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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집 앞에 모인 특공대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자"

[현장] '쥐를 잡자 특공대' 등 시민 150여 명, '이명박 구속 촉구' 촛불문화제 열어

17.11.04 21:15l최종 업데이트 17.11.04 21:17l

 

논현동 MB집앞 "이명박을 구속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 논현동 MB집앞 "이명박을 구속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권우성
'이명박 구속'을 외치며 촛불을 든 사람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한 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꾸 국민을 종으로 생각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펼치면 고맙겠다"라고 말했다. 

4일 서울 강남구 학동역 인근에서 열린 '명박산성 허물기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배인성(57)씨는 이어 "국회의원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라면서 "옛날 국민들이 아니다. 이제는 표로 심판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배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창피했다"며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산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참여자들의 발언에 공감한다고 했다. 

4일 이명박심판 범국민행동본부, 쥐를 잡자 특공대(아래 쥐특공대) 등이 마련한 촛불문화제에는 주최 측 추산 150여 명이 참가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참석자들은 촛불을 나눠 들고, 핫팩을 만져가며 즐거운 표정으로 문화제에 임했다. 축제 같은, 자유로운 모임 같은 분위기였다.

"이명박을 기필코 구속해야 하는 이유는..."
'MB' 쇠줄로 묶고 자택앞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가운데, 이명박심판운동본부 백은종 대표가 'MB구속' 퍼포먼스를 하며 자택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MB' 쇠줄로 묶고 자택앞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가운데, 이명박심판운동본부 백은종 대표가 'MB구속' 퍼포먼스를 하며 자택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촛불' 켜진 논현동 MB?집앞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 '촛불' 켜진 논현동 MB?집앞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권우성
이날 현장에는 백은종 이명박근혜심판행동본부 대표가 참석해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며 11일 동안 단식투쟁을 이어가다 이날 단식을 중단했다. 백 대표는 "이명박 탄핵, 구속(촉구 투쟁)까지 오면서 죽은 사람들도 있고, 자산을 탕진하거나 이혼한 사람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즐거운 농성장을 위해 오늘부터 단식을 그만두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문화제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쥐특공대 회원들은 백 대표의 건강을 우려하며 단식을 멈추게 하고자 이른바 '폭식투쟁'에 나선 바 있다. 

또 백 대표는 "이명박을 기필코 구속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을 지켜만 보면 제2의, 제3의 이명박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명박이 구속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발언에 나선 심주완(별칭 마마야) 쥐특공대 대표는 백 대표를 가리키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분신으로 탄핵을 막으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백 선생님은 단식을 그만두지만 우리의 농성은 끝난 게 아니다"라면서 "이명박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날, 504호에 넣는 그날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산까지 환수해야" "정치보복 아냐, 죗값 치르게 하자는 것"
MB집앞 '다스는 누구겁니까'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구속 촉구 촛불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촛불을 든 시민이 '다스는 누구껍니까'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MB집앞 '다스는 누구겁니까'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구속 촉구 촛불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촛불을 든 시민이 '다스는 누구껍니까'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권우성
논현동 MB집앞 "이명박을 구속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 논현동 MB집앞 "이명박을 구속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권우성
이날 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자리에 앉아있던 오정규(51)씨는 "이명박은 국민들의 피 같은 돈으로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했다"라면서 "구속하는 것뿐 아니라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정치적·사상적 문제가 아니다"라며 "나라를 가지고 도둑질한 돈이므로 당연히 무조건 다 환수해야 한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 다른 참석자 황지연(40, 여)씨는 "지인들과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문화제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다"라면서 "당연히 이명박을 구속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황씨는 "4대강 사업부터 이해가 안 된다"라면서 "정치보복으로 볼 것이 아니라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문화제를 지켜보며 불만을 드러낸 시민도 있었다.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위아무개(61)씨는 "(참가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라면서 "시끄러우니 좀 더 넓은 데 가서 했으면 좋겠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문화제는 학동역 6번 출구 앞 작은 길목에서 열렸는데, 마이크 소리 등이 커 불편했다는 것이다. 

자유발언 시간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든 채 "이명박을 구속하라" "적폐청산 완수하라" "자유당을 해체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이들은 구호를 외치며 이 전 대통령 자택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사저까지 불과 50여 m 남겨둔 자리에서 경찰들과 마주한 채 구호를 계속 외쳤다. 이어 참석자들은 앞으로 더 행진하려다 발길을 돌렸다. 집회신고가 돼 있지 않은 장소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어 마무리집회를 하고 해산했다.

[관련 기사] 매일 점심, MB 집앞 수상한 사람들 "쥐를 잡자, 찍찍!"
MB 집으로 행진하는 '촛불'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학동역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MB 집으로 행진하는 '촛불'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학동역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경찰이 봉쇄한 논현동 MB자택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자택앞을 가로막고 있다.
▲ 경찰이 봉쇄한 논현동 MB자택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자택앞을 가로막고 있다.ⓒ 권우성
MB집앞 경찰에 가로막힌 '촛불'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앞으로 행진을 하자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 MB집앞 경찰에 가로막힌 '촛불'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앞으로 행진을 하자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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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우선주의' 트럼프가 어떻게 국빈인가"

NO트럼프 공동행동, '트럼프 반대, 전쟁반대 범국민대회' 개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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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4  20: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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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주말, 서울 도심에서 트럼프 방한과 국회 연설을 반대하는 '노 트럼프 노 워 범국민대회'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며칠 앞둔 주말 서울 도심에서 트럼프 방한과 국회 연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계 221개 단체와 정당들이 모여 지난달 26일 발족한 'NO트럼프 공동행동'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 앞 르메이에르 삼거리에서 'NO 트럼프 NO WAR 범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광화문을 거쳐 인근 미국대사관까지 도심행진을 진행했다.

NO트럼프 공동행동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수도권 범국민대회에 2,000여명, 전국에서 3,500여명의 시민들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갑자기 툭 떨어진 기온이 무색하게 한반도 긴장고조와 전쟁위협, 무기강매와 통상압력을 예고한 트럼프의 방한을 앞두고 트럼프 방한과 국회 연설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날 대회는 르메이에르 삼거리에서 진행된 수도권 대회를 비롯해 부산, 울산, 경남, 대구와 광주, 전북, 대전, 강남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으며, 미국과 캐나다, 독일과 일본에서도 현지교민과 각 나라의 평화시민단체들이 함께 국제연대를 벌였다.

평화단체인 코드핑크의 설립자인 앤라이트 전 미군 육군대령은 하와이에서 "여러분의 요구에 완전히 동의하며 함께 하겠다. 한반도와 전세계의 평화를 원한다"는 연대 메시지를 영상으로 보내왔다.

한국에 앞서 트럼프가 방문하는 일본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11월 5일 '트럼프-아베 전쟁회담 반대 신주쿠 거리행진'을 벌이기로 하고 이날 한국 대회에 연대의 뜻을 보내왔다.  'NO트럼프 국민행동'도 일본에 연대사를 보내 한일 양국의 평화단체들이 연대를 강화해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투쟁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 한충목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대표는 이날 기조발언에서 오늘은 조국의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해 총궐기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출범식이고 트럼프가 오는 7, 8일 광화문과 국회앞에서 다시 모이자고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대표는 이날 기조발언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세계에서 침략전쟁을 벌이며 수백만명을 학살했다. 전쟁광일 뿐만 아니라 무기장사꾼이고 제국의 황제인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 평화를 말하겠는가"라고 반문하고는 이미 '한국에서 수천, 수만명이 죽어도 상관없다',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서 북을 완전파괴하겠다'고 했던 트럼프의 호전적 발언을 상기시켰다.

이어 "트럼프가 국빈으로 방한하는 것을 촛불시민은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오늘은 트럼프가 방한하는 오는 7, 8일 청와대 앞과 광화문, 국회에서 조국의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해 총궐기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출범식 자리"라면서, "7일 저녁 7시 광화문, 8일 오전 9시 국회 앞에서 진행하는 비상행동에 국민들이 함께 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날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한반도 전쟁위협하고 군사압박과 제재를 확대하고 무기를 사주는 정상회담이 올바른 것인가. '최고의 대북제재'를 촉구하는  트럼프의 연설장으로 국회를 내주는 것까지 해야 하는가"라며, "전쟁위협 무기장사꾼 트럼프는 한국에 오지마라"고 그의 방한에 반대했다.

또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 견제 목적을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북핵을 빌미로 사드 한국배치를 강행하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부추기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창한 민중당 상임공동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진행한 영화 '소성리' 상영회에서 주민들이 "트럼프가 기어이 한국땅을 밟겠다면 사드를 도로 가지고 가라, 국회에서 연설을 하겠다면 평화를 약속하라"고 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과 엄마 등이 평화행동을 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한 행동에 함께 하자"고 말했다.

   
▲ 광화문을 거쳐 미대사관으로 가는 도중 참가자들은 연도의 시민들과 함께 트럼프 방한반대, 한반도 전쟁반대 등을 외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르메이에르 삼거리에서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광화문을 거쳐 미국대사관으로 행진하면서 연도의 시민들과 함께 트럼프 방한 반대, 한반도 전쟁 반대 등을 외쳤다.

대사관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는 동안 일부 참가자들이 차도 넘어 미 대사관을 향해 항의의 표시로 구호를 적은 종이, 천조각 전단 등을 투척하기도 했으나 이날 대회는 큰 마찰없이 2시간을 조금 넘기면서 막을 내렸다.

   
▲트럼프는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왼쪽부터 노동자연대학생그룹, 전국학생행진, 방탄소년단 소속 청년들이 자신들이 해 온 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꽃다지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향린교회 조은화 목사와 교인들이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바라는 발언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타악기 공연팀 레츠피스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국 대사관 앞.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위협 무기강매 통상압력 트럼프는 물러가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 대사관 앞 전쟁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사관 건너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던 참가자들이 기어코 차도 넘어 대사관을 향해 구호가 적힌 전단 등을 내던지는 항의행동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 미치광이 트럼프는 오지마라'는 구호가 적인 천조각이 미대사관 철조망에 걸린 채 성조기와 함께 날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휴전을 넘어 화해로. 평화까지 레츠피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닥쳐 트럼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군 떠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 추가-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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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목장 방문과 맞바꾼 MB의 쇠고기협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1/04 14:34
  • 수정일
    2017/11/04 14: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의료와 사회] 끝나지 않은 광우병, 그 현재와 미래
2017.11.04 11:49:55
 

 

 

1. 들어가며

'광우병'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소해면상뇌증(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이 1980년대에 인류계 내로 들어오게 된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고, 또한 질병의 진행 과정과 전파 및 최종 결과까지 기존에 알려진 다른 질병과 다르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변형프리온'이라는 원인물질로 인한 뇌세포 파괴는 현미경 상으로 뇌에 구멍이 생긴 스펀지 모양의 특유한 병변으로 관찰되었는데, 이 질병이 소를 비롯한 반추류 동물에서 발생하여 유행한 후(통칭하여 TSE; transmissible spongiform encephalopathies라 부름), 10여 년이 지나 인간에게 유사한 뇌 병변과 증상을 나타내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Creutzfeldt-Jakob Disease)과 같은 질병이 나타남으로써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 variant CJD), 속칭 인간광우병으로 불리게 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한편 이 질병이 2008년도에 국내에서 특히 문제가 되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의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광우병 발생국인 미국으로부터 쇠고기 수입 조건에 따른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말미암은 것은 불행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광우병이란 연구자와 정치가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해야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이나 의학자에게도 일반적이지 않고, 또한 다량 발생했던 EU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통제될 수 있던 이 질병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그토록 자세히 알 필요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에 국론분열까지 가면서 마치 광우병 연구에 과학 논란이 있는 것처럼 포장된 것은 전적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정치 계산에 의한 것이고, 동시에 종편 사업에 목맨 주요 언론사 및 광우병과는 전혀 관련도 없던 연구자들이 권력에 아부하며 개인 생각을 공개적으로 마치 학문적 입장인 양 떠든 탓이다(물론 요즘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기무사나 정부 운영의 댓글 부대 공작도 기여). 

일반인들이 오해하는 것으로서 질병의 발병과 유행은 사회적 의미가 있다. 자연계에서 특정 질병의 발생은 있을 수 있으나, 유행하지 않는다면 공중보건상으로 그렇게 위험하게 간주하지는 않는다. 광우병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발생 자체보다는 유행이나 전파 방지에 주안점을 두어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당시 소동이 광우병이란 질병의 과학 내용이 아니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국 어느 하나 수용하지 못하고, 또 할 수도 없는 이명박 정부의 수입 조건 문제이었고 통상으로 인한 광우병 전파 방지에 역점을 둔 OIE(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도 부합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전제하고 2008년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광우병의 현재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기로 한다.  
 

