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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박종철, 31년만에 경관 자필기록 확인

<단독> 소영환 교도관, 강진규 경사 옥중 최초기록 보관
이승현/김치관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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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1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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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박종철!, 아! 1987년!

   
▲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실.[사진출처-박종철기념사업회]

1987년 1월 14일 새벽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생인 박종철이 하숙집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그곳 509조사실에서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물고문을 당하던 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역사적인 87년 6월시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만큼, 당시 폭압적 국가권력에 의해 빈번하게 자행되었던 사건으로는 드물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날의 전모를 밝혀 진실과 정의를 세우려는 노력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86년 10월 말 건국대에서 1,290명의 대학생을 대량 구속시킨 전두환 세력은 이듬해인 1987년 초반까지 당시 안기부와 보안사, 치안본부 등으로 초법적인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핵심 수배자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재집권에 최대 장애가 되었던 학생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허문데 이어 핵심지도부를 파괴하려던 전두환 세력의 계획은 필사적이었고 그만큼 빠른 결과를 얻기 위해 그동안 당연시하던 고문도 더욱 가혹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 고문치사의 발생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도 그들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악랄하고, 집요하게 사건을 축소·은폐·조작했다.

1월 14일 저녁 시신을 비밀리에 화장 처리하기로 하고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희대의 발표를 계획하면서, 그들은 박종철의 죽음을 ‘단순 쇼크사’로 조작하려고 시도했으나 고문치사를 직감한 검사의 부검 강행 등 양심적인 인사들의 노력에 막혀 실패로 돌아갔다.

1월 15일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사건 직후 박종철을 검안한 전문의가 물고문에 의한 사망가능성을 시사하는 증언을 했지만, 안기부 주도의 관계기관 대책회의 결정에 따라 검찰은 17일 오후 수사권을 포기하고 경찰에 자체 조사를 맡겼다.

고문치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경찰은 19일 ‘지나친 직무의욕으로 인한 불상사’ 의견으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2명을 고문경관으로 구속 송치해 마무리를 시도했다.

고문경관 숫자를 5명에서 2명으로 축소한 것은 경찰이 일상적이고 조직적으로 고문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업무과욕으로 인해 발생한 불상사라고 조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끝내 역사로 살아나는 ‘진실’

   
▲ 옛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 지금은 경찰청인권센터가 들어서 있다. [사진출처-박종철기념사업회]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그해 1월 20일~23일까지 진행된 1차 수사뿐만 아니라 이후 재수사, 재재수사, 이듬해 1월에는 재재재수사까지 4차례에 걸쳐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번번이 사건의 진실을 외면했다. 매번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면 재수사가 결정되었고, 그때마다 그동안 진행된 수사는 졸속, 짜맞추기, 축소, 은폐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근 영화 <1987>이 개봉되고 영화를 관람한 수백만 관객이 30년전 박종철과 6월항쟁에 대해 다시 뜨거운 관심을 보이면서 그날의 ‘진실’이 오늘로 불려 나오고 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제목으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성명은 사건의 축소·은폐·조작에 골몰하던 전두환 세력을 궁지에 몰아넣고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해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성명은 당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 민통련 사무처장이 ‘고문경관이 2명이 아니라 3명 더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고는 바깥으로 ‘비둘기’(비밀서신)를 내 보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이부영은 영등포교도소 안유 보안계장으로부터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해 2월 23일 한재동·전병용 교도관을 통해 이 소식을 외부에 전했으며, 비둘기는 4월 7일까지 3차례에 더 교도소 담장을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부영은 훗날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사건 진상폭로는 내가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쓴 특종’이라고 회고하면서 ‘민주교도관들의 용기있는 협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31년 만에 드러난 역사의 한 조각, 더 늦출 이유 없다

   
▲ 1987년 1월 20일 당시 영등포교도소 9사 특별사동의 담당 교도관이었던 소영환씨가 31년간 보관하고 있던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특별사동에는 고문경관으로 구속 수감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사건의 진실을 밖으로 내보낸 이부영 당시 민통련 사무처장 등이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통일뉴스>는 박종철을 고문해 치사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최초 2명의 고문경관 중 한 명인 강진규 경사(당시 30살)가 1987년 1월말께 편지지 10쪽 분량으로 작성한 자필 진술서 원본이 있다는 제보를 오래 전에 확보하고 있었다. 영화 <1987>로 드디어 이 문건이 세상에 드러날 멍석이 깔린 셈이다.

제보자는 당시 강진규가 수감되어 있던 영등포교도소 9사 특별사동의 본무 담당으로 근무한 소영환 전 교도관(당시 30살).

1990년 교도관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법률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소영환 씨는 1987년 1월 말께 자신이 강진규를 설득해 자필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고 그 후 31년간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 원본을 보관해 왔으며, 그 내용을 당시 처음으로 이부영에게 구두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16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소 씨가 근무하는 서울 서초구 한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 원문과 당시의 복잡한 심경 등을 기록한 소 씨의 일기장 등 자료를 확인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원문의 언론 공개는 처음이고, 강진규를 취재해온 <SBS>가 합석했다.

1981년 12월 5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정직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일해 온 소 씨는 1987년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5학년에 다니던 중 휴가를 내고 협력대학인 서울대학교에서 시험을 본 후 1월 19~20일께 업무에 복귀했다.

그때 “한 사람은 자살 가능성이 있으니 특별히 관리하라는 업무지시를 받고 근무에 돌입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영등포교도소 9사 특별사동은 원래 여사로 사용되던 곳인데, 이부영은 1986년 5.3인천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그해 10월 잡혀와 수감 중이었고 이듬해 1월 20일 조한경 경위(당시 42살)와 강진규가 같은 사동에 수감되었다.

박종철에 대한 고문치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경찰 지휘부가 ‘일부 경관의 지나친 직무의욕으로 발생한 불상사’라는 자체 발표와 함께 1987년 1월 19일 조한경과 강진규를 2명의 고문경관으로 지목해 구속 수감했으나 당일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영등포교도소로 온 것이다.

살해 위협을 느낀다며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불안해했던, 특별관리가 필요한 ‘한 사람’이 바로 강진규였다.

고문 가해 당사자가 쓴 최초의 현장 기록

   
▲ 소영환씨는 1987년 2월 27일 ‘眞實’(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일기로 남겼다. 그는 일기에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시간과 세월 그리고 역사 속에 묻어야 할 일들도 많이 있다”며, “나는 오늘 어려운 부탁을 받았다. 물론 내 자신이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라고 썼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강진규는 1957년생으로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데다 법학도였던 소 씨에게 자신은 고문에 가담한 바 없으며 여기 와 있을 이유도 없다는 하소연을 하고 법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아내와 변변한 외식 한번 하지 못하고 자식들에게도 오명을 남기게 된 데 대해 미안해하면서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자의식이 강했지만 자신이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가법 적용을 받아 10년 중형이 점쳐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불안해했다.

소 씨는 당시 심각한 불안과 심경변화를 겪고 있던 강진규에게 “박종철이라는 대학생을 죽이는데 가담하지 않았다면 사실대로 진술을 하는 게 좋겠다. 담당검사에게 다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할 테니 조사에 응하라”고 조언했고, 강진규는 구속수감 일주일 쯤 후인 1월 말께 사흘에 걸쳐 10쪽 분량의 자필 진술서를 작성했다. 제출 목적으로 작성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바로는 2월 초순 조한경과 강진규 등 고문경관들은 가족과의 면담에서 고문에 가담한 3명이 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발설했고, 이후 경찰 상급자와의 면회에서도 “억울하다, 사실을 이야기하겠다”며 갈등을 빚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회유와 압박이 가해졌고 그 와중에 2월 23일 이부영의 비둘기가 바깥으로 전해진 것이다.

강진규의 자필 진술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직후 작성한 최초의 기록이며, 자기변호를 위해 쓰인 동기를 감안하더라도 축소·은폐·조작 시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건현장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당시 현장을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로 보인다.

강진규는 진술서에서 자신은 대공분실 수사 4반 소속으로 여건주 반장과 1월 13일 저녁 전국학생운동지도부 검거를 위한 업무지시에 따라 민식(가명)의 자취방에 잠복근무를 하러 갔다가 자물쇠로 잠겨있어 남영동으로 철수, 당시 영하 14도의 추운 날씨에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여러 병 마셨다고 기록했다.

이튿날 아침 8시 55분께 남영동 사무실(공안분실)로 출근하여 10시 20분께 1반 반장인 조한경 경위와 황정웅, 반금곤 등으로부터 5층 8호실에 박종철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관련 수배자인 박OO 수사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이후 두 번이나 조사실을 옮겨가면서 고문을 가해 치사에 이르게 된 정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강진규 경사가 1987년 1월말께 영등포교도소에서 자필로 작성한 사건 경위 진술서(요약)

1월 13일 5시-대공3부 5과 2계 사무실에서 박윤택 계장으로부터 전국학생운동지도부 검거를 위한 업무지시를 받았다. 민식(가명) 자취방 잠복근무하며, 중요수배자인 최OO(서울대 81)의 첩보에 따라 여자친구인 OOO(OO대 대학원) 소재파악 검거할 것.

1월 13일 6시-4반장인 여건주와 함께 학생운동 선전책 민식 자취방 갔으나 자물쇠로 잠겨있어 철수. 남영동 사랑방다방 옆 포장마차에서 술 마심. 영하 14도의 날씨. 중국집에서 고량주 5병 마심.

1월 14일 08:55-사무실 출근, 10:00-1반장 조한경, 황정웅 등 사무실에서 (수배자인)박종O에 대해 이야기 함, 10:20-5층 심문실에서 1반 조한경, 황정웅, 반금곤이 학생 1명 데리고 있고, 하종O(서울대학원 인류 1년) 연행, 1반에서 공작첩보 제출해 박종O에 대해 같이 수사하자고 함.

반금곤과 같이 8호실에 가보니 이정호가 있고, 박종철이 있었음.

□ 경찰 : 아버지도 공무원(부산시청 수도과)인데 부모님과 가족들 생각도 좀 해야 되지 않겠나

■ 박종철 : 나는 지금 서울대 민민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 외에는 모른다

□ 박종O은 어떻게 알고 있나

■ 선배를 통해 알고 있다

□ 여기에 자세히 써라

본인(강진규)은 14호실에 있다가 8호실로 왔는데 6과 1계 김부O 경장이 어떤 피의자를 데리고 와서 좀 비켜 달라고 하였다. 14호실에 있던 조한경한테 가서 김 경장이 8호실을 비워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자 조한경이 ‘아무 곳이나 옮기지 뭐’ 라고 하여 옆방 9호실을 보니 아무도 없어서 옮겼다. (당시 9호실에는 이정호만 있었음)

박종철이 86년 11월 말에 강OO(서울대 OO학과)이 박종철 하숙방에 와서 자고 가고, 87년 1월 8일 와서 돈 10,000원을 준 사실이 있다고 진술.

14호실에 있던 조한경과 반금곤이 9호실로 왔고, 조한경이 9호실서 신문, 고함소리.

□ 조한경(높은 언성으로 심문하면서) 이놈 혼좀 나봐야 되겠느냐, 이놈 혼좀 내라고 고함.

□ 강진규 : 너 입고 있는 옷 다 벗어

■ 박종철 : (순순히 옷벗으면서)전부 다 벗어야 하느냐

□ 강 : 그래

■ 박 : (옷 전부 다 벗음)

□ 강 : (조한경 반장 앞에 무릎 꿇게 한 후) 네 수사 총책임자이니 사실대로 말씀 드리라

□ 강 :(이때 반금곤은 욕조에 물 채우고 있었음)

□ 조 : 박종운 어디 있느냐

■ 박 : 모른다(계속 대답)

□ 조 : (화가 나서) 이 자식 혼 좀내라 (큰소리치면서) 사람 더 오라.

이때 이정호가 14호실에 있던 황종웅을 불러옴. 반금곤은 수건으로 박종철의 양손을 뒤로 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고 욕조 앞으로 데리고 감. 물을 먹어보라고 하자 박종철이 욕탕 안으로 머리를 숙여 머리 전부를 물속으로 들어가도록 한 뒤 일으켜 세움

□ 조 : 박종운 어디 있느냐

■ 박 : 요즘 독서실에서 기거하는데 독서실 티켓은 본 사실이 있다

□ 조 : 그 독서실이 어디 있느냐

■ 박 : 모른다

□ 조 : 너 혼 좀 나야 말하겠느냐

■ 박 : (계속) 모른다

-이때 반금곤이 수건으로 박종철의 양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음.

조한경은 “혼 좀 내라”며 나감

욕조 앞의 박종철 왼쪽에 황정웅이, 오른쪽엔 반금곤이 박종철의 팔과 몸 사이로 각각 손을 넣어 양 어깨를 누르고 다른 한 팔은 박종철의 머리를 잡음. 이정호는 박종철의 양 다리를 들고 욕조 안으로 넣음. 본인(강진규)은 이때 바지를 벗고 팬티 차림으로 욕조 안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물이 차가워서(영하 16도) 욕조위에 올라서 있었음.

-반금곤이 약 1분 30초가량 뒤에 박종철의 머리를 들어 “어디 있느냐”고 하자 박종철이 다시 “모른다”고 하여 다시 위의 자세로 욕조 안으로 박종철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데 조한경이 들어와 의자에 앉았음(약 20~30초)

-끌어내라고 하여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가 박종철을 잡은 곳을 놓자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조한경이 밖으로 끌어내라고 지시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가 박종철을 밖으로 끌어내어 바닥에 눕히자(이때 11:20경) 조한경이 갑자기 침대위에 눕히라고 함.

-여건주 4반장이 조한경에게 뭐라 말하고(물기를 닦으라?) 나가면서 같이 눕히는데 박종철이 힘없이 축 늘어지는 것 같았음

-조한경이 빨리 의사를 데리고 오라고 하자 황정웅과 이정호가 나감. 조한경은 박종철의 입에 인공호흡을 하고 본인(강진규)은 인공호흡 하는 것에 맞춰 박종철의 가슴을 누르고 반은 전신마사지를 하고 있는데 4반 김기호 경장이 왔음.

-본인(강진규)과 김기호 교대한 후 계장인 박원택과 과장 유정방 등 오고 조금 있다 의사가(중앙대 용산병원 오연상) 도착(11:40)

-조한경이 나가있으라고 하여 5층 14호실에 가 있었음

1월 14일 오후 1시 30분-박종철 사망, 지금 경찰병원으로 옮기고 있다고 함.

1월 14일 오후 3시-황정웅 보고서 작성, 주심문자는 조한경, 부심문관은 강진규라고 기재(계장과 과장 모두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면서 최대한 잘될 것이라고 안심시킴). 박원택 과장이 보고함.

1월 17일(토)-단장, 경무관, 권석진이 조한경과 본인(강진규)를 불러 나감, 강민창 본부장 전화 옴(언론보도가 나와서 형식적으로라도 감찰조사는 해야 한다. 장소를 호텔로 하자. 조사대상은 보고서대로 조한경, 강진규, 계장으로 하자, 보고서 내용도 쇼크사로 하자. 조사관은 감찰담당관, 경무관 조용우외 2명 정도로 간단히 할 것-그러나 토요일에 호텔이 없다고 해서 치안본부 2대(신길동 소재)로 정하고 1518(사무실차) 타고 계장 박원택과 조한경, 본인 강진규이 특수 2대에 도착함)

오후 9시-갑자기 장소 바꾸고 특수대 직원으로 교체, 정신없이 구속

1월 19일-구속영장 발부.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루 잠

1월 20일-영등포교도소로 바로 이관. 부장검사 진창언으로부터 검찰조사 받음, 검사관 상무 검사 박상옥

1월 22일- 다시 검찰 조사

*이 내용은 지난 23일 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열람한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 내용을 메모해 작성되었다.

기록이 기억으로, 기억은 행동과 역사로 이어진다

   
▲ 소 씨가 남긴 또 하나의 기록. 당시 공소장에 기록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실의 그림과 조직도 등이 그려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의 진술서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수감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자체 인쇄한 편지지에 쓰였다.

편지지 5장의 앞·뒷면 10쪽에 빼곡히 작성되었으며, 여기에 소 씨와 강진규가 사실 확인과 보완을 위해 주고받은 문답 및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스케치 등을 적은 두 쪽 분량의 메모도 덧붙어 있다. 볼펜으로 양면을 다 쓴 자필 진술서와 달리 메모는 연필로 줄친 편지지의 뒷면만 사용했다.

소씨는 지난 16일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31년 만에 고문치사 가해 경관의 자필 기록을 공개하게 된 데 대해 “역사는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당시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말할 뿐이며, 그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영화 <1987>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비록 조그마한 부분이지만 이번 증언 등을 계기로 당시의 진실이 바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16일과 23일 두 차례 이어진 만남에서 “지금까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자필 진술서를 작성한 당사자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라면서 기록 원본에 대한 촬영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기자와 만난 직후 연락이 닿아 지난 17일 31년 만에 처음 만난 강진규가 “편지(진술서)가 공개되면 사돈들에게 면목 없고 아직 자식들의 혼사가 남아있는 동료(황정웅, 반금곤, 이정호)들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며, “인권법을 전공한 법률가로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진규는 이날 소 씨에게 “그 일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고 지금은 몇몇 사람만 만날 뿐 은둔생활과 다름없다”고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고 한다.

위에 별도 기사로 소개한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는 23일 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고문 가담한 공안세력의 뼈아픈 자성, 과연 기대할 수 있나

   
▲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26일 통일뉴스와 만나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가 사료적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하루 빨리 공개되기를 기대했다. 또 경찰을 비롯해 전근대적 고문을 일삼았던 공안세력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발생 이후 최초로 고문치사에 가담한 당사자의 입으로 고문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라는 핵심적인 진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강진규의 자필 진술서는 그 사료적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 고문치사 사건 발생 후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던 가해 당사자가 보름 이내의 짧은 시간 내에 그것도 제출 목적이 아니라 직접 증언의 성격을 담아 기록했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을 복원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26일 오전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강진규도 그 때 구속되어서 자기가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이행한 것에 대해 뉘우친 것 아니겠나. 그래서 고문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뉘우친 내용을 담은 것인데,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면서도 “이제 정리하는 시점에서 강진규의 문서가 공개되는 것은 사료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의미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공안사건을 다룬 가해자들의 경우 그들만의 오래된 조직과 이권 등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소 씨가 강진규를 설득해 자료 공개를 하도록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남영동 대공분실에 근무하던 사람의 자료가 이제 그곳 4층에 있는 박종철기념관으로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경찰이 아직도 스스로 책임있는 정리도 없이 남영동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이번 자료뿐만 아니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부영 운영위원장은 1987년 1월 수감자 신분으로 영등포교도소 내에서 바깥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관련 소식을 보낸 것과 관련해 최근 제기되는 몇 가지 새로운 주장에 대해서는 “새롭게 검토할 일은 특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소 씨가 특별사동 근무 교도관이었고 그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한 내용을 들은 바 있다”고 확인했지만 “고문치사 사건의 가담자가 3명 더 있었다는 사실은 그 전에 한재동 교도관으로부터 이미 들어 알고 있었고, 소 씨로부터 전해들은 강진규의 진술은 그가 가해 경관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믿을 수 없어서 안유 보안계장으로부터 다시 확인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 씨가 당시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상대하지 않고 들은 내용도 가급적 잊어버리려고 했다. 한재동 교도관과 안유 보안계장은 당시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안위에 대해 걱정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 이부영 운영위원장이 작성한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낸 한재동 전 교도관을 29일 안양 근무지에서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부영 운영위원장이 ‘비둘기’를 날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한재동 당시 영등포교도소 교도관은 29일 오후 안양 근무지에서 기자와 만나 강진규 자필 기록에 대해 “며칠 전 이부영 의원과 만나서 처음 봤다”며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자세히 기록해 놨더라”고 말했다.

