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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장관 ‘진보’ 김상곤, 법무장관 ‘탈검찰’ 안경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6/12 07:40
  • 수정일
    2017/06/1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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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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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장차관 인사]교육장관 ‘진보’ 김상곤, 법무장관 ‘탈검찰’ 안경환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ㆍ5개 부처 장관 내정…국방 송영무, 환경 김은경, 노동 조대엽
ㆍ문 대통령 개혁 의지 반영…송 ‘위장전입’· 조 ‘음주운전’ 공개

교육 김상곤, 법무 안경환, 국방 송영무, 환경 김은경, 노동 조대엽

교육 김상곤, 법무 안경환, 국방 송영무, 환경 김은경, 노동 조대엽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국방부 장관에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 법무부 장관에 안경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를 내정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환경부 장관에는 김은경 지속가능성센터 ‘지우’ 대표가 내정됐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장관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18개 부처 장관 중 11명의 장관 인선이 이뤄졌다. 

발표된 장관 내정자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이면서 개혁 성향이 강하다. 특히 교육·검찰·국방 분야 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출신인 김상곤 내정자는 2009년 진보적 인사로는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 교육감이 되어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진보적 교육정책을 실행한 인물이다. 박 대변인은 김 내정자에 대해 “교육개혁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안경환 내정자는 임명될 경우 1950년 김준연 전 법무장관 이후 처음으로 비검찰·비고시 출신 법무장관이 된다. 비검찰·비고시 출신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강력한 검찰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변인은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검찰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할 적임자”라며 “문 대통령의 법무부 탈(脫)검찰화 약속 이행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송영무 내정자는 2004년 윤광웅 전 장관 이후 13년 만에 첫 비육사 출신 국방장관이 된다. 박 대변인은 “국방전략과 안보 현안에 대한 전문성과 업무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군 조직과 국방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송 내정자와 조대엽 내정자에 대해 각각 주민등록법 위반, 음주운전 사실이 있다고 먼저 공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 내정자는 음주운전 문제가 있었지만 사고로 이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고, 송 내정자는 주민등록법 위반이 확인됐는데 군인 특성상 발생한 문제로 파악돼 청문회에서 다뤄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국세청장에 한승희 서울지방국세청장, 환경부 차관에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노동부 차관에 이성기 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 국사편찬위원장에 조광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 등 4명의 차관급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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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112305005&code=910203#csidxc879c59803b2f998c7ea27c423080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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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들에 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위해 새로운 투쟁 시작”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가장 큰 적폐는 국보법·종북몰이”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7-06-10 17:30:10
수정 2017-06-10 2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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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함세웅 신부가 대회사를 하고 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함세웅 신부가 대회사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해 10일 열린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실현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이날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정부가 주최한 '제30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이어 열렸다. 추모제는 1990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다. 이날 추모제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이 시민들과 함께 참여했다.

올해 추모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퇴진시킨 '촛불혁명 원년'에 열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부여된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을 완성해내자"고 결의했다.

국가폭력 희생자 백남기 농민도 추모 대상 포함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은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생사를 오가다가 지난해 9월 25일 운명한 백남기 농민도 올해부터 추모 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

백남기 농민 외에도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한광호 열사와 올해 3월 운명한 서경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상임의장 등 모두 16명이 추모 대상에 새로 포함됐다. 추모 대상은 총 650여명에 달한다. 특히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이한열 열사와 '박근혜 퇴진' 촛불을 키운 백남기 농민은 모두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와 관련 범국민추모위원회 명예대회장인 함세웅 신부는 대회사에서 "정치권력이 폭력을 행사해 타살을 당한 분들이 계신다"며 "가정과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우리는 타살 당한 분들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문화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스위스의 유명 신학자인 한스 큉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의할 때 '30대 청년으로서 그 시대의 정치·사회·문화, 특히 종교의 모순에 항거하면서 타살 당했다'는 부분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함 신부는 또 "후손인 저희들이 다른 행업을 통해서, 그분들의 행업을 계승하면서 다시 그분들의 삶을 부활시키고 있다. 6월 항쟁 30주년이 된 올해는 1987년의 모든 희생자들과 아픈 삶을 다시 부활시킨 한 해라고 한다"며 "올해 민족민주통일 열사들에 대한 추모는 이런 의미에서 부활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하진 않지만 돌아가신 노동자· 농민 등 많은 분들의 뜻을 이어 받으면서 촛불을 통해 불의한 정권, 폭압 정권을 몰아내고 국민의 정권을 이룩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촛불 시민이 만든 정부'라고 겸허하게 고백하고 있다"며 "저희들이 더 힘을 모아 돌아가신 분들이 못 다 이룬 뜻을 이룩해낼 수 있도록 정권을 격려하고 밀어주고 감시하는 역할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고 당부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가장 큰 적폐는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
"열사·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위해 투쟁해야"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실현을 위해 나서자는 호소도 이어졌다.

함 신부는 "이 시대의 가장 큰 적폐, 1차적인 청산 대상은 국가보안법"이라며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이것을 실현하기까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우리가 힘을 모아 보충해주면서 당대 정권에서 이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것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위대한 촛불항쟁은 박근혜와 국정농단 세력을 척결하면서 수십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친일·친미·수구세력의 기반을 허물어내는 대변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막으려는 수구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며 "특히 분단을 악용해 아직도 종북몰이와 빨갱이 놀음에 여념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도 종북·빨갱이요,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행동도 종북이라 몰아대고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지난 70년 동안 유지돼온 적폐 중의 적폐, '분단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며 "위대한 국민들의 민생민주대장정은 이제 수구세력의 분단 적폐를 허물어내는 범국민운동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천명했다.

한 대표는 특히 "이제 우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군사훈련 중단, 반전·평화투쟁에 매진하겠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온전히 실현하는 국민운동을 힘차게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수많은 열사들의 희생이 과거에 갇혀 있는게 아니라 현재의 투쟁으로 되살아나 민주주의의 튼튼한 터전이 되고, 희생과 열사가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 완성의 토대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대행은 "우리가 부끄러운 마음 감출 수 없는 이유는 열사들의 절절한 외침과 그들의 정신을 이어 민중이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지 못한 것과 열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통해 역사적으로 단죄를 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많은 열사와 희생자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억울한 희생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이 반드시 처벌 받는 그날까지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자"고 호소했다.

장남수 공동추모위원장(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제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장 위원장은 "우리 국민은 현명했다. 촛불을 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나라를 다시 세웠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잘 가꾸고 북돋아 줘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만발할 때 저기서 떠들고 있는 수구적폐세력은 이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촛불항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최저임금 만원 인상 ▲비정규직 철폐 및 노조 권리 보장 ▲백남기 농민 살인사건 책임자 처벌 ▲밥쌀 수입 즉각 중단 ▲청년 일자리 해결 ▲6.15, 10.4 선언 이행과 사드 배치 반대, 평화협정 체결 ▲공안탄압 중단과 모든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한일 '위안부' 합의안과 한일군사정보협정 폐기 등을 촉구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백남기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백남기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마련된 영정들을 한 가족이 지켜보고 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마련된 영정들을 한 가족이 지켜보고 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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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촛불,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다

 

[프레임전쟁] 9화 ‘괴담론’ ‘배후세력’ ‘폭력집회’ 조중동의 낡은 프레임이 무너지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7년 06월 11일 일요일

“체구가 작은 젊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주섬주섬 무슨 자료를 내밀었다. 두께가 얇지 않은 서류철에는 국영문 자료가 이것저것 섞여 있었다.” 초면에 그는 “미국산 소고기는 광우병 위험성에서 안전하지 않다” “소의 치아로 나이를 감별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임은경 당시 민중의소리 기자는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라는 직함으로 널리 알려진 박상표씨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는 참여정부 때였던 2006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기 2년 전 일이다. 그때부터 박상표 국장은 여러 언론사를 방문하며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언론조차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 때 그는 뛰고 있었다.

고인이 된 그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PD수첩 제작진 재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본 정부 문서, 영국 정부의 광우병 지침서, 미국 농무부 감사 보고서, 해외 광우병 학회지, 국제 토론회자료, 미국 시민단체의 연구보고서 등을 입수하고 분석해 정부의 ‘프레임’을 깨뜨렸다. 

조능희 전 MBC PD수첩 CP는 ‘추모의 글’에서 “제작진이 조중동의 왜곡기사와 관변어용의사·수의사,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법정에서 묵사발 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박상표 덕분”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그가 PD수첩 제작 및 재판과정에서 박상표 국장으로부터 e메일을 통해 받은 자료만 1000통 가까이 된다.

미국산 소고기, 참여정부 때부터 도마에 

무엇이 문제였을까. 영국에서 광우병 대란이 휩쓸고 간 이후인 2003년 12월말 미국에서 첫 번째 광우병이 발발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맺은 ‘소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따라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했다. 이어 2004년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소가 발견됐고, 2005년 텍사스주에서 두 번째 광우병 판정이 내려졌다.

 
미국은 다급했다. 해외에 소고기를 팔지 못하게 되자 ‘대책’이 필요했다. 미국은 한미가 FTA 협상 중이라는 점을 이용한 묘수를 찾았다. ‘4대 선결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재개와 한미FTA 협상을 연계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해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직후인 2006년 2월, 미국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이라며 “30개월 미만 살코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의 권위를 빌린 프레임 전략이었다. 일찌감치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던 수의사 출신인 박상표 정책국장은 시민사회와 함께 정부의 프레임을 무너뜨린다. 

그는 “소의 나이를 세는 기준인 ‘월령’은 치아를 통해 감별하는데, 정확도가 15%에 불과하다”며 참여정부가 정한 기준으로도 30개월 이상 소고기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영국·일본에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한 결과 20개월~30개월령 사이 소에서 100건 이상의 광우병이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30개월 미만 소에도 광우병 감염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그는 OIE가 사실상 미국의 통제 아래에 있고, 미국의 요구로 광우병 통제국가를 분류하는 기준을 5단계에서 3단계로 바꿨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OIE의 ‘권위’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광우병 위험성과 졸속협상 폭로, 공영방송의 힘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 안전성 논쟁이 이어지던 도중, 정권이 교체됐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 바통을 이명박 정부에 넘겨야 했다. 시민사회는 정권이 바뀌었지만 논쟁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19일,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을 발표한 것이다.  

최소한 참여정부는 30개월 이상 소고기가 위험하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뼈와 부속물을 포함한 모든 연령의 소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또, ‘수입 중단권’과 ‘도축장 취소권’ 등 검역 권한을 미국으로 넘긴 점도 문제였다.

▲ 2008년 4월 방영된 MBC PD수첩.
▲ 2008년 4월 방영된 MBC PD수첩.
 

이명박 대통령은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라며 ‘광우병 위험성’ 프레임을 봉쇄하고 나섰다. 그러나 제대로 된 소통 없이 내려진,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일본과 타이완은 2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었고 중국, 호주는 수입을 거부한 상황에서 한국만 월령제한을 두지 않았다. 시민들은 납득할 수 없었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5월초부터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광화문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MBC PD수첩 게시판에는 미국산 소고기 문제를 취재해달라는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PD수첩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을 폭로하는 등 가장 믿을만한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4월29일 MBC PD수첩 ‘미국산 소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이 전파를 타게 된다.  

방송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소의 0.1%만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져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단정하는 정부의 주장은 믿기 어려워졌다.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다우너소를 학대하며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전에도 다우너소 문제는 신문을 통해 관련 문제가 보도된 적은 있지만 영상매체는 활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가졌다. 

▲ MBC 취재진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 MBC 취재진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정철운 기자.
 

이 방송을 계기로 촛불집회가 확산된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 단위로 모였던 집회는 수만 명 규모로 군집하기 시작했으며 절정기였던 6월10일에는 주최 측 추산 70만 명이 참가했다. 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 이전까지 촛불집회로는 최다인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정부여당에게 MBC와 PD수첩은 눈엣가시가 됐다.  

PD수첩이 광우병 문제에 집중했다면 진보언론과 KBS, MBC는 보도를 통해 소고기 졸속협상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정부가 권위를 부여해온 OIE가 정작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입장을 낸 점도 폭로됐다.

