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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북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 기회.도전 논의”

(추가) 리용호 북 외무상 ‘함구’..CNN “억류 미국인 석방 깊게 논의”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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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8  12: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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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 [사진출처-스웨덴 외교부]

“외교장관들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도달하기 위한 계속된 외교적 노력에 연관된 기회와 도전들에 대해 논의했다.”

스웨덴 외교부가 17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 간 사흘에 걸친 회담이 끝났고 “회담은 주로 유엔 안보리 의제 중 우선순위가 높은 한반도 안보상황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기회’와 ‘도전’의 구체적 내용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해듣고 즉석에서 ‘5월까지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밝힌 이후 북한은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리용호 외무상이 이와 관련된 북한의 입장을 스웨덴 측에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은 북미 정상회담이 제3국에서 열릴 경우 첫손 꼽히는 후보지다. 1973년 서방국가로는 처음으로 북한과 수교하고 1975년 평양에 상주공관을 설치한 뒤 1990년대부터는 미국 등을 대신해 영사보호권을 행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현재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다. 서방국가 중에서는 북.미 사이를 중재할 최적의 위치에 있다. 발스트룀 외교장관과 스테판 뢰벤 총리는 공공연하게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왔다.

스웨덴 외교부는 또한 “회담은 미국, 캐나다, 호주를 대신한 보호국으로서 스웨덴의 영사 책임에도 할애됐다”고 확인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석방 문제가 논의됐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어 “스웨덴은 북한이 여러 안보리 결의들에 맞춰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으며, “북한 내 인도적 상황, 제재, 한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이 포함된 나라들의 지역 협력과 안보 이슈들도 논의됐다”고 알렸다. 

스톡홀름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리용호-발스트룀 회담은 15~16일 이틀간 열릴 예정이었으나 17일까지 연장됐다. ‘소식통’은 “대화는 건설적이었다”면서 “회담이 연장된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회담 전에 한.미와 긴밀하게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방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9일 열리는 유럽연합(EU) 비공식 외교이사회 참석차 18일 벨기에 브뤼셀로 향한다. 발스트룀 장관을 만나 리용호 외무상과의 논의 결과를 전해들을 예정이다. 

18일 귀국길에 오르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취재진의 잇따른 질문 공세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CNN>은 북-스웨덴 협상을 잘 아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억류 미국인 3명 석방 문제가 깊이있게 논의됐다고 알렸다. 한 ‘소식통’은 “언제나 이들 억류자 문제는 미국에 큰 협상”이라며, 스웨덴이 최후통첩 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어떤 것”을 북한 측에 줬다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지난해 낮은 급에서 진행된 북미 회동이나 지난 1월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스웨덴 방문 때도 억류 미국인 3명 석방 문제가 중심 의제였다고 알렸다. 2015년 ‘간첩 혐의’로 체포된 김동철 씨는 10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평양과학기술대학에 몸담았던 김학송, 김상덕 씨는 2017년 체포됐다.

(추가,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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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스마트쿠스', 당신의 목이 위험하다

[인터뷰] <백년 목>의 정선근 교수
2018.03.19 08:27:53
 
 

 

 

 

서울 도심 퇴근길의 러시아워에 시달리던 A. 뒤에서 오는 차량의 부주의로 접촉사고 피해를 입었다. 가벼운 사고였으나, 그 후 뒷목이 뻐근하다. 이른바 '나이롱 환자'로 병원에 입원할까 고민하게 됐다. 
 
평소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을 즐겨하는 대학생 B. 한 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온갖 자세를 다 취한다.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기, 의자에 다리를 세워 컴퓨터 앞에서 라면 먹기, 게임에 지쳐 의자에 기대 잠깐 졸기, 던전에 들어가 목을 쭉 빼고 게임에 몰두하기. 새벽 잠이 들 때 그는 목부터 어깨 사이가 약간 결림을 느낀다. 게임을 너무 오래 피로한 탓이리라 생각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콘텐츠를 즐겨 보는 직장인 C. 운 좋게 자리에 앉으면 곧바로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는다. 재미있는 동영상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레 허리를 굽히고, 목도 스마트폰에 파묻을 듯 깊이 숙인다.  
 
하루 종일 노트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지우곤 하는 작가 D. 한 번 책상에 앉으면 두세 시간은 창작에만 집중하는, 이른바 '엉덩이가 무거운 작가'로 업계에 정평이 자자하다. 이번에 그는 자신의 커리어상 최고의 작품을 쓰겠노라 다짐했다. 평소보다 더 깊이 고심하며 이야기의 바다에 몸을 맡겼다. 저녁이 되어 일어나면 목과 어깨, 팔이 다 저리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믿는다. 시나리오 공모전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스트레스 때문에 유독 더한 것 같다. 이럴 때 그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파에 누워 TV를 밤늦도록 시청한다. 
 
위 사례 모두 우리가 살면서 흔히 취하는 자세를 나열했다. 내가 아니라도 주변에 이런 사람, 꼭 한 명은 있다.  
 
전부 디스크성 목 통증이나 목 디스크 탈출증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다. 우리 목은 생각보다 훨씬 상처 입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목이 보내는 위험 신호를 대개 근육 피로쯤으로 가볍게 여기고 나쁜 자세를 계속 취한다. 그러다 심해지면? 목 통증이 더 심각해져 연관통이 발생하고, 급기야는 신경을 자극해 견디지 못할 통증으로 고생할 수 있다. 잘못하면 결국 목에 칼을 대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평생을 따라다닐 고통의 시작이다. 
 
지난 2016년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지 마라'는 강렬한 경고로 큰 화제를 모은 책 <백년 허리>의 저자 정선근 서울대 의과대학 재활의학교실 교수가 신간 <백년 목>(사이언스북스 펴냄)으로 돌아왔다. (☞관련기사 : 천기누설...디스크 수술, 절대로 하지 마라!
 
이번에도 핵심은 전작과 같다. 목에 칼을 함부로 대지 마라. 목 디스크에 이상이 생겨도 좋은 운동을 하면 디스크는 절로 회복된다. 무엇보다, 평소 좋은 자세를 취하는 버릇을 들여 목을 예방하라.  
 

▲ 정선근 서울대 의과대학 재활의학교실 교수는 디스크 손상을 자가 치유로 극복하려 노력할 것을 권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은 다음 달 11일 오후 7시 30분, 강남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정선근 교수를 모시고 목 통증을 완화하고, 목 디스크 이상을 예방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조합원 강연을 개최한다. (신청 방법은 기사 하단 참고) 강연에 앞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2일 오후 서울대병원 본관에서 정선근 교수를 만났다. 정 교수는 얼마나 많은 이가 목 통증을 앓는지, 그리고 목 통증을 단순한 근육통쯤으로 치부해 잘못된 치료에 의존하다 목을 망치는지를 지적하고, 올바른 생활 습관을 들여 통증을 예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아울러 목 통증이 심해지더라도 함부로 수술대에 오르기보다, 올바른 운동으로 디스크가 자가 치유할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스마트폰 때문에 목 디스크 손상 온다 
 

▲ <백년 목>(정선근 지음, 사이언스북스 제공) ⓒ사이언스북스 제공

프레시안 : 목 디스크 손상이 왜 생기는지부터 말씀해주세요. 
 
정선근 : 우리 몸의 기둥이 척추입니다. 목(경추)과 허리(요추)는 척추에서 이어지는 중요한 부위죠. 
 
우리 목뼈는 목을 받치는 원통인 척추체, 척추체와 척추체 사이를 잇는 디스크(추간판, 물렁뼈)로 이뤄져 있습니다. 디스크가 평생 목이 받는 충격을 흡수하죠, 
 
디스크 속에는 젤리 같이 말랑말랑한 수핵이 있고, 수핵 바깥은 유륜이라는 딱딱한 껍질이 있습니다. 이 같은 목은 4.5~5킬로그램의 머리 무게를 지탱하고, 머리의 회전을 떠받치죠. 그런데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충격이 가해지면,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수핵이 유륜을 찢고 돌출해 큰 통증으로 가해집니다. 디스크 손상이죠.  
 
프레시안 : 디스크 손상 원인이 여러 가지겠네요.  
 
정선근 : 근본 원인은 디스크가 받는 압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힘이 작용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디스크가 한 번에 강한 힘을 받은 경우를 우선 들 수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와 같은 케이스죠. 우리 일상에 이런 충격을 받을 일은 흔치 않습니다. 
 
다음으로, 어느 정도 강한 자극이 반복적으로 계속 목 디스크에 작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특정 직종 종사자에게 특히 잘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골프 선수를 들 수 있습니다. 고개를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고정하고 스윙하죠. 이에 따라 회전하는 몸이 목 디스크에 충격을 줍니다. 실제로 나이 들어 뒤늦게 골프를 배우면서 스윙 연습을 무리해 하시다 병원에 오시는 분이 많습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약한 힘이 아주 오랜 기간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죠. 아무래도 이게 우리가 목 건강을 해치는 가장 대중적 사례인 듯한데요. 
 
정선근 : 맞습니다.  
 
프레시안 : 가장 놀라웠던 지적이 스마트폰 사용이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이어진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정선근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는 목 디스크 환자가 70만 명 수준이었는데 2015년에는 87만 명으로 24.3%나 증가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 활성화 시기와 겹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볼 때 어떻게 하죠? 목을 앞으로 숙입니다. 앞서 우리 목이 약 4.5~5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딘다고 했습니다만, 목을 앞으로 숙일수록 목에 가해지는 무게가 몇 배로 증가합니다. 머리 무게를 5킬로그램으로 가정할 때, 목을 45도 앞으로 숙이면 받는 무게가 22.2킬로그램으로, 60도 숙이면 27.2킬로그램으로 늘어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목을 숙일 일이 많죠. 스마트폰 사용, 독서, PC작업 등을 할 때, 나도 모르게 거북목을 하는 포즈를 취하지 않습니까? 이런 자세를 오래 유지한다는 건, 우리 목에 20킬로그램짜리 쌀포대 하나를 올려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목 근육은 떨어지는 목을 견디기 위해 더 강하게 수축합니다. 자연히 목 디스크에 강한 힘이 작용하게 되죠. 이런 상태가 오랜 시간 반복되면, 결국 디스크가 압력을 견디지 못해 탈출하게 됩니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도 목 디스크 손상 원인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만큼 디스크가 받는 압력이 커지죠. 
 

▲ 목을 앞으로 숙일수록 목 디스크가 받는 압력은 커진다. 스마트폰을 오랜 시간 사용하면 좋을 게 없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소파에서 잠들지 마라 
 
프레시안 : 말씀을 들으니, 아무래도 목 디스크 손상은 사무직 노동자가 많이 받을 듯하네요.  
 
정선근 : 어느 정도 맞습니다. 목 디스크 손상 환자 중 사무직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허리 디스크 손상 환자 중에는 현장 노동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유전 요인입니다.  
 
프레시안 : 암 등 질병이나 내장기관 등에 유전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알았지만, 가족력이 디스크에도 영향을 미친다니 놀랍네요.  
 
정선근 : 2009년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 미셸 배티(Michele C. Battie) 박사 발표에 따르면, 요추 디스크 퇴행에 허리를 많이 쓰는 정도와 나이가 11% 영향을 미치는데, 유전 요인 기여도는 무려 43%에 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목이나 허리 디스크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유전입니다. 물렁뼈가 약한 유전 인자를 타고나신 분이라면,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디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도 디스크 건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프레시안 : 그밖에도 우리 일상에서 목 디스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생활습관이 있을까요?
 
정선근 : 소파에서 자거나, 벽에 등이나 목을 기대 TV를 시청하는 습관이 있는 분은 디스크 건강을 스스로 해치시는 겁니다. 옆으로 누워 잠을 자는 분도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한 자세를 오래 취했는데 목이나 목 주위가 조금 뻐근함을 느낀다면, 당장 그런 자세를 그만둬야 합니다. 젊을 때야 괜찮지만, 나이 들면 이런 나쁜 자세로 인해 목 디스크 손상이 옵니다.  
 
프레시안 : 이런 문화 행동, 직업 행동이 디스크 건강을 해친다는 지적을 들으니 자연스레 '직립 진화의 저주'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흔히들 네 발 짐승은 디스크 손상을 입지 않는데, 사람은 두 발로 걸으면서 디스크 손상이라는 숙명을 안게 되었다고들 하죠. 
 
정선근 :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도 그런 지적을 했죠.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네 발 짐승도 디스크 손상을 잘 입습니다. 대표적으로, 개의 경우 25% 정도가 디스크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 중 디스크 탈출증으로 고통 받는 이의 비율은 약 20% 정도입니다. 중력이 작용하는 한, 모든 척추 동물은 디스크 손상의 공포를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우주인은 디스크 손상의 위협에서 자유롭겠군요?
 
정선근 : 그럴 수 있겠지만, 대신 뼈가 약해지겠죠.  
 

▲ 소파에서 잠자는 습관은 목 건강을 해친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사우나에 가야 겠다 싶으면? 목 디스크 손상입니다 
 
프레시안 : 디스크 손상을 보통 사람이 인지하기란 어렵습니다. 단순히 근육이 뭉친 건지, 스트레스 때문에 목이 뻣뻣해진 건지 알기, 정말 디스크 손상 때문인지 구분이 어려워요. 더구나 책을 보니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해 두통이 생기거나, 팔이 아프거나, 심지어 다리가 아파 심하면 걷기 힘들어진다고도 하셨는데요. 우리가 목 디스크 손상을 쉽게 알 방법이 없을까요? 
 
정선근 : 간단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의 원인이 전부 목 디스크 손상입니다.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해 생기는 통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디스크 내부가 찢어져서 생기는 디스크성 목 통증입니다. 다음은 디스크가 완전히 탈출(디스크 탈출증)해 신경을 건드리면서 발생하는 방사통입니다.  
 
수핵이 섬유질을 찢는 디스크성 통증은 크게 아프지는 않습니다. 목이나 목 주변이 뻐근하거나, 뒤통수, 옆머리, 눈, 귓구멍, 어금니 등이 아픕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육이 뭉친' 상태나 '잠을 잘못 자 담에 걸린' 상태, 밤샘 작업 후 어깨가 뭉쳐 '사우나에 가야 겠다'고 느끼는 상태는 전부 디스크성 목 통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승모근(어깨 부근)이 아프죠.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자각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초기에 목 디스크 관리에 들어가야 잘 낫습니다. 
 
디스크 탈출증은 매우 아픕니다. 디스크가 탈출함에 따라 수핵이 신경뿌리를 건드려 염증이 생기면, 대상포진 수준으로 아픕니다. 통증 부위도 넓어서 목부터 가슴, 양 팔, 손가락 끝까지 통증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두통 역시 디스크성 통증의 대표적 증세라고 하셨어요. 현대인 중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정선근 : 맞습니다.  
 
프레시안 : 목 디스크 진단이 매우 어려울 듯한데요? 
 
정선근 : 사실 MRI를 찍어도, 전문가조차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가 처음 목 디스크가 찢어져 병원에 왔다고 칩시다. 아파요. 하지만, 아직 디스크가 탈출하진 않았으니 MRI를 찍어도 확실히 판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의사가 이를 근육통으로 치부합니다.  
 