한재동 전 교도관은 “나는 당시 공장담당이었는데 5시에 폐방하면 특사 바로 옆 직원이발소에서 대기하다 6시에 퇴근하게 되는데, 그 시간을 이용해 이부영 의원을 만나곤 했다”며 “소영환 교도관이 못 오게 했으면 내가 들락거릴 수가 없었는데, 그때 한쪽으로 피해주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역시 “자료는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고 소영환 씨에게 조언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는 권력층에 찍힐까봐 관련 인터뷰나 보도도 없었는데, 매년 기념일 전후라도 기사가 나가서 젊은 세대가 잊지 않고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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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면 이 땅에서 대공분실이 사라질까

[1987 영화감상문] 언제면 이 땅에서 대공분실이 사라질까
 
 
 
김련희 평양시민 
기사입력: 2018/01/29 [22: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987년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피를 흘리는 이한열 열사, 결국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다 1달암에 영영 심장의 고동이 멈추었으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6월항쟁으로 전두환독재정권을 몰아내게 되었다.  

 

2018년 새해를 맞으며 나는 남녘에서 6년만에 2차 송환을 기다리시는 장기수선생님들과 함께 영화관을 가게 되었다.

별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여서 가기 싫다고 망설였지만 장기수선생님들이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며 한사코 데리고 가시는 것이였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어르신들의 성의에 이끌려 간 곳이지만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남쪽의 영화관은 사뭇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북에서 영화관에 가본 경험으로 1000석이 넘는 큰 방으로 생각했었는데 정작 눈앞에 펼쳐진 서울대입구 롯데시네마 4관은 100석정도의 아담하고 귀여운 작은 방이었다.

 

▲ 영화 1987 

 

우리가 보게 된 영화는 <1987>, 2017년 12월 27일부터 한창 대개봉중에 있는 신작이었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조사 중에 잔인한 고문행위에 의해 스물두 살 애젊은 서울대생의 사망으로부터 시작되는 <1987>은 처음부터 가슴을 조여왔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크나큰 충격이었다.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이 말을 시작으로 고문치사 사건이 은페되자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공안검사, 기자, 교도관 등 용기있는 사람들의 정의의 행동과 이한렬 열사의 죽음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벅참과 울분으로 마음은 먹먹하고 무거웠다.

 

“와 못 가노, 종철아, 잘 가그라,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영화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박종철열사의 마지막 떠나는 순간이었다.

얼어붙은 강에 달라붙은 아들의 유해를 손으로 떠서 강물에 흘러보내시는 아버지의 저 피눈물의 모습,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이 엄청난 고통을 어떻게 견뎌나갈 수 있을까

꽁꽁 얼어붙은 강위에 자식의 유해를 뿌리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저 아버지의 타들어가는 아픔과 피터지는 고통을 누가 감히 다 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식을 가진 같은 부모로써, 또 7년 째 보석같이 소중한 딸자식과 생이별 당하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으로 다가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손으로 때려잡은 사람들 비명소리가 머릿속에서 빙빙 돌아요, 우리가 애국자입니까?”

 

대공수사관의 이 말이 마음속에 콱 박힌다. 너무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고문행위들과 최루탄을 쏘아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대학생들을 때려잡는 수사관들과 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와 울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도무지 현실이었다고 받아들이기가 너무 무서웠다.

이한렬 열사를 비롯한 대학생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아대던 경찰들도 20대 젊은 청년들이였다.

저 사람들이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감정일가? 그때를 기억할 때마다 어떤 마음일가? 

아마도 깊은 자책감으로 평생을 가슴 조이며 살아갈 것이다.

 

“데모하려 가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날 같은 거 안 와요. 꿈꾸지 마요. 정신 차려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대사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묻는 연희의 저 생각은 일반인들의 전반적인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 화장을 밀어붙이는 경찰에 시신보존명령을 내렸던 최검사나 고문치사협의로 수감중인 조형사를 통해 알게 된 사건의 진상을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알려내는 교도관,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보도 지침이냐며 진실을 찾기 위해 발로, 땀으로 뛰여다닌 기자들, 이 분들이 그때 그런 용기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더라면.......  

그 날 같은 거 안온다고 모든 사람들이 공권력에 머리 숙이고 현실을 도피했다면 ......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렇다, 최루탄을 맞아가며 경찰들과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꽃다운 청춘까지도 바쳐야 했던 그들도 이 나라의 평범한 국민이었고 애젊은 대학생들이었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었다. 언뜻 북에 있을 때 보았던 광주에 대한 영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피여도 피여도 꽃은 없고

맺어도 맺어도 열매없으니

강산은 찢기여 원한이 사무쳤네

오 짓밟힌 내 고향이여

아 남이 사는 내 고향이여

살아도 살아도 살  곳 없고 

죽어도 죽어도 묻힐데 없으니

강산은 찢기여 원한이 사무쳤네

폭풍아 몰아쳐라

바다여 노호하라

수난을 불사르고 새봄을 맞이하자

 

그 영화에서 한 청년이 이렇게 절절하게 웨치고는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그때는 그냥 영화로만 다가왔기에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다.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거세찬 6월 항쟁의 불길을 보며 잠시 생각해 본다.

...나도 그 시절 함께 존재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토록 천진하고 무관심하던 연희도 이한렬열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어느덧 버스에 올라 자연스럽게 주먹을 추켜든다.

수천의 사람들로 꽉 채운 서울광장의 가슴 뛰는 모습은 결코 어둠은 진실을 이길 수 없고 민중의 힘은 누구도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가 끝났지만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방에는 먹먹하고 무거운 기운만이 맴돌았다. 자막에서 흘러나오는 “그날이 오면”의 애절하고 간절한 선률만이 조용한 정적 속을 유유히 흘렀다.

 

나는 영화관을 나서면서 함께 가셨던 장기수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예요? 나라 없던 식민지 때라면 몰라도 당당하게 자기 나라에서 어떻게 국가가 국민을 저렇게 최루탄으로 쏴죽이고 물고문으로 죽일 수 있나요?’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6월항쟁 이전에 대공분실에 갇혀 당했던 물고문, 통닭고문, 전기고문, 데포수정, 쭉지묶기, 고문들은 차마 너무 부끄러워 감히 영화에도 내놓치를 못해’

아! 정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정말 이건 아닌데, 어떻게 같은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1987>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이다.

그때도 민주화를 외치며 애젊은 청춘을 바쳤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화를 부르며 차디찬 거리에 뛰쳐나가고 있다.

광주인민봉기 때는 비행기와 탱크를 내몰아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면 6월항쟁 때는 최류탄으로 20대 꽃다운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2016년 박근혜 반대시위 때는 물대포를 쏘아 농부의 소중한 목숨을 또다시 앗아갔다.

오랜 세월 수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민주화를 부르며 목숨을 바쳐왔지만 아직도 너무나 민주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 땅에는 공권력의 탄압이 그대로 남아있다.

언제면 먼저 간 열사들의 민주화 소원이 실현될 수 있을까?

언제면 우리가 탄압과 희생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면 이 땅에서 대공분실이 사라질 수 있을까?

언제면 반공, 종북의 무서운 쇠사슬에서 벗어나 우리 한민족이 통일의 광장에서 얼싸안고 춤출 수 있을까?

 

이 땅에 민주화와 평화를 간절히 소원하며 자신의 청춘도, 생명도, 가정도,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치신 애국열사분들에게 경견한 마음으로 머리숙여 인사드립니다.

열사들의 값비싼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며 후대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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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 평화를, ‘KOREA’의 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1/30 10:21
  • 수정일
    2018/01/30 10: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포토]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훈련 현장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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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9  1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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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11일 앞으로 다가왔다. 북측의 평창 올림픽 참가로 평화올림픽이 막을 오르게 됐다. 여기에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은 스포츠를 통해 평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올림픽의 임무와 맞닿아 있다.

지난 25일 북측 여자 아이스하키 감독과 선수 등 15명이 방남했다. 다음달 10일 ‘코리아’와 스웨덴의 첫 예선전을 앞두고 빠른 시일 내에 훈련을 해야하기 때문.

남북 선수들은 현재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KOREA’ 팀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북측에서는 박철호 감독과 김은정, 려송희, 김향미, 황충금, 정수현, 최은경, 황설경, 진옥, 김은향, 리봄, 최정희, 류수정 선수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새러 머리 ‘KOREA’ 총감독의 지휘 하에 남북 선수들은 일부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듯,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공동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남북 선수들이 새러 머리 총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남북 선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훈련 중 의견을 교환하는 남북 선수들.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남북 선수들의 의견 교환.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북측 선수의 훈련 모습.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남북 선수들이 함께 연습 경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북측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머리 총감독.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남측 코치의 설명을 듣는 북측 선수들.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2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도착한 남북 선수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 남북 선수들의 만남. [사진제공-통일부]
   
▲ 남북 선수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통일부]
   
▲ 함께 식사를 하는 남북 선수들.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생일을 맞은 북측 선수를 팀원들이 축하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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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여론 잇따르자 ‘부랴부랴’ 소방관련법 처리 나선 국회

국회 법사위서 계류 중인 소방관련법 30일 일괄 처리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8-01-29 19:27:36
수정 2018-01-29 19: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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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국회 본회의ⓒ정의철 기자
 
 

수많은 사상자를 낸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소방 관련 입법들을 1년 넘게 방치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제천 화재 참사부터 밀양 화재 참사까지 대형 참사가 잇따랐지만 국회에서 가로막힌 소방 안전 관련 법안만 34건에 달하는 상황이다. '입법 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국회는 그제서야 법안 처리 일정을 잡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월 임시국회 개회식이 열리는 30일 전체회의를 열고 법사위서 계류 중인 소방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임시국회 개회 전에 법사위를 열어 법안을 처리하는 조치는 이례적인 일로, 소방 관련 법들이 국회에서 발이 묶여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소방기본법 개정안 ▲도로교통법 개정안 ▲소방시설 공사업법 개정안 등을 처리할 방침이다.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 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곳에 주차하거나 진입을 가로막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소방 관련 시설의 주변 구역을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그 구역에서의 불법 주·정차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소방시설 공사업법 개정안은 방염처리 업자의 능력을 국가가 평가하고 공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방기본법과 소방시설 공사업법은 지난 2016년 11월, 도로교통법은 지난해 3월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처리되지 못했다. 제천 화재 참사까지만 해도 이들 법안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자 행안위는 국회가 폐회 중임에도 긴급하게 회의를 열고 관련 법을 일괄 상정해 통과시켰다. 다만, 당시에는 국회 회기가 아닌 기간이었기 때문에 법사위에 상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밀양 화재 참사 이후 다시금 소방 관련법들이 주목받자 국회는 부랴부랴 관련 법 처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 법안이 30일 법사위에서 처리되면 여야는 같은 날 오후에 열리는 2월 임시국회 개의를 위한 본회의에서 곧바로 의결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화재예방 및 소방안전 관련 법률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정 의장은 법사위, 행안위 등 4개 관련 상임위원장에게 별도로 서한을 보내 관련 법안들의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입법적, 제도적으로 미흡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게 된다"며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 국회가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안전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화재예방 및 소방안전 관련 법률안은 총 34건으로 법사위에는 5건, 관련 상임위에는 29건이 계류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26일 오전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화재원인 및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26일 오전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화재원인 및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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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에 세금 322조? 자유한국당의 '눈속임 현수막'

[사진] 밑에는 보일락말락하게 '2050년까지'... "중앙당에서 일괄적으로 걸라고 했다"

18.01.28 14:04l최종 업데이트 18.01.29 22:03l

 

 

최저임금이 322조라고? 무슨소리인가 봤더니 322조 아래 작은글씨로 '2050년까지'라고 기재했다. 전형적인 눈속임 현수막이다.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 최저임금이 322조라고? 무슨소리인가 봤더니 322조 아래 작은글씨로 '2050년까지'라고 기재했다. 전형적인 눈속임 현수막이다.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 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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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9일 오후 6시 30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 거리에 현수막이 하나 걸렸다. 

"최저임금? 322조. 박순자"

 

지나가며 보이는 큰 글씨로 알아 볼 수 있는 문구는 이것이다. 언뜻 보면 최저임금에 322조가 들어갔거나,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이 322조를 받거나 하는 의미로 보인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이 엄청난 임금을 받아갔다는 의미를 담은 현수막으로 보였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니 최저임금, 물음표 옆에 삽입표시를 하고 작은 글씨로 '세금'이라고 적어줬다. 박순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아마 국민세금 322조가 최저임금으로 "새어 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322조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확대해보았다. 

'322조' 문구 아래 콩알만한 글씨가 이제서야 보인다. 

'2050년까지'.

눈속임 현수막이다.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지금부터 32년 뒤까지 들어가는 세금까지 계산하여 본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이 '뺏어가는' 세금은 644조가 될 수도 있고, 966조가 될 수도 있다. 콩알만한 글씨로 '2082년까지' 또는 '2114년까지'라고 적으면 그만이니까. 

박순자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이었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다시 당적을 옮긴 안산 단원을 3선 의원이다.

박순자 의원실은 "해당 현수막은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 일괄적으로 걸라고 시안을 보내준 것"이라며 "저희들은 그대로 걸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같은 시각 서울 은평구 은평구청 주변에도 이같은 유형의 현수막이 걸려있어, 눈속임 현수막이 자유한국당의 조직적 움직임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현수막에는 자유한국당 은평당원협위원장 명의로 '퍼쓰는 건강보험 318조'라고 쓰여있고, 역시 그 밑에는 눈에 보일락말락한 글씨로 '2050년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퍼쓰는 건강보험! 318조  서울 은평구 은평구청 주변 도로변에 걸린 자유한국당 은평당원협위원장 명의의 플래카드.
▲ 퍼쓰는 건강보험! 318조 서울 은평구 은평구청 주변 도로변에 걸린 자유한국당 은평당원협위원장 명의의 플래카드.
ⓒ 박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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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대중의 상상력 “文, 미군 철수하고 北 택할 것”

[아침신문 솎아보기] 현직 검사, 성추행 피해 폭로 파문 확산 … MB 국정원, 대북공작금 유용해 DJ·노무현 뒷조사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8년 01월 30일 화요일

 

30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머리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경향신문 “채용비리 공공기관장 ‘무관용’ 8명 즉시 해임”
국민일보 “교수 최소 6명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 조사 피해갔다”
동아일보 “83대 17 고장난 ‘워라밸’ 시계”
서울신문 “채용 비리 무관용 公기관장 ‘물갈이’ 
세계일보 “‘금강산 공연 취소’ 北, 한밤 일방 통보” 
조선일보 “北, 한밤에 ‘금강산 행사’ 일방 취소” 
중앙일보 “‘금강산 공연 취소’ 북한 한밤 일방통보” 
한겨레 “공공기관 부정합격자 300명 퇴출한다” 
한국일보 “여섯 나라의 첫 도전 ‘평창은 열정이다’” 

현직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파문 

현직 여성 검사가 29일 자신이 겪은 성추행 경험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후에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구체적 증언을 이어갔다.

그는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 검사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상당 시간 동안 허리와 엉덩이를 감싸안고 만지는 상당히 심한 추행을 했다”고도 했다. JTBC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굉장히 화가 났던 것이 그 앞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말리지도 않았고 아는 척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 검사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 사진=SBS 비디오머그
▲ 검사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 사진=SBS 비디오머그
 

서 검사는 내부 게시판 글에서 “공공연한 곳에서 갑자기 당한 일로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그 후 어떤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해당 사건 후 “갑작스러운 사무 감사를 받으며, 그간 처리했던 다수 사건에 대해 지적을 받고, 그 이유로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고,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을 받았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인사발령의 배후에 안 검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안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장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서 검사가 추행 사건 이후 조직 안에서 겪었다고 폭로한 경험은, 억울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검찰 조직의 ‘인권 감수성’이 어느 정도까지 추락했는지도 생생하게 보여줬다”며 “괴로워하는 그에게 동료 검사들은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면 그들은 너를 더욱 무능하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법무부에 알렸지만 ‘검사 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상사 평가나 잘 받으라’는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안 전 검사는 29일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사실관계를 기억하지 못해 당시 동석자들을 상대로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사실관계가 정확히 확인되면 다시 입장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그 일과 관련해 사과 요구를 받은 일은 없으며 해당 검사에 대해 불이익을 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검 감찰본부는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비위자가 확인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며, 서 검사의 사무 감사 관련 지적 사항의 적정성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 검사는 JTBC ‘뉴스룸’에서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며 “가해자가 최근 종교에 귀의해서 회개하고 구원 받았다며 간증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범죄나 성폭력 피해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 현직 여성 검사가 29일 자신이 겪은 성추행 경험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후에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구체적 증언을 이어갔다. 사진=JTBC
▲ 현직 여성 검사가 29일 자신이 겪은 성추행 경험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후에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구체적 증언을 이어갔다. 사진=JTBC
 

한겨레 “이번 글은 그 무게가 남다르다”

 

한겨레는 30일치 사설(“어느 현직 여검사의 #미투가 말하는 것”)에서 서 검사 글에 대해 “이번 글은 그 무게가 남다르다”며 “우리 사회 가장 폐쇄적이고 권력서열이 엄격한 검찰 조직 내부에서 나온 목소리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그가 밝힌 가해자는 ‘범우병우 사단’으로 불리며 검찰국장에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물러난 안태근 전 국장”이라며 “서 검사는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는 걸로 정리했지만, 어떤 사과나 연락도 못 받았고 이후 사무감사, 검찰총장 경고, 전결권 박탈,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으로 이어지는 불이익을 당했다며 관련 문서를 첨부했다. 일련의 상황 뒤에는 안 전 국장과 당시 검찰국장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성범죄 자체도 문제지만, ‘정의 구현’을 내세우는 검찰 조직이 범죄 의혹을 덮고 피해자에게 인사권을 남용했다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검찰 내부 승진·인사 제도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데까지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피해 당사자가 직접 나서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일반 직장도 그런데, 하물며 검찰 같은 상명하복 조직에선 성폭력 피해자가 ‘꽃뱀’으로 낙인찍히거나 ‘무능한 검사의 일방적 주장’이라 매도되기 십상”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또 “거대한 조직 앞에서 개인이 체념하면 할수록 변화는 요원한 법”이라며 “29일 한 방송에서 그는 지난 8년간 괴로움과 자책감에 시달렸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그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 한겨레 30일치 사설.
▲ 한겨레 30일치 사설.
 