▲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타결을 풍자하는 패러디들. ⓒ디시인사이드


2. 광우병과 국내 함의 

실제적으로 BSE는 그 병원체가 일반 미생물이 아니라 단백질성 감염물질인 프리온이라고 불리는 변형단백질에 의한 것이기에 초기 혼란은 피할 수 없었으나, 폭발적 발생이 있었던 유럽에서의 집중 연구로 인해 2008년도 당시에는 인류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질병(emerging diseases) 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러한 통제를 위해서는 당시 EU 발생 현장에서 연구되어 그 효력을 발휘하던 EU의 과학적 BSE 관리 기준에 따라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세계동물보건기구 OIE(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역시 BSE에 있어서는 EU의 과학자문을 중심으로 국제간 교역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 점에서 국내에서 '광우병 사태'라고까지 불리던 광우병 관련 논란이 있었던 2008년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BSE 통제에 유효했던 EU의 BSE 관리 조건이나 OIE의 국제 간 통상 기준은 별로 변하지 않고 있다. 

2008년도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국론을 분열시켰던 당시 상황과 이후 진행되었던 바를 간략히 되돌아보는 것은 BSE의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BSE가 EU에서 통제 가능한 상태였던 2008년도 국내에서 발생한 논란의 핵심은 광우병 발생국인 미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조건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은 과학적 기준에 따라 30개월 미만의 뼈 있는 쇠고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왔으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8년도 초에 이미 한미FTA 타결 전제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 확대를 희망하던 미국에 캠프 데이비스 부시 대통령 개인 목장을 방문하는 조건으로 국내 총선 후, 방미 전에 타결해 줄 것을 사전 약속했음은 훗날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바 있다.  

그 결과 한국 협상단은 2008년도에 형식적 협상 논의를 한 후 전 연령의 미국 쇠고기와 더욱이 EU에서 광우병 통제를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내장 부위마저 수입하는 조건으로 한미 간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타결된 쇠고기 통상 조건은 광우병 통제에 효력을 발휘하고 있던 EU 기준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것이었고, 또한 광우병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 간 통상에 있어서 지켜야 할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으로 구성된 OIE의 국가 간 통상 기준을 철저히 무시한 행보였다. OIE 기준에서 최소한의 필요조건만을 형식적으로 만족시킨 수입조건이었고, 소 내장도 섭취하는 한국의 식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OIE가 제시한 충분조건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 채 수출국인 미국의 입장만을 반영한 조건이었다.

쇠고기 수입국의 국민으로서 식품 안전을 확보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수출국의 편의성만 고려한 무책임한 수입 조건에 많은 국민들은 분노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의 수입 조건인 30개월 미만 조건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섰다. 이에 이명박 정부와 당시 진행되던 종합편성 언론사 선정을 앞둔 주요 언론 매체는 정부 눈치를 보며 정부의 타결 조건이 국제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국민을 호도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 3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국민들을 미국 쇠고기라면 무조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몰아갔다. 

심지어 정부는 주변국이 모두 전 연령의 미국 쇠고기와 내장 수입이라는 정부 수입 조건으로 개정될 것이며,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며, 또한 5년 내로 사라진다는 비과학적인 전망마저 제시했다. 물론 광우병은 지금도 OIE에서 관리하고 있는 전염병 목록에 들어 있으며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그 후 주변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는 그림을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도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당시 정부 주장이 어느 하나 타당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 현재 주변국이 맺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조건을 보면, 2008년도 이명박 정부가 국제 기준에 의한 것이라면서 국민을 호도했던 타결 조건이 얼마나 왜곡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정부는 주변국이 한국 수입 조건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타결하면 미국과 즉시 재협상하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지금도 지키지 않고 있다. ⓒ우희종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하고 의도적인 정치 행보의 산물인 미국 쇠고기 수입 타결 이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거리에 나선 국민들의 항의에 의해 정부가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한시적 조건을 전제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과 내장 수입 금지라는 타당한 수입조건으로 재논의 했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도 3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고 있어서 미국 쇠고기의 식품 안전성을 확보한 것은 촛불 시민들 덕분이다, 하지만 한시적 유예 조건에 따른 것이기에 현재 한미 간의 쇠고기 수입 공식 조건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국 어느 한 나라도 따르지 않는 전 연령의 쇠고기와 내장 수입이다. 미국 당국도 현재 타결되어 있는 양국 간 공식 쇠고기 수입 조건이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국 간 여러 협상에서 미국의 유리한 입장을 얻기 위해 이러한 양국의 공식 쇠고기 수입 조건의 활성화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켰던 광우병의 현시점에서의 상황과 향후의 전망을 하려면 지금까지 광우병 통제에 성공적이라고 인정되는 EU의 관리기준과 OIE 통상 기준이 국제적으로 지켜진다는 전제를 해야 한다, 2008년도 한국 정부처럼 당시 EU의 기준은커녕 광우병 위험 때문에 도축을 금지시키던 기립불능소도 도축하고 있고, 동물성 사료 투여 금지도 지키지 않던 미국을 광우병으로부터 무조건 안전한 나라라고 외치는 정치세력이 없고 상기한 국제적 과학 기준에 의해 관리될 때의 향후 전망이다.  

3. 광우병 현황 

광우병 발생으로 인해 축산 기반이 무너진 영국을 위시해서 많은 EU 회원국에서의 광우병 발생 상황은 광우병에 대한 주요 연구가 주로 EU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준다. 그러한 현장 연구에 기반을 둔 EU의 광우병 통제 및 관리 기준은 2000년대 초에 기반을 잡아 그 후 엄격히 준수됨에 따라 광우병 발생 통제에 성공했고, 그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 발생은 급감하고 있다.  

그러나 광우병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기존에 알려지지 않던 유형의 광우병이 등장했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광우병에 원인 병원체인 변형 프리온이 알츠하이머, 파킨슨씨병 등과 같은 퇴행성 만성 뇌질환 발생에도 관여되어 있음이 밝혀져서 이런 유형의 질병을 통칭하는 변형단백질환(proteopathy, 혹은 protein misfolding diseases, proteinopathies, protein conformational disorders라 부름)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질병 분야를 만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황을 들여다보면, 광우병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2016년도에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역학적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현황이 3년간 발생하지 않다가 2015년 광우병이 발생한 캐나다 사례에서 보듯이 기존 광우병에 대한 통제 및 관리 기준에 대하여 안심하거나 완화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기존 광우병 발생의 급감에는 2008년도에 정부가 주장했던 미국 기준이 아니라 당시 촛불시민들이 요구했던 EU의 광우병 통제 기준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의 광우병 관련 연구 결과는 매년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보고되고 검토되는데, 올해는 영국 애딘버러에서 열렸고, 내년에는 스페인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해 학회에서도 영국 국립 CJD 연구 및 통제센터의 밥 윌(Bob Will) 애딘버러 대학 교수가 '과거, 현재, 미래의 공중보건상의 프리온 질병의 위험(Public Health Challenges in Prion Disease: past, present and future)'이라는 발표를 했던 것처럼 국제적으로 광우병 통제를 위시하여 꾸준히 관련 질병에 대한 감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역시 2008년도 이후 자국의 식품 안전을 위하여 EU 기준에 따라 기립불능소를 도축에서 제외하고 강화 사료 정책 등을 확대 실시했다(광우병과 관련하여 이런 일련의 미국 내 정책 변화는 2008년도 당시 정부가 그토록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미국 기준이나 체제가 전혀 안전하지 않고 개선되어야 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기존에 문제 되어 왔던 광우병이 국제적 노력에 의해 통제되어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새로운 비정형광우병(atypical BSE)의 발생 급증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학계와 정부 당국은 공중보건 상의 위험성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도 올해 비정형광우병은 발생했고 세계적으로도 발생 보고가 증가 추세다. 자세한 기술은 생략하지만, 비정형광우병 역시 기존 광우병과 같거나 높은 감염력이 있음도 보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존 광우병과는 달리 비교적 고령에서 발병하고 있어서 공중보건 상의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비정형 광우병의 발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에 적절한 보건 당국의 대책 마련이 없다면 감염력을 지닌 비정형 광우병 발생이 또 다른 광우병 발생이나 인체 감염의 원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내와 연계되어 언급해 둘 사항으로서는 사슴류에서의 광우병인 광록병(CWD; chronic wasting disease)은 국내에서도 캐나다로부터 수입된 엘크로부터 발생한 이후 종종 국내 발생이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CWD로부터 직접적인 인간 감염 및 발병 가능성은 낮으나(올해 영국 프리온 국제학회에서 마카키 원숭이에 구강전파 가능성이 제시됨), 사슴류의 혈액 등을 직접 소비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미국의 사슴 사냥꾼(deer hunter) 집단 내에서 자연 발생의 sCJD(Sporadic CJD) 발병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역학조사 결과와 관련하여 매우 조심스런 부분이다. 
 

ⓒ프레시안


4. 나가면서 

인류의 생태적 진화와 궤적을 달리한 광우병의 등장과 인체 감염은 전 세계적으로 자연 질서를 무시한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인간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양에서 관찰되던 프리온 질병이 양의 내장 등을 소에게 먹여 소에 적응하게 만들어 발병하게 하고, 이를 섭취한 인간에게 치명적인 뇌질환을 불러온 일련의 사태는 그 후 한국에 와서 정치적으로 왜곡됨에 따라 더욱 우리 국민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식품 안전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었다.  

2008년도에 일부 연구자나 관여하고 이에 기반을 둔 행정조치에 따른다면, 일반인들에게는 단지 매우 특이한 질병으로만 남아도 충분했던 광우병이 정치적 이유로 국론분열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국제학회장에 가서 광우병 연구자들에게 낯을 들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과학적으로 너무 분명한 내용마저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고, 광우병 연구와는 관련도 없는 이들이 과학을 포장하면서 마치 광우병 연구에 대단한 불일치가 있는 듯이 논란이 되고 있음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단순히 생물학적 층위만 있는 것이 아님은 수잔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 이후 펴냄)이란 저서에서 잘 보여주었지만, 건강한 과학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은유적으로 전락해 초라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 중 하나였다. 

이제 그 후 10년이 지나면서 당시 정부가 국제 기준이라고 강변하던 주장이 실체가 명백히 드러났지만, 당시 국론분열의 영향은 아직도 남아 있어 간혹 지금도 당시 정부 주장이 옳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을 본다. 미국에서 올해에도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하고 있듯이 이제 국제적으로는 비정형 광우병이 보건상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에, 광우병에 대한 연구와 통제 정책은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  

한편 국내 소동과는 별도로 학계에서는 착실히 연구를 계속하여 프리온이라는 체내 단백질이 변형되어 질병이 발생하고 전파되어 축산은 물론 인간광우병으로 이어짐이 밝혀낸 것만 아니라, 변형단백질환(proteopathy)의 개념을 만들어 그동안 각개의 질병으로 인식되던 일군의 뇌질환을 한 영역의 질병군으로 바라보게 했다. 이들 질병은 프리온이 질병을 발생시키고 전파하는 양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발병하고 전파됨이 특징이다. 체내 정상 단백질들(amyloid, synuclein, prion, Tau 이에도 많은 단백질이 속해 있다)의 구조적 변형으로 인한 계통의 질병으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CJD나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이외에도 헌팅턴병 등 여럿 알려져 있지만, 아직 프리온 외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전파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또한 이렇게 기존의 질병 발생과는 유형이 다른, 새로운 질병 발생과 전파에 대한 발견은 그동안 불치에 가까운 만성 뇌질환의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되어 광우병 사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건강한 과학 발전의 중요성과 더불어 방역이나 검역의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유비무환의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따라 작은 위험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상 유죄추정의 자세로 임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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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군발표 앞서 B-1B 폭격훈련 이동경로 상세 보도

북, 미군발표 앞서 B-1B 폭격훈련 이동경로 상세 보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1/04 [02: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8월 29일 북이 전격 발사한 화성-12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일본 열도 위를 관통하여 태평양 목표물을 명중시키자 화들짝 놀란 미국이 이틀 뒤인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 마지막날 F-35 최신 스텔스 전폭기, B-1B랜서 전략폭격기 등을 대거 한반도 상공에 동원하여 대북 압박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써 2017 을지훈련은 공식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 후 10에도 항공모함까지 동원한 대규모 훈련 당시 다시 이 폭격기가 한반도에 나타났고 11월 들어서도 또 나타났다.  ©자주시보

 

3일 뉴스1 오전 10시 26분 발 보도에 따르면 미 공군은 2일(현지시간) 괌 기지에서 출격한 B-1B 폭격기 2대가 강원도 필승사격장 상공에서 비행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 공군은 "계속되는 폭격기 비행훈련은 사전 계획된 것"이라며 "현재의 어떤 사건에 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연합뉴스는 같은 날 오전 7시 34분 보도를 통해 미군이 B-1B 폭격기 훈련 진행 사실 공개 전에 북에서 이 B-1B 랜서 폭격기의 상세한 이동경로까지 거론하면서 비난 보도를 발표했다면 그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였다.