이들 언론과 미디어몽구, 진보신당 칼라TV를 비롯한 대안 인터넷 미디어도 가세해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서 군홧발로 시민을 짓밟고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을 공격하고 직사 물대포를 사용하는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노종면 해직기자가 총괄했던 YTN의 ‘돌발영상’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던 ‘뒷이야기’를 풍자 코드를 통해 보도했다. 2008년 5월7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이 “어린학생들까지 이용해 괴담을 조장하고 정치적 선동거리로 접근한다”고 밝혔는데, YTN은 그가 참여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에게 “대한민국 농림부 장관인지 미국을 대변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우리가 먹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질이 있는 광우병소”라고 발언한 대목을 내보내며 ‘이중성’을 고발했다.  

돌발영상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차명진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국산 소고기 시식회’를 연 자리에서 한 의원이 “한우보다 맛잇네”라는 발언을 한 대목을 카메라에 담아 시민들의 공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돌발영상은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식당 소고기 원산제 표시제를 식당 주인의 ‘양심에 맡기는’ 방식으로 주먹구구로 밀어붙이는 과정을 내보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PD수첩 vs 정부·조중동 

촛불집회 초기 정부와 조중동은 연합전선을 형성해 PD수첩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정부여당은 연일 MBC 보도를 ‘왜곡’ ‘허위’로 규정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의 형사고발을 통해 ‘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정부의 ‘부실협상’과 ‘불통’ 문제를 덮기 위해서도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중동은 동시에 PD수첩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TV 광우병 부풀리기 도를 넘었다”(2008년 5월2일 조선일보) “광우병 부풀리는 무책임한 방송들”(2008년 5월2일 중앙일보) “광우병 부풀리기 방송, 진짜 의도 뭔가”(2008년 5월9일 동아일보) 등으로 대동소이한 입장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부와 조중동이 ‘부풀리기’라고 지적한 대목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첫째, PD수첩이 ‘악마의 편집’을 했다는 주장이다. 다우너소가 모두 광우병에 걸린 소는 아닌데도 PD수첩이 광우병소로 단정했다는 것인데 이는 자료화면을 본 후 스튜디오에서 사회자가 순간적으로 잘못 표현한 것으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 PD수첩을 비판하고 나선 조중동 보도.
▲ PD수첩을 비판하고 나선 조중동 보도.
 

미국에서 인터뷰한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이 아닌데 ‘인간광우병’으로 왜곡했다는 것도 이들 신문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왜곡이긴 하지만 유가족도 취재 당시까지는 ‘인간 광우병’으로 추정했고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4월10일 폭스뉴스 기사 제목 역시 “버지니아주 22세 여성 인간광우병으로 사망가능성”이었다. 

 

오히려 ‘조중동의 적은 조중동’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한국인 유전형질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PD수첩이 소개한 연구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했다는 논란을 보도했다. 관련 연구가 논쟁적인 건 사실이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동아일보는 2007년 3월23일자에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기사에서 “프리온 유전자 분석결과 미-영국인보다 더 취약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TV 속 ‘미국 소고기 괴담’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내용이 많다”던 조선일보는 2004년 1월3일 보도에서는 “슈퍼파워 미국이 세계인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까지 자국 이익을 앞세워 힘의 논리를 관철하려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밝혔다. 2003년 12월30일 조선일보는 “미국에서 광우병 발발 소식이 알려진 이후 한국정부가 취한 수입금지 관련 조치들은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08년 조선일보와는 판이하게 다른 관점이다. 
 

▲ '중앙일보' 7월8일 2면에 실린 사과문. 7월 5일 9면에 보도된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제목의 사진기사가 연출이라는 점을 밝혔다.
▲ '중앙일보' 7월8일 2면에 실린 사과문. 7월 5일 9면에 보도된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제목의 사진기사가 연출이라는 점을 밝혔다.
 

‘괴담론’ 프레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안전성’까지 강조하려다보니 무리수가 나오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7월5일 “미국산 소고기 1인분에 1700원” 기사에서 젊은 손님들이 미국산 소고기 판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았으나 사진에 담긴 손님들은 중앙일보 기자와 인턴기자로 밝혀져 논란이 불거졌고, 중앙일보는 사과했다.

촛불시민 vs 정부·조중동 

MBC PD수첩 공격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조중동은 오랜 기간 반복해오던 ‘낡은 프레임’을 하나씩 꺼내들었지만 대부분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배후세력론’부터 고개를 들었다. 조중동은 5월7일 전교조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전교조 교사들은 아이들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아 줄 생각을 하기는커녕 아이들의 공포감을 최대한으로 높여 거리로 끌어내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조선일보) “학생들에게 터무니없는 불안감을 조장하고 집단행동을 부추긴다면 선생의 자격이 없다”(중앙일보) “온갖 억측과 괴담으로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이를 시위에 이용하는 배후세력을 반드시 찾아내 법정에 세워야 한다”(동아일보)는 것이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조중동은 민주노총, 참여연대가 주축이 된 광우병대책국민회의 등을 ‘좌파친북단체’로 규정하며 ‘배후세력’으로 지목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시 촛불집회는 특정 조직이 주도해 동원되는 형태가 아닌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배후세력으로 지칭되는 이들이 오히려 집회 변방에 머무는 모습이 목격됐다. 무대를 제공하고 행사를 진행한 광우병대책회의의 통제 역시 따르지 않는 시민이 많았다. 

배후세력론이 ‘무리한 프레임’이라는 비판은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나왔다. 동아일보 노동조합은 2008년 7월 공정보도위원회 보고서를 내고 “촛불시위에 담긴 민심은 외면하면서 ‘좌파-친북단체 개입’ 등 ‘비순수성’을 부각시켜 이후 정당한 비판 보도까지 매도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자성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의 한 기자는 “학생들은 광우병 위험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고, 주부들은 식탁 먹을거리를 걱정하며 아이들을 업고 안은 채 촛불을 들었지만 이런 현장 분위기는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집회 참가자가 크게 늘어났을 때 조중동은 집회를 긍정적으로도 묘사하며 참가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날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집회 인원이 줄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력 집회’를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나서며 ‘강경 진압’을 부각한 진보언론·공영방송과 대척점에 섰다.  

6월27일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청와대만 지키는 정권”을 통해 “한 달 이상 서울 도심이 밤마다 시위대에 의해 점거돼 무법천지가 되고 시민들의 불편과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지만, 현 정부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게 눈치만 살피며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최보식 사회부장이 직접 쓴 기사였다. 이날 중앙일보 1면 기사는 “공권력이 짓밟히고 있다”였다. 두 신문 모두 시위대에 둘러싸여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전경 모습을 담은 연합뉴스 사진을 썼다. 

집회가 막바지 폭력적 양상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신문의 ‘폭력집회’ 프레임은 직사 물대포, 무분별한 방패 공격 등 전경의 폭력을 외면한 점에서 ‘반쪽짜리’였다. 또한, 왜 집회가 격렬해졌는지에 대한 분석도 빠졌다. 평화 기조를 유지하던 촛불집회는 정부가 ‘관보 게재’를 강행하며 격렬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독자들은 조중동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직접 미디어의 왜곡에 대항하기도 했다.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통해 광고주를 압박했고 경향신문 등 진보신문 구독운동을 벌였다. 촛불은 KBS와 MBC로 옮겨가 ‘공영방송 사수’를 외쳤다.

▲ 2011년 MBC PD수첩 제작진 징계에 맞선 촛불시민들. 사진=이치열 기자.
▲ 2011년 MBC PD수첩 제작진 징계에 맞선 촛불시민들. 사진=이치열 기자.
 

조중동 프레임이 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공영방송이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조중동 견제 역할을 했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미디어 환경도 변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 아고라 등 커뮤니티를 통해 문제제기를 확산시켰고, 조중동이 말바꾸기를 하거나 낡은 프레임을 꺼낼 때마다 뉴스수용자들이 직접 반박했다. 포털 중심의 미디어 유통환경이 구축되면서 조중동=여론 독점이라는 말은 옛날 얘기가 됐다. 

그날 이후, ‘광우뻥’ 프레임과 무너진 공영방송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에는 괴리가 있다. 포털 네이버에서 ‘광우병’을 검색하면 ‘선동’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일간베스트는 당시 촛불집회를 ‘광우뻥’이라고 부른다. 거짓 선동에 사람들이 놀아났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도 세월호 집회, 사드배치 반대 집회 등에서 ‘괴담’을 강조하며 어김없이 2008년 촛불을 근거로써 끄집어낸다.  

“그렇게 난리쳤는데 결국 광우병 걸린 사람 한명도 없지 않느냐” 이 말의 힘이 강력한 게 사실이다. 2008년 당시에도 3억 명의 미국인들이 모두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있는데 광우병 위험성을 강조하는 게 오히려 비과학적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2008년 박상표 국장은 언론 기고글에서 이렇게 응수한 바 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광우병이 확인된 것은 1986년이다. 대중은 미친소를 사람이 먹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영국정부에 과학적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정부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광우병이 인체에 전염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으며 광우병은 인체에 어떤 위험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4월까지 영국에서는 18만3256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렸고 163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완벽한 조치는 아니지만 촛불집회를 통한 강력한 저항 이후 ‘월령 제한 없는 소고기’에서 ‘30개월 미만 소고기’로 수입조건이 바뀌어 30개월 미만의 소고기만 수입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변화다.  

무엇보다 광우병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점이 더 많은 병’이라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박상표 국장은 “유럽연합 일본 등의 국가와 소비자단체는 사전예방의원칙에 따라 GMO가 인간, 동물 및 환경에 위해성이 없다는 광범위한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는 상업화가 허용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서는 마땅히 안전성이 확실하게 입증될 때까지 허용을 막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PD수첩 제작진이 대법원에서 명예훼손 ‘무죄’ 판결을 받아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판부는 “방송은 어느 정도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 미국산 소고기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고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제작진은 징계무효소송 등 관련 재판 7건 모두 승소했다. ‘광우뻥’이었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 2012년 12월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PD수첩 제작진. 사진=이치열 기자.
▲ 2012년 12월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PD수첩 제작진.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나 공영방송은 무너졌다. 이명박 정권은 공영방송이 왜곡보도를 했다는 명분으로 공영방송 장악을 본격화했다. KBS 정연주 사장은 끌려 내려왔고 MBC 엄기영 사장은 MBC를 떠났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정부를 강력하게 변호했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조중동은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 발간된 ‘MB씨, MBC를 부탁해’에서 김보슬 당시 PD수첩 PD는 이렇게 지적했다. “민영방송이었다면 PD수첩은 황우석을 그런 식으로 보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PD수첩도 없어졌을 것이다. 이번 미국산 소고기 방송을 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제작, 편집에 대한 권한은 공영방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보호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김현진 칼럼니스트는 당시 촛불집회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MBC 카메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MBC! MBC!하며 환호하는 것부터 시작해 카메라에 담기기 무안할 정도의 MBC 찬송가까지 다양하다. KBS도 요즘 인기가 좋다. 반면에 YTN과 SBS는 조금 홀대 받고 조중동 기자는 아예 강퇴 당한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MBC 취재진은 “엠빙신”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고 MBC로고를 떼고 보도해야 했다. 공영방송의 ‘잃어버린 9년’이다.  

※참고문헌 
박상표,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 
임은경, ‘박상표 평전’ 
고재열 등, ‘MBC, MB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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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이 만든 '메이드 인 차이나'의 비밀

 
[평화통일시민강좌] <2> 강주원 인류학 박사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2015년과 지난해에 이어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새정부 통일정책, 이렇게 가야한다'를 주제로 7월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강좌 소개 바로 가기)

10.4 선언의 주역이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지난 10년간의 남북대결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정부가 시급하게 취해야 할 정책들이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고 다시 6.15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냉전의 적폐를 해소하고 평화통일의 새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여론형성의 장이 될 ‘평화통일시민강좌’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강연은 강주원 인류학 박사의 강연입니다. 강 박사는 '대륙의 시작 한반도, 남북경제협력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남북한과 중국이 어떻게 경제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지 소개했습니다. 

강 박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인 단둥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중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까지도 아우르는 접경 지역의 현황을 연구하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다음은 주요 강연 내용입니다.  
 