문재인 정부가 ‘미군 철수’ 감수?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30일자 칼럼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는 남북 대화를 한·미 동맹 위기로 간주하고, 문재인 정부가 “미군 철수를 감수”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김 고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북한의 올림픽 참여에 모든 것을 건 듯 남북 대화에만 매달리며 저자세를 마다하지 않은 친북 외교, 미국과의 관계에서 고비마다 엇박자를 내는 탈(脫)동맹적 외교, 사드 배치를 두고 비굴하리만치 머리 숙인 친중 외교, 포퓰리즘의 전형인 각종 임금·세금·복지 정책에 올인하며 이른바 적폐 청산에 나선 역주행과 과속 질주 등은 일관된 공통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김 고문은 “한·미 간의 작금 상황은 거의 모든 면에서 엇박자로 가고 있다”면서 “문 정부는 입으로는 동맹을 언급하면서 속으로는 미국이 마치 이 정부의 ‘남북’ 노력에 장애물인 양 취급하고 있다. 올림픽 이후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지연, 미 함정의 부산 입항 거절 등 과거라면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고문은 다음과 같이 상상력을 펼쳤다. “머지않아 이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몰리게 될 것이다. 문 정부는 미군 철수를 감수하면서까지 종국적으로는 ‘북한으로 가는 길을 택할 것이라는 점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선택이 ‘핵을 가진 북한이라면 미국도 대한(對韓) 정책의 방향을 틀 것이 분명하다. 실용주의자 트럼프는 한·미 동맹이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동맹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원하지도 않고, 미국으로서도 얻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많은 ‘동맹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 30일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 30일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그는 “문 정부는 미군 철수를 감수하면서까지 종국적으로는 ‘북한으로 가는 길을 택할 것”, “실용주의자 트럼프는 한·미 동맹이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동맹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섣부르게 단정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명예교수는 29일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국제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양보를 끌어내고 대외적으로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와 더불어 북한의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다”며 “한국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 특보는 “평창올림픽과 관련해 지뢰(위험요소)가 많지만, 외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 교류를 늘리고 신뢰를 구축하려고 한다.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평창올림픽이 북한의 체제 안보를 위한 정치 게임에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북한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리하게 두면 된다. 우리가 더 크게 이 기회를 이용하면 된다”며 “한국의 보수 야당들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부르면서 집중포화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북한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MB 국정원 공작금으로 DJ·노무현 뒷조사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이 대북 공작금 10억 원 이상을 빼돌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불법 뒷조사를 한 혐의가 검찰에 포착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29일 국정원 최종흡 전 3차장과 김승연 전 대북정보국장 2명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과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대북 공작금 10억여 원을 유용해 두 전직 대통령의 가십성 비위를 수집하는 데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이 대북공작금을 유용해 전직 대통령들과 관련된 풍문성 비위 정보를 수집했고, 원세훈 전 원장이 개인적으로 1년간 사용한 호텔 스위트룸 비용을 치렀다”면서 “국정원 공작금을 이런 데 쓰는 것은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은 “당시 국정원은 전직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관련 풍문 등을 확인하고자 공작 활동을 벌인 걸로 알려졌다”며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풍문 확인 작업은 ‘데이비드슨 작전’으로, 노 전 대통령 관련 비위 풍문 확인 작업은 ‘연어 작전’으로 명명했다. 데이비드슨은 김 전 대통령의 이니셜 DJ와 앞글자 D가 같아서, 연어는 퇴임 뒤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빗대 지은 명칭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 세계일보 30일치 10면.
▲ 세계일보 30일치 10면.
 

세계일보는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 서거 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자 이를 차단할 목적에서 국정원이 정치공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거액을 써가며 해외에서 수집한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첩보는 사실과 다른 것이 대부분이어서 음해 공작은 불발에 그쳤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국정원의 대북 공작금은 외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을 국내로 데려오는 등 긴박한 사업에만 써야 하는 예산”이라며 “이 때문에 검찰은 원 전 원장 혼자 이를 결정하기보다는 사전에 청와대에 보고해 재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公 기관 채용비리… 기관장 8명 해임 

정부가 김상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최창운 한국원자력의학원장, 정기혜 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장 등 8개 공공기관장을 채용 비리로 해임했거나 해임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동아일보가 30일치 1면에서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채용 비리 혐의가 드러난 직원 189명은 일단 업무에서 뺀 뒤 검찰 기소 단계에서 퇴출하기로 했다. 

 

▲ 동아일보 30일치 1면.
▲ 동아일보 30일치 1면.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 18개 정부 부처는 ‘2013∼2017년 공공분야 채용 비리 특별점검’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동아일보는 “점검 결과 중앙 부처 산하 공공기관, 지방 공공기관, 기타 공직 유관단체 등 1190곳 가운데 946곳(79.5%)에서 4788건의 비리가 적발됐다”며 “부정 합격이 확인된 직원만 1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정부는 한국수출입은행 서울대병원 등 중앙 부처 산하 공공기관 33곳과 강릉의료원 대구시설공단 등 지방 공공기관 26곳, 군인공제회 등 공직 유관단체 9곳 등 68개 기관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 기관들은 고위 인사의 청탁을 받고 합격자 수를 임의로 늘리거나 형식적인 면접으로 내정자를 합격시키는 방식으로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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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굴복, 50년 만에 재연되는가?

[개벽예감284] 미국의 굴복, 50년 만에 재연되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1/29 [13: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50년 뒤 세상에 알려진 놀라운 사실들

2. 지하기지 밖으로 나온 ‘금성’의 원조

3. 지하기지 밖으로 나온 ‘번개’의 원조

4. 1968년 조선이 공개한 최강의 무기

5. 그들의 해석은 빗나갔다

6. 미국이 전쟁연습 중단하고 굴복할 때까지 

 

▲ <사진 1> 이 사진은 조선이 1968년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하여 전리품으로 빼앗은 미국 해군 전자정찰함 푸에블로호를 촬영한 것이다. 1968년부터 원산항에 있었던 이 전리품은 반미대결전 승리 30주년이 되는 1998년에 동해, 남해, 서해를 거쳐 평양의 대동강변 전시구역으로 이전되었고, 조국해방전쟁 승리 60주년을 맞은 2013년에 새로 개건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보통강변 전시구역으로 다시 이전되었다. 위의 사진은 보통강변에 전시된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50년 전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일어났을 때, 백악관은 경악실색하였고, 전 세계는 충격으로 들끓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50년 뒤 세상에 알려진 놀라운 사실들

 

2018년 1월 22일과 23일 웹싸이트 ‘조선의 오늘’에 ‘텔레비죤기록편집물 - 조선중앙방송은 세상에 전한다’ 제1부와 제2부가 현시되었다. 2017년 여름 조선에서 방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 영상물은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인 1968년 1월 23일부터 12월 23일까지 11개월 동안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전해준다. 그것은 조선에서 반미대결전의 첫 승리로 기념하는 역사적 사건이며, 세계정치사에는 푸에블로 위기(Pueblo Crisis)라고 기록된 역사적 사건이다. 

 

올해 푸에블로 위기 50주년을 맞이하여 조선과 미국에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각각 공개되었다. 이 글은 최근 공개된 사실들에 기초하여 푸에블로 위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다.     

 

미국 해군 소속 895톤급 전자정찰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는 1968년 1월 23일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 영해를 8.2km나 침범하여 조선에서 발신되는 각종 무선교신과 전파신호를 포착하는 불법정탐활동을 벌이던 중 현장에 긴급출동한 조선인민군 해군 소속 경비함 1003호와 어뢰정에 나포되었다. 푸에블로호는 당시 미국이 보유한 최첨단 전자정찰선 세 척 가운데 한 척이었다. 조선인민군은 그런 전략정찰자산을 해상나포하여 원산항으로 끌어갔고, 그 전자정찰선에서 근무하는 장교와 사병 82명을 생포하여 평양으로 압송하였다. 원래 푸에블로호 승조원은 모두 8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1명은 함선무기고 철문을 열려고 하다가 조선인민군 경비함이 발사한 직격탄을 맞고 즉사하였다. <사진 1>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백악관은 경악실색하였고, 전 세계는 충격으로 들끓었다. 미국은 자기들이 당한 사상 최악의 치욕을 씻어보려고 몸부림치며 보복전을 준비하였다. 당시 미국이 획책하였던 보복전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2018년 1월 20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기밀해제된 비밀문서들을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68년 당시 미국 국방부 전쟁기획자들은 보복전 작전계획을 12개나 작성하였는데, 여기에는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조선 영해 안으로 미국 해군 군함을 또 다시 진입시켜 조선인민군을 무력충돌로 유인하는 방안, 조선의 군사기지들과 비행장들을 폭격하는 방안, 조선의 주요항만들에 기뢰를 투하하여 해상교통로를 봉쇄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국방부 전쟁기획자들이 꾸며놓은 전쟁도발각본에 따라, 항공모함 3척과 전함 25척으로 편성된 초대형 함대를 동해작전수역에 출동시킨 ‘포메이션 스타 작전(Operation Formation Star)’이 전개되었고, 그와 동시에 각종 전투기 및 폭격기 등 200대 이상으로 편성된 방대한 공습편대들을 주한미공군기지들과 주일미공군기지들에 집결시킨 ‘컴뱃 팍스 작전(Operation Combat Fox)’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조선이 푸에블로호 선체와 승조원 전원을 석방, 송환하지 않으면 군사보복을 단행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선제타격준비태세를 갖추었다. 1968년 2월 한반도에는 그야말로 일촉즉발 전쟁위험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그처럼 전쟁광기를 부리며 협박과 공갈을 들이대었으나, 조선은 움츠러들거나 놀라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미국에게 ‘3As’를 강경하게 요구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3As’라는 것은 미국이 조선영해침범을 시인하고(admit), 조선에게 공식 사죄하며(apologize), 재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라(assure)는 뜻이다. 

 

그러자 약이 바짝 오른 미국은 동해에 집결시킨 항공모함 3척 가운데 세계 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함(USS Enterprise)을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타격단을 원산항에서 불과 24km 떨어진 인접수역으로 바짝 들이밀었다. 국제법적으로 영해선은 해안선으로부터 22.2km 떨어진 해상에 그어졌으므로, 엔터프라이즈함 항모타격단은 조선 영해선 바로 앞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 해안에서 100m 고도에 올라서면 36km 밖 해상까지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으므로, 당시 원산 시민들이 언덕에 올라서면 엔터프라이즈함 항모타격단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주목되는 것은, 1968년 당시 조선에는 핵무기가 한 발도 없었고, 미국은 1958년 1월 29일 주한미국군기지에 핵무기를 반입하였다고 발표한 이후 푸에블로 위기가 발생한 1968년까지 10년 동안 수많은 핵무기들을 주한미국군기지에 반입, 배치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핵무기정보분석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2005년 9월 28일에 발표한 논문 ‘남코리아에서 전개된 미국 핵무기 역사’에 따르면, 1960년대 말 미국은 8종의 전술핵무기를 약 950발이나 주한미국군기지에 집중배치해두었다고 한다. 그 전술핵무기들은 전략핵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폭발위력이 발생하도록 설계되었으므로, 선제핵타격에 사용될 실전무기들이었다.  

 

1968년 2월 세계는 매우 불안한 시선으로 조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핵무기가 한 발도 없는 조선이 전술핵무기 950발을 한반도에 집중배치한 미국의 핵공격을 받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핵참화를 입게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국제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미국의 가공할 핵공격위험 앞에서 조선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이 엔터프라이즈함 항모타격단을 원산항 코앞으로 들이밀면서 엄청난 핵공격위협을 가하였던 그 날은 조선에서 건군절 20주년을 맞은 1968년 2월 8일이었다. 미국은 일부러 조선의 건군절에 맞춰 핵공격위협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이 세계 최초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건조한 엔터프라이즈함을 촬영한 것이다. 1968년 푸에블로 위기가 일촉즉발 전쟁위험으로 고조되고 있었던 때, 미국은 엔터프라이즈함을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타격단을 원산항 코앞으로 들이밀면서 엄청난 핵공격위협을 가하였다. 그 날은 조선에서 건군절 20주년을 맞은 1968년 2월 8일이었다. 전 세계가 핵공격위협에 직면한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작, 평양의 풍치수려한 대동강변에 있는 옥류관에서 조선인민군 창건 2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경축연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원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미국의 핵공격위협과 평양 옥류관에서 벌어진 조선의 건군절 경축연회, 그것은 세상을 놀라게 한 극적이고, 경이로운 대조였으며, 1968년 1월부터 11개월 동안 지속된 치열한 조미대결전에서 결국 누가 승리할 것이고, 누가 패배할 것인지를 예고해준 전조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 세계가 핵공격위협에 직면한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각, 평양의 풍치수려한 대동강변에서 조선인민군 장병들의 우렁찬 박수갈채가 울려나오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창건 2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경축연회가 옥류관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원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미국의 핵공격위협과 평양 옥류관에서 벌어진 조선의 건군절 경축연회, 그것은 세상을 놀라게 한 극적이고, 경이로운 대조였으며, 1968년 1월부터 11개월 동안 지속된 치열한 조미대결전에서 결국 누가 승리할 것이고, 누가 패배할 것인지를 예고해준 전조였다.

 

김일성 주석은 1968년 2월 8일 옥류관에서 진행된 건군절 20주년 기념 경축연회에서 연설하였다. 푸에블로 위기와 더불어 세계정치사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인 연설이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세를 격화시키며 끝끝내 전쟁의 길로 나간다면 이번에는 그들이 더 큰 참패를 당하리라는 것을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세계가 모르고 있었다. 조선이 푸에블로호 나포보다 더 큰 참패를 미국에게 안겨줄 것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경고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세계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전쟁이 닥쳐온 대결국면에서 의례히 나오는 통상적인 경고발언으로 여겼을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조선인민군 건군절 20주년 경축연설에서 미국에게 보낸 경고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었는지는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뒤 세상에 알려졌다. 위에서 언급한 조선중앙텔레비죤 기록편집물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건군절 경축연회를 마친 뒤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에게 “미국놈들이 푸에블로호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떠드는데, 비밀에 붙여오던 지상대해상로케트와 지상대공중로케트를 공개하여 우리의 보복선언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어 원쑤들을 전율케 하시오. 저들만 로케트가 있는 줄 알고 우쭐대는 저 미국놈들의 눈알이 뒤집히게 어디 한 번 로케트를 보란 듯이 공개하시오”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1960년대 조선의 군사력에 대한 외부세계의 몰이해와 편견을 무너뜨리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은 1968년 이전에 벌써 지대함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지하기지 밖으로 나온 ‘금성’의 원조 

 

“미국놈들의 눈알이 뒤집히게 공개하라”는 김일성 주석의 명령에 따라 지하기지 차폐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지대함미사일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조선이 소련에서 도입하여 실전배치한 P-15 터밋(Termit) 대함미사일이었다. 무게가 454kg에 이르는 고폭탄두를 장착한 이 대함미사일은 해수면 위 25~100m 고도를 마하 0.95의 속도로 순항비행하면서 80km 밖에 있는 적함을 타격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대함미사일이었다. 

 

▲ <사진 3> 1968년 2월 초 미국이 3개의 항모타격단을 동해작전구역에 전진배치해놓고, 200대 이상의 각종 작전기들로 편성된 대규모 공습편대를 주한미국군기지와 주일미국군기지에 전진배치해놓고 조선을 위협하였을 때, 김일성 주석은 당시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하고 있었던 비장의 무기들을 미국에게 보여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이 지하기지에서 꺼내 미국에게 보여준 것은 조선이 소련에서 도입하여 실전배치한 P-15 터밋 대함미사일이었다. 위의 사진은 1960년대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이 P-15 터밋 대함미사일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이 대함미사일은 당시로서는 뛰어난 작전성능을 지닌 최첨단 무기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이 그런 최첨단 대함미사일을 1960년대에 실전배치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7년 7월 8일 영상자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날 평양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예술단이 총출연한,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 성공기념 음악무용종합공연’이 성대히 진행되었는데, 공연무대 뒤에 설치된 초대형 배경화면에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받으며 전개되어온 미사일개발사 50년을 보여주는 사진영상 190편이 연속 펼쳐졌다. 여기에 실린 <사진 3>은 김일성 주석이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P-15 터밋 대함미사일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원래 그 대함미사일은 고속정 또는 3축6륜 차량에서 쏘는 것이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조선인민군 건군절 20주년 경축연회 직후 지상대해상로케트를 공개하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당시 조선에서는 P-15 터밋을 3축6륜 차량에 탑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이 그런 비장의 무기를 겨누고 있는 줄 모르고 조선을 얕잡아본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원산항에서 24km 떨어진 인접수역까지 바짝 들이밀었으니, 사거리가 80km인 대함미사일 사정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것이었다. 1968년 2월 어느 날, 지하기지에서 출동하여 작전구역으로 신속히 이동한 조선인민군 3축6륜 차량들에서 P-15 터밋 대함미사일이 동시에 집중발사되면, 84,000톤급 핵추진 항공모함을 격침시키지는 못해도 항모사령탑과 비행갑판을 파괴하여 완전한 작전불능상태에 빠뜨릴 수 있었다. 각종 레이더들, 무선교신장치들, 항법장치들이 파괴되어 꼼짝하지 못하고, 비행갑판이 파괴되어 함재기들마저 이착륙하지 못하게 된 핵추진 항공모함을 향해 고속으로 돌진하는 조선인민군 어뢰정들이 중어뢰를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집중발사하면 엔터프라이즈함은 나자빠진 공룡처럼 거대한 물거품을 내뿜으며 동해에 가라앉게 될 판이었다.  

 

조선의 50년 미사일개발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P-15 터밋을 바탕으로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대함미사일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금성-1 대함미사일이다. 지금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금성 계열 대함미사일들 가운데 금성-1밖에 알지 못하지만, 지난 수 십 년 동안 기술혁신에 힘써오는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최근 작전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금성-4를 시험발사하여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으니, 그 날은 2017년 6월 8일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조선국방과학원에서 새로 개발한 금성-4 지대함미사일이 성공적으로 시험발사되었던 것이다.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차에서 발사된 최신형 지대함미사일 금성-4는 작전기동력, 타격정밀도, 순항비행능력, 발사조종능력, 사거리연장 등에서 기술혁신을 이룩한 최첨단 지대함미사일이다. 