반면, 나이 든 분의 목 MRI를 찍으면 대부분이 온갖 손상을 이미 입은 상태입니다. 간단히 말해 흉터가 많죠. 그런데, MRI는 흉터와 새로 생긴 상처를 구분 못 합니다. 그러니 의사가 봐도 왜, 어디가 아픈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한 통증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목 디스크 수술, 웬만하면 하지 마라 
 
프레시안 : 현대인 대부분이 목 디스크 손상을 안고 산다고 보면 되겠네요?
 
정선근 : 맞습니다. 아무 통증이 없는 건강한 이가 MRI를 찍어도 젊은이의 경우 20%, 64세 이상의 이는 57%가량이 목 디스크 탈출증 환자입니다.  
 
프레시안 : 일단은 근육통이 발생하면 목 디스크에 이미 손상이 왔다고 인지해야 하고,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 거군요. 선생님께서는 자가치료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정선근 : 네. 왜냐하면, 감기가 낫듯 디스크 손상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치유되거든요. 심지어 신경뿌리에 염증이 생겼거나, 디스크가 완전히 찢어져도 결국에는 자연 치유됩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죠. 보통 감기에 걸려도 열흘가량 컨디션 관리를 잘 하면 낫죠. 반면 디스크가 회복되는 데는 6개월~1년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프레시안 : 그러면, 특별히 크게 아프지 않은 한 목 디스크 손상 때문에 병원을 찾을 필요는 없겠는데요? 
 
정선근 : 괜히 이상한 치료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좋죠. 하지만, 자연치유를 위해 전제해야 할 건 있습니다. 올바른 자세를 취하고, 디스크 회복에 도움을 주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디스크 수술도 할 필요가 전혀 없나요? 
 
정선근 : 디스크를 아물게끔 하는 여러 노력을 할 수 있는데도, 무턱대고 수술부터 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목 디스크 수술은 탈출증을 유발한 디스크를 아예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인공물을 넣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디스크를 잘라내면 당장은 덜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디스크 인근의 디스크가 인접분절 퇴행으로 인해 또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통증이 오더라도 일단 참고 자가치유 노력을 한 후, 그럼에도 도저히 치유가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수술을 택하시라는 게 제 말씀입니다. 특히, 회복 불가능한 근육 약화가 온다면 서둘러 수술해야죠.  
 

▲ 목 건강을 지키는 좋은 운동. ⓒ사이언스북스 제공

프레시안 : 목 디스크 손상을 치유하는 운동을 소개해주셨어요. 
 
정선근 : 맥켄지 신전 동작이라고 합니다. 경추 전만, 요추 전만(경추와 요추가 자연스럽게 C자 형태로 휘어진 상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자세입니다. 쉽게 말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요추 전만) 가슴을 활짝 연 후, 고개를 뒤로 젖히는 자세(경추 전만)입니다. 
 
목을 뒤로 젖히면, 그만큼 수핵은 앞으로 이동해 목 디스크 탈출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탈출하려던 수핵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거죠. 신전 운동만 꾸준히 잘 해도 목 디스크 탈출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전 동작이 양날의 칼이기도 합니다. 만일 후방 섬유륜이 뒤로 튀어나오는 곳에 염증이 심한 신경뿌리가 있다면, 방사통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환자가 있다면, 신전 동작을 '방사통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하셔야 합니다. 
 
프레시안 : 꾸준히 운동하는 분이라면 일상에서 스트레칭 동작을 많이 하실 겁니다. 그런데, 잘못된 스트레칭 동작이 매우 많다고요? 
 
정선근 :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목을 옆이나 앞으로 구부리는 동작입니다. 디스크를 더 유발하는 잘못된 자세죠. 목 디스크가 안 좋은 환자는 취해서는 안 됩니다. 
 
턱을 뒤로 당기는 자세 역시 안 좋습니다. 이런 자세를 취하면 잠시 통증이 호전되는 경험을 하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디스크 손상을 더 키웁니다. 
 
특히 퍼스널 트레이너들이 잘못된 목 운동을 많이 가르칩니다. 이런 나쁜 운동은 하셔서는 안 됩니다.  
 

▲ 목 건강 망치는 대표적 나쁜 운동. ⓒ사이언스북스 제공

목 건강 지키는 십계명, 기억하자 
 
프레시안 : 치료보다 중요한 게 예방이겠죠. 평소 생활할 때 목 디스크 손상을 예방할 방법이 있을까요? 
 
정선근 : '척추 위생' 관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화장실에 드나들면 손을 깨끗이 씻죠? 이런 위생 관념을 척추에도 도입해야 합니다. 목 디스크를 보호하기 위한 척추 위생의 두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추 전만을 유지한다. 
2. 목을 자주 움직인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목 디스크 살리는 척추 위생 10계명'을 소개합니다. 이를 일상에 꼭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책상에 써붙이셔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백년 가는' 목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1.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허리를 꼿꼿이 유지하라. (허리가 무너지면 목도 무너진다.)
2. 앉을 때도 요추 전만을 최대한 유지하라. (당신의 자세가 목을 살린다.)
3. 컴퓨터 화면은 무조건 높이 둬라. (전자파가 아니라 컴퓨터의 위치가 당신 목을 죽인다.)
4. 스마트폰을 볼 경우 무조건 높이 들라. (스마트폰이 당신을 거북목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5. 잠자는 동안에도 경추 전만이 유지되도록 하라. (잠자는 동안에도 당신 목은 망가지도 있다.)
6. 몰두 본능이 발동할 때면 잊지 말고 틈틈이 자주자주 신전 운동을 하라. (업무 몰두와 스트레스도 당신의 목을 해치는 숨은 주범이다.)
7. 운전 중에도 요추 전만, 경추 전만이 유지되도록 하라. (운전이 얼마나 많이 당신 목을 망치는지 모를 것이다.)
8. 장거리 여행 시 오래 고개를 숙이고 잠들지 마라. (가능하다면 목을 젖히고 자라.)
9. 텔레비전 시청 습관을 살펴보라. 당신의 목 디스크를 당신 스스로 찢어 버리고 있을지 모른다. 
10. 나쁜 목 운동을 절대로 따라 하지 마라. (좋은 목 운동이 따로 있다.)

- 정선근 교수와 함께 하는 <백년 목> 프로젝트 -

 

 

○ 일시 : 2018년 4월 11일(수) 오후 7시 30분 ~9시 30분

○ 장소 : 강남출판문화센터 지하 2층 이벤트홀 (강남구 도산대로1길 62) 약도클릭           

○ 신청서 작성 : 클릭 (프레시안 조합원·후원회원 우선순위, 선착순 마감)

○ 참가비 : 프레시안 조합원·후원회원 : 무료(동반 1인까지 무료)

            일반독자 : 1만 원 (현장현금결제)

○ 문의 : pcoop@pressian.com / 02-722-8545 (프레시안 협동조합팀)

 

▲ 척추 위생 십계명을 기억합시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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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담판, 5월 북미정상회담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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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3/18 11:47
  • 수정일
    2018/03/18 11: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31)

1. 예상되는 세기의 담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급진전이다.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된 남북, 북미 완화흐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추진되리라 예상치 못했다. 4월 남북정상회담 조기합의도 놀라운데 5월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서 열리게 되어,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새로운 질서와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분단과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새로운 남북, 북미 평화 실현의 길로 가는가, 아니면 북미담판이 실패해 다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아시아태평양 핵위기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지는가의 갈림길에 섰다. 다가오는 5월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다.

5월 북미정상회담의 의제와 성격, 타결수준에 대해 다양한 예측이 나온다. 회담과 협상의 성격만도 예비적 탐색대화, 초기단계의 협상, 기만적 위장 협상, 포괄적 전격 담판 등으로 여럿이다. 미국이 진행한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상, 이란 핵협상, 리비아 관계정상화 협상 등은 기만적 협상에 가깝고, 1972년 닉슨과 마오쩌둥의 중미정상회담, 1973년 베트남전쟁 파리평화협상이 전형적인 담판협상이다. 필자는 다가오는 5월 북미협상을 역사적인 포괄적 ‘담판협상’으로 예상한다. 또 담판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부분 언론은 이런 북미 정상간 대화 흐름이 미국의 최대의 압박과 제재의 결과로 보고 있다. 북이 압박에 굴복한 결과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동안의 과정을 관심 있게 봐왔다면 흐름을 주도하는 승자와 ‘운전자’는 북한(조선)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과거 빌 클린턴 정부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 전 미국 국무차관조차 김정은 로동당 위원장이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는 “운전석에 지금 앉아 있다”고 밝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 글에서는 운전자석에서 강력한 평화공세를 펴는 북의 제안과 구상이 무엇이며, 5월 북미정상회담의 주요 내용과 결과를 전망하려한다.

2. 담판의 원칙, ‘관계정상화 + 비핵화’ 평화협상

대부분 언론은 북미정상회담을 ‘비핵화 회담’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편향된 해석과 추정으로 보인다. 5월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면 ‘북 비핵화’ 평화협상이 아니라 ‘관계정상화’ 평화협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더 명확히 설명하면, 이 회담의 본질은 비핵화 의제도 함께 논의해 해결하는 북미 관계정상화 담판이다. 회담의 강조점이 관계정상화에 있지 북 비핵화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북이 과거 다양한 북미협상의 실패 원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1월13일 북 외무성 성명을 참조하자. “우리가 9.19공동성명에 동의한 것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개선이 아니라 바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원칙적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그로 인한 핵위협 때문에 조선반도 핵문제가 산생되였지 핵문제 때문에 적대관계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내놓아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은 거꾸로 된 론리이다.”

이 주장을 해석하면, 지난 시기 협상의 실패 원인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정말 전환할 의사를 전혀 갖지 않은 채 회담에 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즉 미국이 회담 과정에서도 북의 선(先) 무장해제를 요구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정권붕괴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얘기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리비아 협상 사례인데 미국이 북에게도 이런 기만적인 대화전술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다시 북미간에 열린 회담이 성공하려면, 미국이 진정으로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있어야하는 게 첫째 관건이란 의미이다. 즉 미국이 북한(조선)과 진정으로 공존을 추구하는 관계정상화를 할 의향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얘기다. 미국이 뒤로 다른 속셈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뜻이다. 만약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이렇게 달라진 자세와 태도로 임한다면 해결의 길이 없지 않다는 의미이다. 즉 신뢰관계가 먼저 형성되면 상호 군사적 위협 수단을 제거하며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쌍방이 속셈을 따로 하고 미국이 일방적인 북 비핵화를 고집한다면 회담은 깨진다는 얘기다.

3. ‘관계정상화’ 평화협상 추진의 여건과 조짐들

‘관계정상화’ 평화협상의 핵심은 대화 상대를 공존할 상대로 진심으로 인정한 바탕에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이 이런 협상을 추진하려해도 미국이 과거처럼 나온다면 진척될 수 없다. 따라서 협상은 미국이 응할 ‘충분한 여건’이 성숙되어야한다. 북은 지금 여건이 성숙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과연 그 여건은 무엇인가?

적대하는 국가관계에서 협상과 대화의 진정한 여건은 대화 조건이나 기술이 아니라 힘의 관계 변화이다. 여기서 힘이란 적대한 세력이 가진 군사, 정치, 경제, 사상 분야 등의 역량을 합친 총체이다. 그 중에서도 군사력의 역학관계와 현대전의 절대무기인 핵·미사일 등 전략무력의 위력이 핵심이다. 지난해 북의 핵·미사일 시위와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북 핵을 제거하고 정권을 붕괴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완전히 파산, 실패했다. 미국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이제부터는 북한(조선)이라는 ‘전략국가’에 의한 자국 본토의 안보위기와 세계 핵전쟁 위기를 반복적으로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해 북미대결의 결과인 역학관계 변화와 지난 경험에서 얻게 된 교훈이다.

미국이 대결이 아니라 현상타개를 위해 가능한 대화와 협상을 먼저 모색하려 했다는 것은 오바마 정부 말기부터 언론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미국이 비밀접촉, 반관반민 회의 등 다양한 외교경로로 북에 협상 의사를 계속 타진한 것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북은 이런 미국의 협상 제안을 일관되게 거부했는데 이유는 미국이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올렸기 때문이다. 북이 비핵화 협상 자체를 거부한 이유는, 과거 미국이 적대정책을 유지한 채 지루하게 진행해온 협상 형태를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은 대등한 핵보유국끼리의 군축협상이 아니면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북의 완강한 입장 때문에 미국은 틸러슨 전 국무장관, 펜스 부통령의 발언을 통해 확인되듯 “전제조건 없는 대화”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북과의 협상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후퇴신호인 셈이다. 미국이 북의 핵 증산을 막기 위해, 비핵화가 아니라 먼저 ‘핵동결’이란 현실적 목표부터 접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4. 북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포괄 제안

미국이 대북제재를 공공연히 강변하면서도, 뒤로는 북에 협상을 타진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북이 예고한 다음번 대미공세의 수준 때문이다. 언론들이 북의 핵무력이 미완성이라고 ‘가짜뉴스’를 쏟아내도, 북이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을 통해 공개 예고한 태평양상의 수소폭탄 시험과 전략잠수함 등의 미국 근접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행하면, 미국의 안보위기는 쿠바미사일 위기를 능가해 트럼프 정부의 정권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올 11월 미국은 중간선거를 앞둬 지지율이 낮은 트럼프 정부에게는 위기 요인이다.

미국이 겉으로 더욱 강한 경제제재와 코피전략 가능성을 흘리며 전쟁 광기를 부리면서도 속으로 전전긍긍하며 비공식 경로로 북에 후퇴한 협상의사를 타진할 즈음 북은 뜻밖의 구상을 하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평창올림픽 참가와 평화공세이다. 북이 대결에서 대화로 과감히 선회한 것이다. 북의 이른바 ‘준비된 대화전략’이 개시됐다. 이 대화전략은 북미 탐색전과 남북관계 개선 정도가 목적이 아닌, 남측과 미국을 포괄하는 일괄 단번 담판전략으로 보인다. 그럼 어떻게 이런 포괄적 평화담판전략이 가능할까?

북은 이미 미래에 있을 수 있는 군사대결전략과 대화전략을 모두 공개했다. 핵보유국 지위에 기반한 대결과 대화전략이다.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북이 핵무력을 증강할 경우 미국에게 다자간 핵군축 협상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북의 핵능력이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의 핵억제력 수준을 능가한다면 일방적인 비핵화 주장은 공염불이 될 뿐이다. 게다가 가까운 미래 북핵문제는 필연적으로 세계 비핵화와 연동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간다. 이는 단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북이 남측 정의용 특사를 통해 남측과 미국 모두에게 예상 밖의 파격적인 ‘협상안’을 내놓은 것이다.

5. 북의 제안, 김정은 메시지 추론

방북 특사단의 지난 6일 언론발표문이 파격인 것은 북이 과감히 양보해 비핵화 문제를 북미대화 의제로 삼은 것이다. 즉 기대 이상의 예상 밖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북이 말하는 비핵화 의제는 북한(조선) 일방의 선(先)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전역 비핵화’이다. 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난 2016년 7월 나온 북의 정부 대변인 성명(관련 기사)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거부해 온 비핵화를 의제로 삼았다면, 북은 미국이 말하는 되돌릴 수 없는 완전 비핵화를 수용하겠다는 것일까? 이전에 표명한 상호 핵군축 전략을 포기하고, 이미 완성한 핵무력을 북미 평화협정, 북미수교와 교환하려는 걸까?

