급품에 문제가 생긴 오스만 군은 철수했다. 이때까지 유럽인들은 오스만을 야만스런 이교도로만 취급했다.

철수한 오스만 군대 막사에서 500포대의 커피가 발견되었다. 처음엔 낙타 배설물로 알고 버리려던 것을 통역사가 그것이 바로 오스만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원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커피 원두를 갈아 물에 끊인 터키식 커피는 너무 쓰고 진했다. 여기에 우유와 꿀을 넣어 부드러운 커피가 되니 유럽인들 입맛에 꼭 맞았다. 비엔나커피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애정 없는 교제가 낳은 예쁜 사생아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낳은 어여쁜 사생아는 하나 더 있다.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빵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빵의 원조를 프랑스로 알고 있다. 빈을 포위한 오스만군이 성 안 진입을 준비할 때 빵집 주인이 밀가루를 꺼내려 창고로 들어가다 오스만 군대 공격개시 계획을 우연히 듣고 신고해 오스만군의 진입을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훈장을 받은 빵집 주인은 이에 대한 답례로 오스만 군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 빵을 구워서 사람들에게 와작와작 씹어 먹도록 했다. 이것이 크루아상이다. 프랑스에 크루아상이 등장한 것은 루이 16세 때부터였다. 왕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 공주로 프랑스에 시집간 후에도 이 빵 맛을 잊지 못해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 비엔나 교외의 산꼭대기 산성

언제라도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은 빈은 왈츠의 고향으로 불린다. 춤은 생크림이 가득한 커피 잔을 들고 사랑을 속삭이듯이 아주 은밀하면서도 경쾌한 선율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알 수 없는 리듬에 맞춰 돌아가고 있던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왈츠는 멈추었고 광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었다. 1천만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야 총성은 멈추었다. 그중 60%는 민간인이었으며 2천5백만 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7백5십만 명의 실종자와 포로가 생겼다.

빈에서 왈츠가 멈추는 순간 대재앙은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왈츠의 선율은 멈추었고 다시 한 번 대재앙이 찾아왔다. 나는 한반도에서 소주잔을 마주치며 ‘위하여’하며 지르는 소리가 끊기지 않고, 노래방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길 달리면서도 간절히 기도한다.

 

 

 

 

▲ 2017년 10월 11일 Gars am kamp에서 괼러스도르프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0월 12일 괼러스도르프에서 비엔나까지 달리면서

 

 

▲ 2017년 9월 1일에서 10월 12일까지 달린 길(누적거리 최소 1605.45km)

* 강명구선수의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eurasiamarathon)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9277)과 강명구 마라토너의 홈페이지(http://eur20as17ia.cafe24.com/)에서 후원할 수 있다.

 

 

 

강명구

북미대륙 5,200km를 유모차에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뛰었으며, 지난 6월 6일부터 24일까지 제주강정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사드철회와 평화협정을 위한 평화마라톤’ 을 뛴 평화마라토너다. 9월 1일 네덜란드의 헤이그를 출발해서 유라시아 대륙 16,000km를 뛰어, 내년 11월에 북한으로 들어와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들어올 예정이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1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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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 대결 일촉즉발

조.미 대결 일촉즉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7/10/15 [08: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이 핵 전략 자산들을 한반도에 집결 시켜 조미 대결에 의한 초 긴장 상태가 고조도;고 있다     © 자주시보이정섭 기자

    

 

미국이 핵 전략자산들을 한반도에 총집합 시킴으로써 조미 대결의 강대강 대치가 실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내일(16)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 해상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군의 핵 추진 항공모함 등이 한반도에 집결하기 때문이다.

  

YTN 등 주요 언론들은 최근 미국의 핵 잠수함과 항공 전력까지 속속 한반도에 배치돼 미군의 최첨단 전략 무기가 한반도에 총집결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핵 추진 항공모함로널드 레이건함이 내일부터 한반도 해역에서 우리 해군과 연합 훈련을 펼치게 된다

 

또한 북의 핵미사일 기지 등 주요 거점을 타격하기 위한 항공 전력에 더해 이지스 구축함과 핵잠수함 등 항모를 호위하는 전단을 함께 이끌고 온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미군의 핵 추진 잠수함 미시간함이 부산에 입항했다.

