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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6명이 죽었다, 치료 장담 못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5/07 07:49
  • 수정일
    2016/05/07 07: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공동대표 강찬호씨의 아픔

16.05.06 20:48l최종 업데이트 16.05.06 20:4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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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옥시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고, 시민들의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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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는 나의 대학 후배다. 학생회관 5층 동아리 방에서 혼자 낯선 기도를 하거나 책을 뒤적일 때 슬며시 들어와 "형 뭐해?" 하고 옆구리를 찌르던 친구다. 정문 옆, 병원 영안실 아래 초라한 자취방에 저녁이면 모여들던 후배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라면 몇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문을 열며 실없는 웃음 짓던 이가 찬호였다. 목련이 지고 벚꽃이 한창이던 4월부터는 꽃향기에 실려 최루탄 냄새도 똬리를 틀던 시절이었다.

그가 광명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는 오래전에 들었다. 역시 벚꽃 활짝 피고 지던 어느 해 오월 즈음 동아리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수줍게 인사하던 간호학과 S를 꼬드겨 연애를 하고 신혼방을 차린 곳이 그곳이었으니까. 광명시민신문 대표를 했고 광명 아이쿱 생협 이사를 맡았다. 그 외에도 그는 지역의 현안이 있는 곳에 서슴없이 들어가 아픈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단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현재 직함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공동대표다.

 "2011년 6월 나래가 기침이 심했어요. 단순 감기 증상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한두 달 동안 증상이 지속되어 의심하고 있었죠. 그러다 호흡이 몹시 빨라지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되었어요. 서둘러 한밤중에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의사가 '급하다, 치료를 장담 못 한다. 그동안 10명 중에 6명이 같은 증상이었는데 죽었다. 치료법도 없다'라고 말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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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인미상 간질성 폐렴'으로 진단받고 입원했지요. 그 전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이미 임산부들이 같은 증상으로 죽고 언론에 많이 알려진 상태였어요. 나래도 이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입니다. 다행히 나래는 살아났지만 폐가 섬유화되고 손상당했어요. 지금도 감기에 걸리면 폐렴, 천식이 와요. 그 당시 폐가 약해져서……. 사실 우리 나래는 예외적인 케이스예요."(2015.10 이슈in 아이쿱 인터뷰 중)

찬호의 딸 나래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아마 2011년 겨울 즈음 술자리에서였을 터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이 시판된 2001년 이후 첫 피해 사례가 발표된 2002년부터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역학조사 결과 발표가 있기까지 무려 53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그중 146명이 사망(2015.5 환경부 2차 조사 결과) 했다는 얘기는 해를 넘겨 간간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를 보도하는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찬호는 뉴스의 한쪽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광화문이나 정부기관 앞에 있었고 국회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 회사 또는 판매매장에 서있을 때도 있었다. 정부의 대응이라는 게 고작 2011년 역학조사 발표 당시 해당 제품의 구매와 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권고'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애초 그들에게 어떤 대책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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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찬호씨와 나래는 '레킷벤키저' 본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 가디언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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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나래가 아빠 일행을 따라 런던 외곽의 슬라우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 본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놈의 회사는 자기들이 만들어 판 물건 때문에 아픈 가슴 쥐고 먼 길을 날아온 어린 소녀에게 화장실도 내어주지 않았다. 일행은 볼일이 있을 때는 20분을 걸어서 슬라우 시립도서관 화장실까지 가야만 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 시위를, 나 몰라라 기업이 피해자를 영국까지 내몰았다고 보도했다. 나래는 땡볕 내리치는 이국의 낯선 거리에서의 고단한 일정을 불평 한마디 없이 소화해 냈다.    

"해결된 게 하나도 없어요. 레킷벤키저는 영국의 100년 된 생활용품기업이에요. 국내 레킷벤키저는 본사가 아닌 지점이기 때문에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단체 도움을 받아 일주일 동안 영국 본사 앞에서 시위하고 영국 국회 앞에서 투쟁하고 알리고 했던 거예요. 영국 가디언에도 보도가 됐지만 해결은 안 되었어요. 그들을 세 차례 만나서 공식 사과하고 피해 보상하라고 했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자기네는 '오로지 소송으로 할 거다'라고만 말하는 거죠."(2015.10 이슈in 아이쿱 인터뷰 중)

지난해 메르스 이후 한국을 휩쓸었던 '데톨'이라는 손 세정제도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이었다는 것도 그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옥시레킷벤키저의 전직 대표이사가 소환되었다.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관련 업체들이 사과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넋 놓고 있던 방송들도 연일 새로운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진정성을 확신할 길이 없으니 답답한 일이나 일단은 환영할만하다. 찬호는 지금 검찰의 더 정확한 조사와 처벌, 가습기 살균제 국회 청문회 추진과 특별법 제정의 한복판에 서 있다.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없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따라서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피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가 확인되더라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하지만 특별법이 제정되면 공소시효가 해결된다.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보내는 관심이 부러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정부나 국회, 우리 사회가 소홀히 다뤘던 지난 시간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특별법 제정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국민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안방의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2016.04. 뉴시스 인터뷰 중)

차라리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관심이 부러웠다는 찬호의 말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오랜 시간을 만나왔으면서도 그가 분노를 토했던 저녁 술잔에 잔 한번 부어 주지 못했다. 젊은 날 아픈 이들과 함께하며 예수 살이를 했던, 몸소 아픈 이가 되어있는 그에게 응원의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지상 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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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당의 우클릭과 기회주의자들 / 홍세화

등록 :2016-05-05 19:58수정 :2016-05-06 13:29

 

진보정당이 약화된 현실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시금 보수 주도 정치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번 총선 결과에서 ‘다행’은 잠깐이고 ‘우려’가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 4년, 국회가 기회주의자들의 기득권 주고받기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나는 공산주의에 찬성이오. 사회주의도 찬성이오. 그리고 자본주의도 찬성이오. 왜냐하면, 나는 기회주의자이므로.” 프랑스 가수 자크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공산당에서부터 극우정당인 ‘국민전선’까지 좌우로 펼쳐진 정당 분포를 가진 프랑스에 어울리는 노랫말인데, 그다음부터는 우리에게도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반대하는 사람들, 요구하는 사람들,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다만 한 가지 제스처만 하지요. 저고리를 뒤집어 입는 것, 항상 좋은 쪽으로.”

 

먼저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가 스스로 뒤집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떠오른다. 박 의원은 지난 2월29일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서 “특히 동성애법,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이 자리에 계신 한기총의 모든 목사님과 기독교 성도들과 정말로 뜻을 같이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하기야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뒤트롱의 기회주의자처럼, “나는 착취자도 두렵지 않고 선동자도 두렵지 않아요. 나는 유권자들을 믿어요. 내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지요.” 그래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미국의 대법관들이 경악할 만하고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도 부러워할 만한 무지의 용기를 보여준 그 박 의원은 다시 일주일 전에 김진표 의원과 함께 부패 사학의 상징적 인물인 김문기 상지대 설립자와 나란히 꽃다발을 들고 사진 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찍이 루소가 말했듯이, 유권자들을 4년에 하루만 자유롭게 하는 선거가 끝났으니 이젠 누구의 눈치도 볼 이유가 없어진 탓일까.

 

“깜짝 놀라게 한 남한의 여론.” <르몽드>의 기사 제목처럼 4·13 총선의 결과는 ‘새누리당 압승’을 우려했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하지만 안도하기에 앞서, “파도를 보지 말고 그 밑에 흐르는 조류를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총선 결과를 오만과 불통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앞장서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그 뒤를 따라 우클릭 경쟁을 함으로써 모든 정당이 ‘국민의 의식 지형’보다 위치를 훨씬 오른쪽으로 옮긴 것의 반영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총선을 통해 “4·16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시대의 정언명령에 응답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수준’을 실제보다 높이 평가하는 잘못이 된다면, 가령 박근혜 정권의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이념과 북한 겨레를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의 차이를 간과한 최악수였을 것이다. ‘극성지패’(몹시 왕성하면 머잖아 패망한다)라는 말이 아주 적절한. 한편, 더불어민주당 우클릭의 으뜸가는 수혜자이면서 지휘자인 김종인 대표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공격은 전두환 밑에서 국보위원을 지낸 사람의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적반하장이다. 수구기득권 세력조차 대부분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을 구분하여 자기들이 산업화에 공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머물지 민주화 세력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번 총선에 대해 <르몽드> 기자는 박 대통령에게 “한방 먹인” 선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새누리당의 완패, 더불어민주당의 선전, 국민의당의 승리”라는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당선자들은 유권자들의 지지투표가 아닌, 반대투표의 수혜자들에 가깝다. 새누리당에 반대하려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더불어민주당을 반대하려고 국민의당 후보를 찍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지가 아닌 반대의 방향이지만, 깃발을 꽂으면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 선거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기회주의자들을 걸러낼 수 없는 선거였다는 뜻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기회주의자들인지 아닌지의 가늠자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클릭으로 경제주의에 매몰된 탓일까, 이른바 정당 지도부일수록 세월호 참사와 민생 문제를 분리시킨 뒤 민생을 강조하는 발상을 드러내곤 한다. 도대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민생 문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 민생에는 지금도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새누리당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서 거리 농성을 벌이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 노조파괴 공작에 자결로 맞선 유성기업의 한광호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은 포함되지 않는다. 진보정당의 약세가 눈에 밟히고, 을지로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투쟁에 관심을 갖고 연대를 해온 민주당의 은수미·장하나 의원의 낙선이 안타까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진보정치 진영의 현실논리를 강화시켜온 ‘삼분지계’라는 말을 나는 기억한다. 진보정치 진영은 정책보다는 지역에 기반한 ‘수구적 보수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과 ‘자유주의 보수정당’(민주당)으로 이루어진 보수 양당 구도를 깨뜨리는 제3당이면서 지역이 아닌 노동자, 서민의 삶에 기반한 정책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긴요성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의 제3당 진입의 기대와 희망이며 표현으로서 ‘삼분지계’는 ‘민중이 주인 되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교두보로 인식되었으며 그것을 위해 많은 노력과 실천을 기울여왔다. 또 그것을 위해서도 지역주의 해소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역 기반의 양당 구도에 흔들림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이번 총선에서 그 흔들림의 열매를 차지한 정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의 정체성은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 어디쯤을 정치적 지향으로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쨌거나 민주당의 왼쪽에 자리 잡아야 할 진보정당 대신 민주당보다 더 오른쪽인 정당이 제3당으로 정립된 것이다.

 

정의당은 지역 2석을 포함해 6석을 획득하여 나름 선전했다고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정당투표에서 13%를 획득하여 지역의 2석을 포함하여 10석을 차지했던 2004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이 얻은 7.23%에 원외인 녹색당, 민중연합당, 노동당의 몫을 모두 합해도 9%에 머물렀다. 돌아온 노회찬과 발군의 국방전문가 김종대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국민의 비판과 견제 이전에 당원의 비판과 견제를 받는 진보정당이 약화된 현실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시금 보수 주도 정치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구체제로의 지속된 퇴행-통합진보당의 해산,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등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제한, 노동법 개악, 교과서의 국정화, 국가정보원 강화와 테러방지법, 남북관계의 끝없는 악화와 한-일 간 위안부 합의, 언론의 추락상 등-을 멈추거나 되돌리는 일은 물론, 세월호 참사가 엄중하게 요구한 ‘전혀 다른 국가의 상’을 만드는 일까지. 여기에 점점 더 강화되는 재벌기업의 힘과 전횡을 고려할 때, 이번 총선 결과에서 ‘다행’은 잠깐이고 ‘우려’가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 4년, 국회가 기회주의자들의 기득권 주고받기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장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장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끝난다. “저고리를 너무 뒤집어 입어서 이젠 양쪽이 모두 해어졌다오. 다음 혁명에는 바지를 뒤집어 입을 거요.” (혁명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한국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럴 염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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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결국 러시아로켓엔진 수입 2배 확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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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5/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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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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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결국 러시아로켓엔진 수입 2배 확대 결정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5/05 [22: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의 군사 위성의 발사체 엔진은 러시아산 RD-180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향후 6년동안 엔진 개발을 하겠다며 투자하고 있으나 개발이 이루어질지는 미국 조차 불확실하다고 밝히고 있어 주목 된다.  러시아의 명작 RD-170 엔진을 반으로 줄인 것이다. 이것도 힘이 좋아 어지간한 위성은 쉽게 올린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미 하원 군사위원회가 ‘RD-180’ 러시아 에네르고마쉬의 우주발사체 엔진 수입을 현재 9대에서 18대로 2배로 확대하는데 찬성표를 던졌다고 힐(Hill)지가 보도했다.

 
4월 30일 힐지를 인용한 스푸트닉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러시아 엔진을 대신할 자체개발을 추진하면서도 이 법안을 채택했다고 소개하면서 관련해 마이크 코프만 미 상원의원은 "러시아 우주발사체 엔진에 대한 의존도를 중단할 필요가 있으나, (러시아 로켓엔진이)미국을 우주로 무사히 진입할 수 있게 한다"며 확대법안을 인정했다.

한편, 둔칸 한테르 의원은 채택된 법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5억 4천만 달러를 러시아군 현대화에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미국은 러시아 로켓엔진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본지 이정섭 기자가 4월 10일 보도한 기사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미국 국방부는 자국산 로켓 엔진을 개발하기 전까지 향후 6년 간 군사 위성을 발사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우주발사체 엔진 RD-180 18개를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 18개의 엔진 수입을 하원에서 이번에 통과시킨 것이다.