필자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북이 이미 개발한 과거 핵무력은 당장 일거에 제거될 수 없다. 북이 말하는 비핵화는 단계적이고 장기적이며 상호적인 개념이다. 당분간 현재진행 중인 핵 증강을 중지하는 ‘핵동결’이 현실적인 출발점이라고 판단한다. 만약 과거핵의 일부를 해체한다면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조처일 것으로 보인다. 즉 억제력 수준의 핵무력을 유지하면서 미래핵의 포기와 과거핵 일부의 해체를 단행할 의향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렇게만 해도 북은 대외적으로 핵정책을 대폭 양보하는 것이어서 협상의 최대 난관을 사실상 제거하게 된다. 북이 미래의 합법적 핵보유국 지위를 취하는 방향이 아니라, 현실적인 억제력 수준에서 비공식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전향적인 태도인 셈이다. 또 국제적으로 여건이 되면 세계 비핵화에 합류해 나머지 과거핵마저도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전향적인 양보를 미국이 오판하고 욕심을 내 5월 북미정상회담에서 선(先) 관계정상화를 무시하고, 과거처럼 북 비핵화만 강변한다면 협상은 보나마나 결렬될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북미간 협상이 타결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비핵화가 아닌 관계정상화에 방점을 찍은 협상이어야 한다. 관계정상화를 앞세우면서 상호신뢰에 기반해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럼 관계정상화 협상에서 중요한 게 뭘까?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친선정책으로 상호 존중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또 상호 존중에서 중요한 건 각자 주권과 실체의 존중이다. 실체의 존중과 신뢰회복이란 상대방이 가진 무력의 전략적 지위를 일방적으로 제거하려는 무장해제 기도를 중지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한미합동군사훈련과 핵·미사일 시험을 상호 중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상호 적대정책과 무력을 실질적으로 후퇴, 제거하는 조처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협상이 성공하려면 강조점과 진행 순서가 과거와는 달라야한다. 정치적 신뢰를 앞세워 군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상호 신뢰에 기초해 관계정상화 선언을 포괄적으로 하고 평화협상을 진행해, 거기서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수순이어야 한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북의 비핵화 선언을 동시에 언급하되 관계정상화, 즉 북미수교 착수 선언, 연락사무소(대사관) 설치 문제가 바로 나와야 한다. 이어 평화협정 추진 선언과 신뢰회복 조치인 경제제재 해제가 병행돼야 한다.

평화협상에서는 단계적 비핵화, 즉 핵동결과 연동해 미국의 전략자산 남한 반입중지와 당연히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지되고 미국의 전략자산 반입이 중지되면 그 기능과 역할이 약화되고 사실상 무력화된다. 더구나 한미가 한국군으로 전시작전지휘권 조기 이양에 합의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면 대북 돌격대와 특수군 기능은 단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축소 소멸된다. 선(先) 무력화, 후(後) 단계적 철수를 해도 큰 지장은 없다. 주한미군 철수 추진은 북미 관계정상화와 남·북·중·미 4자 정상의 종전선언과 연동해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서 단계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역대급 사항들을 일괄타결로 추진할 공간은 정상회담밖에 없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청와대]

6. 타고난 장사꾼 트럼프가 흥분한 이유

정의용 특사가 북한(조선)에게서 전달받은 내용을 보고받고 문재인 대통령도 놀라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놀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통일의지와 비핵화 구상에 놀랐을 것이고,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이 뒤로 제안한 내용을 북이 사실상 모두 수용해 공식 제안한데 매우 놀랐을 것이다. 북의 제안 내용대로라면 미국 내 네오콘 등 다양한 강온파의 알력과 이견도 충분히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북은 사실상 대결의 승자임에도 승자의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체면을 세우는 방식으로 제안한 것이다. 미국과 문 대통령에게 비핵화 명분과 성과를 주고 있다. 우선 트럼프는 역대 미국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 안보의 최대 난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으로 된다. 이는 트럼프에게 역사적인 업적이 될 수 있다. 북미 핵대결 해소로 트럼프는 세계 평화 위업을 달성하는 대통령이 된다. 그들이 좋아하는 노벨평화상감이다. 이는 연말 중간선거에 호재로 됨은 물론, 미국 대외정책 사상 큰 성과로 기록되고도 남는다. 사실상 북미대결에서의 패배를 미국의 대성공으로 포장할 명분과 기회를 얻는다.

북한(조선), 미국, 남한이 모두 일정한 성과를 갖고 승리하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뜻밖의 대담한 협상 제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비핵화 성공을 자화자찬하며 자기 공적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넘어 실제 선(先) 북 비핵화를 무리하게 욕심낸다면 협상은 깨질 것이다. 장사꾼 트럼프가 북이 의도하는 바의 진의를 모를 리 없고, 이렇게 현실적인 동시에 환상적인 제안을 깰 이유는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이 막다른 골목에서 완전히 파산한 대북정책을 수습하는 것을 넘어 성공으로 포장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북미대결이 이렇게 굴복의 방식이 아니라, 협상을 통한 신뢰회복과 관계정상화 형태로 정리되면, 통일 코리아는 미국과 적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동북아 지역에서 힘의 상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남북은 통일하면 중립외교노선을 표방할 것으로 보인다. 또 북미 협상이 성공하면 장차 미국은 세계가 탐내는 북의 석유와 희토류 광물 자원, 그리고 중국 3성과 러시아 극동 개발사업 등 경제교류 분야에서도 배제 없이 북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7. 북의 태도와 미국의 다른 선택 가능성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북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미국과 남한 언론이 대대적으로 떠드는 것과 상반되게 별말이 없다. 로동신문은 관련 논평조차 없다. 미국에 일괄타결의 파격 제안을 했지만, 설사 미국이 이를 안 받아도 대화와 협상을 구걸하지 않고 이미 예고한 계획들을 완강히 밀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외려 평양은 핵보유의 정당성과 반미교양을 강화 중이다. 그렇다고 북이 북미정상회담에 진짜 기대와 관심이 적다면 거짓일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다른 선택을 할 경우 실망은 하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선택은 두 가지다. 이미 협상을 한다고 공표했으므로, 진짜 대타결 협상을 하거나 아니면 다시 시간끌기 협상을 할 가능성이다. 대화하는 동안에는 북이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고 했으니 나쁠 이유가 없다. 대화 시늉만 해도 제재는 풀지 않으니 미국에게 당장 손해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궁색하고 전술적인 기만 대화를 북이 계속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런 대화를 한다면 북미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남북관계도 유지될 테지만 지속될 근거는 매우 약해 보인다. 그리고 머지않아 군사적 재격돌로 귀결될 것이다.

현 정세는 북한(조선)이 국가 핵무력 완성 이후 ‘전략국가’로서 주동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와 (남)북(중)미 평화협정, (연합)연방통일을 동시에 전환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현 정세를 이끌어가는 방식의 특징은 6자 회담 등 주변 강대국의 간섭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저히 우리 민족이 중심이 돼 남북 주도로 외세를 다루는 방식이다. 북은 문재인 정부를 통일의 동반자로 존중하며, ‘한국 운전자론’도 무시하지 않고 되레 높여주고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제안은 대담하고 방식은 유연하다. 분단 해체와 평화로 가는 운명의 담판, 역사적인 4월과 5월이 다가온다.

이정훈 국제팀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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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마라톤 “이건 달리기가 아니에요”

‘2018 평화나비:RUN’…“할머니들과 함께해요”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03-17 18:13:12
수정 2018-03-17 18: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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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임화영 기자
 

“2018 평화나비 RUN! 5. 4. 3. 2. 1. 출발! 와~!”

17일 서울광장에서 ‘2018 평화나비:RUN’ 마라톤 행사가 개최됐다. 함성 소리와 함께 연보랏빛 맞춤복을 입은 1700여명의 학생·시민들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라톤이 시작됐지만, 누구하나 경쟁하며 달리지 않았다. 기록에는 욕심이 없는지 어떤 이들은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면서 뛰었다. 기록을 세우기 위한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1등을 해도 특별한 혜택은 없었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이 행사를 즐겼다.

평화나비 RUN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인권 회복을 위해 달리는 행사다. 그래서 기록보단 ‘함께 한다’는데 의의를 뒀다. 행사를 담당한 평화나비 네트워크 간사 김샘씨는 “빠르게 달리기 보단, 함께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모였다”며 그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의 참가비는 학생 2만5000원, 일반인 3만5000원이다. 평화나비 RUN 관계자는 “참가비와 후원금 등 이날 행사를 통해 모은 수익은 모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김복동 평화기금’에 기부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임화영 기자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임화영 기자

“아픈 역사, 함께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올해로 3번째 열리는 ‘2018 평화나비 RUN’은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와 서울시 등이 후원하고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프랜트립’이 주관했다. 전국 주요 대학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및 학생 단체들도 ‘평화나비:RUN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200여명의 서포터즈들을 모으고 행사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짜는 등 행사 준비·진행을 함께했다.

평화나비 RUN 서포터즈 총괄을 맡은 곽지민씨는 “많은 학생·시민들과 함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행사를 만들 수 있게 되어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곽지민씨는 “콘서트 등의 행사는 수동적인 형태를 띠기 쉽다”면서 “성취감도 있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형태를 기획하다보니 마라톤을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많은 분들이 즐겁게 참가해주고 있고, 서포터즈로 참가했던 친구들도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서 평화나비 회원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행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서포터즈로 참여했다는 한태균(24) 연세대 학생은 “준비할 때 솔직히 힘들었다”면서도 “하니까 보람도 많이 느끼고, 무엇보다 마라톤에 참여한 분들의 즐거운 표정에 저도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임화영 기자

마라톤이 시작된 뒤 20여분이 지나자 참가자들이 종착지점인 서울광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서울광장 잔디밭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서울과기대 4학년 학생 이정인씨는 “평소 역사책이나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항상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참여할 수 있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이씨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라는 질문에 “다 같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픈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나누는 모습 같아 좋았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시절 봉사활동 단체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직장인 류건혁(28)씨도 행사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류씨는 “사실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 행사로만 알고 왔다가 마라톤이어서 좀 당황했다”면서도 “오랜만에 뛰어서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뛰고 나니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평화나비 RUN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청계천 일대를 돌고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구성됐다. 평화나비 RUN 준비위원회는 아쉽게도 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까지 코스를 짜진 못했다. 이날 극우단체들의 집회 및 행진코스와 겹치지 않도록 마라톤 코스를 짜야했기 때문이다.

2018 평화나비 RUN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평화나비 RUN 관계자는 “3월 중으로 경기도와 제주도, 충청지역에서도 각 지역 평화나비 단체들이 주관하여 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마라톤을 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
1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도심형 기부 마라톤 2018 평화나비:RUN'에서 참가자들이 마라톤을 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평화나비가 주최한 이번 마라톤행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이다.ⓒ임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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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 아닌 '아름다운 욕망'을 선택하다

[귀농통문] 계획이나 원칙을 세우지 않는 삶, 이정아·송용석 부부
2018.03.17 11:20:11
 
 

 

 

2003년 5월 정아 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인생에 가장 큰 지지자였던 엄마가 췌장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의사는 더 이상 손 쓸 수 없으니 그냥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고작 환갑도 채 되지 않으셨는데…. 엄마의 삶을 그냥 그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몇 군데 다른 병원을 더 찾아가 보았는데 같은 상황이었다. 암울하고 막막했지만 맥없이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찾아 나섰다. 그러다 '암환자 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났다.

그곳은 암에 대해 환자와 가족이 함께 공부하고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었다. 이 만남이 당장 먹을거리를 비롯하여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새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암 환자와 가족이 함께 하는 세미나와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건강과 자연을 깊이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먼저 생활환경부터 바꿔야겠다 싶어서 경기도 안성으로 엄마 집을 옮겼다. 내 생활 기반을 통째로 옮기지 않은 간접귀농(?)을 시도한 셈이다. 엄마는 시골생활에서 한결 여유를 찾았다. 삶에 감사하고 늘 웃음 잃지 않고 행복해하시는 엄마의 한 생애가 새록새록 다가왔다.  

엄마는 시골로 이사해서 5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동안 모자랐던 내밀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더불어 지나간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해 거듭 자문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삶을 찬찬히 음미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내달린 인생이 안쓰러워졌다.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가 이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이때가 귀농으로 가는 첫 번째 변곡점이자 전환기였다. 
 

▲ 이정아·송용석 부부. ⓒ귀농통문


국토순례와 여성귀농학교라는 전환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내 삶에서 버팀목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 뒤로 오랫동안 우울 증상에 시달렸다.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년 대상 책 읽기 봉사에 나섰다. 그곳에서 만난 중고생 아이들은 분노가 많았고, 가족이라는 둥지에서 따뜻함과 애정을 받아보지 못한 채 바깥으로 겉돌았다. 다르지만 비슷한 아픔이 공명을 일으켰다. 분노와 좌절을 털어버리고 더 큰 시야에서 인생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국토순례를 계획하였다. 

2009년 매주 금요일 밤 출발해 주말까지 꼬박 1년에 걸쳐 해남 땅끝마을부터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순례를 마쳤다. 바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나만의 목표를 이룬 데서 오는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묵은 짐을 털고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곧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경제적인 이유와 목표가 다인 삶에 매이고 싶지 않았다. 시골로 내려가서 생태적인 삶을 살자고 결단을 내렸다. 

엄마가 떠나가기 전후로 스콧 니어링, 서정홍 농부시인, 권정생 선생님 등의 글을 읽으면서 생태주의 가치에 눈뜨기 시작했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났다. 이즈음인 2013년에 사회복지 활동에 지치기도 해서 휴식도 취할 겸 3박 4일 동안 여성귀농학교에 참가했다. 여기서 당도은의 책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행성B 펴냄)을 읽고 진짜 귀농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산 활동을 하며 검소하게 생활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는 삶을 꿈꿔 왔는데 바로 그 모습이 책 속에 들어있었다. 더 이상 귀농을 늦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가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해 결정한 귀농지 

2014년 여름휴가 기간을 탐타 4박 5일 간 전북 순창 여름귀농학교를 마쳤다. 꽤나 오랫동안 귀농하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지만, 남편은 마이동풍으로 흘려들었던 터였다. 휴가 대신 가보자고 꼬드겼는데 의외로 순순히 따라나섰다. 남편은 귀농교욱 기간 내내 남의 일 구경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하지만 강의가 영 낯선 세상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간 아내를 통해 생태주의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만큼 강한 실행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해 10월에 귀농학교 동기들과 이곳에 방문했는데, 첫눈에 반했다. 어릴 적부터 왠지 산을 넉넉히 끼고 있는 병풍과 같은 풍광이 좋았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에 둘러싸여 아늑하고 정겹게 다가왔다. 사실 귀농지에 대해 특별한 기준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는데, 단박에 정리가 되었다. 

아내는 '인생에 정해진 계획은 없다'는 주의로 산다. 먼저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성격이다. 남편은 심사숙고하고 하는 편이어서 '주저하고 망설이다 끌려 내려왔다'고 표현하지만, 이미 깊숙이 아내에게 동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게다. 서로 완급과 강약을 조절하는 조화로운 부부관계이지 싶다. 