▲ 강주원 인류학 박사 ⓒ평화통일시민행동


2년 전(2015년),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일 때 '신한반도 경제지도'를 발표했습니다. 물류를 중심으로 한 이 지도는 나진, 부산, 남포, 인천 등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도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1998년부터 존재하였고 앞으로도 남북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인천-단둥(중국) 노선이 빠져 있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전후로 단둥에서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1주일에 3번 인천에서 단둥으로 배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한반도 경제지도"에 인천-단둥이 빠져 있다는 것은 남북 경제교류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한국사회가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에 대해서 저의 졸저인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에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발표한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 ⓒ문재인 대통령 공식 블로그

 

▲ 2006년 단둥의 한 택배회사에는 서울-평양-중국의 택배 범위가 선명하게 표현되어있다. 약 10년 전 아니 최소한 단둥페리가 취항한 1998년부터 단둥은 삼국 물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강주원


북한 사람이 만든 'MADE IN CHINA'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김진향 교수는 "개성공단 노동자 5만 명 중 3만 명이 봉제 쪽에 일했고, 개성공단이 한창 잘 돌아가던 2010년대 이후 한국에 판매되는 속옷의 90%, 의류의 30%가 개성에서 만들어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3만 명의 노동자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단둥에서는 이런 일들이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졸저인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에서 언급한 바 있는 삼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단둥을 통해서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10년 5.24조치 이전에 한국의 봉제, 의류 쪽 회사들이 옷을 만들기로 결정하면 단둥에 있는 회사한테 하청을 주었고, 그 다음 단계로 단둥에 있는 한국 사람이 북한 사람을 만나 계약을 체결하면 며칠 뒤부터 평양에서 옷을 만들었습니다. 완성된 옷은 단둥을 거쳐 배에 실려 인천으로 들어옵니다.  

그 옷들은 'MADE IN DPRK'도 있었지만 대부분 'MADE IN CHINA'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제작 단계를 거친 의류들은 한국의 홈쇼핑에 소개되고 사람들은 중국산으로 알고 사 입곤 하였습니다.  

라벨과 통계에는 보이지 않지만 북한 사람들이 만든 옷들이죠. 이 옷들이 팔리다 안 팔리면 땡처리로 길거리에서 팔리고 그러다 안 팔리면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서 인천에서 단둥으로 그리고 평양으로 들어갑니다. 평양사람들은 자기 친구들이 만든, 한국까지 갔다온 이 옷을 중국산으로 알고 입었습니다.  

남북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릅니다. 통계로는 잡히지 않지만 인류학의 참여관찰로 보면 보입니다. 단둥에 있는 한국 회사 중에 10위권에도 들어가지 않는 회사가 한해 옷 약 80만 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규모가 큰 회사들은 얼마나 많은 옷을 만들었을까요? 개성에는 3만 명의 봉제 노동자가 있지만 평양에는 더 많은 노동자가 옷을 만들어 왔습니다. 신의주에도 봉제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만큼 남북교류에 영향을 끼친 곳이 단둥이고 남북을 연결하는 물류가 존재하는 곳이 단둥입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휴전선만 놓고 남북관계를 봅니다. 거기서 '북한 퍼주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도 우리가 퍼주었다는 금액의 50~60%는 인건비에 해당이 됩니다.  

이것의 대부분은 단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은 단순히 퍼주기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여 우리가 이득을 보면서 살아온 '교류'의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한국사회는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남북관계를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 중국 지안쪽에서 바라본 압록강변의 북한 모습(2017년) ⓒ강주원


북한은 '개성공단'을 5개 이상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가 북한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이 폐쇄된 국가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단서가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생각하는 만큼, 북한은 폐쇄된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제 규모나 남북관계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휴전선만 폐쇄하면 북한은 전체적으로 폐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성공단만 막으면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 달러박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개성공단을 막으면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본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지한 시각이었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개성공단 5만 명의 노동자가 약 100달러를 받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단둥에서는 2만 명의 노동자가 약 300달러를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단순 인건비만 놓고 보더라도 단둥이 개성보다 더 많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개성공단만 달러를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둥에도 개성공단이 하나 더 있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해외 진출 북한 노동자 수가 터키, 중국, 러시아 중동에 1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와 몇 가지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면 개성공단을 최소 5개 이상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한국사회가 주지하지 않은 채, 앞으로 한국은 개성공단을 북한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면서, 개성공단을 선택 사항이라고 생각하고 협상에 나오는 북한을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단둥은 2만 명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0명의 주재원(무역일꾼)이 있습니다. 단둥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기차는 하루에 약 600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해 볼 때 한사람이 100만 원치의 물건을 사들고 간다고 치면 하루에 6억 원, 한 달 180억 원, 일 년 2000억 원입니다.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인건비는 약 1000억 원 이었습니다. 단둥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기차만으로도 개성공단 2~3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북·중 무역 규모를 약 70억 달러라고 추정하는데 위의 예에서 설명한 경제교류 모습은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압록강의 밀무역에 해당이 되지도 않습니다. 북·중 국경무역은 통계를 내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러니 통계 안에서만 북·중 경제교류를 들여다보면 북한 경제를 잘못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중 관계는 지원과 원조의 관계가 아니라 경제교류의 관계

한국사회는 북·중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죠? 그 가운데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중국이 북한과 교류를 끊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생각의 바탕은 북한과 중국을 지원과 원조의 관계로만 보는 것입니다. 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석유만을 원조한다고 판단하면서, 시진핑 주석이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를 할 수 있고 북·중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중 관계는 경제교류의 관계, 공생하는 관계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대북 유엔제재에 대해서 '민생'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저는 이 민생은 '북한사람' 뿐만 아니라 '중국사람'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 폐쇄로 100개 이상의 업체가 피해를 입고 파생피해액이 1조 원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북한과 무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중 경제 차단을 원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데 중국이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대북제재를 한다면,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도시에서 북한과 무역하는 중국사람들이 받을 피해액은 100조 원 이상이 되지 않을까요? 이점만 생각해보아도 한국은 중국에게 자국 국민의 100조 이상의 피해를 입더라도 대북제재에 동참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중국이 어떻게 들어줍니까? 
 

▲ 중국 단둥에서 북한 여권은 제재의 대상이 아닌 선물을 받는 기준이다(2017년) ⓒ강주원


단둥발 북한 가짜뉴스 깨기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저는 단둥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기자들이 단둥으로 몰려와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저 신의주 강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저 모습이야말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북·중 국경선이 엄격하게 봉쇄당하고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 내용을 반영한 방송이 뉴스 화면을 장식했습니다. '북·중 국경 엄격하게 단속, 신의주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고.  

이러한 보도는 작년 2,3월 대북제재가 한창일 때도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기자들한테 뭐라고 설명을 하였을까요? "기자 선생님, 지금 압록강과 신의주는 영하의 날씨인데 누가 나와서 놀까요?" 

기자들은 북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압록강의 철조망을 넘어온다고 보도합니다. 하지만 이 철조망 안에서 중국 사람들은 산책도 하고 빨래도 하고 농사도 짓습니다. 탈북자가 목숨을 걸고 넘어온다는 곳에서 말이죠. 압록강의 철조망은 만들어진 지 10년 정도 되며 없는 곳도 있습니다. 이 철조망은 여기까지가 중국 땅이라는 표시입니다. 강 전체가 국경이므로 홍수나 가뭄일 때 늘 국경이 바뀝니다.  

북한 붕괴 징조와 경제 어려움의 증거로 많이 쓰이는 사진 중에 하나가 압록강 유람선에 쪽배를 타고 들어와 물건을 판매하는 모습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 북한 사람들이 대낮에 대놓고 밀수를 한다며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증거로 쓰입니다. 하지만 쪽배를 탄 사람들은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중국 사람입니다. 한국말을 하니 기자들과 한국 여행객들은 북한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죠. 검증만 하면 금방 알게 되는 가짜 뉴스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작년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통일부가 해외의 북한식당 이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며칠 후 KBS가 단둥의 문 닫은 북한 식당을 보여주며 북한의 식당이 망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식당은 망한 것이 아니라 백 미터 옆에 새로 문을 연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은 대북제재의 효과가 없는데, 단둥에 가서 검증하지도 않고 혹은 가짜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 단둥에 갑니다.  
 

▲ 2017년 신의주 풍경에서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시각과 역사는 무엇일까 ⓒ강주원


다르게 보면 지금의 북한이 보인다 

해외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에 대해 한국은 일반적으로 '인권' 문제로만 다가갑니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보여주듯이 한국사회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한국 근대화의 선봉장으로 생각합니다. 그 인원이 모두 합해도 2만 명이 채 안 되지만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한 번쯤, 맥락상 다른 면도 있지만,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를 이런 시각으로 보면 북한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단둥에는 연인원 2만 명의 노동자가 일을 합니다. 이 노동자들이 북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단둥 북한 노동자 임금 300달러 중에 100달러를 노동자가 가져갑니다. 이 돈을 1~2년 모아서 물건을 사서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이 물건들이 장마당을 활성화되는 배경입니다.  

2010년 5.24조치가 발표되었을 때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남북관계와 북한을 주로 TV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로 배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대북정책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사회의 대북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활약이 뛰어난 대북전문가는 '북한 붕괴론'자였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2~3년 전부터 한국의 커피믹스가 대량으로 들어가고 있고 북한 사람들의 입맛이 바뀌고 있다. 한국의 자본이 들어가고 있고 북한에 돈주가 늘어나면, 그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단초가 될 것이다. 때문에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한국산 커피믹스는 2~3년 전부터가 아니라 단둥을 통해서 20년 전부터 평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왜 안 망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북한은 커피믹스가 아니라 커피믹스 만드는 기계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이 변해 왔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던 지난 10년 동안 국경도시 신의주에 20층 아파트가 10채 이상이 들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실효성 없는 대북제재만을 주장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미래 통일 담론만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우리는 이것을 연구하고 북한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국‧북한‧중국인과 북한화교‧조선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단둥

단둥은 20년 전부터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이 만났습니다. 북한 노동자를 제외하고 연인원 2000명의 북한 사람과 북한화교 2000명 이상, 경제활동 인구인 조선족 4000명 이상, 한국 사람 2000명 등 전체 1만 명의 사람들이 남북을 연결시키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5.24조치 이전에는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이 직접 교역을 했지만 5.24조치 이후에는 남북의 직접 접촉이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북한화교와 조선족을 매개로 북한 사람과 간접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구조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5.24조치 때문에 한국기업의 마진을 떨어뜨렸을 뿐입니다. 5.24조치 이전에는 한복이나 이불에 들어가는 수예도 북한산이 사용됐습니다.  

지금은 북한 사람이 만든 것을 북한화교나 조선족이 사와서 한국 사람에게 팔고 이것이 서울에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단둥의 호텔에서 숙식하는 북한 주재원들은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한국 뉴스를 봅니다. 하루 종일 압록강 유람선에서 나오는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신의주 강변을 지나는 사람도 봅니다. 단둥에서 한국사람들은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북한 사람들은 서울우유를 마실 수 있습니다.  
 

▲ 한국사회가 대북제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안 어둠의 대명사였던 신의주에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한국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됨을 보여주는 것일까(2017년) ⓒ강주원


개성공단도 재개하고 5.24조치도 해제되어야 합니다. 개성공단 재개를 북한이 동의한다고 가정할 때 공장이 정상화 되는 것만으로도 몇 개월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5.24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말하자마자 북한의 반응과 상관없이 그 다음부터 남북교류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곳이 단둥입니다. 여기에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북한을 상대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이익이 남지도 않는데 남북교류를 할 한국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단둥은 지난 20년 동안 남북교류의 중요한 메카입니다. 단둥을 알아가는 과정이 남북관계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남북교류가 단절되어 있는 동안 북한은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아직도 '고난의 행군', 그러니까 20년 전의 북한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강합니다. 교류 재개 만큼이나 북한을 선입견 없이 제대로 볼 수 있는 한국사회의 스스로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개성공단은 다시 열려야 하고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상징이기도 합니다만, 개성공단이 닫혔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모두 닫혔던 것은 아닙니다. 단둥이 있었습니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남북의 만남이 중단되었다고 너무 강조되다 보니 남북교류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단둥을 놓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단둥을 단순 사례로만 보거나 간과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최소한 단둥을 개성공단과 더불어 남북교류의 한 축임을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의 출발 가운데 하나는 "신한반도 경제지도"에 인천-단둥-평양"을 이어주는 물류의 흐름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완성된 지도는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렇게 보완된 신한반도 경제지도에는 5.24조치 해제에 대해서 한쪽만이 주장하는 명분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실질적인 다양한 이유와 근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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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부대, 30년 만에 등장 촛불혁명 "가자 시청으로!"