 

당시 러시아 통신 스푸티니크는 지난 9일 미국 로버트 워크 국방부 부장관이 "러시아 RD-180 엔진 없이는 로켓 발사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군사위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적어도 2가지가 선결돼야 한다.”면서 “러시아의 우주발사체 엔진 RD-180와 같은 엔진 성능을 갖추는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미국이 6년 안에 새로운 우주발사체 엔진을 개발할 수 있을 지 확실치 않다.”고 말해 사실상 당장은 러시아 기술 없이는 미국이 군사용 로켓을 발사 할 수 없음을 자인한 셈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러시아산 발사체 엔진 뿐 아니라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인비행용 로켓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궤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1명당 6,000만 달러를 러시아에 지불하고 실어나르고 있다. 나사는 2017년을 목표로 유인 우주비행용 발사 로켓을 개발 중이지만 결과는 역시 불투명한 상태이다.

 

미국이 우주로켓엔진 분야에서 러시아에게 이렇게까지 뒤처지게 된 것은 우주왕복선 개발을 위해 추력이 강한 산화제 액체산소와 연료인 액체수소 혼합연료 방식에만 집중해왔었는데 이는 추력은 강하지만 연료통을 크게 만들어야하고 값비싼 액체수소를 연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고 챌린저호 폭발 사고 등 사고가 자주 발생해 결국 수십년 간 연구해온 관련 로켓엔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러시아는 등유 즉, 값싼 케로신을 이용한 작은 크기의 로켓을 다발로 묶어 사용하는 방식을 꾸준히 연구한 결과 착실히 기술력을 높여 ‘RD-170’이라는 부피에 비해 매우 추력이 강한 명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엔진은 추력 200톤짜리 엔진 4개를 묶은 것으로 단연 세계 최고 출력의 액체연료 로켓 엔진이었다.


이번에 미국에서 18개나 수입하기로 한 RD-180은 4개의 엔진을 두 개로 줄여 만든 수출용인데 이 두 개짜리 엔진도 워낙 힘이 좋아(추력 400톤급) 웬만한 임무 수행에 무리가 없을 정도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가 테크 트렌드에 기고한 ‘로켓 기술을 둘러싼 미·러의 갈등 (2014.12.11.)이란 제목의 글을 보면 특히 이들 러시아 엔진들은 서방에서는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단계식 연소 사이클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고 지적하였다.

 

“단계식 연소 사이클은 펌프를 돌린 가스까지 다시 재활용해 주 연소실로 주입해 쓰는 방식이다. 그만큼 허투루 낭비하는 동력이 없기 때문에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고온·고압의 가스를 다시 연소실로 주입하려면 상상 이상의 엄청난 소재 및 가공 기술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도 우주왕복선 주 엔진에 이 방식을 적용하기는 했지만 연료로는 비싼 액체수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러시아는 탁월한 소재 기술을 발전시켜 저렴한 고정제 등유(RP-1)를 이용할 수 있는 엔진을 이미 실용화했던 것이다.” -정우성 교수

 

유럽과 일본도 미국의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이용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데 미국보다는 약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개발하여 그래도 미국처럼 아예 사업을 접지는 않고 있지만 러시아보다는 훨씬 비싼 값으로 우주로켓을 발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 스페이스X사의  팰컨9        ©자주시보

 

이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회사가 바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이다. 이 회사도 산화제로는 액체산소를 연료로는 케로신을 이용한 저렴한 팰컨 로켓을 개발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발사 가격을 낮추기 위해 로켓엔진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시험에서 이미 성공한 바 있다. 창업한지 10여 년만에 이루어낸 성과여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스페이스X사의 등장으로 비쌀 수밖에 없는 액체수소를 이용한 유럽과 일본의 로켓사업은 직격탄을 맞은 상태이다. 스페이스X사가 30-50% 가격으로 위성사업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4월 27일 스페이스X는 미 공군으로부터 차세대 GPS-3 위성을 발사하는 8270만 달러(950억 원)짜리 계약을 수주했다. 이는 스페이스X 최초의 방위사업 수주인제 스페이스X는, 유일한 경쟁자인 ULA(록히드마틴-보잉 발사체 합작사)가 입찰을 포기하면서 자동적으로 해당 계약을 수주하게 된 것이다.

스페이스X사의 팰컨 개발사를 들여다보면 이전 미국의 로켓기술을 많이 받아들였으며 터보펌프 등 관련 기업들의 전폭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 스페이스X사마저도 미국의 군사위성을 전적으로 의존하기엔 아직 확신이 없기 때문에 미 국방부와 의회는 결국 러시아의 RD-180엔진을 향후 6년간 지속적으로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2016년 4월 9일 북이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용 고출력로켓엔진 연소시험 성공 장면, 비엔나소시지 형태의 불꽃은 러시아에서도 최신형 미사일에서 보여주는 특징이다.  특히 4개의 엔진이 하나의 다발로 묶여있는데 이런 형태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추력을 가진 로켓엔진의 일반적 특징이다.    ©자주시보

 

미국처럼 로켓개발역사가 길고 관련 기술 축적을 많이 한 나라도 쉽게 개발할 수 없는 분야가 우주로켓분야이다. 그런데 최근 북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대출력 고체로켓엔진 개발에 이어 4개의 엔진을 다발로 묶은 러시아의 최신형 토폴이나 야르스 미사일에 쓰이는 신형고출력액체로켓엔진 개발에도 성공하여 그 지상 시험을 공개한 바 있다.

 

북이 이런 최고 성능의 로켓엔진개발에 성공한 배경에는 높은 물리 화학기술뿐만 아니라 고온, 고압을 이겨낼 소재공업과 로켓자동제어에 필요한 컴퓨터제어기술 등 전반적인 기초과학육성에 큰 힘을 넣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해방직후 도상록, 이승기 박사와 같은 세계적인 물리, 화학 인재들이 수십명의 유능한 제자들을 다 데리고 북으로 올라간 점과 기초과학수준이 높은 독일과 러시아 등에 많은 유학생을 보내 착실하게 기초과학의 토대를 튼튼하게 구축했던 점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은 한국전쟁 기간에도 이런 유학생들을 조국으로 부르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하게 했는데 그들이 미군 폭격으로 초토화되는 조국강산을 생각하며 오직 과학만이 미국을 이길 수 있다면 눈에 불을 켜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여 다들 유능한 과학자가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기술이 당장은 군사력에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상업위성개발에 있어서도 북은 앞으로 폭발적인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을 서둘러야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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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백>으로 국민 힘모아 ‘국정원 개혁하라’ 명령해달라”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56 ] <자백>의 최승호 감독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MBC <PD수첩> 출신으로 해직언론인으로 <뉴스타파> 앵커를 맡고 있는 최승호 PD는 ‘PD’ 또는 앵커로 알려져 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다큐멘터리 영화인 <자백>을 연출해 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감독’이 되고 <자백>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최대 화제작이 되었다.

영화 <자백>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을 주 소재로 여러 간첩 조작사건을 조명했다. 영화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영화제 때문에 전주를 찾는 최승호 감독을 전주 영화의 거리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최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최승호 감독이 go발뉴스와 전주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영광 기자

“국정원 개혁을 국민적 운동으로 만들고 싶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는데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반응이 좋아요. 영화를 개봉할 때 많은 관객이 봐서 실제로 국정원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 반응이 좋은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그동안의 다큐멘터리는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피해자들을 다뤘지 권력기관 자체를 다루고 책임자를 직접 만나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없었어요. 그리고 국정원의 잘못이 명백하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밝혀진 경우는 없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통쾌함도 느끼고 국정원의 잘못에 대해 공감도 하고 그런 거죠.”

-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하셨는데.

“영화제라서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서로 교감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방송을 오랫동안 했잖아요. 그러나 방송에서는 시청자들과 직접적인 교감을 할 수는 없었는데 이렇게 영화를 본 뒤 그 느낌이 생생할 때 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 주로 PD나 앵커로 불렸잖아요. 그러나 영화제에서는 감독으로 불려서 색다른 느낌일 듯합니다.

“제가 영화 한 편 만들었다고 감독으로 불리는 건 아직 좀 어색한 것 같아요.”

- 영화 제작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 영화 <자백>의 한 장면

“저희가 간첩 조작사건을 많이 취재했고 방송도 했지만 국정원이 실질적으로 바뀐 게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때문에 국정원의 잘못에 대해 적나라하게 밝히는 영화를 만들어 공감의 폭을 넓힘으로써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운동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그러나 저희는 영화 제작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트루맛쇼>, <쿼바디스> 같은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을 프로듀서로 모셨어요. 김재환 감독이 저희가 모르는 영화의 길로 이끌어줬죠.”

-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취재는 2013년 초부터 4년 정도 했어요. 하지만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제작한 것은 1년입니다.”

- 영화 제작한 경험이 없으셨잖아요. 물론 김재환 감독을 영입했지만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겪었을 것 같아요.

“계속 토론을 하면서 바꾸고 또 바꾸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실험했죠. 그 결과 나온 최종 결과가 영화제에서 보여드린 겁니다. 작업 과정의 큰 흐름은 김재환 프로듀서가 있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라 할 만한 건 없었던 것 같아요.”

“40년 전과 변함없이 지금도 간첩 조작하며 공포로 국민들 컨트롤”

- 영화와 방송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영화는 큰 화면이라 아주 섬세한 것까지 느껴지는 것이고 방송은 TV는 아무리 커봤자 한계가 있고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TV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를 많이 하죠. 그래서 내레이션도 많이 들어가고 자막을 많이 넣어 시청자를 끌고 간다면 영화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관객들이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차이죠.”

   
▲ 영화 <자백> 포스터

- 내레이션을 직접 하셨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가 복잡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그 사건들을 충분히 이해시키려면 내레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내레이션을 해야 한다면 취재자의 입장에서 관객에게 사건의 흐름을 설명하는 것이라서 취재를 직접 한 사람이 하는 게 맞죠.”

- 영화 중에 재판이 끝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나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사과할 의향이 없는지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부하잖아요. 그럴 때 느낌은 어땠어요?

“질문하기 전에도 부인할 것으로 생각은 했어요. 그럼에도 원 전 원장 경우는 유우성씨 이름도 모른다는 식으로 너무 무책임하게 답변을 해서 화가 좀 났죠. 김 전 비서실장 경우는 40년 전 사건이라서 법률가적인 답변을 한 것이고 자기가 조금이라도 법적으로 말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피하는 답변이었죠.

그러나 그들이 무책임하게 자기 책임을 부인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해도 괜찮기 때문이에요. 원세훈 전 원장은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를 합동신문센터에 가두고 허위자백을 받은 최고 책임자였어요. 그런데 유우성 씨 사건에서 나중에 출·입경 기록을 조작한 국정원 직원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처음 허위자백을 받아낸 직원들은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원세훈 씨가 그렇게 나올 수 있죠. 만약 허위자백을 받아낸 직원들까지 엄정하게 처벌했다면 원 씨가 그렇게 나올 수는 없었겠죠.”

   
▲ 영화 <자백> 스틸컷

- 간첩 조작 사건을 어떻게 주목하게 되었나요?

“2013년 4월에 유가려 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와 가지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기사가 났더라고요. 그 기사를 보면 자기가 합동신문센터에서 고문으로 오빠(유우성 씨)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했는데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그 기사를 보고 이건 간첩 조작사건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한 거죠. 30~40년 전에 간첩 조작이 일어난 건 우리가 알고 있지만 지금도 간첩이 조작된다는 걸 알게 되어 놀랐어요. 그래서 취재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유우성씨 사건은 2013년 <뉴스타파>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어요. 그것과 이번 영화의 차이점은 뭔가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자백 이야기>는 유우성 사건의 1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 방송한 거예요. 주로 여동생의 ‘오빠가 간첩’이라는 자백이 실제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그 이후 1심 판결이 무죄로 나왔고, 2심 재판이 시작된 뒤에 국정원이 또 증거조작을 한 겁니다. 이번 영화 <자백>은 유우성 사건을 끝까지 다뤘을 뿐 아니라 국정원에서 자살한 분의 사건과 40년 전 일어난 조작사건들을 함께 다뤘어요. 국정원의 간첩조작 완결판이라고 할 만하죠.”

- 취재하시며 느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국정원이라는 게 4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계속 간첩을 만들어 내고 그걸 통해 우리 국민을 공포로 컨트롤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국정원 개혁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취재한 것이 아니어서 초기 촬영분은 좀 거칠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허공 매달린 밧줄 위 걷는 느낌으로 취재…한발만 잘못해도 떨어져”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소개 부탁드려요.

“중국에 들어가서 취재를 많이 했는데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취재했어야 해서 위험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다행스럽게 큰 문제가 일어나진 않았죠.”

   
▲ 영화 <자백>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최승호 감독 <사진출처=김미진 전북 도민일보 기자 제공>

- 2011년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다가 자살한 한준식 씨 딸과 통화로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셨잖아요. 2012년 MBC에서 방송한 드라마 <골든타임>의 의사인 최인혁(이성민 분)이 오버랩 되더라고요. 거기서 아버지의 죽음을 어린 자식들에게 담담히 알려주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 장면을 보면서 울컥 하던데 부고를 전하는 심경이 어떠셨어요?

“영화에서는 통화하는 과정이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굉장히 시간도 많이 걸렸고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하게 된 거예요. 전화할 때 여러 번 마음을 다잡고 했지만, 굉장히 힘든 전화 통화였어요.”

- 영화 끝부분에 재심을 통해 무죄 받은 간첩 사건을 열거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재심을 통해 무죄가 밝혀진 사건만 해도 이렇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사실 재심을 받지 못한 억울한 사건이 훨씬 많겠죠. 당사자들이 죽어버리고 가족들도 산산이 흩어진 경우가 많으니까요.”

- 영화를 제작하며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국정원을 취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요. 매번 취재 방향을 결정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면서 해야 했던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 또는 허공에 매달린 밧줄 위를 걷는 느낌이었어요. 한발만 잘못 짚으면 떨어진다는 느낌으로 취재를 해야 했죠. 그런 부분이 어려웠어요.”

- 영화를 수십 번 봤을 텐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가요?