귀농 이듬해 옮긴 집은 동네 가장 안쪽에 숨어 들은 듯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다. 1킬로 이상 구불구불 이어진 진입로 거개가 좁은 비포장이다. 가로등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주변에 묘지가 군데군데 널려 있다. 밤에도 거리가 환하고 이웃이 빼곡한 집단 주거지에 살다 와서 잘 적응이 될까, 무섭지 않을까? '외딴집이라서 온전히 자연을 느낀다. 빛과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어서 좋다.' 주변에 묘지가 널려 있어도 전혀 겁나지 않을뿐더러, 묘지가 주변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준단다.
 

▲ 귀농 첫 해 단칸방 집. ⓒ귀농통문


마을공동체와 연결된 귀농 이후의 삶 

경북 상주 모동면 시흥리 36가구 가운데 세 가구가 귀농인인데, 이 마을은 유독 40대가 중심 세대이다. 시골에서는 흔치 않게 원주민의 자식 세대들이 귀향을 많이 했다. 포도농사로 비교적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도시에서 벌어먹기가 얼마나 팍팍하고 어려운가. 연 소득이 4~5000만 원에 이른다 하니 중상층 농가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아주 빈한하고 지역에서도 고립된 마을이었다. 대다수가 20여 년 전에 논농사에서 환금성이 뛰어난 과수농가로 전환했다. 

올해로 귀농 3년 차요, 농사로는 2년 차다. 새로 집을 짓고 임대한 포도밭 2000평과 고구마, 토마토, 고추, 양파, 마늘, 잎채소 따위를 100평 텃밭에서 가꾼다. 포도 농가 10여 가구가 모여 친환경 무농약 공부하며 점진적인 유기농 전환을 시도 중이다. 여기 포도밭은 20년 이상 관행농으로 지은 땅이어서 땅심으로 키우는 농사가 될 때까지 족히 5년은 걸린다.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성과가 거의 없었다. 올 초 들여놓은 스프링클러 장비 값도 못 건졌다. 직거래하면 펑당 만 원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일반 농사에 비하면 꽤 괜찮은 소득이다. 더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포도주를 가공해야 하는데, 지금 키우고 있는 캠벨포도는 당도가 떨어져서 포도주 담그기가 마땅치 않다. 

- 대형 거위농장 신축 반대 운동을 벌였다는데? 

"귀농자가 주측이 되어 1년 넘게 수없이 회의하고 집회하며 투쟁했다. 현재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상태다. 원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기에 귀농자에 대한 선입관을 없애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로 빠른 시간에 마을에서 신뢰를 얻었다. 몸으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각성된 사건이었다." 

- 귀농 3년 차를 지나며 초기와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처음에 생태주의와 '자발적 가난'이라는 이념에 끌렸다. 생태와 자립이라는 이념이 매력적이었다. 목적의식성과 자존감이 한창일 때였다. 그런데 귀농 첫해에 낡은 단칸방도 집도 어디냐며 호기롭게 살림을 펼쳤지만,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1년 만에 손들었다. 뭔가 '멋지고 다른 삶'은 결코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삶의 원리는 도시나 농촌이나 다르지 않더라."

- 생태주의는 현실에서 무력한 이념인가?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내적 동기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것이 이념이 가진 역할이다. 이념은 현실을 만나 풍부해지고 유연해지는 과정에서 성숙해간다. 이념을 잣대 삼아 수십 년 살아온 업과 습으로 굳어진 삶의 방식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 생태농과 관행농 사이에서 갈등과 반목은 안 생기는가?

"어떤 사람은 관행농 눈치를 보느라, 독자적인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서서히 적응하고자 한다. 생태농과 관행농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마을공동체는 왜 중요한가? 

"생활 단위가 고립적이거나 너무 작아도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다. 고령화로 마을이 공동화될 위기에 처했는데, 일단 사람이 살아야 나도 살 것 아닌가. 그래서 젊은 세대가 중요하다. 다양한 생활양식이나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분위기도 생기고, 미래가 보이니까 내 자식이 농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 늘어난다." 

- 포도농사 외에 일반 농사에 대한 미련은 없는지? 

"쌀농사, 밀농사,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사를 짓고 싶은데 아직은 몸과 마음이 따로다. 당분간은 포도농사와 조그만 텃밭 외에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중장기에 걸쳐 자급자족 가능한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얻을 수 있는 땅은 얼마든지 있다."

- 예비 귀농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과 환상을 농촌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귀농하지 마시라. 도시 생활이 힘들어서 탈출구를 찾을 거면 귀농하지 말아야 한다. 도시든 농촌이든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은 그냥 아파트에서 살아야 조용히 혼자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농촌은 마을 자체가 가족처럼 대면해야 하는 공동체이고, 그 안에서 소소한 슬픔, 기쁨 등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갖춰야 하는 것 같다."
 

▲ 수확을 끝낸 포도밭. ⓒ귀농통문


지금 소농으로 생존가능한 삶의 방식 

앞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사를 짓고 생활은 낮게 사상은 높게 가지려고 노력하겠다고 한다.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뜻과 이상이 높고 뚜렷하면 삶을 밀고 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원칙 자체를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칙은 현실과 타협하면서 풍부해진다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소농이 생존가능하려면 지출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중요한데 이 방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끔 우울함에 바지게 만들더라. 지역에서 주민들의 재능을 모아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대안을 만들까 고민 중이다.

농촌으로 오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부부가 한꺼번에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는 이야기다. 남편은 귀농 1년 차에는 주말부부를 하면서 서울에서 하던 학원 강사 일을 놓지 않았고, 지금은 가까운 시내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다. 정아 씨는 옆 동네에 있는 '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일하고 있다. 

소농으로 살아가고자 농촌에 왔고 처음엔 그렇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는데 지금은 '천천히 가자'고 다독인다. 돌아보면 운이 많이 따라주었다. 덕분에 빠르게 정착했고 만족스럽다.

"40여 년 살아온 업과 습으로 얽힌 삶의 방식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원칙은 타협을 통해 풍부해진다."  

이 부부의 깨달음이다. 그들에게서 아집과 고정관념이 빠지지 않는 지혜를 보았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고상한 가치도 자칫 생명 에너지를 억압하는 도그마가 될 수 있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욕망, 삶의 동력을 이루는 자기 고유의(이기적이 아닌) 욕망(꿈)을 무시하지 말고 살려야 '살맛'이 난다. 우리 시대 소농에게는 '자발적 가난'보다 '아름다운 욕망'이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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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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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33차 총회-양심수, 국보법 남북화해 시대 어울리지 않는다

민가협 33차 총회-양심수, 국보법 남북화해 시대 어울리지 않는다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3/17 [22: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가협 33차 정기 총회에 참석자들이 통일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이하 민가협) 33차 정기총회가 3월 17일 열렸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에서 부당한 연행구속 그리고 심각한 고문까지 자행되던 시기에 직접행동을 하던 가족들이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1985년 12월 12일 창립한 민가협이 벌써 33년이 되었다. 

 

민가협이 1993년 9월 23일 양심수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한 목요집회는 이제 1160회 차를 맞이했다.

 

33번째 민가협 총회에는 통일광장범민련 남측본부유가협사월혁명회양심수후원회민중당민중민주당한보진보연대 등 각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1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모시는 말씀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내외빈을 맞이하는 모시는 말씀을 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양심수가 갇혀 있다지금 남북정상회담조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순간에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가 되고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있고 그것으로 피해를 본 양심수들이 감옥에 있다우리는 반드시 빠른 시일 안에 양심수가 없는 세상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자주통일이 된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말한 뒤에 민가협 어머님들은 전 세상에 유래 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어머님들은 우리사회 민주화의 상징이시다.”고 어머님들의 투쟁을 높이 평가했다이어 남북정상회담은 비핵화가 의제가 아니라 통일을 선언해야 하며조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적대정책 포기북의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면 된다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미군철수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가협 33차 총회를 맞이하여 각계의 격려사연대사가 이어졌다.

먼저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축사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며 우리 역사가 커다랗게 요동치고 있다미국에게 의해 여러 가지 수난을 당해온 역사가 100여 년이 넘었다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과 모욕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반미투쟁이다모든 악의 근원모순의 근원이 미국이 아닌가. 2018년 모든 역량을 반미로 결집시키고 행동으로 해야 한다.”고 반미투쟁으로 나서자고 호소했다.

 

▲ 민가협 어머님들이 각계에서 연대와 축사가 이어지는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가 평양에 꼭 함께 가자는 말씀에 박수를 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우리 어머님도 민가협 활동을 하신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소회를 밝힌 뒤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분단 적폐 중의 적폐인 국가보안법미국에 대해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불가역적인 방법으로 철폐 할 때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국가보안법 완전철폐양심수 석방미국을 몰아내고 평화협정 체결, 615방식의 통일을 달성하는 길에 한국진보연대가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김창한 민중당 상임공동대표는 축사를 통해서 자주민주통일의 한길에서 든든한 동지이자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어버이처럼 따뜻한 보살핌을 주시는 민가협 어머님들이 계셔서 늘 든든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이어 폭풍전야의 한반도에 격변이 시작되고 있다우리민족끼리 단결하면 그 어떤 역경도 순경도 바꿔낼 수 있다는 교훈을 새겨주고 있다남북 화해시대감옥에 있는 양심수같은 민족을 적이라 규정하는 만남과 화해를 불법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새로운 시대와 공존할 수 없다남북대화와 단결의 분위기가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중당은 노력하겠다외세의 지배와 간섭이 영원히 종식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겠다.”고 김창한 상임공동대표는 투쟁의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 민가협을 앞장에서 이끌고 있는 조순덕 상임의장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2017년 사업보고와 2018년 사업계획을 민가협 조순덕 상임회장이감사보고는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와 김정숙 어머님이 하였다.

 

민가협은 2018년 주요사업을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양심수 석방투쟁 및 지원·조사사업 △ 민가협 목요집회 △ 민가협장터 △ 소식지 <민주가족평화, 615, 104선언이행자주통일 사업 △ 민주수호 운동 인권관련 연대사업 △ 민중생존권 연대사업 등으로 밝혀 우리 사회에서 민주와 인권 증진 사업 및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할 것을 밝혔다.

 

민가협 감사패는 2017년 양심수 석방을 위해 헌신해 온 조영건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장에게 수여되었다.

 

조영건 회장은 감사패를 받은 뒤에 지난해 양심수 석방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는데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다올해 한반도에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불어오는데 우리 모두 힘을 뭉쳐 반드시 빠른 시일 안에 양심수를 모두 석방시키자.”라고 호소했다.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감사패를 받은 조영건 구속노동자 후원회장과 민가협 어머님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민가협은 총회 결의문에서 “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바꿔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촛불혁명을 만들었던 힘으로 적폐청산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투쟁을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총회 참가자들은 △ 국가보안법 철폐양심수 전원 석방 △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확장 △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통일 앞당기자고 결의를 다졌다.

 

▲ 민가협 33차 총회에는 투병 중인 임기란 어머님이 영상을 보내주셨다. 임기란 어머님이 오래오래 사시길 바라며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지난해 돌아가신 서경순 어머님이 생전에 민가협에 보낸 영상이 상영되어, 참가자들의 마음을 적셨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한편민가협 33차 총회에서는 투병 중인 임기란 어머님의 영상과지난해 돌아가신 서경순 어머님의 영상이 상영돼 참가자들이 다시한번 어머님들의 투쟁과 헌신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총회 참가자들은 구호를 함께 외치고 단체 사진 촬영으로 민가협 33차 총회를 마쳤다.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자료집을 보고 있는 총회 참석자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판소리 길음>, 모든 분들이 국가보안법 피해자이거나, 그 가족들이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우위영씨, 옛 통합진보당 대변인이었으며, 소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만기출소 한 지 얼마 안되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공연을 보면서 함께 노래 부르는 어머님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민가협 33차 총회에서 양심수 전원석방, 국가보안법 철폐의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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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 붉어진 도종환, 그는 왜 '아재 개그' 던졌나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생일을 맞은 아이스하키 팀 이재웅 선수의 발언을 들으며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생일을 맞은 아이스하키 팀 이재웅 선수의 발언을 들으며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소중한


"(휠체어)컬링 선수들도 잘하셨어요."

17일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진행된 강릉 올림픽파크의 코리아 하우스. 18일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을 앞두고 선수들을 치하하기 위한 이 자리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격려사를 하기 위해 연단 위로 올랐다. 그러더니 방민자, 서순석, 정승원, 차재관, 이동하 이렇게 휠체어컬링 선수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언급했다. 

이날 휠체어컬링 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캐나다에 패하며 4위에 이름을 올렸다(관련기사 : 두 '마술사'의 눈물, 오벤저스 덕분에 행복했다). 같은 날 아이스하키 팀이 동메달을 거머쥐고,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신의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휠체어컬링 팀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었다. 도 장관은 이날 한국 선수단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신의현 선수와 아이스하키 팀을 축하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휠체어컬링 팀을 위로하고 치켜세웠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정승환 선수(왼쪽)와 휠체어컬링 팀 차재관, 서순석, 이동하 선수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정승환 선수(왼쪽)와 휠체어컬링 팀 차재관, 서순석, 이동하 선수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중한


"선수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로 잰 듯이 던지기 때문에 방민'자'라고. 그리고 정말 이름 그대로 순수한 돌을 던지는 '순석', 서순석. 그러니까 스킵을 바꾸자는 요구도 받아주시고, 그리고 팀 전체를 위해 하나 되는 마음으로 팀을 끌어가 주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해요."

도 장관의 아재(?)개그가 섞인 위로에 행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휠체어컬링 팀도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재개그는 계속됐다.

"그리고 하우스 안에, 원 안에 집어넣는 거니까 정승'원'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반드시 승리의 월계관을 다시 쓰게 될 거라고 해서 '재관', 차재관이라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하하하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해서 이동'하'라고 했습니다."

이어 도 장관은 "컬링 팀 정말 잘하셨다. 우리는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라며 "정승원 선수 휠체어 루틴 카드에 '그동안 우리가 흘린 피눈물을 잊지 말자'라고 써놨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도 여러분들이 흘린 피눈물을 잊지 않겠다"라고 덧붙였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유만균, 장종호 선수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유만균, 장종호 선수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소중한


"국가는 여러분을 잊지 않겠다"

별다른 원고 없이 연단에 오른 도 장관은 신의현 선수를 응원하러 갔다가 생긴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며칠 전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응원하러 갔는데 앞줄에 신의현 선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부인 이렇게 앉아 계셨어요. 뒷줄엔 대통령님, 여사님, 저 이렇게 앉아 있었고요. 선수들이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걸 보고 신의현 선수의 딸이 '아이고, 저걸 어떻게 해'라고 말하니까 부인이 '괜찮아. 아빠는 더 많이 넘어졌어. 넘어졌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 말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제가 얼른 적었어요. 그 말 속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오고 헤쳐 온 삶이 함축돼 있었습니다."

도 장관은 아이스하키 팀을 향해선 "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고 했는데, 여러분의 열정과 도전이 국민들을 움직였고, 대통령을 달려오시게 했고,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함성으로 대한민국을 외치게 만들었다"라며 "여러분 정말 대단하다. 고맙다"라고 감사의 말을 남겼다(관련기사 : 무릎 굽힌 문 대통령 '포옹'에, 선수와 관중들 반응은?).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행사 도중 상영된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행사 도중 상영된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소중한


도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선수들의 모습이 담긴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이 상영되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도 장관은 "(패럴림픽 선수들이)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일 폐회식이 있다. 폐회식 여러 공연 중 '도당살풀이'라는 춤 공연이 있다. 살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동안 부딪히는 나쁜 기운을 말한다"라며 "그 살 중엔 '곡각살'이란 게 있다. 뼈가 부러지고 팔다리를 잃는 그런 흉살인데, 그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바꿔달라고 기원하는 춤이 도당살풀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도 장관은 "여러분은 스포츠로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며 "251만 명 장애를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1000만 명 장애인 가족에게 희망을 줬다"라고 강조했다.