 

▲ <사진 4> 이 사진은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의 지대공미사일 번개-1을 촬영한 사진이다. "새 기술로 장비된 로케트부대"라고 쓴 해설문구가 보인다. 이 사진은 2017년 12월 11일 조선에서 방영된 20시 보도에 나온 화면들 가운데 한 장면이다. 1968년 2월 초 푸에블로 위기가 일촉즉발 전쟁위험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 김일성 주석은 소련에서 도입하여 실전배치한 S-75 드비나 지대공미사일을 미국에게 보여주라고 명령하였다. 이 지대공미사일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였다.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S-75 드비나를 바탕으로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지대공미사일 번개-1을 만들었으니, 그 때가 1968년 10월 20일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지하기지 밖으로 나온 ‘번개’의 원조

 

푸에블로 위기가 날로 격화되어 일촉즉발 전쟁위험이 한반도에 몰려들던 1968년 2월 초, 김일성 주석의 명령을 받은 조선인민군은 지대함미사일과 함께 지대공미사일도 공개하였다. “미국놈들의 눈알이 뒤집히게 공개하라”는 김일성 주석의 명령에 따라 지하기지 차폐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지대공미사일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조선이 소련에서 도입하여 실전배치한 2단형 지대공미사일 S-75 드비나(Dvina)였다. 고체연료와 액체연료를 사용하고, 8축16륜 견인차량에 실려 이동하는 S-75 드비나는 사거리 76km, 요격고도 30km, 비행속도 마하 3의 작전성능을 지닌 당시로서는 최첨단 지대공미사일이었다. <사진 4>

 

위에서 언급한 조선중앙텔레비죤 기록편집물에 따르면, 1968년 2월 10일 한반도 상공 20여 km 고도에서 정찰비행을 하던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U-2 고고도정찰기는 새벽 4시경 황해북도에서 지대공미사일과 “류사한 것으로 판단되는” 물체를 발견하고 이를 공중촬영하였으며, 그 영상자료를 중앙정보국 본부에 보냈다고 한다. 그들이 작성한 정보문서에는 지대공미사일과 비슷하게 생긴 물체가 나타났다고 기록되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읽어보면, 그 물체는 당시 황해북도 지역에 실전배치된 S-75 드비나 지대공미사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푸에블로 위기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던 1968년 10월 20일,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S-75 드비나를 바탕으로 첫 지대공미사일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번개-1 지대공미사일이다. 오늘날 조선이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번개 계열 지대공미사일들의 원조는 1968년 전쟁위기 속에서 태어난 무기인 것이다.  

 

조선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기간에 4개 대대를 무장시킬 S-200 베가(Vega)를 소련에서 수입하였다. 통상적으로, S-200 베가는 1개 대대에 6발씩 배치되므로, 24발을 수입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이 장거리지대공미사일 S-200 베가를 발사하는 장면이다. 조선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기간에 소련에서 S-200 베가 24발을 수입하여 실전배치하였다.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S-200 베가를 바탕으로 개발한 기술로 독자적인 장거리지대공미사일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번개-4다. 사거리가 300km이고, 마하 4의 속도로 날아가는 번개-4는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를 전문적으로 요격하는 무기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의 50년 미사일개발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S-200 베가를 바탕으로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독자적인 장거리지대공미사일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번개-4다. 사거리가 300km이고, 마하 4의 속도로 날아가는 번개-4는 B-52, B-1B, B-2 같은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를 전문적으로 요격하는 장거리지대공미사일이다. 

번개-4는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 열병식 중에 5축10륜 견인차량에 실려 모습을 드러냈다. 번개-4가 세상에 공개된 때는 2012년 4월이었으나, 조선은 이미 1990년대에 번개-4를 350발이나 생산하여 실전배치하였고, 잉여생산분 20발을 미얀마에 수출하였다. 

 

번개-4를 만들어낸 조선의 국방과학자들은 기술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작전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번개-5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였는데, 그 날은 2017년 5월 27일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조선국방과학원에서 새로 개발된 번개-5 지대공미사일이 성공적으로 시험발사되었던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날 번개-5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하면서 “저 무기체계는 개발의 첫 자욱부터 장군님께서 하나하나 품들여 이끌어오시던 유복자무기체계”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번개-5를 완성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4. 1968년 조선이 공개한 최강의 무기

 

1968년 푸에블로 위기 속에서 조선이 미국에게 공포를 안겨준 지대함미사일이나 지대공미사일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최강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이 6.25전쟁의 불길 속에서, 그리고 전후복구의 열정 속에서 이룩해놓은 군민단결이라는 최강의 무기였다. 군대와 인민이 단결하여 싸우는 전쟁을 군민총력전이라고 하는데, 조선에는 외부세계에서 알지 못하는 군민총력전 전투역량이 있었다. 물론 그 전투역량은 푸에블로 위기 이후 50년 동안 더욱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무력침공을 당할 위기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민병대가 조직되어 정규군의 익측역량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미국의 무력침공위협에 맞서 90만 명으로 조직된 베네수엘라 민병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8월 26일 베네수엘라 수도 까라까스에서 진행된 민병대 전투훈련의 한 장면이다. 나이가 중년에 접어든 민병대 여성대원이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을 어깨에 메고 전투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날 베네주엘라에서는 미국의 무력침공에 대비한 대규모 전투훈련이 진행되었다. '주권 2017'이라는 작전명칭으로 불린 전투훈련에는 정규군 20만명과 민병대 90만명이 참가하였다. 꼴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베네수엘라 인민과 정부군은 영토와 주권을 지킬 것이다. 미국의 호전적인 위협에 맞서 10~60세 이르는 인민들은 모두다 국방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2017년 8월 11일 막말쟁이 대통령 트럼프는 "필요하다면, 군사적 선택방안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씨나리오를 검토하겠다"고 떠들어대면서 베네수엘라를 노골적으로 위협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하지만 푸에블로 위기가 발생하였던 1968년, 조선의 민간무력은 다른 나라 민병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조선인민은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조선소년단 등에 망라되어 손에 총을 잡았다. 주목되는 것은, 1968년 당시 조선인민 누구에게나 미국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6.25전쟁 중에 부모처자와 형제자매의 목숨을 빼앗아간 ‘철천지 원쑤 미국놈들’과 반드시 싸워 피의 결산을 볼 최후결전을 벼려온 붙같은 복수심이었다. <CNN> 2018년 1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1968년 1월 23일 해상에서 나포되어 원산으로 끌려간 푸에블로호 승조원 82명은 그들을 평양으로 압송할 열차에 오르기 위해 원산역으로 가고 있었는데, ‘미국놈들이 붙잡혀왔다’는 소식을 듣고 삽시에 모여든 군중들은 두 눈을 천으로 가린 채 끌려가는 ‘미국놈들’에게 침을 뱉거나 그들을 때리면서 격렬한 반미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조선인민의 대미복수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말해주는 장면이다. 6.25전쟁 3년 동안 조선의 도시와 마을들, 산업시설과 경작지가 미국의 무차별 폭격만행으로 파괴되었고, 조선인민 292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처절했던 6.25전쟁경험 속에서 솟구쳐 오른 복수심이 조선인민 전체를 거대한 반미결사전으로 이끌어갔다. <사진 7>은 1968년 푸에블로 위기 당시 조선소년단 아이들, 턱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들까지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손에 총을 잡고 반미결사전에 용약 떨쳐나섰음을 보여준다.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운명을 건 싸움, 준엄한 최후결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던 1968년, 조선 전역에 구축된 수많은 전투진지들, 생산현장들, 건설장들에서 가장 널리 불린 혁명군가는 1967년에 창작된 노래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였다. 

 

▲ <사진 7> 이 사진은 1968년 푸에블로 위기가 닥쳤을 때 반미결사전에 나선 조선인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로농적대원들의 모습도 보이고, 자기 키보다 큰 보총을 어깨에 멘 조선소년단 아이들, 턱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들도 보인다.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다 손에 총을 잡고 반미결사전에 용약 떨쳐나선 것이다. 처절했던 6.25전쟁경험 속에서 솟구쳐 오른 붙타는 복수심이 조선인민 전체를 거대한 반미결사전으로 이끌어갔다.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운명을 건 싸움, 준엄한 최후결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던 1968년, 조선의 전투진지들과 생산현장들과 건설장들에서 가장 널리 불린 혁명군가는 1967년에 창작된 노래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푸에블로 위기가 발생하였던 때로부터 어언 반세기가 지났다. 세월은 그처럼 멀리 흘러갔어도, 대미복수심과 반미결전의지는 조선의 후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로동신문> 2017년 9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1일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는 특별성명을 발표한 직후 6일 동안 조선 전역에서 남자 348만명, 여자 122만명이 반미결전의지를 안고 입대와 복대를 탄원하였다고 한다. 이들 470만명은 군사복무경험을 가진 제대군인들 또는 평소에 민간무력부대들 소속되어 전투훈련을 받아온 사람들이므로, 전투훈련을 따로 받지 않아도 정규군에 곧바로 편입될 수 있었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총병력수는 2017년을 기준으로 128만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470만명이 편입되면 조선의 정규군은 598만명으로 급격히 증원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에게 선제타격위협을 또 다시 가하는 경우, 조선의 600만 대군은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혁명군가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를 부르며 최후결전으로 달려갈 것이다.    

 

 

5. 그들의 해석은 빗나갔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미국의 전문가들은 푸에블로 위기 속에서 미국이 왜 조선을 침공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두 가지 해답을 제시하였다. 그들이 내놓은 해답은 1968년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미국에게는 한반도에서 제2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을 침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놓은 또 다른 해답은 1968년 당시 미국이 조선을 침공하는 경우 소련이 즉각 개입하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무력개입과 세계대전을 우려한 미국이 조선을 침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해답들은 한낱 억측이었다. 1968년 당시 미국에게는 한반도와 베트남에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전쟁수행력이 있었고, 실제로 2개의 전쟁전략을 견지하고 있었다. 미국 국방부가 2개의 전쟁전략을 재고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때는 2009년 3월이었고, 그들이 2개의 전쟁전략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때는 2012년 1월이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1968년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미국이 한반도에서 제2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을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은 억측이다.  

 

또한 1962년 10월 쿠바미사일위기를 겪으면서 핵전쟁공포에 사로잡힌 소련과 미국은 자기들의 무력충돌로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다. 1964년 10월 소련에서 니끼타 후르쇼브(Nikita S. Khruschev)가 실각한 뒤 집권한 레오니드 브레즈네브(Leonid I. Brezhnev)는 미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이른바 긴장완화(détente)를 추구하였고, 미국도 그에 적극 화답하였다. 그 무렵 두 핵강국은 제한적 핵시험 금지조약 체결(1963년 8월), 우주조약 체결(1967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 체결(1968년 7월), 전략무기감축협상 시작(1969년 11월) 등 일련의 긴장완화조치를 연속 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푸에블로 위기 속에서 미국은 소련의 무력개입과 세계대전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1968년 당시 미국이 조선을 침공하는 경우 소련이 즉각 개입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무력개입과 세계대전을 우려한 미국이 조선을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은 억측이다. 

 

위에서 자세히 서술한 것처럼, 1968년 당시 미국이 조선을 침공하지 못한 까닭은 조선이 지대함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 같은 강력한 타격수단들을 갖추어놓고, 군민단결로 반미결사전을 벌일 총력전 준비태세에 돌입하였기 때문이다. <사진 8>

 

▲ <사진 8> 반미대결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1968년 9월 9일은 조선에서 공화국 창건 20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그 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군대와 인민 30만 명이 참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행진이 진행되었다. 위의 사진은 그 날 시위행진에 등장하였던 12관 방사포 모형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모형과 똑같이 생긴 방사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은 6.25전쟁 직후 소련에서 BMD-20 방사포 200문을 도입하여 실전배치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240mm 12관 방사포를 만들어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였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방사포 모형은 240mm 12관 방사포를 형상한 것으로 생각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미국은 조선이 항모타격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강력한 타격수단들과 군민총력전 준비태세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조선에게 굴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푸에블로 위기 속에서 미국은 제22차부터 제26차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판문점 조미군사회담에서 말이 되지 않는 억지를 부리며 계속 버티고 있었다. 

 

사정이 그렇게 되자, 조선은 가장 강력한 압박책을 들이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압박책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공식 사죄를 하지 않으면, 생포한 82명 승조원 전원을 간첩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장교 6명은 총살하고, 나머지 사병 76명은 20년 징역형과 10년 징역형으로 엄벌에 처하겠다고 통보한 것이었다. 억지를 부리며 시간을 질질 끌던 미국은 바로 그 마지막 통보 앞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에게 굴복하였고, 조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하였다. 

 

미국은 울릉도 주변해역에 대기시킨 방대한 해군무력을 은밀히 철수하기 시작하더니,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비공개 군사회담에서 조선이 ‘미제의 항복서’라고 부르는 미국 정부의 공식 사죄문을 조선에게 바쳤던 것이다. 

 

 

6. 미국이 전쟁연습 중단하고 굴복할 때까지 

 

조선이 1968년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한 때로부터 어언 50년 세월이 흘렀다. 세대는 바뀌었고, 정세는 변화하였다. 조선이 1968년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한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2018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음을 공식 선포하였고, 그로써 지난 25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조선과의 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진 2017년 11월까지만 해도, 자기들이 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조선의 핵무력 완성을 저지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영국 언론매체 <가디언> 2017년 1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2017년 11월 마지막 주간에 존 볼튼(John R. Bolton)이 영국 런던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볼튼은 부쉬행정부에서 극우파 외교관리로 악명을 떨친 사람이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그가 런던을 방문한 목적은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중앙정보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전역을 타격할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는 중요한 정보를 영국의 정관계 인사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볼튼이 그 정보를 갖고 런던에 나타난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고도의 핵공격력을 실물로 입증하였다. 2017년 11월 28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였던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의 정보보고는 엄중한 판단착오였다. 

 

2018년 1월 7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 대담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출연한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언제쯤 갖게 되는가를 물은 대담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확실하게 말하지는 못하겠다”고 얼버무렸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엄중한 판단착오를 저질렀으므로, 입이 열 개라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중단시킬 방도는 애초부터 없었지만, 화성-15형의 등장으로 하여 중단방도가 없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을 비핵화하려던 미국의 전략은 화성-15형 시험발사성공으로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된 이후 완전히 파탄되었고, 미국에게 남겨진 선택방안은 조선에게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및 지하핵시험을 동결하라고 요구하는 이른바 핵동결(nuclear freeze)로 좁혀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조선을 비핵화하기 위해 그 무슨 ‘최대 압력’을 가한다는 큰 소리를 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과의 핵대결에서 패한 자기들의 초라한 몰골을 가려보려는 허장성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이 조선의 비핵화를 포기하고 조선에게 핵동결을 요구하려면,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부터 중단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직까지도 그 전쟁연습을 중단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미국의 태도는 2018년 1월 26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태평양사령부 청사에서 진행된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과 송영무 국방장관의 회담에서 드러났다. <아사히신붕> 2018년 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매티스-송영무 회담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18일 직후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시작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사진 9>

 

▲ <사진 9> 이 사진은 2018년 1월 26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태평양사령부 청사에서 진행된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송영무 국방장관이 악수하는 장면이다. 최근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회담에서 미국은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18일 직후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시작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이 강행되는 경우, 한반도 정세는 또 다시 긴장상태에 빠질 것이며, 지금 추진되고 있는 남북관계개선도 중지될 것이다. 긴장완화와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는 미국은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강행하여 정세를 격화시키고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만일 미국이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중단하면, 조선에게 굴복한 것으로 되고, 최근 시작된 남북관계개선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백악관은 오는 3월 하순 그 전쟁연습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강행하면, 한반도 정세는 또 다시 긴장상태에 빠질 것이며, 남북관계개선도 중지될 것이다. 긴장완화와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는 미국은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강행하여 정세를 격화시키고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다.  

 

1968년 푸에블로 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조선과의 대결에서 패하였는데도 승복하지 않고 11개월 동안 시간을 끌면서 버티다가 결국 조선이 생포한 82명 승조원 전원을 간첩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장교 6명은 총살하고, 나머지 사병 76명은 20년 징역형과 10년 징역형으로 엄벌하겠다고 통보하였을 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였다. 조선이 미국을 굴복시키는 방도는 충격과 강압밖에 없었던 것이다. 푸에블로 위기 이후 50년이 지난 오늘도 조선이 미국을 굴복시킬 다른 방도는 없다.

 

2018년 1월 22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결정서를 발표하였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50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2월 8일을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의의있게 기념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다. 결정서는 김일성 주석이 조선인민군을 창건한 1948년 2월 8일을 조선인민군 창건일(2.8절 또는 건군절)로 제정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1932년 4월 25일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제정한다고 하였다. 조선인민군 창건일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을 구분한 까닭은, 핵무력을 완성하여 강력한 전략군을 가지고 있는 정규군의 위용을 더욱 과시하려는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인민군은 2017년 11월 말부터 평양 외곽에 있는 광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들이 조선의 열병식 준비현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을 보았더니, 각종 군사장비들을 제외하고 참가인원을 수송하는 버스만 400대나 동원되었다고 한다.  

 

건군절 70주년을 맞이한 조선이 그처럼 엄청난 열병식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는 2월 8일 평양에서 진행될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는 최신형 전략무기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였으므로, 건군절 열병식에 최신형 전략무기들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는 2월 8일 조선은 자기의 완성된 국가핵무력을 실물로 전 세계에 과시할 것이다. 이것은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강행하여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을 정조준한 대응조치로 된다. 조선의 충격과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50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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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정계 은퇴’를 권고한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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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1/29 11:37
  • 수정일
    2018/01/29 11:37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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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KBS 적폐’ 두둔만으로도 지도자 자격 없음 입증해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cckim999@naver.com  2018년 01월 29일 월요일
지난 1월2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은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처참하게 무너진 공영방송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1월22일 KBS이사회가 고대영 KBS 사장 해임 제청안을 의결한 데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이튿날 해임 결재를 한 것을 두고 ‘새로운 방송 적폐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각 구성에 6개월 넘게 걸리고 공기업 경영진 교체 등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기다렸던 듯하다”며 “여권 편향 방송이 차고 넘치는데 공영방송 경영진까지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것”이라고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안철수의 이런 주장은 사실 왜곡과 자가당착의 표본으로 보인다. 그 까닭을 짚어보자.