“마지막까지 편집을 계속 바꾸면서 봤기 때문에 느낌은 다 달라요. 이제 앞으로는 완성된 것을 계속 보겠죠.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느낌은 다른 것 같아요. 전주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을 때는 관객들이 다소 엄숙하게 봤어요. 그런데 오늘 두 번째 상영할 때는 여러 군데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박수를 치시더군요. 느낌이 다 다른 거 같아요.”

“국정원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 위험”

- 영화를 통해 주려는 메시지는 뭔가요?

“국정원을 바꿔야 한다는 거죠. 국정원을 이대로 놔두면 대한민국이 위험할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도 위험해요.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 그렇게 하려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최승호 감독이 go발뉴스와 전주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영광 기자

“지금 여소야대 국면이 됐고 국회가 국정원을 개혁할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많은 국민들이 이 영화를 봐주시고 힘을 모아서 국정원을 개혁하라고 명령하면 국회가 그 명령을 들을 겁니다.”

- 외압은 없었나요?

“외압이라는 건 국정원 직원들이 고소한다거나 검찰에서 소환하는 등이 있었어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많은 관객이 영화로서 재밌다는 반응을 보여주셔서 만든 제 입장에서는 감사합니다. 앞으로 개봉되면 많이 봐 주시고 국정원을 개혁하는 실질적인 행동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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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지난 아기의 주검, "살인자는 저들인데…"

돌 지난 아기의 주검, "살인자는 저들인데…"
 
2016.05.06 08:39:16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2살 아들 잃은 부부

최근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금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책임자인 신현우 전 대표는 지난 26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고, '옥시 불매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진 것은 지난 2011년. 산모와 영유아가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숨지는 사례가 잇달아 일어났고,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충격과 분노와 애도는 잠시였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사과도, 피해 보상도 없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관심은 어느샌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더는 누구도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던 2013년, <프레시안>은 전국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만나 그들의 피눈물 나는 이야기를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연재 아홉 편으로 묶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신음합니다. <프레시안>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자 합니다.

다섯 번째로 전할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2살짜리 아들 유찬이를 잃은 부부의 사연입니다. 유찬이의 부모는 유찬이가 죽고난 지 4년이 지나서야 아들이 죽은 이유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어떻게 이들 부부의 행복을 망가뜨린 것일까요. 2013년 3월 28일, 이들과 <프레시안>과의 대화를 다시 공개합니다.

유찬이의 백일 사진은 사랑스러웠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유찬이의 아빠 김성국(가명) 씨와 엄마 민주란(가명) 씨는 둘째 아들 유찬이의 성장 앨범을 백일 사진으로 시작할 생각에 마냥 들떠 있었다. 돌 사진이 뒷장을 채우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몇 개의 앨범을 더 만들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찬이는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민주란 씨는 아들이 죽고 나서 사진관에서 성장 앨범을 받았다. 백일 사진만 덩그러니 실린 앨범. 세상을 떠난 작고 작은 아기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 무너졌다. 19일 오후 대전에서 유찬이의 부모를 만났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죽은 아들의 이야기를 힘겹게 풀어나갔다.

 

 

▲유찬이의 100일 사진. ⓒ프레시안(남빛나라)


"비누나 치약 때문에 사람이 죽지는 않잖아요?" 

유찬이가 죽고 4년이 지난 2011년 여름, '원인 미상 급성 폐 질환'의 원인이 밝혀졌다. 가습기 살균제! 뉴스를 보던 민주란 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유찬이를 치료한 의사는 "바이러스인지 뭔지…. 도저히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설거지하다가도 멍하니 서서 대체 무슨 바이러스가 금쪽같은 아들을 죽였을지 생각했던 그녀였다.

-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의 물질이라고 밝혀졌죠.

민주란 :저는 그전인 2010년부터 여러 산모들이 원인 미상의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유찬이를 생각했어요. 증세가 똑같았으니까요. '이제야 원인이 밝혀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김성국 :가습기 살균제가 유해 물질이라고 발표되자 집사람은 '바로 저거야' 하며 확신했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했어요. 꼭 비누나 치약 때문에 아기가 죽었다는 말처럼 다가와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비누, 치약 때문에 사람이 죽지는 않잖아요.

민주란 :저는 뉴스를 보자마자 알았어요. 2006년 가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썼으니까요. '내 손으로 넣었는데…내가 아기를 죽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뉴스를 보고 나서 이들 부부는 천안에서 다른 피해 가족과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김성국 씨 역시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증세가 똑같아서" 하고 확신했다.

돌도 안 된 아기의 죽음, 의사는 "이런 아기 많은데 원인은 미상"

이들 부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운 기억을 끄집어냈다.

- 이제까지 제가 접한 피해 사례 중 가장 어린 피해자네요. 너무 어린아이라 더욱 망연자실했을 것 같습니다. 

유찬이 역시 여느 피해자처럼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2007년 1월에 동네 병원을 찾았다. 엄마의 눈에 아기의 상태는 심각했지만 유찬이를 진료한 의사는 원인을 몰랐다.

민주란 :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기 기침 소리가 무슨 노인 기침 소리처럼 걸걸했어요. 몸무게는 3킬로그램이 빠졌고요. 작은 아이가 그렇게 야위었으니 기력이 없어서 젖병도 제대로 빨지 못했죠. 동네 병원에서 안 되겠다 싶어서 대전 을지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산소 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졌어요. 그러다 응급 처치를 하니 다시 괜찮아지고…. 결국 2007년 2월에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간질성 폐 질환' 진단을 내린 서울대학교병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이런 아기들이 너무 많아서 의사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원인은 모르겠는데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나 보던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의사는 "이런 아기들은 대개 예후가 아주 좋지 않다"며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라는 말을 대신했다. 

민주란 :치료제는 스테로이드제뿐이라고 하더군요.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니 부작용으로 다모증이 발생했어요. 유찬이 몸에 털이 나니까 당시 5살이었던 첫째 딸이 놀라서 유찬이가 왜 저러냐며 겁을 먹더라고요. 그렇게 원인도 모른 채 이상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돌려막기 식으로 겨우겨우 이 약 저 약을 쓰다가 결국 (2007년) 6월 7일 새벽에….

"첫째 아이 '유리'의 이름도 바꿨지만…" 

자식을 잃은 마음을 100퍼센트 표현할 수단은 없다. 민주란 씨는 종일 눈물이 흘러서 어디에 가나 손수건을 꼭 가지고 다녔다. 김성국 씨의 억장도 무너졌다.

- 당시 첫째 아이가 어렸는데 큰 충격을 받았겠네요. 

민주란 :5살짜리 애 머리에 원형 탈모가 생겼어요. 그리고 제가 종일 우니까 애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엄마 눈부터 보더군요. 엄마가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보는 거죠.

김성국 :유찬이가 가고 나서 첫째 아이 이름도 바꿨습니다. 원래는 '유리'였는데 유리가 깨지기 쉽잖아요. 뭔가 약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혹시나 또 잘못될까 봐 개명했죠.

부부는 유찬이가 세상을 떠난 뒤로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민 씨는 유찬이를 죽인 바이러스가 집 안에 남아 있을까 봐 집에 있는 물건을 닦고 또 닦았다. 온 가족이 비누로 손을 닦고 나서 손 세정제로 다시 한 번 닦았다. 김 씨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손을 소독하고자 아예 자동차에 손 세정제를 놓고 다닐 정도였다. 

유찬이의 죽음에 갇힌 채 부부의 삶은 그래도 계속됐다. 

- 2009년에 셋째 아이를 낳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찬이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라 셋째 아이를 낳기 두려웠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나요?

민주란 :사실 우리 막내 애는 첫째 아이 때문에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째 아이가 유찬이를 정말 예뻐했거든요. 어느 날 첫째 애가 혼자 거실에서 놀고 있는 뒷모습을 보니 너무 외로워 보이더군요. 그리고 동네 할머니들이 아이에게 "엄마한테 동생 낳아 달라고 하렴" 이렇게 말할 때 아이 표정이….

 

 

 

ⓒ프레시안(남빛나라)


"옥시, 대체 누굴 대상으로 실험해야 인정하나?" 

민주란 씨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유찬이가 살아 있었으면 몇 살이 됐을지 생각한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초등학생이 됐을 아들이다. 부부는 영원히 초등학생이 될 수 없는 아들을 위해서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아들을 죽인 진짜 살인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에 책임을 묻기로 한 것이다. 

유찬이가 썼던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이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이다. 이 기업은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 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폐 질환의 원인이 확인되었는데도, 옥시레킷벤키저를 포함한 단 한 곳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 현재 다른 피해자(25가구)와 함께 단체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요?

김성국 : 네. 피해자와 가족을 포함한 79명이 원고입니다. 지난 2012년 8월 말에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 업체 관계자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을 통해 소를 제기한 상태입니다. 

소송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한 보따리의 서류를 뒤적였다. 기업과 정부 이야기가 나오자 잠깐씩 아내의 말을 거들던 그의 말이 빨라졌다. 이 단체 소송에서 옥시레킷벤키저 측은 국내 최대 법률 사무소 '김앤장'을 앞세워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김 씨가 보기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발버둥이다. 

2011년 11월 11일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의 "동물 흡입 독성 실험과 전문가 검토 결과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실험용 쥐에게 세 종류의 살균제를 한 달간 흡입하도록 한 결과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제품을 흡입한 쥐의 폐 주변에 염증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폐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의 관계자"가 "고객의 안전을 보장하고 의심 사항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돕는다"며 "제3의 기관에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과학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추가 심층 실험을 의뢰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성국 :저 제조업체가 바로 옥시라고 들었어요. 정말로 책임질 마음이 있다면 '제3의 기관'을 운운할까요? 재판 과정에서 당연히 기업 측은 정말 가습기로 인한 피해가 맞느냐고 주장할 겁니다. 

민주란 :저는 그 사람들 코에다 가습기 살균제를 들이대고 싶어요. 기업 측은 지금 질병관리본부의 동물 실험을 부정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길 원하는 건가요? 누구를 대상으로 하나요? 이미 피해자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한 것 아니었나요?

2011년 전까지 학계는 원인 규명하느라 고심 

김성국 씨는 보고서 두 개를 내밀었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제품 수거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꾸준히 '원인 미상 폐 질환'이 학계에서 논란이 되어왔다는 증거였다.

지난 2009년 발표된 보고서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에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발병률은 10만 명당 0.36명으로 소아에서는 드물게 발병하는 질환이나 본 저자들은 2006년 3월부터 6월까지 서울 2개 기관에서만 15명의 환자를 경험하였으며"라고 명시돼있다. 

지난 2008년에 발간된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을 보면 "본 연구에서는 15명의 급성 간질성 폐렴 환자들을 대상으로 생존군과 사망군을 비교하여 예후인자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인자는 없었는데"라고 나와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판매가 중지되고 나서 1990년대 후반부터 매년 보고되던 '원인 미상 간질성 폐 질환 피해 신규 사례'는 더는 접수되지 않았다. 그는 확률과 통계를 믿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면 도저히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기업 측은 무엇을 믿고 이런 증거를 부정하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다. 

5년 이상이 걸릴 싸움, 정부는 뭐하나? 

기업 측에 책임을 묻는 일은 정부의 몫이지 피해자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이제까지 발로 뛴 쪽은 늘 피해자였다. 망설이다 피해자에게 건네기도 민망한 질문을 꺼냈다. 

- 대법원까지 간다면 소송이 끝나기까지 5년, 어쩌면 그 이상을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여론의 관심도 잦아들고 있는데 무언가 계획은 없으신가요?

김성국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가서 시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충청북도 청원군에 있는 질병관리본부까지 가서 시위하면 뭐 합니까? 어차피 지방에 있어서 기자들도 오지 않을 테데…. 또 어차피 저희는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 

김 씨가 질병관리본부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는 질병관리 본부를 놓고서 한 마디로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11년 10월께 질병관리본부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를 하고 있으니 유찬이의 의무 기록 열람에 동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에 응했으나 12월경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유찬이 사례가 피해 사례로 인정됐는지 궁금하던 차에 같은 내용의 전화를 또 받은 것이다. 

김성국 :'저번에도 그런 전화를 받았는데 대체 두 달 동안 뭘 했느냐'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전화한 사람이 '아, 그래요?' 하면서 옆 사람에게 뭐라고 묻더군요. 의무 기록 열람에 이미 동의했는데 다른 사람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 거죠. 결국 제가 직접 지난해 3월에 정보공개센터를 통해 유찬이 사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로 공식 인정됐는지 문의해야 했습니다.

도대체 제가 질병관리본부에 바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요구입니까? 그런데 정보공개센터를 통해 진행한 정보 공개 청구 답변서에도 이런 뻔한 대답만 쓰여 있더군요. '질병관리본부는 귀하께서 접수하신 폐 손상 의심 사례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조사의 결과는 4월 말 이후 도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 부부는 아직도 질병관리본부가 유찬이 사례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로 인정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이들 부부처럼 정부로부터 아무 정보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11년부터 직접 논문과 보고서를 찾고 정부 기관에 문의해온 김성국 씨는 지친 목소리로 "사실 이제는 정부가 방해나 안 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민주란 씨의 한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프로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가야 보고 있니? 밝히자!" 

이들 부부는 억울하게 죽은 둘째 아들 유찬이의 한을 풀고자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이제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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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무거운 '어버이연합', 불쌍하다고? 천만에

 

냉소보다는 '냉정한 국민의식'으로 어버이연합 사태 책임 규명해야

16.05.06 10:51l최종 업데이트 16.05.06 10:5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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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 주간지 <시사저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의 지시로 보수단체 집회를 개최했다고 보도한 <시사저널>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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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을 둘러싼 수억 원대의 거래 및 관제데모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인들 무료 급식이나 여비 지급 등에 대해 적극적 해명을 내놓던 당사자들은 아예 입을 닫고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아예 잠적 상태다. 수억 원의 돈을 지원했다는 전경련과 청와대도 발뺌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응도 차갑다. 주변만 보더라도 "그럴 줄 알았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 않냐?" "'정권, 검찰, 언론 다 똑같은데..."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평소 정치 문제에 비판적이던 후배조차도 관련 뉴스를 보면서 "원래 그랬다"라는 말로 화제를 돌린다. 