 

위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의 조선중앙통신은 3일 새벽 "우리 공화국을 핵으로 압살하려는 미제의 광란적인 위협·공갈 책동은 10월에 이어 11월에도 계속되고 있다"라며 "미제는 11월 2일 또다시 핵전략폭격기 B-1B 편대를 남조선 지역 상공에 은밀히 끌어들여 우리를 겨냥한 기습 핵 타격 훈련을 벌여놓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제가 핵 전략자산들을 연이어 들이밀어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고 최후 발악하고 있지만, 그에 놀랄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다"라며 "미제 호전광들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미제 공중비적들은 일본 오키나와 주변 상공을 거쳐 비행하다가 남조선 지역 제주도 상공에서 조선 동해 상공으로 방향을 바꾼 후 미 공군과 괴뢰 공군 전투기들의 엄호 밑에 상동 사격장 상공에 날아들어 우리의 중요 대상물들을 타격하는 것으로 가상한 핵폭탄 투하 훈련을 감행했다"며 B-1B 편대의 구체적인 비행경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북이 오키나와 주변의 상공까지 손금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레이더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미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 랜서, 북 노농적위대 한 병사가 대공포로 초음속 전투기를 잡는 가상동영상을 만들어올려 남측에서 과연 대공포로 초음속 전투기를 잡을 수 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초음속 전투기도 저공비행시에는 초음속을 낼 수 없으며 대공포의 밥이 되기 쉽다. 특히 랜서는 고공폭격용이 아닌 저공침투 공격기이다. 대공포 등에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핵폭격기로는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본지 한호석 소장이 최근 지적한 바 있다. 초음속 비행은 주로 이동시에 하게 된다.     ©이창기 기자, 유튜브 화면갈무리

 

B-1B가 9월 23일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갔음에도 북이 이를 거론하지 않자 한국의 관변 대북전문가들은 북에 전기가 부족해 레이더를 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둥, 북의 레이더는 멀리 내다볼 능력이 없다는 둥 북의 항공정찰능력에 대해 혹평을 늘어놓은 바 있다. 

 

사실 본지 이용섭 기자가 인터넷에 소개된 북 언론을 실시간으로 거의 매일 샅샅이 살펴보아왔는데 이렇게 미국이 발표하기도 전에 괌이나 하와이의 미 공군기 움직임까지 자세히 언급한 북의 언론보도를 여러번 접한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한 번은 북의 레이더 기지 안을 북 방송에서 비쳐준 적이 있는데 미국 본토 해군 기지를 대형 동영상 화면에 상세하게 보여지고 있어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북은 그런 곳의 상공을 실시간 감시할 정지 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한 바 없고 유인정찰기가 미국 본토 상공위로 날아간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고 무인정찰기를 띄워 그렇게 오랜동안 감시하기도 힘들텐데 어떻게 그런 화면을 확보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지만 그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이 독특한 원거리 정찰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은 이란을 통해서 짐작해볼 수 있는데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 따르면 이란의 무인정찰기가 미국의 항공모함 위를 따라가면서 실시간 촬영하고 있는데 미군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나포한 미국의 RQ-170 최첨단 스텔스 드론을 이란공항으로 착륙시키는 모습     ©자주시보
▲ <사진 15> 2011년 12월 4일 이란혁명수비군은 이란 영공을 깊숙이 침범하여 공중정찰을 감행하던 미국의 최첨단 스텔스무인정찰기 RQ-170을 전파교신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공중에서 나포하여 지상에 강제착륙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RQ-170 스텔스무인정찰기는 미공군과 미중앙정보국이 각각 운영하던 비멸병기였다. 위의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이 공중나포한 스텔스무인정찰기를 공개한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던 RQ-170이 이란혁명수비군에게 공중나포되므로써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들여 개발한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이란은 위의 사진에 나타난 RQ-170을 분해하여 얻어낸 기술자료를 분석하여 스텔스무인정찰기를 제작하는 최첨단 기술을 습득하였으며, 결국 RQ-170에 필적하는 최첨단 스텔스무인정찰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미국의 스텔스기술신화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자주시보

 

▲ 나포한 미국의 RQ-170 최첨단 스텔스 드론을 분해하여 바로 복제드론 개발에 성공한 이란이 시험비행을 진행하는 모습     ©자주시보

 

이란은 일명 칸디하르의 야수라는 별명이 붙은 미국의 최첨단 무인 스텔스 정찰기 RQ-170 센티널을 나포하여 이란 공항에 착륙시킨 후 분해하여 복제품을 완벽하게 만들어낸 적이 있는데 센티널의 움직임을 멀리에서부터 손금보듯 들여다보고 있다가 이란 영공에 들어오자마자 전자덫 즉, 미 본부와 위성통신을 차단하고 대신 자신들이 통신을 보내 자국 공항에 유도하여 완전한 형태의 최첨단 무인정찰기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그렇게 작고 위력적인 정찰기를 찾아서 감시할 수 있는 무슨 장비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란의 이런 기술은 북의 지원으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에 북에도 그런 기술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어쨌든 북이 미국처럼 위력적인 정찰위성이나 고공정찰기, 무인정찰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뭔가 독특한 미군 감시정찰장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북의 경고를 미국이 쉽게 대했다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든다.

 

 

자주시보 후원확대 운동에 동참 부탁드립니다.

기자는 퍽 늘었는데 점점 정기후원이 줄어들어 후원히 절실한 상황입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원격려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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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초, 집배원에 허락된 시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1/04 12:55
  • 수정일
    2017/11/04 12: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영상] 상상 초월하는 우편물 배달량 ... "고객님, 전화 좀 받아주세요"

17.11.04 10:55l최종 업데이트 17.11.04 10:55l
글·영상: 정현덕(y3k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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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가 2012년부터 적용하는 우편 집배원의 배달 소요 표준시간은 아래와 같다.

- 일반 우편물 2.1초
- 특수통상(등기) 28초 
- 저중량 소포 30.7초

위 규정에 따르면 일반 우편물의 경우 집배원은 2.1초 안에 오토바이에서 내려 우편함에 넣어야 한다. 등기는 28초, 소포는 30.7초 안에 역시 오토바이에서 내려 전달해야 한다.
 

<오마이TV>는 충남 당진 우체국 집배원들을 동행취재했다. 실제로 집배원들은 1일 평균 8백~1천개의 우편물을 배달하며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뎌내고 있었다. 집배원들은 "고객님들의 요구를 다 맞춰드리지못하는 것이 늘 아쉽다"며 "시간 제약 때문에 다 맞춰드릴 수 없다는 점 양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집배원들의 목소리를 짧은 다큐멘터리로 구성했다.

(기획·영상취재·구성·편집 : 정현덕 기자/ 그래픽 :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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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11

혁명 지도자, ‘신화’가 아닌 ‘인간’으로 보아야
 
김갑수 | 2017-11-03 13:44: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천도(天道)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필부지용(匹夫之勇)’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사람의 용기, 즉 별것도 아닌 용기라는 뜻이다. 이것은 초나라 장군 한신이(韓信)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 기원전 247~195) 앞에서 초패왕 항우(項羽, 기원전 232~202)를 낮추어 평가한 말이다.

“항왕이 노하여 꾸짖을 때는 천 명의 사람이 모두 꿇어 엎드릴 지경입니다. 그러나 휘하의 어진 장수들을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니 그것은 ‘필부의 용기’일 따름입니다. 항왕은 또한 사람을 인견할 때면 공손하고 인정이 넘치고 말씨도 부드럽습니다. 아픈 자가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하지만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내려야 할 때는 인수를 넘겨주기가 아까워 닳아 없어질 때까지 주무릅니다. 이는 ‘아낙네의 인정’일 뿐입니다.” (『사기열전』 , 서해클래식, 옌볜인민출판사, 362-363)

한신은 ‘필부의 용기’에 더하여 ‘아낙네의 인정’을 거론했다. 각각 ‘보잘 것 없는 용기’, ‘공사를 가리지 못하는 인정’을 뜻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흡족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좋게 생각하는 ‘필부지용’과 ‘필부지정’을 한신은 단칼에 하찮은 것으로 치부했다. 이것은 내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생기는 갈등의 항목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사사로운 용기나 인정을 내세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기열전』을 권한다. 이 책은 음미하면서 읽기에 제격이다. 여기서 음미라고 하는 것은 말뜻 그대로 ‘느끼거나 생각하며 읽는다’는 뜻이다. 나는 사기열전을 세 번쯤 읽은 것 같다. 소년 때의 ‘사기’와 청년 때의 ‘사기’에 비해 장년의 ‘사기’는 사뭇 다르게 읽힌다. 이것만으로도 사기는 ‘대단한 고전’임이 틀림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사기』는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치욕을 감내하면서 이룬 노작이다. 사기 130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70편의 열전은 비범한 인간들의 언행을 다른 명편(名篇)이 많다. 그런데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음미하며 읽도록 한다.

『사기』가 위대한 것은 열전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인물전은 ‘공자가 그리워 한 주나라’에서 시작하여 ‘힘으로 인(仁)을 가장한’ 춘추시대와 ‘칼로 천하를 다툰’ 전국시대를 거쳐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과 초·한의 쟁패전 그리고 재통일을 이룬 한 제국까지를 다룬 역사서 겸 문학서다.

사기열전의 강점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 기술에 있다. 이 책에는 ‘객관적 주관’과 ‘주관적 객관’이 균등하게 나타난다. 이런 특성은 저자의 냉철한 공정성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30명의 ‘세가’ 편은 제후가 대부분이지만 여기에는 공자 같은 서생도 있고 진승 같은 반란자도 들어 있다. 열전 편에는 일자(점장이), 화식(부자), 영형(아양꾼), 골계(개그맨?) 등이 망라되어 있어 흥미를 배가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물은 제자백가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6가’의 인물들인데, 6가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음양가, 명가(논리학)를 가리킨다. 글의 문맥으로 보아 사마천의 시대(기원전 145~86)에는 유가와 묵가가 가장 우대를 받은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사마천이 가장 수준 높은 것으로 친 학파는 유가, 묵가가 아니다. 사마천은 내심 도가 즉 노자, 장자를 유가, 묵가보다 더 심오한 학파로 인식했다.

이 책에서 공자가 노자를 평가한 대목은 특히 유명하다.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그 실체를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과 같아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11쪽)

노자의 학문이 깊다고 평가하는 사마천은 도가에 대해, “음양가의 큰 법칙 속에서 유가와 묵가의 장점을 취하고, 명가와 법가의 요점을 채택하여 시간과 사물의 변화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게 한다”고 극찬했다.

『사기』는 유명한 고사성어의 산실이기도 하다. 曲學阿世(곡학아세), 兎死狗烹(토사구팽), 囊中之錐(낭중지추), 傍若無人(방약무인), 背水陣(배수진), 焚書坑儒(분서갱유), 四面楚歌(사면초가), 臥薪嘗膽(와신상담), 指鹿爲馬(지록위마), 千慮一失(천려일실), 口尙乳臭(구상유취), 多多益善(다다익선) 등 오늘날 한국인이 자주 사용되는 고사성어만 해도 50여 개가 넘게 나온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행복한 삶을 이룬 인물전(화식열전)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정신과 물질의 균형을 맞추어 놓았다. 흔히 『사기』는 도덕적 가치를 우선시한 책으로 인식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기열전에서 내 맘에 드는 문장을 지면상 둘만 소개한다.

“있을 자리가 아닌데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탐위’라 하고, 받아야 할 명예가 아닌데도 받는 것을 탐명이라고 한다.”
“남의 말을 듣고 반성하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의 눈으로 자기를 밝게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고 한다.” 탐위와 탐명 그리고 총, 명, 강… 참으로 음미할 게 많은 말들이다. 하지만 사기열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첫머리에 있다.