고대영 사장은 지난해 말 해임당한 김장겸 MBC 사장과 함께 공영방송 적폐세력의 ‘대표’로서, 사내에서는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매체를 통해서는 청와대나 국가정보원의 블랙리스트와 ‘지침’에 따라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피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부기관들이 저지른 ‘댓글사건’ 등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보도를 기피함으로써 국민의 공공재인 전파를 사유물처럼 악용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KBS 본부(새노조)와 MBC 본부의 언론노동자들은 사장과 이사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지난해 9월4일부터 기나긴 파업을 벌였다. MBC가 72일, KBS는 무려 142일이었다. 안철수는 KBS의 파업이 승리로 끝난 지 나흘 뒤에 위와 같은 주장을 했다.  

 

▲ 지난해 9월1일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 당시 고대영 KBS 사장(왼쪽)과 김장겸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 9월1일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 당시 고대영 KBS 사장(왼쪽)과 김장겸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안철수는 지난해 8월31일, KBS 1TV ‘뉴스집중’에 출연하러 서울 여의도 사옥에 간 자리에서 성재호 새노조 본부장이 “이번 주부터 KBS 본부 노동자들이 제작 거부하는 거 아시죠? 다음 주에는 총파업을 합니다”라고 말하자 “알고 있습니다. 잘 살펴보고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많은 언론매체가 안철수의 ‘총파업 지지 의사’를 보도했다. 같은 해 11월 안철수는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과 함께 포항 지진 피해 모금을 위해 특별 편성된 KBS 프로그램에 나와 성금을 전달했다. “재난 피해 모금 방송은 고대영 없는 KBS에서” 등 피켓을 든 새노조 조합원들이 안철수에게 “우리는 지금 파업 중”이라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그는 KBS 파업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방송 적폐’의 시작이라며 오히려 고대영 해임을 재가한 문재인에게 화살을 날렸다. 게다가 그는 “여권 편향 방송이 차고 넘친다”는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말 김장겸 MBC 사장과 그리고 올해 들어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해임당한 뒤 정상화의 길로 접어든 MBC, 근자에 사내 혁신에 부분적으로 성공한 SBS, 종합편성방송인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가운데 어느 곳이 ‘여권 편향 방송’이라는 말인가? 안철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어디가 비교적 공정한 방송이고 어디가 상대적으로 불공정한 방송인지를 구체적으로 예시했어야 한다. 그는 최근 퇴출당한 ‘KBS의 적폐사장’을 두둔한 것만으로도 정치지도자의 자질이 없음을 입증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갈수록 심해진 공영방송의 적폐에 관한 인지(認知) 부조화도 그의 현실 파악 능력이 한참 모자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철수는 2013년 4월24일 실시된 서울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공식적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므로 그의 정치 경력은 올해로 5년밖에 안 된다. 그런데 지난 5년을 살펴보면 안철수는 어느 당에 가든지 화합이나 공존과는 거리가 먼 노선을 달려왔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월26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월26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안철수는 2013년 11월28일, 새정치추진위원회 출범을 알린 뒤 이듬해 3월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같은 달 26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을 창당하고 1기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두 사람은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 뒤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문재인이 12월 초순 문·안·박(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체제로 지도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나 안철수는 거부했다. 그는 혁신전당대회를 열자고 문재인에게 역제안을 했다. 문재인이 그것을 거부하자 안철수는 역제안을 거듭한 끝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같은 달 13일 새정연을 탈당한 뒤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철수는 새정연을 떠난 김한길, 천정배와 함께 2016년 2월2일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김종인이 국민의당에 통합을 제의하자 안철수는 거절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4월 총선에서 모든 여론조사가 무색하게 호남을 휩쓸어 38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을 양당체제에서 다당체제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박근혜가 파면당한 뒤 지난해 5월9일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나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도 뒤져 3위로 낙선한 안철수는 이렇다 할 반성이나 자기성찰도 없이 정치 일선에 복귀해 다시 국민의당 대표가 된 뒤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등 호남 출신 의원들과 갈등 관계에 빠졌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바른정당과 통합하기 위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대화를 거듭하며 ‘찰떡 궁합’을 과시하더니 마침내 지난 18일 공동으로 ‘통합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낡은 지역주의를 극복하여 동서가 화합하고 통합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지, 안철수와 유승민은 호남과 영남을 함께 방문하며 ‘건전한 개혁보수와 합리적 중도의 힘’으로 ‘구태정치를 결연히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다’고 외쳤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월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통합을 선언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월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통합을 선언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소속 의원이 9명으로 줄어든 바른정당이 정치적 생존을 위해 국민의당 통합파와 손을 잡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호남과 김대중 정신 계승’을 열심히 외쳐온 안철수가 반대파의 주장을 묵살하고 그런 정신과는 거리가 먼 바른정당과 통합하려는 것은 호남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주권자들이 보기에도 그릇된 정치적 행태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호남은 역사적으로 지배권력의 압제와 핍박에 시달려 왔다. 조선왕조 시대에 자주 일어난 민중봉기들 중에서도 특히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은 호남 정신을 대변하는 사건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김대중은 1950년대에 정계에 발을 내디딘 이래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앞장서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가 하면, 1980년 5월에는 전두환 일파의 신군부가 조작한 ‘내란음모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선고까지 받은 바 있다. 정계 입문 이전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는 안철수가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특히 김대중은 집권 기간에 공과가 아울러 있지만, 2000년에 이루어낸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민족의 화합과 공존을 위한 길을 활짝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안철수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가 ‘6·15 선언’과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안철수는 주권자들에게 생산적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저런 정당에서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린 인물로 드러났다. 그에게서는 진취적 역사의식이나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이렇다 할 만한 지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요즈음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음으로써 극우보수언론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생산이 아니라 파괴를 일삼는 인물이 정치지도자로 특정세력을 이끌려는 것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안철수가 정계에서 은퇴하기를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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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보면 코끼리 ‘벌벌’, 농민과 코끼리 상생 길 텄다

꿀벌 보면 코끼리 ‘벌벌’, 농민과 코끼리 상생 길 텄다

조홍섭 2018. 01. 29
조회수 459 추천수 0
 
아프리카 이어 아시아코끼리에서도 억제 효과 확인
민감 부위 쏘일까 달아나, 농민은 꿀과 가루받이 소득
 
e1.jpg» 성난 꿀벌 소리를 들은 아시아코끼리가 불안해하며 동료의 입속에 코를 대면서 상황을 확인하려 하고 있다. 아시아코끼리가 꿀벌 소리를 무서워한다는 실험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쉐르민 드 실바 제공.
 
상아를 노린 밀렵만이 코끼리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넓은 지역을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 코끼리의 서식지가 워낙 움츠러들고 조각나는 바람에 잦아진 코끼리와 지역주민 사이의 충돌도 매우 중요한 위협이다. 특히 숲 속의 화전이나 작은 마을은 걸핏하면 코끼리의 습격을 받아 농작물이 몽땅 망가지거나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반드시 보복에 나서기 때문에 코끼리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코끼리와 가난한 농민의 비극적 충돌을 막을 방법이 없을까. 루시 킹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연구원은 케냐에서 현지연구를 통해 꿀벌을 이용해 코끼리와의 충돌을 피하고 농민에게 소득을 안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농경지와 마을 둘레에 10m 간격으로 꿀벌 벌통을 매다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team-with-fence.jpg» 케냐에 설치된 코끼리 퇴치 꿀벌 울타리. 적은 비용에 설치할 수 있고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루시 킹 제공.
 
아프리카코끼리는 큰 덩치에도 아프리카꿀벌을 아주 무서워한다. 피부가 약한 눈, 코뒤, 귀밑 등에 쏘일까 봐 성난 벌이 내는 ‘붕붕∼’ 소리를 들으면 혼비백산 달아난다. 이 방법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코끼리 피해를 막았을 뿐 아니라 벌통에서 채취한 꿀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0m 길이 경계선에 벌통을 설치하는 비용은 800달러(약 80만원)에 불과했다. 그동안 주민들은 별 성과 없이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가시덤불을 치고, 아니면 횃불을 밝히고 냄비를 두드리며 밤을 새워야 했다(▶관련 기사코끼리, 꿀벌만 보면 덩칫값 못하고 ‘벌벌’).
 
kenya.jpg» 녹음된 성난 꿀벌 소리를 틀어주자 뒤로 물러나 전전긍긍하는 아프리카코끼리 무리. 루시 킹 제공.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효과를 낸 꿀벌 퇴치 기법을 아시아코끼리에 쓸 수는 없을까. 아시아코끼리의 상황은 아프리카코끼리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시아코끼리의 서식지는 지난 100년 동안 95%가 사라졌다. 개체수는 90%가 줄어 3만 마리만 남았는데, 그곳에 인류의 20%가 산다. 
 
서식지는 잘게 쪼개져 농민과의 충돌이 빈발한다. 2012년 인도에서 300명이 코끼리 때문에 사망했고 스리랑카에서도 60명이 숨졌다. 충돌 과정에서 코끼리 250마리도 죽었다.
 
e2.jpg» 아시아코끼리 무리.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심한 멸종위험에 놓여 있고, 서식지가 잘게 쪼개져 농민과 충돌도 잦다. 쉐르민 드 실바 제공.
 
킹 박사 등 연구자들은 아시아의 토종벌과 아시아코끼리 사이에도 아프리카에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스리랑카의 우다 왈라웨 국립공원은 아시아코끼리의 주요 서식지인데 밭과 농가가 공원경계를 빙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최적의 연구장소였다.
 
 킹 박사는 “아시아는 인간과 코끼리의 충돌이 아프리카보다 훨씬 심하고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약 10배는 더 큰 멸종위험에 놓여 있다”며 “만일 이 연구결과를 코끼리와 살아가는 아시아 농촌에 적용해 마을 기반의 벌통 울타리 시스템을 수립하게 한다면 아시아코끼리 보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옥스퍼드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Mickey with eles UW.jpg» 스리랑카에서 꿀벌 소리로 아시아코끼리의 반응을 연구하는 모습. 루시 킹 제공.
 
실험 결과는 긍정적이다. 연구자들은 28곳에서 아시아코끼리 120마리에게 녹음된 성난 꿀벌 소리를 들려주고 반응을 기록했다. 꿀벌 소리를 들은 코끼리는 자연적인 배경소음을 들은 코끼리보다 더 자주, 더 멀리 물러났다. 단독생활을 하는 수컷은 암컷보다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데, 물러나는 거리가 더 길었다. 꿀벌 소리를 들은 코끼리들은 또 불안감을 표시하며 코를 옆 코끼리의 입에 대 확인을 요청하는 행동을 자주 했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벌통 울타리로 코끼리와 마을 주민의 상생을 도모하는 시험 프로젝트가 10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킹 박사는 “벌통 울타리가 코끼리의 침입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겠지만 꿀벌은 농민에게 꽃가루받이 서비스와 꿀과 밀랍을 파는 지속가능한 수익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Honey-Jar-cropped-s2.jpg» 케냐에서 생산되고 있는 ‘코끼리 친화적 꿀’이라는 상표를 단 꿀. 루시 킹 제공. 스리랑카에서도 비슷한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루시 킹 제공.
 
이미 꿀이 생산되고 있으며, 주민에게 양봉 지식과 꿀 따는 기법을 전수하는 워크숍도 열렸다. 스리랑카 말고도 타이, 인도, 네팔 등 다른 아시아코끼리 서식지에서도 벌통 울타리 협력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22일 치에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ing, L., Pardo, M., Weerathunga, S., Kumara, T.V., Jayasena, N., Soltis, J. and de Silva, S. (2018) Wild Sri Lankan elephants retreat from the sound of disturbed Asian honey bees. Current Biology 28, R51-R65, January 2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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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판사 동료가 내 뒷조사를... 슬펐다"

[인터뷰] '법관 사찰 문건'에 이름 오른 윤나리 변호사 "대법원이 국정원처럼 판사들 관리"

18.01.29 10:07l최종 업데이트 18.01.29 10:07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국정원이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법원에서 같은 판사들끼리 그렇게 생각할 게 있나”고 말했다.
▲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국정원이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법원에서 같은 판사들끼리 그렇게 생각할 게 있나”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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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리 변호사는 지난해 2월 판사 생활을 정리했다.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 답답하다는 개인적인 이유였다. 지난 1월 22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공개한 '법관 사찰 문건'에 그런 윤 변호사의 이름이 올랐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인 면은 있으나 선을 넘는 편은 아니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윤 변호사는 "화가 나기보다는 슬펐다"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이들의 성향을 분류해 기록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고 공개했다. 이 문건은 현직 판사들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을 분석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청와대와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과 상고심을 두고 서로 교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건도 공개됐다(관련 기사 : '판사 블랙리스트' 사실로... "선동가 기질 있다" 판사 뒷조사도).

윤 변호사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료 판사들의 말에 의하면 (나에 대한) 그 평가가 상당히 정확하다고 한다. 정확하다면 저랑 가까이 지냈던 동료나 선후배가 (법원행정처에 정보를) 올린 게 아니겠나"라며 "판사는 외부 접촉이 금기시되기 때문에 동료애가 진한데, 그 동료 중 한 명이 나를 그렇게 평가해서 올렸다고 생각하니 슬펐다"라고 말했다.

 

이번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특별 관리한 핵심판사 21명의 명단, 소위 '판사 블랙리스트' 외에도 '사법행정위원회 위원후보자 검토' 등 판사들의 동향과 각종 개인정보를 적어둔 문건이 다수 있었다. 윤 변호사는 위원회 위원후보자 검토 문건에 포함돼 있었다. 

윤 변호사는 자신의 이름이 담긴 문건을 가리켜 "블랙리스트도 아니고, 화이트리스트도 아닌 회색분자 리스트로 일종의 꼼수 리스트"라고 표현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관료 등 문제가 터져 나오자 대법원이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처럼 위원회 외관을 형성하기 위해 정리해둔 문건"이라며 "법원행정처 방향에 크게 반기를 들지 않을 판사들인데 제가 그런 사람으로 포함돼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주목하는 몇 명 판사들에 대한 보고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추가조사위 발표 문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자세했다"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규모가 컸다는 얘기다. 그는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판사들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법원에서 같은 판사들끼리 생각의 방향과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같은 동료들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나"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윤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내부 전쟁 같은 느낌... 상상도 못 했다"

-추가조사위 문건에 이름이 올라왔다. 심경이 어땠나. 
"저는 법원에 없으니까 그 리스트를 먼저 보지 못했다. 동료 판사들이 카카오톡으로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이지만, 선은 지키는 윤 판사'라고 말하더라.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리스트에 제 이름이 있다고 했다. 평가 자체는 나쁜 평가가 아니라 법원 생활을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리스트 자체는 기분 나쁜 리스트였다. 일종의 회색분자 리스트, 꼼수 리스트다. '사법행정위원회 위원후보자 검토 문건'은 법원행정처가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처럼 외관을 형성하면서 실질적으로 행정처가 원하는 방향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판사들의 리스트였다. 기분이 나빴다.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그 평가가 상당히 정확하다고 한다. 평가가 정확하다면 저랑 가까이 지냈던 동료, 선후배가 (법원행정처에) 올린 것 아니겠나. 되게 슬펐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슬펐다. 

법원에 있을 때 동료 판사들에 대해 애정이 컸다. 판사들은 워낙 외부 접촉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판사들끼리 친하다. 동료끼리 매우 친한데 그 동료 중 한 명이 나를 그렇게 평가해서 올렸다고 하니까 슬펐다."
 



-핵심판사 관리문건 등 법원이 이런 문건을 작성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저는 법원행정처가 주목하는 몇 명 판사들에 대한 보고서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근데 이 정도까지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광범위하고 자세했다. 무엇보다 그 태도가 놀라웠다. 국정원이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법원이 잘 돼야 하고, 판사들이 제대로 재판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법관 독립이 필요하다. 그 생각에 대한 방향과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같은 동료들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이 사람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게 너무 놀라운 거다. 같은 판사이지 않나."

-사실 동료 판사들을 뒷조사했다는 '거점 법관'이라는 용어도 없었던 단어 아닌가. 
"이번 문건에 왕당파, 거점 법관, 핵심판사 등 재밌는 용어가 많았다. 그 리스트 전에는 그런 용어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 전에야 잘 나가던 판사나 보통 판사 정도였다. 사실 이건 적이나 프락치, 내 편 이런 식으로 나눈 거다. 내부 전쟁 같은 느낌이다. 상상도 못 했다."

"판사 동향 파악한 뒤 리스트 이용했을 것"

-핵심판사 21명 중 2010년부터 7년 동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부에 배치된 판사는 단 한 명이었다는 MBC 보도도 있었다. 실제 대법원이 이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건 아닌가.
"그 말은 옛날부터 파다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지금도 국정농단 사건 등 모든 중요 사건이 몰리는 곳이다. MB 정부 때도 촛불 재판이 있지 않았나. 형사부는 단독 판사 자리도 중요하고, 합의부 자리도 중요하다. 그래서 믿을 만한 판사들을 보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믿을 만하다는 건 물론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세를 거스르지 않을 순치된 판사들을 보낸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튀는 판결, 소신껏 재판하는 판사를 보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결하지 않을 판사, 촛불 재판을 위헌제청 하지 않을 판사다. 

기존 판례를 뒤집지 않을, 관례대로 할 판사들을 보낸다는 뜻 아니겠나. 입증된 바는 없으나 그럴 위험이 있는 판사들을 (형사부에) 배제한다는 말은 파다했다. 실제로 핵심판사 중 몇 분은 자격요건이 되고, 1순위로 지망했는데도 다른 곳으로 배치됐다는 보도를 봤다. 그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법원행정처의 판사 인사 개입은 재판 개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 이제는 누가 판사한테 전화해 '이렇게 결론 내달라, 저렇게 내달라' 이런 시대는 아니다. 단정할 순 없지만 대부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포스트(위치)에 주류에 거스르지 않을 것 같은 순치된 판사를 미리 보내놓을 순 있다. 골이 안 새도록 골키퍼처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예전에는 문제 되는 재판을 시스템적으로 일부 믿을 만한 판사들에게 몰아주기 배당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촛불 재판 때 문제가 되면서 100% 전자배당으로 바뀌었다. 그 후엔 더 철저하게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해 튀는 판결이 안 나오도록 할 필요성이 생겼을 수 있다. 

솔직히 밥을 지을 땐 먹으려고 짓지, 보려고 짓진 않는다.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했으면 뭔가 그걸 이용하려고 하지,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을 리 없다. 그런 애먼 고생을 왜 하나. 아직 열지 않은 파일 760개 중 수상한 이름이 많은데 제일 의심스러운 문건이 하나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인사)'다. 인사와 관련된 파일 아니겠나."