'원래', '본디 그러한'으로 풀이되는 낱말, 묘하다. 원래 그랬을까? 원래 그랬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못 본척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버이연합의 패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활동을 시작하면서 정권의 대북관에 시비를 걸었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다른 보수 단체와 비교해도 특이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냉전적인 대북관에 입각해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고, 보수 대권 후보였던 이회창을 지지하는 것도 사회적 비판 기능 수행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용인되는 수준은 여기까지였다. 삼성 떡값 검사 논란에서 특검팀 수사를 방해하고 김용철 변호사 신변을 위협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낸 미국산 수입 소고기 반대 투쟁을 국가를 망치는 괴담으로 규정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 화형식을 감행하고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천막농성장을 습격하기도 했다.

사자가 된 전직 대통령을 관에서 불러내는 퍼포먼스, 부관참시라 불리는 만행을 하는 곳에도 어버이연합이 있었다. 또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조롱을 일삼는 자리에도 그들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없는 만행에 시민들은 두려워했고 언론은 눈감았으며 공권력은 무력했다. 이처럼 어버이연합의 걷잡을 수 없는 패행은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괴물의 자양분을 공급해 오면서 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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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 일부가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로 한 2014년 9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앞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폭행사건에 관련된 유가족과 술자리에 함께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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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일면은 추악하다. 경제인단체 전경련에서 매번 수천만 원의 돈을 지원했고 노인들에게는 2만 원이 상시로 뿌려졌다. 청와대 행정관은 직접 관제데모를 협의하거나 지시했다. 퇴직경찰관의 모임인 '경우회'도 이들에게 집회 자금을 제공했다.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법의 테두리를 넘었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송금 부분은 전경련과 어버이연합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전경련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업무상 배임·횡령죄를 위반했을 확률이 높다. 청와대 행정관의 관제데모 지시가 사실이라면 공무원 중립의 의무도 피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JTBC와 몇몇 언론을 제외하면 보수 언론들은 아예 사실 보도를 하는 것조차 인색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닉슨정권의 사임의 단초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한 헌정 유린이다. 추선회 사무총장의 잠적, 전경련의 침묵,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느긋한 검찰의 대응은 이해하기 힘들다. 권력의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구명로비가 큰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백억 원대 원정도박, 50억 원 수임료, 이를 둘러싼 전·현직 판검사의 이합투구와 형량 낮추기, 입점 로비 등, 사법 권력과 자본 권력이 유착이 낳은 최악의 사법비리다. 이는 어버이연합 사태와도 비슷하다. 정치권력(청와대·국정원)과 자본권력(전경련)이 직접 법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본질은 같지 않은가.

그런데 청와대, 국정원, 전경련, 어버이연합이라는 악마의 카르텔을 단죄 않고 정운호 구명로비만 법의 심판대에 올린다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어버이연합 사태. 국민의 힘으로 단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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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배후 의혹을 규탄과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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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승만 정권 몰락의 시초가 된 4.18 고대생 습격사건을 주도한 건 대한반공청년단이었다. 이들은 자유당 정권의 비호 아래 친위대를 자처했던 정치깡패였다. 어버이연합의 탄생과 활동, 거기에서 드러난 정치·자본권력의 검은 거래는 우리 사회가 정치깡패 시대로 퇴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버이연합. 이름만 무거웠을 뿐 어버이의 품성도 노인의 지혜로움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 언론 일부에서는 '2만 원 알바에 내몰린 불쌍한 노인들'이라며 동정 여론을 조성하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엄연한 범죄행위다. 진상규명이 우선이고 드러난 정치·경제 권력과의 검은 거래는 냉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용서 또한 진실로 뉘우치는 자들에게만 해당할 일이다. 잠적한 책임자, 묵묵부답인 당사자들에게 베풀 관용이 아니다. 용서의 주체 또한 국민이지 그들을 은근슬쩍 두둔해오던 보수언론이 아니다.

원래 악하고 나쁜 사람은 없다. 그래도 되는 사람도 없다.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여소야대 정국이다. 정권이나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야당을 압박해서라도 정치·자본 권력을 이용해 친위대를 만든 정권과 전경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 앞에선 만인이 공평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옥시 불매운동'이 불붙고 있다. 이 불매운동은 옥시에만 적용할 일도 아니다. 어버이연합에 더욱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 어버이연합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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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아이 응급실 실려간 그날 영국 옥시 본사로 항의 방문 떠나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경북 구미에서 소방관으로 재직 중인 김씨는 4일 오전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과 함께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 주주총회장에 항의 방문하고, 검찰에 고발하기 위한 2차 항의 방문길에 나섰다. 승준이가 처음 열이 올라 응급실에 실려간 2009년 5월4일로부터 꼭 7년이 지난 날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놀러 가자고,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는 승준이와 행복하게 보냈어야 할 어린이날이 김씨에겐 레킷벤키저 본사를 항의 방문하는 슬픈 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방문 때는 레킷벤키저 본사 관계자를 문전박대 끝에 만났지만 본사와 한국 지사는 별개라면서 책임이 없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행위에 대해 (본사가) 관리하고 감독했다는 게 검찰 수사에 나타나고 있다”며 “그 사실을 듣고 분노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ㆍ가습기 살균제에 아들 잃은 소방관 아빠의 ‘슬픈 어린이날’

“영국 옥시 본사로 항의 방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아들을 잃은 김덕종씨(왼쪽에서 두번째)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맨 왼쪽)이 4일 오전 7박8일 일정으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영국 본사 항의 방문을 떠나면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영국 옥시 본사로 항의 방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아들을 잃은 김덕종씨(왼쪽에서 두번째)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맨 왼쪽)이 4일 오전 7박8일 일정으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영국 본사 항의 방문을 떠나면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승준이는 다섯 살이던 2009년 5월4일 갑자기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갔다. 다음날 폐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고 경북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이틀 후인 7일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승준이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2014년 환경부의 2차 피해조사에 승준이 조사를 신청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부가 2011년 유해하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계속 옥시 제품을 사용해 온 동생 둘이 아직까지 이상이 없다는 점만이 위안이라고 할 수도 없는 위안이다.

김씨는 꼭 1년 전인 지난해 5월에도 환경단체와 전문가, 피해자와 유족들로 이뤄진 레킷벤키저 영국 런던 본사 항의 방문단에 참가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 신분이 마음에 걸린다면서도 “우리 승준이를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와 정부의 무책임한 모습에 분개하는 마음이 들었다. 누구 하나는 나서야지 뒷짐 지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당시 옥시레킷벤키저 측은 김씨와 다른 피해자들, 최예용 소장 등으로 이뤄진 항의 방문단과의 대화에 나서긴 했지만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감스럽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지만 소송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 어렵다”는 뻔한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최근 옥시레킷벤키저가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영국 본사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린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김씨와 최 소장은 5일 오전(현지시간) 레킷벤키저 영국 본사의 주주총회장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및 시위를 벌이고, 현지 검찰에 이 업체를 고발할 예정이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시민단체들의 도움도 받는다. 6일에는 역시 다국적기업으로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유통시킨 테스코 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테스코 역시 영국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12일에는 가해기업 중 하나인 세퓨의 원료공급업체 덴마크 케톡스사에 대해 덴마크 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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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42조 불완전 수주에 이란에 250억 달러 퍼주기?

 

변상욱 대기자 “돈 없어 한은에 돈 찍으라 압박 넣는 판에 이란에 250억불 푼다?”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박근혜 정부가 한-이란 정상회담을 계기로 당장 42조원의 경제효과를 얻을 것처럼 발표하고 언론들도 이를 그대로 받아 “잭팟 수주”라며 성과 부풀리기에 나섰지만, 양국의 경제효과 계산법에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현지 영자 신문사인 ‘테헤란 타임즈’는 2일자 (현지시각) 보도에서 한국과 이란 양국이 연간 60억 달러 무역규모를 향후 180억 달러 규모로 늘리는데 결의했고, 이란과 한국이 19건의 협정을 체결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 <☞ 테헤란 타임즈 해당기사 보러가기>

특히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이 이란에 250억 달러(약 29조)를 투자하기로 했고, 이는 한국이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 제시한 최대 금융패키지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즉, 한국은 42조원의 경제효과를 홍보하고 있지만 이란은 한국이 25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는 것.

이와 관련 <뉴스타파>는 3일 “난데없는 ‘잭팟’…낯뜨거운 대통령 외교 부풀리기”란 제목의 기사에서 “상식적으로 정상 외교에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잭팟’을 터트린다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면서 “청와대와 한국 언론의 표현처럼 한국이 42조 원의 대박을 내거나, 이란 언론의 표현처럼 이란이 250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CBS 변상욱 대기자는 “정부가 MOU, 투자유치 약속 등 그럴 듯한 말로 국민을 현혹하는데 언론은 늘 받아만 쓴다”며 “이번에도 우리는 박대통령이 52조(or42조) 땡겼다고 홍보하지만 이란 언론은 박대통령이 이란에 250억 달러 풀기로 했다고 홍보한다. 돈이 없어 한국은행에 돈 찍으라고 압박 넣는 판에”라고 일갈했다.

<시사인> 고재열 문화팀장도 “이런 게 윈윈외교??? 이란 쪽에서는 한국이 250억 달러 투자한다고 구라치고, 한국쪽에서는 42조 투자 유치했다고 구라치고. 둘이 부루마블 게임하냐? 250억불 받고 42조 더???”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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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7년간 법인세 41조 깎아줬다!

이명박근혜, 7년간 법인세 41조 깎아줬다!
 
2016.05.05 08:12:16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법인세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리고 해법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에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 중의 하나는 '증세 없는 복지'일 것입니다. 추상적인 담론이 아닌 증세의 구체적인 해법이 나와야 할 시점입니다. 

법인세 부담률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다 높습니다. 2013년 OECD 평균 법인세 부담률이 국내총생산(GDP) 2.9%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013년에 3.4%이고, 2014년과 2015년에 3.2%입니다. 2014년 이후 차이가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OECD 평균보다 0.3%포인트 높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조 원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를 근거로 법인세 부담이 가중하니, 법인세 증세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통계에서 보고 싶은 면만 본 것입니다. 소득이 많으면 자연히 세금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국민총소득은 크게 보면 기업과 가계로 나누어지는데, 우리나라는 기업 소득 비중이 OECD 평균보다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 법인세 연간 10조 원 덜 부담 

한국은행 국민 소득 통계를 보면, 2010년 이후로 국민총소득 중 기업 소득의 비중이 약 25% 내외입니다. 반면, 최근 3년간 OECD 국가의 기업 소득 비중은 대략 18∼19% 수준입니다. 국민총소득 중 기업 소득으로 분배되는 비율이 OECD 평균보다 6∼7%포인트 높게 나옵니다. 

기업 소득 비중이 다르다면, 국민 총소득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기업 소득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7년에 법인세를 기업 소득으로 나눈 유효 세율이 17.2%였는데 2009년 14.4%로, 2013년 13.3%로 하락하였고, 2015년에는 12.9%까지 떨어졌습니다. 
 

▲ OECD 회원국 법인세 유효 세율은 지난 3년간 평균 15.6%로 한국보다 높다. ⓒ프레시안

  

▲ 표 1 : 한국의 기업소득과 법인세 비교(단위 : 조 원). 자료 : 기업 소득은 한국은행 자료, 법인세는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활용, 유효 세율 계산시 지방세 10% 포함하여 계산. ⓒ프레시안


같은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유효 세율도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OECD 통계상의 기업 소득 비중과 법인세 부담률을 활용하면 됩니다. 국내총생산(GDP)와 국민총생산(GNI)의 차이가 있지만, 비율에 영향을 줄 정도의 차이는 아닙니다. 기업 소득 대비 법인세로 계산한 OECD 국가들의 유효 세율은 3년 평균 15.6%로 최근 우리나라의 유효 세율보다 많이 높습니다. 
 

▲ 표 2 : OECD 국가의 기업 소득과 법인세 비교. (자료 : 우리나라의 가계·기업 소득 현황 및 국제 비교, <경제동향 & 이슈> 30호, 국회 예산정책처) ⓒ프레시안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정도의 유효 세율을 가지고 있었다면, 법인세가 어느 정도일까요? 우리나라의 기업 소득 비중에 OECD 유효 세율을 곱해주면 됩니다. 그 비율은 최근 3년간 GDP 3.8∼3.9%로 산출됩니다. 실제 우리나라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보다 0.5∼0.7%포인트 높게 나옵니다.  

2014년의 GDP를 고려하면 0.7%는 10.4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2015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발표한 2015년 GDP와 법인세 집계액을 고려하면, 2015년에도 법인세를 적게 부담한 금액이 10.2조 원으로 계산됩니다. 3년을 합하여 28조 원이 넘습니다.
 

▲ 표 3 : 적게 부담한 법인세. ⓒ프레시안


게다가 이 추산 방식으로는 과소 추정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 나라가 누진세 제도를 운용하기 때문에 소득이 증가할수록 유효 세율이 올라갑니다. 좀 더 정확하게 계산해 보면 더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과중한 것이 아닙니다. 가계로 가야 할 소득을 기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인세가 늘어나 보이는 것뿐입니다.

시급한 이명박 정부 감세의 원상 회복  

실질적인 법인세 부담이 줄어든 것은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조치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해 준 감세 효과는 얼마였을까요? 국세 통계 연보를 활용하여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 세율 인하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정리하면, 2009년에 2억 원 초과의 구간을 25%에서 22%로, 2012년에 2억∼200억 원 구간을 신설해서 22%에서 20%로 인하했습니다.  
 