 

[현장] 명동성당, 서울역 등 곳곳서 6월 민주항쟁 재현

17.06.10 20:16l최종 업데이트 17.06.10 22:30l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민주쟁취'가 써진 흰색 머리띠를 두른 한 남자가 이렇게 외쳤다. 2017년 6월 10일, 유가족으로 발언에 나선 박래군(56)씨다. 그는 1988년 6월4일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며 분신했던 고 박래전씨의 형이다. 박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30년 전 이곳에 우리가 모이기 위해서는 너무 어려운 장벽을 뚫어야 했습니다. 경찰의 벽을 뚫어야 했고, 백골단의 폭력을 물리쳐야 했고, 최루탄의 그 지독한 냄새를 뚫고서야 이곳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6월 항쟁이 가능했고, 6월 항쟁 이후에 민주주의가 이 만큼이라도 전진해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어 박씨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6·29 선언에 속지 않고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고 싸웠다면 그 다음 1988년 6월에 내 동생이 목숨을 버리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울컥했다. 또 그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냈고 새 정부를 만들었지만 이제 다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며 "더욱 더 중단하지 말고 함께 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명동성당 앞 계단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앉아 박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들은 초록색 페트병에 주황색 천을 꽂아 화염병처럼 꾸며 들고 있었다. 일부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애국시민 단결하여 군부독재 끝장내자', '노동악법 철폐 비정규직 철폐'라고 써진 깃발을 들었다. 

독일인 남편과 명동성당 찾은 시민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 보여 주고파"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사진 없이 빈 영정을 들고 있던 김희정(44)씨는 "당시에는 목숨을 내놓고 행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뭉클해졌다"며 "우리는 지금 화염병 퍼포먼스를 하며 걷고 있지만 당시엔 화염병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역 세력이 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일인 남편과 명동성당 앞에 선 임소명(28)씨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한국에선 민주화를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역사가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한국 현대사 중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시민단체 '6월민주항쟁 3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한 '민주시민대동제 6.10민주난장'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서울역, 명동성당 등 도심을 행진하며 당시 저항운동을 재현했다. 동학농민군, 3·1만세군, 4월혁명군, 5월광주군, 6월항쟁군, 촛불시민군 등 6개 대열로 나눠진 이들은 서울광장을 향해 이동했다. 

6월 항쟁 당시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투쟁에 나섰던 사무금융노조 쪽 인사도 이날 명동성당을 찾았다. 김현정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을 타도시키는 과정에서 사무금융 노동자들도 30년 전 선배들의 저항정신을 받들어 전경련 해체를 이끌었다"며 "노동해방의 그날까지 힘차게 투쟁하자"고 말했다. 

장발에 각목 들고 "비상계엄 해제하라" 5·18광주민주화 운동 재현
 
 10일 오후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으로 분하고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선 이들의 모습.
10일 오후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으로 분하고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선 이들의 모습. ⓒ 조선혜
 10일 오후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으로 분하고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선 이들의 모습.
10일 오후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으로 분하고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선 이들의 모습. ⓒ 조선혜
같은 시간 용산구 서울역 근처에서는 청재킷을 입고 장발을 한 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도 있었다. 5·18 광주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사람들이었다. 트럭에 올라 행진을 준비하고 있던 이들은 한 손에 각목을 들고 당시 상황을 충실히 그려냈다.

이어 풍물패의 흥겨운 즉석 공연이 펼쳐졌다. 스피커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당시처럼 트럭에 올라 마이크를 든 한 여성은 "비상계엄 해제하라,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들 옆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가면을 쓴 채 죄수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곧이어 이들은 서대문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 '5.18기념사업회' 깃발을 든 이들과 풍물패가 뒤를 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었다는 정영철(59)씨는 "이런 행사에 참여하니 새로운 감정이 든다"며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전두환 가면을 쓰고 행진에 나선 배우 장계윤(34)씨는 "함께 공연했던 분의 권유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행진을 지켜보던 60대 시민 김아무개씨는 "올바른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한 쪽에선 아직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오후 7시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6월민주항쟁30년기념국민대회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박 시장은 노래 '그날이 오면'을 가수 윤선애와 함께 불렀다.

박원순 서울시장 "우리 세대에 남북통일 이뤄야"

노래를 끝낸 박 시장은 "제가 노래 좀 잘했죠? 춤은 더 잘 추는데"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박 시장은 "저도 당시 갓 서른이었는데 감옥에 가는 수많은 학생들과 노동자들, 문화예술인을 변론하던 젊은 청년 변호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시장은 "87년 당시 6월 정신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고, 그 정신의 계승자들인 시민들이 지난겨울 이 광장을 가득 메워 마침내 새로운 민주정부를 탄생시켰다"고 촛불정신을 강조했다. 광장의 시민들은 박 시장의 말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박 시장은 6월의 정신과 그 정신을 계승한 촛불정신이 일상으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대통령을 뽑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장의 민주주의에서 일상의, 삶의 민주주의로 승화하고 계승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 시장은 남북통일을 우리의 과제로 언급했다. 박시장은 "어영부영하면 분단 상태로 광복 100주년을 맞게 된다"며 "우리가 30년 전에 꿈꾸던 세상은 분단이 아니다. 더 많은, 더 넓은 민주주의와 함께 우리 세대에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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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6월항쟁 30년,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열려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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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0  17: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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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시청광장에서 '87항쟁 30년, 촛불혁명 원년,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반 세기가 넘는 민주화 투쟁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발호하던 독재세력에게 마지막 철퇴를 가하였으며, 이 땅의 민주와 민생, 평화와 통일을 향한 투쟁의 노정에 금자탑으로 우뚝 섰다."

6월항쟁 30주년. 촛불혁명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화의 꽃을 피운 10일, 민주와 통일을 위해 산화한 열사들의 추모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었다.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서울시청광장에서 '87항쟁 30년, 촛불혁명 원년, 제26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열었다. 광장에는 조봉암, 조용수, 전태일, 이수병, 박종철, 이한열, 권희정, 윤이상, 문익환, 김남식 등 665명 열사의 영정이 들어섰다.

이날 추모제에서 추모위원회는 결의문을 발표, "서른 번째 87항쟁 기념일인 오늘, 우리는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분들의 영령 앞에 촛불항쟁의 완성을 결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국민은 위대하였다. 열사.희생자 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그 정신은, 독재세력의 발호 속에서도 국민의 가슴 속에 의연히 살아있었던 것"이라고 촛불혁명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4월 혁명과 5월 광주, 87항쟁을 계승한 촛불항쟁의 완성을 위해, 적폐청산과 사회 대개혁 투쟁, 노동해방과 민중해방,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로 힘차게 전진해 나갈 과제가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촛불항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국민들과 함께, 적폐들을 청산하고, 이 땅에 자주와 민주, 민생과 평화가 보장되는 통일된 나라를 만들어 기어이 산 자의 의무를 다할 것이다."

   
▲ 함세웅 명예대회장은 "다시는 이 땅 위에 거짓과 불의가 준동하지 않도록 우리가 나서겠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함세웅 명예대회장은 대회사에서 "이제 들어선 민주정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실로 감격스러운 30여 년의 여정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촛불은 왜곡되고 망가진 세상에서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우리 모두의 결단이었다. 앞서간 열사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온 국민의 화답이었다"면서 "더 이상 이 땅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양심들이 먼저 고통받고 희생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제 가신 이들이 그토록 그리던 내일을 사는 오늘의 우리는, 열사와 희생자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을 당신들이 그리던 내일로 만들겠다. 다시는 이 땅 위에 거짓과 불의가 준동하지 않도록 우리가 나서겠다"고 말했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유가족 인사를 통해 "위대한 촛불 민중은 세계사에도 없고 대한민국 5천년사에도 없는 살아있는 권력을 민중의 힘으로 파면하고 쫓아냈다"며 "열사들이 30~40년에 걸쳐서 자기몸을 불태우고 피를 뿌려 민주의 씨앗을 뿌린 결과 자라서 광화문에 거대한 민중촛불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사분들에게 대한민국은 이제 나라다운 나라로 가고 있으니 그래도 조금 안심하라고 부탁드리고 싶다"며 "촛불을 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 나라를 세웠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모두가 잘 가꾸자"고 호소했다.

열사 유가족 등 1천5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날 추모제에서는 6.15합창단의 노래공연, 강광석 시인의 추모시 낭송, 무용가 장순향 교수의 추모공연 등으로 어우러졌다. 그리고 본행사 이후 유가족과 참가자들은 열사들의 영정에 흰 국화꽃을 헌화했다.

   
▲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등 민주열사 유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무용가 장순향 교수의 추모공연.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서울광장에는 665명 열사들의 영정이 들어섰다. 헌화를 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자식들의 사진을 찾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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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기업인들을 살려 달라”

“남북경협기업인들을 살려 달라”
 
 
 
편집국
기사입력: 2017/06/10 [08: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남북경협기업과 금강산관광 기업들이 차별없는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편집국

 

남북경협기업인들이 새로 들어선 정부를 향해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남북경협기업 생존권보장을 위한 비상대책본부(이하 비상대책본부)는 8일 오전 11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식이 통하는 차별 없는 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이들은 개성공단 기업들을 제외한지난 2010년 5.24조치 이후 남북교류가 중단된 남북교역 및 내륙투자기업들과 금강산관광 사업자들이다.

 

비상대책본부의 유동호 위원장은 새 시대를 연 촛불 정신은 나라다운 나라상식이 통하는 사회차별이 없는 세상을 바라는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고 지적했다유 위원장은 지난 9년간 한마디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기업의 소중한 사업권과 재산권을 박탈당하고 그로부터 지금껏 사회의 냉대와 정부의 무관심에 기업인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다며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촛불정신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유 위원장은 개성공단과 달리 남북교역과 내륙투자기업금강산기업은 운영과 보상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차별없는 보상을 촉구했다유 위원장은 억울하게 차별받아온 남북경협기업인들을 보상하는 문제는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앞날을 준비하는 미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종흥 금강산코퍼레이션 대표서승우 ()코어세스 대표이종근 ()드림이스트 대표이선영 남북경협금간산기업인 가족대표 등 남북경협기업인들의 절절한 호소가 이어졌다참가자들은 촛불기둥으로 불통과 차별의 문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불통과 차별의 문'을 촛불기둥으로 부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주권방송 화면캡쳐)     © 편집국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청와대를 향해 '풀칠 큰행진'을 시작했다이들이 풀칠이란 행진 제목을 정한 것은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의미에서끊어진 남북관계를 풀칠로 이어 붙이자는 의미에서다.

 

이들은 현재 남북경협기업인들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취지에서 상여소리를 내며여전히 기업인들이 어둠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검은천으로 눈을 가리고하지만 한 가닥 희망인 한손에 촛불을 들고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을 담은 한반도 기를 두르고 행진했다.

 

▲ 상여소리를 내며 행진하는 참가자들     © 편집국

 

▲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달라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참가자들     © 편집국

 

▲ 검은천으로 눈을 가리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 편집국

 

▲ 남북교류 중단으로 사업을 할 수 없게되자 그 충격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기업인도 있었다.     © 편집국

 

▲ 한반도 기를 두르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 편집국

 

▲ 청와대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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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서>

 

국가의 백년대계가 결정되면 국가는 그 목표를 추진할 인재를 양성한다우리 어릴 적 모든 국민이 수없이 외치고 소원했던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그것은 바로 통일이다통일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우리 모두의 목표였고 우리가 태어난 존재 이유였다.

 

분단 반세기를 마주하며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서로 화합하여 민족의 미래비전을 열기 위해 남북경제협력과 금강산관광사업은 시작되었다그러한 대의 앞에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없었다이 고결한 국가의 뜻에 공감하며 충직하게 나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이 바로 남북경협과 금강산 기업인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진 역사는 국가와 대의 앞에서 거의 예외 없이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다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자 했던 의병이 그러했고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졌던 독립투사의 삶이 그러했으며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통일의 시계로 전환하고자 했던 남북경협과 금강산 기업인의 삶이 그러하다.

 

지나친 역경은 가히 바름을 유지하기 힘들다무릇 창고가 튼실해야 예절을 알고먹고 입는 것이 넉넉해야 염치를 안다 하였다한데 지난 9년간의 남북경협 단절은 기업인들에게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그 고통은 한 인간과 그 인간을 정점으로 한 관계망을 모조리 부숴놓았다또한그 고통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끝까지 부둥켜안아야 하는 염치와 예절마저 스스로 놓게 했다평화와 통일을 위한 첨병들의 삶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으며 남북관계 역시 산사태처럼 무너져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았다.