저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네.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우나라, 하나라의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아! 나는 떠나련다. 운명이 쇠했으니.

‘백이열전’의 한 대목이다. 백이와 숙제는 상(商)나라 제후국의 왕자들로서 주(周) 무왕이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紂)왕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불충’이라는 명분을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끝내 무왕이 상을 치자 백이와 숙제는 명분이 어지러워진 혼탁한 세상과 타협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 죽었다. 위 노래는 그들이 굶어 죽기 직전에 부른 것으로 도저한 결기의 정신세계를 표현한다.

이처럼 사기열전은 지고한 정신적 가치를 구현한 ‘백이·숙제 편’을 첫머리에 배치했다. 그리고는 이토록 높은 정신적 가치를 실천한 사람들의 삶이 비참하게 끝났음을 환기하면서, ‘과연 천도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를 절규하듯이 묻는다.


혁명 지도자, ‘신화’가 아닌 ‘인간’으로 보아야

“1975년 4월 30일 아침, 소련제 북베트남 탱크들이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이공 북부 교외를 통과하여 도심의 대통령 관저를 향했다. 군용 작업복 차림에 황금별이 박힌 유별난 철모를 쓰고 탱크 위에 앉은 병사들은 임시혁명정부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통 누트가(街)를 일렬로 천천히 통과하던 탱크들은 미국 대사관 앞을 지나갔다. 불과 2시간 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미군 해병대원들이 대사관 지붕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떠났기 때문에 대사관에서 미국인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북베트남의 선도 탱크는 대통령 관저의 주철 정문 앞에서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철문을 뭉개버리고 들어가 관저 현관으로 통하는 넓은 계단 앞의 잔디밭에 멈췄다. 탱크에 타고 있던 젊은 지휘관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두옹 반 비그민 대통령과 잠깐 만났다. 이어 관저 지붕으로 올라가 깃대에서 베트남 공화국 기를 내리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어울린 임시혁명정부 기를 올렸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 순간을 기술한 윗글을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대리만족을 얻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글 중에 있는 ‘베트남 대통령 관저’에 느닷없이 한국의 청와대를 대입해 보았고 이런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스스로 의문을 갖기도 했다. 평전 『호치민』(윌리엄 J 듀이커)에는 이렇게 벅찬 감동을 일으키는 대목이 많다.

베트남 통일혁명의 공로자는 셋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한 세대 이상 남베트남의 정글과 늪에서 혁명적 대의를 위하여 싸우다 죽어간 무명의 베트콩 전사들이고, 둘째는 뛰어난 결의에 노련한 능력까지 겸비한 베트남 노동당 지도자 레두안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며, 셋째는 베트남 공산당 창건자이자 혁명운동의 지도자였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주석 직을 종전 6년 전인 1969년까지 맡고 있다가 타계한 호치민이다.

호치민은 누구인가? 일찍이 모스크바 코민테른의 요원이었고 국제공산주의운동 참여자이자 베트남 승전의 기획자 호치민, 사실 그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호치민의 위대함을 말하면서,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간 ‘호 아저씨’를 먼저 꼽는데 사실 이런 인물관은 대단히 순진하고 불성실한 역사인식이다. 예전에 남미 어느 나라 대통령 중에 경차를 타는 대통령을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인이 가난하다거나 소박, 소탈하다는 이유 때문에 더 높이 평가해야 할 필요는 없다.

호치민의 소박한 이미지는 진짜인가 아니면 책략적인 연출이었나? 이런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국가지도자는 부정부패만 없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호치민이 국가 최고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인도주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며, 서민적인 자세로 베트남 인민의 삶을 개선한다는 대의에 평생 헌신해 온 사심 없는 애국자였다는 사실이다.

1858년 늦여름, 프랑스 제국주의 군대는 가톨릭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베트남 영토를 침탈해 들어왔다. 베트남은 1885년 사이공을 점령당했고 1884년 우리의 을사늑약에 해당하는 ‘보호조약’에 서명했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3분할하여 통치했다. 북부의 통킹, 중부의 안남, 남부의 코친차이나인데, 프랑스는 이 셋을 합쳐서 인도차이나 연방을 구성했다.

베트남인은 식민지 통치 기간에 대 제국주의 투쟁을 끈질기게 전개했다. 베트남의 유명한 독립운동가로는 판보이쩌우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상설 선생과 캐릭터가 비슷하다.

1927년 응우엔타이쿡은 베트남 국민당을 결성했다. 그리고 1930년 베트남 공산당이 응우엔아이쿡의 지도 아래 창당되었는데 그가 바로 문제적 인물 호치민이었다.

호치민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이념을 융합하여 반제국주의 무력투쟁을 벌였다. 그는 인습 타파와 지식층 개혁을 내세우면서 베트남 인민해방을 세계혁명과 연계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어냈다. 호치민의 공산당은 1945년 9월 2일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베트남 독립을 선포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베트남과 한국의 차이점]

우리와 베트남은 어떻게 다르고 같은가? 흔히 베트남의 역사는 우리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문화적으로 중국 한자문화권에 속하면서 유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점, 고대로부터 정치적으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 근대에 들어 식민지를 체험했다는 점, 지리적으로 국토가 북에서 남으로 길게 늘어진 꼴이라는 점, 이데올로기 대립이 빚은 남과 북 분단국가였다는 점 등에서 두 나라는 흡사하다.

명 태조(홍무제, 1328~1398)는 유훈에서, “주변에 정복할 수 없는 16국이 있는데, 첫째가 고려(실은 조선)이고 그 다음이 안남(베트남)”이라고 했다. 나는 동아시아에서 한민족과 베트남 민족을 주체적 실체로서 최고 순위로 꼽은 명 태조의 평가는 탁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관심을 둔 것은 두 나라의 유사점이 아니라 차이점이었다. 우리는 지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있는 반면 베트남은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미국을 차례로 몰아내고 1975년 자주통일국가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

기원전 3~2세기부터 추적되는 베트남 역사의 연대는 우리와 비슷하다. 한 무제의 군현통치를 받았다는 점도 우리와 같다. 다만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거의 1,000년 가까이 받았고 프랑스의 지배를 80년이나 받았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그런데 분명히 베트남은 한국보다 중국에 대해 자주적이었다. 이것은 베트남의 수많은 국왕들이 중국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칭제건원’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베트남 민족성이 한민족의 것보다 더 자주적이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표면상으로 베트남이 한국보다 더 자주적인 외교를 구사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문화적, 지리적 이유 두 가지로 분석한다.

우선 중국은 베트남보다는 한국을 문화적으로 우대했기 때문에 그만큼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저항성이 적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지리적으로 두 나라가 길쭉한 형상이기는 하지만 베트남은 면적이 33만 제곱 킬로로 한반도의 1.5배이고 길이는 1,650킬로로서 한반도 길이의 2배나 된다.

그래서 남베트남의 경우 지리적이나 인종적으로 중국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에 따라 중국인과의 친밀감이 한국에 비해 적었다. 현대사에서는 베트남과 한반도 양자 모두 중국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오늘에 들어 베트남 민족은 적대국이었던 미국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했다. 반면에 우리는 여전히 남측은 친미적이고 북측은 반미적이다. 베트남 역시 통일 이전에는 지금의 우리와 같았다.

1975년에 종료된 베트남의 통일전쟁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분단 모순을 드러냈다. 베트남 전쟁에 이남은 남베트남을, 이북은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이남은 미국 다음의 대규모 지상군을 남베트남에 파견했으며 이북은 북베트남에 공군력을 지원했다. 우리의 분단 전쟁이 베트남으로 옮겨가 연장된 꼴이었다. 이것은 심각한 모순이자 보이지 않는 비극이었다.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과 호치민 통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그 군대인 인민해방군이 조직되면서 남베트남의 반정부 항전은 크게 확산되었다. 1961년 말 인민해방군은 1만 5.000명으로 늘어났는데, 이것은 1959년 규모의 5배였다. 증강된 베트콩군은 놀라운 기동력으로 남베트남의 군사시설, 수송차량, 행정사무소 등을 공격했다. 또한 중부 고원지대에 해방구 기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장차 인구밀도가 높은 저지대를 공략할 때 발판으로 삼을 수가 있었다.

호치민 통로는 베트콩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였다. 이 통로를 따라 인력과 물자가 끊임없이 남부로 보급될 수 있었다. 이것은 민족해방전선의 확대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70년 4월 30일, 미국 닉슨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침공을 발표했다. 이미 미국은 1969년 3월부터 캄보디아를 폭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북베트남군이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경유해 남베트남으로 군대와 보급품을 보내오던 통로, 일명 호치민 통로를 봉쇄하기 위한 조치였다.

문제는 닉슨의 비정상적인 비밀주의에 있었다. 닉슨은 이 폭격을 은폐하기 위해 공군기록 날조를 포함한 온갖 기만적 술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닉슨의 폭격 은폐 사실은 미국 내 반전여론을 폭발시켰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을 ‘또 하나의 군사적 환상’이라며, “지루한 세월과 쓰라린 경험으로 미국 국민의 신뢰가 고갈되었다”고 비난했다.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의 대학생이 반전시위에 가담했다. 대학생들은 3 : 1의 비율로 반전에 찬성했고(1969, 갤럽 조사) 4분의 3이 자기를 스스로 ‘뉴 레프트’라고 간주했다.(1970, <포츈> 지 조사) 전 대학의 80% 이상에서 반전시위가 일어났고 대학생의 반수인 400만 명의 학생과 35만 명의 교수가 동맹휴학에 동참했다.

특히 오하이오 주의 켄트주립대학에는 주 방위군이 투입되어 무모하게 발포, 4명의 사망자(2명 여학생)와 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비화시켰다. 켄트대학 사건 5일 전 닉슨은 버클리, 예일, 스탠퍼드 대학의 방화에 가담한 학생들을 불량배에 비유했는데, 총에 맞아 사망한 여학생의 아버지는 “내 딸은 불량배가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훗날 닉슨은 “켄트대학 사건 뒤 며칠 동안이 내 임기 중 최악의 나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디엔비엔푸의 병사들과 지압, 호치민]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서쪽 30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작은 촌락으로, 불과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라오스와의 접경이 있다. 그러니까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의 전투가 없었다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일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작고 한가로운 마을이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출발점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쟁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또는 피하다가는 망해야 하는 한판승부가 있게 마련이다. 베트남군을 이끌고 있던 호치민과 보구엔지압 장군은 나라의 운명을 디엔비엔푸 전투에 걸기로 결단했다. 어차피 이기기 힘든 상대인 프랑스군이 한 곳에 결집해 있다면 그곳에서 운명을 결판내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랑스군이 디엔비엔푸 기지를 한창 건설 중이던 1953년 겨울, 베트남군에게 이동명령이 내려졌다. 이때부터 베트남군의 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강력한 군사력보다 더욱 위대한 인간의 힘임을 입증해 주는 사례가 되었다.

베트남군은 길도 없는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해 이동했는데, 1일 이동거리만도 80킬로미터에 달했다. 주간에는 프랑스 공군기의 시야를 피하기 위해 30킬로미터를 이동했고 야간에는 공군기의 위험 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50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었다.

마라톤 선수가 비무장으로 42킬로미터를 2시간여에 주파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완전군장을 한 병사들이 길도 없는 산악지형을 하루에 80킬로미터를 이동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군은 베트남군의 디엔비엔푸 요새 공격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을 놀라게 한 건 이뿐이 아니었다. 베트남군의 모든 군수물자, 즉 화포와 식량, 탄약을 운반하는 임무는 베트남 주민들에게 맡겨졌는데, 민간인이자 조국 독립의 열망으로 가득 찬 이 투사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했다.

하노이에서 출발한 이들은 한 사람이 20킬로그램 내외의 식량을 운반했는데, 이들이 디엔비엔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봇짐에 남은 식량은 2킬로그램 내외였다. 나머지는 그들이 행군하는 도중 양식으로 썼으니, 이는 얼핏 보아 터무니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로 계산하지 않았고, 고작 한 병사의 3,4일치 식량을 위해 목숨을 걸고 천리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래도 식량을 지고 걸은 사람들은 나은 편이었다. 말과 소, 산악지형에 어울리도록 개조된 자전거 등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운반도구가 군수물자 운반을 위해 동원되었다. 물론 도로도 없었다. 따라서 이들이 가는 곳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도로를 만들어야 했고, 이 모든 활동이 프랑스 공군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엄폐되어야 했다. 이렇게 하여 1954년 3월 13일 밤, 베트남군이 디엔비엔푸 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은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지 3개월 20일 만이었다.