또 도 장관은 "올림픽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실현되면서 국가의 운명을 바꿨고 치유의 패럴림픽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라며 "그래서 여러분께 감사하다. 국가는 이걸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스노보드 박항승 선수가 행사 도중 박수를 치고 있다. 박 선수는 교통사고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스노보드 박항승 선수가 행사 도중 박수를 치고 있다. 박 선수는 교통사고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다.ⓒ 소중한


마지막으로 도 장관은 "'모든 꽃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핀다'는 시의 한 구절이 있다"라며 "스스로 운명을 바꿔 가는 여러분도 그 꽃처럼 스스로를 축복하며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여러분은 이미 인생의 금메달을 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게 꽃필 수 있도록 저희도 지원하겠다"라며 "그리고 여러분이 훌륭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평등하고 따뜻한 세상, 동행하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 있는 힘을 다해 지원하고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18일 경기가 남은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스키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이 자리해 그동안의 피로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했다.  

팽창패럴림픽 폐회식은 18일 오후 8시 평창 올림픽플라자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진행된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했다. 이날 대표로 메달을 받은 휠체어컬링 방민자(왼쪽), 아이스하키 한민수 선수의 메달.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했다. 이날 대표로 메달을 받은 휠체어컬링 방민자(왼쪽), 아이스하키 한민수 선수의 메달.ⓒ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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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보이지 않는 나는 살았을 때부터 유령이었다

등록 :2018-03-17 09:30수정 :2018-03-17 09:45
 

[토요판] 커버스토리
고스트 스토리 ① 죽음이 하는 말
한 도시(사진)가 있다. 일본과 미국, 농촌과 도심, 원도심과 신도시, 판잣집과 고층 빌딩, 항구와 공항, 굴뚝과 첨단이 공존하는 곳. 선거 때마다 표심 분포가 전국 상황과 유사해 한국 여론 지형의 축소판이라 평가받는 곳. 1970년대 이 도시의 한 장소를 포착한 사진 속에서 한국 근현대를 압축한 시간이 보인다. 이 도시엔 가난한 사람들이 마지막을 의탁하는 공공의료원이 있다. <한겨레>는 이곳을 거쳐 죽음을 맞은 195명(+2018년 1월 사망자 1명)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이 병원에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연고 없이 죽어간 사망자 전수다. 한 사회가 죽음을 대면하는 방식에서 그 사회의 가장 깊은 바닥이 노출된다. 세월호의 죽음을 다루는 정치가 그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켰다. ‘포기’되고 ‘처리’된 죽음들이 말문이 닫힌 채 도시의 그늘을 떠돌고 있었다. 도시 구석구석과 골목골목을 걸으며 그들의 흐린 자취를 더듬을 땐 유령을 좇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죽었으므로 투명했으나 살았을 때도 보이지 않았다. 깨진 유리처럼 조각난 흔적들을 맞추며 불러낸 목소리. 누구도 울어주지 않았던 그들의 죽음이 산 자들에게 하는 말. 연재 기획 ‘고스트 스토리’를 시작한다. ※도시 이름과 사진 출처는 2회 기사에서 밝힌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ㅎ도서관 제공
한 도시(사진)가 있다. 일본과 미국, 농촌과 도심, 원도심과 신도시, 판잣집과 고층 빌딩, 항구와 공항, 굴뚝과 첨단이 공존하는 곳. 선거 때마다 표심 분포가 전국 상황과 유사해 한국 여론 지형의 축소판이라 평가받는 곳. 1970년대 이 도시의 한 장소를 포착한 사진 속에서 한국 근현대를 압축한 시간이 보인다. 이 도시엔 가난한 사람들이 마지막을 의탁하는 공공의료원이 있다. <한겨레>는 이곳을 거쳐 죽음을 맞은 195명(+2018년 1월 사망자 1명)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이 병원에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연고 없이 죽어간 사망자 전수다. 한 사회가 죽음을 대면하는 방식에서 그 사회의 가장 깊은 바닥이 노출된다. 세월호의 죽음을 다루는 정치가 그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켰다. ‘포기’되고 ‘처리’된 죽음들이 말문이 닫힌 채 도시의 그늘을 떠돌고 있었다. 도시 구석구석과 골목골목을 걸으며 그들의 흐린 자취를 더듬을 땐 유령을 좇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죽었으므로 투명했으나 살았을 때도 보이지 않았다. 깨진 유리처럼 조각난 흔적들을 맞추며 불러낸 목소리. 누구도 울어주지 않았던 그들의 죽음이 산 자들에게 하는 말. 연재 기획 ‘고스트 스토리’를 시작한다. ※도시 이름과 사진 출처는 2회 기사에서 밝힌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ㅎ도서관 제공

 

죽음은 삶만큼이나 불평등하다. 한 도시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다 가장 가난하게 죽은 195명(2001~2017년 ○○시 공공의료원 무연고 사망자)의 자취를 더듬었다. 지난 17년 동안 뿌려진 그들의 흔적은 거리의 먼지에 덮이고, 행인들의 발자국에 지워지고, 도시의 소란에 묻혔다. 애도되지 않는 죽음은 기억되지 않았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흘린 조각들을 맞추며 숫자와 통계 뒤에서 그들이 하는 목소리를 모았다. 기억되지 못한 자들을 기록하는 일은 역사가 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역사 쓰기이기도 하다.

 

 

 

도시.

 

생동하는 활기로 차오르다가도 들끓는 열기로 화상을 입히는 공기. 그 뜨거움에 끼지 못한 자들에겐 몸을 얼릴 만큼 차가운 아스팔트. 불과 얼음과 질주와 낙오가 한데 뭉쳐진 덩어리.

 

나는 ‘이 도시’에서 죽었다.

 

이 도시에서 나(2018년 1월17일 사망 당시 63살·여)는 이름을 바꾸고 나이를 속이며 살았다. 정씨를 배씨로 쓰고 1955년생이 1967년생이 된 것은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배씨가 다시 정씨로 불리고 잃어버린 12년을 나이에 돌려받았을 때 나의 숨은 이미 멈춰 있었다.

 

나는 도망자였다. 20여년 전 두 아이를 두고 도망쳤을 때 나는 남편의 폭력으로 여러 번 죽은 뒤였다. 아내로서 죽었고, 엄마로서 죽었고, 인간으로서 죽었다. 그 죽음들 끝에 내게 남은 마지막 목숨을 건지려 이 도시로 도망쳤다.

 

나는 말소자였다. 남편의 추적을 벗어나려면 나는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결혼 뒤 남편의 도시에서 살던 나는 ‘나였던 모든 것’을 지우며 이 도시에 도착했다. 남편이 번호를 한 올 한 올 잡아당기면 꼼짝없이 그의 앞으로 끌려갈 것 같아 그가 없앤 주민등록도 되살리지 못했다. ‘삭제된 자’인 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는 어떤 일자리도 얻을 수 없었다. 정씨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은행 계좌를 가질 수 없었고, 배씨라는 주장도 뒷받침할 수 없어 4대 보험에 가입되지 못했다. 이 식당과 저 식당에서 하루치의 일을 하며 하루치의 나를 구했다. 허름한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주인의 밥을 하고 집 청소를 하며 방값을 대신했다.

 

“언니였어?”

 

지문조회 결과를 본 ‘언니’가 놀라 물었다.

 

온기가 전이된 적 없는 나의 온몸으로 암이 전이됐다. 이 도시에서 나를 챙겨주던 유일한 언니가 나를 주민센터로 데려갔다.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며 주민등록 회복을 신청했다. 내가 언니보다 한참 언니란 사실을 언니가 알게 됐다. 지난 15년 동안 이 도시에서 나는 동생의 동생으로 살았다.

 

“범죄에 연루돼 있을지도 몰라요.”

 

주민센터는 언니에게 경찰에 의뢰하라고 했다. 내가 ‘나 아닌 나’로 살아온 이유가 범죄와 무관함을 경찰이 증명해줬다.

 

병원에 입원했을 땐 의사가 손댈 수 있는 단계를 지나 있었다. 나는 주민등록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국민’의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 죽지 않으려 관계를 끊고 도망친 나는 관계없음을 확인한 채 혼자 죽었다. 언니도 나의 주검을 인수할 ‘가족’이 돼주진 못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내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고, 죽은 뒤엔 이름 대신 ‘무연고 사망자’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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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자였고 말소자였다

 

제국주의 일본이 병참기지를 짓고, 기지를 물려받은 미군이 부대를 주둔시키고,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다닥다닥 밀집하고, 농촌의 가난이 몰려와 공장을 돌리며, 초국적 자본이 경계 없이 자유를 누리는 곳. 농촌과 도심, 원도심과 신도시, 판잣집과 고층 빌딩, 항구와 공항, 굴뚝과 첨단이 공존하는 곳. 선거 때마다 표심 분포가 전국 상황과 유사해 한국 여론 지형의 축소판이라 평가받는 곳. 그렇게 한국의 근현대와 산업화와 지구적 이해관계가 전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 삶에 200여년을 압축해 넣은 곳. 격변의 시간이 사람들의 살고 죽음에 내려앉아 그 형태를 주조하는 도시. 가장 가난하게 살다 가장 가난하게 죽은 나는 왜 이 도시로 와서 이 도시에서 머물다 이 도시에서 죽었을까.

 

나의 죽음은 이 도시에 누적돼 있다.

 

나는 ○○시의료원(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의료원) 냉동고에 누워 ‘연고 없이 죽은 자들’(2001~2017년 합계 195명)의 수에 더해졌다. 나는 대개 남자(149명·76.4%)였고 간혹 여자(46명·23.6%)였다. 나(50명·25.6%)는 쉰과 예순 사이(평균 나이 58.6살)에 가장 많이 죽었고, 13명의 나(7.6%)는 마흔살이 못 돼 죽었으며, 46명의 나(23.6%)는 일흔 넘은 노인으로 죽었다. 나(최소 125명)는 의료기관에 입원해 죽음을 맞거나 쓰러진 뒤 실려가 죽었다. 나(최소 10명)는 집과 여인숙과 사회복지시설에서 홀로 죽었고, 나(최소 25명)는 거리와 바다와 노동 현장에서 죽어 발견됐다. 다섯 중 한 명꼴로 나(41명)는 병사하지 못했다. 변사는 분명 관계 끊긴 자들을 선호했다.

 

“이 사람 이름이 뭐예요?”

 

경찰이 나(2014년 당시 50대 추정·남)의 인적사항을 내 고용인에게 물었다.

 

“박철식(가명).”

 

“박철식?”

 

 

한국 근대와 산업화와 초국적 자본
판잣집-빌딩, 항구-공항, 굴뚝-첨단
공존하는 국내 여론 지형의 축소판
‘이 도시’에서 살다 공공의료원에서
17년 동안 연고 없이 죽어간 195명

 

 

병원·공사장·거리·바다에서 사망·발견
최연소 0살·최고령 97살·평균 58.6살
5분의 1이 변사, 그중 5명이 자살
간질환·알코올중독·영양결핍·폐결핵
선행사인에서 읽히는 가난한 삶들

 

 

경찰이 지문을 떴을 때 내 손가락들은 지문을 내놓지 못했다. 지문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열손가락 끝은 닳아 있었다. 검은 인주를 묻힌 발가락도 살갗이 뭉개져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나의 ‘정체’를 찾아 경찰이 내가 쓰러진 일터 주변을 탐문했다.

 

나는 영세 설비공장과 유통업체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에서 죽었다. ‘사람이 쓰러졌다’는 사장의 신고를 받고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나는 몽롱한 의식을 붙든 채 “괜찮다”며 돌려보냈다. 정말 괜찮다고 느낀 것인지, 병원비가 걱정됐던 것인지, 나도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구급차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쓰러졌고 구급차가 다시 오기 전에 죽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허혈성 심질환 발견)됐다. 노숙을 오래 한 나는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의 무늬를 잃었다. 내가 밟아온 길과 통과해온 시간들이 지문과 함께 마모돼 자취를 감췄다.

 

“나야 모르지. 자기가 박철식이라고 하니까.”

 

‘박철식’은 일당 벌이를 준 사장이 나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내가 정말 박철식이었는지는 과학수사도 밝혀주지 못했다. 수취인을 찾지 못한 내 죽음의 소식은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사망자의 이름 칸에 나는 안개처럼 기재됐다.

 

“박철식으로 호칭되던 자.”

 

확인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유언조차 할 수 없었다. 노상에 쓰러져 있던 내(2007년 당시 1967년생 추정·남)가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때 뱉지 못한 나의 마지막 말도 입속에서 얼어버렸다. ‘ㅎ슈퍼’ 앞길에서 차에 치여 의식이 꺼져갈 때 내(2012년 당시 미상·남) 눈에 담긴 이 세계의 마지막 풍경도 눈 속으로 가라앉았다. 끝까지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내가 말과 풍경을 삼킨 채 ‘미상자’(박철식 포함 5명)로 정리됐다.

 

내 속엔 아직도 울음이 있다. 나(최연소 사망자·2001년 당시 0살·여)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로 전철역 화장실에서 죽어 발견됐다. 단일 노선이 환승역이 되고 이용객이 갑절로 늘어나는 동안 내가 버려진 화장실도 녹이 슬고 부식했다. 제대로 한번 울지도 못하고 죽은 나는 울며 나를 버렸을 어린 엄마의 가슴속에서 뒤늦게 울고 있다.

 

내 등엔 아직도 세월이 있다. 나(최고령 사망자·2008년 당시 97살·여)는 이름에 불로(不老)의 염원을 담은 동네에서 한 세기를 살았다. 나의 장수가 동네 이름 덕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연으로 견뎌온 100여년이 축복일 수만은 없었다. 그 오랜 시간을 재앙처럼 등에 지고 살았지만 나는 인연 하나 남기지 못한 사람이었다.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을 기록해준 역사는 없었다. 0살이든 97살이든 아무도 나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몇 시간이든 97년이든 내가 이 땅에 살았음을 기록해주는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가난이 사인(死因)으로 적히진 않았다

 

사인이 나의 죽음을 모두 설명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패혈증(사망자들의 ‘최종사인-중간선행사인-선행사인’의 빈도 분석 결과 27회)과 패혈성 쇼크(11회)로 죽었다. 다발성 장기부전(25회)으로 죽었고, 심인성 쇼크(14회)로 죽었으며, 뇌출혈(10회)로 죽었다. 사망 뒤 표기되는 최종사인은 명료하지만 불친절했다. 죽기까지 내가 처했던 삶의 조건(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최종 사인이나 급성기 질환보다 선행사인을 봐야 한다”)을 읽어주진 않았다.