미시간함은 전쟁의 신호탄으로 쓰이는 토마호크 미사일 150여 기로 무장한 핵잠함 이다.

 

또한 지난 7일 경남 진해항에 입항했다가 나흘 만에 출항한 핵잠수함 '투산'도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작전 중일 가능성이 높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전략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항공전력도 한국에 온다

 

미국의 전문가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군사적 옵션이 세계대전으로 이어 질 수 있다고 경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핵 전략자산 한반도 배치는 그만큼 위험성이 높다

 

▲ 북은 미국의 핵전략자산 확대 배치는 1차적 절멸 대상임을 밝힌바 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한편 북은 미국의 핵전략자산 한반도 확대 배치에 대해 1차적 절멸 대상이라고 경고 한바 있다

 

아울러 지난번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대변인담화를 통해 미국과 그 졸개들의 언동에 달려있는 운명적인 시각에 하찮은 괴뢰들이 나서서 들까부는 것은 푼수에도 맞지 않을뿐아니라 스스로 화를 자청하는 노릇이다.”라며 만단의 결전진입태세를 철저히 갖추고 적진을 노리고 있는 백두산 혁명 강군의 강철포신 앞에서 졸망스럽게 불장난질을 하다가는 남조선판도가 쑥대밭으로 화할 수 있다는데 대해 순간도 망각하면 안 된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괴뢰들은 저들의 운명도 책임질 수 없는 미국에 기대여 대책없이 날뛰다가는 자멸을 앞당기게 될뿐이라는 것을 똑바로 알고 부질없이 놀아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민가협 등 평화 운동 단체들은 민족의 평화를 위해 유관국들의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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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특조위’ 위해 다시 타오른 촛불 “세월호 진실규명 포기할 수 없다”

 

‘세월호 2기 특조위 설립·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토요 촛불문화제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 2017-10-14 20:31:39
수정 2017-10-14 23: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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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제는 더이상 부끄럽고 미안한 아빠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예은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세월호 2기 특조위 설립’ 촉구를 위한 ‘또다른 싸움’을 결의하며 이렇게 외쳤다. 유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에게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세력이 더 이상 특조위와 유가족을 폄훼할 수 없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참사 발생 1278일째인 1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2기 특조위 설립과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11월 국회 본회의에 앞서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기 위한 집중행동기간에 맞춰 진행됐다. 주말 오후 진행된 집회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 3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집회를 주최한 4.16연대는 “참사 이후 네 번째 맞는 겨울 이전에 제대로된 진상규명을 시작해야 한다”며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2기 특조위 설립을 위한 ’사회적참사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번 주말부터 이곳 광화문에서 다시 촛불을 든다”고 밝혔다.

유경근 운영위원장 여는 발언을 통해 “보다 강력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제대로된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진상규명을 외친 지 3년이 지났지만 다시 이렇게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며 “박근혜 잔당인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들이 11월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입법발의될 특별법을 폄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들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 만료일이 세월호 4주기인 내년 4월16일로 결정됐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이 함께 싸워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이상 부끄럽고 미안한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진상규명을 위한 확실한 기틀을 세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광장을 찾은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법은 국회 내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장의 힘이 모여야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질 것”이라면 “국회에서 열심히 뛸테니 광장에서 여론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 등은 이달 21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기 위한 집중행동을 전개한다. 가족들은 전국규모의 서명 운동을 비롯해 매 주말 촛불문화제를 통해 제대로 된 특별법 입법과 진상규명 등을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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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후, 부와 권력의 '강남'이 등장했다

 
[강남공화국의 민낯15] 강남과 강북의 단절

17.10.15 11:02 | 글:전상봉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1994년은 대형 사건사고로 얼룩진 해였다. 그해 1월 4일 경북 달성취수장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면서 시작된 낙동강 식수오염사고는 1월 6일 경남 마산의 수돗물에서, 1월 8일 부산의 수돗물에서 악취가 발생하는 사고로 이어졌다. 석 달 뒤인 4월 12일에는 전남 목포의 몽탄정수처리장 상류에서 물고기 수천마리가 폐사하는 오염사고가 발생하여 국민들을 불안케 했다.