결과만 보자면 두 달여에 걸친 이 전투에서 베트남군 진영에는 8,000명이 넘는 전사자와 1만 5000여 명의 부상자가 났다. 프랑스군의 피해는 이보다 다소 적어 전사 2,300여 명, 부상 5,100여 명이었다.

하지만 무려 1만 명이 넘는 프랑스군이 포로로 생포되었다. 결국 전투는 사기의 싸움이었고 베트남군은 사기전에서 프랑스를 압도했던 것이다. 베트남군의 투지에 가위 눌린 프랑스군은 마침내 베트남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은 매우 암담하다. 사방에서 혼란스러운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최후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다. 그러다 우리의 무기와 통신장비를 파괴하겠다. 모든 물자 역시 날려버릴 것이다. 탄약 창고는 이미 파괴되었다. 아듀 장군. 프랑스 만세.” (프랑스군 지휘관 가스뜨리가 인도차이나 부사령관 꼬니 소장에게 보낸 최후의 전통문)

이 신화적인 전투와 관련하여 두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먼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처음 공격에 나선 베트남군은 모든 화력을 병력 맨 앞에 배치했는데, 이는 화력이 병력 뒤에서 고지를 향해 공격에 나서는 병력을 지원한다는 기존의 전술과는 달랐다.

이는 화력을 맨 앞에 배치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경사면에 배치된 대포들이 갑자기 밀려나 뒤따라오던 병사들을 덮치기도 했다. 이때 한 병사가 밀려 내려오는 대포의 바퀴에 자신의 몸을 박아 장렬히 산화하면서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이 병사는 지금 전사자 묘지에 안장되어, 그 위에 국가영웅의 칭호가 새겨진 채 참배객들을 맞고 있다.

다음으로 승리자 지압이 훗날 디엔비엔푸를 회상하며 전한 말이다. 지도자 호치민은 지압을 전장에 내보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장군, 전장에서 장군은 어떤 결정이든지 내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소.”

전장의 지휘관에게는 모든 권한이 일임되어야 한다. 정부는 지휘관의 요청대로 최선의 지원만 하면 된다. 이것은 사실 불변의 진리지만 실제로 실천되기는 어렵다. 전장의 지휘관은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되고 정부의 많은 인사들은 간섭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현대전에서는 여기에 무식한 언론까지 한몫을 거든다.

하지만 호치민과 지압은 이 ‘불변의 진리’를 신봉하고 지켰다. 베트민이 디엔비엔푸에서 승리하고, 베트남이 대 프랑스, 대 미국, 대 중국전에서 연이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통치수반과 전장 지휘관 사이의 깊은 신뢰, 이것은 베트남이 가진 특유의 무기였다

[호치민, ‘신화 아닌 인간’으로 보아야 공부가 된다]

호치민은 1969년 9월 3일 79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는 묘하게도 미군의 미라이 촌 양민학살사건이 세상에 공개된 날이었다. 베트남이 전쟁을 끝내고 통일을 이룬 것은 1975년이다 그러니까 호치민은 조국 통일 6년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호치민은 1945년 9월 2일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베트남 독립을 선포했다. 결국 그는 독립 선포 24주년이 되는 날에 숨을 거둔 것이다. 호치민의 사망일을 하루 늦춘 것은 독립기념일과 호치민 서거일의 의미를 둘 다 살리기 위한 묘책이었다.

베트남 인민의 추모 열기는 엄청났고 세계 각국에서도 그에 대한 추모와 찬사를 아낌없이 쏟아냈다. 하노이는 세계 121개국으로부터 2만 2,000통의 조문 메시지를 받았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추모식을 열었으며 우호적인 논평들을 게재했다.

모스크바는 공식성명에서 호치민을 “영웅적인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아들이고, 국제 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뛰어난 지도자이며, 소련의 훌륭한 친구”라고 찬양했다. 제3세계 국가들은 그를 ‘억압 받는 민족들의 옹호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백악관은 논평을 거부했으며, 당시 닉슨 행정부의 고위인사들도 침묵했다. 반면에 서구 언론들이 호치민의 죽음에 나타낸 관심은 특별했다. 특히 반전운동을 지지한 언론들의 찬사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호치민에 대한 전 세계의 찬사를 전하면서, “그와 가장 심하게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람들조차 체구가 작고 허약한 ‘호 아저씨’에 대해 숭배와 존경의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타임>은 표지에 호치민의 얼굴과 함께 고별사를 담았는데, “호치민은 외세에서 해방된 통일 베트남의 건설에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 고통 받는 그의 조국 1,900만 인민은 이런 미래상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한 그의 헌신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정 어린 마음으로 호 아저씨를 이해했다. 남베트남 인민도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민족 지도자 가운데 그만큼 꿋꿋하게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서 버텼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추모했다.

오늘날 호치민은 헌신적인 혁명가이자 노련한 공산주의 요원이라는 평가와 함께 국제정치의 복잡성을 이해하여 현실적으로 행동한 실용주의자라는 평판도 동시에 얻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통일과업을 완수한 다른 베트남 지도자들에게는 이런 면모가 없었다.

베트남의 대미전쟁을 실질적으로 이끈 레두안을 비롯한 후임 지도자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제공하는 한정된 불확실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면이 있었다. 사실 호치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최소 말년 5년 이상은 실권이 거의 없었다.

1932년 호치민은 소련에 가서 스탈린과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을 시작하면서 스탈린은 회의실의 의자 두 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호치민 동지, 여기 의자 두 개가 있소. 하나는 민족주의자들을 위한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자들을 위한 의자요. 동지는 어디에 앉고 싶소?” 호치민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고 한다. “스탈린 동지, 나는 두 의자에 다 앉고 싶습니다.”

이 일화는 호치민이 민족주의자임을 알려준다. 대답은 “둘 다”라고 했지만 질문을 던진 사람이 스탈린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스탈린은 호치민이 국제주의자이기를 요구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호치민이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강했다는 점은 도처에서 실증된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아니 이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는 유교적 캐릭터로서의 호치민을 인식해야 한다.

지도자에게 ‘소박, 소탈’은 하나의 이미지 조작에 불과하다. 이런 이미지 조작은 지도자 주변 사람들이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 호치민의 주변인들은 그의 소박, 소탈을 끝까지 잘 지켜주었다.

호치민에게는 최소 3명의 여자가 있었다. 또한 호치민이 남긴 글들은 하나같이 쉽고 단순하다. 어느 저널리스트가 호치민에게 “당신은 이론이 빈약한 것 아니냐?”고 물었을 때, 호치민은 “이론은 마오가 다 해 주고 있다”고 대답했다.


모양주의의 괴기스러움을 일깨우는 책

옛날 내가 다니던 대학원(국문과 박사과정)에 독일인 유학생이 하나 있었다. 한국 소설을 전공한다는 그에게 나는 일말의 의문을 품었다. 한국어 실력으로 보아 한국 단편소설 하나 읽는 데에만도 족히 2,3일은 걸릴 것 같은데 어떻게 한국 소설을 전공하고 학위 논문까지 쓰겠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논문을 쓰게 되자 그는 전공을 축소했다. 그는 ‘한국 소설에 나타난 음식 연구’를 하겠다고 하더니, 한국 소설 중에 음식이 나오는 지문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벅찼던 모양이었다. 그는 더욱 논문 범위를 좁혔다. 그는 한국 음식 중에 독일 음식과 비슷한 것이 두부라고 했다. 그는 ‘한국 소설에 나타난 두부 연구’로 논문 주제를 최종 결정했다.

나는 그가 논문을 썼는지, 학위는 받았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그가 먼 한국에까지 유학 와서 전공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두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픽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 여학생들에게 의외로 인기가 있었다.

종강 모임에서 술 한 잔이 들어가자 그는 자기가 한국에서 여자들에게 이토록 인기가 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외모도 시원찮은 그의 인기 비결은 두 가지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독일 어느 대학 총장의 아들이었고 유럽인이었다. 나는 한국 여성들의 모양주의(慕洋主義)에 끌끌 혀를 찼던 기억이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도서출판 창, 2015 개정판)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이런 기억을 반추했다. 이 책은 사이드의 이전 역작 『오리엔탈리즘』의 보완, 후속편 성격을 띤다. 참고로 위에 소개한 일화는 이 진지한 책의 주제와 큰 관련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반대로 한국인이 외국 문학을 전공한다는 일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겠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한때 한국 대학입시에서는 영문과, 불문과, 독문과 등의 커트라인이 국문과, 중문과보다 단연 높았던 때가 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로지 서양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현상 역시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한국적 현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문화와 제국주의』는 우리가 선망하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소설들이 얼마나 제국주의의 오리엔탈리즘을 담고 있는지를 말하는 책이다. 여기에는 거의 예외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조셉 콘라드, 러드야드 키플링, 제인 오스틴 등의 소설들이 분석의 대상이며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에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까지 오리엔탈리즘 문학에 포함된다. 이뿐이 아니다. 인터넷에 보면 프랑스 르몽드 지가 선정한 ‘100권의 책’의 책이 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탈 서구 이론의 선구자라고 할 만하다.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우리가 모양주의를 극복하는 데 아주 긴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제국주의적인 문화와 관념이 당대의 문학과 예술작품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논증한다. 저자에게 있어 문화란 순수하고 지고한 것이 전혀 아니다. 문화란 정치적 사회적 이념의 혼합체이다.

19세기~20세기 초의 서구 제국주의는 실로 광대하게 팽창하여 전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제국 형성의 정당화가 어떻게 문화적 상상력과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제국주의적 유산이 오늘날까지도 모든 정신적, 문화적 영역에 어떤 양상으로 침투해 있는지를 말한다. 저자는 제국주의의 문화와 정치가 알게 모르게 긴밀히 협력했으며 이를 통해 제국주의가 단순히 대포와 군인들뿐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상상력까지도 지배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고 있는 모든 동양인에게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특히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식민지 체험에다 그 후과로 빚어진 분단 상황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두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90년대 우리 젊은 지성들에게도 새로운 인식의 혁명을 가져다주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16쪽 참조)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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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코리아타임스가 포털에서 퇴출됐다

동아사이언스·시사저널은 콘텐츠 제휴 신규진입… 퇴출매체 “예고 없이 일방적 제휴 중단” 당혹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7년 11월 04일 토요일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퇴출 매체가 나왔다.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언론사 진입과 퇴출을 심사하는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3일 기존 입점매체 퇴출 및 신규 입점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 결과 8개 매체가 퇴출됐다. 콘텐츠 제휴사(CP) 중에서는 한국일보 계열 매체인 코리아타임스가 퇴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색제휴사 중에서는 민중의소리, 아크로팬, 스토리케이, 브레인박스벤치마크, 팝뉴스 등이 퇴출됐다. 2015년 5월 포털 평가위 출범 선언 후 첫 퇴출사례다.

▲ 2015년 9월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규정<br /> 설명회’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15년 9월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규정
설명회’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기존 입점 매체의 퇴출여부를 결정하는 재평가는 어뷰징, 광고성 기사 등 부정행위로 인한 벌점이 6점 이상이거나 현저한 계약위반 행위가 발생해 평가위원의 3분의 2가 동의할 경우 이뤄진다. 재평가 대상 매체가 포털에서 퇴출되지 않으려면 기준 점수(콘텐츠 제휴 매체 80점, 검색제휴 매체 60점)에 미달되면 안 된다.

경쟁이 치열했던 신규 콘텐츠 제휴매체 심사 결과 동아사이언스, 시사저널이 통과했다. 콘텐츠 제휴 심사에는 네이버 140개, 카카오 183개 매체가 신청한 바 있다. 네이버 뉴스스탠드 제휴의 경우 127개 매체가 신청한 가운데 메트로신문, 시사저널e 등 39개 매체가 통과했다.  

포털 뉴스 제휴방식은 공통적으로 ‘검색제휴’와 ‘콘텐츠 제휴’가 있다. ‘검색제휴’는 포털이 검색 결과에 기사를 노출하지만 대가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콘텐츠 제휴’는 포털이 해당 언론사의 기사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재료를 받게 된다. 네이버에는 PC 메인페이지에 언론사를 선택하는 리스트에 포함되는 뉴스스탠드 전용 제휴도 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검색제휴만 돼도 포털에 기사가 노출되기 때문에 트래픽으로 인한 수익이 늘고 위상이 높아진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포털에 입점하지 못했던 매체가 검색제휴 매체가 되면 매물 단가가 5~6배 높아진다. 여기에 콘텐츠 제휴까지 맺게 되면 전재료를 받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원까지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심사는 복수의 평가위원들이 교차검증하는 방식으로 실시했다. ‘콘텐츠 제휴 진입심사’는 매체당 9명 이상의 위원이 참여해 진행했으며 ‘입점매체 퇴출평가(재평가)’는 30명의 위원 전원이 참여했다. 윤여진 평가위 1소위원장은 “처음으로 실시한 이번 재평가는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해 위원 전원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진입과 퇴출 평가방식은 해당 매체가 일정 기간 동안 포털에 송고한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기사생산량, 자체기사량 등의 ‘정량평가’(30%)와 저널리즘 품질 요소, 윤리적 요소, 수용자 요소 등이 포함된 ‘정성평가’(70%)를 종합해 채점한다.