 

나는 선행사인으로 간경화(25회)와 간부전(8회)을 앓았다. 술을 많이 마셨고(알코올 남용 8회), 영양결핍(8회)을 달고 다녔다. 폐결핵(7회)이 활성화(영양상태와 주거환경이 열악할 때)돼 몸을 갉았다. 노숙으로 저체온증(4회)이 따라붙었다. 나의 선행사인들엔 거리의 시간과, 그동안 뱉은 한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사인의 방향을 바꿔 살피면 나의 죽음은 삶의 마지막 선택인 경우가 있었다. 나(2002년 당시 72살·남)의 선행사인은 만성폐쇄성 폐질환이었다. 호흡곤란에 따른 뇌기능 장애가 있었다. 중간선행사인은 호흡중추 마비로 진단됐다. 나의 최종사인은 심폐정지였다.

 

오후 6시. 3층짜리 적벽돌 건물 외벽 가스배관에 줄을 걸었다. 줄에 목을 밀어 넣고 몸을 던졌다. 자동차 한 대로 꽉 차는 좁은 골목을 내려다볼 때마다 호흡이 가빴었다. 골목이 사람과 자동차로 뒤엉켜 목이 멜 때처럼, 줄로 목맨 나도 숨길이 막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호흡 장애를 겪어온 나조차 줄의 조임에 호흡이 끊기는 고통을 느끼는구나. 순간 줄에서 목이 빠져 건물 아래로 낙하했다. 응급처치 중 사망 선고를 들었다.

 

내가 평소 지병인 폐질환으로 삶을 비관해왔다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진술했다.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도 했다. 나는 죽음을 계획했지만 추락사는 계획하지 않았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질병과, 목에 줄을 감으며 불러들인 죽음(변사자 41명 중 5명이 자살)과, 예기치 않은 추락이 달성한 죽음 사이에서, 나의 최종사인은 너무 깔끔하고 매끄러웠다. 한번 놓치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달리는 것들에 매달려 손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도시는 냉정했다. 손을 놓쳐 버린 자들이 손 놓아 버린 삶 앞에서 도시는 늘 딴청을 부렸다. 가난과 절망은 사망 자료에 적히는 사인이 아니었다.

 

나(2008년 당시 51살·남)는 ㅇ역 전동차 차고지에서 누운 채 발견됐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내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역 직원들도 파악하지 못했다. 달리던 것이 달리기를 멈춘 곳에서 나는 3월 초의 새벽을 견디며 오래 떨었다. 직원의 신고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50여분 뒤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다시 50여분 뒤 숨을 멈췄다. 최종사인은 저체온증으로 추정됐다. 나의 집을 두고 직선거리 1.5㎞ 떨어진 전동차의 집에서 죽어간 이유가 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알코올 소견 없음)이다.

 

나(2003년 당시 53살·남)는 한겨울(1월) ㄷ역 지하상가에서 얼어갔다. 병원 이송 3개월 뒤에 죽었는데 폐에 쇼크가 왔다고 했다. ㅂ역에서 앰뷸런스에 태워진 나(2012년 당시 56살·남)는 묻는 말에 응답하지 않아 문진이 불가능했다고 구급대원이 병원에 전했다. 15시간 만에 눈을 감았다. 공원에서 죽어가던 ‘행려자’ 나(2003년 당시 40살·남)는 주위에 있던 다른 ‘행려자’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한 사람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인데 나는 아무리 죽어도 누군가의 눈물이 되지 못했다.

 

대형 빌딩들이 건설되고 있는 ‘이 도시’의 한 공사장 주변에서 천연기념물 저어새(흰색)와 민물가마우지(검은색)가 날개를 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대형 빌딩들이 건설되고 있는 ‘이 도시’의 한 공사장 주변에서 천연기념물 저어새(흰색)와 민물가마우지(검은색)가 날개를 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워지고 쓸려 나갔다

 

나는 떠다니는 사람이었다.

 

나(2011년 당시 60살·남)는 이 도시 밖에 주소를 두고 이 도시에 와서 죽었다. 이 도시 밖의 마지막 주소지는 주민센터였다. 그러니까 주소지가 아니라 나를 ‘거주불명’ 처리(2010년)한 곳이었다.

 

부모라곤 얼굴도 모르는 나를 할머니가 거둬 키웠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가난한 집이 싫어 전국을 떠돌았다. 나는 거리에서 자라며 거리의 원리를 배웠다. ‘무리의 힘에 끼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체험이 어린 내가 붙든 단순한 원리였다. 서울역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거나 ‘똘마니’로 형들의 잔심부름을 했다. 1987년 ‘어울리던 집단’을 따라 이 도시로 왔다. 이 도시에 오기까지 9년 동안 20여차례 주소를 옮겼다. 한 해에 3차례 옮기기도 했고 한 달 간격으로 옮기기도 했다. 단기 방은 나의 생활도 단기로 쪼갰다. 기술이 없던 나는 이 도시에서 건설 현장 잡부로 일했다. 현장을 따라다니며 이 도시에서만 8개의 주소지를 가졌다.

 

 

남편 폭력 피해 성씨·나이 바꾼 여성
추적 두려워 주민등록 없이 산 20년
말소자의 불안정한 삶이 암으로 끝나
노숙중 동상으로 손발 지문 잃은 남자
일당일 하다 죽었으나 신원확인 불가

 

 

사체인수 포기 뒤 화장장으로 직행
도시 곳곳에 누적된 그들의 흔적
그 흐린 조각들을 불러 모아 구성한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하는 말
“보이지 않는 나를 보이게 하라”

 

 

ㄱ동의 방만큼은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부터 3년을 살았다. 7군데 주소를 흘러 다니다 5년 만에 다시 찾아간 자리도 그 방이었다. 2001년 그 방을 끝으로 나는 다시 거리에서 잤다. 되돌아간 거리에서 내가 확인한 원리란 ‘힘없이 늙은 자가 낄 수 있는 무리는 힘없는 늙은 자들뿐’이란 사실이었다. ‘처치 곤란한 자’로서 나는 그해 이 도시를 떠났다. 거주불명 처리된 지역으로 흘러가 거리에서 눕고 먹었다. 10년 노숙 뒤 이 도시로 복귀했을 때 ㄱ동의 방은 증발하고 없었다. 93만3916㎡짜리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철거(전기공급설비 예정지)됐다. 모두 5년 가까이 지낸 그 방은 정주하지 못한 내가 ‘머물 곳’으로 여긴 유일한 거처였다.

 

2011년 5월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의사는 “위암이 발견됐다”고 했다. 내 입에서 심드렁함이 튀어나왔다.

 

“까짓 죽으면 그뿐이오.”

 

퇴원(6월) 한 달 만에 구급차가 찾아왔을 땐 고시원에 있었다. 친구가 비용을 대줘 거리를 병상 삼지 않을 수 있었다. 급격한 기력 저하로 ‘거동불가 상태’라고 신고됐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체중이 줄었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끌어냈다.

 

“이제 죽을 테니 그뿐이오.”

 

재입원 20일 뒤 나는 죽었다. 죽어도 살아도 그뿐인 목숨의 부질없음. 단 한 차례 반전의 기회도 얻지 못한 나에게 날아오는 ‘네 탓’이란 시선의 부질없음. 책임 없음. 내가 터득한 마지막 원리는 그뿐이었다.

 

떠다니며 살았던 자들은 죽어서도 떠다녔다. 나는 죽어서도 국경 없는 노동(▶3회 ‘부르혼의 혼’)에 묶여 떠다녔고, 나는 죽어서도 분단의 정치(▶4회 ‘주민번호 111111-1111111의 운명’)에 갇혀 떠다녔다.

 

말갛게 지워진 것은 ㄱ동의 방만이 아니었다. 내(2007년 당시 69살·남)가 죽은 수평의 땅엔 수직이 들어섰다. 내가 살던 낮고 낡은 판자촌이 자취 없이 밀리고 26층 높이의 아파트(2014년 입주)가 올라갔다. 좁고 굽은 한 뼘 골목과, 그 골목을 기어 다니는 소리와, 그 소리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연들이 말끔하고 조용한 아파트들로 대체됐다. 내가 지워진 이 땅에 무엇이 있었는지 외지에서 고용돼 온 경비노동자는 알지 못했다. 옛 기억을 찾아 이 땅을 떠다닐 때마다 나의 혼이 아파트 벽에 부딪혀 곤두박질쳤다.

 

내(2014년 당시 47살·남)가 죽은 건설 현장에선 1년 뒤 오피스텔(2015년 입주)이 솟았다. 기계 소리 대신 1층 상가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완공된 건물을 채웠다. 15층(264가구) 건물을 짓는 공사장 지하 3층에서 나는 청소작업 중 의식을 잃었다. 오피스텔에서 우측 대각선으로 150m 떨어진 곳에 나의 주소지가 있었다. 나는 그 방에 거주하지 않고 여관을 옮겨 다니며 일용직으로 일했다. 방값을 내지 못한 나는 주인을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녔다. 나는 여전히 그 방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오피스텔 지하를 맴돈다. ‘꿈’을 새겨 넣어 작명한 오피스텔을 떠돌며 발화되지 않는 목소리로 이루지 못한 ‘꾸우움’을 발음한다.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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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되고 ‘처리’되고 ‘공고’되고

 

나는 포기된 사람.

 

나(2015년 당시 43살·남)는 170㎝에 39㎏으로 죽었다. 몸무게 20㎏이 줄어 병원을 찾아갔을 때 구멍 뚫린 폐에서 중증 결핵이 확인됐다. 나는 가족관계를 끊고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누나와 동생은 서로를 살필 처지가 아니었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질 무렵 병원에서 누나들을 찾아 연락했다. 누나들은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무연고 사망’은 죽음의 최저 등급이었다. 내 주검을 거둬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법과 행정이 공인하는 용어(① 연고자가 없는 시신 ②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시신 ③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시신)였다.

 

누나들 대신 온 남동생은 심폐소생 거부 각서를 쓰고 임종을 보지 않겠다며 돌아갔다. 그날 나는 육신의 눈을 감았다. 동생은 보호자 역할을 원치 않았다. 나와 무관함을 이야기하고 ‘사체포기 각서’(시신 인수를 거부하며 시신 처리를 위임하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나(2002년 당시 53살·남)는 ‘직장’(直葬·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이동)된 사람.

 

열아홉살 딸이 사체 인수를 거부하며 쏟아낸 이야기가 죽은 나의 가슴에 박혔다.

 

“친부·친모를 모르고 살았어요. 주민센터에서 소녀 가장 지원을 받으며 간신히 살았어요.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땐 더 원망스러웠어요. 인간적 동정심도 전혀 없어요. 지금 남의 집에서 힘들게 살고 있어요. 행정기관에서 처리해 주세요.”

 

관할 기관(변사자는 시신이 발생한 자치단체, 기초생활 수급자는 수급을 관리하는 자치단체)의 가족 찾기와 가족의 사체포기를 거쳐 나의 무연고가 확정(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대통령령 등에 따른 무연고 ‘처리’ 지침)됐다. 나는 빠르게 소각됐다. 딸을 원망할 순 없었다. 죽어서 혈육에게 포기당한 사람이나 죽은 혈육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시간이 몇 마디 말로 요약될 순 없었다.

 

나는 ‘처리’되고 ‘공고’되는 사람.

 

나(2002년 당시 48살·남)는 인수되거나 포기되길 다만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178일(최장 안치자는 2013년 사망한 몽골인으로 200일) 동안 병원 냉동고에 있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뼛가루가 되는 데 반년이 걸린 나는 잃어버린 물건처럼 자치단체 게시판에 ‘공고’됐다. 나는 무연고 납골당에 봉안돼 수많은 ‘다른 나’를 만났다. 그곳에서 인연 없는 나와 내가 오직 무연(▶5회 ‘무연이 인연’)으로 연결됐다.

 

나의 죽음 값은 50만~75만원.

 

나는 규정된 비용(17년 사이 25만원 인상)으로 처리됐다. 화장용 수의와 관 등 기본 품목 7가지로 염해지고 입관됐다. 수의를 입기 전 사진과 입은 뒤의 사진, 관에 누운 사진을 첨부해 병원은 관할 자치단체에 입금 요청(홈리스행동 “75만원은 빈소 마련 등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장례’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금액”)했다.

 

나는 비용 지급이 거부된 사람.

 

나(2001년 당시 46살·여)와 나(2002년 당시 48살·남)는 화장되기까지 98일과 178일이 걸렸다. 일부 자치단체는 나의 ‘처리’가 장기화되면서 불어난 안치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거부 이유로 예산 부족(2000년대 초)을 말했다. 병원이 안치료 손실을 보전하겠다면 시청에 요구하라고 했다. 예산 반영을 두고 구청과 의회가 마찰을 빚을 것이라고도 했다. 병원은 결국 안치료 전액을 감액했다. ‘귀중한 예산’을 쓰기에 나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주검으로서만 필요한 사람.

 

열아홉살 딸이 원망을 쏟아낸 나(2002년 당시 53살·남)와 자치단체가 안치료 지급을 거부한 나(2001년 당시 46살·여)는 대학병원으로 보내져 해부(2001~2003년까지 11명)됐다. 죽으면 해부대에 눕겠다고 사전에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그땐 법(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이 그렇다(인수자가 없는 시신 발생 때 자치단체장이 의과대학장에게 알리도록 한 조항으로 2015년 11월 위헌 결정)고 했다. 살아 있을 때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나는 죽었을 때만 쓸모를 인정받았다.

 

나는 ‘변사 영업’ 대상도 못 되는 사람.

 

연고 있는 변사자가 발견되면 시신 쟁탈전이 벌어졌다. 변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경찰이 특정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보낸 뒤 리베이트를 받는 일이 흔했다. 병원 없이 장례식장만 운영하는 업체들은 변사자 유치가 매출에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변사자를 두고 벌이는 경쟁을 조율하느라 경찰이 업자들을 불러 유치 순번을 정해주기도 했다. 장례비 치를 유족 없이 무연고로 죽은 나는 ‘탐낼 물건’조차 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떠난 ‘이 도시’의 한 구도심에서 빈집이 부서진 채 방치되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사람들이 떠난 ‘이 도시’의 한 구도심에서 빈집이 부서진 채 방치되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도시의 오늘이 깔고 앉은 나‘들’

 

도시는 저 혼자 달려갔다.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며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도시의 20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가장 화려한 지금에도, 나는 변함없이 가장 가난한 자리를 떠돌고 있다. 누구에게도 또렷이 기억되지 않는 내가 이 도시 곳곳에 물먹은 먼지처럼 퇴적돼 있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담장(▶2회 ‘죽음의 지리학’)이 되어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나눴다.

 

나는 흐릿하고 구체가 없다. 살았을 때 목소리가 소거된 나는 죽어서도 목소리가 잠겨 있다. 나를 지운 이 도시에서 내가 살았던 흔적은 깨진 유리 조각들처럼 흩뿌려져 있다. 내가 투명한 존재인 한 나의 말은 끝까지 목소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도망자인 나와 말소자인 나, 박철식으로 호칭되던 나와 말갛게 지워진 나, 0살짜리 나와 97년을 산 나, 포기된 나와 처리되고 공고된 나, 예산 갉아먹는 나와 주검으로만 쓸모 있는 나…. 화석처럼 층층이 쌓인 나‘들’이 이 도시의 오늘 아래 깔려 있다. 그 조각(2012~2017년 6월 이 도시 전체 무연고 사망자는 645명)과 파편들(한국 전체는 8152명)이 굳은 혀로 더듬더듬 말한다.