▲ 표 4 : 법인 세율 변경 추이. (*) 2007년 이전에는 최저세율 구간이 1억 원 이하였음. (자료 : <조세의 이해와 쟁점(법인세편)>, 국회예산정책처) ⓒ프레시안


법인 세율 인하 자료에 근거하여 각 구간별 감세 비율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세 표준이 2억∼200억 원에 해당할 경우, 2009년에 25% 세율을 적용 받아야 하는데 22%를 적용 받기 때문에 그 구간에서 12%(3%/25%)의 법인세가 줄었습니다. 과세 표준이 2억 이하인 기업이라면, 감세 비율이 더 높습니다.  

과세 표준이 2억∼200억 원에 해당하더라도 2012년 이후에는 25% 대신에 20%를 적용받기 때문에 20%(5%/25%)의 법인세가 감소합니다. 과세 표준이 20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2009년 이후로 25% 대신에 22%의 세율을 적용 받았으므로 역시 12%(3%/25%)의 법인세가 줄어듭니다.  
 

▲ 표 5 : 2007년 이전 대비 구간별 감세 비율. ⓒ프레시안


한편, 국세 통계 연보를 보면 과세 표준 구간별로 기업이 얼마의 세금을 부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료를 200억 원 이하 구간과 200억 원 초과 구간으로 구분하여 집계해 보면, 2014년의 경우 총 법인세 부담액이 35.4조 원인데 과세 표준이 200억 원 이하의 기업들이 11.5조 원의 세금을 부담했고, 과세 표준이 2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들이 23.9조 원의 세금을 부담했습니다. 

감세 비율을 적용하기 위해서 과세 표준 200억 원 초과 기업들이 부담한 세금 중 높은 감세 비율을 적용받은 200억 원 이하 분을 따로 집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2년 이후 이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숫자는 각각 926개, 918개, 998개 입니다. 2014년의 경우 4.0조 원(998개 × 200억 원 × 20%)이 과세 표준 200억 원 이하에서 발생한 세금입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과세표준 200억 원 초과 기업이 부담한 세금 중 상대적으로 높은 감세 비율을 적용받은 세금이 2012년부터 각각 3.7조 원, 3.7조 원, 4.0조 원입니다. 이 금액의 분류를 조정한 결과가 아래와 같습니다. 2008년의 경우, 2억 원 미만의 구간에서만 세율 인하가 있어 집계를 생략했습니다. 
 

▲ 표 6 : 연도별 과세 표준 구간별 부담 세액 재분류(단위 : 조 원). (자료 : 각 연도별 <국세 통계 연보>) ⓒ프레시안


이제 표5의 감세 비율과 표6의 과세 표준 구간별 부담 세액을 활용하면 감세액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과세 표준 200억 원 이하 중 2억 원 이하 구간에서 감세 비율이 더 높지만 금액이 크지 않아 별도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즉, 200억 원 이하 구간은 2011년 이전 12%, 2012년 이후 20%의 감세 비율을 적용했습니다. 과세 표준 200억 원 초과 구간은 2009년 이후로 동일하게 12%의 감세 비율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2015년의 경우 아직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최소한 2014년의 감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표 7 : 이명박 정부의 감세 효과 추정(단위 : 조 원). ⓒ프레시안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감세액을 더해 보면 총 41.2조 원입니다. 2012년에 7조 원을 넘었고 그 이후로 6.6조 원 수준입니다.  

여기에 빠져 있는 금액이 있습니다. 법인세 징수는 주로 자진 신고로 이루어지지만 세무조사로도 이루어집니다. 2014년 세무조사에서 부과된 법인세는 6.4조 원입니다. 세무조사 대상 기간을 확인할 수 없어 감세 비율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2009년 이후가 조사 대상이어서 세율 인하 효과를 봤다면 여기에도 감세 효과가 있습니다. 

복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업들이 최소한 자기 몫은 해야 합니다. 법인 세율을 당장 원상 회복하여 6조∼7조 원의 세수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OECD 평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사내 유보금 과세로 청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게 희망을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명박 정부는 7년간 최소 40조 원 이상의 법인세를 감소시켜 주었습니다. 여러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업에게 세금을 깎아준 이유는 감세를 통해 경제가 활성화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법인세를 줄여주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가계 소득이 증가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명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민과 기업 간의 약속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기업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고 고용도 증가시키지 않았습니다. 기업의 사내 유보금과 단기 금융 자산만 불어났을 뿐입니다. 한국은행 기업 경영 분석 자료를 보면, 2008년 말부터 2014년 말까지 기업의 단기 금융 자산 증가액이 180조 원을 넘습니다. 사내 유보금 과세에 대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사내 유보금 과세의 가장 강력한 반대논리는 이중 과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유보금이라는 것은 1년 동안 영업을 해서 벌어들인 이익 중 이에 대한 법인세를 납부하고 남은 돈이 쌓인 것입니다.  

법인세를 한 번 납부하고 나면, 그 돈으로 배당을 할지 신규 투자를 할지는 기업의 선택입니다.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다고 하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보유할 수도 있습니다. 법인세를 납부하고 쌓아 둔 돈에 또 과세를 하게 되면 이중 과세의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감세액은 좀 성격이 다릅니다. 경제를 살리자는 국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업에게 법인세 절감액만큼 추가 자금을 지원한 것인데, 사용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걷어서 직접 사용할 수도 있지만, 기업이 그 역할을 더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위탁해 둔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위에서 추정한 감세액은 법인세가 한번 과세된 것이 아니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별도로 쌈지에 모아둔 성격의 돈입니다. 전체 사내 유보금이 아니라 법인세 감세액에 해당하는 돈을 원래 목적대로, 국민과 약속했던 대로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업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과 투자가 늘어나지 않고 사내유보금만 쌓여 갔지만, 어떤 기업은 그 감세액으로 고용과 투자를 늘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은 회사 내에 가용 가능한 현금이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법인세 감세액과 같은 기간에 증가한 단기 금융 자산 금액을 비교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즉, 기업별로 지난 7년간 법인세 감소 효과를 계산합니다. 이와 함께, 이미 고용이나 투자에 사용한 기업을 배려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단기 금융 자산 증가액을 계산합니다. 두 금액 중 작은 금액을 사내 유보금 과세 기준 금액으로 한다면 무리가 없습니다. 그 금액을 1년 동안에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 일정 기간, 예를 들어 10년 동안 사용하도록 하면 기업에게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세율 차이로 법인세가 줄어든 금액이 삼성전자 3.8조 원, 현대자동차 1.3조 원입니다. 반면, 2008년 말에 비해 2015년 말에 증가한 사내 유보금 중 단기 금융 자산에 해당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 금융 상품, 단기 매도 가능 금융 자산 금액을 계산해 보면, 삼성전자가 27.2조 원, 현대자동차가 10.1조 원입니다. 
 

▲ 표 8 :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단기 금융 자산 증가액(단위 : 조 원). (자료 :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감사보고서) ⓒ프레시안


이 경우, 사내 유보금 과세 대상 기준 금액은 아래와 같이 계산됩니다. 

삼성전자 Min(3.8조원, 27.2조원) = 3.8조 원 
현대자동차 Min(1.3조원, 10.1조원) = 1.3조 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사내 유보금 과세 대상 기준 금액은 전체 단기 금융 자산 증가액의 13∼14% 수준입니다. 사내 유보금 과세라고 하면 이익 잉여금 증가액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익 잉여금 증가액은 각각 88.2조 원과 33.0조 원입니다. 이익 잉여금 증가액과 비교하면 4% 정도입니다. 

실제 사내 유보금 과세는 기업 소득 환류 세제(기업이 1년 이익의 80% 이상을 투자, 배당, 임금 인상분 등에 사용하지 않으면 미달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는 일종의 사내 유보금 과세 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하면 됩니다. 다만, 기업 소득 환류 세제가 배당이나 투자액까지 공제해 주는 것에 비해, 사내 유보금 과세의 공제 대상은 청년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하청기업의 임금 인상에 사용하도록 한정해야 합니다. 

즉, 사내 유보금 과세액은 아래와 같이 계산됩니다. 

사내 유보금 과세액 = 회사별 7년간 법인세 감세액/10 - (청년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 하청 기업의 임금 인상액) × 50% 

기업들이 정부 정책 방향에 협조하여 청년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하청업체 임금 인상의 효과가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명박 정부의 감세액이 총 41.2조 원이니, 10년간 나누어 적용한다고 하면 연간 약 4조 원이 사내 유보금 과세 대상 기준 금액이 됩니다.  

절반 정도의 기업이 정부 정책에 호응한다면, 4조 원의 투자와 2조 원의 증세가 예상됩니다. 투자에 따른 효과는 청년 고용의 임금을 1인당 3300만 원이라고 한다면, 연간 12만 명이 신규 고용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하청기업의 임금 인상에 1인당 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연간 20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가계 소득 증가가 절실히 필요한 곳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대기업 공제 감면 축소해야 

전반적인 법인세율 이슈와 별개로 세부적인 정비가 필요한 곳이 있습니다.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공제 감면입니다. 대기업은 과거 고도 성장기 친일 재산 불하, 외환 제공, 낮은 금리, 경쟁 제한 및 세제 혜택 등 집중 육성 정책의 혜택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대기업 집중 육성 정책은 가계의 희생을 기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과거에 희생한 것들 이외에, 현재에도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제도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용 전기요금, 고환율, 세금 감면 정책입니다.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주택용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합니다. 얼마 전 미국이 한국을 환율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했는데,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수입품을 사용하는 가계에 피해를 줍니다. 즉, 이러한 정책은 제로섬 게임 성격이 있어 대기업에 혜택을 주기 위해서 일반 가계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중 세금 감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국세 감면액에 한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부가 정책 상 필요하다고 무한정 세금을 깎아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득세를 깎아줄 것인지 법인세를 깎아줄 것인지 선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 일반 가계의 살림살이가 어려워 세금을 더 깎아주려고 해도 법인세 감면액을 줄이지 않고서는 해 줄 수가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2016년 조세 지출 예산서를 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기업에 감면해 준 금액이 연 평균 10조 원 정도가 됩니다. 이 중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깎아준 금액을 제외하면 연 평균 4조 원 정도를 상호 출자 제한 기업 등 대기업에 감면해 주고 있습니다.
 

▲ 표 9 : 조세 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자료 : <2016년도 조세 지출 예산서>, 기획재정부) ⓒ프레시안


과거에 주었던 혜택도 모자라 현재까지 가계의 희생을 기반으로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대기업이 받는 공제 감면은 큰 폭으로 축소되어야 합니다. 최저한세율이 현재 17%인데(과세 표준 1000억 원 초과), 이를 3%포인트 정도 올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2조∼3조 원의 세수를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복지 재정 확보는 법인세로부터 

누리 과정, 기초 연금, 고용 안전망 확충, 청년 고용 등 복지 지출 수요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매년 30조∼40조 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정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존의 복지 제도마저 후퇴할 수 있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런 위기감 속에 대기업이 이러저러한 혜택만 누리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법인세율 원상 회복과 사내 유보금 과세 그리고 대기업 공제 감면 축소는 그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홍순탁 회계사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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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내세운 기독자유당의 정치세력화 뒤에 도사린 무지와 오해

도덕의 '화신', 보수 기독교의 가혹한 역설

[게릴라칼럼] '차별' 내세운 기독자유당의 정치세력화 뒤에 도사린 무지와 오해

16.05.04 19:13l최종 업데이트 16.05.04 19:1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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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자유당이 지난 4월 11일 오후 2시께 광화문 광장에서 동성애 반대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고 "박원순 서울 시장 각성"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사퇴"등의 구호를 외쳤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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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애국'을 외쳐온 이들이 있다. 어버이연합이 대표적일 텐데, 이 단체가 재계의 뒷돈과 정치권력의 사주를 받고 활동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 경찰, 검찰이 한 목소리로 비난하던 '전문시위꾼'들이 바로 이들이었던 셈이다.

'애국'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또 있는데,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다. 이들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의 활동 가운데 '국익'이나 '애국'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유유상종이라고, 애국자들끼리 통하기 마련인지, 어버이연합은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를 받고 움직여 왔고, 전경련은 어버이연합에 억대의 활동비를 제공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애국 3인방'이 벌여온 활동을 보면, 세월호 유가족 규탄이나 한일 위안부 합의 옹호 집회 따위였다.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가족들과 국가에 의해 인생을 유린당한 노인들을 비난하고 겁박하는 것이 이들이 벌여온 '애국 활동'이었다. 이들의 파렴치한 행태는 '애국' 간판을 내건 이들이 애국과 가장 거리가 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앞세운 종교가 도리어 혐오를 부추기고, '도덕'을 내세운 종교단체가 가장 부도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이런 사례로 차고 넘친다.

사랑 대신 혐오 내세운 한국의 보수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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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자유당의 핵심정책을 살펴보면,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 '할랄단지가 조성되면 테러위험국이 된다', '반차별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개인적으로도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된다' 등의 잘못된 주장으로 가득하다.
ⓒ 기독자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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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0년 넘게 교인으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은 '빛과 소금'이다. 이 표현은 목사가 힘주어 전하는 설교에서, 기도자의 간절한 기도문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막고 맛을 더하듯, 교회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이 일을 제대로 해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인들 가운데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주류 교회가 권력의 비리, 재계의 부패에 목소리 높여 비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교회는 세상의 불의에 목소리를 높이기는커녕, 교회 안의 불의에도 쉽게 눈을 감아왔다. '세상'의 대학에서는 논문을 표절한 교수가 해임되는 게 상식이지만, 논문을 표절한 목사는 멀쩡히 자리를 지킨다. '세상'의 공직자들은 성희롱 발언만으로도 제명 당하는 게 상식이지만, 여러 건의 성폭행 혐의를 받는 목사는 처벌은커녕 억대의 '전별금'을 받고 새 교회를 세워 승승장구한다.