퇴출된 매체들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특히 콘텐츠 제휴매체였던 코리아타임스의 경우 검색제휴로 강등되지 않고 즉각적으로 퇴출됐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의 동요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 퇴출매체 관계자는 “기사가 갑자기 포털에 뜨지 않는 상황”이라며 “사전에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과발표와 동시에 포털에서 퇴출됐다. 구체적인 사유도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네이버와 포털 다음 로고.
▲ 네이버와 포털 다음 로고.
 

이와 관련 포털 뉴스제휴평가위 관계자는 “재평가 규정에 ‘즉시해지’ 조항이 있고 이를 적용한 것”이라며 “이의제기가 있더라도 재심의는 없다. 개별 매체에서 탈락사유가 궁금할 경우 해당 언론사에서 요청을 하면 위원들의 평가 결과를 모아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범한 2기 뉴스제휴평가위는 1기 때와는 양상이 다소 달라졌다. 1기 때는 사실상 신규 콘텐츠 제휴 매체가 전무했고 퇴출매체도 없어 포털 입점 매체의 기득권을 지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2기에서는 재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평가방식 및 기준을 조정하며 진입과 퇴출이 상대적으로 원활해졌다. 

처음 시행된 입점매체 재평가 제도는 우여곡절 끝에 도입됐다. 지난해 11월 입점된 매체에 대한 재평가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거론되자 시민사회단체 추천위원들이 “기존제휴매체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크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신문협회 측은 재평가에서 탈락한 매체에 대해 즉각 퇴출이 아닌 검색제휴로 강등하는 방식의 단계별 퇴출안을 요구했으나 즉각 퇴출안이 1표 차이(13:12)로 통과됐다.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진입과 퇴출 심사를 공정하게 실시하겠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외부 기구로 언론사가 소속된 단체들이 대거 포함돼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언론학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 7개 단체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됐다. 추가로 대한변호사협회, 한국기자협회, 언론인권센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인터넷신문위원회, 한국소비자연맹,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한국YMCA연합회 등 8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 15개 단체는 각각 2명씩 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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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그리고 소련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의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일본이 항복하기 전 전쟁에 뛰어들려는 소련의 노력, 소련이 참전하기 전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의 노력”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와중에 반토막이 난 게 한국이다. 만약 일본이 조금만 더 일찍 항복했다면, 한반도가 둘로 갈라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정말 간발의 차이다).

 

이 대목에서 전제로 해야 할 게 하나 있다.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이들이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 중 하나가 1944년 말의 일본의 선택이다.

 

사이판이 함락되고, 레이테가 넘어갔으며, 일본으로 향하는 상선들이 침몰해 원유부터 시작해 모든 원자재들이 바다에 수장되던 그 시기. 이때 일본은 소련을 선택했다. 소련을 통한 ‘강화’를 모색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만약 일본이 1944년 말 모스크바를 선택하지 않고 워싱턴에 접근했더라면 미국은 평화계획을 가지고 일본을 환대했을 것이다.”

 

-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일본인 출신 역사학자 이리에 에리카의 발언 中 발췌

 

이리에 에리카 교수의 발언은 곱씹어 볼 만하다. 일본인 출신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고, 국제관계사를 강의한 이리에 교수는 1944년 말 일본의 선택이 무지와 착각이 만들어낸 비극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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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말이라면, 일본에게는 아직 쓸 만한 카드가 있었다. 가미카제 앞에서 미국인들은 일본 본토로의 험난한 여정을 상상해야 했고, 그 상상대로 본토에 가까워질수록 사상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 확인했다. 이때라면, 아직 얄타 회담 전이었기에 전후 세계패권에 대한 삼거두(미국, 영국, 소련)의 논의가 있기 전이다. 아울러 도쿄 대공습이나 원자폭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충분히 일본을 받아들였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은 미국 대신 소련을 택했을까? 여기에는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고집과 하나의 착각, 하나의 망상이 작용했다.

 

고집은 간단하다.

 

‘천황제의 유지’다. 소위 말하는 국체호지(國體護持)다. 천황제를 지키기 위해선 지금 총칼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보다는 소련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착각은 좀 심각하다.

 

당시 일본의 지도자들은 소련에 대해 막연한 ‘동질감’을 느꼈다.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가 ‘이익’이란 걸 잊어버린 유치한 접근이다. 그렇다면, 이 동질감은 어디서 온 걸까? 우선은 ‘왕따’에 대한 경험이다. 소련은 공산국가이기에 건국 이후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로부터 철저히 차별 당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박멸의 대상으로 몰렸다. 이대로 세계가 공산화 될까 걱정하는 서방세계 기득권 세력들의 공포 앞에 소련은 언제나 무시당하고, 탄압받았으며, 외면당했다. 같은 의미로 일본도 근대화에 성공했고,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했지만 동양이란 이유로 차별받았다. 이런 왕따의 동질감에 더해서 체제의 유사성도 소련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일본과 경쟁하던 영국과 미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말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 없이 전체주의에 가까운 나라였다. 소련의 사회주의(스탈린의 독재는)는 일본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망상은 도를 넘어섰다.

 

당시 일본의 전쟁 지도자들은 전쟁 이후의 세계 권력구도를 예상했다. 전쟁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소련과 미국이 대립을 할 것이란 게 당시 일본의 정세판단이었다. 이때 소련이 영국과 미국과 싸우려면, 파트너가 필요한데 그 파트너가 바로 일본이란 소리다. 만약 이런 구상이 실현된다면, 태평양 전쟁 기간 내내 일본이 꿈꿨던 ‘대동아 공영권’을 소련으로부터 인정받고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패전의 위기 앞에서도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란 망상의 끈을 놓지 않았던 거다.

 

그 결과는 일본에게 ‘지옥’으로 돌아왔다. 국제정세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만 있었어도, 일본은 핵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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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12일

 

1945년 4월 12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망한다. 곧바로 트루먼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그리고 첫 각료회의가 끝나고, 헨리 스팀슨(Henry Lewis Stimson) 육군 장관이 트루먼과 독대를 하게 된다(모든 각료가 다 나간 뒤에).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보고했다.

 

“우리는 지금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1942년 8월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 수 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갈아 넣은 이 프로젝트는 기밀 유지를 위해 극소수의 인원만이 프로젝트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의 실질적인 목적은 모른 채 할당된 과업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치인들과 전쟁 지도자들 중에서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던 이는 루즈벨트 대통령과 헨리 스팀슨뿐이었다.

 

아이러니한 게 트루먼도 모르고 있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전모를 스탈린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스파이를 동원해 맨해튼 프로젝트 초기부터 이를 감시했고, 7월 16일 첫 실험 날짜도 스파이로 활동하던 물리학자 휴크(Klaus Fuchs)를 통해 통보받을 정도였다.

 

1945년 4월 25일 스팀슨은 트루먼에게 원자폭탄에 대한 정식 보고서를 제출한다.

 

1. 4개월 정도 후에 미국은 아마도 전대미문의 전율스러운 병기를 완성할 것이다.

 

2. 미국은 그 완성을 위해 영국과 긴밀히 협조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이 제조와 사용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수년간 다른 나라는 이러한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3. 그러나 미국이 영구히 이러한 지위를 독점할 수 없는 것도 확실하다. 앞으로 다른 나라도 짧은 기간 내에 원자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4. 장래에 이러한 병기가 비밀리에 제조되어, 돌연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사용될지도 모른다. 이 병기를 통해 약소국이 불과 며칠 내에 강대국을 정복할 수도 있다.

 

5. 기술의 진보에 부응하지 않는 현재의 빈약한 도덕적 가치를 볼 때, 세계는 이러한 병기에 의한 멸망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근대 문명은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다.

 

6. 우리 지도계층이 이 새로운 병기의 힘에 대한 인식 없이 국제평화기구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것이다. 종래 생각되어 온 어떠한 관리제도도 이 위협을 관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특정한 국가에 있어서 또는 국제적으로 이 병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정도의 철저한 감시권 및 국내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7. 이 병기를 다른 국가들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 또는 나눌 경우 어떤 조건에 의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대외관계의 주요쟁점이 될 것이다. 미국이 이 병기를 제조했다는 것은, 그로 인해 문명이 감당해야 할 모든 비극적 상황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8. 반면, 원자력의 정상적인 사용방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세계평화와 우리의 문명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된다.

 

9.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 행정과 입법 양 부문에 있어서, 필요한 조치의 권고가 가능한 권한을 갖는 특별위원회의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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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슨의 보고서를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국제정치 역학구도와 핵무기 통제, 핵무기를 통한 국제질서에 관한 뼈대가 1945년에 나온 보고서의 내용에 다 담겨 있다.

 

이제 칼자루는 트루먼에게 넘겨졌다. 트루먼은 당장 두 가지를 결정해야 했다.

 

첫째,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둘째, 사용한다면, 어떤 나라에 떨어뜨릴 것인가?

 

전쟁은 거의 끝이 났다. 스팀슨의 보고서처럼, 원자폭탄은 전대미문의 전율스런 폭탄이다. 이걸 사용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앞으로 전개될까? 그리고 떨어뜨린다면, 어디에 떨어뜨려야 할까? 독일과 일본 둘 중 하나에 떨어뜨려야 한다면 어디일까?

 

그러나 트루먼의 고민은 곧 하나로 줄어들게 된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며칠 뒤인 5월 7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항복하게 된다.

 

그리고 운명의 1945년 5월 8일 트루먼은 대일 성명을 발표한다.

 

(상략)...일본의 지도자들과 일본군이 전쟁을 계속하는 한. 우리의 공격은 더욱 강력해지고 일본의 모든 것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중략)...우리들의 공격은 일본의 육해군이 무조건 항복하여 무기를 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군대의 무조건 항복은 일본 국민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전쟁의 종결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해를 가져온 군부지도자의 세력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한다(하략).”

 

일본은 반응이 없었다. 아니, 이미 반응을 하고 있었다. 트루먼이 대일 성명을 발표하던 그때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오키나와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945년 4월 1일 날 시작해 81일간 이어진 이 전투는 이오지마 전투에 비견 될 정도로 처참했다.

 

물론, 일본군 투항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었지만(약 1만 5천명), 지옥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 한 번의 전투로 미군 사망자만 2만 명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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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은 오키나와 전투가 한참인 5월 25일 일본본토(규슈) 진공작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바로 ‘올림픽 작전’이다. 문제는 이 작전의 예상 인명 피해였다. 오키나와에 투입된 병력의 35%가 피해를 입은 것을 감안한다면, 본토 공격에 76만 6천명이 투입되면 이 중 26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예상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보고는 육군장관 스팀슨에 의해 무시됐다.

 

“만약 일본군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미군의 사상자 숫자는 1백만 명을 넘을 수도 있다.”

 

비관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아니,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예상일 수 있다. 상황이 비관적으로 흐르자 미군 내에서도 전략의 방향성에 대해(그러면서 자군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기 위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군의 경우는 섬나라인 일본의 특징을 고려해 지금처럼 해상봉쇄와 공중폭격으로 일본을 고사시키는 전략을 주장했다. 반면, 육군의 경우는 일본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기에 본토 진공을 주장했다.

 

서로 저마다의 주장을 내세울 때 트루먼은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올림픽 작전을 승인하기로 결정한다. 1945년 11월 1일 미군은 일본 규슈로 상륙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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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미국은 이란의 주적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미국은 이란의 주적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11/03 [10:0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2017년 11월 2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미국이 이란의 주적"이라고 연설했다. <사진-인터넷>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미국이 이란의 주적”이며 “국제사회가 합의한 핵 협정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메네이 지도자는 2일(현지시간) TV로 중계된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미국 대통령의 우리 국민에 대한 멍청한 발언들은 미국이 이란에 갖고 있는 적대감의 깊이를 보여준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들이 핵 합의를 가지고 괴롭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인들이 핵 협상 결과를 훼손하기 위해 온갖 부정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관영 ‘TV’에 방송된 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미사일을 개발했고, 개발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개발할 것이라며, 이는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앞서 미국 하원은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국제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주시보 후원확대 운동에 동참 부탁드립니다.