 

기업인과 그 가정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거리에 내몰려야 했다기업은 부도나고 가정은 해체되어 어디에도 머리 둘 곳이 없어졌고자식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어 어린 나이에 사회의 아픔을 너무 일찍 알게 되었다.

 

기업인들은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익숙지 않은 생경한 곳에서 사회의 이방인으로 9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인생의 정점인 황금기가 허무하게 지워졌다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경협 인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상처는 차별이었다경협 인들의 삶에선 상식도 형평성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경협이 중단되는 과정에서도 여기는 왜 중단되고 저기는 왜 지속하는지 어떠한 기준에 의해 그리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중단으로 인한 보상 역시도그 어디에서도 상식과 공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새 시대를 연 촛불 정신은 나라다운 나라상식이 통하는 사회차별이 없는 세상을 바라는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국가의 존재이유이자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하지만 지난 9년간 한마디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기업의 소중한 사업권과 재산권을 박탈당하고 그로부터 지금껏 사회의 냉대와 정부의 무관심에 기업인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촛불이 모여 기적이 펼쳐졌다국민의 일상에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스미고 있다희망의 새 시대를 온몸으로 만들어낸 이 땅의 국민은 낡은 폐습을 청산하고 풍요로운 미래가 보장되고 도덕이 살아 숨 쉬는 그런 사회를 염원하며 모두 한마음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

우리 남북경협기업인의 마음 역시 현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소망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는 상식이 통하고 차별이 사라진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다.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보호받고 잘 살 수 있는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상식이 통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그 단순한 소망이 삶에서 실천되는 것이다이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모든 국민은 전율을 느끼며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 남북경협과 금강산 기업인들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을 굳게 믿는다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대통령과 국민 앞에서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모든 국민이 촛불 정신으로 빛을 보았으나 아직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갈구하고 있다.

 

부디 국민과 대통령께서 빛을 주시어 남북경협과 금강산 기업이 소생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우리는 언제라도 대통령과 정부를 도와 다시금 펼쳐질 남북경제협력의 장에평화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의 현장에 복귀해 이 땅의 평화와 민족의 미래비전을 위해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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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정씨 8남매 ‘민주화운동 40년’

[커버스토리 - 6·10항쟁 30주년]민청학련 오빠, 5·18운동 동생들과 독재 맞서…촛불도 함께 들었죠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ㆍ이정씨 8남매 ‘민주화운동 40년’

지난 5일 이강, 이정, 이황씨(왼쪽부터) 남매가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 섰다. 1972년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비판 유인물 ‘함성’을 자취방에서 함께 만든 남매는 지난겨울 촛불집회까지 40여년을 민주화운동 현장에 있어왔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지난 5일 이강, 이정, 이황씨(왼쪽부터) 남매가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 섰다. 1972년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비판 유인물 ‘함성’을 자취방에서 함께 만든 남매는 지난겨울 촛불집회까지 40여년을 민주화운동 현장에 있어왔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1973년 3월 서울역 플랫폼에 내린 이정씨(69·당시 24세)를 기다리던 건 마중 나온 고향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기차에서 내린 이정씨는 서울대에 다니고 있던 6촌오빠를 봤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오빠”라고 외쳤다. 옆에 있던 건장한 사내들이 그녀와 친구를 순식간에 붙들었다.

둘째를 출산한 언니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난생처음 상경한 그녀는 어딘지도 모르는 서울의 한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전남대 법학과에 다니던 오빠 이강씨(71·당시 26세)의 친구라는 사람도 붙잡혀 왔다. 그제서야 이정씨는 지난겨울 이강씨, 동생 이황씨(63·당시 18세), 오빠 친구였던 김남주씨(1946~1994)가 함께했던 일이 떠올랐다. 형사들이 얼굴을 모르는 이정씨를 잡기 위해 친척 오빠를 서울역까지 데리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나중에 알려졌다.

■ 자취방서 만든 첫 유신 비판지 ‘함성’ 

이정씨는 6남2녀 중 셋째였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큰살림을 꾸리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어머니는 남매들을 광주로 유학 보냈다. 이정씨는 광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과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오빠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1980년 2월3일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구속된 이재문씨(일어선 사람)와 김남주씨(이씨 뒷줄 왼쪽) 등 피고인 73명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년 2월3일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구속된 이재문씨(일어선 사람)와 김남주씨(이씨 뒷줄 왼쪽) 등 피고인 73명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남대 법대에 다니다 1972년 군에서 전역한 이강씨는 10월17일 ‘유신’이 선포되자 고향 친구 김남주씨와 함께 광주 동구 산수동 작은 자취방에 자주 모였다. 밤새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어느 날 이강씨는 등사기를 들여왔다. 방문과 창문을 담요로 막고 12월부터는 ‘함성’이라는 제목의 8절지 크기의 인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이황씨도 형들과 함께 등사기를 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인물 500장에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글들이 가득했다. 이정씨는 밥을 해주고 심부름을 했다. 이강씨와 김남주씨는 ‘함성’을 대학의 휴교령이 풀린 그해 12월10일에 맞춰 전남대를 비롯해 광주고, 광주여고, 전남여고, 광주공고 등에 뿌렸다. 

이정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5·18여성회 회원들과 함께 지난겨울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씨 제공

이정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5·18여성회 회원들과 함께 지난겨울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씨 제공

이정씨가 서울역에서 붙잡히던 날 오전. 광주에서는 학교에 가던 이강씨와 입시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이황씨가 경찰에 체포됐다. 형에 이어 전남도경 대공공작분실 지하 취조실로 끌려간 이황씨는 고문과 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된 형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황씨는 “한참 취조를 받는데 옆 사람 목소리를 들어보니 형이었다. 아침에 멀쩡했던 사람이 반나절도 안돼 그렇게 변해 있었다”고 기억했다.

3남매는 그해 봄 나란히 ‘반국가단체 구성 예비음모’ 혐의로 같은 법정에 섰다. 이정씨는 불구속이었지만 오빠와 당시 18세로 미성년자였던 동생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정씨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몇 달 만에야 포승줄에 묶인 오빠와 동생을 볼 수 있었다. 수십 번 울었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인권변호사였던 홍남순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나섰다. 함석헌 선생은 서울에서 내려와 재판을 두 번이나 방청했다. 유신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함성’에 대한 재판은 오히려 박정희 독재를 부각시키는 사건이 되면서 방청석이 가득 찼다. 이강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이황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이정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공수부대에 맞선 남매 

8남매는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박정희 시절 유신반대 운동에서 시작된 남매들의 민주화운동은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1989년 조선대생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 2016년 촛불집회까지 40년 넘게 이어졌다. 지금도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와 5·18여성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강씨는 반유신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또다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가석방됐다. 1979년에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이정씨는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았다. 항쟁 기간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는 시민들의 접수 등을 돕던 그는 도청의 시민군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었다.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은 여성 13명 중 이정씨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공수부대 진입 직전인 오전 3시쯤 시민군 상황실의 설득으로 이정씨는 다른 여성들을 이끌고 도청을 빠져나와 인근 동명교회에 숨었다. 

그가 피신하던 날 밤 당시 전남대 1학년이었던 동생 이연씨(57)도 시민군으로 금남로 YMCA 건물에서 새벽을 맞고 있었다. 항쟁 기간 ‘투사회보’ 등이 발행된 YMCA는 도청과 함께 공수부대의 진압작전 목표였다. 날이 밝자 이정씨는 동생을 찾기 위해 YMCA와 도청에 고꾸라진 시신들을 헤집었다.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이연씨가 계엄군에 붙잡혀 상무대 영창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심한 폭력을 일삼은 교사의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 학교를 자퇴한 뒤 이연씨는 검정고시로 친구들보다 1년 늦게 대학에 진학했었다. 8남매 중 4번째 투옥이었다.

[커버스토리 - 6·10항쟁 30주년]민청학련 오빠, 5·18운동 동생들과 독재 맞서…촛불도 함께 들었죠

그해 12월 풀려날 때까지 이연씨는 요시찰 인물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갖은 폭력에 시달렸다. 이정씨는 2013년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대학생 진우를 보면서 동생 연이가 생각나 내내 울었다. 그리고 도청 탈출을 도와줬던 대학생이 생각났다.

그는 “함께 숨어 있자”는 이정씨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도청으로 돌아가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정씨는 “그래도 우리 동생은 살았지만 그날 도청에서는 동생 또래의 청년들이 많이 죽었다”면서 “당시 피신했던 여성 13명 중에는 ‘도청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고생도 있었다. 그들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 피할 수 없는 운명, 6월항쟁 

5·18 이후 집안에 짧은 평온이 찾아왔다. 만기 출소한 이강씨는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황씨는 ‘광주환경공해연구회’를 만드는 등 지역 환경운동을 이끌었다. 광주 진흥고에 다니던 막내 이윤씨(52)는 공부를 잘했다. 형들은 “막내만은 제대로 키워보자”며 서울대 의대에 진학할 것을 권했고 뜻대로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87년 6월항쟁으로 평온은 끝났다.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 이한열 열사는 막내동생 이윤씨의 고교 친구였다.

이강씨는 ‘민주쟁취국민운동 광주전남본부’ 사무처장을 맡으며 광주와 전남 지역 6월항쟁을 이끌었다. 이한열 열사 사건 이후 가족들의 기대와 달리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이윤씨는 빈번하게 시위 현장에 나섰다. 13대 대선이 치러진 1987년 12월16일. 광주에 있던 가족들은 이윤씨를 텔레비전 뉴스에서 봤다. 이날 오전 서울 구로을에서는 선관위 관계자가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는 도중 투표함 안에 부정 투표용지가 들어 있다고 확신한 시민들이 몰려드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시민들은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투표함을 왜 개표소로 보내느냐. 부정 투표의 증거물인 투표함을 지키겠다”며 구로을 선관위가 있는 구로구청을 점거하고 40여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선거함을 깔고 앉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이윤씨가 있었다. 경찰이 투입됐고, 이 사건으로 1000여명이 연행돼 이 중 200여명이 구속됐다. 이윤씨는 28일 동안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뒤 겨우 풀려났다. 

큰형 이강씨도 다시 한번 수배를 당했다. 1989년 5월 조선대 학생이었던 이철규 열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이강씨는 ‘진상규명투쟁위원회’ 상황실장으로 나섰다. 수배가 내려진 그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강, 이정, 이황씨는 지난 5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 섰다. 지난겨울 광주에 사는 3남매는 이곳에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밝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정씨는 “시민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오빠와 동생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었고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촛불집회가 보여준 것처럼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내는 것”이라는 이정씨는 “새로운 시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햇빛이 비치는 그런 세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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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료' 지명된 현역 의원 4명, 대표발의한 법안 보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6/10 05:54
  • 수정일
    2017/06/10 05: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장관 후보자 검증] 의정활동을 통해 살펴 본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의 전문성은?

17.06.09 18:14l최종 업데이트 17.06.09 18:14l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 등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 4명이 문재인 정부의 각료로 지명됐다. 4선 중진 김부겸 의원은 행정자치부 장관에, 3선 김영춘, 김현미 의원은 각각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장관에 지명됐다. 재선의 도종환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현역 정치인의 입각이 드문 사례는 아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이해찬·한명숙·김진표·김근태·정세균·천정배 등 10명의 정치인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각각 이재오·주호영·임태희·유정복·정병국 등 총 11명의 정치인을 기용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완구·최경환·황우여·유일호 등 의원 8명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현역 정치인 입각을 통해 정부의 정무적 판단을 강화시키고 당청 간 소통도 원활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입각할 현역 정치인이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적 소양 혹은 비전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상 선거 결과에 대한 논공행상 차원의 '전리품 나누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14, 15일 열릴 이들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점이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오마이뉴스>는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 등 장관 후보자 4인의 의원 시절 대표 발의한 법안들을 살펴봤다. 

[김부겸] 대표 발의법안만 아니라 정치적 행보로도 확인된 '지역균형발전' 
 

수화기 든 김부겸 행자부 장관 후보자 30일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대구 수성갑·4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윤식 행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 수화기 든 김부겸 행자부 장관 후보자 30일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대구 수성갑·4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윤식 행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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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후보자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경기 군포시에서 당선된 이래, 17대 국회(경기 군포시), 18대 국회(경기 군포시), 20대 국회(대구 수성갑)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뿐만 아니라 정무위원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현 외교통일위원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등 다양한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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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활동 기간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38건이다. 구체적으로는 16대 국회에서 9건, 17대 국회에서 8건, 18대 국회에서 13건, 20대 국회에서 8건을 대표 발의했다.  이 중 행자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소양을 엿볼 수 있는 법안은 지난해 7월 발의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공공기관 이전)'과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지방대학 육성)'이다. 