물론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인간적인 실수와 오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 일탈이 교회의 존재 목적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개인적 일탈이 다수의 옹호나 묵인에 의해 보호받게 된다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수의 교인들이 논문 표절과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들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피해자들을 고소하고 비판자들을 제명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처럼 내부적으로는 무감각한 도덕주의가 교회 밖으로는 매우 공격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총선 당시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이슬람교 반대"의 기치를 내걸고 참여했던 기독자유당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국회 진출에 실패했으나, 2.6%의 득표율은 보수 개신교의 정치세력화가 코 앞에 다가왔음을 보여주었다.

올해 초 <기독교한국신문>은 "'기독자유당' 창당이 주는 의미와 배경"이라는 사설에서 이 정당의 정치적 실험을 높이 평가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전국교회의 기독교인을 하나로 묶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지역선거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썼다. 흥미로운 점은, 자신과 다른 성적 성향과 종교를 지닌 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외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말한다는 점이다.

오해, 무지, 모순의 연대

명분은 사람을 결속시킨다. '애국'이 그렇고, '도덕'이 그렇다. 이 두 가지는 상대적 우월감을 제공해 사람을 끌어들이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함으로써 유대를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저쪽편'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완전히 그릇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성 사이에 성행위만 존재하는 게 아니듯 동성 사이에도 성행위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의 관계에 사랑, 우정, 존경, 배려, 희생, 인내 등이 존재할 수 있다면, 동성 사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수개신교는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행위'의 차원으로 단순화하기 위해 '에이즈'나 '항문성교'를 끌어들인다.

에이즈가 동성만이 아니라 이성 간의 성관계를 통해서도 전파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항문성교'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들보다 이성애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성적으로 보수적인 듯 보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성과학연구소의 2003년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라고 밝힌 비율은 각각 0.3%와 0.2%였고, 항문성교를 시도해본 사람들의 비율은 약 10%였다. 물론 한국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큰 편이어서 응답자들이 솔직히 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외국처럼 1~4% 비율을 대입한다 해도, 항문성교를 시도하는 이성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증오의 정치'에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 아니다. 오직 '적'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동성애 혐오자일수록 동성애에 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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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랑 베그의 책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표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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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는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도덕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 경향을 분석했다. 그는 이것을 '가혹한 역설'이라고 부른다.

로랑 베그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연구를 인용한다. 이 대학 연구팀은 피험자에게 '공정', '관대' 등의 언어로 자신을 높이 평가하게 한 후, 이것이 행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관찰했다. 결과는 무척 흥미로웠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지시받은 사람일수록 타인들에게 가혹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기부나 자원봉사에 훨씬 소극적이었다. 이 '도덕의 화신'들이 기부한 액수는 다른 사람들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도덕주의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비난할 구실을 마련해줄 뿐이다.

로랑 베그는 동성애 혐오자의 '가혹한 역설'도 언급한다. 그는 '방어기제'라는 심리학 이론을 통해, 동성애 혐오가 자신의 동성애 충동을 부정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이 가설은 '플래티스모그래피'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입증된다.

우선 설문조사를 통해 동성애에 매우 비판적인 사람들을 파악한다. 그에게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를 보여주고, 기계장치를 통해 그들의 음경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로는 혐오감을 표현하며 '아무 흥미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그들이 발기할 확률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동성애에 거부감을 표하지 않는 사람들은 34%만이 발기했으나, 극단적 혐오자들의 '발기율'은 무려 80%였다.

혐오가 언제나 자신의 충동을 부정하려는 방어기제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혐오를 앞세우는 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자신의 삶이 아름답고 정의롭고 행복하다면 '이렇게 살라'고 말하지, '저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정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왔다면 말끝마다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며 증오의 정치에 기대어 연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잘 해 왔다면, 그동안의 성과를 보여주며 '우리 삶이 이렇게 나아졌으니 계속 지지해 달라'고 말할 테지만, 보여줄 게 아무 것도 없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끊임없이 되뇌지만, 이 땅에서 탈북자는 생활고에 쪼들린 채 돈 2만 원을 받고 시위에 동원되고 있다.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자와 무슬림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교회 내의 도덕과 상식은 (그들이 교화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상'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타인에 대한 혐오는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게 한다. 로랑 베그 관점에서 보면, 혐오는 자신의 허물을 은폐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동원되는 수단이다. 혐오 때문에 자신을 보지 못하든, 자신을 보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혐오를 끌어들이든, 타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곳은 온전할 수 없다. 그게 국가든, 정당이든, 종교단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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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국정원이 거기에 있었다”

단체들, 테러방지법 시행령(안) 반대 시민의견서 제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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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4  13: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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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전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테러방지법 시형령(안)의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테러방지법 및 시행령(안)의 폐기를 촉구하는 49개의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정원 전횡, 인권침해, 헌법위반 테러방지법 시행령(안) 반대 시민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을 갖고, 테러방지법 시행령(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3월 2일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국회를 통과한 테러방지법과 4월 15일 국무조정실과 국가정보원이 입법예고한 이번 시행령(안)이 테러방지법의 범위를 넘어 시행령으로 국정원의 권한을 확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테러를 명분으로 민간시설에 군부대 투입을 허용하는 등 위헌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며, 이 시행령(안)이 국무회의를 그대로 통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상임위원회가 테러방지법 시행령(안)에 일부 위헌소지가 있으며,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과 관련해 정부는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해 5월 6일까지 의견수렴, 직제규칙 보완 등을 통해 6월 4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향후 추진 일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야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 필리버스터를 무릅쓰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제정된 테러방지법은 지난 제20대 총선 결과로 확인된 민심을 감안해서도 그렇고 국무조정실과 국가정보원이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이 모법의 규정을 뛰어넘는 문제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만큼 국회는 전면적인 수정 요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들은 전날 자정까지 온라인으로 취합한 3,800여 명 시민들의 ‘테러방지법 시행령(안)’ 반대 의견을 국무조정실에 전달했으며, 앞으로 제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테러방지법 폐지 결의안을 청원하는 등 테러방지법의 폐기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국무조정실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테러방지법 시행령(안)이 △정체불명의 대테러센터, △전담기구를 통한 국정원의 권한 확대, △헌법상 포괄 위임 금지원칙 위반, △민간시설을 상대로 대테러특공대 투입 허용, △조사권한 없는 인권보호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제공으로 인권침해 가능성 확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 요건과 절차 부재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테러방지법과 시행령(안)의 폐기를 거듭 촉구했다.

먼저, 대테러 활동의 실제 권한을 쥐고 있는 ‘대테러센터’의 조직구성과 운영에 대해 시행령으로 세부사항을 규정하도록 위임했지만 지난달 15일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에는 관련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아, 사실상 국정원이 테러 대응의 실권을 장악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테러방지법이 국정원 강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해 왔으나 이번 시행령(안)을 보면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무소불위의 국정원이 거기에 있었다”며, “대테러센터는 국정원이 좌우할 수 없도록 하자는 협의가 있었으나 정부는 대통령령과 직제규칙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꼼수를 부렸고 현재 시행령(안)으로만 보면 국정원 산하조직처럼 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테러방지법 제8조 ‘테러 예방 및 대응을 위하여 필요한 전담조직을 둘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시행령(안)에서는 ‘테러정보통합센터’와 ‘대테러합동조사팀’, ‘지역테러대책협의회’, ‘공항·항만 테러대책협의회’ 등 10개 조직을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의견서에 따르면, 법률에 ‘전담조직’이라는 문안을 정하고 시행령에서 10개의 세부 전문조직을 두는 것은 “결국 국정원이 스스로 자신의 기구에 수권 규정을 두고 입법을 하는 것으로 헌법상의 포괄위임금지 원칙과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중 ‘지역테러대책협의회’와 ‘공항·항만 테러대책협의회’는 과거 5공시절 국가안전기획부가 주관하던 일명 관계기관대책회의의 확대판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제기되는 것은 주요 국가기관 및 지자체, 각종 공기업을 포괄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통할하게 함으로써 국정원의 직무능력이 무한 확장될 수 있다는데 대한 경계인 셈이다.

이태호 정책위원장은 “법을 넘어서는 시행령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폐기를 권고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의견서는 이와 함께 시행령(안) 제18조에 따라 사실상 군사작전 부대라고 할 수 있는 ‘대테러특공대’를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심의·의결만으로 설치·운영하도록 하고 특히나 테러사건대책본부장의 요청만으로 별도의 민주적 통제절차도 없이 국방부 소속의 ‘대테러특공대’를 군사시설 밖에서 작전할 수 있게 한 것도 문제 삼았다.

또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인권보호관을 두도록 하고 있으나 시행령(안)에서는 인권보호관의 직무를 인권침해 관련 민원 처리 등으로 한정하고 조사권한을 두지 않고 있어 유명무실한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 기자회견을 마친 참석자들은 3일 자정까지 온라인으로 접수된 테러방지법 시행령(안) 반대 3,768명 시민의견서를 국무조정실에 전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테러방지법 제정과 관련해서 국민들이 우려했던 것은 국정원이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서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며, “시행령에서는 야당과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인데, 전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되었던 테러방지법 제9조 제3항. 국정원장이 개인정보(민감정보 포함)와 GPS 위치정보를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시행령(안)에도 아무런 규제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사례로 꼽았다.

그는 최근 수사기관들의 요청에 따라 통신사들이 통신자료를 무단 제공해 온 사실로 미루어볼 때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은 개인의 정보인권을 침해할 것이 분명한데도 최소한의 요건과 절차도 규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국정원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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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강풍’에 전국에 사건사고···‘폭탄 저기압’ 때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5/04 11:10
  • 수정일
    2016/05/04 11:1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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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강풍’에 전국에 사건사고···‘폭탄 저기압’ 때문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4일 오전 7시 52분쯤 강원 강릉시 포남동 도로변에 조립식 건물 지붕이 강풍에 날아와 도로를 막자 119구조대원들이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강릉소방서 제공

4일 오전 7시 52분쯤 강원 강릉시 포남동 도로변에 조립식 건물 지붕이 강풍에 날아와 도로를 막자 119구조대원들이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강릉소방서 제공

3일까지 거세게 내리던 비가 그쳤지만 4일에도 전국 대부분 지방에 바람이 여전히 매우 강하게 불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4일 오전 9시 현재 강원도 강릉, 동해, 속초 등과 산간 지방, 울릉도, 독도에는 강풍 경보가 발효돼 있다. 서울, 경기도, 인천, 경북, 대구, 충북 등에도 강풍 주의보가 내려졌다.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요 지점 일 최대 순간풍속은 미시령(고성) 45.7m/s, 청하(포항) 31.7m/s, 백령 27.3m/s, 강현(양양) 25.1m/s, 장호원(이천) 23.1m/s, 음성 22.8m/s다.
 

■비행기 항로변경에 축대 붕괴, 정전까지

 

이틀째 전국적으로 강풍이 몰아치면서 사건사고가 빈발했다. 비행기가 비상착륙했고 축대가 무너진 곳도 있었다. 강풍으로 정전이 돼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3일 오후 7시30분쯤 대구공항에 티웨이항공 TW718편 여객기가 비상 착륙했다. 이 비행기는 승객 189명을 태우고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은 오후 6시40분쯤 제주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가던 중이었으나 강풍 때문에 항로를 변경했다. 항공사 측은 전세버스와 열차 편으로 승객을 김포공항 등으로 이송했으나 일부 승객은 불편을 호소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4일 새벽에는 강풍으로 과천봉담간고속화도로에서 축대벽이 무너져 지나가던 차량이 전복됐다. 이날 오전 0시20분쯤 경기도 의왕시 이동 과천봉담간고속화도로 서울 방향 신부곡 IC 부근에서 시멘트 축대벽(총 높이 30m 중 2m)이 무너져 ㄱ씨의 포르테 차량이 낙석을 들이받고 전복돼 운전자 ㄱ씨가 다쳤다. 뒤따르던 i30 운전자 ㄴ씨는 사고 현장을 목격한 뒤 2차 사고를 막으려 차에서 내렸다가 지나가던 택시가 밟고 튕긴 낙석에 다리를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다.

경찰은 사고 직후 굴착기를 동원해 낙석을 모두 제거했지만, 추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체 3차로 가운데 PE 드럼방호벽과 LED 펜스를 설치하는 등 2∼3차로를 통제하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교통 통제로 도로가 좁아진 탓에 낙석이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100m 뒤떨어진 곳에서 차량 추돌사고가 발생했으나 별다른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전날 내린 비와 강풍으로 산 절개지가 무너져내리면서 축대벽을 건드린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정확한 사고 경위와 피해 상황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4일 오전 2시쯤 강원 태백시 통동에서 강풍에 의해 전깃줄이 끊어지면서 주차된 차량이 불에 타고 있다. /태백소방서 제공

4일 오전 2시쯤 강원 태백시 통동에서 강풍에 의해 전깃줄이 끊어지면서 주차된 차량이 불에 타고 있다. /태백소방서 제공

3일 오후에는 강풍으로 아파트 전기 공급이 끊겼다. 이날 오후 10시30분쯤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강풍으로 전기 공급이 끊겼다가 30여분만에 복구됐다. 이 사고로 주민 1명이 20여분간 승강기에 갇혀있다가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구조됐다. 아파트 700여가구도 불편을 겪었다.

조사결과 강풍을 타고 온 나뭇잎 등 이물질이 아파트 단지 전기시설에 끼면서 전기 차단기가 작동해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전력 인천본부 관계자는 “전기공급시설 고장이 아니라 바람으로 인해 전기시설 전원이 차단된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오전 3시40분쯤 경북 경주시 천북면 동산리 도로 가에 세워진 전신주 1개가 쓰러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변압기 파손으로 이 일대 전기 공급이 끊겼다. 또 사고 여파로 다른 전신주 2개도 피해가 났다.