-재판부 인사개입은 재판을 받는 시민에게도 영향을 준다.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게 정상이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판사들도 있다. 그러나 그분들 논리는 딱 인공지능(AI)이 판결하게 하자는 거다. 사회가 다양해졌으니 다양한 의견이 있는 거다. 그래서 재판도 하급심이 있고, 중간이 있고, 상급심이 있는 거다. 그 과정을 거친 뒤 지금 현상에서 하나의 의견으로 모이는 거다.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관리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생각하는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수용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절충하는 단계로 갔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사법부는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 의견들을 절차로 소화해내는 게 건강하다."

"이명박-박근혜 악행 그대로 답습한 리스트"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는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우리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 이 정도는 우리가 민주화 이뤄냈으니까 물러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깨졌다”라며 “정치가 무너지니까 방송, 공공분야가 무너지고 사법부도 이 모양이 됐다. 정치 후퇴로 인해서 싹 다 후퇴됐다. 다시 이전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는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우리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 이 정도는 우리가 민주화 이뤄냈으니까 물러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깨졌다”라며 “정치가 무너지니까 방송, 공공분야가 무너지고 사법부도 이 모양이 됐다. 정치 후퇴로 인해서 싹 다 후퇴됐다. 다시 이전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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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관련 재판을 두고 교감한 문건도 공개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이 자체로 굴러간 게 아니라 정치랑 엮어서 함께 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특징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무언가를 지시하는 정권이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틈나는 대로 법원을 길들이고, 재판을 못 하게 하고, 사법부에 지시하고 뭘 요구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정권이었다. 

원칙적으로 이런 요구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행정처도 블랙리스트를 똑같이 하시지 않았나. 그런 걸 보면 청와대에 어쩔 수 없이 방어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하던 이상한 관행, 악행 등 소위 말하는 적폐를 상당히 유사하게 답습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나.
"안 그래도 예전에 계시던 판사님들에게 이전에도 이랬느냐고 여쭤봤다. 그분들이 이전엔 없었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우리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 민주화를 이뤄냈으니까 이 정도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깨졌다. 

정치가 무너지니까 방송, 공공분야가 무너졌고, 이제 드러났지만, 사법부도 이 모양이 됐다. 정치 후퇴로 싹 다 후퇴됐다. 다시 이전으로 회복해야 한다. 제가 알기론 지금은 전혀 커넥션(법원-정부 사이의 소통)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게 정상 아닌가. 앞으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확실히 이 선은 넘지 않아야 한다."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너무 이르다. 추가조사위가 조사하지 못한 암호 파일 760개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냥 덮을 수 없는 문제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다. 법원도 그걸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제 생각엔 법원에 그 기회를 한 번 더 줬으면 한다. 1차 조사위 이후에 1년 동안 이 문제를 묵히지 않고 여기까지 밝혀낸 건 판사들의 힘이었다. 결국엔 비밀번호를 건 사람들이 그냥 암호를 알려주면 된다. 그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비밀침해죄 우려가 커져 법원 내에서 하기 힘들 수 있다.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 기관이다. 법원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는 곳인데 검찰은 행정부이지 않나.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 등을 청구하면 또다시 그걸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 한번 손상된 권위, 신뢰가 빨리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가로 내부 기구를 꾸리겠다고 언급했는데.
"법원 내부 인사로만 구성하기는 조금 힘들지 않겠냐는 생각도 한다. 사법 개혁에 대한 외부 바람들이 많지 않나. 법원은 법원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지금 여기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마 외부인도 관여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원 외부나 내부에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양쪽 다 합의할 수 있는 분이 1~2명 더 들어오지 않을까.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기구를 꾸려야 한다. 최소 760개 파일, 임종헌 전 차장의 PC는 열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국민 여러분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조금만 시간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사법부는 진정으로 거듭날 것이다. 촛불시민 덕분에 우리 사회가 더 맑아졌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원도 더 맑아지고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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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합동공연에 단일팀 출전까지, ‘평화올림픽’으로 향하는 숨가쁜 2월

남북 문화·스포츠 교류 활기...고위급 회담 가능성에 관심 집중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으로 뛸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과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지난 25일 저녁 충북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전체미팅을 가지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으로 뛸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과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지난 25일 저녁 충북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전체미팅을 가지고 있다.ⓒ통일부 제공

북한의 참가로 인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월은 시작부터 숨가쁘다.

2월 9일 개막하는 평창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북한의 참가가 결정되면서 이를 위한 준비 역시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10년 넘게 단절됐던 남북 문화교류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고, 올림픽에 출전하게 될 남북 단일팀은 공동훈련에 한겨울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을 축하하기 위한 남북 합동문화행사가 열리는 금강산과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을 할 마식령스키장 등을 사전점검하고자 지난 23일 방북한 남측 선발대가 금강산 문화회관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을 축하하기 위한 남북 합동문화행사가 열리는 금강산과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을 할 마식령스키장 등을 사전점검하고자 지난 23일 방북한 남측 선발대가 금강산 문화회관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2월 초 북측 지역에서 전야제 성격의 남북 합동공연,
올림픽 개막 전후로 서울과 강릉에서 북측 예술단 공연

우선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합동문화행사가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는 지난 1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실무회담에서 우리측 제안으로 올림픽 개막 직전 전야제 형식으로 금강산에서 합동문화행사를 갖는데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금강산 합동문화행사의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2월 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당일 오후에 열릴 금강산 합동문화행사는 금강산관광 당시 북측 교예단 공연에 사용됐던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

금강산문화회관은 총 620석 규모로, 좌석은 남북에 균등하게 배분될 것으로 보인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금강산을 방문할 방북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수백명 규모가 될 전망이다.

공연은 남과 북이 차례대로 먼저 공연을 한 뒤 남북이 합동공연을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측은 현대음악이나 전통음악, 문학행사를, 북측은 전통음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2002년에 윤도현, 이미자 등이 참여하는 남북 공연이 있었다”며 “우리가 케이팝(K-pop)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는데 아직 구체적인 결정은 안 됐다.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을 복합적으로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남북 합동공연이 성사되면 2002년 KBS교향악단의 평양공연과 ‘MBC 평양 특별공연’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예술단체와 예술인의 방북 합동공연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방남한 현송월 심지연관현악단장이 22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을 방문하고 있다.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은 1박2일동안 서울과 강릉의 공연장을 둘러보면서 무대 조건과 필요한 설비, 객석의 규모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방남한 현송월 심지연관현악단장이 22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을 방문하고 있다.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은 1박2일동안 서울과 강릉의 공연장을 둘러보면서 무대 조건과 필요한 설비, 객석의 규모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임화영 기자

남한에서도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예술단을 파견해 올림픽 개막 전날인 2월 8일 강릉아트센터와 11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각각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북측 예술단은 삼지연관현악단 14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80명 정도는 오케스트라이고 나머지는 춤과 노래를 담당하는 인원이다.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공연장 시설점검을 위해 방남했던 현송월 단장이 삼지연관현악단장이었던 만큼 예술단과 함께 또다시 방남할 가능성이 있다.

북측 예술단은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2월 6일 남측으로 내려오고, 12일 같은 방법으로 북측으로 귀환할 계획이다.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26일 충청북도 진천군 국가대표선수촌 빙상훈련장에서 세라 머리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감독 남측 코치들과 훈련을 하고 있다.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26일 충청북도 진천군 국가대표선수촌 빙상훈련장에서 세라 머리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감독 남측 코치들과 훈련을 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공동훈련 집중
북측 마식령스키장서 남북 스키 친선경기도

평창 올림픽이 개막하면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출전하는 경기가 가장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북측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 15명(감독1, 선수12, 지원2)은 지난 25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내려와 남측 선수단과 결합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첫 경기인 2월 10일 스위스전까지 불과 보름도 남지 않은 만큼, 미리 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다.

북측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은 현재 남측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는 충북 진천 선수촌으로 합류해 함께 숙식을 하며 훈련을 하고 있다.

스위스와 맞붙는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첫 예선전은 2월 10일 밤 9시10분 관동 하키센터에서 열리며, MBC가 단독 생중계한다.

마식령 스키장의 북한 주민들
마식령 스키장의 북한 주민들ⓒ뉴시스/AP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는 남북 스포츠 교류 차원에서 합동 스키훈련이 북측 지역에서 열린다.

남북은 1월 말 또는 2월 초에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서 남북 합동 스키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 측이 지난 9일 고위급회담 때 먼저 제안해서 성사된 것이다.

2013년 말에 완공된 원산 인근의 마식령 스키장은 북한에서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남북 합동 스키훈련은 1박 2일 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첫날에는 자유스키를 타며 설질을 점검하고, 둘째 날 오전에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스키 등 두 종목에 대한 공동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남북간 친선경기를 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훈련에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들이 아닌 스키협회 소속 선수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인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린 종결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인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린 종결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세계 외교무대가 될 평창 올림픽, 
남북 고위급 회담 가능성에 관심 집중될 듯

평창 올림픽은 세계 각국 정상급 대표들의 외교 무대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올림픽 정신과 맞물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논의가 다양한 정상외교를 통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평화의 위기 앞에서 평창이 평화의 빛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 정상을 평창에 초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28일 현재까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한정(韓正)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평창올림픽 참석 의향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아베 총리는 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해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교도통신과 NHK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이 2월 9일 평창에서 열릴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개막식에 중국공산당 서열 7위인 한 상무위원을 특별대사 자격으로 보내기로 했다. 중국은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만큼 폐막식에는 한 상무위원 이상 중량급 인사의 방문 가능성도 나온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참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펜스 부통령이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오기로 했다. 이 대표단에는 펜스 부통령의 부인인 캐런 펜스 여사가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의 동행 여부가 주목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주변 4강국 가운데 러시아의 참석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도핑 파문으로 국가대표팀 명의의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평창 올림픽 기간 중 푸틴 대통령 방한을 위해 한·러 당국 간 물밑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등이 방한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할지가 최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남북 첫 고위급 당국회담 이후 실무접촉 등이 계속 이어졌으나 북한의 고위급 파견에 대한 진전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에서 고위급 대표단이 올 경우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겠다는 입장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6일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가 연 강연에서 유엔총회가 휴전을 결의한 3월25일까지 북·미대화의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평창 올림픽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오게 된다면 이 계기를 이용해 북측에는 국제사회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북한이 생각하는 것을 잘 파악해서 미국이나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나가야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지난해 7월 6일 오후(현지시간) 한·미·일 정상 만찬이 열리는 주함부르크미국총영사관에서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지난해 7월 6일 오후(현지시간) 한·미·일 정상 만찬이 열리는 주함부르크미국총영사관에서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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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원통함은 꼭 비례하지 않았다 ‘민원실이 된 법정’

등록 :2018-01-28 09:35수정 :2018-01-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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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서민들의 전쟁터 ‘소액사건 재판정’
소송금액 3000만원 이하 민사사건을 소액사건이라고 한다. 소액이라지만 한푼이 절박한 서민들은 사활을 건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송금액 3000만원 이하 민사사건을 소액사건이라고 한다. 소액이라지만 한푼이 절박한 서민들은 사활을 건다. 게티이미지뱅크

 

▶ 개인 간 다툼이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법원으로 갑니다. 그래서 법원은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과 억울함이 한곳에 모이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서민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법정, 소액사건 재판정을 들여다봤습니다. 소송금액의 많고 적음이 억울함의 크고 작음과 비례하진 않았습니다.

 

 

 

 

 

소송금액 3000만원 이하 재판 
한푼 절박한 서민들의 다툼이라
대리인 없는 나홀로 소송도 많아
“절차 묻거나 신세한탄만 하기도”

 

 

‘고분쟁’ 사건은 집중심리부 배당
최근 펫분쟁·소비자권 증가 추세
“분쟁 과정에서 상처가 낫기도
양쪽 자존심 세워주는 게 중요”

 

 

 

 

“판사님, 저는 돈을 안 준 적이 없어요. 답변할 가치를 못 느낍니다.”(이아무개)

 

“아니 정말, 외상돈 안 준 거 맞잖아요! 술 드시고 나서 본인이 낼 이유 없다며 안 냈잖아요.”(박아무개)

 

지난해 11월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에서 고성이 터졌다. 1년 넘게 못 치른 술값 100만원 때문이다. 술집 주인 박아무개씨와 평생 외상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는 손님 이아무개씨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5분째 이어지는 공방에 판사가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만 말씀하셔도 되겠다”, “예 또는 아니요로 답하라”는 말로는 조율되지 않았다. 박씨가 이씨 서명이 담긴 계산서를 내밀었다. 처음에 “기억나지 않는다”던 이씨는 “내 서명은 아니지만 필체는 맞는 것 같다”며 꼬리를 내렸다. 이번엔 이씨 쪽이 카드 결제내역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항상 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돈을 안 줬을 리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줄 자료라고 했다. 이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법정 밖에서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외상하고 거짓말하고, 그러는 거 아니죠, 아휴.” “단골인데 내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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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괘씸형, 정의형… 민원실 된 법정

 

 

소송금액 3000만원 이하 소액재판 법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소액이라고 하지만 한푼이 절박한 서민들은 사활을 건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판사실에선 ‘서류전쟁’이 일어난다. 소액재판은 보통 1~2분 안에 끝나는 까닭에 법정에서 못다 한 말을 서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낸다.

 

소액재판 상당수는 대리인 없이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된다. 2016년 전국 법원에서 처리된 소액사건 67만7024건 가운데 대리인이 없는 사건은 56만8783건(84%)이나 됐다. 일부 소액사건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도 법원의 허가를 얻어 대리할 수 있다. 서면 한 건에 적어도 10만~20만원씩 하는 법조타운 물가가 이들에겐 적잖은 부담이다. 결국 전문가의 코칭을 받지 못한 이들은 법리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펼치기보단, 감정적 호소나 정돈되지 않은 주장을 앞세울 때가 많다. 저마다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상대방에 대한 원망을 토해내는 식이다.

 

“가라(가짜) 증거 내놓지 말라”, “어거지(억지) 쓰지 말라” 같은 말도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법정이 왁자지껄한 시장통으로 변하기도 한다. 법조계에서 소액재판 법정은 ‘민원실’로 불린다.

 

이들이 법원에 오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신뢰를 저버린 상대방이 괘씸해서 법원 판단을 구하는가 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정의형’도 있다. ㄱ결혼정보회사와 소송 중인 김아무개(45)씨도 “또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소송을 낸 경우다. 그는 2014년 9월 10차례 만남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290여만원을 냈다. 6차례 만남 끝에 김씨는 회사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판단하고, 서비스 중단과 함께 남은 가입비 95만원 상당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ㄱ사로부턴 이미 횟수를 다 채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ㄱ사는 “5차례 만남에 290만원을 지불한다”고 쓰인 계약서를 내밀었다. 개별상담을 통해 10차례 만남을 약속받은 그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결국 그는 지난해 5월 소장을 썼다. 회사의 ‘기망행위’를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소송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법리적으로 정리해 오라”는 판사의 지적을 받고 헛걸음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틈틈이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한국소비자원 누리집을 찾아 소송절차를 익혔다. 인터넷에 있는 준비서면 예시를 보며 서면 쓰는 법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공성봉 판사 심리로 열린 7번째 재판.

 

“원고가 청구취지를 많이 정리해 오셨네요.”(판사)

 

“법적 근거를 들라고 해서 나름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손해배상인 줄 알았는데, 가입비를 내고 제공받지 못한 서비스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으로 봐야 할 거 같네요.”(김씨)

 

“피고는 5차례 만남이 다 소진됐다는 주장인데요.”(판사)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계약서에 5회라고 쓰여 있어도, 서비스 제공자와 별도 합의한 게 10회이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김씨)

 

“…계약서에 5회라고 명시돼 있습니다.”(ㄱ회사 대리인)

 

“계약서를 깔끔하게 하시지 그랬어요. 분쟁의 여지를 남기셨네요.”(판사)

 

이번엔 회사 쪽이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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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1건당 1분30초 ‘시간과의 싸움’

 

 

김씨 같은 이가 흔치는 않다. 대부분은 까다로운 법률 용어에 익숙지 않다. 소송을 당한 피고의 경우 사정은 더하다. 예고 없이 날아드는 소장에 까막눈인 경우가 많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2별관 203호 법정에 피고로 선 박아무개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이쯤에서 제가 종결하고 판결 선고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요.”(장동민 판사)

 

“판결 선고하신다는 게 뭐예요?”(피고 박씨)

 

“계속 이 사건을 할 수 없으니까 제가 판단을 하는 거죠.”(판사)

 

“판단하시는 근거가 어떻게 되는데요?”(박씨)

 

“원고 말이 맞는지, 피고 말이 맞는지, 누구 주장이 더 타당한지 보는 거죠. 판단한단 얘기는 판결을 선고한다는 뜻이에요.”(판사)

 

“판단하신 다음에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요?”(박씨)

 

“원고가 이기거나 피고가 이기거나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텐데, 당연히 한쪽이 불복할 수 있죠. 그러면 또 재판을 받아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3심제거든요. 저 말고 다른 판사님들이 다시 또 재판을 하는 거예요. 다만 기간 제한은 있죠. 2주 내에 내셔야 돼요.”(판사)

 

“그럼 저는 계속 서울로 와야 하나요?”(박씨)

 

“(항소하면) 그렇죠. 선고 날에는 안 나오셔도 되고요, 판결문은 집으로 보내드립니다.”(판사)

 

그나마 박씨는 친절한 판사를 만난 편이다. 법정 밖에서 만난 이들 상당수는 법원을 못마땅해했다. “법리 주장만 정리해 오라면서,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회사에 연차휴가를 내고 왔더니 2~3분 만에 재판을 끝낸다” “판사가 서면을 안 읽어보고 재판하는 것 같다” “판사면서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는 식의 불만이다.

 

판사들도 할 말은 있다. 주요 기관 사건을 포함해 전국 사건이 집중되는 서울중앙지법의 소액 일반사건 판사들은 한달 평균 850건(일반사건 450, 금융사건 400)을 처리한다. 일주일에 한번 재판을 열어 150~200개 사건을 심리하는데, 15분마다 10개 사건을 잡아둔다. 한 사건당 평균 1분30초를 할애하는 셈이다.

 

“소송절차를 꼬치꼬치 묻거나 무턱대고 신세 한탄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최대한 들어주려 하지만, 이런 질문에 일일이 답하다 보면 재판이 진행되지 않을뿐더러 상대방의 반발을 살 수도 있어요. 한쪽 말만 경청한다는 의심이죠. 이러다 보면 판결에 대해서도 승복하지 못하게 되고요. 판사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법률 전문가에게 의뢰하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편이 적절하죠.”