공공기관 이전 관련 법률안은 그간 '권고사항'이었던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사항'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법상 혁신도시 등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장은 이전한 지역에 소재한 지방대학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거나 졸업예정인 사람을 우선해 고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으면서 지역인재 채용비율이 2014년 10.3%, 2015년 13.3%에 불과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혁신도시 등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인원의 40% 이상을 이전한 지역의 인재로 채용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해당기관 경영실적 평가 등에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역인재의 채용 기회를 확대하여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지방대학 육성 관련 법률안도 같은 내용이다. 현행법상 공공기관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인 기업은 신규 채용인원의 일정비율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통령령을 통해 그 일정비율을 35%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의 경우처럼 '권고사항'에 불과해 그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김 후보자는 신규 채용인원 중 지역인재의 채용비율을 40% 이상으로 상향조정해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한편, 민간기업에 대해서는 '권고사항'이되 상시 근로자 200인 이하 기업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 저임금을 받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근로자 등에게 최소한의 인간적·문화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 생활임금법안'도 행자부 업무와 관계있는 법안으로 보인다. 

사실 김 후보자는 이러한 대표 법안발의 외에도 정치적 행보를 통해서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지역갈등 타파라는 행자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비전을 내보인 바 있다. 그는 2012년 20대 총선 때 "한 지역구에서 4선 국회의원은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면서 민주당 소속으로는 극히 당선이 어려운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낙선했다. 2014년 대구시장 때도 40.33% 득표율로 낙선했으나 그의 도전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도전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62.30%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영춘] 해운업 살리기-수산인 돌보기 법안 눈에 띄어
 

지명 후 질문받는 김영춘 해수부 장관 후보자  30일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춘(부산 부산진구갑·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지명 후 질문받는 김영춘 해수부 장관 후보자 30일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춘(부산 부산진구갑·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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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김영춘 후보자는 2000년 16대 총선 때 서울 광진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17대 국회(서울 광진갑), 20대 국회(부산 진구갑)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예산결산특위 등에서 활동했고, 현재 해양수산부를 감시·감독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있다. 

의정활동 기간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46건이다. 구체적으로 16대 국회에서 6건, 17대 국회에서 20건, 20대 국회에서 20건을 발의했다. 이 중 해수부장관 후보자로서 주목할 만 한 법안은 지난 5월 발의한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3월 발의한 '선원법 일부개정법률안', 그리고 지난해 11월 발의한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어획량 등을 결정하는 한일어업협정의 결렬·지연으로 2016년 7월부터 장기간 조업이 중단된 어업인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법안이다. 김 후보자는 이 법안을 통해 관련 문제로 조업구역 및 어업량 등이 제한되는 어업인들이 대체어장에 출어하는 경우, 그 출어비용을 수산발전기금에서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김 후보자가 해당 상임위원장임에도 이례적으로 직접 제안 설명에 나섰던 법안이기도 하다. 이 법은 해운시황을 분석해 독자적인 해상운임 개발 및 선박 가치평가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관, 즉 해운거래소를 지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국내 해운 업계가 시황분석, 효율적인 운임 변동 관리 수단이 부족해 대규모 시황 침체가 있을 때마다 유동성 부족 등을 맞게 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이 법안은 당시 한진해운 파산 등 국내 해운업계의 위기가 대두됐던 시기에 발의돼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김 후보자도 당시 제안 설명에서 "중요한 법안임을 강조하고 싶어 관례를 무릅쓰고 직접 제안 설명에 나섰다"면서 "한진해운 청산이 우리 해운사업 및 부산 경제에 미칠 여파를 해운거래소 신설로 상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 이력 없지만 '주거복지'-'4대강 비판'에 동참
 

국토부 장관 후보 내정된 김현미 '함박웃음' 30일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현미(경기 고양정·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토부 장관 후보 내정된 김현미 '함박웃음' 30일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현미(경기 고양정·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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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후보자는 2004년 17대 총선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해, 19대 국회(경기 고양 일산서), 20대 국회(경기 고양정)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의정활동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72건이다. 17대 국회에서 12건, 19대 국회에서 31건, 20대 국회에서 29건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도 주로 '관세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인기업활동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세제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대다수다. 

이처럼 상임위 활동, 대표 발의법안들만 보자면, 국토·교통 이력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재정을 통한 주거복지 등에 초점이 맞춰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공약을 감안할 때 관련 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와 국회 간 '가교' 역할로서 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김 후보자는 지난해 여성의원 최초로 국회 예결위원장까지 맡아 2017년 예산안 통과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김 후보자가 다른 동료의원과 함께 공동 발의한 법안들을 봐도 주거 복지와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지난 6월 양승조 의원 등과 공동 발의한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신혼부부를 공공주택 우선공급 대상에 추가하고, 관련 세제지원의 목적을 저소득층 주거안정뿐만 아니라 청년층·고령자·저소득층·신혼부부 등의 주거안정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주택 임차인이 4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보인다. 김 후보자가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낸 '4대강 및 문화재 복원을 위한 특별법'은 4대강 사업의 추진과정과 효과를 검토하여, 인공구조물의 해체, 4대강 및 문화재 복원여부를 결정하고, 이 법에 따른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4대강 복원 위원회'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도종환] 시인 출신 장관 후보자, 문화·예술 진흥에 주력
 

도종환 "삭제된 회의록 누구 지시인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 대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예술위가 미르재단 설립을 위해 대기업을 압박했다는 민감한 내용의 회의록을 삭제해 국회에 제출했다며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에게 "회의록 제출과 관련해 누가 왜 조작했는지, 누구의 지시였는지, 어디까지 보고한 것인지 설명하라"고 지적했다.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은 2016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질의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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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출신의 도종환 후보자는 2012년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이후 20대 총선 때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서 당선됐다. 주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현재 민주당 간사이기도 하다. 

의정활동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52건으로 19대 국회에서 34건, 20대 국회에서 18건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의 경우만 따로 볼 경우, 대표 발의법안의 80% 이상이 교문위 관련 법안이었다. 

이 중 문화·예술 진흥에 관련된 법안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영화배급업 겸영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여 영화상영관 독과점 피해를 방지하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12년 발의한 '지역문화진흥법안'은 문화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재정적·제도적 지원 등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고, 같은 해 발의한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당시 현행법에 '문화예술' 개념에서 빠져 있던 만화를 포함시키는 법적 미비점을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방송과 관련한 법안들도 주목된다. 2014년 발의했던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당시 현행법상 비위사실이 있는 사람도 이사로 선출되는 등 실효성에 문제가 있던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의 결격사유를 확대하여 방송의 공적책임을 실현하도록 했다. 2014년 발의했던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 사태 등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발의됐다. 재난·재해 관련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언론을 대상으로 재난보도 관련 교육 실시하는 등의 내용이 주된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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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문회를 못 보는 이유

 
[민교협의 정치시평] 청문회 속 타인의 삶
 
 
 
 
 
 
 
 
 
2017.06.10 03:37:18
 
 
 
요즘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한창이지만, 어느 하나 보지 않고 있다. 새 정부에서 일할 이들은 물론, 기관의 장이라 해서 반드시 도덕군자를 뽑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의 탐욕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은 이들을 뽑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청문회 후보자들의 삶 역시 그 양 극단을 축으로 하는 중간 어느 지점에선가 자리 잡을 것이다. 
 
이번 청문회 대상이 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이 아닐까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에서 들리는 청문회 이야기에 의하면 그리 간단히 진행되지 않는 듯하다. 청문회답게 당연히 언급되어 검토되어야 할 내용이 있는가 하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통한 흠집 내기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청문회를 바라보는 일반인이나 후보자를 검증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청문회 목적이 무엇인지 서로 공유하고 있을까. 왜 그들을 청문회 자리에 앉혀 놓으며, 왜 철저히 개인의 삶을 드러내어 검토하고 비판하는가. 개인 삶에서 조금이라도 흠결이 있으면 안되는 것일까? 혹은 청문회란 통과만 하면 되는 의례적 절차에 불과한 것일까? 무조건 잡아내는 것도, 무조건 피해가는 것도 아닌, 공인에 대한 검증 절차가 청문회라면 이제 조금은 평안한, 그러면서도 냉정한 마음으로 볼 필요가 있다.  
 
청문회 자리에 선 후보자들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직위는 단순히 기관 운영 능력이나 행정 기술로 끝나는 위치는 아니다. 어찌 보면 후보자들이 지향해 온 삶의 가치가 그대로 국정이나 기관 운영에 반영되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삶과 생활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자리다. 권력 집단에 아부하며 교언영색의 말만 하는 기회주의적 부류가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그 폐해는 결코 적지 않다. 후보자들의 관리 능력과 더불어 평소 삶의 모습과 가치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며 필요하다.  
 
한편, 한 개인의 긴 삶의 여정에서 완전한 인간을 요구하듯이 진행되는 청문회는 지켜보기에도 불편하다. 또 다양한 배경 속에서 나타난 삶의 모습을 획일화된 고정관념으로 몰아가며, 이것이냐 저것이냐 식의 단순 선택을 강요하는 청문회 광경은 보기에도 힘들다. 심지어 각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규정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후보자 개인의 소신마저 마치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정죄하는 형태의 질의 광경은 보는 이를 초라하게 만든다. 
 
삶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나 문화 속에서 펼쳐지기에, 시대적 맥락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처럼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이 없다. 개인의 몫을 시대나 사회때문이라며, 혹은 관례라는 이유를 들어 책임 회피를 해서도 안되지만, 또한 특정 시대나 사회 몫마저 개인에게 전담케 하여 흑백의 이분법 논리로 문제 삼는 것도 부당하다. 인간 삶이 흑백의 문제가 아니라면, 동 시대를 살아온 후보자 각 개인들의 현실 속 삶의 지향점 내지 가치를 살필 때, 무엇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를 허용 범위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후보자들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은 공공성에 대한 삶의 자세와 공익을 위한 실행 의지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리에 연연해 소신을 버리고 권력 풍향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우선 검토되어야 할 자질이다. 또한 개인의 이해 추구에 있어서 일반 상식을 넘어섰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상식을 넘어서는 편법과 불법을 자행한 이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란 매우 위험하다. 이처럼 청문회에서는 옳고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개인 탐욕과 주요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와 지향점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후보자들의 위치를 찾아 밝힐 필요가 있다. 
 
청문회에 선 연령대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던 젊은 시절은 군사 독재와 더불어 개발 논리가 횡행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 살아남은 자들의 모습은 불행히도 그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치열한 열사의 모습으로부터 기회주의적 삶으로 부와 권력을 쥔 이들과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그 가난을 자식에게 세습시킬 수밖에 없던 이들까지.
 
청문회는 중요한 공인을 검증하는 자리로서 한 개인의 삶을 타자의 눈길 속에 드러내어 환히 비추는 과정이다. 거꾸로 말하면 한 개인의 삶을 공인으로서 적합한 지를 타자가 판단하는 과정이다. 공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 중의 하나가 선공후사이며, 이는 공과 사의 분명한 구분을 요구한다. 청문회가 그런 것을 확실히 밝히기 위한 공적 검증 과정이라면, 청문회 진행 중에도 역시 철저히 공과 사가 구분되고, 사적 부분은 개인 몫으로 존중되는 모습이어야 한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공사 구분 없이 들춰내어 비판하는 것이 마치 철저한 검증인양 진행되고 십자가를 밟아야만 통과되는 청문회란 이 시대에 공직자로 나선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청문회처럼 공사 구분 없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쩌면 집단에 의한 폭력일수도 있다. 내가 청문회를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와서 질의를 듣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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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밥이에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밥은 먹으니까

 
등록 :2017-06-09 21:09수정 :2017-06-09 23:12
 
[토요판] 커버스토리 - 6·10항쟁 30돌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 동행 르포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참석해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참석해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웠고 기세에 놀란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했다. 현직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교도소에 갇혔다. 티끌만한 폭력 없이 이뤄진 드라마였다. 그 겨울을 지나고 맞은 6월이 아들이 떠난 지 꼭 30년 되는 6월이다. ‘그때도 최루탄이 없었다면.’ 드라마를 지켜보던 내내 어머니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겨레>는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의 ‘2017년 6월9일’을 함께했다. 8일 진행한 사전인터뷰도 덧붙였다.