한전은 강풍으로 전신주가 쓰러진 것으로 보고 주변 통행을 차단한 뒤 복구하고 있다.
 

■강풍 원인은 ‘폭탄 저기압’
 

3일 경기도 고양시 호수공원의 고양꽃박람회장을 찾은 관람객의 우산이 강풍에 뒤집히고 있다./ 연합뉴스

3일 경기도 고양시 호수공원의 고양꽃박람회장을 찾은 관람객의 우산이 강풍에 뒤집히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같은 강풍은 급격히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 때문이다. 3일에는 하루에 중심 기압이 24hPa이상 떨어져 ‘폭탄 저기압’이라는 말이 붙기도 했다.

봄철이나 초겨울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대륙의 동안지역에서 종종 발생하는 ‘폭탄 저기압’은 저기압의 급격한 발달에 따른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저기압은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 대류가 왕성해지면서 만들어진다. 봄철에는 아직 차가운 공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고, 초겨울에는 아직 따뜻한 공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찬 공기가 유입돼 대류 현상이 활발하다.

대륙의 동안 지역은 따뜻한 공기를 쉽게 공급해주는 해안을 끼고 있어 이같은 저기압이 생기기 더 쉽다.

이번에는 일본 부근에 강하게 형성된 고기압이 버티고 있어 한반도 북쪽의 저기압과 남쪽의 고기압 간 큰 기압차이 때문에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 강한 남풍을 발생시켰다.

기상청 관계자는 “저기압이 정체하면서 기압 경도가 커져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다”며 “일본 부근의 발달한 고기압능은 저기압의 진행을 더디게 해 바람의 강도와 지속시간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강한 저기압이 한반도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날 낮부터는 강풍이 사그라들 전망이다.

기상청은 “강원도영동과 경북북부는 밤까지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겠고, 그 밖의 중부지방과 경상북도에는 매우 강하게 불다가 낮부터 점차 약해지겠다”며 “시설물과 농작물 등이 강풍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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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권리헌장’이 지켜지는 어린이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자본주의 문화를 체화시키는 어린이날은 이제 그만!
 
‘아동권리헌장’이 지켜지는 어린이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택 | 2016-05-04 09:12: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이다. 싱그러운 오월이 오면 아이들 세상이다. 학교를 나가면 갈 곳이 없던 청소년들에게 지자체며 교육단체에서는 어린이날, 청소년행사준비에 분주하다. 어린이날 노래처럼 5월을 푸르기고 싱그러운 어린이 세상, 청소년들의 세상이다. 엄마아빠와 모처럼 손잡고 어린이날 행사가 펼쳐지는 행사장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즐겁고 행복하다.

내일은 94회째 맞는 어린이날이다. 곳곳에서 이벤트성 어린이날 행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어린이날 하루만 즐거운 우리나라 어린이날. 어린이날이 끝나도 아이들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마을에서 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그런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어린이날, 청소년의 날… 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웃을 여유도 없이 바쁘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이 말은 아프리카 어떤 부족의 속담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이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이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이 키우는데 마을 사람들이 좀 희생해라(?)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이다.

마을은 둘째 치고 우리나라는 엄마 아빠라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있을까? 평소 해주지 못하던 관심을 오늘 하루라도 아이가 원하는 무엇이라도 해 주겠다는 미안함의 다른 표현이라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모든 오늘을 포기하라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 모든 오늘이 모여 미래가 되고 오늘의 작은 행복들이 모여 행복한 삶이 된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왜 모를까?

‘어릴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게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어린이 헌장이 보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빼앗고 어머니의 뜻이 곧 아이들의 뜻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가?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학원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다. 넘치도록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부모의 사교육비를 벌려고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일류대학을 나와야 하고 판검사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경제적인 지위를 누리게 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책임이라고 굳게 믿는 것일까?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 얼짱문화니 몸짱문화가 그렇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인품이라는 부모의 가치관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살려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성실하게 사는 삶이 왜 가치가 없는가? 우리사회는 지금 자본이 만든 상업주의 문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돈이 되는 것,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요,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문화는 더불어 사는 가치관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상류층이 되고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은 바뀌어야 한다. 내가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자녀들에게는 시켜줘야 한다는 왜곡된 사랑이 아이들에게서 오늘을 빼앗고 특정한 내일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곧 자녀의 생각일 것이라는 가치관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 7월, 매년 공개하는 ‘한국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를 보면 공개된 올해 행복지수에서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100)을 기준으로 6년째 최하위(74.0)를 기록했다.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7.6%로 OECD 국가 평균(85.8%)보다 크게 낮았다. ‘가정 등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청소년들은 13%(OECD 평균 6.7%), ‘외롭다고 느낀다’는 청소년은 18%(OECD 평균 7.4%)로 OECD 평균보다 배 가까이 높았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나 상황’에 대해서는 ‘성적에 대한 압박’(23.3%)과 ‘학습 부담’(20.8%)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조사한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어린이 5명 중 한 명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자살 충동을 3회 이상 경험한 아이들도 5%나 된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제이누리>

다행히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발효된 지 27년 만에 우리나라에도 ‘△부모ㆍ가족의 보살핌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보호와 지원 △차별받지 않음 △교육 △생각과 느낌 표현하고 의견을 제시 △휴식과 여가를 누릴 자유 △사생활 보호 △학대 및 착취로부터 보호 △위험으로부터 보호’라는 내용을 담은 ‘아동권리헌장’이 발표됐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부족의 속담을 94번째 맞는 어린이날 아동권리헌장과 함께 새겨 들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가 불행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시험문제풀이로 지칠 대로 지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이벤트성 어린이날 행사에 데리고 나가 하루를 즐겁게 해 준다고 행복한 어린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날을 자본주의의 소비문화, 왜곡된 축제문화를 체화시켜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아이들은 하나 하나는 독립된 인격체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해 모든 날이 행복한 청소년의 삶을 만들 수 있도록 ‘아동권리헌장’이 지켜지는 어린이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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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망각과의 투쟁이다

<새연재> 임영태의 ‘한국 현대사, 망각과의 투쟁 1’
임영태  |  ytlim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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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3  0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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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과거사 청산은 근대 국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과거사 청산은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로써 왜곡․은폐된 과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기 위한 과거사 청산 노력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여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그 성과가 희미해지고 있다. 

역사는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진실은 공식 기록으로 표기되고, 교육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망각과의 투쟁이 필요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테러, 의문사, 고문에 의한 조작 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한다. / 필자 주

 

다시 민주주의가 문제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된 역사 되돌리기가 박근혜 정권에서 위험 수위를 벗어나 폭주하고 있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 직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가톨릭대학교의 안병욱 교수는 ‘박근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뿐이다’라고 했는데 그 예언은 적중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고 박정희의 치적을 부풀리려는 시도는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수준을 훨씬 넘어선 폭주를 거듭했다.
 

   
▲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과거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수준 미달의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승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역사교과서를 아예 국정화해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겠다고 나섰다. 박 정권은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바탕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횡행했던 국가주의와 반공애국주의를 재차 불러들이고 있다. 냉전시대에나 가능했던 '북한 위협론'을 바탕으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칼자루를 쥐어주었다. 국정원이 15년 전부터 그렇게도 열망해왔던 그 법이 통과됨으로써 국정원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에 버금가는 사찰과 공작을 할 수 있게 됐다.

국정원과 검찰․경찰 등 공안기관은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통용된 반공․공안논리를 동원해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경찰은 물대포를 마주잡이로 쏘아대고 컨테이너로 ‘산성’을 쌓은 채 민주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 국정원은 탈북자를 간첩으로 만들고,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를 감시, 사찰한다. 검․경 또한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통신내용을 마구 들여다보면서 시민을 감시하고 있다. 정부에 의해 언론이 통제되면서 공중파는 허수아비가 됐고, 언론의 자유는 끝없이 추락했다. 이런데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와 국정원 등 권력핵심의 지원․지시 아래 전경련으로부터 돈을 받아 반민주시위에 동원할 ‘할배’들의 일당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해방 직후 남한에서 기승을 부리며 무수한 사람들을 테러․살상한 ‘서북청년단’등 극우반공청년조직의 활동을 생각하게 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시절 정부의 조종을 받는 관제데모대가 떠올리게 된다. 불쌍한 탈북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에게 2만원씩을 지급했다고 하는데 그 액수가 수억 원에 달한다.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행정부와 국정원, 헌재가 공동으로 합작해 10년 이상 합법적으로 활동해온 진보정당을 하루아침에 해산시켰다. 헌재의 해산 결정 이유의 밑바탕을 지배하는 논리는 낡고 낡은 냉전시대의 ‘북한 위협론’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문은 국가보안법 판결문과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수구적 행태를 벌이는 것은 정권이 맞은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이용하려는 목적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건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종북딱지’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정권 차원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극우인사들을 내려 보내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한편, 정권에 비판적인 소셜미디어와 개인미디어에 대해서는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종편과 조중동의 ‘막장언론’이 활개를 치고 권력의 하수인이 상층을 장악한 KBS․MBC 등 공영방송은 정권의 시녀가 되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 건전한 비판과 여론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과 해외에 나가서 새마을운동을 선전하고,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집 무상보육’마저 국가 재정이 부족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떠넘기면서도 새마을운동 지원에 들일 돈은 있는 모양이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의 공적 부풀리기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를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려는’박근혜 대통령의 소박한 ‘효심’탓으로 돌리기에는 걸리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나아가 독재의 역사를 왜곡, 미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만에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이루어 놓은 민주화의 성과가 다 망가져 버렸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몇 가지를 제외하면 노태우 정권을 넘어서 전두환․박정희 정권 수준으로 전락했다. 민주주의는 한번 성취되었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보면서 마치 조지 오웰의 명언을 금과옥조로 삼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이 과거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미래까지 지배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가 그들의 미래 지배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걸 확인했다. 1970, 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대도 대부분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지만 오히려 그들은 왜곡된 역사를 부정하고 진실을 위해 투쟁했고, 결국 승리했다. 그렇게 해서 국가에 의한 ‘역사 해석의 독점권’도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 또 다시 무덤 속에 들어갔던 독재의 망령들이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관제데모대가 등장하고 국정교과서가 부활하고 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후대들’이 역사를 옛날로 되돌리는 무모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도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이 그냥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권력에 의한 역사왜곡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일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장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신채호 같은 역사학자는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역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역사를 지키는 일은 ‘역사를 기억하는 투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지금 우리의 가슴을 이렇게도 아프게 만드는 ‘세월호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갈 것이다. 10년만 지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호의 내용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절대로 잊혀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잊히면 또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그 사건의 진실을 찾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싸워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모든 일을 기록하여 후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했다. 역사도 민주주의도 결국 ‘망각과의 투쟁’, ‘기억을 위한 투쟁’이다.

망각과의 투쟁, 기억을 위한 투쟁

얼마 전 <한겨레>에 ‘희망도 슬프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김선주 전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봤다.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는 대통령의 극찬 이후 공영방송이 자사 드라마를 기다렸다는 듯 홍보하고 있다. 잘생긴 육군 대위가 청와대와 연결된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국가, 뭐 아무렇게 대하면 어때. 이렇게 내뱉고는 납치된 애인을 혼자서 구하러 간다. 며칠 전 읽은 세월호의 기록이 오버랩되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은 방대한 재판 기록과 증언 등 모든 사실을 토대로 시간대별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 “구할 수 있었다.”마지막 세 장에서 반복되는 결론이었다. 모든 상황이 구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것이다.
“이런 염병 해경이 뭔 소용이여. 눈앞에 사람이 가라앉는디. 일단 막 갖다대서 살리고 보는 게 이상적이제. 지시들었다가는 다 죽이는디.”세월호에서 이물을 무조건 들이대고 승객들을 잡아내려 20여명을 구한 어선의 선장이 내뱉은 말이다.
육군대위의 말과 선장의 말은 동의어였다.
대통령의 발언이 3월 21일이었고, 나는 그 뒤에 보았다. 애국심 고취와 국가관에 나쁜 영향을 주는 드라마라고 했어야 마땅했다. 의사와 군인을 극한상황에 놓고, 작가 말대로 판타지 러브 스토리를 펼치고 있는데, 애국심과 연결시킨 것은 모든 사안을 애국심으로 연결시키고 싶은 대통령의 애국심 판타지의 발로이다.(
1)

   
▲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인가’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존재인지 의심스럽다. 국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인간들의 행태에서 최소한의 사명감이나 책임의식도, 가장 초보적인 도덕성조차도 느낄 수 없다. 그런 나라에서 사는 국민은 불행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만 그런 나라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나라였고, 70년 동안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자기 국민을 죽이며 시작했고, 그 뒤에도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을 학살했다. 학살의 시대가 지난 다음에도 폭력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하고 처벌하는 군부독재, 인권유린의 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런 고통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를 성취했지만 또 다시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한국현대사를 들춰보면 그런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2006년 6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에 근무하면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무자비한 고문과 인권침해의 적나라한 실상을 들여다보았다. 진실위는 한국현대사에서 벌어진 반민주적․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을 조사하여 왜곡․은폐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이 국가권력기관의 과거 잘못을 파헤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인권국가, 선진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성찰과 반성의 노력이었다. 왜곡되고 뒤틀린 과거사를 바로잡지 않고는 소위 ‘일류국가’, ‘선진국가’로 도약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진실위는 활동내용을 조사보고서로 정리하여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외적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었는데, 그것이 나의 업무였다. 진실위는 왜곡․은폐된 현대사를 조사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했는데, 진실위의 활동 결과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진실위의 조사결과가 한국 현대사와 사회․정치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기초자료로 이용되기를 바랐다. 년 2회 발간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다음, 정부기관과 언론사,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 관련단체와 연구자 등에 배포되었다. 조사보고서는 전체 진실위 활동상황과 통계자료, 조사관들이 작성하여 진실위 회의에서 의결된 개별사건조사보고서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사보고서에는 진실위 활동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왜곡된 현대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실위의 주된 일이었고 그 성과는 고스란히 조사보고서에 담겼다.