 

죽어서 보이지 않는 나는 살았을 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유령이었다.

 

지금, 당신 뒤에도,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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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주한미군 철수’ 시사…, ‘낙장불입’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화해 국면, 주한미군 주둔 근거 사라져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에 도착해 미8군 사령부 상황실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미주리주에서 열린 만찬 연설에서 “우리는 그들(한국)과의 무역에서 매우 큰 적자를 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무역에서도 돈을 잃고, 군대에서도 돈을 잃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병사(주한미군) 3만2000명이 지금 남북한 사이 경계에 있다”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보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한미 무역협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맹이란? 양국 쌍방의 공동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미동맹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러나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협박으로 손해를 강요할 수 있는 관계라면 그것은 동맹관계가 아니라 종속관계로 봐야 옳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미국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가지고,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지적하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무슨 경제적인 일이나 그 밖의 무슨 일이 있을 때 미국이 호주머니 손 넣고, ‘그럼 우리 군대 뺍니다’ 이렇게 나올 때, 그러지 마십시오 하던지, 네 빼십시오 하던지, 무슨 말이 될 것 아닙니까”라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2006.12.21)에서 연설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은 한미동맹의 종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당장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터져 나온 미국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주한미군 주둔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실제 지난 1953년7월27일 체결한 정전협정 13항3호에는 “(북미)쌍방 사령관들은 한국 국경 외부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고 명시했다. 때문에 현재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정전협정을 65년째 유린한 셈이다.

5월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정전상태인 북미간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끝내는 종전선언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마침 4월 남북정상회담 장소가 정전협정을 맺은 판문점이라는 사실은 평화선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북미간 종전을 선언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되면 남침 대비용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가뜩이나 2조원에 육박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일주일에 8건 이상 발생하는 주한미군 범죄로 인해 미군 철수 여론은 나날이 높아간다. 특히 남북화해 국면이 열리면서 주한미군의 설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트럼프, 주한미군 철수 발언, 낙장불입” 화면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했지만, 한국 입장에선 FTA 협상보다 주한미군 철수가 더 시급하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민주노총 통일위원회는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을 ‘낙장불입’이라며 꼭 철수시키라고 인증사진까지 찍고 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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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서울시 정보 세 가지

 
알아두면 쓸모있는 서울시 정보 세 가지
 
서울시에서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임병도 | 2018-03-16 14:41:2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서울시가 제공하는 대중교통 통합분실물 센터, 택시나 버스 회사 등에서 습득된 물품의 사진과 연락처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인터넷 쇼핑 피해 다발 업체 리스트

버스나 택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분실물이 발생하면 택시 영수증을 찾아 택시 기사나 회사에 전화하거나 지하철역 분실물 센터 등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발생한 분실물 정보를 통합해서 알려주는 ‘대중교통 통합분실물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이트를 보면 시내버스, 마을버스, 개인이나 법인택시, 지하철 등에서 발생한 습득물들이 사진과 함께 제공됩니다. 한 번에 통합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어디서 분실했는지 모를 경우에 유용합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경우에는 ‘핸드폰 찾기 콜센터’를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대중교통 이외 장소에서 물건을 분실했을 경우에는 ‘경찰청 유실물 종합안내’ 사이트를 가면 빠르게 습득물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혹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며 습득한 물건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례금이나 택배비를 보냈지만 물건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도 발생합니다. 택배는 착불로 요청하도록 하고, 물건을 받고 온전한 상태인지 확인한 후에 사례금을 보내는 편이 안전합니다.

② 인터넷 쇼핑 사기 사이트 정보

요즘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입금을 했는데도 물건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거래하려는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가 안전한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시 전자상거래 센터’에서는 배송 지연, 청약철회 지연, 환급 지연 등으로 한 달 이내 10건 이상의 피해가 접수된 인터넷 쇼핑몰의 리스트를 제공합니다. 만약 ‘피해 다발 업체’에 등록된 쇼핑몰이라면 거래를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서울시 전자상거래 센터’에서는 ‘사기 사이트’의 정보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요청한 쇼핑몰에 대해 사업자등록번호나 구청 담당자의 소재지 방문 등을 통해 사기 여부를 파악해줍니다. 사기 사이트로 등록된 사이트에서는 물건을 구매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자상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불만이나 피해 등도 상담할 수 있어 구제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해외사이트의 경우는 센터에서 도와줄 수 없고 국내 사이트에만 한정됩니다.

③ 여성안심택배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대부분 택배로 배송됩니다. 그런데 밤늦은 시간 여성 혼자 집에 있을 경우 택배가 오면 불안하다는 여성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2013년부터 ‘여성안심택배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성안심택배’는 거주지 인근 지역에 무인택배보관함을 설치해 퇴근 때 또는 자신이 편한 시간에 택배를 받는 서비스입니다.

2013년 50개소로 시작해 2014년 100개, 2015년 120개, 2016년 160개로 증가했으며, 2017년에는 30곳이 추가돼 총 190곳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성안심택배’는 총 누적 이용자수가 94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여성안심택배’라 여성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48시간까지는 무료이지만 초과 시에는 24시간마다 천 원씩 요금이 부과됩니다.

<여성안심택배>
서울시 여성안심택배 설치 장소: http://map.seoul.go.kr/smgis/short.jsp?p=6LB4g

<분실물>
핸드폰 찾기 콜센터:http://www.handphone.or.kr/
대중교통 통합분실물센터:http://www.seoul.go.kr/v2012/find.html?tr_code=citizen
경찰청 유실물센터:https://www.lost112.go.kr/index.do
경찰청 습득 휴대폰 검색: https://www.lost112.go.kr/phone/phoneList.do

<인터넷 쇼핑>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 피해다발 업체 리스트:https://ecc.seoul.go.kr/DR2001/FN2003LS.asp
인터넷 사기사이트 정보:https://ecc.seoul.go.kr/DR2001/FN2004LS.asp

 

도심 곳곳이 와이파이로 연결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집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 개인의 일상부터 재밌는 동영상과 포털 사이트에서 쏟아내는 뉴스까지 현대인들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도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앱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이런 정보 가운데는 생활에 유용한 팁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울시에서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알아두면 쓸모 있는 정보 세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① 대중교통 통합분실물 센터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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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여자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을 만나다

막장드라마로 소비된 여성화가, 당신이 놓친 것

[그림의 말들] 인상주의 여자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을 만나다

18.03.16 22:23l최종 업데이트 18.03.16 22:23l

 

아들과 함께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에 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아들이 묻는다. 

"인상주의가 뭐야?"
"음... 예를 들면, 녹색이 진한 나뭇잎도 강한 햇빛 아래에서는 투명한 흰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핑크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곳은 연두색으로 보이기도 하잖아. 빛에 따라 색채가 변하는 걸 보며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을 포착해서 그린 그림을 인상주의 그림이라고 해.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거나 추상적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고."

인상파의 대표주자인 세잔, 모네, 드가, 시슬레, 피사로, 르노아르 등 세기의 거장들 작품이 많았지만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라는 작품이다. 남자 화가들 사이 유일한 여자 화가. 그래서인지 색감이 다르다. 

한눈에 반하고야 마는 그림 속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그녀의 딸이다. 자식을 키워보면 알겠지만 요만할 때가 말도 배워서 쫑알쫑알 종달새처럼 재잘거리고 혼자서도 잘 뛰어다니고 세상 사랑스러울 때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존재만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사랑은 힘이 세다
 

 마네가 그린 '베르트 모리조'(<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
▲  마네가 그린 '베르트 모리조'(<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
ⓒ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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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의 뮤즈이자 제자이고 연인이었던 베르트 모리조. 이미 결혼한 마네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앓이를 하다가 엉뚱하게도 마네의 동생인 외젠 마네와 결혼한 여자. 

 

사랑하는 여인을 동생에게 보내야 하는 마네. 그렇게 마네의 가족이 되어 그의 옆에서 그의 아내를 질투하며 라도 그 옆에 있고 싶은  베르트 모리조. 서로를 향한 뜨거운 눈빛을 모를 리 없었던 동생 외젠 마네. 

이들은 평생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아슬아슬 막장 드라마 같은 얘기지만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 어디 한둘이랴. 드라마나 영화도 현실을 떠나서 나오지 않는 법.  

그렇게 외젠 마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쥴리 마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 사이에는 무수한 소문이 떠돌았지만 사랑은 사랑한 당사자들만 아는 이야기.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너무나 많이 알려진데 반해 동생과 결혼 생활에 대한 얘기는 찾기 힘들다. 

대신 그녀는 남편과 딸 '쥴리 마네'를 모델로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 그 시절에도 미술교육을 받아 화가가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외모와 예술적 재능을 가진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사랑은 어떤 선택도 가능케 할 만큼 힘이 세다.

남성 화가들로만 즐비했던 시절, 유일하게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낸 여자 화가. 그것도 인상파 전시 총 8회 중 7번을 참가했다. 단 한 번 불참 이유도 아이 출산 때문인 걸 보면 얼마나 작품 활동을 왕성히 했는지, 얼마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지 가늠이 된다. 나중에 인상파 화가들이 다른 화풍을 추구해서 떠날 때도 그녀는 자신의 화풍을 유지했으며 그녀만의 색채는 더욱더 발전했다.

착해지고 순수해지고 싶다
 

 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
▲  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
ⓒ 독일 쾰른 발라츠-리하르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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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그림은 어린 시절 장미넝쿨이 우거졌던 우리 집과 닮아있다. 작은 시골집 대문 위로 장미 넝쿨이 우거지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있었던 우리 집. 언니, 오빠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나 혼자 남아 그 넝쿨 아래서 땅을 파기도 하고 온갖 벌레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 잊고 있었는데 이 그림을 마주하자 그 옛날 집이 떠올랐다.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 어린 내게 무슨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집도 아니었는데. 추억이란 이런 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기만 해도 맘이 그림 속 빛처럼 일렁인다. 

눈부신 햇살 아래 아이의 볼이 환하다. 아이를 둘러싼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도 아이를 빛나게 한다. 열려있는 대문 밖에서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불어와 뜨거운 볕을 식혀줄 것 같다. 

낮은 담장 사이로 보이는 시골 마을, 그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 뜬금없이 눈물겹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장미넝쿨 대문 아래에서 놀고 있던 나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의 시선도 이처럼 따뜻했겠지. 이제 그 때의 엄마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이 그 때의 어린 나를 바라본다. 

그림으로 힐링한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내 몸 속의 지치고 오염된 마음이 순간 정화된 듯하다. 막 착해지고 순수해지고 싶다.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아들의 한 마디. 

"인상파의 아버지 마네가 인상파라고 이름을 정한 거야?"
"아니, 프랑스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라는 사람이 낙선전에 출품한 모네의 그림 '해 뜨는 인상'을 보고 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라고 기사에 썼는데 그게 이름이 되었대."

낙선전은 파리의 유명한 국선미술대회인 '살롱전'에 떨어진 화가들이 그 옆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그게 낙선한 사람들의 전시라 '낙선전'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그 전시가 인상파 화가들의 첫 번째 전시였다는 이야기. 사진기 발명이 화풍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전시를 보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18살이 되어 이미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큰  아이의 모습에서 '접시꽃과 어린아이' 모습이 보인다. 식당 유리창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아이는 눈이 부셔 하며 메뉴판을 보고 있다. 

덩달아 눈이 부신 나는 '꽃밭의 어린 소녀'와 '메뉴판을 든 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베르트 모리조가 바라봤던 시선처럼 나도 내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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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스웨덴에서의 숨가쁜 협상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스웨덴에서의 숨가쁜 협상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17 [04: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스웨덴이 특급경호에 총리와 외교장관이 총출동하여 최고 예우로 대하며 리용호 북 외무상과 숨가쁜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회담 성과가 좋아 하루 더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은 리용호 외무상이 회담을 마치고 자성남 대사화 함께 밝은 얼굴로 건물을 나서고 있는 모습  © 설명글: 이창기 기자

 

▲ 스웨덴에서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북의 리용호 외무상과 자성남 유엔주재 대사 , 자성남 대사의 표정이 유독 밝았다. 뭔가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설명글: 이창기 기자

 

리용호 외무상의 스웨덴 스톡홀름 행보가 심상치 않다. 미국 백악관은 스웨덴에 외교간부를 보내지 않았다고 공식입장을 밝혔고 스웨덴 정부도 북미정상회담과 관련된 협상은 북미 당사자가 할 일이며 자신들은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리용호 외무상은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와 면담을 했고 마르코트 발스트롬 외교장관과 회담을 15일 도착 당일 저녘부터 진행하였으며 16일에도 이어졌다. 뢰벤 총리는 16일 리용호 외무상 면담 후 독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했으며 그 후 기자회견에서 북미 사이의 중재역할을 할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이번 리용호 외무상의 스웨덴 방문 목적이 북미정상회담에 관한 논의라고 인정한 것과 같다.

 

발스트롬 외교장관은 16일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 결과가 좋아 하루 논의를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좀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 같다. 아마 미국 측이 동석하지 않았더라도 미국과 전화로 협의하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성과가 좋아 추가로 협의할 일들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16일 JTBC 뉴스룸 보도를 보면 스웨덴측과 협상을 하고 건물에서 나오는 리용호 외무상 곁에 자성남 유엔주재 대사가 밝은 표정으로 함께 얘기를 나누며 나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주목을 끌었다.

자성남 대사의 주 활동무대는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이다. 이번 스웨덴 협상을 위해 미국에서 스웨덴으로 날아온 것이다. 자성남 대사가 날아올 정도면 미국측에서도 얼마든지 날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폼페오 외무장관 내정자가 스웨덴에 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내정되었다는 보도는 나왔는데 종시 그의 얼굴을 미국 언론에서 볼 수가 없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베이징 공항에 나타났던 최강일 북아메리카 부국장이 스웨덴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모처로 사라진 점이다. 언론들은 북중, 북미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실무협상을 위해 다른 경로로 이동하여 미국 측 실무진과 맞주앉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 SIPRI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를 넣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모두 북 무기 수출과 관련된 이 연구소의 보고서를 중요한 근거로 보도하고 있다. 서방진영의 북무기 전문 연구소가 바로 SIPRI라고 볼 수 있다.     © 자주시보

 

그리고 16일 연합뉴스에서 보도에 따르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리용호 외무상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비핵화와 군축문제 전문기관인 SIPRI는 스웨덴 정부에서 출자하여 운영되는 기관이기는 하지만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연구소로써 2009년 포린 폴리시는 비미국 싱크탱크 3위로 선정했을 정도로 권위가 있는 연구소이다.