 

한 소액재판부 판사의 말이다. 다만 법원도 충분히 당사자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둔다. 고분쟁 사건, 감정 및 증거조사 등 집중심리가 필요한 사건은 소액 집중심리 재판부로 재배당한다. 법조경력 10년 이상의 경력법관이나 법원장을 역임한 원로법관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건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도록 한다. 2018년 1월 현재 서울중앙지법엔 6개 집중심리부가 있다. 이밖에 서울동부·남부·서부지법, 대구·인천·광주지법 등에서도 집중심리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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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거듭하는 집중심리…끝까지 간다

 

 

일반 소액재판이 시간과의 싸움이라면, 소액 집중심리부에선 한치 양보 없는 승부가 시작된다. 앞다퉈 감정을 신청하거나 증인신문을 요청하느라 1년을 훌쩍 넘기는 재판도 적지 않다. 다른 분쟁조정기관에서 해소되지 못한 사회적 갈등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 흔치 않았던 층간소음 분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에서의 명예훼손 문제, 전자담배 관련 분쟁도 접수된다.

 

요즘 소액 집중심리부 판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는 것은 ‘펫 분쟁’이라고 한다. 반려동물과 동거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관련 소송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6년 가을 주말을 맞아 반려견과 함께 주택가 산책을 즐기던 김삽살(가명)씨는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나진돗(가명)씨 집 마당에 있던 대형견이 대문의 문틈으로 주둥이를 내밀어 삽살씨 반려견의 다리를 문 것이다. 삽살씨 개는 곧바로 치료를 받았지만, 한달 뒤 죽었다. 삽살씨 쪽은 개 치료비와 자신의 정신적 충격에 따른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반려견을 잃은 자와 반려견을 지키려는 자의 양보 없는 다툼이 시작됐다. 진돗씨는 삽살씨 개가 문틈으로 먼저 발을 집어넣은 잘못이 있다고 버텼다. 진돗씨 쪽에 잘못이 있다고 해도 삽살씨가 남의 집 주변에서 조심하지 않은 탓도 있으므로 한푼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삽살씨 개가 사고가 아닌 지병 때문에 죽었다고도 강조했다. 삽살씨는 진돗씨가 쪽문을 열어놓는 등 문단속을 소홀히 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판사가 주목한 것은 문틈의 너비였다. 진돗씨네 집 대문의 문틈이 주둥이 크기보다 더 넓었다. 주둥이를 내밀 충분한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진돗씨 개가 삽살씨 개를 물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개가 집 안에 있었다고 해도, 줄에 묶어두지 않고 조심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고 봤다. 판사는 진돗씨가 삽살씨에게 치료비와 위자료의 일부인 50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이밖에 개물림, 동물 의료사고, 애견카페 관리 소홀로 인한 안전사고도 빈번히 접수된다고 한다.

 

부쩍 성장한 소비자 주권이 수년간의 송사로 번진 사연도 있다. 홍수산(가명)씨는 2014년 서울의 한 수산시장에서 강경남(가명)씨로부터 멸치를 구입했다. 부산에서도 해산물로 유명한 기장군 멸치라는 말에 큰맘을 먹고 10만원 가까이 투척했다. 하지만 만족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수산씨가 기대한 만큼 멸치가 맛있지 않았던 것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는 수산씨는 경남씨가 냉동멸치를 판 것이라고 의심했다. 사정을 따져 보니, 경남씨가 ‘부산멸치’를 ‘기장멸치’로 판 것이었다. 수산씨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누군가 자신처럼 속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산씨는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경남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경남씨는 2년여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번엔 경남씨가 역공을 펼쳤다. 수산씨를 상대로 25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수산씨가 무턱대고 자신을 고소하는 바람에 형사사건 피고인이 돼 시간을 허비했고,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게 경남씨 주장이었다. 수산씨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오직 공익적으로 생각했을 뿐, 경남씨한테 보상받은 적도 없고 그를 고소해 자신이 얻은 경제적 이득도 없다는 게 수산씨 입장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대리인을 선임해 치열하게 다퉜다. 경남씨의 ‘잃어버린 2년’이 수산씨의 ‘공익제보 자부심’과 맞붙은 참이었다.

 

법원은 수산씨 손을 들어줬다. 상소를 거듭해 형사재판이 길어진 것이 수산씨 잘못이 아니라는 호소도 판사의 공감을 샀다. 양쪽 모두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비록 재판의 성격은 다르지만, 수산씨와 경남씨는 한 차례씩 승패를 주고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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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법정 나서기도

 

 

‘필사즉생’의 각오로 시작한 법정 다툼들이 모두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혈전을 불사할 각오로 법원에 왔지만, 조정이나 화해절차를 통해 갈등을 풀고, 서로 손잡은 채 법정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소액 집중심리부에 오는 재판은 다양하고 판례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리공방이 아니라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경우도 많죠. 양쪽의 자존심을 적절히 세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결론 그 자체보다는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풀리거나, 마음의 상처가 치유돼 분쟁이 해결되는 경우도 많거든요.”(성기문 부장판사. 소액 집중심리부 원로법관)

 

대법원도 집중심리부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전담법관이 고분쟁 사건을 맡으면서 재판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지고, 소액 일반사건 판사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 충원되는 재판부는 가능한 한 집중심리부로 꾸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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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 그녀들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작은책] 선거법을 위해, 노동법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

 

 

 
이따금 강의를 가면, 이전과 다른 요구와 질문을 만나게 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려 달라고 고등학교 교사가 따로 수업 시간을 마련해 초청할 때도 있고, 지역도서관에서 사서가 엄마가 아닌 여성의 정체성을 주제로 강의해 달라고 기획해 부르기도 한다. 여성주의나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 자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에 수강생들이 "우리 딸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려면 엄마인 우리가 지금 뭘 할까요?" 하면서 강의가 끝난 후 계단까지 따라와 묻기도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도 행동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전주의 한 여자고등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다가 여성의 참정권 이야기가 나왔다. 1913년 에밀리 와일링 데이비슨이 영국의 경마장에서 경주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국왕의 말의 고삐를 잡다가 죽게 된 일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런 방법을 택했다. 이제 역사에서 상식이 된 지식을 전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지난 시대의 지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 건, 그 이야기를 듣고 침묵에 잠긴 학생들의 표정과 마주쳤을 때였다. 맨 끝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손을 들고 또렷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당시 영국의 상황이며,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의 투쟁에 대해 말해 주면 될 것 같았지만, 질문은 그 뜻이 아니었다. 어째서 여성들을 그렇게 차별적으로 대하고 폭력을 쓸 수 있었는지, 그것이 어째서 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 지금도 여성혐오와 차별이 횡행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순간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성별을 이유 삼아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오랫동안 권리를 무시해 왔을까? 또 어떻게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잊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 올 수 있었을까? 

싸우는 여성들의 이미지나 이야기를 우리는 듣거나 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고통받는 여성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려 내는 작품들은 많아도 겁 없이 싸워서 권리를 찾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드물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여성참정권 운동을 전투적으로 한 영국의 운동가들을 뜻한다.  
 

▲ 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동명의 영화(사라 가브론 감독, 2015)가 있는데, 나는 영화에서 이들이 재현된 모습을 보고 놀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빅토리아도 조신한 영국 여성의 이미지를 단번에 깨뜨리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몇십 년에 걸쳐 정부와 의회에 여성의 참정권을 합법적으로 요구하던 이들은 정치권에서 끝내 외면당하자 전투적인 방법을 취한다. 긴 치마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쓴 상류층 여성들이 대낮에 돌멩이를 던져 상점의 유리창을 산산이 부숴 버린다. 영화에는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여 우체통이며 저택을 폭파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감옥에 갇혀서는 단식투쟁을 하며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싸우다가 콧구멍에 관을 끼워 넣는 강제급식을 당하기도 한다. 경찰이 남편들이며 사업주를 동원해 협박과 폭력을 써도 도무지 동요하지 않고 투표할 권리를 외치며 깃발을 들고 집회를 한다. 투표권을 얻는다는 목표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여성마저 적대적이고 혹독한 환경을 참지 않고 자신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우하라고 외친다. 

나는 어린 시절에 공주들을 종이에 그리곤 했는데, 그건 확실히 동양인이 아니라 긴 드레스에 왕관을 쓴 노랑머리 외국 공주들이었다. 동화책에도 곧잘 나오던 공주들은 왕의 딸이거나 왕자의 신부였지 자기 손으로 노동하고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은 아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한다. 현실의 불평등과 차별을 가리거나, 그 불평등에 겁먹게 해서 순종하게 하는 것은 둘 다 교육적이지 않다고.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지만, 또한 인간이 그 현실을 바꾸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삭제된 이미지인 싸우고 외치는 여성들, 권리의 영역을 확대해 온 여성의 모습을 알리는 것은 그래서 중요했다. 가정이라는 전통적 영역에 있는 여성, 의존적으로 모성만 수행하는 여성,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불안정한 노동자인 여성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서프러제트는 허용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요구하고 다른 계층의 여성들과 연대하려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 주었다. 

사실, 과격하고 비민주적 조직 운영으로 비판받기도 했던 서프러제트는 운동을 대중화하지 못하고 차츰 고립되어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 정부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서프러제트의 이미지에 끌린 것은 거침없이 싸우는 여성상 때문이었다. 여전히 성차별의 이데올로기 속에 생산된 이념과 작품을 배워 가는 우리 여성들에게 역사 속 여성들의 싸움을 발굴해 보여주고 여성의 삶이 소외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법을 바꾸기 위해 노동법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간 옛 여성들은, 100여 년이 지나도 차별이 이어지는 세상을 꿈꾸진 않았을 것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서프러제트 운동을 결심하게 된 원동력으로 빈민 구제위원으로 있을 때의 경험을 들었다. 아기를 빼앗겨야 하는 미혼모들과 집도 돈도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성들, 노동을 해도 재산권과 자식에 대한 권리가 없는 여성들, 남편에게 예속된 여성들, 남편의 연금이 없으면 당장 구휼 대상이 되는 여성들을 보고 팽크허스트는 자신의 딸들과 함께 평생을 싸웠다. 그녀가 말하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인권 상황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목격되는 이야기다. 

여성 자신의 몸과 노동과 가족과 재산에 대한 권리, 정치적 주체로서의 권리, 시민으로의 권리는 아직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이십삼만 명이 넘는 이들이 낙태법 폐지 청원에 동참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전국 거리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임신 중단의 권리를 주장하며 검은 시위가 일어났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집회가 이어진다.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에 당당하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 교육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가족을 지키고, 노동할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회사에서 집에서 희롱과 폭력을 당하며 언제나 고군분투해 왔다. 언제나 여성들은 시대마다 당면한 문제와 맞닥뜨려 그 문제에 이름을 붙이고 용감하게 싸웠다. 한마디 구호로 표현된 말 아래에 숨어 있는 이름 없는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름 얻지 못한 모멸감과 고달픔이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질문하고 외치게 한다. 싸우는 이유는,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리고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뼈아팠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체념과 달관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이럴 수 없다고 한 걸음 내디딜 정도로 여성들이 용기 있었기 때문이다.

불평등을 간과하지 않고 바꾸어 내는 힘은 너무 과소평가되고 감추어져 있다. 불평등한 상황 속에서 평등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한 줄의 역사가 남아 있어 지금 더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되었을 때 현실에 맞부딪치는 장벽도 혼자만 짓눌린 듯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된다. 세상에서 별일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일이 별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고, 새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는 것이 지금은 사라진, 싸웠던 여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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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 진천규의 통일대담] 북,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황선, 진천규의 통일대담] 북,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민소현 통신원 
기사입력: 2018/01/28 [00: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7일, 대구에서 '진천규 황선의 통일이야기-북한의 오늘과 2018 전망'이라는 대담이 진행되었다.     ©자주시보

 

“북에 직접 가본 적도 없이 정확한 출처도 모르는 그런 기사들을 내는 언론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내가 직접 눈으로 본 북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지난 1월 27일, 대구에서는 “진천규, 황선의 통일이야기 <북한의 오늘과 2018년 전망>”이라는 강연이 있었다. 비영리단체 평화이음의 황선 남북교류협력위원장의 진행으로 시작된 이 날 강연은 JTBC 뉴스룸과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진천규 재미교포 언론인 방북기가 주요 내용이었고 이야기 손님으로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 김련희씨가 함께 했다.  

 

‘진천규 황선의 통일이야기’는 먼저 진천규씨가 북의 모습들을 찍은 사진들을 소개하며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진천규씨는 2000년도에 방북했을 때와 현재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자동차가 예전에 비해 많아졌고 택시회사가 4개로 늘어난 만큼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그는 새로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에 지어진 아파트들을 방문했는데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는 그 곳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그 아파트를 건설한 노동자들, 그 자리에 살았던 철거민들이라는 설명에 놀랐다고 한다. 특히 철거민들이 100% 다 입주를 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북이 이번에 새로 내놓은 관광상품 중에 경비행기를 타고 평양시내를 돌아보는 것이 있어서 이용해 본 그는 “수도의 상공에 비행기를 띄워서 관광을 하는 나라가 과연 세계에 있을까 싶었다. 북에서는 성역이나 다름없는 금수산 기념궁전도 내려다보는 코스가 있었다.” 고 소감을 전했다.

 

▲ 여명거리 살림집, 재미언론인 진천규씨는 여명거리에 입주한 사람들은 원래 살던 철거민,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그리고 여명거리 건설한 노동자들이라고 밝혔다  ©자주시보

 

진천규씨는 북의 배급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양에는 교예단 공연이 매일 있는데, 예를 들어 1000명이 입장객이면 외국인 관광객은 1~2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머지 좌석은 쿠폰으로 주민들에게 배급하여 늘 자리가 꽉 차도록 해 공연 하는 사람도, 관객도 즐거울 수 있게 유도한다. 마식령 스키장도 마찬가지다. 관리인만 400명인데 손님이 없다고 놀리는 게 아니라 내국인들이 와서 스키수업을 받는 등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계속 순환을 시키고 있었다.”

 

황선위원장은 “우리 언론을 보면 북한 사람들이 맥주 한 잔을 마시려면 월급 몇 달치가 필요하다는 보도를 하는데, 북은 맥주도 쿠폰으로 준다.” 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의 개념과 북의 쿠폰제는 이런 차이가 있다며 덧붙여 주었다.  

 

원산의 애육원(고아들을 국가가 직접 보육하는 곳)을 방문한 일화도 들려주었는데 교육, 놀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의료시설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했다. 치과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위해 침대에 누우면 시선이 보이는 곳에 태블릿 PC를 설치하여 만화영화를 보여주는 등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에 대해 김련희씨는 “애육원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는 국가의 정책 때문에 예전부터 죽 있어왔던 것이다.” 라고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 마식령스키장의 야경, 남북 스키 선수들의 공동훈련 장소이다. 마식령스키장에 대해서 진천규 기자는 자신이 직접 본 바로는 '공동훈련 장소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는데, 최근 북을 방문했던 남측의 관계자들도 진천규 기자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 자주시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선수들이 공동훈련을 하기로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마식령 스키장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스키주로가 10개이며 가장 긴 주로는 5킬로미터가 넘는 마식령 스키장은 동시에 350명이 숙박을 할 수 있으며 스키만 타는 내장객을 하루 20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국제적 수준의 스키장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요금이 다르며 외국인 기준으로 스위트룸이 1박에 450달러, 스키장비를 빌리고 리프트를 이용하는 금액은 100달러라고 한다. 

 

진천규씨는 “한국의 언론사들이 과연 마식령스키장에서 스키훈련이 가능할지, 리프트가 작동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내가 눈으로 직접 본 바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출처도 알 수 없는 그런 식의 보도가 답답하다. 기자들이 너무 무책임하게 기사를 쓰는데,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라고 하며 북은 무조건 못 살고 허름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황선위원장은 마식령스키장 건설에 어린이가 동원되었다며 아동착취의 현장에 우리 선수들을 보내 훈련을 시킬 수 없다는 종편의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마식령스키장 건설에 참여한 군인들의 노동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된 곳이 있다. 전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는데 아이들이 동원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 답했다. 

 

이에 대해서는 김련희씨는 “마식령스키장 건설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북에서는 어린이들도 나라의 건축물은 결국 우리가 누리는 것이니까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봉사활동의 개념으로 참여를 하는데, 우리 딸도 예전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고 말했다. 그녀의 딸은 현재 북에서 요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 27일 대구에서 열린 '진천규, 황선의 통일이야기'에 평양시민 김련희씨가 함께 참여해 대담을 나눴다. 사진은 김련희씨의 딸 리련금 씨의 모습. 리련금씨는 여명거리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자주시보

 

모든 순서가 끝나고 질문순서가 되자 참가자들은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겠는지 궁금해했다. 이에 대한 세 사람의 발언을 싣는다.

 

먼저 진천규씨는 “북 당국자로부터 여종업원 12명의 부모들이 어떤 심정일지 알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 생사여부도 알 수 없는 12명의 여종업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핵 폐기, 제재, 이산가족, 이런 사안으로는 절대 북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이음의 황선위원장은 “미국에서는 올림픽이 끝나면 키리졸브 훈련을 바로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평화올림픽의 분위기가 남북화해와 통일로 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평화올림픽은 누구의 강압이나 제안이 아닌 우리민족의 역량으로 이루어진 장이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좋은 전망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평양시민 김련희씨는 “ 북에서는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남조선은 형제고 동포가 언젠가는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라고 교육받는다. 남조선의 풀 한 포기 자갈 하나 다치지 말고 통일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가족이 함께 사는데 이런저런 계산을 할 필요가 있는가. 북맹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단절된 시간 동안 왜곡된 정보로 인해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와 적개심이 학습되어 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이제 평창동계올림픽이 계기가 되어 남과 북이 끊어졌던 교류가 다시 시작된다면 북에 대해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바람을 밝혔다.

 

2018년 연초부터 남북관계의 물꼬가 열렸다. 하지만 이 물꼬가 더 큰 물줄기가 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 모두, 있는 그대로 서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평창 올림픽에 북의 선수단을 비롯해 많은 북의 동포들이 남측에 온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높이고, 남북의 차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황선, 진천규 기자의 통일대담은 앞으로도 부산, 광주, 수원 등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 27일 대구에서 열린 '진천규, 황선의 통일이야기-오늘의 북한과 2018 전망'. 재미언론인 진천규씨는 2000년 남북의 정상들이 615선언에 서명하고 손은 든 사진을 찍은 기자로 유명하다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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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폐지하고 책값 낮추자' 과연 맞을까요?

[표지 너머 책 세상 ⑭] 책값 상대적으로 싸... 가격 이원화 체제 뿌리내려야
2018.01.26 16:06:34
 
 

 

 

 

도서정가제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 포털 댓글은 ‘책값이 올랐다’는 성토로 뒤덮입니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고, 예전처럼 큰 폭의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올라 책을 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새해 첫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룹니다. 책값이 정말 비쌀까요? 
 
우선 통계만 보면 아닌 듯합니다. 교보문고가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책값 변동 상황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도서정가제 도입 직전인 2014년 평균 도서 정가는 1만9101원이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2015년 이 가격은 1만7916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고, 지난해는 1만8874원이었습니다.  
 