 

 

 

엄마는 알고 싶었다. 한열이는 살려고 도망가다 죽은 것일까, 아니면 군사 독재에 맨주먹으로 투쟁하다 죽은 것일까. 최루탄을 맞고 앞으로 팍 고꾸라지는 순간, 무슨 말을 했을까.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쓰러졌을까, 아니면 그저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쓰러졌을까.

 

1987년 6월9일 오후, 2남3녀 중 넷째 큰아들이었던 이한열(사망 당시 22)은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피를 흘리던 아들의 모습은 6월 민주항쟁에서부터 6·29 대통령 직선제까지 이어지는 개헌의 기폭제가 됐지만, 아들은 26일 뒤인 7월5일 최루탄 파편에 의한 뇌손상으로 인해 끝내 숨졌다.

 

“뭔가 알고 싶어서 거리에서 살아왔지만,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뒤돌아보면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내 아들만 없어져버렸네요.” 30년이 지났지만 ‘건강했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엄마가 채 하지 못한 질문에 답해줄 유일한 사람, 아들은 이 세상에 없다. 답을 얻지 못한 엄마는 30년간의 삶에 대해 “허탈하다”고 했다.

 

이한열 피격 30주기를 맞아 9일 서울 연세대학교, 시청광장 등에서 이한열 기념 문화제가 진행됐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77)씨는 아들이 피격된 학교와 아들의 장례 행렬이 이어진 거리 위를 30년 만에 다시 걸었다. 6월이 되면 가장 바빠지는 삶을 살았던 배씨의 발걸음엔 지난 30년의 모진 세월이 엉겨붙어 힘이 실렸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리쬐는 땅 아래 내디딘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두 아들을 기억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행사가 있대요. ‘못 가’ 소리 못하죠.”

 

9일 오전 11시. 옷깃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모양의 배지를 단 배씨가 벽화 ‘청년’ 복원 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경희대학교 문과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경희대에서도 와보라고 해서, ‘못 가’ 소리 못하고 온 거죠. 행사 자체가 이한열이에 관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분들이 그때 당시 벽화를 그려 놓은 것을 복원을 했다고. 자기들 학교 동기도 아닌데, 그런 거 생각하니까 참 고맙더라고요.”

 

‘청년’은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해 1989년 경희대 문과대학(당시 문리대학) 흰색 벽에 그려진 가로 11m, 세로 17m 크기의 벽화다.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과 민중에 대한 염원을 담는 의미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의 모습이 담겼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낡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화를 경희대학교 졸업생들과 학생들이 지난 5월28일부터 2주간 복원했고, 이날 복원 기념식이 열렸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경희대학교 민주동문회 등 약 100여명이 참석한 기념식에서 배씨가 축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섰다. 배씨는 경희대학교에서 ‘청년’의 이름으로 된 벽화가 남아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감격스럽다며 말을 이었다. “30년 전 우리 청년들이 지금 반백이 됐습니다. 반백이 된 우리 청년들의 모습이 여기서 부활한 것 같습니다. 그 속에 내 아들의 모습도 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5, 4, 3, 2, 1!”

 

참가자들의 구호와 함께 벽화를 가리고 있던 천막이 걷히자, 주먹을 불끈 쥔 청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박수를 치며 벽화를 바라보던 배씨가 말했다. “벽이 저절로 무너질 일은 없으니, 우리 세대, 다음 세대 계속 보존되어야겠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김현수 연세대 상경·경영대 학생회장과 포옹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김현수 연세대 상경·경영대 학생회장과 포옹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유가협 추모제,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벽화 복원 기념식이 끝난 뒤, 배은심씨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소속 회원들과 함께 벽화 ‘청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가협 공동의장인 배씨는 고 장현구 열사 아버지인 장남수 유가협 회장, 고 김윤기 열사 어머니인 정정원 부회장 등 유가협 회원들 10여명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배씨에게 유가협 회원들은 같은 고통을 안고 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1987년 7월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고통스러워하던 배씨는 그해 8월 유가협 창립 1주기 행사에 참석했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만나 큰 위로를 받았다.

 

유가협 활동 덕분에 전국의 시위 현장을 누비는 삶도 시작됐다. 배씨는 1998~99년 유가협 회장을 맡아 자식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1999년에는 국회 앞에서 274일간 천막농성을 하며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할 말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활동이었다.

 

“유가협에서는 매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때(80~90년대) 많은 아들딸들이 죽어갔고, 하나같이 돌아가면서 추모제 하는 거예요. 지난번에도 숭실대 박래전 추모제에 가서 사람들 만났는데, 매번 하는 일이 그거예요. 추모제에 못 가면 내가 섭섭할 정도로,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뭔가 알고 싶어서 거리에서 살아왔지만
둘도 없는 내 아들만 없어져버렸네요”
“반백 된 청년들 모습이 부활한 것 같아
그 속에 내 아들의 모습도 있겠지 싶어”

 

“스스로 내가 미운 거야. 밥을 못먹다가도
오후에 누룽지를 끓여먹고 그랬는데”
“기가 막히니까 할 말이 없고,
그냥 왜 그랬냐고 묻고 싶고, 그것뿐”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불러줘서 감사해요.”

 

이한열 열사 30주기 추도식이 진행된 서울 연세대학교 한열동산. 오후 3시가 되자 뜨거웠던 햇볕이 걷히고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769757922’. 이한열이 최루탄에 피격된 날짜(1987.6.9), 숨을 거둔 날짜(7.5), 장례식을 치른 날짜(7.9), 숨졌을 당시 나이(22)를 연이어 새긴 기념물 앞에 배은심씨가 앉았다. 이한열의 대학 후배들이 매년 6월마다 치른 추도식도 올해로 서른번째다. 배씨는 지난 3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도식에 참석했다.

 

“당신께서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이 됐느냐’ 하고 물으면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은데, 후배들에게 내준 숙제가 너무 어려워 입이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30년째 지속되는 침묵의 호통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김현수 연세대학교 상경·경영대 학생회장의 추도사가 시작되자, 추도식 식순이 적힌 종이를 쥐고 있던 배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한열을 잊지 않고 행사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힘든 몸을 이끌고 찾아와주신 어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배씨는 추도사를 끝낸 김씨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추도사가 끝나고 헌화가 시작되자 흐렸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연세대에서 한열이 후배들이 추모제 해준 것도 30년이 됐네요. 이한열이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게 참,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미안한 감도 들고.” 배씨는 한열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후배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매년 힘든 일을 하게 한다는 생각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추모제 할 때는 도서관 앞에서 하는데, 거기서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학생들 공부하는데 시끄러우니까. 그래서 항시 미안했어요.”

 

미안한 마음은 아들의 친구들에게까지 옮겨갔다. “이한열 부축했던 종창이가 30년 동안 상당히 마음이 아팠어요. 오늘부터 종창이 (그) 마음 털어버리고 세상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상호(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총학생회장도 마찬가지예요. (한열이가) 좋은 후배가 됐으면 괴롭게 안 했을 텐데, 그것이 참 괴롭네요. 이 나라가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지, 여기서 추모제 하는 것은 부속에 불과해요.”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춤으로 그때 상황 기억하는 마음이 고맙죠.”

 

1987년 7월9일. 무더웠던 초여름날이 아들의 장례식이었다. 끝까지 아들이 깨어날 것이라 믿었던 배은심씨는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연단에 올라 절규했다. “이제 다 풀고 가거라. 엄마가 갚을란다, 한열아! 한열아! 가자, 우리 광주로!” 엄마는 영정사진 속에 담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세대학교에서 서울시청 광장으로 이어진 장례 행렬을 따랐다. 시청에서는 1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저녁 6시. 30년이 지나 서울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이한열 장례행진 재연 행사에서 이애주 전 서울대 교수의 ‘진혼의 춤’ 베가르기 춤사위 공연이 재연됐다. 30년 전 이애주 교수는 흰 민복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며 이한열의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바람을 맞아 생명을 잇는다는 의미의 ‘바람맞이춤’이었다. 연세대학교 동문들과 이한열 장학생들이 양쪽에서 베를 들자, 이애주 선생은 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베를 가르며 당시 춤을 재연했다. 배씨는 30년 전 그날이 떠오르는 듯 공연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이애주 선생님이 춤췄던 것도 기억이 나요. 이 춤이 이쁘게, 멋지게 추는 춤이 아니잖아요. 춤으로 인해서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 거라서, 춤추시는 분의 마음이 있어야 춤이 안 나오겠습니까.” 배씨가 말했다. “춤추시는 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때로는 춤으로 인해서 눈물도 나오고 참 고맙습니다.”

 

배씨는 이날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30명의 ‘416 합창단’은 노란색 옷을 입고 광장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사람’, ‘약속해’라는 제목의 곡을 합창했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곧은 자세로 무대를 바라보던 배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지난달 17일, 전라남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난 배씨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배씨가 그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내 맘이 먼저 아파야 이 아픔도 전달이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그 사람들보다 먼저 아팠고, 그것이 전해진 거예요. (세월호 가족들은) 지금이 참 많이 울 때예요. 난 30년이 지나도 많이 울고 있는데 이제 3년이 됐잖아요. 눈물이 밥이에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밥은 먹으니까. ‘눈물이 밥이다.’ 그래요 항시. 똑같은 사람들끼리 뭔 얘기를 하겠어요. 밥 먹고 힘내시오. 그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자꾸 30년 해싸니까 이상해. 엊그제 같은데.”

 

지난 7일 저녁,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이한열 30주기 기념전시회 ‘2017이 1987에게’에 참석한 배은심씨는 30년 만에 공개된 아들의 피격 직후 사진 앞에서 한참을 흐느꼈다. 혹여 손으로 느껴질까. 배씨는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는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치기를 반복했다. “30년을 살았는데 남는 건 사진밖에 없고, 참 허탈하네요.”

 

지난 30년, 배씨의 삶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아들을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좋아도 좋은 것도 모르고, 항상 마음이 괴롭게 살았던 나날들’이었다. 배씨는 최근 아들의 사진을 신문에서 봤을 때에도 마음이 아파 밥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항상 힘들어서 아침을 못 먹었어. 그러다가 점심때 늦게 배가 고프더라고. 그게 인간이야. 그래서 그것도 미워. 스스로 내가 미운 거야. 밥을 못 먹다가 오후에 누룽지를 끓여 먹고 그랬는데.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그게 30년 세월이야. 오히려 30년이라고 하는데 나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아직도 바로 어제 일 같아요.”

 

‘허탈했던’ 지난 30년의 시간. ‘집에 가만히 있으면 버틸 수가 없어’ 거리에 나선 그 시간들을 버틴 엄마는 아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한열아 왜 그때 그 자리에 서 있었어?’ 물어보고 싶은 것밖에 없어요. 30년 동안 갖고 있던 질문. 기가 막히니까 할 말이 없고, 그냥 왜 그랬냐고 묻고 싶고, 그것뿐이에요.”

 

황금비 기자, 임세연 최호진 교육연수생 withb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8223.html?_fr=mt1#csidx68e4aa6f37ca6979c9de20740ccf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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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사드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가라”

“문재인 정부는 사드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가라”
 
 
 
편집국
기사입력: 2017/06/08 [22: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드배치반대 단체들이 문재인 정부가 사드배치 철회의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성역없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 편집국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범정부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그 동안 지적된 사안들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와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그동안 사드배치 반대를 주도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8일 오후 230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사드 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우선적으로 기왕의 진행된 사항은 그대로 두고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드 배치를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반입된 장비의 철거를 요구했다.

.

또한 참가자들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미국 MD 참여 문제를 포함한 사드 배치가 한반도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한미 합의의 적법성비용 부담 문제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점 재검토를 통해 사드 배치 철회의 길을 열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들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해 사드배치를 철회할 뜻이 없을 것이라고 통보하는 등 새 정부는 벌써부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수그러들 리 없고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의 투쟁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들은 정부가 기왕에 사드 배치에 관한 범정부 TF를 구성했다면 그 업무의 범위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사드 철회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아야 TF 구성과 운용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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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관련 범정부 TF 구성 및 1차 회의에 즈음한 공동기자회견문]

 

사드 가동과 공사 중단!, 배치 장비 철거!, 사드 배치 철회!