기자는 퍽 늘었는데 점점 정기후원이 줄어들어 후원히 절실한 상황입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원격려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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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국정원 뇌물’ 안봉근·이재만 구속

[속보] ‘국정원 뇌물’ 안봉근·이재만 구속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17-11-03 00:35:26
수정 2017-11-03 0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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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이 모두 구속됐다.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이 모두 구속됐다.ⓒ민중의소리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구속됐다.

법원은 3일 오전 검찰이 청구한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석조 부장검사)는 전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국고손실 혐의로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2013년부터 작년 7월께까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 국정원 고위간부들로부터 매월 약 1억원씩 총 40억원 가랴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안 전 비서관의 경우 이 전 실장 등으로부터 1천만원 이상의 돈을 별도로 수수한 혐의도 있다.

이들은 청와대 인근 장소에서 이 전 실장 등으로부터 5만원권 지폐 1억여원이 든 가방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이 전 비서관의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두 사람의 구속을 기점으로 박 전 대통령의 추가 뇌물 혐의 및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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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변심에 조선일보 “박근혜 정권엔 장세동 없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박근혜 비자금 언급하기 꺼려하는 보수 신문… 8~10일 김장겸 MBC 사장 해임되나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11월 0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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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진객 개리가 10년 만에 돌아왔다

겨울 진객 개리가 10년 만에 돌아왔다

윤순영 2017. 11. 02
조회수 2106 추천수 1
 
김포대교와 일산대교 사이 120마리 확인
거위 원종으로 멸종위기종…몽골이 삶터
 
1-크기변환_YSY_6583_00001 (1).jpg»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개리.
 
거위의 원종으로 겨울 철새인 개리가 10년 만에 다시 귀한 모습을 드러냈다. 개리는 2012년 5월 31일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2-크기변환_YSY_6308_00001.jpg» 물가에서 휴식을 하는 개리.
 
개리는 주로 일산대교와 오두산 전망대 사이 사구에서 겨울을 났다. 한강, 임진강, 염하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기수역인 오두산 전망대 앞 갯벌은 특히 개리의 주요 월동지였다. 이곳의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과 부드러운 모래층, 갯벌이 개리에게 적합한 서식환경을 제공했다.
 
3-크기변환_YSY_6612_00001_01.jpg» 습한 갯벌을 좋아하고 얕은 물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개리가 2006년부터 숫자가 줄어들고 2007년 이후에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오두산 전망대 갯벌이 줄어들고 변형되면서 먹이터가 망가진 탓이다.
 
4-크기변환_DSC_0677_00001.jpg» 한강하구의 갯벌에 개리가 큰기러기와 함께 뒤 석여 있다.
 
뿐만 아니라 2월이면 한강 하구에서 월동하던 개리가 공릉천으로 이동해 북상할 때까지 서식했지만 이곳에서도 현재는 개리를 볼 수가 없다. 한강 하구 산남습지와 대동리습지 일부에 300여 마리가 잠시 머물고 갈 뿐이었다.
한강 개발로 한강의 유속이 달라지면서 갯벌이 줄어들고 굳음 현상으로 갈대가 늘어났다. 세섬매자기, 줄풀 뿌리 같이 개리가 즐겨먹는 식물의 뿌리를 더는 보기 힘들어졌다.
 
5-크기변환_DSC_1402_00001.jpg» 갯벌 갈대 숲에 기러기와 함께 있는 목이 밝은 개리의 모습이 보인다.
 
진객이 다시 찾아온 것은 2016년부터다. 김포대교와 일산대교 사이에서 월동하는 것이 눈에 띄었고 올해는 120마리가 관찰되었다. 생태가 바뀌어 개리가 겨울을 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된 덕으로 보인다.
 
6-크기변환_DSC_4335_00001.jpg» 농경지에 날아든 개리 좌측에 쇠기러기도 함께 한다.
 
개리는 큰기러기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조금 더 크다. 개리의 암수는 깃털색이 똑같아 구분하기 어렵지만 암컷보다 수컷이 좀 더 크다. 날개길이 41~48cm, 꽁지길이 11~17cm이다. 겨울 철새로 10월에서 이듬해 4월 사이에 볼 수 있다.
 
7-크기변환_DSC_4361_00001_01.jpg» 개리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
 
옆머리와 뒷머리·머리꼭대기·뒷이마·뒷목은 붉은 갈색이고, 턱밑은 연한 적갈색, 목·뺨·옆 목은 흰색이다. 미성숙한 개체는 기부에 흰 띠가 없다. 가슴은 연한 황갈색, 배는 흰색, 날개는 어두운 회갈색이다.
 
8-크기변환_DSC_4390_00001.jpg» 기러기들과 함께 개리 가족이 먹이를 먹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5만여 마리의 개리 가운데 80%가 몽골에서 서식하며 번식한다. 특히 러시아, 중국과 접해 있는 몽골 동부 다구르(Daguur) 아이막은 천혜의 개리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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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청와대와 마피아, 대체 무엇이 다른가

[김창룡 칼럼] 국정원으로부터 뇌물 상납 받은 박근혜 청와대 비서관과 수석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cykim0405@hanmail.net  2017년 11월 02일 목요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씨가 파면당하고 구속수사를 받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목격하는 가운데 새롭게 터져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 비리 심각성이 예사롭지않다.

나날이 드러나는 또 다른 불법행태는 왜 국민이 촛불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국민을 상대로 리스트를 만들어 분리하고 관리대상으로 삼아 일감을 몰아주거나 아예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주요 공기업에 권력층 자녀들을 부정입사 시키는 행태는 관행처럼 지속됐다. 

권력의 무능과 불법행태를 감시, 견제해야 할 KBS·MBC 공영방송은 물론 SBS 같은 민영방송조차 완벽하게 장악하여 정권홍보용 방송으로 전락시켰다. 국민은 있었으나 바보취급 당했다. 언론은 있었으나 저널리즘은 실종됐다. 부도덕한 권력은 방송사 앵커나 주요 임원을 청와대 홍보수석, 대변인, 국회의원 등의 자리를 내주며 권언유착의 과거로 회귀했다. 

 

▲ 2014년 2월6일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4년 2월6일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 놀라운 것은 국가 공조직인 국정원이 여론조작에 불법적으로 동원된 것도 부족해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 정무수석, 장관 등에게 수십 억 원의 뇌물을 상납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거대 마피아 조직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불법으로 마구 사용했던 정황이 검찰 수사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국정원의 청와대 상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국정원이 청와대의 비공개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대납한 증거를 확보했으며,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1억 원의 특활비를 받아온 것 외에 별도의 ‘검은 돈’을 받아 챙긴 혐의도 조사 중이라고 한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윗선’ 보고 없이 정무수석 등의 딴주머니를 챙겨준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국민 세금으로 서로 돈놓고 돈먹기식의 야바위짓을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무능한 대통령이 국정을 외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역사의 사례에 불과하다. 국민은 대통령 측근들이 청와대 안에서 이런 이율배반적인 매국행위를 하리라고는 상상조차하지 못했다.  

 

 

▲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려온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부터),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 연합뉴스
▲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려온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부터),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 연합뉴스
 
이 문제에선 이명박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망신주기 작전은 검찰과 국정원, 언론이 합작한 작품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논두렁 시계 보도’는 2009년 5월13일 SBS가 단독 리포트로 내보낸 뉴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준 명품 시계를 받아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지난 2015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논두렁 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해 국정원의 정치공작 의혹에 불을 붙였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명박 정권 때 국정원 직원 4명이 ‘논두렁 보도’ 직전인 2009년 4월 하금열 당시 사장과 접촉해 노 전 대통령 수사 보도를 적극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하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2013년 대통령실장을 지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을 낙하산 심복으로 앉히고 민영방송 사장 등 주요 간부는 대통령 실장이나 홍보수석 등으로 요직에 기용하면서 언론을 통제하고 요리했다. 조중동에게는 요구대로 모두 방송사를 허가했고 의무전송을 통해 특혜를 부여했다. 

언론 감시가 사라진 곳에 이명박 정부의 부정과 비리는 악취를 풍겼지만 언론도 한 축이 돼 실리를 챙겼다. 국가 공조직이 중립성과 합법성을 망각하고 선거에 직접 개입하여 특정후보를 밀어주기 하거나 낙마에 앞장서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했다. 관제데모를 사주하고 여론몰이로 상대를 무조건 ‘빨갱이’ ‘종북좌파’로 낙인찍어 사회매장을 시도했다. 

이명박이 사악했다면 박근혜는 무능했다.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은 자신의 이익은 조금도 손해보지 않는 치밀함으로 도곡동 땅과 BBK, 다스로 연결되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자신을 놀랍게도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이명박은 이권대통령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 2012년 5월17일 이명박 대통령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2012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5월17일 이명박 대통령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2012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은 무능한 박근혜를 국정원을 총동원하여 공을 세워줌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았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잘풀렸지만 박근혜가 중도 하차하며 이렇게 대통령직을 파면당하고 수사대상까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무슨 보수, 진보 이념문제가 끼어들 틈이 있나. 오직 정치적 이익과 집권야욕에 따른 이합집산이 있을 뿐이다. 정의나 법은 물론 민주주의 정치 최소한의 기본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악하고 무능했던 정권의 부정, 비리 백태가 앞으로 어떻게 더 나올지 망연자실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전 정권에서 자행된 더럽고도 지저분한 역사에 대해 설거지를 해야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지난 정권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조중동과 종편 방송사들이 노골적으로 반발하며 ‘정치보복’과 ‘이제 그만’을 소리치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워낙 높은 문 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에 밀려 저항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은 틈만 보이면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은 또 다시 손에 손잡고 지난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이다. 

이제 국민은 안다. 국가란 어떻게 해야 하며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지. 언론 또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학습효과를 통해 배웠다.

조급해서도 안되고 이념논란, 정치보복 프레임에 휘말려서도 안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은 9년간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대한민국호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이것만 제대로 한다면 문 대통령은 성공한 지도자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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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교육적폐 청산!” 단식농성 돌입

중집 전원은 삭발… 정부에 법외노조 철회와 성과급·교원평가제 폐지 촉구
▲ 전교조가 1일 청와대 앞에서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교원평가제 폐지’ 등 교육적폐 청산을 요구하며 중앙집행위원 25명이 집단 삭발했다.

“악덕사장 몰아냈고 새로운 CEO가 왔다. 새로운 CEO는 말한다. ‘기다려 달라. 열심히 일하면 권리를 보장해주겠다’고. 그 새로운 사장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교원평가 폐지, 교육적폐 청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전교조는 “촛불광장에서 적폐청산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새로운 정권 출범 후에도 교육적폐는 변한 것이 없다”며 교육적폐 청산을 위해 중앙집행위원 25명 전원이 삭발한 데 이어 조창익 위원장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전교조는 지난달 18일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 폐지, 교원평가 폐지’를 요구하며 정부에게 10월 말까지 집중교섭을 진행하자고 교육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에게 각각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정부는 10월 마지막 날까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은 회견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 문제로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것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를 수십 차례 만났지만,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에 대해 ‘더 기다려라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박근혜 정권이 했던 ‘기다려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하곤 “문재인 정부가 결단해 법외노조를 철회하고, 성과급·교원평가제로 황폐해지고 있는 교단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역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또다시 노동자들이 삭발하고 농성을 해야 하는 상황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면서 “지난 5월과 9월 한국을 방문한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사무총장과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도 한국의 노동탄압에 대해 분노하며 교사와 공무원의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며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촉구했다.