그해 5월 19일 새벽 0시께, 서울 강남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끔찍하게 살해한 후 집에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저지른 박한상은 100억 원대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자신의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 대형 사건사고로 얼룩진 1994년 7월 8일 북한 주석 김일성이 사망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 자료 촬영 ⓒ 전상봉

기상 관측 사상 최고의 무더위가 전국을 달군 그해 여름,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일성이 사망했다. 대통령 김영삼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7월 8일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소식이 전해지자 큰 파장이 일었다. 민주당 국회의원 이부영이 국회 정보위에서 정부 차원에서 조문단을 파견할 의향이 없는지 질의하자 민자당과 보수언론은 이를 빌미로 한바탕의 조문논쟁을 일으켰다.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19일 지존파 조직원 5명이 검거됐다. 지존파 일당은 사회 불만과 부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 살해하는 연쇄 살인사건을 저질렀다. 이들은 아지트에 창살 감옥과 시체 소각시설을 만들어놓는가 하면, 사체를 토막 내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 행각을 벌여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해 세밑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12월 7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지하철 건설 공사를 하던 중 가스저장소의 가스관을 잘못 건드려 일어났다. 마치 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사고 현장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날 사고로 12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다쳤으며 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서울 정도 600년
 
▲ 1993년부터 서울시는 정도 600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이원종 서울시장(가운데)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정도 600년 기념 조형물 제막식 모습. 서울도서관에 전시된 사진을 촬영했다. ⓒ 전상봉

1994년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한지 600년이 되는 해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1394년 8월 도읍지로 한양을 낙점하고, 그해 10월 25일 개경을 떠나 10월 28일 한양에 당도했다. 한양에 도착한 이성계는 가장 먼저 종묘와 사직을 짓고, 법궁인 경복궁을 건설한 다음 한양도성을 쌓았다.

서울시는 1993년부터 대대적인 정도(定都) 6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서울, 그 새로운 탄생'이라는 모토 아래 '정도 600년 사업 특별위원회'를 결성하는 한편, 그해 11월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 6백년 자료전'을 개최했다. 또한 경희궁 터에서는 서울역사박물관 건설을 위한 기공식이 열렸다.
 
▲ 남산한옥마을에 매설된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은 보신각종을 본떠 높이 1.7m, 직경 1.3m 크기로 만들어졌다. 600점의 물품을 담은 타임캡슐은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개봉될 예정이다. ⓒ 전상봉

'서울 1000년 타임캡슐' 매설 행사는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업이었다. 1994년 11월 29일 남산한옥마을에 매설된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은 보신각종을 본떠 높이 1.7m, 직경 1.3m 크기로 만들어졌다. '1994년 서울의 인간과 도시'라는 주제로 600점의 물품을 담은 타임캡슐은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개봉될 예정이다.

8.15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경제개발이라는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울은 폭증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몸부림친 도시였다. 정도 600년 행사는 부수고, 짓는데 골몰했던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계기였다. 동시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성과 속에 치러진 정도 600년 행사는 서울의 역사적 가치와 인문학적 탐색을 시작한 하나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정도 600년 행사는 수도 서울의 역사를 한성백제(위례성)로 소급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서울시가 정도 600년 사업을 추진하자 일부 학자들은 수도 서울의 역사는 2000년이라는 반론을 펼쳤다. 그후 1997년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풍납토성에서 한성백제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도 서울의 역사는 600년이 아닌 2000년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운명의 날, 1994년 10월 21일

정도 600년 기념일을 일주일 앞둔 1994년 10월 21일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 아침 7시 40분께 성수대교 10번과 11번 교각을 잇는 상판 48m가 붕괴한 것이다. 다리가 붕괴하면서 그 위를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가 상판과 함께 추락했고, 또 다른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떨어졌다.