나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진실위에서 의결된 모든 조사보고서를 검토했다. 개별사건조사보고서는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이 작성하여 소위원회와 전원위원회에서 위원들의 검토를 거쳐 의결되었지만, 대외에 공개되는 공식보고서 작성․발간 업무를 담당한 때문에 나는 모든 사건보고서를 최종적으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위의 보고서에는 대한민국의 국가범죄 행위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에는 생생했던 보고서의 내용들이 진실위 업무가 종료된 지 5년여가 지난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새삼 역사가 망각과의 투쟁, 기억을 위한 투쟁임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역사

진실화해위원회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과거사 정리 활동의 종결판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뤄진 국정원․경찰청․군의 자체 과거사정리활동(국정원과거사위원회, 경찰청과거사위원회, 국방부과거사위원회), 대통령 산하에 있었던 친일반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위원회, 의문사위원회, 거창위원회, 제주4.3위원회 등은 특정 부문이나 개별사건의 진실규명과 후속처리를 위한 과거사 기구였다. 반면,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전후시기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권위주의 정권시기의 인권침해사건,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과 해외동포사 등 한국현대사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다 다루는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기구’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년간 신청을 받아서 11,175건의 사건을 처리했고, 그 가운데 75%인 8,450건을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2) 다른 과거사 위원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사건수이지만 이조차도 실제로는 대상이 되는 사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민간인학살사건과 권위주의 시절의 인권유린 사건 가운데 재일교포사건과 납북어부사건이 제대로 신청되지 않았다.

민간인학살사건의 경우 냉전시대 진실규명에 나섰다가 공안기간으로부터 당한 피해경험 때문에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재일교포의 경우 해봐야 뭐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에 아예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재신청과 조사기간의 연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가 2009년 상반기에 건의한 최소한의 후속조치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3)
 
박근혜 정권의 역사에 대한 역주행이 심각한 이 시점에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다시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국정원은 과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저질렀던 과거사의 잘못을 스스로 정리하고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하기 위한 환골탈퇴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권위주의 시절의 정보기관으로 완전히 되돌아가고 말았다.

국정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인 원세훈이 원장으로 취임한 뒤부터 전교조, 시민단체 등 진보적인 단체에 대한 이념공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제압 공작, 반값등록금 반대 공작 등 불법적인 정치공작과 여론공작을 벌였다. 2012년 18대 대선에 개입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되돌리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국정원이 정부기관과 여당 국회의원, 극우보수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NLL(북방한계선) 논쟁,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작업과 더불어 ‘테러방지법’ 통과를 주도했다.

국정원이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비밀정보기관, 폭압적 인권억압기구로 되돌아가는 만큼 이명박․박근혜 정부 또한 과거의 독재정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한 권력기관의 퇴행과 더불어 진실화해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과거사 기구들이 왜곡․은폐 진실을 밝혀 바로잡은 불행한 과거사에 대해서도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를 비롯하여 극우인사들이 시도 때도 없이 4.3사건에 대해서 ‘폭도들의 반란’이라며 4.3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그 단적인 예이다.

역사의 기억과 반복적 교육의 필요성

역사는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반복해서 교육하고 재차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거꾸로 가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일본은 과거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에 대해 한국․중국에 제대로 된 반성을 한 적이 없으므로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반성과 사죄를 한 독일을 보더라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은 주변 국가들에 나치의 침략행위와 집단학살에 대해 반성하고 보상했으며, 내부적으로도 나치의 범죄행위를 알리는 기념물과 역사공간을 설치해 후대가 그러한 과거의 범죄행위를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폴란드 바르샤바 나치 유대인 희생자 기념탑 앞에서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독일은 나치의 범죄 행위에 대한 사과를 한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독일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재차 재삼 주변국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계속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나치의 범죄 행위를 알리는 교육을 계속하고 있고, 나치 범죄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영원히 추적해서 처벌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다. 이러한 투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후대는 나치의 범죄 행위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걸 알았던 세대도 기억이 희미해지고 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언제 또 다시 나치와 같은 전쟁범죄와 인류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재현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만 역사를 망각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기억하는 투쟁을 제대로 벌여야 한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며, 우리 내부의 국민을 향해 저지른 민간인 학살과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기억하고 반성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그나마 진척되었던 과거사 정리, 과거사 청산 노력도 금방 제자리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끄러운 역사에 관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그동안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진실이 밝혀진 사건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다른 과거사 위원회 사건을 포함하여 한국 현대사를 통해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학살과 인권유린 등 국가범죄 행위와 관련된 사건을 포괄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통해 너무나 많은 국가공권력의 범죄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개별 사건을 모두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사건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드러내는 데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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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한겨레>, 2016. 4. 6

2) 진실화해위원회, 2010,『종합보고서 1』, 32쪽

3) 진실화해위원회는 활동 후속조치(화해와 기념사업, 기록․연구사업, 조사․유해발굴사업 등)를 위한 ‘과거사연구재단’설립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특별법’제정 등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건의 내용은 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01』(2009)에 수록되어 있다.

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주력하고 있다. (사)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다.

저서로는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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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왜 손발 묶어놓고 문제 풀라고 하나"

"대통령은 왜 손발 묶어놓고 문제 풀라고 하나"
 
2016.05.04 07:36:46
[기자의 눈] 양적 완화가 아니라 정책 금융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인가. 박정희 정부가 내걸었던 '한국적 민주주의' 구호 안에 민주주의는 없었다. 유신 쿠데타를 분칠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한국판 양적 완화' 역시 비슷하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감추는 효과가 있다. '한국판 양적 완화' 논란을, 정부와 중앙은행의 갈등으로만 이해하는 건 위험하다. 한국은행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만 부각되면서, 다른 정책 수단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둬야 좋은 정책 수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판 양적 완화' 한 가지로 정책 수단이 고정돼 있다. 훨훨 날아다니면서 답을 찾아도 풀기 힘든 문제를, 손발 묶어 놓고 해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돌출 발언, 그리고 고집 때문이다.   


박근혜판 양적 완화는 목적이 다르다 

"기업 구조 조정을 지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원은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들이 펼친 무차별적인 돈 풀기 식의 양적 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 완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양적 완화 정책의 원조는 일본이다. 지독한 디플레이션(자산 가치 하락)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엔 미국, 유럽연합(EU) 등도 뒤따랐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목표는 비슷했다. 통화량을 늘려서 물가를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물가 폭등으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한 입장에선, 물가가 낮은 게 왜 문제인가 싶다. 그렇지 않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 사람들은 돈을 안 쓰고 버틴다. 내일이면 100원에 살 수 있는 걸, 왜 오늘 200원에 사느냐는 게다. 기업이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이 늪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아주 힘들다.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가 잘 보여준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디플레이션 기미가 보이면, 중앙은행을 압박해서 자산(주로 채권)을 사들이게 한다. 사들인 자산의 가격 총액만큼, 돈이 시중에 풀려 나온다. 그게 양적 완화다. 

반면, 박 대통령이 이야기한 '선별적 양적 완화'(한국판 양적 완화)는 목적이 다르다. 디플레이션 방지가 아니라 국책 은행 지원이 목적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 은행이 해운 및 조선 업계에 약 20조 원을 빌려줬다. 이 가운데 일부를 떼일 수 있다. 이들 국책 은행도 함께 부실해진다. 문제는, 앞으로도 구조 조정 도마 위에 오를 산업이 많다는 점이다. 국책 은행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국책 은행의 자본을 더 쌓아야 한다. 그걸 '양적 완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국책 은행에 필요한 건 유동성이 아니다" 

정부 정책은 목적과 수단을 함께 봐야 한다. 한국판 양적 완화의 목적은 '국책 은행 지원'이다. 수단이 양적 완화다. 한국판 양적 완화를 둘러싼 온갖 논란은, 정책 수단을 둘러싼 것이다.  

문제는 결국 자본 건전성이다. 수출입은행은 이미 자본 건전성이 최악이다. KDB산업은행은 그보다 낫지만, 곧 나빠질 전망이다. 그걸 개선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 '양적 완화'는 과연 적절한 수단인가, 혹은 유일한 수단인가. 질문은 이렇게 나와야 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미 답을 이야기했다. 지난달 26일 구조조정 관련 브리핑에서, 그는 "현재 논의 중인 국책 은행 자본 확충 방안은 새누리당이 총선 이전에 공약으로 들고 나온 한국판 양적 완화와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의 공약은 산은채 등을 한은이 사줘서 산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이지만, 현재 국책 은행에 필요한 것은 유동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산업은행채(산은채)를 한국은행이 사들이면, 즉 한국판 양적 완화를 실시하면, 분명히 산업은행으로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건 부채 계정에 잡힌다. 자본 확충 수단은 아니라는 말이다. "국책 은행 자본 확충 방안은 (…) 한국판 양적 완화와 별개의 사안"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국책 은행에 필요한 것은 유동성이 아니"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부채가 아니라 자본 계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책 수단을 못 박아두고 시작하는 논의 

그런데 같은 날, 대통령이 다른 말을 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꼬였다. 이날 오후, 박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를 진행하며 '한국판 양적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말했다. '한국판 양적 완화'는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와 함께 물 건너갔다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현행 법을 고쳐야 가능한데, 여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판 양적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니,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하지만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대통령은 분명히 못 박았다. 이 글 도입부에 소개한 발언이다. '한국판 양적 완화란, 선별적 양적 완화다. 그걸 추진하겠다.'

박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히 확인됐다. 결국 임 위원장도 자기 말을 뒤집어야 했다. 지난달 29일, 임 위원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이 국가적 위험 요인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적 완화를 통한) 유동성 확보의 경우, 기획재정부와 한은 등 관계 기관이 매크로 차원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로 공을 떠넘긴 모양새다. 

오는 4일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국책 은행 자본 확충 정부 태스크포스(TF)' 첫 회의 역시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이 주재한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각각 실무자를 파견한다.  

기획재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정책은 대개 목적이 정해져 있고, 수단이 가변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적과 수단이 모두 고정돼 있다. 둘을 연결하는 게 과제다. 

 

일단 나온 아이디어가 '코코본드(CoCo bond, contingent convertible bond)' 활용이다. 의무 전환 사채, 조건부 자본 증권 등으로 번역된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라서,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인정된다. 산업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를 한국은행이 사들이면,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언급한 문제가 풀린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으로 산업은행의 자본을 쌓게 된다. 현행법을 바꾸지 않아도, 정부가 보증하기만 하면 즉시 가능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해 5월 중 5000억 원 이상 규모의 코코본드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산업은행이 향후 추가적으로 확보해야 할 자본금 규모를 최대 4조 원으로 추산한다. 코코본드 발행만으로는 안 된다. 나머지 돈은 어쩔 건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양적 완화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한국판 양적완화는, 정책 수단을 정책의 브랜드로 삼은 경우다. 만약 정책의 목적을 브랜드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지금 필요한 정책은 국책 은행 지원이다. 정부 TF 이름을 빌자면,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국책 은행 자본 확충"이 목적이다. 이런 목적에 맞춰 정책 명칭을 정하면, '정책 금융' 또는 '구제 금융'이 된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다. 한국판 양적 완화보다 그게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게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 기고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판 양적 완화'는 '양적 완화'라기보다는 중소기업 대출용으로 한국은행이 저금리 자금을 공급하던 기존의 '금융 중개 지원 대출'이라는 정책 금융이 대기업과 주택담보 대출까지 확대된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특정 부분에 자금 지원을 대규모로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경기 회복을 위한 과감하고 지속적인 통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기는 어렵다." 

예컨대 "국책 은행에 대한 구제 금융이 필요하다"라고 대통령이 말했다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한국은행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도 덜했을 게다. 어떤 면에선 한국은행의 위상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모든 금융기관이 마지막에 기댈 곳은 한국은행뿐이라는 걸 보여주니까 말이다. 금융위원장의 민망한 말 뒤집기도 없었을 게다.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의 폭도 넓어진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집권 초기였다면, 달랐을 게다. "국책 은행의 건전성이 엉망이다. 자본 확충을 위한 구제 금융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게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집권 4년차다. 국책 은행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책임에서 현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까 국책 은행의 부실, 정부의 책임 등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은 꺼리게 된다. 대신, 경기 부양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양적 완화라는 표현을 썼다. 성태윤 교수의 지적처럼, 실제로는 '양적 완화'보다 정책 금융에 가까우므로, '한국판'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정말 양적 완화 맞느냐'라는 지적을 피할 길을 열어둔 것이다.

 

책임도, 사과도, 대화도 싫다는 대통령 

 

여기에 몇 가지 족쇄가 더 겹쳤다. '증세'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거부감이 있다. 실제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머리 숙이는 게 싫은 것일 게다. '어쩔 수 없이 나랏돈을 예상보다 더 쓰게 됐다. 죄송하지만 세금을 더 내달라'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정부 재정을 쓸 생각은 아예 못한다. '양적 완화'를 한다지만, 관련 법 개정 역시 어렵다. 대통령은 야당과 대화할 마음이 없다.  

책임은 지기 싫고, 국민에게 머리 숙일 마음도 없으며, 야당과 대화할 줄은 모르는 대통령. 그 까다로운 조건에 맞추느라 관료들이 고생한다. 코코본드 발행과 같은 아이디어를 몇 번은 더 내야 한다. 부처 수장이 말을 바꾸는 망신을 더 겪을 수도 있다. 관료가 진땀 빼도 답이 안 나오면, 그때는 국민이 눈물을 흘린다.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더 흘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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