전교조는 중앙집행위원 25명의 집단삭발식에 이어 발표한 회견문에서 “문재인 정부가 교육적폐 청산 의지가 없는 것이 확인된 이상 노동조합으로서 사용자인 정부에 대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성과급-교원평가제 등 경쟁주의 교원정책을 폐지하고 협력적인 교육활동을 만들기 위해 교육개혁에 앞장서는 교사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외노조 철회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53일간의 정부 서울청사 앞 철야농성과 3보1배, 3천 배 투쟁 등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교육적폐는 해소되지 않았다”며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오는 6~8일 ‘교원평가 업무불참’에 관한 의견을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하고, 위원장 단식에 이어 9일부터는 중앙집행위원들로 인원을 확대해 단식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24일엔 연가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계획하고 있으며 12월까지 법외노조 철회와 성과급-교원평가 폐지를 위한 대정부 대국회 투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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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위해 징병을 거부하고 난민이 됐다

[인터뷰]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2017.11.02 09:05:51
 

 

 

 

20대 대한민국 남성들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군대'다. 병역은 '국방의 의무'라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꽃 같은 청춘 2년을 고스란히 저당 잡히는 일이다. 지금도 3일에 한 번 꼴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니, 자칫 살아 돌아오는 게 힘들 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상명하복'의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서 개인의 신념과 의지는 철저히 무시된다. 2년을 개인의 자유 의지와 양심에 어긋나는 삶을 견뎌야 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간다? 철저한 '신화'다. 1980년대 입영 대상자 중 현역 판정률은 절반이 안 됐다. 그런데 지금은 90% 정도가 현역 판정을 받는다. '60만 대군'의 머릿수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징병제는 어쩔 수 없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에 맞서 인해전술을 편다는 게 말이 되나?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 서울지부 안악희 씨가 지적한 '징병제의 모순'이다. 이 모임은 병역거부자의 국외 난민 신청을 지원하는 등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에 대한 상담, 지원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개인들간의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로 운영되는 이 모임은 또 '군대'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안 씨는 '징병제'의 대안으로 '모병제'를 주장한다. 그는 "군대라는 조직은 축소되어야 하며, 군인은 자유 의지에 따라 '제복 입은 시민'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병제'의 부작용과 문제도 있겠지만,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는 징병제가 갖는 폐해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안 씨는 시민모임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평화 운동'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군필자를 1등 시민으로, 미필자인 성소수자와 장애인,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다. 따라서 JPD의 활동은 반(反) 차별 평등 운동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분쟁지역 소년병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안 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읽기도 전에 미리 '반대'부터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군대'는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성역'이다. '성역'은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부패와 비리가 생긴다.  

다음은 지난 10월 24일 있었던 안악희 씨와 인터뷰 전문이다.
 

▲ 지난 10월 28일 일본 릿쿄대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 시민단체 '베헤이렌'의 도움으로 미군 항공모함 '인트레피트'에서 탈영한 병사 크레이그 앤더슨 씨의 강연이 열렸다. 징병제폐지를위한시민모임 활동가 안악희 씨(군필자)를 비롯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강길모 씨(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박정경수 씨(병역거부자), 알바노조 대변인 최기원 씨(병역거부자), 알바노조 전 위원장 박정훈 씨(병역거부자), 학생 활동가 박유호 씨(병역거부자)가 참여했다. ⓒ안악희


병역을 거부하고 난민이 되다  

프레시안 : 징병제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병역 의무를 강제로 부여하는 제도로 대한민국 군대는 징병제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단체를 소개한다면? 

안악희 : JPD는 2010~11년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학생들이 징병제에 의문을 가지면서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1960년대 일본의 '베헤이렌(ベ平連,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베헤이렌은 일본 요코스카 미군기지에서 탈영한 병사들의 망명을 도왔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군대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군대, 특히 징병제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한다'는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일 관계', '국가와 군'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2012~13년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 재집권 이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안보법제 제·개정을 추진하는 등 격렬한 논쟁이 일었다. '평화헌법 9조'가 없어지고 군대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생겼다. 일본의 자위권 문제는 동아시아 평화와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예다 씨가 병역거부자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JPD는 2014년 이 씨와 일본의 진보 주간지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 아마미야 카린 씨와 함께 도쿄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한 일본의 역할 및 징병제 문제점 등을 알렸다. JPD는 이후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 무엇보다 징병제가 시행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이들을 돕고 있다.  

2001년 말 한국 사회 최초로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 씨 이후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이 병역거부자를 후원하고 있지만, 이예다 씨 사례가 알려진 뒤로는 JPD에 한 달에 두세 건 정도 상담 요청이 온다. 이 씨에 앞서 2011년 성소수자로 캐나다에 망명한 김경환 씨를 비롯해 호주와 독일 등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은 총 7명이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가 지난 8월 병역거부자의 난민 신청을 기사화하면서 "병무청 관계자는 "군대 안 가려고 난민 신청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국적 문제는 법무부 소관 사항"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관 부처의 현실 인식이 너무 동떨어진 것 아닌가.

안악희 : 입영대상자 중 상당수가 여러 이유로 입영이 취소되거나 연기된다. 병역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지난해 12월 병무청 홈페이지에 2015년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병역의무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의 명단이 게시됐다. 이에 따르면, 237명 기피자 중 현역입영 기피가 166명(70.0%)으로 가장 많았고, △사회복무(공익)요원 소집 기피 42명(17.7%) △국외불법체류 25명(10.6%) △병역판정검사 기피 4명(1.7%) 순이었다. 

이에 대해 병역 거부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종교단체 '여호와의증인'은 병역을 거부한 채 기소 상태로 수감생활을 기다리는 이들도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아직 수감되지 않았기 때문에, 면제 판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명단에 올랐다는 말이다. 병역 기피자 중 이들을 제외한 30% 정도는 이유를 알 수 없어 행방불명 상태나 다름없다. 

프레시안 : 국민의 의무로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징병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안악희 : 한국 군대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수감생활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외출과 외박이 없다는 것 정도? 드라마를 본 주변 예비역들이 "군생활은 외출·외박이 있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라고 한다.(웃음) 

입영 대상자들도 한국의 병역이 강제적이고 강압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10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막연하게나마 두려움을 갖고 있다. 비정상 아닌가? 

병역거부자는 1년 6개월 정도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데, 평생을 전과자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생활을 한 사람은 군대보다 감옥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감생활을 한 사람은 감옥보다 군대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군생활보다 수감생활이 훨씬 힘들다.  
 

▲ 한국 병역거부자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예다 씨(왼쪽)와 '베헤이렌' 내부 반전미군 망명 지원 비밀조직 전담 활동가 다카하시 다케토모 씨(가운데), 그리고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안악희 씨. ⓒ안악희


"'60만 대군'은 숫자에 불과…징병제 유지를 바라는 세력 있다"

프레시안 : 징병제 문제는 평등 문제와 맞불려 있다. 일반적으로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로 인해 병역거부자들을 사회적 불평등 조장 세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악희 :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는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이 유럽 전제군주들의 동맹군에게 밀리자, 국민공회가 18~25세의 모든 미혼 남성을 징집한 데서 시작됐다. 1794년 프랑스군 전체 병력은 26만 명에서 74만9000명으로 크게 증가했고, 병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혁명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는 '징병제 신화' 구축의 토대가 됐다. 

(1973년 프랑스 서부 방데지방에서는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농민은 구체제(앙시앵레짐) 지지자도, 왕당파도 아니었다. 자유 의지와 무관하게 군에 입대해 자유까지 억압당하며 고향을 떠나는 것이 싫었던 이들이다. 이후 브르타뉴, 노르망디, 앙주 등에서도 농민 봉기가 발생했지만, 자코뱅의 '공포 정치' 영향으로 이들 모두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편집자) 

하지만 한국의 징병제는 6.25 한국전쟁 발발 1년 뒤인 1951년, 병력을 급조하기 위해 시행됐다. 프랑스 혁명군과 같은 국민적 공감대도 없었으며, 참정권 확대 및 조세부담의 형평성과 같은 사회제도의 변화를 이끌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65년 이상 별다른 저항 없이 이어져 왔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징병제는 군사독재 시절 실시된 구체제의 일부인데,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징병제를 원하는 세력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그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안악희 : 군산복합체나 전쟁 관련 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징병제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징병제는 이익 집단을 지원하는 시스템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 전원이 국방을 담당한다는 '국민개병(國民皆兵)'의 의미에서도 벗어났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북한이 있는 한, 현 수준의 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안악희 :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식은 군사력 외에도 정치·경제·외교 등 상호작용 속에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군은 병력이라는 재래식 전력만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핵보유국인 북한을 상대로 실효성이 있을까? 전쟁 트라우마 때문에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양적인 물리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60만 대군'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일본 하급 장교의 수기인데,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야마모토 시치헤 지음, 최용우 옮김, 글항아리 펴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 군대는 자전하고 있다. 어떤 목적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대로 하던 대로 자전하고 있다. 이것은 이상하다.'  

한국의 예비역 역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보기에도 한국의 군대는 비합리적인 조직이다. 다만, 20대 초반 강제 징집돼 군에서 쏟은 시간과 에너지를 부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거나 작은 것에서라도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군대 축구'가 그런 의미일 수 있다.(웃음)  

"군, '제복 입은 시민'으로 존재해야 한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및 병역거부자 형사처벌 개선'을 공약했다. 군에 대한 맹신과 징병제 신화를 해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가능할까? 보수 야당은 11월 초로 예정된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과거 논문을 쟁점화할 계획이다. 

안악희 :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1심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선고가 늘고 있다. 2004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 무죄판결 총 52건 중 35건이 올해 집중됐다.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체복무제 공약은 이행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프레시안 : 군에 대한 인식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공포다. 얼마 전 강원도 철원 군부대 사격장 사망 사고도 있었지만, 전시(戰時)가 아니어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상당하다. 폐쇄적인 조직의 특성상 사건·사고가 축소되고 은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개죽음'이라고 표현하겠는가. 원인을 알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안악희 :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現 기무사) 민간인 사찰 사건'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과 1991년 전투경찰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와중에 시위 진압을 거부하고 탈영한 박석진 일경 모두 병역거부에 속한다. 당시만 해도 군을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있어, '양심선언'이라는 표현을 썼다. 군에 대한 맹신과 징병제 신화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징병제와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늦어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 '87년 민주화' 이후 공론화 돼야 했었다.  
 

▲ 대전대 군사학과 1학년생들이 지난 8월 세종시 육군 32사단에서 입학해 훈련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징병제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악희 : '모병제'라고 본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은 축소되어야 하며, 군인은 자유 의지에 따라 '제복 입은 시민'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징병제는 국가의 이념에 반하는 제도다. 사실상 인식 구속 상태로, 군법의 적용을 받는 특수한 신분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법체계와도 어긋난다. 

물론 모병제에 대한 반론도 있다. '모병제를 하면, 군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럼, '군대에 가지 않는 양심도 있겠지만 군대에 가고 싶은 양심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응수한다. 이와 함께 모병제에 앞서 대체복무제가 먼저 도입되어야 하며, 모병제와 대체복무제는 병행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모병제를 시행하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군대 간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만 해도 유색 인종 또는 경제적 약자들이 주로 자원입대한다. 

안악희 :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상대적 격차 문제는 징병제·모병제 논란과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이유로 군에 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사회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국방부는 '60만 대군'이라는 비정상적인 군을 유지하기 위해 현역 판정률을 90%까지 끌어올렸다. 1980년대만 해도 입영 대상자 중 현역 판정률은 절반 수준이었다. 그런데 30년 사이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의 신체 조건이 월등해졌다? 말이 안 된다. 일차적으로는 현역 판정률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 글 중 '여성도 군에 보내자'라는 청원이 높은 호응을 받았다. 군대라는 조직, 징병제 자체에 대한 의심보다는 '남자만 군에 간다'는 억울함에 '여자도 군에 가 봐라'라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악희 : 그런 분풀이는 사실 가정폭력 발생 원인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직장 생활 중 얻은 화를 해소하지 못한 채 귀가해 아내와 자식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식이다. 직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노조를 조직해야 하고, 공동체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지역 조합을 만들어야 하며, 정치인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유권자를 조직해야 한다.군 복무에 부당함을 느꼈다면, 예비역들도 이제는 재발 방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해야 한다. 어떤 문제의 해결은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내부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징병제 폐지 및 병역거부는 평등·평화 운동이다" 

프레시안 : 가정과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군대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안악희 : 권인숙 명지대 교수(現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가 <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 펴냄)라는 책에서 말한 대로, '한국에서 군대와 가부장제는 상호보완적'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60만 대군'이라는 숫자만큼 예비역 또한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런데도 군대가 우리 생활 전반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선, 군에 대한 맹신부터 사라져야 한다. 국방부도 여러 정부 부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특히 '비리 온상'이나 다름없는 국방부를 해부하는 일 또한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40조 원이 넘는 세금과 청년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조직인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는 중세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웃음) 

프레시안 :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안악희 : 징병제 폐지 및 병역거부는 평등과 평화 운동이다. 

우리 사회는 군필자를 1등 시민으로, 미필자인 성소수자와 장애인,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다. 따라서 JPD의 활동은 반(反) 차별 평등 운동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분쟁지역 소년병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총을 겨누지 마라" "살인을 멈춰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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