인명 피해가 커진 것은 다리 위를 달리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가 추락하면서다. 다리 상판이 떨어져 나간 지점에 걸려있던 16번 버스는 차체가 뒤집히면서 상판 위로 추락, 다수의 인명 피해가 났다.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지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버스 추락으로 사망한 사람은 24명으로, 그중에는 무학여고 학생 8명과 무학여중 학생 1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사고로 총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자 국무총리 이영덕이 사임했고, 서울시장 이원종은 경질됐다. 그리고 사흘 뒤인 10월 24일 대통령 김영삼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 시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정부는 기존 성수대교를 철거하고 재건했다. 다리를 다시 짓는 데 들어간 공사비는 780억 원으로 처음 건설했을 때의 공사비(116억 원)보다 약 6.7배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 전상봉

성수대교는 1970년대 영동 신도시 개발에 따른 서울 동부권의 균형 발전과 강남을 부도심권으로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7년 4월 착공해 1979년 10월 16일 준공됐다. 길이 1161m, 너비 19.4m의 4차선(그후 8차선으로 확장)으로 건설된 성수대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이다.

성수대교는 교량의 기능에 더해 외관에도 신경을 쓴 첫 번째 다리이기도 했다. 성수대교 이전에 세워진 교량들은 공법이나 구조상의 특징보다는 기능과 건설비를 줄이는데 급급했다. 그에 비해 성수대교는 외관의 조형미를 고려하여 콘크리트 교각 위에 건설용 강철인 강재로 구성된 상부 트러스를 얹어 만들었다.

성수대교는 이전에 건설된 교량에 비해 교각과 교각 사이가 넓었고, 다리 남단과 북단을 연결하는 진출입로가 입체적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더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파란색으로 도색됐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트러스 구조물을 완벽하게 시공할 수 없었다. 시공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상부 트러스 철골 구조물은 허술하게 설치됐고, 차량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이음새 또한 부실하게 연결됐다. 결과적으로 외관에 신경을 쓴 성수대교의 트러스 공법이 사고를 일으킨 주된 원인이 됐다.

군사작전을 펼치듯 완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한 공사도 사고를 부추긴 또 다른 원인이었다. 게다가 미래의 교통수요를 적절히 예상하지도 못했다. 성수대교가 개통될 당시 12만3000대였던 서울시내 차량은 사고가 난 1994년에 이르면 190여만대로 증가했다. 특히 1980년대 말 노원구 상계동에 대규모의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성수대교의 교통량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통행 허용 한도인 32.4톤을 초과하는 과적차량이 오가면서 하중이 더해졌다. 과적차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다리 안전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피로 균열이 발생하여 다리 상판이 붕괴하는 실로 믿기지 않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강남과 강북의 단절
 
▲ 1997년 10월 21일 유가족들은 희생자를 기리고 사고의 재발 방지를 염원하면서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다. ⓒ 전상봉

32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또한 제대로 된 기술력이 밑받침되지 않은 채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축물이 어떤 재난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참사였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다리였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붕괴는 강남과 강북의 단절을 의미했다. 서울시가 1972년 2월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강북 도심을 특정시설 제한구역으로 지정하면서 강북은 노후화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강북은 낙후된 곳이 되어 오랜 세월 누려왔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강남에 넘겨줬다.

강남과 강북의 지위가 뒤바뀌자 강남·북 균형발전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완화할 목적으로 1990년 1월 강남·북균형발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강남·북균형발전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은 △4대문 안의 도심 및 부도심(신촌·청량리·영등포·영동·잠실) 등 58개 지구를 생활권역별 자족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 △4대문 안의 재개발지구의 건폐율을 강남과 동일하게 60%로 완화, △도심 내에 주거복합건물, 액화석유가스 판매·충전업소, 일반유흥업소, 위생업소 등의 신설과 이전에 대한 규제 완화, △강북 소재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금지 등이었다.

그러나 강남·북균형발전종합대책은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강북지역에 관련 시설의 확충과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관계 법령의 정비와 서울시의 예산 편성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실행된 것은 강북지역의 용적률 완화, 시설입지제한 완화, 도심 재개발 시 주거복합인센티브 제공 등에 불과했다.

강남과 강북의 격차가 한강보다 넓고 깊게 패여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의 몇 가지 대책만으로 균형발전이 실현될 리 만무했다. 강남·북의 격차가 현저해지는 상황에서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강남과 강북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사고 이후 한강 남쪽을 의미하는 강남은 사라졌다. 대신 경제적 부와 권력과 특권을 상징하는 강남이 등장했다. 어쩌면 성수대교의 붕괴는 강남과 강북의 넘나들 수 없는 격차를 드러내 보인 상징적인 사건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전상봉 시민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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