 

― 사드 배치 관련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사드 배치 전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점 재검토를 통해 사드 배치 철회의 길을 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범정부 TF’를 구성해서 그 동안 지적된 사안들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와 절차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사드 부지 지역인 소성리에는 경찰병력만 뒤로 물러나 있을 뿐사드 배치(공사)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헬기를 이용한 사드 관련 장비유류병력의 반입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이뤄지고 있으며환경영향평가도 없이 불법으로 들여온 사드 레이더가 주민들에 대한 아무런 안전 조치도 없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먼저 문재인 정부에게 지금 당장 사드 레이더 가동 중단을 포함하여 사드 배치 관련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 반입된 장비를 철거하여 이미 저지른 불법성을 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그렇지 않고 기왕의 진행된 사항은 그대로 두고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드 배치를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미국 MD 참여 문제를 포함한 사드 배치가 한반도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한미 합의의 적법성비용 부담 문제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점 재검토를 통해 사드 배치 철회의 길을 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추가 반입된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한 국방부의 보고 누락정상적 환경영향평가 회피기형적인 사드 부지 공여 등의 문제점이 밝혀졌다이는 사드 배치가 얼마나 불법적이고 기만적으로 이뤄져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이 짧은 기간에 이처럼 심각한 문제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조사와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새 정부는 벌써부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사드와 관련한 나의 (진상조사지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5/31)고 밝혔고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을 방문하여 새 정부가 사드 체계 배치를 철회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통보했다.”고 한다.(중앙일보, 6/6)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미 배치된 (사드는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해서 굳이 철회하거나 그럴 이유가 없다.”(6/7)고 밝혔다우리는 환경영향평가 등 일정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사드를 배치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매우 큰 실망과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검토하려면 사드가 과연 한국 방어에 필요한 무기인지부터 따져보는 것이 첫째 순서다군사적 효용성이 없다면 굳이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도 필요 없이 사드 배치를 철회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사드를 포함한 MD가 한반도 지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미 의회보고서 등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듯이 사드로 북핵 미사일을 남한에서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그럼에도 한미당국은 사드가 북핵 미사일을 막는 만능의 무기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거짓 선동을 해왔다따라서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문가의 검토와 함께 국민적인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한미당국의 사드 배치 합의가 적법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사드 배치는 우리의 영토주권과 공역주권을 제약하고중국과 러시아가 유사시 사드 기지를 1차적 공격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우리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과 경제적 타격을 입히며 성주와 김천 주민의 생존을 해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따라서 이런 문제는 당연히 한미간 법적 권리와 의무를 창설하는 조약 체결로 규율되어야 한다그러나 한미당국 사이에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이 체결된 바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답변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한 이 같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환경영향평가 등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명분으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사드 배치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반발이 수그러들 리 없고 그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가 위태로워지며한국의 미일MD 및 삼각군사동맹 편입으로 나라의 주권 확보와 민족의 통일에 중대한 걸림돌이 놓이게 된다더욱이 주민들이 벌써부터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데서 보듯이 사드배치로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의 투쟁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환경영향평가 문제도 철저히 조사해야 마땅하지만 이것은 이전 정부가 저지른 온갖 불법과 전횡의 한 사례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왕에 사드 배치에 관한 범정부 TF를 구성했다면 그 업무의 범위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당연히 사드 배치 관련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 결과에 따라 사드 철회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아야 TF 구성과 운용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오직 우리나라의 주권과 평화이익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놓고 사드 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2017. 6. 8.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사드배치저지부산울산경남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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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총선, 집권 보수당 과반상실 패닉...노동당 약진

 
'영국판 박근혜' 메이 총리 입지 흔들
2017.06.09 08:51:46
 

 

 

 

8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조기총선에서 '압승'을 자신했던 집권 보수당이 과반의석을 상실할 것이라는 출구조사로 충격에 빠졌다.


BBC 등 방송 3사가 이날 투표 마감 직후 발표한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은 제1당은 유지하지만, 과반의석(326석)을 간신히 넘긴 330석에서 오히려 16석을 잃은 31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제1야당인 노동당은 37석이 늘어난 266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34석, 자유민주당은 14석 등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얻지 못해, 어느 당도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헝 의회(Hung Paliament)'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 근소한 과반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 '하드 브렉시트 협상'에 나서겠다며 조기 총선을 요구한 메이 총리. 8일 출구조사 결과 집권 보수당이 오히려 과반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됐다. ⓒAP=연합


"메이 총리에 큰 타격, 재선거 상황 올 수도"

 

 

<뉴욕타임스>는 "출구조사가 개표로 확인되면, 3년이나 앞당긴 조기총선을 요구한 테레사 메이 총리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조기총선의 취지대로라면, 조만간 재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메이 총리가 2년만에 조기총선을 요구한 것은 '브랙시트 협상'을 위해서는 과반수를 조금 넘긴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의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인 여론의 동향을 볼 때 조기총선으로 의석수를 대폭 늘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의 적임자'로서의 단호한 의지의 '철혈여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당내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추앙받았으나 '불통의 여인'으로 추락했다. 

재가요양 서비스 비용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던 복지정책을 노인이 보유한 주택의 가치까지도 소득 기준에 포함해 집을 가졌지만 소득은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갑자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혔다. 이 공약은 보수당의 주지지층인 노인층의 분노뿐 아니라 노인을 둔 가정의 많은 유권자들을 돌아서게 했다. 당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공약을 관철시켰던 메이는 비난이 거세자 곧바로 이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오락가락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지난 4월 메이가 조기총선을 발표했을 때 보수당과 노동당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가 넘었지만 이 공약이 발표된 직후에 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뉴욕타임스>는 "영국 정부가 어떻게 구성될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2주내에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이번 영국 총선 결과는 영국 국민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선택하며 전세계에 파장을 던진 것처럼, 또다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반영하듯 출구조사 직후 영국의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2%가 넘게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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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 이외에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조류독감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보좌관을 혼낸 문재인 대통령, 왜?
 
살처분 이외에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조류독감
 
임병도 | 2017-06-09 09:06: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보고 내용을 질책했습니다. 질책은 꾸짖거나 나무라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혼을 냈다고 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다섯 차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는데 보고 내용을 질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유는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입니다.

6월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방역대책 추진 상황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AI(조류인플루엔자) 대책이 의례적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한 후 “바이러스 변종이 토착화 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는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기존의 관성적인 문제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근원적 해결방식을 수립하라” 고 지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더니 대책이라고 내놓은 내용들이 기존과 별다를게 없으니 다시 대책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살처분 이외에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조류독감’

 

▲지난 2014년 전북 정읍시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조류독감 확산 방지를 위한 오리 살처분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이날 처분된 오리는 2만5천여마리였다 ⓒ매일노동뉴스 윤성희 기자

 

2003년 12월 충북에서 처음 조류인플루엔자가 발견됐습니다. 거의 매년 같은 패턴으로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살처분’이 유일합니다.

AI가 발생하면 해당 농가를 중심으로 반경 3km까지 위험 지역으로 규정합니다. 이후 가금류 이동을 금지하거나 방역 조치를 합니다. 그러나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중점적으로 하는 대책은 감염농가 반경 500m 이내 가금류를 모두 의무적으로 살처분 후 땅에 묻는 방식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독 AI(조류인플루엔자) 대책을 보고 받고 혼낸 이유는 ‘살처분’ 이외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공무원들의 한계를 질타한 셈입니다.


‘2006년에 비해 10배가 넘는 살처분이 이루어진 2016년’

 

▲2011년 이후 조류독감 살처분 및 보상금 지급현황 자료출처: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포커스뉴스 이희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살처분 이외에 대책이 없다고 무조건 혼을 낸 것은 아닙니다. 조류독감의 전파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처분되는 가금류와 피해 보상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2006년 1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AI가 104일 동안 진행되면서 280만 마리가 살처분됐습니다. 2016년 발생한 AI로 인해 3000만 마리가 넘게 살처분이 되는데, 불과 50일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AI확산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수천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되고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취임 후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천천히 합시다’라고 말할 사건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조류독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AI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살처분 숫자 [카드뉴스] 사상 최악의 AI, 한국과 일본 정부의 대응 ⓒ뉴스타파

 

 

지난해부터 발생한 AI는 두 가지 혈청형(H5N6, H5N8)이 동시에 발견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바이러스 변종’ 등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국내에서 발견한 AI 바이러스가 야생조류 때문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2016년 11월 16일부터 12월 16일까지 한국이 1600만 마리를 살처분 하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56만 마리를 살처분했습니다. 같은 병원체에 의한 감염병인데 한국이 압도적으로 살처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 대책이나 방역 등이 부실했다고 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무총리를 컨트롤타워로 하여 완전 종료 시까지 비상 체제를 유지하면서 근본적인 해결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아직도 부족하다며 질책한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을 질책한 것은 재난상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매년 발생하는 조류독감을 근절하거나 초기에 막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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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살해당했지요"

 

[6월 민주항쟁 30주년] 1987년 3월 이야기

17.06.08 21:11l최종 업데이트 17.06.08 21:11l

 

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1987 우리들의 이야기' 특별 온라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시회 내용 가운데, 가상 시민 인터뷰와 시대적 풍경이 기록된 사진 등을 갈무리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사리암의 50대 비구니 스님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영가 49재 천도식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영가 49재 천도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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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군의 49재를 맞아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군의 49재를 맞아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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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3월 3일 어깨동무를 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
▲  1987년 3월 3일 어깨동무를 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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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87년 3월 3일입니다. 경찰 고문에 희생된 박종철 군의 49재 날이에요. 그런데 거리엔 최루탄만 날리네요.

 

조계사에서 범종단적으로 올리기로 했던 박종철 군의 49재가 결국 취소됐다는 소식이에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밀려 조계사 대신 부산 괴정동의 작은 절로 바뀐 거지요. 경찰은 쫓고 시민은 쫓기는 험한 모습이 하루 종일 전국에서 펼쳐졌어요. 전투경찰이 도시를 봉쇄하고 거리를 장악해 버렸거든요. 온 세상이 깊은 슬픔과 매운 최루탄으로 뒤덮인 하루였어요.

지난 2월 7일 거행된 박종철 군 추모식 때에도 정말 서럽고 죄송했어요. 경찰이 절 입구에 진을 치고 있어 박종철 군 친척들도 못 들어왔대요. 스님들도 모두 자리를 슬며시 피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박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추모 타종만 겨우 울렸대요. 젊은 생명을 그렇게 보낸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사람들이 모여서 추모도 하지말라는 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요.

부끄러워서 부처님 뵐 낯도 없네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선 사람이 해야할 예의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젊은 승려들과 시민들이 전국에서 최루탄을 뚫고 49재를 올렸다고 하니 고마움의 작은 빛이 비치는 것만 같아요. 나무 아미타불.

박종철 군의 마지막 길에 부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매운 최루탄 대신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 차길... 두 손 모아 염원드려요.

형제복지원 사건의 20대 피해자
 

 1987년 조회를 끝내고 청소를 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원생들
▲  1987년 조회를 끝내고 청소를 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원생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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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3월 14일 명동 입구에서 총을 들고 시민을 검문 중인 경찰들
▲  1987년 3월 14일 명동 입구에서 총을 들고 시민을 검문 중인 경찰들
ⓒ 박용수·경향신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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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은 대한민국의 아우슈비츠였어요. 여기에 잡혀 온 다음부터 내가 본 것은 딱 하나예요. 아수라가 지배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

여기가 처음 생긴 건 1975년이래요. 그러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부랑아 단속을 하면서 수용인원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무자비하게 잡혀 왔대요. 밤늦게 귀가하던 회사원에서부터 바람 쐬러 나왔던 여성까지.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잡아 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짐승 취급을 받았어요. 가격이 매겨진 동물처럼,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가축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꽁보리밥에 소금 뿌린 깍두기와 썩은 전어 젓이 전부였어요.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새벽부터 군가를 부르며 구보까지 해야 했어요. 그리고 나선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야 했죠. 차라리 죄수들이 수용된 교도소가 여기보단 나을 거예요.

왜 우리가 매일 맞아야 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많은 원생들이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살해당했지요.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죽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암매장당하거나 해부용으로 팔려 나갔대요. 내가 살아남은 건 정말 천운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아직도 매일 밤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다시는 그런 데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요. 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1987년 3월 3일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가두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강제로 연행하는 경찰
▲  1987년 3월 3일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가두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강제로 연행하는 경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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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박용수,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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