 

▲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특히 이 SIPRI는 200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이 지난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러시아에 대전차 미사일 3250기와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1250기를 판매한 것으로 조사 되었다고 발표하여 충격을 준 바 있다. 러시아도 탐낼 정도로 북 휴대용 미사일이 위력적이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보고서에서는 북이 1991년에서 96년 사이에는 시리아에 스커드 C 미사일 150기를 수출했고, 1999년에는 같은 미사일을 리비아에 5기를 또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예멘에 45기를 수출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북 미사일을 조립 생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북이 핵 기술을 이전해준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도 1996년과 97년 사이에 북한으로부터 2기의 로동1호 미사일을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https://www.rfa.org/korean/in_focus/arms_trade-20050608.html

 

이런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가진 연구소이며 특히 북 군사력에 대한 추적을 지속적으로 해온 연구소이다. 이런 자료는 스웨덴이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보이다. 결국 스톡홀름연구소는 스웨덴 연구소라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의 핵심 대북무기전문 연구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연구소에서 북 리용호 외무상과 협의를 한다면 결국 북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주로 확인하고 싶어할 것이다. 비핵화 검증방법은 리용호 외무상의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논의하기 어렵더라도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 북이 얼마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의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최강일 부국장 협상탁에서는 방법까지도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협의 내용은 그대로 미국에게 통보될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협상에 미국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안 하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톡홀름 연구소를 미국 연구소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북의 입장에서는 대화를 나누기가 더 편하고 또 제3자에게 전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미국에 직접 통보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객관적 공증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벌써부터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들의 숨가쁜 외교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에 합의했다가 미국 지배세력들의 반발로 깨졌는데 이번엔 진행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세계사적인 격변의 대폭발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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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쟁이 이명박’ 구속 외에 길은 없다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공직자들이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고 거짓말
 
임두만 | 2018-03-16 08:45: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8년 1월 17일, 전직 대통령 이명박은 당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최근 역사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 근간이 흔들리는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 시키고 또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직접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신문고뉴스 편집부

이는 앞서 1월 13일 국정원 특활비 의혹으로 30년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데 이어 당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한 대항이었다. 즉 자신의 금고지기를 구속하겠다는 검찰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던 셈이다.

이에 그날 이 전 대통령은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라고 변호했다.

이어 “저의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한테 물어달라는 게 저의 오늘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이에 앞서 이 담화에서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지난 5년 동안 저는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 제2 롯데월드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마는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공직자들이 권력형 비리가 없었으므로 저는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이 말은 그의 말대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의 대통령 재임 당시 그의 친형인 이상득, 형의 친구인 최시중, 이명박 자신의 친구 천신일, 왕차관 박영준, 문고리 김희중, 부인 김윤옥 사촌오빠 김재홍, 사촌언니 김옥희 등이 권력형 비리로 구속되어 사법처리를 받았다. 또 이들 외, 이명박과 가까운 권력형 비리사범은 세기도 힘들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 은진수 전 감사위원, 신재민 전 문체부 차관,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 김두우 전 홍보수석, 이영호 전 고용비서관,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현재도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30년 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김진모 전 청와대 비서관, 다스관련 재산관리인으로 불리는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차명재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이영배 (주)금강 대표,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즉 이명박을 지근거리에서 모셨거나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고 한자리를 꿰찼던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모두가 비리혐의로 단죄되어 감옥살이를 했거나 하고 있다. 그랬음에도 그는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정부 운운하고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공직자들이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개월이 채 안 된 3월 14일 새빨간 거짓말은 절정에 달한다.

이날 검찰에 소환된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조사하는 검사 앞에서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잘못이 있다면 부하들의 것이며, 그 잘못한 부하들이 자신들의 죄를 경감받기 위해 대통령인 자신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투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검찰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의 취재노트에 나타난 상황이 그렇다.

▲ 검찰 조사가 끝난 뒤 귀가를 위해 차에 오르는 이명박 전 대통령 © 인터넷언론인연대

검찰청에 출두, 14시간 조사와 6시간의 조서 검토, 그리고 쉬는 시간까지 21시간 정도를 검찰청에 머물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받고 있는 뇌물수수와 횡령·배임, 조세포탈, 직권남용,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20개 안팎의 혐의에 대한 조사에서 "전혀 모르는 일이고 설령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실무선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착잡하다. 이 전 대통령은 앞서 1월 17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저의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다”와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한테 물어 달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 이는 무엇이었는가?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검찰이 불러서 물으니까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부하들이 진술을 했다니까 “그런 일이 있더라도 실무선에서 이뤄진 일”이란 답을 했다.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공직자들이었다면서 60일도 안 되어서 그 ‘헌신한 공직자들’이 자기들이 잘못하고 그 잘못을 대통령에게 떠넘긴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무책임, 그런 무책임한 자가 ‘내가 책임질께’라고 허풍을 친 것인가?

소송비가 70억 원이라는데, 이를 무료로 해준 줄 알았다고 한 저 엉뚱한 배포, 한국 로펌도 아니고 미국의 로펌이 70억 원이란 거액의 소송비를 수수할 수 있는데 이를 무료로 해준 것으로 알았다고 한 것은 BBK를 설립했다고 공개 강연회에서 말하고 그 동영상 증거가 나와도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한 것과 같다.

예측하건데 아마도 이명박을 한때라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거나 그와 은원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들은 모두 진저리를 차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쯤에서 우리는 측근비리가 자신의 책임으로 귀결됨에 따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말했던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4월 7일, 검찰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권양숙 여사와 연계된 뇌물수수 피의자로 체포하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에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냈다.

이후로 나오는 검찰발 소식은 노 전 대통령에게 더욱 참담했다. 대검 중수부를 통해 박연차 정상문 권양숙 통로로 10만 달러가 전해진 것, 이윽고 4월 12일, 뇌물 수수 혐의로 권양숙 여사가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또 같은 날 아들 노건호씨도 소환 조사를 받았다.

4월 22일, 노 전 대통령은 개인 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을 폐쇄하고 ‘절필’을 선언하면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로 지지자들에게 “나를 버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양심이다. 즉 양심이 작용하는 사람의 행동이다.

그러나 이명박에겐 이 같은 인간의 양심이 없다. 따라서 그에게 더 이상 전직 대통령으로의 삶을 살게 하면 안 된다. 그에게 구속 이외의 길이 없다. 검찰은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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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준비위 “조직 단순화”...16일 첫회의

총괄간사에 조명균 장관, 의제분과장 천해성 차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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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5  16: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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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구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준비위원회는 정부와 청와대를 융합해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일을 추진하도록 했습니다. 2007년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가볍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직을 단순화했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5일 오후 3시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을,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총괄간사를 맡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는 4월말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개최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16일 오후 3시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다.

김의겸 대변인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을,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총괄간사를 맡고, 위원회 위원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송영무 국방부장관, 서훈 국정원장,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으로 구성됐다.

또한 준비위원회 아래에는 3개의 분과를 두고, 의제분과 분과장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소통·홍보분과 분과장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운영지원분과 분과장은 김상균 국정원 2차장이 맡았다.

준비위원회와 3개 분과의 인적 구성을 보면, ​청와대와 통일부, 국정원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김의겸 대변인은 “중요 사안을 결정할 준비위원회 전체회의는 주 1회 또는 격주 1회 개최된다”며 “실무 논의는 주 3~4회 열리는 분과장회의를 통해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분과장 회의에는 준비위원장과 총괄간사, 그리고 3명의 분과장이 참여한다.

   
▲ 청와대가 배포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추진체계’ 도표. [자료제공 - 청와대]

청와대가 배포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추진체계’ 도표에는 별도의 ‘자문단’도 표시돼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종교계를 비롯해서 2000년, 2007년 정상회담 참여했던 분들, 경험 있는 분들을 다양하게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위관계자는 “2007년, 2000년 경험을 많이 참조했는데 그 때는 평양을 가는 거였다. 대규모단으로 꾸려졌고 여러 방면의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대화했다”며 “이번에는 본질적인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자 그래서 경제 쪽은 빠진 것이고 주로 외교, 안보 쪽을 중심으로 해서 슬림하게, 단순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남북경협이 빠진 것은 남북경협이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느냐’는 질문에 “지금 그 문제가 같이 논의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소통·홍보분과가 별도로 구성된 것에 대해서는 언론사들의 취재지원은 물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그래서 외신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전 두 차례 정상회담 준비위와 달리 실무단이 별도로 구성되지 않은데 대해 이 고위관계자는 “예전에 이원화됐던 게 이번에 훨씬 더 슬림하게 통폐합됐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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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두세 살 아이 턱뼈도’ 67년만에 처참한 모습 드러낸 충남 아산 피학살자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발행 2018-03-16 08:03:39
수정 2018-03-16 08: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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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의 증언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5일 발굴 19일째를 맞은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약 50여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유해 중에는 2~3세 어린아이의 턱뼈가 나왔고,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유골과 쌍가락지, 은비녀, 어린아이의 장난감도 나왔다.

당시를 목격한 주민들은 1951년 1월 이곳으로 끌려간 사람들 70~80%가 여성이었고, 어린아이를 업은 여성도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증언으로 볼 때 아이를 업은 여성은 결혼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인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 아산시에서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에서 1951년 1월, 서울수복과 1.4 후퇴시기 사이에 부역자로 지목당한 민간인들이 각 지역에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학살됐다.

여성의 올림머리에 은비녀가 꽂힌채 발굴됐다. 머리카락 속에서는 귀후비개가 함께 나왔다. 귀후비개의 반대편 침은 음식물에 체했을 때 응급치료로 손톱위를 찌르는 용도로 사용됐다.
여성의 올림머리에 은비녀가 꽂힌채 발굴됐다. 머리카락 속에서는 귀후비개가 함께 나왔다. 귀후비개의 반대편 침은 음식물에 체했을 때 응급치료로 손톱위를 찌르는 용도로 사용됐다.ⓒ유해발굴단
한곳에서 서로 엉킨채 드러난 유골과 유품들. 여성의 골반뼈 위에 쌍가락지가 놓여 있고 그 위 신발위로 유골잔해가 드러났다. 정강이 뼈 위로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한곳에서 서로 엉킨채 드러난 유골과 유품들. 여성의 골반뼈 위에 쌍가락지가 놓여 있고 그 위 신발위로 유골잔해가 드러났다. 정강이 뼈 위로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유해발굴단
한 여성의 왼손에 끼워진 채 발굴된 은으로 된 쌍가락지.
한 여성의 왼손에 끼워진 채 발굴된 은으로 된 쌍가락지.ⓒ유해발굴팀
발굴된 피학살자들의 유골과 신발.
발굴된 피학살자들의 유골과 신발.ⓒ구자환 기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20대 여성의 골반뼈.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20대 여성의 골반뼈.ⓒ구자환 기자
발굴한 유해를 세척하는 자원봉사자들
발굴한 유해를 세척하는 자원봉사자들ⓒ구자환 기자
유골과 함께 드러난 신발. 약병과 은가락지, 의류, 어린아이의 장난감, 탄피와 탄알, 불발탄, 고무줄, 단추 등의 유품이 발굴됐다.
유골과 함께 드러난 신발. 약병과 은가락지, 의류, 어린아이의 장난감, 탄피와 탄알, 불발탄, 고무줄, 단추 등의 유품이 발굴됐다.ⓒ구자환 기자
턱뼈와 치아만 남은 유골. 치아의 상태로 보아 20대로 추정된다.
턱뼈와 치아만 남은 유골. 치아의 상태로 보아 20대로 추정된다.ⓒ구자환 기자
흙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피학살자 유해.
흙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피학살자 유해.ⓒ구자환 기자
나무뿌리 밑에서 서로 엉긴채 드러난 유해들.
나무뿌리 밑에서 서로 엉긴채 드러난 유해들.ⓒ구자환 기자
흑더미속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는 민간인피학살자.
흑더미속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는 민간인피학살자.ⓒ구자환 기자
총알이 관통한 두개골의 모습. 당시 향토방위대는 5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근접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알이 관통한 두개골의 모습. 당시 향토방위대는 5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근접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구자환 기자
불에 탄 흔적이 남은 유골. 당시 경찰과 반공청년단인 향토방위대는 민간인들을 학살한 후 시신을 불에 태워 증거를 은닉하려 했다.
불에 탄 흔적이 남은 유골. 당시 경찰과 반공청년단인 향토방위대는 민간인들을 학살한 후 시신을 불에 태워 증거를 은닉하려 했다.ⓒ구자환 기자
총알자국이 선명히 남은 유골.
총알자국이 선명히 남은 유골.ⓒ구자환 기자
충남 아산시 배방면 유해발굴현장. 비를 피하기 위해 현장을 천막으로 뒤덮고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유해발굴현장. 비를 피하기 위해 현장을 천막으로 뒤덮고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겹겹이 쌓인 채 드러난 유해. 발굴팀이 붓으로 흙을 제거하고 있다.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겹겹이 쌓인 채 드러난 유해. 발굴팀이 붓으로 흙을 제거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모습으로 발굴된 유해. 두개골의 크기로 볼 때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모습으로 발굴된 유해. 두개골의 크기로 볼 때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추정된다.ⓒ구자환 기자
지각의 변화로 유해들이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흩어진 채 발굴됐다.
지각의 변화로 유해들이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흩어진 채 발굴됐다.ⓒ구자환 기자
수령이 40년 정도로 보이는 나무의 뿌리밑에서 대량의 유해가 발굴됐다.
수령이 40년 정도로 보이는 나무의 뿌리밑에서 대량의 유해가 발굴됐다.ⓒ구자환 기자
세척을 마친 유해를 건조하고 있다.
세척을 마친 유해를 건조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발굴된 유해를 감식하는 박선주 유해발굴단장
발굴된 유해를 감식하는 박선주 유해발굴단장ⓒ구자환 기자
발굴된 유해들이 세척과정을 거쳐 현장에 보관되어 있다.
발굴된 유해들이 세척과정을 거쳐 현장에 보관되어 있다.ⓒ구자환 기자
2~3세의 아동의 턱뼈. 당시 목격자들은 아이를 업은 부녀자도 있었다는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2~3세의 아동의 턱뼈. 당시 목격자들은 아이를 업은 부녀자도 있었다는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15일 67년만에 세상밖으로 나오는 피학살자.
15일 67년만에 세상밖으로 나오는 피학살자.ⓒ구자환 기자
피해자들이 신었던 신발과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의류가 처참한 당시의 상황을 전해준다.
피해자들이 신었던 신발과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의류가 처참한 당시의 상황을 전해준다.ⓒ구자환 기자
유해발굴팀이 현장에서 드러난 유골과 유품을 박선주 발굴단장에게 확인하고 있다.
유해발굴팀이 현장에서 드러난 유골과 유품을 박선주 발굴단장에게 확인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20대로 보이는 치아와 턱벼, 골반뼈가 한 장소에서 서로 뒤엉켜있다.
20대로 보이는 치아와 턱벼, 골반뼈가 한 장소에서 서로 뒤엉켜있다.ⓒ구자환 기자
충남 아산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쌍가락지와 탄피. 쌍가락지는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중요한 예물의 하나로 혼인을 한 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충남 아산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쌍가락지와 탄피. 쌍가락지는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중요한 예물의 하나로 혼인을 한 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구자환 기자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민간인피학살자 유해발굴 현장. 땅속 2미터 속으로 5층으로 겹겹히 쌓인 민간인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민간인피학살자 유해발굴 현장. 땅속 2미터 속으로 5층으로 겹겹히 쌓인 민간인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구자환 기자
15일 충남 아산 배방면 유해발굴 현장.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1950년 10월~1951년 1월 사이 인민군 점령기 부역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골이 서로 엉긴 모습으로 드러났다.
15일 충남 아산 배방면 유해발굴 현장.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1950년 10월~1951년 1월 사이 인민군 점령기 부역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골이 서로 엉긴 모습으로 드러났다.ⓒ구자환 기자

 

 

 

 

15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의해 발굴단 충남 아산 부역혐의 피학살자 유골
15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의해 발굴단 충남 아산 부역혐의 피학살자 유골ⓒ구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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