즉 2014년과 지난해 책값만 비교하면, 책값은 오히려 도서정가제 도입 이전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큰 폭의 할인이 없어 독자가 책값이 비싸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실제 책값의 절대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물론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내내 책값이 하락한 건 아닙니다. 2016년과 지난해 책값만 비교하자면, 지난해 책값이 약 12.2% 올랐습니다. 
 
분야별로 보면 전체 책값이 떨어진 건 아닙니다. 2014년과 지난해 책값을 분야별로 비교한 결과, 인문·사회분야와 문학, 유·아동 분야 책값은 각각 2.6%, 6.6%, 9.3%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학 분야, 만화 분야, 학습참고서 분야 책값은 각각 20.1%, 19.1%, 3.5% 올랐습니다.  
 

▲ 도서정가제 도입 후 책값 변동치. ⓒ교보문고 제공

 
본론으로 돌아가 보죠. 책의 절대 가격이 더 떨어졌다면, 이제 질문은 '지금 책값이 적정하냐'는 것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꺼이 지갑을 열 마음이 들만큼 책값이 괜찮냐는 거죠. 지금 책값이 괜찮은 수준이냐는 질문에서부터 적정한 책값은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대담은 지난 1월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좌)와 이홍 한빛비즈 편집이사(우). ⓒ프레시안(최형락)

책값은 덜 올랐다 
 
-책값이 비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도서정가제 도입 여파로 책값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보문고 자료를 보면 책값은 오히려 더 떨어졌습니다.  
 
이홍 : 지난해 베스트셀러 200위권의 책 평균 가격을 계산해 보니 1만4560원가량이었습니다. 학습참고서를 제외하면 가격은 더 내려갑니다. 평균 책값을 대략 1만5000원 정도로 보면, 책값이 과거보다 크게 올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장은수 : 1년 사이에 책값이 10%가량 올랐으니, 단순히 보면 책값이 빠른 속도로 오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자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대학생이던 1986년에 라면 한 그릇 값이 200원가량이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한 봉지 사면 50원 정도 했죠. 요즘 라면 한 봉지가 1000원이 넘습니다. 가게에서 사먹으려면 4000원은 들죠. 지난 30여 년간 라면 값이 20배 정도 올랐습니다. 
 
책값은 어떨까요? 보통 책값의 지표로 잡는 소설을 예로 들어 보죠. 교보문고 자료를 보면, 지난해 문학 분야 평균 책값이 1만1851원입니다. 1만2000원 정도 하죠. 1986년에 소설 한 권 가격이 약 4000원 정도였습니다. 30년 동안 겨우 3배 올랐습니다. 
 
왜 소설가가 가난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출판업계는 책값을 덜 올리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책값이 비싸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30년간 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책값이 상대적으로 덜 올랐습니다.  
 
외국 책값과 대비해도 우리나라 책값이 쌉니다. 미국의 하드커버 소설 신간 가격은 대략 25달러(2만5000원) 정도입니다. 일본도 하드커버 초판은 2200엔(2만2000원) 정도 합니다. 2만5000원 정도가 문화 선진국 소설의 평균 가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각국 물가 수준을 고려해야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소설 신간 가격이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면 매우 싸다고 볼 수 있죠.  
 
이 나라들 국민소득이 높다고 책값도 비싸겠거니 생각하고 말면 안 됩니다. 독서 시장이 크고, 책 발행부수가 많습니다. 그만큼 단위 생산단가가 떨어지니 책값은 더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값이 높죠.  
 
비단 책뿐만이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문화상품 가격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덜 오르는 듯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충분한 투자를 가로막아 문화 발전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책값은 우리 생각과 달리, 상대적으로 덜 올랐습니다. ⓒflickr.com

정말 책값 비싸서 안 사시나요? 
 
-책값이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는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서 책값을 대폭 할인하기가 어려워져, 상대적으로 독자의 체감 책값이 더 오른 건 틀림없을 겁니다. 실제 많은 누리꾼이 도서정가제 폐지를 바라는 이유도 과거처럼 90% 할인 책을 구입하고 싶다는 데 있는 것 같고요.  
 
장은수 :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원광대 정현욱 교수에게 의뢰해 실시한 소비자 도서구매 결정요인 분석에 따르면, 책값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상위 30%의 독자 중 도서 구매 시 고려하는 주요 외부 요인에 '저렴한 책값'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동서는 출판사 명성이, 교육서는 디자인(표지, 글자체, 일러스트 등)이, 문학서와 인문 교양서는 내용의 유용성이, 실용서는 타인의 평가가, 학술서는 내용의 필요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 장르의 경우에도 책값이 가장 중요하다는 소비자 응답은 없었습니다. 거시적으로도 책 읽는 환경, 서평, 독서 캠페인 등이 우선이었습니다. 자신이 사고 싶은 책을 결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책값도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습니다만, 일단 읽을 책을 결정한 후 구매 결정 요인에서 생각보다 책값은 고려 순위에서 높지 않습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하는 이는, 엄밀히 말해 책을 자주 구매하지 않거나 읽고 싶은 책을 정하지 않은 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출혈 할인 경쟁이 이어지던) 도서정가제 도입 이전에 책을 샀다가, 도입 이후 오랜만에 책을 산 독자는 당연히 책값이 확 올랐다고 느끼겠죠. 하지만, 꾸준히 신간을 정가로 사보던 사람이라면 책값이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음을 아실 겁니다. 
 
책을 자주 사는 사람은 책값보다 서비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출판사가 가격 말고 다른 요인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대담이 여태 여러 차례에 걸쳐 도서정가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출판 환경을 더 좋게 가꿨다고 했죠. 도서정가제가 신간 판매를 자극했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도서정가제 도입 전 큰 문제의 하나가 신간이 안 팔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독자가 할인 폭이 큰 옛 서적을 더 찾았죠. 결국, 이는 독자가 가격만 보고 책을 사게끔 하고, 출판사는 과거 베스트셀러를 다시 찍는 데 집중하게끔 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신간이 꾸준히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책 문화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결코 좋은 현상이라 보기 어려웠죠.  
 
이홍 :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히 '도서정가제 도입 이전에 책값을 큰 폭으로 할인하는 게 가능했으니, 지금은 책값 자체를 더 낮추면 좋지 않겠느냐'고 지적할 수 있죠. 
 
이것은 구조적인 함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값을 낮추는 조건은 절대적인 박리다매 시장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즉, 책값을 낮추는 조건으로 공급량이 크게 늘어나야 합니다. 상당한 공급량 증가는 권당 제작 단가의 극적인 하락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즉, 기존에는 5000부 찍던 수준을 1만 부 수준으로 올리면 그만큼 권당 제작단가가 떨어집니다. 책값을 낮춰 이익의 손실이 발생하는 부분을 단가의 하락이 방어해 주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수단이지만, 이미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공급이 이미 과잉인 출판시장에서 이러한 행위가 남발되는 것은 결국 출판 전체의 공멸로 이어지죠.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 책값은 '비정상적'으로 싸다 
 
-책값을 내리기 어려운 출판사 사정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독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값을 더 낮추는 방안을 출판업계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65.3%입니다. 성인 3명 중 1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뜻입니다. 
 
서적구입비도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매해 역대 최저치를 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상반기 기준)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2007년에는 한 달에 책을 사는데 가구당 2만1054원을 썼지만, 2016년에는 1만7157원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가구당 오락문화비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2016년 서적구입비 지출 수준은 2006년 대비 29.2% 감소했습니다. 
 

▲ 가구당 오락문화비 지출 상황과 서적구입비 지출 상황. 오락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반해, 책 구입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제공

 
장은수 : 그래서 책값을 내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오히려 올려야죠. 
 
지난 10년간 독서율은 계속 하락했습니다. 책 평균 구매권수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07년 우리 국민은 한 해 평균 12.1권을 읽었는데, 2015년에는 9.1권으로 25%가량 감소했습니다.  
 
판매되는 책이 줄어드니, 출판사는 자연히 부수를 줄여서 초판에 드는 사업비를 줄이려 합니다. 그러니 개별 책의 최저부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궁극적으로는, 초판을 다 팔아도 출판사가 손해를 보는 책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죠. 출판사가 이를 견디다 못하면 책값을 올리는 식으로 그간 사업이 이어졌습니다. 
 
출판 산업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왜 이런 일종의 비정상 상황이 진작 이슈화되지 않았을까요? 왜 진작 책값을 업계 상황에 맞춰 올리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인구가 해방 이후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문맹률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잠재 독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는 뜻이죠. 
 
그러니 예전에는 책 판매권수가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출판사가 내는 책 상당량이 손해 보더라도 소위 말하는 '대박'이 하나 터지면 다른 부분의 적자를 메우고도 남았습니다. 크게 성공한 책이 손해를 보완하면서, 출판 전체의 가격을 형성해왔죠. 출판사들은 책값 인상을 자제하며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출판 산업이 안정화되며 고착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식의 사업이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홍 : 좋게 판단해서 단행본은 2000~2500부 정도가 평균 판매량입니다. 정상적인 사업의 개념으로 본다면 권당 2000부 내외를 팔아 이익은 고사하고 투입비용 정도는 회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출판사와 개별 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2000부를 팔면 손익분기점에 훨씬 못 미칩니다.  
 
책값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는 절대 투입비용, 시장에서의 상대 비용, 그리고 기대 이익 등입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절대 투입비용은 인건비와 종이 단가 등의 상승으로 쉽게 제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상대 가격이나 기대 이익 등을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데, 시장과 독자의 가격 저항과 수요 대비 공급의 과다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러다보니 책을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책 한 권을 팔아도 이익을 출판사가 다 가져오는 게 아닙니다. 대략 책값의 10%가량은 저자가 가져갑니다. 종잇값과 인쇄비, 편집비 등 제작비가 30%~40% 정도고 판관비가 10%, 유통비가 40%가량입니다. 나머지 0~10% 사이가 출판사의 이윤율입니다. 과거 서점 출고율은 70%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60% 미만까지 떨어졌습니다. 서점이 마진 40% 이상을 가져가게 되면서 출판사의 이윤율이 한계 수준으로 떨어진 겁니다.  
 
기본적으로 출고율이 떨어지는 데다 판매량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우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유통비와 저자 인세를 제외한 나머지를 줄이는 것인데 물가가 오르기만 하지, 쉽게 내려가진 않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책값을 올려야죠. 그런데 이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책을 찍어도 손해를 보는 구조를 출판사가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대가격을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뜻합니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출판사가 얻는 이익은 거의 없습니다. 통계에서도 보듯이 도서정가제 실시의 수혜자는 일부 대형서점이지 출판사가 아닙니다. 이제는 정가제로 인해 독자의 책 가격 불만과 저항이 형성되어 현실적인 가격 책정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책값을 내리자고 말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군요. 
 
장은수 : 그렇습니다. 책값을 올리지 않고 도서 판매량을 유지하려면, 출판사로서는 출고율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출고율을 일방적으로 올리면, 즉 출판사가 가져갈 이익 수준을 올리면 서점의 독자 서비스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각종 저자 관련 행사가 사라지거나, 책을 사면 덤으로 주는 굿즈(goods) 등의 서비스가 줄어들 수 있죠. 서점 역시 이익 수준이 박한 사업입니다. 오프라인 서점은 임대료 문제도 있죠.  
 
지금처럼 책값이 상대적으로 낮고, 독서율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출판 산업이 유지되려면 책값을 올리는 것 외에 답이 없습니다. 출판계에서 정부에 교육구조 개편, 강력한 독서 캠페인 등 독서 활성화를 꾸준히 요청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독서, 출판 관련 사업은 핵심 국정 과제에서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홍 : 독자 여러분이 출판의 어려운 상황을 조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정한 책의 독자든, <프레시안>의 독자든 대부분 우리 사회 어디선가 생산 행위에 종사하고 계실 겁니다. 자영업자이거나, 노동자죠. 제품의 가격에 수많은 요인이 관여하는 걸 아실 겁니다. 
 
하지만, 독자가 책값을 고려할 때 인지하는 건 종잇값뿐인 듯합니다. 종이와 잉크값만 들이면 나오는 책이 왜 비싼지, 왜 페이지수가 얼마 안 되는 책도 1만 원이 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죠. 책 무형의 가치를 단순한 수치로 환산하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형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책값이 종이와 잉크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은 해주셔야 합니다.   
 

▲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늘어나면 출판사로서도 문고본을 낼 여력이 생긴다. 지난해 8월 20일 오후 서울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책을 읽는 모습. ⓒ연합뉴스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늘리면, 한국에도 싼책 나온다 
 
-여태 책값을 낮추기에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고,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책값이 특별히 더 오른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책을 사는데 돈을 들이기를 여전히 조금 꺼리는 듯도 합니다.  
 
지난해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가 발표한 '2016년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2016년 2인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4899원이었습니다. 2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아무래도 소비자의 부담감이 커진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경제 상황이 워낙 어렵다보니, 독자로서는 출판업의 상황은 이해하더라도 책에 큰 돈을 들이기가 조금 꺼려질 수도 있고요. 책값을 보전하면서 독자도 늘릴 방법이 없을까요? 
 
장은수 : 독서 양극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말인즉슨, 책을 꾸준히 사던 사람은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든 책값이 일정 수준 오르든 상관 않고 계속 사지만, 책을 가끔 사는 이는 책값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지식 접근성에 민감하냐 아니냐는 곧 지식 정보 격차가 되고, 이 격차는 결국 삶의 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사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앞서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의 신간 초판 가격이 매우 높다는 점을 알아봤습니다. 이들 책은 대부분 질 좋은 하드커버죠. 이 대목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자주 보시거나, 미국 책을 수입해서 사본 분이라면 '아니'라고 하실 겁니다. 미국인들이 보급판을 많이 보는데, 보급판은 무척 값이 싸거든요. 맞습니다. 미국의 경우, 보급판은 권당 6~7달러(6000~7000원)가량입니다. 가격 이원화 정책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초판을 이 정도로 비싸게 내는 이유는 공공 도서관이 소화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숫자는 1010개입니다. 1997년 330개에서 2.5배가량 늘어났죠. 하지만, 여전히 인구 대비 숫자로 보면 미국, 일본, 독일에 크게 못 미칩니다. 이에 더해, 도서관 1관당 자료구입비도 선진국보다 매우 낮습니다. 
 
한국처럼 도서 시장 자체가 작은 나라에서 일정 정도의 좋은 책을 독서 인구 소비력만으로 받아 안기란 어렵습니다. 기초 수요가 매우 부실합니다. 이를 공공도서관이 해결해야 합니다. 공공도서관이 독서 선진국처럼 신간을 사주고, 이를 통해 초판이 소진되면 출판사는 보급판을 따로 출판해 독서 인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독서 인구가 자기 소비력에 맞춰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서재를 갖춘 이는 하드커버 초판을 구입할 테고, 보통의 독자는 저렴한 문고판을 구입해 도서 접근권을 높일 수 있죠.  
 
하지만, 현실이 어떤가요? 공공도서관에 책정된 자료구입비 수준이 너무 적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신간을 사기는커녕, 출판사에 연락해 신간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시장 이원화, 가격에 따른 독자 차별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초판 1쇄를 사회가 소비해주지 않으면, 출판 산업의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홍 :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무조건 책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칫 독자의 왜곡된 인식을 더 부추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출판은 왜 시장 이원화가 가능할까요. 다량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고본을 내려면, 그만큼 책을 많이 팔아서 출판사가 제작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이 시장을 떠받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서 시장이 커야 합니다. 
 
이에 더해 독자의 인식도 변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독자 상당수가 좋은 편집, 좋은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제 문고본을 낸 책 중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연히 책 제작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고, 출판사는 문고본 제작을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장은수 : 물론 전반적으로 이홍 이사의 진단이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달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작은 책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성공한 후, 얇은 인문학 책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꾸준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독자의 가격 저항이 덜한 인문 서적 위주로 이런 책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민음사가 동네 책방과 연계한 '쏜살문고' 시리즈, 1인 출판사 세 곳이 뭉쳐 내놓은 '아무튼 문고' 시리즈, 창비에서 나오는 '소설의 첫 만남' 등 일련의 실험이 지난해 나름 성과를 거둔 것도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제대로 된 문고본은 아니지만, 질 좋은 책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보급본 시장이 나타날 조짐이 있습니다. 
 
책값 50%는 더 올라야 
 
-출판에 드는 비용을 낮추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른바 스타 작가를 둘러싼 출판업계 선인세 논란을 보면 비용 구조를 개선할 여지는 있는 듯한데요?
 
장은수 : 출판 상황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베스트셀러가 보장된 작가는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특히 순문학 출판사는 한 해 내는 책의 70~80%가 적자인데, 베스트셀러가 보장된 작가라면 어떻게든 출판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수익을 내 다른 책의 적자를 보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돈이 안 되는 책을 내지 말고, 인세 경쟁을 낮추라는 말은 우리 문학 기반, 인문학 기반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잡는 건 생존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없으면 시장 규모가 작은 문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과감하게 출판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 직원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도 힘들고요. 어쨌든 출판사에 노동이 존재하게끔 할 최소한의 시스템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도서관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고, 국민독서율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는 스타 작가를 어떻게든 잡는 방법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분이 생각하시는 적정 책값, 얼마입니까?
 
장은수 : 공공도서관이 초판을 충분히 사줄 수 있다면, 즉 사회적 구매가 존재한다면 신간의 1차 판매가격이 지금보다 50%는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출판사가 안정적으로 다양한 책을 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격을 그만큼 끌어올릴 수 없다면, 독자가 그만큼 늘어나야 합니다.  
 
지금처럼 독자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책값의 합리적 인상은 출판 문화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더는 늦추기 어렵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종잇값이 전년 대비 7% 넘게 올랐습니다. 제작비가 계속 오르는데 책값을 낮추라는 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이 부담을 독자가 감당하게끔 하려면, 정부가 사회적 수요 창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홍 : 도서정가제가 출판 산업에 워낙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출판과 관련한 모든 이슈가 책값 할인 여부로 흡수되어 버리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이제 독자도 책 이야기를 할 때 할인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합니다. 문화선진국에 걸맞은 상황이 아닙니다. 
 
적정한 책값이 얼마냐는 질문에 굳이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출판인으로서, 책의 가치에 호주머니를 기꺼이 열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순히 책이 두꺼운지 얇은지, 디자인이 예쁜지 아닌지만 보고 돈을 투자하지 말고, 내용이 좋은 책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주십사 부탁합니다. 출판사가 독자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사실 책 한권 값은 술집에서 기꺼이 주문하는 한 접시의 안주보다 저렴한 상태입니다. 먹다 남기는 안주 하나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책값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너무 인색하고 여유가 없습니다. 책의 질에 대한 비평과 지적은 얼마든지 하시되 한 권의 책값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삶과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해를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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